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의 계절인 여름, 무더위가 절정에 이르면서 불법촬영 범죄가 활개를 치고 있다. 해마다 수천건씩 증가하는 추세이며 그 방법 또한 더 대담해지고 지능화되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여성들이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적발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윙윙 대는 소리에 벌이 날아다니는 줄 알고 무심코 넘겼다가 집 창문에 드론을 밀착시켜 20분 넘게 촬영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경찰에 신고했다는 여성의 글이 올라왔다. 이 여성은 당시 집 안에서 신체 일부를 노출하고 있던 상태였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된 집도 이젠 결코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현재 드론을 이용한 불법촬영 범죄를 단속할 방법도 없는 실정이다. 드론을 날리기 위해서는 지방항공청에 신고해야 하는데 신고 대상은 7m 이상 드론이다. 따라서 시중에 나와 있는 초소형 드론은 사실상 관리가 힘들다.

이렇듯 여러 형태의 불법촬영 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자 대다수가 인식하지 못하는 만큼 주변 시민들의 적극적인 신고의식이 필요하다.

‘성폭력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공중장소에서 카메라를 이용한 촬영죄의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신상정보 등록 대상이 되어 최대 20년간 국가로부터 신상정보를 관리받게 되어 있다. 여기에 최근 정부는 성충동 약물치료 화학적 거세 대상에 불법촬영 범죄를 포함시켰다.

불법촬영은 중범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부철민 | 해남경찰서 여성청소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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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에 건설국장이라는 자리가 있다. 대법관도 바라보는 출세코스다. 실제로 건설국장을 거친 대법관이 부지기수다. 사법행정권 남용에 관여된 고영한 전 대법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변호인이던 차한성 전 대법관, 양승태 대법원에서 진보라던 이상훈 전 대법관 등이다. 이들의 업무는 ‘건축·토목공사의 설계, 전기·기계 등 설비공사의 설계 등’이라고 대법원 규칙에 적혀 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누구도 건축이나 토목을 알지 못한다. 이들이 실제로는 무슨 일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다만 대법관 제청권을 쥔 대법원장을 위해 공식·비공식 업무를 추진하고 수행한 것은 확실하다. 건설국장은 2005년 사법시설국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결국 폐지된다.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김선수·노정희·이동원 대법관 취임식에서 김명수 대법원장(가운데)이 신임 대법관들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건설국장의 애매한 위치와 성격, 의혹들은 2009년 만들어진 전산정보관리국장(전정국장)으로 이어진다. 판사들은 “이 자리에 왜 간단한 전산시스템도 이해하지 못하는 판사가 앉아있는지 모르겠다. 양형실장과 함께 업무가 불분명한 대표적인 자리다. 양승태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에 전정국장과 양형실장이 개입된 것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지적대로 많은 의혹과 불법이 여기에서 나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하드디스크 디가우징, 임종헌 전 차장 이메일 기록 삭제, 법원 내 학술모임 중복가입 금지 등이다. 전정국장의 면면을 보면, 초대 이정석 다음 최창영 국장은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했다. 그다음 이영훈 국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대상이다. 현직 정재헌 국장은 부실조사로 비난받는 사법행정권 남용 특별조사단원이다.

전산정보관리국이 법원행정처 퇴직자 부인이 설립한 회사에 10년 동안 243억원 규모의 입찰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최근 제기됐다. 이 문제의 책임자인 정 전산정보관리국장은 김명수 대법원장 인사청문회를 준비한 대법원장의 복심이다. 정 국장은 경향신문 취재 과정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사실과 다른 데이터를 제시했다. 오스트리아산 실물화상기가 전국 법원에 353대라고 했지만 취재진이 확인한 것만 549대였다. 구입가격도 270만~370만원이 아니라 500만원에서 시작했다. 누군가 조작된 데이터를 정 국장에게 주면서 현직 법관인 그와 언론사를 시험했지만 대법원은 지금까지도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관련기사- [단독]대법, 행정처 퇴직자에 243억 ‘입찰 특혜’ 의혹

대법원이 보도 이후 내놓은 해명자료는 문제해결 능력이 없음을 드러냈다. 사실 대법원은 가족을 앞세워 회사를 세운 전직 공무원과 입찰을 담당한 법원행정처 공무원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은폐를 시도한 정황을 파악했다. 그런데도 문제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 회사는 유지관리 사업까지 하도급 형태로 맡아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전체 인력의 12%만을 원청업체에 대면서 사업비의 30%를 가져갔다. 이 사업을 수주한 키맨이 누구인지 의심케 하는 정황이지만 이 역시도 대법원은 모른 체했다. 대법원이 내놓은 나머지 해명도 대부분 손쉽게 반박이 가능한 것들이다.

유럽과 미국의 대형 병원 수술실에서나 쓰는 실물화상기 구입이 불가피했다는 해명도 그렇다. 대법원은 오스트리아산을 대신해 미국산을 사들일 계획이었다. 서류가 실물화상기 다리에 걸려 불편하다는 이유다. 수십억원의 세금을 다시 써야 할 이유도 아니거니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런 실물화상기를 사느라 20억원 넘게 낭비한 담당자와 납품한 회사를 고발해야 맞다. 그렇지 못하는 이유는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에도 벌어진 일이라서일 터다. 근본적으로 초고화질(Full HD) 입력장치(실물화상기)라야 검찰 조서가 보인다고 했지만 전국 법정 출력장치(빔프로젝터)는 표준화질(SD)이 대부분이다. 다리가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실물화상기를 교체할 상황이 아니다.

의혹은 여전히 산더미다. 가령 대법원은 2013년 전자법정 제어시스템을 구축했다. 특정 사기업이 개발·관리하던 프로그램을 대법원 소유로 바꾸는 일이었다. 국가예산 23억원을 들여 대법원이 소유하게 됐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5년이 지나서도 특정사가 가지고 있다. 법원이 어떤 전자법정 장비를 도입해도 이 회사가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수정한다. 이 때문에 법정장비 공급 사업에서 다른 업체들은 참여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이 회사가 법정장비 공급에도 참여하기 때문이다. 다른 회사가 어렵사리 물품공급을 따내도 이 회사가 늑장을 부리면 지체보상금을 법원에 내야 한다. 업계에서는 “국가가 소유한 프로그램 코드를 특정사가 소유, 수정, 배포하는 경우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면서 “대법원이 국가예산 23억원과 물품공급 사업권을 특정사에 상납한 셈”이라고 말한다.

지난 10년간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권력과 야합해 재판을 거래하는 동안, 법원행정처 직원들은 업자와 결탁해 국가시스템을 팔아넘긴 의혹을 받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이 실패한 계기가 ‘상고법원 게이트’라면, 김명수 대법원이 실패할 이유는 ‘전자법정 게이트’다. 시인 최영미는 “피기도 전에 시드는 꽃들을 집요하게, 연민했(다)”고 했다. 나도 김명수 대법원을 연민한다. 집요하게.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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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7월 고용쇼크와 관련, “청와대가 현 고용부진 상황을 엄중히 직시하고 있다”며 “정부를 믿고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입장을 밝히자 일각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부처를 출입하는 기자 입장에서는 “특단의 대책을 조만간 발표하겠다”는 메시지보다는 낫다는 생각이다.

20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ㆍ보좌관회의에서 장하성 정책실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일자리 관련 발언에 먼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윗선에서 국민들의 체감을 강조하면 부처들은 대책들을 한꺼번에 내놓는다.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재정지출은 늘리겠다는 식이다. 최저임금은 올리면서 가격이 지역 평균보다 낮은 식당을 ‘착한식당’으로 지정해 홍보해주려 한다. 공평과세를 강조하면서 비과세 혜택을 늘리고 자영업자 세무조사 면제라는 정책을 내놓는다. 소상공인을 보호하겠다면서 소상공인을 몰아낼 혁신을 가져올 창업은 장려한다.

정부가 눈앞의 불을 끄는 데만 급급해한다는 생각을 심어주게 되면 지향하는 게 뭔지 혼란스러워진다. 대책 발표 당일 수치도 정확하지 않은 엉성한 보도자료가 나오거나, 보도자료에 적혀 있는 대로 관련 부처의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담당자가 아니다”라는 대답을 몇 번 들으면 ‘특단’을 위해 ‘급조된 정책’이라는 의구심이 들고 만다.

일자리안정자금 등 당장 무언가를 하는 것 같지만 기한은 한정돼 있고 효과도 의심스럽다는 비판을 받는 지출이 많아지는 것도 조바심 때문일 것이다. 지출을 늘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복지제도를 탄탄하게 설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제조업 경쟁력 약화, 청년인구 감소, 자영업 과당경쟁, 최저임금 인상 등 여러가지가 고용위기 원인으로 꼽힌다. 장 실장은 이번에 특단의 대책을 약속하지 않았다. 국민은 고통 속에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인다. 정부가 그간 쏟아낸 모순적인 정책들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고, 서로 충돌하지 않는 빈틈없는 정책을 꾸준히 추진했으면 한다.

