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1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일정이 1박2일로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날 백악관의 트럼프 대통령 아시아 순방 일정 발표 때 이미 결정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백악관 발표 몇시간 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일정을 공지했을 때도 “한·미 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확한 도착 및 출발 일정을 계속 협의 중”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트럼프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보안 브리핑을 한 후 기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정부는 애초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 방문 일정이 2박3일~3박4일로 예상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도착 시간을 7일 오전에서 6일 저녁으로 앞당겨줄 것을 요구해왔다. 방한 일정이 1박2일에 그치면 일본과 비교된다는 이유였다.

백악관 발표 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숙박 일수를 늘리는 데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모양새나 의전이 외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들르지 않는다면 모를까 한국보다 일본에 더 오래 머무른다고 해서 미국이 한·미동맹에 부여하는 의미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모양새가 좋다고 실질이 좋은 것도 아니다. 의전, 모양새에 신경을 쓰며 귀중한 외교적 자산을 트럼프 숙박 일수 늘리기에 쏟은 정부도 실질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이른 시점인 취임 50일 이전 미국을 방문한 것에 야단스럽게 공고한 한·미동맹 의미를 부여한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당시 외교안보 라인이 ‘신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을 다자외교 무대(G20)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며 강하게 주장해 문 대통령은 정책 기조나 전략은 물론, 외교안보 인선조차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치밀한 준비 없이 정상 방미를 했다. 그 결과 미·일의 의도대로 한·미·일 3각 안보 협력 구도가 강화됐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지 않았던가.

<정치부 | 손제민 기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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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외교안보 위기를 문재인 대통령이 잘 헤쳐 나갔으면 하는 기대가 높았던 7월11일. 문 대통령이 말했다. “우리가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것”이 있다고. 그건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의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있지 않고,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는 사실이다.” 놀라운 고백이었다. 취임 두 달 만의 무력감 토로라니.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음을 강조하려는 과장법이려니 했다. 난제에 직면한 지도자가 한 번쯤 할 수 있는 푸념일 거라고 넘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서울 ADEX) 2017' 개막식에 참석해 블랙이글스 T-50 1호기에 올라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두 달이 흘렀다. 한반도 문제가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되고 그에 비례해 한국은 더욱 존재감을 잃어갔다. 트럼프 추종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펴졌다. 놀랍게도 정부는 이번에도 부인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의원은 모욕을 참고 가랑이 밑을 긴 한신을 문 대통령과 동일시했다. 며칠 뒤인 9월22일 문 대통령이 김 의원 발언을 뒷받침했다. “지금처럼 잔뜩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는 섣불리 다른 해법을 모색하기도 어렵죠. 압박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트럼프 추종은 이제 가설이 아닌, 입증된 사실로 확정됐다.

이때만 해도 기대감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정부가 한신처럼 반전의 기회를 노리며 뭔가 도모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국은 충분히 그럴 역량을 갖고 있다. 한국은 인구, 산업능력, 군사력과 같은 하드 파워로 보나 기업혁신, 문화, 정부, 교육과 같은 소프트 파워로 보나 명실상부한 중견국이다. OECD 가입국이자 여러 국가의 역할 모델이기도 하다. 주변 강국으로 인해 중견국에 걸맞은 역할을 다 하지는 못하지만, 한 세대 전, 한 세기 전과 같이 주변국의 요구를 무조건 따라야 했던 약소국은 더 이상 아니다. 영화 <남한산성>이 굴욕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약소국의 처지를 새삼 부각하지만 381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취임 5개월째인 10월10일 문 대통령은 자신을 둘러싼 의구심과 미련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안보 위기에 대해 우리 주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합니다.” 세 번째다. 우리는 그가 세 번이나 무기력증을 호소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더 이상 푸념도 과장도 아니다. 역전의 순간을 위해 일부러 힘을 감추려는 전략도 아니다. 그의 정직한 안보인식이자 정부 능력에 대한 자가 진단의 결과다. 또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곧 다른 경로가 열리지 않을까 하고 가슴 한쪽에 품고 있는 낙관론을 접으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무기력증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최후의 생존게임을 하고 있다. 자원을 최대로 동원해야 하고 무얼 하든 결사적이어야 한다. 남한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미국은 이번 기회에 북한의 무릎을 꿇리려 한다. 게다가 남의 말 잘 안 듣는 트럼프가 대통령이다. 하지만 이런 북·미 대결 상태도 한국이 손 놓고 물러선 상황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그 반대다. 한국이 더 많은 힘을 쏟고, 다른 방법을 찾고, 비상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내놓은 해결책은 이런 것이다. ‘긴장이 완화되고 북한이 도발을 스스로 중단하면 그때 근본적 해법을 모색한다.’ 그렇게 기다리면 위기는 누가 해소하나? 문 대통령도, 트럼프도 아니라면, 김정은밖에 없다.

한국의 안보와 미래가 달린 일이다. 북한과 미국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면 한국은 왜 그렇게 하면 안되는가? 미국에선 요즘 대안 논의가 활발하다. 트럼프의 외교 멘토 키신저는 주한미군 철수 대가로 중국이 북한을 붕괴시키는 안을 백악관·국무부에 제시했다고 한다. 백악관 실세였던 스티브 배넌은 미군철수와 북핵동결 구상을 말한 적도 있다.

그런데 문정인 대통령 특보는 한·미연합훈련 축소 한마디 했다가 경고를 받았다. 주한미군 철수론은 말할 것도 없다. 그건 한국인이 말할 수 없는 말이다. 미국은 한국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상을 마음껏 논하는데 한국인은 그러면 안되는 이유를 누가 좀 설명해주면 좋겠다.

김정은도 세계를 흔들었다. ‘당당한 외교’를 하겠다던 문 대통령은 왜 흔들리고 있나? 문 대통령은 광야에 홀로 선 존재가 아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를 이끄는 강력한 통치자, 시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민주사회의 지도자다. 트럼프·김정은이 아니라 문 대통령을 믿고 싶다.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운명, 우리 손으로 개척할 수 있다. 문재인은 힘이 있다. 그 힘을 보고 싶다.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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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청년이 주춤주춤 내 옆으로 다가왔다. 15층에 사는 청년은 키가 큰 데다 덩치까지 있어서 옆으로 다가서는 것만으로도 움찔하게 된다. 청년은 전화번호 여러 개가 적힌 쪽지를 내게 내밀면서 말했다.

“아줌마, 전화 좀 빌려주세요.”

청년은 내가 얼른 휴대폰을 내밀자 고개를 내저으면서 종이쪽지를 내 코앞에 바짝 갖다 댔다. 전화를 걸어달라는 거였다. 청년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전화번호는 아빠라고 적혀 있었다. 청년은 아빠와 전화가 연결되자 큰소리로 물었다.

“어디예요? 왜 안 와요?”

서른 살이 넘었을 청년은 예닐곱 살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호기심이 생기면 상대방이 무안하도록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엉뚱한 참견을 한다. 처음에는 단 둘이 엘리베이터에 오르면 슬그머니 겁이 나서 딸한테는 같이 엘리베이터에 타지 말라고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 그 청년이 아파트 놀이터 후미진 곳에서 담배를 핀 중학생들을 혼내는 걸 봤다. 학생은 담배 피우면 안되는 거라고, 놀이터에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했다. 청년의 목소리는 제법 단호했고, 표정은 험악해 보이기도 했다. 중학생들은 지나가던 나를 보고는 이상한 아저씨가 괜히 시비라면서 편들어주기를 바랐지만, 나는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그 사람이 틀린 말을 하진 않아.”

그 일이 있은 뒤로 나는 청년의 큰 덩치가 덜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실제로 십 년이 넘도록 청년은 별일 없이 이웃으로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다. 청년 대신 전화를 걸어준 날 밤 그의 어머니가 내 휴대폰으로 전화해서 고마워하며 물었다.

“그런데 우리 애가 어떻게 제 아버지 번호를 알려줬대요?”

내가 전화번호 적힌 종이를 들고 와 보여줬다는 말에 청년의 어머니는 놀라워했다.

“세상에 그걸 어떻게 들고 나갔데. 그럴 줄도 알고….”

