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삡…삡…삡….” 1957년 10월4일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지구 궤도에 진입했다. 소련 튜라탐 제5발사장에서 떠오른 스푸트니크는 3주 후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지구 궤도를 돌며 원격 측정(텔레메트리) 신호를 발신했다. 국경을 가리지 않고 머리 위를 떠도는 위성은 당시 세계인들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인류가 만들어낸 테크놀로지가 지구를 벗어나 우주 공간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소련과 냉전 경쟁을 벌이고 있던 미국에서의 반응은 마냥 긍정적일 수만은 없었다. 한편으로는 소련이 지구 궤도에 물체를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의 발사체 기술을 확보했다는 공포감이 만연했다. 스푸트니크 발사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은 미국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수요 공급, 취업 및 보상”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라고 요청했다. 조사 결과 미국은 소련에 비해 인구 대비 과학기술 인력의 숫자가 뒤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연방정부는 곧바로 과학기술 인력의 배출을 늘리기 위한 방안을 수립하는 한편, 우주 관련 연구를 가속하기 위해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항공우주국(NASA)을 설치했다. 스푸트니크의 발사는 본격적인 냉전 우주 경쟁의 시작이기도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 이후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1961년 4월12일 소련의 보스토크 1호는 공군 소령 유리 가가린을 싣고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에 성공해 미국의 자존심에 또 한 차례 상처를 입혔다. 이듬해 9월, 아이젠하워의 뒤를 이은 케네디 미 대통령은 “우리는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달에 가기로 선택한다!”라고 선언했다. NASA 아폴로 프로그램의 시작이었다. 1969년부터 1972년까지 총 17차례에 걸친 아폴로 임무를 통해 12명의 미국 우주비행사들이 달 표면을 걷게 되었다. 이후 소련의 살류트·미르, 미국의 스카이랩 등 우주정거장을 거쳐 2010년에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이 건설되었다. 우주정거장까지는 챌린저, 컬럼비아 등 우주왕복선으로 오가게 되었다. 여러 탐사선이 화성에 이미 착륙해 정보 수집 활동을 수행하고 있으며, 올해에는 태양 탐사선 파커가 태양 궤도에 진입해 근접 비행을 하기도 했다.

한국이 우주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0년대 들어서의 일이지만, 한국인들은 선진국들이 벌이는 우주개발 경쟁에 항상 관심을 갖고 주목했다. 스푸트니크 1호 발사가 성공한 직후 경향신문은 “우주가 마침내 좁아졌다”는 제목의 연재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는 미국 전문가 마틴 카이딘의 말을 인용해 “우주전에 있어서 마지막 승리는 이 지구뿐만 아니라 외계를 정복하는 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소식은 그야말로 대서특필되었다.

경향신문 1969년 7월21일자에도 “달 기원 1년 1월1일”이라는 제하로 두 면에 걸친 특집기사가 실렸는데, 한국 각계각층의 반응이 소개됐다. 반응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눠 볼 수 있었다. 한편은 한국이라는 지역의 현실을 반영하는 반응이었다. 가정주부 양제희는 “20㎞도 못되는 수원지의 수돗물도 제대로 받지 못해 밤중에 2시간이나 물 받는 고역을 치르는” 입장에서 달착륙이란 “꿈속 이야기”라고 꼬집었다. 정우회(政友會) 국회의원 차형근은 “지금까지의 반생에 짚신에서 달착륙까지 보았으니 나머지 반생에는 또 무슨 신기한 것을 보게 될 것인지 하여간 오래 살고 볼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 보편의 문제와 감성을 건드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천주교 신부 오기선은 “절실한 인구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달나라에 사람이 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나도 달나라에 가서 교회를 짓고 우주선교사가 되어 포교를 하고 미사를 드리며 그곳에 살고 싶다”라는 희망을 표했다. 이렇듯 1969년의 한국인에게 우주란 자신의 빈한한 삶을 돌아보는 잣대이자, 미래를 향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대상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났지만, 한국은 이제 간신히 우주를 향한 첫발을 떼고 있는 입장이다. 1993년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발사한 이후, 정부는 1996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우주개발 중장기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올해 2월에 발표한 ‘제3차 우주개발 진흥 기본계획’에 따르면 한국은 향후 5년간 우주발사체 기술을 확보하고, 위성기술을 고도화하며, 달 탐사 임무를 중심으로 한 우주 탐사 계획을 시작할 것이다. 2030년대가 되면 한국인이 쏘아올린 발사체로 달 착륙선을 보내 월면 샘플을 채취해 귀환한다는 계획도 잡혀 있다. 이를 위해서 관련 예산을 연차적으로 확대해나가, 현재 10위에 불과한 투자 순위를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체적인 계획보다 중요한 것은 우주개발에 뛰어드는 동기일 것이다. ‘3차 기본계획’에서는 한국의 우주개발 목적을 “실리적인 우주활동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지정학적 위치 등을 고려한 전략기술 획득 측면도 동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국제사회 기여’ ‘지적 호기심 충족’ ‘인류 거주 영역의 확대’ 등의 논리를 포함한 “포괄적인 우주개발”을 추진하고 있지만, 한국은 우주 부문의 개발도상국으로서 “실리적인 우주활동”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전략이다. 현실적인 고려도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지금까지 인류의 우주개발 역사를 볼 때 실리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우주개발은 반쪽짜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우주는 과학기술 후속 세대가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보고로서 훨씬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최형섭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서울과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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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커뮤니티에서 내 저서 &lt;한국, 남자&gt;가 5·18민주화운동을 모독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 근거는 책의 목차 중 ‘남성성의 극한: 80년 광주의 공수부대’라는 부분이다. 놀랍게도 이들이 문제 삼는 것은 내용이 아니라 목차가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발을 하겠다거나 5·18기념재단에 제보를 하겠다는 주장을 하는 중이다.

