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한강의 강줄기는 모두 뱃길이었다. 1960년대 말까지 강원도에서 벤 나무들은 남한강과 북한강의 물길을 따라 한강에 모여 서울까지 내려왔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베어낸 단단한 나무는 강 얼음이 풀린 봄에 뗏목에 실려 옮겨졌다. 이 뗏목을 타는 이를 뗏사공이라고 했다. 아마도 뗏사공들은 목숨을 걸고 아우라지의 험한 물길을 헤쳐나와 충주의 여울을 지나 양평에 이르러서야 한숨 돌렸을 것이다.

양평의 강물은 짙은 초록빛이었다. 그 강가 언저리에 초등학교가 있다. 전교생이 90여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의 도서관은 꽤 컸다. 깔끔하게 정리된 도서관 한쪽 바닥에는 두툼한 놀이방 매트가 깔려 있었다. 한 아이가 그 매트에 배를 깔고 누워 있었다. 아이는 그림책을 여러 권 쌓아놓고 발장난을 치면서 책을 보다가 수업이 시작되었다는 사서 선생님 말씀에 느릿느릿 일어났다.

“아이들이 도서관에 와서 잘 놀아요. 우리 학교는 쉬는 시간이 40분이거든요. 쉬는 시간이 길어서 뛰어놀다가도 여기 와서 책을 보곤 해요.”

사서 선생님은 책을 펼쳐놓고 가는 아이한테 책을 꽂아라 마라 하지 않았다. 아마도 아이가 쉬는 시간에 또 와서 책을 볼 수 있도록 놓아두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선생님들의 얼굴을 닮는다. 선생님들의 표정이 환하면 아이들도 밝다. 강가에 있는 학교 아이들은 연신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하는 이와 눈을 맞춰줬다. 그들 뒤에는 그런 아이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선생님들이 계셨다.

강가 작은 학교에서 책 이야기를 마치고 오는 길에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뗏사공이 있던 시절을 생각했다. 그 시절 높은 산에서 벤 나무를 옮길 때 나무에 군두쇠라는 고리를 박아 줄을 매어서 옮기기도 했는데, 그러면 나무가 깨지기 쉬웠다고 한다. 그러니 나무를 옮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골짜기에 고랑을 파서 나무가 떠내려가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아이를 교육하는 것도 나무를 옮기는 것과 같은 게 아닐까. 어른들이 할 일은 군두쇠를 박는 게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헤쳐나갈 길을 내어주는 것이리라.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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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평화와 국민을 위하여 혼신을 다하시는 대통령께 깊은 존경을 전합니다. 새로운 한 해를 목전에 두고 현장의 한 사람으로서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다시 글을 씁니다. 시간이 되시면 우리들의 교실로 와주십시오. 조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어린이, 청소년들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그들의 절망과 비탄, 자조와 자해로 인해 조절하기 힘든 감정 상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교실에 오신다면, 한 시간째 울음을 멈추지 않는 초등학생을 만날 수 있고, 한 번 폭발하면 ‘마블 어벤져스’도 말릴 수 없을 정도로 교실과 학교를 초토화하는 괴력의 아이들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또 일명 ‘바코드’라 부르는 손목 긋기 자해를 시작한 초등 고학년 여학생도 만나실 수 있는데, 그 아이들의 조숙함에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겁니다. 초등 4학년이지만 나름의 소신으로 수학 공부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수포자 학생도 만나실 수 있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힘들어하는 한 명의 교사를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만일 중학교에 가신다면, 입을 열면 욕부터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한때 북한군들도 두려워했다는, 예측불허의 히어로즈 중학생들을 만나실 수 있고, 좌충우돌하며 게임에 절고, 야동, 야툰, 야설의 주구독자이면서, 스마트폰을 놓을 줄 모르는 아이들도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유행처럼 번지는 자해의 문화가 관통하는 세대가 바로 이 중학생 세대입니다. 보도된 자해 학생만 대한민국에 7만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이 중 상당수가 중학생이며, 고어물과 같은 잔혹하고 끔찍한 자해 및 사혈사진과 동영상을 올리면서 피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극심한 자기혐오의 첫 세대들입니다. 이 황야의 무법자 같은 아이들이 교실 도처에 삐딱하게 앉아 있고 그곳 어딘가에 역부족을 안타까워하는 한 분의 교사가 서 있습니다. 모든 고등학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고등학교는 폐허, 늪 같은 분위기입니다. 무기력감 속에 깊이 빨려들어가 있는 아이들을 곳곳에서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고1 교실보다 고3 교실에 가면 학교에서 자고 가는 아이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도 한 어른을 만나실 수 있는데, 그분은 독백전문 배우 혹은 혼잣말 토크쇼를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우울의 강 아래로 가라앉고 있는 분일 수도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아이들이 불안에 흔들리고, 어른이 될 수도 없지만 되기도 두렵다는 마음을 털어놓기 일쑤입니다.

