자율주행차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미 지방자치단체에서 가까운 거리의 셔틀버스를 모델로 시범운영이 시작되고, 해외에서도 자동차기업들마다 자율주행차에 대한 원천기술을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자동차가 운전자 없이 혼자서도 도로와 공간, 시간의 여러 정보를 스스로 분석해서 운행을 할 수 있게 되면, 그 자동차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자율주행차가 일반화되면 자동차보험의 형태도 달라질 것이고, 자율주행차를 대상으로 한 O2O서비스 또한 여러 가지 요금체계를 갖게 되어, 결국 비용에 따른 이동서비스의 차별화를 우리 모두 이해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런데 1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진행했던 흥미로운 프로젝트는 자율주행차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었다. 문화예술과 기술의 협업 프로젝트인 콘텐츠 임팩트의 과제 중 <자율주행차 × 엔터테인먼트 ‘스스로 가는 자동차와 당신의 시간’>인데, 이 과제는 ‘자율주행차에서 남는 시간을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크리에이터와 엔지니어가 협업하는 융합스타트업 지원 프로젝트이다. 이미 독일자동차그룹들은 이러한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고 투자하고 있는데, 그들이 예상하는 미래의 도심교통환경은 통신연결(Connected), 자율주행(Autonomous), 공유(Shard & Service), 전기(Electric) 등 4개 요소로 요약하며 앞 글자를 따서 케이스(CASE)라고 명명한단다.

지난달 31일 세종시 어진동의 도로에서 채흥석 서울대 자율주행차연구팀 연구원이 자율주행차를 시험 운행하고 있다. (출처:경향신문DB)

인공지능(AI) 기술을 현재 AI스피커나 AI비서 등의 상품으로 만나는 소비자들은 그러한 서비스에 얼마나 다양한 원천기술들이 상존하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수많은 특허기술들은 이미 여러 스타트업 기업들의 연구에 의해 축적되어 왔고, 한국이 이러한 과정에 뒤처지고 있다는 경고가 여러 분야에서 인지되고 있다. 국내 IT기업들이 인공지능, 로봇, 블록체인, 자율주행차 등의 기술을 연구하고, 원천기술을 소유한 기업을 인수·합병하며 스스로 특허를 점유하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다가올 차세대 플랫폼의 선도기업이 되려는 몸부림이다.

자율주행차를 연구하는 자동차기업들은 안전운전과 효율적인 운행을 위해 주행기술 중심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데, 실제 자율주행차가 일반화된 이후, 그 공간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행위주체들이 어떠한 서비스를 추가로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는 이제 시작이다. 자율주행차는 움직이는 플랫폼이다.

현재 한국콘텐츠진흥원 인재양성팀에 의해 선정된 4개 스타트업 기업의 연구기술은 다채롭다. 빛의 편광현상을 이용해 사물의 3차원적 위치와 방향을 정확히 측정해내는 편광센싱기술, 비언어적 소리정보를 분석하여 특정음악의 장르·분위기·화자의 성별·감정 등의 데이터를 맞춤형으로 재생하는 기술, 영상 및 음성 정보를 종합해 사람의 감정과 상태를 파악하는 안면분석 인공지능 감정인식기술, 원격으로 각종 기기를 조작할 수 있는 ‘가상터치’기술 등이 선정된 기업들의 원천기술이다.

곧 다가올 자율주행차 시대엔 차량 내부에서 탑승자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컨디션과 감정, 날씨 등과 연동된 개인맞춤형 콘텐츠들이 상영되고, 직접 차량에 설치된 조이스틱과 슈팅건을 이용한 게임을 하거나, 차량 동선을 이용한 GPS에 기반한 증강현실 네트워크게임도 가능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기술을 ‘인하우스 플러그인(기업자체 소유기술)’으로 내장한 자동차기업은 판매마케팅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 특정 브랜드의 자율주행차를 구입해야만 운행 중 즐길 수 있는 킬링타임용 게임이나 영화, 웹툰 등이 다수 축적되어 있다면 구매자들은 그러한 차량을 먼저 찾게 될 것이다.