나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 한국군이 치른 3번의 ‘전쟁’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내전이자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던 한국전쟁이다. 두 번째는 희박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과 박정희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참전했던 베트남전쟁이다. 그리고 세 번째 전쟁이 바로 신군부가 정당성 없는 군부독재를 이어나가기 위해 광주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벌였던 5·18이다.

내가 주목한 것은 그 광주의 시민들을 학살했던 계엄군이다. 생각해보면 계엄군의 대부분은 직업군인이 아니라 징집된 병사들이었다. 일부의 이탈이나 저항이 존재했지만 계엄군은 마지막까지 대오를 유지하며 광주의 시민군을 학살하고 도시를 무덤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징집된 병사들, 즉 군복무가 끝나면 다시 시민이 될 사람들이 이런 잔혹하고 부정의한 일에 항의하지 않고, 그 명령을 수행했는지를 반드시 물어야 한다.

물론 그들은 이탈하면 죽인다는 상관들의 협박을 받았고, 적극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병사들을 골라내 때리고 기합을 주는 내부의 폭력에 시달렸으며, 광주의 시민들이 다 간첩이라는 가짜정보를 세뇌당하듯 주입받았다. 또 진압 과정에서 동료 병사가 죽고 다치는 모습을 보며 두려움을 느끼며 증오심을 키웠고, 산속에서 숙영을 하면서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을 때리고, 고문하고, 강간하고, 죽였느냐고 묻지 않을 수는 없다. 그로부터 내가 발견한 것은 한국 사회의 권력자들이 만들어 내고자 했던 남성성의 한 극한이다. 이는 18세기 무렵 최초의 근대적 남성성이 등장했을 때부터 모든 권력의 꿈이었다. 의문을 갖지 않는 건장한 육체들, 목숨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고, 더럽고 잔인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남자들. 국가는 이 남자들을 모든 권리를 가진 일등시민으로, 나머지 비남성들을 이등시민으로 만들고 법과 제도에서부터 일상의 작은 부분까지 차별대우했다. 그렇게 일등시민이 된 남자들은 군대와 일터와 사회에서 권위에 복종하고, 대신 이등시민들을 착취하면서 실은 그다지 크지 않았던 상대적 우위를 누렸다. 이들의 충성은 요란한 군복을 입은 늙은 장군들과 비단옷을 입은 부자들에게 바쳐졌고, 이들은 평범한 남자들을 사지로 내몰고 착취하면서 돈과 명예를 독식했다.

이것이 내가 이야기하는 ‘남성성’이다. 그러니 나로선 대체 무슨 상상을 했는지 알기 어렵다. 남성성은 좋은 것인데 그것의 극한이 공수부대라고 했으니 광주를 모독했다고 생각했을까? 광주민주화운동이 한국의 ‘역사’로 편입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두 번의 정부를 거쳐서야 가능했다. 아직도 미처 밝히지 못한 진실들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여전히 일각에서는 광주에 북한군이 있었다는 날조를 유포하고 있으며, 과거 이명박근혜 정부 시절에 기념행사 때마다 크고 작은 수모를 겪어야 했다. 단순히 ‘민주화운동’이라는 화석화된 말로는 광주를 알 수도, 지킬 수도 없다.

