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 뒤쪽으로 재개발을 하다가 수년째 방치된 야트막한 야산이 있었다. 정용은 그곳을 오르다가 평소엔 보지 못했던 커다란 바위 하나가 길 한가운데를 떡하니 가로막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바위는 리어카 크기만 했는데, 절반쯤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이 밖으로 나왔는지 아랫부분이 검고 축축한 모습이었다. 이게 왜 여기 나와 있지?

정용은 바위 둘레를 돌아보며 괜스레 발뒤꿈치로 툭툭 윗부분을 쳐보았다. 윗부분은 제법 평평해 보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누군가 정 같은 것으로 계속 내리친 듯 모나고 깨진 흔적이 많았다. 그 길은 정용이 아주 가끔 마을버스 대신 걸어서 알바하는 편의점까지 가는, 말하자면 지름길이었다. 평상시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고, 구청이나 다른 기관에서도 관리하지 않는 듯 산을 관통하는 작은 오솔길을 제외하고는 온통 잡풀과 빈 막걸리병, 어디에서 날아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비닐봉지, 오래된 시멘트 포대 같은 쓰레기들이 주변에 널려 있었다. 야산의 3분의 1은 터파기 공사를 하다가 중단된 모습 그대로 방치돼 있었고, 잡풀과 소나무에는 회갈색 먼지가 고스란히 내려앉아 있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정용은 잠깐 바위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웠다. 요 며칠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강추위가 대기를 메우더니 바로 그제부턴 날씨가 많이 풀리기 시작했다. 등으로 흘러내린 땀이 그다지 차갑게 느껴지진 않았다. 정용은 담배를 피우면서 어제 어머니에게서 온 문자메시지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어머니는 아버지 혈압이 160까지 올라갔다며, 네가 한번 들렀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 외에 다른 말은 없었다. 정용은 그 문자를 보고도 아무런 답신을 하지 않았지만, 대신 밤늦도록 잠을 설쳤다. 그러고도 다른 날보다 일찍 잠이 깼다. 그는 자취방 벽에 기대앉아 멀거니 스마트폰으로 포털 화면 메인에 나와 있는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대형교회에서 차명 계좌 수백 개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기사를 꼼꼼히 읽었다. 그는 또 포털 화면 맨 아래쪽에 배치된 어느 늙은 교수의 동영상 강의도 보았는데, 그는 유럽의 식민지배와 제국주의가 상속받지 못한 자들의 울분을 달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는 말을 했다. 식민지로 떠난 사람들은 대부분 상속에서 밀려난 차남이나 서자 출신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정용은 그 강의를 끝까지 다 보지 않고 중간에서 멈췄다. 그는 차라리 밖으로 나가서 좀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바 시간까지는 아직 세 시간도 더 남아 있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야산 쪽으로 길을 잡았다.

“이 바위, 젊은이하고 상관있소?”

반대편 길에서 올라온 한 남자가 정용 앞에 멈춰 서서 물었다. 그는 등산화에 등산조끼, 큼지막한 배낭을 멘 차림이었는데, 얼핏 봐서도 60대 초반은 되어 보였다. 그는 손에 가죽장갑을 끼고 있었다.

“아니요. 저는 그냥 잠깐…”

정용이 말을 다 끝맺기도 전에 남자가 배낭을 내려놓았다.

“그럼, 내 일 좀 하리다.”

남자는 배낭에서 굵고 긴 밧줄을 꺼냈다. 롤러처럼 생긴 둥근 막대도 몇 개 꺼냈는데, 대부분 쇠로 되어 있는 거 같았다. 배낭 옆에는 접이식 군용 야삽도 매달려 있었다. 정용은 바위에서 두세 걸음 떨어져 남자가 하는 일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남자는 등산조끼를 벗어 빈 배낭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더니, 이윽고 놀랍도록 맹렬한 속도로 야삽을 이용해 바위 아래를 파 내려갔다. 날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땅은 여전히 단단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남자는 개의치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바위 아래 흙을 파 내려갔다. 흰머리가 듬성듬성 나 있는 그의 머리와 이마는 어느새 벌겋게 변해버렸다.

