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지상주의가 악마를 낳았고, 희생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국민을 충격과 분노로 몰아넣은 조재범 전 국가대표 쇼트트랙 코치의 선수 상습 성폭행 사건은 체육계에 널리 퍼져 있는 성적제일주의에서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결과만을 최고로 여기는 환경이 현장의 부조리를 눈감아주고,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9일 노태강 제2차관의 긴급 브리핑을 통해 체육계 성폭력 비위 근절을 위한 각종 대책을 발표하고 재발 방지 노력을 약속했다. 선수 성폭행 사건이 알려진 뒤 문체부 전 직원이 출근해 밤새 브리핑 자료를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문체부는 먼저 자신들의 문제점을 돌아봐야 한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과도한 목표를 설정하고 현장에 강요한 이들이 정부였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4년 12월16일 대한체육회는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대비 종목별 경기력 향상대책 보고회’를 열고 평창에서 금8·은4·동8개로 종합 4위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전체 금메달 8개 중 빙상연맹의 몫은 7개. 쇼트트랙에서 5개, 스피드스케이팅에서 2개를 딴다는 내용이었다. 금메달 7개는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 전체가 거둔 종합 5위(금6·은6·동2) 성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빙상연맹의 목표는 최대치를 강요한 문체부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발표를 마친 김재열 빙상연맹 회장은 단상에서 내려온 뒤 “자발적으로 설정한 목표인가”라는 질문에 고개를 숙이며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지 큰일”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새 정권에서도 정부는 한국 선수단의 성적이 국내에서 열리는 평창 올림픽의 성공으로 직결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개막을 3개월여 앞둔 선수단 격려 현장에서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목표를 달성하면 선수들의 이름으로 시를 짓겠다”고 했었다.

성적제일주의는 지상명령이 되어 현장 관계자들을 옥죄었다. 언어 폭력, 폭행 등의 수단도 묵인됐다. 선수 성폭행 사건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진 곳은 태릉·진천 국가대표 선수촌과 한체대 빙상장 등의 지도자 라커룸이다. 코치가 선수에게 가하는 위해 상황이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장소지만 성적지상주의에 매몰된 현장에서는 이를 모른 채 눈감는 식의 결과로 이어졌다. 국가대표 훈련의 관리 책임을 빙상연맹, 대한체육회를 넘어 정부에도 묻게 되는 이유다.

<김경호 선임기자 | 스포츠부 jero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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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매일 먹는 것이라고는 조밥에 나물 반찬에 지나지 않는다. 몹시 힘들여 별식을 만들어 봐야 뭉텅이로 썬 떡에 형편없이 싱거운 술이다. 귀공자가 이 모습을 보고 비웃는다. ‘이렇게 하찮은 것을 먹으니 어찌 병이 나지 않을까?’ 부잣집은 하루 식비로 일천전(錢)을 써 기린을 삶아 죽 끓이고, 용을 썰어 젓갈 담근 듯한 천태만상의 기이하고 야릇한 음식을 밥상에 벌여 놓는다. 시골에서 글깨나 읽은 사람이 이 모습을 보고 탄식한다. ‘저렇게 사치를 부리니 어찌 망하지 않을까?’”

조선 문인 심노숭(沈魯崇, 1762∼1837)이 쓴 <제향루집서후(題香樓集敍後)> 속 한 구절이다. 아주 정통적이고 고답적인 글쓰기와 보다 가벼운 글쓰기 사이의 차이, 그 둘의 엇갈림에 관한 맥락에 놓인 구절이지만 ‘컵밥’과 ‘파인다이닝’이 엇갈리는 시대에 굳이 다시 읽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글쓴이는 실로 잘 먹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잘 먹고 산 사람이다. 소고기라면 구이·전골·산적·육포·장조림 등 갖가지로 해 먹어치웠다. 구이용기는 벽장에 따로 보관했다. 돼지고기에 대해서는 라드를 입속에 녹여 먹는 한편 비계를 저며 불에 구워 먹는 섬세한 미각을 발휘했다.

