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여느 때와 다름없는 똑같은 하루인데도 잘 보내고 싶은 마음에 괜히 조급해진다. 일년을 마무리하는 특별한 의식을 치러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지난 364일을 빠짐없이 기록해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런 사람이 있는 반면에 벌써 2019년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등록금심의위원회(등심위)를 앞두고 준비에 여념이 없는 학생 대표들이다.

대학가는 얼마 전 총학생회 선거를 마무리 짓자마자 2019년도 등록금 산정을 위해 각개전투에 돌입했다. 등심위는 학생으로부터 받는 등록금을 비롯한 기타 수익 등을 어떤 사업에 지출할지를 의결한다. 1년의 사업틀을 만들 뿐만 아니라 교육 주체들의 이해를 나누고 교육권의 방향까지 논의할 수 있는 회의체이기도 하다. 학교와 총학생회 사이의 온도차가 느껴지기도 한다. 학우들에게 보고할 첫 활동이다보니 당선의 기쁨도 즐기지 못한 채 등록금 인상 여부를 두고 팽팽한 긴장감에 싸여 있다.

학생 당사자가 참여하는 등심위라니, 언뜻 보면 민주적일 것만 같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학교 측 위원이 과반수인 경우가 열에 열이다. 회의에 필요한 자료를 사전에 제공하지 않는 학교들도 많다. 학교 측은 이러한 정보 불균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해왔다. 조와 억 단위로 적힌 교비 회계 장부가 낯설기만 한 학생들에게, 학교 측은 그동안 처리해왔던 내용이니 관행을 따르라는 강요로 어물쩍 회의를 마무리 짓거나, 회의 일정을 일부러 촉박하게 잡고는 충분히 논의할 시간이 없다면서 졸속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올해는 물가상승률과 입학금 폐지를 핑계로 등록금을 인상할 수도 있겠지만 국가장학금 지급에 있어 여론의 비난을 직격타로 받을 수 있기에 사실상 동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동결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하가 답이다. 학교 당국에는 등록금을 인하할 여력이 충분히 있다. 학교는 예산안을 뻥튀기해 학생들에게 필요 이상의 등록금을 징수하고 남은 예산은 적립금으로 돌리는 등 횡령과 같은 사학비리가 관행인 것처럼 굴어왔다.

입학금 폐지는 불명확한 산정 근거뿐만 아니라 이미 지나치게 높은 고등교육비 부담을 어떻게든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였다. 입학금 수입이 사라지면 대학 재정난이 극심해질 것이라는 사학재단의 주장은 현실과 달랐다. 몇몇 기사는 학생이 등록금을 충분히 내지 않아 당장 내년부터 대학이 망할 수 있다고 호도하고 있지만 그들은 건재하다. 외국인 학생의 등록금을 대폭 인상하거나 기존 학과를 공대나 예대와 같이 높은 등록금을 내는 단과대로 편입시켜 등록금을 추가 징수하려는 꼼수가 이어지고 있다.

그들에게 우리는 마르지 않는 돈줄인 걸까. 그로 인해 우리네 삶이 말라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돈이 없으면 어떻게든 대출을 받아 입학하고야 마는, 학위가 절박한 나라에서 수혜자 부담원칙이 고등교육을 설명하는 논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재정난의 이유는 교육 당사자인 학생이 충분한 등록금을 치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예·결산을 관리하지 못하는 사학재단 역할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이제는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는 1000만원의 등록금도, 등록금을 내지 못해 피치 못한 선택을 하는 일가족의 뉴스도 우리의 일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 정권에서의 이화여대 정유라 사태를 필두로 작년과 올해의 학종 신뢰도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 최근에 불거진 사립유치원 문제, 숙명여고 사태 등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느낌이다. 불신은 부분적인 것일 때는 몸에 난 종기처럼 짜내고 치료를 하면 그만이지만 전면화되었을 때는 골수에 스민 병처럼 냉정하게 진단을 내리고 정확한 처방을 하지 않으면 치명적일 수 있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나날이 커지는 데는 여러 차원, 여러 측면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 차원의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지난 산업화 시대에는 학교교육이 학생들에게 미래의 삶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실한 답을 주었다. 학교교육에서의 성공이 상당 정도 직업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졌고, 한번 잡은 직업은 평생 직업으로서 안정적이었다. 그러니 학교교육이 상당한 권위를 갖게 됐다.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신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학교교육은 학생들의 미래에 대해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스카이대 졸업자의 실질적 취업률이 50% 내외이고 직업을 갖게 되더라도 평생 직업으로 보장이 되지 않으니 학교교육에서의 성공이 직업 세계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 셈이다. 빠르게 큰 폭으로 변화하는 현실 앞에서 불안해하는 국민들은 미래에 대해 답을 주지 못하는 학교교육을 시간이 갈수록 더 불신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학교교육이 학생들의 미래에 대해 답을 주지 못하게 된 데는 기본적으로 지능정보사회, 인공지능 자동화의 급진전 등의 변화가 직업을 불안정하게 하는 특성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학교교육이 여전히 산업사회 시스템에 머물러 있어 학생들에게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지 못하는 것도 큰 이유이다. 산업사회 시스템과 시장주의를 넘어 미래사회 변화에 부응하는 교육체계를 수립하기 위한 교육개혁을 더 이상 미루기 어려운 이유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미래사회 변화에 부응하는 교육개혁 추진을 현재의 교육부 시스템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산업화 시대 학교교육 체계는 “서구에서 생산된 지식을 될 수 있으면 하루빨리 받아들여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에게, 될 수 있는 한 짧은 시간에 주입·암기케 함으로써 서구 선진국을 빨리빨리 쫓아가야 한다”로 요약된다. 교육개혁, 교육정책에 대한 정답 역시 이미 서구 선진국, 특히 미국에서 기성품으로 생산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박정희 시대에 미국 차관으로 설립된 한국교육개발원과 미국 유학파가 주류를 이루는 각 사대, 교대의 연구자들로 하여금 약간 가공하게 하여 써먹으면 되는 거였다. 교육부는 정책에 대한 연구 발주를 하고 그것을 받아 정책으로 내려보내고 그 정책들은 일종의 절대반지로서, 이의제기가 있을 수 없는 정답이기 때문에 그 정책이 학교현장에서 어떻게 시행되는지 점검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교육부에는 중장기 정책기획 기능과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 기능, 정책 시행과 관련하여 현장과 피드백하는 구조가 매우 취약하다.

그런데 지능정보사회, 인공지능 자동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한국이 따라갈 선진국 모델이 사라졌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의 입구에 들어섰다. 인공지능 자동로봇 밀도가 미국의 3.5배, 일본의 2.5배로 압도적 세계 1위인데 어떻게 앞선 모델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제는 앞선 모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길을 만들어 나가야만 한다. 이렇게 우리의 현실과 실천에 기반하여 길을 만들어 나가려 할 때 교육부가 선진국 모델 따라가기의 하향식 정책 시스템에 머물러 있다면 이는 심각한 장애요인이 된다. 그러한 시스템으로는 변화하는 현실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정책의 혼선과 난맥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교육부에 대한 불신이 날로 깊어질 수밖에 없다. 산업화 시대 선진국 모델 따라가기 정책 시스템을 넘어서서 우리의 현실과 실천에 기반한 중장기 정책기획 기능,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 기능, 정책 시행에 대한 학교 현장과의 피드백 기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국가교육회의 등 교육거버넌스 개편 논의는 현 교육정책 시스템의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번 곰곰이 짚어보아야 할 것은 지난 정부 정유라 사태부터 지금의 사립유치원 사태까지 학교교육의 국민적 불신을 촉발한 사건의 공통점이 사립학교라는 점이다. 학교교육의 개혁적 변화가 막히는 지점도 사립의 비중이 높은 고등학교부터이고 사립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대학은 개혁이란 말을 꺼내기가 좀 어색할 지경인 게 사실이다. 정부의 경제적 유인책에 의해 확대된 사립재단들의 생존과 발전에 대한 요구는 늘 우리 사회 중상층의 계급 계층적 구별짓기 욕구와 만난다. 자사고, 특목고와 같은 고교 서열화가 그렇고, 서울대를 예외로 하면 대학의 서열화가 그렇다. 이러한 서열화는 우리 학교교육을 산업사회형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고 왜곡된 학교문화를 만들어낸다. 교육 수요가 늘어나는 시기에 국가가 재정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경제적 유인책을 통해 민간자본을 학교로 끌어들임으로써 학교교육의 공공성을 스스로 훼손한 것은 참으로 오래 치유되지 않을 아픈 상처로 남을 것 같다.

<김진경 | 시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드디어 명태가 잡혔다고 한다.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서 12월 중순 이후 일주일째 매일매일 올라온다고 한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백, 수천 마리가 잡히고 있다.

예로부터 명태는 동지가 지나 장이 열린다고 했으니, 연말을 지나 1월까지 추이를 지켜보면 명태의 귀환 여부를 판단내릴 수 있을 것이다.

