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노동이 심한 직업인
공격당한다는 박해감에
분노와 고집이 몸에 배
종교 통해 영적 건강 회복을”


나와 함께 독서모임을 했던 그 후배 여성은 알고 보니 난독증 장애를 갖고 있었다. 책을 지참하고 모임에 참석해 자기 이야기도 하고 메모도 했지만 어쩐 일인지 변화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면 자기를 성찰하는 눈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말투나 태도에 변화가 따라온다. 그런데 그녀는 6개월이 지나도록 작은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타인에 대해 분노하는 말투나 자기 신념을 고집하는 완강한 태도가 그대로였다. 감정노동이 심한 직종에 근무 중이었는데, 모든 타인이 자기를 공격한다고 느끼는 박해감이 심했다. 그런 경우가 없었기에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책을 읽기는 하느냐고.

그녀는 어렵게 난독증 장애를 고백했다. 책을 소지하기만 할 뿐 읽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문장 서너 줄을 집중해서 읽을 수 없으며, 글자를 읽는다 해도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서른 살까지 읽은 책이란 어른을 위한 동화 종류의 책 두 권이 전부라고 했다.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도 이 모임에 참석하는 일이 도움이 되느냐고.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난독증을 숨긴 채 독서모임에 참석하다니, 그 절박함이 헤아려져 그녀에게 한 가지 당부를 했다. 이제부터 꼭 종교를 가지라고. 교회, 절, 성당 등을 방문해 보고 그중 마음이 끌리는 곳을 골라 종교 생활을 일상의 한 부분에 포함시키라고.

인간의 건강은 신체적, 정신적, 영적 건강 세 차원이 있다고 한다. 아무리 몸을 건강하게 해도 마음속 트라우마는 해결되지 않으며, 아무리 심리치료를 해도 강박적인 욕동 폭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프로이트는 내담자의 강박적·폭력적 충동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스려진 듯하다가 또다시 욕동 폭발에 휘말리는 내담자에 대해 <끝이 있는 분석과 끝이 없는 분석>에 이렇게 쓰고 있다. “결국 마녀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마녀 메타 심리학(Hexa Metapsychologie)을 말한다. 메타 심리학적으로 생각하고 이론화하지 않으면 거기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마녀의 정보는 분명하지도 명확하지도 않다.”

과학적 합리주의를 지향하는 프로이트는 무신론자였다. 프로이트의 저 기술 이후 다음 세대 학자들은 자기 학문에 적극적으로 종교를 통합한다. 정신분석학자 크리스토퍼 볼라스는 ‘변형적 대상관계’라는 용어를 제안한다. 인간은 특정 대상과의 관계 경험 속에서 정신에 변형이 일어난다. 유아기에는 그 대상이 엄마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연인, 예술품, 과학, 성스러운 대상 등에 의해 정신에 변화를 맞는다. 후대 학자 제임스 존스는 볼라스의 연구를 원용하여 “개인이 종교적 환경에서 성스러운 것과 변형적 대상관계를 경험할 때 성품에 변화가 일어난다”고 제안한다.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캇의 ‘중간 대상’은 부모로부터 독립한 개인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도중에 동일시하는 대상을 뜻한다. 후대 학자 마이스너는 특별히 종교가 가진 중간 대상, 중간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연구했다. 그는 종교를 개인의 성장 변화에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제안한다.


실존주의 심리학자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지점은 영적 건강 영역이다. 그들은 “영적 건강은 인간 본질의 한 부분이며, 인간을 규정하는 특성 가운데 하나이고, 그것 없는 인간 본성은 충분히 인간다울 수 없다”고 정의한다. 빅터 프랭클은 ‘로고 테라피’라는 치유법을 소개한다. 로고스와 테라피의 합성어로 신에 의한 치료, 영적 치유라는 의미이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중년기 이후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종교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 융도 말했다. “종교가 제 역할을 수행했다면 정신분석학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독서모임을 시작할 때 구성원들에게 종교를 가질 것을 권한다. 아무리 자기를 성찰하고 변화를 위해 노력해도 혼자 힘으로는 안되는 영적 건강 영역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종교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종교를 심약한 사람의 의존증쯤으로 치부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존성을 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종교의 비과학성을 비판하는 사람은 내면의 비합리적 요소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절대자를 향해 몸을 엎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나르시시즘을 넘어서지 못한 사람이다. 종교 공간이나 종교 상징물에 대해 생생한 두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내면의 불안이나 분노를 그쪽으로 투사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다만 이렇게 말한다. “그 본질에서 뼛속까지 이기적인 인간이 수천 년 동안 유지해온 관습이라면 틀림없이 그만한 유익함이 있지 않을까?”

간혹 반문하는 이들도 있다. “종교적 수행으로 성품의 변화와 심리적 성장이 가능하다면 굳이 정신분석적 심리치료는 불필요하지 않은가.” 그에 대해 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것은 알코올 중독에서 중독은 치료하지 않은 채 술만 끊는 것과 같다.” 강박 충동에 대한 직면, 불안을 관리할 수 있는 역량 등은 심리치료 영역에서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조계종 종정 진제 대종사가 11일 부산시 해운대구 해운정사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스님은 오는 15일부터 사흘간 서울에서 열리는 '광복 70주년,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한 기원대회' 등에 대해 설명했다. _ 연합뉴스


난독증인 후배는 원불교 교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여러 종교 시설을 방문했는데 그 공간이 가장 마음 편하더라고 했다. 6개월쯤 후 그녀의 삶에도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감정노동 심한 직장에 사표 내고, 심하게 통제하는 부모 집을 나와 독립했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구직 노력을 하면서도 불안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말투나 태도가 온화해지고 표정과 옷차림이 밝아졌다. 6개월쯤 후, 어떤 인연이 작용했는지 원불교 교당에 일자리를 갖게 되었다. 다시 6개월쯤 후, 난독증이었던 그녀는 처음으로 심리학 책 한 권을 독파해냈다.

독후감은 이랬다. “책으로 온몸을 두드려 맞는 것 같았다.” 아픈 자기성찰이 따르는 독서였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모든 변화가 1년 반 사이에 일어났지만 그녀의 영적 건강 영역에서 어떤 작용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오늘은 부처님오신날, 이런 글을 쓰게 되어 뜻깊다. 이 글로써 이 지면을 마무리하게 된 점도 감사하다. 그동안 귀한 지면을 내어주신 매체와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미욱했던 점들을 너른 아량으로 용서해주실 것도 당부드린다.


김형경 |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서구에 의해 갑자기 강요당한 개국
외적 굴종과 내적 분노로 정신분열
조선을 지배하고 무모한 전쟁 도발
패전 기억 지우기 위해 경제에 매진”


미국 순방길에 오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뉴스가 보도될 때마다 그의 얼굴을 유심히 보게 됐다. 얼굴 표정을 통해 그가 느끼는 감정을 유추해볼 수 있을까 기대했다. 대중 앞에서 연설할 때, 곤란한 질문에 답할 때, 만찬에서 흥겨움을 표현할 때 그의 표정은 평소보다 풍부해 보였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할 때는 그런 표정을 짓기 위해, 만찬회장에서는 즐거움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주관적 오류가 포함된 개인적 생각이다.

나는 아베 총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까지 자신들의 전쟁 도발이 옳고 정당한 행위였다고 믿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주변 국가를 침략·약탈한 행위를 국가적 영광의 역사였다고 여기지도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도 내면에서는 전쟁범죄에 대해 수치심과 참회의 감정을 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나라 수장으로서, 전쟁을 수행한 조상의 손자로서 그런 감정을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쟁범죄를 인정하는 순간 일본 근대사 100년이 부정되고, 국가 정체성이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면에서는 잘못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외부를 향해서는 “옳고 선하고 정당하다”는 태도를 취해야 하는 아베 입장도 고역스럽지 않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역시 오류가 포함된 개인적 생각이다.

일본 정신분석학자 기시다 슈의 글을 읽어보면 그는 갈등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확신범 쪽에 가까워 보인다. 기시다 슈는 도쿠가와 막부시대(1840~1868년) 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 국민을 정신분석한 글을 발표했다. 그는 일본 국민이 정신분열증이라는 결론을 제시한 다음 글을 풀어간다.

“일본 국민의 정신분열적 기질을 만든 것은 1853년 페리 내항사건이다. 쇄국 상태에 있던 도쿠가와 막부시대는 외부 세계를 알지 못하는 나르시시즘의 시기에 속한다. 유사 이래 한 번도 외국의 침략이나 지배를 받은 적 없는, 응석받이 어린아이였다. (중략) 그때 별안간 닥쳐온 것이 페리가 이끄는 동인도 함대였다. 당시 일본은 성숙한 대상관계를 맺을 만큼 정신적으로 성숙해 있지 않았다. 페리를 쫓아 보낼 힘도 없었다. 일본은 억지로 개국이 강요됐다. 시바 료타로는 어느 글에서 ‘일본은 미국에게 강간당했다’고 말했는데 정말이지 일본은 억지로 가랑이를 벌리도록(항구를 열도록) 강요된 것이었다.”


저자는 페리 쇼크가 일본 국민의 정신분열증 원인이 된 트라우마였다고 분석한다. 침략자를 맞은 일본은 마음을 두 가지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 외부 지배자에게 복종하고 적응하는 외적 자기와, 본래의 감정을 억압하는 내적 자기로 마음을 나누었다. 외적 자기는 살아남기 위한 행동들에서 감정을 제거해야 했고, 내적 자기는 생생하게 느껴지는 불안·분노의 감정을 억압해야 했다. 그렇게 일본은 살아있다는 감각을 잃으며 동시에 자기 정체성도 잃어갔다. 대신 존왕사상(尊王思想)이라는 심리적 성채를 등장시켜 안전을 보장받는 의존 대상으로 삼았다. 순수 무결하며, 신성불가침이고, 오직 헌신을 바치는 대상으로서의 천황 이미지는 일본 국민의 이상화된 자기 이미지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회피되고 억압된 것은 반드시 당사자에게 되돌아온다.

“유럽과 미국 등 여러 나라에 굴종적인 외적 자기는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것은 일본인들의 내적 자기와 자존심에 박힌 가시였다. 굴종을 강요받은 외적 자기는 그것과 관련되어 되돌아오는 감정을 외부로 투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 대상으로 선택된 불운한 나라가 조선이었다. 정한론(征韓論)의 심리적 배경이 그것이었다.”

일본은 조선에 열등한 내적 자기를 투사하면서 한편으로는 공격자인 미국·유럽인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조선인들을 지배하고 열등한 종족으로 치부하면서 상대적 우월감을 누렸다. 그렇게 분열 증상을 심화시켜 가던 일본이 기어이 정신분열병을 발병시킨 것이 미국과 영국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억압되어 있던 100년의 증오가 정신병으로 폭발한 전쟁이었다. 현실적으로는 승리할 가능성이 전혀 없지만 당사자는 패배를 믿지 않는 전쟁이었다. 타인에게는 기이해 보이지만 당사자는 분명한 확신을 갖는 것이 정신병자의 행동 특성이다.

“전쟁에 패했을 때 일본인은 하룻밤 사이에 온순하고 선량한 평화주의자로 돌변했다. 어제까지 목숨을 버리며 돌진하던 일본인들이 오늘은 미소를 띠며 점령군 병사들을 환영했다. 게다가 점령군이 요구하기도 전에 위안부를 조직하여 제공했다.” 기시다 슈는 그것을 정신분열증 환자 특유의 태도 전환이라고 설명한다. 전후 일본의 대미 외교는 다시 굴종과 추종 일변도가 되었다. 일본은 미국의 뜻에 대립되는 외교 방침을 가질 수 없었다. 전후 일본이 경제성장에 매진한 것은 “무력으로 실패한 것을 경제적으로 이루어내려는 광범위하고 암묵적인 합의”의 결과였다고 한다.

기시다 슈의 책 <게으름뱅이 정신분석> 중 ‘정신분열증으로서의 근대 일본’라는 글의 내용이다. 저자는 1975년 한 해 동안 일본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을 모아 이 책을 묶었다고 한다. 일본은 전후 독일로부터 정신분석을 수입했고 이후 꾸준히 학문을 발전시켜 다양한 심리치료 기법을 개발해 왔다. 개인적으로는 1970년대 중반에 이미 그처럼 도저한 자기 성찰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감탄스러웠다.

분열은 약자가 사용하는 생존법이다. 우리 세대 남편들은 어느 날 아내가 “이혼하자”고 하면 뒤통수를 맞은 듯 당황하곤 했다. 온순한 아내가 실은 마음을 두 가지로 나누는 분열의 생존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내들은 남편의 요구와 지시를 말없이 수용하는 동안 반대 감정인 불만과 분노들을 내면에 꾹꾹 눌러두고 있을 뿐이다. 남편의 일방적 판단과 통제를 죽을 힘을 다해 참다가 결국 폭발시킬 때 그것은 병증이 되거나 이혼 통보가 된다.

국가 차원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나라도 집단 무의식 차원에서 마음을 두 가지로 나누는 생존법을 사용해왔다. 친미적 태도와 반미 감정이 뒤섞여 있고, 반일 감정과 일본 문화에 대한 추종이 함께 존재한다. 특히 일본은 우리가 정당하게 분노를 쏟아낼 수 있는 대상이었다. 그들이 우리에게 한 것을 우리도 그들에게 똑같이 돌려주는 셈이다.


김형경 |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세월호 1년, 달라진 것은 뭔가
‘저항’ 이겨내고 인양 결정한 지금
우리의 실체와 마주할 고통 예고
오는 1년, 지난 1년보다 힘들 수도”


꿈 이야기 하나. 그는 바다와 육지의 경계라고 할 만한 곳을 따라 해변을 걷고 있었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발이 젖었지만 피하지 않은 채 앞서 걷는 이와 보폭을 맞추며 걸었다. 앞서 걷는 이는 그의 정신분석가였다. 뒷짐을 진 채 걷는 분석가 앞쪽으로 사라센의 칼날처럼 빛나는 해변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분석가처럼 뒷짐을 진 채 햇살 부서지는 해변을 먼 곳까지 바라보았다.

정신분석을 받는 이가 분석 석 달 만에 꾼 꿈의 사례이다. 정신분석에서 무의식은 자주 바다에 비유된다. ‘무의식의 깊은 바다’라는 비유처럼, 꿈 분석에서도 바다는 전형적으로 무의식이 표출되는 형태로 풀이한다. 분석 석 달 만에 꾼 저 꿈은 당사자가 분석 작업에서 첫 번째 저항을 넘어섰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누군가 마음을 치료해야겠다고 결심할 때는 대체로 큰 사건을 경험한 직후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파경, 자녀의 비행 등을 마주할 때 혼자 처리할 수 없는 심리적 어려움을 느낀다. 대형 사건 앞에서는 우리가 평생 회피하고 억압해온 모든 감정적 문제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치료 현장에 들어선 이들은 문제를 개선하고 싶어하는 만큼 간절하게, 온 힘을 다해 저항한다. 정신분석학에서 ‘저항’은 “무의식을 뚫고 들어가려는 분석가의 시도에 대한 환자의 방해”라는 뜻이다.

1년 전 우리는 눈앞에서 배가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 안에 있던 아이들을 산 채로 바다에 묻었다. 그것은 피해 가족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치료하지 않으면 안되는 트라우마였다. 당시 우리는 사고 원인을 낱낱이 규명할 뿐만 아니라 이 일을 계기로 우리나라를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로 변화시키자고 다짐했다.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 부정부패와 비리의 몸통을 근본적으로 들어내기로 결심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아무것도 변화한 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것은 ‘저항의 문제’로 보인다. 한 개인이 자발적으로 정신분석을 받을 때조차 저항은 다양한 방식으로 찾아온다. 어떤 이는 분석가를 믿을 수 없다고 여기면서 자기 이야기를 조금도 털어놓지 못한 채 작업을 중단한다. 분석가에게 자기를 표현할 수는 있어도 분석가가 주는 공감과 지지를 믿지 못해 좋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도 있다. 나르시시즘적 자기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서슴없이 분석가를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이들도 있다.

