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한국, 소통합시다'에 해당되는 글 79건

  1. 2009.09.07 [한국, 소통합시다⑪]소통을 위한 제언
  2. 2009.09.07 [한국, 소통합시다⑪]‘상생 모색’ 취지·노력 긍정적
  3. 2009.09.06 [한국, 소통합시다⑩]실험! 소통(7) 현 정부 경제·대북 정책 시각차 뚜렷 (2)
  4. 2009.09.06 [한국, 소통합시다⑩]실험! 소통(7) 이상돈 - 윤창현 (2)
  5. 2009.09.05 [한국, 소통합시다⑩]실험! 소통(7) 가깝고도 먼 ‘안보 보수’와 ‘시장 보수’ (2)
  6. 2009.09.02 [한국, 소통합시다⑩]실험! 소통(6) 대중의 눈높이 못맞춘 주장들…‘진정성’ 부족했다 (2)
  7. 2009.09.02 [한국, 소통합시다⑩]실험! 소통(6) 단답형의 치고받기식 공방 많아
  8. 2009.09.02 [한국, 소통합시다⑩]실험! 소통(6) 홍진표 - 하승창 (2)
  9. 2009.08.30 [한국, 소통합시다⑩]실험! 소통(5) 첨예한 사안도 끝까지 경청… 서로 “배운 게 많습니다” (2)
  10. 2009.08.30 [한국, 소통합시다⑩]실험! 소통(5) ‘차이’ 존중했지만 ‘솔직함’ 아쉬웠다 (2)
  11. 2009.08.30 [한국, 소통합시다⑩]실험! 소통(5) 노회찬 - 정두언 (2)
  12. 2009.08.26 [한국, 소통합시다⑩]실험! 소통(4) 세 시간 넘기고도 “할 말 못했는데…” 풍성한 대화 (2)
  13. 2009.08.26 [한국, 소통합시다⑩]실험! 소통(4) “개혁 - 진보, 성찰 전제로 함께 갈 길 모색” (2)
  14. 2009.08.26 [한국, 소통합시다⑩]실험! 소통(4) 김호기 - 손호철 (2)
  15. 2009.08.13 [한국, 소통합시다⑩]실험! 소통(3) 민감한 주제엔 서로 재치있는 유머로 넘겨
  16. 2009.08.13 [한국, 소통합시다⑩]실험! 소통(3) 합리적 보수·성찰적 진보의 공감 ‘가능성 찾았다’ (2)
  17. 2009.08.13 [한국, 소통합시다⑩]실험! 소통(3) 조승수 - 전원책
  18. 2009.08.10 [한국, 소통합시다]강준만교수 특별기고 “이제 상대편 보다 우리편에게 소통문제를 제기해보자”
  19. 2009.08.10 [한국, 소통합시다]최장집교수 특별기고 ‘소통에 대한 이해와 오해’ 요약
  20. 2009.08.07 [한국, 소통합시다⑩]실험! 소통(2) “존이구동의 정신에 충실”

ㆍ물꼬 튼 ‘소통 담론’… 지역·세대·종교까지 영역 넓히자

사회제도·개인 상호관계 접근을

조흡 동국대 교수

소통문제의 핵심은 제도와 소통 주체의 상호관계로 접근하는 것이어야 할 텐데, 경향의 소통 기획은 대부분 개인의 소통역량에 집중된 듯하다. 그 결과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소통의 문제, 즉 사회적 갈등은 얼마든지 개인의 역량에 따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오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민주적 사회제도나 개인의 소통 역량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므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불통의 문제를 이해하고 대안을 찾는 방법 또한 두 변수의 상호관계를 좀더 파헤치는 과정에서 찾아봤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오로지 정치영역에서만 민주적인 소통이 가능할 것으로, 또는 가능해야 하는 것으로 전제하는 것은 무리다. 더딘 방법이지만 우리 일상생활의 영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든 사회적 관계의 소통구조를 더욱 쌍방향적이며 민주적인 것으로 바꿔나가도록 부단히 훈련해야 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남녀 관계에서, 그리고 선생과 학생, 의사와 환자, 상사와 부하의 관계에서 어느 한 쪽에 힘이 상대적으로 쏠려있어 소통의 방향이 치우칠 수밖에 없겠지만, 그런 권력 관계의 변수 내에서도 더욱 평등한 소통의 연습이 또다시 체화된다면 오늘날 정치영역과 노사 관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고조된 갈등도 어느 정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갈등’을 소통의 출발점으로 봐야

김호기 연세대 교수

어느 사회건 이익과 가치가 다른 집단들이 공존하는 한 갈등은 불가피하다. 갈등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볼 게 아니라 갈등의 해소를 생산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갈등은 내재한 문제를 드러내고 해법을 요구하면서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소통은 이러한 갈등 해소의 출발점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문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고, 이를 위해 이익·가치가 다른 개인·집단 사이의 소통이 요구된다. 올림푸스 신전의 신들이 처음부터 싸우고 있었듯이(막스 베버), 소통의 활성화는 민주화 시대를 계승하면서도 넘어설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중립지대사람들 설득시키기도 중요
이상돈 중앙대 교수

소통이 안 되는 상태에 이른 원인 중 하나는 ‘승자완점(勝者完占)의 제로섬 게임’ 같은 한국 정치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현대 한국정치의 거목인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이 점을 고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지만 자신들의 정치적 세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거꾸로 가고 말았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1990년 3당 합당이란 인위적 정계개편으로 표면화되었고, 김대중 정권 중반기 들어서 본격화하고 말았다. 민심의 지지를 잃어버린 정권이 항상 상대방 이념을 ‘발목잡기’로 비난해서 갈등이 심화되고 말았다. 노무현 정권은 자신의 문제를 보수세력의 탓으로 돌렸고, 현 정권은 자신의 문제를 진보세력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정권이 이처럼 극단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면 ‘소통’은 설 땅이 없다. “소통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보다 “얼마나 정확한 정보와 의견이 소통되고 있나”라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소통’은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것 못지 않게 중립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통’이 되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적·절차적 장치의 공정성 같은 문제도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압도하는 가치판단의 과잉을 삼가야
윤평중 한신대 교수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게 소통의 제일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때 ‘이해한다’는 건 그 입장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해하지만 동의할 수 없는 상황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으며 차라리 그게 이해관계와 이견들이 충돌하게 마련인 민주다원사회의 엄연한 현실임을 인정해야 한다. 동의할 수 없을 때는 최대한 조정과 타협을 시도하다가 종국에는 절차와 법에 의해 처리하는 게 성숙한 민주주의다. 소통의 가장 중요한 토대는 사실과 합리성에 대한 존중이다. 우리 문화는 가치판단이 사실을 압도하는 문화이고, ‘진정성(眞情性)’은 과잉이다. 그러나 성숙한 민주다원사회에서 중요한 건 사실 앞에 개방된 가치판단인 ‘진정성(眞正性)’이다. 한국 언론, 특히 진보매체는 가치판단의 과잉을 삼가고 사실보도라는 언론의 존재이유에 더 충실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개선책 찾아나가길

박효종 서울대 교수

소통은 일회성으로 끝나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추구할 만한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 소통의 영역도 이념·정치·사회·경제뿐만 아니라, 지역·남녀·세대·종교 간 소통 문제도 우리 사회에서 개선책을 기다리고 있는 절실한 문제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 등 생활속 문제제기도 필요


강원택 숭실대 교수

불통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면서도 풀어내려는 구체적인 노력을 하지 않을 때 소통 가능성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한다.

보수-진보 간 불통 문제뿐만 아니라 진보 내부, 보수 내부의 불통 문제점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며 소통 접점을 모색했다. 소통 대상 영역과 주체들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 댓글, 블로그 등에서도 시민 영역에서 불통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일상 생활, 시민들의 불통 문제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진보 - 보수 진영론적 사고 불식하길

조국 서울대 교수

경향 소통기획에서 일부 논자는 앵무새처럼 자신의 입장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전체적으로는 상대방과의 소통이 필요함을 인정했기 때문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번 기획을 기회로 진보와 보수진영 양쪽 모두가 자기 속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진영론적 사고’를 불식하길 희망한다. 자기 진영에 불리한 진실이나 불편한 진실도 드러내고 인정하는 데서 소통은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전과 정책의 차이점을 분명히 드러내면서도 단계별로는 소통하고 타협하는 실천을 전개하길 희망한다.


< 시리즈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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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목·선근형·이호준기자 jomo@kyunghyang.com

ㆍ각계 반응 - ‘불통 대한민국’ 공감대속 기획


경향신문이 지난 7월2일부터 연재한 ‘한국, 소통합시다’ 기획특집은 정부와 시민, 진보와 보수가 한국 사회의 주요 현안·의제에서 부딪치며 불통·분열하는 현실에서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소통 가능성을 모색하자는 취지의 기획이었다.

‘불통 대한민국’의 사회적 공감대 속에 시도된 언론사 최초의 본격 ‘소통담론’ 기획의 취지·노력 자체에 대해서 긍정하는 평가가 많았다. “소통담론의 물꼬를 텄다”는 평처럼 경향신문의 보도 이후 몇몇 언론사도 소통을 주제로 한 인터뷰·대담·토론회·기획물을 내보내기도 했다.


소통·불통 인물을 꼽은 지식인 100인 설문 결과(7월3일자 1·6·7면)는 큰 화제가 됐다. 몇몇 언론 매체는 설문 결과를 보도하기도 했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소통 문제가 매우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기획은 시점·내용 면에서 매우 적절하고 유익했다”고 평가했다. 한 대학 교수는 “몇몇 유명 지식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온통 소통·불통 인물 기사 이야기였고, 기획 자체에 대해서는 칭찬이 많았다”면서 “그러나 인물 순위를 매긴 것에 대해서는 부적절하다는 반응이 주류였다”고 전했다.


양비·양시적 시각, 정치·이념 중심, 진보·보수 중심의 취재·보도로 한계를 드러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소통담론의 여러 층위를 두루 깊이 짚어내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만중 전교조 전 정책실장은 “소통이라는 막연하고 어려운 주제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것은 좋았다. 갈등 구조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언론 최초로 보여줬다”며 “그런데 결국 소통은 국가권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국가 권력에 의해 사회통합력의 척도가 결정되는데 이 부분을 심층적으로 다루는게 미흡했다”고 말했다. 한재갑 한국교총 교육정책연구소장은 “대형기획을 통해 언론이 차분하게 소통 문제를 짚어본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아쉬운 점은 꼭지마다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는 인상을 못받았다. 소통도 결국 시스템의 문제인데 시스템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안진걸씨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 극명하게 소통의 문제가 두드러지는 시점에서 상생과 소통이라는 주제로 공공적 의미가 큰 기획을 했다. 서로간의 입장차나 불통의 현실은 잘 진단했다”면서도 “진짜로 소통하고 개선하고 상생 공존하기 위한 지혜와 묘책, 이를 위한 자세 전환까지로 이어지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변철환 민생경제정책연구소 상임이사는 “소통이라는 단어만 무수히 반복되고 배려·이해 같은 단어가 별로 보이지 않아 아쉬었다”고 말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과거 ‘지식인의 죽음’ 등의 기획 기사에서 증명된 것처럼 시대를 읽는 경향의 감각과 테마를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저력이 이번에도 발휘됐다”면서 “그러나 진보·보수의 대치선에서 전체 구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부분이 인정되고, 진보지로서의 정체성으로부터 비롯된 가치판단이 투영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 기획이 ‘충분히 공정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경향신문은 자신은 ‘소통·민주’인데, 이명박 정부와 조·중·동은 ‘불통·반민주’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지, 소통 기획 자체가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 봐야 한다”고 밝혔다.

최진 대통령리더십 연구소장은 “소통의 장애가 되는 요인들을 두루 짚어보고 큰 걸림돌 중 하나인 언어의 문제를 다룬 것도 좋았다. 전 분야에 걸쳐 다각도로 다루었고, 도표나 인터뷰를 통해서 다양한 분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했다”고 평했다. 그러나 최 소장은 “소통의 근본 원인을 좀더 세밀하게 해부해서 대안을 제시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약했다. 또 지도자들의 개인적 자질의 어떤 점이 소통을 가로막는지도 분석하고, 선진국의 소통 실패·성공 사례도 다루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집기사로 끝나지 않고 경향신문이 제기한 문제 의식이 정치권이나 여러 분야에 반영되길 바란다”고 했다.


특집기획 중 가장 논쟁적이었던 것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기고(7월14일자 5면)였다. 최 교수는 “소통은 합리적 논의를 통해 이루어지기보다, 투표에 의해 다수의 평결을 통해 소통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소통하도록 강제되는 조건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즉 민주주의를 잘하는 것이 소통을 가능케 하는 방법이지, 소통에 대한 강조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은 아니다”라는 의견을 보내왔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도 최 교수 견해에 동의하며 “지금 소통 담론이 중심에 놓이게 된 건, 이명박 정부가 소통하지 않는 정부라는, 독재나 권위주의 정권 시절로 회귀하는 ‘반민주세력’이라는 규정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의 불만은 서로 닮은 것 같지만, 사실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하지만 이걸 소통으로 뭉뚱그리면 색깔이 같아져 버리는 것”이라며 “지금은 소통이 아니라 갈등을 강조하고, 그 갈등을 조정할 정부의 정치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말했다.

한 대학교수는 최 교수의 “이명박 정부를 보수정부라고 부를 수 있지만 이를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과 과거 정부의 잘잘못을 평가하는 문제가 동일한 것일 수는 없다”는 발언을 두고 ‘정치인의 책임성, 지식인의 책임성’이란 제목으로 반론을 보내왔다. “정치적 책임론이 이명박 정부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수적 민주정부 범위 내에 있다는 식으로 용인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석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게 요지였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최 교수 특별기고에 대한 나의 의견’(8월11일자 7면)을 보내 “최 교수의 소통의 엘리트주의·양극화 함정 지적엔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소통의 문제를 주로 ‘우리편’을 향해서 적극 제기하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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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목·이로사기자 

 ㆍ대담 어땠나
ㆍ“보수도 뭉쳐야”에 “난 개인활동이 좋아”

이상돈 중앙대 교수와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지난 5월15일 MBC <100분 토론> ‘보수·진보, 갈등을 넘어 상생으로’에 출연한 이후 100여일 만에 다시 만났다. 시간 제한 없이 진보·보수 논객 8명이 벌인 당시 ‘끝장토론’에서 두 사람은 보수쪽 패널로 나와 진보 인사들과 격론을 벌였다. 하지만 지난달 26일 열린 경향신문 실험소통 대담에서 두 사람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대북 정책을 놓고 뚜렷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현 정권에 대한 입장을 두고 여러 갈래로 분화한 보수진영의 한 단면을 보여준 대담이었다.

경향신문 회의실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손을 맞잡은 채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어진 사진촬영에서도 중앙대 진중권 겸임교수의 재임용 탈락 등을 두고 화제를 이어갔다. 대담 시작 이후 보수진영 분류, 신자유주의·양극화 개념 문제에 대해서는 비슷한 시각이었으나, 현 정부 이야기에 들어가면서 금세 입장차를 드러냈다. 이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전형적인 진보주의적 케인스 정책으로 보수적·자유주의적 정책과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경제위기 때문에 시장 쪽에서 정부 쪽으로 축이 이동했을 뿐이고, 케인스적 관점도 정부의 비중이 약간 높은 자유주의 시장경제로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보수적 관점에서 현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 교수는 이날도 “점퍼 입고 장바닥을 누비는 게 친서민 정책이 아니다” “대통령이 ‘친서민’이라는 아젠다에 휩쓸리는 건 줏대가 없어서다”라며 직설적 비판을 쏟아냈다. 반면 윤 교수는 “현 정부가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고 있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비판이 세기만 하다” “(미국에서) 옮아온 불이 완전히 꺼지지 않았지만, 물은 잘 뿌리고 있다”며 위기 관리 능력에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줬다.


두 사람은 보수진영 내 소통 방식에 대해서도 시각차를 나타냈다. 이 교수는 대담을 끝내면서 “활동을 같이하자는 제안은 많이 오는데 다 사양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코멘트하는 걸 좋아한다. 단체 활동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을 겸하고 있는 윤 교수는 “이 교수님이 시민운동 개념에 대해 별로 긍정적이지 않은 걸로 안다. 교수님처럼 활동하시는 것도 의미가 있다”면서도 “진보진영 단체는 뭉쳐 있다. 보수진영도 단체를 만들어 진보진영과 소통도 하고 논쟁을 벌이는 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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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목·이로사기자 jomo@kyunghyang.com


ㆍ이상돈 “점퍼 입고 친서민 표방… 이미지만 있을뿐”

ㆍ윤창현 “비판수용한 변화… 포퓰리즘은 경계해야죠”


                              이상돈 중앙대 교수(왼쪽)와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가 지난달 26일 경향신문에서 만나
                              한국의 보수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김영민기자


이상돈 중앙대 교수(이하 이상돈)=보수 유형을 분류해 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국가 안보를 중시하는 ‘안보 보수’가 있고요.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주창하는 ‘경제적 자유주의 보수’, 사회의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윤리 보수’로 구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사회윤리 보수’는 우리나라에서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익·우파와 보수는 구분해야 할 것 같아요. 해방 이후 공산주의와 반공주의의 좌우대립이 있었지만, 그 당시 이승만 정부는 현재 흔히 말하는 보수주의 범주로 판단하면 잘 안 맞는 게 있습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이하 윤창현)=
북한에 대한 시각 때문에 더욱 분열되는 양상이 보입니다. 친북이냐 반북이냐가 보수냐 진보냐의 중요한 잣대입니다. 또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기업 엘리트들이 등장했죠.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가 출신 엘리트로서 효율성을 강조하고 경제에 방점을 둡니다. 이런 흐름을 실용보수라고 봅니다. 또한 반공적 가치를 지켜온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라고 부를 만한 강한 색채를 가진 진영도 있습니다.

