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 결과에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얘기한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개혁과정에 사사건건 발을 걸던 자유한국당의 참패로 이제 남은 개혁과제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갈 수 있겠다고 좋아한다. 확실한 지지로 한반도 평화 시대를 열어갈 자신감과 힘을 얻었다며 희망을 얘기한다. 나 또한 기쁘다. 그러나 흔들림 없이 추진할 개혁과제와 평화의 과정에 여성은 존재하는가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6·13 지방선거는 성차별과 성폭력이 만연한 한국사회에 변화를 촉구하는 #미투운동의 자장 속에서 치러진 선거였다. 그러나 변화를 향한 의지와 노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주요 정당의 후보들은 모두 남성 일색이었고 눈에 띄는 정책 변화도 없었다. 경기도민인 나는 마지막까지 너무 머리가 아팠다. 아니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유권자들이 갈등하고 반목하게 만든 정치권에 화가 났다.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 포스터

많은 여성들의 마음이 비슷했을까? 지방선거 직전인 6월9일 혜화역에 4만5000명의 여성들이 모였다. 불법촬영 편파수사를 규탄하며 한국사회에서는 ‘여성’인 것이 죄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온라인에서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성후보가 적은 현실을 비판하는 ‘#투표용지에 여성정치인’이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벌였다.

남성 독점적인 정치 구조의 폐해는 이미 증명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들이 만들어졌다. 지역구 30% 여성 할당제, 비례후보 교호순번제, 지방선거의 경우 국회의원 선거구마다 여성후보가 없으면 후보등록을 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제도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늘 당선 가능성이 높은 정당은 ‘적당한 여성이 없다. 공천하고 싶지만 사람이 없다’며 여성들을 폄훼하고 남성독점 구조를 유지하려는 자신들의 의도를 은폐해왔다.

이번 시·도지사 선거의 정당별 여성후보 비율은 그들의 언설이 허구임을 잘 보여준다. 더불어민주당 0%, 자유한국당 6.7%, 정의당 11%, 민중당 16.7%, 녹색당 100%. 군소정당에는 많은 여성들이 왜 주요 정당에는 없는가. 진짜 문제는 여성들이 발을 붙일 수 없고 정치리더로서 성장할 수 없게 하는 남성중심적인 정당의 문화이고, 사실은 여성이 없는 게 아니고 배제한 것이라는 증거가 이번 6·13 지방선거의 공천 결과다.

한 예로 구·시·군의 장 선거의 경우 더불어민주당은 226개 선거구 중 218곳에 공천을 했고 그중 11곳에 여성후보를 공천했다. 그런데 공천한 지역을 보면 11곳 중 4곳이 부산이고 한 번도 야당이 당선된 적 없는 지역이 2곳이나 된다. 생색내기 공천이 아닐 수 없다. 한편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단 한 명의 여성후보도 내지 않았고, 전원 당선되었다.

리더십은 기회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정치 리더십 또한 마찬가지다. 이번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더 많은 여성, 청년, 소수자에게 정치리더십 성장의 기회를 줬어야 했고 성평등한 미래를 위한 변화를 시작했어야 했다. 그것이 ‘여성’인 것 자체가 죄라고 인식할 만큼 성차별적인 한국사회를 만들어온 남성중심의 권력구조, 남성 독점적인 정치구조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에 응답하는 길이었다. 정치권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녹색당 후보가 원내정당인 정의당을 누르고 4위를 기록한 현실을 직시하길 바란다.

<김민문정 |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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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각성, 전환. 첫 학기가 끝나가는 6월 중순이면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단어다. 십대의 대부분을 입시 지옥에서 허덕여온 대학 새내기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거는 것은 아닌가라고 자문할 때도 있다. 경쟁이 유전자에 박힌 학생들에게 모둠 활동을 권유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시도라는 지적이 없지 않다. 상대평가와 서열화를 그대로 두고 무슨 교양교육, 시민교육이냐는 비판도 여전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다. 법과 제도를 탓한다고 해서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학생들의 식습관을 조사 분석해보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먹는가’. 기초글쓰기 교과에서 웬 음식 이야기냐고 의아해하는 학생들이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글쓰기는 1학년 때 이수해야 하는 기초(‘나를 위한 글쓰기’)와 2학년 때 듣는 심화(‘대학 글쓰기’)로 이원화돼 있다.

기초글쓰기 역시 둘로 나뉜다. 중간고사 전까지 자기를 성찰하는 글을 쓰고 기말고사 전까지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글을 쓴다. 한 학기 동안 A4 한 장 내외의 에세이를 6~7편 쓰는데 매번 주제가 제시된다. 생애 최고의 순간, 잊을 수 없는 장소와 같은 테마를 붙잡고 지나온 삶을 깊이 들여다본다. 이어 학생들의 시야는 한국사회의 문제점, 우리가 원하는 미래로 확대된다. 자기성찰 글쓰기가 감정 표현에 비중을 둔다면 학기 후반부 사회적 글쓰기는 관점과 논리를 강조한다.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지만 글쓰기를 좋아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중·고교에서 글쓰기를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르칠 선생님이 없다. 글쓰기를 전공한 교사도 없고 전문적인 양성 프로그램도 없다. 둘째는 독서량이 턱없이 부족하고 그래서 문해력과 창의적 사고력이 바닥 수준이다. 글쓰기에 관한 한 유리한 환경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니, 하나 있다. 학생들이 ‘나쁜 글쓰기 습관’에 전혀 물들지 않았다는 것!

기초글쓰기는 전략과 기술을 우선하지 않는다. 자기 안에 있는 이야기를 스스로 끌어냄으로써 글쓰기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 일차 목표다. 학생들은 자기 안에 쌓여 있는 많은 이야기와 직면하면서 놀라고, 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이 관계의 (재)발견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란다. 자기를 성찰하는 글을 쓰면서 관계의 주체로 거듭나는 학생들의 내면에는 조금씩 자존감이 고인다. 이때쯤이면 얼굴빛이 바뀌고 서로 친밀해진다. 기억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식습관 분석 활동의 정식 명칭은 ‘우리는 무엇을 먹는가: 음식과 산업문명’. 기말고사 3주 전에 조별 활동에 들어간다. 첫 주에는 일주일간 자신이 먹는 음식을 모두 기록해 식습관 패턴을 확인하도록 한다. 학생들의 식습관은 별 차이가 없다. 집에서 다니거나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은 큰 문제가 없지만 자취생들은 열악하다. 채소와 과일을 가까이하지 못한다. 대다수 학생들이 육류와 밀가루 음식을 선호하고 커피를 즐겨 마신다. 참, 술도 많이 마신다.

둘째 주에는 조별로 닭, 돼지, 밀, 커피가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 가공되고 또 어떻게 유통, 소비되는지를 조사 분석한다. 이때 몇 가지 주문을 한다. 반드시 관련 저역서와 논문, 대중매체를 참고하라고 한다. 셋째 주에 조별로 조사 분석한 결과를 발표한다. 조별 발표가 끝나면 각자 주제를 정해 에세이를 써서 제출한다. 학생들의 글은 충격과 분노를 거쳐 반성과 각오로 귀결된다.

가령 닭의 평균수명이 10년이 넘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으며, 그런 닭을 불과 5주 만에 잡는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닭이 스트레스를 못 이겨 옆에 있는 닭을 쪼아대기 때문에 부리를 자른다며, 닭이 A4 한 장 크기의 케이지에서 ‘평생’을 보낸다며 분노한다. 우리나라 연간 닭 소비량이 1인당 20마리에 달한다며 “덜 먹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한 학생은 이렇게 썼다. “자료 조사를 하면서 좌절감과 수치심을 느꼈다. 스스로 ‘인간 닭’이 되지 말자고 다짐했고 사회의 이면을 파악하는 눈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은 자기가 먹는 음식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의 구조와 작동 방식을 읽어낸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지구 생태계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목격한다. 우리 몸이 왜, 어떻게 시장전체주의의 식민지가 되어 있는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동물복지, 유기농, 협동조합, 공정무역, 식량주권 등 다양한 대안을 내놓는다.

나는 학생들의 분노가 곧장 삶의 방식의 전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섣불리 낙관하지 않는다. 기업이 생산력 제일주의를 스스로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국가(들)와 (국제)정치가 대오각성해 지속가능성을 정책 제1순위에 올려놓을 리도 만무하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가 시민으로 거듭난다면 달라질 수 있다. 시민의 목소리가 커지면 바뀐다. 촛불이 그랬듯이.

나는 식습관 분석 활동이 모든 학교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매일 우리 입으로 들어오는 산업문명의 ‘뿌리’를 미래세대가 마주하길 바란다. 우리 몸으로 무엇이, 어떻게, 왜 들어오는지 알게 된다면 전환이 가능하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라고 물어보자. 생각하고 표현하는 시민, 이웃과 함께 지금과 다른 미래를 상상하는 시민은 그때 탄생할 것이다. 멀리 가지 말자. 식탁에서, 교실에서 시작하자.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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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개월 전으로 되돌아가보자. 우리 국민 대부분 아니 전 세계 거의 모든 인구가 대한민국의 안보를 걱정하느라 바빴다. 6·25전쟁 이후 휴전상태로 지내온 70년 가까운 세월이 무색한 요즘의 분위기를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이러한 봄바람을 타고 남과 북이 경제분야의 협력 관계를 추구하자는 아이디어들이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다.

북한을 통과하는 철도 노선, 가스관 연결, 항공로 개설과 같은 교통, 물류 측면의 이점이 먼저 떠오른다. 또한 북한의 산림 복구 사업이나 사회간접자본(SOC) 중심의 건설 협력과 풍부한 지하자원, 수산자원 연계 프로그램도 활발히 논의될 것이다.