“이게… 이게 왜 여기 있는 거죠?”

정용이 같은 자리에 쪼그려 앉으며 물었다. 정용은 어쩐지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겠소.”

남자가 허리를 한 번 펴면서 말했다. 그의 목울대 근처로 퍼런 힘줄이 보였다.

“뭔 조화인지 웬 두꺼비처럼 어느 날 아침부터 여기 앉아 있었소.”

남자는 배낭에서 작은 페트병 하나를 꺼냈다. 거기에는 연한 갈색을 띠는 알 수 없는 물이 들어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마셨다. 무언가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나온 것 같았다.

“한데, 어르신이 이걸 왜…?”

정용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좋지 않소? 할 일도 없었는데…”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다시 야삽을 들었다. 정용은 그냥 그대로 편의점 쪽으로 내려갈까 하다가, 계속 그 자리에 서 있기로 했다. 아직 출근 시간까지 두 시간도 더 남아 있었다. 정용은 발로 쓱쓱 남자가 퍼낸 흙을 뒤쪽으로 밀어냈다.

“에헤이, 하지 마소. 젊은 사람이 뭐 한다고…”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야산엔 정용과 남자 외엔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았고, 새 한 마리 날아오지 않았다. 남자의 야삽 날이 땅속에 숨은 돌멩이와 부딪히는지 가끔씩 쇳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하지 마세요. 이게 무슨…”

정용은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생각지도 않은 말을, 마치 웅얼거리듯 내뱉었다. 남자가 일을 멈추고 정용을 돌아보았다. 정용은 남자의 시선을 피했다.

“이건 몇 명이 달라붙어도 어려운 일이잖아요? 괜히 힘만 뺏기고…”

“허허,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소. 나는 이런 걸 보면 스트레스가 쌓여서.”

남자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인 후, 다시 땅을 팠다.

그러니까, 그렇게 어르신 좋아서 하는 일만 하지 마시라구요! 차라리 일을 하고 돈을 버세요! 그 힘으로 다른 일을 하시라구요! 이게 뭡니까, 이게! 다른 사람 마음 불편하게 만들고….

정용은 그렇게 남자에게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남자 앞에 버티고 있는 바위를 계속 노려보았다. 정용은 그 바위가 먼 후대까지 이 자리에 계속 버티고 있을 것만 같았다. 젊은 사람을 슬프게 만들고, 나이 든 사람을 더 지치게 만들면서. 정용은 몸을 돌려 반대편 길로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그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미국 연방정부 예산이 처리되지 않아서 필수 분야를 제외한 업무가 일시적으로 정지된 지 3주가 다 됐습니다. 멕시코 국경 장벽이 이 사태의 발단입니다. 현실적이지도 않고 아무 소용도 없지만, 정치적 이유로 이를 세우겠다는 트럼프 대통령과 야당인 민주당 주도의 의회가 충돌한 겁니다. 트럼프가 정치경험이 전혀 없는 탓에 이런저런 탈도 많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엉뚱한 질문을 던지곤 하죠.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후 미군 한국 배치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매년 35억달러나 쓰면서 남을 지켜주는 게 장사꾼 트럼프로서 이해가 안 갔던 겁니다. 당황한 참모들은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이해시키려 안간힘을 썼죠. 한 경제참모는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항공모함을 더 배치해야 하며 10배가 넘는 돈이 든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 정부 협조 덕에 민감한 첩보도 덤으로 얻는다고 했죠. 한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은 미국 안보를 위해 매년 40억달러를 후원하는 셈이라고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트럼프의 엉뚱한 질문이 주한미군의 가치를 조명해준 셈입니다.

