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동안 매주 ‘몇어찌’를 연재하면서 어쩌면 나는 이 순간만을 계속해서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신문 지면에 쓰는 나의 마지막 칼럼일 것이다. 2005년 서울신문에 첫 칼럼을 쓴 이후 참 많이도 썼다. 모든 시작하는 것은 끝이 있다고, 경제학자로서 신문에 쓰는 고정칼럼은 이제 접으려고 한다. 학자 혼자서 해볼 수 있는 실험으로는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지만, 혼자 하는 걸로는 더 연구를 끌어갈 형편이 되지 않는다. 준비 중인 몇 권의 책을 끝으로 경제학자로서의 내 삶은 접을 준비를 하는 중이다. 억지로, 참 오래 끌고 왔다. 그러나 이제 그만 손에서 내려놓으려고 한다.

마지막 신문 칼럼의 모티브는 이제 곧 개봉할 영화에서 따올까 한다. 한국 경제는 지난 10년간 ‘꽃마차’ 이론이 주류를 형성했다. 너도 잘하면 꽃마차를 타고 갈 수 있어, 하늘이 무너져도 너만 잘하면 되는 거야… 이런 얘기를 한 때는 ‘긍정적 마인드’라고 부르기도 했고, ‘자기계발’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요즘은 ‘위로’라고 부르는 것 같다. 얘기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거대한 신데렐라 스토리가 경제학 행세한 나라였다.

그 속을 ‘까’보면, 부동산 투기꾼들의 거품 부풀리기 아니면 증권으로 개인들의 주머니를 털어먹기, 아니면 엄마의 정보력과 할아버지의 재력을 결합한 사교육 신드롬, 뭐 그런 거 아니겠는가?

그런 우리에게 ‘화차’(火車’)라는 낯선 이름이 갑자기 등장했다. 불 수레, 악인을 지옥으로 끌고 갈 때 쓰는 수레의 이름이다. 기다리던 꽃마차는 오지 않고 갑자기 지옥행 특급열차라니! 그게 변영주 감독이 갑자기 우리에게 펼쳐 보여준, 우리를 기다리는 복합불황 형태의 장기공황에 놓이게 된 우리의 모습이다. 누군가를 죽이고, 그 이름을 차용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삶! 그걸 드러내서 보여준 게 일본 문학이고, 여전히 기다리면 꽃마차가 온다고 얘기하는 게 지금의 한국 문학이라면, 너무 잔인한 비유일까? 

영화 '화차'

 

신용불량자, 카드연체 추심, 가족 연대보증을 통한 몰락, 사실 우리가 애써 외면했지만 이미 우리 코앞에 화차는 도착했다. 여당은 물론 야당마저도 모피아, 교육 마피아, 토건족들에게 완벽하게 장악된 나라, 국민은 보호받지 못한다. 꽃마차 대신 화차가 기다리는 현실, 필연일 수밖에 없다. 학자금 대출 빚과 함께 졸업하는 대학생, 그게 바로 우리가 타 있는 화차의 경제이다.

좋은 것을 보고 긍정적으로 사유하라, 그리고 위로를 구하라! 지금 그렇게 한국에서 얘기하는 자가 바로 화차의 마부이며, 메피스토텔레스의 조력자이며, 자력구제 대마왕이다. 그런 식으로 한국 경제에 꽃마차는 오지 않는다. 기다리는 것은 화차일 뿐이다. 대선, 이길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정권을 ‘시민의 정부’라고 이름 붙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시민의 경제’는 오지 않는다. 대통령 한 명 바꾼다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자, 시민의 경제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의 모습은 알고 있다. 시장이 주도한다고 말하고 사실은 건설을 주축으로 한 대기업들이 과실을 다 챙겨 가버린 경제의 모습도 알고 있다. 

‘시민의 경제’, 이건 경제학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고 한국 대학에서는 절대 가르치지 않는 내용이다. 어렴풋이 북유럽 등 유럽의 일부, 일본의 지역 경제, 이런 곳에서 시민의 경제가 펼쳐지고 있다는 ‘전설 같은’ 얘기만이 전해질 뿐이다. 우리가 가보지 않은 일이고 상상도 못해본 일이다.

물론 우리도 생활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과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마치 한국의 시민들이 촛불 이후에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처럼, 시민이 경제적 주체로서 국민경제에 개입한다는 것을 아직 제대로 상상해본 적이 없다.

이제부터 펼쳐보여야 할 세상에 관한 얘기이다. 꽃마차를 기다리다 화차를 만난 국민들, 그들이 선택할 세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과연 동료를 찌르고 짓밟으면서 결국 화차를 타고 갈 것인가, 아니면 꽃마차를 포기하고 인간으로서의 삶과 상식을 회복할 것인가, 그 집단적 선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경제를 결정한다. 

우리는 국민을 소비자로만 보거나, 홍보의 대상으로만 본다. 그러나 시민으로서의 경제 주체, 그것에 관한 생각은 한번도 진지하게 해보지 못한 것 아닌가? 시민의 정부는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시민의 경제는 그냥 생기지 않는다. 꽃마차와 화차 사이의 개인의 선택, 그것이 경제주체로서의 시민의 탄생을 만들어낸다. 결국 한 명, 한 명이 선택하는 것이다. 선택은 자유이지만 결과는 논리적이며 필연적이다.


<시리즈 끝>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서울 마포에 성미산이라는 작은 산이 있다. 이 산을 밀어버리려는 사람들에 맞서 마포주민들이 오래된 싸움을 했고, 이겼다. 그후 이 지역에서 ‘마을 만들기’라는 주민들의 실험이 시작됐다. 많은 부모들이 가장 보내고 싶어하는 대안학교 중의 하나도 생겼고, 주민들이 쓸 수 있는 동네 극장도 생겼다. 우리가 외국의 지자체에서만 보던 크고 작은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성미산 주민들이 홍익재단의 초·중·고 건립 계획으로 나무를 뽑으려 하자 몸으로 나무를 부둥켜 안고 있다. (경향신문DB)


고건 시장 시절에, 성미산 마을학교만큼 서울시가 자랑할 만한 지역 공동체가 형성된 적이 있었다. 한양주택이라고 불리던 곳이고, 담장을 허물고 꽃담을 만들던 동네…. 진짜 시민들의 삶 속에서 정말로 공동체라고 부를 만한 곳으로 형성되어 가던 곳으로 아직도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동네다.

멀쩡하던 한양주택의 집들을 부수고 주민들을 쫓아내면서 올라간 것이 은평 뉴타운이라는 슬픈 아파트촌이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한양주택 같은 곳들을 부수기 위해 아주 특이한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아파트 재건축위원회! 철저한 이익 공동체의 임시 조직! 여기에는 지역유지라고 불리는 토호들이 분위기를 만들고, ‘집값파’들이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일종의 경제 공동운명체로 바뀐다. 재건축의 성공 여부에 운명이 걸린 주민들, 아!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공동체가 아닌가.

멀쩡하던 주민 공동체를 부수고 토호들의 배를 불리는 뉴타운과 지역개발 사업들. 이게 한국의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까지 기형적으로 전개시켜 스스로 ‘이명박 정부’라고 부르는 ‘괴물 탄생’의 진짜 힘이 아니었던가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자기 동네로 돌아가면 전형적인 토호들의 힘 위에 서 있다. 한때 야도였던 부산이나 민주화의 성지였던 광주나 ‘토건 한국’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결국은 토호들 힘 위에 서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전국의 토호들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거나 서울 생활하게 될 자식들을 위해서 아파트 한 채씩 사두던 곳, 그게 바로 강남 아닌가 여기에 소위 조·중·동 기자들은 물론이고 경제신문 편집국의 간부들까지 강남으로 이사간 다음 강남불패의 신화가 생겼고, 고위 공직자들까지 몰려가서 땅으로 치부하겠다고 한 세월, 그게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주민들이 재개발을 반대하는 서울 은평뉴타운 진관내동 한양주택 (경향신문DB)


지역 공동체는 깨지고, 모든 걸 개인이 집값을 올려서 해결하겠다던 기형적 모습, 그들의 대통령이 바로 이명박이였던 것.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노무현 정부 시절 이런 토호들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정상적인 국민 경제로 전환하지 못한 게 슬픈 일이다. 결국 그런 토호들의 대마왕, 뉴타운 시장 그리고 4대강 대통령이 탄생했다.

이 싸움에서 결국 토호들이 진다. 왜냐하면 더 이상 40~50대들이 가진 대형 아파트를 사줄 30대가 없고, 30대들이 가진 작은 아파트를 다시 사 줄 20대는 없기 때문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죽어라고 일했던 한국의 민중들과 소박한 시민들이다. 토호들의 연맹, 개발동맹이 바로 그 거위들을 비정규직과 조기 퇴직의 끝으로 밀어내, 이제는 아무리 집을 지어도 그걸 받아줄 국민이 없는 상황까지 왔다. 세상일이라는 게 오묘해서 ‘강부자 정권’이 바로 강부자들과 토호들의 몰락의 시발점이 된 것 아닌가 빚내서 집사기, 이건 끝났다.
1인 가구가 늘어난다고 정부에서 아직도 난리를 치지만 그 1인 가구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혼자 남은 농가의 할머니 아니면 편의점에서 알바하는 20대다. 독립을 기도한 20대들은 최근의 경제난으로 다시 부모의 집으로 돌아가는 게 추세다. 1인 가구가 증가하니, 집을 더 지어야 한다 토호들의 마지막 몸부림이다. 새누리당과 함께, 그런 시대는 끝났다.

토호들을 위한 공화국, 그 속에 20~30대는 없다. 토호들이 땅과 아파트로 너무 손쉽게 치부하는 일이 사라져야 20~30대가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든,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 자녀양육에 뼛골 빠지는 40대, 그들이 바로 무상급식의 지지층들 아니었던가 자신들은 수억, 수십억, 너무 쉽게 벌어가면서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몇 만원의 지원금이 아깝다, 그게 오세훈을 정치적으로 몰락시킨 그 힘이다.

우린 지금 전환점에 서 있다. 한양주택이 은평 뉴타운에 깔리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하고, 성미산 마을학교 같은 게 지금부터라도 전국적으로 늘어나야 한다. 그게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고, 잘사는 나라로 가는 길이다. 개포 재건축단지의 성공에 구청장이 목매는 새누리당의 나라, 그 시대는 역사 속으로 흘러가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은 새 흐름의 첫 번째가 아니라 구시대의 마지막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불행히도 그 말은 이명박이라는 이상한 존재의 등장으로 사실이 아닌 게 됐다. 새 시대가 와야 하고 새 물은 흘러야 한다.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바라는 재건축이 성공하는 시대, 그 시대가 오면 안된다. 우리는 지금 시민의 사회, 시민의 정부로 가고 있다. 지금 우리는 토호와의 마지막 전쟁을 눈앞에 두고 있다. 강남에서 부산까지, 강정에서 여의도 MBC까지, 우리는 지지 않는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나는 민주노동당의 당적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다가 분당하면서 탈당했다. 사민주의 정당 정도의 이름이라도 가지면 입당을 하려고 했는데, 대뜸 ‘진보신당’이라고 이름을 달아버리는 데 실망을 하고 아직 입당을 안 했다. 열심히 진보정당 운동하는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당원이 아니면 정말 편하다. 어쨌든 그 후로 당이라는 이름으로 무슨 활동을 하지는 않고 개별적으로 사안에 따라서 정치인들과 같은 자리에 앉기는 한다. 

새만금, 4대강, 탈토건 정책 그리고 최근의 한·미 FTA까지. 좋든 싫든 정치라는 과정을 통하지 않고서는 해결하기가 어려운 문제들이다. 지난 수년간 이렇게 민주당을 지켜본 결과는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경제 입장을 취한 정치인들은 민주당 내에서 한 명씩 한 명씩 고립되고 사라져갔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정치인들이 흥했고 그들에게는 더 많은 권력이 생겨났다. 지금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인 김진표류의 정치인들이 그렇다. 관료 출신, 보수적 시각의 경제인들이 민주당에서 주류가 되어가는 이 상황, 이건 이미 대세가 되어버린 듯하다.
 

출처 :경향DB


 
한명숙 대표체제의 민주통합당이 출범하면서 시늉으로 내걸었던 한·미 FTA 반대나 론스타 특감 등이 사실상 무산되었다.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이라는 표현을 쓰면, 민주통합당은 맹렬하게 앙시앵 레짐으로 돌아가는 중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가 급격하게 보수화되던 그 시기의 총리, 그 시기의 사람들, 그들이 다시 전면에 나서는 것을 지금 우리가 보는 중이다. 물론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집권도 해본 사람들이 더 잘한다고 할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말은 맞을지도 모른다. 권력과 특혜를 누려보지 못한 사람들이 그 달콤함을 알 리가 없고, 그것을 차지하기 위한 강렬한 욕망이 생겨나지 않을 수 있다. 

자, 의미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통상파’라는 이름을 사용해보자. 김현종과 이종훈을 끌어들이고 결국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통상을 강화해서 더 강력한 수출 중심 국가로 가고, 이를 통해서 내부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노무현 중기 이후 권력을 잡았다. 총리였던 한덕수까지 포함시키면, 민주당 혹은 민주당을 포섭한 통상파들이 누구인지 금방 그림이 나올 것이다. 그중에는 모피아도 있고, 노무현 측근도 있고, 정치인도 많다. 이 통상파들이 맹활약하던 ‘앙시앵 레짐’의 시대, 민주당은 망했고 정권은 한나라당으로 넘어갔다.

