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은 <어린 왕자>가 손 가까이에 있다면, 이 책의 제6장을 열어보시라. 어린 왕자는 슬플 때 해가 저무는 풍경을 바라보며 그걸 유일한 위안으로 삼는다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장의 끝 부분에서 어린 왕자가 ‘어느 날은 마흔네 번이나 해넘이를 보았다’고 말하는 내용의 문장을 만날 텐데, 어떤 책에는 ‘마흔네 번’이 아니라 ‘마흔세 번’이라고 적혀 있을 것이다. 앞으로 좀 더 거슬러 와서 제4장을 펼치면, 터키의 어느 천문학자가 어린 왕자의 작은 별을 발견하게 된 과정이 서술되어 있다. 여기서 저자는 천문학자들의 관행에 대해 그들이 ‘작은 별을 하나 발견하면 이름 대신 번호를 붙여 주는데, 예를 들어 소행성 325라고 부른다’고 쓴다. 그런데 어떤 책은 ‘소행성 3251’이라고 적고 있을 것이다.

기왕 책을 연 김에 한 대목을 더 찾아보자. 비행사가 어린 왕자를 만나 그의 요청에 따라 양을 그리는 장면이다. 비행사가 두 번째 양을 그렸을 때 어린 왕자는 “아이참… 이게 아니야, 이건 숫양이야, 뿔이 돋고…”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번역본은 ‘숫양’ 대신 ‘염소’라고 옮기고 있다.

간단하게 말한다면, ‘마흔네 번’, ‘소행성 325’, ‘숫양’이 맞고, ‘마흔세 번’, ‘소행성 3251’, ‘염소’는 틀리다. 맞건 틀리건 간에 이 차이가 <어린 왕자>의 이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고 독자의 기억에 남을 만한 또렷한 인상을 남기는 것도 아니지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궁금하다. 어느 언론사는 “유명 출판사들이 출간한 <어린 왕자> 번역본들이 상당수 일본어판을 번역한 중역”이며 “일본어판의 오류가 수정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다”는 한 연구자의 말을 전하고 있다. 이 연구자는 특히 ‘염소’와 ‘마흔세 번’이 일본어판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일본어판의 오류가 한국어판에서도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 고질적인 문제”를 “학문적 친일 사대주의”에까지 연결시키려 한다.

나는 이 기사 때문에 지인들로부터 몇 차례 전화를 받았다. 우리의 문제에 일본이 끼어들면 누구나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전화는 대체로 ‘한국의 번역자들이 <어린 왕자>의 번역까지 아직도 일본어판에 의지해야 하느냐’는 한탄에서 시작해서 ‘일본어판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는다 해도 부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냐’는 단정적 혐의로 끝난다. 그러나 저 연구자의 주장이 사실에 근거한다고 믿기 어렵기에 해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생텍쥐페리가 미국에 잠시 몸 붙이고 있던 1943년에 <어린 왕자>가 뉴욕의 레이날 앤드 히치콕 출판사에서 프랑스어와 영어로 처음 발간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저자가 미국에서 작성한 두 개의 원고가 있다. 하나는 손으로 쓴 원고로 현재 뉴욕의 피어폰트 모건 라이브러리에 간직되어 있다. 또 하나는 타자기로 작성된 원고로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 타자본 원고는 보존이 완전하고 생텍쥐페리가 직접 수정한 흔적을 담고 있다. 특히 이 원고는 저자가 미국 체류 시 유명한 피아노 연주자 나디아 불랑제르에게 직접 건네준 것이기에 그만큼 성가가 높다.


1996년 10월 프랑스의 SOGEX가 GLI 컨설팅을 통해 2컷의 이미지를 상표 등록했다. 어린 왕자가 혹성에 서서 별을 바라보고 있는 컷과 어린 왕자가 초록색 망토를 입고 정면을 보는 이미지는 저자인 생텍쥐페리가 그린 것이다. _경향DB



생텍쥐페리가 북아프리카에서 전사한 후, 1946년 프랑스의 갈리마르 출판사가 프랑스어로 발간된 <어린 왕자>는 타자본 원고를 상당히 신뢰했던 것 같다. ‘마흔세 번’은 갈리마르의 프랑스어판에서 비롯하는데, 이는 예의 타자본을 참조한 것이다. 갈리마르판은 또한 어떤 이유에선지 ‘소행성 325’를 ‘소행성 3251’로 적고 있다. 이 텍스트는 한국에 널리 보급되고 대학에서 교재로 자주 사용되었던 1979년의 ‘폴리오 주니어’ 판에서도 바뀌지 않았으며, 그 후로도 20년 동안 책의 크기나 제본 형식이 다른 여러 판본에서 그대로 유지되었다.

갈리마르 출판사가 1999년 플레이아드 총서로 생텍쥐페리 전집을 낼 때, 그 편집자는 <어린 왕자>의 경우 ‘1946년판은 생텍쥐페리가 알지 못하는 판본이지만 1943년 뉴욕판은 그가 직접 참여한 판본’이라는 이유를 들어 ‘원본 복원’을 꾀하였다. 이 조치가 <어린 왕자>에 대한 갈리마르사의 판권 연장에도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1960년에 <어린 왕자>를 처음 한국어로 발간한 안응렬 교수나 그 이후의 선구적 번역자들이 ‘소행성 3251’이나 ‘마흔세 번’을 쓰게 된 것은 일본어판에 의지해서가 아니라 원문에 충실했던 때문이었다. (안응렬 교수는 ‘소혹성’이란 용어를 쓰고 있는데, 1960년은 천문학 용어가 아직 정착되지 않아 행성 혹성이 함께 쓰이던 시대였다.) 1999년 이후의 번역자들이 수정된 원문을 확인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지만 그 오류에 일본어판을 결부시키기는 어렵다. 원문이 수정된 뒤에도, 그 이전에 <어린 왕자>를 만났던 번역자들은 옛날 책을 여전히 서가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염소’와 ‘숫양’의 문제는 남는다. 거기에는 일본어와 한국어에 공통된 특징이 있다. 목축국가의 말이 아닌 한국어에서는 숫양과 암양을 구별하기 위해 ‘양’에 ‘암’이나 ‘수’를 붙여 쓰지만, 프랑스어에는 양, 암양, 숫양에 해당하는 각기 독립된 단어 mouton, brebis, belier가 있다. 어린 왕자가 비행사에게 ‘양을 한 마리 그려 달라’고 할 때, 그 양은 mouton이지만 그가 퇴짜를 놓은 것은 belier다. 두 낱말이 완전히 다르기에 이 서술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어에서 ‘숫양’에는 그 낱말 자체에 ‘양’이 포함되어 있지 않는가. 양을 그려 달라고 했는데, 숫양을 그려준 것이 왜 잘못인가. 이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 번역자와 마찬가지로 한국 번역자들이 선택한 것이 ‘염소’였다. 한국의 번역자들이 일본의 번역자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같은 언어적 운명 앞에서 같은 선택을 한 것일 뿐이다. 한국어 번역자들이 ‘숫양’으로 감히 번역하기 시작한 것은 서양말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이해가 더 깊어진 이후의 일이다.

얼마 전에는 ‘우리가 읽은 것은 <이방인>이 아니었다’ 같은 말을 대형서점에 걸어놓고 책을 팔려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의 <이방인> 번역자는 그들보다 앞선 시대에 더 힘든 운명에 직면해 더 힘든 선택을 하고 있었다.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전하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저마다 직면했던 운명과 그 선택을 깊은 자리까지 뜯어보아야 한다는 뜻도 된다.


황현산 |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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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청춘 마리안느>는 1955년에 출시된 쥘리앙 뒤비비에 감독의 영화다. 원제(Marianne de ma jeunesse)를 그대로 번역했더라면 이 영화는 우리에게 ‘내 청춘의 마리안느’나 ‘내 젊은 날의 마리안느’ 정도의 말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저 ‘의역’에 관해 말한다면, 당시 조사 ‘의’의 용법이 오늘날처럼 다양하지 않았던 탓도 있겠으나 ‘의’로 연결된 두 명사보다 나란히 놓인 두 명사가 더 멋있어 보였던 시대적 감각의 힘도 크겠다.

그러나 ‘내 청춘’이 아닌 ‘나의 청춘’에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강력했을 일본어의 영향을 제쳐 둔다면, ‘마리안느’와 ‘청춘’ 사이의 생략된 ‘의’에 대한 아쉬움도 어느 정도 개입했을 듯싶다. 아무튼 이 영화는 내용보다 먼저 제목으로 이 땅의 청춘들을 오랫동안 설레게 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의 국어교사이기도 했던 한 시인은 ‘청춘’이 들어간 말 가운데 저속하지 않은 것은 ‘나의 청춘 마리안느’뿐이라고 단언했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제하 선생의 대학로 카페 ‘마리안느’도 그 이름을 이 영화에서 빚졌을 것이다.

바바리아의 호숫가에 자리 잡은 귀족 기숙사 학교의 생도인 뱅상은 매혹적인 청년이다. 이국적인 노래를 기타 반주에 실어 애조 띤 목소리로 부르며, 특별한 마력을 행사하여 짐승들을 수족처럼 부릴 줄 안다. 그는 호수 건너편 비어 있는 고성을 탐색하던 중, 어느 늙은이와 강제 결혼하여 그 성에 갇혀 있는 처녀 마리안느를 만나게 된다. 뱅상은 마리안느를 탈출시키려 했으나 거인 경비원의 폭력에 쓰러지고 만다. 그는 개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고 학우들의 도움으로 깨어났다. 그는 마리안느를 구하기 위해 학우들과 함께 다시 성으로 들어갔으나 사람들은 사라졌으며, 마리안느였던 처녀의 낡은 초상화가 걸려 있을 뿐이었다. 뱅상은 제 젊은 날의 사랑인 마리안느를 다시 만나기 위해 기숙학교를 떠난다. 필요하다면 세계의 끝까지 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녀를 만나야만 살아갈 의욕을 다시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청춘을 훌쩍 넘긴 40대 중반에야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너무 늦게 본다는 것은 그 자체가 죄악일 때도 있다. 음식은 식기 전에 먹어야 한다. 영화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부풀어 오른 기대를 낡은 영화는 채워주지 못했다. 주인공 뱅상 역을 맡은 피에르 바넥이 학우들에 비해 너무 나이 들어 보인다는 느낌도 내내 영화에 집중하려는 노력을 방해했다. 그리고 또 다른 훼방꾼이 있었다. 알랭 푸르니에의 <대장 몬느>를 나는 이미 읽었던 것이다. 푸르니에의 소설은 영화와 비슷한 분위기를 지녔고 같은 발상법에서 출발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훨씬 더 세련되고, 조직이 더 복잡하고, 스케일이 더 클 뿐만 아니라 영화보다 무려 40여년 전에 출간되었다. (뒤늦게 출발하여 여전히 초창기에 있는 영화가 발전의 정점을 넘긴 소설을 따라잡기는 힘든 일이다.)

영화에 흥미로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기숙학교의 뱅상이 그리스 신화에서 인류의 첫 시인이자 가수로 소개되는 오르페우스의 현대판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무슨 큰 발견이나 한 것처럼 기뻤던 것이 사실이다. 오르페우스의 리라는 뱅상의 기타가 되었다. 동물들은 오르페우스의 노래에 춤을 추듯 뱅상에게 복종한다. 오르페우스는 죽은 아내 유리디스를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가고, 뱅상은 호수 건너편의 고성에서 영혼의 약혼자 마리안느를 만난다. 그 둘은 모두 여자의 구조에 실패한다. 물론 이런 비교는 문화적 호기심을 잠시 충족시킬 뿐 어떤 감명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 선배들과 영화의 주인공이 공유했을 마음의 자리를 알아맞힐 수는 있었고, 선배들을 감동하게 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사실이 나를 감동시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었다.


<나의 청춘 마리안느>는 2차 세계대전이 남긴 상처 속에서 적국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이 합작으로 만든 영화다. 엉뚱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여기에는 끔찍한 살육의 벌판으로 인간들을 내몰았던 나쁜 이념에 대한 저주와 반성이 있다. 주인공 뱅상이 정신의 약혼자를 만나거나 만나지 못할 ‘세상의 끝’은 국가주의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이념들과 제도들이 미치지 못하는 자리이다. 뱅상이 이 세상 밖의 여자, 그래서 순결한 여자 마리안느를 만나러 떠날 때 그는 제 정신이 제도와 이념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가장 먼저 거부하는 것이 학교 교육이다. 학교는 제 나라 땅에서도 자주 식민의 집행부가 된다. 학교는 새로운 앎을 개발하기 이전에 젊은 정신을 국가와 사회의 이념에 먼저 묶으려 하기 때문이다.

식민지의 가장 큰 불행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들이 제 운명을 제 뜻대로 기획하고 실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저를 제 뜻대로 성장시킬 수 없으며, 제가 살아야 할 사회를 제가 기획하지 못하며, 제 나라를 제가 건설하지 못한다. 그가 제 자신을 사회에서 따로 떼어 말하려 한다면 그 시도 자체가 반역이다. 몽매할 뿐이기에 계몽되어야 할 인간이 제 인격을 말한다는 것은 사회에 짐을 지우는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가 국가를 위해서만 존재할 때, 그 나라는 비록 독립국이라도 식민지와 다를 것이 없다. 그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의 미래에는 오직 하나의 목표,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목표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일 국무회의에서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지식의 바름과 바르지 못함을, 인간 정신의 정상과 비정상을 이제 국가가 결정하려 한다. 젊은 정신들을 국가주의의 식민지로 만들려 한다. 여기에는 ‘나의 청춘’도 ‘마리안느’도 없다. ‘나의 청춘’은 앎을 향한 순결하고 열정적인 주체이며 ‘마리안느’는 그 열정을 보장하는 자유이다.

