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형사수용시설 및 피수용자 등의 처우에 관한 법률이라는 현행법이 있다. 제215조는 천재지변이 일어나 피수용자가 위태로운 경우 해방시키라고 정하고 있다. “지진, 화재, 기타 재해가 일어난 때에 유치시설 안에 피난방법이 없다면 유치업무 관리자는 피유치자를 적절한 장소로 호송해야 한다. 호송할 수 없을 경우 이들을 유치시설에서 해방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조항은 서구의 법을 가져다 베낀 것도 아니고, 감옥에서 사람이 죽은 사건이 생겨 수습하려 만든 것도 아니다.

1657년 3월에 지금 도쿄인 에도에 커다란 화재가 있었다. 건축물 60~70%가 소실되고 사망자가 10만명에 이른 메이레키 대화재(明歷の大火)다. 1666년 런던 대화재와 함께 근대에 있었던 가장 큰 화재로 꼽힌다. 지금 도쿄 고덴마초에 있던 교도소도 불타고 있었는데 죄수를 풀어줄 이유나 근거가 없었다. 모두가 타 죽는 판에도 죄수를 풀어놓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이곳 책임자 이시데 요시후카는 죄수 120여명을 풀어주면서 불이 꺼지면 아사쿠사의 절로 돌아오라고 했다. 죄수들은 빠짐없이 돌아왔고 이것이 제215조를 만든 계기가 됐다.

기자는 지난해 스티븐 브라이어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을 인터뷰했다. 워싱턴으로 떠나면서 브라이어 대법관의 이름을 담은 도장을 하나 새겼다. 미국 연방대법원 200여년 역사에 아시아 언론과는 첫 인터뷰이기에 작은 선물을 하고 싶었다. 도장을 건네면서 브라이어 대법관에게 “한국에서도 도장을 쓰지 않지만 판사들은 판결문에 찍는다”고 말했다. 21세기 판사가 옥새와 비슷한 도장을 찍는다는 얘기에 흥미로워하는 듯했다. 서구 제도를 이식한 우리 사법제도에서 그나마 한국적인 것을 궁리한 게 도장이었다.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은 기자에게 존 마셜 대법원장 기념주화를 줬다. 존 마셜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헌법재판을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국민의 대표인 의회가 만든 법률을 법원이 위헌으로 폐지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1803년 마베리 대 매디슨 사건에서이고 존 마셜 대법원장이 직접 판결문을 작성했다. 브라이어 대법관은 세계의 헌법재판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세계의 헌법재판을 취재한다는 기자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의 집무실을 가득 채운 오래된 법서들이 브라이어 대법관이 미국 사법역사의 어디에 있는지 설명했다. 경외감이 들었다.

조규광 초대 헌법재판소장이 지난달 별세했다. 지난해는 헌법재판소 개소 30주년이다. 역대 헌법재판관 가운데 세상을 떠난 사람은 셋이다. 이영모 전 재판관(재임 1997~2001), 변정수 전 재판관(1988~1994), 그리고 조규광 전 소장(1988~1994)이다. 나는 운이 좋아 세 사람을 모두 인터뷰했고 그 인연으로 이들 장례에서 모두 분향했다. 내가 우리 헌법재판소 역사를 기록하자고 마음먹은 것은 미국 연방대법원과 일본 최고재판소의 역사를 읽으면서다. 우리나라 사법기관 역사를 기록한 저술이 없었다. 결국 10년 전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재판관들을 찾아다녔고, 그때 지금은 세상을 떠난 재판관들과 만났다. 

초기 헌법재판관들은 해보지 않은 헌법재판을 걱정하면서도, 일본을 거치지 않고 도입한 헌법재판에 흥분했다. 독일과 미국 사례를 연구하고 모방했다. 지금은 사라진 입법촉구를 비롯해 한정합헌, 한정위헌, 일부위헌, 헌법불합치 등을 도입했다. 이에 법원과 의회는 위헌 여부(與否)를 결정하라고 정한 헌법을 넘어서는 것이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헌법이론은 아직 유치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와 같은 훈계성 결정을 자주했다. 초대 재판관들은 법복도 직접 디자인하고 청사 외벽에 새길 무궁화도 재판관 숫자와 같은 9개로 정했다.