한명숙 대표 체제는 내가 보기엔 권력욕이 대단한 정치인들과 통상파들로 구성된다. 집권욕구는 대단하다. 이건 인정한다. 그러나 통치에 대한 욕구, 즉 나라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욕구, 이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집권을 하면 자리가 아주 많이 생긴다. 5년 동안 굶었던 사람들이 그 집권의 과실을 따먹고, 경제 등 골치 아픈 통치에 해당하는 기술적 일들은 그냥 통상파들에게 맡긴다, 이게 한명숙 대표의 치세 방식으로 보인다.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이건 아니라고 알고 있다. 반MB의 가장 나쁜 폐해는 정치권력만 교체하고, 사람들의 일상적 삶에는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는 것, 즉 진짜 ‘시민의 경제’는 생겨나지 않는 것, 그거라고 본다. 집권은 해도 통치는 하지 않는 것, 그게 한명숙을 얼굴로 내세운 그 이면의 음모 세력이 지금 가지고 있는 집권 플랜 아닌가? 

민주통합당은 귀찮고, 이학영을 필두로 한 현장에서 잔뼈 굵은 활동가들은 그냥 내버려둬도 살벌한 정치판에서 한 명씩 죽어갈 것이다. 통상파들이 그리는 미래에 대한 그림이 과연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는 없다. 지금 우리가 바라는 미래의 모습은 한·미 FTA가 태동되던 그 앙시앵 레짐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한명숙 대표 등 민주통합당 지도부의 임기가 정상적이라면 2년이다. 대통령 하나 바꾼다고 세상 좋아지지 않는다는, 오랫동안 했던 말을 다시 환기시켜드릴 수밖에 없다. 

지금 민주통합당이 집권한다면 ‘시민의 정부’라는 명분으로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몰아준 덕일 것이다. 그 힘을 가지고 다시 구체제로 복귀한다면, 지금 숨죽이고 있는 새누리 세력들이 2~3년 후에 완전히 전열을 정비하고 다시 집권하게 될 것이다. 한명숙 대표의 지금과 같은 폐쇄적 당 운영 방식과 극도의 자기 사람 심기, 이건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다시 불러오게 된다. 통상파의 손을 잡고 대리 통치하는 정부, 그건 비극으로 가는 길이다. 

새누리당이 워낙 못하니 집권은 어떻게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몇 주간 보여준 한명숙호의 모습대로라면 세상은 좋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물러나라고 물러날 사람도 아닐 듯싶다. 더 늦기 전에 당 지도부들이 환골탈태하는 수밖에 없다. 통상파와의 통치, 그건 시대 패러다임에 안 맞고 그냥 앙시앵 레짐으로의 복귀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시민과 밀실, 그건 어울리지 않는 두 개념이다. 시민 대연정을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가, 한명숙 대표에게는 그 고민이 없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경제 민주화라는 개념으로 한국 현대사를 본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 언제일까? 물론 중요한 날이 몇 번 있겠지만, 나는 1998년 5월18일을 들겠다. 막 출범한 국민의 정부,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 운용에서도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IMF 외환위기 한가운데라고 하지만,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이 정권을 찾아오면서 많은 변화를 기대한 것이 사실이다. 5·18 기념과 함께 이날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던 김태동과 기획수석이던 강봉균이 자리를 맞바꾸는 아주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물론 교수 출신이라 능력부족 등 전해지는 설은 몇 가지가 있지만 본인도 아직 정확한 이유를 모르는 사건이다. 
 

출처: 경향DB


 
민주당 정부 10년, 그 후에 한나라당 정부 4년을 거치면서 모피아 혹은 그와 유사한 관료가 아닌 사람이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았던 유일한 경우가 바로 김태동이다. 그가 국민의 정부 출범 3개월 만에 경제 사령탑에서 물러나면서 이 자리는 사실상 모피아들이 가지고 노는 자리가 되었다. 김태동이 만약 1년만 더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면, 한국 경제의 전개과정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이후 경제는 말도 안되는 윗목이 따스해야 아랫목이 따스해진다는, 그렇게 강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몰아주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노무현 시절에는 경제수석 대신 그 위의 정책실장에게 힘이 실렸는데, 초대 경제수석인 이정우는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바로 밀렸다. 혼자 고립된 정태인 국민경제 비서관은 모함에 가까운 재판으로 송사에 휘말려서 그만두게 되었다. 흐름을 좀 바꾸려고 했던 변양균 정책실장은 신정아 사건으로 무장해제되었다. 노무현 시절,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임명된 윤진식은 이명박 선거캠프에서 경제 담당으로 활동했고 결국 이번 정부의 경제수석과 정책실장을 역임했다. 배를 바꿔 탄 건지, 원래 모피아라서 그런 건지, 본인만이 알 일이다. 

시민의 정부가 출범하면 제일 중요한 자리는 바로 이 청와대의 경제팀을 제대로 꾸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태동이 물러난 1998년 5월18일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팀을 갖게 되는 순간이다. 기본적으로 대통령실 경제팀은 8명으로 구성된다. 정책실장의 경우는 경제 혹은 행정 전문가가 보통 되는데, 경제 민주화가 다음 정부의 목표라면 정책실장도 출발할 때는 경제 전문가가 되는 게 맞다고 본다. 그 바로 밑에 국제경제보좌관이 있다. 자유무역협정(FTA) 등 통상의 기본 방향을 여기서 맡게 된다. 

정책실장 밑에 경제수석이 있고 그 밑에 다섯 명의 비서관이 붙는다.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경제수석은 시민의 경제를 이해할 수 있고 시민단체의 의제들을 잘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설프게 경제 전문가라고 이상한 사람 앉히면 노무현 정부의 경제 실패가 다시 반복된다. 둘째, 다섯 명의 비서관 자리도 관료로 채워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보통은 부처 간 업무조율을 위해서 각 부처에서 파견을 받는데 그렇게 하면 정책실장이나 경제수석 같은 사람들이 결국 관료에게 포위되어 고립된다.

순서대로 살펴보자. 경제금융비서관, 이 사람이 금융민주화의 사령탑이 되는 것이고 금융위, 금감원 등 모피아 논리대로만 움직이는 금융당국을 제어하는 키를 쥐게 된다. 이 자리를 모피아들에게 넘겨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지식경제 비서관, 이 자리는 실물경제와 함께 에너지 등 자원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이다. 재벌 견제는 물론이고 탈핵과 같은 에너지 정책도 이 자리에서 대통령을 통해 움직여나간다. 이 자리를 넘겨주고 원자력 문제를 풀 방법은 없다. 중소기업 비서관, 신설된 자리이지만 한국 경제가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분야이다. 

국토해양 비서관, 만약에 탈토건이나 토건족 정리를 생각한다면 절대로 국토해양부 공무원한테 넘길 수 없는 자리이다. 4대강 문제를 풀거나 주택시장 정상화가 다음 정권의 기조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자리이다. 마지막으로 농림수산식품 비서관, 수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농업 문제를 풀고 농협 개혁 등 진짜 변화를 원한다면 반드시 다음 정부가 풀어야 할 분야가 이 분야이기도 하다. 

나는 관료가 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특정 이권이 걸린 경제 분야는 누군가 견제하고 제어하지 않으면 모피아나 토건족 혹은 교육 마피아처럼, ‘정부 내의 정부’ 현상이 벌어진다. 그걸 잘 견제하면서 정상적 관료들이 상식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경제 민주화로 가는 기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와대 경제팀 8명에 대한 제대로 된 인선이 핵심이자 출발점이다. 이 8자리를 관료들에게 그냥 넘겨주거나 이익세력들에게 주면 다음 정부도 바로 시궁창으로 빠져버린다. 다행히도 한국의 시민사회나 진보정당이 제대로 할 사람으로 이 정도 채울 여력은 충분하다. 경제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을 잘못 고르면 그냥 망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2002년 봄 어느 날로 기억된다. “진짜 모피아가 그렇게 자기들끼리 다 해먹나요?” 

“모피아는, 사실 뭐 그렇게까지 해먹지도 못해. 진짜로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끝까지 챙겨주는 건, 이피비(EPB- 옛 경제기획원) 사람들이야. 정말로 잘 뭉치더라고, 끈적끈적하게….”

이 얘기는 총리실에 근무하던 시절, 바로 직속상관이었던 산업심의관과 회식 자리에서 나누었던 내용이다. 그는 나에게 재경부 수첩을 보여주면서, 도대체 이 사람들이 무슨 돈으로 전부 다 이렇게 강남에 사느냐, 한탄스러운 얘기를 하기도 했다. 

2001년, 2002년이 내 기억으로는 실물경제를 담당하던 자리까지 모피아 출신들이 밀고 들어오던 그런 때였다. 별것도 아닌 한두 자리를 놓고서 부처들끼리 지독하게 싸우는 게 좀 한심해 보여서 결국 나는 공직생활을 정리했다. 당시 바로 그 상사가 지금 금감원장인 권혁세 원장이었다.

경제기획원이 경제합리화라는 이름으로 없어진 다음에, 경제계획 업무와 금융을 다루는 재무 업무가 통합되었고, 이번 정부 들어오면서 예산집행까지 기획재정부라는 한 부처로 통합됐다.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금융 행정과 감시업무를 다루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라는 두 개의 정부 부처가 운용되고 있고, 본원화폐를 다루는 한국은행의 의사결정을 하는 금융통화위원회라는 게 있다. 경제 혹은 금융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제도를 어떻게 만드느냐, 기구를 어떻게 구성하느냐, 이게 의미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정당과 시민ㆍ노동단체 외환은행 매각 무효 주장 기자회견 l 출처 :경향DB


돌아서 생각해보면, DJ, 노무현에 이르는 10년간의 민주당 정권이 국가를 운영했는데, 금융과 관련, 특히 사람이라는 눈으로만 보면 거의 바뀐 게 없다. 외환은행 매각 당시 실무국장이 바로 지금의 김석동 금융위원장이고, 주무부처 장관이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이다. 연말에 한·미 FTA로 거리로 나와 있던 민주당이 등원 협상하면서 마지막까지 테이블에 올라와 있던 건, 외환은행 국정조사 건, 농협 신경분리 건, 그리고 미디어렙 건이었다. 그중 유독 외환은행 국정조사 건이 불발되면서, 결국 최종합의가 흐지부지해진 적이 있다. 원칙대로라면 협상이 결렬되면 등원하지 않고 버티면서 문제의 해법을 더 찾아보는 게 맞는데, 등원은 했고, 외환은행 등 협상은 결렬되어서 지금까지 지지부진하고 있다.

상식의 눈으로 보면, 매각 당시 주무부처 장관이었던 사람이 야당 측 협상대표였으니, 자기 문제는 좀 덮고 넘어가려고 했었다거나, 아니면 모피아들이 법적으로 처벌받는 걸 피하려고 했었다, 이렇게 보이는 게 더 당연하지 않겠는가? 물론 본인이야, 그럴 리가 없다고 펄쩍 뛰겠지만, 모피아 음모론으로 이걸 해석하지 않으려고 하면 사건 자체가 전혀 설명이 안된다.

예전 권혁세 원장과 같은 방에서 근무하던 시절, 그 위의 국무조정실장이 바로 지금 김진표 원내대표였다. DJ 시절에 내가 정부에서 일했는데, 그 후 다시 10년이 지났고, 이명박 정부도 거의 끝나가는 지금, 너무 뻔한 사람들이 금융당국의 요직에 있거나, 심지어 야당 측 사령관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진짜 모피아들의 세상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 않겠는가?

외환은행은 감사원 감사, 국정조사, 심지어는 국감까지, 정치 절차로 아직도 풀 수 있는 수단들이 남아 있다. 론스타가 금융자본인가, 아닌가, 그것만 제대로 밝혀주면 일의 절반 이상은 풀린다. 그리고 작년까지 한나라당에서 인천공항 민영화 수단으로 제시하던 바로 그 국민주 방식으로 외환은행이 독자회생할 수 있는가, 그런 정책 수단이 검토되면 끝나는 일이다. 국민경제를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대통령 절친까지 일일이 고려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모피아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경제 공무원 아무도 다치지 않고, 책임지지 않게 하려니, 일이 이렇게 이상하게 꼬여가는 것 아닌가?

이러니 외환은행 문제를 푸는 게, 경제 민주화의 첫걸음이고, 꼬일 대로 꼬인 금융 민주화의 첫발이라고 하는 것이다. 정치적 민주화를 거쳤다고 하지만, 한국의 금융은 여전히 이헌재나 강만수 혹은 김진표 같은 대표적인 모피아들 손에 달려 있는 꼴이 아닌가?

정치가 아니라 경제 특히 금융의 눈으로 보면, 한국은 완전 모피아들의 나라로 전락한 것처럼 보인다. 자, 어쨌든 민주당의 김진표 원내대표까지 포함해서, 론스타 사건은 행정적으로는 일단락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것도 부당하든, 부당하지 않든, 행정행위일 뿐이고, 이 사건을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행정소송을 걸고, 그걸 근거로 론스타 매각 및 외환은행 합병을 일시 정지시키는 가처분 신청으로 들어갈 것으로 알고 있다. 10년 가까이 ‘모피아 사건’의 대표적인 상징처럼 드러났던 론스타 ‘먹튀’는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금융당국의 손에서 법정으로 옮아가는, 또 다른 단계의 시작에 불과한 것 아닌가?

외환은행이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독자생존의 길로 걸어갈 수 있을지, 아니면 그냥 모피아들이 밀실에서 그렸던 그림대로 이렇게 끝이 날지, 결국 다시 법정으로 가게 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외환은행 사건은 어영부영 반MB로 모였던 사람들이 다음 정권에서 보여줄 정책들의 ‘데자뷰’라는 점이다. 악몽이 이제 그만 끝나기를 우리 모두 희망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우석훈 타이거 픽처스 자문·경제학 박사


‘시민운동 몇 어찌’라는 제목으로 경향신문에서 매주 연재를 한 것도 이제 어느덧 1년이 되어간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이 기간 내내, 나는 한나라당이 결국 질 것이라는 점, 이름이야 어떻게 되었든, ‘시민의 정부’가 결국 출범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나 역시 예전의 민주당 혹은 민주통합당이 뭘 엄청나게 잘할 것이라고 믿어본 적은 별로 없다. 그렇다고 통합진보당이 갑자기 많은 국민들의 대대적 관심을 받으면서 2012년 판세를 완전히 끌고나갈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다만 내가 주목한 것은 MB라는 이름을 중심으로 형성된 거대한 혐오라는 에너지….