수산물로는 철철이 잉어·청어·전복·복어·도미·게장·어리굴젓을 즐겼다. 쑥국, 미나리강회도 즐겼고 보기 드문 차 애호가였다. 수박·참외·대추·밤·배·감 또한 제철을 놓치는 법 없이 되들이로 먹어치웠다. 성균관대 안대회 교수에 따르면 심노숭의 별명 가운데 하나가 ‘감에 미친 바보(枾癡)’다. 쉰 살 넘어서도 감 60~70개를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미식가답게 김치 취향도 남달랐다. 서울의 음력 2월 미나리소 김치는 꿩고기보다 양고기보다 맛나다고 했고, 여기다 청포묵이며 탕평채를 곁들일 줄도 알았다. 이 김치는 거위알보다 흰 일등급 분원 사기에 내야 했다. 그의 음식 기호, 취향에 대한 고백은 메밀국수 앞에서도 번뜩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메밀국수이다. 메밀국수를 품평하면 평안도 지방 것이 최고이고 차게 조리한 것이 더욱 좋다. (중략) 며칠 사이에 한 번이라도 먹지 못하면 마음이 즐겁지가 않다.”

그가 남긴 식료의 목록, 음식의 이름, 조리 방식, 관능과 미각의 표현은 오늘날의 음식 글쓰기에 견주어 빠지는 데가 없다. 오늘날 통념의 평균이 모여 있는 위키피디아 영어판에 따르면 ‘음식 글쓰기(food writing)’란 넓은 뜻에서든 좁은 뜻에서든, 음식이라는 글감에 집중해서 쓴 글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음식평론가적인 작업과 음식 역사가의 작업 둘 다가 포함된다. 심노숭이야말로 음식에서 표현에다 품평에다 당대 기록을 겸한 인물 아닌가.

그러므로 더 궁금해진다. 서울 귀공자의 비웃음과 시골에서 글 좀 읽은 시골 사람은 어디서 만날지, 만날 수 있을지. 그런데 귀공자는 비웃다 말았다. 시골 사람은 탄식하다 말았다. 조밥과 용죽은 서로 등을 대고 서 있을 뿐이다. 모양 없이 덩이지게 썬 떡과 기기묘묘한 음식 사이에 접점도 통로도 없다.

위 인용문은 바로 <논어> 향당(鄕黨)편 속 한 구절인 “밥은 잘 찧은 쌀로 지은 것을 싫어하지 않았고, 회는 가늘게 썬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는 공자(孔子)의 식생활로 이어진다. 귀공자나 시골 사람이나 공자의 일상 식생활을 배우면 된다고 했다. 이는 컵밥도 필요해서 나왔고 파인다이닝도 찾는 사람이 있으니 있다는 식의, 원칙론에 원칙론을 포갠 미봉이다. 그래서 섭섭한가, 아쉬운가 내 속내를 들여다본다.

섭섭하다. 아쉽다. 그런데 그만큼 고맙기도 하다. 오늘날 저마다 심노숭이다. 제 기호와 취향을 드러내는 연출 방법과 말글의 수사에서 그렇고, 그 드러냄을 통해 음식에 대한 제2, 제3의 욕망과 선망을 만들어가는 데서도 그렇다. 문자를 뛰어넘는 영상 덕분에 심노숭보다 더한 점도 있다. 그러고서는, 기호와 취향을 드러낸 다음은 여전히 공백이다. 모색과 상상력의 미봉이 그의 찬란한 수사 덕분에 더욱 또렷해진다. 아쉬움이 이정표다. 새해 하고도 며칠, 미봉한 채로 흐른 200년을 음미한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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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의 70%는 물이고 우리 주변의 물건들은 70%가 플라스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플라스틱 없는 세상을 생각하기가 힘들다. 가볍고 물성이 뛰어나며 값이 상대적으로 싸서 널리 쓰이는 플라스틱(plastic)은 그 어원이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에 있듯이 원하는 형태로 가공이 용이하다는 특징이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플라스틱의 대부분은 석유화학공정을 통해 생산된다. 플라스틱의 또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썩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자연계에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미생물들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로 이 마지막 특성 때문에 사용 후 폐기된 플라스틱은 오랜 기간 분해되지 않고 남아 있게 된다. 인류가 지난 수십년간 만들어낸 플라스틱의 양은 약 83억t으로 계산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최근에도 인구 증가, 산업과 사회의 발전 등으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연간 3억5000만t 정도가 생산되고 있다. 석유화학산업은 우리나라 경제에 있어서도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이제까지 만들어진 플라스틱 중 약 9%만이 재활용되었고, 12%가 태워졌으며, 79%는 모두 땅속에 폐기물로 묻었거나 버려졌다. 이렇게 버려진 플라스틱의 일부는 하천을 따라 바다로 흘러들어간 뒤 원형순환 해류 등의 이유로 오랜 기간 모여져서 우리나라 크기의 약 10~15배에 달하는 큰 플라스틱 섬들을 이루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버려진 플라스틱들은 해양과 육상 생물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80%에 달하는 해상쓰레기가 플라스틱이고 바다 새들의 90%가 플라스틱을 배 속에 가지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일반적으로 크기가 5㎜보다 작은 것으로 정의되는 미세플라스틱이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공업용 연마제나 치약, 각질제거를 위한 세안제 등에 포함된 것뿐 아니라, 버려진 폐플라스틱들이 햇빛과 마모에 의해 서서히 부서져서 생성되기도 한다. 이 미세플라스틱들을 물고기가 먹고, 우리는 그 물고기를 먹으니 미세플라스틱이 축적될 수 있는 것이다. 걱정을 아니 할 수 없다.