<박은하 | 경제부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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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최초의 재배 볍씨인 고양 가와지볍씨가 약 5020년이 지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쌀은 농경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 오천년 역사와 함께해왔다.

흰 쌀밥은 풍요와 부의 상징이었으며, 기쁜 일이 있으면 떡을 해 먹고, 쌀을 발효시켜 식초를 만드는 등 식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또한 속담 중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 등 쌀과 관련된 것이 많은데, 이는 쌀이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우리 민족의 마음에 정서적·문화적으로 녹아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최근들어 쌀이 우리 식생활의 중심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우리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61.8㎏으로 30년 전인 1987년의 126.2㎏에 비해 절반으로 떨어졌다. 하루에 169g을 소비한다는 것인데 밥 한 공기를 100g으로 계산하면 하루에 한 공기 반 정도를 먹는 것이다.

출처: 정지윤 기자

상황이 이러다보니 매년 쌀이 남게 되고, 정부와 농협은 쌀값 지지를 위해 시장격리, 생산조정제 등 공급량 조절에 힘써왔다.

물론 ‘아침밥 먹기 운동’ 등 수요 확대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변화하는 소비자 욕구에 맞는 상품을 내놓기보다는 ‘한국인은 쌀밥을 먹어야 한다’는 정서적인 호소에 기댄 측면이 적지 않다. 요즘과 같이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건강·기능·간편을 지향하는 시대에는 소비자의 욕구와 취향을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농협은 ‘쌀=밥’이라는 등식에서 벗어나 쌀 소비 촉진의 실마리를 가공식품에서 찾아보고자 지난 7월 오리온과 합작으로 밀양에 쌀가루 공장을 준공했다. 농협에서 국내산 쌀과 농산물을 공급하고 오리온의 가공기술을 활용해 쌀스낵과 그래놀라, 쌀파스타 등 간편대용식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국수, 빵 등에 밀가루 대신 사용할 수 있도록 쌀가루를 생산해 식품회사와 제과점 등을 대상으로 마케팅 활동을 펼쳐가고 있다.

연초 81개 업체에 샘플을 제공했는데, 20여곳에서 호평을 받으며 이미 310t을 공급했다. 앞으로 올해 말까지 2400t을 생산하고 2022년에는 5만t까지 판매량을 늘릴 계획이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발효소스 등 쌀을 원료로 하는 다양한 제품을 선보일 것이다.

필자가 직접 우유와 팥빙수에 그래놀라를 넣어 먹어보니 영양은 물론이고 기존의 시리얼보다 식감과 맛이 훨씬 좋았다. 그래서 최근에는 쌀가루로 만든 제품을 늘 가지고 다니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누어 드리고 있다. 드신 분들의 반응이 우리 농산물을 원료로 사용해서 믿을 수 있고, 맛도 좋다고 하시는 걸 보니 농업인을 위해 좋은 상품을 개발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쌀 소비가 확대되어 국민 1인당 밀가루 소비량(33㎏)의 30%만 쌀로 대체되어도 연간 50만t의 추가적인 소비가 가능해져 과잉 재고 해소는 물론, 쌀가격 안정화를 통해 농가소득 증대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8월18일은 ‘쌀의날’이었다. 쌀 미(米) 자를 분해하면 ‘八·十·八’인데, 한 톨의 쌀을 생산하려면 농부의 손길을 88번이나 거쳐야 한다는 숭고한 의미가 담겨 있다. 따스한 밥 한 공기의 모습이든, 쌀가루로 가공한 제품이든 쌀에 담긴 영양과 농업인의 88번 정성에는 변함이 없다. 이제 첫걸음을 뗀 쌀 가공식품에 대해 5000만 국민들의 관심을 기대해본다.

<김병원 | 농협중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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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치적인 것에 대해 애써 외면했다. 국회와 청와대 그리고 정당에서 일했던 경력이 잠시 덮이길 원했기 때문이다. 덮어 둔다고 덮어지는 것도 아닐진대, 2016년 ‘공공의창’이라는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를 만들면서 행여, 과거활동이 발목을 잡지는 않을까 해서였다. 국민의 정치 불신이 크다보니, ‘난 아닌 척’ 벗어나려 했다.

최근 국회의원 특수활동비를 없애라는 국민 목소리가 높았고, 국회는 특수활동비를 전액 삭감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근데 그 결정이 최선이었을까. 국회와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마저도 제도적 하자나 사회적 파장이 큰 문제가 발생할 때면, 개선이나 보완보다는 중단이나 폐지로 결론을 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러한 선택은 여론에 순응하고 가장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여론에 밀려 가장 손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일 수 있다. 예상 밖으로 이러한 결정의 피해자는 대부분 국민이다. 물론 국회는 특수활동비 외에도 전체예산을 지금보다 더 투명하고 책임감 있게 집행해야 한다. 반면 국회는 민의를 대변하는 곳이며, 여느 기관처럼 일을 잘하기 위해선 투자가 필요한 곳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낮은 출산율, 높은 자살률과 고령화지수. 가계부채는 늘고 고용지표는 악화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경제능력, 행정능력, 정치능력 중 정치능력이 가장 미약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다. 정치능력이 미약한 이유는 서구에 비해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탓도 있겠으나, 우리의 정치시스템이 미약해서다. 낡은 정치시스템으로는 경제시스템과 사회시스템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없다. 국회의원 정수의 부족 또는 지역구 일보다 나랏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부족이 낡은 정치시스템 오작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30년간 국민여론이 바라는 정치개혁의 방향은 언제나 슬림화였다. 애초에 작게 만들어 문제를 만들지 않는 것이 낫다고 여긴 탓이다. 여기엔 언론도 크게 목소리를 보탰다. 정치는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한 만큼의 정상적인 체격을 필요로 한다. 슬림화된 정치가 뒷북을 치면,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것 역시 국민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한국사정에서 국회는 국회의원이 소속되어 있는 정당이 주도하는데, 현재 다수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요즘 민주당 지도부 선출을 위한 경선이 한창이다. 이번 주말 새로운 지도부가 선출된다. 그래서 실무적 경험을 토대로 ‘좋은 정치개혁을 위한’ 5가지 방안을 제안한다.

첫째, ‘의원총회 투표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빅 마우스에 의한 당론결정을 줄여야 한다. 의원총회 결정이 당론으로서 민주적 권위를 확보하고 당내분란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전자투표기를 활용하고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기록되어야 한다. 둘째, ‘당론심의위원회’가 필요하다. 당론이 다수의견으로 결정되어야 하는 동시에 당헌이 추구하는 가치가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당론심의과정에서 국민, 당원, 전문가,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도 종합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셋째, ‘합의쟁점승인제도’의 시행이다. 다른 당의 정책일지라도 가치와 정책방향이 일치하는 것이 있다면, 조건 없이 신속하게 처리되어야 한다. 여야정쟁으로 법안을 처리하지 못해 국민이 손해 보는 일을 최소화할 수 있다. 넷째, ‘중앙당과 원내의 운영을 이원화’하는 방안이다. 국회운영은 국회의원 중심의 원내가 역할을 다하고, 중앙당은 전국의 당원관리 및 선거준비에 매진하되 국회의원이 관여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국회활동이 보다 안정되고, 당원은 국회의원을 견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민설득위원회’를 제안한다. 단기적으로는 국민이 손해를 보는 결정 같지만, 장기적으로 꼭 필요한 결정에 대해 국민과 적극 소통하는 채널을 확보하는 일이다. 국민이 동의하지 않은 정책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는 자리인 만큼, 해당 국회의원에겐 무거운 멍에가 될 수 있다. 나의 생각과 다른 여론에 대처하는 방법엔 반드시 단기처방과 장기처방이 동반되어야 한다.

<최정묵 |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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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20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대북 제재 위반 사항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대북 제재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미국 쪽과 긴밀한 협의하에서 진행 중”이라고 했다. 김 대변인은 “연락사무소 설치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사업이며, 남북 간 상시적인 소통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을 촉진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고 했다.

