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운동부 폭력 사건’ ‘여중생 집단폭력 사건’ ‘집단따돌림 자살 사건’…. 뉴스를 보면 하루가 멀다하고 학교폭력과 관련된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2011년 12월 대구에서 학생이 학교폭력으로 투신자살한 사건이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정부는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매년 학교폭력 전수조사를 통해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들과 같이 ‘과연 15세 여중생들의 행동이 맞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케 만드는 심각한 사건들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이는 정부가 내놓았던 대책들에 허점이 있음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신호이기도 하다.

얼마 전 교육부가 발표한 2017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폭력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중·고등학생보다 초등학생, 그리고 고학년보다 저학년의 사례가 많이 접수되고 있다는 점은 학교폭력이 저연령화되고 있어 학교폭력 조기 예방교육이 필요함을 시사해 준다. 처벌과 감시보다는 예방 차원에서의 정기적인 교육이 더욱더 필요한 것이다. 최근 소년법으로 인해 집단폭력 사건 가해자들이 강한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다며 제기한 소년법 폐지 청원에 27만여명이 참여했다. 이처럼 처벌에 대한 요구는 많으나 예방에 대한 논의는 그에 비해 너무나도 적어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한 사람으로서 무척이나 안타깝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굿네이버스에서는 학교폭력을 사전에 미리 예방할 수 있도록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전국에서 실시하고 있다. 공감훈련을 통해 아이들이 학교폭력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적극적인 방어자로 나설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지난해에 38만여명이 참여했다. 교육에 참여한 한 학생은 “피해자가 얼마나 힘들지를 공감하게 되니 학교폭력을 대하는 마음이 변한 것 같다”고 얘기했다. 실제로도 모둠활동 때 따돌리던 친구를 교육 참여 후 모둠에 함께 끼워주는 등 아이들의 실질적인 변화도 볼 수 있었다.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의하면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은 6년째 감소하고 있다. 조사결과 수치만 봐서는 우리 사회 내 학교폭력이 줄어들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교육부 조사결과와 달리 학교폭력위원회의 심의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어떤 수치가 더 정확한 조사결과인지에 대해 여러 논쟁들이 있지만 조사의 정확성에 대한 논쟁보다 우리 사회가 더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아이들이 학교폭력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 한 명이라도 학교폭력으로 아파하는 아이가 있어서는 안된다.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이기를 바란다. 더 이상 미봉책을 내놓는 것은 안된다. 수년 동안 많은 피해 사례가 있었고,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는 충분했을 것이다. 정부는 더 이상 수동적으로 대응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보다 실질적인 노력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예방을 최우선으로 하는 학교폭력 예방교육이 전문적이면서도 아동들의 시선에 맞춰 시행돼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어디서나,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위협받지 않고 안전할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희망해 본다.

<조은승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 전략사업부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 왜 ‘쓸데없는’이란 수식어를 붙였을까? 실제 쓸모없다기보다 정색하고 덤벼들지 않겠다는 ‘말의 유희’다. 김영하, 정재승, 유희열, 유시민, 황교익 등 각계의 ‘고수들’이 내뱉는 말은 꽤 흥미롭다.

<알쓸신잡>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상상력 사전)을 떠올렸다. 베르베르는 청소년기부터 30년 넘게 문득문득 떠오른 생각을 기록해왔다고 한다. 그런 생각들이 <개미> <타나토노트> <뇌> <나무> <파피용> 같은 그의 독창적인 소설의 밑거름이 됐다.

<상상력 사전>은 꽤 엉뚱하지만 박식함도 느낄 수 있는, 이를테면 ‘베르베르식 개똥철학사전’이다.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항목을 보자. ‘당신은 71%의 물과 18%의 탄소, 4%의 질소, 2%의 칼슘, 1%의 칼륨, 0.5%의 나트륨, 0.4%의 염소로 이뤄져 있다. 거기에 큰 숟가락으로 한 술 분량의 여러 가지 희유(稀有) 원소, 즉 마그네슘, 아연, 망간, 구리, 요오드, 니켈, 브롬, 불소, 규소를 포함하고 있다. (중략) 그러나 당신은 단순히 그런 물질을 합쳐 놓은 존재가 아니다. 당신은 하나의 화학적 구조물이면서 훌륭한 건축물이다.’

지식인, 특히 예술가 중에는 자신의 시각을 이런 독특한 언어의 묘미에 담아내는 경우가 많다. 예술이나 창의력이란 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비틀어서 다른 부분을 보여주는 것, 한번 꼬아서 생각하게 만드는 것, 기존의 생각 회로 대신 새로운 접근로로 안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대단한 발견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아는 사실이라도 뒤집어볼 때, 생각의 밑변과 각도가 바뀌게 된다. 그게 ‘삶의 통찰’이 될 수 있다는 거다.

프랑스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도 말의 묘미를 보여준 작가다. ‘투르니에 사전’이라면 <생각의 거울>을 들 수 있다. 포크와 스푼, 목욕과 샤워, 동물과 식물같이 상대적인 개념을 놓고 위트 있는 해석을 곁들인다. 이런 식이다. ‘스푼이 채식주의적 소명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서 포크는 육식의 상징이다.’

원래 투르니에를 유명하게 만든 소설은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다. 디포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를 비튼, 생각의 도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에 정착한 로빈슨이 원주민 프라이데이를 문명화시킨다는 백인 우월주의 시각을 보여준다. <방드르디>는 원주민인 방드르디가 로빈슨을 의미 있는 삶으로 이끄는 주체로 부각된다. 방드르디는 프랑스어로 금요일(프라이데이)이란 뜻이다.

한국에도 언어의 유희를 작품에 녹여낸 작가들이 꽤 있다. 이외수의 소설 <들개>에서 주인공 ‘나’는 ‘새우리말 사전’을 쓴다.

물가고 현상: 물건값은 오르고 사람값은 떨어지는 현상, 돈: 인간을 가장 빨리 더럽히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오물, 빙하시대: 인류가 냉동 시설의 혜택을 가장 공평하게 받았던 시대, 무의촌: 본의 아니게 국가로부터 주민 모두가 의사임을 허락받고 있는 촌. 사랑: 마음으로 이성 간에 착한 독약을 만드는 일….

박민규는 어떤가?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당시 ‘프로가 되라’는 자기계발 열풍을 신랄하게 꼬았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한국 경제사에서 여성 고급 인력의 필요성이 대두될 때 나온, 그러나 여성 고급 인력의 필요성과는 아무 상관 없는 프로복음 10호 되겠다. 역시 거창한 문구로 위장해 있으나, 그 원래의 뜻은 ‘옷 사세요’라는 말이다.’

말은 시대와 세상을 담는다. 세상이 변하면 단어의 의미에 틈새가 생기며, 이 틈새를 벌리거나, 새로운 말을 박아넣어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언어의 유희다.

술자리에서 동료가 말했다. 안빈낙도(安貧樂道)하고 싶다고. 난 이렇게 답했다. “가난이 죄가 되는 시대에 안빈낙도가 어딨냐? 안부낙도(安富樂道)만 가능하지!”

이심전심(以心傳心)? 이젠 사어에 가깝다. 즉답 안 하면 ‘문자 씹었다’고 눈총받는다. ‘갑남을녀(甲男乙女)’? 유리천장이 두꺼운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이라면 오히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남자가 갑, 여자는 을. ‘졸부(猝富)’? 졸부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신도시 건설과 재개발 열풍이 불어 하루아침에 땅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았던 때나 어울리던 말이다. 이제 부는 철저히 대물림되는 ‘시스템 사회’가 됐다. 요즘은 중산층도 하루아침에 빈민층으로 추락한다. 하여 ‘졸빈(猝貧)’이란 단어가 필요하다. 구어체로는 ‘폭망’…. 따져보니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 많은데, 나도 이참에 개똥철학사전이나 하나 써볼까?

<최병준 문화에디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박정희는 조급했다. 정권 연장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다. 부모의 조국을 찾아온 재일동포 유학생쯤은 얼마든지 간첩으로 둔갑시킬 수 있었다. 그건 쉬운 일이었다. 그 쉬운 일 때문에 서준식은 형 서승과 함께 17년을 갇혀 있었다.

형벌의 목적은 고통이다. 청년은 17년 내내 매일처럼, 매 순간 고통을 겪었고 장년이 되어서야 석방될 수 있었다. 누구나 고통에서 벗어나면, 다시는 그 고통을 돌아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어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이니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서준식은 달랐다. 출소한 다음에도 맹렬히 뛰었다. 그 대가는 다시 구금의 고통을 겪는 일로 이어졌다. 1991년엔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다, 1996년엔 인권영화제에서 제주 4·3항쟁을 다룬 영화를 틀었다고 또 갇혔다. 당시 서준식은 인권운동사랑방의 대표였다. 서준식은 교도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부지런히 찾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라 유무죄에 대한 판단도 받지 않은 미결수들이 왜 수의를 입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미결수 수의 착용은 서준식의 문제제기로 위헌 결정이 났다.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예전 같으면 국사범으로 불릴 만한 국정농단의 주범들도 이제는 조사나 재판을 받을 때 평상복을 입을 수 있다. 창피도 덜하고, 범죄자라 낙인찍히는 일도 덜해졌다.

석방된 다음엔 교도소 실태조사를 했다. 출소자들을 붙잡고 실태조사를 했다.

