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일본처럼 구역방식 주소를 사용해오다가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라 물류와 서비스 배송에 효율적인 도로방식 주소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도로명주소는 여전히 일본의 구역방식 주소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소체계는 세계적으로 구역방식과 도로방식으로 나누어진다. 구역방식 주소는 동양권에서 국가의 행정을 위해 지역을 행정구역 등의 구역으로 구분하여 호를 표시하는 방식이다. 일본의 주소를 보면 구역방식으로 OO현 OO시 OO구 OO정 O정목O번O호의 형식으로 나누어서 건물을 표시한다. 이 주소체계는 응급출동이나 물류배송에서 정확한 위치와 경로를 표현할 수 없는 방식으로 국제주소표준화에도 문제가 되고 있다.한편 도로방식 주소의 유래를 보면 1666년의 런던 대화재 후에 좁은 골목길에도 도로명을 붙여서 출동지령을 하면 소방마차가 도로명을 따라 긴급출동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세계적으로 효율적인 물류배송을 위해서도 도로방식 주소체계를 사용하고 있다. 도로방식 주소체계는 도로에 이름과 번호를 부여하여 정확한 위치표현과 경로표현을 할 수 있다. 도로명은 찾는 길을 안내하고 건물번호는 찾는 건물을 안내하여 사회적 서비스 배송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할 수 있다. 이제 새주소 사업이 1차적으로 완료되었는데 기본적인 문제가 드러났다. 소방서와 경찰, 우체국에서 도로방식 주소를 출동과 배송체계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건물을 찾아갈 때 도로명과 건물번호를 이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는 주소가 경로안내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도로방식 주소체계로 완전하게 구축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행안부는 건물을 찾아갈 때 도로명과 건물번호를 이용하는 비율을 조사는 하지 않고 새주소를 적는 비율만 조사한다. 이런 새주소 사업의 실태를 보면 행안부가 주소정책 시행에서 구역방식 주소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냐 하면 전국적으로 구역방식의 개념으로 도로명과 건물번호를 묶음으로 부여하였다는 것이다. 국민의 70% 이상이 살고 있는 공동주택 건물군 안과 대학 캠퍼스 등의 건물군 안은 물류배송이나 출동서비스 배송이 많은 구역이다. 이런 구역 안의 개별 도로에 대해 길안내를 위한 도로명을 부여하지 않았고 개별 건물에 대해서 건물안내를 위한 건물번호를 묶음으로 부여하였다. 그래서 그 구역은 효율적 물류와 서비스 배송이 불가능한 구역방식 주소체계로 여전히 남아있다. 그리고 행정구역상 이(里·법정리) 지역의 마을 안에도 개별 도로에 대해 길안내를 위한 도로명을 하나로 묶어서 부여하였고 도시지역에도 한 지역 안의 여러 도로에 대해서 도로명을 하나로 묶어서 부여한 데가 많다. 전국 곳곳의 여러 도로에 대해서 도로명을 묶어서 하나로 부여하였으니 도로명과 건물번호로 정확한 위치와 서비스 배송의 경로안내를 할 수가 없다. 결국 새주소사업은 제도의 도입 취지에 맞지 않게 되어버렸다.

행안부는 이런 문제점을 파악하여 주소체계를 아날로그 구역방식에서 디지털정보체계의 도로방식으로 구축하여야 한다. 바른 도로방식 주소체계는 서비스 배송을 신속 정확하게 하여 재난안전과 물류소통의 혁신을 가져온다. 그리고 이것은 스마트시티 구축의 근간을 만들고 4차 산업혁명의 인프라 체제가 된다.

<김선일 | 과실연 사회제도 과학화위원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이승길을 닦올라면 쇠시랑괭이로 길을 닦아 높은 데는 깎아닦고 깊은 데는 돋궈닦아 불쌍하신 금일망자 생왕극락으로 가옵시네.” 진도 씻김굿에서 길닦음을 하며 풀어놓는 사설이다. 씻김굿은 망자의 한을 달래는 것뿐만 아니라 곁에 있던 이를 떠나보내고 애달파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의식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진도에 길을 낸다고 했을 때 씻김굿이 떠올랐다. 4년 전 세월호 참사로 황망하게 수많은 이들을 잃은 그 바다가 보이는 자리, 눈물과 절규 속에서 처참한 시신을 옮기던 그 자리를 에둘러 걷는 길을 낸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은 또 ‘떠난 이들을 기억하자’는 얘기냐며 뒤로 물러섰다. 이제 할 만큼 하였으니 그만하자며 언제까지 그 섬을 상갓집 분위기로 고통받게 할 거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섬에 살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먼저 한다고 나서면 안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길을 낸다고 나선 이들은 그들의 마음을 헤아렸다. 사실 그들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추모하는 글과 그림을 새긴 타일을 모아 팽목항 방파제에 ‘기억의 벽’을 만들면서 어떤 이들보다도 진도 주민들이 겪는 고통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진도에서 나온 미역을 나서서 팔고, 진도 초등학교에 책을 보내준 것도 주민들과 고통을 나누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내고자 하는 길은 과거에만 머무르는 길이 아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참혹한 고통의 순간에 나로부터 우리로 향한 걸음을 내디뎠던 세월호 가족들의 고통의 서사를, 그들을 품고 희망과 사랑을 실현한 진도와 수많은 이들의 서사가 아로새겨진 현장, 팽목을 오래오래 보고 싶다”고 했다. 그들의 뜻을 잘 아는 진도 주민들은 함께 길을 나섰다. 지난해 겨울부터 묵묵히 그 길을 함께 걸은 이들은 올봄 ‘팽목바람길’을 열었다. 그들은 이리 말한다. 길은, 걸으면 사라지지 않는다고.