당시 비교적 무명이던 조규광 변호사가 왜 초대 소장이 됐는지에 대해서는 4선 국회의원 출신인 한병채 초대 재판관의 증언이 유일하다. “1988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대법원장에 정기승 대법관, 헌재소장에 나 한병채를 내정해 두었다. 하지만 (전두환 시절 인물인) 정기승이 국회에서 동의가 부결되면서 아차 싶었고 내가 자리를 포기했다. 내가 조규광 변호사를 추천했다. 노태우 대통령, 윤길중 민정당 대표, 당사자인 나 3명만 아는 극비사항”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조규광 전 헌재소장은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다.

상주를 모르는 상가에 가는 일은 어색하다. 보통은 상주가 고인을 설명하는데 이런 곳에서는 상주에게 나를 설명해야 한다. 대뜸 기자라고 하면 무슨 일인지 의심하고 걱정하는 눈빛이 된다. 그래서 조규광 전 헌재소장 상가에서도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공현 전 재판관이 분향하고 상주에게 자신을 설명했다. 기자를 발견하고는 “초대 헌재소장이 우리에게 어떤 분인데……”라며 문상하라고 했다. 장례식장을 나오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일본은 이시데 요시후카를, 미국은 존 마셜을 기록하고 기억한다. 우리는 조규광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있을까.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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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신음하고 있다. 대표적인 원인을 꼽으라고 하면 선생님들은 주저 없이 학교폭력(이하 학폭)을 든다. 어느 구에서는 두세 학교를 빼고는 관내 모든 초등학교에서 학폭과 관련된 소송이 제기되어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2011년 학폭이 크게 문제가 되면서 이를 관리하기 위해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폭법)이 만들어졌다. 이후 학폭법에 의해 학폭사항이 생활기록부에 기재되고, 치열한 대학입시경쟁에 영향을 미치면서 학교는 더욱 황폐화됐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상기해보자. 아이들이 싸우면, 때린 부모는 “이놈아, 친구를 그렇게 때리면 되니? 내가 그렇게 키웠니?”라고 말하며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질책하고 타일렀다. 맞은 학생의 부모는 팔다리가 부러지고 병원에 실려가는 정도가 아니라면 “아프지? 친구와는 그렇게 싸움도 하고, 아프면서 크는 거야” 하면서 용서의 마음을 가르쳤다. 그러나 이러한 훈훈한 문화는 사라지고, 지금은 치고받은 아이들은 이미 화해했는데 가해학생의 부모는 가해를 옹호하고 법에 의존하여 가해의 기록이 생기부에 남지 않도록 소송을 제기한다. 이에 맞서 피해학생의 부모는 맞소송을 불사한다.

학폭 자체보다 학폭법에 의한 학폭 관리 문제가 학교를 황폐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학폭문제를 관장하는 생활지도부장을 구하는 일이 일부 학교에서는 신학기에 교장선생님의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학폭처리를 담당한 교사가 소송이 두려워 정당한 학생지도도 기피하는 등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이제 학폭을 둘러싼 갈등이 ‘악순환’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학폭을 다루는 관리프로세스 혹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일차적으로는 학교에서 학폭 관련 갈등을 교육이나 화해로 풀어낼 수 있는 권한과 공간을 확대해주어야 한다. 지금 학폭법에 의하면 학폭은 경미한 것에서 심각한 것까지 9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출석정지, 학급교체, 전학, 퇴학과 같은 중한 조치와는 달리, 서면사과나 학교봉사 등 경미한 사안은 생활기록부에 기록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불필요한 학폭 갈등을 줄이고 학교가 화해로 종결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또한 바로 처벌을 위한 법적 과정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화해를 위한 갈등조정기간을 두고 이 기간 동안 화해할 수 있게끔 하고 사안이 경미하다면 학교장이 종결처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미한 사안인 경우에는 처벌보다는 화해와 교육적 학습의 과정으로 초점을 이동시켜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가해학생이 2차 가해행위를 하지 않도록 보완장치를 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학폭 중 중대한 사안이나 여러 학교 학생들이 연루되어 있는 ‘학교 간 폭력’의 경우 교육지원청에서 학폭심의위원회를 설치하여 다루도록 함으로써 학교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중대사안이 하나만 나와도 한 학기 동안 그 학교는 거의 ‘쑥대밭’이 된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이다.

물론 다른 한편에서는 학폭으로부터 자녀들이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학부모들의 의식이 존재한다. 학폭이 빈발하고 있는 게 사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더욱 강한 학폭 처리방식을 적용함으로써 학폭을 줄일 수 있다고 하는 방식은 한계에 왔다. 이제 학폭 접근법을 대전환해야 할 때라고 나는 믿는다.

