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저출산 극복 의지가 남다른 것처럼 보였다.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등 5개 부처 장·차관이 지난 18일 서울 구로구청 내 사랑채움어린이집을 ‘우르르’ 방문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아이들에게 동화책까지 읽어줬다. 그러면서 “저출산 문제는 범정부적으로 다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하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 소식을 접한 소아암·희귀난치병 환아 가족들은 “마음이 착잡하다”고 했다. 이들은 한달 전 김 부총리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백혈병, 뇌종양 등을 앓아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아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을 수 없다. 주로 화상을 통해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시설이 열악하다. 국공립학교를 설립해 아이들이 걱정 없이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 부모들의 바람이다. 환아 부모들은 김 부총리를 만나 이런저런 어려움을 전달하고 싶어 한다.

소아암·희귀난치성 질환을 앓는 초·중·고 학생 부모 모임인 ‘전국건강장애부모회’는 부총리 측에 공문도 보냈다. 사석에서 이들의 사연을 전해 들은 김 부총리는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만남이 쉽게 성사될 줄 알았다.

하지만 기재부에서 돌아온 답변은 “일정이 도저히 안된다”였다. 그리고 더 이상 연락도 없다고 한다.

김 부총리는 개인 페이스북에 글을 자주 올리고 있다. 자신이 소장했던 책을 선착순 접수를 받아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SNS에 글 쓸 시간은 있으면서 소외받는 환아 부모를 만날 시간은 없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태어난 아이조차 제대로 돌봐주지 못하는데 어떻게 정부를 믿고 아이를 더 낳을 수 있을까.

기재부는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범부처 차원의 총력 대응에 나선다”고 했지만 아직 멀었다.

<박병률 |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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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지방선거가 다가오자 지방자치의 재도약을 바라는 국민적 기대가 커지고 있다. 대통령이 제2국무회의 신설, 지방이양일괄법 제정, 주민 직접참여 확대 등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을 약속했을 뿐만 아니라 도지사 출신인 이낙연 총리가 앞장서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관계부처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52년 전쟁의 와중에 지방의회를 도입했고, 1960년 제2공화국 출범 이후 전면적으로 지방자치를 실시했다. 하지만 1961년 쿠데타로 군사정부가 수립되면서 오랜 동면기를 보내야 했다. 1991년 30년 만에 지방의회를 재가동하고 1995년 민선 자치단체장을 선출하면서 주민들은 지방자치 부활의 기쁨을 만끽했지만 중앙집권의 장벽을 넘기는 역부족이었다. 행정학 이론이나 국내외 사례가 역설하듯이 지방자치는 굿 거버넌스를 촉진하는 최고의 제도적 장치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국가 주도의 유럽식 단체자치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간 자율의 영·미식 주민자치에 비해 직접민주주의 요소가 미약한 편이다.

우리는 역대 정부의 지방분권 노력이 일극체제라는 경로 의존에 함몰되어 이벤트로 전락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해 왔다. 실제로 세종시나 혁신도시의 부진도 기득권의 반발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지방분권에 기반한 특화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플러스 알파가 요구된다. 일례로 교육의 공공성을 중시하는 국립대학 연합체제의 구축이나 지역 혁신체제의 중핵인 연구기관의 강화를 우선 고려할 수 있다.

미국이나 스위스의 주민자치에 대한 벤치마킹이 우리의 역사제도적 특성에 비추어 과도하다면 유사한 발전경로를 경험한 독일이나 일본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이들은 위계적 정부 간 관계에도 불구하고 지방 무대의 성공이 중앙 진출을 담보하는 공존과 협력의 거버넌스를 구현해 왔다. 물론 우리 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의 중앙 진출은 자력보다 발탁에 의존해 왔지만 지난 대선에서 여야 모두 변화를 예고한 바 있다.

한국의 지방자치도 연륜이 쌓이면서 중앙부처나 세계 각국이 부러워하는 우수 사례를 창출하고 있다. 최근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여부를 둘러싼 정책 결정에 도입한 공론조사도 서울특별시의 선구적 활용에 기인한다. 또한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명품 지하철에는 버스나 택시보다 공공성을 중시하는 지방공기업 임직원들의 헌신이 투영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방정치나 행정에 대한 뿌리 깊은 우려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수백을 상회하는 지방자치 무대 곳곳에서 표출된 불협화음이 연일 언론의 표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획일성이 연출한 하모니에 대한 편향을 탈피해 다양성의 불협화음을 수용하는 전향적 자세로 뒤이어 제시할 ‘4대 자치권’ 강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첫째, 자치입법권 강화를 위해서는 지방의회의 권한 강화와 의원들의 자기성찰이 요구된다. 집행부에 필적하는 의회의 전문성 확보나 의원들의 신중한 언행을 결부시키는 방식으로 확실한 입법역량을 창출해야 한다.

둘째, 자치재정권 강화를 위해서는 현재 8 대 2 수준인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을 6 대 4까지 개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세의 지방세 전환에 부가해 일본에서 활용한 고향사랑기부제를 도입해 도시인들의 고향의식에 호소해야 한다.

셋째, 자치조직권 강화를 위해서는 행정규제를 개혁해야 한다. 자율적 조직 재설계를 토대로 굿 거버넌스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시장이나 시민사회에 대한 규제개혁만큼이나 중요한 정부 간 관계의 규제개혁을 통해 상향식 문제 해결을 독려해야 한다.

넷째, 자치행정권 강화를 위해서는 지방사무의 지방 이양이 필요하다. 핀란드처럼 자치단체의 능력이나 필요에 따라 행정권한을 차등해 부여하거나 그동안 중앙정부가 독점해 온 경찰이나 복지 업무에 대한 지방의 독자적인 관할권도 허용해야 한다.

<김정렬 대구대 교수·도시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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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동부 폭력 사건’ ‘여중생 집단폭력 사건’ ‘집단따돌림 자살 사건’…. 뉴스를 보면 하루가 멀다하고 학교폭력과 관련된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2011년 12월 대구에서 학생이 학교폭력으로 투신자살한 사건이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정부는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매년 학교폭력 전수조사를 통해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들과 같이 ‘과연 15세 여중생들의 행동이 맞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케 만드는 심각한 사건들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이는 정부가 내놓았던 대책들에 허점이 있음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신호이기도 하다.

얼마 전 교육부가 발표한 2017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폭력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중·고등학생보다 초등학생, 그리고 고학년보다 저학년의 사례가 많이 접수되고 있다는 점은 학교폭력이 저연령화되고 있어 학교폭력 조기 예방교육이 필요함을 시사해 준다. 처벌과 감시보다는 예방 차원에서의 정기적인 교육이 더욱더 필요한 것이다. 최근 소년법으로 인해 집단폭력 사건 가해자들이 강한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다며 제기한 소년법 폐지 청원에 27만여명이 참여했다. 이처럼 처벌에 대한 요구는 많으나 예방에 대한 논의는 그에 비해 너무나도 적어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한 사람으로서 무척이나 안타깝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굿네이버스에서는 학교폭력을 사전에 미리 예방할 수 있도록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전국에서 실시하고 있다. 공감훈련을 통해 아이들이 학교폭력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적극적인 방어자로 나설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지난해에 38만여명이 참여했다. 교육에 참여한 한 학생은 “피해자가 얼마나 힘들지를 공감하게 되니 학교폭력을 대하는 마음이 변한 것 같다”고 얘기했다. 실제로도 모둠활동 때 따돌리던 친구를 교육 참여 후 모둠에 함께 끼워주는 등 아이들의 실질적인 변화도 볼 수 있었다.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의하면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은 6년째 감소하고 있다. 조사결과 수치만 봐서는 우리 사회 내 학교폭력이 줄어들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교육부 조사결과와 달리 학교폭력위원회의 심의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어떤 수치가 더 정확한 조사결과인지에 대해 여러 논쟁들이 있지만 조사의 정확성에 대한 논쟁보다 우리 사회가 더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아이들이 학교폭력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 한 명이라도 학교폭력으로 아파하는 아이가 있어서는 안된다.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이기를 바란다. 더 이상 미봉책을 내놓는 것은 안된다. 수년 동안 많은 피해 사례가 있었고,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는 충분했을 것이다. 정부는 더 이상 수동적으로 대응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보다 실질적인 노력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예방을 최우선으로 하는 학교폭력 예방교육이 전문적이면서도 아동들의 시선에 맞춰 시행돼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어디서나,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위협받지 않고 안전할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희망해 본다.

<조은승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 전략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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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 왜 ‘쓸데없는’이란 수식어를 붙였을까? 실제 쓸모없다기보다 정색하고 덤벼들지 않겠다는 ‘말의 유희’다. 김영하, 정재승, 유희열, 유시민, 황교익 등 각계의 ‘고수들’이 내뱉는 말은 꽤 흥미롭다.

<알쓸신잡>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상상력 사전)을 떠올렸다. 베르베르는 청소년기부터 30년 넘게 문득문득 떠오른 생각을 기록해왔다고 한다. 그런 생각들이 <개미> <타나토노트> <뇌> <나무> <파피용> 같은 그의 독창적인 소설의 밑거름이 됐다.

