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남북 철도 연결 착공식이 있었다. 경의선과 동해선이 중국·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연결되어 유럽까지 이어질 계획이다. 성사되면 남북한 교류가 확대되어 한반도 긴장 완화가 이뤄지고, 육로로 대륙 진출이 가능해져 각종 경제적 효과가 클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우선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는 철도 공동조사에 대해서만 제재를 면제했다. 국토교통부는 철도 연결 및 현대화 비용으로 약 6조7044억원을 예상하지만, 노후한 북한의 열차 교체, 전력수급상의 문제 해결, 해안선을 따라 배치된 북한 군부대 이전비용 등 실제 소요비용의 규모는 현재로서는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오른쪽)과 김윤혁 북한 철도성 부상이 2018년 12월 26일 개성 판문역에서 개최된 ‘동·서해선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에서 철도 침목에 서명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제공

특히 철도 연결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을 결정할 법 규범이 부재한 상황이다. 남북 철도가 여객을 운반하고 대륙까지 연결되면 다양한 법적 쟁점들이 발생할 것이다. 열차 내 범죄 발생, 열차에 탑승한 범죄자의 타국 도주, 열차 사고 및 지연운행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 및 보상, 승객들 간의 분쟁 등이 있을 때 경찰권 및 재판관할권을 남북 어느 쪽이 갖는지가 논란이 될 수 있다. 불가피한 사유로 정시 출발이 이뤄지지 못해 후속 열차들이 지연되면 새 열차시간표 배정이 즉각 이뤄져야 한다. 중국 및 러시아 철도와 연결될 경우에는 더욱 긴요해진다. 2004년 ‘남북열차운행기본합의서’(약칭)에 의한 일방통보 운행조정방식은 갈등만 야기한다. 열차사고가 발생 시 사고 수습, 인명구조, 사후조사를 담당할 법적 주체를 정해야 하는 것도 시급한 사안이다.

새로운 남북합의서가 필요하다. 남북합의서는 2013년 ‘개성공업지구 합의서’(약칭)가 인정한 수준 이상으로 남한 승객의 신체·주거·재산권의 불가침성을 보장해야 한다. 남한 승객이 열차 탑승을 꺼리지 않도록 경찰권의 주체도 확실하게 정해야 할 것이다. 기존 ‘남북철도운영공동위원회’보다 긴급한 사안을 처리하기에 적합한 전담기구 설치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 외에도 예상하지 못한 난제들을 최소화하기 위한 내용을 담아야 한다.

따라서 3가지 제도를 면밀히 분석해 치밀하게 대비해야 한다. 남북 철도를 규율하는 법체계는 남북합의서를 근간으로 하고, 남측·북측 법령이 공존했던 개성공업지구법제도와 유사할 가능성이 높다. 개성공단법제를 검토해 그동안의 미비점과 문제점들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해 관련 법령들을 만들 필요가 있다.

동·서독은 1971년 12월17일 최초의 실무협정인 ‘동·서독 간의 일반시민과 화물교통에 관한 협정’(약칭)을 조약 형식으로 체결해 양측의 철도 운행을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 이 협정의 정확한 내용과 실제 적용 사례를 연구해 남북합의서의 기본틀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은 지난해 6월7일 북한·중국·러시아 등 28개국이 모인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에 가입함으로써 ‘국제철도화물운송협약(SMGS)’ 적용을 받게 되었다. 남북합의서에 불명확한 부분이 있거나 미비한 사항이 있을 경우에는 협약에 따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해진 점은 다행이나, 협약의 구체적 내용과 적용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정부는 관련 부처와 연구기관들이 협업할 수 있는 제반 환경을 조성해 법제도를 제대로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철저한 대비와 완벽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김정현 전북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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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동북부의 가난한 마을에 사는 한 할머니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사실 그곳까지 간 이유는 버림받은 마을을 살려낸 공동체 은행의 성공사례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마을 사람들이 살던 곳은 원래 해변가에 있는 어촌마을이었다. 1970년대 초 정부가 해변을 관광지로 개발하겠다고 나선 후 이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에서 뿌리째 뽑혀났다. 사람들은 물도, 전기도, 집도 없는 허허벌판으로 집단 강제이주를 당했다.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은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다. 그들은 주민회를 조직하고 직접 돌을 날라 학교를 세웠다. 집을 짓고, 수도를 놓고, 전기를 연결했다. 공동체 은행에서 무담보로 소액대출을 받아 기술을 익혔다. 지역 경제가 조금씩 선순환을 이루기 시작했다. ‘작은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할머니는 그 마을의 ‘산증인’이었다. 그는 황망히 그곳까지 빈손으로 밀려나 천막을 짓고 살아야 했던 시절의 옛 기억을 더듬었다. 공동체 은행에서 배운 재봉기술과 소액대출이 그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나는 할머니가 이야기할 때마다 마치 추임새처럼 “그건 대략 몇년도쯤의 일이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의 지난 삶을 통해 마을의 역사를 좀 더 생생히 보여주려 했던 것이니 불필요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리고 사실 어려운 질문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마치 한평생 살아오면서 가장 어려운 질문이라도 받은 양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주 대략이라도 좋아요. 몇십년대였다고만 이야기해주셔도 돼요.” 

