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의 반응을 살피는 것은 언론이 해야 하는 중요한 임무이기도 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기자들이 여론을 파악하는 척도로 ‘누리꾼 댓글’을 진지하게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인터넷 세대’는 이미 부상하고 있었지만, 언론은 생각보다 그리 변화에 재빠르지 못하니까.

그해 말, 인터넷에서는 미군 장갑차에 깔려 사망한 미선이·효순이를 위해 추모의 촛불을 켜자는 어느 누리꾼의 제안이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었다. 반신반의하던 언론은 실제로 서울 광화문에 촛불을 든 인파가 몰려드는 것을 보고 그제야 인터넷 여론에 실체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됐다.

15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의 한 출판사의 문이 굳게 잠겨 있다. 파주출판단지 안에 위치한 이곳은 더불어민주당 당원 댓글조작 사건 현장으로 사용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신세계가 열린 것 같았다. 시민 반응을 따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는 ‘원시적’인 방식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은 누리꾼의 댓글은 훨씬 더 쉽고 정확하게 여론을 가늠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사실 여론을 파악한다는 것은 숲 안에 있는 사람에게 나무가 아닌 숲을 보라는 말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내로라하는 갤럽 전문가들이 정교하게 짠 선거 예측 여론조사 결과들이 괜히 빗나가는 것이 아니다. 여론조사는 표본을 어떻게 잡느냐,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2016년 4·13 총선 때도 여론조사 기관들은 한결같이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상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민주당의 승리 아니었던가.

누구나 안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여론이다. 그래서 문제는 여론 측정의 실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알면서도 부정확한 결과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확대재생산하는 행태에 있다.

하물며 댓글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수많은 댓글 중 무엇을 골라 쓸 것인가. 언론은 각자 자기 입맛에 맞는 댓글만 뽑아쓰고 싶은 유혹에 빠지고, 정치인들은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만 퍼뜨리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리고 이러한 유혹이 바로 사이버 정치 브로커를 등장시킨 토양이 됐다. 즉 문제는 댓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는 메커니즘에 있다.

현재 한 광역단체장 후보 선거캠프에서 일하는 ㄱ씨는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드루킹 같은 사이버 정치 브로커들이) 단순히 댓글만 다는 것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한 명의 정치 브로커가 여러 개의 블로그와 인터넷 언론 등을 동시에 운영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사실상 같은 집단에서 운영하는 여러 인터넷 언론사가 서로서로를 인용하면서 ‘좋아요’를 눌러주고, 중앙 언론사의 온라인뉴스팀 같은 곳에서 그 기사를 받아 쓸 경우엔 ‘유명 언론사가 우리 기사를 인용했다’며 또 인용보도하는 무한반복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그러진 거울이 실제 얼굴을 일그러뜨릴 수는 없는 것처럼, 댓글이 여론을 만들 수는 없다. 댓글을 조작할 순 있어도 여론을 조작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나의 이 믿음은 2015년의 기억에서 비롯됐다. 그 무렵, 인터넷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더 많은 보상금을 노리고 농성을 하는 것이란 글이 흘러넘쳤다. 박근혜 정부가 장악하고 있던 방송들과 보수언론이 이런 반응들을 골라 보도하면, ‘일베’ 같은 사이트가 다시 이를 퍼가서 증폭시키는 무한반복이었다. 소수의 왜곡된 시선이 마치 근저에 깔려 있는 진짜 숨은 여론인 양 호도되자, 나는 잠시 의심을 했던 것 같다. 다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사회적인 재난 앞에 모두가 애끓는 심정이겠거니 여겼지만, 사실 내 예상과 달리 침묵하는 다수는 보상금을 노린 것이란 생각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어느 빅데이터 업체가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세월호’가 언급된 1500만건 이상의 문서를 분석해 내놓은 결과를 보고 깨달았다. ‘세월호’에서 사람들이 떠올린 연관어들은 ‘눈물’ ‘자식’ ‘참사’ ‘실종자’ 같은 것들이었다. 그 수많은 연관어 속에 ‘돈’ ‘보상금’ ‘빨갱이’ 같은 단어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유족에 덧칠을 하려던 사람들은 내 생각보다 더 적었고, 소수였고,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한줌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진짜 여론에 의해 탄핵을 당했다.

‘더불어민주당원 댓글조작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드루킹’은 지난해 4월24일 대선이 한창이던 당시 이런 글을 올렸다고 한다. “두 번의 TV토론으로 문재인이 2위 주자와 격차를 크게 벌렸는데 그 여론을 우리가 만들었다.” 자신들이 온라인 여론을 압도적으로 점유해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렸다는 주장이다. 추운 겨울, 촛불을 들고 광화문 거리로 나섰던 사람들의 민심을 모욕하는 헛된 망상이다. 댓글이 여론을 만든다면, 그것은 댓글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여론을 악화시키는 형태로나 가능할 것이다. 결국 끊이지 않는 ‘댓글 스캔들’의 원인은 댓글 따위로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정치판의 오만함이 아닐까.

<정유진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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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혁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혁신은 연구개발비 액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문제는 당신이 어떤 인재를 보유하고 그들을 통해 어떻게 혁신을 이끌어낼 것이며, 여기에서 얼마나 혁신을 이루어내는가 하는 것이다.”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일도 혁신의 과정이며, 이는 일자리 예산과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관련 인재들이 어떤 노력을 해서 만들어내는가가 더욱 중요한 일이다. 해양수산 부문에서도 생각을 달리하면 여러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데,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항만은 배후지에서 부가가치활동(Value-Added Activities)을 확대하여 일자리를 크게 늘릴 수 있다. 부산항 환적물동량 1000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분) 중 5%에 대해 부가가치 활동을 할 경우에도 50만TEU 화물을 처리할 수 있다. 생활용품 기준으로 포장 및 라벨링 작업 시 1000TEU당 60~68명의 고용이 가능하므로 이를 기준으로 볼 때 부산항 환적물동량의 5%만 부가가치 활동을 한다고 해도 약 3만여개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현재 전체 항만배후지역에서의 고용은 2016년 기준으로 6482명에 불과해, 우리나라 항만 환적물동량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대부분 항만구역 내 입주업체들이 보관, 보세창고(CFS) 등의 기능만 수행하기 때문이다. 항만의 궁극적 목표를 처리 물동량 규모에서 항만에서의 일자리 창출 규모로 바꾸어야 한다. 환적화물을 하역한 후 개봉하여 가공, 조립, 고객 맞춤화, 검사, 라벨링, 재포장, 컨테이너 적입, 적출 등의 부가가치활동을 한 후 재선적을 유도하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 이러한 부가가치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부산항 등 항만구역을 항만구역 밖으로 확대하는 자유무역지대 확대에 대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어촌에서도 관광, 수산물 가공·유통·판매, 민박 등을 통해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해양수산부가 새롭게 추진하는 ‘어촌 뉴딜 300사업’의 대상인 300개 어촌계는 전국 2000여 어촌계의 15%에 해당한다.

거제 해금강 어촌계의 경우 관광, 가공, 판매업 등으로 42개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고, 서산 중왕마을 어촌계는 관광, 민박, 가공 등으로 27개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300개 어촌계가 20~30명씩 일자리를 창출할 경우 약 6000~9000개의 일자리를 기대할 수 있다.

어촌 및 도서 지역에서 관광, 가공, 유통, 판매 등 혁신사업이 생겨나고 일자리가 창출되게 하기 위해서는 기존 법령, 규칙, 지방조례 등에 숨어있는 규제조항이나 상충되는 조항을 완화 또는 철폐해야 할 것이다.

국제물류 분야에서도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해외 진출 중소·중견 제조기업의 국제경쟁력 관건인 물류경쟁력(SCM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물류 전문인력의 해외 파견 및 현지 정주지원 정책사업이다. 신(新)남방정책의 대상인 동남아시아와 인도에 대한 현지 정주를 요구하는 물류 전문인력 수요는 총 2300여명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글로벌 일자리 창출을 위해 청년 인력에 대한 해운항만 물류 교육·훈련 및 현지 정주 사업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의 글로벌 정책이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같이 국가 정책으로 정립되어야 한다.

<양창호 |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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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차가 막히는 서울 한복판에서 일할 때 그들은 구세주였다. 그들은 전화만 걸면 한걸음에 달려와 서울 전역을 누비며 30분 이내로 임무를 완수했다. 그들의 활약 덕분에 제때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하면 당장이라도 쫓아와 죽일 것처럼 다그치는 이들로부터 봉변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 사무실에 자주 오는 택배기사는 오랫동안 용달차를 몰던 분이었다. 큰 사고가 나는 바람에 평생 모은 돈을 다 쏟아부었다는 그는 배운 게 달리는 것이라 택배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분은 때때로 우리 일이 더뎌서 늦게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차가 막혀 어쩔 수 없었다고 둘러대 줬으며, 일을 끝내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우리에게 내가 바람처럼 달려줄 테니 서두르지 말라며 느긋하게 기다려주기도 했다. 그 시절 그는 우리의 어벤저스였다.

“오빠가 음식 배달 일을 해요. 눈이 오면 정말 하루 종일 불안해요.”

곧 첫 아이 출산을 앞둔 이의 말을 들으면서 손자를 볼 나이에 오토바이에 올랐던 어벤저스가 생각났다. 그를 오래전에 잊은 나는 늦게 배달하는 누군가를 탓했으며, 비 오는 날이든 눈 오는 날이든 음식 배달을 태연히 시켜놓고는 그다지 고마워하지 않았다.

“오빠 얘기를 들으면 정말 별사람이 다 있어요. 배달이 늦었다고 문을 아예 안 열어주는 사람도 꽤 많아요.”

퇴짜 맞은 음식은 배달기사의 몫이라고 했다. 용역 회사를 통해 일하는 그는 자신이 싣고 갔던 음식값을 고스란히 자신이 물어내야 한다. 짜장면이 불었다고 되돌려 보내면 불은 짜장면을 먹어야 하는 건 배달을 한 사람인 것이다.