그렇다면 플라스틱은 인류와 환경의 적일까? 답은 ‘아니다’이다.

우리가 입고 신는 옷과 신발, 칫솔 등 개인위생용품, 페트병과 플라스틱용기, 포장지, 휴대폰, 컴퓨터, TV, 전자기기들의 외부물질과 부품들, 자동차의 내외장재, 건축 내외장재 등 정말 플라스틱 없이 이 세상이 돌아갈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플라스틱이 없는 현대사회는 상상할 수가 없다. 플라스틱, 보다 더 정확하게는 석유화학 제품들이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그 많은 물건들을 철이나 나무로 대체한다고 생각해보라. 불가능할 것이다. 오히려 자동차 경우만 보더라도 경량화 추세에 맞추어 금속 부품들을 엔지니어링플라스틱으로 대체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플라스틱 물건들이 분해가 안된다고 불평을 하는 것이 맞을까? 만일 당신 자동차의 범퍼가 시간이 지나면서 분해된다면 그 자동차를 구입하겠는가? 오히려 대부분의 플라스틱은 가볍고, 물성이 뛰어나고,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고, 썩지 않는다는 좋은 특징들이 요구되는 많은 산업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될 것이다. 일회용 포장재와 용기들 또한 가격경쟁력과 그 편의성으로 인해 지속 사용의 유혹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그래서 가장 큰 환경 문제를 일으키는 일회용 플라스틱 물품들에 대해서는 세계 각국에서 사용 규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공동체의 경우 지난해 초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의 사용 규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더니, 드디어 지난해 12월20일 사용금지에 대한 합의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도 올해부터는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일부 젖은 식품 이외에는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플라스틱 문제는 무엇 때문일까? 우리가 마구 사용하고 아무 데나 버려 온 우리 행동의 문제가 아닐까? 사실 썩지 않는 물질들은 금속과 돌 등도 많이 있고 그 용도에 맞게 잘 사용하여 왔다. 플라스틱이 없었다면 무분별한 벌목 등 천연자원들의 엄청난 사용으로 환경에 더 큰 해를 입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좀 더 잘살고 편하게 살기 위해 너무 많은 양의 화석원료들을 꺼내서 연료와 석유화학 제품을 만들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실제 인류 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인식되었다. 꼭 필요한 양만큼 만들어서 사용 후에 재활용이라도 잘 했다면 오늘날의 플라스틱 문제가 없었을 수도 있다. 오히려 플라스틱은 천연자원의 고갈을 막고 환경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고 평가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플라스틱의 환경오염 문제 해결을 위하여 우리가 취해야 할 조치들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우선 편리성 위주의 우리 생활패턴을 바꾸어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의 사용을 자제하고, 사용되고 폐기되는 플라스틱은 최대한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도 일부 일회용 제품들과 미세플라스틱 같은 경우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생활습관상 버려지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기존 석유화학 유래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생분해성 바이오 기반 친환경 플라스틱 등을 생산하여 활용할 수도 있다. 또한 기존 석유화학공정을 통해 생산되는 많은 화학물질과 고분자들도 친환경 바이오 기술로 생산하는 미래 화학산업이 다가올 것이다.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바이오 기반 친환경 화학산업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플라스틱, 그 자체가 환경오염의 주범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생산과 관리, 사용, 그리고 폐기와 재활용을 제대로 잘하지 못한 것이 플라스틱을 환경오염물질로 만든 것이다. 우리 모두가 플라스틱의 친환경 생산, 올바른 사용과 재활용을 통해 인류의 삶을 편리하게 하고 환경보호에도 기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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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의 ‘吾書吾談 (오서오담)’, 600×420㎝.