그는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단 하나의 시점도 대답하지 못했다. 연세가 많아 혼동하거나 헷갈린 것이 아니었다. 마치 연도에 대한 감각이 백지 상태인 것 같았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그에게 오히려 더 당혹해한 건 나였다.

나는 1980년대에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199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며, 2000년대에 직장인이 되었다. 나의 삶은 새로운 계단을 오를 때마다 시작과 마무리라는 단계를 거쳐가며 시간과 함께 앞으로 흘러왔다.

그러나 할머니 삶의 8할은 ‘어제’가 없는 삶이었다. 살아남는 것만이 목표인 똑같은 하루하루의 반복. 할머니의 삶에 ‘작은 기적’이 일어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삶은 언제나 고달팠다. 화려한 호텔이 즐비하게 늘어선 해변 관광지와 그곳에서부터 불과 23㎞ 떨어진 그 마을은 지금도 여전히 딴 세상 같다. 어제 같은 오늘과 오늘 같은 내일이 끝없이 반복돼 온 그에게 해가 바뀌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으리라.

“전 마포구 아현동에 월세로 어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3번의 강제집행으로 모두 뺏기고 쫓겨나 이 가방 하나가 전부입니다. 추운 겨울에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갈 곳도 없습니다. 3일간 추운 겨울을 길에서 보냈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합니다.”

지난해 12월3일 서울 망원유수지에서 철거민 박준경씨(37)의 유서가 발견됐다. 그가 살았던 동네는 저소득층이 저렴한 주거비를 찾아 모여드는 도심 속 달동네 같은 곳이었다. 재건축 사업시행 인가가 떨어진 후 한때 2357가구가 살았던 그 동네는 폐허가 됐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10년 동안 세들어 살았던 집에서 지난해 9월 쫓겨났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5만원으로는 서울 하늘 아래 갈 곳이 없었다. 그는 철거촌을 떠나지 못하고 물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빈집을 전전해야 했다.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합니다.”

그 한 줄의 문장 속에 담겨있는 절망의 무게가 가슴속에 박혀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다”는 말은 사실 ‘오늘 같은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내일이 오지 않는 것이 두렵다’는 뜻이다.

우리는 매년 해가 바뀔 때마다 더 나아질 내일을 꿈꾸면서 다가올 새해 계획을 짠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움직여왔다. 그러나 우리 곁에는 당장 눈앞의 하루를 살아내는 것조차 버거워 ‘내일’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에 갇혀 새해를 빼앗긴 사람들. 우리는 그들에게 새해를 빚지고 있다.

지금의 법대로라면 2019년에도 재건축 지역의 세입자들은 박준경씨처럼 이주비 보상 한 푼 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24세 비정규직 청년 김용균씨가 사망했지만, 태안화력발전소 1~8호기 컨베이어벨트는 해가 바뀐 지금도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우리는 아직 박준경과 김용균을 잃은 2018년에 멈춰 서 있다.

어제가 지나가고 오늘이 끝났다고 해서 내일이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내일이 오지 않으면 어제도 없다. 새해가 새해가 될 수 있는 것은 지난 해들이 과거가 될 때만이다.

새해는 아직 오지 않았다.

<정유진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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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한낮의 서울 광화문은 한적했다. 이른 아침 지하철로 버스로 이곳에 달려온 사람들은 높은 빌딩 숲으로 꼭꼭 숨어버렸고, 점심때 잠시 거리를 휩쓸고 지나간 그 사람들은 해가 떨어지기 전에는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 바쁜 도시는 광화문 한가운데 놓인 영정 속에서만 존재하게 된 스물넷의 청년을 벌써 잊었을지 모른다.

