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 구조조정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한계기업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대량 해고가 예상됨에도 구조조정에 반대할 수 없는 건 더 이상 환부를 도려내지 않고는 업종 전체, 나아가 산업계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구조조정에 속도가 붙으면서 고용지원, 재원확보 등 숙제들이 여럿 생겼다. 그런데 가장 먼저 나와야 할 것이 빠졌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대주주의 책임지는 자세다.

한진해운은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이 남편의 뒤를 이어 2007년부터 경영을 맡았으나 2009년 적자로 돌아섰고 2013~2014년 1조800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회사가 2조원에 육박하는 적자의 늪에 빠진 2년간 최 회장이 보수와 퇴직금으로 받아간 돈만 97억원이다. 최 회장은 2014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지주사인 한진해운홀딩스를 유수홀딩스로 바꿔 정보기술(IT)과 외식사업을 하고 있다. 자율협약 신청 발표를 앞두고는 갖고 있던 한진해운 주식을 모두 팔아치웠다. 부실경영에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기는커녕 발빠르게 손실을 피해가는 ‘도덕적 해이’의 극치다. 최 회장 일가가 보유한 재산은 공식적으로 드러난 것만 1900억원이다.

26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청사 상량식에 참석한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_ 이준헌 기 ifwedont@kyunghyang.com

부실 덩어리를 넘겨받은 조 회장은 대한항공 등 계열사를 통해 1조원을 지원했다. 조 회장 입장에선 할 만큼 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진그룹 역시 한진해운을 넘겨받기 훨씬 이전부터 경영 상태가 나빴다. 경제개혁연구소가 분석한 부실 징후 기업집단(부채비율이 200%를 넘고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기업) 명단에 한진그룹은 2008년부터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채권단이 한진해운을 살리기로 결정하면 정부 재정이든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내든 어떤 형태로든 돈이 들어간다. 결국 국민 부담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주주 일가가 뼈를 깎는 모습을 보이는 건 필요조건이다. 차입금 규모가 5조6000억원에 달하니 면피용 사재 출연으로 넘어갈 일도 아니다.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을 팔아서라도 최대한 자금을 마련해보겠다는 태도를 보일 때다.


이주영 기자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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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제 국가에서 차기 대통령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우리나라처럼 대권주자 지지율을 거의 매일 발표하고 그것이 뭇사람들에 의해 회자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이런 현상은 분명히 정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자체가 하나의 현실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에 박근혜 당시 의원은 차기 대통령 지지도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했지만 2011년 말부터는 안철수 의원이 그 자리를 위협하곤 했다. 박근혜 당시 의원의 높은 지지도는 이명박 대통령의 위상을 위협했지만 동시에 정권이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에 여권 차기 주자로 가장 근접해 있는 사람은 물론 김무성 대표이다. 김 대표는 청와대의 의중이 담겨 있던 서청원 의원을 누르고 당 대표로 선출됐는데, 요즘 상황을 보면 현직 대통령과의 사이가 나쁜 여당 대표의 한계를 보는 듯하다. 전두환 대통령의 지지를 받았던 노태우 민정당 대표와 같은 지위도 아니고, 임기 말의 김영삼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와 같은 모습도 아닌 것이 김 대표의 요즘 사정이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 당 대표 경선, 원내대표 선출 등에서 친박 후보가 줄줄이 고배를 마시자 박근혜 대통령의 영향력이 전과 같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 김 대표의 판단 착오였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안대희 전 대법관을 향한 험지출마론이 당사자들에 의해서 무시되는 데서 보듯이 김무성 대표의 리더십은 붕괴 직전에 와 있다.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김 대표가 총선 과정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총선 후에는 더욱 그러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김종인 박사를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고 자신은 대표직을 사퇴하고 전권을 선대위원회에 이양하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런 극약 처방에 힘입어 더불어민주당과 문 대표의 지지도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같은 지지도 상승은 고정지지층의 결집이란 측면이 강하다고 보아야 한다. 문재인 대표는 자신이 대표가 된 후에 치른 재·보선에서 패배하자 김상곤 전 교육감을 초빙해서 혁신위원회를 만들었다. 당내 문제를 정치적 대화로서 해결하기보다는 외부인사가 주도하는 위원회가 만든 제도로서 해결토록 한 셈인데, 결국에는 혁신위원회가 마련한 혁신안이 당내 갈등을 증폭시켜서 비주류 의원들의 탈당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용섭 전의원이 문재인 대표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 배석한 가운데 복당을 선언했다._경향DB


문 대표가 김종인 박사를 영입해서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 역시 앞서의 과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극약 처방이 성공할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문재인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100만표 차이로 석패한 정치적 자산을 갖고 있지만 그 자산을 지난 1년 동안 많이 소진해 버렸다. 이유야 어찌 됐든 자신이 당 대표로 있을 때 당의 분열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에 문 대표의 리더십은 큰 손상을 입은 셈이다. 어떠한 이유로도 지난 1년 동안 당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선주자로서의 문 대표의 입지는 위축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국민의당 창당을 추진하는 안철수 의원은 탈당 후에 지지도가 상승세를 보였으나 한상진 창준위 위원장의 불필요한 발언, 추가 탈당 및 외부인사 영입의 부진으로 동력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창당준비대회를 치르고 나서 지지도가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안철수 의원의 입지가 좁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영국 자유민주당의 경우에서 보듯이 소선거구제하에서 제3당이 성공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호남이란 지역지반을 갖고 있으면 새로운 정당이 성공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관건은 새로운 정당을 만들 수 있는 인적 기반이 얼마나 있느냐인데, 국민의당은 이 점에서 심각한 난관에 처해 있다. 안철수 의원이 여전히 대선주자로서 남을 수 있느냐는 국민의당이 총선에서 얼마나 선전하느냐에 달려 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국민의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중적 인지도와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을 당 대표로 영입해서 총선을 치러야 하는데,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국민의당과 안철수 의원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 정치는 한 달 앞을 내다보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보면 김무성·문재인·안철수 세 사람이 총선 후에 대선주자로서의 위치를 여전히 유지할 수 있을지가 의심스럽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2016년 정치게임에서 진정한 승자는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시중의 루머에 머물던 개헌론이 힘을 얻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에 있어 일대 비극이 되고 말 것이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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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까지는 안 의원에 대한 지지도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서 신당 창당은 일단 동력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추진하는 신당이 전국 정당으로 성공할지 또는 지역에 기반을 둔 제3당으로 자리매김을 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새 정당이 성공하기 위해선 명분이 있어야 하며, 명분에 부합하는 인물들이 참여해야 하지만 안 의원은 이 부분에 대해 아직은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새로 태어날 정당이 가야 할 길을 ‘중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중도’는 결과가 될 수는 있어도 명분이 되기는 어렵다. 중도 노선을 지향해야 국가를 올바르게 이끌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예로 드는 지도자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와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 그리고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다. 이들은 당시의 상황과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한 지도자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동독 출신인 메르켈 총리는 원래는 대처주의자였지만 비례대표제에 충실한 선거제도 덕분에 연정(聯政)을 해야만 했고, 그런 과정에서 전임 슈뢰더 총리가 만들어 놓은 사회적 대타협을 수용해서 정국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

블레어 전 총리는 강성노조와 보조를 같이해 유권자로부터 버림받았던 노동당을 ‘제3의 길’을 내걸고 쇄신해서 집권하는 데 성공했다. 블레어는 유권자들이 교조적 진보정책을 원치 않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마거릿 대처가 이끌던 보수당 정권은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영국의 고질병이던 방만한 공공부문과 낙후된 산업구조를 확 바꾸어 놓았는데, 블레어는 보수당 정권이 이룩한 구조개혁의 토대 위에서 보다 따듯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해서 집권에 성공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경우도 비슷하다. 미국은 레이건 대통령 임기 동안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겪어야만 했다. 대형 항공사가 파산하고 자동차 산업이 위기에 몰리는 등 상황은 심각했지만 고(高)이자 정책과 구조개혁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클린턴은 공화당 정권이 12년 동안 이룩한 구조조정과 이들이 시작한 세계화를 수용하면서도 환경과 노동의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집권하는 데 성공했다.

클린턴, 블레어 그리고 메르켈의 경우를 보면 이들은 모두 전임 정권이 힘들게 이룩해 놓은 정책을 이어받아 한 걸음 더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중도적 지도자라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을 자기가 속한 정당에 접합시킬 수 있어서 성공한 것이다. 클린턴과 블레어 정권의 경우에는 이들 집권 시에 지나치게 비대해진 금융업이 결국에는 2008년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는 데 대해 반성할 점도 적지 않다.


문재인 대표와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_경향DB


미국, 영국, 독일의 경우를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우리는 이들 나라와 사정이 다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계승할 점이 별로 없음을 알아야 한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이끄는 대한민국이 노무현 대통령이 이끌던 나라와 다르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이끌던 나라와도 다를 것임을 강조해서 집권하는 데 성공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 출마선언문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달성하고 깨끗하고 투명한 정부를 만들겠다고 했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국민대통합을 이루고 검찰개혁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 모든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렸다. 박 대통령은 의원 시절에 누구보다 재정건전성을 강조했지만 집권 3년 만에 대한민국은 ‘부채 공화국’이 되고 말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거대한 후퇴를 기록한 세월이기도 하다. 차기 정부는 두 정권이 남겨 놓은 엄청난 난제를 극복해야 하는 운명을 안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야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야 하는 데, 현실은 정반대다. 새정치연합은 내부 갈등 때문에 도무지 정권을 창출할 수 있는 세력으로 보이지가 않는다. 여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야당에 마음을 주지 못하는 것은 야당의 정책이 경직적인 데도 있지만 세월호특별법 협상에서 보듯 툭하면 강경론을 내세우는 행태 때문이기도 하다. 대통령은 상식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야당은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요즘 사정이니,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요구는 어느 때보다 크다. 안철수 의원이 추진하는 신당이 성공하기 위해선 이런 여망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단순하게 ‘중도’를 지향해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10년 동안 두 정권이 저지른 적폐를 청산하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광범한 개혁을 수행해서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정치세력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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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분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 그리고 ‘민주당의 집권을 위한 모임’(민집모) 등 비주류 의원들과 문재인 대표 측 주류 의원들이 벌이는 싸움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었다. 사정이 이렇다면 어떤 미봉책으로도 수습할 수 없고, 그런다고 해도 실망해버린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려놓기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구실을 주어 안 전 대표를 당내에 묶어 놓는다 한들 무슨 소득이 있을지 알 수 없다. 야권 분열이 우려된다면서 안 전 대표에 대해 탈당만은 하지 말라고 압박하는 것도 정직하지 못한 일이다.

