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났다. 대부분의 고3 학생들은 긴 입시 지옥에서 조만간 벗어나 대학생이 될 것이다.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들어가는 학생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그들 모두에게 공통적인 사실이 있다면, 그건 바로 그들이 대학이라는 곳에서 고등교육이라는 것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대학에서의 교육은 전공과 상관없이 고등교육이라고 불린다. 우리는 그 고등교육을 학과에 치중된 전문적인 교육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으나 많은 학생들이 학과와 상관없이 직업을 선택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전문성 교육이라기보다는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는 어른을 만드는 교육이라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이제 수능 이후에는 이 어른의 교육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자기가 원하는 학교나 학과에 들어가지 못했어도 어른이 되는 교육을 잘 받으면, 80~90세까지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후회 없는 인생을 살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반대로 어른이 되는 고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벌써 30대부터 우리는 괴물 혹은 좀비의 인생을 살지도 모른다.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5일 오후 광주 남구 동아여고에서 시험을 치고 나온 한 학생이 환한 표정으로 마중 나온 부모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의 몸은 제대로 관리해 주지 않으면 금방 고장이 난다. 음식을 잘못 먹거나, 무리하게 운동을 하거나, 일을 과도하게 하면 몸에 이상신호가 와서 불안해진다. 그래서 현대인에게 유행하는 것 중 하나가 몸을 잘 관리하는 것, 즉 피트니스를 유지하는 일이다. 특히 요즘에는 영양상태가 과도하게 좋아져서 성인병을 예방하기 위해 꾸준히 운동하고, 음식을 잘 조절해서 먹는 어른들이 많아졌다. 음식의 생산지를 따지고 칼로리도 따지며, 무산소 운동·유산소 운동을 학습하고 실천한다. 좀 더 나아가서 좋은 몸매와 옷맵시를 살리기 위하여 남들보다 더 지독하게 음식을 가리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너무 과한 것은 부작용을 초래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몸에 대해서 스스로 관리를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자기의 몸에 대해 자기가 책임을 질 수 있어야 어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어른이 되어서도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아무렇게나 몸을 굴리면 우리의 몸은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아프거나 기형적인 몸을 갖게 되고,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라는 공동체에도 부담이 된다.

그런데 묘한 사실은 우리가 우리의 몸 건강에 대해서 이렇게 극진하게 신경을 쓰는 것에 비해 정신 건강, 뇌 건강에 대해서는 놀라우리만큼 무감하다. 몸의 영양이 과도해지듯, 정보화시대에 뇌에도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흡수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보의 원산지를 따지거나 품질을 따지거나 정보가 균형을 잘 맞추고 있는지 잘 따지지 않는다. 맛있는 것만 먹듯이 맘에 맞는 정보만 섭취하고, 알코올중독이 되듯이 특정 생각에 중독이 되며, 머리 쓰는 일에 게을러진다. 그렇게 되면 몸이 기형적으로 변하듯 우리의 머리도 괴물이 되거나 좀비로 변할 수밖에 없다. 잔인한 사고와 허약한 사고, 한쪽으로 치우친 편협한 사고를 하게 되면서 수많은 극단주의자와 아무생각 없는 바보가 만들어진다. 괴물과 좀비가 만들어진다. 우리는 어른이 된 후 80~90세까지 괴물이나 좀비로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의 정신 건강과 뇌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고등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 교육이 바로 ‘비판적 사고’에 대한 교육이다. 들어오는 정보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교육이다. 비판적으로 사고할 줄 알아야, 정보의 원산지나 신선한 정도, 영양상태의 균형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비판적 사고 교육의 핵심은 기존의 권위와 상식을 의심하고 따져보고,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를 찾아가는 훈련이다. 요즘 대학에서는 이러한 비판적 사고 교육을 잘 안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교수가 전달하는 교육을 그냥 받아들이는 경향이 심하다. 그러한 교육의 습관이 쌓이면 미래의 어른들은 정보의 편식을 하게 되고, 생각하는 것이 귀찮아지면서 괴물이나 좀비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남이 대신 생각해 준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없으면, 남이 그들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을 나에게 주입하여 맛있게 사육하여 잡아먹거나, 아니면 좀비와 같은 괴물로 만들어 이생이라는 거리를 아무 생각 없이 배회하다 죽음을 맞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운명을 피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 인생이 후반으로 익어가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대학의 이름이나 학과의 이름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를 배울 수 있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2018년 입동(入冬)이 벌써 지나갔다. 소설(小雪)과 대설(大雪)도 휙 지나갈 테지. 전통사회의 일상 감각에서 입동은 바야흐로 겨울이 바라보이는 때다. 입동이란 ‘겨울에 들어서다’가 아니라 ‘이제 곧[立] 겨울[冬]이다’ 하는 뜻이다. 본격적인 겨울은 소설 즈음에 시작된다고 느꼈고, 대설 즈음에 한겨울을 실감했다. 이윽고 동지(冬至)가 되면 한 해가 이울었다.

눈이 펑펑 내려 쌓이지 않을지라도 찬바람과 언 땅에 겨울이 먼저 깃들었다. 정학유(1786~1855)의 <농가월령가> ‘11월령’의 첫 구는 대설 즈음 당시 사람들이 느낀 계절 감각을 여실히 드러낸다. “십일월은 중동[仲冬, 한겨울]이라 대설동지(大雪冬至) 절기로다/바람 불고 서리 치고 눈 오고 얼음 언다.” 이때는 농민과 서민이 한 해의 결산을 하는 때이기도 했다. 춘궁기에 관청에서 꾼 곡식의 상환, 세금과 소작료 내기, 그리고 일꾼에게 줄 품삯과 빚에 대한 결제는 음력 11월에 반드시 마무리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아등바등 한 해 내내 지어 갈무리한 곡식이 어느새 야금야금 이 구멍 저 구멍으로 빠져나갔다. 고물가-저임금 시대를 사는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월급은 월급날을 스쳐지날 뿐’이라고 자조하지만 <농가월령가>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다. “엄부렁하던 것이 남저지 바이없다.” “갈무리한 곡식이 처음에는 많아 보였지만 여기저기 갚다 보니 남은 것은 거의 없다”라는 뜻이다. 그래도 “콩나물 우거지로 조반석죽(朝飯夕粥) 다행이다”라고 읊을 여유는 있었다.

정학유와 동시대를 산 김형수(金逈洙)는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에서 음력 11월을 이렇게 읊었다. “누가 알랴 낟알마다 피땀 어린 곡식(誰知粒粒辛苦穀)/꿀벌처럼 모았지만 다른 사람한테나 돌아가지(如蜂釀蜜還屬彼).” 그래도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치는 춘궁기는 아니었고, 계절이 강제로 마련한 농한기에 군것질거리는 더욱 간절히 생각났다. “몸은 비록 한가해도 입은 궁금하네(身是雖閒口是累)”라는 한마디에도 그 시절 옛사람들의 또 다른 생활 감각이 드러난다.

이때 김치는 궁금한 입을 달래는 한 가지 호사, 다른 별미로 건너갈 징검다리였다. 홍석모(1781∼1857)의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메밀 사리를 무김치와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썰어 얹은 냉면은 이때가 제철이었다. 서울에서는 이때 새우젓국을 안치고, 무, 배추, 마늘, 생강, 고추, 청각, 전복, 소라, 굴, 조기 등 다양한 재료를 더해 김장을 했다. 조그만 무로는 동치미를 담갔다. 대설 전 음력 10월의 별미 만두로 멥쌀피만두, 꿩고기만두, 김치만두[菹菜饅頭]가 있었다. 홍석모는 “그 가운데 김치만두가 가장 무던한 이 계절의 음식”이라고 했다. 제주산 감귤도 본격적으로 유통되었다. 청어, 전복, 대구도 때를 만났다. 두부도 돼지고기도 찬바람 덕분에 더욱 맛났다. 19세기 한글 조리서 <주식방문>에 실린 ‘저육양방(猪肉良方)’을 보자. 생돼지고기를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 기름에 볶다가 젓국에 끓인다. 여기다 두부를 썰어 넣고, 두부가 부풀도록 한소끔 끓여 완성한다. 돼지고기의 풍미가 젓국을 만나 강화되고, 표면이 터진 두부가 은근한 구수함을 더한다. 별소리 없어도 여름보다는 겨울 별미로 마침맞다.

오로지 먹고 노는 계절만도 아니다. 농민과 서민에게 농한기란 곧 공부하는 때이기도 했다. <농가십이월속시>는 이때에 “어린이는 글 읽고 아이는 말 배운다(長兒讀書幼學語)”고 했다. 향촌 사람들은 다듬이 소리, 글 읽는 소리, 갓난아이 울음소리를 들으며 삶의 기쁨, 일상생활의 보람을 느꼈다. 나와 마을이 살아 있음을 실감했다. 이때는 보통 사람들이 한 해 중에 제대로 책을 읽는 계절이기도 했다. 농민은 자신이 선택한 이야기책을 베끼고 또 돌려 읽으면서 겨울밤을 지냈다. 농업 기술서에 파고드는 사람도 있었다. 다시 <농가십이월속시>가 읊는다. “어느 마을에 훈장님이 있는가(何村冬烘先生在)/어떤 이는 이야기책을 베끼고, 어떤 이는 농서를 읽는다(或抄兎冊看牛經).”