안전모를 쓰고 마스크를 한 채 자신의 간절한 바람을 적은 종이를 들고 서 있는 영정 속의 청년, 그 청년도 그날이 아니었다면 월요일 한낮 자신의 일터에서 점심 한 끼 급하게 때우고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 아래 서 있었을 것이다. 그가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일하기에 도시는 일을 하고, 밥을 먹으며, 살아 숨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곳에 없다.

“여기 있는 분은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가 돌아가셨어.”

세월호 분향소를 둘러보던 가족의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가 영정 속 청년 앞에서 고개를 숙이자 두 아이가 얼른 그 뒤에 섰다. 초등학생 아들은 엄마의 도움을 받으면서 서툴게 향에 불을 피워 영정 앞에 놓았다. 아마 아이는 분향소를 떠난 뒤 부모에게 물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저 형은 일하다가 왜 죽었는가? 아이의 물음에 과연 부모는 뭐라고 답할까? 우리 사회는 고작 나이 스물넷 된 청년이 죽은 이유를 제대로 답할 수 있을까?

작업장에서 쓰는 손전등조차도 지급받지 못한 비정규직 청년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리고 동료들이 딛고 서 있는 곳이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외쳤을 것이다. 당신들은 언제까지 모른 체할 거냐고.

해가 떨어지고 광화문을 메운 수많은 빌딩에는 환하게 불이 밝혀졌다. 온종일 분향소에 앉아 있으면서도 마음이 아파 똑바로 마주하지 않은 청년의 영정을 바라봤다. 그의 형형한 눈빛이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간절했던 눈빛을 진즉에 세상이 받아줬더라면, 그는 이곳에 이리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죽음으로 세상이 조금 바뀐다 해도, 그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그게 비통하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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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을수록 새해 소망은 소박해진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면 오히려 연말에 씁쓸해진다고 경험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12월31일과 1월1일 사이의 그 언제쯤 “아는 척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지난 한 해를 치밀하게 반성하고 생각해낸 계획은 아니었다. “SNS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자”도 새해 계획의 후보로 떠올랐으나 도저히 지킬 자신이 없어서 “아는 척하지 말자”를 거의 억지로 새해 계획으로 생각해낸 것 같다.

대충 생각해냈기에 참으로 빈틈이 많은 계획이었다. 겸손하게 살자는 다짐 정도로 이해하면 슬쩍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새해가 지난 며칠 후 어느 책에서 비트겐슈타인의 그 유명한 명제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를 다시 만나게 되자, 나의 새해 결심은 이른바 무식해서 용감한 경우에 해당됨을 깨달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가르치는 게 직업인 사람은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을 하는 순간 존재의 이유가 의심받는다고 생각하기에, 무엇이든 반드시 “설명”하고 싶어 한다. ‘설명할 수 없음’을 숨기려고 오히려 더 열성적으로 설명하려 들 때, 더 이상 해서는 안되는 악행 중 하나로 꼽히는 이른바 ‘훈장질’이 시작된다.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단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척하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훈장 취급받는 것이다. 그 훈장이 “설명”할 수 없기에 ‘말할 수 없는 것’에 부딪히면 설명하지 않으면 된다. 훈장질을 하지 않도록 돕는 유일한 방법이다. 단순한 이치인데도 설명의 입이 유독 발달한 사람은 이렇게 쉬운 해결책을 선택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빅이슈’, 이른바 주거취약계층 재활 잡지이다. 1991년 영국에서 창간되어 현재 11개국에서 발행되고 있다. 주거취약계층에게 합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서 경제적인 자립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만들어지는 잡지다. 한국어판은 2010년부터 발행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지하철역 입구나 거리에서 판매원으로부터 구입할 수 있고 다른 지역의 경우 정기구독이 가능하다. 홈리스가 ‘빅이슈’ 판매원이 되기로 결심하면 2주 동안의 임시 기간을 거친 후 정식으로 ‘빅이슈’를 팔 수 있다. ‘빅이슈’는 한 권에 5000원에 판매되는데, 5000원 판매액 중 절반인 2500원이 ‘빅이슈’를 판매하는 사람 즉 ‘빅판’에게 돌아간다. ‘빅이슈’는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정보에 의거해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  

‘빅이슈’는 사물이다. 사물은 설명이 가능한 대상이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는 다르다. ‘빅이슈’를 판매하는 사람, 즉 ‘빅판’을 설명할 수 있을까? 직업 명칭은 그 사람이 수행하는 기능은 가리켜도 그 사람의 인생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이 수행하는 기능과 그 사람 사이의 격차를 무시하고 혹은 외면하고 감히 그 사람을 기능만으로 설명하려 든다면 오만하다. 오만함을 감지했다면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게 필요하다.