감방에는 몇 명이 살았는지, 생활은 어떤지, 아프면 진료는 제대로 받을 수 있었는지 등을 꼼꼼하게 물었고, 그 결과를 <한국 감옥의 현실>이란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이 군대를 개혁하기 위해, 또 군대의 부조리를 없애거나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 숱한 유력 인사들이 드나들었고, 많은 운동가들이 고통을 겪었는데도 우리의 교정시설이 고만고만한 까닭도 마찬가지다. 나오면 다시는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곳이 바로 교정시설이다. 그래도 서준식은 달랐다.

또 한 사람, 백태웅. 서울대학교 학도호국단 총학생회장으로 학생운동을 열심히 하였다. 그 대가는 구속과 구금이었다. 석방된 다음에는 훨씬 더 본격적으로 운동을 했다. 박노해 시인과 함께 ‘남한사회주의자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하고, 비합법 노동운동, 혁명운동을 벌였다. 그와 동료들의 투쟁은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마치 <공산당선언>이란 팸플릿이 유럽 전역을 뒤흔든 것처럼, 그들도 조직 이름에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려고 했다. 결과는 참담한 패배였다. 박노해, 백태웅, 은수미, 현정덕 등은 모두 긴 세월 구금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백태웅은 6년4개월 동안 갇혀 있었다.

서준식과 다른 점은 시대였다. 그래도 문민정부가 출범한 다음이었으니 서준식처럼은 아니지만, 청년에게 6년 넘는 구금은 그의 모든 것을 빼앗을 만큼 긴 세월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다음엔 훌쩍 미국으로 떠났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이력으로 어디든 한걸음 정도 걸쳐 놓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가 선택한 것은 공부였다.

미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오랫동안 수감된 사람이 이런 성취를 보여주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백태웅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강제 실종 실무그룹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대표하는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짬이 나는 대로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 유엔의 위원 자격으로 백태웅이 주로 다니는 곳이 바로 각종 구금시설이다. 최근엔 스리랑카를 방문하여 비밀감옥을 밝혀냈고, 21명의 정치범을 석방시키는 성과도 있었다.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곳일 텐데, 백태웅은 서준식처럼 사뭇 달랐다.

누구든 감옥이 그 나라 문명의 척도라는 말은 쉽게 한다. 그렇지만 법무부 교정본부가 관할하는 한국의 감옥은 여전히 사각지대다. 오래된 시설이 많은데도 교도소 신축은 온통 막혀 있다. 예산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결사반대 때문이다. 하긴 특수학교마저 아파트값을 떨어뜨린다는 괴담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새로운 교정시설을 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마침 다음주에 서울동부구치소가 새로 문을 연다. 예전의 성동구치소가 문정동으로 자리를 옮긴 거다. 새로 옮긴 시설은 교도관들은 물론, 수용자들도 좋아할 만큼 쾌적하다. 시설이 좋으니, 여기선 뭔가를 해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교도소는 두말할 것도 없는 기피시설이다. 누구도 자기 동네에 교도소가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교도소처럼 안전한 곳도 없는데 범죄자들을 수용하고 있기에 생긴 편견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민들이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탓할 수만은 없다. 뭔가 새로운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동부구치소는 하나의 모델이 되고 있다. 교도소만이 아니라 바로 옆에 준법감시센터와 검찰청, 법원이 함께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도소는 싫지만, 검찰청이나 법원은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화답한 거다.

중요한 국가시설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물론 국무총리가 교정시설을 방문하는 경우는 없다. 국가적 관심이 별로 없으니, 교정에 대한 지원도 형편없다. 인력도 예산도, 다른 무엇도 모두 부족하기만 해서 교정교화라는 본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오로지 구금에만 급급해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 출신이기에 누구보다도 교도소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래서 대통령으로서 챙겨야 할 일이 한 둘이 아니겠지만, 딱 한번이라도 교도소를 방문했으면 한다. 10월 교정의 날에 맞춰도 좋고, 일정이 어렵다면 오가는 길에 교도소를 한번 들러도 좋겠다. 그래서 교도소가 더 많이 발전하고, 인권친화적으로 변모해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점을 말없이 웅변해주면 좋겠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4차 산업혁명 천국편: 공교육은 학생 10명당 교사 1명의 교육 환경을 제공하며 토론을 장려한다. 인간에 대해 깊이 이해해 갈등을 조율하는 능력을 신장하고, 창의성을 증대하기 위함이다. 한편,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대폭 늘어나 전 국민이 주거 불안 없이 삶을 꾸려간다. 이 모든 사회 복지 재원 마련은 기술 발전을 통한 수익 증대분에서 충당된다. 기술 발전은 또한 인류에게 더 많은 여유 시간을 선물했다. 사람들은 낮에는 그늘에서 부서지는 볕을 보며 사색하고, 밤에는 쏟아지는 별을 보며 노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시민들은 서로를 마주 보고 어루만지며 더 나은 사회를 담대하게 상상한다.

4차 산업혁명 지옥편: 산업 현장에서 자동화 기계와 인공지능의 활용은 갈 데까지 가서, 극소수의 노동자만이 노동을 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불안정 노동에 몰리고, 그마저도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은 장기 적출, 인신매매 대상이 된다. 계속되는 불황으로 세계는 전쟁의 유혹에 빠지고, 임금노동을 통해 존재가치 입증이 불가능해진 인간들은 군에 동원되어 쓸모를 입증하거나, 첨단 무기에 의해 뼈도 못 추리고 사멸한다. 그렇게 인류는 멸망했다….

여러 미래학자의 저술 및 SF 창작물에 등장하는 상상에 내 것을 보태보았다. 앞으로의 세상이 지옥이 될까 봐 걱정하는 이들은 그만큼 많고, 나도 그 중 하나다.

기본소득제도 도입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는 맥락도 여기에 있다. 노동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소득’ 또는 배당금을 지급하자는 것. 사회 구성원이 사회에 축적된 부에 어떤 방식으로든 기여했다는 시각에서다. 현재 비약적인 기술 발전에 토대가 되는 데이터 축적에 소비자로서 기여한 바(구글 번역, 인공지능 스피커, 자율주행자동차 등)와, 기존 임금노동 시장 통계에 집계되지 않는 가사노동, 돌봄노동 및 시민으로서의 활발한 정치참여의 가치를 인정하자는 것. 이것은 또한 높은 확률로 예측되고 있는, 인간 없는 생산으로 일자리 자체가 극단적으로 줄어들 미래에 대한 사회적 대응이기도 하다. 임금노동자가 소수인 사회에서도 지속적으로 경제 순환이 이뤄지게끔 하고, 궁극적으로는 좀 더 행복하고 충만한 기운 넘치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 기본소득 재원은 로봇세, 탄소세 등 기술 사용으로 인한 부의 축적분과 그 과정에서 초래되는 환경 파괴에 대한 부담금으로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기본소득제도를 전 국민을 대상으로 당장 시행하기는 어려우니 청년, 노인, 장애인 등에 우선적으로 수당을 지급하고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자는 의견에 나는 조건부 찬성한다. 그래서 ‘청년수당’ 명목의 제도를 시행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어난다는 소식에 우호적이었지만, 상당수가 사용처를 ‘검사’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시무룩해졌다. 이 제도가 개개인에게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제공하고 자율성을 발휘하게 돕는 것이어야 한다고 보고, 혜택 받는 사람들을 심사하고 평가하는 데 비용을 쓰느니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이에게 수당을 주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청년수당 사용처를 검사해야 마땅하다는 관념이 팽배해 보인다. 최근 한 온라인 언론사는 헐벗은 남녀의 사진을 첨부해 서울시 청년수당 수급자가 수당을 연인과 모텔에서 사용해 수급 자격을 잃었다는 식으로 읽히게끔 유도하는 기사를 실었고, 많은 독자들은 ‘도덕적 해이’를 질타했다. 실상은 ‘타 지역 취업 면접 시 필요할 수 있기에 모텔에 대한 사용처 규제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수급 대상자 일부가 청년수당 수급 자격을 잃었다는 사실’을 짜깁기한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청년수당을 취업 활동이 아닌 데이트비로 사용했다 하더라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그것 역시 경제순환에 기여하는 일 아닌가? 

게다가 언제는 청년들이 ‘혼밥’ 등 인간관계 단절로 사회적 자폐를 겪어 문제, 출산 안 해서 문제라더니. 청년들이 좀 덜 불안하고, 더 행복하게 사는 꼴 보기가 그리도 싫은가? 쪼잔하게….

우리는 급변하는 세계에 대응하기 위해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언론 및 시민들의 정책 평가 역시 미래지향적인 시각에서 이뤄지기를 희망한다.

<최서윤 아마추어 창작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칼을 갈았다. 정오 무렵이었다. 확성기 소리를 들었다. 칼 갈아요, 칼. 확성기 소리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목청 좋은 사람의 노랫소리 같았다. 가락이 뛰어났다. 한두 해 연마한 목청이 아니었다. 양파를 썰다 말고 뛰어나갔다. 어르신. 청명한 햇살을 받으며 그가 뒤돌아보았다. 칼 갈아요? 다른 리듬으로 그가 물었다. 건너편 디저트 집에서 나온 사람이 먼저 대답했다. 저희 칼 갈게요. 옆집 레스토랑에서 고개를 빼고 물었다. 얼마예요? 삼천원. 햇살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의 발치에 칼이 가득했다.