아픔을 딛고 함께 가는 그 길, 바다도 바닷바람도 하늘도 나무도 풀도 모두 산 자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어제 ‘팽목바람길’이 노동당의 레드어워드를 수상했다고 한다. 길을 내느라 고생한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김해원 | 동화작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토요일이었던 지난 10월27일, 서울 혜화역에 남성들이 집결했다.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이하 당당위)가 주최한 이 모임은 소위 곰탕집 성추행 판결을 규탄하기 위해 기획됐다. 곰탕집에서 일어난 성추행 가해자에게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된 것에 항의하는 차원으로, 여성의 말만 듣고 유죄판결을 내린 이 판결이 남성들의 삶에 위협이 된다는 게 당당위의 주장이었다. 실제로 곰탕집 가해자의 부인이 남편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렸을 때, 인터넷은 이에 동조하는 남성들의 글로 도배됐다. 수많은 남성들이 ‘이러다간 무서워서 밖에도 못 나가겠다’며 울분을 터뜨렸는데, 이는 청와대 청원으로 이어져 31만명의 동의를 받기까지 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당당위의 집회는 전국에서 몰려든 남성들로 미어터져야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하지만 막상 집회에 나온 남성들의 수는 60여명에 불과했다. 많은 이들이 이 숫자에 놀랐다. 청원에 동의한 사람들의 1%만 나왔어도 이렇게 민망한 수준은 아닐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남자들이 경제활동을 많이 하니까” “원래 처음엔 사람이 없다” 등등의 변명을 하는 이도 있었지만, 이전에 혜화역을 점거했던 불법촬영 규탄 시위와 비교하면 설득력이 없다. 참고로 불법촬영 규탄 시위는 5월에 열린 첫 집회에서도 1만명을 동원했고, 더위가 한창이던 8월4일에는 무려 7만명이 모이기까지 했다. 당당위는 12월8일에 2차 집회를 열겠다고 했다가 11월24일로 일정을 앞당겼는데, 이는 연말에 참여율이 떨어질까 걱정했기 때문이란다. 그렇다고 해서 2차 집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 같지 않은 이유는 그들에게 ‘절실함’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당하는 일이 자칫하면 내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여길 때, 그리고 국가와 사회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거리로 나선다. 삼복더위에도 여성들이 불법촬영 규탄 시위에 참여한 이유다. 하지만 남성들 중 성추행 가해자가 될까봐 불안해하며 사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조만간 성추행을 저지를 야심이 있는 이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은 착실하게 일상을 영위하리라. 그렇게 본다면 인터넷에 표출됐던 뭇 남성들의 분노는 방구석에서 여혐을 시전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행위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남성들의 이런 행태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건 5년 전 있었던, 남성연대 대표 성재기의 죽음에서도 드러난다. 여혐이 이슈화되기 시작했던 2008년, 성재기는 온라인에 남성연대를 만든다. 우리 사회에서 남성이 차별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가족부라는 게 존재해 더 큰 차별을 만들어낸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여가부가 폐지되면 우리는 막걸리 한잔 하고 흩어질 겁니다. 여가부가 사라지면 우리나라 남녀는 모두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게 될 겁니다.”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남성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남성들의 많은 수가 경제활동을 하고, 여성에 비해 임금도 많이 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남성연대가 돈 걱정할 일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남성연대는 쭉 가난했다. 월 2000원 이상의 회비를 내는 이가 170명에 불과할 정도였는데, 이는 사무실 운영비조차 충당하지 못하는 액수였다. 설립한 지 5년이 지났을 무렵 그의 부채는 2억원으로 불어났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성재기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데, 그건 바로 한강에 투신하는 퍼포먼스였다. “이제 저는 한강으로 투신하려 합니다. 남성연대에 마지막 기회를 주십사 희망합니다. … 시민 여러분들의 십시일반으로 저희에게 1억원을 빌려주십시오.” 한마디로 남성연대의 진정성을 알아달라는 뜻. 그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인명구조 자격증 소지자를 한강에 대기시킨 걸 보면 진짜로 죽을 마음은 없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퍼포먼스는 성재기의 생각처럼 진행되지 않았다. 성재기는 불어난 물살에 떠내려갔고, 필사적인 수색 끝에 사흘 뒤에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성재기를 죽게 만든 원인은 뭘까? 무모한 퍼포먼스가 가장 큰 이유지만, 그가 그런 행동을 벌이도록 만든 건 바로 남성들이었다. 인터넷에서만 소리 높여 남성 역차별을 외치는 대신 단돈 얼마라도 남성연대에 후원했다면 그가 한강에 뛰어드는 일은 없었으리라. 수많은 여성단체들이 여성들, 그리고 그 이념에 동조하는 일부 남성들의 후원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남성이 정말로 역차별당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더 어이없었던 건 성재기의 죽음 후 남성들이 보인 행태였다. 최소한의 양식이 있다면 남성연대에 후원금이 폭주해야 마땅하건만, 그들은 여가부 홈페이지로 몰려가 무차별 공격을 퍼부은 끝에 결국 홈페이지를 다운시켰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화풀이의 예로 이보다 더 적합한 게 있을까? 이후 남성연대는 양성평등연대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이 글을 쓰는 김에 링크를 타고 가보려 했지만 ‘이 페이지에 연결할 수 없음’이란 안내문만 뜬다. 이쯤 되면 인정해야 한다. 남성 역차별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들의 입을 막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걸. 우리 정부가 여성의 말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생생한 따귀소리가 더해진 동영상이 반복 재생되며 아나운서의 흥분된 음성이 화면을 꽉 채운다. ‘양진호의 갑질’. 며칠째 뉴스를 장식하는 헤드라인이다. 퇴사한 직원을 무릎 꿇려 풀스윙 뺨을 때리고 현직 교수를 린치해 폭행하고 얼굴에 침을 뱉고 구두를 핥게 했다고 한다. 거기에 산 닭을 활로 쏴 죽이게 하고 일본도로 닭 목을 쳐 죽이기도 했단다. 이런 사람이 국내 웹하드 업계 1·2위인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실소유주이며 탑승형 직립보행 로봇을 개발해 자칭 우리나라 로봇 사업을 이끌고 있다는 한국미래기술 회장이라니!

