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터넷 사업자는 국내법상 존재하는 각종 규제를 준수해야 하지만 해외 사업자는 동일한 법 적용을 받지 않고 있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현저히 저하되고 있다. 이 역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업자에게 똑같은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 이 같은 주장이 방송통신위원회와 관련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나와 인기를 얻고 있다.

적반하장이다. 국내 인터넷 기업을 ‘차별’하는 것은 정부와 국회가 우리나라에서만 유일하게 만들어 적용하고 있는 갈라파고스적 규제들이다. 게시물이 불법이 아니라도 요청만 있으면 30일간 게시물을 차단해야 하는 임시조치제도, 게시물이 불법이 아니라도 ‘건전한 통신윤리 함양을 위해 필요’하다면 삭제차단하겠다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제도, 우리 국민이 접속하는 웹사이트로서 자본금 1억원 이상이면 무조건 신고해야 하는 부가통신사업자신고제도가 그렇다. 또 불법물을 사전차단하지 않으면 형사처벌까지 당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 의무조항들, 청소년유해물도 아닌 인터넷게임을 하려는 성인들도 실명 확인을 하라는 인터넷게임실명제, 이들 실명제를 위한 온라인상의 본인 확인 방식도 이동통신사의 배만 불리는 고비용의 휴대폰 본인 확인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강요하는 본인확인기관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외에도 PC방을 포함한 모든 스타트업들의 전용회선료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이고 있는 발신자부담 종량제 상호접속고시, 모든 온라인 결제와 행정민원 서명에 공인인증서를 요구하는 공인인증서제도, 자정부터 새벽 6시 사이에 청소년은 잠을 자야 한다는 폭력적인 전제로 만들어진 게임셧다운제, 진실이나 감정 표현도 불법물로 분류하는 명예훼손 법규가 국내 기업들을 괴롭혀 왔다.

이 법들이 공익적으로 좋은지 안 좋은지를 지금 다투지 않겠다. 중요한 것은 이 규제들이 OECD 국가들 중 우리나라에만 존재하고 있으면서 우리나라 인터넷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역외적용론’은 마치 미국에서 1950년대에 법률로 유색인종들은 기차와 버스의 앞에 못 타게 했는데 그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백인들도 기차와 버스의 앞에 못 타게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도대체 어느 나라가 자국 규제 때문에 기업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두고 ‘역차별’이라고 부르면서 외국기업에 부담을 돌리려 하는가? 갈라파고스제도로 사고를 쳐놓고 갈라파고스적인 해법을 내놓는 형국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위에서 말한 법들 모두 애시당초 국내에서 활동하는 해외 인터넷 기업에 적용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정보통신망법, 전기통신사업법, 개인정보보호법 등 어느 법도 그 적용이 국내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기업으로 한정되어 있지 않다. 실제로 2009년 구글이 유튜브의 한국세팅에서 게시기능을 떼어냈던 이유는 당시 정보통신망법상 인터넷실명제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당연히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또 해외 인터넷 기업들은 국내망을 통하지 않으면 국내에서 활동할 수 없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는 망사업자에 대한 권한을 통해 불법적인 콘텐츠를 제공하거나 불법영업을 하는 외국 웹사이트를 차단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구글 본사가 부가통신사업자 신고를 안 한다고? 전기통신사업법상 징역 2년에 처해지는 범죄이고 유튜브 사이트는 이를 ‘교사 방조하는 정보’이므로 방통심의위의 심의를 거쳐 차단하면 된다.

법도 있고 집행력도 있는데 외국업체에 대해 집행하지 않는 이유는 규제당국 자체가 규제가 너무 갈라파고스적임을 알고 있어 집행의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역차별’에 대한 해답은 자명하다. 부가통신사업자신고제도, 임시조치제도 등 갈라파고스적 제도들을 없애서 규제환경을 국제수준과 비슷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관련 토론회에서 국내 인터넷 기업을 대표한 이상적인 발언이 나왔다. “규제가 규제를 낳고 있는 형국이다. 역차별 논의 반대한다.” 역차별론으로 더 이상 국민을 가두지 말라.