‘빅판’이라는 기능을 수행하는 ‘임상철’씨라는 사람이 있다. 18년 동안 홈리스였고 6여년간을 ‘빅판’으로 지내고 있다. 임상철씨는 현재 홍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빅이슈’를 팔고 있다. 그는 자신을 설명하는 혹은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고, 그 글과 그림을 ‘빅이슈’에 끼워 판매했다. 설명의 대상이기만 했던 사람이, 자신을 설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글은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된다.

추천사를 써달라는 요청으로 이 책의 원고를 읽었다. 아니 임상철씨가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했던 사회학자의 오만을 되돌아보는 반성문의 형식으로 추천사를 썼다. “설명”하는 입만 발달한 전문가로만 가득 찬 사회, 자신에 대하여 발언할 기회를 골고루 보장하지 않는 사회는 문제가 있다. 늘 자신이 수행하는 기능이 “설명”의 대상이었던 사람이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은 귀하다. 그 귀하고 흔하지 않은 순간을 맞이하면 우리는 설명하는 입을 잠시나마 닫고 경청의 귀를 쫑긋 세워야 한다.

오늘 ‘빅이슈’를 팔고 있는 임상철씨를 홍대입구역 3번 출구로 만나러 갔다. 그리고 이 책의 독자에게 꼭 전할 말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사람들은 길거나 짧은 인생의 여정에서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살아갑니다. 저도 저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고 지금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나갈 생각”이라며 자신의 인생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빅판’ 임상철은 ‘빅이슈’를 팔지만, 사람 임상철은 예술가가 되려는 꿈을 포기하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다. 그가 파는 ‘빅이슈’엔 ‘빅판’의 기능과 사람 임상철의 꿈이 담겨 있다. 그렇다. 누구나 기능으로 환원될 수 없는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다. 임상철씨 덕택에 새해 결심을 바꾸었다.

새해는 나에게 입을 여는 시간만큼이나 귀를 활짝 열고 듣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노명우 아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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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류층 저택 단지에서 입시를 두고 벌어지는 암투를 그린 드라마 <SKY 캐슬>이 화제다. 과장된 상황 전개에도 불구하고 이게 바로 우리 교육의 현실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이 드라마의 웃음 코드 가운데 하나는, 잘나가는 대학병원 의사이면서 허당 기질이 다분한 정준호 분 강준상 교수의 행태다. 나의 전공 탓이겠지만, 그중 유독 눈에 들어온 장면이 있다. 미리 입수한 정보를 활용해서 국회의원의 환심을 사려던 강 교수가 한자로 적힌 여주(驪州) 신륵사(神勒寺)를 마천 신혁사로 잘못 읽는 해프닝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화백