명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씨가 마르기 시작했다. 국민생선이라 불릴 정도로 흔했던 명태는 어느 날부터 금태가 되었다가 이제는 전량을 러시아에서 들여오는 남의 나라 생선이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 명태는 수입해서 먹는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그러던 차에 거의 20년 만에 대량으로 명태가 잡힌다는 소식을 접하니 놀랍고도 반가운 일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 아예 머나먼 알래스카로 떠나버린 줄 알았던 명태는 어떻게 돌아왔을까. 명태가 계속 잡히길 바라는 마음만큼 그간의 사정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일 강원 고성지역 어민들이 죽왕면 공현진 연안의 수심 60~80m에 쳐 놓은 그물에 1340여마리의 명태가 잡혔다. 고성군 제공 지난 20일 강원 고성지역 어민들이 쳐 놓은 그물에 1340여마리의 명태가 잡혔다. 고성군 제공

명태의 어획량이 정점을 찍은 것은 1981년이다. 이 해에 잡힌 명태 중 절반이 성어였고 절반이 새끼였다. 그런데 마릿수로 보면 90%가 새끼였다. 일명 노가리. 노가리를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이면서 명태 어획량은 매해 줄었다. 마침내 2008년부터 어획량은 쭉 ‘0’을 기록했다. 나는 이 ‘제로’라는 수치가 충격이었다. 명태 한 마리가 한 해에 수십만개의 알을 낳고 죽을 때까지 120만개를 낳는다고 한다. 그런데 제로라니. 얼마나 무차별적으로 명태를 잡아왔는지 알 수 있다. 누군가는 수온 상승을 원인으로 꼽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어느 정도 자란 명태가 서식하는 동해 400~500m 수심은 오히려 0.5도 낮아졌다고 한다. 그러니 다시 화살은 노가리를 찢어 먹은 우리에게 향할 수밖에.

어머니 고향이 속초이고 어려서부터 명태와 그 부산물을 먹고 자라온 나는 명태를 유난히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누구보다 명태의 귀환을 손꼽아 기다렸다. 2014년부터 명태 양식 연구가 착수되었다. 수조에서 수정시킨 알이 치어로 부화해 자라는 걸 다큐멘터리로 지켜보며 설레기도 했다.

남해에서 씨가 마른 대구가 치어 방류 이후 다시 풍어를 이룬다는 소식은 명태의 귀환에 더욱 희망을 걸게 했다. 어획량으로 볼 때 대구와 명태는 세계 1, 2위다. 아마 지난 1000년간은 그랬을 것이다. 그만큼 종 유지가 탄탄하게 되고 있다는 얘기니, 명태 회유노선의 포물선을 강원 앞바다에 다시 살짝 걸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2015년 세계 최초로 명태 양식에 성공해 그해 12월19일 고성 앞바다에 첫 방류를 한 이후 정확히 3년이 지난 올해 겨울 벌써 2만마리가 잡혔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들이 방류한 명태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좀 더 자세히 따져보자. 어류도감에 따르면 명태는 보통 3~8년생이 알을 낳는데, 가장 많이 낳는 연령은 4~6년생이다. 알에서 부화한 새끼들은 약 6개월 얕은 바다에서 자라다가 점차 깊은 바다로 간다. 1년 자란 명태는 15~20㎝, 2년 자란 명태는 25~35㎝, 3년은 35~40㎝, 4년은 40~45㎝, 8년이면 60㎝ 이상까지 자란다.

그렇다면 이번에 잡힌 명태는 몇 년쯤 자란 것이며 어느 정도 크기일까. 직접 고성에 가서 취재한 보도에 따르면 30㎝ 안팎이다. 겨우 2년 자란 명태라는 얘기이며 아직 산란할 시점에 도달하지 못한 셈이다.

그런데 명태가 잡힌다는 소식이 들리자 너도나도 조업에 나서 벌써 2만마리나 잡아들였다고 한다. 실로 걱정스럽다. 잡힌 명태 중에는 표식을 부착해 방류한 개체도 4마리가 발견됐는데, 모두 이달 10일에 갓 방류한 것들이었다.

다행히 해양수산부가 올해 7월 내놓은 수산자원관리법 개정안이 내년 1월 중 통과되면 1년 내내 명태를 잡을 수 없다. 이후엔 종수 회복을 판단해 허가가 내려질 전망이다. 관건은 요즘 잡힌 명태 중 40㎝ 전후의 개체가 과거 방류한 것인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래야 방류 이후 최소 1~2년 깊은 바다에서 자란 명태가 돌아온 것임이 입증되기 때문이다. 산란까지 한 게 밝혀지면 완전양식 및 종 회복 사이클이 정상 궤도에 오르는 것이니 말이다.

10여년 전 새벽, 을지로 골목 인쇄소에서 필름 검판을 마치고 출출한 속을 달래러 혼자 동태매운탕을 먹으러 갔다. 꽤 노포였는데 냉면 대접에 동태국이 벌겋게 담겨 나왔다. 간이 들어가 국물이 기름졌고 대파가 듬성듬성 크게 썰어진 국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였고 밖에는 눈이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그날 허전한 속을 달래준 진한 동태국 맛을 잊을 수 없다.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부터 나는 마흔두 살이다. 사십대 중반의 길목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다. 나이 앞자리가 4로 바뀐 지가 어느덧 2년이다 보니 불혹이라는 말도 예사롭지 않게 이해된다.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세상 풍파에 연연하지 않고 의젓하게 살고 싶다. 사실 이 말은 무엇에 도전하기에는 이미 늦은 나이임을 인정하고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고 살아가겠다는 다짐이자,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체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마흔둘이면 자타공인 아재다.

그런데 오랜 외국생활을 정리하고 최근에 귀국한 동년배 친구는 나보다 훨씬 젊게 산다. 친구는 내게는 예전이었던 ‘사십대의 시작’이 기대된다면서, 이를 기념하고자 제주 올레길을 무작정 걸을 예정이라 했다. 느낌이 좋으면 해남 땅끝마을에서 서울까지 도보로 올라오겠단다. 내가 국토대장정은 젊은 애들이나 하는 거라면서 ‘우리 나이쯤 되면’이라는 추임새를 멈추지 않자 친구는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의 차이를 간단하게 설명한다. “나, 한국 나이 안 써.”

나는 1978년 9월생이고 친구는 11월생인데 한 명은 이미 사십대의 삶에 익숙해져서 느낌 운운하는 결정을 꺼리고 고작 2개월 차이인 다른 한 명은 인생을 자신이 만들면서 살아가는 데 두려워하지 않는다. 친구의 정신상태가 남달라서가 아니라, 그가 태어난 세월이 딱 그 정도였기 때문이다. 40세1개월, 친구는 자신의 나이를 살아온 기간만큼 계산했고 그 숫자에 맞춰 살았다. 새해가 되어도 40세2개월에 불과하니 스스로를 삼십 대라고 착각할 만하다. 하지만 1978년에 태어났다면 동시에 새해 첫날부터 마흔둘이 되는 이상한 전통에 길들여진 나는, 몇년 후에는 “내일모레면 반백년을 살았으니”라고 말할 태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게 아니라, 숫자가 곧 자신이더라. 한국식 나이로 살다 보니 너무 빨리 늙는다. “곧 마흔이네”라는 말을 한국 나이 서른여덟이 되는 해의 첫날부터 했었다. 진짜 나이는 36세4개월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삼십대의 정점에 있을 시기였지만 8이라는 숫자의 무게감 때문에 스스로를 사십에 밀착시켜 이해했다. 26개월 군복무를 마쳤을 때가 고작 21세8개월이었는데, 왜 그렇게 애늙은이 흉내를 내며 학교를 다녔는지 모르겠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내 나이는 34세7개월에 불과했는데, 서른여섯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참으로 두려움이 많았다.

세계에서 유일한 ‘한국 나이’는 사라져야 한다. 동양에서는 숫자 0의 개념이 달라서 나이를 다르게 계산했다는 설도 있지만 중국과 일본이 전통을 무시했기에 이를 폐기했겠는가. 찬성론자들 중에는 ‘생명에 대한 존중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1세가 된다’는 너무 진지한 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역사가 곧 인권투쟁의 시간이었던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를 듣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재미난 것은 원래 나이보다 ‘더’ 셈하는 법을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찬성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나이 어리면 사람 무시하는 사회에서 하루빨리 ‘높은 숫자’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세태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학생다움’의 규율에 짓눌린 이들에게 ‘이십대’는 자유라는 상징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2000년 12월에 태어난 이들에게 내일은 18세1개월이 아니라, 청소년보호법의 대상에서 벗어나 음주와 흡연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만 19세, 아니 스무 살이다. 스물이 되고 싶었던 간절함 덕택에 당연히 사십도 오십도 빨리 된다. 나이가 어리면 무시당하는 세상에 적응하고자 우리는 다 함께 ‘더’ 나이가 들어버렸다. 이 셈법이 아니었으면 나는 이제 갓 사십대에 접어든 팔팔한 사람인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년인 내일이 되더라도 마흔두 살이 아닌 40세4개월로 스스로를 바라볼 생각이다. 새로운 10년을 기념하는 여행을 떠날 채비나 해야겠다.

<오찬호 | <진격의 대학교> 저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종일 비가 와서 바깥은 경극의 배경과 잘 어울렸다 찻잎을 물에 띄울 때 고요의 눈썹은 내가 그린 듯 가깝다 먹구름과 싸우면서 제 높이를 슬슬 키웠던 능선 그림자도 한 움큼 불러 물에 담갔다 물은 언제 뜨거워지는가 물이 쉽게 끓기나 할까마는 물이 펄펄 끓으면 영혼은 현실과 마주친다 양철 주전자가 물의 온도에 접근하면서 마침내 쇠붙이까지 물의 감정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주둥이에서 쇄쇄 김이 올라오고 때마침 뚜껑은 들떠서 십 리쯤은 도망갈 기세이다 물도 주전자도 뜨겁다고 뜨거워 못 견딘다고 이제 너희가 외쳐라 송재학(195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비가 오는 날이어서 날씨는 마치 경극의 극적인 장면을 보는 듯하다. 찻잎을 우려 차를 마실 때에 시인은 푸른 찻잎에서 고요의 가느스름한 눈썹을 본다. 찻잔에는 능선의 그림자도 비쳤다. 시인은 맑은 물을 찻주전자에 부어 끓인다. 끓으면서 물과 주전자가 격해지는 것을 바라본다. 찻주전자 주둥이에서는 김이 몰아쳐 나오고, 뚜껑은 들썩들썩하며 곧 말처럼 멀리 달아날 기세다. 이 펄펄 끓는 물과 몹시 요동하는 찻주전자를 보면서 시인은 말한다. 뜨거워 견딜 수 없는 속내를 숨기지 말고 모두 털어놓으라고. “사물의 안에 원래 있는 것을 발견하거나 발견 이상의 것을 시인은 해야 한다”라고 송재학 시인은 말한 적이 있다. 내년에는 다른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을 잘 살펴야겠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일반 칼럼 > 경향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겨울밤  (0) 2019.01.14
그리고 나는 행복하다  (0) 2019.01.07
물은 언제 뜨거워지는가  (0) 2018.12.31
고랑 몰라  (0) 2018.12.26
달의 뒤편  (0) 2018.12.17
화살  (0) 2018.12.10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돼지만큼 제물(祭物)로 많이 사용된 가축도 드물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추수의 신, 고대 그리스인들은 곡식의 신 데메테르에 공양물로 돼지를 바쳤다. 로마시대에는 돼지와 함께 양과 소를 산 채로 바치는 종교의식이 행해지기도 했다. 중국인들은 집에서 기르는 ‘육축’ 가운데 제사에 소, 양, 돼지 고기를 가장 중요시했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 조상들도 마찬가지다. <삼국사기>에 ‘고구려는 항상 삼월 삼일에 낙랑의 구릉에 모여 사냥하고 돼지와 사슴을 잡아 하늘과 산천에 제사한다’는 기록이 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산돼지가 조선시대에 제물로 쓰였다고 한다.