<박경신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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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전 의원이 마포에 퓨전 일식집을 차렸다. 환갑을 넘긴 그는 자신의 노후를 고민하다 ‘먹고살기 위해’ 일식집을 차렸다고 한다. 국회의원에 떨어지고 낭인 생활을 하다 근래엔 대표 보수논객으로 하루에 한 번 이상 방송 출연이 잡혀 있을 만큼 ‘폴리테이너’로 잘 나가는 중이다. 많은 이들이 저 나이에 비슷한 이유로 외식업에 진출하고 젊은이들은 좋은 일자리가 없어 진출한다. 미래의 노후 걱정은 어쩌면 사치다. 당장의 생계가 문제다. 그래서 몸 하나 저당 잡아 버티는 외식업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엔터테이너’에 가까운 정 전 의원이 진출한 외식업은 본래 연예인들의 부업으로는 가장 흔한 업종이기도 하다. 직접 경영을 하기도 하지만, 초상권을 팔아 치킨이나 피자, 순댓국 간판에 얼굴을 건다. 홈쇼핑에 등장해 아예 홍보·판매에 나서기도 한다. 그들이 가진 자원은 연예인이라는 인지도 자체다.

국내 자영업자는 통계로 보면 567만명이지만 가족고용 형태가 많아 700만명 정도로 본다. 이는 전체 취업자 중에서 25%에 육박한다. 그중 외식업은 통계로만 보면 11% 정도지만 도소매업과 직간접적 연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영업에서 외식업 비중은 20% 내외로 볼 수 있다. 자영업은 스스로를 노동자로 고용해 자신이 봉급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오너’, 즉 사장님이라고는 통상 부르지만 노동자일 뿐이다. 건물을 소유하지 못했으므로 도시의 소작농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조금이라도 잉여를 남기기 위해 결국 최후의 수단인 뼈와 살을 갈아 넣는 방식으로 버텨온 지 오래되었다. 이 현상이 진정한 ‘국가부도’의 실체이다.

정 전 의원은 이 세계에 뛰어든 것이다. 마포구 소재에 직원 8명을 둔 58석 규모의 일식집으로 그의 처가 실제 경영자이고 자신은 ‘셔터맨’ 혹은 ‘얼굴마담’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는 개업한 지 열흘도 안 돼서, ‘내가 해 봐서 아는데’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직접 자영업에 뛰어들어보니 최저임금 때문에 지금 정부는 망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자신의 식당에서 한달에 3000만~4000만원의 임금이 나간다면서 버텨낼지 걱정을 하고 있다. 직원 8명에 저 정도의 임금이 나간다면 직원 한명당 400만~500여만원의 임금이 나간다는 것이다. 고급 일식집이어서 경력이 아주 뛰어난 요리사들을 데려왔다 하더라도 500만원 정도를 줘야 할 요리사라면 최저임금과는 처음부터 무관하다. 

강남급은 아니지만 여전히 핫플레이스인 마포의 건물 60여평 임차비(자신이 건물주가 아니라면)에, 식자재비, 운영비 등을 생각하면 정 전 의원 부부가 가져갈 돈이 얼마일지 아직 계산이 안 나왔을 것이다. 첫 월급을 줄 날짜도 아직이다. 자영업 업태에서 요식업은 가장 말단의 업태다. 여러 고민 끝에 그래도 자신의 몸 하나 갈아 넣고 가족들을 건사하려고 뛰어든다. 정 전 의원은 무엇을 갈아 넣고 있는지 궁금하다. 대다수의 사장님들은 가게를 차리자마자 언론에서 취재를 오지도 않고 ‘얼굴마담’도 없이 오로지 스스로 버티고 있다. 하다못해 식당이 안 되면 방송이나 유튜브에 나가 돈이라도 벌 수 있는 정두언의 처지가 부러울 뿐. 그래도 기왕 열었으니 자영업자들의 실상을 잘 깨닫고 좋은 정책 많이 제언하시라! 특히 건물 임차인 보호에 대해서는 꼭 한 번 자영업자의 입장에서 작심 발언을 해 달라.

