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김규항의 '좌판''에 해당되는 글 30건

  1. 2013.02.01 [김규항의 좌판](30)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이강택
  2. 2013.01.18 [김규항의 좌판](29) ‘공무원 큐레이터’ 김준기
  3. 2013.01.04 [김규항의 좌판](28) 다큐멘터리 감독 태준식 (1)
  4. 2012.12.21 [김규항의 좌판](27) 연대활동가 박희경
  5. 2012.12.07 [김규항의 좌판](26)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모임
  6. 2012.11.23 [김규항의 좌판](25) 노동자 대통령 후보 김소연
  7. 2012.10.26 [김규항의 좌판](24) 실험예술가 이한주
  8. 2012.10.02 [김규항의 좌판](23) 노동운동가 한석호
  9. 2012.09.11 [김규항의 좌판](22) 반국가주의·반자본주의 음악집단 3인조 밴드 ‘레나타수이사이드’
  10. 2012.08.15 [김규항의 좌판](21) 대안교육 전문지 ‘민들레’ 발행인 현병호
  11. 2012.07.25 [김규항의 좌판](20) ‘빈집’ 장기투숙자 지음
  12. 2012.07.03 [김규항의 좌판](19) 연극인 오세혁
  13. 2012.06.12 [김규항의 좌판](18) 용산참사 다룬 다큐 ‘두 개의 문’ 감독 김일란·홍지유
  14. 2012.05.30 [김규항의 좌판](17 ) 유성기업 해고노동자 이정훈
  15. 2012.05.15 [김규항의 좌판](16) 좌파 교육활동가 한형식
  16. 2012.05.01 [김규항의 좌판](15) 기타리스트 윤병주
  17. 2012.04.17 [김규향의 좌판](14) 놀이운동가 편해문
  18. 2012.03.28 [김규항의 좌판](13) 청소노동자 김순자
  19. 2012.03.13 [김규항의 좌판](12)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창근
  20. 2012.02.28 문화활동가 신유아

글 | 김규항


ㆍ“싸워 이긴다해도 ‘무한도전 보게 해주세요’ 밖에… 정말 의미 있는가”


언론노조위원장 이강택은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다. 지난 두 해 동안 그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최선을 다해 싸워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싸우긴 했지만 출발부터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 싸움이었고 그 한계 자체를 극복하는 싸움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말이다. 그의 불편한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약이 될 수 있을까.


 

이강택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이 한국프레스센터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현재 언론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_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출처 : 경향DB)



▲ 방송사 노동방식은 이미 신자유주의 체계

정규·비정규직 차이 넘어선 게 ‘방송파업’

사측 끝없는 ‘버티기’에 한계도 드러나


▲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선거판만 바라보다

복귀 때 목표인 재파업 대중동력 잃어버려


▲ 자사 이기주의·선민의식 벗어던지고

철저한 성찰·소통 통해 새 길 찾아야 할 때


김규항 = 언론노조 쪽은 지난 대선 후 분위기가 어떤가요.


이강택 = ‘멘붕’이라고들 하는데 크게 다르지 않죠. 언론노조는 상대적으로 자유주의 정권이 집권하면 일하기가 좀 편한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잖아요. 그게 막혀버리니까 막막해들 해요.


김규항 = 보수정권과 자유주의 정권의 차이가 어디나 같진 않은데요. 언론노조나 대기업 정규직 쪽은 차이가 있다면 비정규 부문은 별 차이가 없다고도 합니다. 차이의 차이라고 할까요.


이강택 = 그 차이들을 넘어서는 경험이 적다는 게 문제죠. 예를 들면 지난번 MBC가 파업을 하면서 바로 불법파업으로 공격받고 손배가압류를 당하면서 ‘아 이런 거였구나’ 다른 노동자들이 당해온 걸 비로소 체감하잖아요. 그런 처지가 되어보니 비로소 현장에 카메라 한 대가 와서 찍어준다는 게, 보도 기사 한줄 내준다는 게 얼마나 큰 건지 체감하는 거죠. 그런 경험들, 차이를 넘어서는 경험들이 너무 적죠.


김규항 = 뒤집어 말하면 언론노동자들이 평소엔 노동자라는 자각이나 계급의식이 적다는 말인데요. 방송사 파업을 하면 그런 비아냥도 있죠. ‘평소에는 전문직으로서 선민의식에 차 있다가 저희가 다급해지면 노동자 코스프레를 한다.’ 불편한 이야기지만 한번쯤은 제대로 해볼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강택 = 상당 부분 인정할 만한 이야기죠. 방송사 같은 경우엔 이미 작업체계나 노동방식이 신자유주의 질서로 재편되어 있어요. 작가, FD, AD, 편집기사, 운전 등등 다 비정규직이고 모든 작업은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관리하는 방식이죠. 게다가 50%는 외주 하청 제작이에요. 그런 구조 속에서 익숙해진 채 일하다가 막상 파업을 해보니 내가 하던 일을 간부들이 와서 때우거나 대체 인력이 투입되는데 이게 큰 차이 없이 꾸려가요. 그때 비로소 내가 비정규직 문제에 얼마나 무감각해진 상태인가, 내가 같은 노동자가 아니라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구나 깨닫는 거죠. 문제는 그런 깨달음을 확장시키고 발전시켜서 말씀하신 차이의 차이를 넘어서는 건데요. 작년 저희 싸움을 돌아보면 상반기에는 그런 분위기가 생겼다가 하반기엔 사그라졌죠.


김규항 = 상반기엔 분위기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군요.


이강택 = 이를테면 언론 문제로 전국노동자대회를 했었잖아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KBS와 MBC가 싸우는 데 모여서 리본도 걸고 둘러쌌죠. 조합원들에게 문자가 많이 왔어요. 감동한 문자들. 연대의 힘을 느낀 거죠. 이게 하반기로 조금은 이어져서 SJM, 만도기계 이런 데서 용역폭력이 나니까 우리 안에서 ‘이제 우리가 갚을 때다’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 즈음이 그래도 근래 보기 드물게 노동 상황에 대해선 보도가 좀 잘된 편이었어요. 이게 더 일상화하고 진전하진 못했죠. 


김규항 = 언론노동자들의 싸움에서 공정성이나 편집권 독립이 주요한 주제인데요. 그런데 그 주제의 실체가 모호한 데가 있어요. 노무현 쪽 사장이냐, 이명박 쪽 사장이냐에 머문다고 할까요.


이강택 = 언론의 공정성, 편집권 독립 이런 주제들이 근본적인 구조의 변화 없이는 참 공허한 이야기들일 수밖에 없다는 걸 싸우면서도 늘 생각하게 되죠. 파업을 하고 싸워서 사장을 바꿔낸다. 그러면 자유주의 정권 시절의 조금 나은 상황으로 간다는 건데, 이게 정규직 언론노동자들에겐 분명히 나은 상황이지만 사회 전체 국민들에게 정말 의미가 있는가. 


김규항 = 의미라는 건 결국 방송 내용이겠지요.


이강택 = 바로 그 방송 내용에서 딱히 또렷한 차이가 없죠. 그러니 이 싸움에서 이기면 뭐가 달라진다고 사회에 국민들에게 당당하게 말하기 어려운 거죠. ‘<무한도전> 보게 해주세요’ 이렇게밖에 안되는 건데 그건 보편적인 설득력을 갖기 어렵죠.


김규항 = PD로 현장에서 일하면서 체험한 자유주의 정권 시절은 어땠나요.


이강택 = 권위주의 시절에 비하면 일정하게 자유로워진 면이 있었죠. 프로그램 기획이나 발제를 했을 때 무조건 안된다든가 그렇진 않고, 대신에 다양한 이유를 대서 뒤로 미루거나 하는 식이죠. 아주 독하게 하겠다고 하면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상황이랄까. 


김규항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신자유주의 문제에 대해 좋은 프로그램을 여러 편 만들었고, 여전히 선생을 언론노조위원장이 아니라 그 프로그램 이름으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강택 = 정연주 사장 때인데, 제가 PD협회장 하다가 복귀해서 처음에 <시사투나잇>이라는 걸 했어요. 재미있게 했죠. 후배들과 세미나도 하고 주말엔 후배들 대신 제가 카메라 들고 평택 대추리 같은 현장에도 가고 했죠. 6개월을 제 책임하에 끌어갔는데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로 가서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차베스의 도전’ ‘FTA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미국 쇠고기 보고서’ 같은 걸 만들었죠. 할 때마다 내부에서 이야기가 나왔어요. 이런 논리죠. 공영방송이니까 여러 입장들을 안배해서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 것 아니냐. 멕시코의 경우 타이틀이 ‘FTA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인데 명과 암이 균형있게 안 나오고 암만 많다. 


KBS '시사투나잇' (출처 :경향DB)


김규항 = 명과 암이 1 대 99인데 50 대 50으로 하는 건 진실을 왜곡하는 거죠.(웃음)


이강택 = 대체 진실이라는 게 뭐냐, 공정이라는 게 뭐냐 이런 논쟁이 벌어지는 거죠. 다수가 문제 있다고 하는데 조용히 좀 있어라. 그걸 억지로 밀고 나가서 만들고 나면 강평하는 자리나 사내 심의에서 너무 편향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계속 그런 과정의 연속이었어요. 결국 ‘얼굴 없는 광우병’을 만들고는 부서를 이동 당했죠. 출근해보니 프로그램 배정이나 편성도 없는 자리더군요. 제가 프로그램을 다시 만들 수 있게 된 건 그로부터 반년 후, 한·미 FTA가 체결되고 나서였죠. 자유주의 정권이라는 게 상대적으로 유연해 보이지만 기존 체제는 유지되는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김규항 = 상대적인 유연성, 혹은 자유주의적 공간이 열린다는 건 가능성으로서 의미를 갖는 건 분명한데, 그게 실체를 가지려면 우리에게 힘과 내용이 있어야죠. 


이강택 = 그 공간을 활용할 만큼의 준비, 문제의식, 좀 더 급진적인 사고들을 가진 사람이 없으면 그런 공간이 열려도 소용이 없죠. 그 당시 KBS이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었는가. 대다수 노동자와 민중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어요. 회사의 운영 구조나 프로그램 기조도 아까 말한 대로 이미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된 상태였고요. 


김규항 = ‘퍼블릭 엑세스’라고 하나요, 시민이나 노동자, 독립영화인들이 제작에 개입하는 활동이 필요한데요. 


이강택 = 그 부분을 위해 나름대로 이런저런 노력을 했는데 제대로 되진 않았죠. 바깥에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제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또는 밖에서 준비된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제작에 참여할 수 있게 할 것인가는 늘 제 고민의 주제입니다. 그게 없으면 자유주의 정권으로 바뀌고 사장이 바뀌어도 별 다를 게 없죠 사실. 


김규항 = 자유주의적 공간이 열려도 그걸 채울 만한 사람이나 내용이 없다는 건 참 심각한 일인데요. 그런 상황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뭔가요. 


이강택 = 여러 원인이 있겠죠. 언론 노동자로서 의식이나 열정과 무관하게 ‘언론고시’를 통해 기자나 피디가 만들어지는 것도 있겠구요. KBS의 경우에 나이 든 간부들은 옛날 학도호국단 간부 출신들이고 젊은 사람들은 학교공부 잘한 사람들이죠. 


김규항 = 물론 시민들은 전자보다 후자를 낫게 보지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는 구조라는 건 같군요. 


이강택 = 또 하나는 역시 극단화한 신자유주의적 경쟁이죠. 뚜렷한 차별화라는 게 존재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채널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죠. 특히 피디들은 거의 실시간, 분 단위로 시청률이 파악되고 평가가 이루어지는데요. 이게 집단적으로 표현되면 자사 이기주의로 나타나요. 그러다보니 언론노조 차원에서 정책이나 의견을 발표할 때도 방송사 간에 갈등이 나타날 수 있구요. 심지어 파업에 참가하지 않는 경쟁 매체에 좋은 일 시킨다는 생각도 존재할 수 있죠. 


김규항 = 그런 구조에서 정규직 언론노동자들이 일상에서 피디님, 기자님이라 불리면서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선민의식 같은 게 결합되면 노동자로서의 보편적 의식이나 사회에 대한 다른 관점을 갖는다는 건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군요. 


이강택 = 그런 면에서 회한이 많죠.(웃음) 최대한은 해봤어야 하는데, 선민의식이라고 하신 그런 기존의 사고틀이나 정서나 관행과 불편하더라도 좀더 치열하게 대처했어야 하는데, 일단 이 정도도 성과다라는 자족감에 안주한 게 아닌가, 하반기에도 그런 경험을 확장하는 교육사업을 적극적으로 시도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 하는.


김규항 = 기존의 사고 틀이나 정서나 관행이라는 건 안팎으로 있는 법인데요. 노동운동의 다른 부문과의 소통은 어떤가요.


이강택 = 민주노총 산별 위원장들이 국회 환경노동위원장과 만나서 자기 부문 이야기들을 하는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서로 놀라울 만큼 모르고 있더군요. 자리를 파하면서 다들 ‘다른 부문에 대해 알게 되었다’ ‘유익했다’고들 했지만 씁쓸했죠. 우리가 앞만 보고 옆은 보지 않고 왔구나. 


김규항 = 운동이라는 게 항상 코앞에 급한 현안이 떨어지잖아요. 그런데 거기 매몰되면 연대가 안 되고 전체를 못보고 결국 현안도 해결하기 어렵게 되어버리죠.


KBS 본관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공영방송 사수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이강택 = 민주노총이 총연맹이거든요. 총연맹이라는 구조가 바로 그런 걸 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실상은 뿔뿔이 나뉘어 있는 거죠. 자본은 그 틈을 타고 정규직은 손배 가압류나 타임오프 등을 통해 발을 묶고 정리해고의 토대를 닦고 비정규를 늘려가는 거죠. 결국 돌이켜보면 지난 10여년 동안 자본이 그런 식으로 승리해왔죠.


김규항 = 그건 사실 전체 사회에서 나타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진보적인 시민들이 이명박을 악마화하고 노무현을 신화화하면서 몇 년을 보내는 동안 자본은 진보정치와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조직 노동운동을 무너트렸죠. 대선은 박근혜가 이겼는가 문재인이 이겼는가와 무관하게 자본의 승리로 귀결한 셈이죠. 


이강택 = 저희 경우에도 상반기 투쟁하고 복귀하면서 목표는 그렇게 정했었어요. ‘대중동력을 유지하면서 언제든지 재파업을 할 수 있는 기조를 유지하고’ 등등. 그런데 실제로는 선거판만 바라보면서 잘하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이기면 쉽게 풀리지 않을까 하면서 몸을 움직이지 않게 되었죠. 


김규항 = 결국 문제의 실체와 대면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관리하는 노동 구조와 외주 하청계열화라는 실체를 제쳐둔 언론노동자의 싸움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강택 = 정체성이나 진정성을 넘어 결코 이길 수 없죠. 대중들에게도 도덕적인 호소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구요. 단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800만이고 노동자의 절반을 넘는데 언론사 파업이 그들에게 얼마나 호소력을 가졌겠느냐. 면구스럽지만 저희가 작년에 주어진 한계 내에서는 최선을 다했거든요. 


김규항 = 그 점에 대해선 충분히 동감합니다.(웃음) 선생도 단식투쟁하다가 반강제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고 참 열심히들 싸웠죠.


이강택 = 그랬는데도 저놈들이 버티기로 나오면 이길 수 없다는 게 판정이 난 거죠. 애초부터 주어진 한계가 있다는 게 문제인 거죠. 그걸 돌파하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 싸움은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부수고 나가는 싸움이죠. 그게 없으면 한발자국도 더 못나간다고 봐요. 선택은 둘이에요. 주어진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가 자유주의 정권 교체라도 되면 조금 나아진 상황을 맞느냐,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부수고 나가면서 근본에서부터 새롭게 출발하느냐. 


김규항 = 이명박 이후 가장 큰 손실은 우리가 성찰 능력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해요. 이명박을 욕하고 혐오하다보니 어느새 이명박의 함정에 빠져버렸다고 할까요. 정의와 진보의 자리를 ‘이명박 조롱 경연’으로 채우면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교감 능력을 잃었고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전망을 만들어내는 능력도 퇴행했어요. 그걸 경계하고 환기해야 할 지식인들은 오히려 그걸 부추겼구요. 


이강택 = 철저한 성찰, 그걸 기반으로 한 소통이 필요해요. 그래야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김규항 = 새로운 것이라고 하면 또 기발한 것, 발랄한 것 하면서 자유주의 흉내로 가기 십상인데요.


이강택 = 지난 10년 동안 그래왔죠.(웃음) 새로운 것이 뭐냐는 고민이 필요해요. 새로운 것은 기발한 게 아니라 우리가 간과해온 것 아닐까요. 우리는 우리 편한 대로 세상을 구성해서 바라보는 습관이 있고 간과해온 현실이 참 많죠.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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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ㆍ“예술가에게 공공성이란 국가가 아니라 소수 권리 옹호하는 것”


봉건시대의 미술가들이 귀족의 주문을 받아 살았듯 오늘 미술가들은 자본의 주문을 받아 살아간다. 주문을 받지 못하는 99%의 미술가들은 주문을 받는 1%를 바라보며 살아간다. 


미술가들이 고루 살면서 미술이 사람들에게 삶의 밥이 될 순 없을까. 미술이 공공성을 회복하는 것과 창의적 개인들이 살아 숨쉬는 것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미술이 ‘현실 복무’의 이름으로 정치나 이론에 복무하는 게 아니라 창의성과 예술적 모험을 배가하면서 사회 변화의 주체가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공무원 큐레이터’ 김준기(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의 고민은 끝이 없다.


 

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이 지난 11일 ‘주차콘’으로 서울 청계광장에 설치된 클래스 올덴버그의 ‘스프링’을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_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출처 :경향DB)




▲ “대추리·용산 등 살아있는 현장 떠나면

결국 제도 안에서 스스로 침잠하게 돼


▲ 자본의 선택 못 받은 99%의 미술가들

전시장과 시장만 바라볼 게 아니라

새로운 장, 즉 현장을 발견하고 들어가야


▲ 관 주도 공공미술은 갈등 덮으려고만 해

북한처럼 자기 실험도 도전도 못하죠


▲ 예술활동 왕성한 곳 지적 성숙도 높아

청계천 ‘스프링’ 맥락없이 명품 박은 격


김규항 = ‘스프링’은 아무리 봐도 청계천에는 생뚱맞아요. 


김준기 = ‘세계적인 명품 맥락 없이 갖다 박기’가 이명박 시장의 특기였죠.(웃음)


김규항 = 작은 사물을 엄청 크게 만드는 올덴버그의 작업 방식이 그의 마음을 맥락 없이 사로잡은 거죠.(웃음)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신데요.


김준기 = 10여년 전 가나아트 공공미술팀장으로 일할 때인데 어느 날 보니까 제가 미술판에서 개혁의 대상이 되어 있더라고요. 가나아트가 홈플러스 조형물을 싹쓸이하고 있을 때였어요. 구본주나 이불 같은 작가의 작품들도 넣고 하면서 제 나름대로는 의미를 찾으려고 애를 썼지만 이미 ‘공공미술이 건축물 미술장식품인가’라는 질문과 비판이 나오고 있었던 거죠. 


김규항 = 선택의 기로에 섰군요.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완전히 넘어가느냐, 냉정한 성찰로 자신을 복원하느냐.


김준기 = 몇해 전만 해도 사회변혁을 꿈꾸던 청년이었는데 말입니다. ‘공공성’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했고 20대의 삶이 복원되는 계기가 되었죠. 그때 제게 들어온 게 1980년대 현장미술이었어요. 1980년대는 ‘전시장 미술’이라는 말을 따로 써야 할 정도로 현장미술이 성행했잖아요. 미술 제도 안쪽과 바깥쪽을 연결하는 실천을 21세기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석사논문도 그걸 썼죠. 민중미술 후반 작가를 중심으로 하는 ‘건너간다’전을 진행한 것도 그 즈음이고요. 


김규항 = 1980년대 현장미술은 요즘 공공미술에서 말하는 ‘커뮤니티 아트’의 중요한 사례인데요. 21세기 들어 대추리나 용산에서 현장미술, 이른바 ‘파견미술’ 활동도 그렇죠. 대추리는 초기에 직접 참여하셨죠?


김준기 = 2003년께 정태춘 선생 등 예술가들과 기획에 참여했는데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계속하진 못했습니다. 2006년에 다시 가서 보니 엄청난 일들이 벌어져 있었어요. ‘대추리 현장예술 아카이브’라는 걸 만들었죠. 예술가란 살아있는 현장과 만나야 한다는 것, 안 그러면 제도 안에서 침잠할 수밖에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배우는 순간이었죠. 


14일 평택 대추리에서 미국 대륙을 형상화한 철골구조물 너머로 보이는 농협 창고. (출처 : 경향DB)


김규항 = 연구자나 이론가에게 그런 현장이 눈앞에 펼쳐진다는 건 굉장한 일이죠. 공공성은 언제나 대결합니다. 대추리에서도 ‘국가 안보를 위해 주민이 양보해야 한다’는 공공성과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지 말라, 주민이 국가다’라는 공공성의 대결이었죠. 


김준기 = 예술가에게 공공성이란 하나라는 것, 국가가 아니라 소수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라는 걸 뚜렷하게 확인하는 기회였죠. 


김규항 = 예술과 주민, 예술과 인민의 삶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끝이 없는데요. 


김준기 = 가령 오지호나 허백련을 비롯한 근대의 대가들이 짱짱하게 견인해온 광주와 전혀 그렇지 못했던 부산의 20세기 미술역사와 문화 상황은 확연히 달라요. 19세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술적 활동이 완성한 지역의 지적 성숙도는 확연히 다르죠. 예술이 한 공동체를 꾸리는 데 있어서 중요한 기제인 건 분명합니다.


김규항 = 동감합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누구나 공감하기에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경향이 있어요. 근대 이후 사회와 예술가의 정체성의 변화라든가, 구체적인 맥락을 짚어나가는 논의는 부족한 편입니다.


김준기 = 근대에 들어서면서 예술가들, 미술가들은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었죠. 전에는 주문에 의해 생산했다면 이제 생산의 주인이 되었죠.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와서는 제도화된 미술시장에 자신을 맞추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죠. 


김규항 = 실제적으로는 똑같은 상황이죠. 미술가들은 주문이 들어오는 예술가로 픽업되어야 살 수 있고, 픽업된 미술가들은 또 탈락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김준기 = 99는 못 들어가고 1만 들어가는 구조죠. 미술가들은 스스로 자신의 노동을 소외시키는 구조에 끊임없이 머리를 처박고 있는 거죠. 


김규항 = 말씀대로 대다수의 예술가들이 참여할 방법은 없는 구조라는 걸 분명히 해야 할 거예요. 얼핏 생각하면 공공성이라는 게 사익을 추구하는 게 아니니까 미술가들의 살림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닐 것 같은데 오히려 공공성의 추구만이 미술가들이 고루 먹고살 수 있는 길이 아닐까요. 


김준기 = 물론입니다. 근래 좌판에서 ‘현장의 재구성’ 이야기를 자주 하시던데 미술가들에게 필요한 것도 그겁니다. 전시장과 시장만 바라보는 99%에 머무는 게 아니라 새로운 장, 현장을 발견하고 들어가야 하는 거죠. 현장은 끝없이 많죠. 미술가에겐 마을이라는 것부터가 현장이고요. 요즘 부각되는 협동조합도 예술가들의 창작과 생활에 중요한 방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예술가들 단체라는 건 그들끼리의 이익추구에 머물렀기 때문에 시민사회와 호흡할 수 없었죠.


김규항 = 픽업된 미술가들은 참여하지도 않고요.


김준기 = 핵심을 아프게 찌르시는군요.(웃음) 진짜 잘나가는 예술가들은 99%의 공간에 참여하지 않죠. 


김규항 = 협동조합은 미덕과 가능성은 존중합니다만, 근래 이명박 정권이나 재벌까지 협동조합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인양 몰아가는 건 의심스러운 데가 있죠. 협동조합은 자본주의가 파괴한 상호부조의 정신과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운동이어야 하는데 분별없이 휩쓸려가면 오히려 자본주의로 심화된 모순과 갈등을 은폐하는 도구로 사용될 여지가 있죠. 예술가들의 창작이나 생활과 관련해서 매우 의미있는 틀일 수 있는데, 잘 만들어가야죠.


김준기 = 프랑스에는 ‘새로운 주문자’ 프로젝트가 있어요. 전근대 시대의 주문 생산방식이 근대의 자율 결정으로 바꿨다가 다시 탈근대 시대에 와서 ‘우리 주문받겠다. 마을공동체로부터 주문받겠다’로 가는 거죠.


김규항 = 주문을 받는가 안 받는가가 아니라 주문의 주체가 누구인가라는, 문제의 본질이 드러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군요. 근래 우리 사회에서 ‘진보시민들’이 빠진 함정과 같은 맥락인 듯해요. 자유가 있는가 없는가만 파고들 게 아니라 누구의 자유냐를 생각할 때입니다. 공공미술은 실제 진행에서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보니 관의 지원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공공미술이 국가나 자본 체제에 포섭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도 하죠. 


김준기 = 2006년에 문화부가 처음으로 국가단위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벌였어요. 공공미술추진위도 만들고 아트인시티라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도 시작했죠. 제가 팀장으로 나름대로 열심히 뛰었는데요. 그런데 이게 관의 돈으로 하다보니까 지적하신 대로 첨예한 지점은 비껴나가고 갈등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문제시하기보다는 덮어놓고 치유하겠다 이렇게 가게 되더군요. 지금도 사업이 유지되고 있는데 공공미술의 방향과는 다르게 가고 있죠. 


부산 수정동 공공미술 작업 심점환 작가의 물통 그림. (출처 :경향DB)


김규항 = 관의 지원이라는 게 사실 시민들의 돈이잖아요. 공공성이 훼손되지 않으려면, 시민들이 자신들의 돈을 자신들의 문화생활을 위해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준기 = 시민사회의 자율결정에 의해 공공의 재원을 조성하고 합의를 모아내면서 시민사회의 문화의식을 표출해내야겠죠. 이젠 예술 소비, 향유도 향유자들이 적극적인 자기결정력을 가지고 예술가들과 방향성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예술가들도 향유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기를 확인하고요.


김규항 = 그러려면 일단 시민들의 삶에 미술이 밥처럼 들어와야 하는데요. 없어도 무방한 거라면 불만도 없고 요구도 없으니까요.


김준기 = 어릴 때 배를 곯았던 세대가 아직 사회의 주역이라 미술의 밥에 배고픔을 느끼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저만 해도 형제와 가족들에게 미술품 사라는 권유를 잘 못하겠거든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미술을 접하게 하는 게 참 중요하죠. 


김규항 = 막연하게 느껴지지만 한 사회를 놓고 보면 사실 가장 빠르고 분명한 방법이죠.


김준기 = 가령 대전시립미술관에선 청소년 도슨트를 진행해 봤어요. 중학교 여학생 둘이 전시에 대해 설명 듣고 공부를 한 다음에 도슨트로서 시민 관객들과 전시투어를 하는 거죠. 팩트는 분명히 하되 자기 나름의 이야기도 할 수 있게 했어요. 도슨트 학생이나 시민들이나 정말 재미있어 했어요. 


김규항 = 대전시립의 명물이 되겠는데요. 학교 미술교육은 어떻게 가야 할까요.


김준기 = 가장 중요한 게 실기 위주에서 감상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거죠. 물론 어릴 때는 연필로 물감으로 많이 그려야죠. 그런데 좀 자라면 체계적인 감상교육이 필요한데 그게 거의 안되고 있죠.


김규항 = 그런 단절이 시민들의 일상에서 미술과의 단절을 만들어내는 셈이군요. 근래 유럽 미술 쪽은 액티비즘이 대세입니다. 2008년 공황 이후 나타난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인데요. 희한하게도 근래 한국 미술계는 치유나 힐링이 대세였어요. 


김준기 = 요즘 ‘스스로 선언하는 자의 것’이라는 액티비즘의 명제를 자주 떠올리곤 해요. 적극적 사회적 실천과 미술적 실천을 결합한 액티비스트로서 가치지향을 가진 작가와 비슷한 활동을 하면서도 그렇지 못한 작가는 전혀 다르거든요. 이념이라는 게 예술가의 자율적 활동이나 창작을 가로막는 틀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김규항 = 과거의 급진주의 미술들이 보여주었듯, ‘예술이 현실에 복무한다’는 명제는 실제로는 예술이 정치와 이론에 복무하는 상황으로 귀결되곤 하죠. 


김준기 = 북한 미술이 순도 100% 공공미술이거든요.(웃음) 그러나 북한엔 예술이 없죠. 자기 실험도 없고 예술적 도전도 없으니까요. 액티비즘은 예술가가 현실과 결합하면서도 예술가로서 정체성을 확장하고 열어나가는 데 꼭 필요한 지침이죠.


김규항 = 미술잡지 기자, 미술관 큐레이터, 비엔날레 전시기획자 등 미술판에서 거의 모든 일들을 해오셨어요. 근래 들어선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에 이어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으로 일하고 있는데요. 공무원 생활이 어떤가요.(웃음)


김준기 =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기 실천을 하는 중요한 채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립이나 시립미술관이 참 중요한 공간이죠. 시민들이 미술을 향유하는 공간이니까요. 


김규항 = 미술이든 음악이든 춤이든 시민들, ‘업계에 속하지 않는 관객’이 결국 미래를 결정하죠. 지난번 ‘여기 사람이 있다’전은 좋은 작품들이 많아서 저도 갔었는데요. ‘분단미술’전 같은 것도 유별난 학예실장이 아니었다면 어려웠겠죠. 


김준기 = 분단미술전 때는 국정원 조사도 받았죠. ‘공무원 큐레이터’라서 치러야 하는 불편함이죠.(웃음) 그러나 시민들이 그런 작품들을 접하면서 한편으로 충격도 받고 불편해도 하면서 문화적으로 나아가는 걸 보거든요. 저도 공부가 많이 됩니다. 


김규항 = 사비나 미술관과의 부당해고 소송은 꽤 알려진 일인데, 최근 잘 마무리되었다고요. 사비나 관장은 미술계의 실력자이기도 하거니와 선생은 근래 공무원 신분이었으니 어려움이 많았겠어요. 


김준기 = 온갖 회유와 협박, 이야기하자면 참 길죠. 며칠 전 해고기간 임금이 제 통장에 입금되었는데 재판 기간 7년에 변호사 비용 등을 생각하면 돈의 의미보다는 한국 사회에서 큐레이터의 인권, 노동자로서 큐레이터의 권리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김준기 케이스가 ‘큐레이터 개 취급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를 가진다면 충분히 만족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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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규항


ㆍ“대선은 386 재집권 실패일 뿐인데 왜들 멘붕이란 건지 모르겠어”


김규항 = 필모그라피(영화이력)가 많습니다. 주요한 장편만으로도 <어머니>(2012), <당신과 나의 전쟁>(2010), <샘터분식>(2009), <필승 2―연영석>(2008),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2005)….


태준식 = ‘독립영화계의 남기남’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웃음)


김규항 = 진행 중인 작품도 있죠? 평택에 자주 가시는 것 같던데요.


태준식 = <당신과 나의 전쟁> 그 후 이야기를 찍고 있어요. 큰 싸움 이후, 큰 비극을 겪은 후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라는 주제를 좀 길게 보면서 찍고 있습니다. 하나 더 있는데 조중동에 관한 다큐입니다. 어차피 대선 이후에 완성할 생각이라 여유있게 작업해왔습니다.



고 이소선 여사의 이야기를 다룬 <어머니>, 쌍용차 파업을 담은 <당신과 나의 전쟁> 등을 만든 다큐멘터리 감독 태준식씨가 자신의 영화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_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출처 : 경향DB)



▲ 대선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이

대다수가 어떤 희망을 갖고 사나

뭘 발견해야 할까 등을 그리려 해


▲ 박근혜 당선 후 잇단 노동자 자살 보고

현실의 실체 드러내려 노력해왔는데

대체 난 뭘 한 걸까 회의감 들기도


김규항 = 대선 결과로 멘붕(극심한 정신적 혼돈 상태)이라고들 하는데 작품엔 어떤 관련이 있나요.


태준식 = 솔직히 말해서, 저는 대선 실패라는 게 386이 정권 탈환에 실패한 것뿐인데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과 무슨 큰 상관이 있는지 왜들 멘붕이라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대선 결과가 무엇이든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떤 희망을 갖고 살아가나, 뭘 발견해야 할까 하는 것들을 그리려 합니다.


김규항 = ‘386의 재집권’에 진보정치와 민주노동운동 역량을 거의 다 쏟아부었기 때문에 그 실패가 모두의 실패가 되어버리는 슬픈 상황이죠. 사실 문재인의 낙선에 멘붕일 건 없죠. 수출 위주에 높은 금융개방도에 대기업 집중인 현재의 한국 경제가 기댈 데는 결국 노동계급의 희생밖에 없는데, 박근혜든 문재인이든 그 구조 안에 존재하니까요. 문재인의 인품을 말하는데 고 노무현 대통령도 개인적 인품은 그만한 사람 없었죠.


태준식 = 저는 다큐를 하는 사람이니까 두 후보의 TV 광고를 흥미롭게 봤는데 게임이 안되더라고요. 문재인 쪽 광고는 감동, 뜨거움, 현장의 분위기 같은 386의 정서로 가득했어요. 박근혜는 완전히 달랐어요. 어머니의 심정, 19일이면 달라질 거야, 심지어 자신을 부정적으로 그린 ‘여의도 텔레토비’ 캐릭터까지 끌어들였어요. 그런데 낙선 후에 나온 문재인 헌정 광고도 똑같더군요. ‘386들이 한풀이 한번 찐하게 하는구나’ 싶었어요.


김규항 = 386세대의 일원으로서 이래저래 참 민망해요. 386 주류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거치면서 또 하나의 기득권 세력이 되었으니 수구 기득권 세력과 정권 다툼을 벌이는 거야 당연하죠. 하지만 그걸 정의와 진보의 전쟁인 양 대중을 미혹하는 건 추했어요. 어쨌거나 대선은 끝났고 앞으로 5년을 어떻게 보내는가가 중요하죠. 5년을 또 386의 재집권에 올인하면 정말 끝장이고요. 그나저나 대선을 그렇게 한칼로 정리하시니 요즘 분위기에선 이채롭군요.(웃음)


태준식 = 대학 3학년 때부터 20대 내내 노동자뉴스단(노뉴단)에서 활동하다가 30대 들어 회사에 몇 년 다녔어요. 노뉴단에 있을 때는 노동자가 해방되는 좋은 세상이 와야 할 텐데 하는 큰 덩어리의 생각을 했다면 회사에 다닐 때는 노동자의 삶이란 게 이런 거구나,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던 것 같아요. 노무현 정권이 한참 노동운동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를 사회적으로 퍼트릴 때인데 저는 오히려 그 반대로 가더라고요.


김규항 = 20대에 활동하던 청년이 30대에 회사 다니면 급진성도 옅어지게 마련인데요. ‘세상이 간단한 게 아니구나’ ‘내가 좀 어렸구나’ 하면서요.


태준식 = 저는 이론이나 이념보다는 생활인으로 살면서 평범해 보이지만 자기 삶을 잘살아가는 사람들, 지혜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면서 좌파적 관점이 더 자연스러워진 것 같아요.


김규항 = 작가로서 좌파적 관점도 더 자연스러워졌음이 작품에 드러납니다. 사실 사람의 신념이 오래 가는 힘이 교조나 이론이라는 시각은 사실과 많이 다르죠. 그건 청년 시절 한때에나 가능한 것이고 삶에서 얻은 지혜가 신념을 지키는 힘이 되는 경우가 많죠. 주위를 둘러봐도 그래요. 주류 386들이 대중을 부추기고 지도하려 든다면 이쪽은 사람들의 삶을 찬찬히 살피는 태도가 많아요. 지금 급진적인 경향의 청년들을 보면 어떻습니까.


