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되면서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문자메시지는 “Happy New Year”이다. 그리고 스웨덴 출신의 팝그룹 ‘아바(ABBA)’의 ‘Happy New Year’ 음악도 덩달아 몇 번 듣게 된다. 어쩌면 국민 팝처럼 인식되기까지 하는 아바의 노래들. 아니에타와 애니프리드, 단 두 명의 여성이 만들어내는 천상의 하모니는 듣는 사람들에게 즐거운 선율을 선사하였다. 최근에는 아바 노래 27곡으로 구성된 <맘마미아>라는 제목의 뮤지컬영화가 전 세계에서 상영되고 있다.

맑고 청아한 음색의 아바 노래가 사람들의 마음을 밝게 해주지만 아바가 활동한 10년(1972∼1982년)의 활동 시기는 기혼 음악인들에게도 소위 ‘일·가족 갈등’이 시작되던 때였다.

복지의 천국, 공보육이 가장 선진적으로 발전했다고 알려진 스웨덴에서도 음악가들의 보육고민을 완전히 해결해주지는 못하였나보다. 아바는 두 명의 부부(아니에타와 비요른, 애니프리드와 베니)로 구성되었던, 이색적인 조합의 팝그룹이었다. 영어권이 아닌 스웨덴이 낳은 최초이자 최후의 세계적인 뮤직스타였고, 이들의 독특하고 화려한 무대의상은 당시 뉴욕뒷거리의 성소수자 클럽에서 시대적 아이콘이 되기도 하였다. 아바가 세계적인 스타가 되어 전 세계 순회공연을 다니게 되면서 아바의 내적 갈등은 시작되었다.

 

스웨덴 출신의 4인조 혼성그룹 '아바' (경향DB)

당시 둘 다 초혼이었던 아니에타와 비요른 사이에는 두 명의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아니에타는 아이들을 남겨둔 상태에서 해외 순외공연을 원하지 않았고 비요른은 음악인에게 찾아온 행운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에타는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싶어하였고 비요른은 아이들을 잠시 유모에게 맡겨둔 상태에서 음악과 가정생활을 병행하기를 원하였다. 아니에타는 따뜻하고 다정한 남성이면서 음악적 감수성과 재능이 풍부한 천재 음악가이자 남편인 비요른을 몹시 사랑하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녀보살핌 문제를 두고 이견을 좁혀지 못하였다. 결국 두 사람은 1978년 이혼을 공식선언하고 힘들게 음악활동을 몇 년 동안 유지하기는 하였지만 1982년에 공식적으로 해산을 선언하였다.

아바의 곡 중 1980년 7월에 발표된 ‘The winner takes it all’은 아니에타와 남편 비요른 사이에 있었던 10년간의 사랑과 결혼 후 이별의 심정을 아프게 그려내고 있다. 아니에타는 사랑의 아픔을 절제된 가사로 그려낸 ‘The day before you came’을 아주 처연한 감정이 묻어나도록 슬프게 부르다가 음악생활을 정리한다. 그 후 우리는 아바의 음악을 테이프, CD, 뮤직비디오, LP로 들으며 가슴에 묻어두게 되었다. 아니에타는 두 명의 아이들과 스톡홀롬의 오지로 들어가 철저한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얼핏 가볍고 경쾌해 보이기만 한 아바의 노래는 후반부로 갈수록 더 인생의 깊이가 묻어나는 곡들을 대중에게 보여주었다. 엄마로서의 역할과 음악인으로서의 갈등이 해체의 원인이 된 안타까운 사연을 음미하노라면, 평범하던 아바의 음악도 새롭게 들릴 수 있다.

새해 많이 듣게 되는 아바의 노래 ‘Happy New Year’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세상 모든 이웃들이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기 바라요. 모든 희망과 도전할 의지를 갖기를 빌어요. 그렇지 않으면 누운 채 죽어 있는 것과 다를 게 없잖아요.” 가사가 주는 메시지처럼 2014년을 맞아 우리 모두 산 송장 같은 삶이 아니라 살아 팔팔 움직이며, 세상 모든 이웃들과 친구가 되어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말에 칼럼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 큰아이는 모 대학교에서 체육실기시험을 치르고 있다. 나 역시 어머니로서의 역할과 직장 등 사회가 부여한 역할 사이에서 늘 갈등한다. “오늘만은 나를 한국의 아니에타로 불러주오~. 그렇지만 나중 내 일을 포기하거나 은둔생활을 하지는 않을 것이오~.”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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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재판 중이었던 친족성폭력 피해자의 어머니로부터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착잡한 마음 그지없었다. 사연인즉 이렇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딸이 아버지로부터 지속적인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정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했던 그녀는 피해자 국선변호사의 조언으로 이혼재판을 시작하며 가해자에 대한 고소도 진행했다. 지난달 처음 만났을 때 씩씩한 기운이 느껴지는 그녀는 친족성폭력 사건의 개요를 정리해 내게 건넸다.

그녀는 친족성폭력 피해자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모든 기관의 문제점을 꼼꼼하게 짚었고, 일부 ‘피해자 국선변호사’(법률조력인)의 전문성 부족과 비윤리적 태도 등에 대해 토로했다. 피해아동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1심, 2심 모두에서 무죄가 선고돼 마지막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던 그녀. 그녀가 우려를 표했던 지점은 판사들의 친족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이었다.

“판사가 저한테 ‘아이의 3년 전 키가 얼마였는지?’를 묻는 거예요. ‘모른다’고 대답하니까, 판사의 답변이 ‘엄마가 딸한테 무관심한 거 아니냐’고 했어요.”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되어 대법원에서도 가해자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경향DB)

여성인권과 관련된 3대 폭력은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라고 할 수 있다. 성폭력, 가정폭력과 성매매의 피해자가 된 여성들은 피해자성을 끊임없이 의심받는다. “여성도 뭔가 맞을 짓을 했겠지” “자기가 선택해서 한 행동인데 왜 피해자죠?” “그 여성이 유혹하거나 즐기지 않았을까?”라는 언설들로 인해 여성들은 피해자성을 인정받기 힘들다.

더군다나 가족 안에서 발생한 범죄인 친족성폭력,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은 가족유지 관련 규범으로 인해 ‘신고=가족해체’라는 현실과 부딪히게 된다.이 때문에 범죄의 피해자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불안한 삶을 살아간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법률과 제도는 가족 안에서 발생한 친족성폭력과 가정폭력, 성매매를 사회적 범죄로 바라보는 데 의심하는 시선을 내재하고 있다. 가령 ‘범죄피해자보호법’에 근거한 구조금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친족관계가 있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구조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성평등 수준이 높은 해외 선진국에서 여성 관련 폭력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적 관심과 목표는 피해자의 안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인권을 위협하는 폭력들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가해자를 대상으로 한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한 가족 안에서 남성이 경제를 책임지고 있고 폭력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경제적 지원이 부족할 때, 여성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에 대한 신고, 고소를 하는 것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어렵게 용기를 낸 여성들에게 법정에서의 “너 아빠랑 사귄 거지?” “너, 아빠를 유혹하지 않았니?” “당신이 이혼하기 위해서 자식을 이용하는 거죠?”라는 폭언들은 그녀들을 두 번 죽이는 행위가 되고 있다.

가족은 사랑의 공동체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성별 권력관계에 기반을 둔 긴장이 내재돼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가족을 벗어나야 평화와 사랑이 찾아올 수 있다. 앞으로 여성인권이 제대로 보장받기 위해서는 가족 안에서 발생한 폭력이 심각한 사회적 범죄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피해자는 적절한 보호·지원을 충분히 받고 가해자는 제대로 된 처벌을 받는 것. 그것이 가능하기 위한 관련 법률과 제도의 변화가 뒷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다.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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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목요일(11월7일)은 ‘수능일’이다. 전국의 사찰, 교회, 성당, 교당 등에는 자녀의 고득점, 목표로 한 대학에의 합격기원으로 열기가 뜨겁다.

우리나라의 핵가족은 서구처럼 부부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자녀중심적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사회에서 수험생이 있는 가족은 구성원들의 생활리듬, 식생활, 문화생활이 수험생 중심으로 운영되기 싶다. 수험생이 있는 가정에서 TV 소리, 음악 소리가 사라지기 쉽고 경제적·시간적 여유 부족으로 부모의 문화생활은 축소되어야 하며 부부들의 성생활조차도 불경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어 가족의 일상은 메마르게 되기 쉽다.

최근 부부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은 ‘미혼자녀’의 대입·취업 성공, 그것을 가능하도록 하는 프로젝트 수립에 집중되어 있다.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는 경영담론들이 사적영역으로 확산되면서, 중산층 가족을 중심으로 가족생활이 효율적으로 관리되어야 하는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

 

(경향DB)

가족관계를 관리하는 책임을 맡은 여성들은 자녀교육과 관련한 전문 관리자의 역할에서 더 나아가 ‘경영자’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어머니들은 자녀의 식생활과 등·하교와 학원 등원 등을 포함한 일상관리, 학교생활 정보획득, 과외·학원 형태의 넘쳐나는 사교육시장에서 경제적이면서도 자녀에게 적절한 학습법을 제공하는 과외교사와 학원을 찾아내기 위하여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러한 동분서주하는 삶에 내재되어 있는 감정은 ‘불안’이다. 자녀가 소위 남들보다 뒤처지는 삶을 살아가는 것, 변변치 않은 자녀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독립하지 못한 자녀가 부모의 미래를 저당잡을지 모른다는 불안. 더군다나 각종 언론과 서적, 인터넷에서 ‘전문가’를 자처하는 자들의 정보는 현대인들의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늘 위험을 경고하는 불안한 사회에서 그러한 불안에 가장 잘 대처하고 있는 계층은 일정한 경제력과 다양한 정보획득에 민감한 감수성을 갖춘 중산층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중산층가족은 무한경쟁사회에 뛰어들어 살아남을 수 있는 전사(戰士)를 양육시키는 곳이자 고도의 계획·관리가 이루어지는 기획의 장이 되어가고 있다.

