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미래, 미국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획책한 쿠데타가 일어난다. 이들은 국명을 ‘길리어드’라 바꾸고, 신정주의·전체주의·가부장제에 기반해 나라를 운영한다.

이곳에선 책이 사라진다. 화장품, 대중영화, 개성 있는 의상같이 쾌락을 주는 물건들도 찾을 수 없다. 공개처형이 부활해 가톨릭, 퀘이커 등 ‘이교도’의 시신이 거리에 내걸린다. 인간은 오직 신의 뜻, 혹은 신의 뜻이라고 가장된 국가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 길리어드에서 특히 영향받은 건 여성들의 삶이다. 길리어드는 주변국들과의 오랜 전쟁, 환경 오염 등의 영향으로 출산율이 극도로 떨어져 있다. 길리어드에는 소수의 남성 ‘사령관’과 그들의 아내가 있다. 아내는 대부분 불임이기에, 조금이라도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들은 사령관의 집에 ‘시녀’로 배속된다. 시녀는 태어나면서 받은 이름을 잊은 채 ‘오브프레드’(‘프레드’의), ‘오브글렌’(‘글렌’의)처럼 사령관의 성(姓)을 이름으로 받고, 사령관의 아이를 임신할 의무를 지닌다. 물론 이 섹스엔 조금의 쾌락도 개입되어선 안된다. 사령관과 시녀의 섹스는 지금껏 그 어느 소설이나 영화에서 묘사된 것보다 기괴하다. 아내가 침대 머리맡에 사지를 벌린 채 자리하면 시녀는 그 다리 사이에 눕는다. 아내는 시녀의 두 손을 잡아, 두 여자가 하나임을 보여준다. 두 여자 모두 옷을 차려입었고, 시녀는 속옷만 벗은 상태다. 사령관은 시녀의 하반신 쪽에 자리해 할 일을 한다. 세 번의 기간 내에 임신하지 못하면, 시녀는 다른 시녀로 대체된다.

오랫동안 서가에 꽂아두고 잊고 있던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1985년작 SF <시녀 이야기>를 마침내 읽은 건 하나의 단어, 하나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단어는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언급한 ‘출산주도성장’이다. 출산주도성장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대안으로, 아이를 낳으면 출산장려금 2000만원, 성년까지 1억원의 수당을 주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각종 복지 수당을 ‘포퓰리즘’이라며 반대하던 자유한국당이 입장을 바꿔 의아하고, ‘돈 주면 애 낳을 것’이라는 발상이 당황스럽다. 

이미지는 현실 세계에 나타난 ‘시녀’와 관련 있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 <시녀 이야기> 속 시녀의 의상을 입은 여성 시위대가 세계 곳곳에 출현했다. 이들은 텔레비전 속 시녀 의상 그대로, 빨간 외투에 하얀 두건을 썼다. ‘시녀 시위대’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 앞에 나타났고, 영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반대했다. 아일랜드와 아르헨티나에선 낙태권 관련 시위에 등장했다. 시녀들은 때로 정치인과 법률가들이 자리 잡은 의회의 방청석에 나타나 자리를 지켰다. 이들은 소설 속에 묘사된 대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 채 침묵했으나, 검은 양복의 남성들 사이에 채도 높은 빨간 의상만으로도 눈에 띄었다. 여성 문제, 특히 낙태 관련 이슈를 제기하는 데 있어서 ‘시녀 복장’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지난달 5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텔레비전 시리즈 ‘시녀 이야기’ 속 ‘시녀’ 복장을 한 시위대가 낙태권에 찬성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소설 <시녀 이야기> 속 아이 낳을 수 있는 여성은 ‘다리 둘 달린 자궁’이자 ‘아기를 담는 그릇’ 취급을 받고, 아이 낳을 수 없는 여성들은 ‘비여성’이라 불린다. 가임 여성은 워낙 적어 귀하게 여겨지지만, 그들은 인간이기에 귀한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귀하다. 여성의 출산 능력은 여성 개인의 행복이나 의지가 아니라, 국가의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간주된다. 일찌감치 애트우드는 ‘애 낳아서 애국하자’는 주장이 횡행하는 디스토피아 사회를 상상하고 경고했다. 33년이 지나 들려온 ‘출산주도성장’이란 해괴한 어휘엔 <시녀 이야기> 풍의 끔찍한 세계관이 깔려 있다. 김성태 의원의 제안이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젊은 세대에 대한 걱정에서 나온 것이라 애써 이해한다 하더라도, ‘출산주도성장’이란 발상에는 그 어떤 여성도 국가경쟁력이나 경제성장을 생각하며 아이를 낳지는 않는다는 당연한 상식이 빠져 있다.

가녀리고 존귀한 생명의 몸과 마음이 튼튼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즐겁고 보람있다. 부모의 단점과 장점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이와 함께 한 삶을 보내는 것은 우주의 순환을 체험하는 것처럼 경이로운 일이다. 젊은 여성과 남성들이 이 기쁨을 포기하지 않도록,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라의 일이다. 냉소적으로 말해, 젊은이들이 생명체의 근본 목적인 출산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회의 존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크다고 할 수 있나.

붉은 복장의 시녀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낙태권 찬성론자는 말했다. “아이는 그 자체로 선물이지만, 자유롭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이어야 합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건 온전히 부모의 선택과 기쁨을 출발선으로 삼아야 한다. 국가는 빠져달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와달라.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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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은 소란했다. 강은 곳곳에서 파헤쳐졌고, 노동자들은 곳곳에서 내쫓겼다. 남쪽 바닷가 도시에서는 크레인에 오른 이가 몇 달째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싸우고 있었다. ‘철회’를 외치는 이들의 싸움은 절박했기에 쉬 물러서지 않았다. 사람이든 건물이든 강이든 철거하는 데는 이골이 난 이들은 철회를 두려워했다. 그들은 잃을 게 많았다.

그해 곳곳에서 벌어진 싸움은 더는 잃을 게 없는 이들과 잃을 게 많은 이들의 싸움이었다. 그러니 당장 내쫓긴 처지가 아니더라도 길에 함께 나서야 했다. 언젠가는 잃을 게 많은 이들이 나를, 내 가족을, 내 친구를, 내 이웃을 벼랑 끝으로 내몰 테니까.

그 여름, 어린이책 작가들이 길에 나서 겨우 한 일은 해고노동자 가족들에게 책을 보내주는 거였다. 책 한 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얼마나 무용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거라도 해야 우리가 함께 서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들은 모아온 책에 책을 받을 아이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적고 간단히 인사말을 썼다. 그때 해고노동자 한 분이 이런 말을 해줬다.

쌍용자동차 최종식 사장이 13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마련된 쌍용차 해고노동자 故 김주중씨 등 30명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분향소에서 조문한 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가족에게 보내는 책은 주의를 기울여 주세요. 엄마나 아빠를 잃은 아이들이 있거든요.”

그의 말에 작가들은 모두 망연한 얼굴이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신문 기사를 보면서도 그가 남긴 가족은 생각하지 못했다는 작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나 아빠를 따라온 아이의 책에 서명해줄 때 으레 엄마와 함께 읽으라고 적었다는 작가는 자신이 서명한 책들을 다시 들춰봤다. 한 작가는 말했다. 우리가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겠냐고.

며칠 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전원 복직 기사를 보면서 그해 여름이 떠올랐다. 세상은 해고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되돌려준 것으로 끝났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빼앗긴 것은 일자리만이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아빠를, 엄마를, 가족을, 희망을 빼앗겼다. 그들의 깊은 아픔과 절망은 어떤 것으로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그 시간을 철회할 수 없다면, 이제라도 책임은 져야 한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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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고위층에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를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한다. 어원은 닭의 볏(noblesse)과 계란의 노른자위(oblige)인데, 닭의 사명은 볏을 내세우는 데 있지 않고 계란을 낳는 데 있음을 의미한다.

2007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설립한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기부자들의 업종 분석 통계(2015년 기준)에 의하면 기업인 45.8%, 익명 포함 기타직종 29.4%, 전문직 12.9%, 자영업 4.5%, 법인·단체임원 3.5% 순으로 나타났다. 또 유가족이 고인의 이름으로 유산 일부를 기부하는 아름다운 기부사례도 있다.

빌게이츠. 로이터 연합뉴스

반면, 우리나라의 지도층인 정치인의 기부문화 참여도는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낮다. 영국의 경우 1·2차 세계대전 중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명문학교인 이튼 칼리지 출신 2000명이 전사했고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들인 앤드루 왕자는 포클랜드 전쟁에 헬기 조종사로 참전하기도 했다. 또 미국 기업가인 빌게이츠는 올해 5000여억원을 저소득층 학생들의 교육비로 통 큰 기부를 했다. 그들은 “권한이 채권이라면 기부는 채무다”라는 인식을 가진 사회지도층으로서 아름다운 기부의무를 다했다.

