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리영희 선생님께서 생전에 백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날도 무더운 여름이고 지금보다 몸무게도 몇 근 적게 나가고 해서 젊음의 만용으로 깡총 짧은 핫팬츠를 입고 병문안을 갔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녹즙 배달을 하고 있었는데, 몸에 좋은 샘플을 가져가서 빨대에 꽂아 드리면 20㎖짜리를 몇 개씩 잡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날은 내 바지를 보자마자 선생님의 흰 눈썹이 버럭 하고 찌푸려졌다. 원래도 말씀이 많은 분은 아니었다. 그래도 문병을 갈 때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곤 했다. 반야바라밀이라던가 문화대혁명의 진정한 의미라던가 NLL의 정확한 정의 같은 거였다. 하지만 그날 선생님의 말씀은 달랐다.

“여기는 생명을 다루는 곳인데 그 옷차림이 뭐야!”

“아니 그러니까 다들 힘 좀 내시라고….”

“여기가 굳이 병원이기 때문이 아니야! 나는 학교에 있을 때도 여학생들이 그런 차림을 하는 걸 아주 싫어했어!”

“다시는 안 입을게요. 제발 화 좀 내지 마세요!! 잘못했어요!!”

한바탕 역정 내시는 것을 듣고, 나중에 혼난 걸 갖고 툴툴댔더니 마침 그 자리에 계시던 문부식 선생님이 깔깔 웃으며 ‘그건 나이든 내게 왜 이러냐, 하시는 거지’ 하고 농으로 달래 주셨지만, 나는 그 이후 진지하게 그 숏팬츠를 봉인해 버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상의 오빠’가 그리도 싫다는데 굳이 핫팬츠를 입을 게 뭐람.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혼자 3년상을 치르고, 그러고도 한두해가 지나서야 초여름답지 않게 더운 날, 오랜만에 짧은 바지를 꺼내 입었다. 하늘에서 ‘넌 옷차림이 그게 뭐야!’ 하는 목소리가 들려올까봐 잠시 찔끔했지만,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아 안심하고 개를 데리고 이른 아침 천변 산책을 나갔다.

그런데 그때의 기억인지 아침 일찍 운동하는 어르신들이 뭐라고 할까봐 ‘쫄곤’ 하는데, 아직 뭐라고 야단을 맞은 적이 없다. 개를 데리고 버스터미널까지 가서 터미널 화장실에서 물을 먹이고 오는 코스인데 터미널 경비 아저씨가 달려오기에 개를 왜 데리고 오느냐, 혹은 넌 입고 있는 옷이 왜 그 ‘꼬라지’냐, 하는 소리를 들을까봐 조마조마 했는데, 단지 개에게 장난을 치기 위해서였다. 그 경비 아저씨만 그런 것도 아니고 다른 아저씨들도 다 장난꾸러기였다. 나이도 지긋한 양반들이 좀 ‘띨띨’하게 생긴 우리 개를 보면 하나같이 장난을 걸려고 다다다다 달려왔다. 그러고 보니 서울과 시골 동네 경비 아저씨들이 참 다른 게, 서울의 경비 아저씨들은 대개 얼굴에 심통 나 있는 경우가 많다. 작은 가게나 회사라도 사장님, 부장님 소리 듣던 분이 많아 그렇지 싶은데, 시골의 경비 아저씨들은 ‘왕년에 내가 뭘 하던 사람인데’ 하는 그런 느낌이 없는 게 좋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이 너무 출세 맛, 돈 맛 본 경험 있는 것도 아주 좋지만은 않겠다 싶다.

핫팬츠와 분홍구두 (출처 : 경향DB)


녹즙 배달을 다닐 때 경비 아저씨들은 ‘반장님’이라고 부르라며 때마다 무슨 놈의 ‘인사’(녹즙 세트 좀 가져오라는 얘기다)를 그렇게나 요구하던지! 또 ‘알바’하던 호프집 주방 이모는 누가 자기를 이모라 부르면 불같이 화를 내며 “원래 나 내 가게 하던 사람이야”, 하는 소리를 손님에게 몇 차례나 해대며 발을 동동 구르는 폼이 온몸의 털이 서도록 무서웠다.

지금 내가 사는 지방의 소도시는 그런 사람들도 없고 하니 핫팬츠 따위는 실컷 입을 수 있다. 앞으로 몸무게 몇㎏은 빼야 민폐가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올봄에는 채 낫지 않은 몸과 마음을 이 유쾌한 충청도 할아버지들을 구경하면서 개를 끌고 매일 왔다갔다 하면 심신이 다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아주 낙관적인 희망이다. 생각 같아서는 그 모든 할아버지들에게 천변에 핀 봄꽃을 한 아름씩 안겨드리고 싶다. 물론 우리 사상의 오빠, 영희 오빠를 포함해서.