다 좋은 얘기다. 하지만 이러한 남북경협 모델은 우리 국민이 직접적으로 느끼는 일이라기보다는 더 큰 차원의 얘기로만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최근의 평화 모드에서 우리 국민이 직접적인 혜택과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남북 협력 사업은 없을까 고민하던 중, 최근 우연한 기회에 ‘평화의 댐’ 근처에 가게 되어 그곳에서 남북 당국자의 실리적 판단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북한의 깨끗한 물을 남한으로 가져올 수 있다면? 그럼 깨끗한 물의 값으로 우린 북한에 어떤 보상을 해줄 수 있을까?

평화의 댐을 매개로 상상을 해보기로 하자. 평화의 댐은 모두가 알다시피 1980년대 북한의 금강산댐으로 알려진 임남댐의 수공(水攻)을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건설한 담수 기능만 있는 댐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북한의 수공 위협이 과다하게 부풀려졌다는 사실이 알려져 현재는 오명만 듣는 비운의 댐이 됐다.

그렇다면 그 문제의 발단이었던 북한의 임남댐은 지금 어떠한가? 북한의 열악한 전력사정 때문에 저효율의 수력발전을 위해 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수력발전을 위해 쓰인 그 소중한 깨끗한 물을 그들은 무의미하게 동해안으로 흘려보내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현황을 조금만 거래적 사고로 바꾸어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임남댐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동해안이 아닌 남한 평화의 댐으로 돌려주면, 화천댐을 경유하여 종국에는 팔당댐에 이르게 되어 서울, 수도권의 천만명이 훌쩍 뛰어넘는 국민이 오염되지 않은 상수도를 공급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천혜의 오염되지 않은 물을 보내주는 북한에는 그 물이 내려오면서 거치게 되는 우리의 수력발전 댐들에서 생산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주는 것으로 합의를 본다면 결론적으로 전기와 물을 맞바꾸는 상호 실익의 거래가 달성 가능한 구조인 것이다.

수돗물의 불안함을 실질적으로 개선해 주어 음용률을 높이고 남한과 북한의 홍수 피해 예방 및 이를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담보되는 일자리 창출 등을 생각해본다면 우리 정부와 수자원 전문 공기업인 한국수자원공사 경영진이 하루빨리 깊은 검토를 시작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원대하고 거창한 남북경협 모델도 좋다. 하지만 우리 국민이 당장 혜택을 볼 수 있는 손쉬운 협력 방안부터 남과 북이 손잡고 실현시켜 나간다면, 이를 통해 쌓게 되는 신뢰로 평화 통일의 그날을 앞당기는 밑거름이 되리라 확신한다.

<김순구 | 성결대 경영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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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출판인들은 맨날 아프다고 비명인가. 희망이 없다고 아우성인가. 이 환자병 의식을 바꾸어야만 출판산업의 미래가 있다고 한 출판인이 말했다. ‘단군 이래 불황’은 출판계 입문 때부터 들어온 진부한 말이긴 하다. 그러나 현실은 진부함 속에 실감나게 담겨 있는 법. 지식과 정보와 감동을 전달하는 매체로서 출판은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그러나 온라인과 연계된 출판, 디지털화한 텍스트 그리고 독자의 감수성을 높이 사는 아날로그형 출판, 일관된 논지를 매력적으로 펼치는 강의형 저자의 인문서 등은 시장을 만들어가면서 출판의 미래를 밝히고 있다. 전체 산업의 시장이 좁아진다고 표현했지만 새로운 인접 시장이 커진다고 말할 수 있다.

출판계에 들어와서 놀랐던 점은 업계에 정보가 넘치는 것이었다. 출판사에서 일어난 특이한 사안은 다음날 바로 퍼져나간다. 근본적으로 출판인은 호기심이 많고 정보에 민감하긴 하다. 이 넘치는 정보를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례도 있다. 한 권의 책은 독과점 상품이기에 경쟁 상품은 없다. 아니 오히려 한 권의 책이 잘 팔려나가며 활성화되면 다른 책도 팔리는 시너지 효과가 있다. 그래서 경쟁 없는, 각각 고유의 책을 만드는 출판인들은 서로의 제작 후기나 영업 노하우 같은 것을 서슴지 않고 공유하려 한다.

최근에는 기획도 공유하고 집행을 함께하는 재미있는 사례도 있다. 작은 출판사 셋이 모여서 하나의 시리즈를 만드는 것이다. 시리즈란 일관된 형태로 완간을 목표한 기획 편집 출판물인데, 하나의 출판사가 아닌 세 출판사가 &lt;아무튼&gt; 시리즈를 만들어가고 있다. 책 표지의 출판사 이름을 보지 않아도 이 시리즈를 즐길 수 있고, 세 출판사가 출간하고 있으니 규모가 작은 하나의 출판사가 냈을 때보다 출간 속도가 빠르다. 시리즈를 좋아하는 독자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는 셈이다. 세 출판사는 서로 상생을 모색하기 위해서 기획의 기본 요건을 논의하고 자유롭게 책을 내고 있다고 한다. 매력적인 산업의 융통성이 발휘되고 있다고나 할까.

내가 일하는 마음산책도 작년 봄에 두 출판사와 머리를 맞대고 이벤트성 출간을 시도했다. 책 제목과 저자를 포장지로 가린 채 세 출판사의 이름을 붙인 ‘X북’을 출간한 것이다. 이 이벤트를 벌이게 된 배경은 이러하다. 재미있게 독자에게 다가가자. 제목과 저자를 보고 고르는 구매의 정석 행위를 배반하는 방식으로 흥미를 던져주어 책에서 멀어지는 독자의 호감을 사보자는 것이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판매도 좋았지만 표지를 가린 채 판매한 기간 동안 제목과 저자를 알아도 함구해달라는 세 출판사의 요청에 독자가 응한 것이다. 무려 3주일 동안 비공개 상태로 책이 2만부 이상 팔리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3주 이후엔 더 이상 포장지를 씌우지 않았지만, ‘바로 그 이벤트 책’이었다는 입소문 때문에 꾸준히 팔리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올해 또 세 출판사가 작년과는 다른 형태의 ‘2탄’을 시도했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선별해 국내 초역으로 동시에 출간한 것이다. 소설과 산문, 편지를 각각 동시에 출간한 것은 기획부터 편집까지 온갖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세 권의 책은 판형과 본문 편집, 표지 디자인에 일관성이 있다. 동시에 출간하는 데 의미도 있지만 하나의 시리즈를 만들어냈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둔 것이다. 한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했다면 책의 메시지와 가치로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세 출판사가 시리즈처럼 출간함으로써 작가를 새롭게 조명하는 면모와 독자와 즐겁게 만나려는 책 출간을 둘러싼 스토리텔링을 갖게 되면서 매력적인 지점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이제 출판은 시장의 불안정성 속에 창의적인 작업을 해야 하는 어려움 한복판에 있다. ‘단군 이래 불황’의 진부한 표현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독자와 즐겁게 소통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어떨까. 책 자체에 의미 변화가 필요하다기보다 독자가 책을 만나는 방식에 새로움이 필요하다. 세 출판사가 함께 기획하고 시리즈를 만든 것은 꾸준히 출판하려는, 완창하고자 하는 무대에서 기운과 흥을 북돋는 추임새와 같은 것이다. 읽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즐겁게 불러일으키는 것, 책을 구매하는 것으로 그 즐거운 이벤트에 동참했다는 어떤 뿌듯함이 생길 수도 있다.

태어날 때부터 건강하지 못한 게 아니라 여러 상황으로 환자로 되어버린 출판은 어떻게 건강을 회복할 수 있나. 노력은 작은 데에서, 이를테면 몸을 살리는 운동 같은 데서 시작할 수 있다. 진부함을 버리고 조금 새롭게, 추임새를 넣는 방식을 찾고 싶다.

<정은숙 |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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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는 승리보다 패배가 선명하게 기록된 선거로 남을 것이다. 80%에 근접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 등을 감안하면 더불어민주당의 낙승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졌느냐’의 문제는 짚어야 한다. 정치의 영역이든, 스포츠의 세계든 ‘잘 진다’ ‘멋있게 진다’는 말이 있다. 지더라도 명분을 지킨다면 후일을 기약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제1야당 자유한국당이나 대안보수를 자처한 바른미래당은 그러지 못했다. ‘한국당과 손잡느니 정계은퇴하겠다’던 바른미래당 안철수 전 서울시장 후보가 궤변에 가까운 논리로 한국당 김문수 전 후보와 단일화를 추진했던 것이나, 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막말로 자기 당에서도 외면받은 일은 야권 패배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훗날 이번 선거는 둘의 추락으로 더 기억될지 모른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방송3사의 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홍준표 전 대표는 자신의 처지를 너무 몰랐다. 빈털터리 집안의 가장이면서도 ‘거부’라도 되는 양 큰소리를 쳤다. 불리한 여론조사를 두고는 “지지율 조작” “선거가 끝나면 여론조사 기관을 폐쇄하겠다”고 했다. 현실부정은 과대망상과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었다. 한국당은 갈수록 고립되는데, 민심이 돌아오고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곳간이 비었는데도, 하늘에서 돈이 떨어질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가장이 몽상에 빠지면서 어려운 집구석은 더 흉흉해졌다. 정권과 “싸우는 법을 안다”고 하더니, 식구들과 다퉜다. 배고프다고 하소연하는 식구들에게 “바퀴벌레” “암덩어리” “연탄가스” 등 막말을 퍼부었다. 힘들다는 푸념은 그에게 가장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비쳤을지 모른다. “막말은 영남 지역에서 친밀감의 표시” “서민적 용어를 알기 쉬운 비유법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어이없는 해명을 한 것도, 나는 무슨 말을 해도 괜찮은 ‘존중받는 가장’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됐을 터다.