만나보면 아시겠지만 미래의 희망인 아동, 청소년들의 감정은 현재 조절 곤란 상태이거나 폭발 전후이거나 혹은 무기력, 해리 상태입니다. 정신과 의사 단 시겔이 미국 청소년들의 정서조절 곤란 상태를 걱정한 것보다 우리 아이들이 더 심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시민운동가 파커 파머가 미국의 많은 청소년들이 뇌사 상태처럼 지낸다고 비평한 것보다 우리 아이들이 더 마비된 상태로 느껴집니다. 2018년 여름 이후 여학생들의 자해와 남학생들의 분노폭발은 일상에 가까운 현실처럼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마른 광야에 들불이 번지듯이 퍼지고 있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정서 불안정의 시대, 감정조절 곤란의 문제가 가장 크게 대두되는 해체사회로 깊숙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시급한 것은 국가가 이 사태에 응답해주는 것입니다. 사춘기가 지나기도 전에 자해하거나 폭발해서 인생을 끝장내는 극도의 감정조절 곤란 상태가 중단되도록 해야 합니다. 작금의 자기혐오에 기반한 자해와 피해의식에 따른 분노폭발의 전염을 차단하고, 중화하고 치유할 대책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다잡고 챙기면서, 심사숙고와 배려 속에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선언을 해야 합니다. 학교마다, 마을마다 폭발하고 자해하는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조치를 실사구시하여 실행하고 무엇보다 응답하고 공감해주는 정부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력한 청년들의 하류화된 사회, 어른은 없는 노인들의 무기력 사회로 또 한 계단 내려가는 삶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그럼 답장을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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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항을 거듭하던 ‘광주형 일자리’ 협상이 사실상 타결됐다. 광주시는 4일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자동차 완성 공장을 광주에 설립하기로 현대자동차와 사실상 합의를 마쳤다”고 밝혔다. 광주시와 현대차는 5일 협상 전권을 포괄적으로 위임한 투자유치추진단의 추인 절차가 마무리될 경우 협상 조인식을 할 예정이다. 이번 타결은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 제시된 지 4년6개월 만이고, 현대차가 투자의향서를 제출한 지 6개월 만이다. 조인식이라는 마지막 절차를 남겨두고 있지만, 협상 타결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광주형 일자리 프로젝트는 기업이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를 고용하는 대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주거·문화·복지·보육시설 등의 지원을 통해 저임금을 보전해 준다는 게 골자다. 이러한 취지에 공감한 현대차는 광주시와 공동투자로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자동차(SUV)를 연간 10만대 생산하는 민관합작 공장을 설립하기로 하고 협상을 벌여왔다. 이 사업은 직간접 일자리가 최대 1만2000개나 생겨난다는 효과가 있어 정부와 여당의 지지를 받으며 지역경제 활성화 모델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협상은 쉽지 않았다. 쟁점은 임금과 공장의 지속 가능성이었다. 당초 이 공장의 평균 연봉은 국내 완성차 공장 노동자의 절반 수준이 제시됐다. 그러나 연봉 기준을 초임으로 할 것인지, 평균임금으로 할 것인지를 놓고 견해가 갈리고 주간 근로시간을 놓고도 40시간과 44시간으로 충돌하면서 난항을 겪었다. 또 현대차는 1000㏄ 미만 SUV를 위탁 생산한다는 계획을 제시했으나 광주시는 공장이 지속성 담보를 위해 연간 7만대 이상의 생산·판매 보장과 차종 변경 허용 등을 요구하며 갈등을 빚었다. 막판 협상과정에서 현대차가 요구했던 초임 연봉 3500만원, 노동시간 주 44시간으로 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기존 현대차 임금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양극화된 노동시장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광주시와 현대차가 국회 예산안 처리 시한(7일) 전에 협상을 타결지음으로써 정부의 예산 지원도 순조로울 것으로 보인다.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고용 창출을 통한 경제 활성화라는 새로운 일자리 모델이 될 것이다. 그러나 풀어야 할 과제가 없지 않다. 타결 소식이 전해지면서 현대차 노조는 파업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간 민주노총과 현대차 노조는 기존 일자리 감소, 이미 포화상태인 자동차시장 악화 등을 이유로 반대해왔다. ‘광주형 일자리’가 노사상생형 일자리를 지향하고 있는 만큼 현대차는 노조와 협상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노동계도 파업 대신에 자동차산업을 살리는 일자리 실험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전향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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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들에 대한 징계 결정이 또다시 미뤄졌다.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지난 3일 징계가 청구된 고법 부장판사 4명, 지법 부장판사 7명, 평판사 2명 등 13명에 대해 3차 심의를 진행했으나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법관징계위는 이달 중순 4차 심의기일을 열어 올해 안에 징계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한다. 헌법과 법률로 신분을 보장받는 법관에 대한 징계절차가 신중해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이 징계를 청구한 시점이 지난 6월인 점을 감안하면 늦어도 너무 늦었다. 징계심의를 3차례나 진행하는 것도 드문 일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12월4일 (출처:경향신문DB)