“한 번은 햄버거를 배달했는데, 식었다면서 안 받아주더래요.”

그날 한 아이의 아빠가 될 배달기사는 햄버거는 가게에서 드셔도 뜨겁지 않을 거라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하고 돌아섰다고 했다. 그는 어벤저스가 아니라 그냥 무기력하게 당해야 하는 ‘을’이었던 것이다. 그가 느꼈을 서러움은 모든 을이 경험한 것이리라.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니 벌레로 변했다는 카프카의 소설 ‘변신’은 어쩌면 우리 사회 ‘을’의 모습을 예언한 것은 아닐까.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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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 <재심>에서 다뤄진 ‘약촌오거리 사건’의 진범에게 15년의 징역형이 확정됐다. 사건 당시 유일한 목격자였던 ㄱ씨는 되레 범인으로 지목돼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ㄱ씨가 겪은 부당한 처사는 그를 범인으로 몰아간 수사관의 과오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강압에 의한 ㄱ씨의 ‘거짓 자백’을 걸러내지 못한 사법시스템에 의해 범죄가 완성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인간의 이성은 합리적”이라는 사회과학적 전제는 인지과학과 관련된 각종 연구를 통해 오래전에 이미 붕괴됐다. 연장선상에서 범죄에 연루된 가해자와 피해자, 목격자뿐 아니라 범죄를 수사·기소하고 이를 재판하는 형사사법의 당사자들도 집단오류에 빠질 수 있다.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피해자의 사연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2017년 개봉한 영화 <재심>의 한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우리 법제는 1차 수사기관을 직접 견제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구비하지 않은 상태다. 오히려 기소를 담당해야 할 검찰에 직접 수사권까지 부여했다. 기소의 독점과 편의, 수사지휘권, 공소취소권, 독점적 영장청구권을 모두 한 집단에 주면서 시대적 상황에 따라 집단이성을 상실할 경우 권한이 남용될 여지가 있다. 집단이성이 집단오류로 변질됐을 때 얼마만큼 참혹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이미 역사적 경험을 통해 확인됐다.

최근 이런 집단오류를 구조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사법개혁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러나 법집행기관인 경찰과 검찰이 동일한 목표 앞에 앞다퉈 제시하는 서로 다른 의견들을 보면 문득 시민들을 냉소적 방관자로 만들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게 된다. 시민의 냉소는 곧 개혁 동력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이 부분을 민감하게 지켜봐야 한다.

필자는 사법개혁의 주체는 시민이 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시민들은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문제들을 제지하고자 입법자로 하여금 법을 만들도록 한다. 또 경찰과 검찰 같은 법집행기관에 시민이 만든 법의 지배를 받는 조건에서 시민의 안전과 자유를 보장하도록 한다. 그런데 법집행기관이 집단이기주의에 빠지거나 다른 조직의 하수인이 돼 본래의 기능을 하지 않는다면 그 시스템은 전면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

불과 1년 전 우리 시민들은 국정을 농단한 정부 수반을 법대 앞에 세웠다. 제 기능을 못하는 정부에 대한 저항은 당연한 권리이자 눈을 감고 지나쳐서는 안되는 사명이다. 법집행기관이 저지른 수많은 인권침해 사례에 비춰봐도 시민들은 법집행기관이 스스로 인권친화적으로 변모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해서는 안된다. 나아가 법집행기관 간에 상호견제 수단을 확보해 인권침해 상황이 쉽게 노출될 수 있는 투명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시민의 법감정과 공감이 바탕이 된 형사사법시스템 개혁으로 다시는 ‘약촌오거리 사건’과 같은 불운이 반복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충호 | 충남지방경찰청 부장(경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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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는 길을 앞두고 설렘을 맛보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당신은 낯설수록 쾌감을 느끼는 모험가여야 한다. 가는 길의 산과 물이 설수록 모험가는 짜릿함을 느낀다. 모험 그 자체를 즐기지 않는 조심성이 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낯선 길이 일확천금을 기대할 수 있는 엘도라도로 우리를 안내한다면 떠나기 전날 잠을 설쳐도 어색하지 않다. 황금은 아니어도 영혼의 충만함을 얻을 수 있다면 떠나는 길에 기대를 걸 수도 있다. 누구라도 한번쯤 버킷 리스트에 올려 놓았을 듯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나 라사로 가는 순례의 길을 떠나기 전날, 그 어떤 바람 때문에 밤새 뒤척일 수 있다.

인생이란 시간이라는 길을 걷는 여행과도 같다고 비유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라는 길을 빨리 걷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떡국 한 그릇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나이 한 살 얼른 더 먹고 싶어 떡국을 두 그릇이나 먹겠다고 칭얼대기도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랬던 사람도 어느새 생일 케이크 위에 꽂힌 촛불의 개수를 신경쓴다. 모두가 칭송하는 젊음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새삼 확인할수록 맞이한 생일날 우리는 마냥 기쁘지 않다.  

늙어가는 길, 누구에게나 초행길이다. 그 길을 걸어간 사람은 많으나, 정작 그 길에 도달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곳에 도착한 사람조차도 어서 오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그러니 늙음으로 향한 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곳에 가지 않으려 발버둥친다.

늙는 게 두려운 사람에게 노인들의 세계가 얼마나 위험하고 초라하고 볼품없는지를 알려주는 메아리가 수시로 들린다. 메아리는 말한다. 노인의 세계에서 고독사는 다반사이며, 그들 중 일부는 폐지를 주워 생계를 꾸리고 있는데 폐지 줍는 노인의 74.5%가 76세 이상이며 이들의 한 달 수입은 1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노인은 공짜 지하철을 타고 할 일 없이 서울에서 천안까지를 왕복하고 있다고 한다. 어떤 노인은 교회가 나줘주는 용돈 500원을 받겠다고 줄을 서 있다고 한다.

메아리는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심각한 노인자살률의 원인이 늙음이 아니라 그 역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심각한 노인빈곤율임에도 불구하고 ‘빈곤’이 빚어내는 재앙을 ‘늙음’에 대한 공포로 슬쩍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안락한 노후’를 위해서 자금이 필요하다고 속삭인다. 당연 그 자금이 안티에이징이라는 마법을 발휘할 것이라는 꼬드김도 잊지 않고 전해준다. 안티에이징의 시선으로 사람을 보면 노인은 안티에이징에 실패한 사람에 불과하다.

늙음이 꼰대를 낳았다고 생각하는 한,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은 늙지 않는 것뿐이다. 늙음 그 자체가 차별적 농담이 되고, 젊음에 대한 예찬으로 세상이 가득 찰수록 늙어감에 대한 공포는 커진다. “세월을 비켜간 외모” “40대에도 여전히 매력적인 비결” “나이를 잊은 듯한 당당함” “여전한 활력”과 같은 예찬은 노년공포증에 대한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100세시대, 즉 호모헌드레드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유엔이 선포했어도 노년공포증과 연령차별주의적 농담은 무성히 퍼져나가고만 있다. 누구나 늙음을 조롱하고, 늙은 사람을 가엽게 여긴다.

한 젊은 사진작가가 있다. 그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젊었기에 그 역시 늙는 게 두려운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아직 노인이 아니기에 노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머릿속에 담고 있는 노년공포증을 그 역시 갖고 있었다. 그 사람은 “늙어가는 과정이란 지쳐버린 배우가 무대 뒤로 물러나다가 마침내 발을 헛디디는 것처럼, 어둠 속으로 서서히 뒷걸음질 치는 것”이라 상상했었다. 그 젊은 사진작가는 이스트런던에서 86년 넘게 산 노인 조지프 마코비치와 함께 이스트런던 거리를 다니며 노인의 일상을 기록했고 그에게 인생에 대해 물었다. 이미 늙은 조지프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답했다.

“세상일에 울어봤자 소용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슬퍼해도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아요. 가장 좋은 건 그냥 계속 걷는 겁니다.”(<나는 이스트런던에서 86 1/2년을 살았다> 중)

머무르고 싶어도 머물 수 없다면, 가는 세월 막을 수 없으니 그냥 계속 걷는 것 이외에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늙음은 죄가 없다. 노인빈곤은 정책으로 해결하면 된다. 늙으면 모든 게 나빠질 것이라 겁을 먹고 있다면 매일 늙어가는 우리조차 어느새 연령차별주의의 덫에 걸려 있는 것일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늙으면서 나빠지지만 모든 사람이 늙었기에 추해지지는 않는다. 늙음은 추함의 원인일 수 없다. 추한 노인도 있지만 ‘괜찮은 노인’도 있다. ‘괜찮은 노인’은 여전히 젊은 노인, 세월이 비켜간 얼굴을 갖고 있는 노인이 아니다. 젊음은 지나온 과거이며, 늙음은 현재이다. ‘괜찮은 노인’이 되는 것은 미래의 문제이다. ‘괜찮은 노인’이 되려면 늙지 않으려고 발버둥칠 게 아니라 그냥 계속 걸어야 한다. 이스트런던의 조지프처럼. 우리는 계속 걸을 테니, 국가는 노인빈곤을 해결하라고 외치면서.

<노명우 | 아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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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임금의 대명사인 순(舜)은 큰 지혜를 지닌 인물로 일컬어진다. <중용>에서는 순의 큰 지혜가 스스로의 깨달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질문하기 좋아하고 하찮은 말 하나도 신중히 살핌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공자가 사랑한 제자 안연은 유능하면서도 무능한 이에게까지 질문하고, 많이 알면서도 조금밖에 모르는 이에게까지 질문한 인물로 기억된다. 공자 자신도 질문을 너무 많이 한다고 무시당한 적이 있을 정도로 묻고 배우는 일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조선 시대 학자 김창협은 숙종을 모시고 경서를 강독하는 자리에서, 질문을 전혀 하지 않는 왕을 경계하기 위해 순과 안연을 거론했다. 절실하게 사색하고 빠짐없이 따져보다 보면 의문이 생기지 않을 리가 없다. 질문이 없다는 것은 잘 알아서가 아니라 의문이 생기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므로 이렇게 매일 강독을 이어가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엄중히 질책하였다. 김창협의 이 말로 인해 숙종은 비로소 전날 강독한 부분에 대해 연달아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고 <실록>은 전한다.