노래 만들기를 접고 가죽을 몇 년 잡았었다. 또 칼과 바늘과 실… 무념무상으로 가방을 만들었다.

그걸 접고 카메라를 잡았었다. 작은 사진전도 했었다. 또 몇 년.

그걸 또 접고 만난 게 붓이었다. 한문 공부를 한다고 펜글씨를 너무 하다가 손가락 뼈들에 무리가 와서 볼펜도 못 잡게 되어 붓을 잡게 되었다. 하여, 그 십 년 가까이에 붓 맛도 알게 되고 한시도 조금 알게 되고….

이제 붓은 쉬이 놓지 않을 것 같다. 난 ‘말하는 사람’이란 걸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음악도, 사진도, 붓도 도구일 뿐이었다.

한데, 가죽 일도 누구에겐가 제대로 배운 바 없고, 사진도 그렇고 붓도 그렇다. 그저 조금 익숙해질 때까지 혼자 애쓰고 궁리했을 수밖에. 물론, 이야기도 그렇다. (어? 이야기는 누구에게서 배운단 말인가. 내 속에서 그저 줄줄 나오는데, 이리 허튼 소리들이…).

아무튼, 이제 시작한다.

붓으로 쓰는 노래, 내 이야기들.

<정태춘 싱어송라이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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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히로카네 겐시’는 오십대 중년 시기를 잘 사는 6가지 비법을 소개했는데, 1. 작은 욕심 부리기(예컨대 따뜻한 찌개를 안주 삼아 마시는 술 한 잔의 즐거움. 싸고 맛있는 세계의 즐거움이 있음), 2. 과거 따위 돌아보지 않기(묵은 감정 깨끗이 정리하고 이름조차 잊기. 가슴 뛰지 않는 물건 버리기), 3. 망설임 없이 즐거움으로 향하기(언제 죽을지 모르니 매일을 진지하게 즐기고, 오래 살지 모르니 배우는 일에도 새삼 도전하기), 4. 방황하지 않기(제발 좋아하는 일만 찾아서 하고, 피차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기), 5. 감정 온화하게 다스리기(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뭘 줘도 아깝지 않은 존재를 갖기. 뭘 받을까가 아니라 뭘 줄까에 관심 쏟기. 자식이 있다면 부모 품을 떠나도록 놓아주기), 6. 인생은 일장춘몽임을 깨닫기(평소에 유서쓰기. 가급적 이별은 산뜻하게). 나나 당신이나 버릴 것 하나 없이 6가지가 빠짐없이 필요하겠다.

촌락에서는 오십대도 이팔청춘. 환갑은 돌잔치나 비스무리. 품바 몸뻬 바짓가랑이를 걷어 입고 이태리 가짜상표가 붙은 오일장 목도리를 펄럭이고서 활개를 치는 아낙네들. 어깨허리치마를 해 입고 만세를 부르던 3·1운동 여학생들의 피가 흐르는 분들. 후반생을 이리 산다고 생각하니 없던 정도 생겨나고, 미운 정은 미운 정대로 고마워라. 어쩌다보니 오십대에 와 닿은 나는 젊고 대찬 ‘차도녀’는 ‘무섬증’부터 덥석 든다. 또 젊은 사내의 원대한 꿈이나 패기에 찬 언변을 감상하는 자리도 얼른 피하고 보는 게 상책. 냉대를 할 것 같으면 냅다 망설임 없이 집으로 향하기. 방황하지 않기, 인생은 일장춘몽. 방어가 최선의 공격. 수비가 튼튼한 축구는 재미가 없으나 결승전에는 그런 팀들이 남더라.