태준식 = 좋죠. 그런데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대학생들이 <당신과 나의 전쟁> GV(guest visit)에 저를 부르면 대부분 거절했어요. 내가 그 작품 이후 쌍차노동자들의 싸움에 늘 함께해온 것도 아니고, 작품 하나 만들었다고 해서 내가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나서는 건 불편한 일이다, 나 말고 당사자들 쌍차노동자들을 불러서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게 좋겠다면서요.


김규항 = 영화를 통해 현실을 소비하려는 것에 대한 불편함인가요?


태준식 = 이명박 이후에 ‘양심적인 시민들’이 많이 생겨난 것 같아요. 그분들이 노동 문제나 투쟁 현장에 관심을 갖는 건 좋은 일이고 제 작품이나 이런 다큐들이 그분들에게 조금씩 도움도 되었고요. 그런데 그분들이 노동문제에 진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무엇보다 자신들을 스스로 조직하고 싸우고 해야 하는데요. 그게 아니라 영화를 보고 울음이나 분노나 이런 것들로 쫙 한번 소비해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김규항 =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는 건 무엇보다 내가 노동자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인데요. <어머니>는 그런 깨달음을 주는 작품이었어요. 촬영에만 2년2개월이 걸렸는데 또렷한 기획을 가지고 시작했나요. 하면서 구성이 된 건가요.


태준식 = 이소선 어머니를 만나기 전에는 한 인물의 역사, 남한 사회의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에 대한 큰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 생각도 했는데 만나면서는 어머니라는 개인에 집중하게 되었어요. 만날수록 어머니의 매력에 빠져들었죠.(웃음) 저걸 잘 살려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럼 오래 만나야지, 방송처럼 한두 달 찍고 만드는 게 아니라 오래 길게 가야지 했죠.


김규항 = 그분의 매력에 십분 동감합니다.(웃음) 작업이 인생 공부가 되었군요. 치유의 느낌도 있고요.


태준식 = <당신과 나의 전쟁>을 만들면서 너무나 힘들었어요. 편집을 하면서도 너무 슬프고 분이 터져서 마지막 시퀀스를 2주 넘게 넘어가질 못할 정도였어요. 어머니를 만나면서 다 위로받고 치유할 수 있었죠. 어머니는 끊임없이 당신이 경험한 일들을 들려주셨어요.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떻게 고문받았고 또 사람들에게 어떻게 멸시당했는지…. 저는 대체 그런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이런 당당함은 대체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을까 궁금해졌죠. 그분에게서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가져야 할 태도가 뭔가, 진실을 위해 굽히지 않는 용기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었어요.


김규항 = 일각에서 ‘어머니’라는 제목에 대해 문제 제기가 있었죠.


태준식 = 모성의 굴레가 아니냐는 이야기였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까지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건 속상하더라고요. 지금까지 이래야 하는 건가 싶어서요. 작품을 안 보고 그런 말씀 하는 경우도 많이 보여서 작품을 일단 보시고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었고요. 사실 경순 감독이나 김일란 감독 같은 페미니스트 감독들에게 자문과 동의를 얻은 제목이었어요.


김규항 = 전 그 이야기 들었을 때 원론적으로는 의미가 있는데 이소선 어머니를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구나 싶었어요. 모성의 굴레를 온전히 벗어난 분이셨죠. 어떤 어머니보다 어머니셨지만 세상 어떤 아버지보다 아버지셨으니까요. <어머니>는 형식적으로 평범한 듯하면서 평범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주제의 다큐를 만들다보면 형식 면에서 고민이 많을 것 같아요. 자칫 두 측면이 서로 갉아먹기 십상이고요.


태준식 = 형식주의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형식 자체만 고민하는 작가가 아니라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걸맞은 다양한 형식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거죠. <어머니>나 <샘터분식> 같은 건 정말 제 마음대로 만들었어요. <샘터분식>은 작품 나왔을 때 주변에서 왜 이렇게 만들었냐고 다들 놀라고 그랬죠.(웃음) 하지만 저는 형식적 시도야말로 독립 예술가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횡포라고 생각해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그래픽 (출처 :경향DB)


김규항 = 당연히 누려야 할 횡포죠. 그걸 누리려고 상업영화 안 하는 건데요. 다큐처럼 사람을 직접적으로 불편하게 하는 예술도 없죠. 진실을 목도함으로써 갖는 관객의 불편함에 대해선 어떤가요.


태준식 = 작품을 마칠 때마다 내가 제대로 했나 되새겨보게 되는데 그건 곧 제대로 불편하게 만들었나 되새겨보는 것이기도 하죠. 사실 최근엔 회의가 들기도 했어요. 단지 박근혜가 되었다고 해서 다섯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떠나다니 이게 뭔가, 나름대로 현실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열심히 찍고 작업해왔는데 대체 난 뭘 한 걸까.


김규항 = 관련해서 저는 시스템을 그리는 다큐가 나오면 좋겠다, 사회의 전체 얼개를 드러내는 다큐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어지간한 건 다 386의 전략에 종속되어 버리니까요. 2008년 이후에 외국에선 그런 게 좀 나온 것도 같은데요. 


태준식 = <샘터분식>을 끝내고 금융자본주의에 대해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누구나 빚을 지고 살 수밖에 없는 세상이고 그 이자의 변화에 따라 사람이 죽기도 살기도 하는데 사람들은 그 부분에 대한 관심이 적잖아요. 저에게도 남의 일 아니고요. 그래서 기획을 진행했는데 <당신과 나의 전쟁>을 만들어야 했고 또 다른 현안에 매달리면서 못했죠. 지금 하고 있는 조중동 작업도 조중동을 욕하고 비웃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인가, 그 이면에 자본이 있고 조중동 또한 그에 자유롭지 못한 시스템이 있다는 걸 그리려고 해요. 제목이 <슬기로운 해법>이에요.(웃음)


김규항 = <당신과 나의 전쟁>도 나지막하게 시스템을 이야기하고 있죠. 노무현 대통령 죽음으로 노란 물결이 온 나라를 휩쓸면서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은 더 고립되고 그 분위기를 이용해 진압이 강행되는 과정, 사람들이 진정으로 자기 삶을 생각했다면 노란 물결이 아니라 쌍용차 정문으로 달려갔어야 했다는 이야기….


태준식 = 사회는 가면 갈수록 투명해지는데 사람들이 그걸 제대로 보긴 더 어려워져왔어요. 386 자유주의 세력이 사람들과 사회의 그 중간에 서서 거대한 막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죠. 사회를 거울처럼 비추어주는 다큐가 나오길 기대하고, 저뿐 아니라 그런 조짐은 많이 보입니다. 한국의 독립 다큐가 김동원 감독의 <상계동 올림픽>으로 시작되었는데 ‘착한 카메라’라고 할까요, 그런 작품도 계속 나와야 하지만 다른 형식과 다른 관점을 가진 작품도 많이 나올 겁니다, 이젠.


강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상계동 올림픽' (출처 : 경향DB)


김규항 = 반이명박, 반박근혜도 있고 반자본, 반지배계급도 있으면 좋겠죠. 여태까지 충분치 않았던 건 사회 인식의 문제뿐 아니라 여건의 문제도 있지요?


태준식 = 미국만 해도 이자율을 결정하는 회의 같은 데 카메라가 들어가거든요. 스테이크 썰면서 전 지구의 삶을 쥐락펴락하는 자들을 영상으로 보면 느끼는 게 있을 수밖에 없는데 한국에선 어려운 이야기죠. 또 일개 인물이나 주제가 아니라 시스템을 제대로 드러내는 작품을 하려면 제작비가 많이 필요하고요.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저는 그걸 극복하는 사례를 만들어보려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규항 = 기대가 됩니다. 스테이크 썰면서 지구를 쥐락펴락하는 자들 이야기를 들으니 몇 달 전에 본 역대 경제 관료들 모임이 생각나는군요. 그 자체로 그냥 세상의 진실이더군요. 경제를 주물러온 관료들의 면면엔 여도 야도 없는 거죠. 그들이 한동아리로 어우러지는 풍경을 다큐에 담는다면 백마디의 말보다 났겠구나 싶었어요.


태준식 = 카메라가 들어가긴 어렵겠지만.(웃음) 여건 이야기를 좀 했지만 그걸 핑계로 삼을 생각은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 여건이 나빠서 더 작업이 역동적이고 재미있는 면도 있고요.


김규항 = 인터뷰 초입에 대선을 한칼로 정리하셨으니(웃음) 이제 대선 이후 우리가 뭘 해야 할지도 말씀해주시죠.


태준식 = 저는 그럴 주제가 못되는데…. ‘좌판’에 나올 만한 사람인가 싶어서 많이 망설였거든요.


김규항 = ‘좌판’에 모시는 분들의 공통점입니다.(웃음) 


태준식 = 그런가요.(웃음) 나오면서 급진주의자란 뭘까, 좌파란 뭐하는 사람일까, 곰곰이 다시 생각해봤어요. 결국 ‘끊임없이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이구나 싶어요. 박근혜가 되든 문재인이 되든, 아니 노동자 후보인 김소연이 되었다 해도 좌파는 끊임없이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이 아닐까, 그렇게 세상의 문제와 진실을 사람들에게 알려내는 사람이 아닐까. 결국 좌파의 숙제는 얼마나 잘 시끄럽게 떠드는가겠죠. 아름다운 시끄러움, 감동적인 시끄러움….


‘대선은 386의 재집권 실패일 뿐인데 왜 우리가 멘붕에 빠져야 하는가’라는 태준식의 말이 선뜻 받아들여질 사람은 오히려 많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작품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 우선 두 개를 권한다. <당신과 나의 전쟁>과 <어머니>. 오늘 현실의 얼개가 담겨 있고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비결이 담겨 있다. 작품은 어떤 결론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결론을 갖든 멘붕에서 빠져나갈 첫걸음은 될 것이다. 그 또한 다큐멘터리의 힘이다. DVD 문의 : 한국독립영화협회 (02-334-3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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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나도 겪을 수 있는 상황을 함께하는 거니까, 현장투쟁은 바로 내 일”


몇해 전 철수한 프랑스 대형마트 까르푸의 경영진이 한국 노동자들에게 했던 패악질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 까르푸 자본은 왜 프랑스 노동자들에겐 그렇게 하지 못할까? 톨레랑스의 정신이 프랑스 안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일까? 자본의 무한탐욕이야 톨레랑스와도 무관한 것이고 이유는 단지 하나다. 연대의 힘. 프랑스에서 한국 노동자들에게 하듯 했다간 프랑스 노동자들이 모조리 들고일어날 테니. ‘연대의 여왕’ 루시아(사무직 노동자 박희경)를 만났다. 인터뷰는 대통령 선거 이틀 전에 있었다.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현대자동차 농성 천막을 찾은 ‘연대의 여왕’ 박희경씨가 농성 노동자들을 위한 음식과 음료를 들고 달려가고 있다. _ 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출처 : 경향DB)



▲ ‘투쟁’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두려워해

주장보다 마음으로 다가가는 게 우선


▲ 지금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일 찾으며

늘 말해요 “내일은 내가 해고될지 몰라”


▲ 김여진·공지영 등 투쟁 알려줘 고맙지만

그분들은 딱 거기까지만 해줬으면


김규항=인테리어 회사 경리과장이면 늘 사무실에서 일해야 하잖아요.


박희경=완전히 사무실 붙박이니까 연대 활동엔 불리하죠.(웃음) 일인시위 같은 거 할 때는 점심 안 먹고 뛰어갔다 오는 거죠.


김규항=언제부터 그렇게 연대활동을 하셨어요?


박희경=2008년 기륭전자 투쟁부터예요. 그때 현장에 처음 갔는데 천막 안에서 바짝 마른 여자 두 명이 하얀 소복을 입고 단식하고 있었어요. 그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사람이 어떻게 저런 곳에서 지낼 수가 있지, 너무 말라서 내일이라도 죽을 것 같은데 어떡하지 막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음날부터 이 사람들이 살아있나 걱정되어서 가기 시작했어요. 회사가 한남동이었는데 가산동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간 거죠. 가서는 이런저런 일도 돕고 인터넷 카페 운영도 맡고.


김규항=그 일이 꼬리를 물게 된 거군요.


박희경=그곳에서 동희오토나 다른 투쟁현장 노동자들도 만났죠. 2010년에 동희오토 노동자들이 저희 집 근처인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투쟁을 했어요. 전에는 스태프로만 참여했지만 그때는 처음으로 주체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죠. 문건도 쓰고 다른 곳들과 연대도 조직하고. 그 다음에는 발레오 동지들을 만나고, 유성기업 동지들을 만나고 죽 이어져왔네요.


김규항=연대라는 게 원래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니 문제 내 문제 구분이 없어지는 거죠.(웃음) 대학 때 운동권이었나요.


박희경=학생회 활동을 했었어요. 하지만 졸업하고 취직하고 10년은 운동과는 연을 끊고 살다시피 하다가 어느 날 ‘아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더라구요. 친한 친구가 민노당 당원이었는데 그러대요. 입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웃음) 그래서 내가 후원금 내는 곳이 어떤 덴가 가봐야지 하고 갔다가 당원이 되었죠.


김규항=흔히 강남에 사는 자유주의자들을 강남좌파라고 합니다만, 루시아님이야말로 강남좌파군요. 직장도 강남이고 집도 강남인데 관심은 늘 투쟁 현장이니.


박희경=강남 아이로 자랐죠. 고등학교까지는 좀 공주처럼 컸구요.(웃음) 재수할 때 아빠가 돌아가시고 좀 달라졌죠. 어머니가 일하시다 지금은 제가 일하고 있구요.


김규항=‘연대의 여왕’이라는 별명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희경=명예롭죠. 그런데 동지들이 만날 그러고 놀리고 그러죠.(웃음)


김규항=우리 사회는 사회문제에 대한 연대도 유형이 딱 있잖아요. 사무직 노동자들은 시민운동이나 아름다운재단 같은 곳엔 연대해도 노동운동에 연대하는 경우는 드물죠, 그래서 루시아님을 좀 특이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겠어요.


박희경=주변 사람들하고 보면 많이 특이한 편이죠. 제가 요 몇 달은 회사 일이 너무 많아서 현장에 잘 못 갔더니 다들 그러는 거예요. 루시아가 회사원이 맞긴 맞구나.(웃음)


김규항=회사 동료들과 연대 활동에 대해 이야기도 하나요.


박희경=많이 하죠. 그런데 일단 ‘투쟁’이라는 말을 사람들이 두려워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냥 울산에 간다고 해요. 그럼 울산에 왜 가냐구, 그럼 거기 비정규직 싸움이 있다구, 사람이 철탑에 올라가서 농성하고 있다구. 그럼 ‘사람이 철탑에 올라가 있어요?’ 묻죠. 뉴스 같은 데서 보고 묻기도 하구요. 그럼 조금씩 설명을 해요. 조금씩 조금씩 빗물이 스며들듯이 소통한달까요.


김규항=반응이 어떤가요.


박희경=되게 순수하게 받아들여요. 어떡하냐구, 사람이 그래서 어떡하냐구. 단식한다던 아저씨 TV에서 봤는데 나이도 많던데 괜찮냐구 막 그러구요. 이번에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후원주점 티켓도 동료들이 많이 사주었어요.


김규항=평소에 루시아라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 있는 거겠지요. 평소에 하는 짓이 곱지 않은데 그 사람이 교회에 다닌다 그러면 교회가 싫어지잖아요.(웃음) 정치적으로 옳은 이야기라는 것도 마찬가지죠.


박희경=안 그래도 노동운동 하면 빨강 띠 두르고 팔뚝질하는 무서운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있거든요. 주장보다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평범한 사람들도 대부분 마음을 열고 들어요. 


김규항=평범한 사람들은 마음을 여는데 오히려 스스로 개혁적이라는 사람들, 정권교체에 몰두하는 운동권 출신들이 아집에 빠진 경우를 많이 봐요. 선과 정의를 독점한 오만한 태도랄까요. 소셜테이너라는 분들도 그런 경향이 있구요.


박희경=김여진씨나 공지영, 정혜신 같은 분들은 참 고맙죠. 그분들 덕에 한진(한진중공업) 투쟁이나 쌍차(쌍용자동차) 투쟁이 더 많이 알려졌구요. 고마운데 그분들은 딱 거기까지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말할 때는 절대로 현장을 언급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현장에서 자기의 정치적인 소신도 이야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정리해고나 비정규 문제들이 사실 노무현 정권에서 이명박 정권으로 이어지는 문제들인데 현장에서 그렇게 좋은 일하고는 문재인 지지하고 찬조연설하면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거잖아요. 결국 현장을 이용하는 것밖에 안되잖아요. 


김규항=개인적으로는 좋은 분들이고 악의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자신의 행동이 갖는 사회적 맥락에 대해 조금만 더 생각하면 좋을 텐데요. 정혜신씨는 문재인 후보 찬조연설에서 쌍차 해고노동자 이야기를 많이 했다던데 정말 몰라서 그런 거라면 더 큰일이구요.


대선후보에게 외치는 쌍용차 노조원들의 외침 (출처: 경향DB)


박희경=쌍차 동지들 하고 며칠 전 이야기하면서 그랬어요. ‘이렇게 되면 쌍차 동지들이 전부 문재인을 지지하는 걸로 되어버린다.’ 투쟁은 위도 아래도 없이 한사람 한사람 동지들의 땀과 노력이 쌓여서 만들어가는 거잖아요. 그런데 투쟁이 승리를 한다고 해도 결국은 국회의원 누가 와서, 공지영이 와서, 김여진이 와서 이런 식으로밖에 보여지지 않는 거예요. 당사자들의 처절했던 하루하루가, 그 삶들이 완전히 묻혀 버린다는 게 저는 정말 화가 나요. 승리하고서도 이 동지들의 마음에 뭐가 남을까. 내가 싸워서 이겼구나,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또 일어나리라 이런 자신감이 생길까? 아니라는 거죠.


김규항=제가 경조사에 잘 안가는 편인데 막상 제가 상을 당해보니까 와주는 사람이 그렇게 고맙더군요. 어렵게 싸우다보면 와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당연히 고마울 수밖에 없죠. 그런데 그런 인지상정의 마음이 정치적으로 이용된다면, 현장의 주인공을 바꿔버리고 현장의 진실을 왜곡한다면 그건 연대가 아닐 겁니다. 쉽지 않은 이야기들이지만 이런 고민과 체험을 통해 노동운동이 더 성숙해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박희경=그렇게 분별력이 생기고 좀더 성숙해져서도 변함없이 만나고 연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김규항=오늘 투쟁 현장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투쟁 현장만 현장이라는 생각도 다시 생각할 문제지 싶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실은 다 현장이죠. 내가 저 사람들보다 고용안정성이 조금 높고 임금이 조금 많은 순간에 있다뿐이지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서 보면 같잖아요. 나 역시 언제 그런 상황에 처할지도 모르는 거구요.


박희경=‘내가 지금 있는 곳’이 다 현장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게 현장 활동이구요. 삼성이나 엘지 같은 대기업이라면 정치적 행동이나 활동의 제약이 많겠지만 어지간한 중소기업들은 생각보다 자유롭거든요. 할 수 있는 게 많아요. 연대하러 온 사무직 노동자들끼리 회사에서 동료들과 이렇게 한다 저렇게 이야기한다 그런 대화도 많이 하죠.


김규항=나는 현장에 있지 않다는 건 사실 착한 마음이잖아요. 나는 지금 투쟁현장에서 고통받는 사람들보다 훨씬 편하게 지내고 있으니 죄스럽고 미안하다. 그런데 그 착한 마음이 대부분의 현장을 스스로 부인하고 삭제해버리는 거죠. 그러면 남는 건 간접적인 돕기 활동밖에 없어요. 후원금을 낸다거나 강연회 가고 책 읽고 하면서 자신의 급진성을 현실과 차단하죠.


박희경=저는 늘 그렇게 말해요. 내일 내가 해고될지도 몰라. 나 내일부터 회사 앞에서 출근투쟁할지도 몰라.(웃음) 농담에 가깝지만 제 지향과 제 현실을 생생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거죠.


김규항=연대에 그렇게 적극적일 수 있었다는 건 성격적인 부분도 있었죠? 대개 사람들은 투쟁 현장에 처음 가면 어색하고 불편하거든요.


박희경=제가 사람을 워낙 좋아해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쉽게 친해지구요. 말씀대로 사람들이 투쟁현장에 처음 가면 쭈뼛쭈뼛하는데 저는 그냥 혼자 덜렁덜렁 가요. 동희오토 동지들이 그러더군요. 저기 멀리서 어떤 여자가 봉지에 뭐 주섬주섬 들고 온대요. 그렇게 와선 한바탕 떠들고 간대요. 그러면 기분이 안 좋다가도 기분이 나아지고 힘이 난대요.


김규항=처음부터 그랬어요?


박희경=거의 그랬죠. 사람들이 신기했대요. ‘저 사람은 성격이 정말로 밝구나’ 자기들끼리 그랬대요.(웃음) 금속노조나 이런 데서 온 활동가인 줄 알았다는 사람도 있구요.


김규항=보통 사람들이 투쟁현장에 좀더 편하게 연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격을 다 루시아 스타일로 고칠 수도 없고.(웃음)


박희경=불과 몇 달 전, 몇 해 전만 해도 나와 다를 바 없이 살던 사람들이라는 걸 기억하면 좋겠어요. 투쟁현장에 있는 동지들도 누구나 편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요. 가장 소박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선의가 편안하게 받아들여져야 해요. 갑자기 어려운 이야기를 해버리거나 다짜고짜 변혁이라든가 수준 높은 이야기들을 해버리면 불편할 수밖에 없죠.


김규항=유명인이 찾아오면 잘 대해주잖아요. 변명의 여지없이 고칠 부분입니다.(웃음)


박희경=유명인보다 같은 노동자가 왔을 때, 평범한 시민이 왔을 때 오히려 더 잘 대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김규항=더 맞고 더 멋진 거죠. 대선이 코앞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보적 정권교체’에 관심이 많은데 그분들이 생각하는 진보와 루시아님이 생각하는 진보는 뭐가 다른가요.


박희경=저는 진보이론을 많이 공부하거나 한 사람은 아니지만 진보의 기준은 분명히 알아요. 진보는 저 같은 평범한 사람들, 사무직이든 생산직이든 노동자들이 누군가에게 억압받지 않고 차별받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 말하는 진보적 정권교체는 그런 기준은 아니죠. 이미 충분히 안정되게 살아가면서 이명박이나 박근혜 반대하는 분들이 기준이니까요.


김규항=말씀대로 ‘진보의 기준이 누군가’가 빠져버리면 수구기득권 세력과 신흥기득권 세력의 정권 싸움밖에 안 되겠죠. ‘최저생계비가 만원도 안돼요?’ 반문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건 끔찍한 일이지만 ‘진보의 기준이 누군가’는 문재인이냐 박근혜냐 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나저나 인테리어 회사는 한겨울엔 덜 바쁘니 다시 연대의 여왕이 활약할 시기인가요?(웃음)


박희경=오랜만에 본 동지들이 그래요. 연애하냐구 남자 생겼냐구.(웃음)


김규항=남는 시간을 모조리 연대활동에 쓰는데 연애를 언제 해요.


박희경=그러게요. 제가 가끔 농담처럼 동지들한테 그래요. 비정규직 철폐되고 정리해고 없어지는 날 나도 결혼할 거라구, 나 시청 광장에서 결혼식할 거라구, 시청광장 미리 빌리자구 막 그러죠. 그럼 동지들이 ‘그럼 결혼 안 한다는 이야기네!’ 그러죠. 그럼 제가 그래요. 그게 바로 문제라구, 왜 우리가 이긴다는 생각을 못하냐구, 난 내년에 결혼할지도 모른다구!(웃음)


김규항=주례를 세우려면 노동자 시장부터 당선시켜야겠군요.(웃음)


박희경=동지들은 저한테 늘 고맙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은 제가 더 고마워요. 힘이 빠지거나 기분 안 좋은 일 있다가도 동지들 만나서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싸우고 그러면 힘이 나고 사는 기쁨이 생기거든요. 


김규항=불쌍한 사람을 돕고 난 다음의 보람하고는 다른 기쁨이겠죠. 


박희경=나하고 무관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동정하고 시혜를 베푸는 게 아니잖아요. 같은 상황을, 나도 겪을 수 있는 상황을 같이 함께 하는 거니까요. 그건 바로 내 일인 거죠. 


김규항=기억나는 순간 하나만 들려주세요.


박희경=너무 많은데요.(웃음) 동희오토 동지들이 양재동에서 싸울 때 일인데요. 동지들이 어느 날 제 머리에 투쟁 띠를 묶어 줬어요. 그렇게 가슴이 뛰고 눈물이 나더라구요. 그리고 명예조합원이라고 하면서 투쟁 조끼를 주었어요. 제가 받은 가장 소중한 선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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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ㆍ“노동의 고통스러운 현실, 아이들이 살 세상이기에 덮어둘 순 없죠”


노동 현실은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노동문학과 노동문제를 다루는 작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건 애석한 일이다. 그런 현실의 한구석에 작지만 희한한 풍경이 있다. 일군의 어린이 책 작가들이 노동자들의 시위와 집회에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나타나는 것이다. 더 작가(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모임)의 회원들. 


그들은 스스로를 ‘못난이들’이라고 부른다. 동화라는 장르가 대단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들의 행동을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든 않든 상관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못난이들. 못난이 셋을 만났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모임’(더 작가)의 김하은, 최덕규, 박효미 작가(왼쪽부터). 더 작가는 지금까지 민주주의, 재개발,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룬 어린이책 <박순미 미용실> <비정규씨, 출근하세요?>를 내놓았다. (출처; 경향DB)



김규항 = 언젠가 비없세(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가입 단체 이름을 훑어보다가 더작가 이름을 발견하고 이게 뭘까 했는데 어린이책 작가들이라고 해서 놀랐어요. 처음엔 실제 작업보다는 운동에 전념하는 유별난 사람들이려니 했던 것도 같고요.(웃음) 2008년에 만들어졌는데 회원이 얼마나 되나요.


박효미 = 정회원과 준회원이 있는데요. 정회원만 200명 정도예요. 어린이책 작가 모임이니까 작가와 화가만 정회원 자격이 있어요. 습작생도 포함해서요. 아무리 이름난 평론가나 편집자들도 다 준회원입니다.(웃음)


김규항 = 그거 괜찮군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보다 어떤 등급의 사람인가를 중시하는 세태 속에서요. 회원들의 정치적 성향은 어떤가요.


박효미 = 정치적인 성향은 크게 보면 비슷한데 스타일은 다양한 편이에요. 올봄에 쌍용차 와락에서 책읽어주기 모임을 했는데 그쪽에 열심인 분들은 시위나 집회엔 오지 않는 편이라든가. 그러나 적어도 두 가지는 공유하죠. 아이들이 좀더 행복해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어린이 책 쪽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동심천사주의’에 대한 반대. 


김규항 = 아이들에게 맑고 아름다운 것만 보여주고 들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은 문제를 만들어내죠. 그쪽 작가들과의 관계는 어떤까요. 


박효미 = 오래 전에는 갈등도 많았다고 하는데 저희에 와서는 워낙 경계가 선명해져서요. 서로 만날 일도 없고 출판사도 갈리는 편이고.


김규항 = 사회에서 반공주의가 퇴조하듯 어린이 책에서 동심천사주의도 퇴조하는 것 같습니다. 더작가 이름으로 책을 두 권 냈는데 하나는 평화박물관에 또 하나는 비없세에 인세를 전액 기부했습니다. 이런 결정은 어떻게 합니까.


박효미 = 조직적 의결 같은 건 없어요. 저희는 정관이나 강령 같은 걸 가진 조직이 아니라 그냥 커뮤니티니까요. 네 명의 운영진이 할 일을 제시하면 동의하는 작가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김규항 = 프로젝트로 움직이는군요. 조직의 체계는 있는데 실제 일은 제대로 안 되는 경우보다 낫습니다. 평화 문제를 다룬 어린이 책은 꽤 있었지만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책은 없었어요. 


박효미 = 지난해 3월에 새 운영진이 만들어지면서 도움말을 구하려고 송경동 시인을 만났어요. 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선생을 소개받았고 김 선생에게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세 번 강의를 들으면서 이거 책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김규항 = 다들 비정규 비정규 하지만, 이게 자세히 들어가 보면 자본과 국가 측에서 워낙에 교활하게 만들어놓은 체계라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복잡하고 공부할 게 많잖아요. 


박효미 = 운영진 입장에선 해보자는 이야기는 나왔지만 안했으면 하는 마음도 컸어요.(웃음)


최덕규 = 저희가 작가들이다보니 보편적인 노동 문제에 대해 체험도 적어서 피상적으로 될까 걱정도 되었고요. 


김하은 = 작업을 준비하면서 실제 노동자를 만났을 때 그 삶의 고통이 주는 무게가 너무 컸어요. 나도 짓눌리는 느낌인데 이걸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작업을 대체 어떻게 하나 막막했죠.


박효미 = 결국 하게 된 이유는 하나였어요. 이 현실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기 때문에 덮거나 미루어둘 순 없다.


김규항 =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시민이자 노동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시민의식이나 시민교육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노동자 의식이나 노동 문제에 대해선 가르치지 않죠. 우리 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인데요.


김하은 = 책도 없고 학교 수업에서도 전혀 없어요. 엄마들이 아이 초등학교 들어갈 땐 다 일류대학에 가길 바라고 뭔가 남과는 다르게 살길 바라지만 그렇게 되는 아이는 반에서 고작 한명 될까 말까 하거든요. 저희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곤 해요. 이게 너와 네 친구들이 살 세상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화려하고 멋진 삶은 특별한 소수의 삶일 뿐이다. 늘 염두에 두고 있다가 어느 노동자들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저건 저 사람들이 뭘 잘못해서 그래, 잘 못 살아서 그래 강 건너 불구경하듯 생각하면 안 된다. 바로 네 문제이고 너희가 어떻게 할지 생각해야 한다. 


김규항 = 가정 노동교육의 모범사례입니다.(웃음) 고래가 벌이고 있는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항목 중에 ‘아이와 노동자가 행복해야 좋은 세상입니다’라는 게 있는데요. 경향신문에 나갈 때 결국 ‘노동자’라는 표현이 빠졌지요. 편집부에서 독자들이 거부감을 가질 우려를 표시했고 저희도 시작이니 무난하게 가자고 수용했던 건데요. 조·중·동도 아니고, 경향 독자면 진보적인 편이라고 하는데도 아직 그런 형편이죠. 


경향신문, `고래가 그랬어 교육연구소'의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캠페인 참가자들 (출처 : 경향DB)


최덕규 = 처음에 노동 이야기가 나와서 열댓명 작가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할 때도 의견 차이가 많았어요.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는 작가들이 있었고 젊은 작가들 중에는 지금 현실에서 노동이 뭐가 신성하냐 그냥 돈벌이일 뿐이고 아이들도 일찌감치 그런 생각을 굳혀간다는 이야기가 많았고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과 아이들의 현실의 차이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하은 =이번 책을 읽은 아이들이 마트에서 일하는 분들이 전과는 달리 보이더라고 해요. 전엔 시식 코너에 놓인 먹을거리 이런 게 눈에 들어왔다면 이젠 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대요. 우리가 이런 식으로 하나씩 아이들에게 던져주면 자라면서 더 깊게 생각하게 될 거라 기대해요.


김규항 = 노동 현실에 대해 적선의 관점과 연대의 관점이 있죠. 둘은 호의적이라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가치인데요. 얼마 전 많은 사람들이 개탄했던 공지영씨의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관련한 일도 그 본질은 공지영씨가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연대가 아니라 적선의 태도를 가진 거였죠. 아이들에게 노동을 이야기한다는 건 결국 연대를 이야기하는 것인데요.


박효미 = 개인적으로 가장 고민스러운 문제인데요. 노동과 관련한 고통스러운 현실을 동화로 그리다보면 그 현실에서 살아가는 아이를 등장시키게 되거든요. 그 아이를 동정의 대상으로 만드는 건 제 스스로 용납할 수 없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고민하다가 원고를 버리는 경우도 많고요. 


김규항 = 심정은 이해하지만 버리진 말고 천천히 개비하시죠.(웃음) 실은 고래도 ‘어린이 노동 교과서’를 준비하고 있거든요. 유럽은 노동교과서가 없는 나라가 없고 심지어 미국도 사회 교과에 들어있던데 우리는 쌓여진 성과가 전무하다시피해요. 그래서 더 어렵고요. 마음이 급한 만큼이나 천천히 제대로 가려는 중입니다. 


김하은 = 그나마 아이들이 책을 좋아해주는 것 같아 다행이긴 해요. 저희 집 아이가 책을 주면 읽고나서 돌려주는 책과 돌려주지 않고 자기 책꽂이에 꽂는 책이 있는데 이건 책꽂이도 아니고 책상에 놓고 자주 보더라고요.


김규항 = 혹시 아이가 엄마의 의중을 살피는 건 아니겠죠?(웃음)


김하은 = 아니에요. 그렇게 눈치라도 보면 제가 편하게요.(웃음)


김규항 = 그런 말씀을 왜 드렸느냐면 우리 사회는 ‘좋은 어린이책’이라는 게 어른 기준이잖아요. 어른들이 아이에게 좋다고 여기는 책이 좋은 어린이 책이죠. 그래서 좋은 어린이책이라고 뽑힌 책들 중엔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거기에는 또 어린이책의 구매자가 어른이라는 부분이 분명히 숨어 있어요. 누구도 공공연하게 말하진 않지만 누구나 다 생각하고 마케팅의 기준이 되고 그러죠.


박효미 = 어린이 책의 음험한 이중성이죠. 


최덕규 = 저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 좋은 어린이 책이라고 생각해요.


박효미 = 전 좀 달라요. 작가로서 제가 생각하는 좋은 어린이책은 이게 세상에 나올 만한 가치가 있는가가 중요해요. 그게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에 내 책이 어린이에게 갔을 때는 정말 재미있어야 한다. 그런데 재미가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자극적인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거죠. 저희 아이도 자라면서 그래요. 정말 좋은 책은 나중에도 생각이 나. 그런데 너무나 재미있게 읽은 어떤 책은 생각이 안나. 


최덕규 = 동의해요. 가치가 중요하죠. 그런데 그런 판단의 주체는 결국 아이라는 것이죠. 어른이 볼 때는 조금 유치해도 아이가 재미있게 본다면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거죠.


김하은 = 두 분 이야기를 하나로 묶으면 되겠는데요.(웃음) 저는 언제나 가장 좋은 책은 불편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해왔어요. 한번 더 생각해보게 만들어주는 책. 어린이 책에선 그런 책이 참 적다가 근래 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그런데 여전한 흐름도 있죠. 엄마들이 도서관에 학교에서 나눠준 도서목록을 갖고 와요. 그런데 그 목록이 십몇년 전 그대로예요. 너무 한심해서 힘이 빠지죠.


김규항 = 한심한 목록도 문제지만 목록이라는 것 자체가 가진 폭력성 같은 것도 있지 않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도서목록을 만드는 사람들의 용기가 잘 이해가 안갈 때가 있어요. 부러운 건가?(웃음)


박효미 = 그런데 그나마 목록이라도 없으면 그냥 마케팅으로 가버리거든요. 


김규항 = 그 역시 목록 아닐까요. 시장의 목록. 예전에 권정생 선생이 당신 책이 <MBC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에 선정된 걸 거부하면서 그런 말씀을 하셨죠. “왜 텔레비전이 서점에서 스스로 책을 고르는 즐거움을 빼앗으려 하는가.” 선생의 우려는 현실에서 충분히 나타나고 있죠. 사람들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것이거나 광고가 많이 나는 책 아니면 잘 안 사려 해요. 시장의 목록에 사로잡힌 거죠.