우리나라 교실에 질문이 별로 없다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의미 있는 개선의 시도들이 적잖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입시 경쟁을 뚫고 대학에 들어온 우수한 학생들이 질문에는 유독 미숙한 것이 여전한 현실이다. 워낙 잘 만들어진 인터넷 강의를 골라듣는 데에 익숙해진 학생들이어서, 대학 강의가 취향과 필요에 따라 스킵이 되지 않아 불편을 느낀다는 말도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진지하게 경청하고 창의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모습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더 심각한 것은, 질문 없음이 단지 교육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있다. 질문은 학습효과를 높이고 소통능력을 기르는 수단을 넘어서,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힘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왜 그래야 하는지를 질문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과 부속품을 가르는 지점이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을 다시 생각해볼 때 생기는 것이 질문이고,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문학이다. 다가오는 세상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우리가 배운 대로 되지 않는 일이 너무도 많은 세상일 것이라는 점이다. 무엇을 배우는가보다 무엇을 질문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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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문재인 정부 1년이다. 촛불시민의 염원대로, ‘나라다운 나라’를 향해 가고 있을까?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는 문재인 정부가 순항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과거 국정농단에 대한 청산이 진행되고, 한반도에 전해오는 평화의 소식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공정거래 구축,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주목할 만하다.

복지 분야는 어떨까? 문재인케어, 아동수당, 기초연금 등 복지의 확대가 눈에 띈다. 2010년 무상급식 논쟁을 계기로 시작된 복지바람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에서도 불고 있다. 항목만 보면 서구 복지국가의 모양새를 대략 갖춘 셈이다.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돼온 부양의무자, 장애등급제, 사회서비스 인프라 등에서도 단계적인 개혁이 제시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복지국가로 가고 있는 걸까? 왠지 이 경로를 밟아도 대한민국이 복지국가에 도달할 거라는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어디가 비어 있을까?

복지는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재원으로 설계된다. 지금까지 복지논의를 이끌어 온 건 급식, 보육, 기초연금 등 세금복지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증세 없는 복지’로 인해 중앙정부, 지자체, 교육청이 복지예산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초과세수 덕택에 무난히 예산이 편성되었다. 물론 초과세수로 운영되는 복지는 불안정하다. 얼마 전 출범한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증세를 본격적으로 다룬다니, 여기서 세금복지의 재원이 보강돼야 할 것이다.

남는 영역은 사회보험이다. 근래 세금복지가 발전했지만 우리나라 복지체제의 핵심 기둥은 연금, 의료, 요양, 실업, 산재를 책임지는 사회보험이다. 현재 사회보험은 전체 복지 지출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앞으로는 80%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복지의 중심부를 차지하면서도 사회보험은 급여가 빈약하고 사각지대가 넓다는 문제를 지닌다. 4차 산업혁명까지 거론되는 시대여서 사회보험이 온전한 역할을 다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래도 다수가 노동하는 사회에서는 사회보험을 주축으로 보완책을 마련하는 게 최선이다.

문재인 정부도 사회보험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급여 확대도 제안한다. 그런데 이에 뒤따라야 할 사회보험료 주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문재인케어를 보자. 비급여의 급여화를 통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늘리는 괜찮은 정책이다. 하지만 재원은 국민건강보험 누적흑자액의 일부 사용과 건강보험료의 통상적인 자연증가분에 의존한다. 첫 1~2년은 누적흑자액으로 충당한다지만 이후가 불명확하다. 국민연금도 그렇다. 지금도 급여에 비해 보험료가 낮은 구조인데도 대선 공약과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국민연금 대체율 인상은 명시돼도 보험료율에 대한 문구는 없다. 실업급여 보험료율은 그나마 내년에 조금 오를 예정이지만 이 역시 선진국에 비하면 여전히 낮다. 최근 조선업 구조조정에서 보듯이, 실업에 대응하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선 고용보험료의 대폭 인상도 검토해야 한다.

이해는 간다. 시민들의 부담을 감안한 판단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사회보험을 제대로 세울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포용적 복지국가’를 제안한다. 작년 가을부터 내용을 채우고 있고, 조만간 대통령이 의장을 맡아 출범할 ‘사회전략회의’도 이를 강조할 듯하다. 과연 포용적 복지국가론은 사회보험 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수립할까? 재원 없는 공문구라 비판받았던 노무현 정부의 ‘비전 2030’의 한계를 넘어설까?

물론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대응하는 보완책도 필요하다. 사회보험료가 힘겨운 불안정 노동자, 영세자영자 등에게는 보험료 지원을 늘려야 한다. 아예 사회보험 밖에 있는 취업자에게는 실업부조를 제공하고, 빈곤 노인에게는 기초연금의 추가 지급도 요청된다. 사회보험을 강화하면서 세금복지를 보완하는 투 트랙이다.

요약하면, 문재인 정부 1년, 복지 확대를 위해 노력한 기간으로 평가된다. 다만 사회보험료를 성역으로 두는 한계도 확인된다. 이제 터놓고 이야기하자. 복지국가로 가려면 그만큼 책임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 사회보험료는 소득에 따라 내고 또 기업이 절반을 책임지는 사회연대 재정이다. 공적 사회보험이 튼튼할수록 비용이 더 드는 민간보험에 가입할 이유가 사라지기에 사회보험료 인상은 결과적으로 가계비를 절감하는 일이다.

조만간 내년 건강보험료 논의가 시작된다. 여름이면 5년마다 시행되는 재정추계에 따라 국민연금 보험료도 의제로 떠오를 예정이다. 실업 안전망 대책도 절실하다.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 민간보험 대신 공적 사회보험으로 우리 생활을 보장하자.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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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

봄밤에 글들을 뒤적이다 아름다운 시를 한 편 읽었다. 이영광 시인의 ‘사랑의 발명’. 장면을 그려보다 문득 오래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토요일 오후, 친구 어머니를 뵈러 보육원 후원모임에 찾아간 데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대학원 시절 초반이었고 지금 같은 봄이었다.

낯선 분위기에 이제나 저제나 모임 마치기만 기다리던 중, 뒤편에 계시던 어느 수녀님께서 나를 가리키며 기도를 좀 해주고 싶은데 괜찮겠는지 물으셨다. 그곳 원장님 말씀이, 그 수녀님은 치유의 은사를 받은 분이니 학생은 행운이라 했다. 은사가 무슨 의미인지는 몰랐으나 실제 등에 따스한 손이 얹히자 뜨거운 것이 심장에서 쿨렁하는 느낌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뭔가 받긴 한 듯했다.

학교로 돌아와 조교실에 있는데 밤늦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열어보니 선배가 서 계셨다. 내게 독어 기초를 가르쳐주고 라틴어를 하나하나 짚으며 알려주신 분. 반가운 마음에 “선배님” 하며 옷자락을 잡았는데, 뜻밖에 선배는 취해 계셨다. 물 한잔 내어달라 하셔서 뜨거운 박하차를 끓이고 서랍에서 비스킷도 꺼내었다. 그리고 마주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박사논문 심사를 앞두고 여러 정황들로 힘들어하심을 어깨너머로 짐작하고 있었지만, 막상 직접 말씀하시니 마음이 몹시 아팠다. 까맣게 어린 후배에게 내면을 내보이며 어떤 심경일지, 아는 체 역성들면 자존심 상해할 것 같고 힘내시라 하는 것도 건방질 듯해서 단어를 고르다 “이 비스킷도 하나 드세요”라고 말해버렸다. 바보, 바보.

그날 밤 집으로 향하던 버스에서 나는 ‘오늘 수녀님 통해 받은 게 정말 은총이면요. 그거 선배님 몫으로 주세요.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요’ 신에게 빌었다. 저런 언어도 기도라 불릴 수 있다면, 열아홉의 성탄 때 ‘대학 붙여주셔서 감사해요’ 이후 처음 드린 기도였다.

거기서 이어지는 장면들이, 그렇지만 내내 훈훈하지는 않았다. 선배는 기본문헌을 숙지하며 어학원부터 등록하라 조언하셨지만 ‘포스트-’ 이론에 흥분한 나는 새로운, 더 새로운 문헌부터 읽고 싶었다. 수업시간에 칭찬받고 좋아했던 날에는 문장에 멋 부리지 말라는 충고를 받았다. 난 혼란스러웠고, 이내 서운했고 결국 반발했다. 어느 시점부턴가 선배는 인사를 받지 않았고, 몇 번 그런 후로 나 역시 고개를 숙이며 피했다. 다시 인사하게 된 것은 시간이 한참 흘러서였다.

이 이야기가 위의 시와 대체 어떻게 연결되는지, 여기까지 보신 분들이 의아해하실 듯하다. 오래전 그때 사랑을 발명했다고, 그건 숭고한 형제애였노라고 감히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사랑을 알지 못하며, 일방적인 선망과 거기서 파생된 ‘자격요건을 갖지 못한 자’의 연민이 이제껏 가져본 감정의 전부니까. 더욱이 당시 난 치유의 힘을 진지하게 믿었던 것도 아니었다. 뭔가 얻은 것 같으니 그거라도 꺼내주고픈 간절함을 기도말로 옮겨보았을 따름이다. 심지어 그 감정은 칭찬에 대한 갈망과 인정욕구 앞에서 지속가능하지조차 않았다. 그럼에도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아 보여 “너무 놀라 번개같이” 기도를 흉내내어본 기억은, 그리고 내가 그랬듯 누군가도 그렇게 하리라는 상상은, 불가해한 위안을 준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 시를 신이 없기 때문에 그 대신 한 인간이 다른 인간 곁에 있겠다고 결심하는 이야기로 읽었다 했다. “무정한 신 아래에서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기 시작한 어떤 순간들의 원형”으로 말이다. 무신론자가 아닌 나는 이 시가 채우지 못할 각자의 결핍을 지닌 유한한 인간이 그럼에도 다른 인간 곁을 맴도는 순간을 포착하였다고 보았다. 사랑할 줄도 모르면서 당장 내 앞의 사람에게 좋은 것을 내어주고픈 소망들의 원형. 그렇게 읽었고, 그게 좋았고, 그래서 글을 썼다.