자본주의의 발달,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경쟁의 심화, 일터와 가족에서의 요구 증가 등으로 인하여 가족은 한정된 시간 동안 가사노동, 자녀의 일상관리, 가족관계 관리 등을 해치워야 하는 또 다른 일터가 되어가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작업장을 관통하는 지배규범이라고 일컬어지는 생산성·효율성·합리성은 사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가족에서 더욱 구현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프로젝트화된 가족, 경영가족, 기획된 가족 등은 가족의 도구화를 보여주고 있다. 불확실하고 위험한 사회에서 개인들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하여 고군분투하고 있고, 가족은 사령탑의 역할을 하고 있는 가운데 ‘사랑’은 불안을 잠재우고 정서적 위안을 공급해주는 오아시스로 의미 부여된다. 거친 사회에서 유일한 안식처가 가족으로 의미 부여되기도 하였으나 최근 10여년 동안의 사회·경제적 변화 등과 맞물려 가족은 또 다른 오아시스를 필요로 하고 있다.

1999년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인터넷 이용과 휴대폰 가입 인구, 그에 따른 동창회사이트의 개설, 각종 만남을 전제로 한 인터넷 카페 증설과 휴대전화 보유의 범국민화는 기혼자들로 하여금 혼외관계에서 친밀함(intimacy)의 경험 기회를 높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혼인은 부부간 성적 성실의무를 상호약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혼외관계에서의 친밀한 관계는 ‘민법’이 정하는 ‘부정한 행위’로 간주되어 이혼사유가 되고 있고, ‘형법’상 형사처벌도 이루어지고 있다. 즉 최근 10여년 동안 세계경제체제와 맞물린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적 변화는 가족의 기획과 불법적 친밀감을 동시에 확대시키고 있다.

가족의 의미가 변화하고 친밀함의 재구조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흥미로운 현상은 우리나라에서 2003년 이후로 이혼율이 미미한 수준이지만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여성의 경제력이 부족하고 자녀양육에 많은 비용이 소요되며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강한 상황에서 애정 없는 부부관계의 해소는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처럼 보여질 수 있다. 더 이상 가족의 도구화를 막고 ‘불법적’ 친밀감의 확대를 막기 위해서는, 소위 간통죄 폐지와는 별도로 (학력, 학벌, 성) 차별 없는 노동시장과 연동된 교육정책으로 획기적으로 개선되어 더 이상의 비인간적인 가족의 기획이 사라지고 여성의 경제력 증진, 한부모가족에 대한 가족복지 강화가 이루어져서 이혼 후 닥칠 생활이 두려워 무작정 참고만 살아가는 여성들도 줄어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나도 큰아이가 수능시험 치르고 나면, 친구들과 손잡고 나이트클럽 원정을 반드시 가보고 말 테다.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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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딸은 독감에 걸려 일어나지 못했다. 마침 그날이 토요일이어서 나는 “그래, 그럼 아침 먹지 말고 누워 있어라”고만 말하고, 밀린 집안일을 했다. 그런데 딸이 갑자기 부스스 일어나 현관문을 열더니 쇼핑백을 하나 갖고 들어온다. 쇼핑백 안에는 남자친구가 직접 만든 미음이 든 보온병, 양념간장통, 보리물이 든 물통이 들어 있었다.

“어머, 미음을 어떻게 만들었어?” 나의 물음에 딸은 “자기가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서 요리법 보고 처음으로 해본 거래요”라고 대답한다. 아마도 딸은 아침도 못 먹고 침대에 누워서 남자친구에게 문자메시지로 “아파서 아무것도 못 먹고 누워만 있다”라고 말했나보다. 어쨌든 나는 토요일 아침에 딸의 남자친구가 한 애정어린 돌봄노동에 입각한 가사노동(미음 제조 등)에 감동받아 하루 종일 마음이 훈훈했다.

우리 사회는 성평등의 가치를 일상에 실현시키기 위해 “남성들의 가사노동과 육아의 참여”를 요구해왔다. 특정 사회가 얼마나 성평등한지를 측정하는 매우 의미 있는 지표는 ‘남성과 여성의 가사·돌봄 노동에 투여하는 시간 양 비교’이다. 성별분업 이데올로기, 즉 남성의 일차적인 역할은 생계부양이고 여성의 일차적인 역할은 아내·어머니로서의 가사전담이라는 이념체계는 성차별을 유지·재생산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이다.

 

(경향DB)

5인 이상 사업체에 근무하는 상용직 여성들의 임금이 남성 평균의 60%를 조금 넘는 수준인 현실, 여성인권을 유린하는 3대 폭력인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역시 사회적·경제적 약자로서의 여성이라는 성별권력 관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따라서 성평등 실현을 위해 여성에게는 가정을 나가서 경제활동에, 남성에게는 일터를 떠나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에 참여하는 게 독려돼왔다. 최근 10년간 ‘남녀 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9조에 근거한 육아휴직을 남성노동자가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왔던 이유 중 하나도 ‘돌봄노동에의 남성 참여’라는 가치를 일상 속에 실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육아휴직을 비롯해 남성들의 가족 내 노동 참여가 중요한 사회적 가치, 이슈가 되었다는 것을 반영하듯 새로운 남성들(소위 ‘New Men’)이 등장하고 있다. 집안일도 열심히 하고 아이를 정성스럽게 돌보는 남성들. 그들을 그토록 기다려왔기에 그 얼마나 반갑던가. 그런데 좀 눈여겨봐야 할, 우려스러운 지점들이 보인다.

1997년 IMF 경제위기를 지나면서 소위 ‘평생직장’의 신화가 깨지고 청년실업, 고용의 불안정이 체질화되면서 남성들이 현모양처가 아니라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들을 원하는 것은 성평등의 흐름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남성들이 경제적으로 능력 있는 여성을 원하는 것이 가부장제를 앞서가는 자본주의의 진화에 의한 합리적 생존전략일 수 있는 것처럼, 남성들이 돌봄노동에 참여하는 것도 불안한 사회, 무한경쟁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가족 내 전략인 듯하다.

출근 전 어린 자녀들을 깨워 밥을 먹여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는 것을 도맡아 하고 업무시간 틈틈이 자녀들이 있는 시설, 학교의 담당자와 연락해 자녀의 상태를 점검하며 퇴근시간 “땡” 치면 주변의 동료들을 본 척 만 척하며 집으로 달려간다. 흔히 ‘가정적인 남성’들이 위험해 보이는 것이 이 지점이다. 직장 내 회식과 행사 참여, 동료들의 경조사를 챙기는 것에는 무성의하기 짝이 없고 오로지 ‘자기 가족’만 보살피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남성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열린 공동체를 지향하는 성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도 아니다. 소위 이러한 부류의 ‘가정적인 남성’은 오로지 ‘내 가족’ ‘내 새끼’ ‘내 마누라’의 출세를 위해 살아가는 소위 ‘찌질남’일 뿐이다.

돌봄노동에 남성이 참여한다는 의미는 가족 이기주의에 근거한 개별적 행위가 아니라 열린 민주적인 공동체를 지향하며 생명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정치적인 결단, 실천이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여성 배우자관이 변하고 돌봄노동에 참여하는 현상은 박수 쳐줄 일이기는 하지만 차별, 폭력, 억압이 없는 사회를 지향하는 인생관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변화는 특정 시기에 보수주의로 회귀할 우려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딸이 아플 때 보여준 남자친구의 행위에 다시 한번 박수를 쳐주고 싶다. “네 남자친구가 동급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인기 많다고 했지? 그럼 100점 만점에 100점이야. 우리의 딸아~.”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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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국회 직원이 언론에 고정칼럼을 쓰는 경우는 조 박사님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하세요.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며칠 전 국회 경내에서 마주친, 인품좋기로 소문난 한 수석전문위원께서 내게 격려차 건넨 인사다. 그분은 늘 직원들을 칭찬하고 지지해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내게도 그렇게 말씀해주셨지만 부끄럽기 짝이 없어지고 내 마음은 무거워진다. 입법부 공무원이 특정 언론사에 칼럼을 쓴다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내 사진과 내 이름의 글이 나오는 날에는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더욱 내 자리에 ‘짱 박혀’ 은둔을 즐기며 일하곤 한다.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의 의무가 있는 조직생활을 하기 때문에 자신의 언행에 더욱 보수적이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데 소극적인 편이다. 조직의 흐름을 끊는 사람은 ‘좀 튀는 사람’으로 분류되어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 수 있고 승진에 있어서도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 더군다나 신분이 불안정한 공무원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허점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경쟁이 내면화되어 있는 기관에서는 자칫 “업무에 소홀한 것 아니냐, 글 내용이 좀…”이라는 뒷담화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남보다 더욱 열심히 뛰어다녀야 하는 부담도 있다. 의원실의 여성 관련 조사분석 요구서에 대해 기일 내에 조사·연구하여 회답을 해주고 보고서도 작성하며 기관 내 이런저런 행사에도 참여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그동안 “아… 이번주는 통과. 도저히 시간이 안될 것 같아”라고 말하려고 하다가 결국은 낯선 지역의 PC방에서, 혹은 사무실에서 1시간 내에 후다닥 써서 글을 보내기도 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경향DB)

최근 10여년간 이러저러한 잡글을 쓰면서 ‘가족’에 대한 화두는 사랑의 공동체, 사랑의 안식처 등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된 중산층 핵가족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즉 소위 미혼의 자녀와 성역할이 내재된 남녀 부부로 구성된 가족이야말로 보편적이고 정상이라는 가족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것이다. 한때는 내가 성장한 가족부터 비판하는 글을 써댔고 지금은 결혼으로 구성된 나의 가족을 거리두기 하기 위해 노력했다. 금요일자 신문에 칼럼이 나오면 가장 관심 있는 사람은 친정어머니시다. 80살이 가까워오시는 친정어머니는 내가 언론에 기고한 글을 모두 오려서 스크랩하고 계시고 가끔 전화하셔서 “그래… 네 글을 읽다 보니까 맞는 말인 것 같더라”라는 말씀까지 해주신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족은 ‘애정·의무와 책임’ 때로는 ‘폭력과 억압’ 등으로 다가온다. 정상가족이데올로기가 만연한 사회에서 자기의 가족이야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내 글의 합리화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멋진 이론가를 인용하지 않고 한글만 읽을 줄 아는 사람이면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글쓰기의 원칙을 갖고 있다 보니 ‘가족이야기’라는 칼럼은 내 이야기부터 재미있고 쉽게 풀어나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것도 늘 내게는 무거운 숙제이다. 더 이야기하고 싶고, 그러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과 “아니야. 거기까지만. 더 이상은 안돼”라는 갈등 속에서 글을 써내려갔다.

