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급된 손전등은 꺼지고, 휴대전화기 손전등이 작업장에 남아있는 젊은 임시직 노동자의 삶을 밝힌다. 막장보다 못한 태안화력발전소의 근무환경에서 컨베이어벨트는 이성 없이 돌아가고, 끝내 우리 시대의 아들 김용균은 칠흑의 어둠 속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잠과 사투를 벌이는 어둡고 컴컴한 작업장에서 그는 수없이 되뇌었을 것이다. ‘나도 남들처럼 살아야지, 남들처럼.’ 그의 소박한 꿈은 뜯지 않은 컵라면 속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내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 불쌍한 우리 아들 좀 살려주세요.” 부모의 울부짖음이 모든 이의 심장을 녹였다.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은 2018년을 규정하는 단어로 ‘독성이 있는’ 의미의 ‘toxic’을 선정했다. 독성물질, 유해환경, 유해 미세먼지 등의 표현에서부터 ‘미투운동’으로 번진 ‘유독한 남자다움’에 이르기까지 이 단어는 올해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대표적 단어가 되었다. 직장과 학교는 물론 문화,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이 단어의 은유적 표현이 많이 사용되었다 하니, 한 젊은이의 죽음 역시 유독한 직장환경과 해악의 비정규직, 불법파견 시스템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고로 숨진 하청노동자 김용균씨를 추모하기 위해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13일 한 시민이 국화꽃을 놓고 있다. 이날 광화문광장에서는 김씨를 추모하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추모제가 열렸다. 김씨는 지난 11일 오전 충남 태안의 태안화력 9·10호기에서 운송설비를 점검하다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이준헌 기자

인도의 사상가 간디는 일곱 가지의 사회악에 관한 글을 남겼다.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이 얻어지는 부유함,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지식, 도덕성 없는 상업행위, 인간성을 상실한 과학, 희생 없는 신앙이다. 1925년 간디가 규정한 사회악이 2000년대를 사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함 없음에 놀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지만, 그 원칙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백성을 위해 일하는 목민관의 도리를 기록한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정치하는 사람은 백성을 위해 일할 때만 존재 이유가 있다고 했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드러난 실세 국회의원들의 쪽지예산은 또 다른 원칙 없는 정치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천정부지의 집값 상승과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인한 사회 양극화 현상은 앞날에 대한 희망 없는 좌절감으로 나타났고, 주택은 삶을 영위하는 안락한 공간이 아니라 투기 수단으로 전락했다. 초등학생들의 장래 꿈이 건물 임대사업자라는 말을 들었을 땐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정직한 노동으로는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12월17일 (출처:경향신무DB)

서지현 검사 폭로로 시작한 한국 사회의 ‘미투’ 운동은 사회 전 분야로 퍼지며 ‘유독한 남성성’이 일으킨 양심 없는 쾌락을 고발한 대표적 사건이다. 대학병원 교수의 직원과 레지던트 상습 폭행 사건과 지도층 인사들의 상식 이하 갑질 행위는 인격 없는 지식의 대표적 예다. 일부 대기업은 경영성과가 좋아 보이도록 고의로 회계장부를 조작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으며, 여기에 더해 제과점, 분식점 등 골목상권까지 장악하는 도덕성 없는 상행위를 벌였다. 첨단 과학기술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기술을 넘어 이제는 사람과 기계를 연결하며 나아가 첨단기계 속으로 사람을 몰아넣고 있다. 인간성은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속에 묻히고 있다.이제 유독했던 2018년의 암울한 시대에 종말을 선언해야 한다. 2017년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했던 ‘젊음의 소용돌이(Youthquake)’가 2019년 새해에 다시금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으면 좋겠다. 젊은이의 희망을 저버린 사회에 미래는 없다. 국가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엄치용 | 자유기고가·미국 코넬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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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그들은 그날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깃집에서 고기를 몇 근 끊었고, 읍내 마트에 나가 음식 재료를 사놓았다. 그날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신바람이 났다. 동료들이 그렇게 좋으냐고 놀리듯 말해도 싱글벙글 웃었다.

마침내 그날, 그들의 조국이 스즈키컵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들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선수들의 발끝 하나하나에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지 그리고 경기가 끝나는 순간 금성홍기로 뒤덮인 경기장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가슴 벅찼을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축구 경기를 보면서 기뻐할 그들을 생각했다.

그들이 머무는 곳은 논밭을 메우고 산을 깎아 빽빽하게 공장이 들어선 곳이다. 봄이면 가풀막에 드문드문 개나리 진달래도 피고, 여름이면 갓길에 풀숲이 무성해도 그곳은 한밤중까지 돌아가는 기계 소리와 온종일 2차선 좁은 도로를 내달리는 트럭의 먼지에 뒤덮여 사계절 내내 잿빛으로 보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 상관 없는 곳, 몇 년에 한 번 기껏해야 갈라지고 깨진 도로에 새 아스팔트를 까는 게 유일한 환경 미화인 곳.

그곳이 그들이 아는 한국이다. 그중 한 명은 두 아이의 아빠다.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첫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만큼 자랐고, 둘째가 걸음마를 떼고 말을 배웠다. 기러기 아빠라 할 수 있는 그는 야근과 특근을 빼먹지 않으면서 그 잿빛 공단에서 일 년 내내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아마도 그는 훗날 한국이라고 하면 잿빛 공단만 떠올릴지 모른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에게 한국이 어떤가 묻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 잠시 머무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한국의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 그리 궁금해하면서도 정작 몇 년씩 한국에서 땀을 흘리면서 일한 그에게는 묻지 않을 것이다. 이 땅은 그를 사람이 아니라 노동으로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베트남 축구에 왜 열광하는지 뻔히 알지만, 그래도 베트남 축구에 갖는 관심의 십 분의 일이라도 이 땅에서 일하는 베트남 사람들을 한 번쯤 생각했으면, 아니 이 땅에서 일하는 모든 이주노동자가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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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이 지나가고 있다. 공부가 직업인 사람으로서 한 해를 기억하는 방식 중 가장 의미 있는 것은 1년 동안 읽은 책을 돌아보는 것일 게다. 타인의 생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반추할 때 인간의 사유는 진화하는 법이다. 독서가 사유를 압도해선 안된다. 그러나 독서를 통해 검증받지 않은 사유 또한 현실의 대지에 뿌리 내리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돈다고 나는 믿는다.

올해 가장 인상적인 책을 한 권만 꼽으라면 10월에 우리말로 옮겨진 지그문트 바우만의 <레트로토피아(Retrotopia)>를 들고 싶다. 지난해 1월 바우만이 세상을 떠났을 때 경향신문의 요청으로 그를 추억하는 추도문을 쓴 바 있다. <레트로토피아>는 지난해 3월에 출간되었기에 당시 나는 이 책을 보지 못한 채 그와 그의 학문을 추모한 셈이었다.

바우만은 ‘유동하는 현대(liquid modernity)’의 이론가다. 그의 메시지는 우리 시대가 ‘고정화된 현대’에서 ‘유동하는 현대’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유동하는 현대’란 모든 견고한 것들을 ‘녹이는 힘’이 사회변동의 원동력이 된 시대를 말한다. 그는 이 힘이 체제를 ‘사회’로, 정치를 ‘생활정책’으로 바꾸고, 사회문제들을 ‘거시적 차원’에서 ‘미시적 차원’으로 끌어내렸다고 분석한다. 그 결과, 우리 시대는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부과하는 새로운 유형의 삶을 일반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지속성에 무관심해지고 즉시성이 지배하는, 그리하여 모든 것들이 개인화하고 사유화하는 시대가 바로 ‘유동하는 현대’라는 게 바우만의 이론틀이었다.

이랬던 바우만이 자신의 유언장과 같은 이 책에서 ‘유동하는 현대’로부터 더 나아가 우리 시대의 핵심적 흐름을 ‘레트로토피아’에서 찾는다. 레트로토피아는 유토피아를 염두에 두고 주조한 말이다. 유토피아가 미래를 향한 비전이라면, 레트로토피아는 과거에 대한 향수다. 좋았던 과거, 다시 말해 안정성과 신뢰성을 품고 있던 지난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그 시절에로의 회귀가 레트로토피아의 중핵을 이룬다.