그러나 종교적인 이유에서 꺼리는 경우도 있다. 이슬람에서는 돼지를 정결하지 못한 동물로 여겼다. 이슬람의 경전 <쿠란>에는 여러 차례에 걸쳐 돼지고기를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썩은 고기, 피와 함께 돼지고기는 금지된 음식이다. 이는 발굽이 없고,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 가축을 금지하는 유대교 전통에서 왔다고 한다. 유대교에서는 소, 산양, 양 등은 먹어도 되지만, 발굽은 있어도 반추하지 않는 돼지를 금기 대상으로 삼았다.

돼지는 편견도 많다. 배가 불러도 계속 먹는다, 더럽고 지능이 낮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돼지는 일정한 양을 채우면 그 이상 먹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공간이 충분하면 잠자리와 배변 장소를 가릴 수 있고, 지능이 개보다도 높다고 한다. 돼지우리 주변이 습하고 더러운 것은 돼지의 땀샘이 발달하지 못해 수분을 소변으로 배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9년은 기해(己亥)년, 돼지의 해이다. 그것도 60년 만에 돌아오는 ‘황금돼지의 해’라고 한다. 동양문화권에서는 하늘을 뜻하는 천간(10개)과 땅을 뜻하는 지지(12개)를 조합해 그 해의 이름이 정해진다. 오행에 따르면 기(己)는 황색을, 해(亥)는 돼지를 뜻한다. 12년 전인 2007년은 정해(丁亥)년이었다. 정(丁)은 붉은색을 뜻하므로 ‘붉은 돼지의 해’였다. 당시 황금돼지의 해라며 열을 올렸는데 짝퉁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운수가 좋은 해라면서 출생률이 높았다. 진짜 황금돼지의 해가 온다. 풍요롭고 다복한 한 해가 되기를.

<박종성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한국에는 아직 영리병원이 없다. 의술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정서, 그리고 돈 없는 사람도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국 녹지그룹이 세운 제주 녹지국제병원이 건물을 완공하고도 개원하지 못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우려는 여전하다. 지난 6월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정부에 규제개혁 과제를 건의하면서 제일 앞에 내세운 구호가 “영리병원 설립 허용”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윤 극대화를 위한 의료행위’라는 말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초현대적 시설과 고가의 의료기기들, 그리고 ‘과잉진료’다. 전문성 없는 의료 소비자는 병원과 의사로 대표되는 ‘공급자’의 의도에 끌려가는 경향이 높고, 따라서 의료시장은 공급자가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다. 우리나라의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 관련 진료 건수는 2002년 이후 10년 만에 4.5배로 증가했다. 한국 사람들의 집중력이 갑자기 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별난 성격 정도로 여겼던 것이 ‘질병’이 되었고, 대표적인 소아 질환이 어느 날부터 성인에게도 ‘치료를 요하는’ 병이 되었기 때문이다. 콜레스테롤이나 혈압의 ‘정상범위’는 지속적으로 좁아졌다. 콜레스테롤 정상치 기준을 10 내릴 때마다 ‘환자’는 1000만명씩 늘어난다고 한다. 영리병원 설립보다 더 유효한 이윤 극대화는 환자가 아니던 사람을 환자로 명명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의료사회학자 피터 콘래드는 이를 ‘의료화 사회’로 지칭한다. 기존에는 의학적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증상이 질병이라는 의학적 문제로 정의되고 치료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특별한 신체적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탈모가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증상’으로 정의된 것이 한 예이다. 노화로 인한 불가피한 신체적 변화들도 이제 치료의 대상이 된다. 흥미로운 점은 ‘탈의료화’가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미국정신의학회(APA)는 한때 자위행위나 동성애를 질병으로 분류했다. 이제는 의료적 처치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판정하여 질병 목록에서 제외시켰다. 질병으로 지정하는 과정이 전적으로 의학적 고민의 결과는 아님을 알 수 있다.

APA는 5년 전 ‘인터넷게임장애’를 “(질병으로 지정하기 위해) 추가 연구가 필요한 영역”으로 지정했다. 흔히 ‘게임중독’이라 부르던 증상이다. 그리고 올해 6월, 세계보건기구(WHO)는 게임장애를 ‘국제 질병 분류’ 최신판(ICD-11)의 ‘중독성 행동장애’ 범주에 포함시킨다고 발표했다. 지난 5년 동안 어떤 추가 연구가 이루어졌길래 게임 플레이는 질병이 되고 게이머는 환자가 되었는가. 답을 찾기 위해 지난 5년 동안 발표된 게임 중독 관련 논문 869편을 분석했더니 단순한 결론에 도달한다. ‘질병으로서의 게임 중독’은 병리학적 근거에 대한 학자들의 합의가 아닌 권위 있는 기구의 결정과 하향적 확산에 의해 제도화되었다는 점이다. 게임 중독의 ‘병리적’ 정의에 동의하거나 이를 무비판적으로 전제한 채 행해진 연구의 비율은 2015년까지 50% 수준에 머무르다 APA의 결정 이후 70%로 증가했다. 올해에는 80%를 상회했다. 학술적 연구가 ICD-11을 유도했다기보다는, APA와 WHO의 결정이 학술담론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나마 연구결과들은 5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불완전하고 논쟁적이다. 게임 중독의 원인 규명이나 치료를 위해서는 “무엇이 게임 중독인지” 진단 기준이 있어야 하지만 다수 연구자들이 동의하는 일관된 기준은 없다. ‘중독’ 유병률이 0.7~15.6%로 들쭉날쭉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탈모나 비만보다도 ‘질병스럽지’ 못하다.

과잉 의료화는 인간의 이상적 모습을 표준화하여 차이를 질병화한다. 콘래드의 지적처럼, 가슴 크기나 키가 작은 사람, 머리숱이 적은 사람, 학습 능력이 부족한 사람, 성욕이 크지 않은 사람에게도 모두 환자 이름표를 붙이게 된다. ‘게임 장애’의 질병화도 전형적인 의료화, 혹은 ‘환자 만들기’ 과정이다. 그리고 그 해법은 ‘개인’에 집중한다. 알코올 의존도가 높은 어른이나 산만하고 집중 못하는 어린이가 있을 때, 폭음을 부추기는 사회환경이나 적절치 못한 교육체계를 건드리기보다는 이들을 알코올중독이나 ADHD로 분류해 치료하는 방식이 더 간편하기 때문이다. 게임 중독의 주원인이 학업 스트레스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때 게임 행위를 중단시키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가?

영리병원의 설립과 게임 중독의 질병화는 한 원인의 두 결과이다. 둘 다 공공의 건강과 건전한 사회구조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는 거리가 멀다. 의학의 발달이나 의사 개인의 전문성과는 무관하게, 이미 우리는 과잉 의료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게임을 즐기면서도 잠재적으로 의학적 감시의 대상이 되는 시대.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달 24일, 대만 지방선거와 함께 10개의 국민투표가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제16호 ‘전기산업법’ 제95조 제1항의 ‘2025년까지 모든 원자로 가동중지’를 명시한 법률조항(이하 ‘2025 탈원전 조항’) 폐기에 관련된 내용이 있었다. 투표 결과 찬성 589만표, 반대 401만표로 가결되었다. 이를 두고, 한국 언론에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이 많이 포함된 것을 발견하였고 이 글을 통해 바로잡고자 한다.

‘2025 탈원전 조항’이 폐기되더라도, 노후 원전의 계속운전이나, 신규 원전(4호기)의 추가건설을 위해서는 행정권에 의한 정치적 결정을 비롯한 다양한 관문을 거쳐야 한다. 대만 현행 법률에서는 원전의 가동기한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운영 허가만료 5~15년 전에 신청을 제출하여야 하는데 1호기와 2호기 모두 연장 신청기한을 넘긴 상태로, 연장 신청을 제출할 수 없다. 따라서 ‘2025 탈원전 조항’이 폐지되더라도 노후 원전의 계속운전이나 신규원전 건설은 이루어질 수 없다. 