움직이는 플랫폼으로서의 자율주행차는 이동체의 개념이 아닌 새로운 콘텐츠 소비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며, 그 공간과 이동시간에 맞는 콘텐츠의 스토리텔링과 연출방식 또한 맞춤형으로 개발될 것이다. 국내 자동차기업들의 차별화된 연구투자와 콘텐츠에 대한 관심 및 분발을 기대한다.

<한창완 세종대 교수 만화애니메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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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교통공사가 권력형 채용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연일 대서특필된다. 비교적 채용절차가 간단한 무기계약직으로 먼저 공사에 입사한 후 정규직으로 대거 전환시키는 ‘신고용세습’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올해 3월 서울교통공사가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시킨 1285명 중 108명(8.4%)이 교통공사 재직자의 친·인척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문재인, 박원순, 민주노총 채용비리게이트’라고 규정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자유한국당의 일방적인 주장을 근거로 일제히 채용비리 잔치판, 정규직 직원들의 고용세습, 친·인척 채용비리, 청소년들에 대한 일자리 약탈 등 문재인 정부와 서울시, 민주노총이 합작한 유사 이래 최대의 비리인 것처럼 집중포화를 퍼붓는다. 참으로 기가 막힌 악선동이다.

윤준병 서울시 행정1부시장이 지난달 24일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서울교통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추진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교통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본격화된 계기는 2016년 5월28일 서울메트로(서울교통공사 전신) 하청업체 소속의 19세 김군이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중 전동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였다. 사고 초기 김군 개인의 과실로 책임을 전가하려던 서울메트로 측의 태도에 유가족과 시민들의 분노는 일파만파로 번져나갔고 마침내 서울시 교통본부장 입회하에 “서울시 주관으로 진상조사단 구성, 진상조사 실시 후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나는 당시 유족을 대리해 합의에 참여했다. 합의 전후로 두 개의 진상조사기구가 1~2개월간 진상조사를 한 결과 김군 사망 사고의 원인은 안전업무 외주화로 인한 위험의 외주화,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의 구분과 차별로 인한 소통 단절, 경영합리화와 비용절감을 이유로 한 과도한 인력감축 등으로 압축되었다. 그 대책이 안전생명 업무의 직영화, 노동의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정규직화, 2인 1조 작업이 가능하도록 하는 인원충원 등이었다. 박원순 시장은 진상조사기구의 진상조사 과정에서 지하철 안전과 관련 있는 스크린도어 수리, 차량 검수, 구내운전, 모터카 및 철도장비·궤도 보수, 역무 지원 등의 업무를 안전업무직으로 직영화하고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을 무기계약직으로 고용할 것과 2인 1조 작업이 가능하도록 안전업무 인원을 충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안전업무직 무기계약직 전환방식은 두 가지 경로를 거쳐 이루어졌다. 첫째, 구의역 사고 당시 이미 하청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던 노동자들에 대해선 하청업체 입사과정의 문제 등 결격사유가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무기계약직으로 고용하는 제한경쟁 채용방식을 취했다. 구의역 사고 당시 김군이 소속되어 있던 은성psd를 비롯한 하청업체들에서 직접 채용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급여수준은 최저임금을 조금 상회하는 등 매우 열악했다. 이들은 서울메트로의 직영화와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에 대한 어떠한 계획도 없는 시기에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하고 취업한 밑바닥 노동자들이었다. 둘째, 부족한 인원을 신규로 채용하여 충원하는 과정에선 공개채용 방식을 취했는데, 서류심사 및 블라인드 면접 방식이었다. 권력이나 정규직 재직자 지위를 이용한 친·인척 채용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2017년 5월 서울교통공사 출범으로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이 동일 업무를 수행하는 일이 발생했다. 예를 들면 스크린도어 수리업무의 경우 서울메트로는 무기계약직, 도시철도는 정규직이 담당한다. 이런 이유로 구의역 사고 1주년을 맞이하여 무기계약직의 완전한 정규직 전환 요구가 표면화되었고, 같은 해 7월17일 서울시는 결단을 내려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발표했다.