지금도 나는 한나라당이 정상적인 정당으로서 잘해주기를 바라고, 그래야 계급적 정체나 이념적 정체가 모호한 민주당을 중심으로 힘을 모아야 하고, 또 그러니까 어떻게든 정권부터 바꿔보자는 1987년 이후의 오래된 틀을 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서 보여준 한나라당의 실력은, 그들이 제대로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없음을 너무 여실히 보여준다. 게다가 ‘국가의 것과 개인의 것’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그래서 사적인 집단으로 전락해버린 전형적인 제3세계 지배그룹의 유형을 여실히 보여준다. 뭐가 진실인지, 역사 속에서 실체적 진실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장 이번주만 보더라도, 정봉주 전 의원은 감옥에 있는 동안 건설사 비리로 문제가 된 사람들은 대거 사면복권되었다. 게다가 전혀 합리적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KTX 분할 매각은 그냥 강행된다고 하고…. 

경향신문 DB

 

이명박 정권과 함께 지낸 4년 최선, 차선, 차악과 같은 고상하고 계량적인 사유는 우리 모두에게 어느 정도는 마비된 것 같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지금 한국의 정치를 움직이는 힘은 ‘혐오’가 아닌가? 혐오라는 감정은 그렇게 좋은 감정은 아니지만 정책은 물론이고 선관위 해킹 사건과 돈봉투 사건 등 제 정신을 가진 정치집단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1주일이 멀다하고 벌어지는데, 여기에서 혐오 외에 다른 감정을 가질 수 있겠는가? 

이 사건들의 안 좋은 점은 아무도 “내가 문제였다”라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나쁜 점은 이런 황당한 일을 내부에서 벌일 때 “그건 아니지!”라고 말려줄 동료그룹도 없었다는 점이다. 재발방지 대책? 그걸 누가 믿나? 이렇게 4년간 쌓이고 쌓인 혐오라는 에너지가 지금 불안정하고, 사실 근본을 따져보면 한나라당 의원들과 개개인이 그렇게 달라보이지도 않는 민주통합당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힘의 실체 아닌가?
이것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 증폭되고 과장되고, 때때로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명박이라는 아주 독특한 캐릭터의 대통령과 지난 4년간 모두 헤맸던 것인지도 모른다. 4대강을 다 틀어막고, 여차하면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소들을 죽이겠다고 하던 이 황당한 시기에 제 정신을 유지하기도 힘든 일이다. 국제중학교를 도입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교육을 도입하면 중학교도 전쟁터가 된다고 이미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었다. 다, 자기 맘대로 한 것들 아닌가?

종편의 0%대 시청률을 가만히 살펴보자. 최근의 미디어렙법 날치기에, 수정까지, 종편은 정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저조한 시청률에 대해서 자기 맘대로 분석하고 싶은 종편 측에서는 ‘킬러 콘텐츠’의 부족과 같은 것을 이유로 대는 것 같다. 한나라당이 빠진 혐오의 덫과 종편이 빠진 덫은 사실상 같은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 아예 안 보겠다는 사람들 앞에서 콘텐츠와 방송의 질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연전에 정용진이 “님은 소비도 이념적으로 하십니까?”라고 그랬다. 종편에 대한 시청자들의 거부반응이 이념적인지는 모르겠지만, 혐오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도대체 ‘19번 채널’이 뭐냐? 어떻게든 19금을 풀고 나가려는 게 영상 마케팅의 기본인데, 알아서 19번으로 들어갔으니 나올 길이 쉽게 보이지가 않는다. 

중앙일보 종편인 JTBC뉴스(경향신문 DB)



한국의 우파는 ‘유능’ 혹은 ‘명품’이라는 이미지를 지금까지 달고 있었고, 반면에 좌파는 ‘무능’ 그리하여 경멸당하고 멸시받는 존재였다. 이런 기존의 이미지에 ‘보수=혐오’라는 이미지 하나가 확실하게 더해졌다. 

자, 지금 당장 편의점에 가보시라. 거기에 한국 청춘들의 삶이 23.8평짜리 공간에 녹아있다.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당을 지지할 것이고 한국의 정치에 무엇을 바랄 것인가? 한나라당의 할아버지들이, 그들과 한번이라도 정식으로 말을 섞어본 적이 있을까?
아마 한나라당은 앞으로도 당분간 혐오와의 긴 싸움을 하게 될 것 같다. 난 그 해법이 편의점 알바들에게 과연 무엇을 약속해줄 수 있는가, 거기에 있다고 본다. 그들에게 어떤 세상을 펼쳐보여줄 것인가? 5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려본다면, 한나라당에는 집권 전략은 있었지만 통치 전략은 없었다. 이 통치 전략은 여전히 박근혜의 비대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보수냐, 아니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같이 정치할 것이냐, 이게 더 중요한 일이다. 편의점의 20대 알바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한나라당은 당분간 혐오의 굴레에서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우석훈|타이거픽처스 자문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이때의 시장은 교과서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시장이 아니라, 바로 ‘삼성’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넘어간’ 것은 대통령의 오른팔이라고 말하는 이광재가 아니었을까? 

“광재마저도 이미 삼성으로 넘어갔는데, 나보러 혼자서 어쩌라구?”나는 이런 얘기로 대통령의 말을 해석했다. ‘2만달러 경제’ ‘샌드위치 위기론’ 등, 지난 정부의 국정을 토건으로 그리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동시다발적 FTA 국면으로 끌고간 근본적인 힘은 삼성에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경제범죄로 구속되어 있던 이건희 회장을 끄집어낸 것은 전 이광재 강원도지사가 주도했던 평창 동계올림픽 3차 유치 시도였다.

이 사건은 그 자체로도 황당하지만, 삼성이 이명박 정부 들어 새롭게 시도하는 사회와의 관계맺기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하계올림픽과 달리 도시 차원에서 진행되는 동계올림픽은 환경 파괴 등의 이유로 무조건 찬성 목소리만 나오지는 않는다. 푸틴이 직접 나섰던 지난 동계올림픽과 같이, 국가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주로 개도국인데, 한국은 여기에 한술 더 떠서 경제범죄자였던 이건희 회장을 사면하는 황당한 일을 했다.

 




지난 정부에서는 이광재를 축으로, 많은 국정의 기본 방향 설정에 삼성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했고, ‘삼성 공화국’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되었다. 이번 정부에서는 어떻게 되었을까? 명목상으로는 현대 출신 대통령이고, 같은 재벌가 출신이니 삼성도 좋아졌을 것 같다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다. 그러나 실제로 현 정권 들어 국내 회사가 정부와의 관계에서 특별히 좋아진 건 별로 없고, 진짜 한몫 챙긴 것은 외국 회사들이다. 

참여정부에서 기업도시 건 등을 삼성이 먹었다면, 현 정권에서 진짜로 처먹은 것은 딱 두 종류, 유통자본과 외국 회사들이었다. 특히 외국 컨설팅 회사들은 중요한 국정과제를 좌지우지하면서, 사실상 청와대를 장악했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다. 시청료 인상을 비롯한 KBS 구조조정 방안은 보스턴 컨설팅에서 했다. 지금 야권 등원의 중요한 명분의 하나였던 농협의 신경분리나 한전 구조조정 방안 등 이전 정권에서는 주요 국책연구소에서 했던 일들을 매킨지에서 했다. 이게 도대체 나라 꼴이 아니다. 한술 더 떠서 외국계 컨설턴트들이 아예 청와대 주변에 자리를 잡고 앉아, 기후변화협약 기본 방향이니 이런 걸 잡겠다고 하니, 정부가 정부 꼴이 아닌 게 당연하지 않은가? 삼성이 현 정부에서 상대적으로 힘을 덜 쓴 건, 정권이 삼성을 견제해서가 아니라 외국계 회사가 약진하며 벌어진 기이한 사건일 뿐이다.

이 상황에서 삼성이 취한 전략은 지역화, 즉 외국계 컨설팅 회사와 결탁이 덜 된 지방정부를 공략하는 일이었다. 대표적인 삼성 장학생이었던 이광재를 따라 강원도 도정에 들어간 건 물론 송도 신도시를 따라 인천, 새만금 방조제를 따라 전북 등 결국 동네마다 삼성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가 내걸리게 되었다. 중앙정부는 매킨지와 보스턴, 지방정부는 삼성. 이런 결탁 속에서 인천공항 매각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 것이다.

여기에 한·미 FTA 국회 비준 이후, 주요 국정사업에 새로운 시어머니로 미국 상공회의소마저 적극 나서고 있는 게 최근의 형국이다. 이러니 국민들의 경제적 삶이 형편무인지경에 빠지고, 서민들의 삶이 도탄에 빠진 것 아닌가? 주요 국책사업을 외국계 컨설팅사에 넘기지 말라는 특별법이라도 신설해야 할 상황이다. 경제 민주화니, 금융 민주화니, 현 상황에서 너무 고급 개념이고, 국정이나마 한국 사람이 하는 것이 개혁의 내용이 될 지경이다. 지자체 중 가장 나간 건 안희정 지사가 있는 충남이다. 한국 농업의 최대 적이었던 카길을 유치하는 것을 도가 나서서 추진하고 있으니, 이게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인지, 미국 안마당에서 다국적 자본에 유린당하는 중남미 어떤 국가인지, 나라 꼴이 꼴이 아니다.

변화의 출발점은 삼성, 현대와의 관계이다. 작게는 삼성을 대기업 중의 하나일 뿐으로 보는 일, 넓게는 현대건설 등을 축으로 하는 건설사에 주는 특혜를 그만두는 것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외국계 컨설팅사를 앞세운 매판자본들의 국정 농단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게 이제부터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숙제다. 삼성 공화국, 이제는 그만하자! 삼성 장학생들이 법조계와 언론계를 장악한 건, 이미 오래된 일이지만 새로 출발하게 되는 시민의 정부에서도 삼성 장학생들이 한자리 차지해서는 우리의 미래가 없다. 대통령 선거에서, “삼성에 특혜를 주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추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삼성이 FTA를 불러왔고, 현대가 토건을 불러왔다. 이런 거, 다음 정부에서는 그만하자. 정권은 망해도 특혜 기업만 번영하는 기이한 지난 두 번의 경험, 충분히 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올해로 학위를 받은 지 17년째이다. YS 시절은 현대그룹에서, DJ 시절은 정부에서, 노무현 시절은 시민단체에서 보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공중파의 소위 ‘블랙리스트’ 속에서 보내는 중이다. 이번 대선에 이기고, 맘 편하게 은퇴하는 게 나의 꿈이다. 

생태주의자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전쟁이 한 가지 있었다. 한나라당 때문에 모든 게 이렇게 토건 국가가 되었다, 그건 아니다. 토건주의자들은 한나라당에도 민주당에도 있고, 심지어는 예전의 민주노동당에도 있었다. 시민단체 내에도 아파트 공급론자들이 있다. 

이 싸움은 DJ 시절, 그린벨트 해제 때 처음 시작되었다. 그린벨트를 풀어서 거기에 임대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할 것인가, 아니면 그린벨트를 지킬 것인가? 이 싸움에서 환경단체는 졌고, 일부 임대주택을 끼워넣는 공영개발 형식으로 아파트를 대량 공급하자는 사람들이 이겼다. 그렇게 그린벨트를 임대주택 명분으로 풀었던 첫 사업이 바로 은평 뉴타운이다. 이명박 시장 시절, 나는 졌고, 결국 벌금형을 받았다. 

똑같은 형식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수직증축, 즉 재개발 대신 리노베이션을 하면서 높이를 높여주는 건, 이건 지난 분당 재·보선 때 손학규가 들고 나왔다. 이건 막았다. 그 다음이 종 상향, 즉 아예 2종 주거지구를 3종으로 풀어주어서, 용적률을 높여주는 방식이다. 가락시영에서 뚫렸고, 곧 바로 염창1구역에서 또 뚫렸다. 그린벨트 풀 때와 같은 논리였다. 이 싸움에서, 또 졌다.
다음 번 싸움은 리노베이션에서 별동신축이라는 거다. 이건 민주당이 물밑으로 한나라당에 그냥 양보할 것 같다. 이 모든 것의 원리는 다 같다. 일반 분양 물량을 늘려서, 그 돈으로 특혜를 주는 대신, 일부의 양보를 받아 임대주택을 늘리자는 거다. 