안 전 대표가 갖고 있는 선택지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첫째로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은 자신의 정치적 실험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무대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그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되면 서글픈 일이겠지만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니다. 2007년 대선에 출마했던 기업인 출신 문국현씨가 바로 그런 과정을 밟았다. 둘째 방법은 안 전 대표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이 그토록 희구했던 ‘새 정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셋째는 새정치연합에 주저앉아서 훗날을 기약하는 것인데, 누가 생각해도 이는 우스운 일이다.

2011년 가을에 혜성과 같이 정치권에 등장한 안 전 대표는 기성 정치권 인사들과는 거리를 두고 주로 교수들과 행로를 같이했다. 많은 국민들은 안 전 대표뿐 아니라 그의 주변에 있었던 학자들을 보고 희망을 가졌었다. 당시 안 전 대표 주변에 포진했던 교수들은 역대 어느 대선 후보 캠프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참신성과 열정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안 전 대표는 정치 현실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그는 최근에 어떤 북콘서트에 게스트로 초청돼서 “이제야 정치권 바닥을 알 것 같다”는 뼈있는 농담을 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그는 ‘바닥’을 알자마자 이제 그 ‘바닥’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한 셈이다.

2013.1.3 문문재인 대선후보가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안철수 전 후보와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_연합뉴스

하지만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안 전 대표는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새 정치’를 다시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새정치연합 비주류 의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비주류 의원들도 각자가 생각하는 바가 다르지만 상당수는 탈당도 불사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이 같은 비주류 의원, 그리고 이미 탈당해서 새로운 정당을 발족시키려는 세력과 연합해서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아직도 안 전 대표는 기성 정치인과는 차별화된 무엇을 갖고 있기에 이러한 실험은 해볼 만하다. 김종필 전 총리가 오래전에 말했듯이, 정치는 원래 ‘이상 반, 현실 반’이 아니던가.


2012년 한 해 동안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서 오늘날의 이런 정권을 만드는 데 일조를 한 탓에 심한 자괴심을 갖고 있는 필자는 새정치연합이 기존의 야권 지지자뿐 아니라 2012년에 1번을 찍었던 유권자의 상당 부분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이 외연을 확장시키기는커녕 내부 분열로 인해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으니 무어라고 할 말이 없다. 사정이 이렇게 되었다면 더 이상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새정치연합은 문재인 대표 체제로 굴러가는 것으로 인정하고 도저히 같이 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의원들은 안 전 대표 등과 새 정당을 만드는 것이 전체 야권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총선을 앞두고 야권이 분열하면 여당에 어부지리를 줄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이런 상태에서 억지로 단일대오를 만들어서 총선에 임한다고 해서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지도 않다. 무엇보다 단일대오 자체가 만들어질 것 같지 않다. 야권이 분열된다고 해서 야권이 총선에서 반드시 참패한다는 법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1987년 대선에서 승리한 민정당은 다음해 총선에서도 야권 분열로 승리할 줄 알았지만 그 결과는 참패였다. 수도권 유권자들은 인물 위주로 투표를 해서 민정당에 고배를 안겨 주었다.

각종 여론조사가 우리 국민의 50%가 무당파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중요하다. 내년 총선은 이 같은 무당파 유권자들을 누가 유인하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그렇다면 새정치연합이 갖고 있는 20%대 지지도를 두고 싸우기보다는 차라리 각자의 길을 가면서 ‘무당파 50%’를 가져오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게 낫다. 소선거구제하에서 야권이 분열되면 선거 결과가 왜곡될 수도 있지만 그런 위험을 각오하고 복수의 야당이 존재하는 것이 오만한 정권을 견제하고 더 나아가 향후 정국의 큰 그림을 위해서도 나아 보인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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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앞둔 요즘 여권은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의원과 관련해서 격정적으로 토해낸 ‘배신의 정치’란 울타리에 갇혀 있다.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는 국민의 심판이 필요하다”고 직설적으로 언급하자 여당 의원들은 유승민 의원을 원내대표직에서 축출해 버렸다. 삼권분립이 보장되어 있는 민주국가의 집권당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으니, 유신시대로 회귀했다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박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발언은 내년 총선에 나갈 새누리당 공천 신청자들에게는 헌법과 같은 규범이 될 터인데, 그런 현상이 문제의 대구 동구을에서 처음 나타났다.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에 도전장을 낸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이 출마선언을 하면서 “배신의 정치를 응징하고 의리를 지키는 일꾼이 되려 한다”고 일갈을 했으니 말이다. 이 전 구청장은 자신은 ‘배신의 정치’를 ‘심판’하는 것을 넘어서 아예 ‘응징’을 하겠으며, 더 나아가서 ‘의리’를 지키겠다고 선언했으니 마피아 영화에 나오는 조직원의 ‘피의 맹세’ 장면을 연상시킨다.

아무리 마피아라고 해도 그런 맹세는 은밀한 곳에서 비밀리에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재만씨는 공공연하게 맹세를 했으니 그것도 신기한 현상이다. 하지만 이씨 같은 인물이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만날 방법이 없음을 안다면 이런 현상은 이해가 갈 것이다. 충성서약을 대면으로 할 방법이 없으니 이렇게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유권자들에게 자신이 그 같은 열정을 갖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이재만 대구 동구청장_연합뉴스



이재만씨의 공개적 충성서약은 대구는 물론이고 영남권에 낙하산 공천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행동준칙으로 작동할 것이다. 어울리지도 않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별다른 일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친박’이란 하회탈을 쓰고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되는 지역구로 낙하하려는 현상이 요즘 우리가 보고 있는 서글픈 모습이다. 하지만 더욱 슬퍼해야 할 것은 이런 현상을 야기한 대구·경북 유권자들의 정치의식이다. 대구·경북 유권자들이 무조건 여당을 찍기 때문에 이런 황당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유승민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에서 공천이 되는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새누리당은 아직 공천 규칙을 정하지 않았는데, 김무성 대표가 주장하는 상향식 공천이 채택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결국에는 당원투표와 여론조사를 반영하는 경선과 사실상의 전략공천으로 후보자가 결정될 것인데, 어느 경우에나 대구와 경북은 ‘박심’과 친박의 조직력이 결과를 좌우할 것이다.

이재만씨 같은 친박 낙하산을 투입하는 구상을 기획한 사람들은 나름대로 원대한 밑그림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대구·경북은 물론이고 서울 강남 3구와 비례대표 공천에 청와대가 영향력을 행사해서 내년 총선에서 여당의 최소 목표치인 180석 중 90석 이상을 친박 의원들이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대구·경북과 강남 3구 그리고 비례의석을 합치면 이런 계산이 나오기 때문에 그럴싸한 이야기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계속 지리멸렬한다면 새누리당은 200석 이상을 차지할 것이며, 그러면 이원집정부제 개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되고 만다.

하지만 이원집정부제 개헌과 관련해서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20세기의 최대 비극인 제2차 세계대전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실패에서 비롯됐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이원집정부제 정부를 택한 바이마르 헌법이다. 이론적으로 바이마르 헌법은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헌법이었다. 의회는 철저한 비례대표성 원리로 구성됐고, 의회 다수파는 내각을 구성했으며 국민은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도록 했다. 대통령은 국가안위에 관한 권한을 가졌고 내각은 내정을 책임졌다. 하지만 지나친 비례대표제로 인해 의회는 불안한 연정에 의존해야만 했고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관계가 불분명했다. 정국이 불안해지고 경제위기가 심화되자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국민들은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을 선택해서 대의민주주의를 폐기하는 데 동의하고 말았다. 독일인들이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선택한 결과는 나치의 학정과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의 비극이었다.

‘배신의 정치’ 발언에서 시작된 친박 낙하산 공천이 국회를 장악하는 데 성공하면 이원집정부제 개헌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관측은 더 이상 허황된 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바이마르 공화국의 실패가 보여주듯이 이원집정부제는 매우 불안한 정부 형태이고 그런 탓에 이 제도를 택한 나라가 별로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친박핵심이라는 의원이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공론화하고 나섰으니 혹시 박 대통령의 퇴임 후 구상과 관련이 있지는 않을까 하고 의심하게 된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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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최근 한두 달 동안에 엉망이 되어 버렸다. “오픈프라이머리에 정치생명을 건다고 했다”가 그것이 여의치 않으니까 “전략공천은 절대로 안 한다”고 하더니, 이제는 “당헌당규가 정한 우선공천은 할 수 있다”고 후퇴했으니 말이다. 애당초 오픈프라이머리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장담한 것 자체가 경솔했지만 김 대표가 이렇게 된 데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껄끄러운 관계가 결정적이었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박 대통령은 내년 총선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를 한다면 후반기 국정 운영이 차질을 빚겠지만 지금 야당의 상황을 보건대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최근에 있었던 유승민 파동과 대구 방문에서 보듯이 박 대통령은 내년 총선에서 자신의 세력을 새누리당 내에 구축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친박 세력은 자생력이 부족하고 비박 세력은 언제든지 자신을 배신할 수 있어서 못 믿겠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인식이다. 당 대표 선거, 서울시장 후보 경선, 원내대표 선출 등에서 친박이 밀었던 후보가 매번 비박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으니 대통령은 짜증이 날 만도 하다.

