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표창원 칼럼'에 해당되는 글 62건

  1. 2015.12.16 ‘혐오 발언’에 족쇄를 채워라
  2. 2015.12.02 라쿠안 맥도널드와 백남기
  3. 2015.11.18 [표창원의 단도직입]‘권력의 정당성’이 답이다
  4. 2015.10.07 [표창원의 단도직입]검찰이 만드는 비극
  5. 2015.08.26 국방 과학수사’ 신뢰·전문성 갖춰야
  6. 2015.08.12 [표창원의 단도직입]‘성 맹수’ 범죄 피해, 국가가 사죄하라
  7. 2015.07.29 [표창원의 단도직입]국가 형벌제도, 혁신해야
  8. 2015.07.15 [표창원의 단도직입]‘국민걱정원’, 이대로는 안된다
  9. 2015.07.01 [표창원의 단도직입]‘탐정’을 허하라
  10. 2015.06.17 [표창원의 단도직입]예방은 없고 정치만 있는 공공안전
  11. 2015.06.03 [표창원의 단도직입]‘사법 부정’ 바로잡을 기구가 필요하다
  12. 2015.05.20 [표창원의 단도직입]‘고장난 사회’ 대한민국
  13. 2015.05.06 [표창원의 단도직입]‘정의’마저 수입하는 나라
  14. 2015.04.22 [표창원의 단도직입]독립적 ‘반부패수사기구’ 반드시 필요하다
  15. 2015.04.08 [표창원의 단도직입]세월호 1년, 화합과 치유의 출발점 돼야
  16. 2015.03.25 [표창원의 단도직입]‘학레기’가 아닌 학자로 돌아가라
  17. 2015.03.10 [표창원의 단도직입]한국에도 범죄전문기자가 필요하다
  18. 2015.02.25 [표창원의 단도직입]검찰, ‘두 손에 떡 든 놀부’
  19. 2015.02.04 [표창원의 단도직입]범죄 퇴치, 시민에게 개방하라
  20. 2015.01.20 [표창원의 단도직입]경찰과 검찰을 시민 품으로

이틀 전 독일 정부가 구글, 페이스북 및 트위터 등 세계적인 온라인 소통망 기업들과 의미 있는 합의에 도달했다는 내용이 영국 BBC 방송을 통해 보도됐다.

최근 시리아 난민사태 및 파리 테러의 여파로 인종차별과 특정 종교 비하, 사회적 소수와 약자 공격 등의 ‘혐오 발언’이 난무하는 상황에 대한 특단의 조치다. 합의에 도달한 뒤 독일 법무부 장관은 “온라인이 극우주의자들의 놀이터가 돼서는 안 된다”며 환영했다.

앞으로 독일 온라인상에서 ‘혐오 발언’이 게시될 경우 24시간 이내에 삭제된다. 나치 독일의 인종차별과 학살 등 반인륜적 범죄행위로 인한 국가적, 민족적 죄책감을 받아들이고 ‘영구 속죄’를 천명한 독일의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전라도라는 지역, 여성이라는 특정 젠더, 진보라는 정치성향, 야당이라는 특정 정파 및 대통령과 정부정책 등에 비판적인 시민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 발언이 온라인에 넘친다. 심지어 지난 대선 기간에는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라는 핵심 국가안보 기관에서 공식업무로 혐오발언을 조직적으로 제작·유포한 사실이 밝혀져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혐오발언을 쏟아낸 ‘좌익효수’라는 아이디 사용자는 국정원 직원임이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그 신분을 유지하며, 국정원의 지원과 보호하에 사법적인 방어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뿐인가? 혐오발언을 누가 누가 더 잘하나 경쟁하는 공간인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라는 사이트는 정부의 묵인하에 여전히 ‘성업’ 중이다. 더구나 새누리당은 대변인을 통해 “일베는 순수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공간으로 유명하다”(조선일보 2012년 12월14일)라면서 강력한 지지와 승인 성명을 발표한 뒤 아직까지 이들과의 관계를 청산하지 않고 있다.

세월호 침몰 참사 엿새째인 21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선착장에서 119구조대원들이 사고 해역에서 수습한 시신을 옮기고 있다._강윤중 기자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국정원의 이탈리아 보안업체 해킹프로그램 구입, 역사교과서 국정화, 대형 집회 시위 등 정부와 여당에 악재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지원 관변단체와 일베 등 극우성향 커뮤니티의 혐오발언은 그 정도와 양에 심각한 증가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대통령이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집회시위에 참가하는 시민을 극단주의 테러단체 IS에 비유하며 혐오발언을 스스로 부추기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총리와 장관 등 정부요인들이 가세했음은 물론이다. 심지어 엄정 중립을 유지하며 혐오발언 방지와 단속에 나서야 할 김수남 신임 검찰총장은 취임사를 통해 집회 시위 폭력행위자를 ‘체제전복세력’이라고 규정하며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원천봉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친정부 친여당 극우 혐오발언 세력들에게는 마치 정부의 공식적인 ‘공격 개시’ 명령과 같은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새누리당과 정부 및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대통령과 정부를 비방하고 공격하는 것이야말로 혐오발언”이라고. 심각한 오해다. 세계인권선언의 표현의 자유 조항(19조) 및 각국의 법체계는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와 정부기관 등 ‘공적인물’에 대한 어떠한 비판이나 비난 표현도 허용돼야 한다고 천명한다.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국가 중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을 돌리고 온라인상에 글을 올리는 사람이 형사처벌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반면, 힘없는 약자와 사회적 소수자 및 개인은 쏟아지는 혐오발언의 공세 속에서도 국가의 보호나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한다. 뭔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대한민국이 독일처럼 ‘혐오발언 금지’ 조치를 취하려면 정부와 여당부터 사죄하고 반성하고 자신들의 지원세력부터 단속해야 한다. 과연 그럴 용기가 있을까?

총선이 다가오니 벌써 정치적 의도를 띤 혐오발언이 증가하기 시작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공정경쟁’의 모범을 보이려면 지금 당장 ‘혐오발언 금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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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미국 시카고 시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매카시 경찰국장의 사퇴 촉구’가 내용이었다. 1년 여전 거리에서 백인 경찰관 반 다이크가 지시에 불응해 도주하던 흑인 10대 청소년 라쿠안 맥도널드를 총격해 사망케 한 사건이 발단이었다. 경찰국장은 반 다이크를 옹호했고, 검찰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기소를 미뤄오던 중이었다. 언론과 시민들은 시카고 외근 경찰관이 착용하고 다니는 소형카메라에 촬영된 영상을 공개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했고, 거리에선 시위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수사기밀인 동영상을 공개할 수 없고, 경찰관의 총격은 정당행위다’라는 매카시 경찰국장을 보호하고 옹호하던 시 검찰과 시장의 연대가 구축한 보호막은 강하고 공고했다. 이 지지와 보호의 연대를 무너트린 것은 법원이었다. 법원은 ‘당시 상황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하라’고 시카고 경찰에 명령하면서 반 다이크 경찰관을 ‘1급 살인죄’로 기소했다. 법원의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시장은 수족처럼 챙기던 경찰국장을 내팽개쳤다.


기자회견에서 “매카시 경찰국장은 훌륭한 지휘관이지만 이미 경찰에 대한 ‘공공의 신뢰’에 심각한 손상이 발생했기 때문에 지휘관이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지난달 14일 집회 시위 도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중태에 빠진 농민 백남기씨 사건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물론, 일반인의 총기 소지가 허용되고 불법 총기류도 많아 늘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긴장된 상태에서 근무하는 미국 경찰관과 주취 난동자와 고성의 민원인들이 내뱉는 욕설과 폭력과 모욕에 시달리는 한국 경찰관의 긴장의 특성과 정도는 다르다.


백남기씨의 자녀들과 농민단체 회원들이 편지를 주한교황청대사관에 전달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_경향DB


양국 모두 법과 규정, 경찰헌장에 ‘시민의 권리를 존중하고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것은 같다. 다만, 미국의 대통령과 시장, 경찰지휘관들은 ‘어떤 차이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경찰은 모든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반면, 한국은 대통령부터 무섭게 일그러진 표정과 공격적인 말투, 그리고 과격한 표현을 동원해 시위에 나선 시민을 테러리스트라 규정하고 적대시하고 있다. 총리와 장관, 경찰청장, 여당 의원들은 서로 질세라 일선 경찰관들에게 ‘전사가 되어라’, ‘시위대를 공격하라’, ‘무력으로 진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맥도널드는 정부와 경찰이 금지하는 개별 경찰관의 범죄적 총격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우리 농민 백남기씨는 대통령과 정부, 경찰 최고위 지휘관의 지시와 명령, 심리적 압박하에 있던 경찰관의 직무상 행위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미국 시민 맥도널드의 사망에 대한 1차적 책임은 반 다이크 경찰관 개인의 ‘1급 살인’ 혐의로 귀결되고 매카시 경찰국장의 사임으로 2차적 ‘지휘 책임’이 추궁된다.

하지만, 한국 시민 백남기씨 부상의 원인이 ‘불법행위’라면, 그 1차적 책임은 정부와 경찰 지휘부가 져야 한다. 만약 12월5일로 예정된 집회와 시위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한다면, 시민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해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린 대통령과 그 명령의 부당성을 고언하지 않고 더 심한 발언을 쏟아낸 총리와 장관, 경찰청장, 그리고 미국처럼 총을 쏘라고 난리 친 새누리당 의원들이 책임져야 한다.

경찰 지시에 불응해 달아난 흑인 청소년의 행위는 법과 절차에 따라 처리돼야지 경찰의 총격으로 응징돼서는 안된다. 시위 참가 시민 역시 마찬가지다. 일부 폭력행위 시위꾼은 시민들과 경찰이 함께 구분하고 신원을 확인해 법에 따라 조치해야 한다. 일부의 폭력행위를 명분 삼아 분노하고 저항하는 시민, 그 생각과 뜻을 표현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시민을 적으로 규정하고 공격하는 정부는 이미 정부가 아니다. 경찰관을 포함한 공무원은 불법한 지시에 항거해야 하며 부당한 지시에 절차를 밟아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우리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천명하고 있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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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대포와 캡사이신, 쇠파이프와 돌이 난무하는 폭력 충돌이 서울 도심을 지배했고, 사경을 헤매는 농민을 포함해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입장과 성향에 따라 경찰과 시위대의 책임을 더 크게 보는 주장이 갈린다. 사실관계가 명확히 밝혀져 각각의 행동에 대한 타당한 조치가 내려져야 함은 자명하다. 다만, 비난하고 처벌해야 할 범죄인 ‘폭력’과 수용하고 존중해야 할 ‘정당한 물리력’을 가르는 기준과 원칙, 그리고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우선, 현대 입헌민주국가의 철학적 기반은 ‘정당한 물리력 사용의 국가 독점’이다. 즉, 공공의 안녕과 개인의 생명, 자유 보호를 위한 공식적인 ‘힘과 위력의 사용’은 오직 국가만 할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국가 공권력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목적’, ‘법과 절차’의 철저한 준수, 대화와 설득 등 다른 평화적인 수단을 다 사용하고 난 뒤의 ‘최후의 수단’이라는 조건을 갖춰야 하며, ‘필요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 이 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정당성’을 상실해 ‘국가 폭력’이 된다.