<이소영 | 제주대 교수·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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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드루킹 댓글조작’ 사실이 드러나면서 네이버가 도마에 올랐다. 2004년 뉴스에 댓글 기능을 도입하면서 내걸었던 쌍방향 소통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여론을 왜곡·조작하는 행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에 대해 근본 책임을 물으라는 엄중한 질책이다. 네이버를 통한 댓글 여론조작은 해묵은 과제이다. 네이버는 문제가 드러나면 댓글 정렬 방식을 바꾸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땜질 처방에 불과했다. 공감순, 공감비율순, 최신순, 과거순 등으로 배치하고 남성과 여성 혹은 특정 연령대별로 통계화한 현재의 방식에서도 조작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댓글조작에 사용될  아이디가 헐값에 거래되고, 댓글조작 브로커들은 혼자서 댓글 수천개를 다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한다. 소수가 댓글을 달아 다수의 여론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인 셈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4월25일 (출처:경향신문DB)

따지고 보면 여론조작 문제는 네이버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 중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네이버는 신문이나 방송 등 각 언론사의 수많은 기자가 공들여 만든 기사를 자의적으로 편집, 배치하는 등 사실상 언론 역할을 하면서 여론을 지배했지만 지금껏 언론으로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지난해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청탁을 받고 해당 단체에 불리한 기사를 볼 수 없도록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편집조작도 서슴지 않았다.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부동산, 맛집 소개, 가격 비교사이트 등 중소 영세업자에게는 갑질을 해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더 이상 책임 없이 언론 행세를 하며 여론을 왜곡하고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네이버라는 공룡을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야 3당에서도 “기자 한 명 없이 뉴스장사를 하면서 막대한 수입을 가져간다”(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여론을 왜곡해 민주주의 본질을 훼손하는 네이버의 뉴스서비스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박주선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고 비판했다. 네이버는 당장 대수술에 나서야 한다. 우선 댓글조작이 가능한 현 체제를 개편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 구글이나 중국의 바이두처럼 네이버에 올라있는 기사를 클릭하면 해당 언론사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아웃링크 제도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네이버처럼 자기 사이트에서 모든 뉴스를 연계하는 ‘인링크’ 방식을 고집하며 댓글 기능까지 제공하는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검색시장의 70%를 차지하고 하루 뉴스를 접하는 사람이 1300만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뉴스를 생산하지 않으므로 언론이 아니다”라는 뻔뻔한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이번에도 기회를 놓치면 ‘민주주의의 적’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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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7일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과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 사이의 군사분계선 앞에서 활짝 웃는 얼굴로 상봉하게 될 것이다. 콘크리트 분계선을 넘어 남쪽 땅에 발을 디딘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이 뜨겁게 악수를 나눈 뒤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정상회담장인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으로 향할 때 사람들은 ‘한반도의 봄’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일산 킨텍스에 설치된 프레스센터에서는 과거 두 차례 정상회담 때의 2배가 넘는 2800여명의 기자들이 취재등록을 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24일 오전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한병도 정무수석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열린 차담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는 회담 사흘 전인 24일 평화의집에서 리허설을 열었다. 25일에는 북측 선발대가 내려와 합동 리허설을 하게 된다. 이제 두 정상이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일만 남았다. 북한과 미국이 ‘말폭탄’을 주고받으며 위기가 고조되던 한반도에서 불과 4개월 만에 이처럼 드라마틱한 전환이 이뤄지리라곤 상상조차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변화의 시동을 건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은 올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방침과 남북관계 복원에 나설 뜻을 천명했고, 김여정 특사 파견,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제안,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선언 등 대담한 선제조치로 대화 흐름을 주도해 나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수십년간 쌓여온 미국 내 대북 불신 분위기 속에서도 북한이 보낸 비핵화 메시지의 진정성을 감별해내고 적극 호응하면서 대전환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초심을 유지하면서 일관되게 ‘바닥 다지기’를 해오지 않았더라면 한반도의 봄은 기대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북핵위기가 한창일 때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는 한편으로 한반도 전쟁반대를 천명하고 북한에 대화메시지를 보내야 하는 이율배반적 처지에서도 지혜와 용기, 균형감각을 잃지 않았다.

남북정상회담은 특정 세력의 정치이벤트가 아니다. 북한의 변화도 ‘평화공세’로 폄훼할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보수세력들도 이번 정상회담을 주의 깊게 지켜보면서 북한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지금 남북관계의 큰 바퀴가 70년 만에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종착지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곧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냉전지대가 사라지는 것을 우리 모두 목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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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개헌이 결국 무산됐다. 6·13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려면 국민투표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그 시한인 23일을 넘겼기 때문이다. 실무절차를 단축하면 시한을 오는 27일까지 늦출 수 있다고 하나 정치권 태도로 보면 6월 개헌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국무회의에서 “이번 지방선거 때 개헌을 하겠다고 국민께 다짐했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고, 국민께 매우 유감스럽고 안타깝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개헌 무산을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왼쪽)과 함께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청와대 본관 쪽으로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30년이 넘은 ‘1987년 헌법체제’를 시대변화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는 시민의 열망은 대단히 높았다. 그런데도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하겠다던 여야 정당 모두 시민들과의 약속을 저버렸다.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4년 가까이 국민투표법을 개정하지 않고 방치한 것은 심각한 직무유기다. 국회에 제출된 대통령 개헌안은 제대로 논의조차 해보지 못하고 그대로 폐기될 처지다. 지난 1년간 정치개혁특위는 공전만 거듭해왔다. 개헌을 바라는 시민들의 요구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나 다름없고, 이런 국회를 지켜만 봐야 하는 시민의 마음은 참담할 뿐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보다 제왕적 국회를 손보는 일이 더 급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드루킹 사건’ 같은 정치적 논란과는 별개로 국회는 제 할 일을 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드루킹 사건을 내세워 국회를 보이콧하고 천막 농성까지 하고 있다. 개헌을 무산시킨 책임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사건을 정치 쟁점화해 지방선거를 유리하게 이끌려는 정략적 계산이겠지만, 정치적 이해에 따라 개헌을 좌지우지하는 정당은 시민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6월 개헌은 물거품이 됐지만 개헌 동력 자체를 꺼뜨려서는 안된다는 공감대는 아직 유지되고 있다. 이제라도 여야가 개헌 합의에 나선다면 올해 안에 개헌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가 “자신들이 맞춰놓은 시간표에 응하지 않았다고 개헌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억지 논리”라며 “개헌의 동력은 분명히 살아있다”고 말한 것은 다행스럽다. 한국당은 ‘6월 개헌안 발의·9월 개헌’ 로드맵을 내놓은 바 있다. 31년 만에 찾아온 개헌 기회를 이대로 차버릴 수는 없다. 여야는 지방선거 이후 특정시점의 개헌안 일정을 도출하는 합의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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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클럽은 책으로 이어진 가족…매달 즐거운 소풍 가는 경험”

정완근씨(37)에게 책은 ‘독약’에 가까웠다. 잘 봐줘야 ‘냄비 받침대’였다. 2016년 12월 지인의 ‘유혹’에 빠져 강원도에 여행 갔다가 인생이 바뀌었다. 북클럽의 이효석 문학기행이었다. 요리 잘하는 정씨는 ‘수발이나 들어주자’는 생각에 따라갔는데 얼떨결에 회원이 됐다(문제의 지인 정은주씨는 “일종의 강제가입이었다”고 털어놨다). 처음에는 억지로 읽었다. 어느 순간 책을 좋아하게 됐다. 2017년 한 해 동안 읽은 책이 30권을 넘겼다. 정은주씨는 “정완근씨 지인이 ‘완근이가 매일 책을 끼고 다닌다. 도대체 완근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묻더라”며 웃었다.

23일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올해는 1993년 이후 25년 만에 선포된 ‘책의해’다. 책의해 조직위원회는 ‘함께 읽는 2018 책의해-무슨 책 읽어?’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성인 10명 중 4명이 한 해 동안 책 한 권도 안 읽는 나라(2017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 함께 책을 읽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지난 17일 경기 안산의 동네책방에서 정은주·정완근씨가 ‘애정해’ 마지 않는 ‘토요미스터리북클럽’을 만났다.

지난 17일 경기 안산 초지동의 동네책방 ‘토닥토닥괜찮아’에서 만난 토요미스터리북클럽 회원들은 웃음이 많았다. 이들은 “독서모임을 하면 책도 만나고 친구도 만난다. 외로운 분들은 꼭 북클럽에 참여해보시라”고 권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 ‘토요미스터리북클럽’ 탐사기

경기 안산지역을 중심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회장 이남식씨(54)는 반월공단의 자동차부품업체, 정완근씨는 인테리어업체에서 근무한다. 김방원씨(51)는 대구의 제조업체에서 일한다. 정은주씨(45)와 이옥선씨(31)는 도서관 사서다. 대학 교직원(김명기·47)과 다큐멘터리 감독(김수목·40)도 있다.