아들을 대견해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남다른 아들을 키우느라 애면글면했을 어머니의 기뻐하는 목소리에 나도 괜히 흐뭇해서 콧노래가 나왔다. 그 청년 다 컸네, 다 컸어.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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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기억교실에서, 희생 학생의 책상에 추모객이 두고 간 초콜릿을 재학생 후배가 먹어버렸다. 교사는 이 사실을 유가족에게 알리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한 유가족 엄마가 웃으면서 말했다. “미안하긴요. 오히려 고맙죠.”

그 엄마는 기억교실이 엄숙한 곳이기를 원하지 않았다. 후배들이 먼저 간 선배들을 찾아와 과자도 먹고 노는 곳이기를 바랐다. 유가족과 시민들이 만들자고 하는 416 생명안전공원도 그와 같다. 그동안 슬퍼하고 힘들어했던 안산 시민들에게는 휴식과 회복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월호 이전과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대한민국을 안전한 나라로 만들자고 그토록 다짐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우리가 품어야만 하는 안산의 희생자들, 희생자 가족들이 있다. 즉 우리에겐 슬픔 대신 웃음이 있는 공간, 별이 된 아이들과 가족을 우리 안에 품는 공간, 동시에 안전 사회를 향한 다짐을 확인하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416 생명안전공원이다.

416 생명안전공원의 형태와 부지를 정하기 위하여 안산시는 2016년부터 현재까지 다섯 차례의 주민 경청회와 두 차례의 시민 토론회 등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쳤다. 그리고 화랑유원지 내 미조성부지를 봉안시설이 포함된 공원의 최적격 후보지로 제시했다. 화랑유원지는 희생 학생들이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라는 상징성, 시민들의 접근 용이성, 별도로 부지를 매입할 필요가 없고 부지 규모도 넉넉하다는 점에서 다른 후보지들보다 조건이 뛰어나다.

어떻게 납골당을 시민의 휴식 공간인 화랑유원지에 들이느냐며 반대하는 시민들이 있다. 봉안시설은 음울하고 칙칙한 곳이라는 통념에 비춰 볼 때 반대 입장을 이해하지 못 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유가족과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공원의 모습은 그런 통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공원에는 숲, 정원, 복합문화시설이 어우러지고, 봉안시설은 공원의 작은 일부에 그것도 지하에 자리 잡는다. 희생 학생들이 놀던 장소에 청소년의 공연장과 시민의 쉼터가 조성된다. 세계에서 유일한 ‘생명안전공원’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또 해외에서 사람들이 올 것이다. 봉안시설은 음울한 시설이기는커녕, 공원의 의미를 빛내주고 별이 된 아이들과 유가족을 품어 안는 안산 시민의 저력을 보여주는 상징이 될 것이다. 공원이 안산에 가져올 ‘생명안전 도시’라는 브랜드 가치와 경제적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원 추진 과정에서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민 경청회와 시민 토론회 등 공론의 장이 여러 차례 열렸고, 이 과정에서 공원에 대한 오해를 풀거나 우려에서 지지로 돌아선 시민도 많다.

새 정부 들어 안산을 생명안전 도시로 만들자는 논의에 힘이 실리는 중이다. 유가족과 안산 시민이 세월호 진상규명과 공동체 회복을 위해 함께 노력한 결과다.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안산시와 정부에 의견을 제시하면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416 생명안전공원과 함께 안산을 생명안전 도시로 바꾸는 데 필요한 일들, 예를 들면 트라우마 전문병원이나 정부 생명안전 부처의 안산 유치도 제안할 만하다. 안산의 ‘빅 픽처’를 그리자는 이야기다. 안산이 세월호의 슬픔을 딛고 희망의 도시로 나아갈 것인가,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갈 것인가? 선택은 시민의 몫이다.

<오준호 | 안산 시민·<세월호를 기록하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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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989년 대통령령 제12817호로 제정된 기능장려법 시행령에 따라 매년 대한민국 명장, 우수숙련기술자, 숙련기술전수자, 숙련기술장려 모범사업체 등을 선정하여 지원, 관리하고 있다. 이는 국민에게 기능습득을 장려하고 기능의 향상을 촉진하는 동시에 기능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많은 분야에서 정진하도록 하며 기능인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법률적 근거에 의해 올해 대한민국 명장은 기계, 재료, 화공, 토목, 산업디자인, 공예, 서비스 등 22개 분야에서 96개 종목으로 세분화하여 신청자 공고를 했다. 숙련기술전수자 분야의 세대 간 단절 우려가 있어 전수가 필요한 분야는 백골 제작, 전통목기, 감물 염색 등 6개 종목으로 분류, 공고했다. 그런데 선정된 결과를 보면 명장 분야에 11명(공예는 2명), 숙련기술전수자 분야엔 백골 제작 단 한 명 등 모두 12명만을 선정했으니 이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분야에 신청을 하려면 우선 서류가 엄청 방대하다. 자그마치 40여 가지나 되며 경력을 입증하는 게 있어 보증인을 세워야 하고 보증인의 인감증명을 떼어야 하고 또다시 공증까지 해야 하는 등 구비서류가 어마어마(보통 150~200쪽)하다.

그런데 이렇게 적게 뽑으려면 왜 수백, 수천 명들의 장인, 기능인들로 하여금 신청케 했느냐는 것이다.

또 2017년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 모집공고를 보면 기계, 재료 등 선정분야에 아예 공예분야는 제외되어 있다. 관련 부서인 고용노동부에서 공예 기능인 육성에 대한 기본적인 정책은 있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공예는 과거 산업자원부, 문화체육관광부, 중소기업청 등에서 다뤘는데, 노동부에서까지 공예를 다루겠다며 정책적으로 채택했다. 공예종목을 가져가 적당히 곁방살이를 시키려면 이번 정부에서는 아예 분가(?)시켜 본연의 공산품 위주의 정책으로 돌아갔으면 싶다.

<이칠용 |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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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의도 불꽃축제의 뒷모습’이라는 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다. 쓰레기가 쌓인 자리, 앞다퉈 행사장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로 인해 꽉 막힌 주변 도로와 인도, 행사 관계자들의 통제와 안내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들 등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부끄럽다” “시민의식이라고는 없는가?” 등 비판 일색이다. 이러한 씁쓸한 뒷얘기가 나온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라는 점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공연이나 축제에서 지켜야 할 예의나 매너가, 무슨 큰 결심과 희생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서글퍼진다. 그나마 불꽃축제는 불꽃놀이가 끝난 후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편이라, 행사 중간에 사람들이 뒤엉키면서 겪는 불편이나 불쾌감은 그리 크지 않다. 최근 방문했던 지역축제에서는 행사 도중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일이 있다. 지역축제에 초청되는 특정 가수의 팬들이 해당 가수의 공연이 끝나자 한꺼번에 빠져나갔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본 것이다.

공연 도중 행사장을 나가는 게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나가면서 다른 관객들을 발로 ‘툭’ 치거나, 또 그러한 과정에서 사과도 하지 않는 경우가 눈에 띄었다. 게다가 어르신들이나 아이들과 부딪치는 경우는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질서를 지키고, 자신의 실수에 대해 상대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른 가수들의 공연도 분위기에 맞게 관람하는 매너를 지키는 게 큰 희생을 요구하는 일일까.

행사 관계자의 통제에 따르는 것, 갖고 온 쓰레기를 갖고 가는 것,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 이것들만 지켜도 모두가 웃고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내년 축제에는 조금 더 나아진 시민의식을 보이기를 기대해본다.

<문찬우 | 경기 하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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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추석을 보내고 나니 한 해가 거의 다 끝나가는 느낌이 벌써 든다. 낮에는 여전히 따뜻한 기운이 넘치지만 바람이 불거나 그늘에만 들어서도 소매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은 차다. 떨어지는 은행의 구릿한 냄새들이 영락없는 가을인데 나이가 든 탓일까, 사는 일에만 골몰한 탓일까, 마음에는 가을이 물들지 않는다. 사색의 계절이니, 독서의 계절이니 하는 이야기가 다 무슨 말인가 싶다. 아침 드라마 사이사이로 채널을 바꿔 홈쇼핑을 보면서 올해는 온열매트를 장만해야 하는 거 아닌가 고민하다가 과일가게 좌판에 놓인 붉고 말랑한 연시를 보면서도 달콤하겠다는 생각보다 올해 배추 값은 또 얼마나 하려나 아직 한 달도 더 남은 김장철 걱정부터 든다. 친정에서는 김장을 할 때 단맛을 내기 위해 연시를 넣는다. 연시가 한창 나오는 시절에 미리 사서 냉동실에 얼렸다가 김장철에 꺼내어 녹여 쓰는 것이다. 고추는 올해 흉작이라고 했다. 해서 묵은 고추 남은 걸 쓸까 했는데, 언니가 사놓은 것이 있어서 좀 얻어 쓰기로 했다.

