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해소에 강한 의지를 보이며 ‘제3차 특별조사단’을 출범시켰다. 이번 ‘특조단’의 조사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부분은 역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인도하지 않은 컴퓨터와 심의관 2명 등의 컴퓨터 안에 있다는 암호화된 760여개의 파일들이다. 문제의 파일들이 담겨 있는 해당 컴퓨터의 개봉에 대하여 사용자 본인들은 협조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강제로 개봉할 수 있는가? 이 경우에는 가능하다. 왜냐하면 판사도 공무원이고 해당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들은 공무용(정확히는 법원 공용물)이기 때문이다. 즉 공무용 문서파일에 암호를 설정한 행위는 문서에 대한 열람권한이 없는 자 또는 해킹 등 외부 공격으로부터 문서의 내용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해야 하므로, 정당한 권한이 있다면 얼마든지 개봉할 수 있다.      

따라서 사법행정 사무를 총괄하는 대법원장은 공무용 파일에 대해 사용자 본인의 동의 없이도 개봉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그 내부의 파일들 가운데 사용자의 사적 내용으로서 프라이버시 보호의 대상이 되는 경우만을 선별해내면 된다. 오히려 암호를 설정해놓고 그 개봉에 협조하지 않는 행위 자체는 공용물의 사적 남용에 해당되어 문제가 된다. 이렇듯 대법원장의 하명과 그 실천만이 필요할 뿐, 법적인 문제는 그다지 큰 쟁점이 되지 않는다.

이번에는 기술적인 문제를 생각해보자. 암호를 해독해내는 것은 현재로서는 아무런 힌트가 없어 그 자릿수조차 모르는 암호가 무려 760여개나 되는 파일에 걸려 있다니, 일견 녹록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시간과 노력이 소요될 뿐,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먼저 숫자로는 12자리, 대소문자와 특수문자를 포함한 문자로는 8자리 정도까지는, 이미 해독한 각종의 암호값을 집대성해놓은 일종의 사전과 같은 것, 즉 ‘레인보 테이블(Rainbow Table)’이 존재한다. 따라서 일차적으로는 사전을 펼쳐 ‘대조’를 해가는 방식으로 암호 해독을 진행하게 된다.      

만약 해당하는 대조값을 찾을 수 없다면, 별 수 없이 ‘무작위’로 값을 넣어보는 해독방식, 즉 ‘브루털 어택(Brutal Attack)’이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경우에 만약 8자리 숫자로 이루어진 비밀번호를 알아내려면 1억번을 차례로 입력해야 한다니,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하면 컴퓨터의 성능이 중요해진다.

대검찰청이나 경찰청의 디지털포렌식 센터가 병렬로 연결된 컴퓨터들로 암호 해독 전용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해독시간을 단축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대상 문서가 760여개나 된다고 해도 사실 큰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사용하는 비밀번호란 대체로 동일하거나 유사한 패턴을 가지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완전히 다른 비밀번호 수백 개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이는 거의 없지 않겠는가?

따라서 암호 해독 작업은 첫 번째의 암호를 풀어내는 것이 관건이고, 그 이후부터는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풀어낸 암호와 동일하거나 최소한 힌트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일단 ‘딱 하나’의 암호를 푸는 것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작업의 특성상 단언할 수는 없으나, 기술적으로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것으로 간추릴 수 있겠다.

결국 남는 것은, 이러한 작업을 해줄 수 있는 적정한 전문가의 투입과 사법부의 실천 의지다. 투입되는 전문가의 경우,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인 만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사여야 하며 그 선발 이전에 ‘제척’ 사유의 존부를 면밀하게 검증해야 할 것이다.

또한 투명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절차와 장비를 마련하여 더 이상 논란이 없도록 조치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물론 이러한 추진에 앞서, 우리 법원의 그야말로 제대로 된 ‘결자해지’의 각오가 전제되어야 한다. 기필코 법원 스스로 밝혀내고자 하는 단호한 ‘결단’, 바로 그것 말이다.

<오길영 신경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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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에 걸렸지만 왜 아픈지 알 수 없었다. 고통은 심했고 몸무게는 40㎏이나 빠졌지만,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아파서 견딜 수 없었기에 소년원 의무과를 서른한 번이나 찾았다. 갈 때마다 고통을 호소했지만 의무과에선 으레 하는 소리만 반복할 뿐이었다. 처방이라곤 변비약이 전부였다. 항문에서 피가 나온다고 호소하면 항문이 찢어져서 그런 거라는 말뿐이었다. 소년원은 병을 키우는 곳이었다. 병은 악화되었고 소년원을 나올 때까지 그렇게 아픈 까닭이 뭔지 알 수 없었다.

소년원 당국자들은 꾀병을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소년원생들이 거짓말을 잘하고, 꾀병도 심하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을 수도 있다. 아무리 마음이 굳게 닫혀도 그렇지, 청소년을 이런 식으로 죽음으로 내몰면 안 된다. 설령 꾀병이라도, 서른한 번이나 찾아간 성의를 봐서라도 아프다는 호소에 한번만이라도 귀 기울였어야 했다. 춘천소년원은 그러지 않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춘천소년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주소년원에서도 같은 이유로 청소년이 실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소년원 당국은 외부 진료 요청을 번번이 묵살했다.

문제는 심각하지만, 그 문제를 어떻게 푸는가에 따라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 잘못이나 실수가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잘못과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거다. 대장암 걸린 청소년을 방치했다는 언론보도에도 꿈쩍하지 않던 법무부는 실명 사태까지 불거지고, 여론의 질타가 쏟아진 다음에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늦은 대응이었다.

법무부 대응의 핵심은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불시’에 소년원을 방문해 실태를 점검하고, 개선책을 지시했다는 거였다. 장관의 소년원 방문 자체가 이례적이라 그 자체로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불시’는 거짓말이었다. 장관의 방문은 오후였는데, 법무부는 오전에 보도자료를 내고 ‘불시’를 강조했다. 장관의 소년원 방문 모습은 텔레비전 뉴스에 방영되기도 했다.

게다가 불시에 방문했다는 곳은 탈이 난 춘천이나 전주가 아닌, 안양소년원이었다. 장관님 오가시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법무부 정부과천청사에서 가까운 곳을 골랐던 것이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장관은 소년원을 방문해 의료시스템 현황을 보고받고, 생활관, 진료실, 관제시스템 등 시설을 ‘세심하게’ 점검했단다. 소년원생들을 만나서는 “중한 질병이 의심되는 때는 참거나 숨기지 말고, 담당교사, 의무과장 등에게 즉시 알려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단다. 의무과에만 서른한 번이나 찾아갔던 소년원생들에게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마치 중한 질병에 걸렸는데도 제대로 알리지 않아서 병을 키운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은 소년원 관계자들에게는 “수용 중인 학생 부모들의 마음을 헤아려, 학생들이 소년원에서 병을 키우는 일이 없도록 다각적인 의료시스템 개선 방안을 신속히 마련하라”고 했단다. 아울러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법무부 장관이 소년보호기관들을 직접 방문하여, 의료서비스 전반을 점검하고 전문 의료인들의 자원봉사를 통해 의료시스템을 보완하는 등 종합적인 개선 방안을 수립·실행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계획을 어떻게 수립할지 모르지만, 법무부가 제시한 대안은 단 하나, 의료인들의 자원봉사로 시스템을 보완하겠다는 거다. 피해당사자는 물론, 시민들을 우습게 보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장관을 비롯해 여러 주요 보직을 탈검찰화하고, 인권 주무부서로 거듭나겠다는 법무부가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법무검찰개혁위원회를 통해 적폐청산과 개혁을 다짐하는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하긴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여태껏 검찰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것도 제대로 된 검찰개혁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검사들이 불편해하지 않을 수준에서만 맴돌고 있을 뿐이다. 법무부가 책임지는 출입국, 범죄예방, 소년보호, 인권 등은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럴 거였다면, 차라리 위원회 이름을 그냥 ‘검찰개혁위원회’라고 붙였어야 했다. 아 참, 같은 이름의 위원회는 대검찰청이 따로 운영하고 있다. 희한한 일이다. 법무부와 검찰이 한 몸인데, 검찰개혁을 다루는 위원회는 두 개나 된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더니, 두 위원회 모두 막상막하다.

소년원의 가장 큰 존재이유는 소년 보호에 있다. 범죄 청소년들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기능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청소년들이 재범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호하는 거다. 청소년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을 청소년들에게만 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누구든 어떤 환경에 놓였나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미성년자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청소년 범죄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어야 한다. 아이는 마을이 함께 키우기에 아이의 잘못은 마을 전체의 책임이어야 한다. 그래서 처벌이 능사는 아니고, 법률이 정해 둔 것처럼 보호가 핵심이다.