<정은정 |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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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밤 서울, 보신각 주변은 묵은해와 새해가 교차하는 시간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붐빈다. 아쉬움과 설렘으로 사람들은 평소와 달리 순간과 순간의 시간에 마음을 쏟는다. 번잡하던 거리는 차분해지고, 주위 사람들도 정겹게 느껴진다. 일상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이다. 하지만 새로움은 이내 빛이 바래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일상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 지배한다. 공간은 무언가를 ‘하는’ 곳이다. 무언가를 내 것으로 만들어 자신을 끊임없이 확장하는 곳이다. 자연에서 더 많은 것을 끌어내고, 더 많은 생산과 소유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공간은 소리 없는 싸움터가 되었다. 시간은 공간을 위해 필요할 뿐, 그 자체의 의미는 사라졌다. 시간은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것으로 소비된다. 언제나 ‘더’를 외치는 우리에게 시간은 늘 모자란다. 이동과 소통수단이 발달할수록 더 모자란다. 아무리 시간을 아껴도 우리는 늘 바쁘다. 아니, 아낄수록 바빠진다.

그러나 시간이 공간보다 더 근원적인 삶의 토대다. 공간은 시간이 허락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을 잘 모른다. 공간과 달리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간은 언제나 낯설게 다가온다. 우리는 낯선 시간을 피해 익숙한 공간으로 달아나, 일에 몰입한다. 하지만 시간을 외면하는 한 온전한 평화는 없다. 우리의 존재 자체를 앗아갈 마지막 순간을 영영 외면할 순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거대한 피라미드를 쌓아도 시간의 문제를 풀 수는 없다. 공간에서 만든 것은 모두 소멸하지만 시간은 영원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안식’은 공간에 가려진 시간의 의미를 밝혀준다(아브라함 헤셸, <안식>). 성서는 하느님이 창조를 모두 마치고 이렛날에 ‘안식’했다고 말한다. 히브리어로 안식은 ‘멈춤’에서 나왔다. 안식은 하느님이 자신이 창조한 세상을 바라보는 멈춤의 시간이다. 안식은 우리에게 공간에서 하던 일을 멈추라고 말한다. 안식으로 들어서면, 우리의 관심은 소유에서 존재로 향한다. 공간 속에는 ‘자기 것’이 있지만, 시간 속에는 ‘자기’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 속에 머물며 앞만 보며 달려온 자신의 삶을 마주본다.

삶을 관조하는 안식은 경쟁과 효율을 위해 생명과 안전을 내팽개친 세상의 실체를 보여준다. 오늘날 세상이 말하는 풍요는 약자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착취의 결과다. 태안화력발전소 청년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으로 불거진 ‘죽음의 외주화’ 논란에도 이윤의 극대화에 최적화된 비정규직 제도는 요지부동인 것을 보라. 지역경제 운운하며 아직도 호시탐탐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을 노리고, 불과 며칠간의 올림픽 스키경기를 위해 가리왕산의 자연원시림을 밀어버리고는 복원 약속을 번복하는 강원도의 행태를 보라. 안식은 정신없이 돌아가는 착취와 죽음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통로가 된다. 비윤리적이고 반생태적인 현실을 일깨워주는 안식은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할 동반자이며 세상 만물이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준다. 안식은 탐욕의 해독제이며 생태적 회심의 길잡이다. 안식이 축복이자 거룩한 시간인 까닭이다.