매주 가족이야기로 칼럼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기에 좀 쉬고 싶은 욕망과 더 도발적이고 섹시한 글을 쓰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적 욕망 속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다. 이것은 바로 가족이 처한 현실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예쁜 포장지 속의 가족과 현실 속의 아픈 가족 사이의 차이. 가족정책은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 속의 아픈 가족이야기들이 더욱 많이 터져 나와야만 제대로 된 가족정책의 첫 단추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망설이지 않고 도발적이고 섹시한 글을 쓸 수 있도록 조금은 천천히 가려고 한다. 그리고 “엄마. 이제 신문 건성으로 적당히 읽으시기를 바라요~”.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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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민족고유의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다음주가 추석이지만 벌써부터 추석선물, 추석연휴 보내는 방법 등을 놓고 안부가 오간다. 알고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명절은 골칫덩어리이다. 명절 때 멀리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은 벌써부터 도로사정이 안 좋을 생각에 마음이 무겁고, 시집에 가서 해야 할 명절노동이 유난히 많은 사람들은 진즉 온몸이 아파왔다. 경제형편이 넉넉지 않아 가족들을 만나기가 부담스러운 사람은 명절이 더욱 징글징글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친척들로부터 듣게 될, 안부를 빙자한 잔소리가 싫어서 명절 때 가족들로부터 탈출할 궁리를 하는 사람들.

우리나라에서 1990년대 중반 이후 명절풍속도가 조금씩 변해오고 있다.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1997년 말부터 IMF 시기, 즉 “사오정(사십대, 오십대 정년퇴직), 오륙도(오십과 육십이 되어서도 정년퇴직을 하지 않으면 도둑)”라는 말이 유포될 즈음 명예퇴직하거나 정리해고 당한 사람들, 망한 기업가와 자영업자들이 속출했다. 그중에 명절 즈음하여 식구들이 많이 모이는 큰아버지 가족들도 많이 포함됐다. 큰집은 작은집이 되어 버렸다. 소위 ‘큰집’은 풍비박산되거나 큰집을 처분하고 큰집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 경우도 많다. 반드시 장남이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전통 아닌 전통은 변하고 있다. 명절노동이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소화됐고 가벼워졌다.

다음으로 큰집 혹은 다른 친척집에 모인 가족구성원들이 공통의 대화주제를 찾기 어렵다. 알고 보면 형제와 부모, 친척들처럼 이토록 긴 시간을 함께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처럼 할 이야기가 없는 집단을 찾기 어렵다. 그러니까 가족들이 모두 모인 명절 때 눈뜨기 전부터 잠들 때까지 먹는 것에 집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서로 모여서 딱히 할 말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어차피 먹는 것을 둘러싼 행위들은 생존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본능처럼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군다나 자식이 타지에서 살고 있는 부모는 함께 있는 잠시라도 맛있는 음식을 자식 입에 넣어주고도 싶으리라.

 

(경향DB)

 

그렇지만 명절 때 가족들이 먹는 것에 이토록 집착에 가깝도록 몰두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가족 내 흐르는 남녀 간, 연령 간 갈등관계를 무마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내포된, ‘가족애’로 포장된 잠재적 갈등 은폐행위이다. 그리고 먹는 것을 준비하는 행위 자체는 비교적 분명한 남녀 간 역할을 담고 있다.

여성들의 명절노동, 명절증후군은 여성들이 부당하게 부담하는 가사노동과 시집중심의 가족가치에 맞추는 데서 생겨나는 감정노동의 피로감이 핵심이다. 가족은 함께 먹는 것에 집중해 있는 정치적 행위, 이러한 행위에 내포된 성역할이 유지·재생산의 원동력이다.

여성들은 죽어라고 일하고, 가족끼리 먹고 마시다 지쳐 한마디 툭 던진다. “공부는 잘하니?(공부 못하면 가르쳐 주시던가)” “취직은 했냐?(안 했으면 취직시켜 주실래요?)” “결혼은 언제 할래?(좋은 사람을 소개라도 해주시던가)” “애는 언제 낳을 건데?(애 낳으면 키워 주실래요?)” 명절 때 단골처럼 나오는 대화들. 한편으로 서로 간 궁금하기도 한 소식들. 그렇지만 결코 해서는 안되는 질문목록들이다. 별로 관심도 없으면서 툭툭 내뱉는 질문들에 많은 사람들은 마음이 아파온다.

휘영청 밝아오는 달을 보며 손 모아 빌어본다. “망한 큰집에 작은 희망이 생겨나길” “적당히 먹고 명절노동이 줄어들기를” “친척들끼리 상호간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대화가 오갈 수 있기를” “부모부양과 상속문제로 부모·형제 간 칼부림과 공기총 난사 등의 폭력기사가 없기를”. 마지막으로 저처럼 고3인 수험생을 둔 부모에게 “어느 대학 가려고 하냐?”는, 징역 3년형에 처하고 싶은 가혹한 질문도 삼가 주시옵소서.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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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랜 친구인 영으로부터 주말에 뜬금없이 낮술 먹자는 마지막 전화가 끊긴 지 15년이 넘었다. 영은 대학교를 졸업한 후부터 소위 ‘맞선’을 보기 시작했다. 20대 후반의 어느 주말 오후 영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주은아, 오늘 선보러 나갔는데 몇 년 전에 나왔던 남성이 또 나온 거야. 너무 깜짝 놀랐는데 더욱 황당한 건 그 남자는 나를 못 알아보더라.” 마지막 전화는 30대 초반 일요일 오후에 이루어졌다. “이제 내 인생에 선은 마지막인 것 같다. 나도 이상하지만 … 진짜 낮술 한잔 마셔야지, 안되겠다.” 영은 신통하다는 점술인으로부터 “41살에 결혼운은 끝난다”는 말을 들은 즈음 결혼을 포기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9월3일 발간한 ‘혼인동향 분석과 정책과제’에는 “저출산 현상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초혼연령 및 미혼율의 상승 등 혼인력의 약화”라는 점을 발표했다. 합계출산율은 가임기 여성(15~49세) 1인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수를 나타낸 지표로서 출산력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이다. 합계출산율이 1.3명 이하인 경우 초저출산 사회로 분류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2000년대에 초저출산 사회로 진입했다. 우리나라는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하고, 2006년에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06~2010)’을 수립했고, 2013년 현재 제2차 기본계획이 시행 중이다. 많은 예산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고 저출산 현상은 장기화될 우려가 높은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발표에서도 드러났듯이, 합계출산율이 낮은 이유 중 주요한 하나는 혼인하지 않는 집단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위기에 따른 높은 청년 실업률은 ‘프로젝트로서의 연애’에 접근조차 못하는 청년들의 비율을 높이고 있다. 청년 10명 중 1명은 실업자이고 실망실업자까지 포함한다면 사실상의 취업애로 청년층은 늘어나고 있다. 1990년대 중후반 이후 세계화에 따라 글로벌 소비대중문화는 일상 속에 침투했고 소비문화의 창궐은 선물과 만남 등의 로맨스를 상품화시킨다. 결국 돈 없으면 연애도 못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어찌 보면 출산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청년들의 연애증진사업이 우선이다.

빈곤 때문에 혼인하지 못한 일부 한국 남성들은 동남아시아 국가의 여성을 찾아 결혼하고 있다. 결국 미(비)혼 여성들만 남고 있다. 여성들은 결혼제도 자체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여성들의 학력수준은 눈부신 속도로 높아져 왔다. 고등교육을 통해 점점 의식수준은 높아지고 인식의 지평은 넓어져왔다. 통계로 나타난 객관적인 지표들만 보더라도 높은 부부폭력 발생률(2010년 기준 53.8%), 불공평한 가사노동 분담률(맞벌이 남편의 가사노동시간은 42분으로 외벌이 남편보다 오히려 2분 적음)과 시집중심의 가족구조 등은 ‘깨인 여성들’로 하여금 다소 무거운 결혼제도 안으로 들어오기를 꺼리게 만드는 원인들이 되고 있다.

정부가 국가재생산의 위기로서의 저출산이 ‘재앙’으로 인식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원인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부터 선행돼야 하지 않을까? 청년들의 연애가 가능할 수 있도록 청년들의 지갑을 채워줄 수 있는 획기적인 고용촉진과 차별해소정책. 결혼생활이 행복해서 기혼여성들이 폭력과 불공평함으로 생겨난 얼굴의 다크서클이 지워지면, 미(비)혼 여성들이 결혼제도로 들어오게 되면 합계출산율은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저러나 내 오랜 친구인 영, 합계출산율 저하에 기여하고 있는 그녀는 엄밀히 말하면 미혼인 결혼단념자이다. 영이 원하는 남성의 전제는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배운 여성의 복잡하고 모순된 욕망은 어쩌면 현실 속에 없는 남성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아, 지금에서야 말인데. 너 눈 너무 높았다.” 이미 지난 일이고 대답 없는 메아리겠지만 외로워하는 친구를 위해 나도 한번 속에 있는 말을 해본다.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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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람들이 쓰는 말에 대해서 그렇게 꼬치꼬치 따지고 비판해야 하나?”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무더웠던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오나보다. 벌써 추석명절 이야기가 들려온다. 