나는 오히려 묻고 싶다. 대체 광주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에 대한 다른 관점과 해석이 광주에 대한 모독이란 말인가? 그저 마음에 안 드는 책에 광주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허수아비와 싸우는 꼴이야말로 광주를 빌미로 누군가를 괴롭히려는 심보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아직도 신고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얼마든지 신고하시길. 참고로 5·18기념재단은 기부도 받고 있다. 뭐가 더 생산적일지는 알아서 판단하기 바란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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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간한 OECD 교육통계(Education at a Glance 2018)를 살펴보다 깜짝 놀랄 만한 수치를 접하였다. 우리나라 대학생의 1인당 공교육비가 초등학생 1인당 공교육비에도 크게 뒤처졌기 때문이다. 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학교교육에 투입되는 모든 재원을 재학생의 총수로 나누어 산출한다. 우리의 경우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는 정부 교부금이, 대학교는 학생 등록금이 재원의 주요한 원천이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등학생의 1인당 공교육비는 약 1만1000달러인 데 반해 대학생은 단 8000달러(R&D 재원 제외)에 그쳤다. 중·고등학생은 이보다 훨씬 큰 1만2000달러였다. 대학생 1명에게 투입되는 연간 재원이 초등학생에 비해 3000달러(약 330만원), 중·고등학생에 비해 무려 4000달러(약 440만원)나 부족한 것이다.

이에 매우 당혹하여 곧장 OECD 주요국들의 수치를 비교해 보았다. 역시 우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OECD 평균치로는, 초등학생의 1인당 공교육비는 약 9000달러, 중·고등학생은 1만달러, 대학생은 1만1000달러(R&amp;D 재원 제외)로 집계되었다. 교육단계별로 대략 1000달러씩 순증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내 상식에도 부합한다.  

대학교육의 1인당 교육투자가 초·중등교육에도 크게 뒤처지는 이런 ‘황당’한 상황을 이해해 보고자 지난 15년간의 통계 추이를 살펴보았다. 2003년을 기준으로 각각 4098달러(초등학교), 6410달러(중·고등학교), 6213달러(대학교, R&D 재원 제외)로 집계되었다. 과거에는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가 분명 초등학생 1인당 공교육비보다 월등히 높았던 것이다. 중·고등학교의 학생 1인당 공교육비에도 크게 뒤지지 않았다. 

이후의 추이를 따라가 보니, 이상한 조짐은 2009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등록금 동결 및 인하 정책이 도입된 때이다. 2003년 약 6200달러부터 2009년 8000달러까지 꾸준히 상승하던 대학생 1인당 교육비는 그 이후 근 10년간 동일한 수준에 멈추어버렸다. 한편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거침없이 상승하여 2013년에 대학생의 교육비를 추월했고, 이후로는 그 격차를 더욱 벌려왔다. 2015년에 이미 초등학생과 대학생 간,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간 각각 1.4배와 1.5배의 공교육비 격차가 형성되었다.

우리나라의 대학생 1인당 교육비는 여타 OECD 국가들과도 그 격차를 벌려왔다. 2009년을 전후로 1000달러가량 뒤지던 것이 이제는 무려 3000달러나 뒤처지고 있다. 경제성장 및 물가상승에 따라 여타 국가들의 1인당 교육비 투자가 꾸준히 증가한 데 반해 우리의 대학생 교육비 투자는 10년째 동결상태이기 때문이다.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요즘 대학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졸업학점의 축소부터 개설강의 일부 폐지, 동일과목 분반 통합 등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일각에서는 교육의 본질을 등한시하는 대학본부들의 부도덕함을 지적한다. 하지만 사실 이런 형태의 재정부담 경감 대책은 이미 수년째 대학가에서는 일상화된 풍경이었다. 연봉 3000만~4000만원에 그치는 비정년트랙 교원이 박사급 신규임용의 과반을 차지한 지 오래다. 무분별한 외국인 유학생 유치로 6만~7만명에 불과하던 유학생 규모는 10년 새 약 2배로 늘어났다. 행정 직원들은 대개 단기 계약직들로 채워지고 있으며, 수업용 기자재나 도서관 장서 등의 구매도 눈에 띄게 줄었다. 현대적 교육공간의 확충은 고사하고 시설 개·보수조차 어려운 대학이 수두룩하다. 가히 초등학교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태로 대학교육을 ‘방치’하는 게 옳으냐는 것이다. 대학교육의 학생 1인당 교육비가 OECD 평균의 단 73%에 그치는 것과 달리 초·중등교육의 1인당 교육비는 OECD 평균의 무려 1.25배에 달한다. 국가적 교육재원의 배분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과연 이와 같은 인적자본 전략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까? 대학교육은 창의적, 창조적, 전문적 인재를 배출하는 종말 단계의 교육이다. 아무리 혁신적인 교육과정을 초·중등교육에서 구현하더라도 대학교육이 정체되거나 후퇴한다면, 사회에 배출될 인재들의 우수성은 결코 담보되지 못한다. 국가가 4차 산업혁명의 가장 치열한 전장에서 그 방향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2009년 (사립대 평균) 741만원이던 등록금은 올해 약 742만원으로 집계된다. 이러한 동결은 사실 정치권의 ‘반값 등록금’ 공약과 맞닿아 있다. ‘반값 등록금’을 빠르게 성취하자면 우선 등록금부터 묶어둘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정치권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국가장학금은 무려 4조원대로 불어났다. 기타장학금을 합하여 대학생 1인당 장학금도 약 360만원에 달한다. ‘사실상’의 반값이 실현된 것이다. 결국 대학재정을 희생양 삼아 국민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대학교육의 재정적 위기는 현실이다. 우리의 초·중등교육처럼 OECD 수준의 교육비 투자(1인당 1만1000달러)를 회복해야 치열한 국제경쟁의 각축장에서 경쟁력 있는 인재들을 배출할 수 있다. 그러자면 1인당 약 3000달러의 교육비 재원이 추가로 확보되어야 한다. 원화로는 약 330만원에 달하는 큰 액수이다. 여기에 연간 대학생 수 약 280만명을 곱하면, 대략 9조20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재정확보가 요청된다. 10년째 묶인 대학 등록금의 대가라 하겠다.