사족을 붙인다. ‘마리안느’는 현행 외래어표기법을 따르자면 ‘마리안’으로 써야 한다. ‘내 청춘 마리안느’는 외래어표기법이 유동상태에 있을 때 만들어진 말이다. 내게 ‘마리안’을 ‘마리안느’로 쓰도록 허락해주는 ‘내 청춘 마리안느’는 국가적 언어정책의 추상같은 의지를 잠시 피할 수 있게 해주는 해방구와 같다.


황현산 |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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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이 월드컵을 공동개최했던 것이 2002년이었다. 그 해 6월 한 달 동안 붉은 옷을 입은 응원단이 거리를 뒤덮었다. 사람들은 모두 “아 대한민국”을 외쳤다. 사람들이 외친 것은 국호였지만, 그것이 어떤 국가주의의 표현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거기에 배타적 감정 같은 것은 없었다. 이방인들을 차별하거나 폄하하려는 생각도 없었다. 한국 사람이 아닌 사람도 그 대열에 끼어들고 싶어 했으며, 그렇게 끼어든 사람을 막는 사람도 없었다. 거기에는 오직 대범하다고 말해야 할 ‘행복의 표현’이 있었다. 일상의 근심을 잠시 잊어버리고 인간관계의 속박에서 풀려난 사람들은 자기 안에서 해방된 생명력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서로서로 다른 사람 안에서도 억압을 이겨낸 생명력을 확인하고 그 개화를 축하했다. 사람들은 제 옆에 있는 사람을, 낯모르는 사람이라도 서로 껴안았다. 이 순결한 열광은 열광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기쁘게 했다. 나와 똑같은 사람들의 생명력이, 다시 말하면 바로 나의 생명력이 거기서 꽃피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위의 글은 2002년 바로 그 해에 어느 칼럼의 첫머리에서 목격담의 형식으로 썼던 글을 놓고, 몇 개의 문장을 빼고 다른 문장을 덧붙이기도 하면서, 회고담의 형식으로 다시 고쳐 쓴 것이다. 내가 10년도 더 전에 썼던 글을 이런 방식으로 다시 돌이켜보는 것은 그 칼럼의 끝에 썼던 한 문단이 갑자기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이 거리의 공동체가 4·19 이후 조국의 민주화를 향한 오랜 항쟁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나도 이 의견에 적극 동의한다. 지난 80년대의 6월 항쟁 때도 이 응원인파 못지않은 물결이 거리를 덮었다. 우리에게는 우리 힘으로 압제에서 나라를 구한 역사적 기억이 있으며, 이 기억 속에서 우리는 나와 이웃의 힘을 믿는다. 우리 선수들의 악착같은 투지도, 패한 경기에도 주눅들지 않는 응원단의 정신력도 서로의 힘을 긍정하는 이 믿음이 없이는 성립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옆 사람을 끌어안는 우리에게서 거대한 문화 하나가 솟아나고 있다. 이 문화와 역사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분명하게 “이 문화와 역사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썼는데, 어떤 희망을 표현한다기보다는 예언을 한다는 것이 당시 내 속마음이었다. 이제 그 예언은 헛말이 되어버린 것 같다. 문화는 거기서 더 성숙하지 못한 것 같고 역사는 거꾸로 되돌아간 것 같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나이에 들어선 젊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세대를 가리켜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라고 부른다. 연애를 포기했다는 것은 지금 이 시간의 행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며, 결혼을 포기했다는 것은 불가능한 행복을 가능한 행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겨를도 욕망도 없다는 뜻이며, 출산을 포기했다는 것은 미래에도 내내 행복한 일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뜻이다. 자기 세대의 특징을 ‘포기’로 표현해야 하는 젊은이들은 한국을 가리켜 ‘헬조선’이라고 부른다. 그들에게 이 나라는 지옥이나 다름없다.


10일 온통 붉은 옷을 입은 16만여명의 시민으로 가득찬 서울시청앞 광장_경향DB



저 2002년의 ‘아 대한민국’과 2015년의 ‘헬조선’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두 시점 사이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이 그 차이를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을 연도별로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최근에 일어난 몇 가지 사건이 그 전체를 요약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고영주 방송문화진흥위원회 이사장의 공산주의자 감별사건, 그리고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국가지원단체인 한 기관의 공공연한 검열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건들은 각기 따로따로 일어난 것이지만 공통된 성격을 지닌다.


고영주씨가 민주화 운동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던 정치인들을 지칭해 ‘변형된 공산주의자’ ‘전향한 공산주의자’ 같은 말을 사용할 때, 이는 어떤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을 넘어 민주화운동 전체에 대한 폄훼인 것을 모를 사람이 없다. 이를 우연한 사건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일베 등에 의해 산발적으로 머리를 내밀던 민주화운동에 대한 모욕적 언사가 한 국가기관 대표자인 공인을 통해 토론불가의 공식적 표현이 되는 현장을 우리가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검열 또한 그렇다. 이는 인간의 상상력에 새로운 창을 열고 삶의 전망에 새로운 길을 내려는 예술활동까지 단일한 목소리로 통제하려는 의도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위에 역사교과서의 국정화가 있다. 지난해에 우익수구 인사들이 앞장서 만들었으나 결국 실패로 끝났던 한 역사교과서의 예에 비추어볼 때, 국정 역사교과서가 어떤 내용을 담게 될지는 불을 보듯이 뻔하다.

그것은 민주화운동의 역사 전체를 모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통합의 미명을 빌려 토론 자체를 불순한 것으로 여기는 어떤 감수성을 형성하려 할 것이다. 토론이 없는 곳에서는 저항은커녕 이의제기도 용납되지 않는다.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에는 프랑스 복고왕정 시대의 한 풍속도가 나온다. 대혁명으로 빼앗겼던 권력을 탈환한 귀족들은 토론하지 않는 방식으로 토론을 금지시킨다. 소설의 주인공 줄리앙 소렐은 천민 출신이지만 뛰어난 두뇌로 부상하는 새로운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 된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그 시대 최고권력자의 한 사람으로 그려진 라몰 후작의 비서로 일하며 수많은 귀족들을 만난다. 소렐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토론을 개시하려 하지만 귀족과 고관대작들은 접시에 코를 박고 묵묵부답하며 음식을 먹을 뿐이다. 그들은 지금 권력을 장악하고 있지만, 자기들의 몰락이 임박했으며, 토론이 그 몰락에 속도를 덧붙일 것임을 모르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감을 가진 자만이 먼저 말을 걸고 먼저 토론을 시작한다.

사람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사는 세계를 지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지옥은 진정한 토론이 없기에 희망을 품을 수 없는 곳이다. ‘아 대한민국’과 ‘헬조선’ 사이에서 사라진 것은 토론과 그에 따른 희망이다. 지옥에 대한 자각만이 그 지옥에서 벗어나게 한다. ‘헬조선’은 적어도 이 지옥이 자각된 곳이다. 그래서 나는 내 예언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


황현산 |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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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원칙적으로 말한다면, 추석에 고향을 찾는 것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다. 조상들이 찾아오는 날이 따로 있듯이 찾아오는 곳도 따로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석처럼 특별한 날은 몸 둔 곳과 고향만 연결시키는 게 아니라 이 세상과 조금 다른 세상을 생각하게도 한다. 물론 요즘에는 그 다른 세상의 기운이 많이 엷어져서 고향의 부모가 타지에 사는 자식을 찾아와서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제사에 귀신을 부르는 여러 절차와 함께 축문을 읽는 일도 생략하고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 왜 축문이 한문으로 되어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게 진짜 글이라서 그렇다고 어른들은 대답했다. 나는 어른들의 말을 믿었고,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기에 진짜 말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말과 관련된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처지에서, 내가 그 생각을 지금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생각은 말에 대한 지금의 내 생각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 사실이다.

어른들이 한문을 진정한 말이라고 했던 것은 반드시 언어 사대주의에만 그 이유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과 중국에 얽혀 있는 역사적 맥락을 제쳐 놓고 생각한다면, 축문에 쓰인 한문의 힘은 상당 부분 그것이 낯선 언어이며 일상적으로 소통 불가능한 언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축문은 본질적으로 귀신세계에 말걸기이고, 거기에 사용되는 말은 일상어와 일정한 격차를 지님으로써 특별한 위엄을 띠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한문은 말이면서 동시에 일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힘을 잃은 말이 아니기에 이 세계와 다른 세계를 연락한다는 그 기이한 소통을 감당할 수 있다고도 보아야 한다. 이런 생각은 일부의 감각기관에 장애를 지닌 사람에게 특별한 영적 능력이 있다는 생각과도 통한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우리는 ‘밥’을 ‘밥’이라고 부르지만, 꼭 그렇게 불러야 할 이유는 없다. 솥이라, 똘이라 불릴 수도 있던 것이 우연히 ‘밥’이 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언어학에서는 언어가 자의적이라고 한다. 이런 사정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의 언어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어떤 언어도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언어는 아니다. 한국어는 한국의 방언이고, 중어와 일어는 각기 중국과 일본의 방언일 뿐이다. 그런데 귀신의 세계에 말을 걸려면, 저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언어가 필요하지 않을까. 축문을 한문으로 쓴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초월한 세계와 대화하기 위해 이 일상적 언어의 방언성을 넘어서려는 최대한의 노력이기도 했을 것이다. 말라르메 같은 사람이 리듬은 낭랑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시를 썼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시의 언어는 어떤 보편적 성격을 지닌 것처럼 들린다. 한문으로 된 축문이 보편적 언어같이 들렸던 것처럼.

어느 언어건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는 제멋대로 만들어진 임시 언어일 뿐이다. 어쩌면 인류가 여러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 사고의 허약함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이 ‘나무’라고 하면 그 말 자체가 나무여야 할 텐데, 그 나무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말을 우리는 멋대로 만들어서 지껄이고 있지 않은가. 진리가 보편적이라면 그것을 표현하는 말도 보편적이어야 할 텐데, 말에 관한 한 인간은 우연에 우연을 겹쳐놓고 있을 뿐이다.


영어공용화 한국외국어대 학술대회_경향DB


벌써 10년도 더 전에 영어공용화론이 등장해 적잖은 풍파를 일으킨 적이 있다. 이제는 그런 주장을 공공연히 들고 나오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그 주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영어공용화론은 어쩌면 그 시행에 앞선 절차를 암암리에 밟아가고 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 주장 이후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여러 대학에서는 영어 강의의 비율을 높이는 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런저런 인사들은 반세기 안에 세계 만국의 언어가 영어로 통일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고 말하며 바람을 잡고 있다. 그런데 모든 언어가 영어로 통일되고 모든 나라가 제 말을 잊어버리게 된다면, 그때 영어는 보편적 언어로서 구실을 할 수 있을까. 언어 통일이 실현된다면 낯선 외국인을 만나도 소통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학생들은 외국어를 따로 배우려고 애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간은 다른 인간들을 더 잘 이해할 것이기에 세계는 그만큼 더 평화로워질 것이다.

그러나 한 나라 말을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해 본 사람들의 의견은 다르다. 말라르메는 인간들이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기에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고 했지만, 언어와 언어 사이를 헤맨 사람들은 거꾸로 인간이 언어로 진리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여러 개의 언어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언어는 서로 겹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 대부분의 언어는 ‘눈’에 해당하는 낱말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의 낱말로 ‘함박눈’에 해당하는 말을 가진 언어는 많지 않다. 한 언어가 적시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언어는 적시한다.

우리는 어떤 것을 산이라 부르고 어떤 것을 들이라 부르고, 그렇게 말로 분별되는 세계는 그 분별하는 말만큼 확실한 것이 아니다. 말에는 그렇게 부르기로 하는 정식계약과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부르기로 양보하는 이면계약이 있다. 언어는 통일될 수 있어도 이 이면계약은 통일되지 않는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확실한 것이 다른 부류에게는 불확실한 것이 되며, 어떤 언어로는 절실한 진실에 다른 언어는 관심조차 없다. 언어가 서로 만날 때 이 불확실한 것들이 솟아올라와 산과 들을, 사랑과 증오를 새롭게 고찰하고 새롭게 정의하게 한다.

진리는 늘 새로운 내용을 얻는다. 그래서 한 언어의 관점에서 다른 언어는 제가 표현하지 못하는 숨은 진실을 쌓아놓은 저장고와 같다. 그래서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 언어를 지키고 가꾼다는 것은 그들만을 위한 의무가 아니라 인류를 위한 의무가 된다. 우리가 추석에 고향에 가는 것은 우리의 언어가 닿지 못한 진실을 체험하기 위한 여행이기도 하다. 귀신은 어떤 언어에도 감응하지 않는다. 숨은 진실로 거기 있을 뿐이다.