국민투표 가결 후, 원전 3기가 위치한 지방 정부에서는 계속운전에 대한 강력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각 원전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처리할 방법을 찾지 못한 데다 지리적으로 활성단층에 위치해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이후 차이잉원 총통은 지방 정부의 의사와 방사성폐기물의 처리 문제 등을 이유로 ‘2025 탈원전 조항’은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폐지하지만, ‘집권 여당의 원전제로 목표 불변’ 입장을 유지하고 에너지구조 전환과 관련, 기존 정책의 지속적인 추진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바 있다

이번 국민투표에서 ‘2025 탈원전 조항’ 폐기가 통과된 배경을 살펴보면 첫째, 2025년까지 단계적 탈원전 및 2025년까지 3분의 2 수준으로 화력 발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20% 늘리는 에너지 전환정책을 추진하던 중 각 원자력발전소에서 개별적으로 사고가 발생하였고 이에 원전이 가동 중지되면서 예비전력량이 부족해지는 바람에 전력수급이 불안해진 이유이다. 보수언론들은 탈원전 정책으로 전력부족 사태가 발생하였다며 에너지전환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둘째는 작년에 발생하였던 ‘8·15 정전사태’이다. 사건 발생 후 언론들에서는 탈원전 정책으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하였다고 보도하였고 또한 한국 언론들에서도 그렇게 보도된 사실을 알고 있다. 이 글을 빌려 정중하게 해당 내용은 잘못된 오해임을 알리고자 한다. ‘8·15 정전사태’가 발생한 진짜 원인은 현장 직원이 실수로 천연가스 공급 밸브를 차단하였는데, 해당 밸브는 리스크 분산을 위한 설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데 있다. 인위적인 실수로 4000MW의 천연가스 발전소 6기에 대한 가스 공급이 중단되어 발전을 멈추었고 대규모의 정전사태로 이어진 것이다. 대만 정부에서 정식 조사보고를 통해 해당 사실을 공식적으로 규명하였다. 이후 대만 전력공사의 임원들도 솔직하게 밝히기를 상기와 같은 대규모 전력 중단사태가 발생하게 되면 모든 원자로를 풀가동하더라도 시스템에서는 정전을 피할 수 없다고 하였다.

대만과 한국의 에너지 상황은 비슷하기도 하고 상당히 다른 부분도 많다. 따라서 에너지 구조의 개혁 과정은 상이한 수요에 따라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리스크가 높은 원자력 발전과 오염이 심각한 화력 발전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두고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재생에너지와 관련 에너지 효율개선 기술은 세계적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탈원전과 탈화력 발전의 기회는 눈앞에 다가왔다.

하지만 목표에 가까울수록 도전은 더 많아지기에 시스템 개혁은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대만에 있는 우리는 앞으로도 도전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또한 한국과도 에너지전환을 위해 상호 교류 및 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나아가 함께 동아시아 에너지 구조 전환을 실현하고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를 실현할 수 있길 희망한다.

<홍선한 | 대만 녹색공민행동 연맹 사무부총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사측의 노동조합 탄압에 반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 염호석씨 ‘시신 탈취’ 사건에서 삼성 측의 편의를 봐주고 뒷돈 1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경찰관 2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은 경남 양산경찰서 하모 전 정보과장과 김모 전 정보계장을 직권남용과 허위공문서 작성, 부정처사후수뢰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30일 밝혔다. 염씨 시신 탈취는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던 삼성의 대표적인 노조 탄압 사건 중 하나다. 엄정한 법집행을 해야 할 경찰이 오히려 사측의 하수인 역할을 했다니 참담하다.

2014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열린 염호석씨의 영결식에서 동료들이 염씨를 추모하고 있다. 사측의 노조 탄압으로 염씨는 ‘노조가 승리하는 날 화장해 뿌려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센터 분회장이었던 염씨는 2014년 5월 “저 하나로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라는 유서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노조는 유족 동의를 얻어 노조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하고 서울의료원에 빈소를 마련했다. 그러나 염씨 부친이 가족장으로 치르겠다고 갑자기 마음을 바꿨다. 경찰 300여명이 장례식장에 투입됐고, 염씨 시신은 부산으로 옮겨져 곧바로 화장됐다. 검찰 수사 결과 이 같은 시신 탈취 전 과정에 하 전 과장과 김 전 계장이 개입하고 있었다. 염씨 부친은 삼성 측으로부터 6억8000만원을 받고 마음을 바꿨는데, 이들 경찰관은 염씨 부친과 친한 지인을 동원해 설득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하 전 과장은 부하 경찰관을 시켜 삼성의 합의금을 염씨 부친에게 전달하기까지 했다. 또한 부산으로 옮긴 염씨 시신을 신속히 화장하기 위해 검시 필증이 필요하자 양산경찰서 당직 경찰관이 ‘수사상 필요하며 유족의 요청이 있다’는 취지의 허위공문서를 작성하도록 해 필증을 받아낸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삼성은 염씨의 장례가 노조장으로 치러지면 사회적 이슈로 커질 것을 우려해 염씨 부친을 사실상 돈으로 매수해 가족장을 치르게 했다. 이 같은 삼성의 부당한 행위에 이들 경찰관은 충직한 손발이 돼 움직였던 것이다.

삼성은 지난 수십년 동안 노조 설립을 방해하고 설립된 노조는 와해시키는 온갖 부당노동행위를 해왔다. 이 과정에서 경찰 등 국가기관은 사실상 삼성 편에 서서 편파적인 공권력을 행사해왔다. 이는 삼성이 오랫동안 시대착오적인 무노조 경영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검찰의 전면적인 노조와해 혐의 수사 이후 삼성전자서비스는 합법적인 노조활동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경찰도 노사 문제에서 그동안의 기울어진 공권력 행사를 반성하고 공정한 법집행자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올해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지난 27일 본회의장엔 100명 넘는 의원들이 자리를 비웠다.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20대 비정규직 청년의 죽음 이후 여야 간에 치열한 논쟁이 오갔던 주요 쟁점법안이었지만 표결엔 재적의원 298명 중 185명만 참석했다. 의원들의 무더기 부재 상태는 다른 90여개 법안 처리 내내 이어졌다.

이날 본회의에 불참한 의원 중 국회 운영위 소속 자유한국당 의원 4명은 베트남 다낭으로 외유성 출장을 떠난 사실이 밝혀졌다. 출장에 드는 항공료와 체재비 등은 모두 상임위 예산으로 충당됐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정무위 소속 여야 의원 4명도 말레이시아로 출장 간다며 본회의 도중에 회의장을 나갔다. 다음날엔 운영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일본 오사카와 고베로 출장을 떠났다. 의원들의 출국이 연말에 집중된 것은 각 상임위에 배정된 해외 시찰 예산을 연내 다 소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파문이 일자 부랴부랴 조기 귀국하거나 관광 일정을 취소한 것을 보면 본인들도 잘못을 느끼긴 한 모양이다. 다른 당에선 “민생법안은 뒷전으로 하고 국민 혈세로 따뜻한 휴양지로 출장을 떠난 꼴”이라는 말이 나왔다.

국회의원들의 외유성 출장을 두고 혈세를 낭비한다는 비판은 그동안 한두 번 지적됐던 게 아니다. 그런데도 쇠귀에 경 읽기다. 올 한 해만 해도 의원 3명 중 2명이 해외 출장을 다녀왔고 많게는 8번까지 간 의원도 있었다. 이렇게 쓴 돈만 50억원이라고 한다. 의원들이 외교나 입법 조사 등의 목적으로 해외에 나가는 것은 뭐라 할 게 못 된다. 그러나 누가 봐도 놀러 나갔다고 할 만큼 일정이 느슨한 데다 관광지 방문 스케줄을 놓고 업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는 국회 적폐다. 국회 사무처는 이달 초 회기 중에는 의원들의 해외 출장을 차단하고, 해외 출장을 다녀온 뒤엔 반드시 보고서를 제출토록 한다는 등의 쇄신책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런데 쇄신 발표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외유병’이란 악성 고질이 재발했다. 백약이 무효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세밑에 이목이 쏠린 곳은 국회였다. 유치원 3법은 어찌되는지, 김용균씨의 참담한 죽음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있을지 가슴을 졸여야 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호소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기준을 확립하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통해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여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하고 증진하자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세계 최악의 산업재해 국가가 거듭날 계기를 만들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만약 이 법이 개정되어 산업재해 사망이 줄어든다면, 그건 온전히 김용균과 어머니 덕분이다.

그동안 산업재해를 줄이려는 노력은 그저 무의미한 구호에만 그치곤 했다. 노동자가 알아서 조심하라는 투였다. 안전모를 꼭 쓰고 각종 안전장비도 잘 챙겨서 산업재해를 피해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위험을 하청·재하청 업체의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만 돌리는 위험의 외주화가 만연한 상황에서 각자 알아서 주의만 기울인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산업안전을 위해 주의를 당부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구조를 바로잡지 않고 주의만 당부하는 건 산업재해의 원인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노동자에게 전가하고픈 자본의 고약한 심보가 반영된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교과서는 자아실현 운운하지만, 누구에게나 노동은 먹고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누구도 일에 목숨을 걸지는 않는다. 하나뿐인 목숨을 걸 정도로 무모한 사람도 없다. 노동자가 주의를 기울이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목숨 부지하기 어려운 고약한 산업현장의 구조다.

12월10일 밤. 김용균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참변을 당했다. 그날은 마침 세계인권선언 제70주년 기념일이기도 했다. 인권의 생일날, 인권은 저 깊숙한 탄가루 속에 처박혔다.

태안화력발전소는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공기업이다. 여기에도 낙하산이 잔뜩 내려앉았다. 상임감사와 비상임이사는 노무현 정권 시절 청와대 행정관이 맡고 있다. 비상임이사는 한 달에 한 번 회의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연간 3000만원을 받는다. 김용균이 기본급 165만원에다 연장, 휴일, 야간 수당을 다 합해서 받은 돈은 월 211만원이었다.

김용균의 죽음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고맙게도 경향, 서울, 한겨레가 1면에 보도했다. 그렇게라도 젊은 넋을 달래고 싶었던 게다. 조선, 동아가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것과 크게 달랐다. 역시 신문이라고 다 같은 신문은 아니다.