주먹을 쥐고 집게손가락을 앞으로 내밀고 나머지 네 손가락을 가슴을 향해 모으면 권총모양의 손가락이 된다. 이를 빗대어 한 가지라도 먼저 주면 네 가지가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게 이른바 ‘권총의 법칙’이다. 청정한 일급수 정치문화의 젖줄인 정치후원금 기부를 유권자들로부터 바라기 전에 정치인들이 합법적인 방법으로 먼저 선행을 베푸는 사회지도층으로서의 진정한 나눔의 문화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심재훈 | 부산진구 초읍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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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남자 주인공은 구한말 노비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한다. 그가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어디서 왔느냐?(Where are you from?)”였다. 이방인인 그는 이 질문이 고통스럽다. 이런 종류의 질문은 ‘모르는 것을 묻는다’는 평범한 의미가 아니다. “여기는 내 땅인데, 너는 어디서 왔니”라는 뜻이다. 익숙한 논리다. 어린 시절 어깨동무를 하고 편을 갈라 주고받던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이 노래가 시작이었을까.

공부는 질문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혹은 공부하다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을 선생님에게 물어 도움을 요청하는 노동이다. 이 외의 모든 질문은 권력 행위다. 타인에 대한 물음은 호기심에서부터 신문(訊問), 힐난, 비난까지 다양하다. 묻는 자의 정체나 위치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말 한마디로도 묻는 자의 교양, 인격, 무지, 태도를 알 수 있다. “어쩌다 동성애자가 되었나요?” “자네는 어느 대학을 나왔나?” “왜 아직도 취직을 못했나?” “여자가 왜 이런 일을?” 이런 질문은 질문이 아니라 인권 침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우리는 수시로 이런 질문에 노출되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기도 한다. 나는 어디에, 상대는 어디에 ‘서’ 있는지, 내가 하는 질문의 의미는 무엇인지…. 이것이 평생의 화두여야 한다.

당연시되고 고착된 질문은 폭력이다. 가장 괴로운 질문은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일 것이다. 고문이 대표적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폭력적인 질문은, 가해자(피의자)에게 할 질문을 피해자에게 하는 경우다. 성폭력 범죄가 그것이다. 조사를 가장한 피해자 비난, 여론 재판…. 유아 성폭력이거나 가해자가 여러 명인 사건을 제외하곤(?) 피해자가 질문에 시달린다. 피해자는 목숨을 건 저항 여부나 거절이 얼마나 단호하고 절절했는지, 특히 자신이 얼마나 피해자다웠는지 최대한 증명해야 한다.

1991년부터 성폭력특별법이 제정, 개정되는 과정에 참여해온 나는 전 충남도지사 사건을 통해 법정에서는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7년이다. 게다가 올해 봄, 들불과도 같았던 미투 운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피해자의 동의와 저항에 관한 질문은 집요하다.

이제는 동의, 저항 여부 자체가 쟁점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가해자에게 질문하자. 절도나 사기사건, 즉 다른 형사사건의 피해자에게 성폭력 피해자만큼 질문하는가? 아니, 사건 발생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가? 일단, 법정은 가해 용의자에게 질문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궁금한 것이 너무 많고, 뭐든지 질문해도 된다는 권리의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내가 아는 가정폭력 피해자는 40년 동안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환갑에 이르러 이혼 소송 중이다. 처음에는 데이트 폭력으로 시작됐다. 주변에서는 모두 결혼하면 나아진다, 아들이 있으면 그만둘 것이다, 아이가 대학에 가면… 아이가 결혼하고 손자를 보면… 결국 그녀는 스무 살에 만난 한 남성에게 평생을 구타당했다.

문제는 “고쳐진다”는 통념을 수용한 피해 여성이 남편의 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결혼을 서두르는 등 상황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통념과 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왜 때린 사람과 결혼했느냐, 왜 경찰에 신고를 안 했느냐, 얼마든지 탈출할 수 있었는데 왜 이제야 이혼하려고 하느냐, 혹시 다른 이유(돈, 남자…)가 생긴 것은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피해 여성이 폭력적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당사자마다 다르고, 제3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해자는 이 질문에 대답할 의무가 없다.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사회운동은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이다. 성별 권력관계는 더욱 그렇다. 가해자에게 질문하는 반성폭력 운동을 제안한다.

우리는 가해자에게 물어야 한다. 왜 여성을 때렸습니까? 아내를 ‘교육시킨다’면서, 교육만 시키지 왜 죽였습니까? 안 때린다고 공증까지 했으면서 왜 또 때렸습니까? 술을 마셔서 때린 게 아니라 때리기 위해 술을 마신 거 아닌가요? 술을 마시고도 아내를 때리지 않는 남성이 훨씬 많습니다!

왜 비서에게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고 돈을 지불하지 않았습니까? 왜 안마를 요구했습니까? 왜 수시로 초과노동을 시켰습니까? 왜 해외 업무에 동반했습니까? 왜 평소엔 여성인권 운운했으면서, 이중적 태도를 보였습니까? 왜 자신의 성폭력 재판에 부인이 나왔죠? 본인이 생각하는 성폭력과 성관계, 사랑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피해자와 사귀지도 않았으면서 왜 불륜이라고 거짓말했습니까?

권력관계에서 발생한 폭력과 관련한 질문 내용은 그 자체로 가해자의 시각에서 구성한 것이다. 위력의 행사가 자연스럽다고 믿는 사회에서는 가해자의 행동이 궁금하지 않다. 대신 피해자의 대응이 의문시될 뿐이다. 피해와 피해 이후의 심문. 약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법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는다.

<정희진 |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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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역사적인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대기업 주요 인사들이 동행했다. 의미가 크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주는 메시지다. 한국이 북한 경제를 진심으로 도울 것이라는 의지를 직접 보였다. 동시에 대기업 경영자도 북한 지도부를 만나 핵문제 해결 의지를 눈으로 확인하는 자리다. 또 북한 경제를 현지에서 파악하는 중요한 기회다.

그런데 대북 제재가 있어 남북경협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대북 제재와 조화를 이루는 남북경협은 가능하다. 제재만으로는 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남북경협은 반드시 필요하다. 제재 속에서 최상의 남북경협 모델을 찾아야 한다. 

먼저, 유엔 제재가 북한에서 일체의 경제활동을 금지하는 건 아니다. 지금 평양에선 제13회 가을 평양 국제무역전이 열리고 있다. 많은 외국 기업들이 참여했다. 대북 제재 때문에 북한에서 일체 사업이 안된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방북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8일 평양에서 북한 리룡남 내각 부총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유엔 제재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된 경제활동을 금지한다. 그리고 북한에서의 외국 은행 영업을 금지한다. 그러나 북한의 ‘발전’을 위한 도로·철도 건설은 금지하지 않는다. 또한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데에 가장 기본적 산업인 농업에 대한 제재를 하지 않는다. 환경 보존을 위한 산림녹화 사업도 허용한다.

미국의 단독 제재에선 어떤가? 최근 북한산 석탄이 밀수된 사건에서 크게 염려했던 것이 한국의 은행이 관련되었나 하는 점이었다. 미국의 대북 제재에선, 은행이 북한산 석탄 거래인지 알고도 고의로 신용장 개설이나 국제 송금 등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했다면 국제 금융망에서 사실상 퇴출될 위기에 놓인다.

그러나 미국의 단독 제재는 한국 정부가 북한에서 사회간접자본 건설과 농림축산 협력을 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다. 민간이 산업체를 운영하는 것이 제재 대상이다. 미국 제재에서도 미국 정부의 공공정책은 일반적 허가 사항으로 승인해 놓았다.

대북 제재에서도 남북경협은 가능하다. 제재와 조화를 이루면서도 최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남북경협 모델을 찾아야 한다. 정부가 주도하는 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 건설과 농림축산 협력을 밀접하게 연계하여 북한의 주요 거점을 발전시키고 생활의 질을 높이는 지역개발 모델을 제안한다.

이 모델은 참여정부 시기에 북한의 북고성과 개성시 일대에서 진행한 농업개발 협력 사업을 뿌리로 한다. 당시 통일농수산사업단(이태헌 사무총장)이 정부 예산을 지원받아 진행한 이 남북경협은 한국농어촌공사, 농촌진흥청,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등 공공기관과 40개의 민간회사들이 함께했다. 사업은 식량 증산, 영농기반 확충, 농업기술 협력, 지역 소득원 개발의 네 가지 영역으로 진행했다. 그 백미가 2007년에 진행한 개성시 송도리 협동농장 관리위원회와의 협력사업이었다. 당시 벼 생산량이 ㏊당 2t에 못 미치던 것을 5t까지 끌어 올렸다. 송도리 협동농장원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그 성공은 인근 협동농장에도 알려졌고, 추가 협력을 요청받았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동쪽으로는 고성군, 서쪽으로는 개성과 해주 지역을 연결하는 남북 농업협력 벨트를 추진하는 결실이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참여정부의 북한 지역 개발 모델을 현대화해서 계승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새 남북경협 모델은 북한의 산업화 전망과 함께 간다. 도로와 철도가 새로 나는 북한 지역에 새로운 거점도시가 생긴다. 신도시의 지속가능한 삶의 질을 보장하도록 배후지 농촌이 함께 발전한다. 동시에 산림에서도 큰 산 중심이 아니라, 생활권 중심의 산림녹화가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현재 북한의 농업 인구는 800만명이지만 북한의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북한의 농촌에서 대량의 노동력이 도시로 이주할 것이다. 예를 들어 개성공단이 다시 가동하여 100만명의 근로자 공단으로 발전할 때, 지역 농업이 그들을 먹일 식량을 생산하는 농업구조 개선이 따라야 한다.