박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자신이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집권 첫해에는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대선에 개입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고 검찰 수사는 그것이 상당 부분 사실임을 밝혀냈다. 그것이 현 정권과는 관련이 없는 전 정권의 문제라면 청와대와 친박이 그토록 방어적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당시 새누리당 친박 지도부가 철벽같이 방어를 하고 검찰 수사가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자 사람들은 석연치 않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작년 봄에 발생한 세월호 사건은 현 정권이 한없이 무능함을 보여주었다. 청와대에 위기관리 능력이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으니, 박 대통령의 자존심은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잊혀지는가 했더니 ‘정윤회 문건’ 사태가 발생해서 대통령을 또다시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괴문서를 둘러싼 파동은 가라앉았지만 대중의 의심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올해 들어서는 김무성 대표의 ‘KY 수첩 메모’ 사건이 일어나서 ‘청와대 십상시’가 세상에 추한 모습을 드러냈다. ‘KY 수첩 메모’ 파동은 김무성 대표가 넌지시 폭로해서 발발한 것이니, 상황을 야기한 김 대표를 박 대통령이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상상할 수 있다. 대통령 권위에 대한 비박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새로 원내대표로 당선된 유승민 의원은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면서 대통령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상황이 이 정도에 이르자 많은 사람들이 “박 대통령은 이제 끝났다”고 말하기 시작했고, 김무성 대표는 자연히 여권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일련의 사정으로 비추어 보건대 자신의 위상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느낀 박 대통령이 유승민 의원을 원내대표에서 축출하고 김무성 대표를 견제하는 등 친정 체제 구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이런 심정은 이해할 만하지만 대통령의 리더십에 손상이 간 데는 대통령 본인의 책임이 크다. 박 대통령은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 검찰개혁 등 대선 공약과 재정건전성 확보 같은 자신의 지론을 저버리고 극우성향 인사를 요직에 기용하는 등 대통령이 되기 전에 쌓아온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자연히 국정은 방향을 잃어버렸으며, 정권은 국민과 소통을 포기해버린 상태에 이르렀다.

이런 연유로 박 대통령은 퇴임 후를 구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퇴임 후에 부친의 정치적 유산을 관리하려는 생각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박 대통령은 자신을 따라줄 정치적 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이 자신을 잘 알고 있으나 자신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김무성 대표보다는 자신을 잘 모르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 편안함을 느끼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대통령이 퇴임 후에 영향력을 갖고자 하는 것처럼 허망한 일은 없다.

국민의 따듯한 신뢰를 받았던 대통령은 퇴임 후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해리 트루먼과 로널드 레이건 같은 미국 대통령이 그런 경우였다. 그러나 스스로 비극적 결단을 내렸던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가족과 측근이 검찰과 교도소를 드나드는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에서 보듯이 우리는 미국과 사정이 많이 다르다.

대구 경북에 청와대 비서관들을 전략공천을 하니 마니 하는 잡음은 정부에 부담만 주며 대통령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았으면 한다. 총선은 여당에 맡기고, 대통령은 국정에 전념하는 게 사리에 맞는 일이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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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대한민국은 한 해가 다 가도록 정쟁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당은 친박과 비박으로, 야당은 친노와 비노로 나뉘어서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어 정치에 대한 혐오감만 키우고 있다. 원래 정치란 대립과 갈등을 조정해서 원만하게 이끄는 것인데, 요즘 우리가 보고 있는 모습은 끝이 안 보이는 대립과 갈등뿐이다. 이런 대치 정국의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흔히 ‘오픈프라이머리’라고 부르는 완전개방형 국민경선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내년 총선 공천을 여야가 같은 날에 시행하는 오픈프라이머리로 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픈프라이머리는 아직까지는 김 대표의 개인 생각일 뿐이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가 이를 당론으로 채택한 적도 없고, 당내에서 공감대가 형성된 적도 없다. 김 대표가 정녕 오픈프라이머리를 하고 싶다면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연구했어야 한다.

정당이 공직선거 후보를 완전개방형 국민경선을 통해 선출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사실상 선거를 두 번 치르는 셈이다.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서 모든 정당에 개방형 국민경선을 하라고 강제하는 경우에 소수 정당은 어떻게 할 것인지도 살펴야 한다. 개방형 국민경선에 소요되는 비용을 국가가 부담할 것인지, 아니면 각 정당이 부담할 것인지도 결정해야 한다.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율이 계속 줄어들어가는 추세를 감안하면 개방형 경선을 시행한다고 해서 과연 유권자들이 얼마나 참여할지도 알 수 없다. 직장인들이 경선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선 경선일을 휴일로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김무성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_경향DB


정당이 공직선거 후보를 오픈프라이머리로 뽑고자 하면 정당의 권능과 역할은 감소하기 마련이다. 후보 공천을 개방형 경선에 위탁하는 정당이라면 구태여 당 대표와 최고위원회 같은 거창한 조직을 갖추고 있을 이유가 없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전당대회는 비용이 많이 들기도 하거니와 경선에 나서는 후보자들도 막대한 선거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어렵게 당선된 당 대표와 최고위원도 선거에서 한번 패배하면 추풍낙엽 신세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회의 권위도 전과 같지 않다. 매일 아침 두 정당의 최고위원회에서 벌어지는 블랙 코미디는 거의 막장 수준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기왕에 완전개방형 국민경선을 도입하려고 한다면 정당을 원내화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중앙당은 정당의 정책을 개발하고 홍보하며, 당원을 확충하고 교육하는 기능만 담당하고, 당 대표가 해 오던 기능은 원내대표가 맡아서 하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당구조 개혁도 없이 단지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하니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프라이머리’라고 불리는 당내 후보 경선은 20세기 초 미국 위스콘신에서 유래했다. 남북전쟁 후 북부에선 민주당이 사실상 소멸되어 공화당 후보가 당연히 당선되다시피 하자 유권자들이 공화당 후보를 스스로 선출하자는 운동이 생겨났는데, 당원들이 후보를 선출하는 폐쇄형 경선이 비당원에게도 개방되어서 오늘날 오픈프라이머리로 발전한 것이다. 미국의 프라이머리는 주마다 형태가 다른데, 완전개방형 프라이머리, 반(半)개방형 프라이머리, 결선투표 방식의 톱 투 프라이머리 등 여러 형태가 있다. 우리로서는 각기 다른 프라이머리 중 어느 것이 우리 사정에 적절한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할 뿐 아니라 시행에 부수되는 여러 가지 문제도 검토해야 한다. 이를 시행하고자 하는 선거가 있기 2~3년 전에 필요한 입법을 하는 등 준비기간을 가져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내년 총선에 앞서 오픈프라이머리를 실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판단이 옳다.

그렇다면 오픈프라이머리에 집착하는 김무성 대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김 대표는 현재 새누리당 당헌·당규가 정해 놓은 상향식 공천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완전개방형 국민경선을 내세운 것이 아닌가 한다. 김 대표가 이런 주장을 하는 데는 청와대와 친박의 공세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구 방문은 총선 공천이 김 대표의 생각대로 되지 않을 것임을 잘 보여주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이 일종의 악몽으로 남아 있는 박 대통령은 오픈프라이머리를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낙하산을 타고 우세 지역구에 내려오고 싶은 청와대의 ‘십상시’들에게도 오픈프라이머리는 장애물일 따름이다. 오픈프라이머리는 김무성 대표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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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절반이 지나고 있다. 하는 것이 없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센터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대기업을 동원해서 만들어낸 창조경제센터가 우리 경제를 살릴 것으로 믿는 사람은 박 대통령 말고는 별로 없다.

반면 박근혜 정부가 꼭 했어야 할 시대적 과업인 공공분야 개혁은 이미 물 건너간 양상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 후에 비등했던 공공개혁에 대한 국민적 여망을 정책으로 받아내지 못했다. 경제민주화, 검찰개혁 등 중요한 공약을 파기한 박 대통령은 ‘예스맨’들을 전진 배치해서 권력 누수를 막는 데만 급급한 모습이다.

실패한 이명박 정권과의 차별화를 내세우고 들어선 정부의 실력이 이 정도라면 정권 교체가 기정사실처럼 느껴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정반대인데, 야당이 혼란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제는 야당”인 셈이다.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야당은 최소한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는 안철수 신당과 합쳐서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들고 나서이다. 하지만 김한길-안철수 체제는 세월호 침몰 후 치러진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실패하고 무너졌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거쳐서 들어선 문재인 체제는 당을 쇄신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였지만 지난 재·보선에서 패배했을뿐더러 그 후폭풍을 수습하는 데도 실패했다.

새정치연합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자신들이 받았던 지지를 그대로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큰 문제다. 각종 여론조사는 전통적으로 야당을 지지해 왔던 호남 유권자들은 물론이고 20~30대가 더 이상 새정치연합을 지지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2012년 두 차례 선거 때 여당과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50대마저 박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으로 돌아섰음을 생각하면 새정치연합은 외연을 확장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지세력마저 잃어가고 있는 셈이다.

필자는 이미 새정치연합이 약간의 우클릭을 해서 외연을 확장하고 전직 대통령의 그늘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문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문재인 대표가 안고 있는 문제는 이런 수준의 해법으로 극복될 것 같지 않다. 문 대표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진정성 여부를 떠나서 이제는 봉합이 사실상 어려워 보이니 상황은 심각하다.

그렇다고 이들이 독자적인 세력을 이룰 수 있는지는 현재로선 의문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시작 발언을 하고 있다./권호욱 선임기자_경향DB



문 대표가 2012년에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지금도 당연히 자신을 지지하는 것으로 믿는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근소한 표차로 낙선한 정치인은 그런 오류에 빠지기 쉬운데, 그런 정서에 집착하면 다음 선거에 나와도 더 크게 패배하기 마련이다. 1967년 대선에서 윤보선 후보는 1963년 선거 때보다 더 큰 표 차이로 패배했고,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도 1997년 선거 때보다 더 큰 표 차이로 패배했다. 민주화운동 경력을 갖고 있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3당 합당과 DJP 연합을 통해 집권에 성공했음을 생각하면 지금 같은 상태로 문 대표가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야권은 유권자들이 정권 교체에 손을 들어주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공적인 정권일지라도 장기집권에 따른 피로감이 있다면 야당은 젊고 역동적인 리더를 내세워야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와 미국 민주당의 빌 클린턴이 이런 식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블레어와 클린턴은 보수 정당과 경쟁하면서도 진보임을 강조하지 않았다. 실패한 정권을 상대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정권 심판을 내세우기보다는 자신들이 ‘변화’를 가져올 것임을 강조해야 한다. 영국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와 미국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이 그렇게 승리해서 장기간 집권했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는 ‘신뢰할 수 있는 변화’를 내세우고 경선과 본선에서 모두 승리했다.

하지만 요즘 야권에선 정권 교체가 불가능하다는 회의론이 퍼져가고 있다. 미디어 환경이 불리한 데다 대중은 더 이상 민주주의와 정의에 대해 관심을 잃었다고 절망하면서 새정치연합을 일본 민주당에 비유하기도 한다. 일본 민주당이 유권자로부터 버림을 받은 이유를 보면 리더십 부족과 비현실적인 정책 등 지금 야당의 모습과 닮은 점이 있음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문 대표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 문제다.

