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현대사는 유민(流民)과 난민(難民)의 역사였다. 구한말 농민들이 농사지을 땅을 찾아 간도로 넘어갔고, 일제강점기가 되자 독립운동가들이 만주와 연해주, 상하이로 망명했다. 해방 후에는 제주 4·3사건 때 많은 이들이 배를 타고 제주도를 탈출해 일본으로 넘어갔다. 한국전쟁 때도 많은 이들이 미국, 유럽 등지로 건너가 새 삶을 찾았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명준은 인민군 장교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된 뒤 중립국 인도행을 택하지만 선상에서 바다에 투신한다.

근현대사의 격동기를 넘겼지만 최근에도 한국을 탈출하려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 병역을 피해 프랑스로 간 이예다씨(27)가 2013년 6월 프랑스 당국으로부터 난민지위를 인정받았고, 2016년 11월에도 동성애자이자 병역거부자인 한국 청년(31)이 프랑스에서 난민으로 인정됐다. 난민은 ‘인종, 종교, 민족,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사람’으로 규정된다.

난민배출 역사는 길지만 난민수용 역사는 짧다. 한국이 최초로 난민을 인정한 것은 유엔 난민협약에 가입(1992년)한 지 9년이 지난 2001년이다. 2013년 7월1일 난민법이 시행됐지만 난민수용률이 저조한 나라로 일본과 최상위를 다툰다. 난민신청을 받기 시작한 1994년부터 지난 10월까지 누적 신청자 수는 3만82명인 반면, 난민으로 인정받은 이는 767명으로 3%가 채 안된다. 전 세계 난민인정률 38%에 한참 못 미친다.

2015년 7월 한국에 입국한 우간다 청년 카테레가 하산이 난민지위를 얻지 못한 채 11일 한국땅을 떠났다. 빚을 졌다는 이유로 형제들에게 살해 위협을 받아왔다는 점만으로는 난민신청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고 당국이 판단한 듯하다. 체류 기간 그가 겪은 한국사회도 우간다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일하던 공장에서 ‘여기 왜 왔느냐’는 혐오 발언과 차별에 시달렸고, 암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는 동안 방 월세를 안 냈다는 이유로 퇴원하던 날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다고 한다. 췌장암으로 여명 2개월 진단을 받은 채 비행기 트랩에 오른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근현대사에 걸쳐 국제사회에 진 신세를 우리는 갚지 않고 있다.

<서의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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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거요? 죄송한데 못 갈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수화기를 내려놓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벌써 세 명째다. 미안한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해맑은 목소리로 아무렇지도 않게 취소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이제 놀랍지도 않다. 당장 다음주에 강의가 시작하니 새로 신청받기도 어려운 상황, 40명이 넘는 신청자에 기분이 좋아 ‘강의실이 너무 좁으면 어쩌지’ 걱정한 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진다. 리스트에는 신청자들이 적어놓은 강의 신청 이유들이 다양하게 적혀 있다. ‘좋은 강의 꼭 듣고 싶습니다’ ‘너무 기대됩니다’ ‘다른 강의도 너무 듣고 싶어요’ 등 읽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는데, 막상 통화를 해보니 아예 자신이 신청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 같으니 힘이 빠질 수밖에. 사실 통화하기 전에 문자도 보냈다. 개강 날짜와 시간을 자세히 안내하면서 “혹시 일정이 변경되어 수강이 어려우신 분은 연락을 꼭 부탁드린다”고까지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건지 당황스럽다. 안내 문자를 받고 취소하겠다고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앞서 개강한 강의에서는 문자로 참석 확인을 부탁했는데, 막상 개강날이 되니 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일부러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고 결과는 예상대로 처참한 수준이다. 한두 명 정도야 사정이 생기거나 일정이 바뀌었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프로그램마다 이런 사태가 반복되고 있으니 문제다.

일단 강사 선생님께 고백부터 했다. 신청은 40명이 했는데, 확인해보니 20명이 됐다고. 심지어 강의 당일에 전화해서 취소한 사람이 4명이나 된다. 40명을 예상하고 대관해 세팅해놓은 강의실은 여유로울 정도로 자리가 남았다. 선생님은 예상했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무료 강의는 원래 좀 그래요. 못 온다고 미리 연락하는 분은 그나마 양반이에요. 돈을 낸 게 아니라 절실함도 없고, 꼭 와야겠다는 생각도 별로 없고, 들쭉날쭉한 경우가 많아서 저도 기대치가 낮은 편이에요.” 선생님 말처럼 무료 강의는 일단 신청해놓고, 막상 시작할 때가 되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오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다. 아예 신청 인원의 반만 온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정작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못 오고, 프로그램 규모조차 예측하기 어려울뿐더러 수업 진행 방식에도 차질이 생긴다. 공공 영역의 특성상 비용을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이런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다 보면 무료 프로그램 운영에 대해 고민이 깊어지기 마련이다.

뭔가를 배우겠다고 마음과 시간을 내어 신청한 강의조차 이런 상황일진대, 돈을 내고 이용하는 서비스 업종은 더 심각하다. 사실 ‘노쇼(No-Show·예약부도)’ 근절 캠페인이 진행될 때만 해도 레스토랑 같은 일부 업종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노쇼’가 꼭 식당에서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실제로 식당과 병원, 미용실, 공연, 고속버스 등의 업체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노쇼’가 초래하는 사회적 손실은 직접 비용만 4조5000억원, 간접 비용까지 포함하면 8조원이 넘는 수준이다. 지난 추석 연휴에 예매된 기차 승차권 역시 40%에 가까운 표가 반환됐고, 5% 가까운 좌석이 빈 채로 남았다고 한다. 광화문광장은 장기간 사용 신청을 내놓고 행사일에 닥쳐서야 취소하는 ‘노쇼’로 골머리를 앓다가, 동일한 행사로 7일 이상은 대관할 수 없게 규칙을 변경했다. 일부 사람들의 몰지각한 행동으로 선량하게 이용하는 대다수 사람들마저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노쇼’에서 가장 큰 문제는 “사정이 생기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의식 그 자체다. 누군가 그 시간에 쓰려던 사람이 자신의 ‘노쇼’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연말이다. 이런저런 모임이나 약속이 많을 수밖에 없고, 당연히 예약도 많은 시기다. 당연한 얘기지만 ‘예약은 약속’이다. 예약이 변경된다면 사전에 연락해 양해를 구하는 것이 기본이다. 당신이 갈지 말지 몰라서 잡아둔 그 자리가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자리였을 수 있다. 그리고 당신도 언젠가는 당신도 모르게 ‘노쇼’의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 못 가면 못 가게 됐다고 미리 연락하는 것, 어렵지 않다. “한 번쯤은 그럴 수도 있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시간에 전화 한 통, 클릭 한 번으로 기본을 지키는 것. 올 한 해를 보내며 할 수 있는 작지만 꼭 필요한 기본이 아닐까.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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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월동 중인 꿀벌을 탐사하러 서울 동작구에 있는 보라매공원을 방문하는 날이다. 보라매공원은 나의 고향과도 같다. 학창 시절 집이 근처여서 늘 보라매공원으로 산책을 다녔다. 친구들과 같이 보냈던 추억이 깃든 장소이고, 군복무도 여기서 했다. 늘 가보고 싶었기에 25년 만의 발걸음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난달 22일 서울 ‘보라매양봉장’에서 들여다본 꿀벌의 벌통 내부 모습. 장이권 교수 제공

태워 주겠다는 제안을 사양하고 나는 신림역부터 걸어서 보라매공원으로 갔다. 길거리의 수많은 간판과 높은 빌딩들이 낯설게 들어왔다. 공원의 입구도 많이 바뀌어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렵게 찾은 입구에는 ‘보라매공원’이라는 하얀 조형물이 있고, 그 앞에 노란 국화류의 꽃들이 잘 조경되어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꽃들 사이에서 곤충을 찾아보았지만 헛수고였다. 11월 중순이지만 때 이른 한파에 밤에는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 거의 모든 곤충이 우리 눈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공원 내에 있는 서울시 동부공원녹지사업소의 추헌철 선생님의 도움으로 이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태양열 패널과 구획된 텃밭을 따라 깔려 있는 데크를 걸으면서 정원을 산책하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은 말라서 아무것도 없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들풀과 꽃들이 텃밭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보라매양봉장’이라는 현판을 지나 월동포장이 되어 있는 벌통들로 다가갔다. 꿀벌 한 마리가 입구에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오늘 처음 본, 활동하는 곤충이었다.

옥상에서 벌통을 관리하는 분이 벌통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보라고 했다. 가만히 귀를 벌통 가까이 대었더니 웅~웅~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곧이어 즈~즈~ 하는 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우리는 곧 방충복을 입고 벌통의 개봉을 지켜보았다. 두꺼운 보온덮개와 비닐을 풀어헤치니 벌통 내부가 드러났다. 평상시와 같이 벌들이 벌집 위에 모여 있었지만 이들의 활동은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여름이면 벌통을 열자마자 많은 벌들이 왱왱 거리며 우리 주위를 돌았을 텐데 이날은 그저 몇 마리만 날아다녔다.