그 가치는 ‘미국’ 수호입니다. 미군이 미국 이익을 위한다. 이 간단하고 명확한 사실이 유독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미군이 한국을 수호하기 위해 큰 희생을 치를 것처럼 믿기도 하지만 이는 착각일 뿐입니다. 2017년 4월 이제는 고인이 된 매케인 상원의원과 그레이엄 상원의원을 백악관으로 초대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정세에 대해 조언을 구했습니다. 매케인은 “아주 복잡합니다. 북한 재래식 무기 도발로 서울 시민 100만명이 사망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그레이엄은 “100만명이 죽는다면 여기 말고 거기서 죽어야 합니다”라고 맞섰죠. 미국 매파의 시각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미군 주둔은 한국 안보가 그 목적이지만, 한국 안보만을 위하지 않습니다. 애초 주둔 결정도 한국 안보보다는 한국전쟁을 빨리 끝내고 지역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죠. 휴전 협정이 마무리되어가자 불안해진 이승만 대통령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요구했습니다. 미국이 수용하지 않을 경우 휴전협정을 준수하지 않겠다고 미국을 위협했습니다. 반공포로 석방 등 일련의 시위까지 벌이고서 얻어냈습니다. 이 조약은 미군의 남한 주둔 근거가 됐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왔던 미군은 또 그렇게 떠날 겁니다. 영원히 있기야 하겠습니까? 설마 그러랴 하겠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면 영원한 제국은 없습니다. 수백년 동아시아를 호령한 청 왕조도 19세기가 되면서 급격히 쇠약해졌고, 청일전쟁 패배로 조선에서 군사를 물렸죠. 아프가니스탄 공산당 정권을 지키던 소련군도 무자히딘의 저항에 철수했습니다. 이라크전쟁에서 승리한 미군도 정치적 비용이 커져 철수했죠. 필리핀의 사정은 달랐습니다. 1986년 민주혁명으로 탄생한 아키노 정권은 100년간 주둔한 미군에 결별을 선언했죠. 민주체제에서 꿈틀대기 시작한 민족주의가 정치권을 움직인 덕이었습니다. 미국은 주둔 연장을 사정하며 수억달러를 제시했지만, 필리핀은 거부했습니다. 미군 주둔지 경제, 즉 상권, 임금 등의 손실도 감수하고 말이죠. 자의건 타의건 미군은 한국에서도 떠날 겁니다.

안 가본 길을 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 나은 곳을 찾고 먼저 가보는 게 지도자의 책무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삐걱대고 있습니다. 9600억원 수준인 한국 분담금을 1.5배, 즉 1조4000억원 정도까지 올리려고 한다죠. 다른 나라에 비해 이미 높은 수준을 부담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당장 한·미동맹을 걱정하는 절규가 터져 나오고 협상은 지지부진합니다. 한국 정부가 이렇게까지 끌려다닐 필요가 있을까요? 주한미군을 더 요구하는 게 혹시 미국 아닐까요? 미군이 떠난다고 북한이 쳐내려올까요? 중국이 미사일을 쏠까요? 일본군이 독도를 점령할까요? 미군을 언제,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한·미동맹을 건국신화로, 종교로 숭배하며 반세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는 사이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고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미국 눈치를 안 볼 수야 없겠죠. 하지만 새로운 사고와 유연한 상상력이 더더욱 필요합니다. 2018년 남북 화해는 1953년에 화석처럼 굳어버린 동아시아 정세 전체를 흔들고 있습니다. 이 변화에 휩쓸리는 대신 변화를 이끄는 정부가 필요합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 정치학>

