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폰에서 스마트폰으로 갈아탈 때 오래 쓰던 전화번호도 바뀌었다. 전화번호 끝자리는 그대로 가져갔지만 나머지 번호는 지정하는 대로 써야 했다. 전화번호를 바꾸고 며칠 지나지 않아 아침부터 욕지거리를 들으면서 눈을 떴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지상에 이런 욕도 있구나 싶을 정도의 욕설을 들으면서 잠이 깨곤 했다. 사채업자의 추심 전화였다. 내 전화번호를 사용하던 사람이 사채를 쓰고 갚지 못한 채 전화번호를 바꾸었던 모양이다. 결국 내가 그 ‘죽일○○’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자 사채업자의 전화는 멈췄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시도 때도 없는 빚 독촉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1금융권도 아닌 2, 3금융권이었다. 대체로 ‘캐시’나 ‘론’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익숙한 그런 유의 대부업체였다. 일일이 수신거부를 누르기도 했지만 다 걸러지지는 않았다. 종종 ‘햇살론’ 쪽에서 신용등급 조회 결과서가 날아오는 것을 보니 이쪽 대출도 알아본 모양이었다. 통신사에 전화를 해서 번호를 바꾸거나 어떤 조치를 취하려고 했지만 역시나 쉽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남의 형편을 엿본 셈이다. 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았기에 이렇게 빚에 쫓기고 사는 것일까.

종종 부동산에서도 연락이 오곤 한다. 주로 슈퍼마켓 거래와 관련한 연락이었다. 아마도 인천에 있는 작은 슈퍼마켓의 주인인 것 같다. 하루에도 두어 번 중도매상의 공동구매 안내 문자가 날아오곤 하는 걸 보니 말이다. 믹스커피나 프레스햄 따위의 가공식품 등을 공동구매하자는 문자였다. 지나치게 싼 가격을 보니 어디에서 한꺼번에 밀어내기한 물품이구나 싶었다. 슈퍼마켓 물품 공동구매 문자로 오히려 계절감을 느끼곤 한다. 요즘은 오이지용 오이와 특품 수미감자, 장아찌용 벌마늘이 품목에 올라온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다는 뜻으로 읽힌다. 계란과 고기, 생선의 시세 변화를 보면서 생활 물가를 나름 계산해 보기도 한다. 근래엔 월드컵 특수가 혹시 있나 싶어서 생닭 값을 유심히 보곤 했다. 하지만 전년 대비 변화가 거의 없다. 오히려 전월보다는 많이 떨어진 가격인 걸 보니 물량이 많이 쏟아져 나와서이고 과잉 생산이어서인 것 같다. 하긴 월드컵이라고 집에서 생닭을 삶을 일이 많진 않을 테니 생닭 값은 큰 변화가 없다. 그러면 전국의 치킨점들은 특수를 누리고 있을까. 국가대표 성적이 좋아야 치킨도 더 많이 팔릴 텐데 상황이 썩 좋아보이진 않는다.

지난겨울에는 밀린 도시가스비를 내라는 독촉 문자도 하나 날아들었다.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는데.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이 슈퍼집 아이들이 괜히 걱정스러웠다. 집 안에서도 패딩점퍼를 벗지 못하고 지내는 것은 아닐까, 코는 빨개져 늘 콧물을 달고 사는 것은 아닌지. 혼자서 이런저런 소설을 쓰다 괜스레 마음이 아파졌다.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일 것이다. 꼼꼼하게 과자와 라면을 진열하고 조금이라도 싼 물건이 나올까 싶어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대체로 살자니 빚을 내고 그 빚이 삶을 옭아맨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형편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이 사람 생존의 장소는 ‘이부망천’의 도시 인천이다. 이 망언을 듣고 느꼈을 상실감과 모욕감에 내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방금 또 문자가 하나 날아들었다. 프리미엄 특란 공동구매 문자다. 계란 값도, 동네의 작은 슈퍼마켓 사장님들의 형편도 회복될 기미가 요원해 보인다. 목마른 계절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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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가 끝났다고 모두가 이렇지는 않겠지.” 얼마 전 ‘녹색연합’ 회원들과 함께 평창 동계올림픽을 치르고 난 가리왕산 알파인경기장에 갔을 때 들었던 생각입니다. 가리왕산, 가보곤 싶었지만 경기장을 생각하면 자꾸 연상되는 흉한 몰골이 꺼림칙해 가보길 미루었던 곳입니다. 이번에 직접 가서 본 모습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지난 5월 중순, 시간당 최고 30㎜, 이틀간 80㎜가 내린 봄비에 경기장 슬로프는 온통 크고 작은 자갈로 뒤덮였고, 포장도로는 돌무더기로 변해버렸습니다. 빗물이 돌과 흙을 끌고 내려와 수로를 비롯한 각종 인공구조물을 막고 무너뜨리고 찌그러뜨렸습니다. 복원은 차치하고, 당장 이번 여름에 산사태를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지난 9일 녹색연합과 전문가 조사단이 강원 정선군 가리왕산의 알파인스키장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지난달 호우 때 흙이 쓸려내려가면서 굴러내린 돌 더미들이 경사면을 덮고 있다. 가리왕산 스키장은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에도 복구나 재해예방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장마철을 앞두고 심각한 재난 우려가 나온다. 정지윤 기자

가리왕산은 조선 세종 이후 벌목을 금지해온 봉산이며,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생태자연도 1·2등급지역, 녹지자연도 8·9등급지역, 다양한 세대의 주목 군락지라는 사실도, 이 경기장은 올림픽을 마친 뒤 바로 철거해야 하는 1회용이라는 사실도 경제를 비롯한 각종 올림픽 효과 앞에선 모두 무력했습니다. 하기야 설악산이 국립공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보존연맹 엄정자연보전지역, 백두대간보호지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문화재라는 사실도 케이블카사업 앞에선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일단 가리왕산에 알파인경기장을 짓기로 결정하자, 500년간 보전해온 축구장 70개 넓이의 숲, 10만여 그루의 나무가 한순간에 없애버려야 할 것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의 봄비에 자갈밭으로 변해버린 경기장은 정작 없애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가리왕산 경기장은 원래의 숲으로 복원한다는 조건을 전제로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해 만들어졌습니다. 강원도, 산림청, 환경부, 환경단체, 전문가로 구성된 ‘가리왕산생태복원추진단’은 오랜 논쟁 끝에 가리왕산을 원래 상태인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을 목표로 복원하며, 경기장 전 지역의 곤돌라를 비롯한 모든 인공구조물을 철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벌써, 이왕 만들어놓은 경기장이니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경기장 시설물 절대 반출 금지.” 경기장 주변엔 정선군번영연합회에서 내건 빛바랜 현수막들이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경기장 시설물 유지의 최종 목표는 아마도 지역의 ‘번영’일 겁니다. 그러나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바람이 과연 현실적인지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먼저,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주술처럼 반복했던 ‘수십조원’의 경제 효과가 실제로 발생했는지 물어야 합니다. 만일 발생했다면 그 수익이 누구에게 어떻게 돌아갔는지, 지역주민들은 그 효과를 얼마나 누리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정말 그렇게 엄청난 수익이 발생했다면, 이젠 복원이 순리입니다. 만일 발생하지 않았다면, 시설물을 유지한다고 해서 잔치할 때도 생기지 않았던 황금알이 잔치가 끝난 후에 생겨날 리 없습니다. 이제라도 복원이 순리입니다.

수백 년간의 자연보호림을 원래대로 복원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원래’를 목표로 해서 최선을 다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너무나 당연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그만큼 가리왕산은 원래에 가깝게 복원될 것입니다. 둘째, 복원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지키는 노력 자체가 중요합니다. 힘든 복원 과정은 우리가 가리왕산에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앞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새기는 사회적 학습 과정이 될 것입니다. 장기간의 복원 과정은 단기간의 이익만을 노리는 개발주의와 성과주의를 반성하는 정화의 과정이 될 것입니다. 어떤 것이 복잡하게 얽히면, 우리는 그걸 ‘리셋’합니다. 빗나간 것을 원래대로 돌리는 겁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겁니다. 가리왕산을 둘러보며 함께 만들었던 구호를 다시 외칩니다. “가리왕산, 리셋!”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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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수는 시·도교육감 선거에서도 대패했다. 전체 17개 시·도 가운데 서울과 경기 등을 포함해 14곳에서 진보 후보가 승리했다. 울산에서도 처음으로 진보 성향의 후보가 당선됐다. 진보 후보들의 득표율은 4년 전에 비해 모든 지역에서 크게 올랐다. 보수가 승리한 곳은 대구와 경북, 대전뿐이다.

보수 진영은 패인을 ‘깜깜이 선거’에서 찾고 있는 듯하다. 유권자들이 교육감 선거에 기본적으로 관심이 낮은 데다 남북, 북·미 회담 같은 초대형 이슈가 터져 후보자 자질이나 정책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선거가 치러졌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보수 교원단체가 제기하고 보수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교육감 직선 제도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얘기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보수의 무책임한 자기 합리화로 유권자 모독이다. 정치 중립이 생명인 교육의 특성상 교육감 선거는 정당 공천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교육감선거 투표용지에는 정당 표시나 기호가 없고 후보자 이름만 있다. 그런데도 진보 성향 후보들이 대거 당선됐다면 유권자들이 작심하고 그들을 골라 찍었다고 해석하는 게 상식적이다.