호남의 정서 또한 만만치가 않아서 호남 자민련 같은 작은 신당의 출현은 상수(常數)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래저래 문 대표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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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겨냥한 6월25일자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석상의 발언은 장소, 절차, 그리고 내용이 모두 잘못됐다. 무엇보다 국무회의는 국정을 논하는 자리이지 대통령이 억한 심정을 표출하는 장소가 아니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파급력이 있기 때문에 그 정도의 폭탄선언을 하려면 대통령은 비서실장, 정무, 홍보 등 비서관들과 사전에 협의를 했어야만 한다. 하지만 대통령 비서실장도 현장에서 비로소 그 내용을 처음 들었다고 하니 블랙 코미디라고 하겠다. 국회가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상황이라면 국무회의는 최소한 논의는 하고 통과시켜야 한다. 대통령의 격앙된 발언이나 듣고 침묵으로 안건을 통과시키는 국무회의라면 차라리 문을 닫는 게 낫다. 

박 대통령은 여당 원내대표가 국회를 설득시키지 않고 무엇을 했느냐고 질타했는데, 그러면 대통령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해 야당과 대화라도 한 적이 있는가. 야당과의 대화는 오바마 같은 ‘풋내기 대통령’이나 하는 것으로 안다면 그것은 엄청난 오해다. 동서 냉전을 종식시켜서 역사의 한 장(章)을 장식한 칠순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당시 야당 지도자이던 팁 오닐 하원의장과 수시로 만나고 통화하면서 법률안 통과를 부탁하곤 했다. 명색이 보수 정치인이라면 레이건의 리더십에 대해 희미하게나마 들어보기는 했을 것이 아닌가. 

 

민주당 '민주적 국회 운영 모임' 원혜영 의원(가운데) 등 소속 의원들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국회 선진화법 유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_경향DB



박 대통령은 2012년 4·11 총선에서 다시는 다수당이 일방적 날치기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약했고, 여야는 그 약속을 받아들여서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켰다. 국회선진화법이 존재하는 한 다수당 원내대표라고 하더라도 인내를 갖고 야당과 협상하는 수밖에 없다. 대통령 자신이 만들어 놓은 국회선진화법의 테두리 안에서 협상을 통해 공무원연금개혁안을 통과시킨 여당 원내대표를 대통령이 질타하고 있음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혹시 박 대통령은 공무원연금 개혁에 뜻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배신의 정치는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를 초래한다”는 말도 생뚱맞기만 하다. 이 표현은 박 대통령이 고배를 마신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 들어맞는다. 2004년 총선 때 자신이 혼신을 다해 유세 지원을 했던 이재오 의원 등과 자신 덕분에 국회의원이 된 전여옥 전 의원 등 비례대표 의원들이 대거 이명박 대통령 쪽에 줄을 섰던 것은 박 대통령에게 아픈 기억일 것이다. 그렇게 자기가 힘들 때 자신을 지켜준 사람이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였다. 

유 원내대표가 증세에 관한 자신의 소신을 피력한 부분은 박 대통령에게 불쾌한 측면이 있겠지만 지하경제를 양성화해서 복지예산을 충당하겠다던 박 대통령의 구상이 허망한 것임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패권주의가 어떻고 줄 세우기가 어떻다는 말은 유 원내대표보다는 사무총장 등 당직 임명권을 갖고 있으며 또한 내년 총선에서 공천작업을 지휘할 김무성 대표를 향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친박 의원들이 대통령의 역정(逆情)에 편승해서 들고일어난 것도 우습다. 강경한 말을 쏟아낸 이정현 의원이야 원래 대통령의 집사 역할을 했던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치자. 유 원내대표를 앞장서서 비난한 김태호, 이인제 최고위원은 사실 박 대통령과는 인연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다. 와중에 김무성 대표가 “나도 박 대통령하고 너무 가까워서 죽었잖아”라고 말해서 주목을 샀다. 필자가 최근에 한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자기를 아는 사람을 부담스럽게 여긴다”고 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언급이다.

박 대통령을 알아왔던 사람들이 대통령과 멀어지게 된 원인 중의 하나는 ‘문고리’와 ‘10상시’라고 불리는 ‘인(人)의 장벽’이다. 2012년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은 부친 시절의 과거사 발언으로 선거에서 패배할 뻔했다. 식견이 태부족한 주변 인물들이 제공한 잘못된 정보를 갖고 대통령이 인혁당 사건과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엉뚱한 발언을 해서 선거 캠프가 와해될 지경에 처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은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패턴이 있는 한 이 정부는 취약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는데, 불행하게도 맞아떨어지고 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은 탄핵이라는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면 임기가 보장된다. 의회의 불신임 결의에 따라서 정부가 교체되는 의원내각제와 달리 대통령제 국가에선 아무리 무능하고 오만한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임기 내에 교체할 방도가 없다. 우리는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이란 ‘저주’에 연거푸 갇혀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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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공무원연금개혁법안을 합의로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같이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뜻을 밝히는 등 파문이 커지고 있다. 문제가 된 개정된 국회법 조항은 국회 상임위원회가 시행령이 법률과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시행령의 수정 변경을 요구할 수 있고, 그러면 관련 부처의 장은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했다. 이 조항에 대해 이종걸 야당 원내대표는 그것이 강제적이라고 보지만 유승민 여당 원내대표는 그렇지 않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는 여야가 입장을 통일하라고 촉구하더니 이제는 거부권을 행사할 기세이다.

청와대는 이 조항이 권력분립 원칙에 위반되어 위헌이라고 보는 것 같다. 대통령제 국가는 3권 분립 원칙에 기초하고 있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은 국회다. 그래서 헌법도 그 편제가 입법, 행정, 사법부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유신헌법은 대통령이 3부 위에 존재하도록 했는데, 유신헌법은 헌법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법률을 제정하며 그 법률에 의거해서 대통령이 집행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다만 대통령은 외교와 국방에 있어서 1차적 권한을 갖게 되는데, 미국의 경우 대통령의 대외정책 권한이 비대해져서 ‘제왕적 대통령’ 논란을 야기했다.

시행령은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경우 국회는 입법권자로서 시행령의 일탈을 감독할 권한을 갖고 있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국회가 법률을 위반한 시행령을 직접적으로 무효화시키는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다. 즉 국회가 세월호 조사위원회 담당관을 민간인으로 임명토록 하는 법률을 통과시킨다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한 이 법률은 기존의 시행령을 무효화시키게 된다. 이와 별도로 국회가 문제가 된 시행령을 의결로서 무효화할 수 있다면 새로운 법률을 제정함이 없이도 똑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는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잠들어 있던 사이에 여야 지도부가 합의해서 통과시킨 국회법 개정안은 후자와 비슷하다. 다만 관련부처의 장이 ‘처리’한다고만 되어 있어서 혼란이 일고 있다. 청와대는 이 조항이 행정부에 대해 시행령을 개정하라고 강요하는 것으로, 행정부의 시행령 제정권을 침해한다고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시행령 제정은 국회가 위임한 한도 내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래의 입법기관인 국회가 어떤 시행령이 국회가 위임한 한도 내에서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은 입법기관으로서의 고유한 권한이자 의무라고 하겠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1일 국회 대표최고위원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위원들의 개정 국회법 등 당청 갈등에 대한 비판을 듣고 있다. (출처 : 경향DB)


1983년 미국 대법원은 의회가 행정부의 행정입법을 무효화 할 수 있도록 한 입법적 거부(legislative veto) 제도를 위헌으로 판시한 적이 있다. 행정부에 의한 위임입법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자 도입되어 광범하게 운영되었던 입법적 거부 제도가 통째로 위헌으로 판정받은 것이다. 대법원은 법률안 제정을 위해선 상하 양원 통과가 필요하고, 대통령은 상하원을 통과한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입법적 거부는 한 개의 원(院)에 의해서도 행사될 수 있으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기회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서 위헌으로 판시했다.

1983년 미국 대법원 판결에 의해 위헌 판정을 받은 입법적 거부는 지금 문제가 된 국회법 개정안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미국의 입법적 거부는 의회가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 순간 해당 규칙(우리나라의 시행령에 해당)은 무효화된다. 반면 우리 국회법 개정안은 상임위원회가 소관 부처로 하여금 처리하고 보고하도록 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 조항은 소관 부처로 하여금 해당 시행령을 다시 검토하도록 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만일에 개정된 국회법이 국회의 의결이 있으면 해당 시행령은 자동으로 무효화된다고 규정했더라면 그 조항은 위헌으로 판정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시행령을 무효화하는 국회 의결의 성격을 입법적인 것으로 본다면 국회가 입법을 하는 경우에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법률안 거부권을 침해한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의 시행령까지 국회가 번번이 수정을 요구하게 되면 정부의 정책추진은 악영향을 받게 되어서 국정이 마비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거부권을 행사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발언에서 위헌 논리는 찾아 볼 수 없고 오히려 국민의 대표기관이며 원래 입법기관인 국회를 국정을 마비시키는 집단으로 보고 있어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행령 제정을 대통령의 전적인 재량으로 알고 있다면 그것 역시 큰 문제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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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정치민주연합의 사정이 말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사참사, 세월호 사건, 측근 비선라인 문제, 성완종 사건 등 온갖 악재가 꼬리를 무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상대로 한 선거에서 계속 패배하고 있으니 말이다. 4·29 재·보선 패배는 문재인 대표의 책임이 크다고 하겠지만 과연 문 대표에게 모든 책임을 지울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만큼 문제의 뿌리가 간단치 않다.

문제는 작년 6월 지방선거부터였다. 6·2 지방선거는 야당이 충분히 승리할 수 있던 선거였다. 하지만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는 합당명분인 기초단체 무공천에 집착하느라고 선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기초단체장 후보를 급하게 공천하다 보니 여당이 현직인 단체장을 이길 수 있는 후보를 거의 내보내지 못했다. 광주광역시장 후보를 전략공천하자 이에 반발한 현직 시장과 중진 의원이 탈당해서 여론조사 경선을 통해 단일화를 해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와 본선에서 경쟁하는 진풍경마저 연출했다. 이에 반해 새누리당은 선거 경험이 많고 지명도가 높은 다선 의원들을 대거 차출해서 광역단체장 후보로 내보냈다.