내가 이 칼럼에서 말하려는 것은 레트로토피아의 구체적인 양상이 안겨주는 현실적인 함의다. 바우만은 오늘날 관찰할 수 있는 레트로토피아의 네 가지 경향을 제시한다. 공공질서 유지에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의 회귀, 민족·인종·종교를 기반으로 한 부족주의로의 회귀, 신분이자 운명으로 개인을 구속하는 불평등으로의 회귀, 경쟁이 부재한 안전한 장소인 원초적 자궁으로의 회귀가 그것이다.

바우만의 분석이 일차적으로 고려한 대상은 미국과 유럽의 서구사회다. 그런데 이러한 관찰과 논리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함의 또한 결코 작지 않다. 각자도생과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경쟁 논리, 이념과 세대 등을 앞세운 정치적·문화적 집단주의, 고착화하고 세습화하는 빈부격차, 사회 구조로부터 개인적 삶으로 퇴각하는 내면적 망명이 최근 우리 사회의 저류(底流)를 이루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구체적으로, 올해 우리 사회를 뒤흔든 분노 범죄들의 잇단 발생, 정체성의 정치의 연이은 분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죽음, 소확행과 케렌시아 등 작은 행복에의 애착은 바로 레트로토피아가 펼쳐 보이는 낯익은, 그러나 불편한 세계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레트로토피아에 맞서 바우만이 제시하는 대안이다. 레트로토피아에는 불안, 절망, 공포, 분노의 심정이 뒤엉켜 있다. 이 복잡한 심사는 자기 세계의 일방적인 방어와 타자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응해 바우만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설파한 ‘대화’를 역설한다. 대화는 만남이자 참여이고 협상이자 포용이다. 대화는 자아와 타자, 개인과 사회, 의식적인 것과 제도적인 것 간의 끊어진 회로를 복원하는 출발점이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이러한 대화를 위해 바우만이 강조하는 전제조건이다. 바우만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인용한다. “만약 우리 사회를 다시 판단하고 싶다면, 특히 청년들을 위해 품위 있고 보수가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만족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보통 사람들의 혜택을 지향하는 새롭고 포괄적이며 공정한 경제모델이 제시되어야 한다.”

인류의 미래를 걸머질 청년들이 레트로토피아가 아닌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게 하는 일자리 창출과 이를 위한 혁신과 통합과 공정의 경제모델 구축이야말로 사회학자로서의 바우만이 남긴 유언인 셈이다. 한국 독자를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러한 바우만의 유언이 우리 사회에 안겨주는 함의는 주목받아 마땅하다. 바우만을 다시 한번 추모하는 까닭이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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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에서 이제는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철새정치인’이라는 명명은 철새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다. 철새들은 제 이익을 따라 이 무리 저 무리 옮겨 다니지 않는다. 온 무리가 함께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수만리의 험한 여정을 헤쳐나감으로써 생명을 지키며 번성해 간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신념과 지조는 내팽개치고 당을 옮겨 다니는 정치인을 철새라고 비유하는 것은 온당치 않을 수 있다. 새 박사 윤무부 교수는 한 방송에서 정색하고 ‘철새정치인’ 비유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철새는 절대로 다른 새에 붙지 않는다. 국경 없이 날아다니는 이념이 없는 새들을 자기 이익에 따라 자리를 옮겨 다니는 정치가에 비유하면 안된다.” ‘철새 명예훼손론’은 결국 철새만도 못한 ‘정치 철새’에 대한 따끔한 죽비이다.

철새 행적에 갖은 명분과 교언영색을 갖다 붙여도 결국은 일신의 안위와 영달에 유리한 양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선거철이 닥치거나 정계계편의 계절이면 어김없이 ‘철새정치’가 만개한다. 철새정치를 빛내는 어록도 많다. 2002년 민주당 집단 탈당 사태 때는 “갔다가 다시 오는 게 철새지, 날아가는 것은 철새가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2015년 4·29 보궐선거 서울 관악을 출마를 두고 철새 비판이 나오자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앉아 있는 몸이 무거워 날지도 못하는 기득권 정치인은 먹새 정치인”이라고 대응했다. ‘철새정치’와 관련, 최고의 변호는 아마도 “따뜻한 곳으로 가는 것이 철새지, 추운 곳으로 가는 건 철새가 아니다”라는 것일 게다. 근래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경유형 철새”라는 힐난을 들은 바른미래당 이언주 의원은 “자기가 더 유리한 곳을 찾아다니는 게 철새다. 저는 더 불리한 곳으로 가고 있다”고 반박했다.

바른미래당 이학재 의원이 어제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바른미래당 몫으로 받은 국회 정보위원장직을 전리품으로 가지고 갔다. 그러면서 ‘보수대통합’을 앞세웠으나, 실은 한국당 지지율이 반등하면서 다음 총선에서 유불리만을 계산한 전형적인 철새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다. “갔다가 다시 오는 게 철새”이고, “따뜻한 곳으로 가는 것이 철새”이기 때문이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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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가수 산이(SAN E)씨는 라이브 공연 중 “여기 오신 워마드, 메갈 너희들한테 한마디 해주고 싶은 건, 워마드는 독, 페미니스트 노(no) 너네 정신병”이라고 외쳤다. ‘F’로 시작하는 욕설에, “군대 안 가는 여자는 평등을 말하지 마라”는 가사도 있었다.

이 ‘작은’ 소동은 다방면으로 흥미롭다. 관객의 90% 이상이 여성인데 고객에 대한 거침없는 비하 발언. 이 반(反)자본주의 정신의 정체는 무엇인가. 백인 가수가 흑인 관중 앞에서 “검○이, 너네 정신병”이라며 노래할 수 있을까. 또한, “정신병” 비유는 정신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건강 약자에 대한 모욕이다. “뭘 더 바래, 지하철 버스 주차장 자리 다 내줬는데”. 이 가사는 국가의 저출산 극복 노력을 정면으로 비웃는 ‘반사회적’ 발언이다.

압권은 뻔뻔스러움이다. 정작 본인은 미국 국적자로서 군대에 가지 않았으면서,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병역에서 배제된 여성을 ‘꾸짖고 있다’. 그는 한국의 현역 복무자들의 고생에 무임승차하면서, 마치 ‘해병대 출신’이라도 되는 양 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소속사 대표는 “아티스트는 신념과 소신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의 생각을 소중하게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며 사과 아닌 사과를 했다. 예술가는 사회 밖에서 혹은 사람 위에 사는 사람이 아니다. 홀로코스트나 제국주의 침략을 옹호하거나 난민, 이주자, 장애인을 혐오하는 것은 신념이 아니다. 이 모든 사연이 너무 황당하다보니, 단지 인기 없는 가수의 노이즈 마케팅일 뿐이었는데, 매체가 지나치게 반응해주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대한민국의 모든 남성이 군대에 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남성을 군대에 보내는 집단은 여성이 아니라 국가다. 그런데도 “남성=군대”라는 이 절대 논리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모든 국민은 병사가 되어야 한다는 1950년 국민개병제(皆兵制) 도입 그리고 1962년 국방부가 직할했던 시·도(市道) 병무청이 설립될 즈음, “병사구사령부(병무청의 옛 이름)는 조폐공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돈으로 병역을 면제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비리, 거부, 기피, 특례 등으로 모든 남성이 군대에 가는 것은 아니고, 모든 남성이 현역으로 복무하는 것도 아니다. 비리가 아니더라도 남성의 징집률은 당대의 인구수와 학력 구조, 고용시장의 상황에 따라 조절된다. 1986년에는 전체 징병 대상자 중 51%만이 현역으로 복무했지만, 저출산으로 인해 2013년에는 91%가 현역 판정을 받았다.

이회창씨 집안의 남자들은 모두 군대에 가지 않아서 두 번의 대통령 선거를 좌우할 만큼 역사가 되었다. 특히 이씨의 장남은 1차 신체검사에서 키 179㎝, 몸무게 55㎏으로 현역 판정을 받았으나 2차 때는 45㎏으로 면제되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너무 말라서” “너무 아파서” 군대에 가지 않았다. 전 총리들 중에는 정운찬, 김황식, 황교안 총리가 가지 않았다. 2010년 서해교전 때 불에 탄 보온병을, 북한군의 포탄이라고 주장한 ‘보온병 사건’의 주인공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도 미필자다.

징병제는 근대 국가 이후에 등장한 인류 역사상 가장 역사가 짧은 모병(募兵) 제도이다. 징병제는 신분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남성의 대중화, 국민화 기획이었으나 그 목표를 달성한 국가는 없다. 어느 사회나 돈과 권력으로 징집을 피하는 계층이 있었다. 혹은 여호와의증인처럼 특정한 신념을 가진 이들을 국민으로 만드는 데 실패한 경우도 다반사다.