<조희연 | 서울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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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제각기 생각에 잠긴 얼굴로 어스레한 산을 올랐다. 마른 나뭇잎과 삭정이가 들러붙은 채 꽝꽝 언 흙길을 걷는 이들의 머리 위로는 산안개와 같은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길게 이어진 행렬의 보폭은 일정했다. 지난 1년간 안 쉬고 걸어왔을 그들은 새해 첫날 첫걸음을 떼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사람들이 산 정상에 올랐을 때 구름 낀 하늘의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가족과 온 아이가 모자를 벗으며 팔을 뻗었다.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해야, 해!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도시 너머로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또다시 도심 한가운데 치솟은 75m 굴뚝 위에서 새해를 맞았다. 어쩌면 그들이 있는 곳은 새해 일출을 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었는지 모른다. 그들은 바다 끄트머리에서 붉게 솟아오르거나 산봉우리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모습을 드러내는 태양과 똑같은 태양을 굴뚝에서 바라봤을 거다. 416번째 태양을 바라보는 그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들도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찬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을 사람들처럼 소망을 빌었을까?

굴뚝 아래 서 있는 사람들은 까마득하게 떨어진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수 없다.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들도 새해 아침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사사로운 바람이 있을 거라는 것. 부모님이 강건하시길, 아이가 무탈하게 잘 자라길, 사랑하는 이가 별 탈 없이 한 해를 살아주길. 그들이 굴뚝에 오른 것은 이렇게 누구라도 품고 있는 소망 때문일 것이다.

1931년 평양 을밀대에 올라 처음으로 고공농성을 한 평원 고무공장 노동자 강주룡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49명의 임금 감하를 크게 여기지 않는다. 이것이 종국은 평양의 2300명 고무 직공의 임금 감하 원인이 될 것이므로 우리는 죽기로써 반대하는 것이다!”

그들은 영웅 따위나 되려고 높은 곳에 오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작은 소망 하나씩 품고 살아가는 평범한 삶을 위해, 그 삶을 지키기 위해 그곳에 있는 것이다. 새해 아침 밝은 빛처럼 곧 그들에게도 밝은 소식이 닿길, 그들이 하루빨리 땅으로 내려와 일상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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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씨는 2013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2014년부터 공무원 일을 시작해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에서 근무하다 2018년 7월 퇴사한다. 그로부터 4개월여가 지난 12월30일, 그는 자신이 왜 기재부를 그만뒀는지에 관한 장문의 글과 영상을 올렸다. 그가 말한 이유는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관료사회가 그대로이기 때문이었는데, 그 증거로 신씨는 두 가지 사건을 언급했다. 정부가 민간기업인 KT&G의 사장 교체에 개입했다는 게 그 하나고, 정부가 돈이 충분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빚을 갚기는커녕 추가로 빚을 지려고 했던 사건이 또 하나였다. 특히 2017년 말 벌어진 두 번째 사건은 국민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빚이 1조원 추가될 때마다 국가가 그에 상응하는 이자 200억원을 매년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1조원의 국채를 갚기로 했다가-이를 바이백이라 한다-하루 전 취소하는 소동을 벌였고, 오히려 4조원의 추가 국채를 발행하는, 즉 빚을 지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유가 뭘까? “금년 국채 발행을 줄이게 된다면 GDP 대비 채무비율이 줄어든다는 것. 정권이 교체된 2017년도에 GDP 대비 채무비율이 줄어든다면 향후 정권이 지속되는 내내 부담이 가기에 국채발행을 줄일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국장이 총대를 메는 바람에 4조원의 국채발행은 없던 일이 됐지만, 그로 인해 국장은 기재부와 청와대로부터 곤욕을 치러야 했다. 신씨는 이런 현실이 이해가 안됐다고 했다. “이런 행태를 문제 삼아서 ‘이게 나라냐’라고 외치면서 정권을 바꾼 것이 아닌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후속기사에 따르면 그의 폭로는 근거가 있다. 2017년 11월15일 정부는 바이백을 취소하는 바람에 채권시장에 일대 혼란을 일으켰는데,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기재부는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 못했다. 윗선의 지시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물론 기재부는 신씨의 주장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국채 추가발행에 대해 여러 기관에서 치열한 토론이 있었고, 그에 따라 내려진 결정이란다. 또한 기재부는 신씨가 사표를 낸 뒤 공무원시험을 담당하는 학원업체와 계약을 한 것을 빌미로 “스타강사 되겠다고 나가더니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신씨의 저의를 의심하지만, 기재부 공무원을 그만두고 학원강사를 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보다 정확한 것은 정권 말기가 되면 알 수 있을 테니, 여기서는 내부고발자 신씨가 겪어야 하는 어려움에 대해서만 얘기하고자 한다.