갈무리한 곡식을 세금과 영농비용으로 내보냈지만 사람들은 한 입의 별미로 나와 공동체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내 흥미에 따라, 내 필요에 따라, 책을 베껴 간직하고, 보다 깊은 독서도 했다. 재미난 이야기 베껴쓰기와 돌려읽기는 문학과 문화의 가장 오래된 바탕이다. 일하는 사람이 책에 파고들면서 세상에는 교양이 쌓인다. 아이들은 책 읽는 어른들로부터 말과 글을 배우며 자라났다. 군것질거리가 나는 그저 한철, 그때에도 그저 먹는 게 다가 아니었다. 입맛을 다실 뿐만 아니라 읽고 배우며 겨울이 깊어갔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일반 칼럼 > 직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미뿐만이 아닌 겨울  (0) 2018.11.15
포스트휴먼 시대의 여성 노동  (0) 2018.11.13
“바로잡습니다”  (0) 2018.11.08
두려워 말라, 그들은 그저 세상을 바꾸고 있을 뿐  (0) 2018.11.06
옳음이 멋짐을 이길 수 있을까  (0) 2018.10.25
국탕  (0) 2018.10.18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정견 발표 5일 휴일 관철. - 무소속 후보 김효구’

동네 친구 사이인 성우와 재현은 근린공원으로 걸어가며 머리 위에 걸린 현수막을 바라보았다. 1년 동안 쓰기라도 한 듯 여기저기 얼룩이 묻어 있었다.

거의 억지로 끌려나온 재현이 시선을 성우에게 돌리고 말했다.

“네 말이 하나는 맞네. 돈이 없는 후보야. 인쇄물도 조악하고, 자원봉사자 수도 적고.”

성우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사실 그게 전부야. 무슨 소리냐고 쳐다보지 말고, 그냥 가서 들어봐. 적어도 저 후보가 나보다 잘 설명할 테니까. 끝나고 나면 내가 한잔 쏠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두 사람은 근린공원 중앙에 자리 잡은 공터로 들어섰다. 사탕발림하는 공약이 지루하게 반복될 거라는 재현의 예상과 달리 그와 성우가 자리를 찾아 앉자마자 스피커를 통해 김효구 후보가 말했다.

“제 공약은 이게 전부입니다. 이제 법적 유세 기간 중 최소 5일을 국가 휴일로 바꾸자는 주장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김효구가 설명을 채 시작하기도 전에 많지 않은 노인 중 한 사람이 소리쳤다. 젊은 애들이 투표 핑계 대고 놀러가는 걸 도와주려고? 그러면 표를 더 받을 것 같아? 노인은 여기저기서 항의하는 목소리가 들리자 슬그머니 말꼬리를 내렸다.

김효구 후보는 능숙하게 말을 이었다.

“저는 그 5일 동안 후보가 인터넷 방송에 집중하기보다 직접 유권자를 찾아다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와 동시에, 유권자 여러분께서도 직접 발표장을 찾아가서 선택할 사람을 고르셔야 한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부지런히 유세를 보러 가냐고 물으실 겁니다. 사라지는 풍경이죠. 여기 오신 분들은 다릅니다만. 인터넷 라이브 방송이나 각종 지역 유선 채널로 보시는 분은 점점 늘어나서, 통계에 따르면 유권자 89퍼센트가 후보를 직접 본 적 없이 투표를 한다고 합니다.”

재현은 그 말을 듣자마자 잊고 있었다는 듯 귀에 꽂힌 완전무선 이어폰을 누르고 스마트폰의 라이브 방송 채널을 맞췄다. 그리고 이미 지나가버린 김효구 후보의 공약 부분을 되감기로 들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로 인터넷과 유선 채널로 본 유세가 사실 그대로일 거라 믿으십니까? 이제 해커들은 사람의 얼굴을 금세 컴퓨터그래픽으로 흉내 내고, 방송을 실시간으로 가로채서 바꿀 수 있습니다. 돈으로 고용된 해커들은 유세 내용과 상관 없이 주문자 상대편의 유세를 왜곡하고 방해합니다. 말하자면 신종 금권선거인 셈입니다.”

재현이 놓쳤던 공약 부분을 다 듣고 해커 이야기에 다다를 즈음 스마트폰 화면이 두어 번 깜빡거리더니 김효구 후보가 하지도 않았던 말이 흘러나왔다. 김 후보가 5일이나 놀면 좋지 않겠냐고 농담을 하는 가짜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보안업체를 고용하면 되지 않느냐고요? 저 같은 후보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돈이 많이 필요합니다. 사이버경찰이 다 잡으면 되지 않느냐고요? 경찰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일단 당락이 결정되고 나면 설사 해커가 잡혀도 길고 지루하고 불확실한 재판이 이어집니다.”

재현은 스마트폰 화면을 끄고 조금 더 진지해진 얼굴로, 귀를 통해 후보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대책은 계속 강구되겠지요. 하지만 그때까지 여러분들의 주권 행사가 돈 때문에 방해받아서는 안됩니다. 지금 당장은 옛날처럼 걸어서 후보를 찾아가 듣는 게 최선입니다. 그러니 주변 분들에게 5일을 휴일로 정하자는 이유를 설명하고, 밖으로 나가서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투표에 관한 한, 직접 유세를 듣는 게 미래에 맞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미국 연방수사국은 11월 중간선거가 시작되기 전부터 각 당내 경선에 해커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수사하는 중이다.

캘리포니아주 45선거구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도전하려던 민주당 예비후보 데이비드 민과 48선거구의 예비후보였던 한스 커스태드가 피해자였다. 사이버 공격을 당한 두 후보는 모두 패배했다.

이 두 사건에서 해킹과 중간선거 결과가 완전한 인과관계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여러 전문가들은 두 후보의 선거사무소가 사이버 공격을 방어하거나 보안 전문가를 고용할 경제적인 능력이 없다는 점을 더 심각하게 보고 있다.

규모가 작은 선거일수록 자금 동원 능력이 크게 부족한 후보가 사이버 공격에 노출될 위험이 있어 문제가 크다. 금권선거가 기술을 악용하는 자들의 힘을 빌려 다시 한 번 활개 칠지도 모르는 것이다.

유권자가 제 뜻을 올바로 반영하는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이고 현대 정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 과정이 투명하게 진행되려면, 팔짱 끼고 앉아서 내 눈과 귀에 전달되는 정보만 믿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과거와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는 더욱 그럴지 모른다.

통신 기술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해결해주지만, 만약 그 편리함 속에 눈을 가리고 그릇된 길로 우리를 납치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린다면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불편함쯤은 적극적으로 감수해야 할 것이다.

분야와 사안에 따라서는, 미래가 무조건 편리할 것이라는 생각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착각일지도 모른다.

<김창규 SF작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가을야구는 미국에서 먼저 끝났다. 월드시리즈에서 LA 다저스와 보스턴 레드삭스가 만났다. 동·서부를 대표하는 인기 구단의 맞대결은 1916년 이후 102년 만이었다.

다저스의 감독 데이브 로버츠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태어났다. 흑인 미군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뒀다. 보스턴 감독 알렉스 코라 역시 미국이 아닌 푸에르토리코에서 출생했다. 월드시리즈는 114회째를 맞았지만 ‘마이너리티 감독’끼리의 맞대결은 처음이었다. 로버츠 감독은 “모든 소수자들에게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대결이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코라 감독은 푸에르토리코 출신 감독으로 처음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더구나 2018시즌이 감독 데뷔 시즌이었다. 휴스턴 벤치 코치를 거쳐 이번 시즌을 앞두고 보스턴과 계약했다. 연봉이 80만달러로 메이저리그 감독 중 가장 적은 축에 속한다. 코라 감독은 보스턴과 감독 계약 때 인센티브 등 이런저런 부가 조건을 요청하지 않았다. 딱 한 가지 조건만 내세웠다. “내 고향에 수송기 한 대분의 구호물자만 보내주면 된다”고 했다.

코라 감독이 계약하기 직전이었던 2017년 9월, 푸에르토리코는 허리케인 마리아가 할퀴고 가는 바람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피해규모 자체가 제대로 집계되지 않을 정도였다. 당초 미국 정부에서 발표한 공식 사망자는 64명이었지만 지난 5월 하버드대 조사팀이 현지 방문 조사를 한 결과, 허리케인 마리아 때문에 숨진 주민 수가 무려 4645명이나 된 것으로 드러났다. 재산 피해 규모도 97조원 수준으로 파악됐다.

월드시리즈는 치열했다. 3차전은 연장 18회까지 치러졌다. 다저스가 맥스 먼시의 끝내기 홈런으로 이겼다. 2승1패를 하고도 보스턴 선수들이 1승2패인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코라 감독은 라커룸에서 “우리가 약해서 18회 끝에 진 것이 아니라 상대가 우리를 이기려면 18이닝이나 필요했던 것”이라고 격려했다. 보스턴 선수들이 힘을 되찾았다. 4차전 0-4로 뒤진 경기를 뒤집어 이겼고 4승1패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따냈다. 코라 감독은 우승 트로피를 들고 보스턴 구단 관계자들과 함께 푸에르토리코를 방문했다.

다저스는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준우승에 머물렀다. 팬들은 ‘패장’ 로버츠 감독을 향해 야유를 보냈다. 구단은 해고 대신 연장 계약을 택했다. 월드시리즈 패배라는 ‘결과’보다 2년 연속 월드시리즈에 오른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결과보다 과정’은 당연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덕목이다.

KBO리그의 가을야구도 치열했다. 히어로즈는 리그 최저연봉 팀이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상대를 끝까지 괴롭혔다. SK의 베테랑 외야수 김강민은 플레이오프 2차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뒤 “이제 미칠 시간도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팬들을 뭉클하게 했다. 두산 주장 오재원은 1루 주자로 타자의 파울 타구에도 3루까지 전력 질주했다. 오재원은 “전력을 다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두산 정수빈은 방망이를 짧게 쥐고도 결승 홈런을 때렸다. 작지만 강하다는 걸 보여줬다. SK 트레이 힐만 감독은 ‘업무’가 아닌 ‘가족’으로 팀 모든 구성원을 대했다. 선수들에게 ‘컨디션이 어떠냐’고 묻는 대신 ‘아내와 아이들은 잘 지내냐’를 먼저 물었고 팀을 하나로 만들어 우승으로 이끌었다.

야구는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가을의 승패는 한없는 기쁨과, 한없는 아쉬움의 골짜기를 잔인하게 가른다. 그래도 ‘가을의 전설(Fall classic)’이라 불리는 것은, 인생의 교훈을 딱딱하지 않은,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2018년의 야구가 끝났다. 이번 가을에도 우리는 야구를 통해 또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야구기자 하길 잘했다.