그런데 2004년에 새로운 흐름이 나타납니다. 그 해 가을 서경석 목사님이 기독교사회책임을 출범시키고, 잇달아 이석연 현 법제처장이 ‘헌법을 수호하는 변호사모임’을,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이 자유주의연대를 출범시킵니다. 독립적으로 움직였는데 묘하게 시기가 일치한 것이죠. 당시는 열린우리당이 집권당이자 다수당이 된 이후였습니다. 기존의 보수적 흐름과 차별되는 새로운 아젠다 개발 흐름이 탄생하자 언론에서 뉴라이트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뉴(New)라이트’라고 붙이는 바람에 그 전에 보수적인 운동을 한 분들은 ‘올드(Old)라이트’냐라는 질문이 나오게 되니까 조금 어색해졌습니다. ‘어나더 라이트(Another Right)’나 ‘얼터너티브 라이트(Alternative Right)’ 정도가 나을 수도 있는데요. 기존의 흐름, 기존 보수와 차별하려 했던 또 하나의 보수적 흐름이 실용보수와 손을 잡으면서 현 정권이 탄생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상돈=
지금 쟁점 중 하나는 어떤 경제체제로 가느냐인데요. 1960~70년대 우리나라는 자유주의 경제라고 볼 순 없지만, 국가가 주도하는 수출 위주 경제정책으로 성공했습니다. 80년대 들어와서는 더 자유주의적으로 전환했죠.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전형적인 진보주의적 케인스 정책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정부 지출을 억제하고, 민간의 투자와 기술개발로 경제 발전을 이루려는 보수적·자유주의적 경제철학과는 상당히 배치되는 것 같습니다. 윤교수님,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는 쓰시나요?(웃음) 이게 폄훼의 말인데, 우파 사람들이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쓰고 있어요.



윤창현=신자유주의는 이름도 안 좋고요. ‘자유주의 2.0’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신자유주의의 키워드는 민영화, 작은 정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자유무역, 개방 등이죠. 사실 우리 경제는 개방을 통해 꽤 이익을 봅니다.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서방 선진국들이 개도국이나 후진국 시장을 개방시키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그 시장에 진입해 이익을 보거든요. 진보진영의 신자유주의 폄훼는 우리의 생존 기반을 잃어버리게 할 수 있다는 면에서 어색한 면이 있다고 봅니다.

자유주의에서 시장이 중요하지만 완벽한 시장은 없다고 봅니다. 시장과 정부를 놓고 가운데냐, 약간 시장 쪽이냐, 정부 쪽이냐일 뿐이죠. 정부 100, 시장 0은 공산주의죠. 현대 경제에서 시장에 100%의 비중이 주어지는 시장경제는 없다고 봅니다. 경제위기로 인해 전체적인 비중이 정부 쪽으로 일부 옮겨간 것 같은데 위기 이후에는 다시 시장 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봐요. 케인스적 관점도 정부의 비중이 약간 높은 자유주의 시장경제로 보아야지요.


이상돈=불분명한 용어들이 있어요. 미국이나 진보세력이 천민자본주의, 투기자본주의 같은 말을 퍼뜨렸어요. 그런데 미국 경제위기의 큰 원인이 주택 가격인데, 클린턴 대통령 때 금융기관에 대해 일반 서민이 집을 살 수 있게 대출을 해주라고 했어요. 우리나라는 김대중 정권 때 돈 있는 사람들이 집을 추가로 사도록 하지 않았습니까. 역사의 아이러니예요. 미국처럼 집을 산 사람이 파산한 사태는 없었는데, 그 사람들이 돈을 너무 많이 벌었잖아요(웃음). 이 세상의 모든 비극과 불행은 보수정권, 시장경제 탓인 것 같은데 따지고 보면 이런 면이 있는 거죠. 사회 양극화 문제도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초래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 그 책임이 다 과거의 보수, 시장경제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거지요. 진보진영에서는 양극화를 자본주의의 필수불가결한 부작용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보진 않습니다.


윤창현=양극화는 사실 노무현 대통령 때 훨씬 더 많이 심화됐습니다. 양극화는 소득분포를 나타내는 그래프가 산처럼 가운데가 볼록하다가 볼록한 부분이 사라지면서 중간이 평평해지는 고원형으로 가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지금 중산층이 50%는 됩니다. 상대적으로 가운데가 강합니다. 아령 모양으로 양 극단이 볼록한 건 아니지요. 대략 아래쪽이 3, 중간이 5, 위쪽이 2 정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양극화란 말은 극단적인 표현이지요. ‘중산층 비중 축소’같이 덜 자극적인 단어를 썼으면 좋겠어요.

이상돈=양극화란 말을 보면, 진보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어휘를 조작한 측면이 있습니다. 80~90년대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서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조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세상을 낙관적으로 볼 때는 중산층이라고 보고, 불안하게 보면 서민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여하튼 이 문제를 극복하려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제의 건전한 성장밖엔 답이 없습니다. 경제 성장의 근본은 저축·투자·기술개발입니다.

윤창현=
MB노믹스의 핵심 공약이 흔들린 측면은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미국발 전 세계적 경제위기가 우리 책임이 아닌 부분은 분명히 인정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방화가 되었고 불이 우리 쪽으로 번진 겁니다. 위기가 오면 제일 어려워지는 계층이 경제적 약자이고, 이에 따라 약자 보호를 위한 친서민 정책도 나온 거죠. 현재 정부 정책 전반을 위기 극복 패키지로 보고 싶고 이 정책 패키지가 그런대로 잘 작동해서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있는 면도 있습니다.

4대강 살리기도 여러 면을 보아야 합니다. 토목공사적 측면만이 아니라 환경개선적 요소도 있습니다. 강바닥에 퇴적물이 많이 쌓여 유속이 느려지고 강 주변 환경이 나빠진 것을 개선하자는 거죠. 국책사업과 환경보호를 같이 하자는 겁니다. 세금 문제는 글로벌 스탠더드 관점으로 봐야 합니다. 홍콩, 싱가포르 같은 경쟁지역이 모두 법인세를 내리는 추세예요. 외국법인이 많이 들어와서 국내에 일자리를 창출하라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법인세를 내리면 부자감세라고 비판합니다. 현 정부는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고 있습니다. 옮아온 불이 완전히 꺼지지 않았지만, 물은 잘 뿌리고 있다고 봅니다(웃음).


이상돈=
이전 정권에서의 종부세는 징벌적인 부당한 세금이었죠. 다만 부동산·주택 세금이 전반적으로 낮습니다. 승용차 세금보다 같거나 낮은데, 징벌적인 게 아니라면, 현실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4대강은 생각이 다릅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상수원 규제부터 고도 정수, 광역상수도, 하천 정비 등 거의 모든 사업을 해왔어요. 김대중 대통령 때 동강댐 프로젝트를 백지화한 뒤 9년 계획의 수자원 확보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지금 종결 단계에 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엉뚱하게 본류에 댐을 주렁주렁 세워서 물을 공급하자는 희한한 발상이 나왔습니다. 하천정비도 모든 걸 판박이로 만드는 ‘컵케이크 개발’이 되기 쉬워요. 4대강 사업이 그렇게 시급한가요? 고용, 기술개발 이득도 전혀 없습니다. 친서민 표방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친서민’이라는 아젠다에 휩쓸리는 건 줏대가 없어서입니다. 원칙에 충실한 대통령, 정권이 되어야 합니다. 친서민은 겉 다르고 속 다른 포퓰리즘이 되기 쉽습니다. 또 정권이 도덕적 취약성을 가리기 위해 친서민을 내세운 거 같아요.


윤창현=작년 촛불집회는 현 정부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억울한 겁니다. 광우병 쇠고기 먹여서 국민들을 다 죽이자는 식은 절대 아니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살인정권 말이 나오고 정권 위협 수준으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현 정부가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게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정치적 타살’이란 말도 나왔죠. 노 전 대통령에게 서민과 약자를 위해 살다 간 순교자라는 이미지가 붙여지면서 그러면 ‘MB는 뭐냐’는 식으로 진도가 나가버린 거죠. 일련의 사태 속에서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을 때 스탠스를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죠. 원칙이 중요하지만 비판이나 반대가 심하면 그 자체를 수용할 필요도 있지 않나 봅니다. 그야말로 소통이라 볼 수도 있지요. 중도실용을 원칙 훼손이라고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친서민이라는 말은 결국 경제적 약자를 돕자는 말입니다. 물론 중도실용이 얼치기 포퓰리즘으로 흐르지 않고, 원하는 중용의 미덕을 살릴 수 있도록 철학적·이론적 논의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상돈=이명박 대통령이 서민행보할 때 재래시장에 가서 ‘마트를 못 들어오게 하면 정부가 헌법소원에서 패한다’는 말을 했어요. 정치적 판단이 부족한, 대표적 실언입니다. 자유경제 보수정권이라 해도 대기업들의 무한한 시장 잠식에 정부가 관여할 필요는 있습니다. 대형 마트 때문에 재래시장이 죽어나가는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자유경제에 배치되지 않습니다. 점퍼 입고 장바닥을 누비는 게 친서민 정책이 아니잖아요(웃음). 콘텐츠는 없고 이미지만 있을 뿐입니다.

윤창현=영원히 대형 마트가 들어오면 안 된다고 얘기할 순 없죠. 다만 지금이 적절치 않은 시점이라는 데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경제위기, 마이너스 성장 위기에서 약자들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다른 업종 전환 기회가 있는 호황기에 그런 움직임이 있으면 모르지만, 지금은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이상돈=우리가 자본주의 원칙을 지키려면 화이트칼라 기업범죄에 단호해야 합니다. 현 정부가 이 부분에 대해 이완돼 있는데, 굉장히 위험하다고 봅니다. 대표적인 친자본 신문인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도 사설에선 자유주의 경제를 강조하지만 월가 비리를 폭로하는 기사도 많습니다. 자본주의가 살기 위해선 자본주의 범죄에 단호하게 해야 하는데, 이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통큰 사면을 하면서 잘못된 시그널을 줬습니다. 대북정책 문제를 보면, 지난 대선 때는 좀 온건했다가 나중엔 강경으로 갔어요. 온탕냉탕입니다. 정책을 갖고 주도적 입장에서 해보지 못하고 지금까지 흘러온 것 같습니다. 비핵 개방 기조 자체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부정적·비판적 입장입니다. 북한 정권에 당근을 준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입니다. 대한민국과 북한이 대등하다고 생각하고, 북한을 단지 같은 민족으로만 보는 시각은 낭만적이고 위험합니다.

윤창현=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북관은 낭만적 성격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정권 유지 차원에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지원을 받아 결국 핵개발을 했습니다. 두 정부는 심하게 표현하면 뒤통수를 맞은 거죠. 형제니까 도와주고 빈곤·기아에서 벗어나게 해주자는 기본적 원조 기조는 동의합니다만, 이용당하는 수준으로 가선 안 됩니다. 비핵·개방·3000은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습니다만,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상호주의, 정권 대 정권으로서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스탠스는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등한 입장에서 상호교환의 이행 단계를 지나면 새로운 관계가 나타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상돈=거슬러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 때만 그런 게 아니라 그 전에도 남북 정상회담을 하려 하지 않았습니까. 과거부터 정권 인기를 높이려다 자충수를 둔 측면이 있는 거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임기말에 결국 회담을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뭔가 업적을 남기기 위해 그런 걸 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또 하나의 포퓰리즘으로 북한 정권에 정당성을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남북관계가 우리 정부 의사와 무관하게 경색돼 있는데, 그걸 타개하려고 또 남북 정상회담을 해서 결국은 ‘햇볕 3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거죠. 보수의 소통도 문제입니다. 세미나 같은 데를 가보면 진보진영은 시민단체 활동가와 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보수 쪽에선 그게 어렵습니다. 재야에 있을 때는 뭉치더니 집권하고 나서 흩어지지 않습니까. 보수의 분화 현상이 있는 거죠. 진보냐 보수냐 문제보다 극단적 진보나 보수가 더 우려스럽습니다. 과격 노사분규, 과격 행태들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윤창현=‘보수는 부패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은 거꾸로인 것 같아요. 진보정권이 10년간 집권하면서 많은 인사들이 부패에 연루됐습니다. 그 사이 보수진영은 많이 분열됐습니다. 현 정권에 대한 시각도 다르고요. 건전한 비판은 필요하지만 보수진영이 분열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수 내 소통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시민운동이 그동안 진보진영 위주였는데, 이제 보수 시민운동에 대해서도 많은 분이 관심을 가지고 흐름이 활성화되면 좋겠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보수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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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연세대 교수

ㆍ소통기획위원 평가

소통이 인간의 본래적 특성이자 사회를 이루는 핵심 요소임은 오래 전부터 통찰돼 왔다. 우리 인간은 소통적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주장이나 소통의 수단인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주장이 그러하다. 후기 현대사회에 부여된 과제는 곤봉, 칼 또는 대포가 아니라 대화에 기반한 ‘대화 민주주의’에 있다는 앤서니 기든스의 주장도 다름아닌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소통이 갖는 의미가 이러함에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소통이 원활히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념과 세계관이 다른 개인 및 집단 사이는 물론 유사한 이념과 세계관을 갖는 개인 및 집단 사이에도 소통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정직한 자화상이며, 그만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절차 및 방법 역시 더디게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상돈 교수와 윤창현 교수 사이의 소통을 내가 주목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생각이 유사하다고 알려진 지식인 사이의, 그것도 나와는 이념적 성향이 다르다고 볼 수 있는 보수적 성향의 지식인 사이의 소통을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

개인적으로 이 교수와 윤 교수를 잘 알지는 못한다. 두 교수가 언론에 기고한 글들을 읽고 두어 번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이 이들과 만남의 전부다. 두 사람의 글과 말에서 나는 이 교수와 윤 교수 모두 합리적 보수주의, 굳이 구별하자면 이 교수는 ‘안보적 보수주의’에, 윤 교수는 ‘시장적 보수주의’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최근 우리 사회의 보수주의 흐름과 연관시켜 본다면, 이 교수는 정통 보수주의를, 윤 교수는 이른바 ‘뉴라이트’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담은 이러한 나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대담을 따라 읽어가다 보면 북한, 한국 현대사, 국가와 시장, 이명박 정부의 노선과 정책,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평가, 시민운동 등에 대해 두 사람 견해의 공집합과 여집합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한국적 기준인 북한과 현대사에 대한 인식,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평가에 대해 두 사람은 생각을 같이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평가와 시민운동의 역할 등에 대해서는 견해를 다소 달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상돈 교수는 보수주의에 내재한 전통적 원칙을 중시하는 데 비해 윤창현 교수는 보수주의가 갖는 현실적 효과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이 주장하는 보수주의의 철학과 정책에 물론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글의 목적은 보수주의의 내용을 평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 소통의 방법과 결과를 검토하는 데 있다. 소통이 활발히 이뤄지기 위해서는 자기비판이 선행돼야 하는데 두 사람 모두 보수주의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보수적 관점에서 한국 현실을 분석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대담은 한국 보수주의의 철학과 현실인식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진보적 시각에서 굳이 한마디 덧붙인다면, 이 대담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 사이의 실질적 대화가 결코 쉽지 않은 과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기도 했다.


원론적 관점에서 보면 사회는 본디 다양한 생각들을 가진 집단들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소통은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하지만 소통을 통한 통합을 일방적으로 강조할 필요는 없다. 진정한 통합은 서로의 양보를 무조건적으로 요구하는 게 아니라 문제가 무엇인지를 합리적으로 논구하고 상호 승인할 수 있는 해법을 도출하려는 실질적 소통을 성취함으로써 가능한 법이다.

물론 소통은 민주주의의 방법이지 그 내용은 아니다. 방법이 아무리 그럴싸하더라도 내용을 채우지 못한다면 소통은 단지 수사학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소통이 중요한 이유는 제대로 된 내용을 채우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민주주의’가 너무 취약하다는 데 있다. 방법과 내용은 기실 변증적 관계에 있는 것이며, 규범적으로 정당한 내용을 채우기 위해서는 절차적으로 타당한 방법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결론을 맺자. 민주화 시대의 한 순환이 마감하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방법적 민주주의’로서의 소통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이며, 이러한 소통의 미성숙은 ‘실질적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은 원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 따라서 타협이 필요한 것은 의당 타협해야 하되, 논쟁할 것은 원칙을 갖고 이성적으로 그리고 치열하게 소통하고 또 논쟁하자. 소통하는 과정에서 차이를 승인하고, 차이를 승인하는 과정에서 소통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진면목이지 않겠는가.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선진당 창당 참여 후 결별… 李대통령 비판 보수 논객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뉴올리언스의 튤레인 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해군장교로 군 복무를 마쳤다. 
1983년부터 중앙대에 재직 중이다. 1995~2003년 조선일보 비상임 논설위원을 지냈고, 동아일보·문화일보 등 보수언론에도 칼럼을 기고했다.

정권 교체 뒤 ‘보수의 보수’ 비판으로 ‘합리적 보수’의 대표 논객이 되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은 유명하다. 2007년 대선 당시 이회창 무소속 후보 선거 캠프에서 일했고, 지난해 초에는 자유선진당 창당기획단 멤버로도 참여했다. 이후 김혁규 전 열린우리당 최고위원 영입과 비례대표 선정 등에 이의를 제기하며 자유선진당과 관계를 끊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

대선때 이명박 캠프 활동… 뉴라이트 재단이사 등 지내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명지대 무역학과를 거쳐 2005년 서울시립대에 부임했다.