신씨가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글을 올린 이유는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곳이 되길 바라서라고 했다. 그러자면 자신이 올린 글을 보다 많은 사람이 읽고 분노해줘야 한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요즘 사람들은 글을 읽고 제대로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신씨가 올린 글은 A4 용지로 30장 분량, 글이 길어진 것은 인과관계를 제대로 설명하고 국채, 바이백 같은 경제 얘기를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나처럼 경제에 문외한인 이도 대번에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이 꽤 많았다.

- 글이 너무 기네요. 요약 좀 부탁해요.

- 고시 논술에서 고생 엄청 하셨겠네요. 도대체 뭔 말인지.

두 번째로, 글의 일부분을 가지고 신씨를 매도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씨의 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생각보다 회의를 잘 이끌어 가셨고 국가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대목이 필요한 이유는 그 후 신씨가 최순실게이트를 접하면서 잠시나마 정부를 믿었던 걸 부끄러워했고, 새로 탄생한 정부에 기대를 걸게 됐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는 다음과 같이 매도당한다.

- 박근혜가 국가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 이런 자의 말을 믿으라고?

- 저런 애국심을 가지고 태극기부대로 갔어야지 그동안 어떻게 견뎠나?

셋째, 글의 의도를 곡해하고 메신저를 공격함으로써 폭로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려는 분들이 있었다.

- 2017년 세금이 많이 걷혔다는 건 경기가 호황이었단 건데, 박근혜 때인 2017년이 경제호황이었냐? 너 박빠구나?

- 신재민 주장에 두서가 없네요. ‘학원에서 강의를 하려면 폭로를 해야 한다’ 이게 말이 됩니까? 강사는 내부 폭로자들만 하는 건가요?

- 그냥 자기랑 같이 공부해서 사짜 되거나 대기업 취업한 친구들과 연봉 비교해 보고 빡쳐서 때려치고 스타강사 되려는 사람의 노이즈 마케팅 정도로 이해되구요.

- 신재민인가 하는 애, XXX 학원의 작전 아닌가 하는 의심이?

2, 3번째 부류가 안타까운 이유는, 이들이 정치병에 걸려 고의적으로 글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왜곡은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 긴 글을 읽기 싫어하는, 대다수를 차지하는 첫 번째 부류에게 전달된다. 다수가 믿는 것이 진실이 되는 이 세상에서, 박근혜에게 반대하며 촛불을 들었던 전직 사무관은 ‘박근혜를 그리워하는 젊은 태극기부대원’으로 둔갑한다. 그리고 신씨는, 그 앞선 내부고발자들이 그랬듯,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우리 사회에서 내부고발이 어려운 이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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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강한 나라, 강소국은 크고 강한 나라, 강대국만큼이나 우리가 추구할 목표와는 거리가 멀다. 강대국은 규칙형성자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반면에 강소국은 규칙적응자로서 신속한 전환능력을 발휘해 왔다. 세계도시에 기반한 싱가포르, 카타르, 파나마, 아일랜드 등은 기업식 정부를 표방하고 있다.

미·소의 중재자를 자임했던 북유럽이나 통치하기 어려운 문제에 맞서온 독일이나 프랑스가 우리에게 적합한 학습의 보고이다. 한국이 강중국의 미덕인 국내외 세력충돌의 조정자로 부상하려면 역량과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이에 내셔널은 물론 로컬과 글로벌을 포괄해 거버넌스의 미래를 제안하고자 한다.

내셔널 거버넌스는 경제와 사회를 절충해야 한다. 한국은 이윤을 중시하는 경제적 가치가 우선하는 나라이다. 성장지상주의와 효율만능주의가 조장한 환상과 거품 속에서 형평, 공감, 생태 등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간과해 왔다. 정부가 균형과 융합이라는 공공마인드를 망각하면 기업이익연합체, 전문사업자단체 등에 포획된다. 따라서 혁신적 포용국가에 부응하려면 창의적 기업가의 도전을 촉진하고 위축된 약자들의 안위도 대변해야 한다. 자본편향적 관료 행태나 문화를 혁신하기 위해 시민사회 파견과 교육기회 확대도 필요하다.