벌통을 관리하는 분은 벌들의 활동이 겨울철이라도 특별히 다르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벌집에 빼곡히 있는 꿀을 가리키며 벌들이 이 꿀을 먹으면서 겨울을 날 수 있다고 한다. 더 보여줄 것이 없다는 듯이 이 분은 천천히 벌통의 뚜껑을 닫고 보온덮개와 비닐로 벌통을 꽁꽁 감쌌다. 마지막으로 벌통의 입구를 3㎝ 정도만 열어 두었다. 날아다니던 벌들은 하나하나 착륙하여 열어둔 입구로 들어갔다.

꿀벌을 관리하는 분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꿀벌의 월동이지만, 나에게는 벌통 내부에서 여름과 비교해 특별히 다른 점을 찾기 어려운 꿀벌의 행동이 경이의 대상이었다. 북반구의 온대지역에서는 가을이 되면 모든 생명체가 월동 준비에 들어간다. 월동은 크게 추운 겨울을 피하거나(이주), 가사상태가 되거나(동면), 체액을 얼지 않게 하여 참고 견디거나, 열을 발생시켜 날 수 있다. 사람을 포함한 일부 포유류나 텃새들은 음식을 먹고 이를 소화하여 발생한 열로 월동할 수 있다. 일부 동물들은 체액을 부동액과 비슷하게 만들어 얼지 않게 하여 활동하면서 겨울을 날 수 있다. 또 철새들은 겨울을 피하기 위해 이주한다. 일부 포유동물 및 곤충과 같은 대부분의 무척추동물들은 동면을 이용해 월동한다. 이들은 대사활동을 줄여 체온을 낮추고, 잘 얼지 않는 장소에서 겨울을 보낸다. 장소를 잘못 선택하면 겨울 동안에 월동장소의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기도 하고, 영원히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실제로 성충으로 월동하는 파리류의 곤충은 월동 중에 대부분 죽고 지극히 일부만 살아남는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곤충들은 겨울에 꿀벌처럼 활동할 수 없다.

꿀벌의 월동도 다른 곤충들과 같이 10월 말이 되면 시작된다. 온도가 떨어짐에 따라 꿀벌들은 외부 활동을 줄이면서 벌통 내부에서 뭉치기 시작한다. 이들은 양쪽 날개를 서로 엇갈리게 날갯짓을 하여 열을 발생시킨다. 겨울에 벌통 밖에서 들리는 즈~즈~ 소리는 바로 꿀벌들이 무리를 덥히기 위해 발열하는 소리다. 벌통은 포유동물의 모피나 인간의 옷과 같이 추위로부터 꿀벌 무리를 격리시킨다. 꿀벌은 외부의 온도가 영하 17도까지 떨어져도 무리의 중심 온도를 18~32도 사이로 겨울 내내 유지한다.

꿀벌 무리가 크면 클수록 무리에서 발생한 열을 집적하기 쉽다. 무리의 외곽에 있는 꿀벌은 몸이 차가워지면 무리의 중심으로 파고든다. 외부의 온도가 낮아질수록 무리 중심의 온도를 높여 무리 전체의 온도를 유지한다. 그래서 꿀벌 무리는 먹이와 적당한 벌통만 있으면 마치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온도를 조절하여 겨울을 극복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꿀벌의 월동은 발열하여 그대로 겨울을 나는 포유류의 월동과 비슷하다.

발열을 이용한 월동의 장점은 이듬해에 곧바로 나타난다. 초봄에 식물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꿀벌은 바로 먹이활동을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다른 곤충들은 아직 알이나 유충 단계에 머물러 있거나, 성충으로 월동하더라도 이듬해에 바로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개체수는 아주 적다. 초봄부터 큰 경쟁 없이 먹이를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은 꿀벌이 열을 발생시켜 월동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전 세계로 활동영역을 넓힌 꿀벌의 성공도 어쩌면 여기에 기인한다. 기온의 변화가 심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올겨울도 무사히 날 수 있기를 바라며 아쉬운 고향 방문을 마쳤다.

<장이권 | 이화여대 교수·에코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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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은 완전한 이스라엘의 수도다.” 이스라엘 혼자만의 주장이다. 이스라엘은 1980년 ‘예루살렘법’ 제정을 통해 이 도시가 완전한 이스라엘의 수도임을 천명했다. 그러자 국제사회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478호를 통해 이를 즉각 반박하고 이 법의 무효를 선언했다.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더욱이 자결권의 행사라는 인류의 기본 가치 측면에서도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에 귀속되어야 한다. 물론 종교적 성소로서 예루살렘은 공동 문화유산으로 보호되고 종교행위는 보장되어야 한다. 1300여년간 이 원칙은 지켜져 왔다. 오랫동안 예루살렘은 다른 신앙, 다른 가치가 공존하는 이름 그대로 ‘평화의 도시’였다.

아랍 세력이 이 도시를 차지한 것은 이슬람 초기인 638년이었다. 이슬람의 전승에 의하면 예언자 마호메트가 신의 계시를 받고 예루살렘의 바위를 닫고 승천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솔로몬의 신전 터에 있는 바위다. 그래서 초기에는 일상의 예배 방향을 예루살렘으로 정하기도 했다. 새롭게 예루살렘을 정복한 이슬람 정권은 곧바로 옛 솔로몬 성전 터에 황금색 돔을 가진 화려한 모스크를 세웠다. 그게 지금 바위의 돔 모스크이다. 그후 1967년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강제로 점령하기까지 1300년 이상 이 도시는 이슬람의 통치지역이었다.

1967년 3차 중동전쟁은 인류사회의 기본 가치를 뒤엎는 불행이었다. 이웃 아랍국가들을 6일 만에 물리친 이스라엘은 유엔에서 승인한 자국 영토를 넘어 이웃 주권국가들의 영토를 차지했다. 이집트 북부의 시나이 반도, 동예루살렘이 있는 요르단 서쪽의 웨스트 뱅크, 지중해 해변의 가자지구, 시리아 접경 쪽의 옥토 베카계곡과 골란 고원 등이었다. 승자의 특권일 수 있다. 그러나 2000년 디아스포라와 600만 홀로코스트 희생을 치른 불운한 민족에게 국제사회는 아랍의 희생과 반발을 딛고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해 주었다. 척박한 땅에서 비옥한 영토를 이스라엘에 내준 아랍국가들에 이제 또 영토를 빼앗긴다는 것은 가혹한 생존의 문제였다. 그들은 저항했고 유엔은 안보리 만장일치 결의안 224조를 통해 이스라엘의 점령지 반환과 군대 철수를 명했다. 지켜지지 않는 약속은 1973년 4차 중동전쟁 이후에도 유엔 안보리 결의안 338호로 다시 요청했다. 지금까지 적어도 13차례 이상의 안보리 결의안을 통해 이스라엘의 영토 반환과 원상복구 이행을 촉구했다. 그들은 국제사회의 일관된 원칙과 국제법 준수 요구를 비웃었다. 더 나아가 돌려주어야 할 점령지에 12개 대규모 주택단지를 건설하고 20만명가량의 유대인을 정착시키고 있다. 반환은커녕 실효적 지배를 통해 자국 영토화하겠다는 의지를 전 세계에 선전하고 있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 홀로코스트 참사 직후 유대인을 돕기 위한 국제사회 노력의 일환으로 1947년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유엔 분할안이 통과되었다. 그러면서 미묘한 성지인 예루살렘에는 별도로 국제관리하에 둔다는 특별지위를 부여했다. 아랍인들은 분할안 자체에 강력 반발했지만 강대국들의 강제를 이겨낼 수 없었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하면서 서예루살렘을 자국 영토로 귀속해 버렸다. 동예루살렘은 요르단이 지배하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도 동예루살렘은 국제관리하에 두는 것이 국제사회의 일관된 정책이고 교황청과 미국도 동의한 글로벌 약속이다. 그래서 모든 외국 대사관들이 예루살렘이 아닌 텔아비브에 있는 것이다. 이를 트럼프 대통령이 깨버린 것이다. 왜 그랬는지는 다양한 의견과 분석 기사들이 난무하고 있다. 자신의 사업과 정치적 기반이 되는 유대인 파워 지지를 결속시키고 교착상태에 빠진 중동 평화협상을 자신의 이익구도로 새로 짜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동예루살렘에는 지금도 이스라엘 시민이 되지 못한 42만명의 아랍인들이 무국적자로 살고 있다. 그 땅에서 태어나고 그 땅의 선주민이면서도 요르단 임시여권을 발급받아 불안한 계약직 노동자로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고 있다. 그 땅의 주민들조차 자국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예루살렘을 자국의 수도로 선포하는 이스라엘이나 이에 홀로 동조하는 트럼프를 통해 이 시대 보편가치가 과연 무엇인가 근원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희수 |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중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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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라는 구분에 익숙하다. 하지만 뇌에서는 구조가 곧 기능이다. 신경세포는 나뭇가지처럼 생긴 구조물(수상돌기와 축색돌기)을 뻗어서 다른 신경세포와 신호를 주고받는데 이 구조물의 모양에 따라 신경세포의 활동 양상이 다르다. 신경세포 내부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가 세포막을 따라 이동하는 전기 신호인데, 신경세포의 모양에 따라 전기 신호가 전파되는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경세포의 종류에 따라 신경세포의 모양이 다르며, 신경세포의 모양이 변하면 신경세포의 활동 양상도 달라진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처럼 구조와 기능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뇌를 이해하려면 신경세포의 형태와 신경세포들 간의 연결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얼핏 생각해보면 신경세포의 생김새처럼 기본적인 내용이야 이미 다 밝혀져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2015년 출간된 한 연구에서는 생쥐의 뇌를 29나노미터 두께(머리카락 굵기의 약 3000분의 1)로 얇게 자르고, 각 조각에서 신경세포들을 하나하나 표시한 뒤, 이 조각들을 다시 3차원 이미지로 합성해서 신경세포들의 구조와 연결을 살펴보았다. ‘Crammed with connections’라는 제목의 3분짜리 유튜브 영상에서 이 결과를 볼 수 있는데, 나는 이 결과를 처음 보았을 때 거의 배신감을 느꼈다. 그동안 논문도 제법 읽고 뇌과학 수업도 여럿 들었건만, 신경세포들이 이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교과서에서 본 건 대개 하나의 신경세포에서 뻗어져 나온 축색돌기가, 다른 신경세포의 수상돌기와 연접하여 하나의 시냅스를 형성하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영상에서는 너무나 많은 신경세포들이 빈틈 없이 얽혀 있었고, 하나의 시냅스 근처에도 너무 많은 신경세포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 결과에 놀란 것은 연구를 진행한 연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연구자들은 서로 다른 신경세포를 각기 다른 색깔로 표시했는데 너무 많은 신경세포가 얽혀 있다 보니 연구자들은 마땅한 색깔을 찾는 데도 애를 먹었다. 사람의 눈이 서로 다른 색깔로 인식할 수 있는 색깔의 가짓수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수십년을 살고도 나도 다 알지 못하는 내 속에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알 수 없는 한 길 사람 속에는 과연 그럴 만한 복잡함이 있었던 모양이다.