보수 논객들은 학부모 아닌 유권자들의 경우 교육에 관심이 없어 진지하게 투표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일부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고 학부모 아닌 유권자들의 표심을 무시해선 안된다. 어쩌면 한국 교육에는 이들의 의견이 더 중요하다. 교육감이 누가 되느냐에 직접적인 이해가 없으므로 이들의 표는 사심이 없고 공정하며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재선·삼선에 성공한 교육감들에 대한 보수 진영의 폄훼도 지나치다. 이번 선거에서는 현직 교육감 12명이 출마해 모두 당선됐다. 선거가 깜깜이로 진행된 탓에 높은 인지도 등 ‘현직 프리미엄’을 이용해 당선됐다는 것이 보수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남경필 경기지사나 유정복 인천시장 같은 인사들은 왜 낙선했을까. 현직 프리미엄은 교육감 선거에만 있지 않고 시·도지사나 구청장 선거에도 있으며 4년 중임제인 미국 대통령 선거에도 존재한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만 결정적 변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전임 정권에서 법외노조 처분을 받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이번 선거에서 사실상 복권된 셈이다. 교육감 당선인 중 전교조 출신이 10명이다. 보수 후보 중에는 이렇다 할 공약도 없이 ‘전교조 반대’ 슬로건 하나로 출마한 인사들이 많았지만 유권자들의 평가는 냉혹했다. 그러나 보수 진영은 이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정반대로 교육계가 좌파 세력에 장악됐다면서 색깔론 퍼뜨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번에 당선된 일부 보수 후보들이야말로 운이 좋았다. 대구는 강은희 후보가 40.7% 득표율로 당선됐지만 진보 성향의 김사열·홍덕률 후보도 각각 38.1%와 21.2%를 얻었다. 진보 단일화가 이뤄졌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경북에서 당선된 임종식 후보의 득표율은 28.2%로 교육감 당선인 중에 최하위다.

유권자들이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후보들을 택한 것은 한국 사회 최고 현안인 교육 양극화 해소에 이들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진보 교육감의 상징인 혁신학교가 학부모 학생들로부터 호응을 받은 결과이기도 하다. 지난 9년 보수 정권은 아이들을 서열화하고 불필요한 경쟁으로 내몰았다. 교육 복지 확대에 소극적이고, 국사 교과서 국정화 같은 시대착오적인 정책을 밀어붙였다. 민의를 거스른 집단에 표로 심판하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늘 있는 일이다.

깜깜이 선거와 묻지마 투표는 시·도의원과 구의원 선거가 더 심했다. 유권자 상당수는 지금도 구의원은 물론이고 시·도의원 당선인을 모를 정도로 지방자치에 무관심하다. 이 문제는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를 더욱 확고하게 해 지방의회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을 높이는 방향으로 풀어야 한다. 교육감 선거에 관심도를 높이는 방법도 똑같다. 교육자치를 지역과 단위학교까지 뿌리내리게 하고 청소년들에게 참정권을 확대하는 것이 실질적인 해결책이고 헌법정신에도 부합한다.

완벽한 제도는 없다. 교육감 직선 제도도 마찬가지다. 임명제와 학교운영위원 간선제를 거쳐 주민 투표로 결정하는 현재 방식은 민주화의 산물이지만 문제가 있으면 수정·보완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를 대하는 보수의 태도를 보면 4년 뒤에도 승산이 없다고 보고 아예 판 자체를 깨버리자는 생각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수업 시간에 딴짓만 하다 낙제한 학생이 합격점을 받은 친구를 시기·질투하며 무조건 교육 제도가 잘못됐다고 떼를 쓰면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오창민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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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예술과 외설은 한 끗 차이라고들 한다. 성 정치학이 그 한 끗에 들어있다. 지난해 작고한 미술비평가이자 작가 존 버거는 유명한 그의 저서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에서 응시라는 행위에 담긴 권력의 문제를 명료하게 제시하였다. 르네상스 이후 서양 미술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여성의 벗은 몸은 남성의 관음증적 시선을 위한 대상이며, 그런 의미에서 그림의 실제 주인공은 그림 앞에서 그 여성의 몸을 시각적으로 소비하는 남성이라는 것이다. “그림 속 인물이 누드가 되는 것은 그를 위해서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예술과 외설의 불편한 공존과 시선의 권력에 대한 이 논의는, 버거의 BBC 텔레비전 강좌와 책이 발표된 1972년에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버거의 책이 출판된 영국에서 성차별 금지법이 만들어진 것이 1975년이었으니 말이다. 그의 비판에 힘입어 여성주의 미술그룹 ‘게릴라 걸스’는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벌거벗어야 하는가?”라는 표제의 포스터를 제작,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현대미술에서 여성예술가는 5% 미만인 반면 누드화의 85%가 여성이라는 점에 항의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영화, 음악, 광고산업을 포괄하는 대중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여성뿐 아니라 남성 역시 시각적 소비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남성적 시선이 여성을 대상화하고 성적으로 소비한다는 존 버거의 통찰은 (경직된 젠더이분법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불행히도, 음란물 산업의 고정된 젠더 구도가 보여주듯이 아직도 유효하다. 디지털 기술의 보편화 덕분에, 시선은 르네상스 회화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보다 훨씬 광범위한 인터넷의 세계에서 은밀하고도 보편적인 폭력의 기제로 작동할 수 있게 되었다. 카메라와 컴퓨터로 대중이 일상적으로 재현행위에 참여하고 이미지를 유포할 수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지난달 양예원씨가 3년 전 ‘비공개 스튜디오 촬영회’의 모델로 일하면서 성추행을 당했고 사진들이 유포되어 피해를 입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사실관계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는 동안 정작 ‘비공개 스튜디오 촬영회’라는 의아한 관행에 대한 물음은 상대적으로 덜 제기되었다. ‘출사’로 지칭되는 이 비공개 촬영은 사실상 동호회 등 회원제로 운영되는, 아마추어 사진예술을 빙자한 개인용 음란물 제작활동이다. 관련 기사에 따르면 “전문 사진사보다는 호기심과 성욕 해소를 위해 참여하는 일반인들이 많으며, 찍은 사진은 비공개(개인 소장용)로 하기로 합의 후 촬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2018년 6월19일 중앙일보).

하지만 디지털 영상물의 프라이버시란 현실적으로 이미 역설이다. 또 계약이라 한들, 그것은 쌍방의 지위가 동등하지 않음을 형식적으로 은폐하는 장치가 되기 십상이다. 촬영된 본인의 동의 없이 이미지를 유포하여 음란물로 소비하는 일은 범죄이다. 옷 모델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등의 거짓 광고로 수배한 모델과 과연 강압이나 착취 없이 계약을 체결하는지에 대한 조사와 함께 영상물을 임의로 유통하지 않는다는 합의가 지켜지지 않는 데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이 필요하다.

경찰은 실제로 지난 19일, 이러한 영상물을 게시하는 음란물 사이트를 운영해온 사람들을 검거했다. 양예원씨와 같은 피해 모델이 현재 파악된 바 여러 명이고, 이 사이트에서 확인된 사진 유포 피해자가 150명이 넘는다고 한다. 놀라운 점은, 양예원씨의 폭로 이후 ‘출사’ 음란물에 대한 수요가 폭등하고 이 사진들의 불법적 거래가 급증했다는 사실이다. 강압에 의한 촬영, 동의 없는 유포에 대한 고발이 도리어 수요를 키웠다면, 이는 여성에 가해진 바로 그 강압성, 폭력성, 불법성 자체가 포르노적 욕망의 페티시라는 뜻이다. 그런데 ‘출사’ 음란물을 유포한 사이트는 인터넷에 유통되는 디지털 이미지를 제거하는 이른바 디지털 장의사 업체로부터 뒷돈을 받고 그 특정 업체의 광고를 사이트에 게재했다고 한다.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남성적 시선의 시장을 형성한 것으로도 모자라, 인권을 침해당한 여성들의 상처와 수치심까지 거래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참기 어려울 만큼 악질적이다.

예술을 비롯한 재현행위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적 이해관계에 봉사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존 버거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적해온 바다.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포르노그래피적인 사욕을 충족하기 위해 예술을 흉내내는 것도 권력의 뒤틀린 자기표현일 것이다. 버거에게 영감을 주었던 발터 베냐민은 일찍이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 즉 탈신비화된 예술과 대중의 민주주의적 조우에서 혁명적 가능성을 발견했었다. 그러나 몰카 범죄, 리벤지 포르노, 출사 음란물이 난무하는 오늘, 디지털 복제 시대의 외설에서 우리는 폭력적 욕망의 디스토피아를 본다.

<윤조원 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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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1일 러시아를 2박4일 일정으로 국빈 방문했다. 1999년 김대중 대통령 이후 19년 만에 이뤄진 이번 국빈 방문 기간 중 문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고,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양국의 공조방안을 논의한다. 방문 첫날인 21일에는 뱌체슬라프 빅토로비치 블로딘 하원의장과 주요 정당 대표들을 면담한 데 이어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러시아 하원 의회에서 연설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2박4일 일정의 러시아 국빈방문을 위해 21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출발하기 전 전용기 계단에 올라 환송인사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이번 방문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정세가 대전환 국면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이루어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올 들어 세 차례나 하면서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 확보를 꾀하고 있고, 일본도 북·일 정상회담 추진에 나섰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오는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 김정은 위원장을 초청했으며 이 자리에서 북·러 정상회담을 할지 주목되고 있다.

한반도 정세의 전환은 한국에도 주변국과의 관계를 향상시킬 기회가 된다. 러시아와의 협력은 그간 줄곧 구상에만 머물러 있던 남·북·러 경제협력을 현실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문 대통령도 하원 연설에서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남북 경제협력이 본격화될 것이며 러시아와의 3각 협력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화를 다지고 보장하기 위한 양국 간 협력도 긴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동북아 평화안보 협력체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러시아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방러는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는 의미가 있다.

문 대통령이 20일 러시아 언론 인터뷰에서 “남북철도가 연결되고 시베리아 철도와도 연결되면 유럽까지 철도로 물류이동이 가능하다”고 했듯이 러시아는 한국이 유라시아 대륙으로 나아가는 창(窓)이다. 70년 가까이 닫혀 있던 이 창이 열리려는 시점에 와 있다. 양국관계가 동북아를 넘어 유라시아 평화번영 체제를 이루는 협력 파트너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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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1981년 출범 후 처음으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공정위는 대기업의 범죄 혐의를 포착하고도 고발하지 않는 등 관련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것은 물론 공정위 간부들이 대기업 취업 특혜를 받은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수사에 성실히 임하고 결과가 나오면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말했지만 공정 시장질서 확립에 앞장서야 할 공정위가 대기업 봐주기와 불법취업 혐의로 수사의 대상이 됐다는 것 자체가 참담한 일이다. 공정위가 부실조사와 늑장조사 등으로 대기업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확인된 주식매각 축소사건 등 최근에 확인된 사안만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등 경제적 약자들이 불공정거래를 아무리 호소해도 시간을 끌다 결국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어렵다며 심사 종료 결정을 내린 것도 부지기수였다.