“시댁이 어디세요?” 딱 걸린다. 여성들이 본인 스스로 시집을 높이고 친정을 낮추는 행위이다. 조선시대 후기에 들어와서 만개했던 종법(宗法)이라는 가족의 규율하에 강화됐던 부계혈통은 호주제도에 의해 정당화됐다. 부성(父姓)강제, 부계(父系)입적 등을 원칙으로 하는 호주제도는 폐지됐지만 여전히 친정을 낮추고 시집을 높이는 ‘친정’과 ‘시댁’이라는 불평등한 언어는 일상 속에 잔존하고 있는 것이다. ‘시댁’이라는 표현은 ‘친정댁’과 함께, ‘친정’은 ‘시집’과 나란히 공존해야 할 것이다.


“우리집 바깥양반은 추석에 시댁에 먼저 가자고 하고요” 혹은 “우리 집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서 처가댁에 가야지요.” 


대략 난감, 답이 안 나오는 말. 그러나 익숙하게 듣게 되는 말이다. 


개그콘서트 캡처


남녀가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위계적으로 구분돼 양육되어졌던 내외법(內外法)의 현대적 진화, 남녀 간 위계를 내포하고 있는 성별분업을 정당화하는 언어이다. ‘바깥 사람(양반)’ 혹은 ‘집사람’은 현실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다. ‘바깥 사람’은 밖에만 있지도 않고 ‘집사람’은 집에 있지도 않다.


2012년 기준 기혼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49.6%이다. 소위 아줌마 2명 중 1명은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집에 있는 사람’으로, 남성들은 ‘바깥에 있는 사람’으로 불리는 것은 단지 애칭으로 끝나지 않는다. 밖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경제활동을 비가시화하고 남성들의 바깥일에만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게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남녀 임금격차 수준이 OECD 국가의 평균보다 2배 이상 벌어진 것은 여성들의 노동이 비가시화되고 과소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깥 사람(양반)” “집사람”이라는 표현처럼 한 성(性)이 있어야 할 일차적인 장소와 역할을 지정해 호명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옳지 않다.



그 외에도 여전히 한부모 가족은 언론에서 기능적 비정상성을 담고 있는 ‘결손가족’으로 등장하고 있고, 단지 임신이 어려울 뿐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난임부부’는 ‘불임부부’로 일컬어지고 있다. 여전히 성소수자는 이성애자와 대등하게 동성애자가 아니라 단지 연애와 섹스에만 관심있을 것이라는 폄하를 담은 ‘동성연애자’로 호명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는 양성평등한 사회를 지향해야 하잖아요!”라고요? ‘양성’이라는 표현은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 힘의 불균등함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 더 나아가 양성구유자 등의 성소수자들에게 2개의 성, 즉 양성만을 전제하는 것은 억압적일 수 있다. 올바른 표현은 ‘양성평등’이 아니라 ‘성평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 속에서 사회적 약자의 차별에 민감한 감수성을 갖는다면 자연스럽게 올바른 정치적 표현에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언어는 단지 현실의 반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직장에서 사라져야 할 표현은 ‘직원 가족’ 등이 아닐까? 모든 조직과 기관을 가족화하는 것이야말로 성별, 연령에 따른 권력관계를 내재화하고 있는 가족을 탈정치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로 살펴본 가족생활 총정리 끝~.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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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하고 설거지하는 국회의원, 아이를 돌보는 장관, 음식물 쓰레기를 갖다버리는 검사.


밥하는 노동, 아동·어르신을 돌보는 노동은 우리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누군가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익숙한 모습인지. 예술분야로 주제를 바꾸어 메탈 밴드의 구성원들이 곡을 쓰고 연주를 하면서 노약자의 병원 가는 일정 등을 생각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음악영화가 상영됐다.


지난주에는 하늘에 떠 있는 노란색 반달과 쏟아질 듯 하늘에 박혀 있는 별빛을 받고 청풍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제9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개막작을 관람했다. 개막작은 프랑스 감독인 마르탱 르 갈의 <팝 리뎀션(Pop Redemption)>이다.


팝 리뎀션_네이버 영화


이 영화는 15년 동안 ‘블랙 메탈(black metal)’이라는 이름으로 밴드 활동을 한 프랑스 남성 네 명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들 밴드의 이름을 따 ‘블랙 메탈’이라고도 불리는 이 음악 장르는 과도한 남성성(마초 성향)을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일정 부분 여성혐오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주인공인 남성 네 명의 음악세계와 함께 가족생활도 보여주고 있다. 이들 남성 네 명은 모두 돌봄친화적이다. 리더인 알렉스는 혼자서 할머니를 돌본다. 꿈의 무대인 메탈 페스티벌 ‘헬페스트’를 떠나기 전 간병인에게 할머니의 식성, 약 주는 시간 등을 자세하게 알려준다. 어린 자녀가 있는 다른 멤버는 “나는 이제 음악하는 것보다 아이를 돌보는 게 더 좋아. 음악 안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도리어 아내가 음악을 관두지 못하게 한다. 중국 여성과 신혼생활을 하고 있는 한 멤버는 부인에게 꼼짝 못한다. 리더와 함께 독신인 나머지 한 남성 멤버는 여자를 매우 좋아한다.


이 영화는 로드무비 형식을 띤다. 그렇게도 열망했던 메탈 페스티벌인 ‘헬페스트’에 도착해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보여준다. 이들은 거친 록을 좋아하고 비틀스로 상징되는 록 음악을 비하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블랙 메탈과 록 음악의 충돌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평화롭게 공존하며 서로의 존재를 세련되게 빛내주고 있다. 내용이 전환되는 주요 장면마다 비틀스 멤버인 조지 해리슨, 존 레넌, 폴 매카트니, 링고스타의 어록을 제시한다.



리더인 알렉스는 공연장으로 향하는 도중 할머니의 사망소식에 비통해한다. 밴드가 살인사건에 연루됐기 때문에 한 여경찰이 이들을 추격한다. 그녀는 블랙 메탈에 심취해 있는 사춘기 딸을 돌보는 노동과 관련한 갈등이 일상의 중심에 놓여 있다. 마지막 공연에는 네 명의 멤버와 돌봄을 주고받는 가족, 여성들도 함께한다. 이 밴드가 무대에서 연주하며 노래하는 곡도 비틀스 곡을 메탈버전으로 노래한 것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알렉스가 멤버들과 함께 할머니의 묘지 앞에 서는 장면이다. “만약 내가 비틀스 노래를 했다면 할머니는 날 두들겨 팼을 거야.” 그렇지만 이들에게는 아이, 여성, 할머니에 대한 깊은 애정만큼이나 비틀스에 대한 존경이 배어 있다.


블랙 메탈과 비틀스 풍의 록, 팝과의 조화·화해·상생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과도한 남성성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블랙 메탈 뮤지션들의 여성에 대한 존중과 신뢰, 음악인으로서의 삶과 보살핌, 노동과의 갈등을 보여주는 매우 이색적인 영화였다. 


한여름의 신선놀이처럼 즐겼던 음악영화들의 감동과 함께 무더위도 지나가리라. 그나저나 남성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회의가 시작되기 전 잠시 동안 누드사진이 아니라 요리법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는 모습을 언젠간 볼 수 있을까?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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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은 집에 가서 하세요.”


“그 남자가 직장에서 딱 자기 친딸 나이인 여성을 성희롱했다니까요.”


“피해자를 타인이 아니라 내 딸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첫 번째 멘트는 몇 해 전 소위 한 스타강사가 C 언론사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에 가서 강의할 때 한 것으로 화제가 됐다. 또 “세상에나 자기 딸 나이의 여성을 성폭행했다니까요”는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에서 강사들이 남성들을 대상으로 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다. 가장 설득력 있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가족관계를 왜곡할 수도 있는 발언이다. 실제로 성희롱 예방교육의 강사 말대로 성희롱이 가정에서 발생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2010년 가정폭력실태조사’에 의하면, 부부폭력의 한 유형인 성학대는 폭력유형별 발생률에서 10.4%를 차지하고 있다. 일부 친아버지는 친딸을 성폭행하고 있다. 2012년 기준 전체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가 친족관계인 비율은 2.4%나 된다. 심지어 성폭력 가해자의 유형에서 계부보다 친부인 경우가 조금 더 많다.



가족은 성별, 연령에 기반을 둔 권력관계가 작동한다. 가족이라는 사회에서 가장 약자는 나이 어린 여성이기 쉽다. 가장의식에 기반을 둔 많은 아버지들은 딸을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낀다. 그러나 일부 아버지들은 자신의 성적 쾌락을 위해 아동을 이용할 권한을 소유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사랑의 안식처라는 신성한 가족의 이미지를 뒤흔들 수 있는, 가족에 대한 가장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 험난한 세상살이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되는 가족 안에서 성적인 폭력을 경험하고,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손가락질해도 가장 자식편이 되어줄 것이라고 기대되는 어머니는 피해여성의 입을 막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오빠 인생 망치겠다는 거야?”, “아빠를 경찰에 신고하면 우리는 다 굶어죽어.” 어린 딸의 성폭력에 대한 자각, 의식은 가족해체를 부추기는 행위로 등치되고 피해자의 침묵이야말로 가정의 평화를 보장한다고 여기게 된다.