분석가에게 저항하면서 당사자들이 지키려고 하는 것은 그동안 자신이라고 믿었던 실체, 그만하면 잘 운용해 왔다고 믿는 삶의 방식들이다. 그것을 해체 해야만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놓치면 죽을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앞서 소개한 꿈이 특별한 이유는 비로소 저항을 넘어섰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분석가를 믿고 따를 수 있으며, 무의식이 파도처럼 발을 적셔도 도망치지 않으며, 그 길이 멀더라도 담담하게 수용할 마음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그 사고와 관련된 다양한 저항의 경험을 지나왔다. 적극적으로 비리를 뿌리 뽑겠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실천적 움직임이 없었다. 지연과 회피 행동도 저항의 일부이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잘해왔는지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 저항은 열심히, 잘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가에게 어필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는 대의에 밀려 부정부패 문제는 잠시 덮어두기도 했다. 무의식을 마주 보는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다른 일을 핑계대는 행위는 저항의 흔한 방식이다. 침몰한 배를 인양하는 문제로도 이견이 많았다. 돈이 많이 든다, 또 다른 희생자가 생길 것이다 등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것은 정신분석을 받는 이가 저항 단계에서 하는 말과 똑같이 들렸다.

저항은 당사자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다. 무의식에 억압해둔 괴물 같은 감정과 마주하기 위해 마음을 준비하는 기간, 조금씩 무의식의 파도에 발을 적시며 마음을 다지는 시간이다. 그동안 부여잡고 있던 자기 이미지와 낡은 생존법을 포기해도 죽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는 시간이다.

그런 시간들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는 그 배를 인양하기로 결정할 수 있었다. 집단 무의식의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침몰선 주변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 요소들과 직면할 용기를 내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정신분석을 받는 이들이 자주 꾸는 꿈이 또 한 가지 있다. 높은 곳에서 몸을 던져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종류의 꿈이다. 산소 호흡기 없이 바닷속 깊숙이 헤엄쳐 들어가는 꿈, 발을 삐끗하며 넘어졌는데 하염없이 바닷속으로 빨려드는 꿈 등이다. 이런 꿈들은 저항을 이겨내고 적극적으로 무의식의 바다를 탐험하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때부터 피면담자는 분석가의 통찰을 수용하면서 적극적으로 내면을 탐사해나간다. 또한 이 지점부터 본격적인 고통과 갈등의 시간이 시작된다. 외면해온 자신의 부정적 실체를 인정하는 고통, 낯선 감정들이 나타나 내면에서 들끓는 혼돈의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정신분석과 심리치료는 유년기의 미숙한 상태에서 만들어 가진 생존법에 상호의존성, 신경증, 강박적 요소가 배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개선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세상을 보는 관점, 개별적 생존법이 변화되어 나간다. 궁극적으로 세계관과 비전, 생존방식 등이 성숙하고 건강한 형태로 변화되는 작업이다.

저항을 이겨내고 침몰선을 인양하기로 결정한 지금 우리는 집단 무의식의 한 꺼풀을 들춰내는 경험을 하고 있다. 서로 묵인하며 사용해온 상호의존적 생존법이 사회 문제가 되어 드러난 현장과 마주하고 있다. 누구의 잘못이냐를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우리의 잘못된 생존법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만약 이 지점에서 계속 나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신경증적이거나 강박 성향의 생존법에서 비롯된 많은 문제들과 맞닥뜨릴 것이다. 인정하기 어려운 우리의 실체를 꺼내 마주 보는 고통의 시간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그때마다 도망치고 싶은 저항을 만날 것이고, 저항을 이겨내는 용기를 내어야 할 것이다. 예상컨대 오는 1년은 지난 1년보다 훨씬 힘든 시간이 될 것이다.


김형경 |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시기심은 분노보다 냉혹한 감정
누구든 ‘신데렐라의 언니’ 될 수 있어
불필요한 감정을 퍼올리지 않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결국 승자”


도올 김용옥 선생님은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매일 일정 분량의 성경 구절을 외우는 숙제를 받았다고 한다. 소년 김용옥은 어느 날 성경 구절 하나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진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라는 구절이었다. 어린 철학자는 온 지혜를 동원해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뜻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원로 철학자가 된 선생님이 기독교 유적을 찾아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쓴 책에 묘사되어 있는 유년의 기록이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뜻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소년을 상상하면서 슬그머니 웃었던 기억이 있다.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장기에 내 뒤통수에 매달려 있었던 구절은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고…”였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그렇듯 상장을 자랑하고, 진기한 학용품을 자랑하고, 저마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재능을 자랑하도록 독려받았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고”라는 구절이 떠오르면서 뒤통수가 땅겼다.

자랑하지 않는 것과 사랑하는 것 사이의 관계를 이해한 것은 인간 심리를 공부한 이후였다. 한 사람이 내보이는 자랑질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 결핍감을 선사하고, 결핍감은 즉각 그들 내면에 억압되어 있는 시기심을 촉발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랑, 박탈감, 시기심, 분노, 공격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이 얼마나 빈틈없이 작동하는지 일상에서 목격할 때마다 놀라웠다. 신데렐라를 구박하는 이복 언니들만 나쁘다고 할 수가 없었다. 아름다움과 선함, 행운을 독차지한 이를 만나면 누구나 신데렐라의 언니가 될 만했다. 자본주의 시장은 자랑하기와 시기하기를 마케팅 전략으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프로이트는 ‘페니스 엔비’라는 용어를 제안하며 시기심이 여자들이 남자의 특정 신체 부위에 대해 느끼는 결핍의 감정인 것으로 설명한다. 프로이트 다음 세대 학자인 멜라니 클라인은 시기심이 출생 직후 엄마의 젖가슴을 상대로 촉발되는 감정이라고 제안한다. 엄마가 좋은 것을 불룩하게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아기에게 조금씩 제한적으로 준다고 느끼는 감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근원이 어디에 있든 시기심은 분노보다 냉혹한 감정이다. 분노는 사랑이 먼저 있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사랑 대상을 향해 촉발되는 감정이다. 시기심은 특별한 이유나 특정 대상 없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발산된다. 시기심이 파괴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에게 가장 나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즐겨 시청했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다. 경쟁을 통해 한 명의 모델이나 디자이너를 선발하는 외국 프로그램이었다. 예심을 통과한 열 명 남짓의 후보자들이 동일한 조건에서 재능을 선보이면서 한 명씩 탈락하고 마지막으로 최종 우승자 한 명이 선발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그 프로그램을 즐길 때 나의 관전 포인트는 그들이 펼쳐 보이는 재능이 아니었다. 동일한 시공간에서 서로 경쟁하게 된 낯선 이들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생존법, 경쟁 전략 등이었다.

그 프로그램을 시청한 결과에 따르자면, 탄복할 만한 재능을 가진 이가 언제나 우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이들은 경쟁 초기에 두각을 나타내다 어느 순간 무너지기 십상이었다. 쉽게 타인들의 시기심의 표적이 되어 따돌림당하거나 이유 없는 분노를 뒤집어쓰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이 흔들리면 다음 경쟁에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무너졌다.

물론 시기심을 표출하거나 모함과 공격을 경쟁 전략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오래 살아남지는 못했다. 그런 사람은 재능을 발휘하는 데 사용하는 에너지보다 타인을 시기하고 공격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재능을 낭비했다. 본래의 목적보다는 남들에게 잘 보이면서 좋은 관계를 맺는 데 많은 신경을 쓰는 이도 있고, 모든 타인을 말벌떼처럼 여기면서 양보나 배려 없는 경쟁에 몰입하는 이도 있었다.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을 주요 생존법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타인의 평가라는 틀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기도 했다. 제한된 공간에서 집약적으로 보이는 경쟁 전략은 우리가 현실의 삶에서 날마다 사용하는 생존법 바로 그것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치열한 경쟁의 장에서 최종 우승자는 대체로 경쟁하지 않는 사람, 자랑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쓰지 않고, 타인들의 갈등에 휩싸이지 않은 채 고요한 내면 상태를 유지하려 애쓰는 듯 보였다. 불필요한 감정 에너지를 퍼올리지 않는 그들이야말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마음으로 다양한 심리 전략을 사용하는 이들이 빠르게 정신 에너지를 소진해가는 동안 그들은 고요하게 비어 있는 마음에 새로운 경험을 쌓아갔다. 그런 이들은 경쟁 과정에서도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고, 최종 우승자가 된 후에도 자신의 부족함을 말했다.

멜라니 클라인은 시기하는 사람의 심리적 해법으로, “자기가 가진 좋은 점들 알아차리기, 그 좋은 것들에 대해 감사하기, 시기하는 대상으로부터 배우기” 등을 제안한다. 시기당하는 사람이 가진 아름다움과 덕목들은 그 사람이 인내와 노력으로 얻은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시기당하는 사람을 위한 해법도 있다. “외부의 시기심과 공격에 맞닥뜨리더라도 자신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을 것.”

“내가 홍길동이다!”라며 자신을 과시하는 문화, “남보란 듯이 살아주겠다”며 벼르는 문화에 젖어 있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고”라는 구절을 이해하기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의 미욱함이 더 큰 잘못이다. 그럼에도 권력형 ‘갑질’이나 과시적 소비를 성찰하면서 조금씩 부끄러워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고마운 변화로 보인다. 인간사 길흉화복 변화를 64괘의 상징으로 풀이한 <주역>은 “오직 겸괘(謙卦)만이 모든 좋은 것을 가진다”고 기록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김용옥 선생님의 이집트 여행기는 <큐 복음서>이다. 지금 수중에 없어 정확한 내용을 인용할 수 없지만 선생님의 글을 내 방식대로 이해한 바에 따르면 ‘마음이 가난하다’는 상태를 불교의 아공(我空)이나, 도교의 무위(無爲)와 같은 맥락으로 설명하신 것으로 기억된다.

그것은 또한 “모든 좋은 것을 가진다”는 주역 겸괘와 같은 자리의 일이 아닐까 싶다.


김형경 |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아이들 밥 주는 문제로 갈등을 빚고
청년 시급을 두고 장난치는 어른들
사회적 양육자들이 내뿜는 독소
아이들의 정신과 삶을 멍들게 한다”


부모의 양육 방식이 자녀의 심리적 삶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정신분석학의 틀이 만들어지던 초기부터 밝혀진 일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 정신분석학자 안나 프로이트, 도널드 위니콧 등은 전쟁을 경험한 아이들의 특별한 심리를 알아차리기 시작했고,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그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를 연구했다. 부모나 대체 양육자의 정서적 돌봄이 아이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이론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현실 검증을 거쳤다. 전쟁고아를 수용하는 시설에서 아기들에게 규칙적으로 우유를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었지만 아기들은 이유 없이 죽어갔다. 1년이 지나자 80%의 아기가 사망했다. 그 시기에 반대 사례도 있었다. 병원에서 포기한 병든 아기를 수용시설 양육자 할머니가 살려낸 일이었다. 그녀는 아픈 아기를 늘 품에 안거나 등에 업고 생활하면서 잠시도 몸에서 떨어뜨리지 않았다. 양육자의 정서적 온기가 아이의 정신뿐 아니라 육체적 삶까지 좌우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다.

정신분석학이 부모의 양육이 자녀의 정신 형성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밝혀나가는 동안 부모가 반드시 좋은 역할만 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동시에 밝혀졌다. 부모가 항상 옳다는 전제군주적 양육 방식이 잘못되었으며, 부모의 잘못된 양육에 해악을 입은 자녀가 성인이 된 후의 삶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알고 있었던 그 지식이 대중들의 보편적 상식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그 일의 맨 앞에 윌프레드 비온의 유엔 연설이 있다. 1960년대 중반 유엔에서는 영국 정신분석학자 윌프레드 비온을 초청하여 부모의 양육 방식이 자녀의 삶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때 비온이 한 말은 정신분석학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선언으로 기록된다.

“이 세상에는 실제로 나쁜 부모가 존재합니다.”

부모 중심으로 편성된 세상에서 아이를 지배, 판단, 통제하는 입장에 있던 부모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었을 것이다. 저 문장은 21세기 우리나라 부모들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이따금 부모의 잘못된 양육 방식을 일깨우는 내용의 공익광고를 만나는 때가 있다. “아동폭력 가해자의 80%는 부모입니다”라거나 “엄마는 나를 사랑합니다, 내가 말을 잘 들을 때만”. 그런 카피와 함께 슬퍼하는 아이의 영상이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곤 했다. 그때마다 혼자 놀라는 마음이 되었다. 카피는 참인 명제이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상식이지만 대중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염려하는 마음이 일었다. “내가 옳고 선하고 정당하다”는 나르시시즘적 자기 인식조차 깨지 못한 문화인데 저렇게 크고 강한 것을 내밀면 이제 한 발 내딛기 시작한 자기 성찰 분위기가 역풍을 맞은 듯 움츠러들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광고는 한두 번 비치다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고, 그때마다 혼자 또 그 배경을 궁금해했다.


미국 심리학자 수잔 포워드는 1980년대 말에 <유독한 부모들(Toxic Parents)>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부모의 나쁜 양육방식에 의해 양육된 결과 성인이 된 후의 삶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치료한 임상 경험을 토대로 저술한 책이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자녀에게 독이 되는 부모를 몇 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한다. 전지전능한 입장에서 아이들을 심판하고 벌주는 부모, 기본적인 양육 의무를 방기하는 부모, 매사에 아이를 조종하고 통제하는 부모, 알코올 중독자인 부모, 잔인한 말로 상처주는 부모, 물리적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 저자는 유독한 부모에 의해 고통받는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저 책이 미국에서 널리 읽힌 결과 국내에 번역 출판된 시기는 1990년대 말이었다.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부모가 나쁠 수도 있고, 부모의 양육이 자녀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당시에는 정신분석이라는 학문 분야에 대해 보편적이고 바른 인식조차 정립되지 않았다. 출판사에서는 국내 상황을 감안한 탓인지 <유독한 부모>라는 제목 대신 <흔들리는 부모들>이라는 제목을 달아 책을 소개했다. 그 책은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가 되어 10년이 지난 후 새로운 표지로 재출간되었다. 그때는 우리 사회 분위기도 조금 달라져 비로소 <독이 되는 부모>라는 제목을 사용할 수 있었다. 책 제목 하나만 두고 보아도 우리가 얼마나 천천히, 그리고 어렵게 스스로를 성찰해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미국 정신분석학자 마이클 아이건은 <독이 든 양분(Toxic Nourishment)>의 결론 대목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에게 양분을 주며 살아간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창조 활동을 하고, 도시와 문화를 건설하고, 그 모든 노력들에 애정과 양분을 준다. 양분을 주는 우리의 노력이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독소를 포함하고 있고, 우리 자신도 다양한 독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직면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종의 도전이다.”

저 책은 대놓고 나쁜 부모 이야기가 아니라, 상식적인 부모의 사랑 속에 은밀하게 내포된 독성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다. 1999년 미국에서 출간되었는데 당시 미국에서도 양육 속에 독이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도전처럼 어려웠음을 짐작하게 된다. 저 책 역시 출간 10년 만에 국내에 소개되었다. 지금이야 그 분야 전공자들이 읽겠지만 머잖아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가 되면 다시 10년쯤 후, 우리도 양육에 독이 포함되어 있음을 직면하는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소박한 기대를 품어본다.

아이들에게 밥 주는 문제, 젊은이들의 최저임금을 두고 갈등하는 어른들을 보고 있으면 ‘독이 든 양분, 독이 되는 부모’가 선연하게 이해된다. 그들도 틀림없이 독이 든 양분을 먹고 자랐을 거라는 사실도 짐작하게 된다. 부부싸움의 도구나 구실로 사용되는 아이들의 무의식에는 피할 수 없는 죄의식과 부적절한 존재감이 자리 잡는다고 한다. 자녀 양육을 두고 “누구 탓인가?”를 시비하는 부모를 보는 정신분석가들은 알고 있다. 처음부터 그런 질문은 잘못된 것임을.