순간 몇 달 전 한바탕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갑질 영상이 겹쳐진다. 또 몇 달간 검찰 조사 운운하며 시끌시끌하다 조용해지면 슬그머니 ‘무혐의’ 또는 벌금 몇 푼에 집행유예라는 결말을 생각하니 씁쓸해진다.

국내 웹하드 업체인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위디스크의 전 직원 얼굴을 손으로 내리치고 있다. 뉴스타파 영상 캡처

시각을 바꿔보자.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갑질은 그저 일가의 단순 일탈행위였던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들의 갑질은 대한항공이라는 거대기업의 든든한 백그라운드하에 이뤄졌다. 즉, 그들의 갑질은 대한항공 구성원이라는 든든한 공범의 암묵적 지원하에 가능했다. 양진호 갑질의 본질도 같다. 양진호라는 희대의 인물과 그가 소유한 기업 구성원들이라는 공범들이 있었기에 그의 갑질의 힘은 더욱 세진 것이다. 최초 폭로된 동영상이 2015년 4월의 일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3년도 넘었다. 당시 동영상을 촬영한 자나 동영상 속 많은 직원들도 그 폭행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들은 한 인격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여태껏 침묵했다.

또한 이번 사건의 본질 중 하나는 그가 운영했던 업체가 불법을 기반으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주로 ‘저작권 없는 불법음란물’ 유통을 통해 돈을 벌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 불법촬영물이나 리벤지포르노를 유통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론 그 때문에 유출된 불법촬영물이나 리벤지포르노를 없애 달라는 사람들에게 사이버장의사 업체를 운영하며 돈을 벌었다고 하니 병 주고 약 주고 어르고 뺨 때려 돈을 챙긴 것이다. 한마디로 남의 불행을 팔아 돈을 번 범죄집단이나 다름없다. 저런 자들이 세운 기업에 들어간 몇몇 청년들은 IT 기업 입사라고 기뻐했을 테고, 이들을 보고 많은 청소년들은 미래 로봇산업에 관심을 가졌을 것을 생각하니 분노를 넘어 걱정이 앞선다.

양진호는 법에 따라 심판을 받아야 한다. 또한 검·경은 이번 기회에 온갖 불법의 온상인 웹하드 업체를 철저히 수사해 불법을 차단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와 함께했던 직원들에게 부탁한다. 이제라도 용기를 내어 양진호의 악행을 낱낱이 증언해주길 바란다. 범죄인 줄 알면서도 방관하며 모른 체하는 것도 암묵적 폭행이다. 어쩌면 집단으로 방관하며 저지르는 암묵적 폭행이 직접적 폭행보다 피해자에겐 더 절망적이고 치명적일 수 있다.