황현산 |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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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는 그 첫 대목에서 나라가 나라로서의 권리를 빼앗기던 시대의 슬픈 일화들을 열세 살 소년의 눈으로 전한다. 그 시대는 또한 학문의 패러다임이 결정적으로 바뀐 시대이기도 했다. 이미 <통감>과 <맹자>와 <중용>을 읽은 어린 선비소년은 신식학교 2학년에 배정되어 서구의 지식을 배우기 시작한다. 삼각형 유리막대를 통과한 빛이 여러 색으로 나뉘는 그림, 구리그릇 2개를 진공 상태로 맞붙여놓고 네 마리 말이 양쪽에서 끌어당기는 그림을 그는 자연책에서 보지만 그 이치를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소년보다 더 딱한 것은 그의 아버지다. 지방의 대학자였던 아버지는 그 원리를 아들에게 설명해주지 못하고, 오직 선생의 말을 더 찬찬히 들으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 아버지에게는 평생을 두고 쌓아온 학식이 무용지물이 되려는 순간이었다. ‘분광’이니 ‘기압’이나 하는 말들이 그 개념과 함께 그렇게 이 땅에 들어왔다.

서세동점의 시대에 서구의 지식체계를 한자문화권의 다른 나라들보다 먼저 접할 수 있었던 일본의 학자들은 그 체계를 외곽에서부터 세부까지 설명하는 데 필요한 수만 개의 말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한문과 한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쪽 세계에서 그때까지 쌓아온 학식의 모든 개념이 그 한문과 한자 안에 온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신학문과 관련된 이 한자 용어들은 우리에게서도 식민지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국권을 되찾은 이후까지 지식체계의 거의 전체를 설명하는 말이 되었다. 논란은 끝없이 많았다. 지식의 개념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말로서 그 용어들이 얼마나 적합한지를 따지는 문제는 오히려 뒷전에 밀렸다. 한자 용어는 우리의 고유어가 아니며, 그 말들을 만든 것은 일본인들이어서 학문과 언어의 자주성을 해친다는 주장이 사람들을 흔들었다. 고유어와 토속어와 일상어의 중요성을 말하는 언어적 낭만주의의 열정은 모든 학술용어를 ‘순우리말’로 바꾸려는 시도로 이어지기도 했다.

나로서는 근대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일본 학자들이 만든 한자 용어들을 ‘일본인들이 만든 말’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자문화권 전체가 한자문화의 지식과 배경에 힘입어 만든 말이다. 이런 내 주장은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자는 것도 아니고 정신승리를 구가하자는 것도 아니다. 말을 만드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말을 받아들여 사용하는 사람도 언어의 주체다. 알아듣는 사람이 없이 언어가 통용되겠는가. 같은 한자문화권에 살던 우리에게는 새로운 문명 앞에서 그 말들을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도 있었고 그 말들을 사용할 능력도 있었다.

새로운 말을 만든 사람들도 이 다른 주체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던 같다. 그들이 한문 고전의 밑바닥을 훑고 있었던 것은 배워야 할 신지식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것을 오래된 지식의 바탕 위에서 이해해야 할 정신 상태도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예를 들자. 이 근면한 학자들이 열의 전달과 관련하여 ‘복사(輻射)’라는 말을 만들면서, 그 말에 해당하는 서양어 radiation이 ‘수레바퀴살’을 의미하는 라틴어 radius에서 유래한다는 것은 염두에 두고 ‘수레바퀴살 輻’자를 한문고전에서 찾고 있었다는 사실은 지식의 새 패러다임이 폐기되는 패러다임과 만나고, 오래된 세상의 사람이 새 지식과 만날 수 있는 접합점 만들기에 그들이 얼마나 고심했던가를 말해준다.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_경향DB



최근에는 새로운 학술 개념이 발생할 때마다 새말을 만들어 쓰기보다 원어의 음을 그대로 한글로 표기하자는 주장이 대두하여 차츰 세력을 얻고 있다. 이 세력 뒤에는 물론 영어의 세력이 있다. 기호학에서 사용하는 프랑스어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를 예로 들 만하다. 이 한 쌍의 말은 식민지 시대부터 지난 1980년대까지 ‘능기, 소기’로 번역되었으나, 각종 문서에서 한자가 사라지고 ‘능(能)’과 ‘소(所)’의 조어원리가 한글 뒤로 가려져버린 1990년대 이후 ‘기표, 기의’로 번역되었다. 이 말들은 어떻게 표기되어도 설명이 뒤따라야만 그 뜻이 이해될 수 있기에 시니피앙, 시니피에처럼 원음 그대로 쓰건, 능기, 소기로 쓰건, 기표, 기의로 쓰건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고유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한자어와 다른 외래어는 우리말 속에서 갖는 언어학적 가치가 다르다. ‘시인’의 ‘시’는 시정, 시집, 시심, 시문학, 서정시, 서사시와 연결되고, ‘시작’의 ‘시’는 시동, 시말, 시원, 시조, 시종, 시초, 개시와 연결되어 그물망을 형성하지만, ‘시니피앙, 시니피에’의 ‘시’는 우리말에서 무엇인가. ‘능기’나 ‘기표’와 달리 ‘시니피앙’은 우리말 속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으며, 고립된 말들은 그 수가 아무리 많아져도 한 언어체계 전체에 깊이를 만들지 못한다. 그물망과 연결 고리를 갖는 낱말은 그 자체를 설명하는 힘도 그 그물망에서 얻지만 더 나아가서는 그 그물망을 풍요롭게도 한다. 한 낱말은 항상 다른 낱말에 의지하여 그 뜻을 드러낸다. (순우리말 학술용어 다듬기가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도 한자어만큼 강한 그물망을 확보하지 못한 데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원음을 그대로 표기하는 것이 그 말에 대한 오해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도 위험하지만, 모든 학술용어를 이미 세계 공용어가 된 영어로 통일함으로써 범세계적 학문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보다 더 위험하다. 이런 생각이 실현된다면 우리말 전체가 학문으로부터 소외될 뿐만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모든 지적 활동으로부터 소외된다. 간단히 말하자. 인간의 의식 밑바닥으로 가장 깊이 내려갈 수 있는 언어는 그 인간의 모국어다. 외국어는 컴퓨터 언어와 같다. 번역과정을 거칠 때의 논리적 정확성에 의해서도 그렇지만 낭비를 용납하지 않은 그 경제적 측면에서도 그렇다. 지식과 의식의 깊이를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낭비에 해당하며, 그 낭비에 의해서만 지식은 인간을 발전시킨다. 외국어로는 아는 것만 말할 수 있지만 모국어로는 알지 못하는 것도 말한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말은 도구적 기호에 그치지 않는다.


황현산 |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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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100개가 넘는 한국어 번역본이 있으며, 그 가운데는 내가 번역해서 출간한 책도 들어 있다. 길다고 할 수 없는 동화 한 편이 이만한 대중적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이제 어른이 되려는 청소년들에게 사랑에 대한 어떤 인식의 첫걸음을 이 책이 안내해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길들이다’라는 동사 하나를 걸어놓고 사랑을 설명하는 말은 명쾌하고 순결하지만 그 내용은 현대의 문화와 제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반항을 사랑과 연결한다. 나는 최근에 한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예전에 번역했던 <어린 왕자>를 다시 번역하여 출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문명을 누리면서 그 문명을 비판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지를 묻는 질문에 줄곧 사로잡혀 있었다.

어린 왕자는 지구에서 여우를 만났다. 세상의 물정을 깊이 알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는 여우는 현자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는 길들인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르쳐 주고, 그 가르침을 실습한다. 인간은 자기가 공들여 일구고 가꾼 것들과만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이 관계를 통해서만 자기 존재를 확장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일만 사람을 사귀고, 일만 가지 물건을 소유하고 있어도, 그중 어느 것 하나도 자신이 마음과 노력을 부어 길들인 것이 아니라면, 그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일만 사람을 바쁘게 만나고 만 가지 물건을 숨차게 끌어 모았지만, 누구에게도, 어느 물건에도, 자기가 살아온 삶의 시간을 새겨 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만 사람은 그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며, 만 가지 물건은 그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그는 생애 내내 눈앞에 보자기보다 더 적은 시간밖에는 가지지 못할 것이다. 그가 눈을 감으면 그 시간은 꺼져 버릴 것이다.

여우가 ‘길들인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아닌 것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을 그것의 삶 속에, 그것을 자신의 삶 속에 있게 하는 일이다. 존재가 세상에 진정한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은 권력이나 소유나 명성이 아니라 이 길들임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어린 왕자가 지구에 도착하기 전에 만난 사람들, 왕, 허영쟁이, 술꾼, 사업가 같은 사람들은 이 비밀을 모른다. 왕은 우주를 지배하고 사업가는 세상을 모두 소유하였지만 그들의 삶은 오히려 졸아들어 있다. 허영쟁이와 술꾼은 자기들 자신에게 사로잡혀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린 왕자>에서 지식인을 대표하는 지리학자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그에게 세상 만물은 지식의 대상이지만, 그 물건 하나하나를 직접 만나 본 적은 없다. 그는 알 뿐, 사랑하지 않는다.

여우가 시간에 대한 설명을 통해 ‘의례’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의례란 “어떤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하고, 어떤 날을 다른 날과 다르게 하는 것”이다. 확실히 설날이나 생일, 명절이나 제삿날은 다른 날과 다르다. 그런 날의 시간은 특별한 카리스마를 갖는다. 그 시간들은 인간이 살아온 내력이 찍어놓은 기억의 시간이자 무의식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깊은 시간을 도시생활에서 경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영검도 아파트의 신발장 근처까지 걸어 들어올 수는 없다는 것을 도시민들은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옛날에 어떤 이상한 시간이 있었음을 아는 것만으로 스스로를 대견하다고 여긴다. 생텍쥐페리는 사막에 관해 말했지만, 그 사막은 바로 이 도시를 일컫는 말이었으리라.

그러나 어린 왕자가 이 지구에서 처음 만난 생명도 마지막 접촉한 생명도 뱀이었다. 이 뱀은 여우 못지않게 중요하다. 어린 왕자가 뱀을 처음 만났을 때 함께 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대화보다는 침묵이 더 길었다. 뱀은 자기가 누구든 한 번 건드리기만 하면 그가 ‘태어난 땅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고 말하며, 어린 왕자가 자기 별을 정말로 그리워하면 그를 도와 줄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자기가 태어난 땅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물론 죽는다는 말이다. 그의 말은 여우의 말처럼 이해해야 할 말이 아니라 ‘해석해야 할 말’이다. 그것은 감동해야 할 종류의 말이 아니라 학습해야
할 말이다.


어린왕자 이미지_경향DB


어린 왕자는 여우의 종합으로부터 비밀한 지혜를 얻었지만,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자, 그 실천을 위해서 뱀의 분석을 선택했다. 지구는 어린 왕자를 바꿔놓았다. 오두막보다 더 크지 않은 별에 살던 이 우주의 시골뜨기는 벌써 권력자와 상인, 염세가와 허영쟁이를 만났고, 착실한 공무원과 학자를 만났다. 어린 왕자는 그들이 어떻게 소외되어 있는가를 알게 되었지만, 그 자신도 더 이상 천진난만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요청되는 사막이며, 그 사랑은 긴 시간을 거쳐 공들여 만들어져야 한다는 깨달음이, 그가 긴 편력 끝에 순진함을 지불하고 얻은 소득이었다. 그는 줄로 엮은 철새들에 매달려 별들 사이를 이동하여 지구에까지 왔지만, 이미 세상의 물정을 아는 그에게 이 불확실한 목가적 여행 수단이 더 이상 가능한 것일 수 없었다. 그는 뱀에게 물리기로 결심했다. 극단적으로 과격한 이 귀향의 방법은 분석적인 만큼 확실하고 효과적이다.

분 석의 말은 습관을 넘어선 곳에서 만들어지는 말이며, 그래서 충격의 말이다. 사랑으로만 권태를 치료할 수 있을 때, 또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권태롭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때, 충격은 거의 유일한 처방이다. 충격은 길들이기가 아니며, 시간을 바치는 일이 아니다. 충격은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충격은 허위의 관계가 벗겨진 곳에서 진정한 관계를 드러낸다. 그것은 시간의 얇은 보자기가 찢어진 곳에서 시간의 신비로운 깊이를 판다. 어린 왕자는 이 깊이를 타고 제 별로 갔다.

그런데 어린 왕자를 한 번 깨물어 그의 별로 되돌려 보내는 뱀의 수법은 오늘날 우리의 전자문명과 닮은 점이 많다. 한 번의 ‘딸까닥’으로 열리는 수천 개의 세계. 우리는 이렇게 날마다 뱀의 힘을 빌리는 셈이지만 뱀에게 물리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어떤 결단도 없이 이 세계 저 세계를 날아다니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힘은 우리의 존재를 강화하자는 것인데 거꾸로 우리의 존재가 그만큼 졸아든 것이기에 불안하다.


황현산 |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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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시인 송지문(宋之門)의 시 <유소사(有所思)>에는 “해마다 꽃은 그대로건만, 해마다 사람은 달라지네(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라는 유명한 시구가 들어 있다. 이 구절은 본디 송지문의 사위 유희이(劉希夷)의 소작이었으나, 장인이 사위를 죽이고 시구를 편취해 자기 시에 넣었다는 말이 있다. 디드로의 소설 <라모의 조카>에서, 18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작곡가 필립 라모의 조카인 건달 작곡가 프랑수아 라모는 자기 삼촌의 작품이 자기 작품이었더라면 자신을 둘러쌀 영광을 오랫동안 몽상한다. 그리고는 가끔 자기 삼촌이 미발표 작품을 한두 편이라도 남겨놓고 죽기를 바란다. 앞의 이야기는 믿기 어려운 야사이고, 뒤의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희화적 어조의 소설이지만, 두 이야기가 모두 창조의지와 표절의 욕망이 비극적이건 희극적이건 얼마나 강렬하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말해준다.