내 어머니는 칼을 잘 가는지 하나 확인해 본 다음 들고 가라고 했지만, 나는 주방에 있는 모든 칼과 가위를 가지고 나갔다. 그는 칼을 가는 데 두 개의 숫돌을 사용했다. 일제 숫돌이라고 은근한 자랑을 덧붙였다. 숫돌은 이미 닳을 대로 닳아 오목하게 얄팍해져 있었다. 숫돌 받침은 삽자루를 잘라 직접 만든 모양새였다. 그는 숫돌 양면의 각기 다른 결을 이용해 세 차례 갈아 날을 세웠다.        

자신감과 겸손함이 공존하는 손놀림이었다. 얼마나 쓰면 이렇게 얄팍해지는지 물었다. 얼마 못 쓴다고 말을 얼버무렸다. 그 얼마가 얼마인지 시간의 흐름이 가늠되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부터 칼을 가셨냐 물었다. 전차가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라고 대답했다. 그게 몇 년인지는 헤아릴 수 없으나 전차 가격은 확실히 기억했다. 2원50전. 정확한 화폐단위로 말하자면 2환50전. 그때 칼 하나 갈면 3환을 받았다고 한다. 전차 본 적 있어요, 전차? 아니요. 사진으로만 봤어요. 내가 그거 타고 다녔어. 전차가 가는 곳이면 다 가서, 다 갈았지. 그래서 이쪽으로는 안 와봤어. 망원동은 그때 갈대밭이었거든. 사람도 안 살고. 그러니 갈 칼이 있나. 그러고는 열심히 숫돌질을 이어나갔다.

갈 칼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아쉬웠다. 그를 조금이라도 더 붙들고 있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젓가락이라도 다 모아 오고 싶었다. 그가 숫돌질 하는 모습을 한나절이고 앉아 바라보고 싶었다. 노닥노닥 얘기나 하며. 그냥 그러고 싶었다.     

소설가적 상상력으로 그의 인생을 가늠해보거나 드라마틱하게 각색하지 않고, 그냥 그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노인의 칼 가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칼 가는 소리를 듣기 좋은 날이었다. 토요일 정오, 맑은 햇살.

엄마는 뒤늦게 나와, 언제 다시 이 길을 지나겠느냐 물었다. 집에 있는 칼들을 가져올 터이니 갈아달라고. 엄마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는 대답 없이 연장을 챙겨 길을 떠났다. 그는 당분간 이쪽으로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의 확성기에 응답할 사람은 이미 다 나와 칼을 맡겼고, 자신의 칼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자신이 잘 알 터이니. 칼이 다시 무뎌질 즈음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가방을 메고 골목을 돌아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문득, 요즘엔 무얼 타고 다니며 칼을 가는지 궁금해졌다.

나도 특별한 칼 하나쯤 갖고 싶었다. 나만의 칼. 중국집 주방의 커다란 사각 칼 같은 것. 동태의 머리를 내려치고 내장을 가르는 생선장수의 칼 같은 것. 근사한 회칼을 가지고도 싶었다. 그래서 결국 주방으로 들어오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요리사들은 자기만의 칼을 갖고 다닌다고 했다. 칼도 직접 갈아 쓰는 법이라고 했다. 칼을 잘 드는 상태로 만들어 놓는 것도 요리의 일부니까. 전용 칼과 전용 숫돌은 요리사의 분신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미용사의 가위처럼.

하지만 나는 식당을 열면서 특별히 칼을 새로 마련하지 않았다. 그냥 쓰던 칼에 하몽 커팅용 칼을 추가했을 뿐이다. 박이나 늙은 호박 껍질을 벗기는 데 용이한 특이한 모양새의 칼도 하나 있지만, 그리 비싸거나 특별한 칼은 아니다. 일본에서 좋은 숫돌을 하나 장만하기도 했는데, 한번 실패한 이후로는 다시는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래도 훌륭한 요리사는 될 수 없을 모양이다.        

요리를 하려면 칼 가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 거 아닌가? 제대로 된 칼도 하나 없이 요리는 무슨 요리. 요리는 둘째치고 언젠가는 좋은 회칼 하나쯤 간직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내 할머니는 사기그릇 밑굽에 대고 칼을 갈았다. 먼저 사기그릇 밑굽 거친 부분에 쓰윽 쓱 쓸고 난 다음에야 칼을 사용했다. 칼은 반짝 잘 드는 척하지만, 몇 번 쓰고 나면 다시 무뎌졌다.         

사실 할머니의 칼은 하나같이 무딘 상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그랬다. 칼은 언제나 그 양반이 갈아줬다고, 얼마나 꼼꼼하게 잘 갈았는지 모른다고, 할머니는 회상했다.          

그녀가 그냥 되는 대로 아무 사발이나 잡아들고 칼을 갈아 쓰는 것은, 할아버지의 벼린 칼맛을 결코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칼에 대한 별 욕심이 없는 그녀지만, 밤칼만큼은 끔찍이 아꼈다. 과도보다 조금 작은 크기에 칼자루가 뭉뚝하고 네모난 모양의 날을 가진 칼이다. 쉽게 구할 수 없는 칼이라고 했다. 가을이면 그녀는 소일거리로 밤을 깎아 업자에게 넘겼는데, 한 포대에 삼천원인가 오천원인가를 받았다.        

밤을 쳐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러면서도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다. 밤알 표면이 예쁘게 나오려면 칼이 무디면 안된다. 그런데 밤을 치다보면 칼은 쉽게 무뎌진다. 그래서 밤칼은 깎은 밤을 수거하러 온 업자가 매번 새로 갈아주고 갔다.      

두어 번 밤칼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는데, 밤 껍질과 함께 휩쓸려 나갔는지, 누가 와서 가져갔는지, 그녀는 두고두고 혀를 차며 밤칼 단속을 했다.

반나절 꼬박 앉아 그 애를 쓰며 오천원이라니. 그만 두시라 했다. 그녀는 재미로 하는 거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고는 얼른 칼을 숨겼다. 오천원이 아니라 칼을 빼앗길까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노인이라고 놀면 쓴다냐. 뭐라도 해야제. 그러면서 다시 묵묵히 밤을 쳤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칼을 무디게 만들기 위해 밤을 깎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와서 무딘 칼을 날렵하게 만들어 놓기를 바란 것이라고, 마당 세면대에 쭈그리고 앉아 숫돌질을 하던 할아버지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라고. 이거야말로 소설가적 상상력이다.

<천운영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일직교회 뒤편의 7평 남짓한 토담집. 40년 넘게 결핵과 싸우면서 주옥같은 동화를 발표했던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1937~2007)이 1984년 원고료로 받은 80만원을 들여 지은 집이었다. 1996년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을 펴냈던 권 선생을 인터뷰하기 위해 찾았던 울도 담도 없는 집의 작은 방에는 약봉지와 책들이 뒹굴고 있었다. 당시 권 선생은 천직으로 여겼던 일직교회 종지기를 그만뒀다고 했다. 1966년 신장결핵 진단을 받고 오른쪽 신장을 적출하는 등 오랜 투병생활이 그의 육신을 쇠약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권 선생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귀국했다. 4년 뒤 터진 한국전쟁은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난리통에 이곳저곳을 떠돌다 몹쓸 결핵을 얻었다. 가난도 피할 수 없었다. 28살 때 집을 나와 수년간 구걸로 연명했다. 어렵사리 교회 종지기 자리를 얻은 그는 1969년 <강아지 똥>을 발표하며 동화작가로 데뷔했다. 권 선생은 평생 남과 다투거나 흥정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원고료도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대로 받았다. 안 주면 그만이었다. 그는 몸이 아프면 누워 있다 정신이 맑아지면 <몽실 언니> <밥데기 죽데기> <까치울던 날> 등과 같은 동화를 굽는 데 열중했다. 권 선생은 “하루에 원고지 한 장도 쓰고, 어떤 때는 10장도 쓰지만 그때만큼은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100여편의 동화와 동시, 산문집을 빚어놓고 2007년 세상을 떴다. 사인은 결핵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권 선생이 의료사고로 숨진 사실이 10년 만에 밝혀졌다. 대구지법은 지난 7월 권 선생의 동생 권정씨가 대구가톨릭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병원은 방광조영촬영술을 실시하기 전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를 모르고 영면한 권 선생은 하늘나라에서 억울해할까. 그렇지는 않을 듯하다. “난 더러운 똥인데,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을까?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텐데….” 그렇게 민들레의 거름이 된 ‘강아지 똥’처럼 평생 남을 배려하며 살다 세상을 뜬 그 이기에…. 하지만 그의 맑은 동화와 명징한 글을 접할 수 없게 된 독자들의 심정은 안타깝고, 억울하기만 하다.

<박구재 논설위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TAG 권정생

화면으로는 여행프로나 좀 보고 라디오를 즐겨 듣는다. 요새 방송사가 파업 중이라 재방송이 많다. 책을 다시 읽으면 별미인 것처럼 파업 때문에 듣는 재방송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 방송이 볼 게 없으면 아껴두었던 영화를 한 편 찾아봐도 되고 말이다. 며칠 전엔 영화와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가 안겨준 선물로 두 눈이 호강했다.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와 켄 로치, 나막신의 감독 에르마노 올미 이들 셋이서 쿵닥쿵닥 만든 옴니버스 영화 <티켓>. 1등석 2등석 3등석, 칸마다 다른 군상들. 로마로 가는 짜릿하고 낭만적인 기차 여행. 가슴이 홍시처럼 붉어지고 달콤해졌다. 파업도 종종해야 하겠다. 그때는 이처럼 놓칠 뻔한 영화를 찾아볼 기회가 생길 테니까.