결국 시청 내 토건족 공무원과, “결국 임대주택만 늘리면 되는 거 아니냐”는 아파트 공급론자들이 일단은 이겼다. 그러나 진짜 걱정은, 그렇게 해도 그 임대주택이 생겨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금 경제 사정이 바뀌는 중이고, 분양제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생각해보시라. 당신이 가장이고, 지금 수중에 몇 억이 있고, 집이 당장 필요하다면 왜 분양을 받겠는가? 이미 프리미엄이 없어지는 상황에서, 당장 살 수 있는 아파트가 이미 시장에 충분히 있는데 말이다. 토건족들과 아파트 공급론자들의 의도는 알겠지만, 결국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내 예상이다.
이번 두건의 종 상향 조치로, 취임한 지 얼마되지 않은 박원순 시장은 코너에 몰렸다. 가락시영의 세입자 비율이 70%로 알고 있다. 즉 집주인은 30%, 이 사람들은 대부분 한나라당 찍고, 아무리 종 상향 혹은 수직증축 같은 걸 해준다고 해도 결국 한나라당 찍을 거다. 박원순을 지지한 70%의 세입자는 사업 시작하면 당장 쫓겨난다. 4년쯤 지나서 재건축에 설사 성공한다고 해도, 이렇게 쫓겨난 세입자가 그곳에 들어간다는 보장도 없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할 것인가, 박 시장은 지금 이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경향신문 DB


도시계획위원회에는 무주택자, 세입자를 대변해줄 위원이 없다. 업자와 학자, 관료, 집 없는 시민은 과연 누가 대변해줄 것인가? 그게 도시계획위원회 등 시정과 국정에서 앞으로 우리가 바꾸어야 할 방향이다. 시청앞 스케이트장 문제에서 내가 얘기한 것은, 그게 미세먼지 등 오염지역이라서 그곳에서 어린이들이 운동을 하게 하는 것은 보건상 안된다고 하는 거였다. 이건, 시장에게 보고도 안 된 걸로 알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제일 나빴던 것은, 그를 지지하였던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볼 공개적 자리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밀실에서 진행되는 위원회 결정, 시장의 귀를 가리고 있는 관료들, 그리고 자기가 다 안다고 하는 학자들, 도대체 시민들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환경단체 등 시민단체에서 종 상향 문제는 아마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으로 가게 될 것으로 알고 있다. 새로운 시장 당선 후에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되는 게 슬플 뿐이다. 나는 시장의 성공과 재선을 아직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강남의 집주인? 그들은 시장의 실패를 간절히 바란다. 

“시장님, 우리들의 시장님”, 이 제목으로 ‘토건 서울시’에 대한 글은 마감하려고 한다. 나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고, 달은 집 없이 월세, 전세 사는 그런 시민들이다.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 자연스럽게 이 문제들도 완화된다. 토건파들은 종 상향, 수직증축, 별동신축 등 아파트 공급을 더 늘리자는 사람들이고, 임대주택은 이를 위한 장식용 명분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렇게 고층화된 아파트의 전기료는 가볍게 월 100만원을 넘어간다. 생태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중산층들도 그런 아파트 관리비는 감당하지 못한다. 제발이지, 무엇이 집 없는 시민을 위한 것인지, 그 달을 보시기 바란다. 토건 공무원, 부동산 공급론자인 관변 학자들, 그런 사람이 아니라 제발이지 달을 보시길.
시장님, 우리들의 시장님, 당신의 정치적 힘은 바로 집 없는 서민들에게서 나오는 겁니다, 30%의 가락시영 집주인들과 지주들이 아니라… ‘부동산 뻥튀기’. 그건 우리들의 시장님이 가실 길이 아닙니다. 일단 종 상향 등, 시급하지 않은 것들은 좀 시간을 가지고 뒤로 미루어두고, 시민들이 시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절차를 열어 주시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무휼이 죽었다.

“무휼은 조선제일검이니, 능히 무사 200을 당하느니라.” 방원이 아들 이도에게 자신의 호위무사를 넘겨주면서 한 말이다.

“네, 무사 무휼, 주상의 명을 받자옵나이다.” 상왕이 된 방언이 세종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협박하자, 만약 자신이 죽으면 주저 없이 칼을 휘두르라고 세종이 내금위장에게 명하였을 때, 무휼이 했던 말이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난 이 장면이 제일 좋았다. 방원의 호위무사였지만, 그가 왕위를 넘기면서 모시는 주인이 바뀌었다. 옛 주인에게 칼을 휘둘러야 하는 무휼의 아픔, 그게 바로 공무원이다.

김영현 작가의 드라마에는 공무원들이 아주 많이 나온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지진희가 종사관 역을 맡아서 강직하고도 순정한 무관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선덕여왕>이나 <서동요>에도 그 시대의 수많은 고급 공무원(?)들이 나왔다.



김영현의 드라마에는 주제의식이 비교적 또렷한데, 드라마의 결로만 치면 김수현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유야 어쨌든 세종이 한글을 만들 때, 이걸 막으려던 비밀결사 밀본과 세종의 명을 받는 공무원 사이의 한판 승부. 그걸로 이만한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니 김영현과 한 시대를 살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대책 없이 행정용어를 영어로 ‘찍찍’ 갈기던 시대는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DJ 때는 한국을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아예 이름 자체를 공모했다. 참여정부 때는 ‘로드맵’이라는 말이 아주 국정을 도배하고 있었다.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 작동하게 해야 한다, 이것도 일종의 관념이라고 생각한다. 중앙정부가 이 난리를 치고 나니, 지방정부는 정말 황당하게 했다. 문법에도 맞지 않는 ‘하이 서울 페스티벌’이 이명박 시대의 서울시 행정 중 가장 웃기는 일이라고 기억된다.

요즘은 문화연대가 많이 약해졌다. 단체 상근하던 시절, 하이 서울 페스티벌을 막기 위해 문화연대와 같이 일했던 것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장면 중의 하나이다. ‘다이내믹 부산’ 등 과연 이 나라가 한글이라는 자신의 글자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황당한 이름들이 횡횡한다.
<뿌리깊은 나무>(뿌나)를 방영하는 날을 ‘뿌요일’이라고 부를 정도로 ‘뿌나’ 폐인들이 지지했던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는 끝났다. 일단 정권 바뀌면 한글날부터 공휴일로 만들고, 꼭 필요하지 않은 행정용어들은 가능하면 쉽고 편안한 우리말로 바꿔나가면 좋을 것 같다. 한국어 능력시험도 강화해서, 어지간한 공기업의 입사에서의 영어 점수는 한국어 능력 점수로 바꾸어 나가는 게 좋을 듯싶다.

그 나라 공무원이 그 나라 말을 잘하는 게 맞지, 영어를 잘하는 게 맞는 건 아니라고 본다. 90년대 중후반, 한동안 영어가 유행하면서 별 말도 아닌 이상한 영어 단어 섞는 게 유식해보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어린쥐’ 정권도 등장하고, 초등학생들이 영어 공부하느라고 요즘 난리도 아니다. 우리말, 한글, 이런 눈으로 보면 현 정권은 법통도 없고 계통도 없고 그냥 ‘어린쥐’를 숭상하던 ‘뿌리 없는 잡것’들의 정권이다.

그렇다고 한글을 우상화시켜서 강력한 쇼비니즘으로 복귀하자는 말은 아니다. 한글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하고, 한글이 가진 ‘소통’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는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공감’이라는 고급스러운 개념은 고사하고, ‘소통’이라는 말 그리고 공론장이라는 말이 위기에 처했던 한 정권이 끝나간다. ‘하이 서울 페스티벌’과 함께 이명박의 ‘뉴타운’ 여기에 뒤이어 ‘휴먼타운’까지, 결국 말이 오염되면 행정도 오염되고, 공무원들도 같이 오염된다.

오염된 공무원을 금방 알아보는 건, 말 중에 불필요한 영어 단어를 얼마나 섞어 쓰나, 그리고 골프를 얼마나 자주 치나, 이것만 보면 된다. ‘영어+골프=나이스 샷’! 나이스 샷 외치는 고급 공무원들이 골프장에서 업자들과 결탁하면서 민주당 정권이 실패했고, 이명박 정권도 역시 붕괴 직전이다. 현장에서 나도 많은 공무원들을 만나는데, 이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제일 쉽고 빠른 시간에 파악하는 방법이 얼마나 영어를 ‘찍찍’ 쓰는가, 그리고 골프에 대한 얘기를 얼마나 많이 하는가, 그 두 가지였다.

박원순, 최문순, 김두관, 송영길 등 최근 단체장으로 업무 중인 분들에게 자신과 일하는 3급 이상 고위직들 중 과연 무휼이 있는가, 한 번 살펴보시길 바란다. 아울러 얼마나 많은 자신의 동료들이 골프광인지, 한번쯤 살펴보시길. 골프 치는 공무원이 부패하지 않기,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지금 외환은행 목숨 줄을 쥐고 있는 금융위원회 김석동 위원장이 대표적인 골프광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경향신문DB

영화 <언터처블>은 금주법 시대에 마피아 대부가 된 알 카포네를 체포하게 된 공무원들에 관한 실화이다. 법무부 공무원인 엘리어트 네스가 “절대로 매수되지 않는” 9명의 ‘언터처블’들과 알 카포네를 체포한 것은 그가 26세였을 때다. 미국의 영웅이 된 엘리어트 네스는 재무부 관료들의 도움을 받아 조세 포탈로 알 카포네를 감옥에 넣는 데 성공한다. 한국에는 정부 내에 세 종류의 마피아가 있다. 그중에 1악은 모피아, 2악은 토건족, 3악은 교육 마피아다. 이 세 마피아가 결국 노무현 정부를 무너뜨렸고, 멀리는 DJ 정부도 무너뜨렸다. 물론 삼성과 같이 손대기 어려운 재벌들도 있지만, 이건 정부 바깥에 있는 존재들이다. 자, 노무현 정부가 무너지는 과정을 잠시 복기해 보자. 

노무현 정부는 인수위 구성에서 이미 무너졌다. 요즘 ‘민주당 X맨’으로 불리는, 한·미 FTA를 은근 슬쩍 통과시켜주고, 그냥 원내로 복귀하자고 주장하면서 야권 연합전선 붕괴의 맨 앞에 선 김진표가 노무현 정부 붕괴의 1등 공신이었다. 그를 인수위 부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노 정부는 모피아와 손을 잡았고, 한국 모피아의 명실상부한 대부, 이헌재를 경제부총리로 올렸다. 그 과정에서 이헌재를 고용했던 김&장과 삼성이 한국의 통치자가 되었고, 이헌재는 ‘한국형 뉴딜’로 토건족들을 등용하였다. 그리고 김진표가 다시 교육부총리가 되면서 교육 마피아도 노무현 시대에 제 시절을 만났다. 그렇게 붕괴한 노 정부가 결국 한·미 FTA를 추진하게 된다. 

민주화 이후의 한국 역사를 보면, 이 세 종류의 마피아한테 먹히지 않은 정치인은 딱 두 명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로 부작위 작위라는 미학을 보여준 서울 시장 시절의 고건, 그는 한국이 배출한 최고의 관료이다. 들어가자마자 토건족에 먹힌 건 정운찬 총리, 요즘 토목학회 앞잡이로 전락한 한국 최고의 경제학자를 보면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언론민주화의 영웅, 최문순은 당선되자마자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토건족에 먹혔다. 

모피아와 토건족에 먹히지 않은 또 다른 정치인은 바로 김상곤 교육감이다. 김두관 지사는 아슬아슬하게 선을 타는 중이고, 송영길 인천시장은 바로 먹힐 것으로 봤는데, 의외로 잘 버티는 중이고. 곽노현 교육감은, 지금 감옥에 있다. 굵으면 부러진다, 그 얘기이다. 

그렇다면 김상곤은 어떻게 모피아나 토건족 혹은 교육 마피아에게 먹히지 않고 아직도 버티는가? 많이 듣고, 회의 많이 하고, 시간을 끌 만큼 끌다가 마지막 순간에 결정하는, 시민단체의 의사결정 과정을 가장 적절히 구사한 김상곤식 리더십이 그 요건이라고 생각한다. 김상곤의 친위대와 공무원 사이의 조화, 그 소통의 리더십이 김상곤의 힘이다. 고건과는 조금 결이 다르지만, 또 다른 ‘행정의 달인’ 탄생을 목전에 보는 중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김상곤의 길이 아니라 노무현의 길에 가깝게 가 있다. 오염지역의 ‘친환경 스케이트장’에서 처음 토건족한테 당했고, 가락 시영 ‘종상향’으로 반은 먹혔다. 서울시 안의 토건족 관료들 그리고 그들에게 줄을 대고 있는 토건 교수들이 한 달 만에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그들 입에서 “박원순, 별 거 아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이대로 가면 박원순도 노무현의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 지금 시장에게는 엘리어트 네스도 없고, ‘언터처블’도 없고, 토건 시대에 이리저리 줄 대면서 영광을 누렸던 마피아들만 잔뜩 있다.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노통은 자신이 어떤 학자보다 더 잘 안다고 했다. 지금 박원순은, 종상향에 대해서 사람들이 뭔가 깊은 오해를 한다고 했다. 정관용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았는데, 오해는 지금 시장이 하고 계시다. 세세한 얘기는 천천히 하고…. 

고언 드린다. 보궐로 인수위가 형성되지 않았던 서울시장의 인수위원장 역할을 했던 김수현 교수를 주위에서 물리시기 바란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실패 요인 중 결정적이었던 부동산 정책을 청와대에서 총괄하던 사람이었고, 그의 실패가 바로 노무현의 실패였다. 그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는 지금의 변화에 적합하지 않은, 너무 옛날 패러다임의 사람이다.

그리고 가락 시영 ‘종상향’을 도시계획위원회에 재심사하도록 지시하고, 이 결정에 관여한 사람을 전부 불신임하시라. 서울시의 김진표 역할을 할 사람, 지금 시장 주변에 너무 많다. 시민의 정부가 ‘토건의 정부’, 이렇게 변질되는 건 시간문제다. 대한토목학회, 도시계획학회 이런 곳과 결탁한 사람들은 과감히 내리고, 젊은 공무원들을 많이 활용하시기 바란다. 지금 서울시가 실패하면, 내년의 총선, 대선, “이렇게 바꾸자”는 얘기를 우리가 할 수가 없다. 토건족들이 김수현을 바람막이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고 하는 중이다. 급히 가면 체하니, 김상곤이 했던 것처럼, 급한 결정들은 일단 보류하고 기본부터 재점검하시기 바란다. 