출발은 볼링동호회였다. 현 회원 7명 중 4명이 함께 볼링을 즐겼다. 2008년 어느 날,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연을 쫓는 아이들>을 함께 읽게 됐다. 풍성한 대화가 오갔다. 신선했다. 한 달에 한 권 정해서 읽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회원들이 가진 책을 돌려 읽었다. 주제를 정하지 않다보니 추천자 취향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문제가 생겼다. “외국 도서관의 독서동아리 실태를 조사해봤어요. 확실한 정체성을 가져야 모임이 오래가겠더라고요”(정은주). 4년 전쯤 미스터리 장르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장르 특성상 집중하기 좋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북클럽 이름도 미스터리를 읽는다는 점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책을 함께 읽는 행위 자체가 ‘미스터리(mystery·불가사의)’라는 데 착안해 정했다. 물론 미스터리만 읽지는 않는다. 틈틈이 한강의 <채식주의자>, 현기영의 <순이 삼촌> 같은 작품도 읽었다.

함께 읽기의 즐거움을 물었다. “혼자 읽을 때는 읽고 나면 덮어버리죠. 며칠만 지나도 ‘내가 뭘 읽었지?’ 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가벼운 책, 시간 때우기용 책을 보게 되는 측면도 있고요. 함께 이야기할 만한 책을 선택해 조금은 힘들게 읽고 대화를 나누면 즐거움이 더 큽니다”(김명기). “혼자서는 절대 안 읽을 책, 평생 한 번도 만나기 힘든 책을 읽을 기회가 생겨요. 같은 책을 읽고 이렇게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느낄 때가 많아요”(정은주).

때로는 의무감도 힘이 된다. “특별한 독서가가 아닌 한, 혼자서 시간 내 독서하기 쉽지 않죠. 처음 북클럽 시작했을 때는 안 읽고 가기도 했는데, 체제를 갖추면서 안 읽고 오면 벌금 1만원씩 내게 됐어요. 그때부터 악착같이 읽었죠(웃음). 출근시간보다 회사에 일찍 나와 1시간~1시간 반 정도 읽어요. 동료들이 ‘박사 되려고 그래?’ 하지요”(이남식). “주로 그림책이나 그림책 다룬 이론서를 많이 봤고, 여행에세이를 즐겼어요. 사실 추리소설은 별로 안 좋아했는데…. 여기 와서 읽으며 새로운 재미를 알게 됐지요. 함께 읽으면 책 읽는 범위가 넓어집니다”(이옥선).

혼자 읽고 나면 덮어버리기 일쑤
여럿이 모이니 책읽기에 푹 빠져
생일파티 마다하고 참석 열혈팬도

토요미스터리북클럽은 매달 마지막 토요일 오후 7시에 모인다. 10년을 꾸준히 이어온 비결은 ‘사람’이다. 정완근씨는 술과 친구를 좋아하는 쾌활한 성격이다. 처음에 독서모임 한다고 얘기하자 주변에서 “네가?” 하는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책 읽기에 푹 빠진 뒤엔 생일날에도 파티 열어주겠다는 지인들을 ‘뿌리치고’ 북클럽을 택했다. &lt;오리엔트 특급살인&gt;을 읽은 뒤 해물탕으로 직접 생일상을 차려 회원들을 감동시켰다. 이옥선씨는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 건 책에 대한 좋은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전 북클럽을 통해 매달 즐거운 소풍 가는 경험을 한다”고 말했다. 정은주씨는 “우리는 ‘책으로 이어진 가족’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 ‘느티나무 그늘’ 탐사기

독서모임 ‘느티나무 그늘’ 회원들이 지난 19일 서울 충정로의 한 카페에 모였다. 각자 좋아하는 책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옛 성공회대 노동대학)를 거친 사람들이 만든 북클럽이다. 2015년 8월부터 서른두 차례 만났다. 처음에는 역사 관련 서적을 주로 읽었다. 강만길의 <고쳐 쓴 한국근대사>, 서중석의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임영태의 <인류이야기-근대의 세계> 등이다. 이후 소설 등 다른 장르로도 독서 목록을 넓혔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황석영의 <객지>,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등을 읽었다. 올해 들어서는 철학과 자본론을 주제로 12개월치 리스트를 미리 짜놓았다.

단체 메신저 방에 모이는 회원은 17명이다. 모임 때마다 10명 안팎이 참석한다. 지난 19일 서울 충정로의 한 카페에서 이들을 만났다. IT 교육기관 근무(신상명·53),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활동가(강인수·49), 전직 기업체 중국지사장(하수연·58), 출판사 대표(김수현), ‘노동 방출자’(이상필·63) 등 다양하다. 이날 처음 참석했다는 윤성노씨(37)는 서울 행당동에서 세입자로 살다 강제철거를 당했다. 지금은 주거 문제 활동가이자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중·고생들에게 진로 교육을 하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꿈을 찾으라고 하면서 정작 저는 정체돼 있더라고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2~3개월씩 연체를 해요. 혼자서는 안되겠다 마음먹고 모임에 참여하게 됐어요.”

무역업을 했던 양모씨는 자본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에 관심이 많다. 철학 중심의 2018년도 커리큘럼을 만든 주역이다. 병원에 근무하는 배형길씨(46)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었는데, 요즘에는 집에서도 독서를 해 두 아들을 놀라게 한다. ‘우리 아빠가 달라졌어요’의 생생한 사례다.

“책 읽기만 목적 두면 모임이 딱딱
여행 등 재미 더하면 오래 이어져”

사회복지사 백미숙씨(48)는 원래 다독가였다가 한때 책을 놓다시피 했다. 느티나무 그늘에 참여하며 다시 책을 잡았다. 이제는 틈나는 대로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논다’. 백씨는 “여러 독서모임을 해봤는데, 책 읽는다는 목적에만 집중하면 모임이 딱딱해지고 오래 못 가더라. 인간적 유대가 필요하고, 여행을 가는 등 파생되는 재미도 있으면 좋다”고 말했다.

■ 지속가능한 북클럽 만들기 5계명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토요미스터리북클럽과 느티나무 그늘 회원들에게 ‘멀리, 함께’ 갈 수 있는 비결을 들어봤다. 지속가능한 북클럽 만들기 5계명이다.

■ 가깝고 편안한 사람들과 시작하라

낯선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할 경우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두려움이 생긴다. 부담 없이 편안하게 대화하는 즐거움이 있어야 모임에 오고 싶어진다.

■ 반드시 고상한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진지한 책을 읽고 심각한 토론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라. 책을 읽으면 현실적 도움이 돼야 한다는 생각도 금물이다. 함께 모여 수다 떨 수 있는 가벼운 책부터 잡아도 된다. 추리소설이든 무협지든 만화든 함께 읽는 즐거움을 맛보는 게 먼저다.

■ 모두가 완독하고 오지 않아도 된다

회원 전원이 책을 다 읽고 참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라. 읽고 오지 않았다고, 꺼낼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다. 서로에게 너그러워져야 북클럽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

■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라

독서토론을 하다보면 정치관이나 종교관 때문에 갈등을 빚는 경우가 생긴다. 타인의 생각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임을 명심하라.

■ 처음부터 책 읽는 일에만 초점을 맞추지 마라

초기에 독서와 토론에만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 요즘 작고 개성있는 동네 책방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곳으로 나들이하는 일부터 시작해도 된다. 책을 먼저 읽고, 그 책을 토대로 만든 영화를 함께 보는 등 새로운 즐거움을 만들어가면 금상첨화다.

<김민아 논설위원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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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인 4월22일은 ‘지구의날’이다. 지구의날은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에서 발생한 해상기름 유출사고를 계기로 1970년에 미국 위스콘신주 상원의원 게이로드 넬슨이 주창했다고 한다. 첫해에는 하버드대생 데니스 헤이즈가 앞장서 주도했던 지구의날 기념 행사에 미국인 2000만명이 참석해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 첫해의 기념행사는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유엔 인간환경회의’ 개최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환경이슈가 커지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 때문에 그 후 20년 가까이 개최되지 못했다.

1990년에 이르러 제2차 기념행사가 열리면서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그해에 우리나라에서도 가톨릭 단체와 민간환경단체들이 기념행사를 개최했는데, 최근에 와서는 지방자치단체들도 기념행사에 나서고 있다. 요즘에야 ‘지구의날’ 행사를 개최한다고 해서 누가 반대하는 일도 없고, 별로 관심받는 화제가 되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기념일이 퇴색될 정도로 환경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구의 지질학적 변화를 초래할 정도로 생태위기가 심각해졌다는 지적과 이와 관련된 정보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노벨 화학상을 받은 네덜란드의 화학자 크뤼천(Paul Crutzen)이 2000년에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를 지질학적으로 신생대 제4기 홀로세(마지막 빙하기 후)를 대체해서 ‘인류세(Anthropocene)’라 부르자는 제안을 했다 한다. 인류가 지구의 전 범위에 걸쳐 끼친 영향은 지구의 변형을 초래한 지질학적 변화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인류세는 지질학의 공식용어로 채택할 것인지가 검토될 정도로 상당히 일반화된 개념어로 통용되고 있다.

홀로세는 신석기시대가 시작되고 인간이 지구환경을 바꾸는 농경생활이 시작된 시기이다. 자연스럽게 간다면 5만년은 더 존속할 수 있다고도 한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결정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부터를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인 인류세가 시작된 시기로 보고, 이 시기는 닭이 대규모로 사육되기 시작한 때여서 인류세의 표준화석은 닭뼈가 될 것이라는 예측을 한다. 방사성물질, 플라스틱, 알루미늄, 콘크리트 등 ‘기술화석(technofossils)’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물질이 퇴적층에 쌓이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며 대규모 쓰레기매립장이 전 지구적으로 나타난 시기이기도 하다. 기후변화로 해수면의 높이도 크게 상승했으며, 탄소, 질소, 인 순환에 변동이 일어났다. 그 속도가 사상 유례없이 빠른 것도 특징이다. 기후변화도 지구 평균온도가 섭씨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는 선에서 막아보자는 국제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인데, 그 선을 넘어가면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지구의날이 처음 제정된 1970년 무렵은 1962년에 살충제 DDT의 유해성을 경고하는 레이철 카슨의 &lt;침묵의 봄&gt;이 출간된 이후여서 이 문명이 초래할 생태파괴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지기 시작한 때였다. 특히 첫해의 지구의날 기념행사가 사상 최대 규모로 번진 배경에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전운동과 68혁명, 히피 등의 반문명운동이 전반적으로 거대한 흐름을 이룬 시대였던 데에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현재의 과학계 논의대로라면, 인류세가 본격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렇게 돌이켜 보면, 지난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인류세로 지칭되는 지구의 지질학적 변화는 심화되고 있다. 2015년에 이르러 유엔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채택한 것과 기후변화 억제를 위한 국제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지난 시기에 꾸준히 이어져온 생태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난 시기에 대규모 반문명적 저항이 있었던 분위기에 비해보면, 인류세가 거론될 정도로 심각해진 상황에 대한 인식과 대처방안으로서는 매우 미약하고 미흡하다는 실감이 든다.