국가가 아닌 개인이나 집단의 물리력 사용이 허용되는 경우도 있다. 우선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시위를 포함한 ‘정당행위’다. 그리고 생명이나 신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 급박한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긴급 피난’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민의 ‘물리력 사용’ 역시 과하게 사용돼 피해를 야기할 경우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결국 국가나 개인 모두 정당한 목적을 위해, 법이 허용하는 수단과 방법 및 절차에 따라 다른 평화적인 수단을 먼저 고려하고,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물리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은 같다.


정부 규탄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행진도중 차벽을 무너뜨리려 하자 경찰이 캡사이신과 물대포 등을 발사하고 있다._경향DB


그런데 지난 주말 도심 집회에는 두 가지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첫째, 예견 가능한 충돌을 야기하고 방치한 근원적 책임이다. 이번 시위를 촉발한 핵심적 갈등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다. 정부가 역사학계와 국민 다수의 반대에도 무리하게 밀어붙인 국정화는 주권자의 권리를 침해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저항권’을 도발했다. 대화와 토론, 소통이라는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을 사용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을 물리적 충돌을 정부가 야기·조장한 것이다. 둘째, 시위문화 개선과 평화적 관리를 위한 노력이다. 경찰은 국가의 조직된 물리력 사용집단으로서 조직원 한 명 한 명의 행동으로 인한 결과에 국가가 법적·정치적·행정적 책임을 진다. 반면 집회 시위는 국민 개개인이 모여 헌법상 자유와 권리를 행사하는 행위이기에 그 행위의 결과는 행위자 개인이 진다. 만약 특정 단체가 조직적으로 불법 폭력을 계획·자행했다면 그 증거를 찾아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경찰력의 임무다.

지난 주말 도심 집회 상황은 경찰의 전문성과 법과 절차 준수, 시위 참가자들의 노력으로 폭력행위를 사전에 방지하고, 사후에 책임자를 찾아내 처벌해야 할 문제다. 헌법상 권리인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위축시킬 명분도, 국가사회의 틀을 지키는 경찰의 역할 자체를 무력화할 이유도 되지 못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이다. 민주공화국에서 정부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한계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통로와 방법에 대한 근본적 고찰이다.

선거 때는 국민 통합, 복지 확대 등 온갖 약속을 다 하고 권력을 쥔 후에는 법 위에 군림하며 편파적이고 부당하고 무리하게 권력을 사용하는 정부와 이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야당, 결국 참지 못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시민들과 경찰의 충돌이 무한 반복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헌법을 준수하고, 주권자인 국민과 소통하며 그 뜻을 받들어 국가를 운영하고, 갈등을 조정하고 봉합해 국민통합을 이끌어내야 할 근본 책무는 다 하지 못하면서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하는 국민을 타박하고 오직 경찰력에 의존해 힘으로 억누르는 공권력은 정당성이 없다는 원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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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1924년 영국 ‘매카시 사건’ 판례는 “법은 실제로 정의로울 뿐 아니라, 정의롭다고 보여져야 한다”는 법 원칙을 확립했다. 교통사고를 낸 매카시에 대한 형사 재판에 참가한 재판부 서기 중 한 명이 관련 민사 재판에서 매카시의 반대편인 보험회사를 대리한 법무법인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피고 측이 공소기각을 요청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해당 서기가 재판과정에 어떤 의견도 제시한 적이 없다’며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렇지만, 항소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휴워트 항소심 재판장은 ‘정의롭다고 보여지지 않는 재판부는 심판을 할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뒤집고 무죄판결을 내렸다. 다른 사람의 법적 책임과 유무죄를 심판해야 하는 재판부는 ‘실제로 정의로울 뿐 아니라, 정의롭게 보여지고 정의롭다는 신뢰를 받아야 한다’는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이 확립된 것이다. 이 원칙은 이후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 재판부뿐 아니라 기소를 담당한 검찰에도 적용되는 철칙이 된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떨까?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사법 신뢰도’ 최하위이며, ‘사법제도를 신뢰한다’고 응답한 국민 비율은 27%에 머물렀다. 남에게는 가혹하고 스스로에겐 한없이 너그러운 ‘제 식구 감싸기’가 차지한 비중이 무엇보다 클 것이다. 지난 6일 대검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비위 사실이 밝혀진 검사 228명 중 실제 징계를 받은 이는 42명으로, 18.2%에 그쳤다. 2013년 12월 말 여기자들을 성추행한 혐의가 드러난 이진한(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에 대해 징계위원회에 회부조차 하지 않고 경고처분으로 무마했다가 피해자로부터 형사 고소를 당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은 ‘형사 피의자’ 이 검사에 대해 1년 동안 수사하지 않고 있다가 지난 1월에야 형식적인 조사를 하는 데 그쳤다. 아직까지 이 검사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음란행위를 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김수창 제주지검장이 면직 처분됐다_연합뉴스



이미 우리 사회와 국민은 속칭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김학의 전 법무차관’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간첩사건 조작 검사’ 등의 예를 통해 어떤 범죄와 비리를 저질러도 ‘검사’라는 신분만 가지고 있으면 일반 국민과 달리 ‘치외법권’을 누린다고 믿게 되었다. 이런 ‘믿음’은 검사들 사이에서도 퍼져 있는 듯하다. 수사권과 기소권, 형집행권을 독점한 ‘절대 사법권력’인 검사는 대통령 등 극소수의 절대권력자 이외에는 건드리지 못한다는 현실 인식이 종종 매우 위험한 ‘비극’을 만들어 내고 있다.

희대의 사기범 조희팔의 버젓한 밀항과 자유로운 중국 내 도피생활의 이면에는 그로부터 수억원을 받고 뒤를 봐준 김광준 전 부장검사가 있었다. 그에 대한 경찰 수사는 ‘특임검사’라는 꼼수를 부린 검찰에 의해 강제로 중단되고 ‘제 식구’인 검찰로 넘어가 그 배경에 고위급 인물이 더 개입되어 있는지를 밝히지 못한 채 종결되고 말았다. 결국 2011년 말에 사망했다는 의문의 동영상만을 남긴 채 미스터리가 될 때까지, 중국 공안에 적극적인 공조 요청을 하지 않은 검찰과 법무부의 태도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실제로 비리와 결탁이 있었는지 여부는 외부의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정의롭다고 보여지지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범행 18년 만에 가까스로 송환된 ‘이태원 살인사건’의 범인 아서 패터슨 역시 오만과 독선에 빠진 검사가 미군 범죄수사대와 경찰의 수사내용과 확보된 증거마저 무시한 채 에드워드 리를 지목해 기소하는 바람에 벌어진 비극이다. 게다가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했던 패터슨에 대한 출국정지 조치를 연장하지 않아 그의 미국 도피를 방조한 것도 역시 검사다. 하지만, 이런 비극을 야기한 검사에 대해 검찰은 어떤 책임도 묻지 않았다.

사회 정의의 최후 보루인 법과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다면, 국민의 준법과 도덕을 기대하기 어렵다. ‘배경과 인맥이 정의를 이긴다’는 피해의식이 법집행과 판결에 대한 저항과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검찰 스스로의 주장처럼,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 스스로 바로 서지 못한다면, 대부분 선진국가의 예처럼, 무소불위 독점적 권한을 해체해 사법과 민주적 통제의 대상이 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더 무서운 비극을 막을 수 있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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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 문제가 포격과 확성기 심리전을 촉발하면서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는 위기로 이어졌다. 가까스로 ‘고위급접촉’을 통해 합의문을 이끌어내면서 일단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북측의 ‘유감’이라는 표현을 둘러싼 해석의 문제는 불씨를 남겼다.

핵심은, ‘용의자’인 북한이 ‘범행’을 인정하지 않은 채 두루뭉술하게 넘어간다는 것이다. 사건의 진실이 묻히고 책임의 소재가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해자에 대한 단죄 없이 피해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그 런 면에서는 대구 황산테러 태완군 사건, 이태원 햄버거집 살인사건, 대구 여대생 정은희양 피살사건과 유사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사건의 피해자들은 국가와 사법체계가 무시하고 외면해 눈물과 한숨, 생계파탄의 절망만 떠안은 반면, ‘피해 국가’인 대한민국은 유무죄 판결 없이도 용의자를 압박해 ‘유감’ 표명을 이끌어냈다는 정도일 것이다.

피 해자와 용의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사건들의 공통점은 ‘증거 불충분’이며 그 이면에는 늘 ‘과학수사 실패’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그나마 ‘민간’ 과학수사체계는 투명한 유리 상자 안에서 다양하고 날카로운 감시와 비판을 받으며 나날이 발전한다. 이에 반해, ‘안보의 보호막’에 싸여 있는 ‘국방 과학수사체계’는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시비와 불신의 대상이 되면서 국론 분열과 안보 위기를 부르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최전방 초소 김훈 중위 사망사건, 허원근 일병 등 ‘의문사’ 사건들은 물론, 국론분열과 종북논란을 부른 ‘천안함 사건’과 ‘북한 무인기’ 사건, 그리고 이번 ‘목함 지뢰 사건’ 등 안보 관련 ‘범죄 사건’마다 신속하고 철저한 초동수사와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과학수사, 검증 가능한 ‘증거 전달체계의 무결성’을 통한 명쾌한 ‘입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저 ‘우리 군을 믿나, 북한을 믿나’, ‘북한은 무력 도발과 불법 침략의 전과자이다’ 등 ‘심증’과 ‘애국심’을 무한반복,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이 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근거 없는 음모론을 퍼트리며 정치적, 사회적 불안을 조장하는 ‘불순분자’들도 문제지만, 상식을 가진 일반인이 제기하는 ‘합리적 의심’까지 ‘종북’으로 모는 미개한 사회와 언론의 부끄러운 모습 뒤에는 우리 국방 ‘과학수사 체계’의 후진성이 있다.
‘송진 냄새’, ‘용수철’ 등 북한 측의 코웃음을 부른 어설픈 ‘정황’만이 아닌 ‘족적’, ‘CCTV 화면’ 등 실제로 북한 병사가 우리 측 철책 통문 안쪽까지 들어와 지뢰를 매설하고 돌아간 ‘흔적 증거’와 지뢰 유류물과 잔유물의 구성과 화학적 성분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한 ‘제조처 증거’ 등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제시해 ‘법정 유죄판결’을 받을 정도로 ‘입증’했다면, ‘용의자 북한’이 아무리 오리발을 내밀고 생떼를 써도 국제사회와 국내 여론의 공감과 일치, 지지를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북한 지뢰 도발부터 남북 고위급접촉 타결까지 _경향DB


비 무장지대 폭발 사고의 특성상, 어떤 추가 증거도 확보할 수 없고 용의자를 직접 ‘신문’할 수 없는 ‘독특한 특성’이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동안 군의 명예나 자존심 보호, 군 간부 등 사건에 관련된 ‘제 식구 감싸기’ 목적의 편파수사 의혹 속에 독립성과 객관성에 대한 일반의 신뢰를 얻지 못한 ‘국방 과학수사체계’ 탓에 국민과 사회 일반의 무조건적인 신뢰를 얻어내기는 힘들다.