박효미 = 스스로 책을 고르는 힘이 적어지니까 책에 대한 인식 수준도 떨어져요. 동화와 관련한 어머니들 모임에 강연을 가보면 그런 걸 체감하곤 해요. 심지어 ‘전집이 뭐가 나쁘냐’고 말하는 분들도 오랜만에 다시 만나고 있고요.(웃음)


김규항 = 시를 쓰다가 마흔이 넘어 어린이책을 시작한 어느 작가분이 그러시더군요. 아이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쓴다는 게 속으로 한번 삭이는 과정이 필요해서 젊었을 때는 어려웠던 것 같다. 어린이 책 작가가 갖는 고유한 고뇌가 느껴졌어요.


김하은 = 작품을 쓰다보면 나에겐 없다고 생각했던 게 발견되거나 폭로되죠. 나는 이거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어느새 주인공이 그렇게 간다거나. 내 어떤 부분이 그걸 따르고 있는 거죠. 그걸 아이들에게 드러낸다는 게 겁이 나서 미뤄놓거나 포기하기도 해요. 그런데 그게 쓸 때는 잘 모르는데 꼭 써놓고 보면 드러나요.(웃음) 


박효미 = 아이가 항의도 해요. 책 죽 읽어보고 작가의 말 읽어보고 ‘엄마는 왜 우리한테 이러지 않으면서 이렇게 쓰느냐’ 막 그러고.(웃음)


김규항 = 진보적인 부모들이 귀가 쫑긋할 이야기군요.(웃음) 그럴 땐 어떻게 하세요. 


박효미 = 아이의 항의를 인정하고 그러죠. 엄마가 완벽하다는 게 아니다, 엄마도 생각과 행동이 다른 점이 여전히 많다, 다만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방향을 갖고 있고 노력하는 거다. 


김하은 = 저희 같은 사람들 아이들은 일찍부터 보고자란 게 있어서인지 대개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수긍이 안되는 상황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죠. 저희 아이도 언젠가 한번 학교 선생님이 아이가 부담이 되었는지 너희 어머니 뭐하니 하더래요. ‘글 쓰시는데요’ 하니까 ‘아 그렇구나’ 하시더래요.(웃음)


김규항 = 저도 사회문제를 비판하고 하지만 그런 의견과 실제 삶이 일치하는지 영판 다른지 아이들이 늘 보잖아요. 그 눈치를 보며 조심조심 살다보면 사람 꼴을 잃지 않고 사는 데 여간 도움이 되는 게 아니에요.(웃음) 동심이라는 건 참 무서운 거죠. 


김하은 = 동심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해요. 


박효미 = 동화를 쓴다고 하면 동심이 살아있구나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 동심은 언제나 동심천사주의를 전제로 하죠. 동심이란 벌거숭이 임금님을 보고 벌거숭이라 말하는 건데요.


최덕규 = 동심을 순수라고 하는데 동심은 오히려 거침없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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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둘 중 하나뿐인 강요된 선택, ‘다른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


‘7년 연속 세계 최고 공항’으로 선정되었다는 인천국제공항. 깔끔하고 근사한 근무복을 입고 일하는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이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직원주차장도 이용 못하는 직원들. 물론 이건 인천공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는 오늘날 모든 한국인의 현실이거나 가까운 미래다. 사정이 낫다는 30대 기업들마저 내년부터 비상경영에 들어간다고 발표했고 일부는 이미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2008년 미국발 공황의 파도는 한국을 피해간 게 아니라 이제 막 도착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진보적인 시민과 노동자들은 말한다. 현실이 힘들수록 문재인과 안철수가 단일화해서 박근혜를 막고 정권교체를 해내야지. 그게 지금 현실에선 최선의 진보니까, 유일한 희망이니까. 그들 앞에 ‘다른 희망’을 이야기를 하는 후보가 있다.



‘비정규직,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내걸고 노동자 대통령 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김소연씨가 지난 21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천막농성장에 섰다. _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출처 : 경향DB)



▲ 25년 이어온 현장투쟁, 나는 비정규파

문재인·안철수, 인품 좋아 보이지만

약자에 동정·시혜의 시선만으론 한계


▲ 구로공단엔 지금도 정리해고가 일상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내지 않고

선진보적 정권교체는 허구와 같아


▲ 후보자 선출대회 때 나온 반대표 2장

제가 고생할까 걱정한 동지들이죠


김규항=‘진보적 정권교체는 허구’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김소연=김대중 정권은 정리해고 파견제를 도입하고 노무현 정권은 비정규 악법을 만들었죠. 많은 노동자들과 농민들이 그들과 싸우다 목숨을 잃기도 했고요. 다른 걸 다 떠나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가 오늘날 국민들을 힘들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점에서 그들의 재집권이 정권교체인 건 맞지만 진보적 정권교체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김규항=과거를 기준으로 예단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분들 중엔 집권 시의 일들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는 모습도 있고요.


김소연=태도가 조금 달라보이는 건 아무래도 야당 상태이기 때문이고요. 정리해고나 비정규 문제를 언급하는 것도 워낙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고 일정한 사회적 공감이 있기 때문이죠. 박근혜 후보도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그들의 진정성은 민주당이 여당 상태인 광주나 전북 같은 데를 보면 드러납니다. 전북고속 노동자들이 2년째 당하는 걸 보세요. 집권 당시와 똑같습니다.


전주 시내버스 노조가 부분파업에 돌입하면서 시내버스가 차고지에 멈춰 서 있다. (출처 : 경향DB)


김규항=박근혜 후보가 인혁당 사건에 대해 결국 사과를 할 정도로 권위주의 문제에 한 시민의식은 높아졌는데 노동문제에 대해선 아쉬운 감이 있어요. 문재인 후보가 쌍용차 와락에 가서 눈물 흘린 것에 감동하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김소연=이명박 정권이 워낙 패악질을 많이 하다보니까 상대적인 호의를 얻는 거라 생각합니다. ‘박근혜가 되면 어떡하냐’는 이야기는 투쟁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있어요. 그런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함께 1992년, 97년 대선 상황을 떠올려봤으면 해요. ‘50년 만의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정말 절대적이었죠. 그렇게 정권교체를 한 결과를 우리는 충분히 경험했습니다.


김규항=안철수 후보는 어때 보입니까. 이분은 이명박 정권에서 역할도 맡았고 서울시장 보궐선거 즈음부터 야권으로 기운 분입니다만….


김소연=최근에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에 대해 “협의회를 만들어주겠다”고 하시더군요. 지금 이명박 정권보다 더 못한 이야기를 하는 건데 노동문제에 대해 개념이 부족한 분이지 싶습니다. 안철수 후보나 문재인 후보나 두 분 다 개인적 인품은 좋아 보입니다만, 결국 노동문제나 서민 대중의 고통에 대해 동정과 시혜의 시선 이상을 가지긴 어렵기 때문에 소용없는 일입니다.


김규항=많은 분들이 단일화에 집중하고 있지만 사실 큰 기대나 희망을 갖는 경우는 적어보입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일 때는 ‘사람 사는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기대 같은 게 있었잖아요. 지금은 ‘어쨌든 박근혜는 막아야 한다’는 게 주입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신자유주의 15년을 살아내면서 많이들 지친 상태인데요.


김소연=희망버스 때 참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는데 조직된 노동자가 아닌 분들도 많았잖아요. 누구나 마음 한편엔 공감대가 생긴 거죠. 제가 2005년에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을 시작할 때만해도 파견노동이 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저희 이후로 투쟁이 이어지면서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에 확산되었죠. 정리해고도 마찬가지고요. 김진숙씨가 크레인에 올라가 싸우고 또 그 크레인은 김주익씨가 정리해고 문제로 싸우다 죽은 곳이었죠. 현실에 대한 그런 공감대가 있는데 다른 길이 있는가라는 희망이 가려져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김규항=근래 진보정치 운동이 좋은 모습을 못 보인 것도 그 원인 중 하나죠. 


김소연=저는 민노당(민주노동당)이 국참당(국민참여당)과 합당할 때 탈당했습니다만, 민노당이 국참당과 합당하고 노회찬·심상정씨도 오고 통진당(통합진보당)이 만들어지면서 많은 시민들의 진보적인 기대가 있었거든요. 자주파가 문제가 되었지만 사실 따져보면 자주파뿐 아니라 너나없는 권력투쟁의 장이 되어버리면서 벌어진 일이었죠. 기성정치와 다를 게 없다는 큰 실망을 가져다주었어요. 많은 시민들은 이젠 진보정치도 희망이 없고 그럼 어떻게 하냐, 그래도 민주당이 이명박보다는 조금이라도 낫지 않겠냐 하는 실낱같은 기대를 하게 되었죠.


김규항=기대를 하게 되었다기보다는 ‘둘 중에서만 선택해야 한다’는 강요를 당하게 된 셈입니다.


김소연=저희가 출마하게 된 이유도 그 강요를 벗어나기 위해서입니다. 저를 대통령으로 뽑아주세요, 이런 걸 넘어서 새누리냐 민주냐 혹은 통진당이다 진정당(진보정의당)이다를 넘어서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동안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워온 노동자들이 먼저 발을 떼서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가 무엇이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우리는 어떤 세상을 원하는지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려는 겁니다.


김규항=싸워온 노동자 후보라는 점, 명망가가 아니라 현장에서 투쟁해온 노동자라는 게 이전 대선에서 민중후보와는 다른 점인데요.


김소연=민주노총 같은 중앙 단위에서 결정해서 내려온 게 아니라 밑으로부터 올라온 것이라는 점도요. 근래 진보정치나 민주 노동운동에 대한 정서로 볼 때, 만일 제가 민주노총의 간부라도 되었다면 쟤 또 정치에 관심이 있나 권력에 관심 있나보다 하시지 않을까요.(웃음) 저희가 현장에서 싸워온 투쟁하는 노동자들이기에 그래도 저희 말을 귀담아 들어주시는 거죠.


김소연 대선후보가 2012 민중대회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김규항=우리 사회는 여전히 노동자라는 말에 대한 거부감이 많습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이라는 말에 호의적인 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김소연=투쟁하는 노동자들, 철거민들, 장애인들, 소수자들이 언론에서 다뤄주지 않는 현장들이 전국 도처에 많은데요. 그래도 전체 국민으로 본다면 적은 수이고 말씀대로 거부감을 갖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 투쟁의 의제나 내용은 대부분의 국민들에 해당하고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인 게 분명한 사실입니다.


김규항=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자로 살잖아요. 시민이 노동자니까요. 그런데 투쟁이라고 하면 어떤 특별한 상황에 있거나 특별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문제처럼 여겨지기도 하거든요. 다른 노동자의 문제는 곧 내 문제이고 내 자식의 미래 문제인데요.


김소연=저희에게도 가장 큰 벽이죠. 그런데 조금씩 변화가 느껴집니다. 제가 있던 구로공단은 지금도 해고가 일상이에요. 다들 분노하지만 해결 불가능한 문제라는 패배감이 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한편에 있죠. 그래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가는 거죠. 기륭전자 6년 투쟁하면서도 시민들의 눈길에서 달라져간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김규항=노동자 후보가 나섰다는 걸 모르는 분들이 많지만 아는 분들 중에도 오해가 있어요. 가장 비현실적이고 교조적인 노동운동 정파의 소아병적 행동이라는.(웃음) 정파를 넘어 현장에서 열심히 싸워온 분들이 나선 건데요.


김소연=저희도 정파입니다. 비정규파!(웃음)


김규항=무서운 정파군요.(웃음) 다른 대선 후보와 다를 바 없이 바쁘게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데 노동자 후보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김소연=언론이 관심을 가져준다면 좋을 텐데. 이른바 당선권 내의 후보가 아니다 보니 큰 관심을 받긴 어렵죠. 그런데 다니면서 그런 이야기를 들어요. “투표할 수 있는 후보가 있어서 기쁘다.” 마음이 무너져내린 노동자들이 투표장에 나올 수 있고, 찍을 후보가 없어서 투표장에 가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건 중요한 일이죠.


김규항=선거 때면 ‘소중한 한 표를 포기하지 말자’ 캠페인이 벌어지는데 그건 아쉽더라도 찍을 후보가 있다는 전제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죠. 난감해하던 분들에겐 좋은 소식이군요.


김소연=그리고 더 중요한 건 이런 현실을 절망하고 포기하는 게 아니라 힘들지만 가보자, 현장도 복원해내고 무너진 노동정치도 힘있게 세워보자는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겁니다.


김규항=노동자 후보의 대선 출마는 목표가 아니라 시작이군요.


김소연=조직되어 있지 않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고 또 그분들은 저희와 접촉면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이야기하고 소통하면서 또 우리의 의사를 최대한 표로 표현해내면서 새로운 시작을 하자는 거죠. 그래서 저희는 선거운동이 아니라 선거투쟁입니다.(웃음)


김규항=함께 싸워온 노동자들이라든가 이미 공감하는 분들이 아닌, 일반 시민들에게 노동자 대통령 후보가 어떤 희망을 줄 수 있을까요.


김소연=진짜 희망이죠. 지금 현실을 바꾸지 않는 희망은 가짜 희망이고 민주당도 새누리당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어요. 희망을 말하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사회가 된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정직하게 따져봐야죠. 그 핵심은 결국 정리해고 비정규직이거든요. 이게 민주주의를 껍데기로 만들고 우리의 소중한 인생을 시장의 싸구려 상품처럼 만드니까요.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된다, 법안 조금 바꿔서 될 문제가 아니다 분명히 말할 때 비로소 희망이 생깁니다.


김규항=극소수를 뺀다면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사회’라는 구호 자체를 반대할 사람들은 많지 않겠지만 대선 후보로서는 뭔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김소연=비현실적이라 느껴지지만 그걸 빼면 사실 현실을 바꾸지 않겠다는 이야기지요. 제가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할 때 무상의료, 무상교육 갖고 정말 발바닥에 땀나도록 돌아다녔거든요. 그때 많은 분들이 가당치 않은 이야기다, 사회주의하자는 거냐 그러셨어요. 그럼에도 끈질기게 밀고 온 결과가 이젠 새누리당조차도 반값 등록금 이야기, 복지 이야기를 하잖아요. 현실의 근본적 문제를 갖고 끈질기게 싸울 때 비현실적이라 느껴지던 것들도 결국 현실적이 된다고 믿습니다.


김규항=대선 후보로서 정책들이 좋더군요. 여성과 소수자 문제에 대한 이해라든가, 예전의 남성 노동자 후보라면 생각하지 못했을 여성 후보 특유의 미덕이 보입니다. 여성 후보가 또 한 분 있지만 그분은 박정희의 생리적 딸이자 박정희의 정치적 아들이니 좀 경우가 다르죠.


김소연=정책은 많은 토론과 논의를 거쳤지만 개인적으로는 기륭전자 6년 투쟁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정말 많은 곳들과 연대했거든요. 장애인, 이주노동자, 철거민들, 성소수자, 강정마을 등등 정말 지금 우리 사회에서 투쟁하는 모든 분들과 함께했어요. 창피한 말이지만 제가 기륭전자 전에 갑을전자 투쟁할 때만 해도 ‘장애인 이동권’이 뭔지조차 몰랐어요. 대통령 후보로서 중요한 건 이 사회에서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 자신의 인간적 권리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요구라고 생각해요. 그들이 사회에 요구하는 이야기들, 그게 저희의 정책입니다.


김규항=그런 요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게 말씀한 대로 동정이나 시혜의 차원에 머무느냐 근본적인 해결의 노력이냐가 다르겠지요. 고등학생 때 재단비리 투쟁에서 시작해서 갑을전자로 기륭전자로 해서 줄잡아 25년을 투쟁하는 사람으로 살아왔습니다. 타고난 걸까요.


김소연=저는 타고난 투사나 지사는 아닙니다. 고등학생 때도 처음엔 뒷전에서 참여만 하다가 학생회 무너지고 선생님들도 포기하려고 할 때가 되어서야 이건 포기해선 안된다는 생각에서 역할을 맡게 된 거였어요. 갑을전자 때도 그냥 노조일 열심히 하다가 어용지도부의 행태를 보다 못해 싸우고 결국 위원장도 했죠. 늘 그랬어요. 


김규항=정치도 투쟁도 실은 가장 평범한 일이죠. 당연한 걸 당연하게 만드는 노력이니까요. 주변 분들은 뭐라 하십니까.


김소연=재미있는 이야기 해드릴게요. 대한문에서 후보자 선출대회 할 때 반대표가 두 표 나왔어요. 동지들끼리 이거 분명히 기륭전자 조합원들이다 그러더군요.(웃음) 제가 고생할 게 뻔하니까 오랫동안 함께 고생한 사람들이 누구보다 걱정하는 거죠. 부모님은 워낙 당신 딸의 일에 익숙하시고 또 신뢰도 깊으셔서 그냥 “목 조심해라” 하셨어요. 제가 목이 쉽게 쉬거든요. 



■ 김소연 후보의 주요 공약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 세상을 뒤엎는 노동자대통령”


“자본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요구와 투쟁이 우리의 정치입니다.” 

“정권교체를 넘어서 노동자‧민중이 직접 정치와 행동에 나섭시다.”


■ 4대 과제



●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


해고는 살인입니다. 정리해고의 요건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리해고제도를 없애야 합니다. 비정규직은 노동자의 존엄성과 권리를 파괴합니다. 차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없애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비정규법을 폐지하고 모든 노동자들에게 노동권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 투기와 경쟁과 삶의 불안이 없는 세상


세계적인 경제위기에도 법인세 인하, 고환율 정책 등 이른바 ‘기업 프랜들리’ 정책으로 기업이윤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습니다. 서민들의 생활만 어려워졌을 뿐 재벌들은 사상 최대의 이윤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세제를 개편하고 투기꾼들의 투기자본을 몰수하며 불로소득을 중과세해서, 부채를 탕감하고 노동자‧민중의 복지를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반값 등록금이 아니라 무상교육을, 의료보험 적용확대가 아니라 무상의료를 시행해야 합니다. 나아가 ‘재벌개혁‧재벌해체’가 아니라 재벌 재산을 몰수하여 사회화하고, 모든 주요 산업을 사회화하여 노동자와 민중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차별과 배제가 없이 함께 사는 세상


성, 성정체성, 장애 유무, 연령, 국적, 인종 등의 차이가 차별이 되고, 배제당하는 세상에서 여성과 소수자들은 인간으로서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너무나 쉽게 차이가 차별과 배제가 되며, 더 이상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지 못하게 합니다. 차이를 인정하고 차별을 금지하여, 여성과 소수자가 권리의 주체가 되고 평등한 권리를 보장받도록 하여야 합니다. 


● 핵과 전쟁과 환경파괴가 없는 세상


한반도에 전쟁의 기운이 높아지고 있고, 제주 해군기지는 동북아에서 군사적 긴장을 더욱 높입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주한 미군을 철수시키고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전 지구를 재앙으로 몰아넣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교훈을 거울삼아 핵발전소를 중단시켜야 합니다. 생명과 자연을 파괴하는 4대강 사업과 골프장 건설은 중단되고 생태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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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실험예술은 사람 사이의 경계와 시장의 지배를 허무는 놀이”


극우독재 시절, 문화도 획일적이었다. 사람들은 획일적인 문화 속에서 안도했고 벗어나길 두려워했다. 민주화가 되고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말도 있었고 우리도 개성과 취향이 만발한 ‘유럽 스타일’로 간다고도 했다. 그러나 어느새 문화는 다시 획일화하고 있다. 이번엔 극우독재가 아니라 시장의 율법에 의해서. 10대들이 노 아무개 점퍼를 입음으로써 안도감을 느끼는 걸 개탄하는 사람들은 시장에서 승리한 공 아무개, 신 아무개의 소설 외에는 읽으려 들지 않는다. 이한주와 요기가갤러리의 존재가 도드라지는 시절이다.


 

 홍대 앞에서 다양한 실험문화를 선보이고 있는 이한주 대표가 서울 합정동 ‘요기가’ 표현갤러리에서 직접 깎아 만든 단소를 불고 있다. 뒷배경 작품들은 ‘수경화실’에서 미술을 배우는 일반인 작품이다. ‘요기가’에서는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술가가 된다. _ 강윤중 기자(출처 : 경향DB)




▲ 한때 인터넷·돈맛에 빠져 봤지만

사회시스템은 알아갈수록 회의

사람들은 규칙이 없다는 걸 겁내


▲ 공연자·예술가 위주의 공간 없어

“요기가 바로 작업실” 하다가 작명

술 파는 대신에 공짜 막걸리 제공


▲ 클래식·이색 퍼포먼스 뭐든지 OK

외국 뮤지션도 공연하겠다며 찾죠


김규항 = ‘요기가’ 이름이 재밌어요.


이한주 = 요가 용품 파는 곳인 줄 알고 찾아오는 분들이 종종 있죠.(웃음) 지금처럼 전시와 공연 위주의 공간이 되기 전엔 작업실이었는데 4층이었어요. 옥탑방하고 초인종이 붙어 있어서 택배 아저씨가 자꾸 옥탑방 초인종을 눌러서 그 집 아주머니에게서 항의를 받곤 했죠. 그래서 저희가 “여기가 작업실”이라고 써붙여 놨는데 그게 이름이 되어버린 거죠, 영문 표기도 쉽고 좀 더 작은 느낌이 좋아서 ‘요기가’가 된 거고요.


김규항 = 요기가는 공연장 겸 갤러리입니다. 이미 공연장도 갤러리도 많은데 부족한 게 보였습니까.


이한주 = 공연자나 예술가 위주로 돌아가는 공간이 없더라고요. 손님들, 구매하는 사람들 위주로 돌아가더라고요. 그래서 아트상품 같은 것도 ‘이건 너무 비싸다’라고 쉽게 말하는데 작업자로선 모욕적인 말일 수 있거든요. 작업자가 갖고 있는 생각이나 마음보다는 시장논리로 재단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예술가들끼리 모여서 만들어보자. 공간에 의해 우리가 간택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공간을 만들자. 공연과 전시 위주 공간이지만 뭐든 가능합니다. 음악 녹음도 하고.


김규항 = 저도 공연을 해봤지만 울림이 특이해요. 앰비언스(음장감)가 좋다고 할까?(웃음)


이한주 = 흡음이 완벽한 공간하고는 다른 맛이 있죠. 주류 음악 스타일로 하는 외국 뮤지션들이 공연하고 싶다고 찾아오기도 합니다.


김규항 = ‘요기가에서 이런 것도 하나’ 싶은 공연이 있더군요. 개성이 있고 실험적인 공간은 운영자의 주관이 뚜렷하고 자연스럽게 동아리가 이루어지면서 일정한 사람들끼리 유유상종하는 곳이 되기 쉽죠. 바꿔 말하면 그 동아리 밖에 있는 사람에겐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이 되기 쉬운데요.


이한주 = 누구든 어떤 용도든 하자고 할 수 있어요. 저희가 주목하는 건 오히려 참여 방식인데요. 필요할 때 대관료 내고 한 번 쓰는 방식을 넘어서 미리미리 한 달에 몇 만원씩이라도 내서 사용하고 운영에도 함께 참여하고 하는 방식을 지향합니다.


김규항 = 공연의 스펙트럼이 어떤가요.


이한주 = 현악사중주 같은 클래식 공연도 있고 아무래도 그 반대쪽은 더 많죠. 얼마 전엔 김치 담그는 퍼포먼스를 하는 외국 예술가도 있었고, 한번은 피를 뿌리는 퍼포먼스도 있었는데 그게 느낌이 참 묘하더군요.


김규항 = 현대인들은 먼지와 피에 대한 지나친 공포가 있죠. 조금은 더럽고 이따금은 상처도 나고 해야 사람답게 사는 건데요. 요기가는 먼지는 어지간하니 피를 좀 더 보충하기 바랍니다.(웃음) ‘요기가는 뭐든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말은 어떤 걸 하기에도 전문적인 공간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한주 = 자기 작업실과 갤러리나 공연장의 중간 정도라고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집에서 하면 집이 엉망이 될 것 같다든가(웃음) 완성은 안되었지만 사람들에게 보여보고 싶다거나 하는 게 가능한 거죠.


김규항 = 선생도 실험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불가사리’ 공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이한주 = 10여년 전인데요. 강태환 선생을 비롯해서 실험음악을 하는 어른들은 있는데 젊은 사람들은 오히려 없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사토 유키에랑 해서 한 달에 한 번 공연하기 시작했죠. 첫 공연의 관객은 두 명의 취객이었어요. 잘못 알고 온.(웃음)


김규항 = 실험예술은 대중들에게 좀 무거운 인상이 있어요. 강태환 선생도 그런 편이고 무세중 선생은 아예 무서워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무거운 게 무작정 나쁜 건 아니지만, 불가사리는 공연자들이 관객에게 카리스마를 행사하려 하지 않고 킬킬거려도 좋다는 식의 태도가 있더군요.


이한주 = 관객들도 그렇게 느끼고 저희 스스로도 그렇죠. 그런데 공연자가 그런 걸 겁을 내는 경우가 많아요.


김규항 = 겁을 낸다.


이한주 = 규칙이 없다는 걸, 자기 스스로 규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겁내요. 음악의 경우에 다른 방법으로 연주하는 걸 종교에서의 이단처럼 배척당할까봐 겁내고요. 오래 한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더 그런 편이에요.


김규항 = 시스템이 심어놓은 두려움이겠죠. 장르예술에 충성 서약을 한 예술가가 아니라면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요.


이한주 = 실험예술, 즉흥예술이 하나의 특별한 장르처럼 여겨지는 거죠. 어떤 장르든 할 수 있는 게 실험이고 즉흥인데요.


김규항 = 선생도 예전에 장르예술을 넘어서 아예 상업적인 일도 하셨지요. 이제 그쪽을 보면 어떤가요?


이한주 = 얼마 전에 그쪽의 아는 분 회사가 창업식을 하는데 연주를 부탁해서 갔었어요. 컴퓨터 음악하고 영상으로 라이브 페인팅을 했는데, 그쪽 사람들의 비즈니스 관습이랄까 다들 빠짐없이 인사를 나누어야 한다는 분위기 같은 게 이젠 한눈에 보이더라고요. ‘너무 멀리 왔구나 이젠 다시 돌아가진 못하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그런데 되게 편했어요.


김규항 = 시쳇말로 꽤 잘나가셨던 걸로 압니다. 그런 생활은 예술가로서 자존감을 상하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남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스스로도 우쭐해져서 중독되어 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한주=인터넷을 제대로 알고부터 생각이 바뀐 것 같아요. 처음에 인터넷 나왔을 때는 ‘야, 이거면 국가가 없어지겠구나. 사람들이 힘을 갖게 되겠구나’ 고무되어선 돌아다니며 인터넷 전도사 노릇을 했죠.(웃음)


김규항 = 당시 그런 분들 많았죠. 물론 인터넷은 어떤 쪽으로든 유용한 도구지만, 그렇게 인터넷 예찬이 무성하던 시절 이미 자본은 새로운 돈벌이로 치밀한 전략을 수행 중이었는데요.


이한주 = 그러게요.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인터넷은 그냥 하나의 도구더라고요.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잘 이용할 수 있는 도구. 그런데 예술가라는 저는 온갖 대기업 일들을 맡아서 시간과 열정과 내 정신까지 팔아먹으면서 그런 흐름에 일조한 거죠.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건가’ 자괴심에 고민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안 해야지!’(웃음)


김규항 = 비장한 결단을 그리 경쾌하게 하다니.(웃음)


이한주 = 프로젝트 하나만 참여하면 남들 연봉을 받았으니 돈 무서운 줄 몰랐죠. 애플 시네마디스플레이의 최초 개인구입자입니다 제가.(웃음) ‘CF나 뮤직비디오나 그쪽은 누구 앨범을 했대, 무슨 CF 누가 한 거래’ 하면 사람을 대하는 눈빛이 확 달라지죠. 그걸로 자존감을 유지하고. 참 우습게 살았죠.(웃음)


김규항 = 이제 그쪽에서 선생을 이상한 사람으로 보겠죠?


이한주 = 그렇겠죠. 돈 벌리는 것, 유행하는 걸 배척하자는 게 아니라 그게 돌아가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면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돈이 없으면 어떻게 사나 겁내기 전에 당연한 고민을 생략하면 내 삶이 무너진다는 걸 겁내야죠.


김규항 = 늘 사회적 관심이 많았던 편인가요.


이한주 = 원래는 사회 시스템이나 정치적인 것엔 정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인터넷 시대가 되고 그와 결부된 여러 문제들을 구상하고 고민하면서 사회구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친구들은 ‘넌 너무 정치적이야’라고 타박하기도 하지만 인터넷이든 예술이든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들어가다 보면 정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죠.


김규항 = 그 후론 고객에게서 의뢰받은 일은 전혀 안 하나요?


이한주 = 제가 하고 싶거나 필요한 경우만 간간이 하고 있어요. 되도록 돈이 아니라 현물로 받구요. 상황버섯 농장 하는 친구 홈페이지 만들어주고 상황버섯술 받고, 음향기기 회사 일 도와주고 지금 요기가에서 쓰는 마이크하고 앰프를 받고.(웃음)


김규항 = 이상적인 거래군요.(웃음) 요기가의 운영 상태는 어떤가요.


이한주 = 적자 상태는 아닙니다. 전시나 공연이 많을 때는 다음달로 이월도 하면서 가고 있어요. 대학 강의를 나가니까 제 생활은 해결되고요.


지난달 강제추방된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미누가 보컬로 활동했던 다국적 이주노동자 밴드 ‘스탑크랙다운’이 지난 28일 밤 서울 합정동 요기가갤러리에서 6주년 기념공연을 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김규항 = 실험예술이 ‘젊어 한때만 하는 일’이라면 아쉬운 일입니다. 동료들 사정이 저마다일 텐데 지속가능한 활동에 대한 고민이 있겠군요.


이한주 = 10여년 하다 보니까 생활 문제 때문에 떠난 사람들도 있었어요. 앞으로도 그럴 수 있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동료들은 내내 즐기고 놀며 같이 가길 바라죠. 지속가능한 수익 모델을 생각할 필요가 있고, 새로운 방식의 콘텐츠 유통, 지역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는 인터넷 방송 같은 걸 구상하고 있어요.


김규항 = 콘텐츠도 거대 자본에 의해서 독점화되게 마련인데 아마추어나 프로의 구분 없이 재능 있는 많은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참여하고 수익도 얻는 일이라면 좋겠네요.


이한주 = 음악의 경우 음원 자체는 모든 사람에게 무상으로 뿌려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판매보다는 공연 자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봐요. 월정액으로 후원계좌를 만들어서 그 회원들만 공연을 볼 수 있는 거죠. 예술가는 그들과 일상에서도 소통하고 공연도 하고 생활도 할 수 있고.


김규항 = 일종의 관람조합, 공연조합이군요. 예술가가 시장에 의해서 선택되고 서열화되는 구조를 넘어서는 시도일 수 있겠습니다.


이한주 = 음원은 무상배포하고 앨범은 회원 수만큼 만드는 거죠. 나는 음악만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건 누군가 해준다고 생각하면 못하는 거구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게 중심이 되는 거죠.


김규항 = 사업 아이디어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는 이쯤 하는 게 좋겠습니다. 자본 쪽에서 또 빼먹을 테니까요.(웃음) 


이한주 = 좋은 아이디어일수록요.(웃음) 사회시스템에 대해 공부하고 알아가다 보니까 어느 순간에 회의가 들기도 했어요. ‘이렇게 하면 뭘 하나 결국 이 시스템 안에서 노는 건데, 내가 죽기 전엔 달라질 게 없구나’ 이런 생각이오. 그러다 나중엔 ‘그래 나는 씨앗 역할이라도 하자. 그 다음에 하는 사람들이 그걸 또 일구고, 변형이 되어도 좋고’라고 생각했죠.


김규항 = 우리 사회는 현실주의자는 넘치는데 이상주의자는 씨가 말랐고 그래서 암담하죠.


이한주 = 저는 그나마 이런 일을 해서인지 이따금은 시스템을 비켜난 사람들을 만나곤 하는데 전에 어떤 목수분은 북한에서 살고 싶다고 하더군요. 나는 그냥 배급받고 내 능력이나 재능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데 쓰고 싶다. 돈을 벌고 싶은 마음도 없고 먹고살기만 하면 되는데 그런데 여기는 먹고살려면 1만원짜리를 2만원짜리라 거짓말해야 한다고요. 


김규항 = 북한 사회에 대한 평가를 떠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란 시장에서의 성패와 무관하게 가련한 존재죠. 실험예술가들은 그걸 벗어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지만, 어려운 예술이라는 선입견의 벽이 있는데요.


이한주 = 실험예술이나 즉흥공연이라는 게 관객과의 교감에 어려움이 있잖아요. 그걸 보완하는 시도를 해보고 있는데 얼마 전에 ‘타임라인 콘서트’라는 걸 했어요. 공연 중에 텍스트로 간단한 설명이 나오는 거죠. 관객과의 교감을 유지하고, 공연자가 혼자 필 받아서 엉뚱한 데로 달려가는 것도 방지하구요.(웃음) 반응이 꽤 좋았습니다.


김규항 = 그나저나 요기가에선 술을 안 팔더군요.


이한주 = 전에 팔아 봤는데요. 돈을 내고 술 사먹고 하니까 분위기가 지나치게 흐트러져요. 그래서 막걸리를 주기 시작했죠. 주면 고마워들 하면서 먹어요. (웃음) 최근엔 머그잔을 만들어서 그거 있으면 막걸리 무료, 없으면 나가서 사먹는 걸로 하고 있죠.


김규항 = 음악가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공연에 성공하거나 음반이 대박 났을 때가 아니라 친구들과 연주할 때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실험예술이야말로 사람 사이의 경계와 시장의 지배를 허무는 놀이일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이한주 = 바로 그겁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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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노동운동 낡은 형식 박살 낸 희망버스에 ‘이런 게 있구나’ 충격”


한눈에 보기에도 ‘운동권’ 느낌이 드는 사람이 있다. 한석호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환한 웃음과 함께 느껴지는 강하고 단단한 인상이 그렇고, 군중 앞에서 발언을 많이 해서 트인 목소리와 절도 있고 명료한 말투가 그렇다. 오랫동안 노동운동 진영에서 선봉대, 사수대, 조직 쟁의 등을 도맡아오면서 야전군으로 잔뼈가 굵어온 그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런 그가 ‘무지개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갱신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가 청춘을 바쳐온 민주노동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이다. 그의 무지개는 펼쳐질 수 있을까?


 


사진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 경직된 노동·좌파운동의 이중성

‘무지개 사회주의’로 혁신해야


▲ 노동 중심성·진보정치 운동성의

문제의식 갖고 있는 사람 선결집

정당 및 정치세력 새판짜기 구상


김규항 =야전 이미지가 강합니다. 이력이 그렇지요?


한석호 =87년 6월항쟁 때 명동성당투쟁동지회를 만들어 처음 구속되었다가 88년에 노태우가 대통령 되고 풀려나선 바로 인천의 현장에 들어갔죠. 현장조직사업에 결합하면서 줄곧 사수대, 선봉대, 선동훈련 강사를 했습니다. 90년 전노협 결성 때도 선봉대 담당이었죠. 민주금속연맹, 조선노협, 자동차연맹, 대노협, 현총련 등이 모여서 금속산업연맹을 만들 때 조직쟁의 담당을 했고, 99년 주5일제 싸움 때 구속되고 2001년 대우차 투쟁할 때 금속연맹 조직쟁의실장으로 구속되고…. 더 이야기해 봐야 빼도 박도 못하는 야전이네요.(웃음)


김규항 =청춘을 노동운동에 바친 사람으로서 지금 노동운동의 현실을 보면 어떻습니까.