<상상력 사전>은 꽤 엉뚱하지만 박식함도 느낄 수 있는, 이를테면 ‘베르베르식 개똥철학사전’이다.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항목을 보자. ‘당신은 71%의 물과 18%의 탄소, 4%의 질소, 2%의 칼슘, 1%의 칼륨, 0.5%의 나트륨, 0.4%의 염소로 이뤄져 있다. 거기에 큰 숟가락으로 한 술 분량의 여러 가지 희유(稀有) 원소, 즉 마그네슘, 아연, 망간, 구리, 요오드, 니켈, 브롬, 불소, 규소를 포함하고 있다. (중략) 그러나 당신은 단순히 그런 물질을 합쳐 놓은 존재가 아니다. 당신은 하나의 화학적 구조물이면서 훌륭한 건축물이다.’

지식인, 특히 예술가 중에는 자신의 시각을 이런 독특한 언어의 묘미에 담아내는 경우가 많다. 예술이나 창의력이란 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비틀어서 다른 부분을 보여주는 것, 한번 꼬아서 생각하게 만드는 것, 기존의 생각 회로 대신 새로운 접근로로 안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대단한 발견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아는 사실이라도 뒤집어볼 때, 생각의 밑변과 각도가 바뀌게 된다. 그게 ‘삶의 통찰’이 될 수 있다는 거다.

프랑스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도 말의 묘미를 보여준 작가다. ‘투르니에 사전’이라면 <생각의 거울>을 들 수 있다. 포크와 스푼, 목욕과 샤워, 동물과 식물같이 상대적인 개념을 놓고 위트 있는 해석을 곁들인다. 이런 식이다. ‘스푼이 채식주의적 소명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서 포크는 육식의 상징이다.’

원래 투르니에를 유명하게 만든 소설은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다. 디포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를 비튼, 생각의 도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에 정착한 로빈슨이 원주민 프라이데이를 문명화시킨다는 백인 우월주의 시각을 보여준다. <방드르디>는 원주민인 방드르디가 로빈슨을 의미 있는 삶으로 이끄는 주체로 부각된다. 방드르디는 프랑스어로 금요일(프라이데이)이란 뜻이다.

한국에도 언어의 유희를 작품에 녹여낸 작가들이 꽤 있다. 이외수의 소설 <들개>에서 주인공 ‘나’는 ‘새우리말 사전’을 쓴다.

물가고 현상: 물건값은 오르고 사람값은 떨어지는 현상, 돈: 인간을 가장 빨리 더럽히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오물, 빙하시대: 인류가 냉동 시설의 혜택을 가장 공평하게 받았던 시대, 무의촌: 본의 아니게 국가로부터 주민 모두가 의사임을 허락받고 있는 촌. 사랑: 마음으로 이성 간에 착한 독약을 만드는 일….

박민규는 어떤가?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당시 ‘프로가 되라’는 자기계발 열풍을 신랄하게 꼬았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한국 경제사에서 여성 고급 인력의 필요성이 대두될 때 나온, 그러나 여성 고급 인력의 필요성과는 아무 상관 없는 프로복음 10호 되겠다. 역시 거창한 문구로 위장해 있으나, 그 원래의 뜻은 ‘옷 사세요’라는 말이다.’

말은 시대와 세상을 담는다. 세상이 변하면 단어의 의미에 틈새가 생기며, 이 틈새를 벌리거나, 새로운 말을 박아넣어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언어의 유희다.

술자리에서 동료가 말했다. 안빈낙도(安貧樂道)하고 싶다고. 난 이렇게 답했다. “가난이 죄가 되는 시대에 안빈낙도가 어딨냐? 안부낙도(安富樂道)만 가능하지!”

이심전심(以心傳心)? 이젠 사어에 가깝다. 즉답 안 하면 ‘문자 씹었다’고 눈총받는다. ‘갑남을녀(甲男乙女)’? 유리천장이 두꺼운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이라면 오히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남자가 갑, 여자는 을. ‘졸부(猝富)’? 졸부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신도시 건설과 재개발 열풍이 불어 하루아침에 땅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았던 때나 어울리던 말이다. 이제 부는 철저히 대물림되는 ‘시스템 사회’가 됐다. 요즘은 중산층도 하루아침에 빈민층으로 추락한다. 하여 ‘졸빈(猝貧)’이란 단어가 필요하다. 구어체로는 ‘폭망’…. 따져보니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 많은데, 나도 이참에 개똥철학사전이나 하나 써볼까?

<최병준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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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박정희는 조급했다. 정권 연장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다. 부모의 조국을 찾아온 재일동포 유학생쯤은 얼마든지 간첩으로 둔갑시킬 수 있었다. 그건 쉬운 일이었다. 그 쉬운 일 때문에 서준식은 형 서승과 함께 17년을 갇혀 있었다.

형벌의 목적은 고통이다. 청년은 17년 내내 매일처럼, 매 순간 고통을 겪었고 장년이 되어서야 석방될 수 있었다. 누구나 고통에서 벗어나면, 다시는 그 고통을 돌아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어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이니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서준식은 달랐다. 출소한 다음에도 맹렬히 뛰었다. 그 대가는 다시 구금의 고통을 겪는 일로 이어졌다. 1991년엔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다, 1996년엔 인권영화제에서 제주 4·3항쟁을 다룬 영화를 틀었다고 또 갇혔다. 당시 서준식은 인권운동사랑방의 대표였다. 서준식은 교도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부지런히 찾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라 유무죄에 대한 판단도 받지 않은 미결수들이 왜 수의를 입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미결수 수의 착용은 서준식의 문제제기로 위헌 결정이 났다.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예전 같으면 국사범으로 불릴 만한 국정농단의 주범들도 이제는 조사나 재판을 받을 때 평상복을 입을 수 있다. 창피도 덜하고, 범죄자라 낙인찍히는 일도 덜해졌다.

석방된 다음엔 교도소 실태조사를 했다. 출소자들을 붙잡고 실태조사를 했다.

감방에는 몇 명이 살았는지, 생활은 어떤지, 아프면 진료는 제대로 받을 수 있었는지 등을 꼼꼼하게 물었고, 그 결과를 <한국 감옥의 현실>이란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이 군대를 개혁하기 위해, 또 군대의 부조리를 없애거나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 숱한 유력 인사들이 드나들었고, 많은 운동가들이 고통을 겪었는데도 우리의 교정시설이 고만고만한 까닭도 마찬가지다. 나오면 다시는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곳이 바로 교정시설이다. 그래도 서준식은 달랐다.

또 한 사람, 백태웅. 서울대학교 학도호국단 총학생회장으로 학생운동을 열심히 하였다. 그 대가는 구속과 구금이었다. 석방된 다음에는 훨씬 더 본격적으로 운동을 했다. 박노해 시인과 함께 ‘남한사회주의자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하고, 비합법 노동운동, 혁명운동을 벌였다. 그와 동료들의 투쟁은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마치 <공산당선언>이란 팸플릿이 유럽 전역을 뒤흔든 것처럼, 그들도 조직 이름에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려고 했다. 결과는 참담한 패배였다. 박노해, 백태웅, 은수미, 현정덕 등은 모두 긴 세월 구금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백태웅은 6년4개월 동안 갇혀 있었다.

서준식과 다른 점은 시대였다. 그래도 문민정부가 출범한 다음이었으니 서준식처럼은 아니지만, 청년에게 6년 넘는 구금은 그의 모든 것을 빼앗을 만큼 긴 세월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다음엔 훌쩍 미국으로 떠났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이력으로 어디든 한걸음 정도 걸쳐 놓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가 선택한 것은 공부였다.

미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오랫동안 수감된 사람이 이런 성취를 보여주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백태웅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강제 실종 실무그룹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대표하는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짬이 나는 대로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 유엔의 위원 자격으로 백태웅이 주로 다니는 곳이 바로 각종 구금시설이다. 최근엔 스리랑카를 방문하여 비밀감옥을 밝혀냈고, 21명의 정치범을 석방시키는 성과도 있었다.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곳일 텐데, 백태웅은 서준식처럼 사뭇 달랐다.

누구든 감옥이 그 나라 문명의 척도라는 말은 쉽게 한다. 그렇지만 법무부 교정본부가 관할하는 한국의 감옥은 여전히 사각지대다. 오래된 시설이 많은데도 교도소 신축은 온통 막혀 있다. 예산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결사반대 때문이다. 하긴 특수학교마저 아파트값을 떨어뜨린다는 괴담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새로운 교정시설을 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마침 다음주에 서울동부구치소가 새로 문을 연다. 예전의 성동구치소가 문정동으로 자리를 옮긴 거다. 새로 옮긴 시설은 교도관들은 물론, 수용자들도 좋아할 만큼 쾌적하다. 시설이 좋으니, 여기선 뭔가를 해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교도소는 두말할 것도 없는 기피시설이다. 누구도 자기 동네에 교도소가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교도소처럼 안전한 곳도 없는데 범죄자들을 수용하고 있기에 생긴 편견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민들이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탓할 수만은 없다. 뭔가 새로운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동부구치소는 하나의 모델이 되고 있다. 교도소만이 아니라 바로 옆에 준법감시센터와 검찰청, 법원이 함께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도소는 싫지만, 검찰청이나 법원은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화답한 거다.