잔인한 나의, 홈 (네이벼 영화)


최근 친족성폭력 피해자가 직접 쓴 수기집이 발간됐다. 그녀들은 북콘서트를 통해 우리 사회의 금기였고 외면당했던 자신들의 경험을 사람들과 공유했다. 아오리 감독의 <잔인한 나의, 홈>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도 친족성폭력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루며 가족의 의미를 되묻고 있다. ‘신성한 가족’의 가장 치부일 수 있는 친족성폭력의 피해자가 자신의 고통을 딛고 생존자로 거듭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나는 최근 친족성폭력 피해아동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학업을 계속하면서 보호받을 수 있는 경남창원소재 보호시설에 다녀왔다. 고등학생인 두 명의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이제는 엄마를 용서하고 싶어요”라는 희망도 듣게 됐다. 나는 이 아이들의 꿈을 어떻게 실현시켜줄 수 있을까? 어제는 친족성폭력 피해자 보호사업을 하고 있는 건강가정지원센터와 해바라기 여성·아동센터에 다녀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친족성폭력으로 고통당하는 여성들을 이해하고, 미력이나마 그녀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보고서를 잘 작성하는 일이다. 날은 무척 무덥지만 할 일도 많고 갈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더불어 사회적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언설에서 가족관계가 탈정치화돼 활용되는 일도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가정에서도 사라져야 하고 피해자가 낯선 타인이라고 해도, 해서는 안되는 행위가 성적인 폭력이기 때문이다.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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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0년 가을에 갑상샘암 수술 후 처음으로 혼자만의 여행을 갔다. 목적지는 제주도. 지인에게 추천받은 제주 동북부의 조용한 마을의 펜션에서 3박4일을 묵으며 혼자만의 ‘쉼’을 가졌다. 마음껏 게으름을 부리며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고 숙소에 딸린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신 후 천천히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해변을 달렸다. 그러다가 쉬고 싶을 때 잠시 쉬고, 전복죽이 맛있어 보이는 식당이 보이면 식사를 하며, 푸른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몇 시간씩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편안한 시간을 가졌다. 지금도 삶이 팍팍하다고 느껴질 때 잠시 눈을 감고 제주도에서의 나른하고 편안했던 일상을 떠올리곤 한다.


바야흐로 여름휴가의 계절이 도래했다. 휴가의 성격과 위상은 역사적으로 다르게 구성돼 왔다. 우리나라 법률에는 각종 휴가가 규정돼 있다. 일정기간 쉬며 느긋한 시간을 즐긴다는 의미의 휴가는 노동(시간)과의 관계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휴가가 말 그대로의 휴가가 아닌 경우들이 많다. ‘배우자 출산휴가’는 남성배우자가 출산한 부인과 영아를 돌보는 또 다른 노동을 하는 것이다. 육아휴직도 육아라는 노동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휴가’라는 개념은 일터에서의 유급노동을 쉬는 것을 의미할 뿐, 휴가기간엔 통상 또 다른 돌봄노동과 가사노동을 집중적으로 하게 된다. 이처럼 대한민국에서 법적인 휴가의 의미가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부터이고, 가족휴가, 여가가 국민들의 일상에 보편적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주40시간 근무제, 일명 주5일제가 실시되기 시작한 2004년 이후이다.


육아휴직 중인 류창승씨가 식품코너에서 장을 보고 있다. (경향DB)


최근 10년 동안 우리 사회에 ‘가족휴가’ ‘여가’의 개념이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법적인 휴가개념도 내용은 ‘쉼’이 아닌 것처럼, 가족휴가가 여성에게는 또 다른 노동인 경우가 많다. 가족휴가의 시간, 목적지, 숙소, 교통편, 일정 등에는 계획·관리라는, 고도의 기획이 요구된다. 남녀 간 위계에 근거해 일정한 성별분업도 이루어진다. 목적지는 가장으로 의미되는 사람에 의해 정해지고, 휴가일정을 전후해 각종 장보기와 쇼핑, 요리는 여성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며칠간 집을 비우기 때문에 신문과 우유대리점에 전화 거는 일, 화분에 미리 물을 충분히 주는 일, 반려동물을 돌봐줄 사람을 알아보는 일, 아이들 학원에 전화 걸어 휴가일정을 통보하는 일, 사춘기에 접어들어 가족여행을 꺼리는 아이들에게 가족휴가 같이 가달라고 설득하는 일, 부모님께 휴가일정을 알리는 일 등의 세심함이 요구되는 노동은 여성이 담당한다. 휴가길에 차가 막히기라도 하면 여성은 운전자의 폭발직전의 짜증과 화를 풀어주는 감정노동까지 담당해야 한다. 휴가에서 돌아오면 여성이 세탁기를 몇 차례씩 돌려가며 빨래를 하고 청소 등으로 마무리 노동을 담당함은 물론이다. 일상을 떠나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서 맛보는 새로움이 마음을 들뜨게 하기는 하지만 여성에게는 휴가가 일종의 감정노동을 포함한 야외노동의 성격을 갖는 경우가 많다.



휴가는 노동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에 ‘가족’ ‘휴가’의 의미와 성격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가족과 노동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굳이 별도의 휴가가 필요 없을 정도로 장시간의 고강도 노동이 사라지고 쉼과 휴식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배어들며, 가족단합을 목적으로 하는 일종의 이벤트적 성격의 ‘가족휴가’보다는 가족구성원 간 평등과 자율이 스며드는, 가사노동이 공유되는 가족문화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전까지 여성에게 진정한 휴가는 혼자만의 여행 혹은 몇 명의 친한 친구와의 단출한 여행일 때 가능하다. 몇 해 전 수술이 나에게 준 선물(‘쉼’)이 있었듯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야만 쉴 수 있기 때문에 죽지 않을 만큼만 아파서 입원하고 싶다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돈다. 바야흐로 휴가의 계절에 전 계층, 남성과 여성, 다양한 연령의 가족구성원이 소외되지 않을 수 있는 ‘진정한 휴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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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여 전 낯선 동네에서 ‘어리바리’할 때 아버지의 조상 덕을 보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학원에 대한 정보도 없고 그냥 눈에 띄는 국어학원이 있어서 큰아이를 보내 보았고, 큰아이도 그럭저럭 흥미를 붙이며 재밌게 다녔다. 어느 날 내 아이랑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어머니가 내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그래도 정현이 엄마가 내 아이랑 같은 풍향 조씨니까 알려주는 거예요. 안 그러면 누가 이런 거 일하는 엄마들한테 알려줘요? 정현이가 지금 OOO 국어논술학원에 다닌다고 했죠? 거기는 한 10년 전까지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별로예요. 그러니까 빨리 그 학원 끊어요. 어휴, 누가 이런 것 가르쳐줘!” 호주제도는 폐지됐지만 아버지 성은 잠시 나에게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고맙다고 해야 할지…. 어쨌든 마음이 씁쓸하다.


한국사회는 1990년대 말부터 신자유주의 체제에 본격적으로 편입되면서 정치, 경제와 교육 분야의 경쟁을 더욱 부추기게 됐다. 학교 급우, 동료, 주변의 내 잠재적 경쟁자를 밟고 가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의식이 팽배해져가고 있다. 부모들도 자식을 소위 명문대에 진학시키고 좋은 직장에 취직시키기 위해 무한경쟁사회에 편승해가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가족은 적은 기회와 자원을 두고 혈연중심의 가족중심적 전략을 펼치면서 “내 자식”만 챙기는 이기적 풍토가 자리잡아가고 있다. 따라서 아이의 엄마들은 각종 대학입시 관련 학원 등의 정보관리능력을 권력화하고 있다. 오로지 “내 자식”의 성공을 위해.



최근 ‘태안 해병대 캠프’에서 공주사대부고에 재학 중인 2학년생 5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 TV와 인터넷, 신문지상에서 이 사고소식과 관련한 기사를 접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더군다나 자식을 둔 어느 부모가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지 않을 수 있었을까. 지난해에도 전과 22범의 민간업자가 국토대장정을 진행하면서 여학생을 성추행하고 참가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 지 딱 1년 만의 일이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또다시 접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달랠 길 없을 때 해병대캠프로 자식을 먼저 보낸 유가족들의 사고를 마무리하는 입장을 보면서 무언가 변화를 느끼게 됐다. 그것은 “내 자식”을 넘어서는 ‘가족의 품격(品格)’이다.


해병대캠프 사고로 숨진 희생자 5명의 유가족은 ‘해병대를 사칭한 모든 캠프 중단, 책임자의 엄중 처벌, 죽은 아이들의 원한 풀기, 교육부의 책임 있는 사고수습, 생존자의 심리치료 지원’ 등을 요구했다. 더 나아가 이 사건을 ‘청소년의 인권문제’로 정의내리고 있다. “내 자식”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부모의 망연자실과 비통함, 애통함을 넘어선다.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남은 생존자들의 안전한 생존을 걱정하는 모습, 가족이기주의를 넘어서서 진화한 부모와 가족의 태도에서 가슴 뜨거운 숙연함을 느낀다.


청소년은 성인의 보호를 받아야 할 미성숙한 미성년자로 있으면서 때로는 제대로 된 보호도 받지 못하고 어른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로 취급되기도 한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방학식까지의 기간에 ‘엄격한 군사훈련’을 통해 기강이 바로잡아져야 했던 대상으로 취급받았던 청소년들. 이렇듯 청소년의 인권은 어른들의 통제와 관리, 자율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해병대캠프로 숨진 5명의 아이들을 대한민국 어른들의 가슴에 또 한번 묻고 “내 자식” “네 자식”이 아닌 “우리 모두의 자식”이라는 유가족들의 품격 있는 모습에서 청소년들의 인권, 민주적인 학교교육, 공동체 의식 등에 대한 희망을 바라보게 된다. 아이들이 사선을 넘는 순간에 인간띠를 만들어 함께 살려고 했듯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국가를 만들어주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다. 거시적으로는 무한경쟁사회의 신자유주의 체제, 미시적으로는 관련 재발방지대책을 만들어가는 것도 성인들의 철학, 삶을 대하는 태도와 실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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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몇 개의 강렬한 기억들이 저장돼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육아와 관련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5년도 더 지난 듯하다. 남편은 야근을 마치고 퇴근해 오전 9시경에 잠들었고, 나는 남편의 숙면을 돕기 위해 15개월 차이의 연년생인 두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태어난 지 몇 달 안 된 둘째를 포대기에 업었고, 돌을 갓 지난 큰 아이는 유모차에 태우고 하루종일 하염없이 걸었던 기억.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위 자연의 시간에 노동시간의 리듬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다. 해가 뜨면 노동을 시작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해가 뜨면 퇴근하고 해가 지면 잠에서 깨어 출근 준비를 하는 사람들도 존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기업 중 15.2%가 교대제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자동차 제조업은 43.7%의 기업이 교대제를 활용하고 있다. 즉 자동차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1주일은 낮에 일하고, 그 다음주는 밤에 일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도시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교대제 근무자는 대형 병원의 간호사, 아파트 경비원과 택시기사들이다. 이들도 많은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을 때 자신의 일터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가족구성원 중에서 교대제로 근무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가족생활은 다른 가족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게 된다. 자칫 생활소음이 있을 수 있는 낮 시간에 잠을 청해야 하는 교대제 근무자를 배려해 나머지 가족구성원들은 숨소리를 죽이며 생활해야만 한다. 낮에 잠을 자야 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바깥에서 천진난만하게 노는 아이들 소리도 거슬리고, 평상시에는 반가웠을 “세탁~, 세탁~”이라고 외치는 목소리도 신경 쓰인다. 