한석호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민주노동운동이 조합원들의 임금과 단체협약과 고용만을 위한 운동이던 게 문제였습니다. 노동운동은 생태, 의료, 주택, 빈곤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문제와 결합하지 못했고 노동 내에서는 비정규직과 연대를 못하고 있어요. 우리는 노동해방의 문제를 노동운동의 전투성에만 몰두하고 자족했던 것 같습니다. 변혁이라는 게 물리력만 갖고 되는 게 아니라 전체 사회의 체제나 질서에 대해 고민하면서 함께 풀어나가는 것인데요. 가장 전투적으로 싸워서 임금과 단체협약을 잘 따내면 잘한 투쟁이라 했던 게 굳어져버린 거죠. 그 운동의 성원 중 한 사람으로서 현재 청년들이나 젊은 노동자들에게 많이 미안하고 아픕니다. 


김규항 =민주노총의 주력인 대공장 정규직은 중산층으로 체제에 포섭되고 그나마 전투성마저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한석호 =말씀대로 대공장 정규직이나 금융 사무직 부분은 중산층 중에서도 안정된 축에 속합니다. 체제내화 현상은 자연스러운 데가 있는데 최근에 달라지는 조짐이 보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대공장 정규직에게 비정규 이야기하면 콧방귀도 안 뀌었는데 비정규 불안정 노동 문제가 이젠 자신도 분리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거든요. 정년퇴직 이후 여생을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게 있고, 자식들을 대학까지 다 보냈는데 제대로 취직을 못하고 비정규로 아르바이트로 부유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흐름이 바뀌고 있어요. 


김규항 =현실이 이기적인 태도를 만들었지만 이제 현실이 이기적일 수만은 없게 만들고 있지요. 


한석호 =여전히 부족하고 비판할 점도 많지만 바뀌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문제는 민주노총이나 산별노조가 얼마나 체계적인 계획을 갖고 조합원들을 당겨내는가가 중요합니다.


김규항 =현재로선 자본 측이 우위입니다. 그들에게 비정규 불안정 노동은 이윤율을 높이고 노동을 유연화하는 수단이지만 그럴수록 잠재적 위험이 높아갈 수밖에 없는데요. 일단은 노동운동, 진보운동 진영을 정권교체 운동 일변도로 몰아가면서 매우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있지요. 민주노총 집행부는 지난 총선에서 통진당 배타적 지지가 실패로 돌아간 후 더욱 무기력해 보입니다. 


한석호 =민주노총 집행부만의 문제라면 차라리 수월할 겁니다. 집행부를 제대로 된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로 바꿔내면 되겠는데 문제는 민주노총뿐 아니라 저를 포함해서 전반적인 노동운동 활동가들과 정파의 간부들 역시 그런 관성에 빠져 있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중앙뿐 아니라 단위노조가 심각한 모습도 많거든요.


김규항 =뿌리가 깊습니다. 민주노조운동이 양적 성장하는 한편에서 문제도 자라나고 있었거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노동자와 시민의 정체성을 동시에 갖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90년대 이후엔 박원순 선생 같은 분들이 시민의 가치관과 문화를 활발하게 사회화할 때 노동운동은 노동의 가치관과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했지요. 젊은 시민들 즉 젊은 노동자들에게 노동운동은 낡아 보이고 거부감이 들게 되었지요. 선생은 근래 자신을 ‘무지개 사회주의자’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석호 =제 스스로 변화하고 혁신하려는 의지를 표현한 말인데요. 세상은 다양한 생각과 사고방식과 삶의 양식이 어우러진 상태인데 내가 몸담았던 노동운동·좌파운동이 너무나 경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중화하는 현상을 보여왔습니다. 집회장이나 언어나 글로선 아주 단선적으로 세상을 재단해버리면서 자기 삶에선 자본주의적인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거죠. 아파트 평수를 넓히고, 아이를 더 좋은 학원에 보내서 시장경쟁력을 올리고 주식이나 부동산에 몰두하고. 이런 이중성이 통일이 되려면 우리가 무지개처럼 펼쳐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규항 =경직성이 이중성을 만들어냅니다. 경직성은 집회나 시위의 형식에서도 나타나죠. 노동운동의 집회나 시위는 그 주력인 대공장 노동자들에게 맞추어져 상명하달식의 군대식 대오가 중심이었죠. 문화 부분은 부차화되어 그 대오에 복무하는 식이고요. 그런데 노동자들의 삶 전체가 그렇진 않거든요. 삶의 총체성을 담기 어려운 운동이 이중적 모습을 띠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요.


한석호 =그런 낡은 형식을 아예 박살내버린 게 희망버스였죠. ‘아, 이렇게도 하는구나’ ‘이런 게 있구나’ 하는 충격을 받았죠. 문화적 변화와 수용이 필요합니다. 제가 문화다양성포럼에 참여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나 노동자 아이들에게 ‘전태일이 실린 어린이잡지’를 보급하자고 나선 것도 그래서였죠. 


김규항 =사실 선생이 ‘고래’ 보급에 팔을 걷고 나설 때 좀 의외였어요. 전형적인 남성 노동운동가의 모습이 아니거든요. 대공장 노조에 간부교육을 가보면 다른 이야기는 그런 대로 듣다가 아이들 이야기, 교육 이야기하면 자는 사람이 많습니다.(웃음) 그 또한 우리 노동운동의 상태를 보여주는 거겠지요. 그런데 무지개 사회주의자라는 말도 그렇고 설명도 그렇고 어딘가 익숙합니다. 급진적인 사람이 급진성을 포기할 때, 체제 내로 들어갈 때 꼭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누구도 내가 변했다고는 안 하거든요. 세상이 변했고 사회가 변했다, 그래서 나는 변화한 세상과 사회에 조응하려 한다, 이러죠.(웃음)


한석호 =무수히 보아왔고 충분히 의심당할 만합니다.(웃음) 운동의 지향과 원칙은 지켜져야 하는 거죠. 극단적이고 경직된 모습은 바꾸고 원칙은 더 견고해져야 하는데 거꾸로 가는 경우가 많죠. 


김규항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고 우리와 아는 사람들이라 특별하게 보일 뿐 역사 속에서 늘 반복되는 모습이죠. 급진적인 반체제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극악한 문제들이 조금 가시면 체제 안으로 편입되어 진보 인사 행세를 하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변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운동을 폄훼하면서 대중과 운동을 이간질하는 것도요. 민노당의 ‘전진’이 만들어진 게 2004년이었지요?


한석호 =2001년 구속되고 감옥에서 제대로 된 정파운동을 해야겠다는 구상을 했습니다. 출소하고 민노당의 평등파와 노동운동의 이른바 중앙파 동지들을 결합해서 전진을 만들었죠. 


김규항 =원론적으로, 진보정당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입니다. 의회 진출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과 의회라는 공간과 대중정치 공간에서 운동을 하려는 사람. 


한석호 =진보정당이 운동정당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진보정치가 의석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고 권력에 개입해서 실제 제도를 바꿔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자체론 사상누각이죠. 그 의원들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제도들은 정권 바뀌면 싹 바뀌어버리기도 하고. 


김규항 =우리 진보정당 운동은 그런 우려대로 왔습니다. 의석수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그래서 선거중심 정당이 되고 선거에 이기려면 명망가가 필요하고 그 명망가들이 활동가를 누르고 당을 지도하고 정체성을 결정하면서 진보정당의 운동성은 사라져왔죠.


한석호 =민노당 초창기만 해도 운동정당, 노동중심의 정당 기조를 깔면서 했는데 그게 무너진 건 오히려 2004년 총선에서 10석을 만들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다들 잘해봐야 2, 3석 예상했는데 갑자기 10석이 나와버리면서 집단으로서의 욕망, 개인의 욕망이 폭발적으로 분출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김규항 =이번 통진당 사태도 자주파의 몰상식한 행태에 비판과 여론이 집중되었지만 실은 자주파가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다 해도 내용은 마찬가지였죠. 진보정당 운동의 변질에서 나타난 한 단면이었을 뿐입니다. 자주파의 행태를 떼어놓고 말하더라도 그들과 도저히 당을 함께할 수 없다며 분당했던 심상정·노회찬씨가 그들과 결합하고는 그 문제가 대중에게까지 불거지니까 몰랐다는 식의 얼굴로 자주파를 비난하더군요. 선생은 분당의 기획자라 불리기도 했고 진보신당 사무총장도 지냈는데요.


한석호 =진보정당은 대중공간의 진지들이 튼튼하게 구축되어야만 어떤 정치세력도 운동성이나 정체성을 함부로 못 바꾸고, 그런 진지를 기반으로 의원이 될 때 감히 배신할 엄두를 못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거의 안되었죠. 분당에 역할을 했고 나름대로 애를 썼지만 큰 흐름을 막진 못했습니다. 분당 후엔 운동정당이라는 목표가 민노당뿐 아니라 진보신당에서도 완전히 사라져버렸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김규항 =어찌 됐든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대중에겐 자주파의 행태가 진보정당 운동의 모습, 진보운동의 모습으로 비쳐졌고 그래서 어느 때보다 힘든 상황입니다.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지요?


한석호 =노동 중심성, 진보정치의 운동성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선결집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동운동이나 진보정당 쪽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 그런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현재 정당 및 정치세력들과 새 판을 짜 들어가야 합니다. 저만의 생각이 아니고 곧 그런 움직임이 가시화될 거라 봅니다.


김규항 =어려운 상황일수록 연대가 중요한데 사람이란 참 묘한 존재라서, 적보다도 노선이 다른 혹은 경쟁관계에 있는 동지가 더 미운 그런 속성이 있죠. 공식적으로는 노선이나 견해의 충돌로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인간적인 상처나 불화가 주된 경우가 많고요. 


한석호 =중요한 문제입니다. 운동을 떠나는 사람들이 세가지 유형이 있더군요. 첫 번째는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둘째는 전망이 없고 지쳐서, 그리고 세 번째가 인간적인 관계로 받은 상처 때문입니다. 저런 사람하고 함께 운동할 순 없다고 떠나는 거죠. 노조위원장이라는 게 원래 감옥가는 길, 가시밭길이었는데 노동운동이 합법화되고 시민권을 확보하면서 권력화돼버렸어요. 노선 차이 때문에 서로 비판을 할 땐 덜 심각했는데 노선과 욕망이 결합되면서 극단적인 상황이 돼버렸죠. 


김규항 =어떤 오류나 기만도 현실 자체를 끝내 덮을 순 없으니 새로운 움직임이 생겨날 거라 믿습니다. 전태일재단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한석호 =전태일 40주기 행사 집행위원장 일을 하면서 전태일다리 이름바꾸기 캠페인, 현장과 결합한 행사, 문화제 등 이것저것 진행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88년 연세대에서 열린 전태일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부터 전태일이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의 상징이 되었죠. 전태일기념관을 만들자는 이야기도 많이들 했는데 40주기에도 못했더라고요. 운동이 그때그때 떨어지는 당면한 문제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미래를 전망하면서 뭔가 구축해놓은 게 부족한 거죠. 전태일기념관을 만들어야겠다는 것, 전태일을 매개로 해서 초·중·고 교과서에 노동과 노동자와 노동조합과 노사관계를 담아야 한다는 숙제를 생각하게 된 거죠.


김규항 =‘기념’이라는 건 박제의 절차이기도 합니다. 지난 역사 속에서 급진적인 사건이 다음 역사에서 기념이 되고, 기념관과 기념사업회가 만들어질 때 공식적으로 그 의미를 인정받는 의미도 있지만 현실에서 급진성으로 살아나지 못하고 박제가 되는 거죠. 민주화운동 기념이나 광주항쟁 기념 쪽도 그런 모습들이 보이는데요. 


한석호 =전태일은 기념이 아니라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42년 전의 전태일을 말하는 이유는 현재의 전태일들을 불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40주기 행사도 비정규직과 청년을 주제로 갔고, 이소선 어머니 장례도 비정규직 투쟁 단결로 갔죠. 전태일을 땅으로 끌어내리자, 열사가 아니라 형으로 오빠로 친구로 살려내자는 의미로 전태일 캐릭터도 20여가지 만들었어요. ‘전태일의 집’도 전태일기념관이라기보다 ‘노동자의 집’으로 가려고 합니다. 오늘의 전태일들이 모여 교육도 하고 토론도 하고 삶을 나누는 공간이 되는 겁니다.


전태일다리(버들다리) 공식행정명 제막 (출처 : 경향DB)


김규항 =‘고래가그랬어’도 함께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노동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교과서에 노동을 넣는 일, 아이들이 노동에 대해 배우는 일은 우리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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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앨범 한 장 안 내고 10년간 밴드 활동… 우린 비전을 강요하지 않아요”


람혼(최정우), 파랑(이용창), 반시(유가영) 세 사람이 ‘레나타수이사이드’라는 밴드를 만들어 활동한 지 막 10년이 되었다. 근래 한국에는 10년 넘은 인디밴드가 적잖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들처럼 애초 멤버 그대로, 그것도 앨범 한 장 내지 않고 10년을 맞은 경우는 거의 없다. “부부관계에 비유하면 우리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같은 관계”(파랑)라고도 하고 “우리는 밴드로서 비전을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반시)이라고 한다. 그들의 10년과 그들의 삶을 도란도란 들어보았다.


 밴드 레나타수이사이드 멤버들. 왼쪽부터 드럼 파랑(이용창), 베이스 반시(유가영), 보컬 람혼(최정우). _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출처 :경향DB)



▲ 어떤 사운드만 중요시하지 않고 연극·무용 등 다른 장르와 협업도

매이지 않아 관객들은 친구가 돼


▲ 과거엔 밴드들 저항성 선언부터… 지금은 지향성보다 현장을 중시

공연 취지 맞으면 함께 모이게 돼… 음악의 정치성 다양하게 진화 중


▲ 사회 전반 진보적 담론 확대 추세… 실은 우파체제 지탱 수준에 그쳐

왜 이럴까 질문 좀 더 치열해져야


김규항 = 레나타는 사운드가 독특한 편입니다. 말로 표현하기가 쉽진 않은데, 하드하면서도 깔끔하고 마치 테크노처럼 끊임없이 이어져가는 느낌도 있고….


람혼 = ‘너희는 장르가 뭐냐’ 물으면 대답하기가 애매해서 제가 만든 말이 있는데요. 빠르(PPAR)입니다. 사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 아트록.(웃음)


파랑 = 누가 보든 형식은 밴드고 장르는 록이겠지만 어떤 사운드가 대세라거나 어떤 사운드를 만들어내겠다거나 하는 걸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 편입니다. 깔끔하다고 하셨는데, 간편하고 명료하게 우리가 준비한 걸 들려주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결과인 것 같아요.


김규항 = 대개의 경우 밴드는 사운드를 궁리하고 만들어내는 게 일인데요. 곡은 람혼이 만들죠?


람혼 = 예. 그런데 제가 작곡했다고 하면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보통은 편곡 개념이라 생각하는 것이 저희는 작곡인데요. 제가 리프나 코드 같은 걸 만들어 오면 셋이 곡을 완성해가는 거죠. 때로는 악상이 아니라 형식적 개념이나 구조 같은 걸 가지고 토론하면서 작업하기도 합니다.


반시 = 저희는 곡이 선율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패턴에서 시작해요. 테크노 같은 느낌도 아마 그래서일 거예요. 연주곡이 먼저 나오고 멜로디가 되고 그 다음에 가사를 붙이는 방식이죠.


김규항 = 이름 설명 좀 해주세요.


람혼 = 저는 누더기 람(襤) 자에 넋 혼(魂) 자입니다. 남루한 영혼이죠. 반시(banshee)는 사람이 죽으면 혹은 죽기 전에 울음을 운다는 아일랜드의 요정… 귀신인가?(웃음) 파랑은 물결 파 자에 물결 랑 자입니다.


김규항 = 파랑 빼곤 참으로 어둡군요.(웃음) 노래 제목들도 그런 게 많아요. ‘병든 것’ ‘독의 노래’….


람혼 = 반시 가족의 결혼식 연주를 부탁받았는데 결국 남의 노래를 했었죠.(웃음) 하지만 어둡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단지 결혼식에 안 맞을 뿐이라 생각합니다.


김규항 = 10년차 밴드가 결혼식에서 연주할 곡이 한 곡도 없기는 어려워요.(웃음) 특별히 염세적 세계관을 갖거나 드러내려는 건 아니라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사실 제목은 그래도 곡은 밝아요. 반복해서 틀면 레이브 파티에 써도 될 만한 곡들이죠. 각자 악기를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반시 = 베이스는 무대에서 주목받지 않아 편해보였고 또 조용하다는 게 좋았어요. 기타는 주파수가 높아서 부담스러웠거든요. 


람혼 = 그러나 레나타에서 베이스는 주목받는 플레이가 많죠.(웃음)


반시 = 저희는 기타 솔로가 있을 부분에 베이스 플레이가 많아요. 멜로디를 많이 치는 편이고요.


파랑 = 고등학생 때 대학 가면 드럼 치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드럼은 우리 악기는 아닌데 전 이상하게 내셔널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도 같아요. 록 드럼에서 레드제플린과 레인보우를 비교해 본다면 레드제플린의 존 본햄은 문학적이고 시적이라면 레인보우의 코지 파웰은 힘과 원초적인 에너지가 느껴져서 단연 그쪽이었고요. 


김규항 = 파랑의 스네어드럼 소리는 대쪽 같아요. 그런데 때론 어떤 곡이든 홀로 대쪽 같다는 느낌도 들어요.


파랑 = 인정합니다.(웃음) 밴드의 사운드에 대한 집착은 없지만 사운드에 대한 제 개인적인 탐구는 강한 편인데요. 말씀하신 건 그와 관련된 부분이고요. 다른 연주자와의 조화에 대한 노력은 그보다는 적었던 것 같아요.


김규항 = 람혼은 어릴 적 가야금을 배웠다고 들었는데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람혼 = 중학생 때 가야금 소리가 좋아서 배우게 되었는데요. 기타에는 밴딩과 초킹이 있잖아요. 가야금에는 농현이 있고 꺾는 게 있다는 말이죠. 기타도 가야금도 현악기인데 현의 다양한 느낌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국악 박자가 재미있잖아요. 엇모리는 5박이고 7채도 있고. 저희 곡을 보면 4박과 3박을 당연시하는 게 없어요. 7박 갔다가 4박 갔다가 11박 가보면 어떨까 그런 시도들을 하기도 하죠. 뭔가에 매어있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소득이었던 것 같아요.


김규항 = 레나타는 클럽 공연이라든가 밴드로서의 활동은 많은 편이 아닙니다. 반면에 연극이나 무용, 미술 같은 다른 장르와의 협업은 무척 활발한데요. 언제부터 한 건가요. 


람혼 = 처음 한 건 2006년에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서 사라 케인의 ‘4.48 사이코시스’라는 작품이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연극음악을 해오다가 셋이 라이브로 하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죠. 


김규항 = 밴드 활동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람혼 = 밴드는 관객을 향해 꽉 차 있는 최대 사운드를 지향한다면 연극이나 무용음악은 얼마나 비우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떻게 개입하고 어디에서 침묵이나 휴지를 통해 빠지는가. 그리고 배우, 무용수 심지어 조명 등의 무대장치와 어떻게 조응하는가를 생각하게 되거든요. 밴드음악은 깔끔하고 완결성 있게 가지만 협업에선 즉흥적인 면도 많고요. 파랑은 드럼 아닌 다양한 퍼커션들, 반시는 베이스로 내는 다양한 소리들을 시도하죠. 재미있는 작업입니다. 


파랑 = 저도 아까 말씀드렸듯이 밴드에서 드럼이라는 생각보다는 드럼으로서 어떤 보편적인 것을 찾아보겠다는 욕구가 늘 우선인 편이라서인지 협업 작업들이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반시 = 저는 좀 달라요. 저는 기본적으로 밴드음악을 좋아하고 다른 형태를 탐구해보겠다는 생각도 없었거든요. 사실 4박 갔다, 7박 갔다, 11박 갔다 하는 걸 적응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협업은 저에게 스트레스가 심하고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러나 자꾸 하다보니까 이제 어느 정도는 즐길 수 있게 되었죠.(웃음)


김규항 = 밴드 공연과 실험적인 연극, 무용과의 협업은 관객이 좀 다른데요. 그런 단절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요.


람혼 = 교집합이 조금씩은 생겨나는 것 같아요. 교집합이 아니라 지인들인가?(웃음)


반시 = 저희는 관객으로 만나서 지인이 되고 친구가 되고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팬이 없어요. 팬이 되는 순간 지인이 되는, 그 이후로는 이 사람이 팬인지 친군지, 우리 공연을 보러 오는 건지, 우리와 이야기하러 오는 건지 모르는….(웃음)


파랑 = 이번 10주년 공연 때도 관객이 꽤 많았는데 대부분 지인들이고 대부분 공연을 통해 만난 분들이죠. 연극배우나 무용가들도 많고요. 제 친구가 그날 그러던데요. ‘다 예술하는 사람들 같다, 너만 빼고.’(웃음)


김규항 = 반시는 외국계 회사에서 임금노동을 하고 있고 람혼은 비평가, 번역가, 연구자로서 활동을 하는데요. 파랑은 드럼 외엔 안 하고 살고 있어요. 스스로 선택한 거죠?


파랑 = 고3 때부터 일을 하지 않고 살겠다, 이 시스템을 거부하고 살겠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그런데 근래 생각이 조금 바뀌고 있어요. 그렇게 사는 게 이 미국식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거부인가, 자기만족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달까요. 저도 곧 임금노동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 안 하고 사는 방식을 내세운 적이 없듯이 앞으로도 일하고 사는 걸 합리화할 생각도 없습니다. 결혼하고 싶은 여성이 생긴 것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요.(웃음)


김규항 = 레나타 멤버들은 급진적인 분들인데 정치적인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우리 사회에서도 한참 록의 저항성, 정치성에 대한 담론이 무성하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은 씻은 듯이 없고 그렇죠. 실제 현장의 맥락에서는 어떤가요.


람혼 = 저도 레나타 전에 ‘이반’이라는 밴드를 했었고 메이데이나 이스크라 같은 급진적인 밴드들이 있었죠. 이런 형식에 이런 내용을 담으면 대중적인 파급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식이 있었어요. 나름의 의미와 성과도 있었죠. 그런데 음악의 정치성이 옮겨가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두리반에 저희를 비롯한 많은 밴드들이 참여했잖아요. 그 대부분의 밴드들이 사회적인 밴드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사회성이 강하게 표출되었죠. 과거처럼 각자 밴드들이 직접적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기보다는 각자 추구하는 바는 다양한데 어디에 모이는가 그 공간이 어떤 곳인가로 정치성이 표현된다고 할까요.


반시 = 과거처럼 정치성을 표방하는 밴드는 잘 보이지 않는 반면에 “거지 같은 세상” 같은 가사는 어느 밴드에서나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죠. 브로콜리너마저 같은 밴드는 저항적인 밴드라고 할 순 없지만 ‘졸업’이라는 노래에는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라는 가사가 나와요. 과거의 저항성은 선언된 것이라면 이젠 그런 선언 없이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것이라면, 심지어 내 음악 중에 그런 게 없어도 두리반 같은 상황에 내가 동의한다면 공연하는 거죠. 진화라고 생각해요.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앨범 (출처 : 경향DB)


김규항 = 정치성의 이행, 진화. 좋습니다. 보통의 시민과 노동자들은 어때 보입니까? 


람혼 = 제가 최근에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랄까 하는 게 ‘청춘’에 관한 현상인데요. 예를 들면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책이라든가 힐링이니 멘토링 같은 것들이오. ‘88만원 세대’론을 비롯해서 청춘세대의 삶과 노동에 대해 사회 구조적으로 포착할 가능성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 아프니까 청춘이고, 청춘이란 사서 고생하는 거고, 천번 흔들려야 어른이 되고 식으로 너무나 쉽게 안이하게 봉합하고 있어요. 그런 강연에 사람들이 몰리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김규항 =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책 제목부터 현재 청년들의 현실로 보면 몰매를 맞아도 싼데 베스트셀러가 되고 저자는 떠받들어지죠.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책임과 태도의 문제로 돌리는 건 전형적인 우파의 사고인데 마치 기존 질서와 보수를 넘어서는 비전처럼 여겨지고 있죠. 안철수씨는 3시간밖에 안 잤다는 이야기를 즐겨 하던데 3시간만 자면 누구나 안철수처럼 될 수 있다는 말일까요?(웃음) 싱거운 사람들입니다.


파랑 =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보면 공부할 만큼 했고 좌파적 교양도 있고 전반적으로 사회의 ‘진보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취향과 안목 차원에서요. 그런데 근본적으로 별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 느낌이에요. 이 많은 진보적 담론들이 실은 우파 체제를 한편으로 지탱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거죠. 이게 왜일까 하는 질문을 좀 더 치열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규항 = 그렇게 머물고 있는 현실에 비해선 인터넷이나 트위터 같은 데선 참 어울리지 않을 만큼 시끄럽죠. 그 부조화가 우습기도 하고 기괴하기도 합니다.


반시 = 전에는 이른바 보수언론들이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한달까, 권장한달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실제로 정치적 무관심이 쿨함의 일종이던 시절이 있었고요. 그런데 이젠 놀이의 영역에서든, 음악의 영역에서든, 수다의 영역에서든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쿨함인 사회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돌고 도는데도 아무 것도 바뀌지 않죠. 가장 큰 이유는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김규항 = 깊이 동감합니다.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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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전형적 모범생이었는데 대학가니 배울 게 없어서 ‘교육’에 관심”


오늘 한국인에게 교육문제는 주요한 사회문제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절체절명의 문제다. 고위공직자 청문회의 하고많은 위장전입자들도 ‘죄송합니다. 아이 교육문제 때문에….’ 한마디면 관대한 처분을 얻어낼 만치. 어지간히 사회비판적인 사람도 아이 교육문제 앞에선 ‘현실은 어쩔 수 없다’고 뒷걸음질 칠 만치. 괴멸되다시피 한 교육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제대로 놀지도 제 꿈을 가꾸지도 못한 채 시들어가고, 엄마들은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인생을 헌납한다. 그러나 그런 현실에도 여전히 대안과 희망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현병호는 그중 한 사람이다.


대안교육 전문지 ‘민들레’ 발행인 현병호 (출처 : 경향DB)



▲ ‘앞으로 나란히’ 줄세우기 교육

스스로 생각하는 힘 꺾어


▲ 몰입의 경험이 아이를 키운다

놀이에 몰입해 본 아이가 공부·일에도 몰입


▲ 아이들에게 꼭 가르쳐야 할 건

관계 맺기와 자기 일 열심히 하기


김규항 = 교육운동가로 살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현병호 = 어릴 적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는데 막상 대학에 들어와 보니 배울 게 없었어요. 군대 다녀와서 복학을 포기했고 많이 고민하고 방황하면서 대체 뭐가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까 고민하다 내가 받았던 교육을 하나하나 되짚어보게 됐어요. 교육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거죠. 어릴 때 우리가 가장 열심히 배운 것 중 하나가 ‘앞으로나란히’인데 수백명이 있어도 기수 한 사람만 정해지면 몇백 명이 설 자리가 획일적으로 정해지죠. 그러니까 내가 설 자리, 걸어갈 길을 스스로 찾지 못하고 앞만 보게 되는 거죠. 공부할 거리도 책도 선생님도 다 정해주고, 시간표도 정해주고 진도까지 다 정해 주잖아요. 그런 교육을 받고도 기계가 안되고 이렇게 사람으로 사는 거 보면, 사람 정신에도 간 같은 기능이 있는가 봐요.(웃음)


김규항 = 기계가 되어버린 사람도 많지요.(웃음) 저와 동년배시지만 그 교육은 적어도 국가교육의 의도에서 볼 때는 꽤 성공적이었습니다.


현병호 = 근대화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길러내는 데는 아주 성공적이었죠. 산업자본주의에 맞는 표준화된 노동자들, 6년, 12년씩 개근하는 근면성실한 노동자, 말 잘 듣는 시민을 길러냈으니까요.


김규항 = 그런데 독재가 물러나고 자본이 직접 지배하게 된 오늘 한국 교육은 자본에조차 좋지 않다고들 합니다. 한 대기업 연수원장과 대화하는데 ‘현재 한국 교육은 기업 입장에서도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더군요. 이른바 변화한 시장 환경에 맞는 창의성 있는 인재가 필요한데 여전히 벽돌을 찍어내듯 한다는 거죠.


현병호 = 국가주도 교육의 기본 패러다임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교육부 명칭이 김대중 정부 때 ‘교육인적자원부’로 바뀐 것이 그 점을 단적으로 말해주죠. 차이가 있다면 시장에 좀 더 친화적으로 변했다는 정도죠. 근데 말씀하신 것처럼 시장 입장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아 하죠. 활용가치가 높은 인적자원을 생산하려는 국가 차원의 노력이 개인 차원에서는 고가에 잘 팔리는 상품으로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집니다. 이전에는 일류대 졸업장만으로도 충분한 스펙이 되었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까 저마다 경쟁적으로 스펙을 쌓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게 되는데, 그럴수록 창의성하고는 거리가 멀어지는 거죠.


김규항 = 창의성이나 혁신 같은 말들이 일률적인 복종을 강요하던 시절엔 저항의 의미가 있었는데 이젠 자본의 전용어처럼 되었어요.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사람은 낡은 사람으로 취급되고 상품의 변혁을 추구하는 스티브 잡스는 혁신가로 추앙받죠. 그러나 현재 교육은 어떤 맥락에서든 창의성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현병호 = 창의성은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다 보면 저절로 생겨나는 거지, 선착순 달리기를 시켜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죠. 몰입의 능력을 길러주는 게 교육이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근대학교 시스템은 사실 이 몰입을 체계적으로 가로막는 시스템이잖아요. 한참 그림 그리다가도 종 치면 끝이잖아요. 몰입도 연습이 필요해요. 어린아이들을 보면 잠깐씩이지만 뭔가에 깊이 몰입하거든요. 최신 뇌과학 연구로는 어린애들은 하루에 몇십 번씩 열광 상태에 빠진다고 하잖아요. 사람은 누구나 몰입할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났다고 봅니다. 부모나 교사가 그걸 북돋워줘야 하는 거죠. 어렸을 때 제대로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꼭 필요하죠. 놀이에 몰입해본 사람은 공부나 일에도 몰입할 수 있게 되죠.


김규항 = 편해문 선생의 말대로 놀이는 아이의 밥이죠. 못 먹으면 죽는 게 밥인데 우리 아이들이 굶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교육부 명칭이 교육인적자원부로 바뀐 건 김대중 정권에서였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권위주의 교육을 반대했지만 시장주의 교육은 선봉에 서다시피 했지요. 그 결과는 참혹합니다. 진보적인 사람들의 성찰이 필요한데 체벌이나 두발·복장 통제 같은 권위주의 교육의 문제에 집중하면서 아이들이 상품으로 키워지는 문제는 회피하는 듯합니다.


현병호 =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한 것은 국가가 경쟁 패러다임에 완전히 포박되었다는 고백이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민사회도 모두 손을 든 건 아니지만 이렇다 할 견제 세력이 눈에 띄지 않는 건 사실이죠. 시장화에 맞서는 건 어떤 단체나 세력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개인이 실존 차원에서 결단해야 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대안교육도 초기에는 통제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교육을 추구한 경향이 있었죠. 그러다 점차 교육 현상의 문제를 넘어 사회구조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대안의 지향점을 찾게 되었죠. 지금 일어나고 있는 대안교육 정명운동도 그런 맥락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라고 봅니다.


‘민들레’ 발행인 현병호씨가 출판사 직원들과 포즈 (출처: 경향DB)


김규항 = 정명론이라는 게 세상이 흐트러질 때는 이름부터 흐트러진다, 세상을 바로잡으려면 이름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인데요. 한국 사회에 딱 들어맞지요. 박정희가 독재정치를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한 일부터 근래 시장의 문제를 덮고 권위주의 문제에 집중하는 걸 ‘현실적 진보’라고 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대안교육에서 정명운동은 어떤 것인가요?


현병호 = 우리가 도대체 뭘 위해 대안학교를 만들고, 대안교육이란 이름으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느냐 하는 자기 물음을 던지는 것입니다. 시장화라는 건 모든 걸 대체 가능한 상품으로 만든다는 걸 뜻하죠. 교육의 상품화는 이 교육슈퍼마켓에서 이 상품 대신 저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고, 배움의 주체가 소비자 마인드를 갖는다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배움의 가능성을 근원적으로 가로막는 것이라고 봅니다. 교사도 대체 가능한 존재가 되어버리면 더 이상 교사와 학생 사이에 깊은 만남이 이루어질 수 없고 교육이 가능할 수 없죠. 대안교육 정명운동이란 것은 단순히 대안교육의 철학 세우기나 대안사회의 청사진을 그리는 작업이 아니라 교육에 임하는 주체들이 각자 자기 삶의 지향점을 인식하고 나는 무엇을 위해 배우고 가르치는지를 자각하자는 운동입니다.


김규항 = 체제의 관점에서 보면 시장화는 민주화를 수반하기에 억압적인 통치가 어려워진다는 어려움이 있어서 저항 세력의 체제 내화가 필요합니다.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전투성이 사라진 건 그 전형이고 전교조 운동이 힘을 잃어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 있습니다. 1500명이 해직되는 탄압을 받을 때도 사수했던 전교조의 저항성이 합법화하고 교사라는 직업의 경제적 안정성이 높아지면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지요.


현병호 = 저항을 무력화시키려면 떡을 물려주면 되는 거죠. 떡을 물고는 소리를 지를 수 없으니까요. 우리나라 교사의 급여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에서 최상위급이라고 합니다. 교원 복지는 양날의 칼 같은 것이죠. 교원노조가 교사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할수록 교육의 질은 떨어질 수 있는 거죠. 단순히 직업으로 교사를 택하는 이들이 늘어나니까. 노조는 교육운동단체로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아이들과의 관계를 생각하기보다 교원 집단을 우선 생각하게 되니까요. 교육의 본질은 교사와 아이들의 관계에 있는 건데 말이죠.


김규항 = 교사들이 갈수록 모범생으로만 구성되어 가는 현상도 걱정입니다.


현병호 = 내신 1등급 아니면 교대나 사대를 가기도 힘들죠. 그렇게 대학에 들어가서는 또 내내 시험공부만 하다가 임용고시를 어렵게 통과해서 교사가 되잖아요. 이렇게 성장한 교사들이 자신과 다른 성장과정을 거치는 학생들과 제대로 교감하기란 쉽지 않죠. 모범생이 모범생을 길러내는 구조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김규항 = 민들레는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말합니다.


현병호 = 우리가 정말 잘 사는 데 필요한 건 두 가지인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을 줄 알고, 또 하나는 자기 길(일)을 찾아서 열심히 사는 거죠. 흔히 대안적인 사회를 이야기할 때 드는 생태니 평화, 공동체성, 인권 같은 말들은 결국 한 가지를 다르게 표현한 말이죠. 서로 살리는 관계를 맺자는 거. 그런 감수성과 능력을 기르는 게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봅니다. 또 하나는 길 찾기 능력을 기르는 건데, 자기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신명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거죠.


김규항 = 다른 사람과 관계를 잘 맺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 사람이 행복하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이기도 하죠. 현재 우리 교육에서는 아이와 다른 아이들이 적으로 만나고 모든 직업은 하나의 수직선으로 서열화됩니다. 간단치 않은 일이고 여러 복잡한 원인이 있는데 짚어가다 보면 결국엔 부모의 불안감이 나옵니다.