■ 뇌를 모방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가 어떻게 동작하는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하다는 사실은 뇌를 모방해서 만든 인공신경망(소프트웨어)에서도 드러난다. 알파고에도 사용된 심화학습(딥 러닝)은 뇌 속 신경망을 모방해서 만들어졌다. 심화학습이 시각 인식에 특별히 탁월한 것은 심화 학습이 시각뇌의 구조적인 특징을 많이 참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칩(하드웨어)도 신경망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2014년 IBM에서 나온 트루노스(TrueNorth)라는 신경모방칩이 그 예다. 실제의 신경세포는 다수의 신경세포들의 입력을 받고, 이 입력 총합이 문턱값을 넘어설 때만 출력을 낸다. 이 신경모방칩도 실제의 신경세포와 유사하게 동작하는 실리콘 신경세포들로 구성되었다. 뇌의 신피질에서는 비슷한 정보를 나타내는 신경세포들이 작은 원기둥 구조 안에 모여 있고, 이런 원통들이 병렬로 늘어서 있다. 이와 유사하게, 256개의 실리콘 신경세포들을 긴밀하게 연결해서 뇌 속의 원기둥과 비슷한 코어를 만들고, 이런 코어 4096개를 모아 신경모방칩을 만들었다. 신경모방칩에서는 정보처리에 참여하는 실리콘 신경세포가 출력을 내보낼 때만 전력을 소모한다. 따라서 기존의 컴퓨터 칩에 비해 전력을 훨씬 적게(약 1000분의 1) 소모한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컴퓨터보다 심화학습에 부합하는 특징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신경모방칩을 사용하면 길찾기, 공간 탐색 등 기존의 컴퓨터로는 어렵던 일도 더 쉽게 해낸다고 한다.

뇌가 몸 안에 있듯이, 정보처리장치에 몸을 부여하면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로봇에 몸체를 움직일 수 있게 하고, 몸체를 움직여서 생긴 효과를 확인할 수 있게 하면(예: 동공을 왼쪽으로 움직이면 왼쪽이 보인다) 로봇은 시뮬레이션과 시행착오를 통해 ‘자기’ 몸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스스로 파악해 간다. 이렇게 하면 사고 현장에 보낸 로봇이 고장 나더라도, 로봇이 스스로 고장된 부위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새로운 움직임을 찾아낼 수 있다. 유용한 기술이기는 하지만, 이 연구는 로봇에 어떤 식으로든 ‘자기’라는 개념이 생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스스로 그러한 자연

이런 기술들을 보면 호모 사피엔스 참 별거 없다는 생각에 허탈해진다. 인간과 비슷한 구조로 만들면 인공지능도 인간과 비슷하게 동작한다. 우리는 인공지능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인간만의 영역’이 침해되는 게 아니냐며 우려했지만, 어쩌면 ‘인간만의 영역’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며 으스댔지만, 사실 인간도 스스로 그러하도록 만들어진 자연의 일부였다.

그럼에도 호모 사피엔스는 인간중심적인 관점에서 생태계를 대해왔다. 인간의 기준에서 감정을 정의하고, 동물들에게는 감정이 없으니 함부로 대해도 좋다고 여기던 때도 있었다. 생태계를 지탱하던 수많은 생물이 멸종했지만 당장은 별 문제가 없기도 했다. 기술의 힘을 가진 인간에게 동물들이 대적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힘을 가진 인공지능이, 사람이 생태계에 했던 방식으로 인간을 대하면 어떻게 될까? 인공지능은 인간의 사고방식이 담긴 자료로 학습하고 그에 따라 동작한다. 이상기후가 나날이 잦아지는 요즘, 인공지능 덕분에(혹은 때문에) 비로소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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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돌무더기 탑이든 석탑이든 밑이 넓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집니다. 기초가 넓고 튼실해야 더 높이 쌓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 돌탑의 중간쯤에서 헐거워진 돌들이 빠져나갑니다. 그러면 당연히 꼭대기가 건들거리겠죠. 저러다 무너지지 싶어 급한 대로 돌탑 아랫부분에서 돌 몇 개를 뽑아 빠진 부분을 고입니다. 그러곤 안도하고 잊어버립니다. 그것이 반복되자 결국 기초가 숭숭 뚫린 탑은 어느 날인가 와르르 무너지고 맙니다. 하석상대(下石上臺), 즉 ‘아랫돌 빼서 윗돌 고이기’의 시작과 결말입니다.

최근 모 주방가구 회사 내에서 성폭행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보여준 회사의 대응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습니다. 피해 직원을 보호한 것이 아니라 회사 이미지를 지키는 데만 급급했거든요. 피해 여성 구제는커녕 회사 내부에 또 외부로까지 알려질까 입단속에만 여념이 없었지요. 그러다 사실이 드러나자 여성 고객이 대부분인 그 회사는 이미지 추락과 함께 ‘다신 못 쓸 거 같다’며 불매와 냉대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여성들에게 제품을 팔면서 정작 자기네 피해 여직원은 외면한 모습에 크게 실망하고 차갑게 돌아선 것입니다.

만약 그 회사가 지극히 정상적인 방식으로 대처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랬다면 직원을 아끼는 회사로 이미지가 상승하고 고객들한테도 더 큰 신뢰를 얻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러지 못했지요. 기초가 아닌 상부, 조직을 위한 조직이었을 테니까요.

뜯어진 부분을 미봉(彌縫)으로 대충 기우면 옷은 조만간 쭉 찢어져 버립니다. 사고에는 대책 없고 사과에만 대책 있는 임시변통은 같은 사고만 부릅니다. 적극적인 피해자 구제와 마땅한 가해자 징벌, 그리고 재발방지를 위한 교육까지 힘겨워도 새 돌 지고 와 꾸준히 고이고 쌓아야 탑이 유지됩니다. 전화위복이란 언제나 수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제 돌 괘서 버티면 거탑도 무너집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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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짓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를 먼저 묻는 게 건축이라고 여긴다.’

건축가 이일훈의 말이다. 추운 겨울,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생들은 어떻게 사는가?

학교는 학생들이 복지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 학생들이 하루의 3분의 1 이상을 보내는 또 다른 삶의 공간이다. 학교 복도에서 겨울은 유난히 잘 느껴진다. 학교 화장실은 늘 춥고 부족하다. 잠시 머무는 지하철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은 아이들이 자주 쓰는 학교 화장실보다 한결 따듯하고 풍족하다. 오래된 학교는 시설을 개·보수하려 해도 개·보수 연한이 있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설사 수리가 가능해도 학교 예산은 교수학습비로 쓰기에도 빠듯해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선뜻 이해가 안된다. 그 많은 교육예산은 어디로 가고 늘 학교는 춥고 가난할까. 428조원 규모의 새해 국가예산안이 통과되었다. 복지예산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교육예산은 64조2000억원이다. 어린 시민들이 또 다른 삶을 사는 공공의 공간에 볕이 들고 바람이 통하고 아늑해서 건강하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최소한의 복지다.

학교는 학생들을 위한 교육적 공간이다. 학교공간은 교육적 관점으로 디자인되어야 한다. 공간도 교육과정의 일부이다. 교육적 공간은 학교 철학을 담고 있다. 학교 철학이 사랑과 도전이라면 그 가치를 담고 있는 공간의 모습으로 꾸미면 좋겠다. 교육적 공간은 학생들에게 인지적·정의적·심동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주는 공간이다. 자기 표현을 할 수 있고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교실은 교육과정과 수업 철학과 목표에 따라 자리 배치가 달라진다. 관계 맺기와 협력과 의사소통 역량을 중요시하는 수업에서 일제식 자리 배치는 효과가 적다. 수업 목표 달성에 효과적인 방법으로 자리를 배치해야 한다. 자리는 여러 형태로 배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ㄷ자 자리 배치를 하는 교실은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이 마주 보고 텍스트에 대해 대화하며 상호작용하는 것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교수자 1명과 10명 정도가 앉아 과제를 토론하고 해결하는 수업을 하는 곳은 하크니스 테이블을 배치한다.