<전병호 | 생각공작소 소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사립유치원은 공공성이 강조되는 교육기관인가? 유치원 원장의 사유재산인가? 비리 사립유치원의 명단 공개 이후 연일 계속되고 있는 쟁점이다.

사립학교의 경우는 어떨까? 사립학교 비리의 대명사로 불리며 그 판결 결과가 사립학교제도의 시금석으로 작용해온 상지대에 대하여 최근 주목할 만한 법원 결정이 있었다. 김문기 전 상지대 이사장은 1993년 사학비리를 저지르고 쫓겨난 뒤 여러 차례 복귀와 학교 재장악을 시도했다. 그는 교육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지난 9월 김종철 연세대 교수 등 9명을 상지학원 정이사로 선임했던 것에 대해 “종전 이사들이 상지대의 정이사 추천권을 행사해야 한다”며 교육부를 상대로 이사선임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얼마 전 제기했다. 아울러 이사 선임의 효력을 취소소송 판결 전까지 정지해달라는 집행정지 신청도 같이 냈다.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이 지난달 18일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이다.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들이 '교육부의 비리유치원 비호·방조에 대한 감사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서울행정법원은 “학교법인 설립 목적의 수호라는 보충적 지위에서 더 나아가 종전 이사 등의 경영권 내지 재산권을 회복시켜 주거나 이들의 지분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학교 내지 학교경영권을 재산권의 대상으로 보는 사고의 산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종전 이사들에게 과반수의 정이사 선임 추천권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하였다. 이 결정은 2018년 6월 사립학교법 시행령에서 종전 비리 이사가 포함된 이사 협의체가 새로운 정이사를 추천할 경우에 전체 후보자의 과반수 미만만 추천할 수 있도록 제한하기로 하고 상지대에 이를 적용하였던 것에 대하여 법원이 정당성을 인정한 최초의 결정으로 그 의의가 자못 크다.

2007년 대법원은 임시이사체제로 운영되던 상지대에서 임시이사들이 변형윤을 이사장으로 하는 9명을 정이사로 선임한 것에 대하여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하였던 것에 대하여 사학의 설립 및 운영의 자유, 재산권 등을 근거로 ‘설립자로부터 이어진 이사들의 인적 승계’를 박탈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여 김문기 측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논리는 사립학교법 시행령 개정과 학교법인의 정체성은 종전 이사 등과의 인적·재산적 연관성의 확보가 아니라 설립목적 등이 구체화된 정관을 통하여 유지·계승된다는 2013년 헌법재판소 결정, 그리고 이번 행정법원의 결정 등으로 상당 부분 극복됐다.

그런데 사립학교에 대하여 사학의 설립 및 운영의 자유, 재산권을 주장하면서 사립학교의 자주성을 강조하는 건 퍽 익숙한 논리가 아닌가. 바로 최근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 공개로 촉발된 교육부의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안에 대하여 한유총이 ‘사립유치원은 설립자의 사유재산이므로 수익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다르지 않은 논리이다.

위 2007년 대법원 판례에는 이른바 ‘독수리 5형제’로 지칭된 이홍훈, 박시환, 김지형, 김영란, 전수안 대법관의 반대의견이 있었다. 이들은 ‘학교법인은 기본적으로 민법상 재단법인에 해당하는 것이고, 다만 그 조직·운영에 관하여 법적 규제와 행정감독을 강화함으로써 사학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하여 사립학교법이라는 특별법에 의하여 설립·운영되는 특수법인’이라고 하여 학교법인의 공공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의견이 2013년 헌법재판소 결정과 이번 행정법원 결정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사립학교법 제1조는 사립학교의 자주성뿐 아니라 공공성도 규정하고 있다. 교육기본법 제5조 제2항이 교육의 자주성을 규정하면서 ‘학교운영의 자율성은 존중되며, 교직원·학생·학부모 및 지역주민 등은 법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 점에 비춰볼 때 사립학교의 자주성은 학교의 자치, 즉 교육공동체 구성원의 자치를 의미하는 거지 설립자나 학교법인의 축재 수단이나 족벌 지배 및 경영권 세습으로 이해돼선 안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립유치원도 유아교육법에서 교육감의 인가를 받아 설치되고, 누리과정에 따라 국가에서 상당액의 지원금을 받는 이상 공공성을 지닌 교육기관의 정체성이 우선한다고 할 수밖에 없다. 유치원이 사유재산임을 근거로 유치원 원장들이 각종 편법을 용납해 달라는 것이야말로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최근의 유아교육법 등 관련 법 개정과 국가회계시스템의 사립유치원 적용, 국공립유치원 확충 등 일련의 공공성 강화 정책은 교육계 묵은 적폐를 도려내고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사립유치원과 함께 사립학교에 있어서도 공공성 강화 논의가 다시 시작되고 성공적으로 진행되길 희망한다.