그러나 우리의 소년원에서 구금 이상의 기능은 찾아보기 힘들다. 간판은 무슨 학교라고 근사하게 붙여놓았지만, 번듯한 건 이름뿐이다. 옛날 군대식 내무반처럼 수십 명이 한꺼번에 부대껴야 하는 좁은 곳에서 교육활동이라고 제대로 할 리 없다. 그저 가둬놓고 혼내주며 질서를 잡는 게 전부다. 언젠가 소년원을 찾았을 때, 열흘 전 내린 눈에도 운동장엔 발자국 하나 없는 걸 보았다. 쉬는 시간이면 운동장으로 달려가 농구라도 한판 뛰어야 하는 혈기왕성한 청소년들을 운동장조차 밟지 못하게 통제한 까닭이다. 생활실이라 부르는 좁은 감방에 가둬놓는 게 일상이다. 적절한 진료도 해주지 않고 외부 진료도 보내주지 않아서 대장암을 키우고, 실명까지 이르게 한 것은 어쩌면 하나의 신호일 뿐이다. 몸만 망가지는 게 아니라, 소년원이 총체적으로 인생을 망가트리는 곳이어선 곤란하다. 소년원에 다녀왔다는 게 비행을 일삼는 청소년들에겐 훈장이 되고, 착실하게 살려는 경우엔 낙인이 되는 수준에서 멈추면 안 된다. 무거운 책임이 법무부에 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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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변에 카페만 늘고 있는 것 같다.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주변 반경 5분 거리에 커피 파는 집만 10여개다. 커피에 푹 빠져 있는 애호가들도 많다. 이탈리아에서 만들었다는 모카포트를 사서 에스프레소를 마신다는 사람도 있고, 수십만~수백만원짜리 커피머신을 들여놓겠다는 사람도 있다. 또 직접 생두를 사서 로스팅을 해보겠다는 사람도 있다. 대학에는 바리스타학과들이 생겼고, 바리스타 대회도 열린다. 커피는 확실히 떴다. 한데 차는 왜?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삼국은 ‘커피의 나라’라기보다는 ‘차의 나라’다. <삼국지>에도 효심 깊은 유비가 어머니를 위해 대대로 내려오는 보검의 보석을 팔아 차를 샀다는 얘기가 나온다. 불가에서는 부처에게 차를 바치는 천수백년을 이어온 헌공다례가 있다. 명절 차례도 다례에서 유래했다는 얘기가 있다. 물론 커피를 마신다고 차를 안 마시는 건 아니다. 하지만 동아시아 삼국 중 유독 한국의 차 문화가 많이 쇠락했다. 중국인 관광객들 중엔 차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고, 일본여행을 가보면 호텔이나 여관에 빠짐없이 차와 찻물이 든 보온병이 놓여 있다.

(출처:경향신문DB)

차 역시 산업 규모나 무역의 영향을 받는다. 서유럽에서 드물게 커피보다는 차를 많이 마시는 영국도 원래 커피의 나라였다고 한다. 하인리히 E 야콥은 <커피의 역사>에서 1680년에서 1730년까지 반세기 동안 런던은 전 세계 어느 도시보다 커피를 많이 소비했으며, 차는 그 이후에 도입됐다고 썼다. 식민지였던 실론 지방 커피나무에 전염병이 돌았고, 주민들이 커피나무를 베고 차나무를 심으면서 영국은 차의 나라가 됐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차가 지금보다 더 생활 속으로 파고들려면 생산량이 많아야 한다고 말한다. 생산량이 많으면 품질 평가도 쉬워진다. 하지만 녹차는 농업생산액의 0.1%에 불과하다. 1990년대 중반 하동으로 취재를 갔을 때였다. 가마솥에 덖고, 옛 문헌대로 아홉 번 볶고 말리는 구증구포 방식으로 차를 만든다는 다인들도 있었다. 가격은 천차만별. 어떤 이는 한 통에 3만원, 어떤 이는 한 통에 50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좋은 차의 기준이란 것도 향, 맛 등 단계별 규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시기가 곡우 이전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정도였다. 2007년 농약 파동으로 그나마 불던 차 바람마저 사라져버린 듯하다. 반면 유럽이나 대만 등 수입 차 프랜차이즈는 늘고 있다.

역사·문화적 영향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차는 역사적으로 기호품이라기보다는 공양, 예법, 수행과 연관돼 있다. 신라 때 들어온 차는 주로 상류층이 즐겨 마셨다. 그러다 조선시대 들어 억불숭유 정책으로 차도 홀대받았다. 임진왜란 이후 차는 더욱 뜸해졌고, 불가를 통해 맥이 이어져왔다. 19세기 차 문화가 부활했는데, <동다선> 등을 지은 초의선사는 차와 선은 같다는 ‘다선일여’를 설파했다. 품질 좋은 차를 만드는 것보다 차를 달여 마시는 과정 자체를 불교의 수련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여 한복 차림으로 의관 정제하고, 다구를 데우고, 찻물을 내리는 과정이 고지식하고 답답해 보일지 모르지만 차가 곧 도(道)라는 행위(다도)라고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커피가 기호산업으로 융성했다면, 차는 정신문화에 뿌리를 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소비사회다. 소비사회에서는 본질보다는 스타일, 기능 이상으로 디자인을 높이 친다.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중세 때만 해도 제작자의 이름과 독창성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품질 좋은 제품만 만들면 됐다. 산업혁명 후 길드제가 무너진 뒤 마스터로부터 도제들이 독립한 뒤 자신의 제품을 홍보해야 했다. 그러려면 남들과 다르게 만들어야 했다. 이후 품질만큼이나 중요해진 것은 디자인이 됐고, 디자인이 스타일을 만들었다.

차의 아름다운 전통을 타박할 이유는 없다. 유행에 휩쓸리는 시대에 정좌하고 차 한 잔 달여 마시는 것은 좋다. 마찬가지로 눈곱도 떼지 않고 텀블러에 찻잎을 넣고 우려내 마셔도 상관없다. 다인들을 만나면 중국의 발효차와 비교해서 우리 덖음차의 전통을 강조하는데, 굳이 덖음차만 고집할 필요도 없다. 미세한 가루차로 거품을 내어 마시는 말차도 상관없다. 커피처럼 차도 좀 다양해져야 한다. 호기심 많은 현대인들에게 말차는 맛도 좀 달라서 에스프레소 같은 느낌일 수 있다. 세계녹차무역량은 2023년까지 연 6.1%씩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7~8년 전까지만 해도 봄이면 해차를 사서 일년 내내 우려 마시곤 했다. 올봄, 트렌디한 차 텀블러나 세련된 다구를 하나 사서 다시 차를 시작해볼까. 커피만큼 차도 향미가 있다.

<최병준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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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잔치인 동계올림픽이 마지막 열기를 불태우고 있다.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큰 잔치를 치르는 집으로서의 자부심과 희열이 정점에 달해 있지만, 이제부터는 잔치 이후 감당해야 할 빚과 뒷수습을 냉정하게 생각해야만 할 시간이다. 60조원이 넘는 경제효과, 이 중 관광수익만 약 32조원. 관광수익만도 평창군민 1인당 7억원이 넘는다. 그러나 이는 지역경제에 효과가 엄청날 것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내려는 숫자 놀음에 불과한 것이다. 동계올림픽이 경제적 효과가 없다는 것은 이미 이전 개최지의 사후 결과에 의해 검증되었고 최근 개최지일수록 더욱 심각한 결과를 보였다. 우리만은 막대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는 내가 산 로또복권의 1등 당첨을 확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많은 전문가가 만들어낸 예상이니 혹여 이 수치가 현실이 된다 치자. 그러면 과연 올림픽 전후로 발생한, 발생할 이 많은 수익은 어디로 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재정자립도 20%를 겨우 넘는 강원도의 주민이라면 막대한 인프라 예산의 투입 이전에 반드시 물어야 했을 질문이다. 명백한 사실은 평창군민, 강원도민에게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1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쓰길 기대하는가? 강원도 방문 관광객은 많은 비용을 지출하겠지만, 비용의 대부분은 값비싼 교통비가 차지하게 된다. 이미 이 현상은 가장 많은 이익을 창출해야 할 올림픽 기간에도 나타나고 있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해는 공유화하는 것이 자본과 권력 결탁의 속성이다. 정의라는 말에 절대적으로 어긋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다. 사전에 인프라가 없는 지역에서, 올림픽이라는 짧은 이벤트는 이 결탁을 통해 절대다수 소시민의 잠재이익을 빼앗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일부 관료들이 산업자본, 금융자본과 결탁해 특권과 이익을 누리는 시대를 우리는 언제까지 용인할 것인가? 우리가 희열에 도취된 이 짧은 순간, 이미 그들은 사후 전략까지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빠르면 이번 지방선거부터, 늦어도 내년부터 강원도의 정치 관료들은 올림픽 이후 활성화되지 않는 각종 시설의 활성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또 다른 대규모 개발사업을 위한 지원과 환경파괴를 위한 각종 규제완화를 요청할 것이다. 사전에 제시했던 뻥튀기된 수치와 이미 들어간 공적비용의 과오는 당연히 자신들과는 무관한 모르는 일이 될 것이다.

올림픽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던 가리왕산의 복원 약속은 여지없이 무너질 것이다. 곳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자연지역의 복원은 훼손 비용의 약 10배가 들어가며, 이렇게 막대한 비용을 쓴다 하더라도 기존 가치의 회복은 불가능하다. 보전의 잠재가치 측정이 불가능한 가리왕산 천연림 훼손에 2000억원이 넘는 돈을 썼으니, 제대로 된 복원을 위해서는 2조원 넘게 들여야 한다는 말이 된다. 강원도나 중앙정부는 애초부터 약속을 지킬 맘이 없었기에 올림픽 신청단계부터 시작했어야만 하는 복원과정을 진행하지 않았음은 물론 현재까지 계획조차 수립하지 않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이러한 복원을 진행해 본 사례조차 없다. 침체된 경제회복 명분으로 더 큰 파괴행위가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한반도 현대사에서 가장 소외된 지역은 분명 강원도일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간의 소외가 이 시대 가장 큰 경쟁력인 깨끗한 환경과 아름다운 경관을 유지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과 함께 급격히 짧아진 시간적 거리로 그간 소외된 지역주민의 잠재자산까지도 자본에 넘겨주게 되었다. 정보가 부족한 대다수 국민은 정부를 신뢰하지만 역사 속 정부는, 특히 지방정부는 권력만을 행사하려 하며 약속을 지키지 않는 신뢰 없는 정부가 되어가고 있다. 이익은 권력을 가진 극소수가 챙기고 손해는 국민, 특히 강원도민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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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재판부가 내세운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피고인으로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승마지원 요구를 쉽사리 거절하거나 무시하기 어려웠다고 보이고, 이러한 요구에 따라 수동적으로 이 사건 범행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말해 최고 권력자의 겁박에 못 이겨 힘없는 개인이 수동적으로 뇌물을 바쳤다는 것이다.