로컬 거버넌스는 지방분권을 재검토해야 한다. 지방분권의 동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주민들이 체감하는 실질적 자치가 요구된다. 수도권 규제완화는 강소국 논리이기에 아일랜드나 이스라엘과 같이 격차가 심화된다. 이에 공공기관이나 명문대학의 신속한 이전을 통해 독일이나 네덜란드처럼 특화도시를 조성해야 한다. 세종과 제주라는 특별자치시·도에 부가해 부산, 대구, 광주 등이 지역의 발전역량을 결집시켜야 한다. 마지막 보루를 지키는 심정으로 행정수도와 국제자유도시를 완성하고 세계도시의 육성을 통해 수도권을 발전적으로 해체해야 한다.

글로벌 거버넌스는 미·일에 편중된 기존의 외교패턴을 북방외교와 남방외교로 보완해야 한다. 북한 핵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미국과 일본의 거센 압박을 남북공조는 물론 중국과 러시아의 후원으로 상쇄해야 한다. 또한 중국이 우리의 맞수로 부상한 상태에서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등 남방루트에 공을 들여야 한다. 교역이나 원조 같은 물자교류에 부가해 한류의 확산이나 유학생 유치를 통해 친밀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공공외교가 유용하다.

국가의 크기를 떠나 만국 공통으로 국민들이 원하는 강한 정부는 국가자율성을 발휘해 협소한 이해관계를 타파하고 국민적 이익을 보장하는 정부이다.

<김정렬 | 대구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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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뉴스만 들리는 요즘이다. 그래도 오늘은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발걸음을 지하철로 향했다. 그러다 남자화장실을 청소하는 50대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그냥 지나치려다 먼저 깍듯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덕분에 깨끗한 화장실을 기분 좋게 사용합니다. 감사합니다.” 순간 아주머니 얼굴에 기쁜 표정이 어렸다. 아주머니는 “월급으로 손자 용돈 주는 보람 하나 바라보며 일하는데, 선생님이 해주시는 이런 고마운 말씀 한마디에 이렇게 힘이 나네요”라고 화답했다.

그날 이후 정모 아주머니와 소중한 연을 맺게 됐다. “좋은 일 해주시는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하면서 인사를 건네면 “고마운 아저씨, 안녕하세요?” 하면서 받는다. 정 아주머니는 가끔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만나 속상할 때도 있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사람들이 있어 견딜 만하다고 말하니 나 또한 뿌듯한 마음에 미소가 지어진다.

“아주머니, 아무리 불경기라고 해도 떡볶이는 불황이랄 게 없지요?” 떡볶이를 먹으면서 포장마차 주인에게도 말 한마디 건네본다. “아유, 모르시는 말씀이에요. 불황이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게 포장마차예요. 경기가 침체되면 부모들이 아이들 용돈부터 줄이나봐요. 예전 같지 않아요.” “그러세요? 그래도 그렇게 열심히 일하시면 좋은 일 많이 생기실 거예요.”

기분 좋은 덕담 한마디 건넨 덕분에 어묵 하나를 덤으로 받는 기분 좋은 일이 생겼다.

2019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잠깐 스치는 이웃들에게도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보면 어떨까. 분명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해질 것이다.

<김완규 | 한국산업기술협회연수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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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곳곳에 일본어 잔재가 여전하다.

이은재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회에서 야유나 조롱을 뜻하는 ‘야지’, 견제라는 뜻의 ‘겐세이’, 분배라는 의미인 ‘분빠이’ 등 일본어를 잇따라 사용해 논란이 되었다.

우리가 흔히 쓰는 ‘파이팅’은 일제강점기 군국주의 문화의 산물로 싸우자는 의미의 ‘화이토(fight)’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힘내라’ ‘잘해보자’는 의미로 운동경기나 단체 활동을 할 때 많이 쓰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단어라고 한다. 또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간지나다’는 표현이 자주 쓰이는데, 일본어 ‘간지’에서 유래됐으며 ‘느낌이나 감각’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사건의 경위를 자세히 적은 글’이란 의미로 쓰는 시말서는 일본식 한자의 조합으로, 옳은 표현은 경위서다.

이한섭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명예교수가 쓴 <일본어에서 온 우리말 사전>에 따르면 일본어에서 한국어로 들어온 어휘는 무려 3600여개에 이른다. 대부분 ‘배달’ ‘노가다’ ‘납골당’ 등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단어다. 구라, 생떼, 고참, 무대포, 가처분, 납기, 다대기 등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일상생활 속에서 무의식 중에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어 잔재가 사라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응답자의 27%는 ‘국민들의 무관심 때문’이라고 답했다. ‘일본어 잔재에 대한 교육 및 홍보 부족’이나 ‘정부의 무관심’이란 응답도 각각 26.6%, 26.1%였다.