활발한 칼럼 기고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보수 진영의 대표적 논객으로 활약하고 있다. 보수단체의 결집과 행동을 강조하는 실천형 지식인이다. 뉴라이트재단 이사, 바른금융재정포럼 이사장을 지냈다. 현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캠프 정책자문단에 참여했다. 지난해 정부 부처를 대상으로 한 ‘이명박 정부 국정철학 공유·확산 워크숍’에 강사로 나서는 등 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적극 지지하는 지식인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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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흡 동국대 교수

<소통기획위원 평가>
ㆍ추상적 총론은 공감대 형성
ㆍ구체적 각론선 첨예한 대립
ㆍ둘 아닌 모두와 소통 아쉬워


경향신문의 소통실험이 거듭되면서 소통에 관한 일종의 경향성이 감지된다. 총론에서는 상대와 충분히 합의할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제시하며 열린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각론에서는 결국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의견대립의 긴장을 높이고 우월적 위치를 차지하는 담론의 기술이 거의 모든 대담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를 두고 총론에서만이라도 합의에 이르는 공감대를 마련했으니 소통의 첫걸음을 뗀 ‘발전’이라 할 수 있겠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통한 것이냐는 본질적인 질문에 비춰보면 소통에 관한 다양한 테크닉만 동원됐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는 다소 비관적인 전망 또한 가능해진다.


이번 대담도 이런 일반적인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두 토론자들이 총론에서 상호 동의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각론에서는 견해 차이를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는 촛불집회 그리고 표현의 자유와 연관된 매우 구체적이고 특정한 사례를 논의할 때 뚜렷한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진보와 보수의 문제라는 다소 추상적이며 거시적인 영역에서는 합의의 지점에서 대담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문제다. 예를 들어 “보수든 진보든 낡은 구도를 넘어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야” 한다거나 “정당 활동을 하는데 시민단체 외피를 쓰고 하면 안 된다”는 매우 원론적인 얘기를 바탕으로 동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도가 그렇다. 문제는 총론과 각론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기보다 오히려 전략적으로 분리된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이는 아마도 추상적인 총론의 영역에서 합의를 양보한다 해도 총론에서 벗어난 구체화된 의제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통의 문제를 논하는 토론장에서 총론적 합의를 인정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부분적으로 이미 대담의 형식이 강요하고 있는 내재적 산물이기가 쉽다. 경향신문 소통특집의 효과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진영의 유연성을 과시하는 또 다른 효과도 함께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필연적인 수순, 전략, 경향성일 수도 있다.


바로 이 맥락에서 현대정치의 모순을 상기해 볼 수 있다. 대중의 지지로 가능한 현대 민주주의의 원리가 뒤집혀 역설적으로 대중이 거세되고 소수만으로도 정치를 꾸려갈 수 있는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모순 말이다. 대중의 욕망과 판단이 바탕이 되고, 이를 다시 비판적으로 수렴한 소통구조에서 정치가 이뤄지기보다, 담론의 테크닉에 의존한 소통으로 정치가 충분히 가능한 상황에서 ‘진정성’을 담아 대중과 교감하려는 소통과정은 이제 불필요한 장식물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한 것이다. 큰 틀에서 진보와 보수가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면 대중이 정치에 관심을 가질 이유도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그렇게 대중들이 소통의 장에서 그리고 정치에서 배제되고 있다. 각론을 총론처럼 이야기하고, 부분적 진실을 전체의 진리로 포장하며, 가치의 문제를 사실같이 제시하면서 대중을 오도하고 사실을 왜곡하며 소통을 방해하는 것이 현대정치의 원리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이 대담에서 제도변화를 초래하지 않았으므로 민주주의의 후퇴는 없다는 주장과 제도를 운영하는 방식과 절차를 문제 삼는 주장이 서로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는데, 대중이 누구의 주장에 손을 들어줄 것인지는 비교적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이는 얼마나 대중을 소외시키지 않고 그들의 일상적 경험과 부합된 논리로 소통을 시도했느냐가 대중들이 내리는 판단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두 토론자의 대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분모는 대중이 관심을 가질 만한 촛불집회, 미디어법, 4대강 정비 사업을 포함한 환경문제 등과 같이 매우 구체적인 각론의 문제를 대중의 일상생활과 유리시켜 아무런 감흥도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를 읽어낼 수 있지만, 각자 내세우는 주장의 근거가 결국 추상적 거대담론에 기대고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크게 다르다고 보기 어렵다. 대중의 눈높이에서 봤을 때 둘은 모두가 똑같은 ‘제도권’의 ‘공식 언어’를 공표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정부 대변인과 농성현장을 취재한 뉴스로 익히 들어왔던 바로 그 딱딱한 언어인 것이다.


소통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름지기 대중과의 공감대를 확대해 나가는 일이다. 대중이 사회와 정치 그리고 국가의 중심이 맞는 얘기라면 말이다. 그러나 소수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그나마 대중과의 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경제와 상징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소수가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는 모습을 먼저 보이면서 대중을 포용하는 과정을 공식 언어가 아닌 진정성이 담긴 대중의 언어로 풀어썼을 때 그 가능성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중의 눈에 모두가 다 똑같아 보인다면 그것은 필시 담론적 대립이나 총론적 합의가 공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익을 위한 ‘이미지 쇼’로 판단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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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목·홍진수기자 jomo@kyunghyang.com

ㆍ대담 어땠나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과 홍진표 ‘시대정신’ 이사의 실험소통 대담은 지난달 20일 경향신문 인터뷰실에서 1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두 사람 모두 1980년대 운동권 출신. 노동운동을 하다 시민운동으로 전환한 하 위원장과 통일운동을 하다 북한민주화운동으로 전향한 홍 이사 간 대담은 예전 각자가 몸담았던 PD(민중민주)와 NL(민족해방) 노선 못지않은 간극을 드러내며 대립각을 세웠다.


지난해 촛불집회로 말문을 연 두 사람은 정권 교체 이후 제기된 민주주의 후퇴 문제를 두고 오랜 시간 격론을 벌였다. 홍 이사는 ‘시대정신’에서 출간한 <광우병 촛불시위 추적보고서-거짓과 광기의 100일>을 거론하며 촛불집회는 허위에 기초해 벌어진 일이라고 공격했다. 하 위원장은 정부의 예방의 원칙과 민주주의 소통 문제를 거론하며 반박했다. 한 주제에 대해 한 대담자의 말이 끝나면 이어받아 견해를 밝혔던 여느 대담과 달리 대담 중간 단답형의 치고받기식 질문·반론이 잦았다.

홍 이사가 촛불집회 참가자 구속 등 법 집행 문제를 두고 “공권력의 엄격하고 원칙적인 법집행은 일종의 사회적 합의에 바탕한 것이고, 이게 바로 상식”이라고 하자, 하 위원장은 “그렇게 말씀하시니 좀 답답하다”고 반박했다. “사람과 사회를 보는 태도에 다른 지점이 있는 거 같아요”(하승창) “그 대목에 합의 안되면 도대체 이 사회가 운영될 수 있을지…”(홍진표)라며 끝내 평행선을 달렸다.


불통하던 두 사람은 보수단체와 뉴라이트 문제에 들어가서야 최소한의 합의 지점을 만들었다. 하 위원장이 “(보수쪽에서) 진보진영을 싸잡아 척결·배제 대상으로 본다”고 하자, 홍 이사는 “그 진단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홍 이사 같은 분은 저 같은 사람을 척결의 대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을 것 아니냐”(하승창), “그럴 의사도 능력도 없습니다”(홍진표)라는 말을 주고받을 때는 처음으로 웃음꽃이 피기도 했다.

두 사람은 종북 문제에 대해서도 “시민 대다수는 그런 논리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홍 이사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추종 세력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고 말하자, 하 위원장은 “근거없이 추론하는 것은 매카시즘일 뿐”이라며 “폭력적으로 공동체를 파괴하려 하면 현재 형법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며 간접적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다.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도 분명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홍진표 ‘시대정신’ 이사
진보적 통일운동서 전향뉴라이트 진영 활동가로

홍진표 ‘시대정신’ 이사는 민족해방(NL) 계열 운동권 출신이다. 1983년 학내 시위로 강제징집됐다. 북한의 대남 방송 ‘구국의 소리 방송’을 청취·배포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1년간 복역했다. 서울대 총학생회 사무국장을 시작으로 전민련 조국통일위원회 부장, 범민련 간사,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조직국장을 지내며 진보적 통일운동에 매진했다.

96년 ‘말’지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붕괴 가능성과 남한의 흡수통일 가능성을 거론하며 전향했다. 통일운동에서 북한민주화운동으로 전환했다. 98년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창립에 참여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책실장,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 등을 맡으며 뉴라이트 운동 진영의 대표적 소장 활동가로 이름을 알렸다.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경실련서 사회개혁운동‘밑빠진 독상’ 제정하기도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1980년 연세대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82년 구속되어 실형을 살았다. 출소 후 인천·부천 등지에서 노동인노련, 삼민동맹 등에서 노동운동을 이어갔다. 90년 삼민동맹 사건으로 다시 구속됐다.

92년 경실련 정책실 간사로 시민운동에 발을 들여놓았다. 경실련 조직국장, 정책실장으로 일하며 사회개혁운동을 했다. 경실련 내분 사태가 벌어지자 사직한 뒤 2000년 함께하는시민행동 창립에 참여했다. 사무처장으로 있으면서 예산감시운동, 기업감시운동, 정보인권운동을 했다. 예산 낭비 사업을 고발하는 의미로 ‘밑빠진 독상’을 제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전문 분야에 집중하는 시민운동을 통해 차세대 시민운동가로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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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목·홍진수기자 jomo@kyunghyang.com

ㆍ하승창 “자의적 법해석 등 권력 운영방식이 문제죠”
ㆍ홍진표 “원칙적 법집행을 민주주의 후퇴로 보면 안돼”


홍진표 ‘시대정신’ 이사 = 요즘 이명박 정부가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고 하는데, 민주주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어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핵심은 국민에 의해 정권을 견제하는 장치이고, 곧 직선제로 대표되는 1987년 개헌입니다. 자의적으로 임기를 연장할 수 없고, 5년 하면 내려와야 하는 거죠. 제도 변화 없이 어떻게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두번째, 미네르바 사건을 민주주의 후퇴의 증거로 많이 거론하는데, 검찰의 과잉수사일 수는 있지만, 이를 가지고 정권 전체의 행위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지나친 비약입니다. 쉽게 말해서 대통령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또한 검찰의 기소에 대해 재판부가 무죄라는 결론을 내려 삼권분립에 따른 견제가 작동했고, 이를 사회적으로 존중하잖아요.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 권력을 구성하는 방식과 절차에 관한 민주주의 제도는 후퇴하지 않았죠. 권력 운영 방식이 문제입니다. 시민들은 이전보다 민주주의가 제한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미네르바 구속은 기본적으로 말하는 자유에 관한 겁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조갑제씨가 정부 전복 같은 더 심한 말을 해도 구속되지 않았어요. 불법적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기 때문이죠. 권력의 기본권에 대한 태도 문제, 검·경의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법해석을 보며 이전과 다르다는 걸 느끼죠.


        홍진표 ‘시대정신’ 이사(왼쪽)와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이 지난달 20일 오전 경향신문사 자료실에서
        실험소통 대담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근기자


홍진표 = 미네르바 구속은 개별적 사건일 뿐입니다. 전체적으로 점검하지 않고 후퇴라고 보편화하는 걸 지적하는 겁니다. 검찰권 남용이라지만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민주주의 후퇴는 후퇴라고 할 만한 현상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어야 하는데, 근거가 취약해요. 독특한 감각이고, 정서가 아닐까요. 예컨대 최루탄이 등장하면 민주주의 후퇴라고 얘기할 것 같아요. 그러나 최루탄하고 민주주의 후퇴하고 연결시킬 수 있을지는 상황을 봐야 합니다. 아주 심각한 폭력 시위가 있으면 동원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또 과연 말을 못하게 하나요. 압박감을 느낀다는데 진짜 그런 것이 있습니까. 이해할 수 없어요. 실제로 아주 심각한 허위를 얘기하지 않는 이상 그런 것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있습니까.

하승창 = 미디어법이나 인터넷 실명제, 구글의 사례가 있죠. 익명성은 표현의 자유 확대와 관계 있죠.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일반 시민들을 수사한 것은 과도하지 않나요. 일반 시민을 상대로 과거 군사정권 때와 같이 민주주의를 제한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까.

홍진표 = 촛불집회도 집시법 등 근거가 있는 법률에 따라 처리한 겁니다. 현재 위헌신청이 돼 있지만 야간집회 금지 같은 건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현존하니까 유효한 것 아닙니까. 현행법에 따른 공권력이나 법 집행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죠.

하승창 = 법 집행이 상식적이고 통상적인 범위를 넘어서니까 과도하다는 거죠.

홍진표 = 미국산 쇠고기 문제 제기는 정당하고 공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실정법보다 우위에 있고 제약을 덜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탄압이나 압박이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사법부에서 정상참작을 할 때, 집회에 나온 목적 같은 건 고려할 수 있지만 공권력의 법 집행은 원칙적으로 할 수밖에 없죠.

하승창 = 야간집회 금지 같은 경우 현재 법이 사회적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제약이 되고 있으니까 사법부가 위헌신청을 한 거 아닙니까. 법원이 법 운영 방식의 절차를 문제 삼아 기각하는 이유를 잘 봐야죠.

홍진표 =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법원에서 판단합니다. 최종적 판단은 사법부의 몫입니다. 그러나 검·경이 정치적인 이유냐 위헌신청이 된 걸 고려하면서 법 집행을 한다면 사회의 안정성이나 예측 가능성이 훼손되죠.

하승창 = 문제 제기를 위해 스스로 법을 위반해서 잡혀가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 법을 위반하고 처벌을 받는 것으로 헌법적 틀내에서 살아가는 거잖아요. 기계적으로 접근해선 안되죠. 다음 주제인 뉴라이트로 넘어가죠. 뉴라이트라 불리는 그룹도 여러 가지라 통칭해서 말하기 힘든 구석도 있습니다만, 좀 걱정스러운 것은 진보진영을 배제, 척결 대상으로 보는 극단적인 태도입니다. 노무현 정부 때 진보진영에서 조갑제씨 발언을 척결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죠. 지금은 전혀 달라요. 제가 최근에 청와대 관계자 한 분을 만났더니 ‘이명박 정부를 타도하려는 거냐’고 하더군요. 한쪽 흐름만 가지고 전체를 봐요. 심지어 어느 분은 경실련도 좌파라고 하더군요. 경실련 출신 인사들이 현 정부에 얼마나 많은데요.


<
하승창 "보수·진보 낡은 구도 못넘으면시민단체 권위 인정 못받아">

홍진표 = 척결론의 반대에 대해선 저도 공감합니다. 서로 극단의 흐름으로 전체를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진보나 보수가 단일한 조직에 의해서 중앙집권적으로 운영되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 소통이 없기 때문에 언론에 나오는 극단적인 흐름, 선정적인 몇 마디로 판단하는 거죠. 배제하거나 척결하는 태도는 찬성할 수 없죠. 경쟁해야죠. 자기 뜻을 펼치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면 되는 거죠. 다만 진보나 보수의 극단적인 부분은 그리 크지 않다고 봐요. 쟁점이 생기면 극단론이 전면에 등장하니 그렇게 보이는 것이죠.

하승창 = 소수라 하더라도 압도당하니까요. 과거 경실련은 진보와 보수 인사들이 함께 했던 경험도 있잖아요. 배제·척결로 공동체가 유지되지는 못합니다. 다름을 전제로 해서 공동체를 운영해야 합니다.

홍진표 =
‘시대정신’도 소통과 국민통합을 모토로 내걸었는데요. 이념과 성향을 떠나서 한국의 헌법체계를 존중하는 전제하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봐요. 존중하지 않으면 곤란하죠.

하승창 = 헌법이 20~30년 전에 비해 민주적 질서나 기본권을 얼마나 반영하느냐도 사회적 논의를 해야죠.

홍진표 = 구체적인 조문을 절대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민주주의체제, 시장경제체제의 대목을 이야기하는 거죠. 종북·친북 문제를 이야기해 볼까요. 종북세력의 문제는 의회민주주의 질서 안에서 자기 뜻을 펴려는 게 아니라 혁명주의를 견지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북한 김정일 체제를 추종하는 세력의 독립성에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북에서 하라는 대로 움직이고 생각하면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느냐는 거죠. 진보 쪽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유일한 세력입니다.

하승창 = 예전 노동운동할 때 북한 노동당 노선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하기 힘들긴 했어요. 분단체제 아래서 하나의 정치적, 운동적 흐름으로도 있을 수 있다고 보는데,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근거 없이 다 그럴 것이라고 추론하는 건 매카시즘입니다.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만드는 분위기는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죠. 뉴라이트와 정치 문제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치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기존 (이전 정권의) 시민운동에서는 그 세력, 단체가 정치적 지지를 표명한 적은 없죠. 개인적으로 진출한 것일 뿐이고요. 예전 뉴라이트 진영에서 노무현 정부에 참여한 인사 통계를 내고 비난했던 사람들이 현정부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뉴라이트에서 이들을 비판하지 않으면 편의적 잣대인 거죠. 정치적 중립이 무엇인지 재검토가 필요하고요. 시민단체 외피를 쓰고 사실상의 정당활동을 해선 안된다고 봅니다. 뉴라이트 전국연합인가가 비슷한 모습을 보였잖아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솔직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홍진표 = 실제 정치운동인데 시민단체의 형식을 빌리는 게 가장 문제죠. 진보 시민운동이면,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100% 다 잘못됐다고 항상 느끼지는 않겠죠. 마찬가지로 우파, 보수 시민단체라고 해서 과거 노무현 정권의 정책이 100% 다 맘에 안들 수는 없죠. 그때 그때 잘한다, 못한다는 태도를 표명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기존 여야구도에 포섭돼 있다는 느낌이 들고, 실제 그런 행동들도 하는 것 같아요.

