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2016년에도, 2017년에도 새해는 찾아왔었다. 어떻게 보냈는지 까마득하지만,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새해가 곧바로 헌 해가 되지는 않는다. 날짜를 기재하는 칸에 작년을 적어 넣고 뒤늦게 아차 하는 경우도 빈번히 생긴다. 그러다 올해가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작년은 마침내 지난해가 된다. 지났다는 것은 시간이 흘러 해당 시기에서 벗어났음을 뜻한다. 어제를 거쳐 오늘을 맞이하고 겨울을 어렵사리 넘어 봄이 오듯 말이다. 지났다고 해서 변했다고 지레 단정할 수는 없다. 시간의 흐름이 반드시 변화를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보통 나한테 소중한 존재인 경우가 많다. 보통 그 대상은 가족이나 친구처럼 사람이지만, 반려동물이나 반려식물처럼 동식물인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오래전 주고받았던 편지나 선물처럼 사물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새해가 되면 그들에게 안부를 묻는 것도, 따뜻한 볕을 한 번이라도 더 쐬어주려는 것도, 바래지는 않았을까 노심초사하며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는 것도 남아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는 일이다. 새해에도 여전한 것들 덕분에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개중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다. 이것들은 나를 북돋우기도 하고 의기소침하게 만들기도 한다. 익숙한 공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기, 여기는 안전하다는 느낌, 곁을 내어주고 있다는 확신 같은 것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잘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게 해준다. 불신과 불평등, 예의 없음과 배려 없음, 불안함과 두려움, 불필요한 신경전과 불합리한 제도 등 우리 힘으로 어찌하기 힘든 것들도 있다.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이런 여전함은 하루아침에 감쪽같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한 것과 여전하지 않은 것 사이에서, 여전해서 좋은 것과 여전해서 슬픈 것 사이에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심리적으로 작년과 더욱 가깝고 내년은커녕 올해를 맞이할 준비도 안 된 내가 있다. 올해의 나는 좀 더 근사할 줄 알았는데, 하릴없이 나이만 한 살 더 먹은 것 같다. 그런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 미련으로 남는다. 매년 1월에는 십중팔구 이런 나를 직면한다. 작년의 1월에도 나는 의기소침했었다. 그러다 마음을 다잡고 올해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우리는 해가 바뀌면 습관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리라.

부침이 심한 한 해를 보냈다면 새해를 맞이하는 자세가 더욱 경건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어떤 희망도 품지 않은 채, 1월1일에 눈을 뜬 사람도 있을 것이다. 희망이 아예 없는 상태에서는 앞날을 내다보는 일 자체가 공포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대하게 된다. 작년보다 더하지는 않겠지, 올해는 조금 낫겠지, 태양이 나를 비추는 때도 있을 테지…. 그러곤 돌아가는 것이다. 처음의 마음으로, 초심으로. 처음의 마음은 이내 자신감으로 변모하게 되고 성실함을 만나면 추진력을 얻게 된다.

처음의 마음대로만 했으면 나는 수영도 할 줄 알게 되고 자전거를 잘 타게 되었을 거다. 혼자서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을 거고 더 많은 책을 읽고 썼을 것이다. 지금보다는 다부진 체구를 갖게 되었을 것이며, 구사할 줄 아는 외국어의 숫자도 늘어났을 것이다. 친구들과의 우정이 돈독해지는 것은 물론, 화목한 가정을 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1년에 한 달 정도는 외국에서 긴 휴가를 보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온다. 이 모든 일을 다 해내기엔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했다는 핑계를 대는 옹졸한 나만 남아 있다.

그런데도 나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는 심정으로 또다시 처음의 마음을 품는다. 처음이라는 말은 흰색이나 검은색에 가깝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 동시에 아무것도 두렵지 않고 아무것도 거리끼지 않는 상태. 처음의 마음이 없었다면 나는 시를 쓰지도, 곁을 만들지도 못했을 것이다. 새하얘서, 새까매서 멋모르고 달려들 수 있었다.

초심으로 돌아간다. 해가 바뀌어야 1월이 찾아오듯, 나아가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여전히 어떤 것을 꿈꾸고 있다. 막연하거나 불확실할지언정, 꿈을 꾼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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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역사적 경험과 시대적 사명으로부터 도출한 국가의 핵심 가치를 정의 인도 동포애로 규정하고, 그에 입각하여 국가가 수행할 제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과제들을 제시한다. 그런데 정의 인도 동포애란 무엇인가? 이것들은 누구나 그 의미를 명료히 이해할 수 있는 초역사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다. 민족이 분단되어 대립하는 상황에서 ‘동포애’는 비교적 쉽게 체감되는 개념이지만, 정의와 인도는 그렇지 않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정의란 무엇인가>조차도 ‘정의’가 무엇인지 명백한 답을 주지 않는다. ‘인도’가 삼강오륜으로 압축되는 유교의 인륜과 다름은 분명하지만, 이를 몇 개의 단어나 문장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1987년 헌법은 이것들을 국가의 핵심 가치로 정했다. 왜 그랬을까? 당시 국민들은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동의했을까?

사실 정의 인도 동포애를 국가의 핵심 가치로 명기한 것은 1948년의 제헌헌법이었다. 1987년의 헌법 전문은 제헌헌법 전문을 일부 수정했을 뿐이다. 그리고 제헌헌법에서 규정한 정의와 인도는 1919년의 기미독립선언서에서 ‘정의의 군(軍)과 인도의 간과(干戈)’라고 표현한 ‘인류통성(人類通性)과 시대양심’이었다. 인류통성이 인도(人道)요, 시대양심이 정의(正義)다.

인도란 휴머니즘의 번역어인 인도주의를 줄인 말이다. 역사상 크게 보아 세 차례의 인도주의 고조기가 있었다. 첫째는 그리스 로마 시대. 둘째는 르네상스 시대. 셋째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대. 앞 두 시대의 인도주의가 신에게 속박되어 있던 인간의 자립을 지향한 반면, 세 번째 인도주의는 그와 정반대 방향, 동물적 삶을 극복한 인간을 전망했다.

1859년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을 출간하여 인간이 ‘신의 형상으로 창조된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동물에서 진화한 ‘동물의 일종’임을 선언했다. 그는 인간을 포함한 생물 진화의 원인으로 생존투쟁과 자연선택을 제시했는데, 이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경쟁 중심의 세계와 무척 정합적이었다. 허버트 스펜서 등의 사회과학자들은 이를 생물 진화의 원리를 넘어서는 사회와 역사 발전의 일반 원리로 정립했다. 이른바 ‘사회진화론’의 탄생이다. 모든 생명체의 삶은 자체로 동종 사이의 생존경쟁이며, 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 승자와 패자가 나뉘고 승자만이 살아남는 것은 종의 진화뿐 아니라 역사와 문명 발전의 철칙이다. 더 날카롭고 튼튼한 이빨이 호랑이의 경쟁력이고, 더 빠른 발이 사슴의 경쟁력이며, 더 많은 재화와 지식이 인간의 경쟁력이다. 사회진화론의 세계관과 역사관은 약육강식(弱肉强食), 우승열패(優勝劣敗),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는 사자성어 세트로 한자 문화권에 침투하여 사람들의 의식을 장악했다. 경쟁만이 역사를 발전시키며, 강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세계를 지배했다. 이런 생각에서는 자본이 노동을 착취하는 것도,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수탈하는 것도, 백인이 유색인을 학살하는 것도 결코 죄가 아니었다. 이것들은 자연법칙에 충실한 행위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제국주의는 이런 생각이 지배하는 세계를 즐겼다. 그런데 제국주의의 식민지 분할이 예선이라면, 제1차 세계대전은 승자들끼리 싸우는 본선이었다. 경쟁의 최후 형식은 전쟁이다. 경쟁이 문명 발전의 유일한 동력이라는 생각은, 문명의 성취들을 무참히 파괴하는 전쟁을 겪으며 여지없이 깨졌다. 사람들은 무한 경쟁의 종착점이 인류의 공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의 삶을 동물적 생존경쟁과 다른 차원으로 옮겨 놓는 일은 절체절명의 시대적 요구였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이 인도주의가 되었다. 약한 민족에게도 자기 운명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민족자결주의도, 인도주의의 한 구성요소였다.

1919년 기미독립선언서는 사회진화론이 퇴조하고 인도주의가 부상하는 상황을 ‘인류적 양심의 발로에 기인한 세계개조의 대기운’으로 규정하고 ‘위력의 시대가 거(去)하고 도의의 시대가 래(來)하도다’라고 선언했다. 부자와 빈자, 강자와 약자가 모두 ‘공존동생권’을 갖는 것이 3·1운동이 주창한 ‘인도’이며, 이 인도에 부합하는 것이 ‘정의’였다. 정의는 힘이 아니라 배려와 이해, 연대와 협력으로 구현되는 것이었다. 1948년 제헌헌법은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이 건국했다고 선언했을 뿐 아니라, 3·1정신의 요체인 정의 인도를 국가의 핵심가치로 천명했다. 이 가치는 1987년 헌법에 그대로 승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사회는 사회진화론을 소생시키고 경쟁 만능의 세계를 재구축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사회진화론이 무덤에서 나와 신자유주의 뉴라이트로 부활했다.