새 남북경협 모델은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김정은 위원장이 야심차게 발표한 중앙급 특구와 지방급 개발구 개발을 실현하는 의미가 크다. 지속가능한 북한 발전과 잘 맞는다.

정부 주도 사회간접자본 건설과 농림축산 협력을 결합한 북한 지역개발 모델은 대북 제재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인프라는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농업은 급속한 산업화를 감당할 구조 개선을 이룩할 거다. 지역 거점도시에 사는 주민의 삶의 질은 높아질 거다. 대북 제재가 있어 남북경협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은 틀렸다.

<송기호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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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장관님과 맞닿을 길이 없어 공개 청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해 정부예산에 예술인복지금고 100억원이 책정되었다는 소식에 너무 기뻤습니다. 예술인이 주인의식을 갖고 요구할 수 있는 금고가 생긴 것이라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예술인들은 창작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직장이 없는 베짱이 취급을 받아서 재직증명서도 없고, 고용보험도 없기에 제도권 안에서 실시되는 모든 서비스의 대상자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되었을 때 장애예술인들은 이제야 숨통이 트이겠구나 싶었지만 예술인증명제도라는 높은 벽이 가로막혀 있어서 가슴을 치며 돌아서야 했습니다. 우리들만의 법을 만들어야겠다 결심하고, 장애예술인지원법률을 2016년 11월에 발의하여 2017년 11월에 국회 교문위에서 공청회를 열었지만 그때 의원님들이 하나같이 장애예술인이 몇 명이며, 장애예술인 창작 활동의 수준을 신뢰할 수 없다는 지적을 하시어 피눈물을 흘리며 공청회장을 나왔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장애인예술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분들이니 평가 또한 야박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부터 장애예술인 창작 수준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일정 기준을 갖춘 장애예술인의 경력을 제시한 ‘장애예술인수첩’을 만들었습니다. 수첩에는 343명의 개인과 82개 장애인예술 단체에 대한 예술 활동이 기록돼 있는데 수첩 등재 장애예술인들을 분석하여 아주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장애예술인의 데뷔 방식은 공모입상이 62%로 정상적인 양태를 보였고, 비장애인들과 경쟁하는 일반공모도 56%나 되어 실력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대학졸업 학력 장애예술인이 50.4%로 2015년 예술인실태조사에 나타난 예술인의 대졸 학력 58.0%와 별 차이 없다는 것으로 설명이 될 듯합니다.

이제 장애예술인 인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박사학위 논문에 의하면 장애예술인을 적게는 1만여명 많게는 5만여명이라고 추산하였는데, 활동하고 있는 장애예술인은 1만여명으로 보고 있습니다.

수첩을 만들기 위해 적어도 1000여명과 통화를 하였는데 한동안 언론에서 주목을 받던 장애예술인들이 먹고살아야 하기에 활동을 접었다고 하면서 기회가 되면 다시 무대에 서고 싶다며 예술인으로서의 삶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바네스는 소수자 예술 활동이 주류 사회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변화시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장애예술인들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희한테도 기회를 주십시오. 343명 모두 예술인증명제도로 예술인이라는 자존감을 갖게 해주십시오. 우리 장애예술인들에게도 발표의 기회를 주십시오. 그것이 바로 장애예술인의 일자리 창출입니다.

<방귀희 |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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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집권이든, 연속집권이든 정권을 오래 갖고 싶어 하는 건 정당의 속성이겠다. 특히 집권당이 ‘잘 나갈 때’ 정권연장의 꿈은 구체성을 띠고 나타난다. ‘지리멸렬한 야당’은 그 꿈을 북돋는 자양이다.

박근혜 정권 초기 등등하던 집권당(새누리당)의 홍문종 사무총장은 “민주당 하는 꼴을 보니 저들에게 어떻게 나라를 맡기겠는가. 우리가 20년은 더 집권해야 한다”(2013년 10월)고 말했다. 대선 패배의 수렁에 빠져 있는 야당을 대놓고 ‘모욕’하며 장기집권론을 질렀다. 야당인 민주당은 격앙했다. “국민을 무지몽매하게 생각하는 데서 나오는 망상이며, 장기집권·유신독재의 부활 획책”이라고 반발했다. 당시 10년, 20년 집권을 운위하던 박근혜 정권의 처참한 몰락은 목도한 대로다. 새누리당은 이름까지 바꿔야 했다.

분명 환경은 다르지만, 이번에는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장기집권론을 외치고 있다. ‘20년 집권’을 기치로 여당 대표에 오른 이해찬 대표가 깃발을 들었다. 여의도 최고의 전략통으로 꼽히는 이 대표가 장기집권론의 ‘역풍’을 모를 리 없을 터이다. 명분도 분명하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10년으로 정책이 뿌리 내리지 못하고 불과 2, 3년 만에 뽑히는 걸 경험했다. 20년은 집권해야 정책이 뿌리 내려 정착이 된다.” 지지층에 보내는 메시지가 강렬하다. 이번에도 야당은 펄펄 뛴다. 자유한국당은 “국민에 대한 모욕이자, 영구집권의 길로 가고자 하는 야욕”이라고 비난한다. 여당발 장기집권론에 대한 야당의 반발 메뉴는 이리 닮았다.

20년도 모자랐는지 이번에는 ‘50년 집권론’이 나왔다. 이 대표는 민주당 창당 기념식에서 “앞으로 민주당이 대통령 열 분은 더 당선시켜야 한다”고 했다. 전략이야 따로 있겠지만, 이렇게 강도를 높여가며 장기집권을 강조·반복하는 것은, 유권자에 대한 무시로 비칠 수 있다. 정권의 연속집권은 국정의 결과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을 통해 가름되는 것이지, 구호와 플랜으로 이뤄질 게 아니다. 20년 집권을 말하기에 앞서 5년 더 재집권을 위해서라도 경제와 민생, 개혁 등에서 실력을 보이고 성취를 내는 게 먼저다. “골프하고 정치(선거)는 고개를 드는 순간 망한다”(박지원 의원)고 했다. 권력에 자만이 스며들 때가 가장 위험하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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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포용국가’를 내걸었다. 포용국가는 사회정책의 국가비전이다. ‘모두를 위한 나라, 다 함께 잘 사는 포용국가’가 이 비전의 이름이다. 포용국가의 목표는 세 가지다.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을 추구하고, 배제와 독식이 아니라 공존과 상생을 도모하며, 미래를 향해 혁신하는 사회를 일구겠다는 것이다.

포용국가는 3대 비전으로 이뤄져 있다. ‘사회통합 강화’ ‘사회적 지속가능성 확보’ ‘사회혁신 능력 배양’이 그것이다. 이 비전들은 다시 각 3개씩의 세부 정책 목표를 갖고 있다. 이른바 ‘9대 전략’이다. 정부는 포용국가의 실현을 위해 ‘국민 전 생애 기본생활보장 3개년 계획’을 마련하고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포용국가론에서 내 시선을 끈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이다. 민주화 시대가 열린 이후 어느 정부든 집권 5년의 시간을 고려한 국정 운영 로드맵을 마련했다. 그 로드맵은 대개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 먼저 국가비전에 걸맞은 정책을 추진하고, 이어 이를 통해 도약을 모색한 다음, 마지막으로 안정적으로 국정을 마무리하려는 장기 계획이 그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집권 2년에 제시하는 비전과 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청사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앞선 이명박 정부는 집권 2년에 ‘친서민 중도실용’을, 박근혜 정부는 ‘통일 대박’과 ‘규제 개혁’을 내걸었다. 현재 시점에서 친서민 중도실용, 통일 대박, 규제 개혁이 성공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주목할 건 정부의 입장에서 집권 첫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려 했다는 점이다.

돌아보면 지난 1년여 동안 문재인 정부가 주력했던 세 과제는 적폐 청산,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한반도 평화 정착이었다. 적폐 청산이 낡은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면, 나머지 두 과제는 국정의 양대 영역인 경제정책과 대외정책에 관한 것이다. 집권 중반기로 향해가는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과제에 더하여 사회 분야 비전으로서의 포용국가를 내놓은 셈이다.

둘째는 포용국가를 이루기 위한 조건이다. 앞서 말했듯이 포용국가는 9대 전략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소득 불평등 완화를 위한 소득보장제도 개혁, 공정사회를 위한 기회와 권한의 공평한 배분, 사회통합을 위한 지역균형발전 추진이 ‘사회통합 강화’를 위한 3대 전략이라면, 저출산·고령사회 대비 능동적 사회시스템 구축,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신뢰성 강화 및 일자리 창출, 일상생활의 안전 보장과 생명의 존중이 ‘사회적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3대 전략이다. 그리고 ‘사회혁신 능력 배양’을 위한 3대 전략으로는 인적 자본의 창의성·다양성 증진, 성인기 인적역량 강화와 사람 중심의 일터 혁신, 경제-일자리 선순환을 위한 고용안전망 구축이 제시된다.