하승창 = (진보 시민운동은) 사실 그렇지는 않아요. 노무현 정부 때 참여연대나 경실련 같은 단체들이 대부분의 정책에 반대했죠. 개인적인 정치 진출이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정책 중에 시민단체 주장이 수렴된 것이 있어서 정치적 흐름이 같다고 느끼시는 거 같습니다.

홍진표 = 많은 정책에서 부딪힌 건 압니다. 한통속이란 뜻에서 얘기한 건 아니고요. 뉴라이트 용어 문제도 짚어보죠. 더 이상 단일한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기는 어렵게 된 거 같아요. 그러나 여전히 뉴라이트라고 씁니다.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이 8·15 논평에서, ‘현정권과 뉴라이트의 유착’ 같은 표현을 쓴 논평을 냈는데, 공상 수준의 접근입니다. 뉴라이트가 마치 상당한 지분을 갖고, 이념적으로 이니셔티브를 갖고 과거 부시 정권의 네오콘처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근거 없는 이야기입니다. 참여연대 사람들이 노무현 정권에 많이 진출했지만, 참여연대의 조직적인 참여는 아니잖아요. 마찬가지로 명단이 모아질 수 있지만, 정권 장악 같은 건 아닙니다.


<홍진표 "시민단체 형식 빌린 정당운동기존 여야구도에 포섭된 느낌">

하승창 = 그런 논평이 나온 것은 구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보수쪽 인사들이 나라 걱정 하는 걸 많이 들었습니다. 가치지향은 다르지만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같이 느끼는 거죠. 합리적인 보수인사들이 좀 드러나야 하고, 보수진영 안에서도 구분되면 좋겠어요. 촛불집회가 던진 메시지 중 하나가 시민들이 기존 정당이나 시민단체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이명박 대통령 공격만 있는 건 아닙니다. 뉴라이트에 ‘뉴’자가 붙었다고 하지만 이미 낡은 구도로 보고 있어요. 보수든 진보든 낡은 구도를 넘어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야죠. 최근 이명박 정부가 중도, 실용을 표방하는데 변화가 있다고 보나요.

홍진표 =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실용은 원래 표방했고, 중도가 워낙 모호한 말입니다. 탈이념이나 좌우 양 극단은 좀 곤란하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항상 중간세력은 존재하는데, 지역적으로는 충청권, 정치적으로는 무당파 유권자 층을 더 확보하겠다는 취지 같기도 합니다.

하승창 = 정책 능력 문제, 즉 사회적 조건에 맞게 집행하거나 구성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4대강 같은 경우에는 가치에서도 부딪치고, 한나라당 안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정책 집행 절차도 무시되고 있습니다. 중도실용 입장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홍진표 = 노무현 정권도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의료 민영화를 추진했습니다. 정권을 잡으면 현실적인 정책을 펼 수밖에 없습니다. 진보 측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비판했는데, 이명박 정권에 대해서 접근할 때는 과거와 완전히 단절된 상황에서 평가하려는 게 있습니다. 보수 쪽에서 보면 이명박 정권이 공기업 민영화 등 자유주의 정책을 철저하게 해주길 바랐는데, 포퓰리즘 쪽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어요.

하승창 = 남북관계는 6·15나 10·4 선언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이번 8·15에도 그 얘기는 안 했죠. 북이라고 왜 풀겠다는 생각이 없겠어요.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불러들이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면담도 그런 차원이고요. 6·15나 10·4 선언은 정부가 맺은 건데, 어떻게 존중하느냐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갈 수도 있죠.

홍진표 = 남북관계는 일방주의가 안되죠. 현 정권이 이렇게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 정권이 능동적으로 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진행되어 온 것 같아요. 남북관계 악화는 북한이 혼자서 핵개발하면서 간 탓이 큽니다. 핵개발 얘기가 나오면 이명박 정권이 처음부터 포용정책으로 갔으면 핵실험까지는 안 갔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버락 오바마 정권이 특별히 건드린 것도 없는데 북한이 혼자서 치고 나갔어요. 그런 걸 인정해야죠. 자꾸 책임을 이명박 정부에 전가해선 안되죠.

하승창 = 북한이 핵개발을 잘하고 있다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북한정권을 상대로 남한에서 싸우는 것은 아니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요구와 견제를 하는 거죠.


홍진표 = 마지막으로 진보에 대한 바람을 말할게요. 총론에서 벗어나 각론과 정책논의를 하면 좋겠어요. 총론으로 얘기하면 소통이 안 돼요. 예를 들면 무상의료를 해야 한다고만 하면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을 거 같아요. 현재 작동되는 의료보험 체계가 어떤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좀 땅으로 내려와 논의하면 좋겠어요. 정책적 수준에서 논의하면 진보·보수 상관없이 현실 문제를 얘기할 수밖에 없어요. 또 결국 수치 문제로 가고요. 감세 문제는 몇 퍼센트 올리거나 내리거나 숫자로 논의할 수밖에 없고, 서로 방향은 다르더라도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수 있죠.

하승창 = 서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정책, 의제로 가는 게 맞다고 봐요. 시민운동은 그런 강점이 있는 곳이었는데, 노무현·이명박 정부로 이어지면서 이념구도가 압도하는 면이 있고요. 또 시민운동 스스로 돌아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자신의 정책이 일정 반영되면서 취약해진 측면도 있어요.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창의적 의제, 정책을 더 풍성히 만들어내지 못했죠. 성찰해야죠. 정책을 놓고 보면, 아까 기본적인 태도를 두고 다투었잖아요. 촛불이나 법 집행 같은 구체적 사안을 얘기할 때 더 치열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치열하게 논의를 전개해 폭을 좁혀 가면, 사회적 갈등은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서로 이야기 못할 상대로 낙인찍으면 불가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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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대담 어땠나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진보-보수 정치인 간 실험소통 대담의 파트너로 한나라당 국민소통위원장인 정두언 의원을 추천했다. 정 의원은 “평소 무척 좋아하고,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며 흔쾌히 수락, 대담이 성사됐다. 대담은 지난 19일 오후 경향신문 인터뷰실에서 1시간40분가량 진행됐다.


대담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의 의미로 시작됐다. 노 대표는 김대중 정부의 남북 평화협력을 평가하면서 곧바로 이명박 정부의 남북간 불통 문제를 거론하며 공격에 들어갔다. “(여러 현안에서) 주로 노 대표가 공격하는 쪽이 되겠다”는 진행자의 말에 정 의원은 웃으며 “나도 공격할 수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노 대표가 주로 먼저 문제를 제기하고, 정 의원이 해명·반박하는 식으로 이어졌다.


정 의원은 대담 중 수차례 “노 대표는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고 실천하는 분” “진취적이고 리버럴해 좋아한다”는 덕담을 건넸다. 노 대표는 정 의원에 대한 호감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국민소통위원장을 맡고 나서 용감하게 다음 아고라 사이트에 가서 대화를 시도한 건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등 정 의원의 구체적인 소통 노력·태도를 긍정·존중하는 말로 화답했다.

두 사람은 쟁점에서도 말꼬리를 자르는 법 없이 “왜 그런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설명을 해드려도 되겠냐”며 대화를 이어갔다. 노 대표는 특유의 느릿하면서도 비유를 들어 정곡을 찌르는 어법을 구사했다. 정 의원은 “노 대표가 이야기를 워낙 잘하셔서 듣다보면 후딱 넘어간다”면서도 핵심 사안에 대해서는 ‘후딱 넘어가는’ 법 없이 대립각을 분명히 세웠다.


두 사람은 이념 편향, 신자유주의 문제, 정당 구조 문제 등에서는 여러 사안에서 공감대를 이루었다. 노 대표는 정 의원의 “신자유주의에 제국주의적 측면도 있다”는 말에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다행”이라고 답했다. 정 의원은 “민노당에서 장관도 나오고, 언젠가 집권도 했으면 좋겠다”고 하자, 노 대표는 웃으며 ‘진보신당’이라고 바로잡기도 했다.


하지만 노조 역할, 용산참사 문제에서는 입장차가 뚜렷했다. 정 의원은 특히 “노동시장 유연성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내보였다.

정 의원은 대담을 마무리하며 “노 대표를 만나면 배우는 게 많아서 나왔다. 이나마 버틴 게 배운 것”이라며 웃었다. 노 대표는 “(정 의원이) 한나라당에서 가장 소통 잘하고, 개방적이고, 문화 예술에 조예가 깊다. 저도 배운 게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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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한신대 교수

<소통기획위원 평가>
ㆍ노동운동·정책문제 대립땐 특정 사실 회피·침묵
ㆍ정당노선 대변하는 정치인으로서의 한계 보여

시간이 흐르면서 경향신문 소통 특집의 성과가 가시화하고 있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확장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는 소통을 우리 시대의 화두로 만들고 있을 정도다. 경향신문의 기획 의도가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포착한 것이다. 일차적으로 소통은 당사자들의 합의나 동의를 반드시 의미하는 건 아니며, 어떤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되 접점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만나고 차이점에 대해서는 서로 존중하는 태도로 정의할 수 있다. 노회찬·정두언 좌담은 이런 소통의 기본정신에 비교적 충실한 토론이었다고 생각된다. 둘 다 자기 진영에서 합리적인 인물이라는 점도 좌담의 생산성을 높였다.



좌담이 순조롭게 진행된 다른 요인은 두 사람 모두 민심의 흐름을 민감하게 의식할 수밖에 없는 직업정치인이라는 데서 비롯된다. 사회 현안에 대한 정치인의 공식적 견해는 지지층의 견해를 반영하게 마련이며 두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국민여론이라는 큰 틀 안에서만 운신이 가능할 뿐이다. 이건 인기를 먹고 사는 대중정치인의 운명이다. 그 결과, 제도정치권 안에서 가장 급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진보신당의 ‘스타 정객’인 노회찬 전 의원은 진보신당의 원칙과 정강을 상당히 순화(또는 변형?)시킨 입장을 취하고 있다. 가장 보수적인 정당인 한나라당의 ‘차세대 유망주’ 정두언 의원도 한나라당 소속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들릴 수 있는 파격과 과격의 언어를 구사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이들이 스스로의 정치적 미래를 염두에 두고 발언의 파장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적 태도와 외교적 수사(修辭)가 산출하는 효과는 이중적이다. 한편으로 좌담이 부드럽게 진행되고 상호 접점이 확대될 수도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좌담에 임하는 논자의 지적 정직성이 훼손되는 부담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예컨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서 이들이 쉽게 동의할 수 있었던 것은 진정성의 표출이기도 하겠지만 평가의 정치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어서일 수도 있다.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의혹이나 임기가 보장된 공공기관장 쫓아내기 등 이명박 정부의 ‘오버’에 대해서 양자의 공감대가 쉬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차기 선거에서의 당선 여부가 정치생명을 좌우하는 직업정치인의 특성상 여론의 향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다. 여론이 곧 정치현실의 일부이므로 직업정치인이 그것을 중시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여론 자체가 즉자적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원칙은 정치의 근본이지만 때로 민심은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좌담이나 토론에서 관철되는 담론의 원칙은 다중의 위력보다 논변의 일관성과 설득력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담론의 논리와 정치의 논리는 날카로운 긴장관계에 서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여론정치일 수밖에 없는 민주정치의 근원적 딜레마를 함축한다. 노회찬·정두언 좌담은 이런 딜레마에서 자유롭지 않다.


특정 정당의 노선을 반영하는 정치인으로서 양자의 입장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면서 동시에 이 좌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에 대한 각자의 상이한 해석이다. 노 전 의원은 노동운동이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편향을 견제함으로써 사회적 차원에서 노동의 유연화라는 망국병을 저지하고 있다며 전투적 노동운동의 정당성을 역설한다. 이에 반해 정 의원은 과격한 강성노조가 조직원의 이익에 집착한 결과 노동의 유연성이 담보되지 않아 비정규직 문제나 소득 양극화 등이 더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노동현실에 대해 정반대의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두 사람은 양보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둘 다 일면적인 얘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강력한 노조가 진보운동의 견인차였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대기업·공기업 노조의 이익은 대다수 중소기업 노동자의 이익과 더 이상 함께 가지 않는다. 갈수록 증가하는 실직자나 구직 희망자들에게 대기업·공기업 노조는 배타적 기득권의 성채일 뿐이다. 노 전 의원은 이 부분에 대해 침묵한다.

노동 유연성의 확보가 탄력적 시장경제의 기초라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적 안전망이 태부족인 우리 상황에서 이런 원론은 공허하게 들린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의 원칙을 대기업과 공기업부터 잘 지키지 않는 현실에서 노동구조 왜곡의 큰 책임은 자본에 먼저 묻는 게 순리일 것이다. 정 의원은 이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

두 사람이 왜 이런 태도를 취할까. 진보신당은 대기업·공기업 노조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데 반해, 한나라당은 대기업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데서 나온다는 게 내 추측이다. 이 부분에 대해 두 사람이 좀 더 솔직한 태도를 취하면서 역지사지했더라면 더 생산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민주노동당 창당 주역 17대 총선때 국회 입성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고교 1년 때인 1973년 ‘박정희 타도’ 유인물을 제작·배포하다 이듬해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수배됐다. 대학 입학 이후에는 노동운동을 했다. 82년 고려대 졸업식에 가지 않고, 용접기술을 배웠던 서울기계공고 부설 직업학교 졸업식에 간 일화도 있다. 서울·부천·인천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다 87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을 창립, 2년 뒤 구속됐다.

민주화 이후에는 진보정당 건설에 매진했다. 97년 국민승리21 기획위원장을 지냈고 민주노동당 창당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17대 총선 때 국회에 입성, 권영길·심상정 의원과 함께 ‘진보정치 3인방’으로 불렸다. 2007 대선 이후 민노당 내 자주파의 친북 및 패권 문제를 지적하며 탈당,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
행정고시로 공직 입문 서울 정무부시장 지내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했다. 정무장관실, 국무총리실 등을 거쳤다. 17대 총선에서 탄핵 바람을 뚫고 2000여표 차로 당선됐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정무부시장을 지냈고, 17대 대선 때 전략기획 총괄팀장을 맡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지난해 ‘권력 사유화 발언’ 등으로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갈등했다. 올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 때도 지도부 완전 퇴진 등 강경 쇄신을 주문하며 청와대와 대립했다.

‘끼 있는’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당구장을 운영한 부모 덕에, 초등학교 5학년 때 당구실력이 200점이었다. 공직에 있을 때 KBS 드라마 배우공모에 응시한 적도 있다. 음반을 3장 냈고, 트로트 음반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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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목·유희진기자 jomo@kyunghyang.com

ㆍ노회찬 “토마토밭 없애 만든 갈대밭 국민이 원하는 4대강일까요”
ㆍ정두언 “일자리·환경 다 고려한 거죠. 친기업도 ‘친서민’ 될 수 있어”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국민소통위원장(이하 정두언)=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이로니컬하게 서로를 필요로 했던 것 같아요. 김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이 있어서 진가를 발휘하고, 정치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도 김 전 대통령의 견제가 있었기 때문에 더 험악한 독재로 가는 데 제동이 걸렸다고 봐요. 두 분이 역사적으로 화해하는 게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왼쪽)와 한나라당 국민소통위원장인 정두언 의원이 지난 19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강윤중기자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이하 노회찬)=역사의 화해는 진실이 가려진 토대 위에서 가능하죠.

정두언=동의합니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의 공(功)을 더 인정하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지난 정부 10년의 이야기도 해보죠. 우리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화두를 써서 재미를 좀 봤어요. 그만큼 과(過)가 많았다고 봅니다. 물론 공도 있고요. 김대중 정부는 수평적인 정권 교체를 이루었고, 노무현 정부는 권위주의를 파괴했죠.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도 미숙한 점이 많았어요. 좌우 양날개로 국가를 끌고가는 게 없었죠.

노회찬=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민주화, 남북 대화협력 등은 평가할 수 있고요. 다만 민주주의가 확대되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소통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10년’에 서민들은 잃어버린 게 많습니다. 한나라당은 대권 말고 잃은 게 없었죠.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47%가 정부와 국민 사이에 소통이 안된다고 답했어요.

정두언=어느 정부나 안된다로 나올 것 같아요. 이명박 정부만 그렇다고 인정하긴 힘들죠. 작년에 대통령도 노력하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느끼는 국민이 없었습니다. 제가 소통위원장을 하면서도 편가르기, 불신의 벽을 많이 느껴요. 지역·세대·이념으로 갈라지면 무조건 불신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단절이 있어요.

노회찬=소통 노력을 안한다고 보지는 않아요. 부족하죠. 대통령이 일주일에 시민 100명씩을 만나는 것 같은 형식 문제가 아닙니다. 불통은 내용의 문제죠. 국정운영 방식에 크든 작든 변화가 필요하다는 요구예요.

정두언=최근 내용적 변화도 많이 시도하고 있습니다. 중도실용은 서민·중산층에게 우선순위를 두는 거죠. 정권 초기 어려움을 겪다 보니까 정신이 없어 우선순위를 못 둔 거 같아요. 이제 초점을 맞추니까 대통령 지지도에도 반영되는 것 같아요.

노회찬=이 대통령이 이문동 시장에 갔을 때 한 이야기 중 경제가 어려워지면 서민 살림살이가 제일 먼저 어려워지고 경제가 좋아져도 서민 살림살이가 가장 늦게 좋아진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문제는 올 상반기까지 부자들 세금 깎아주는 정책이 많이 나왔어요. 어느 나라든 경제위기 때는 서민 복지를 늘립니다. 그런데 예를 들면, 4대강 정비사업 때문에 내년도 국토해양부 예산 중에서 서민임대아파트 몫을 40% 줄였어요. 중산층·서민 지향적인 입장 천명과 실제 정책 차이가 너무 크지 않나요.

