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란 공평한 가치재일까. 인간에게 주어진 환경이 동일하다는 전제하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인간을 둘러싼 환경은 제각각이다. 저임금 노동자에게 주어진 하루는 기초생활비를 얻기 위한 교환재이다. 그들에게 휴식이나 자유시간이란 비대칭적인 가치재다. 공간 또한 시간의 불공평함을 확인시켜주는 존재다. 서울의 1년과 분쟁에 시달리는 중동지역의 365일은 엄연히 다른 시간이다. 

2014년 6월29일.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는 이슬람국가의 건국을 선포한다. 시리아 동북부와 이라크 북부지역을 기반으로 새로운 국가가 등장한 것이다. 테러의 상징으로 알려진 이슬람국가의 탄생은 시간의 태엽을 반대로 돌려야 맥을 잡을 수 있는 사건이다. 2011년 말 미군은 이라크에서 철수한다.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2011년 5월 이후 중동국가와의 분쟁을 원치 않았던 오바마 정부의 결단이었다.

2009년 취임한 오바마는 전임 대통령이 남용했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정치용어를 폐기한다. 그는 이라크 전쟁을 반대했던 유일한 상원의원이었다. 2007년 1월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의 실패를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유엔의 반대를 무시하고 저지른 이라크전은 미국인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2006년 11월에 치러진 중간선거 전날 사임서를 제출한다. 이라크전으로 인한 퇴역장성들의 비난과 공화당의 하락세가 더해져 부시 정권은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미군은 2003년 12월 과거 미국의 군사적 후원을 받았던 사담 후세인을 체포한다. 후세인 체포작전 이후 이라크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알 카에다의 폭탄테러, 수백만명에 달하는 이라크 난민,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무력충돌 등으로 중동의 화약고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원유국가인 이라크 점령 이후의 계획이 전무했던 미국 정부는 그제야 전쟁의 뼈 아픈 대가를 체감한다.

이라크 후세인 정권은 파격적인 조건을 내놓는다. 사담 후세인의 망명, 미국의 사찰 인정, 미국회사에 석유를 포함한 경제적 이권 제공, 유엔이 인정하는 선거 실시, 아랍 이스라엘 평화협정 협조 등이 그것이다.

이라크 내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부시 정권은 전면전을 시도한다. 걸프전 이후 전쟁능력을 상실한 이라크군은 별다른 저항 없이 패전국의 멍에를 짊어진다.

2003년 2월 세계 각지에서 이라크전 반전시위가 벌어진다. 9·11 테러와 아무 관련이 없는 이라크를 상대로 한 패권국가의 횡포를 반대하는 시위였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반전시위에도 불구하고 미군부는 전쟁의 시간을 원한다. 부시 행정부는 미국언론에 이라크가 9·11 테러와 관련이 있다는 거짓정보를 흘린다. 미군부는 두번째 이라크전을 통해서 이란, 시리아 등을 견제하는 전략을 세운다.

1999년 11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아랍계 유학생 4명이 아프가니스탄의 산악지대를 방문한다. 그들은 오사마 빈 라덴과 접견한 이후 지하디스트로서 충성을 맹세한다. 함부르크 그룹의 리더 아타는 민족주의자로서 제2의 인생을 택한다. 그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키워준 여유롭고 윤택한 시간이 아닌 중동의 밝은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운명의 시간이었다.

종교분쟁을 제외하면 한반도와 중동은 비슷한 지리적 운명을 지녔다. 두 지역은 열강들의 대리전쟁의 각축장이었다. 미소 냉전시대 격전지였던 아프가니스탄, 악의 축으로 분류한 이란과 이라크, 미국 정계의 큰손으로 자리잡은 이스라엘. 지속적인 외세의 침략과 정치공세로 화약고로 변해버린 중동지역은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그들에게 안전하고 평화로운 미래는 없다.