인생 중반이 되면 개그도 하나 외울 줄 알아야 한다. 소가 죽으면 다이소. 얼음이 죽으면 다이빙. 김밥이 죽으면 김밥천국. 아몬드가 죽으면 다이아몬드. 죽기 전에 외우라. 실없이 웃다가 잠들면 꿈자리도 좋지. 밤새 싸우다가 한을 품고 등져 눕는 오십대 부부도 많다더라. 등이 가려울 때는, 여깃다! 효자손. 오십대 필수품 가운데 하나인데 편의점에서는 왜 팔지 않는지 모르겠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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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13 지방선거 당시 정의당은 외유성 해외연수를 아예 없애고, 소속 의원들의 해외연수 참여를 금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정의당의 공약이 호응을 받을 만큼, ‘연수’의 탈을 쓴 ‘관광’으로 변질된 지방의회 해외연수는 적폐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그 민낯을 여과없이 드러낸 게 2016년 7월 충북도의원들의 ‘수해 중 해외연수’다. 당시 충북지역이 최악의 물난리를 겪고 있을 때 도의원 4명은 프랑스·이탈리아로 8박10일 연수를 떠났다. 파리 개선문, 피사의 사탑, 모나코 대성당 등 관광이 일정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김학철 도의원의 ‘레밍 발언’까지 더해져 지방의회 해외연수 문제가 이슈로 대두됐으나 이내 흐지부지됐다.

2010년 7월~2014년 6월 민선 5기 광역과 기초의원들은 총 2282차례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2014년 7월~2018년 6월 민선 6기 기초의회가 실시한 해외연수만 1295건에 달한다. 연수 비용으로 223억원을 썼다.

해외연수가 논란이 되는 것은 연수 명목과는 달리 관광성 외유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가령 TV 예능 <꽃보다 누나> 흥행 직후에는 크로아티아, 체코 등이 지방의회 연수 지역으로 부상했다. 민선 6기 4년 동안 13곳의 기초의회가 인도 연수를 다녀왔는데, 코스가 델리·아그라·바라나시 등으로 대동소이하다. 배울 선진 사례가 있어서가 아니라, 타지마할·아그라성 등이 있는 곳이기 때문일 터이다. 일정이 비슷하다보니 보고서를 서로 베껴 제출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경북 예천군의회 의원들이 미국·캐나다 연수 중 벌인 갑질, 추태가 도마에 올랐다. 박종철 군의원이 현지에서 가이드를 폭행하고, 일부 군의원은 ‘여성 접대부가 있는 술집에 데려가 달라’고 요구했다는 게 드러났다. 이번 연수도 스미소니언 박물관, 나이아가라 폭포 등 관광 일정으로 빽빽하다. 1인당 442만원씩 총 6188만원의 예산을 썼다. 예천군은 재정자립도가 전국 243개 지자체 중 226위다. 그야말로 ‘혈세’를 ‘관광연수’에 탕진하는 것도 모자라 낯 뜨거운 추태까지 벌였으니 주민들로서는 뿔이 날 수밖에 없다. 세금만 낭비하는 ‘해외연수’를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 아니면 정의당 공약대로 아예 없애는 것도 검토할 때가 됐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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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초안’을 발표한 지난 7일, 고용노동부에서 낸 보도참고자료를 찬찬히 읽었다. 1988년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이후 처음 시도하는 개편이라서 낯선 용어들이 많았다. 보도자료를 읽으면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노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노동자’라는 용어가 들어갈 자리는 모두 ‘근로자’가 차지했다. 헤아려보니, 11쪽 자료에서 ‘근로자’는 18번 언급됐다. ‘노동자’는 일본의 최저임금 제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단 1번 나왔다. ‘노동자’는 일본에만 있고 한국에는 없었다. 이뿐 아니다. 지난달 24일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에 대한 보도자료(총 19쪽)에서도 ‘근로자’는 16번 언급된 반면, ‘노동자’는 5번에 그쳤다.