김형경 |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지도층은 비리로 제 몫만 챙기고
약자를 옭아맨 수단이었던 도덕…
부패방지 등 상위욕구 분출하는 요즘
도덕, 사회와 개인에게 여전히 유효”


해질녘 주택가를 산책하다 목격한 장면이다. 한 어머니가 의자에 앉아 아들의 줄넘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몸무게가 많아 보이는 아들은 연속 세 번을 넘지 못한 채 발목에 줄이 걸렸고, 줄을 풀어내는 동안에도 거친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사이를 못 참고 의자에 앉은 엄마가 소리쳤다. “어서 안 해? 아직 스무 개도 못 채웠어!”

또 다른 장면도 있다. 보도 턱에 걸터앉은 아버지가 아들의 테니스 연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테니스 공 끝에는 줄이 매달려 있고, 그 줄은 큼직한 돌덩이에 눌려 있었다. 아이는 공을 허공으로 던진 후 라켓을 휘둘렀다. 줄에 묶인 공은 저만큼 날아가 바닥에 튕겨진 후 아이에게로 돌아왔다. 공을 되받아치는 아이는 돌덩이나 땅바닥을 상대로 테니스를 치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 그동안 보도 턱에 걸터앉은 아버지는 “옳지, 잘한다!” 소리치며 과도한 칭찬을 쏟아냈다.

아마도 저 부모들은 자녀가 동일시를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엄마가 먼저 줄넘기를 하고, 아빠가 함께 테니스를 칠 때에만 아이는 그것을 배우며 성장한다. 저런 상태에서는 운동이 되기는커녕 야단맞는다는 박해감, 통제당한다는 불안감만 커질 뿐이다. 나는 가끔 우리나라에서 국민으로 사는 일이 저 아이들 입장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지키지 않는 법과 도덕을 국민에게 강요하면서 갖가지 상벌제도를 만들어둔 것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는 ‘초자아’ 개념이 있다. 본능과 파괴 충동을 향해 이끌려가기 쉬운 자아를 견제하는 정신작용이다. 초자아의 작용 덕분에 개인의 내면에는 양심의 목소리가 생기고, 도덕이나 윤리에 대한 개념을 갖게 된다. 프로이트는 유아기에 주입되는 부모의 금지 목소리가 내면화되어 초자아가 형성된다고 보았다. 프로이트 다음 세대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은 ‘상징계’라는 용어를 제안한다. 언어, 관습, 제도 등 사회에 통용되는 상징들을 내면에 받아들여 그 사회에 적합한 사람이 되는 과정을 성장의 중요한 측면으로 보았다. 초자아나 상징계는 한 개인의 도덕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정신 기능이다.

나는 자주 “도덕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하는 의문과 맞닥뜨렸다. 우리 사회는 돈이나 힘이 있으면 무엇이든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상대를 향해 강펀치를 날리면서 “이것이 법이다!”라고 외치거나, 부정으로든 비리로든 제 몫만 챙기면 그만인 사회 분위기였다. 그 속에서 바르고 정직하다는 것은 무능력과 동의어처럼 보였다. 도덕이나 윤리는 우매한 국민을 통제하는 수단이거나 도달할 수 없는 이상에 불과한 듯했다.


실존주의 심리학은 프로이트의 병리적 정신분석학에 대항해 발전한 학문이다. 창시자 아브라함 매슬로는 건강하고 훌륭한 삶을 살아간 사람들을 연구해 ‘인간 욕구 5단계’ 이론을 정립했다. 의식주와 관련된 생리적 욕구, 신체적·정서적 안전에 대한 욕구, 관계 맺기와 소속감을 느끼고자 하는 사회적 욕구, 존경과 명예를 추구하는 자기 존중의 욕구, 마지막으로 자기 실현의 욕구가 그것이다. 그는 하위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그보다 상위에 있는 욕구는 생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매슬로의 욕구 이론을 염두에 두면 우리 사회에 만연해온 비리가 이해된다. 그동안 우리는 의식주와 관련된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단계에 있었던 셈이다. 먹고사는 일이 가장 시급해서 온갖 불법을 저지르더라도 그 욕구를 충족시켜야 했다.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바로 그 결핍감과 불안감을 추동력으로 하여 경제 기적을 이루었지만 바로 그것에 발목이 잡힌 셈이다. 결핍감이 어느 정도 충족되자 추동력은 떨어졌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장년층 남자 중에는 많은 돈을 가지고도 이혼 후 자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무의식에 새겨진 가난에 대한 공포 때문에 책임감이나 도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감사하게도, 요즈음 우리 사회는 그 지점을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다. 부패 방지와 관련된 법안, 옳은 자녀 양육과 관련된 법안, 간통제 폐지 등의 논의는 우리 사회가 의식주와 관련된 생리적 욕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증표로 보인다. 정서적·신체적 안전에 대한 욕구, 잘 소통하고 관계 맺는 사회적 욕구 등 상위 욕구로 옮겨간다는 뜻이다. 지금 이 지점에서 퇴보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면 두 번째 기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불안과 결핍감의 추동력이 아니라 도덕과 신뢰, 이타심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에너지가 될 것이다.

나는 도덕이 개인의 삶에 유익하고 실용적인 덕목이라는 것을 믿는다. 말로써, 논리로써 설명해 보일 수는 없다. 하지만 ‘도덕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사는 동안, 개인적 욕심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옆길로 샐 때마다 삶에 미묘한 장애가 생기곤 했다. 글쓰기가 안되거나, 건강이 나빠지거나, 대인 관계에 문제가 발생했다. 어렴풋이 두 사안 사이 관계를 직감하고 양심에 걸리는 행동을 중단하면 일이 본래대로 회복되었다. 그 법칙은 내가 관찰한 타인들의 삶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매슬로가 최상위 욕구로 꼽은 자기 실현은 분석심리학자 융도 제안한 개념이다. 융은 자기 실현이라는 용어 속에 많은 것을 담았다. 개인 무의식, 집단 무의식을 모두 통합한 다음 내면의 신성과 합치되는 지점을 자기 실현으로 보았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신성이 있다’는 종교 관점을 포함한 것이다. 매슬로는 자기 실현 개념에 도덕성, 숭고함, 자연의 법칙 등을 포함시켜 설명한다. 저 이론들은 “덕(德)을 닦아 도(道)에 이른다”는 노자의 명제를 풀이한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도덕이란 자연의 법칙이자 사회 구성원에게 공동선이다. 인간 내면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나는 숭고한 삶에 대한 욕구이기도 하다. 지금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잡음이 많은 법과 제도는 사회 구성원의 공통된 욕구가 앞서 나아간 다음 뒤따르는 후속 과정일 뿐이다.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우리 사회는 건강한 도덕성을 향해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언젠가 온 국민이 자기 실현 욕구를 위해 노력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봄날 같은 꿈도 꾸어본다.


김형경 |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상상력·환상은 경험의 근본이며
논리나 과학도 상상력이 근원
창의성엔 불안 이겨낼 용기 필요
두려움 넘어서야 창조성 발휘”


1990년대 중반, 인상적으로 읽었던 책이 한 권 있다. 저자도 제목도 모두 잊었지만 그 책이 주었던 자극과 의문이 여진처럼 오래 지속되던 책이다. 당시는 1980년대 젊은이들이 온 열정을 쏟아 추구했던 이데올로기가 힘을 잃어가던 시기였다. 거대 담론이 스러지면서 지향점을 잃은 대중들의 관심이 개개의 인간에게로, 그들의 사소한 일상으로 전환되어 갔다. 문화계에도 개인의 사사로운 삶과 내밀한 감정들을 표현하는 예술 작품이 등장했고, 그런 작품들은 의외로 대중들의 호응을 크게 얻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 책은 위와 같은 배경에서 나온 문화 비평서였다. 저자는 당시의 문화계가 사소한 개인의 일상으로, 의미 없는 감정 토로 현상으로, 나아가 자본주의적 향락 쪽으로 기울어지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있었다. 저자의 관점과 필력에 연신 감탄하면서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그 책을 독파했다. 그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진하게 밀려오는 의문과 만났다.

“저자는 왜, 빛나는 판단력과, 뜨거운 열정과, 아까운 시간을 남의 작품을 비판하는 데 사용했을까? 그 모든 자산을 보다 창의적인 일에 사용했다면,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었다면 얼마나 멋진 결과물을 낳았을까?”

그런 의문을 품었을 때는 열정과 재능을 창의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재능이나 열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창의적인 작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았다. 가끔 창의성이 어디서 오는지 묻는 이도 있었다. 간혹 나 자신조차 상상력이나 예술 작품은 그저 삶에 더해지는 장식적인 요소가 아닐까 묻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가지는 상상력, 환상, 자기표현 등이 인간 경험의 근본이며, 논리나 과학조차 예술적 상상력을 근간으로 발현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프로이트 학파 정신분석학자들은 창의성이 상실한 대상을 복원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고 제안한다. 성장기에 중요한 대상을 상실한 경험을 가진 사람은 환상 속에 그 대상을 복원하여 간직한다. 내면에 간직된 표상, 혹은 환상 대상은 그 사람이 상실의 구멍에 익사하지 않고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가 되어 준다. 생각해 보면 1990년대 중반 우리 문화계에 등장했던 ‘후일담’ 작품은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대상을 이야기로 만들어 내면에 간직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창의성이 무의식적 자기치유 행위라고 제안하는 심리학자들은 더 많다. “아우슈비츠에서도 여전히 시를 쓰는 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그들은 답한다. “예술이 없었다면 죽음과 맞선 싸움을 할 수 없었고, 그곳에서 일어난 일의 내밀한 핵심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모리스 시퀼니크 <불행의 놀라운 치유력> 중에서). 자기 이야기하기, 자기 감정 표현하는 행위는 그대로 그 사람을 회복시켜 계속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된다. 오늘날 심리학자들은 모든 예술을 치료 도구로 사용한다. 자기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만이 그 지점 위에서 삶에 대한 상상력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1990년대 중반 문화계를 휩쓸었던 감정 과잉의 예술 작품들은 아마도 우리 사회가 무의식적으로 치러낸 집단 치료 행위가 아니었을까 싶다.

융 정신분석학에서는 창의성을 집단 무의식에 닿는 행위라 여긴다. 집단 무의식은 인류의 역사적 삶을 통해 공동체 구성원 내면에 간직된 공통된 무의식을 뜻한다. 그것은 개인들의 무의식보다 더 깊은 곳에 존재하며, 신화나 신성의 영역과도 닿는다고 한다.

융은 예술가들의 창의성이 집단 무의식 지점에서 나온다고 제안한다. 많은 예술가들이 작품이 절로 진행되어 첫 의도와 다른 결과에 도달한다는 경험을 토로한다는 점을 그 증거로 본다. 기독교 문화권 심리학자 중에는 창의성을 설명하기 위해 ‘영감 받다(inspied)’라는 단어를 파자한다. 그것이 ‘성령 안에 있다’는 뜻이고 창의성이란 성령의 작용이라는 설명이다. 그 설명 역시 융의 집단 무의식 이론과 같은 토대 위에 서 있는 듯 보인다.

모든 단계에서 창의성은 불안을 이겨내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잃은 대상을 미워하지 않고 내면에 간직하기 위해서도,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서도, 집단 무의식과 소통하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창조 행위가 집단 무의식 영역으로 내려갈 때는 그것이 신성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라는 무의식적 두려움을 갖게 된다고 한다. 용기 내어 창의성을 발휘하는 그 순간조차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용기를 또 내어야 한다.

환상, 상상력, 표현력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삶의 에너지나 치유 도구가 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상상력과 창의성은 한 사람이 자기 인생을 만들어가는 총체적이고 기본적인 역량이다. 우리는 상상력을 동원해서 삶의 비전을 만들고, 창의성을 발휘해서 비전을 구체화시키는 방법들을 찾아낸다. 자기만의 인생을 창조하기 위해서, 그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역량이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미국 심리학자 롤로 메이는 <창조와 용기>라는 책에서 개인의 창의성이 사회 변화와도 관련되어 있다고 제안한다. 한 사회의 변화를 이해하고 새로운 비전을 모색하기 위해서도 개인의 창의성이라는 도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덕적 용기가 잘못을 바로잡는 일인 데 반해 창조적 용기는 변화하는 사회의 새로운 형태, 상징, 패턴을 발견하고 앞길을 제시하는 데 필요하다. 어떤 직업 분야에서든 창조적 용기가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사회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형태와 상징을 즉각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제시하는 이들이 예술가이다.”

이따금, 1990년대 중반 깊은 인상을 주었던 그 책 저자가 궁금했다. 그는 더 이상 책을 쓰지 않았지만 당시 그가 비판했던 예술가들은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하면서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2000년대 중반쯤, 편한 지인들 모임에서 그 저자를 만났다. 그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묘사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그가 혼잣말처럼 뱉었던 문장이 섬광처럼 심장으로 들어왔던 일이 기억난다. “상상력이라는 것은 대체 어떻게 발휘하는 거지?” 그 순간 오랜 의문이 풀렸다. 그가 아까운 재능을 창의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던 이유를.


김형경 |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주변 작가들을 보면 저마다 고유한 작업 방식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는 자정부터 집중력을 발휘하여 새벽까지 글쓰고 아침에 잠든다. 어떤 이는 번잡한 일상을 벗어나 시골의 고독한 환경 속에서 글을 쓴다. 내 방식은 평범하다. 한밤에 푹 자고 일어나 아침부터 오전 시간을 사용한다. 그 시간에 맑은 정신과 고요한 마음이 유지되기 때문에 일상생활은 정오 이후로 미루어 둔다.

몇 해 전 그날은 이상했다. 잠깨는 순간부터 마음이 어지러우면서 명백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차를 마셔도 산란한 마음이 수습되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도 마음이 고요해지지 않았다. 전날과 다를 바 없는 하루인데 느닷없이 마음에 거센 파도가 일면서 온 신경이 허공으로 분산되는 느낌이었다. 실내를 우왕좌왕 돌아다니다 나도 모르게 리모컨을 들고 텔레비전을 켰다. 긴급속보가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보도하고 있었다. 그 순간 무너지듯 소파에 주저앉으며 아침 내내 나를 휩쓸었던 불안감의 정체를 이해했다. 다음 순간 불안감은 울음과 함께 해소되기 시작했다.

우리 감정이 수직적으로 부모에서 자녀에게로 대물림되는 것처럼, 수평적으로 동시대인 사이에서도 서로 전염된다. 한 사회에 특정 사건이 일어나면 구성원들은 예민하게 서로 정서적인 삼투현상을 느낀다. 냄새가 절로 맡아지고 소리가 절로 들리는 것처럼 불안감이나 분노도 절로, 고스란히 구성원의 정서 속으로 스며든다. 그것을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사람과 알아차리지는 못하지만 그대로 행동화하는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문제는 우리가 외부에서 오는 감정, 정서에 휩쓸려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 많다는 점이다. 그런 이들은 누군가가 화를 내면 곧바로 대응해 싸움을 일으킨다. 자녀가 불편한 감정을 토로하면 그것을 소화시켜주지 못한 채 짜증으로 반응한다. 친구가 불안한 감정을 표현하면 위로해주기보다는 함께 걱정을 키워간다. 점검되고 이해되지 않은 개인의 감정들은 집단 속으로 번져가면서 마침내 사회현상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사회 구성원이 저마다 심리적 자기 경계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한다. 자기 느낌과 타인의 감정, 자신의 소망과 타인의 욕구, 자기 현실과 타인의 삶을 서로 구분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고스란히 휩쓸린다.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감정의 확산 속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타인의 행동에 격하게 분노하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불안감의 늪으로 빠져든다. 정보나 패션도 감정의 유행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것은 자주 사회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을 듯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 “동시간대에 ‘수평 전염’ 되는 감정
위로보다 함께 걱정만 키워가
저마다 ‘정서적 자기 경계’ 없는 탓
해법은 자극에 ‘멈춰서 생각하기’”


우리에게 심리적 자기 경계가 취약한 이유는 유년기에 견고한 자기 개념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서적으로 자녀를 침범하는 부모, 아이의 생각이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부모가 자녀의 심리적 경계를 거듭 무너뜨린다.