대북 제재 이유가 비핵화를 앞당기기 위한 것이며, 연락사무소 설치도 동일한 목적이기 때문에 위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이어 “우리 정부의 활동과 편의를 위한 목적에만 사무소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며 북한에 경제적 이익을 주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남북연락사무소는 4·27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이고 그 내용이 6·12 북·미 정상회담 합의에도 포괄적으로 계승돼 있다”며 “제재 위반으로 보는 시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행정부 고위 관료가 ‘남북연락사무소 개소가 대북 제재 위반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는 한 국내언론의 보도에 대해 청와대가 입장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이미 넉달 전 판문점선언에서 합의된 사항인 데다 북측과의 협의를 거쳐 개소식 날짜와 운영방안 등이 거의 타결된 이 시점에 청와대가 대북 제재 위반이 아니라는 점을 장황하게 설명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청와대의 설명 외에 추가로 강조돼야 할 점이 있다.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 2375호 27항은 대북 제재가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따른 외교활동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제법적으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는 주권국가의 외교활동에 해당된다. 따라서 사무소 설치·운영에 필요한 유류·발전시설 공급 등 외교활동에 필요한 행위도 유엔의 제재에 저촉되지 않으며 제재 예외를 인정받아야 할 사항도 아니다. 미국의 독자제재도 안보리의 제재 취지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미측 인사가 그런 말을 했다면 트럼프 행정부 일각에서는 남북관계 발전을 비핵화의 장애물로 간주하고 있는 셈이다. 한반도 문제 당사국이자 동맹국을 불신하고,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이 비핵화 이전까지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일체의 행위를 중단하고 대북 압박만 해야 한다는 건지 당사자에게 물어보고 싶다. 이런 시각을 가진 미국 내 관료들이 한·미 공조를 균열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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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20일 의원연찬회를 열고 당이 추구할 새로운 가치와 이념적 좌표를 공개했다. “인적 청산보다는 새로운 보수가치 정립에 집중하겠다”고 다짐한 김병준 비상대책위 체제 출범 이후 한 달 만에 결과물을 제시한 것이다. 김선동 여의도연구원장은 연찬회에서 “가장 큰 핵심 가치로 자유와 민주를 걸기로 했다”고 천명했다. 그리고 혁신가치로는 ‘공정’과 ‘포용’을 내세웠다. 한국당의 환골탈태를 위해선 우선적으로 시대착오적 냉전 이데올로기, 개발독재에서 기원한 강자 위주의 정책, 수구 이념 등에 대한 청산과 단절이 요구되어왔다. 퇴행을 거듭해온 당의 정체성을 시대정신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당위에서다. 하지만 이날 제시된 당의 새로운 가치와 좌표가 그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자유, 민주, 공정, 포용 등은 이미 당의 강령에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 그럴싸하게 포장만 바꿔서 ‘가치 재정립’이라고 외쳐 봐야 울림이 있을 리 만무하다. 특히 공정과 포용이 그렇다. 한국당이 그간 공정과 사회적 약자 포용에 부합하는 정책을 편 기억이 없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다르게 공정과 포용의 가치를 지탱할지, 구체적 비전을 내놓는 게 마땅하다. 기존의 것들에 적당히 분칠해서 내놓은 ‘새로운 가치’는 전혀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20일 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연찬회에서 상의를 벗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북한에 대한 접근에서 선명해지는 이념적 좌표도 어정쩡하다. ‘안전한 평화’라는 애매한 표현을 동원, 본질적 문제를 우회했다. ‘한반도 평화’ 논의가 가히 혁명적 전환 국면에 들었는데도 아직껏 반북, 반공, 안보 제일 등 낡은 이념의 틀을 떨쳐 버리지 못한 결과다. 그러니 이날 연찬회에서도 “그간 당의 이념·가치가 문제였다는 데 동의할 수 없다”는 반론이 봇물 터졌을 터이다.

김병준 비대위의 한국당이 내놓은 새로운 가치와 좌표가 공명 없는 자기들만의 말잔치로 비치는 까닭은 분명하다. 개혁의 요체인 ‘인적 쇄신’이 전혀 수반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는데, 새로운 가치 운운해 봐야 공허할 따름이다. 이날 연찬회에서 ‘자유한국당,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주제로 발제한 박상병 인하대 교수의 지적대로 “인적 혁신 없는 좌표 설정은 추상”일 뿐이다. 그는 “헌정사상 초유의 담대한 인적 혁신으로 구체제 종언을 고해야 한다”고 고언했다. 그렇다.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철저한 인적 쇄신, 한국당 혁신의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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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폭염의 기세가 대단했지만 모두가 똑같이 더위를 느꼈던 것은 아니다. 한 지인은 “주차장에서 주차장으로 옮겨 다녀서인지 더운 줄 몰랐다”고 말했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집에서 나온 뒤 자동차에 올라 에어컨을 켜고, 역시 냉방이 잘되는 사무실로 출근하기 때문이다.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은 같은 날씨를 공유하는 게 당연한 듯싶지만 더위는 사실 그렇게 공정하지 않다. 부자보다 빈자에게, 건강한 사람보다 병자와 약자에게 더 가혹한 게 더위다. 지구온난화로 폭염이 일상화되면서 더위가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세계는 이미 이 같은 위협과 직면하고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는 이번 폭염으로 50여명이 사망했다. 이 중 대다수가 50대 이상으로 혼자 살았으며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았다. 사망자 중 집에 에어컨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통계적으로도 빈곤하고 고립된 사람일수록 더위에 취약했다. 미국의 경우 이주노동자들이 온열질환으로 사망할 가능성은 시민권자보다 3배 더 높았다.   

폭염이 이어진 14일 한 관광객이 서울 청계천에서 발을 담그고 있다. AP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된 집단으로 도시에 사는 저소득층이나 소수인종 등 사회적 약자를 지목하고 있다. 도시는 인구밀도가 높고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에어컨 실외기 등이 합작해 열섬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한적하고 초목이 많은 지역보다 기온이 더 높다. 부유층·중산층 거주 지역은 주변에 정원과 공원 등이 조성돼 있어 초목이 열기를 식혀주지만 저소득층이나 소수인종 거주 지역은 그렇지 않은 경향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가 2017년 내놓은 연구 결과를 보면 미국 내 흑인은 초목보다 아스팔트·콘크리트로 뒤덮인 지역에 살 가능성이 백인보다 52% 더 높았다. 아시아인과 히스패닉도 이런 가능성이 백인보다 각각 32%, 21% 컸다.

이런 환경에서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만 여름을 나야 한다면 더위는 그야말로 고문이다. 이번 여름 낮 기온이 46도까지 올랐던 이집트 카이로의 빈민가 주민들은 영국 가디언 인터뷰에서 “질식할 것 같다” “집이 오븐 같다”고 호소했다. 히잡, 부르카 등을 써야 하는 여성 무슬림들에게 더위의 고통은 배가된다. 카이로 슬럼에 사는 한 여성은 “딸에게 히잡을 두 겹만 두르거나 밝은색 히잡을 쓰라고 항상 얘기한다”고 했다.

이런 사정은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지난달 말 발표한 온열질환자 통계를 보면 65세 이상 온열질환자 중 32%는 길가, 25%는 논밭에서 쓰러졌으나 집에서 온열질환이 발생한 사람도 19%에 이르렀다. 정부는 폭염주의보 발령 등 기온이 치솟을 때면 ‘외출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하지만 냉방 시설을 갖추지 못했다면 실내는 안전한 곳이 아니다.

2014년 영국 공중보건국은 “냉방 시스템을 구비하는 데 상당한 수준의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면 냉방 시스템의 분포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반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취약계층의 더위 해소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장기적 관점에선 지구온난화의 속도를 늦추고 도시의 열기를 식히는 정책이 시행돼야 한다. 싱가포르는 신축 건물을 지을 때 건축 면적 이상 넓이의 옥상 정원을 조성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옥상 정원은 주변 기온을 2~3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 미국 뉴욕에선 ‘쿨 루프’(시원한 지붕)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붕에 햇빛을 반사하는 성질의 페인트를 칠해 건물 온도를 낮추자는 취지다. 로스앤젤레스 시당국은 아스팔트 위에 이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

이제 지구는 도시계획과 주거, 복지 등 생활과 밀접한 정책을 만들 때 기후변화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삶의 질을 제고하고 불평등을 완화하기 어려운 곳이 되고 있다. 한국도 이 같은 관점의 정책 수립이 필요한 때다.

<최희진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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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문 전문(114쪽)을 읽었다. 다섯 가지 키워드를 떠올렸다.

법리. ‘문제적 판결’이 나올 때, 법관들은 법리 뒤에 숨는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조병구 부장판사)에 묻는다. 법리에 따라 판단했는가? 재판부는 ‘위력은 존재했으나 행사되지 않았다’고 했다. 형법 303조 1항은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해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해 위력으로써 간음한 자’를 처벌토록 하고 있다. ‘위력으로써’라 했을 뿐, 위력의 존재와 행사를 구분한 바 없다. 대법원 판례도 다르지 않다.

성폭행 등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 14일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청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위력이 폭행·협박 등 다른 수단을 통해서만 발휘될 수 있다면 위력이 아니다. 존재 자체로 약자를 복종시키기에 위력이다. 물리력이 작용했다면 위력간음이 아니라 강간죄로 기소됐을 것이다. 백보 양보해, 존재와 행사를 구분하는 법리를 받아들인다 치자. 재판부는 “(러시아에서의) 간음 전 단계에서 피고인이 행한 신체접촉은 포옹한 행위뿐이고, 언어적으로는 외롭다고 안아달라고 말한 것뿐”이라며 위력행사가 아니라고 봤다. 하급자라면 상급자의 포옹쯤은 용인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게 법리인가.