<김영준 | 민변 교육·청소년위원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식인의 사회학은 내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분야다. 아직 두 달 정도 남아 있지만 2018년은 내게 지식인 최인훈과 김윤식이 세상을 떠난 해로 기억될 것이다. 그만큼 두 사람의 사상이 나의 사회학적 연구에 미친 영향이 컸다. 단언컨대, 최인훈과 김윤식은 광복 이후 한국 모더니티를 탐구해온 가장 뛰어난 작가이자 가장 탁월한 국문학자였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까닭도 두 사람의 지적 모험을 통해 한국 모더니티의 과거와 현재를 반추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모더니티란 16~17세기 서유럽에서 시작해 지구적으로 확산된 사회제도와 의식을 말한다. 제도로서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의식으로서의 개인주의와 민족주의는 이 모더니티의 중핵을 구성한다. 돌아보면, 우리 역사에서 19세기 후반부터 부여된 시대사적 과제는 자본주의, 민주주의, 개인주의, 민족주의가 바탕을 이룬 ‘근대적 국가와 사회 만들기’였다. 우리는 어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어떤 개인주의와 민족주의를 일궈온 걸까. 소설이든 평론이든 문학의 힘이 이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을 구하는 데 있다면, 최인훈과 김윤식은 바로 이 문제를 평생 천착해 왔다.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사멸했습니다. (…)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명준이 북한에서 발견한 것은 잿빛 공화국이었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 나오는 말들이다. 이 구절들은 광복 이후 4월혁명까지 남과 북의 현실을 날카롭게 전달한다. 살아 있되 이기적 욕망만 넘치는 사회와 혁명을 앞세우나 인간은 죽어 있는 사회, 다시 말해 ‘광장 없는 밀실’(남한)과 ‘밀실 없는 광장’(북한)은 1950년대 한반도에 존재한 두 자화상이었다.

소설 <화두>는 <광장>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최인훈의 한 정체성인 <광장>의 주인공이 남과 북을 관찰했다면, 또 다른 정체성인 <화두>의 주인공은 이제 미국과 소련을 여행한다. <화두>의 화두는 민족의 재발견이다. <화두>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은 낯선 미국 땅에서 이뤄지는 민족과의 조우다. 버지니아에서 우연히 만난 한 도지(道誌)에 실려 있는 ‘장수 잃은 용마의 울음’이란 아기장수 설화는 최인훈으로 하여금 민족을 재발견하게 하고 그리운 조국으로 결국 돌아오게 한다.

최인훈이 뛰어난 작가인 까닭은 광복 이후 한국 모더니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남과 북의 분단 시대,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를 깊이 있게 성찰했다는 데 있다. 분단과 냉전은 지난 20세기 후반 한국 현대사를 규정해온 두 겹의 시대적 구속이다. 이러한 구속 아래 모더니티의 제도와 의식인 자본주의, 민주주의, 개인주의, 민족주의가 어떻게 변동해 왔는지를 최인훈은 생생히 재현하고 조명한다. 문학평론가 김현과 국문학자 김윤식이 ‘한국 문학사’에서 최인훈을 ‘전후 최대의 작가’라 평가한 것은 결코 과찬이 아닌 셈이다.

김윤식의 관심은 우리 사회에서 모더니티란 무엇인가에 맞춰져 있다. 이 물음은 사실판단의 질문이자 규범판단의 질문이다. 사실판단의 관점에서 김윤식은 지난 20세기 한국 모더니티가 자본주의, 국민국가, 민족주의, 전통주의의 십자 포화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고 파악한다. 그는 이러한 모더니티의 제도와 의식이 소설과 비평 등 문학에 어떻게 담겨 있었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200여 권에 달하는 저작들은 더없이 고독하면서도 고통스러웠을 그의 지적 탐험을 직접적으로 증거한다.

사회학적 시각에서 한국 모더니티는 서구와 다른 경로로 진행돼 왔다. 한국 자본주의는 압축적 산업화였고, 한국 민주주의는 보수적 민주화였다. 한국 개인주의는 공동체주의에 압도돼 빈곤했으며, 한국 민족주의는 국가주의의 위험을 안고 있었다. 한국 모더니티는 그 출발부터 외부로부터 이식된 과정이었던 동시에 ‘한국적 표준’을 창출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광수와 임화 해석에서 이청준과 박완서 비평에 이르는 김윤식의 방대한 문학 연구들은 바로 이 한국 모더니티의 계보학에 대한 인문학적 탐색이었다.