자기 걱정을 한없이 자식에게 털어놓는 엄마, 술 취한 채 화내는 아버지의 감정이 그대로 아이에게 전해져 불안과 분노의 감정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런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희생시켜서라도 가족이 평화롭기를 소망한다. 성인이 된 후에는 모든 타인의 감정이 곧바로 심장으로 스며드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가부장제 같은 집단 문화도 개인이 자기 경계를 갖기 어렵게 만든다. 우리는 자주 부모의 명예와 가문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교육받는다. 내 삶과 부모의 삶에 경계가 없고, 내가 할 일과 가문의 업적에 차이가 없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문화에서는 자기만의 감정이나 소망을 갖는 일에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국가와 민족을 칭송하는 사회도 개인의 자기실현 노력을 비겁한 이기주의로 오해하기 쉽다.

정신분석학은 감정의 역전이 현상을 치료 도구로 사용한다. 분석가가 내담자의 무의식에 도달하는 빠른 길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역전이 감정을 점검하는 것이다. 역전이를 통해 내담자의 무의식을 읽고, 엄격한 중립을 지키면서 무의식을 해석해주고, 무의식의 욕구에 붙은 에너지를 제거하는 치료 과정을 밟는다. 정신분석가에게 가장 큰 금기는 역전이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다.

자기 계발서들도 비슷한 행동지침을 제시한다. 관계 맺기 기술 중 상대방이 가하는 자극에 대해 ‘멈춰서 생각하라’는 내용을 본 적 있다. 타인으로부터 전해지는 감정적 자극에 반응하지 말라는 뜻이다. 많은 이들에게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기’가 어려운 이유는 정서적 자기 경계를 지키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과 같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타인의 감정적 자극뿐 아니라 평가, 판단, 심지어 글이나 농담에도 격한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기 일쑤다.

뒤늦게라도 정서적 자기 경계를 갖고 싶다면 정신분석가가 치료 현장에서 내담자에게 해주는 작업을 스스로 해보는 방법이 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 그 감정이 내면에 뿌리를 둔 감정인지 외부에서 전해진 감정인지 구분해보는 것, 내면의 무의식이라면 근원을 찾아내 에너지를 제거하고 외부에서 온 감정이라면 반응하지 않으면서 다만 지켜보는 것. 그것은 실은 불교의 지관 수행법과도 같은 내용이다. 자기 내면을 성찰하고 보살펴본 사람은 알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많은 부분이 실은 자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아가 그 근거없는 감정이 본래부터 실체가 없는 것임을. 실체 없는 감정에 반응하지 않고 있으면 그것이 마침내 파도처럼 스러진다는 사실을. 그러면 삶의 에너지가 절약되어 보다 창의적인 일에 힘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 모든 일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심리적 자기 경계를 확립하는 일이다.

요즈음은 경제적 불안감이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번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중요한 정책을 결정해야 하는 이들도 불안감에 감염된 듯 흔들리고 머뭇거린다. 그런 일을 목격할 때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심리적 자기 경계가 아닐까 생각된다. 경제도, 스포츠도, 정치도 실은 마음이 하는 일이다. 한밤에 홀로 깨어 글을 쓰거나, 시골에 틀어박혀 작업하는 작가가 원하는 것도 견고한 정서적 경계를 확립하는 일이다.


김형경 |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여러 해 전, 어느 문학상 심사 때의 경험이다. 선배 격인 평론가 작가인 남성과 후배 격인 내가 심사위원이었다. 선배 작가가 당선작감이라고 추천하는 작품이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 그것은 여성을 성적 소모품 취급하는 남성의 판타지였다. 더욱 나쁜 점은 여성 주인공을 화자로 내세워 그녀가 자발적으로 성적 관음과 파괴를 갈구하는 듯 그려져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 작품이 당선작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세 사람이 의견을 조율한 결과 그 작품이 당선되지는 않았다.

심사 후 식사 자리로 옮겼을 때 선배 작가는 미간을 찡그린 채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잠시 후 소주를 한 병 주문하더니 술을 마시며 기어이 불편한 속내를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였다. 무조건 사과하는 것. 내 입장에서는 잘못한 것이 없지만 그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명백히 불쾌한 존재였다. 열 살 이상 많은 선배 의견에 대놓고 반대한 것, 남성 중심 사회의 약자로서 감히 또박또박 자기 의견을 주장한 것. 그 자리에서 사과하고, 또다시 사과의 편지를 보내고, 편지를 받은 그분이 전화했을 때 화해의 대화를 나누며 또 한 번 사과했다.

주체적으로 산다는 말에는 늘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와 함께 주체 개념의 지평을 연 이후 무수히 많은 철학자, 사회학자, 정신분석학자들이 주체, 자아, 자기 등의 개념에 대해 연구했다. 정신분석학은 참자기, 거짓자기, 과대자기, 위축된 자기 등의 개념을 만들어 부모의 양육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우리가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사실을 제안했다. 사회학자들은 초월적 자기, 경험적 자기, 상호작용하는 자기 등의 개념을 만들어 우리가 사회와의 관계에서 늘 변형된다는 사실을 연구했다.

주체적 삶에 대한 담론이 다양하게 이야기되어도 현실에서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는 말의 의미조차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경우를 만난다. 그 말을 이기적인 개인주의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고, 나르시시즘의 극치라 평가하는 이도 있다. 실제로 문학 작품 속의 주체에 대한 멋진 논문을 써낸 사람조차 자신의 생각보다는 외부 권력자의 의도에 자신을 맞추어가는 것을 목격한다. 박사과정에 있는 한 연구자는 내가 짧은 강연을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오자 잘못된 영어 발음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 건 틀리면 안돼.”

그의 내면에 있는 초자아, 권위자, 인정받고 싶은 대상의 목소리였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자기 자신으로 살기보다는 내면 목소리, 외부 권위자, 세상의 시선에 자기를 맞추며 살아간다. 그들도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알고 있지만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그런 이들은 가끔 자기가 따르는 외부 기준을 내게도 요구한다. 내가 공책이나 스커트 등 소유물을 필요한 형태로 변형시킬 때면 곁에서 꼭 한마디한다. 그것을 자르면 어떻게 해? 회사를 그만둘 때도, 긴 여행을 떠날 때도 많은 이들이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그래? 심지어 먹기 싫은 음식을 거절할 때도 사람들은 말한다. 어떻게 대놓고 거절하냐? 그때마다 나는 다만 내 삶의 주도권을 공책이나 음식에게 주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고 중얼거린다. 타인과 사회에 해가 되지 않고, 공동체의 미풍양속을 해치지 않고, 법에 저촉되는 반사회적 행동이 아닌 이상 나는 무엇이든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 “타인의 눈으로만 바라보는 나,
만족감은 없고 공허함만 커져
일그러진 거울을 깨는 용기와
기성세대의 관용을 기대한다”


유아기에는 부모의 사랑과 격려, 판단하지 않는 태도가 아이의 주체성을 기른다. 사춘기에 심리적으로 부모를 떠나면서 반항할 때도 부모의 보복하지 않는 인내가 자녀의 주체성을 형성하도록 돕는다. 청년기에 애착 대상이나 직업을 선택할 때도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용기를 지지해줄 때 그 경험에서 배우며 강한 자아를 만들어간다. 중년기 초입에 들어서면 주체적 삶을 위해 또 한 번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 사회에서 스승이나 어른으로 모셨던 권력자와 헤어지면서 스스로 진정한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선택과 결과에 대해서는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그것이 참자기, 주체적 삶, 자기 삶의 주인 되기 등의 언어로 표현되는 삶의 내용들이다.

내면에 주체성이 형성되지 못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공허감이다. 무엇을 해도 만족감,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럴수록 오히려 주변 사람에게 맞추기 위해 입장을 바꾸고, 타인과 어울리기 위해 행동을 변화시키고, 조직에 소속되기 위해 개성을 마모시킨다. 자기를 잃은 현대인들이 위험한 이유는 사회적 개인에서 일탈의 군중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사회학자들은 말한다. 그들은 외부 기준과 요구에 자기를 맞추느라 일그러진 거울 같은 자아를 갖고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참자기, 주체적 삶, 자기 삶의 주인 되기 등을 실현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당사자의 용기일 것이다. 내면에서 심판하는 초자아 목소리, 외부에서 심판하는 권위자의 힘,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통념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이다. 그보다 중요한 또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젊은이들을 대하는 기성세대의 관용이라고 생각한다. 부모 생각이 옳다고 밀어붙이지 않는 것, 자녀에게 양육의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 것, 경쟁심이나 시기심 없이 젊은이들을 대하는 마음일 것이다. 젊은 세대의 의견을 마음 열고 들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학생이 교사를 가르친다”는 알프레드 아들러의 말이다. “백살이 돼도 백일 된 손주한테 배울 게 있어.” 우리 할머니 말씀이다.

며칠 전 문학상 심사가 있었다. 그 상은 연배와 성별이 고루 섞인 심사위원 아홉 명이 저마다 한 표씩 행사하는 심사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선배 작가가 뒤풀이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 상을 심사하던 초기에 깨달은 게 하나 있지. 문단 최고 권위자인 한 선생이 훌륭하다고 극찬한 작품에 대해 후배들이 한 표도 주지 않는 걸 목격했어. 그 선생 직계 제자도 있어 몇 표는 나올 줄 알았는데, 충격이었지. 그리고 생각했어. 꼰대가 되어서는 안되겠구나.”

그분이 칠순에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시는 비밀을 엿본 듯했다.


김형경 |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그 후배 여성은 아버지의 폭력 피해자였다. 그 아버지는 아내도, 다른 자식도 때리지 않았는데 유독 큰딸에게만 폭력을 행사했다. 무언가를 잘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집안에 회초리를 마련해두고 잘못하는 일이 발견될 때마다 아이에게 직접 매를 가져오게 했다. 맞는 게 공포스러웠던 아이가 장롱 뒤편으로 회초리를 숨기자 “이게 안 맞으려고 별 꾀를 다 쓴다”면서 딸의 눈앞에서 PVC 관을 잘라 새 회초리를 만들었다. 관 위에 청테이프를 감으면서 “이렇게 때리면 자국이 남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노출 심한 옷차림에, 18세기에서 온 듯 온순한 태도를 취했다. 그 온순함은 온 힘을 다해 아버지의 폭력에 적응한 결과였다. 대신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술을 마셨다고 말했다. 스물일곱 살에 이미 매일 술을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와 파괴적인 연애를 하는 중이었고, 극단적 자기파괴 충동 속에서 고통받고 있었다. 다행인 점은 그녀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한 발 내디딘 상태라는 점이었다. 그로부터 약 6년 동안 나는 그녀가 자신을 치유하고 구원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변화를 모색하는 고비마다 그녀는 힘겹게, 온 힘을 다해 용기를 쥐어짜곤 했다.

후배 여성에게 필요한 첫 번째 용기는 ‘고통을 직면할 수 있는 용기’였다. 자신이 꽤 착하고 옳은 사람이라는 나르시시즘적인 자기 이미지를 벗어내고, 알코올로 회피해온 내면의 고통과 직면했다. 가족의 희생양이었던 유년기의 공포를 경험하고 표현하면서 눈물 흘릴 수 있는 용기를 냈다. 아프고 슬프고 찌질한 과거가 있어도 괜찮고, 다만 그것이 삶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애도하고 떠나보낼 수 있도록 노력했다.

용기라는 단어(courage)는 심장을 뜻하는 프랑스어(coeur)에 어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심장이 뇌와 팔다리로 피를 보냄으로써 신체 기관이 작동하도록 하듯 용기는 정신의 모든 미덕이 가능하도록 하는 근원이다. 용기가 없다면 삶의 가치들을 실천하거나 이행할 수 없다. 우리가 한 걸음 성장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용기이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두 번째 용기는 ‘불안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였다. 아버지에게 맞으면서도 그 아버지에 대한 의존성을 버릴 수 없었던 유년기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사랑하기 때문에 폭력을 행사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지워냈다. 폭력적인 남자친구와 헤어지기 위해 노력하고, 나쁜 남자와 상호의존하는 성향을 버렸다. 의존할 사람을 성급하게 찾는 대신 혼자 있을 때의 불안을 이겨내는 법을 배웠다. 한 번씩 불안을 넘어설 때마다 내면에서 마음의 힘이 조금씩 커지는 것을 경험해나갔다.

용기는 무기력이나 절망감의 반대 개념이 아니다. 키에르케고르, 니체, 사르트르 등 많은 철학자들이 용기를 ‘절망감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개인이든 사회이든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늘 불안하거나 절망적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용기에는 성찰과 저어함이 동반된다. 머뭇거림 없이 돌진하는 행동은 만용이며, 무의식의 공포를 감추기 위한 행위이다.


▲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려온 여성
극단적 자기파괴 충동을 이긴 힘은
고통을 직면하고, 불안을 이겨내고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용기였다”


후배 여성이 마음으로부터 찾아낸 세 번째 용기는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용기’였다. 그녀는 대학에서 전문 분야를 공부했지만 내가 만났을 때는 전공과 무관한 단순 반복 업무를 하고 있었다. 사실 디자인이나 요리에 재능이 있었고 그 분야에서 자기 삶을 개척하고 싶다는 소망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창의적인 일을 하려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격려나 지지는커녕, 작은 실수에도 매를 맞았던 유년의 공포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나는 그녀에게 쿠션 커버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온순한 태도로 그러겠다고 대답한 후 거의 열 달쯤 지나서야 결과물을 가지고 왔다. 기대 이상의 솜씨였지만, 예상보다 깊은 공포의 늪을 지나왔다고 말했다. 어쨌든 그런 방식으로 그녀는 잠재력과 창의성을 한 뼘씩 표현해나가며 새로운 자기 개념을 만들어갔다.

우리가 용기를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내면에 확고한 자기 개념과 자기 존중감이 있어야 한다. 용기는 미덕이나 충성심 같은 정신 가치가 아니다. 그 모든 것의 밑바닥에 존재하면서 미덕과 충성심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뿌리가 된다. 용기가 없으면 사랑은 단순한 의존이 되고, 용기가 없으면 충성심은 순응주의에 불과해진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성취한 용기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용기’였다. 성찰과 치유를 시작한 지 2년쯤 후 그녀는 새로운 삶의 목표를 세우고, 그 분야로 이직했다. 예전보다 임금은 적어졌지만 삶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하지만 더 깊이 내면을 성찰해보니 요리나 커튼 만들기는 유아기 소망이었다. 그런 일을 잘하면 엄마처럼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한 매 맞는 아이의 생각이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유아기 소망을 버렸다. 그런 다음 처음으로 자기 자신으로만 존재하면서 새로운 삶의 비전을 모색했다. 그녀는 또 한 번 용기를 내어 상담심리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우리의 삶은 늘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과정들이다. 그 고비마다 선택하는 용기와 포기하는 용기를 내어야 한다. 선택한 대상에 헌신할 수 있는 용기를 내어야 하고, 포기한 대상들을 애도하고 떠나보낼 수 있는 용기를 내어야 한다. 그런 용기와 헌신, 애도와 연민의 마음들이 모여 우리의 존엄성과 삶을 만들어간다. 일찍이 폴 틸리히는 “용기는 존재 그 자체와 직결되는 요소이다”라고 말했다.

후배 여성이 용기를 내어 자신을 변화시켜온 과정이 위에 기술된 순서에 따라 순탄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스위치백 구간을 오르는 열차처럼 용기와 무기력, 진보와 퇴보의 긴 과정이었다.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데는 1년 이상 걸렸고, 자기 내면의 힘을 믿는 데는 3년쯤 필요했다. 알코올로부터 걸어나오는 데는 5년이 소요되었고, 새로운 진로로 들어선 것은 최근 일이다. 그 모든 과정에서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용기를 짜냈다. 그것은 한 편의 영웅 스토리이다.