한마디만 보태면 ‘시정의 일관성’, 그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바로 내부의 토건족들이다. 한나라당 10년 시정을 바꾸는 중인데, 일관되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우석훈 경제학 박사·타이거 픽처스 자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우석훈|2.1연구소, 타이거 픽처스 자문

2008년의 촛불집회는 지금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은 아직도 MBC ‘PD수첩’이 괴담을 만들어냈고, 이게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면서 사건이 벌어진 ‘괴담 사건’으로 이해하는 듯싶다. 만약 한나라당이 이번 총선을 계기로 국회는 물론이고 대선에서도 정권을 내어준다면 그 일등공신은 김어준과 SNS가 아니라 한나라당 사람들이 선호했던 두 개의 단어 ‘포퓰리즘’과 ‘괴담’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쿱(iCOOP)생협 회원들이 친환경 무상급식 운동본부 발족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경향신문 DB

포퓰리즘으로 망한 건 이유가 명확하다. 대중정치라는 게 사람들에게 애정과 인기를 얻고 싶은 게 기본 작동방식인데, 자기 스스로 인기가 싫다고 하니 소멸할 위기를 자초하게 됐다. 괴담, 이 단어 역시 상대를 보지 않고 마구 주먹을 휘두르는 복서처럼 보수들을 바보로 만들었다. 만약 후대가 한나라당의 위기 혹은 소멸에 관해서 해석한다면 이렇게 얘기할 듯싶다. 괴담이라는 말에 스스로 갇혀, 한나라당은 사회과학적 분석을 거부했다. 

여러분은 촛불집회에서 어떤 순간을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으시겠는가? 고등학생들 소위 ‘촛불소녀’들이 나온 걸 중요하다고 볼 사람도 있고, 청와대 목전까지 갔던 걸 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미학적으로는 ‘명박산성’이라는 해괴망칙한 구조물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도 있다. 소설가 공지영이 그랬던 것 같다. ‘오됴쟁이’ 시절에 나도 열심히 글을 쓰던 와싸다라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촛불집회에 대거 나온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역시 제일 중요한 사건은 한살림의 깃발이 촛불집회에 내걸린 게 아니겠는가? 

너무 넓은 범위의 운동이라서 기존의 민중과 시민 프레임에 잘 잡히지 않는 운동의 한 흐름으로 생명평화운동이라는 게 있다. 그 한 극단에 생활협동조합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한살림이 있고, 또 다른 한 쪽에는 채식주의자와 동물애호가들이 모여서 형성된 카라라는 조직이 있다. 안철수 교수의 청춘콘서트를 기획한 평화재단의 원형 중 하나인 정토회 역시 넓게 보면 생명평화운동으로 분류된다. 유기농 운동에서 채식을 거쳐 동물보호까지, 이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일련의 흐름은 2000년대 들어와서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는데, 학교급식운동의 초창기 흐름 역시 이런 생명운동 위에 얹혀 있던 것이다. 

초기에 우리가 했던 논의는 생협 조합원이 100만명이 되면 4인 가족으로만 쳐도 400만의 밥상공동체가 생길 수 있으니 늦게 가더라도 언젠가는 한나라당 없는 세상 혹은 토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거였다. 한살림 조합원은 벌써 예전에 10만명을 넘어섰고, 많은 생협들의 조합원이 촛불집회를 경계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정확한 추산은 어렵지만 생명이라는 말에 동의하는 조합원이 이미 전국적으로 5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사람들이 바로 4대강에 반대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불안하게 생각하며 농지투기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다. 계급, 시민, 이런 단어들을 쓰지는 않아도 한나라당이 움직이는 것과 정반대의 세상을 희망하며 집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 한나라당이 당하면서도 과연 누구한테 당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것, 그게 바로 생명평화운동이다. 

30~40대 여성에서 20대 여성들에게 지난 수년 동안 폭넓게 퍼진 흐름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새로운 흐름에 대한 감수성이다. 이게 지금 세상을 바꾸는 중이다. 이 흐름은 기존의 여성주의 등 여성운동과 묘하게 다르면서도 겹친다. 밥상으로부터 시작해서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철학, 이게 지금 유기농 식단을 벗어나 동물 그리고 공동체의 연대의식으로 급진화하는 중이다. 

여기다 대고 포퓰리즘 운운했으니 한나라당의 세상인식도 참! 여성운동 중 여성민우회가 대표적으로 여성과 생명운동의 접경에 서 있는 곳이다. YMCA의 등대생협은 종교운동과 생명의 접경에, 불교생협은 말 그대로 불교와 생명의 접경에, 이렇게 생명진영 조직들이 급속하게 커지는 중이다. 

마지막 남은 도화선은 과연 이 생명운동의 흐름이 탈핵까지 넘어올지, 그게 이번 총선의 남은 쟁점 중의 하나이다. 할아버지들이 방사능에 대해서 느끼는 공포감과 가임여성들의 공포감은 100배 이상 차이가 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하여 여성들의 핵에 대한 경각심이 점점 클라이맥스로 가는 동안, 한나라당은 편서풍만 얘기하며 일본과 한국을 지구 정반대편에 있는 나라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여성들의 시대, 이건 1990년대 초창기의 여성단체들이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더 넓게, 더 깊게 그리고 덜 날카롭게. 그렇지만 이 도도한 흐름을 한나라당은 이해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여성민우회나 카라 같은 데가 뭐 하는 덴지 들어나 보셨나? 이번 정권은 국회에서 민주당에 진 게 아니라, 식탁을 중심으로 탈핵으로 나아가는 바로 그 여성들에게 길거리에서 진 거다. 할아버지들의 시대, 그건 종편 평균 시청률 0.5%에 갇혀버렸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우석훈 | 2.1 연구소 소장·타이거 픽처스 자문


흔히 말하는 강남을 넓게 보면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이렇게 구성이 된다. 직장과의 거리상의 문제로 나도 그곳에 살았고, 아내와 신혼을 그곳에서 시작했다. ‘88만원 세대’를 비롯해서 최근의 몇 권을 제외하면 그곳에서 썼다. 나는 그렇게 넉넉한 편은 아닌데, 강남좌파라고 하도 괴롭혀서 결국 이사를 왔다. 속속들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도 강남은 조금 아는 편이다.

이제는 손학규 의원의 보좌관으로 활동하시는 손낙구라는 분이 계시다. 민주노총 대변인을 했었던 그가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라는 책을 최근에 썼다. 그가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강남의 60%는 셋방에 살고 있고, 2가구 이상 소유 즉 다주택 소유자는 8% 정도이다. 한 가지 특이점은 60%의 셋방살이 중에 사실은 집이 있는 사람의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높다는 것이다. 압구정동은 특별히 셋방이 적은 편인데, 세입자는 38%로 비율이 낮다. 이 중 34%는 비록 전·월세로 살지만 사실은 자기 집을 가지고 있다.

결국 전체 압구정 주민 중 집이 있는 사람은 74%, 집이 없는 사람은 26%이다. 일반적으로 전·월세 주민들은 제대로 된 주택 공약이 있으면 야당을 지지한다는 명제가 성립되지 않는 유일한 지역이 강남구, 그중에서도 압구정인 셈이다.

계급 혹은 경제적인 분석만으로 접근하면, 지역감정을 깨고 경제적으로 투표한다고 하면 한나라당이 우리나라에서 정치적으로 서 있을 곳은 거의 없다. 그러나 압구정동 그리고 이곳으로 대표되는 강남갑, 이곳은 최소한 집 있는 사람들만 한나라당에 표를 준다고 하더라도 74%가 나오는 셈이다. ‘부자 정당’ 한나라당이라는 현재의 형편 가지고도 지켜낼 수 있는 철옹성, 그곳이 압구정 현대아파트로 대표되는 강남갑이라는 곳이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나경원 후보에게 강남갑에서 투표한 게 64.8%이다. 반면 박원순 후보에게는 38%. 결국 차이가 29.8%포인트다. 박근혜의 복심이라고도 불렸던 이혜훈 의원 지역구인 서초갑의 24%포인트보다 더 많은 차이가 벌어진 곳이다. 정말로 한나라당의 아성인 곳이다. 박원순보다 개인적으로 30%포인트 가까운 표를 더 받아낼 수 있는 매력적인 후보라야 강남갑에 출마할 수 있다, 이게 가장 간단한 분석 결과이다.

객관적 수치는 그렇고. 그러나 계급만으로는 분석이 안되고, 서울·수도권, 여기에 온갖 감정들이 격돌하는 게 한국 정치이다. 결국 강남갑에 출마할 수 있는 누군가를 찾게 되는 게 사람 감정이다. 강남갑을 이기면 총선, 대선 다 결론 끝이고, 보너스로 한나라당을 소멸시킬 수 있다. 손학규는 이미 분당에서 그 게임을 치렀고, 정동영은 미워도 전주 출마, 정세균은 종로 출마,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사는 이계안은 동작 출마, 이렇게 다들 살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개관적으로 유일한 가능성은 안철수, 그러나 본인은 그거 안 하겠다는 거고. 강남 좌파의 남은 빅카드인 조국도 부산에서는 몰라도 강남갑에서는 턱도 없다. 개인적으로 만약 조국이 총선에 강남에서 나온다면, 그가 살고 있는 서초구는 피하고, 송파갑이나 송파을 중에서 선택하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배우 김여진이 나오면 강남갑도 해 볼 만하다. 계급투표는 없어도 세대 투표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엄마가 되는 김여진, 그리고 배우로 오래오래 보고 싶은 그에게 나는 선거에 나오라고 할 마음은 전혀 없다.

자, 상황은 이렇지만, 강남갑에 출마를 결심하는 사람이 강남을은 물론이고 강남 전역의 편대장으로, 한나라당을 강남에서 몰아내는 이 전투의 선봉장이자 영웅이 될 거라는 객관적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강남갑에서 이기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무효화시키는 것은 물론, 국회에서 처리 안 하는 미디어렙법 등 종편 채널의 문제 해결 등 지금 우리가 풀고 싶어하는 거의 대부분의 문제를 풀 수 있다.

강남갑에서 한나라당을 이기면, 지난 4년간 한나라당 정권이 내놓은 이 해괴망측한 4대강 사업, 그로테스크한 부자들만을 위한 국정 운영, 이것들을 정상화시킬 수 있다. 그뿐이랴? 반값 등록금을 넘어, 유럽식 무상 등록금도 구현 가능하다. 그게 강남갑 후보가 가지는 정치적인 의미이다.

하여간 단박에 대선 후보급의 강남 편대장의 위치로 갈 수 있는 게 강남갑 출마 선언의 의미이다. 시민의 정부, 2012년 대선, 그 싸움의 1번지는 바로 강남갑이다.

강남갑 싸움, 그곳은 그 자체로도 의미 있고, 이기면 정말로 한나라당의 자민련화, 소멸을 의미한다. 내가 이해하는 것은 이 싸움에서 이겨야 새만금을 살릴 수 있다는 거다. 모든 시민단체와 민중단체의 지원을 강남갑 출마자는 얻을 수 있다. 재판만 아니면, 딱 ‘달려라 정봉주’의 판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우석훈 | 타이거 픽처스 자문


이번 연재를 시작하면서 다음 정부는 ‘시민의 정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물론 이때의 시민은 ‘시민단체’의 그 시민이 아니라, ‘시민’ 없는 시민단체라고 말할 때의 바로 그 시민이다.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지지기반이 실제로는 ‘서민’이라고 말하지만, 이 서민은 시민보다 훨씬 더 실체 없는 개념이다. 노조조직률이 10% 밑으로 내려가는 한국의 상황에서, 민중들은 자신을 노동자라는 계급적 필터를 통해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서민이라는 말로 이해한다. 서민!

서민이라는 정치적 실체는 이론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군사독재 시절의 잔재이기도 하다. 계급적 자각을 탈색하고 서민들을 자신들의 지지기반으로 만들기 위한 군인들의 통치수단이었고, ‘서민’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은 여전히 군사정권을 계승하는 정치집단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난 서울시 보궐선거는 억지로 ‘서민’이라는 한나라당 틀에 가두어놓은 민중들이 그 대신에 ‘시민’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인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빈민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도시빈민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곳일수록 반한나라당 성향이 강했고, 박원순 시장에게 몰표를 주었다.
이 추세가 지금과 같이 이어진다면, 한나라당은 결국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대대적으로 패퇴하게 되고, 대구·경북 등 소위 ‘한나라당 버전’의 동토의 왕국에서나 겨우 숨을 쉬는 지역당으로 내려앉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스스로를 ‘시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한나라당의 지역당화를 그 어느 때보다 소망하고 있다. 여전히 한나라당이 ‘명품정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리들의 대통령의 연설 속에 나오는 ‘국민’이 바로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30% 남짓의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일 것이다.

직장인들이 서울 압구정동 제5투표소를 찾아 서울시장 투표를 하고 있다.


서민이라는 개념은 이미 중산층 붕괴의 현장 속에서 한국에서는 의미 없어진 개념이고, 시민과 국민의 대결, 50~60대의 고령층과 청년의 대결, 그런 양상을 가지게 됐다. 프랑스 대혁명처럼 짧은 기간에 극단적으로 표출된 대혁명의 형태는 아니지만, 우리는 이미 지난 몇 년 동안 천천히 그리고 2012년에 매우 농축적으로 일종의 시민 혁명을 경험하게 된 셈이다. 서민, 국민, 이 틀 내에서 한 번도 정치적 실체를 가지지 못했던 시민의 시대가 우리에게도 열리는가?
자신을 ‘시민’이라고 부르고, 그렇게 규정하는 사람들은 이런 한나라당의 몰락을 지금 그 어느 순간보다 강렬하게 원하고 있다. 한·미 FTA 날치기와 함께, 더 이상 ‘국민’이라는 애국심의 규정과 ‘국익’이라는, 결국은 다국적기업 일부와 여기에 복무하는 고위공무원들 일부의 이익일 뿐인 상징 조작은 급격하게 힘을 잃어가고 있다.