최인훈 선생은 2008년 <최인훈 전집>을 펴내면서 <화두> 제1권 말미에 나의 사회학적 비평인 졸고 ‘관념의 세계시민과 현실의 세계시민’을 싣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김윤식 선생은 2002년 교수신문에 실린 나의 짧은 에세이인 졸고 ‘그람시와 김윤식’을 읽고 따로 연락해 격려해주셨다. 규범판단의 차원에서 공정한 시장경제, 성숙한 민주주의, 연대적 개인주의, 개방적 민족주의는 한국 모더니티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이다. 이러한 모더니티의 심층적 탐구와 현실적 구현이 나를 포함한 후학들에게 부여된 과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일반 칼럼

음식은 이미지를 만드는 도구로 빈번히 사용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을 방문한 영국왕 조지 6세에게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서민 음식인 핫도그와 맥주를 대접했다. 도도한 영국 왕실의 이미지를 미국사람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바꾸어 놓기 위해서다. 당시 미국인들은 전쟁에 나서는 것에 반대했다. 이 같은 반대여론을 무마하고 영국을 지원하는, 참전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시도였던 것이다. ‘핫도그 외교’는 성공적인 식사외교로 회자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지난 미 대선기간 중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치킨을 먹는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내보냈다. 그런데 손으로 뜯어먹는 서민들과 달리 은색 포크와 나이프로 먹는 모습이어서 ‘서민 코스프레’라는 비아냥을 샀다. 또 그는 히스패닉 표심을 공략하려고 멕시코 대중 음식 타코 볼을 먹는 사진을 “난 히스패닉을 사랑해요”라는 말과 함께 트위터에 올렸다. 그러나 정책에서는 ‘멕시코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등 적대적인 태도로 일관해 오히려 반감만 키웠다.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 간의 회의 뒤 오찬에서 메뉴로 탕평채가 나왔다. 청와대는 “치우침이 없는 조화와 화합의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탕평은 <서경>에 ‘무편무당 왕도탕탕 무당무편 왕도평평(無偏無黨 王道蕩蕩 無黨無偏 王道平平)’에서 유래한다. 탕평채는 녹두묵에 고기볶음과 데친 미나리, 구운 김 등을 섞어 만든 청포묵 무침이다. 이들 음식의 색깔은 조선시대 권력을 잡았던 당파로 알려진 서인, 남인, 동인, 북인을 대표하는 색이라고 한다. 영조는 탕평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이 음식을 내놓았다고 한다. 당파 간의 갈등 해소를 기원한 것이다.

정조는 선왕인 영조의 탕평을 이어받았다. 침전에 ‘탕탕평평실’이라고 쓰인 편액을 달았을 정도다. 그러나 정조는 “선왕조 만년까지만 해도 바른말과 격한 논쟁들을 많이 했다. 요즈음에는 감언(敢言)하는 자가 없으니 아마 과인이 과실을 지적하는 소리를 듣기 싫어해서 그러는 것인가?”라며 한탄했다. 아첨꾼은 있으나 바른말 하는 신하가 없음을 아쉬워한 것 같다. 탕평은 백화제방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박종성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2차대전 종전과 함께 영국 정부는 전후 복구 계획을 사회 각계각층으로부터 제출받았다. 존 볼비라는 정신과 의사도 동료들과 함께 복구 계획안을 제출하였다. 전쟁 후 국가 재건과 복구 계획에 정신과 의사는 무엇을 복구하자고 계획을 냈을까. 그는 주거를 위한 건물 복구뿐 아니라 국민의 마음 복구도 같은 비중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전쟁으로 인한 고아와 아동들의 정신적 충격과 교육에 대한 복구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고아원이나 시설에 있는 아동 수를 대폭 줄이고 이 아이들이 위탁가정과 공공유치원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펼쳤다. 건물만이 아니라 마음과 교육도 복구하라는 그의 정책이 오늘날 영국 정부의 외로움부 장관이나 자살예방부 장관 임명으로까지 이어지는 문화적 전통이 아닌가 생각한다.

60년 전 아동들의 마음 복구를 주장했던 존 볼비의 문헌을 보다 국내 뉴스를 보니 마음이 울컥한다. 세계 최고의 저출생국인 이 나라에서 일부 유치원 운영자들이 벌인 행각이 기막혀서다. 원아들을 위해 써야 할 돈을 보석 구입 등 개인 치장하는 데 쓰고 자녀 용돈도 주는 등 비리백화점과 다름없었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 일부 운영자들의 비리를 밝힌 이들은 초선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엄마들이었다.

“교육부는 사죄를”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들이 교육부의 비리유치원 비호·방조에 대해 감사를 청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아이들에게 먹일 빵을 가로채는 동화 속 악당들의 일을 관행으로 여기는 사회였다니! 그 관행이라는 부도덕의 카르텔에 오랜 기간 서로 협력하며 지내온 관료와 정치인들에게 놀란다. 또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눈을 감았던 국가의 무관심에도 놀란다.

정부의 우선순위 설정 기능도 걱정이다. 고등학교 무상교육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공공화와 무상화가 국가교육의 차원에서 훨씬 우선 순위가 높은 일 아니던가. 작금의 결혼기피, 저출산, 국가의 위기상황을 보면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은 위기대응의 제일 과제이지 않은가. 지금 이 나라는 아이들의 삶을 복구하고, 부모로서의 삶도 복구하는 가장 혁신적인 정책이어야만 구제될 수 있다.