'일반 칼럼 > 세상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숨겨진 노동, 간접고용의 그늘  (0) 2019.01.18
삶이란  (0) 2019.01.15
화석처럼 굳어버린 1953년  (0) 2019.01.11
문화다양성 협약과 문화비전2030  (0) 2019.01.04
생존주의 나라  (0) 2018.12.28
직접민주주의의 플랫폼, 마을공동체  (0) 2018.12.26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2010년 말에 출판된 김난도 교수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청년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끌어내며 우리 사회에 힐링 열풍을 몰고 왔다. 미래가 불투명하고, 고된 삶을 살고 있었기에 청년들에게 위로가 필요하고, 불안을 달래는 이야기가 필요했으리라. 그 이후로 힐링과 관련된 책이 쏟아져 나오고, 비슷한 강연이 잇따르고, 이른바 문화계는 힐링의 홍수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러한 힐링이라는 것이 방황하는 젊은 시기 용기를 주고,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객관화를 부여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이러한 흐름의 밑바닥에는 찬찬히 문제를 파악·분석하여 현실을 타개하려는 노력보다는 일시적인 감성 속에서 현실을 외면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면이 또한 존재한다. 그래서 힐링 열풍은 곧 많은 지식인, 평론가들의 공격을 받게 된다. 청년들도 아프지 않은 청춘이 필요하다며 이 책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2010년대 중반부터 힐링 열풍이 문화계에서 급속히 사그라들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2010년대의 마지막을 고하는 2019년 현재 과연 힐링 열풍이 사그라졌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갖게 된다. 과연 대한민국이 그때의 힐링 열풍에 대한 반성으로 인하여 더 찬찬히 사유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불행하게도 필자는 대한민국이 오히려 힐링과 공감과 증오와 재미와 편싸움이 아니면 관심을 끌지 못하는 “감성의 나라”가 되고 있다는 증거를 너무나 많이 보게 된다. 물론 그만큼 아직도 청년들과 국민에게 답이 안 보이고,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회현상이겠지만, 김난도 교수의 책에 대한 지식인들의 비판 역시 비판에서 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한 반작용 정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선 사유와 대안을 모색해야 할 지식인들이 오히려 더 많이 감성적이 되어가고 있다.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고, 요즘 말로 엔터테이닝하지 않으면 독자를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글의 논리나 참신한 생각보다는 글의 아름다움과 재미, 또 나와 같은 편에 있는가가 독자 수를 결정한다. 소위 비판적 지식인들이 만드는 세계이지만 사유와 대안의 세계라기보다는 아직도 힐링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공감에서 힐링을 하고, 재미에서 힐링을 하고, 같은 편이라고 확인하면서 힐링을 하고, 수려한 문장에서 힐링을 한다. 이러한 힐링의 세계는 방송매체에서 다루는 소위 인문학 강연이나 세상을 바꾼다는 강연 등에서도 거의 그대로 반복된다. 새로운 연구 성과와 새로운 통찰을 주로 소개하면서 강연 장르에 새바람을 일으킨 TED라는 미국의 프로그램과 달리 우리의 비슷한 유형의 프로그램은 역시 공감과 재미와 감성, 위로에 치중해 있다. 새로운 연구 성과나 사고의 전환을 접하면서 자극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인터넷, SNS 공간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자극적인 내용이나 사진을 통해 조회 수를 올리며 위안을 받고 돈을 버는 공간이 된 지는 이미 오래이고, 토론도 배우고 대안을 찾는 진정한 의미의 논쟁이기보다는 편을 나누어 이겨야 하는, 그래서 승리의 짜릿함으로 위안을 받는 게임이 되고 있다. 증오와 저주의 댓글과 포스팅도 일종의 힐링이다. 대학의 강의도 명강의는 재미있는 강의이고, 내가 생각하기보다는 선생님이 대신 생각해주는 강의이다. 그리고 그다지 힐링에 도움이 되지도 않아서 대학이 공허해진 지도 꽤 되었다. 전문서적이나 잡지는 안 팔리고, 심지어 전문가들끼리도 잘 읽지 않는다. 학회는 사교장이나 여행 프로그램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감성과 힐링과 자극과 공감만이 넘치는 사회를 ‘반지성주의 사회’라고 한다. 이러한 반지성주의 사회가 도래한 것은 삶이 빡빡해진 탓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이 감당하기에는 사회가 너무 복잡해졌고 또 처리해야 할 정보가 너무나 많아졌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그다지 사유를 좋아하지 않기에, 자신을 개발하기보다는 남이 대신 해주길 바라고, 더 쉬운 감성의 길을 택한다. 그걸 알고 이런 감성을 더 자극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과 장사꾼들이 나오고, 인간을 인공지능의 심부름꾼으로 만들려는 과학자와 사업가가 나온다. 이 추세가 더 깊어지기 전에 지성주의 사회를 만들지 못하면 대부분의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감성과 인공지능에 휘둘리는 신종 노예가 될 것이다. 우리는 아직 김난도 교수를 극복하지 못했다. 지식이 비즈니스가 된 시대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사법농단 사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다. 전직 대법원장이 검찰에서 피의자로 조사받는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서울중앙지검에 나가기 직전 인근 대법원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검찰청사 앞에 설치될 포토라인에선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대법원장 재직 중의 범죄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피의자가 기소 후 재판을 맡게 될 법원을 들러리로 세워 ‘시위성 퍼포먼스’를 벌이겠다니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전직 대통령들도 청와대 앞이 아닌 검찰 포토라인에서 소회를 밝혀왔는데, 이 무슨 망발인가.