모든 남성이 군대가 간다는 통념은 애시당초 신화였다.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 남성의 복무 경험은 이전에 비해 매우 다양해졌다. 국방부의 정책대로, 병역은 점차 ‘취업과 자기 계발’의 경험으로 발전할지 모른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병무의 공정성과 사병의 인권이다. 지금처럼 군복무 여부와 보직이 ‘수저’색의 영향을 받는 상황은 계급 투쟁을 촉발시킬 ‘위험’이 있다. 2018년 한국 사회의 키워드 중 하나는 젠더 전쟁이었다. 성차별을 자각한 여성들은 더 이상 참지 않는다. 당대 병무의 공정성은 성별 차원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다. 헌법 제39조 1항에 적시된 대로, 여성은 병역은 아니지만 넓은 의미의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

남성 내부의 계급 차이가 병역 비리의 온상이다. 병역 비리는 자신과 자기 자식은 군대에 안 가면서 국가안보를 강조하는 집단에게 ‘끌려가는’ 남성들이 저항할 때만 해결될 수 있다.

<정희진 |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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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겨울, 한 동네 골목에서 붕어빵을 파는 이는 군대를 갓 제대한 22살 청년이었다. 사람 좋고 정 많은 이 청년 덕분에 삭막한 동네는 온정이 넘치게 됐다. 폐지 줍는 할머니에게 몸 좀 녹이고 가시라며 붕어빵을 건넸고, 장사를 끝내고 남은 붕어빵은 인근 파출소와 청소년 자립생활관에 갖다주었다. 그는 10대 시절 잠깐의 방황으로 소년원에 갔지만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한식조리사 자격증도 취득하는 등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자 했다. 지금 그는 푸드트럭을 장만하겠다는 꿈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

가정법원 법정에 한 소녀가 섰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할머니와 화물트럭 기사인 아버지가 소녀를 양육했지만 방황하던 소녀는 가출을 했다. 결국 소녀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성매매를 하다가 법정에 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판사의 질문에 그는 “제게 반성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꿈은 제과제빵과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아담한 카페를 여는 겁니다. 돈을 많이 벌기보단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판사는 소녀에게 보호관찰 처분을 내려 새 출발의 기회를 줬다.

경기도의 한 도시에는 오래된 공터가 하나 있다. 법무부 소유로 위기청소년의 사회 정착을 지원하는 ‘청소년창업비전센터’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파트값과 자녀 교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지역주민의 반대로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 아이들이 뒷골목과 유흥가를 배회하면 비행의 위험성이 높아지지만, 인성교육과 직업훈련교육을 받을 기회를 준다면 건전한 청소년으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위기청소년들이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최원훈 | 법무부 보호직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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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자치경찰제를 시범적으로 시행한다고 하자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소방은 국가직으로 하면서 경찰은 국가경찰과 지방경찰로 구분하여 쪼갠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고 본다. 물론 지방분권주의, 정치적 중립, 주민친화·밀착형 치안행정 등이 자치경찰제에 대한 명분이다.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치안을 자랑하는 경찰조직을 지방분권 등을 명분으로 이원화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에 적합한 것인지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지자체로 쪼개져야만 정치적으로 중립적일 수 있다는 주장에 공감이 되지 않는다. 지자체마다 지지하는 정당도 다르고 정치적 성향이 갈려서 오히려 지방경찰마다 정치성향이 제각각이 될 수 있어서다. 지방경찰이 지역실정에 맞는 밀착형 치안행정을 서비스할 수 있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다민족 국가라든지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라면 설득력이 있겠지만, 대부분 같은 언어와 같은 문화를 가진 조그마한 나라에서 지역실정 운운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토호세력과의 유착 등 잡다한 폐해가 우려된다.

소방을 국가직으로 해야 전국에 일률적인 소방행정을 제공할 수 있고, 소방관 또한 지역별로 차등 없는 처우와 장비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이 최근 지지를 얻고 있다. 이 논리라면 경찰이 자치제가 되면 지역별로 고르지 못한 치안행정이 제공되고, 경찰관 또한 지역별로 다른 처우를 받는다는 말이 된다. 결국 자치경찰제는 업무분담의 혼란을 가져오고, 업무 중복으로 인해 전체 경찰의 총량만 더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소방은 지방분권이라는 형식적인 틀을 깨면서까지 국가직 전환을 추진하면서 반대로 경찰은 지방분권이라는 틀에 가두려고 하는 것을 어느 누가 공감할지 모르겠다.

<김채현 | 부산해운대경찰서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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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세 노동자 김용균씨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다시 비정규직 차별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끔찍한 차별과 불평등의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남북화해도, 선거법 개정도 소용없는 일이 될 것이다.

비정규직 차별은 대학에서도 극심하다. 대학들의 ‘할리우드액션’ 탓에 생긴 일부의 오해와 달리, 새 강사법으로 비정규 교수에 대한 비상식적 착취가 개선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교원 신분을 갖게 되어 법으로 좀 보호된다는 의의는 있지만, 강사로 임용된다는 것은 연봉 1000몇백만원짜리 안팎의 계약직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주요’ 대학 정규직 교수의 연봉은 대략 1억원이니 약 10배 차이가 난다.

그래서 지금의 강사법 논의에서 빠진 게 있다면 정규직 교수들의 고통 분담과 교수사회의 개혁이다. 엉망이 된 한국 고등교육의 거의 모든 문제가 그렇지만, 정부가 노력해도 대학의 변화 없이는 어떤 바람직한 변화도 불가능하다. 고등교육 개혁은 사학법 개정과 대학의 공공성 강화로 달성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사회의 재‘민주화’가 절실하고 그것은 교수사회의 변화 없이 불가능하다. 강사 대우와 대학원 공동화 문제만 하더라도, 후속세대를 위한 학술펀드의 조성이나 60세 이상의 임금피크제 등 정규직 교수들이 ‘사회적 대타협’과 비슷한 정신으로 할 일이 많다. 그러나 안 하거나 못한다.

정규직 교수로 일한 지 13년, 누워 침 뱉는 격이지만 조금 겪어본 교수사회는 희한했다. 분야·세대·학교별 차이가 있어 일반화하기 쉽지 않지만 자경문 삼아 대한민국 교수에 대해 몇 마디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정규직 교수의 주류는 1970년대 중반~1980년대 중후반 학번의 남자, 서울과 영남 그리고 소위 SKY와 미국 유학 출신들로 구성돼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 학계의 각종 ‘장’, 즉 총장·학장·교무처장 등과 각종 연구원 원장, 학회 회장 등의 자리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크게 보아 그 의식과 행동양식은 70~80 민주화세대의 그것과 유사할 것인데, 정규직 교수들은 더 개인주의적이며 더 보수적인 성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들 주류는 연구재단 시스템과 신자유주의를 대학에 착근시켰고, 정부 또는 사학재단과 결탁하여 (결과적으로) 한국 대학을 병들게 한 장본인들이다.

대학(원)생 때 순진한 내가 상상했던 교수란 존재는 진보적이면서 참여적인 자유주의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교수는 별로 없었다. 이젠 더 없다. 유물처럼 조금 있는데, 언론과 명망가 때문에 착시 현상이 일어난다. 진보적 자유주의자인 척하는 교수는 좀 많겠지만, 시민사회의 평균과 비교할 때 정규직 교수들의 평균적 의식은 확실히 ‘우저(右低)’라 생각한다. 만약 정규직 교수로만 투표단을 구성하여 대통령선거를 했다면? 아마 홍준표나 안철수가 당선됐을 것이다.

70~80 정규직 중 상당수는 ‘개구리 올챙잇적’을 기억할 필요도 없이 ‘졸정제’와 고도성장 시대의 혜택을 입어 빨리 교수가 됐다. 그래서인지 망측한 특권의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인문한국(HK)사업의 후과나 기타 행태는 ‘사다리 걷어차기’에 다름 아닌데, 후배나 제자들이 쥐꼬리 같은 강사료를 받고 학교당국에 욕을 당하며 불안정한 삶을 전전하는 데 문제의식이 없다. 혹 있었다 하더라도 대부분 마모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정규직 교수직을 진짜 생득 신분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갑질’이 자주 일어난다.  