교육당국과 공공기관은 일제 잔재 언어를 바로잡고, 국어 발전과 보존에 나서야 한다. 또 국민들도 생활 속에서 올바른 언어 사용을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은경 | 서울 동대문구 답신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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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범 100주년이 되는 해다. 3·1운동과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시대정신은 뭘까. 역사학자 강만길은 3·1운동이 참가 인원과 전국적 규모를 생각할 때 그야말로 우리 역사에서 ‘거족적인 운동’이었다고 말한다. 조선 민족이 식민 통치를 달게 받는다고 주장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선전이 허구임을 지구상에 널리 알리고, 민족 자결과 국가 주권을 당당히 요구했던 ‘근대적·국민적 민족해방운동’이 바로 3·1운동이었다.

이러한 3·1운동의 열망을 담아 1919년 4월11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범했다. 3·1운동의 정신은 이날 선포된, 10개 조항으로 이뤄진 ‘대한민국 임시헌장’에 반영됐다.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고, 제3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함’이다. 그리고 제4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신교(信敎), 언론, 저작, 출판, 결사, 집회, 신서(信書), 주소 이전, 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향유함’이다.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공화국이 바로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시대정신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민주’와 ‘공화’가 결합한 ‘민주공화제’란 말이 유럽과 아시아에서 헌법에 사용된 것은 1920년대 이후라는 점이다. 유럽의 경우 1920년 체코슬로바키아 헌법에서, 중국의 경우 1925년에야 헌법 문서에서 민주공화국이란 용어가 쓰였다고 한다. 역사학자 박찬승이 지적하듯, 임시정부가 민주공화제란 표현을 쓴 것은 선구적이고 독창적인 일이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신은 1948년 제헌헌법에서 다시 강조됐고, 1987년 87년헌법까지 그대로 계승됐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독립운동가 조소앙이 기초한 것으로 알려진다. 조소앙은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몽테스키외를 따라 귀족 주도의 ‘귀족공화제’에 대비되는 평민 중심의 ‘민주공화제’를 부각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민주공화국이란 말에는 국민이 주인인 공화국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임은 대한 ‘제국(帝國)’이 아니라 대한 ‘민국(民國)’이란 말에서 이미 천명된 것이기도 했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민주공화국에서 ‘공화국’의 의미다. 공화국을 지탱하는 철학은 공화주의다. 공화주의는 덕성을 갖춘, 공공성에 헌신하는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사회 발전이 이뤄진다는 것을 핵심 이념으로 한다. 또 공화주의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자유주의적 해석을 비판한다. 자유주의가 타인의 간섭으로부터의 ‘소극적 자유’를 중시한다면, 공화주의는 스스로를 지배할 때 진정으로 자유로운 ‘적극적 자유’와 사회 구성원으로 동동한 권리를 누리는 ‘비지배적 자유’를 강조한다.

‘공화국(republic)’이란 말의 기원을 이룬 라틴어는 ‘레스 퍼블리카(res publica)’다. 레스 퍼블리카는 그리스어 ‘폴리스(polis)’에서 유래했다. 한 사람이 지배하는 곳은 폴리스가 아니라고 노래한 이는 그리스 시인 소포클레스였다. 공동의 법과 이익에 의해 결속된 공동체로서의 국가가 곧 레스 퍼블리카, 다시 말해 공화국이라고 주장한 이는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였다. 이처럼 공화국의 이상은 개인이나 소수가 아닌 시민 모두가 주인이 되는 공동체 만들기에 있고, 이러한 정신이 우리 역사에선 1919년 대한민국 임시헌장에 오롯이 반영돼 있다. 지금 내가 강조하려는 것은 올해 2019년이 갖는 역사적 의의가 바로 ‘민주공화국 100년’에 있다는 점이다. 민주공화국의 핵심이 국민이 주인이 되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실현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난 100년을 돌아볼 때, 3·1운동으로 본격화된 민족해방투쟁은 1945년 광복으로 이어졌고, 광복 이후 새로운 나라 세우기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도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토는 분단됐고,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통한 통일시대 개막이라는 민족사적 과제는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다.