법관징계위의 행태는 신중을 기하는 차원을 넘어 ‘고의 지연’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국회에서 추진 중인 법관 탄핵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법관징계법상 징계 결과는 관보에 게재해야 한다. 비공식 루트를 통해 알려져온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의 명단이 공식적으로 공개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회가 추진하는 탄핵소추 대상 법관들의 윤곽도 드러난다. 징계가 확정되면 법관 탄핵 논의에 속도가 붙을까 두려워 징계절차를 미루고 있는 것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물론 징계의 실효성을 의문시하는 시각도 있다. 법관에 대한 징계 조치는 정직·감봉·견책뿐이고, 정직에 처한다 해도 기한은 최대 1년에 불과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또 징계 시효가 3년으로 정해져 있어 2015년 6월 이전 의혹에 대해선 책임을 묻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징계는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사법농단은 전직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되고 전직 대법관 2인이 구속 위기에 놓일 만큼 중대한 위헌·위법행위다. 그럼에도 이들의 손발 노릇을 한 법관들은 6개월째 아무런 불이익도 받지 않고 있다. 그사이 주권자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 사법적·사회적 정의에 반하는 일이다.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 절차는 진행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탄핵만 기다리며, 위헌·위법행위를 저지른 법관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법원은 신속하게 절차를 진행해 엄정한 징계조치를 취해야 한다. 경징계로 어물쩍 넘어가거나 탄핵 대비용 ‘면죄부’를 줄 생각은 아예 접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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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포용적 복지국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복지정책을 확충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경제성장의 후유증으로 생긴 불평등의 심화와 그 결과에 주목하였다. 포용적 복지국가는 불평등을 완화하고, 경제성장의 혜택에서 뒤처진 이들이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복지정책을 포함한 사회경제정책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현 정부에서 추진하는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의 노동시장정책도 포용적 복지국가를 구현하는 대표 정책이다. 최저임금을 인상하여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을 증진할 수 있어서다. 아울러 정규직과 같은 일을 했지만 차별과 설움을 겪었던 비정규직 근로자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이들의 복리를 증진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로드맵을 설정하여 수많은 국정과제를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기초연금이 인상되고, 아동수당이 도입되고, 국공립유치원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는 정말로 더 포용적인 복지국가가 될까? 또한 국민들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

포용적 사회의 중요한 기반은 포용적인 사람들이다. 신뢰에 기반하여 진솔한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들이다. 서로를 배려하고, 공감하고 격려하는 사람들이다. 포용적 사회와 탐욕적이고 배타적인 인간형은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가족의 경계를 넘어선 다른 사람들 그리고 정부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 정부는 복지제도를 확충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포용적 복지국가의 기반인 사람들의 변화를 유도하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지는 않은가?