으로가 더 문제다. ‘상습 전과자(usual suspect)’ 북한의 도발로 의심할 만한 피해는 계속 발생할 것이다. 그 전부가 북한의 소행일 수도 있고 그중 ‘단순 사고’나 ‘우리 측 과실’이 원인인 피해가 섞여 있을 수도 있다.

작 금의 불신받는 ‘국방 과학수사체계’ 하에서는 북한 병사나 단위 부대의 ‘범죄 행위’ 하나, 혹은 상부의 문책이 두려워 ‘북의 소행’이라고 엉겁결에 둘러댄 ‘작은 거짓말’ 하나가 우리 민족은 물론, 세계의 공멸을 초래하는 ‘핵전쟁’을 부를 위기도 상존한다.

평 화 유지와 통일 도모를 위한 군사력과 외교라는 큰 틀의 국방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군 사법 정의를 확보해 군 기강과 사기는 물론 군에 대한 국민과 사회의 지지를 확보하고, 의외의 변수가 부를 위기를 방지할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국방 과학수사 체계의 확보 역시 중요하며 시급하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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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발생해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났다. 상습 성범죄 혐의로 징역 15년과 치료감호 처분을 받은 특수강간범 김선용(33)이 병원에서 탈출해 상점 여주인을 성폭행한 것이다.

그나마 피해 여성이 김선용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상담자 역할을 하면서 자수하도록 설득했기에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스스로 성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강박적으로 성폭력을 지속하는 자를 범죄심리학에선 ‘성 맹수(sexual predator)’라고 부른다.

미국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뉴욕, 플로리다 등 20개 주에서는 ‘성 맹수’들에 대해, 형기 만료 이후에도 성범죄자들만을 수용하는 특수 폐쇄시설에서 ‘재범위험이 사라졌다는 진단이 내려질 때까지’ 감금치료할 수 있는 ‘성 맹수 법(Sexually Violent Predator Law)’을 시행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성 맹수’는 “①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후 ② 스스로 성충동을 조절할 수 없는 정신장애 내지 인격장애 진단을 받고 ③ 그 정신장애 내지 인격장애가 완치되지 않는다면 재범의 우려가 있다”는 3가지 요건을 충족한 자다.

김선용은 조두순, 김수철, 김길태처럼 이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었다. 2010년 6월 3차례에 걸쳐 흉기로 여성들을 위협해 성폭행한 혐의로 15년형을 받았고, 스스로 성충동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호소에 따라 정신과에서 ‘성적선호장애’와 ‘경계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로 인한 재범우려가 확실하다고 판단한 사법부에선 ‘치료감호’ 처분을 내렸다. 인권침해 우려 등으로 인해 ‘성 맹수 법’을 제정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형집행과 치료감호 처분이 집행되는 동안이라도 철저하게 감금, 통제해야 한다.




피해자학에서는 일반적인 범죄 발생에 대해 ‘국가책임론’을 주장한다. 국가의 뚜렷한 고의나 과실이 없었다 하더라도, 국민을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헌법적 책무에 실패해 범죄가 발생했으며, 범죄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국가의 보건, 복지, 교육, 문화 행정의 실패가 상당부분 기여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 범죄피해자 보상제도’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하물며 이번 사건처럼 국가(법무부 치료감호소)의 명백한 중과실이 직접적인 원인인 범죄에서야 오죽하랴. 그런데 국가에서는 이 사건 피해자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생활비 명목의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무책임하고 모호한 발언을 내놓고 있다. 피해자는 국가의 어처구니없는 중과실 때문에 날벼락 같은 피해를 입었다. 그 트라우마는 평생을 걸쳐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회복이 가능한 심각한 피해다.

게다가 피해자의 초인적이며 영웅적인 인내와 희생, 노력으로 추가 피해 없이 김선용의 자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우선 법무부 장관이든, 보호관찰소장이든, 국민안전처장이든, 경찰청장이든, 국가의 대표가 피해자를 찾아가 무릎 꿇고 사죄하라. 관련법이 충분한 보상과 치료와 지원을 해 줄 수 없다면 국민에게 성금을 내주십사 간청이라도 하라.

이미 이런 상황을 대비해 ‘피해자 지원 기금’을 설립해 둔 지 오래다. 법과 규정, 선례를 입 밖에 꺼내는 것 자체가 무지요, 무례요, 무식이다.

국민은 국가를 위해 세금을 내고, 의무교육을 이수하고, 노동을 행하며, 남성의 경우 국방의 의무를 이행한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보장하고 증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국민은 국가를 위해 언제나 자신의 몫 이상을 해 왔다. 늘 문제는 국가나 그 대리인들이 야기했고, 그 뒤처리도 제대로 해오지 않았으며, 오히려 일부 사건에서는 피해자들을 능멸하고 모욕해 왔다.

이제 그래서는 안된다. 선진국의 상징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며 ‘아시아의 선도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단 한 사람에게라도 피해를 입혔다면 정중한 사과와 충분한 보상, 치료와 치유의 의무를 다하는 ‘제대로 된 국가’의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 범죄 피해의 치유는 책임 있는 자의 반성과 사죄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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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구치소 수감 중에 브로커를 통해 특별한 편의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이 수사 중이다. 그런가 하면, 수감 중인 재벌 등 부자들에 대한 ‘특별사면’이 나와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이 일고 있다. 얼마 전에는 무고한 사돈 여대생을 청부 살해한 죄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던 흉악 범죄자가 교도소가 아닌 초호화 병실에서 지낸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그가 모 제분회사 회장 부인이라는 돈과 위세를 이용해 형벌체계를 조종하고 왜곡한 결과다. ‘전관예우’로 상징되는 법조 부조리의 핵심은 교도소에 수감되는 ‘실형’을 면하게 하거나, 구치소에 구금되는 ‘구속’을 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청탁이다.


역대 전관예우 논란 고위 공직 후보자 _경향DB



반면, 지난 6월17일 천안교도소에서는 한 남자 재소자가 목숨을 끊는 사고가 발생했다. 2010년부터 5년간 교도소와 구치소 등 수감시설에서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모두 388명이고 이 중 34명이 숨졌다. 더 심각한 것은 처벌을 받은 범죄자의 ‘재범률’이다. 범죄자의 ‘재수감률’은 22%에 달하고, 성폭력범죄 재범률 14%, 살인범죄 재범률 10%, 소년범 재범률은 30%에 이른다. 유영철, 정남규 등 연쇄살인범이나 ‘묻지마’ 살인범 등 강력범죄자 대부분 출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전과자들이다.

법정 최고형인 ‘사형’은 법전 속 글자로만 존재하고 집행되지 않은 지 20년째다. 종합하면, 교도소로 대표되는 ‘국가 형벌권’이 전혀 ‘교정교화를 통한 범죄예방’이라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반면, 빈부격차와 권력의 전횡이라는 사회 부조리를 악화시키고, 범죄자들의 반사회성과 분노만 증폭시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은 ‘철학이 없는 국가 형벌 정책’이다. 미국, 중국, 싱가포르, 혹은 중동 국가들처럼 고전적 엄벌주의를 채택하려면 지위고하 빈부에 관계없이 범죄를 저지른 누구에게나 균등한 엄벌과 중형을 내리고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수감시설을 건설해 운영해야 한다. 반대로, 북유럽에서 시행하는 사회 내 처우, 대안적 형벌 중심의 인본주의적 형벌제도를 채택하려면 국민의 합의를 구하는 용기 있는 설득작업을 전개한 후 수감대상 범죄의 종류와 대상을 대폭 줄이는 획기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 뉴질랜드나 캐나다를 중심으로 확산 중인 피해자 중심의 평화적 형벌제도인 ‘회복적 사법’을 폭넓게 수용하려면 과감한 실험과 사회적 참여를 도모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형벌 철학’은 무엇인가? 현 정부의 ‘형벌 정책’은 무엇인가? 역대 정권마다 유권자의 표심과 대중의 지지율에 관련된 정책 논의·연구와 개선과 실행은 숱하게 시도됐지만, ‘형벌’ 철학과 정책에 대한 언급은 들어본 적이 없다. 형벌 철학과 정책에 대한 국가와 정권 차원의 무관심은 법기술자들과 정책결정 관료들의 ‘재량’과 ‘고유권한’의 확대로 이어진다. 다른 한편으로는, 법기술관료 자신들의 안위와 입신과 관계없는 문제에 대한 방치와 무관심, 무책임 현상이 확산된다.

결과적으로 범죄자나 피해자의 지위나 권한, 혹은 재판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 따라 형량이 변하고, 사회로부터 격리할 필요가 없는 범죄자들을 포함해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을 교도소에 수용해 ‘과밀’ 현상을 초래하고, 그로 인해 범죄자들의 반성이나 참회를 이끌어내고 범죄의 습벽을 개선하지는 못하면서, 오히려 억울함과 반발감, 사회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리만 증폭시키게 된다. 범죄는 더 흉포해지고, 민심은 흉흉해지며 불신풍조가 만연하게 된다. 구치소와 교도소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일선 교정공무원의 업무강도와 피로, 스트레스 및 고뇌는 심해지기만 할 뿐이다.

국가 형벌 철학과 정책의 부재로 인해, 자신이 어떤 일을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 없이 혼란에 빠지고 피로에 지친 교정공무원과 분노와 불만에 찬 재소자 사이에 충돌과 시비가 늘게 된다. 다른 건 몰라도, ‘죄와 벌’만큼은 공정·공평하며 실효성 있게 관리돼야 한다. 대한민국, 형벌제도의 개혁이 시급하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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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관은 특성상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든다. 안보와 국익이 걸린 ‘소리 없는 전쟁’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냉전시대 미국과 영국, 소련 첩보기관 간 경쟁과 암투는 살인과 납치를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분단 상태인 남북한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공산권의 몰락과 함께 냉전시대가 종식되면서 각국 첩보기관은 환골탈태했다. 법도 없이, 존재 자체가 비밀이었던 영국 첩보기관 MI6의 조직과 활동 및 예산을 규율하는 법을 제정해 국회의 통제를 받도록 한 1993년 보수당 존 메이저 정부 사례가 대표적이다. 물론 이후에도 영국과 미국 정보기관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정보 오류로 엄청난 국제적 재앙을 초래하고, 이어진 테러리즘과 싸우는 과정에서 인권침해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법과 윤리의 기준에서 정보기관은 늘 골치 아픈 대상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국가 정보기관의 일탈과 불법은 언제나 ‘안보 유지를 위한 필요악’이라는 방어 논리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다. ‘안보와 국익을 위한다’는 의도와 목적의 정당성만큼은 크게 의심받지 않는다. 하지만 위키리크스와 스노든의 폭로 이후 ‘아무리 목적이 정당해도 수단의 지나친 불법성은 용납할 수 없다’는 국제사회의 합의가 형성되고 있다. 정보기관들 사이에 또 한 번의 환골탈태가 예상된다. 대한민국 국정원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4일 국회 정문 앞에서 '국정원 해킹감청프로그램 사용 사이버사찰 진상조사'를 촉구하고 있다._ 경향DB



우선, ‘의도와 목적의 정당성’을 의심받고 있다. ‘안보와 국익’이 아니라 고위 간부들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 권력자 개인이나 특정 정파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의혹이 퍼져 있다. 헌법이 파괴되고, 국민이 분열되고, 국가경쟁력이 약화되고, 적국에 이익을 주는 한이 있더라도 출세와 영달을 좌우하는 권력자와 그 집단이 원한다면 선거에도 개입하고, 간첩의 누명도 씌우고, 도청과 미행과 사찰도 하고, 국가 기밀도 공개해왔기 때문이다.