대단한 사람으로 대접받기 원했던 홍 전 대표의 바람은 선거 후에야 현실이 됐다. “그분은 보수당을 궤멸시키기 위한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것 같다”는 정두언 전 의원의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 한국당은 국민 앞에 무릎을 꿇고 “해체”까지 언급하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홍 전 대표 덕분에 자유당 시절부터 한국 사회 주류로 행세해온 한국당은 완전히 망했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못지않은 역사적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안철수 전 후보는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가장이었다. 지방선거 후 보수재편의 중심에 서겠다는 정치적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가족들의 희생과 양보를 강요했다. 정치의 기본인 명분과 절차적 정당성도 깡그리 무시하고 독단과 변칙을 반복했다. 자기만 알았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합당에 반대하자, 당헌·당규까지 바꿔 밀어붙였다. ‘바른미래당은 나 하나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자아도취가 아니고서야 이런 무리수를 둘 수는 없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재·보궐선거에 나선 일부 후보들의 사퇴를 종용한 것도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다. ‘경쟁력 있는 인사를 세워야 한다’며 경선을 거친 후보들을 그만두게 하려 했다. 서울시장 선거전에 한 표라도 도움이 될 인사들을 내세워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안 전 후보의 측근으로 알려졌던 바른미래당 광역단체장 후보의 말이다. “지도자는 자기는 죽고 남을 살려야 한다. 그 사람은 자기를 위해 남에게 죽으라고 한다.”

선거 막판 안 전 후보의 바닥은 온전히 드러났다. 한국당과 손잡으면 정계를 은퇴한다더니, 한국당 김문수 전 후보에게 사퇴를 촉구했다. 그래놓고 “경쟁력 있는 후보에게 몰아줘야 한다”며 인위적 단일화 시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 전 후보를 전화로 불러내어 다짜고짜 양보를 요구해놓고, 단일화 시도가 아니라고 궤변을 던진 것이다. 설사 단일화가 됐어도 선거에 이길 수도 없었겠지만, 만에 하나 단일화 덕에 당선됐다면 또 어떻게 했을 것인가. 김 전 후보를 지지했던 수많은 태극기 부대들의 이익을 대변해 ‘박근혜 석방’을 외칠 것인가.

홍 전 대표는 사퇴했고, 안 전 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둘 다 정계은퇴를 말하지는 않았다. 홍 전 대표는 물러나면서도 “나라는 통째로 넘어갔다”고 주장했다. ‘나라’를 정치세력 사이에서 서로 넘길 수 있는 물건인 양 취급하는 얼토당토않은 인식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나라는 넘어간 것이 아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선택했다. 주인인 국민들이 홍 전 대표와 한국당을 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결정은 안 전 후보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이용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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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 앞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 언제보다 사람들이 많이 왔다고 했다. 맞은편에는 이른 저녁부터 커피와 맥주와 자질구레한 요깃거리를 파는 노점상이 자리를 폈다. 한쪽으로 소방차, 한눈에도 놀랄 만큼 많은 정복 경찰들. 시간에 맞춰 도착한 개표소는 이미 당장이라도 당선인을 가려낼 태세로, 곧 도착할 투표함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거 캠프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군수 선거 경험이 있는 사람은 더더욱 손에 꼽을 만큼. 그러니까 자유한국당, 혹은 그 계열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군수 후보가 나온 적이 있었나 싶었던 것이, 이곳의 현실이었다. 후보자도 갑작스럽게 결정되었고, 선거 캠프는 그보다 더 더 갑작스러운 모양새였다. 경남에 내려와 살게 된 지 10년인데, 선거 일을 거들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10년짜리 외지 것은 여전히 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가늠하기도 힘들었고, 또 어설프게 끼어들었다가는 오히려 중차대한 일에 누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늦게서야 선거 일을 돕기로 결정이 된 까닭이기도 했고, 스스로도 선거라는 일 한복판을 경험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그저 손을 보태서 일을 거드는 정도이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일은 쏟아졌고, 그야말로 선거라는 일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 너머까지 언제나 일들이 줄지어 있었다.

개표소의 분위기도 전에 본 적 없는 풍경이라 했다. 참관을 하는 사람들이 개표 과정에 신경을 쓰기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득표수를 알아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었는데, 그만큼 치열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의 젊은 참관인은 “내 이리 어려븐 선거는 처음이라” 하는 소리를 몇 번이나 되뇌면서, “에헴, 하면서 자리나 바라는 사람들은 이제 그만해야 해. 이리 계속하믄 지지. 싹 바꿔야 해” 하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선거는 졌다. 젊은 사람이 조금이라도 많은 곳일수록, 사람들 왕래가 많은 곳일수록 표를 더 많이 얻었지만, 그 분위기가 군 전체 구석구석까지 전해지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아직 같은 편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 그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조차 조직을 꾸려서 일해 본 경험이 많지 않다는 것 따위가 가장 아쉬웠던 점이었다. 경남의 군 지역에서는 김경수 당선인이 김태호 후보보다 표를 더 많이 받은 단 2곳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군의회에는 더 많은 군의원들이 당선되었고.

군수 후보의 득표율이 박근혜와 선거를 치렀던 문재인 대통령의 그것과 거의 비슷한 만큼, 그만큼 다음 선거를 기대하게 되었다. 물론 다시 4년이 돌아오기까지, 차곡차곡 준비할 것들을 쌓아가야만 하겠지만, 경남에서 선거를 치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수도권이라는 곳과 다른지 하는 것들을 절감하는 기회도 되었다. 김경수 도지사 당선인은 옷에 몸을 맞추며 살아왔다고 했다. 드러나지 않았던 그의 이력들이 지금 이 자리까지 오는 데에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투표함을 하나씩 열어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어쩌면 가능성이 있다고도 점쳐졌던 우리 지역의 군수 선거가 그랬던 것처럼, 경남도지사도 김경수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일이었겠다 싶었다. 드루킹과 외모는 그저 거들었을 뿐. 표를 찍는 사람들은 용케도 큰 선거일수록 사람을 제대로 가려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선거가 끝난 다음 날, 했던 일을 돌아보는 회의는 열리지 못했다. 누군가는 매실을 따야 한다고 했고, 마늘을 캐러 간다고도 했다. 우리 논에는 밀이 다 익어 있었다. 꼬박 이틀을 매달려 밀 타작을 하고 있으려니, 얼른 논둑 치고, 물 대라, 지금까지 남들 다 모 심구로 뭐 했나 하는 소리를 하루 종일 들었다. 밀을 베고 물길을 열었다. 논에 새 물 드는 소리가 난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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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이문재(1959~)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모든 것의 처음은 사소하고 미약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거기서부터 쌓이고 쌓인다. 쌓여서 육중한 무게와 너른 넓이를 만든다. 쌓이면 누구도 꺾을 수 없다. 다발과 묶음과 무더기는 어떤 힘도 견뎌낸다. 마치 서로 의지한 갈대 묶음을 힘센 사람도 쉽게 부러뜨릴 수 없는 것처럼.

지금 여기가 맨 끝이라고 여기는 때가 맨 처음이다. 끝은 맨 앞이다. 끝에서 생겨난다. 실뿌리에서 생겨나 잔가지와 우듬지가 된다. 새순에서 생겨나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아, 이제 이곳이 끝이구나라고 자신을 아주 허물어버리지 않는다면 거기 그때가 맨 앞이 된다. 그리고 매 순간 놀랍고, 기적과도 같은 진전이 이뤄진다.

개개의 움직임이 중요하다. 낱낱의 존재들이 동일하게 소중하다. 이문재 시인은 시 ‘어떤 경우’에서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라고 썼다. 우리는 모든 경우에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고, 맨 앞이고, 당당한 정면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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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는 국민들의 신뢰를 먹고 산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가 존립할 수 있는 근거는 오직 공정한 재판을 통해 쌓아올린 국민들의 신뢰뿐이다. 진정한 사법부의 권위도 높은 법대 위의 판사석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재판들이 켜켜이 쌓여 형성된 국민들의 신뢰 속에서 세워진다. 국민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마지막으로 기대는 언덕이 사법부다. 그런 사법부에서 일어난 이번 사법농단 사태이기에 국민들이 느끼는 충격과 배신감이 그만큼 더 큰 것이다.