이에 비해 90년대 학번 이후부터의 정규직 교수들은 좀 다른 것 같다. 이제 그들은 중상층(upper middle) 소시민 이상·이하도 아니다. 선배 세대와 달리 ‘진보, 참여’나 ‘지식인’ 같은 부담스러운 가치나 자의식에서 벗어나 단순한 직장인으로 바뀌었다. 은·금수저 집안의 학벌 엘리트, 짧은 시간에 논문을 다량 생산할 수 있는 멘털 또는 오타쿠 기질과 사회성을 겸비한 경우들이 많겠다. 그들도 어렵게 구한 ‘좋은 직장’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유보할 수밖에 없는 소심한 ‘범생이’다. 당연히 대학당국과 사학 이사장들은 그런 사람을 뽑길 선호한다. 또는 그렇게 예스맨으로 성장(?)하게끔 조교수·부교수들을 ‘강하게’ 키운다.

근래 상위 10% 계층이 ‘좋은 직장’을 위시한 모든 것을 독식·세습하는 불평등 구조에 대한 논의가 많은데, 아마 앞으로는 많은 시간과 자원이 투여돼야 배출 가능한 정규직 교수 또한 10% 계급 출신 중에서만 ‘간접 세습’될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셀프 개혁’은 어려울 듯하다. 지난 20여년간 자본과 사학재단들이 대학교수 집단 전체의 권익을 감퇴시켜 왔는데, 이는 엄청난 부작용도 수반했다. 그래서 건강한 개혁을 위해서는 비정규직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단결하는 방법밖에 없는 듯하다. 만약 대학원생노조와 비정규교수노조의 조직률이 지금의 3배가 된다면? 아마 교수사회도 변하고 대학의 공공성의 길도 좀 더 넓어지지 않을까? 아, 갈 길이 멀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인문학협동조합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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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반경이 좁은 편이다. 집 근처 마트나 세탁소, 빵집 정도를 뱅뱅 돌며 산다. 대략 이삼백 미터 반경 내외에 있다. 조금 멀리 나가면 시장이나 도서관이다. 버스로 대여섯 정거장 정도 거리인데 자주 걸어 다닌다. 어떤 날은 그 거리를 직진으로 가지 않고, 돌아갈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로 돌아서 걸어간다. 그래 봐야 걸음 수를 측정하는 앱으로 계산해서 만보도 되지 않는 거리다. 그래도 그 길이나마 걷는다. 미세먼지 경보가 높은 날도, 어떤 날은 마스크조차 하지 않고 걷는다. 왜 그렇게 걷느냐고 물으면 운동하느라 걷는다고 대답하지만 절반은 거짓말이다. 내가 걷는 길의 반경은 운동하기에 적합한 길도 아니고, 운동이 될 만한 속도로 걷지도 않는다.

내가 밖으로 나가는 이유는 단 하나다. 신문과 잡지, SNS에서 읽는 세상 말고, 내가 사는 세상의 실재를 느끼고 싶을 때다. 글을 쓰니 사람들이 작가라고 부르지만 글 쓰는 직업이란 글을 쓰는 순간에만 직업이고, 쓴 글 중 대부분의 글은 세상에 닿지 못한다. 소득이 되지 못하는 건 물론이다. 소속이 없으니 동료도 없고, 주위 학부모들과 어울리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히키코모리형 전업주부의 삶이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세상 편한 삶이고, 누군가에게는 세상 답답한 삶이다. 내 마음은 그 두 가지 사이에서 늘 갈팡질팡하는데, 어느 쪽일 때든 그 삶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마음으로 나서는 길이라 일부러 사람 많은 지역을 골라 걷는다. 다행히 사는 지역이 애매해서 그렇게 크게 돌다 보면 빌라와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과 오래된 재래시장과 대형 빌딩 숲을 끼고 있는 전철역을 다 거치게 된다. 그 길을 걷다 어느 순간 연말이라는데, 세밑이라는데, 반짝거리는 트리 장식도 못 보고, 익숙한 캐럴도 듣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다. 트리 대신 나는 시장의 오래된 가게가 하나둘 문을 닫는 모습을 본다. 어느 날은 구석에서 손님이 없어 고전을 치르던 가게도 아니고, 가장 좋은 자리에서 손님들로 북적이던 가게가 맥없이 문을 닫는 것을 보았다. 그런 걸 보면 마음이 덜컹 내려앉는다. 저들은 이제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어디가 됐든 밖으로 밀려날 것이다. 자본이 가진 힘은 늘 원심력으로 작용한다. 한번 밀리면 계속 밀려난다.  

연말이 되면 떠오르는 일이 있다. 초등학교 3, 4학년 때의 일이었던 것 같은데, 동네에서 가장 큰 중국집에서 배달을 하던 청년이 12월의 마지막 날인가 그 전날이던가,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에 술에 취해 온 동네의 대문을 두드렸다. 모든 집의 대문을 두드린 건 아니고, 외상이 있는 집 대문만 두드렸다. 손으로도 두드리고 발로도 두드리고, 그렇게 해서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채로 외상값 내놓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끝내 모른 척한 집도 있지만 오밤중 소동에 놀라 여기저기 급하게 돈을 꿔서 외상값을 갚은 집들도 있었다. 그 돈을 모두 챙겨 청년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며칠 후에야 돌았다. 월급 몇 달 밀렸더니 그 사달을 쳤다며 중국집 사장이 혀를 차더라고 했다. 평소에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가 좋지 않기로 소문난 사장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사장에 대한 원한으로 주인집 외상을 떼먹고 달아난 겁 없는 청년이라고 욕했다. 나도 그렇게 기억했다.

그가 몇 달의 월급 대신 모욕을 받아야 했던 젊은 체불노동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나이를 먹고 나서의 일이다. 그가 그때 가져간 돈은 밀린 월급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돈을 들고 그는 어디로 갔을까. 아마도 다른 어딘가에서 비슷한 모욕을 또 감당하며 살고 있지는 않을까. 행복은 되풀이되지 않는데, 불행은 반복되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안쓰럽지만 그 청년의 행동이 옳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이 옳은 방식인지도 여전히 모르겠다. 출구 없는 모욕과 비참만 남아 있을 때, 정의는 어떤 방식으로 움직여야 하는가. 수시로 생각해보는데, 요즘은 이런 질문마저 바닥에 묶인 어떤 삶들에 대한 무례인 것 같아 차마 묻지 못하겠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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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직 중의 사법농단에 연루돼 김명수 대법원장이 징계를 청구한 법관 13명 가운데 5명이 징계를 면했다. 나머지 8명의 징계 수위도 정직 6개월~견책의 솜방망이 수준에 그쳤다. 법관에 대한 징계는 최대 정직 1년까지 가능하다. 대법원은 6개월 넘게 징계 결정을 미루더니 사실상의 ‘셀프 면죄부’를 줬다. 그동안 법원의 행태에 비춰볼 때 전혀 예상 못한 바는 아니지만, 이 정도로 후안무치할 줄은 몰랐다.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지난 17일 징계 심의를 마치고 이규진·이민걸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각각 정직 6개월, 방창현 대전지법 부장판사를 정직 3개월에 처하기로 의결했다. 이들 3인은 모두 재판거래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사법농단 당시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근무하며 각종 문건을 작성한 박상언·정다주·김민수·시진국 부장판사에게는 각각 감봉 처분이 내려졌다. 역시 심의관으로 근무했던 문성호 판사는 견책을 받게 됐다. 2명은 징계사유가 인정되나 징계를 하지 않는 ‘불문’에 부쳐졌고 3명은 아예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2월 19일 (출처:경향신문DB)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하고 징계 절차에 회부했다.” 지난 6월 김 대법원장이 법관 13명에 대한 징계를 청구하며 한 말이다. “살을 도려내는 아픔”의 결과가 고작 이 정도인가. 재판거래 의혹이 드러나기 전인 지난해 8월 이규진 부장판사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시도로 감봉 4개월 징계를 받았다. 당시 대법원장은 양승태였다. 그런데 이번에 김모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수립에 관여한 혐의가 드러났음에도 징계를 받지 않았다. ‘양승태 대법원’에서도 징계받은 사안이 ‘김명수 대법원’에서 징계를 면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법원은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에 영장 기각으로 일관하더니, 자체 징계조차 어물쩍 넘어가려 하고 있다. 직무상 위헌행위를 저지른 법관들이 계속 법대(法臺)에 앉아 판결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주권자의 대표인 국회가 이를 용인해선 안된다. 국회는 조속히 탄핵소추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 검찰이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을 재판에 넘길 때까지 미룰 일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례에서 보듯 형사재판과 탄핵심판은 별개 사안이다. 법원을 현대판 소도(蘇塗·삼한시대 죄인이 도피해도 잡지 않았던 신성지역)로 방치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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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하는 기도문 중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늘을 바라보고 갈망하던 일들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동방박사의 먼 길을 가능케 했습니다. 수많은 예언자들이 하늘을 보며 기도했던, 수많은 선의의 사람들이 땅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던 내용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이 사람이 되기를, 하늘의 위대한 존재가 땅에 발을 딛기를 기도하며 지내는 시기입니다. 그런 성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늘의 일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성탄입니다. 땅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억울함이, 고통이, 절망이, 불평등이, 불의가 씻기듯 사라져 하늘의 맑음이 펼쳐지는 것이 성탄입니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저는 하늘 감옥에 있는 홍기탁, 박준호 두 분이 땅에 발을 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족하지만 기도의 마음으로 12월 18일 오늘부터 무기한 연대단식에 함께 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2015년에도 408일에 이르는 고공농성을 해야 했습니다. 고용과 노동조합, 단체협약을 승계하겠다는 모회사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의 약속을 믿고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고향 구미를 떠나 찾아간 자회사 파인텍은 강제수용소, 격리소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최저임금도 안되는 처우이기도 했답니다. 다시 약속을 지켜라고 2017년 11월 12일, 서울 목동 서울에너지공사 75m 공장 굴뚝에 오른 지 오늘로 402일째입니다. 그들이 다시 고통의 408일을 맞지 않고 이 땅 위로 내려오게 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마침 408일이 되는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이라는 아픈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저 하늘 위의 마굿간 같은 곳에 있는 그들이 기적처럼 12월 24일 이 땅 위로 내려올 수 있게 대통령과 정부, 국회 등 모두가 함께 나서달라는 간절함이기도 합니다. 