그리고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와 가족들이 싸움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싸움의 선두엔 어머니가 있었다. 김용균씨의 어머니는 자기 자식은 그렇게 보냈지만, 다른 자식들의 목숨은 지켜야 한다며 싸움에 나섰다. 어머니는 빈소를 지키면서도 집회나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도 했고, 언론에 출연하기도 했다. 국회를 찾아 농성 아닌 농성도 했다. 어머니의 피눈물 덕에 세상은 아주 조금 움직이려 한다.

돌이켜보면 매번 이런 식이다. 어디선가 문제가 터진다. 문제가 터진다고 매번 여론의 주목을 받는 건 아니다. 심지어 누군가 죽었고 어머니가 통곡한다고 관심을 기울이는 세상도 아니다. 젊은이의 죽음, 어머니의 절규, 그리고 언론보도 등 몇 가지 극적요소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면, 참혹한 죽음마저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 채 묻히고 만다.

세월호의 참극이 마라도 해상에서 침몰한 선박의 전원 구조로 이어진 건 고마운 일이지만, 매번 이런 극단에만 기댈 수는 없는 일이다. 1인당 소득 3만달러와 세계 10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나라가 이런저런 변수에 기대어 공동체의 진로를 가늠할 수는 없다.

방법이 없을까. 당연히 있다. 가장 확실한 대안은 노동조합에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아주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여전히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겨우 10% 남짓, 복지국가들의 90%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노동조합이 만병통치약은 아니겠지만 산업재해나 노동조건에 있어 노동조합만큼 확실한 안전장치는 없다. 노동조합이 활성화되고 노동조합이 힘을 갖는다면, 그만큼 산업재해는 줄어든다. 노동자 입장에서 노동조합은 가성비 좋은 안전장치가 된다. 조합비를 내고 노조의 이런저런 교육이나 행사에도 참여해야 하지만, 그런 약간의 비용과 수고의 결과는 엄청나다.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느냐, 아니 한국적 현실에서는 사느냐 죽느냐를 가르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도 협동조합이나 협회 등을 통해 자기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혼자서만 잘산다는 것은 사회구조가 엄연한 사회에서는 허망한 일일 뿐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주거비, 교육비, 통신비 등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구조 때문이다. 이 구조를 깨뜨리고 살 만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은 조직된 시민의 힘밖에는 없다. 깨어 있는 시민이, 조직된 시민이 세상을 바꾼다. 아니 세상을 바꿀 유일한 근거는 깨어 있는 시민, 조직된 시민이다.

시민사회단체도 활성화되어야 한다. 더 많은 시민들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활동가들의 처우는 개선되어야 한다. 문제도 있고, 사실 답도 다 나와 있다. 문제는 그 문제를 지혜롭게 푸느냐 아니냐에 있다. 더 이상 극단적인 사건사고에 기대고, 어쩌다 주어진 비상한 상황에 기대는 방식으로는 곤란하다. 세상을 밝게 만드는 것이 누군가의 참혹한 죽음이어선 더더욱 곤란하다.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몫이 있다면, 노동조합이나 시민사회단체에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하는 것일 게다. 이건 우리의 삶을 지탱해줄 튼튼한 진지를 만드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게 기본이고, 여기서 많은 것들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곧 새해다. 모두들 뭔가 다른 새해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변화는 대통령의 위대한 결단이나, 정치인들의 훌륭한 리더십 같은 것이 아니라, 오로지 참여하는 시민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아이들을 위한 세금을 아이들을 위해 쓰라는 당연한 요구에도 소수 기득권을 위해 묵살하는 사회,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작업환경 요구에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반대하는 사회, 부자가 세금을 조금 더 내고 가난한 사람의 소득을 높이면 국민이 못살게 된다고 반대하는 사회, 회계를 조작한 회사를 엄벌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조작을 옹호하는 사회, 부동산 불로소득에 부여하는 세금을 높이는 게 폭탄이라고 하는 사회, 미세먼지와 화학물질 공포의 개선을 위해 규제를 강화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반대하는 사회, 위장전입과 부동산투기, 탈세의 범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 중에는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가 없다는 사회, ‘착한’이란 말로 포장해서 최저임금조차 쥐여주지 않으려는 노동착취를 미화하는 사회, 그래서 피해자만 억울한 사회. 2018년에도 변함없이 우리 사회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묻고 싶다. 대한민국은 사람이 안전해지면 망하는 나라인가? 세금이 본래 목적으로 쓰이면 망하는 나라인가? 부정한 회사를 엄벌하면 망하는 나라인가? 불로소득에 대한 세금을 높이면 망하는 나라인가? 집값이 수억원 올랐다가 몇천만원 떨어지면 망하는 나라인가? 미세먼지가 줄어 좀 더 깨끗해지면 망하는 나라인가? 범법자가 아니고서는 인재가 없는 나라인가? 가난한 사람이 소득이 늘어나면 망하는 나라인가? 대기업의 부정부패와 재벌의 갑질이 사라지면 망하는 나라인가? 서울 집중이 분산되면 망하는 나라인가? 남녀노소가 평등해지면 망하는 나라인가? 이 수많은 질문에 동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다 평등한,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길 바라는 국민이 대다수임에도 우리는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 눈에 뻔히 보이는 파렴치한 손들의 방해로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유엔이 추구하는 환경적으로 건전한 ‘지속가능한 사회’가 아닌 ‘부와 권력의 세습만이 지속가능한’ 계급이 고착화된 사회로 변모해 있다.

2018년은 우리에게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큰 과제를 안겨준 해이다.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대한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했으면서도 소수 기득권 집단이 보여준 응집된 저항의 힘에 절대다수의 정당한 요구가 잠식당하는 무기력함을 보였기 때문이다. 환경적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기후변화의 공포를 온 국민이 체험한 해이다. 많이들 잊었겠지만, 이번 여름 더위와 관련한 각종 기록이 경신되면서 온열질환으로만 48명이 숨졌고, 현재진행형인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그러면서도 당장 청년의 목숨값으로 연명하는 저질 화석에너지를 포기하지 못하며,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는 디젤의 가격을 오염자 부담원칙에 입각하여 정상화하지도 못한다.

전문가의 압도적 무용론에도 4대강 사업을 추진한 토건세력의 집요함과는 달리 온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유치원 비리근절법조차 통과시키지 못하는 모습은 보다 정의로운, 사람이 먼저인 사회로의 전환을 추구하는 정부가 돈과 언론의 권력을 앞세운 수구 금권세력에 밀리는 모양새로 비춰진다. 잠시 숨죽이던 이들은 조금씩 틈을 비집고 다시 과거로 회귀하려 총력을 다하는 상황이 채 임기 절반도 안된 촛불정부에 드리워졌다.

그 어떤 정책이라도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득실이 있기 마련이라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는 없다. 이번 정권에서 대다수 국민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모든 부정부패와 사회문제를 없애고 모두가 잘 사는 대한민국이 되는 마법이 아니다. 그간 기득권이 누린 비정상적 혜택을 줄이고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약자들을 위한 민주국가 본연의 정책이 구조적으로 싹을 틔우는 ‘사람이 먼저’인 사회로의 작은 변화를 확인하는 것이다. 새해에는 미봉책의 표면적 지원이 아닌 ‘구조적’ 변화를 불러올 결실을 볼 수 있을까? 경기침체를 빌미로 한 거대 SOC사업의 부활은 더 큰 불안의 징표로 보인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양이 손이라도 잡아라  (0) 2019.01.11
안식, 새해의 제언  (0) 2019.01.04
사람이 먼저인 나라  (0) 2018.12.28
경제문제가 된 기후변화  (0) 2018.12.26
탈원전이 재앙이라는 사람들  (0) 2018.12.14
환경, 이번 정부에서도 ‘후순위’  (0) 2018.11.30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여름 대구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 출연 요청을 받고 스튜디오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PD는 말할 것도 없고 방송작가도 없이 아나운서 혼자 모든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어찌된 일이냐고 묻자 구조조정한다고 인원감축을 해서 그렇단다. 아니 각자 전문 영역이 따로 있는데 어떻게 아나운서가 혼자 다 하냐고 다시 물었다.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경영이 어려워서 그럴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지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대구·경북 지역의 암울한 현실이 떠올랐다. 대구·경북 지역의 방송미디어 관련학과에서 매년 쏟아져 나오는 졸업생만 해도 수백명이다. 하지만 정작 방송사에서는 어떻게 하면 새로 좋은 사람을 뽑아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대신 있던 일자리마저 아예 없애버리고 있다. 국가는 대학에 취업률을 올리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정작 노동시장에서는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졸업해도 취업할 곳이 없는 지방대생들은 지역을 떠나 서울로 가거나 공무원시험에 몰두한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한국 사회에는 기업가적 자아를 가지고 끊임없이 혁신하라는 정언명령이 지배했다. 논리는 이랬다. 모두 기업가적 자아를 가지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끊임없는 혁신을 수행하라. 그러면 시장에 불안정성과 위험이 증대되고, 이는 역설적이게도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역동적인 불균형 상태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때 종래 방법을 완전히 혁신한 창조적 기업가가 나타나 한국 사회의 성장을 이끌어갈 것이다.