문제는 이러한 재정적 요구에 어떻게 답하냐는 것이다.

혹자는 등록금을 묶었으니 당장 330만원 인상하면 된다고 답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 대안이 못된다. 대학교육의 보편화로 대학등록금이 어느새 준조세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등록금 330만원 인상에 따른 ‘조세저항’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다음으로 2010년 법제화된 ‘등록금 인상 상한제’로 인해 물가상승률의 1.5배 이상의 상승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지난 3년간의 연평균 물가상승률 1.2%를 감안하면, 연간 20만원 이상의 등록금 인상은 금지된 것이다. 결국 국가의 적극적 재정투자 외에는 뚜렷한 대안이 없다. 이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진정 초등학교보다 못한 대학교육으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김영철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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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일같이 들려오는 사립유치원 관련 소식은 잊고 지냈던 그 시절, ‘내 경우는 어땠지’ 하고 기억을 더듬게 한다. 대한민국에서 교육에 관한 한 온 국민이 전문가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시기가 지나면 급속도로 무관심해진다.

외향적 성격의 큰아이는 갑작스레 유치원에 가게 된 경우였다. 어린이집 겨울방학이 끝난 후부터 아이는 어린이집이 지겹다고 토로했다. 규모가 작고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일시적 투정인지 판단이 안돼 당시 안면 있는 청소년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유치원에 보내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금은 누리과정 시행으로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교육 과정에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그때만 해도 어린이집은 보육, 유치원은 교육으로 나뉘던 때였다. 새 학기가 한 달도 채 안 남은 때라 부랴부랴 시장조사에 나섰는데 당시 살던 동네에선 ‘엄마 마음’에 드는 유치원을 찾기 힘들었다.

공립은 7세반뿐이었고, 근처 사립유치원은 실내수영장까지 갖춘 시설을 자랑했지만 동네 엄마들 평이 그리 호의적이지 못했다. 최근 보도를 보고서야 이곳이 규모상 서울시내 톱10 안에 들어가는 유치원인 걸 알게 됐다. 결국 큰아이는 이웃 동네의 자그마한 사립유치원에 가게 됐다. 유치원은 낡은 시골 학교 분위기를 풍겼는데 원비가 저렴했고, 아이들을 많이 뛰어놀게 했다.

아이가 졸업반이 되던 해 누리과정이 시행됐다. 그리고 유치원에선 방과후 수업 중단을 통보했다. 유료 수업인 방과후 활동이 지속될 경우 누리과정으로 인한 원비 하락 효과가 사실상 체감되지 않는다며 정부가 방과후 수업 중단을 ‘권고’했는데 유치원은 이를 따르겠다고 알려왔다. 좋아하는 건축 수업을 더 이상 못 듣게 된 아이는 실망했다. 그러나 주변 어느 유치원도 누리과정 때문에 방과후 활동을 중단했다고 들은 바가 없어 부모로선 유치원의 교육방식에 신뢰를 더하는 작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립유치원 단체 주장처럼 유치원이 마냥 ‘개인사업자’라면 추가 수입원이 되는 방과후 수업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동네로 이사오면서 작은아이의 선택지는 큰아이 때보다 넓어졌다. 하원시간이 이르고, 셔틀을 운영하지 않는 공립 병설은 직장맘 입장에서 애초부터 고려 대상이 못됐다. 대신 아파트 단지마다 큰 규모의 사립유치원이 하나씩 있었다.