2018남북정상회담평양’의 첫 날인 18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이 환영나온 평양 시민들에게 손흔들어 답례하는 장면이 이날 서울 중구 DDP프레스센터에 생중계 되고 있다. 연합뉴스

9대 전략은 현재 우리 사회가 마주한 국가적 과제들인 일자리 창출, 불평등 해소, 인구절벽 대응 등을 적절히 고려하고 있다. 거시적 관점에서 포용이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시대적 가치임은 분명하다.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도 포용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오늘날 서구사회에서 평등은 ‘배제’에 맞서는 ‘포용’으로 재정의돼야 하고, 정부의 일차적 과제는 ‘찢겨진 사회’를 ‘포용적 공동체’로 재구조화하는 데 있다고 역설했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포용국가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조건이다. 포용국가를 성취하기 위해선 정책 구현을 위한 법적 제도의 정비 및 구축이 요구되고, 이를 위해선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문제는 정치사회의 현실이다. 현재 정치사회는 국민을 둘로 나누는 능력은 탁월해도 이견을 조정하고 타협을 도출하는 역량은 허약하다. 더욱이 여소야대 상황은 새로운 법적 제도를 완비하는 데 작지 않은 어려움을 안겨준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포용적 정치의 중요성이다. 지난 1년여의 국정 운영을 돌아보면 역시 ‘문제는 경제’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쟁에서 볼 수 있듯, 정부에 이른바 ‘먹고사니즘’만큼 더 중요한 대내적 과제는 없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에서 앞으로 어떤 성과를 낼 것인지에 문재인 정부의 성패가 달려 있으며, 이 과정에선 무엇보다 국회와의 협치가 필수조건이다.

저성장과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포용적 성장과 포용적 복지를 일궈야 한다. 이를 위해선 경제학자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이 주장한 바 있는 포용적 정치를 정부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문제는 경제’인 만큼 ‘문제는 역시 정치’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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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영화 <서치>를 보기로 한 날, 낡아 고장 난 휴대폰을 먼저 바꾸기로 했다가 기기 변경 중에 휴대폰에 들어 있는 데이터를 잃어버렸다. 즉흥적인 결정이라 백업을 미처 하지 못해서 변경할 기기만 골라두고 다음 날 다시 올까 잠깐 망설였으나 아무 문제없이 데이터를 모두 옮길 수 있다는 호언장담을 믿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사라진 데이터는, 모든 사라진 것들이 그렇듯 그중 가장 중요한 데이터이다. 물론 나는 그게 얼마나 중요한 데이터인 줄을 사라지고 난 뒤에야 깨달았다. 그래서 그날은 저녁 내내 앓았다.

<서치>는 미국 한인 가정의 가장 데이빗 킴(존 조)이 실종된 딸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딸이 운전면허증을 위조했다는 경찰의 소식을 접한 데이빗이 위조 면허증을 보고 있다(오른쪽). 소니픽처스 제공

영화를 본 건 이틀이 지나서였다. 데이터 복구센터에 맡긴 저장장치마저 복구 불가라는 소식을 듣던 날, 오기로라도 그 영화를 보아야 할 것 같았다. <서치>가 인터넷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던가. 실종된 딸을 데이터로 찾는 줄거리라던가. 내가 잃어버린 건 딸이 아니라 데이터였지만, 어째 내 심정에 맞장구라도 쳐줄 것 같아서 아이와 다시 극장으로 향했다. 마침 아이도 SNS에 부쩍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나이라 꼭 같이 봐야 할 것 같았다. (이후의 글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다.) 

<서치>는 알려진 간략한 줄거리로만 언급하면 아내를 잃고 혼자 딸을 키우는 아버지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실종된 딸을 찾는 이야기다. 딸이 실종된 후에야 자신의 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버지가 일차적으로 검색한 데이터는 딸의 수많은 SNS 계정들이다. 그 계정들을 통해 비로소 딸의 현실과 직면한 아버지가 비통해할 때, 나는 아이에게 닿을 길 없는 부모의 심정에 빙의 수준으로 공감을 했다. 그 안타까움이라니, 눈물과 콧물을 멈출 수가 없는데, 바로 옆에 앉아 영화를 보던, 인터넷과 SNS의 세계에 최근에야 발을 들여놓은 아이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인터넷 계정들이 그리 허술하게 털릴 수가 있다니!” 그리하여 영화의 감동에 기대, 내가 너를 감시하는 데 쓰지는 않을 터이니 만일을 대비해 네 계정의 비밀번호와 친구들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이야기는 차마 하지도 못했다. 아니다, 실은 했다. 아이는 못 들은 척했고, 나는 어쩐지 며느리에게 현관 비밀번호를 물어본 시어머니가 된 기분이라 스스로 무안해서 다 농담이었던 것처럼 허풍을 떨었다.

아이가 처음 SNS를 시작했을 때, 아이의 휴대폰을 엿본 적이 있다. 아이에게 쉽게 들켰다. 기기 작동법이 익숙하지 않아 훔쳐 본 내용도 없는데 검색 기록만 남았다. 기분 나빠하는 아이 앞에서 억울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마음으로 변명과 사과를 거듭한 이후로는 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해서 들여다보는 게 오히려 아이를 지레짐작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 같았다. 오해만 쌓일 게 뻔했다. 대신 자신의 계정은 안 보여주면서 엄마의 계정 속 내용은 궁금해하는 아이에게 지금은 쓰지 않는 오래된 나의 SNS 계정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육아일기처럼 쓰던 것들이니 내 것이되 아이 자신이 기억 못하는 아이의 일기이기도 하다. 내가 보일 수 있는 만큼을 보여주고, 아이가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보자는 생각을 했다. 내가 보이는 진심이 많을수록 아이도 나와 공유하는 진심이 많아질 거라는 기대도 물론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 같은 유혹에 시달린 부모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자녀들은 부모가 자신의 세계를 쉽게 엿보았다는 사실만으로 영화 자체가 악몽이었다는 평도 있다. 영화가 말한 데이터는 그러나 내면의 세계가 아니다. 그러니 세계를 공유한다고 해서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는 줄곧 인터넷을 검색하여 모든 사건의 실마리를 풀고 해결하지만, 그러나 영화의 중요한 갈등을 풀어준 건 온라인 속 정보가 아니라 동생이 전해준 한마디의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딸이 삼촌인 동생에게 직접 드러낸 실재하는 말이기도 했다. 영화는 인터넷에 갇힌 세상을 그리지만, 그러나 진심은, 진실은 그 바깥에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고루한 진실이지만 그 진실을 믿는다. 휴대폰의 데이터는 복구할 수 없지만, 그날의 기억이 내 안에 여전히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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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3차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시작됐다. 두 정상은 18일 평양국제비행장 환영행사와 정상회담, 공연관람, 만찬 순으로 첫날 일정을 소화하며 비핵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 두 정상은 김 위원장의 집무실이 있는 조선노동당 본부청사에서 2시간 동안 정상회담을 했다. 문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8000만 겨레에 한가위 선물로 풍성한 결과를 남기는 회담이 되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김 위원장도 “북·미 (정상) 상봉의 역사적 만남은 문 대통령의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이로 인해 주변 지역 정세가 안정되고 더 진전된 결과가 예상된다”고 화답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역사적 회담이 순조롭게 출발한 것이다.

무지개차에 탑승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8일 평양 순안국제공항을 출발해 백화원 초대소로 이동하며 북한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서성일기자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은 의전과 행사 내용, 시민의 표정 등 모든 면에서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다. 북한군 의장대는 예포와 분열 의식 등 최상의 예우로 문 대통령을 맞았다. 연도에 선 평양시민들 손에는 인공기와 더불어 한반도기가 들려 있었다. 고층아파트가 들어선 여명거리 등 평양 시내 모습과 정상들의 활동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로 중계됐다. 시민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있었고, 거리는 경제발전에 대한 의지가 넘쳤다. 김정숙·리설주 두 퍼스트레이디들은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별도 행사를 치렀다. 김 위원장이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연 것도, 김 위원장 내외가 공항에 영접을 나온 것도 처음이다. 북한이 정상국가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두 정상이 첫날부터 바로 회담에 들어간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세번의 만남을 통해 형성된 친밀감이 형식을 뛰어넘은 밀도있는 협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회담 결과에 대한 상당한 기대를 갖게 한다. 두 정상은 이날 비핵화와 남북관계, 군사 긴장완화 등 3가지 주요 의제 등 현안을 논의했다. 19일에는 남북 군사당국이 실무적으로 협의한 군사긴장 완화 방안에 최종합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예정대로 진행되면 안정적인 남북관계와 항구적 평화로 가는 결정적 전기가 마련된다. 군사 긴장 해소가 각 분야의 남북 간 협력으로 확대될 경우 한반도 평화 기조는 불가역적인 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나아가 북한에 대한 제재가 풀려 남북 경협이 진행되면 명실공히 남북이 공동번영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6·12 북·미 정상회담 후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석달째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두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반드시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이번 회담에서 그 자신의 목소리로 비핵화 의지와 실천 방안을 밝힐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은 방북 직전 서울공항에서 “이번 방북으로 북·미대화가 재개되기만 한다면 그것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의 중재 노력이 김 위원장의 호응과 제2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계속 이어져 한반도 비핵화라는 결실로 귀결되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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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들이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는 ‘은산분리’ 규제를 대폭 완화한 인터넷전문은행규제특례법안을 처리하기로 지난 17일 합의했다. 여야가 합의한 인터넷전문은행법안의 골자는 산업자본의 인터넷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현행 의결권 있는 지분 4%에서 34%로 높이는 것이다. 다만 시행령에 자산 10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재벌)의 진입을 막고, 카카오와 KT처럼 정보통신기술(ICT)업 자산 비중이 50% 이상인 기업만 허용한다는 규정을 담기로 했다.