운명적으로 한·미 FTA를 다루게 된 남경필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민주당 내의 대표적 협상파였던 김진표 원내대표, 모두 수원을 지역구로 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불행하게도 작년 지방선거에서 수원시장이 된 염태영 시장은 수원환경운동센터 공동대표 출신이다. 이 지역은 이미 시민단체의 대표를 시장으로 선출한 지역이다. 서울에서는 아주 강렬하게, 경기도에서도 역시 만만치 않게, 이미 ‘서민의 정당’과 ‘애국정당’이라는 이상한 틀로 이상한 통치를 했던 한나라당의 정치적 근거가 무너질 것이다. 남는 것은 강남지역뿐이다.

자, 강남에는 누가 나갈 것인가, 이 질문이 이제 예민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강남, 서초, 송파를 묶어 부르는 강남 지역에서도 송파의 일부는 이미 한나라당 땅은 아니다. 연령별 투표 양상이 이 지역에서도 강하기 때문에 투표율이 충분히 높아지면, 강남의 할아버지들만으로 한나라당이 이곳을 지기키는 어렵다. 여기에 이곳에도 독서모임이나 토론모임 등 지역 모임들이 점점 활성화되고 있기 때문에, 괜찮은 후보가 나간다면 해볼 만하기는 하다. 이미 분당에서 손학규 대표가 가능성을 보여준 적이 있기 때문에, 강남이라고 해서 대구 수준으로 동토의 땅은 아니다.

지난 몇 달 동안, 많은 정치인들을 만나서 확인해본 결과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로 대변되는 강남갑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정동영, 정세균 등 민주당 스타들도 강남갑은 무서워하는 것 같다. 이곳에 도전장을 내볼 수 있는 개인은 안철수 외에는 없을 것 같다. 강남갑에서 한나라당을 밀어내면, 총선, 대선은 그걸로 게임 끝이다. 강남갑에서 ‘시민의 후보’가 승리한다면 대구 인근을 제외하면 한나라당이 한국에서 발붙일 수 있는 곳은 없다.
그렇다면 그 옆의 강남을은? 여기는 좀 다르다. 공성진 전 의원의 탈락으로 무주공산이기도 하지만, 계급적인 성향이 강남갑에 비해서는 좀 낮다. 만약 전략적으로 강남갑과 강남을 중, 한 곳을 선택해서 집중하라고 하면 나는 강남을을 선택하겠다. 여기도 자가 보유율이 50% 조금 넘을 뿐이라서, 전·월세대책 같은 무주택자를 위한 정책이 생각보다 중요한 곳이다. 한나라당은 여전히 강남대책이라고 하면 은마아파트로 상징되는 아파트 재개발 촉진책만 내세우지만, 실제로 강남에는 세입자도 많다. 물론 다른 지역보다는 전세가 비싸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모두 자기집을 가지고 있어서 집값 올라가면 좋아할 것이라는 건,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타당하지 않다.
자,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만은 않아 보이는 강남을, 누가 이곳에 출마할 것인가? 내년 총선 1번가는 강남을이다. 1%와 99%의 싸움, 시민적 보편 권리의 출현, 그 앞에 설 영웅은 누구인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조선일보를 비롯한 우파들은 좌파도 잘 모르고, 진보도 잘 모르고, 시민단체는 더더구나 모르는 것 같다. 안철수의 등장 이후 몇 달 동안 내가 보수 신문들을 살펴보면서 내린 잠정적 결론이다. 하긴 나도 시민단체를 어디까지 봐야 하고, 어떻게 분류를 해야 할지, 좀 갑갑할 때가 많은데, 자기들이 어떻게 알겠나?

어느 정도까지 아나, 좀 자세히 살폈는데, ‘만일 결사’라는 걸 모르는 것 같고, 정토회 홈페이지에 나온 기본 사항 외에는 거의 모르는 것 같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는데, 자기가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 상대편 본진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전혀 모르니 이길 수가 없는 거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이 싸움에서 우리가 지지 않을 거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들은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이런 큰 데나 좀 알지, 한국의 시민운동이 그동안 얼마나 깊어지고 넓어지고 복잡해졌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누구랑 싸우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이겨?

나는 불자는 아니지만, 어지간히 바쁠 때 아니면 최대한 도와드리려고 하는 큰 스님들이 몇 분 계시다. 도법, 수경, 두 분이 그렇고, 또 다른 한 분이 법륜스님이다. 지율스님이 ‘요승’으로 불리며 생명을 건 단식을 하고 계실 때, 한편으로는 공권력에 쫓기고 또 한편으로는 조계종의 호법승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때 지율을 거둔 분이 바로 법륜이고, 그때에 아마 한국의 생태운동사에 남을 만한 명언을 하셨다.

법륜스님

“내 눈에 죽어가는 도롱뇽은 안 보여도, 지율이 죽어가는 것은 보이더라.”

당시 조·중·동과 환경부 공무원들에 의해서 요승으로 몰렸던 지율을 꼭 살리고 싶었는데, 내게는 그럴 힘도 능력도 없었다. 나는 법륜스님에게 목숨 빚을 진 것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고, 당신이 하시는 일은 어지간하면 도와드리려고 한다. 법륜스님에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주 많다. 그러나 법륜스님 개인에 대한 감정은 아니다. 바로 ‘만일 결사’라는 것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나의 신뢰이다. 만일 결사, 이런 게 있다는 걸 알고서 나도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만일이면, 27년 조금 넘는다. 어지간한 사람의 청춘은 이걸로 다 지나간다.

초기 환경운동 중, 밥을 남기지 않는 ‘빈그릇 운동’이라는 게 있었다. 그게 바로 만일 결사를 결의한 정토회에서 시작된 일이다. 일종의 종교운동이면서 동시에 시민운동이기도 한데, 환경운동이나 여성운동 혹은 평화운동과 같은 기존의 시민단체 분류로는 정토회를 이해하기 어렵다.

안철수 교수를 현장으로 끌어낸 게 법륜스님이라는 말은 맞지만, 그렇다고 안철수 개인이나 법륜 개인을 본다고 해서 지금 한국을 뒤흔드는 본진이 어떤 건지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정당을 만들 것이냐, 말 것이냐, 그런 제3정당론은 사태의 핵심과는 한참 비켜나가는 얘기다.
만일을 결심한 사람들에게 정당은 오히려 부수적인 수단이고, 진짜 이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좋은 세상 만드는 일이다. 좌우란 단어 혹은 진보·보수라는 단어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또 다른 층위의 일들도 세상에는 존재하는 법이다. 자기 편 아니면 전부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조선일보가 이걸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보수는 약간 이상하지만, 어쨌든 북한에 대한 포비아(혐오)적인 증오와 미국에 대한 지독할 정도의 애정 그리고 재벌에 대한 숭상, 이런 것들을 뒤섞어 ‘자유민주주의’라는 요상한 이념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국의 돈도 다 자기들이 가지고 있다. 요즘 용어로 1%.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조잡한 이념과 돈 그리고 공권력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감동과 정성이 있어야 사람들의 진짜 마음을 살 수 있고, 그래야 인심을 얻는다. 오랫동안 조선일보는 친북으로 몰아서 협박하고, 방송인 등 사람들 밥줄을 끊는 걸로 힘을 과시했다. 그래서 생겨난 부작용이 돈과 대가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실용 보수’이다. 지독하게 실용적!

다음 대선에서 왜 한나라당이 질 수밖에 없는가? 돈으로 움직이는 조직은 정성으로 움직이는 조직을 절대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시민운동 세력에 이런 집단이 정토회밖에 없는가? 묵묵히 움직이는 그런 크고 뿌리 깊은 집단이 몇 개 더 있다. 그 중에 하나를 이번에 안철수의 등장으로 본 것인데, 때는 이미 늦었다는 게 내 진단이다.

조선일보가 오랜 싸움으로 민주당을 다루는 법은 익숙해 보인다. 그러나 시민운동의 역사가 20년 가까이 되면서, 아주 끈적끈적하고 끈질긴 흐름들이 생겨났다. 이 사람들이, 이명박 정권으로는 도저히 안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세상을 위해서, 사람들을 위해서 만일을 바칠 사람들이 보수에도 있는가? 이 싸움은 조선일보 입장에서 보면 아주 칙칙하고 어두운 전장이다.

한나라당이 하는 ‘드림 토크’가 어려워진 이유, 잘 생각해보시라. 출연진이 인기가 없거나, 명분이 없어서가 아니다. 정성을 담아낼 그릇, 한국의 보수에는 지금 그게 없는 거다. 힘? 그거 생각보다 허무하다. 정신의 싸움에서 MB를 수장으로 만든 그 사람들이 지금 시민운동에 정신적으로 진 거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박원순 시장 당선 이후로 너무 상식적인 일이었지만, 우리가 이상하게 정치를 하다 보니 이런 것들을 회복하는 게 혁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변화의 속도는 어느 정도, 변화의 폭은 어느 정도, 이런 논의들이 이제 시작되는 것 같다. 한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최근에 서울시정과 관련해서 한 가지 논란을 보면서, 노무현 집권 초기의 NEIS 논의가 잠시 떠올랐다. 돌이켜 보면,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을 지지했던 지지자들과 그가 첫 번째 충돌했던 사건이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약칭인 바로 이 NEIS였다. “도대체 이깐 나이스가 뭔데, 나에게 이렇게들 난리를 치느냐?” TV 토론에 나온 그가 이렇게 얘기했었는데, 이라크 파병 이전인 이때 이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떠나기 시작한 걸로 기억한다. 시청 앞 스케이트장 논의를 보면서, 나이스 논의할 때의 모습이 내 머리를 빡하고 때리고 지나갔다.

서울 시청 앞 야외 스케이트장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사람들 (경향신문DB)


기회가 될 때마다 얘기를 했지만, 시장으로서 이명박 시장과 오세훈 시장 모두, 스케이트장 문제에서는 범죄자라고 생각한다. 시청 앞 스케이트장은 파리시에서 가져온 것인데, 파리가 원래 우리보다 대기 조건이 좋은 데다가, 시테섬 그것도 간선도로 뒤쪽으로 후미진 곳에 파리 시청이 있다. 우리의 경우는 그와는 다르다.

알기 쉽게 미세먼지라는 걸 가지고 얘기를 해보자. 이건 입방미터라는 기준에 몇 마이크로그램의 미세먼지가 있는가를 단위로 한다. WHO 권고안 기준으로 하면 연간 20마이크로그램(이하 단위 생략) 정도 되는데, 우리는 일평균 100정도를 기준으로 한다. 유럽 대부분의 도시보다 도쿄가 2배 정도 높고, 우리는 거기에서 또 2배 정도 높다고 보면 대충 맞는다. 이게 20~30 이상 올라가면, 아무래도 그 상태에서는 격렬한 운동 같은 걸 자제하는 게 맞는다.

몸무게에 따른 피폭 기준을 실제로는 사용하는데, 이걸 인간의 말로 바꾸면 성인에 비해서 몸무게가 가벼운 어린이나 유아는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0년 기준으로 시청 앞 측정망이 있는 서소문 지점은 11월 70, 12월 63, 1월 58, 2월 50, 연평균 안전치 기준으로 사용하는 50을 넘는 수치가 기록되어 있다. 일일 기준으로 하더라도 이 지점은 일평균 법적 기준인 100을 21회나 넘는 지역이다.

안 그래도 WHO 권고안에 비해서는 헐렁한 기준을 정하고, 그나마도 연간 수차례씩이나 피크치를 넘어서게 된다. 우리가 법적 기준을 국제 기준이나 선진국 평균 정도에 맞추면, 서울은 수시로 휴교 조치를 해야 하고, 어린이들의 야외 외출을 자제하게 해야 하는 도시이다.

환경이나 생태의 실무자들은 어지간히 아는 얘기들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혹은 오세훈 시절의 대기관련 공무원들이 이 사실을 몰랐는가? 아니, 토론회 등 여러 경로로 그들도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 왜 말씀하시지 않으셔요? 시장님이 무서워요. 이런 상황에서 시청 앞이든 광화문이든, 스케이트장을 운용하고 있다는 것은 내 눈에는 한국의 행정절차가 마비되어 있다는 것으로만 보였다. 결국 공무원이든, 시민단체 활동가든, 학자든, 우리는 이 이상한 10년 가까이를 방치하고 있었다. 부모들이 자신도 모르게 자식들을 보건적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일, 그게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제도를 만들거나, 지원책을 찾아내는 것 혹은 꼭 필요한 시설물을 만드는 것은 돈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고, 제도를 안정화시키는 데 절차가 필요하다. 그러나 시청 앞 스케이트장 같은 것은, 하지 않으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생명’이라는 표현을 써보자. 지난 두 시장을 거치면서, 뭐라고 표현하고, 무슨 업적이 있다고 하던간에, 서울은 생명으로부터 아주 먼 도시였다. 우리들의 2세들을 오염물질 가득한 광장에 방치하면서, 이게 개방이다, 이게 디자인이다, 그랬던 사람들이다. 미세먼지는 새발의 피다. 정확하게 측정하면 1급 발암물질이 포함된 VOCs(휘발성유기화합물)도 수시로 법적 기준을 넘겼을 곳이 바로 시청 앞 스케이트장이었다. 당연한 것이,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VOCs가 그곳에도 넘치지 않았겠는가? 일상 생활에서도 위험한 것을, 어른보다 피폭 피해가 몇 배나 클 어린이들을 그곳에서 운동하도록 전시성 행정으로 방치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4대강을 하면서 녹색성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듯이, 시청 앞에 스케이트장을 두고 유아 복지나 생태 도시 얘기를 하는 것, 전부 황당한 얘기가 된다. 돈이 들지 않는 시급한 일들이 있는데, 스케이트장 같은 것은 실무 공무원들도 대부분 알고 있는 얘기이다. 시청 앞에 오염물질이 많다는 것을 아는데, 무슨 대단한 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거기에 스케이트장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아는데 전문가가 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생명 경시, 이건 그만 좀 하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노동자가 노동자를 위해서 투표하지 않는다, 이 간단한 명제가 한국이 가진 큰 딜레마이다. 마찬가지로 농민도 농민을 위해서 투표하지는 않는다. 한국 농업이 가진 큰 어려움은 어떤 정책을 쓰더라도 경상도 농민은 한나라당에, 전라도 농민은 민주당에 투표할 것이라는 게 일종의 사회 법칙처럼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민만이라도 농업을 위한 투표를 한다면, 한나라당이 농촌 지역을 지역구로 하는 국회의원까지 동원해서 직권상정과 날치기를 할 꿈도 못 꿀 것이다.
반면 압구정 현대아파트와 타워팰리스를 두 축으로 하는 부자들은 지독할 정도로 자신들을 위해서만 투표한다. 그래서 한나라당을 반민중적이라고 하고, 동시에 반민족적이라고 부르는 거다.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면, 반민족적인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이다.