또한 오늘날 유치원, 어린이집의 중요성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더욱 커졌다는 사실을 국가는 기억해야 한다. 유치원은 국가가 주체로서의 시민과 만나는 첫번째 교육적 접촉점이다. 피부색에 대한 편견을 포함한 반편견교육, 세계시민교육도 유치원 수준에서 가장 효과가 높다. 그래서 사회통합교육도 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미국 교육부는 이미 1980년대에 강조한 바 있다. 프랑스에서는 유치원에서부터 공공문화를 가르치고, 시장과 협동조합에 대한 교육을 시작한다. 협력과 상생의 공동체를 경험하고 공감을 배우는 것도 나이가 어릴수록 더 효과가 좋고 오래가는 것으로 밝혀졌다. 온갖 디지털 기기에 대한 감수성과 문해력도 달라서, 유치원부터 디지털 문화에 대한 문해력을 배워야 향락적 소비자가 아니라 상호적 생산자가 되면서 창의적인 사용자가 될 수 있다.

사립유치원에 다니며 교사와 부모로부터 떠받듦만 받던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후 갑질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듣는다. 부가적 사교육비를 대느라 엄마들이 알바를 하면 할수록 아이는 더 비뚤어진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우리는 더욱 아동을 위한 나라가 되어야만 국가가 회생할 수 있다. 존 볼비는 “사회는 아동이 가정다운 가정을 경험하게 해줄 의무가 있고, 배워야 할 좋은 것들을 공적인 학교에서 배우게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즉 국가는 마땅한 육아와 교육환경을 아동에게 제공해야 하고, 가정다운 가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아버지와의 저녁시간을 돌려주어야 한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부지런한 엄마의 번호표 뽑기에 아동의 유아교육을 맡긴다는 말인가. 온갖 사교육에 시달리며 아동 본인에게도 어울리지 않는, 거만한 사교육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또 속임수와 학대가 빈번한 교육현장에서 자라나는 슬픔을 아동의 가슴에 맺히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번 비리로 상처받은 부모의 마음까지도 국가와 유치원들은 복구해 주기를 바란다. 조속히 유치원 교육은 무상·공립화되어 걱정 없게 해야 한다.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국회의 내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남북협력기금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자유한국당이 비핵화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남북협력기금이 과도하게 편성됐다며 ‘대북 퍼주기 예산’이라고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 5일 “과도한 남북관계 예산을 삭감·조정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남북협력기금을 올해(9592억원)보다 14%(1385억원) 증액한 1조977억원으로 책정해 국회에 보고했지만, 한국당은 이 중 6400억원을 깎겠다고 벼르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남북협력기금 사업비가 2017년, 2018년을 제외하고 항상 1조원대였던 점을 돌이켜 본다면 한국당의 주장은 과거 부정과 다름없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듬해인 2009년 남북협력기금을 1조1181억원으로 전년보다 137억원 늘렸다. 2010년 천안함 사건에 따른 5·24조치로 남북교류와 경제협력을 중단시켰음에도 불구하고 2011년 사업비를 1조153억원으로 9% 줄이는 데 그쳤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2016년 1조2550억원까지 늘어났다가 북핵사태 영향으로 2017년 사업비가 9587억원으로 감액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들이 5일 청와대 본관 회의실에서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첫 회의를 하며 정기국회 처리 법안, 내년도 예산안, 저출산·아동 복지 문제 등 현안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남북관계가 최악이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사업비로 매년 1조원 안팎이 책정됐음을 감안하면 남북관계가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지금 1조원대 사업비가 과하다는 주장은 어떤 근거에서 나온 건지 한국당에 묻고 싶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 기금규모는 남북관계가 동결됐던 2016년보다도 1573억원이나 적다. 그런데도 ‘과도한 대북 퍼주기 예산’이라는 한국당의 주장이야말로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아닐 수 없다. 남북관계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겠다는 태도로밖에 달리 이해하기 어렵다. 

일각에선 기금 누적액이 14조원에 달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는 사실관계를 오해하도록 할 소지가 있다. 남북협력기금은 쓰지 않을 경우 적립되는 게 아니라 국고로 반납되기 때문이다. 보수정권이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도 매년 1조원대 사업비를 조성해온 것은 남북관계가 갑자기 활성화될 것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설사 사용하지 못했다고 해도 국고 낭비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낙연 총리가 6일 “그 돈은 안 쓰더라도 어디 날아가는 게 아니다”라고 한 건 기금의 이런 성격을 가리킨 것이다.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정 상설협의체 회의에서 한국당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른 현실을 인정하고 협력할 것은 적극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온당하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6일 옛 국군기무사령부의 세월호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기무사의 사찰은 2014년 6·4 지방선거 정국이 세월호 참사로 박근혜 정권에 불리하게 돌아가자 이런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무사의 사전 계획과 청와대의 승인에 따라 지역 기무부대가 실종자 가족과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사찰 첩보를 수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등에 대해 불법감청을 한 사실도 새로이 확인됐다. 밝혀진 것이 이 정도이니 얼마나 더 많은 불법을 저질렀을지 알 수 없다.