지금도 그곳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의 지옥도가 펼쳐진다. 그들에게 시간이란 성전을 위한 소비재에 불과하다. 국가의 시간은 역사와 지형과 종교와 민족에 따라 운명을 달리한다. 이슬람국가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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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갑자기 대리수업을 맡았다. 이 시간은 우리 주변의 일반상식 중에서 모르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을 받는 수업으로 대신한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손을 든 학생이 “선생님, ‘활강’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했다. 칠판에 ‘활강’이라고 썼지만 ‘모르는 게 없는’ 그 선생님도 제대로 답변을 못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학생이 겨울철 스키종목의 하나인 ‘활강 경기(滑降 競技)’를 어디서 읽었거나 들었지 싶다. 1960년대 초,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의 추억이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딸네 집으로 가서 ‘또래와는 많이 다른’ 아홉 살 손자를 데리고 단풍이 한창인 동네 산과 수변공원을 거닐었다. 한강으로 흐르는 하천가에는 정성들여 가꾼 국화 화분이 곳곳마다 놓여 있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공사 중인 장비에서 나는 엔진 소리가 요란했다. 플래카드와 입간판에는 “○○천 차집관거(우안) 보수공사입니다. 불편하신 사항은 연락바랍니다….” 무슨 공사를 하는지 인부에게 물었다. 하수관 청소를 하는데 ‘우안’은 영 모르는 표정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아 국어사전을 찾았다. 차집관거(遮集管渠)는 “하수나 빗물을 모아서 하수처리장으로 수송하기 위해 설치한 관이나 통로”, 우안(右岸)은 “강의 하류를 향하고 볼 때, 오른쪽 강변을 이르는 말”이었다. 괄호 안 한자를 보니 겨우 알 듯 말 듯하다. 하천 오른쪽 땅속에 묻힌 하수관에 공기를 주입시켜 대청소를 하는 공사인 것 같은데 안내문은 이렇듯 난해했다.

몇 달 전 언론 매체와 인터넷에 ‘오량가구’라는 단어가 오르내렸다. 그 무렵 어느 신문의 기사이다. 국무회의 때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에 있는 ‘침류각(枕流閣)’ 안내판을 찍은 사진을 들고 직접 읽으면서 “이것이 공공 언어의 한 유형인데, ‘세벌대 기단, 굴도리집, 겹처마, 팔작지붕, 오량가구, 불발기를 두고 있고 상하에 띠살, 교살, 딱지소, 굴도리…’ 혹시 도종환 장관은 뜻을 한 번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어 대통령은 “오량가구, 그것이 ‘5개가 있는 구조’라든지 이런 것이 전통가옥 연구자들에게는 관심일지 몰라도 일반 국민에게는 무슨 관심이겠나”라며 “제가 느끼는 궁금증은 ‘이게 무슨 용도로 만들어졌을까, 언제, 왜 이게 청와대 안에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등인데 그런 의문에 대해서는 안내판에 한마디도 없다”고 지적했다. 침류각은 1900년대 초 전통가옥으로 서울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고 신문기사는 덧붙였다.

‘공공 언어’는 사적으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말 그대로 공공의 영역에서 사용하는 언어이다. 공무원이 작성하는 공문서에서부터 법률, 보도자료, 정책명, 문화재 안내판, 지하철 안내문 등에 쓰인 언어가 모두 공공 언어라 할 수 있다. 공공 언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있었고, 국립국어원에서는 국어 정책 수립은 물론 국어의 정비, 국어 사용 개선, 국민의 국어 능력 향상 등에 노력하고 있다. 또한 ‘국어기본법’에 따라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국어 발전과 보전을 위한 업무를 하도록 ‘국어책임관’을 지정하고 있다. 국민들의 국어 능력을 높이고 국어 관련 상담 등을 수행하기 위해 국어 전문 인력과 시설을 갖춘 ‘국어문화원’이 지정되어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매년 연수회를 갖기도 한다.