이에 진보진영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재벌은행 탄생의 길을 열어준 것이라는 반발이 나온다. 시행령은 정부가 국회 동의 없이 언제든지 변경할 수 있고, ICT 주력 기업도 재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은산분리 원칙은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가 되면 발생할 부작용을 막기 위한 것이다. 시민들의 예금으로 조성된 막대한 은행 자금이 재벌 뜻대로 운용된다면 자금배분의 왜곡과 부실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재벌이 은행의 건전한 운용은 뒷전이고 몸값만 높여 매각하려는 경영을 한다면 금융시장은 물론 경제 전반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이에 민주당 지도부는 인터넷전문은행법에 금융관계법과 공정거래법, 조세범처벌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자에 대해 대주주 자격을 제한하도록 명시해 부도덕한 산업자본의 진입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현행 은행 대주주 자격요건보다 강화된 내용이다. 또한 은행법의 대주주 신용공여 한도 25% 규정을 인터넷전문은행법에서는 전면 금지하는 등 재벌의 사금고화를 막기 위한 장치도 강화했다는 입장이다.

인터넷전문은행법은 문재인 대통령의 규제개혁 1호 법안이다. 문 대통령이 대선공약 위배라는 비판을 무릅쓰며 이를 추진한 것은 자본확충과 책임경영 강화로 인터넷은행의 경쟁력을 높여 금융시장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법안이 통과된다면 이런 취지를 살리면서 재벌 사금고화는 차단하는 확실한 장치가 있어야 한다. 여야가 합의한 시행령이 제대로 마련돼야 하는 건 물론이고, 금융감독당국은 법에 명시된 대주주 자격요건과 편법적인 경영 여부 등을 철저하게 심사·감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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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18일 ‘가계동향조사 통합작성방안’을 발표했다. 가계동향조사란 가계의 소득과 지출을 조사해 살림살이 현황 및 변화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번 개편안의 골자는 가계동향조사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전용표본’을 만들어 소득부문과 지출부문을 통합조사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통해 표본응답률을 높이고 시계열 비교를 가능하게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통합조사결과는 2020년 1분기부터 발표하기로 했다. 통계청은 가계의 현실을 충실히 반영한 동향조사를 통해 통계청장 교체까지 빚어졌던 ‘부실 표본조사’ 논란을 잠재우겠다는 것이다.

18일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강창익 사회통계국장(왼쪽) 등 통계청 직원들이 '신뢰 논란'을 빚었던 가계동향조사 개편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분기 가계소득조사 결과와 관련돼 불거진 통계청장의 경질 논란은 문재인 정부에 오점을 남겼다. 정부는 ‘오비이락’격이라면서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통계청장이 교체된 것을 최악으로 드러난 소득조사결과와 연관짓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 사건으로 정부가 내놓는 통계를 시민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만든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가통계는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고 평가하는 데 기준이 돼야 한다. 기초적인 통계마저 의심을 받으면 국가정책의 신뢰성은 무너진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어선 안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개편안에 국가의 다양한 자료를 충실히 반영했는지 의문이다. 국세청이 관리하고 있는 소득통계자료를 활용하면 훨씬 더 정확한 통계를 산출할 수 있다. 그런데 개편안에는 정부 부처 간 협력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통계청이 가지고 있는 원자료의 개방을 통해 완성도를 높이려는 시도가 없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통계청은 조사방식을 면접에서 다시 가계부 방식으로 전환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오히려 정확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통계청은 개편안을 다음달 국가통계위원회에 상정한 뒤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각계의 다양한 의견들을 모으고 논의해야 한다. 통계의 생명은 신뢰성에 있다. 조작된 통계는 구호나 선전문에 불과하다. 신임 강신욱 통계청장은 “좋은 통계로 경제에 이바지하겠다”고 말했다. 좋은 통계는 누군가의 입맛에 맞는 통계가 아니라 사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통계여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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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여러분들의 혈세와 등록금으로 운영되는 대학의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십사 하는 마음에서 씁니다. 고교 교육을 망치고 불평등을 생산하는 기지처럼 됐다는 한국 대학도 스스로 개혁할 의지나 힘이 부족합니다. 송구스럽습니다. 

한국 대학들이 말기 질환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은 지는 벌써 10년이 넘은 듯합니다. 오래전부터 진작 필요했던 것은 실천이고 조직이요, 또 실제로 적지 않은 분들이 양심과 밥벌이를 걸고 재단과 또 ‘이명박근혜’ 정권과 싸우기도 했습니다. 구체적인 진단도 처방도 거의 나와 있는데, 교수들 자신의 보수성과 안일함, 또 사학재단과 기득권의 여전한 강고함 때문에 어둡습니다. 또 자칭 ‘촛불혁명정부’ 아래에서 나아진 게 아무것도 없어서 많은 이들이 김상곤 교육부총리와 문재인 정부 자체에 실망한다 하는 거겠지요. 사학법·고등교육법의 개정, 공영형 사립대, 국립대 네트워크, 대학 비정규직 철폐, 총장 직선제 도입 등 대학 민주주의와 공공성뿐 아니라 국제적 경쟁력(또는 탁월성)을 위해서도 실로 많은 과제가 있지만, 오늘은 대학평가 문제에 대해서만 말씀드릴까 합니다.

지난주에 또 중앙일보가 대학평가 결과라는 것을 발표했던데요, 기사를 보니 ‘대학 적폐’의 핵심 중 하나가 바로 이 대학평가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습니다. 한국의 대학평가는 하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주도합니다. 평가를 통해 대학을 ‘호갱’으로 만들어 잇속을 차리고, 대학서열화로 사회 전체의 줄세우기를 획책합니다. 진정한 학문과 교육의 관점은 단 1도 관련이 없는 그들 식의 학벌 계급투쟁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대학들은 그 권세와 언어폭력이 두려워 거부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런 대학평가의 속내는 허당이고 실로 표피적입니다. 이번에도 보니 대학평가 관련 기사들에는 ‘가짜뉴스’에 가깝다 해도 될 게 적지 않습디다. 기본 사실관계조차 틀린 것도 여러가진데, 근본적으로 신문사 대학평가에 사용되는 지표가 의심스럽고 부실합니다. 예컨대 가장 중요한 지표의 하나인 교수의 1인당 발표 논문 수 같은 것이 결코 신뢰할 만한 게 아닙니다. (재)임용·승진 등을 미끼로 삼아 대학당국들이 휘둘러댄 거센 채찍과 당근 때문에, 지난 10여년 사이 ‘쪼개기’ 등 교수들의 논문 양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만약 1명의 인문사회과학 쪽 교수가 1년에 (분야별 차이는 있죠) 4편 이상의 단독 저술 논문을 생산했다면, 그건 비정상적인 압력과 불안·초조 상태에서 쓰인 것일 겁니다. 물론 그 논문들의 질도 별로 믿을 것이 못 되겠죠. 국제화 지표 따위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이제는 외려 해로운 것들입니다. 교육부·과기정통부 합동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와셋 같은 해외 ‘가짜’ 학회에 참가했던 교수·연구자는 1317명(5년간)입니다. 그들은 왜 멀리 비행기를 타고 그런 데 논문을 발표하러 갔을까요?

한편 중앙일보 평가에는 학과를 등급 매긴 것도 포함돼 있습니다. 인문·사회과학 분야는 소위 주요 대학들에서도 학부에서 폐과·폐강 현상이 이어지고 대학원이 ‘정원 미달’ 상태인지 오래됐습니다. 그런데 등급 평가라니 도토리 키재기 같은 일입니다만, 이번에 평가를 받은 학과들 중에는 일부 교수들의 학생 인권 침해, 표절, 성폭력 문제 등으로 풍비박산·아비규환이 된 곳들이 있습니다. 그 학과들과 일부 문제 교수들에 대한 대학당국의 처리를 보면 ‘아, 정말 대학은 갈 데까지 갔구나’ 하는 탄식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러나 대학평가에는 그런 소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럴싸하게 만든 정량지표와 허장성세 ‘몇 등’은 이제 대학의 참담한 현실을 은폐하고 더 확대합니다. 대학이 제정신을 차려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는 데 기여하기를 바라는 분들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대학평가에 눈을 주시지 말기 부탁합니다. 내가 나온, 또 자식이 다니는 대학이 그런 평가에서 몇 등이더라는 ‘부심’을 갖는 분들은 설마 여기는 없겠지요?