김현진 |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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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핫팬츠

영화 <국제시장>을 봤으니 나도 이제 ‘천만 대열’에 확실히 합류한 셈이다. 고단했던 삶의 스틸들은 재미와 눈물이라기보다 여전히 진행되는 오늘의 이야기였다. 그것은 암울했던 지난날의 가난과 이념, 희로애락들이 표정만 달리할 뿐 지금껏 우리 앞에 서성대고 있다는 답답함에 대한 반항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의 잔상과 교훈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피란지 천막학교에서 처음 만난 ‘덕수’와 ‘달구’의 우정이 파독 광부 시절은 물론 베트남전쟁 그리고 고집스러운 노인이 될 때까지 껌딱지처럼 이어지고 있다는 일종의 ‘부러움’이었다.

나이를 먹고 일상에 떠밀리다보면 우린 때로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산다. 그 가운데 하나가 친구, 우정이다. 이웃이 사촌 되고, 페이스북이 우정의 무대가 되며, 직장동료가 친구가 되다보니 때로 ‘된장 맛 나는 우정’이 그립다.

어린 시절 친구가 최근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소개됐다. 교사를 그만둔 뒤 지팡이 겸 대금을 들고 ‘낭만 가객’으로 살아가는 괴짜 같은 인생이 시청자들 눈에는 별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가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와 전화할 때 순수함 속에 남은 슬픔이 있기에 고맙고 짠했다.

“기발하게 사는구나”라는 나의 시청소감에 그는 “아부지들이 친하게 지내셨듯이 우리도 가깝게 지내자”고 답했다. 그랬었다. 선친끼리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하지만 어느덧 우린 당신들의 나이를 넘었다. 그것도 초고령 세대로는 성이 차지 않아 ‘100세 시대’를 운운하고 있다.

시골 장터 한 구석에서 두 할머니가 담뱃불을 붙이고 있다. 설을 앞두고 구경 삼아 나선 5일장. 오랜 친구 사이인 그들이지만 설에 찾아올 자식 이야기며 손자 자랑에 하루 해가 짧기만 하다. (출처 : 경향DB)


영화 <국제시장>은 광복 70년의 시간 속에서 여전히 진화 중이고 무한경쟁의 현실 앞에 추억은 간이역을 무시하며 질주하는 급행열차를 닮았다. 우정은 날개 없는 사랑이라지만 흑백사진 속의 기억은 날개 없는 추락이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가듯, 친구란 집단이나 조직에서 떨어져도 염치없이 걸터앉고 싶은 삶의 그루터기다. 소셜네트워크 시대엔 마음만 먹으면 일순간에 친구가 된다. 하지만 만남은 빈번해도 잔정은 없고 댓글은 번잡해도 위로가 없다. 우정은 시간과 관심, 정성의 품을 팔아야 하는 것이다. 직장 핑계, 시간 변명, 자식 구실로 삶의 변두리에 서성였던 서글픈 우정! 들판에 봄기운 돋우면, 외로운 ‘덕수’는 순수했던 ‘달구’를 찾아 나서야 한다. 보고 싶다 친구야!


황용필 | 체육진흥공단 인재경영실장·성균관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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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도시 중심가 입시학원 건물에 비행청소년을 교육하는 청소년비행예방센터가 입주하려 한다면 지역주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혐오시설로 규정한 후 불량한 학생들로부터 자녀와 지역사회를 지키기 위해 결사반대를 할 것이고, 결국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할 것이다. 다시 말해 공교육에서 일탈한 아이들이 대안교육의 기회를 얻어 건전한 청소년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과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한 고비용의 학교 밖 사교육은 공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가 사는 동네 집값이 떨어지면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 데 지장이 있으니, 우리 집 뒷마당에서 나가 달라는 말이다.

방과후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된 가정에서 자란,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하는 평범한 학생들이다. 반면 학교에 잘 가지 않고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은 학교 부적응 학생들로, 불건전한 유흥문화와 비행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다. 일반적으로 이 아이들을 위기 청소년이라고 부른다. 이 아이들은 성적으로 줄 세우는 획일화된 공교육에서 소외된 나머지, 자신들이 가진 잠재력을 긍정적으로 표출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이 때문에 공부와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고 수업시간에 잠을 자고 쉬는 시간에는 학우들을 괴롭히는 등 습관적으로 학교폭력을 일삼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는 벌점과 봉사활동의 징계를 통해 문제 학생들을 지도하지만, 상습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은 법무부 청소년비행예방센터에 대안교육을 의뢰한다.