질문.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형사사법의 원칙이다. 다만 피고인에게 물어볼 사항은 철저히 물어봐야 한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에게 묻지 않았다. 왜 피해자의 폭로 직후 페이스북에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 입장은 잘못’이라는 글을 올렸는지, 왜 검찰과 법원에선 입장을 바꿔 합의한 관계라고 했는지. 왜 업무용 휴대전화를 검찰에 제출하지 않았는지. 법정에서 신문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최소한 판결문에는 진지하게 질문한 흔적이 없다.

신화. 판결문은 ‘이상적 성폭력 피해자’의 자격을 예시한다. 피해를 입기 전에는 당당하고 분명하게 행동해야 한다(“고개를 떨구고 ‘아니요’라는 말을 중얼중얼거렸다는데, 피고인이 거절 의사를 인식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 어렵다” “미투 운동의 가치에 반한다고 언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피해를 입은 뒤에는 취약해져야 한다. 한밤중 지인에게 연락해 울고불고하거나(“새벽 통화내역을 보면, 피해를 호소한 연락은 보이지 않는다”), 직장 업무도 포기해야(“사건 발생 직후 피고인이 좋아하는 순두부집을 물색하려 애쓴 점”) 한다. 재판부는 가공의 피해자상을 설정한 뒤 김지은씨가 여기에 들어맞지 않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피해자다움’이란 신화에 매몰된 결과다.

오남용. 재판부는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만큼 성숙한 사람이라는 점을 무죄 근거로 삼았다. 개념의 오용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권리주체가 행사해야 하는 게 아니라, 타인이 존중하고 사회가 보장해야 하는 권리다. 원치 않는 성관계를 ‘맺지 않을’ 권리를 넘어 ‘요구받지 않을’ 권리까지 포괄한다. 재판부는 가장 명료해야 할 형사판결문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개념어를 끌어들였다. 그것도 25차례나 남용했다.

내재적 접근. “피고인이 ‘미안하다’라고 말하고 문자를 보낸 취지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저의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도지사와 비서라는 지위와 20살 이상 나이 차에서 오는 죄책감에 따른 사과라고 볼 측면도 없지 않다.” “피해자는 차량 탑승 시 피고인 옆 좌석에 앉도록 지시받았다고 진술했는데, 거리를 가깝게 함으로써 피해자 위상을 격상시키는 조치로 볼 수 있다.” 이쯤 되면 법관에게 허용되는 자유로운 심증 형성 차원을 넘어 피고인에 빙의한 수준 아닌가.

재판부는 ‘노 민스 노’(No means No·거부해도 성관계하면 강간) 룰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법이 있었다면 재판부가 피해자 손을 들어줬을까. 판결문에 드러난 젠더감수성에 비춰보면 그랬을 가능성은 낮다. 재판부는 고민과 학습이 부족했고, 관성적으로 판단했다. 입법 탓은 책임 회피다.

시민은 법원에 혁명적 상상력을 기대하지 않는다. 상식적 판단을 바랄 뿐이다. 지난 18일 ‘성폭력·성차별 끝장 집회’에서 분노한 여성들을 만났다. “직장에서 상사들의 성폭력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데, 법원은 세상에 그런 일이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판결한 거죠.”(윤모씨·37·프리랜서) “위력은 존재하나 행사되지 않았다고요? 말장난 아닌가요?”(문지영씨·34·회사원)

미국 법학자 프레드 로델은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에서 말했다. “부족 시대에는 주술사가 있었다. 중세에는 성직자가 있었다. 오늘날에는 법률가가 있다. 어느 시대에나, 기술적 수법에 뻔뻔하고 그럴듯한 말장난을 첨가해, 인간 사회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던 영특한 무리들이 있었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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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더워서 울고 싶은 날씨. 운다고 봐줄 날씨(氏)가 아니다. 그이도 저 넓은 공중을 어찌 혼자 감당하겠는가. 추위든 더위든 나에게 와닿는 이 마지막 정황을 보이지 않는 그 양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겠다. 최근 궁리에서 펴낸 책의 역자 소개의 한 대목을 소환해 본다. “내가 깨끗해질수록 세상이 더러워진다, 라고 생각한다”(노승영). 그뿐이겠는가. 작년에 내가 버린 플라스틱이나 비닐이 이 세상이 더워지는 것과 무관치 않으리라.

그림ⓒ이해복

아주 오래전, 한반도가 빙하기였던 때 북방계의 식물들이 한반도에 대거 자리 잡았다. 그러다가 지구온난화가 서서히 진행되면서 모두들 북으로 돌아갔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몇몇은 지리, 설악, 한라 등 고산지대의 꼭대기로 피신했다. 백두산 근처의 흔하디흔한 나무들이 남한에서는 높은 곳에서만 어렵게 명맥을 유지하는 까닭이 이런 내력에 근거한다. 유례가 없는 올해의 더위 속에서 그 꼭대기 식물은 아무리 몸을 낮춰도 하늘로 옮겨갈 수는 없다. 이제 또 어디로 쫓겨나야 하는 것일까.

꽃들이 생존압력에 직면한 것처럼 폭염에 눌린 사람들의 마음도 최고치를 경신하는 아라비아 숫자를 앞세우고 낯선 경지를 체감해야 했다. 이윽고 더위야 물러나가기는 하겠지만 식물들이 산꼭대기로 간 것처럼 그 마음들은 어느 곳으로 도피했던가. 그 도망갔던 평상심은 제자리를 찾아올 수 있을까. 자신도 짐작할 수 없는 사태 앞에서 예전보다 더 빨리 끓고 더 낮은 온도에 얼굴을 붉히는 마음의 생태계로 변한 건 아닐까.

당분간 비 소식이 없다는 뉴스를 듣다가 강원도 쪽의 하늘을 보면서 선자령 근처에서 본 제비동자꽃을 떠올렸다. 이름에서부터 사람 냄새가 물씬 나기에 그 안부가 더욱 궁금해지기도 했던 것이다. 높은 산 습지에 아주 드물게 자라는 귀한 꽃, 제비동자꽃. 꽃잎 끝이 제비 꼬리처럼 날렵하게 갈라지고 긴 대궁 끝에 한 문명을 이룩한 듯 오묘한 세계를 얹어두었다. “발목에 찰랑대는 물기를 잃어버리고 갈 곳 몰라 허둥대는 제비동자꽃의 찢어진 꽃잎에 지칠 대로 지친 8월의 마음을 착잡하게 얹어둔다.” 제비동자꽃,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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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颱風)의 한자 ‘태(颱)’자가 중국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1634년 출간된 <복건통지(福建通志)>(56권 土風志)에서다. 태풍을 일컫는 영어 ‘typhoon’은 그보다 앞선 16세기 영국에서 그 흔적이 보인다. 옛날 중국에서는 회전하는 바람을 통틀어 구풍(구風)이라고 했는데 이 말이 아라비아에 전해지면서 tufan(뱅글뱅글 돈다는 뜻)으로 바뀌었고, 다시 typhoon으로 발전한 것으로 어원학자들은 추정한다. 태풍의 속성이 회전이라는 점을 동서양이 일찍부터 간파하고 있었던 셈이다.

21일 오전 10시 기준 태풍정보. 기상청 제공

태풍은 거대한 공기의 소용돌이다. 열대지방에서 공기가 기압이 낮은 중심부를 향해 시계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면서 빨려들어가 발생한 ‘열대성 저기압’이 곧 태풍이다. 해상의 고온다습한 공기가 상공으로 올라가고 이때 수증기가 응결하여 거대한 적란운이 형성되면서 많은 비가 내린다. 수증기가 응결해 구름방울이 될 때 방출되는 에너지가 큰 폭풍을 만들고, 나아가 소용돌이를 유지하는 것이 태풍의 메커니즘이다. 태풍은 대개 북서쪽으로 가다 전향점에서 북동으로 진로를 바꿔 포물선 형태로 진행한다. 태풍의 오른쪽 반경에 든 지역의 피해가 큰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1994년 여름 한반도 주변 태풍들은 통상적인 태풍과 거리가 멀었다. 올해와 같은 무더위 속에 태풍들은 예측불허의 갈지(之)자 행보를 보였다. 북상 중 세력을 잃는 듯하다가 다시 힘을 얻는 등 끈질긴 생명력을 보였다. 뜨거워진 바다가 죽어가는 태풍에 새 에너지를 불어넣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태풍은 방향을 바꿔 남해안에서 한참 배회한 경우도 있었다. 별 피해 없이 무더위를 몰아내고 가뭄을 해소했다고 해서 ‘효자 태풍’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북상 중인 19호 태풍 솔릭의 형세가 심상치 않다. 중형급 태풍으로 6년 만에 한반도를 관통한다고 한다. 22일 밤 제주를 거쳐 23일 새벽 목포로 상륙했다가 24일 새벽 속초 쪽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기상청은 강풍과 너울, 그리고 제주와 남해안, 지리산에 최대 400㎜ 폭우를 예보했다. 급격히 세력이 약화되거나 진로를 바꿀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한다. 무더위에 효자 태풍을 기다렸더니 고약한 놈이 오고 있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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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은 먹이, 짝, 사회적인 지위처럼 생존에 유리한 보상을 추구한다. 효용이 큰 보상을 잘 획득하는 개체 또는 종족일수록 번성하기 유리해진다. 보상을 추구하는 행위와 관련이 깊은 뇌 속 물질은 도파민이다. 도파민 신경세포는 예상보다 큰 보상이 주어질 때 발화해서, 예상보다 큰 보상이 주어지는 행동을 실행하고(동기), 나중에도 이 행동을 실행할 확률이 높아지도록(학습) 이끈다. 그래서 도파민은 어떤 행동을 할지 선택하고, 학습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학습된 행동을 오래 반복하면 습관이 되는데 도파민은 습관의 형성에도 관여하고 있다.