현병호 = 남보다 한 발이라도 앞서려고 바동대기보다 자기 페이스대로 걸어가는 사람을 기르는 게 중요합니다. 한마디로 자기답게 살자는 겁니다. 그러자면 아이에 대한 믿음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중요한데, 부모가 자기 삶에 자신이 있으면 설령 검증이 되지 않았더라도 아이의 미래에 대해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도 역시나 불안감에서 아주 자유롭기는 힘들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같이 공부도 하고 서로 용기를 주면서 버티는 거죠. 대나무들이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을 수 있는 게 서로서로 지탱해주기 때문이죠.


김규항 = 좌판에도 함께했던 음악가 김두수 선생이 얼마 전에 유럽 순회공연을 했는데요. 파리 공연을 주관한 기획사 대표를 만나보니 23살이더랍니다. 한국의 23살 청년들을 생각하며 마음 아팠다고 해요.


현병호 = 민들레 드나드는 아이 중에도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이 몇 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또래 친구들이 참 어려보인다고 그래요. 자기들은 10대에 이미 경험한 과정을 그들은 대학에 와서야 치르니까 그럴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대학 가서도 실망하고 휴학을 하거나 유학을 떠나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들의 성장이 전반적으로 지체되고 있는 것 같아요.


김규항 = 목숨을 버리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절대빈곤이나 생활고에 시달리는 아이는 오히려 적지요.


현병호 = 성적 때문에 자살하는 아이들이 많은 건 사실상 교육의 자살이라고 봐야겠죠.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언론도 그렇고 다들 무덤덤한 것 같아요. 워낙 사회 전반적으로 자살률이 높아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우리 사회가 사회적 약자들이 목숨을 쉽게 버리게 만드는 사회인 건 분명한 것 같아요. 아이들도 그중 하나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처지다 보니까 그런 식으로 외치는 거라고 봐야죠.


김규항 = 사실 누구도 아이를 힘들게 만들려는 사람은 없지요. 부모들은 교육이 잘못된 건 알지만, 아이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위해’라는 말처럼 위험한 말도 없지요.


현병호 = 일종의 자기합리화 같은 거라고 봐야겠죠. 그러지 않고는 불안을 감당할 힘이 없으니까. 결국 부모의 미성숙함이 문제라고 봐야겠죠. 어른이 되는 교육을 제대로 못 받고 자란 탓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교육 탓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래도 사람은 과일이랑 다르게 성숙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죠.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미숙한 사회이긴 하지만 저는 점점 성숙해지고 있는 과정에 있다고 봅니다.


김규항 = 민들레가 15주년이 되어갑니다. 앞으로의 15년이 궁금합니다.


현병호 = 민들레는 탈학교사회를 지향해왔고 앞으로도 그 점에서는 다르지 않을 거라 봅니다. 그런데 탈학교는 학교를 벗어나자는 게 아니라 교육이 제도화되는 걸 경계하자는 겁니다. 교육이 제도화되는 건 의료보다 더 피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국가뿐만 아니라 기업, 종교단체까지 교육에 이해관계가 걸린 집단이 많으니까 그런 거죠. 그런 점에서 교육운동은 체제 안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교육문제가 어려운 건 우치다 타쓰루 선생의 비유처럼 주행 상태에서 자동차의 고장 난 부분을 수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사들이, 또 부모들이 바뀌지 않고는 교육이 바뀔 수 없듯이,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자가치유를 하면서, 또 서로 격려하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데 함께할 생각입니다.


김규항 = 말씀대로 함께 치유하고 격려하면서, 내 아이 걱정, 남의 아이 걱정 함께하면서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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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가장 비싼 상품인 ‘집’을 갖겠다는 건 이웃과 소통 않겠다는 뜻”


집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집은 가장 비싼 상품이며 대개의 사람들은 제 집을 마련하는 데 인생의 상당부분, 아니 대부분을 바친다. 오늘 전 지구를 뒤흔들고 있는 2008년 미국발 경제공황도 가난한 사람들의 내집 마련의 꿈을 악용하던 자본이 제풀에 거꾸러지면서 생긴 일이었다. 집이 그토록 중요하지만, 집을 마련하는 데 인생을 바쳐야 하거나 그로 인해 세상이 파괴된다면 대체 집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서울 용산2가 해방촌엔 그 질문에 대답하려는 일군의 사람들의 ‘빈집’이 있다. 지음은 빈집의 장기투숙자이자 협동조합 ‘빈고’ 운영위원장이다.


‘빈집’이 운영하는 서울 용산동2가 ‘카페 해방촌’에 앉은 지음의 곁으로 카페가 자리한 해방촌의 정경이 흘러들고 있다. 그는 ‘만들다’라는 의미의 ‘지음’이라는 닉네임을 15년째 쓰고 있어서 본래 이름보다 더 익숙하다고 했다. _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손님이 주인이고 주인이 손님인 ‘빈집’에선

같이 사는 능력만 있으면 가난해도, 집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삶의 값진 소득을 배운다

반자본주의적 마을을 고민하고 세상의 공유지를 넓혀 가는 꿈이 큰다


김규항 =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살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가는데 ‘빈 집’이군요.


지음 = 비어 있어야 넉넉하게 누구든 맞아들일 수 있고 또 무엇이든 채울 수 있으니까요.(웃음) 저희는 빈집을 ‘게스트하우스’(Guesthouse)가 아니라 ‘게스츠하우스’(Guests’ house)라고 말합니다. 게스트하우스엔 주인과 손님이 있지만 빈집은 누구나 주인이자 손님이죠. 지금 사는 사람들뿐 아니라 과거에 왔던 사람들 그리고 미래에 올 사람들 역시 모두 빈집의 주인입니다. 집의 이름도 비어 있습니다. 새로운 빈집이 만들어지면 그 이름도 새로 지어집니다.


김규항 =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지음 = 외국 여행을 하다보면 사람을 사귀게 되고 자기 집에서 재워주는 일도 종종 생기잖아요. 그게 고맙고 참 좋은데 그래도 오래 묵다보면 주인과 손님 간의 구분이나 불편함도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주인과 손님이 따로 없는 집을 생각했죠. 또 전에 활동가 생활을 조금 했는데 활동가들이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수준의 활동비를 받잖아요. 그런데 같은 활동을 하는 동지인데 집이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나은데, 없는 사람들은 정말 힘들죠. 그런 체험을 하면서 집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2008년에 짝꿍하고 살 집을 구하는데 그런 생각을 구현해보고 싶었어요. 저랑 짝꿍이랑 다른 친구랑 해서 셋이 살다가 남자방 여자방 손님방을 만들어서 여럿이 함께 살기 시작했어요.


김규항 = 빈집에서 살다간, 혹은 산 사람들이 이젠 꽤 되지요.


지음 = 2008년 2월에 시작했는데 단기투숙자는 1000여명, 현재 장기투숙자는 30여명이구요. 만들어졌던 빈집이 11개고 현재 4개가 있습니다. 해방촌 카페도 있구요.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완전한 계획 하에 이렇게까지 온 것은 아니었구요. 저희가 그렇게 사니까 다른 친구도 그렇게 해보고 또 친구끼리 같이 살다가 하나가 독립하면 집을 빼줘야 하는데 그러지 말고 빈집하자 해서 된 경우도 있고 그렇게 하나둘씩 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고 하면서 온 거죠.


김규항 = 처음 집이 ‘아랫집’이던가요.


지음 = 예. 짝꿍이랑 처음 전세를 알아보러 다닐 때 부동산에서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면 나중에 개발되고 돈을 번다구요. 실은 중개사 따라서 한번 가보기도 했어요.(웃음) 그런데 너무 작더라구요. 저는 여럿이 모여 살고 싶었는데 사람이 밥을 같이 해먹는다고 하면 한 여섯은 되어야 하잖아요. 그렇게 구한 집인데 주인이 전세금을 많이 올리는 바람에 사라졌습니다. 넓고 좋았어요. 옥상에 흙을 퍼올려 밭도 가꾸고. 나중에 계산해보니 흙을 1.5톤이나 퍼올렸더군요.(웃음) 아랫집과 같은 빈집이 다시 생기긴 어려울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빈집이 여럿 생겼으니 만족합니다.


김규항 = 사람에게 집은 정말 중요한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비싼 상품일 수밖에 없어요. 집 문제에 대해선 시장 논리가 아니라 사회적 제어가 필요한데 한국의 역대 정권은 보수정권이든 민주정권이든 주택이나 부동산 문제에 대해 사회적 제어는커녕 투기를 부추기고 가장 유력한 부의 증식수단으로 만들면서 이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지금 장년층은 생의 절반을 바쳐서 집을 마련했다지만 청년들은 부모의 지원 없이는 일생을 바쳐도 어려운 상태죠.


지음 = 집이 가장 비싼 상품이 되고 집을 마련하기 위해 경쟁한다는 건 내 집의 문이 굳게 닫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웃도 없고 친구도 없는, 문을 여는 유일한 사람은 도둑이죠.(웃음) 집은 내 가족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런 상태에선 집은 내 가족 간에도 계산은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라게 합니다.


김규항 = 말씀대로 내 집을 갖기 위한 그런 과다한 노력과 고생이 우리를 이상하게 만들어버립니다. 동시에 이기적이고 체제 순응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근래 청년들이 독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는데요. 청년들이 집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과 독립이 어렵다는 걸 하나로 몰아가는 것도 뒤집어 보면 그런 맥락이 숨어있지 않을까요.


지음 = 독립이 뭔지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독립이 단지 다른 사람과 같이 살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거라면, 자본이 엮어주는 관계로 살아가겠다는 것밖에 안된다고 생각해요. 가족에게 돌아가라거나 독립과 자유를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구요. 억압적인 인간관계가 있다면 가능한 한 빨리 독립해야 하지만 자본 관계로부터 역시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죠. 독립은 홀로 살기가 아니라 새롭고 진정한 가족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음 빈집의 장기투숙자이자 협동조합 ‘빈고’ 운영위원장 (출처: 경향DB)


김규항 = 독립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빈고’입니다. 현황이 어떤가요.


지음 = 정식 명칭은 ‘우주협동조합 빈마을금고’죠.(웃음) 조합원은 100명 넘어가고 출자자가 88명가량에 출자금은 현재 1억원이 조금 넘는데요. 새 빈집을 만들 때 사용하기도 하고 빈집 식구들에게 소액대출도 합니다.


김규항 = 출자한 사람들이 이윤을 목적으로 하진 않겠지만 물가 상승도 있고 돈이라는 건 가만 두면 가치가 줄어드는데요. 배당 같은 게 있나요.


지음 = 처음엔 없었어요. 그걸 가지고 토론을 참 많이 했는데 지금은 3퍼센트의 배당이 있습니다. 사회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이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게 하자는 의미죠. 저희가 운영을 하다가 전세보증금엔 연 12퍼센트의 이자가 붙어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중요한 발견이었죠.(웃음) 그런데 그건 저희가 좋든 싫든 자본주의 질서가 만들어낸 것이고 그 질서 속에서 집을 빌려 운영하는 빈집이 조정하거나 통제할 방법은 없죠. 그래서 그 12퍼센트를 가지고 빈고 운영도 하고 출자자 배당도 하는 거죠.


김규항 = 돈이 지배하는 세상을 극복하려는 운동 단체에서도 많은 돈을 낸 사람은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힘을 갖기도 합니다. 빈고 출자자들은 어떤가요.


지음 = 돈을 많이 낸 사람이 특별한 권한을 갖게 되면 빈집과 빈고의 정체성이 부정되기 때문에 누가 얼마나 냈다는 건 앞세우지 않는 걸로 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은 묻어두고 들어가는 이자나 세금 같은 건 같이 분담하는 방식으로 시작했어요.


김규항 = 내가 낸 돈으로 여러 사람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기쁨을 ‘조용히’ 누리는 특별한 권한이군요.(웃음)


지음 = 전세도 있고 월세도 있는데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비슷한 조건으로 만들기 위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조금씩 정리가 되었죠. 근래 저희 생각은 보증금 많이 들여 전셋집을 구하는 것보다는 그 돈으로 월셋집 몇 개를 구하는 게 낫다는 쪽입니다.


김규항 =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한다는 건 세상의 질서와는 다른데 여럿이 함께 하기에 가능한 일이겠죠.


지음 = 혼자 살면서 전세 살다 월세로 가면 많이 절망하잖아요. 낙오되었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죠. 빈집은 공동체의 차원에서 빈고에서 그걸 관리하고 조정하니까 전세에 살든 월세에 살든 아무 상관이 없죠. 빈집의 주거 조건은 물론 안락한 수준은 아닙니다. 그러나 같이 사는 능력만 있으면 가난해도 살 수 있다는 것, 집 없어도 살 수 있다는 걸 깨닫는 건 우리 삶에서 큰 소득이라 생각합니다.


김규항 = 근래 공동체나 마을 만들기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은데요. 어떤 공동체들은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서울에 자기 집이 있는 사람들이 여윳돈으로 시골에 땅을 사서 공동체를 만드는 건 공동체라기보다는 좀 더 확장된 형태의 ‘내 집’을 만드는 게 아닐까요.


지음 = 말씀대로 가진 사람들이 남은 걸 가지고 공유지를 만드는 건 그 역시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행동이잖아요. 마을은 행복한데 마을에 들어가기는 어렵다면 그건 우리가 지향할 마을은 아닐 겁니다. 좌파적 마을 만들기랄까 반자본주의적 마을 만들기가 가능할까 고민합니다. 가난해도 살 수 있고 누구든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을 만들기는 세상에 공유지를 넓혀가는 노력이니까요,


김규항 = 공유지를 넓혀가려 노력할 때 비로소 마을 만들기가 곧 좋은 세상 만들기가 되겠지요. 모든 사람들이 주인인 집이라지만 선생처럼 실제 운영이나 실무를 맡은 사람들은 잠시 살다 가는 사람들과는 부담이나 책임이 다른데요.


지음 = 제가 빈집의 대변자라도 되는 양 오해될까봐 두렵지만 아무래도 할 일이 많긴 하죠. 그런데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또 저는 하다보니까 이런 일들이 참 재밌더라구요. 집이라는 게 돈으로 기여하는 것도 있지만 살림으로 기여하고 시간으로 기여하고 감정으로 기여하는 게 참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일들이 개인의 성향이나 시간이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편중되는 경향은 고민거리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주인이라면 모두 집 주인으로서 책임감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죠. 주인으로서 집을 관리하고 동네사람들을 맞이하고 살림하는 역량은 아직 부족하다고 할까요.


김규항 = 돈이나 사적 소유 같은 것에 대한 생각은 빈집이나 빈고에 참여하는 분들이라면 일정하게 공유된 것일 텐데요. 사람이란 오히려 일상에서의 어려움이랄까, 여럿이서 함께 살아간다는 게 늘 좋기만 한 건 아니라는 점의 어려움은 없는지요. 


지음 = 많죠.(웃음) 말씀대로 자본 공유는 빈고도 있고 오히려 쉬운데 공간 공유의 문제는 오히려 더 복잡한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커플이 생기기도 하는데 커플은 독립해나가는 경향이 있죠. 아무래도 현재는 장기적인 주거형태라기보다는 단기적이고 임시적인 주거형태에 좀 더 맞는 편이니까요. 그런데 그런 흐름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독립하더라도 되도록 근처로 간다든가 하면서 여러 다양한 주거형태를 만들어가려고 해요.


김규항 = 자유로운 성향을 가진 젊은이들의 마을을 넘어서 모든 사람들을 품는 마을이 되려면 다른 고민들도 필요하겠군요.


지음 = 대안학교를 나오거나 탈학교 아이들이 많이들 오거든요. 여기 머물면서 음악 지망하는 아이는 음악도 배우러 다니고 하는데요. 어리거나 아주 젊을 때는 알바 정도로도 살아갈 수 있지만 지속적인 생활 방식으로는 곤란하거든요. 경쟁 교육체제를 벗어난 그런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 같은 것도 고민하고 있고 나아가서는 마을 안에서 일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가려 합니다.


김규항 = 시골이면 기본 생존에 필요한 돈이 적게 들 수도 있는데 서울 한복판에 있는 마을이라 좀더 어려운 면이 있겠군요. 그러나 여기에서 조금씩 실현된다면 모든 곳에서 현실적인 상황이 되는 것이겠지요. 선생은 전에 급진적인 운동단체 활동가였습니다. 이런 공동체 운동이 체제 변혁에 기여할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의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공동체라 부르든 코뮨이라 부르든 우리끼리 체제의 가치관을 거부하면서 즐겁게 살아가면 체제가 변혁될 거라는 생각은 체제에 봉사하는 또다른 방식일 수 있다는 지적이죠.


지음 = 저의 가장 큰 고민이기도 합니다. 전혀 훌륭한 활동가는 아니었지만 빠져나와선 자전거 메신저니 빈집이니 즐겁게 살아가는 게 여전히 활동하는 분들에게 빚진 마음도 있구요. 이곳이 서울이긴 하지만 저는 귀촌해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거든요. 아직은 이 일 자체에 매달리는 형편이고 많이 부족하지만 마을 만들기가 결국 뭘 하려는 건지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규항 = 모든 사람이 변혁운동과 공동체 운동을 동시에 해야 하는 건 아닐 겁니다. 두 운동이 융합할 때 세상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이 운동에 전념하지만 저 운동이 없으면 안 된다는 존중심을 서로 가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변혁운동을 존중하고 고민하는 공동체운동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게 아쉬운 일인데 선생의 고민은 인상적이군요.


지음 = 저희가 조금은 무리해서 해방촌 카페를 만든 것도 그런 맥락이 있습니다. 우리끼리 즐겁게 살아가는 걸 넘어 세상과 섞이고 세상에 나아가려는 거죠. 이곳에서 오래 살아온 주민들에게 함부로 빈집이 어떻고 빈고가 뭐고 말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 생각하지만 카페가 그들과의 문이 되길 바랍니다.


김규항 = 카페 이름이 참 좋습니다. 해방촌 카페가 그 이름대로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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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ㆍ“우물쭈물하는 사람을 희극의 힘으로 한 발짝 나가게 할 것”

지난해 밀양연극제에서 민족극 계열인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의 <그와 그녀의 옷장>이 대상과 연출상을 받은 것을 두고 미디어는 ‘이변’이라 표현했다. 그게 이변이라면 시작은 지난해 봄 걸판 단원 오세혁의 <아빠들의 소꿉놀이>와 <크리스마스에 삼십만원을 만날 확률>이 신춘문예 희곡부문에 동시 당선된 것부터일 것이다. <그와 그녀의 옷장> 역시 오세혁 작품이다. 그러나 정작 오세혁은 그런 소란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 작품이 고단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작은 용기를 주는가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다.

김규항=자신을 오플린이라 부를 만큼 채플린을 좋아하는데요.

오세혁=어릴 때 채플린 영화를 보는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을 포착해내는 걸 보고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김규항=어릴 때 채플린 영화를 보며 그런 걸 보다니 유별났네요.

오세혁=배경이 있는데요. 어릴 때 부모님과 떨어져서 할머니 집에서 좀 살았거든요. 초등학교 1학년 어버이날에 어머니가 오셨어요. 그런데 어머니랑 잠깐 나갔다 온 사이에 할머니가 낙상으로 돌아가셨어요. 엄마랑 이모들이 난리가 났죠. 그런데 이제 서둘러 장례식장으로 가야 하는데 엄마랑 이모들이 막 울면서도 거울을 보며 단장을 하는 거예요. 드라이하고 얼굴에 분도 바르고. 그게 너무나 우스워서 막 웃었어요. 엄청 맞았죠(웃음). 그런데 그때 느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람이 웃길 때만 웃는 게 아니라 진지하거나 심각할 때도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빈틈이 생길 때가 있거든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죠. 그런데 좀 더 지나서 채플린 영화를 보는데 바로 그런 걸 그리더라고요.

 

연극인 오세혁 ㅣ 출처:경향DB

김규항=채플린도 그랬지만 희극을 하는 사람들은 현실이 희극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슬픔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슬픔을 치유할 수 있지요.

오세혁=저 역시 그렇고요. <그와 그녀의 옷장>을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보고는 정말 고맙다고 했습니다. 주변에서 우리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면 힘들게만 그려놔서 가뜩이나 힘든데 그걸 보고 있으면 더 힘들다. 우리 이야기를 재미있고 아름답게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극단 걸판의 목표가 ‘가장 의미있는 일을 가장 재미있게’이기도 합니다.

김규항=세간의 표현을 빌리면 ‘작년 이후 제도권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인 극작가이자 연출가’입니다.

오세혁=어쩌다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나 강정마을 이야기 같은 건 걸판에서 책임감을 느끼고 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저는 개인적인 이야기나 가족 이야기 같은 것도 하고 싶었거든요. 그걸 신춘문예에 내본 건데 생각지도 않게 동시 당선이 되었죠.

김규항=제도 연극계에서 작업하고 활동할 기회가 많아졌는데 어떤가요.

오세혁=고마운 경험이고 공부도 되었지만 가장 큰 소득은 걸판 활동이 저에게 가장 큰 기쁨과 보람을 준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한 겁니다. 걸판에서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는 게 많고 제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게 걸판 식구들이고.

김규항=작품이 매우 쉬우면서도 캐릭터 묘사에 희한한 구석이 있어서 연출자와 소통이 쉽진 않을 것도 같아요.

오세혁=제가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게 하는 걸 참 좋아하는데요. 이를테면 노동자들이 싸움을 위해 다 모여 있는데 ‘왜 다 모여 있는 거야. 혹시 힘을 합쳐서 뭔가 하자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한다든가, 어떤 조합원이 ‘내가 가겠습니다’ 그러면 ‘불과 5분 사이에 노동자 의식이 급성장했구나!’ 한다든가. 그런데 다른 연출가들은 대본을 보고 이게 뭐지 싶으니까 빼버리기도 합니다(웃음).

김규항=걸판은 안산의 지역극단이고 현장 공연을 위주로 활동해왔습니다. 단원들에게 주류 연극계에 대한 심리적인 불편 같은 건 없었나요.

오세혁=저나 김태현, 최현미 같은 창단 멤버들은 목적을 갖고 시작했으니 그렇지 않았는데요. 그냥 연극을 하려고 들어온 사람들은 걸판이 대학로 공연을 안 하는 것에 대해 은연중에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심지어 현장에서 저희를 부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경우가 있었고요.

김규항=지난해 밀양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은 게 도움이 되었겠군요.

오세혁=밀양연극제에 나간 이유이기도 했어요. 우리 작품을 제도권 연극제에 올려 관객들에게 인정받는 모습을 보고 싶었죠.

김규항=격찬을 받았고 ‘오세혁이라는 천재의 발견’이라는 기사도 나왔죠(웃음). 그런데 걸판의 김태현씨는 “세혁이더러 천재라고 하는데 세혁이가 얼마나 노력하는 사람인지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적었더군요.

오세혁=제가 유일하게 자부하는 게 노력입니다. 처음 몇 년 동안 연기는 안 하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극본도 쓴다고 썼지만 늘 부끄러운 수준이었어요. 극복하려고 많이 보고 많이 읽고 많이 쓰고. 주변에 뛰어난 사람들이 워낙 많기도 하지만, 노력파인 주제에 목표를 채플린으로 잡아놔서 더 힘들죠. <모던 타임즈> 같은 작품을 생각하면 잠도 안 와요(웃음).

김규항=선생 작품엔 ‘사람이란 게 다 비슷하다’는 시각이 있어요. 특별한 건 그게 냉소나 회의가 아니라 새로운 힘을 만들어냅니다.

오세혁=장기투쟁하는 젊은 여성노동자들이 조끼를 늘 입고 있는 걸 보면 예쁘게 차려입고 싶을 텐데 조끼가 지겹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파업하는 중년의 건설노동자들이 술 취한 모습 보면 용역들이 무서워서 저런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고요. 거꾸로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비정규직 이야기를 할 때는 용역깡패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광주항쟁 이야기를 할 때는 시민군보다는 진압군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는 식이죠.

김규항=사실 특별한 행동이 있을 뿐 특별한 사람이란 없죠. 평범한 속성과 이면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용기도 내고 함께 일어서고 하면서 특별한 행동이 만들어지는 거죠.

오세혁=말씀대로 사람은 다 그렇잖아요. 뭔가를 하려고는 하는데 겁이 나거나 소심하거나 우물쭈물하거나. 연극의 시작이라고도 하는 원시 동굴벽화도 짐승이 무서우니까 그림을 그려 용기를 낸 거잖아요. 같이 이렇게 찌르면 된다고. 지금 그 짐승이 지배체제일 수도 있고 자본일 수도 있지만 항상 시작은 그런 것 같아요. 제 작품이 하는 일은 우물쭈물하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한 발짝 나갈 수 있지 않겠냐’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한번 힘을 내보자’ 말하는 거죠.

김규항=현장의 반응이 생생하겠군요.

오세혁=연극을 난생처음 본다는 중년의 금속노조 노동자가 “이걸 보니까 내가 한동안 안이하게 산 것 같다. 다시 한번 힘을 내서 싸워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여성 청소노동자가 대기실에 들어와서 1만원짜리 한 장을 주시면서 우셔요. ‘나도 노동자라서 그렇다’면서. 아직은 사회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소중한 순간들이죠.

김규항=지금 현실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작은 용기를 만들어주는 것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가 있을까요. 기륭전자 투쟁 노동자들은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통합할 때 반대하고 탈당했을 만큼 급진적인 사람들이잖아요. 물론 노동자로서 상식적인 선택을 했을 뿐이지만 근래 한국에선 그런 상식도 교조주의니까요(웃음). 그럼 사람들이 고맙다고 했다면 깊이 있는 이야기 맞습니다(웃음). 근래 걸판엔 ‘민족극과 대학로 제도 연극계를 아우르는’이라는 수사가 붙곤 합니다.

오세혁=저희도 그렇지만 보면 민족극 계열과 대학로가 서로를 닮아가고 있는 것도 같아요. 사회적인 이야기들을 대학로에서 많이 하고 있어요. 용산참사 이야기도 대학로 작가가 제일 먼저 했거든요. 민족극 계열은 예전엔 노동이나 통일 같은 금기시되는 소재를 다루는 것만으로 통했는데 이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되니 좀 더 예술적인 노력이 필요해졌다고 할까요.

김규항=1990년대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민중연극이나 문화운동 쪽 청년들이 대학로에 진출한 흔적일 수도 있겠군요. 연극하면 먹고살기 어렵다는 건 다들 하는 이야기인데 걸판은 어떤가요.

오세혁=연극하는 사람은 돈 벌려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 건데요. 그게 쉽진 않죠. 가장 큰 문제가 집 문제고 이따금 큰일 생겼을 때 곤란하죠. 그런 면에서 걸판은 참 좋습니다. 고정 급여를 받고 단원 숙소도 있고 밥도 같이 먹으니까요. 연극 꿈을 가진 청년들에게 입단을 권합니다(웃음).

김규항=상업극을 하는 것도 아니고 운영과 운동성을 동시에 가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요.

오세혁=창단부터 8년 동안 대표를 맡아온 김태현 형의 기여가 큽니다. 지난해에 공연을 148회 했는데 그 중 3분의 2 정도가 집회나 농성장 같은 현장 공연이었습니다. 현장 공연은 공연비를 조금 받거나 거의 안 받거나 하지만 그 감흥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죠.

김규항=아우구스토 보알의 활동이 떠오릅니다.

오세혁=보알 선생을 좋아하는데 이유는 하나입니다. “관객 스스로가 연극의 주인공이 되게 하자. 그러려면 관객이 연극을 직접 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연극이 없는 이들에게 연극을 나누어주기 위해’ 어디든 달려갔다는 거죠. 빈민가, 오지, 정글,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지역. 그곳에 가서 그들에게 난생처음으로 연극을 보여주고, 또 처음으로 연극을 할 수 있게 만들고. 걸판도 그런 활동을 지향합니다.

김규항=보알은 희극 전문은 아니었죠(웃음). 한가한 논평가들은 슬랩스틱 코미디가 유행하면 스탠딩 코미디를 상찬하고 스탠딩이 유행하면 슬랩스틱을 상찬하기도 해요.

오세혁=슬랩스틱은 몸으로 느끼는 웃음이고 스탠딩은 머리로 느끼는 웃음인데 저는 두 가지를 모두 쓰는 것을 좋아해요. 작품의 인물들이 우스꽝스럽게 자빠지고 구르고 날고 뒹굴면서 관객의 몸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쉴 새 없이 재치가 넘치는 말을 뒤집고 비틀고 꼬아서 관객의 머리를 자극시켜 주는 걸 좋아합니다.

김규항=현장 밖의 대중, 오늘 한국의 거리에서 만나는 시민들은 어떤가요. 한 예술가의 관점에서.

오세혁=다들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아요. 뭔가에 꽂혀 있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단계랄까요. 게임에 꽂혀 있건 <나꼼수>에 꽂혀 있건 안철수에 꽂혀 있건. 이명박 욕하기에 꽂혀 있건. 요즘엔 밤에 시내를 못 나가겠더라고요. 술들 많이 먹는데 기분 좋게 취한 사람들은 거의 없고 너무나 악에 받친 모습이랄까, 건드리면 처참하게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랄까.

김규항=시장이라는 게 무섭긴 무서워요. 군사독재 시절에도 사람들이 최소한의 꼴은 유지했잖아요. 이웃 간의 정도 있고 너무 탐욕을 부리면 죄를 받는다는 생각도 했고. 그런데 그런 게 시장 원리로 재편되고 도무지 자기 존중을 유지할 방법은 없고 말씀대로 뭔가에 꽂혀 있지 않으면 살 수가 없죠.

오세혁=6학년짜리 조카가 너무 게임을 많이 해서 게임이 재미있는 거지만 너무 많이 하진 말라고 했더니 그러더군요. ‘재미로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세상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나는 어른이 되어도 잘살 가능성이 없다. 이미 다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런데 온라인게임 세계에는 아직 평등이 있다. 열심히 하면 이 세계 안에서는 레벨을 올리고 남부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

김규항=어릴 적 제 삼촌만큼이나 유별난 아이군요(웃음). 문제는 그 아이 말이 전적으로 사실이라는 거죠.

오세혁=쿠바에 농업 견학 갔던 농민들이 땡볕에 일하는 쿠바 청년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는데 ‘지금처럼 농부로 살아가는 거’라고 해서 울었다고 해요. 한국에서 살아가기 힘든 이유는 쿠바보다 가난해서가 아니라 노동이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김규항=우리는 오랫동안 ‘노동의 건강함’을 이야기해왔지요. 그런데 이젠 노동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생각해야 할 세상이 된 것 같아요. 일은 더 이상 세상을 유지하고 세상에 필요한 걸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극소수 지배자들의 이윤을 만들어내는 도구가 되어버렸지요. 노동이 세상을 파괴하고 오염시키고 필요하지 않은 걸 필요한 것처럼 만들어냅니다. 이론으로는 막막하지만 예술의 힘으로, 특히 희극의 힘으로 시원하게 드러내주길 기대합니다.

오세혁=세계의 본질을 해석할 수 없다면 우물쭈물하는 사람을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도 없을 겁니다. 희극의 힘으로 해보겠습니다(웃음).

※극단 걸판은 13일부터 29일까지 <그와 그녀의 옷장>을 공연한다. 대학로 게릴라극장. 010-8356-8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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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규항

 

ㆍ“용산참사에서 지배체제의 맨얼굴을 보여주려고 했다”

사회적 목적을 가진 예술창작 집단은 표방하는 바와 소재가 일치하는 경향이 있다. 노동해방을 표방하는 집단은 노동문제를,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집단은 여성문제를. 그러나 ‘연분홍치마’는 여성주의의 시각으로 모든 사회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의 시각은 관객으로 하여금 억압자와 피억압자,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 결과는 억압과 피억압, 가해와 피해의 맥락을 더욱 또렷하게 한다. ‘반이명박’이 사회진보의 유일무이한 기준이 되면서 진보의 수많은 갈래와 결들이 묻히고 뭉개져버린 시절, 그들의 태도는 각별하다. 김일란·홍지유 감독은 <두 개의 문>을 공동 연출했다.

▲ “2009년 1월 철거민 5명·경찰 1명의 죽음.
나와 비슷한 이웃이 받은 폭력, 국가에 그들은 무엇이었는지,
이 분노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우리는 성찰해야 한다”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을 연출한 김일란(왼쪽)·홍지유 감독이 지난 8일 용산참사 현장을 배경으로 서 있다. 참사 3주기가 훌쩍 지났지만 아직까지 텅 빈 공터로 방치돼 있는 재개발구역은 여섯 명의 목숨을 앗아갈 만큼 급박한 철거와 진압이 필요했는지를 되묻고 있다. _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김규항 = 처음부터 다큐 작업을 하기 위해 모인 건 아니었지요.

김일란 = 저희들 정식 이름이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활동의 일환으로 다큐 작업을 해보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2005년에 <마마상>이라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김규항 = 마마상은 오랫동안 성매매 혹은 성노동에 종사하다 늙은 여성을 말하는데요. ‘성매매 특별법’을 가지고 사회적 토론이 활발할 때이기도 하고 내용은 시의적절했는데 만듦새는 어땠나요.

김일란 = 내용에 대한 고민에 비해 미학적 고민이 부족한 작품이었습니다. 그 작품 이후 다큐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예술작업이나 매체작업이 다 그렇지만 테크닉이라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걸 훈련하고 동료들과 공유하고 다큐의 사회적 의미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미디어 인데 2002년에 새로운 여성주의 문화운동을 해보자고 만들어졌어요. 기지촌 여성 성매매 실태조사를 하다가 워크숍을 진행해나갔죠.

김규항 = 그 후 <3×FTM>(2008), <레즈비언 정치도전기>(2009), <종로의 기적>(2010) 등 ‘커밍아웃 3부작’을 만들었지요. 용산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을 조금은 갸우뚱하게 보는 이들도 있겠어요.

김일란 = 만들고 나서야 생뚱맞아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희에겐 매우 자연스러웠는데 저희는 여성주의를 소재나 젠더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세상을 보는 시선, 태도나 방법론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두 개의 문>은 용산참사를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보는 작품입니다.

김규항 = <두 개의 문>에서 도드라지는 건 역시 경찰에 대한 섬세한 고찰입니다. 경찰특공대 대원들은 남일당 건물의 정확한 구조나 상태 등에 대한 충분한 정보 없이 투입되었습니다. 법정에서 ‘생지옥이었다’고 술회할 정도로요. ‘두 개의 문’이라는 제목부터 특공대원의 그런 처지를 드러내는데 피아 구분이 분명한 정통적인 사회 다큐에선 보기 힘든 사례입니다.

김일란 = 공간에 따라서 가해자, 피해자가 변동되기도 하잖아요. 여성주의는 저희에게 어떤 공간에서 누가 배제되는지, 배제의 논리는 무엇인지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줍니다. <마마상>도 성매매 여성 입장에선 중간 착취자인데 무작정 적대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삶을 되새겨보는 작품이죠.

김규항 = 피아 구분의 단순화는 근래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통합진보당 사태라는 것도 ‘반이명박’이라는 기준으로 피아를 단순화하다 보니 구분되고 고려되어야 할 다른 가치들이 뭉개지고 은닉되면서 곪아터진 거죠.

김일란 = 참사 직후 저희 둘이 연분홍치마에서 현장에 파견되어 1년여 동안 영상 작업을 했어요.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토론을 많이 했어요. 철거민의 죽음과 경찰의 죽음. 분리된 죽음이 아니라 여섯 명의 죽음을 사회적 의미로 같이 이야기할 때 우리는 무엇을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까. 어떤 공간에선 철거민의 죽음이 왜곡되고 어떤 공간에선 경찰의 죽음이 왜곡되는가.

김규항 = 정치적 이해관계에 연루된 고위직 경찰과 그들에 의해 생지옥 속으로 내던져진 특공대원을 하나로 볼 순 없죠. 그렇다고 해서 철거민과 똑같은 피해자도 아니고요. 가해와 피해는 그렇게 중첩되고 또 중첩되는데요. 시사회에 참여한 분들에게선 오해나 오독은 없었나요.