학교는 학생이 생태적 삶을 경험하는 공간이면 좋겠다. 일전에 학생들과 우리 학교의 장점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아이들이 손꼽은 장점은 교문에서 이어지는 잣나무길이었다. 아이들이 자연에 관심 없어 보였지만 잣나무길을 걷는 짧은 등하교 시간에 자연을 느끼며 좋아했다. 교과서에서 멸종위기 북극곰에 대해 배우고 전기절약을 위해 태양광 발전소를 옥상에 설치하거나 물 절약을 위해 빗물저금통을 교실에서 관리해보는 경험의 공간이면 좋겠다.

학교는 학생이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공간이면 좋겠다. 학교는 학생들이 참여하고 다양한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작년, 학교에 여유실이 있었던 교사연구실을 다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학생들이 기획해서 학생프로젝트실로 같이 사용할 수 있게 꾸몄다. 500여명의 학생들이 쉬고 공부하고 여러 활동을 꾸릴 수 있는 공간이 한두 실이라도 있길 바라서다.

학교 하면 긴 복도와 유리창이 먼저 떠오른다. 이제 학교 하면 따듯함, 안전함, 성장, 민주주의, 생태가 떠오르면 좋겠다.

<손민아 | 경기 전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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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연과 사람이 공생하는 람사르습지도시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영국과 중국 현장을 방문했다. 영국 습지 3곳을 둘러보고, 런던에서 상하이로 가는 비행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으면서 우포늪 따오기의 복원과정 15년이 생각났다. 우포늪에서는 조류전문가인 고 김수일 교수의 제안으로 우리 땅에서 사라진 따오기를 되살리는 멸종위기종 복원사업이 시작되었다. 김 교수는 황새와 따오기 등 이 땅에서 사라진 종들을 복원하는 미래계획을 세우고, 자주 환경운동가들과 교류했으며 서해안 무인도에 서식하는 저어새 보호를 위해 조류학자로서 최선을 다한 분이다. 그의 제안은 우포늪이 따오기 같은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기에 적합하고 무엇보다 따오기의 복원과정이 우포늪의 생물서식지로서의 기능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취지였다.

이 같은 제안에 창녕군과 경상남도, 환경부를 찾아다니면서 따오기 복원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2005년 우간다에서 이재용 당시 환경부 장관이 2008년 람사르협약총회를 한국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노력했고, 환경부가 사라진 따오기를 복원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기도 했다. 그 결실로 2008년, 당시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선물로 람사르협약총회 2주일 전에 우포늪에 따오기 한 쌍이 들어왔고 세월이 흘러 10년 만에 313마리로 증식되었다. 내년에는 이 따오기들을 우포늪에 야생방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중국이 선물한 따오기를 한국에서 소중히 길러 다시 그 자손들 중 일부를 중국에 선물하는 것은 생태와 생물다양성이 양국 우호를 재다짐하는 중요한 고리가 된다는 것으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2008년 람사르협약총회 당시 북한을 초청하기 위해 평양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북한에서도 따오기가 멸종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그래서 남북의 평화무드가 조성될 때, 우포늪 따오기를 북한에 제공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따오기라는 생명체를 통해 남북과 중국까지 동북아시아의 생명평화공동체를 이루는 것에서 한국이 중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까지 논의한 바 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국가정상 간에 우호의 선물로 판다, 황금원숭이 등 귀한 야생동물들을 선물로 주었는데 대부분 동물원의 구경거리가 되는 동물들이었다. 그러나 따오기는 이 땅에서 사라진 한 종을 되살리는 동시에 동북아 평화의 상징으로 남북을 오가고, 중국을 오가는 미래 생태문명을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시진핑 주석은 얼마 전 전국대표자대회에서 ‘생태문명’의 전환이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발표하였다. 실제로 중국은 사람과 야생동식물이 공생하는 사회 건설이라는 큰 그림을 2040년까지 그리고 있음을 이번 방문에서 알게 되었다. 27년 동안 우포늪과 순천만 등 우리나라의 중요한 습지보전 운동에 참여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지난 10년 동안으로, 강의 배후습지가 훼손되고, 흑두루미 등이 아무르 강에서 출발하여 낙동강 모래톱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일본 이즈미로 이동하던 통로에 변화가 생긴 것이었다. 4대강 사업으로 이들의 쉼터가 사라지면서 서해안 쪽으로 이동 경로가 바뀌었고, 6·25를 전후 하여서는 낙동강변 곳곳에서 겨울철에 두루미류들이 월동하였다는 시골 할아버지들의 목격담도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이제 한국도 산업화로 훼손된 야생동식물의 서식지 복원을 통하여 중국이 마오쩌뚱의 혁명 시대를 거쳐, 덩샤오핑의 산업화 시대, 시진핑의 생태문명전환으로 나아가고 있는 시대적 과제를 깊이 들여다볼 때이다. 한국도 문재인 정부 시대가 산업화로 사라진 우리 생태, 전통문화를 복원한 시대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이 한·중관계의 아름다운 동행으로 전환하기를 바라는 평범한 시민이 두 손 모으며 이 글을 쓴다.

<이인식 | 우포따오기자연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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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정책들이 ‘공정하지 않다’는 일부(라고 믿고 싶다) 여론의 기세에 밀려 좌초 중이다.

시위현장에서, 공청회장에서 ‘기회와 과정의 평등 YES! 결과의 평등 NO!’라는 팻말을 든 이들의 표정은 비장하고 목소리는 단호하다. 열의를 보면 작금의 정책이 모든 노동자의 급여를 동일하게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결과의 평등은 대졸자, 고졸자에게 똑같은 보상을 한다는 게 아니라, 인간다운 삶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을 평등한 권리를 뜻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존엄성이 서로 사랑만 하면 보장되나? 돈 없으면 이웃이 아무리 인자한들, 삶은 비루해진다. 가장이 주 40시간 노동하여 받는 급여로 가족을 시대에 걸맞게 부양할 수 있었다면 비정규직 문제는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다. 성실하고 우직하게 산들 노동지위가 계약직이면 고작 1년 앞도 예측할 수 없다. 게다가 의료, 주거, 교육, 정보의 공공성이 아직은 요원한 나라다. 받는 돈이 200만원도 되지 않는다면(월급쟁이 43%에 해당), 월세와 휴대폰 할부금 내기 바빠서 저축은 언감생심이다. 가족이 수술이라도 하면 살림은 거덜 난다. 200만원이면 가족이 존엄할까? 치킨 한 마리 먹을 때마다 심사숙고하고 몇 년에 한 번쯤 제주도 여행 가는 걸 두려워한다면 그게 어디 ‘2017년’의 삶이라 할 수 있는가? 밥만 안 굶어도 행복할 수 있는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다. 무심코 틀어놓은 홈쇼핑 채널을 보다가 오래된 텔레비전을 36개월 할부로 바꾸는 과감한 결심을 21세기에도 ‘사치’라고 한다면 이 빌어먹을 자본주의는 완전 사기다. 크루즈 세계여행을 가겠다는 것도, 한우갈비를 먹겠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평범하겠다는 사람을 앞에 두고 ‘더’ 고생한 사람 있으니 사람 가려 보편적 권리 따지자는 게 과연 ‘공정’한 것일까?

‘누구나’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정책을 논하자는데, 자꾸만 ‘그들의’ 실체를 알려주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인류가 취해왔던 가장 나쁘면서도 효과 좋은 대화법이다. 들어보니,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자들은 ‘무임승차’하겠다는 염치없는 작자들이다. 남들 공부할 때 ‘놀았고’, 누군가가 미래를 준비할 때 ‘편하게’ 아무 일이나 기웃거린 나태한 사람들이다. 놀다가 그리 되었다는 논리는 무지하고 ‘당해도 싸다’는 식의 인식은 비열하다.

악의적인 편견을 가진 자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도 우습다. ‘억울한 마음 모를 바 아니지만 이해 바란다’면서 이들을 달래면 안된다. 그러면 ‘어떤 가치 있는 행위를 했는지도 모르겠는 사람들이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정 받는 게 정상이냐’(S대학 인터넷 커뮤니티)는 말이 여기저기서 등장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성인군자가 베풀어주는 은혜가 아니다. 당연한 권리가 누군가의 배려로 이루어진다면 ‘혜택 받은 자’들은 늘 눈치 보며 살아야 한다. 그러다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머리가 저리 나쁜데 운 좋아서 정규직이 되었다’는 조롱을 듣게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정책은 누굴 동정해서가 아니라, 권리가 필요한 사람들을 ‘이제야’ 직시한 다른 모두의 책무가 실천되는 것일 뿐이다.

‘차별의 설움’과 ‘노력의 허무’는 다른 층위에서 논해야 하지만,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한 줄 아느냐!”는 사람들의 절규가 거세다. 왜 이들은 고작 정규직 일자리 하나 얻고자 많은 걸 포기해야만 했을까? 그 일 아니면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목도했기 때문일 게다. 아니었다면 진로를 바꾸지 않았을 수도, 연애를 포기하지 않았을 수도, 아니면 여유롭게 책도 읽으면서 결과의 평등을 오해하지 않고 살았을지 모른다.