그러나 ‘驪’와 ‘勒’을 쉽게 읽을 수 없는 시청자라면 그냥 웃어넘기기엔 뭔가 찜찜하다. 한글로 쓰면 될 것을 굳이 한자로 써서 망신을 주는 설정이 와 닿지 않아서일까, 오히려 강 교수의 볼멘 항변에 공감이 간다. “저희 땐 한자를 안 배웠습니다. 학력고사 과목에 없었거든요.” 학력고사 전국 1등의 수재라 하더라도, 대학 입시와 상관없는 내용은 몰라도 당당한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국권을 빼앗기고 타의에 강제된 근대화를 겪으면서 한문으로 표기된 전근대 문물은 부정의 대상이었고, 이는 해방 이후 한글 전용의 전격 시행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 말과 글을 제대로 구사하기 위해서라도 한문 교육은 여전히 필요하다.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 한문 교육의 의의와 내용이 실려 있고, 이를 흥미롭게 구현한 교과서들이 나와 있으며, 전공 교육을 충실히 받은 교사들이 양성되고 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의 한문 교육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대학 입시에 영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글 전용이 세대를 넘긴 지금, 한문 교육이 우리의 민족 자존감을 무너뜨리거나 전근대적 가치관으로 회귀시킬 것이라 우려할 필요가 있을까? 그보다는 동아시아의 일국으로서 어휘 및 문화 교육의 측면에서 한문 교육의 실용성이 다시 부각되는 시대다. 교육과정의 선택과목 체계에서 한문과의 위상을 재배치하고, 대학 입시에 편중되는 중·고등학교 시수 편성을 정상화하는 원칙 수립이 시급하다. 대학들도 온전한 고등교육을 위한 최소한의 한문 실력을 입시 전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교육이 철학과 비전 없이 방향성 없는 경쟁으로만 치닫다 보면, 여주를 마천으로 읽는 실수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더 큰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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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전쟁 후 귀향길에 나선 오디세우스는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가 사는 동굴에 갇힌다. 거인에게 잡아먹힐 위험에 처하자 오디세우스는 불에 달군 말뚝으로 거인의 눈을 찔렀다. 누구냐고 소리치는 거인에게 오디세우스는 ‘우티스’(Outis)라고 말했다. 비명을 듣고 달려온 거인의 친구들이 누구의 소행이냐고 묻자, ‘우티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친구들은 “아무도 안 찔렀다니 어쩔 수 없네”라며 돌아가버렸다. ‘우티스’는 ‘아무도 아닌 자(Nobody)’라는 뜻.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우티스’라고 호명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했다.

압록강을 건넌 연암 박지원이 요동에 묵을 때의 일이다. 이슥한 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 “거 누구냐”고 소리 지르니, 청나라 순찰병이 “도이노음(島夷老音)이오”라고 대답한다. 연암은 그 말이 “되놈”임을 알아차렸다. 그러면서 청나라 사람들이 ‘되놈’이 자신들을 낮춰 부르는 호칭인 줄 모르고 아무렇지 않게 쓰는 것을 보고서 포복절도한다.

어떻게 부르고, 불리느냐가 존재를 규정한다. 신분을 규정하고, 때로는 오디세우스처럼 생사를 가른다. 호명은 호칭을 통한 관계 맺기이다. 호칭은 상대방을 인정하는 동시에 구별짓는다. 그것은 서열과 연령, 친밀감, 격식에 따라 다르다. 한국 사회가 특히 심하다. 처한 위치와 부부관계에 따라 아내 호칭은 여보, 당신, 아무개 아빠, 자기 등으로 갈린다. 상대에게 말하는 아내 호칭도 아내, 마누라, 와이프, 안사람, 내자 등으로 달라질 수 있다. 직장, 학교와 같은 조직에서 구성원을 어떻게 부르느냐는 매우 민감한 문제다. 한국어의 복잡한 존칭에는 수직적 위계를 중시하는 한국문화의 특성이 배어 있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한국어 학습의 가장 어려운 점으로 존칭법을 꼽곤 한다.

서울시교육청이 교사, 학생 등 구성원 사이 호칭을 ‘○○쌤’이나 ‘○○님’으로 통일하기로 했다. 구성원들이 원할 경우 교장선생님과 학생 간에도 ‘○○님’이라고 부르도록 했다. 수평적 호칭제를 통해 직위와 직급의 구분을 없애고 상호존중하고 배려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다. 서울교육청의 실험이 성공해 학교 구성원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풍토를 이뤘으면 한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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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의 마지막 날, 나는 강남의 한 심리상담소를 찾아갔다. 취재 때문에 혹은 그 밖의 여러 이유로 몇 군데의 심리상담소를 방문한 경험이 있는데 내가 유독 그런 곳만 방문한 건지, 대부분의 심리상담소가 그런 곳에 있는 건지, 찾아가는 곳마다 좁은 복도에 굳게 닫힌 문들만 늘어선 오피스텔에 있었다. 사무실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직원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상담사 혼자만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대개의 상담이 일대일 만남이니 당연할 수는 있는데, 굳게 닫힌 오피스텔 사무실을 여자 혼자 방문하는 데에는 일말의 불안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곳에 지인이 살고 있다고 해도 그럴 텐데, 만나는 사람이 그전까지는 모르던, 누군가의 소개가 알고 있는 전부인 낯선 사람이라면 공간의 폐쇄성은 유독 강하게 와 닿기 마련이다. 요즘처럼 험한 세상에, 안에 누가 있을지,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심리상담을 하는 사람 중에 특이한 사람도 많다던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디로 어떻게 도망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된다. 실제로 우려했던 불운을 겪은 적은 없고, 오히려 문을 열고 나면 그 이전의 의심과 의혹이 미안해지기 마련인데도 번번이 그렇다. 특이한 사람을 만난 적은 있지만 그 정도의 경우는 일상의 만남에서도 존재한다.