메틸기가 붙어 뭉치고(왼쪽), 아세틸기가 붙어 흩어진 뉴클레오솜들. 위키미디어 커먼스

■ 도파민과 중독

동기 부여, 학습, 습관의 형성은 중독성 물질에 대한 갈구, 반복, 습관화와도 관련이 깊다. 그래서인지 알코올, 니코틴, 카페인, 마약류 약물들은 모두 도파민 회로에 작용한다. 특히 코카인과 암페타민은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고, 분비된 도파민을 회수하는 과정을 방해, 신경세포에 작용하는 도파민 농도를 직접 높인다. 마약성 약물들은 장시간(예: 1시간)에 걸쳐 서서히 올라갈 때보다는 단시간(예: 10분 이내)에 흡수될 때 중독 위험이 커진다.

빠른 속도로 농도가 높아진 도파민은 이런 상황을 유발한 행동(중독성 물질의 섭취)이 일어나게 하고, 다음에도 이 행동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지도록 시냅스의 세기와 유전자 발현 패턴을 바꾼다. 코카인을 예로 들어보자.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 이중 나선은 핵 안에 아무렇게나 욱여넣어져 있지 않다. 그림처럼 히스톤이라고 하는 단백질을 1.75바퀴씩 감고 있는데, 히스톤과 히스톤을 감고 있는 DNA를 뉴클레오솜이라고 부른다. 세포 안쪽은 물이 많은 환경이기 때문에, 히스톤에 물을 싫어하는 성질을 가진 메틸기를 추가하면 뉴클레오솜끼리 뭉쳐서 물과의 접촉면을 줄인다. 이렇게 뉴클레오솜들이 뭉치면 안쪽에 있는 유전자에 접근하기가 어려워져서, 안쪽 유전자들은 좀처럼 단백질로 발현되지 않는다(왼쪽 그림 참고). 반면 히스톤에 물을 좋아하는 성질을 가진 아세틸기를 추가하면 뉴클레오솜들이 흩어져서, 이 근처의 유전자들이 발현되기가 쉬워진다 (오른쪽 그림 참고). 이렇게 히스톤에 메틸기나 아세틸기를 추가하는 과정을 통해서 유전자의 발현 패턴이 조절된다. 코카인은 측좌핵 등 몇몇 영역에서 유전자 발현 패턴을 조절하고 시냅스의 세기를 변화시켜, 중독된 물질을 연상시키는 자극(예: 주사기)을 보았을 때 갈망이 일어나고, 중독된 물질을 섭취하는 행동이 습관처럼 자동적으로 일어나게 만든다.

■ 적응하는 뇌

뇌는 평생토록 변화하는 기관이며 적응력이 대단히 탁월한 기관이다. 움직임을 시작하기가 어려워지고 동작이 느려지는 질환인 파킨슨병을 예로 들어보자. 파킨슨병은 도파민 신경세포가 죽어갈 때 생긴다. 도파민 신경세포가 움직임을 일으키는 데 기여하기 때문에 도파민 신경세포가 없어지면 움직임을 시작하거나 빠르게 움직이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놀랍게도 파킨슨 증상은 도파민 신경세포가 약 80%나 사라진 뒤에야 나타난다. 도파민의 감소에 맞춰 신경계가 적응하기 때문에 도파민 세포의 절반 이상이 사라질 때까지도 증상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중독성 물질을 섭취해 도파민의 농도를 급격히 올리는 경우에도 뇌는 탁월한 적응성을 발휘하여 항상성을 회복하려고 애쓴다. 그 결과 내성과 금단증상이 생긴다. 나는 카페인 중독이어서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머리가 아프고 멍하고 짜증이 난다. 금단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한창 바쁠 때는 잠을 줄이려고 커피를 점점 더 많이 마시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내성이 생겨서 아무리 마셔도 예전만큼 잠이 깨지 않고 피곤하기만 한 상황에 처하곤 했다. 이럴 때 갑자기 커피를 뚝 끊으려고 하면 금단증상 때문에 끊기가 어렵다. 조금씩 양을 줄이면서 뇌가 적응하게 하는 쪽이 훨씬 더 수월하다. 반 잔을 줄이고 일주일 정도 적응하고, 다시 반 잔을 줄이고 일주일 정도 적응하는 방식이다. 불편하다고 도중에 섭취량을 더 늘리지만 않는다면 이런 방식으로 비교적 쉽게 커피를 줄일 수 있었다.

■ 얄팍한 의지와 다채로운 보상

담배도 끊기 어렵기로 악명 높지만, 중독성 마약류는 정말 끊기 어렵다. 충동을 억제하는 전전두엽의 활동이 감소해서, 약물에 대한 충동을 자제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혹자는 원시 시절부터 진화한 보상 체계가 마약에 속아서 중독되므로 문명인의 지성과 의지로 극복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중독되지 않은 대다수 현대인들도 의지가 약하다. 3일 만에 새해 다짐을 포기하는 일을 수십년째 반복하고 있으며 다이어트에 종종 실패한다. 그래서 박약한 의지를 더 약하게 만드는 중독성 물질은 호기심에라도 시도하지 않는 쪽이 속 편하다.

요즘에는 도박, 게임, 쇼핑, 만화, 폭식에 빠진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행동도 중독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으며, 실제로도 약물 중독과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약물이든 비약물성 중독이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중독에 빠지기 쉬우며, 한시적으로 멈췄다가도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처하면 재발되기 쉽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도파민은 보상을 추구하는 회로다. 보상이라고 하면 흔히 감각적인 쾌락만을 떠올리지만, 성취감, 희망, 이해받고 통하는 느낌, 자연에 대한 교감, 안전 등 여러가지가 삶에 동기를 부여하고 색채를 더하는 보상이 된다. 생명체는 자신에게 유익한 보상을 추구하며 진화해왔다. 심지어 어리석어 보이는 쥐조차, 달기만 하고 칼로리는 없는 사카린에 대해서는 설탕에 대해서만큼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자기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기뻐할 수 있는 개인과 사회에서는 중독도 줄어들지 않을까.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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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준을 하나 만들었다. 순전히 나 개인의 기준이니 타인에게 구속력은 없다. 다만 내가 관여하거나 참여할 수 있는 한 이 기준을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한다. 포럼·강의 등 각종 행사나 영화·TV프로그램, 이런저런 미팅을 포함해 회의나 각종 위원회까지 영역은 다양하다. 원칙은 딱 하나다. 여성이 일정 비율 이상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이 한 명이라도 섞여있지 않으면 ‘보이콧’한다. 방송이면 채널을 돌리고 영화는 보지 않으며 강의나 세미나도 패스한다. ‘스크린 쿼터제’와도 비슷한데 나만의 ‘인생 극장’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여성 쿼터제다.

물론 생물학적 성별로만 이러한 기준을 들이대는 게 불편할 수도 있다. 나 역시 ‘여성이라고 다 같은 여성은 아니다’라는 입장이었지만, 질을 따지기에는 기초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니 어찌하랴. 처음에는 전체 구성원 중 여성이 딱 한 명인 경우에도 배제했는데, 그렇게 하다보니 탈락 비율이 너무 높아져서 할 수 없이 기준을 조금 완화했다.

업계 특성이 무엇이든 발언권을 얻는 사람들은 대체로 40대 이상 남성들이다. 이렇다보니 ‘여성 쿼터제’를 지키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나마 회의나 포럼 같은 자리에서는 최소한 형식적으로라도 남녀 비율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추세라는 게 위안이다. 하지만 방송이나 영화는 여전히 여성이 한 명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흥행하거나 주목받는 콘텐츠인데도 여성이 전무한 경우가 이렇게 많다니! 백번 양보해 여성이 등장한다 하더라도 한정된 역할이거나 소비되는 캐릭터거나 가장 어리다.

이 이야기를 꺼내면 주변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요즘 시대에는 당연하지’라는 호응이 하나, ‘무슨 소리인지 알겠는데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구느냐’는 타박 겸 핀잔이 또 하나다. 그럴 때 나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 이야기를 꺼낸다. “사람들은 제게 묻습니다. 여성 대법관이 몇명이 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전 이렇게 답하죠. 9명 모두요. 사람들은 놀랍니다. 하지만 미국 역사상 대법관 9명은 모두 남자였죠.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죠.”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인 이 멋진 선구자의 대답은 후자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데 효과 만점이다. 하지만 꼭 따라붙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여성을 부르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부를 사람이 없어”라는 푸념이다. 내 대답은 “기획자가 게으르거나 미처 알지 못했거나, 아니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니 잘 찾아보시라”로 끝난다.