산업문명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석유를 발견해서 석유화학제품을 사용하게 된 것이 번영을 가져온 결정적인 원인이었고, 석유는 지구상의 생명이 죽어 땅속에 축적된 것이니, 결국 지구 안에서 지구 덕분에 우리가 잘 사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공동의 집 지구에 초래한 위기에 둔감해진 원인은 지구와 뭇 생명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더 주의하고 절제할 수 있는 균형감각이 마비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지구중력에 적응진화한 인간의 몸을 무중력상태에 유지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의 옷을 입혀 우주로 띄워보내며 우주여행과 화성이주를 거론하는 시대이다. 인간의 위대하고 놀라운 도전능력이 무엇이든 다 해결해온 만큼 지구에 대해 특별히 겸손할 필요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태도 안에는 세계를 움직여가는 인간의 생각이 있는데, 지구와 우주를 물질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태위기에 대한 처방도 물질에 대한 관리와 조절통제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다. 지구에 대한 감사와 겸손이란 것은 이러한 세계관 안에서는 들어설 자리가 없기에 생태위기에 대한 해법을 논의한다는 것은 항상 주변적이며 다양한 위기 중의 한가지로 인식될 뿐, 생각의 근본 안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함정이라는 각성이 어려워진다.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하기 전에 삶을 가능하게 하고 풍부한 자원을 제공하여준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먼저 생각해야 할 때다. 지구가 단순한 물질로 지워져버린 산업문명시대의 왜곡된 세계관을 대체하고 이를 바탕으로 성찰과 각성이 수반된 균형 잡힌 체계론이 필요하다고 여겨지지만 아마도 대전환의 어떤 계기가 주어져야 가능할 것 같다. 스스로를 지구학자로 자처했던 토머스 베리(1914~2009)는 “공포와 매혹”이라는 표현을 썼다. 우리를 다른 문명으로 추동하는 힘은 공포스러운 상황을 면하려는 것이든지, 아니면 지금보다 더 선택의 매력을 느끼게 하는 생활패턴이 주어질 때에 작용할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산업문명도 “공포와 매혹”의 두 측면을 지니고 있다. 현재로서는 환경 문제나 빈곤 문제와 차별 등 어두운 측면들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이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자 하는 매혹이 훨씬 더 강렬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 두 가지의 심리와 그것이 반영된 현실의 간극 사이에서 반전이 일어나는 날이 머지않아 다가올 수도 있다.

<강금실 | 법무법인 원 변호사·포럼 지구와사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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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관리를 담당하는 국가 공기업인 K-water에 30년간 재직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이 4대강 사업이다. 정부 정책 결정에 따라 짧은 기간에 사업을 수행했고, 건설이 종료된 지 5년여가 지났지만 사회적인 논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새 정부 들어 4대강의 자연성 회복 추진이 결정되었다. 국무총리는 2018년 세계 물의 날 기념식 축사에서 세 차례에 걸친 보 시범 개방의 효과를 분석해서 올해 안에 전체 16개 보의 개방 등 처리방안을 시행할 것임을 밝혔다. 정부가 의지를 보였으니, 이제 합리적인 보 처리방안을 마련하여 건강한 4대강으로 되살리는 실천노력이 남은 셈이다.

K-water는 4대강 사업으로 국민에게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겸허히 되돌아보고, 국민과 국가를 위한 발전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며, 지속가능한 우리 강 살리기 차원에서 단계별로 성과를 만들어 가고 있다.

지난 6년간의 보 운영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의 분석과 경험을 기반으로, 보의 환경성·활용성·경제성·사회적 편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대안을 모색 중이다. 이를 통해 하천 본연의 기능이 발휘되도록 환경성이나 활용성이 현저히 낮은 보가 있다면 철거 또는 완전 개방하여 재자연화하고, 이·치수 측면에서 활용성이 높거나 사회적 편익이 있는 보는 보완대책과 함께 구체적인 활용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러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데이터 분석과 검토 자료를 통해 정부의 4대강 보 재자연화를 위한 정책 결정을 적극 지원해 나갈 것이다.

다만, 4대강의 문제점을 해소하고 우리 강 살리기를 위한 합리적인 실행을 위해서는 고려할 점들이 있다. 첫째, 4대강 전체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물의 특성상 특정 지역이나 시설의 작은 변화도 유역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상류의 댐과 보, 하류의 하굿둑에 이르기까지 시설 간 연계성과 해당 유역의 물관리 여건을 조화롭게 고려하여, 자연친화적인 보 관리방안을 포함한 종합적인 마스터플랜을 마련하여 추진해야 한다. 물 이용과 수질·생태환경의 조화로운 추진을 위해서라도 일원화된 관리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둘째, 특정 수계에 우선 적용하여 효과를 검증하고 순차적으로 후속사업을 추진하는 방안이 합리적이다. 철거가 필요한 경우에도 영향을 고려하여 부분 개방, 제약 요인 해소, 완전 개방, 철거 순으로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4대강 사업도 필요한 수계에 우선 적용하여 검증 후 후속사업을 결정하는 방식이 합리적이었을 거라는 전문가들의 평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우리 강 살리기를 위한 체계적인 재조명과 더불어, 지속가능한 물관리를 위해 물의 가치도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K-water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물기업의 위상을 기반으로, 기술력은 있으나 영세한 중소 물기업의 해외 진출을 통한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제 4대강 사업에 대한 과거지향적인 소모적 논란보다 국가와 국민의 입장에서 열린 긍정의 마음으로 서로 합심해서 자연과 미래세대를 위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공감 속에서 합의를 도출하여 국민들께 신뢰받는 물관리로 전환해 나가자.

<이학수 | K-water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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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숲속의 작은 집>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며 힐링을 느끼곤 한다. 언젠가부터 나영석표 프로그램이 단순 오락을 넘어 어떤 ‘철학’을 담기 시작했다고 보는데, 가령 <삼시세끼>라든가 <윤식당> 같은 것 말이다. 화려한 연예인들의 억지웃음보다 이 투박하고 느린 콘텐츠에 매료되는 것은 이들 프로그램이 도시인들의 ‘결핍’을 정확히 꿰뚫고 우리들의 로망과 판타지를 대리충족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숲속의 작은 집>에서 이러한 시도들은 확실히 어떤 질적 전환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자발적 고립 다큐멘터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프로그램의 내용은 간단하다. 두 명의 피실험자가 각자 오프 그리드(전기·수도 등의 공공시설로부터 단절된)의 작은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작은 집에 최소한의 물, 태양광 전기와 화목 난로가 주어지고 피실험자들은 최소한의 생필품으로 혼자 생활하면서 ‘행복추진위원회’가 요구하는 미션들을 수행해간다.

그 미션이란 이런 것. ‘가져온 짐을 반으로 줄이기’ ‘쌀밥에 한 가지 반찬으로만 밥 먹기’ ‘한 번에 한 가지만 하기’ ‘계곡 물 소리 담아오기’ ‘빗방울 사진 찍어오기’ ‘3시간 동안 밥해 먹기’ 등등.

별것 아닌 미션 같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면 우리의 현재적 삶이 ‘소박한 삶’과 멀어져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피실험자가 덜어내는 짐들을 보면서 사실 우리에게는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심지어 비싼 집과 최신 전자제품과 옷들 때문에 역설적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근심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또는 ‘한 번에 한 가지만 하기’라는 미션을 보며 여가시간조차 다양한 콘텐츠로 빼곡하게 채워진 나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된다. 부엌이든 침대든 늘 함께하는 유튜브라든가 SNS 말이다. ‘기다림이나 여백을 조금도 참을 수 없게 된 지금, 그 속도와 정보들이 과연 내 삶에 그토록 가치가 있는 것인가? 과연 삭제된 공백들은 그대로 사라져도 되는 것인가?’와 같은 생각들과 함께. 그리고 피실험자들이 숲으로 들어가고 흙을 밟고 계곡 물소리와 새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연과 교감하는 것을 보며, 우리의 아스팔트와 모니터라는 일상에서 삭제된 거대한 ‘대지’와 ‘실재’들을 떠올리게 된다.

눈 밝은 독자들은 다 알고 있겠지만, 이 실험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명확하다. <월든>은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1845년 미국의 월든 호숫가에서 스스로 작은 오두막집을 짓고 자급자족하면서 2년 남짓 ‘자발적 가난’을 수행하며 기록한 책이다. 흔히 반문명적, 자연친화적 사상서로 알려진 이 책은, 그러나 이렇게만 알고 넘기기에는 너무 긴요한 삶의 철학을 담고 있다. 미국의 작가 E B 화이트가 대학 졸업생에게 졸업장 대신 이것을 선물해야 한다고 언급했던 것처럼, 이 책은 지식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주어진 생의 감각과 힘으로 살아가는 방법과 그 실천을 담고 있는 삶의 교습서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의 요지는 간단하다. ‘간소하게 살아라, 누구의 삶도 아닌 자신의 삶을 자신의 힘으로 가꿔라, 직접 행하는 속에는 만물과 교감한다면 고독이란 없다’ 등. 가령 데이비드 소로는 ‘여행 비용을 위해 돈을 벌지 말고, 지금 당장 걸어서 그곳으로 가고, 먼 곳이 아닌 자신의 내면과 삶으로 여행하라’고 충고한다.