양승태 전대법원장이 11일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해 조사를 받기 이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본인이 최근까지 오래 근무했던 대법원에서 입장을 밝히는 게 좋겠다”는 이유를 댄 모양이다. 하지만 그 속내를 짐작 못하겠는가. 사법부를 대표하는 대법원 건물을 등에 지고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검찰을 겁박하고, 사법농단 수사에 반대해온 법원 내 적폐세력을 결집하려는 의도임이 명백하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당초 대법원 경내에서 기자회견을 하려 했으나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정문 앞에서 강행키로 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법원노조)는 “사법농단 몸통 양승태의 오만이 극치에 달했다”며 원천봉쇄를 예고했다. 사법농단에 분노한 일반 시민까지 현장에 몰릴 경우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을 해치고 헌정을 문란케 한 중대 범죄의 피의자다. 검찰 조사를 앞둔 그가 대법원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여론전을 펴는 일은 또 다른 사법농단에 다름 아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제라도 기자회견을 포기해야 마땅하다. 회견을 강행해 불상사가 빚어진다면 온전히 그의 책임으로 돌아갈 것이다. 검찰은 지난해 3월 이명박 전 대통령 출석 때와 같은 안전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 또한 과잉의전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헌법 11조는 ‘법 앞의 평등’을 명시하고 있다.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올해 국정운영 구상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신년 회견문의 대부분을 시민들의 삶과 관련된 경제 문제에 맞추었다.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경제’로 총 35차례 언급됐다. 지난해 신년 회견에서는 9번 등장했다. 지난해 경제운용에 개선해야 할 점이 많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올해 국정을 “혁신성장과 소득주도성장을 두 축으로 ‘함께 잘사는 경제’를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혁신적 포용국가’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시간이 걸리고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했다. 전력투구 의지가 보인 것이다.

‘혁신적 포용국가’는 혁신을 통해 미래의 성장동력을 갖추고, 사회안전망·고용안전망 등을 통해 ‘다 함께 사는’ 나라, 즉 포용국가를 만들겠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1년간 시행착오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한 해 동안) 혁신성장’을 위한 전략 분야를 선정하고 혁신창업 생태계를 조성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혁신성장의 주춧돌인 규제개혁은 방향타를 잃었고, 혁신속도마저 지지부진했다는 지적을 외면하면 안된다. 공유경제 등 신산업 혁신은 규제와 이익단체의 반대에 부딪혔다. ‘규제 샌드박스’는 올해 겨우 첫걸음을 뗐다. 올해에는 이 같은 상황이 재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된 신년 기자회견에서 손을 든 기자들 중 질문자를 지명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문 대통령은 “지난해 전반적인 가계 실질소득이 늘었다”고 강조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문제는 고소득층일수록 실질소득이 많이 증가한 반면 저소득층은 실질소득 감소 폭이 컸다는 점이다. 이 정부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저소득층을 위해 추진한 정책이 오히려 이들을 궁핍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책상머리에서 벗어나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정책에 반영해야 하는 이유다.