이 울분을 ‘재발방지’하려고 사회가 노력해야 함은 마땅하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 객관적으로 좋아지는 것은 누군가가 꿈을 포기하는 것을 예방하고 청년들이 제한된 일자리를 얻고자 살인적인 경쟁을 하는 파국을 조금이나마 진정시킨다. 눈물을 외면한 게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고생에 걸맞게’ 권리의 우선순위를 따지는 사람들의 심보 덕택에 앞으로 취업스펙은 더 화려해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때는 요람에서부터 ‘요즘 세상 장난 아니야’를 들으며 지금보다 더 많이 포기하고 노력해야지만 정규직이 될 것이다.

관문을 통과한 이들이 지금의 정규직을 보고 생각할 거다. ‘솔직히 우리보다 고생한 것도 아닌데, 챙길 건 다 챙겨먹네.’ 누군가의 ‘심정’을 고려한다고, 차별받는 노동자의 ‘물정’을 바꾸자는 정책을 공정하지 않다고 하는 사회의 미래가 어디까지 괴기스러워질지 나도 궁금하다.

<오찬호 | 작가·<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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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모르는 이 어디 있겠나. 몇 주 전 아주 색다른 장소에서 특별한 대나무를 보았다. 찬바람 죽죽 불어대는 일요일 오후. 모처럼 산으로 들지 않고 지하로 파고들었다. 두더지처럼 땅속을 빙빙 돌다가 지상으로 뛰어나와 보니 삼성역 근처 ‘한국문화의집(KOUS)’이었다. <타계 10년/씻김/혁혁한 무공을 기리는 장장 6시간의 굿판/박병천>. 현수막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서울에서 진도까지 가고도 남을 시간 동안 진도씻김굿에 나를 몽땅 투자하는 저녁이다. 7년 전 같은 장소에서 <가무 악인 박병천 3년 탈상 씻김> 공연에 홀딱 넘어간 적이 있었다. 앞으로 15주기, 20주기 추모 굿판에도 반드시 참석하리라는 사소한 결심을 했다.

이승의 사람들이 절절한 마음을 담아 펼치는 공연을 생전 건강했던 모습의 사진으로 앉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무송(舞松) 박병천(1933~2007) 명인. 무대에는 소박한 제사상이 차려졌다. 혹 진도에서 가져온 것일까. 여러 과일들이 진설되어 있고 병풍 옆에 대나무가 한 그루 있다. 실내에 우뚝 솟아 있는 대나무를 보니 저승에 뿌리를 두고 이승으로 건너온 나무 같아서 신령스럽다. 나무에는 망자의 넋을 담은 인형 같은 모습의 지전이 걸려 있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 듯 그네라도 타는 모습이다. 이윽고 안당, 초가망석, 고풀이, 길닦음 등등의 순서가 펼쳐졌다. 여러 국악기가 어우러진 가운데 대나무로 만든 대금을 불고 있는 이는 고인의 장남이다. 피리소리는 더욱 애틋하게 공중을 휘감고 돌아 대나무를 짚었다가 내 귀로 들어왔다. 눈뜨고도 기꺼이 코 베이듯 찰진 음악들이 산 자들의 마음을 뭉텅뭉텅 떼내어 갔다. 흥을 이기지 못해 겨드랑이에서 팔을 꺼내어 나뭇가지처럼 덩실덩실 흔드는 이도 여럿이었다. 오늘밤 이 자리에 모인 분들, 어느 경계까지 갔다 오실지!

대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겠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윤선도).’ ‘고기가 없으면 사람을 야위게 하지만/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한다네(소식).’ 고향집 뒤안에 있던 대나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대나무를 나는 지금 떠올리고 있다. 대나무, 벼과의 상록성 여러해살이 식물.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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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민주노총이 합법화되었다. 조직 노동이 자신들의 체제 편입을 환호하고 있을 바로 그 순간에, 진정한 재난이 시작되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조건하에서 노동시장에 대한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 첫 시험대가 현대자동차였다. 누군가는 ‘짤려야만’ 했다. 그리고 선택된 것이 가장 ‘덜 정규직스러웠던’ 현대차 구내 식당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당시의 사건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영화 <밥.꽃.양>은 정리해고법이 어떻게 노동현장에서 폭풍을 몰고 왔는지, 그리고 노동자들 내부에서 자신들이 살자고 다른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을 어떻게 묵인 방조했는지를 보여준다.

‘밥꽃양’이 쫓겨난 빈자리는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그 부메랑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여지없이 다시 돌아왔다. 처음에는 식당 여성 노동자들이었지만, 그 다음은 ‘공장 생산 라인’ 밖의 남성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몰렸고, 그 다음에는 생산직 남성 노동자들이, 그 다음에는 사무 판매직이 차례로 제단에 올려졌다. IMF 외환위기는 끝났고, 정권의 이름은 DJ,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로 바뀌었지만, 이 ‘법’과 ‘기조’는 바뀌지 않았으며, 오히려 강화되었다. 그리고 2000년대 초에 이미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집권 이후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서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핵심 정책 과제로 들고나왔다. 그러나 그 첫번째 대상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인천공항공사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고 나섰고, 전교조도 기간제 교사들의 정규직화 반대를 선언했다. 창원의 한국지엠 공장은 일거리가 줄어들자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그 자리를 기존 정규직으로 채우는 ‘인소싱’을 노조가 합의하고 나섰다.

왜 그럴까? 노동자들이 자기 밥그릇에만 목을 매는 이기주의자들이라서? 20여년 전의 밥꽃양이 그랬듯이, 부분적으로는 그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도 노동을 보호해주지 않았는데, 그들이 개인들의 생존을 위해 ‘덜 규범적’으로, 즉 이기적으로 행동했다고 해서 비난할 수 있을 만큼 떳떳한 명분을 가진 주체가 이 사회에 과연 존재할까?

그리고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밥꽃양을 불러온 정리해고법은 여전히 개정되지 않았다. 또한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은 단지 공공기관에만 국한된 것이다. 게다가 이것마저도 기획재정부가 ‘임금총액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되면 노동자들 사이에서 ‘일자리’뿐만이 아니라, 임금을 둘러싸고 분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한 사업장에 주어지는 임금 총액은 한도가 있는데 동일 임금을 받는 정규직 노동자 숫자가 늘어나면 기존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인상률이 억압되기 때문이다(게다가 이는 나중에는 결국 세금 부담을 둘러싼 노동자 내부의 분열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의 사태는 20여년 전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노동은 내부의 분열을 극복하지 못하면, 또 다른 밥꽃양들을 양산해낼 것이며, 서로에게 총질을 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할 것이고, 지금 살아남은 자들도 이내 총알받이가 될 것이다. 또한 단지 정부의 지침이나 정책이 아니라 법 제도 판례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한다면, 즉 노동시장의 프레임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못한다면, 그나마의 정규직화조차도 정권이 바뀌는 순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한국의 노동에는 20년 전의 IMF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영화 <밥.꽃.양>의 삽입곡인 박창근의 ‘이유’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내게 목을 죄는 쇠사슬을 준다면/ 나는 순순히 응하지 않을 거야, 물어 볼 거야/ 난 물어보고 싶어, 함께 살아가는 이유를.”

사회를 구성한다는 것은 ‘공존’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쇠사슬을 끊어라. 공존은 노예이기 거부하는 자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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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원회가 11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공직자 등이 받을 수 있는 선물 상한액을 농축수산품과 농축수산물 함량이 50%가 넘는 가공품에 한해 10만원으로 올리고, 경조사비 상한액은 5만원으로 내리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이로써 식사·선물·경조사비 상한액은 ‘3만·5만·10만원’에서 ‘3만·10만(농축수산물)·5만원’으로 조정됐다. 결혼축의금·조의금 등 경조사비 상한액을 절반으로 내린 것은 시민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법 시행 이후 10만원이 표준 경조사비로 굳어졌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시민들의 경조사비 부담이 오히려 커졌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5만원으로 내린 것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법 시행 이후 매출이 최고 30% 넘게 떨어졌다는 농축수산인들의 거센 반발을 이유로 농축수산물에 한해 선물비 상한액을 올린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김영란법은 한국 사회를 크게 바꿔 놨다. 관행처럼 행해지던 부정한 청탁과 과도한 접대에 제동이 걸리면서 청렴문화를 확산시켰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시민 80~90%가 김영란법에 찬성했다. 그런데도 정부가 법 시행 1년3개월 만에 서둘러 시행령을 개정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시행령 45조에는 가액범위 조정과 관련해 ‘2018년 12월31일까지 타당성을 검토하여 개선 등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시민들의 공감대를 넓히면서 시행령을 개정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법 제정을 주도했던 김영란 전 권익위원장도 “법의 본질을 악화시키는 가액 조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지난달 27일 권익위 전원위원회에서 부결된 개정안을 일부 자구만 수정해 2주 만에 가결시킨 것은 내년 지방선거 때 농어촌 지역의 표를 얻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살 만하다.