그날도 역시 그런 비슷한 과정을 거친 만남이었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길에 나는 기분이 묘해졌는데, 우울증 이력을 가진 이가 자신의 전문의를 흉기로 살해한 기사를 읽게 된 탓이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는데, 그건 새삼 좁은 복도에 굳게 닫힌 문만 있는 사무실에서 마음을 앓는 이를 기다리는 상담사들의 마음도, 그 복도를 걸어서 처음으로 문을 열어야 하는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였다. 환자와 의료진으로 붐비는 대형병원도 환자들의 폭력에 그토록 무방비 상태라면 저런 곳은 거의 사각지대에 가깝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들의 사무실을 방문할 때마다 우울은 왜 광장으로 나오지 못하는가 하는 궁금증이 든다.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도 치료를 하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닫힌 공간은 여러 의미로 위험해 보인다. 심리상담에 관심을 가지면서 나는 이런 형태의 심리상담소가 매우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런 상담소를 찾아가는 이가 제법 많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심리상담 문화가 생각보다 꽤 보편화되어 있는 셈인데 특이한 건 대부분의 상담이 개인 상담소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입원을 필요로 하는 중증의 상태가 아니라면 대체로 병원을 꺼렸다. 개인 심리상담의 비용이 병원보다 높은 경우에도 그렇다. 사람마다 이유가 다르겠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병원 진료를 받을 시 남는 치료 이력과 약물 처방에 의존하는 병원의 진료방식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대안처럼 선택되는 많은 개인 상담소들은 과연 적당하고 합리적인 치료를 받기에 안전한 곳일까. 유감스럽게도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같다. 현재 한국의 심리상담사 자격증은 면허제가 아닌 자격증제로 이뤄진다. 물론 자격증을 얻기 위해서 일정 시간의 연수 등 까다로운 과정을 통과해야 하지만 어느 곳이 신뢰할 만한 곳인지는 경험으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우울과 공황이 감기만큼이나 흔한 현대인의 질병이 되어가고 있는데, 그 질병에 대한 대책이나 치료에 대한 공신력 있는 안내는 딱히 찾을 수가 없는 셈이다.

우울을, 마음의 병을 광장으로 끌어내자는 말은 정말 조심스럽다. 생각해보면 그 병은 오래전부터 광장에 나와 있다. 단지 처벌받고 있을 뿐이다. 지난해 말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고인의 유족들은 그 참담한 슬픔 속에서도 고인의 뜻이 “마음의 고통이 있는 모든 분들이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 없이, 누구나 쉽게, 정신적 치료와 사회적 지원을 받”는 데 있음을 되새겨주는 발표를 해 마음 아프게, 그러나 더할 수 없는 존경의 마음으로 들었다. 그건 아마도 마음의 고통이 끌려나온 광장이 처벌의 광장이 아닌 치유의 광장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지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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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전 사무관의 폭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신재민씨의 독특한 스타일, 정치권의 과도한 공방 등으로 사안이 복잡해졌지만, 내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건 당시 차관보가 카톡방에 보낸 문자이다. “핵심은 GDP 대비 채무비율을 덜 떨어뜨리는 겁니다.” 아직까지 공식적 부정이 없는 걸로 봐선 실제 문자라고 판단된다.

당연히 재정정책을 두고 청와대와 기획재정부가 협의할 수 있다. 당시에 진행되었다는 재정운용 방향 논의도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등장한 ‘채무비율 조정’은 지나치게 정무적이다. 차관보가 자신의 주관적 느낌을 자조적으로 적은 글일 수도 있지만 설령 그러하다 해도 고위 공무원이 정책결정과정에서 권력 핵심부에게서 그러한 분위기를 느꼈다는 건 가벼운 일이 아니다.