사실 이미 교수협의체나 고려대 총학을 위시한 학생들이 신문사 대학평가를 거부한다는 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은 중앙일보 평가를 거부한 대신 해당 분야 외국 학자들로 패널을 만들어 제대로 된 자체 정성평가를 받은 적이 있답니다. 진짜 교육과 학문의 발전이 목적이라면 그런 전문적이면서도 공공적인 평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대학들이 마지못해 신문사 대학평가에 응하거나 ‘우리가 몇 등’이라며 나대더라도 한편 갑질에 못 이긴 탓이고 다른 한편 용렬한 학벌주의자들과 사학재단이, ‘타자의 인정’에 주린 배를 채우고 또 학내권력의 도구로 삼기 위해 하는 일이라는 점을 아시고 꾸짖어주시기 바랍니다. 그 때문에 비정규직 교수들도 희생당하고 우리 많은 젊은 학생들까지 병들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1960년을 묻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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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토스카나 지방에 시에나라는 도시가 있다. 1995년 도시 전체가 유엔에서 세계문화유적으로 지정될 정도로 토스카나 지역의 보석으로 불린다. 인구 5만의 작은 도시이지만 시청을 중심으로 펼쳐진 광장은 연간 수십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명소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특히 시청 내부의 벽화는 14세기 서양 미술사 그 자체라 해도 좋을 정도의 걸작들을 보여준다. 그 가운데에서도 ‘9인의 정부’방이 흥미롭다. 한때 시에나 공화국을 통치했던 정부 이름을 인용한 이 방에 ‘좋은 정부’ ‘나쁜 정부’ 알레고리가 있다. 정의, 절제, 화합 등은 좋은 정부의 덕목으로, 폭정, 탐욕, 허영의 사회를 만드는 건 나쁜 정부의 모습으로 의인화했다. 그리고 ‘좋은 정부의 영향’을 활기찬 도심과 평화로운 농촌 모습으로 시각화했다.

엊그제 농민들이 여의도에서 집회를 하며 ‘밥 한 공기 가격 300원’ 보장을 주장했다. 올해는 향후 5년간 적용할 ‘쌀 목표가격’을 결정하는 해이다. 쌀 목표가격은 농가 최저소득 보장을 위해 지급하는 ‘변동직불금’의 기준금액으로, 5년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기준가격에 따라 결정된다. 농민들에게는 ‘5년간의 연봉’이 결정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현재의 80㎏ 기준 18만8000원은 2013년부터 적용된 가격이다. 농민들은 2017년 산지 쌀 가격이 1998년과 같다며, ‘정권이 4번 바뀌는 동안 밥 한 공기에 200원을 받으며 버텼다. 이제 한 공기 쌀값을 300원으로 올려달라’고 호소한다. 농민들의 주장대로라면 80㎏ 기준으로 24만원 정도다. 지난 13년간의 물가 및 생산비 상승률을 반영했다면 올해 그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농업은 매우 혼란스럽다. 쌀값만 문제가 아니다. 농업생산인구 감소로 농업·농촌의 지속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위기 극복을 위한 백화제방의 처방이 제시되지만 충분한 논의와 국민적 합의 과정은 더디다. 워낙 누적된 문제가 많고, 사회·경제적 구조와 연계된 복잡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기가 맞는지, 위기라면 어떤 위기인지,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한 실태 파악이 먼저다.

특히 농업의 근간인 농지이용실태와 전업농가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 산업화와 개발시대를 거치며 많은 농지가 훼손되고 변용되었다. 또 농촌에 거주하는 이 모두가 농업에 종사하거나 전업 농민인 것도 아니다. 축산업의 빠른 성장과 농업생산의 집약화로 환경이 악화하고, 농가의 농업외소득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는 등 농가소득구조가 바뀌고 있다.

농가의 양극화도 문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00년 이후 대농과 영세농이 증가하고 중농그룹의 비중은 크게 줄고 있다. 농축산물 판매액 기준으로는 연 3000만원 이상 농가와 500만원 미만 농가가 늘고, 나머지 구간은 줄었다. 가뜩이나 기본소득이 낮은 구조인데 그 내에서 다시 양극화가 일어나는 중이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어느 나라나 농업은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고, 농촌은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정보통신기술(ICT)과 인공지능 기술로 대변되는 현대사회에서도 농업·농촌의 역할은 작지 않다. 국민건강, 식량주권, 국토환경보전과 유지, 공동체의 전통과 역사성 등 사회문화적, 경제적 역할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농업정책은 개발연대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 아직도 생산성을 절대시하는 농업정책 모델이 작동 중이다.

농산물 공급이 부족하고 소비가 단순했던 시절 ‘산업’으로서의 농업정책의 타당성은 이미 약화되었다. 경쟁력 있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산업’을 농업정책의 유일한 비전으로 설정하는 한 지금의 복잡한 농업·농촌·농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것은 199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지속한 농업구조조정의 미미한 성과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돈만 버는 농업에서 지속 가능한 농업으로의 농정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농업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농민-국민 사이에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정부 중심으로 중앙에서 아래로 관철하는 방식으로 될 일이 아니다.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금 우리 농업의 현실은 한국 자본주의 전개과정과 떼어 생각할 수 없다. 한국 농업은 지난 고도성장과정에서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며 버텨왔다. 그에 비해 대기업은 큰 혜택을 입었다. 따라서 대기업은 농업·농민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 2017년부터 조성하고 있는 농어촌 기금이 있다. 농어촌 개발 및 활성화, 농어촌 주민복지, 농수산물 생산·유통·판매 등에 사용할 기금이다. 1년에 1000억원씩, 10년간 총 1조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현재 출연금액은 475억원으로 목표액에 턱없이 모자란다. 그런데 기금 출연처를 보면 공공기관이 372억7763만원으로 약 98.6%를 차지하고, 대기업은 4억1090만원으로 전체의 1.1%에 불과하다. 과거 오랫동안 수혜를 본 수출 대기업들이 정작 기금 출연에는 인색하다는 것은 기금 조성 목적을 생각해 볼 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매년 가을추수가 끝나면 농민들은 또 다른 농사를 지으러 서울에 모인다. 농민 스스로 ‘아스팔트 농사’라 말하는 시위를 하기 위해서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되지만 그들은 ‘아스팔트 농사’를 그렇게 매해 한다. 정부와 국회는 물론 국민에게 ‘우리도 있다고, 관심을 가져달라’는 절박한 소리로 들린다. 시에나 시청 벽화의 ‘좋은 정부’ 덕목은 ‘좋은 국민’의 덕목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약자나 소외계층을 보듬는 일은 정부의 역할도 크지만 국민의 관심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농업은 국방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배워왔다. 그것은 세상이 빛의 속도로 바뀌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2007년에 일어난 세계자원전쟁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정부와 국민 모두가 농업, 농민, 그리고 농촌의 어려운 현실에 배전의 관심을 갖도록 하자.

<정운찬 |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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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대작사건이 대법원까지 가게 됐다. 2016년 무명화가 송모씨가 2009년부터 조영남의 조수로 수년간 그림을 대신 그렸다고 폭로하자 검찰과 작품을 구매한 컬렉터가 조영남을 사기 혐의로 고소한 사건이다.

사건의 핵심은 조영남이 조수를 고용한 이유다. 검찰은 (미술)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상품 거래의 맥락에서 그가 조수를 왜 썼는지, 그것이 합당한지를 판단하고자 했고, 미술계는 미술사적 맥락에서 그가 조수를 고용한 이유와 그 합리성 혹은 불합리성을 가늠하려 했다. 그렇지만 어떤 맥락에서 판단하더라도, 그리고 그 결론이 조영남에게 책임이 있다고 내려지더라도 그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법적으로 처벌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가수 조영남. 연합뉴스

미술시장에서 작품이 거래될 때 컬렉터들은 작품 제작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조영남이 이를 어겼으므로 그를 사법적으로 처벌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사실 고지 의무는 작품 판매를 중개한 갤러리와 화랑에도 있다. 따라서 상품 거래의 측면에서 그를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가능은 하지만, 결코 조영남을 주범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

조영남을 변호한 진중권은 그의 작품이 개념미술이라고 주장하며, 개념미술은 ‘개념’을 최상위에 두어 작품 제작을 타인에게 맡기기도 하므로 그에게 법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조수를 고용해 작품을 ‘대량생산’하는 앤디 워홀(워홀의 팝아트 역시 개념미술에 포함된다)의 작품 제작 방식과 조영남의 것을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나 워홀이 조수에게 작품 제작을 맡긴 것은 예술작품의 유일성, 원본성이 예술과 예술가를 신화화·신격화하는 것을 비판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워홀은 미술계를 비판하려는 의도(개념)를 전달하기 위해 조수 고용과 대리 작품 제작이라는 방식을 택했다. 즉 조수 고용과 작품 대리 제작은 개념의 일환이었다. 워홀과 조영남의 경우를 비교한다면, 조영남이 화투를 그렸는데, 그가 왜 화투를 차용했는지, 화투를 그리는 것과 조수를 쓰는 것이 어떤 연관을 가지며 궁극적으로 조영남이 이 과정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를 비교해야 한다. 개념미술의 개념은 이 모든 것들의 총체다. 화투 그 자체는 개념미술의 개념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단순히 조수에게 “화투를 그리라”고 지시한 것을 개념미술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다.