현실과 괴리가 크거나 특정 업종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법 조항은 고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법은 예외를 인정해 손대기 시작하면 금세 누더기가 되기 십상이다. 농축수산인처럼 음식업계가 매출 급감을 이유로 식사비 상한액을 높일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서두른 것은 부적절했을 뿐 아니라 형평성 논란에 휘말릴 소지가 다분하다. 정부는 법 따로, 현실 따로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 못지않게 법 정신 준수도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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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이 오는 14일 열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한·중 정상회담에서 합의 사항을 담는 공동성명을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각자의 입장을 반영한 언론발표문은 내지만 공동기자회견은 하지 않는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문제가 불거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지만 국빈방문과 정상회담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 결정이다. 두 정상 간 세번째 정상회담을 계기로 사드 갈등을 마무리짓고 북핵 공조를 강화하며 관계 복원을 꾀하려던 정부 계획에 차질이 우려된다.

문제가 이렇게 꼬인 것은 중국이 사드 문제를 정상회담에 연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 9일에도 왕이 외교부장이 미국 미사일방어(MD)체계 불참, 사드 추가 도입 불가, 한·미·일 군사동맹 발전 차단 등 이른바 한국의 ‘3불’ 방침을 거론했다. 사드에 부정적인 중국 내 여론을 무마하고 한국의 전향적인 조치를 끌어내려는 것이다.

사드가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해친다는 중국의 입장은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중국의 처사는 지나치다. 중국은 이미 지난 1년여간의 사드 보복으로 한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또 사드의 한국 배치가 미국의 뜻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미국에 반발하는 대신 한국만 압박하는 것도 부당한 일이다. 사드가 북한의 핵위협 대비용이라지만 미·중 대립의 산물이라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을 압박한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도 ‘10·31 합의’로 마치 사드 문제가 봉인된 것처럼 과잉해석한 측면이 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갈등을 관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한·중 간 ‘10·31 사드합의’의 정신은 양국이 입장 차에도 불구하고 사드 문제를 봉합하자는 것이었다. 이견을 인정하면서 양국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는 구동존이의 정신은 지금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실용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자존심만 앞세워 이견을 쟁점화하는 것은 양국관계를 해칠 뿐이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은 중대한 시점에 열린다. 사드 못지않게 시급한 것이 북핵 문제다. 북한이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5형’을 발사하고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 전환점을 맞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요구하고 나섰고, 미국은 이를 거부한 채 선제타격설을 흘리고 있다. 한반도 긴장이 고조된 상태에서 북핵의 평화적 해결에 공감하는 한·중 간 북핵 공조는 소중하다. 한·중 모두 결코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정상회담 의제인 북핵과 사드, 관계정상화 모두에서 생산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지혜를 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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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는 11일부터 23일까지 쟁점 법안 처리를 위한 임시국회를 소집했다. 정기국회가 끝난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산적한 법안들을 처리하기 위해 여야가 합의한 임시국회다. 하지만 정작 임시국회가 열리자마자 많은 의원들이 줄줄이 해외로 나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한·러의원외교협의회 회장 자격으로 11일부터 6박8일 일정으로 러시아로 출국했다. 여야 의원 6명이 동행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도 13~15일 일본 도쿄를 찾는다. 이미 한·일의원연맹 소속 여야 의원 58명은 10일 2박3일 일정으로 일본으로 출국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13일부터 20일까지 페루로 떠난다.

꼭 필요한 의원외교를 두고 뭐라 할 건 아니다. 하지만 해마다 예산안 처리만 끝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해외로 몰려 나가는 ‘나쁜 관행’은 올해도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들은 9일부터 일본·베트남, 홍콩·싱가포르 조로 각각 나눠 떠났다. 국방위원들은 13~20일 미국 하와이와 일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들은 13~16일 중국 상하이 등을 방문한다. 사실상 국회는 개점휴업 상태다. 

이번 임시국회는 민생·개혁 입법의 올해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설치법과 국가정보원법 개정 등을 최우선 과제로 놓고 있다. 한국당은 공수처 설치는 ‘옥상옥’이고, 국정원법 개정은 국가 안보를 포기하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날마다 만나 토론해도 결론이 날지 미지수다. 한국당이 법안 처리 관문인 법사위를 여는 데 부정적인 것도 주요 변수다.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은 더 치열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개헌은 내년 6·13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치려면 늦어도 2월까지는 안이 만들어져야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의원들은 법안 심의나 제대로 해놓고 해외로 나가는 건지 의문이다. 이대로라면 자칫 상임위 논의가 무산되거나 주요 쟁점 법안은 회의에 상정조차 안되는 ‘빈손’ ‘맹탕 국회’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7월 소속 의원들의 해외출장으로 추경안 처리에 차질을 빚자 회기 중 해외출장을 원천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하지만 제도 개선은 말뿐, 국회 문 열고 외국으로 떠나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다. 이야말로 적폐다. 여야 합작의 부조리한 관행을 시민들이 언제나 묵인해줄 것으로 믿는다면 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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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영 전 한나라당 의원에 의해 2008년 제기됐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비자금 허위 제보 사건의 파문이 커지고 있다. 박주원 국민의당 최고위원이 최초 제보자임이 경향신문에 의해 밝혀진 데 이어 그가 주 전 의원에게 먼저 접근해 제보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사건이 보도되자 박 최고위원은 ‘제보 사실을 부인할 테니 말을 맞춰달라’고 주 전 의원에게 부탁까지 했다. 허위 제보도 모자라 사후 조작까지 꾀하다니 충격을 금할 수 없다.

박 최고위원은 대검찰청 등에서 범죄 정보수집 업무를 담당하다 2005년 6월 퇴직, 1년 만에 한나라당 공천으로 안산시장에 당선된 인물이다. 허위 제보를 한 시기는 2006년이고, 주 전 의원은 그로부터 2년 뒤인 2008년 10월 국감에서 이를 터뜨렸다. 정치경력이 전혀 없는 박 최고위원이 어떻게 퇴직 수개월 만에 공천됐는지, 주 전 의원은 왜 2년 동안 제보를 묵혀두었는지 온통 의문투성이다. 박 최고위원이 한나라당 최고위급 인사들과 친분이 있었다는 정도가 알려진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광우병 집회 등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리자 야당 때 받아놓은 허위 제보에 여당이 된 뒤 추가로 찾아낸 정보를 덧붙여 국면전환을 꾀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검찰은 주 전 의원이 이 건으로 명예훼손 유죄 판결을 받은 뒤 제보자의 정체를 모두 파악해놓고도 추가로 수사하지 않았다. 정치공작의 냄새가 진동한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다. 안 대표는 자신도 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도 “진실이 규명되는 대로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만 밝히고 있다. 친안철수계 인사로 안 대표가 추진하는 통합론에 힘을 보태는 박 최고위원을 사실상 두둔하고 있다. 드러난 허위 사실에 대해서조차 엄정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면 그가 내세우는 새 정치니 통합이니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더구나 박 최고위원은 비자금 허위 제보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주장하면서 뒤로는 주 전 의원에게 말을 맞추자고 회유했다고 한다. 국민의당과 안 대표가 박 최고위원에 대해 당원권 정지와 최고위원직 박탈을 결정했지만 그 정도로 끝낼 일이 아니다. 김 전 대통령은 허위 사실이 폭로된 날 일기장에 “죽어서도 승자가 될 것”이라고 적었다. 얼마나 억울하면 그랬을까 싶다. 안 대표는 진정 김대중 정신을 이어받고자 한다면 당장 진상조사를 지시해야 한다. 검찰도 수사에 착수하고,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 역시 귀국해 증언해야 할 것이다. 하루속히 사건의 전모를 밝혀 정치공작은 결코 묻히지 않는다는 교훈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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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서가는 그의 일기장과 비슷하다. 책 좀 읽어왔다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금방 이해하리라. 그의 서가에는 오랜 시간 숨겨온 그만의 자부심 혹은 부끄러움이 켜켜이 꽂혀있다.

책을 도통 읽지 않는 세상이 되어 책 읽기 자체가 소수만이 향유하는 취미처럼 되어버렸지만, 책 읽는 사람들끼리는 남의 서가를 훔쳐보는 일이 내밀한 사생활을 엿보는 것처럼 스릴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예전에 ‘독서인’ 또는 ‘교양인’이라 불리던 사람들에게는 자기 서가를 타인에게 보여주는 일이 결사 방어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썩 탐탁한 일도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인격에 관계된 일이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번쩍이는 전집류와 세계사상서가 인테리어처럼 말끔하게 꽂혀있는 서가와, 긴 세월에 걸쳐 사들인 책들이 서로를 압사시키며 책들의 재앙을 빚어내고 있는 서가의 차이를 무슨 감별사처럼 가려내곤 했다.