수다스러운 라디오도 잠시 끄고, 듣고 싶었던 노랠 찾아들어도 좋겠다. 총리 아저씨 말씀마따나 보다 공정한 뉴스를 찾아들어도 좋겠다. 윗선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메인 앵커에게 물 좀 아끼라 했다고 수년간 일거리 없는 ‘옆방’에서 지냈다는 선배 기자의 증언. 이도 워터게이트라 하던가. 나이 들고 볼품없는 사람들도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까. 휘황한 햇빛만 믿고 안하무인이 되어버린 추한 군상들. 세상이 온통 적폐로 몸살을 앓고 있다. ‘파업전야’ 노래가 동네방네 쩌렁쩌렁 울리고 있다.

새로움만을 좇는 세상에 재방송을 듣는 즐거움. 개봉영화가 아니라 흘러간 영화를 찾아보는 즐거움. 겁 없는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을 주의하고 조심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런 ‘힘 빼기의 기술’을 잘 안다. 카피라이터 김하나씨의 에세이 <힘 빼기의 기술>도 참 재미나게 읽었다. 제목부터가 나를 화끈 홀렸다. “주삿바늘 앞에 초연한 엉덩이처럼 힘을 빼면 삶은 더 경쾌하고 유연해진다.” 일본의 유명 극작가인 구도 간쿠로의 인터뷰를 소개하고 있는데, “바쁜 와중에 각본을 그리 잘 쓰시는 비결이라도?” 대답인즉슨 “일단 잘 쓰고 싶지 않아요”. 백지 앞에서 부푸는 욕심, 잔뜩 들어간 힘을 빼는 순간 명문장이 찾아드는 것일까. 올해 추석명절은 아주 긴 휴식기로 달콤하겠다. 힘을 빼는 재방송 시간. 기운을 빼고 뒤를 돌아보며 두루두루 살펴보는 귀한 시간들이길.

<임의진 목사·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방송  (0) 2017.09.21
분홍 스웨터 구름과 별  (0) 2017.09.14
에코백 천가방  (0) 2017.09.07
흙집에 흙 얼굴  (0) 2017.08.31
오리알  (0) 2017.08.24
냉장고  (0) 2017.08.10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2100년은 인류가 간절히 알기를 바랐던 미래다. 2100년을 예측하기 위해서 인류는 국경을 넘는 지구 공동체가 되어 미래 예측 프로젝트를 수행해 오고 있다. 덕분에 2100년은 우리가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미래가 되었다.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1세기에 일어날 기후변화와 그것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국제기구이다. 1988년에 만들어진 이 단체는 기후변화와 관련해 전 세계의 학자들이 생산한 과학적, 기술적, 사회경제적 연구 결과를 체계적으로 검토하여 미래를 예측한다. 그리고 예측은 21세기의 끝, 2100년을 향해 있다.

IPCC는 2014년 다섯 번째 기후평가보고서를 발간했다. 기후학, 물리학, 해양학, 통계학, 사회과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정된 831명의 전문가가 작성한 이 보고서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미래에 인간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에 따른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예측한 네 가지 대표 시나리오다. 가장 절망적인 시나리오대로 높은 수준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유지한다면, 지구의 평균온도는 1861~1880년에 비해 2.6도에서 4.8도가량 높아질 것이다. 반대로, 가장 희망적인 시나리오대로 배출량 규제가 엄격히 이루어진다면, 0.3도에서 1.7도 상승에 그칠 것이다. 그리고 현재 이산화탄소 배출 수준을 유지한다면 우리는 가장 절망적인 시나리오에 가까운 경험을 할 가능성이 높다.

1990년에 시작해 5~7년 간격으로 발행된 다섯 편의 IPCC 보고서는 한결같이 대기 중 누적된 온실가스의 증가와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에 매우 높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산업화 이전 시기부터 시작된 온실가스 증가는 인간의 활동에 기인했으며, 20세기 중반부터 관측된 온난화 현상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라는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 몰디브의 섬들이 곧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바다 밑으로 사라지게 된다는 이야기만큼이나 2017년의 우리에게 기후변화는 익숙한 미래다.

익숙하다고 해서 모두가 믿는 것은 아니다. 인류가 간절히 알기를 바랐던 미래는 이제 적극적으로 외면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가장 유명한 기후변화 회의론자는 아마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일 것이다. 그의 트위터는 기후변화가 “불완전한 과학과 조작된 자료”에 기반한 것이며 “사실무근”이고 “비싼 속임수”라는 주장으로 가득하다. 이러한 주장의 뒤에는 의혹을 파는 과학자들이 있다. 과학사학자인 나오미 오레스케스와 에릭 M 콘웨이는 기업이나 정치가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소수의 과학자들이 산업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에 대한 과학적 주장에 끊임없이 의혹을 불어넣는 전략을 통해 논쟁을 만들어 왔다고 주장한다. 기후변화가 거짓이라는 주장은 흡연과 폐암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주장과 더불어 대표적으로 만들어진 의혹이라는 것이 그들의 책 <의혹을 팝니다>에 잘 드러나 있다.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의 거친 언어에 비해 IPCC 보고서 속 언어는 매우 조심스럽다. 보고서에는 각 예측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얼마나 강력한지, 과학자들 사이에서 어느 수준의 합의에 이르렀는지, 어느 정도의 확신에 기반한 것인지, 그리고 예측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나 높은지 꼼꼼하게 서술되어 있다. 예를 들어, 지구 평균 표면 온도가 증가하면 북반구 고위도 지방의 영구동토층의 너비가 줄어들 가능성은 “거의 확실”하지만, 그 감소폭이 시나리오에 따라 37%에서 81%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점은 “중간 수준의 확신”으로 예측할 수 있다. 여기에는 주장과 근거, 그리고 그 둘의 힘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려는 과학의 습관이 짙게 배어 있다.

아득하게 느껴지는 2100년 지구의 미래는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를 경험할 때 인간의 현재가 된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파리협약 탈퇴를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응답이라도 하듯, 지난 몇 주간 미국은 여러 개의 초대형 허리케인을 경험했다. 하비(Harvey)는 8월25일 미국 남부 텍사스주 걸프만에 상륙해, 하이랜즈 지역에서 1318㎜의 비를 뿌렸다. 단일 허리케인으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강우량이다. 채 2주가 지나지 않아 어마(Irma)가 캐리비안해의 섬나라들을 거쳐 미국 플로리다주에 상륙했다. 어마는 풍속에 따라 허리케인을 분류하는 새피어-심슨 풍속 스케일에서 최고 등급인 5등급으로, 최대 풍속이 시속 295㎞에 달했다. 지난 한 달 사이에 미국 남부를 강타하고 151명의 사망자(9월15일 기준)를 낸 하비와 어마는 미국 역사상 가장 손해를 많이 끼친 허리케인 중 열손가락 안에 꼽히게 되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뒤이어 호세(Jose)가 동부 연안에서, 또 다른 5등급 허리케인 마리아(Maria)가 남부의 바다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러니 IPCC가 보여주는 ‘미래’는 그 한자어의 의미처럼 ‘오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닌 셈이다. 

허리케인 하비와 어마로 참혹하게 파괴된 도시의 모습은 기후변화 예측이 그 어떤 종류의 미래 예측보다 절박한 것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은 9월11일 기고한 ‘음모, 부패, 그리고 기후’라는 제목의 글에서 기후변화가 가짜라고 주장하는 미국 공화당의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을 강하게 비판하며, 특히 그들의 “고의적 무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현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부정은 재난의 예방이나 대비, 복구에 대한 어떤 생산적인 정치적, 정책적 토론도 매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정확하게 예측된 2100년의 미래에는 우리가 지금 산업, 경제, 정치와 같은 사회 전반의 분야에서 단호한 결정을 내리고 흔들림 없이 그 결정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겪을 험난한 고비가 예견되어 있다. 지구와 인간의 미래는 예견된 네 가지 시나리오 중 어느 것에 가까운 모습이 될 것인가.