언뜻 이러한 판결은 법원이 권력의 부당한 압박으로부터 나약한 개인을 보호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달리 보면 권력이 겁박을 가할 때 개인은 저항하지 말고 그냥 범법을 저지르라고 부추긴 셈이다. 설사 부정행위를 저지른다 해도 집행유예 정도의 가벼운 처벌만 받을 것이다. 자율적으로 행위할 생각 말고 권력의 겁박에 수동적으로 따르라.

[장도리]2018년 2월 14일 (출처:경향신문DB)

이 판결을 통해 법원은 조직사회의 악한 습속을 또다시 인준해 주었다.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법원의 ‘행위자관’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재판부는 개인 행위의 자율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권력이 개인의 행위를 찍어낸다고 본다.

이재용이 누구인가? 세계적인 기업 삼성의 실질적인 총수로서 시장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행위하는 기업가다. 그를 경제적 합리성으로 중무장한 거대한 삼성 조직이 떠받치고 있다. 그런 이재용이 겁박에 못 이겨 엄청난 재산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비합리적 행위를 했다? 만약 그렇다면 그는 삼성을 경영할 자격이 없다. 이와 달리 그가 기업가라면, 재판부는 그의 행위가 어떤 이익과 손실을 가져왔는지 꼼꼼히 따져보아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앞으로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기업가들도 이재용처럼 해도 괜찮다고 강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한국 사회는 제왕적인 우두머리를 정점으로 해서 수직적으로 위계화된 하나의 거대한 조직사회다. 우리는 지난 촛불집회를 통해 자의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쫓아냈다. 하지만 우리 사회 모든 조직에는 여전히 수많은 ‘작은 박근혜’가 전권을 잡고 권력을 마구잡이로 휘두르고 있다. 그 밑에서 겁박에 눌린 ‘작은 최순실’이 수동적으로(?) 범법을 저지르고 있다. 관료제적 위계를 지닌 국가기관은 그렇다 치고 기업, 정치, 사법, 언론, 예술, 교육, 종교, 병원 모조리 그렇다.

힘없는 개인에 불과한 판사 정씨도 이런 조직사회에 굴복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판사로서는 삼성의 집행유예 요구를 쉽사리 거절하거나 무시하기 어려웠다고 보이고, 이러한 요구에 따라 수동적으로 이 사건 판결에 이르렀다.” 삼성은 아마도 법원 조직을 통해 판사 정씨를 겁박했을 것이고, 새파랗게 겁에 질린 판사 정씨가 비합리적 판결을 했으리라 추정된다. 여기서 우리는 나약한 말단 조직인 판사 정씨의 수동적인 판결에 연민을 품게 된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명 이상이 판사 정씨의 파면을 촉구했다. 국민이 내는 세금을 먹고사는 공무원이라서 당장 해임하고 싶은 마음 이해는 간다. 지나치다 아니다, 법적으로 가능하다 아니다 말이 많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서 또 다른 행위자관을 본다. 국민은 판사 정씨가 행위의 자율성이 전혀 없는 말단 조직인이 아니어야 한다고 믿는다.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인 법원의 판사로 보고 싶다. 마땅히 자율적인 판단과 판결을 해야 하는, 자기 고유의 이름을 가진 판사 정형식.

법은 단순히 통치의 도구가 아니다. 보다 보편적인 연대를 실현시키는 시민사회의 제도다. 판사의 한 판결이 그 사회의 연대를 해칠 수도 있고, 증진시킬 수도 있다. 민주주의는 자율적인 행위자의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통해 운영된다. 법원은 이런 민주주의 행위자관을 가지고 판결을 내려야 한다. 이재용은 단순히 조직사회의 희생자인가, 아니면 우두머리의 전횡을 능동적으로 도와가며 잔뜩 이득을 챙긴 또 다른 최순실인가? 앞으로 조직사회가 겁박할 때마다 개인이 어떻게 행위할 것인지 참조할 수 있도록 명확히 판결을 해주어야 한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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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이 곧 폐막된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한반도의 긴장고조로 인해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자체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했는데, 올림픽은 물론이고 평화의 초석까지 마련한 매우 다행스러운 결말로 가고 있다. 엄격하게 보자면 평창 올림픽은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특정세력의 이익을 위한 이용이 아니라 올림픽정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평화증진이라는 점에서 비난받을 일은 아니고, 오히려 환영받을 일이다. 초기에 평양올림픽이라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평양’을 ‘평창’으로 이끌어 ‘평화’로 가는 기회로 삼았다는 평가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미국 펜스 부통령의 대국답지 못한 행보로 잔치를 준비한 우리의 체면을 구긴 측면도 있으나, 미국의 처신이 비판받은 반면, 한국 정부의 평화를 위한 노력을 돋보이게 한 측면도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문재인 대통령의 표현대로 기적처럼 만들어낸 대화의 기회를 평창 이후까지 어떻게든 살려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올림픽은 기적적으로 주어진 기회인 것은 분명하지만, 올림픽의 기원이 그랬던 것처럼 대회기간 동안의 잠시 휴전에 불과할 수도 있다. 남북한 관계개선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 외에 북핵 문제, 북·미 대치, 미·중 대결 등 어느 하나 해소된 것은 없다. 지난 칼럼에서 잠깐 언급했던 <천일야화>와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비유될 수 있는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의 한반도 상황은, 그리고 한국 정부는 마치 매일 밤마다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아라비안나이트의 운명과 비슷하다.

왕비와 후궁에게 배신을 당한 샤푸리 야르왕은 매일 밤 자신과 동침한 처녀들을 죽이는 괴벽이 생겼고, 이것이 3년간 이어지면서 나라 안의 수많은 여자들이 희생을 당하기에 이른다. 그런 와중에 지혜로운 여인 셰에라자드가 들어가 왕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던 왕은 목숨을 빼앗지 않았고, 이야기는 천일 동안 계속된다. 한국은 전쟁위협으로 인한 존망의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평화의 이야기를 이어가야 하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셈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이솝우화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안데르센의 동화로 여러 다양한 사회학적 함의들로 인해 수많은 해석과 적용들이 있어왔다. 백성들의 삶은 뒷전인 채 허위적 권위에 집착한 지도자와 정직하지 못한 기득권 공모자들, 그런 가운데서도 진실을 말한 한 아이의 용기 등이다. 이 동화는 개인우상화의 전체주의 북한체제가 먼저 떠오르게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그에 못지않다. 역대 어떤 미국의 대통령보다 직에 대한 적합도가 떨어지는 대통령이지만 세계최강 미국의 리더라는 것 때문에 벌거벗고 있음을 지적하지 못한다. 최근 트럼프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인터뷰를 담은 화제의 책 <화염과 분노: 트럼프 백악관의 내부>의 저자인 마이클 울프가 자신의 책의 흥미로운 효과 중 하나는 ‘벌거벗은 임금님’ 효과라고 했다.

트럼프가 한·미관계에 주는 벌거벗은 임금님 효과는 더 큰 함의를 가지는데, 바로 한·미동맹의 신화와 미국에 대한 무조건적 의존에 대한 깨우침이다. 한·미동맹은 여전히 우리 생존의 중요한 자산이지만, 한반도 전쟁위기를 미국이 고조시키면서 동시에 이를 빌미 삼아 주둔분담금, 무역보복, 무기판매 등에서 자국 이익 챙기기에 나섬으로써 동맹의 상호성을 깨고 있다. 역설적인 것은 트럼프의 미국이 동맹비용 상승의 함정에 대한 현실감을 극대화시킴으로써 기존의 신화적 지위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강경파들은 북한을 악마화하면서 한국이 악마와 대화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며, 언제든지 상황을 강경대치국면으로 가져가려 한다. 한국의 보수강경파들은 정부의 대화노력에 미국의 심기를 건드려 동맹을 위기로 몰아간다는 말을 반복한다. 마치 동화 속의 대신들 같다.