중학교 3학년인 ㄱ군은 학교폭력으로 안산센터를 찾아 5일 동안 대안교육을 받았다. 아버지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가 식당일과 건물청소로 번 일당과 기초생활수급비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외할머니 손에서 자란 ㄱ군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술·담배를 배웠고 학교는 밥 먹으러 가는 곳, 다른 아이들의 금품을 갈취하는 놀이터가 되어갔다. 5일 동안의 짧은 교육이었지만 ㄱ군의 얼굴은 밝아지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학교폭력 등의 이유로 특별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이 18일 경기 안산시의 청소년비행예방센터 강당에서 언어폭력, 왕따 등을 소재로 상황극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청소년비행예방센터는 위기 청소년들을 벌주기 위한 곳이 아니다. 모든 교육과정이 아이들의 감성을 깨우는 체험 위주의 인성교육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이들의 꿈은 경찰관이 되고, 청소년상담사가 되어 자신들처럼 방황하고 아파하는 아이들을 이끌어 주는 것이다. 자동차 정비사가 되어 사람들의 차를 고쳐 주는 것이다. 직업군인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 사회복지사가 되어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것이다. 아이들은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청소년비행예방센터의 또 다른 이름은 청소년꿈키움센터이다. 학교 교실에서 잠만 자던 문제아들이었지만 얼마나 창의력 넘치고 재기발랄한 아이들인지 보여주고 싶다. 그러니, 이제 뒷마당의 문을 열어 달라.


최원훈 | 법무부 안산청소년 꿈키움센터 실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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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공학 고등학교 1학년 학생 7명이 학습동아리 ‘탁상공론’(卓上共論)을 만들어 우리 고전을 번역해 보고자 했다 한다. 이들은 <역사스페셜> 등 관련 TV 다큐멘터리를 섭렵하고 ‘승정원일기’를 소개한 대중교양서 <후설>(喉舌)도 읽어보았다 했다. 신통방통한 녀석들이다.

지도교사가 한국고전번역원에 견학과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느냐는 전화를 했다. 불감청고소원. 원장님께 질문지를 미리 보내왔다. 조선시대 기록문화가 발달한 이유, 고전번역원의 역할, 고전 번역가가 되려면, 고전 공부의 비결, 구결(口訣)의 원리 등이었다. 고전번역교육원 홈페이지의 논어(論語) 동영상을 보면서, 학민출판사 발간 영인본을 복사해 1주일에 한 번씩 모여 번역을 해본다는 것이다. 수백 장의 한자카드 묶음도 보여줬다.

번역팀장에게 보낸 질문지는 점입가경. 이 사료의 신뢰도와 위상은 어느 정도이며 완역되면 역사학계와 실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왕에 의해 삭제된 부분은 얼마나 되는지, 고전 번역가의 직업병이나 재미난 에피소드는 있는지 등이었다.

번역 현장을 어깨너머로 본 이들의 눈망울이 반짝거렸다. 원장님은 즉석에서 구결표를 손수 써주며 격려했고, 대외협력실은 <논어강설>과 메일링서비스인 ‘고전산책’을 보내주기로 했다. 다음날 회장 학생이 원장께 보낸 장문의 문자가 더욱 감동적이었다. “번역원의 친절에 감동받아 지금도 그 여운이 다 가시지 않을 정도예요.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지만 또다시 좋은 모습으로 찾아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난겨울 들머리에 ‘성균관’에 대한 해설 겸 특강을 했다. 강의가 끝난 후 한 여학생이 다가와 대뜸 물었다. “승정원일기는 얼마나 번역이 됐나요?” 헐? “승정원일기를 알아?” “예. 인조 때부터 순종 때까지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는 승정원에서 쓴 일기잖아요.”

초서로 쓰인 승정원일기 원본 (출처 : 경향DB)


강연 머리에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등을 번역하는 한국고전번역원에 다닌다고 했더니, 그게 궁금했나 보다. “역사에 관심이 많네.” “예. 나중에 사학자가 될래요.” “그럴려면 한문을 많이 알아야 해. 급수시험은 봤어?” “곧 볼 거예요.” “역사책도 많이 읽었겠네?” “그런 편이에요. ‘만화로 본 실록’도 다 읽었어요.” “대단한데.” “전주이가 ○○공파 △△대손. 고창중학교 2학년인데, 김포향교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있어요.”

극히 일부겠지만, 고전의 가치를 아는 학생들을 보면서 불쑥 든 생각이 ‘우리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였다. 이들은 수년 내에 역사학자나 고전 번역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흔히 고전(古典)을 ‘내일로 가는 옛길’이라고 한다. 한문(漢文)으로 쓰여진 수많은 고전을 살아 숨쉬는 우리글로 깨워 ‘눈 밝은’ 이들을 내일로 가는 옛길로 이끌 책무가 우리에게 있음을 더욱 느꼈다.