<이용균 스포츠부>

'일반 칼럼 > 기자 칼럼, 기자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구기자 하길 잘했다  (0) 2018.11.15
기자교육이 낡았다  (0) 2018.11.13
김밥 패딩  (0) 2018.11.08
나 하나 꽃 피어  (0) 2018.11.01
책, 쌓아만 둬도 똑똑해질까  (0) 2018.10.25
지름신과 유치원 비리  (0) 2018.10.23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정원의 고꾸라진 나무는 땅심이 좋지 않음을 말해주네. 하지만 길 가던 사람들은 나무가 구부러져 볼품없다고만 흉보네. 바다에 떠 있는 근사한 요트보다는 어부의 찢긴 그물이 내 눈에 들어오네. 나이가 사십이 되자 소작농의 아내는 허리가 휘었다네. 나는 그 굽은 몸에 관해 노래하네. 아리따운 아가씨의 따스한 가슴은 외면한 채 말이네. 나도 사과나무에 피는 꽃을 제목으로 시를 쓰고 싶다네. 하지만 얼토당토않은 아무개의 연설에 분개하는 일에 마음이 앞서가네. 나를 책상으로 당겨 앉게 하고 시를 쓰게 하는 것은 역시 노여움이라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저 총총한 시. 우리는 굵직굵직한 분란과 소요를 겪으면서 가까스로 예까지 살아왔다. 때마다 분노하고 사랑하면서 헤쳐온 길. 그러면서도 한편 “달새의 머리는 온통 달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차 있다네. 비의 새는 온통 다음번 비가 언제쯤 내릴까 하는 생각뿐. 우리가 온 생애를 바쳐 사랑하는 그는 누구인가?” 인도의 시인 카비르가 들려주던 ‘애초의 시’를 내 작은 가슴에 품은 지도 오래되었다. 자연에 깃들여 살면서 한껏 ‘자연주의’가 될 수 없었던 노릇은 우리 시대 시인의 동일한 운명일까. 돌보지 않으면 방안 곳곳 쥐구멍이 생기는 것처럼 이내 마음 하나 챙기기도 쉽지가 않은 세월인데, 어두운 골목을 바라보면 눈물만 한가득이 된다. 내 배만 채운다고 해결될 수 없는 이 허기와 갈증. 다닥다닥 붙은 고시원에서 숨져간 이웃들의 사연엔 손이 다 떨렸다. 이뿐만 아니라 유치원 때부터 행여 한 아이라도 외롭거나 가난하지 않기를 바라는 부릅뜬 국민들의 눈과 노여움. 아이들의 웃음만 말고 아이들의 눈물도 엿볼 줄 아는 시인들이 많아져야겠다.

세계 상위층 부유함을 누리고 사는 우리들. 얼마나 더 경제가 성장해야 원이 풀릴지. 이십대 자녀가 더는 쑥쑥 키가 자라지 않는다며 한탄하는 어리석은 부모나 마찬가지. 많이 가지는 일보다 잘 나누고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할 때다. 이웃을 사랑하면서, 오로지 사랑으로 혁명하는 방법은 정녕 없는 걸까. 오늘도 분노하고 사랑하면서, 달새와 비새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먼 산을 바라보았다. 노을보다 붉은 단풍이 번진 먼 산을.

<임의진 목사·시인>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새와 비새  (0) 2018.11.15
인디언 기우제와 첫눈  (0) 2018.11.08
샤바 샤바 아이샤바  (0) 2018.11.01
앞으로의 삶  (0) 2018.10.25
점순이  (0) 2018.10.18
굴뚝 연기  (0) 2018.10.1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스마트폰으로 가장 많이 활용하는 기능 중 하나는 가계부 앱이다. 술과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에 계획성 없는 소비를 좀 통제하고 싶어서다. 예전에는 은행과 카드사에서 문자가 오면 그 내용을 복사해 앱에 붙여 넣는 방식으로 가계부에 기입할 수 있었다. 이제는 공인인증서를 등록하면, 매 시간 쓴 돈이 자동으로 업데이트되고 자산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신규 기능이 가끔 마음을 불쾌하게 한다. 앱은 돈 쓰고 저축하고 투자하고 대출받는 상황을 통해 내 신용등급을 예측한다. 식당 이름이나 서점 이름 등을 통해 지출 카테고리를 추정한다. 좀 지나면 거의 모든 지출 출처와 범주를 빅데이터를 활용해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지출 기록도 데이터베이스에 누적되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 회사가 라이프스타일을 통해 신용등급을 예측하는 모델을 어딘가에 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앱을 만드는 회사는 보험사와 평가 모델을 공유하고 자동차 보험료 할인 행사를 시작했다. 비대면 ‘다이렉트’로 가입하는 손해보험사에서 내 운전습관을 이유로 가입을 거절하거나 막대한 보험료를 계상하는 일도 머지않았다. 그럼에도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기반을 둔 비대면 서비스는 늘어날 것이고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서비스에 노출될 것이다. 편리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전문은행에서 대출을 받아보면 비대면의 위력을 알게 된다.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묻고 따지는 게 없고, 기다리거나 면전에서 거절당하는 일도 없다. 정량화된 근거를 기준으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채용에 있어서도 공공기관을 필두로 블라인드 면접 등 비대면 절차가 확산되고 있다. 면접 볼 때 면접관에게 제공되는 정보 중 출신지와 학력사항, 가족관계 등이 가장 먼저 사라졌고, 사진도 사라지고 있다. 면접 시 커튼을 치기도 한다. 성별 판단을 막기 위해 음성 변조도 도입될 기세다. 면접 절차도 표준화된 질문 몇 가지에 대한 대답으로 변환 중이다. 면접자의 답변에 꼬리를 물어 질문하고 대답을 유도하는 것도 반칙이 된다. 개개인의 인적정보가 은연중에 드러나고 그것이 가점 요인이 되는 것이 불공정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양한 채용비리가 연달아 발생하자, 오로지 ‘객관적인 직무역량’만으로 뽑아 달라고 하는 구호에 사람들은 공감한다. 인공지능(AI)이 표준화된 질문을 하고 ‘인재상’과 ‘필수역량’에 맞는 대답을 한 후보자를 선별하는 알고리즘이 상용화된다면 어떨까. 사람들은 ‘쓸데없는 신변잡기’나 묻는 면접 대신 인공지능을 통한 ‘비대면 면접’이라는 모순된 전형을 보게 해달라 할지도 모르겠다.

영국드라마 <블랙미러> 중 ‘추락’이라는 에피소드가 있다. 드라마 속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스마트폰으로 평가한다. 호의를 베푸는 사람에게는 5점의 높은 점수를 주고, 불쾌한 행동을 한 사람에게는 1점을 준다. 사람들은 자신의 점수를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다. 평점이 높은 사람에게는 더 친절을 베푼다. 평점이 높은 사람의 평가에 가중치가 붙기 때문이다. 반대로 평점이 낮은 사람은 회피한다. 잘해줘 봐야 자신의 점수가 별로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서비스와 행정도 사람들을 평점에 따라 대우한다. 주인공은 친구 결혼식 증인을 하러 비행기를 타려는데, 비행기편이 취소된다. 긴급 항공편을 찾지만 자리는 없다. 공항에 오기 전에 실수로 평점이 높은 사람에게 음료를 엎질러서 보복으로 감점을 당하는 바람에, 긴급 항공편 탑승 점수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가 난 주인공은 항공사 직원에게 욕을 하고, 벌칙으로 점수 1점이 떨어진다. 졸지에 신뢰할 수 없는 불가촉천민으로 추락한다. 드라마는 ‘비대면 면접’의 상황이 극단으로 갔을 때의 사회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사람들은 누구에게든 호의와 친절을 베풀지만 그 안에는 대면의 상황이 없다. 누군가를 대면한다는 것은 상대의 사정과 상황의 맥락을 충분하게 고려한다는 점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면접을 하고 면접을 당하지만, 상대를 알지 못한다. 어떤 면에서는 누군가의 사정을 알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어떻게 대했는지’만이 일반적인 평가 기준이 된다.

드라마 속 상황은 현실과 그리 멀지 않다. 우리는 숨 쉬듯이 비대면 면접을 하고, 당하고 있다. 상담사의 서비스 수준을 5점 척도로 평가하고,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 콜택시 기사를 만나면 뒷좌석에서 조용히 낮은 평점을 준다. SNS를 켜서는 ‘좋아요’와 친구신청 등의 행위를 통해 사람들을 평가한다. 페이스북은 유사한 사람들을 군집으로 만들어 그들끼리의 정보가 타임라인에 더 많이 보이게 하거나 친구를 추천하는 수준으로 알고리즘을 작동시키고 있지만, 사람들의 행동과 글쓰기 패턴에 가중치를 줘서 등급화를 매긴다면 사람 각각의 일반적 평점을 매기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대면으로 사람들의 행태를 정량화하여 평가하고 예측할 기술적인 준비는 착착 진행 중이다.