그런데도 건축·토목, 의료 분야 등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써 온 용어를 지금도 예사롭게 사용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해마다 ‘국어 순화용어’를 발표, 장려하지만 쏟아져 들어오는 외래어, 요상한 신조어나 이모티콘, 억지로 만든 약어 등에 눌려 빛이 바래고 있다. 공공 영역에서 작성되는 글의 가장 큰 특징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의무교육을 받은 일반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알기 쉽고, 올바른 언어로 작성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글을 이해한 국민과 그러지 못한 국민 사이가 불평등하게 된다. 청소년만이, 군인들만이, 의사만이 이해할 수 있는 끼리끼리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또 다른 차별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 공공기관, 언론 등에서 ‘쉽고, 바른 공공 언어’ 사용에 앞장서야 하는 이유이다.

요즘 부쩍 학생 질문에 답변 못한 대리 수업을 맡았던 그 선생님이 생각난다.

<노청한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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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안 버리기 잘했다. 비좁은 옷장 안에서 거의 10년 가까이 선택받지 못한 채 ‘애물단지’인 양 홀대받던 옷들이 요즘 다시금 ‘새롭게 주목받는 복고’란 의미의 ‘뉴트로’ 혹은 ‘힙트로’라는 이름으로 주목받고 있다. 예컨대 촌스러울 정도로 로고가 크게 박힌 맨투맨 티셔츠며 빈티지 체크 스커트, 본의 아니게 바닥 청소하기 좋을 만큼 품이 넉넉한 ‘배기 팬츠’ 같은 아이템들.

한때 C 브랜드의 프레스 세일 중에 샀던 과장된 어깨선의 오버사이즈 모직 코트는 좀 아깝게 됐다. 아무리 유행이 돌아와도 다시 입을 것 같지 않은 그 육중한 무게감에 질려서 어느 유난히 추운 겨울에 우리 개들 이부자리로 내주었다.

‘복고상권’을 이끌고 있는 서울 종로구 익선동 한옥마을 골목길.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해 유난히 내 마음에 와 닿았던 H&M의 글로벌 캠페인 슬로건 “패션엔 규칙이 없다. 단 한 가지를 제외하고. 버려진 옷을 재활용하라”를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실천한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심지어 디테일에 내 나름의 ‘악마’를 담아 다음과 같이 슬로건으로 변화시킨 셈이다. “재활용하라. 그 밖의 패션 규칙 따위는 개나 주고!”

버리지 않아서 다행인 건 유행 지난 옷뿐만이 아니다. LP라 불리는 비닐 레코드의 귀환 시대를 지켜보면서도 카세트테이프도 언젠가 재조명되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했지만 지금처럼 구찌 브랜드가 러브콜을 보내는 카세트테이프 전문숍이 생기고 LP도 모자라 카세트테이프로 신곡을 발표하는 뮤지션 소식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설사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 해도 그건 차마 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건 그냥 물건이 아니라, 우리가 작은 아이거나 소년 소녀였을 때 좋아했던 음악들이 아스라이 거주하는 집이지 않은가? 예컨대 한때 우리의 심장을 건드린 음악들의 부서지기 쉬운 작은 오두막 같은 곳. 하지만 아직 부서지지 않은 사랑스러운 것들…. 그래서 남편과 나는 그것들을 버리기는커녕 되레 기회 있을 때마다 중고시장에 나와 있는 것들을 하나둘 사 모았고 그 덕분에 우리의 공간은 조금 더 사랑스러워졌다.

카세트테이프와 함께 돌아온 복고 열풍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른바 ‘복고상권’을 리드하고 있는 동네 익선동에 가보면 안다. 단순히 옛 시절의 소품 몇 점을 가져다 놓는 정도가 아니라 1920년대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낡은 한옥 동네 전체가 인테리어는 물론 그 메뉴와 정서까지 젊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낸 복고 콘셉트의 핫 플레이스로 진화한 것 같다.