또한 진중권은 개념미술가들이 작품의 제작을 대리로 맡겼고 이것이 현대에 관행으로 고착됐다며 조수 고용을 합리화하고자 했다. 개념미술가들이 오브제 자체를 대리 제작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개념미술에서 실행(작품 제작)은 오브제 제작 과정은 물론이고 그것을 전시장에 배치, 설치, 전시하는 전 과정을 포함한다. 작가는 주어진 전시장의 상황이나 가변적인 전시장의 여건에 따라 애초의 구상을 변형하기도 했고, 사전에 결과물의 최종적 형태를 예상하며 오브제의 제작 주문을 맡겼다. 그러므로 진중권의 주장처럼 작품 제작을 기계적으로 아이디어와 실행으로 구분할 수 없다. 결국 조수 고용과 그 합당함은 미술사적 맥락에서도 충족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개념미술로 간주할 수 없다고 해도 이것이 사법적 처벌의 판단 근거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

그렇지만 조영남을 사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지 그에게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전문미술인이 관행이라는 표현을 들먹이며 개인의 잘못을 면책하고자 미술사를 도구화한 것은 우려할 일이다. 또한 사회적 정의가 사라진 시대에 ‘관행이므로 무죄’라는 결론은 사회적 공감을 끌어낼 수 없다. 또한 분명한 것은 사법적 처벌의 판단 근거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사건 판단의 역할을 사법 권력에 위임하는 것은 추후 미술계에 예상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

<오경미 |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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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경보나 주의보 발령이 거의 일상화되고 있다.석탄이나 석유 등 화석연료를 태울 때 생기는 매연이나 자동차 배기가스 등에서 주로 발생하는 미세먼지는 알레르기성 결막염, 아토피, 비염은 물론 각종 호흡기질환도 유발하고 악화시킨다. 세계보건기구는 ‘1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미세먼지를 포함해 환경, 기후변화, 에너지 문제 해결이 화두인 시대에 철도는 대표적인 환경친화적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승용차와 기차(KTX)로 이동할 경우를 비교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기차가 승용차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기차를 이용할 경우 소나무 12.4그루를 심는 효과가 있다. 기차는 환경 친화성, 대량수송, 안전성, 에너지 효율성을 고루 갖춘 교통수단이다. 많은 교통 전문가가 미래의 대안으로 철도를 첫 손에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 이유다. 세계 각국은 친환경 녹색성장을 견인하는 철도 산업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제2의 철도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독일·중국·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는 대규모 철도 인프라를 건설하고, 철도 산업 발전을 위해 엄청난 규모의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최근 코레일은 공공기관 최초로 ‘올해의 녹색상품’에 7년 연속 선정됐고, 철도 시설의 미세먼지 농도를 낮추기 위한 실내 공기질 관리 종합대책을 수립해 본격 시행 중이다.

한가위를 맞아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고향을 찾을 많은 시민들이 차 안에서 또는 기차 안에서 가족과 함께 환경을 생각하는 시간도 가져보면 좋겠다.

<김동석 | 코레일 청량리열차승무사업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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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읽고 댓글을 하나 달았다. 자유로운 영혼이지만 현실 정체성은 직장인인 한 사람의 고민이 묻어나는 글이었다. 진심이 담긴 열린 제안에 “재미있겠다”고 생각했고, 어떻게 될지 몰라도 일단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한번 해봅시다”로 시작한 일은 100명이 넘는 규모의 콘퍼런스라는 큰 판으로 커졌다.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비슷한 고민을 키워오던 개인들이 ‘작당’해 만들어낸 프로젝트였기에 중단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협업하게 된 11명의 개인들은 구체적인 ‘개인의 시대’를 개척해나가고 있는 9명의 연사를 초대했다. 딴짓으로 창업한 남의집프로젝트 문지기 김성용, 외신기자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변신한 최정윤, 자칭 ‘사이드프로젝트 중독자’라는 마케터 고재형, 벤처캐피털을 다니면서 맥주 편집숍을 운영 중인 김경민, 자기 강점을 찾고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낸 장영학, 하루 3줄 일기로 인생을 바꾼 <스몰 스텝>의 저자 박요철, 과거와 미래의 나에게 고마워하며 현재의 나에 충실히 살고 있는 전 대기업 직장인 이인규, 9번 회사를 옮긴 ‘프로 이직러’ 김대우, 기자를 그만두고 과학과 연결되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이진주까지…. 일단 시작했으며, 나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다르게 움직여도 괜찮은, 그러면서 “딴짓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개인들이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일까? 지난 14일 열린 ‘평생직장 개뿔, 개인의 시대’ 콘퍼런스는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금요일 오후 반차를 사용해야만 함께할 수 있는 자리였는데도 100명 넘는 사람들이 함께했다. 날씨 좋은 불금의 오후 1시, 꽤 넓은 공간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놀라우면서도 뿌듯했다. 나 자신을 포함해 ‘이 사람들은 오늘 무엇을 얻기 위해 여기에 왔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2018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일’과 ‘직장’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다른 두 개의 결로 전개 중이다. 공무원처럼 확실한 안정성을 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퇴사 학교’가 만들어질 정도로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도 하다. 요즘 직장인들은 조직이 시키는 대로 일하는 ‘인싸(인싸이더)’ 대신 자발적인 ‘아싸(아웃싸이더)’를 택하면서까지 조직보다 자신의 성장을 원한다. ‘직장’에 다닌다고 자동으로 ‘직업’이 생기는 게 아니라는 현실을 깨닫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날 콘퍼런스에서 “좋아하는 일로 꼭 밥을 벌어먹어야 하나요?”라는 질문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살 수 있을까?”라는 상반된 질문이 함께 나올 수밖에 없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날 연사들은 생존형 사이드 프로젝트 성공 노하우부터 딴짓을 잘한 짓이 되게 만드는 법까지 ‘꿀팁’을 아낌없이 풀어냈다. “한번에 3만개의 알을 낳는다는 개복치처럼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를 계속하라”는 주문과 함께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라며 백수를 강력 추천하기도 했다.

‘내 인생의 영화’ 혹은 ‘내 인생을 바꾼 책’이 사라진 불확실한 저성장의 시대, 반나절의 콘퍼런스가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영감 혹은 원동력이 되었으면 좋겠다”던 한 연사의 말처럼, 앞서 시도한 개인들의 삶이 담긴 이야기가 다른 생각의 여지를 줄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잠재적 자영업자’인 직장인들에게는 “의미 없는 것을 잔뜩 하는 것이 인생”이며 “인생의 의미 없는 딴짓이라도 괜찮다”라는 메시지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이끄는 힘을 찾아내는 것, 직장이라는 울타리와 상관없이 나 자신이 어떻게 일할 때 가장 행복한지 찾아내는 것이다. 콘퍼런스는 끝났지만 더 많은 질문이 남았다. 나 역시 “어떻게 하면 가장 나답게 살 수 있을까?”란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분투해볼 계획이다. 평생직장 ‘개뿔’인 ‘개인의 시대’를 조금 더 잘 살아내기 위해서라도.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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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교육 전문성에 교과교육 외에 비교과교육인 생활교육도 있다. 하지만 교사로서 생활교육을 할 때 위축감과 주저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교사의 교육적 지도를 주저하게 하는 법 중 하나는 학교폭력예방법이다. 가장 힘든 생활교육 사안은 학교폭력이다. 지속성·고의성·심각성 등의 요소를 갖춘 학교폭력 사안은 엄밀한 조사를 거쳐 잘못을 가리고 피해 학생의 상처가 최소화되도록 하고 재발 방지에 힘써야 한다. 학교에서는 일상적으로 학생 간 갈등이 일어나고 모든 갈등은 학교폭력에 포함될 수 있다.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교사는 학교폭력의 예비·음모 등을 감지하고 인지했을 경우 신고의무가 있으나 적절히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올해 한 학생이 친구관계에서 갈등이 생겼다. 학생이 한 말이 왜곡돼 다른 학생들에게 전달되었고, 그것을 듣고 화가 난 학생들이 해당 학생에게 욕설 메시지를 보냈다. 학교에서 할 일은 학생들이 갈등을 해결하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게 교육적 경험을 주는 것이다. 학년부와 학생부가 협의해 보호자, 학생들과 함께 자리를 만들어 잘못 인정하기, 감정 나누기, 사과하기, 다짐하기 등을 했다. 학생들은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상처 받은 학생은 자신의 상처를 말할 기회를 가졌다. 힘들어 하던 학생은 사과를 받아들이고 이후 밝은 표정으로 학교생활을 했다.

교사는 갈등 해소 모임 후 해결사안보고서를 작성해 학교폭력전담기구에 보고해야 한다. 저녁에 2시간 이상 이어진 모임이었지만 일이 잘 해결되어 안심했다. 만약 피해 학생 보호자에게 이 모임에 대해 언급했을 때 교사가 화해를 종용한다고 문제제기를 하면 그때부터 교사는 난감해진다. 위 경우에도 학생(학부모)이 자치위원회 개최를 요청하면 반드시 위원회를 개최해야 한다.

이런 갈등 해소 모임 없이 바로 학교폭력 처리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 위험은 적고 업무담당자 외에는 편한 방법이다. 학교폭력 담당자는 바빠진다. 학교폭력전담기구 회의를 개최하고, 교사들은 경찰처럼 조사를 다시 하고 학교장과 교육청에 보고한다. 그리고 자치위원회를 열어 가해 학생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심의한다.

교육부가 올 9월 보급한 학교폭력 사안 처리 가이드북 유의사항에는 학교폭력 사안을 축소·은폐하거나 성급하게 화해를 종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학교폭력 처리 과정에서 피해 학생이나 가해 학생 측에 불만이 생길 수 있다. 민원이 생기면 학교폭력 은폐 여부를 가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사소한 폭력이라도 신고한 것은 접수해야 한다.