15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김명수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지난 5월25일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3차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법관 사찰의 정황들이 지난 2차 조사결과 발표 때보다 더 구체적으로 확인되었고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판결들을 청와대와의 거래 수단으로 삼았다는 의혹을 살 수 있는 여러 정황들도 추가로 더 많이 나왔다. 특별조사단의 조사로 지금까지 밝혀진 사법농단이 크게 ‘법관 사찰’과 ‘재판거래 의혹’ 두 가지라면, ‘법관 사찰’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증거 확보가 된 셈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보면, 문건 정리와 작성을 시킨 것 자체가 형법상의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법원이 이미 판시했기 때문이다. 문건에 언급된 판사들에게 어떤 인사상 불이익을 줬는지는 직권남용죄의 성립과 관련이 없는 사항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재판거래 의혹’이다. 이 ‘재판거래 의혹’ 부분 때문에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금요일인 6월15일까지 법원의 입장 표명을 미루고 3주간이나 경청과 장고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3차 조사결과 발표 다음 날 김 대법원장은 검찰 고발이나 수사 의뢰까지 고려대상으로 삼겠다고 공언한 후 법원 내·외부의 의견 수렴에 들어갔고, 그 결과 고발이나 ‘수사 의뢰’에서 후퇴한 ‘수사 협조’의 입장을 최종적으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점은 의견수렴 과정에서 이 사태를 바라보는 법원 내부의 입장이 검찰 고발 여부를 놓고 노·소장 판사들 사이에서 분명하게 갈렸다는 점이다. 김 대법원장도 담화문에서 “미처 해명하지 못한 의혹들에 대한 외부기관의 수사를 요청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사법부에 대한 무분별한 수사로 사법부의 독립과 신뢰가 또다시 침해되는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사태를 법관들만의 문제로 보고 법원 자체적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일부 고위법관들의 인식은 이번 사태로 충격과 실망을 느끼는 다수 국민들의 인식과 크게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 이미 재판거래에 관한 ‘의혹’만으로도 국민들의 사법부 신뢰는 상당 부분 무너졌다. 또다시 더 무너질 신뢰가 별로 남지 않았다고 느끼는 국민들이 적지 않음을 고려해야 한다.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대법원장의 담화문 발표 직후에 같은 날 있었던 대법관들의 입장 발표 또한 국민들의 상황 인식과 간극이 크다. “재판거래 의혹에 대하여는 대법관들은 이것이 근거 없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물론 대법원 재판을 믿어 달라는 말이겠지만, 이런 말로 재판에 대한 신뢰가 다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의 놀란 가슴을 달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설명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이미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에 의한 고발이 열 건이 넘는다. 재판거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어차피 수사가 진행되면 드러날 것들이다. 검찰은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증거들을 확보해야 한다. 수사에서 일체의 정치적 고려를 배제해야 한다. 검찰은 국민의 혈세로 사들인 최첨단의 디지털 포렌식 장비와 인력을 가지고 있다. 특별조사단이 조사한 410개의 파일들뿐만 아니라, 이번 일이 터지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법원행정처에 의해 긴급 삭제된 2만4500개의 파일들도 모두 복구해 이번 사태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봐주기 수사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법원이 아니라 검찰이 또 다른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사법부를 불신한다는 국민 여론이 64%이다.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와 기소, 그 후 이어지는 법원의 공정한 재판만이 이번 사법농단 사태로 허물어진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둘 중 어느 한 가지라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국민들의 사법 불신은 회복 불가능한 상황으로까지 갈지 모른다. 사법부의 존립 근거가 완전히 붕괴되는 상황 말이다. 이 일은 단기간에 끝날 일이 아니다. 서두르지 말고 한발 한발 나아가자. 다시 말하지만 시작은 열지 못한 나머지 파일들을 복구하고 열어서 진상을 규명하는 일이다. 지금은 진상규명에 화력을 집중할 때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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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에서 비행기로 이동수단이 발전하고 지구 반대편인 우루과이에서 한국으로 영상통화도 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언어와 문화가 다른 타국에서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도전이다. 가상체험과 같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함께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글로벌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초연결사회에 살고 있지만 자기계발 전문가들은 그럴수록 ‘차별화된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저서 <축적의 길>에서 앞으로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아니라 남들이 따라할 수 없는 수준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축적한 경험이 중요하다고 했다. 미래일자리 전문가 칼 프레이 옥스퍼드대학 교수도 경험과 학습을 통해 체계화된 암묵지가 필요한 일자리는 4차 산업혁명 속에서도 안전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 차별화되고 풍부한 경험을 나만의 자산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 지난해 베트남,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각각 6.8%, 6.7%로 우리나라의 2배가 넘었다. 인도네시아도 5%대를 달성했다. 해외취업은 글로벌 자산을 쌓을 수 있는 도전이며 특히 우리보다 경제성장률이 높은 나라에는 기회도 풍부하다. 인도네시아 두산찝따에 취업한 백용재씨는 더 큰 시장에서 기회를 창출하고 싶었기 때문에 해외취업에 도전했다고 밝혔다. 싱가포르의 글로벌 통신회사 취업에 성공한 서세나씨는 영업대표로 근무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인턴 생활 후 국내의 핀테크 기업에 취업, 그리고 경력을 살려 다시 해외취업에 성공한 것이다.

과거에는 국내의 취업시장 여건이나 경제적 상황 때문에 해외취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글로벌 경험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각국 정부의 정책에 따라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정보기술의 발전과 함께 글로벌 노동시장의 개방범위는 계속해서 더욱 확대될 것이다. 기업 역시 글로벌 경험과 직관을 가지고 있는 인재에 대한 수요가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외취업은 열정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외취업을 희망하는 청년들은 자신의 목표와 역량을 연계하여 성공할 수 있는 나라와 직업을 찾아야 한다. 공단이 운영 중인 해외진출정보사이트 ‘월드잡플러스(www.worldjob.or.kr)’와 서울과 부산의 해외취업센터를 활용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정부의 해외취업 지원프로그램을 통한 취업자 수는 매년 증가해 작년에는 5000명을 넘어섰다. 지난달 개최한 일본 해외취업전략설명회에는 800여명의 구직자가 몰려 일본취업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베트남에서 열린 현지 취업박람회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일일 특별면접관으로 참여하여 해외진출을 통한 글로벌 역량개발을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5월21일 코엑스에서 열렸던 ‘글로벌 일자리 대전’에는 일본기업 113개사 등이 참여해 한국의 청년 인재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정부도 해외취업정착지원금 등 102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확보해 역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해외취업자를 대상으로 공단이 실시한 설문결과를 보면 해외취업에 만족하는 이유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넓어졌다’가 79.2%, ‘경력개발에 도움이 되었다’는 46.2%로 경험확대 측면에서의 답변이 많았다. 청년들은 해외취업 경험을 통해 금전적인 측면보다는 글로벌 역량을 쌓고 새로운 기회를 찾고 싶어 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단은 올해 3월에 이들의 경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경력관리시스템을 구축했다. 해외취업 경력을 국가의 자산으로 운영함으로써 해외취업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글로벌 인재육성의 모판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해외취업은 일자리 영토를 넓히는 동시에 청년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새로운 도전을 통해 삶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과 세계무대에서 리더로서 당당하게 활동하는 글로벌 한국 청년들이 더욱 많아진다면 국가경쟁력과 함께 대한민국의 위상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김동만 |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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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에서 궤멸적 참패를 당한 자유한국당이 대혼돈에 빠졌다. 홍준표 전 대표는 지난 주말 자신의 페이스북에 “마지막으로 막말 한번 하겠다”며 “아르바이트 국회의원” “추한 사생활” “카멜레온” “사이코패스” “앞잡이” 등 거친 표현을 동원해 인적 청산 대상이 돼야 할 의원들을 열거했다.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당 대표 시절 자신과 충돌했던 일부 중진의원들과 친박계를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를 두고 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물러난 사람이 무슨 엉뚱한 소리냐는 반발과 일리 있는 지적이란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당 전체가 난파 위기에 몰렸는데도 여전히 네 탓 공방만 하고 있다.

한국당 초선의원들이 중진의원들의 포괄적 책임을 물으며 정계은퇴를 요구한 것도 볼썽사납긴 마찬가지다. 그동안 당 혁신에 침묵해온 초선의원들이 마치 다른 나라에 있다가 온 것처럼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는 것부터 우스꽝스럽다. 한국당 의원들은 지난 15일 비상 의원총회를 마친 뒤 국회 로텐더홀 앞에서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란 플래카드 아래 무릎을 꿇었다. 한국당은 전신인 새누리당 때인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총선 직전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라며 무릎 꿇고 절하고 읍소한 적이 있다. 그러나 눈앞의 위기만 벗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달라지지 않았다. 이러니 무슨 말을 해도 과연 처절한 반성을 했는지 진정성을 의심받는 것이다.

한국당은 말로만 반성을 외칠 게 아니라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지금 국회는 몇 달째 ‘개점휴업’ 상태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난달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뒤로 국회 의장단과 상임위원장단 모두 공석이지만, 후반기 원 구성 협상의 시동조차 걸지 못하고 있다. 한국당이 정말 시민에게 반성한다면 우선 원 구성 협상부터 성의 있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수구 냉전세력으로 비치는 부분을 혁신하고 보수·진보의 프레임에서 완전히 빠져나오겠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한국당 반대로 무산됐던 국회의 ‘판문점선언’ 지지 결의안 채택도 자청해 처리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번에도 지도부 사퇴→비대위 구성→새 지도부 선출과 같은 절차를 답습하면서 위기만 모면하려 한다면 오산이다. 성난 민심에 사죄하겠다는 의지가 1%라도 있다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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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의 투표율은 ‘역대급’이었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을 심판하자는 민심은 더불어민주당의 압승, 한국당 등의 참패로 이어졌다. 한국당 입장에서는 그래도 대구·경북은 지켰다고 자위할지 모르나 대구·경북 지역의 균열도 만만치 않다. 이대로라면, 어디서든 발붙일 수 없다는 것이 민심을 통해 정확히 드러났다.

그동안 한국당, 바른미래당 등의 야당들은 그야말로 딴 세상 사람들 같았다. 역사적인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폄훼하고, 국민이 요구하는 개혁마저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민심을 거스르며 자기들만의 성에 갇혀 살았던 셈인데, 그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지방선거 결과가 알려주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국당 같은 민심의 무풍지대가 한둘이 아니다. 제 밥그릇만은 절대 내놓지 못하겠다며 저항하는 검찰이 그렇고, 요즘엔 법원의 모습이 꼭 그렇다.

발단은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치라는 자기들만의 숙원사업을 놓고 박근혜 정부와 어떻게 내통했는지 조금씩 밝혀지면서부터였다. 박근혜 정권에 조금이라도 부담되는 사건들이 있다면 대법원이 앞장서 정권의 부담을 덜어주었다는 거다. 재판 결과에 명운을 걸고 있는 숱한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었다. 양승태 대법원은 피해자들의 처지나, ‘법의 지배’와 같은 철칙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KTX 여승무원, 전교조 조합원, 제주 강정마을 주민과 경남 밀양 주민 등은 정교한 국가시스템에 의해 함부로 내쳐졌다. 피해자는 차고 넘칠 만큼 많다.