뭐랄까? “거리는 산책자를 아주 먼 옛날에 사라져버린 시간으로 데려간다”고 했던 발터 베냐민의 문장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네 같다. ‘테트리스’나 ‘보글보글’ 같은 추억 어린 옛날 전자오락기 몇 대 들여놓고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양 ‘최신 게임 없음’이라고 써 놓은 오락실부터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여하튼 만화와 더불어 모던하게 개조된 한옥 건넌방 같은 공간에서 잠시 쉬어 가기 좋은 ‘만홧가게’도 있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만두를 소쿠리에 담아 꽃 그림이 새겨진 하얀 양철상 위에 놓아주는 분식점도 있다. 정말이지 낡고 익숙한 것에 새로운 감성을 입힌 ‘뉴트로’를 체험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가지각색의 상점들이 골목마다 가득했다. 그중 우리 커플은 앙버터 식빵과 인절미 티라미수, 단호박 식혜 등을 파는 카페 ‘서울커피’가 궁금했다. 하지만 길고 긴 대기 줄에 질려 이내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지만 그것도 좋았다. 이탈리안 소스와 함께 매우 고급스럽게 플레이팅해서 내어주는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를 경양식집 콘셉트의 레스토랑에서 점심 먹고 민화 작가가 운영하는 예술적인 카페나 비디오방 콘셉트의 기이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으니까.

너무도 환영할 만한 일은 복고 트렌드 덕분에 생기 없이 죽어가던 골목 상권이 살아났다는 거다. 뿐만 아니라 쓸모를 잃고 버려지거나 잊혔던 물건들이 느닷없이 ‘핫’한 것으로 되살아났다. 구박받으며 자리만 차지하던 엄마의 자개장이 가장 핫한 인테리어 소품이 되어 카페 음료 카운터나 병풍으로 변신하는가 하면 어린 시절 그리도 흔히 재사용되던 델몬트 주스병이 로얄코펜하겐 주전자 못지않게 환영받는 요즘이다. 심지어 오란씨, 서울우유, 크라운 등 추억의 상표가 찍힌 공짜 로고컵이 이렇게 비싸게 거래되는 날이 올 줄이야. “취향의 시대는 죽은 것도 살려낸다”고 했던가? 맞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한편 살기 힘들어서, 지금보다 걱정 없이 살았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심리의 발로로 레트로가 유행한다는 식의 분석 기사를 읽으면 살짝 코웃음이 난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무한히 반복되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얘기일 뿐이다. 혹시라도 대중을 매혹하는 도시의 자영업자가 되고 싶다면 발터 베냐민이나 보들레르가 파리의 산책자로서 명상하듯 걸으면서 쓴 글들을 읽어 보자. 대중을 선도하는 가장 최신의 것이 가장 오래된 것, 이미 존재했던 것, 가장 친숙한 것에서 나오는 역설에 대해 알게 하는 글들. 아니다. 글보다는 산책을 더 권한다. “비바람에 풍화된 문지방 냄새를 맡고 오래된 기와를 만져보는 것에 더 행복해”할 수 있는 베냐민 같은 산책자가 되어 익선동이나 을지로, 문래동을 쏘다녀 보길 바란다. 그 안에 뭔가 있다. 오래된 추억과 최신의 감각 속을 함께 걸으면 경험하는 일종의 행복감, 혹은 기분 좋게 도취되는 도시의 감각.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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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째 초보운전 신세다. 길눈도 어둡고 겁도 많아 안 할 핑계를 찾다 보니 실력이 제자리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로드킬의 당사자가 될까봐서다. 시골길에서 새끼 고라니를 마주친 적이 있다. 워낙 저속운전이어서 다행히 고라니 앞에서 멈췄다. 내 차 앞에서 잔뜩 겁을 먹고 오도가도 못하는 새끼 고라니에게 차 안에서 세차게 손사래를 치면서 빌었다. ‘제발, 얼른 지나가 줘.’ 다행히 새끼 고라니는 산속으로 도망쳤다. 겨울이었으니 배가 고파서 내려왔을까, 엄마를 잃고 헤매고 있었을까. 그날 이후 자동차를 주차장에서 빼지 않았다.