<강연실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손님이 하나도 없는 매장 앞을 지나다가 느닷없이 슬픔에 사로잡힌 나는 왜 이런 광경을 보면 매번 슬퍼지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뜻밖에도 삼십년 전쯤의 기억을 불러내게 되었다. 그때 아버지는 농사를 작파하고 경운기 운전대 대신 1t 트럭의 운전대를 잡았다. 트럭 행상을 시작한 건데 두어 달이 채 못 되어 품목을 바꾸는 바람에 우리 집 헛간과 마루에는 팔지 못하고 남은 잡화들이 쌓여갔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던 아버지는 이번에는 정말 장사가 잘될 거라며 서울의 공장에 주문서를 보내 한 트럭 분량의 운동화를 도매로 구입했다. 마침 그날 오일장이 열리는 곳은 고창 읍내였고 주말이었던 터라 아버지가 행상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아버지를 돕기 위해 조수석에 올랐다. 우리는 시장 상인들의 텃세를 피해 시장 입구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공장에서 흘러나온 폐수가 흐르는 하수도 위에 짝퉁 나이키, 아식스, 프로스펙스 운동화를 늘어놓았다. 하수도에서 피어오르는 냄새에 구역질이 나고 머리가 아파 절로 인상이 구겨졌는데 우리는 이걸 노련한 장사꾼들처럼, 그러니까 이처럼 좋은 물건을 헐값에 팔러 나와 속이 상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보이게 하려고 애썼다. 검수과정에서 불량판정을 받아 떨이로 내놓은 운동화였는지 아니면 말 그대로 그냥 짝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품의 절반 가격이었던 터라 지나는 사람들의 이목을 제법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 우리는 하루 종일 인상을 쓰고 견뎠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세 켤레를 팔았을 뿐이다. 허리가 굽은 노부인이 손주가 좋아하겠다며 아동화 한 켤레를 사갔고 내 또래의 비쩍 마르고 새까만 사내아이가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프로스펙스 운동화 한 켤레를 사갔다. 해가 이울어 파장을 고심할 때 아버지 또래의 사내가 스무 켤레쯤을 신어 본 뒤 나이키 운동화를 한 켤레 사갔다. 운동화를 거두어 트럭에 싣고 떠나려 할 때 마지막으로 운동화를 사갔던 사내가 돌아와서는 물러주라 했다. 아버지는 군말 없이 운동화를 받아들고 돈을 돌려주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장사에 재능이 없는 아버지. 운동화 보고 가세요,라는 말밖에는 하지 못했던 아버지. 워낙 말주변도 없고 사근사근한 성격도 못 되었던지라 새삼스럽지는 않았으나 무기력한 아버지를 보면서 슬픔과 분노를 느꼈고 그 감정이 잠복했다가(잠복했던 이유는 어쨌든 아버지가 트럭 행상으로 식구를 먹여 살렸으므로)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을 만나면 불쑥 되살아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결국 우리는 두 켤레를 팔았던 셈이고 내가 알기로 6000원쯤을 벌었다. 동네 이웃집에 놉으로 가서 하루 종일 논일을 거들면 1만5000원을 벌 수 있었는데 경운기 몰던 손으로 트럭을 몰고 논두렁에 앉아 새참을 먹는 대신 구멍가게에서 사 온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며 대지와 하늘이 아니고서는 한 번도 허리를 굽힌 적 없는 당신이 지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굽실거리면서도 하루 품팔이만도 못한 품삯을 쥔 채 캄캄한 국도를 달려갈 때 어떤 심정이었을지를 헤아리게 된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고창 읍내에서 고향집까지 가면서 내가 보았던 건 캄캄한 어둠뿐이었다. 전조등이 비춘 만큼만이 열려 있었고 우리가 지나가면 그 공간 역시 어둠에 잠겼다. 끝도 없는 어둠 속을 헤치고 나가면서 아버지의 삶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기분이었다.

차갑고 어둡고 막막한 삶.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오가는 사람조차 드문 어느 골목 초입에 결코 팔릴 것 같지 않은 물건을 늘어놓은 노점상 앞을 지날 때거나 퇴직금으로 장사를 시작한 게 분명해 보이는 중년의 부부가 자신들의 가게 구석에 시름에 잠겨 멍하니 앉은 걸 보게 되면 그이들이 서 있는 경계, 그이들이 잘할 수 있는 일과 잘할 수는 없지만 살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일의 경계라고 할 수 있는 그 날선 자리에 발바닥을 베이지 않고 부디 오래오래 서 있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손홍규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문화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계에 선 사람들  (0) 2017.09.21
도시의 소리풍경  (0) 2017.09.13
지금, 사라는 즐거울까  (0) 2017.09.06
투수를 노려보지 않는 타자  (0) 2017.08.23
[문화와 삶]수평적 리더십이 절실한 시대  (0) 2017.08.17
아날로그의 반격  (0) 2017.08.10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 8월20일 문재인 대통령은 저출산 대책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아이를 기르는 게 엄마만의 부담으로 되어 있는데, 엄마와 아빠가 함께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게 근본적 해법”이라고 밝혔다. 또 “아빠 육아휴직도 있지만 근원적으로 연장 노동을 포함해서 주 52시간 근무를 확립하고 연차휴가를 다 사용하게 해야 한다. 일하는 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여유를 갖도록 하는 게 근본적 해법”이라고 말했다. 즉 자녀를 돌보는 환경을 조성하고 돌봄 문화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첫째, 부모가 자녀를 돌볼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장시간 근로환경에서 부모의 돌봄시간은 크게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필자가 연구를 위해 만났던 한 남성은 자신을 ‘72시간 아빠’라고 소개하였다. 평일에는 72시간 만에 아이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자녀를 돌보는 일이 어렵다고 했다. 또 육아휴직 후 직장에 복귀한 여성들 중 복직 1년 후 동일직장 고용유지율은 56.6%밖에 안된다는 현실도 복직 이후 직장생활과 자녀돌봄의 양립이 힘들다는 방증이다. 유연근무제도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등을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우리나라 돌봄 환경에서 또 다른 문제는 보육서비스의 이용만으로는 자녀돌봄이 충분히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5년 기준 어린이집 이용아동은 취업모 자녀가 36.6%, 미취업모 자녀가 58.4%인 통계(전국보육실태조사)에서도 취업모는 보육서비스 외 다양한 보육방식을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 부모들은 출퇴근 시간과 근로시간이 긴 편이어서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이러한 현실에서 부모들은 어린이집 외 다른 다양한 보육방식을 찾게 된다.

셋째, 보육서비스는 해당 연령기에 필요한 아동성장과 건강한 양육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기본서비스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보육서비스에서 장시간 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적정한 시간의 보육서비스를 이용하고 집 가까운 곳에서 돌봄을 받으며 지내는 방식으로의 개선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서 공동육아나눔터에서 놀이 겸 보호를 받으면서 지내는 방식도 필요하고, 너무 이른 시간이나 늦은 시간에는 자신의 집에서 아이돌보미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도 필요하다. 이처럼 지역사회 내 다양한 돌봄 환경이 구성되면 퇴근 후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아이들도 집 가까운 곳에서 안전하게 부모를 기다릴 수 있다. 또한 보육시설에만 집중되어 있는 수요도 조정할 수 있고, 수요자의 이용편의도 높아질 수 있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 편성에서 이 두 가지 점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집 가까운 곳에 공동육아나눔터를 확충하기 위하여 47개 지역을 추가해 전국 66개에서 113개로 확대했고, 관련 예산도 17억원에서 30억원으로 증액했다. 또 만 12세 이하 아동이 있는 가정을 방문하여 아이를 돌봐주는 아이 돌봄서비스 이용시간을 기존의 연 480시간에서 연 600시간으로 확대했다.

출발점에 서서 이야기하자면,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한 돌봄체계가 구축되면, 그 속에서 가족도 만들 수 있고, 돌봄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남녀 간 역할분담도 변화할 수 있고, 일자리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돌봄 환경이 바뀌면 돌봄 문화도 달라질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자녀를 돌보는 사회문화를 조성하고, 정부와 가족과 지역사회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협업이 가능해진다.

<홍승아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실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종로 3가 지하철역에서 낙원상가로 가는 길은 이른 아침부터 부산하다. 식당들은 문 열 채비를 하고 있고, 땅콩과자를 파는 포장마차도 벌써 장사를 시작했다. 짐을 나르는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오가는 틈으로 노인들이 바삐 걸어 다녔다. 옛날 영화 속에서나 봤을 법한 흰 양복에 흔히 백구두라 불리는 구두까지 갖춰 신은 노인을 마주치고는 문득 둘러보니 낙원상가 앞은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았다. 허름한 4층 건물에는 1980년대에 흔히 있었던 의상실, 기원, 도장 파는 집이 있었고, 식당의 낡은 간판들은 언제부터 매달려 있었는지 감감해 보였다.

그 길모퉁이를 돌아 낙원상가 4층으로 올라가면 허리우드 실버극장이 있다. 영화 첫 상영 시간에 맞추려고 종종걸음쳤는데, 이미 10분이나 늦어버려 그냥 갈까 말까 망설이면서 극장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타고 보니 지각한 관람객이 꽤 많았다. 모두 노인들이었다. 한 노인은 영화표를 사면서 굳이 뒷자리를 달라고 했다. 표를 내주는 이는 영화가 시작되었으니 빈자리에 앉으시라고 해도 뒷자리에 앉아 좀 쉬려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극장 안에 들어가 보니 그럴 일이 아니었다. 앞이고 뒤고 빈자리가 많아서 어디든 앉을 수 있었다.

스크린에 비치고 있는 영화는 1960년대 만들었다는 흑백영화였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단조로운 색만큼이나 무료했다. 그런데도 내 앞에 앉은 노인들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쉬려고 왔다던 노인은 어처구니없는 장면에서 가장 크게 웃었다. 졸다가 그 웃음소리에 잠이 깼다. 괜한 일에 화를 내고 헤어지려는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을 맥없이 따라가다 보니 오래전 텔레비전으로 보던 명화극장이 생각났다. 그때 본 영화들의 감동적인 장면들과 작은 창문으로 옆집 대추나무가 보이던 기와집과 그 숱한 밤의 풍경이 흑백 영상으로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어쩌면 그 극장에 앉아 있는 노인들은 영화가 아니라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는 과거를 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진 뒤 주춤주춤 일어서는 노인들의 모습이 쌩쌩했다. 영화 보는 내내 크게 웃었던 노인은 팔을 휘저으며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아무래도 졸았던 건 나뿐인 듯했다. 그들의 과거 여행은 즐거웠던 것인가.

<김해원 | 동화작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이백은 시선(詩仙)이다. 신선은 인간 세상에 무심하다. 아래는 ‘월하독작(月下獨酌)’의 일부다.

“꽃밭 가운데서 한 병 술을/ 친한 이 없이 홀로 마신다/ 술잔 들어 밝은 달 맞이하고/ 그림자 바라보니 셋이 되었다.”