정두언=
감세는 경기 부양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요. 그 효과를 지금 거두고 있어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잘 버틴다고 평가받지 않습니까. 4대강 자체도 경제 살리고, 일자리 만드는 데 필요한 정책이죠. 서민 예산 축소 비판이 나오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반0드시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직접 보고를 받아보면 그렇지 않다고 하거든요.

노회찬=4대강 사업비 3분의 1을 가지고서도 얼마든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4대강은 포클레인으로 하는 거죠. 경제위기인데 최우선 사업인가요.

정두언=한반도대운하가 실패한 이유는 속된 말로 뻥을 쳤기 때문입니다. 땅 파고 물 채우는 운하도 아니었어요. ‘대’자가 붙으며 여론에 밀려 좌초됐습니다. 지금 한강을 보세요. 전두환 전 대통령 전에는 매년 홍수가 났는데, 저렇게 만든 뒤에 물이 맑아지고, 홍수도 안 나요. 지금 영산강, 낙동강은 하수구로만 써요. 한강처럼 만드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어요. 매년 홍수 피해 복구 예산이 5조원 정도예요. 그걸로 하면 무리한 사업도 아니죠.


노회찬=4대강에서는 홍수가 안 나요. 작은 개천 범람이 있을 뿐이죠. 금강 유역에 우리나라 토마토 생산의 3분의 1을 해내는 지역이 있는데, 4대강을 하면서 갈대밭으로 만든다고 해요. 가을에 사진찍는 것 말고 용도가 없어요. 광활한 갈대밭을 갖고 싶은 게 국민들의 염원인가요(웃음).

정두언=워낙 이야기를 잘 하셔서, 설득력이 있어요(웃음). 4대강 문제는 일자리·환경 등 다목적이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노회찬=토건 산업을 통해서 고용 문제를 돌파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키자는 현 정부 정책 특유의 컬러가 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시장 중심의 경쟁 위주로 펴 더 강해진 강자가 전체를 먹여 살려보자는 게 신자유주의 노선인데, 그리 가고 있죠.

두언=신자유주의에 관한 한 저는 한나라당에서 마이너리티입니다. 10년 넘게 신자유주의가 마치 절대적인 진리인 양, 피할 수 없는 추세인 양 받아들여왔던 게 사실인데요. 반드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나라당 의원이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지만 제국주의 측면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 경제 규모나 세계 속의 위치를 보면, 신자유주의를 피한다고 생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자신이 없어요.



<정두언 “교육청이 극우 불러 특강할 땐 ‘세상에, 일을 하잔 거냐’ 싶어”>

노회찬=강자가 나머지를 먹여 살린다는 말은 솔깃한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10년간 검증했는데, 약자가 더 많아졌어요. 예를 들어 대형 유통마트도 없앨 수 없죠. 원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것 때문에 재래시장 상인들이 다 죽어야 한다는 건 곤란하죠. 대형 유통, 재래시장, 동네마트의 공존, 즉 강자와 약자의 공존은 저절로 안 되죠.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그게 불가능하니까 정부 역할이 필요하죠.

정두언=
신자유주의와 친기업주의를 동일선상에 놓고 말씀하시는데 그건 구분해야 합니다. 선진국이, 사다리 걷어차기 표현도 있지만, 유리한 경제체제를 만들어 다른 나라에 강요한 거란 점에서 되돌아봐야 하지만, 독자적으로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느냐도 생각해야 합니다.

노회찬=지구화 시대에 홀로 살 수 없죠. 특히 우리나라는 무역 의존도가 대단히 높습니다. 그리고 친기업에 반대 안 합니다. 다만 친중소기업 하고, 강한 중소기업이 뿌리 내리게 해야죠. 대기업은 고용 못하지 않습니까.

정두언=국정 운영을 하다보면,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배분해야 하니까 힘들어요. 서민·중산층에게 자원을 집중하다 보면 성장이 문제를 겪어요. 경제가 어려워지면 서민부터 어려워지고요. 이율배반적인 구조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런데 과거 정부는 서민 위주의 예산 배분을 했는데, 서민들이 많은 덕을 봤냐는 거죠. 친기업도 친서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노회찬=친기업은 반노동, 친노동은 반기업이라는 도식으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면, 친기업 자체가 나쁘지는 않아요. 다만 수출이 4000억달러에 이를 정도로 늘었는데, 일자리 창출에 미치는 영향력은 적습니다. 내수 시장이 잘되어야 합니다. 10년 사이 비정규직이 2배 늘었는데, 구매력이 떨어진 건 분명하지 않습니까. 덜 사고, 덜 팔리고, 공장 가동률 떨어지는 악순환을 뭘로 해결합니까. 수출이나 4대강으로 해결 안 됩니다. 노동시장 유연화와 관련한 신자유주의에 일대 전환이 필요합니다.

정두언=분배 쪽에 관심을 갖는 진보신당이 집권해 실제 그렇게 하면 나라가 정말 온전할까요. 서민에게 도움이 될까요. 노동시장 유연성만큼은 양보할 수 없고요. 노동시장이 유연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양산됐다고 굳게 믿고 있어요.

노회찬=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0%밖에 안 됩니다. 노동시장 유연화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르게 진척되다 보니까 비정규직이 많아지고,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자영업에 너무 몰려서 비대화되는 거 아닙니까. 또 노사관계를 보면, 동반자라고 하지만 존재를 인정하는 경우가 참 드물어요. 쌍용차 사태 때는 사용자가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겠다고 말합니다. 반 헌법적 발상입니다. 존재가 부정당하니까 극한적으로 대항할 수밖에 없죠. 국민이 부러워하는 나라를 보면 노동이 강합니다. 노조 조직률 높고, 사회적 영향력·책임감도 큽니다. 문제가 있다고 해서 없애고, 약화시킨 나라는 빈부격차가 더 커지고 있어요.

두언=없애라는 건 잘못이죠. 그러나 지금 같아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겁니다. 좌우 문제도 짚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진보·보수는 상대적 개념입니다. 중국에선 자본주의가 진보죠. 좌우도 선악 개념 없이 객관적으로 봐야죠. 게다가 ‘개혁 대 보수’라고 쓰니까 정치가 더 혼란스럽죠. 북한 정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진보이고 좌파가 된다는 거죠.



<노회찬 “시장 시절 버스정책 칭찬할만 대통령 된 후 서민정책 아쉬워”>

회찬=좌파, 진보가 곧 친북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전쟁 이후 남북 대립이라는 환경 속에서 정치적 반대자에게 ‘너 빨갱이지’하면서 친북 좌파 딱지를 붙인 것이고, 그 영향이 남은 겁니다. 친자본의 경제정책 노선이면 보수이고, 친노동 노선이면 진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에 진보가 너무 적어요. 범보수 안에는 민주당도 들어가고요. 균형이 맞게끔 왼쪽이 좀 더 커져야죠.

정두언=
왼쪽이 너무 커진 거죠. 이 대통령이 시장할 때 했던 것 중에 청계천보다 교통정책이 더 훌륭했다고 봐요. 전형적인 좌파 정책이거든요. 사유화된 버스노선을 뺏어 와서 공유화한 거죠. 그렇다고 이 대통령이 좌파냐는 거죠. 시민을 위해 필요하면 이 정책도 쓰고 저 정책도 쓰는 거죠. 이념 틀에 얽매일 필요가 있나요.

노회찬=버스정책은 박수 치고 싶은 정책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실익을 주는 공공정책이었죠. 족보로 치면 좌파 정책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념 대립은 지양해야죠. 그러나 지금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이념지향적이지 않나요. KBS 사장 임기 남았는데 무리하게 해서 법원에서 문제 있다고 판단하지 않았나요. 진중권 교수도 눈엣가시처럼 보였을지 몰라요. 이념적 경향이 다르다면 사안에 관계 없이 내치는 경향이 있지 않나요. 국방부 장관이 병영 내에 붙인 불온서적 리스트 같은 난센스가 과도하게 이념적 긴장을 유발하고 대립을 초래하는 거죠.

정두언=아픈 예만 잘 짚어서 이야기하셨는데, 개인적으로 저도 불만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교과서 문제는, 저는 좌편향이 아니라 북편향됐다고 보거든요. 북한 교과서 비슷해요. 그렇긴 한데 교육청에서 현대사 특강을 하면서 극우라 불리는 사람들을 불렀어요. 제가 ‘세상에, 일을 하자는 거냐, 말자는 거냐’ 했습니다. 달게 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노회찬=국회나 정당 문제를 살펴보죠. 국민이 가려워하고 어려워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의석이 많다는 걸 앞세워 무리하면 다른 법안인들 논의할 필요가 있나요.

정두언=협상이 안 되면 표결로 가야 하는 게 상식인데, 그게 안 돼요. 정치 실종이고, 국가적 큰 위기입니다. 정치권에 와서 보면 자기는 다 옳고 상대는 다 틀렸어요. 진보진영에 있는 사람들이 더 그래요. 뭔지 모르는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고 버러지 보듯 호통치고 말이죠.

노회찬=정당과 시민 간 소통 문제를 보면, 시민들이 선출된 이들을 신뢰하지 않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어요. 선거제도 문제입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자들이 평균 45%로 당선됐다면, 55%는 원하지 않은 사람이 국회의원이 된 겁니다. 사표를 줄이고 크고 작은 목소리들이 국회에 선출돼 권력에 반영되는 게 중요합니다.

정두언=이 대통령께서 8·15 경축사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한 것도 그런 의미라고 봐요. 요즘 정당은 시대에 안 맞는 것 같아요. 당 대표, 당 대변인, 사무총장 있는 구조, 지금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정당 구조는 60년대 김종필 전 총리가 만든 거예요. 요즘 누가 정당에 자기 의견을 반영하려 합니까. 지금 구조로는 국민 목소리를 담아낼 수 없다고 봅니다. 진보정당 구조를 벤치마킹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노회찬=용산참사는 장례식도 못한 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런 걸 군기 잡는 사례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불쌍한 사람들이 망루에 올라갔다가 더 불쌍해진 사태 아닙니까.

정두언=명실상부한 서민정책은 없어서 밥을 굶거나 교육을 못 받거나 치료를 못 받는 사람이 없는 나라를 만드는 거죠.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선진국을 만들려면, 법치주의가 가장 중요합니다. 용산참사는 법치주의에 배치되죠.

노회찬=법치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법의 결함 문제도 있습니다. 법이 허술해서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올라간 측면이 있거든요. 뭐 그리 대단한 범법을 했습니까. 과잉 진압 과정에서 사람 목숨까지 잃었는데, 미안하다는 말도 못합니까.

정두언=쌍용자동차 사태 때 민노당 강기갑 의원이 앉아 있을 때 노조원 부인들이 제발 가달라고 한 걸 생각해봐야 해요. 국민들도 사태를 냉정하게 본다는 걸 인식하면 좋겠어요. 소통은 상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인데, 나눔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력이 ‘전부 아니면 전무’ 게임이다 보니 갈등이 너무 격화돼요. 민주노동당에서도 장관이 나와야 해요.

노회찬=국민 여론, 특히 많은 쟁점에 대해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경청해야 합니다. 소통 상대를 기무사가 사찰한다든가 이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공안기관들이 눈에 띌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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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기자

ㆍ대담 어땠나

진보진영의 대표적 이론가인 손호철 서강대 교수와 김호기 연세대 교수의 대담은 “잘 아는 사이”라는 김 교수의 인사말처럼 별다른 인사도 없이 멋쩍은 미소로 시작됐다. 목소리를 높이지도, 격렬한 대척점도 없었지만, 두 사람의 ‘소통’은 내내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진행됐다. 여태껏 진행된 어느 대담보다 웃음은 적었고, 말은 풍성했다. 두 사람의 대담은 지난 14일 오후 경향신문사에서 세 시간 동안 진행됐다.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정치학자와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회학자의 만남은 한국사회 두 진영 간의 좌표만큼이나 가깝고도 멀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우리 사회 소통의 중요성을 생각 못했을 텐데 대통령이 큰 기여를 했다”(손호철 교수), “이명박 정부가 의도하지 않은 선물을 준 셈”(김호기 교수) 같은 우스갯소리도 대담이 본격화되면서부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두 학자는 범진보진영 간의 소통부재나 연대의 문제, 진보진영의 분화와 위기 등을 두고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그만큼 또 자주 부딪쳤다.

김 교수가 “범진보진영의 연대를 위해서는 비(非) 신자유주의 민주최대정치연합 등이 모색돼야 한다”고 주장하자 “결국 민주당을 해체시켜야 되는 거 아니냐”며 손 교수가 틈새를 노렸다. “민주당은 말로만 연대를 주장하지 진보진영과 진지하게 소통하려는 노력이 없다”는 손 교수의 비판에는 “정통 진보세력이 현실적 조건은 고려하지 않고 너무 원칙만 강조하다보니 아쉬움이 누적돼 불신이 쌓인 것”이라는 김 교수의 반격이 이어졌다.


두 사람의 토론은 세 시간을 빠듯하게 채우고 나서도 쉬지 않고 이어졌다. 손 교수가 시계를 쳐다보면서 “이 이야기를 아직 못했는데…”라며 아쉬워하자, 김 교수는 뭐가 문제냐는 듯 챙기던 서류를 주섬주섬 다시 풀어 토론을 이어가기도 했다.

공식적인 대담이 끝난 뒤에도 두 사람은 곧장 자리를 뜨지 않고 한참 동안 이런저런 ‘세상이야기’를 하며 담소를 이어갔다.

김 교수가 “손 교수님과 학문적 성향은 비슷한데 현실적 지형은 좀…”하고 말끝을 흐리자, 손 교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다 “얼른 민주당 좀 좌경화하는 노력 좀 하시라”는 뼈 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안토니오 그람시와 니코스 플란차스처럼 (손 교수는) 저에게 중요한 이론적 자원이고, 제가 알고 있는 한 저도 선생님께 중요한 이론적 자원일 것”이라는 김 교수의 너스레에 손 교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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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목·이호준기자




대담 평가 설문에 응한 경향신문 소통 기획위원 4명은 손호철 서강대 교수와 김호기 연세대 교수의 대담에 대해 “소통이 잘됐다”는 평가를 내렸다. 개혁진영과 진보진영 소속 지식인 간 성찰·반성을 전제로 한 진보진영의 갈길이 모색됐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각론에서 진보주의 시각 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두 사람의 대담은 소통이 잘되었다고 생각된다”며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의견대립이 팽팽한 부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인식을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문제는 두 사람은 서로 충분히 이해하고 소통하고 있지만 대담을 읽는 사람이 두 사람의 대담을 이해하기 쉽지 않은 점이 있다는 것”이라며 “무엇보다 모든 사안을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등 진보주의자들의 관점, 또는 진보주의 프레임에서 설명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부사항에서의 이견을 보면 다소 완고한 사회주의와 다소 유연한 진보주의의 차이가 느껴진다”고 평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그동안 보수와 진보는 각각 서로를 지적하며 불통의 책임을 묻는 경향이 있었다”며 “그러나 이번 대담은 진보가 진보를 바라보며 소통 부재와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 고조의 원인을 찾아보려고 했다는 점에서 신선하면서도 솔직한 자리였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줄곧 야당 신세로 머물렀던 과거 시대와는 달리 지난 10년간 집권을 했던 진보진영의 정책에 대한 평가를 통해 현 정부의 어려움과 문제점을 되돌아보려는 시각도 높이 평가할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이런 점은 변화하는 정치 현실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진보 세력이 새로운 대안 세력으로 등장하기 위해서도 매우 필요한 점”이라며 “뼈아픈 자기 성찰의 기회를 통해 진보진영부터 스스로를 열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두 분 다 합리주의자이면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정치운동에 대한 성찰을 전제하고 논의를 진행했다”며 “실천지향적 이론가로서의 확신과, 자기 진영에 대한 냉철한 자체 반성이 결코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좌담”이라고 평했다. 윤 교수는 “지식인이 빠지기 쉬운 자기확신의 과잉이 독선과 독단으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입장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를 항상 실험하는 태도가 요청된다”며 “이 대담은 이에 근접한 경우였다고 생각된다”고 했다. 그는 “소통이 반드시 합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고유한 입장을 선명하게 밝히고 그것의 객관적 정당화를 위해 최대한 노력한 뒤 접점은 확대하되 이견은 존중하는 게 소통의 공식”이라며 “이 좌담은 진보진영 내부의 지형과 분화, 문제의식과 전망 등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진솔하고 계발적인 토론이었다”고 말했다.