문제는 지금까지 알려진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법원행정처장이 조사단장을 맡은 셀프 조사로도 이 정도이니, 좀 더 객관적인 곳에서 들여다봤다면, 아마 더 흉측한 결과와 직면했을 거다.

이를테면 사건관계자에게 골프와 룸살롱 접대를 받은 판사에 대한 처리를 보면, 그동안 법원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알 수 있다. 양승태 시절의 법원행정처는 사건관계자에게 골프와 룸살롱 접대를 수십차례 받은 현직 부장판사의 비위 사실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해당 판사는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고 멀쩡하게 법원을 떠나 변호사로 개업해 지금도 잘나가고 있다. 제 식구 감싸기도 이 정도면 ‘역대급’이다.

법원은 삼권분립의 한 축이지만, 선출직인 대통령이 지휘하는 행정부나 구성원 전원이 선출직인 국회와는 차원이 다른 조직이다. 민주적 정당성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법원은 뭔가 다를 거라는 믿음, 법을 전공한 사람들은 다를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때로 판결에 승복할 수 없어도 시민들은 참아왔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서 보듯, 사람 목숨마저 쉽게 앗아버리는 사법살인을 저질러도, 그 막연한 믿음 때문에 법원을 존중하기도 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최종 가해자는 법원이었지만, 그 비난은 온통 박정희와 그의 비밀정보조직에만 쏟아졌다. 법원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이번에 산산이 깨져버렸다.

엄청난 일이 밝혀지고 있는데도 법원의 행태는 완전히 딴 세상 사람들의 것이다. 명백한 범죄가 양승태 대법원에서 자행되었고, 그 증거가 숱하게 쌓여있는데도, 판사들의 대응은 딴판이었다. 명백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판사들은 연일 회의를 반복했다. 수석부장회의, 전국법원장회의, 대법관 간담회, 법관대표회의에다 외부 인사로 구성된 사법발전위원회까지 잇따라 열었다. 해법도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형사고발이 필요하다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형사고발은 곤란하되, “형사절차를 포함하는 성역 없는 진상조사와 철저한 책임 추궁이 필요”하단다. 뿐만 아니다. 고위급 판사들은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와 문제 판사에 대한 탄핵이면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양승태 본인과 양승태 시절의 법원행정처장들이 이미 법원을 떠나 탄핵할 수 없는데도 탄핵 운운하고 있다.

이런저런 회의만 열면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말을 아끼고 있다.

도대체 어떤 범죄의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고, 그 범죄를 단죄하는 일이 여러 번의 서로 다른 회의를 거쳐야 하는 일인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동안 판사들은 시민들을 향해 준엄한 심판을 내려왔다. 사람에게 죄를 묻는 일에 과감했던 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그 사람들이 정작 자기가 속한 조직의 범죄에 대해서는 시간을 끌면서 시민들의 분노를 달래보려는 꼼수만 부리고 있다.

어쩌면 대법원장은 보다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지방선거의 살벌한 결과를 보니, 더 이상 버티다간 더 큰 조직적 위기를 자초할 거라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결론을 내리든 법원은 이미 틀렸다. 양승태가 틀린 것은 물론이고, 김명수도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명백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연일 회의를 거듭했던 것은 마치 법원은 남다른 조직인 것처럼 여기는 오만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론을 달래며 돌파구를 찾으려는 꼼수를 모를 사람은 없다.

법원의 사활적 관건은 신뢰다. 판결을 믿지 못하면 결코 승복할 수 없다. 갈등이 심각한 사회에서 법원의 판결에 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교과서에서나 봤던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세상이 될 것이다.

힘 있는 사람들이야 법이 없어도 살 수 있겠지만, 약자, 소수자, 아니 대부분의 시민들은 법이 없으면 도저히 살 수 없다. 법원에 대한 불신은 그래서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질 거다. 공동체가 붕괴되는데, 법원이라고 무사할 리 없다. 그러니 지금의 사태가 법원에는 절체절명의 위기다. 각종 인연으로 끈끈하게 엮인 법원이라지만, 그런 소소한 인연 따위에 조직의 명운을 걸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심각한 사태를 두고도 연일 회의만 거듭하는 법원이 안쓰럽다.

잘못이 있다면 어떤 잘못이 있는지 빠짐없이 밝혀내면 되고, 그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면 된다.

단순한 잘못이 아닌 범죄라면, 죄에 맞는 죗값을 치르면 그만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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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지방선거 이후 진보 교육감들이 이번 선거에 이르기까지 계속 약진하고 있다. 2010년 6명, 2014년 13명, 2018년 14명의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었다. 하지만 불안하다.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는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진보와 보수, 경쟁과 협력의 가치가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다. 국민 전체의 이해관계와 욕망이 얽혀있기에 부동산 문제만큼 풀기 어려운 일이다.

개인적으로 한번쯤은 진보의 약진이 꺾이고 보수의 반격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다. 학생인권조례, 무상급식, 혁신교육으로 대표되는 진보의 교육은 최근 새로운 출구를 찾지 못하고 정체되는 느낌이다. 새로운 꿈을 꾸던 교사들의 실천이 학부모의 지지를 통해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민원과 학생안전, 학교폭력 문제에 포위되고 있는 상황이다. 삶을 통해 교육혁신을 꿈꾸던 교사들이 모여 학교 변화의 다양한 시도들을 했었다. 혁신학교를 이끌어가는 교사들의 고군분투가 있지만 지쳐가고 있고, 새로운 에너지원이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 교사와 학부모의 갈등이 점점 거세지고 있고, 갈등이 새로운 교육개혁 에너지로 승화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역사에 남을 2번에 걸친 남북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의 여파로 교육계의 이슈는 사라지고 대통령을 지지하고 평화의 노력에 발목을 잡는 야당과 보수세력을 심판해야 한다는 표심이 교육감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 진보 교육감의 무능에 대한 심판이 주춤한 것일 뿐 없어진 게 아니란 점을 교육감 당선인들이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들이 4년간의 새로운 기회를 주었으니 이 기간 동안 교육감들이 시대적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다음 선거의 결과가 결정될 것이다.

교육감마다 지역 상황에 맞게 혹은 선거기간 동안 국민들과 한 약속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시대적 과제가 각기 다를 수 있지만 현장 교사로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는 교육의 질 개선이다. 교육의 질 개선의 핵심은 ‘최소인의 최소고통’이다. 교육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학생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다. 4.5%에 해당되는 난독증이나 난독증 위험군 아이들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학교 밖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감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러한 일들은 시·도 교육청 자치에서 시·군·구 교육청 자치로 발전해야 가능하다. 새로 당선된 기초자치단체장들과 시·군·구 교육지원청이 함께 지역의 학령기 청소년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돌보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혁신학교가 혁신지구로 발전해야 하고 혁신지구사업이 마을교육공동체의 핵심 사업이 되어야 한다.

둘째는 교육청 안에 존재하는 소위 전문직(교사 출신)과 일반직(교육행정공무원)의 갈등구조 해소이다. 교사 출신의 장학사나 장학관들과 교육행정공무원들 사이의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어느 조직이나 파벌과 계파가 있지만 파벌과 계파를 서로 화합시켜 조직의 목표를 달성시키는 것이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교육청 안의 두 그룹 간 갈등이 심화되어 학교를 지원하는 조직인 사실을 잊어버리는 상황이다. 인수위 과정에서 대부분의 교육감 당선인들은 조직개편을 하게 되는데 이때 업무의 효율성과 학교교육의 지원이라는 사명보다는 두 조직 간의 갈등을 봉합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서는 안된다.

셋째는 학교에서 교사의 역할과 학부모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난 8년 동안 학교교육의 권위주의가 상당히 해체되고 있다. 언제나 권위주의의 해체는 한번에 균형이 맞춰지기보다는 좌우로 비틀거리면서 전진하기 마련이다. 권위주의의 해체 과정에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경계를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

위의 세 가지 제안은 교육감들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좋은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홍인기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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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줄곧 야권이 우세했다. 대개 정권 중반에 치르는 지방선거는 중간평가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방선거는 ‘여당의 무덤’으로 불렸다. 엊그제 끝난 6·1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여권 압승으로 끝났다. 기존 지방선거 결과와는 딴판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남짓이어서 중간평가로는 이른 감이 있지만 시민은 현 정권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imgtbl_start_1--><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align=RIGHT width=200><tr><td><!--imgsrc_start_1--><img src=http://img.khan.co.kr/news/2018/06/14/l_2018061501001653800136361.jpg width=200 hspace=1 vspace=1><!--imgsrc_end_1--></td></tr><tr><td><font style=font-size:9pt;line-height:130% color=616588><!--cap_start_1--><!--cap_end_1--></font></td></tr></table><!--imgtbl_end_1--> 여권은 선거결과에 자만할 것이 아니라 시민이 표를 몰아준 이유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사실 문재인 정부 이후 경제정책 측면에서만 보면 시민 삶의 질이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서민 생활은 더 어려워졌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청년 일자리는 여전히 개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구조조정 여파로 일부 지역경제는 몸살을 앓고 있다. 저소득층 소득이 뒷걸음질하는 등 분배가 악화했다는 지표도 나왔다. 지금 청년은 부모세대보다 못사는 첫 세대가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퍼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권이 지방선거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은 ‘착한 정부’에 대한 시민의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물론 박근혜 정부의 무능이라는 기저효과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반사효과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대폭 올린 것은 경제정책의 핵심인 소득주도성장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공정한 경제질서를 세우기 위해 갑을관계 개선과 재벌개혁에 매달렸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추가로 예산을 편성했다. 노동자의 저녁 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했다. 한결같이 경제적 약자 편에 서서 불평등을 줄이겠다는 정책이다. 부정과 무능, 특혜로 얼룩졌던 과거 정권과 차별화된다.