새해를 맞아 한 해의 평화를 간절히 바라지만, 우리가 지금처럼 생산과 소유와 소비에 집착하는 한 유한한 자원과 무한한 욕구의 세상에서 갈등과 분쟁은 불가피하다. 간디의 말대로, 지구는 모든 사람의 필요는 충족시킬 수 있어도 모든 사람의 탐욕은 충족시킬 수 없다. 아니, 단 한 사람의 탐욕도 충족시킬 수 없다. 탐욕이 아닌 필요의 충족에 만족하려면 안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바쁠수록, 더욱 필요하다. 안식을 통해 우리는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서도 시간 저편, 영원을 향해 두려움 없이 나갈 수 있다. 우리는 더 우리 자신이 되고 세상은 진정 더 풍요롭고 평화롭게 될 것이다. 잊지 말자.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프란치스코 교종, <복음의 기쁨>).

<조현철 |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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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10일부터 4일간 프랑스 파리에서 제12차 문화다양성 보호 및 증진 협약 정부간위원회가 열렸다. 24개 대표 위원국을 포함해 참관 회원국 및 민간 전문가, 시민사회 활동가 등 250여명이 참석해 역대 가장 많은 참가자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유엔이 주관하는 국제기구 연례회의라는 것이 통상 사전에 조율된 내용들을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하여 최종 결의문을 채택하는 것이 관례여서 다소 지루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의제별 각국의 발언들이 갖는 함의와 그 행간의 의미를 따져보면 매우 흥미진진하다. 특히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지원을 하는 국가들과 지원을 받는 국가들, 영어권 국가들과 프랑스어권 국가들, 그리고 이 양자에 속하지 않는 제3영역에 속한 국가들 간에 문화다양성을 놓고 벌이는 논의들은 세계문화 현 흐름의 구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협약 회원국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높은 편이다. 국가부담금이나 비공식 지원금 규모도 아주 높은 편이고, 본부의 의제들을 국가별로 이행하는 데 있어 솔선수범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과 인도네시아와 함께 대표 위원국이어서 이번 회의에서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이해와 요구를 본부에 잘 전달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팔레스타인이 2011년에 유네스코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전체 예산의 22%를 부담했던 미국이 탈퇴하는 바람에 현재 유네스코 본부의 재정 상태가 악화일로에 있고, 일본 역시 아직 문화다양성 협약 비준을 하지 않은 터라, 프랑스어권 국가를 제외하면 이 협약에 대한 한국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문화다양성 협약은 2005년 체결 당시 스크린쿼터 문제로 사회적 쟁점이 되었을 뿐, 정작 2010년 국회 비준 이후에는 문화 및 사회정책의 중요한 국제협약으로 간주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문화다양성 협약은 국회 비준 이후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문화 정책 중심으로 한정해 다뤄지고 있어 아쉽다. 사실 문화다양성 협약 안에 담긴 내용들은 전 지구적 문화다양성을 구성하는 문화적 표현, 언어, 정보, 기술 등등의 세부 영역에 대해 국가와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번 12차 회의에서 다뤄진 의제들과 쟁점토론만 보아도, 문화다양성의 의제들이 광범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8년도 본 협약의 글로벌 리포트에는 “디지털시대의 문화적 표현에 대한 로드맵 가이드라인 개발” “문화정책 디자인과 모니터링” “예술가 지위에 관한 권고 설문” “문화상품/서비스의 흐름에 대한 지표 개발” “국가개발계획에 문화-창의산업 통합” “성평등 관련 정보 수집 및 프로그램 진행” “예술가 표현의 자유 관련 활동”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4일간 회의 중간중간에 배치된 토크쇼 역시 “인공지능: 크리에이터들에게 새로운 작업환경인가” “디지털 환경에서 문화다양성 증진을 위한 가이드라인 이행 로드맵” “당신의 예술적 자유란 무엇인가?”와 같은 최근 문화정책의 주요 사안들을 다루었다. 문화다양성 협약의 국제 담론은 국내 문화정책에서 간주하고 있는 범위와 영역을 훨씬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문화다양성은 이제 더 이상 다문화 정책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태와 올 초 들불같이 일어난 미투 운동의 파고를 딛고 새로운 국가문화정책의 근간을 다시 세우는 ‘문화비전2030 : 사람이 있는 문화’를 최근 만들었다. 민간 전문가 20여명이 주도해서 만든 보고서의 3대 가치는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이다. 이번 정부간위원회 회의에서 다루었던 많은 내용들, 특히 권리로서 문화다양성, 예술인의 표현의 자유, 젠더평등과 여성예술인의 참여, 창의성 확산을 위한 문화정책의 역할, 협치와 협력을 위한 문화 거버넌스는 ‘문화비전2030’의 9대 의제들과 47개 대표과제의 중요 내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비전에 담긴 의제들만 잘 실행해도 한국은 문화다양성 협약을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한 나라가 될 것이다.