두 번째 문제는, 범법과 일탈의 낮은 수준과 치졸함이다. 외국 사절의 호텔 방에 몰래 들어가 컴퓨터를 훔쳐 보다가 들킨 뒤 도주했다가 경찰관에게 체포당하고, 시민단체 간부를 미행하다가 들켜 붙잡히고, 중국의 국경검문소 공문서를 위조해 엉뚱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고, 그 과정에서 정보원들의 신상을 공개해 대북 휴민트를 와해하고, 오피스텔에 숨어들어 낯뜨거운 정치적 비방 댓글을 작성해 대량 유포하고, 남북 정상 간 대화록을 왜곡해 공개하는 등 어설픈 범죄집단 같은 모습에 국민은 허탈한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외국 민간회사의 사이버해킹과 도청 장비를 구입해 보이스피싱 조직이나 사용하는 악성코드 유포를 통한 스미싱 범죄를 저질러온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우리 대표상품인 삼성 휴대전화 갤럭시 시리즈를 해킹할 수 있도록 돈과 장비를 외국 업체에 제공한 정황마저 확인되고 있다.

세 번째 문제는, 불법이 적발되어도 진실 공개와 반성을 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언론을 통제하고, 비판하는 지식인을 고소하고, 북한 관련 기밀을 공개해 시선을 돌리고, 검찰과 사법부를 겁박해 정의의 칼을 썩고 녹슬게 하면서 위기의 순간들을 모면하기에 바빴다. 한쪽으론 “안보와 국익을 위해서 애국의 심정으로 그랬다. 남북 분단의 현실을 감안해 달라”는 면구스러운 변명을 늘어놓았다. ‘안보’와 ‘국익’, 그리고 ‘애국’이라는 소중하고 숭고한 뜻을 더럽히고 훼손해온 것이다. 그래서 많은 국민이 국정원 때문에 심각한 걱정을 하고 있다. 세금이 아까워서만이 아니다. 우방이라고는 하지만 외국에 국가안보를 통째로 내맡기고, 권력자 개인과 특정 정파의 이익만을 위해 불법과 일탈과 조작을 일삼는 정보기관에 어떻게 나라와 민족과 자손의 장래를 맡길 수 있겠느냐는 걱정인 것이다.

국정원에도 진정한 정보 전문가, 첩보요원들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안보와 국익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참애국자들’이다. 그들과 국민 사이를 가로막고 권력의 찌꺼기를 탐하는 정치관료들을 청산해야 한다. 아울러 제도적인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걱정원’이 아닌, 진정한 안보와 국익의 파수꾼인 ‘국정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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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조선 명탐정> 등 너무도 친근한 소설과 영화 속 주인공들이 대한민국에서는 명백한 ‘불법’이다.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누구든지 정보원, 탐정, 그 밖에 이와 비슷한 명칭을 사용해 영업을 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독립적 민간인’으로 “비밀과 미스터리를 해결하고 진실을 발견해 나쁜 사람을 혼내주고 억울한 사람을 구해주는” 만화 속 ‘명탐정 코난’이 되겠다는 ‘꿈’을 가진 우리 아이들에게 ‘그건 형사처벌 받는 불법’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슬픈 일이다.

영화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_경향DB


사전을 찾아보면 탐정은 ‘숨겨진 일이나 사건 따위를 추적하여 알아내는’ 일 혹은 사람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호기심과 정의감에 기반을 둔,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활동이다. 게다가 소중한 사람이나 물건을 잃어버렸거나, 어려운 문제나 위기에 봉착했을 때, 혹은 개인이나 가족, 단체 또는 사업상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전문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겐 ‘절박한’ 존재다.

물론 이런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경찰과 검찰 등 국가기관이 존재한다. 하지만, 늘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고 개인이나 단체 혹은 업체의 ‘사적인’ 이해나 사정보다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는 본질적인 한계를 가졌다.

가족이 갑자기 실종되었는데, 납치 흔적이나 협박전화 등 ‘명백한 범죄의 징후’가 없기 때문에 공권력인 경찰이 나설 수 없다며 고개를 젓는다. 결국 생업을 포기하고, 아무런 기술이나 경험, 전문지식 없이 잃어버린 가족의 인상착의가 담긴 전단지를 들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닐 수밖에 없다. 억울한 범죄 혐의 누명을 쓰고 경찰과 검찰 등 국가기관의 일방적인 수사가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만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도 변호사는 ‘법률적 자문’만 해줄 수 있을 뿐, ‘수사’의 전문가는 아니라며 곤란한 표정을 보인다.

거액을 빌린 후 잠적한 친지나 회사의 기밀을 빼돌린 채 사라진 임직원을 찾을 길이 막막한 이들 역시 부지기수다. 그런가 하면, ‘합법적인 탐정의 부재’라는 틈새를 파고드는 해결사, 흥신소, 심부름센터 등 전혀 검증이나 관리를 받지 않는 무자격자들의 불법적이고 탈법적인 조사활동으로 인한 피해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물론,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크다. 탐정이 허용되면 돈 많은 사람이 유능한 탐정을 고용해 소송이나 분쟁에서 부당한 우위를 점하는 ‘수사의 사유화’, 연인이나 배우자의 불륜 증거를 찾기 위해 고용된 사설탐정들의 ‘무분별한 사생활 침해’, 범죄수사라는 국가의 역할과 기능의 일부를 민간 탐정에게 맡겨버리는 공공연한 ‘직무유기’, 검증하기 어려운 탐정 업무의 특성을 악용해 절박한 의뢰인에게서 돈만 뜯어내는 피해 등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이들도 다수다.

하지만, OECD 국가 중 탐정을 금지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으며, 관련 학계에서도 “탐정업 자체를 불법화해 처벌하는 우리 상황은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 및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고 있으며, 오히려 민간 조사 활동을 음지로 밀어내 부작용과 피해를 통제하지 못할 수준으로 키워왔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국가 공권력의 누수 우려, 다른 말로 민간 경쟁자를 허용하지 않겠다며 완강히 반대하던 경찰과 검찰 등 국가 수사기관들의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차라리 탐정을 법제화해서 엄격하게 자격요건을 정하고 활동 범위와 방식을 규제해 부작용과 피해를 방지하는 것이 낫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국회에서도 ‘공인탐정법’ 제정안, ‘경비업법’ 개정안 등 탐정제도 도입을 위한 입법 노력이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되었다. 그 이면 에는 케케묵은 ‘기관 간 경쟁과 알력’이 도사리고 있다.

그동안 ‘수사의 국가 독점’이라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소리 맞춰 ‘탐정 반대’를 외치던 경찰과 검찰이 이제는 서로 탐정제도의 주관부서가 되겠다며 지나친 경쟁을 하는 바람에 제도화가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만 ‘탐정을 허하라’. 국가기관만 조사할 수 있다는 시대착오에서 벗어나라.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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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행복의 조건’을 연구한 네덜란드의 심리학자 루트 비엔호벤은 ‘안전’이 행복의 필요조건이며 선결요인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헌법 전문에도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고 명시하고 있다. 사회와 국민의 안전인 ‘공공 안전’의 위협요소는 크게 전쟁, 재해와 재난, 범죄, 질병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모두 ‘예방’이 최우선 과제요 이미 위험이 발생한 뒤엔 아무리 잘 대처해도 사후약방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대한민국엔 공공보건을 해칠 감염병 예방체제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문외한으로 가득 차 있고, 전문기관인 질병관리본부는 책임과 권한, 역량과 리더십 없이 우왕좌왕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이미 세계보건기구에서 올봄 메르스의 창궐을 경고했음에도 전혀 국가적 대비가 없었고, 중동에서 귀국한 최초 의심환자 발생 시에도 신속한 격리조치를 취하지 않아 무수한 2차, 3차, 4차 감염자가 발생하도록 조장했다.

병을 발견하고 고쳐야 할 병원이 오히려 병을 확산하고 전파하는 구조와 체제, 관행 속에 운영되도록 방치해 놓고는 시민들의 습관 탓만 한다. 의료수가와 예산 타령을 하지만, 미용 성형과 부유층의 원기충전 등 건강이나 안전과 무관한 ‘사치성 의료산업’은 공룡처럼 거대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 책임자와 정치인들은 전문가 중심의 체계적인 대응을 지원하기보다 공격과 방어, 이미지 관리 등 ‘메르스 정치’하기에 바쁘다. 그런가 하면, 세월호 참사를 부른 ‘적폐’는 그 실체를 털끝도 드러내지 않은 채 암약하고 있어 언제 또 유사한 재난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메르스 국내 발병 한 달을 앞둔 18일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광화문 횡단보도를 걸어가고 있다. (출처 : 경향DB)