중요한 국가시설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물론 국무총리가 교정시설을 방문하는 경우는 없다. 국가적 관심이 별로 없으니, 교정에 대한 지원도 형편없다. 인력도 예산도, 다른 무엇도 모두 부족하기만 해서 교정교화라는 본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오로지 구금에만 급급해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 출신이기에 누구보다도 교도소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래서 대통령으로서 챙겨야 할 일이 한 둘이 아니겠지만, 딱 한번이라도 교도소를 방문했으면 한다. 10월 교정의 날에 맞춰도 좋고, 일정이 어렵다면 오가는 길에 교도소를 한번 들러도 좋겠다. 그래서 교도소가 더 많이 발전하고, 인권친화적으로 변모해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점을 말없이 웅변해주면 좋겠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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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면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고 ‘원자력 안전은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대통령 직속 장관급 위원회로 출범했던 원안위가 박근혜 정부 때 국무총리 산하 차관급 위원회로 격하되었던 것을 복원하고 독립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 이후 중소벤처기업부를 제외한 모든 부처의 내각 개편이 마무리되어 가지만 원안위는 여전히 옛 구조 그대로이다. 탈원전 논쟁 속에 원안위라는 규제부서가 실종되어버린 느낌마저 든다.

원안위는 원자력발전소와 방사능폐기물 등 원자력 이용에 관련된 모든 안전 규제를 책임지는 합의제 행정부처로,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독립기구로 발족되었다. 그러나 규제기관으로 독립된 지 6년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위상과 역할에 걸맞은 부처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6년간 ‘이명박근혜’ 정권이 원자력 진흥에 앞장서온 인사를 위원장으로 임명하고 규제기관을 원전산업의 보조기구처럼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원자력공학자나 원자력 친화적인 인사들로 대거 구성된 원안위는 원전 안전보다 원전산업계와 정권의 요구에 순응해왔다. 그 결과 원안위 위원 전체 9명 중 위원장을 포함, 정부·여당이 7명을 추천한 위원들로 구성된 박근혜 정부에서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신고리 3·4호기 운영허가,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가 다수결로 결정되었다.

새 정부가 들어선 다음에도 원안위의 규제권한을 무력화하는 일이 벌어졌다. 올해 4월 원안위는 미래부 산하 원자력연구원이 몇 년에 걸쳐 상습적으로 방사능폐기물의 무단폐기와 우수관 배출, 고철매각, 방사능 감시기 조작 등 수십건에 이르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에 대해 과징금과 과태료를 부과하는 행정처분을 했다. 그런데 원자력연구원은 자신들이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한 반성은커녕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을 대리인으로 원안위 결정에 불복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원자력연구원의 불복 사태가 보여주듯이 건설 중인 원전을 포함하면 29기의 원전과 원자력 이용시설의 안전을 책임지는 규제기관의 위상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지난 세월 원자력 진흥을 국가 목표로 추진해오는 동안 규제기능이 원전산업의 보조적 수단으로 치부되었던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활성단층지대에 원전이 가동되는 세계 최고 원전밀집 국가이다. 늙어가는 원전도 늘어나고 있다. 24기 원전 중 2029년까지 설계수명이 끝나는 원전이 11기에 이른다. 활성단층지대 원전의 안전 문제뿐만 아니라 최근 잇달아 확인된 격납건물 콘크리트 내부를 둘러싸고 있는 플레이트 철판 부식과 격납건물 콘크리트 구멍 발생, 증기발생기 내 망치 발견 등의 문제가 20년 이상 아무도 모른 채 방치되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원전 확대에만 집중해왔기 때문에 원전 해체와 핵폐기물의 안전한 처분방안에 대해서 제대로 된 안전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신규 원전의 건설과 수명연장 금지 말고도 세계 6위 원자력 국가인 한국이 해결해야 할 안전 문제는 차고 넘친다.

안전불감증의 만연과 사고로 이어지지 않으면 문제될 게 없다는 원자력계의 인식과 규제시스템 아래에서 원전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새 정부의 탈원전 에너지 정책 핵심은 국민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에 두는 것이다. 원자력 안전 규제기관의 강화와 원전 안전성 확보가 없는 탈원전 에너지 정책은 공허하다. 새 정부가 원자력계와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밀려 원자력 규제기관 위상 강화를 포기한다면 ‘정권은 바뀌어도 원자력계는 영원하다’라는 원자력계의 정설이 사실임을 입증하게 된다.

시민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 시대에는 원자력계의 정설이 통하지 않아야 에너지 전환과 원자력 안전의 초석을 세울 수 있다. 대통령이 직접 원자력 안전을 챙기겠다는 약속이 실천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혜정 원자력안전위원회 비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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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 의원들이 대거 찬성표를 던진 데 힘입은 결과였다. 그러나 막판까지 동의안 통과를 예상할 수 없는 불투명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다시 한번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정운영이 얼마나 지난한지 입증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21일 오후 후보자 사무실이 마련된 서초구의 한 건물을 나서면서 기자들에게 새 대법원장으로서의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임명동의안 표결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준 부결 때와 다른 점은 여당이 적극 나섰다는 것이다. 김 헌재소장 후보자 표결 때는 여권이 대야 설득 노력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야당이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안이한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추미애 당 대표, 우원식 원내대표 등 여권 지도부가 총출동해 야당을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뒤늦게나마 여권이 야당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나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앞으로도 온 정성을 기울여 야당을 상대로 설명하고 설득해야 원만한 국정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을 여권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인준 과정에 아쉬운 대목이 있다. 문 대통령의 대야 설득 노력이 특정 야당에 한정되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출국 전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김동철 원내대표에게는 전화를 걸어 협조를 당부했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에 대해서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보수야당들에 문제가 있는 것은 맞지만 그래도 대통령은 야당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야 3당이 힘을 모으면 여당의 발을 꽁꽁 묶을 수 있는 구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과반수보다 더 까다로운 의결 정족수가 필요한 경우 국민의당 의원들의 지지만으로는 부족하다. 항구적인 협치의 토대를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런 점에서 국민의당과의 개혁을 위한 연대도 검토할 만하다. 여권은 김명수 대법원장 인준을 성공 모델로 삼아 여야 협력을 지속적으로 살려내야 한다. 현안이 있을 때마다 마음 졸이게 하는 국정운영으로는 시민을 안심시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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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21일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가 사법개혁을 열망하는 시민들의 뜻을 받든 것이다. 환영의 뜻을 표한다. 국회는 이날 무기명투표를 실시해 출석 의원 298명 가운데 찬성 160명, 반대 134명, 기권 1명, 무효 3명으로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가결했다. 당초 예상보다 많은 표차로 가결된 것은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은 물론이고 보수야당 의원들조차 김 후보자의 도덕성과 전문성을 높이 평가한 결과로 보인다.

대법원장은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의 수장이다.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는 3000여 법관들의 리더로, 대법관 13명과 함께 최고·최종심 법원인 대법원의 재판도 담당한다. 대법관 제청 및 헌법재판소 재판관 3인 지명 등의 권한도 갖고 있다. 김 후보자는 이 같은 막중한 임무를 앞으로 6년간 수행하게 됐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21일 오후 서초구 사법발전재단에 마련된 사무실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어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에 대한 무기명 투표를 실시, 출석 의원 298명 가운데 찬성 160명, 반대 134명, 기권 1명, 무효 3명으로 가결 처리했다. 연합뉴스

작금의 사법부는 벼랑 끝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민의 신뢰를 상실한 사법부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위기이다. 김 후보자 앞에는 산적한 과제가 놓여 있다. 김 후보자는 무엇보다 ‘판사 블랙리스트’로 대표되는 ‘양승태 사법부’의 적폐를 일소해 세계 최하위 수준인 사법 신뢰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인사청문회에서 밝힌 대로 전관예우를 근절해 ‘유전무죄·무전유죄’라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관료화된 사법행정을 정상적으로 되돌리는 것도 중요하다. 사법부는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한 ‘재판하지 않는’ 판사들이 장악했다. 경향신문이 법원행정처 출신 판사 456명을 전수조사한 결과 법원행정처 판사들은 100%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했다. 법원행정처 차장은 10명 중 8명이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에 올랐다. 행정처 판사들은 퇴직 후 절반 이상이 국내 1위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들어갔다. 사법행정은 재판 지원이라는 본래의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법원장 스스로 제왕적인 권력을 내려놓고, 대법원장의 사조직으로 전락한 법원행정처를 축소해야 한다.

대법원장은 대법관 전체와 헌법재판관 3명을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김 후보자는 ‘50대 서울대 출신 남성 법관’ 일색인 사법부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들이고, 제청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세대·성별·직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법원의 구성이 새로이 바뀔 때마다 해당 시기에 대법원 인적 구성의 다양화라는 가치를 최대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당장 내년 1월1일 임기가 끝나는 김용덕·박보영 대법관 후임자 제청부터 그 약속을 실천했으면 한다.