청와대가 KT&G 사장교체를 지시하는 등 부당한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모든 정책은 재정으로 통한다.” 세상을 떠난 후에 출간된 <진보의 미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쓴 글이다. 그는 뜻을 다 펴지 못한 아쉬움을 가슴에 품고 ‘진보의 나라는 어떤 걸까, 이를 위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일까’를 묻고 답을 찾아가다 힘주어 강조한다. “재정은 그 정부의 철학을 말한다.” 집권 초기부터 국가재정법을 제안하고 재정전략회의를 도입하며 재정의 역할을 강조했던 그의 문제의식이 응축된 문장이다.

문재인 정부 3년째다. 노무현의 바람이 구현되고 있을까? 아쉽게도 재정정책에서 묵직한 기둥이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이 그렸던 ‘진보의 나라’는 문재인 정부에서 ‘나라다운 나라’로 깃발은 계승되었으나 이를 위한 재정전략은 불명확하다.

당선 2개월 후 문재인 정부는 사실상 인수위원회 보고서인 국정운영 5개년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총 178조원의 공약 재원방안이 담겨 있다. 대선공약집과 최종 수치가 같다. 그런데 내역이 너무도 다르다. 지출 절감이 92조원에서 60조원으로 축소되고 기금여유자금은 20조원에서 35조원으로 증가했다. 세입 재원은 완전히 다시 작성되었다. 세수실적 호조를 반영해 초과세수 61조원이 추가되고 대신 세법 개정과 탈루세금 과세로 61조원을 만들겠다던 공약이 17조원으로 대폭 줄었다. 당황스럽다. 불확실성이 큰 ‘세수 호조’를 근거로 제도적 재원 방안을 이리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니. 공약집과 5개년계획의 발표 시차는 불과 80여일, 두 문서 모두 동일한 세력이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는 재정정책에서 어떤 정체성을 지닌 걸까?

집권 이후 초과세수도 의문을 낳는다. 2016년 이래 매년 예산에 비해 20조원 이상 세금이 더 걷히고 있다. 물론 세금이 남으면 지방교부세를 지원하고 국채도 일부 갚고 추경예산도 편성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 문제는 초과세수가 반복된다는 점, 즉 매번 세수 예산이 실제보다 작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가을로 돌아가 보자. 2018년 세입 예산안으로 268조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2017년 국세 수입 265조원에 비해 고작 4조원 증가한 규모이다. 당해 세금 징수액이 예측되는 시점임에도 비슷한 금액을 다음해 예산안으로 내놓았다. 그 결과 2018년에도 대략 25조원 이상의 초과세수가 예상된다. 올해는 어떤가? 정부는 세입 예산안으로 299조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작년 세수 실적치를 단지 몇 조원 웃도는 수준의 금액이다. 정부는 기본 추계방식을 따랐다고 말하지만, 어느 정도 의도된 건 아닐까라는 불편한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이러한 초과세수는 예산안 편성에서 지출을 제약하고 나아가 증세 논의를 억누르는 효과도 낸다. 마냥 반길 일이 아니다.

재정정책의 방향을 상징하는 핵심 지표인 조세부담률 목표도 실망스럽다. 정부는 정기국회 때 예산안과 함께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제출한다. 앞으로 5년 계획을 담은 재정운용계획은 상반기에 골격이 짜이는 문서라 5월에 취임한 문재인 정부 첫해에는 기존 정부의 기조가 남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 2년차인 작년에 국회에 제출된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주목하는 이유이다. 여기에 명시된 조세부담률은 2022년에도 20.4%, 이미 작년에 20%를 웃도는 상황에서 현재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강한 선언이다.

신재민 논란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도 재정정책을 되돌아보기 바란다. 국가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시민들의 재정에 대한 관심이 높다. 더 투명해야 하고 묵직한 비전이 담겨야 한다. 노무현은 이야기한다. 결국 재정이 큰 나라가 진보의 나라라고. 이를 위해선 과감하게 복지를 늘리고 세금도 올렸어야 하는데 자신은 못하고 이렇게 물러간다고. 그리고 그 회한을 담아 역설한다. “재정은 그 정부의 철학을 말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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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관련 사건 재판에 나오지 않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구인영장이 발부됐다. 광주지법은 지난 7일 열린 재판에 전씨가 건강 상태를 이유로 불출석하자 다음 공판기일을 3월11일로 지정하고 그날까지 유효한 구인영장을 발부했다. 다음 공판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할 경우 강제로라도 법정에 세우겠다는 뜻이다. 전씨가 갖가지 이유를 들어 재판을 회피해온 만큼 당연한 조치다.