여름 태풍과 집중호우 등 재해 예방은 제대로 되고 있는지 불안하기만 할 뿐이다. 범죄위험 역시 마찬가지다. 묻지마 살인, 연쇄살인, 토막살인, 아동학대 살인 등 끔찍한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CCTV를 설치한다, 형량을 늘린다, 전자발찌를 채운다며 앞다퉈 목소리 높이기 경쟁을 하지만 정작 잠재적 피해자인 여성과 노인,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들이 안심할 수 있는 예방책은 제대로 구축된 적이 없다. 감염병의 원인균과 바이러스가 생성되고 전파되고 확산되는 조건과 경로를 찾아 미리 차단하고 대비하는 예방의학적 대책처럼, 범죄의 원인을 근본부터 차단해야 한다. 가정붕괴의 원인인 가정폭력과 부모의 양육 기술 부족으로부터 학교의 사회화 기능 붕괴에 이르는 조건과 경로를 찾아 고치고, 학교 이탈 청소년 보호 및 선도와 초범자의 재범방지, 우범환경의 개선과 마을 공동체의 부활에 이르는 전반적인 범죄예방 관리를 책임지고 추진해 나가는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하지만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전쟁으로부터 사회와 국민을 지켜내는 국방 역시 마찬가지다. 전쟁 억지력 확보를 위한 튼튼한 주도적 군사전력의 확보는 물론이고, 아예 도발 의도 자체를 봉쇄하는 능란한 외교와 대북 정책을 통해 국민에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국방 책임자들의 언행에 따르면 북한의 32배가 넘는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쓰면서도 상대적으로 군사력이 북에 비해 열세라고 하니, 국민은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껴야 하는 상황이다. 전력 열세 때문인지, 외교력 부재가 원인인지, 남북화해 기조를 버린 정책 탓인지, 국정원이나 국방부에선 툭하면 북한발 위험과 위기를 경고한다. 그럴 때마다 정치인들은 군복을 입고 전방부대를 찾거나 구호를 외치며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과시한다. 위정자의 허물을 덮기 위한 구호로만 안보와 안전을 외칠 것이 아니라 국민 한 사람이라도 다치지 않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4가지 위험요인에 대한 철저한 예방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불거질 불편과 불만, 불이익에 대한 반발을 정치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위정자는 재난과 전염병과 범죄와 북한의 도발로 소중한 목숨을 잃은 국민과 장병 한 명 한 명, 모두 국가와 정부의 책임이라는 엄중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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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고등법원 토머스 괴탈스 판사는 오렌지 카운티 검찰청 소속 250명 검사 전원에 대해 ‘중범죄 기소권을 박탈’하는 명령을 내렸다. 전무후무한 충격적인 결정이었다. 이유는 살인 등 중범죄를 기소하면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들은 감추고, 교도소 재소자들을 회유해 피고인에게 불리한 허위 증언들을 하도록 교사해 온 관행이 확인되었기 때문이었다. 충격적인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주 법무장관이 철저한 자체 조사를 천명했지만, 학계와 여론은 검사들의 ‘사법방해죄’ 범죄 혐의에 대해 ‘독립 수사기구’에 의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해 로스앤젤레스 소재 로욜라 대학 로스쿨 나타포프 교수는 검사들이 ‘나쁜 놈들을 잡아넣을 수 있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도 된다’는 매우 위험하고 반헌법적인 사고에 빠져있는 것 같다고 비판하면서 이들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을 조장했다는 것과 ‘무고한 시민에게 누명을 씌우면서 진범은 놓칠’ 가능성을 활짝 열어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미국에서는 이런 형태의 ‘사법 부정’ 혹은 목격자의 진술이나 피의자의 자백에 의존해 엉뚱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기반을 둔 ‘무죄 입증 프로젝트(Innocence Project)’가 운영되고 있다. 1992년에 시작된 독립 민간 기구인 이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지금까지 총 343명의 사형 및 무기징역 등 장기수가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됐고, 이들 대신 140명의 진범이 검거됐다.

변호사와 교수 등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이 프로젝트는 주로 DNA 등 과학적 수사기법을 활용해 사건을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다시 조사한다. 그간의 사건 사례들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수사와 기소, 재판 과정상의 문제점들을 분석해 사법제도와 정책의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프로젝트가 재심을 통해 진실을 밝혀낸 사건들이 애초에 경찰과 검찰, 법원을 거치면서 잘못된 판결로 이어지게 된 원인들을 분석해 보니 목격자의 허위 혹은 착오, 부실한 경찰 과학수사, 피의자의 허위 자백, 검사의 증거조작, 정보원이나 제보자의 부정, 변호인의 무능 등이 대표적인 문제들이었다.

과연 미국에만 국한되는 문제였을까? 우리의 경우 최근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된 인혁당 사건이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 소위 ‘시국 사건’에만 해당하는 문제일까? 국정원과 검찰이 증인과 증거들을 철저하게 조작했던 치졸한 행각이 낱낱이 밝혀진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만 예외였을까?

실제 범인으로 강하게 의심되는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용의자가 뒤늦게 자백하고 그를 숨겨주었던 친구가 그 사실을 인정하는 진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증거도 없이 잡아넣었던 15세 소년의 누명을 벗겨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는 대한민국 경찰과 검찰, 법원을 신뢰할 수 있을까? 그런 경찰과 검찰과 법원이 합심해 ‘아버지를 살해한 패륜아’라며 교도소에 감금하고 있는 무기수 김신혜의 ‘억울하다’는 울부짖음에 많은 사람이 귀 기울이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사법 부정이 판치고, 이를 바로잡을 어떤 대안도 없는 대한민국’에서는 언제든 ‘나도 저렇게 억울한 누명을 쓸 수 있다’는 두려움에 대한 공감대인 듯해 아프고 슬프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강기훈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 회원들이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무죄'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출처 : 경향DB)


범죄 사건의 진실은 오직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하늘만 안다. 그 현장에 함께 있지 않았던 경찰과 검찰, 법원이 내리는 결정이 진실에 가깝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솔직하고, 치우치지 않으며, 이해가 반영되지 않고, 오직 과학과 법 절차에 기반을 둬 발견한 증거에 입각해야 한다.

그런 완벽에 가까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실수나 오판이 발생할 수 있다. 그 경우에 대비한 대안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무죄 입증 프로젝트’가 그 대안이고, 우리의 경우 한때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등 한시적인 기구들이 있었다. ‘사법 신뢰’가 무너진 대한민국, 대책이 필요하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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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슨스 등 사회학자들은 사회의 기본 기능 네 가지 중 하나라도 제 역할을 못할 때 범죄와 무질서의 증가 등 ‘사회적 고장’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회구성원들이 규범을 받아들이고 규칙에 따르는 습관을 길러 주는 ‘사회화’, 소질에 맞는 분야에서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아 생활해 나가는 ‘적응’, 미래를 위해 목표를 세우고 성취해 가는 ‘공정한 경쟁’, 그리고 지친 심신을 달래고 회복하는 ‘휴식과 재충전’이 그 네 가지다. 한국사회는 전쟁 등 사회 외적 요인도 없는데 범죄와 무질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 사회 네 가지 기본 기능 어딘가에 심각한 고장이 발생했음을 의심케 한다. 그런데 지난 수십년간 우리 사회 각 기능의 ‘불량과 고장’에 대한 지적과 경고는 계속되어 왔다. 그 고장들이 사회 붕괴를 가져오지 않으리라는 안일한 인식으로 무시해 왔을 뿐이다. 이대로라면 성수대교, 삼풍백화점처럼 ‘사회적 붕괴’가 대한민국을 무너뜨릴지도 모른다.

여성가족부 주최로 8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가정폭력 및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에서 시민들이 캠페인 메시지가 적힌 티셔츠을 둘러보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하나씩 살펴보자. ‘사회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는 것은 가정과 학교다. 가정폭력과 이혼, 아동학대, 대화 단절 현상은 심해지기만 하고 학교폭력과 집단 따돌림, 공존과 존중 및 배려를 가르치지 않는 학교에 대한 지적과 경고는 반복되었다. ‘적응’ 기능 역시 돈과 권력으로 가치가 획일화되면서 직업에 귀천이 뚜렷해지고 ‘갑질’이 횡행하다 보니 개성과 소질에 맞는 길을 찾아 성실하게 살아가는 정상적인 시스템이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고액 연봉이나 높은 지위를 보장해 주지 않는 직업이나 역할은 외면받고, 그런 일을 행하는 사람들의 소중함은 무시당하기 일쑤다. 각자의 목표를 세우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목표 성취’ 기능 역시 망가진 지 오래다. 반칙이 원칙이 되고, 연줄이 지배해 소위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은 손해 보고 피해 입고 밀려난다는 지적과 경고 역시 오랫동안 반복되어 왔다.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치유와 휴식과 재충전을 해주는 기능만이라도 제대로 되어 있다면, 마치 사고나 고장으로 멈춰 선 차가 심혈을 기울인 수리와 정비를 거친 뒤 다시 달릴 수 있는 것처럼,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의료, 문화와 오락으로 대표되는 휴식과 재충전 기능마저 빈부 양극화와 일회성 자극 위주로 왜곡되고 병들어 있다. 가족과 함께 독서와 스포츠, 음악과 미술과 영화 등을 즐기며 재충전하고, 병원과 상담 기능을 통해 치료하고 치유하는 여건과 시설은 도시와 부촌에 집중되어 있거나 비용이 많이 든다. 그렇다 보니 주로 영상매체 속 ‘스타’들의 노래와 연기, 경기를 보며 즐기는 ‘구경꾼’ 역할에 그친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건강보조 식품이나 무자격자의 유사 치료행위에 의존하기도 한다. 당연히 감흥과 만족이 크지 않고, 효과적인 치료와 치유가 이루어지지 않아 충분한 휴식과 재충전이 될 리 없다. 피로가 쌓이고 부작용이 생기면서 민감하고 공격적·방어적이 된다. 힘들고 불만스러운 현실로부터 잠시라도 도피하기 위해 술과 마약, 음란물, 폭력, 온라인 패악질 등에 의존하는 사람이 증가한다. 사람의 몸과 기계 모두 ‘이상 증상’이 나타나면 철저한 진단을 통해 원인을 밝혀내고 처방을 찾아 치료나 정비, 수리를 해야 한다.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그 기본적인 과정과 노력을 게을리할 경우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정치권력이 바로 서야 한다.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수시로 안보나 경제 등 위기를 과장해 정상적인 사회 기능을 마비시켜서는 안 된다. 자기편을 사회 각 요소에 보내고 심어 운영과 절차를 왜곡시켜서는 안 된다. 비판자를 단속하느라 사회를 얼어붙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솔직하게 잘못과 문제를 시인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해 사회를 정비해 나가야 한다. 치졸한 반칙 경쟁인 정쟁을 극복하고, 국회의 기능을 정상화해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 사회의 고장을 고치고, 붕괴를 막을 수 있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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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샌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는 어떤 나라보다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다. 2010년 출간 이후 125만부가 넘는 판매를 기록 중이고, 샌델 교수는 방한 때마다 최고의 의전 등 ‘슈퍼스타’ 대접을 받고 있다. 지금 할리우드 영화 <어벤져스>가 또 다른 형태의 ‘정의’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만화에서 시작한 단순한 ‘권선징악’ 슈퍼히어로 시리즈는 현대사회 모순에 대한 철학적 고찰과 은유적인 비판을 담고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폭력과 파괴가 주를 이루는 액션 장르 영화일 뿐이다. 평소 액션 영화를 보지 않는 이들까지 가세해 개봉 보름 만에 1000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영화 자체의 재미나 엄청난 홍보, 대중 동조심리도 원인을 차지하겠지만, ‘나쁜 놈 혼내주는’ 시원한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욕구도 바탕에 깔려 있다.

영화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닥터 조’ 역으로 나온 한국배우 수현 (출처 : 경향DB)


반면, 국내 서적과 영화들은 부정과 불의를 고발하고 그 뿌리를 파헤쳐 응징하는 내용보다 달콤한 사랑이야기나 악이 지배하는 막장 드라마, 복잡한 세상 문제에서 벗어날 힐링 이야기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 불일치 속에서 슬프고 위험한 ‘외제 정의 상품 선호’ 심리가 읽힌다.