헌법은 다수결이나 힘의 논리에 구애받지 말고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라는 임무를 사법부에 맡겼다. 당연히 김 후보자도 약자 및 소수자 보호에 앞장서야 한다. 최근 하급심에서 잇달아 무죄가 선고되는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와 모호한 기준으로 노동현장에 혼란을 야기하는 통상임금 사건의 판례 변경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과 달리 대법원장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그래서 사법부는 시민 앞에 더 겸허해야 한다. 김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밝힌 것처럼 ‘약자에게 편안하고 강자에게 준엄한 사법부’를 구현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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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칼럼에서 사면초가의 외교 난맥상을 논한 적이 있다. 당시 국정공백 속에서 미국의 사드 알박기와 중국의 제재, 일본의 평화의소녀상 철거압박에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등 사방에서 우리를 물어뜯는 형국이었다. 그런데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교체된 지금도 상황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북한은 핵미사일 완성을 위해 가속페달을 밟고 있고, 미국은 전에 없었던 위협인식과 패권국으로서의 자존심 훼손과 무력감이 겹치면서 군사적 옵션까지 들먹이는 말폭탄으로 긴장수위가 한층 높아진 것이 변화라면 변화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외교는 국내권력용이었고, 냉전적 진영논리를 기반으로 맹목의 친미신화와 무전략의 대중정책으로 일관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이래선 안되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떠나지를 않는다.

국민의 힘인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임에도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호구 신세를 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무엇이 잘못된 걸까? 촛불정부의 외교는 달라야 한다는 역사적 당위성에 비해 당면한 현실은 우리의 외교운신을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정말 최악인가? 그렇다면 현 동북아 구도에서는 그냥 두 손 놓고 강대국의 힘자랑에 국가의 운명을 맡기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북한의 핵보유를 향한 질주가 도를 넘을 정도라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친미강경의 외곬으로 반복하는 것일까?

아니다! 대외환경의 열악함을 백번 인정하더라도 외교력 부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이 북한의 도발, 미국의 압박, 중국의 제재 속에서 최선을 다해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다는 것을 십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현재의 난맥상에 대한 면죄부를 받기는 어렵다. 문제핵심은 3가지인데, 현재의 위기에 대한 정확하고 일관된 인식의 결여, 문재인 정부의 철학과 비전이 담긴 어젠다와 이를 실현할 정책비전의 부재, 그리고 미국을 포함한 강대국에 자신 있게 밝히고 협상할 담대함의 실종이다. 매일 몰려드는 현안에만 매몰되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의외라는 듯이(?) 놀라고 일관성 없는 반응을 반복적으로 노정하는 모습은 매우 안타깝다.

한마디로 외교안보팀의 전문성과 전략적 마인드가 부족하다. 속도가 빠르다는 것 외에 북한의 도발은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어야 하는데, 진정성과 대화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북한에 대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분노한다면 그것은 상황인식부터 틀렸다는 말이 된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대미정책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점이다.

한·미동맹이 중요하지만, 워싱턴 보수정권의 오해 또는 프레임을 푸는 것에만 집중함으로써 처음부터 미국의 강경책에 끌려갔고, 군사옵션이라는 엄포에 놀라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어젠다는 힘을 잃어버렸다. 한·미 공조는 오직 강경책에만 적용되어 한국에만 일방적으로 순응하라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한국의 주도적 역할론은 국내외 대화파에는 희망고문과 절망거리가, 강경파에는 조롱거리가 되었다. 치열한 외교무대에서 선의로 대한다고 선의로 돌아오는 법은 없으며, 그것은 북한뿐 아니라 미국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지난주 워싱턴에서 한·미 전략대화를 마친 후 미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찬자리에서 필자는 약간의 도발적 발언을 했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일부 지지자들 사이에서 ‘문근혜’나 ‘도로 박근혜’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물으면서, 미국의 압박이 과할 경우 한국에서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이번 정부는 보통정부가 아니라 국민의 힘이 만들어낸 촛불정부임을 간과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양국 공조를 위해 한국의 책임만 거론할 것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가 만들어내는 파열음의 해악부터 관리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결국 우리 문제 아닐까라는 아쉬움이 깊어졌다.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 이미 두 번이나 국민의 강력한 추인이 있지 않았던가? 대선 승리와 초기 지지율 80%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높은 지지율에 매인 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심기를 어기면 죽을 것 같은 관성과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 자기 검열의 친미순응을 지속하고 있다.

우리가 주도권을 행사하고, 북한이 우리를 의식하게 만들려면 미국과 중국의 힘을 이용해야 한다. 이 말은 결국 북한 설득이나 한·미·일 공조가 우선이 아니라, 한·미·중 공조를 통해 미·중이 제재를 강화하고 한국이 대화의 유일창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강경책에 편승하고 한·미·일 협력을 강화할수록 해결의 중요한 키를 가진 중국의 협력을 더욱 요원하게 할 뿐 아니라, 한·중관계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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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원자력공학 기술력이 미국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한가? 미국이나 그 어떤 나라도 갖지 못한 획기적 기술을 지니고 있는가? 우리나라 원자력공학을 이끌고 있는 학자 대부분이 미국에서 공부한 것으로 보아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원자력발전 단가는 미국에 비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으로 저렴할까?

미국 태양광기업인 퍼스트솔라는 이미 2013년에 미국 내 신규 원자력발전소 전기판매 단가의 23% 수준으로 전기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미국 정부는 2016년 에너지 전망보고서에서 가격경쟁력이 없는, 너무 비싼 원자력발전의 미래 단가(미래에 기술이 발전할 것을 예상한)를 계산조차 하지 않았다. 태양광 기술은 더욱 발전하여 미국 내 기업이 공급하는 태양광 에너지 단가는 올해 1분기에 2016년 대비 최대 30%까지 낮추었다. 기업이 손해 보고 팔 리는 없다. 이러한 흐름과는 달리 원자력발전은 지속적으로 숨겨진 비용들이 추가되면서 단가가 상승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원자력발전 단가에서 간과하고 있는 발전소 해체 비용은 가히 상상 이상이다. 미국이 계산한 원자력발전소 1기의 해체 비용은 영국이 사용하는 총 전력을 위한 태양광발전 설비 건설비용을 초과하고 있다. 사고에 대비한 보험조차 들 수 없는 가장 더러운 에너지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원자력발전소 해체 비용은 향후 누가 지불할 것인가? 이익을 본 사람들이 지불할 리 만무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 스티글러가 1971년에 제시한 규제 포획이론은 공공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정부가 규제를 받는 집단에 오히려 포획당해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규제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기업이나 특정 집단이 로비를 통해 공익에 반하는 규제나 정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의 손해를 유도하고 이익은 특정 기업 또는 집단에 돌아가도록 만드는 구조이다. 몇 년간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을 생각하면 쉽다. 공익을 위해 비싸게 팔지 못하게 하면 되는 간단한 방법을 버리고 각종 복잡한 관계들을 설정하면서 싸게 팔지 못하게 법을 만들었다. 복잡하게 접근했기에 다양한 이견은 있을 수 있겠으나, 이 법이 공익에 크게 기여하지 못함은 법 시행 이후 이동통신사 영업이익의 대폭 증가라는 결과로 증명된다.

기업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공익을 외면하는 정부의 대처는 유난히 환경분야에서 많이 나타난다. 정확하게 계산하거나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공익이 무시되기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가 자신의 손해를 인식하고 공익을 위한 로비나 소송을 진행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이들의 이익을 한 곳에서 흡수하는 특정 기업은 막대한 로비자금을 쉽게 들일 수 있기 때문에 이미 공정해야 할 바닥은 심하게 기울어져 있는 것이다. 손해를 보는 불특정 다수에게 제공되는 정보 또한 대부분 이들의 관리에 놓여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누군가의 오염물질 배출로 인해 주변 사람이 죽음에 이르렀더라도 현대과학으로 인과관계를 밝히기는 어렵다. 가습기 살균제가 그렇고 석면 지붕이 그렇다. 원전 주변의 방사능 유출 또한 그러하다. 청정한 지리산자락 한 마을에서 주민들이 집단으로 암에 걸려 사망해도 인근에 건설된 아스콘공장이 원인이라는 증명은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설사 관계가 어느 정도 인정된다 하더라도 이들의 죽음이나 고통을 보상받거나 오염유발자의 처벌은 요원하다. 십 수명의 생명가치가 공장의 이익과 비교될 수 있을까?

원자력발전으로 인한 위험요인은 위의 사례와 비견될 수준의 피해가 아니라 재앙 그 자체이다. 특정 집단을 위해 국민이 누려야 할 저렴하고 깨끗한 에너지 공급원을 방해하는 정책은 지난 정부로 막을 내려야만 한다. 우리나라의 친환경 기술력은 원자력발전을 유지해야만 할 만큼 후진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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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천국편: 공교육은 학생 10명당 교사 1명의 교육 환경을 제공하며 토론을 장려한다. 인간에 대해 깊이 이해해 갈등을 조율하는 능력을 신장하고, 창의성을 증대하기 위함이다. 한편,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대폭 늘어나 전 국민이 주거 불안 없이 삶을 꾸려간다. 이 모든 사회 복지 재원 마련은 기술 발전을 통한 수익 증대분에서 충당된다. 기술 발전은 또한 인류에게 더 많은 여유 시간을 선물했다. 사람들은 낮에는 그늘에서 부서지는 볕을 보며 사색하고, 밤에는 쏟아지는 별을 보며 노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시민들은 서로를 마주 보고 어루만지며 더 나은 사회를 담대하게 상상한다.