지난해 9월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취임한 이후 노동부의 보도자료 등 문건에서 ‘노동자’ 대신 ‘근로자’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보도자료뿐 아니라 이 장관의 발언이나 언론 인터뷰 등에서도 ‘노동자’보다 ‘근로자’가 더 자주 보인다. 노동부 관계자는 “법적 용어로 쓸 때는 근로자로 표기하지만, 나머지는 혼용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도자료에서 보이듯 ‘근로자’가 법적 용어로만 쓰이는 건 아니다. 일상적 표현에도 ‘근로자’를 쓴다. 노동조합이나 노동위원회에서 보듯 ‘노동’이 법률용어로 쓰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초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모든 용어나 개념에는 가치가 들어 있다. 단어 하나하나가 정치적이다. 근로자(勤勞者)는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근로자’에는 부지런히 일해 주기를 바라는 자본가나 사용자의 가치관이 들어 있다.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9세기 독일에서는 현금을 지불해 타인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도록 하는 사람을 노동수여자(Arbeitgeber), 임금을 대가로 자신의 노동을 빼앗기는 사람을 노동수취자(Arbeitnehmer)로 불렀다. 그러나 카를 마르크스는 이들 용어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여겨 <자본>을 저술하면서 각각 자본가(Kapitalist)와 노동자(Arbeiter)로 고쳐 썼다. ‘노동자’라는 개념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학문적으로 말하면 사용자의 가치를 부여한 ‘근로’보다는 좀 더 가치중립적인 ‘노동’이 옳은 개념이다. 당연히 근로자가 아니라 노동자로 써야 맞다. 노동자가 생계를 위해 노동력을 판다. 노동의 대가만큼 정당하게 임금을 받으면 된다. 노동자는 사용주나 국가를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자가 아니다. 그러나 정치권력이나 자본가는 어휘나 개념을 바꾸거나 조작하여 자신들의 가치를 부여해왔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전시체제에서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근로정신대’를 조직했다. ‘솔선수범해 전장에 나가 노역하는 부대’라는 뜻이다. 노동을 강제하고픈 욕망이 투여된 ‘근로’는 해방 후에도 이어졌다. ‘근로자의날’ ‘근로복지공단’ ‘근로계약서’ 등이 그것이다. 심지어 현행 대한민국 헌법조차 국민 기본권을 기술하면서 ‘근로의 권리’ ‘근로자’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용어와 개념은 역사성을 지닌다. 일제와 군부독재 시대의 ‘근로’ ‘근로자’가 사회 민주화와 함께 ‘노동’ ‘노동자’로 바뀌고 있다. ‘근로자의날’은 ‘노동절’이 되었다. ‘근로계약서’는 ‘노동계약서’로 바뀌고 있다. 1981년에는 정부부처에 노동부가 신설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존중’을 국정철학으로 내걸었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인 김영주 전 장관이 재임기간 내내 ‘근로자’ 대신 ‘노동자’라고 표현한 것은 ‘노동 존중’의 징표처럼 여겨졌다. 비록 개헌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지난해 초 문 대통령은 ‘근로자’를 ‘노동자’로 바꾸고 노동권을 크게 강화한 조항을 포함시킨 개헌 초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 고용노동부에 “노동의 관점에서 노동자의 이익,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대변해 달라”고 주문했다. 노동 관계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부는 주문에 앞서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이재갑 장관 취임 이후 노동 정책은 급격히 과거로 회귀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해야 할 노동부 장관이 먼저 탄력근로제 연장을 들먹이고 최저임금 속도조절을 위한 최저임금제 개편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행보가 노동부 문건에서 ‘노동자’가 실종된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면 지나친 예단일까. 고용노동부도 경제부처인 만큼 고용 하락이나 생활물가 상승 등 경기 침체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고 경제를 내세워 ‘노동’을 희생시켜서는 안된다. 첫 조치는 ‘노동자’라는 이름을 복권시키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국회는 노동관계법상의 ‘근로’ 표현을 ‘노동’으로 바꾸는 개정 작업에 나서야 한다. ‘노동 존중’은 정명(正名)에서 나온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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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 드라마 한 편이 한국을 들썩인다. 드라마는 세간의 분위기를 가볍고도 빠르게 담아내는 덕에 사람들은 드라마 한 편을 통해 미처 본인이 자각하지 못했던 시대적 유행과 분위기를 훑곤 한다. 드라마 <SKY 캐슬>은 대학입시가 갖는 의미를 21세기 한국사회에 투영시켜 교육이 갖는 세속성을 이야기한다. 교육이 더 이상 계층 이동을 위한 ‘유연한’ 사다리가 아닌 계층 유지 또는 계층 확대를 위한 ‘배타적인’ 사다리가 됐을 때 어떤 현상들을 낳게 되는지 말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시선이 멈춘 지점은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의 폐해도, 자식교육을 향한 엄마들의 그악스러움도 아닌 바로 아빠들의 무기력함이었다. 아빠들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얼굴들을 하고 있다. 물론 드라마 속 아빠들은 의사·교수 등으로 사회적으론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JTBC 드라마 의 한 장면.