누리과정 여파로 입학 경쟁이 치열해져 공 뽑기 추첨을 이때 처음 경험했다. 남편과 일정을 나눠 총 3곳에 넣었고, 다행히 그중 한 유치원에 당첨됐다. 둘째아이 유치원은 큰아이가 다니던 곳에 비하면 규모가 크고, 바이올린 수업을 하는 등 세련된 이미지가 강했다. 원비는 그만큼 비쌌다. 방과후 수업도 큰아이 때는 몰랐던, 이를테면 ‘영재두뇌 만들기’와 같은 엄마 마음을 교묘하게 읽는 종류들이 존재했다.

작은애는 해외연수 가는 엄마를 따라 미국에서도 유치원을 다녔다. 한국 초등학교의 병설 유치원과 같은 형태로 매일 아침 7시 노란 스쿨버스를 타고 갔다가 오후 3시가 다 돼 돌아왔다. 큰 틀에선 초등학교와 다름없었다. 30분 낮잠 시간이 있고, 초등생과 달리 부모 초청행사가 많다는 점 등이 다를 뿐이었다. 부모 입장에선 공립이라 무료고, 학교 내에 있어 안심되는 측면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며칠 전 작은아이에게 어느 유치원이 더 좋았냐고 물었다. 아이는 눈을 찡긋하더니 즉시 대답하지 못했다. 둘 다 좋은 점이 다르단다. 미국 유치원은 놀이시간이 많아서 좋았고, 한국 유치원은 재밌는 활동이 많았다고 했다. 아이의 말이 맞을 것이다. 유치원이 공립이든, 사립이든, 미국 유치원이든, 한국 유치원이든 아이들을 위하는 유치원이라면 어디든 좋지 않겠는가. 유치원이 ‘아이들을 위한다’는 핑계로 어른들의 이전투구판이 된 듯해 씁쓸하다.

<문주영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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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보이던 염소가 한 마리도 안 보인다. 아기를 가져 배가 남산이 된 염소, 귀염둥이를 데리고 다니는 염소, 맴맴 돌다가 목줄에 감긴 염소, 우두커니 먼산바라기를 하는 수행자 염소, 뺀질뺀질한 양아치 염소, 안 가겠다고 삐대고(버티고) 앉은 떼쟁이 염소, 입삭낭구(잎사귀)를 죄다 뜯어먹고 배터지기 직전의 부잣집 염소, 졸다가 경운기 소리에 자망해서 뒤로 나자빠진 염소. 뿔자랑을 하며 깔짝깔짝 싸움을 거는 염소. 세상 뭐 있어, 디룩디룩 살찐 염소, 멀뚱멀뚱 똥개를 쳐다보는 염소, 부잡스러운 염소, 시부렁거리는 염소, 암컷을 쫓아댕기는 염소, 명주 솜털만큼 보드랍고 얌전하니 시말스러운 염소. 흑사탕처럼 검은 똥을 뻐르적뻐르적 싸놓은 염소…. 갑자기 하얗고 검은 염소들이 보고 싶어라. 내년 봄까지 기다려야 하나.

김성동의 소설 <염소>는 여덟 달을 살다간 흑염소 빼빼의 이야기. 노랑내 난다고 소금을 한 주먹 집어먹게 한 뒤 칼잡이는 빼빼에게 덤벼들고, 순간 빼빼는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린다. 충남 보령 솔미마을. 입만 열면 “떠야지, 떠야 혀”라고 말하는 주민들 속에서 어디론가 떠나고팠던 빼빼. “편지해!”라는 청삽살이의 배웅을 받으며 장으로 끌려갔다. 중간 상인을 들이받고 잠시 자유를 얻기도 했다.

“내가 사람의 손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몸을 움직였을 때, 나는 이미 힘없이 끌려만 다니던 어제의 염소가 아니라는 것을….”

빨강 에나멜 구두나 또각거리는 도심에선 볼 수 없는 염소를 만나러 북인도나 중동땅에 가고는 했다. 파키스탄에선 염소가 사람만큼 흔하다. 염소들이 맞아준 검은 밤엔 로티빵을 씹으며 염소젖을 먹어보기도 했다.

눈앞에서 사라지자 문득 보고 싶은 무엇들이 생기질 않던가. 하지만 다시 봄이 되어도 보기 싫은 얼굴들이 있다. 옥에 갇힌 적폐의 얼굴들. 그들을 누구 맘대로 석방 운운인가. 잠시 한뎃바람을 피하자는 겨울 염소도 아니고 말이다. 염소는 악마의 얼굴을 닮았다지만 진짜는 다른 데 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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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물의 신 공공(共工)과 불의 신 축융(祝融)이 전쟁을 벌여 축융이 승리했다. 공공은 분을 참지 못해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부주산(不周山)을 들이박았다. 부주산이 무너지면서 하늘의 정원이 주저앉고 은하수의 물이 넘치는 대홍수가 났다. 여와는 백성을 구하기 위해 화염과 마그마가 분출하는 불함산(不咸山)의 분화구에서 높이 40m, 길이 80m의 바윗덩이 3만6501개를 정제해 냈다. 여와는 이 중 3만6500개로 둑을 만들어 홍수를 막았다. 그러나 바위 하나를 쓰지 못해 물길을 잡지 못했으니, 오늘날 장백폭포로 흘러내리는 강이 그것이다.