파인텍 해고 노동자들이 노사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75m 높이의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지 일 년이 되었다. 해고노동자 홍기탁(왼쪽)·박준호씨가 12일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정지윤 기자

이런 기도를 할 자격은 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차광호 지회장의 408일의 고공농성 때에는 멀리 구미의 일이어서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차광호 지회장이 굴뚝에서 내려왔을 때 이제는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까운 목동에서 파인텍의 홍기탁 박준호 두 분이 75미터 굴뚝에 올라갔을 때, “또 올라갔구나! 곧 내려오겠지!”하며 먼 산 바라보듯 하였습니다. 굴뚝에서 울려 퍼지는 고통의 신음이 계속 되고 점점 커질 때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누군가 함께 하겠지 하는 망설임으로 다가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미사 때마다, “왜 꼭 이 날은 일이 많지?”라며 미루고 또 미루어 왔습니다. 이런 제가 402일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회사의 관계자들을 비난하며 대화와 해결을 요청할 자격이 있는지 말입니다.

그래서 저의 단식은 참회입니다. 강도를 만난 이웃을 보고도 바쁘다고, 부정 탄다고 황급히 길을 돌아간 사제와 바리사이의 모습이 바로 저였음을 고백하는 참회입니다. 바쁜 길을 멈추고 환자의 상처를 돌보아 주고 여관까지 데려다 주며 돌아오는 길에 치료비를 지불하겠노라는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의 뜨거운 인간애를 보고도 돌아오지 않았으며, 일 년 안에 해결하겠으니 기다려 달라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하는 것으로 할 바를 다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음에 대한 반성입니다.

이렇게 부족한 저의 참여라도 두 분의 강생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하느님이 땅에 발을 디디신 것처럼 하늘의 두 분이 땅에 발을 디디시기를 특별한 대림의 기도로 올립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하늘에서 해결되는 인간의 갈등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는 너무나도 당연히 인간과의 관계에서, 서로를 애틋이 아끼는 인류애와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공동체의 방식으로 해결되는 세상이 오기를 빕니다.

<나승구 신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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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강연장에서 “진짜 뇌과학 정보와 가짜 뇌과학 정보를 어떻게 구분하나요?”라는 질문을 받고 말문이 막힌 적이 있다. 정보의 진위를 판별하지 못해 답답한 심정을 나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별수 있겠나. 자기 분야와 거리가 먼 전공 영역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밖에 없다. 과학에 대한 기초 지식을 많이 아는 편이고, 모를 때 물어볼 만한 사람도 주변에 더러 있는 편이니,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야 상황이 나은 정도다.

■ 가짜 과학과 진짜 과학

그렇다면 뇌과학에 대한 지식을 많이 쌓다보면 가짜 지식에 속는 상황을 줄일 수 있을까? 미국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지식을 쌓는 활동이 도움이 되기는 한다고 한다. 진짜 뇌과학 정보와 가짜 뇌과학 정보를 섞어두고 판별하게 했을 때, 대학에서 뇌과학 수업을 많이 들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이들보다 가짜 뇌과학 지식을 더 잘 판별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지식을 쌓는 것도 충분하지는 않았다. 대학에서 뇌과학 수업을 다수 들은 이들도 50%에 가까운 항목들을 여전히 잘못 판별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알려진 다른 정보와 정합성을 맞춰보면서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활동을 훈련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위에서 소개한 연구에 따르면, 대학원 과정을 이수한 사람들은 딱히 뇌과학을 전공하지 않았다고 해도 가짜 뇌과학에 덜 속았다고 한다. 대학원 과정에서는, 정립된 지식을 배우는 학부까지의 과정과 달리 지식을 생산하는 활동에 참여한다. 이를 위해서 기존의 연구들과 비교해 나의 연구 성과가 어떤 면에서 새로운지, 혹시 모순되는 점은 없는지, 정합성을 맞춰보고 분석하는 훈련을 받게 된다. 이런 훈련은 가짜 과학을 판별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고의 재료가 되는 지식은 여전히 중요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지식이란 어차피 끊임없이 변하고, 나에게 어떤 지식이 필요할지 미리 모두 알 수 없는 만큼, 정보 자체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훈련도 중·고등학교 때나 그 무렵부터 병행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당장 대학에 가서 뇌과학 수업을 들을 수도, 대학원 공부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 출처들을 알아두고, 이 출처들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동아사이언스> 같은 자료도 좋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쓴 양질의 한국어 자료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 가상과 현실의 경계

굳이 과학의 영역으로 국한하지 않더라도, 가짜와 진짜의 구별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가짜뉴스가 문제가 되고 있고,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가짜 사람도 만들어낼 수 있다. ‘미아 애시’라는 30살의 아름다운 사진작가가 있었다. 프로필에 따르면 그녀는 영국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500여명의 페이스북 친구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온라인 채팅을 통해 만났을 뿐이지만 진지하게 그녀와의 미래를 꿈꾸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나중에야 미아 애시는 기업의 정보를 빼내기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녀와 사랑에 빠져 때로는 기업의 기밀까지 건넸던 이들은, 그녀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셈이다. 산업스파이는 아니더라도, 페이스북에서 자동으로 친구 신청이 된 미남미녀 중에는 그런 가짜들이 많을 것이다.

실재하지 않는 사람의 얼굴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 기술은 이미 나와 있고, 인공지능이 사람과 대화하는 기술도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갈수록 발전할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짜 인물을 진짜로 오해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어디 그뿐일까.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기술도 나와 있다. 그 사람의 말이 진짜 그 사람의 말인지, 가짜 그 사람의 말인지도 따져봐야 하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람들은 꼭 실제와 구분하기 어렵게 생겨야만, 사람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워낙 의인화에 탁월해서 심지어 화분에게도 말을 걸며 반려식물로 여기기도 한다. 프로그램된 로봇인 줄 뻔히 알면서도, 로봇을 괴롭히라고 하거나 부수라고 하면 괜한 미안함을 느낀다.