4차 산업혁명 지옥편: 산업 현장에서 자동화 기계와 인공지능의 활용은 갈 데까지 가서, 극소수의 노동자만이 노동을 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불안정 노동에 몰리고, 그마저도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은 장기 적출, 인신매매 대상이 된다. 계속되는 불황으로 세계는 전쟁의 유혹에 빠지고, 임금노동을 통해 존재가치 입증이 불가능해진 인간들은 군에 동원되어 쓸모를 입증하거나, 첨단 무기에 의해 뼈도 못 추리고 사멸한다. 그렇게 인류는 멸망했다….

여러 미래학자의 저술 및 SF 창작물에 등장하는 상상에 내 것을 보태보았다. 앞으로의 세상이 지옥이 될까 봐 걱정하는 이들은 그만큼 많고, 나도 그 중 하나다.

기본소득제도 도입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는 맥락도 여기에 있다. 노동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소득’ 또는 배당금을 지급하자는 것. 사회 구성원이 사회에 축적된 부에 어떤 방식으로든 기여했다는 시각에서다. 현재 비약적인 기술 발전에 토대가 되는 데이터 축적에 소비자로서 기여한 바(구글 번역, 인공지능 스피커, 자율주행자동차 등)와, 기존 임금노동 시장 통계에 집계되지 않는 가사노동, 돌봄노동 및 시민으로서의 활발한 정치참여의 가치를 인정하자는 것. 이것은 또한 높은 확률로 예측되고 있는, 인간 없는 생산으로 일자리 자체가 극단적으로 줄어들 미래에 대한 사회적 대응이기도 하다. 임금노동자가 소수인 사회에서도 지속적으로 경제 순환이 이뤄지게끔 하고, 궁극적으로는 좀 더 행복하고 충만한 기운 넘치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 기본소득 재원은 로봇세, 탄소세 등 기술 사용으로 인한 부의 축적분과 그 과정에서 초래되는 환경 파괴에 대한 부담금으로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기본소득제도를 전 국민을 대상으로 당장 시행하기는 어려우니 청년, 노인, 장애인 등에 우선적으로 수당을 지급하고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자는 의견에 나는 조건부 찬성한다. 그래서 ‘청년수당’ 명목의 제도를 시행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어난다는 소식에 우호적이었지만, 상당수가 사용처를 ‘검사’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시무룩해졌다. 이 제도가 개개인에게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제공하고 자율성을 발휘하게 돕는 것이어야 한다고 보고, 혜택 받는 사람들을 심사하고 평가하는 데 비용을 쓰느니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이에게 수당을 주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청년수당 사용처를 검사해야 마땅하다는 관념이 팽배해 보인다. 최근 한 온라인 언론사는 헐벗은 남녀의 사진을 첨부해 서울시 청년수당 수급자가 수당을 연인과 모텔에서 사용해 수급 자격을 잃었다는 식으로 읽히게끔 유도하는 기사를 실었고, 많은 독자들은 ‘도덕적 해이’를 질타했다. 실상은 ‘타 지역 취업 면접 시 필요할 수 있기에 모텔에 대한 사용처 규제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수급 대상자 일부가 청년수당 수급 자격을 잃었다는 사실’을 짜깁기한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청년수당을 취업 활동이 아닌 데이트비로 사용했다 하더라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그것 역시 경제순환에 기여하는 일 아닌가? 

게다가 언제는 청년들이 ‘혼밥’ 등 인간관계 단절로 사회적 자폐를 겪어 문제, 출산 안 해서 문제라더니. 청년들이 좀 덜 불안하고, 더 행복하게 사는 꼴 보기가 그리도 싫은가? 쪼잔하게….

우리는 급변하는 세계에 대응하기 위해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언론 및 시민들의 정책 평가 역시 미래지향적인 시각에서 이뤄지기를 희망한다.

<최서윤 아마추어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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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에서는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 중단과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일시 가동 중단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정부도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율을 20% 이상 달성하겠다는 ‘신재생3020 이행계획’ 추진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외 전문기관의 자료에 따르면 2016년 현재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전체 발전량의 4.8%로 미국 13.8%, 독일 27.5%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신재생에너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를 위하여 우선 신재생에너지 분야 전문인력을 집중적으로 양성하여야 한다. 신재생에너지에서도 분야가 다양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시장 성장과 활용 전망이 높은 분야를 선정하여 교육과 훈련을 통한 인재 양성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자재 설계, 핵심 부품의 국산화, EPC, O&M 등 전문기술과 설비운영의 노하우는 단기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루빨리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에너지공단 자료에 따르면 ‘신재생3020 이행계획’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140조원 이상이 소요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막대한 비용이 투자되는 사업인 만큼 설비 구축 초기에 필요한 기술 개발이나 기자재의 국산화,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제도적, 재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개별 요소 기술들에 대한 집중적인 R&D 지원을 확대하고, 민간부문에서 선뜻 나서기 어려운 영역은 공공부문에서 우선 담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상현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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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갈았다. 정오 무렵이었다. 확성기 소리를 들었다. 칼 갈아요, 칼. 확성기 소리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목청 좋은 사람의 노랫소리 같았다. 가락이 뛰어났다. 한두 해 연마한 목청이 아니었다. 양파를 썰다 말고 뛰어나갔다. 어르신. 청명한 햇살을 받으며 그가 뒤돌아보았다. 칼 갈아요? 다른 리듬으로 그가 물었다. 건너편 디저트 집에서 나온 사람이 먼저 대답했다. 저희 칼 갈게요. 옆집 레스토랑에서 고개를 빼고 물었다. 얼마예요? 삼천원. 햇살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의 발치에 칼이 가득했다.

내 어머니는 칼을 잘 가는지 하나 확인해 본 다음 들고 가라고 했지만, 나는 주방에 있는 모든 칼과 가위를 가지고 나갔다. 그는 칼을 가는 데 두 개의 숫돌을 사용했다. 일제 숫돌이라고 은근한 자랑을 덧붙였다. 숫돌은 이미 닳을 대로 닳아 오목하게 얄팍해져 있었다. 숫돌 받침은 삽자루를 잘라 직접 만든 모양새였다. 그는 숫돌 양면의 각기 다른 결을 이용해 세 차례 갈아 날을 세웠다.        

자신감과 겸손함이 공존하는 손놀림이었다. 얼마나 쓰면 이렇게 얄팍해지는지 물었다. 얼마 못 쓴다고 말을 얼버무렸다. 그 얼마가 얼마인지 시간의 흐름이 가늠되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부터 칼을 가셨냐 물었다. 전차가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라고 대답했다. 그게 몇 년인지는 헤아릴 수 없으나 전차 가격은 확실히 기억했다. 2원50전. 정확한 화폐단위로 말하자면 2환50전. 그때 칼 하나 갈면 3환을 받았다고 한다. 전차 본 적 있어요, 전차? 아니요. 사진으로만 봤어요. 내가 그거 타고 다녔어. 전차가 가는 곳이면 다 가서, 다 갈았지. 그래서 이쪽으로는 안 와봤어. 망원동은 그때 갈대밭이었거든. 사람도 안 살고. 그러니 갈 칼이 있나. 그러고는 열심히 숫돌질을 이어나갔다.

갈 칼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아쉬웠다. 그를 조금이라도 더 붙들고 있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젓가락이라도 다 모아 오고 싶었다. 그가 숫돌질 하는 모습을 한나절이고 앉아 바라보고 싶었다. 노닥노닥 얘기나 하며. 그냥 그러고 싶었다.     

소설가적 상상력으로 그의 인생을 가늠해보거나 드라마틱하게 각색하지 않고, 그냥 그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노인의 칼 가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칼 가는 소리를 듣기 좋은 날이었다. 토요일 정오, 맑은 햇살.

엄마는 뒤늦게 나와, 언제 다시 이 길을 지나겠느냐 물었다. 집에 있는 칼들을 가져올 터이니 갈아달라고. 엄마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는 대답 없이 연장을 챙겨 길을 떠났다. 그는 당분간 이쪽으로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의 확성기에 응답할 사람은 이미 다 나와 칼을 맡겼고, 자신의 칼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자신이 잘 알 터이니. 칼이 다시 무뎌질 즈음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가방을 메고 골목을 돌아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문득, 요즘엔 무얼 타고 다니며 칼을 가는지 궁금해졌다.

나도 특별한 칼 하나쯤 갖고 싶었다. 나만의 칼. 중국집 주방의 커다란 사각 칼 같은 것. 동태의 머리를 내려치고 내장을 가르는 생선장수의 칼 같은 것. 근사한 회칼을 가지고도 싶었다. 그래서 결국 주방으로 들어오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요리사들은 자기만의 칼을 갖고 다닌다고 했다. 칼도 직접 갈아 쓰는 법이라고 했다. 칼을 잘 드는 상태로 만들어 놓는 것도 요리의 일부니까. 전용 칼과 전용 숫돌은 요리사의 분신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미용사의 가위처럼.

하지만 나는 식당을 열면서 특별히 칼을 새로 마련하지 않았다. 그냥 쓰던 칼에 하몽 커팅용 칼을 추가했을 뿐이다. 박이나 늙은 호박 껍질을 벗기는 데 용이한 특이한 모양새의 칼도 하나 있지만, 그리 비싸거나 특별한 칼은 아니다. 일본에서 좋은 숫돌을 하나 장만하기도 했는데, 한번 실패한 이후로는 다시는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래도 훌륭한 요리사는 될 수 없을 모양이다.        