최영록 | 한국고전번역원 대외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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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은 한 번쯤 자신에게 맡겨진 업무가 자신의 능력에 합당하기 때문에 맡겨진 것인지, 또는 조직 내 주어진 역할을 수행할 만큼 자신의 능력이 되는지 궁금해한 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 승진한 경우, 스스로 승진할 만한 능력이 있는지 스스로 의문을 가진 적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1978년 미국 심리학자 폴린 클렌스와 수잔 아임스는 ‘사기꾼 증후군’(imposter syndrome), 일명 가면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이러한 심리 현상을 연구했다. 이것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을 때 또는 자신이 만든 업적을 능력이 있어 달성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았다거나 타이밍이 좋았다고 여기는 등 자신의 성공 능력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성공을 외부요인에 둘 때 나타나는 심리 현상으로 보았다.

필자의 경우 승진했을 때, 어떤 일을 성취했을 때, 책을 출간했을 때에 능력이 아니라 운에 의해 되었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았었다. 돌이켜 보면 비록 열심히 노력한 결과이겠지만 경영컨설턴트인 톰 피터스가 말한 것처럼 “멋진 실패에 상을 주고 평범한 성공을 벌하라”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완벽에 대한 집착이었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나 이와는 다르게 스스로의 능력을 돌아보는 생각마저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아니 생각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다. 능력이라기보다는 능력 외적인 요소에 의해 일이 성취되다 보니 스스로에게 자문할 것이 없다. 심각한 것은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어느 조직에서나 주요 위치에 점차 포진하게 되는 데 있다.


강신명 경찰청장 후보자가 21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고속 승진과 관련된 의원들의 질의에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출처 : 경향DB)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다. 시장에 좋은 품질의 화폐와 나쁜 품질의 화폐가 동시에 존재할 때 품질이 나쁜 화폐만 남고 좋은 품질의 화폐는 사라진다는 뜻이다. 조직관리로 말하면 제대로 된 인사가 되지 않으면 능력이 없는 사람만 남고, 능력 있는 사람은 밀려나는 현상이 발생한다. 즉 자질이 높은 사람은 조직에서 사라지고 자질이 낮은 사람들만 남게 된다.

호수에 떨어진 먹물처럼 곧 자취를 감추겠지만 결국 조직의 환부가 되고 사기를 떨어뜨리는 결과가 초래된다. 그러나 이것이 누적되면 사회든 조직이든 건강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에는 ‘피터의 원리’처럼 정말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능한 사람이 계속 승진하는 모순이 발생된다.


임창덕 | 농협 이천 농정지원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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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와 어부’라는 픽션 같은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한 사업가가 치열한 삶의 현장을 떠나 멕시코만 고즈넉한 어촌에서 어부 한 사람을 만난다.

사업가의 눈에 비친 그는 오전 내내 바다에 나갔다가 서너 마리 고기만을 잡아온다. 아이들과 놀고 아내랑 낮잠을 자며, 저녁에는 마을을 어슬렁거리는 어부의 일상이 답답함을 넘어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하버드대 MBA 출신임을 밝히고 어부가 부자 되는 거대한 계획을 늘어놓는다. 재테크에다 영리한 라이프컨설팅을 한참 듣던 어부는 그렇게 돈을 벌어 은퇴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러자 사업가는 고즈넉한 해안가 마을에 집을 짓고, 늘어지게 자고, 손주들과도 놀고 아내랑 산책을 하고, 기타 치고 노래도 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자 어부는 “그럼 지금과 그때의 생활이 뭐가 다르냐”고 사업가에게 묻는다.

예전에 근무한 곳이 서울 중랑구의 상봉터미널 부근이었다. 한번은 용산역에서 덕소(용문)행 중앙선을 타려는데 바로 눈앞에서 출입문이 스르르 닫혔다. 문제는 공휴일에는 배차간격이 거의 20분 정도라서 하릴없이 다음 열차를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순간 환승하는 방법도 있다는 생각에 재빨리 1호선을 타고 회기역에서 내려 갈아탈 열차를 기다렸다.

그런데 웬일인가. 기다리는 열차는 눈앞에서 놓친 열차가 아니라 용산역에서 20분 후 출발한 열차였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이지? 가만 있으면 될 일을 왜 부산을 떨었을까?


삶은 때로 불공평하다. 출발선의 기준점이 서로 다르기도 하고 이동수단도 제각각인 경우가 너무 많다. 이러한 현실 앞에 선택은 순전히 본인의 몫이다.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안타를 치는 선수는 없다.