홍지유 = 노골적으로 반발하는 분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독의 여지는 이 작품이 가진 힘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규항 = 오독될 여지가 있다는 건 관객으로 하여금 사유하게 한다는 것이니까요.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 내편과 저편이 또렷한 다큐는 생각을 차단하고 토론을 없애죠. 같은 편끼리 분노를 재확인하고 저쪽 편은 작품을 무작정 적대하는 건 카타르시스이고 어떤 현실적 변화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김일란 = 경찰 진압과정의 팩트뿐 아니라 진압과정에서 그들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일방적으로 철거민만 옹호하는 방식으로 들어가게 되면 철거민을 ‘순결한 사람들’로 재현할 수밖에 없거든요. 이렇게 되면 옴짝달싹 못하게 돼요. 철거민은 욕망을 가질 수도 없고 비극적 상황만 반복해야 하는 거죠.

김규항 = 피해자, 희생자라는 이름이 만들어내는 억압과 폭력성이 있죠. 그걸 적절하게 배제한 건 좋은 시도였다고 봅니다. 여긴 슬퍼해야 한다, 이 장면은 화내야 한다. 관객들에게 계속 지시와 명령을 내리는 다큐는 의도한 걸 이루기 어렵습니다. 작품 맨 앞에 나오는 ‘경찰 진술과 증거 동영상을 바탕으로 용산참사 재판과정을 재구성한 것이다’라는 자막은 ‘우리는 작품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성찰이자 ‘이 작품은 이렇게 만든 거다’라는 공지이기도 합니다.

김일란 = 예민하시네요(웃음). 찰나적이고 뜨거운 분노도 중요하죠. 그런데 그 분노를 성찰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분노에 이끌리는 게 아니라 분노를 핸들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려면 이 시대에 왜 우리가 분노하는지, 어딜 향해 분노해야 하는지를 성찰해야 하죠.

김규항 = 당파성의 면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우린 당파적인가보다 당파적으로 보이는가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죠.

김일란 = 저희는 당파적이고 <두 개의 문>도 철저히 당파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에요. 물론 시사회에선 여러 반응들이 나왔어요. 객관적이다, 중립적이다, 차갑다. 무슨 소리냐, 뜨겁고 당파적이다. 그렇게 여러 반응들이 나온다는 건 좋은 것 같아요.

김규항 = 유족 인터뷰도 없고 이종회나 박래군 같은 용산범대위의 중심적인 활동가 인터뷰도 없습니다. 이런 소재의 작품에선 아무래도 그런 분들이 주요한 인터뷰이가 되는데요.

홍지유 = 유족 분들 경우는 처음부터 안 했어요. 당사자의 육성을 통해 눈물을 쏟게 만들고 정당성을 다시 한번 재주장하는 방식으로 가진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 방식을 더 잘해내는 게 해결책이 아니라 다른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박래군 선생은 인터뷰는 했는데 범대위 집행위원장이라는 위치가 작품에 부담을 준다고 생각했고요.

김규항 = 사람들은 자신보다 훨씬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 확연하게 동정심을 행사할 수 있는 불쌍한 사람에게 좀 더 쉽게 마음을 엽니다. 용산 희생자들은 대부분 빈곤층에 속하는 분들은 아니죠.

홍지유 = 절대빈곤 상태에 놓인 분들이 당한 폭력은 오히려 연민에서 더 증폭되기 힘든데 그런 분들이기 때문에 작품으로선 좀 더 이점이 있어요.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사람이 받은 폭력에서 느끼는 수치스러움, 국가에 나란 존재가 이거였구나, 이렇게 프레임을 전환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김일란 = 사회적 약자의 정당성이라는 것은 그가 뭘 하는 사람이든 어떤 욕망을 가진 사람이든, 국가가 책임져야 할 문제를 이야기하는 그 정당성이라고 생각해요.

김규항 = 지배체제는 그걸 늘 뒤틀곤 하죠. ‘귀족 노동자’라는 말도 그런 거고요. 연분홍치마는 언제나 현장 활동과 다큐 작업의 병행을 중시했고 공동작업 방식을 취하는데요. 1980년대 진보적 문화활동가들은 집단창작이라는 방식에 천착했지만 이젠 진보적 예술작업에서도 주류 예술과 마찬가지로 한 개인이 도드라지는 방식이 대세입니다.

김일란 = <마마상>을 만들 때 미학에서 개인과 집단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미학적 민주주의’라는 게 가능한가라는 논쟁을 많이 했어요. 작품이 유통되고 상업적인 구조와 만날 때 모든 성과가 감독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죠. 물론 어떤 작업도 평평하진 않아요. 모든 작품에서 더 고민한 사람은 있어요. 더 고민한 사람의 노고와 함께 참여한 사람의 노고가 모두 어우러지는 게 저희가 생각하는 공동작업이죠.

김규항 = 늘 토론하고 논쟁하니 <두 개의 문>을 공동연출하면서도 논쟁이 꽤나 많았겠군요.

홍지유 = 둘이 특징이 많이 달라서 서로 까칠하게 태클을 걸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은 ‘어디 가서 이런 사람 또 만날까’ 싶은 마음이 들 만큼 잘 맞아요.

김규항 = 갈수록 인생이라는 게 이권이나 경제적 불안감 같은 걸로 싸우는 일로 변하고 있는데 미학 갖고 싸운다는 건 최상의 도락이군요.

김일란 = 듣고 보니 그렇네요(웃음). 저희 내부에서 작품들이 감독이나 사람으로 비교되지 않고 연분홍치마의 세 번째 프로젝트와 네 번째 프로젝트로 비교되는 게 장점이 되는 것도 같아요. 그래서 누가 어쨌다 저쨌다가 아니라 지난 프로젝트보다 더 나은 작품을 하고 또 과제를 설정해서 가는 게 중요한 거죠. 예술가들에게 평가는 애써 무시하려 해도 중요하잖아요.

김규항 = 평론가의 말에 가장 관심이 많은 감독은 ‘나는 평론가의 말엔 관심이 없다’고 말하죠(웃음). 개인이 비교되고 우열이 정해질 때 사람은 동요하게 마련인데 공적인 지향이나 의미로 인해 그게 은닉될 때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조직에선 중요한 문제입니다. “2012년 6월, 당신을 이 사건의 증인으로 소환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김일란 = 저희는 관객을 그날 사건의 목격자로 설정했어요. 참사 당일 인터넷 생방송을 본 사람도 1만명 정도는 되고요. 그걸 보지 않았더라도 다들 많은 정보들을 통해 목격했잖아요. 패배감도 지웠으면 했어요. 나는 이 사건의 방관자였다는 패배감. 사건을 목격한 증인으로 출두해서 이 영화를 보고 함께 참사를 진상규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김규항 = <두 개의 문>에 나오는 사실들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아는 것들인데요. 그런데 매우 새롭게 느껴집니다. 생각의 재구성 혹은 생각의 재적용이랄까요.

홍지유 = 학교폭력이 연상되었다는 청소년 관객이 있었어요.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밖에서 해결할 수 없는 닫힘의 공간에서 폭력이 어떻게 서로를 피해자로 만들고 가해자로 만드는지 연상되었다고 했어요. 또 한 분은 시위현장에서 전경으로 간 동생을 만나서 너무 많이 울었다. <두 개의 문>으로 동생과 대화를 시작하고 싶다, 서로를 알아가는 일을 상처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하시더군요. 정규직과 비정규직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분도 있었고요.

김규항 = 최악의 비극을 함께 되새기고 소통하면서 치유되고 용기를 얻는군요. 영화 처음에 이명박의 얼굴이 나옵니다.

홍지유 = 이명박의 얼굴로 시작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다른 얼굴을 볼 수 있도록, 그와 달라 보이지만 실은 유사한 정권을 볼 수 있도록, 일개 정권을 넘어 지배체제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현실을 독해하는 영화이길 바랍니다.

김규항 =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나요.

김일란 = 독립 다큐의 경우에 제작비는 산출 자체가 곤란해요. 둘이 작품에 집중했던 기간이 1년 정도인데 한 사람이 월 100만원씩 치면 2400만원이잖아요, 거기에다 촬영이 붙고 사운드 믹싱, 음악, 번역 등 후반 작업을 다 계산하면 1억원을 훌쩍 넘죠. 하지만 저희 인건비는 아예 산정 안 하니까요. 심지어 다큐 찍으면서 먹고사는 문제는 따로 해결해왔죠.

김규항 = 말 나온 김에 편하게 말씀해보세요. 독자들도 궁금할 테고, 또 연대를 원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김일란 = 저희가 지금도 아르바이트를 하다 달려왔거든요(웃음). 아르바이트를 조금만 덜 할 수 있다면 훨씬 더 작업에 전념할 수 있을 텐데요. 매달 5000원씩, 1만원씩 내는 후원회원들이 100명 좀 못 되는데 300명을 만드는 게 저희 목표예요. 그렇게 되면 저희 다섯 명 모두 활동비를 받을 수 있게 돼요.

홍지유 = 독립영화는 개봉 첫주에 객석이 채워져야만 상영회차가 늘고 장기 상영을 할 수 있는 도화선이 되거든요. 21일에 개봉하는데 기왕 보실 거라면 그 주말 객석을 채워주시면 참 좋죠. 김 선생님은 GV(관객과의 대화)에 와주시면 좋겠고요(웃음).

김규항 = GV도 하고 후원도 하겠습니다. 개봉 극장이 전국에 10개 정도인데 대개 100석도 안되는 작은 극장들입니다. 고단한 사람들에게 치유와 용기를 선사하는 영화가 그걸 못 채울까요. 건투를 빕니다.

(연분홍치마의 후원회원이 되어주실 분은 이름과 연락처, 주민번호, 계좌번호, 후원금액 등을 적어 메일을 보내시길. ypink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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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노동자가 가진 건 제 몸뿐… 그걸 망가트리는 게 야간노동이다”

 

“밤엔 잠 좀 자자!” 지난해 5월 야간노동의 폐해를 사회에 확산시킨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주간연속 2교대제’ 투쟁이 1주년을 맞았다. 이 투쟁은 사회적으로 큰 호응을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자본과 지배계급 진영의 반응도 남다른 데가 있었다. 대통령은 ‘연봉 7000만원 받는 귀족노동자들의 배부른 투쟁’이라 비난했고 보수언론들은 일제히 교대제 개선은 ‘노동 혁명’을 하자는 거라 주장했다. 그들은 유성 노동자들의 싸움이 단지 한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하루 8시간 노동이나 주5일제 도입 같은 커다란 역사적 물꼬가 될 것임을 간파했던 것이다. 유성 노동자들은 이미 주5일제 도입을 선도한 이력이 있다. 이정훈은 유성기업이 첫 직장으로 입사한 지 25년째인 노동자다. 작년 3월 민주노총 충북본부장을 마치고 복귀했다가 27명의 동료와 함께 5월 투쟁으로 해고되었다.

김규항 = 주간연속 2교대제는 이미 노사합의가 되었던 문제지요.

이정훈 = 저희가 5년가량 준비해서 2009년에 노사합의를 했습니다. 2011년부터 실시하기로 하고 매달 한두번씩 실무위원회를 했어요. 사측에서 출장비까지 지급했죠. 2011년 5월18일 오전에 주간연속 2교대제 조합원 찬반투표를 하고 주간조 조합원들이 두시간 동안 간담회를 했어요. 그런데 사측이 20시에 직장폐쇄를 하고 용역깡패들이 들어왔죠. 22시에 야간조가 출근해서 용역들을 공장 밖으로 몰아냈는데 그날 용역깡패들이 대포차를 인도로 돌진시켜 노동자 13명이 중경상을 입었죠. 농성 6일 만에 경찰 4000명이 들어와 강제진압을 했습니다.

 

유성기업 해고노동자 이정훈씨가 지난 25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서울 덕수궁 앞 농성장을 찾아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적힌 글자판 뒤에 서 있다.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김규항 = 회사가 그렇게 나올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습니까.

이정훈 =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실시를 미루고는 있었지만 직장폐쇄를 할 거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11번이나 교섭을 진행하면서 주간연속 2교대제 실행 자체에 대해선 문제 삼은 적도 없고요. 감쪽같이 우릴 속이면서 주간연속 2교대제뿐 아니라 아예 노조를 깨려고 준비해왔던 거죠.

김규항 = 원청사인 현대자동차가 배후라는 게 밝혀졌는데요.

이정훈 = 현대차 총괄이사의 차가 회사 안에 있었는데 저희가 차를 빼주다 ‘유성기업 불법파업 대응방안’이라는 문건을 발견했죠. 창조컨설팅이라는 업체에서 만든 문서입니다. 유성기업의 주간연속 2교대제가 이루어졌을 때 현대차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내용이 전제되어 있고 노조를 깨기 위한 시나리오는 물론 매우 구체적인 내용까지 있었어요. 카메라를 어디에 몇 대 설치하고 용역깡패 인원과 장비 등등.

김규항 = 원청사가 하청사의 노무관리를 하는 건 사실 공공연한 비밀인데요. 창조컨설팅은 ‘창조가 들어가면 노조 깨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분야의 전문기업입니다.

이정훈 = 문건에도 삼신브레이크를 어떻게 했고 발레오전장을 어떻게 했는데 유성노조는 두 회사와 조직적 차이가 있으니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있더군요. 증권거래소에 제출한 현대차 경영 자료를 보니 2011년도에 유성만 단가 인상을 26% 해주었더군요. 보통 2~3% 해줍니다. 노조를 깨기 위해 들어가는 돈을 지원하는 셈이죠. 작년에 용역깡패에게 들어간 돈만 해도 500억원은 되거든요.

김규항 = “밤엔 잠 좀 자자”라는 유성 노동자들의 구호는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습니다. 심야노동이 건강을 해친다는 건 의학적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독일 의학계는 야간노동이 수명을 13년 단축시킨다고 발표한 바 있고, 국제노동기구(ILO)에선 40세 이상 노동자의 야간노동을 금지하고 있죠. 유성노동자들의 평균 연령이 42세가량이라 들었습니다.

이정훈 = 야간노동이 원인이 된 과로사로 한 해 한명 꼴로 죽었습니다. 기계에 말리고 일하다 쓰러지고 퇴근 버스에서 영영 깨질 않고. 야간조가 22시부터 아침 8시까지 일하고 나와서 두어시간 자면 깨요. 잠을 더 자기 위해 술을 먹고 두어시간 자고 피로가 안 풀린 상태에서 또 야간 들어가는 거죠. 새벽 두시쯤 되면 죽음 같은 졸음이 쏟아지죠.

김규항 = 공장형 닭 사육을 보면 밤에도 대낮처럼 불을 켜놓거든요. 닭이 낮인 줄 알고 계속 사료를 먹죠. 몸이 완전히 망가지지만 중요한 건 살이 얼마나 찌는가일 뿐이죠. 인간의 야간노동은 그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정훈 = 모든 생명들은 낮엔 잠을 잘 못 자요. 가축도 밤엔 자게 해야 건강하죠.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로가 밭주인들은 가로등 설치를 하려 하면 열매를 못 맺는다고 들고일어나고 그러거든요.

김규항 = 가족들의 의견은 어떤가요.

이정훈 = 대환영입니다. 야간 노동을 하면 아이들 얼굴을 거의 못 보고 삽니다. 젊은 동료들이 아이가 아빠라는 존재를 잘 모른다고 호소하곤 합니다. 주말에도 나가야 하고.

김규항 = 어용노조가 작년 7월에 생겼는데 현재 1노조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이정훈 = 복수노조 자체를 반대하진 않아요. 어용노조가 있는 회사에 민주노조가 생기면 좋죠. 문제는 민주노조가 있는 상태에서 어용노조를 만들어 민주노조를 깨는 거죠. 복수노조법이라는 게 자본이 악용하기 좋게 되어 있습니다. 민주노조가 1노조일 땐 두 노조와 개별 교섭을 하고 어용노조가 1노조가 되면 교섭창구 단일화를 해서 민주노조를 무력화하는 거죠.

김규항 = 한진중공업도 그렇고 복수노조법의 악용이 많습니다. 함께 투쟁한 노동자들도 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용노조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정훈 = 조합원은 우리가 14명이 많은데 저쪽에서 관리자 49명을 넣어서 1노조를 만들었지요. 작년 7월1일에 어용노조가 서고 싸움이 힘들어지면서 복귀자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560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넘어갔죠. 어용노조 위원장은 89년도에 노동자 의사를 무시하고 사측과 직권 조인했던 사람입니다.

김규항 = 복귀자에게 모욕적인 전향식을 치르게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정훈 = ‘모든 것들을 불법으로 인정하고 금속노조 탈퇴한다’는 각서에 서명하고 정문을 통과하면서 용역깡패들 앞에서 ‘나는 개다’를 세 번 외치게 했죠. 장년 노동자들로선 자식뻘인 청년들 앞에서요.

김규항 = 어용노조로의 이탈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까.

이정훈 = 오히려 다시 돌아오는 분위기입니다. 어용노조의 단체협상 내용들이 회사 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되면서 넘어간 조합원들이 꿈틀거리는 상태입니다. 그쪽 집행부도 사측이 너무 막나가니까 조합원들을 설득하기 어려워 갑갑해하고 있어요.

김규항 = 용역을 비호하는 것도 그렇고 예나 지금이나 경찰 공권력과 검찰은 일방적으로 사측 편이라 노동자들의 투쟁을 힘들게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법원과 노동위원회에선 이기고 있지요.

이정훈 =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 부당징계는 천안지원에서 승소했고 대전고법에서도 승소했습니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도 부당해고, 부당징계, 지배개입, 부당노동행위가 나왔고 사측에서 중앙노동위원회로 올렸는데 이길 거라 봅니다. 특별 근로감독에서도 70여 건의 부당노동 행위가 적발되어서 과태료 10억원이 나온 상태입니다. 손배 가압류도 다 기각되었습니다.

김규항 = 천안지원에서 부당해고 판결이 나면서 ‘원심확정 시까지 근로자 지위보전을 해라’ 해서 해고자들이 임금을 받고 있는 건 이례적인 경우입니다. 요즘 이명박 욕하면 ‘개념판사’라고들 하는데 노동자에게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게 진짜 개념판사죠. 용역깡패를 비호하는 문제라든가 경찰과 검찰의 일방적인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노동자들을 많이 어렵게 합니다만.

이정훈 = 대전고법 재판 때 유성 사장이 판사에게 ‘해고자 20여명의 임금을 지급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하니까 판사가 ‘법적으로 부당해고 판결이 났는데 그럼 복직시키면 될 게 아닌가’라고 반문하더군요. 법의 상징이 저울이잖아요. 저희 편을 들어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 저울에 입각하여 정확한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김규항 = 법으로 이기면서도 안심하기 어려운 건 현대차는 물론 자본진영 전체가 이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는 겁니다. 대통령도 ‘연봉 7000만원 받는 귀족노동자가 배부른 투쟁한다’고 비난한 적이 있고 보수언론은 일제히 주간연속 2교대제가 ‘노동 혁명’에 해당한다고 매도하는 것도 그런 맥락인데요.

이정훈 = 유성 특별수사본부가 127명으로 역대 최대 인원이었다고 합니다. 개구리소년 때 60여명, 화성연쇄살인사건 때 100명이 못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국가적인 사태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쪽에선 유성을 본보기로 삼는 겁니다. 실제로 우리가 당하고선 부품사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 이야기가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자칫하면 유성처럼 된다는 두려움이 만연한 거죠.

김규항 = 선봉에 선다는 건 언제나 그만큼 많은 고통을 치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그놈의 ‘연봉 7000’ 이야기를 좀 하죠. 우선 유성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한 게 아니라 반대로 임금이 줄어도 좋으니 밤엔 잠 좀 자자는 것 아닙니까.

이정훈 = 저희 요구안으로도 현재 임금에서 30만~50만원 정도 줄어들어요. 노사 합의가 되면 아무래도 그보다는 더 줄겠죠. 그리고 연봉 7000만원을 받는 게 가능은 합니다. 그러려면 저 정도 경력의 노동자도 7000만원을 받으려면 야간노동은 물론 70시간 이상 잔업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계속 일하면 죽습니다. 7000만원도 적지요. 대통령은 뭐든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합디다만.(웃음)

김규항 = 현대차 같은 큰 이윤을 내는 회사도 공장이나 설비를 늘리지 않고 노동 강도를 높여 생산성을 해결하는 방식이 문제인데요. 일부 대공장 노동자들이 조금이라도 임금을 더 받기 위해 잔업특근을 함으로써 그에 부응하는 경향도 있어 왔지요. 작업특근을 많이 따내는 게 대의원의 능력이 되기도 하구요. 그게 허울좋은 ‘귀족노동자’의 실체죠. 그에 반해 유성 노동자들은 그런 근본적인 문제와 대면하고 있습니다. 현대차도 10여년째 못하고 있는데 노조원이 100분의 1에 불과한 유성노동자들이 야간노동 문제를 사회적으로 떠올렸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중들이 ‘밤엔 잠 좀 자자’라는 구호에 많이 호응도 했지만 반대의 정서도 여전합니다. 현재 한국 노동자들이 사무직 빼곤 야간노동 안하는 경우가 없는 형편이다보니 냉소적인 반응도 보입니다.

이정훈 = ‘경기도 어려운데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 아니냐’ ‘비정규직은 100만원도 못 받는데 지들은 살 만하니까 야간노동도 안하려고 하는구나’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는 걸 압니다. 정서적으로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야간노동이 노동자의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게 분명한 이상 우린 야간노동을 없애야 합니다. 노동자는 가진 게 몸뚱이뿐인데 야간노동은 그걸 망가트립니다. 당연히 함께 싸워서 없애야지요.

김규항 = 유성 노동자들의 승리가 결국 모든 노동자들의 보편적 현실이 되는 건데 자본과 지배계급은 유성노동자들이 특권을 누리려 하는 것처럼 매도합니다. 서로 반목하게 해서 손쉽게 지배하는 수법은 한국에서 유서 깊은 것입니다. 여전히 대중들이 현혹되는 경향도 있지만 의식수준이 예전 같지 않아서 결국 한계는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상급식을 결국 못 막아낸 것과 비슷하죠. 결국 어떻게든 실시가 될 거라 볼 때 자본은 실시는 하되 내용에서 또 뒤틀려고 할 텐데요.

이정훈 = 현대차도 그렇다고 알고 있는데 사측에선 가긴 가더라도 임금의 충분한 삭감과 노동시간은 줄어도 생산량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려 하죠. 그러나 야간노동 폐지의 의미를 가지려면 앞서 말씀대로 노동 강도로 생산량을 유지하는 방식이 아니라 생산 시설을 확대하고 고용도 늘리자는 쪽으로 가야만 합니다. 자본 측에서는 8시간씩 3교대를 제안하기도 하는데 이건 생활 리듬이 깨지면서 건강에 더 해롭습니다.

김규항 = 유성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울 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현실을 함께 생각하며 싸우고 또 연대의 모범을 보여 왔다는 건 잘 알려진 일입니다. 노조의 요구로 비정규직 청소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도 했고 여전히 유성기업엔 비정규직 노동자가 없습니다. 유성 투쟁에 연대한 젊은 활동가가 유성 노동자들을 ‘멋진 아저씨들’이라 말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존경심이 묻어나더군요.

이정훈 = 고마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특별하게 여겨질 때마다 우리 노동운동이 뭔가 많이 잘못 가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자본과 지배계급은 그렇게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면서도 노동자와 대립할 땐 철저하게 공조하지 않습니까. 이해관계가 일치되어있다는 걸 귀신처럼 알고 말이죠. 우리가 그들에게 밀리는 이유는 언제나 우리가 그들만큼 연대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고 연대하는 건 양보나 희생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싸움입니다.

김규항 = ‘멋진 아저씨들’이라는 말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웃음) 자본과 지배계급이 본보기로 생각하는 노동자들이 꼭 이겨서 승리의 본보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유성 노동자들이 밤에 잠을 잘 수 있게 되면 머지않아 모든 노동자들이 밤엔 잘 수 있게 됩니다. 많이 분들이 연대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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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규항


ㆍ“체제 안의 대안 말하는 제도권 지식인들… 그건 대안이 아니다”

지식인이란 참 묘한 존재다. 지식인은 체제 안에서 길러지며 체제를 옹호하고 봉사하는 체제내적 엘리트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동시에 지식인은 바로 그 지식으로 체제를 비판하고 분석하며 심지어 극복을 시도하는 위험성을 가진다. 체제의 숙제는 그 위험성을 얼마나 통제하는가에 있다. 극우독재 시절엔 가두고 고문하는 방식으로 쉽게 통제했지만 정치적 민주화 이후 체제는 좀 더 세련된 방식을 사용하게 되었다.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 진보지식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한형식은 바로 그 문제, 지식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방식과 구조를 파고든다.

 

사진 _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 출판사 직원·학원 강사·부동산 중개·주택 관리… 그의 수많은 직업
하지만 생계를 해결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는 사람도
지식을 만들고 유통시킬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김규항 = “출판사 직원, 고시학원 강사, 입시학원 강사, 개인 과외, 부동산 중개, 주택 관리, 번역, 연구용역 보조, 대필 등의 일을 하면서 생활해 왔으며, 식당,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선생의 책 <맑스주의 역사강의> 저자 소개에 적힌 말입니다.(웃음)

한형식 = 특이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들일 뿐입니다. 지식을 만들고 유통시키는 사람들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자기 생계를 해결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는 사람들도 지식을 만들고 책을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김규항 = 옛날에는 지역마다 평범하게 살아가면서 향토사학자 노릇하는 사람도 있고 요즘 말로 하면 일생 동안 인문학 공부를 하는 분들이 많았죠. 그게 사라졌다는 건 지적 활동과 삶이 분리되었다는 말일까요.

한형식 = 이론은 그 자체로 완결성이 있어서 무슨 문제든 논리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이론의 맹점이죠. 몸으로 다른 삶의 방식을 경험하고 호흡하지 않으면 이론은 현실과 유리될 수밖에 없습니다.

김규항 = 선생이 활동하는 ‘세미나네트워크 새움’은 오랫동안 묵묵히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한 연구 작업과 교육활동을 해왔습니다. 1990년대 이후 포스트주의를 내세우며 마르크스주의 폐기에 앞장섰던 연구자들이 2008년 자본주의 위기 이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른 모습을 보이는 걸 보면 감회가 있을 듯합니다.

한형식 = 입장은 변할 수 있는데 그런 변화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다는 것, 그리고 언제나 자기 입장으로 대중을 계몽하고 지도하려는 태도가 문제라 생각합니다. 그분들은 자신의 입장이 일단 변하면 기존의 입장은 모조리 낡은 것이라 규정하곤 했지요. 유행을 만들고 자신들이 그 주인이 되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희한한 일들이 많이 생겼는데 칼 폴라니가 요즘 활동하는 경제학자인 줄 아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웃음)

김규항 = 진지하고 현명한 사람이라면 아는 인생과 세상에 대한 이치들을 프랑스 학자들이 만들어낸 어려운 말로 소개하면서 마치 세상에 없던 개념인 양 말하는 경박한 모습도 있었지요.

한형식 = 폐해가 아주 컸습니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던 진지한 청년이 갑자기 어려운 말로 글을 쓰고 그걸 인터넷에 올리는 게 의미있는 좌파활동인 것처럼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웠죠.

김규항 = 그걸 비판하면 반지성주의라 반발하기도 했는데 반지성주의의 백미는 쉬운 걸 어렵게 말하는 기술이죠. 그들의 가장 큰 폐해는 역시 좌파 담론에서 노동과 계급을 지워버린 것이었습니다. 노동과 계급 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건 깡통좌파겠지만 노동과 계급을 뺀 좌파는 어떤 의미에서도 좌파가 아닙니다.

한형식 = 덕 핸우드라는 학자가 간단하게 반박하더군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어떤 통계도 제시하지 않는다.” 좌파 쪽의 자료가 아니라 세계은행 같은 주류에서 쓰는 통계를 보더라도 노동자 계급은 사라지기는커녕 줄어들지도 않았지요.

김규항 = 심지어 그들 중 일부는 유럽에선 노동 계급 이야기를 하면 무시당한다는 거짓말까지 늘어놓곤 했죠. 유럽의 중학생들이 ‘자본주의 반대’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풍경은 요즘 텔레비전에서 종종 볼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옛 기지촌 풍경입니다. 양키 흉내내며 세련된 체하는 가장 촌스러운 사람들.

한형식 = 기지촌 맞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유행한 포스트주의라는 게 유럽에서 바로 들어온 것도 아니고 미국이라는 확성기를 통해 몇 년의 시차를 두고 들어온 것입니다. 미국에서 주목받지 않은 유럽 담론이 들어온 일은 없습니다.

김규항 =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 일반화한 담론이 한국에선 감쪽같이 없는 경우도 있지요. 이를테면 ‘신자유주의적 민주화(neoliberal democracy)’ 같은 경우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를 해명하는 데 결정적인 이론인데요.

한형식 = 유럽이 아닌 주변부 국가에서 신자유주의가 도입될 때 정치적 민주화라는 당근을 먼저 제공하여 민중이 겪는 고통과 저항을 다스린다는 이론이죠. 가설이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진행된 주변부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진행된 상황이라 미국에서만 해도 1980년대 후반부터 진보적인 학계를 넘어 보편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이론입니다.

김규항 =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본격화한 것은 1997년 IMF 이후 김대중 정권에서지만 정치적 민주화는 10여년 전에 이루어졌고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에서 천천히 신자유주의화가 진행되었죠.

한형식 =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선 만델라의 집권으로 신자유주의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지요. 그 후 흑인들의 기대수명이 25년이나 줄었다니 그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김규항 = 인종차별주의 보수세력과 만델라의 차이를 부각하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을 차단하는 건 보수정치세력과 김대중 노무현 세력의 차이를 부각하면서 신자유주의를 차단하는 상황과 같습니다. 그 가장 중요한 역할을 이른바 진보지식인들이 하고 있지요.

한형식 = 그 진보지식인들이 활동하는 중요한 공간이 대학과 제도언론입니다. 그 바깥에서 노력과 고민들이 중요합니다. 그나저나 그들은 과거에 좌파였고 지금은 자유주의자들인데 자유주의 체제에서 자유주의가 어떻게 진보적일 수 있는지 매우 궁금합니다.(웃음) 같은 맥락에서 ‘신자유주의적 민주화’라는 개념이 한국에 없는 것도 의도적인 은폐라고 봅니다. 워낙 일반화된 이론이고 또 저희가 몇해 전에 진보적인 정치학자 몇분에게 그런 내용의 책을 번역 의뢰했다가 거절당한 경험도 있습니다. 자신들에게 불편한 내용이기 때문이겠지요.

김규항 = 그런 분들이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는 말이 ‘대안이 뭐냐’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대안이라는 말을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안을 부정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한형식 = 대안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기존 체제와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인정하는 대안은 기존 체제 안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건 대안이 아니죠.

김규항 = 신자유주의가 대중에게 가한 불안하고 시급한 심리 상태를 악용하는 야비한 전략이죠. 그들의 목적은 근본적이고 변화를 차단함으로써 자신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여전히 진보의 최전선에 있게 보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한형식 = 현실적 개선의 의미를 부인하는 게 아니라 그것과 장기적 전망이나 급진적인 상상력이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면 그들은 현실적인 개선은 쓸모없는 것처럼 말합니다. 교조에 빠져 있다고 비난합니다.

김규항 = 그 역시 극우독재 수십년 동안 대중에게 심어놓은 흑백논리의 경향을 악용하는 것이지요. 그들은 또한 함께 심겨진 반공주의 경향도 악용합니다. 자신들보다 왼쪽은 무엇이든 스탈린주의니 구좌파니 매도하죠.

한형식 = 마르크스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현실에서 출발하자는 것입니다. 현실은 다양하고 변화하기 때문에 어떤 경향을 마르크스주의로 정해놓고 비판하는 것 자체가 비마르크스주의적이죠. 또 하나 마르크스주의의 중요한 건 경제적 부분을 사회문제에서 주요한 부분으로 놓는 관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경제문제가 인간의 삶의 전부라 말한다고 비난합니다. 경제문제를 주요하게 본다는 건 그걸 전부로 본다는 게 아니라 민중이 겪는 고통이 경제적인 부분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김규항 = 그들이 아이 교육에서 ‘현실이 어쩔 수 없다’고 말할 때 그 현실도 경제문제죠.(웃음)

한형식 = 마르크스주의는 실제로 현실을 얼마나 바꿔내는가를 중요시합니다. 이명박을 그렇게 욕하고 비판했지만 결국 이명박 의도대로 안된 게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명박 반대운동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이겠지요.

김규항 = 이명박 정권은 지배계급 자체가 아니라 그 정치적 하수인이기 때문에 지배계급 자체를 타격하지 않고는 이명박을 타격하는 효과도 없을 수밖에요. ‘신자유주의 반대보다 이명박 반대가 시급하다’는 말은 매우 현실적으로 들리지만 실은 이명박을 반대하지 말자, 반대 시늉만 하자는 말입니다.

한형식 = 지배계급은 자신들에 대한 반대가 실제 위협인가 아닌가를 정확히 파악하고 위협이 아닌 반대는 오히려 대중이 그쪽으로 쏠리게 부추깁니다.

김규항 = 나꼼수는 기존의 진보는 낡았다, 에쿠스 타는 진보, 강남좌파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을 합니다. 전선을 지배계급과 민중에서 지배계급 내에서 보수세력과 자유주의세력의 싸움으로 이동시키는 건 지배계급을 위한 최선의 봉사죠. 나꼼수에 대한 일정한 탄압은 나꼼수가 지배계급을 위협해서가 아니라 위협하지 않는 걸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형식 = 그런 이데올로기 전술은 전 세계적으로 비슷합니다. 젊은 세대들이 폼나 보이고 재미있고 안전한 저항만 저항으로 여기고 진지하고 고생스럽고 위험한 저항은 기피하는 빌미를 만들어서 저항의 힘 자체를 빼버리는 전략인 것이지요. 오바마가 동성결혼을 허용한 것도 그 일종이라 할 수 있죠. 실질적으로 경제정책 면에서 공화당 민주당이 하나로 수렴되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이야기인데 거짓 대립선을 만들어내 대중을 기만하는 것이죠. 심지어 미국에도 ‘부시 FTA는 나쁘고 오바마 FTA는 좋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웃음)

김규항 = 그런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하면 질문을 받습니다. ‘그분들이 정말 그렇게 이중적으로 사악한 사람들일까요’ 그러면 대답합니다. ‘아마 그렇지 않을 겁니다. 나름으론 최선의 현실적인 진보적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사람의 속마음은 자신조차 헷갈릴 때가 있고 그걸 재단하는 건 사회적 토론이 아니라 심령술이나 마법이지요.

한형식 = 지식인은 변절했다는 비난을 받으며 체제에 편입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기도 모르게’ 편입됩니다. 스스로는 현실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고 믿는데 실은 체제에 봉사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회적으로 보면 체제에 대한 봉사와 기득권을 교환한 것이고요. 개인의 인격이 아니라 지식사회학의 관점에서 시스템을 보는 게 중요하죠.

김규항 = 시스템이 아니라 개인의 인격을 보게 함으로써 사회적 기만을 만들어냅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그의 죽음 이전과 이후로 정반대로 나타납니다. 이명박을 당선시킬 만큼 실망스러운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성자로 변하고 친노세력도 일제히 부활하죠. 이건 연애감정이지 정치의식은 아닙니다. 강퍅한 말로 들리겠지만 그걸 부추기고 조종하는 세력을 생각해야겠지요.