김형경 |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한 해를 마감하면서 기쁜 소식을 들었다. 후배 여성이 딸의 대학 합격 소식을 전해왔다. 그 소식이 특별히 반가웠던 이유는 후배의 딸이 고등학교 입학 한 달 후부터 등교를 하지 않은 채 침대에만 누워 지내는 중증 우울증 상태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딸은 중학교 때까지 리더십 강하고 활발한 학생이었다. 특별히 아빠의 사랑을 많이 받는 딸이었고, 엄마는 딸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었다. 그녀는 가끔 딸이 공주처럼 굴면서 엄마를 시녀처럼 부려먹는다고 느끼기도 했다. 외형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평온한 가정이었다.

후배는 처음에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는 이유를 알지 못해 답답해했다. 아이는 종일 아무 말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엄마가 아이를 차에 실어 강제로 학교에 데려다주면 아이는 금세 조퇴하고 돌아와 방에 처박혀 울었다. 엄마는 다시 아이를 심리상담 선생님에게 데려갔다. 아이를 상담실에 밀어넣고 밖에서 기다리다 끝나면 데려오곤 했다. 학년이 끝날 때마다 수업 일수가 부족할까봐 날짜를 계산하면서 아이를 학교로 데려다주었다. 그 고단한 노력을 3년 동안 하면서 아이는 조금씩 변화했고,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뿐 아니라 대학에도 진학했다.

후배와 통화하면서 딸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제일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었는지 물어보았다.

“내가 딸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그걸 인정하는 데 일 년 이상 걸렸어요. 지금도 딸한테 너무 미안해요.”

이제는 넘어선 과정임에도, 그 이야기를 꺼내는 목소리가 울먹였다. 사실 그녀는 나와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던 독서모임 일원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정서적으로 전혀 소통할 줄 모른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쪽에서 어떤 이야기를 건네든 박해적으로 받아들였고, 어떤 대답을 하든 방어적 언어로 표현했다. 그녀는 왜곡된 소통 방식으로 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천천히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하교한 딸이 “엄마, 저기 학원 옥상에서 어떤 오빠가 떨어져서…”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딸의 말을 끊으며 “쓸데없는 일에 신경쓰지마” 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아이가 두려움이나 불안 때문에 그런 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아이 마음을 읽어주고 불편한 감정을 달래주어야 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딸은 엄마로부터 감정적으로 달램을 받거나 정서적으로 소통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후배 여성도 부모로부터 그런 것을 받지 못한 채 정서적으로 내면이 얼어붙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또 물어보았다. 딸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결정적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되는 지점이 어디였는지.

“내가 딸과 감정적으로 거의 한몸이라는 게 명백하게 보이는 지점이었어요. 내가 화난 상태에서 그것을 참고 있을 때면 딸이 금세 우울해지는 게 보였어요. 내 마음이 편안할 때는 딸도 안정된 상태를 유지했고요. 그때 분명한 깨달음이 왔어요. 내가 건강해지면 딸이 낫겠구나.”


▲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
아이를 얼어붙게 한 건 소통 방식 탓
“내가 건강해지면 아이가 낫겠구나”
‘깨달음’ 이후 아이는 기적처럼 좋아졌다


그녀는 자신이 딸을 정서적으로 얼어붙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안 이후 딸에게 건네던 통제의 언어를 거두었다. 잔소리, 야단치기, 걱정하는 말투 같은 것. 그럼에도 답답한 노릇은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해주는 일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 딸이 말을 건넬 때마다 당황하면서 침묵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딸이 우울해지는 게 보였다. 그렇게 서로의 감정을 알아차려가면서 그녀는 분명한 깨달음에 도달했다. 딸을 낫게 하려면 내가 먼저 건강해져야 하는구나. 그때부터 그녀는 심리 상담에 적극 임했다.

우울증이나 폭력 문제로 자녀를 심리상담실로 밀어넣는 부모에게, 전문가들은 부모가 함께 치료받아야 한다고 권한다. 사실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 문제를 이해할 만한 자아도, 문제를 해결할 만한 주체성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상황을 이해하고 버텨낼 힘이 있는 어른이 먼저 변화해서 뒤늦게라도 아이를 보살펴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자녀들은 부모의 정서를 고스란히 흡수하여 동일시하기 때문에 어른이 달라지면 아이들은 절로 변화한다.

후배는 심리상담을 받으며 냉동되어 있던 정서가 풀리기 시작했다. 딸이 어떤 말을 건넬 때 그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딸이 느끼는 불편에 대해서도 달래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정서적으로 엄마 역할을 해주지 못한 점에 대해 딸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녀가 내면의 감정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갈 때마다 진짜 편안해지는 사람은 딸이었다. 딸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변화했다.

후배에게 마지막으로 물어보았다. 자신과 같은 입장의 부모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없는지.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나요.” 문제 해결 과정이 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말을 한들 알아듣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 주변에도 비슷한 자녀 문제를 겪는 학부모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심리상담 이야기를 꺼내보았지만 다들 귓등으로 흘렸다. 대신 자녀를 대안학교로 전학시키거나 검정고시 준비로 방향을 돌렸다. 자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모가 먼저 치료받아야 한다는 말은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상담 전문가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참 어려워요.” 그들을 둘러싼 외적 상황도 어렵지만 내면에서 겪는 심리적 문제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들은 왜 마음이 그토록 고통스러운지 이유조차 모르는 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심리 문제의 대물림 현상에 대해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세르주 티스롱은 이렇게 말했다.

“부모 탓에 자기도 모르게 인성이 왜곡된 2세대 부모는 그 자녀에게 전체적으로 뒤틀린 거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손자 세대에 이르면 부모 세대에서와 동일한 장애가 나타나는데, 그 증세는 훨씬 심각하다. 이런 장애들의 공통적 특징은 외견상 아무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후배 여성의 딸은 요즈음 댄스스포츠를 배우고, 운전면허 시험을 보고, 친구와 함께 여행계획을 세우고 있다. 돌이켜보면 기적 같은 일이다.


김형경 |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내용이 대체로 두 가지다. 자기 이야기를 하거나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을 듣기보다는 그의 이야기가 끝나고 자기 이야기를 할 기회를 엿본다. 상대의 말꼬리를 끊고 자기 이야기를 밀어넣기도 한다. 남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점잖은 목소리로 이웃과 사회를 걱정한다. 특정인을 화제로 올리고 그를 판단·평가하는 데 열을 올린다.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과 남의 얘기만 하는 사람이 만나면 한쪽은 상대방을 자기밖에 모르는 미숙아로 취급하고, 다른 한쪽은 상대방이 속내를 내놓지 않는 음흉한 사람이라 여긴다.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피하고자 특정 분야의 객관적 사실을 언급하면 잘난 척한다는 오해를 받는다.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한 가지 사실이 명백히 보인다. 누구도 자기 자신을 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이상화된 자기 이미지에 치우쳐 있고 그런 자신을 펼쳐 보인다. 혼자 소화하지 못한 감정을 외부의 누구에게든 쏟아내기 위해 이야기하는 이도 있다. 남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향해 시기심과 불안을 투사한다. 그들의 말 속에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아이, 불편한 감정에 짓눌린 아이, 타인의 성취를 파괴하고 싶어 하는 아이가 존재한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 “인간에게는 무의식이 있고, 그것이 모든 병통의 원인이며, 무의식을 의식 속으로 통합시켜야 심리적 문제가 해결된다”는 사실을 제안한 이후, 현대 심리학자들은 무의식 대신 ‘내면 아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내면 아이는 무의식보다 이해하기 쉽고, 접근과 해결이 쉬워 보인다.

젊은이들이 삶에서 겪는 심리적 불편을 해결하고 싶다고 말하면 나는 먼저 ‘내면 아이’에 관한 책을 읽어 보라고 권한다. 책을 읽은 이들은 자기 내면에 상처 입은 채 웅크린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내면 아이는 감정이나 욕구를 표현하지 못하도록 억압당했거나,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 목록에 발목이 잡혀 있거나, 외부 대상의 눈치를 보면서 순응적 태도를 취하거나 한다. 외부에서 오는 보살핌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결핍감에 사로잡혀 있거나, 가족의 불행을 자기 탓으로 느끼며 너무 많은 책임을 떠맡기도 한다. 성인으로서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 속에 아이 때의 인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런 질문이 이어진다. “내면 아이는 어떻게 만나나요?” 이 질문은 “나는 한번도 자기성찰을 해본 적이 없어요”라는 문장과 동의어이다. 늘 화를 내면서도 내면에 ‘화내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늘 의존할 대상을 찾아다니면서도 내면에 ‘엄마가 필요한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뜻이다. 분노나 의존성을 알아차릴 ‘성인 자아’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그냥 아이’인 상태로 반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이들을 위해 내가 찾아낸 대답은 “격한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이 내면 아이다”라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매 순간 자기를 성찰하는 것은 종교 수행자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보통 사람인 우리가 자기를 알아차리기 가장 좋은 순간은 외부의 자극을 받아 내면에서 격한 감정이 올라올 때이다. 사촌이 논 샀다는 소식을 듣고 갑자기 배가 아플 때 그것이 ‘나만 덜 받았다고 느끼는 아이구나’ 알아차리는 것이다. 데이트 제안을 거절당했을 때 뜨거운 화가 치밀어오르면 그것이 ‘사랑에 차별당했다고 느끼는 아이구나’ 이해하는 것이다. 소홀하게 대접받는다는 느낌 앞에서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오르면 그것이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내면 아이구나’ 인식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격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이미 그러한 문제로 상처받은 아이가 내면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무시당한다는 느낌’에 취약한 사람은 초기 대상관계에서 아이를 존중하지도 배려하지도 않는 양육자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 부모는 아이의 의사나 욕구는 무시한 채 자신의 방식과 가치만을 아이에게 강요했을 것이다. 심지어 그 부모는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 애쓰면서 타인이 자기를 무시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아이에게 물려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들은 취약한 내면을 감추기 위해 겉으로 더욱 도도하고 거만한 태도를 취한다.

내면 아이를 이해하고 그 실체에 접근해갈 때 어떤 젊은이는 이렇게 묻는다. “내면 아이는 몇 살인가요?” 심리학 책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엉뚱한 질문이지만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누구나 트라우마의 시기에 고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유아기 엄마의 긴 공백이나, 대체 양육자에게 맡겨졌던 일이나, 가족의 사건 사고 같은 것. 혹은 아이의 욕구에 지속적으로 어긋나는 양육방식도 아이를 얼어붙게 만든다. 최근에는 인큐베이터에서 양육된 성인의 내면에 근원적으로 불안한 내면 아이가 자리 잡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내면 아이 문제를 이해해 나갈 때 마지막에 하는 질문은 “내면 아이는 자랄 수 있나요?”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성인 자아와 내면 아이를 분리해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화가 날 때마다 마구 화를 낼 게 아니라, 성인 자아가 ‘화내는 내면 아이’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무시당한다는 느낌 때문에 화가 나는구나, 하지만 이 감정은 오래전 부모에게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내면 아이의 반응일 뿐, 지금 이곳이 나를 무시하는 상황은 아니야.” 그렇게 알아차리면서 화내는 내면 아이를 스스로 달래줄 수 있어야 한다. 일상 속에서 그런 작업을 반복하면 모든 감정들을 고요하게 처리할 수 있고, 마침내 내면 아이의 목소리마저 조용해지는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건강에 가장 필요한 단어 하나를 꼽으라면 ‘자기 성찰’을 제안하고 싶다. 우리는 내면을 보지 않기 위해 중독 물질에 매달리고, 내면을 회피하면서 타인과 상황을 탓하고, 내면을 본 적 없기 때문에 화가 날 때마다 화를 낸다. 무의식의 의식화, 내면 아이 돌보기, 회광반조(回光返照)는 모두 같은 뜻이다.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릴 줄 아는 것. 그런 사람은 최소한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수 있다.


김형경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어른들 말이라면 사사건건 반발심이 일던 사춘기에는 스무 살이 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그때가 되면 어른다운 일을 하면서 어른스럽게 말하고 성숙하게 행동할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생물학적·법률적 성인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내가 알아차린 단 한 가지 사실은 “어른도 별게 아니구나”였다. 스무 살이 되어도 나는 어른이 되어 있지 않았고, 둘러보면 또래들 모두 미숙하고 비릿한 아이처럼 보였다. 혹시 우리가 ‘어른’이라는 말에 지나치게 큰 환상을 부여해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마 그때부터 어른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집중적으로 자서전이나 평전을 읽으며 그들은 어떻게 절망을 넘어서고, 위기에 대처하면서 어른으로서의 삶을 살았는지 알고자 했다. 많은 이들의 삶을 종합하면 성숙한 삶의 기본 패턴이나 비밀 열쇠 같은 것이 있을 듯했다.

에릭 에릭슨은 인간이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여덟 단계가 있다고 제안한다. 유아는 생애 초기부터 2세까지 엄마가 돌보는 방식에 의해 신뢰감이나 불신감을 갖게 된다. 엄마의 보살핌이 아기의 기대를 충족하는 안정된 방식이라면 아이는 외부 환경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2세부터 3세까지는 부모의 사랑과 관대함에 의해 수치심과 자립심이 자리 잡는다. 아기를 자주 야단치는 부모는 수치심을 심어주고, 아기에게 일관되게 사랑을 주는 부모는 자립심을 형성시킨다. 자신을 믿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 맺는 감각을 키워준다. 하지만 우리는 10대 내내 자립심 대신 부모와 교사 말을 잘 듣는 것을 배웠고, 세상이 위험한 곳이라는 메시지를 듣고 자랐던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며 세상을 배워가던 20대에는 서른 살이 되면 삶이 좀 수월해질 줄 알았다. 지혜가 없어 매사가 어렵게 느껴지고, 미숙해서 어떤 일을 하든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서른 살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때가 되면 세상이 한눈에 조감되고 삶의 길목에도 가로등 같은 것이 켜져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서른 살이 되었을 때 내가 알아차린 단 한 가지 사실은 삶의 무게나 방향을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양치질을 200만번쯤 하거나, 500만그릇의 밥을 먹어치우는 것이 삶은 아닐 텐데 싶기도 했다. 아마 그때부터 삶의 의미를 궁금해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에릭슨은 정신 발달 단계에서 아기는 3세부터 5세까지 죄의식과 창의성이 갈린다고 한다. 가정이 건강하게 잘 기능하는 환경이라면 아이는 자기 생각을 마음껏 펼치며 창의성을 키워 가지만 병리적 가정에 적응하느라 온 힘을 빼앗기는 아이는 창의성 대신 죄의식을 안게 된다. 6세부터 12세까지는 아이의 정신에서 열등감이나 근면성이 형성된다. 학습을 시작한 아동은 자립심, 창의성을 바탕으로 주어진 학습을 근면하게 해내든지, 수치심과 죄의식 위에 열등감까지 떠안게 되든지 갈린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창의성과 근면성을 발휘해야 하는 시기에 나는 자주 죄의식과 열등감에 시달렸던 기억이 있다.