오는 19일 열리는 경향포럼 참석차 방한하는 세계적인 석학들도 이 같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 201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단순히 ‘누군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으니 최저임금을 올리면 안된다’는 식의 이야기는 바보 같은 소리”라고 했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던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역시 “수요가 충분하지 않을 때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은 좋은 방식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런 평가를 받는 소득주도성장을 놓고 최근 청와대와 내각이 갈등을 빚었다.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분배 악화 지표를 둘러싸고 이견을 드러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소득주도성장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의견을 내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비판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가보지 않았던, 어쩌면 실험적인 소득주도성장 길을 가고 있으니 진통이 따르는 게 당연하다. 건전한 논쟁이라면 환영한다. 바짝 엎드린 게 아니라 대통령 면전에서 경제부총리와 정책실장이 격론을 벌였으니 발전적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갈등은 더 이상 증폭되지 않고 조용히 봉합되는 듯한데, 그 과정이 수상하다. 이후 청와대와 정부는 논쟁을 촉발했던 소득주도성장은 접어두고 혁신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혁신성장장관회의가 처음 열렸고, 기재부 안에 별도의 본부를 설치한다고 한다. 혁신성장은 소득주도성장 등과 함께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 과제이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혁신성장의 초점이 규제완화에 맞춰져 있는 것은 문제다. 규제를 풀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면 투자가 늘어나 경제가 성장한다는 뜻 아닌가. 만약 과거 정부에서 추진했던 것과 같다면 소득주도성장과는 궤가 전혀 맞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주창했던 창조경제, 무역투자진흥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이 일부 현실화한 것은 사실이다. 정부는 제대로 된 통계나 분석조차 없이 최저임금 인상을 단행했고, 부정적 효과도 예측하지 못했다. 6개월 전 이 칼럼을 통해 지적했던 ‘디테일에 숨은 악마’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여당 또한 직무유기한 책임이 큰 데도 시치미를 떼고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반성하고, 왜 그런지 면밀히 살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지금처럼 한다면 소득주도성장은 공염불이 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전부는 아닌 만큼 소득주도성장을 훼손하지 않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소득과 노동, 복지, 조세 등 각 분야에서 촘촘하게 정책을 짜야 할 것이다.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실행할 정책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실현할 수 없다. 여권이 지방선거에서 이긴 것은 잘해서가 아니다. 정부의 선한 의지를 믿는 시민이 아직은 많다. 제대로 못했어도 당분간 지켜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민의 희망을 저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안호기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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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이전에도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가리왕산이 순간의 기쁨을 위한 화장을 걷어내고 벌거벗은 맨몸으로 장마와 폭우를 기다리고 있다. 며칠간의 짧은 흥분의 마취제를 처방받은 것처럼 잠시 잊고 있었던 올림픽의 경제효과 허상이 사라져갈 즈음, 지역주민의 불안과 사회적 갈등이 마취에서 깨듯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지방정부는 지킬 생각조차 없었으면서 마치 하늘이 두 쪽 나도 지킬 것처럼 복원약속을 하고, 축제가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왕 만든 것이니 계속 사용하자’는 철지난 개발경제논리의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마치 그 약속이 철저히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허가를 내준 중앙정부는 지난 10년간 뒷짐을 지고 있다가 새빨간 거짓말이 수면으로 올라오는 지금에 와서야 이 논란을 남 탓으로 돌리며 응급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그들이 진정 가리왕산의 복원을 생각했다면 이미 10년 전부터 수많은 것들을 준비했어야 했다. 훼손하기 이전, 주변을 포함한 자연환경의 정밀조사를 통해 복원에 필요한 수목을 기르기 시작해야 했으며, 토양을 준비해야 했고, 변화된 환경에서 어린 식물의 적응 가능성을 검토했어야만 했다.

알파인 경기장 주변, 지난달 상대적으로 적은 비에도 불구하고 재난관리기금으로 응급복구를 진행해야 할 만큼 큰 피해를 입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60조원이 넘는 경제효과와 32조원의 관광수익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이 많은 수익을 내고도 수익의 1%도 되지 않는 가리왕산의 복원비용은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어디로 갔을지 모를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지금부터 벌어질 손해는 또 고스란히 우리의 세금으로 메꿔야만 한다. 그렇게 자본은 권력과 결탁해 이익을 사유화하고 자신들이 메워야 할 손해를 공유화한다.

교육의 힘은 위대하다. 바르건 바르지 않건 이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실시간으로 미디어에 의해 전달되며 훌륭한 학습효과로 각인된다. 멀게는 일제강점기의 친일매국자들,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손이 만들어낸 엇갈린 삶의 역사, 29만원밖에 없는 사람이 살아온 역사, 가까이에는 갑질 재벌가가 만들어내는 일그러진 풍경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살아 있는 학습의 효과는 정말 대단하다. 학자적 양심으로 4대강을 반대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지금까지도 힘든 시간을 보내는 반면, 그 부역자들은 정부의 막대한 연구지원을 기반으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현실에서 어느 누가 공익과 정의를 위한 목소리를 낼 것인가? 교과서보다 더 중요한 이 살아 있는 교육에서 우리가, 특히 앞으로 사회를 이끌 청소년들이 배우는 교훈은 무엇일까? 공무원이 되기 위해, 법관이 되기 위해, 시험에서는 교과서에서 외운 정의로운 죽은 답을 찾겠지만, 공무원이건 판사건, 검사건 현실에서 마주한 이 살아 있는 학습결과를 따르는 지금의 사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논란이 되고 있는 4대강 복원을 포함하여 하천이나 계곡의 복원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 강물의 거대한 힘이 스스로 복원의 기반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반면 산림, 그것도 고산식생 복원은 수십 년의 노력으로도 효과를 보기 어려운 까다로운 작업이다. 이미 가장 중요한 10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해 제대로 된 복원을 위해서는 더욱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하지만 그래도 지금이 가장 빠른 시작이기에 하루빨리 체계적 계획을 수립해야만 한다. 아울러 재해 방지를 위한 조치는 확실히 하되 반드시 임시적이어야만 한다. 재해방지를 위한 시설물이 고착화되는 순간 복원은 영영 사라지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났다. 촛불혁명의 사후약속은 정의로운 삶이 훨씬 고귀하다는 것을 새 역사로 만들어가야 할 시대적 책무일 것이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후진적 지방자치는 사라져야 할 때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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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서 성실하게 답변하겠습니다.” 2016년 11월6일 검찰 포토라인에 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기자를 노려보며 쏘아붙인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2017년 3월21일 검찰 포토라인에 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무구한 표정으로 내뱉는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2018년 2월26일 검찰청에 들어서던 안태근 전 검사장이 무심한 표정으로 내던진다.

“성실히 조사를 받겠습니다.” 2018년 5월28일 서울지방경찰청에 출석하던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포토라인에 서서 읊조린다.

한국 사회에 때아닌 ‘성실인’이 넘쳐나고 있다. 성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정성스럽고 참됨’, 한국어기초사전에는 ‘태도나 행동이 진실하고 정성스러움’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근데 성실인의 면면을 살펴보면 기가 막힌다. 하나같이 위법, 편법, 탈법, 불법, 초법을 요리조리 저지르며 권력, 금력, 위력을 마구잡이로 휘둘러왔다. 그런데 이들이 갑자기 성실을 다짐하고 나서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위기에 처하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켜줄 보다 근원적인 문화 코드에 의지하기 마련이다. 이들이 활용하는 성실 코드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나는 뉴스에 나오는 성실인을 볼 때마다 의문을 품곤 했는데, 지방대생 부모를 연구하다가 불현듯 성실 코드의 ‘한 기원’을 발견했다.

내가 연구한 지방대생 부모는 공교롭게도 차남과 딸이 대부분이다. 지방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가부장의 권위에 짓눌려 살아왔다. 가부장과는 상호 공감을 바탕으로 한 쌍방향적 의사소통을 해보지 못했다. 차남은 형처럼 서울로 보내달라고 떼를 쓰다 된통 혼났고, 딸은 대학 보내달라고 졸랐다가 ‘지지배’가 쓰잘 데 없는 소리 한다며 지청구를 들었다. 울분이 솟구쳤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성실하게 고된 노동을 하는 가부장을 보고 마음을 다스렸다. 게다가 무능한 가부장 탓에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집안 살림을 성실히 꾸려나가는 가모장을 보고 연민을 품었다.

자신이 존중할 수 없는 상황, 그럼에도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면? 선택지는 두 가지. 상황에 적당히 관여하며 설렁설렁 살거나, 상황이 요구하는 정해진 규칙만을 따라 성실히 사는 것. 어릴 때는 반항심으로 ‘적당’히 살았지만, 부모에 대한 연민이 생긴 후부터는 ‘성실’히 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하지만 부모처럼 되지는 않으리라. 경제 능력을 키워 진정한 가부장의 길을 가리라. 경제 능력이 있는 가부장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리라. 차남과 딸 모두 가족 밖 세상과 담쌓고 주어진 ‘가족인’의 삶의 행로를 따라 성실하게 살아간다.