창작하는 사람에게 표절의 욕망은 그 창조의지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르트르의 말을 빌린다면, 창조의 의지는 정복의 의지와 같다. 창조는 우리가 손님으로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어떤 풍경 하나를 만들어 덧붙임으로써 제한된 시공에서나마 이 세상의 주인으로 행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가 만든 것은 그 결함이 제 눈에 보이지만 남의 창작품은 늘 완벽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완벽함의 주인이 되는 것은 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것과 같으니, 그에 대한 욕망은 다른 모든 욕망을 압도할 수 있다.

때로는 창조와 표절이 구분되지 않을 때도 있다. 보들레르의 시 <불운>은 땅속에 묻혀 있는 보석처럼, 혹은 꽃피웠으나 눈에 띄지 못한 꽃들처럼, 실현되지 못했거나 실현되었어도 주목받지 못했던 훌륭한 재능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시구를 담고 있다. 이 시구들은 영국 시인 토머스 그레이의 유명한 시 <시골 교회묘지에서 쓴 엘레지>에서, “수많은 보석들이 가장 순결하고 정갈하게 난바다의 깊고 헤아릴 수 없는 심연에 누워 있고, 수많은 꽃들이 눈에 띄지 않게 피어 인적 없는 황야의 대기에 그 아름다움 헛되이 낭비하려고 태어났다”는 몇 줄의 시구가 번안을 통해 보들레르의 시구로 둔갑한 것이다. 그러나 <불운>을 표절작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 정형시의 시대에 보들레르가 영어와 프랑스어의 담을 넘으면서 깨어진 시구의 리듬과 각운을 프랑스어로 새로 만들어야 했던 노력이 컸기 때문이다.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 그 시가 폴 엘뤼아르의 시 <자유>를 표절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민주화의 대의를 위해 입을 다물었다. 어떤 것이건 손에 잡히는 것을 들고 싸워야 했던 시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엘뤼아르의 <자유>가 길고 반복적인 성찰로 자유를 내면화하는 데 비해 민주주의를 절규하는 목소리로 ‘호소’하는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는 그 감동이 그만큼 더 직접적이기에 더 훌륭한 시로 여겨지기도 했으며, 그것이 표절을 말하려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기도 했다.

신경숙씨의 소설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을 표절했다는 주장이 문화계를 휘몰아쳤을 때도, 여전히 작품의 우열론으로 사태를 물타기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작가의 국제적 명성을 상기시키며 저 끔찍한 ‘국익론’을 들고 나오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러나 누구의 눈에도 명백하게 드러나는 표절이 어떤 ‘정상참작’에 의지한다 하더라도 표절 아닌 것으로 바뀔 수는 없다. 이 무모한 시도들이 문단 전체를 궁지에 몰아넣은 것이 사실이며, 신경숙씨 자신도 표절을 부인하는 발언으로, 혹은 마지못해 표절을 인정하는 태도로, 자신의 독자들을 두 번 실망시키는 꼴이 된 것이 또한 사실이다.

이 표절 문제와 관련하여 지난 23일 작가회의에서 주최한 긴급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선 평론가 이명원 교수에 따르면, 15년 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신경숙 작가의 표절론이 제기되었지만, 작가는 논리적이라기보다 차라리 상대의 입을 막는 방식으로 사태를 잠재워 왔다. 표절은 법과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의 양심에 관한 문제다. 그래서 한 작가가 다른 작가를 모방했다는 지적보다 그 작가에게 더 불리한 정보는 없다. 그것은 한 작가의 윤리와 작가의식을 부정하는 것이며, 그 작가의 작가됨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식은 어떤 경우에도 작가를 지켜줄 마지막 보루이기에 작가의식이 없는 작가를 상상할 수는 없다. 이 사태 해결의 열쇠 또한 작가 그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23일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 서가에 꽂혀있는 신경숙 소설집 <감자 먹는 사람들>. 창비는 이날부터 이 책 수거에 들어갔다. (출처 : 경향DB)


표절론이 제기되었을 때, 신경숙씨가 자신의 독자들에게 호소했던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문학시장에서 상품성이 높은 작가였다. 이 대중적 인기는 몇몇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오직 문학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거꾸로 문학비평가들은 시장의 평가에 문학적 평가를 덧씌우는 일을 해왔다. 사람들은 문학권력을 말하지만 정작 문제되는 것은 문학의 비루함이 아니었을까. ‘잘 팔리는 작가’에서 ‘훌륭한 작가’가 되는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의 작가의식을 확고하게 다질 수 있는 기회를 붙잡아내지 못했다. 이 정황은 신경숙씨 개인의 불행을 넘어서 문단의 불행이 되었다.

표절 사태가 불거지자 어느 전직 대학교수가 신경숙씨를 ‘업무방해와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였다. 이는 문단의 자정능력을 의심하는 데서 더 나아가 문학의 기능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 된다. 문학은 아무리 세속화하였다 하더라도 전통적으로 주류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기능을 제일의 기능으로 삼는다. 표절 시비를 국가제도의 판단에 넘긴다는 것은 주류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손에 넘기는 것과 같다. 한 나라의 문학에, 또는 한 나라의 미래 전망에 이보다 더 큰 재난은 없다.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작가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다고 나는 벌써 말했다. 이 말은 그가 왜 최초에 작가가 되려고 했는지, 자신에게 글쓰기의 진정한 동력이 되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그는 외부의 압력을 의식하지 않는 자리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마음 밑자리를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테면, 표절행위가 가져온 어떤 심리적 부담이 <우국>을 읽었다는 사실까지 망각하게 한 것은 아니었는지부터 자신에게 캐물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표절의 지적은 작가에게 가장 불리한 정보라고 나는 벌써 말했는데, 이런 정보가 늘 극단적인 형식으로 제시되어 맹렬한 바람에 실릴 때만 소통된다는 것도 이 사회의 비극이다. 무거워진 정신상태는 저마다의 각성으로만 가벼워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황현산 |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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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신경숙

어느 초등학생이 펴내려던 동시집에, 자기 어머니를 살해하고 그 시체를 먹겠다는 내용의 시가 들어 있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식자들의 논란거리가 되었던 것이 얼마 전이다.

다시 거론하기에는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실은 이 사건이 알려진 직후 나는 트위터에 이와 관련해 일련의 작은 글을 올렸고, 그 가운데 하나가 이런저런 매체의 기사에 인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인용된 글이 내가 올린 글의 일부일 뿐이었기에 내가 말하려던 생각이 왜곡된 방식으로 전달되지 않을 수 없었다.

재주 많은 아이가 시적 재능이 번뜩이는 여러 편의 동시를 썼고, 아이의 부모와 출판사가 그것들을 묶어 출판을 꾀했으나, 저 ‘잔혹동시’가 야기한 사회적 물의를 이기지 못해 출간이 취소되기까지의 이 사건에는, 한 아이의 글쓰기와 그 출간에 따른 사회적 책임뿐만 아니라 예술적 글쓰기의 윤리를 비롯해 예술적 재능의 성격과 그에 대한 교육에 이르기까지 몇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한쪽을 강조하다 보면 다른 귀퉁이가 흔들리기 마련이다.

체계적인 이론을 자랑하면서도 그 이론에 늘 배반감을 느끼는 일 가운데 하나가 교육이기도 하다. 열린 생각을 지니고 있는 교육자나 부모들도 아이들의 온갖 반응과 행동양상을 항상 예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고 자유롭게 쓸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재능이라는 담임교사의 말을 믿고 자신의 성적 욕망과 충동을 일기에 털어 놓았다가 담임의 특별지도 대상이 되었으며, 학년이 바뀌자 문제 학생으로 다른 담임에게 인계되기까지 했다. 국어교사인 담임은 자신의 진보적 교육관을 실현하려 했지만 학생의 ‘격한’ 호응에 당황했던 것이다. 그 여학생은 현재 이름을 말하면 알 만한 시인이 되었다. 교육에서건 다른 분야에서건 사람들은 자유라는 말을 쉽게 입에 올리지만, 그 자유가 실현되는 양상에 대해 항상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잔혹동시’에 관해 말한다면, 우리가 너무 호들갑을 떨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예상할 수 없는 일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아이들을 위한 노래, 아이들이 만든 노래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잔혹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성장한 도시에서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며 부르는 노래 가운데 하나는 ‘올림픽 행진곡’에 우리말 가사를 얹은 것이었다.

가사는 “낭랑 나그네 아들”로 시작해 “그 옆에 보고 있던 옥희 아버지 전차에 깔려서 빈대코”로 끝난다. 그러나 이 노래를 들으며 피투성이 시신을 연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것은 그저 ‘말도 안되는 노래’일 뿐이었다.

영국에서 자장가로 사용되기도 한다는 ‘마더 구스의 노래’ 가운데 어떤 버전들은 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다.

우는 아이를 달랜다는 것이 ‘보나파르트’를 들먹이며, ‘그가 철탑에 기대어 나쁜 사람들을 매일 잡아먹으며’,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는 집으로 들어와 ‘고양이가 쥐를 찢어죽이듯 단번에 사지를 찢어 널 죽일’ 것이라고 위협한다.

그러나 그 전체는 아이가 날마다 듣던 위협의 말을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니다.

마더 구스 계열의 노래 가운데 ‘열 명의 인디언 소년’은 그보다는 훨씬 세련되었지만 잔혹함이 덜하지는 않다.

열 명의 인디언 소년이 차례차례 하나씩 사라진다. 목이 막혀 죽고, 벌에게 쏘여 죽고, 도끼로 제 몸을 가르고 죽고, ‘훈제 청어에 먹혀’ 죽고, 큰 곰에게 잡혀 죽고, 햇볕에 타서 죽는가 하면, 늦잠을 자서, ‘데번을 여행하다가’ 거기 남아서, 법률을 공부하고 대법원으로 들어가서 사라지고, 마지막 한 명 남은 소년은 목을 맨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노래가 좀 이상하다. 일곱 명의 인디언 소년은 비명횡사하지만, 다른 세 명의 소년이 사라진 이유는 납득이 쉽지 않고, 이야기의 맥을 끊어놓기까지 한다. 그 점이 이 잔혹한 언사를 ‘말도 안되는 노래’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겠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이 노래를 바탕으로 그의 유명한 추리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쓴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법망을 피할 수 있었던 열 명의 남녀가 외딴섬의 별장에서 차례로 죽어가는 이야기다. 완전범죄의 형식을 띠고 거듭 자행되는 살해는 가차없고 잔혹하다.

그러나 우리네 고무줄놀이의 노래에서도, 마더 구스의 노래에서도 그 끔찍한 사건들은 그 잔혹성이 농담의 성격을, 기껏해야 흑색농담의 성격을 넘어서지 않는다. 동요 속의 이 ‘지나가는 잔혹성’은 아이들이 자기들의 내면에 웅크린 잔혹성을 조절하고, 바깥세상의 잔혹성에 대비하는 면역제의 효과를 지닌 것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런 노래를 부르는 것이 금지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한 초등학생이 “엄마를 씹어 먹어 삶아 먹고 구워 먹어 눈깔을 파먹어”라고 말하는 동시를 같은 이유로 출간을 허용한다는 것이 마땅한 일일까.

서적 <솔로강아지> (출처 : 경향DB)


저들 동요와 이 동시 사이에는 엄연히 다른 점이 있으며, 그 차이 가운데서도 저자가 알려져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저들 동요의 ‘숨은 저자’는 그 말의 논리를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그 윤리에서도 자유롭다. 논리가 허점투성이니 윤리 역시 말이 안되는 소리에 그친다.

반면에 ‘잔혹동시’의 알려진 저자는 그 말의 논리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그 윤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게다가 공책에 적힌 글은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그것을 출판한다는 것은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책의 출간과 동시에 아이는 벌써 ‘말이 안되는’ 소리를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약간 머리가 좋은 아이라면 예술적 재능을 흉내 내기는 어렵지 않다. 몇 가지 구조, 몇 가지 코드를 눈치 채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반면에 어린 재능이라도 진정한 재능은, 말하는 사람이 사라진 저 ‘마더 구스의 노래’에서처럼, 말의 논리를 염두에 두면서도 그 논리에 구멍을 뚫을 줄 안다. 이 구멍이 주어진 윤리에도 구멍이 된다.

교육에서 격려와 칭찬은 늘 중요하다. 그러나 같은 칭찬이라도 ‘잘하고 있다’와 ‘너는 천재다’는 아이의 운명을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소년 시인이었던 아이가 어른 시인이 되는 예는 없지 않지만 매우 드물다.


황현산 |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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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의 이 칼럼에서 나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나는 내 스승이 한·일 혼혈이라고 말했는데, 그게 사실이 아닌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선생이 소년기를 일본인 의모 아래서 보냈던 사실을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잘못 이해하여 혼혈로 생각해 왔던 것이다. 이 오해는 두 문화를 아우르는 선생의 철저한 지식에서도 어느 정도는 연유했다. 한·일의 문화적 정수를 매우 깊은 자리에서 이해하고 있었던 선생은 일본의 문화적 근간에서 늘 한국적 뿌리를 발견하고, 현대 한국의 문화적 외피에서 자주 일본적 형식을 간파하곤 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입 밖에 내는 일은 드물었다. 당신 자신은 그 이야기가 정교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생은 논리와 표현에서 한 오라기의 실만 빠져도 거기에서 오는 마음의 짐을 쉽게 넘기지 않았다.