이런저런 겨울준비 고민을 벌써 하다 보면 스스로가 낯설고 좀 우습다. 대단한 살림꾼도 아니고, 매사에 대비가 투철한 성격도 아니고, 굳이 구분하자면 개미보다는 베짱이에 가까운 성격인데, 왜 이렇게 느닷없이 사는 일에 몰두하는 걸까 곰곰이 이유를 찾아보니 이게 다 SNS 때문이다 싶다. 추석 연휴를 며칠 앞두고 꽤 오래 이용했던 SNS 계정 하나를 닫았던 것이다. 오래전 트위터를 이용하다 그만둔 후로 두 번째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굳이 꼽자면 SNS 소식을 따라가느라 이제 시작된 아이의 사춘기를 놓치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은 거였다. 글을 쓴다고는 하지만 그보다 많은 시간을 전업주부이자 엄마로 사는 내게 SNS는 세상을 향한 유일한 창구이자 세상 그 자체일 때가 많았다. 아무리 신문을 읽고, 뉴스를 보아도 따라가지 못하는 소식, 관점 더러는 문화 콘텐츠들이 거기에 있었다. 그러하니 내게 SNS를 그만둔다는 건 어떤 면에서 세상과의 단절을 자처하는 일 같아 좀 비장했다. 그런데 막상 그렇지도 않다. 특이한 경우인지 다들 그런지 모르겠는데, 내가 사는, 나와 친한 동네 이웃들은 대부분 SNS를 하지 않는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SNS상의 지인들만큼 알고 있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모르는 소식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도 촛불을 들었고, 그들도 생리대의 안전성 검사를 의심했고, 어금니 아빠의 범죄에 치를 떨었다.

물론 그럼에도 두 개의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게 다른 지점이 있었다. 비슷하나 다른 두 개의 세상이 존재한다고나 할까. SNS를 한다는 건 그 두 개의 세상을 동시에 산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그러다 보면 가끔 어느 세상이 진짜인지, 어느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의지와 바람이 실제를 바꾸고 있는 건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런저런 생각 끝에 계정을 닫았는데, 한 세계가 뭉텅이로 사라진 자리에 여전히 한 세계가 남아 있다. 이 아이러니는 아무래도 현실 적응 기간의 감정인 듯 싶다.

대신 비슷한 고민 끝에 SNS 활동을 그만둔 다른 친구와 모임을 하나 만들었다. ‘회귀인류’라는 거창한 이름을 만들고 이름에 어울리는 회귀의 행위가 뭘까 찾다가 고전을 함께 읽기로 했다. 첫 책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이다. 들어만 보고 읽지는 않은 책 가운데 동전 던지기 하듯 고른 책이다. 고전을 읽는다 한들 멀리 회귀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느 날 불현듯 같은 혹은 다른 SNS를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래도 앞으로만 쭉 달리는 것보다 왔던 길 다시 돌아가서 되짚어 사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도 그 혼자서는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니/ (중략)/ 어떤 사람의 죽음도 그만큼 나를 줄어들게 한다/ 나는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그것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서문에 쓰인 글이다. 나 자신을 위하여 종이 울릴 때, 나는 무엇을 할까, 어디로 갈까 가끔 그런 생각도 한다. 가을을 아주 타지 않는 건 아닌 듯하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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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백남기 농민 사망 원인을 물대포(살수차) 직사살수로 인한 외인사(外因死)로 결론 내리고,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과 신모 전 서울경찰청 제4기동단장, 물대포 조작 경찰관 등을 기소했다. 검찰은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집회 당시 경찰이 물대포 운용 지침을 어기고 백남기 농민의 머리에 2800rpm의 수압으로 13초 직사살수하고, 백씨가 넘어져 두개골 골절을 입은 후에도 다시 17초 직사살수했다고 밝혔다. 사건 당시 공개된 폐쇄회로TV 영상을 통해 초등학생도 알고 있던 사실이 이제야 검찰에서 확인된 것이다. 만시지탄이다. 사건 발생 1년11개월, 백남기 농민 사망 1년1개월 만이다. 정권교체 덕분이라고 위안을 삼기엔 고인과 유족, 시민들의 상처가 깊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그러나 검찰은 백남기 농민 사건이 국가 공권력 남용 사안이라면서도 당시 치안 총수였던 강신명 전 경찰총장에게는 면죄부를 줬다. 검찰은 강 전 청장을 소환도 하지 않고 한 차례 서면조사만 진행했다. 현장 지휘관과 살수 요원 등을 지휘·감독해야 할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주의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강 전 청장은 민중총궐기 집회 때 최고 단계인 갑호비상령을 내리는 등 경찰의 강경 진압을 결정하고 실행한 장본인이다. 검찰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아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백남기 농민에게 가해진 물대포의 수압은 건물 50층 높이인 150m까지 물을 쏘아올릴 수 있을 정도다. 물대포의 이런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경찰이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뒤에도 계속 쏘아댔는데 검찰은 이를 실수라고 판단했다. 소극적인 수사를 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검찰은 경찰의 공범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9월25일 백남기 농민 사망 때 경찰이 서울대병원의 병사(病死) 판정을 근거로 고인의 시신 부검까지 시도하는 억지를 부린 것도 검찰의 수사 지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족의 고발에도 정권이 바뀌기 전까지는 눈 한번 끔벅하지 않았다. 검찰은 유족에 사과하고, 서울대병원이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을 외인사 아닌 병사로 조작한 의혹에 관해서도 밝혀야 한다. 서울대병원 수뇌부는 사건 처리 과정에서 경찰은 물론이고 청와대와도 수시로 접촉한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 백남기 농민 사건의 진상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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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관 8명이 그제 입장문을 내고 “헌재 소장 및 재판관 공석 사태의 장기화로 인해 헌법재판소의 정상적인 업무수행은 물론 헌법기관으로서의 위상에 상당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며 “조속히 임명절차가 진행돼 헌법재판소가 온전한 구성체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청와대와 야당이 다투면서 헌재의 비정상적인 상황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재판관들이 직접 해결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재판관들이 자기 기관에 대해 단체로 입장을 표명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로, 그만큼 사태가 엄중하다는 뜻이다.

헌재 재판관들이 입장을 밝히게 된 직접적 원인은 청와대가 제공했다. 국회에서 헌재소장 인준이 거부된 김이수 소장대행이 야당에 의해 국감 업무보고를 거부당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야당을 비판했다. ‘헌재 재판관 전원이 김 권한대행 체제에 동의했다’며 김 대행 체제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권한대행 체제에 찬성한 것은 한시적으로 김이수 재판관이 대행을 맡는 것에 동의한다는 뜻이지 언제까지나 권한대행 체제에 찬성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헌재 소장 임기 문제가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닌데 입법 미비가 해소돼야 소장을 임명하겠다고 한 것도 논리가 박약하다. 야당 또한 청와대를 탓할 처지가 못되는 것은 물론이다. 당초 이번 사태는 야당이 이념공세를 펴다 종국에 김 대행 인준안을 부결시킨 것에서 촉발됐다. 이것도 모자라 야당은 국감장에서 보고를 거부하는 볼썽사나운 꼴을 연출하며 국감을 마비시켰다.

헌재의 비정상적 상황은 헌법재판소법에 재판관의 임기를 6년으로 하고 재판소장의 임기에 대한 규정을 두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이 때문에 현직 재판관이 소장으로 임명될 경우 새로 6년을 보장해야 할지, 아니면 잔여 임기만 인정할지를 두고 논란이 반복돼왔다. 국회가 이 입법 미비를 해소해야 문제가 풀린다. 국회에 제출된 관련 법안이 있는 만큼 여야가 당장 심의에 나서야 한다.