요리를 하려면 칼 가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 거 아닌가? 제대로 된 칼도 하나 없이 요리는 무슨 요리. 요리는 둘째치고 언젠가는 좋은 회칼 하나쯤 간직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내 할머니는 사기그릇 밑굽에 대고 칼을 갈았다. 먼저 사기그릇 밑굽 거친 부분에 쓰윽 쓱 쓸고 난 다음에야 칼을 사용했다. 칼은 반짝 잘 드는 척하지만, 몇 번 쓰고 나면 다시 무뎌졌다.         

사실 할머니의 칼은 하나같이 무딘 상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그랬다. 칼은 언제나 그 양반이 갈아줬다고, 얼마나 꼼꼼하게 잘 갈았는지 모른다고, 할머니는 회상했다.          

그녀가 그냥 되는 대로 아무 사발이나 잡아들고 칼을 갈아 쓰는 것은, 할아버지의 벼린 칼맛을 결코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칼에 대한 별 욕심이 없는 그녀지만, 밤칼만큼은 끔찍이 아꼈다. 과도보다 조금 작은 크기에 칼자루가 뭉뚝하고 네모난 모양의 날을 가진 칼이다. 쉽게 구할 수 없는 칼이라고 했다. 가을이면 그녀는 소일거리로 밤을 깎아 업자에게 넘겼는데, 한 포대에 삼천원인가 오천원인가를 받았다.        

밤을 쳐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러면서도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다. 밤알 표면이 예쁘게 나오려면 칼이 무디면 안된다. 그런데 밤을 치다보면 칼은 쉽게 무뎌진다. 그래서 밤칼은 깎은 밤을 수거하러 온 업자가 매번 새로 갈아주고 갔다.      

두어 번 밤칼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는데, 밤 껍질과 함께 휩쓸려 나갔는지, 누가 와서 가져갔는지, 그녀는 두고두고 혀를 차며 밤칼 단속을 했다.

반나절 꼬박 앉아 그 애를 쓰며 오천원이라니. 그만 두시라 했다. 그녀는 재미로 하는 거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고는 얼른 칼을 숨겼다. 오천원이 아니라 칼을 빼앗길까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노인이라고 놀면 쓴다냐. 뭐라도 해야제. 그러면서 다시 묵묵히 밤을 쳤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칼을 무디게 만들기 위해 밤을 깎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와서 무딘 칼을 날렵하게 만들어 놓기를 바란 것이라고, 마당 세면대에 쭈그리고 앉아 숫돌질을 하던 할아버지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라고. 이거야말로 소설가적 상상력이다.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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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일직교회 뒤편의 7평 남짓한 토담집. 40년 넘게 결핵과 싸우면서 주옥같은 동화를 발표했던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1937~2007)이 1984년 원고료로 받은 80만원을 들여 지은 집이었다. 1996년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을 펴냈던 권 선생을 인터뷰하기 위해 찾았던 울도 담도 없는 집의 작은 방에는 약봉지와 책들이 뒹굴고 있었다. 당시 권 선생은 천직으로 여겼던 일직교회 종지기를 그만뒀다고 했다. 1966년 신장결핵 진단을 받고 오른쪽 신장을 적출하는 등 오랜 투병생활이 그의 육신을 쇠약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권 선생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귀국했다. 4년 뒤 터진 한국전쟁은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난리통에 이곳저곳을 떠돌다 몹쓸 결핵을 얻었다. 가난도 피할 수 없었다. 28살 때 집을 나와 수년간 구걸로 연명했다. 어렵사리 교회 종지기 자리를 얻은 그는 1969년 <강아지 똥>을 발표하며 동화작가로 데뷔했다. 권 선생은 평생 남과 다투거나 흥정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원고료도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대로 받았다. 안 주면 그만이었다. 그는 몸이 아프면 누워 있다 정신이 맑아지면 <몽실 언니> <밥데기 죽데기> <까치울던 날> 등과 같은 동화를 굽는 데 열중했다. 권 선생은 “하루에 원고지 한 장도 쓰고, 어떤 때는 10장도 쓰지만 그때만큼은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100여편의 동화와 동시, 산문집을 빚어놓고 2007년 세상을 떴다. 사인은 결핵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권 선생이 의료사고로 숨진 사실이 10년 만에 밝혀졌다. 대구지법은 지난 7월 권 선생의 동생 권정씨가 대구가톨릭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병원은 방광조영촬영술을 실시하기 전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를 모르고 영면한 권 선생은 하늘나라에서 억울해할까. 그렇지는 않을 듯하다. “난 더러운 똥인데,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을까?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텐데….” 그렇게 민들레의 거름이 된 ‘강아지 똥’처럼 평생 남을 배려하며 살다 세상을 뜬 그 이기에…. 하지만 그의 맑은 동화와 명징한 글을 접할 수 없게 된 독자들의 심정은 안타깝고, 억울하기만 하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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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권정생

화면으로는 여행프로나 좀 보고 라디오를 즐겨 듣는다. 요새 방송사가 파업 중이라 재방송이 많다. 책을 다시 읽으면 별미인 것처럼 파업 때문에 듣는 재방송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 방송이 볼 게 없으면 아껴두었던 영화를 한 편 찾아봐도 되고 말이다. 며칠 전엔 영화와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가 안겨준 선물로 두 눈이 호강했다.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와 켄 로치, 나막신의 감독 에르마노 올미 이들 셋이서 쿵닥쿵닥 만든 옴니버스 영화 <티켓>. 1등석 2등석 3등석, 칸마다 다른 군상들. 로마로 가는 짜릿하고 낭만적인 기차 여행. 가슴이 홍시처럼 붉어지고 달콤해졌다. 파업도 종종해야 하겠다. 그때는 이처럼 놓칠 뻔한 영화를 찾아볼 기회가 생길 테니까.

수다스러운 라디오도 잠시 끄고, 듣고 싶었던 노랠 찾아들어도 좋겠다. 총리 아저씨 말씀마따나 보다 공정한 뉴스를 찾아들어도 좋겠다. 윗선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메인 앵커에게 물 좀 아끼라 했다고 수년간 일거리 없는 ‘옆방’에서 지냈다는 선배 기자의 증언. 이도 워터게이트라 하던가. 나이 들고 볼품없는 사람들도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까. 휘황한 햇빛만 믿고 안하무인이 되어버린 추한 군상들. 세상이 온통 적폐로 몸살을 앓고 있다. ‘파업전야’ 노래가 동네방네 쩌렁쩌렁 울리고 있다.

새로움만을 좇는 세상에 재방송을 듣는 즐거움. 개봉영화가 아니라 흘러간 영화를 찾아보는 즐거움. 겁 없는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을 주의하고 조심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런 ‘힘 빼기의 기술’을 잘 안다. 카피라이터 김하나씨의 에세이 <힘 빼기의 기술>도 참 재미나게 읽었다. 제목부터가 나를 화끈 홀렸다. “주삿바늘 앞에 초연한 엉덩이처럼 힘을 빼면 삶은 더 경쾌하고 유연해진다.” 일본의 유명 극작가인 구도 간쿠로의 인터뷰를 소개하고 있는데, “바쁜 와중에 각본을 그리 잘 쓰시는 비결이라도?” 대답인즉슨 “일단 잘 쓰고 싶지 않아요”. 백지 앞에서 부푸는 욕심, 잔뜩 들어간 힘을 빼는 순간 명문장이 찾아드는 것일까. 올해 추석명절은 아주 긴 휴식기로 달콤하겠다. 힘을 빼는 재방송 시간. 기운을 빼고 뒤를 돌아보며 두루두루 살펴보는 귀한 시간들이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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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양국이 한국의 핵잠수함 도입에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일자 정부가 곧바로 이를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핵잠수함 도입 추진 의지에는 변함이 없음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핵잠수함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청와대 관계자도 “전략방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 중 가장 위협적인 게 핵추진 잠수함이라는 건 내부적으로 합의됐다”고 말했다.

핵잠수함 도입을 주장하는 근거는 북한의 핵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핵추진 잠수함이 북한 인근 해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북한이 도발을 못하게 하는 억지력을 갖출 수 있다는 논리다. 특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하는 2000t급 잠수함을 보유한 북한이 핵잠수함을 건조 중이라는 관측이 나온 뒤부터 핵잠수함이 대안이라는 주장에 더욱 힘이 붙고 있다. 북한이 원자력 잠수함에 핵탄두 SLBM, 핵어뢰를 보유할 것을 상정해 핵잠수함 건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핵잠수함은 북핵 대응책이 될 수 없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는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는 기능이 있지만 핵잠수함은 북한의 잠수함을 탐지하는 것이다. 미사일 자체를 직접 막는 무기체계가 아니다. 특히 군 스스로 핵잠수함 건조에 10년 이상 걸린다고 하면서 당면한 위협인 북핵에 대응하는 카드인 양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도 않는다.

더구나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설정하고, 탈핵을 외치면서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핵무기 개발이 아닌 핵추진 잠수함 개발이라는 점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통보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핵잠수함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등 핵무기를 갖고 있는 6개국만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보유한 핵잠수함의 주요 기능은 먼 거리를 이동해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이다. 핵보유국도 아닌 한국이 핵보유국 수준의 무기를 갖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핵잠수함 보유 자체로 중국, 러시아와 마찰을 빚을 수 있다.