개헌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정의 인도 동포애라는 핵심가치는 바꾸지 않기 바란다. 삼일절 100주년이 이제 13개월여밖에 안 남았다. ‘구사상 구세력에 기미(羈미)된’ 이전 정권은 건국절 제정 운운하며 민간의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조차 백안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초 현충원 방명록에 “건국 100년을 준비하겠다”고 썼지만, 제대로 준비하기에는 시일이 너무 촉박하다. 그래도 서울에 기념관과 기념탑 하나씩은 세웠으면 한다. 3·1운동 100년이 되도록 발원지인 서울에 3·1운동을 오롯이 기념하는 구조물이 하나도 없다는 건, 우리 자신과 후손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이는 정의 인도의 가치를 되새기고, 전 인류 공존동생권, 즉 모든 인간이 함께 살 권리를 누리는 세상을 이룩하는 것이 우리 공동체의 이상이라는 생각을 공유하며 전승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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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하는 일을 한다. 이 명제가 지켜지면 학교교육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학교가 수업을 가장 중요시하는 교육활동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나머지 교육개혁 방안은 겉치레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어떤 정책을 먼저 선택해서 집중해야 할까. 교원업무 정상화다. 교원업무 정상화는 교사들의 업무를 줄여 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가 본연의 임무인 학생 교육에 충실하게 하자는 것이다. 왜 교사들은 수업을 연구하고 학생과 상담하는 일에 전념하지 못하는가?

첫째, 교사는 수업과 학생상담 외에도 할 일이 많다. 행정업무 담당교사는 업무포털에서 공문 확인 처리, 각종 사업 관련 업무 처리를 하고, 담임교사는 학부모와 출결 관련 전화상담, 출결서류 정리, 설문조사 및 통계 처리도 하고 교과수업과 관련해 물품 주문, 생활기록부 작성 및 점검 등을 한다. 열거한 예시 중 학생 교육활동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그래서 교원업무 정상화의 첫 단계는 학교 업무를 분류해서 직무에 맞게 분장하는 것이다. 교사가 공문 처리 같은 행정업무보다 교육활동을 주로 하게 하는 것이 업무 정상화다. 학교업무는 세 가지로 분류한다. 수업과 학급운영과 생활지도 같은 학생 교육활동과 학교폭력, NEIS 업무, 수업물품 품의 주문, 정보 공시, 각종 행사 준비 등과 같은 교무행정과 학교재정, 시설관리, 방재 등과 같은 일반행정업무가 있다. 학교에는 교사 외에 교장, 교감, 일반행정직, 교무행정실무사 등 다양한 직무를 담당하는 구성원이 있다. 각 직무대로 법령과 지침에 따라 업무를 분장하고 부여받은 임무를 충실히 하면 된다.

둘째, 교사 1인당 수업시수가 많다. 주당 교사 1인이 담당하는 표준수업시수가 있었지만 공무원총량제(직종별로 채용되는 공무원 인원 상한선을 정해두는 것)가 시행되면서 시수 제한 명시가 없어졌다. 교사가 학생 수행활동지를 살펴보고 첨삭해주고 다음 시간 수업활동지를 준비할 짬은 일과 후에 난다.

셋째, 학교 기본운영비를 늘리고 각종 공모사업을 줄이는 것이다. 학교 기본운영비에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구입할 수 있는 교수학습예산을 충분히 확보해주면 사업에 응모해서 교수학습비를 확보할 필요가 없다. 공모사업은 신청서 작성, 신청, 선정 후 예산서 제출, 사업 집행, 정산서 및 보고서 작성·제출 등 일거리가 줄줄이 이어진다.

넷째, 교육부와 교육청은 학교에 요구가 아닌 지원을 해야 한다. 학교가 교육활동을 잘할 수 있도록 필요한 행정과 자원을 지원하는 역할로 탈바꿈하는 혁신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교사가 하는 교육에 대해 믿고 존중하면 된다. 수업 단원마다, 수업하는 학급마다, 개인 학생마다 잘 맞는 교육방법은 다르다. 생활지도도 학생에게 같은 교육방법과 상담법을 적용해도 효과가 다르다. 한 가지 정답은 없다. 교사는 다양한 교육방법을 체득해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교사에게 적절한 교육방법을 적용하는 교육권을 보장해야 한다.

이 모든 이야기는 처음이 아니다. 오래된 미래다. 이미 2010년경부터 경기나 서울에서는 학교 혁신을 위해 교원업무 경감(나중에 ‘정상화’로 정책 명칭 수정) 정책에 먼저 힘을 쏟았다. 이제 거의 10년이 되었다. 아직도 학교에서 교사는 수업이 아니라 다른 일로 바쁘다.

<손민아 | 경기 전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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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에 갔다. 예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포로수용소 유적지로 더 들어갔다. 이제는 사라진 사람들과 아직도 살아있는 나무들을 더듬어보겠노라, 정문을 통과했다. 포로라니! 듣도 보도 못한 신분으로 죽기 일보 직전의 삶을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 어떡하겠는가. 아수라 같은 곳에도 때는 꼬박꼬박 찾아와서 떼를 지어 밥을 먹고 중인환시리에 용변을 보아야 했다. 그러고도 오늘날까지 그 장면이 적나라하게 전시되고 있는 고약한 운명이었다.

자료관에 들렀다. 수용소 철조망의 경고판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NO TALKING OR PASSING OF ARTICLE BETWEEN THE FENCE 철망 넘어로 말 혹은 물품을 교환치 말 것.” 그 사진을 보는데 이곳에 잠시 수용되었던, 영어를 잘했다는, 말을 아주 잘 다룬 어느 시인 생각이 났다.

사람은 곤죽이 되어도 산천은 의구하다. 혹 당시를 지켜본 나무가 있지 않을까. 포로들과 사람들 사이로 휩쓸리는 동안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관광지로 조성된 곳이라 식재된 관상수가 대부분이었다. 당시의 주춧돌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에 나이 지긋한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나무의 수피며 굵기며 자태로 볼 때 최근에 심은 나무는 분명 아니었다. 제주도에서 처음 보았을 때 구슬처럼 알록달록한 연보라색 꽃을 피운 나무. 지금 한겨울에는 총알 같은 열매를 주렁주렁 장착하고 있는 나무. 멀구슬나무였다.

낯선 곳을 여행할 때 전봇대를 유심히 보는 편이다. 포로수용소에도 철조망 따위는 훌쩍 건너뛰어 전봇대가 있었다. 전봇대는 무슨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저렇게 헐레벌떡 뛰어가고 있는가. 고향으로 연결된 포로들의 간절한 눈빛을 그 전봇대는 얼마나 받아냈을까.

휘적휘적 걷다보니 유적지 내 철조망에 화살표와 함께 &lt;출구&gt; 표시가 나왔다. 수용소에서의 짧은 한나절이었지만 여느 곳과는 색다른 의미와 교환되는 단어가 아닐 수 없었다. 틀림없이 그때의 나무일 것 같은 멀구슬나무. 대한민국 경상남도 거제시 고현동 362번지의 포로수용소에서 오래 거주해 온 멀구슬나무를 네 번 뒤돌아보았다. 멀구슬나무, 멀구슬나무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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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발표한 국가정보원·검찰·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 방안에 정의당을 제외한 야당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국정원과 검찰의 힘을 빼는 데만 초점을 맞춰 경찰 권한이 지나치게 커졌으며, 국정원의 대공수사 역량이 현저히 약화된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경찰에 대공수사를 맡기는 것은 1987년 박종철씨를 고문해 사망케 한 남영동 대공분실을 되살리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의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며 사개특위 전면 보이콧까지 거론했다.

청와대의 권력기관 개혁안에 아쉬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권력기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빠졌다. 게다가 개혁안을 담은 법을 최종적으로 통과시키는 것은 국회이기 때문에 적어도 여당과는 사전에 협의하는 게 바람직했다. 개혁 방안도 당사자인 국정원·법무부·행정안전부 장관이 발표했다면 모양새가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개혁안 핵심에 대한 야당의 비판은 억지다. 이번 개혁의 핵심은 국정원과 검찰의 힘을 더는 일이다. 따라서 권력기관 간 견제라는 기본원칙을 지켰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경찰의 비대화만을 걱정하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의 성격이 짙다. 국정원이 대공수사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다. 한국당은 “대공수사에서 정보 수집과 수사를 분리하는 것은 간첩 수사를 포기하겠다는 얘기”라고 하지만 정보기관에 수사 기능까지 두는 것은 세계적 흐름에 역행한다. 이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과 반인권의 문제다. 국경출입기록을 조작해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둔갑시킨 것이 불과 5년 전 일이다. 권력기관의 독립성 확보 방안이 빠졌다는 주장도 제 얼굴에 침뱉기다. 그들은 현직 검찰총장을 외압으로 강제 퇴진시킴으로써 검찰 독립성을 무너뜨린 전력자들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시민 위에 군림한 권력기관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데 당리당략이 개입될 수 없다. 야당이 절차적 결점을 핑계 삼아 권력기관 개혁을 저지한다면 시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경찰의 권한 남용을 막고, 대공수사 역량을 유지할 방안은 찾으면 얼마든지 있다. 여권도 권력기관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인사원칙을 밝히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여야 모두 인권을 강화하는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권력기관 개혁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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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 시절의 일이다. 바로 인접 학과에는 노벨상을 수상한 유명한 교수가 가르치고 있었다. 그분의 강의가 어떤지 궁금해져서 그 학과 학생에게 물었다. “그 과목은 제도(institution)지.”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다. 거기에는 많은 뜻이 응축되어 있었다. 그 학과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야 하는 과목, 그 과목이 필수라면 다른 과목은 선택, 그 과목에서 가르치는 이론이 토대라면 다른 이론은 응용, 이런 것들 말이다. 제도란 그런 것이다.