물론 사람들이 비대면 서비스를 원하고, 대면 면접보다 필기시험이나 정량화된 평가를 원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문화적 지체에 따른 말과 행동의 폭력을 느끼는 데서 출발한다. 불친절한 공무원이 피곤하고, ‘아무 말’이나 하는 택시기사가 불안하다. 편파적으로 보이는 면접관과, 내신과 비교과항목을 평가하는 교사의 말을 믿기 어렵다. 즉 누적된 비리와 폭력의 부조리함에 대한 사회적 불만의 표출이다. 그러나 기술적 해법들은 편리하지만 대개 인간들의 교류를 차단하고, 맥락을 무시하며, 위험요소를 배제하는 방식들이다.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감각을 가진 인간들이 영영 만날 수 없는 세계가 만들어지는 중이다. 배제되는 것은 가난하고 낙후된 사람들일 공산이 크다. 사회적 논의는 편리함과 위험 배제, 숫자의 합리성만으로 진행될 수 없다. 맥락들이 사장되어선 안된다. 사회에 대한 신뢰와 문화적 지체의 해소는 역설적으로 상대에 대해 이해하고 교섭하거나 투쟁하는 등 ‘대면’ 과정과 ‘겪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단칼에 정리하기보다는, 공론화위원회처럼 장기간을 두고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하는 지루한 과정을 통해서만 잘 풀어낼 수 있다. 그런데 피곤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하며 대면을 최소화하려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다. 편리함과 거슬리는 것을 피할 수 있는 만족, 승복할 수 있는 숫자보다는 좋은 기준이 필요할 것이다. 어느 고리부터 끊어내야 할까? 논의의 방향은 바뀌어야 한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문화연구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프랑스 파리는 패션의 도시다. 아니, 파리 자체가 패션이다. 지난 10월 만난 파리의 가을은 그 정의를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파리 시내의 바쁜 파리지앵들 사이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의 프랑스 국빈방문 경제사절단으로 초대받은 모어댄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 △패션 △업사이클링 △사회적기업 △사회적 가치, 모두 모어댄을 정의하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모어댄 역시 패션이다. ‘업사이클링’과 ‘사회적기업’ 이 두 단어로 인해 사람들은 모어댄이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성장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파리에서 대한민국 경제사절단으로 참가한 모어댄에는 그런 제약이 없었다. 모어댄을 만난 외국인들의 표정에서 그것이 보였다. 대통령 국빈방문 수행단에 포함된 것이 큰 행운이다. 모어댄과 함께 두 나라의 스타트업 서밋에 참가한 국내 35개 스타트업 모두에도 큰 기회이고 행운이다.

행운을 가져다준 행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프랑스 국빈방문 기간 중에 있었다. 코트라를 비롯한 중소벤처기업부, 중소기업진흥공단, 창업진흥원과 프랑스의 크리에이티브밸리가 공동 개최한 ‘한·프랑스 스타트업 서밋’이 그것이다. 스타트업 서밋은 갓 사업을 시작한 기업들에 꿈 같은 무대다. 그 꿈이 두 나라의 정상이 만나면서 성사됐다. 대한민국 스타트업 대표 중 하나로 선정돼 모어댄을 설명한 20여분의 떨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발표시간은 평생 갈 기억이고, 사회적기업이자 패션기업 모어댄이 패션의 본고장 파리에서 글로벌 무대로 출사표를 낸 시간이다.

우리나라에는 크게 소개되지 않았지만, 스타트업들이 참여한 ‘한·프랑스 스타트업 서밋’의 열기는 뜨거웠다. 왜 유럽이 ‘스타트업의 허브’인지를 알 수 있었다. 국경은 존재할 뿐 보이지 않는다는 참가자의 말처럼 유럽은 전체가 시장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국가들이 스타트업 시장의 특성에 맞게 지원과 육성에 총력을 쏟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번 서밋도 형식적인 행사가 아니었다. 개최국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체에서 50여곳의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이 참여했다. 특히 우리 정부가 선발해 참가한 35개 스타트업들은 사업 내용과 혁신성이 검증된 것으로 인정되어 관심이 매우 높았다. 참여한 스타트업 대표들 모두가 모어댄과 같은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그 확신들이 향후 유럽과 세계에 도전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그 도전은 대한민국 청년들의 꿈이자 대한민국의 미래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국빈방문 경제사절단 참석이 만들어준 가장 큰 성과는 확신이다. 감사한다. 또 책임감도 크게 느낀다.

모어댄의 가장 큰 경쟁력은 혁신과 거기서 나오는 사회적 가치다. 이번 프랑스 방문에서 그간 고민하던 혁신에 대한 하나의 질문에 해답을 얻었다. 모어댄은 해외시장에 도전한다. 정부와 기업, 코트라와 같은 기관들이 만들어준 그 스타트업 생태계 위에서 성장한 모어댄이 또 다른 혁신의 방향을 위해 결정했다. 귀국길에 모어댄의 꿈이 설계도에 옮겨진 영국에 들렀다. 오래된 자동차의 낡은 가죽 시트가 가방으로 만들어졌던 그 장소다.

모어댄은 파리를 거쳐 오대양 육대주의 국경 없는 시장으로 나가려고 한다. 영국에서 시작한 꿈을 대한민국이 이뤄줬다. 사회적 생태계를 만들고 이끌어준 대한민국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최이현 | 모어댄 대표>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인제천을 거슬러 한계령으로 오르는 길 첫머리의 마을은 이맘때 김장을 한다. 이 마을 밭에 심어놓은 배추는 가을부터 서리를 맞으면서 꿋꿋하게 속을 채운다. 자드락밭의 배추도, 더기밭의 배추도, 노농의 배추도, 신출내기의 배추도 사이좋게 같은 때에 노란 속이 차오른다. 날마다 배춧속이 여물어가는 걸 지켜봤던 이들은 행여 때를 놓쳐 배추가 얼까 봐 11월에 들어서면 김장을 서두른다.

이 마을에서는 김장하는 날의 차례를 마치 순번 뽑기를 하듯이 정한다. 올해는 공무원으로 있다가 은퇴한 뒤 이곳에 정착한 집이 맨 먼저 시작했고, 이틀 뒤에는 가락시장에서 청과물 장사를 했다는 집이, 이틀 뒤에는 몇 년 전에 이장을 그만뒀지만 여전히 ‘조 이장’이라고 불리는 집이, 그 집 김장이 끝나는 다음날에는 민박하는 집이…. 이런 식으로 차례가 정해지면 마을 사람들은 집을 돌면서 김장 품앗이를 한다. 배추를 갈라 소금에 절일 때도, 어스름한 새벽 얼음물처럼 차가운 산골물에 절인 배추를 씻을 때도 빨간 고무장갑을 낀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일손을 돕는다. 반평생 제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며 살았던 사람들이지만, 10여년 동안 한마을에서 어우렁더우렁 살아온 터라 일을 할 때면 손발이 척척 맞는다. 어떤 이는 손끝이 맵고, 어떤 이는 간을 잘 맞추고, 어떤 이는 허드렛일을 잘하며, 어떤 이는 노래를 잘 부른다. 때로 사소한 의견 차이로 입을 비죽대지만, 금방 우스개 얘기로 깔깔거린다. 그들이 목소리를 낮춰 수군대면 대개 옆에서 술판을 벌인 남편들을 흉보는 것이다. 하지만 남편들이 여름내 배추를 키우느라 품을 들인 것을 상기하고는 노란 배춧속을 뜯어 안주로 내어준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따르지 않아 일어설 적마다 에구구 소리가 절로 나고, 두어 집 김장을 돌고 나면 밤새 끙끙대면서도 그들은 마을 김장을 다 마칠 때까지 앓아눕지 않는다. 그렇게 그들이 담근 김장김치는 도시로 보내져 자식들이 겨우내 먹을 양식이 된다. 한계령 어귀 마을의 김장은 마을의 노인회관 김장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들의 김장을 받아먹는 나는, 부디 그들 모두 강건하여 오래오래 김장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해원 | 동화작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했다. 자주 쓰는 속담이지만, 정확한 뜻이 아리송했다. 이럴 때 주로 <우리말 절대지식>이라는 책을 참고한다. 책에서 찾아보니 ‘목구멍이 포도청’을 “막다른 지경이 되면 행동하는 데 있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됨을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밥벌이의 사정과 비애가 모두 들어 있는 관용구이다. 그렇다. 건물주의 자녀로 태어난 복에 겨운 예외적 처지에 놓인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 모두의 목구멍은 포도청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기에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일의 대가는 긴요하다. 일이 있는 곳엔 반드시 대가 또한 있어야 한다. 이 규칙이 지켜져야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람도 세상을 살 최소한의 희망이 있으니까. 일을 했는데도 정당한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경우 ‘임금체불’을 신고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노동자의 딱한 형편을 법과 제도가 헤아리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일의 대가로 정당한 임금이 지불되지 않았음에도 ‘임금체불’임을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반 일리치는 지불되지 않는 이러한 노동을 ‘그림자 노동’이라 불렀다. ‘그림자 노동’을 하는 사람을 찾아나섰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대형마트에 갔다. 무인계산대가 있다. 마트는 무인계산대의 편리함을 강조하며 무인계산을 유도한다. 적지 않은 사람이 무인계산대에서 결제한다. 무인계산대가 아니었으면 마트가 고용한 사람이 했을 일이다. 그러나 손님으로 마트에 왔으나 무인계산 노동을 한 사람에게 마트는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영화 티켓을 예매한다. 익숙한 사람이라면 예매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영화 티켓을 구매하려고 그 사람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사용했고, 예매에 필요한 데이터 비용도 그 사람이 부담했다. 영화표를 판매한 영화관 측은 그에게 역시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그림자 노동’은 현대인의 발걸음마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그림자 노동’은 일자리 파괴자이기도 하다. 샐러드바를 운영하는 식당에서 손님은 음식을 접시에 담는 동안 임시 종업원이었다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할 때는 손님이지만 식사가 끝나고 접시를 다시 퇴식대로 옮기면 다시 임시 종업원이다. 스타벅스에서 사이렌 오더로 주문하는 ‘그림자 노동’이 쌓이고 쌓이면 누군가 스타벅스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든다. 햄버거 집에서 터치스크린으로 주문하고 신용카드로 계산하는 동안 우리는 잠시 주문받는 종업원으로 ‘그림자 노동’을 한다. 맥도널드에서의 일시적 ‘그림자 노동’은 누군가 차지하고 있던 계산원이라는 일자리를 파괴한다. 대형서점에 비치된 컴퓨터로 도서를 검색하는 ‘그림자 노동’을 하는 동안, 예전의 대형서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독서전문상담가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우리는 웹체크인을 하고 ATM으로 돈을 인출하고 스마트폰으로 이체하면서 고용된 사람이 했던 지불 노동을 스스로 해치운다.

‘그림자 노동’으로 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 대형서점에 들락거리는 사람이 많을수록, 대형서점은 팝업스토어 매대를 비싸게 판매할 수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 우리가 서로 질문하고 대답을 주고받는 동안 그 북적임을 포털 사이트는 이윤으로 전환시킨다. 인턴십이 취업 이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일반적 추세로 자리 잡으면 기업은 봉급이나 수당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건강하고 활력에 넘치는 젊은 ‘그림자 노동자’를 통해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다.