이와 별도로 청와대도 조속히 새 헌재 재판관과 소장 후보를 지명해야 한다. 자칫 김 소장 대행체제가 그의 재판관 임기가 끝나는 내년 9월까지 갈 수 있다. 이는 말이 안된다. 청와대는 새 재판관을 임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청와대와 헌재 재판관 입장에 근본적 차이가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재차 입장을 밝혀 국회 입법을 촉구하는 방안도 논의하는 모양이다. 이 문제를 놓고 야당과 계속 대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협치할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한다. 청와대나 야당 모두 헌재 재판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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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4차 산업혁명, 혁신성장이 새 정부의 경제정책 의제로 부상하면서 이를 위한 규제개혁론이 주목받고 있다. 국무조정실이 주도한 새 정부 규제개혁의 핵심은 이른바 ‘규제 샌드박스’ 제도 도입이다.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동안 기존 규제를 면제, 유예시켜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특정 지역’을 ‘특정 산업이나 기술, 제품, 서비스’로 대체했을 뿐, 특정 대상에 대해 사전규제의 예외를 두겠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되었던 ‘규제프리존법’과 동일한 논리구조를 갖고 있다.

박근혜 정부하에서 민주당이 반대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비판했던 ‘규제프리존법’과 동일한 구조인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새 정부의 규제개혁론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난세스다.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 대통령의 네거티브 방식 규제 전환 공약을 기존 관료들이 기존 사고로 변질시킨 이른바 ‘관료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한국의 규제시스템은 강한 사전규제-약한 사후규제 구조이다. 이에 비해 미국은 약한 사전규제-강한 사후규제를 특징으로 한다. 인허가 조건을 엄격하게 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전규제라면, 징벌적 손해배상, 집단소송과 같이 피해가 발생할 경우 기업에 사후 손해배상 책임을 강하게 묻는 것이 대표적인 사후규제책이다. 사전규제는 행정 관료의 권한이 강하게 작용하는 반면, 사후규제는 사법절차에 의한 제재가 주된 것이다. 사전규제는 관료의 권한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경쟁자(기업, 기술, 상품)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해서 시장의 기득권을 유지시켜주는 효과를 낳는다. 그런 점에서 강한 사전규제제도는 과거 경제성장기에 관료와 기존 시장 기득권 간의 담합의 산물이기도 하다. 강한 사전규제제도하에서 재벌은 정경유착을 통해 예외를 인정받아 특혜를 누려왔고, 정치권력과 관료는 그 대가로 검은 뒷돈을 챙겨왔다.

4차 산업혁명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규제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빅데이터와 이에 기반을 둔 인공지능이고, 빅데이터의 축적에는 개인정보의 활용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개인정보의 활용은 개인정보보호라는 공익적 법익과 상충될 수밖에 없다. 해법은 무엇일까.

관료적 발상은 규제를 완화하거나 규제의 예외를 두었다가 문제가 되면 사후에 ‘사전’규제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규제 샌드박스가 바로 이런 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이미 해온 방식이다.

2009년 신용정보법 전면개정을 통해 신용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사전규제를 대폭 완화했다가 연이은 신용정보 유출사고에 이어 2014년 1월 카드사들에서 무려 1억건이 넘는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대형사고가 발생하자 다시 강한 사전규제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사전규제 중심의 규제 패러다임을 그대로 두고 사전규제를 완화하거나 그 적용을 유예하고 면제해주는 방식으로는 과거의 사례를 반복할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은 사전규제 중심에서 사후규제 중심으로 규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만 실현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1억건의 개인정보 유출사건만 해도 그 과정은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해당 카드사들은 고객 원데이터의 제공, USB 작업 허용 등 외부 용역직원이 손쉽게 고객정보를 가져갈 수 있도록 업무를 처리했다. 미국이라면 기업의 생존이 어려울 수준의 천문학적 손해배상을 해야 했을 것이고, 따라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엄격히 업무를 처리했을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는 비식별 정보의 활용 역시 폐지 수준으로 사전규제를 대폭 축소하되, 식별화 방지를 기술적으로 의무화하고, 식별화해서 유출될 경우 기업이 망할 수 있는 수준의 사후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한다면 기업이 스스로 예방조치를 해서 그 어떤 사전규제제도보다 강하게 작동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면 사전규제 없는 외국 사례를 들며 규제 개혁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들은 미국 같은 사후규제 강화에 대해서는 외면하거나 반대한다. 한마디로 사전규제도, 사후규제도 싫다는 것이다.

미국을 창업의 나라라고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과 같이 기업에 사후적으로 엄청난 부담을 주는 제도를 발전시키고, 반시장범죄인 분식회계를 한 60대가 넘은 월드컴의 CEO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하고, 회계법인을 파산시킨 미국 사법부의 엄격함이 바로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가능하게 한 조건이다.

사전규제에서 사후규제로의 규제 패러다임 전환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새 정부가 변형된 규제프리존법인 ‘규제 샌드박스’ 도입이 아니라 규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정부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기식 | 더미래연구소장·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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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도는 가깝고도 먼 섬이다. 전라북도 군산에서 겨우 1.5㎞ 정도 떨어져 있어 부두에서 보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운 섬이다. 그러나 유부도는 오지 중 오지이다. 현대 생활의 상징인 전기를 유부도 주민들이 마음대로 사용하기 시작한 해는 2014년이다. 상수도는 아직도 공급되지 않고 있어 빗물을 모아서 사용하거나 육지에서 물을 가져와야 한다. 유부도는 정기 배편이 없어 섬에 들어가고 싶으면 미리 개인 배편을 예약해야 한다. 또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물이 빠지면 모든 배가 갯벌에 주저앉아 아무리 급한 일이 생겨도 육지에 나가려면 물이 들어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이 정도면 바다 한가운데 있는 작고 외로운 섬을 말하는 것 같다.

중앙의 두 마리가 부리 끝이 넓은 넓적부리도요새이다. 왼쪽 새의 다리에 하얀색의 3C가 보이는 표식이 있다. 오르탕스 세레 박사 제공

9월 말에 우리는 탐조를 하러 유부도에 갔다. 선외기배를 타고 군산에서 출발했더니 겨우 5분 만에 유부도 선착장에 도착한다. 우리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선장의 경운기를 타고 곧바로 갯벌로 갔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물이 빠져 있어 끝도 보이지 않는 갯벌이 펼쳐져 있다. 앞의 작은 섬인 대죽도와 소죽도까지 이어진 갯벌에는 새들로 가득했다. 금강하구에 바로 위치한 유부도는 금강으로부터 떠밀려오는 토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덕분에 갯벌이 넓게 펼쳐져 있고 또 고립되어 있어 유부도는 희귀 철새들의 도래지로 알려진 섬이다.

우리는 대학연합야생조류연구회 부회장인 정대혁씨의 안내로 탐조를 시작했다. 9월 말은 철새들이 월동을 하러 저위도로 이주를 시작하는 시기이다. 유부도 갯벌에는 여름철새와 나그네새로 가득 차 있었다. 여름철새는 우리나라에서 번식을 마치고 조만간 월동지로 이주를 한다. 나그네새는 우리나라보다 고위도 지역에서 번식을 한다. 그래서 봄에 번식하는 곳으로 이주할 때, 가을에 월동하는 곳으로 이주할 때 우리나라에 잠깐 들른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나그네새를 봄과 가을의 이주시기만 잠깐 볼 수 있다.

멀리 저어새 34개체와 섞여 중대백로와 노랑부리백로 대여섯 개체가 쉬기도 하고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또 한쪽으로는 부리가 길고 밑으로 휘어진 마도요, 알락꼬리마도요, 중부리도요 혼종무리가 물끝선에 있었다. 유부도의 대표적인 새인 검은머리물떼새 약 500마리가 무리지어 물끝선에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검은머리물떼새의 무리를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이다.

우리는 이 무리 중에서 나그네새인 넓적부리도요를 보고 싶었다. 부리 끝이 양쪽으로 넓적하게 퍼져있는 것이 이 새의 특징이다. 넓적부리도요는 전 세계에 200개 정도의 번식쌍만 있다고 알려진 희귀종이다. 필드스코프 3대와 쌍안경을 이용해 수백마리의 새를 한 마리 한 마리 관찰하기 시작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누군가가 소리쳤다. 무리 중에 넓적부리도요를 발견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알려주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도 찾지 못한 나는 고정된 필드스코프로 옮겨 넓적부리도요를 찾으려고 했다.