중국에 전하는 백두산 신화이다. 천지(天地) 창조 신화를 천지(天池) 생성에 결합시킨 게 흥미롭다. 우리 민족뿐 아니라 중국인들에게도 천지는 성스러운 호수이다. 중국 사서에 ‘천지 용궁에서 금과 옥으로 연주하는 궁중음악이 백리 밖까지 울려퍼진다’고 기록한 것도 신화 만들기의 하나이다. 중국 매체들이 심심찮게 천지의 괴물 출현을 보도해온 것도 그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천지 괴수’는 과학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

천지는 약 1000년 전에 백두산 화산 분출로 형성된 칼데라호이다. 수면의 해발고도는 2189m이고, 최대 수심은 348m로 세계 산정호수 가운데 가장 깊다. 둘레는 14.4㎞로 한양도성(18.6㎞)에 조금 못 미치지만, 면적은 9.2㎢로 서울의 사대문 안보다 크다. 이 넓은 천지에 생물체는 살아갈까. 학자들은 지하의 화산수 분출로 형성되는 천지의 물은 차갑고 무색, 무미하여 미생물 번식률이 매우 낮다고 말한다. 자연 상태라면 물고기 서식도 어렵다.

북한은 1960년 천지에 삼지연 붕어와 산천어를 방류했다. 1988년과 1991년에도 압록강 버들치, 종개 등을 풀어 넣었다. 이 가운데 산천어는 서식이 확인됐다. 노동신문은 지난 4일 백두산 천지에 빙어를 풀어 서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7월 천지에 방생한 빙어 2500마리 가운데 100여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산천어에 이어 빙어도 천지에서 서식할 수 있음이 드러났다. 북한이 물고기 서식에 공을 들인 것은 천지의 자연생태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백두산 성지화 작업’의 일환일 수도 있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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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DMZ). 한국 사람들에게는 현대사의 모든 기억이 교차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나는 유학을 준비하던 시절 미국 시카고대학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에게 이메일로 관련 문의를 하면서, 군 복무 시절 전방 지역에서 근무했던 경험 등에 대해 말씀을 드렸다. 학창시절 그가 저술했던 화제작 <한국전쟁의 기원>을 읽으며, 여러 부분에 대해 동감도 했고 반대의견도 가졌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답장을 기대하지 않고 보낸 이메일이었다. 놀랍게도 일면식도 없는 한국의 젊은이에게 커밍스 교수가 보내준 답은 인상적이었다. 자신은 DMZ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뛰고 감정이 벅차오른다면서, 태평양 건너 얼굴도 모르는 한국의 젊은이에게 장문의 답장을 보내주셨다. 사실 당시에 서방의 한국전문가가 DMZ에 대해 그토록 벅찬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이 생소하게 다가와서 답장을 받던 날 한국인에게 DMZ는 어떠한 역사적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는지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그날은 커밍스 선생님과 막역한 사이로 발전하게 되는, 아름다운 사제의 인연이 시작된 출발점이었다. 물론 여전히 우리는 끊임없이 한반도 현안에 대해 다른 의견들로 갑론을박한다.