대학원 시절, 내가 기말 보고서로 제출한 글에서 선생은 번역해서 인용한 문장 하나를 지적했다. 부사 하나가 잘못 번역된 것이다. 문장의 한 부분과 연결된 부사를 문장 전체에 걸리는 것으로 번역했으니, 전후의 문장 간에 논리가 불통하는 것이 당연하다. 선생의 책망은 짧고 조용했다. “이럴 때 마음속에 고통을 느끼지 않느냐?”

나는 아마도 고통을 느꼈겠지만 자기합리화의 억지 논리가 그 고통을 재빨리 지웠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기는 어렵다. 허위와 진실의 갈림길에서 위험한 자기합리화에 맞설 수 있는 무기는 엄중한 자기검열밖에 없다.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자기검열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용감해진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 후로 스승의 저 짧은 책망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이치에 닿지 않는 것 앞에서 그 배리를 머리보다 먼저 몸으로 느끼는 섬세함, 거기서 오는 고통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저 자신을 객관적 이성의 대리자로 만들어 사안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려는 용기, 생각한 것의 작은 혈관까지 성실하고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 능력 등,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이런 자질을 끊임없이 연마하려 했던 것도 저 스승의 책망이 언제나 내 곁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공부하는 일의 목적이 고통을 고통으로 느낄 수 있는 지각의 훈련과 그 고통 앞에서 정직할 수 있는 용기의 연마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초등학생이 되어 학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이치의 그물’ 안에 든 물고기와 같다. 학교는 왜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지를 가르치고, 일출과 일몰, 사계절의 순환이 어떻게 필연적인가를 증명한다. 자연만물에 이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안도한다. 때로는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고, 태풍이 불기도 하지만, 그런 재변이 일정한 테두리를 넘어서는 일은 드물고, 그 폐해가 조만간 복구되는 것도 사실이다. 자연은 끝없는 설명의 욕구를 자극하고, 그 설명이 불완전할 때 우리는 고통을 느끼지만, 자연의 ‘완전성’에 구멍이 뚫리면 우리 삶도 위협을 받을 것 같기에 그만큼 합리화의 욕구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자연에 대한 기대가 정직해질 수 있는 용기를 방해한다고 해야겠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9일 4·29 보궐선거 지역인 경기 성남시 중원구 성남산업단지공단에서 열린 현장최고위원회의에서 자료를 보며 발언하고 있다. 자료 뒤편에는 앞서 모두발언에서 이야기한 ‘종북연대, 종북세력을 깨는 것이 이번 선거’ 등의 메모가 적혀 있다. (출처 : 경향DB)


인간 세상에도 물론 규칙이 있다. 그것은 자주 자연을 모방한다. 하늘에 태양이 하나이듯이 왕도 하나라거나, 법은 물이 흘러가는 것과 같아야 한다는 말이 모두 그런 범주에 속한다. 많은 경우 인간이 만든 규칙은 자연을 뛰어넘지만, 그 안에서 부딪치고 살다 보면 규칙 자체가 습관이 되기에 결국 통용되는 질서는 ‘자연스러움’의 외양을 갖추고 만다. 전제적 규칙이라고 해서 민주적 규칙보다 덜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다. 인간 사회의 규칙 또한 그 설명이 불완전할 때 우리는 심각한 고통을 느끼지만, 그에 대한 신뢰가 일상의 안전과 연결될 것만 같기에 그 합리화는 거의 운명적이다. 실제로 정직해지려는 용기의 발휘가 규율문란의 획책으로 몰려 사회적 제재를 받는 일은 흔하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는 이 정직해지려는 용기와 노력이 ‘종북’의 혐의를 둘러쓰기까지 한다. 한 사회의 권력과 질서에 대해 그 약점을 말한다는 것은 그 사회의 적을 이롭게 하는 일인데, 우리의 적은 북한일 뿐만 아니라 북한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질서의 편’에 선 사람들은 권력에 대한 하찮은 비난도 견디지 못하고 어김없이 ‘빨갱이’라는 말을 입에 올린다. 물론 사람들은 이 ‘빨갱이’라는 말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모를 만큼 바보가 아니다.

그러나 여론조사도 투표도 그 터무니없는 말에 늘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우리 사회의 정신 상태에 알 수 없는 어떤 코드가 존재한다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비겁함을 감싸주는 자기합리화의 코드.


황현산 |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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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승은 거의 일본인이나 같았다. 일본에서 제주도 출신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성장하고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에서 교수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국적을 바꿔야 했기 때문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한국어도 그때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10년쯤 살고난 후 한국어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가장 고급한 한국어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지만, 일기는 여전히 일본어로 썼다. 당신이 타계한 후 장서를 정리하다 발견한 길고 짧은 메모들도 모두 일본어였다.

스승이 지닌 지식의 깊이와 절차탁마의 수행력은 범인이 흉내내기 어려웠다. 교실 밖에서건 안에서건 공부와 관련되지 않은 이야기는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까지, 하루에 열 시간 이상을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고, 그 원칙을 지켰다. 잡무를 처리할 때는 다른 책상을 썼고 그 시간은 공부하는 시간으로 치지 않았다. 나는 스승의 교훈과 학구적 태도를 본받으려고 하였으나, 시늉으로만 그럴 수 있었다. 나로서는 그나마 그것이 스승을 배반하지 않는 길이었다.

나는 스승이 한·일 혼혈인 것을 안 이후 ‘왜’라는 말을 결코 입에 올리지 않았다. 나는 그때까지 일본인을 만난 적이 없었지만, 스승을 통해 일본인을, 아니 일본 연구자들의 근면하고 정직하고 진지한 태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공부를 하는 동안 알게 모르게 일본의 전세대 연구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일본과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일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때이다. 나는 일본인을 증오하지 않았다. 일본인들 속에서 위대한 학자들을 볼 뿐이었다.

스승은 한국에 와서도 일본 문화를 사랑했다. 길을 가다가도 일본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서는 잠시 발을 멈추었으며, 여러 종류의 일본 잡지를 구독했다. 그러나 학생들 앞에서 일본어를 단 한마디도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일본의 한국 침탈, 대륙침공, 태평양전쟁 등에 관해서는 여타의 한국인과 늘 감정을 공유했다. 일본의 극우 정치가가 된 소설가 이시하라 신타로를 악당이라고 엄숙하게 말했으며, 할복자살한 미시마 유키오에 대해서는 ‘재주는 좋지만 덜 떨어진 낭만주의자’로 판단하고 가엾게 여겼다. 일본의 제국주의자들과 그 동조자들, 그리고 한국의 친일파들은 선생이 보기에 모두 전범일 따름이었다. 선생은 그 전범들을 증오했다. 선생의 정체성은 두 나라에 걸쳐 있었지만, 자유와 평등이 존중되는 나라의 시민이라는 그 정체성은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이 지난달 27일, 일본의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좀 뜬금없는 말을 했다. 발언의 핵심을 짚어보면 옳은 것처럼 들리는 말이 어떻게 사실을 왜곡할 수 있는지를 명백하게 알게 해준다. 그는 말했다. 동북아에서 “민족주의 감정이 여전히 이용될 수 있으며, 어느 정치지도자도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런 도발은 진전이 아닌 마비를 초래한다.” 이 발언이 겨냥하고 있는 중국인과 한국인은 어느 사이에 민족주의의 낡은 감정에 갇혀, 어설픈 정치가들에 값싼 박수를 치는 사람들이 돼 버렸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6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 장관실을 방문한 웬디 셔먼 전 美대북정책조정관을 접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중국인들이 ‘난징 대학살’에 대해 이야기하고, 한국인들이 한국이나 미국에 ‘종군위안부’의 조각상을 세운다면, 그것은 양국 국민들이 언제까지나 몽매한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일까. 양국 국민들이 정치가들의 술수에 놀아나 깊이 없는 감정에 흔들리고 있기 때문일까. 우리는 과거에 붙들려 있는 사람들일까.

‘난징 대학살’ 같은 학살 사건이 중국인들에 의해 미국에서 저질러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미국인들과 중국인들과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이 함께 지탄해야 할 일이다. 한국인들이 일본의 젊은 처녀들을 강제로 전쟁터의 위안소로 끌고 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일본, 한국, 중국, 미국 그리고 다른 모든 나라의 시민들이 함께 통탄하고 그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다. 그것은 인간성에 관한 일이고 인류의 미래에 관한 일이기에 민족감정 따위에 엮어 묶을 수 없다.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와 단절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객관화해야 한다. 일본의 침략주의와 제국주의에 관해서라면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에 앞서 일본인들이 먼저 그 실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객관화되지 않는 ‘과거의 적’은 바로 ‘현재의 적’이며, 한국인들과 중국인뿐만 아니라 일본인에게도 적이기 때문이며, 웬디 셔먼의 나라 미국의 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 선생은 우리에게 과거를 객관화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황현산 |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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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생산성 낮은 만화가”라고 소개한 최규석씨가 1985년에 제작된 가족계획협회의 광고를 찾아내어 트위터에 올렸다. “셋부터는 부끄럽습니다”라는 제목을 단 이 광고는 형제 많은 집안의 자식들이 학교에서 수모를 당하는 내용을 한 컷짜리 만화로 전한다. “형제가 몇이냐”는 교사의 질문을 받고 손가락 하나 또는 둘을 내민 급우들 곁에서 손가락 셋을 내민 한 학생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한다. 정부가 국민을 그런 식으로 “협박했던 그 때나, 외동은 성격이 더러울 것이라고 협박하는 지금이나 국민을 대하는 방식은 동일”이라고 최규석씨는 이 광고 만화에 짧은 논평을 했다.

최규석 트위터 갈무리


사실상 산아제한정책과 다르지 않았던 그 시대의 가족계획정책과 관련해서 내게도 몇 가지 기억이 남아 있다. 한 텔레비전 방송의 낱말 맞추기 게임에서다. ‘산아제한’이라는 정답을 놓고 사회자가 “사람들이 좀 없어져야 해요”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이름 난 탤런트이기도 한 이 사회자는 나중에 이회창씨가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 그 선거운동원이 되어 열성을 좀 지나치게 뽐내는 바람에 크게 빈축을 샀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더 크게 비난 받아야 했을 저 발언은 어떤 물의도 일으키지 않았다. 나라가 ‘옳다’고 하는 일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의 ‘작은 잘못’을 누가 비난할 수 있었겠는가. 아니 그 잘못이 보이기라도 했겠는가.

덕수궁 앞에는 거대한 지구의 탑이 서 있었다. 지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검은 색을 칠해 놓은 사람들이 엉켜 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마치 지옥에서 한 단의 파뿌리를 붙들고 밖으로 나가려는 유령들처럼 서로서로 다리를 밧줄처럼 붙들고 지구에 매달렸으며, 몇몇 덜 악착스러운 사람들은 나무뿌리 하나도 붙잡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물론 그 지구의 탑이 표현하고 있는 형상은 과학의 기본법칙에도 어긋나는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그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 참혹한 광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자신만은 저 탈락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조급함밖에 다른 생각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으리라. 사람들이 어찌 서로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구의 탑은 가족계획정책을 홍보하기도 전에 사람들 사이에 증오심도 부추겼다. 정책이 출산장려로 방향을 바꾼 후 아비규환의 지구의 탑은 사라졌지만 이 증오심까지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서로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인간들이 갑자기 서로 귀하게 보일 수는 없다.

최근에 교육부총리는 교육에서 차지하는 인성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대학입시에도 인성검사를 끌어들이겠다는 뜻을 비쳤다. 훌륭한 인성을 기르겠다는데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의 도덕심은 육체가 쇠해가는 사람들에게 늘 염려스러운 것이어서, 윤리교육을 염두에 둔 인성교육의 주제는 누가 그 말을 꺼내기만 해도 그 사람을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인성이 황폐해진 것은 교육의 잘못에만 그 탓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교육으로만 그것을 교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날의 가족계획정책과 관련된 위의 세 가지 일화만으로도 그 점은 너무도 명백하다. 벌써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를 세 번째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교육과 의료의 모든 혜택에서 배제시켰던 정부의 처사보다 더 인성에 어긋난 것을 찾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좀 없어져야 해요” 같은 막말이 무엇을 배경으로 감히 발화될 수 있었을까. 지구에 몸을 붙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아비규환에서 헤매는 축생으로 제시된 마당에 인간들에게 인성이라는 말이 가당하기나 한 것인가. 지금 외동으로 자란 아이는 그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려는 사람들은 그 협박의 말이 수많은 외동아들 외동딸들의 인성에 어떻게 작용할지를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았을까. 나라는 이렇게 인성을 배반해 왔다.