서울교통공사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을 보면, 정규직화를 전제로 무기계약직을 채용한 것이 아니다. 이명박근혜 정부 시절 경영효율화와 비용감축을 이유로 다수의 위험한 업무와 주변 업무를 외주화했고, 그 결과 안전에 위험이 증가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다 19세 김군의 사망사고를 계기로 사회적 자성이 일면서 다시 정규직화를 추진한 것이다.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는 안전생명, 상시지속적 업무에서 사고 위험을 줄이고 노동에서의 차별을 없애기 위한 정규직화를 근거도 없이 고용세습, 권력형 채용비리로 둔갑시켰다. 악선동을 당장 멈추라. 그 사악함을 김군이 지켜보고 있다.

<권영국 구의역 사고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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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단순히 안보와 치안만을 담당하는 시대는 진작 끝났다. 이젠 국민의 삶 구석구석에 국가의 역할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헌법도 국가운영의 틀을 제시한다는 차원보다는 국민의 삶의 원리를 규정한다는 의미로 거듭나고 있다. 독재시절에는 그저 대통령을 몇 번이나 할 수 있다거나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하겠다는 독재자의 의지만 담긴 것처럼 여겨졌지만 이젠 그런 시대가 아니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70조는 다만 하나의 기준을 제시할 뿐이다.

국가는 헌법 전문에서 다짐하는 것처럼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기 위한 가장 구체적이며 실효성 있는 기구다. 어쩌면 유일한 대안이며 안전장치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가 겪는 많은 문제가 국가의 역할과 닿아 있다. 아파트 값이 폭등하면 곧바로 국가, 구체적으로는 국가운영의 책임을 맡고 있는 집권세력에게 비난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일상이 힘들어지면 관련 장관의 무능을 성토하는 것도 당연하다. 개인의 안전, 나아가 행복까지 국가가 책임져야 하며, 국민을 위한 국가의 역할은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하지만 국가가 최고의 규범이 정하는 대로, 또는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작동했던 것은 아니다. 2014년 4월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 국가는 없었다. 마치 국가기능이 마비된 것처럼 죽음의 행렬을 방치했다. 그래서 시민들은 세월호를 절대 잊을 수 없다며 4년 반이 지나도록 ‘세월호 배지’를 달고 다니며, 이게 국가냐고 묻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싱가포르에서 불쑥 꺼낸 이야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요동쳤다. 박 시장이 “여의도와 용산을 통으로 개발하겠다”는 말을 꺼내자마자, 서울 부동산 값이 폭등했다. 서울이 온통 부동산 전쟁터로 변하자, 시민들은 이게 국가냐고 물었다. 정부는 도대체 뭘 하냐는 거다. 여당 소속의 서울시장이 국토교통부 등 정부부처와 논의조차 없이 불쑥 꺼내든 카드로 부동산 값 폭등을 부채질하는 게 도대체 말이 되냐는 비판이었다. 박 시장은 부동산 폭등은 예측하지 못했다며 통개발 프로젝트를 7주 만에 철회했지만, 가장 오랫동안 서울시장이었던 사람이 내놓은 변명치고는 옹색했다.

세월호든 부동산이나 미세먼지든 쟁점의 핵심은 국가의 역할에 있다. 국가가 역할만 제대로 했다면 겪지 않아도 될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고통들이 너무 많다. 답답하기 짝이 없다.