작년 7·30 재·보선에서는 동작을 파동이 전국적으로 나쁜 영향을 주었고, 호남에서의 안일한 공천이 유권자들을 분노케 해서 ‘이정현 당선’이란 이변을 초래했다. 이번 4·29 재·보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공천도 잘못했을 뿐더러 선거전략도 없었고 선거운동도 잘 못했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정부의 난맥상 등 국정 이슈가 선거에서 제기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지역밀착형 후보를 내세웠고 선거운동도 이미지 위주로 했다. 재·보선은 투표율이 낮은 데다 통합진보당 해산에 따른 재·보선이라서 진보당과 선거연대를 했던 새정치민주연합은 명분도 썩 좋지 않았으니 선거에 임하는 자세가 보다 비장했어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알 수 없지만 문재인 대표는 홀로 선거운동을 하다시피 했다. 지명도가 떨어지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들은 자체적으로 뉴스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문 대표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발로 뛰는 유세에 몰두했다. 문 대표는 성완종 사면 문제에서 스텝이 꼬여서 성완종 사건이란 호재를 적절하게 살리지 못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선거에서 맥을 못 추는 가장 큰 원인은 불안한 리더십인데, 리더십 문제의 뿌리는 역시 계파 갈등이라고 하겠다. 당 대표 등 지도부라고 하더라도 계파를 의식해서 소신 있는 결정을 하지 못하거나 또는 자기 계파를 고려한 독단적 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선거운동에서 팀 플레이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역시 계파 갈등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곤란한 지경에 처한 새정치민주연합의 돌파구가 자기 혁신과 변화임은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전통적으로 야당은 새 인물 영입을 통해 변화와 혁신을 가져왔지만, 지금과 같이 계파가 지배하는 구조하에선 누구도 변화와 혁신을 가져올 수 없다. 계파 갈등이 존재하는 한 새정치민주연합은 새 인물을 영입하기 어려울 것이며, 지금과 같은 인재풀로는 내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이 모두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당 대표는 있어도 당의 지도력은 찾아보기 어려운 리더십 공백 현상도 심각하다. 치열한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대표가 선거 패배로 침몰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 앞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패배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습관마저 있는 것 같은데, 거기에 편리하게 이용되는 논리가 ‘프레임’이다. 진보진영 학자나 논객들이 지난 몇 년 간 즐겨 썼던 용어가 ‘프레임’일 것이다. 용어의 본산지인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회자됐던 ‘프레임’을 통해서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 그리고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패배를 설명하는 경향마저 있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는 ‘프레임’을 설정해 상대방을 올무로 엮는 그런 정교한 집단이 아니다. 오히려 야권이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진보’라는 프레임에 스스로 갇혀 있기 때문에 그 같은 효과가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박근혜 정권에 비판적인 20~30대가 투표장에 나가지 않는 이유도 이들은 야당이 빠져있는 프레임적 가치에 감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야권은 이제 수평적 정권 교체를 가져오고 진보 집권을 실현했던 두 전직 대통령을 역사 속으로 보내고 새 가치와 새 리더십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의 거대한 실패와 박근혜 정권의 난맥상은 이제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수권자세를 보여주지 못하는 야권이다. 이번 재·보선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술적 실패뿐 아니라 야권의 총체적 한계를 노정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과연 쇄신의 길로 갈 수 있을지, 아니면 야권 분열을 촉진해서 ‘소수 보수 정권’ 수립에 일조하게 될지, 그것이 문제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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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30년 동안 교수로 재직했던 중앙대가 좋지 않은 일로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어 씁쓸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요즘 드러나고 있는 문제는 대체로 예상했던 일이다. 대학이 기업논리에 휘말리고 거기에 정치가 개입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작금의 중앙대 사태를 살펴보면 경기도 안성에 있는 제2 캠퍼스가 문제의 핵심임을 알게 된다. 1980년대 초 서울의 주요 대학들은 정부 정책에 부응해서 제2 캠퍼스를 건설했는데, 중앙대는 안성에 자리를 잡았다.

1983년에 조교수가 된 나는 법대가 있는 흑석동 캠퍼스보다 새로 건설한 안성 캠퍼스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당시 중앙대 이사장이던 임철순 박사는 미국에서 공부할 때 아름다운 대학 캠퍼스를 많이 보았던 까닭에 중앙대도 풍광이 좋고 널찍한 안성 캠퍼스를 중심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임 전 이사장은 안성 캠퍼스 건설을 위해 많은 빚을 졌는데, 그것이 잘못되어서 학교 운영권을 재일교포 사업가 김희수씨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임 전 이사장은 몇몇 대학과 대학원만 흑석동 캠퍼스에 남기고 대부분 교육단위를 안성으로 옮기려고 했었으나 그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안성 캠퍼스라고 하지만 학생과 교수들 대부분이 서울에 살았기 때문에 통학과 출퇴근이 문제였다. 1980년대 말에는 경부고속도로가 막혀서 통학과 통근이 거의 지옥과 같았다. 고속도로 확장으로 통학과 통근 문제가 다소 나아지는 듯했으나 김영삼 정부가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고 대학 신설을 준칙제로 바꾸자 각 대학의 제2 캠퍼스가 위기를 맞았다. 제2 캠퍼스는 서울에 있는 대학 정원을 묶어둔다는 전제하에 세워진 것인데, 서울에 있는 대학의 정원을 늘리고 대학 신설을 허가하면서 그 전제가 무너진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는 대학, 대학원, 학과 등 교육단위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학과는 많고 각 학과의 학생 정원은 적어서 규모의 경제가 안되지만 교수들은 전공이기주의에 안주하기 마련이다. 제2 캠퍼스가 있는 대학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전공을 본 캠퍼스와 제2 캠퍼스에 중복 설치하는 등 문제가 더 많다. 2000년 전후해서 대학에는 건축 붐이 일었고 교수 1인당 학생 숫자를 낮추기 위해 교수들을 많이 채용했다. 대학 등록금이 가파르게 인상된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있었다.

다른 대학의 제2 캠퍼스가 있는 경기도 안산과 수원에는 전철이 들어가서 교통문제가 해결됐지만 중앙대 안성 캠퍼스는 그런 혜택도 갖지 못했다. 이제는 안성 캠퍼스가 중앙대 발전에 있어 장애물이 되고 말았으나 교육장소를 변경할 수 없기 때문에 해결할 방법이 요원했다. 그런데 박범훈 전 총장이 이 난제를 해결한 것이다.

2008년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중앙대 총장을 지낼 때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하고 박용성 전 두산 회장을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박 이사장은 위기에 처한 중앙대를 구하기 위해 인수했다고 했는데, 인수 과정에서 박범훈 당시 총장이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이사장은 학교의 중요한 모든 행정을 직접 챙겼다. 박 이사장은 1차 대학 구조조정을 통해 교육단위를 과감하게 통폐합했는데, 무리한 부분도 있지만 방향은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흑석동 캠퍼스와 안성 캠퍼스 통합을 이루어냈는데, 거기에는 박범훈 당시 교육문화수석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음이 이제 분명해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오른쪽)이 2011년 5월2일 중앙대를 방문해 특강 뒤 학생들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무리하게 캠퍼스 통합을 하다 보니 흑석 캠퍼스는 과부하가 걸리고 안성 캠퍼스는 공동화되는 부작용이 생겼다. 무엇보다 이 조치는 엄청난 특혜였는데, 특혜의 배후에는 항상 무엇인가가 있음이 이번에도 입증되었다. 박범훈 전 총장이 MB 정권의 실세와 교류해서 모든 일을 벌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마저 있으나 검찰이 그 배후를 얼마나 밝혀낼지는 알 수 없다.

두산이 왜 중앙대를 인수해서 운영하고자 했는지 그것 자체가 의문이다. 두산은 육영에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여하튼 두산이 중앙대의 ‘시장가치’를 높이고자 했던 것은 분명하다. 캠퍼스 통합과 학과 철폐 등 구조조정은 잭 웰치 전 GE 회장의 기업 구조조정을 연상시킨다. 기업적 관점에서 볼 때 안성 캠퍼스와 정년이 보장된 교수집단은 가장 고약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 안성 캠퍼스 문제는 중앙대가 갖고 있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그 뿌리는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해법이 쉽지 않다. 기업적 관점에서 대학을 운영해 온 두산은 이번 사태로 자체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무엇보다 중앙대는 또다시 기로에 서 있는 형상이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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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3년차에 접어들었지만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피로감 때문인지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도가 많이 올랐고 문재인 대표의 지지도 또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012년 한 해 동안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잠시 지지했던 ‘부동층 유권자’(swing voters)는 이미 지지를 철회했고, 고정 지지층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여론조사 기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를 들지 않더라도 집권 10년은 짧지 않은 세월이며 유권자들은 항상 변화를 원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정권교체에 대한 여망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유권자들은 아무리 성공한 정권이라고 할지라도 선거에서 단순히 그런 결과에 입각해서 투표를 하지는 않는다. 유권자들은 시대에 걸맞은 정신을 반영하는 정책과 인물을 제시하는 정당을 지지하기 마련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의 영국 보수당이 1945년 7월 총선에서 클레멘트 애틀리가 이끄는 노동당에 참패한 것도, 1946년 미국 선거에서도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민주당이 참패해서 상원과 하원이 모두 공화당 지배하에 들어간 것도 그런 정서와 관련이 있다.

비슷한 현상은 1992년 미국에서 다시 일어났다.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H W 부시로 이어진 12년간의 성공적인 공화당 정권 기간 중 냉전이 종식되는 등 큰 성과가 있었음에도 유권자들은 1992년 선거에서 전후세대인 민주당 후보 빌 클린턴을 선택했다.

성공한 정권도 선거에서 수명을 연장 받기가 이처럼 쉽지 않은데, 하물며 실패한 정권을 연장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은 무엇보다 그것을 잘 알았던 정치인이다. 이명박 정권을 인수해서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와 국민대통합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명을 바꾸는 등 이명박 정권과의 차별화를 도모한 끝에 총선과 대선에서 모두 승리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와 국민대통합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슬로건에 불과했음은 이제 분명해졌다. 지난 2년간 박근혜 정부는 국민을 통합하기는커녕 오직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다지는 방식으로 정부를 이끌어 왔다. 변변하게 하는 일도 없이 그저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그리고 툭하면 제기되는 색깔론에 편승해서 실정과 의혹을 덮어 왔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야당의 지리멸렬에 힘입어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 자민당 정권을 보고 위안을 삼을지도 모른다.