한형식 = 그런 상황에서 난무하는 단어가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다양하게 그리고 기만적인 의도로 쓰이는 말도 없습니다. 부시가 이라크 침공할 때도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했습니다. 민중이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민주주의죠. 그걸 구분 없이 쓰면 지배계급이 사용하는 민주주의로 흡수되는 건 필연적입니다.

김규항 =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강의하고 공부하면서 어떤 조짐이 보입니까.

한형식 = 노동운동이나 진보정치가 어려움을 겪고 대중이 자유주의 세력의 기만에 휩쓸리는 경향도 거세지만 한편으론 다른 모색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희 회원들이 학생 위주에서 일반인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도 그런 변화겠지요. 자본론 세미나를 해도 책만 보는 학생들보다 일반인들의 이해도가 월등합니다. 자기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니까요.(웃음)

김규항 = 저희도 고래정치학교를 하고 있지만 지식이 내 현실과 만날 때 생기는 에너지는 대단하지요. 지치고 불안한 사람들이 멘토니 대권주자니 제 욕심을 채우려 현혹하는 사람들에게 쓰는 시간을 진짜 삶의 무기를 챙기는 데 쓰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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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규항

ㆍ“신자유주의 속 소수 인디음악… 그래도 난 즐기고 극복을 고민한다”

근래 유행하는 ‘멘붕’(멘털붕괴·정신적 공항상태를 일컫는 인터넷 유행어)이라는 말은 먼저 유행한 ‘멘토’의 이면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길을 찾기를 두려워하며 나 대신 생각해주고 나 대신 길을 찾아줄 어떤 강력한 대상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선택한 대상을 기준으로 모든 가치를 재조정한다. ‘빠’와 ‘까’의 범람 속에서 한국은 더 빠르게 멘붕 중이다. 기타리스트 윤병주는 자신의 말마따나 사회문제와 관련해서 어떤 특별한 저항이나 실천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단지 스스로 생각하길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길을 찾아가며 살아간다. 그래서 그는 꽤나 보기 드문 사람이다.

 

사진 _ 김창길 기자cut@kyunghyang.com

▲ 관객 다섯 명 앞에 두고 공연하고도
“오늘 죽였다”고 말할 수 있는 그.
그의 삶이 ‘반MB’를 외치지만
삶 속에 마주치는 ‘MB스러운’ 상황은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김규항 = 록음악은 언제부터 좋아했습니까.

윤병주 = 어머니가 늘 AFKN 라디오를 틀어놓으셔서 자연스럽게 어릴 적부터 듣게 되었죠. 어머니와 펜팔 친구이던 와국 분이 추천한 록 음반을 어머니가 구입하시면 제가 더 많이 듣게 되었고요(웃음). 중학교 졸업 즈음에 첫 기타가 생겼습니다.

김규항 = 노이즈가든은 PC통신 동호회가 모태가 된 걸로 압니다.

윤병주 = ‘하이텔 메탈동호회’인데 메탈동이라 부르곤 했습니다. 외국에서 새 음반이 나오거나 아티스트가 나오면 들어보고 감상문을 올리는 게 주된 활동이었습니다. 그러다 사하라, 블랙신드롬 같은 메탈 하던 형들을 알게 되고 해서 메탈동에서 만난 친구들과 92년에 노이즈가든을 만들었죠. 저희가 일종의 계기가 되어서 언니네 이발관, 델리스파이스 같은 밴드들이 만들어졌죠.

김규항 = 노이즈가든은 94년 톰보이 록페스티벌에서 대상을 타면서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습니다. 언니네 이발관, 델리스파이스도 말씀하셨는데 프랑스 뉴웨이브 감독들이 생각납니다. 영화에 대한 글을 쓰다가 직접 영화를 만들게 된 사람들 말입니다.

윤병주 = 꽤나 진지하고 탐구적이었어요. 정말 진지하게 듣고 진지하게 썼거든요. 요즘엔 그런 록 마니아들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한 번 들어서 자기 취향이면 좋아하고 아니면 관심 없고 식이죠. 좋게 말하면 직관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김규항 = 현재의 로다운30은 3인조 록밴드입니다. 크림이 효시던가요. 기타 베이스 드럼이라는 최소한의 편성은 그 간결함만큼이나 각 파트의 강력한 사운드를 내는 편성이기도 하죠.

윤병주 = 저 역시 그런 이유로 오래전부터 3인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김규항 = 로다운30을 흔히 블루스록 밴드라고 합니다. 블루스를 한다는 뜻인가요. 블루스가 기반이 된 1960, 1970년대 록을 한다는 뜻인가요.

윤병주 = 후자에 가깝습니다. 1980년대 이후엔 블루스에 그다지 영향받지 않은 록음악들도 많지 않습니까. 펑크부터 1980년대 뉴웨이브, 1990년대 브릿팝, 얼터너티브 등. 그런데 로다운은 무슨 음악을 하는 밴드다라는 규정이 불편할 때가 많아요. 평론이나 매체에서 저희를 소개할 때도 저희 스스로 다 적어주길 원해요. 우리 음악은 무엇이고 음악 특징은 무엇이고 각 곡의 해설 이런 걸 써내야 해요. 방송에 나간다고 해도 첫 질문이 ‘로다운은 어떤 음악을 하는 밴드입니까’. 그럼 저는 그것도 모르면서 왜 불렀을까 싶죠. 그런 풍조에 동의하기도 어렵고 이번 앨범은 아예 보도자료를 안 썼어요.

김규항 = 요즘 음악 평론에는 음악이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병주 =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아쉬운 게 그겁니다. 음악을 하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제 음악이 나타내고 싶었던 걸 누군가 알아채 주고 반응을 보여주는 교감의 순간이거든요. 호평인가 혹평인가는 상관없어요. 그런데 그런 건 없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많아요. 이를테면 최근 어느 밴드에 대한 글에 그런 구절이 있더군요. ‘기청감이 재현성이 떨어지는’ ‘역린을 거스르지 않는 기괴함’. 사전을 찾아가며 읽어야 했어요. 물론 그런 알쏭달쏭한 표현도 있을 수 있고 음악에 별점 매기고 재치 있고 톡톡 튀는 40자평도 다 좋은데 듣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음악적인 소개부터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올뮤직(세계적 음악 정보·평론 사이트)을 보면 시밀러 아티스트, 인풀루언스드 바이 하는 식으로 계통부터 잡아가며 소개하거든요. 그런 건 없이 ‘일기장을 꺼내 읽는 것 같은’ ‘소소한 일상의 투명하늘 같은’ 이런 건 어떤 음악인지 알 수가 없잖아요(웃음).

김규항 = 선생은 인디신이나 인디밴드라는 말이 나오기 전부터 활동했지만 여하튼 인디 1세대 뮤지션이기도 하죠. 한국에서 인디라는 말은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갖는데 주류음악산업에서 독립적이라는 원래 뜻도 있는가 하면 주류 산업에서 픽업되길 바라는 아마추어들도 인디라 불립니다. 여하튼 한국의 인디는 그런 건데 근래 인디 뮤지션들의 생존권 관련한 논의들이 있습니다.

윤병주 = 말씀하신 대로 제가 이쪽에선 나이가 있는 축에 속하다보니 그런 문제는 말하기 조심스러운데요. 그런 논의들을 존중하면서 다른 측면의 문제도 함께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인디뮤지션이 음악으로 한 달에 버는 돈이 69만원이다, 우리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과연 69만원을 벌 만한 음악을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김규항 = 구조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인데요.

윤병주 = 그런데 구조라는 게 찬찬히 따라올라가다 보면 결국 음악을 듣고 소비하는 대중에게까지 가게 됩니다. 대중의 추세가 어떤가를 봐야겠죠. 뭔가 조금이라도 낯선 음악을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가 없다고 할까요. 미국 TV의 <데이비드 레터맨쇼> 같은 데서 레이디 가가 나온 다음에 스트록스가 나왔다 혹은 마돈나 다음에 RATM(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이 나왔다 해도 별 위화감이 없이 갑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소녀시대 다음에 인디밴드가 나왔다 그럼 굉장히 위화감이 있겠지요. 그게 현실이고 그런 현실을 바꾸지 않고 인디의 생존권을 소리 높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진 않겠지요.

김규항 = 부당하든 정당하든 현실에서 출발해야겠지요. 선생은 경제 문제를 따로 해결해왔습니다.

윤병주 = 음악으로 돈을 못 벌어서 다른 돈 버는 일을 한다고 보는 분도 있겠지만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서 돈 버는 다른 일을 만든 거거든요. 제가 정말 음악을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음악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건 정말 음악을 좋아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김규항 = 일상에 음악이 얼마나 스며들어 있습니까.

윤병주 = 늘 오늘은 뭘 들을까, 무슨 시디를 구입할까 생각하고 들어보고 기대에 못미친다, 생각보다 좋았다는 희비가 교차되고 따라 연주해보고 곡 만들고 조용한 데 혼자 있으면 가사 쓰고 그러죠. 음악을 열심히 하다가 미래가 안 보이고 돈도 안 벌리고 해서 그만두고 떠났다가 오랜만에 만나선 ‘너 그런 거 지금도 하느냐’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 사람이 과연 음악을 좋아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규항 = 한음파처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들도 있지요.

윤병주 = 그렇게 돌아온 사람들은 돈 생각은 안 하거든요. 음악을 안 하고는 살 수 없어서 하는 거니까요. 내가 이 고생을 하면서 라면 먹고 고작 몇 만원 받고 음악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이미 음악이 좋아서 하는 상태는 아닌 것 같아요. 이런 말이 인디음악인들의 권리 투쟁을 하는 분들에게 오해를 살 수도 있고 또 성공 위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패배자의 말처럼 들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추구하는 음악과 현재 대중의 상태를 놓고 볼 때 그렇게 하는 게 맞다는 판단을 한 거거든요. 패배도 포기도 아닌 현실을 정확히 보려는 거죠.

김규항 = 그렇다고 로다운30의 음악이 전위적이거나 고의적으로 대중을 불편하게 하는 음악은 아니잖아요. 구성도 멜로디도 오히려 추구하는 음악의 방향에서 최선의 대중적인 음악을 한다고 할까요. 하지만 음악 창작이라는 게 여느 노동처럼 노동시간으로 가치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 어려운 상황을 맞을 가능성을 충분히 생각해야겠지요. 대중의 음악 취향이 건강하지 못하고 왜곡되었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건강하지 못하고 왜곡된 취향도 결국 취향이죠.

윤병주 = 음악 하는 사람은 음악이 자존심이니까 음악에 좀 더 철저했으면 해요. 인디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최소한 TV에서 소녀시대나 투애니원 다음에 나와도 어색하지 않은 퀄리티를 갖도록 해야죠. 음악이라는 게 일정한 레벨에 오르면 그 다음엔 음악적 차이가 되거든요.

김규항 = 돈이 되는가 안되는가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죠. 퀄리티 이야기를 했는데 선생에 대해 말할 때 묵직하고 깊이 있는 기타 톤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라이브에서 더욱 차이를 보인다고들 하지요.

윤병주 = 고마운 말인데 사실 자기 기타 톤을 갖고 있는 건 칭찬받을 문제가 아니라 기타리스트의 최소한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기타리스트는 자기 손이 가장 기본이잖아요. 누구나 원하는 소리가 있겠지요. 가장 먼저 할 일은 그 소리를 내기 위해 손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을 완벽하게 추구해 놓는 거죠. 그 다음에 장비나 이펙터입니다. 몸이 안되는 모델을 의상으로 해결할 순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김규항 = 홍대 지역이 인디예술가들의 창의적인 공간에서 급속하게 상업주의적인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윤병주 = 요즘 같은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그런 변화는 반갑진 않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집주인들이 예술가들의 후원자로 나선 게 아닌 다음에야 세 안 올리기를 요구할 순 없을 일이고요. 홍대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이고 분위기가 바뀌는 정도를 넘어 생존 자체가 무너지는 사람들을 양산하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규항 = 노이즈가든은 몇 만장이 팔리는 밴드였지만 로다운30은 고작 몇 백장이 팔리는 밴드입니다. 그런 차이가 주는 심리적 불편함은 없습니까.

윤병주 = 대중의 기호나 추세를 알고 있고 제가 선택한 일이니 불편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다섯 명의 관객 가지고 공연하고도 교감이 있었다면 ‘오늘 죽였다’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 같이 손 머리 위로’ ‘다 같이 점프’ 외치는 밴드는 관객이 다섯 명이면 많이 힘들겠죠. 결국 자기 선택의 문제 아닐까요.

김규항 = 종종 구조보다는 개인의 태도나 선택을 중시한다는 오해를 받을 것도 같습니다.

윤병주 = 구조에 대해 말하는 게 중요한데 그 방식이 좀 공허하다고 할까요. MB를 욕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요. MB가 벌이는 부조리한 일들의 작은 버전이랄까, 직접 내 삶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선 훨씬 조심스럽고 비굴한 경우를 많이 봐요. 자기가 직접 손해 볼 수 있는 일이라 그렇겠지요. 결국 그런 상태에서 외치는 MB 아웃은 현실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겠죠. 저는 그런 작은 버전들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게 좍 되어서 위에까지 올라가는 거지, 그런 게 안되어 있는데 구조만 탓한다고 좋은 정치나 좋은 예술적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김규항 = ‘우리 안의 이명박’이라는 표현으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사회구조의 문제를 개인 윤리의 문제로 돌린다고도 하던데 제 의도는 사회구조와 사회성원은 서로 반영되는 유기적 구조라는 것이지요. 나쁜 사회구조는 사회성원들을 나쁘게 만들고 나빠진 사회성원들은 다시 나쁜 사회구조를 만들어내죠. 그런 면에서 갈수록 누구도 ‘나’에 대해 ‘우리’에 대해 말하거나 생각하지 않는 경향은 참 아쉬운 일입니다. 실컷 욕하고 조롱할 수 있는 이명박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죠.

윤병주 = 이명박 뽑은 놈들 누구야 난 안 뽑았는데, 그런 건 성숙한 태도는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뽑은 이명박’이라고 해야 해요. 사회 다수면 결국 우리 아닌가요. 지금이야 노무현 생각하면 눈물 난다고 하지만 그땐 모든 게 노무현 때문이라고들 했죠. 이명박이 구리다는 건 다 아는데 그렇다면 대안은 뭐냐는 거죠. 노무현 다시 오면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데 그쪽이 집권해서 또 불만스러우면 이번엔 또 누가 오면 된다고 말할까요.

김규항 = 전에 어느 평론가가 선생이 ‘신자유주의자 놈’이라는 표현을 즐겨쓴다며 재미있어 하더군요(웃음).

윤병주 = 사실 저는 신자유주의에 저항하지도 않고, 이 좌판에 앞서 등장한 분들처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저를 희생하지도 않고 그저 제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요즘 같은 상황에서 신자유주의나 신자유주의가 강요하는 삶들을 쉽게 거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요. 그러나 그게 우리 삶의 전부가 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거부는 못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그걸 극복할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면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규항 = 옛날에 ‘월간팝송’인가에서 ‘마흔 넘어서도 건재한 밴드 롤링스톤즈’ 운운하는 기사를 본 기억납니다. 마흔이 넘었습니다. 스스로 어떻습니까.

윤병주 = 여전히 음악을 좋아하고 곡을 만들고 창의적인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게 만족스럽고 저 자신에게 자랑스럽습니다. 음악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창의적 힘을 잃었다고 판단되면 즉시 그만두어야겠지요. 그건 음악을 하는 게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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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아이의 행복한 삶 바란다면 ‘놀이’ 통해 행복의 느낌 배우게 해야”

인류역사 내내 제대로 된 사회에선 구태여 강조할 것 없이 지켜져 온 원칙이 있다. 아이들은 잘 놀아야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고 사회의 미래가 있다는 것. 오늘 한국은 그 원칙이 가장 철저하게 부서진 사회다. 진보적인 시민들은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자 정치적 아들)이 대통령이 되는 걸 막기 위해 온힘을 다하지만 제 아이들이 박정희 독재 시절보다 놀지 못하고 살아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말한다. 편해문은 그런 희한한 어른들 덕에 일찌감치 시들어가는 아이들 걱정에 사로잡힌 놀이운동가다.

▲자본주의에 가장 극렬하게 저항하는 방법이 놀이
잘 노는 것은 무엇보다 돈으로 구매하지 않고 노는 것
지배자들의 발명품인 돈 주고 사는 여가와 다르다

 

놀이운동가 편해문씨는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행복의 냄새와 느낌을 아는데, 오늘날 아이들은 놀이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김규항 = ‘사람은 어릴 적 논 힘으로 살아간다’고 하셨지요.

편해문 = 지금 세상이 참 견디기 어려운 세상인데, 신기하게 버티고 살아가거든요. 저런 힘이 어디에서 나올까 궁리해보니 결국 그게 어릴 적 놀면서 기른 힘을 꺼내서 쓰는 거더라구요.

김규항 = 요즘은 생태놀이까지도 패스트푸드점에서 메뉴 고르듯 구매되는 세상입니다. 놀이가 놀이가 아닌 세상이랄까요.

편해문 = 오락이나 여가를 놀이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가를 즐긴다는 게 주말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곳으로 몰려가고 돈을 쓰며 시간을 보내는 거잖아요. 사람들은 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존재인데 회사나 공장에서 오래 붙들려 그 본능이 눌려 있죠. 그걸 구역을 만들어가지고 놀잇감을 넣어주고는 ‘너희들 여기 와서 번 돈을 써라’ 이게 여가의 정체죠. 여가란 전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지배하는 사람들의 발명품이죠.

김규항 = 자본주의 체제가 놀이를 왜곡하는 건 이윤을 위해서뿐 아니라 체제 안전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잘 노는 사람들처럼 무서운 사람들은 없습니다.

편해문 = 자본주의에 가장 극렬하게 저항하는 방법은 잘 노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잘 노는 건 무엇보다 돈으로 구매하지 않고 노는 건데 우린 갈수록 그런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김규항 = 체제가 잘 노는 사람을 없애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잘 노는 게 뭔가를 바꾸는 거죠.

편해문 = 흔히 잘 노는 사람이라 하면 오락 분위기를 선도하는 사람, 탬버린 들고 던지며 사람들 휘어잡고 분위기를 압도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제 생각엔 제일 못 노는 사람이구요. 오히려 일상에서 아이들과 소소하게 놀 줄 아는 사람이 잘 노는 사람이죠.

김규항 = 요즘 한국 아이들에게 주의력결핍장애(ADHD)라는 병이 비정상적으로 많습니다. 그 역시 놀이의 왜곡과 관련이 있지 싶어요.

편해문 = ADHD라는 병이 한국처럼 많은 나라는 없거든요. 이게 유전적인 거나 음식 같은 것도 원인이지만 그건 일부이고 사회적인 맥락에서 생각해볼 문제예요. 사실 아이들은 가만히 못 있는 게 정상입니다. 특히 취학 전의 아이들은 아직 사람이 아니라 짐승입니다. 소리 지르고 울고 뛰고 물어뜯고 하는 거 당연해요. 사람에겐 소리 질러야 할 절대량, 울어야 할 양, 뛰고 싶은 거 절대량이 있어요. 이걸 반드시 써야 하고 다 채워줘야 하는데 이게 눌려있다가 초등학교 가면 아이가 가만있지 못할 수밖에요. 아이들은 짐승으로 시간을 제대로 보내고 사람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걸 생략하고 바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니까 무리가 생기는 거죠. 그래놓고선 그걸 병이라 진단하고 부작용투성이의 약을 처방하죠. 아이들에게 남은 생명의 기운을 약으로 꺾어서 어른들이 원하는 상태로 만드는 거죠.

김규항 = 어른들이 원하는 상태란 점잖고 조용한 상태가 아니라 군말 없이 공부만 하는 상태죠. 엄마들 사이에 ADHD 약이 ‘공부 잘하는 약’이라 불리기도 해요. 학교 폭력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도 아이들이 지르는 비명인데요.

편해문 = 닭을 살찌우기 위해 닭장에 닭을 움직일 수도 없이 많이 때려 넣어놓고 24시간 불을 켜놓지 않습니까. 그 닭들은 그 고통을 어떻게 견디는가. 한 닭을 여러 닭이 피가 철철 날 때까지 쪼아서 죽입니다. 학교가 그런 상황이죠.

김규항 = 학교를 그렇게 만든 원인으로 대개 보수적인 교육 관료나 정책들이 지목되는데 배경은 부모들이죠. 예를 들어 체벌 문제를 보면 부모들이 초등학생 때는 손만 대도 난리가 나요. 그런데 중학교 들어가고 고등학교 가면 적당히 때려서라도 성적을 올려주길 원하는 부모들이 아주 많아요. 부모들의 그런 이중적인 태도가 보수적인 교육관료나 정책들에 힘을 실어주고 학교를 닭장으로 만듭니다. 게임중독에 관한 논의들도 마찬가지구요.

편해문 = 게임을 못하게 막거나 시간을 관리하는 건 사실 불가능해요. 이젠 들고 다니면서까지 하는데 그걸 어떻게 관리합니까.(웃음) 중요한 건 아이 스스로 게임을 관리하는 힘을 갖는 건데 그게 없을 때는 게임에 먹힐 수밖에요. 아이 속엔 게임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놀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공부 경쟁 때문에 노는 시간을 없애버렸죠. 드물긴 하지만 제대로 놀면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저는 ‘놀이밥을 꼬박꼬박 챙겨먹은 아이’라고 표현하는데요, 그런 아이들도 게임을 만나면 해요. 재미있으니까. 그런데 한자리 앉아서 두세 시간을 못하고 일어납니다. 좀이 쑤셔서 견디질 못하는 거죠. 그런데 놀이밥 굶은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참견만 안하면 2박3일도 갑니다. 좀이 안 쑤시거든요.

김규항 = 지금 게임이라는 게 부모들이 하던 테트리스나 갤러그하곤 다르잖아요. 게임 산업의 규모가 엄청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아이들을 자기네 게임에 얼마나 오래 앉혀놓는가가 숙제가 되었는데 그건 단순히 게임을 재미있게 만들어선 안되고 중독을 시켜야 하는 거죠. 말씀대로 면역 능력이 중요한데 어른들은 게임의 폭력성이나 선정성만 이야기합니다.

편해문 = 게임의 진짜 해악은 폭력이나 선정성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워낙 폭력적이고 선정적이에요. 남자애들은 개미 보면 밟아죽이고 엄청 선정적이죠. 게임의 진짜 해악은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관심 없음’입니다. 정말 무서운 해악이죠. 게임중독은 놀이로밖에 치료할 수 없어요. 부모님들 만나면 늘 그럽니다. ‘다 소용없구요 어릴 적엔 노는 게 남는 거예요.’

김규항 = 그나마 고민하는 부모들이 많이들 생각하는 게 전래놀이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방학 때 캠프나 행사 같은 데선 해도 일상에 연결하는 경우는 드문데요.

편해문 = 다른 세상에서 이식해오는 거니까요. 다른 사람 살을 떼다 내 몸에 붙이는 건데 자연스럽게 살게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비석치기를 한다고 했을 때 비석을 문방구에서 사거나 놀이지도하는 분들이 준비해요. 그래서 다른 아이가 비석을 던져서 내 비석이 쓰러졌어, 그런데 아이가 별 느낌이 없어요. 제가 어렸을 때 내 비석이 쓰러지면 가슴이 철렁했거든요. 비석이 아니라 내가 넘어가는 거죠. 내 비석이 좋은 비석을 찾으러 온 동네를 찾아다니고 할머니 집 다녀올 때도 찾고 한 거거든요. 전래놀이 캠프에서 비석치기 마치면 다들 비석을 던져버리죠. 옛 아이들은 찬장 한 구석에 눈에 띄지 않게 넣어놓고서야 안심하고 잤거든요. 전래놀이는 놀잇감을 찾으러 다니는 것, 놀이 방법, 놀잇감에 대한 사랑, 이 세 가지가 하나로 들어있는 건데 두 번째만 쏙 빼서 전래놀이라고 하면 그건 놀이가 아니라 레크리에이션일 뿐입니다.

김규항 = 이런 현실에서 아이들이 당장 할 수 있는 놀이가 뭐가 있을까요.

편해문 = 사람들이 공동체성을 가지던 시절에는 놀이에서 서로 겨루고 경쟁하고 하는 게 문제될 게 없었는데 이젠 아이들 삶이 경쟁에 처박혀 있으니 그런 것조차 조심스러운 지경이에요. 경쟁 지수가 0이면서 재미있는 놀이로 음악이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요즘 음악에 그리 빠져있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해요. 무슨 음악이든 그쪽으로 물꼬를 터주면 좋을 겁니다.

김규항 = 돈으로 뭐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상이라 놀잇감을 사주는 것도 찜찜합니다. 옛 아이들은 놀잇감을 돈으로 사지 않았죠.

편해문 = 사주는 놀잇감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지금 아이들이 하는 놀이가 다 소비입니다. 사는 놀이, 사서 입는 놀이, 사서 쳐바르는 놀이 같은 것들이죠. 아이들이 포켓몬스터 딱지를 사는 이유도 놀기 위해서보다는 축적하기 위해서거든요. 티비에서 아이들 만화나 프로그램하면 바로 장난감 광고가 붙어요. 별 생각 없이들 보는 게 사실 상식을 가진 부모라면 당연히 규제하라고 요구해야죠.

김규항 = <고래가그랬어>가 그런 광고를 일절 안 받는 통에 고생 많이 했죠.(웃음) 어쨌거나 아이들은 그걸 갖고싶은 욕구에 시달리는데요.

편해문 = 마트 같은데 장난감 코너에서 저거 사달라고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들이 있어요. 정말 그거 가지고 놀고 싶어서 그러는가. 사주면 며칠 가지고 놀다 통으로 들어가요. 이미 잔뜩 쌓여있는 통에요. 아이들은 실은 사람하고, 엄마하고 아빠하고 동무하고 놀고싶은 거예요. 그게 충족이 안 되니까 그런 유행하는 장난감을 갖고싶은 욕구로 대체되는 거죠. 장난감 사달라고 울고 떼쓰면 “너하고 놀고 싶단 말이야”라는 하소연으로 생각하면 되어요.(웃음)

김규항 = 부모들 특히 아빠들은 뭘 사주는 걸로 아이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모습을 봅니다.

편해문 = 아이들에게 아빠는 ‘뭘 사주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이 중학생 정도 되면 아빠가 뭐하는 사람인지 아무 관심이 없어요. 아빠하고 눈 마주치는 유일한 시간은 뭐 사달라고 할 때뿐입니다. 그걸 잘 알면서도 사주는 걸로 관계의 끈을 유지하려 한다면 더 이상 부모이길 포기하는 거겠죠.

김규항 = 돈으로 관계를 사려 들 게 아니라 관계에 대해 깊이 성찰할 기회로 받아들여야겠지요. 다음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한국 아빠들은 교육에도 거의 참여 안하고 아이들과 소통할 줄도 모릅니다. 외국과 비교해도 유별난 편이죠. 근래 외국 아이들을 보러 여행을 거듭하고 있지요?

편해문 = 제가 안동에 사는데 권정생 선생이 거기 사셨어요. 그분 유언장 마지막에 북한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중동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티베트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아프리카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대목이 나옵니다. 제가 무슨 거창하게 선생의 유언을 따른다는 건 아니고 그 말씀이 깨우침이 되어 아이들을 보러 다닙니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노는지.

김규항 = 가서 보니 어떻든가요.

편해문 = 김 선생님이 늘 ‘지구를 통틀어 이렇게 사는 아이들은 없다’고 하시잖아요. 아무리 다녀봐도 그렇습니다. 한국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거대한 인체 실험장 같아요. 얼마나 몰아붙여서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를 알아내려는 실험요. 그렇지 않고선 이럴 순 없죠. 우리보다 부자 나라든 가난한 나라든 아이들이 이렇게 살아가는 곳은 없습니다. 한국이 잘 사는 나라라고들 하는데 실은 세상에서 제일 못사는 나라죠.

김규항 = 5년 전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는 책을 내셨지요.

편해문 = 아이들이 볼까봐 그 책을 숨기고만 싶어요. 책 제목을 보고 무릎을 치고 탄성하는 아이들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내가 하는 게 맞구나 믿음도 가질 수 있었구요. 그런데 지난 5년 동안 성과는 마이너스였죠. 아이들과 놀이는 더 멀어졌어요. 다음 책은 그런 아름다운 제목이 아니라 거친 제목으로 가려구요. 어른들이 좀 불편해하더라도 날것으로 갈 생각입니다.

김규항 = 옛 어른들은 아이 키우고 교육하는 걸 ‘자식 농사’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말이죠.

편해문 = 농사는 정직한 거잖아요. 옛날 어른들은 아이가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어릴 때 생각해보면 오후 내내 놀고 들어와 저녁 맛있게 먹고 또 잠깐 나가 놀았죠. 집에 돌아오면 피곤하니까 그대로 골아떨어졌구요. 아침이야 당연히 꿀맛이죠. 그런데 놀이가 딱 끊어지니 아이들은 밥 맛이 없고 잠이 잘 안 올 수밖에요.

김규항 = 우리 아이들이 놀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편해문 = 놀이는 한 번도 아이들 곁을 떠난 적이 없어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서 놀이를 감추거나 빼앗았지만 놀이는 언제나 아이들 곁을 서성이고 있습니다.

김규항 = 결국 우리 어른들의 일이죠. 한탄만 할 게 아니라 행동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가장 큰 걸림돌은 사회문제로선 찬동하는데 내 아이 문제에선 망설여진다는 겁니다. 교육 강연을 하면 모인 어머님들에게 꼭 그럽니다. “동네에 돌아가면 혼자시죠?” 다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죠. 혼자라 생각하면 불안하고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것 같아 두렵죠.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손을 잡는 게 중요합니다.

편해문 = 누구나 아이가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려면 행복의 냄새와 느낌을 알아야 해요.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행복의 냄새와 느낌을 알고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깨우칩니다.

김규항 = 부모들은 아이가 나중에 행복하기 위해 지금은 조금 불행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행복하지 않은 아이는 나중에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도 공부니까요. 가장 중요한 행복 공부는 물론 놀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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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20대 때 혁명에 빠지지 않으면 심장이 없는 사람이고 40대에도 혁명을 생각하면 뇌가 없는 사람이라 했던가. 지난 30여 년 우리 사회에서 386세대처럼 그 말에 잘 들어맞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80년대를 불태우던 20대의 혁명가들은 이제 수구기득권 세력과 경쟁하는 신흥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민주세력이자 진보세력이라 말한다. 올해 예순인 한 울산아지매가 그들에게 딴죽을 걸고 나섰다.

 


▲ “돈 많고 배운 사람들이 우리를 대변해주진 않는다.


노동자·서민이 사람 대접받고 행복하게 사는 사회로 가는 것이 진보다”

김규항 = 한나라당 당원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김순자 = 한나라당 당원만 한 게 아니라 한나라당 지역 여성회장도 하고 관변단체인 바르게살기위원회, 경찰서에서 하는 반공멸공회 총무도 했습니다.

김규항 = 우리 사회에서 정치에 눈을 떴다는 말은 대개 한나라당, 새누리당 지지하다가 민주당 같은 자유주의 정치를 지지하게 되는 변화를 일컫는데, 훌쩍 건너뛰셨습니다.

김순자 = 나이 50이 되어 노동조합을 하면서 세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동조합을 하고 노동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정몽준을 존경하는 한나라당 당원이었을 겁니다.

김규항 = 울산과학대 이사장이 정몽준씨입니다. 울산엔 현대가 울산을 발전시키고 잘 살게 해준 고마운 회사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주변에서 김 선생님의 변화를 불편하게 보는 분들도 있었겠습니다.

김순자 = 부적절하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너무 빠지지 마라.” “너무 빠져 있는 것 같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저 역시도 전엔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은 일도 열심히 안하고 비뚤어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만큼 좋은 사람들도 없더군요. “피를 나눈 가족도 아닌데 어떻게 남에 대한 배려심이 이렇게 많은가” 말하곤 했습니다.

김규항 =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보통의 회사가 아니라 대학이니 다를 거라 생각하셨지요.

김순자 = 처음 출근해보니 엘리베이터에 “책을 읽고 지식을 얻는 것은 약한 자를 돕고 사랑하는 힘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적혀 있었어요. 지성인들이 있는 곳이 역시 다르구나 감탄했죠. 학장이나 교수들은 공부를 그렇게 많이 했으니 얼마나 훌륭할까 기대했고 내 자식 같은 학생들을 위해 청소하는 게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너무도 달랐어요. 배운 사람들이 오히려 더 이기주의적이고 악랄했어요.

김규항 = 김 선생님은 직접 체험을 통해서 노동문제나 사회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혼자 세상의 모든 체험을 다 할 수는 없지요. 지식을 갖는다거나 배운다는 건 그런 체험을 일일이 다하지 않고도 사회를 분별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기도 한데요. 우리 사회에선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김순자 = 드물지만 우리 투쟁에 관심을 갖고 드러나지 않게 음료수도 갖다주고 하는 교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을 보면 배운 사람답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엔 교수들과 마주치면 존경스러워서 인사를 받든 안 받든 제가 먼저 인사했는데 이젠 안 합니다. 초등학교밖에 못나온 나보다 더 무식한 사람들, 더 이기주의적인 사람들에게 고개 숙일 이유가 없지요.

김규항 = 2007년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무현 정권이 비정규보호법이라는 이름의 비정규악법을 만든 후 가장 대표적인 투쟁사례로 지목될 만큼 치열했습니다. 알몸으로 저항하는 여성노동자들을 남자들이 끌어내는 야만적인 상황도 있었지요. 학생들이 구사대로 나선 건 참 가슴 아픈 대목이었습니다.

김순자 = 학생회에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했더니 못하겠다고 해서 그럼 가만히만 있어달라고 부탁했죠. 그런데 어느 날 500~600명이 체육복을 똑같이 입고 일렬로 죽 서서 구사대 노릇을 하더군요. 서러워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김규항 = 그간의 투쟁으로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은 전국의 청소노동자들 가운데 가장 상황이 낫다고 하지만 여전히 최저 임금을 받습니다. 앞으로의 투쟁은 어때야 할까요.

김순자 = 청소노동자들이 다 용역업체 소속이라 투쟁에 뚜렷한 한계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는 방법은 하나, 전국의 모든 청소노동자들이 함께 투쟁하는 것입니다. 그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김규항 = 사람은 투쟁할 때 더 훌륭해집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내적 변화도 있으셨는지요.

김순자 = 맞습니다. 노조하고 노동운동 하기 전엔 저도 ‘한 이기주의’ 했습니다. 받는 만큼만 주고 주는 만큼 받으려고 했죠. 항상 세상이 너무 삭막하다고 불평하며 살았지만 저 역시도 그랬죠. 노조 만들고 노동운동하는 동지들과 지내다보니 내가 대한민국이 아니라 딴 세상에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달라지더군요. 이기주의도 없어지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제가 원래 좀 당찬 성격이라는 소릴 듣고는 살았지만 돈 많고 배운 사람들에겐 꿀리는 게 있었는데 그런 게 사라졌습니다.

김규항 = 열심히 전도하셔야겠군요.(웃음)

김순자 = 정말로 딴 세상에 사는 것 같고 새롭게 태어난 느낌입니다. 돈 많고 배운 사람들에게 꿀려 사는 분들에게 투쟁하라고, 그러면 삶이 바뀐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김규항 =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하셨지만 대공장 정규직 노조들과 노동운동은 걱정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김순자 = 처음에 투쟁할 때는 노조나 노동운동하는 분들은 다 고맙고 눈물 나고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 노동자대회에 처음 참여했을 때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당시 금속노조 위원장이던 정갑득씨가 발언을 하는데 동지들이 그렇게 불신하고 욕을 하더라구요. 우리가 힘을 합쳐도 될까말까한데 왜 저러나 싶어서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그런데 노동운동에 대해 더 알게 되면서 왜 그랬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김규항 = 만 명에겐 만 개의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 ‘다름’은 존중하되 운동을 망가트리는 경향에 대해선 단호해야 합니다. 그게 말처럼 쉽진 않습니다.