최근 남북군사합의를 둘러싼 담론의 양상은 정치화를 넘어서 국론 분열의 위험 수위까지 다다르고 있다. 이 모든 담론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전략에 근본적으로 동의하는지, 이 대북전략이 목표를 성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지가 핵심일 것이다. 사실 군비통제는 어느 시대이고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오랫동안 신뢰하지 않았던 상대방을 믿고, 제 살 깎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당사국의 군부와 보수층에는 비판을 받는 인기 없는 정책 옵션이다. 냉전기 미국과 소련 간 군비 통제나 데탕트 전략이 시도될 때, 이를 추진하는 미국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반대파들로부터 색깔론과 함께 유약한 이상주의자라는 비판을 늘 받아왔다. 더욱이 한국처럼 지정학적으로 안보에 취약한 환경 속에서 북한의 도발을 오랫동안 경험해 온 상황에서, 군비통제는 늘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남북군사합의에 대한 논쟁은 근본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전략에 대한 의견 차이에서 비롯된다.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대전략은 지난 10여년간의 대북정책옵션, 즉 국제경제제재로 인한 북한 붕괴론이라는 신화에 대한 반성론과 ‘코피전략’ 등의 군사적 옵션 등에 대한 회의론에서 출발해 추진되고 있는 접근법이다. 이 대전략의 목표는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동참시켜, 북한이 다시 도발한다면 지금보다 감내해야 하는 피해가 수백배, 수천배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해서 한반도의 평화와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를 주도적으로 이룩하자는 것이다. 미·중 패권경쟁이 심해지는 상황 속에서, 슈퍼그리드-에너지협력-나비프로젝트 등 동북아 협력을 강화시키고, 이에 북한을 동참시켜 경제적 실익을 얻게 하고, 나아가 이를 동북아시아 다자안보체제가 구축되는 토대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그 비용이 크지 않다면, 제재를 하면서 북한 핵·미사일 실험을 방관해오던 시절보다 시도할 만한 전략일 것이다. 지금의 한반도 정세 변화가 시작된 지는 불과 1년도 되지 않았다. 기대치가 높은 만큼 관심과 비판이 많다. 그러나 대안 없는 비판이 과열되면 개별 쟁점의 정치화는 물론이고 국론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 여러 부족한 점들이 있더라도 대전략 차원의 접근법이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믿고 차분하게 지혜를 모을 때이다. 그리고 비판할 때 정책 대안을 갖고 담론에 참여한다면 그 담론이 정책 대안을 발전시켜 장차 정치화되지 않은 생산적인 담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군사합의에 대해서는 앞으로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보완과 수정, 조치 이행 확인들이 협의되고 진행될 것이다. 추진된 정책에 대하여 좀 더 냉정하고 차분한 자세로 기다리고 평가하는 성숙된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서방에서는 ‘악의 지도자’와 어떠한 타협도 용서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소위 ‘체임벌린(히틀러에 대해 유화정책을 폈던 영국 총리) 학습효과’가 있다. 이는 북한을 대할 때 서방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역사적 사례이다. 히틀러를 막지 않고 타협하려 했었기 때문에 홀로코스트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더 중요한 역사적 사례를 잊고 산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창설하고자 하였던 국제기구(League of Nations) 창설이 미국 내 강경파의 반대로 백지화된 것이다. 그 당시 국제기구가 1차 세계대전의 교훈을 바탕으로 창설되었다면, 2차 세계대전은 발발하지도 혹은 그토록 비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우리가 체임벌린 교훈만큼이나 윌슨 교훈을 잊어서는 안되는 이유다.

<김영준 국방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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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상식과 도의를 거론하기도 낯 뜨거울 만큼 무도한 짓거리다. 자유한국당의 친박계와 비박계 핵심 의원들이 모여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 결의안을 추진키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도록 사법 당국에 요구하는 결의안 발의에 공감대를 이뤘다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비박계 김무성·권성동 의원과 친박계 홍문종·윤상현 의원이 만나 계파 갈등을 종식시킬 방안으로 박 전 대통령은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불구속 재판 촉구 결의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누구 멋대로 ‘석방’ 운운하는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헌법의 원칙과 가치를 유린하고, 나라를 송두리째 뒤흔든 국정농단 범죄를 저질러 사법적 단죄도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석방’을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박근혜 석방’을 계파 권력투쟁, 당내 선거의 정치적 거래물로 활용하려는 작태가 가증스럽다. 설령 시늉일지라도 ‘잘못했습니다’라며 무릎 꿇고 사과했던 그 알량한 염치조차 저버린 행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2월 6일 (출처:경향신문DB)