관계중심 생활교육을 강조하지만 학교폭력이라고 인지되는 순간 학교에서 자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은 거의 없다. 교사가 중재할 권한은 없다. 중재를 해서 잘 해결되면 괜찮으나 중재가 잘 안되면 책임이 따른다. 자치위원회에 분쟁조정 절차가 있다. 그러나 자치위원회로 넘어가면 화해하기 어렵다. 경미한 사안과 심각한 사안을 구분하고 교육적 지도와 폭력에 대한 단호한 조치가 구분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 현장의 의견을 들어 법 개정을 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권력구조 안에서 혼자 고통받는 학생을 그냥 두면 물론 안된다. 그 미묘한 고통의 징후를 감지해 사전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은 교사와 또래 친구들이다. 결국 평화로운 공동체의 회복이 학교폭력을 줄일 수 있는 지속적이고 힘 있는 방법이다.

<손민아 | 경기 전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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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판에 차돌박이를 굽노라면 화강암에 점점이 줄줄이 박힌 차돌(석영)과 ‘인왕산 차돌을 씹어 먹더라도 처가살이는 안 한다’는 속담이 떠오릅니다(직업병이지요). 이 속담은 자존심 상하고 불편해 처가살이는 남자가 할 게 아니라는 말과, 그럼에도 오죽하면 처가살이를 하겠냐 자조하는, 두 가지 뜻을 가집니다(경복궁 서쪽에 있는 인왕산은 바위산이고, 그 바위는 우리나라에 흔한 화강암입니다).

이 속담은 분명 조선 후기에 생겨났을 겁니다. 왜냐하면 조선 중기까지는 오히려 처가살이가 흔했으니까요. 이순신 장군도 처가살이 하면서 처가의 돈으로 무과 준비를 했고, 신사임당도 거의 친정살이를 했습니다. 당연히 그 남편은 강릉에서 처가살이를 했고요(사임당의 아버지는 처가살이가 가능한지를 보고 사윗감을 골랐다고 하죠).

그러다 임진·병자 연이은 전쟁을 겪으며 국토는 쑥대밭이 되고 양반들 위신은 추락합니다. 그래서 이를 회복하고자 유교체제를 더 강화하고 그 목적으로 중국 풍습들을 잔뜩 따라합니다. 중국처럼 여자는 시집에 와서 살아야 한다고 강권한 것도 이때부터지요. 그 대신 혼례를 처가에서 올리고 거기서 사흘 밤을 자는 걸로 사위가 장가들어 살던 걸 흉내만 냅니다. 그렇게 ‘장가가다’가 ‘시집가다’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곡식이 떨어져 당장 굶어 죽을 판입니다. 처가는 형편이 좀 나아 고개 숙이고 들어가면 딸자식이고 사위니 내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명색이 남잔데, 곧 죽어도 그리는 못하겠다고 버티는 상황이 그려집니다. 남자로서 차마 고개 숙이지 못할 마지막 자존심도 있겠지요. 하지만 자존심이 밥 먹여줘? 멸시와 굴욕을 차돌처럼 씹어 삼키며 연신 예예 합니다. 자존심 버리고도 당연한 듯 생색내지 않는 이는 ‘가족이란 진짜 자존심’을 묵묵히 지켜내는 사람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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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저녁이었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면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듣기 좋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저절로 고개가 까딱였고, 발이 움직였고, 손가락이 다리를 두드리며 박자를 맞췄다. 사람들이 흘끔흘끔 볼 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음악이 사람을 움직이는 건 흔한 일이니까. 어쩌면 수십만~수백만년 전, 인류의 조상이 서툴게 직립 보행을 하던 시절부터 음악은 움직임과 함께 진화해 왔으니까.

■ 직립 보행과 발성

스티븐 미슨의 책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에 따르면, 직립 보행으로 해부 구조가 변하면서 발성의 진화를 촉진시켰을 수 있다고 한다. 네 발로 걸어다니는 동물들은 척수가 뇌 뒤쪽에서 머리 안쪽으로 간다. 하지만 직립 보행을 하면 척수가 뇌 아래쪽에서 머리 안으로 들어가야 해서 척수와 입 사이에 후두가 있을 공간이 줄어든다. 이 때문인지 현생 인류의 후두는 침팬지의 후두보다 훨씬 더 아래쪽에 있다. 이렇게 후두의 위치가 낮아지면 성도의 길이가 늘어나 성도가 만들어낼 수 있는 소리가 더 다양해진다고 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현생 인류는 여타 유인원들과 후두의 구조도 다르다. 침팬지와 같은 유인원은 나무를 타고 내릴 때 팔을 많이 사용한다. 이렇게 팔 힘을 사용하려면 흉곽 안쪽의 공기 압력이 팽팽하게 버티면서 지지대가 되어주는 편이 유리하다. 공을 던질 때 순간적으로 숨을 참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간이 아닌 영장류들은 공기를 채워서 잠그기 좋게 두툼한 연골성 후두를 가지고 있다. 반면, 직립 보행 덕분에 흉곽의 공기압으로 팔 근육을 지탱할 필요가 덜한 인간의 성대는 막성 구조에 가깝다. 막성 후두는 두툼한 후두에 비해 더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고 한다. 말과 음악은 다른 동물들과 다른 인간의 특징이지만, 그 근간이 되는 발성은 직립 보행에 따른 변화에 ‘얻어걸린’ 쪽에 가까웠던 셈이다.

■ 음악과 리듬감 있는 움직임

직립 보행이 발성에 유리한 해부학적인 조건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음악도 직립 보행에 도움을 주었으리라고 추론된다. 늘 두 발로 걷는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2족 보행은 사실 대단한 능력이다. 한 발이 공중에 떠 있을 때도 절묘하게 무게중심을 이동해서 균형을 잡아야 하고, 울퉁불퉁한 땅에서 걷거나 심지어 달릴 때도 충격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발목, 무릎, 엉덩이뿐만 아니라 팔다리까지 리듬감있게 잘 움직여야 한다. 의족을 사용하시는 분들의 곤란함을 보면, 2족 보행이 얼마나 정교한 일인지 실감할 수 있다. 음악은 이처럼 리듬감 있는 움직임과 함께 진화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올리버 색스의 책 <뮤지코필리아>에 따르면 신기하게도 인간은 박자와 리듬에 맞춰 자발적으로 움직이지만, 다른 영장류에게서는 이런 특징이 발견되지 않는다.

실제로 음악은 파킨슨병 환자들의 움직임을 도와주는 효과가 있다. 파킨슨병은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임이 느려지고 뻣뻣해지는 질환이다. 연구에 따르면, 매일 30분씩 3주간 보행 훈련만 한 파킨슨병 환자는 보행이 거의 개선되지 않았으나, 규칙적인 박자를 들으면서 보행 훈련을 한 집단은 보행 속도가 25%, 보폭이 12%, 시간당 보행 수가 10% 더 좋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훈련을 멈춘 뒤 향상되었던 능력이 서서히 사라졌다. 이 결과는 움직임과 규칙적인 리듬에 긴밀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올리버 색스도 신경계 질환으로 움직이기 어려워지거나 조화롭게 움직이지 못했던 환자들이 음악을 듣거나 상상했을 때 더 수월하게 움직인 사례들을 소개했다.

■ 박자를 전하는 저음

그런데 음악에 맞춰 절로 몸을 움직이게 하는 소리는 따로 있다고 한다. 주로 고음보다는 저음에 박자를 타기가 쉽다. 그래서인지 여러 악기가 사용된 연주에서는 대개 저음 악기가 박자를 담당하고, 고음 악기가 가락을 담당한다.

이 현상을 좀 더 살펴보기 위해 사람들이 소리를 듣는 동안 뇌파를 측정한 연구가 있었다. 뇌파는 신경세포들의 전기적인 활동을 뇌 밖에서 측정한 것이다. 문이 닫힌 강당(뇌)에서 여러 사람(신경세포)이 북을 치는데 강당 밖에서 벽(두피)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듣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들려준 박자와 일치하는 주파수의 뇌파가 강해지는 경향이 있었고, 이 경향은 소리가 고음일 때보다 저음일 때 더 두드러졌다고 한다. 이는 신경세포들의 활동이 어느 정도는 외부 소리에 맞춰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뇌파의 주파수가 고음보다 저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은 당김음이 없을 때보다는 당김음이 있을 때 두드러졌다. 이는 당김음이 없는 단조로운 소리보다 당김음이 변화를 더하는 소리를 더 집중해서 듣기 때문으로 추론된다. 실제로 뇌파의 주파수가 고음보다 저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은 사람들이 소리에 집중하지 않을 때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가끔 예상을 어긋나는 소리가 더 재미있는 모양이다.

■ 함께 부르는 노래

좋아하는 노래를 혼자 들을 때도 좋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노래하면 더 좋다. 침팬지처럼 오랜 시간 동안 서로 털고르기를 해주지 않아도, 공연장에 모인 수만명이 단숨에 일체감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책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에서는 함께 노래를 부르는 활동이 사람들의 감정 상태를 비슷하게 만들고, 결속을 다지는 데 효과적이리라고 추론한다. 해질녘, 불가에 모여 앉은 집단 구성원들이 공동의 노래를 부르다가 하나둘씩 잠에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언젠가는 남쪽과 북쪽에서 따로 부르던 노래도 평화롭게 둘러앉아 함께 부를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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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