한국에서 노동조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집단은 두 개가 있다. 한나라당은 당연히 친자본, 친재벌이니까, 노동조합을 타도의 대상으로 보고, 회유와 공작을 통한 각개격파 외에는 노동자 대책은 없다.
그런데 시민단체도 노조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건 앞에서 이미 다룬 적이 있기는 한데, 노조를 견제하면서 시민운동이 자신의 형태를 갖춘 것이라, 노동조합을 두려워하면서 견제하는 묘한 긴장감이 초기 활동가들에게는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바로 그 시대에 속한 사람이라서, 노동운동과 서울시정이 어떤 관계를 가질 것인가, 궁금하기는 하다. 견제관계였던 것은 맞는데,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반(反)노조는 아니라고 알고 있다.

분당 전 민주노동당 내에도 노동조합이 있었는데, 그 때 사무국장이 나중에 저자로 유명해진 목수정이다. 민주노총의 지지를 받고 있는 민주노동당에서 과연 노조를 어떻게 대할 것이고, 상근활동가들에게 어떤 처우를 약속할 것인가, 그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진보정당들은 사실 돈이 별로 없고, 맨날 부채에 시달리니까,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상근자 수준의 대우를 해줄 수가 없고, 그만한 복지를 약속할 수도 없었다.

비정규직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난 청년 유니온이 정작 자신들 사무실 내부에서 정말 비정규직 수준도 못한 대우를 해줄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돈줄을 틀어막고, 배고프면 결국 지칠 거야, 이렇게 한 게 현 정권의 진보정당 고사 작전의 실체이다. 농담처럼, “우리도 제발 조선일보 수준으로 활동가들을 챙겨주자”고 하지만, 지금의 진보정당 구조에서는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유사한 문제가 시민단체 내부에서도 생겨났다. 졸저 <88만원 세대>를 쓰게 된 첫 모티브 중의 하나가 시민단체에 오겠다는 20대들이 갈수록 줄어드니까 도대체 얼마나 받는데 단체에 이렇게 안 오나, 그 질문이었다. 시민단체가 안 준다, 안 준다 하지만, 중앙단체들은 그보다는 더 준다.

임금 수준만 따지면, 진보정당 상근자들이 시민단체 평간사보다는 많이 받는다. 그런데 시민단체 내부에는 노조가 없다. 장기적으로 보면, 단체 내에도 노조를 만드는 게 맞는데, 노조와 견제 관계에서 조직을 꾸리다 보니, 그를 대체하는 ‘평간사협의회’라는 게 생겼다. ‘원맨 밴드’에 가까운 시민단체에서는 그럴 형편이 안되지만, 중앙의 일정 규모가 되는 단체들,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그리고 참여연대에는 평간사협의회가 있다. 여성단체에는 아직 안 생긴 걸로 알고 있다.
진보정당의 노조들이 주로 임금과 처우 개선이 주된 이슈였다면, 평간사협의회의 주요 이슈는 단체 내부의 의사결정과정에 관한 내용이다. 명망가 위주로 구성된 집행위원회 같은 데에 평간사들의 의견과 목소리를 어떻게 담을 것인가, 그런 게 큰 쟁점이다.

단체 내부에서 평간사협의회를 규모가 작은 곳에도 계속 늘려나가는 게 옳으냐, 아니면 여기도 임금을 받고 4대보험이 적용되는 직장이니까 노조를 만드는 게 옳으냐, 그런 논의들을 가끔 한다. 주먹구구로 단체를 운영하던 초창기는 지났기 때문에, 우리도 이제 평간사들의 역할과 협의구조에 대해서 지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한다.

노조와 평간사협의회, 위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내부에 스스로를 견제할 수 있는 좋은 장치들이다. 생활협동조합과 같은 단체들이나 대표의 독단에 고통받는 단체들도 이제는 평간사협의회 같은 형식을 빌려서, 비록 듣기 싫은 얘기를 할 것이 뻔하지만 내부에 견제장치들을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너무 오랫동안 견제 없이 움직이면 한나라당이나 농협 혹은 대형교회처럼 자신도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된다. 조선일보에도 노조가 있을까? 물론 형식적으로는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우회에 참석해 퇴직공무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자, 이 기회를 빌려 박원순 신임 시장에게 부탁 한 가지만 하자. 참여연대에도 평간사협의회가 있듯이, 서울시청 내의 공무원들도 노조 외에 그런 유사한 협의체가 있는 게 좋을 듯싶다. 임금과 복지 등 처우 문제만이 아니라 실제로 시정의 운영방안과 제안을 하는, 같이 앉아 상의할 수 있는 파트너, 그리고 때때로 시정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있는 편이 낫다. 되도록 독대의 자리나 비선 조직이 움직이게 하지 말고, 공식적으로 실무 공무원들이 토의하고 협의할 수 있는 장치, 그런 것들이 길게 보면 더 효율적이다.

참여연대의 평간사협의회는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평이 좋았고, 여러 가지로 장점이 많은 제도이다. 공무원은 타도나 계도의 대상이 아니라, 그들도 자신들의 삶으로 돌아가면 동등한 시민이다. 오세훈 시장은 초기에 하위직 공무원을 교육과 평가 그리고 퇴출의 대상으로 보았는데, 그때의 조직 붕괴가 결국 그의 시정을 실패로 만든 근본 이유 중의 하나이다.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시민인 서울시 공무원들, 그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시기 바란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박원순이 서울시장에 당선되면서 안도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일부에게는 악몽이 시작되는 날이었을 것이고. 나는 오랫동안 같이 활동했던 시민단체의 동료들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넓게 보면, 한국에서는 두 개의 대안 세력이 아주 좁은 방에 모여들었던 적이 있었다. 총선연대 등 각종 연대회의 등을 통해서 많은 인재들이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머리를 맞대던 시절이 한 번. 그리고 2004년 민주노동당이 원내 진출하기 직전과 직후, 한국의 인재들이 여의도 민주노동당 당사로 모여들었던 적이 있었다.

노회찬, 심상정은 물론이고, 파리에 거주하고 있는 작가 목수정 같은 사람들이 다 이 때 좁은 방에서 복닥복닥거렸다. 두 그룹 모두 이후에 풍비박산, 흩어지기 직전이었지만 그 때의 시민단체 인재들은 박원순과 함께 활로를 찾게 되었다. 진보정당 운동에 있던 그 아까운 사람들의 활로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김어준 (경향신문DB)


어쨌든 노동운동이든, 시민운동이든, 진짜 일단 대중들과 머리가 아닌 몸으로 만나는데 처음 성공한 집단이 바로 ‘나는 꼼수다’(이하나꼼수)이다. 왜 하늘은 한나라당을 낳고 또 김어준을 낳았는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나꼼수가 없었다면, 어눌하면서도 TV 토론에서 ‘따박따박’ 나경원을 ‘발라주지’ 못하는 별로 매력적이지 못한 중년의 남성이 시장이 될 수 없었을 건 분명하다.
최근 김어준을 자주 만났고, 그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시간들이 늘어났다. 좌파 쪽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많이 해준 얘기는, “왜 김어준 따위와 노느냐?”였고, “옛날 그 김어준이 아니다”가 나의 답변이다. 명실상부, 공중파와 언론을 통틀어서 지금 김어준은 최고의 기획자이다. 지금 한국에 김어준의 감각을 따라갈 사람은 없고, 그만큼 종합적이며 기민하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한편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세상은 ‘시민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김어준의 시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김어준은 무엇을 만들었는가? 바로 시대의 스타일 혹은 스타일의 시대를 만들었다. 한때 조선일보가 그런 스타일을 만들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는 조선일보 사장이 한국의 밤의 대통령이었다. 지금 10대와 20대 붙잡고 조선일보 사장이 누구인지 한 번 물어보시라, 대부분 모를 것이다. 조선일보의 시대는 끝났다.

진중권이 스타일을 만든 시절이 있었는데, ‘디워’ 논쟁 등 많은 논쟁에서 진중권은 한국의 신문들을 진보누리 게시판처럼 만들어버렸다. 촛불집회와 함께 진중권 스타일의 시대가 열렸었다. 그러나 좋든 싫든, 지금은 김어준의 시대이고, 그가 ‘웃기는 사람들’의 시대를 열었다. 김어준이 내용이 있거나, 없거나, 그건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다. 그는 시대의 스타일리스트이며, 그게 바로 김어준의 힘이다.

민주당은 정봉주 덕분에 한 발 걸치고 있지만, 스타일 못 따라가는 건 마찬가지이다. 한나라당의 50~60대 할아버지들이 절대로 못 따라가는 게, 바로 이 스타일 전쟁이다. 자연인 김어준은 잡아갈 수 있고, ‘나꼼수’ 방송은 세우거나 재갈을 물릴 수 있겠지만, 스타일을 잡아가둘 수는 없다. 그래서 김어준이 무서운 것이다. 순교자를 만들면, 더 유명해지고, 더 강해진다.

조선일보의 스타일이 프레임 싸움이라면 김어준의 나꼼수는 스타일을 위한 스타일이다. 프레임과 스타일, 이 싸움에서는 무조건 스타일이 이긴다. 예전에는 신문과 방송이 프레임을 짜면 그걸로 세상이 움직였는데, 이걸 다 틀어막아 놓으니까 결국 새로운 스타일이 나온 것이다. 내가 MB라면 그에게 공중파 방송을 맡기고 그걸로 회유하고 순치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길을 꽁꽁 막아놓으니, 형식 실험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세계 유일무이의 스타일 혁신이 생겨난 것!
나경원, 박근혜. 이들은 뒤에서 누군가가 코치하지 않으면 한마디도 못하고, 수첩 없으면 이상한 소리를 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도 프레임은 알지만, 스타일은 모른다. 김어준은 마이크만 주면 밤새 떠들 사람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나경원 후보에게 유권자들의 건의사항을 적어둔 수첩을 건네고 있다. (경향신문DB)


김어준의 스타일은 최소한 고등학생이면 공감할 수 있다, 이게 진짜 무섭다. 프레임만 짜고 언로만 잡으면 된다고 했던 청와대의 ‘얼리버드’들, 미안하게도 그 시대는 끝나간다. 한나라당, 살고 싶으면 넥타이부터 풀고, 수첩부터 버려라. 박근혜가 나경원에게 수첩을 넘겨주는 순간, 난 이 선거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수첩은 프레임 시대를 상징하는 오래된 상징이고, 이제 우리가 살아갈 시대에 수첩이 서 있을 자리가 없다. 저 촌스러운 아저씨가 왜 좋아, 싶겠지만, 고등학생들이 그 스타일에 열광하는 순간, 이미 게임 오버다.
싫어도 이게 바로 대중이, 시민이 원하는 것이다. 김어준 입에서 “한나라당, 저 정도면 좀 바뀐 것 같다”, 그런 순간이 와야 한나라당이 자민련처럼 사라지는 걸 피할 수 있다. 많이 바꿔야 할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서울시장 선거가 생겨났다. 그리하여 우리는 생각지도 않던 이상한 선거 국면으로 들어갔다. “한국의 6개월은 조선왕조 500년과 같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대체적으로 맞는데, 이번 경우에는 정말 딱 들어맞는다.

이번 선거가 시작할 때 내가 예상한 것은 박원순의 인품과 한나라당의 마타도어(흑색선전)의 맞대결, 그 정도이다. 미안하지만, 시민운동을 하면서 우리가 그렇게 높고 높은 지도자라고 생각했던 ‘박변’은 5%의 인지도, 박원순의 파생 상품에 다름 아니었다. 설마 안철수와의 단일화 없이, 혹은 안, 박, 나, 그 3자 구도에서도 여전히 박원순이 지금의 지지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으시겠죠?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지난 서울시장 선거, 노회찬이 죽어라고 만든 수치가 2%이다. 이건 한국에서 자신이 진보가 아니라 좌파라고 여론조사에서 답변하는 사람들의 수치와 일치한다. 개인 심상정과 노회찬은 이보다 훨씬 더 인기 있는 인사가 될 수 있지만, 좌파로 이해될 때 그들의 현실 정치는 2%의 지지도에 갇힌다.