온 가족의 성실을 발판 삼아 서울로 진출한 장남. 위법, 편법, 탈법, 불법, 초법을 통해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둔다. 기고만장 살다 어느 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그제야 떠나온 고향의 성실 코드를 떠올린다. 아예 죽으라는 법은 없지. 어머니, 아버지, 동생들 봐봐. 가진 게 변변찮은데도 엄청 성실히 살았잖아. 하나씩 실타래가 풀려 지금은 나름 잘 살잖아. 나도 성실히 조사를 받다보면 살길이 열릴 거야.

현재 한국 사회에는 성실 코드에 기대어 위기를 벗어나려는 ‘예비 성실인’이 가득하다. 실제로 최근 검찰 포토라인에 선 유명 인사들은 하나같이 성실 코드에 의지한다. 그만큼 성실 코드가 지방사회는 물론 한국 사회 전반에서 문화적 호소력이 크다는 거다. ‘성실’이란 무엇인가? “나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묻지 않고 그저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사는 것. 그게 개인에게 ‘자율’은 허용하지 않으면서 ‘책임’을 강제하는 조직 사회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방책이 아니다. 세상에 대해 ‘모르려는 의지’로 넋 놓고 살다보면 위법, 편법, 탈법, 불법, 초법을 일삼는 조직 사회의 우두머리에게 ‘직싸게’ 당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 참사가 끊이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보라. 이제 우리 모두 잠시라도 멈춰 서서, ‘가치론적 질문’으로 자신의 삶을 톺아볼 때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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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에서 보수정당들이 참패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겨우 대구·경북 두 지역에서만 광역단체장 당선인을 냈다. 텃밭이었던 부산·울산·경남도 내줬다. 기초단체장 역시 민주당이 226곳 중 151곳을 석권했다. 경북 구미시 등 보수의 아성이었던 상당수 지역에서도 민주당이 당선인을 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 여러분들의 선택을 존중한다”며 지도부와 함께 사퇴했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대표도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016년 총선과 지난해 대선에 이어 보수당이 이렇게 연달아 크게 패배한 사례는 없었다. 한국의 주류가 바뀌는 것 아닌가 하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선거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가 공고하다는 점을 확인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는 보수세력을 철저히 심판했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집권세력의 사회·경제 정책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야당이 참패한 것은 보수당들이 대안세력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음을 웅변한다. 특히 보수의 맏형 격인 한국당이 민심과 괴리된 정도는 심각하다. 북한과 미국이 70년 적대관계를 청산하겠다고 나서는 초유의 상황에서도 낡은 안보관을 고집했다. 최저임금 인상, 복지 확대를 통해 경기를 부축하려는 정부의 정책도 세금을 쏟아붓는 포퓰리즘으로 치부했다. 합리적인 대안은 내놓지 않으면서 강경 일변도의 대여 투쟁을 벌였다.

시민들은 사소한 범법행위도 처벌받는데 전직 대통령들의 엄청난 비리를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고 방탄국회로 동료를 감쌌다. 겉으로는 민의를 받든다고 했지만 여론조사와 언론 탓을 하며 숨은 표에 기댔다. 이런 당을 지지해달라는 것 자체가 염치가 없는 일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국정농단을 한 책임을 탄핵으로 물었는데도 경고를 외면하니 유권자들이 더 큰 매를 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촛불집회에서 확인됐듯 지금 시민들은 정치권을 향해 새로운 가치와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시민들은 경제성장과 그에 따른 부의 편중보다 공정한 분배, 복지를 통한 삶의 질 향상, 지방분권 등에 더 주목하고 있다. 전통적인 보수의 덕목보다는 진보적 가치에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보수가 이런 가치를 등한히 하는 한, 또 시대정신을 반영한 새로운 철학으로 무장하지 않는 한 보수 재건은 요원하다. 보수당들이 진정 정치적으로 재기하고자 한다면 기득권을 버리고 보수의 철학과 노선을 재정립하는 것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한·미동맹이 중요하지만 동맹 만능주의에만 의존하는 안보관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시장이 만능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시장의 실패에도 대비할 줄 알아야 한다. 제대로 된 복지정책을 펴 보지도 않고 과잉복지를 외치는 것은 기득권을 강화하겠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비현실적이라면 비판만 하기에 앞서 시민을 향해 대안을 내놓는 자세가 필요하다. 청년 실업률 해소를 위해 보수적 해법이라도 내놓으면서 비판해야 설득력이 생긴다.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고 건강한 토론을 통해 정책으로 경쟁하는 정치를 시민들은 바라고 있다.

보수 재편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통한 새 리더십 구축에서부터 당의 전면적 쇄신, 나아가 당의 해체까지 거론됐다. 보수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혁신을 외쳤지만 시민들이 다 시늉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게 확인됐다. 바뀐 세상에 맞는,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보수의 가치와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대통합을 외치기 앞서 비전을 세우고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시민들은 어떤 보수냐를 묻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는 “나라가 통째로 (민주당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탄핵의 분노가 가시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아직도 참패 원인을 바깥에서 찾고 있다. 성찰이 먼저다. 보수 없는 정치는 위험하다. 지금이 보수 재건의 마지막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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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교육감 열풍이 4년 만에 재연됐다. 13일 치러진 전국 시·도교육감 선거 개표 결과, 17곳 가운데 서울·경기·부산 등 최소 12곳에서 진보 성향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 2014년 대거 탄생한 진보 교육감들의 교육혁신 성과에 유권자들이 합격점을 매긴 것으로 평가된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 추진에도 탄력이 붙게 됐다. 과거 누리과정 예산, 혁신학교 확대 등을 두고 보수 정부와 진보 교육감 사이에 빚어진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은 낮아졌다.

선거 과정을 살펴보면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4년 전만 해도 일부에서 ‘포퓰리즘’이라며 깎아내린 무상급식 등 교육복지 공약이 이번에는 진보·보수 후보를 불문하고 ‘대세 공약’이 됐다. 교육의 공공성 강화가 시대정신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당선된 교육감들은 물론 교육부도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을 줄이고 ‘배울 권리’를 보장하는 교육복지 확대 요구에 적극 부응해야 할 것이다.

교육감은 예산 편성과 인사, 학교 설립·폐지 등 막강한 권한을 지닌 ‘교육 소통령’이다. 그럼에도 선거는 주목도가 떨어진다. 정당 공천이 없는 데다 초·중·고생 자녀를 두지 않은 유권자들은 자기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반면 교육의 주체이자 이해당사자인 청소년들은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이런 모순이 없다. ‘깜깜이 선거’ 문제를 개선하려면 선거연령을 낮춰 학생들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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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에서 예상대로 여당이 압승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중 대구·경북·제주를 제외한 14곳을 석권했다. 국회의원 재·보선 12곳 중에서도 민주당은 후보를 낸 11곳 모두 당선됐다. 보수야당의 궤멸적 참패다. 역대 선거에서 보수정당이 이렇게까지 패한 것은 처음이다. 시민들은 야당을 철저히 심판했다. 야당에 대한 민심 이반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우선 여당과 치열한 정책 경쟁을 벌이는 수권정당의 모습을 보여주기는커녕 사사건건 정부·여당의 발목을 잡으며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일관한 데 대한 반발이 컸다. 한국당은 급기야 역사적인 한반도 데탕트 흐름조차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며 냉전보수의 몽니를 부렸다. 홍준표 대표는 연이은 막말로 보수의 품격을 떨어뜨렸고, 대안 없는 비판으로 시민을 짜증나게 했다. 무엇보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무참한 패배를 맛보고도 구태의연한 수구정당 행태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던 게 많은 시민의 등을 돌리게 했다. 한술 더 떠 시·도지사 후보마저 흘러간 ‘올드보이’를 줄줄이 기용했으니 유권자의 감동이 있을 리 없다. 이번 선거는 문재인 정부의 지난 1년 국정성과를 평가받는 첫 심판대라 할 수 있었지만 시민들은 되레 야당에 회초리를 들었다. 

이제 보수야당은 당의 존폐까지 걱정해야 할 정도로 총체적 위기에 처했다. 홍 대표는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했는데 당연한 얘기다. 관심은 향후 보수야당의 재편이다. 지금 한국당 지지율은 11%, 바른미래당은 5% 안팎 정도다. 두 정당의 지지율을 다 합쳐도 민주당 53%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선거 결과 한국당은 ‘TK(대구·경북) 자민련’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민주주의는 보수와 진보, 국정은 여당과 야당의 두 축이 균형을 잡아야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 지금은 그 한 축의 작동이 멈춘 상태나 마찬가지다. 보수진영은 통렬한 반성으로 재기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종북 이데올로기로 시민을 편가르기했던 극단적인 정치로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새로운 보수의 구심점이 되겠다는 바른미래당도 울림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바른미래당은 광역단체장과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전패했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에서 안철수 후보는 한국당 김문수 후보에게조차 밀려 3위에 그쳤다. 대통령과 각을 세워 보수 표심을 끌어모으겠다는 손쉬운 정치로는 새로운 보수를 갈망하는 시민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것이다. 민주당은 선거 승리에 도취해선 곤란하다. 민심은 냉정하다. ‘불패 신화’로 오만해진 집권세력의 독선에 시민들이 등을 돌린 사례는 허다하다. 정부·여당은 총선·대선·지방선거 3연속 승리라는 타이틀은 내려놓고 국정에 전념해 경제와 개혁, 협치에 성과물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지역주의의 단단한 벽에 의미 있는 균열을 냈다. 민주당 불모지인 부산·울산·경남에서 처음으로 단체장을 배출한 것은 수십년간 지속된 일당의 지역주의 패권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전체 투표율이 60.2%로 23년 만에 마의 60% 벽을 돌파한 것도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선거를 거듭할수록 높아지는 시민의 성숙한 주권의식과 참여 열기가 발휘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선거는 끝났다. 남은 것은 준엄한 주권자의 뜻을 정치권이 겸허히 받아들이는 일뿐이다. 수구보수의 몰락은 한국 사회에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건강한 보수의 출현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진보와 보수 간 선의의 경쟁 속에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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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 그 사람 청문회 취소되고 바로 검찰 조사 받는다면서?