그러다 주말마다 기숙사로 복귀하는 아이를 데려다 주느라 또 운전을 시작했다. 농촌의 지방도를 타면 로드킬 현장을 종종 마주한다. 겨울이 오기 전, 먹이활동을 하러 내려오는지 근래엔 너무 자주 로드킬을 보았다. 눈을 감아서는 안된다. 눈을 감는 순간 내 새끼가 위험해진다. 어떤 어미가 더 독한지를 겨루듯 선연한 핏자국들을 밟고 지나가기도 하고 가끔은 동물의 사체를 짓이기면서 지나가기도 한다. 그때마다 외마디 탄식이 저절로 나온다. ‘미안해! 제발, 내 차에만 부딪히지 말아줘!’

죽음은 연습이 없어서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차에 치여 죽은 동물들이 왜 이리 많을까 생각해 보니 당연한 결론이 내려진다. 산과 들에 도로가 뚫려서다. 자신들의 보금자리에 떡하니 도로가 놓이고 생존 공간이 단절되어 동물들은 접도구역까지 내려왔다 자동차라는 거대한 포식자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시골에 이런 도로가 생겨서 내 새끼는 편하게 데려다 줄 수 있지만, 산속에서 새끼를 잃고 가슴을 뜯고 있을 어미가 어딘가 있을 것 같아 눈물이 난다. 하지만 새끼 잃은 어미 짐승에게 인간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일 뿐.

육계기업으로 유명한 하림그룹의 도축장 건립 논란이 지나가고 있다. 지난 8월, 안성시 양성면에 하루에 돼지 4000마리, 소 400마리를 도축할 수 있는 축산물종합처리장 및 도축장(LPC)과 육가공 설비, 체험관광시설 등을 갖춘 ‘축산식품산업단지’를 건립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하림그룹은 2007년 양돈기업인 (주)선진을 인수하면서 도축장 건립을 계속 시도해왔다. 2010년에도 안성시에서 도축장 건립을 추진했으나 주민들과 축산업 관계자들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런데 이번엔 구체적인 승인단계까지 갔다. 민간사업이어서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이유다. 현재 안성시의회가 제동을 걸어놓은 상태이지만 조건만 갖춰진다면 대형 도축장 건립은 또 추진될 것이다. 축산농가의 반대 입장은 양돈과 한우도 육계처럼 기업형 수직계열화의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주민들은 무엇보다 환경오염에 대한 걱정이 가장 크다. 또한 도축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도축장들의 경쟁이 더 심화되어 기존의 도축장 운영이 어려워진다는 이유도 있다. 찬성하는 측은 대기업이 진출하니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란 점을 든다.  

하지만 찬반 입장을 다 떠나 대형 도축장이 새로 지어지면 그만큼 도축되는 동물들이 많아질 것이다. 거대한 도축공장의 본전을 뽑으려면 공장은 쉬지 않고 돌아가야 한다. 그만큼 가축들은 더 많이 길러져야 하고 더 많이 죽게 될 것이다. 도로가 만들어져 무구한 동물들이 죽어나가는 로드킬처럼 말이다. 이미 인간은 동물을 너무 많이 죽이고 많이 먹고 있다. 멈출 수 없다면 적어도 더 이상 늘리지는 말아야 한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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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체설이 나도는 청와대 정책실장은 자신이 주도해온 ‘소득주도성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고, 여기에 신랄한 비판이 쏟아졌다. 나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을 접할 때마다 그 이름이 궁금했었다. ‘혁신성장’도 그랬다. 알고 보니 각기 분배와 성장을 중시하는 정책이란다. 알고 나니 더 궁금해졌다. ‘분배’라는 말은 왜 빠졌을까? ‘성장’ 대신 왜 굳이 ‘혁신’성장이란 말을 만들었을까? 소득주도성장에서 성장은 여전히 목표로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누구의 소득주도인지 특정되지 않음으로써 소득불균형 문제와 분배의 중요성은 부각되지 않는다. 혁신성장은 규제혁신을 통한 성장이고 규제혁신은 규제철폐나 완화를 뜻하니, 혁신성장은 기존의 성장을 에두르는 말일 뿐이다. 분배를 선명히 내세웠을 때 오는 부담과 과거의 성장 위주 경제정책을 답습한다는 인상을 피하고 싶었을까? 분배를 강조했지만 여전히 성장 패러다임의 철옹성에 갇혀 있는 현 정권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이름은 그것이 가리키는 것의 실체를 드러낼 수도, 감출 수도 있다. 정명(正名),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이는 일이 중요한 까닭이다. 지난여름 폭염의 주범으로 기후변화가 주목을 받았지만, 이 이름 자체는 문제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변화 자체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를 “지구적 규모의 폭력”으로 보게 되면 논의할 “우선순위와 가치”가 분명해진다(리베카 솔닛,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누가 얼마만큼 가해자이고 누가 일차적인 피해자인지 따지고 가해자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게 된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 특히 약자에 대한 폭력을 막는 정의와 평화와 연대의 활동이 된다.