여기를 벗어나면 처음 만나는 선, 지난 10년간 한국의 시민운동이 만든 지지도, 박원순의 5%를 만난다. 돗긴갯긴, 하여간 그가 처음 출마한다고 할 때, 한국 사회는 “박원순이 누구야?”, 그렇게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의 대권후보들, 손학규, 정동영, 다 요 언저리에서 고만고만하다.
이걸 넘어설 가능성은, 연초에 조국이 한번 보여준 적 있다. 그러나 그는 선수와 심판 그리고 서포터스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타다가, 일단 응원역으로 물러났다. 그 다음에 5% 언저리의 지지도를 넘어선 첫 선수가 문재인. 박근혜와 한판 떠볼 가능성이 있다고 사람들이 본 첫 번째 선수가 바로 문재인 아닌가? 아무 것도 없고, 정치는 싫다던 그가 그렇게 본격 정치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 시리즈의 클라이막스는 일단 안철수. 그는 수치상으로 맨 처음 박근혜를 넘어섰다.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지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MB가 박근혜를 넘어선 이후로 처음으로 그녀를 넘어섰다. 요기까지가 객관적 지표이다. 참, 한국에는 인물이 많기도 하다. 대안이 누가 있느냐, 맨날 그러지만, 계속해서 사람들이 튀어나온다.

박원순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가 정책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경향신문DB)


그렇다면 이번 보궐선거에서 박원순은 무얼 얹었는가? 선거 막판에 이 고민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기존의 관점으로 보면, 나경원 공약도 별 거 없지만, 박원순의 공약도 별 거 없다. 적어도 행정수도 이전, 청계천 그리고 무상급식, 그런 걸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박원순이나 나경원이나, 사실 좀 약하다.

그러나 중대한 차이점이 있다면, 박원순이 이번에 내건 공약은 기본적으로는 절차에 관한 공약이라고 할 수 있다. 작게는 시민참여예산처럼 수년 전부터 풀뿌리 시민단체가 늘 써먹던 이야기부터 크게는 서울시민의 권리선언까지, 이걸 기술적으로 해석하면 사업이 아니라 절차 자체를 공약으로 내건 거라고 할 수 있다. 프로젝트가 아니라 과정 자체가 공약이 된 이 상황, 그게 현실성이 있을까? 어쨌든 그게 우리가 가야 할 길이기는 하다.

사실 캠프에서 책사들이 급조한 조악한 프로젝트들 대신, 시민의 권리 자체를 공약으로 내건 것은 한국 정치사에는 없던 일이다. 예를 들면, 일자리 공약에서 몇 개를 만들겠느냐를 공약으로 걸거냐, 아니면 스웨덴처럼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공약으로 걸 거냐, 그런 차이와 같다. 사실 이 공약이 사회적 협약으로 전환되면 지금의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는 상당히 풀린다. 여기에 독일처럼 지역임금협의회 같은 게 더해지면 고용문제는 상당히 풀 수 있다. 일자리 몇 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만드는 원칙이 더 중요한 이유이다.

이런 답답한 방식이 시민단체가 일하는 방식이다. 그걸 나경원은 ‘아마추어리즘’ 혹은 ‘공약 없는 후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건 방식의 차이이다. 시민단체는 절차로 일한다. 그게 지금 박원순과 함께, 짧게나마 우리들 앞에 모습을 보인 것이다. 박원순 이후에도 이런 선거에 나서게 될 사람들이 참고하면 좋을 듯싶다. 무슨무슨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걸 정하는 원칙이나 절차 혹은 사회적 합의 사항을 공약에 내걸 수 있다는 것, 그게 이번 선거에서 박원순이 시민운동의 창업자로서 보여준 기여이다.

답답해 보이는 박원순의 공약은 사실 시민단체가 소통하고 대화하고 공감하는 방식의 또 다른 표현이다.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그런 질문이다. 청계천, 대운하 그런 것들을 공약으로 보다가 우리가 까먹어버린 것이 바로 절차이다. 왜 우리가 현 정부를 그렇게 싫어하는가? 그들이 토건에 속한 구시대의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절차를 아예 생략해버리는 비민주적 인간, 비토론적 인간들이라서 그런 것 아닌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한국의 임시 조직 중 대표적인 것이 선거 때 만들어지는 일명 ‘캠프’라고 불리는 것이다. 우파들이 운영하는 조직이나 회사는 많이 경험해 봤는데, 불행히도 한나라당 캠프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다. 독자들을 위해서 나경원 캠프에 대한 취재나 인터뷰도 해보고 싶었는데,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불편을 끼치지 않고 부드럽게 만날 방법이 없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박원순의 선거캠프가 이 시점에서 가지는 실험적 중요성은, 선거에서 이기느냐 지느냐, 이런 단기적인 문제보다도 오히려 조직론적인 특징에 있다. 이 임시 조직이 보여주는 특징들은 다음 대선 이후 청와대 등 정부 운영의 원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실험이 성공해야 사람만 바꾸는 게 아니라 진짜로 사회 질서를 바꿀 수 있는 것 아닌가?
민주당 후보든 비민주당 후보든, 다음 대선을 위한 단일화 과정은 어떤 형태로든 연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방정부에서는 강원도와 경남도가 이미 이런 공동정부 형태로 도정을 운영하고 있다. 최문순의 경우는 민주당 중심의 연정이고, 김두관의 경우는 무소속 중심의 연정이다. 경남의 정무부지사는 민주노동당의 전 최고위원인 김병기가 맡고 있다.

나경원은 지금의 단일화 구도를 일종의 자리 나누기로 이해하고 있다. 그가 던진 질문은 과연 그렇게 여러 세력들이 자리 나누기를 통해 모인 게 제대로 돌아갔는가, 그래서 시정이 되겠는가, 그런 거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지금까지의 정치는 그렇게 돌아갔다.
그러나 이 ‘낙하산 행진’을 앞으로도 해야 하는 것인가? 경남도의 경우를 보면 아주 잘 돌아가고 있고, 정당의 직접적 개입이 없어도 도정에 크게 문제가 생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김두관이 잘했다고 해서 박원순도 잘 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지금 박원순 캠프가 갖는 조직론적인 속성이 더 중요하고, 무엇보다 서울 정치는 중앙정치의 축소판이라서, 지금부터 만들어나가는 원칙과 양상은 다음 정권이 만약 시민의 정부가 된다면, 그때 어떻게 국정운영이 될 것인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

경향신문DB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아직까지는 상명하복이 익숙한 조직이다. 이건 반드시 이런 거대정당이 정치 조직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젊은이들을 볼 수 없는 늙은 조직이라서 그런 것 같다. 보스가 있고, 총재가 있던 시절부터 효율성을 위해서 상명하복이 조직 운영원리가 되었고, 중앙에서 내려보내는 ‘실탄’이 실제 바닥조직을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총재가 없고, 여당이나 야당이나 현재로서는 집단 지도체계에 가깝다. 그렇지만 카리스마와 돈으로 움직이던 이런 조직이 아직도 2010년대에 적합한 수평적 조직으로 전환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들에게는 ‘젊은 피’가 너무나 없다. 한국 정당의 약점은, 20대 등 청년이 당원으로 가입하게 될 특별한 동력이나 계기를 만들지 못하니까, 마치 한국 농업에 이어 제조업에 고령화가 진행되는 것처럼 정당에도 고령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국회의원만이 아니라 열성당원 그리고 당직자들도 고령화가 벌어진다. 물론 20대 보수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정당구조의 고령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박원순 캠프는 민주당이 주력이고, 시민단체 출신들은 생각보다 적었다. 휴직이나 사직을 하고 와야 하는 관계로 정당에서 파견나오는 것과는 사정이 좀 다르다. 여기에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 출신들과 진짜 일반 시민 자원봉사자가 연합군을 이룬 상태이다. 40대~50대가 주요 연령이고, 20대는 생각보다 적었다.
민주당 쪽에서 나온 사람들은 시민단체가 가지고 있는 수평적 의사결정에 약간 문화충격을 겪는 중인 듯싶었다. 시민단체는 누군가 지시하는 상명하복의 수직적 질서를 많이 덜어내, 한국의 어느 조직보다도 수평적이다. 박원순 캠프는 이렇게 대화를 많이 하고 같이 결정하는 방식으로 움직이는데, 기존 정당에서 온 사람들은 이걸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듯싶다. 그러다보니 수평적 질서에 더 익숙한 20~30대 시민들과 여러 가지 면으로 정서적 동일감을 느끼는 게 현재까지의 특징이다. 박원순은 50대이지만 그의 선거 캠프는 수평적인 20대 문화와 잘 맞았다.

수직적 질서로 움직이는 나경원 캠프와 수평적 질서로 재편되어 가는 시민진영의 박원순 캠프, 두 캠프 중 누가 더 효율적이었는지는 결국 선거가 끝나봐야 알 수 있다. 앞으로 단일화 혹은 연정의 구도로 움직이는 조직이 더욱 많이 생겨날 때, 그런 조직이 자연스럽게 가질 모습의 원형을 박원순 캠프에서 보았다. 나도 희망이 생겼다. 다음 정부의 청와대가 지금 박원순 캠프가 가진 이 대화와 토론의 수평적 질서를 더 자연스럽게 구현할 수 있다면, 우리가 가진 많은 구태의연한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바꿔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사불란하게 네거티브 작전을 짜는 캠프에 대해서 일관되지는 않지만 앞으로 만들어나갈 사회에 대한 토론이 많은 캠프의 대응, 두 개 조직의 격돌은 흥미로운 관찰대상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시민단체를 분류하는 방식이 몇 가지가 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활동영역별로 환경운동, 여성운동, 감시운동, 이렇게 분류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최근에 점점 중요해지는 분류는 중앙형 조직 혹은 전국형 조직과 풀뿌리 시민단체로 구분하는 것이다.

말은 풀뿌리가 중요하다고는 했지만, 미진한 것은 맞다. 박원순의 경우는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시절 중앙형 시민운동에 익숙했다가 희망제작소 이후로 풀뿌리형 운동으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한국의 풀뿌리 단체는 아직 대중적 스타를 배출하지는 못했다. 반면에 참여연대의 박원순, 환경운동의 최열 그리고 여성운동의 한명숙 등 중앙형 운동에서는 어지간하면 이름은 알고 있는 그런 사람들을 배출했다. 1세대 지도자였던 박원순과 최열은 동반자적 관계이면서 약간의 라이벌 의식도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물러날 때 중앙형 단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게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단체 내부에서 가졌던 리더십에 대한 고민들이었다. 일단 출발은 했고, 사회적인 환기도 이끌어냈는데, 언제까지 박원순, 최열이 사무총장을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여성재단은 1999년, 아름다운재단은 2000년 그리고 환경재단은 2002년에 출발을 하게 된다. 이외에도 넓게 보면 시민운동의 영역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으로 지역재단과 함께 일하는 재단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재단의 규모와는 상관없이 시민운동의 상징적 존재인 박원순과 최열이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사건이 되었는데, 내부적으로는 1세대 리더들의 향후 거취와도 연관이 있었다.

당시 이제 막 50대인 이들이 사무총장으로 실무를 계속 지휘하고 있기도 좀 그렇고, 은퇴하기에는 너무들 젊었다. 마땅한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시민운동에 재단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재단을 만들 돈은 처음부터 없었다. 당연한 일인데, 사람이 아닌 돈이 주체가 되는 재단은 기부자와 후원자가 필요하다.

횡령.알선수재 혐의로 1심 선고재판을 마친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소회를 밝히고 있다. (경향신문DB)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의 관계는 성공적이었는데, 환경재단의 경우는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재벌 해체 운동과 삼성 문제를 다루던 참여연대는 기업 후원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아름다운재단에서 기업 기부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모단체에 재정적으로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 구조이다.
그렇지만 환경운동연합은 기업 후원을 받고, 카드사와 파트너십 사업을 하기도 했다. 감시운동과 환경운동의 차이 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하다. 그런데 환경재단이 생기니까 이제 기업들은 재단 쪽으로 후원의 방향을 바꾸었고, 환경운동연합은 구조적 재정난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시민단체가 기업 후원을 받을 거냐 안 받을 거냐, 이 문제는 민감한 것이다. 외국과 한국의 차이점은 시민운동의 역사가 짧아 자발적 시민후원이 충분치 못하고, 시민단체의 기금을 지원하는 별도의 펀딩기관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돈이라는 게 깨끗한 돈과 그렇지 않은 돈이 처음부터 나누어져 있느냐, 이런 곤란한 고민들이 2000년대 초중반에 시민운동이 부딪힌 현실적 문제였다.

최근 최열은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박원순은 정치지도자로 새로운 출발을 하는데, 재단 운영에 관한 논란들이 불거지게 되었다. 처음부터 돈을 모아놓고 움직이는 재단 구조가 아니었으니,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한번쯤은 논란이 되고 또 새로운 원칙들을 만들면서 나아갈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민운동에도 재단의 시대가 한번쯤 온 것인데 그렇다고 재단을 없앨 건 아니고, 풀뿌리 재단 등 사회적 간접자본에 해당하는 이런 장치들이 더 늘어나는 게 우리가 갈 방향이기는 하다. 그런 걸 쌓아두지 않으면 정부지원금과 기업후원금, 두 개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회계처리 방식이나 돈 처리 방식에서 시민단체는 여전히 주먹구구식이기는 하다. 활동가들이 하는 일이라서, 몰라서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체계적 복식회계 개념이 아직 잘 자리잡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다. 그리고 그 중간에 횡령사건들도 가끔 생겨난다.

그렇지만 기업들이 하는 분식회계와는 규모는 물론 양상도 전혀 다르다. 미숙한 건 맞는데, 한국 기업의 고질적 병폐라고 하는 분식회계나 비자금 조성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기업이나 사학재단에서 하던 걸 이 사람들도 하지 않았겠나, 그런 눈으로 보수파들은 볼 것이다. 시민단체의 지도자는 그런 총수적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식의 일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자, 다음 주에는 시민단체 내의 노조문제라고 할 수 있는 뜨거운 감자, 평간사협의회에 대해서 살펴보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