민주공화국 100년을 맞이한 현재, 대한민국이 놓인 자리는 우리 사회가 처한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고려할 때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과거 100년과 미래 100년이 교차하는 오늘날, 새로운 100년을 향한 시대사적 과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 양대 과제가 ‘나라 풍요롭게 하기’와 ‘한반도 평화·번영’에 있다고 보고 싶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구현하는 것과 한반도 평화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민주공화국 100년으로 향한 첫발을 내딛는 2019년 올해의 화두가 돼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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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선생님들과 저녁식사를 한 후 일할 것이 더 있어 학교로 되돌아온 늦은 밤이었다. 복도에 선 채 그중 한 분과 남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저편에서 한 학생이 목례를 하고 지나갔다. 평소와 달리 표정이 어두웠다. 무슨 일이 있었나, 마음에 걸렸다.

잠시 후 내 방으로 가려는데 “교수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 그 친구였다. 상의드릴 게 있다고, 잠시 시간 내어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곧장 연구실로 함께 갔겠지만, 마침 그날 저녁 식탁에서 학생들 면담 시 주의할 지침들이 화제가 되었던 터라 멈칫했다. 학생 상담 시 방문을 열어두라, 이성 학생의 경우에는 반드시 둘씩 짝지어 오도록 해야 한다더라, 민감한 내용이면 만일을 대비해서 동의를 구하고 녹음하라 등의 이야기가 오갔던 것이다. 그건 학생을 ‘선생을 무고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원’으로 보는 비교육적 처사라며 절대 나는 그렇게 안 할 거라 반발했으면서도, 막상 그 순간에는 아까 들은 주의사항들이 떠올라 주저하게 되었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이라 답하려다 학생과 눈을 마주친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항상 서글서글했던 그 친구의 눈길이 고통스럽고 절박해 보였다. 뭔지 모르지만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내일 다시 찾아오라 하면 듣지 못할 것임을, 영영 내게는 들려주지 않으려 할 것임을 직감했다. “집으로 가시는 길이면 걷는 동안이라도 말씀드리면 안될까요?” 학생이 재차 청하였다. 원고 작업은 다음날로 미루기로 하고 “그러자” 응하였다. 그리고 풀벌레 소리만 들리는 적요한 밤에 교정 한쪽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들었다.

법적 쟁점에 관해 물어볼 것이 있어 그런다며 학생은 말문을 떼었다. 하지만 한참 들어보아도 해당 사안은 법률조언을 구할 만한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또한 무척 고통스러운 일임은 맞았으나 그 친구의 신상에 직결된 사안이 아니었고, 우리 학내 문제 역시 아니었다. 그러니 ‘법교수님’으로서도, 학과 교수로서도 내가 제시할 해결책은 마땅히 없었다.

위로든 조언이든 들려주어야 할 것 같았지만, 한마디라도 부주의하게 내뱉으면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 같아진 그 친구의 마음에 쨍그랑 금이 그어질까 두려웠다. 맞갖은 어휘와 표현들을 조심스레 고르고 이리저리 배열하는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다음 순간, 학생의 표정에서 타인에게 내보이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속내를 털어놓은 이후 밀려드는 참담한 평온함 같은 것이 읽혔다. 그때 알았다. 이 친구는 지금 위로나 조언을 구하려는 게 아니구나. 누구한테도 말 못한 채 품고 있던 내면의 무거운 돌덩이를 감내하기 힘들어, 상담으로나마 꺼내어 보이고 싶었던 것이구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학생이 겪고 있을 고통의 크기나 밀도는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거기에 오롯이 공감하긴 어려웠다. 그렇지만 상의한다는 구실을 빌려서라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을 간절함만큼은 무엇인지 온전히 알았고, 또 공감했다. 말한 다음 순간 밀려드는 참담한 평온함에 대해서도.

고르고 다듬던 조언의 문장들을 버렸다. 대신 밤늦게 불쑥 찾아와 이런 이야기해서 죄송하다던 그 친구에게 “고마워”라 답했다. 어쩌면 나는 네가 필요로 할 조언을 다 못 줄 테지만 그런 내게 네 이야기를 들려주어 참말로 고맙다고. 나는 네게 좋은 상담자 역할을 못한 걸 미안해하지 않을 테니 너 또한 내게 한밤에 찾아온 걸 미안해하지 않기로 하자고. 네가 말함으로써 조금이나마 후련해진 만큼 나도 ‘듣는 귀’가 되어주어 기쁘다고.