사실 아베 정권의 우경화는 외연 확대 없이 자기의 고유한 지지기반을 안고 간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와 비슷하다.

아베 정권의 경제정책이나 역사의식은 퇴폐적이지만 그래도 일본 자민당은 4대강 사업이나 해외자원개발 같은 정권 차원의 대형 비리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일본의 국가기관은 선거과정에 불법적으로 개입하지도 않았다.

경제민주화와 국민대통합은 내년 총선에서 또다시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 분명하다. 새누리당은 이 두 가지 아젠다를 선점해서 2012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지만 이제 사정은 달라졌다. 이미 부도를 낸 공약을 다시 꺼낼 수는 없으며, 그렇다고 또다시 당명과 색깔을 바꿀 수도 없을 것이다.

연말정산 파동, 담뱃값 인상 등으로 인해 배신감을 느끼는 국민들도 부쩍 늘어났다. 사정이 이렇다면 새누리당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결국 지역과 이념뿐이 아닌가 한다. 구태의연한 방식에 의존해서 선거를 치르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 같은 상황 변화는 야당에 기회가 되겠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여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을 끌어오기 위해선 넘어야 할 장벽이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새정치연합은 통합진보당 잔존세력, 그리고 주한 미국대사에 칼을 들이댄 시대착오적인 무리들과 완전히 결별해야 한다. 물론 새정치연합은 이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항변하겠지만 그런 미온적인 자세로 부동층 유권자들의 지지를 확보할 수는 없다. 경제·사회 정책에서도 일대 전환이 있어야 한다. 단순하게 부자증세를 통해 복지를 확충하겠다는 식의 공약만으론 한계가 있다. 최소한 우리 경제를 지속가능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모델이라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이 지난 13일 국회 정론관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총선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는 ‘잊혀진 사람들’(forgotten men)과 ‘조용한 다수’(silent majority)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한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논쟁에 식상해 있으면서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조용하게 갈구하는 국민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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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민주혁명을 계기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논의될 당시의 일이다. 직선제 개헌을 한다는 데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어떤 대통령제를 도입할 것인가를 두고 법학자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소장 학자들은 4년 임기에 재임을 가능하게 하고 부통령을 두는 방안을 선호했다. 반면 중진 학자들은 단임제로 하고 국무총리를 두는 안을 주장했다. 개헌 논의를 주도하던 정부는 5년 단임과 국무총리를 두는 안에 무게를 두었다.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김영삼, 김대중 등 당시 야권 지도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러닝메이트로 대통령과 함께 선출되는 부통령은 2인자로 부각되기 마련이라서 대통령이 절대적 권력을 향유해 왔던 우리의 정치 경험상 생소할뿐더러,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이기에 앞서 국가원수이자 통치권자이기 때문에 내각을 통할하는 국무총리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당시에는 지배적이었다. 이렇게 해서 5년 단임 직선제 대통령에 국무총리를 두는 현행 헌법이 탄생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명망가를 국무총리로 임명해서 야당과 정권을 비판하는 세력에 대한 방탄막으로 이용했다. 3당 합당 전까지 여소야대 정부를 운영해야 했던 노 전 대통령으로선 이현재, 강영훈 같은 총리의 도움이 절실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회창, 이홍구, 이수성, 고건 등 잠재적 후계 그룹을 총리로 기용했다. 김 전 대통령은 총리를 사람을 키우는 자리로 보았던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무총리 자리를 ‘DJP 연합’의 도구로 사용해서 김종필, 박태준, 이한동 자민련 총재가 연이어서 총리직에 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보수층을 인식해서 고건 전 총리를 첫 총리로 기용했고, 정권이 안정되자 이해찬, 한명숙 등 정치적 동반자를 총리로 썼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총리로 기용해서 세종시 문제를 해결하고 후계자로 키워 볼 생각을 했으나 박근혜 의원의 반대에 부딪혀 정 총리는 반쪽 총리로 전락했고, 그 후엔 관리형인 김황식 총리에 만족해야만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 중 책임장관제를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다른 대선 공약과 마찬가지로 이 약속 또한 공허하게 되고 말았다. 세종시로의 정부부처 이관을 약속한 박 대통령으로선 책임 내각제를 운영해야 할 현실적 이유가 있었다. 총리는 물론이고 대부분 부처가 세종시로 내려간 상황에서 전처럼 청와대가 친정(親政)을 하다가는 정부가 마비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웬만한 사안은 세종시에서 총리와 내각이 스스로 결정하고, 총리가 정기적으로 대통령을 만나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하고 내각의 의견을 전달하는 구도가 되어야 세종시가 행정수도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밤새워 보고서를 읽고 모든 사안을 일일이 지시하는 만기친람형 미시(微視) 관리를 하고 있어 총리는 아무런 용도가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하에서 총리는 행사에 참석해서 인사말이나 하고 국회에 나가서 내용 없는 답변이나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소신형 장관을 찾아볼 수 없는 행정부이다 보니 명색이 행정수도라는 세종시에선 어떠한 결정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총리와 장관은 세종시와 서울 사이를 끝없이 떠도는 유랑객이 되고 말았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안에 반기를 들고 행정수도를 관철한 박 대통령에게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하는 일도 없는 총리이지만 총리라는 자리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가 높기만 한 것도 아이러니다.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이 총리를 못 구해서 정부 자체가 골병이 든 형상이다. 돌이켜 보면 대통령제 정부에 어정쩡한 총리를 둔 것 자체가 문제였다. 권위주의 시대의 대통령은 총리를 통치 수단으로 이용했고, 1987년 개헌 후에도 총리는 여소야대 정국에서는 방탄용으로, 연립정부에서는 연정 파트너를 배려하기 위한 자리로 이용됐다. 헌법은 총리가 국정을 통할한다고 규정하지만 그런 기능을 비슷하게나마 했다고 평가받을 총리는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하다.

17일 서울 도렴동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국무총리 취임식에서 이완구 신임총리가 국무위원등 참석자들로부터 경례를 받고 있다. (출처 : 경향DB)


기회가 되면 개헌을 해서 총리라는 자리를 아예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면, 경복궁 위에 베르사유 궁전처럼 버티고 있는 청와대를 버리고 세상으로 내려와서 총리와 함께 국정을 이끌어갈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 것이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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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 중 누가 가장 훌륭했나를 묻는 여론조사를 보면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높게 나오고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대체로 2, 3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대통령은 순위에 넣을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이 이렇게 박한 평가를 받는 것은 비자금 사건과 1997년 외환위기 때문일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재임기간이 15년이 넘고 5·16 후 최고회의 의장 시절을 합치면 무려 19년에 달하기 때문에 다른 대통령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1987년 민주개헌 후에 대통령이 된 경우에 국한해서 평가를 한다면 이른바 보수 대통령은 성공적인 사람이 없었다는 말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사후평가도 좋지 않을 것이니, 그 같은 결론은 불가피하다.

나는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선 보다 균형있는 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각기 자신이 처했던 시대적 상황에서 요구되는 과제를 대체로 잘 해냈고, 또한 임기 5년을 이끌어 가기 위해 가용한 인적 자원을 최대한 동원했으며 국민과의 소통에도 많은 노력을 했다고 본다. 다만 비자금과 외환위기가 모든 것을 집어삼켰던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민주화와 사회개혁 욕구가 화산처럼 분출하던 시기에 대통령이 됐다. 국회는 3김이 지배하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부의 행동반경은 크지 못했다. 그런 노 정권은 인물로써 정국을 돌파했다. 신망이 높은 강영훈 총리가 있었고, 청와대에는 노재봉, 김종인, 김종휘, 김학준 등 쟁쟁한 학자들이 포진했다. 나중에 총리가 된 이홍구 교수는 통일원 장관으로 한반도 통일에 관한 기본 구상을 완성했다. 5공 청문회, 노사분규, 학생시위 등으로 편안할 날이 없던 5년이었지만 그런 중에도 북방외교를 트고 변화하는 대외통상환경에 대응해서 경제체질을 강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국민을 아는 정치인이었고, 그렇기에 정치인을 정부와 청와대에 대거 기용했다. 첫 비서실장은 나중에 국회의장을 지낸 박관용 의원을 발탁했고, 손학규 의원과 이인제 의원을 장관으로 기용했다. 청와대는 서울대 교수 출신인 박세일, 이각범 등이 수석비서관으로 개혁과제를 추진했다. 김 대통령은 하나회 해체, 금융실명제 실시, 불법 정치자금 관행 근절 등 자신이 생각하던 개혁을 밀고 나갔다. 김영삼 대통령은 민심을 존중했지만 청와대에 들어간 후에는 소통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당시 여당의 사무총장이던 강삼재 의원은 수시로 청와대로 가서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했다는데, 그러면 김 대통령은 “네가 대통령인 나한테 이렇게 말할 수 있나?”하는 표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며칠 후에는 강 총장이 전한 민심이 그대로 대통령의 발언과 청와대의 조치로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차남 김현철씨 문제가 불거졌을 때에도 김영삼 대통령은 윤여준 공보수석 등 가신 그룹이 아닌 참모들의 진언을 받아들여 사과 기자회견을 했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 경제참모 중에는 쓴소리를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1996년 하반기부터 나빠지기 시작한 경제상황에 대해 경제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진솔한 보고를 하지 않았고 결국 한보사태와 기아사태를 거쳐 외환위기를 맞고 말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가운데)과 두 김 총재(왼쪽은 김종필 당시 신민주 공화당, 오른쪽은 김영삼 당시 통일 민주당 총재)가 1990년에 3당 합당 회담을 가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의 성공과 실패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어야 한다. 두 대통령이 인력 풀을 최대한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임기 5년을 이끌어 가기가 쉽지 않았음에 주목했어야 한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그 시절에 대해 잘 이해하는지도 의문이다. 1988년에서 1997년에 이르는 보수정권 10년 동안 박 대통령은 칩거 중이었기 때문에 감각이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충분히 채울 수 있었다. 그 시절 정권과 부침을 같이했던 남재희 전 장관, 김종인 전 수석, 윤여준 전 장관은 물론이고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원로 그룹의 지혜를 빌려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역사의 교훈을 배우기를 거부했다. 지금 박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문고리 3인방’과 ‘십상시’라고 불리는 비서관과 행정관들이다. 국회의원 비서관을 지내면서 그렇고 그런 권력투쟁이나 보아왔던 이들이 별안간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는 셈인데, 김무성 대표 수첩사건으로 이들의 민낯이 만천하에 공개되고 말았다. 대통령이 장관과 수석비서를 만나지도 않으니 이들 비서관과 행정관들이 ‘국정놀이’라는 철없는 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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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진보당) 해산 판결을 내림에 따라 야권은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해산된 진보당을 지지했던 골수 당원이나 지지자들이 정치적으로 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런 상황에서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 등 야권이 어떻게 대응하는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진보당 해산 판결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진보당과의 연대로 치른 새정치연합의 입장에서 진보당의 해산은 당혹스러운 사건이지만 동시에 예상되었던 일이기도 하다. 사실 새정치연합은 김한길-안철수 투톱 시절에 이미 진보당과는 선(線)을 그은 바 있다. 하지만 문희상 비대위가 당내 온건 실용파의 참여 없이 굴러가고 있으며,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주도했던 친노계의 문재인 의원이 차기 당대표로 유력하다보니 여권으로부터 다시금 진보당 문제에 대한 입장 천명을 요구받고 있다.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전 의원은 헌재 판결을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전 의원은 2007년 대선 후 ‘종북 문제’를 거론하면서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진보신당을 만들었지만, 2012년 총선을 앞두고는 진보당에 합류했고 총선 후에 종북 논란이 발발하자 또다시 탈당해서 정의당을 창당했다. 물론 이들의 말대로 헌재의 판결은 비난받을 구석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자신들이 두 번이나 탈당을 해야 했던 정당이 해산된 데 대해 과연 헌재 판결을 비판만 하고 있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진보당 해산을 청구하는 결정을 내린 처사는 지나친 것일 수도 있다. 헌재에 해산을 청구하기보다는 정치권이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해야 했었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만일에 이석기씨가 스스로 탈당해서 의원 신분을 버렸다면 정부가 정당해산을 청구하는 강수를 두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씨는 탈당하지 않았고, 이정희 전 의원 등 진보당 핵심 구성원들은 이씨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새누리당이 중대한 범죄 혐의로 구속 재판을 받고 있는 이석기 당시 의원을 제명하고자 했을 때 새정치연합은 재판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이유로 협조하기를 거부했다. 우리나라 국회는 국회 본회의장 내에서 최루가루를 터뜨려도 검찰에 고발하고 하염없이 재판결과를 기다리는 수준이기에 이석기 당시 의원을 징계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이처럼 야권이 진보당 문제에 대해 확실하게 선을 긋지 못하기 때문에 여권의 색깔공세에 시달리는 것이다. 이유가 어떠하든 간에 ‘종북 논란’은 마치 수렁과 같아서 근처에 다가서는 것 자체를 피하는 것이 현명함을 알아야 한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새정치연합과 정의당은 진보당 및 그 핵심세력과의 결별을 보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야권의 입장에선 정당해산을 제기한 박근혜 정부의 의도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고, 헌재의 판결논리에 불만을 표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는 법리해석과는 전혀 다른 영역의 문제다. 야권은 진보당과 분명하게 선을 긋지 않고서는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_ 연합뉴스