인성교육이란 폭넓게 말하면 인문학교육이고, 인문학이란 결국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려는 생각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기르는 공부다. 사람은 산업역군이기 전에 사람이고 국가의 간성이기 전에 사람이다. 어떤 정책이나 정치적 이념에 맞게 사람을 교양하려는 시도는 벌써 사람을 배반한다. 사람이 국가나 제도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제도가 사람을 위해 있다는 것은 지극히 명백한 진실이고, 그래서 잊어버리기 쉬운 진실이다.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국정교과서로 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혹시라도 부총리의 마음속에 있다면, 그는 자신의 인성부터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황현산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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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는 푸른 양의 해라는데, 그런 양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일이 쉽지는 않다. 지지의 열두 동물을 늘어놓고 보면, 푸른 용이나 푸른 뱀은 말할 것도 없고, 푸른 닭이나 푸른 원숭이도 상상이 가능하다. 천지가 개벽할 때 닭이 울었다면 푸른 닭이 제격일 것 같고 원숭이는 그 간교함이 푸른빛을 띠기도 할 것이다. 하늘나라의 견우가 끄는 암소는 푸른빛이 짙어져서 검다고 말할 수 있고, 달나라의 옥토끼도 푸른빛이 은은할 터이다. 우리가 푸른 양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은 양이 우리의 신화나 전설 속에 등장한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니 신화를 들먹일 것도 없이, 아마도 한국전쟁 전까지는 우리의 삶에 양이란 동물이 없었다.

전쟁 후에 ‘백양’이라는 담배가 있었다. 양이 없던 나라의 담배에 그런 이름이 가능했던 것은 담배연기가 하얀 양털을 연상케 한 때문이기도 하겠고, 담배 피우는 한가한 시간에는 하얀 양떼가 풀을 뜯는 서구의 산록을 꿈꿀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 이름에 담았을 수도 있겠다. 전통적으로 순결은 백색으로 표현되지만, 푸른색이 오히려 더 적합할 것 같기도 하다. 진해질 수도 옅어질 수도 없는 백색은 언제까지나 백색으로 남아 있지만, 푸른색은 옅어져서 투명함에 이를 수도 있다. 그래서 청색은 비물질적 이미지를 누린다. 자연의 색깔 가운데 푸른색을 지닌 것은 하늘과 바다인데, 그것들이 또한 무한의 상징이자, 푸른색의 비물질성이 더욱 굳건하다. 양이 순결을 뜻한다면 이 비물질성의 푸른색이야말로 가장 어울리는 색깔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이렇게 푸른 양을 변호해도 여전히 푸른 양은 농담처럼 들린다. 농담이 물론 나쁜 것은 아니다. 새로운 농담이기만 하다면. 세상의 거대한 변화는 농담으로 시작한다. 프랑스 대혁명을 예고했던, 디드로의 해학 넘치는 소설 <라모의 조카>나 보마르셰의 희극 <피가로의 결혼>이 그 증거다. 봉건시대에 양반 상놈이 없는 세상이란 말보다 더 새로운 농담이 어디 있었겠는가.

김수영은 햇수로 따져 정확하게 반세기 전에 쓴 시 ‘절망’에서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지난봄에 304명의 아까운 사람들이 물에 빠져 숨졌을 때, 나라의 수뇌부는 온갖 지원을 약속했지만 그사이에 얼굴을 바꿔 그들을 만나려고도 하지 않는다. 해를 넘겨도 무정함은 무정함을 반성하지 않는다. ‘땅콩 회항’ 사태 이후 경영자 일가족은 여러 차례 사과를 하고도 여전히 복수심을 불태운다. 난폭함은 난폭함을 반성하지 않는다. 저 70m 높이의 굴뚝 위에 올라간 쌍용자동차의 해고노동자 김정욱씨과 이창근씨를 비롯하여 수많은 노동자들이 고공에서 혹한을 견디고, 또 다른 사람들이 천막 속에서 단식을 하고 길거리에서 오체투지를 해도, 그들이 웃으며 땅에 내려오게 하고, 행복하게 밥을 먹게 해야 할 사람들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반성해야 할 세상은 반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수영은 또한 그보다 훨씬 먼저 썼던 시 ‘꽃’에서 “푸르고 연하고 길기만 한 가지와 줄기”에서 “중단과 연속과 해학이 일치되듯이” 그 푸르고 길기만 한 “가지에 꽃이 피어오른다”고 말했다. 가망 없을 것 같은 것들이 그 가망 없음을 중단하고, 그러나 그 조건을 그대로 이어받아 마치 농담이라도 하듯이 기적 같은 변화를 일으킨다는 말이겠다. 기적은 농담처럼 어렵고 농담처럼 쉽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이창근 정책기획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이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70m 높이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악조건 가운데서도 바라건데 농담 같은 기적이 일어나길 소망한다. (출처 : 경향DB)


영국의 방랑 학자 패트릭 리 퍼머는 펠로폰네소스 남쪽 오지의 답사기 <그리스의 끝, 마니>에서, 그 척박한 산간지방 주민들의 인간미 넘치는 삶을 이야기하며, 그들이 낯선 나그네를 환대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새로운 농담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했다. 산으로 막히고 바다로 끊어진 황지에서 그 삶과 똑같이 오래된 농담을 반복하며 즐기던 사람들에게 다른 땅에서 먼 길을 걸어온 손님은 새로운 농담을 전해주는 사람이고, 그래서 천사와 다름없다. 새로운 농담이 삶의 새로운 변화 그 자체는 아니더라도 그에 대한 기약일 수는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기 어려웠고 지금도 어려운 한 마리 푸른 양은 ‘반성하는 곰팡이’나 ‘반성하는 절망’처럼 가당치도 않은 농담일지 모르지만, 상상력이 낡은 상상력을 뛰어넘지 않으면 농담도 변화도 없는 것이 확실하다. 찬바람 속에 솟아오르는 새해가 아무리 찬란하다 한들 저 어렵고도 쉬운 농담을, 그 반성의 변화를 불러오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황현산 |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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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천칠백도 남쪽 바다 달무리만 고요한데”라는 말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다. 초등학교를 들어갈 무렵 옆집 누나의 노래를 들으며 따라 불렀다. “일천칠백도”가 무슨 뜻인지는 물론 몰랐다. 나이가 들고 한자와 한자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것이 ‘일엽편주의’가 와전된 말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그것이 실은 ‘1700개의 섬’이란 뜻이며 그 노래가 진방남이 부른 ‘명사백리’라는 것을 알려준 것은 문화평론가 이영미씨이다.

노래로 불러야 할 서정과는 아무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숫자도 그것이 섬의 수와 연결될 때는 시적 환기력을 지닌다. 캐나다와 미국 사이 세인트로렌스 강과 온타리오 호수가 만나는 지역의 1860여개 섬을 가리키는 ‘사우전드 아일랜드’는 샐러드드레싱의 이름으로도 사용된다. 사람들은 세상살이의 번뇌와 오욕으로부터 보호된 세계가 바다로 격리된 섬에는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섬에서 자란 나는 그런 생각이 어처구니없지만 한편으로는 흐뭇하기도 하다. 섬은 적어도 순결하고 평화로운 해방구에 대한 영상 하나를 만들어 주었다. 1700개의 섬에는 그만한 수의 행복이 있다.

정현종 시인의 짧은 시 ‘섬’은 “그 섬에 가고 싶다”로 끝난다. 조선시대의 소설 <홍길동전>도 사실상 ‘그 섬에 가기’로 끝난다. 폐결핵에 시달리며 암담한 삶을 눈앞에 두고 있던 시인 이상이 여기저기 찻집을 꾸릴 때도 마음속으로는 어떤 외딴섬을 꿈꾸고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 시대에 삶의 공간이나 문화적 환경의 기획에도 그런 섬의 영상이 자주 개입한다. 시미즈 레이나의 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에서 “서점이 가진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슨 책이든 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보다는 책과 조우하거나 혹은 자기 세계관에 접근할 수 있는 공간 기능을 조성하는 데 있다”는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의 말을 읽으면서도 나는 그가 어떤 아늑한 섬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1960년대 초에 시민들의 주거공간으로 아파트를 시험 삼아 짓기 시작할 때 자유직업에 종사하는 독신자들이거나 신혼부부였던 아파트의 첫 입주자들도 사생활이 보호되고 개인의 취향이 차별되는 공간을 거기서 발견했을지 모른다. 이제 아파트는 대다수 시민들의 집이 되었다. 구획된 공간 안에 생활의 편의를 위한 시설과 도구들이 정연하게 배열되어 있다. 아파트는 처음에 생활의 더께가 눌어붙은 왁자지껄한 골목과 차별되었지만, 이제 그 격리된 섬으로서의 가치는 줄어든 듯하다.

그러나 순결하고 평화로운 공간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제 공간에 순결과 평화를 강제함으로써 어떤 차별된 가치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는 아파트가 아파트를 차별한다. 아파트의 담장 쌓기나 시설물의 차별적 사용은 벌써 사람들의 관심도 끌지 못할 이야기가 되었다. 어디서 건너들은 이야기지만 어느 학부모는 자기 집 애의 학급에서 가난한 아파트의 아이가 반장이 된 사실을 못마땅하게 여겨 담임교사를 찾아갔다. 그래도 가난한 아파트 운운할 수는 없어서 맞벌이 가정의 아이가 반장이 되면 누가 학급 일을 돌보느냐고 에둘러 말했다는 것이다. 지난날에는 부잣집 아이가 가난한 집에도 놀러가고 가난한 집 아이가 부잣집에도 놀러갔지만 이제 그런 일은 중대한 사고로까지 여겨진다. 섬은 성벽을 치고 전쟁하는 섬이 되었다.

순결과 평화가 강제되어 서로 간 차별의 기준이 된 아파트 (출처 : 경향DB)


어느 아파트의 경비원이 자기 몸에 불을 지르고 끝내 숨진 참사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울분을 참지 못한 동료들이 고인의 시신 앞에 망연히 서 있는 모습이 몇 차례 TV 뉴스에 떴지만 용역업체를 바꾸기로 결정한 이 아파트가 경비원들이나 환경미화원들의 고용을 승계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따지는 것으로 이 비극이 마무리되어 버릴 것 같다. 사과나 위로금 따위가 어찌 됐는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그 또한 무슨 소용이겠는가. 우리는 모진 사람들이 되었고 한편으로는 피곤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래서 제 사는 자리를 더욱더 섬으로 만들려 하고 거기에 철벽을 치려 한다.

그러나 철벽의 보호를 받는다고 해서 피곤한 마음이 거기서 편안할 수는 없다. 차라리 피곤함은 그 철벽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청량한 섬의 영상으로 깨끗하고 아늑한 삶을 기획할 때는 그 삶이 비록 독립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 순결과 평화를 거기 가둬두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을 온 세상의 것으로 펼치기 위함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끌어안아야 할 모든 것을 몰아내고 제 번뇌와 오욕만을 가두어 둔 1700개의 섬은 그 수의 지옥이다.


황현산 |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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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의 인문학 연구자들이 처음 대학 강단에 설 때, 선배 교수들은 3년에 논문 한 편씩을 쓰면 학자로서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해는 주제를 설정하여 자료를 모으고, 한 해는 논문을 구상하여 얼개를 짜고, 마지막 해는 논문을 집필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매우 넉넉했을 것 같지만 그때에도 논문 쓰는 사람들은 크게 압박을 받았다. 진지한 연구자들은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논문에 자신의 미래가 걸려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의 방향이 결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이 넉넉한 시간을 용서하지 않았다.

언론사의 대학평가가 시작되면서 학교는 교수들에게 1년에 최소한 논문 한 편씩을 쓰라고 독려했다. 특히 IMF 사태 이후에는 ‘교수 철밥통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존경 받는 교수 같은 것이 없어진 것도 이 무렵부터다. 내가 아는 인문학 분야에서만 말한다면 교수들은 지금 내가 처음 교수생활을 할 때보다 10배 정도 논문을 더 쓴다. 그래서 인문학이 그만큼 발전했는가. 양적으로는 그렇다. 다만 이런 말을 덧붙여 둘 필요가 있다. 옛날에는 연구자들이 적어도 자기 분야에서는 다른 연구자들의 논문을 열심히 읽었으며, 누가 어떤 논문을 썼는지 알고 있었다. 지금은 다른 연구자의 논문을 열심히 읽지 않는다. 논문을 읽는 사람은 쓴 사람 자신과 두세 명의 심사자뿐이라는 말도 있다.

옛날에는 어떤 분야에서 교수가 대학원생의 논문을 가로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인문학 분야의 교수들은 그 상황 자체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대학원생들이 내 시간을 빼앗지만 않아도 다행일 텐데.” 내 주변의 연구자들은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지식의 양에서건, 사실의 해석에서건, 표현 역량에서건, 선생과 학생의 격차는 매우 커서 교수가 학생의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는 이야기다. BK나 HK 프로젝트가 생겨난 이후 이 상황은 달라졌다. 다량의 논문을 생산해야 하는 이들 프로젝트에서 연구에 참여한 대학원생들의 보고서 수준의 논문에 교수들이 자기 이름을 얹는 일이 이제는 비일비재하다. 논문의 주제를 정하고 써야 할 방향을 지시한 것이 교수이기도 하니 따지고 보면 딱히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 논문의 질은 심사를 통과할 수 있는 수준으로 평준화되었다.

이 심사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연구자들이 논문을 쫓기면서 써야 하는 편수 늘리기 체제에서는 논문을 심사 받는 사람과 심사하는 사람이 모두 같은 처지에 몰려 있다. 그들은 심사에 엄격하기 어렵다. 질이 평준화된 상태에서 좋은 논문과 그렇지 않은 논문을 가리기도 어렵다.