그가 짊어진 돌덩이를 내가 얼마나 덜어줄 수 있을지를 떠나, 적어도 내게 고민을 털어놓았던 것이 그에게 자책의 돌멩이를 하나 더 얹는 일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나 역시 언젠가 상의드릴 것이 있다며 찾아가 돌덩이를 꺼내놓던 나로 인해 놀랐을 누군가에게 이해되었기를 빌었다. 저마다의 돌덩이를 짊어진 채 사회적 관계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나와 그대들이 새해에는 때때로 테두리를 뜯고 서로에게 ‘듣는 귀’가 되어주기를, 또 거기에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은 ‘우리’가 되어가기를 소망한다.

<이소영 | 제주대 교수 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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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71명이 정리해고 사태 이후 9년여 만에 경기 평택시 쌍용차 공장으로 다시 출근했다. 현 쌍용차 노동조합과 해고자로 이뤄진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 쌍용차 사측,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등 노사정이 지난해 9월 합의한 복직안이 이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노사정은 남아있는 해고자 119명 전원을 단계적으로 복직시킨다는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냈다. 이날 복직하지 못한 나머지 해고자들은 올해 상반기까지 일터로 돌아가게 된다. 2009년 사측이 2600여명의 노동자에게 구조조정을 통보하며 시작된 ‘쌍용차 사태’는 지난 9년 동안 30명의 해고자와 가족들이 희생되는 등 한국 사회 최악의 노사 문제였다. 2018년의 마지막 날을 장식한 이 비극적인 사태의 종결은 혹독한 세밑 한파를 녹이는 따뜻한 소식이었다.

힘찬 새출발 10년 만에 복직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31일 오전 경기 평택시 쌍용차 평택공장으로 출근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쌍용차 해고자들의 복직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사회적 대타협이 만들어낸 최초의 성공 사례다. 하지만 지난해 시도된 다른 많은 사회적 대타협들은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노사정이 힘을 합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광주형 일자리’ 협상은 타결 막판까지 이르렀다가 결렬되고 말았다. ‘카풀(승차공유 서비스)’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 기구는 택시 업계의 반발로 출범 직전에 멈춰 섰다.

한국 사회는 이외에도 노사정의 대화를 바탕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내야 할 사안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공식 출범한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에만도 탄력근로제 확대,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국민연금 개혁,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 문제 등 국민들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많은 사안들이 계류돼 있다. 사회적 대타협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를 보다 살 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정부와 노동계, 재계는 한발씩 양보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 2019년에는 쌍용차 해고자 복직과 같은 아름다운 사회적 대타협이 더 많이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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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특별감찰반 소속이었던 김태우 수사관이 제기한 민간인 사찰 의혹 등을 따지기 위한 국회 운영위원회가 세밑에 열렸지만 허망한 공방만 벌이다 끝났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출석시킨 가운데 자유한국당은 실체 확인을 별렀지만, 기존 의혹들을 재탕하는 수준에 그쳤다. 한국당은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을 조직적으로 벌였다며 조 수석을 ‘사찰 몸통’으로 규정, 사퇴 공세를 펼쳤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는 비리에 연루된 김 수사관의 “희대의 농간”(조국 수석)이라고 맞섰다. 결국 12년 만에 민정수석을 출석시킨 운영위는 “위선과 일탈에 양두구육 정권”이라는 식의 야당의 정치공세와 “사건의 본질은 국정농단 세력의 반격”이라는 여당의 상투적 반격으로 점철되면서 정작 의혹 해소와는 거리가 멀었다.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오른쪽)이 3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서울대 법대 동기인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로지 한 개인의 일방적 폭로에 의존한 한국당의 공세는 태생적으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한국당은 민간인 사찰,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 등 첩보 묵살, 공공기관 임원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 등에 대해 파상 공세를 폈으나 막상 설득력 있는 근거나 ‘추가 팩트’를 내놓지 못했다. 새로이 제기된 청와대의 KT&G 사장 교체 개입과 국채 발행 압박 의혹을 두고도 마찬가지다. 블랙리스트에 따라 쫓겨났다는 김정주 전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환경기술본부장의 녹취를 한국당이 공개했으나, 그가 20대 국회 새누리당 비례대표 23번이었고 임기 3년을 정상적으로 마쳤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운영위를 통해서도 진실이 가려지기는커녕 공방만 확대 재생산된 꼴이다. 민간인 사찰 의혹은 제기된 것만으로 심대한 사안이기에 필히 진실이 규명되어야 한다. 이제는 소모적인 정치공방을 멈추고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할 때다. 청와대 압수수색까지 벌이며 수사를 본격화한 검찰이 명명백백 진상을 밝히길 기대한다. 그것과 별개로 청와대는 특감반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잘못을 냉철히 살펴보고, 기강을 가다듬는 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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