야구의 본고장 메이저리그에도 1941년 보스턴의 외야수 테드 윌리엄스 이후 아직껏 4할 타자는 없다. 10번 나와서 4번을 치는 선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공 하나에 집중해야 한다.

‘일구이무(一球二無)’, 공 하나에 승부를 걸 뿐 다음은 없다는 각오다. 2015년의 시간 속에서 때론 어부일 수도 있고, 환승객일 수도 있다.

‘일일이무(一日二無)’, 아침이면 습관처럼 마술을 걸어본다. 오늘 하루에 승부를 걸 뿐 내일은 없기에 ‘하루는 작은 일생이다(Jeder Tag ist ein kleines Leben)’라고.


황용필 | 체육진흥공단 인재경영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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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출판사 일로 중국에 출장을 가 있을 때였다. 마을 어르신 한 분이 전화를 하셨다. 이장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공석인 이장직을 맡아줄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어르신, 이장이 뭘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제가 어떻게 이장을 맡아요?”

“한 달에 한 번 이장협의회에 가서 잘 듣고, 마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해주기만 하면 되는데 뭘 그래요.”

이장협의회에만 잘 나가면 된다는 어르신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은 건 아니지만, 뭣에 홀린 듯 나는 한 달 후에 이장이 됐다. 사람일 참 알 수 없다. 내가 벌인 일조차 내가 원해서 한 것인지, 아닌지 아리송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얼떨결에 이장이 된 후 제일 먼저 나를 놀라게 한 건 새벽 6, 7시부터 울어대는 전화벨 소리였다. “물이 안 나와요!” “전기가 나갔어요.” “방송이 안 들려요. 뭐라고 말한 거예요?” “할 얘기가 있으니 좀 들르세요.” “아버지 산소 벌초를 해야 되는데, 사람 좀 구해주세요.”

전화뿐만이 아니었다. 저마다 다급한 사정으로 이장을 직접 찾아왔다. 고장이 난 지 몇 년째 되었지만 불편한 줄 몰랐던 우리 집 먹통 벨이 이참에 한몫을 톡톡히 했다. 마을 분들은 집 앞에 내 차가 세워져 있으면 다짜고짜 들어오신다. 그런데 벨소리가 나지 않자 문을 두드리다가, 기척이 없으면 현관문을 발로 걷어찼다. 기다리다 못해 부엌 쪽 창문을 열고 그 앞에 놓인 냄비를 작대기로 두드리시는 분도 있었다.

‘이장’이라는 직명은 고려 말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장이 행정부처와 마을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어 일을 맡아 한 지 꽤 오래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면사무소와 시청에서도 연신 연락이 온다. 면사무소에서 주민들의 생활에 이렇게 시시콜콜 관심을 갖고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는지 그 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장님, 어디세요? 지금 가려고 하는데요.”


모든 약속은 지금, 바로, 당장 마을에서 이루어진다. 스케줄을 보고 며칠 뒤, 혹은 몇 시간 뒤에 약속을 잡는 데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에겐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사람은 환경친화력이 가장 뛰어난 동물이다. 이장이 뭘 하는 건지도 모르고 덜컥 받아든 자리지만 나 또한 밖이 희뿌옇게 밝아오기 전에 일어나 새벽부터 망설임 없이 전화를 주고받고, 불쑥 누군가가 찾아와도 바로 뛰어나가 맞이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어쩌면 이 땅에서 농경민으로 살아온 수천 년의 역사를 내 몸의 DNA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해뜨기 전 들에 나갔다가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드는 시골에서의 삶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내 삶의 원형이었음이 틀림없다.


김소양 | 추곡리 이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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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걱 소리 나는 대문을 열고 반질하게 닦여 있는 마당을 지나 대청에 올라서면 시집올 때 가마 안이 훤했다는 외할머니께서 웃으며 반겨주셨다.

배우처럼 잘생긴 외삼촌은 해외 근무를 나가 계셨는데 가끔씩 미제 노란 연필을 다스로 보내주셨다. 연필심이 단단해 글씨가 깔끔하게 써져 숙제를 해가면 ‘참 잘했어요’ 바둑이 도장을 받았다. 뭐든 귀하던 시절이어서 연필 한 자루도 지금의 골프채 대접을 받던 때였다.