공정거래위원회 간부들이 퇴직 후 업무 유관 이익단체 등에 취업 특혜를 받은 정황 등을 포착한 검찰이 20일 세종시 공정위 기업집단국 사무실을 압수수색하자 직원들이 심각한 모습으로 이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압수수색을 놓고 전속고발권 폐지와 관련한 검찰과 공정위 간 힘겨루기가 작용하고 있다는 뒷얘기도 나온다. 전속고발권은 공정위 소관 법률을 위반한 기업들에 대해 공정위가 고발해야만 검찰이 기소할 수 있는 제도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의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상조 위원장 취임 뒤 가맹·유통·대리점법 등 이른바 유통 3법에 대한 전속고발권은 폐지됐지만 최대 쟁점인 공정거래법상 전속고발권의 경우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전속고발권을 둘러싼 대립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검찰의 압수수색은 독점적 권한을 내려놓는 데 인색했던 공정위가 자초한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독점, 담합, 불공정 거래행위라는 주요 3개 분야를 공정위만이 전담하는 현재의 조직체계가 비효율과 부패의 원인”이라는 참여연대의 지적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김 위원장 취임 이후 공정위가 신뢰제고를 위해 노력해왔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검찰의 공정수사 못지않게 공정위 스스로도 지속적인 적폐청산을 통해 환골탈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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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1일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에 1차 수사권과 종결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을 발표했다. 검찰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시대적 흐름과 부합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방향이다. 검경 간 수직관계는 해방 이후 친일 경찰에 대한 불신 등으로 1948년 검찰청법에 “경찰은 범죄수사에 있어 검사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명시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 등 역대 정부가 수사권 조정을 시도했으나 검찰의 집단 반발 등에 막혀 번번이 좌절된 바 있다. 그래서 이번 조정안은 검경의 70년 해묵은 갈등에 종지부를 찍은 역사적 합의라 평가할 만하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최초로 법무부와 행정안전부 두 장관이 조정안 합의안을 도출했다”고 밝혔다.

조국 민정수석이 21일 정부서울청사 별관 국제회의실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의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조정안은 경찰이 보다 많은 자율권을 갖고, 검찰은 사법통제에 주력하는 게 핵심이다. 검찰과 경찰이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 수사와 기소, 공소유지의 원활한 수행을 위한 상호협력 관계로 바뀐 것은 선진 수사구조로의 의미있는 변화라 할 수 있다. 미진한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검찰의 인지·특수수사를 그대로 둔 것은 검찰개혁을 바라는 시민의 뜻이 충분히 반영됐다고 보기 어렵다. 일본은 검경이 각각 독자적 수사권을 갖되 검찰은 통상 2차 보충적 수사에 집중하고 있다. 검사의 직접수사는 전체 사건의 0.3%로 전국 50개 지검 중 특수부가 있는 곳은 도쿄·오사카·나고야 등 3곳에 불과하다. 우리도 앞으로 검찰 직접수사의 범위를 대폭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사권 강화로 경찰 권력만 비대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공룡기관이 탄생했다는 말도 나온다. 특히 경찰이 자체적으로 수사를 종결함으로써 이른바 ‘사건 암장(暗葬)’이 가능하다는 데 대한 걱정이 크다. 조정안은 불기소(무혐의)할 경우에도 결정문과 사건기록등본을 검찰에 전건(全件) 송치토록 했지만, 법률적 판단 권한을 경찰에 부여하는 것은 근대 사법의 대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정부가 밝힌 행정·사법경찰 분리, 경찰위원회 실질화 등의 견제장치 외에도 시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 등 다양한 안전장치를 더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경찰은 수사권 독립을 개혁의 계기로 삼아 공정성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와 인권보장, 경찰관 자질 향상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수사권 조정의 큰 줄기로 자치경찰제 도입 청사진이 담긴 것은 이미 예견됐던 바다. 자치경찰제가 단순히 경찰 권한 분산에 그치지 않고 지방분권 차원에서 양질의 치안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정밀한 준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 조정안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수사권 조정안은 여야 합의를 거쳐 입법화돼야 최종적으로 마무리된다. 본게임은 지금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검경이 자신의 주장을 펼치며 공방을 벌이는 것은 볼썽사납다. 또다시 국회가 검경 간에 더 많은 권한을 챙기기 위한 밥그릇 싸움판이나 권력게임의 장이 되어선 곤란하다. 수사권 조정은 검경의 기득권이 아니라 시민의 안전과 인권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국회는 권력기관 개혁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속도를 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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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이번 선거에서 당의 존폐를 논해야 할 정도의 패배를 경험한 자유한국당은 비대위 체제 출범을 예고했지만 계속되는 당내 혼란으로 당의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단 한 명의 단체장도 당선시키지 못한 바른미래당 역시 표류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반면 여당인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17명 중 14명, 기초단체장 226명 중 151명을 당선시키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일각에서는 지역균열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정치지형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지역주의 균열에 실질적인 변화가 왔는지를 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 선거는 그간 우리 선거를 좌우해 왔던 영호남 지역주의, 세대균열, 진보·보수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거의 작동하지 않았던 선거이기 때문이다.

6·13 지방선거는 한마디로 촛불혁명의 연장선에 있었던 선거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전 정부 국정농단의 책임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촛불혁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구태를 벗지 못한 정치세력들에 대한 응징의 의미를 강하게 띠었다. 혹한에 국민들이 들었던 촛불은 대통령 하나 바꾸는 것만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다. 촛불혁명을 이끈 힘은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고 한국 민주주의에 완전히 새로운 옷을 입히고자 하는 국민적 열망이었다. 1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높은 대통령 지지율은 국민들이 새로운 정부에 이러한 열망을 실었고 아직 그 기대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선거는 국민의 의지와 열망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야당들에 대해 국민들이 가한 철퇴였던 것이다. 여기에는 지역도 세대도 이념도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선거를 지역주의가 타파된 선거라든가, 민주당이 전국정당의 토대를 구축한 선거라든가 하는 식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대통령의 지지율에 편승한 선거였고, 남·북·미 간 정상회담 및 평화 분위기의 영향을 크게 받은 선거였으며, 기존 적폐를 벗지 못한 정치세력에 대한 실망과 질책이 가장 크게 작용한 선거였다.

선거를 끝낸 정치권에는 수많은 개혁과제와 민생법안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한반도의 그림을 바꿔갈 판문점선언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해야 한다. 그러나 제1야당으로서의 기능이 마비된 자유한국당, 대규모 정계개편이 예상되는 정치권, 정상화는 고사하고 원구성조차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국회가 우리 앞에 있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국민의 기대를 담아내기 힘들다.  한국 국민은 지금 과거 어느 때보다 정치권을 날카로운 시각으로 평가하고 상벌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다. 촛불, 탄핵, 대선, 남북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지방선거, 지난 1년 반 동안 우리 국민은 굵직한 경험들을 통해 고도의 정치적 학습을 해왔다. 눈과 귀를 막으면서 국민들을 동원하는 과거의 방식은 이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 전체의 변화와 혁신이 요구된다. 여기에는 민주당도 예외가 아니다. 제1정당으로서 민주당은 야당의 협력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내어 명실공히 민생중심 정당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번 선거로 거의 모든 지방정부와 의회를 책임지게 된 만큼 국민의 열망을 제대로 담아내야 할 것이다. 또한 지방선거 공천과정에서 보여주었던 구태에서 벗어나 당내 민주주의와 혁신에 앞장서지 않으면 국민들의 기대가 큰 질책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선거 후폭풍이 한동안 몰아칠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들은 쇄신의 방향조차도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평화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중요한 시기에 국회와 정치의 정상화는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국민은 당리당략적 정치셈법으로만 국회를 운영하고자 하는 정치세력에 대해 제재를 가하고 가차 없이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보수야당은 전면쇄신을 바탕으로 건전한 보수정당으로 거듭나고 여당은 혁신을 이끌면서 여야가 생산적인 경쟁과 협력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하겠다. 부디 정치권은 이번 선거의 결과를 제대로 읽기 바란다.

<이소영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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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에서는 “사람이 개를 물었다”라는 문장을 반드시 배운다.

개는 사람을 물지만 사람은 개를 물지 않는다. 그러므로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은 뉴스가 아니다. 하지만 어느 날 사람이 개를 물었다면 그것은 뉴스가 된다.

백주대낮에 한 남자가 다른 남자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요즘 뜨는 동네 서촌에서 10년 전부터 족발장사를 하던 부부, 그리고 뜨는 동네에서 부동산 투기를 위해 건물가격의 거의 대부분을 대출받아 그 건물을 사들인 건물주. 297만원이던 월세를 1200만원으로 올리라는 요구가 전해졌고, 월세를 낼 수 있는 계좌번호는 3개월 동안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건물주의 명도소송. 법은 건물주의 손을 들었고 부부는 하루아침에 불법을 저지른 사람이 되었다.

부부를 돕겠다고 시인, 음악가, 연구자, 시민단체 활동가, 종교인, 성소수자, 채식주의자, 대학생 등 오도 없고 열도 없는 사람들이 모였다. 12번의 강제집행이 있었고, 남편은 손가락 4개가 잘리다시피 하는 부상도 입었다. 급기야 얼마 전에는 새벽 3시에 사람들이 있는 건물을 H빔을 실은 지게차가 들이받았다. 건물주는 부부를 끊임없이 조롱하고 모욕했고, 연대를 하러온 사람들에게도 부지런히 악담을 퍼부었다. 건물주의 아들까지 나서 조롱잔치에 한몫을 더했다. 1인 시위를 하러 건물주의 집을 찾아가던 남편을 보고 건물주는 승리를 선언하며 ‘너희 모두를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남편은 결국 망치를 들고 달려 나갔다.