이런 논리에 따라 한동안 벤처붐이 불었다. 누구나 자신의 자아를 기업가로 만들어 창조적 혁신을 계속해나가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가 횡행했다. 하지만 현실은 참담했다. 초기의 반짝 성공은 있었으나 결국 장기적으로 볼 때는 대개 실패했다. 그러자 기업들이 혁신 대신 손실 회피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급속한 외부환경 변화에 섣불리 대응했다가 실패할 수 있다. 이를 기회 삼아 성장할 수도 있지만, 성공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쉽게 이 행로를 선택할 수 없다. 손실을 회피하면서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기업들은 기술 혁신을 위해 투자하는 대신 비용을 줄이는 전략을 취하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 사회에는 모든 영역이 이러한 생존주의 기업 원리를 따라 운영되고 있다. 핵심 조직에서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핵심 자원을 유지하고 보호할 수 있는 성과주의 연봉제를 실시한다. 반면 주변 조직에서는 유연한 관리를 한다며 비정규직과 계약직을 늘린다. 소수의 핵심 노동력만 빼고 대다수 노동력이 불안정성에 빠진다. 합리화를 기치로 지속적으로 행해지는 구조조정은 자본에는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갖 비용을 외부로 떠넘김으로써 사회 전체를 비합리적 상태로 빠트린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주변 조직에서 일하는 한시 노동자로 전락했다. 자신의 자아를 아무리 기업가로 설정하고 자기계발해 보아야 성공할 수 없다. 주변 조직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은 영원히 반복될 뿐만 아니라 승리해 보아야 잠시 생존을 연장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핵심 조직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안정된 것이 아니다. 여럿이 하던 일을 혼자 하니 과로할 수밖에 없고 좋은 품질의 생산물이 나올 수 없다. 경쟁력이 더 떨어지니 또 인원을 줄이고 비정규직으로 채운다.

이러다가 온 나라가 기업가적 혁신은커녕 생존주의 습속에 젖어 살아갈까 두렵다. 생존주의는 기존에 있는 사람을 불태울 뿐만 아니라 새로 오는 사람의 진입을 막기 때문에 결국 한국 사회를 소멸로 이끌 것이다. 고용을 이윤 갉아먹는 단기 비용으로 저주하면서 인력 감축에만 몰두하는 게 무슨 기업가적 혁신인가? 이 나라에 진정 혁신이 활짝 꽃피길 바란다면 새로 오는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환대하는 수밖에 없다. 새로 오는 사람은 새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와서 새로 시작하는 사람이다. 고용에 대한 이런 문화적 관점을 가질 때에만 희망이 보일 것이다. 지금처럼 청년이 비정규직에 시달리다 죽어나가는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 얼마나 더 많은 젊은이들이 생존주의 나라에서 불타고 소멸되어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대검찰청이 청와대 특별감찰반에 근무하다 검찰로 복귀 조치된 김태우 수사관에 대해 중징계인 해임을 청구했다. 대검 감찰본부는 27일 감찰 결과를 발표하며, 청와대가 통보한 비위 사항 대부분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감찰 중 특혜성 취업을 시도하고, 민간업자들로부터 골프·향응 접대를 받았으며, 건설업자의 뇌물공여 혐의 수사에 개입하려 했다는 것이다. 감찰본부는 또 김 수사관이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의 금품수수 첩보 등을 언론사에 제공해 비밀엄수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감찰 결과대로라면 김 수사관의 처신은 공직자로서 부적절했고, 엄중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12월20일 (출처:경향신문DB)

김 수사관의 잇단 폭로 역시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럼에도 김 수사관이 제기했거나 연루된 의혹은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 현재 청와대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김 수사관을 고발한 사건은 수원지검에서, 자유한국당이 불법사찰 의혹과 관련해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조국 민정수석 등을 고발한 사건은 서울동부지검에서 각각 수사 중이다. 서울동부지검은 사건을 배당받은 지 이틀 만인 26일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실과 서울 창성동 정부청사 별관의 특감반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임의제출 형식으로 진행되기는 했으나 문재인 정부 들어 첫 청와대 압수수색 사례다. 검찰은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사건의 총체적 진실을 신속하고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 벌써부터 일부에선 수사주체가 두 곳으로 나뉜 점을 들어 ‘쪼개기 수사’라고 비판하는 터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원칙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수사하는 길밖에 없다.

6급 검찰 수사관의 근거도 불분명한 폭로가 청와대 압수수색으로까지 이어지는 등 사태가 확대된 데는 청와대의 책임이 작지 않다. 청와대는 이전 정권 출신인 김 수사관을 특감반에 기용했고, 문제행위가 지속되는데도 조기에 검찰에 복귀시키는 등의 대응을 하지 못했다. 사건이 공개적으로 불거진 뒤에는 미흡한 해명과 감정적 대응으로 화를 키웠다. 더 이상 이런 과오가 되풀이돼선 안된다. 청와대는 내부 기강을 다잡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책임질 일은 책임진다는 자세로 검찰 수사에도 적극 협조해야 옳다. 그럴 때만 소모적 논란을 조기에 종식하고 국정운영의 동력을 회복할 수 있다. 한국당 등 보수야당도 과도한 정치공세를 자제하기 바란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관세청이 27일 한진그룹 총수 일가를 관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과 두 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전 진에어 부사장이다. 이들은 명품 등을 들여오면서 대한항공 회사 물품인 것처럼 속여 세관에 신고하지 않는 수법 등을 동원했다. 밀수액은 고가의 소파와 탁자·욕조, 반지·팔찌에서 그릇과 과일까지 1193품목에 걸쳐 7억2000만원어치나 된다. 이들은 ‘국내에서 샀다’거나 ‘선물 받았다’면서 증빙자료도 전혀 제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한항공 직원 2명도 총수 일가의 밀수를 돕다가 공범으로 함께 고발당했다. 총수 일가가 대한항공을 ‘밀수 조직’으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수백억원대 상속세 탈루와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9월 20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항공은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이자 세계 굴지의 항공사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적항공사이기도 하다. 모범을 보여야 할 총수 일가가 밀수까지 했다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진그룹 일가의 일탈은 조현아 전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에서 출발해 조현민 전 진에어 부사장의 ‘물벼락 갑질’과 이 이사장의 ‘직원 폭행’을 거쳐 밀수까지 확대됐다.

이번에 총수 일가의 밀수 사실을 앞다퉈 제보한 이들은 전·현직 직원들이었다고 한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인데 직원들마저 총수 일가에 등을 돌렸다. 그동안 직원들을 온당하게 대하고 일을 적법하게 처리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총수 일가의 범죄 사실이 명백한 데다 안하무인식으로 회사를 경영한 후과다. 직원들은 그룹 총수 일가의 목불인견 행태에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 조사도 ‘조씨 자매가 인터넷쇼핑으로 산 명품이 해외지점에 배송되면 대한항공 1등석에 실었다가 직원이 세관신고 없이 국내로 반입했다’는 등의 구체적인 제보가 쏟아져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 밀수임을 입증할 증거들이 차고 넘치는데도 총수 일가가 발뺌하는 것을 보면 죄의식조차 없는 것 같다.

사법당국은 일벌백계로 다스려 유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총수 일가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또한 밀수가 장기간 이어진 데는 한진그룹과 세관 간의 커넥션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놓쳐선 안된다. 관세청은 유착 관계가 의심되는 세관직원에 대해 비위 사실이 확인돼 징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철저히 조사해 발본색원해야 할 것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작년 12월 경향신문의 같은 지면에 “김민섭씨를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이름이 같은 사람을 찾겠다고 나선 이유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생애 첫 해외여행을 기대하며 후쿠오카 왕복 항공권을 10만8300원에 구매했지만 아이의 병원 일정이 출국 하루 전으로 잡혀 가지 못하게 되었다. 여행사에서는 1만8000원을 환불해 주겠다고 했고 나는 그러느니 차라리 타인에게 양도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다. 1) 대한민국 남성일 것, 2) 그의 이름이 김민섭일 것, 3) 두 사람의 여권에 표기된 영어 이름의 철자가 모두 같을 것, 이었다. ‘섭’이라는 이름이 SEOP, SEOB, SUB, SUP 등 다양하게 쓰이는 것을 염두에 두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평범한 이름으로 태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페이스북의 개인 계정과 경향신문에 “김민섭씨를 찾습니다, 후쿠오카 왕복 항공권을 드립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에 이른다.

‘김민섭씨 찾기 프로젝트’로도 알려진 이 일도 어느덧 만 1년이 지났다. 그래서 그 후의 이야기를 간단히 기록해 경향신문의 독자들께도 알리고 싶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글을 올린 지 3일 만에 나와 정확히 10살 차이인 1993년생 김민섭씨가 나타났다. 사실 포기하고 있던 즈음이었다. 기다림 끝에 나타난 1993년생 김민섭씨는 자신이 휴학생 신분이며 졸업전시비용을 준비하기 위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어째서 1년에 1000만원 내외의 등록금을 내면서도 졸업을 하기 위한 비용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동시에 여행을 가기에 가장 적합한 김민섭씨가 나타났음을 알았다.

항공권 양도를 위한 절차를 밟는 동안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다행히 김민섭씨가 아니었다. 자신을 고등학교 교사라고 소개한 그는 다음과 같은 정중하고 다정한 제안을 해왔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는 형편이 어려워 항공권을 지원해 주어도 여행을 갈 수 없을 만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김민섭씨도 항공권 외의 다른 비용이 부담될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결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숙박비를 부담해 드리고 싶습니다.” 두 사람을 연결해 드리고, 나는 “김민섭씨를 찾았습니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축하의 댓글이 이어지는 가운데 예상하지 못했던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1) 저에게 12월31일까지 유효기간인 후쿠오카 그린패스권(일일 버스 승차권)이 있어요. 저는 어차피 올해 다시 갈 일이 없을 테니 등기로 보내드릴게요. 2) 저는 와이파이 렌털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김민섭씨가 꼭 우리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면 좋겠어요. 3) 얼마 전 후쿠오카타워에 다녀왔는데 참 좋았어요, 입장권이 한 장 남아 있는데 보내드리고 싶어요. 1만8000원을 돌려받느니 차라리 이름이 같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항공비에 더해 숙박비, 교통비, 통신비 등을 후원하겠다는 개인들이 나타난 것이다. 나중에는 카카오에서도 스토리펀딩을 통해 그의 여행을 후원하겠다고 했고, 결국 여행을 다녀오고도 한 청년이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 만큼의 비용이 모였다.