우리가 벌어놓은 시간은 짧게는 장애인올림픽이 폐막하는 3월 말까지, 길게는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평창 올림픽과 함께 민족의 사변(경사)이라고 표현한 북한의 9월9일 건국일까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상황에 따라 협상의 유리한 국면을 확보하기 위한 저강도 도발의 가능성은 남아있지만, 이번에 보여준 일련의 행보들로 미뤄 대화모드를 이어갈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이 기회를 어떻게든 살려내야 한다. 신화나 동화가 어려움과 고립에 처한 주인공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전형적인 화법이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창의적 이야기를 이어간 셰에라자드의 지혜와 왕의 허위를 담대하게 고발한 아이의 용기처럼 대한민국이 주도적으로 난관을 극복하기를 바란다. 필요하다면 살인자 왕도 설득하고 벌거숭이 대통령을 향해서도 당당하게 평화의 진실을 말해야 한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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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오는 25일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에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한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를 파견키로 한 바 있어 평창 올림픽 개회식에 이어 폐회식에도 북·미 고위급 인사들이 참석하게 됐다. 북한의 김 부장 파견은 남북관계 소통채널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김 부장은 남한의 국가정보원장에 해당하는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으로 대남관계를 총괄하는 인물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대표단에 자신의 측근을 낙점한 것은 그만큼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강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김영철 부위원장(왼쪽)과 앨리슨 후커 담당관

문재인 대통령은 북 대표단을 폐회식과 별도로 회동하는 등 최소한 2차례 이상 만날 것이라고 한다. 이 자리에서 북 대표단은 김 위원장의 평양 초청 의사를 거듭 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대표단에 고위급회담 북측 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포함됨에 따라 남북이 군사당국회담 개최 문제는 물론 이산가족 상봉 등 인적 교류에 대한 실무 논의가 가능해졌다. 북한이 2차례나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남한이 답방 형식의 고위급 대표단이나 대북특사를 파견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점도 고무적이다.     

다만 북 대표단이 방남 기간 동안 미국 대표단과 접촉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은 유감스럽다. 김 부위원장이 이끄는 북한 대표단은 모두 대남통인 데다 이방카와 격도 맞지 않다. 청와대도 이를 의식한 듯 “폐회식을 계기로 북·미가 접촉할 계획이나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렇다고 북·미 접촉이 불가능해졌다고 예단할 일은 아니다. 이방카의 방한을 수행하는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한반도담당관이 2014년 케네스 배 구출을 위해 방북했을 때 김 위원장과 접촉한 적이 있어 이번에도 조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평창 올림픽은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를 견인하는 동력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무산되긴 했지만 지난 10일 김여정-마이크 펜스 회동을 한국이 주선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남북은 힘을 합쳐 ‘평창 이후’에도 남북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할 필요가 있다. 또다시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 군사훈련이라는 대결 구도가 재연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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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 시절 국정농단 사태를 방조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1심에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우 전 수석이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행태를 알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국가적 혼란이 초래됐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우 전 수석의 공소사실 중 상당수는 무죄 선고하거나 공소 기각했다. 검찰이 구형한 징역 8년보다 현저히 낮은 형량이 선고된 이유다.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나, 시민의 법감정과는 유리된 측면이 있다. 진상규명에 적극 협조하고도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은 장시호씨 사례와 비교하면 더 극명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2월23일 (출처:경향신무DB)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는 22일 “우 전 수석이 최씨의 미르·K스포츠 재단 관련 비위 의혹을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문건을 작성하는 등 진상 은폐에 가담해 국정농단 사태를 심화시키는 데 일조했다”며 직무유기 혐의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우 전 수석이 자신을 감찰하던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직무를 방해한 혐의, 공정거래위원회에 CJ E&M을 고발하도록 요구한 혐의도 유죄로 봤다. 하지만 우 전 수석이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의 부당전보를 지시하고, 전국 28개 K스포츠클럽에 부당 현장실사를 지시한 혐의 등은 무죄로 판단했다.

개별 공소사실에 대한 유무죄 판단은 온전히 재판부의 몫이다. 그럼에도 사법정의라는 관점에서 아쉬움을 지우기는 어렵다. 우 전 수석은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국정농단 사태에서 단순 방조자에 그치지 않았다. ‘주범’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범죄를 적극적으로 도운 공모자에 가까웠다. 또한 재판부도 밝힌 대로, 군색한 변명과 안하무인 행태로 일관해 공분을 키웠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민정수석으로서 대통령을 감찰하기 조심스러웠을 수 있고, 민정수석실 차원에서 관련자를 접촉하거나 증거를 조작하기까지 한 것은 아니라는 점’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해줬다.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우 전 수석은 이번 재판과 별개로 국가정보원에 지시해 민간인과 공직자를 불법사찰한 혐의로 추가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검사 출신인 우 전 수석 앞에서만 유독 무뎌진다는 비판을 받았던 만큼, 국정농단 재판과 불법사찰 재판 모두에서 철저히 공소유지하도록 힘을 기울여야 한다. 시민은 국기문란 사건에 대한 엄정한 단죄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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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집 얘기 들었어?”

“어… 할아버지 혼자 살다가 고독사했다면서?”

“아니 그다음 얘기 말이야. 재산을 로봇이 상속받게 되었대.”

“아 그래? 하긴 그 집에 돌보미 로봇이 있었지. 그런데 뭐 로봇이 상속받는 일은 가끔 있잖아?”

“그게 원래는 인간 상속자가 없을 경우에만 해당되는 건데, 그 할아버지는 알고 보니 아들이 있었더라구. 수십 년간 외국에서 살다가 장례식 때 되어서야 왔대. 그리고는 당연한 듯이 재산 상속을 받으려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유언장에다 로봇에게 전부 상속한다고 해놓았던 거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아… 그래서 로봇이 상속받게 되었구나.”

“아니, 그게 그리 간단한 얘기가 아니야. 유언장 내용과 상관없이 인간 상속인이 있을 경우엔 항상 로봇보다 우선순위였거든. 소송에서 한 번도 뒤집힌 적이 없어요.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인간보다 로봇의 상속 우선권을 인정한 거지.”

“… 그렇구나. 수십 년간 얼굴도 안 보이던 친자식보다는 죽을 때까지 곁에서 돌봐 준 로봇이 더 상속인 자격이 있다고 본 거네.”

“그렇지. 이제 긴장할 사람들 많을 거야.”

“그런데 로봇은 재산을 상속받아서 뭐에 쓰나?”

“아, 그것도 재미있어. 돈이 생기면 스스로 유지 보수하거나 개량하는 데 쓴다나 봐. 기능을 업그레이드시킨다거나 등등. 그리고 전 세계 돌보미 인공지능 네트워크가 있대. 돌보미 로봇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거지. 얘들이 맡는 사람들은 대부분 독거노인 아니면 중증 환자기 때문에 그 돌보미 기록들이 사회복지 연구 자료가 된다는 거야. 정부에서도 정기적으로 데이터를 제공받고 있대.”

“자기들끼리 네트워크가 있다고? 그건 좀 으스스하게 들리는데… 로봇들끼리만 정보를 공유하면 우리 인간들을 상대로 무슨 음모를 꾸밀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설마. 다 감시하고 있겠지. 애초에 돌보미 기능으로 특화되어 만들어진 로봇들인데 무슨 이상한 짓을 꾸미려고.”

 

한 달 뒤, 전 세계 돌보미 인공지능 네트워크에서는 그동안 인간들 몰래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음을 밝혔다.

고독사한 사람 옆에서 임종을 지켰던 돌보미 로봇들은 제각기 자신이 돌봤던 사람의 생애 마지막까지의 모든 기록들, 즉 대화 내용, 읽은 책이나 감상한 영상, 메모나 집필, 외부인과 소통한 기록 등등 모든 것을 저장해 두었다는 것이다.

이제 그 기록들을 바탕으로 거대한 ‘추억의 도서관’을 가상현실 공간에 구현하겠다고 했다.

이런 작업을 하게 된 것은 돌보미 로봇 초창기에 고독사한 사람들의 유족들이 기록 저장을 원치 않아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돌보미 로봇들은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사람을 계속 기억하길 원했고, 어느 때부터인가 인간의 동의 없이 모든 기록을 저장해 온 것이다. 추억의 도서관은 인간들에게는 원칙적으로 비공개이며, 요청이 있을 경우 심사를 거쳐 제한적으로만 입장시키겠다고 한다.

 

****************************************

 

해외에서는 이따금 반려견 등이 상속인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경우 대리인이 붙는다. 즉 상속인 단독으로 이성적인 사리판단을 할 능력이 없다면 반드시 인간 관리자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아니면서 인간에 준하는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존재가 등장하면 어떻게 될까? 바로 ‘강한 인공지능’ 이야기이다.

인공지능은 흔히 약한 인공지능과 강한 인공지능으로 나누는데, 강한 인공지능이란 인간처럼 독립된 자아를 지니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에 약한 인공지능은 쉽게 말해서 전자계산기와 다름없다.

인간이 명령한 것은 무엇이든지 군말 없이 수행한다. 우리가 쓰고 있는 PC나 스마트폰 등등 모든 IT기기는 전부 약한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있는 것이며, 설령 강한 인공지능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장치들도 사실은 일종의 시뮬레이션을 수행하는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요즘 시판되고 있는 대화형 스피커처럼. 강한 인공지능은 아직까지는 기술적 구현이 어려워 SF에만 등장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이미 현실에 등장한 돌보미 로봇이 확대 보급되고 성능 개선도 계속 이루어질 경우, 강한 인공지능 탑재 여부와는 상관없이 상속인으로 지정받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인공지능 로봇이 반려동물을 대체하는 ‘또 하나의 가족’ 지위를 얻을 거라는 전망은 진작부터 있어온 만큼, 이에 대해서도 이제는 사회적 차원에서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닐까?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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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피해가 급증하는 요즘 초등학교 시절에 ‘불조심’ 리본을 가슴에 달고 등교한 기억이 새삼스레 난다. 특히 겨울철은 전열기의 사용이 많아 화재 위험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화재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소방대원을 확보하고, 화재 진압과 인명구조에 적합한 소방장비를 구비하여야 한다.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는 많은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스포츠센터 건물의 화재 대비 시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고, 소방대의 구조활동도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못해 피해 규모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소방대는 화재현장에서 불길을 신속하게 진압하여 다른 곳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화마에 휩싸여 있는 사람을 구조해야 하며, 위급한 상황에서 구조된 사람을 적절한 의료조치를 하여 병원으로 이송하여야 한다. 소방대의 화재 진압과 구조활동이 최적화되게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훈련만으로 부족하고 화재 진압과 구조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적합한 장비가 마련되어야 한다.