‘신박한’ ‘인싸템’을 발견하여 인스타그램에 인증사진을 찍어 올려봐야 우리는 기껏 몇명의 팔로어를 더 얻지만 그사이에 인스타그램의 기업가치는 무럭무럭 자란다.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10억달러에 인수했는데, 2018년 인스타그램의 기업가치는 1000억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라고 한다. 인스타그램의 피드에 매일 부지런히 임금도 받지 않은 채 사진을 올리는 우리 모두의 ‘그림자 노동’이 발휘한 마법이다. 덕택에 1984년생인 페이스북의 창업자 저커버그는 추정 재산이 730억달러에 달하는 부자가 되었다.

‘그림자 노동자’는 유령같다. 실체를 포착하려 들면 어디론가 사라진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것처럼 우리가 ‘그림자 노동자’를 찾기 힘든 이유는 다름 아니라 ‘그림자 노동자’가 어디에나 있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그림자 노동자’는 매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하고 터치스크린으로 주문하고 애플리케이션으로 예약하고 정보를 검색하고 공유하는 나이고, 당신이고 결국 우리 모두이다.

우리 모두가 사실상 ‘그림자 노동자’라면 발견해야 할 사람은 어디에나 있는 ‘그림자 노동자’가 아니라 ‘그림자 노동’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림자 노동’으로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은 ‘그림자’ 속에 숨어 있다.

그들에게 체불된 ‘그림자 노동’ 임금을 청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리 모두 “목구멍이 포도청”이지 않은가. ‘그림자 노동’을 매일 열심히 한 우리의 몫은 어디에 있는가?

<노명우 | 아주대 교수·사회학>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폴란드는 우리나라처럼 역사적으로 많은 애환을 가지고 있다. 한때 중유럽의 강자였던 폴란드는 왕권 약화로 인해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강력한 이웃들에 영토가 분할됐다. 지도상에서는 123년(1795~1918) 동안 없어지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강대국의 완충지대’가 되면서, 미국의 주도하에 잃어버린 땅을 되찾았다. 지난 11일로 독립한 지 100년이 됐다. 폴란드와 한국은 놀라울 정도로 많은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애국심 있고, 강한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 내년은 한국과 폴란드가 수교를 맺은 지 30년 되는 해다.

1989년부터 종합상사를 통한 일반상품 수출을 시작했고, 2005년부터 LG전자를 중심으로 현재까지 약 200여개의 한국 업체들이 자동차, 전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약 17억달러 이상 활발하게 투자하고 있다. 폴란드 내 한국 기업 이미지는 상당히 좋다.

폴란드는 과거 지리적인 위치로 인해 많은 침략을 당했으나, 현재는 지리적인 이점 덕택에 많은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유럽의 인터넷 쇼핑 증가로 상대적으로 임대료, 인건비가 싼 폴란드 물류산업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자동차 관련 산업은 폴란드 국내총생산(GDP)의 8%, 전체 산업인구의 10%가 종사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폴란드의 시장규모 및 소득수준을 감안하면 연간 100만대 자동차 판매가 예상되지만 현실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향후 물류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상용차의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미래산업인 전기자동차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폴란드 자동차산업에 외국인투자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글로벌 기술 수준을 갖춘 국내 자동차부품 업체들은 폴란드 투자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풍부한 인력과 부품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1·2차 부품업체 70% 이상이 폴란드에 위치하면서 이들은 슬로바키아 기아자동차 공장, 체코 현대자동차 공장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다.

시베리아철도(TSR)와 중국철도(TCR)가 연결되는 등 폴란드는 유럽의 관문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이 성장함에 따라, 철도거점인 폴란드의 중요성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중유럽 지역에 엄청나게 공을 들이고 있고, 폴란드도 중국과의 교역확대를 위해 특별경제구역(SEZ)을 지정, 물류센터 부지를 제공하면서 중국업체의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 6월5일 북한의 협조하에 폴란드에 본부가 있는 ‘국제철도협력기구’에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이를 통해 유라시아 철도수송에 대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에서 발표한 ‘신북방경제협력’ 선언 및 ‘동아시아철도공동체’ 정책에 대비하는 차원에서도 유럽 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폴란드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시장이다.

<남종석 | 세계한인무역협회 부회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제를 시행하라고 요구하고, 대법원은 이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정부, 국회, 언론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대체복무제 법안 내용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핵심 쟁점은 대체복무의 기간, 분야, 근무형태, 심사기구 등이지만 대체복무제 도입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산 넘어 산이다.

정부는 대체복무제 시행 방안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하지만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첫 법안에 대체복무자와 군필자·현역병과의 형평성, 국가 안보까지 한 번에 담아내는 등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의보다는 불리함을 참지 못한다’는 정서가 앞선다면 대체복무제는 ‘또 다른 형벌’이 될 수도 있다.

영화 <핵소 고지>의 한 장면

몇 번이고 다시 봤던 영화 <핵소 고지>는 비폭력주의자인 주인공이 총을 들지 않는 의무병으로 육군에 입대한 뒤 2차 세계대전 오키나와 전투에서 무기 없이 75명의 부상병을 구한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국의 병역거부자 존 콘스도 한국전쟁 직후 한국에 와서 수많은 한국인을 의술로 살렸는데, 이는 대체복무의 일환이었다. 그는 2013년 한국 정부로부터 수교훈장을 받았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공론화도 20년 가까이 되었다. 그간의 숙성 기간을 감안한다면 대체복무자가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권고하는 기간과 분야에서 빛을 발해 국가적·사회적으로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노청한 | 서울서부지법 민사조정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랜섬웨어(Ransomware)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랜섬웨어란 몸값(Ransom)과 소프트웨어(Software)의 합성어로 시스템을 잠그거나 데이터를 암호화해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이를 볼모로 금전을 요구하는 악성 프로그램을 말한다.

랜섬웨어는 대부분 드라이브 바이 다운로드(drive-by-download) 방식으로 유포되기 때문에, 인터넷 사이트에 방문만 하더라도 걸릴 수 있다. 사용자가 방문한 웹사이트가 보안이 취약해 해커의 공격을 당해서 악성코드를 유포하고 있었다면, 이용자는 자신도 모르게 악성코드에 공격당하는 것이다.

드라이브 바이 다운로드 공격의 가장 위협적인 문제는 사용자가 미처 손쓸 방도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피해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사용자들은 하루에도 상당히 많은 웹사이트를 방문하고, 이 가운데 하나라도 공격자에게 침투당한 사이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반 사용자가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전무하다.

일단 범죄 피해가 발생하면 컴퓨터를 켤 때 인터넷에 접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F8 키를 눌러 안전모드로 부팅해야 한다. 그런 다음 공식 웹사이트에서 ‘멀웨어바이트(malwarebytes)’를 다운로드받아 설치·실행하면 랜섬웨어인 악성코드를 컴퓨터에서 제거할 수 있다.

물론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으로 사이버범죄 신고를 하면 수사는 하지만 신종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암호화된 문서 등을 다시 원래처럼 완전히 복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대다수의 랜섬웨어는 윈도 복원 및 백업 기능을 함께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피해 예방을 위해 모든 소프트웨어는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해 사용하고, 백신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야 한다. 더불어 중요한 자료는 반드시 다른 장소에 백업하고, 출처가 불명확한 e메일과 URL 링크는 실행하지 않아야 한다.

<이장우 | 해운대경찰서 반송파출소 경위>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문재인 대통령이 연금개혁안의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연금 논의가 사실상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보건복지부가 보고한 방안에서 “보험료 인상 부분이 제일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란다.

당황스럽다. 국민연금법에 따른 재정계산은 소득대체율 40%를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이 대체율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보험료율 인상이 요청되고, 대체율을 상향하겠다는 대통령의 공약까지 감안하면 더더욱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한데 이를 되돌려 보내다니. 대통령의 눈높이에 맞는 연금 개혁은 무엇일까?

대통령의 반려 소식을 듣는 순간 2015년 연금 논의가 떠올랐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인상하는 원칙에 합의했다. 대체율 인상이 내키지 않았으나 새누리당 지도부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이끌기 위해 야당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다. 막판에 청와대 반대로 입법화되지는 않았지만 성사 직전까지 갔던 실무합의안이다. 작년 대선 토론에서도 문재인 후보는 소득대체율 50%를 거듭 주장하며 ‘2015년 국회의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합의했던 내용’임을 강조했다.

남은 과제는 보험료율.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쪽에서 ‘대체율 50%, 보험료율 10%’ 방안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보험료율 인상 폭이 적어 의아해했지만, 보험료율을 현재 9%에서 1%포인트만 올려도 기금소진연도가 2060년임에는 변화가 없기에 선택 가능한 조합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국민연금에서 재정수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대체율 10%에 부응하는 필요보험료율이 약 4~6%이다. 대체율 50%를 제안하려면 보험료율은 최소 4%포인트 이상 올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어떻게 ‘1%의 마법’이 나올 수 있었을까?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전반전에는 보험료를 내기만 하고 후반전에는 급여를 받기만 하는 제도이다. 아동수당, 기초연금처럼 현세대가 세금을 내고 동시에 수당을 받는 일반 복지제도와 달리 국민연금에선 유독 재정구조에 시차가 존재한다. 보험료율·대체율이 한묶음으로 결정되어도 전반전에는 보험료율이, 후반전에는 대체율이 효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2015년 합의안대로 가면 1% 보험료율 인상은 바로 재정에 영향을 미치지만 10% 대체율 인상은 가입자가 은퇴하는 30~40년 후에야 본격적으로 현실화된다. 2015년 기준에서 2060년까지는 주로 보험료율 인상이 작동하는 시기이다. 1%만 올려도 소진연도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 이유이다.