지난 2주간 경향신문 지면에는 흥미로운 토론이 이어졌다. 시작은 1월4일자에 실린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대표의 “한국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라는 글이었다. 역사적으로 항상 주류였던 한국의 보수우위 시대가 지나가고 정당으로 치면 ‘민주당 대 반민주당’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유권자 지형을 진보부터 보수까지 30 대 20 대 30 대 20의 네 집단으로 구분하는데, 보수정당은 선거 때마다 왼쪽에서부터 시작해 조금씩 유권자 지지를 빼앗기다가 마침내 탄핵과 2017년 대선에서는 중도보수라고 할 세 번째 30%마저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유리한 정치적 입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할 경우 세 번째 30%의 대안이 될 가능성, 그리고 자유한국당 내부의 폐쇄성을 보면 가까운 시일 안에 보수의 시대를 다시 보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며칠 후 정용인 기자는 “386세대의 주류 등극으로 한국 민주화는 완성됐을까”라는 기사를 내놓았다. 그도 역시 위에 언급한 박 대표의 글을 언급하면서 시작하는데, 그의 문제제기는 단순하고 그래서 힘이 있다.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나기 이전까지 우리는 오랫동안 보수세력에만 유리하게 만들어진 ‘기울어진 운동장’을 걱정해왔고, 보수의 장기집권을 우려해왔다.

그런데 불과 1~2년 만에 보수가 궤멸하고 한국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는 분석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설명이 필요하다. 그는 구체적으로 ‘그 시절’을 경험한 독특한 세대적 연대를 가진 386세대가 주류로 등극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며, 정 기자가 이전부터 주장해오던 ‘장기 386시대’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과연 한국의 주인은 바뀌고 장기 386시대는 현실이 될까? 핵심은 문재인이라는 개인을 빼놓고 생각했을 때 앞선 모든 전망들이 그대로 성립하느냐에 달렸다. 임기가 끝나고 문 대통령이 퇴장했을 때, 45%를 넘나드는 지금의 민주당 지지율은 유지될까? 정권의 핵심 포스트를 채운 386은 문재인이라는 개인이 없이도 시대정신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서 이 질문들에 쉽게 ‘그렇다’고 답하려 한다면, 불과 얼마 전까지 세상이 바뀌기 이전에는 왜 그리도 ‘기울어진 운동장’과 ‘보수의 장기 집권’을 걱정했었는지 함께 답해야 한다.

보수의 자멸이나 386의 대안이 될 세대가 없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답이 아니다. 세상의 변화가 제도로 남아야 한다. 영원할 것 같던 보수집권도 9년 만에 끝났다. 민주당 정부가 5년을 갈지, 10년을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제도를 어떻게 만들어놓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문재인 없이도 더 좋은 세상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으려면 좋은 변화들을 제도로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인적 청산도 중요하겠지만, 케인스의 말처럼 장기적으로는 우리 모두는 죽고 없을 것이다. 제도를 만든다는 것은 그 사회의 움직일 수 없는 ‘상수’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에 성공한다면 한국의 주인은 바뀔 것이고 386은 역사를 바꾼 사람들로 기록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한때의 출세주의자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개헌, 선거법 개정, 국정원·검찰 개혁 같은 것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가장 딱한 것은 자유한국당이다. 의석 116석에 지지율 20% 미만. 유일하게 가진 것이라곤 비토권밖에 없다. 그 비토권이 유지되는 기간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다음 총선까지 2년 남짓이다. 6월 지방선거에서 대패하기라도 한다면 더 일찍 비토권을 잃어버릴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지금과 비슷한 121석을 가지고 비토권에 의지해 버텨냈던 17대 국회의 추억은 빨리 잊을수록 좋다. 지금의 자유한국당에는 박근혜가 없고, 지금의 자유한국당은 그 당시 한나라당보다 훨씬 폐쇄적이다. 건강한 보수정당의 등장을 바라는 입장에서, 새로운 제도를 써내려가는 데에 적극 참여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나은 전략이라고 충고하고 싶다. 제도를 만드는 것은 첨예한 전쟁이다. 비토만 하다가 새로운 제도가 정해지고 나면 아주 긴 시간 동안 주류로 복귀하지 못할 수도 있다. 386에나 보수정치세력에나, 제도화는 전쟁이다.

<장덕진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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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열린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은 ‘각본’ 없이 진행됐다. 질문하는 매체부터 순서, 내용까지 마치 방송 시나리오처럼 철저히 마련해놓았던 지난 정부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에 많은 이들은 환호했다.

질문자도 ‘미국식’으로 대통령이 직접 지명했다. 이날 회견장에 모인 기자들은 제각기 ‘대통령의 눈에 띄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한 지역언론 기자는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인형을 손에 번쩍 들고 질문권을 얻기도 했고, 튀는 색깔 옷을 입거나, 자신을 지목하지 않았는데도 일어나 질문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자회견에서 이토록 질문이 넘치는 장면은 다소 낯설다. 2010년 G-20 서울정상회의 폐막식에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을 콕 찝어 질문할 기회를 줬지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질문도 나오지 않았던 일로 한때 “질문 없는 한국 교실”에 대한 성찰까지 이끌어냈던 기자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질문은 많았지만 ‘좋은’ 질문은 적었다는 평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 본인에게 “대통령 지지자들의 악플 공세로 기사를 쓸 수가 없다. 말려 달라”고 한 기자는 SNS에서 소속 회사와 이름, 기존에 썼던 기사들이 ‘신상 털이’하듯 털리기도 했다. 한 트위터리안은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의 의도는 출입 기자들에게 제대로 질문할 기회를 주는 것이었을 텐데…(국민이) 욕하기 좋게 실명을 공개하는 효과만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 언론인은 트위터에 “오늘 기자들은 신년 기자회견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지도 않았고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이해도 부족해 보인다”고 올려 큰 호응을 얻었다.

외신 기자들의 눈으로 바라본 기자회견의 풍경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BBC의 한 기자는 기자회견이 끝난 뒤 자신의 트위터에 “문 대통령은 자유롭게 열린 질문에 답하는 것에 한 시간을 사용했고, 언론에 자유롭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고 올렸다. 트럼프의 백악관에 비해서도 자유로운 분위기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워싱턴포스트의 파이필드 기자는 “주요 언론뿐 아니라 소규모 지역 미디어도 참여하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밝혔다.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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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가정법원 이혼조정위원이다. 이혼율이 점점 높아지는 현실을 반영하듯 끊임없이 새로운 사연으로 이혼을 원하는 부부를 만나고 있다.

부부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서로간의 이해와 공감이다. 그런데 요즘 ‘소통의 부재’가 과연 재판상 이혼의 사유가 될 것인지가 화두가 되고 있다. 소통이라는 것은 상호적인 것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가정생활은 사회의 가장 작은 구성단위로서 어디까지나 사회생활인 것이다. 소통이 없다면 사회생활은 그야말로 고통이 되는 것이고, 이것은 가정생활에서 먼저 드러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이혼은 원칙적 유책주의이다. 즉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사람은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만약, 유책배우자가 이혼을 원한다면 상대방 배우자에게 진심어린 마음으로 충분한 보상과 설득을 통해 협의 이혼만 가능하고 법원을 통한 재판상 이혼은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다른 나라에서는 재판상 이혼만을 인정하고, 협의 이혼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소통의 부재로 이혼을 청구하는 사건이 종종 있다. 아내는 이혼을 원하는데, 남편이 이혼을 거부하는 사건들이 주로 그렇다. 아내는 이미 부부간 소통 부재로 인해 신뢰관계가 무너졌으며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파탄에 이르게 되어 이혼을 청구했다는데, 남편은 전혀 이혼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그중 한 사건은 고교 동창으로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한 부부의 이야기다. 결혼 후 아내는 출산과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러다 혼인 생활 10년 만에 경력단절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다시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서 점점 집안일에 소홀해졌다. 말다툼 끝에 남편이 아내에게 “이 집에서 당장 나가”라고 했다. 남편의 말대로 아내는 며칠 후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갔고,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아내가 가출을 하여 오히려 부부동거의무를 저버리고 있으며, 다툼은 있었지만 이혼에 이를 정도가 아니었고, 단 한 번도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혼인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사건은 이렇다. 남편과 아내는 4~5년간 연애생활 끝에 결혼을 했지만, 맞벌이 부부로서 자녀의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자연스럽게 부부간에 대화가 줄어들었다. 그 후 남편이 직장에서 실직했는데 남편은 ‘아내가 나를 무능력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한다’며 아내와의 의사소통을 모두 단절한 채로 지냈다. 아내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고 그야말로 대화가 단절된 상태로 한집에서 2년 가까이 지낸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교통사고가 발생해 남편에게 급히 연락을 했으나 남편은 평소처럼 아내의 연락을 무시했다. 이로 인해 아내는 충격을 받고, 도저히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부부간의 신뢰관계가 깨졌다며 이혼소송을 청구했다.

소통과 공감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산소와도 같다. 인간으로서 숨을 쉬고 살기 위해서는 이해와 소통이 필요하다. 결혼율을 높이면서 이혼율을 줄이기 위해서는 ‘소통과 공감’이라는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신유진 | LNC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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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9일. 어떤 날을 거기까지 세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최강 한파가 덮친 지난 금요일, 세종로공원 한편에 세워진 작은 텐트를 찾았다. 기타 생산업체인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농성장이다. 4000일, 예정된 특별한 행사는 없다고 했다. “해탈한 것 같아요. 4000일이라고 뭔가 요란스레 할 것도 없고.” 그리고는 언제부턴가 시작한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의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고 했다.

나오는 길에 책 한 권을 받았다.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 임재춘씨의 농성일기를 묶어 펴낸 것이다. 집에 돌아와 한쪽한쪽, 그러니까 이들의 하루하루를 읽어가며, 나는 억울했던 날, 희망찼던 날, 정의를 울부짖던 날을 보았다. 그러다 책 제목을 다시 보고 알았다. 3999일이라는 긴 시간에도 가질 수 없었던 날이 있었음을. 하루를 이어 붙여 4000일을 만들어도 이를 수 없는 날이 있었음을. 그건 바로 ‘내일’이다. 해고된 날 사장이 빼앗아간 ‘내일’ 말이다.