어린 아이라도 있는 집은 여차하면 엄마는 아이를 들쳐 안고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만약 교대제 근로를 하는 남성들의 급여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고 여성들이 전업주부로 있으면, 가족생활은 생체리듬을 파괴한다고 여겨지는 교대제 근무를 하는 남성들의 노동주기와 밥시간에 맞춰서 여성들의 생활반경이 만들어지기 쉽다.


최근 교대제가 시행되는 사업장에서는 교대제 근로가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강조하면서 야간근로를 없애는 방향으로 근로조건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가령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는 지난 3월14일부터 밤샘근무가 폐지됐다. ‘주간연속 2교대제’가 도입돼 시행되고 있다.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에서 노동자들이 3시40분쯤 일제히 출근하고 있다. (경향DB)


가족생활에는 많은 변화가 일고 있고, 특히 여성들의 생활리듬이 깨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 주간 조에서는 남편들이 빨라야 8시가 넘어야 퇴근을 했다. 이제 오전근무 조에는 새벽 5시에는 일어나서 남편의 아침밥을 차려줘야 하고, 오후 3시30분에는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의 간식을 챙겨줘야 한다. 오후근무 조에는 오후 3시30분부터 작업을 시작하는 남편을 위해 출근 전 식사를 준비해야 하고, 오전 1시30분까지 근무를 마치고 들어온 남편은 새벽 2시가 돼서 귀가하고 있다. 여성들이 낮 시간에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 힘들고 밤에는 잠을 설치기 쉽다. 남성들의 갑작스러운 근로조건 변화가 부인에게는 평온한 일상을 깨는 것일 수 있다.


“순덕아, 잘 지내나?” 오랜만에 울산의 친구에게 안부전화를 걸었다. 


“야, 내는 이제 일을 하니까 애기아빠가 밤에 일 안하니까 참 좋다. 3시30분에 마치면 운동하고 저녁에 집에 오고. 또 오후근무일 때도 운동하고 자기가 알아서 밥 먹고 출근한다 아이가. 우리는 각자 알아서 잘 산다.” 


일상의 변화에 건강하게 잘 대처하며 살아가고 있는 친구와 전화를 끊고는 마음 한 쪽이 든든하다.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주변의 교대제 가족. 내 친구처럼 잘 적응해 살아갈 수 있지만 여전히 다양한 지원을 필요로 하는 가족도 많다. 교대제 근무를 하는 당사자가 가장 힘들 수 있다. 그렇지만 함께 살아가는 가족구성원의 생활에도 관심을 기울여, 그(녀)들의 권리도 보장될 수 있도록 다양한 육아와 문화·여가생활 지원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밥은 당사자가 해결할 수 있는 가족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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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혼자만의 시간은 운전하여 출퇴근하는 때입니다.”


“아침식사를 여유 있게 준비하기 위해서 30분 일찍 일어나서 줄넘기를 하고 있어요. 그때가 나만의 시간일까요?”


복잡하게 사람들과의 관계에 얽혀 있는 현대인들은 때때로 자기만의 시간을 갈망하게 된다. 그러나 자녀양육과 가사노동에 대한 책임을 주로 담당하고 있는 여성은 이 ‘혼자만의 시간’도 출퇴근하는 이동시간에 의미가 덧씌워진 것이다. 새벽에 줄넘기라는 운동을 하는 시간은 액면 그대로의 여가시간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그 의미를 캐보면 아침식사 준비라는 가사·돌봄 노동을 수행하기 위해 부수적으로 확보된 것이다. 그러나 남성들에게 ‘자기만의 시간’을 둘러싼 내용과 의미는 다르게 부여되고 있다. 여가의 의미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점점 대중화되고 있는 골프라는 스포츠를 즐기는 인구의 성별은 남성 66.5%, 여성 33.5%로 나타나고 있다. 연령별로는 40대 32.7%, 30대 26.5%, 50대 25.1%, 20대 10.3%, 60대 5.4%를 기록하고 있다. 


골프를 즐기기 위해서는 먼저 가사·돌봄 노동으로부터 면제돼 집중적으로 연습할 수 있는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주말에 골프클럽에 가서 소위 ‘필드’에서 사람들과 운동을 한다는 것은 주말에 가족 안에서 밥하는 노동과 노약자들을 보살피는 노동 의무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결국 골프라는 여가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는 가정 안에서의 노동(가사나 돌봄)을 그 누군가가 감당해주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는 고스란히 여성에게 돌아가고 있다.


최근 ‘일·가정 양립’ 혹은 ‘일·생활 양립’이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어쨌거나 ‘일’은 우리 사회의 핵심 화두이다. 근대산업사회의 노동중심 사고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고, 성평등과 관련한 지표도 노동시간의 남녀 비교 등이 주를 이루었다. 이것에서 더 나아가서 여가생활의 시기와 시간, 양, 내용, 여가생활의 확보 배경, 여가생활의 다른 행위와의 중복 여부, 의미 부여의 내용 등은 변화하고 있는 사회생활상과 남녀관계를 진단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자료가 될 수 있다. 여가생활은 계층을 드러내는 표징이 되기도 하지만 가족 내 계층을 보여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나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가져다준 계기가 생겨났다. 불과 1년 전까지도 저녁시간이 다가오면 쌓여 있는 일 때문에 야근을 해야 할 때 얼마나 발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던가. 어느 정치인의 저서명이 되어 유명해진 ‘저녁이 있는 삶’이 나에게는 밥을 해야 하는 노동 때문에 한동안 갈등적이었다. 저녁에 일주일에 3일만 와서 아이들에게 밥만 해주는 분을 잠시 고용하기도 하고, 내가 퇴근 후 서둘러 집에 가서 해주기도 하며, 가끔은 모른 척 “어떻게 굶기야 하겠어” 하면서 방관자적 자세가 되기도 했다. 올해 고등학생이 된 (내게 시어머니 역할을 하는) 둘째가 석식을 신청하고 밤 11시까지 학교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오면서 나의 삶의 질이 바뀌어가고 있다. 저녁시간을 가족에 대한 의무감 없이 보낼 수 있게 됐다. 나에게 있어서 ‘저녁이 있는 삶’은 학교급식(석식)이 선물해주었고, 주말이 있는 삶은 역설적이게도 나를 뺀 가족구성원의 외출(?)이 가져다주고 있다. 


따로 또 같이. 이것이 인간관계와 가족생활의 철학이 돼야 하고, 그래야 여가생활의 불평등도 사라질 수 있다. 또한 그것을 가능하게 할 정책적 대안도 제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족, 마을공동체, 학교사회와 국가도 머리를 맞대야 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나의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을 앗아갈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허걱. ‘공포의 여름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까닭이다.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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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분들은~ 배려하며!”


“여성분들은~ 뻔뻔(fun fun)하게!” 


최근 뒤풀이 모임에서는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건배사를 제안하기도 한다. 작년이었나 보다. 결국 피할 수 없이 내 차례가 다가오자 잠시 고민하다가 성별화되어있는 사회의 남성과 여성의 특성을 고려하여 건배사를 제안하였다. 


“남성분들은 ‘배려하며’, 여성분들은 ‘뻔뻔하게’ ”. 간신히 내 차례를 모면하고 자리에 앉았지만 왠지 찜찜하다. 만약 그 자리에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지만 여성 성별정체성을 지닌 사람은 어떤 건배사를 외쳐야 했을까? 등등의 생각 때문에.


매년 7월1일부터 7일까지의 1주일은 여성주간이다. 여성주간은 생물학적으로 여성의 성기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을 위한 때일까? 


소수일 수 있겠으나 생물학적인 성과 정신적 성이 일치하지 않은 사람들도 존재한다. ‘정상’이라고 일컬어지는 범주의 바깥에 있다는 이유로 그(녀)들이 당하는 인권침해와 고통은 예상외로 심각하다.


그동안 우리나라 대법원은 법적 성별변경과 관련하여, 전환된 성에 부합하는 외부성기를 형성하는 수술을 요구하였다. 수천만원의 수술비용이라는 과도한 부담을 부과하게 할 뿐 아니라 헌법 제12조의 신체의 자유, ‘신체 불훼손의 권리’를 침해하는 이 외부성기 수술은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에서 가장 큰 장벽으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2011년 대법원은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받았으나 미성년자가 있는 자에 대한 성별정정신청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근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의료적 위험성이 높고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 때문에 성기 성형수술을 못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아내와 함께 약 20년간 사실혼 관계를 지속하여 왔으나, 2로 시작되는 주민등록번호 때문에 직장을 구하지 못하였고, 아내와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자를 포함한 5명의 FTM(Female to Man,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나 남성 성별정체성을 지니는 사람)에게 성별정정을 허가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성애자 성전환자는 이제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과 법적인 부부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이 바야흐로 인권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하여 성전환자의 성별변경을 인정하는 특별법을 제정하고 성소수자들에게 가족구성권을 부여하는 입법적 지원방안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미성년자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바뀌어야 한다. 반갑게도 제19대 국회에서는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조사분석 요구서도 접수되고 있고, 나는 변화에 대한 희망을 품고 회답서를 작성한다. 마침내 성적 소수자가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만드는 입법 환경은, 국민들의 인식개선이 뒷받침되어야 제도화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앞으로 어떠한 건배사를 사용할까? 