문제는 우선 제도의 영역에 있다.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의 권리를 딱 5년 동안만 보호한다. 이조차도 아예 없던 것이 2013년 법 개정을 통해 생겨난 것이다. 그러자 5년이 지난 세입자만을 노려 권리금을 갈취하고 쫓아내는 하이에나들이 생겨났다. 자영업자가 개업 1년을 버티는 것도 버거운 시절에 5년은 장사에 들어가는 수많은 투자금을 회수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래서 보호기간을 10년으로 늘린 개정안이 미봉책으로나마 해법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23건의 개정안은 자유한국당의 극렬한 반대 때문에 국회에서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누군가는 이 사건을 두고 ‘그래도 폭력은 안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에게 쏟아진 모욕과 폭력은 모두 합법이었다. 부부와 연대인들을 폭행하고 조롱했던 이들 중 그 누구도 잡혀가거나 재판을 받지 않았다. 경찰은 멀뚱히 경비를 서고, 오히려 연대인들을 채증했다. 집행관은 건물주가 고용한 사설용역을 방조하고 어떤 폭력행위도 제지하지 않았다. 박원순 서울시장마저 법이 그렇기 때문에 도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사이 부부는 자신의 삶은 물론이고 오로지 선의로 자신을 돕겠다며 나선 이들까지 위협당하고 다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사람이 사람을 때려선 안된다. 사적인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해선 안된다. 하지만 국가와 법과 사회가 모두 등을 돌린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법이 단지 모르는 사람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 존재한다면, 왜 우리는 계속해서 그것을 존중해야 하는가?

2012년을 기준으로 개인 토지의 55.2%가 상위 1%의 소유이고, 법인 토지는 77%가 상위 1%의 소유다. 상위 10%로 넓히면 둘 다 90%를 너끈히 넘는다. 100명이 살아가야 하는 땅을 10명이 갖고 있고, 그중에서도 1명이 절반을 넘게 가지고 있는 꼴이다. 이미 이것만으로도 초현실적이지만, 재산권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쫓겨나는 사람들을 국가가 방관하고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90%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거나 공중부양을 할 수 있는 수가 아니다. 사고파는 사람이 아니라 살고 있는 사람이 주인이 되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이 극단적인 소유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 국토의 90%를 사유재산이라는 이름의 사실상의 치외법권으로 남겨둘 것이라면, 힘없는 사람들은 지금부터라도 내손에 맞는 망치를 찾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개를 물었다. 매일같이 개에게 물어뜯기던 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던 어느 날, 추방당한 땅에서.

<최태섭 문화비평가 <잉여사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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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미국 실리콘밸리 한복판에 자리한 컴퓨터역사박물관에서 스무 명 남짓의 인문·사회과학자들이 모인 작은 워크숍이 열렸다. 주제는 ‘4차 산업혁명의 현안은 무엇인가(what is at stake)’였다. 작년에 한국 사례에 대한 발표를 부탁하는 초청이 왔을 때, 무엇보다도 한국 바깥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한 마음에 냉큼 수락했다. 워크숍에서는 ‘기술적 실업’의 문제에서부터 국가 인공지능 전략에 대한 평가까지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다양한 주제에 대해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몇 년 전 시작된 한국 사회의 4차 산업혁명앓이는 글로벌 기준으로 보았을 때 유난스럽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구글에서 집계한 검색어 순위를 지역별로 나누어 보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는 한국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검색된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을 100으로 놓았을 때 2위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은 91, 3위 싱가포르는 60에 불과하다. 이는 한국인들이 최근의 기술 변동과 그 함의에 대해 보이는 깊은 관심을 반영한다. 각계각층에서 마련한 4차 산업혁명 관련 토론회와 교육 프로그램이 한동안 봇물을 이뤘다. 이 문제에 대한 종합적 국가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활동 중이기도 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번 워크숍에서 확인한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과 불안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준비 중인 국가 전략과 유사한 형태의 계획은 이미 독일과 중국에서 나왔다. 이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4차 산업혁명’을 자신의 정책을 밀어붙일 일종의 슬로건으로 활용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에 따른 기술적 실업 문제와 노동의 미래에 대한 우려는 이미 세계적인 현상이다. 노동의 소멸에 대한 대책으로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을 제공해야 한다는 논의 역시 여러 나라에서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번 워크숍을 조직한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타바버라 패트릭 매크레이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을 전 지구적 현상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논의 주제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 자체를 둘러싼 문제들이다. 1~3차 산업혁명들에 비추어 보았을 때,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각종 변화는 ‘혁명’이라고 부를 정도의 근본적인 변동을 가져올 것인가? 우리가 갖고 있는 인식의 틀은 새로운 변화를 해석하기에 적절한가? 세계경제포럼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 담론의 유포자들은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가? ‘산업혁명’이라는 담론으로 현재의 변화를 포착하는 것의 효과는 무엇인가?

한국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다(송성수, ‘역사에서 배우는 산업혁명론’). 하지만 총론 수준의 논의를 넘어 구체적인 층위에서의 다양한 분석이 뒤따를 필요가 있다.

두 번째 큰 주제는 기술 변화에 따른 분배의 문제, 혹은 사회정의의 문제이다. 4차 산업혁명 담론이 제시하는 빛나는 미래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누구인가? 21세기 들어 늘어나고 있는 소득격차는 기술 변화가 그 주요한 동인인가? 인공지능 기술로 인해 노동은 과연 소멸할 것인가? 사회과학자들에게 기술 변화가 노동 과정에 미치는 영향은 오랜 탐구의 주제였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변화는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변화인가? 기술과 노동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공정한 분배를 이루어낼 것인가?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담론장은 상당 부분 이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문제는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 제기하는 각종 윤리적 이슈들이다. 2016년 7월 미국 댈러스 경찰은 총격사건의 용의자 미카 존슨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사살했다. 사살에 이용된 무기는 첨단 군수 업체인 노스럽 그러먼(Northrop Grumman)에서 개발한 리모텍(Remotec)이라는 로봇이었다. 이 사례는 군사용으로 개발된 기술을 민간 영역에서 사용하는 것을 둘러싼 논쟁을 야기했다. 또한 첨단 디지털 기술은 과거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프라이버시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사물인터넷(IoT) 기술의 진전에 따라 디지털 프라이버시 문제는 컴퓨터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영역에서도 다양한 문제를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4월, 세계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카이스트 국방인공지능 연구에 항의하면서 보이콧을 선언했다. 한국은 이제 서구 선진국에서 검증된 결과를 빠르게 추격하는 전략에서 벗어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과학기술 공동체 역시 그에 걸맞은 책임감을 보여야 할 것이다.

위와 같은 논의들은 이미 한국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몇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추상적인 차원에서의 해석과 입장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례로 ‘인공지능’이라는 용어에는 여러 층위의 기술이 포함되어 있고, 그에 따라 제기되는 문제의 해결 방안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논의는 구체적인 테크놀로지와 시스템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보편적 문제와 지역적 문제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워크숍에 참가한 한 역사학자는 아마존닷컴이라는 첨단 정보기술(IT) 업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전통적’ 제조업을 분석했다. 모든 것을 디지털 신호로 처리하는 기업이 아이러니하게도 엄청난 양의 공업 생산량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이 한국이라는 지역에서 제조업의 영속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현재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고용률 저하는 4차 산업혁명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 해결의 열쇠는 추상과 구체, 보편과 지역이라는 두 축이 이루는 공간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최형섭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서울과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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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취미 생활을 일로 삼아 살다보니 취미에 대해 묻는 이는 드물다. 내 취미를 밝히자면 밀고 쓸고 닦는 ‘청소하기’. 가방에다 물티슈를 항상 담고 다니니 별명조차 물티슈. 밥 먹고 나면 곧바로 설거지를 해놓아야 직성이 풀린다. 글을 쓰기 전엔 책걸상 청소를 마쳐야 개운한 마음가짐. 병적일 정도는 아니나 더럽고 어지럽혀진 곳에 있으면 안절부절 마음조차 산만해진다. 오지여행에선 자포자기하고 침낭을 머리끝까지 올린 채 눕곤 한다. 하루 쉬고 갈 집이라도 화장실 청소를 꼭 한다. 당신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면 내 물티슈로 똥을 닦는 불행 중 다행한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주리반득(출라판타카)’이라는 제자가 있었다. 하도 머리가 안 돌아가 멍텅구리 멍청이 소리를 들었다. 경전도 한 구절 못 외우는 형편. 부처님은 측은한 마음에 빗자루를 하나 들려주시곤 “사원 곳곳 먼지를 쓸어내고, 도반들이 앉는 데마다 반짝거리게 닦아놓으시게” 부탁하였다. 그날부터 주리반득은 죽어라 청소에 전념. “청소란 마음에 쌓인 번뇌의 먼지를 털어내고, 마음에 낀 사념을 닦아내는 일”이란 깨달음을 얻은 주리반득은 부처님의 10대 제자로 우뚝 섰다.

청소뿐만 아니라 신변정리가 반듯이 되어 있지 않으면 더 큰 문제. 산만한 인간관계로 어질러진 약속들. 관리를 못해 무너진 건강도 ‘청소’에 소홀한 때문이리라. 이건 로봇청소기로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일.

마방이나 외양간을 날마다 청소하는 이들, 밤새 도심을 청소하는 미화원. 음식물 쓰레기를 분해하는 미생물들과 온갖 눈뜬 벌레들. 떠난 사람을 깨끗이 잊고 새 출발을 한 친구도 마음의 청소부.

꽃잎을 슬픔처럼 달고 살던 나무가 있었다. 제 몸을 바람과 빗물로 깨끗이 씻고 구석구석 숲 주변을 청소하던 나무. 가을겨울 청소를 잘한 나무일수록 건강한 봄여름을 지낼 수 있다. 성자가 된 나무와 청소부들이 밤의 절벽에다 새라새로운 꽃을 피운다. 그대 성자가 되려는가, 바보가 되고픈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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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미있어서 끝이 안 나기를 바라는 이야기가 있다면, 내겐 임꺽정의 이야기가 그랬다. 벽초 홍명희의 대하소설 <임꺽정>을 처음 읽었을 때 아홉권이나 되는 그 소설에 완전히 빠져버렸었다. 한권 한권 읽을 때마다 한권씩 읽어나가는 게 뿌듯한 게 아니라 한권씩 줄어드는 게 아쉬웠다. 월북작가인 홍명희라는 이름이 금기어여서 저자의 이름조차 홍벽초였던 그 소설은 미완으로 1980년대에 출판됐었다. 소설 자체가 미완이기도 했지만, 첫 출판을 할 당시에는 그 책 자체가 미완이었다. 나중에 10권의 개정판으로 출판되면서 홍벽초는 홍명희라는 이름을 되찾았고, 미완이었던 화적편의 뒷부분도 전부 실렸다. 나는 그 개정판을 다시 읽으면서, 여전히 그 소설을 전부 읽어치우는 게 아쉬웠다.