정부가 아무리 복지제도를 확대한다고 해도 경제, 교육시스템의 극한경쟁과 서열화가 변하지 않으면 포용적 복지국가는 제대로 실현되기 어렵다. 이는 정부가 산업, 노동 등의 핵심적인 경제사회정책, 교육정책과 복지정책 간의 보완성을 깊이 고민해야 함을 의미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빠르게 제품화되고, 이를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격려해주는 포용적인 산업생태계는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산업정책은 기업의 창의적인 활동이 기업의 경계를 넘어서 활발하게 번성할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포용적 심성을 가진 인재를 길러낼 것인가? 교육정책은 우리 시대의 바람직한 인재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대학입시에서 수시와 정시 비율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현 정부가 향후 3년 동안 추진할 국정과제는 매우 분명하다. 그러나 각종 국정과제가 부처별로 쪼개져 있어서 부처 간의 조율이 시급하다. 그리고 이러한 국정과제의 달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3년 후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더 행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포용적 복지국가의 성패는 결국 국민들의 행복 증진 여부에 달려 있다. 정부가 더욱 관심을 갖고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최유석 | 한림대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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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마존 인공지능 채용 시스템이 이력서에 ‘여성’이라는 단어가 포함되면 감점을 해서 논란이 일었다. 원인은 인공지능이 학습한 데이터에 있었다. 아마존에서는 지난 10년간 회사에 제출된 이력서 데이터를 학습시켜 인공지능 시스템을 구현하였다고 한다. 남성 직원 비율이 60%인 아마존의 현실이 영향을 주어 여성에게 불리한 의사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왜 이런 서비스가 제대로 검토되지 않고 사용된 것일까? 전문가들은 인공지능 의사결정을 블랙박스에 비유한다. 의사결정 과정이 감춰져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공지능이 채용 등 고도화된 업무영역까지 맡게 되면서 의사결정의 투명성에 대한 요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5월 발효된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을 통해 알고리즘에 의한 자동화된 처리를 받지 않을 권리, 설명을 요구할 권리를 명기하고, 이를 위반하는 기업에 매출액의 4% 등에 상응하는 과징금을 부과하겠다고 나섰다.

인공지능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기술은 없을까? 다행히 지난해부터 미국 국방성 산하 국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는 인공지능 의사결정 과정을 설명해주는 XAI(Explainable AI·설명 가능 인공지능) 기술을 연구해오고 있다고 한다.

많은 기업들이 인공지능 기술을 제품이나 서비스 혁신에 앞다퉈 적용하고 있지만, 편향된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개발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제품에 적용하기 전에 충분하고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며, XAI와 같은 보완 기술에 대한 연구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이종범 | 카이스트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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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기 사용이 많아지면서 화재 위험 요인이 증가하는 겨울철은 다른 계절에 비해 화재 발생 건수가 상대적으로 많다. 특히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 점유율이 매우 높다.