이 기준으로 보면 출판인의 서가는 별 볼일이 없다. 겹겹이 꽂힌 수천권 책들로 재난에 시달리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이곳저곳에서 기증받은 책들, 기획 참고용으로 구입한 책들, 그리고 개인적 관심이나 오래전의 전공과 관련된 책들이 무질서하게 섞여 있다. 특징도 개성도 찾아보기 힘드니 호기심은 삼가 주시기를. 다만 급히 찾아보아야 할 책은 절대 나타나지 않는다는 장서가들의 흔한 고충이 비슷할 뿐이다. 이런 일에 지친 어떤 독서가는 책들을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으로 구분했지만, 책들의 재난을 겪으면서도 꼭 남겨두어야 할 책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차라리 ‘나만의 책 10권’ 하는 식으로 소중히 여기는 책들을 꼽아보는 게 나을지 모른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각 언론들, 기관들, 서점들은 ‘올해의 책’이라는 이름으로 그해의 주목할 만한 책을 10여권 선정해 발표한다. 한 해에 출간되는 신간이 4만5000여종에 이르니 거기 뽑힌다는 것은 대단한 영예다. 물론 책이 조금 더 팔리는 것은 당연히 따르는 수확인지라, 출판인들은 자사의 책이 들어가나 싶어 목록을 예의 주시한다. 하지만 출판인에 앞서 한 사람의 독서가로서는 내가 읽지 않은 책이거나 읽을 가능성이 없는 책인 바에야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냥 올해 개인적으로 읽은 책을 10권쯤 꼽아보면 어떨까? 서가를 보여주는 마음으로 내가 올해 읽은 책을 실토하면 이러하다.

가까운 출판인이자 저자인 장인용의 <주나라와 조선>은 꽤 흥미로웠다. 정도전의 조선 설계가 주나라의 예악(禮樂)에서 왔고, 오늘날 한국인의 일상에까지 일정 정도 배어있음을 다시금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김건우의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은 서북 기독교에 뿌리를 둔 학병 세대와 양심적 우익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얼개를 만드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잘 보여준 책이었다. 이현재의 <여성혐오 그 후,―우리가 만난 비체들>에서는 여성이 주체도 객체도 아닌 ‘비체’로 존재한다는 페미니즘의 한 시각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기쁨이 있었다.

해리 프랭크퍼트의 <개소리에 대하여>라는 아주 작은 책자는 10여년 전 미국에서 나왔을 때 각광을 받았던 책인데 뒤늦게 번역된 것이 반가웠다. 우리가 흔히 듣는 정치인이나 전문가들의 말이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사실 판단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상황을 조작하기 위한 ‘개소리’라는 것을 맹렬히 폭로하는 책이다.

우치다 다쓰루의 <반지성주의를 말하다>는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반지성주의>보다 한 걸음 앞서 나온 책인데, 일본이나 미국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름없이, 반지성주의의 뿌리가 어디에 있고 특징과 현상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보여주는 책이었다. 걸핏하면 나오는 음모론, 특정인에 대한 조리돌림, 페미니즘이나 진보언론에 대한 혐오 등등 우리의 반지성적 경향을 다시금 살펴보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 강상중의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도 파시즘을 비롯한 ‘대중의 악’을 여러 측면에서 짚어주는 점에서 같은 맥락을 가진 책이었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SF소설 <킨>은 최고였다. 흑인여성인 주인공이 노예해방 이전으로 타임 슬립하여 겪는 사건들은 그저 정치적 의미만이 아닌,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사색하게 한 명작이었다. 낄낄대며 읽은 <야밤의 공대생 만화>, 파시즘 시대의 일면을 선명하게 그려준 <채플린과 히틀러의 세계대전>, 종교개혁 500주년을 개인적으로 기념하며 읽은 뤼시앵 페브르의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이 기억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내가 애정하는 아도르노의 책 <미니마 모랄리아>는 작년부터 읽었는데 아직도 마치지 못한 난해한 책으로 책상 위에 펼쳐져 있다.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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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션 열기’가 뭐지?”

지난 7일부터 의미를 알 수 없는 한 단어가 각종 포털과 SNS를 뜨겁게 달궜다. ‘옵션 열기’란 포털 네이버의 기사 댓글 작성창에서 자신이 쓴 댓글을 복사하는 과정에서 닉네임 옆 부분까지 마우스로 잘못 복사할 경우 자동으로 붙는 문구다. 이를 두고 김어준씨가 7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옵션 열기’란 문구가 붙은 댓글들은 여전히 잔존하는 댓글부대가 작성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면서 이슈로 떠올랐다. ‘옵션 열기’는 누군가 조직적으로 댓글을 생산하기 위해 글을 복사하고 붙여넣기를 하다 나온 정황이라는 얘기다.

그의 주장은 실제 누리꾼들이 ‘옵션 열기’란 키워드로 트위터, 포털 댓글 등을 검색해 해당되는 글들을 다수 찾아내며 신빙성을 얻었다. 누리꾼들이 찾아낸 ‘옵션 열기’ 글은 최근부터 2015년까지 광범위했다. 대부분은 특정 정치인을 감싸고 경쟁자를 폄훼하는 내용이었다. ‘아동수당’ 등 특정 정치인이 내건 공약이나 정책을 비난하는 글도 많았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불과 몇 시간 전까지도 ‘옵션 열기’ 글을 꾸준히 올리는 계정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옵션 열기’ 댓글이 김씨의 주장대로 특정 프로그램을 사용한 조직적인 댓글부대의 소행이란 증거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트위터 이용자(@ea**)는 “단순히 (텍스트를) 복사하고 붙여넣기하는 과정에서 따라붙을 수 있는 문구인데 이를 갖고 댓글부대가 있다고 속단하긴 이르다”고 말했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뻔한’ 실수에 대해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 이용자들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렇다고 무조건 댓글부대로 몰긴 어렵다”고 말했다.

‘옵션 열기’를 쳐다보는 눈이 많아지자 해당 문구가 붙은 글들이 갑자기 다수 삭제되기도 했다. 이제는 포털에서 전혀 정치적인 사안과 관련 없는 글 앞머리에 고의로 ‘옵션 열기’란 단어를 붙여넣은 댓글들이 등장하며 하나의 ‘인터넷 놀이’가 되고 있다. 한 트위터 사용자(@a7**)는 “‘옵션 열기’로 엮인 이 조직의 존재 여부와 (…) 허술함은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포인트”라고 말했다.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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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그리고 소수자의 권리에 대해서 주장하는 모든 말은 항상 ‘논란’이나 ‘잡음’으로 취급되어 왔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재가 누군가에게는 편안한 사회가 아니라는 말, 보편적이라는 표현 속에 담긴 배제와 차별을 거론하는 말을 ‘잡음’으로 취급하고 싶은 것은, 어쩌면 특정 집단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최근 몇 주간 유례없는 빈도수로 한국 언론이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기사에 올려왔는데, 그 결과 예외 없이 페미니즘은 ‘잡음’이 되어가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배우 유아인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상에서 했던 발언이었다. 페미니스트가 연일 검색어 상위권 순위에 올랐고, 상당수의 커뮤니티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공간에서 유아인의 발언과 이에 대한 반론, 변론, 보도 기사들이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논쟁 소재가 되었다. 그의 발언에 대해 새삼스럽게 갑론을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결국 이 논쟁 이후에, 여성과 소수자가 경험했던 차별은 차별이 아니라 단지 피해의식일 뿐이라고 규정되었고, 창작물에 대해 윤리적 재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검열이라는 낙인 속에 지워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참담한 결과는 힙합 분야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났다. 힙합 분야에서 꾸준히 성차별,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비하 표현 문제를 제기해 온 레이블 데이즈 얼라이브에 대해 힙합 커뮤니티 수용자들은 이들을 ‘가짜’ 페미니즘을 하는 자들로 규정했다. 레이블 VMC는 이제까지 행해진 한국 힙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검열이고 참견이라면서 이제 힙합은 예술의 자유를 더 누려야 한다고 선언한다. 사실 한국 힙합은 혐오 표현 문제로 자주 비판 대상에 올랐다. 이는 창작의 윤리를 다시 한번 재고해 보자는 요청이었다. 이 요청에 생산자와 수용자가 함께 고민하여 답을 낼 기회가 사라진 것 같다. 이제 힙합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모두 검열이며, 특히 ‘테러리즘’에 불과한 ‘가짜’ 페미니즘의 선동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존의 문제제기 자체를 무력화하는 움직임은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난다. 과거 팟캐스트에서 한 비하, 차별 발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숙한 바 있는 개그맨 장동민은 코미디를 하려고 해도 무언가를 비하했다는 비판이 심하게 들어와서 코미디를 할 수 없다는 인터뷰를 남겼다. 

하지만 현실에서 무엇을 할 수 없는 자는 다른 자들이다. 특정 여성 커뮤니티에서 활동했고 유아인을 비난했다는 혐의가 있다는 이유로 SBS의 한 여성 방송작가가 하차하는 일이 벌어졌다. 비판을 ‘검열’이라고 규정하면서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거나 동조하는 자를 검열하고 배제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무언가를 비하했다고 비판해온 것이 맞다. 그리고 그 비판은 우리가 그러한 비하와 차별을 반복적으로 생산하는 사회 구조의 문제를, 다시금 인식하기 위한 것이다. 다른 가사를 쓰는 힙합 음악이, 다른 방식의 코미디가 가능한 현재와 미래를 그려달라는 것이었다. 이 비판을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검열로 축소하면서 창작의 윤리에 대한 재고 요청 자체를 문제시하게 되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러한 문제제기와 비판이 검열의 효과, 즉 표현이나 예술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말할 수 있는 자유이지 비판받지 않을 자유가 아니다. 비판을 검열과 동일시하게 되면, 그것을 ‘폭도의 어리석은 행위’로 치부하게 되면, 우리는 창작물의 윤리에 대해 토론할 공간을 잃게 된다.