사람마다 취향이 있으니 누구나 이 소설이 나처럼 재미있을 거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책에는 쓰여지는 시기의 숨결과 함께 읽히는 시기의 호흡도 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1980년대 중반이었다. 민중이란 말을 끼고 살던 시절이었고, 민중의 영웅적인 역사로 위로를 받던 시절이기도 했다. 민중의 혁명이나 봉기, 혹은 궐기 등에 관한 글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치우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러나 임꺽정은 달랐다. 달라도 매우 달랐다. 홍명희의 소설 속 임꺽정은 영웅이라기보다는 그저 도둑 일당의 두목 정도로만 보인다. 영웅적인 결의도 없고, 시대에 대한 대의도 없고, 때때로 매우 부도덕하기까지 하다. 사람도 그냥 막 죽이고, 여자에 빠져 도당을 와해될 위기에 몰아넣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위기에 몰렸을 때는 보스로서의 결단보다는 그저 인간적일 뿐인 심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세상을 바꿀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상과 포부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그 낡은 세상이 나쁘기 때문일 뿐이다. 평범한 사람을 도둑으로 만드는 세상, 그래서 누구도 평범하게 살 수 없게 만드는 세상, 죄짓고 싶지 않으나 죄를 짓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 그런 세상이 틀려먹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내가 이 이야기에 빠져든 것은, 그러므로 이 이야기가 너무나 사람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쁜 정치, 나쁜 체제하에서 누구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 오랜 세월 전의 배경을 담고 있는 소설이고, 그 소설이 쓰여진 시기가 또 오래전이었음에도, 이야기는 다시 내 시대의 것이기도 했다.

이 소설에는 젊고, 투지에 가득 차 있으며, 건강한 도덕심으로 무장한 진보적 정치가 조광조가 나온다. 조광조의 진보적인 정치실험이 성공했다면, 임꺽정은 도둑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소설에서 말하는 바는 그렇다. 그러나 조광조는 당시로서는 지나치게 급진적이었고, 타협을 몰랐고, 자신의 대의에만 충실했던 인물로 그려진다. 처음에 젊은 조광조에게 매료되었던 임금은 곧 그 강직함이 불편해졌고, 나중에는 짜증스러워지기까지 하다가, 위협적인 인물로 여기게 되었다. 결국, 조광조의 정치개혁은 실패하고 그는 실각한다.

소설에는 힘이 있다. 소설 임꺽정을 읽은 후 내게 조광조는 언제나 소설 속의 젊고 진보적인 정치적 혁명가로 기억된다. 시대가 달라져도 그 시대에 맞춰 변주해가며 조광조의 투지를 떠올리게 된다. 당시의 임금이 조금만 더 현명했다면, 당시의 시대가 조금이라도 더 유연했다면, 그러면 조광조는 성공할 수 있었을까. 어리석은 질문이다. 오히려 올바른 질문은 조광조가 조금 더 현명했다면 당시의 군주제에 보다 더 적절한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시대를 감당할 만큼 그가 조금 더 유연하거나 정치적이거나 현명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는 군주와 그 군주를 둘러싼 권력층에게만 한계였던 것이 아니라 조광조와 그의 젊은 동지들에게도 한계였던 것이 분명하다. 정치는 시대와 함께 가고, 그 시대와 함께 진보한다. 물론 오늘날, 그 시대란 말은 국민의 뜻, 국민의 의지로 표현되는 것이겠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조광조의 묘와 그를 기리는 서원이 있다. 잘 가꿔져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대단하게 유적지로 조성되어있는 것도 아니어서 다정한 마음도 들고, 서운한 마음도 들고 한다. 소설 임꺽정 덕분이다. 조광조가 역사책 속의 한 인물이 아니라 소설 속에서 살아있던 인물로 내게 남겨졌기 때문이다.

조광조의 묘역이 길가에 있어서 그 길가에 잔뜩 붙어 있는 현수막들을 동시에 본다. 6·13 지방선거가 끝난 후, 당선 감사 현수막도 있고 낙선인사 현수막도 있다. 선거차량들이 주차해있던 길은 이제 비워졌다. 선거 운동의 풍경이 일부 변해서 요란하게 확성기를 울려대는 대신 말 없이 허리 숙여 인사만 하던 선거운동원들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다. 하고 싶었을 수많은 말을 인사 속에 전부 녹여내야 했을 그들 중 누구는 당선되었고 누구는 낙선했다. 나는 그들 중의 누구를 뽑았고 누군가는 뽑지 않았다. 뽑아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 내가 누구를 뽑았는지 그 이름을 똑똑히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정말로 좋아서 뽑은 사람도 있고 그나마 나아보여서 찍은 사람도 있다. 선거 이튿날 결과가 전부 나오면 그래서 좀 허탈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뜻밖에 좀 울컥했다. 엄청난 지지와 엄청난 실망, 혹은 분노가 동시에 보였다. 집권당이 엄청난 지지만 바라보지 않기를 바란다. 울컥했던 이튿날 아침,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부디’라는 것이었다. 부디, 제발, 잘하기를.

오늘날은 임꺽정의 시대도 아니고, 임꺽정을 도둑으로 만든 중종과 명종조의 시대도 아니다. 부당한 시대에 맞서기 위해 도둑이 될 사람은 없다. 그렇게 되어야 할 사람도 없다. 정당한 것이 정당한 자리에 있도록, 이야기는 이야기로 재미있을 수 있도록, 평범한 사람이 부당함을 느끼지 않도록, 그들의 정치가 넓고 반듯하고 겸손하기를 바란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그야말로 얼마나 엄청난 기회인가. 그러니, 부디, 제발.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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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자유한국당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중앙당을 해체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당명을 바꾸겠다는 등의 혁신안을 제시하자 당내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재선 의원들은 사전에 논의도 거치지 않고 발표했다며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초선 의원 30여명은 19일 모임을 갖고 당내 정풍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박근혜 정권에서 공천을 받은 이른바 ‘박근혜 키즈’다. 친박계인 김진태 의원은 “우리가 가진 이념이 문제가 아니고 그것을 담을 그릇이 문제였다”며 지방선거를 이끈 당 지도부를 비판했다. 친홍준표(친홍)계는 거꾸로 친박계의 인적청산을 주장하고 있다. 서로 “네가 나가라”는 것이다. 이러니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백날 외쳐봐야 빈말로 들리는 것이다. 이것이 자유한국당의 현실이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대표권한대행이 18일 국회에서 현안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사실 김 원내대표가 내놓은 혁신안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해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2016년 4·13 총선 패배 때도 외부 인사로 비대위를 구성한 바 있다. 당명을 바꾼 지도 1년밖에 안된다. 위기 때마다 등장하는 재탕, 삼탕 개혁이다. 똑같은 전철을 밟는 걸 보면 위기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고 하긴 어렵다. 그런데 이마저도 “왜 마음대로 하느냐”며 반발한다는 것이다. 당내에선 친박계, 친홍계, 바른정당 복당파, 비주류 등이 당권 장악을 위해 골몰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들은 계파별로 네 탓 공방을 벌이며 총질을 하고 있다. 지금 한국당 상황에서 ‘당권 경쟁’이란 말이 나오는 게 가당키나 한 얘기인지 모르겠다. 뼈를 깎는 쇄신책을 내놓아도 등 돌린 민심을 얻는 일이 될동말동한데 차기 총선에서 살아남을 궁리만 하고 있으니 황당할 뿐이다.

이번 선거에서 시민들은 전직 대통령에 이어 한국당까지 탄핵했다. 한국당은 난파선이 아니라 이미 물속에 가라앉은 배 신세다. 시민에게 탄핵당했다면 반성하고 새롭게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상식이다. 그렇지 않고 침몰한 배를 건져 올려 ‘그 밥에 그 나물’인 수준의 인물을 돌려막고, 이름을 바꿔 다는 게 혁신이라고 할 수 없다. 한국당에 각계가 주문하는 것은 수구적, 냉전적 이념의 틀을 허물고 대대적인 인적쇄신으로 새로운 보수를 재건하라는 것이다. 그간 자신이 주민의 정치적 의사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의 역할을 충실히 했는지 의원직을 걸고 각 지역구에서 재신임을 묻는다고 해도 울림이 있을까 말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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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 때 이종영이라는 인물이 부령의 도호부사로 발령 받았다. 부령은 함경도 마천령 이북, 그야말로 첩첩산중에 있다. 서울에서 2000리나 떨어져 있고 함경도 감사의 관아에서도 1000리나 떨어져 있다. 험준하고 궁벽한 땅이지만 그런 만큼 모든 것을 수령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진귀한 산삼과 짐승 가죽을 불법으로 갹출하여 탐욕을 채우고 권세가에게 진상할 수 있으며, 감찰 기관이나 조정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극심한 착취에 시달리지만 하소연할 길조차 없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정약용은 이종영의 부친인 이재의와 오랜 벗이었다. 새로운 관직을 받고 먼 길 떠나는 친구 아들을 위해서 정약용은 전송의 글을 써 주었는데, 그 첫머리에서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이 두려워해야 할 네 가지를 제시했다. 백성과 감찰기관, 조정, 그리고 하늘이다. 대부분의 관원들은 감찰기관과 조정만 두려워할 뿐, 백성과 하늘을 두려워할 줄은 모른다. 감찰기관과 조정이 먼 곳의 모든 관원들까지 제대로 관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그들을 속이기는 쉽다. 그러나 백성과 하늘은 늘 목민관의 가까이에 있으므로 속일 수 없다. 목민관의 잘못된 처사와 태도 하나하나에 백성은 그저 원망할 수밖에 없다. 이를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는, 백성의 원망이 바로 하늘의 원망이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다. 그냥 우리 어깨가 많이 무거워졌다는 정도의 두려움이 아니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그런 정도의 두려움이다.” 지난 1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때 대통령이 모두에 한 말이다. ‘두려움’을 강조하며 대통령이 보좌관과 내각에 주문한 세 가지는 유능함과 도덕성, 그리고 겸손한 태도였다.