늘 답답한 형국이었지만, 최근 사이판 태풍 사태에서 보여준 정부의 대응은 모범적인 사례로 꼽힐 만큼 좋았다. 사이판에 들이닥친 태풍으로 공항이 폐쇄되고 여행객들은 발이 묶였다. 사이판을 찾은 사람들은 휴양지에서 끔찍한 공포에 직면해야 했다. 이들을 위해 국가는 즉각적인 조치를 취했다. 정부의 대응은 신속하고도 정확했다. 태풍으로 공항에서의 정상적인 이착륙이 불가능해지자, 군용기를 보내 신속한 이송작전을 벌였다. 군용기로 여러 차례 사람들을 옮기는 과정도 좋았다. 노약자들부터 우선적으로 이송했는데, 국가다운 품격 있는 조치였다. 신속하고 정확하되, 품격까지 갖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모처럼 국가다운 국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박수가 아깝지 않은 대목이다. 그런데 이찬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의 강의를 듣다가 정부가 중요한 대목을 놓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이판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은 비단 대한민국 국민만은 아니었을 거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대응은 우리 국민만을 위험지역에서 안전지역으로 옮기는 것에서 멈췄다. 국민들은 세금을 내는 주권자들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봐도 그게 당연한 일인지는 의문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신속·정확은커녕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치자. 그런데 중국이나 일본 정부는 지금의 한국 정부처럼 신속하게 군용기까지 파견해서 자국민들을 실어 나르곤 할 일 다했다며 사이판을 떠났다면, 그 섬에 남겨진 한국 국민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물론 국가의 기본적인 구실도 하지 않는 한국 정부를 원망했겠지만, 자기 나라 국민만 챙긴 그 나라 정부에 대한 원망도 만만치 않았을 거다. 이런 게 바로 인지상정이다.

자기 국민을 먼저 챙기는 건 그 나라 정부의 당연한 책무겠지만, 여력이 닿는다면 국적을 불문하고 도와줘야 한다. 인도주의의 정신이 바로 그렇고,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겠다는 헌법적 다짐을 실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대한민국의 품격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했다. 아쉽지만, 우리 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국가의 역할은 오로지 자기 국민을 구하는 데서만 멈췄다.

국가는 다른 국가와의 경계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보한다. 높은 담이나 철책으로 국경을 만드는 까닭도 거기 있다. 한국의 휴전선 철책은 이스라엘의 분리장벽과 더불어 가장 극단적인 경계였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내몰기 위한 분리장벽과 남침으로 참담한 전쟁을 겪었던 우리의 철책은 물론 질적으로 다르지만, 그 쓸모와 규모는 엇비슷하다.

대한민국이 가끔씩이라도 경계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 150만명이나 되는 난민을 받아들인 독일처럼은 못할지언정 구조의 손길이라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까지 골고루 내밀면 어떨까. 경계를 단박에 허무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 경계를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만드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할 거다. 이찬수 교수에 따르면, 이건 경계를 실선(實線)이 아니라 점선(點線)으로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면 경계가 헐거워진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겠고, 우리가 왜 세금을 내냐며 반발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렇지만 경계가 헐거워진 만큼 외부와의 소통도 자유로워지고, 안과 밖을 넘나드는 일도 훨씬 쉬워진다. 꽉 닫힌 경계 속에서 우리가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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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을 포함해서 가습기살균제, 미세먼지, 폭염, 미세플라스틱 등 열거하기도 버거운 각종 환경문제들에 대한 수습이나 개선에 관한 긍정적 소식은 감감하고 오히려 시간이 가면서 더 많은 문제들이 불거지는 형국이다. 이 만연한 문제들의 해결을 모색해야만 하는 국정감사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기 환경부 장관의 전격 교체가 공표되었고 국정감사는 흐지부지 넘어갔다. 환경부 장관 교체발표 바로 얼마 전 문재인 정부의 2기 내각구성을 위한 대규모 장차관 교체가 있었다. 이 당시 포함되지 않았던 환경부 장관이 묘한 시기에 교체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지난봄 발생한 ‘재활용쓰레기 수거대란’의 대응문제가 이유였지만 그렇게 인정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 보인다. 다음 세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알량하게 남겨진 얼마 안되는 자연공원에까지 케이블카와 공항 등 개발사업이 정부의 힘에 기대어 추진되어왔지만 진전은 없었고, 급기야 흑산도공항 건설사업이 공원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자 바로 장관 교체가 공표된 것이다. 개발본능이라 할 만큼 각종 토건행위에 대한 신봉은 촛불을 통해 일어선 정부라도 별반 다르지 않은가 보다. 자연공원에서만큼은 대규모 개발사업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국가의, 환경부의 지극히 기본적인 업무수행 의지가 내심 못마땅했나 보다.