공항에서 만난 대학생 김민섭씨는,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얼굴을 계속 쳐다보았다고 말했다. 저 사람이 나를 도와주지 않았을까, 저 사람 덕분에 내가 여행을 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랬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저 사람들이 잘되면 좋겠다고, 그렇게 수백번의 생각을 하면서 공항까지 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그가 몹시 피곤해 보여 설레서 잠을 못 잔 모양이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는 친구들과 준비하는 공모전이 있는데 여행을 가기 전 자신의 몫을 하느라 거의 밤을 새웠다고 답했다. 그 순간 나는 왜 수백명의 사람들이 이 청년의 여행을 도왔는지를 알았다. 지금도 내가 아는 많은 20~30대들이 취업 준비와 각종 시험들 때문에, 불편한 마음 때문에 제대로 자지 못한다. 1993년생 김민섭씨를 도운 많은 이들은 그에게서 주변의 평범한 청년을, 자신의 자녀를, 무엇보다도 평범한 스스로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가 여행을 잘 다녀오는 것은 하나의 과제가 되었다.

김민섭씨는 나에게 “왜 작가님을 비롯해 수백명의 사람들이 저를 도와줬을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고, 모두가 생각했을 거예요”라고 답했다. 그것은 나의 진심이었고 그의 여행을 도운 모두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는 나에게 “잘 다녀올게요. 그리고 언젠가 2003년에 태어난 김민섭씨를 꼭 찾아서 제가 여행을 보내줄게요”라고 말하고는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2018년, 나의 한 해는 어느 한 청년 덕분에 무척 행복했다. 그는 얼마 전 학사 과정을 수료했고, 취업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제 곧 2019년이다. 나는 여전히 그가 잘되기를 바란다. 그의 잘됨은 우리 사회가 잘되고 있다는 증거처럼 나에게 다가올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잘되면 좋겠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일반 칼럼 > 직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어린 스승들에 관하여  (0) 2019.01.08
죽음의 분배  (0) 2019.01.03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0) 2018.12.27
‘메리와 해피와’  (0) 2018.12.26
비행청소년의 타자화  (0) 2018.12.20
일상의 터전  (0) 2018.12.18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도대체 허가를 해주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

-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요? 연구윤리에 위배되어서 안됩니다!

- 실험 자원자들이 스스로 각서를 쓴다니까요!

- 다 소용없어요. 사망 사고가 나도 피해자가 증언할 수 없잖아요. 각서와는 상관없이 형사사건으로 경찰이 개입할 겁니다. 연구소 차원에서는 감당할 수가 없다고요!

- …답답하네, 진짜. 그럼 어쩌라고요? 동물실험도 다 끝났어요. 안전성은 97%까지 확보했고, 사실상 절차 표준화 단계까지 왔단 말입니다. 지금 인체실험을 시작해야 예정대로 화성 선발대를 보낼 수 있어요.

- 그건 이미 관계부처 협의회에서 잠정적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화성 선발대는 인공동면을 하지 않는 걸로.

- 뭐라고요?

- 애초부터 이번 화성 유인탐사 계획에 인간의 인공동면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거 모르셨나요?

- 그럼 왜 동물실험은 아무 말 없이 지켜보기만 한 겁니까?

- 그야 당연히 선행되어야 할 연구니까요. 하지만 동물실험 단계가 끝났다고 해서 자동으로 인체실험으로 넘어가는 건 아니죠. 더구나 화성탐사 같은 주목받는 프로젝트는 더더욱 말썽의 빌미를 둘 수 없고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인공동면은 장거리 우주여행에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다. <2001 우주의 오디세이>나 <에일리언>, <인터스텔라> 등 숱하게 많은 SF에도 등장했기에 사람들은 당연히 개발될 것으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복제인간이나 유전자 맞춤아기 등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 때문에 과학연구의 윤리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사안이었다. 인공동면에 들었다가 영영 깨어나지 못할 경우를 당연히 예상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걸 알면서도 연구를 진행하는 건 곤란했다. 인공동면 기술이 완전히 검증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나올지도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최대한 인간과 비슷한 조건을 가진 포유류 동물들로 선행 실험을 해서 위험 요소를 최소화한다 해도 그것이 인체실험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건 아니었다.

- 인공동면 실험 자원자들이 빨리 연구를 진행하라고 1인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 그 사람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화성 이민에 목숨 걸었나?

- 그게… 우주여행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실업자들에게 인공동면에 들어갈 권리를 달라는군요.

- 뭐라고?

- 일자리가 없으면 먹고살기도 힘드니, 차라리 경기가 좋아질 때까지 인공동면을 하겠다고 합니다.

세계 최초의 시험관아기는 1978년에 영국에서 탄생했다. 만약 이 시술이 지금 시대에 연구되었다면 윤리 문제로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시험관아기 시술은 착상에 실패할 것에 대비해서 여러 개의 배아를 만드는데, 이때 남은 배아들은 냉동되거나 폐기처분된다. 그런데 이 폐기 과정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살인으로 간주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존중해야 하는 시점을 언제부터로 보아야 하는가에 따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종교에서는 이런 이유로 지금도 시험관아기 시술을 권장하지 않고 있으며, 1978년 당시에도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가 세계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났었다. 심지어 ‘시험관아기는 영혼이 없다’고 하거나 가족에게 저주의 편지를 보낸 사람들까지 있었다. 물론 이런 반응은 지나친 것이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과학연구에서 인간실험의 윤리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이슈이다.

그렇다면 전망은 어떨까? 시험관아기 시술의 경우, 그 덕분에 전 세계의 숱한 난임부부들이 2세를 얻는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 즉 인간은 새로운 과학기술을 통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크다고 판단하면 기꺼이 수용하는 윤리적 상상력을 발휘해 왔던 것이다. 그러면 결국은 이와 비슷한 추세로 갈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인공동면이나 유전자 맞춤아기, 복제인간 등이 언제까지 금기의 영역에 남아있을지는 알 수 없다. 영원히 봉인이 풀리지 않을 수도 있고, 빠르면 금세기 중반에 실현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중국에서는 얼마 전에 한 과학자가 유전자 편집 아기를 태어나게 해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미 몇 년 전에 전 세계의 관련 학자들이 윤리적 문제로 시도하지 말자고 합의했던 것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라 중국 정부에서조차 강하게 비판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두 번 세 번 거듭되면 상황은 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새로운 과학기술은 우리가 미처 짐작하지 못한 또 다른 사회적, 정치적 맥락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위 시나리오의 마지막처럼.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한 젊은 노동자가 짧은 생을 마감했다. 지난 11일 자정 무렵 사망한 서부발전 사내하청 노동자 김용균씨다. 어둡고 비좁은 컨베이어벨트 아래서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나는 김용균씨에게 사과하고 싶다. 발전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노사전문가협의회에 내가 전문가 위원으로 1년간 참여해 왔기 때문이다. 정규직 전환 논의가 빨리 마무리됐더라면, 그래서 작업환경이 개선됐더라면, 어쩌면 김용균씨는 생을 달리하는 대신 연말에 가족과 함께 소박하지만 희망적인 미래를 그리고 있을지 모른다.

발전5사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의가 가장 더딘 사업장이다. 연료운전 분야는 1년 동안 논의하고 있지만 결론을 못 내리고 있고 경상정비 분야는 정규직화 논의를 시작도 못했다. 특히, 김용균씨의 업무였던 연료운전 분야는 원청인 발전소가 생산설비를 소유하고 하청회사가 인력을 제공하는 전형적인 노무도급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당연히 정규직 전환 대상이지만 발전소 원청회사들은 최근까지도 연료운전 업무가 ‘고도의 전문적인 업무’라서 정규직 전환의 예외사유에 해당한다며 정규직 전환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고도의 전문적인 업무를 노무도급 형태로 운영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또 정부의 가이드라인에도 단순히 전문적인 업무라는 이유로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해서는 안되며 민간회사가 고가의 시설·장비를 보유하고 있어 공공기관이 자체적으로 일을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만 정규직 전환 예외라고 명시해 두고 있다. 따라서 회사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민주노총, 한국진보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고 김용균 사회적타살 책임자 처벌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발전회사가 하청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주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공공부문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에는 정부가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공공기관 민간위탁을 장려해 온 경우 정규직 예외사유로 정해 놓았는데, 발전회사들은 이를 근거로 발전소 사내하청 민간회사들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정부는 에너지 산업의 민영화 정책을 꾸준히 확대했다. 발전도 예외는 아니어서 크고 작은 30여개의 민간회사가 발전소의 운전과 정비를 도맡아 하고 있으며 그 인원은 5302명이다. 이는 발전5사가 직접 고용한 인원의 44%에 해당한다. 따라서 발전회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논의가 속도를 내려면 발전산업의 민간 개방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정책 결정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발전소의 운전과 정비 업무가 민간에 위탁되어 있으나 이들 업무가 국민의 생명·안전업무와 관련되어 있기에 파업권이 제약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연료운전의 경우 필수유지율이 100%로 파업이 불가능하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동자의 기본권을 제한한 업무를 과연 민간에 위탁하는 것이 타당한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철도, 도로, 발전 등 중요한 국가기간산업에서 간접고용의 남용이 어떤 사회적 이익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비용절감도 좋지만 각종 사고로 인해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진다면, 그리고 누군가 가족을 잃어야 한다면 경제적 이득보다 사회적 손실이 크다.