최근 임시저장소의 포화문제로 ‘사용후핵연료’가 다시 현안으로 떠올랐지만, 이 이름도 문제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사용하고 난 연탄은 ‘사용후연탄’이 아니라 연탄재라고 한다. 연탄 ‘재’는 쓰고 난 폐기물이고 치워야 할 쓰레기다. 그러나 사용후‘핵연료’는 어쩐지 연료라는 인상을 풍긴다. 재처리와 연결되면 더욱 그렇다. 이런 면에선 ‘고준위핵폐기물’이 더 적절한 표현이지만, 거기에 내재된 치명적 위험을 알려주기엔 여전히 부족한 이름이다. 차라리 ‘죽음의 재’, ‘끌 수 없는 불’이 실체의 정곡을 찌르는 이름이다.

사용후핵연료는 핵반응을 일으키며 엄청난 열을 내뿜는다. 그래서 적어도 10년을 저장수조에서 식힌 후 방사성물질이 누출되지 않도록 10만년 이상을 세상에서 분리, 차폐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안전한 곳에 견고한 영구처분장을 짓는다 해도 완벽한 분리와 차폐는 모든 게 연결되어 있는 세상에선 애당초 불가능한 요구다. 더구나 10만년은 현생인류의 전 역사를 훌쩍 뛰어넘는, 길어야 100년을 사는 우리 인간이 가늠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기간이다.

고준위핵폐기물 처분을 제대로 논의하려면 진정한 반성이 앞서야 한다. 대책이 없음을 알면서도 죽음의 핵폐기물을 만들어온 우리의 행위가 전기 생산이란 명분으로 윤리적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가? 진정한 반성과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며칠 전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가 내놓은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기초로 원전기술력과 원전산업의 국제경쟁력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정책을 적극 추진한다”는 합의에서는 반성과 변화의 기미라곤 찾아볼 수 없다. 핵발전이 여전히 현 정부의 에너지정책이라고 착각할 정도다. 탈핵을 선언하고도 수구정당과 핵산업계의 공세에 밀려 머뭇거리는 모습은 분배를 강조하면서도 기존의 성장 정책을 기웃거리는 모습을 빼닮았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핵발전의 실체를 제대로 본다면, 우리가 좇아야 할 “우선순위와 가치”는 경제성이 아니라 안전과 지속가능성이 분명하다. 첫 마음이 맞다. 주권자들은 그 첫 마음을 보고 권력을 위임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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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8일 비상·상시 미세먼지 관리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의 핵심은 고농도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꼽히는 경유차 퇴출이다. 공공부문에서는 2030년까지 경유차를 없애고, 민간부문에서도 경유차 폐차지원을 통해 퇴출시키겠다는 것이다. 저공해 경유차에 제공해온 주차료·혼잡통행료 등 인센티브도 없애기로 했다. 이명박 정부 때 시작한 ‘클린 디젤’ 정책을 공식폐기한 것이다.

정부는 또 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중지 대상을 확대해 미세먼지를 줄이며, 미세먼지 차량 2부제 대상에 민간도 포함시키기로 했다. 정부는 “미세먼지를 재난상황으로 보고 총력 대응하겠다”고 했다. 시민의 일상생활과 건강이 미세먼지로 위협받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정부의 마땅한 소임이라 할 것이다.