이백은 술을 마신다. 술벗은 달과 자신의 그림자뿐이다. 이백의 독작은 외롭다기보다는 고즈넉하다. 이런 시를 읽으면 여럿이 어울리는 술자리에서 도주해 고요한 가을밤 옥상에 올라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맥주라도 한 캔 따고 싶다.

이백은 관직에 나갔으나, 나라나 가문이 아니라 개인의 명예를 위하는 마음이 컸다. 현종 황제 역시 이백을 실무에 능한 관료가 아니라 음풍농월하는 도사에 가깝게 대우했다. 장안에서도 이백은 늘 술에 취해 있었다. 시를 지어 올리라는 명을 받았을 때 양쪽의 부축을 받고서야 붓을 드는 일이 잦았다. 결국 천자는 속세에 어울리지 않는 이백에게 “산으로 돌아가라”고 명했다. 이백은 그렇게 평생 떠돌며 살았다. 반란에 연루돼 투옥됐다가 유형을 떠나기도 했는데, 1개월이면 도착할 길을 1년이나 걸려 유유자적했다. 유형이라기보다는 여행이었다. 여러 차례 아내를 맞았지만, 가족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지는 않은 것 같다. 배 위에서 술을 마시다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는 와중에 익사했다는 전설도 이백다운 최후다.

두보는 시성(詩聖)이다. 성인은 세상의 고통을 제 한몸으로 끌어안는다. 아래는 ‘등악양루(登岳陽樓)’의 일부다.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편지 한 통 없으니/ 늙고 병든 내게는 외로운 배 한 척 있을 뿐/ 관산의 북쪽에는 전쟁이 한창이니/ 난간에 기대어 눈물을 흩뿌린다.”

늙고 병든 두보는 외롭다. 잔혹무도한 전쟁의 불길은 세상의 인연을 모두 불태웠다. 제 아무리 시를 잘 지어도 전쟁 앞에선 무력하게 눈물 흘릴 뿐이다. 두보의 시는 그렇게 눈물이 많다. 고향 생각하면서 울고, 늙고 지친 처지 생각하면서 울고, 멀리 떨어진 가족 생각하면서 운다. 잔혹한 세상에 가장 크게 슬퍼하는 것은 공감능력이 탁월한 성인의 몫이다.

두보는 첩을 두지 않고 평생 아내와 해로했다. 큰아들은 어린 시절 아사했다. 당시 관행과 달리 벼슬을 받아 세상에 나아갈 때에도 아내, 어린 아이들과 동행했다. 두보는 평생 고질병을 앓았다. 폐결핵과 신경통에 시달렸고, 말년에는 중풍까지 맞았다. 마을 관료가 내려준 쇠고기를 허겁지겁 먹다가 급체해 그날로 세상을 떴다는 전설은 두보의 서민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백은 두보보다 열 살 연상이었다. 둘은 만난 적이 있고, 술에 취해 한 이불을 덮고 잘 정도로 금세 친해졌다. 한자 문화권을 대표하는 최고의 시인 둘이 한 시대를 살았다는 사실이 놀랍거니와, 둘이 시인의 두 가지 측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도 흥미롭다. 거칠게 표현하면 이백은 로맨티스트, 두보는 리얼리스트였다. 이백이 호방하게 풍류를 노래하며 탈속의 경지로 다가섰다면, 두보는 세상의 모순과 비참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시인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되, 때로 초인간의 경지를 엿본다. 고대의 영매가 산문으로 세상의 비의를 전했을 리 없다. 시인은 그렇게 탈속적이면서 세속적인 존재다.

최근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유명한 최영미 시인이 세간의 입길에 올랐다. 월세 계약 만기를 맞이한 그는 한 고급호텔에 홍보의 대가로 1년간의 숙박을 타진했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시인은 지난해에는 자신이 연소득 1300만원 미만의 무주택자이며 생활보호 대상자라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갑질’ 프레임으로 최 시인의 제안을 비난했다. 과연 ‘생활보호 대상자’가 우리 사회에서 ‘갑’의 위치에 설 수 있느냐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보통 사람의 생활감각으로 볼 때 최 시인의 제안이 기묘하게 들리는 건 사실이다. 웬만한 사람은 최 시인과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땅에 발 딛고 하늘을 보는 사람들이다. 민주사회에서 특정 직업군에 특권을 부여할 수는 없지만, 가장 도발적이고 과감하게 상상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시인이다. 그 생각과 행동이 법을 어기거나 공동체에 결정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면 말릴 이유가 없다. 최 시인의 제안은 엉뚱하게 들릴지언정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호텔이 시인의 거주가 홍보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면 받아들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거부하면 그만이다.

최 시인의 주거 문제는 집주인이 월세 계약을 연장해주기로 하면서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고 한다. 최 시인이 이번의 세속적 경험을 탈속적 언어로 풀어내줄 날을 그린다. 안정된 주거 환경에서 비범한 언어를 벼려내주길 바란다.

<백승찬 문화부 차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얼마 전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 제발 허락해 달라며 무릎 꿇고 호소하는 장애아 어머니의 사진이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가운데는 장애인 관련 시설이 들어서게 되면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고, 범죄율이 상승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니 여간 씁쓰레하지가 않다.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교육감-주민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특수학교 먼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필자는 특수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게 두 가지 있다.

첫째, ‘당신의 자녀가 장애아동이어도 학교 설립을 반대할 것인가?’와 둘째, ‘장애 발생은 특정인에게 국한된 것으로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대부분 사람은 장애는 자신과 전혀 무관한 것으로 알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세상의 누구도 장애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예비 장애인’ 또는 ‘잠재적 장애인’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통계에 의하면 선천성 장애는 10~15%에 불과하고, 질병이나 불의의 사고·재해 등으로 인한 후천적 장애는 무려 85~90%에 이르기 때문이다.

요컨대 인간은 누구나 장애를 입을 수 있다. 따라서 평생 장애를 입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다시 말해, 현재 내 가족 중 장애인이 없다 해서 장애인의 문제를 결코 강 건너 불로 여기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된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마저 누리지 못하는 그런 사회라면,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중요한 건, 장애인의 불편과 고통을 장애를 가지지 않은 쪽에서 먼저 배려하고 이해하며 도와주는 것이다.

<배연일 | 경안신학대학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외래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구하면 얻을 수 있고 버려두면 잃게 되는 것들이 있다. 사랑, 정의, 지혜 같은 내면의 가치들이다. 이런 것은 구하면 구할수록 유익하지만 당장 드러나지 않는다고 버려두면 영영 그 길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반면에 구할 때 그것이 정당한지 늘 되물어야 하고 얻는 데에 집착해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다. 재력, 지위, 명망처럼 남들이 볼 때 나를 규정하는 외면의 가치들이다. 맹자의 말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18세기 조선의 문인 황경원은 어느 날 아침, 그 전날 시행된 과거시험에 왜 응시하지 않았냐는 지인의 핀잔을 들었다. 

몸이 아파서 그랬다고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뭔가 숨기는 것 같은 찜찜함에 해명의 편지를 쓴다. 그 이전 시험에는 정말 몸이 아파 응시하지 못했는데, 그 시험을 관장한 대제학 이덕수가 자신을 천거할 생각이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이 사실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이번 시험도 이덕수가 관장하는데 병도 나았으니 좋은 기회라며 응시를 권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황경원이 응시하지 않은 이유였다.

황경원은 이덕수와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는 사이였다. 황경원의 문장을 읽어본 이덕수가 그 재능을 인정하여 높은 자리에 천거할 뜻을 가지게 된 것뿐이다. 황경원이 청탁을 한 것도 아니고 이덕수가 부정하게 천거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경원은, 결정권을 쥔 상대가 자신을 천거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응시하는 것 자체가 떳떳하지 않다고 여겼다. 과거시험은 내면이 아니라 외면의 가치를 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구하는 방법이 정당한지를 철저하게 따져야 마땅하다. 천거될 실력이라면 이덕수가 없어도 천거될 것이므로 그의 의도를 알면서 굳이 이번에 구할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때라 해서 청탁과 부정이 자행되지 않는 군자들의 시대였던 것은 물론 아니다. 외면의 가치들을 향한 욕망에 휘둘리는 것은, 별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이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도 이것만은 구하고 지키겠다는 최소한의 무엇이라도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황경원은 편지의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5대째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 가난에 시달리는 저의 집안을 생각해주시는 마음 잘 압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바꿀 수 없는 내면의 소신이 있기에 드리는 말씀이니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송혁기의 책상물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할 것과 구하지 않을 것  (0) 2017.09.20
수레의 방향  (0) 2017.09.06
부끄러움의 권면  (0) 2017.08.23
애완과 공경의 갈림길  (0) 2017.08.09
좋은 뜻과 식견  (0) 2017.07.26
평판을 대하는 자세  (0) 2017.07.14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미국의 가수 존 바에즈와 배우 제인 폰다는 베트남 전쟁 당시 “아메리카의 양심”을 외치며 반전운동의 선봉에 섰다. ‘도나 도나’ ‘메리 해밀턴’ 등의 노래로 유명한 바에즈는 1961년 밥 딜런과 함께 인종차별 철폐운동을 벌이며 미국 사회의 모순에 눈떴다.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자 반전평화운동에 나선 그는 ‘요주의 인물’로 분류돼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뒤에도 바에즈는 “베트남 정권의 인권탄압을 막아야 한다”며 문화계 인사 83명의 서명을 받아 뉴욕타임스 등 5개 일간지에 의견광고를 실었다.