김용균씨의 죽음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애도하며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안전사고에 대한 원청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정부와 여당의 약속대로 정규직화 논의를 재개해 조속한 시일 내에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실현하는 것도 소홀히 다뤄서는 안된다. 늦었지만, 정부와 발전5사는 정규직이 되길 바라고 열심히 일했던 고 김용균씨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길 바란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얼마 전 ‘강용주 보안관찰 면제’(경향신문 12월17일자) 기사를 보면 ‘법무부는 강씨의 주거와 직업이 일정하고 재범의 위험성이 없는 점을 고려해 공식 심사를 거쳐 보안관찰처분을 해제했다’고 쓰여 있다. 강용주는 1999년, 14년간의 감옥생활에서 풀려나자, 보안관찰 대상자가 되어 3개월마다 소관 경찰소장에게 어디 가서, 누구를 만나고, 뭘 했는가 등 소상한 동정을 ‘신고’할 의무를 지게 되었다. 그러나 강용주는 동법이 이중처벌이자 재판받을 권리에 대한 유린이며 기본권에 대한 침해라며, 신고를 거부해 벌금을 부과받아왔다. 2016년에 신고의무를 위반했다고 재판에 넘겨졌으나, 법원은 올해 2월 ‘직업도 거소도 분명하고, 재범의 우려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보안관찰처분은 2년마다 무제한 갱신할 수 있어 무죄판결이 나와도 소송하는 동안에 2년이 지나버리면 검찰이 다시 갱신할 수 있다. 그러니 마치 바위를 밀어 올려도 정상 직전에 반복적으로 굴러 떨어져버리는 시시포스의 신화 같은 ‘영원한 형벌’인 것이다.

광주에서 태어나서 전남대 의대를 졸업한 강용주는 개업의로서 생업에 지장이 없고, 광주 트라우마센터 초대 소장, 인권단체 ‘진실의 힘’ 이사, 국가인권위원회 홍보대사 등을 지낸 사회적 명사다. 처분을 갱신하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악마적이라는 비판이 커지면서 법무부는 이번에 강용주에 대한 보안관찰처분 면제를 결정했다. 너무나 당연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광주·전남에서는 150여 시민단체들과 정당들이 ‘5·18 고교시민군 강용주의 보안관찰 면제’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내는 법석을 떨고, 각 신문은 이 사실을 특별한 일처럼 일제히 보도하니, 나는 의아하기까지 했다. 처분 해제보다, 구시대의 반인권적인 보안관찰법이 버젓이 살아서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는 것이 뉴스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보안관찰법은 국가보안법이나 간첩죄, 내란죄 등을 위반한 이른바 ‘정치범’에 대하여 ‘재범의 위험성을 예방하고 사회복귀를 촉진하기 위하여 보안관찰처분을 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사회의 안녕을 유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동법 제1조)고 표방한다. 근대 형벌은 인간의 사상이 아니라 행위에 대해서 과해지는 것이므로, 재범의 우려가 있다고, ‘사회방어’라는 미명 아래 죄 없는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악법이다.

보안관찰법은 일제의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1936)에 그 기원을 두고, 유신시대에 일제가 발명한 사상전향제도를 본받아, 사상전향을 하지 않는 정치범들을 만기가 되어도 계속 구금하는 사회안전법(1975)에 계승되었다. 사상전향이란 혁명이나 개혁 등을 지향하는 정치행위가 사상이 불령하고 잘못했기 때문에 생기며, 그 사상을 포기하게 하면 사상범죄는 없어진다는 일본 검사의 엉뚱한 생각에서 1935년에 만들어졌다. 인간의 머리가 잘못돼서가 아니라, 사회의 현실이 잘못돼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개혁의 목소리가 일어나는 것인데, 일제 검사가 생각해낸 것이 나치 독일에도 없던 사상전향제도였다. 일제가 패망하자 미점령군사령부가 일본 군국주의의 가장 잘못된 제도로 치안유지법과 함께 무엇보다도 먼저 폐지한 법과 제도를 소중하게 계승한,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정부가 박정희의 유신독재정권이었다.

박정희가 암살되고, 유신체제가 붕괴한 다음, 사회안전법의 ‘보안감호’와 ‘주거제한’을 빼고, 관찰처분을 남긴 것이 보안관찰법이다. 그러나 관찰처분 자체는 재판도 거치지 않고, 피처분자들의 기본적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2월 법원의 무죄선고와 이번의 처분 해제는 보안관찰법 자체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국제사회도 여러 차례 이 악법을 없애라고 촉구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보안관찰법의 폐지·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이번 해제에 대해서 강용주는 ‘민주화된 이 세상에 아직 보안관찰법이 있다’고 알리는 구실은 했다고 하지만, 강용주가 살아온 용감하고 험난한 길에 비추어 볼 때 공권력으로부터 ‘위험성 없는 보통 인간’으로 인증받은 것에 만족한다면 너무 왜소해 보인다.

내가 강용주를 처음 만난 것은 1986년 악명 높은 대전교도소에서였다. 5년간 엄격한 정치범 수용사동에서 여린 감수성과 명석한 두뇌, 투철한 투쟁정신을 가진 그와 고락을 함께했다. 출소 이후에도 내가 가장 아끼고 존경하는 후배로 관계를 맺어왔다. 그는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 공범 속에서도 구미에 가보지도 못한 하바리인데도 홀로 사상전향을 거부하고 가장 긴 징역을 살았으며, 한국 학생으로 예가 없는 비전향 장기수로 14년의 옥살이를 견디면서 권력의 온갖 탄압과 회유에 항거하여 사상전향과 준법서약, 반성문을 끝끝내 거부하여 싸웠다. 옥중에서 단식은 물론 헌법소원, 유엔 인권위원회에 대한 개인통보 등 갖은 수단으로 사상전향제도를 고발하고 폐지로 몰아넣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투쟁은 한국의 정치범 감옥 투쟁사뿐만 아니라 일본을 포함한 세계 옥중투쟁사에서 빛나는 위업을 이루어낸 것으로서 서준식 등 소수를 제외하면 예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처분면제조치의 취지는 잘못됐으며, 왜소해 보인다. 아마도 그도 내심 특혜적인 권력의 예외조치를 씁쓸하게 받아들이면서 해제 결정 후, 갈릴레오처럼 되돌아서서 “그래도 국가보안법이나 보안관찰법 같은 반인권적이고 반통일적인 법 자체가 문제다!”라고 뇌까렸을 것이다. 그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총을 들고 전남도청 앞 전투에 참여하고 옥중 14년과 보안관찰 19년의 힘겨운 세월을 보내는 동안 그의 바람은 평범하고 즐겁게 인생을 사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렇지 못하게 한 세상에 대한 분노가 그만큼 컸을 것이다. 그동안 그가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면 보안관찰법의 묵시적인 용인이라는 전선이탈을 탓할 수 없다. 그를 외로운 처지에 몰아넣은 것은 우리 모두의 탓일 것이다. 국가보안법과 보안관찰법이 버젓이 위세를 떨치는 사회에 대해서 ‘촛불혁명’이 도대체 무엇을 했으며 사람들의 의식을 얼마나 바꾸었을까 깊이 자성할 때가 아닌가.

<서승 우석대 석좌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라틴어 ‘라보라레(Laborare)’에는 ‘일하다’라는 뜻과 함께 ‘고생하다’라는 뜻도 포함된다. 수도승 ‘프란체스코 드 살’은 말하기를 “각자의 구두에 작은 돌멩이들을 집어넣은 뒤 그걸 신고 길을 나선 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라고 했다. 다들 발바닥이 얼마나 아플까. 어느 라디오 방송에선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인사말로 방송문을 연다. 찡하니 마음에 위로가 되는 멘트다. 고생 끝에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들. 세밑 창가에 앉아 집으로 돌아가는 불빛들을 바라본다.

장 자크 상페의 <사치와 평온과 쾌락>에 실린 글귀를 저 꽁무니마다 달아주고 싶어라. “내 포부는 사치와 평온과 쾌락이라오. 이렇게 겨울비가 내리는 날엔 정든 낡은 스웨터를 걸치고 지내면 좋지. 오래전부터 즐겨했던 음반들도 좋아. (중략) 언제나 똑같은 꿈을 꿔. 펠레가 상대 수비수들을 따돌리고 플라티니에게 공을 패스하지. 기차게 좋은 상황에서 내게 골을 넣으라고 다시 패스를 해. 나는 냅다 슛을 날려요. 그런데 비웃으면서 한 손으로 공을 막는 골키퍼는, 바로 내 마누라예요.” 가족들이나 가까운 친구가 믿어주고 지지해주고 위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고생하고 와서도 정작 쉴 데가 없다.

하늘에 구름 떠가는데, 구름 속에 세계 최장기 고공 농성장. 파인텍 노동자들이 누리고픈 아주 소박한 사치와 평온과 쾌락이 있다면 어서 지상에 내려와 흙을 밟는 일. 대지의 사람들과 국밥 한 그릇 나누는 일. 매번 국회의원들이 공을 가로막는 골키퍼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 시절 고생한 모든 이들에게 평화가 찾아오는 그믐밤. 세상에 ‘고생 끝 낙’이 한 번이라도 있었으면 바라며 축복을 빌어본다. 축복이란 밥상에 초대하는 것. 노동하는 이들에게, 배고픈 이들에게, 정에 굶주린 아이들에게, 외로운 친구에게 같이 밥 먹자는 약속의 말. 인류의 성인들이 날마다 했던 똑같은 말. 같이 밥 먹자는 말. 수고하고 고생한 노동자들은 밥 먹을 자격이 충분해. 종교인이나 정치인들도 밥 먹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과 좀 식사자리를 같이하길. 침을 뱉고 멸시하며 무시하는 세계에서는 모두가 굶주리고 아플 따름이다. 서로들 세심하게 존중하고 귀담아들어야 한다. 수고한 손들을 매만지는 밤이 되길.

<임의진 목사·시인>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십대  (0) 2019.01.10
근사한 유리창  (0) 2019.01.03
수고한 이들에게  (0) 2018.12.27
북극여우와 여관  (0) 2018.12.20
‘보해미안’ 랩소디  (0) 2018.12.13
겨울 염소  (0) 2018.12.06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