“남성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배려하게’에서 강도를 높여) 머슴처럼!”


“여성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뻔뻔(fun fun)하게!” 


“아니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커밍아웃(coming out)을 강요하는 것 아닐까?” 


건배사도 공부해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 다음엔 유쾌하고 성적 소수자의 인권침해가 없는 건배사 개발에 들어가야겠다.


[여적] 성차별 건배사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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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년여 전에 영구임대아파트 앞의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동네산책을 하다가 휠체어 장애인들을 포함한 다양한 장애인들이 개천가나 공원 곳곳에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더 나아가 초여름이 되니 동네 호프집의 파라솔 밑에서 휠체어 장애인들끼리 술잔을 기울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와 민영아파트 단지들이 있어 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는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게 됐다. 미국에 유학 가는 친구의 송별회를 하기도 하고, 아버지가 몇 년째 교정시설에 입소해 있어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친구를 집에 데려와서 늦게까지 놀기도 한다. 이사와서 아이들에게 다양한 계층,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지혜를 삶속에서 체득하게 한 것 같아 흐뭇하기 짝이 없다.


살아가면서 주거처럼 중요한 것이 있을까? 하루의 삶이 아무리 팍팍하고 고되더라도 돌아가서 발 뻗고 편히 쉴 수 있는 집과 공간이 있는 사람은 최소한 “불행하다”고 이야기하면 안된다.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조약에도 주거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로 규정돼 있고, ‘대한민국 헌법’과 관련 법률도 각종 주거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삶의 터전이어야 할 집이 투기의 대상인 부동산공화국이 돼버렸으니,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공공임대아파트를 지을 공간은 없어 보이고, 임대용 다가구·다세대주택, 공동생활가정(그룹홈)도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나라 청년들의 독립 지연, 폭력 피해자들이 폭력을 피해 탈출하지 않아 폭력이 유지·재생산되는 문제, 애정 없는 파트너들이 소 닭 보듯이 하면서도 헤어지지 않는 불행이 지속되는 이유에는 경제적 문제와 자녀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핵심에 내재해 있는 것은 ‘주거 문제’다. 사실상 가족정책은 가족 밖의 정책과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가족 밖 정책 중에서도 주거정책은 핵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에는 주거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낙태하지 않고 출산하여 양육을 하는 미(비)혼 한부모가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의 인구센서스를 기초로 보면 연간 총 6400∼6500여가구의 미혼모 가구가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미혼모 시설에서 퇴소한 후 소위 “처녀가 애를 배 와서 집안망신이다”라는 이유로 원가족과 관계를 단절한 뒤 어린아이를 햇볕도 안 드는 지하 월세방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양육하는 미혼모도 몇 만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아이하고 햇볕 드는 집에서 살아보는 게 소원이에요. 그날이 언제 올까요?” 임대주택의 입주 자격·순위 및 가점제도는 정작 이러한 제도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문턱이 너무 높게 설계돼 있다.


현재 시각장애인과 뇌성마비장애인이 함께 상호부양하고 협력하며 살아가는 생활공동체는 법이 규정한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주택 마련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사는 마을에서 더 나아가 진정으로 다양성이 보장되는 마을공동체가 되는 것은 ‘민법’ 제779조가 규정하는 가족의 범위 밖에 있는 생활공동체에 대한 제도적 지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청년들, 장애를 가진 사람들, 폭력 피해자들과 사회적 소수자들의 주거권이 인정되는 가족정책의 변화는 공공임대주택의 규모를 확대하고,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혜택이 돌아가게 할 때 가능하다. 그것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의 가족이 제대로 행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의미있는 한걸음을 떼게 하지 않을까? 


앞으로 20대 중반에 당당하게 ‘독립’을 선언했지만 정작 선배의 대학가 월세방(화장실은 공용)에 얹혀 살다가 백기투항하고 일주일 만에 귀가했던 20대의 나 같은 사람이 2013년 이후에는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외국어대학교 근처의 반지하방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대학생들 (경향DB)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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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점


1. 키는 작지만 남들로부터 섹시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2. 화장을 잘한다. 


3. 밀땅을 잘한다….



며칠 전 재활용을 하기 위해 종이상자를 정리하다가 A4 용지에 고1 딸아이가 써놓은 내용을 발견했다. 딸과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거의 ‘황당 10대 배틀전’이 벌어진다. “어휴. 제 딸은 저 몰래 가슴 커지는 크림을 바르고 있더라고요” “고1 아들이 며칠 전에 자기 방에서 야동을 보다가 나한테 딱 들켰잖니!” “몰래 그 비싼 가수 콘서트에 다녀왔더라고요” 등의 자식에 대한 다양한 ‘고발’이 쏟아져 나온다.


가족의 ‘소 자녀화’ 현상과 맞물려 청소년을 둘러싼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공교육의 부진, 인권의식과 성평등 의식의 확산, 여학생의 약진과 남학생의 뒤처짐, 성문화 개방, 소비자본주의의 만연,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청소년들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민주화와 인권의식의 영향을 받아 권위주의에 대한 청소년들의 저항감은 상당하다. 여학생은 당당하고 독립적으로 성장하며 지적으로 개발되어가는 듯하다. 그러나 남성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외모를 가꾸는 것에 더욱 열을 올리는 모순을 보이기도 한다. 남학생들은 “아 옛날(가부장 시대)이여~”를 되뇌며 변화에 대한 적응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다.


사회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각종 의류, 화장품, 식품 등을 광고하며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청소년들 사이에 급속하게 퍼진 스마트폰은 청소년들의 친교문화 및 총체적인 생활습관,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항하며 변화를 좇아가는 청소년과 호통치는 보수적인 기성세대 간의 갈등이 부각되고 있다. 근대의학은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남아들에게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혹은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청소년이 된 자식들은 부모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이해되지 않는 괴물이 되었고, 부모들은 보호라는 미명하에 언어폭력 등을 자행하여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자율성과 독립에 대한 욕망과 따뜻한 사랑을 동시에 갈구하는 청소년의 성장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는 이러한 변화를 질환 혹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진단하고 다양한 약 복용과 훈육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럴수록 청소년들은 더욱 거세게 반항하며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역사적으로 아동·청소년을 바라보는 시각은 변해 왔다. 조선시대 민화에 현재의 중·고등학교 연령의 아이와 어른들이 함께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종종 등장한다. 대략 17세기 전까지만 해도 아동·청소년들은 미술이나 문학작품에서 선하게 묘사되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이상(ideal)이 대두되면서 섬세하고 집중적인 사랑을 받아야 할 제왕(帝王)으로 등극했다.


지금의 아동·청소년들도 과거처럼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 그러나 그전처럼 무관심의 대상이 되거나 사람들을 거북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청소년들은 사회변화의 가장 첨단에 서 있다.


tvN <코리아 갓 탤런트>에 출연한 여고생 코믹 립싱크 듀오 IUV.


느린 남학생들의 속도를 이해해주는 학교사회, 권위주의와 성차별이 사라지며 여학생과 남학생이 사이좋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 외모지상주의와 소비자본주의의 창궐이 누그러지는 사회, 스마트폰 사용의 적절한 기준이 지켜지는 사회는 어른과 청소년 간의 소통에 달려 있다. 청소년들을 믿어주며 규율권력에 대한 저항을 지켜봐주고 방황을 기다려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 보호자들이 청소년들을 위해 해주어야 할 것은 기도와 사랑으로 가득 찬 부양뿐이다.


그러고 보니 솔직히 나는 딸이 가진 장점 중에 한 가지도 갖지 못했다는 점에서 잠시 열등감을 느꼈나보다. 언제 기회가 되면 그 기술을 전수받아야겠다. 우선 화장하는 법부터 배워야겠다. “울 딸~ 이번 주말엔 엄마한테 눈 화장하는 법부터 가르쳐줘.”


‘오늘도 무사히’, 택시 타면 가끔 볼 수 있는 ‘기도하는 소녀’의 모습이 ‘나’인 듯하다.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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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도 가을이었나보다. 올해 발간된 <기획된 가족>의 계기가 됐던 박사논문 마무리에 여념이 없던 때였다. 1년간의 열정적인 사랑을 끝낸 친구가 외국으로 명상여행을 떠난다는 전화를 했다. 


“주은아, 네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 있잖아, 이제 중산층 맞벌이 부부는 경제적 동맹자라며? 그 경제적 동맹자 앞에서 내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두 아이를 키우며 남편과 나름대로 잘 살아가던 친구가 옛 남자친구의 연락을 받고는 눈먼 사랑이 시작되었다. 총명하기 그지없던 전업주부 친구였다. 교양있고 약간은 쿨한 듯하던 그 친구가 사랑에 빠져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을 해버렸다. 자기가 사귀던 남자의 부인에게 전화해서 “당신의 남편은 나를 사랑한다. 왜 이혼하지 않느냐”는 말을 해버렸다. 결국 내 친구는 “난 당신을 사랑하지만 이혼할 생각은 없다”는 남자의 말을 듣고는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그리고 나름 아픈 사랑을 끝내고는 외국으로 떠났다.