그러나 안전을 위한 범정부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행정안전부가 조사한 올해 상반기 국민안전체감도는 2.65점으로 지난해 하반기 2.85점에 비해 소폭 감소했다. 화재로 인한 주민불안이 감소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따라 전국 소방서에서는 지난 11월부터 내년 2월을 겨울철 소방안전종합대책 추진기간으로 설정하고 대형사고 및 인명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고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주민의 자발적인 협조 없이 소방관·서의 노력만으로는 안전한 겨울나기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5년 동안 전남지역에서 발생한 화재 원인에 대한 통계를 보면, 부주의로 인한 화재 점유율이 60.9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따라서 안전 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소화기, 단독형 감지기 등 주택용 소방시설과 차량용 소화기를 비치하고, 다중이용업소 등의 주방에는 주방용 소화기(K급)를 비치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평소에 사용법을 숙지해둬야 한다. 또한 겨울철 사용 빈도가 높은 전기히터·장판, 전기열선, 화목보일러 등 ‘화재 위험 3대 겨울용품’을 사용할 때 주변에 가연물을 두지 않고 수시로 점검하는 등 안전관리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아울러 재래시장, 상가, 공동주택 등 다중이 운집하는 장소나 상습 교통정체 구간에서는 소방차 길 터주기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겨울철 화재 안전을 위해서는 민관 모두 일심동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용호 | 여수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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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천안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려면 남천안 IC를 타야 한다. 그때마다 천안야구장이 눈에 들어온다. 애써 안 보려고 해봤자 소용이 없다. 부지는 넓은데 이용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보니 금방 눈에 띈다. 비라도 내리면 운동장 곳곳에 작은 웅덩이가 생긴다. 처음 천안야구장을 봤을 땐 건물을 지으려고 땅을 다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완공된 야구장이라고 해서 기절할 뻔했다. 천안지역에도 야구동우회가 170여개나 되다 보니 운동장이 모자란 편인데도, 천안야구장을 이용하는 팀이 거의 없다시피한 이유다. 이 야구장을 짓는 데 든 비용은, 놀라지 마시라, 무려 780억원이다. 이 정도면 프로야구팀 경기장을 지을 수도 있는 돈. 아니 잔디는커녕 누런 흙에 줄만 그어 놓은 야구장에 무슨 돈이 그렇게 들었을까? 알고 보니 공사비는 얼마 안 되고 대부분의 돈이 토지보상비로 쓰였다고 했다. 더 어이없는 일은 공사를 시작하기 전 원래 야산이었던 그 땅이 갑자기 주거지역으로 용도변경이 되면서 땅값이 치솟았으며, 덕분에 별반 돈이 안 되는 땅을 갖고 있던 땅주인이 일약 부동산재벌이 됐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무슨 일을 이렇게 하냐 싶겠지만, 그 땅주인이 성무용 전 천안시장의 지인이고, 성 전 시장이 줄기차게 야구장 건립을 밀어붙였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 모든 게 다 이해될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런 사람을 처벌하라고 있는 게 법이니만큼, 검찰수사가 시작됐을 때 사람들은 성 전 시장이 최소 구속될 줄 알았다. 여기에 대해 성 전 시장은 이렇게 항변했다. “천안시민을 위해 한 일이다.” 그 땅주인도 천안시민이니 틀린 말은 아닌데, 이 말이 판사마저 설복시켜 무죄 판결을 이끌어 낼 줄은 미처 몰랐다. 판사의 말을 좀 들어보자. “피고인이 야구장 건립으로 인해 경제적 이익을 얻은 바는 없고 부지 선정과 이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또는 그 대가로 토지주 등으로부터 부정한 이득을 취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 그러니까 땅주인에게 돈을 몰아줬을 뿐 성 전 시장 자신은 아무런 이득을 취하지 않았으니 죄가 없다는 얘기다. 이것 역시 틀린 말은 아닌데, 성 전 시장과 판사가 맞는 말 대잔치를 벌이는 사이, 천안 발전을 위해 쓰여야 할 국고 780억원은 끝내 사라지고 말았다. 예산 1조원을 겨우 넘는 천안시의 재정을 감안하면 그 돈이 너무도 아깝다.

이게 이미 지나간 일이라 되돌릴 수 없다면, 다른 돈이라도 좀 아낄 필요가 있다. 지난 11월, 한 언론은 문 대통령의 팬카페인 ‘문팬’의 카페지기 박모씨가 올해 2월 코레일유통 비상임이사가 됐다고 보도했다. 원래 코레일유통이 비상임이사를 모집하면서 내건 자격조건은 ‘유통분야 전문가’였지만, 박모씨의 경력은 입시학원 상담실장이 고작이었다. 그런가 하면 문 대통령이 대표 변호사를 지낸 법무법인의 사무장이던 송모씨는 한국관광공사의 자회사인 GKL의 상임이사가 됐다. GKL은 관광사업 활성화를 위해 만들어진 회사, 하지만 송모씨에겐 관광산업 종사 이력이 전혀 없었다. 두 건 모두 낙하산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듯했지만,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정치에 있어 논공행상은 어느 정도 인정해야죠. 생업 포기하고 후보 당선을 위해 뛰었는데 백수로 살라는 건 너무하잖아요?” “모든 나라에서 정권이 바뀌면 주요 인사가 물갈이되는 건 다 마찬가지입니다.” “사외이사는 원래 전문성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꼭 경험이 있어야 하나? 도덕성도 중요한 경력이다.” “사람 경영하는데 보은인사가 절대 빠질 수 없죠.” “이명박, 박근혜 때는 낙하산 없었어요? 뭐가 문제인지?”