핵잠수함의 효용도 과장되고 있다. 축전지를 이용해 기동하는 해군의 디젤 잠수함은 하루 2번 이상 수면 위로 부상하기 때문에 적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항상 원자로를 가동해야 하는 핵잠수함의 소음은 더 커서 노출 위험을 회피할 대안이 될 수 없다. 북핵 대응에는 연안 중심의 활동에 적합한 디젤 잠수함이 더 효율적이다. 해군은 이미 림팩 훈련 등에서 디젤 잠수함으로 가상 적국의 잠수함을 탐지해낸 바도 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면서 핵잠수함 건조에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비밀사업으로 핵잠수함을 도입하려던 명분은 대양해군론이었다. 한반도 평화도 지키지 못하면서 대양으로 진출하겠다는 것은 망상이다. 당장 필요한 것은 연안 중심의 해상작전이지 태평양을 누비는 게 아니다. 수개월간 지속적으로 잠수할 이유도 없다. 북핵 대응에 효과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주변국과 마찰을 빚을 수 있는 핵잠수함 사업에 집착할 때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즉각 비현실적인 생각을 버리고 북핵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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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2100년은 인류가 간절히 알기를 바랐던 미래다. 2100년을 예측하기 위해서 인류는 국경을 넘는 지구 공동체가 되어 미래 예측 프로젝트를 수행해 오고 있다. 덕분에 2100년은 우리가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미래가 되었다.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1세기에 일어날 기후변화와 그것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국제기구이다. 1988년에 만들어진 이 단체는 기후변화와 관련해 전 세계의 학자들이 생산한 과학적, 기술적, 사회경제적 연구 결과를 체계적으로 검토하여 미래를 예측한다. 그리고 예측은 21세기의 끝, 2100년을 향해 있다.

IPCC는 2014년 다섯 번째 기후평가보고서를 발간했다. 기후학, 물리학, 해양학, 통계학, 사회과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정된 831명의 전문가가 작성한 이 보고서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미래에 인간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에 따른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예측한 네 가지 대표 시나리오다. 가장 절망적인 시나리오대로 높은 수준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유지한다면, 지구의 평균온도는 1861~1880년에 비해 2.6도에서 4.8도가량 높아질 것이다. 반대로, 가장 희망적인 시나리오대로 배출량 규제가 엄격히 이루어진다면, 0.3도에서 1.7도 상승에 그칠 것이다. 그리고 현재 이산화탄소 배출 수준을 유지한다면 우리는 가장 절망적인 시나리오에 가까운 경험을 할 가능성이 높다.

1990년에 시작해 5~7년 간격으로 발행된 다섯 편의 IPCC 보고서는 한결같이 대기 중 누적된 온실가스의 증가와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에 매우 높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산업화 이전 시기부터 시작된 온실가스 증가는 인간의 활동에 기인했으며, 20세기 중반부터 관측된 온난화 현상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라는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 몰디브의 섬들이 곧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바다 밑으로 사라지게 된다는 이야기만큼이나 2017년의 우리에게 기후변화는 익숙한 미래다.

익숙하다고 해서 모두가 믿는 것은 아니다. 인류가 간절히 알기를 바랐던 미래는 이제 적극적으로 외면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가장 유명한 기후변화 회의론자는 아마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일 것이다. 그의 트위터는 기후변화가 “불완전한 과학과 조작된 자료”에 기반한 것이며 “사실무근”이고 “비싼 속임수”라는 주장으로 가득하다. 이러한 주장의 뒤에는 의혹을 파는 과학자들이 있다. 과학사학자인 나오미 오레스케스와 에릭 M 콘웨이는 기업이나 정치가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소수의 과학자들이 산업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에 대한 과학적 주장에 끊임없이 의혹을 불어넣는 전략을 통해 논쟁을 만들어 왔다고 주장한다. 기후변화가 거짓이라는 주장은 흡연과 폐암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주장과 더불어 대표적으로 만들어진 의혹이라는 것이 그들의 책 <의혹을 팝니다>에 잘 드러나 있다.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의 거친 언어에 비해 IPCC 보고서 속 언어는 매우 조심스럽다. 보고서에는 각 예측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얼마나 강력한지, 과학자들 사이에서 어느 수준의 합의에 이르렀는지, 어느 정도의 확신에 기반한 것인지, 그리고 예측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나 높은지 꼼꼼하게 서술되어 있다. 예를 들어, 지구 평균 표면 온도가 증가하면 북반구 고위도 지방의 영구동토층의 너비가 줄어들 가능성은 “거의 확실”하지만, 그 감소폭이 시나리오에 따라 37%에서 81%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점은 “중간 수준의 확신”으로 예측할 수 있다. 여기에는 주장과 근거, 그리고 그 둘의 힘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려는 과학의 습관이 짙게 배어 있다.

아득하게 느껴지는 2100년 지구의 미래는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를 경험할 때 인간의 현재가 된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파리협약 탈퇴를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응답이라도 하듯, 지난 몇 주간 미국은 여러 개의 초대형 허리케인을 경험했다. 하비(Harvey)는 8월25일 미국 남부 텍사스주 걸프만에 상륙해, 하이랜즈 지역에서 1318㎜의 비를 뿌렸다. 단일 허리케인으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강우량이다. 채 2주가 지나지 않아 어마(Irma)가 캐리비안해의 섬나라들을 거쳐 미국 플로리다주에 상륙했다. 어마는 풍속에 따라 허리케인을 분류하는 새피어-심슨 풍속 스케일에서 최고 등급인 5등급으로, 최대 풍속이 시속 295㎞에 달했다. 지난 한 달 사이에 미국 남부를 강타하고 151명의 사망자(9월15일 기준)를 낸 하비와 어마는 미국 역사상 가장 손해를 많이 끼친 허리케인 중 열손가락 안에 꼽히게 되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뒤이어 호세(Jose)가 동부 연안에서, 또 다른 5등급 허리케인 마리아(Maria)가 남부의 바다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러니 IPCC가 보여주는 ‘미래’는 그 한자어의 의미처럼 ‘오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닌 셈이다. 

허리케인 하비와 어마로 참혹하게 파괴된 도시의 모습은 기후변화 예측이 그 어떤 종류의 미래 예측보다 절박한 것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은 9월11일 기고한 ‘음모, 부패, 그리고 기후’라는 제목의 글에서 기후변화가 가짜라고 주장하는 미국 공화당의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을 강하게 비판하며, 특히 그들의 “고의적 무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현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부정은 재난의 예방이나 대비, 복구에 대한 어떤 생산적인 정치적, 정책적 토론도 매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정확하게 예측된 2100년의 미래에는 우리가 지금 산업, 경제, 정치와 같은 사회 전반의 분야에서 단호한 결정을 내리고 흔들림 없이 그 결정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겪을 험난한 고비가 예견되어 있다. 지구와 인간의 미래는 예견된 네 가지 시나리오 중 어느 것에 가까운 모습이 될 것인가.

<강연실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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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에 장애인 특수학교를 신설하는 문제를 놓고 큰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미 특수학교 설립을 결정했지만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여기에 지역구 국회의원인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같은 자리에 ‘국립한방의료원 건립’을 주장하면서 갈등은 더 커졌다.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교육감-주민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특수학교 먼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논란’이란 단어를 쓰긴 했지만, 적절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이미 여론은 일방적으로 흐르고 있다. 온라인 기사 등에 달린 댓글로만 보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집값에 미친 사람들’일 뿐이다. 단지 집값 하락을 염려해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이 이웃으로 자리잡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 뿐일까. 사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판단해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장애인 학교 건립을 밀어붙여서는 모두가 행복할 수 없다. 그 학교를 매일 다녀야 할 장애학생과 부모들의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이다.

관련 기사를 보다 서울 중곡동에 있는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생각났다. ‘센터’라는 ‘폼나는’ 이름을 달아 새로 짓기 전에는 ‘국립서울(정신)병원’으로 더 잘 알려졌던 곳이다. 특수학교와는 비교가 안되는 ‘혐오시설’이기도 했다.

국립서울병원은 2002년까지 타지역으로 이전이 추진됐다. 주민들뿐만 아니라 해당 지자체도 원하던 일이었다. 그러나 현재 자리잡고 있는 지역에서도 내치려는 시설을 다른 지역이 달가워할리가 없었다.

2006년부터는 ‘재건축’이 추진됐다. 현재 있는 자리에 정신병원을 더 크게 지으려 하자 주민들은 다시 난리가 났다. 주민들은 정신질환 치료에는 도심이 아닌 자연이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란 소리였다. 병원 때문에 집값이 하락한다는 말은 그때도 나왔다. 복지부와 병원 측은 ‘국가 땅에, 지금 병원이 있는 곳에 다시 짓는데 주민들이 왜 반대하냐’고 반박했다. 그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거쳐 국립서울병원은 지난해 3월 국립정신건강센터로 개편해 문을 열었다. 재건축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지 10여년만이었다.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 있다. 정신과 전문의 남윤영 박사는 2006년부터 2016년까지 국립서울병원에서 기획홍보과장을 지냈다. 재건축추진 실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했다.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도망’가고 싶을 때가 수없이 많았다고 했다. ‘고발’을 당하기도 했고, 얻어 맞기까지 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지난 18일 국립정신건강센터로 남 박사를 찾아갔다. ‘혐오시설’을 지으면서 그만큼 많이 시행착오를 겪어 본 사람도 없을 터였다. 강서구 특수학교 논란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남 박사는 “주민들을 무조건 많이 만나고,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서울병원 측은 먼저 반대하는 주민들과 함께 새 정신병원 부지를 물색하러 다녔다. 그렇게 ‘이전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설득했다. 이어 정신병원 재건축을 지역발전과 연계시켰다. 재건축 계획은 국립정신건강연구원을 거쳐 종합의료복합단지로 확장됐다. 개원 후에는 국립정신건강센터 주차장을 주민들에게 개방했고, 정신과 외 다른 진료과도 개설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는 이제 중곡동의 ‘랜드마크’가 됐다. 학생들은 병원 내부를 지름길 삼아 통학한다. 동네 노인들은 저렴한 병원 구내식당을 즐겨찾고, 아이를 학교에 보낸 엄마들은 병원 1층 카페에서 잠시 여유를 맛보기도 한다.