다리 하나를 들고 머리를 파묻은 채 휴식을 취하는 새들이 여럿 있었다. 잠시 후 머리를 내밀었을 때 넓적부리도요를 뚜렷이 볼 수 있었다. 흰물떼새에 둘러싸여 혼동되지만 부리 끝이 뚜렷하게 옆으로 퍼진 녀석을 놓칠 수가 없었다. 넓적부리도요는 유부도에서 2~3주 동안 휴식을 취하고 먹이활동하면서 다음 비행에 필요한 연료를 충전한다.

놀랍게도 우리가 관찰하던 넓적부리도요 3마리 중 한 마리는 다리에 표식을 달고 있었다. 정대혁씨는 러시아의 ‘넓적부리도요 태스크포스 팀(Spoon-billed Sandpiper Task Force Team)’이 부착한 표식이라고 알려준다. 이 팀은 전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넓적부리도요를 보전하기 위해 여러 국제기구의 협력으로 증식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표식도 하고 있다. 이 새의 이름은 ‘White 3C’이다. 올해 7월7일 시베리아 최북동부에 있는 추코트카 자치구에서 인공부화되어 태어났다. 이 새는 7월28일 방사되었고, 적어도 8월13일까지 러시아에서 관찰되었다. 그런 다음 무려 5000㎞를 날아서 유부도를 찾아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닷물이 점점 밀려온다. 모래갯벌을 좋아하는 흰물떼새, 민물도요 그리고 넓적부리도요 혼종무리는 일제히 날아올라 바다 쪽으로 크게 한 바퀴 돌고 와서 다시 모래갯벌에 내려앉는다. 물은 계속 들어오고, 이들은 점점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거리가 좁혀짐에 따라 이들의 이륙과 선회가 잦아진다. 이제 우리가 뒤로 물러설 때가 되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서며 표식을 단 넓적부리도요에 대해 각별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았을 때 경이를 느낀다. 우리 주변에 새들이 흔하게 있지만, 막상 한 마리, 한 마리의 집이 어딘지,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디서 죽는지 잘 모른다. 알고 보면 참 신비로운데, 새들이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을 전혀 모른다. 그러나 이 작은 이름표로 인해 우리는 그 새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언제 이동하는지, 잘하면 어디서 죽는지도 알 수 있다.

그래서 White 3C는 나에게 특별하고, 이 새로 인해 모든 넓적부리도요가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제 넓적부리도요는 나에게 특별한 새가 되었다.

<장이권 |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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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지방분권을 통한 국가 균형발전을 국정의 4대 복합·혁신과제로 선정하고 중점 국가전략으로 채택해 청와대 정책기획위원회의 출범과 더불어 세부 추진계획과 로드맵을 수립하고 있다.

지역균형발전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가의 책무이자 기본권에 해당한다.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균형발전보다는 지역 경쟁력에 중점을 두고 지역발전 정책을 통한 지역균형발전을 추진했지만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더욱 심화되었을 뿐이다. 지역균형발전 사업이 중앙정부 각 부처에 흩어져 있고 통합·조정 기능이 없는 분절적인 사업 추진으로 지역발전의 효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특히 지역균형발전의 바로미터인 지역인재의 유출은 심각할 정도이다. 진학, 취업 등을 이유로 지방인력이 지방을 이탈해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이미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 제정되어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은 이뤄졌지만 이에 상응하는 인재의 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에는 소홀한 감이 있었다. 그동안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규모도 형편없는 정도였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보면 지역발전 정책 지원을 위한 노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차원에서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2016년 포용적 지역발전 정책을 통해 전국 어디에 살든 동일한 수준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기초생활권(National Mininum)에 기초하여 정책과 시설이 소외된 계층, 지역, 국가에 도움이 되는지를 고려하여 지방 소멸이나 인구 감소지역에 대한 지역발전 정책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지역인재 채용률이 13.3%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의 신규 채용 시 지역인재를 30%까지 채용할 수 있도록 기준을 수립하고 독려한 점은 긍정적으로 보인다. 다만, 이를 세부적으로 수행하는 데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 신규 채용 시 지역인재를 30%까지 채용할 수 있도록 확실한 기준을 수립하고 독려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국토교통부와 교육부 등 정부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하다.

교육부의 경우 지역인재 채용을 의무화하면 수도권의 역차별과 같은 반감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청년고용할당제’에 대한 헌법소원이 여성채용목표제나 지방인재채용목표제에서는 제기되지 않고 있는 것을 살펴보면 심리적 저항감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본다.

둘째, 지역인재 30% 채용을 통해 공공기관과 지역대학 간의 연계성을 강화하는 데 바람직한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처음에는 이전 공공기관이 필요로 하는 전문인력이 부족하겠지만, 지역대학과 협력해 맞춤형 인재를 교육하고 채용할 수 있는 방안들(계약학과)이 정비되고 있고, 더 나아가 지역 산업적 특성을 반영한 민간기업 및 지역대학의 혁신클러스터 토대를 구축하면 보다 큰 인력시장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이렇게 된다면 보다 장기적으로 우수인재의 지역 이탈을 막는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셋째, 지역인재 30% 채용목표제 방식의 지역인재 채용의무제의 경우 ‘적극적 평등실현조치(Affirmative Action)’의 일환으로 정책의 합목적성을 구현할 수 있다. 지역의 균형발전이라는 정책에 평등이라는 가치가 적극적으로 투영된 방안으로 ‘인간의 존엄성 구현’이라는 정책의 목적에도 부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인재 30% 채용목표제 이외에도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 직원들의 정주율 제고에도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주말만 되면 혁신도시의 많은 공공기관 직원들이 수도권으로 대거 이동하는 모습도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지속적 추진을 통해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광섭 | 호남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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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실험을 생각해보자. 무작위로 나눈 A와 B 두 그룹의 피험자들에게 뜻이 통하도록 단어의 순서를 바꾸게 한다. 이때 A그룹의 피험자들에게는 “하루, 날씨가, 추운”처럼 돈과 무관한 중립적인 어구를 주고, B그룹의 피험자들에게는 “일, 연봉이, 높은”처럼 월급에 관련된 어구를 준다.

피험자들이 이 과제를 마치고 나면, 아주 어려운 퍼즐을 주고 풀게 한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오라고 하고 방을 나간다. 두 그룹 중 어느 그룹의 피험자들이 더 빨리, 더 많이 도움을 요청했을까?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중립적인 문장을 만들었던 A그룹의 피험자들은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평균 3분이 걸린 반면, ‘월급’에 관련된 문장을 만들었던 B그룹의 피험자들은 평균 5분30초가 걸렸다. ‘월급’에 대한 문장을 만드는 동안 ‘월급’을 떠올린 피험자들이 혼자 해결하려는 경향을 더 많이 보인 셈이다.

‘월급’을 떠올린 피험자들은 타인을 돕는 데도 인색했다. 이들은 문제를 푸느라 힘들어하는 다른 피험자를 도와주지도, 필통을 떨어뜨린 실험자를 도와주지도 않는 경향을 보였다. ‘월급’에 대한 생각이 피험자들을 경쟁적인 직업 현장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 점화 효과

이처럼 최근에 경험한 단어나 대상이 나중의 생각, 인식,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현상을 점화 효과(priming effect)라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은 시간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예컨대 바늘을 보고 나면 실을 보게 될 확률이 높고, 컵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순간을 본 다음에는 컵이 깨지는 장면을 보게 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점화 효과는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인식하고 맥락에 맞게 반응하는 데 유익할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세일러 교수는 인간은 기존의 경제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성적이고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며, 비이성적인 행동 패턴을 보인다는 사실을 연구해 왔다. 점화 효과로 인해 생겨나는 기준점(anchor) 효과는 이러한 비이성적인 행동 패턴 중 하나이다.

예컨대 주민등록번호의 마지막 2자리 숫자를 물어본 뒤, 와인병을 보여주며 몇 달러인지 추정해보라고 하면, 주민등록번호의 마지막 2자리 숫자가 큰 사람일수록 와인이 비싸다고 추정하는 경향이 있다. 주민등록번호의 마지막 2자리 숫자가 기준점이 되어 와인 가격의 추정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점화 효과는 건강한 식습관처럼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하도록 환경을 디자인하거나, 상품을 구매하도록 광고를 설계하는 데 쓰일 수 있다.

■ 점화 효과와 의식적인 기억

점화 효과는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행동과 인식에 영향을 준다는 측면에서 기억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기억의 내용을 의식적으로 지각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의식적인 기억과 다르다.