이렇게 비판이 검열로 등치되는 과정에서 언론 보도가 끼친 해악이 크다. 언론은 이 사건에 대해서 전형적인 경마 저널리즘식 보도 양상을 택했다. 관련된 사람들의 모든 발언을 실시간으로 기사화했다. 사안을 유아인 대 한서희, 유아인 대 의사, 유아인 대 평론가 등 경쟁 구도로 부각시켰다. 누가 누구에게 승리했는가? 항복했는가? 누가 참전했는가?와 같은 전쟁 중계와 같은 보도 방식이 결국은 클릭 수를 늘리기 위한 전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사건을 보도하는 방식은 뉴스 독자들의 댓글을 모으기 위한 자극에 집중되었다. 어서 댓글 전쟁에 참여하라, 누구를 편들고 다른 편을 욕하라, 싸움을 확산시키고 더 많은 댓글을 달라고 독려하는 방식이었다. 원래 편이 나뉘어 있었다고 해도 언론이 편 가르기를 자극하고 극화하여 그것을 수입원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논쟁의 핵심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하고 숙의의 장을 마련하는 기사는 적었다. 여전히 페미니즘이 무엇을 왜 그리고 어떻게 비판했는지에 대해서 알기는 어렵다. 그 비판이 검열이라는 누군가의 주장이 중계되었을 뿐이다. 

언론이 공적 책임을 자각하고 있다면, 아직 그런 게 남아있다면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는” 개별 칼럼을 제시하는 것 이상으로 이제까지 진행된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와 그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을 정리하고 설명하여 논의의 장을 열 수 있는 보도해야 했다. 아무리 온라인 공간이 자신의 말만을 되풀이하는 확증편향의 공간이 되었다고 해도, 오히려 점점 더 그렇게 되어 갈수록, 언론은 창작의 윤리와 표현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목소리들을 만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

<김수아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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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SNS, 유아인

내년은 6·10민주항쟁 31주년이다. 30주년이었던 올해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를 평화적으로 극복하고 대통령을 교체했다. 31주년에는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국가적인 숙제를 마무리해야 한다.

마침 31주년 직후인 내년 6월13일에는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이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이 공약이 현실로 된다면, 문 대통령은 30년 동안 손보지 못한 정치시스템을 바꾼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문제는 그동안 국회논의를 지켜봤지만 해법이 안 보인다는 데 있다. 국회 개헌특위는 합의점을 찾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게다가 최근 들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하자던 자신의 공약까지 뒤집었다.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 자체를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최소한의 정치적 양식도 없는 행태이지만, 116석의 의석을 가진 자유한국당이 조직적으로 반대하면 개헌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재적 국회의원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국회에는 정치개혁특위도 구성되어 있다. 개헌과 함께 선거제도 개혁을 해내기 위해서다. 문재인 대통령도 ‘개헌과 함께 국민의 뜻이 정확하게 반영되는 선거제도로 개혁해야 한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각 정당의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문 대통령은 ‘선거제도 개혁이 되면 권력구조 부분은 양보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힐 만큼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그런데 국회 정치개혁특위도 합의점을 찾을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역시 자유한국당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개헌도 물 건너가고 선거제도 개혁도 물 건너갈 상황이다.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국회에 맡겨 왔다. 국회를 존중하는 적절한 태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국회에서는 합의가 안된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대로 아무것도 안되는 상황을 방치할 것인가? 이미 국회에는 충분한 시간을 줬다. 개헌특위는 올해 1년 동안 활동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정치개혁특위도 지난 6개월 동안 지지부진한 논의만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더 이상 국회에만 맡겨놓을 것은 아니다. 헌법에 의하면, 개헌안은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가 발의할 수도 있고, 대통령이 발의할 수도 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발의권을 행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봐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이 발의한다면, 개헌안에는 핵심쟁점인 권력구조(정부형태)와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내용을 담아야 한다. 기본권 강화와 직접민주주의 확대, 지방분권은 꼭 필요하지만, 이 내용만 담은 개헌안은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없다. 야당들은 핵심쟁점인 권력구조(정부형태) 문제를 개헌안에 담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것을 피해가서는 안된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의 소신인 선거제도 개혁도 개헌안에 담아야 한다. 핀란드, 오스트리아 같은 국가는 헌법에 ‘정당득표율에 비례해서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성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헌법에 명시되면, 국회가 법개정을 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

물론 대통령이 곧바로 개헌안을 발의하라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입법예고 같은 것을 하고 공론화하는 과정을 밟으면 된다. 쟁점인 권력구조(정부형태)와 관련해서도 2가지 안 정도로 압축해서 의견을 수렴하면 된다.

어차피 대한민국은 대통령직선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국가이다. 그리고 대통령 임기를 몇 년으로 하느냐, 중임제냐 아니냐는 핵심이 아니다. 실질적인 쟁점은 ‘국무총리 선임방법을 어떻게 할 것인지?’이다. 지금처럼 국회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할 것인지, 아니면 책임총리를 제도화하는 차원에서 국회가 총리후보를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할 것인지를 놓고 토론하면 된다.

총리추천권을 국회에 주려면 국회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선거제도의 비례성 원칙도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 이런 방안을 대통령이 제안해서 자유한국당 내부의 잠재적 개헌 찬성파들을 논의에 끌어들여야 한다.

자유한국당 내부에도 개헌을 바라는 국회의원들이 있다. 그리고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당연히 국민들의 의견도 수렴해야 한다. 내년 초에 대통령의 의지를 담은 개헌발의 예고안을 공개하고, 2개월 정도 집중적인 의견수렴을 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3월에 최종적인 개헌안을 발의하면 국민들의 지지도 받을 수 있고, 통과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낡고 문제 많은 정치시스템을 고치지 못하면, 대한민국 정치는 국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정치로 바뀌기 어렵다. 그래서 어렵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결단을 하길 바란다. 국민들이 지지할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국민 70~80% 이상이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본권 강화, 직접민주주의 확대는 촛불시민들의 바람이기도 했다. 지난 10월 국회의장실에서 의뢰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2.9%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찬성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이런 여론을 받아들여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은 헌법상 대통령의 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결단을 기대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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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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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3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중국을 국빈 방문한다. 12월이 내뿜는 스산한 냉기(冷氣)처럼 한반도 위기 정세를 감안하면 문 대통령의 방중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 않아 보인다. 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 정상회담이 양국 관계 개선 흐름을 강화, 발전시켜나가는 데 변곡점이 될지도 불투명하다. 표면적 이유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때문에 준공된 지 25년이 지난 ‘한·중수교 댐’의 안전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 중국 환구시보는 지난 한·중 외교장관 회담(11·22)에서 “왕이 외교부장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3불(사드 추가 배치,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 참여, 한·미·일 안보협력의 군사동맹 반대)1한(限)’을 언급했다”며 “1한은 이미 배치된 사드 시스템 사용을 제한해 중국의 전략 이익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보도(11·23)했다. 한국 정부는 이를 공식적으로 부인하였지만 중국은 분명 오만하고 불손해졌다. 중국의 이렇듯 교묘한 위압은 가까스로 봉합한 사드 실밥이 언제든지 터질 수 있음을 뜻한다.

이런저런 이유 등으로 중국에 대해 드러내놓고 비판은 하지 않아도 중국의 도가 지나치다는 데는 중국 전문가들도 사석에서는 동의하고 있다. 여하튼 중국이 경제력을 앞세워 한국에 영향력을 더욱 깊게 행사하려 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나아가 중국이 경제굴기를 통해 이제는 미국을 밀어내고 지역 패권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잰걸음을 하고 있다.

중국은 먼저 동북아지역에서 계산을 끝냈다. 시진핑은 고립주의 성향이 강한 트럼프의 등장을 기점으로 70년 이상 미국이 사실상 지배해 온 동북아시아 지역을 자국의 영향권으로 두기 위해 공세적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중국은 한국을 미국의 자장(磁場) 내에 계속 둔 채 동북아시아를 ‘관할’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 우선 한국만이라도 미국으로부터 떼어놓으려 한다.

이 점에서 사드가 중국이 한국에 수시로 시비를 걸 수 있는 좋은 빌미가 됐다. “코끼리는 상아(象牙)가 있어 잡혀서 쓰러진다”는 고사처럼 중국이 한국의 사드 상아를 잡고 이리저리 흔들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속수무책이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한국에 ‘패권유지 비용’(미군 주둔 방위비, 무역적자 해소 등) 분담 확대 요구를 중단할 리도 만무하다.

중국 전략가들은 한·미동맹의 약한 고리(균형외교, 전시작전권,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자주국방, 반미감정 등)를 파고들어 군사동맹의 와해를 꾀하고 있다. 이들은 한번 구겨진 동맹을 온전하게 펴는 것이 불가능함을 벌써 간파했다. 게다가 트럼프는 한·미동맹이 왜 필요한지를 이해도 못하는 대통령이 아닌가. 그럼에도 한국의 주류인 반공주의자들은 여전히 ‘나무(중국)에 앉은 새(한국)는 가지가 부러질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무를 믿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한·미동맹)를 더 믿기 때문이다’라는 사고체계를 굳게 지니고 있다. 정상회담만으로 한반도 위기가 시원하게 해소될 수는 없을 테지만, 이 기회를 이용해서 전쟁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와 안정으로 가는 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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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