김순자 = 몇 안 되는 저희 노조원들도 다 개성이 다릅니다. 간부를 맡은 사람은 그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투쟁에는 잘못된 생각이나 주장도 늘 따라다닙니다. 저희 투쟁할 때도 용역업체에서 복직 연락이 왔는데 연대노조 위원장은 바로 받으면 도로 다 잘린다 하고 또 한쪽에선 연대노조 위원장이 너무 깐깐하니 민주노총에 교섭권을 넘겨라 하고 참 혼란스러운 상황이 많았습니다. 처음엔 참 힘들었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 성장한 것 같습니다.

김규항 = 국회의원이 되려는 것도 투쟁의 연장선상에 있습니까.

김순자 = 노동자들 집회 같은 데 가면 왜 “정치는 현장으로부터”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저게 무슨 말일까 늘 의문을 갖곤 했습니다. 보수든 진보든 정치는 돈 많고 배운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만 알았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비례대표가 되겠다고 결심하고도 마음 한편으론 그런 생각을 완전히 씻어내진 못했습니다. 각오는 했지만 이게 맞는 것일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했는데 어제 제 생각이 확 바뀌어버렸습니다.

김규항 =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요.

김순자 = 어제 부산 지역 대학의 청소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고신대는 노조 만든 지 3년 정도 되었다는데 노조원이 18명이더군요. 휴게실이 한눈에 보기에도 너무 초라하고 또 학교 안에서 기가 죽어있달까 눈치를 본달까 그런 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청소노동자도 정치할 수 있습니다. 돈 많고 배운 사람들은 우리를 대변해주지 않습니다. 제가 국회로 가서 우리 노동자들에게 잘못하는 사람들 다 빗자루로 쓸어서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분리할 건 분리하고 버릴 건 버리고 깨끗하게 청소하겠습니다”라고 발언했는데 이분들이 억수로 좋아하고 너무나 신명이 났습니다. 이분들이 이런 걸 기다리고 있었구나, ‘정치는 현장으로부터’라는 말이 바로 이거구나 깨달았습니다. 내가 하길 잘했구나 싶었습니다.

김규항 = 정치에 대한, 진보정치에 대한 쉽고 명료한 설명으로 인용할 만한 이야기입니다. 그나저나 사업장 동료들은 걱정도 하겠습니다.

김순자 = 언니가 없으면 우짜노 바로 탄압 당할지도 모르는데 우린 우짜노 말합니다. 그래서 정치를 하게 되면 제가 더 큰 방패막이가 된다며 걱정 말라고 했습니다.

김규항 = 용역업체 사장이나 학장이나 교직원들도 저 양반이 저러다 진짜 국회의원 되는가, 정몽준하고 국회에서 맞짱뜨는가 싶어 걱정이 많겠습니다.(웃음) 따님은 뭐라고 하던가요.

김순자 = 청소노동자로 일하면서 내가 사람이 아니라 노예구나 싶어서 불만과 분노가 쌓여갔지만 비정규직은 노조 못하는 줄 알았어요. 노조는 현대중공업 같은 큰 회사의 노동자들이나 하는 걸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연대노조가 있다는 걸 알고 노조를 하게 되고 투쟁하게 되었죠. 10여년 동안 그런 모든 이야기들을 매일 저녁에 딸에게 시시콜콜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래서 딸은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압니다. 이번에도 ‘울엄마 참 멋있다’ 하대요.

김규항 = 10년 동안 매일이면 세뇌의 결과인가요?(웃음) 굳이 진보신당을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김순자 = 민주당은 우리 비정규노동자들을 힘들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고려할 이유가 없고 그동안 투쟁하면서 민노당, 진보신당, 사회당이 다 연대했지만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민노당이 유시민 쪽과 합치면서 노동자를 대변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걸 현장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었고 진보신당과 사회당이 합당하면서 부담이 줄었습니다.

김규항 = 민주당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들이 집권했을 때 어떠셨나요.

김순자 = 김대중 대통령이 되었을 때 사상을 떠나서 저렇게 경륜이 있는 분이 정치를 하면 얼마나 잘할까 기대가 참 컸습니다. 그런데 우리 노동자들 힘들게 하는 법 만들고 또 노무현 대통령은 전에 현대중공업과 싸울 때 와서 응원하고 했던 분인데 또 비정규 악법을 만들고 하니까 이해가 안 가더라구요. 무슨 사정이 있겠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솔직히 잘 모르겠습디다. 그러나 무슨 사정이 있다고 해도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규항 = 제 또래들이 이른바 386세대의 핵심입니다. 80년대에 20대였고 다들 노동자 민중의 편에 서겠다고 노동현장에도 들어가고 감옥살이도 하고 죽기도 많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 거치면서 다들 교수도 되고 작가도 되고 언론인도 되고 사장도 되고 하면서 이젠 또 하나의 기득권 세력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명박 정권 교체를 위해 일단 합치는 게 노동자 민중을 위한 길이라고 말합니다.

김순자 = 제가 지금 우리 나이로 예순입니다. 저만 생각하면 그런 분들의 주장에 적당히 동의하면서 무난하게 살다 가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젊은 사람들이나 아이들을 생각하면 절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민주화를 100년쯤 해왔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민주화로 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걸 자꾸 이명박 핑계대고 되돌리면 어떻게 합니까. 어렵더라도 민주화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규항 = 그분들은 이명박 정권 교체가 민주화라고 합니다. 심지어 ‘진보집권’이라고도 합니다.

김순자 = 민주화는 노동자 서민들이 사람 대접받고 행복하게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 거고 그런 사회로 가는 투쟁이 진보 아닙니까. 그런데 노동자 서민들을 힘들게 만든 김대중 노무현 정권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게 민주화고 진보인가요. 그 두 정권이 민주화를 안 하고 진보를 안 해서 국민들이 너무 살기 힘들어지니까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세웠던 거 아닙니까.

김규항 = 김 선생님과 그분들은 민주화에 대한 생각이 다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민주화는 새누리당이나 조·중·동이 아니라 자신들이 집권하는 것입니다. 물론 민주화의 본디 의미로 보면 김 선생님 생각이 맞습니다. 초등학교만 다닌 분이 많이 배운 사람들보다 훨씬 유식하시니 세상이 바뀌긴 바뀔 건가 봅니다.(웃음)

김순자 = 브라질 룰라 전 대통령이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존경받습니까. 저보다 학벌이 못하다고 초등학교 중퇴했다고 하대요.(웃음) 세상이 다양한 만큼 정치도 다양한 사람들이 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돈 많고 배운 사람들은 돈 많고 배운 사람들을 대변하고 저 같은 사람들은 서민과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치를 하면 됩니다.

김규항 = 우리 정치의 문제는 보수 정치인들이 부자와 권력자를 확실하게 대변하는데 진보를 말하는 정치인들은 서민들과 노동자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돈 많고 배운 사람들끼리 보수 진보로 편 갈라서 권력 싸움만 하죠. 얼마 전 한국에 온 스웨덴의 한 정치인이 자기네 나라 사람들은 총리나 총리실 청소노동자나 똑같이 대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정치인이 스웨덴에서 보수쪽 정치인이었습니다. 물론 그 사회도 옛날엔 그렇지 않았습니다.

김순자 = 노동자들이 돈 많고 배운 사람에게 정치를 내맡기지 않고 정치의 주인이 되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변한 걸로 압니다. 우리 아이들은 꼭 그런 세상에서 살면 좋겠습니다.

김규항 = 정치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의회정치만 정치가 아니라 운동도 중요한 정치입니다. 선거 결과가 무엇이든 좋은 정치 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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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쌍용차 문제, 죽음의 문제로 고착화… 본질 간과돼 후회”

노동단체의 회의나 토론회에서 혹은 집회에서 종종 그를 만나곤 한다. 얼마간 뜸하다 만난 그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싶을 만치 말도 행동도 차분했다. 물어보니 지금이 제 모습이고 전에 에너지가 넘치던 모습이 ‘조증’ 상태였단다. 그는 해고 후 스물한명의 동료 노동자들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떠난 동료들이 겪었던 고통을 역시 겪으며 제 전투를 수행 중이다. 그 죽음들을 만들어낸 거대한 구조를 밝히는 노력과 그 거대한 구조 앞에 무방비 상태인 노동자들의 일상과 문화를 일구어내는 숙제는 그 전투의 중요한 일부다.

[##_1C|cfile10.uf@146F17414F693D4E2353FA.jpg|width="540" height="350" alt="" filename="cfile10.uf@146F17414F693D4E2353FA.jpg" filemime=""|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창근씨(오른쪽)가 지난 8일 서울 경희궁에서 김규항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쌍용자동차 점거 파업에서부터 희망버스까지 한국사회의 격렬한 현장 속에 빠지지 않고 서 있었던 그는 한결 차분해진 모습이었다. | 권호욱 선임기자 _##]

▲ “쌍용차 매각은 노무현 정권 때 벌어져 민주당이 책임 당사자
민주당이 정말 해결 의지가 있었다면 국조단 만들었어야
민노총도 제 구실 못하니까 정치권서 적당히 마무리”

김규항=동료 노동자들을 떠나보내면서 그 죽음에 대한 보도자료를 쓰는 일을 해왔는데요.

이창근=힘든 일이었어요. 특히 “또 한 번의 죽음”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게 힘들었어요. 같은 말을 반복하는데 세상의 대답은 없고 죽음은 자꾸 늘어가고. 나중엔 이걸 더 많이 알리기 위해 이렇게 써야겠다 저렇게 써야겠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제 감정에 충실하게 되더군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눈물이 납니다”라고 썼습니다. 어쩔 수 없었어요.

김규항=단지 그 상황에 연대하는 활동가가 아니라 그 상황의 당사자라는 점이 고통을 배가시켰을 것 같습니다.

이창근=죽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들이었다면 조금 나았을까요. 이상하게도 다 아는 사람들이었어요. 나중에 겁이 나더라고요. 근조 플래카드나 검정으로 도배된 풍경들, 이런 게 세상에 상황을 알릴 수는 있겠지만 그걸 보는 해고자나 희망퇴직자에겐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만장기 들고 이런 게 점점 싫어지더군요.

김규항=쌍용차에서 유독 죽음이 많은 이유가 있을까요.

이창근=그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보도자료를 쓸 때 자살 방법이나 상황을 너무 자세히 묘사했나 하는 생각까지 해봤죠. 그런데 쌍용차는 누적된 게 있어요. 상하이로 넘어가고 분명히 기술 유출하고 먹튀했는데 법적으로 해도 안되고 파업해도 다 작살나고 어용노조가 다 덮고 넘어가고 하면서 쌓이고 쌓인 울화통이 있는 거죠.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죽은 분들은 파업 때 마지막까지 싸웠던 사람들이 아닌 경우가 많아요.

김규항=싸운다는 건 이기고 지는 것과 무관하게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우뚝 세우는 체험이죠. 그 체험이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하구요. 죽은 분들도 많지만 해고 노동자들이 가족 관계나 삶 전반에 고통을 겪는 걸 많이 봅니다. 그걸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라고만 보긴 어려운데요.

이창근=경제적 어려움을 다들 겪지만 그 문제만은 아닙니다. 해고되고 나니까 가족 관계, 교육 문제를 비롯해서 모든 게 너무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민주노총에서 금속노조에서 교육도 참 많이 했는데 대체 살아가는 것과 관련해서 무슨 교육을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김규항=아이가 있지요?

이창근=일곱 살짜리 아들이 있습니다. 파업하고 감옥 갔다가 나왔는데 어느 날 경찰 놀이를 한다고 해요.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 녀석이 시위 진압하는 전경들처럼 낭심 가리개를 만들어서 차고 있더라구요. 의자나 물건들로 바리케이드를 쌓아놓고. 화를 잘 안내던 아이인데 자꾸만 화를 내고. 안되겠다 싶어서 놀이 치료하는 곳에 데려갔는데 한 달 동안 계속 고함만 지르더군요. 토해내는 거죠. 아찔했어요.

김규항=무심코 넘어갔다면 결국 나중에 더 병리적으로 드러났을 테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해고되고 개인적으로 달라진 건 뭔가요.

이창근=구속되었을 때 참 많은 사람들이 구속자들을 지지하고 후원하는구나, 세상이 이렇기도 하구나 새삼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싸우는 대상의 너머가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해고 노동자들이 또 집회도 많고 해서 많이 걷거든요. 그러면서 전보다 많은 생각도 하게 되고요. 이명박 정권을 넘어선 체제의 구조에 대한 고민도 늘고요. 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나와의 차이 같은 게 공장에 있을 땐 또렷했는데 나와서 같이 투쟁하다보니 많이 극복된 것 같아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완전히 없어지진 않는 것 같아요.

김규항=정규와 비정규. 자본이 만들어놓은 골인데 정리해고되고 싸우는 노동자조차 그 골이 사라지지 않으니 이게 얼마나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지 알 것 같습니다. 뒤집어보면 정리해고라는 공식적인 삶의 파괴 이전에 이미 노동자 일상과 문화가 파괴된 상태라는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쳇바퀴 돌 듯 일상을 보낼 땐 잘 모르지만 그 일상에서 떨어져나가는 순간 알게 되는.

이창근=대공장 정규직 노동자 생활이라는 게 그런 대로 안정적이잖아요. 그래서 멀쩡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더라는 거죠. 어떻게 웰빙을 즐길 건지가 아니라 내가 일하며 어떻게 살 건지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할 건지 이런 게 전혀 없더라는 거죠. 교육 문제만 해도 만약 우리가 공동체적인 활동을 하면서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는 교육을 고민하고 시도해왔다면 똑같이 맞아도 데미지가 달랐을 거예요.

김규항=노동운동이 뭐냐, 노동해방이 자본가처럼 잘 먹고 잘사는 거냐라는 질문이 사라졌어요. 우리가 구조적 가난과 싸우지만, 더 많이 소비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상품이 되어 경쟁하지 않아도 충만하게 살 수 있는 방식이 있다는 걸 잊어버리면 자본가처럼 살아야 한다는 목표밖엔 없게 되죠. 자본은 그런 욕망을 이용해 정규직을 체제내화하고 비정규를 배제하면서 손쉽게 노동자 계급을 지배하고요. 연이은 죽음이 사회적으로 알려질 만큼 알려졌지만 또렷한 해결의 실마리는 안보입니다.

이창근=쌍용차 문제가 연이은 죽음의 문제로 고착화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쌍용차는 부침의 역사거든요. 여기 팔리고 저기 팔리고 그러면서 2000년 초반 1만명이 넘던 노동자들이 이젠 4000명이니 잘려나간 6000명이 그 동안 쌍용차를 유지시킨 근거였던 셈이죠. 그런 과정에서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들이 오히려 주목받지 못했다는 후회가 있습니다.

김규항=파업 투쟁과 살인적인 진압이 이 문제의 시작은 아닌데요.

이창근=민주당이 이 문제의 책임당사자죠. 노무현 정권 때 쌍용차 매각을 진행했죠. 당시에도 먹튀 논란이 많았는데 강행했던 거잖아요. 이런 사실에 대한 민주당 쪽의 반성이나 기조 변화 같은 게 없어요. 정동영 의원이 현장에 와서 계속 뭘 하더라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그런 이유가 있죠. 당시 산자부 장관이라든지 당사자들이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매각 당시 세 개 은행에서 매각대금이 나왔는데 그게 진짜인지부터 시작해서 따지고 밝혀야 할 게 참 많거든요. 그런데 이걸 이명박 정권의 폭력진압에서 시작한 문제, 죽음의 문제, 안타깝고 불쌍한 문제로만 몰아가는 건 해결을 요원하게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김규항=저도 이런 소리가 지겨울 정도입니다만, 쌍용차뿐 아니라 근래 주요한 사회 문제들이 하나같이 노무현 정권이 벌이고 이명박 정권이 마무리하는 일들이죠. 며칠 전 한명숙 대표가 제주 구럼비에 가선 이명박 정권의 책임을 물으며 비난하더군요.

이창근=평택 대추리 때 마지막 날 저도 있었어요. 진압 작전 이름이 ‘여명의 황새울’ 작전이던가요. 그 때 군대가 투입되어서 우리를 밤새 두들겨 패서 끌고 갔죠. 그걸 강행한 국무총리가 한명숙씨였어요.

김규항=그런 그들이 멀쩡한 얼굴로 이명박 정권의 일인 양 욕할 수 있는 건 그들에게 또 속아주고 심지어 희망을 걸어주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겠지요.

이창근=민주당이 정말 해결의지가 있으면 몇몇 의원들이 다닐 문제가 아니라 당 차원으로 끌고가서 국정조사단을 만들었겠죠.

김규항=민주당이 사실 철저하게 반노동자적인 당이다보니 예외가 되는 의원, 현장을 자주 찾고 함께하는 의원은 상대적으로 미화가 되는데요. 좀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정치인은 개인적 선행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치적 활동을 하는 사람이죠. 정치인이 할 일은 개인 활동을 통해 다른 정치인이다, 좋은 정치인이다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자신이 속한 당에서 정치적 의제로 끌어올리기 위해 싸워야죠. 그러면 여론도 가만있진 않을 것이구요.

이창근=아쉽게도 거기까진 못가는 것 같아요. 쇼를 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당내에서 적극적인 전투를 했으면 좋겠어요.

김규항=쇼인가 아닌가, 사람의 내심은 알 수 없고 굳이 따질 필요도 없죠. 이건 연애가 아니라 정치니까. 정치인에게 정치인으로서 할 일을 하라고 요구하는 건 너무나 타당한 것입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의 상태가 안 좋아지는 시점에 맞물렸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창근=파업 당시에도 많이 느꼈는데요. 말은 총자본과 총노동의 싸움이라고 했지만 발은 움직이지 않는 걸 봐야 했죠. 김진숙씨 싸움과 희망버스도 마찬가지죠. 그렇게 밑에서 밀고 올라왔으면 민주노총이 더 조직하고 밀어붙여서 한진 문제를 해결하고 정리해고 문제를 사회적으로 확대할 수 있었거든요. 민주노총이 제 구실을 못하니까 결국 정치권에서 적당히 마무리해버렸죠.

김규항=우리 사회는 좌파 정치랄까 노동자 서민들의 삶을 대변하는 정치가 의회정치에 없다시피하다보니 의회 밖의 정치, 운동정치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어요. 민주노총은 그 중요한 결실이고 담지자이기도 하죠. 이석행 전 위원장이 민주당 비례대표로 나선 일로 시끄럽습니다.

이창근=예사로 볼 문제가 아니죠. 민주노총 지도부들이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자기고백을 한 것 아닌가, 포기를 공식화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 일에 대한 민주노총 논평이라는 게 딱 세 줄인가 그랬어요. 위원장 사퇴 이후 어떠한 직책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번 일 역시 개인적인 정치적 판단일 뿐 민주노총과는 무관하다, 끝. 어이없는 일이죠.

김규항=거액의 손배소가 걸려있잖아요. 쌍용차 사측에서 노조 간부와 대의원 140명을 상대로 50억원, 경찰이 파업 참가자 103명을 상대로 20억원, 메리츠화재에서 141명에게 110억원.

이창근=저도 그렇고 다들 출소하고 나서 한동안 그 문제에 진을 뺐어요. 집도 다 가압류 들어오고 이걸 어떡해야 하나 걱정들이 많았죠.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까 이건 못 갚는 거예요. 방법이 없어요. 에이, 잡아가든 말든 마음대로 해라. 그러니까 마음은 편해졌어요. 마음이 편해졌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우리로선 미루어놓은 큰 산이죠.

김규항=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손배소는 근래 어느 사업장에서나 애용되는 자본의 무기인데, 우리가 지키는 법이라는 게 얼마나 자본의 편인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이기도 하죠. 대화하다 보니 해고 후 노동자 문화 쪽에 관심이 많아진 것 같군요.

이창근=노동자들, 특히 대공장에서 컨베이어 타는 사람들의 문화라는 게 정말 앙상해요. 일하고 마치면 술 먹고 노래방 가고. 우리 이야기는 언론에서 안 다루어준다고 투덜대면서 신문도 잘 안 보고 책도 안 보고.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이런 상태론 위기가 닥치면 큰 일일 뿐 아니라 늘 해오던 싸움도 밀릴 수밖에 없어요.

김규항=80년대 활발했던 노동자문화 운동은 노동자들의 일상이 소비적 시민문화에 포섭되면서 지속적으로 쇠락하거나 협소한 시위문화로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죠. 근래 보면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고 있는 게 감지되기도 해요. 그러면서 옛 문화를 무작정 깔보는 우려스러운 경향도 종종 보이구요.

이창근=희망버스 때 다들 새로운 시위문화의 발랄함 유쾌함을 얘기하는데 기존의 시위문화에 대해선 아예 경멸을 하더라구요. 당황스러웠어요. 내가 생각하는 희망버스는 실사구시였어요. 해왔던 것을 조금씩 바꾸고 보태고 하면서 새로운 걸 만드는 거였거든요. 시위문화라는 게 무거울 땐 무거워야 하고 발랄할 땐 발랄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김규항=그런 진통들이 건강한 노동자 문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기도 해요. 국제적으로도 이른바 ‘신좌파’ 문화라는 게 구좌파의 문제들에 대한 부정에 집착하다보니 엉뚱하게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부응해버린 경향에 대한 비판들이 근래 있습니다. 발랄함이 무거움을 경멸하는 경향을 비판했지만, 여러 매체에 기고도 하고 늘 아이패드를 끼고 다니는 ‘신식 노동자’인데요.

이창근=시위 아이디어랄 것까진 없지만,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있긴 해요. 파란 잔디 위에서 5000명이 모여서 조용히 책을 읽는 거예요. 주제가 만일 삼성 비판이라면 삼성 문제와 관련한 모든 책과 자료들을 다 모아서 앰프나 확성기는 일절 쓰지 않고 조용히 그걸 읽는 거죠. 저놈들이 정말 아파하는 일을 함께 해보는 거죠.

김규항=수천 명의 초등학교 아이들이 모여 밤새 레이브파티를 하면서 한국 어른들을 불편하게 하는 광경을 생각한 적이 있는데 다른 듯하지만 비슷한 이야기군요. 발랄하게 그리고 무겁게, 조용하게 그리고 시끄럽게 함께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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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삶을 위해 싸우는 농성과 그들을 돕는 예술활동은 하나다

‘노동과 문화는 하나다’ ‘현장에서 배운다’는 말은 급진적 경향을 가진 문화활동가라면 누구나 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걸 실제로 체화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고 체화한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그것은 한 활동가의 문제를 넘어 문화이론가와 예술가 사이의 문제, 문화운동과 주류노동운동 사이의 문제와 중첩되어 있다. 신유아 역시 그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으로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런 문제를 해결한 한 사례가 되어가고 있다. 그는 말한다. ‘일단 현장으로 와보라.’

 



▲ 기타 만들지만 기타 칠 줄 모르던 콜트콜텍 노동자들
투쟁하며 밴드 만들고 공연도 하게 돼
싸움의 결론과 별개로 그들이 삶에 기쁨 갖게 되는 모습 보는 것이 좋았다

김규항 = 문화활동가로서 처음 맡았던 일이 뭐였나.

신유아 = 2005년에 문화연대에 들어가 선배 활동가들을 따라다니며 물건 나르고 음향 설치 돕고 보조 노릇을 하며 배웠다. 평택 대추리 투쟁 때 서울에서 매일 촛불문화제를 진행했는데 그게 내가 맡은 첫 번째 일이었다. 뮤지션들과 미술가들과 사회원로들을 섭외하고 조직하고 기획하고.

김규항 = 코스콤 투쟁 때 농성장을 바꾸는 작업을 했었는데.

신유아 =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연대 요청을 해와서 여의도 농성장에 갔더니 사람이 혐오감을 가질 만한 분위기였다. 성황당 같은 느낌에 노숙인들 느낌에. 여의도 한복판이 얼마나 ‘삐까번쩍한가’. 농성이란 게 사람들에게 내용을 알리고 소통하는 것이기도 한데 사람들이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농성장을 전시장으로 만들자, 사람들이 편하게 와서 그 내용을 볼 수 있도록 해보자 해서 미술가들을 섭외했다. 작가들만 작업한 게 아니라 조합원들이 함께했다. 앉아서 선전물만 나누어주던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기 공간을 만들어가니 너무 즐거워들 했다. 반응도 좋았다. 지나쳐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유심히 보고가기 시작했다. 그 경험을 통해 문화활동가로서 나름의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김규항 = 공공미술이라는 게 큰 빌딩 앞에 세워둔 수천 수억짜리 조형물만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이 소통하는 매개가 되는 것이라면 성공적인 공공미술 작업이었다. 용산 참사현장에선 1년을 꼬박 있었다.

신유아 = 아침 일찍 텔레비전을 켰는데 화면에 자막이 나왔다. 너무나 놀랐고 일단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날부터 출근을 현장으로 했다. 문화예술인들과 모여서 기자회견을 열고 뭘 할 것인가를 궁리했는데 공연 같은 건 적어도 몇 달 동안은 현장 정서상 하기가 어려웠다. 억울한 현장, 시커먼 현장, 눈물의 현장이었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이 일을 사회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 내가 가진 모든 네트워크를 총동원하는 건 물론 송경동 시인이나 이윤엽 작가의 네트워크까지 동원했다. 활동에서 의지도 열정도 좋지만 네트워크가 가장 중요하구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구나 깨닫게 되었다. 네트워크는 활동에 필수적일 뿐 아니라 또다른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그 자체가 활동이 된다. 

김규항 = 긴 시간 동안 많은 예술가들이 활발하게 결합했다. 비결이 있었는가.

신유아 = 전에는 대개 기획을 다 해놓고 예술가들을 부르는 방식이었다. 용산은 예술가들을 힘닿는 데까지 모아서 뭘할지를 함께 고민했다. 전에는 예술가들이 반농담으로 ‘내가 도구야’ 타박도 했는데 이젠 너나없이 ‘이건 인디뮤지션 누구를 하면 좋겠다, 여긴 미술가 누가 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함께 하니 활력이 생겼다. 

김규항 = 예술가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고 또 저마다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모으니 활력이 넘칠 수밖에. ‘쓰레기 예술가, 재활용 예술가’라는 별명도 용산에서 붙은 건가.

신유아 = 현장에서 쓰고 난 혹은 버려진 것들로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용산에선 집회 때 바닥에 깔개로 쓴 스티로폼들이 있었는데 그걸로 뭘 할까 고민하다 꽃 모양으로 파서 남일당 건물 펜스를 꾸몄다. 

김규항 = 용역들이 가만 있지 않았을 텐데. 

신유아 = 처음엔 와서 보고 가고 하더니 작업이 점점 커지니까 위협을 하기 시작했다. 용역들은 현장이 자기네 거라고 생각하니까 ‘왜 우리 물건에 손을 대는가’ 식으로 시비를 걸어왔다. 내 차를 펑크 내기도 하고 밤길 조심하라고 위협도 하고. 현장에 있을 땐 그나마 괜찮았지만 집에 다녀올 때는 많이 불안했다. 

김규항 = 그렇게 애써 만든 작업들이 결국 사라지는 게 아깝진 않나. 

신유아 = 공공의 것이 되고 예술 작품으로서 존중되었으니 소멸되어도 아깝진 않다. 

김규항 = 스무살 무렵에 다니던 교회 전도사가 수련회에 드럼을 가져오라고 해서 가져갔다가 교회에서 쫓겨날 뻔 한 적이 있다. 당시 밴드음악은 사탄의 음악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교회는 낙원상가 드럼가게의 고객이 되었다. 문화적 변화엔 진통이 있기 마련인데.

신유아 = 처음 활동할 무렵엔 현장에서 민중가요가 아닌 대중가요를 틀면 반감이 컸다. 그런데 만날 투쟁가요만 틀어놓으면 연대하고 싶어도 부담스러워 연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인디뮤지션들이다. 그런데 인디뮤지션들의 음악과 가사엔 투쟁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소망이 다 담겨있다. 두 문화가 서로 천천히 스며들면서 변화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김규항 = 시위 현장이라는 게 늘 평화로운 건 아니니 익숙지 않은 뮤지션들에겐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신유아 = 무대 위에서 공연 중일 때 경찰이 치고 들어오는 경우는 드물다. 사전에 제지하거나 마치고 치거나 하는데 광화문에서 한번은 한창 연주하는데 경찰이 무대로 난입했다. 그 밴드는 지금도 공포가 있다고 한다. 현장에 왔다가 분위기가 살벌하니 연주 5분 전에 포기하고 간 밴드도 있었다. 그런 경험들을 하면서 섭외할 때 현장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김규항 = 김진숙 농성 100일차 129일차에 예술가들이 85호 크레인 앞에서 작업을 한 건 희망버스의 교두보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3차 희망버스 행사에 참가한 성소수자들이 만든 퀼트 작품 (경향신문DB)



신유아 = 그게 희망버스의 교두보라는 생각을 하고 간 건 아니었다. 그런데 나중에 경찰 조사를 받는데 경찰이 그게 희망버스의 사전 조직작업이 아니었나 다그치는데 비로소 ‘아 그렇구나’ 생각이 들었다. 

김규항 = 그때 예술가들이 신명나게 작업하고 노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신유아 = 김진숙씨가 워낙 높은 데 있으니 밑에서 뭘 해도 잘 안 보였다. 플래카드 작업을 하고 내려다보이는 데서 놀고 오자였는데 조선소여서 철 폐품들이 굉장히 많았다. 용접 설비도 다 있어서 조각하는 작가가 그걸 끌어모아 밤새 ‘85’를 만들었다. 129일차 때는 영상 작가들과 가서 크레인에다 영상 쏘고 역시 밤새 놀았다. 

김규항 = 운동에서 문화적인 감성을 갖는다는 건 남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는 것이기도 하다.

신유아 = 집회든 행사든 말은 누구나 참여를 환영한다고 하지만 장애인 운동하는 분들이나 소수자운동하는 분들의 연대는 불편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장애나 소수자활동가들이 연대하기 불편한 점이 있다는 건 그들의 싸움에 대한 연대도 활발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노동운동 쪽에 그런 경향이 많아서 늘 현장에서 그걸 염두에 두고 고민하는 편이다. 

김규항 = 장애인운동 활동가들이나 소수자운동 활동가들처럼 잘 싸우는 사람들이 없고 그들처럼 신념이 또렷한 사람들이 없다. 워낙 열악한 상황이다보니 성찰적이기까지 해서 참 배울 게 많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며칠 전 콜트콜텍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데 ‘신나는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오래 결합해왔다. 

신유아 = 콜트콜텍은 알다시피 기타를 만드는 공장이다. 보통의 경우는 뮤지션들에게 연대를 요청할 때 뭐하는 공장인지부터 설명해야 하는데 이 경우엔 다들 선뜻선뜻 연대했다. 콜트콜텍을 안 써본 뮤지션이 없었다. 

김규항 = 노동자들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신유아 = 노동자들은 악기를 만들지만 공연하는 사람들을 접한 적은 없었다. 뮤지션들이 연대하고 함께 하니 그렇게 즐거워할 수가 없었다. 뮤지션들도 내가 사용한 악기가 이렇게 힘들게 일해서 만들어졌구나 되새기며 즐거워했다.

김규항 = 악기 만드는 공장이니 뭔가 다를 것 같지만 자본주의라는 게 그런 정체성과 노동의 정서적 연결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 체제 아닌가. 정작 기타를 만들 땐 몰랐다가 정리해고를 당하고 투쟁하면서 자신의 노동이 무얼 만들어내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으니 참 역설적이다.

신유아 = 기타를 만들지만 기타를 칠 줄 아는 노동자가 없었다. 그런데 투쟁을 하면서 밴드도 만들고 이젠 공연을 할 정도다. 싸움이 어떻게 귀결되는가와 별개로 그들의 삶에 작은 기쁨과 힘이 된 것 같아 참 좋다. 

김규항 = 늘 현장과 결합하니 지사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비장하게만 보일 수도 있는데 한편으론 어떤 예술가나 작가보다 즐겁고 행복하게 작업해온 것 같다. 

신유아 = ‘너무 힘들겠다’ ‘정말 고생한다’는 말을 늘 듣고 살고 또 그런 면도 없진 않지만 현장에서의 순간순간들은 너무나 신나고 재미있었다. 잘 아는 노동운동가가 자기들 운동의 내부나 상층조직과 사업을 벌일 땐 진행이 너무 더디고, 진행하다가 폐기되는 경우도 많은데 문화적인 연대 사업을 하면 진행도 빠르고 역동적이라는 이야기를 하더라. 장난스럽게 젠체하며 ‘노동과 문화는 사실 하나야’라고 말해주었다.

김규항 = 문화 예술인들도 결국은 문화노동자 혹은 예술노동자라는 걸 운동 진영에서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상업적인 예술가들, 주류사회의 유명한 예술가들의 천문학적 작품료는 당연시하면서 정작 진보적인 문화 예술인들에겐 다른 태도를 보이는 건 아쉬운 일이다.

신유아 =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 같은 큰 조직에서도 비용책정에서 가장 마지막에 배치하거나 책정 자체를 안하는 경우가 많다. 토론회 같은 걸 하면 사회자나 발제자에게 비용 책정이 되는데 공연에 참여한 사람에겐 ‘재능후원’이 강요되는 건 잘못된 일이다. 그렇다면 존중의 태도라도 가져야 하는데 공연 출연자에게 시간이 부족하다며 발언을 못하게 한다든가 하는 일도 흔하다. 사실 상업성을 지향하지 않는 문화 예술인들은 가장 어려운 상황의 노동자들보다 더 어려운, 말 그대로 굶으며 예술하는 사람들이다. 바뀌어야 한다.

김규항 = 희망버스 때 시위문화가 바뀌었다라는 평가들이 나왔고 여러 신선하고 의미있는 시도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평가가 기존의 시위문화는 무조건 낡고 폐기해야 할 것으로 비약하는 건 우려스러운 일이었다.

신유아 = 과거의 방식에만 익숙한 사람들은 그것만 고집하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방식을 폐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자체로 문화적이지 않다. 문화가 만나고 새로운 게 만들어지는 과정 또한 문화가 아닐까.

김규항 = 이른바 ‘진보적인 문화이론’이라는 게 유럽의 68혁명에 시원을 대고 있기도 하고 또 조금 짓궂게 말하자면 68 이후 유럽의 좌파들이 현실적 변혁이 어려워진 자신들의 처지를 문화이론의 현학성이나 난해함으로 드러내는 경향도 있고 해서 68같은 경험도 없고 이론적 배경도 없는 우리 사회에선 난해한 데가 있다. 

신유아 = 문화이론이 난해한 건 사실이다. 그나마 나는 제대로 학습을 하고 활동을 시작하지도 못했는데 거꾸로 현장에서 모든 걸 배웠다. 활동 속에서 그 난해한 이론들이 ‘아, 이런 이야기였나’ 되새겨지고 깨우쳐지는 경험을 종종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내가 정연한 이론을 가진 사람이기보다는 바보 같은 사람으로 보여지면 좋겠다. 그래야 원칙을 말하고 대의로 행동하는 데 불편이 없으니. 

김규항 = 치밀하고 신중하게 활동을 준비하는 것과 현장의 실천성을 조화시킨다는 건 언제나 어렵다. 

신유아 = 요즘 그런 고민을 한다. 깜냥에 그래도 경험이 쌓이고 이력이 붙었다고 몸을 움직이기 전에 고민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것이다. 예전엔 일단 느끼면 현장으로 뛰어들고 현장에서 고민하면서 실천했다. 이젠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 실천이 더디어진다.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활동에서 시간이라는 건 따로 만들어지는 게 아닌데 말이다. 스스로 반성하고 있다. 문화 예술계에서 활동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일단 현장에 와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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