예를 들어보자. 기억상실증 환자와 정상인들에게 24개의 단어를 하나씩 보여주고 소리내서 읽게 한다. 몇 분 후, 학습한 단어 24개와 새로운 단어 24개를 뒤섞어서 하나씩 보여준다. 단, 간신히 읽을 수 있을 만큼 짧은 시간 동안만 보여주고, 보여준 단어가 무엇인지 추론하게 한다. 그 뒤 방금 추론한 단어가 앞서 학습했던 단어인지 아닌지 물어본다.

그러면 기억상실증 환자와 정상인 모두가 이미 보았던 단어를 더 잘 알아맞힌다고 한다. 미리 학습한 단어들이 점화 효과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상실증 환자는 점화 효과에도 불구하고 이미 보았던 단어인지 아닌지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반면에 정상인은 추론한 단어가 이미 보았던 단어인지 아닌지를 높은 확률로 기억할 수 있다. 이는 점화 효과가 의식적인 기억과 다른 과정임을 보여준다.

점화 효과와 의식적인 기억은 관련된 뇌 활동 양상도 다르다. 정상인을 대상으로 위의 단어 실험을 적용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연구에 따르면, 아래쪽 두정엽은 점화 효과에, 위쪽 두정엽은 의식적인 기억에 더 많이 관여했다고 한다. 하지만 위의 단어 실험과 글의 처음에 설명한 ‘월급’ 실험을 할 때 일어나는 뇌 활동은 아마 다를 것이며, 점화 효과의 뇌 속 원리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 우리 주변의 점화 효과

우리는 수많은 자극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지하철 벽면의 광고, 신문 기사,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 인터넷 게시물, 지나가는 사람들, 건물들…. 점화 효과는 이 자극들이 나의 생각과 인식과 행동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점을 시사한다. 우리는 나의 생각은 내 것이라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주변의 영향을 받아 하게 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신년을 축하하는 1월1일에는 굳건하던 각오가 일주일만 지나면 무뎌지는 것도, 캠프나 여행지에서의 깨달음이 돌아오면 아득해지는 것도, 점화 효과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점화 효과를 생각해보면 인터넷을 떠도는 유행어 하나,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지하철역의 벽보 하나,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기사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특정 지역이나 여성, 장애인에 대한 혐오가 공공연히 향유되는 상황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누군가에게 베푼 사소한 친절 혹은 분노의 파급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누군가가 댓글로, 공중파 뉴스로, 온라인 커뮤니티로 기획된 정보를 퍼트렸을 때, 우리의 생각과 인식과 행동은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그때 우리의 생각은 얼마나 자유로웠을까?

다시 주변을 둘러본다. 지금 나를 둘러싼 자극들은 나의 생각과 인식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또 나의 말과 행동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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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 게 비지떡’은 떡이 웬일로 싸서 좋다고 사서 베어 무니 찹쌀로 만든 게 아니라 비지에 쌀가루 섞어 찐, 색과 모양만 엇비슷하게 만든 비지떡이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값이 싸다는 것은 다 그만한 흉이나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뜻이지요. 오리털파카 싸게 샀다 했더니 바람 푹 빠지는 닭털파카라든가, 식재료를 싼 맛에 사왔는데 다듬고 조리하다보니 ‘어쩐지, 이래서 쌌구나’ 돈 아까워 후회하거나.

그리고 저렴하다 싶으면 거의가 중국산이라 합니다. 국내 생산비로는 가격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겠죠. 우리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메이드 인 차이나’에 대해 크게 불신을 갖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싼 게 차이 나’라는 말까지 우스개로 돌고 있을까요.

그런데 저는 몇 년 전 중국 옌볜 출장 때 먹어본 옥수수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강원도 찰옥수수보다 훨씬 찰지고 고소하기가 그지없었습니다. 중국산도 훌륭한 게 많다는 걸 그때 알았지요. 위생과 품질을 엄격히 따지는 일본에서도 중국산을 많이 수입하고요.

사실 중국산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중국에서조차도 형편없는 것을 싸게 사들여 국내 소비자들에게 이익 남겨 파는 수입업자들에게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또한 좋은 것을 헐값에 사려는 소비자들에게도 문제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것을 수입하면 안 팔리는데 누가 좋은 것을 수입하겠습니까. 하지만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으니 이 또한 뭐라 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지요. 하지만 헐값에 대한 기대치는 높게 잡아선 안 되지 않나 생각됩니다. 3000원짜리에서 6000원짜리 국수를 기대하면 안 되는 것처럼. 상식 이하로 싸게 사려 들면 더 싸구려를 들여오는 수밖에 없습니다. 웬 떡이냐 싶으면 비지떡입니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 거저다 싶으면 제값 못합니다. 제값 줘야 제값 하는 게 당연하고, 괜히 싼 건 비지떡밖에 없는데 우리 주머니는 혹시나 하며 비지떡만 담습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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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입시철이 지나면 학원들마다 입시결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몇 명이 서울대에 합격했느냐가 가장 흔한 홍보의 소재이고, 그다음으로는 의대와 ‘인(in)서울’ 대학 등의 진학 성공사례를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물론 이런 모습이 교육적이지 않다고 하여 교육당국에서 학원 외부에 홍보 현수막 등을 노출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런저런 편법을 사용해서라도 입시결과를 외부에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에는 ‘전교 1등이 가장 많이 수강하고 있는 학원’만큼 학부모들의 이목을 끄는 광고 문구가 없다는 것이 일선 원장들의 공통된 고백이다. 이렇게 상위권 학생들이 모여 있는 학원이라는 광고를 해야 또 다른 상위권 학생들이 모여들고, 그런 학생들이 상위권 대학 합격이라는 입시 실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광고들 중에는 잠깐이라도 등록한 학생을 자기 학원의 진학 실적으로 올리거나 계열화된 다른 학원들의 입시결과를 합산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렇듯 학원들은 ‘우수 학생’ 또는 다른 말로 ‘우수 자원’을 확보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학원의 경쟁력이 기본적으로 ‘시험을 잘 치를 수 있도록 가르치는 능력’에 있기는 하지만 하위권 성적의 학생들을 잘 가르쳐 중위권 대학에 진학시키는 것은 사교육 시장에서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학부모들의 관심은 거의 대부분 서울대와 같은 명문대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진학시켰느냐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요즘 입시는 과거 부모세대 때처럼 막판에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에 합격할 수 있었던 상황과 완전히 다르다. 그렇다 보니 학원 마케팅의 핵심은 이미 공부 잘하고 있는 학생을 유치해서 입시실적을 만들어 내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가르치기도 편하고 입시결과도 당연히 좋다는 비즈니스적인 판단이다.

자, 여기까지가 교육에 있어서 만악의 근원(?)으로 치부되는 사교육계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최근 일반고 황폐화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외고나 자사고를 강제 폐지하려는 이유가 ‘우수한 학생들도 일반고로 진학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앞서 이야기한 사교육계의 우수 학생 유치 노력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사교육계에서 보는 ‘우수 학생’과 공교육에서 생각하는 ‘우수 학생’은 결국 수능 입시시장에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선행학습을 잘한 학생들을 의미하는 것일까? 의외로 사교육계 일부에서는 소수의 자사고, 외고에 집중되었던 ‘우수 학생’들이 일반고로 흩어지는 것을 환영하는 목소리가 있을 정도라면 뭔가 기본 전제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일부 지방 자사고들의 자발적 일반고 전환 움직임이 있어왔고 외고들의 입학 경쟁률도 하락하는 추세였다. 이것은 자사고와 외고가 어떤 학생들에게는 입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고, 같은 학력 수준이라면 일반고에서도 효과적인 입시 준비가 가능하다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인식 전환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다가 자사고나 외고, 교육특구 지역의 재수생 비율이 일반고에 비해 크게 높다는 것도 잘 알려진 팩트다. 이렇듯 자사고나 외고의 존재가 일반고 황폐화 문제의 핵심은 아니었다. 그런 학교들에 유리하도록 짜여진 입시제도가 문제였다. 과도한 선행학습을 하지 않았어도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을 정도의 학력을 갖고 있는 청소년이라면 여러 역량을 확인해 공정하게 선발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갖고 투자를 하는 것이 더 교육적이다. 새 정부가 ‘자사고, 외고 폐지’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만드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조급증을 버리고 큰 틀의 교육제도를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한왕근 | 교육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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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세기에 출산을 경험했다. 출산휴가 두 달. 육아휴직이라는 용어는 들어본 적도 없던 때였다. 요즘이야 출산 1~2주 전부터 휴가에 돌입하기도 하지만 그땐 출근길에 양수가 터져서야 병원으로 실려가는 경우도 꽤 있었다. 두 달밖에 안되는 휴가 기간에서 하루도 허투루 빼먹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 역시 출산 전날까지 출근을 했고, 뒤집기도 못하는 아이를 두고 회사로 복귀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너무 야만적인 환경이었네요.” “출산하고 고작 두 달 만에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나요?” 동정과 놀라움으로 질문을 던지는 여자 후배들 앞에서 나를 포함한 ‘20세기 출산 경험자’들은 무용담을 늘어놓듯 떠들어댔다. 사무실에서 담배도 마구 피워대던 시절이었다는 둥, 유세 떤다는 이야기 듣기 싫어 야근도 다 했다는 둥. 기업의 한 간부는 “ ‘임신=퇴사’였던 때라 6개월까지 임신 사실을 숨겼다”고 해서 듣는 이들을 기함하게 했다.