10여년 전 정신병원이 있을 때는 상상도 못하던 풍경이다. 그러나 누군가 상상력을 발휘했고, 동의했고, 현실이 됐다. 남 박사의 멱살을 잡았던 일부 주민들은 나중에 가장 큰 우군이 됐다고 한다. 국립정신건강센터 기념관 동판에는 남 박사와 주민들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남 박사는 “저희는 10년이 넘게 걸렸어요. 특수학교는 그보다는 훨씬 빨리 할 수 있을 겁니다. 누군가 더 큰 상상력을 발휘한다면”이라고 말했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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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하나도 없는 매장 앞을 지나다가 느닷없이 슬픔에 사로잡힌 나는 왜 이런 광경을 보면 매번 슬퍼지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뜻밖에도 삼십년 전쯤의 기억을 불러내게 되었다. 그때 아버지는 농사를 작파하고 경운기 운전대 대신 1t 트럭의 운전대를 잡았다. 트럭 행상을 시작한 건데 두어 달이 채 못 되어 품목을 바꾸는 바람에 우리 집 헛간과 마루에는 팔지 못하고 남은 잡화들이 쌓여갔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던 아버지는 이번에는 정말 장사가 잘될 거라며 서울의 공장에 주문서를 보내 한 트럭 분량의 운동화를 도매로 구입했다. 마침 그날 오일장이 열리는 곳은 고창 읍내였고 주말이었던 터라 아버지가 행상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아버지를 돕기 위해 조수석에 올랐다. 우리는 시장 상인들의 텃세를 피해 시장 입구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공장에서 흘러나온 폐수가 흐르는 하수도 위에 짝퉁 나이키, 아식스, 프로스펙스 운동화를 늘어놓았다. 하수도에서 피어오르는 냄새에 구역질이 나고 머리가 아파 절로 인상이 구겨졌는데 우리는 이걸 노련한 장사꾼들처럼, 그러니까 이처럼 좋은 물건을 헐값에 팔러 나와 속이 상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보이게 하려고 애썼다. 검수과정에서 불량판정을 받아 떨이로 내놓은 운동화였는지 아니면 말 그대로 그냥 짝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품의 절반 가격이었던 터라 지나는 사람들의 이목을 제법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 우리는 하루 종일 인상을 쓰고 견뎠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세 켤레를 팔았을 뿐이다. 허리가 굽은 노부인이 손주가 좋아하겠다며 아동화 한 켤레를 사갔고 내 또래의 비쩍 마르고 새까만 사내아이가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프로스펙스 운동화 한 켤레를 사갔다. 해가 이울어 파장을 고심할 때 아버지 또래의 사내가 스무 켤레쯤을 신어 본 뒤 나이키 운동화를 한 켤레 사갔다. 운동화를 거두어 트럭에 싣고 떠나려 할 때 마지막으로 운동화를 사갔던 사내가 돌아와서는 물러주라 했다. 아버지는 군말 없이 운동화를 받아들고 돈을 돌려주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장사에 재능이 없는 아버지. 운동화 보고 가세요,라는 말밖에는 하지 못했던 아버지. 워낙 말주변도 없고 사근사근한 성격도 못 되었던지라 새삼스럽지는 않았으나 무기력한 아버지를 보면서 슬픔과 분노를 느꼈고 그 감정이 잠복했다가(잠복했던 이유는 어쨌든 아버지가 트럭 행상으로 식구를 먹여 살렸으므로)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을 만나면 불쑥 되살아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결국 우리는 두 켤레를 팔았던 셈이고 내가 알기로 6000원쯤을 벌었다. 동네 이웃집에 놉으로 가서 하루 종일 논일을 거들면 1만5000원을 벌 수 있었는데 경운기 몰던 손으로 트럭을 몰고 논두렁에 앉아 새참을 먹는 대신 구멍가게에서 사 온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며 대지와 하늘이 아니고서는 한 번도 허리를 굽힌 적 없는 당신이 지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굽실거리면서도 하루 품팔이만도 못한 품삯을 쥔 채 캄캄한 국도를 달려갈 때 어떤 심정이었을지를 헤아리게 된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고창 읍내에서 고향집까지 가면서 내가 보았던 건 캄캄한 어둠뿐이었다. 전조등이 비춘 만큼만이 열려 있었고 우리가 지나가면 그 공간 역시 어둠에 잠겼다. 끝도 없는 어둠 속을 헤치고 나가면서 아버지의 삶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기분이었다.

차갑고 어둡고 막막한 삶.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오가는 사람조차 드문 어느 골목 초입에 결코 팔릴 것 같지 않은 물건을 늘어놓은 노점상 앞을 지날 때거나 퇴직금으로 장사를 시작한 게 분명해 보이는 중년의 부부가 자신들의 가게 구석에 시름에 잠겨 멍하니 앉은 걸 보게 되면 그이들이 서 있는 경계, 그이들이 잘할 수 있는 일과 잘할 수는 없지만 살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일의 경계라고 할 수 있는 그 날선 자리에 발바닥을 베이지 않고 부디 오래오래 서 있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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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0일 문재인 대통령은 저출산 대책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아이를 기르는 게 엄마만의 부담으로 되어 있는데, 엄마와 아빠가 함께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게 근본적 해법”이라고 밝혔다. 또 “아빠 육아휴직도 있지만 근원적으로 연장 노동을 포함해서 주 52시간 근무를 확립하고 연차휴가를 다 사용하게 해야 한다. 일하는 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여유를 갖도록 하는 게 근본적 해법”이라고 말했다. 즉 자녀를 돌보는 환경을 조성하고 돌봄 문화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첫째, 부모가 자녀를 돌볼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장시간 근로환경에서 부모의 돌봄시간은 크게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필자가 연구를 위해 만났던 한 남성은 자신을 ‘72시간 아빠’라고 소개하였다. 평일에는 72시간 만에 아이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자녀를 돌보는 일이 어렵다고 했다. 또 육아휴직 후 직장에 복귀한 여성들 중 복직 1년 후 동일직장 고용유지율은 56.6%밖에 안된다는 현실도 복직 이후 직장생활과 자녀돌봄의 양립이 힘들다는 방증이다. 유연근무제도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등을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우리나라 돌봄 환경에서 또 다른 문제는 보육서비스의 이용만으로는 자녀돌봄이 충분히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5년 기준 어린이집 이용아동은 취업모 자녀가 36.6%, 미취업모 자녀가 58.4%인 통계(전국보육실태조사)에서도 취업모는 보육서비스 외 다양한 보육방식을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 부모들은 출퇴근 시간과 근로시간이 긴 편이어서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이러한 현실에서 부모들은 어린이집 외 다른 다양한 보육방식을 찾게 된다.

셋째, 보육서비스는 해당 연령기에 필요한 아동성장과 건강한 양육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기본서비스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보육서비스에서 장시간 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적정한 시간의 보육서비스를 이용하고 집 가까운 곳에서 돌봄을 받으며 지내는 방식으로의 개선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서 공동육아나눔터에서 놀이 겸 보호를 받으면서 지내는 방식도 필요하고, 너무 이른 시간이나 늦은 시간에는 자신의 집에서 아이돌보미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도 필요하다. 이처럼 지역사회 내 다양한 돌봄 환경이 구성되면 퇴근 후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아이들도 집 가까운 곳에서 안전하게 부모를 기다릴 수 있다. 또한 보육시설에만 집중되어 있는 수요도 조정할 수 있고, 수요자의 이용편의도 높아질 수 있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 편성에서 이 두 가지 점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집 가까운 곳에 공동육아나눔터를 확충하기 위하여 47개 지역을 추가해 전국 66개에서 113개로 확대했고, 관련 예산도 17억원에서 30억원으로 증액했다. 또 만 12세 이하 아동이 있는 가정을 방문하여 아이를 돌봐주는 아이 돌봄서비스 이용시간을 기존의 연 480시간에서 연 600시간으로 확대했다.

출발점에 서서 이야기하자면,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한 돌봄체계가 구축되면, 그 속에서 가족도 만들 수 있고, 돌봄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남녀 간 역할분담도 변화할 수 있고, 일자리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돌봄 환경이 바뀌면 돌봄 문화도 달라질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자녀를 돌보는 사회문화를 조성하고, 정부와 가족과 지역사회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협업이 가능해진다.

<홍승아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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