행위를 의롭게 함으로써 모두가 두려워하는 것을 자신도 두려워하는 것이 두려움의 출발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친다면 상황과 기준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정약용이 권고한 두려움은, 마음을 올곧게 함으로써 남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것까지도 자신은 두려워하는 것이다. 진정한 유능함과 도덕성, 겸손함은 그런 본질이 없이는 나올 수 없다. 대통령이 엄중하게 언급한 두려움의 무게가 얼마나 제대로 구현될지, 유권자 모두가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볼 일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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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일회용품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셨다. 어머니의 싱크대에는 늘 깨끗하게 닦인 일회용품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일회용품을 반복 사용하면 환경호르몬이 문제될 수 있으니 재활용품으로 쓰레기 처리하자고 하면, 고개는 끄덕이셨지만 정작 일회용품을 버리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전쟁을 겪은 세대에 속한다. 나는 1970년대의 고도성장기 동안 유년기를 보냈고, 고도성장의 과실을 이미 20대에 맛봤다. 세대 경험이 극심하게 다르면, 동일한 사물도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된다. 어머니에게 ‘일회용 그릇’은 어디까지나 ‘그릇’이었지만 나에게 그 그릇은 ‘일회용’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누구나 삶을 살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 삶의 경험이 담겨 있는 가치관은 곧 인생관이다. 그래서 그 가치관은 당사자에게는 생생하고 또한 절실하기도 하다. 가치관에 자신의 인생 경험을 담았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 가치관도 달라진다. 부모와 자식의 가치관은 결국 다를 수밖에 없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함은 누구나 알고 있다. 2017년 기준 15~29세의 실업률은 9.9%에 달한다. 취업의 관문을 뚫기 위해 필요한 스펙도 많기에, 그 스펙을 준비하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신입사원의 평균연령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2016년의 조사에 따르면 신입사원의 평균연령은 남자 29.2세, 여자는 27.9세에 이른다. 마침내 자녀가 취업에 성공하면 뒷바라지했던 부모는 한시름 놓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적지 않은 대졸 신입사원이 힘들게 취업한 지 1년 내에 사표를 던진다. 2012년 신입사원의 23%가 입사한 지 1년 안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2014년에는 25%의 신입사원이, 2016년엔 27.7%의 신입사원이 회사를 떠났다고 한다(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

높기만 한 청년실업률이라는 허들을 뛰어넘은 이들이 불과 1년 만에 사표를 제출한다니,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다. 기업 인사담당자에게 이 현상에 대해 물었더니, 49.1%가 신입사원의 인내심 부족을, 29.8%가 직업의식 부족을 이유라고 답했다(취업포탈 사람인 조사. 경향신문 2017년 8월26일자). 1950년대에 베이비부머로 태어나 고도성장기를 살면서 삶과 회사를 일치시켰던 이른바 ‘회사형 인간’이었던 사람의 눈으로는 사표를 던지는 신입사원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평생 이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해요. 왜 그러겠어요. 이게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거든. 아침 일찍 일어나서 회사 갔다가 주말 시간을 활용을 잘해야 또 회사에서 경쟁하는 데 도움이 되니까. 그렇게 30년을 살아왔다고. 다들 비슷비슷할 거야.”(<회사인간, 회사를 떠나다> 중)

1950년대생의 자녀인 1970년대생과 1960년대생의 자녀인 1980년대생은 다른 눈으로 회사를 바라본다. 그들은 취업했다 하더라도 회사형 인간이 되기를 강요받으면 퇴사를 선택하기도 하고,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삶을 ‘다운 시프트’하겠다고 제주도로 이민도 간다. 물론 사표를 내지 않는 사람들이 양적으로는 더 많다.

그렇지만 퇴사하는 사람은 일과 직업에 대한 가치관이 세월이 흐르면서 극적으로 변화했음을 넌지시 알려주는 징후이다. <퇴사하겠습니다> <퇴사학교> <직장인 퇴사공부법> <사표의 이유> 등의 제목이 달린 책은 고도성장기에 회사형 인간으로 살았던 사람에겐 낯설지만, 그들의 자녀는 이런 류의 책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실제로 퇴사한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인사담당자의 해석이 놓치고 있는 맥락이 드러난다. 그들의 말을 들어본다. “그런 거(연봉인상)에 매몰되다 보면 내 일이나 삶에 대한 기대치가 완전히 달라지는 거지. 그 기준이 생긴다고 했을 때는 더 많이 해야 되거든. 휴일 근무 같은 것도 더 많이 해야 해. 하루 (휴일 근무) 나오면 20만원 나오는데 무조건 해야지. 야근도 웬만하면 다 해야 하고, 그렇게 해서는 내 삶이, 그런 일들에 파묻히다 보면 내 삶의 공간들이 더 피폐해지는 거고….”(<사표의 이유> 중)

OECD 통계에 따르면 2017년 한국 사람은 하루 평균 7시간41분 동안 잠을 잔다. 회원국 중에서 가장 수면시간이 적은 나라이다. 회원국의 평균 수면시간은 8시간22분이다. 잠은 가장 적게 자는데, 한국 사람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회원국 중 두 번째로 길다. 2016년 회원국은 평균 연간 1763시간 노동했지만, 한국 사람은 2069시간이나 일한다. 독일인의 연간 노동시간은 1363시간에 불과하다. 한국 사람은 독일 사람보다 연간 네 달 이상을 더 일하는 셈이다.

<피로사회>는 제목만으로도 잘 팔릴 수밖에 없었던 책이다. 장시간 노동 관행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니 한국은 예나 지금이나 피로사회였다. 1950년대생과 1960년대생도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면서 피로사회에서 일했고, 그들의 자녀도 에너지 드링크가 필요한 피로사회라는 동일한 껍데기 속에 있다. 1950년대생과 1960년대생의 한국인들은 과로사를 유발하는 삶이 보편적이자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 여겼다면, 그들의 자녀 세대는 에너지 드링크를 더 이상 마시려 하지 않는다. 억지로 그들에게 에너지 드링크를 권할 수는 없다. 세상은 에너지 드링크가 필요 없는 내일을 원하고 있다.

<노명우 | 아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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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까지 개최되면서 전 세계인의 눈과 귀가 한반도를 향하고 있다. 전 세계 주요 외신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남북한 소식을 주요 이슈로 다루고 있고 이러한 관심은 접경지역 관광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대비 임진각 관광지에는 관광객이 평일의 2배, 주말에는 4배 가까이로 늘었고 여행사를 통한 외국인의 접경지역 여행 문의도 2배 넘게 늘었다고 한다. 특히 남북 정상이 만났던 비무장지대(DMZ)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져 지난달 미국의 주요 방송사 CNN은 DMZ의 역사와 여행 방법을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DMZ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최근 접경지역 부동산 가격이 요동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어느 누구도 관심 없던 곳이 부동산 투자 열풍 지역이 된 것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접경지역 땅값이 몇 달 새 최고 50% 오른 곳도 있고 거래 규모도 10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또한 군사분계선과 민통선 인근 지역은 민간인 출입조차 어려운 지역이지만 땅을 보지도 않고 매매를 하는 이른바 ‘묻지마 거래’까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니 DMZ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우리보다 앞서 통일을 이룬 독일의 경우는 어땠을까. 통일에 즈음하여 28년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자연의 보고가 되어 있던 동·서독 접경지역을 자연의 기념물로 보호하기 위해 독일 국민은 범국민적인 토지 매입에 나섰다. 그렇게 25년여간 보호해온 결과 독일의 접경지역 ‘그린벨트’는 한 개의 국립공원과 세 곳의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그리고 271개 자연보호구역을 가진 세계적인 생태의 보고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DMZ도 환경오염으로 갈 곳을 잃은 멸종 위기종과 희귀한 동식물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최근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멸종위기종을 포함해 총 5929종의 야생생물이 DMZ에서 살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멸종위기 267종의 37.8%가 DMZ에 살고 있을 만큼 DMZ는 생태 보고로 재탄생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등 국내외 전문가들은 DMZ가 생태계 보전이 매우 잘되어 있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바로 등재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여행객에게 여행 목적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희소성이다. DMZ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남과 북에만 허락된 우리의 소중한 문화관광자원이다. DMZ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디에 가치를 두어 발전시킬지 국가 차원에서 명확한 기준을 정해 국민적 공감대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해 보이는 시점이다.

<김성은 | 경기관광공사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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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0년 8월7일 김대중 정부 해양수산부 장관에 취임했다. 당시 언론과 진보진영은 “3김 시대를 청산하고 새 정치 한다면서 왜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명장을 받았나”라며 탐탁지 않아 했다. 취임 초 노무현 장관은 청사 근처 식당에서 가까운 지인들과 만나 고심을 털어놨다. “주변에서 왜 장관 맡았냐는 말이 하도 많아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한 참석자가 별거 아니라는 듯 “뭐 그런 걱정을 합니까. 아니 노무현이 DJ의 차세대로 성장하는 자체가 청산인데. ‘청산하는 중입니다’라고 하면 되지요”라고 했다. 그는 “아, 맞네”라며 무릎을 쳤다. 그제야 밝은 표정으로 소주잔을 들더니 건배사를 외쳤다. “청산하는 중입니다.”