영역을 막론하고 여성의 운동장은 애초부터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한국 사회는 남성의 실수에 너그럽지만 여성의 실수에는 유독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 같은 불법촬영 사건에 법원이 내린 판결이 얼마나 달랐는지 기억할 것이다. 범죄에만 그런 것도 아니다. 남자 아이돌과 여자 아이돌의 실수에 언론사들이 어떤 헤드라인으로 반응하는지 생각해보면 답은 분명하다. ‘아이돌’을 ‘직장인’으로 바꾼다고 해도 현실은 비슷하다. 그러니 애초에 직위나 경력 등의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 누군가를 찾아내고 기회를 준다는 이야기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

실제로 나는 ‘사라진 여성들’에 대해 아주 많은 예를 들 수 있다. 직장이 없어서, 직장을 오래 못 다녀서, 나이가 어려서 등등 이유는 많지만 가장 큰 결격사유는 바로 ‘여성’이었다. 그러니까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괜찮은 기획자라면 당연히 이런 현실을 감안하고 어떤 식으로든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 쿼터제는 최소한의 보루인 셈이다. 젠더 감수성 역시 기획자, 제작자, 언론인 등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모든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요소다. 하지만 딱 한 명이면서 여성 출연자가 생겼다고 자랑하는, 아저씨들로만 가득한 방송이 신규 편성되는 현실을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래도 기대한다. 이 기준을 들이대지 않아도 마음 편히 TV 예능이나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그날을….

“여성이 두 명이구나. 그런데 두 사람이 비슷하지 않아. 항상 같은 편에 서는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어찌 됐건 여성이 둘이야.” 대법원의 유일한 여성동료였던 샌드라 데이 오코너 미국 최초 여성 연방대법관의 존재에 대해 긴즈버그 대법관이 말했던 것처럼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더 많은, 더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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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 끝나간다. 이번 방학에도 초등 저학년 자녀를 둔 맞벌이 부모들은 아이들의 ‘밥’ 때문에 속을 끓였다. 학교에서 방과후교실을 운영하지만 방학 중엔 급식이 제공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아이를 점심밥 챙겨주는 학원에 보내거나, 아파트 상가 식당에 월식을 끊는 등 아이들의 끼니를 해결할 방법을 각자 찾아야 했다.

저소득층 아이들도 학교급식이 끊긴 방학에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쉽지 않다. 한 끼당 4000~5000원가량 지원되는 급식비로 선택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편의점 도시락 정도다. 식당에 가더라도 급식카드 사용이 가능한지부터 물어야 하는 상황은 아이들을 주눅들게 만든다.

아이들의 ‘밥’은 이 사회의 부실한 돌봄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다. 식사란 끼니를 때우는 것,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서는 행위다. 아이들이 ‘눈칫밥’을 먹는 사회는 기본적인 생존을 안심할 수 없는 사회, 서로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사회를 뜻한다.

2013년부터 일본에는 ‘어린이식당’이 생겨났다. 처음 어린이식당이 생긴 곳은 도쿄의 한 채소가게였다. 동네에 제때 밥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주인이 가게 한쪽을 활용해 저녁식사를 제공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가정 해체 등으로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아동이 늘고 빈곤아동대책법이 제정되면서 어린이식당은 일본 전역에 자발적으로 퍼져나갔다. 빵집, 카페, 마을주민센터, 생협, 개인주택 등 현재 2200여곳에서 열고 있는 어린이식당의 연간 이용자 수는 1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기존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재생산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확산성이 높다. 엄마들과 지역 상인 등 주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며 민과 관의 협력으로 사회적 돌봄을 회복하고 있다는 점은 더욱 눈여겨볼 만하다.

‘한 끼 식사’를 목표로 시작했지만 일본의 어린이식당은 단순한 식사 제공을 넘어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하교 후 안심하고 찾아갈 곳이 생겼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와 숙제도 봐주고 함께 놀아주면서 건강한 식사와 함께 안전한 돌봄도 가능해졌다. 홀로 사는 노인들, 늦게 퇴근한 직장인, 육아에 지쳐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힘든 엄마들이 찾아오기도 하는 등 이곳을 이용하는 층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2년 전, 잡지 ‘민들레’에 일본의 어린이식당 기사를 싣고 나서 제주시 독자들이 아파트 단지에 있는 육아 공간을 활용해 어린이식당을 시작했다. 최근엔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도 어린이식당을 열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한 달에 한 번 마을특화사업으로 추진하는 이 어린이식당은 구의 예산과 지역사회 시민들의 자원봉사와 후원으로 꾸려지고 있다. 올해 3월 문을 열었는데 매번 50~60명의 어린이와 청소년, 주민들이 이용하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금세 겨울방학이 돌아오고, 부모들은 다시 아이들의 돌봄을 고민할 것이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돌봄 공백을 막기 위해 초등학교 저학년의 수업시간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지만, 당사자인 아이들 입장에서 정말 필요한 돌봄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일본처럼 우리나라에도 곳곳에 어린이식당이 생기면 어떨까. 서로의 끼니를 걱정해주고, 바쁜 부모를 대신해 동네 아이들을 함께 돌보면 어른들의 삶도 조금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다.

<장희숙 |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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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벌레와 풀의 생육이 멈춘다는,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렇게 덥다가도 양력 8월23일쯤 처서(處暑) 무렵이면 더위가 한풀 꺾여 주저앉으며 새벽엔 잠자리마저 선득합니다. 기온이 떨어지며 풀들도 한해살이를 마감하게 되는데, 풀꽃이 이울고 비틀려 돌아가는 걸 의인화해서 울며(泣) (땅속으로) 돌아간다(歸)고 재치 있게 표현한 속담이지요.

그리고 이때부터 무르던 씨앗이 차츰 영글기 시작하므로 처서가 지나고 얼마쯤부터 슬슬 벌초가 시작됩니다. 풀이 생장을 멈추고 풀씨가 덜 영글었을 때 벌초하면, 풀이 더 자라지 않아 성묘 때 웃자란 풀을 만나지 않으며 영글지 못한 씨는 다음해 봄에 풀싹을 내지 못해 일거양득이니까요.

벌초는 제사처럼 매우 중요한 일이라서 옛날에는 일가친척이 한날한시 집결해 성들을 공략하듯 낫 하나 인해전술로 집안의 봉분들을 하나씩 깎아 나갔지요. 예초기의 등장으로 품이 줄어 요즘은 적은 인원으로 벌초가 가능해졌다지만, 제각기 바빠서 시간 맞추기 어려운 시절이다보니 날짜 잡는 게 더 큰일입니다. 묘지기에게 벌초사래(벌초 값으로 부쳐 먹는 논밭) 주던 옛날마냥 알바를 구해 지번을 일러주고 결과를 사진으로 받아보지만, 남의 손에 맡긴 죄스러움과 처삼촌 묘에 벌초하듯 한 건 아닌가 싶어 이 편한 세상이 송곳자리입니다.

매장보다 화장과 수목장이 늘어나는 때입니다. 좁은 국토를 생각하는 마음보다는 묘소를 관리할 후손과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겠지요. 조상을 기리고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 후손의 마땅한 마음가짐이겠지만, 벌초 때 다가오면 전화기 너머로 바쁘다 울어든 얼굴과 ‘그럼 어쩌냐’ 한숨이 엇갈립니다. 후손 고생으로 대우 받자는 조상은 없을 겁니다. 조상님 오셔서 ‘그간 애썼다’ 웃으며 돌아가시게, 잡초 질 묘역, 이번 대에 정리하는 것도 윗사람으로서의 음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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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가 정의를 세우지 않고 성폭력에 대한 편견을 세웠다. 8월14일 ‘안희정 전 지사 성폭력 사건’ 1심 선고는 피고인을 심판하지 않고 피해자를 심판한 부정의한 판결이다. 업무상 위력을 작동시키는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해석할 의지와 역량이 없음을 이번 판결은 보여준다. 페미니즘 대통령을 선언한 대한민국 정부에서 사법부가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수많은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사건’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8월16일 (출처:경향신문DB)

재판부는 “정상적 판단력을 갖춘 성인남녀” 간에 성적자기결정권 침해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성적자기결정권이 모두 국민에게 동일하게 주어지고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일까? 노동권, 교육권, 참정권 등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은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실현되어 왔는가? 피해와 차별을 경험한 사람의 위치에서 권리가 실현되도록 싸워야 하는 현실이다. ‘왜 성적자기결정권을 명확하게 행사하지 않았는가’란 질문은 경사로 없는 투표소를 만들어 놓고 장애인에게 ‘참정권 보장하는데 왜 투표 안 해’라고 질문하는 것과 같다. 피해자는 성폭력이 일어난 다음날에도 피해 사실을 표현하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처지에 있는 여성 노동자였다. 24시간 언제든 대기해야 하는 수행원, ‘맥주, 담배’ 단어만으로 지시가 가능한 권력. 일상적으로 안 전 지사가 수행원들과 맺은 업무관계는 권위적이었다. 공무수행이란 명목으로 수행업무라는 ‘일’은 공사, 시간, 장소 구분 없이 안 전 지사가 원하는 때와 방법으로 요구되었다. 그것이 수행원의 역할이자 역량으로 평가되었을 것이다. 물리적 폭력 없는 위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용허가제로 사업주 동의 없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는 이주여성이 사업주의 성폭력을 신고할 수 있는가? 거주시설 원장이 가해자인 경우 장애여성은 저항하기 쉬울까? 성별 권력은 수많은 불평등과 함께 작동한다.