삶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인류의 지혜가 담긴 책들을 읽어나가던 30대에는 마흔 살이 되면 삶이 고요해져 있을 줄 알았다. 그때쯤이면 세상의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답을 가지고 있고, 인간의 마음 바닥까지 이해해 고요한 마음으로 그윽한 삶을 유지할 줄 알았다. 하지만 마흔 살이 되었을 때 내가 알아차린 사실은 마흔 살을 불혹이라 명명한 이유였다. 그때가 되면 마음이 더욱 치성하게 외부 자극과 유혹을 향해 내달리기 때문에 경계하는 차원에서 그런 이름을 지은 듯했다. 그때부터 비로소 세상과 관계 맺으면서도 내면에서는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이 되면
더 성숙해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여전히 멀리 있는 듯한 삶의 의미
다시 일흔 살, 여든 살을 꿈꾼다”


에릭슨의 발달이론에서 12세부터 18세까지 청소년기에는 정체성이 형성되거나 정체성에 혼란이 오는 상황을 맞게 된다. 그 시기에 친구, 외부 집단과 접촉하면서 의미있고 풍요로운 자기 개념을 만들거나, 외부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관계에서 자기가 누구인지 잊어버리는 현상을 맞는다. 19세부터 35세까지 청년기는 친밀감과 고립감이 교차하는 시기다. 애착 대상, 경쟁과 협력 대상들과 관계 맺으며 친밀감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거나, 그들로부터 후퇴하여 고립되는 삶을 추구하게 된다. 나는 청춘기 내내 내가 누구인지 혼란스러웠고, 이따금 사람들로부터 먼 곳을 찾아가 혼자 조용히 지내곤 했다.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내면을 탐구하던 40대에는 쉰 살이 되면 삶이 담백해져 있을 줄 알았다. 무엇인가를 구하기 위해 분주하던 마음도 쉬고, 떠들썩하게 어울리는 일에도 흥미가 없어질 거라 믿었다. 담백하고 단출한 삶 가운데서 오직 내면의 풍요로움을 향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쉰 살이 되었을 때 알아차린 사실은 여전히 세상과 질긴 미련으로 얽혀 있다는 점이었다. 그때부터 탐심을 내려놓으며 단순한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에릭슨은 36세부터 65세까지 장년기는 인간 정신에서 침체성과 생산성이 교차하는 시기라고 제안한다. 이전의 생산적 정신 기능을 계속 유지하거나, 자의나 타의에 의해 노동 생산성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노동 생산성뿐 아니라 삶 전체도 계속 생산적인 상태를 유지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로 갈린다. 나는 지금 이 시기에 있다. 삶의 형태는 단순하게, 내용은 생산적으로 살기를 꿈꾼다.

삶을 십진법 단위로 나누어 인식하는 일이 합당한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무슨 주문처럼 “서른 살이 되면, 마흔 살이 되면…” 하는 기대를 품곤 했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삶의 내밀한 방식이나 의미 같은 것이었다. 200만번의 양치질이나 500만그릇의 식사 말고, 저축통장이나 집문서 말고, 삶에는 다른 목적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밟은 교육 과정에는 그런 의문에 대한 답이 없었다.

에릭슨은 65세 이후를 노년기로 잡는다. 노년기에는 정신 영역에서 통합감과 절망감이 갈린다. 삶의 이전 단계를 잘 이행해온 사람이라면 그 모든 정신 자질들이 내면에서 통합되어 건강한 노년을 맞을 것이다. 그는 높은 차원의 도덕적 삶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사람일 것이다. 장년기를 지나며 생산적인 삶을 유지하고자 애쓰는 지금, 나는 또 꿈꾼다. 일흔 살이나 여든 살이 되면….


김형경 |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그는 사십대 초반의 직장인 남성이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했는데 결혼 후 그들 관계는 급전직하로 변화했다. 부부는 늘 갈등상태에 있었고 자주 격렬한 싸움을 벌였으며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도달했다. 그들은 무모하게 헤어지기보다는 함께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해보기로 했다.

두 사람은 우선 삶의 모델이 되어 줄 것 같은 선배들의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그러면서 저마다 자신의 문제를 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결혼하면서 처음으로 부모를 떠나 자립했고, 어른으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해내기 어려울 때마다 상대방을 탓하고 있음을 알았다. 또한 아기처럼, 혼자 해결할 수 없는 감정 문제를 상대방이 돌봐주기 바랐으며,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마다 떼쓰는 아이처럼 굴곤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부부는 저마다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남편되는 이는 자기를 알기 위한 방편으로 ‘자기 역사 쓰기’를 시작했다.

마음을 치유한다는 것은 우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상담 전문가들은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문제를 진단하고 지지와 격려를 보낸다. 정신분석이란 ‘성인이 되어 다시 하는 인생 이야기’이다. 성인의 입장에서 과거를 돌아보면 성장기에 오해에서 비롯된 마음 상함, 부모에게 물려받은 잘못된 자기 이미지, 미숙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비효율적인 생존법들을 알아차릴 수 있다. 프로이트 학파도, 융 학파도, 심리학에서도 심리 치료의 기본에는 자기 이야기 다시 하기, 이야기 회복하기 등의 작업이 있다는 공통된 제안을 한다. 전문가를 찾아가 상담을 받을 여건이 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혼자 할 수 있는 치유 작업으로 ‘자기 역사 쓰기’를 권한다.

학자들은 자기 역사 쓰기를 할 때 ‘삼대 삼차원’의 관점에서 기록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부모와 조부모의 삶의 역사부터 이해해야 그 연장선상에서 자신의 현재 모습을 짚어낼 수 있다. 또한 개인사와 가족사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역사를 기록해봐야 한다. 가령 1930년대 우리나라에서 ‘아내에 의한 남편 살해율이 세계 최고였다’는 사실을 이해하려면 당시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 하에 있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처럼. 삼대 삼차원의 관점에서 자기 역사를 쓸 때도 또한 삼단계의 글쓰기 깊이가 있다. 객관적 사실들에 대해 쓰기, 그 사실들에 대한 생각 쓰기, 생각보다 더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감정 쓰기가 그것이다.


▲ “‘과거’가 아프고 부끄럽다는 이유로
회피하고 봉인하려고만 하나
젊은 세대가 힘든 이유도 해법도
모두 ‘거기’에 숨어 있는데…”


우연한 기회에 나는 앞서 말한 이의 자기 역사 쓰기 원고를 검토하게 되었다. 500장쯤 되는 그의 원고에는 객관적 사건과 그에 대한 관념들은 잘 기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감정 쓰기 영역은 비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 영역을 세세하게 탐사하면서 기존의 원고 위에 다시 한 번 감정의 역사를 덧쓰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느끼는 마음의 불편함 속에 불안과 죄의식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부부싸움을 할 때조차 자기가 잘못했다고 여겨 매번 물리적 심리적 패배자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삶 앞에서 머뭇거리는 태도를 취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역사 쓰기 끝에 그는 마침내 아버지를 찾아가 가족의 역사를 들려 달라고 청했다. 온 가족이 함구해온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거절하다가, 망설이다가, 마침내 아들에게 “네가 이 이야기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런 다음 아버지가 해준 이야기는 빨치산의 역사와 거기에 얽혀 있는 삼촌 고모들의 가족사였다.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집을 나온 후 그는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엉엉 울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늑골보다 더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울음을, 몸이 녹는 느낌으로 오래 토해냈다. 평생토록 자신을 위축되게 했던 불안과 죄의식의 뿌리가 환하게 보였고, 울음과 함께 그 모든 감정들에서 풀려나는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고 한편으로는 허탈했다. 알지도 못하고 경험하지도 않은 그 사건 때문에 평생토록 불편했다는 사실도 마저 소화시켜야 했다. 이후 그는 새롭게 탄생한 듯한 경험을 했으며 생에 대해 건강한 비전을 갖게 되었다.

부모 세대가 해결하지 않은 문제, 회피하고 봉인해온 기억들로 인해 젊은 세대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다양한 방식으로 목격하곤 한다. 이십대 후반의 여성은 늘 불안과 수치심 같은 것 때문에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곤 했는데, 그녀가 찾아낸 불편한 감정의 뿌리는 자신이 혼전 임신된 아기였다는 사실이었다. 요즈음이야 혼전 임신을 축복받은 혼수처럼 여기지만 불과 얼마 전만 해도 혼전 임신은 쉬쉬하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풍족한 환경에서 귀하게 자란 삼십대 중반 여성은 가끔 내면에서 올라오는 “돈이 참 무섭다”라는 목소리를 듣곤 했다. 그녀는 가난에 대한 불안 때문에 인간적으로 참 좋은 남자들을 떠나보내곤 했다. 내면을 깊이 탐사해본 후에야 그것이 억척스럽게 자수성가한 아버지 목소리였음을 알게 되었다.

개인의 비밀이든 가족의 비밀이든 그것은 당사자가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한 사실을 일컫는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세르주 티스롱은 <가족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비밀은 삶의 기쁨을 해치고, 생각의 자유와 관용, 나아가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용기를 파괴한다. 가족의 비밀은 정치계나 조직 내에서 행해지는 비밀주의와 차원만 다를 뿐, 모든 전체주의 체제와 다를 바 없는 해악을 구성원들에게 끼친다.”

지금이라도 부모 세대가 묻어둔 기억을 꺼내고 회피해온 감정을 경험해서 자기 것으로 끌어안으면 더 이상 자녀에게 아픈 것들을 물려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기억을 잘 봉인할수록 잘 해왔다고 믿는 부모 세대의 신념은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를 회피해온 이들은 다음 세대에게 한국사를 가르치려 하지 않고, 국사 속에서 근현대사의 비중을 축소하려 한다. 지금 우리 젊은 세대가 힘들어하는 이유와 해법이 모두 그곳에 있는데, 그것을 더 깊이 묻으려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 젊은이들은 부모를 이해하는 길도, 불편을 해결하는 방법도 잃어버리고, 마침내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될 것이다.'


김형경 |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삼십대 후반의 그 후배 여성은 타인의 호의와 친절을 유도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돌아서서 생각하면 명백한 의존성임에도 막상 마주 앉으면 지지와 격려를 건네게 되곤 했다. 그녀는 여러 해를 두고 틈틈이 안부를 묻듯 나를 사용했다. 그녀의 삶이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감정더미에 묻혀 정체되어 있음이 명백히 보이던 어느 날, 독하게 그녀를 직면시켰다. “왜 아직도 나를 찾아와 이런 것을 달라고 하느냐?” 당시 그녀는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날부터 자기 삶을 점검하며 마음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몇 달 후 독한 직면의 의미를 이해했다는 e메일을 보냈고, 또 몇 달 후 혼자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지점을 만난 것 같다고 전화했다.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자기가 어떤 부모 환경에서 양육되었는지부터 알아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고향이 흥남이었다. 열네 살 때 남자 형제들만 흥남 철수의 길에 올랐다. 아버지는 평생토록 고향이나 전쟁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하시지 않았는데 딸이 묻자 처음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전쟁, 14세, 피란, 낯선 환경에서의 생존 등 그녀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삶을 세밀하게 떠올려보았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 그녀에게서 건너오는 슬픔이 미미하게 느껴졌다. 나는 분위기를 조금 가볍게 하기 위해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대중가요를 언급했다. 그녀는 그 노래조차 들은 적이 없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노랫말을 읽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 그녀에게서 건너오는 슬픔의 감정이 조금 강해진다 싶었는데 그녀가 문득 전화기 덮개를 덮었다.

“이건 나중에 혼자 있을 때 읽어야겠어요.”

그녀가 고개 드는 순간, 내면에서 느껴지는 슬픔을 회피하는 순간, 그 모든 것이 고스란히 내게로 건너왔다. 폭포수를 뒤집어쓰는 듯한 슬픔이 온몸을 감쌌다. 어지럼증이 지나가면서 거짓말처럼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눈 주변 근육이 마비된 듯 눈물이 제어되지 않았다. 눈물을 훔치며, 울음 섞인 목소리인 채로 나는 그녀에게 슬픔의 투사 현상에 대해 말해주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슬픔은 방금 네가 회피한 것이다. 그리고 너의 내면에 간직되어 있으면서 흥남이라는 단어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게 만드는 그 슬픔은 너의 아버지가 외면해온 것이다.”

이야기하는 동안 나의 슬픔은 서서히 가라앉았고, 내게서 떠난 감정은 그녀에게 되돌아갔다. 회피했던 슬픔을 받아안은 후 그녀는 오래 눈물을 흘렸다. 그녀와 나를 울린 슬픔은 그녀의 것도, 나의 것도 아니었다. 그녀 아버지의 슬픔이 그녀에게 대물림된 것이고, 잠시 내게 전염되었던 것이다.


▲ “양육자가 스스로 처리하지 못한 채
자녀에게 쏟아내는 감정들을
자녀는 고스란히
자기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부모가 해결하지 못한 감정의 문제들이 고스란히 자녀에게 대물림된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이해하는 감정의 전달 방식은 ‘동일시’이다. 부모가 세상 그 자체인 시기에 아이들은 부모 행동을 고스란히 흡수하듯 배운다. 폭력을 경험한 아이는 돌아서서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잔소리를 듣고 자란 아이는 돌아서서 누군가에게 똑같은 잔소리를 쏟아낸다. 양육자가 스스로 처리하지 못한 채 자녀에게 쏟아내는 감정들을 자녀는 고스란히 자기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공격자와 동일시’라는 개념은 히틀러를 가능하게 한 당시 독일인들의 심리를 설명하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부모가 해결하지 못한 감정의 문제를 자녀에게 물려주는 또 한 가지 방법은 ‘투사’이다. 부모가 내면 깊숙이 억압해놓고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감정들, 외부로 표현된 적도 없는 감정이 은밀하게 자녀에게 전달되는 방식이다. 전쟁 세대 부모들은 자주 자식을 나태하고 흐리멍텅하고 나약해 빠졌다며 못마땅해한다. 처음에는 그것이 삶의 환경 차이 때문이라 생각했다.

부모 세대는 절박한 생존 문제 앞에서 성실하고 강인하게 살아야 했고, 자녀 세대는 그렇게까지 살 필요가 없기에 차이가 있는 것이라 여겼다. 자기보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자녀들을 무의식적으로 시기하는 언어인 듯도 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부모의 그림자가 자녀에게 투사되는 방식이었다. 성실하고 강인하게 살면서 회피해온 반대편 감정들이 고스란히 자녀에게 전해져 자녀의 성격 일부가 되어 있었다. 못마땅해하는 그 순간까지도 부모들은 자기 내면의 부정적 감정들을 자식에게 떠넘기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우월한 자리에 서서 자녀를 심판하고 평가하는 부모 역시 본인의 수치심과 죄의식을 자녀에게 떠넘기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자녀가 마음에 흡족하지 않을 때마다 서로 “당신 닮아서 그렇다”고 말하는 부모는 어렵게 존재 증명을 해야 했던 자신의 불안감을 자녀에게 떠넘기는 셈이다. 표현되지 않는, 은밀한 부정적 감정을 물려받은 자녀는 탈출구를 찾기 어렵다. 그 자녀 역시 부모를 이상화하면서 자기를 비난하는 시선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부모가 해결하지 못한 심리적 문제가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또 다른 방식은 ‘투사적 동일시’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아무런 행동도, 언질도, 표현도 하지 않아도 한 사람의 감정이 그냥, 고스란히 주변에 전해지는 현상이 있다. 앞서 언급한 이야기에서 내가 후배 여성의 슬픔을 고스란히 느꼈던 것처럼. 정신분석 현장에서 분석가가 경험하는 이런 현상을 학자들은 오래도록 언급하지 않았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멜라니 클라인, 윌프레드 비온 같은 학자가 그런 사례들을 언어화하고 ‘투사적 동일시’라는 용어를 붙인 것은 최근 일이다. 심리학자 아치발트 하트는 그런 현상을 ‘감정의 전염’이라고 명명했다. 세밀하게 느끼든, 둔감하게 넘어가든 우리는 늘 주변 사람들의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 사회적으로 불행한 일이 생기면 전염된 듯 불행감이 번지고, 슬픈 일이 생기면 다함께 슬퍼한다. 가족 내에서는 그런 작용이 한결 정치하게 일어난다.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에게 심리적으로 나쁜 것들을 물려주었다는 사실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본인으로서는 최선을 다했고 자녀에게도 흡족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것, 자기 마음이나 행동을 성찰하기 전에 불편함부터 표현하는 태도가 자녀를 힘들게 만들었음을 알면 좋을 것이다.


김형경 |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일전에 ‘푸른역사 아카데미’에서는 김찬호의 <모멸감>에 대한 서평회가 있었다. 그 책의 토론자로 요청받았을 때, 책을 읽기 전, 모멸감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다. 정신분석이나 심리학 책 어디에서도 모멸감을 주제로 연구한 글을 본 적이 없었다. 모멸감이란 타인이 나를 모욕하거나 멸시한다고 느끼는 마음일 텐데, 그렇다면 그 마음의 배면에 있는 감정이 무엇일까 먼저 생각해보았다.