우리 사회에서 199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경제적 가치가 특권화되기 시작했다. 인터넷과 휴대폰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도 가세해 속도경제사회로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것도 이 즈음이다. 전 국민은 40대 명예퇴직, 대규모의 정리해고사태를 목격하기도 했다. 이제 “믿을 것은 돈밖에 없다” “돈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라는 천민자본주의의 가치가 사회를 휘감았다. 지하철의 대학생은 <10년 안에 10억 버는 법>을 밑줄 치며 읽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취업고시 합격투쟁’이라는 머리띠를 두르고 본격적으로 취업준비에 들어가고 있다. 대학교는 학내민주화 등의 요구를 담은 현수막 대신 각종 어학원 광고물과 취업합격생 축하 현수막들이 뒤덮고 있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20대 중반의 “신부수업 중인 여성”은 중매시장에서 나름 매력적인 ‘예비 현모양처’였다. 그러나 이제는 상업적 결혼정보업체에서 직업 없는 여성은 회원으로 받아주지도 않는다.


무한경쟁사회에서 고용 없는 경제성장, 청년실업, 노후와 미래에 대한 불안은 서로 맞물려 경제적 가치가 모든 가치를 압도하게 만들고 무소불위의 특권을 갖도록 하고 있다. 경제적 보상이 주어지는 노동을 하는 맞벌이 부부는 경제적 동맹자로 자리 잡고 있고, 경제력이 없는 자는 사랑에서도 상처를 받기 쉬운 위치에 서기 싶다. 특권화되는 경제가치 속에서 사회가치를 재생산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매우 고되고 힘든, 그렇지만 경제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가사노동·돌봄노동과 관련된 시간은 특정한 행위와 관련된 시간의 위계에서 가장 밑바닥에 위치하게 된다.


가사노동 중에서도 밥하고 빨래하며 청소하는 시간은 큰 감정노동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노동과 관련된 시간, 이러한 노동분담을 둘러싸고 갈등하는 시간을 매우 불필요할 뿐 아니라 가치없는 시간으로 의미부여한다. 중산층 맞벌이 부부는 경제적 자원을 활용해 맞벌이의 오래된 숙제였던 가사노동을 둘러싼 갈등을 외주화시키고 있다. 대화시간은 늘 부족하고 섹스리스이지만 중산층 부부는 경제적 동맹자로서의 부부관계를 돈독히 해가고 있다. “여보, 사랑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지는 않지만 급여지급일은 험난한 세상을 끌고가는 동맹자로서 암묵적으로 사랑을 확인하는 날이다.


이처럼 특권화되는 가치 속에서 부부관계의 특성도 변화되고 있고 가사노동의 가치는 폄하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부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전면적으로 재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사회가 전면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다. 


외국으로 갔던 제 친구는 어떻게 됐냐고요? 제 친구왈, “우리 부부는 더 좋아졌다. 연인으로부터 버림받고, 부인으로부터 버림받았던 두 루저(loser) 간 동맹자 관계는 더욱 공고해지고 있단다.” 친구는 쿨함을 되찾았다. 정말이지 세상은 요지경 속이다.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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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부모들의 할 일이 많아집니다.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아동의 연령과 관련하여 해외사례를 조사해주시고, 관련 방향으로의 입법화에 대한 검토를 요망합니다.’ 


“아이고. 이런 조사·분석 요구서가 또 왔네. 이런 식으로 정책이 가면 안되는데, 어쩐담.” 


내가 국회입법조사처라는 기관에서 여성·가족을 담당하는 입법조사관으로 근무한 지도 벌써 4년하고도 2개월이 흘렀다. 2009년 3월 근무를 시작할 당시만 하더라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등은 모두 고용노동부의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내용의 조사·분석 업무가 한동안 나에게 배정이 되었다. 당시 조사·분석 요구의 내용 중에서 육아휴직 관련 건수는 1년에 최소한 20~30개는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육아휴직급여의 현실화, 육아휴직 사용으로 인한 불이익 해소, 관련한 해외사례,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아동의 연령 조정 검토’ 등의 조사·분석 요구의 취지는 한마디로 육아휴직제도의 활성화이다. 


지난 4일 정부가 ‘고용률 70% 로드맵’을 발표하였고, 핵심 내용 중 하나는 “3개월 출산휴가 직후 1년 ‘자동 육아휴직’ 정착, 육아휴직 후에도 1년간 단축근무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내용은 심히 우려스럽다.


정책에도 일종의 동향, 추세가 있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소위 저출산이 국가재생산의 위기로 인식된 이후, 일명 ‘일·가정 양립 지원책’이 주요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경향DB)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의 핵심에는 보육정책, 육아휴직제도, 가족친화적 환경 조성 등이 있다. 육아휴직제도는 지속적으로 입법부와 행정부에서 관심의 초점이 되었던 제도이다. 비록 좋은 취지로 시작했지만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은 그 속을 들여다보면 여성들로 하여금 ‘일과 가정’을 양립하게 하다가 과로사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보육시설에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것도 거의 여성이고, 상용근로자 여성의 임금 평균이 남성의 62%인 수준임을 감안하면 임금수준이 낮은 여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가사와 육아에 대한 책임이 여성으로 인식되어 있는 사회에서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고자 시간제를 ‘선택’할 사람도 여성일 공산이 크다. 육아휴직, 단축근무, 시간제는 가뜩이나 저임금으로 인한 경력단절이 심각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경력단절과 직장에서의 주변화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




육아휴직제도 및 단축근무의 전제는 “어린 자녀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부모(여성)에게 있다”는 가정보육을 내용으로 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육아휴직제도 활성화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을 때를 떠올려 보라. 저소득층 노동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영아전담 보육시설이 한 해에 100곳 이상 문을 닫는 일이 몇 년 동안 계속됐다.


여성들을 일·가정 양립하게 하다가 죽은 귀신으로 만들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동네 곳곳에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영아전담 보육시설을 늘려야 하지 않을까?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아동 연령의 상향 조정보다는 초등학교와 지역사회가 아이들을 잘 돌봐주는 게 낫지 않을까? 


소위 가족정책은 노동시장에서의 장시간 근무 해소, 시간제가 아닌 정규시간에 근무하는 반듯한 직원 채용 확산, 가족 내 보호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학교시스템의 변화 등과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여가친화적인 정책’ 등 이런 내용의 조사·분석 요구서가 의원실 쪽에서 쏟아진다면 과로사를 각오하고 더욱 신나게 회답서를 작성할 텐데 말이다.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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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개봉된 가족영화 <고령화가족>. 이 영화는 신자유주의에 따른 경제위기와 실업, 여성가장,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불혼’ 청년들이 양산되는 한편, 개인의 자유에 입각하여 혼인 규범을 넘어서는 연애가 이루어지는 시대를 유쾌하게 그려냈다.


주인공 가족에서 삼남매의 부모는 매우 이질적이다.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한모(윤제문 분)는 아버지가 혼인제도 밖에서 데리고 온 아들이고, 미연(공효진 분)은 엄마(윤여정 분)가 연애를 해서 낳은 딸이며, 인모(박해일 분)는 부부의 온전한 피가 섞인 ‘정상적’ 자식이다. 이처럼 이 가족은 부계 혈통 중심의 가족을 흔드는 전복성을 갖추고 있다. 미연은 ‘되바라진’ 중학생 딸의 엄마다. 그녀는 두 번째 남편과 헤어지고 또 다른 남성과의 발랄한 연애를 포기하지 않는다. 인모의 부인은 소위 ‘바람난 여성’이다.


고령화 가족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인모가 자신의 부인과 바람난 상간남을 추격해 한강변에서 무참히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상간남을 ‘반병신’으로 만들었지만 정작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은 형 한모다. 이처럼 ‘콩가루가족’의 요소를 갖추었지만 ‘고령화가족’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가족 사랑’이다. 한모는 동생을 대신해 교도소에 수감되고, 가출한 여조카를 찾기 위해 또다시 감옥행이 예정된 ‘바지사장’을 자처하며, 미용실 주인에게 매일 만두를 사다주며 구애를 하지만 그녀와 동생 인모의 ‘하루 데이트’를 목격하고는 애닳아 하면서도 눈감아 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들은 다양한 젠더폭력을 경험한다. 미연의 딸은 가출했다가 성폭력을 경험한다. 미연은 두 번째 결혼에서 남편으로부터 가정폭력을 경험한 후 짐을 싸서 친정으로 들어온다. 엄마의 공식적인 직업은 화장품 외판원이지만 할아버지가 된 미연의 아버지와 애매한 사랑을 나눈 대가로 돼지고기를 선물로 받는다. 여전히 사회적 약자로서 다양한 폭력의 경험을 ‘경험할 수 없는 자들의 연대체’로서의 가족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영화 <바람난 가족>의 발칙함과는 달리 좌충우돌하는 세남매의 우환을 가족애의 상징인 ‘정성스러운 된장찌개’로 승화시켜내는 모습은 전형적인 모성이데올로기의 실현인 듯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신파조의 가족사랑과 결혼제도로의 유입(미장원 주인과 인모, 미연의 세 번째 결혼, 미연아버지와 어머니)으로 귀결되는 장면들은 구태의연함까지 느껴진다. 아들들을 대신해 밥벌이를 하면서도 잔소리 한번 안하면서 묵묵한 사랑으로 보듬는, 매일 저녁 된장찌개와 돼지고기를 구워 자식들에게 먹이는 엄마, 소위 ‘콩가루가족’의 일원이면서 가족사랑의 구심점이 되는 엄마. 이것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듯하지만 매우 비현실적이다. 생계부양자, 가족갈등의 조정자, 가족사랑의 구심점으로서의 엄마 역할이 영화에서는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지 모르지만, 내겐 옥에 티로 느껴진다. 

된장찌개를 정성스레 끓이면서 ‘가슴 속에 스며드는 고독에 몸부림칠 때’라는 대중가요의 가사를 읊조리는 어머니들의 현실과 욕망의 가슴 아픈 타협. 전반적으로 발칙하게 여겨지는 이 영화에서도 생략된, 이 땅의 마지막 식민지일 수 있는 어머니의 경험을 언제쯤 들을 수 있을까? 그날은 궁극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혁명을 목격하는 때가 아닐까? 왜냐면 ‘가족구성원 모두가 막나가는 듯한 콩가루가족’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평범한 가족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기획된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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