“우리는 모두 썩었고, 정의에 대한 이야기마저 ‘자기편’ 중심의 아전인수에 불과하다. 정의가 실현될 가능성이 없다. 하지만 부정과 부패는 처벌받고 정의가 승리하는 모습은 보고 싶다. 그래서, 우리보다 정의로운, 편가름과 아전인수로부터 자유로운 외국의 정의를 구매하고 싶다.”

이런 심리는 비단 책이나 영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축구 국가대표 감독도 전략이나 전술 능력보다, 국내 지도자의 ‘인맥 중심 부정한 대표선수 선발과 운용’을 의심한다. ‘무조건 외국 감독이 낫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는 이유다. 영원할 것 같았던 국산차 내수시장 지배에 균열이 커지고 있는 배경에도 같은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제조사와 정부 사이 부정한 담합으로 안전과 성능, 가격의 적정성에 대한 신뢰를 할 수 없다는 주장과 의견이 퍼지면서 ‘믿을 만한’ 수입차에 대한 선호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백수오 파문’은 식품 안전에 대한 ‘정의’마저 불신받게 할 여지를 남겼다. ‘언론’에 대한 외제 선호는 더 치명적이다. 국내 정치적 사건 보도에 있어 해외언론을 더 신뢰한다면 그 사회는 ‘저널리즘 정의’가 무너진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외제가 수입될 수 없는 분야로 알려진 국방과 치안, 사법, 정치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인도와 중동 등 자체 ‘국방 정의’가 획립되지 않은 나라들은 미국과 EU 등 외국에 국방의 상당부분을 의존하고 있고, 카리브해 연안국들의 해외 치안의존도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홍콩은 검사와 판사가 연루된 사법 비리 수사와 기소, 재판을 위해 영국 판사를 수입한 적이 있으며, 싱가포르는 주요 장관 자리를 해외에 개방했다.

성완종 게이트 및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된 ‘적폐’가 드러나고 해소되지 않는다면, 살아있는 권력의 불의와 불법 의혹은 무마되고, 약자나 죽은 권력에 대한 사정은 서릿발 같다면, ‘정의 해외의존도’ 현상은 확대일로를 걷게 될 것이다. 정부와 사법부, 국회는 물론, 민간, 시장 분야 ‘정의에 대한 불신’으로 인한 수입품 애호는 국내 각 분야 생태계를 무너뜨릴 것이다. 그 결과는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다. ‘정의 시스템 확립’이 시급하다. 그 출발은 ‘무엇이 유리한가’보다 ‘무엇이 옳은가’를 선택과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문화와 관행의 정착이다.

대통령과 정부, 국회와 각 정당, 사법부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비록 완전하진 않더라도, ‘기본적인 정의’가 지켜진다는 대중적 신뢰가 형성된다. 그래야 ‘나만 손해본다’는 불신 대신 ‘대체로 공정하다’는 ‘사회 정의에 대한 수긍’이 형성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독립국이 될 수 있고,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각 부분이 정상적인 운용과 발전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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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까지 연루된 성완종 리스트, 안보를 해치는 방산비리, 국토 황폐화를 부른 4대강 비리, 스폰서 검사. 그야말로 ‘부패공화국’의 모습이라 할 만하다. 혹자는 학연과 지연 등 비공식적인 연고관계를 중시하는 동양사회의 고질적 문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계 청렴국가 상위권에 자리 잡은 싱가포르나 홍콩의 사례를 보면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부패’라는 버스 앞에 몸을 던지느냐, 아니면 같이 올라타느냐 둘 중 하나의 선택밖에 없었다.” 1970년대 부정부패에 찌들어 있던 홍콩의 한 경찰관이 했던 얘기다. 워낙 뇌물수수와 갈취 등의 부패범죄가 경찰 내에 만연하다 보니, 같이 검은돈을 받으며 ‘보호막’ 안으로 들어가든지, 아니면 부패 가담을 거부하는 대가로 언제든 등 뒤에서 총탄이 날아올 각오를 해야 했던 ‘부패사회’ 홍콩의 풍경이었다. 그랬던 홍콩이 지금은 국제투명성기구의 청렴도 조사에서 유럽의 프랑스나 오스트리아보다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변화는 홍콩보다 더 극적이다. 1940년대까지 마약과 조직범죄, 인신매매와 뇌물의 천국이었던 싱가포르는 지금 뉴질랜드 및 북유럽국가들에 이어 ‘가장 청렴한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의 두 가지 공통적인 원인을 꼽자면 ‘정치적 의지’와 ‘독립된 강력한 부패수사기구’라고 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1952년, 홍콩은 1974년, 식민지였던 두 나라를 통치하던 영국 총독부의 강력한 의지로 독립반부패수사기구를 설립했고, 독립된 후에도 이 두 기구는 존속 및 발전했다. 홍콩의 독립반부패위원회(ICAC)와 싱가포르의 부패행위수사국(CPIB)은 당시 경찰청장 및 고위직 검사와 정치인 등 부패한 고위공직자들을 체포하고 수백명의 뇌물수수 공무원들을 기소하거나 퇴직시키면서 공직사회 자체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사회 전체를 타락시키던 범죄조직 ‘삼합회’의 기세가 꺾인 것도 ICAC와 CPIB의 공이 컸다. 특히 홍콩의 성공사례는 호주에서 똑같은 이름의 반부패수사기구를 신설하면서 국제적인 인정을 받게됐다. 우리나라 역시 2001년 ‘부패방지위원회’를 신설하면서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강력한 독립 반부패기구를 출범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검찰과 법무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치면서 ‘수사’ 기능이 빠진 형식적인 정책기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나마 신고 접수 및 조사에 따른 고발 기능이 부여되면서 고위 검사들의 부패혐의 사건을 파악해 고발했지만,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불기소 처분에 막히면서 무위로 돌아갔다. 결국 부패방지위원회는 ‘국가청렴위원회’라는 싱거운 명칭으로 바뀌면서 조사기능이 약화되고, 급기야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국가청렴위원회마저 폐지되면서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등과 병합되어 ‘국민권익위원회’라는 모호한 기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성보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김영란법'과 관련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대한민국의 국가 청렴도는 세계 43위다. 검찰의 청렴도는 국가기관 중 꼴찌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기소, 간첩사건 증거조작 등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인 검찰. ‘죽은 권력’은 무참히 짓밟고, ‘살아있는 권력’에는 꼬리를 흔들기로 유명한 검찰. 그런데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하면서 남긴 리스트를 포함한 대형 부패 스캔들은 모두 검찰의 손아귀 안에 던져져 있다. 아무리 검찰이 열심히 한다고 한들, 그 결과에 대해 국민과 사회가 얼마나 신뢰할까? 세월호 참사 원인에 대한 검찰 수사에 사회적 신뢰가 있었다면, 1년 넘게 지속되는 사회적 혼란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정부가 못한다면, 다음 정권에서라도 반드시, 독자적 수사권을 가진 기존의 ‘적폐’에 얽히지 않은 독립적 부패수사기구의 신설을 추진해야 한다. 이건 여야나 진보·보수 등 정치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운명과 관계된 문제다. 그 스스로가 권력적 적폐의 일부인 검찰에 부패척결 임무를 전담시킨다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생선가게 자체를 망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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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 우리 헌법 전문의 일부다. 표현은 다양하겠지만, 대부분 다른 민주국가의 헌법 내용도 유사하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세월호 참사’는 그런 국가의 기능과 역할이 총체적으로 붕괴된 사례다. 미국의 ‘9·11 참사’는 이러한 기본적 측면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정부와 국회가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고, 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미국이 9·11 이후 ‘국토안보부’를 신설하고 국회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활동한 것과 유사한 대응을 한 것이 하나의 방증이다. 정부 및 의회의 조사와 별도로, 독립 ‘9·11조사위원회’가 설립되어 2년간 조사활동을 벌인 것도 우리 ‘세월호 특별위원회’의 모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두 사건에 대한 두 국가의 대응에 근본적인 차이가 한 가지 발견된다. 바로 ‘피해자에 대한 태도’이다. 9·11 발생 직후 뉴욕 소방당국은 전체 인력의 절반을 참사 현장인 무역센터빌딩에 투입했고, 뉴욕시경 역시 구조인력을 최대한 급파했다. 추가 붕괴가 일어나면서 이들 중 411명이 사망했다. 미국 역사상 구조활동 중 가장 많은 구조대원이 사망한 사례로 남게 된 것이다. 당시 부시 대통령과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사건 발생 직후부터 상황을 직접 파악하고 신속한 결정을 내리며 ‘피해자 및 국민과 함께’하는 리더십과 효율적인 관리능력을 보여줬다. 연방재난관리청(FEMA)을 중심으로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세심한 지원과 의료 및 심리치료를 제공했다. 의회와 독립위원회의 조사결과 역시 CIA와 FBI 등 국가 안보체제의 심각한 무능과 비효율을 그대로 공개하고 개선책을 제시하며 피해 발생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피해자 가족과 국가, 그리고 시민사회가 하나가 되어 피해와 후유증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뉴욕 한가운데 참사 현장에 건립된 ‘9·11 기념관’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생생한 참사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사건 발생 초기부터 피해자와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제2차 피해’가 끊임없이 발생해 왔다. 구조 임무를 맡은 해경은 자신들의 안위를 돌보느라 배에 발도 붙이지 않고 300여 생명을 포기해 버렸다. 이런 사태에 대비해 만든 통영함은 방산비리에 발목이 잡혀 출동조차 하지 못했다. 대통령을 만나러 가겠다는 유족들은 경찰에 의해 ‘진압’당했고, ‘사찰’당했다.

아직까지 9명의 실종자가 ‘세월호 안에’ 있는 상황에서 더 늦기 전에 인양을 해서라도 시신을 찾고 장례를 치러주고 싶다는 실종자 가족들의 염원은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정치인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에 의해 짓밟히고 조롱당하고 있다.

4·16가족협의회가 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후 가진 세월호 가족 결의 의식에서 단원고 희생자의 어머니가 삭발을 하는 동안 아이의 학생증을 꼭 쥐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제 일주일 후면 ‘세월호 참사 1주기’이다. 이대로라면, 정부 여당과 세월호 가족들은 상호 불신을 바탕으로 한 적대적 관계에 더욱 깊이 빠져들 것이다.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은 그런 정부와 여당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아 투쟁의 길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우리 헌법을 만든 선열들과 세월호 희생자들이 결코 바라지 않는 모습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당리당략을 떠나 ‘세월호 참사’에 대해 반성하고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이 겪은 고초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또한 비용 문제를 떠나 세월호 인양을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세월호 가족들과 야당 및 시민사회와 함께, 세월호 특별위원회가 정쟁의 도구가 아닌, 진상조사와 재발방지 그리고 피해자 추모 및 기념을 향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내는 초석이 될 수 있도록 신뢰를 쌓은 뒤 독립성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역할이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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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가 교수들의 ‘갑질’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원로 교수들의 제자 성추행 파문이 충격을 던진 데 이어 동료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이들을 감싸고 선처를 탄원하는 집단행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2013년에 실시한 서울대 인권센터의 조사 결과, 학부와 대학원 학생들이 ‘교수의 노예’ 노릇을 한다는 처절한 고발이 줄을 이었다. 비단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서울대는 그나마 학생들과 인권센터의 용기와 노력으로 문제를 밝히고 드러내기라도 하니 다행이다.