다들 출가하고 막내 이모만 인근에 있는 학교에 나가고 있는 단출한 생활이어서 방학 때만 되면 외갓집으로 갔다. 말씀이 적지만 미소가 예쁘셨던 외할머니와 어린 나의 수난이 해가 지면 시작됐다. 외할아버지의 주사 때문이다. 낮에는 점잖다가 저녁이 되면 ‘지킬박사’와 ‘변사또’처럼 변해서 주문을 하셨다. 갈치토막이 들어간 김치를 가져와라, 문어가 두껍다, 어란에서 냄새가 난다, 술 한잔에 안주타박이 이어지면 할머니와 나는 집을 나왔다. 동네 정자나무 아래 평상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세고 있으면 외할머니께서 배를 쓸어 주며 괴팍하신 외할아버지 때문에 맏딸인 네 엄마가 근동에 소문난 솜씨꾼이 됐다고 옛날이야기들을 해주셨다.

지금도 어르신들이 모이면 “동네 입구에 들어서면 단내가 나는 게 네 엄마 장맛 때문이야. 술맛은 또 어떻고” 하며 술 좋아하시던 외할아버지 때문에 자연스레 익힌 솜씨가 물려 내게로 온 거라고 얘기를 하신다.


외할아버지의 절대 미각을 물려 받은 친정어머니는 신앙이 장 담그는 일처럼 보일 만큼 별나시다. 날 잡아 장 담그는 날에는 무명 흰 한복을 입으신다. 우중충하고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한맺힌 옷같다며 투덜대면 무심하게 소금잔에 향 꽂고 합장하고 절한 다음 소금을 녹이고 녹인 소금물의 윗물만 가만히 떠내 항아리에 담는다, 메주를 넣고 고추, 숯, 깨, 북어 한 마리를 매달아 넣고는 마른 행주질로 마무리하신다.

마당 양지 바른 쪽에는 햇된장이 익어가고, 다른 한쪽에는 엄마의 묵은 씨간장 항아리가 있다. 솜씨는 환경과 물려있나 보다. 이제 나도 젖어들어 우중충하다고 생각했던 무명 한복이 저녁에는 하얀 박꽃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저 옷 좀 봐, 무명 한복이 박꽃처럼 예쁘지! 저 꽃 좀 봐, 박꽃이 무명옷처럼 예쁘지!”

옷 보며 꽃타령 하고 꽃 보며 옷타령 하게 달라졌다. 달라지니 소중한 것이 많아졌다. 언제적 항아리인지 모를 나이먹은 항아리가 얼먹어 금이 가면 물사포질해 손님 초대한 날 상 한가운데 폼나게 놓고 자랑을 한다. 내 자랑에 문득 손님들도 덩달아 감동하며 차려놓은 음식 먹기보다 사진 찍기가 먼저다. 사진 찍으며 이구동성 하는 말 “세월이 예술이네요”다. 소중한 것이 하나 더 늘었다. 투덜이가 바뀌니 장 욕심 내는 놀부가 됐다. 놀부 맘으로 담근 어린 씨간장이 이제 15년이 되며 장독 한쪽을 지키고 있다. 장독 한쪽에 모녀간장이 나란히 있는 걸 보며 나는 부자야, 웃는다.


이효재 | 보자기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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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스무 해 남짓 갯내음을 맡으며 자랐다. 그 후에는 서울에 올라와 대부분의 시간을 도회지에서 지냈으니, 억지로 끼워 붙인다면 농촌마을 이장보다는 어촌계원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언제부터인지 귀촌을 꿈꾸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면 안된다며 자치회에서 연일 으름장을 놓던 무렵이 아니었나 싶다.

이웃사람 눈치 보지 않고 마당 있는 집에서 개를 키우며 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대로 서울과 그다지 멀지 않은 시골마을에 주민등록을 옮겨놓고 15년 전쯤 엉성한 집을 짓게 되었는데, 그것이 이곳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였다.

시골에 내려와 살면서도 꽤 오랫동안 마을은 내게 낯설기만 한 곳이었다. 아침이면 마당에 내려앉는 햇빛을 뒤로하고 일터로 출근해야 했고, 한밤중에 돌아오면 텅 빈 길에 개 짖는 소리만 컹컹 울렸다.

우편함에 들어 있는 대동회 안내 편지글을 읽고 일 년에 한 번 이세를 내러 갈 때 외에는, 마을분들과 얼굴을 마주할 일도 없었다. 마을에서 모내기를 할 때 몇 차례 막걸리와 안주를 챙겨들고 인사를 간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마을사람들이 내게 관심이 없으니 자유롭기도 했고, 더러 외롭기도 했다.


손바닥만 한 마당과의 전쟁도 버거운 일이었다. 윤구병 선생은 ‘잡초는 없다’고 했지만, 봄날의 그 여리디여린 쑥이 비를 몇 번 맞으며 여름을 나는 사이 내 허리춤까지 자라나, 마당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신비를 내가 알 리가 있었겠는가.