5년 전쯤 이들과 짧게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 송년행사에 이들이 결성한 밴드 ‘콜밴’이 왔다. 그때 표정이 너무 밝았기에 나는 그 해에 대법원의 끔찍한 판결문이 나왔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투쟁을 안 했다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겠어요? 악덕 사장 만난 덕에 이 나이에 밴드도 하고 연극도 해보고….” 정말 그런 것 같았다. 그렇게 즐겁게 투쟁한다면 힘든 싸움이지만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주 콜트콜텍의 농성이 4000일이 되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4000일이라는 긴 시간은 날을 늘리지 않기 위해 이들이 필사적으로 몸부림쳐온 시간이기 때문이다. 노래하는 가수, 연극하는 배우, 고추장 만드는 농사꾼, 책 쓰는 저자가 되었던 것은 이들이 노동자로 남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5년 전쯤 내가 가수가 되고 배우가 된 노동자들에게 감탄하던 때, 이들은 그전 5년을 본사를 점거하고 철탑에 올라가고 분신을 하고 목까지 맸던 사람들이다. 악기박람회, 록페스티벌을 찾아다니며 해외 원정 투쟁도 벌였다. 그 후 다시 5년, 이들은 더 이상 잘 할 수도 없고 더 이상 잘 할 필요도 없는 묵묵한 해탈의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무슨 복잡한 사정이 이들을 여기까지 오게 한 걸까. 큰 억울함은 복잡한 것에서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아주 단순하고 명백한 것에서 온다. 너무나 뻔한 불의를 인정하지 않고 더 나아가 그것을 정의로 포장할 때 우리의 밑바닥 정의감이 뒤집어지는 것이다.

콜트콜텍의 사정도 단순했다. 2006년 4월 콜텍에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자꾸 창문을 쳐다보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며 창문 하나 만들지 않은 공장. 이런 공장이 어떻게 운영되었을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각종 유기용제와 분진이 가득한 작업장, 강제된 잔업, 성차별과 추행. 거기에 대규모 구조조정까지 시작되었다. 이때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수단이었다.

그런데 노동조합 설립 1년 후 노사협의회가 예정된 날 사장은 공장의 모든 출입문을 폐쇄하고 폐업절차에 들어갔다. 그리고 모회사인 콜트에서도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했다. 더 이상 주문량이 없다는 이유였다. 그것은 당연했다. 물량을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공장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매년 순이익을 60억원 이상씩 내고 폐업 직전에도 주문량이 늘었다며 임금인상에 합의한 회사가 물량이 없다며 폐업신고를 한 것이다. 지방노동위와 중앙노동위는 콜텍의 직장폐쇄와 콜트의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법정싸움이 이어졌다. 당연한 것이 뒤집힐 수는 없었다. 그런데 2012년 대법원은 고등법원 판결을 교묘하게 비틀었다. 사실상 한 회사인 콜트와 콜텍을 분리하고, 콜트악기에 대해서는 부당해고를 인정했지만, 콜텍에 대해서는 “장래의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한 인원감축도 정당”하다며 하급심 판결을 뒤집었다. 고등법원에서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없다며 부당해고라고 했던 것을 대법원은 ‘긴박함’을 ‘장래에 있을 수도 있는 위기’로까지 확대했다.           

모두가 ‘긴박함’이라는 말뜻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사장은 콜트악기 공장까지 매각해서 그나마 대법원이 부당해고를 인정한 노동자들의 복귀도 막아버렸다.

이것을 인정할 것인가. 이 단순한 질문이 지난 4000일간 농성노동자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미래의 점을 치듯 서초동 대법관이 내린 판결에 내 양심의 법관이 펄쩍 뛰는데 달리 어쩌겠는가. 그래서 이들은 내일로 못 간 채 오늘을 붙들고 수천 일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에게 오늘을 물려줄 수는 없어요.” 너무나 뻔한 부당해고와 위장폐업, 너무나 어이없는 판결문을 쥐고 오늘 아플지언정 내일로 넘겨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2012년 이들은 <햄릿>을 무대에 올린 바 있다. 햄릿은 그의 사명이 ‘이음매가 어긋난 시간’을 바로잡는 데 있다고 했다. 시간이 어긋나니 과거는 어제가 아닌 오늘을 살고 미래는 내일이 없는 오늘에 붙는다. 이 불의의 시절이 4001, 4002로 숫자를 이어간다면, 그래서 우리가 오늘을 늘려 내일로 삼는다면, ‘내일’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 시간을 바로잡아야 한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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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은 연극의 대본이다. 따라서 연극을 구성하는 한 요소이다. 하지만 희곡은 하나의 완결된 문학 작품이기도 하다. 문학의 중요한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은 고대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된 일인데 어쩐 일인지 출판되는 희곡집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내로라하는 문학 출판사들도 어쩌다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희곡들을 모아 선집을 내는 경우는 있어도 현장에서 상연되는 뜨거운 목소리를 담는 경우는 드물다. 문학으로서의 희곡이 독자를 잃고 공연의 대본으로만 남았다.

2년 전쯤, 남산예술센터의 우연 극장장이 극장에서 상연되는 희곡을 출간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창작 희곡을 실제로 무대에 올리는, 우리나라에 몇 개 되지 않는 제작 극장의 제안이었기 때문에 기꺼이 응했다. 희곡을 읽는 문화가 없는 상황에서 판매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지만 다시 사람들이 희곡을 읽을 수 있도록 출판이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연극을 배우는 학생들이 복사지를 들고 희곡을 읽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문학 독자들에게 희곡의 즐거움을 돌려주고 싶었다. 입말로 이루어져 소리 내어 읽기 좋고 대화로 이루어져 그 사이를 독자의 상상력으로 채울 수 있는 희곡은 다른 어느 장르보다 읽는 즐거움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다.

이렇게 시작한 <이음 희곡선>은 출발부터 쉽지는 않았다. 첫 권으로 준비했던 박근형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도화선이었고 가장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작품이었다. 이 희곡을 촛불 정국 이전에 출간하면서 직접 극장에 오지 못하는 독자들에게도 작품의 진가를 알릴 수 있었으면 했다. 책의 가격은 극장에 직접 온 관객들이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도록 5500원으로 정했다. 도서정가제를 고려하면 현장에서 5000원에 판매할 수 있었다. 관객들은 연극을 보고 희곡집을 손에 들고 가서 다시 연극을 떠올리기도 하고, 연출과 다른 방식으로 마음속의 연출을 해 보기도 했으리라. 극장에 직접 온 관객들에게는 호응이 좋았지만 서점에서는 독자들이 아직 희곡을 많이 찾지는 않는다.

실제로 무대에 작품을 올리면서 희곡집도 같이 출간하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기기도 했다. 고연옥 작가의 희곡 <처의 감각>을 출간 준비하면서 고선웅 연출이 실제로 무대에 올리는 작업을 함께하고 있을 때였다. 작가와 연출이 따로 있을 때, 현장의 조건과 배우, 스태프들의 상황, 그리고 연출의 의도 때문에 희곡이 원본과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처럼, 텍스트로 고정한 희곡의 출간과 작품의 상연이 함께 이루어질 때, 둘 사이의 조정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잠시 고민을 했다. 물론, 독자들에게 주어진 책은 고연옥 작가의 텍스트였고, 극장의 관객들은 실제 연극과 희곡의 차이를 비교해 보면서 둘 사이의 간격 속에서 나름의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을 것이다.

남산예술극장과 시작한 협업은 두산예술센터 강석란 감독과의 협의 끝에 김은성 작가의 <선샤인의 전사들>을 출간하는 것으로 극장의 범위가 늘어났다. 최근에는 서울시극단의 김광보 예술감독과 함께 극단에서 공연할 장우재 작가의 <옥상밭 고추는 왜>를 출간하는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국립극단의 이성열 예술감독에게 극장에서 상연할 창작희곡이 있으면 함께 책도 만들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볼 생각이다. 이성열 감독이 연출한 고영범 작가의 <에어컨 없는 방>이 이미 <이음 희곡선>으로 출간되어 있기 때문에 이 작업의 의미를 잘 알고 계시리라 기대하고 있다. 책의 표지에 희곡을 출판한 출판사 이름과 극장 이름을 함께 올리는 이 프로젝트가 어려운 시대의 문학과 공연에 작은 기여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진행하고 있는 제안들의 성사 여부와 관계없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가장 예민한 촉수인 작가들의 창작물을 책으로 만드는 것은 그동안 잃어버렸던 독자와 관객을 찾는 일로 중요하다고 믿는다. 시를 한 번도 읽지 않았던 독자들이 시의 독자들로 돌아오고 있고 베스트셀러도 등장하고 있다. 이 독자들은 짧지만 강렬한 드라마를 담고 있는 희곡도 좋아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희곡은 무대를 상상하고 쓰기 때문에 극적인 긴장감이 있고 구체적인 사물이나 사건과 추상성 사이를 오가는 감정적인, 혹은 지적인 즐거움을 느끼는 데 그만이다.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오디오 콘텐츠에 바로 적용이 가능한 가장 좋은 텍스트이다. 희곡의 즐거움을 읽고 들어보기를 권한다. 그 흥분을 안고 극장으로 향해 보는 것도 떨리는 일이다.

<주일우 |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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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이미지 하면 흔히 떠오르는 것이 칼이다. ‘검찰의 칼날이 ○○을 향하고 있다’ ‘○○이 검찰의 칼을 피하지 못했다’ 등등 검찰 수사를 칼에 비유하는 표현들이 관행적으로 쓰여왔다. 검찰의 첫 글자 ‘검(檢)’과 칼을 뜻하는 ‘검(劍)’은 발음도 같고 한자 모양도 비슷해 더더욱 검찰과 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처럼 보인다.