문제 교수 퇴출 운동을 벌이고 있는 학생들이 제작한 배지. 성추행·성매매·성접대… 3性교수 반대’라고 새겨져 있다. (출처 : 경향DB)


전국 대학 중 교수들의 학생 성희롱이나 성추행, 대학원생들에 대한 사적인 심부름과 인격모욕, 심지어 논문 대필이나 연구업적 가로채기, 연구수당 강탈하기 등 ‘갑질’ 문제가 없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학위논문 심사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의 거마비와 식비, 사례비 등을 모두 학생이 부담하는 것은 아예 상식이자 공식이 되어버렸다. 교수는 충분한 연봉과 연구비 등을 받는 고액소득자들이고,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에 생활비까지 부담해야 하는 ‘저소득 혹은 무소득 고객’들인데, 등록금에 당연히 포함되어 있어야 할 논문 심사비용, 특히 거마비와 식비, 사례비까지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너무나도 잘못된, 군대나 조폭 못지않은 권위적이고 권력적인 상하관계로 상징되는 ‘교수-학생’ 관계는 교수들의 전반적인 도덕적 해이와 윤리의식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옳고 그름’보다는 ‘이익이냐 손해냐’를 선택과 판단의 기준으로 삼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4대강 비리, 방산 비리, 자원외교 비리, 세월호 참사를 부른 해운 비리, 그리고 안전불감증을 입에 달고 살게 만든 전반적인 행정 비리의 출발과 전개와 심화 과정에 늘 교수와 학자들이 이런저런 위원이나 사외이사나 연구용역 수행자로 참여해 온 참담한 실상이 만들어졌다. 소위 ‘적폐’의 핵심에는 악한 정치인과 못된 관료와 함께 반드시 비양심적인 교수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니 현실과 타협하며 이익을 좇아 양심을 파는 교수들을 일컫는 ‘학레기(학자+쓰레기)’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우리 학생들, 어린이 청소년들의 현실을 만들어낸 주범 역시 교수들이다. 정권에 빌붙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입시제도와 교육제도를 이리저리 비틀고 뒤튼 결과가 도저히 손대지 못할 공교육의 붕괴를 야기한 것이다. 그 주범인 교육계 교수들의 자녀들은 대부분 외국에 나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있다. 마치 불량식품 제조사 사장이 자식들에게 절대로 자기 회사 제품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교수들은 성실하게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교수 공동체’가 ‘학레기’들의 준동과 분탕질을 막지 못하고 체면이나 이익, 혹은 관계 때문에 그들을 방관, 방조하고 있는 현실은 모든 교수를 공범으로 만들고 있다. 한국 교수들의 문제가 더 심각한 이유는, 그들 중 다수가 외국 대학 학위 과정에서 지도교수들로부터 학술적 동료나 교육산업의 고객으로 충분히 대접받았으면서, 한국에서 교수가 된 뒤에는 갑질과 부패의 부역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 가르치거나 연구하는 사람’을 뜻하는 ‘학자’의 영어 ‘Scholar’나 한자 ‘學者’가 공히 ‘배우는 사람’을 원래 뜻으로 하고 있음은 의미가 크다. 학술 권력과 권위를 내세우며 부리고 지배하고 군림하고, 이를 이용해 부나 이익을 취하는 ‘학레기’여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끊임없이 배우며, 자신에게서 배우는 학생을 동료로 존중하고, 진리를 탐구하며, 잘못된 것은 주저 없이 비판하고, 위협에 굴하지 않고 이익을 위해 타협하지 않는 자. 그리고 그 대가로 안정된 생활과 연구 여건을 국가와 사회가 보장해주는 사람, 진정한 ‘학자’가 되어야 한다. 교수들만큼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하는 수많은 시민들이 바라는 딱 한 가지다. 필자도 이 비판의 대상 중 하나임을 밝힌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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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범죄 보도와 관련해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 신조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엉뚱한 사람의 얼굴을 파렴치 범죄자라며 1면에 싣거나, 피해자의 신원을 짐작하게 할 만한 정보를 마구 기사에 공개하거나, 무리하게 범죄 사건의 잔혹하고 흉측한 측면만을 과장하고 포장해 관음증을 부추기는 경우들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범죄보도가 정치·사회적인 민감한 이슈들을 덮는 추악한 도구로 이용된다는 세간의 의혹 또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009년 1월, 당시 청와대 행정관이 경찰청 홍보담당관(지금의 대변인)에게 “용산사태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을 적극 홍보하라”고 요구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이런 의혹은 근거를 부여받게 되었다. 아울러, 경찰관서마다 각 언론사 사회부 기자들이 상주하면서 경찰과 협력을 주고받는 ‘이상한 동거’를 하고 있는 상황 역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발생한 안산 김상훈 인질살해사건의 경우, 경기지방경찰청 출입기자들이 자신들만을 위한 별도의 브리핑을 해 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하는 바람에 경찰이 수사와 현장 통제보다 ‘기자 모시기’에 더 많은 애를 썼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기자들이 수사기관이 제공하는 편의와 정보 및 보고를 누리는 대가는, 주는 대로 ‘받아쓰는’ 기사 용역이다. 최근 이인규 전 검사의 폭로로 드러난 ‘노무현 시계 논두렁’ 사건이 대표 사례다. 시민을 대신해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의 환부를 드러내는 감시자요 고발자여야 할 언론이, 오히려 권력을 위한 도구와 사회 문제를 덮고 감추는 가리개 역할을 하는 현실은 ‘언론자유 지수 세계 64위’라는 치욕으로 귀결된다. 수습생과 초년 기자들을 경찰서로 보내서 그저 ‘시키는 일’만 하는 노예로 부리는 한국 언론의 범죄 보도가 철학과 가치관, 의미를 담고 사회적 파장을 고민하리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사치일지 모른다.

세월호참사에 대한 끝없는 오보와 정부편향보도로 국민들에게 ‘기레기’(기자+쓰레기)로 통칭되는 언론 불신이 만연하여, 부끄러운 언론인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는 마음을 담고 언론인들은 시국선언문을 통해 반성의 자리를 마련했다. (출처 : 경향DB)


1996년 6월28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자유 포럼’에서는 아일랜드 최고의 범죄전문기자로 인정받고 있던 베로니카 구에린의 기조 연설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연설 제목은 ‘죽음을 각오하고 진실을 밝히는, 위험에 처한 기자들’이었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하고 아일랜드의 조직폭력과 마약밀매단, 그리고 유력 정치인 사이의 유착 의혹을 쫓는 구에린의 생생한 이야기는 끝내 들을 수 없었다. 연설이 있기 이틀 전,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의 도로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구에린의 차량에 6발의 총탄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오토바이에 탄 2인조 마약조직원들은 피 흘리는 구에린의 시신을 남긴 채 달아나 버렸다. 하지만 그녀의 자리는 구에린 못지않은 사명감과 집념, 그리고 전문성을 갖춘 범죄전문기자 폴 윌리엄스에 의해 다시 채워졌다. 구에린의 유업을 이은 윌리엄스 역시 자신의 생명을 내놓고 범죄 사건과 조직과 환경을 파고들었고, 이들의 노력은 경찰이나 국가가 밝히지 못한 범죄의 속살을 드러내고 진단과 처방을 가능하게 했다.

영국 역시 마찬가지다. 유력 일간지 가디언에서 23년간 범죄전문기자로 활약한 던컨 캠벨의 기사와 칼럼들은 대학 범죄학과에서 참고자료로 자주 활용되고 학술논문에도 인용된다. 퓰리처상을 2차례나 받은 미국의 탐사전문기자 도널드 발렛은 또 다른 예다. 범죄전문기자의 특징은 전문성과 사명감, 그리고 결코 타협하지 않는 고집과 독립성이다. 평생 범죄문제를 파헤치고, 부패한 관료나 법조인 혹은 경찰의 의혹을 쫓아 다녀야 하기에 위험과 외로움을 친구 삼아야 한다. 이들은 경찰관서에 기자실을 달라는 요구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마련해 준다 해도 독립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거절할 것이다. 그들이 있기에 일반 시민이 잘 모르는 어두운 거래나 협잡이 묻히지 않으며, 끔찍한 범죄를 부르는 사회 문제의 본질이 공론의 장에 오를 수 있다. ‘기레기’ 소리를 듣고도 별 반응이 없는 우리 범죄보도 관행, 개선되어야 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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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잔뜩 부른 채,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 더 이상 먹지 않을 떡 두 개를 남이 먹을까봐 양손에 움켜쥔 놀부의 모습. 지금 우리 검찰의 모습이 그렇다.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헌법에 명시된 영장청구 독점권’, 수사권과 경찰 및 특별사법경찰관리에 대한 수사 지휘권, 독점적 기소권, 독점적 공소유지권, 형집행권 등 재판을 제외한 모든 형사사법 기능을 다 틀어쥔 검찰이 정보 수집과 범죄예방 업무까지 손을 뻗치더니, 급기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을 넘어서는 대규모 ‘과학수사부’를 창설했다.

명분은 ‘경찰 및 국과수와의 선의의 경쟁’이다. 자신이 지휘하는 부하와 경쟁하겠다고 현장 실무자들에게 지급되는 장비와 물품들을 챙겨 갖는 임원이나 간부를 본 적이 있는가? 정작 검찰과 경쟁이 필요한 것은 억울함을 토로하는 피해자들과 피의자들, 그리고 그들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이다.

우리 형사법의 대원칙은 ‘당사자 대등주의’, ‘무기 평등의 원칙’이다. 검찰과 피고 측 변호인이 양 당사자로 진실 발견을 위해 대등하게 경쟁하며 서로 동등한 무기, 즉 증거와 진술 확보 수단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과학수사 기구가 필요하다면,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 같은 기관에 법과학연구소 설립을 허용하고 지원하든지, 민간 법과학연구소를 인증하는 것이 옳다.

영국의 경우에도 2012년 국립법과학연구소(Forensic Science Service)를 폐쇄하고 증거 분석 감정업무를 민간과 각 지방경찰청에 분산 이양했다.