어쩌다 우리 집에 들른 마을사람들은 마당을 한 번 휘 돌아보며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풀 좀 베. 제초제 한번 뿌리면 될 걸 이게 뭐여. 귀신 나오겠어.”

친환경 텃밭과 저 푸른 잔디밭은 어디로 사라지고, 이게 뭐람! 내가 지내온 도회지와 불과 50㎞ 남짓 떨어져 있을 뿐인데, 여기서 나는 바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참으로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그런 내가 이장이 되다니!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여러 사정이 우리 마을에 있긴 했지만, 시골 삶에 일자무식인 내가 이장 자리를 맡았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염치없는 일이라 여겨져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꽃 한 송이가 피는 데도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억겁의 온갖 기운이 작용했듯이, 이장이 된 것 또한 그런 뜻이 있으려니 하며 최선을 다할 뿐.


김소양 | 추곡리 이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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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하나가 아이 한 명을 키운다는 말이 있다. 서른 넘어 몇 살 더 먹고보니 나로 말하자면 온 동네 하나가 사람 하나를 살렸다는 실감이 든다. 한창 시절에는 제 잘나서 어찌어찌 살아 있는 줄로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 사소하게 살아 있는 하나하나의 순간들에 내가 잘한 것은 없고 거의 다 남의 덕이었다.

오랜만에 서울에 가서 3호선 지하철을 타고 옥수역을 지나면서 옥수동 산꼭대기를 바라보니 근사한 새 아파트들로 가득했다. 듣기로는 강남으로 보낼 수 있는 학군도 되고 교통도 괜찮아서 집값도 꽤 올랐다고 한다. 내가 살던 5년쯤 전에는 재개발이 확정되긴 했지만 까짓거 들어오기 전까지 버티자, 하는 식이라서 내가 가진 우스운 돈으로도 방을 얻을 수 있었다.

90년대 중반 옥수역 부근 옥수8구역 재개발지역 전경 (출처 : 경향DB)


직장이 강남이라 교통이 편리했으나 퇴근길에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 식식대며 산꼭대기를 올라야 했다. 돈 모으면 이사가야지, 하지만 죽자고 해도 양지바른 지상에 내려가기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때는 술이 왜 그렇게 잘 들어가던지. 실은 맛있어서 마신 게 아니라 마시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마셨을 것이다.

요즘은 술을 마시지 않지만, 나는 도대체 내가 그때 뭘 그리 견디지 못했는지 지금도 도통 알 수가 없다. 아마 새파랗게 젊다는 사실 자체가 버거웠던 게 아닐까. 이놈의 계집애야 젊음을 그렇게 쓸 거면 날 줘, 하는 소리가 그때의 나를 향해 저절로 튀어나오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세월이다.

화려하거나 예쁜 인테리어나 아기자기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언제나 약수시장 반경 100m 안쪽으로 세 군데의 꼭짓점을 그리며 마셨다. 40년 된 순댓국집, 30년 된 치킨집, 술을 시키면 안주를 거저 내주는 막걸리집이었는데 순댓국집은 새벽 다섯 시, 치킨집은 오후 세 시부터 문을 열었으므로 휴일에는 대낮부터 혼자 여유롭게 마시는 적이 많았다. 두꺼운 책 한 권 끼고 책갈피 한 장에 막걸리 한 모금은 참 달았다. 물론 술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 모두 이렇게 달콤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얼마든지 더 담즙처럼 씁쓸해질 수 있었던 것을 막아준 것이 바로 동네가 아니었을까. 음주운전을 할까봐 오토바이 키를 맡기지 않으면 술을 내주지 않던 어떤 이모가 아니었더라면 큰일이 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돼지 간을 푹푹 썰어주며 옥수동 옛날 풍경을 들려주던 팔순 넘은 할머니, 그 집 국물이 아니었으면 마음을 어떻게 데웠을까. 게다가 그들은 내가 슬슬 취할 것 같다 싶으면 반드시 합심해서 누군가 올 때까지 나를 붙잡고 있었다. 누가 찾으러 오면 치킨집에 가봐라, 방금 전까지 순댓국집에 있었다, 제보도 신속했다. 취해서 나 갈래요 하고 일어나면 가긴 어딜 가, 누구 올 때까지 여기 있어 하고 몇 번이나 내 팔을 붙들곤 했다. 지금 보니 아 그렇게 붙잡아준 사람들이 있어서 내가 살아 있구나 싶다. 술이 나를 죽여간 만큼 술집 주인들이 살려낸 것이다. 참 구차하게 이어온 목숨이구나, 앞으로는 구차한 목숨을 소중히 여기며 열심히 살아야지 싶다. 재개발에 밀려 지금은 다들 떠나신 분들, 안녕들 하십니까….