이는 호모사피엔스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쥐들은 제법 사회적인 동물이어서, 다른 쥐가 고통받고 있으면 도와주려고 한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쥐들은 작은 로봇이 쥐장에서 도망치려 할 때도 돕는다고 한다. 로봇이 쥐와 비슷한 사회적인 행동을 보일수록, 로봇이 쥐와 비슷하게 다른 쥐들을 도울수록, 쥐들이 로봇을 돕는 정도가 커졌다. 자연을 닮은 인공물이 많아지면서 동물이나 식물이 진짜와 가짜를 혼동하여 생태계에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 서로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

경험이 다른 사람들은 세상을 다르게 지각하고, 그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달라진다. 나와 입장이 크게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면 간혹 이런 격차를 느낀다. 실제로 존재하는 경험의 차이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싸울 때가 많은데, 여기에 각자가 경험하는 가짜까지 저마다 달라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가짜뉴스는 이미 많고,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엔터테인먼트나 치료의 목적으로 일부러 가짜를 경험하는 사람(가상현실로 치료를 하거나 게임을 하는 경우 등)도 생길 수 있다. 그럴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소통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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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초 인천 부평 주택가의 공터, 작업복과 안전모 차림의 남자가 사람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하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이 뭔가 만들기 시작한다. 나무 막대기 7개를 나란히 늘어놓고 그 위에 또 다른 나무 막대기 2개를 올려놓고 양면테이프로 붙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나무 막대기 벽을 홈이 파여 있는 스티로폼 위에 세운다. 이렇게 하나씩 벽을 만들어 세우자 이내 긴 벽이 만들어진다. 얇게 이어 붙인 나무판을 세우고 통으로 된 지붕까지 씌우고 나면 완성이다. 국내 유일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흔적인 미쓰비시 공장에서 일하던 조선 노동자들의 숙소 ‘미쓰비시(三菱·삼릉) 줄사택’과 똑같은 모형이 만들어진 것이다.

벽과 벽을 맞대어 줄줄이 늘어서 짓는 주택 형태라서 ‘줄’사택이라고 부른다는 집이다. 모형으로나마 직접 만들어보니 얼마나 허술하게 지어졌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옆집과 연결된 것은 벽 하나뿐, 그때나 지금이나 공동화장실은 여전하고 도시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데도 도시가스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한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좁은 삼릉 주택의 골목을 빠져나온 관객들은 미리 받은 수첩에 도장을 찍고, 새겨진 질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말로만 듣던 ‘삼릉 줄사택’에 가볼 수 있었던 것은 색다른 연극 덕분이었다. 젊은 극단 ‘앤드씨어터’가 기획한 <터무늬 있는 연극×인천_부평편>이 그것이다.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 걸으며 공간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부평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이동형 공연이다. 숨은 그림 찾기 하듯 그 지역만이 품고 있는 고유한 이야기를 찾고, 생각할 기회를 주는 공연이었다.

<터무늬 있는 연극×인천> 시리즈는 사람에게 지문이 있듯이 땅에도 새겨져 있는 고유한 지문, 즉 터의 무늬를 찾기 위한 작업으로 그동안 배다리와 십정동, 송도 등지에서 공연됐다. 땅을 ‘부동산’이나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바라본다면 결코 기획할 수 없는 공연이다.

언제부터인가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이렇게 집이 많은데 왜 내 집은 없을까” 중얼거리며 한숨 쉬는 주인공 말이다. 옥탑방에서 이야기하는 주인공의 뒷모습과 함께 보이는 한강과 서울의 야경,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비춰주면서 드라마는 다음 컷으로 넘어간다. 드라마와 달리 현실에서 그 고민은 결코 쉽게 끝나지 않는다. 마음 놓고 지낼 ‘지상의 방 한 칸’을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 지 오래이고 상가는 끊임없이 들어서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는 ‘공간’이다. 오래된 재즈클럽, 자리를 잡아가는 동네책방, 젊은 부부가 하는 작지만 맛있는 음식점도 2년마다 아슬아슬하게 버틴다. 동네에서 뭘 좀 해보겠다는 청년들이나 함께 모여 오카리나를 부는 동호회 사람들도 안정적인 공간, 그러니까 ‘터전’에 목말라 있다. 나영석 PD는 <합니다, 독립술집>이란 책의 추천사에 “사람들의 발걸음과 이야기가 공간에 모인다. 관계와 시간이 축적되면 신기하게도 공간에 힘이 생긴다”라고 썼지만, 공간들이 모여 ‘자리 잡을’ 터전은 사라져가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리 봐도 ‘건물주가 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답답할 따름이다.

얼마 전 다녀온 삼릉 줄사택은 지금 논란에 휩싸여 있다.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주차장 등을 조성하자는 의견과 역사적 가치 검증을 통해 문화특구로 개발하자는 의견이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삼릉 사택을 그대로 철거한다면 역사의 터전은 그대로 사라져버리고 말 테다. 전 세계에서 유행이라는, 지역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힘을 모아 동네 빵집, 카페, 공동 주택 등의 주인이 되는 ‘시민자산화’ 논의라도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닐까?

‘터무늬 있는 연극’처럼 일상의 터전을 보존하고 기억하는 한편, 그 터전을 단단하게 만들어나가기 위한 시도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날 연극에서 찍은 도장의 질문이 여전히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개발이 사람을 떠나가게 하는 걸까 모이게 하는 걸까?’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할까?’ 당신의 대답이 궁금하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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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2019학년도 대입 수시전형 최초합격자 발표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12년이나 되는 초·중·고 학창 시절을 마무리하는 대학 합격자 발표 날은 수십만명이나 되는 청소년들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니 예나 지금이나 그 긴장감과 설렘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하기 어렵다.

그런데 요즘 대입 합격자 발표 날의 분위기는 과거 부모들이 경험하던 때와는 아주 많이 다르다.

부모세대 때에는 대학 합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추억의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처럼 한겨울의 추위 속에서 황량한 대학교 운동장이나 체육관 벽에 붙은 수천명의 이름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아야 했다. 그때의 긴장감은 요즘처럼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확인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당시 발표 현장의 모습을 찍은 언론 보도의 사진에는 눈물을 흘리면서 만세를 부르거나 축하의 헹가래를 치는 모습들이 흔했다.

그러나 요즘은 모바일로 모든 것을 확인한다. 합격 여부 확인은 물론이고 대학별 응시원서를 작성하는 것도 인터넷으로 학생 본인이 직접 한다. 이렇다보니 학교 선생님과 상담한 후 학교 밖 사교육 업체에서도 상담을 받아 처음 계획과는 다르게 원서를 내는 경우도 많다. 그나마 필수 제출서류에 추천서가 있어야 하는 대학교나 전형들에서는 누가 어떤 대학교에 원서를 제출했는지 학교 선생님들이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추천서를 요구하는 곳은 상위권 몇몇 대학들뿐이고 이조차 점점 축소되는 추세다. 심지어 원서 한두 장을 부모들도 모르게 지원했다가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영원히 비밀로 한 학생도 보았다. 이것은 과거 담임 선생님이 일일이 펜으로 원서를 작성하고, 학교장 직인까지 찍은 것을 학생들이 직접 원서 접수장에 줄서서 제출하던 부모세대의 입시풍경과 정말 많이 다르다.

다른 것은 이런 과정만이 아니다. 요즘 고3들의 교실에서는 합격한 학생들의 환호나 박수가 사라졌고 낙방한 학생들의 탄식과 눈물도 보기 어렵다. 거의 한 달여에 걸쳐서 수시로 발표되는 여러 대학의 합격자 발표 때마다 합격생들은 합격의 환호가 불합격한 친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저 조용히 있게 되고, 불합격한 학생들은 굳이 결과를 주변에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어서 일상의 교실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의도했든 아니든 학생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는 작은 사회의 안정과 평안을 위해서 기쁨과 아쉬움도 속으로 삼키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게다가 집에서조차 감정표현을 크게 하지 않던 학생들이, 공부하던 학원이나 과외선생님과는 기쁨을 만끽하거나 아쉬움과 불만을 크게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경쟁에서의 승리가 목적인 곳에서는 경쟁의 결과에 대한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을 즐겨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다.

부모세대들에게는 이런 자녀세대의 모습이 낯설어 불만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최소한 20년이 넘는 세대 간의 간격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보기에는 청소년들이 너무 이상하고 위태로운 선택을 하거나 별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인기 있는 여러 전공이나 직업들도 30년 전에는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다시 생각해보면 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지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왕근 | 교육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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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22일은 동짓날입니다. 24절기 중 스물두번 째 절기지요(동지는 양력 21일 아니면 22일입니다). 그리고 음력으로 살던 옛날에도 24절기는 태양력으로 만들었습니다. 농사는 해를 따라가야 하니까요. 따라서 29일이거나 30일인 음력달 안에 동짓날은 매년 이르거나 늦게 옵니다. 음력 11월 동짓달 상순에 동짓날이 오면 애동지, 중순에 오면 중(中)동지, 하순에 오면 노(老)동지라고 불렀습니다. 동지를 이렇게 나누게 된 연유는 어쩌면 팥죽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동짓날에는 대문에 말 피나 붉은 팥죽을 문간에 뿌려 사귀(邪鬼)를 쫓고 새로운 날을 맞이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붉은색은 혈색이고 생명을 상징하니까요. 동지(冬至)는 말 그대로 겨울이 갈 데까지 갔다는 말이며, 이날을 기준으로 밤이 줄고 낮이 길어집니다. 즉 밝음이 어둠을 이겨 죽음에서 삶으로 바뀐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따라서 고대에는 동짓날이 설날이었습니다. 그랬다가 음력 1월1일이 설날이 된 뒤로도 동짓날을 따로 기념하기 위해 ‘같이 설’이라고 불렀고, 무슨 뜻인지 희미해지자 비슷한 발음인 ‘까치설’이라 부르게 됩니다.