미국 역시 각 주나 시 경찰 법과학연구소와 민간 법과학연구소들이 국가인증과 감사를 받으며 증거 분석과 감정 업무를 수행한다.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 살림에 이중 삼중의 과학수사기관을 만들 필요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이미 발생한 뒤 변화가 생긴 범죄 현장과 불완전한 인간의 인지 지각 능력에 의존해 ‘범행을 재구성’하고 범죄혐의자를 ‘추정’해 유무죄를 입증해 나가는 과정인 형사절차는 ‘인간적 오류(human error)’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그 절차의 공개성과 투명성, 검증가능성이 긴요하다.

최근 우리 사회를 극한 갈등으로 내몰고 있는 유병언 추정 시신, 세월호 참사 원인, 천안함 침몰 원인 등의 ‘사건’들은 검찰에 ‘또 하나의 국과수’가 없어서 의혹의 대상으로 남은 것이 아니다. 수사 절차와 과정에 대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브리핑실에서 유상범 3차장이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문건유출 사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유병언 추정 시신의 경우, 국가권력에 속하지 않은 제3의 과학수사 기관에서 DNA 분석 등 검증을 했다면 의혹은 쉽게 가라앉았을 것이다. 경찰이나 검찰이나, 중립과 독립 내지 진실 발견보다는 권력에 대한 충성 경쟁에 매진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것은,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도긴개긴’이다.

더구나 지금 검찰은 채동욱과 윤석열 등 권력과 맞서 싸우는 의로운 검찰을 몰아내고,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축소수사 의혹을 받고 있으며,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김학의 불기소, 대통령 5촌 살인사건 의혹 보도기자에 대한 무리한 기소 등 권력의 입맛에 맞는 검찰권 행사를 연이어 해오고 있다.

대규모 과학수사부는 그 대가로 받은 세뱃돈이나 ‘떡’이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검찰은 형사사법과 관련한 모든 권력을 한손에 틀어쥐고, 권력이 원하는 대로 진실을 만지고 왜곡하려 한다는 의혹을 받아온 지 오래됐다. 그 오랜 의심을 떨쳐내지 못한다면, 결코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

과학수사와 법과학은 검찰이 장악해서는 안되는 중립지대이다. 피고 측, 기소 측이 모두 활용할 도구여야 하며,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눈을 가린 저울이어야 한다. 검찰은, 법과학 기관에 대한 감시와 감독을 할지언정 장악해서는 안된다. 두 손에 떡 든 검찰, 소화하지 못할 떡을 먹으면 탈이 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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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검찰

속칭 ‘크림빵 뺑소니사건’은 누리꾼의 관심과 참여가 없었다면 해결되지 못할 뻔했다. 곧이어 딸의 자전거가 도난당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별 대응이 없자 아빠가 스스로 범인을 붙잡아 경찰에 인계한 사건이 발생했다. 수원 팔달산 ‘시신 훼손 유기사건’ 범인 박춘봉도 시민의 제보가 없었다면 미궁에 빠질 뻔했다. 울산 ‘봉대산 다람쥐’로 불린 연쇄 방화범 역시 아파트 경비원의 신고와 폐쇄회로(CC)TV 분석 노력이 없었다면 더 많은 산불을 냈을 것이다.

경찰은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시민의 공은 줄이고, 경찰의 공은 부풀리려다 망신을 자초하곤 했다. 반면에 시민의 참여와 제보가 부족했던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사건, 화성 여대생 피살사건, 포천 여중생 피살사건, 서울 노들길 여성 피살사건 등은 ‘영구미제’의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경찰은 범죄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할 수 있다. 많은 경우, 현장은 훼손되거나 조작되어 있고 증거의 상당 부분은 인멸된 다음이다. 제아무리 실력 좋은 CSI와 프로파일러를 투입한다 한들, 사건 발생 당시나 전후에 현장 인근에 있었거나, 피해자와 용의자를 잘 아는 시민들의 도움 없이는 단서를 찾고 수사 방향을 제대로 잡아 나가기가 힘들다.

미국 FBI의 발표에 따르면 해결되는 범죄사건의 70%는 시민의 제보나 참여가 결정적 요인이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경찰이 시민의 공을 줄이고 감출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범죄수사는 원래 시민들이 함께 ‘공동체의 적’을 찾아 퇴치하는 과정이며 경찰은 그 일을 전담해서 맡아하는 담당자일 뿐이다.

경찰과 국가는 범죄수사에 참여하고 지인에게 불리한 신고나 제보를 한 시민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한편, 엉뚱한 오해나 오인 혹은 악의적인 모함을 막고 구별해 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시민참여형 범죄수사’의 장점과 특성 및 원리를 일찍 깨달은 미국 뉴멕시코 주에서는 1976년 ‘익명신고+민간 수신자부담 전화접수센터+지역 언론의 공개수배+지역 상공인의 기부로 조성된 신고포상금’을 제도화한 ‘범죄퇴치 재단’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미국 전역은 물론 캐나다와 영국,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전 세계로 확산된 이 운동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총 95만2912명의 범죄자를 검거하고 총 20억달러가 넘는 도난금품을 회수했으며 총 82억달러어치가 넘는 마약을 압수했다.

한편 미국 필라델피아에 그 본부를 둔 ‘비독 협회(Vidocq Society)’는 각 분야 민간전문가들이 모여 각 지역 경찰이 의뢰하는 미제사건을 분석해 수사를 돕는다. 또한 잘못된 수사와 기소 및 판결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중범죄 기결수들을 위해 증거와 단서들을 다시 분석해 재수사하는 민간 전문가들의 모임인 ‘무죄입증 프로젝트(Innocence Project)’는 지금까지 총 325명의 사형 혹은 종신형 수감자들의 누명을 벗기고 자유를 찾아 주었다.

누리꾼이 흐릿한 CCTV 영상을 통해 판독해낸 도주 용의차량 번호. 결과적으로 이 추론은 틀렸지만, 인터넷커뮤니티 보배드림은 크림빵 아빠 사건을 알리고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출처 : 경향DB)


경찰이나 군 수사기관, 검찰, 국과수 등 국가기관이 범죄수사를 독점하고, 그 절차와 과정을 외부로부터 차단한 채 경쟁과 투명성의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는 오만이며 시대착오다. 사건 발생률을 줄이고 검거율을 부풀려 허울만 좋은 ‘높은 범죄 해결률’을 자랑해 봐야 시민의 체감 안전도는 낮아지기만 할 뿐이다.

‘청와대 폭파’ 전화협박범의 소재를 신속하게 파악해 프랑스에서 소환해 오는 모습의 뒤안길에는 절도와 사기, 성범죄와 사이버 모욕에 치를 떠는 피해자들이 구제받지 못하고, 살인범들이 공소시효를 넘기며 자축하는 아비규환이 존재한다. 그런가 하면 부족한 증거와 석연치 않은 정황에도 반인륜 파렴치 범죄자의 낙인이 찍혔다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이들을 위한 구원의 손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찰과 수사기관, 사법기관이 신뢰받고 효율적으로 범죄를 퇴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시민의 참여와 협력뿐이다. 범죄 퇴치, 시민에게 개방하라.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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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9년 최초의 근대 경찰을 창시한 로버트 필 경은 ‘국민의 동의를 바탕으로 하는 경찰(policing by consent)’ 개념을 확립했다. 그가 제시한 9개 항의 ‘경찰원칙’은 지금까지 전 세계 경찰의 철학적 바탕이 되고 있다.

① 경찰은 군대의 폭압이나 엄한 법적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미연에 범죄와 무질서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② 경찰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힘은, 시민의 지지와 승인 및 존중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③ 경찰에 대한 시민의 지지와 승인 및 존중을 확보한다는 것은, 법을 지키는 경찰의 업무에 대한 시민의 적극적인 협력 확보를 의미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④ 시민의 협력을 확보하는 만큼, 경찰 목적 달성을 위한 강제와 물리력 사용의 필요성이 감소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⑤ 시민의 지지와 승인은 결코 여론에 영합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공정하고 결코 치우침 없는 법집행을 통해서 확보된다. 즉 절대적으로 중립적인 정책, 부나 사회적 지위 등 어떤 것에도 상관없이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대우, 언제나 예의와 친절 및 건강한 유머를 견지하는 태도, 그리고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갖춰져 있는 경찰관의 모습 말이다. ⑥ 경찰 물리력은 반드시 자발적 협력을 구하는 설득과 조언과 경고가 통하지 않을 때에만 사용해야 하며, 그때에도 필요최소한 정도에 그쳐야 한다. ⑦ 언제나 경찰이 곧 시민이고 시민이 곧 경찰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경찰-시민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⑧ 언제나 경찰은 법을 집행하는 역할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되며, 유무죄를 판단해 단죄하는 사법부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된다. ⑨ 언제나 경찰의 효율성은 범죄와 무질서의 감소나 부재로 판단되는 것이지, 범죄나 무질서를 진압하는 가시적인 모습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 9가지 원칙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은 경찰 옷을 입고 있지 않아도 ‘진정한 경찰’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경찰 옷을 입고 있더라도 ‘경찰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산업혁명과 근대화로 몸살을 앓고 있던 당시, 식민지 아일랜드의 총독을 거쳐 영국 내무장관과 총리를 두 차례나 지낸 전형적인 보수 정치인이었던 로버트 필이 ‘경찰은 제복 입은 시민’임을 내세우며 시민의 지지와 협력, 승인과 존중을 바탕으로 한 경찰을 강조한 이유는, 체제를 수호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법을 지키고,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찰의 존재로 인해 사회 혼란은 줄어들었고, 범죄와 무질서는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조절되었던 것이다. 시민을 위한 봉사나 복지의 얼굴 뒤에 ‘가장 효율적인 시민 통제 수단’의 의도가 감춰져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마키아벨리적인, 치밀하고 지능적인, 스마트한, 보수주의적 국가운영의 예라고 볼 수도 있다.

정윤회씨 국정개입에 관한 청와대 내부 문건 유출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지난 12월 서울 남산 서울경찰청 정보 1분실을 압수수색하기 위해 검찰 직원들이 들어가고 있다. (출처 : 경향DB)


지금 대한민국의 경찰과 점점 경찰화되어 가는 검찰의 모습은 이와 너무나 대비된다. 최선을 다해 힘자랑을 하고, 권력과 돈을 가진 자의 편임을 경쟁적으로 내세우며, 평화적인 수단으로 범죄와 무질서를 미연에 방지하기보다 스스로 긁어 부스럼을 만들며 강력한 물리력이나 법 권력을 휘두르는 활극을 연출한다. 하지만 정작 강하고 악한 범죄자 앞에선 고개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는다. 그러니 시민이 경찰과 검찰을 동료보다는 감시자로 보며 경계하고 의심한다. 화재나 수해 등 위기 상황에서 시민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선 경찰관과 소방대원들이 그나마 국가의 존재 이유를 알려주지만, 세월호 참사 등에서 보여주는 공권력의 모습은 대체적으로 그렇지 못하다. 이대로는 시민의 안전과 평화, 행복을 기대할 수 없다. 경찰과 검찰을 권력의 치마폭에서 시민의 넓은 품으로 돌려주라. 그것이 국가와 체제, 헌법을 수호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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