검찰의 심벌마크에도 칼이 들어가 있다. 대검찰청 홈페이지는 이 심벌에 대해 ‘중앙의 직선으로 칼을 형상화해 균형 있고 공평한 사고와 냉철한 판단을 표현했다’고 설명한다. 2004년 이 심벌이 만들어질 때 검찰을 출입하고 있었다. 당시 심벌 제작은 수개월이 걸렸는데, 당초 검찰이 시안으로 공개한 후보 8개 중 절반가량에 칼이 있었고, 나머지에는 칼이 없었다. 과연 검찰이 어떤 선택을 할까 기대했는데 결국 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질 못했다. 그런데 당초 시안에는 아래를 향하고 있던 칼끝이 최종 결정된 심벌에서는 아래위를 모두 향하게 그려졌다. 시안을 공개할 때 검찰은 칼끝을 위로 하면 공격적으로 보여 아래쪽으로 향하게 했다고 설명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칼끝이 심벌 밑에 쓰여 있는 ‘검찰’이라는 글자로 향하게 돼 자신들을 찌르는 모양새가 되다 보니 확정판에서는 칼끝이 위아래 모두에 달리게 됐던 것이다.

그렇게 검찰은 스스로 칼이 됐다. 실제 수사를 잘하는 특수통 검사를 ‘칼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의료계에서 유능한 외과의사를 그렇게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검찰의 본질적 기능은 칼을 쓰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마구잡이로 휘둘러지는 칼날(수사기관의 수사)에서 국민들을 보호하는 것이 검찰의 진짜 핵심 역할이다. 이런 인권보호 기능은 프랑스혁명 이후 근대 검찰 제도가 태동할 당시의 기본 취지였다. 그런데 검찰 스스로도 그렇고, 대부분의 국민들도 검찰은 수사를 하는 기관, 칼을 휘두르는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막말로 유명한 한 정치인은 얼마 전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를 ‘망나니 칼춤’이라 비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독점하고 있는 검찰의 막강한 권한에서 초래됐다. 그리고 이 무소불위의 권한이 비판을 받으면서 이제 검찰개혁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2004년 검찰이 새 심벌을 만들 때 칼끝이 자신들을 향하는 것을 걱정했던 것이 현실화된 셈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대한민국 검찰은 나름의 역사적 소명을 수행했다. 2003년 불법대선자금 수사 이후 어느 정당도, 어느 대기업도 선거 때 뭉칫돈을 받을 생각도, 줄 생각도 안 하게 됐다. 현재 진행되는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 정치공작 수사가 마무리되면 앞으로 어떤 권력자도 정보기관을 선거나 정치에 이용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검찰 수사가 역사 발전에 기여한 부분을 인정할 만한 예다. 영화 &lt;1987&gt;에서 경찰의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은폐를 막은 최 검사처럼 검찰은 과거 경찰이나 정보기관이 주도한 고문과 불법이 난무했던 수사 행태를 법에 의한 형사사법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도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검찰의 역할도 역사적 임계점에 왔다. 수사와 기소와 관련된 모든 권한을 쥐고 있으면서, 검찰총장 1인이 지휘하는 일사불란한 단일조직이라는 검찰의 무소불위 위상은 민주화되고 탈권위화되고, 인권친화적이고 다양화된 현재의 우리 사회와는 더 이상 양립하기 어렵다. 맷돌이 인류의 생산력 발전에 큰 기여를 하며 중세 봉건시대를 발전시켰지만 결국 증기제분기에 자리를 내주며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검찰개혁도 역사의 필연적 흐름이 된 것이다.

억울해하는 검사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서조차 정의를 수호하는 검사만큼 권력의 시녀가 되고 사건을 ‘엮는’ 검사들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이것이 지금 대중들이 검찰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얼마 전 국회가 사법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청와대가 14일 권력기관 개편안을 강도높게 발표하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과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에 대한 정치권의 본격적인 논의가 불붙게 될 것이다. 검찰개혁은 현 정부의 최대 공약이고 여당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최대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공수처 설립 등을 반대하고 있어 논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지난 십수년 동안 반복됐던 것처럼 또다시 검찰개혁이 흐지부지되거나 여야가 주고받기식으로 정치적 타협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왕 할 거라면 하루라도 빨리, 그리고 제대로 하는 것이 낫다. 어차피 검찰개혁은 시간이 문제일 뿐 갈 수밖에 없는 길이다.

<김준기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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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눈 오는 날 청계천 헌 책방엘 갔다 김종삼 특집 낡은 시 잡지 표지에 이름도 없는 내가 김수영 전봉건 김종문 신동문 김광림 시인과 함께 섞여 내다보고 있었다 움, 무우순, 무순(無順), 번외(番外)라고 금방 끼룩거렸다 성중천(性中天)이 거기 있었다 맨 꽁무니 기러기 한 마리여

그즈음 어느 겨울날 아리스 다방 골목길 과일 가게에서 김종삼 시인이 하얀 손수건 꺼내 조심스럽게 싸들던 홍옥 한 알과 김하림 시인도 이 겨울 생각났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열애 중인 그들이었다

 -정진규(1939~201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시인은 눈 오는 날에 찍었던 옛 사진 두 장을 기억의 서랍에서 꺼낸다. 한 컷은 헌 책방에 들렀던 때이고, 또 한 컷은 과일 가게에 들렀던 때이다.

시인은 책방에 가서 본 잡지의 표지에 자신이 여러 시인들 속에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한다. 비록 이름이 다른 시인들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고, 또 밑천도 없는 때여서 자신이 기러기 행렬의 끝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그 모임의 한데 섞임에는 배열이나 분류의 차례가 없고, 순번도 없고, 다만 하늘 아래 타고난 마음의 본바탕이 자연스럽게 드러났었다고 회상한다. 또 하나의 필름에는 홍옥 한 알을 손수건으로 감싸서 들던 김종삼 시인이 있다. 사과를 흰 손수건으로 둘러싸 들어 올렸으니 사과의 빛깔이 더욱 더 선명하게 붉었을 것이다. 눈이 내리던 겨울 어느 날의 풍경들이었다.

재지 않고 터놓고 어울리고, 눈빛에서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서로를 격려하고, 멋스러운 데도 좀 있게 살았던 그 시절의 얼굴들. 열렬하게 생업과 세상을 사랑하며 살았던 때의 사진들이 따뜻하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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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마지막 기회다. 열심히 해보자. 안되면 되게 하라는 말 알지?” 고3 여름방학을 앞두고 담임 선생님이 종례를 이렇게 마무리하자 뒤에 앉은 친구가 말했다. “안되는 게 어떻게 돼요?” 캐나다 고속도로에서 ‘Zero Tolerance’라는 표지판을 볼 때마다 이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음주·과속 운전 금지 표지판 옆에 적혀 있는 이 문구는, 보통은 ‘무관용’이라 번역되지만 ‘안되는 건 절대 안된다’ 또는 ‘절대 안 봐준다’로 해석해야 더 실감이 난다.

평소 토론토는 서울보다 운전하기가 여러모로 편하고 수월한 도시이다. 인구 밀도가 낮고 덜 복잡하기도 하거니와 교통 법규가 비교적 ‘널널하고’ 운전자에게 자율성을 많이 보장하니 그럴 것이다. 도로 중앙선을 넘어 좌회전도, 유턴도 할 수 있다. 하지 말라는 것만 안 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 대신 금지 표지판이 붙어 있는데도 그것을 어기면 가차 없는 처벌이 뒤따른다. 새로운 환경에 익숙지 않은 초기 이민자들은 범칙금을 수업료처럼 내가며 교통 문화를 배우고 익히는 경우가 많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토론토에 살러온 직후 나도 단속 티켓을 연달아 받았다. 제한속도 20㎞의 공원 도로에서 38㎞로 달리다가 경찰을 처음 만났다. 며칠 후에는 빨간불에서 그냥 우회전했더니 경찰차가 비상등을 켜고 따라왔다. 일단 멈춤 위반. 처벌이 범칙금과 벌점으로 마무리된다면 별일 아니겠으나 문제는 그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보험료가 껑충 뛰고, 티켓이 여러 장 쌓이면 보험사에서 이듬해 재가입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 지경에 이른 운전자는 말썽꾸러기 전문 보험사를 찾아가야 한다. 보험료가 몇 배 비싸다.

보통의 경우가 이 정도이니 어린이 보호라든가 공공의 안전과 직결된 위반은 처벌 강도가 훨씬 더 높다. 비상등을 번쩍이며 경적을 울리는 소방차와 구급차, 멈춤 표지판을 올린 스쿨버스가 보이면 도로 위 모든 차량은 얼어붙은 듯 정지한다. 그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토론토 시민들의 질서의식이 참 높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봄이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산책이라도 나가면 겨우내 눈 속에 파묻혀 있다가 드러난 개똥이 지천이다. 동네 숲길에서는 사시사철 똥 밟기 십상이다. 물론 개를 끌고 나온 주인이 방치한 것이다.

빨간불만 보면 휴일 새벽 아무도 없는 좁은 도로에서도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는 사람들, 보는 사람 없으면 개똥을 그대로 두고 가는 사람들. 그들 모두 평범한 토론토 시민들이다. 법규 준수 여부는 개인의 양식 문제일 수도 있겠으나, 개똥의 경우를 보면 단속과 처벌의 영향을 확실히 더 많이 받는 것 같다. 경찰이든 공무원이든 눈에 불을 켜고 단속에 나선다면 개똥은 봄눈처럼 사라질 것이다.