정상적 판단능력은 개인들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이 아니다. 웃으며 거절해도,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해도, 거절할 수 없는 위치에서 보이는 난처함도 그것이 거절의 메시지임을 상대방이 받아들여야 한다. 결정권을 행사해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판단능력은 무용지물이다. 피해자의 판단능력이 아니라 거절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능력을 가해자들에게 질문해야 한다. 한편으론 장애인 피해자에게 판단능력 없음이란 기준을 쉽게 적용한다. 피해자다움에 장애를 대입시킴으로써 성적자기결정권의 ‘보호’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은 성적 주체성을 제한하고 차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의 성적자기결정권은 어떤 방식으로든 피해자다움이란 요건을 갖춰야 보호법익이 작동된다. 피해자를 믿지 않고 피해자다움을 믿는다.

이미 기울어진 저울에 서서 시작된 재판. 가해자 편에서 피해자에게 질문하기를 중단해야 부당한 판결을 끝장낼 수 있다. 그러나 수십년이 지나도록 사법부가 성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낮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성폭행 가해자인 스타 수영선수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애런 퍼스키 판사를 주민투표로 해임시켰다. 판사소환제도가 없는 한국에선 어려운 일이지만, 사법권력의 관점과 판단의 변화를 촉구하는 싸움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시기다.

무엇보다 다시 태어나겠다는 안 전 지사의 말은 끔찍하다. 처벌과 반성 없이도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권력과 권세를 가진 자들의 공모가 무죄를 만들었다.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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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행태가 심상치 않다. 촛불민심은 이미 잊은 듯하다. 개혁에 앞장서도 모자랄 판에 개혁과제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얄팍한 계산을 튕기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의 말조차 무시하는 듯하다. 여당이 맞는지 의문스럽다.

지난 8월16일 문재인 대통령과 5당 원내대표가 회동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제도 개혁 얘기를 먼저 꺼냈다. 본인이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 개혁을 그 누구보다 일찍 주장해 왔고, 2012년 대선과 작년 대선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공약으로 제시했다는 것을 환기시켰다. 또한 3월에 발의했던 대통령 개헌안에도 그런 내용을 담았다며, “비례성과 대표성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서 대통령 개인적으로는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먼저 선거제도 개혁 얘기를 꺼낸 것은 파격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런 대통령의 발언에 화답한 것은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원내대표들뿐이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침묵했다고 한다. 과연 여당에 개혁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날의 행태만이 아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민주당 대표 경선에 나온 후보들의 발언도 수상하기 짝이 없다. 후보들 중에 송영길 후보만이 야당들과 협력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겠다는 뜻을 명확하게 밝혔을 뿐이다. 나머지 후보들은 엄밀하게 해석하면 ‘하지 말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이해찬 후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선거제도 개혁은 개헌과 같이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런데 지금 개헌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은 ‘2020년 총선 전에는 개헌 논의를 하지 말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두 얘기를 조합하면, 결국 지금은 선거제도 개혁을 하지 말자는 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김진표 후보도 언론 인터뷰에서 선거제도 개혁만 따로 할 수는 없다면서, 올해 내에는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어렵다고 얘기했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올해 하반기가 선거제도를 개혁할 수 있는 적기라고 주장하는데, 김진표 후보는 올해는 시기가 아니라고 하니, 이것 역시 하지 말자는 얘기다.

사실 정치권 주변에서는 민주당이 사실상 선거제도 개혁을 안 하려 한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2015년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당론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말로는 반대하지 않는 것처럼 위장하지만, 실제 속마음은 반대라는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을 하지 말자는 얘기는 지금과 같은 국회, 지금과 같은 정치를 그대로 두자는 얘기다. 의정활동에는 관심이 없고 특권만 누리려고 하는 국회, 우리 삶의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안될 뿐만 아니라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정치, 선거에서 이기면 독주하려 하고 선거에서 지면 ‘발목잡기’로 일관하는 정치. 이런 엉터리같은 국회, 비생산적인 정치를 그대로 두자는 것이다. 이것이 ‘촛불민심’과 ‘적폐청산’을 얘기하는 정당이 취할 태도인가? 

그리고 이것은 배신이다. 자기 정당 대통령 후보의 공약에 대한 배신이고, 그것을 믿었던 유권자들에 대한 배신이다.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감수할 수 있다’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배신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지금처럼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좋은 여건이 만들어진 때도 없었다.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대로 전체 국회의석을 배분함으로써 1표의 가치를 동등하게 하고, 정당들이 정책경쟁에 몰두하게 하자는 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의 핵심이다. 그러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늘 자유한국당(전에는 새누리당)의 반대로 좌절되어 왔다. 그런데 6·13 지방선거 이후에는 한국당조차 반대는 하지 않는 태도로 돌아섰다. 이런 좋은 시기를 놓친다면, 정말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선거제도 개혁만이 아니라 모든 정치개혁 과제에 소극적인 것이 지금 여당의 태도이다.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만 하더라도, 민주당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다 정의당과 바른미래당이 반납하겠다고 압박하고,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마지못해 폐지 방향으로 돌아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개혁 앞에 미적대는 이상 지지율 하락은 계속될 것이다.

해법은 간단하다. 지금이라도 민주당이 나서서 야당들과 협상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하면 된다.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문제가 있지만, 이것 역시 대안을 갖고 국민들을 설득하면 된다. 국민들이 싫어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과도한 특권이다. 따라서 특권을 없애고, 그렇게 절감한 예산으로 국회의원을 늘린다면 국민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이번에 특수활동비를 대폭 삭감했듯이, 국회의 다른 낭비되는 예산을 삭감하고 국회의원들의 과도한 연봉(수당 포함 연간 1억5000만원)과 개인 보좌진 규모(1인당 9명)도 줄이면 된다. 그렇게 해서 현재의 국회 예산을 동결한 상태에서 360명 정도로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올해를 넘기면 개혁은 어려워진다. 아마 민주당 내부에도 개혁에 적극적인 국회의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조용하다. 우선은 그들부터 침묵하지 말고 목소리를 내기 바란다. 그래서 민주당이 개혁의 편에 설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민주당은 반개혁세력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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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27일 교육부는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안을 확정해 고시했다. 이번 개정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가 확정됨에 따라 새로운 교과서를 집필하기 위해 교육부가 내놓은 후속조치였다. 그런데 이 고시가 발표되기 하루 전인 7월26일 교육부 교육과정심의회 역사과위원회 명의의 긴급 성명서가 나왔다. 교육과정심의회 역사과위원회는 대통령령 제26844호에 의거해 설치된 교과별위원회로서 역사과 교육과정에 대한 실질적인 최종 심의기구이다. 성명서는 7월23일 언론을 통해 보도된 교육부가 고시하고자 한 역사과 교육과정 내용이 역사과위원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수정된 점을 문제 삼았다.

교육부가 합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수정한 부분은 ‘민주주의’라는 역사 용어였다. 이것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수정한 것이다. 이 용어는 교육과정평가원이 교육과정 시안을 마련하고 교육과정심의회 역사과위원회가 심의하면서 단 한 번도 문제가 된 바 없었다. 오히려 역사과위원회는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세계사부터 한국사까지 넓고 깊은 역사 이야기를 쉽고 간결하게 담기 위해 더 많이 논의했다. 또한 지난 박근혜 정부가 법정고시 기간 1년6개월을 지키지 않고 1년으로 단축하며 국정 역사교과서를 강행했던 절차적 불법행위를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해, 휴일에도 심의 회의를 할 정도로 교육부의 절차를 도왔다.

교육부의 보도자료에 대해 역사과위원회가 성명서로 비판하자, 교육부도 심의 절차에 문제가 있었음을 사과하며 해명에 나섰다. 절차를 무시하고 역사교육을 정치 도구화했던 2011년 자유민주주의 파동, 2015년 개정교육과정 강행과정에서 보여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그대로 재현해 놓고 용서를 구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한편으로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교육부는 태연히 7월27일 법정고시를 강행했다.