6·13 지방선거가 끝났다. 탄핵 연장, 정상회담 선거였다. 결과는 보수 궤멸, 지역주의 붕괴로 요약된다. 정당 체제 변화, 세대 요인 부각을 전망한다.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분석이 난무한다. 그러나 선거로 시작해 선거로 끝나는 한국 정치는 낡은 얼굴로 다가온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이번 지방선거만 해도 중대선거(기존 정치패턴을 깨뜨린 선거) 계기가 될 것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분명 더 깊은 심연이 있을 것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9주기 추모식이 열린 지난달 23일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대통령 추모의 집을 찾은 시민이 손자와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정희신화’와 ‘노무현신화’였다. 신화는 집단무의식에 터 박은 언어적 상징체계, 공동체를 뭉치게 하는 정치적 상징체계로 구분된다. 박정희신화와 노무현신화는 후자, 한국 정치사를 지배하는 상징체계다. 정치에서 신화는 일종의 신념 프레임이다. 박정희신화가 이익, 성장, 권위주의 연합이라면 노무현신화는 명분, 분배, 민주주의 연대를 상징한다. 노무현신화가 박정희신화를 물리친 것이 지방선거 결과였다. 2016년 겨울 촛불집회는 서막이었다. 그땐 박정희신화의 투사였던 박근혜를 노무현신화가 끌어내렸다. 이번엔 두 신화가 정면 대결했다. 노무현신화가 박정희신화를 밀어냈다. 더 강력했다.

박순찬 화백. 경향신문 자료사진

PK(부산·울산·경남)에서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전 지역을 석권했다. 4년 전만 해도 한 곳에 불과했던 기초단체장을 25곳이나 차지했다. 1990년 3당 합당 후 28년 동안 한 길로 흘렀던 보수의 본류는 방향을 바꿨다. 오거돈, 송철호, 김경수 당선인 등 PK 광역단체장들은 노무현신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젊은층은 민주당을 ‘우리 당’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TK(대구·경북)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대구에서 27년 만에, 경북에서 23년 만에 광역의원을 배출했다. 자유한국당 대구지역 기초단체장 당선인들의 평균 득표율(48%)은 4년 전(67%)에 견주면 약 20%포인트 추락했다. 특히 박정희신화의 직접적 자장 안에 있는 구미는 “우리를 더 이상 박정희 자식으로 취급 말라”고 경고하며 시장 자리를 민주당에 안겼다. 시민들은 ‘TK가 스윙지역’이라고 뿌듯해한다. 다만 PK와 달리 신화는 심판했지만 아직 이익연합을 포기하지 않았다. 신화의 자장이 강하지 않을 땐 이익이 앞서게 마련이다. 한국당이 광역단체장 2곳, 기초단체장 31곳 중 25곳을 차지하며 건재를 과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경북지역의 구미와 다른 지역 승부 차이에도 이 공식이 들어맞는다.

2017년 5월23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이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서 인사말을 한 후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이번 선거를 통해 지역주의, 색깔론에 의지하는 분열의 정치는 끝났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을 소환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꿈꿔왔던 일이고, 3당 합당 후 30여년 세월 동안 많은 사람이 눈물 흘리며 노력한 결과”라고 했다. 한국 정치를 지배했던 두 신화의 오랜 싸움이 끝났다는 말로 이해한다.

보수세력이 기댈 신화는 더 이상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노무현신화는 어떤 운명일까. 적어도 이번 선거만 보면 시민들은 노무현신화를 접은 것 같지는 않다. PK와 TK 선거 결과는 노무현신화가 꿈꿨던 명분(다양성의 정치), 분배(경제성장주의 배격), 민주주의(권위주의 통치 종말)의 힘이라 볼 수도 있을 테니.

신화가 저물어야 역사가 시작된다. 역사로 가는 과정에서 박정희신화는 소멸됐지만 노무현신화는 경로에 가깝다. 지역주의의 속까지 모두 도려낸 건 아니라는 의미다. 노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청산을 이렇게 강조했다. “2개 이상의 정당이 같은 지역에서 경쟁해야 부패와 전횡을 막을 수 있다”, “광주에서 콩(진실)이면 부산에서도 콩(진실)이다”. 파란(민주당) 물결이 PK를 뒤덮었다고, TK에 스며들었다고 지역주의가 전부 소멸되지 않았다는 역설이다.

지역주의뿐인가. 선거 결과를 두고 중대선거 가능성까지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중대선거의 필요충분 조건인 이념적·사회적 재편, 정당 일체감 강화가 이뤄졌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지금 한국당의 혁신 논쟁만 봐도 드러난다.

다시 18년 전 건배사를 생각한다. ‘청산하는 중입니다.’ 우리는 막 ‘박정희신화’를 끝내는 마지막 제사를 올렸다. ‘노무현신화’는 역사로 가는 길목에 있다. 시민들은 노무현의 신화가 문재인의 역사로 이어지는 길을 매섭게 지켜보고 있다. 다음 선거 뒤 칼럼은 ‘완전히 청산했습니다. 축하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쓸 수 있을까.

<구혜영 정치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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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와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한 뉴스들이 풍미한 가운데 국립생태원이 1974년부터 누적된 조사자료와 지난 4년간의 조사자료를 비교 분석한 DMZ 일원의 생태계 조사결과를 발표한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DMZ에 곤충류, 식물, 저서성대형무척추동물(연못, 웅덩이 등의 바닥을 생활터전으로 삼으며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한 척추 없는 동물), 조류, 거미류, 담수어류, 포유류, 양서·파충류 등 8개 분야 총 5929종의 야생생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이 중에는 사향노루·수달 등 포유류, 검독수리·노랑부리백로 등 조류, 구렁이·금개구리 등 양서·파충류, 애기뿔소똥구리·왕은점표범나비 등 육상곤충, 가는돌고기·가시고기 등 담수어류, 가는동자꽃·가시오갈피 나무 등 식물을 포함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101종이 포함돼 있었다. 놀라운 건 DMZ가 우리나라 면적의 1.6%에 불과해서 나라 전체로 보면 매우 비좁은 공간인데, 여기에 모여 사는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숫자는 전체 267종의 37.8%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생물들이 인간으로부터 거주지역을 계속 침범당하는 재난에 몰려 피난행렬에 나선 끝에 사람의 걸음이 끊긴 이 지역을 찾아 정착하게 된 것일까. 실제로 2006년에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에 걸쳐 있는 월악산에서 사는 것으로 보고됐던 희귀종인 등뿔왕거미가 11년 만인 지난해 6월 민통선 이북지역에 속한 연천군 일부 지역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이 덧붙어 있다. 이 뉴스에 연이어 DMZ의 평화적 활용논의 방안으로 정부가 DMZ 남북 공동조사를 추진하기로 했고,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지정도 추진된다는 소식이 방송을 탔다. DMZ의 멸종위기 야생생물 소식을 접한 시간을 전후하여 두 가지의 멸종 소식이 더해졌다. 영국 옥스퍼드브룩스대학 등 공동연구팀이 침팬지, 오랑우탄 등 우리 인류와 가장 가까운 영장류가 심각한 멸종위기에 놓여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인간을 제외한 현존하는 영장류는 총 439종인데, 이들은 총 90개국에 살고 있으나 이 중 3분의 2는 단 4개국에 몰려있다. 브라질(23%), 마다가스카르(23%), 인도네시아(11%), 콩고민주공화국(8%)이다. 문제는 이들 4개국에서도 영장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어서 이 중 60%가 멸종위기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특히 4개국 중 인도네시아와 마다가스카르가 가장 심각한데 연구팀은 각각 83%, 93%의 영장류가 멸종 위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진단했다. 또한 연구팀은 전 세계 영장류종 가운데 94% 이상의 개체수가 줄어든 것도 확인했다. 

이들 영장류가 멸종위기에 몰리는 이유는 한마디로 삼림 벌채로 인한 서식지 급감에 있다. 인류의 ‘영토 확장’이 영장류들에는 서식지 감소로 이어지는 셈으로 여기에 기후변화, 밀렵이나 밀거래도 주된 원인이라고 밝혔다.

많은 사람들이 애독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는 아프리카의 바오바브나무 이야기가 나온다. 이 바오바브나무는 아프리카에서 신성시되고 ‘생명의 나무’로 수천년간 불려왔다. 그러나 가디언지는 이 나무가 기후변화와 개발로 인해 금세기 안에 멸종될 위기에 처했다고 전한다.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 서식하는 3종의 바오바브나무가 그 주인공인데, 아이로니컬하게도 기후변화의 원인은 온실가스를 뿜어낸 다른 대륙의 영향으로 인한 것이다.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들, 그리고 동화적 소설을 통해 친숙한 바오바브나무, DMZ를 통해 한번에 여러 멸종위기의 소식을 접하고 보니, 한 세기의 몰락을 넘어 인류의 석양을 마주한 시간에 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고독감이 밀려온다. 이 고독이란 것은 인간세계의 배경이 된 모든 지구상의 것들이 사라지고 인간만이 남은 세계에 처하게 될 상황에 대한 실감 같은 것이다. 

과학에서는 현재 인간이 원인이 된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 있고, 대멸종이 일어날 경우 최상위 포식자는 먹이사슬 관계에서 반드시 멸종하게 돼있어서 현재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은 함께 멸망할 것이라는 예측을 한다. 그런데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는 기계를 만들어내고,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는 인간이 가만히 앉아서 멸망할 것 같진 않다. 어떠한 방법으로든 위기를 극복하지 않을까 하는 예측을 해보는데, 아무래도 현재까지의 세계 보존보다는 세계의 변형일 것이라는 데에 무게를 두게 된다. 지구상에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생명은 사라지고 인간만이 자신의 공작물과 함께 남아있는 세계를 상상해보게 된다. 