느슨한 개똥 단속과는 반대로, 시민들을 늘 긴장하게 하는 단속이 있다. 물론 1순위는 시민 안전과 관련한 단속이다. 소화전 앞이나 소방도로에서 실수로라도 위반했다가는 인생이 피곤해질 만큼 가혹한 조처가 따른다. 운 좋게 단속을 피할 확률은 ‘제로’에 가까워서, 소방서 앞 같은 곳에 주차한다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2018년 새해 첫날 강릉소방서 앞에 차량들이 불법 주차했다는 보도(경향신문 1월1일자 ‘119 긴급차량 진출입 막은 해돋이 관광객의 안전불감증’)를 접하고 많이 놀랐다.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경포119안전센터 관계자의 말이었다. “새해 첫날임을 감안해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고, 계도·주의 조치만 했다.” 이 말은 관광객의 안전불감증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널리 퍼뜨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재가 새해 첫날을 알아보고 비켜가는 것도 아닌데, 소방서 앞에 불법 주차를 해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알려주었으니 말이다. 캐나다에서 대형 참사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안되는 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안되기 때문이다.

<성우제 | 재캐나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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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가 놀고 있을 때 그녀에게 반한 제우스가 황소로 변장하여 나타났다. 이 황소에 관심이 끌려 에우로페가 그의 등에 오르자 제우스는 바다 건너 크레타섬으로 날아가 황소를 좋아한 그녀를 위해 하늘에 황소상을 남겨두었는데 이것이 황소별자리다. 이 공주의 이름 에우로페(Europe)는 영어의 유럽(Europe), 프랑스어의 외로프(Europe), 독일어의 오이로파(Europa), 러시아어 예브로파(Европа) 등 구라파의 다양한 명칭이 되었다. 이렇게 흩어진 자신의 이름을 빌린 국가들을 에우로페는 하나로 모으고 싶었을까. 오늘날 대부분의 에우로페 국가들은 정체성은 달라도 유럽공동체로 통합되어 거대한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단군의 단일자손이면서도 70년을 넘게 적대시하며 갈라져 있는 한반도는 날이 갈수록 초라해 보인다. 통일의 열기도 갈수록 식어져 독일이 지불한 막대한 통일비용에 대한 우려에서 남북의 통일에 부정적인 층도 있다고 한다. 이는 통일비용만 생각했지 분단비용은 염두에 두지 않은 근시안적인 사고로 분단에는 돈뿐 아니라 심리적인 피해까지 따르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통일에 제일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층으로 정치인들을 꼽을 수 있다. 일부 지도자들과 이들을 추종하는 정치꾼들은 남북의 분단이라는 민족의 수치도 모자라 영호남 등 남한까지 갈라 이중분단을 저질러 왔다.

오직 권력만이 관심거리인 이들은 힘든 현실에 대처하기보다 자신의 지역만을 챙기고 상대 지역에 반감을 일으켜 쉽게 당선되면서 한결같이 애향, 애교, 애국 등을 내세운다. 이들이 전략적인 애교를 부르짖을 때 동창회조차 없는 독일 대학은 세계적 수준으로 상승하여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무려 4000종류의 맥주에 전 세계 맥주공장의 3분의 1을 지닌 독일의 애향은 자기 지역의 맥주를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아름다운 지역감정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지역감정은 대결의 구도를 넘어 적대감으로 악화되어 미국의 인종 문제나 중동의 종교분쟁같이 국가의 재난이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이념이 같은 남한을 분단시키면서 이념이 다른 민족과 남북통일하자는 외침은 훈장을 주렁주렁 차고 있는 이완용을 연상케 한다.

서양이 근대 300여년에 걸쳐 판단과 감정을 분리하는 훈련을 받을 때 당파싸움에 익숙해진 탓인지 우리는 진보나 보수, 좌우익, 영호남 등으로 갈라지고, 독재정권에 저항만 해도 좌익이나 빨갱이로 낙인찍는 반공이 득세하였다. 하지만 과거 강력한 반공국가로 우리의 최대 우방이었던 대만과 단절하고 한국전쟁의 주적이었던 공산중국과 수교할 때 극단반공주의자들은 왜 그리도 침묵했는지. 국익을 위해 공산권 중국은 받아들이면서 같은 민족인 북한에 약간의 편향만 보여도 좌익이나 빨갱이로 규탄하는 그들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하지만 남한과 북한은 같은 민족으로 동질성이 많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의 지역만을 챙겨 민족의 정서를 오염시킨 정치에는 공통점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정치를 벗어나 학계, 문학, 예술, 체육 등의 공동체가 양국의 변천에 내포된 공통점을 찾아 통일을 추구해야 하겠다. 유럽통합의 동기도 원래 정치가 아니었다. 1916년 당대 최고의 문학가 로맹 롤랑은 머지않아 민족의 갈등이 끝나고 유럽의 공동체가 형성된다고 예언했는데 후에 유럽은 정말로 통합되었다.

불구대천의 원수로서 철옹성과 같은 반목의 벽을 쌓던 미국과 북한을 가장 가깝게 했던 사건도 정치가 아니고 2008년 2월27일 평양에서 연주된 로린 마젤이 지휘한 뉴욕필하모니였다. 이때 북한의 청중들은 성조기를 앞세운 그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중국과 미국이 국교를 맺게 된 동기도 나고야세계탁구경기(1971)였고, 우리도 시드니 올림픽(2000) 등에서 남북단일팀으로 통일의 정서에 접근하기도 했다. 북한의 스포츠팀과 여러 단체가 참가하는 평창 동계올림픽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

<안진태 | 강릉원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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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을 앞둔 지난해 말 232가구가 거주하는 울산 태화동 주상복합아파트 리버스위트에는 안내문이 내걸렸다. 새해부터 최저임금이 인상돼 부득이하게 관리비를 올릴 수밖에 없어 2가지 안으로 입주민 투표를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투표안에는 최저임금 7530원에 맞춰 경비원의 급여를 인상하는 방안과 휴게시간을 1시간30분 늘리고, 경비원 수를 감축하는 방안이 담겼다. 입주민 투표결과 경비원 급여를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68%였다. 경비원들은 노동시간 조정이나 인원변동 없이 일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됐다. 입주민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매달 9000원가량의 관리비를 더 내야 했지만 비용을 나누며 함께 사는 쪽을 선택했다. 입주민들은 “공동체의 일원인 경비원에게 지출하는 비용은 비싸지도, 아깝지도 않다”며 상생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입주민 투표를 주도한 주민자치위 관계자는 “가구당 1만원이 되지 않는 관리비 인상액 때문에 입주민을 위해 일해온 경비원들을 해고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울산 리버스위트 아파트 입주민들은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나눠 지며 ‘더불어 살기’를 실천한 것이다.

아파트 경비원 구조조정에 관한 주민의 호소문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부촌이라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구현대아파트의 입주민대표회의는 지난해 말 경비원 94명을 전원 해고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관리비 부담 증가와 경비 업무의 전문성 확보를 해고 사유로 들었다. 경비원 노동조합은 입주민 부담을 덜기 위해 휴게시간 연장과 퇴직금 산정방식 변경 등을 제안했지만 묵살당했다.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인상되면 구현대아파트 경비원들의 급여는 월 32만원가량 오른다. 3000여가구가 매달 3570원만 더 부담하면 된다. 울산 리버스위트 아파트 입주민들이 올해부터 추가로 내야 할 관리비의 3분의 1 수준이다. 그런데도 구현대아파트 입주민대표회의는 경비원 전원을 해고하고, 경비업무를 용역업체에 맡기는 쪽을 택했다. 부자동네 아파트 주민들이 경비원의 일자리를 빼앗는 야박하기 이를 데 없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시세가 10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갖고 있는 주민들이 월 5000원도 안되는 추가 부담을 꺼려 경비원을 해고한 것은 적은 비용도 나눠 질 수 없다는 이기주의적 판단의 결과다.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을’인 50여만명의 경비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 고용불안에 내몰려 있다. 대부분 24시간 교대제 근무를 하지만 휴게시간마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주 40시간을 초과해 근무해도 연장근로수당을 받지 못한다. 지난해 9월 개정된 공동주택관리법은 경비원에게 업무 외에 부당한 지시를 내릴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1년마다 계약갱신을 통해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관리사무소와 입주민의 지시를 경비원들이 거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노동조건 개선뿐 아니라 탈원전·지구 온난화 해결·복지 확대 등 삶의 질 향상은 시민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수혜를 보고 그 비용을 각자 나눠 지겠다는 연대와 협력의 정신을 발휘할 때만 가능하다. 시민들이 더 나은 조건과 환경에서 살기를 원하면서도 그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건비와 전기료, 세금 등을 더 내지 않으려 하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외면하는 일이다. 물론 그런 현상은 내가 조금 더 낸 비용이 나에게 더 큰 혜택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없는 사회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정글사회의 법칙을 압구정동 아파트 입주민이 잘 보여주었다. 적은 비용이라도 아끼기 위해 시장 논리를 충실히 따르는 ‘압구정동 모델’이다. 그러나 다른 접근법도 있다. 약간의 부담을 나눠 지면서 상생을 모색한 ‘울산 태화동 모델’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처하는 서로 다른 두 가지 해법은 한국 사회의 산적한 현안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기주의가 만연한 경쟁사회에서 척박한 삶을 살 것인가, 연대와 관용이 넘치는 따뜻한 공동체에서 더불어 살기를 실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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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14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 개혁안을 발표했다. 이날은 31년 전 22살 청년 서울대생 박종철군이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진 날이다. 그는 영장 없이 불법체포돼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수배 중인 선배 은신처를 대라는 추궁과 함께 물고문을 받다 숨졌다. 당시 검찰과 경찰, 안기부는 관계기관대책회의 등을 통해 진실을 은폐하고 축소하려 했다. 영화 &lt;1987&gt;에 나온 내용 그대로다. 문재인 정부가 박종철군 31주기에 맞춰 그간 정권의 도구 노릇을 했던 국가 권력기관을 시민을 위한 기관으로 재탄생시키는 개혁방안을 발표한 것은 의미가 크다. 조 수석은 “민주화시대가 열린 후에도 권력기관은 조직 편의에 따라 국민의 반대편에 서 왔다”며 “촛불시민혁명에 따라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악순환을 끊고자 한다”고 말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14일 춘추관에서 권력기관 구조개혁안을 발표한 뒤 자료를 짚으며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개혁안은 권력기관이 갖고 있던 기존 권한을 분산하고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 남용을 막을 수 있도록 바꾸는 게 핵심이다. 이 방안대로라면 최대 수혜자는 경찰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경찰은 기존 조직과 권한은 그대로 둔 채 수사권에 국정원의 대공수사권까지 넘겨받게 된다. 또 하나의 새로운 공룡기관이 탄생할 것이란 우려가 나올 만하다. 청와대가 밝힌 자치경찰제 도입과 수사·행정경찰 분리, 경찰위원회 실질화 등 권한 분산과 견제장치 외에도 시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 등 다양한 안전장치를 더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검찰개혁의 큰 줄기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이 담긴 것은 이미 예견됐던 바다. 공수처 신설 전까지는 경찰이 검사를 수사할 수 있게 했다.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은 2차·보충적 수사권을 갖게 되며 직접 수사는 경제범죄 등으로 대폭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경찰개혁위는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폐지하고, 경찰이 사건을 송치하면 보완수사 요청 등 사후통제만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수사권 조정안을 내놓은 바 있다. 앞으로 보다 정밀한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국정원은 국내정치·대공수사에서 손을 떼고 오로지 대북·해외에 전념하면서 시민과 국가를 위한 최고수준의 전문정보기관으로 거듭나도록 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새 정부 출범 8개월 만에 비로소 권력기관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종합 청사진이 마련된 셈이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청와대 개혁안은 입법으로 뒷받침해야 할 사항이 대부분이다. 이를 주도할 국회 사법개혁특위는 이번주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여야 간 견해차가 큰 탓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공수처에 대해 ‘옥상옥’이라며 강력 반대하고 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방안도 안보수사 역량 저하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한국당의 반대가 거듭되면 논의는 겉돌 수밖에 없다. 사개특위는 6월 말이 활동 시한이다. 정치권이 조만간 6월 지방선거 정국으로 빨려 들어갈 경우 정상 가동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제는 우물쭈물할 여유가 없다. 권력기관의 기본원칙은 견제와 균형이다. 권력기관을 정치와 단절시키고 본연의 임무에만 전념토록 하자는 것은 온 시민의 염원이다. 민주화 30년이 지나도록 이를 완수하지 못한 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때를 놓치면 언제 다시 권력기관 개혁이 이뤄질지 기약하기 어렵다. 여당은 야당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협치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야당은 시민 다수가 검찰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마당에 무작정 반대는 시대착오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권은 당리당략이 아니라 시민들의 인권과 편익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권력기관 개혁은 시민의 일상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사안이다.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개혁을 이뤄낼 힘은 시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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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시립병원 앞길에 쭈그리고 앉은 사람이 있다. 비쩍 마른 몸을 어찌나 웅크려 접었는지 얼핏 검은 배낭처럼 보였는데 어라 움직인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하나 줍더니 신통치 않은지 이내 내버린다. 좀 더 장초가 없나 찾고 있다.