모멸감은 우선 병리적 나르시시즘의 다른 얼굴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특별하고 우월한 존재라 여기며 남들이 그렇게 대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상대방의 태도가 자기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 상대가 자신을 모욕했다고 느끼기 쉽다. 또한 모멸감은 낮은 자기 존중감과 관련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자기 존중감이 낮은 사람은 남들이 특별한 의도 없이 건네는 말이나 시선에서도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갖기 쉽다. 다음으로 모멸감은 자아가 약하고 자기 경계가 확고하게 형성되지 않은 사람의 특성이 아닐까 싶었다. 자신과 타인의 경계가 분명하고 타인에 대한 의존성이 없는 사람은 남의 말이나 행동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모욕, 음해하는 언행을 하더라도 그것은 분노나 시기심을 조절하지 못하는 상대방의 문제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모멸감은 당사자가 은밀하게 느끼는 수치심이나, 마음 깊이 숨겨둔 죄의식이 상대방에게 투사되어 작용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모멸감>이라는 책을 펼쳤을 때, 허방을 디디는 느낌이었다. 그 책은 사회학자의 관점에서 쓴 것이었다. 아무리 ‘멘탈 갑(甲)’인 사람이라도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 모욕적 외부 조건에 대해 고찰하고 있었다. 감정 노동자, 사회적 약자, 여성 등이 겪는 사회적 차별과 상대적 비하 사례들을 광범위하게 연구해 두고 있었다. 인간 심리를 이해하기에는 프로이트만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해 심리학에 사회학을 도입한 에리히 프롬이나 에릭 에릭슨과 같은 관점이었다.

이 지면에 글을 쓰면서 식민지, 전쟁, 가난의 경험이 남긴 박탈과 결핍의 문화를 넘어서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반복하자면, 나는 우리 사회의 정신적 붕괴, 심리적 파행이 식민지 시대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조선시대까지는 계급사회이기는 해도 개인이 개인에 대해 그토록 파괴적이고 모욕적인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35년에 걸친 식민지 피지배자로서 사는 동안 분노, 모욕, 멸시, 결핍, 슬픔 등의 감정이 국민의 마음 깊숙이 스며들지 않았나 싶다.


▲ “모멸감은 나르시시즘의 다른 얼굴
자기 경계가 확고하지 않은 사람의 특성
우리 사회의 정신적 붕괴·심리적 파행
식민지 시대에 기원 두고 있어”


인간 심리를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식민지 피지배 경험은 어떤 느낌일까 혼자 상상해본 적이 있다. 가장 작은 단위로, 가령 누군가가 내 집을 함부로 침범해서 내 행동을 규제하고, 내 물건을 함부로 내어가고, 사랑하는 가족을 전쟁터나 공장으로 끌고 가고…. 잠시 상상했을 뿐인데 머리로 피가 몰리면서 심장 박동이 거세어졌다. 그런 날들이 35년쯤 지속된다고 상상하자 딱 죽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해방조차 우리 힘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어서 우리는 심리적으로 피지배 경험을 제대로 극복한 적이 없다. 해방 이후 곧바로 발발한 한국전쟁도 한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 것도 아닌 이데올로기를 외부에서 들여와 목숨 걸고 그것을 수호하면서 동족을 죽인 행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이할 뿐이었다. 인간 심리에 대해 공부하면서 어렴풋이, 일본을 향했던 분노가 다른 대상을 필요로 했던 것으로 그 전쟁의 실체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학창 시절 우리가 식민지 시대에 대해 배운 것은 주로 항일운동의 영웅담 위주였다. 피해의 경험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기억하지만, 그 시대가 국민에게 어떤 감정을 떠안겼는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말하기보다, “일본이 우리를 강제로 점령했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두 문장에 내포된 심리적 차이가 아주 크다는 사실에 대해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 적도 있다. 심리학이 식민지 지배자들의 학문이어서 그런지, 식민지 피지배 경험이 공동체 구성원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글을 본 적은 없다. 국내 학자 누군가 그 분야를 연구해서 책으로 써줬으면 소망하기도 했다. 그런 작업들이 선행되어야 우리의 집단 무의식이 된 듯한 모멸과 피해의 경험을 의식화하고, 그 감정들을 인정한 다음, 건강하게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 온다면 누가 어디를 참배한다고 해도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의 행동을 냉철한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우리가 더욱 강한 나라가 되는 쪽으로 마음을 모아, 다시는 그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지혜와 힘을 쌓으면 그만이다.

역사 사회적 상황에 의해 촉발되는 감정은 외부 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 해소할 수 없다. 윗세대가 해결하지 못한 모욕과 멸시의 감정이 오늘도 물 흐르듯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게 보인다. 예전에는 이념이나 사회적 차별의 문제로 행해지던 모욕과 멸시가 요즈음은 경제적 상황에서 발생하고 있다. 산업화와 함께 개인은 노동력이나 서비스 상품이 되어 분노나 비하감을 표출해도 괜찮은 물질처럼 보이는 듯하다.

한 주상복합 아파트 주차장에 붙은 공지문을 본 적 있다. 경제적으로 우월하다고 느끼는 아파트 주민들이 자기보다 열등하다고 믿는 상가 입주자들의 주차 공간을 제한하는 소송을 낸 모양이었다. 주차장 사용을 차별하는 행위는 불법이라는 판결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공지문은 종이일 뿐 주차장에는 노란색 선으로 구획된 ‘아파트 입주자 전용’이 대부분이었다. 그곳에 주차된 외부 차량에는 경고 스티커까지 붙어 있었다. 차별과 모욕을 주고받는 문제가 개인들의 자기 존중감과 공감 능력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면 문제 해결에 한 세대만큼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 서평회에서, 얼마 전 모욕감 때문에 분신한 경비원을 기리며 “경비원을 존경하는 방법은 없는가?”라고 질문한 이가 있었다. “아파트 경비원 임금을 의사 연봉만큼 올려주면 된다”고 답했다. 말하고 나니 우리는 틀림없이 작은 성취를 과시하고 싶어하는 심리적 졸부인 듯했다. 사랑받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사랑할 줄 모르듯, 존중받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존중할 줄 모른다. 자신도 타인도.


김형경 |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사십대 초반의 그녀는 지난봄 회사에서 중요한 직책으로 승진했다. 열심히 일해서 얻은 정당한 성취였고 원했던 일이기에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최초의 기쁨이 지나가자 막다른 벽에 부딪친 듯한 마음 상태가 되었다. 다행히 그녀는 자기 성찰 능력이 있었기에 자기가 느끼는 막막한 감정이 일종의 불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점은 그 불안의 근거가 없으며, 평소처럼 조절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름대로 여러 가지 노력을 해본 듯했다. 그러다가 일면식도 없는 내게 메일을 보내왔다.

그녀처럼 승진 후 혼돈에 빠지는 여성을 더러 만난 일이 있다. 그녀들은 대체로 업무를 스마트하게 해내고, 조직 생활에 잘 적응해온 성격 좋은 이들이다. 상사나 사용자 입장에서 볼 때 믿음직한 부하 직원이었기에 그 자리까지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승진 후 관리자가 되면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 물론 남자도 승진하면 막중한 임무와 무거워진 책임감 앞에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부하 직원을 관리·감독하는 일 자체를 불편해하지는 않는다. 세상을 수직적 경쟁 구조로 파악하는 남성들에게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을 수평적 평등 구조로 이해하는 여성들은 권력을 사용하는 일을 불편해한다. 타고난 특성도 아니고, 배운 적도 없는 역량을 한순간에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승진한 여성이 혼란에 빠지는 지점은 바로 그곳이다. 그녀들은 그 자리까지 가는 동안 사용했던 역량과는 전혀 다른 것을 요구하는 업무 앞에서 어려움을 느낀다. 누구든 승진했다는 여성을 만나면 나는 이렇게 묻는다. “권력을 사용하기가 쉽지 않지요?” 그러면 그녀들은 다양한 속내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하 직원의 잘못을 지적하기 싫어 뒷수습을 직접 했다고, 업무를 지시할 때마다 내면에서 불편한 감정이 올라온다고, 아무래도 적성에 맞지 않아 사표를 써둔 상태라고. 내가 보기에 열 명의 여성 중 많아야 두 명 정도만이 권력을 잡았을 때 마음껏, 거침없이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80퍼센트의 여성은 혼란 상태에서 천천히 권력 사용법을 배워나가거나, 기어이 그것을 반납한다. 내게 메일을 보낸 여성도 같은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권력 사용의 어려움 외에도 그녀는 또 한 가지 이상한 감정을 고백했다. 일종의 배신감, 허탈감 같은 걸 느낀다고 했다.

“나는 여기까지만 오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더 가라는 거죠. 그토록 열심히 일한 대가가 고작 이것인가, 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녀는 스스로도 그 마음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전형적인 무의식의 목소리였다. 어렸을 때 부모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부모가 요구하는 일을 모두 해냈으나 늘 더 큰 요구만 받아온 사람의 내면 마음이었다. 좋은 성적표를 가져가면 따뜻한 포옹과 사랑의 말이 있을 거라 기대한 아이가 여전히 내면에 존재하는 거라고 말해주자 그녀는 눈물을 보였다. 아무리 좋은 성적을 받아도 칭찬은커녕 늘 다른 형제와 비교하던 부모에 대해 말했다.


▲ “여성 직장인들은 안으로 남성 조직에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면서
밖으로는 그들의 트랙 안에 놓인
특별한 허들을 넘어야 한다.”

권력 사용법을 배워야 하는 점, 무의식의 인정 욕구가 현실을 잠식하는 것 외에도 여성의 사회생활을 어렵게 하는 요소가 한 가지 더 있다. 여성의 내면에 상징계가 잘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이다. 상징계란 의식 속에 형성되는 요소로서, 자신이 소속된 사회의 상징 체계를 이해하고, 사회에 편성되어 있는 관습과 제도를 수용하고, 사회의 규칙과 질서를 지키는 역량을 말한다. 상징계는 대여섯 살 무렵, 아버지가 지배하는 가정의 규칙과 질서에 순응하면서 만들어진다. 아들들은 아버지의 말에 순응하고 아버지와 잘 지내는 법을 익히는 과정에서 절로 상징계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딸은 아버지의 권력에 복종하기보다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할 때면 권력자의 말에 복종하기보다는 그의 마음에 들고 싶어하는 태도를 보인다.

상징계의 부재, 현실의 냉정한 질서와 규칙에 대한 인식 결여는 여성의 맹점처럼 보인다. 사적인 삶의 영역에서는 문제되지 않지만 직장에 들어가면 바로 그 지점에서 저항감을 느낀다.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여성들이 어려움을 호소할 때 사용하는 관용구 중에 “세상이 내 맘 같지 않아요”라는 게 있다. 세상이 어땠으면 좋겠느냐고 물어보면 서슴없이 이렇게 답한다. “온정적이고 평등하고 안전하고 배려하는….” 그런 세상은 본인의 환상일 뿐, 현실의 실체가 아니지 않으냐고 물으면 “그래서 내가 세상을 바꿀 거예요”라고 대답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먼저 세상에 대한 그 환상을 버려야 한다. 눈앞의 냉혹한 현실을 수용하고, 그곳에 적응하고, 그 안에서 힘을 얻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물으면 두 가지 태도가 돌아온다. 아프게 그 말을 수용하거나, 비겁한 타협의 언어로 치부하거나.

여성의 사회생활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양성평등을 말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남성의 법칙으로 움직이는 남성 중심 사회이며 여성이 그 속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채 100년도 되지 않았다. 남다른 공감 능력, 수평적 관계 맺기, 돌보는 기능 등을 여성 리더십의 특성이라고 칭송하지만 그것은 여성에 대한 편견이 적은 사회에서나 통용되는 자질이 아닐까 싶다. 여성 직장인들은 안으로 남성 조직에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면서 밖으로는 그들의 트랙 안에 놓인 특별한 허들을 넘어야 한다.

남자들은 여성이 일에서 평등하기를 바라면서도 동료가 아닌 여자로 바라보기 좋아한다. 예쁜 여자는 착할 뿐 아니라 유능하다고 믿고 싶어한다. 여성 상사가 부임해와도 우선 “예뻐?” 하고 묻는다. 또 하나의 허들은 남성 우월감에서 비롯되는 편견의 시선을 받아내야 한다는 점이다. 남자가 화를 내면 당연한 일로 여기면서 여자가 화를 내면 감정 조절을 못한다고 평가한다. 남자가 침묵하면 깊은 숙고에 들어갔다고 여기고 여자가 침묵하면 토라져서 말이 없다고 평가한다. 무엇보다 남자들은 결코 여자가 권력을 갖기를 원하지 않는다. 위험한 자리, 끝이 빤히 보이는 자리가 아니면 여자에게 내어주지 않는다. 그런 자리에서라도 여자가 오래 머무를까봐 간간이 흔들기를 멈추지 않는다.


김형경 |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요즈음 도심 거리를 걷다보면 곳곳에서 외국인 관광객들과 맞닥뜨린다. 고궁이나 쇼핑몰은 물론 전통사찰 같은 곳을 방문하는 이들도 많다. 사찰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더러 법당에 들어가 예를 올리기도 하고, 마당에 서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법당 밖 계단에 걸터앉아 쉬기도 한다. 산책길에 나도 가끔 그들처럼 계단에 걸터앉아 쉬는 일이 있다. 얼마 전, 관광객들 옆에 앉아 더위를 피하는데 바쁘게 법당으로 향하던 초로의 여성이 갑자기 우리 쪽으로 다가오더니 외국인 관광객을 향해 높고 빠른 톤으로 한국말을 쏟아냈다.

“아이고, 절에 오면서 이렇게 다 벗은 꼴로 오다니, 이거 가려야 돼, 이거.”

돌아보니 그녀는 벌써 외국인 여성의 어깨에 걸쳐진 스카프 자락을 들어 그것으로 그녀의 가슴께를 덮는 시늉을 반복하고 있었다. 놀란 내가 멈춘 숨을 내쉬기도 전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재빠르게 토해낸 후 법당으로 들어갔다. 나보다 더 놀란 쪽은 관광객들이었을 것이다. 여성 두 명, 남성 한 명으로 구성된 그들은 크게 뜬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말이 없었다. 내가 먼저 그들을 향해 웃으며 양해해 달라는 눈빛을 보내자 그들도 허탈한 웃음을 웃기 시작했다.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듯한 웃음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오래도록 나는 진심으로 그것이 궁금했다. 우리는 왜 그토록 거침없이 타인의 삶 한가운데로 무자비한 손길을 들이미는지. 늘 남들에게 관심이 많고, 타인을 서슴없이 판단하거나 평가하고, 타인에게 자기 생각이나 신념을 강요하는지. 그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측면은 타인에게 그런 것들을 들이미는 사람들이 늘 “이게 다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이다”라는 조건을 붙인다는 점이었다. 한때는 <당신을 위해 하는 이야기>라는 소설을 구상한 적도 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는 이가 상대에게 자기중심적이고 가학적인 통제의 언어를 쏟아내는 장면을 극단까지 묘사해보고 싶었다.

각설하고, 그 장면을 목격한 뒤 다시 걸으며 나의 외국여행 경험을 떠올려 보았다. 어느 나라에서도, 누구로부터도 그토록 서슴없이 관광객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언어를 들은 경험이 없었다. 외국을 여행하다보면 그 나라 국민들이 관광객에게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가 몸으로 느껴진다. 관광 수입에 많이 의존하는 나라는 관광객에게 친절하고, 그만큼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범죄도 많다. 관광 수입이 국민소득에 별로 영향을 주지 않는 나라는 관광객을 그저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긴다. 그런 나라 국민들은 자기 삶에 몰두해 관광객을 의식할 틈도 없어 보인다. 특별한 시선을 보내지도 않고, 자기 신념을 강요하는 일은 더욱 없다.