그렇더라도 학술지가 ‘괜찮은’ 학술지로 인정받고 연구재단의 검열에 대비하려면 투고된 논문 가운데 3분의 1에서 절반 정도의 논문은 떨어뜨려야 하니 희생양을 찾게 되고, 그 일이 만만치 않으면 편법을 쓰게 된다. 투고된 논문의 일부를 짐짓 떨어뜨리는 척했다가 다음호에 게재하거나, 실체가 없는 명목상의 논문을 만들어 탈락률을 높이는 일도 그런 편법에 속한다.

지난 28일 오후 대학로에서 열린 인문학 콘서트에서 도정일 교수(왼쪽)와 최재천 교수는 지식의 변화와 통섭을 위한 문·이과 융합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출처 : 경향DB)


교수들을 압박하면서 인문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 가운데는 영어 강의나 영어 논문 쓰기도 들어간다. 한 학문분야에서 고급한 내용을 지닌 첨단적 사고는 이미 국제어가 된 영어로 집필되어 그 학문의 새로운 길을 세계적 수준에서 향도함이 바람직한 일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인문학 분야에서라면, 그 첨단적 사고는 제 나라 말로 강의하고 제 나라 말로 글을 쓰는 과정에서만 돌출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인간의 깊이란 의식적인 말이건 무의식적인 말이건 결국 말의 깊이인데, 한 인간이 가장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그 존재의 가장 내밀한 자리와 연결된 말에서만 그 깊이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문이, 특히 인문학이 제 나라 말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떤 언어로 표현된 생각은, 그 생각이 어떤 것이건, 그 언어의 질을 바꾸고, 마침내는 그 언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세상을 바꾼다. 정의라는 말이 없다면 우리의 인간관계와 제도가 달라졌을 터인데, 정의를 ‘저스티스’라고 한다고 해서 그 내용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를 세상에 실현하기 위해 쏟아부은 온갖 역사적 노력과 그 말을 연결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학문에서 제 나라 말을 소외시킨다는 것은 제 삶과 역사를 소외시키는 것과 같다.


황현산 |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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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인문학

제 나라 글자와 말을 기리고 가꾸기 위해 기념일을 제정한 국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 한글날을 만들어 그날 하루만이라도 나라의 언어생활에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는 것은 우선 한글이 오래오래 기림을 받아야 할 우수한 문자이기 때문이지만, 제 나라의 말과 글을 마음 놓고 쓰지 못했던 한 시기와 관련된 역사적 한에도 그 이유가 있을 듯하다. 한글날을 맞으면 사람들은 외래어의 범람이나 언어의 왜곡된 사용을 염려한다. 신문과 방송이 가끔 한글을 발전시킨 인물들에 관한 특집기사를 준비하기도 하더니, 요즘은 외국인들을 불러 한글을 예찬하게 하는 것이 유행이다. 그러나 관심은 그 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국가나 민간에서 한국어의 발전을 위해 대대적인 사업을 기획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내 관심도 그런 선에 머물러 있기에, 바람직하고 실현가능한 사업을 제안하기는 어렵지만, 신뢰하고 사용할 수 있는 언어사전의 편찬이나, 이제는 만인의 필기구가 된 문서편집기의 정비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나 같은 평범한 사용자가 엄두를 낼 만한 일은 아니어서, 그와 관련된 몇 가지 지엽적이고 사소한 부탁이나 해보려 한다. 말 그대로 사소한 부탁이지만, 이들 지엽적인 부탁이 어떤 알레고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는 않다.

먼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관해서. 이 사전의 아이패드 앱 최근 버전은 ‘줄금’이란 낱말을 두 개의 표제어로 올리고 있다. 첫 번째 ‘줄금’에 관해서는 ‘금’과 같은 말이라고 했으니 ‘접거나 긋거나 한 자국’을 뜻하는 말이 된다. 두 번째 ‘줄금’에 관해서는 ‘줄기’와 같은 말이라고 했다. 그런데 용례가 문제다, “비가 한 줄금 쏟아지다”를 두 번째 ‘줄금’의 용례로 소개했는데,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도 아랫녘의 평야지대에서는 ‘비가 한 줄금 반 내렸다’나 ‘두 줄금이 못 되게 내렸다’는 말을 흔히 쓴다. 이때 ‘줄금’은 옛날 강우량을 측정하는 도구에서 그 단위를 나타내는 ‘금’을 말한다. 사라져가는 말, 또는 서울에서 쓰지 않는 말에 대해서는 그 용례를 채집하는 데 특별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두 번째 부탁이다. ‘석작’이라는 용기가 있다. 가는 대오리를 엮어 만든 직육면체 상자형태에 뚜껑이 있는 바구니다. 위에서 내려다 본 모양이 직사각형일 때는 ‘긴석’이고 정사각형일 때는 ‘말석’이며, 가끔은 원통형도 있어서 ‘둥글석’이라고 한다. 이바지 음식을 담아갈 때 쓰는 고급 그릇이고 흔히 보는 그릇이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이 용기를 ‘석작’이라는 이름에 ‘한과 바구니’라는 말을 붙여 상품으로 판매하는 사람들이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동구리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자주 쓰는 그릇에 이름이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하다못해 사투리라는 꼬리표를 달아서라도 사전에 올려주기를 부탁한다.

한글과컴퓨터에 부탁한다. ‘한컴오피스 한/글’(2014년판)의 맞춤법검사기능은 매우 유용하다. 그런데 ‘감옥에 들어갔다’고 쓰면 ‘감옥’에 붉은 줄이 그어진다. ‘교도소’로 고치라는 것인데, 모든 감옥이 교도소는 아니다. ‘말은 하기 쉽다’고 쓰면 ‘하기’에 붉은 줄이 그어진다. ‘다음’이나 ‘아래’로 고치라는 것이다. ‘키가 크다’라고 쓰면 ‘키’에 붉은 줄이 그어진다. ‘열쇠’로 고치라는 것이다. 이 기능에 또 다른 문제도 있다. 로마자로 표기하지만 영어가 아닌 글, 이를 테면 프랑스어로 된 글을 올리면 모든 낱말에 붉은 줄이 그어진다. 잘못된 영어라는 것이다. 물론 이 기능에는 사용자 설정 메뉴가 있어서 검사언어에서 영어를 제외하면 문제가 해결되지만, 설정이 저장되지 않으니 매번 다시 설정해야 한다. 맞춤법검사기능을 좀 더 섬세하게 다듬어 주기를 부탁한다.

한컴오피스의 아직 미흡한 맞춤법검사기능


한글과는 무관하지만 또 하나의 부탁이 있다. 로마자로 쓴 글에서 긴 낱말이 줄 끝에 걸리면 하이픈을 찍고 분철을 한다. 그래서 긴 단어에 ‘무른 하이픈’을 찍어두면 그 단어가 줄 끝에 걸릴 때 자동으로 분철이 되면서 하이픈이 찍힌다. 프랑스어에는 원래 하이픈이 들어 있는 낱말들이 많다. 그 하이픈이 있는 자리에서 분철을 하면 좋은데, 그 자리에 ‘무른 하이픈’을 찍어두면 분철하면서 두 개의 하이픈이 찍히게 된다. 영어가 아닌 외국어에도 사전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신경을 써주기를 부탁한다.

언어는 사람만큼 섬세하고, 사람이 살아온 역사만큼 복잡하다. 언어를 다루는 일과 도구가 또한 그러해야 할 것이다. 한글날의 위세를 업고 이 사소한 부탁을 한다.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한다.


황현산 |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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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팽 술라리라는 프랑스 시인이 있었다. 19세기 중엽에 재기 있는 시들을 제법 많이 발표했지만 뒤이어 나온 보들레르, 말라르메 같은 거대한 이름에 묻혀버려 지금은 거의 잊힌 시인이다. 그의 고향인 리옹에 그의 이름을 붙인 거리가 하나 있고, 보들레르의 평문에 그의 이름이 한 번 등장해서 전문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도다. 그의 제목 없는 소네트에 이런 시구가 있다. “함께 자던 나비 날아가니, 혼자 자는 장미 끝에 폭풍 인다.” 한 사람이 떠난 후, 뒤에 남은 사람의 꿈이 어지럽다는 뜻을 비유하는 말이다.

그런데 한 세기도 더 후에 기상학자 로렌즈 같은 사람이 “브라질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해서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는가”라고 물으며, 하나의 원인이 하나의 결과를 초래하는 복잡한 과정을 과학적으로 예측하는 일이 지극히 어렵다는 뜻으로 말을 했을 때, 나비의 날갯짓과 폭풍을 함께 언급한 술라리의 저 시구를 상기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을까. 물론 로렌즈가 술라리의 시구를 알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로렌즈를 포함한 과학자들의 복잡성이론이나 혼돈이론을 믿는다면, 어떤 과학이론과도 무관한, 더구나 전문가들에게조차 망각된 19세기의 시구 하나가 우여곡절을 거쳐 20세기 후반에 이론의 돌풍이 되어 나타났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장담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내가 술라리의 나비와 로렌즈의 나비를 함께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 시내의 어느 대형서점에 딸린 커피점에서 다리를 쉬고 있는데, 머리를 짧게 깎은 한 중년남자가 인사를 한다. 내가 머뭇거렸더니, 학생 시절에 내 수업을 두 학기 정도 들었다며, 학사장교로 복무하고 중령으로 전역한 후 어느 기관에서 국방관련 업무를 보고 있다고 자기소개를 했다. 그가 군인이었고 여전히 군인이나 다름없으니, 두 사람의 화제가 최근에 군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들로 채워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는 자기 일이 정훈업무와 무관하지 않아서 일말의 책임을 느낀다고 말하면서 내게 조언을 구했지만, 사병으로 3년 복무한 경험, 그것도 40년 전의 경험밖에 없는 내가 군사전문가인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내가 마지못해 나이 든 국민으로 상식적인 이야기라도 하게 되면 그의 대답은 언제나 “문제가 참으로 복잡합니다”였다.

문제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이 징병제 국가에서는 한 인간이 제 적성이나 희망으로 군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군대의 폐쇄된 환경에서는 아버지에게 맞고 자랐던 상처가 총기사건으로 폭발할 수도 있고, 학교에서 따돌림 받았던 기억이 한 젊은이를 목매달게 할 수도 있다. 그보다 더 작은 사건도 어떤 계산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더 큰 사건의 씨앗이 될 수 있고, 끝내는 조직의 토대를 허물고 여러 사람의 목숨을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다. 군대의 지휘관들이 이 나라의 모든 상처와 기억을 그 계산할 수 없는 작용까지 함께 관리해야 하는 셈이니 복잡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적 사법개혁 실현을 위한 연석회의 회원들이 서울 용산 국방부 앞에서 군 사법체계의 개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러나 모든 원인이 사병에게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어느 육군대장이 취중에 추태를 보였다거나 공군 간부들이 민간인에게 성추행을 했다는 따위의 사건은 오히려 작은 일이다. 역시 최근의 소식이지만, 어느 육군 장교가 초등학교에서 반공교육을 하면서, 북한의 실상을 알리겠다며 잔학하기 이를 데 없는 장면을 보여주어, 몸서리를 치고 악몽을 꾸는 아이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군대의 정훈교육에서 북한의 여성응원단과 관련하여 적화통일을 위한 미인계 운운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반공교육이건 안보교육이건 당면 목표가 있겠지만, 그 목표가 민족의 미래와 인류의 공영을 바라보는 더 큰 목표와 어느 선에서건 연결되지 않으면, 벌써 알 것을 다 알고 있는 장병들에게 진정한 사기를 진작시킬 수 없다. 우리가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각급 지휘관들이 이 시대에 살기를 거부하는 한 저 기억과 상처들을 하나의 힘으로 묶기 어렵다. 내가 이런 소회를 말하자 그는 같은 대답을 했지만 어조가 달랐다. “참으로 복잡하군요.”

원인이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계산할 수 없다는 말은 그에 대한 관측과 추론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복잡성이론을 내가 공부한 분야의 말로 이해한다면 나쁜 믿음에 빠지지 말자는 말이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유신시대의 흑백 필름을 지금 또다시 한번 돌리면 병사 하나가 피를 토하고 죽는다.


황현산 |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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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국제 히피인 오승연씨의 사진전이 지난달 23일부터 29일까지 경인미술관에서 열렸다. 오씨는 히피의 삶을 살며 여섯 대륙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닌 여행가이지만, 그의 카메라에 담긴 풍경에 명승이나 절승은 거의 없다. 사진전의 제목이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인 것처럼, 자기 존재 전체를 자연에 맡기며 살고, 서로 멀리 떨어져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한 끈으로 연결하고, 그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을 연결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늘 그의 카메라를 매혹하였다. 그들은 최소한의 물질로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살아가며 가장 작은 것으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고 있다. 태어난 땅이 가난해서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가난에서 건강한 삶을 발견하고 그 삶에 자진해서 몸을 바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 가운데는 호주 남쪽의 섬 태즈메이니아의 플로렌타인 숲을 벌목회사에 맞서 지켜내기 위해 일곱 해 동안 싸워온 사람들도 있다. 플로렌타인은 유칼립투스 원시림이다. 숲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60m가 넘는 나무 위에서 살며, 무장경찰을 앞세우고 불도저가 들어올 때는 그 거대 권력의 하수인들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고, 서커스 저글링도 하고 명상도 한다. 끝내는 엉엉 울기도 하고 땅에 뒹굴기도 한다. 그렇다고 권력이 감동하여 마음을 고쳐먹는 것은 물론 아니다. 숲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자주 감옥에 끌려갔고, 그들의 캠프는 자주 불에 탔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 또 하나의 삶이 있음을 자신들의 몸으로 증명하는 일일 터다. 실은 그 숲에서 발가벗은 한 쌍의 남녀가 그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으로 거대한 유칼립투스를 끌어안으려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이 전시회의 표제 사진이다. (다행히 유네스코는 지난 7월 초에 이 숲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였다.)