‘국정농단’ 1심에서 징역 24년, 항소심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은 박근혜가 누구인가. 재판부의 판결문을 돌려보자.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했고 그 결과 국정질서에 큰 혼란을 가져왔으며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에 이르게 됐다. 그 주된 책임은 헌법이 부여한 책임을 방기한 피고인에게 있다.” 섣부른 ‘박근혜 석방·사면’을 운위해서는 안되는 이유도 판결문에 들어 있다. “다시는 대통령이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남용해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박 전 대통령은 여태껏 반성은커녕 범행을 모두 부인하고 변명으로 일관하며 책임을 주변에 전가하는 뻔뻔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태극기부대 등 친박계 단체들에 이어 공당인 한국당에서 ‘석방 결의안’이 추진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책임을 뼈아프게 져야 할 한국당에서 ‘박근혜 사태’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나 인적 책임을 져본 적이 없다. 그런 그들이 ‘박근혜 석방’을 운위하는 것 자체가 국기문란을 조장할 뿐이다. 헌법과 민주주의를 유린한 범죄자에게 법의 온정과 예외는 있을 수 없다. 미래의 위정자들에게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라도 추상같은 법의 심판이 흐트러지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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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5일 외국인만 진료한다는 조건을 달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영리병원 개원을 허가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공론조사위원회의 (불허 권고) 결정을 수용하지 못해 죄송하다”면서도 “하지만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건강보험 등 국내 공공의료체계에는 영향이 없다”며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허가했다. 이로써 지난 16년 동안 찬반 논란이 일어온 영리병원 허용 문제가 일단락됐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이 제주도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영리병원이 건강보험제도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영리병원은 김대중 정부 당시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법제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지만 투자자가 없거나 국내 반대 여론에 밀려 계속 미뤄졌다. 그러다 2015년 12월 보건복지부가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인 녹지그룹의 녹지국제병원 사업 계획을 승인했고, 이후 3년간의 논의 끝에 이번에 최종적으로 개원하게 됐다. 외국 자본과 국내 의료자원을 결합해 외국인 환자들에게 종합 의료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용을 창출하고 해외환자를 유치하자는 취지는 부인하지 않는다. 병원을 다 짓고 의료진까지 고용한 마당에 개원을 허가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제주도의 사정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영리병원 개원은 그리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우선 성형외과와 내과 등 4개 진료과목에 한정해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진료한다는 전제 자체를 지키기 쉽지 않다. 모든 의료기관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진료를 거부할 수 없게 돼 있는 데다 온갖 편법으로 내국인이 진료받는 사례가 나타날 수 있다. 의료보험체계의 적용을 받지 않는 예외적인 경우는 그 자체로 위험하다. 여기에 인천 송도를 비롯한 전국 8개 경제자유구역 등도 영리병원 유치를 노리고 있다. 제주를 계기로 이들 특구에까지 영리병원을 허용한다면 건보 시스템은 그야말로 근간이 심각하게 흔들릴 수 있다.

시민들은 이 전인미답의 영리병원 실험을 지켜볼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영리병원이 의료 공공성을 약화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또 외국자본이 국내 시설을 이용해 돈만 버는 일이 벌어지거나 국내자본을 우회 투자해 돈벌이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와 제주도는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한다. 특히 원 지사는 공론조사위의 결정을 거부한 만큼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할 무거운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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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5일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위와 관련해 “청와대 안팎의 공직기강 확립을 위해 관리체계를 강화하고 특감반 개선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라는 요지의 지시를 했다. 이어 “대검 감찰본부의 조사결과가 나오면 이번 사건의 성격에 대해 국민이 올바르게 평가할 것”이라고 했다고 김의겸 대변인이 전했다. 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청와대의 대처가 대체로 잘 이뤄졌다는 뜻인가’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이 귀국 후 고강도 청와대 쇄신책을 낼 것이란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미흡한 조치다. 매우 실망스럽다.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체코와 뉴질랜드 순방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왼쪽에서 네번째),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세번째) 등 마중나온 인사들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의 지시는 이번 사건의 본질이 수사관들의 일탈 행동이며, 조국 민정수석을 비롯한 민정수석실의 대처에 큰 문제가 없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이런 판단은 시민들의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이번 사건은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실 특감반에 파견된 검찰 수사관이 지인이 연루된 경찰 수사내용을 사적으로 캐물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처음 알려졌다. 이어 골프접대, 셀프승진 시도 등 온갖 의혹이 꼬리를 물며 제기되고, 청와대 자체 감찰과정에서 이들이 휴대전화 제출을 거부하는 ‘집단항명’ 사태를 일으켰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무엇 하나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특감반 전원 교체도 초유의 일이다. 한데도 청와대는 검경의 감찰결과를 지켜보자고만 할 뿐 쏟아지는 의혹에 함구로 일관해 왔다. 이렇게 파문이 커진 데는 청와대가 처음부터 진상을 공개하지 않은 채 시민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시인도 사과도 설명도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참으로 안이한 대응이다. 최근 청와대 직원들의 잇따른 기강 해이 사건도 이런 느슨한 분위기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지방선거 압승 뒤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우리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적폐·부정부패 청산에 있다”면서 “우리 스스로가 도덕적이지 못하다면 국민의 바람과 중요한 과제를 실현하지 못한다”고 했다. 앞서 2월에는 ‘춘풍추상(春風秋霜·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해야 한다)’을 언급하며 비서관실에 액자를 선물했다. 이 액자는 청와대 비서동인 여민관에 걸려있다. 문 대통령 말대로 현 정부는 출범 후 줄곧 과거 정권의 적폐·부정부패 청산에 주력해왔다. 그런 정부에서 공직자 기강을 감시하고 기강을 다잡는 당사자들이 되레 기강을 문란케 했으니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잘못은 드러내고 일벌백계해야 되풀이되지 않는다. 지금 시민들은 대통령과 청와대에 스스로에게 추상처럼 엄격한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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