하지만 ‘돈만 잘 벌어다 주면 가장 노릇 다 한 줄 알았다’는 극 중 영재 아버지의 고백처럼 그들은 여전히 집안일과 자식일에 별 관심이 없다. 자식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건 오직 성적표가 나올 때뿐이다. 자녀의 명문대 입학이나 학생회장 당선 소식 등은 아빠의 사회적 지위를 돋보이게 하는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는다. 가짜 하버드생인 딸이 아빠한테 눈물을 흘리며 소리친다. “공부 잘하는 자식만 자식이라는 생각 들게 했잖아!”

과정을 공유하지 않은 채 성과의 기쁨만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다. 힘들 때 옆에 있어주는 이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말은 가족에게도, 심지어 가족의 리더 격인 아빠들에게도 통용된다.

미국 연수 시절 미국 아빠들이 외계인처럼 보였다. 평일 축구·농구 수업에 오는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이 아빠들과 함께 왔다. 한국처럼 직업강사가 아닌 자원봉사 체제로 꾸려지는 스포츠 클럽 성격상 축구 코치, 농구 코치는 대개 누구 누구의 아빠들이었다.

축구 매치가 있던 어느 토요일 놀라운 광경을 봤다. 상대편 축구팀 코치가 아기띠를 맨 채로 호루라기를 불며 경기 심판을 보고 있었다. 그의 배 위엔 돌도 채 되지 않은 작은 아기가 매달려 있었고, 초등학교 1학년인 그의 큰아이는 축구 경기를 뛰고 있었다. 싱글 대디인지, 엄마의 부재 때문인지 추측할 새도 없이 입이 쩍 벌어졌다. 동료 이웃이 털어놓은 목격담도 보통은 넘었다. 농구수업에 갔더니 젊은 아빠가 무려 4명의 아이를 유모차와 아기띠를 동원해 홀로 돌보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언제쯤 이런 풍경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지표로만 봐도 한국 아빠들의 가사노동 분담률은 현저히 낮다. 남성 가사 분담률은 16.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3.6%)의 절반 수준이다. 덴마크(43.4%), 핀란드(40.7%) 등 유럽 복지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신자유주의 첨병인 미국조차 아빠들의 가사분담률(38%)은 평균을 웃돈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엄마의 역할, 돈의 역할로 극한까지 밀고 온 것이 우리 교육의 모습”이라며 “아직 사용해볼 여지가 남은 것이 아빠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아빠와 대화하고 여행하고 공부하는 생활, 아빠가 자녀교육으로 돌아오는 것이 바로 사교육의 고통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아빠들이 안 돌아오고 싶어서, 돌아오는 길을 몰라서 오지 않는 것이 아님을 말이다. ‘저녁이 있는 삶’은 단순히 여유로운 일상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밥벌이를 하는 아빠가 자신의 건강을 살피고, 가족을 돌보고,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삶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엔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각박하고 부족하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도입 등으로 불거진 후폭풍만 봐도 그렇다. 한국 사회의 아빠들은 언제쯤 가정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문주영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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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산하 ‘선거제 개혁 자문위원회’가 9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국회의원 정수를 현행(300명)보다 60명 늘리는 권고안을 마련해 국회에 전달했다. 자문위는 또 현행 ‘만 19세’로 돼 있는 투표 참여 연령을 ‘만 18세’로 하향하도록 권고했다. 전직 국회의장과 학계·여성·청년 등 각계 대표로 구성된 자문위가 지난해 11월부터 두 달여간 의견을 모은 끝에 한목소리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시민적 요청임을 재확인한 것이다.