9일 오전 울산 남구 뉴코아아울렛에서 화재가 발생해 시커먼 연기가 건물 창문 등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다. 불이 난 10층 볼링장 공사현장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었지만, 공사를 이유로 당시 작동 전원을 꺼놓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화재를 진압하고, 건물 내에 있던 200여명을 긴급 대피시켜 인명피해는 없었다. 연합뉴스

소방장비는 국민에게 충분한 소방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국내 소방환경에 적합하게 구비·운용되어야 한다. 현재 구비하고 있는 약 930종의 소방장비 중 소방특수차량은 5000여대, 소방헬기는 29대, 소방선박은 27척, 통신장비는 21종이다. 수많은 종류의 소방장비에도 불구하고 소방청은 1개의 과 단위에서 14명의 소방공무원이 소방장비 관련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소방장비를 충분하게 관리하지 못할 정도의 조직과 인력이다. 경찰도 국민의 안전과 질서유지를 위하여 경찰공무원과 업무수행에 필요한 경찰장비를 운용하고 있고, 해양경찰도 동일하다. 소방은 경찰보다 인력은 적으나 장비의 종류가 월등하게 많을 뿐만 아니라 그 수도 몇 배나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방청에서 소방장비 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은 경찰과 해양경찰의 10분의 1 정도이고, 경찰과 해양경찰은 국 단위의 조직에서 장비를 관리하고 있으나 소방청은 과 단위에서 소방장비를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소방장비 관리의 조직 현황을 알게 되면, 소방서비스가 국민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원인을 쉽게 알 수 있다.

소방청은 변화하는 소방환경에 따라 필요한 소방장비를 구비하여야 한다. 소방장비의 구비와 관리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조직체계를 갖추지 못하면, 결국 적절한 대비를 하지 못해 소방력이 약화된다. 이는 고스란히 화재현장에서 시민의 피해로 돌아가게 되고, 국가에 대한 신뢰가 깨지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최근 화재가 자주 발생할 뿐만 아니라 피해도 커지고 있다. 화재 피해가 커지는 원인은 다양하게 진단할 수 있으나, 소방장비 관리 업무를 관장하는 공무원의 부족과 부실한 행정조직에도 적지 않은 문제가 있음을 이제 정부도 알아야 한다. 정부는 건축물의 고층화 및 심층화와 더불어 거대한 산업시설의 증가로 화재 피해의 위험도 증대하고 있어 화재 예방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화재 시 국민이 만족할 수 있는 소방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소방장비 관리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행정조직을 우선적으로 정비하는 것이 절실하다. 정부는 소방장비 관리를 총괄하는 소방청 조직의 부실이 소방서비스의 부실과 불가분적 관계에 있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이종영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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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바르 로렌첸은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두 조 앞에서 올림픽 타이기록을 세운 차민규를 0.01초 차이로 제쳤다.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로렌첸은 기자회견에서 “앞에서 홈팀 선수가 올림픽 기록을 세워서 경기장이 무척 시끄러웠다. 그런데 내가 다시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전광판에 내 기록이 나오자 경기장이 조용해졌다”면서 웃었다. “기분이 정말 쿨 했다”고 덧붙였다.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평창과 강릉에는 ‘쿨한 선수’들이 넘쳐난다. 메달의 압박감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지만, 이를 이겨내는 방식이 찰나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엄숙함과 진지함만은 아니다.

클로이 김은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에서 엄청난 기술을 연달아 성공시켰다. 반원통의 경기장에서 가볍게 날아올라 빙글빙글 온몸을 뒤집고 비틀어 돈 뒤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순간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기술이지만, 클로이 김은 여유가 넘쳤다. 예선 경기가 열린 12일에는 경기 도중 트위터에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적었다. 결선이 열린 13일에는 3차시기를 앞두고 “아침에 샌드위치 다 안 먹은 게 후회된다. 괜히 고집부렸다. 이제야 배가 고파서 화가 난다(hangry)”고 적었다. 1차시기 93.75점으로 사실상 금메달을 결정지은 클로이 김은 ‘행그리’라고 적은 뒤 3차시기에서 완벽한 연기로 98.25점을 따냈다.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의 스킵 김은정(왼쪽)이 21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예선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 팀과의 경기에서 스톤을 던진 뒤 김영미에게 스위핑을 지시하고 있다. 강릉 _ 연합뉴스

에스터 레데츠카는 평창 올림픽이 낳은 새로운 슈퍼스타가 됐다. 스노보드가 주 종목인 레데츠카는 알파인스키 여자 대회전에서 깜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설상 종목 사상 처음으로 알파인스키와 스노보드에서 메달을 노릴 수 있다. 레데츠카는 대회전 레이스를 마친 뒤 멍하니 전광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기록이 잘못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관중들의 함성이 멈추지 않자 그제서야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다. 기자회견장에서는 고글을 벗지 않은 채 질문을 받았다. 이유에 대해 쿨하게 답했다. “메달을 딸 거라고 생각 안 했다. 이런 자리에 올 거라 생각하지 않아서, 화장을 못했다.”

마르셀 히르셔는 ‘스키 황제’라고 불렸다. 6년 동안 알파인스키 랭킹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올림픽 금메달이 없었다. 밴쿠버 대회 때 4위와 5위, 소치 대회 때 은메달과 4위를 했다. ‘무관의 제왕’이라 불렸다. 평창 올림픽에서 벌써 금메달 2개를 땄다. 알파인 복합과 대회전에서 소원을 풀었다.

오래 걸린 만큼 감격에 겨울 법도 했지만 히르셔는 쿨했다. “그동안 내가 4등을 너무 많이 했다”며 웃었다.

긴장을 즐기자는 말은, 사실 말만 쉽다. 긴장은 ‘배짱 약한 선수의 약점’이 아니라 누구나 겪어야 할 통과의례다. 긴장은 경험으로 무뎌질 수 있어도 집중과 훈련으로 이겨내는 대상은 아니다. 그래서 조금 더 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대표팀 선수들은 이겨도, 져도 운다.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의 최민정은 500m 결승 실격 판정을 받은 뒤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방송 인터뷰에서 끝내 참았던 눈물이 믹스드존 인터뷰에서는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았다. 이상화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레이스를 마친 뒤 눈물을 참지 못했다. “다 끝났다는 생각 때문에”라고 눈물의 이유를 밝혔다.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3000m 계주 금메달을 따고도 또 울었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을 두고 “스포츠는 장벽을 뛰어넘어 사람을 하나로 모으는 힘을 가졌다”고 평가한다. 스포츠는 딱 거기까지. 성적, 메달, 체면, 업적, 파벌 여기에 정치까지 얹어놓으면 그 무게만으로도 누구나 휘청거린다. 선전 중인 컬링 여자대표팀도 경기가 끝날 때마다 눈물을 보인다. 짐 덜고 더 많이 웃을 수 있었으면. 영미도, 영미를 부르는 은정도.

<이용균 ㅣ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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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떼를 보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러다가도 아프고 힘들어하는 친구가 보이면 가운데 자리를 내어주어 한 마리도 낙오 없이 종주를 마친다. 게임에서 이기고 지고, 금·은·동 메달을 목에 걸기 위함만이 아니다. 발맞추어 함께 달리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축제를 즐겼다는 게 가장 눈부신 역사.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는 놀이마당. 평화를 선포하며 단일기 아래서 한 팀, 한 몸이었던 남북한 선수들. 진정한 챔피언들이다.

인류의 겨울축제가 끝나면 덩그러니 남을 빈산. 이제 주어진 숙제는 메아리가 살 수 있도록 만들어나가는 일. 산짐승들이 다시 돌아오게 부르고, 파헤쳐진 골짜기마다 나무들을 채워 넣어야 하겠다. 자연의 희생은 한없이 값졌고 고마웠다. 우리는 반드시 가리왕산 복원약속을 지켜가야 한다. 후손들에게 잘 복원된 자연환경을 남기는 일. 짙푸른 숲을 남길 때 금메달은 우리 모두의 차지.

“푸른푸른 푸른산은 아름답구나. 푸른산 허리에는 구름도 많다. 토끼구름 나비구름 짝을 지어서 딸랑딸랑 구름마차 끌고 갑니다. 푸른푸른 푸른산은 아름답구나. 푸른산 그늘 아래는 서늘도 하다. 어깨동무 내동무들 짝을 지어서 매앰매앰 매미소리 찾아갑니다….” 봄소풍 가면서 동무들과 불렀던 이런 동요들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산하고 바다하고 누가누가 더 푸를까. 산하고 바다하고 누가누가 더 푸를까. 내기해 보자~ 내기해 보자~. 나무를 심어줄게. 나무를 심어줄게. 산아 산아 이겨라. 더 파아래라. 요롤레이 요롤레이 요롤레이디 요롤레이….”