올해 경제정책 추진과정에서도 이익충돌이 첨예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저임금 결정, 규제완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광주형 일자리 등 하나같이 폭발성이 높다. 최선은 대화를 통해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결의 접점이 보이지 않을 때 책임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신년 회견이 경제 분야에 집중되면서 대야 관계를 포함한 협치와 통합에 대한 언급은 부족했다. 좀 더 깊이 있는 설명이나 메시지를 전할 필요가 있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 선거제 개혁, 개각 구상, 광화문 집무실 이전 공약 파기 등 관심 사안도 다뤄지지 않았다. 짧은 기자회견에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는 만큼 추후 다양한 소통을 통해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3년차를 맞는다. 재임기간의 3분의 1이 흘렀다. 올해 문재인 정부는 성패의 갈림길에 놓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머지않아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함께 잘사는 혁신적 포용국가’가 우리 앞에 놓일 것”이라고 했다. 이제는 문재인 정부가 옳았다는 것을 성과로 증명해야 할 때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유시민 논쟁’이 다시 뜨겁다. 그가 새해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주자로 앞자리를 차지한 게 계기다. 정치권 안팎은 오래전 ‘정치 중단’을 선언하고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만 정치와 가는 끈을 남긴 그의 ‘강제 귀환’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유 이사장은 여전히 “정치 안 한다. 여론조사에서 빼달라”고 해명하며 연일 고개를 가로젓는다.

‘장외 우량주’ 등 많은 표현들이 존재하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다. 그가 정치를 부인하고 거부할수록 오히려 주가는 더 뛰는 기현상이다. 과거 특유의 독설 때문에 유 이사장과 불화했던 여권 일각조차 그를 반길 정도다. ‘유시민 현상’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가 결국 대권에 나설지 아닐지는 아직 한참 시간이 흘러야 알 수 있을 테지만, 정치권 안팎의 이편이든 저편이든 몹시 궁금해하는 일이다.

이 시점에서 개인적으로 몇 가지 유 이사장과의 기억이 떠오른다. 다시 볼수록 다면적인, 하나로 규정이 어려운 그의 개성들이 담긴 장면들이다.

“공화국을 위해 뭔가 해야 할 것 같다.”

2002년 가을 잘나가던 칼럼니스트 유시민이 돌연 ‘절필’을 하고 정치권으로 떠날 때의 변(辯)이다. 당시 민주당 노무현 대선후보가 ‘대통령후보단일화협의회’(후단협)의 탈당 등으로 몹시 흔들리던 때다. 국민 경선 후보 지킴이로 나서면서 이를 ‘공화국’ 차원 문제로 본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게 개혁국민정당(개혁당)이다. 투사적 면모가 강하던 40대 초반 열혈 시절 유시민이다.

“정치를 너무 재미없어한다.”

2004년 초가을 무렵 국회의원 시절 한 측근의 전언이다. 그는 그 가을 참모들을 졸라 서울 근교로 소풍을 떠났다. 당시는 지지부진한 정당개혁 때문에 몹시 힘들어하고 재미없어하던 때다. 그는 “그만두고 편하게 살고 싶다”고 했고, “지방대 교수가 좋을 것 같다”고도 했다. 전형적인 낭만적 자유주의자의 모습이다. 17대 ‘탄핵 총선’ 후 과반 여당(열린우리당) 내 ‘난닝구 빽바지’ 논쟁에서 보듯 독설과 논란을 몰고 다니던 ‘논쟁적 유시민’ 시절이다.