로비에 들어서니 일찍 나온 사람들이 접수대가 열리기를 기다리며 TV를 보고 있다. 아는 얼굴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함께 살고 있는 다른 분이 생각나 안부를 여쭈었다. “조○○씨는 잘 계시지요?” 그는 눈을 끔벅끔벅하며 뭔가 말하려 한다. 순간 무슨 일이 있구나 직감했지만 말하기를 기다렸다. 겨우 말문을 뗀다. “형님 돌아가셨어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다. 그저 왈칵하며 두 손을 맞잡았다.

형님이라 불린 사람은 우리 병원에서 유명한 분이다. 오래전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다쳤는데 후유증으로 대퇴골 골수염이 생겨 이십년이 넘도록 허벅지에서 계속 고름이 나오는 만성병을 앓고 있었다. 병원에 와서 가끔 약을 타가기도 했지만 대개는 집에서 혼자 고름을 짜고 소독하고 드레싱을 해오던 차였다. 그는 자신도 형편이 넉넉지 않으면서도 더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넘기질 못했다. 갈 곳이 없어 그의 집에서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신세를 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자신의 다리가 불편한데도 더 불편한 사람을 보면 휠체어를 밀어주곤 하였다. 그의 부음을 들은 사람들 몇이 고개를 숙인다. “회장님 명복을 빕니다.” 형님이라고도 불리고 회장님이라고도 불리던 그의 죽음에 여러 사람들이 숙연해졌다.

오후에는 호스피스 병동의 사별가족 지지모임이 있었다. 저마다 가장 찬란했던 시절을 이야기하는 ‘기억여행’ 자리였다. 참여자들은 사별한 지 6개월에서 1년 사이의 분들로서 서로 별칭을 만들어 부르고 있다. 미소가 화사한 햇님이언니, 말끝마다 그러게 하는 그러게언니, 하늘하늘 소녀 같은 풀잎이언니, 어릴 적 고향 신의주에 가보고 싶다는 만세오빠… 어르신들이다.

풀잎이언니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떨리고 스릴이 있었어. 그이가 해군 세일러복을 입고 나를 찾아왔어. 어찌나 멋지던지… 팔남매 가난한 집 장남인데 내 짝이 되어 주겠냐고 물었지.” 꿈꾸는 눈이 되어 말을 이어간다. “매일 가마솥에 밥해 가지고 머리에 이고 밭에 날랐어… 보증 섰다가 사업이 망했는데 어찌나 술을 먹던지… 한강 가서 같이 죽자 하는데 난 안 죽겠다고 했어. 그래도 술 깨면 우리 마누라가 최고라고 했었어. 혼인 50주년 되면 같이 여행 가자고 했는데 몇 달 남기고 갔어.” “동생들 셋 태어나 늘 애 업고 다녔어요. 아버지는 폐병치료 받느라 누워있고 열살 때부터 베 짜는 공장에 다녔는데 매일 늦게까지 광목을 짰어요. 자정 넘어 집에 가는데 너무 무서워 철둑에서 엄마 부르며 뛰어가던 기억이 나요. 그러다 홍역으로 동생 셋이 다 죽었고….” 그러게언니의 옛이야기에 함께들 눈물 짓는다. “스무살로 돌아간다면요? 저는 새벽부터 밤까지 일만 했던 게 서글퍼요. 보통의 놀이를 놀아보고 싶어요.”

“도둑결혼에 식도 못 올리고 시댁으로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한밤중이었어요. 시어른이 신랑한테 이 문둥아 하길래 정말 문둥병 걸렸냐고 물어봤어요… 저는 글을 몰라요. 공부 못한 게 철천지한이에요. 글만 알았어도 아이를 맥없이 뺏기진 않았을 텐데….” 햇님이언니는 그래도 웃는다.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고요? 지금이 좋아요. 전 지금이 최고로 좋아요.”

“석양에 강에서 그물 치던 아버지 뒷모습이 생각나. 잉어 놓치고서 서운해하던… 애가 태어났는데 죽은 줄 알고 윗목에 놔뒀대. 근데 침 맞히고서 꼬물꼬물 살아나더라지 뭐야. 그게 나야. 할멈 얘기? 하려면 많지!” 만세오빠는 벌어진 앞니 사이로 허허 웃는다. “선생님도 팔십 되어봐. 사랑하면 버티며 가는 거야.” 잊지 않고 덕담도 해주신다.

폭설뉴스가 요란하다. 비닐하우스가 무너지고 공항에는 발 묶인 사람들이 즐비하다. 전 세계가 한파에 이상기후라고 한다. 이상하게도 원체 눈이 많이 오는 나라에는 눈 피해 소식이 없다. 핀란드 아이슬란드에서 폭설로 지붕이 폭삭했다는 뉴스 본 적 있나? 신랑은 그런 나라에선 너무 흔한 일이라서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추운 지역에선 눈이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서 대비가 잘되어 있기 때문일 거라고 했다. “지붕이 뾰족하잖아. 아예 눈이 쌓이지 않거나 쌓이더라도 중력대비 단위면적당 무게가 덜 나가도록 설계된 거라고.” 문과생과 이과생의 흔한 대화가 오간다.

가난한 이들에게 겨울은 더 길다. 어서 봄이 왔으면! 나무도 꽃도 구름도 바람도 별도 아닌 바로 사람들이 답이다. 우리가 빚어내는 따뜻한 온기와 활기로 겨울을 녹여내고 봄을 피워내자.