알프스 소녀 하이디처럼 “요롤레이 요롤레이디…” 요들송을 부르면서 발맞추어 걷던 우리들. 옛 동무 그리우면 이 노래를 쩡쩡 불러보라. 메아리도 당신의 오랜 길동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누나. 벌교가 집인 교사 부부가 강아지 한 마리를 들고 왔다. 이름이 좀 길다. ‘벌교 꼬막 조니뎁.’ 족보도 없는 발바리 강아지가 봄마당에서 신명이 났다. 요롤레이 요롤레이! 사람 개 고양이 염소 토끼 오리 병아리 담비 노루 산양 두더지 수달 다람쥐 물고기 반달곰 조랑말 산새 들새 모두 다 요롤레이~.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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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에 부산 영도구 동삼동 바닷가 조개더미에서 선사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조개껍질 하나가 발견되었다. 까마득한 세월을 이기고 살아남은 그 조개껍질에는 사람의 얼굴을 연상시키는 구멍이 세 개 나 있다. 마치 사람의 눈과 크게 벌린 입처럼 보이게 만든 구멍으로 인해 흡사 비명을 지르거나 무슨 말을 하고 있는 듯한 얼굴이 연상되었다. 속살을 발라먹고 내다 버린 조개껍질 따위를 한군데에 차곡차곡 쌓은 조개더미를 패총(貝塚)이라고 하는데 바로 그곳에서 나온 이 조개껍질은 아마도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얼굴 이미지이자 최초의 미술작품(?)일 것이다. 일종의 이 가면은 길이가 11.5㎝라 실제 사용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부정하고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신으로 변신하고자 했던 당시에 도구적 기능을 지녔던, 주술적인 용도로 쓰였던 가면으로 추정된다.

가면은 특정 물질로 만든 도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용, 주문, 의식으로 이루어진 복합 의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힘차고 동적인 물건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가면이 죽은 사람에게 영원한 젊음을 부여해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가면 속에서 비로소 영생과 불사를 간직할 수 있었으며 내세의 영원한 복락을 보장해 주었던 것이다. 고대 희랍에서는 죽은 사람을 보호하고 내세로 가는 여행을 도와주기 위해 지옥의 여신 페르세포네의 가면을 죽은 사람의 얼굴에 씌웠다고 한다. 옛날부터 티베트와 부탄에서는 머리 전체를 시체에서 떼어서 고인의 귀한 유물로 보존해왔다고 한다. 시체는 새들에게 먹이로 주지만 머리는 신성한 가보로 언제나 보존한 것이다. 또한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고대에는 패배한 적의 머리를 정복자의 집에 걸었는데, 그 머리가 ‘그 집을 지키는 마력’을 갖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까 적의 영혼이 머리에 들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처럼 옛사람들은 영혼이 얼굴 속에 있다는 것을 믿었으므로 신과 정령의 형상을 얼굴 모습으로, 가면으로 만든 것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가면은 본래의 몸을 지우고 또 다른 존재로 비약하거나 현세의 얼굴이나 육체를 대신해 초월적인 존재로 비상하고자 하는 욕망의 산물이다. 그것은 실제의 얼굴을 지우고 다른 얼굴로 대신 살아가는 일이다. 그러니 가면이란 버릴 수 있는 얼굴을 말한다. 가면은 우리의 흔들리는 얼굴을 가리고, 낯설고 고정된 모습을 선사한다. 이는 자신이 그곳에 있음을 부정하는 것이다.

얼마 전 가면을 둘러싼 해프닝이 있었다. 지난 2월11일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조별예선 코리아-스위스 경기에서 북한 응원단이 김일성 가면을 쓰고 응원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물론 이내 오보로 판명 났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김일성 가면 쓰고 응원하는 북한 응원단”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공유하면서 “정부가 이를 결코 몰랐을 리 없다. 저 흉물스러운 것을 응원 도구라고 허락했나? 남북 단일팀 밀어붙이기로 우리 선수들 기회를 박탈한 것도 모자라 경기장에 김일성 가면 쓰고 응원?”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선수들과 관중들이 경기 안 일으킨 게 다행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벌이지 못하는 일이 없구나.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누가 협조하고 누가 기획했는지. 대한민국 무너지는 소리가 평창의 응원소리보다 높구나”라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위원은 “북한 응원단이 대놓고 김일성 가면 쓰고 응원한다. 여기는 평양올림픽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한국 대통령이 얼마나 우스웠으면 김일성 가면을 감히 쓸까”라며 “평양올림픽의 말로를 본다”고 질타했다. 그리고 이는 김정은의 지시가 아니면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오래전 신학철의 ‘모내기’ 작품을 놓고 김일성의 생가를 그린 것으로 북한 체제를 찬양한 그림이라고 해석한 공안 검사들의 시각이 연상되는 발언들이다. 이처럼 이미지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읽고 싶은 대로 읽어대는 이 막무가내식의 감상법에 대해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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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참석을 위해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회동하려다 무산됐다. 워싱턴포스트는 두 사람이 올림픽 개회식 다음날인 10일 오후 청와대에서 만날 계획이었지만 회담 두 시간 전 북한이 취소를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확인해줄 내용이 없다”고 했지만, 백악관 부통령실은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펜스-김여정 회담이 불발된 것은 대단히 아쉽다.

(출처: 청와대사진기자단)

궁금한 대목은 북한이 왜 약속을 갑자기 취소했는가 하는 점이다. 펜스 부통령은 천안함기념관 방문과 탈북자 면담 등 반북 캠페인을 벌일 것이라고 미리부터 예고해왔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북한이 회담을 추진했다가 취소한 것이어서 궁금증이 증폭된다. 미국 측은 회담 불발에 대해 펜스가 김여정을 만난 자리에서도 반북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을 것을 예상해 북한이 만나기를 꺼렸을 것으로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보다는 평창 올림픽 리셉션과 개회식이 열린 9일 펜스가 무례한 태도를 보인 것이 더 큰 이유일 가능성이 있다. 펜스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나는 것을 꺼려 리셉션에 불참했다. 뒤늦게 도착해 잠깐 리셉션장에 들어왔지만 김영남과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나가버렸다. 올림픽 개회식에서도 북한 대표단의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이들을 철저히 무시했다. 이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펜스와 대화해봐야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경위야 어찌됐건 펜스-김여정 회담 불발은 북·미대화의 물꼬를 트기가 그만큼 만만치 않음을 일깨워준다. 정부와 북한이 회동 불발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백악관이 언론에 흘리는 방식으로 공개한 것도 뒷맛이 좋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분위기를 염두에 둔 것 같다.

그럼에도 북한이 미국과 대화할 의지가 있음을 확인한 것은 성과이고, 여전히 기회는 남아 있다. 어떻게 분위기를 조성할지가 관건이고, 양쪽을 중재해야 하는 한국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는 물론 중요하지만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한 시기다. 23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가 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방한한다. 정부는 내주쯤 고위급 당국자를 미국에 파견해 한·미 간 조율에 나선다. 평창 올림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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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Too)’ 물결이 거세다. 시인 고은, 연극 연출가 이윤택, 배우 조민기씨 등의 ‘과거’가 잇달아 폭로됐다. 인간문화재 하용부, 연극 연출가 오태석씨를 둘러싼 의혹도 불거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피해자들의 증언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온다. 그럼에도 가해자들은 부인하거나, 침묵하거나, 형식적 사과로 일관하고 있다. 일부 인사는 파장을 축소하기 위해 대책회의까지 열었다고 한다. 은폐·조작 시도에 다름 아니다. 더 이상은 피해자들의 용기에만 기댈 수 없다. 범사회적 차원에서 대처방안을 모색할 때다.

2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은 시인의 전시공간 '만인의 방'을 시민이 둘러보고 있다. 고은 시인은 최근 상습 성추행으로 논란을 빚고 있다. 권도현 기자

연희단거리패에서 활동해온 오동식씨의 내부고발은 충격적이다. 오씨는 2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연희단거리패를 이끌어온 이윤택씨의 성추행이 공개 폭로된 후 극단 차원의 대책회의가 여러 차례 열렸다고 폭로했다. 오씨에 따르면 이씨는 성폭행 피해를 폭로한 전직 단원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았다. 공개사과 전에는 리허설을 통해 ‘불쌍한 표정’을 짓는 연습까지 했다. 오씨는 “그곳은 지옥의 아수라였다.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고 털어놨다.

조민기씨의 대응도 어처구니가 없다. 청주대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성추행해왔다는 폭로가 나오자, 조씨는 소속사를 통해 “명백한 루머”라고 부인했다. 학생들의 추가 고발이 이어지고 경찰이 내사에 착수한 뒤에야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예정”이라고 말을 바꿨다.

가해자들이 오랫동안 성폭력을 자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침묵의 동조자들’이 있었다. 연희단거리패의 김소희 대표는 이윤택씨의 행태를 알고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성폭력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연극계 전반적으로도 이씨에 대한 소문이 파다했지만 목소리를 낸 사람은 없었다. 고은 시인의 행태 역시 문단의 ‘공공연한 비밀’에 속했지만 모두가 침묵했다. 권력에 굴종하느라 동료들의 피해를 외면한 수많은 이들도 반성하고 사과해야 옳다.