나는 <숲속의 작은 집>의 피실험자들이 과연 이 실험을 통해 어떻게 변화해갈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프로그램은 실제 인물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연출된 <트루먼쇼>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쇼 아닌가. 피실험자 B가 ‘한 번에 한 가지만 하기’라는 미션을 행하면서 “그럼, 촬영하면서 뭘 같이하면 안되지 않아요?”라고 반문했던 것처럼. 이들이 보여주는 구름과 하늘에 함뿍 빠져들다가 문득 이 쉬운 것조차 시뮬라시옹으로 감상하게 된 현실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간단한 것을 TV로 향유한다는 것, 이는 그만큼 우리 삶에 ‘그것’이 사라져버렸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숲속의 작은 집>은 자연과 생의 감각, 능동성을 망각해버린 도시인을 위한 자활 프로그램인가. 서글픈 생각에 ‘이번 주말엔 꼭 가까운 산에라도 가야지’라고 결심해 본다. 아니 당장은 원두커피라도 천천히 갈아 마시고, 에코백을 들고 먼 길을 돌아 시장에나 가야겠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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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복고적 향수를 자극한 <응답하라> 시리즈와 달리 많은 기성세대에게 청춘의 시작은 대학입시라는 아름답지 못한 기억으로 얼룩져 있다. 고등학교는 입학시험을 위한 수단이었으므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정규 수업은 교육과정을 무시한 문제집 풀이 시간으로 변질되었다. 공부를 잘하는 소수 학생을 제외한 대부분이 수업 시간에서 배제되었으며, 교사의 능력 역시 입시 문제 풀이의 기술로 평가되었다. 그나마 대입 시험에 선택된 과목은 수업이라도 배정된 데 반해 입시 비주류 과목은 편성에서 제외되거나 자습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이런 과밀과 공허의 이분법은 인간을 우열로 나누는 무서운 구조를 고착시켰다. 우등생이 문제집 풀이에 집중하는 동안 열등생 대부분은 교실에서 잠을 잤다. 양극화는 인문계와 비인문계라는 고교 유형으로도 나타나 한쪽이 과열로 인한 파행이 성행했다면, 다른 쪽에서는 무기력과 냉소가 가득한 부실이 만연했다. 인문계 고3은 바둑판처럼 가로세로 서열화된 대입 배치표로 자기 등급을 매기는 동안 실업계 고교생들은 온갖 비인간적 대우를 체험하며 사회에 떠밀려 들어갔다. 과도 경쟁으로 인한 고통은 모두에게 흉터를 남긴 것이다.

이러한 아픈 기억에도 기성세대 다수가 수시를 축소하고 자기 때처럼 정시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집단적 퇴행 이면에는 경험하지 못한 미래에 대한 짙은 불안이 깔려 있다. 이들 가운데 고교 시절 협력과 나눔, 배려를 체험한 이는 거의 없다. 입시 상담을 위해 만나는 학부모 다수는 자식이 처한 어려운 상황이 교육 제도의 모순으로 인해 가중되었다고 호소하면서도 자신의 세대와 달리 동아리 활동이나 봉사활동, 진로 탐색, 다양한 발표 등이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한다. 내신 성적을 위해 학교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거나, 수능에서 선택하지 않은 과목도 공부하는 풍경 역시 기성세대는 체험하지 못했다. 만약 정시 위주로 입시제도가 돌아간다면 이 모든 긍정적 변화는 사라진 채 고교 현장은 다시 과열 경쟁과 소외만 남을 것이다.

학종, 혹은 수시가 귀족 전형이라는 근거는 일부 인정된다. 사실상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특기자 전형이 남아 있고, 선발 방식의 공정성 역시 국민적 신뢰라는 기준에는 미흡하다. 한국 교육의 근원적 문제인 입시병을 해소할 만병통치약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수능 위주로 돌아간다고 공정성이 확보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 풀이를 위해 투자되는 자원의 격차는 빈부 격차만큼이나 크다. 무엇보다 비인간적인 과거로의 퇴행만 가속화될 것이다. 학종이 불공정으로 차별을 심화할 것이라는 지적은 뒤집어 해석하면 학종이 활용하기에 따라 기회가 제한된 많은 학생들의 가능성을 살리는 제도라는 방증이 된다. 내신과 수능의 절대평가라는 토대에서 학생들을 바라보는 다양한 기준이 마련된다면 입시 공정성 문제는 상당수 해소될 수 있다. 교육 소외 지역에서 명문대를 가고, 세계적인 학자와 기업인을 배출하고, 장기적으로 과열 입시로 인한 부작용도 완화할 수 있다.

오랜 기간 한국인은 입시에서 심한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 수시 전형에 대한 혐오를 표현하는 대중의 반응에서 이러한 상흔이 남긴 분노와 두려움이 드러난다. 자식에게 고통이 전이될 것이라는 우려에 반응은 더욱 날카롭다. 미래를 위한 변화는 불가피하나 반대하는 이들의 두려움 또한 헤아려야 한다. 이는 잔인한 어제가 남긴 오늘의 고통이다.

<정주현 |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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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초반, 방송에서 잘리기가 부지기수였던 흙수저 아이돌 그룹인 방탄은 소수의 한국 소녀 팬과 아시아 지역 일부 소년 팬과 연결접속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과 아시아의 소녀 팬으로 이루어진 영토를 벗어나(탈영토화) 미국과 유럽 대륙의 수많은 팬과 연결접속, 차원과 복잡도가 다른 새로운 연결접속을 만들어냈다(재영토화). 방탄이 한국과 아시아에서 벗어나 미국과 유럽의 팬들과 연결접속한 것을 단순히 팬의 범위가 확대되었다는 의미로만 볼 수는 없다. 이질적인 전 세계 팬들과의 연결접속이 방탄의 성공의 의미를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시켰다.”

들뢰즈 연구자인 이지영은 <BTS 예술혁명>(파레시아)에서 방탄소년단이 팬덤인 아미(ARMY)와의 연대와 실천을 통해 이루어내고 있는 놀라운 사회, 문화적 변화와 미학적 변화를 ‘방탄현상’이라 부릅니다. 이 변화에는 “기존의 위계질서와 권력관계를 침식하며 사회 전체를 뒤바꾸는 혁명의 함의까지 발견”되고 있으며, “2016~2017년의 촛불혁명이 우리나라에 국한된 정치 변화를 가져왔다면 방탄으로 인해 초래되고 있는 변화는 전 지구적인 규모의 포괄적이고 근원적인 변혁을 징후적으로 표현한다”고 주장합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방탄은 2017년 11월, ‘아메리칸 뮤직어워드(AMA)’ 시상식장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함성과 비명을 지르며 춤을 따라 추는 수많은 방청객들, 방탄 멤버들의 한국어 이름을 연호하고 한국어 가사를 떼창하는 미국의 20대 여성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 낯선 광경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영미권에서까지 명실상부한 성공을 거둔 한국의 아이돌 그룹은 방탄이 처음이었습니다.

방탄은 해외 진출 이후 ‘BTS’라는 이름을 주로 내걸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방탄소년단의 기획사 측은 BTS가 ‘Beyond The Scene’의 약자이며, 이는 ‘10대와 20대를 향한 억압과 편견을 막는다’는 뜻을 유지하면서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꿈을 향해 끊임없이 성장하는 청춘’이란 의미를 더했다고 밝혔습니다.

아이돌의 노래 가사가 품고 있는 의미를 46개 키워드로 분석한 <아이돌을 인문하다>(SIDEWAY)의 저자 박지원은 “그들은 어른들의 훈계와 가르침을 ‘위선’과 ‘거짓말’이라고 단언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휘둘리고 있는 나약한 청소년들을 향해 ‘더 이상 꾸물거리지 말라’고 일침을 놓습니다. 기성세대와 체제에 대하여 반항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런 시스템과 문화에 젖어 있는 10대들을 향해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마치 꾸짖듯 노래하는 것이 방탄소년단의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이지영도 “현재의 세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필요성, 그리고 그 변화가 더 큰 자유와 해방, 더 나은 세상을 향해야 한다는 데 대한 감응과 공명. 이것이야말로 방탄이 글로벌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근본적인 요인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방탄의 사회비판적인 메시지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팬들의 공감을 일으킨 것은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적인 경쟁 체제가 전 지구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현실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심화되는 경쟁, 일자리 부족, 정의롭지 못한 부의 분배, 그로 인한 삶의 불안과 우울은 결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방탄과 아미가 만들어낸 ‘폭발성의 비밀’이 노래 가사에만 있을까요? 이지영은 젊은 세대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유튜브라는 세계 최대 영상 공유 사이트의 힘을 강조합니다.

“공유 플랫폼의 폭발적인 양적 성장은 많은 양의 콘텐츠가 축적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양적 변화는 질적 변화를 야기한다. 예술에 대한 대중의 태도가 바뀌면서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갖는 새로운 예술형식이 출현한다. 모바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하는 절대다수의 대중을 고려할 때, 21세기 모바일 네트워크 사회가 새로운 예술에 요구하는 것은 ‘공유가치’라고 할 수 있다. 복제 기술이 등장하면서 예술의 가치가 ‘의식가치’에서 ‘전시가치’로 바뀌었듯이, 모바일 네트워크 기술이 전면화되면서 21세기 예술의 가치는 ‘전시가치’에서 ‘공유가치’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지영은 ‘방탄현상’이 “절대적이고 영원해 보이는 현실의 권위와 힘을 무력화시키는 출발점”의 하나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현실의 권위와 힘이 무력화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다른 삶,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다. 이 꿈은 백일몽이 아니라 세계사적 변혁이라는 객관적 사태 인식을 바탕으로 꾸는 꿈이다. 이것이 희망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삶, 다른 세상을 함께 꿈꾼다면 이 희망은 새로운 현실이 될 것이다.”