우리가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는 이상하게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외국인이라면 무조건 추앙하면서 친절하게 대하거나, 이유 없이 경계하고 폄하하는 것. 한 미국인 정신분석학자의 책에서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반미 감정이 높다”는 분석을 읽은 일이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인간은 원래 의존하는 대상을 사랑한다. 분노 역시 의존하는 자의 특성이며, 원했지만 받지 못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 “외국인 관광객이 점점 늘고 있다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좋은 선물은
우리 내면의 감정이 투사되지 않은
편안한 일상 경험이 아닐까”


세계 모든 나라는 국경선을 맞댄 나라와 사이가 좋지 않지만 우리가 주변국들을 부끄러운 언어로 비하해서 부르는 일은 특별히 이상하다. 2001년 처음 중국을 방문해 왕푸징 거리에 섰을 때 선연하게 마음을 지배한 생각은 이것이었다. “이 나라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자본주의 세계의 지배자가 되겠구나.” 개혁·개방을 이루어가는 속도나 규모만이 아니었다. 일상에서 느껴지는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방식,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의 태도 등 모든 면에서 감탄할 만한 요소가 보였고 저력이 느껴졌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다. 당시 중국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그 나라를 약간 옆눈으로 보던 태도가. 그것은 현실 검증을 거치지 않은, 다만 내면의 불안을 낯선 대상에게 투사하는 미숙한 태도일 뿐이었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보살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늘 의존할 사람이 필요하듯, 내면의 불편한 감정들을 인식하지도 소화하지도 못하는 우리는 그것을 쏟아낼 대상을 필요로 한다. 괴물, 악마, 마녀 등은 중세까지 인간이 내면의 불편하고 불쾌한 감정들을 투사해 만들어낸 대상들이다. 저 이상한 존재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에는 적과 원수를 만들어내 대규모의 긴 전쟁을 치렀다.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얽혀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오늘날에는 나쁜 감정을 쏟아낼 대상이 약자와 이방인밖에 남지 않은 듯 보인다.

사실 이방인은 인류의 처음부터 불안을 유발하는 존재였다. 당시 외부에서 오는 낯선 사람은 대체로 침입자였다. 무기를 앞세우지 않더라도 이방인이 들여오는 새로운 문물은 기존의 사회 질서를 흔들곤 했다. 권력을 가진 자일수록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불쾌한 대상으로 만들어 폄하할 필요가 있었다. 불안과 공포를 가리기 위해 근거 없는 편견, 이상한 신념, 강박적 규칙들을 만들어 사회를 통제했다. 우리는 지금도 낯선 이들 앞에서 미미한 불안감을 느끼며, 저 초로의 아주머니처럼 불안을 투사하고 신념을 강요하는 행위를 한다.

외국 여행을 하던 초기에는 한 나라의 국민소득이 그 나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비례하는 듯 보였다. 국민소득이 낮기 때문에 여성에게 돌아가는 기회와 혜택이 적은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비하되고 억압당하는 여성이 키워내는 다음 세대가 어쩔 수 없이 발달을 방해받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난 후에는 한 나라의 도덕성과 국민소득이 비례하는 듯 보였다. 가난하기 때문에 사기, 도둑질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니라, 부정부패 행위들이 누적되어 그 사회의 근본 에너지와 추진력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요즈음에는 또 다른 생각이 든다. 한 나라의 국민소득은 그 나라 국민들의 자기성찰 역량과 정신적 성숙도에 달린 게 아닐까. 개인의 창의성이나 성취도가 불안을 처리하는 능력에 달려 있듯이 한 사회의 발전 잠재력도 그럴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점점 더 많이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있다.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우리 내면의 감정이 투사되지 않은 편안한 일상 경험이 아닐까.


김형경 |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젊은이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가끔 친구 문제에 대해 질문받는다. 가학적인 친구 관계를 끊지 못하는 경우, 이기적인 친구 때문에 늘 소극적인 분노 상태에 있는 젊은이들을 본다. 그러면 우선 이렇게 대답한다. “서른 살에도 친구 문제로 고민한다는 것은 시기 착오적이다.” 그런 다음 사마천의 <사기(史記)> 계명우기(鷄鳴偶記) 편에 나오는 네 종류의 친구 이야기를 해준다. 적우, 일우, 밀우, 외우.

적우(賊友)는 도적 같은 친구이다. 자기 이익을 위해 친구를 사귀는 사람을 말한다. 이런 친구는 상대가 더 이상 나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관계가 소원해진다. 일우(닐友)는 즐거운 일, 어울려 노는 일을 함께하는 친구이다. 적우나 일우는 친구의 어려움을 떠안을 마음이 없고, 나쁜 일이 생기면 상대방을 탓하기 십상이다. 밀우(密友)는 친밀한 마음을 나누는 친구이다. 비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내밀한 어려움을 부탁하며, 상대의 어려움을 내 것처럼 느낄 수 있는 단계이다. 외우(畏友)는 서로 경외하는 친구이다. 존경하면서 장점을 배우는 친구, 허물을 말해주면서 도와 덕을 함께 닦을 수 있는 친구를 말한다.

계명우기의 네 가지 친구는 정신분석학에서 제안하는 인간 정신의 발달 단계와 동일한 궤적을 그린다. 적우는 초기 발달 단계와 관련이 있다. 출생 직후부터 인간은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하는 시간을 보낸다. 그 시기 아동은 부모를 착취적으로 사용한다. 부모가 자기 닮은 아기를 보며 나르시시즘적인 기쁨에 빠져 있는 동안 부모의 자원을 도적처럼 이용한다. 이 시기의 아기는 부모를 마음껏,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건강한 정신 발달을 이룰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성인이 된 후에도 타인과의 관계를 자기 이익만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는 초기 발달 단계에서 부모에게 충분히 의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생존과 성장을 위해 부모에게 편안히 의존하고자 하는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채 무의식에 남아 있다는 의미다. 해결되지 못한 의존 욕구는 당사자를 추동하여 이기적인 대상 관계를 맺도록 만든다. 상대방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상대방의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도 된다고 믿으며, 아무리 많이 받아도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도록 한다.

일우는 사춘기 발달 단계와 관련된다. 사춘기가 되면 부모 세계를 벗어나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한다. 심리적으로 부모로부터 독립하면서 친구를 새로운 동일시 대상으로 삼는다. 거울처럼 친구를 보고 배우면서 친구와 함께 여행, 캠핑 등 즐거운 활동을 한다. 그렇게 세상을 탐험하면서 자기 세계를 확장하고 자신감, 의리, 창의성 등 정신 역량을 키운다. 사춘기 아이들이 그토록 반항하는 이유는 부모 세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정 떨어지는 행동을 해야 정을 뗄 수 있다고 믿으며, 혹시 뒤따를지도 모르는 부모의 보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 “도적 같은 친구, 즐거운 일만 같이하는 친구,
친밀한 마음을 나누는 친구, 서로 경외하는 친구.
친구와 내 자신, 집단과 조직도 네 가지 방식이 얽혀 있다.”


가끔 어떤 남자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으면서도 가족보다 친구를 더 좋아하고, 친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아이가 아픈 시기에도, 아내가 피로를 호소해도 친구 전화를 받고 바로 외출하는 남편에게 실망한 아내들 이야기를 드물지 않게 듣는다. 그런 이들은 여전히 사춘기 발달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며, 사춘기에 제대로 친구 관계를 맺지 못한 트라우마가 내면에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가장 역할을 피하기 위해 친구 핑계를 대는, 아내의 적우일지도 모르겠다.

밀우는 청춘기 발달 단계와 관련된다. 청춘기가 되면 누구나 연애를 꿈꾸며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한 사람을 갖고 싶어한다. 그 친밀한 사람과 함께 내밀한 소망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한다. 친밀한 대상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원가족을 떠나서 자기만의 가정을 갖는다는 의미와 연결된다. 친밀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인내, 배려, 헌신 등의 정신 기능을 획득해간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친밀한 관계는 성장기의 결핍과 좌절을 보살펴주는 기능을 한다. 친밀한 관계 속에서 나누는 보살핌은 한 사람의 정신을 성장시켜, 주변에 사랑을 나누어줄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이끈다.

가끔 아내의 사랑을 두고 아들과 경쟁하는 남편,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는 딸을 시기하는 아내를 본다. 아들을 낳은 후 아내가 자기에게 관심이 없다고 불평하는 남편, 시어머니에게 효도하는 남편을 보며 소외감을 느끼는 아내는 모두 친밀감에 무능한 사람인 셈이다. 주도적인 태도로 친밀감을 주고받아야 함에도 그저 아기처럼 수동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뜻이다. 밀우의 범주 속에는 정서적 친밀감을 나누는 동성 친구도 포함된다. 하지만 친밀한 동성 친구에게 고착된 사람은 가끔 이성과의 친밀한 관계에 관심이 덜하다는 부작용이 있다. 그것은 여전히 사춘기적 일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뜻처럼 보이기도 한다.

외우의 자격은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이면 반드시 획득해야 하는 정신 기능이다.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려면 먼저 공동체 구성원을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선배들의 지혜를 배우고, 사회에 통용되는 질서와 관습을 습득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잘못을 범하면 빨리 개선하고 허물을 말해주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존경하면서 배울 수 있는 친구나 선배를 만날 수 있다면 사회생활의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서른 살에 가학적인 친구 문제로 갈등하는 일이 시기 착오적이라고 말한 이유가 거기 있다.

세상에는 네 가지 친구가 혼재되어 있다. 어떤 친구는 필요할 때 찾아와 필요한 것만 챙겨서 떠난다. 어떤 친구는 술자리나 게임 자리에 불러내고, 어떤 친구는 내밀한 이야기를 하염없이 털어놓으며 무의식적 치유 작업을 꾀한다. 어떤 친구는 그 삶의 모습만으로 가르침을 주고 허물을 알아차리도록 일깨워준다. 한 사람의 내면에도 네 가지 친구 요소가 존재할 것이다. 친구가 많다는 사실을 자랑하며 그것을 인간성의 척도쯤으로 여기는 이의 친구 그룹에도 네 가지 친구가 섞여 있을 것이다.

개인뿐 아니라 집단과 조직들도 네 가지 방식으로 서로 관계를 맺는 듯 보인다. 유기체와 같은 사회도 네 가지 발달 단계에 따라 생성·변화하는 듯 보인다. 우리 사회는 어느 발달 단계쯤에 위치하는지 혼자 생각해본다.


김형경 |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 12일부터 사흘 동안 한국상담학회의 연차 학술대회가 있었다. 대학 건물 한 동을 통째로 빌려 여러 강의실에서 세미나, 심포지엄, 워크숍 등이 개최되었다. 주최 측에 의하면 3500명이 등록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독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질문을 받았다. “뉴스를 보기 두렵다. 우리 사회가 대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이것은 10여년 전부터 독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꾸준히 받아온 질문이기도 하다. “치유를 이야기하지만 우리 사회가 현상적으로는 더 위험하고 혼란스러워 보이지 않느냐?” 그럴 때마다 나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지금의 이 혼돈은 건강한 사회로 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불안해할 게 아니라 의미를 이해하면 되고, 낙담할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 된다고.

심리치료의 핵심은 양가성을 통합하는 데 있다. 치유 과정에서는 반드시 내면에 억압하고 외면해둔 무의식의 어두운 측면, 아프고 나쁘고 찌질한 모습들이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 자기의 못난 모습을 인정하고, 외면해둔 아픔을 경험하고, 그것까지 자신의 일부로 수용하는 과정이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는 핵심이다. 대부분의 우리는 자기가 옳고 정당하고 선하다는 신념에 사로잡혀 내면 깊이 억압해둔 그 반대 성향들을 끊임없이 타인에게 투사하고 있다. 그런 방식으로 자녀를 통제하고, 타인을 판단하고, 자기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더 나빠진 듯 보이는 현상은 지난 세기 동안 억압하고 외면해온 마음의 문제들이 일제히 표면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치유 과정에 있다는 방증이다.

새천년이 시작되던 첫해, 명문대 출신 청년이 인텔리전트 부모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충격적인 사건 앞에서 우리 사회는 아들의 패륜을 비난했다. 그 후로도 청소년들이 양육자에게 폭행을 저지르는 사건이 일어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손쉽게 자식들의 불효를 비판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사건들을 계기로 우리는 부모 세대의 양육 방식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로부터 10년쯤 지난 지금 우리는 부모 세대가 해결하지 못한 심리적 문제들이 자녀에게 대물림되면서 어떻게 다음 세대를 아프게 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잘못된 양육에 대해 부모가 자녀에게 사과하기도 하고, 새롭게 부모 역할을 배우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부모가 항상 옳다”는 이상한 신념도 점검하고 있다.

내게는 고등학생인 조카가 있다. 이따금 용돈을 보내주는데 어느 시기에 자주 많은 액수의 돈을 요구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고모가 걱정돼서 하는 질문인데, 혹시 선배 형한테 돈 갖다줘야 하는 일 있어요?”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는데 저쪽에서 즉각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그런 일은 없어요. 만약 그런 형이 있다면 정학 맞게 할 수 있어요.” 조카의 편안한 말투에 진짜 안심이 되었다.

왕따나 학교폭력으로 자살하는 청소년들의 뉴스가 터져나오던 시기는 2000년도 중반이었다. 그때는 신문을 펼치기 두려울 정도로 자주 청소년의 죽음과 마주해야 했다. 많은 청소년들을 잃고 나서야 우리는 적극적으로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조카의 대답으로 미루어보면 이제 안심할 만한 안전 시스템이 갖추어진 듯하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
부끄러움과 함께 잘못을 인정하고
아프겠지만 구조를 해체해서
재조립할 수 있는 용기가 요구된다”


우리는 10년쯤 전부터 ‘죽음의 문화’와 맞닥뜨려왔고, 누군가의 죽음을 계기로 사회 문제를 해결해가는 중이다. 희생자가 생기기 전에 미리 성찰하고 개선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기에는 한 세기 동안 방치해온 심리적 문제들이 너무나 컸다. 문제가 곪고 곪아서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며 희생되어야만 그쪽으로 고개 돌리고 무엇인가 잘못되었구나 알아차리곤 했다. 희생양이 되는 이들이 언제나 알토란 같은 청소년, 청년이라는 점에 늘 미안하고 마음 아팠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가까운 사람들과의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희생된 청소년들은 정말 천사였을 거야. 우리 사회의 가장 깊은 상처 부위를 직면시키기 위해, 우리나라가 건강해지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위해, 그렇게 돌아갔을 거야.” 이런 생각은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한 환상적 현실 인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고 원인과 함께 우리 사회의 묵은 문제들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의 죽음이 있어야만 아픈 곳을 인식하는 관행을 거듭 확인했다. 이런 문제를 떠안은 채 우리는 또 군부대에서 쏟아져나오는 죽음의 문제들과 마주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일 것이다. 그것은 부끄러움과 함께 우리가 잘못되어 있었음을 인정하고, 아프겠지만 구조를 해체해서 재조립할 수 있는 용기를 말한다.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이 취한 서로 다른 태도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은 전범을 가려서 처벌하고, 부끄러운 역사 시설들을 보존하며 반성하고, 철학과 예술의 나라에서 어떻게 히틀러가 가능했는지 지금도 성찰하고 있다. 일본은 전쟁 중에 저지른 행위에 대해 회피하거나 합리화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아왔다. 지금도 나르시시즘적인 국가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그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다 된 지금,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던 두 나라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 보인다. 독일은 유럽 대륙의 정치 중심이며 경제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지켜나가고 있다. 일본은 정치적으로 자충수를 두며 고립되어 가고, 30년에 이르는 긴 경제 침체를 겪고 있다.

우리 사회는 성찰하고 개선하며 회복해 가는 과정에서, 좀 더 큰 용기가 필요한 고비를 넘고 있다. 국가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나는 “한 세대쯤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30대, 40대들이 스스로 건강해지면서 자녀들을 잘 키워내면, 그들이 사회 주역이 되는 30년이나 40년쯤 후 우리나라는 안정되고 강인하며 관대한 사람들의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 상담학회 연차대회에서 나도 질문을 해보았다. 현장에 있는 이들은 무엇이 가장 힘든지. “점점 어려운 내담자들이 오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것도 다행스러운 현상으로 보였다. 이제는 많이 아픈 사람들도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므로.


김형경 |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