“쇄빙선처럼 경계를 깨는 게 노무현 대통령이고 차기 후보는 유람선이다.”

2005년 겨울 사석에서 만난 그가 ‘노무현식 차기 관리’란 화제에 내놓은 선문답 같은 비유다. 진보와 보수, 정치와 정책의 경계를 깨는 것이 노 전 대통령이면 그 새로운 정치환경을 완성해야 하는 게 차기 후보 몫이란 설명이었다. 당시는 실패한 ‘대연정’론에 진보진영이 분노하던 때였다. 그 때문에 그의 말은 ‘정치적 경호실장’의 ‘노무현을 위한 변명’으로 들렸다. 그 며칠 뒤인 2006년 1월1일 그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인사청문회 당시 ‘2 대 8 가르마’로 상징되는 가장 얌전하고 비논쟁적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이 이때다. 대중이 낯설어한 유시민이기도 했다.

결국 관심은 그의 미래다. 지금 상식적인 결론은 ‘유시민 이사장 본인도 모를 것’인 듯하다. 정치에 관심 있는 이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한다. 아직 3년 넘게 남은 다음 대선을 예측한다는 게 실상 무망하다. 특히 한국 정치처럼 역동적인 영역에선 더욱 그렇다. “정치는 을이 되는 일”이라는 본인의 절절한 거부반응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시대의 변화와 정치적 민심의 요구에 개인 의지가 오롯이 관철되기는 쉽지 않다. 당장 문재인 대통령의 ‘운명’처럼 이는 그간 한국 정치사가 증명한 바다.

하지만 굳이 어느 쪽이든 베팅하라고 한다면 개인적으론 ‘정치, 안 하지 않을까’ 쪽에 걸 듯하다. 안 하는게 좋겠다는 바람이거나, 잘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아니다. 지금까지 모습이 왠지 ‘그랬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건 저를 쪼징한 건가요, 조진 건가요.”

마지막 영상이다. 거침없고 가시 박힌 직선어법으로 “여의도 정치에선 실패했으나, 거리의 정치에선 성공했다”는 비난과 평가가 뒤섞인 반응이 그의 상징이던 시절이다. 독설과 선동, 그 반대편에서 중도·개혁을 이야기하던 낭만적 자유주의자의 ‘두 모습’을 근거로 그를 노무현 시대 정치 언어를 연기하는 ‘배우’이자 ‘광대’로 규정한 기사에 대해 측근에게 건넨 반응이었다. 이 기사로 ‘유팬(유시민 지지자)’들의 거친 항의를 받았지만, 정작 그는 뜻밖에 ‘쿨’했다. 독설의 권리를 누리는 듯한 행동만큼이나 자신을 향한 평가에도 개의치 않는 ‘쿨한 유시민’이다.

이처럼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정치가 중요하지, 요구받는 정치는 그리 무겁게 느끼지 않는다. 투사는 될 수 있어도, 국정의 책임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실상 그의 ‘항소이유서’의 용감함이나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발랄함은 모두 그의 자유로움에서 연유한다. 그 스스로 정치의 내용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고, 호불호도 뚜렷하다. 그만큼 정치적 비판과 요구에 대한 맷집도 세다.

그는 여전히 한 시대의 특정한 한 흐름을 대변하는 ‘광대’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 시대 모든 목소리들이 관심사는 아닌 듯하다. 노 전 대통령 8주기를 앞둔 2017년 5월 “진보 어용 지식인이 되겠다”는 선언은 이런 그의 개성과 뜻이 모두 함축된 토로다. 유시민을 담기에 ‘정치’라는 그릇은 너무 엄격하고 지루하다.