초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 6일 마스크를 착용한 한 시민이 서울 시내를 지나고 있다. 강윤중 기자

하지만 정부의 이번 대책은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을 뗀 수준에 불과하다. 경유차나 석탄화력발전소는 많은 오염원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지난해 7월 한·미 공동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고농도 미세먼지를 일으키는 유해물질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분야는 산업현장으로, 전체의 38%를 차지했다. 이어 수송 28%, 생활 19%, 발전 15% 등의 순이었다. 산업현장이 국내 미세먼지의 ‘주범’인 셈이다. 다른 조사에서는 전국의 자동차에서 1년간 나온 초미세먼지의 총합보다 전남 광양의 금속산업에서 나온 게 많았다는 결과도 있다. 산업현장의 미세먼지 배출관리가 자동차나 화력발전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경유차 감축이나 화력발전소 가동중지의 경우 추진 과정에서 일정 부분 반발도 예상된다.

정부세종청사 환경부에서 유제철 환경부 생활환경정책실장이 8일 발표된 ‘비상·상시 미세먼지 관리 강화대책’의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세먼지 문제는 중국발 미세먼지를 빼고 말할 수 없다. 전체 미세먼지 발생에서 40%가량을 차지한다. 하지만 정부대책은 우리의 환경기술을 적용한 협력사업을 확대하겠다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이런 정도로 중국발 미세먼지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좀 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미세먼지는 ‘은밀한 살인자’로 불린다. 장기간 노출되면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들이 많다. 환경 문제 가운데 ‘미세먼지’에 대한 불안이 82.5%로 가장 많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그러나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서는 산업생산과 개인의 경제활동에서 상당한 양보가 필요하다. 정부만이 아니라 전 국민적 차원에서 지속적인 노력을 펼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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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보건복지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연금 개혁 일정의 연기가 불가피해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박능후 복지부 장관으로부터 국민연금 개혁안을 보고받은 뒤 “국민이 생각하는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며 개혁안을 반려했다. 당초 복지부는 자체 마련한 개혁안을 오는 15일 공청회에서 여론을 수렴한 뒤 이달 말까지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개혁안을 공개하기도 전에 대통령으로부터 퇴짜를 맞으면서 국민연금 개편 작업이 상당 기간 늦춰지게 됐다.

문 대통령이 국민연금 개혁안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배경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보험료율 인상이 제일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점에 비춰볼 때 개혁안에 담긴 보험료율 인상이 과도하다고 판단한 것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경기 침체로 생활 물가가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보험료율을 두 자릿수로 올리는 복지부의 안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내년도 건강보험료 3.49% 인상으로 악화된 여론을 의식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공청회를 눈앞에 두고 연금 개편 작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연금은 1988년 출범 당시 저부담·고급여 체제로 설계됐다. 처음 70%였던 소득대체율은 1998년과 2007년 두 차례 조정으로 40%로 인하됐다. 3%로 시작한 보험료율은 1998년 9%로 인상된 이후 20년째 변동이 없다. 그러나 소득대체율이 지나치게 낮아 노후소득을 보장하기 어렵고, 납부 보험료도 적어 연금재정의 안정을 해칠 것이라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현행 제도에 변화가 없다면, 국민연금 적립기금은 2057년에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부는 연금재정 안정 및 노후소득 보장 방안으로 소득대체율 45~50% 상향 조정, 보험료율 12~15% 인상안을 이번 개혁안에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취임 이후에는 노후소득 보장 확대를 누누이 강조했고, 국민연금 국가지급보장도 명문화하기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연금재정의 안정이다. 노후소득 보장과 연금재정 안정을 위해서는 보험료율 인상 외에 다른 묘수가 없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현실에서 보험료 인상을 말하기 어렵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물러설 수는 없다. 저출산·고령화 심화로 연금 개혁이 더욱 절박해지고 있다. 연금제도 개혁을 시도하다가 여론 악화를 우려해 손을 턴 무책임한 보수정권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누군가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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