전익수 국방부 특별수사단장이 6일 국군기무사령부의 세월호 민간인 사찰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수사는 기무사가 얼마나 철저히 군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리고 박근혜 정권에 봉사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기무사가 청와대에 올린 보고서는 세월호 실종자 수색 및 세월호 인양 포기를 정국 전환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최초 목적이 엇나갔으니 이후 활동의 불법성은 불문가지다. 기무사는 유가족은 물론 안산 단원고 학생까지 전방위로 사찰했다. 사이버 사찰도 서슴지 않았다. 적발되면 ‘실종자 가족으로 신분을 위장하라’는 지침까지 내렸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기무사가 수사기관이 해야 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검거에까지 나섰다는 점이다. 유 전 회장을 찾기 위해 은신처 근처에서 무차별적으로 무전을 감청했다. 간첩 잡는 장비를 엉뚱한 곳에 쓴 것이다. 청와대는 이런 기무사를 향해 “최고의 부대”라고 칭찬했다. 이런 행태를 감안하면 기무사의 계엄령 발동 검토 문건은 단순한 서류상의 검토가 아닐 개연성이 높다.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정권을 유지하겠다고 나선 기무사가 시민을 총칼로 제압하겠다는 발상을 못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조현천 전 국군기무사령관 (출처:경향신문DB)

아직도 기무사 해체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수사결과를 보고도 기무사의 행위를 두둔한다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이다. 과거 윤석양 이병 양심선언으로 보안사령부를 기무사로 이름을 바꿨지만 불법활동은 근절하지 못했다. 정권이 기무사 정보를 활용하려는 유혹을 떨쳐내지 못한 탓이다. 문재인 정부는 기무사를 해체한 취지를 견지해나가야 한다. 남은 것은 계엄령 검토 문건에 대한 수사다. 미국에 체류 중인 조현천 당시 기무사령관은 소재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조 전 사령관을 하루속히 국내로 데려와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 5일 열린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첫 회의에서 청와대와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조속한 시일 내 탄력근로제를 확대한다는 데 합의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주52시간제의 문제점을 탄력근로제를 통해 보완하자는 데 여야가 동의한 것”이라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회가 나서겠다고 밝혔다.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침체된 경기를 살리겠다는 취지야 이해하지만, 제도 도입을 서두르다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2004년 도입된 '주 5일 근무제'만큼이나 기업에는 큰 변화다. 근무시간을 줄이는 대신 생산성을 높이는 선진국형 근로 방식을 통해 이른바 '워라밸'(일과 업무의 균형)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받아들이자는 취지는 대기업들도 대체로 공감하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다만 날로 격화하는 글로벌 경쟁 상황 속에서 신제품 개발, 글로벌 네트워킹 등을 위해서는 몇 개월씩 밤낮으로 집중 근무를 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탄력근무제 적용 확대 등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한 사무실에서 야근하는 직장인들 모습. 연합뉴스

탄력근로제는 일이 많으면 노동시간을 늘리고 없을 때는 줄여 특정 기간의 법정 평균노동시간(주 52시간)에 맞추는 방식이다. 지난 7월 도입된 주52시간제법은 3개월 이내의 단위시간 안에서 법정 평균노동시간을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합의의 취지는 탄력근로제 확대를 통해 현행 최대 3개월인 단위시간을 6개월~1년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정부도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6일 언론 인터뷰에서 “탄력근로제를 실시할 때 모든 것을 미리 정하게 하는 부분을 완화하려고 한다. 현재 단위기간이 적절한지, 6개월이나 그 이상으로 늘리는 게 바람직한지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자의 건강권을 내세우며 탄력근로에 부정적 의견을 밝혔던 전임 장관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들이 5일 청와대 본관 회의실에서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첫 회의를 하며 정기국회 처리 법안, 내년도 예산안, 저출산·아동 복지 문제 등 현안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현장에 주52시간제가 도입된 것은 4개월이 지났을 뿐이다. 주52시간제가 제대로 시행되어도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여전히 최장이다. 지금은 이 법이 정착되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주52시간제 법안이 통과할 당시 탄력근로제 확대는 2022년까지 검토하기로 한 바 있다. 그런데 제도가 안착되기도 전에 서둘러 개선방안을 도입하는 것은 주52시간제를 무력화시킬 우려가 있다. 탄력근로제를 확대한다고 해서 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탄력근무가 확대되면 노동이 특정시간대에 집중되면서 산재의 위험성을 높이고 더 많은 과로사를 부를 수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일제히 성명을 내고 탄력근로제 확대반대 투쟁 의지를 표명했다.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탈퇴까지 경고했다. 여·야·정 협의체에 참여한 정의당도 반노동자 정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탄력근로제 확대는 노동자들의 건강권 확보를 고려하며 시행해도 늦지 않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