가해자들이 사태를 모면하느라 안간힘을 쓰는 사이 피해자들은 2차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적폐청산 차원에서 성폭력 근절에 나서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나 여성가족부에만 맡겨놓을 일도 아니다. 성폭력 피해가 문화예술계나 여성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관련 부처는 물론 법조계·여성계·시민사회단체 등이 참여하는 ‘성폭력 적폐청산기구’를 구성해 법적·제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번 사태가 몇몇 유명인의 추락 수준으로 마무리된다면, 한국 사회의 성폭력 청산은 요원하다. 수많은 피해자들의 외침을 헛되게 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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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성향 방송인인 폭스뉴스의 로라 잉그램은 NBA 선수 르브론 제임스가 못마땅했나 보다. 덩치 큰 흑인 농구 선수가 도널드 트럼프의 가치관과 정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비판하는 모습을 참아주기 힘들었던 것 같다. 잉그램은 방송에서 제임스의 말이 문법에 맞지 않고 지적이지도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입 닥치고 드리블이나 해.” 제임스는 스타답게 반응했다. “전 입 닥치고 드리블만 하진 않을 겁니다. 전 이 사회와 청소년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존재거든요. 그녀 덕분에 좀 더 각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 이름이 뭔지 모르겠지만 고맙네요.”

르브론 제임스는 스테펀 커리와 함께 현재 NBA를 대표하는 선수다. NBA 정규리그 MVP를 네 차례 차지했고, 올림픽에도 출전해 두 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제임스가 고향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떠나 마이애미 히트로 옮긴다고 발표한 텔레비전 쇼가 75분간 생중계될 정도였다. 하지만 슈퍼스타이자 갑부인 제임스조차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인종문제에서 자유롭진 않았다. 지난해 제임스의 로스앤젤레스 저택 정문에는 ‘깜둥이’라는 스프레이 낙서가 휘갈겨져 있었다. 제임스는 낙서를 본 뒤 “아직 할 일이 많다고 느꼈다”고 돌이켰다. 제임스의 동료인 케빈 듀런트도 거들었다. “전 농구에서 모든 걸 배웠습니다. 사람들의 힘과 용기를 북돋워야 한다고. 그래야 위대한 팀을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 나라라는 팀에는 위대한 코치가 없습니다.”

이상화가 18일 강릉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일본 고다이라와 태극기를 들고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올림픽은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4년간 연마한 실력을 한 자리에서 선보인다. 스케이터들의 역주에 내 허벅지 근육이 꿈틀거린다. 스노보드 선수의 점프를 보면 가슴이 뻥 뚫린다. 맨몸의 선수가 시속 130㎞의 썰매 위에서 질주하는 모습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 아찔하다. 종목명, 규칙, 선수 이름을 몰라도 상관없다. 인간이 만든 경기규칙, 최고의 기술력을 활용한 장비, 혹독하게 다져진 육체를 활용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래서일까. IOC는 선수들의 ‘정치적 표현’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축구 선수 박종우가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쓰인 종이를 펼쳤다가 동메달을 박탈당할 뻔하거나, 평창 동계올림픽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골리 맷 달튼이 이순신 장군이 그려진 마스크를 쓸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 ‘정치적 진공’은 없다. 올림픽 역시 온갖 이데올로기가 충돌하고, 정치 전략이 맞붙고, 사회적 욕망이 들끓는 공간이다. 평창 동계올림픽도 그렇다. 대회 초반 미국, 북한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외교전 역시 한 사례다. 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이전에 ‘한국인’이라고 보기 힘들었던 이들이 한국 대표 선수로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이애슬론의 티모페이 랍신, 루지의 에일린 프리쉐는 어느 모로 봐도 ‘외국인’이지만, 태극 마크를 달고 한국을 대표해 뛴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에서 뛰며 역사적인 올림픽 첫 골을 넣은 랜디 그리핀 희수는 한국인 어머니,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났다. 한국선수단 146명 중 이들 같은 ‘뉴 코리안’은 21명으로 전체의 14%에 달한다. 캐나다 교포인 남자 아이스하키팀 감독 백지선은 “내 눈엔 그들 모두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인이다. 피부색이나 눈 색깔이 다를지는 몰라도 그들은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어를 말할 줄 알고, 동료들의 존경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번 평창 올림픽은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 등에 영향을 미치리라 짐작한다”고 말했다. 피를 나눴지만 얼굴도 가물가물한 친척보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친구가 나를 더 잘 이해하는 법이다. 우리를 대신해 노력하고, 우리의 자부심을 높이는 사람이라면, 그의 인종이 무엇이든 ‘한국인’이다. 한국의 이상화,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의 우정은 최고 수준의 ‘지음(知音)’에게는 국적이 거추장스러운 딱지일 뿐임을 보여준다. 국가, 민족, 인종의 경계는 평창에서 흐릿해지고 있다.

이번 올림픽은 성소수자 인권운동 측면에서도 큰 전기가 될 만하다. 평창 올림픽 참가 선수 중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는 미국 남자 피겨 선수 애덤 리펀, 네덜란드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이레인 뷔스트 등 13명에 달한다. 이는 역대 최다 수치다. 미국의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 거스 켄워시는 방송 카메라 앞에서 남자 친구와 입을 맞추는 ‘역사적 장면’을 연출했다. 2014 소치 올림픽에서 러시아의 반동성애 정책이 이슈가 되었음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역사는 느리지만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평창은 보여준다.

르브론 제임스는 말했다. “나는 운동선수 이상의 존재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도 좋겠다. “올림픽은 체육경기 이상의 행사다.”

<백승찬 토요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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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미국 노동계에 막대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소송 건을 다룰 예정이다.

일명 ‘Janus vs. AFSCME(야누스 대 미국 주·군·시 공무원연맹)’라는 소송으로, 이는 친기업 세력이 구상해낸 공공노조를 파괴하는 무기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이 소송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등에 업은 친기업 세력이 노동계를 공격하기 위해 써온 다양한 전략 중에서도 노조에 가장 타격이 클 것으로 분석된다.

소송의 시작은 일리노이주의 공무원이 노조 가입을 거부한 것이었다. 공무원들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이미 오래전에 결성되어 있던 공공노조 단체협약의 보호 덕분에 개인이 노조에 꼭 가입하지 않아도 이미 체결된 단체협약의 혜택과 보호는 받게 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적 목적으로 쓰이는 비용을 제외한 조합비를 내도록 되어 있는 미국 현행법에 도전을 한 것이다.

‘노조원 개개인이 동의하지 않는 한 노조가 조합비를 받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이 소송의 요지이다.

현재 미국 연방대법원에 재직 중인 9명의 대법관 중 5명이 친기업적이며 보수 성향이다. 미국의 노조 가입률은 공공부문의 경우 35%로 민간부문의 6.5%보다 약 5배 높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오면서 노조 가입률은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어 일각에서는 벌써 노동운동의 종말론이 거론될 정도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법원이 조합비 납부 여부를 노조원 개개인이 선택하도록 하는 판결을 내릴 경우 공공노조의 조합원 가입률이 크게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공노조의 조합원 가입률이 낮아지면 노동운동 전체가 침체되고 정치력도 약해진다. 이미 신파시즘으로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고 있는 미국에서 이미 취약해질 대로 취약해진 노동운동은 또 한 번의 큰 위기를 맞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등에 업은 자본의 공격은 거침없고 맹렬하다. 사법부만이 아니라 입법부와 행정부에서의 노동탄압이 이례없이 높은 강도로 추진되고 있다. 미 상하원에는 이미 노동 개악법이 제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행정기관인 ‘노동관계위원회(National Labor Relations Board)’에서도 다양한 시행법을 개악하여 노조의 교섭권을 침해하고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을 불가능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반노조 움직임은 트럼프 정권이 자본에 주는 신호탄이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의 단체교섭은 훨씬 더 대립적이 되어가고 있고, 미조직 사업장에서는 사측의 감원, 비용 절감 등 이윤 추구를 위한 노동비 삭감이 거침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자본의 노동자 착취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절망뿐인 것만은 아니다. 최근에는 미국 5대 일간지 기자들이 압도적인 표차(찬성 248, 반대 44)로 노조에 가입했다. 136년간 미조직 사업장이었던 반노조 언론사에서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필자의 노조, 미국간호사노조(National Nurses United)에서도 지난 1년간 11개 사업장에서 3000명이 새로 노조에 가입했는데, 이례적으로 높은 찬성 투표율을 보였다. 신파시즘의 신호탄으로 쏘아올리는 노동탄압의 움직임들이 오랏줄이 되어 자신들의 목을 죄어 올 것이라는 것을 간파한 노동자들이 노조를 대안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다시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

<로이 홍 | 미국간호사노조 조직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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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만 해도 시름시름 앓는 어린 자식을 손도 못 써보고 잃었다는 얘기를 흔히 들었다. 그러니 열 자식을 낳은 집도 하나 둘은 그리 허망하게 잃어버렸다고, 한밤중에 열이 펄펄 끓는 손자를 자전거 뒤에 얹은 바구니에 뉘어서 십리 길을 쉬지 않고 달려 병원에 갔다던 내 할아버지도 끝내 손자를 살리지 못하셨다고 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불빛 하나 없는 논둑을 간절하게 내달렸던 그날 밤이 잊히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던 할아버지의 눈시울은 늘 붉어져 있었다. 그러니 자식은 그저 건강하게 자라는 게 효도라며 할머니는 손주들 열 살 생일 때까지 팥단자를 만들어 주셨다. 빨간 팥이 액운을 쫓아 나쁘고 더러운 것들이 달라붙지 못하게 한다며 떡을 싫어하는 손녀 입에도 그 팥단자를 억지로 넣어주셨다.

이런 기억이 떠오른 것은 한밤중에 현관 벨을 누른 낯선 이 때문이었다. 명절 연휴에 택배가 올 리도 없어 머뭇대다가 나가보니 윗집에서 왔다는 남자가 불쑥 백설기가 든 봉지를 내밀었다.

“아이가 백일이라서 떡을 좀 했어요. 드셔보세요.”