문제는 소진 이후이다. 이때는 수급자가 늘어나고 50% 대체율로 연금을 지급해야 하기에 재정 지출은 더 커지고 그만큼 미래세대의 짐도 무거워진다. 결국 마법이 아니었다. 재정구조의 시차가 낳은 착시일 뿐이다. 하마터면 전반전만 보고 재정이 괜찮다고 판단해 국가대사를 결정할 뻔했다.

혹시 대통령은 2015년의 마법을 떠올리고 있을까? 그래서 보험료율을 조금만 올리고도 대체율 50%가 가능한데 더 높은 보험료율 수치를 들고 온 복지부가 못마땅했을까? 지난주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의 임명은 이런 추측에 힘을 보탠다. 김 수석은 2015년 당시 문재인·김무성 합의를 이끈 실무기구의 공동위원장으로서 ‘50%·10%’ 방안의 논리를 제공했던 당사자이다. 

국민연금 개혁에서 재정 시차에 대한 이해는 무척 중요하다. 보험료율과 대체율이 각각 효과를 낳는 시기도, 연금액을 결정하고 실제 지급하는 세대도 다르기에 긴 시야에서 세대를 관통하는 인식이 요청된다. 늘 우리 세대 눈높이에 머물러 있지 않은지 되돌아봐야 하는 까닭이다.

종종 등장하는, 설령 기금이 소진돼도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면 된다는 주장 역시 현세대 편향을 보여준다. 적립금 없이 당해 보험료로 연금 지출을 충당하는 부과방식은 전환 시기 앞뒤 세대의 재정 몫이 비슷해야 가능하다. 부과방식의 모범으로 소개되는 독일과 스웨덴의 경우 현재 우리와 비슷한 대체율에서도 대략 소득의 19%를 보험료로 납부한다. 서구에서 세대 간 연대의 열매인 부과 방식이 한국에선 현세대의 책임 회피 논리로 활용되니 말문이 막힌다.

대통령은 배려와 공평을 중시하는 분이다. 복지부안을 반려한 배경에는 서민 가계를 걱정하는 선의가 바탕에 있다 믿는다. 그 마음이 현세대 국민뿐만 아니라 미래 아이들까지 품기를 바란다. 초고령시대를 맞이하여 연금 개혁은 미래 세대가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왕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모양새이니, 대통령도 2015년의 기억을 넘어서야 한다. 국민연금 재정구조에 대한 재인식이 절실하다.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여러 해 전 <홀리 모터스>라는 영화가 개봉했을 때다. 평단의 극찬을 받은 작품이라기에 밤늦게 짬을 내어 광화문 근교의 작은 상영관을 찾았다. 영화는 10시 넘어 끝났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후 출구로 향하던 관객 중 누구도 소리 내어 말하진 않았지만, 얼굴에는 다들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고 적혀 있었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은 난해한 대목들을 이해한 척 표정을 꾸몄고, 여럿이 온 이들 가운데 한 명씩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짐작건대 그들이 영화 보자며 일행에게 제안했던 당사자일 테다.

그 시각에 끝난 영화가 한 편뿐이어서 극장을 나선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나란히 걷게 되었다. 사거리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던 중 뒤편에서 볼멘소리가 들렸다. “야, 내가 조낸 이해해보려고 했는데, 아까 네온사인 옷 입고 부비부비하던 거 뭐였냐?” “그게 아방가르드라는 거야.” “무슨 아방가르드가 변태냐?” “그러니까 내가 아이언맨 새로 나온 거 보자고 했어, 안 했어?”

영화<홀리 모터스> 포스터

돌아보니 스물두엇가량 되어 보이는 남자 셋이었다. 친구가 군대 휴가 나와서 함께 극장을 방문한 것일까, 아니면 영화 관련 교양수업에서 교수님이 추천한 것일까. 그중 한 명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그래도 감독이 퐁네트의 연인들인가, 뭐 그런 존나 유명한 걸 찍었다던데…” 하자 옆의 둘이 “너 또 이런 거 보자고 그러면 진짜!” 하며 헤드록을 건다. 픽, 웃음이 나려 해서 고개를 돌렸더니, 광화문대로의 이순신 장군께서 큰 칼에 손을 대며 ‘어허 이놈들, 바르고 고운 말 사용하지 못할까?’ 호통 치듯 셋을 노려보시는 것 아닌가? 장군의 등 뒤로는 세종대왕께서 어둠 속에 근엄히 좌정하시어 ‘제군들, 퐁네트가 아니라 퐁네프다’라고 정정해주셨다.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데 또 두런두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근데 그 장면에서 손은 왜 깨물었냐?” 역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얼굴이 영심이처럼 동그란 친구와 커다란 뿔테안경 쓴 친구였다. 그녀들도 영화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내 말이. 꽃은 왜 먹냐구.” “황당하지 않냐?” “아 진짜. 남주(남자주인공)도 그렇게 생겼을 줄이야.”

그 순간 정류장 저편에서 단호한 목소리가 쨍 울렸다. “그러니까 카락스 감독도 여체를 대상화한 점은 매한가지야. 대단히 폭력적이지.” 담배를 쥔 단발머리 여자가 후배로 추정되는 이들을 세워놓고 한참 영화를 논하고 있었다. 옛 영화잡지 ‘키노’풍의 유려한 문어체 문장들이 구어가 되어 그녀 입술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후배들은 엉거주춤 선 채 ‘근데 누나, 목소리 조금만 낮추시지’ 하는 표정이었다. 옆에서 잠자코 듣던 영심이와 뿔테안경이 속삭인다. “야, 영화 얘기 그만 하자.” “우리는 찌그러져 있어야겠다.”

마음에 오래 남는 영화에는 각자의 경험과 시선에 따라 다르게 의미화되는 작품이 있는 반면, 전문가의 비평을 읽어야 비로소 이해되는 작품도 있다. 관람 당시 난 <홀리 모터스>는 후자가 되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영화평에 몰입할 수 없었다. 광인 에피소드에 대한 진지한 정신분석학적 해석을 읽으면 “꽃은 또 왜 먹냐구”가 익살스럽게 겹쳐지고, 모션캡처 배우 에피소드 분석에서는 “네온사인 옷 입고 부비부비”가 귀에 쟁쟁거렸다. 생각 말미엔 큰 칼 쥔 이순신 장군과 그 뒤에 좌정한 세종대왕이 항상 등장했다. 유머코드가 적은 작품인데도 떠올리면 웃음이 났다.

삶과 영화의, 그리고 화면 안과 밖의 경계가 옅어지며 서로 스미는 찰나들이, 잘은 모르지만 작품의 주제 중 하나였을 것이다. 비유와 상징을 다 파악한 듯 표정을 꾸며내려던 내가 등 뒤의 볼멘소리를 들으며 몰래 입꼬리가 씩 올라갔던 순간 또한 안과 밖의 경계가 기워져 짜이는(interwoven) 찰나였을 듯하다. 이순신 장군과 영심이와 “조낸 이해해보려고”와 “여체의 대상화”가 어우러진. 명감독이 만들어낸 영화 속 장면들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등장하는 광화문 사거리와 종각 버스정류장의 그 장면들이 한층 각별하게 내 안에 각인될 것임을 예감했다. 지금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임이 즐거웠던 몇 안되는 순간이었다.

<이소영 | 제주대 교수 사회교육과>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예로부터 차는 몸의 기름기를 씻어 내고 막힌 장기를 풀어준다고 알려져 있다. 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날 때 차를 마시면 안정되는 효과가 있어서 많은 이들이 습관적으로 차를 즐기곤 했다. 하지만 차가 지닌 독한 성질에 대한 경계도 일찍부터 있었다. 차는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몸을 상하게 하므로 그 이로움은 잠깐이고 해로움은 평생을 간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어떤 행인이 길을 가다가 차 마시는 사람을 보고 말했다. “차는 원기를 손상하니 마셔서는 안되오.” 그러나 차 마시던 사람은 껄껄 웃고는 계속 차를 마셨다. 자신의 말이 무시되자 화가 난 행인이 마을 사람들에게 다니며 외쳤다. “잘 보시오. 저 사람은 이제 머지않아 병들게 될 것이오.” 그러나 그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건강해질 뿐이었다. 차를 즐기되 잘 조절할 줄 알아서, 반드시 배불리 먹은 뒤에만 차를 마셨기 때문이다.

강희맹은 그림에 매우 능하기로 이름이 났다. 그런 그에게, 그림은 잘 그려봐야 천시받을 뿐이고 경학 공부에 방해가 되니 그만두라고 권하는 편지를 보내온 이가 있었다. 인성 수양과 경세제민을 위한 공부 이외에는 모두 완물상지(玩物喪志)로 간주해 경계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강희맹으로서는 자신의 그림 그리는 취미를 변호할 필요가 있었다. 그 변호의 논리 가운데 하나로 가져온 것이 위의 이야기이다. 속이 비어 있을 때는 차가 해롭지만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었을 때는 더없이 좋은 것이 차인데, 이를 모르고 일률적으로 권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도덕의 기본을 세우면서 즐기기만 한다면, 예술이야말로 군자가 노닐 지향이라는 논리다.

“책선(責善)은 벗 사이의 도리다”라는 말은 본디 부모 자식 사이에는 책선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나왔다. 가까운 벗이라 해도 관계가 멀어지거나 절교할 각오로 하는 것이 책선이니, 끊을 수 없는 천륜의 관계에서는 애초에 하지 말라는 뜻이다. 더구나 상대의 사정과 속내를 깊이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지식과 경험만을 내세워 섣불리 건네는 충고는 어리석고 위험하다. 인터넷의 각종 매체에 수위를 넘어선 단죄의 댓글이 난무하고 있다. 말을 쉽게 던질 수 있는 환경일수록 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할 일이다. 사람 사이에 끝까지 익명일 수 있는 공간은 없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일반 칼럼 > 송혁기의 책상물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차 마시고 그림 그리며  (0) 2018.11.14
정의의 현실, 현실의 정의  (0) 2018.10.31
대롱으로 본 하늘  (0) 2018.10.17
이 답답한 교육 앞에서 우리는  (0) 2018.10.04
다시 물을 바라보며  (0) 2018.09.12
‘합력’의 북소리  (0) 2018.08.29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양승태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들의 책임을 묻기 위해 국회에 탄핵소추를 요구하자는 주장이 법원 내부에서 제기됐다. 대구지법 안동지원 판사 6명은 오는 19일 열리는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에 대한 탄핵 촉구 결의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이들은 “사법부 구성원 스스로 행한 재판독립 침해행위에 대해 위헌적 행위였음을 스스로 국민에게 고백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위 법관들이 자성은커녕 검찰 수사에 반발하는 와중에 중견·소장 법관들이 ‘제 살을 도려내는’ 결단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의 용기와 소신을 높이 평가한다.