환경부 장관을 경질시킬 만큼 흑산도공항이 중요할까? 찬성과 반대는 한 치의 양보도 없어 보이는데, 이제는 다른 시각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한다. 최근 몇 년간 우리는 귀에 딱지가 박히도록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들어왔다. 마치 이 경쟁에서 뒤처지면 국가가 곧 망할 것처럼 했지만, 말만 요란했지 현실은 이미 뒤처져 있는 것 같다. 4차 산업혁명의 상징적 기업 중 하나는 ‘우버(Uber)’인데, 이미 전 세계 공유경제서비스에 관해 독보적 입지를 구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존재감이 없다. 흑산도공항과 4차 산업혁명, 결이 다른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개인적으로 우리나라가 처한 현주소와 묘하게 일치되는 안타까운 조합으로 보인다. 우버는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보아오던 소위 ‘하늘을 나는 택시’를 2년 후인 2020년에 시범운영하고 5년 후인 2023년에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이용금액도 1.6㎞당 500원 수준으로 떨어뜨린단다. 대략 계산하면 흑산도에서 육지까지 약 3만원에 각종 제약 없이 이동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2023년은 먼 미래가 아니다. 흑산도공항 건설이 원활하게 추진될 경우 개항이 가능한 해와 같다. 물론 우버의 ‘에어택시’는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첨예한 대립이 진행 중인 흑산도공항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국가의 핵심·첨단사업은 대부분 서울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국토의 불균형 발전으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늘 소외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고, 특히 도서지역 주민들은 참담한 기분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을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 온 것이다. 주민의 염원을 핑계로 추진하는 흑산도공항이 건설된다 해도 현실적으로 운행 가능한 노선은 서울~흑산밖에는 없을 것이다. 또 다른 서울 블랙홀을 만들 뿐이다. 현시점에서 ‘미래는 소외된 국민을 우선으로’ 새로운 혁신교통을 개발하여 낙후된 국립공원 도서지역에 우선 배치하겠다는 정책 추진은 어떨까? 이를 준비하기 위한 ‘에너지자립도서’는 어떨까?

4차 산업혁명을 말하는 정부가 국립공원에까지 구시대적 토건을 추진하고, 이를 막고자 하는 환경부 장관은 경질되었다. ‘촛불민심’ ‘적폐청산’ ‘정의사회’를 외치며 고위공직자 인사배제 원칙을 표명하며 출발한 정권에서 새로 내세운 장관 후보자는 이 ‘원칙’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아 보인다. 촛불 이전 인사참사와 변한 것 없는 반복의 레퍼토리이다. 촛불혁명의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것 같은 안타까움은 나뿐일까? 초심을 생각해볼 때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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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청년들이 단기 성공 대신 장기 생존을 추구하고 있다. 사회적 삶이 서바이벌 게임처럼 변모한 지금, 오래 살아남은 자가 승자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게임은 러시안룰렛이나 폭탄 떠넘기기와 같이 매번 탈락자를 솎아낸다. 이렇게 되면 게임에 임하는 근본 태도가 달라진다. 이번만 피하고 보자. 남에게 위험을 전가하자. 하지만 마냥 운이 따라줄 수만은 없다. 어차피 승자는 소수일 수밖에 없는 잔혹한 게임에서 패배는 시간문제다. 경쟁에서 이길 때 잠시 기쁨을 누리지만, 패배자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괴롭고 처연하다.