자문위가 권고안에 담은 뜻은 명쾌하다. 자문위는 “현행 선거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민의 의사(지지율)와 선거 결과로 나타나는 의석수 사이의 괴리가 매우 심각하다는 점”이라며 선거제 개혁을 위해서는 비례성을 강화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가 돼야 한다고 결론을 냈다고 밝혔다. 정당득표율에 정비례하도록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 과제라는 것이다. 지역구 의석수와 비례대표 의석수의 비율을 명시하지 않음으로써 정치권이 재량을 갖고 조정하도록 길도 열었다. 그런데 이 안에 대한 거대 정당들의 태도가 불순하다.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적극 검토한다는 데 동의해놓고 말을 뒤집었다. 민주당도 겉으로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이는 척하고 있다. 권고안대로 하려면 의원 정원을 늘려야 하는데, 그것을 시민들이 용납하겠느냐는 핑계를 대며 미적대고 있다. 하지만 자문위는 이에도 명확히 답했다. 자문위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과 비교할 때 의원이 적은 편이고, 역사를 보더라도 국회의원 1인이 대표하는 인구수는 현 20대 국회가 가장 많다”고 지적했다. 의원 정수를 늘리더라도 국회 예산을 동결하고 국회를 개혁하면 된다는 대안까지 제시했다.

의원정수 조정과 지역구 의석 축소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시대적 과제 앞에서 의원 개개인의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는 것은 무책임하다. 시민들이 의석수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면 설득해야 한다. 고교 3학년 학생들에게 투표권을 주면 학교가 온통 정치의 장으로 변질된다는 주장은 ‘18세의 당당한 시민들’을 모독하는 것이다. 일부 이견이 있었지만 이번 권고안은 국회가 위촉한 전문가로 구성된 중립적인 위원회가 토론을 통해 낸 결론이다. 이런 안을 거대 당들이 짬짜미로 무산시킨다면 시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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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3000m계주 금메달리스트 심석희 선수(22)가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38)로부터 상습적으로 성폭행당했다고 폭로했다. 성폭행은 심 선수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평창 올림픽 개최 직전까지 4년간 계속됐다고 한다. 심지어 한국체육대학교와 국가대표선수촌 빙상장 라커룸 등 국가체육시설에서도 버젓이 자행했다고 한다.

그렇잖아도 조 전 코치는 심 선수 등을 주먹과 아이스하키채 등으로 상습 폭행한 혐의로 지난해 9월 법원으로부터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인물이다. 그가 체육 지도자라는 지위를 이용, 폭력을 일삼고 성폭행까지 자행했다니 참담하다. 조 전 코치는 성폭행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심 선수가 강간·상해 등의 혐의로 그를 고소한 터라 수사와 재판을 통해 진실은 곧 드러날 것이다.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왼쪽)이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행 혐의 관련 대책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준헌 기자

심 선수는 성폭행 피해사실을 끝까지 숨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여성으로서 견뎌야 할 고통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 가족들이 입을 상처 때문에 최근까지도 혼자서 감내해 왔다는 것이다. 심 선수는 지난달 17일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계속되는 폭행으로)‘이러다 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울먹이기까지 했다. 그는 그러나 성폭행에 따른 신체적·정신적 피해가 너무 크고, 앞으로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성폭행 피해사실을 밝히기로 용기를 냈다고 한다. 그의 용기 있는 고백에 박수를 보낸다.  

여자쇼트트랙의 세계적 스타가 이렇다면, 일반 선수들이 당하는 고통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대한체육회에 접수된 폭력·성폭력 피해 신고·상담건수는 지난 한 해 동안 348건에 달했다. 이 중 성폭력 신고·상담건수는 93건이다. 대한체육회는 그러나 수사 의뢰나 고발은 단 1건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8일에는 ‘2018년 스포츠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스포츠계 성폭력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강조하기까지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뒤늦게 “민간주도 특별조사를 진행하고 예방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사후약방문식 처방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심석희 성폭행 의혹 사건’이 아닌 ‘조재범 성폭행 의혹 사건’으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성범죄 피해자가 입을 수 있는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가해자의 이름으로 사건 프레임을 짜는 것은 그 자체가 사회정의에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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