대구지법 안동지원 소속 판사들은 ‘양승태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연루 법관에 대한 탄핵 결의가 국민들에 대한 법관들의 최소한의 실천적인 의무라고 했다. 사진은 법원행정처 폐지 등을 담은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공개된 지난 7일 오후 대법원 전경.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헌정 사상 법관이 탄핵된 사례는 없다. 그런 만큼 현직 법관들이 동료 법관의 탄핵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안동지원 판사들은 “형사절차에만 의존해서는 형사법상 범죄행위에 포섭되지 않는 재판독립 침해행위에 대해 아무런 역사적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제안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 법원 일각에서는 사법농단을 두고 ‘법관윤리상 부적절하나, 형사적 범죄는 안된다’는 견해가 있어왔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구속영장에 적시되고, 다른 사법농단 관련자들에게도 적용될 ‘직권남용죄’의 한계 때문이다. 형법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 처벌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직권’이나 ‘의무 없는 일’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유죄 선고 비율이 높지 않다. 이 때문에 최근 학계에서는 독일 형법에 규정된 ‘법왜곡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헌법을 위반하고 주권자를 배신한 법관들이 실정법상 한계로 면죄부를 받는다면 사법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요원해진다. 형사처벌 절차는 계속 진행하되, 동시에 탄핵소추도 추진해야 한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안동지원 판사들의 제안대로 탄핵 촉구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국회도 탄핵소추 논의를 더 이상 미뤄선 안된다. 사법농단의 주요 인물인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현 서울고법 부장판사)은 내년 2월 법관 임기가 만료된다. 재임용 신청만 하지 않으면 이 전 상임위원은 무사히 법복을 벗게 된다. 앞서 임 전 차장도 재임용 신청을 철회하는 방식으로 ‘임기만료 퇴직’한 바 있다. 법률가들이 법의 허점을 악용해 정의를 왜곡하는 사태를 더 이상은 방치할 수 없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내 자치경찰제 특별위원회가 13일 경찰 인력의 36%를 자치경찰로 전환하는 ‘자치경찰제 도입방안’을 발표했다. 입법 절차가 마무리되면 내년 하반기부터 세종, 서울, 제주 등 5개 시·도에서 시범운영하고 2022년부터는 전면 시행한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자치경찰제는 중앙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지역 경찰이 주민들의 민주적 통제하에 주민 친화적인 치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미국과 유럽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채택하고 있다. 한국은 1948년 정부 수립 때부터 논의만 무성했는데, 이제라도 전면 시행을 위한 구체적인 정부안이 마련된 것은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자치경찰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국가경찰의 권한과 인원이 대폭 이전돼야 한다. 현재 제주에서 시행되고 있는 자치경찰제는 인력이 제주 국가경찰의 8% 수준인 데다 수사권도 없이 순찰이나 범죄예방 등 제한적 업무만 담당하고 있어 한계가 크다. 이번에 나온 안을 보면 기존 지구대·파출소 조직 전부를 포함해 전체 경찰 인력 11만7617명 중 36%인 4만3000여명이 자치경찰로 전환돼 진일보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 생활안전과 여성·청소년, 교통, 지역경비 등 주민밀착형 사무는 물론 성·학교·가정 폭력, 교통사고, 음주운전, 공무수행 방해 등 민생치안 사건의 수사권도 자치경찰에 넘어가 최소한 제주 같은 ‘무늬만 자치경찰’ 수준은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보·보안·외사·경비 업무와 광역·국익범죄 외에 일반 형사사건까지 여전히 국가경찰이 담당하고, 기존의 지방경찰청과 경찰서도 유지되기 때문에 완전한 자치경찰제라 하기는 어렵다. 궁극적으로는 국가경찰의 권한과 인력을 더 자치경찰에 넘겨야 한다.

자치경찰제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이것 말고도 여러 난제를 극복해야 한다. 우선 국가경찰과의 업무중복으로 인한 혼선과 업무 사각지대에 대한 우려다. 사건 발생 시 초동 조치부터 업무 협조와 정보 공유, 사건 이관 등에 대한 명확한 매뉴얼을 마련해 이 같은 부작용을 방지해야 한다. 자치경찰 기관장 임명권을 갖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영향력에 휘둘릴 우려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자치경찰 기관장 후보를 시·도지사에게 추천하는 ‘시·도경찰위원회’의 민주적이고 투명한 운영이 보장돼야 한다. 지역 토착 세력과의 유착 등에 대한 폐단을 막기 위해 엄격한 내부 감시체제를 갖추는 것도 필수적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얼마 전 분자유전학을 전공한 송기원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가 <생명>(2014),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2017)라는 두 권의 생명과학 관련저서에 이어서 세 번째로 <송기원의 포스트게놈시대>(사이언스 북스)라는 책을 냈다. 과학책은 읽어도 제대로 이해된 지식이 머릿속에 남는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분명하게 깨우친 게 있다면 첫째로 책 제목이 알려주듯이 지금이 ‘포스트게놈시대’라는 사실이다.

물론 DNA라든가 유전자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요즘 텔레비전 가족드라마를 보면 가장 자주 등장하는 설정 중 하나가 유전자검사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그리고 2000년대 초 인간 DNA 정보 전체인 유전체(genome) 지도가 밝혀졌다고 한참 떠들썩했던 기억이 남아있는데, 2003년에 게놈지도가 완성됐고 그 이후를 포스트게놈시대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시대’라고 명명할 수 있는 커다란 현상 중에 가장 최근의 일이 인간유전체와 관련돼 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시대를 상징하는 말이 뭘까를 떠올려볼 때 포스트게놈시대라는 말을 분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 기후변화,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 한반도평화, 그리고 양극화 그 정도 아닐까 싶어서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두번째로는 2016년 이후부터 게놈지도를 읽고 활용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쓰기(The Genome Project: Write)에 도전하는 중대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험실에서 인간유전체를 구성하는 DNA 정보 서열 전체를 합성해서 작동 여부를 시험하겠다는 것인데, 쉽게 말해서 인간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2016년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합성생물학 분야의 세계적 대가인 과학자들, 의료인들과 법률가, 기업인 등 약 150명이 모여서 향후 10년 내에 인간 유전체 합성이 가능한지를 논의하는 회의를 했고, 이 회의가 전환점 역할을 했다. 송 교수 표현에 따르면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렸다.

세번째로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생명과학기술이 너무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생명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순수과학 연구와 이를 응용하는 기술은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실험실에서 나온 연구결과가 즉각 기술로 응용되어 인체를 비롯한 생명체에 직접 적용되는 시대라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와 응용의 일체화현상과 관련해서는 유전자가위기술(CRISPR-Cas9)에 관한 국내 생명윤리법개정안 발의상황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017년 8월 한국과학자에 의해 미국에서 실험결과 유전자가위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배아에서 유전체를 성공적으로 교정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곧바로 그해 10월에는 생명윤리법 개정안이 과학자 출신 의원의 발의로 제출되어 국회계류 중이다. 생명윤리법(47조) 내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제한 때문에 유전자가위기술 연구를 국내에서 진행할 수 없으니 사실상 전면 풀어달라는 취지인데, 연구가 즉각 상품화로 응용되는 지금의 시대적 상황에 비춰본다면, 이런 개정안은 배아세포를 활용한 치료제 개발과 상용화의 관점에서 검토돼야 할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별 관심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

이제 2018년도 저물어 2019년을 바라다보는 지금, 돌이켜보면 2000년에 새 밀레니엄이라 해서 세계가 엄청나게 환호하고 시끄러웠던 게 떠오른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광화문에서 ‘생명의 빛’ 불꽃축제 등 여러 축하행사가 열리고 DMZ2000 퍼포먼스도 열렸는데, 그사이 DMZ는 종전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새 밀레니엄 시기의 윤곽은 21세기 초에 불과한 지금 이미 다 그려진 것 같기도 하다.

가장 크게 현실로 들이닥친 새 밀레니엄의 과제는 기후변화대응이다. 2018년 10월에 인천 송도에서 열린 IPCC 총회에서는 21세기 말까지 지구의 평균온도상승폭을 1.5도 이하로 낮추기 위해서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5%로 줄여야 하고, 2050년까지는 0%인 ‘넷제로Net-Zero 시대’로 돌입해야만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신기술, 나무 심기, 재생 숲 조성, 토지회복 등 모든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해서 아주 넓은 범위에서 최대한 빠르게 시작해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기후변화대응에 성공해야 그 이후의 인류 지속을 기대할 수 있다. 1.5도를 넘을 경우에는 전 지구적으로 산악지대의 영구동토층이 녹아 매장된 온실가스가 방출될 가능성이 결정적인 위험요소가 된다.

한편 2015년 나사는 화성여행 프로젝트를 발표했고, 2017년에는 UAE가 2047년부터 화성이주계획을 실행한다고 발표했는데 이와 같은 지금 시기 우주여행과 이주에 관한 꿈은 물론 계속되는 성장의 꿈이 기후변화대응과 맞물려 어떻게 조응하는 것인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지난 시대와는 달리 큰 시대적 과제와 비전들이 제각각 분열된 채로 확장되고 진행되는 것이 새 밀레니엄시대의 특징이기도 한 것 같다.