실제로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부족에 대비해서, 이미 기술로 식품을 만들어내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DMZ 보전과 같이 현 상태에서의 자연보전의 노력도 병행되겠지만, 성장이 멈추지 않는 한 인간의 서식지와 자원동원은 계속 늘어날 터이고 멸종에 대한 대안은 그 생물종들을 필요와 효용성에 따라 인간이 유전자조작 등을 통해 생산해내는 데 도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는 우주탐사에 대한 소식들을 접할 때마다 ‘우주쓰레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우주공간에 내버려진 다단식 로켓의 잔해, 수명이 다한 인공위성과 같이 큰 덩어리뿐 아니라 우주비행사의 공구, 각종 조각들이 모두 우주 쓰레기가 돼서 벌써 350만개 이상이라 한다. 우주쓰레기는 지구 궤도를 초속 8㎞의 속도로 계속 빙빙 돌고 있다. 우주탐사작업에는 이런 우주쓰레기 파악 업무도 포함된다. 1969년 일본 선박에서 소련 인공위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우주쓰레기에 맞아 선원 5명이 부상당한 사고가 있었다. 1997년에는 그전 해에 발사되었던 로켓의 잔해가 미국 여성에게 떨어져 부상을 입힌 사례도 있었다. 덩치가 큰 우주쓰레기들은 인공위성들 간의 통신에 방해를 주며 또 다른 물체와의 충돌로 새로운 쓰레기를 만들어낸다. 바다와 지상은 물론 하늘도 쓰레기로 뒤덮이고 있는데, 정작 두려운 것은 인간이 포화상태에 이른 지구를 넘어 우주를 계속 오염시켜가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사실이다.

지구의 다른 존재들이 다 사라지고 고독하게 남은 인간이 지금의 능력을 맘껏 성장시키고 확장시켜 지배범위를 넓혀나간다 하더라도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 존재를 우리가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강금실 | 법무법인 원 변호사·포럼 지구와사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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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경쟁교육 해소를 첫 번째 공동 공약으로 내세웠던 전국의 진보 교육감 후보들이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다. 교육감 선거가 정당 선거와 별개로 치러지는 점을 감안하면, 협력과 발달의 학교, 민주주의 문화, 그리고 학생이 주인인 교육을 만들겠다는 당선인들의 교육철학에 대해 유권자의 신뢰가 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부 성향이 정반대였던 최근 두 차례의 교육감 선거에서 민심은 일관된 흐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교육감 당선인들이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다. 당선인들은 대학서열체제를 해소하고, 학생의 입시 고통을 완화하는 대입 제도를 수립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왜 대학서열체제가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좀 더 서열 높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학생들이 왜 그토록 입시에 매달리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당선 지역의 학교 교육력만 높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무상급식, 혁신학교, 학생 인권 신장 등 그동안의 성과에 안주해서도 안된다. 일선 학교는 교사들에게 믿고 맡기기 바란다.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려 묵묵히 애쓰는 현장 교사들이 많다. 다만, 아무리 열심히 가르치고 배워도 그 성과가 고스란히 경쟁 체제로 소모되는 것이 안타깝다. 결국은 경쟁의 근원을 살피고 이를 제거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가령, 최근 제기된 ‘최저임금법 개정안’의 헌법 합치 여부를 묻는 헌법소원에 대해 당선인들이 교육적 차원에서 공동으로 입장 발표를 할 수도 있다. 학벌이나 학력, 또는 직업에 따른 임금 격차가 큰 상황에서 상여금, 식비 등까지 최저임금에 산입되도록 한 이번 개정안으로 인해, 저임금 노동자들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급여조차 보장받기 힘들어졌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라’고 과연 당당하게 가르칠 수 있을까. 단지 교육계 내부의 노력만으로 입시경쟁이 해소될 수 없는 이유다. 그렇기에 이번 선거에서 민심은, 17개 시·도교육감들이 힘을 모아 과감하게 나서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당선인들은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공동 학위를 수여하는 방안이나, ‘학력차별금지법 제정’, 노동이 존중되고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특성화고 지원 및 다양화, ‘블라인드 채용의 민간 기업에의 확대’ 등 관련 법령 제정을 통해 전 사회적인 학벌사회 타파의 기반 조성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연인원 1700만명의 촛불시민혁명으로 부정한 권력을 탄핵한 2년 전의 일도 있었지만, 사회적 현안마다 시민들이 생업을 접은 채 촛불을 들고 나설 수는 없다. 그래서 민심은 시민들을 대신할 대의권력으로서 교육감을 선출한 것이다. 쉽지만은 않겠지만, 이들이 함께 국회나 대학기관, 기업, 지자체, 시민사회단체 등을 찾아다니며 직접 발로 뛰고 소통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전 정부와는 달리, 현 정부는 이번 교육감 당선인들의 교육철학과 뜻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 학벌사회 타파의 최적기이기도 하다.

혹시라도 이번 당선인들이 향후 선거에서의 재선이나 3선만을 염두에 두면서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분야의 표를 의식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가령 특목고 폐지 등 약속한 개혁적인 정책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다가 교육개혁의 때를 놓친다면, 4년 뒤 민심의 평가는 냉혹할 것이다. 괴로운 학습 경쟁에 학생들이 더 이상 신음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민심의 준엄한 요구를 당선인들은 깊게 새겨주기를 바란다.

<이광국 | 인천 산곡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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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는 언제나 당대에서는 대중이 쉽게 이룰 수 없는 욕망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1980년부터 2010년까지를 정리한 <베스트셀러 30년>을 펴내기도 했고, 나중에 광복 70년을 맞이해 ‘베스트셀러 70년’을 정리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얻은 결론입니다. 그걸 간단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한국전쟁은 한반도 인구 3000만명 중에서 3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전장에서 많은 남성들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전후허무주의가 엄습하던 1950년대에 홀로 된 젊은 여성들은 어땠을까요? 춤바람이라도 나보고 싶지 않았을까요? 현실에서는 그런 삶을 살 수가 없었던 그들은 <자유부인>(정비석)의 여주인공 오선영을 바라보며 안도했습니다. 대학교수 장태연의 부인으로 정숙한 가정주부였던 오선영은 춤바람이 나서 가정이 파탄할 위기에 처합니다. 이 소설이 신문에 연재되자 서울대 법대 교수 황산덕은 정비석을 “중공군 50만명에 해당하는 조국의 적”이라고까지 격렬하게 몰아쳤습니다. 결국 작가는 잘못을 뉘우친 오선영이 장태연의 이해와 아량으로 가정으로 돌아오도록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산업화가 이뤄지던 1970년대에는 호스티스소설이 떴습니다. <별들의 고향>(최인호)의 경아, <겨울여자>(조해일)의 이화, <영자의 전성시대>의 영자는 모두 잘난 남자들 때문에 상처를 입고 호스티스가 됩니다. 그들을 ‘성(聖)처녀’로 미화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그들의 삶은 점점 추락해갑니다. 산업화가 진행되는 가운에 수많은 젊은 여성이 도시로 와서 여공이나 오피스걸(OL), 버스 차장이나 식모(가정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결국은 무책임한 사내들의 ‘방뇨’에 의한 가련한 희생자로 추락해가는 호스티스들의 비참한 삶을 바라보며 옷깃을 여몄을 것입니다.

사상 초유의 IMF 외환위기 직후 맞이한 2000년대는 벤처열풍이 대단했습니다. 글로벌 세상은 단지 생각을 바꾸거나 대화, 협상, 유혹, 칭찬 등의 기술 하나만이라도 잘 습득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유혹했습니다. 그야말로 자기계발 전성시대였습니다. 벤처열풍에 힘입어 일확천금을 건진 사람들이 없지 않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의 삶은 조금씩 나빠질 뿐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이후에도 5년마다 카드대란과 글로벌 금융위기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은 성공을 포기하고 나에게 주어진 알량한 ‘행복’이라도 겨우 유지되기를 간절히 염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에 크게 뜬 소설들은 모두 극도로 축소된 인간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간암에 걸린 아버지가 각막을 팔아가면서까지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살리려는 부정을 그린 <가시고기>(조창인), 위암에 걸린 여인이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건강한 딸을 낳고 죽어가는 <국화꽃 향기>(김하인), 사촌오빠에게 강간을 당하고도 교양을 중시하는 가족들 때문에 상처조차 드러낼 수 없었던 여자가 세 명의 여자를 살해한 죄로 사형수가 된 남자를 면회하던 매주 목요일의 세 시간을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여기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공지영), 엄마가 지하철에서 실종되고 나서야 가족들의 여러 시점으로 엄마라는 실체가 점차 드러나는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등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명박 정권 내내 셀프힐링을 하면서 겨우 버티다 맞이한 2010년대에는 개인이 혼자 일어서기도 버거워 누군가를 사랑하기도 힘들었습니다. 멘붕이 온 젊은이들은 헬조선을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둘 포기하다 더 이상 포기할 것이 없어 N포세대가 된 이들은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라고 외치는 <82년생 김지영>(조남주)의 삶에 자신을 빙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이제 떨치고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lt;그녀 이름은&gt;(조남주)은 소설 ‘만인보’입니다. 28편의 소설에 불과하지만 아홉 살부터 예순아홉까지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여성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픈 과거를 갖고 있는 그들이 자신의 삶에서 드디어 희망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타나고, 맞춤법도 맞지 않는 피켓을 들기도 하고, 비정규직 차별에 항의하기 위해 파업을 하면서 진정한 자신을 찾으려 하니 세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경애의 마음>(김금희)은 초연결사회의 새로운 로맨스입니다. 37세인 남녀 주인공은 56명이 한꺼번에 죽는 20년 전의 화재로 친구와 애인을 잃은 경험을 공유합니다. 반도미싱에서 한 팀이 되는 경애와 상수는 회사에서의 삶은 늘 겉돌지만 익명으로 만나는 ‘언니는 죄가 없다’라는 사이트에서는 진정한 마음을 드러내는 이중생활을 합니다. 처음에 그들은 가상현실에서의 만남을 알지 못합니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채 인식하지 못했지만 돌아보니 어디엔가 분명히 있었던” 마음을 알게 된 두 사람은 드디어 서로의 손을 맞잡습니다.

지난 6·13 지방선거는 두 사람처럼 “추억이 있고 대화가 어긋났던 감정들의 순간과 실패의 경험과 자주 있었던 낙담과 서로를 서툴게 위로했던” 우리가 “사랑의 상실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던 과거를 떨치고 투표 하나로 진정한 마음을 공유한 대단한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잃어버린 사랑이 어떻게 안전하게 식어갈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요? 소설 속의 두 주인공처럼 말입니다.

저는 현실에서 늘 2% 정도 부족한 것을 네트워크에서 채우던 인물들이 주인공인 21세기형 로맨스 소설의 탄생에 무척 기뻤습니다. 여러분도 새로운 사랑을 한번 꿈꿔보시지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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