여러 직종의 20~40대 여성들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모인 자리. 하지만 몇몇이 침을 튀기는 동안 저들의 눈빛은 “그래서요?”라고 되묻는 듯했다. 어쩔거나, 이 싸한 분위기. 예전에 밭 매던 호미로 아이 탯줄 끊고 마저 밭을 맸다는,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꼈던 시큰둥함. 딱 그것이었다. 그 찜찜함이 느낌이 아닌 ‘실화’라는 것은 며칠 뒤 40대끼리 다시 모인 자리에서 확인됐다. “불편했대요. 자기들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같았다나 뭐라나.” “우리야 물어보니 옛날이야기를 한 것뿐인데, 좀 어이없고 당황스럽고 그러네요. 예전 상사들에 비하면 우린 정말 괜찮은 편 아닌가요.” “앞으로는 그저 묻는 말에 대답만, 그것도 단답형으로.”

맞장구는 쳤지만 절감했다. 멘토고 뭐고 간에 그냥 우린 ‘꼰대’였던 거다. 조언이나 연륜을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고 착각했을 뿐, 그저 내면화된 꼰대 근성이었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회사뿐 아니라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는 다르지 않으냐”며 확인받고 싶어했고 딸아이는 “도대체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냐”고 되물었다. 난 그럴 때마다 “너희들이 밀레니얼 세대면 난 ‘영포티(young forty)’다”라고 응수했다.

역사상 가장 젊다는 40대. 197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의 문화자본을 충만히 누리며 자란 나이든 X세대들. 그때 데뷔했던 이병헌, 정우성, 박진영이 여전히 대중문화를 주름잡고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린 위 세대와는 다르고 젊은 세대와는 통한다고 자족했다. 하지만 ‘영포티’를 다룬 기사에 붙어있던 “그래 봤자 나잇값 못하는 꼰대”라는 댓글이 아프게 와닿기 시작한 것은 얼마 전부터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사안이나 뉴스,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해 여혐 문제를 지적하거나 젠더감수성의 부재를 문제 삼는 논의 앞에 말문이 막히는 사례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나름 상식적으로 산다고 생각했지만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조차 인지할 수 없는 사안들이 늘어나면서 그저 막막했다. “선배, 이건 정말 문제 아닌가요”라고 심각하게 지적하는 후배 앞에서 “으응, 그러게” 하고 얼버무린 뒤 지적의 핵심을 파악하려 애쓰는 딱한 내 모습은 내게 존재의 의미와 정체성을 매섭게 묻고 있었다.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입을 닫는 것, 그리고 머리와 마음을 여는 것이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는 명제가 천명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을 살던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가 먹고 지혜가 쌓여도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절로 깨치지 못한다. 자신을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저것 책을 사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른 글을 뒤적이다 눈에 번쩍 뜨이는 제목의 글을 발견했다. 한 온라인 콘텐츠 회사에서 발간한 이 유료 콘텐츠를 덥석 결제했다. ‘요즘 애들의 사적인 생각들’, 궁금하지 않은가.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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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은 이른바 ‘독사파’다. 1969년 1명만 선발하는 유학시험에 합격해 서독 육사를 졸업했다. 생활비가 모자라 번듯한 식사 한 번 못했다고 한다. 당시 서독의 탄광 막장과 병원에서 일하던 광부·간호사들도 신산한 삶을 이어갔다. 고된 삶은 당대 한국인 모두의 숙명이었다.

군을 아는 몇 사람에게 군인으로서 김 전 실장의 평판을 물었다. ‘카리스마 있는 지휘관’이란 평가가 다수였다. 야전 지휘관과 작전, 전략 등 거의 전 분야에서 폭넓은 경험을 쌓았고, 합리적 사고와 강력한 추진력을 겸비했다는 평가였다. 국방장관 취임 직후인 2010년 말 이순신 장군의 노량해전 출사표를 인용한 ‘장관 지휘서신 제1호’를 장병에게 보낸 것이 화제가 됐다.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내용으로 군의 수장다운 기백을 보였다는 말도 있었지만 봉건시대의 충성심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도 나왔다. 직선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

그는 관운이 좋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안보실장을 지냈다. 관사에서 짐을 다 빼냈다가 유임 통보를 받고 다시 짐을 들여놓는 촌극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국방장관 재임 3년6개월은 해병대 총기난사와 북한군 노크 귀순 등 나라를 뒤흔든 6건의 대형 병영사고로 얼룩졌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그중 1~2개 사건만으로 책임을 지고 물러났을 법하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사이버사령부의 민간인 동향 파악 및 대선 댓글 공작이 시작된 것도 장관 재직 때 일이다.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고도 숱한 의혹만 남긴 채 유야무야된 차세대 전투기(FX) 사업에도 관여했다. 정치군인이 된 그가 국가안보실장으로 승진한 것은 대한민국에 비극이었다. 그가 안보실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개성공단 가동 중단,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조기 배치 등 동북아 정세와 국가안보상 중대한 결정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그럼에도 국가안보는 악화됐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7년 5월 5일 김관진 캐릭터 (출처:경향신문DB)

국가안보실장은 외교와 정치적 감각이 필요한 자리다. 그는 그런 자질이 부족해 보인다. 지난 1월 “중국이 반대해도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공개 발언한 것이 좋은 사례다. 중국으로서는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보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한·중관계는 수교 이후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정상 간 교분은커녕 비상시 전화통화마저 여의치 않다. 경제보복은 심화됐다. 사드 배치에 앞서 발생가능한 모든 상황을 예측했는지 의심스럽다. 사드에 대한 맹목적 믿음 하나로 우직한 군인처럼 밀어붙인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역량으로 배신과 음모가 판을 치는 국제사회에서 국익을 지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사드 조기 배치는 무모한 일이었다. 당초 2017년 9월로 예정된 사드 배치 시점을 5월로 바꿨다가 최종적으로 4월26일로 두 차례에 걸쳐 앞당겼지만 실익은 거의 없었다. 군사적 실효성은 여전히 의심스러웠고, 변덕스러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마음을 사지도 못한 듯하다. 북핵 위협은 더 심화됐고, 국내 여론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애초 사드는 교환가치가 높은 외교 자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대선 과정에서 “사드 문제를 주변국과의 협상 카드로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가장 낮은 가격에, 아니 사실상 거저 넘겼다. 심각한 국익 손상 행위다.

김 전 실장의 사드에 대한 맹목적 집착은 유난스러운 대북 적대감에서 비롯됐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군 지휘관과 국방장관 시절 그는 ‘도발 원점 타격’ 등 북한군에 대한 강한 감정을 드러내곤 했다. 장관 서신에서 ‘원수’란 표현을 사용한 것도 그런 인식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그럴듯한 분석이지만 사실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군인으로서야 북한을 적으로 보는 게 당연하지만 외교까지 고려해야 하는 국가안보실장은 때로 증오를 숨길 줄도 알아야 한다. 자칫하면 국익은 물론 당사자도 해칠 수 있다.  