앞으로 제2, 제3의 ‘방탄현상’은 끊임없이 출현할 것입니다. 저는 그 꿈을 이어가려면 학교교육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학교 안에서 교과서, 객관식 시험문제, 상대평가 등을 퇴출시켜야 합니다. 아이들을 자본의 노예로 키우는 경쟁교육을 지양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아이들이 협력을 통해 과제를 함께 수행하면서 공유가치를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게 배려하면 창의적인 사고력이 저절로 키워질 것입니다.

방탄현상에서 보듯 지금의 젊은 세대는 이미 새로운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전문 검색으로 소설 쓰는 법을 배우고, 독자들의 댓글을 스승으로 삼아 꾸준히 글을 써온 새로운 유형의 작가가 젊은 세대의 환호를 받는 세상입니다. 바야흐로 우리 교육이 이제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사교육업자의 압박을 뚫고 백해무익한 객관식 대학입시부터 없애야 마땅합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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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이 같거나 같은 품이 든다면 이왕이면 더 나은 것을 고르기 마련이라는 속담이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입니다. 여기서 다홍치마는 그 치마를 입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미혼 여성은 다홍치마에 노래 ‘개나리 처녀’처럼 노랑저고리를, 신부와 새색시는 다홍치마에 녹의홍상(綠衣紅裳) 연두저고리를 입었습니다. 그러니 다홍치마 속담을 풀어보면 ‘이왕이면 어린 여자’라는 뜻이 됩니다. 게다가 과부와 기생은 청색 치마를 입었으니 ‘이왕이면 순진하고 어린 여자’에 가깝겠지요. 이걸 대놓고 표현한 속담이 ‘같은 값이면 처녀’입니다. 부인과 사별했거나 늦장가 가는 남자가 (돈 주고) 신붓감 데려오며 보인 모습들에서 이런 속담이 만들어졌으리라 충분히 짐작 가고도 남습니다.

나아가, 어린 여자가 어림없으면 ‘같은 과부면 젊은 과부 얻는다’ ‘같은 과부면 애 없는 과부 고른다’며 어떻게든 더 젊은 여자를 찾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쩜 그리 한결같은지, 자기 나이나 처지는 생각 않고 어린 여자만 찾는 비양심 심보가 이 속담들로 꼬집힙니다.

요즘 ‘영포티(Young forty)’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고 있습니다. 백세인생 고령화 사회에서 나이에 비해 가치관이나 감각, 취향, 소비 트렌드 등이 상대적으로 젊은 중년층을 이르는 말이 영포티인데, 기성세대의 관성을 거부하고 형식과 허울보다는 자유분방함과 실속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에 편승해, 생각과 감각은 고루한 채 허울 좋게 말만 가져다 쓰는 ‘나이든 오빠’들도 보입니다. 그들이 영포티를 쓰는 것은 어쩌면 연애가 목적이고, 연애의 목표 또한 ‘다홍치마’일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런 거라면, 양심이 있다면, 여자들의 ‘돈 많고 명 짧은 남자’ 선택권도 인정해야겠지요. 그래야 진정 동가홍상(同價紅裳)에 비길 공평한 동가(同價) 아니겠습니까?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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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버린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종량제 봉투에 넣어 내어놓거나, 재활용품으로 분류해 놓으면 다음날 사라지던 쓰레기다. 거대한 집게에 매달려 5t 트럭에 실린 채 시야에서 멀어지던 쓰레기는 내 머릿속에서도 사라졌다. 눈앞에서 사라진 쓰레기는 없어진 것인가?

<나는 쓰레기 없이 산다>의 저자 비 존슨은 “쓰레기가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을지는 몰라도, 우리의 머릿속에서도 사라진다면 곤란하다”고 말한다. “매립지에 이르러 환경을 파괴하고, 독성 화합물을 공기와 토양에 퍼뜨리고, 그 상품들을 만들기 위해 쓰였던 자원을 헛되게 만들며, 처리하는 데 매년 수십억달러가 들어간다”고 쓰레기의 사후를 설명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달 초 불거진 재활용 쓰레기 수거거부 사태는 ‘쓰레기의 존재감’을 유례없이 드러냈다. 마땅히 사라져야 할 것이 사라지지 않자 그제서야 ‘버린 이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재활용 쓰레기의 수거·선별·재활용 과정을 차례로 추적했다.

쓰레기를 쫓기 시작하자, 왜 눈앞에서 사라진 쓰레기에 관심을 갖기 힘든지 알 수 있었다. 정말 그것들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쓰레기 관련 업체들은 하나같이 멀리 떨어진 외딴 곳에 있었다.

쓰레기를 다루는 일은 거의 이주노동자들이 하고 있었다. 먼지와 냄새가 가득한 가운데 마스크도 없이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미세먼지 수치 등을 논하는 것은 의미 없어 보였다.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실은 트럭이 왔다 갔다 하는 선별장에서 대표는 “사고가 잦으니 조심하라”고 말했다. 9일 뒤, 수도권의 한 선별장에서 노동자가 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페트병 재활용 공장은 4000여평 규모에 설비비만 200억원이 들었다고 했다. 공정은 간단했다. 이물질을 제거하고, 색상별로 분류하고, 부수고, 씻어낸다. 하지만 총천연색 페트병, 알루미늄 뚜껑, 잘 떼어지지 않는 라벨은 단순한 공정에 거대한 설비를 필요케 했다. 잘게 부서진 페트병 조각은 물로 세척된다. 그 폐수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인천, 경기 해안과 낙동강 하구가 세계에서 미세플라스틱 농도가 2, 3번째로 높은 곳이라는 연구 결과와 과연 무관할까.

‘쓰레기의 사후’를 보고 나자, 더 이상 예전처럼 쓰레기를 버릴 수 없게 됐다. 비닐은 운이 좋다면 고형연료가 되어 시멘트 공장에서 태워져 탄소를 내뿜을 것이다. 운이 나쁘다면 매립되거나 소각장으로 가 토양과 공기를 오염시킬 것이다. 1회용 커피컵은 대부분 매립장이나 소각장으로 갈 것이며, 어쩌면 스페인 해변에 떠오른 향고래의 배 속에서 나온 플라스틱 조각 중 일부가 될 수도 있다. 쓰레기의 처리 과정은 재활용 마크처럼 명쾌하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비용과 노동이 들어가고, 또 그 과정에서 폐기물이 생산됐다.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물건이야기>의 저자 애니 레너드는 “쉽게 고장나고 재활용하기 어려우며 유독한 제품을 과도하게 포장해 판매하는 기업들이 어질러놓은 것들을 계속 치워주면서 그들의 나쁜 행동을 강화하지 말자”라고 말한다. 쓰레기가 될 물건을 생산한 기업이 책임지도록 하면 애초에 더 좋고 더 오래가고 독성이 덜한 물건을 만들게 될 것이란 것이다.

정부가 쓰레기 재활용 정책을 장기적 안목에서 검토하고 있다. 과도한 1회용품과 플라스틱 사용을 일상에서 몰아낼 수 있는 작은 틈새가 생겨난 것이다. 이 틈새가 커다란 문으로 확대되길 기대한다. 지구상에는 한 사람이 연간 420개의 비닐봉지를 사용하는 서울 같은 도시도 있지만, 연간 4개의 비닐봉지만 사용하는 핀란드 같은 나라도 있다. 그 차이가 개인의 선택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쓰레기는 그 사회의 생산과 소비, 생활방식, 환경과 지구와도 연관돼 있다. 그러니까 ‘쓰레기를 버린다’는 것은 정치적, 경제적, 윤리적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영경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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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교과서에서 접했던 조각품을 육안으로 만질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흐린 날씨와 그늘을 사랑했다는 자코메티. 그의 조각상을 보는데 ‘쪼대’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시절 조몰락거렸던 검붉은 찰흙이 쪼대다. 시골 뒷동산 진달래 덤불 근방에서 파낸 쪼대로 어설프게 만들었던 조각처럼 자코메티의 두상은 아주 거칠고 투박하였다. 드디어 명상의 집. 그 유명한 <걸어가는 사람>이 부지런히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지만, 아쉬워라, 사람이란 몸은 물론이요 그 몸에서 뻗어나오는 그림자까지 포함하는 것일진대, 달랑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조각만을 중앙에 전시해 두고 있지 않은가.

도떼기시장 같은 전시장을 빠져나와 집결장소인 송파역으로 이동했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소장 현진오)가 이끄는 식물탐사대의 무술년 첫 산행이 있는 날이다. 오후 2시가 되자, 일행을 태운 버스가 산청의 동의보감촌을 향해 부릉부릉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허준의 발자취가 묻어 있는 필봉산과 왕산을 오르는 길. 오고가는 것으로 가득 찬 산중에서 자코메티의 한 어록이 자꾸 떠올랐다. “인생에서 그 부질없는 것들을 걷어내고 그냥, 무작정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보이는 대로 실제 크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자코메티. 큰 작품을 만들려고 높이를 키우다보니 가늘고 긴 자신만의 형상이 탄생하였다고 한다. 물오른 국수나무 가지에서, 말라비틀어진 진달래의 열매 껍질에서 ‘걸어가는 사람’의 형상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었다. 이제 막 나무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식물성의 눈빛들!

벌써 확 들이닥친 여름의 기운이 물씬하다. 류의태 약수터 아래에서 많은 꽃들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활짝 핀 복사나무가 눈을 때린다. 개울물가에서 보아야 제격인 나무이다. 이태백의 ‘산중문답’의 한 대목, 복사꽃 떨어져 아득히 물 위로 떠내려가네, 그 그윽한 풍경을 선뜻 데리고 오는 복사나무. 흘러가는 물 옆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 복사나무. 하얗고 붉은 꽃잎과 그 꽃잎 뒤로 너무나도 선명한 초록의 잎이 그림자처럼 빠져나와 도드라지게 받쳐주는 복사나무. 장미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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