짧은 주기를 가지고 거의 무한 반복되는 서바이벌 게임은 비극을 연상시킨다. 비극이란 무엇인가? 비극에서 주인공은 악한 사회의 도덕법칙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에 맞서 싸우다가 결국 파멸에 이른다. 관객은 이 싸움이 피할 수 없는 파국으로 끝날 것임을 예감하기에 비장감을 느낀다. 주인공이 선한 덕성을 지닐수록 이는 더욱 증폭된다. 마침내 주인공을 좌절시키는 사회의 도덕법칙에 대한 분노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비극은 악한 사회를 위협한다.

지금 사방에서 청년들이 악한 사회에 사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울부짖고 있다. 하지만 기성세대 관객은 결코 분노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SBS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은 이에 대한 답을 준다. 여기에서는 ‘소박한 일’을 무한 반복하면서 그 분야에 달인이 된 사람이 등장한다. 프로그램 소개다. “수십년간 한 분야에 종사하며 부단한 열정과 노력으로 달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 사람들을 소개하는 삶의 스토리와 리얼리티가 담겨 있는 프로그램.” 2005년 4월에 처음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2018년 10월 말 현재까지 총 643회나 방영되었다. 워낙 장기 생존에 뛰어난 달인들만 찾아다니다보니 프로그램 자체도 장기 생존의 달인이 되었다.

달인사회에서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살아남은 자의 영예’로 뒤바뀐다. 기성세대는 청년들에게 말한다. 모든 패배는 너희들이 열심히 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사회가 악하다고 탓하지도 말고 패배를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작은 일이라도 성실하고 줄기차게 하다보면 언젠가 너희들도 우리 기성세대처럼 생존의 달인이 될 수 있다. 청년들은 이러한 약속을 믿고 주어진 일을 죽어라 열심히 하다가도 때론 갸우뚱 묻게 된다. ‘죽어라’ 노력해서 얻은 영예가 고작 생존이라면 이걸 굳이 ‘죽어라’ 할 필요가 있나? 이러한 회의는 청년들로 하여금 부당한 경쟁 게임 밖으로 나가도록 부추긴다.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대충 살자’ 놀이가 한 예다.

이를 보는 나의 심경은 복잡하다. 지방대생들이 적당주의 집단 스타일로 살아가고 있다는 연구를 얼마 전 발표한 터였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지방대생은 모든 상황에 적당하게 관여하는 것을 서로의 의무로 받아들인다. 이제 이러한 적당주의 집단 스타일이 모든 청년들로 확산되고 있는 것인가? 본격적인 경험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일단 나는 여기서 어떤 차이를 본다. 지방대생의 적당주의가 유사가족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새로운 적당주의는 모든 사회관계 밖에서 벌어지고 있다. 또한 전자가 상황에 적당하게 관여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아예 상황 밖으로 나가 관여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달인이 되라고 강요하는 사이 청년들이 적당주의로 응수하고 있는 셈이다. 생활의 달인 흉내를 내다가는 일찍 ‘불타 없어져’ 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대충 살아도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어야 좋은 사회다. 죽어라 노력해야 생존할 수 있는 전장 같은 사회는 분명 악하다. 그래서 청년들의 적당주의는 달인사회에 대한 나름의 저항일 수 있다.

하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우선 장기 생존하기 위하여 대충 살아가는 삶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더 나아가 청년들이 상황에 아예 관여하지 않게 되면 우리 사회에 더 좋은 삶을 만들 희망이 고갈된다. 악한 사회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일에는 몰입하고 헌신해야 한다. 무엇이 가치가 있는 일인지 청년들이 서로서로 계속 물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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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00명 안팎의 청년들이 ‘집총 거부’라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1년6개월의 실형을 살고 있다. “국방의 의무를 다른 식으로 이행하겠다”는 이들의 호소는 번번이 법대(法臺)를 넘지 못했다. 1950년 병역법 시행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로 전과자가 된 청년만 2만명에 달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일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군대 입영을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하므로 형사처벌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2004년 대법원이 유죄를 선고한 지 14년 만에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재판부는 “일률적으로 병역의무를 강제하고 불이행에 대한 형사처벌 등으로 제재하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에 반한다”고 했다. 대안도 없이 아무리 엄하게 처벌해도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현실에 종지부를 찍은 판결로 평가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법 위반 관련 선고를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남북이 대치하는 안보 상황과 병역 특혜에 민감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그동안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양심의 자유는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헌법상 기본권이며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6월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은 합헌이지만, 대체복무제를 마련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 대법원은 이번에 처벌에 초점을 맞춰 무죄를 선고했다. 최근 하급심의 무죄판결 급증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헌재와 대법원의 잇따른 선고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반사회적 대상으로 처벌하는 대신 개인의 양심을 존중하면서도 시민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방안을 찾도록 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