배우 문성근씨가 블랙리스트 의혹의 피해자 조사를 받기 위해 18일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김창길 기자

폰다는 영화 <클루트>(1971)와 <커밍 홈>(1978)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차례 수상한 은막스타였다. 그는 베트남 전쟁 기간 반전운동에 적극 참여해 ‘하노이 제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1980년대에는 원전건설 반대운동에 나섰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는 “사담 후세인보다 더 무서운 게 미국의 패권주의”라고 비판했다. 미국 언론은 바에즈와 폰다를 ‘좌파그룹 연예인’으로 지칭했다.

한국에선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거나 활동에 나서는 대중예술인을 ‘소셜테이너’로 부른다. 한진중공업 사태의 해결을 촉구했던 배우 김여진씨, 재능기부 모임을 만들어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자녀들을 도운 가수 박혜경씨, 진보적 정치인들과 순회공연을 했던 방송인 김제동씨가 소셜테이너의 원조 격이다. 배우 문성근·권해효씨, 방송인 김미화씨, 가수 이승환·이은미씨도 기득권 세력의 외압에 기죽지 않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소셜테이너들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국정원에 ‘좌파연예인 대응 TF’를 만들어 이들을 탄압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비판하는 글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배우 김규리씨는 영화와 방송 출연을 금지당했다. 김제동·김미화씨는 진행하던 프로그램 하차를 통보받았다. 심지어 국정원은 문성근씨와 김여진씨의 누드 사진을 합성해 온라인에 유포하기도 했다. 소셜테이너에게 좌와 우는 중요하지 않다. 그른 것을 비판하는 최소한의 상식을 추구할 뿐이다. 이를 모르고 소셜테이너들을 옥죈 이명박 정부의 수준이 어떤지 요즘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문성근씨의 말마따나 저열한 ‘일베’ 수준이다.

<박구재 논설위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우리는 지구가 생긴 지 45억년이 넘었다고 배운다. 얼추 100마이크로미터인 머리카락 한 올의 지름을 1년이라 치면 지구의 나이는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인 약 450킬로미터에 해당한다. 우리의 머리카락 45억개를 빈틈없이 잇대 세우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일직선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퇴하긴 했지만 한때 나와 동종업계 사람처럼 보였던 한 장관 후보자는 지구의 나이가 6000년 정도라고 ‘신앙적으로’ 주장했다. 여기저기 뒤져보니 1650년대 아일랜드의 주교 어셔(James Ussher)라는 사람이 성서를 꼼꼼히 해석한 뒤 지구가 기원전 4004년 10월23일에 탄생했다고 말했단다. 이 주장에 따르면 2017년인 현재 지구는 6021년에서 한 달 정도가 모자란 세월을 살았다. 앞의 비유를 적용해보면 지구의 나이는 머리카락 6000개가 나란히 선 거리, 60센티미터에 불과하다. 이는 성인의 보폭보다 짧고 어릴 적 우리 집 마당에 있던 우물의 반지름 정도가 될까 말까 한 길이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런데 과학자들은 지구의 나이가 45억년 정도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발을 딛고 선 이 지구라는 땅덩어리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다’는 불편함이 책을 쓰는 계기였다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나 광물과 지구가 함께 진화해왔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지구 이야기>에는 지구의 나이를 캐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과학자들이 등장한다. 17세기 이후 유럽의 과학 혁명 시기에 지구의 나이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무척 많았다. 꼬리 달린 혜성을 발견하고 그것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에드먼드 핼리는 바닷물 속에 들어있는 소금의 총량과 강을 통해 매년 바다로 흘러드는 소금양을 측정하면 지구의 나이를 알 수 있다고 추론했다. 1715년의 일이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머금은 산성비가 대륙을 침식시켜 지각의 염분을 쓸고 바다로 갈 것이기에 이런 추론은 상당히 그럴싸하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로 민물은 고사하고 바닷물에 녹아있는 소금의 양을 측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을 증명할 실험적 방법이 없다면 그 어떤 가설도 상상의 테두리를 넘어서지 못한다.

비글호를 타고 항해하던 5년 동안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의 원리>를 탐독했던 다윈은 영국 남부 지역의 지질학적 변화가 얼추 3억년에 걸쳐서 완성되었다고 <종의 기원> 초판에서 한때나마 주장했다. ‘한때나마’라고 쓴 까닭은 <종의 기원> 3판에서 다윈이 슬며시 그 내용을 빼버렸기 때문이다. 극심했던 종교계의 반대로 인해 자신의 이론이 훼손될까 두려워했을지도 모르겠다. 19세기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한 사람인 켈빈 경도 지구 나이를 추산하는 데 합세했다. 하지만 그도 당대에 축적된 과학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지구를 먹여 살리는 태양이 수천만년 동안 꺾이지 않고 그 기세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켈빈은 4억년에서 1억년으로 계속해서 지구의 나이를 줄여나가다가 최종적으로는 2400만년이라고 말했다. 1897년의 일이다. 20세기가 다 되었을 당시의 과학자들은 축적된 과학 지식과 인류의 이성에 기반을 둔 지구의 나이를 수천만년까지 늘려놓았다.

지질학적 변화나 화석을 통해 드러난 증거는 지구의 역사가 다윈이나 지질학자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길다는 점을 암시했지만 그 사실을 증명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19세기 후반 지구의 나이를 추정하는데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는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동위원소의 발견이다. 서랍 속 포장된 사진판 위에 우라늄 광석 덩어리를 던져두었던 프랑스의 앙리 베크렐은 나중에 사진판에서 빛에 노출된 듯 우라늄 광석의 흔적이 새겨진 모습을 발견했다. 베크렐에게 우라늄 광석을 받은 마리 퀴리는 특정한 암석이 일정한 양의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성질을 방사능이라고 불렀다. 여세를 몰아 라듐, 폴로늄이라는 방사능 물질을 발견한 퀴리는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연거푸 받았다. 얼마 뒤 물리학자 러더퍼드는 방사능 원소가 붕괴되면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방출하고 그 때문에 지구 내부가 뜨겁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게다가 그는 우라늄 원소가 납 원소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제 인류는 지구의 역사를 연구할 수 있는 과학적 기반을 한껏 다졌다. 20세기 초 우라늄 원석 연구를 파고든 러더퍼드는 그 암석이 7억년이 넘은 물체라고 발표했다. 21세기인 현재 우리는 우라늄 원소의 반감기가 약 45억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지구 탄생 초기에 우라늄 원소가 100개 있었다면 지금은 50개 정도가 남았다는 뜻이다. 이는 우라늄 50개가 납 원소로 변했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기도 하다. 다시 45억년이 지나 지금보다 태양의 온도가 더 떨어지게 되면 25개의 우라늄과 75개의 납 원소가 남아 있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그 예측은 들어맞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과학적 지식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50살이 넘은 나더러 사실은 당신이 49살에 태어났으니 고작 1년을 산 것에 불과하다고 속삭인대서 믿을 내가 아니다. 믿음의 세계에서 과학적 질문이 설 자리는 비좁다. 지금껏 인류의 역사는 과학적 질문이 자신의 영토를 확장해 온 기록이 아니었던가?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과학의 한귀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45억년  (0) 2017.09.20
포유동물의 사치스러움  (0) 2017.08.23
나무는 죽음을 품고 산다  (0) 2017.07.26
방광은 왜 거기에 있게 됐을까  (0) 2017.06.28
산소와 숨쉬기  (0) 2017.05.31
밥을 먹는다  (0) 2017.05.08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계속 진행 중인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 문제는 문화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해준다. 문화예술은 평화와 민주주의 안에서 제대로 숨 쉬며 산다.

한국문학이 한반도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국경 바깥 코리아 민족의 정신과 감성, 그리고 ‘나은 삶’을 위한 투쟁의 문화적 정수였다는 사실을 여전히 믿는다. 물론 이때 문학이란 단지 제도 문단에 한정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말·글 활동과, 시·소설에 한정되지 않는 다양한 글쓰기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 국가정보원이 만든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출연 프로그램 퇴출 등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방송인 김미화씨가 19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김영민 기자

그런데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언젠가부터 한국문학은 스캔들이나 외국 문학상 같은 바깥의 자극이 아니면 긍정적인 화제를 만들 수 없는 무엇인가가 되었다. 특히 근래의 잇단 큰 추문, 즉 신모 작가의 표절 사건과 문학권력 문제, 성폭력과 여성혐오 문제 그리고 또 불거진 서정주의 친일·독재 부역 논란은 제도문학과 한국문학사의 한계와 그늘이 무엇이었는지를 너무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처리과정은 한국문학이 대단히 고루하고 조로했거나, 청산되지 못한 부끄러운 과거를 그대로 안은 채 ‘자기들만의 리그’를 묵수하는 답답한 제도처럼 보이게 한다. 그리하여 일련의 사태는 기성 한국문학의 권위와 정당성 자체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다. 교실에서 기성의 ‘대가’와 ‘정전’으로 이뤄진 한국 현대 문학사를 가르치기가 심히 민망하고 어렵다. 많은 연구자와 독자들의 자긍심과 애정이 식어가고 있다.