- 어 그래. 나도 들었어. 의사가 증거를 공개했다지.

- 그런데 그거 공소시효가 지난 일 아니야?

- 아니래. 다른 일로 싸우다가 의사가 엿 먹이려고 확 불어버린 거래.

- 예전부터 소문이 돌더니 진짜였구나.

- 순진하긴, 당연히 진짜지. 아마 지금 떨고 있는 사람들 많을걸?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유전자 맞춤 아기가 제한적이나마 허용되기 시작하고서 채 10년도 안 지났다. 선천적으로 특정 질병에 취약한 유전자를 지녀 아이 갖기를 망설이던 부모들에게는 복음과 같은 조치였다. 집안 대대로 심장이 약하다, 간이 안 좋다 등의 얘기를 하던 사람들은 환호했다. 더 심한 유전병 때문에 아예 결혼조차 포기했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좋지 않은 유전자들을 미리 제거한 유전자 맞춤 아기로 2세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유전자 조작을 하는 과정에서 지능이나 신체 기능들이 남들보다 우수하도록 하는 편법이 틀림없이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정부에서는 절대 그럴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감독, 관리하겠다고 했으며, 실제로 매우 엄격한 절차와 인증 과정을 거치도록 해 놓았다. 그렇게 해서 시행된 유전자 맞춤 아기는 의료 복지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찬사와 함께 빠르게 제도적으로 자리 잡는 듯했다.

그런데 유전자 맞춤 아기들이 취학 연령에 들어설 즈음부터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재벌이나 유력 정치인들 집안에서 태어난 몇몇 유전자 맞춤 아기들이 처음부터 ‘유전자 마사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 애들은 원래 집안에 내려오던 선천적 유전 질환이 인정되어 유전자 맞춤 아기로 태어났는데, 그 과정에서 몰래 지능도 더 높고 근지구력이나 골격 등도 훨씬 뛰어난 유전자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전자 시술 과정은 모두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의무였지만 사실 의사를 매수하거나 병원 차원에서 조작한다면 이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결국 한 종합병원의 의사가 양심선언이라는 명분으로 유전자 맞춤 아기를 낳는 과정에서 이면 거래가 있었다는 점을 폭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목된 당사자는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을 지낸 유명 정치인이었는데,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단호하게 잡아뗐지만 의사의 증언이 워낙 구체적이라 결국 청문회가 열리게 되었다. 그런데 폭로했던 의사가 그 정치인과 다른 일로 법적 분쟁을 하는 중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정치인에게 우호적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의사가 유전자 맞춤 시술과 관련된 비밀 의료 기록을 모두 공개하면서 일거에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 우리 어쩌지? 그냥 아이를 낳으면 유전병에 걸릴 확률이 50%인데….

- 괜찮을 거야. 설마 이번 일로 유전자 맞춤 시술 그 자체를 다시 전면 금지시키기야 하겠어?

- 바로 두 달 뒤가 총선이라서 그래. 선거 때마다 다시 금지시키겠다는 공약이 계속 나왔잖아.

- 하긴 그 정당이 이번에 의석수가 많이 늘어날 거라고 하지. 정말 어떻게 될까 불안하네.

- 만약 다시 금지된다고 해도 법률안 통과되고 그러려면 시간이 좀 걸리니까, 우리 그 전에 바로 아이를 갖자.

- 유전자 맞춤 아기 낳으려면 아직 저축을 더 해야 하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당신 말대로 서두르는 게 낫겠어. 그렇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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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밝히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된 지는 이미 15년이 지났다. 섬세한 유전자 편집을 가능하게 해 주는 3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인 크리스퍼(CRISPR)가 이미 등장했으며, 작년에는 세계 최초로 미국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 편집 시술이 시행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듯이 유전자 편집 기술은 인류의 의료 복지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이다. 그러나 세기적 과학기술은 늘 세기적 윤리 문제와 쌍둥이로 태어난다. 이런 유전공학 기술들이 사회에 전면적으로 수용된다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유전적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일어날 것도 틀림없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늘 우리에게 어려운 선택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윤리적 상상력은 계속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21세기는 무엇보다도 거대한 시행착오의 시대로 기억될 것 같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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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생 청년 김정은은 53년생 문재인을 만났고 46년생 트럼프를 만났다. 83년생인 나보다 한 살이 어린 그는, 좋든 싫든 한반도 현대사의 중심에 놓였다. 내가 그라면 많이 두렵고 외롭고, 막막할 것 같다. 그래서 정상회담에 나선 그의 발걸음, 표정, 단어 선택 같은 것을 조마조마한 심정이 되어 지켜보았다. 젊은 그가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역사적 개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냈다. 젊은 사람 치고는 잘하네, 하는 수준이 아니라, 현실정치에 나선 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하지 못한 일들을 해내고 있다. 기성세대 정치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수를 놓으며 어떻게든 함께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간다. 이후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분투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북한에 84년생 김정은씨가 있다면, 2018년의 대한민국에서 이름을 알린 80년대생 청년은 아마도 82년생 김지영씨겠다. 그는 실존 인물은 아니고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이다. 연예인들을 제외하고는 그만큼 눈에 띄는 청년도 별로 없었다. 78년생인 작가가 친구나 선후배들, 그리고 자신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다고 후기를 남겼지만, 그 무수한 김지영씨와 그 친구들은 소설 바깥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경계에만 계속 머물러 있고 중심부로 나오지 못한다.

주로 보이는 것은 82 ‘학번’들이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더욱, 80년대생을 찾아보기는 어렵고 그 시기에 대학을 다닌 80년대 학번들만이 주류를 이룬다. 이른바 386세대들이다.

‘386’은 1990년대라는 특정 시기에 ‘30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이라는 조건을 그럭저럭 만족한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기성세대의 동의어처럼 인식될 만큼 이 사회의 중추를 이룬다. 이번 2018년 지방선거에도 386을 비롯해 그 선배 세대들이 많이 출마했다.

반면 20·30대 출마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청년의 범위를 넓혀 만 39세 이하까지로 설정하더라도 9300여명 중 656명, 전체의 7%에 불과하다. 거대 정당의 공천을 받은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나면 이들의 당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개는 몇 %의 지지를 받느냐에 관심이 맞추어져 있는 수준이다.

단순히 청년을 위해서만 청년정치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를 위해 꼭 필요한 존재다. 우리 사회를 진보시키고 혁신을 불러온 여러 발견들은 청년의 호기심과 상상력에서 비롯되었다. 경험이나 관록 같은 미덕들도 중요하겠으나, 주변을 둘러보면 그것이 별로 좋은 방향으로 쌓이는 일도 없는 듯하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하는 식의 발화는 거의 틀림없이 좀 더 나은 제안들을 없던 일로 만드는 힘을 가졌다.

지금의 386세대가 30대 젊은 날에 한국 사회를 변혁시켜왔듯 지금의 30대에게도 그러한 힘이 있다. 386이라는, 20년 가까이 대한민국의 어느 특정 세대만을 지칭해 온 그 용어는 이제 그 권력과 함의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때가 되었다. 이른바, 포스트 386을 맞이할 때가 된 것이다. ‘30대·80년대 출생·60세가 된 부모를 둔’, 그런 청년들이 존재한다.

80년대에 태어난 이 386들은 이제 사회 초년생의 모습을 막 벗었다. 국민학교에 입학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했고, 오전에는 반공교육을 받고 오후에는 평화통일 포스터를 그릴 만큼 무언가 계속 좌우의 중간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이 사회를 감각했다. 중·고등학생이던 90년대에는 전에 없던 무한경쟁의 시기를 거쳤고, 대학생이거나 사회인이 된 2000년대 이후에는 자기계발의 서사와 함께 찾아온 최악의 취업난을 맞이해야 했다. 2018년의 386들은 거기에서 살아남은, 당사자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역사적으로 가장 큰 역량을 갖춘 세대다. 그에 더해, 이제 환갑이 되어 은퇴를 준비하는 그들의 부모들은 청년 이상의 경제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자식-부모 간 부양의 역전을 걱정해야 할 만큼, 경쟁자이면서 동시에 가장 큰 조력자이기도 하다. 포스트 386은 20세기의 386들보다 훨씬 더 복잡다단한 구조 안에 놓여 있다.

어느 시대에나 2030의 나이에 5060의 부모를 둔, 평범한 청년들이 있다. 386에서 의미를 갖는 숫자는 3과 6이다. 특정 세대에게 굳이 부여하지 않고도 계속해서 보편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는 이 3N6과 2N5들을 조금 더 현실정치로 끌어내야 한다.

386을 비롯한 기존의 세대들이 이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은퇴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김정은과 문재인이 손을 맞잡았듯, 그들이 정상회담이라는 형식을 통해 동등한 눈높이로 만났듯, 길을 열어두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 적어도 이번 지방선거처럼 93 대 7이 아니라, 비슷한 숫자가 되어 만나야 한다. 여기에는 만 25세 이상에게만 주어지는 지방선거 피선거권 연령이나 200만~5000만원에 이르는 선거기탁금을 낮추는 방안이 함께 고민되어야 하겠다. 비단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어느 분야에서든 마찬가지다. 그 시대의 가장 평범한 청년들이 주변의 문화와 제도를 바꾸기 위해 고민하고 직접 움직일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두어야 한다. 그들이 동등한 권력을 가지고 발화할 수 있을 때,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요” 하고 정중하고 힘 있는 제안을 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훨씬 나아질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386들의 분투를 기억하며, 건투를 빈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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