호주 블루마운틴 국립 공원 유칼립투스 숲(1997년) (출처 : 경향DB)


타클라마칸의 화염산이나 애리조나의 세도나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폭염 속에 풀 한 포기 없이 서 있는 거대한 바위산을 바라볼 때도, 층층이 쌓인 붉은 사암의 중턱에서 명상의 자세를 취할 때도 문명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가 어떤 신비에 접하기는 쉽지 않다. 천축국으로 불경을 얻으려 가는 스님의 눈으로 화염산을 보기 어렵고, 백인들에게 쫓겨나기 전의 인디언의 눈으로 세도나의 붉은 봉우리들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문명세계의 보호를 받는 우리가 어느 오지에 잠시 들어가 무슨 모험 하나를 벌인다 한들, 그것은 부모들이 모든 허물을 깔끔하게 처리해 주는 부잣집 아들의 반항이나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화염산을 지나가던 스님의 두려움이나 붉은 사암의 꼭대기에 오르던 인디언의 경외심을 인간 전체의 기억 속에서 끌어내어 되새기기 위해 제 존재 전체를 걸고 또 하나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해 말한다면, 그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다. 몸을 온갖 이기로 무장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 그 삶은 무엇보다도 이 폭력적인 문명이 실은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를 알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순천의 어느 매실 밭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유병언도 그 나름으로는 자연을 사랑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자연 풍광과 숲의 생명들을 지속적으로 찍어 전시했고 책으로도 발간하였다. 그와 깊이 관련되어 있는 구원파와 그의 일가는 전국에 열 개에 이르는 농장을 사들여 경영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는 농촌 마을 하나를 통째로 매입하기도 했다. 그는 에덴동산에 버금하는 자연 낙원을 꿈꾸었을 터이다. 구원파의 본산인 금수원도 숲 속에 있고, 그의 마지막 은둔처였던 순천 송치재 별장 이름도 ‘숲 속의 추억’이다. 그는 자연을 멋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숨어 있는 별장에 수사관들이 들이닥쳐 조력자들이 잡혀가거나 도망가 버린 나머지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자연이 그를 따뜻하게 품어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생명유지에 필요한 가장 작은 일까지도 시중드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왔던 그 귀한 사람은 그들의 손을 놓치자마자 더할 나위 없이 무능한 인간이 되었다. 그가 자연의 본성을 알게 된 것은 별장을 떠나 숲을 헤매다 매실 밭의 풀 속에 눕기까지 일주일이 채 안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자연은 돈으로 매수할 수 없고 권력으로 호령할 수 없다. 자연 속에 이 안온한 삶을 그대로 옮겨놓으려는 자에게 돈과 권력은 자연을 파괴하는 데만 소용될 뿐이다.

저 오승연씨와 그의 친구들처럼 튼튼한, 그래서 벌거벗을 수 있는 몸과 마음으로 자연을 끌어안은 사람들만 자연을 말할 권리가 있다.


황현산 |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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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에 춘천에서 서적 출판과 관련해 조금 특별한 학술회의가 열렸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 범용 인터넷망이 깔리기 전이었지만, 각종 문서들이 디지털화하는 추세에 불안을 느낀 출판인들이 책이 맞게 될 운명을 미리 타진하고 그 방책을 세우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나도 질의자로 참석했다.

대학 강단의 연구자이거나 문화예술계 인사인 발표자들은 거의 대부분 당시 유행하던 포스트모던의 문화이론을 들이대며 거대한 문화혁명의 도래를 예고했다. 그러나 출판인들에게 위안을 주는 말도 없지 않았다. 저명한 문학이론가로 연세대 영문과에 재직하며, 당시 ‘연세대 한국어사전’의 편찬을 책임지고 있던 이상섭 교수의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내용이다. 당신은 한국어사전을 편찬하면서 옥스퍼드 대사전을 자주 참조한다. 그 방대한 사전이 콤팩트디스크 한 장에 들어가 있으니 더없이 편리하다. 나르기 쉽고, 컴퓨터에 돌려 낱말들을 검색하거나 정렬할 수 있으며, 관련 예문들을 입체적으로 추출할 수 있다. 여기까지 말하고 이 교수는 어조를 바꾸었다. 그러나 당신이 더 좋아하는 것은 종이로 출판된 옥스퍼드 사전이다. 책과 잉크의 냄새가 어떤 분위기를 형성하고, 한 낱말을 찾다가 다른 낱말에 한눈을 팔 수도 있으며, 책의 수택에 연구자로서 긍지를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전을 뒤적이다 피곤할 때는 그 두꺼운 사전을 베고 잠을 잘 수도 있다. 시디를 베고 잠을 잘 수는 없지 않으냐. 이 교수가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만장한 출판인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 교수의 발표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 박수와 환호성이었다. 나는 그게 아닌데 싶었지만, 내 속생각을 마음대로 털어놓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옥스퍼드사전'을 편찬한 제임스 머리. (출처: 경향DB)


현실은 노학자의 고결한 취향을 무참하게 배반했다. 거대한 사전을 편찬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종이책으로 그런 사전을 기획하는 일이 드물다. 사전이 학습용 사전을 넘어서면, 출판사도 이용자도 디지털 버전에 더 많은 기대를 건다. 나의 경우에도 종이책 사전을 펴는 일은 거의 없다. 20종에 가까운 어학사전과 백과사전을 모바일 기기에 담아 작은 가방에 넣고 다니며, ‘앱’으로 판매되지 않는 사전은 인터넷을 통해 이용한다. 디지털사전들을 베고 잠을 잘 수는 물론 없지만, 눈을 감고 종이책으로는 듣지 못할 음악을 들을 수는 있다.

디지털 문명의 시대가 전반적으로 서적 출판에 불리한 사태만 몰고 온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급하게 활자의 죽음을 말했지만, 활자는 그 ‘활(活)’의 본분을 이제야 완수할 수 있다는 듯이 어디서나 질주하고 어디에나 파고든다. 우리 시대보다 더 많은 글자를 소비한 시대가 있었던가. 종이에 갇혀 있던 글자들이 이제는 허공으로 날아다닌다. 책을 만드는 일도 그만큼 쉬워졌다. 원고가 출판사에 들어가서 일주일도 되기 전에 책이 되어 나오는 일이 예사다. 원고가 벌써 책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출판 방식의 변화가 출판의 개념까지 바꾸려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사전에 관해 말하게 되면, 이 디지털 환경이 능동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말로도 여러 종의 사전이 디지털 앱으로 출간됐고, 인터넷에서도 이런저런 사전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지만, 그 대부분이 이미 종이책으로 발간됐던 사전을 디지털화한 것일 뿐이다. 내가 과문한 탓도 있겠지만, 방대한 사전이 디지털로 기획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사전을, 특히 방대한 사전을 디지털로 출간하게 되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디지털 기기의 저장 용량이 무한대를 운운할 만큼 커졌기에 사전의 부피 같은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새로운 학문적 성과를 지체 없이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은 이 사전의 본질적 장점에 속한다. 이용하기에도 편리하다. 종이 사전이라면 수십권에 수만쪽으로도 부족할 내용을 도서관이나 특정 기관에 찾아가지 않고도 저마다 제가 있는 곳에서 작은 기기 하나로 검색할 수 있다. 종이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것을 디지털로는 엄두를 낼 수 있다. 그런데 왜 엄두를 내지 않을까. 종이책의 역사를 디지털로 내면화하는 일에 우리가 아직 서툴뿐더러 그 일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면 국가가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

물론 국가가 앞장설 리는 없다. 계몽주의 시대의 프랑스는 20여년의 세월에 걸쳐 180여명의 집필자를 동원해 본문 17권 도판 10권의 ‘백과전서’를 만들었다. 그때도 국가는 그 집필과 출간을 막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사전의 이념은 민주주의다. 디지털은 그 이념에 또 하나의 환경을 제공한다.


황현산 |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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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는 ‘너그러운 노름꾼’이라는 기이한 산문시를 썼다. 시인이 마귀들의 왕인 사탄을 만난 이야기다. 마음씨 좋은 늙은 귀족의 풍모를 지닌 마왕은 온갖 지식에 통달한 존재이며, 특히 인문학에 이르러서는 그 체계 하나하나가 어떻게 성립되어 어떻게 발전했는지 꿰뚫어 알고 있다. 이런 사탄도 단 한번뿐이긴 하지만 간담이 서늘한 적이 있다. 어느 예리한 설교자가 “악마의 가장 교묘한 술책은 그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에게 믿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결코 잊지 말라”고 말했을 때였다. 이 말은 악이 늘 평범한 얼굴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온갖 미명을 동원하여 받들고 있는 제도와 관습 속에 교묘하게 숨어들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그러나 저 “악마의 교묘한 술책”을 은유로만 여기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부지런한 보들레르 연구자이며 19세기 프랑스 문학의 전문가인 막스 밀레르는 1960년 <프랑스 문학에 나타난 악마>라는 책을 출간했다. 상·하권을 합해 1000쪽 가까이 되는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그 연구의 동기가 제2차 세계대전의 참극에서 시작되었다고 쓴다. 그 끔찍한 집단적 범죄, 인간 행위의 일반적 척도를 넘어서는 악독한 힘의 폭발이 오직 인간의 의지와 능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일까. 인간의 내부에는 개인적 차원과 집단적 차원을 망라해서 어떤 알 수 없는 명령에 복종하도록 준비된 악덕의 심연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바로 이런 의문이 끊임없이 문학의 주제가 되어 온 악마의 존재를 다시 검토하게 했다고 말한다. 끝을 알 수 없는 악 앞에서 느끼는 인간의 무력감이 그 거대한 책을 쓰게 한 것이다.

이 거대한 무력감을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 다시 느끼고 있다. 수많은 생령,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300명이 넘는 생명들이 물속에서 숨졌거나 실종했음을 알게 된 순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한도 끝도 없는, 그래서 설명할 길이 없는 악 속에 침몰해 있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막스 밀레르가 생각해 본 것처럼, 이 침몰이 정말 악마의 책동에 의한 것이라면 악마는 이 참극을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을 위한 간식과 선물 (출처 :경향DB)


악마는 먼저 우리 마음을 무디게 만들었다. 쉽게 잊어버리는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는 사건만 이야기하자. 그것이 2009년이던가, 한겨울에 용산에서 제 삶의 터전을 지키려던 사람들이 망루에서 불에 타 숨졌을 때 사람들은 한동안 애통해 하였지만 끝내 없던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같은 해 여름부터 지금까지, 일자리를 잃은 2000여명 쌍용차 노동자들 가운데 스물다섯 명이 비통하게 세상을 떠났지만, 우리는 내내 막장드라마를 보며 세상이 평화롭다고 믿으려 했고, 도시정비니 고용유연성이니 희망퇴직이니 하는 아름다운 말들을 악마는 아무 데나 내걸었다.

악마는 용의주도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렇게 아우성을 쳤고 여전히 아우성을 치건만, 저 위험한 배를 비정규직들이 몰아도 그것을 예삿일로 여기도록 끝내 세상을 훈련시켰다. 악마는 제 시선을 벗어난 사람들이 그 몰상식을 고발하더라도 그들을 ‘종북빨갱이’로 몰도록 프로그램된 사람들을 높은 자리, 낮은 자리에 뿌려 놓았다. 악마의 친화성도 한몫을 했다. 기우뚱거리는 배에 수많은 사람들을 태워 바다로 내보내는 회사에 그것을 감시해야 할 사람들이 상을 주었다. 감시해야 할 사람들과 또 그것을 감시해야 할 사람들을 악마가 차례차례 포섭한 것이다.

악마는 섬세하기도 했다. 기울어진 배를 물살이 그렇게 세다는 맹골수로까지 몰고 가게 했다. 그 위급한 시간에 크게 활약해야 할 사람들이 딴짓을 하게 만든 것도 악마의 셈에 들어 있다. 제 이름으로건 남의 이름으로건 그 회사를 설립하고 이런저런 명목으로 돈을 훑어내어 회사를 빈껍데기로 만든 사람에게 예술가라는 직함을 붙여주기도 했다. 악마는 눈 뜨고 그 생때같은 아이들을 잃는 순간에도 우왕좌왕할 정부를 기다려 배를 침몰시켰다. 아이들을 다 구했다는 유언비어를 책임 있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퍼뜨리기도 했다. 악마는 빠뜨린 것이 없었다.

물론 나는 악마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악마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악마만이 저지를 일을 이 땅의 사람들이 저질렀다는 사실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이 악마의 처사였다면 악마의 연구로 끝날 텐데, 그것이 우리의 죄이니 우리는 이제 앉았던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 한다. 내 자신을 용서하지 말고 리본을 달건 촛불을 들건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한다.


황현산 |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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