김현진 |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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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재개발

환절기도 아닌데 머리를 감고 나면 옥수수수염처럼 머리카락이 술술 빠져나왔다. 빠진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비빈 다음 돌돌 말아 바구니에 모아둔다. 동전처럼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바구니가 넘쳐 뚜껑이 들썩일 때쯤이면 바늘꽂이도 만들고, 자질구레하게 솜 넣을 일이 있을 때 솜 대신 넣고 부자가 된 기분으로 열심히 머리카락을 모으며 몇 년이 지났다. 집 안 이곳저곳 솜 대신 도톰하게 머리카락으로 채워넣고, 이만하면 충분해하며 만족해할 때쯤 갱년기 탈모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됐다.

파마 안 하고, 술 담배 안 하는데 탈모라니? 불면증에, 식은땀에, 탈모에, 비만에…. 나이는 세월 가면 절로 느는 거라 알고 살았다. 나이는 훈장과 같아서 그냥 먹는 게 아니고 치르는 대가가 컸다.

강의 중에 흐르는 땀과 불쑥불쑥 얼굴은 달아오르고 좋아하던 커피 한 잔 마시면 이틀은 잠을 못 잤다.

나는 그 유명한 58년 개띠다. 함께 사는 직원 둘이 합이 들었다는 호랑이띠여서 서로 알콩달콩하며 죽이 잘 맞았다. 나는 내가 자랑스러울 때가 있어, 혼자서 땀 흘리고 열 내며 갱년기를 극복했잖아! 어느 부인은 너무 힘들어서 남편이 출근하는데도 내다보지 않고 소파에 누워 있다는데 쯧, 정말 힘들었나봐 라고 말했다.

듣고 있던 호랑이띠 여인 둘이 얼굴을 마주보더니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갱년기 아니라도 남편 출근할 때 TV를 보면서 앉은 채로, 잘 갔다와 그래요! 그러면 남편이 오히려, 얼굴 좀 보자고 하지요. 뭐 별스럽게 갱년기라고 소파에 누워 있다고 그래요 참!” 둘이서 의기투합 합창을 했다.

갱년기 중에 겪는 이런저런 증상보다 호랑이띠 두 연인의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태연하게 하는 말이 더 충격이었다. 어느 여인은 힘들어서 일어날 기운이 없어, 소파에 누워 있었다는데 누구는 언제나 소파에 앉아서 맘 편하게 남편을 배웅할 수도 있는 거구나! 매일 앉아서 배웅하고 어쩌다 따라 나가 상냥하게 배웅하면 이벤트가 될 수도 있는 거구나. 같지만 다른 그 무엇은 무엇일까? 고민되기 시작했다. 앉아서 남편을 배웅하는 호랑이띠 한 집은 매우 편안하다.

갱년기 여성 이미지 (출처 : 경향DB)


술 마시고 춤추는 버릇이 있어 가끔씩 남편에게 지적당하는 거 빼고는 집안은 평화롭고 아이들도 공부 잘하고 어디 한 군데 빈구석이 없다. 또 한 집은 남편이 건건사사 참견하고 적극적이어서 귀찮아하지만 사이가 좋다. 언제나 상냥했던 애인 같고 친구 같던 갱년기 증후군이 집을 점령하는 바람에 어둡다.

나는 어느 쪽일까? 남편이 출근하는 직업이 아니니 배웅할 일은 없다. 재택근무로 작곡하는 남편은 내가 출근할 때쯤이면 밤을 새우고 아침잠을 잔다. 밤새 친 피아노 페달 녹이 발바닥에 묻어 있는 걸 보고 깰세라 조용히 문 닫고, 출근했다. 아침밥은 밥상 위에 차려놓고 점심은 도시락 싸서 나란히 놓아두고 나온다. 이제는 일 많은 내가 서울서 살고 시골공기 좋아 밖에서 아이들 가르치며 사는 남편을 밤하늘 달보듯 보며 기찻길처럼 편안하게 살고 있다. 가끔씩 보는 남편은 친구 같고, 손님 같아 좋다. 따로 사는 남편은 아내가 넘어야 하는 갱년기 증후군이라는 산을 어떻게 넘었는지 모르고 지났다. 지금은 씩씩한 두 호랑이띠 여인들은 남편과 아이들과 먼저 겪은 이야기들로 미리 알고 쉬 넘으리라. 나는 내가 자랑스러울 때가 있다. 여인이면 넘어야 할 산을 혼자서 잘 넘었음으로 내가 나를 칭찬한다!


이효재 | 보자기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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