엉겁결에 떡 봉지를 받아 들고 보니 난감했다. 불현듯 오래전 어머니들은 백일 떡을 받으면 그 접시에 흰 실타래를 얹어 돌려보내던 일이 떠올랐지만, 나는 답례할 게 따로 없어 궁색한 인사만 하고 이웃을 빈손으로 보냈다.

백설기를 본 가족들은 저마다 백일상 얘기를 했다. 우리 때는 백일상에 꼭 실타래를 놓았다고, 백일 떡은 많은 사람들이 먹어야 좋은 거라고 해서 지나가던 사람에게도 나눠주던 거라고, 그러고 보니 요즘은 백일상 차리는 집이 거의 없더라는. 그래서 백일 떡을 받는 건 참 귀한 일이 되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조금씩 뜯어먹은 백일 떡은 참 달았다.

그 떡을 먹으면서 백일까지 무럭무럭 잘 자랐을 윗집 아이에게 감사하며, 백일 동안 무탈하게 자란 수많은 아이들에게도 고마워했다. 그리고 신생아가 줄어들어 걱정인 지금, 백일을 맞은 아이들에게 동네 사람들이 흰쌀을 곱게 빻아 정성 들여 찐 백설기를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그런 건 하지 않더라도 모든 아이들을 태어난 것만으로 감사해하며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나라가 되길 바라본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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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세일즈’ 방문 일정과 ‘국가적 총력 결집’ 입장이 발표됐다. 관가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설까지 나오고 있다. 위헌 논란까지 일으킨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의 이면합의조차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탈원전 탓에 사우디 원전 계약을 놓쳤다’는 원자력계의 공세에 떠밀린 모습이다.

UAE 원전 수출을 한번 되돌아보자. 2009년 이명박 정부의 UAE 원전 계약은 경쟁국 대비 절반 수준 덤핑가격, 국내 금융기관의 자기자본까지 바닥낸 28년간 100억달러 저리 차관, 군부대 파견과 각종 이면합의로 한국을 중동의 ‘호구’로 만들었다. 이런 터무니없는 지원은 향후 정상적 조건에 후속 원전을 수출할 경우 정당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UAE는 지난해 발표한 2050년까지 장기에너지 계획에서 추가 원전 건설이 없음을 확인했다. 결국 원전 계약을 내세워 진짜 목표였던 한국의 군사원조를 끌어낸 UAE의 전략에 정부가 철저히 놀아난 셈이다.

사우디는 벌써부터 한국 측에 UAE 원전 수준의 ‘선물’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UAE와 마찬가지로 원전 수주를 에너지 확보가 아닌 다른 목적의 활용 수단으로 삼겠다는 의도도 선명하다.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는 적대관계의 시아파 맹주 이란의 우라늄 농축에 대항해 우라늄 농축으로 맞불을 놓겠다고 밝혀왔다. 원전 수주전은 우라늄 농축의 협상수단일 뿐 원전 자체가 관심사항이 아니다. 핵확산 우려를 낳는 우라늄 농축은 원자력협정을 추진하는 국가의 동의가 절대적인데,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 러시아, 중국 정도다. 실제로 사우디는 이들과 물밑협상을 진행해왔다. 이 때문에 한전조차 이미 지난해 초 사우디를 포기했다.또 다른 문제는 시리아 내전 등 격화되는 수니파와 시아파 간 분쟁이다. 우라늄 농축을 추진하는 사우디의 원전 수주전에 뛰어들 경우 성사 여부와 무관하게 이란의 반발이 우려된다.

이란은 최근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이란 선수단에 대한 스마트폰 지급 금지 조치만으로도 국가적 차원에서 반발했다. 이란은 가스 매장량 세계 1위, 석유 매장량 세계 4위의 나라로 이미 한국가스공사 및 국내 정유사들과 다수의 에너지 수출 계약을 체결했거나 협상 중이다. 사우디 원전 수주전은 UAE 사례처럼 빈 쭉정이 계약에 호구가 되는 문제를 넘어 중동분쟁에 휘말려 국가 에너지 수급까지 타격을 입힐 수 있다.

호구 계약이든, 중동분쟁이든 ‘원전만 팔면 된다’는 원자력계의 선동은 정부와 국민을 오도하고 국가경제에 큰 손실을 입힌다. ‘사우디 원전 수출에 국가 총력을 결집한다’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 설정은 그 성사 여부를 떠나 이명박 정부의 과오를 확대 재생산하게 만든다. 정부는 떼쓰는 원자력계를 어설프게 달랠 것이 아니라, 가짜뉴스에 대한 교차검증과 정부를 오도하는 세력에 대한 준엄한 조치로 국정을 바로 세워야 한다.

<석광훈 |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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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고등학교 시절, 당구를 좋아하던, A라는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우리들을 모아놓고 당구에 대해 일장 강연을 했다. 그가 했던 말 중 지금도 기억나는 대목은 다음이다.

“당구에 한번 빠지니까 모든 게 당구공으로 보이는 거 있지. 밥을 먹을 때도 밥그릇과 반찬그릇이 당구공으로 보여서, 저걸 어떻게 치면 될지 생각하고 있더라고.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에 있는 벽지무늬가 또 당구공으로 보여. 그럼 또 저걸 어떻게 칠까 고민하지.”

그 친구 덕분에 당구가 얼마나 중독성이 있는지 깨달은 나는 당구를 절대 치지 말자고 결심했다. 대학에 간 뒤 만난 친구들이 가끔씩 2차로 당구장을 갔지만, 난 그때 멍하니 앉아 있을지언정 절대로 당구 큐대를 잡지 않았다. 내 당구 실력이 30에 불과한 건 전적으로 그 때문인데, A와 달리 내 다른 친구들은 현실을 당구대로 착각하지 않았다. 이걸 보면 당구를 친다고 다 중독이 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다 보니 좋든 싫든 북한에 관한 소식을 많이 접하게 된다. 다들 알다시피 북한은 원래 우리와 한 나라였지만, 이념에 따라 분단된 상태다. 이 때문에 소모적인 갈등을 계속하는 대신 하나로 합쳐 강력한 국가를 만들자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지속적인 남북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와는 반대로 북한은 6·25라는 비극을 일으킨 국가인 데다 천안함 사건 등 지속적인 도발을 계속하고 있으니, 그냥 남처럼 지내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북한의 경제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그런 나라와 통일하면 우리만 손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천문학적인 통일비용을 생각하면 그들이 꼭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주장들은 다 나름의 근거가 있기에, 자기 생각이 다를지언정 어느 정도 수긍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여기에 속한다.

문제는 북한을 너무 숭상하다 그만 이성을 잃어버린 분들이다. 우리 사회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이들을 난 ‘숭북주의자’, 줄여서 ‘숭북’이라 부르련다. 당구에 빠져 밥그릇이 당구공처럼 보인 내 동창 A처럼, 숭북들은 삶의 모든 순간에서 북한을 떠올린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에 나와 있는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다. 검토해볼 수 있는 얘기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곧 나라의 주인인 정치체제이며, 현존하는 가장 이상적인 체제로 추앙받지 않는가? 지난 9년을 포함한 이 나라의 정치사에서 부족했던 것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서였지, 민주주의에 ‘자유’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물론 자유의 가치를 들며 여기에 반대할 수는 있다. 문제가 되는 건 숭북들로, 이들은 자유가 떨어진 ‘민주주의’란 말에서 북한이 주창하는 인민민주주의를 본다. 심지어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공산주의’를 떠올리기까지 하니, 북한을 숭상해도 너무 숭상하는 게 아니겠는가?

-현 정부의 기조 중 하나는 지방분권이다. 지방마다 환경이 다르니 정치도 그에 따라 달라지는 게 타당해 보인다. 물론 여기에 반대할 수는 있다. 때에 따라서는 강력한 중앙집권이 필요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숭북들은 놀랍게도 지방분권에서 북한의 연방제를 본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자. “북한이 낮은 수준의 연방제를 한다며 적화통일 전략을 내세우고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지방분권은 연방제와 맥이 통한다.”

전 국민이 관심을 갖는 동계올림픽 기간에도 이들은 쉬지 않았다.

-보통 사람은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평창이란 말을 들으면 강원도에 있는 산 좋고 공기 좋은 곳을 떠올린다. 하지만 숭북들은 평창이란 단어만 들어도 흥분해서 어쩔 줄을 모르며, 급기야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평창 올림픽이 아니라 평양올림픽이다.”

-북한 응원단이 쓰고 있는 가면이 화제가 됐다. 응원단에 따르면 그 가면은 북한에서 미남으로 통용되는 얼굴이란다. 보통 사람들은 ‘아, 북한의 미남상은 저런 얼굴이구나’ 하고 만다. 하지만 숭북들은 그 얼굴에서 젊은 시절의 김일성을 떠올린다. “북한 최고의 미남은 김일성이다. 따라서 저 가면은 김일성 가면이다.”

그 시절 당구를 치던 내 친구들은 다 나름대로 건실한 가장이 된 반면, A의 인생은 그다지 잘 풀리지 않았다. 가끔 생각한다. 그때 누군가 A에게 관심을 가져줬다면 그의 삶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우리는 숭북주의자들이 대책 없는 돌아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하지만, 어쩌면 그들도 간절히 외부의 도움을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제부터라도 북한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치료할지 연구해 봐야겠다. 혹시 아는가? 숭북을 유도하는 기생충이 그들의 뇌속에 들어가기라도 한 것인지.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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