통합진보당 해산과 더불어서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진보당 사태 후 변화된 환경 속에서 진보세력이 독자적 정치집단으로 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새로운 진보정당이 나와도 자체적으로 지역구 의석을 확보하기는 어렵고, 또다시 야권 연대에 기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야권 연대는 이미 약(藥)이 아니라 독(毒)이 되어버렸다. 치킨게임과 같은 후보 단일화와 비례 의석 몇 개에 목매는 정당은 희망이 없다.

야권이 진정으로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하고 싶다면 종북 논란과 선을 그어야 할뿐더러 ‘진보만이 살 길’이라는 아집(我執)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이념과 정책 문제에 대해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말이다. 1980년대에 영국 노동당은 노동자 중심의 진보 이념과 정책을 내걸었지만 마거릿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에 연전연패했다. 당시 노동당 간부들은 “우리는 패배하고 또 패배해도 우리 길을 간다”고 했었다. 노동당의 패배 행진은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이 ‘제3의 길’이란 우(右)클릭 정책을 내걸 때까지 계속됐다. 토니 블레어가 노동당 대표가 되어 선거에서 승리했을 때 그의 나이가 43세였다. 야권의 지도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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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중국 방문 중에 터뜨린 자신의 개헌 발언을 거두어들임에 따라 급물살을 탈 것 같았던 개헌 논의는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평소 실언이 잦은 김무성 대표이지만 이번 발언이 완전한 돌발성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김 대표는 오스트리아 같은 이원집정부제 정부를 거론하면서 개헌 논의가 봇물 터지듯 할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가 “개헌 논의는 경제 블랙홀이 될 것”이라면서 반대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가 했더니 하루 만에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여러 정황으로 박 대통령이 김 대표에 대해 강한 불만 내지는 경고를 전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개헌 논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단순히 경제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은 정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서 개헌 논의가 없더라도 실패하게 되어 있으니 ‘경제 블랙홀’은 한낱 핑계라고 하겠다. 박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개헌 논의가 박 대통령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하는 것임을 김무성 대표는 잘 몰랐던 것 같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개헌 방안은 4년 중임제 대통령과 분권형 대통령제인데, 이런 논의가 나오는 것 자체가 박 대통령한테 불쾌할 수밖에 없다. 중임제 대통령 개헌 논의만 해도 그렇다. 칠레의 미첼레 바첼레트 대통령처럼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으나 단임제 때문에 중임을 못하고 퇴임해야 하는 모습을 본 국민이 중임제 개헌을 하자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중임 허용에 방점이 찍힌다. (실제로 바첼레트는 퇴임 후 4년이 지나서 선거에 다시 당선되어 지난 3월에 대통령으로 두 번째 취임했다.) 하지만 우리가 4년 중임제를 거론하는 이유가 성공한 대통령에게 단임 5년이 너무 짧기 때문이 아님은 너무나 분명하다.

1987년 민주개헌 당시 단임제를 택한 이유는 중임을 허용하면 현직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중임을 허용하는 미국의 경우에도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 동안 첫 번째 임기보다 더 잘했던 경우가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나오는 중임제 개헌론은 “소통도 안되는 무능한 대통령에게 5년은 너무 길기 때문에 4년 만에 갈아 치울 수 있도록 바꾸자”는 이야기가 된다.

분권형 대통령 개헌론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속한 정당이 의회의 다수당인 경우에는 대통령은 ‘제왕’이 될 수 있다. 언론의 자유와 법원과 검찰의 독립 같은 법치주의 장치가 완비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도 제왕적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서 큰 문제를 야기했다. 그런 제왕적 대통령이 언론을 탄압하고 조작하며, 검찰을 자기 집사 부리듯이 한다면 그것은 바로 ‘독재’다.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킴으로써 이 같은 독재의 출현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국감 대책회의에서 자신의 개헌 관련 발언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과하고 있다. _ 연합뉴스


분권형 대통령제는 국민이 직선으로 선출하는 대통령에게 외교와 국방 권한을 주고, 국회 다수당이 구성하는 내각에 내정 권한을 부여하자는 것인데, 이런 정부형태는 성공하기 어렵다. 혼란을 일으켜 나치의 등장을 초래한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이 전형적인 경우다. 이 같은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이야기도 박 대통령에게 불편할 수밖에 없다. 경제·사회 등 내정 전반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각에 권한을 위임하지도 않는 대통령이 문제라는 냉소적 뉘앙스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국정을 제대로 이끌어 가지도 못하면서 권한만 많이 갖고 있는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론으로 표출된 것이다. 친박계라는 강창희 전 국회의장마저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안을 제시했으니 이 역시 흥미롭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개헌이 필요하다고 보는 견해가 60%에 달하지만 구체적인 개헌방향에 대해서는 4년 중임제와 분권형 대통령제로 의견이 갈리고 있다. 여하튼 국민 다수가 현재와 같은 대통령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음을 강하게 표출한 것이다. 하지만 분권형 대통령제는 물론이고 4년 중임제 대통령도 단점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제도를 바꾸면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개헌이 과연 가능하고 바람직한지는 접어 두더라도 이 시점에서 제기되는 개헌 논의 자체가 ‘불통과 독선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보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 때문에 개헌 논의가 청와대에 그토록 불편한 것이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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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개헌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는 45~50%, 새누리당의 지지도는 40~45%에 달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도는 20%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낮은 응답률 등 여론조사의 한계를 고려하면 박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도는 부풀려져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야당의 지지도는 대체로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야당의 지지도가 이렇게 낮은 것은 잠재적 야당 지지자들이 실망해서 무당파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야당에 대한 지지도가 낮다고 해서 정부와 여당이 잘하고 있는 것이 아님은 정부와 여당도 잘 알 것이다. 1987년 민주개헌 이후 박근혜 정부처럼 국민과 높은 담을 쌓은 불통정권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박 대통령은 전 정권까지 이어온 각종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약속하고 당선됐다.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 검찰개혁이 바로 그런 약속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자신이 내건 약속을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통째로 폐기해버렸다. 전 정권에서 있었던 4대강 사업, 해외자원 개발 같은 대형 의혹이 현 정권 들어 새로 생겨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전 정권하의 의혹에 대해 모른 체함으로써 자신은 전 정권과 다를 것이라고 한 무언(無言)의 차별화 약속을 파기했다. 이어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정권이 위기 상황에서 한없이 무능함을 잘 보여주었다. 그런 비상 상황에서 아무도 대통령을 만나서 대책을 의논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청와대가 심각한 병적(病的) 상태에 있음을 웅변으로 증명한다.

불통의 정치, 대통령의 눈을 가리는 정치 (출처 : 경향DB)


새누리당에 김무성 체제가 청와대의 의도와 무관하게 들어선 것은 그 자체로써 대단한 사건임이 틀림없다. 김무성 대표가 이끄는 새누리당은 ‘혁신’을 한다면서 외부 위원을 위촉하는 등 부산하다. 하지만 여당의 혁신은 전 정권이 저지른 4대강 사업, 해외자원 개발 등 각종 난맥상에 대한 자아비판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친이계가 장악한 새누리당이 전 정권하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반성을 할 리가 없고, 전 정권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친박계는 절멸 단계에 접어들었다. 정권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고자 하는 주체 세력이 없는 현 정부의 취약한 모습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야당의 지지도가 높아야 하겠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현 정권 초기부터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이 불거지는 등 상황은 야당에 결코 불리하지 않았다. 과반수 의석에 기대서 철통방어를 하는 비상식적인 여당 지도부에 대해 야당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물론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언론 환경 역시 야당에 결코 우호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야당의 적은 야당 내부에도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야당에 유리한 국면이면 ‘귀태(鬼胎)’니 뭐니 하는 돌출성 발언이 터져 나와서 문제의 본질을 집어삼키곤 했다. ‘기울어진 운동장’도 문제지만 자기 골대를 향해 공을 차는 이런 일이 더 큰 문제다.