21세기를 넘어 새 천년을 내다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문제이다. 특징적인 것은 기술과 경제성장이 선사한 진보의 꿈과 폐해의 양면을 겪고 있는 것이지, 인간의 생각과 사회적 관계에 대한 상상은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는 점이다. 우주선을 타고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SF영화에서도 사랑, 책임과 같은 관계적 의미망은 그대로이다. 인간이 우주로 이주할 경우 다행성종으로 더 진화할 가능성은 있지만, 지구 생명계로부터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로서 발생학적 역사를 갖고 있는 사회적 존재라는 것이 인간의 정의이다. 생명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인간을 만들 수 있는지 도전하고 예상대로 2026년까지 그 도전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닌 제3의 합성생물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생명과학의 도전은 사람이 아닌 사람의 등장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시계열적·공간적·사회적 삶을 근간에서 뒤흔드는 가장 근본적 과제이다. 현재의 사회를 유지하는 인간이 아니라 다른 정의의 합성생물체로서의 사람의 등장에 마주쳐서 이를 사회구성원으로 새로 정의하고 추가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인간 사회를 유지할 것인지 생명과학의 한계설정에 대해 관심을 갖고서 깊이 폭넓게 생각하고 토론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강금실 | 사단법인 선 이사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 7일 정부가 ‘건설산업 생산구조 혁신 로드맵’을 발표했다. 건설산업의 업역규제를 폐지하고 업종체계와 등록기준을 조정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자리에 건설업계의 노사 대표들도 함께했다. 많은 우려 속에 수십년 묶인 난제를 짧은 기간에 미래지향적으로 그 실마리를 풀어낸 것이다.

먼저, 종합과 전문업체 간 업역 칸막이가 제거된다. 현재는 전문업체는 종합공사 원도급을 받을 수 없고, 종합업체도 전문공사 도급을 받을 수 없다. 앞으로는 상호 시장 진출이 허용된다. 종합공사 주요 전문업종을 등록한 전문업체에는 단독 또는 공동으로 종합공사의 원도급이 허용되고, 종합업체는 세부 전문공사의 하도급이 가능하게 된다. 이로써 고착된 수직적 원·하도급과 수주 페이퍼 컴퍼니의 폐해를 줄이는 한편, 전문 시공기술 역량이 있는 업체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을 터주게 되었다. 다만, 10억원 미만 공사의 하도급은 전문업체에만 허용된다. 영세하거나 미래 건설생산의 튼튼한 기반이 될 특화된 시공기술을 보유한 소규모 전문업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갈등이 많고 공법의 융·복합이 필요한 업종은 단계적으로 조정하거나 통합해 나간다. 자본금을 낮추고 기술능력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등록기준도 조정된다. 더불어 업체의 실적, 인력 등 주력분야에 대한 정보가 제공된다. 이러한 정책은 업종 간 분쟁을 줄이고, 발주자가 좀 더 합리적으로 업체를 선택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나아가 4차 산업혁명 첨단기술의 융·복합을 통해 생산성과 대외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산업정책은 미시 경제주체인 개인·기업과 거시 국민경제 사이 중위 영역에서 양쪽 모두에 크게 영향을 주게 된다. 건설산업은 한 나라의 장기적인 경제성장의 핵심 요소인 물리적 인프라를 축적해 나가고 있다. 따라서 국가 경제성장에서 건설산업 역할은 지대하다. 그루네베르크는 경제성장과 건설 비중은 흔히 알고 있는 본(Bon)의 역U자형이 아니라 꼬리 달린 벨 모양을 보인다고 했다. 선진국에 이르러서 잠시 주춤하다가 다시 인프라 투자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전·후방 산업연관효과도 매우 크다.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에서 건설이 1%포인트 증가하면 실업률은 1%포인트 낮아진다고 했다.

우리 건설산업은 40여년 전인 1976년 만든 낡은 생산구조에 그대로 머물고 있다. 지금 우리는 국내적으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점점 축소되고, 해외시장에서는 경쟁력을 갖춘 후발 개도국의 추격과 4차 산업혁명 첨단기술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늦었지만 근본적인 산업혁신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더 이상 갈라파고스적 칸막이 안에서 꼼짝달싹하지 못한 채 기술력이 녹슬고 창의적 아이디어가 꿈도 펴지 못하고 스러져가서는 안된다. 발주자도 소비자로서 훨씬 자유롭고 합리적으로 건설업체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생산체계는 2년간 관련 제도 정비를 거쳐 2021년에는 공공, 2022년에는 민간까지 전면 시행된다. 정비기간 동안 정부는 이번 혁신방안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수 있도록 세심한 조사와 연구를 거쳐 하위 법령과 지침 등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건설업체는 업체대로 변화될 환경에 대한 경영전략과 대응방안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번 혁신방안이 나오기까지 큰 고비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치밀한 전략과 뚝심을 보여준 정부의 슬기롭고 현명한 리더십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개별 업체와 업종의 이해를 초월하여 대승적 결단을 내린 건설업계에도 찬사를 표한다. 정부와 업계가 의기투합하여 마련한 새로운 생산체계를 통해 건설산업에 새로운 미래가 열리고, 건설업이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서명교 |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스리랑카에는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가 엄청나지만 신호나 횡단보도는 적습니다. 걸 건너편으로 가려고 해도 건너지 못해서 안절부절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스리랑카는 교통법규도 인프라 정비도 정말 엉망진창”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에 비하면 일본은 전국에 설치된 신호기의 수가 20만개 이상이고, 도로교통법은 어떤 선진국보다 잘 규정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 중에서 자율주행이나 차량 공유 서비스 등 최첨단 기술이나 서비스를 도입하는 시점에 어느 쪽이 새로운 시대로 신속하게 옮겨갈 수 있을까요? 일본의 저널리스트인 나카야마 아쓰시는 <2019 앞으로의 일본의 논점>(일본경제신문출판사)에 실린 “인공지능(AI)이 바꾼 경영, ‘결과에서 역산’하여 찾은 활로”에서 스리랑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율주행은 ‘결과지향’ 성격의 기술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까지 가장 빨리 도착하게 해줘’라고 자율주행차에 지시하면, 명령을 충실하게 실현하고자 자동차의 AI는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와 최단 코스를 선택해 달린다. 그러한 주행 방식은 신호나 교통법규의 수가 적은 스리랑카가 주행 시 제약이나 장애가 적고 자율주행차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 일본보다 유리하다. 요컨대 ‘결과에서 역산’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과거부터 축적되어 온 규칙이나 산업은 적은 편이 좋다.”

AI 기술은 일취월장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통한 얼굴 인식이나 음성명령, 그리고 상품 추천 시스템 등이 AI 기술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제 보편적인 상식입니다. “스마트폰에다 음성으로 음악을 탐색하고, 날씨를 묻고, 카카오톡을 보내고, 택시를 부르는” 일도 AI 기술 때문에 가능합니다. <카카오 AI 리포트>(북바이북)는 AI 기술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지금 어디까지 침투했는지를 확인시켜줍니다.

전문가들은 2019년에 AI 실용화의 길이 본격적으로 열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나카야마는 “우리가 스피커나 가정용 로봇, 가전 등을 통해 매력을 아주 약간 맛보았지만, AI가 제힘을 발휘하는 분야는 컨설팅이나 자율주행 같은 비즈니스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일본 기업의 경영 방식도 큰 변화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며 지금이 매우 중요한 때라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는 소프트웨어나 애플리케이션, 클라우드 등으로 이익을 얻는 미국의 가파(GAFA, 구글·아마존닷컴·페이스북·애플)가 지금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지만 GAFA에 ‘결과에서 역산해 수익을 내는’ 경영이 자리 잡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구글은 AI 기술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일부에 지나지 않고, 주력 사업은 여전히 광고다. 결과에서 수익을 내는 회사라기보다 정보 매칭으로 돈을 버는 과거 비즈니스 모델의 기업이라고 봐도 좋다. 결국 승부는 이제부터라는 얘기다. 일본에도 기회가 있다. 하드웨어에 강하다는 말은 자동차, 철도, 인프라 설비, 산업기계, 의료기기 등 제품과 거기에서 빅데이터를 얻는 사업의 매칭이 풍부하게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역산해서 수익을 낼 기회는 GAFA와 같거나 그 이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일본 기업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조직(집단)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과정만을 열심히 생각해도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나카야마는 “AI는 원래 목적지향, 결과지향의 기술이다. 명확한 목적이나 결과가 주어질 때라야 비로소 제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야노 가즈오 히타치 선임연구원(AI 연구를 총괄하는 행복프로젝트 리더)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나카야마는 개인 차원에서도 같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앞으로 “기술의 진보가 한층 가속하여, 인간은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동료뿐만 아니라 기계와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또 “개개인이 하고 싶은 일이나 바라는 일을 설정하면 최선의 조언을 AI가 도출하여 성공 확률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일이 가능한 시대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가진 AI는 개인에게 알맞은 해답을 산출해서 곧바로 스마트폰으로 적절한 조언을 전송해줄 테니까요.

기술적으로 낙후된 나라가 기술혁명으로 단기간에 한 단계를 뛰어넘어 성장하는 것을 ‘립프로그(leapfrog, 개구리 점프)’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기술을 ‘가지지 못한 나라’는 규제가 적고 중간 과정을 쉽게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노키아를 배출한 핀란드는 강설과 추위, 그리고 인구밀도가 낮아 일반전화의 인프라 정비를 해나가기가 어려웠기에 모바일 네트워크 분야에서 다른 선진국을 앞지를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광섬유망 부설에서 선두를 달리던 일본은 일반전화라는 자산에 얽매여, 모바일 통신에서 뒤처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AI의 ‘립프로그’가 가능할까요? 최근에 인터넷전문은행, 공유택시 등을 도입하려고 했을 때 기존 업계의 반발이 거셌던 것처럼 AI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도약이 쉽지 않았습니다. 나카야마는 “AI 기술로 세계적 리더로 군림하고 싶다면 일본의 법이나 규제의 체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 2019년은 그야말로 운명의 갈림길에 놓여 선택을 요구받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라고 다를까요? 중대한 기로에 선 우리도 반드시 현명한 선택을 해내야만 할 것입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