도덕성을 가장 중시한다는 문 대통령 지지자들마저 이런 얘기를 하는 걸 보면, 낙하산이라는 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이게 현실이라면, 정권을 빼앗겼을 때 낙하산을 욕하는 위선을 저지르는 대신 우리의 세금을 좀 더 아끼는 쪽으로 나아가는 게 좋을 듯하다. 예를 들어 코레일유통의 비상임이사는 회사로 출근하는 대신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리는 이사회 회의에만 참석하는데, 회의시간은 한 회당 평균 50분 정도다. 12번 모두 참석해도 600분이 고작이다. 일년에 10시간 남짓 일하면서 1700만원을 받는 건 지나치다. 전문성이 거의 필요 없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비상임이사에게 그 4분의 1만 줘도 충분하지 않을까? 이렇게 한다면 이후 그 자리에 누가 가든지 낙하산으로 인해 국민이 받는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다. GKL 상임이사도 마찬가지다. 송씨가 받는 연봉은 1억1000만원, 회사에 큰 도움이 못될 것을 감안하면 많아 보인다. 상임이사의 연봉을 절반으로 깎으면 어떨까. 이런 식으로 낙하산이 주로 임명되는 공기업 이사 등 임직원의 연봉을 줄인다면, 의외로 많은 세금을 절약할 수 있다. 한 가지 더. 낙하산을 임명할 때 어차피 필요도 없는 ‘해당분야 경력’ 얘기는 빼자. 그 대신 ‘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애쓴 분’을 문구에 삽입하자. 낙하산 논란도 저절로 사라질 수 있게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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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이 지금 싸우는 상대는 이른바 친노동 정부다.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으로 대통령 직무를 시작한, 바로 그 ‘노동존중’ 정부다. 그래서인지 시민들은 문재인 정부를, 민주노총이 협력할 대상으로 인식할 뿐 투쟁할 상대로 보지 않는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로 사회경제 문제를 함께 풀기를 시민들은 바란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 사정이 나쁜데 정부를 몰아세우기만 하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여론도 있다. 민주노총을 향한 세상의 시선은 대체로 차갑다.

민주노총이 자칫 정부와 맞서다 견제도 제대로 못한 채 시민으로부터 고립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는 상황이다. 고임금을 받는 기득권 귀족노조가 파업은 빈번하게 한다는 게 민주노총에 관한 고정된 이미지다. 헐뜯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민주노총은 사회 양극화에 일정한 책임이 있다. 대기업 노조의 강력한 교섭력으로 임금을 계속 올리면서 주변부 노동자와의 격차를 벌려왔다. 그로 인해 노조가 강할수록 노동시장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역설이 생겼다. 그렇다면 노·정 갈등은 전적으로 민주노총 책임인가? 마침 변호사, 고등학교 교장과 함께 저녁 하는 자리가 있어 물어봤다. 변호사는 정부 잘못이라고 했다. “민주노총이 얻을 게 없는데 왜 대화하나?” 교장은 민주노총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대화 가능한 정부가 등장했는데도 싸우기만 하면 어쩌자는 거지?” 후배 기자 세 명과 술 먹는 자리에서도 물었다. 한 명은 민주노총 잘못, 다른 한 명은 정부 잘못, 나머지 한 명은 모르겠다고 했다. 노동 문제를 전공하는 두 명의 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한 교수는 굳이 따지자면 민주노총 잘못이라고 했다. 다른 교수는 따질 것도 없이 정부 책임이라고 했다.

이렇게 양분된 건 우연이겠지만, 의견은 나뉜다. 사실 정부와 민주노총 모두 자기 행동을 정당화할 이유도 있고, 갈등을 일으킨 책임을 함께 져야 할 이유도 있다. 그럼에도 여야, 청와대·정부는 한목소리로 민주노총을 비난한다. 사사건건 충돌하던 여야가 ‘민주노총만 마음을 고쳐먹으면 만사 해결’이라는 데 합의라도 한 것 같다. 한국은 대화와 협상에 익숙한 사회가 아니다. 여야 모두에 대화는 어렵고, 대결은 쉽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야당과 대화해야 한다는 지적을 수없이 듣지만 대화를 어려워한다.