지만 “두 분의 화두는 결국 ‘진보개혁진영’의 헤게모니 즉 그람시적인 의미로 ‘시민들의 자발적 지지와 동의에서 나오는 주도권’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로 귀결되는데, 별다른 처방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조흡 동국대 교수는 “그동안 소통 특집 대담을 통해 보여준 것은 어느 한 진영과 다른 진영 사이의 이견을 제시하고 어떻게 이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며 “그러나 이런 노력에서 부족한 것이 있다면 소통의 진정한 주체가 누구인가의 문제를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한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대립하는 진영들의 공통분모를 도출하는 것이 최선의 소통방법이라는 전제에서 기인한 결과라고 할 수 있고, 이는 또한 소통의 진정한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일반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관한 고민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소수 엘리트의 정치철학만을 일방적으로 나열하고, 이를 반대하는 진영의 논쟁적인 또 다른 의견과 어떻게 타협할 것인지가 소통 문제의 주된 관심사였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 대담이 돋보이는 것은 소통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노동조합, 사회적 약자, 남북관계 등과 같은 다양한 이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자유진영과 진보진영 사이의 소통 문제를 다루면서 이를 진영 간의 차이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각 진영과 시민 사이의 소통적 층위에서 대안과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김호기 - 민주당 비판적 지지 ‘중도 진보’성향 사회학자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취임사 준비위원회 위원을 지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지식인이다. 열린우리당, 민주당에 이르기까지 현 야권의 외곽에서 정치담론 형성의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친민주당’이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비판적 지지자다. ‘중도진보’ 성향인 그의 민주당에 대한 관심은 중도 또는 보수를 오가는 민주당의 불안정한 좌표를 진보 쪽으로 옮기는 데 있다. 최근에는 ‘비(非) 신자유주의’론을 내세우고 있다.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을 지내고, 1990년대 시민사회운동 담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좋은정책포럼 운영위원장을 맡는 등 민간싱크탱크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독일 빌레펠트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손호철 - 71년학생운동 ‘71동지회’ 진보신당 지지 정치학자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서울대 문리대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1971년 10월 제적당한 바 있다. 많은 이들이 사회 진출과 함께 학생 시절의 진보적 관점을 포기하지만, 그는 일관된 진보주의자로서 활발하게 진보담론을 생산하고 있다. 71년 박정희 정권의 위수령으로 제적당하거나 강제징집된 ‘71 동지회’ 중 대다수가 중도·보수로 전향한 것과 대비된다. 민교협과 교수노조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정치적 실천도 병행하는 대표적 진보 지식인으로 꼽힌다. 보수진영은 물론 진보진영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도 가차 없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미국 텍사스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정치연구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이사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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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목·이호준기자

ㆍ김호기 “비(非)신자유주의로 뭉친 진보연합 어떤가요”
ㆍ손호철 “민주당을 쪼개야 할텐데 가능할까요(웃음)”


 손호철 서강대 교수(오른쪽)와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지난 14일 경향신문사 앞에서 대담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손호철 서강대교수(이하 손호철)=경향신문의 소통 시리즈는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해요.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 사회에서 소통이란 화두를 생각하게 하는 데 공헌을 했다고 봅니다(웃음). 그렇지만 진보진영은 MB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소통을 잘했는지 자성할 것도 있습니다. 진보진영은 입은 두개이고 귀는 하나였지 않나, 남의 이야기를 잘 들었나 하는 자기 반성도 해야 합니다. 저 역시 진보진영 안에서도 소수파의 소수파로서, 소수자 측면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얘기를 듣기보다 말을 많이 하면서 부작용을 낳은 거 같기도 합니다. 진보진영 전반의 문제를 보면, 소통으로 해결될 건 아니라고 보지만, 고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보진영 간 소통 문제는 3가지일 텐데, 진보진영과 자유주의적 개혁진영 간 문제, 즉 김대중·노무현 지지세력, 민주당과 급진 진보진영 간 문제가 있고요. 두 번째는 진보진영 내부 NL인 민노당, PD인 진보신당과 더 좌파적인 노동자의 힘 등 간의 정파간 문제, 셋째는 진보 진영과 일반대중의 문제가 있는데, 이게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무엇이 다르고 같이할 수 있는 게 뭔지, ‘차이와 연대’를 구성할 핵심적 부분이 바로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이하 김호기)=
노무현 정부 때까지는 소통이 큰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국정 운영에서 과거 방식, 즉 법치를 앞세운 권위주의적 통치로 회귀하면서 소통 문제가 중요하게 부상했습니다. 지난해 봄 촛불집회의 핵심 요구도 소통이라고 봅니다. 선거나 투표로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 이른바 대리인인 정부가 주인으로 행세하려 하고 주인인 국민과 소통을 안 하려다 빚어진 문제죠.

손호철=노 대통령 때도 소통 문제는 심각했다고 봐요. 노무현 정부도 진보진영과 불통한 정황이 있습니다. 집권 초기 이라크 파병 문제로 갈등할 때 제가 민교협 공동의장이었고 이라크 파병반대 공동대표였어요. 여러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청와대 핵심 관계자와 만났는데, ‘여러분 죄송하다. 개혁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이상만 가지고 할 수 없다. 이해해 달라’고 하는 게 올바른 태도라고 보는데 만나자마자 ‘알 만한 사람들이 돕지 않고 왜 반대하나. 왜 조중동같이 하나’라고 삿대질만 하는 거예요. 자신들은 개혁의 수호신이고 반대는 악이라는 오만한 태도가 불필요한 갈등을 키웠습니다. 2003년 즈음 1년에 노동자 8명이 죽음으로 저항했는데 노 대통령은 “민주화시대에 아직도 독재투쟁이냐”며 화부터 냈어요. 이런 태도가 이른바 자유주의적 정권과 진보진영의 골을 심하게 만들었어요.

김호기=노 정부가 처음에 탈권위를 추진하면서 국민참여수석실 같은 걸 만들었는데요. 적어도 일반시민, 시민사회와 소통 노력은 했다고 봐요. 물론 그늘도 컸죠. 자유주의 세력이든 진보세력이든 크게 보면 민주화 세력이어서 최소한의 신뢰가 있었는데, 노 정부 출범 이후 서서히 약화되다가 집권 후반기에 깨졌다고 생각합니다. 개방 문제가 간단치는 않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신뢰에 금 가게 하는 결정적 계기였죠. 소통하려 했지만 결국 불통 정부로 귀결된 양면을 함께 봐야 하지 않을까요.

손호철=정책적 내용 문제와 소통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연정이나 한·미 FTA는 정치적·정책적 내용도 문제였지만 어떤 소통의 과정을 거쳤느냐도 문제죠. 순수 가정으로 대연정이나 FTA를 펼 수밖에 없다고 인정해도 어떤 방식으로 국민을 설득했는가를 보면 잘못됐다는 거죠.

김호기=최근 논의되는 ‘반(反) 이명박연대’에는 두 가지 문제의식이 담겨 있어요. ‘민주 대 반민주’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가 그것이죠. 이 정부 출범 이후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기 때문에 범진보진영 내 민주 대 반민주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요. 그러나 신자유주의, 반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라요. 신자유주의가 위기 또는 전환기인데, 민주당의 어떤 그룹은 신자유주의적 성향을 보이고 다른 그룹은 반대합니다. 미디어법은 진보와 자유주의 세력이 연대합니다만, 쌍용차 사태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에는 상당한 아쉬움이 있어요. 반 이명박 정부 연대에서 첨예하게 차이가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손호철=반 이명박연대 이름만 같이 걸었을 따름이지 소통을 통해서 반MB의 내용을 채우는 노력은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아요. 쌍용차, GM대우 모두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해외매각한 겁니다. 민주당이 국민과 소통하려면, 잘못 팔아서 미안하다는 사과성명을 발표해야 한다고 봐요. 지난번 부평을 재보궐 선거도 보면, 진보진영이 반 이명박연대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한·미 FTA본부장에게 공천을 줬단 말이죠. 이러니 소통이 되겠어요.

김호기=노 정부나 열린우리당의 경우를 돌아보면 현실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고 봐요. 대표적 사례가 천성산 터널공사인데, 자유주의 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진보진영이나 시민단체가 너무 원칙적이고 유연성이 부족했다는 아쉬움을 갖습니다. 논란이 된 비정규법안을 주도했던 열린우리당이나 노 정부의 의도 자체는 선한 것이었죠. 자유주의 세력이라고 모든 걸 정략적으로 추진했던 건 아닙니다. 진정성을 갖고 추진한 이슈, 대안들도 있거든요. 부평을은 문제가 있었어요. 세계화와 함께 진보세력은 불가피하게 분화될 수밖에 없는데, 연대의 제1원칙이 소수세력에 대한 배려입니다. 지난해는 좌절했지만 주경복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사례나 올해 나름대로 연대에 성공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후보의 사례는 주목할 만한 것이죠.

손호철

손호철=김상곤 교육감 당선은 정당선거가 아니라서 가능했던 거예요. 또 다수파의 정치적 기계에 소수파 후보를 얹힌 게 특징이죠. 서울시장 후보에 노회찬 대표를 얹힌 거나 마찬가지예요. 이러면 연대가 가능하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죠. 다수파 양보가 필요한데 이게 한국 정치에서 가능할까요. 공은 민주당에 있는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김호기=자유주의 세력과 진보세력의 공통분모도 많아요. 감세, 민영화, 정부 역할 감소에는 같이 반대하거든요. 개방에는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진보세력이 대안적 세계화에 초점을 맞춘다면 자유주의 세력은 현재 세계화를 적극 활용하자는 겁니다. 토론하면 합의를 이뤄낼 수 있다고 봐요. 문제는 소통의 방법인데, 두 진영 모두 가치를 지향하면서도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권위적 태도를 가진 거 같아요.

손호철=자유주의 세력과 진보진영 간의 소통을 통해 차이를 확인하고 연대틀을 가져야 하는데, 국회 내에 일종의 진보블록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봅니다. 꼭 민주당내 좌파가 떨어져서 민노당, 진보신당과 합치는 식이 아니라, 합의할 수 있는 노선이나 신자유주의 태도 등에서 같이 할 수 있는 민주당내 진보세력과 바깥의 진보정당을 합쳐서 초정당적인 범진보블록을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김호기=선거가 도래하기만 하면 정계개편을 모색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다분히 정략적인 문제의식도 담겼고요. 진보진영 연합이나 정계개편을 위해서는 가치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이명박 정부 반대를 위한 정계개편이라면 일시적일 뿐이죠. 정계개편보다는 ‘경쟁적 연대’가 오히려 의미 있다고 봅니다. 정책블록을 형성하면서도 경쟁할 건 경쟁하는 걸 제도화하는 게 중요합니다. 자유주의 세력은 사회적 약자 보호가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과제라고 생각한다면, 신자유주의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은 자유주의 세력이 회피하고 있어요.

손호철=신자유주의를 본격화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입니다.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으로 파탄난 이상 김 전 대통령이 ‘그때는 불가피했는데, 문제점이 많다. 자기 성찰을 해서 새로운 정책을 모색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경쟁적 연대는 필요한데, 자꾸 정당 간 단위가 되거든요.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간 경쟁과 연대는 이뤄져 왔는데 한계가 있다고 봐요. 민주당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정당 단위를 넘어서야 합니다.

민노당 분열 문제도 워낙 다르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도 있어요. 톨레랑스라는 화두를 한국 사회에 던진 홍세화씨가 이른바 종북주의, 패권주의 문제와 관련해 제일 먼저 ‘종교집단과 같이 할 수 없다’며 민노당을 탈당했어요. 관용과 소통으로 해결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본 것이지요.

김호기=독일의 사회민주주의 학자 울리히 벡은 최근 서유럽 좌파의 흐름을 보호주의적 좌파, 개방주의적 좌파로 나누는데, 분화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분열이란 말은 적절치 않다고 봐요. 더불어 진정한 톨레랑스 중 하나는 불관용을 고수하는 겁니다. 북한 문제를 파악하는 데 인권 문제를 포함해 객관적인 시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호기

손호철=진보진영 소통 문제 중 또 하나는 대화가 아니라 전부 독백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된 역사적 이유는 이해하지만 다시 한 번 소통의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김호기=시민사회와의 소통이 활발치 않아요. 지난해 촛불은 단적인 사례인데, 시민이 직접 정부에 요구하는 일종의 직거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국민과의 소통 문제에서 한국 민주화, 사회운동의 한 사이클이 마감되는 것 같아요. 최근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본격화되면서 일반 시민이 겪는 어려움이 달라졌어요. 일자리 창출, 노후, 교육, 주거, 식품 안전, 건강 문제에 대해서 진보적 정치, 시민단체의 대안은 취약해요. 시민적·국민적 눈높이에서 진보적 대안을 만들고 설득하는 게 시민과의 소통 증대에 중요한 과제라고 봐요.

손호철=진보진영과 대중의 소통에서 취약한 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관념성인데, 대중에 다가가는 방식이 ‘너무 래디컬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우경화만 한 거예요. 하지만 급진성과 관념성은 달라요. 대중적 소통을 잘한 게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었어요. ‘아파트 반값’ 이래야 래디컬한 거죠. 교육, 일자리, 노후 문제 등에 대해 구체적이고 래디컬한 대안을 제시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죠. 강의 설교식도 문제예요. 대중이 무엇을 생각하고 괴로워하는지를 읽으려는 귀가 안 열린 거죠.

김호기=87년 이후 민주화시대가 가능했던 이유는 개발독재 보수세력 헤게모니에 대해서 ‘민주화’라는 새로운 저항 헤게모니를 제시해 역사적 블록을 형성한 거죠. 그람시가 말했던, 헤게모니 고유의 정치적·지적·도덕적 지도력이 있었다고 봐요. 97년 외환위기 이후의 일자리, 교육, 주거, 노후, 건강 문제 등 5대 불안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안을 포함시킨 정치적·지적·도덕적 저항 헤게모니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게 안 만들어지면 보수세력의 실책으로 인해 권력을 잡아도 지난 자유주의 세력의 과오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큽니다. 정계개편이든 지방선거·총선·대선 대응이든 헤게모니의 재구성이 먼저 이뤄져야지, 정략적인 세력 재편만 모색되면 성공도 어렵고 성공해도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진보의 가치가 얼마나 실현될지 의심스럽습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민들레 연합’이라고 표현했는데요. 학술적 개념으로는 ‘비(非)신자유주의-민주 최대정치연합’이 모색돼야 합니다. 신자유주의에 동의하지 않고 민주주의가 우선시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든 정치세력이 최대 다수의 정치연합을 구축할 때 보수 정치세력과 맞설 수 있다고 봅니다.

손호철=그것은 민주당의 해체를 필요로 한데 가능하겠어요(웃음).

김호기=민주당이 신자유주의에 대해 명확히 입장 표명을 해야죠. 왜 ‘반’(反)이 아니고 ‘비(非)’냐면, 신자유주의도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시장의 효율성 같은 장점도 있거든요. 온건한 의미에서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비’라고 써야지, 모든 걸 거부하자는 ‘반’은 설득력이 높지 않다고 봐요.

손호철=문제의식은 알겠는데, 노무현 정부도 우리도 ‘비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의 좋은 부분만 받아들인 거라고 하는 거죠. 비신자유주의가 아닌 걸 어떻게 증명할 거예요. 노 정부의 좌파 신자유주의가 구체적 내용 속에서 어떻게 달라졌는가는 판가름나겠죠. 김 교수 톤으로 봐선 민주당 해체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죠.

김호기=
노동운동에는 명암이 존재합니다. 일각에서 민주노총을 집단이기주의로 몰아가는 것에는 동의 못합니다. 일자리는 가족의 모든 게 걸려 있는 거죠. 당장 아이가 대학에 가야하는데 양보가 쉽겠습니까. 임금이 높다고 지적하지만 중산층과 비교해 봐야죠. 노조의 불관용이 문제가 아니라 기업과 자본의 불관용이 더 큰 문제입니다. 자본과 기업이 노조를 대화의 상대자로 받아들이고 양보했는지가 더 큰 문제죠. 물론 사회적 성격을 강화하지 못한 건 아쉽죠. 비정규직 등 조합원 밖 노동자를 끌어안는 걸 경시해온 거 같아요. 더불어 노동운동은 공익적 사회운동인데 여성, 환경 등 다른 시민운동과 연대를 활성화 못한 거 같아요.

손호철=
쌍용차 사태가 끝나자마자 기아차가 임금 올려달라고 파업을 따로 했습니다. 노선은 우파이고, 전투적 경제주의만 있는 거예요. 사회운동적 조합주의로 가는 게 아니고요. 노동운동의 핵심은 연대인데, 이게 없는 게 심각한 위기죠. 지역 사회와의 소통도 실패예요. 성공하려면, 지역사회와 결합하지 않으면 안 돼요. 미국의 LA, 샌디에이고를 80년대 레이건 컨트리라고 했어요. 레이건의 텃밭이었어요. 그런데 2000년에 갔더니 노동운동 핵심 지역이 됐어요. 켄 로치의 <빵과 장미>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당연히 질 것으로 여겼던 빌딩 청소 미화원들의 파업이 커뮤니티의 연대의 힘으로 성공했어요. 또 LA는 못사는 사람만 버스를 타거든요. 버스 기사들이 파업하면 제일 큰 피해자는 흑인 빈민층이에요. 우리나라 같으면, 출근 늦는다고 난리일 텐데, 같이 피켓 들고 데모하는 거예요. 투표권의 힘, 지역구의 투표권력 문제와도 연결되는 거예요. 한국 노동운동은 커뮤니티 전략도 없었고, 국민과의 소통에도 실패했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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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기자 hjlee@kyunghyang.com

ㆍ조승수 - 전원책 대담 어땠나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과 보수논객 전원책 변호사의 대담은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번 대담으로 처음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덕담으로 첫 인사를 대신했다. 조 의원이 지난 4·29 재·보궐 선거에서 전 변호사가 자신에게 지지를 보냈던 일을 두고 “도와주신 데 대해 인사도 제대로 못드렸다”며 겸연쩍어하자, 전 변호사는 “제가 울산에 있었으면 한 표 찍어드렸을 텐데 아쉽다”는 말로 화답했다. 두 사람의 대담은 지난달 31일 오후 2시에 시작해 두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두 사람은 지난해 촛불집회에서부터 폭력시위, 종북주의, 미디어법, 친일청산, 군가산점, 북핵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두 사람 모두 ‘할 말’은 많은 듯했지만, 대부분의 사안에서 대립하고 흥분하기보다 차분히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상대의 주장에서 공통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 변호사가 “진보진영이 정말 건강하려면 종북하면 안된다”고 일갈하자 조 의원은 “체제를 가장 우선시하는 북한 정권을 옹호하는 종북주의는 진보주의가 아니다”라고 화답했고, “반공의 외피를 쓴 보수진영의 사익추구와 공포정치가 문제”(조승수)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진정한 보수는 사익추구나 독재옹호가 아닌 사회정의운동”(전원책)이라는 말로 호응했다.