<이동연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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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오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71명이 경기 평택시 쌍용차 공장으로 들어섰다. 9년여 만의 첫 출근이다. 지난해 9월 회사와 노조,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해고자 119명을 올 상반기 안에 단계적으로 복직시킨다는 데 합의했다. 그 시각, 파인텍 해고자 홍기탁·박준호씨는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에서 고용과 생계 보장을 외쳤다. 이날로 415일째 고공 농성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노동존중사회’를 표방하며 노동개혁을 약속했다. 이어 노동소득 분배를 통한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주 52시간 근무제 확립 등을 제시했다. 취임 사흘째인 2017년 5월12일에는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다. 두 달 뒤에는 20만5000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최저임금을 16.4% 인상하고, 7월에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주 52시간제 시행에 들어갔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원대했다. 모두들 ‘촛불정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힘찬 새출발 10년 만에 복직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지난달 31일 오전 경기 평택시 쌍용차 평택공장으로 출근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노동존중’은 지속되지 못했다. 재계의 저항이 거세지면서 실행은 지지부진했다. 많은 공약은 굴절되고 수정됐다. 재계는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이 고용과 경기를 악화시킨다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고용 하락, 물가 상승 등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정부는 재계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여야만 했다. 공공기관은 물론 기업의 정규직 전환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최저임금은 2019년 인상률이 10.9%에 그치면서 ‘1만원 공약’ 실현이 어렵게 됐다. 주 52시간제 역시 현장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위반 사업장에 대한 처벌 유예기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새해 들어 문재인 대통령은 연일 경제활력을 강조하고 있다. 민생경제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이해되지만, 취임 초 강조했던 ‘노동존중’의 목소리는 약해졌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자료에는 ‘노동자’ 대신 ‘근로자’라는 용어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노동부 장관은 ‘노동존중’에 앞서 ‘고용 하락’을 우려한다. 이재갑 장관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노동계의 목소리를 반영하려다 일자리 수를 놓쳤다”고 말했다. 재계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노동개혁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노동단체들은 노동자의 단결권·교섭권 확대를 위해 정부에 국제노동기구(ILO) 핵심조항 비준을 요구하고 있지만, 성과는 없다. 오히려 정부는 재계가 요구해온 탄력근로시간제 확대, 최저임금 속도조절 등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자는 기업과 함께 경제를 이끌어가는 양대 축이다. 경제활력을 이유로 권리나 존엄이 침해받아서는 안된다. 오히려 노동이 존중받을 때 기업과 경제 모두가 튼실할 수 있다. 취임 전 문재인 대통령은 “성장정책의 맨 앞에 노동자의 존엄, 노동의 가치를 세우겠다”고 말했다. 집권 3년차를 맞아 노동개혁이 지지부진해지면서 노동자의 삶과 존엄이 무너지고 있다. 정부가 ‘위험의 외주화’를 방치하는 사이에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는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3년째 고공에서 굴뚝농성하는 해고 노동자들을 언제까지 ‘노사 간 풀어야 할 문제’라며 방관할 것인지 묻고 싶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9년 만에 복직할 수 있었던 것은 경사노위를 통한 정부의 중재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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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 사건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3일 신 전 사무관이 자살소동까지 벌이면서 주요 관심사로 떠오른 형국이다.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을 요약하면 청와대가 민간기업인 KT&G 사장 인사에 개입하고, 기재부에 국가의 빚을 늘리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다. 기재부는 의혹을 부인했다. 기재부는 나아가 지난 2일 신 전 사무관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자유한국당은 ‘80년대 민주화운동 이후 최대의 양심선언’이라고 규정하며 정부를 성토하고 있다.