전씨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해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표현한 혐의(사자 명예훼손)로 지난해 5월 기소됐다. 이후 전씨 측은 재판 연기를 신청하고 관할 법원을 옮겨달라고 요구하는 등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킨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지난해 8월 첫 재판에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이유로 출석을 거부하더니 이번에는 ‘독감과 고열로 외출이 어렵다’며 나오지 않았다. 형사재판은 원칙적으로 피고인이 출석해야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 기소된 지 8개월이 넘도록 법정에 나오지 않는 전씨의 행태는 법치를 부정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국가 형사사법 체계에 도전하는 오만한 행태를 더 이상 용납해선 안된다.

7일 오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 사건 2차 공판이 열리는 시간에 태극기 부대등 보수인사들이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 부근 골목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전씨는 5·18 당시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내란의 수괴다. 비록 사면되었다고는 하지만 대법원이 최종 확정한 ‘사실’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광주의 영령 앞에 무릎 꿇어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그는 회고록에서 스스로를 “광주사태의 제물”로 칭하며 5·18을 능멸했다. 본인의 망동으로도 부족했는지 부인 이순자씨까지 최근 “남편은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망언으로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조 신부가 증언한 헬기 사격이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 조사에서 사실로 확인되는 등 속속 진실이 드러나는데도 역사를 왜곡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들의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스스로 걸어나오든, 강제로 끌려나오든 전씨는 3월11일 광주지법 재판정에 설 수밖에 없게 됐다. 88세의 고령을 감안할 때 역사와 시민 앞에 속죄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본다. 재판에 성실하게 임하는 것이 속죄의 출발점이다. 법정에서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조 신부 유족과 광주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기 바란다. 만약 다음 재판에도 출석을 거부한다면 법원은 구인영장을 집행해 법의 엄중함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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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2기 청와대’가 출범했다. 대통령비서실장과 정무수석·국민소통수석이 교체됐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친문(親文)’ 인사의 전진 배치다. 노영민 신임 비서실장과 강기정 정무수석은 과거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의 비서실장과 선대위 중책을 맡았거나 문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이던 시절 정책위의장을 지내는 등 대표적 친문 인사로 꼽힌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참모진에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측근을 기용하는 건 장단점이 다 있다. 인재풀의 과감한 확대로 청와대 전면 쇄신을 기대했던 시민들은 친정체제 구축에 부정적일 수 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에 대한 직언과 소통이 더 활발히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왼쪽)이 8일 노영민 신임 비서실장과 함께 춘추관에서 ‘2기 청와대’ 참모진 명단을 발표하며 웃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 개편 필요성은 진작부터 제기돼 왔다. 그동안 청와대는 부처 간 불협화가 공공연하게 노출되고, 직원들의 기강 해이 사건들이 꼬리를 물면서 어수선한 분위기에 휩싸여 왔던 게 사실이다. 경제는 악화일로요,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는 작금의 국정상황을 놓고 여권 내부에서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당초 예정보다 비서실 개편이 앞당겨진 것도 이런 비판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9일엔 비서관 후속 인사를 하고, 뒤이어 설 연휴 무렵에는 상당한 폭의 개각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 집권 3년차를 맞아 국정동력을 되살리기 위한 여러 조치들이 가시화하는 느낌이다.

문재인 정부 1기 비서실이 변화와 개혁을 주도했다면, 2기 비서실은 시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구체적 성과를 내야 할 책임이 막중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정운영의 중심을 청와대에서 내각으로 옮기고, 부처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 야당과의 협치는 필수다. 야당과 보수진영의 의견도 듣고 정책 수행과정에서 이들에게 설명해주며 참여를 유도하는 통 큰 자세를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청와대는 권력의 오만에 빠진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청와대 4급 행정관이 육군 참모총장을 카페로 불러내 만난 건 ‘청와대 정부’란 말이 왜 나오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청와대 대변인은 “못 만날 이유가 없다”고 했지만, 시민들의 눈엔 상식적이지 않다. 최고권력기관인 청와대가 시민에게 다가가려면 더 자세를 낮추고 소통하는 겸손함이 전제돼야 한다.

문 대통령은 신년 들어 연일 성과의 체감을 강조하고 있다. 8일 국무회의에서도 “보고서상의 성과가 아니라 국민이 일상의 삶 속에서 체감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성과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번 비서실 개편이 국정의 고삐를 바짝 죄고 초심을 지켜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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