남은 과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떳떳하게 국가에 기여하고, 병역특혜 논란이 일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가 대체복무제를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체복무제를 검토해온 국방부·법무부·병무청 합동실무추진단은 2020년 1월부터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소방서나 교도소 합숙근무로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대체복무 기간은 27개월과 36개월 중에서 결론이 날 것으로 전망된다. 36개월이라면 육군 현역 복무기간(18개월)의 두 배다. 대체복무자가 군복무자와 비교해 형평성을 잃지 않아야 하지만, 또다시 차별하는 징벌적 제도가 되어선 안된다는 주장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시대 변화에 걸맞은 판결만큼 합리적인 입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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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문재인 대통령의 1일 국회 시정연설은 지향점이 분명했다. 심각해지는 경제, 민생 문제의 해법으로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의 비전을 제시했다. 포용국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확인, 보수야당 등에서 요구해온 정책기조 전환은 하지 않을 것임을 확실히 했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양극화 문제 해결을 경제 분야의 급선무로 내세웠다. “불평등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점을 역대 정부도 인식해 복지를 늘리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기존의 성장 방식을 답습한 경제기조를 바꾸지 않아 양극화가 심화됐다”며 양극화 해결 방법으로 대증요법이 아닌 경제적 체질 개선이라는 근본 처방을 제시했다. 심화되는 불평등이 지속 가능을 위협하고 사회통합을 저해한다는 면에서 온당한 방향이다. 문 대통령은 특히 “경제기조를 바꿔가는 과정에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 힘겨운 분들도 생겼다”면서 “그러나 ‘함께 잘살자’는 정책기조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당장의 어려움을 피하려 “경제 불평등을 키우는 과거 방식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정책기조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장통’으로만 치부하기엔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국회 시정연설을 마치고 임종석 비서실장, 장하성 정책실장과 함께 국회 본관을 나서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문 대통령은 지난해 시정연설 때보다 경제와 민생에 집중했다. 경제와 민생의 절박함을 인식하고 있다는 걸로 받아들인다. 실제 문 대통령은 불평등 해소에만 정책을 올인하지는 않았다. 시정연설 중 ‘경제’를 27번 언급한 문 대통령은 포용(18번)보다 ‘성장’(26번)을 더 많이 언급했다. 실제 “혁신성장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공급’ 중심의 정책인 혁신성장에 대한 의지를 곳곳에서 피력했다.

무려 470조원에 달하는 ‘슈퍼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문 대통령은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설파했다. 경기둔화의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재정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방향은 맞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도 재정여력이 있는 국가들은 재정을 확장적으로 운영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한국은 2년 연속 초과 세수로 인해 재정 여력도 있다. 내년 예산안에서 최대로 늘어난 부문이 ‘일자리 예산’이다. 양극화 심화와 직결되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재정의 마중물 역할을 확대하자는 취지일 터이다. 하지만 올해도 막대한 일자리 예산을 투입했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벌써부터 야당이 일자리 예산 대폭 삭감을 벼르는 이유이다. 재정 투입을 통한 일자리와 함께 민간 영역에서의 일자리 창출을 일으키는 실효적 정책이 제시되어야 매머드 일자리 예산안의 당위가 더 확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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