이 사건의 본질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국채 발행에 대한 청와대 업무지시의 정당성 여부이며, 다른 하나는 공무상 비밀누설이다. 신 전 사무관은 2017년 12월 청와대가 박근혜 정부의 국가채무비율을 높이려고 39.4%라는 숫자까지 주면서 적자 국채 발행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청와대 관계자의 이름까지 거론하면서 “전화를 걸어와 관련 보도자료를 취소하라”고 압박했다고 했다. 이에 청와대는 “청와대와 정부가 정무적 판단을 하고 조율하는 것은 당연한 업무”라고 해명했다. 이에 앞서 신 전 사무관은 지난달 29일 기재부가 청와대 지시로 KT&G 사장을 교체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주장도 했다. 이에 대해서도 기재부는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신 전 사무관의 폭로 성격도 관건이다. 기재부는 ‘공무원으로 얻은 정보를 불법적으로 유출해 정부정책 수행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신 전 사무관은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제보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여기에 한국당이 신 전 사무관의 폭로를 소재로 연일 정부를 공격하면서 사안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정치공방 이전에 진상규명이 중요하다. 기재부 국채 발행 과정에 대한 청와대의 지시가 과연 양심적 고발 대상에 해당하는 부당한 압력인지, 또 KT&G 사장 교체 압력이 사실인지 밝혀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진상규명이 이뤄지기 전에 기재부가 신 전 사무관을 고발한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공익제보자의 입을 막기 위해 과잉 대응하는 것이란 불필요한 논란만 초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치권도 차분하게 진상규명 과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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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고시원·쪽방 등 비주택 거주자의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주선한 주거복지센터 등 비영리기관들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임대료가 밀렸다는 것인데, 해당 기관들은 “좋은 일 해주고 소송당했다”고 하소연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주거복지로드맵’을 발표하면서 “공공임대주택 100만가구를 짓고, 형편에 따라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주거복지사다리’를 놓겠다”고 밝혔다. 취약계층에는 고시원이나 쪽방, 비닐하우스 등 비주택 거주자 37만가구도 포함된다.

정부는 LH 등을 통해 이들이 시세보다 30% 싸게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권유해왔다. 이 과정에서 이들 취약계층이 일터에서 멀다는 등의 이유로 입주를 기피하자 복지관이나 주거복지센터 등 비영리 법인을 위탁기관으로 내세워 입주를 유도했다. 그런데 입주자 중 일부가 질병이나 해고 등을 이유로 장기간 임대료를 연체하자 LH 측은 태도가 달라졌다. 위탁기관인 비영리 법인을 상대로 밀린 임대료를 지급하고, 임대주택도 비워달라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소송에서 질 경우 거주자들은 다시 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그렇다면 취약계층의 주거난을 해소하겠다는 정부 구호가 무색하다.

애초 LH가 비영리기관에 공공임대주택 재임대를 한 것 자체가 문제다. 제3자 매매를 막기 위한 재임대 금지규정을 이 사업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허용한 것이다. 관리체계도 엉성했다. LH가 직접 거주자와 계약을 맺고, 임대료 체불 문제에 대해서는 주거급여 등을 통해 해결했어야 한다. 성과에만 급급하다 해결책을 놓친 셈이다. 정부의 주거복지사다리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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