김 전 실장의 어두운 그림자는 외교안보에만 드리워져 있지 않다. 청와대는 그가 세월호 참사 부실 구조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국가위기관리지침을 고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법제처 허가 등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고 빨간 볼펜으로 지침 원본에 줄을 긋고 필사로 수정하도록 한 것이다. 그가 저지른 국정농단과 불법적 행태의 끝이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김 전 실장은 빚만 가득한 ‘불량 유산’을 남겼다. 통상 질 나쁜 유산은 법원에 포기 각서를 제출하면 거부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의 유산은 그럴 수 없다. 정부와 시민이 오래도록 엄청난 고통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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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상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개근상과 기타의 상. 전자가 자신이 자신으로부터 받는 상이라면 나머지는 심사위원들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그러니 기타의 상들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도 국가적으로 목을 매건만 올해도 우리나라를 비켜나간 노벨상의 뉴스에 이런저런 시답잖은 생각을 얹어놓기도 하면서 문경의 조령산에 올랐다.

세상은 너무 시끄러웠다. 텔레비전을 켜면 쏟아져 나오는 인문학의 교훈들. 도시는 아주 복잡했다.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도 다리에 걸리적거리는 각종 법규와 지시사항들. 오늘은 호젓한 산길로 접어들었으니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하고 싶다’는 어느 유행가 가사에 딱 들어맞는 행보라 하겠다. 신생의 연두색 잎들이 엊그제 같더니 어느새 벌써 붉은 단풍의 계절이다. 한 해 끝에 잎에서 모처럼 벌어지는 잔치.

그간 무성하되 무심했던 잎이었다. 지금 꽃이 사라지고 열매가 뒤로 물러나는 건 그 잎으로 쏠리는 시선을 빼앗지 않겠다는 배려일 것이다. 순서에 따라 이제는 잎들이 주인공이다. 나를 씻기에는 아직 땀이 부족한 것일까. 널찍한 임도를 벗어나 신선암봉으로 가는 가파른 길을 더위잡고 나서야 산이 주는 높이와 깊이를 제대로 섭취할 수 있었다. 따로 주어가 필요 없는 이런 문장도 하나 건졌다. 산에 사네!

오늘 내 눈을 특히 사로잡는 건 투신하듯 일제히 아래로 향하고 있는 나무의 열매였다. 여름에는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있더니 이제는 부상(副賞)처럼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지금 나의 심사에도 꼭 알맞은 그것의 이름은 참회나무. 가장자리가 꿀렁꿀렁 이는 잎은 대칭이고, 짙은 자주색의 열매는 다섯 조각으로 나뉜다. 잎이든, 꽃이든, 열매든 모두가 쩨쩨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활황하게 피어나는 참회나무. 사계절 내내 산에서 개근하고 있는 나무들만큼 성실한 게 또 있을까. 자칫 가을의 끝자락에서 감당할 수 없는 스산함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국면에서 아연 활기를 한 움큼 선물해주는 참회나무. 노박덩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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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017년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30주년이 되는 해다. 그리고 또 일제히 낯익은 노동운동 위기론이 등장하고 있다.

이번엔 노조운동 활동가들, 그리고 진보정치운동에서 시작했다. 왜 정치적인 격변기마다 노동운동 위기 담론이 대두할까? 그리고 이런 담론은 근본주의에 대한 공격을 꼭 수반한다.

노동운동이 변해야 노동운동이 산다? 하지만 과연 변해야 할 것이 노동운동 혹은 노조인가, 아니면 그 노동운동이 자리 잡고 있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전체인가? 즉 87년체제의 극복, 아니 전환인가?

노동사회학자인 필자는 노동운동의 ‘위기론’에 대해 대체로 동의하지 않는다. 위기는 한 번도 제대로 확정되지 않았으며 그 자체로 정치적 언설이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시각은 ‘위기’의 문제의식이 아니라 ‘전환’을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민주화 이행 이후 한국 민주노조운동, 혹은 노동운동은 지난 1987년 이후 30년을 경과하면서 이제 전환의 한 순환을 마쳤다. 그것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형성과 전환과 맞물리면서 진행된 과정이기도 하다. 그 방증으로 지금 87년체제의 극복이 운위되고 있다.

하지만 극복되어야 할 87년체제는 무엇인가? 그 체제에서 한국의 노동계급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필자는 여러 글들에서 민주주의는 단일하지 않으며 하나의 지점만을 경과하는 이행도 아니므로 ‘전환’의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것은 지난 촛불에서 봤듯이 민주주의의 퇴행에 대한 ‘민주주의 회복’의 시도로 나타나기도 한다. 즉 민주화도 있고, 역민주화도 있고, 재민주화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노동계급은 ‘제1의 전환’ 이후에 어떤 자기 전화를 모색할 것인가? 이것은 87년체제 이후가 불확정적이듯, 똑같이 그리고 동시에 열려있는 질문이다.

1987년 이후 정치적 민주주의로 ‘열린 공간’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열리지 않았다. 사실 6월 민주화항쟁 이후 예기치 않았던 노동자들의 계급적 진출과 조직화 이행 이후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국가의 억압적 전략은 지속되었고 탄압은 더욱 거세졌다.

뿐만 아니라 당시 재야민주화운동과 밀착, 이른바 ‘범민주 연합’을 구성하고 있던 자유주의 야당세력은 국가의 노동탄압에 대해 소극적이었고 노동과의 연대정치를 구사하기보다 민주노조운동에 대해 거리를 두었다. 이는 1989년 4월20일 김대중의 한 달간 파업자제 촉구 입장 발표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정확히 구별하자면 보수 우익세력은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운동 ‘탄압’ 세력이었고, 중도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세력과 그들이 주도한 민주대연합은 정치적 민주주의로부터 노동을 ‘배제’한 세력이었다.

이제 지난해 10월29일 시작된 촛불이 주도하는 범 박근혜 퇴진운동에 힘입어 자유주의 정당세력은 정권 탈환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들이 인정하든 안 하든, 박근혜 퇴진 운동이 시민들, 중간층들 이전에 조직노동, 그리고 조직노동보다도 그 주변의 비정규직 정리해고자 투쟁을 하던 변방의 노동자들과 민중운동에 의해서 먼저 시작되었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것이야말로 촛불 중심의 퇴진운동과 1987년 6월항쟁이 마무리되던 시점인 7월에 본격적으로 터져나온 노동자대투쟁의 차이다. 하지만 촛불 이후 다시 1987년 헌법질서로 회귀했다. 헌법과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켜졌다. 하지만 이 체제는 또한 노동자대투쟁을 통합하지 못한 노동배제의 민주주의였고, 그 결과 비정규직의 급격한 도입으로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된 민주주의였다. 그런 ‘민생’의 실패가 10년간의 우익세력의 집권으로 귀결되었다. 이제 다시 원점이다. 아니 하나의 전환을 끝낼 것인가라는 기로에 서있다.

해서 질문해야 할 것은 동시적이다. 노동운동과 정치적 민주주의 양자의 새로운 전환은 불가능한 것인가?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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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관련해 기존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의 권고안에서 크게 후퇴한 정부안을 발표했다. 수사 인력을 줄이고 기능을 축소한 것이 골자다. 공수처가 또 다른 권력집단이 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검찰개혁이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게 딜레마다.

당초 개혁위는 공수처에 검사 50명을 권고했지만 법무부는 25명으로 정했다. 검찰로 치면 특수부 3개 정도의 수사력에 불과하다. 공수처 검사 임기도 개혁위는 ‘6년 및 연임 제한 없음’을 제안했지만 법무부는 ‘3년 및 3회 연임 가능’으로 단축했다. 공수처 검사들의 신분 안전성이 떨어지면 정권교체 시 업무 연속성은 물론이고 조직의 영속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 개혁위 권고안은 공수처가 검사의 모든 범죄를 수사하도록 했지만 법무부는 직무와 관련된 범죄로 국한했다. 법무부는 또 공수처 수사 대상을 정무직 공무원으로 좁히고, 현역 군 장성 등은 아예 제외했다.

개혁위 권고안과 달리 법무부가 공수처장을 국회가 선출하도록 한 것은 옳은 방향이다. 공수처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다. 그러나 법무부안은 전반적으로 국민 기대 수준에 미흡하다. 검찰개혁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초심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면 박상기 법무장관이 검사 출신 법무부 관료들에게 휘둘렸다고밖에 볼 수 없다. 검찰이 과거사를 반성하고 적폐 수사에 적극 나서면서 모처럼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것과 국가 차원의 검찰 통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법무부의 공수처 축소는 재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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