<김현정 | 서울특별시동부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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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한국 정부가 혼자 감당할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한국 정부가 해결하겠다고 나설 일이 아니었다.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 제도의 희생양이 된 여성은 26개국 출신 40만명 이상이다. 중국인 20만명을 포함해 독일·영국·미국 간호사 등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 최근의 연구 결과다. 따라서 일대일 양자협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할머니들이 우리 문제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일본과 국교를 단절하라고 요구한 것도 아니고, 국제사회에서 한·일 간에 합의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한 것도 아니다. 이런 국제적인 인권문제를 졸속 합의로 땡처리한 당사자가 1965년 한일협정을 강행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9일 오후 경기 광주시 나눔의집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한·일 위안부 합의 처리 방향을 발표하는 모습을 TV로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쩌면 그런 박근혜 전 대통령이어서 별다른 일이 없으리라고 우리는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2014년 4월부터 12차례 국장급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 시민단체들도 적극적으로 개입할 생각을 못했다. 한·일 양국에 입장차가 있다는 언론 보도만 있었기에 별다른 결과가 나올까 싶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은 전쟁범죄를 다루는 협상테이블에 앉은 적이 없는 만큼 미국의 요구든 뭐든 협상테이블에 나온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결과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 기림비를 세우는 등 이 문제 해결에 진력해온 우리는 실망하고 분노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출범 7개월 만인 지난 9일 위안부 합의 후속조치를 발표하면서 일본에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합의 파기를 선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장 10억엔을 일본에 돌려주고 화해·치유재단도 해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한 한·일 합의에 사망선고를 했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한국이 합의를 파기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는 세계인권에 관한 것인 만큼 두 나라의 합의로 해결됐다고 볼 수 없으며, 앞으로 국제기준에 맞춰 피해자 중심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또 “일본 정부가 출연한 화해·치유재단 기금 10억엔은 전액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고, 기금의 향후 처리 방안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와 협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한·일관계 안에 위안부 문제를 가두는 2015년 양국 합의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이 바뀌었다는 것을 국제무대에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위안부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사업부터 재개해야 한다. 우리도 캘리포니아 교육부가 채택한 10학년 교과과정 2016년 개정판에 포함된 한·일 합의에 대한 일본 외무성 링크를 없애달라고 다시 요청할 것이다. 한·일 양국 정부가 공동으로 요청해서 포함된 이 링크를 삭제하는 것은 한국 정부가 간단히 풀 수 있는 첫 번째 과제이기도 하다.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와 피해 당사국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세계의 인권문제다. 가장 앞장서서 가장 오랫동안 싸워온 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한국 정부가 국제기준에 맞는 해결을 이루도록 능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해 본다. 더 늦기 전에.

<김현정 미국 가주한미포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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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이다. 치열하게 보낸 2017년의 조각들을 떠올려 본다. 시간이 흐를수록 체력은 떨어지고 집중력 또한 예전 같지 않다.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바로 독서라는 행위다. 신간 서적은 매일 쏟아지고 읽어야 할 책은 500권 넘게 대기표를 달고 있다. 과학의 힘으로 수면시간이 사라지거나 자면서도 독서를 할 수 있다면 적어도 1년에 300권 이상의 책읽기가 가능할 텐데.

독서의 목적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가장 피곤한 인간형은 지식자랑에 심취하는 자다. 책에서 얻은 자투리 지식을 전가의 보도처럼 아무 때고 휘두른다. 무술영화로 치면 저잣거리에 처음 등장한 칼잡이와 다를 바 없다. 고가의 명품이 인격 형성의 필요악인 것처럼 단순히 지식 차원에서 맴도는 말을 무한반복한다. 독서와 인격이 따로국밥의 모양새를 취하는 격이다.

다음은 자기계발서 외에는 상종하지 않는 자칭 현실주의자다. 자기계발서는 독자에게 환상을 강요한다. 누구나 ‘1만 시간의 법칙’만 따른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목받는 존재로 변한다는 유혹의 언어를 뿌려댄다. 당신은 선천적으로 열등하기 짝이 없는 실패작이기에 자기계발서를 완독하라고 겁박한다. 현실주의자의 독서란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의 학습과정이다.

수집형 인간도 빼놓을 수 없다. 틈만 나면 서점에서 시간을 보낸다. 생활비보다 책값에 더 많은 돈을 쓴다. 읽은 책보다 산 책이 압도적으로 많다. 원하는 절판서적을 발견하면 가차 없이 지갑을 연다. 가족으로부터 모진 무시와 박해를 당해도 끄떡없다. 그는 인생의 빈 공간을 책으로 채워야 한다는 철학의 소유자다. 문제는 흡연처럼 눈을 감아야지만 수집벽이 멈춰진다는 거다.

독서를 연중행사로 여기는 인간도 있다. 이들은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바쁘다는 언어를 자기과시나 자기포장 용도로 소비한다. 번잡한 상황을 마음껏 자랑하는 동시에 독서를 멀리할 핑계로 악용한다. 당연히 대화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단어의 종류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생계를 위해 장시간의 노동을 해야만 하는 ‘진짜로 바쁜’ 경우는 예외다.

베스트셀러만 읽는 독자는 어떨까. 이러한 쏠림현상은 앞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공통의 관심사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베스트셀러를 찾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쉬운 점은 영화시장처럼 베스트셀러에 파묻혀 독서시장에서 자취를 감춰버리는 양서가 부지기수라는 거다. 독서 초심자에게 베스트셀러는 어쩔 수 없는 선택지일지도 모르겠다. 독서의 폭이 넓고 깊어진다면 해결 가능한 사례다.

이러한 경우 외에도 다양한 독서행위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독서가의 정의는 무엇일까. 필자가 생각하는 독서가란 독서 자체를 사랑하는, 목적 없는 독서에 심취한 사람이다. 그들에게 책은 두 번째 세상과 만나는 지혜와 사유의 공간이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공기처럼 책을 품고 마신다. 당연히 자신만의 시간을 거둘 줄 아는 후회 없는 인생을 택한 인물이다.

대통령의 독서가 화제에 오르고는 한다. 책 &lt;대통령의 독서법&gt;에 의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다독가였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문서를 좋아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피터 드러커류의 경영서를 읽었다. 독서 성향에 따라서 정치인의 색깔과 사상이 드러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요점은 독서를 멀리하는 정치인치고 국민으로부터 오래도록 존경을 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거다.

올해도 어김없이 빛나는 신간들이 서점에 등장할 예정이다. 그만큼의 독서가가 탄생할 것이고, 그만큼의 지식사회가 형성될 것이다. 키케로는 ‘책이 없는 방은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고 말했다. 영혼과 육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싶다면 독서가 우선이다.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텔레비전 전원을 끄자. 이번 주말에는 하워드 진의 책과 함께 아래로부터의 역사와 만나는 시간을 가져 보자.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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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호돌이’ ‘호순이’ 시대에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올림픽을 떠올리면 지긋지긋하다. 86 서울 아시안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하는 것이 마치 내 또래가 태어난 역사적 숙명인 줄 알았다. 공책을 비롯해 모든 문구류에 언제나 오륜기 같은 올림픽 심벌이 새겨져 있었다. 요즘말로 하면 나름 ‘올림픽 굿즈’였던 셈이다. 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포스터 대회부터 합동체육 율동 음악도 김연자의 ‘모이자, 모오오이자, 아침의 나라에서’라는 후렴구가 지겹게 반복되는 ‘아침의 나라에서’였다. 그런데 30년 만에 또 올림픽이라니. 엄청난 돈이 들어가고 자연 훼손에 더해 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리기까지 한 평창 동계올림픽이 탐탁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오랜만에 남북관계에 숨통이 트였다. 선수단과 취재진, 그리고 북한 ‘걸그룹’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모란봉악단’ 참가도 예상되니 이래저래 흥행카드 몇 장을 한국에 선물한 셈이다.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면서 ‘통일’이란 문제를 깊게 고민하며 사는 것도 아니고 북핵 실험 같은 극단적인 소식이 들려오면 걱정보단 짜증이란 익숙한 감정이 올라오곤 한다. 통일 포스터가 아니라 반공 포스터를 그렸던 우리는 그 시절에서 얼마나 걸어 나왔을까.

1985년 큰 수해가 있었다. 천변 지척이었던 우리 동네에도 물난리가 났다. 그해 아주 낯선 일이 벌어졌는데 대체로 늑대나 이리로 그리곤 했던 ‘김일성’이 남한 수해 복구 지원을 한다며 쌀과 옷감을 보내온 것이다. 상습 수해지역인 우리 동네에 북한 옷감이란 것이 흘러들어 왔다. 새마을지도자 역할을 열심히 하던 아버지 덕분이었던 듯하다. 다소 난감한 꽃분홍색의 나일론 천이었는데 아마도 한복용 옷감이었을 것이다. 옷을 지어 입을 수는 없어 엄마는 가장자리에 오버로크를 쳐서 밥상 보자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북한 옷감 좀 구경하자며 이웃 아주머니들이 오셔서 그 천을 조금씩 얻어 갔다. 그해 지독한 수해 끝에 남은 것은 북한산 꽃분홍 밥보자기였다. 기성복을 사서 입던 시대이니 사실 북한산 옷감에 어떤 용처가 있었겠는가. 그래도 남측은 흔쾌히 그 선물을 받았고 적대적인 남북관계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였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선물이란 것이 본래 그렇잖은가. 딱히 쓰임새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는 그 행위와 태도 자체에 의미가 있어서 선물이다.

농민운동 조직인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은 남북관계가 꽉 막힌 상황에서도 통일쌀 농사를 지어왔다. 정부미로 부르던 ‘통일벼’가 아닌 정말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쌀’이다. 농사를 지어 북한에 쌀을 보내자는 취지의 공동 농사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매년 평균 40만t의 쌀을 차관 형식으로 북한에 지원하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북한에 쌀을 보내지 못했다. 그래도 농민회 소속 농민들은 매년 ‘통일 모내기’를 하며 남북대화를 촉구해왔다. 수확된 쌀이 북한 인민 전체의 식량을 책임질 정도의 양은 아니지만 ‘쌀’이라는 강력한 민족의 상징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남한 농민들이 북녘 동포들에게 쌀밥 한 그릇을 꼭 선물하고 싶은 그 마음조차 닿지 못한 지 10년째다. 그래서 이번 남북대화를 계기로 ‘통일쌀’을 선물할 수 있다면 좋겠다. 명절에 남녘은 떡가래를 뽑아 떡국을 끓이고 중부지방은 떡만둣국을, 북녘은 만둣국을 먹는다 들었다. 이 통일쌀로 떡을 뽑아 올라가겠으니 이북 만두를 빚어 내려오면 좋겠다. ‘통일 떡만둣국’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설날이 어서 오기를. 아! 그 밥상에는 꽃분홍 밥상 보자기가 제격이겠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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