동짓날은 응당 팥죽이지만 애동지 때는 팥죽을 쑤지 않습니다. 여러 속설들이 있지만, 저는 기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울이라도 초겨울이면 아직 상온일 때가 종종 있고, 게다가 팥죽은 상하기 참 쉬운 음식이니까요(저희 형님은 호두과자 트럭만 보면 여름에 호두과자 사 먹고 배탈 난 이야기를 10년 넘게 하십니다). 그래서 애동지가 들거나 동지 무렵이 푸근하면 ‘동지에 팥죽 쉬겠다’는 속담으로 한겨울에도 팥죽 쉰다며 조심했습니다.

올해는 중동지입니다. 팥죽귀신 손 없는 날인지 기상청 연결해보고 쑤어야겠지만, 팥죽 좀 쉴지언정 그래도 따뜻한 동지섣달이면 참 좋겠습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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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인데도 차분한 분위기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국민들은 지금 어떤 이슈에 관심이 많을까. 지난 5년간 12월 중하순에 노출된 100만건의 뉴스데이터를 살펴봤다.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 어휘는 ‘선물’ ‘나눔’ ‘성금’ ‘현금배당’ 등이었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행위를 표현하는 어휘가 다수를 차지했고, 해마다 증가하고 있었다. 12월은 무언가를 주는 달인가보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라고 했으니, 12월은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달이길 바란다. 그런데 누가 주는 걸까. 주는 행위자를 찾았고, 공통분모는 기업이었다. 사회구성원으로서 기업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기업이 실천하고 있는 이해관계자경영에 영향을 받은 결과로 보인다. 국내에서 이해관계자경영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은 지 20년 남짓. 기업은 시장환경의 변화로 인해 투자자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소비자, 노동자, 협력업체, 지역사회, 자연환경 등 이해관계가 있는 다양한 분야에서 책임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기업의 선한 활동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시대가 되었다. 시장영역에서 기업의 역할이 영리추구에 국한되지 않는다면, 공공영역에서 정당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정당의 활동이 집권이라는 목표에 매몰되어, 많은 것들을 정당화하거나 단순화시켜선 안될 것이다. 정당도 촛불혁명 이후, 새로운 정치환경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버드대학 교수인 야스차 뭉크는 자신의 저서 <위험한 민주주의>에서 포퓰리즘(대중영합)이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봤다. 이를 조장하는 3가지 요인으로 소셜미디어와 경제침체 그리고 일국적 폐쇄성을 지적했다. 포퓰리즘은 수많은 사회경제적 현안의 본질을 변방으로 밀어내고 소외시키면서 압축하고 간소화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포퓰리즘이 다수의 유권자에게 표를 받아 집권해야 하는 정당에는 외면하기 어려운 정치생태계의 구성요소 중 하나라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당도 기업처럼, 국민의 신뢰를 얻고 공공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이해관계자 민주주의’를 실천해 보면 어떨까. 정당에 이해관계자란 국회의원과 국민뿐만 아니라 당직자와 보좌진, 당원, 지역주민, 직능 및 사회단체, 타 정당, 국회, 행정부, 공공기관, 지방정부, 언론, 자연환경, 외교국가 등일 것이고, 이들은 정당 운영의 중요한 참여자이고 고객이자, 정치발전과 민주주의를 함께 책임져야 하는 주주들이다. 이해관계자 민주주의는 참여민주주의가 보다 깊이 있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자유민주주의가 개인은 물론 공동체의 가치도 동시에 보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국민 전체를 위한 정치가 포퓰리즘으로 인해, ‘실체 없는 국민을 위한 소득 없는 민주주의’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고 갈등을 조정하며, 합리적 대안을 찾아나가는 정당의 조력자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예컨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카카오카풀이 왜 공유가치 창출이 아닌 택시운전자 자살로 이어졌는지, KTX 탈선사고에서 왜 근원적 원인파악보다 기술결함과 사장사퇴가 더 많은 조명을 받는지, 청소년범죄의 강력처벌 여론 뒤에 소년원과 보호감찰의 운영실태는 어떤지, 사립유치원의 무책임경영이 왜 지금에야 문제가 되었는지, 낙태 찬반 이전에 어떤 종류의 낙태이든 그 수술 환경은 어떤지, 난민포용은 저출산고령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을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토론하고 숙의하여 대안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포퓰리즘의 좋은 먹잇감이 되고 말 것이다.

정당의 내부운영도 마찬가지이다. 당원은 경선 참여 외에도, 정당의 일상적인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이해관계자의 공동이익을 도모하는 정당민주주의는 잠자고 있는 법안들을 깨우고, 여야정쟁 중에도 사회·정치적으로 이미 합의가 된 쟁점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민주적 기초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최정묵 |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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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7일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숨진 태안화력발전소 사고와 관련해 관계부처 합동대책을 내놓았다. 고용노동부는 태안발전소에 대해 사고 원인 조사와 함께 특별 산업안전보건감독을 실시키로 했다. 나아가 석탄화력발전소 12곳 모두 긴급 안전점검을 실시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위험 설비 점검 시 2인1조 근무 등의 안전사고 방지책을 내놨다. 사고 재발방지 방안이 두루 열거됐지만 합동대책치고는 공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12월17일 (출처:경향신문DB)

정부 합동대책 발표문에는 ‘엄중한’ ‘고강도’ ‘특별’ ‘긴급’ 등의 수식어가 가득하다. 이번 사고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특별하지도, 긴급하지도 않다. 2인1조 위험시설 점검은 정규직이 일하는 원청 사업체에서는 이미 시행 중인 근무 방식이다. 평상시 발전소에 대한 정기 안전점검이 이뤄졌다면 긴급 진단도 불필요하다. 정부의 백화점식 대책이 사후약방문으로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위험의 외주화’를 막을 근본적인 처방이 간과된 점이다. 전문가들은 김용균씨 사망의 근본 원인으로 위험하고 힘든 업무를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를 지목해왔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청와대 회의에서 “최근 산재 사망의 공통된 특징이 주로 하청 노동자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사실”이라며 ‘위험의 외주화’ 현상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도 공동발표문에 포함된 ‘위험의 외주화’ 대책은 “원·하청 실태 등을 조사하고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는 한 문장이 전부다. 구체적인 방안도, 프로그램도 없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위험업무의 외주 금지법안 마련 등 ‘위험의 외주화’를 막을 근본 대책이 강구되지 않으면 제2, 제3의 김용균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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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전직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원의 폭로 사태 파문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비리 혐의로 검찰에 복귀 조치된 김모 수사관은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의 채용비리 의혹 관련 첩보보고서를 썼다가 청와대에서 쫓겨났다고 한 데 이어 이번엔 전직 총리, 은행장 등 민간인 정보 수집도 해왔다고 주장했다. 특정 언론을 통해 하루 한 건씩 터뜨리는 식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매일 이를 해명하기 바쁘다. 민간인 정보 수집에 대해서는 “업무영역을 벗어난 정보는 상부에 보고되기 전 단계에서 걸러지고 폐기된다”고 했다. 우 대사 의혹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반복 제기된 것으로 박근혜 정부 검찰에서 문제없다고 결론내린 사안”이라고 했다.