다양한 주제를 놓고 토론하다 보니 첨예하게 엇갈리며 긴장감이 고조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긴장이 임계치를 넘기 직전에 재치있는 유머로 이를 소멸시키는 노련함도 보였다. 군가산점 문제로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전 변호사는 “알고보니 조 의원님이 정말 페미니스트”라며 치켜세웠고, 조 의원은 “저도 술 한잔 먹으면 마초 소리 곧잘 듣는 사람인데…”라며 받아쳤다. 또 “변호사님 같은 합리적 보수가 많아질까 두렵다”는 조 의원의 말에는 “저 같은 ‘꼴통’ 보수주의자를 너무 치켜세운다”(전원책)며 농담으로 받아넘겼다. 2시간 넘는 대담으로 이미 약속된 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두 사람 모두 아쉬움에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전 변호사가 아예 “언제 맥주 한잔 하면서 대담 2부를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재촉하자, 조 의원은 “진보가 지연(地緣)을 따지면 안되는데…”라면서도 “고향 선배님이랑 소주 한잔 하면서 진짜 이야기를 좀 하고 싶다”고 호응했다.




조승수 - 진보정당 소속 사상 첫 지역구 국회의원

1982년 학생운동을 하다 동국대에서 제적된 뒤 인천 한양공영에 노동자로 취직했으나 노조결성을 주도하다 해고·구속돼 두차례 옥고를 치렀다.
 
91년 민중당 활동을 시작으로 진보 정치에 입문했다. 95년 울산 시의원, 98년 울산 북구청장을 거쳐 2004년 17대 총선에서 한국 정치 사상 최초의 진보정당(민주노동당) 출신 지역구 국회의원이 되었다. 2005년 9월 선거법 위반 대법원 확정 판결로 의원직을 잃었다가 지난 4·29 재·보선에서 당선, 4년 만에 다시 국회로 들어왔다.

2007년 민노당의 대선 패배 이후 당내 강경 민족해방계(NL)의 ‘패권주의’와 ‘종북주의’를 정면으로 문제 제기, 민노당 분당과 진보신당 창당의 촉매 역할을 했다.






‘군가산점 폐지’ 반대… 대표적 보수논객 전원책

전 변호사는 2007년 한 방송토론에서 ‘군가산점 폐지’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제기하면서 보수논객으로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에는 400회 특집을 맞아 ‘최고 논객상’을 받기도 했다.

2007년 이상돈·유석춘·이주천 교수와 함께 ‘대한민국의 내일을 걱정하는 모임’을 결성하고 지난 대선에서는 선진당 이회창 후보 캠프에서 정무특보를 맡았다. 이듬해 선진당 대변인을 맡았으나 정치노선에 대한 이견으로 나흘 만에 사임했다. 지난 4·29 재·보궐 선거에서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 지지 의사를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1977년 연작시 ‘동해단장(東海斷章)’으로 한국문학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문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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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목·이호준기자 jomo@kyunghyang.com

ㆍ과거사·북핵·노동운동등 쟁점엔 입장차 뚜렷

대담 평가 설문에 응한 경향신문 소통 기획위원 7명 중 5명은 전원책 변호사와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 대담에 대해 “비교적 또는 다소 소통이 잘됐다”는 평가를 내렸다. 2명은 “중간 정도”라고 답했다.



조흡 동국대 교수는 “나만이 옳다는 주장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태도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주장 속에 담긴 철학과 정당성을 한껏 펼칠 수 있도록 상대를 인정함으로써 어느 특정한 사안이 정-반-합의 과정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고 평했다. 조 교수는 “어느 쪽을 지지할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소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다양하게 존재하는 목소리들이 우선적으로 여과 없이 대중에게 전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소통이라는 기획주제의 무게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기탄없이 견해를 개진한 게 미덕이자 큰 장점”이라며 “대표적 보수·진보 인사로서 다른 견해를 선명히 밝히고, 어느 지점에서 접점·대화가 가능한지, 어느 지점에서 생각이 차별화되는지를 확연히 드러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자기만이 옳고 정당하다는 독선적 태도는 상대에게 반감을 자아내기 마련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독선과 지나친 자기확신을 신념의 투철함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며 “그러나 이번 대담은 상대방을 비난·규탄하는 대신 자신(자기 진영)의 허물·단점을 전제하고 얘기를 풀어가 생산적 결과를 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현안에 대한 대화와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면서도 “동시에 어떤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보수와 진보가 매우 상이하다는 걸 입증한 좌담”이라고 평했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추상적 원칙에 대해서는 두 사람이 동의하는 바가 많았지만, 구체적인 사안으로 들어가면 ‘하지만’으로 시작하면서 다른 견해를 피력했다. 핵·북한·노사문제 등에서 화해하기 어려운 견해가 평행선을 긋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활발한 토론이었지만 결국은 ‘의견이 다르다는데 합의한 것’이 아니었나 한다”고 말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두 사람은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상대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태도를 견지하였다는 점에서 소통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상대 입장의 취약점을 정확히 지적하였기에 서로의 변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분명히 확인되는 이견·차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매우 추상적인 답변만이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었다. 예컨대 의회는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 대의제와 광장민주주의의 괴리를 어떻게 풀 것인지 등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소통이 잘 되는 것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임으로써 합의를 이끌어내는 경우이며, 다른 하나는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더라도 차이와 쟁점이 객관적으로 잘 드러나는 경우”라며 “이 대담은 후자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과거사, 북핵, 노동운동 등 우리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쟁점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이 갖는 차이를 선명히 부각해 보수와 진보의 현주소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면서도 “하지만 보수적 관점에서는 ‘안보적 보수’와 ‘시장적 보수’(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의, 진보적 관점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대표되는 중도개혁에 관한 토론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상대방의 입장을 들으려 하지도 않으면서 비판만 하는 논쟁이 사회적 불통으로 이어졌다”며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은 솔직하게 상대방에 대한 불만·문제점을 제기하고 그에 대한 반론을 들으려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그러나 두 사람 간의 차이·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는 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차이를 확인했다면 공존 혹은 타협점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가 숙제로 남은것 같다”고 말했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차이점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많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의견 수렴 현상이 있었다는 점은 적극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 “대북문제에서 상당한 의견 접근을 보이고 있고, 노동문제에서도 상당한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런 공감대가 양자의 의견 교환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가시화되었다고 하기보다는 원래의 소신과 생각들이 대담 과정에서 표출된 측면이 크다”며 “우리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 간에도 의견의 차이뿐만 아니라 공통된 의견의 영역들이 상당 부분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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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목·이호준기자

ㆍ조승수 “변화 못하는 진보… 뼈깎는 성찰 필요합니다”
ㆍ“광장의 저항 인정… 폭력행사는 용인 안돼요” 전원책

전원책 변호사(이하 전원책)= 건강한 좌파의 조건부터 이야기할게요. 첫째, 자유민주주의에 승복해야 합니다. 좌파는 곧 마르크스주의자로 오해하는 분이 많은데, 서구의 진보는 자유주의의 한 줄기입니다. 둘째, 폭력과 포퓰리즘에 의존하면 안 됩니다. 진보들은 무조건 길거리로 가는데 그건 아니에요. 과거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이 얼마나 폭력성이 많았습니까. 셋째, 예전 열린우리당이 있을 때 386에게 하고 싶었던 얘기가 왜 자기 밥그릇부터 챙기느냐는 거죠. 소수자, 소외자를 돌보기 위한 진보 정책을 펴면서 왜 공기업 감사, 이사로 못 들어가서 눈 벌겋게 설치고…. 넷째, 제발 김정일 세력과 관계를 끊으라는 겁니다. 북한은 진보도 사회주의도 아니고, 광신도 집단이에요.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왼쪽)과 전원책 변호사가 지난달 31일 경향신문에서 만나 토론하고 있다. |김기남기자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이하 조승수)=
폭력이 용인되고 우상화되어선 안됩니다. 하지만 불가피한 폭력적 형태 내지 거리 시위는 기본적으로 권력과 자본의 힘에 눌린 사회적 약자가 자기 저항, 자기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전원책 = 프랑스의 사르트르도 ‘약한 자가 할 수 있는 길거리 저항밖에 없지 않으냐’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복면하고 쇠파이프 들고 하는 폭력은 아닙니다. 유럽에서 돌 던지는 사르트르를 본 적이 없습니다.

조승수 = 폭력을 공공연히 정치이념으로 표방한 파시즘이 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자기 정당의 정체성이나 가치로 폭력을 얘기하는 건 없습니다. 프랑스 68혁명을 보면 심지어 테러를 통한 새로운 사회를 주장하는 극좌파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격렬한 이념 전개 과정이 지배세력과 피지배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진행되면서 결국 순화되는 과정을 밟았다고 봅니다. 1980년대 화염병이 등장하고 격렬했던 시위문화를 돌이켜보면, 지금은 화염병 던지고 거리에 나갔다가는 진보고 보수고 상관없이 인정받을 수 없는 부분이 정착되어간다고 봅니다. 건강한 좌파의 조건과 관련해, 386 말씀을 하셨는데요. 역대 정권이나 정치권력이나 지금의 우리 사회 재벌의 행태를 보면, 공익으로 포장한 사익을 추구하고 개인적 축재를 하는 게 많았습니다. 범진보나 민주화 했던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다 옳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만 일반적 행태라고 얘기하긴 곤란합니다. 한국적 보수의 특성은 반공, 독재, 사익축재, 부정축재, 권위주의, 가부장입니다. 자유주의에 기본 바탕을 둔 보수 내지 합리적 보수는 찾기 힘들죠.

전원책 =
건전한 보수는 절대로 사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보수의 핵은 도덕성이거든요. 보수가 엄격한 아버지고 진보는 자애로운 어머니 역할을 역사적으로 쭉 해왔는데요. 우리나라에서 이제 보수가 자애로운 어머니, 진보야말로 이제는 엄격한 아버지의 입장에서 도덕성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민주노총의 성추행 사건에 경악했어요. 또 한국 보수가 반공주의 특징을 가졌다고 말씀하셨는데, 반공주의를 나무랄 생각은 없어요. 김일성·김정일 부자 집단은 지구상에서 너무 희귀한 존재거든요. 좌파, 진보파들이 주체사상과 손을 떼야 합니다.

조승수 =
(성추행 사건은)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민주화세력을 표방했던 진보는 도덕성을 기본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진보가 이른바 독재와 싸우다 독재를 닮아가는 작은 사례지만, 한 징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뼈를 깎는 성찰이 필요합니다. 반공 문제는, 그 자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박정희 시대까지 반공을 외피로 공포정치를 하면서 사익을 추구하는 형태로 나타났고, 박정희 시대 이후에도 반공은 한국사회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한국적 보수와 반공 이데올로기는 친일 청산 문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전원책 = 프랑스 비시정부는 권력행사한 게 2년7개월인가 그렇습니다. 비시정부와 친일파를 똑같이 볼 게 아닙니다. 을사오적을 두고 이론을 제기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친일파 대부분은 일제시대 태어나 공부한 사람들이에요. 대동아 시절에 자결하지 않고 억압에 굴복했다고 해서 수많은 공적을 다 무시하고, 몇 가지 부역만으로 매도하는 건 문제입니다.

조승수 = 친일문제에 있어서 불가피론이나 공과를 분리해야 된다는 말씀도 논리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사실에 기초한 진실이 밝혀지고, 당사자들이 반성, 사과하고 용서·화해하는 단계로 가야 하는데, 첫번째부터 안됐습니다. 친일에 대한 변명을 국정교과서에 당당히 싣는 게 대한민국의 모습은 아닙니다. 건강한 좌파의 조건 중 종북주의 문제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그 비판의 선봉처럼 비쳐져 곤혹스럽습니다만, 종북주의 노선도 역사성이 있습니다. 70년대 중반까지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남한에 결코 뒤지지 않았고, 토지개혁으로 인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있어서는 앞서갔습니다. 80년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탈출구로 한쪽은 마르크스주의로, 또 한쪽은 북한이라는 체제에 경도돼 갔다고 봅니다. 2000년대 진보주의로 한국 사회를 바꿔나가는 입장에서 보면 냉정하게 북한 정권에 대해 판단하고, 과거의 역사성과 다른 자기 과제를 가져야 합니다.

전원책 = 역사성에 대해서 부인하지 않아요. 문제는 우리 좌파, 민노당의 형태를 보면 북한보다 더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이 있다는 겁니다. 바람직한 진보파, 좌파의 모델은 자유주의 한 줄기로 가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 이야기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국민은 민주노총을 귀족노조로 오해합니다. 나는 오해라고 봅니다만, 이 오해는 정당합니다. 현대차 평균 임금은 일반 국민 평균 소득을 초과합니다. 주주 배당은 얼마 되지 않아요. 저는 노동운동을 긍정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가들이 워낙 도덕심과 거리가 멀어요. 삼성그룹 편법상속도 제가 제일 먼저 시비를 걸었습니다. 정당한 보수운동을 하는 사람은 정의 운동, 도덕재무장 운동하는 사람들이에요. 정경유착, 독재를 옹호하는 게 아닙니다.

조승수 = 민주노총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는 민주노총, 한국노총 다 합해서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10%밖에 조직을 못하고 있습니다. 중소사업장이나 비정규직 같은 열악한 노동자들을 대변하려 하지 않고, 대기업 정규직 운동으로만 진행해왔죠. 자기 진로를 잃은 거죠.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관성적 투쟁만 한 게 문제입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 말씀하셨는데, 경제 위기 상황에서 정몽구 회장이 700억원짜리 전용기를 구입했습니다. 대기업 노조가 이기주의니 뭐라 해도 노동자에게 무슨 설득이 되겠습니까.


전원책 = 진보와 보수는 서로 진실을 외면하는 게 큰 문제입니다. 미디어법을 바로 얘기할게요. 범진보는 모두 미디어법을 반대하는데 이해가 안 됩니다. 1989년 MBC가 제발 민영화하자고 난리를 쳤습니다. MBC도 국민주로 바꿔서 국민편성위를 만들면 성공한다고 보는데, 지금처럼 노조가 편성과 제작에 힘을 가지는 회사는 안 된다고 봅니다. 대기업과 신방 겸영은 안된다고 하는데,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도 방송을 가져야 합니다.

조승수 = 선진국 대부분은 평기자들이 편집국장 선출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영주나 사주가 제작에 쉽게 관여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경향·한겨레가 방송에 진출해야 한다고 하셨지만, 돈을 어디서 끌어옵니까. 그런데 조선과 중앙과 동아는 얼마든지 끌어올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겁니다. 미디어법이 현재처럼 가면 여론 다양성은 물론이고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완전히 해치는 구조로 갈 수 있습니다.


전원책 = 조 의원님 나오셨으니까, 진보좌파가 북한 핵하고 인권을 얘기 안 하는 문제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리가 진짜 필요한 핵우산 보장은 원천적인 보장입니다. 그게 패트리엇3 미사일인데, 북한에서 하나 쏠 때 우리가 2개 올려야 합니다. 노동 미사일이 남한을 향해 600기 배치돼 있다고 합니다. 패트리엇3가 1200기 있어야 됩니다. 약 1500조원이에요. 제가 국회에 가서 국회의원들 뭐 하느냐고 했습니다. 핵무장 한다고 결의안 내라고 했습니다. 진짜 핵무장 하자는 게 아닙니다. 미국은 한국 핵무장은 겁 안내요. 일본이 하는 걸 겁내는 거죠. 우리가 핵무장하면 일본은 자동적으로 합니다. 그러니까 국회서 결의안을 내면, 미국이 패트리엇3를 갖다줄 수밖에 없습니다.

조승수 = 극단적 자기 정권 우선론, 미국의 위협봉쇄전략이 결합되면서 결국 핵실험으로 갔습니다. 이 파장으로 한·일 보수 세력내에서 핵무장론이 나왔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안 됩니다. 통일도 평화 이상의 가치에 우선할 수 없습니다. 일본이 핵무장하고, 한국까지 하자고요? 핵 보유에 따른 견제균형은 군사적 물리력의 강도·밀도를 높여 전쟁의 가능성을 높이는 과정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핵자유론에 분명히 반대합니다.


전원책 = 조 의원님께서도 굉장히 위험한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 북핵에 대해서는 보수도 현실을 제대로 모릅니다. 고농축 우라늄탄은 무게를 떠나서 덩치도 작습니다. 노동 3호에 실린다는 거죠. 김정일이 국지전, 전면전까지 가서 최후에 쓸까요. 천만의 얘깁니다. 북한은 기름이 없어 비행기 훈련을 못해요. 그러면 미사일 이왕 날리는 거 원자탄 싣죠. 그리고 이판사판 해놓고 협상이든 뭐든 하겠죠. 우리 진보는 방폐장 때문에 부안에 가 데모할 정도로 핵을 증오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민노당은 북핵에 대해서는 입 딱 닫고 있습니다. 진보신당도 한두 마디만 하셨는데, 그거 보면 딱 열받아요.

조승수 = 1970~80년대 주한미군이 핵을 보유했었다고 전쟁이 안 났을까요. 한국이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이뤘기 때문에 전쟁이 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다소 상상을 불허하는 정권이지만, 후폭풍을 모를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평화적 힘에 의해 핵무기를 해체해야지, 같이 자위 형태로 또 대칭론으로 가면 전쟁 위기가 옵니다.