법정고시 이후 교육부는 더욱 적극적으로 해명하기 시작했다. 마치 이런 사태가 있을 것을 예상하고 나중에 설명해서 넘어가면 된다는 식이었다. 교육부에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교육과정심의회 역사과위원장 사퇴 의사를 전달했다. 합법을 위장한 불법의 타성에 젖어 있는 교육부에 대한 경고였다. 그러자 교육부는 교육과정정책관이 직접 학교로 찾아오고, 차관, 나중에는 장관과의 면담 자리를 마련한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면담 자리에 가서 해명을 듣는 것으로 이 사태가 끝난다고 봤는가. 이때 오버랩되며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교육부에 대한 역사국정교과서진상조사위원회가 진상조사 결과 교육부 관계자의 위법행위를 제기하자, 교육부는 위원들에게 해명하는 것으로 결국 자기 식구들 감싸기로 끝낸 사건이다.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국민들에게는 절차, 법을 혹독히 들이대면서 자신들의 불법에는 왜 그리도 무감각할까.

촛불시민혁명 이후 전 세계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놀라움을 표현했다. 그것은 묵묵히 절차를 밟아 민주주의를 실천한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존경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의 공무원들은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미래세대를 위한 역사교육에서 민주주의적 절차를 지키지 않은 교육과정을 배우라고 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이런 식이라면 이후 역사교과서의 검정과정에서도 똑같은 일이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지원 | 전 교육과정심의회 역사과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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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위층엔 킹콩이 산다>라는 어린이 책이 있다.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 흔히 벌어지는 층간소음 문제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풀어낸 책이다. 조금만 뛰어도 쏟아지는 어른들 꾸지람 때문에 속에서 들끓는 ‘킹콩’을 꾹꾹 눌러 잠재워야 하는 아이가, 위층에 사는 또 다른 ‘킹콩’을 알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아래윗집 사이에서조차 교류와 소통이 단절되고 이해와 배려를 키울 기회를 갖지 못해 벌어지는 갈등과 적대감을 아이들은 상상 속의 ‘킹콩클럽’을 결성하여 나름 슬기롭게 해결한다.

어느 시인은 10분 안에 층간소음을 영원히 없애는 비결을 소개한 적이 있다. 위층에서 발 구르는 소리가 심할 때 과자봉지나 아이스케이크를 사들고 윗집 벨을 누르는 것이다. “이 집에 개구쟁이 아이가 있나봐요? 어떤 녀석인지 이거라도 주려고요.” 그렇게 아이 얼굴을 확인하고 나면, 그날부터 신기하게도 층간소음이 싹 사라진단다. 소리가 들리면 ‘아, 요놈이 자지도 않고 또 뛰는구나. 개구쟁이 녀석…’ 한다는 것.

내가 어렸을 때는 동네에 꼭 한 명씩 거지가 살았다. 동네 바깥 산비탈에 움막 정도는 파고 살았는데, 낮에는 이 집 저 집에서 얻은 찬밥에다 낡아서 버린 작업복 따위를 걸치고 양지바른 곳에서 졸면서 이럭저럭 지냈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당신 집을 두드리는 낯선 타자야말로 당신의 윤리적 책임을 명령하는 신의 얼굴”이라고 말했지만, 이런 어려운 표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거지에게 최소한의 것을 주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예전에는 과부나 고아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동네를 뜨는 일이 생기면, 그 동네는 천하의 몹쓸 것들이 사는 동네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성경에 나오는, 길에서 강도를 만나 죽게 된 사람을 구해준 착한 사마리아인의 일화도 유명하다.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은 이 일화에서 연장하여 타자에 대한 ‘환대’의 문화를 설명한다. 초기 기독교 가정에는 아무리 빈한한 집이라도 늘 세 가지 보물이 구비되어 있었다고 한다. 양초, 담요, 마른 빵이 그것이다. 낯선 나그네가 문을 두드리면 양초를 켜서 문턱을 넘게 하고, 마른 빵이나마 허기를 채우게 한 다음, 담요를 덮어 재웠다는 얘기다. 누가 이 하찮은 것들을 ‘보물’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또 이런 세상에서 얼마나 멀리 떠나온 것일까.

나를 포함해 대개의 사람들은 개인의 작은 행동이 거대 차원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걸 잘 상상하지 못한다. 나 하나의 관심과 행동이면 뭐하나, 남들은 여전할 텐데 하는 마음이다. 여기에는 생활의 반경과 관계의 범위가 너무 넓어진 탓도 크다. 내가 다 관여하거나 책임질 수 없으므로 방치하고 편승하는 식이다.

거지와 과부와 고아를 책임지지 못하는 동네는 사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모든 동네의 모습이기도 하다. 생각을 바꿔 가령 한 동네에서 나온 쓰레기를 어떻게든 그 동네가 떠안는다고 해보자. 분뇨와 오물도 배출자가 처리하고, 모든 산업적 상품의 부산물도 생산 기업이 책임진다고 해보자.

우리의 윤리의식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것은 거지와 고아와 삶의 부산물들을 은폐하는 사회적 논리 때문이다. 삶의 편의와 안녕을 누리는 데 반드시 수반되는 많은 것들이 은폐된다. 마트의 식육코너에 갈 때마다 늘 드는 생각이, 깔끔하게 포장된 저 고기들을 도축한 모양 그대로 팔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선홍색의 마블링만 보지 울부짖는 송아지의 피와 뼈와 체액은 보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들 사이의 땀과 고통과 질병도 마치 불순한 이물질인 양 은폐한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감당하고 있을 고된 삶을 저만치 밀어두고 차단한다.

거대하고 글로벌화된 세계, 그래봐야 작은 인간으로서는 평생 삶에서 마주치지도 못하는 세계에서 사느라 우리는 정작 나의 세계를 잊었다. 사실 그 세계는 수많은 방문자와 만남의 기회가 넘쳐나는 것 같지만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 공간이다. 아무도 거주하지 않으므로 같은 역사도, 같은 운명의 공동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의 운명은 나의 운명과는 전혀 상관없는 무엇이다.

나의 손발이 닿는 세계, 나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로 삶을 좁혀야 한다. 직접민주주의, 지역자치, 공동체 운동, 참여와 같은 말들이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범위만을 나의 세계로 가질 수 있다. 아무리 오래도록 망각해왔다 해도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살아왔다. 얼굴도 모르는 위층 아이에게 감정을 지배당하며 살아온 것이다. 그 아이는 단지 이름 없는 점 하나가 아니었다.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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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이 뜨거운 이슈다. 지난 7월 최저임금위원회가 2019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0.9% 인상된 시급 8350원, 월급(209시간 기준) 174만5150원으로 발표한 이후 노사 양측 모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으로 사업주가 알바 노동자와 함께 일하는 편의점과 같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아쉬운 점은 많은 언론 보도에서 인상된 최저임금이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하였는지는 빠진 채 인상에 따른 부담만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을 인상해서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을 높이고, 이를 통해 경제성장 동력을 만들어보려는 정부와 임금 인상으로 인한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기업의 줄다리기는 앞으로도 일정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기업의 단기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정부 지원책은 필요하지만, 최근 일부에서 주장하는 ‘외국인 노동자 수습제도’와 같은 최저임금 차등적용 방안은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다.

얼마 전 중소기업중앙회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방문해 ‘외국인 노동자 수습제도’를 제안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수습”이라는 딱지를 붙여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고, 1년 차에는 최저임금의 80%, 2년 차에는 90%로 임금을 삭감하여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중앙회는 내국인과 대비하여 외국인 노동자의 생산성이 평균 87.5%에 불과하다는 자체 조사결과를 그 근거로 제시했고,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이를 적극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답변했다. 또한 20대 국회에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차등적용)하는 법안이 여러 건 발의되어 있다.

그러나 최소한 법적으로 헌법 위반이 분명하다. 2007년 헌법재판소는 외국인 노동자를 ‘연수생’이라 부르며 근로기준법에 따른 권리를 일부 배제하였던 ‘산업연수생 제도’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였다. 당시에도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생산성에 비하여 높으므로 근로기준법 일부 조항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전체적으로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는 현행법에도 어긋난다. ‘근로기준법’은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제6조)고 정하고 있고,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도 “사용자는 외국인근로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차별하여 처우하여서는 안 된다”(제22조)고 적시하고 있다. 최저임금 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 중에서 내국인이 아닌 외국인에게만 최저임금을 감액하는 경우는 없다.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필부의 상식에 비춰보더라도 이건 너무 비겁하다.

그런데도 이런 주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은 매년 오를 수밖에 없고, ‘최저임금이 곧 최대임금’인 저임금 일자리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상은 점점 확대될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로 시작된 차별은 고령 노동자, 청소년 노동자, 단시간 알바 노동자 등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집단으로 이어질 것이다. 당장 지금은 나보다 힘이 약한 사람을 밀어내는 것이 강자가 지배하는 시장의 규칙을 바꾸는 것보다 쉬운 일이긴 하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820원 오른 시급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최저임금 꼼수를 막고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고도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불공정한 편의점 가맹계약을 바꾸기 위한 을(乙)들의 연대다.

<조영관 |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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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