우윤근 주러 대사 출국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가 17일 모자를 쓴 채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인천공항 출국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일견 1년도 넘게 작성한 첩보 때문에 쫓겨났다는 수사관의 주장에 의심이 가는 건 사실이다. 여러 비위 의혹으로 수사받는 처지에서 뒤늦게 청와대를 상대로 폭로전을 펼치는 의도도 진정성이 떨어져 보인다. 그러나 전직 감찰반원의 이런 폭로에 “미꾸라지” 운운하며 인신공격성 막말로 맞대응하는 청와대도 민망하기는 마찬가지다. 공직기강의 중심에 서서 모범을 보여야 할 민정수석실이 되레 진실공방에 휘말려들었으니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김 수사관과 청와대 주장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은 피할 수 없게 됐다. 김 수사관 주장이 일방적이라 하더라도 청와대 해명에 석연치 않은 구석도 있다. 민간인 정보 수집이 업무 영역에서 벗어나 폐기했다면, 그 다음부터는 하지 못하도록 분명히 지시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 대사가 1000만원을 받지 않았다면서 7년이 지난 뒤 비서실장을 통해 똑같은 액수를 건넨 경위도 부자연스럽다. 시중에선 이번 일을 놓고 박근혜 정권 시절 ‘정윤회 문건’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전 정권 청와대는 “지라시에나 나오는 얘기”라며 깔아뭉갰다. 지금의 청와대는 달라야 한다. 도대체 청와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자초지종을 시민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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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집요하고도 악마적이다.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가 났을 때 느닷없이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소환한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 말이다. 내란음모 사건, 아니 내란음모 조작 사건 당시 검찰 ‘녹취록’에 나오는 혜화전화국 발언을, 눈곱만큼도 연관성이 없는 KT 화재와 연결 짓는 신공을 발휘했다. 혜화전화국은 이석기의 발언이 아니라는 것은 대법원 판결문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저들은 분단체제를 흔드는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종북몰이’가 필요할 때마다 강제 해산된 통합진보당과 구속된 이석기를 불러내 휘둘렀다. 이석기와 통합진보당 사건은 지나간 과거사가 결코 아니다. 어쩌면 ‘이석기 문제’가 풀려야 이 지독한 분단과 종북의 논리에서 해방될 수 있다.

혜화전화국 발언만이 아니다. 당시 내란음모 사건의 사실상 유일한 증거인 2013년 5월2일 집회 녹취록은, 재판을 하기도 전에 언론을 통해 샅샅이 공개됐다.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가공한 녹취록으로 일방적 여론재판이 펼쳐졌다. 재판 과정에서 이 녹취록은 400여곳이 의도적으로 오녹취된 게 드러났다. 원래 강연에서 “전면전은 안된다”는 말은 검찰 녹취록에서 “전면전이야 전면전!”으로 바뀌었다. “선전 수행”은 “성전 수행”으로, “통일적인 대응”은 “폭력적인 대응”으로, “시 단위에 있어도 연락할 수 없는 상황”은 “실탄이 있어도 연락할 수 없는 상황”으로 둔갑되었다. 언론은 그대로 충실히 베껴 썼고, 재판이 끝난 뒤에도 제대로 바로잡지 않았다.

녹취록 사안은 ‘검증 부실’을 탓할 수나 있다. 국회의 이석기 체포동의안 처리를 앞두고 집중적으로 나온 ‘북한과의 연계’ 보도는 더하다. ‘RO 조직원 6~7명 최소 2차례 밀입북 포착’ ‘RO 조직원 북 공작원 상시 접선’ ‘북 접촉 RO 조직원, 경찰총국 225국 연계 의혹’ 등등. 이석기가 총책인 지하혁명조직 ‘RO’가 북한과 연계해 내란을 음모했다는 소설은 그렇게 탄생했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북한과의 연계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단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 내란음모의 핵심인 지하혁명조직 RO의 존재 자체가 법원 판결에서 부정된 판이다. 그렇지만 ‘북한과의 연계’ 보도 역시 정정되거나 바로잡히지 않았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의 결말은 아는 대로다. 재판 과정에서 지하혁명조직 RO는 존재하지 않으며, ‘5·12 회합’에서 내란 범죄 실행을 위한 ‘합의’가 없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내란음모의 핵심 근거가 기초에서 부정되었음에도, 이석기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내란음모는 없었지만 내란선동은 있었다.’ 강연에서 행한 ‘말’만으로 내란선동죄가 적용되어 9년형을 선고받았다.

미국 국무부조차 ‘자의적 구금’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한 이 기이한 판결의 내막이 벗겨지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에는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에 협조한 사례 중 ‘자유민주주의 수호 판결’로 이석기 사건을 첫번째로 적시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 근거가 되었던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은 재판부 배당을 조작하면서까지 박근혜 정권에 ‘선물’로 바쳐진 것이다.

내란음모 사건이 조작되었음이 확인되었고, 이제는 ‘재판거래’ 사실까지 드러났다. 그럼에도 이석기는 0.75평의 독방에 6년째 갇혀 있다. 제도 언론의 침묵과 정치권의 방조 속에서 그는 잊혀짐을 강요당하고 있다. 하지만 ‘혐오와 가짜뉴스, 기회주의와 두려움에 맞서 싸워온 사람들’이 있다. 비겁한 허위의 성채를 그들이 균열 내고 있다. 지난 8일 56개의 시민사회단체가 광화문광장에서 공동주최한 ‘이석기 의원 석방’ 대회에 2만명이 참석했다. ‘이석기 석방’만을 요구하기 위해 열린 집회에 전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 여성과 청년 등 다양한 계층이 모였다. 그들은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굳게 닫혀 있는 감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광장의 외침과 4대 종단 지도자들의 호소, 국제 인권기구들의 석방 요청에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정권의 담당자들에게, 특히 청와대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에게 어려운 청탁을 하나 드린다. 언론이 방기한 책임을 대신하여,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의 실체를 추적한 <이카로스의 감옥>(문영심·말)을 안 읽으셨다면 꼭 한번 펼쳐 보시라. ‘해도 너무하지 않으냐’는 물음이 당시 정치공작과 사건 조작의 책임자들에게만 향하는 게 아님을 알게 되실 것이다. 그리고 집요하고도 부당하게 이석기와 통합진보당을 소환하는 그들에게도 감히 일독을 권해드린다. “언론을 통한 무분별한 왜곡보도와 마녀사냥으로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된 사건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는 그 고통스러운 기록을 대하고, 너무도 뒤늦게 ‘이석기’를 기억하는 부끄러움은 필자만이 아닐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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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기슭에서 10여년을 ‘삐댄’ 적이 있다. 그 지리적 조건을 이용해서 자주 인왕산을 들락날락거렸다. 어느 날 ‘인왕제색도’를 그린 겸재의 집터가 사무실에서 코앞 거리의 군인아파트라는 것을 알았다. 그 이후 매일 그 집터에 서서 인왕산의 변화를 관찰하고 사진으로 찍었다. 인왕산은 계절을 간격으로 하여 변하되 인왕이 거느린 하늘은 시시각각 변하였다. 간단없이 출몰하는 구름처럼 그때그때 찾아온 단상을 메모하였다가 책으로 꾸몄다. 감히 빛으로 그린 ‘신인왕제색도’란 제목을 붙였다. 인왕의 슬하를 떠나 파주 심학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가끔 서울에 나가 인왕산을 만나면 뭉클, 눈에서 물이 삐어져 나온다. 겸재 정선에 대해서도 흠모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겸재가 현령을 지냈던 서울 양천에 위치한 겸재정선미술관을 가보는 날이 드디어 왔다. 그곳에서는 공기부터 달랐다. 눈앞의 풍경은 물론 마음속에 자리한 관념의 경치까지도 그려낸 산수화를 보다가 그것들과는 사뭇 다른 그림을 만났다. 화훼초충화의 하나인 ‘서과투서(西瓜偸鼠)’였다. 이미 많은 쥐들이 들락날락거린 듯 큼지막한 수박의 밑동은 구멍이 크고, 여기저기 붉은 씨를 퉤퉤 뱉으며 정신없이 갉아먹는 쥐를 그린 그림이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겸재의 섬세한 관찰력에 기대어 몇 가지 식물을 찾아보았다.

보라색 꽃은 달개비(닭의장풀)인 것 같다. 우아하게 줄기를 뻗는 건 바랭이인 것 같고, 아마도 그령으로 짐작되는 벼과의 식물도 의젓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식물에 관심을 가지면서 시골에서 본 풀을 뒤늦게 알게 되어 퍽 좋다. 저곳에 저것이 없었다면 그곳은 빈 구멍이었다. 그것을 보아도 그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면 그곳은 빈자리였다. 잡초라는 말을 치우고 고유명사를 부르는 기쁨이 크다. 언젠가 인왕산 아래 수성동계곡의 맨 마지막 집에서 만났던 달개비, 나도 참 좋아하는 여름 과일인 수박. 그리고 고향에서 발길에 차이던 꺼끌꺼끌한 그령과 바랭이. 260여년의 시차를 두고 겸재의 예리한 시선에 내 둔탁한 그것을 흐뭇하게 포개는 이 즐거움! 바랭이, 벼과의 한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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