<김광호 정치 에디터>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TAG 유시민

아이들은 자란다. 몸만 크는 게 아니라 뇌의 기능도 성장한다. 피아제 인지발달론에 따르면 엄마가 눈앞에 없어도 사라진 게 아니란 걸 알려면 24개월쯤 지나야 한다. 호모 사피엔스에게 고유한 상상과 추론 능력은 13세 전후에 발달되는데 이때쯤 되면 체험 없이도 결과를 추론하거나 현재 사건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연역적 사고가 가능하게 된다. 성숙해진다는 건 아마도 현실 저 아래 거대한 뿌리를 볼 줄 아는 능력이 아닐까. 

지난 4일 삼성전자가 미세먼지연구소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민간 기업으로는 처음일 듯한데 반가운 일이다. 초대 연구소장을 맡은 삼성종합기술원 황성우 부원장은 “이번 미세먼지연구소 설립으로 미세먼지 대응을 위한 사회적 역량을 결집하는 데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히 ‘사회적 역량을 결집’한다는 대목에 눈길이 갔다. 역량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조직심리학자 매클랜드 교수는 역량이란 기량, 지식, 태도로 구성되는 잠재적이고 종합적인 능력이라고 했다. 기량과 지식은 측정과 훈련이 가능하지만 태도는 개인의 기질이나 동기처럼 내면화된 것이라 필설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큰 사고를 겪거나 죽음을 앞두지 않고는 변화하기 어렵다. 미세먼지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역량이란 무엇일까.

OECD처럼 경제개발을 위한 조직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로 기후변화, 초미세먼지, 미세플라스틱을 꼽고 있다. 작년 5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 우리 국민을 가장 불안하게 하는 위험요소도 미세먼지였다.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19>에서는 아예 대놓고 환경, 필(必)환경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미세먼지에 관한 한 사람들의 관심과 지식 그리고 미세먼지 없는 쾌적한 환경에 대한 수요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미세먼지에 대한 파편적인 지식들이 유통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무엇이 정확한 정보인지 판단해줄 신뢰할 만한 기관은 아직 없는 형편이다. 환경부도 신임 장관이 해결을 위해 몰입하고 있으나 국가가 보증할 만큼 적확한 원인 분석은 이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원인별 제거방안이 나올 수 없고, 설령 나온다 해도 입법절차 등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당연히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처한 상황별 미세먼지 대응방안도 공식적으로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감정은 불안불안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미세먼지 대응책은 누가 만들어낼 수 있을까. 정부? 지자체? 기업? 환경단체? 그도 아니면 각자도생?

지난 MB 정부 때부터 정부, 기업, 시민사회의 거버넌스가 붕괴됐다.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라 생각한다. 여기에 더해 박근혜 정부 시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여파로 기업들은 정부나 시민사회단체와의 협력에 더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이 와중에 삼성 미세먼지연구소가 기술적인 해법을 넘어 미세먼지 대응을 위해 사회적 역량을 모으는 데 일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포부가 삼성스럽지 않아 신선하다. 그럴듯한 선언으로만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대기업들이 선의로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활동을 많이 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기업의 경계를 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있다. 정부도 기업과 같은 거리로 시민사회와 연대해주기 바란다. 좀 더 많은 이해당사자가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들도 생겨났으면 좋겠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붕괴>에서 “환경보호론자들이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집단인 대기업과 협력하지 않는다면 세계를 짓누르는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동감한다. 미세먼지를 포함해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와 기업은 물론 고양이 손이라도 잡아야 한다. 최근 개편한 청와대 비서실에서도 유념해주기 바란다.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너지전환 걸림돌, 원전  (0) 2019.01.18
고양이 손이라도 잡아라  (0) 2019.01.11
안식, 새해의 제언  (0) 2019.01.04
사람이 먼저인 나라  (0) 2018.12.28
경제문제가 된 기후변화  (0) 2018.12.26
탈원전이 재앙이라는 사람들  (0) 2018.12.14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