야당은 20~30대가 왜 자신들에 대해 마음을 열지 않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나라 20~30대는 ‘88만원 세대’이니 당연히 야당을 지지할 것으로 생각하는 데 야당의 문제가 있다. 보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보다 나은 교육을 받은 20~30대는 결코 여당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야 운동권과 어깨동무하면서 거리에서 투쟁하는 야당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야당이 당연하게 자기들의 지지기반이라고 생각하는 호남 유권자들의 정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야당은 자신들의 지지기반인 20~30대와 호남 유권자들을 조용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잃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월호특별법 문제는 오늘날 야당이 갖고 있는 문제를 잘 보여주었다. 세월호 참사를 조사할 위원회가 공정하고 강력해야 한다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고, 또 별도로 특검을 두자는 발상에 대해 흔쾌히 동의할 법조인과 법학교수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수사권과 기소권을 제외하고 그 대신 조사위원회 구성을 야권에 유리하게 한 이완구-박영선 합의안에 대한 야당 내 강경파의 반응은 본능적이고 반사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대안을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장외로 나가서 “박근혜 대통령이 결단하라”고 촉구하는 것뿐이었는데,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조롱’으로 응대했다. 이런 와중에 대리기사 폭행이란 돌출사태가 일어났으니, 이러다간 세월호 참사가 아예 망각될까 걱정된다. 정부와 여당은 불통이고 야당은 한심하니, 이제는 여야를 대체할 제3의 정치세력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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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조가 유가족과 새누리당 간의 의견 차이로 무산되는 것 같다. 새누리당은 유가족 쪽에서 요구하는 특조의 수사권과 기소권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논리적으로 말한다면 새누리당의 주장도 합리성이 있다. 마찬가지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위원장과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재협상으로 타결지은 안도 수긍할 만하다. 특조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준다면 특조에 특별검사를 두는 것이기에 별도로 임명되는 특별검사와는 권한과 업무가 중복되기 마련이다. 특검은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수사하고 기소해야 하기 때문에 특조 산하에 특검을 두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하겠다.

하지만 유가족들이 법리적으로 무리한 요구를 내세우는 이유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진솔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가 끝나자 태도를 바꾸어버렸고, 새누리당 의원들은 유가족들을 끊임없이 폄하하고 모욕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유가족은 정부와 여당을 불신하는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특검과 진상조사위원회가 제대로 결과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도 특조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미 세월호 선장과 선원, 해경 123정 정장과 진도 VTS 담당자, 그리고 선박안전검사를 대충 해준 협회 관계자들을 구속 기소해서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을 둘러싼 의문은 아직도 허다하다. 세월호가 급변침을 하게 된 원인과 과정, 선박 내의 CCTV가 별안간 꺼진 이유 등 의문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 때문에 유가족과 여당이 합의를 못 이룬다고 보기는 어렵다.

세월호 특조의 핵심은 사고가 난 후에 2시간이나 되는 골든타임을 허비해서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킨 경위가 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정부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 대해 전혀 준비돼 있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물러난 안전행정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은 이 정권과는 관계가 없던 사람들이다. 책임이 더 있다고 할 만한 유정복 전 안행부 장관은 대통령의 측근이었고,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대통령의 대표적인 인사실패 사례였다. 함정을 몰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현 정부 들어서 해경청장이 된 경위도 살펴야 할 부분이다. 정부와 여당은 이런 문제가 불거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다.

청와대 향한 세월호 유가족 3보1배 (출처 : 경향DB)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청와대가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가 하는 문제도 이 정부에는 아픈 부분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에게 서면과 유선 보고를 했다고 하지만 수백명의 생명이 촌각에 달린 사안이 서면과 유선 보고를 하고 있을 정도로 한가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박 대통령이 그날 오후 늦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한 발언과 그 다음날 진도 체육관에 내려가서 한 발언은 대통령이 제대로 보고를 받지 못했음을 잘 보여주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란 사람은 대통령이 사고 당일 청와대 경내에 있었지만 자신은 대통령의 소재를 몰랐다고 마치 남의 일처럼 말했다. 청와대가 특조와 특검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도저히 납득이 안되는 그날의 청와대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986년 1월28일 오전 11시39분, 스페이스 셔틀 챌린저호가 공중에서 폭발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그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오전 참모회의를 끝내고 오닐 하원의장과 통화를 하고 방문객을 맞은 다음에 대변인에게 브리핑을 듣는 등 집무실에서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있을 연두국정연설과 관련해서 TV 앵커들과의 점심을 앞두고 잠시 쉬고 있었다. 그 순간 참모들이 집무실로 뛰어 들어와서 챌린저가 폭발했다고 레이건에게 알렸다. 레이건은 참모들과 함께 TV를 보았다. 레이건은 훗날 자서전에서 그 순간을 보고 또 보면서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고 술회했다. 레이건은 그날 저녁 연두연설을 연기하고 TV에 나가서 미국민을 위로하는 짧은 연설을 하기로 했다.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이던 페기 누넌은 반나절 동안에 연설문 초안을 완성했고 레이건 대통령은 그날 저녁 온 국민을 상대로 집무실에서 차분하게 연설을 했다. 다음날부터 백악관에는 감사의 전화와 편지가 쇄도해서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그날 연설은 가장 훌륭했던 대통령 연설의 하나로 평가된다. 슬픔에 잠긴 국민을 위로한 레이건은 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원인을 규명토록 했다. 우리나라 청와대가 얼마나 무능하고 비정상적인 조직인지는 더 이상 말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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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재·보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11 대 4로 참패함에 따라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물러나고 박영선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으로 당을 이끌게 됐다. 거대 야당이 전에 없던 위기에 봉착한 것인데, 이에 대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의 반대편에 섰던 내가 뭐라고 말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처럼 청와대와 여당이 독주를 하는 상황에서 야당마저 힘을 잃어버린다면 나라 전체가 불행하게 될 것 같아서 내가 보는 야당의 문제를 몇 줄 적어 보기로 한다.

우선 야당은 당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와 대통령 후보를 뽑는 경선 절차가 새누리당에 비해서 불안하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새누리당은 2007년 경선을 계기로 현행 제도가 확립이 됐다. 이번에 치른 전당대회에서도 정해진 절차에 따라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자연스럽게 선출됐다. 하지만 야당은 그때그때 규칙을 바꾸는 등 그 절차 자체가 매우 불안정하다. 지방순회 투표, 모바일 투표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치기도 했지만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이번 재·보선에서 김한길·안철수 두 대표가 최악의 공천을 했음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이라고 해서 항상 공정한 공천을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경선을 거친 공천이라고 해도 절차적 공정성 등을 이유로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는 새누리당에도 많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새누리당에서는 동작을에서 있었던 허동준-기동민 파동 같은 ‘서부 활극’을 보기는 어렵다. 이번 재·보선에서도 보듯이 새누리당 당선자들은 사업가, 변호사 등 대개가 본업이 있는 사람들이다. 반면 야당 후보자, 그리고 후보자가 되고자 했던 야당 인사들은 정치가 전업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공천을 둘러싼 잡음이 유독 야당에서 크게 들리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같은 맥락이지만 야당도 이제는 전문직, 관료, 학자 출신을 보다 많이 영입해야 할 것으로 본다. 야당은 4·11 총선 때 신경민 의원을 제외하고는 주목할 만한 전문직 출신 의원을 새로 내지 못했다. 가뜩이나 관료 출신 의원이 부족한 상황인데 6·4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경험 많은 정책통(通)인 김진표, 이용섭 두 의원을 잃어 버렸으니 그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의총 참석한 7.30 재보선에 당선된 새정치민주연합 4명의원 (출처 : 경향DB)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야당이 이번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면 좋은 기회를 맞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새누리당이 ‘박근혜 프리미엄’을 상실해 가고 있으며, 2012년에 내세웠던 슬로건을 거두어들이고 ‘우경본색(右傾本色)’으로 회귀한 것도 야당에는 기회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새누리당과 야당은 함께 좌클릭을 했다. 그런 경우라면 외연을 넓히는 쪽은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이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바뀌었으니 야당은 중도개혁을 지향하는 우클릭을 해야 할 것으로 본다. 더 이상 통합진보당을 신경 쓸 일도 없으니 ‘제3의 길’을 내걸고 집권에 성공한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방식의 우클릭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또 바람직하다.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던 50% 중 적어도 10%는 이미 이탈한 상태이기에 야당이 이 표심을 염두에 둔다면 특히 그렇게 해야 한다.

야당이 ‘안철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도 기회라고 하겠다. 그것이 ‘현상’이든 어떻든 간에 ‘안철수’는 그간 야당의 지지도를 깎아먹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야당에 안철수는 같이 가기도 어렵고 상대해서 싸울 수도 없었던 존재다. 그런 안철수 의원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신당을 창당하자 새누리당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뒤늦게 안철수신당과 야당은 합당을 했지만 ‘기초단체 무공천 코미디’로 점수를 까먹더니 재·보선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할 말은 아니지만 지난 반년 동안 여권은 “안철수 덕분에 편하게 됐다”면서 표정관리를 해 왔다. 현실정치를 모르는 새정치란 이처럼 허무한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 의원을 정치권으로 불러들인 대중의 욕구는 여전하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어떤 이는 야당이 반대만 하고 대안을 내지 못해서 이리 됐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해석에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은 여권이 통상적으로 내거는 프레임일 뿐이다. 내가 보기에 야당의 문제는 반대하고 비판하는 방식이 정교하지도 않고 세련되지도 않았다는 데 있다. 야당이 내건 정책도 보다 세련되고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부자한테 세금을 무겁게 매겨서 서민을 돕겠다는 식의 슬로건을 내걸고 집권을 하겠다는 것은 도둑놈 심보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국민공감혁신위원회’로 출범한 박영선 비대위원회의 건승을 기원한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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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