전원책 = 촛불시위 이야기를 합시다. 미국산 쇠고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크리스마스 이브날 사인 못하겠다 해서 다음 정권에 넘긴 폭탄 같은 거예요. MB정권은 성과주의에 급급해서 밀어붙인 거고요. 졸속은 분명히 잘못입니다. 그런데 이 유포한 것처럼 정말 먹으면 곧장 죽을 정도였나요. 길거리에 나온 소위 대책위 멤버들이 그걸 몰랐나요. 한나라당도 협상이 졸속인 줄 다 알았다는 거예요. 좌파·우파, 진보·보수 할 것 없이 진실을 인정 안하는 태도는 참 위험합니다.


조승수 = 한국 사회 발전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합리성을 갖춘 보수가 나와야 합니다. 기본적인 헌법도 부정하는 기업과 전근대 노사문화를 그대로 가져가는 게 보수의 모습이어서는 안 됩니다. 수구보수를 대체해야 합니다. 진보도 변화혁신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느냐에는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제가 합리적 보수라고 전 변호사님편을 들면 한쪽에서는 맛이 갔다 그러고, 조선일보가 조승수 글을 실어주면 조승수에게 문제가 있다는 논리죠. 남한 민중 민생의 문제를 최우선에 두고 가면서 자기 역할을 하는 진보로 거듭나야 합니다.

전원책 = 서로 대립할 이유가 없어요. 새는 양날개로 난다는데 그 말 이해하는 사람도 드문 거 같아요. 보수가 집권해서 보수정책을 밀어붙일 때 진보가 없으면 정책 개선이 안됩니다. 진보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박멸 대상이 아니라 상생 대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진정한 진보는 분배를 개선시키고 소수자, 소외자, 빈자를 위해서 삶의 환경을 끌어올려주는 겁니다. 보수도 그런 진보를 격려해야 합니다.

한마디 더하면, 광장에 모여서 저항하는 거 인정해야죠. 광장에 있는 진실이 절대적 진실이라면 뭐든 해야 합니다. 독재정권에 저항해 민주를 쟁취하려면 폭력 그 이상도 해야죠. 그렇지만 광장에서 논의된다고 다 진실이 아닙니다. 상대적 진실을 위해 폭력이 행사되는 걸 용인하면 사회 갈등구조는 해결이 안 되죠. 상대적 진실을 위해서 공권력이 폭력을 행사하는 걸 욕하실 거 아니에요. 공권력은 공존을 위해 만든 틀입니다. 먼저 지켜줘야 됩니다. 그리고 나보고 진보좌파 운동 하라고 하면 제1번으로 휴머니즘 운동하겠습니다. 휴머니즘 운동 하면 범보수가 진보로 다 넘어가요.


조승수 = 개념 차이 같은데, 제가 20대부터 해왔던 학생운동이나 농민운동, 진보정당 운동도 휴머니즘이 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 대한 도덕적 책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주의도 휴머니즘에 바탕을 두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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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ㆍ“소통의 엘리트주의·양극화 함정 지적엔 전적으로 동의”
ㆍ강준만 교수 특별기고 경향신문 소통특집은 ‘절반의 성공’
ㆍ<최장집 교수 특별기고에 대한 나의 의견>


나는 경향신문의 소통 특집을 한국 진보 언론의 획기적 업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이는 진보 언론의 가장 큰 문제가 비전과 대안보다는 비판과 저항에서 정체성을 찾는 관행이라는 나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그 업적은 ‘절반의 성공’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최장집 교수의 기고문과 관련돼 있다.

최 교수는 경향신문 지식인 설문 결과 ‘소통 잘하는 인물’ 3위로 꼽혔다. 보수 인사들로부터는 ‘소통할 만한 진보 인사’로 선정됐다. 나는 왜 그가 1위로 뽑히지 않았는지 의아스럽지만, 이 결과만으로도 그가 소통에 대해 할 말이 있다는 걸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아니 반드시 말해야만 한다. 왜 그런가?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소통 문제가 심각해졌다고 주장하는데, 내가 보기엔 노무현 정권 시절이 훨씬 더 심했다. 이명박의 선거 공약은 애초부터 개혁·진보파와 소통 가능한 게 아니었다. 노 정권은 그런 문제에 더하여 다수 지지자들과의 소통도 외면했다. 최 교수는 당시 노 정권이 잘못 간다고 경고한 내부 비판자였다. 그때 친노 세력이 최 교수를 향해 퍼부은 비판은 ‘언어 폭력’의 수준에 가까운 것이었다. 지난 대선·총선의 비참한 결과는 친노세력의 이런 독선과 오만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일부 개혁·진보세력이 노 정권을 돕지 않았다며 원망하고 있다.


소통 다루는 방식 잘못됐다면 다른 방향에서 중요성 역설을

나는 이 문제가 반드시 거론될 것이라 믿었고, 이와 관련된 최 교수의 발언을 기대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최 교수와 경향신문 사이에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그의 기고문 내용은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통 문제가 두 개의 세력으로 양극화된 정치의 맥락에서 논의될 때, 그것이 정치발전에 어떤 긍정적 기여를 가져올지 의문이다”라는 최 교수의 생각에 동의한다. 내가 궁금하게 생각한 건 왜 최 교수가 그런 의문마저 소통의 문제와 연결시키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경향신문이 소통을 다루는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했으면 그걸 지적하면서 다른 방향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이념의 차이를 소통으로 넘어설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노 정권 시절 최 교수와 친노 세력의 차이는 이념의 차이는 아니었다. 방법론의 차이였다. 물론 그 차이도 소통으로 넘어서기 어려운 것이긴 하지만, 다른 방법을 제시했을 때 그걸 대하는 태도를 문제삼을 수는 있다. 쉽게 설명해보자. 진보적이긴 하지만, 절대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진보적 가치보다는 자기들의 이해관계를 앞세우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들은 열성 추종자들에게만 둘러싸인 채 세상과 멀어지면서도 세상 탓만 한다. 어쩌면 이런 의식이나 행태는 이념보다 더 극복하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바로 이런 경우를 소통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실제로 ‘인간소통학 개론’은 독선, 오만, 탐욕, 완고, 경박, 자폐성, 피해의식 등과 같은 개인·집단 심리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소통이 심리학만의 영역은 아니다. 소통의 정치경제학에도 주목해야 한다. 한국의 정치학 교과서들은 실제 정치 행위와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 한국 정치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지대추구(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국가 부문의 자원과 영향력에 접근하여 수익을 얻고자 하는 행위)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줄서기·줄세우기’인데, 이런 건 거의 다루지 않고 서양 이론만 화려하게 나열돼 있다. 직·간접적으로 정권에 참여한 사람들이 정권이 잘못된 길로 간다고 느껴도 말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위 공직, 영향력 행사, 인정 욕망 등과 같은 이해관계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해관계는 무의식의 영역에까지 침투해 곧잘 신념으로 둔갑하곤 한다. 게다가 한국인들은 전반적으로 ‘내부고발’보다는 ‘조폭식 의리’를 더 멋있게 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잘못가는 정권에 브레이크를 걸려는 시도를 하는 건 속된 말로 ‘남는 장사’가 아니다.

나는 그런 문제까지도 소통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럴 경우 개혁의 지점은 명확해진다. 시위에 의존해 판을 엎어보려는 단기 모험주의, “우리편 이겨라”를 외치면서 우리편의 승자독식을 꿈꾸는 한탕주의보다는 장기적으로 지대추구와 맞물린 전 사회 영역의 정치화·정략화를 완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우선이라는 깨달음이 올 것이다. 즉, 소통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게 아니라 “왜 소통이 안 되는가?” 하는 문제 의식으로 접근해 문제점을 발견하면 정치경제적 개혁 의제들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그걸 다룸으로써 사회진보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미 끝난 정권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걸까? 그렇다면 지난해 촛불시위 정국으로 돌아가보자. 주류파를 형성한 많은 개혁·진보적 지식인들이 감격이 지나쳐 허황된 촛불시위 예찬론을 펼 때에 최 교수는 냉정하게 그 한계를 지적하면서 차분한 대안을 제시했다. 그의 대안은 피가 끓는 그들의 공격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지만, 이후 벌어진 사태는 최 교수의 판단이 옳았다는 걸 입증했다. 일부 과격파들의 화끈한 담론과 행동은 이명박 정권에 정권 전복의 가능성에 대한 과잉된 공포감을 심어 주었고, 그래서 이후 이명박 정권이 사실상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게 된 건 아닐까?



한국정치는 ‘지대추구’·줄서기 이해관계도 소통문제로 접근

그러나 그들은 이마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이해심이 지나치다며 음모론을 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최 교수의 발언 당시 일부 촛불시위 예찬론자들의 입에서 “최 교수가 이명박 정권에서 한 자리를 하려는 건 아닌가?”라는 따위의 말이 나오는 걸 듣고,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다. 이 사람들은 정신 나간 예외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게 사이버 정치담론의 평균적 수준이다. ‘지도자 추종주의’와 더불어 ‘정치의 종교화’ 현상이 매우 심각하다. 이명박 정권의 문제는 이명박 정권의 문제인 동시에 이명박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문제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게 이념의 문제인가, 소통의 문제인가?

이 물음을 파고 들면 우리는 사회적 소통 구조와 관행의 문제까지도 들여다 볼 수 있다. ‘양극화 상업주의’ 논리와 ‘적대적 공존’의 원리에 주목해보자. 정치사회적 갈등 시 강경한 주장이 인터넷을 포함한 각종 매체의 장사에 도움이 되고, 갈등을 빚는 세력들 내에서 강경파들끼리 서로 돕는 관계가 형성된다. 의도는 순수한 것이라 해도 그런 원리에 의해 강경파의 발언이 필요 이상의 무게를 갖게 됨으로써 소통은 시궁창에 처박히고 만다. 내가 보기에 최 교수의 기고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대목도 바로 다음과 같이 언론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정치·경제 개혁의제 찾으면 사회진보에 기여할 수 있어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의 여론 형성은 주류언론들이 압도적인 영향력과 더불어 이슈를 설정하고, 지식인들이 이 논의에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진보언론은 자주 보수언론에 대한 거울이미지로 반대 논리를 제시해왔다. 그러면서 사회의 집단적 의사형성은 냉전반공주의나 정치에 대한 도덕주의적 관점에 의해 좁게 제한된 이데올로기적 틀을 통해 만들어져 왔다. 공론장에서 논의되는 이슈들은 이렇게 정형화된 이념 범주로 분류되어, 언론매체들을 통해 사회화되고 정치화되었다. 사회의 의사형성이 언론과 지식인 엘리트들에 의해 선점되고 좁게 제한된 이데올로기 범위로 한정되는 조건에서, 공공여론이 사회현실을 반영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를 이슈화하기는 쉽지 않다. 소통의 문제가 이런 맥락에서 제시될 때, 엘리트주의라는 특징과 아울러 그러한 의사형성과 여론이 사회현실로부터 크게 괴리되었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다.”

지금 우리의 소통이 빠져있는 함정을 정확하게 지적한 이 진단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최 교수께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소통의 문제가 이런 맥락에서 제시될 때”라고 소극적으로 말씀하실 게 아니라, 소통에 관한 소통의 문제를 주로 ‘우리편’을 향해서 적극 제기하자는 제안이다. ‘우리편’이 달라지면 ‘상대편’도 달라진다. ‘상대편’이 먼저 달라져야 ‘우리편’도 달라진다는 주장은 일리는 있지만, 누가 더 아쉬운 입장인가 하는 걸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간 이미 그런 역할을 잘 수행해온 최 교수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면서, 경향신문이 나머지 절반의 성공도 쟁취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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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 사회적 논의의 주제가 된 데는, ‘불통정부’라는 말이 지칭하듯, 소통을 거부하는 현 정부를 비판적으로 겨냥하는 것에서 출발한 것으로 이해된다. 현재 정치적 조건에서 소통의 의미는 몇 가지 상황을 가정한다.

첫째는 사회적 의견이 적대적 양상을 보이는 두 개의 세력으로 양극화되었다.

둘째,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은 소통 부재를 가져온다.

셋째,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소통은 위기 수준에 이르렀다. 현재 소통문제는 세 가지 요소가 합쳐진 것이라 하겠다.

‘민주 대 반민주’라는 말만큼 정치갈등이 두 개의 진영 사이에서 전개된다는 인식을 잘 표현하는 것은 없다. 복고적 성격이 강한 이런 이해방식은 민주주의 틀 안에서의 정치경쟁을 선악개념으로 치환하고 집단적 열정을 동원하려고 시도한다. 일방의 진영이 자신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대 정치연합을 강조하고 미덕으로 삼는 분위기에서, 내부 비판이 자유롭게 표출돼 여러 의사형성이 가능하고 이를 토대로 다원적인 세력형성이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세계화로 빈부격차·노동문제, 사회적 상향이동이 더욱 불가능해지는 사회구조 등 풀어야 할 여러 새로운 이슈가 등장했다. ‘소통 대 불통’이든 ‘민주 대 반민주’든 양극화의 논리·담론은 현실변화의 문제를 대면하고 다루는 데 부응할 수 없다.

소통문제가 두 개의 세력으로 양극화된 정치의 맥락에서 논의될 때, 정치발전에 어떤 긍정적 기여를 가져올지 의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서민·노동자를 소외시키며, 경찰·사법·정보기구들이 권위주의적 양태를 보인다고 비판할 수 있다. 보수정부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반민주적이라고 평하게 되면, ‘민주정부’라고 생각하는 앞선 정부들은 그만큼 긍정적으로 미화될 것이다. 이런 이해방식은 소통불능을 오히려 강화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과 과거 정부의 잘잘못을 평가하는 문제가 동일한 것일 수는 없다. 이른바 진보적인 정부들 역시, 신자유주의 성장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양극화 비전에 입각한 신문 논조는, 민주화 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객관적으로 보고,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배우는 일을 어렵게 한다. 야당(들)은 성장과 노동, 분배를 결합해 보수정당보다 우월한 대안적 성장정책을 가질 때 집권할 수 있다.

민주정치에서 소통은 투표에서 다수의 평결을 통해 소통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소통하도록 강제되는 조건의 함수로 이해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잘하는 것이 소통을 가능케 하는 방법이지, 소통에 대한 강조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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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근형기자 ssun@kyunghyang.com

ㆍ소통기획위원들 평가
ㆍ‘서로 다르다는 사실 인정하고 같은 점 찾는 것’ 돋보여


대담 평가 설문에 응한 경향신문 소통 기획위원 6명은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과 김상조 한성대 교수의 대담에 대해 “전체적으로 소통이 잘됐다”며 높은 평가를 내렸다.

공 소장과 김 교수 모두 자신들 내부 진영에 대한 비판을 스스로 제기해 접점을 모색한 후 공동의 해법을 찾으려는 시도가 돋보였다는 것이다.


또 대담이 진행되는 내내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인정하려는 자세 및 절제된 언어 구사력 등이 원활한 소통의 밑거름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전체적으로 존이구동(尊異求同: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중에서도 같은 점을 찾는 것)의 정신에 충실한 대담이었다”고 밝혔다. 두 사람 모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공감대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열린 자세를 유지했다고 평가했다. 윤 교수는 “두 사람은 자신들이 대표하는 세력의 문제점을 먼저 인정하고 논지를 펴서 대담이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윤 교수는 두 사람 모두 ‘현실주의자’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원활한 소통이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두 사람에게서는 지식인사회 특유의 명분론·당파성·선명성 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찾아볼 수 없었다”며 “각론에서는 명백한 이견이 드러났으나 서로 절제된 언어로 부드럽게 표현해 적대적 대립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두 사람의 대화는 서로 동의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는 부분들을 명확히 상호인식함으로써 경제에 대한 보수적 견해와 진보적 견해가 갖는 공통분모와 차이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고 말했다. 정부와 시장의 역할에 대한 인식에서 상호 접근했으며, 개방과 기업 지배와 같은 이슈에 대해서는 그 차이가 비교적 잘 부각됐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소통을 통해 모든 것을 합의할 수도, 합의할 필요도 없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적극적인 소통이 사회적 합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나름대로 잘 보여줬다”고 언급했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 두 사람 간 소통의 윤활유 역할을 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정체성이 없는 것도 두 사람 사이의 소통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비리 경제인들에 대한 성급한 사면, 감동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인사, 거품만 잔뜩 든 녹색성장 정책, 토건회사 돈벌이나 시키는 4대강 사업 등을 김 교수는 물론 공 소장도 비판했기 때문에 소통이 잘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만일 한나라당 의원이 나와서 현 정권의 정책을 막무가내로 옹호했으면 소통이 안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흡 동국대 교수는 “소통이 잘된 대담”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소통의 문제를 의식한 결과”라며 한계를 지적했다. 두 사람 간 대화가 양자만의 자유토론이 아닌 경향신문이 주최한 ‘소통특집’을 위한 대담이었기 때문에 결과가 좋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또 “공 소장 스스로 ‘재계를 떠났기 때문에 조금 더 균형있게 문제를 볼 수 있었다’고 인정한 점도 소통 결과가 좋은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공 소장이 여전히 자유기업원장 등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공적인 자리에 있었다면 이 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하는 의문을 표시한 것이다.

조 교수는 이 대담을 통해 “소통의 문제가 공직사회의 경직된 소통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문제 제기를 했다. 공직사회의 소통구조가 내부 구성원들의 비판과 문제 제기를 창의적으로 수용하는 수평적 구조가 아닌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구조라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조 교수는 “공직자들의 획일적이고 행정편의적인 사고 방식이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로 작용하고, 이로 인해 사회적 갈등도 심화된다”고 말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두 사람 모두 자기 진영의 문제점을 인정하는 동시에 상대방을 높이 평가한 점 등을 들어 “소통이 잘됐다”고 밝혔다. 공 소장은 경제권력의 힘이 강하다는 점, 세상이 기업국가로 가고 있다는 점, 이 대통령의 소통능력 부재 등을 인정했고, 김 교수는 삼성그룹의 뛰어난 비즈니스 능력을 평가한 점 등을 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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