정치권의 대결 성향은 사회에 그대로 반영된다. 민주노총이 대화할 줄 모른다고 하는 건 사돈 남 말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특히 정부가 일을 그르쳤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탄력근로제 확대와 같은 민감 사안을 일방 결정하고는 이에 반발하는 민주노총을 공격했다. 사회적 대화를 하려는 태도로 보기 어려웠다. 파업에 직면하고 나서야 문 대통령은 탄력근로제 확대를 논의할 시간을 갖자고 수정했다. 민주노총에 돌을 던질 수 있지만 그 돌, 혼자 맞을 일은 아니다. 민주노총이 대기업 노조만을 위해 활동했던 것도 아니다. 조합원 25%가 비정규직이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을 전국적으로 조직한 유일한 세력이자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앞장선 비정규직 대표조직이다. 탄력근로 문제도 대기업과는 무관한 미조직 노동자의 일이다.

최근 비난받는 민주노총 활동의 대부분도 자기 이익이 아닌, 노조 밖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런 활동을 두고 민주노총의 기득권 때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자세다. 요즘 민주노총이 한국 사회를 흔들며 힘을 과시하는 것처럼 회자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노사정 협상은 보통 노(勞)가 임금 억제, 노동 유연성을 받아들이고, 사(使)와 정(政)은 사회안전망을 제공하고, 사회개혁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1998년 첫 사회협약을 제외한 4차례 대화는 모두 실패했다. 첫 협약도 민주노총 입장에서는 받은 게 없는 실패작이었다. 힘의 불균형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강자들의 링 위에 올라갈 자신이 없다.

이 역학관계의 본질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타협한다 치자. 그래도 이행 여부는 다른 문제다. 대결정치 때문에 국회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 청와대와 여야가 거래의 공정성, 이행을 담보하지 않는 한 민주노총이 돌아오기도 어렵고, 돌아와도 성과를 낼 수 없다. 민주노총 조직률은 4%다. 96%를 책임진 세력의 책임은 묻지 않는, 4% 때리기는 균형을 잃은 것이다. 진짜 힘 있는 세력은 조용히 일을 처리한다. 소리 없이 지배한다. 바로 자본이다. 자본은 정부를 움직여 노동을 통제한다. 진정한 질문은 이것이다. 자본과 노동 가운데 누가 기득권인가? 변화해야 할 쪽은 자본인가, 노동인가?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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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여론을 바탕으로 실현된다. 여론은 개인이나 사회에 대한 의견 중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인정된 의견이다. 표현의 자유와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여론 형성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되고, 의견이 거리낌 없이 발표될 수 있어야 진정한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 물론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여론>이라는 책을 쓴 월터 리프먼은 “여론이 국민들의 생각 혹은 객관적인 사실을 모은 것이 아니라 대개는 권력효과에 의해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구호일 때가 많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도 여론을 무시한 현실정치는 불가능하다. 대부분 정책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여론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형성된다. 아고라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폴리스에서 민회나 상업, 사교 등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진 장소다. 아고라는 시장의 기능뿐 아니라 정치, 경제 등 시민들의 일상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시장은 여론이 만들어지고 퍼지는 공간이다.

포털 사이트 다음은 3일 아고라 서비스를 내년 1월7일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다음 아고라’는 사이버상의 토론 광장이다. 다음은 홈페이지에 ‘이제 15년간의 소임을 마치고 물러난다’는 공지로 고별사를 대신했다. 그동안 다음 아고라에는 1000만여명이 3000만여건의 글을 올렸다. 20만여건의 청원에 4500만여개의 서명이 이어지기도 했다. 10년 넘게 명실상부한 ‘사이버 신문고’ 역할을 한 것이다.

하지만 토론방에 올린 글이 문제가 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미네르바라는 필명의 논객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무죄로 끝났지만 아고라의 자유로운 토론문화가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다음 아고라는 특정 정치세력에 편향됐다거나 가짜뉴스를 만들어 전파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아고라 서비스의 중단에 많은 아고리안들은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사라졌다”며 아쉬워했다. 다른 공간에서 토론의 장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다음 아고라는 여론 광장으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했다. 누가 바통을 이어받는가만 남아 있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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