물론 사태의 큰 책임은 문단을 담당해왔던 주류들과 나 같은 기성세대 연구자들에게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사태의 전개 과정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권위와 권력의 편에 선 사람들이 제기된 비판을 ‘흠에도 불구하고 문학적 성과가 크다’는 식의 변설로써 무마하려 든다는 점이다. ‘일부’ 표절에도 불구하고, 친일과 독재 부역에도 불구하고, 여성혐오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문학적 성취’나 ‘문학성’이란 마치 불변하는 절대가치이자 권위주의의 원천 같다. 식민, 전쟁, 분단의 참화를 겪어온 한반도에서 이는 꽤 유례가 깊은 교의다. 이는 ‘예술의 자율성’ 명제에 대한 매우 순진한 해석과 문학적 자유주의와 문학성의 성립 요건을 당파적이고도 안일하게 사고한 데서 비롯했다. 물론 거기에 냉전과 분단상황이 개재해 있었지만, 안이함은 늘 파시즘이나 가장 반문학적인 정치행위가 틈입할 밭이 되었다.

그래서 서정주의 사례는 중요하다. 그의 오류는 단지 일제와 전두환을 찬양한 몇 편의 시에 있지 않다. 그는 수십년간 문인협회·시인협회 등의 대표적 문인단체에 군림한 권력자로서, 한국문학을 극우·냉전 문화정치의 일부로 만든 장본인의 하나였다. 한국 문단 특유의 ‘시인의 순진성·탈속성’이라는 신화가 윤리적 무책임과 정치적 파시즘, 여성혐오를 옹호하는 데 악용돼온 사실도 재차 상기하고 싶다. 서정주의 어떤 아름다운 시편들은 문학과 정치의 복잡한 모순이나 역설성에 대한 교훈적 사례이지, 비천한 정치행위를 덮고 가릴 알리바이가 될 수 없다.

문단은 종종 문학성을 사적이고 작은 것 또한 형식적인 것으로 정의하고, 아래로부터의 정치적 열정이나 역사에 대한 분노와 정의감에 대비시켰다. 가장 편하고 소시민적인 방법으로 문학과 정치 사이의 다가적 모순을 해소하려 했다. 냉전시대뿐 아니라 1990년대 이후에도 재생산된 정치적인 것·사회적인 것과 문학성의 이항대립적 사고는 민주주의 문화에도 장애가 되었다.

오래 묵은 한국문학의 문제들이 충분히 자기비판 또는 토론되지 못한 상태에서 오늘날 문학사 공부와 교육, 그리고 현장 문단은 큰 난경에 처해 있는 것이다. 협소한 문학주의나 민족주의 외에 문학사를 다시 사유할 인식의 틀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고, 현실의 문학문화에는 세대 장벽과 젠더 분계가 공고해지는 모습도 나타난다.

새로운 한국문학을 위한 공동의 과제를 생각해본다. 우선 문학사의 재해석·재서술과 문학의 생산·수용구조의 재편성이 동시에 시도되어야겠다. 즉 연구자·교육자·비평가가 새로운 이념과 문학성에 관한 합의를 함께 다시 토론해야겠다. 문학과 정치의 관계를 이항대립적이고 우파적인 것으로부터 구제하는 유연한 원칙과 논리가 필요하다. 한국문학이 탈분단·탈식민 그리고 차별 없는 민주주의의 옹호자여야 한다는 원리는 변함없을 것이다.

또한 달라진 문화환경에 맞는 매체·플랫폼의 개발, 탈제도·탈장르 운동이 확산될 필요도 있는 듯하다. 이때 물론 여성혐오 등 나쁜 행태의 완전한 지양과 함께 독자들의 참여, 세대 간의 소통은 기본 과제가 된다. ‘현장’에서 분투하는 젊은 작가·비평가·교육자들에게 격려와 지지의 마음을 보낸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국문학>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소성리는 처음 가십니까? 골짜기라예, 산골짜기.”

KTX 김천 구미역에서 나를 태운 택시 기사는 비닐하우스들이 늘어선 좁은 마을 길을 달리며 그렇게 말했다. 참외 수확철이 지나 텅 빈 비닐하우스의 겉면에는 여기저기 붉은 래커로 ‘사드 반대’라고 쓰여 있었다. 

가을하늘이 높고 푸르던 토요일 오후, 동행 하나 없이 숨어들 듯 소성리를 찾아 나선 이유는 내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해서였다.

6차 핵실험을 한 지 채 2주일도 안돼 불꽃놀이하듯 중거리탄도미사일을 쏘아올리는 북한 앞에서, 사드의 전쟁 억지력이 정말로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 같은 것들은 말 많은 페이스북 담벼락에서조차 뜸해졌다.

사드 발사대 4기가 추가 배치되는 성주군 소성리 마을 입구를 6일 주민들이 농기계로 막고 있다. 연합뉴스

지구 반대쪽에 사는 브라질인 친구가 “탈출 계획이라도 세워 놓았냐”고 걱정스레 보내온 메시지에 “괜찮아, 우린 이런 종류의 불안을 머리 밑에 베고 살아온 지 60년이 넘었어”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했지만, 전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에 주둔하지 않은 미국 전략자산으로 북한을 공격하는 것은 국제법상 남한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발언(‘미국의 소리(VOA)’ 8월25일 보도)을 공공연히 하는 상황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식으로 마음이 한가롭지는 않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사드 배치는) 현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라고 문재인 대통령이 입장문을 발표했을 때도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던 것이…. 사드는 어느새 설령 그것이 위약효과라 하더라도 나의 불안을 다스려줄 하나의 방패막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드 4기가 소성리에 추가 배치되던 6일 밤부터 7일 아침까지 18시간 동안 400여명의 주민과 반대자들이 8000여명 경찰 병력과 대치하다가 한 사람씩 사지가 들려 나가는 장면을 비춰주는 TV뉴스 화면을 지켜보며 나는 누구의 희생 위에 내가 발을 뻗고 누워 잠을 청하는가를 불편한 마음으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성리의 그 밤은 촛불 이후의 강정이었고, 밀양이었다. 마을 입구에 이르자 택시 기사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며 차를 세웠다. 마을회관 입구를 가설무대 역할을 하는 큰 트럭 한 대가 막고 서 있었다. 트럭을 빙 둘러 돌아가니, 집회가 진행 중이었다.

무대 아래 맨 앞쪽에 앉은 이들은 소성리 주민인 할머니들. 500여명의 참석자들 중에는 세월호의 상징으로 익숙한 노란 리본 곁에 파란 리본을 단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평화를 뜻하는 것이라 했다. 집회가 진행되는 와중에 휴대전화 창에 ‘21일, 미국 뉴욕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이라는 뉴스 속보가 떴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는 소성리 사람들의 절절한 구호가 닿기에 뉴욕은 너무 멀었다. 집회가 끝난 뒤, 임순분 소성리 부녀회장에게 안부 인사를 여쭈었다. 사드 배치 당일의 진압 이후 넋이 나가 있었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하니까 몸을 추스르고 나왔다고 했다.

“7일 이후로 마을 사람들끼리는 쳐다보기만 하면 울어예. 어떤 할매는 자다가 경찰이 쳐들어오는 꿈에 놀라서 맨발로 마을회관으로 뛰쳐나왔는데, 시간을 보이 새벽 4시더랍니다. 다들 수면제 안 묵고는 잠을 못 자요.”

밤낮없이 사드가 들어오는지, 경찰이 들어오는지 보초 서기에 바쁜 나날을 살다보니 내버려둔 밭에는 잡초가 그득하고, 추수를 해야 할 벼는 시들시들하다. 2년 전만 했어도 추석에 내려올 자식들에게 들려 보낼 밑반찬 만드는 일로 집집이 바빴을 시기인데, 지금은 허리가 굽은 할머니들이 마을회관 앞에 모여 미사일방어(MD)체계 공부를 한다. 환경영향평가가 없어도, 이들의 삶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는 웃음기 걷힌 그들의 얼굴이 증명한다.

좌든 우든 안보를 위해 사드 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눈 돌리지 말아야 한다. 나의 안녕을 위해 이 순간 대신 전쟁을 치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여든 두 살 할머니가 새댁 소리를 듣는 작은 마을의 100여명 주민들이 동북아 냉전이라는 태산 같은 짐에 눌려 밤잠조차 편히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서울역에서 KTX로 두 시간이면 닿는 곳. 그곳에 소성리가 있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앳된 얼굴의 키가 작은 여자 손님이 카스 두 캔과 감자칩 한 봉지를 카운터 위에 올려놓다 말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홍미영 교수님 아니세요? 그녀는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어수룩하게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다행히 여자 손님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고 편의점을 나섰지만, 그날 이후 그녀는 나이가 어려 보이는 손님이 편의점으로 들어설 때마다 반사적으로 긴장하는 몸의 습관을 갖게 되었다.”

조해진의 소설 <산책자의 행복>에는 구조조정 여파로 대학 강사직을 잃고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홍미영이 등장한다. 그녀는 실직 이후 함께 사는 아픈 어머니의 병원비와 은행 빚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하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서 빈곤층으로 추락한다. 힘들어하던 제자의 손을 잡고 “살아 있는 동안엔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던 다정한 스승은 사라진 지 오래다. 대학 철학과 강사에서 편의점 알바가 된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을 읽을 때만 해도 ‘너무 극단적인 상황 아닌가’ 싶었는데 웬걸, 한국의 현실은 소설보다 더 나쁘다.

얼마 전 인터넷을 달궜던 최영미 시인의 ‘호텔 투숙 편의 요청’이 바로 그렇다. 일전에도 최영미 시인은 “연간소득이 1300만원 미만이고 무주택자이며 재산이 적어 빈곤층에게 주는 근로소득장려금 대상이 되었다”는 고백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내게는 편의점에 들르는 제자들이 자신을 알아볼까봐 전전긍긍하는 소설 속 홍미영 교수보다 자신의 궁핍한 경제적 상황을 솔직하게 알리고 농담 반 진담 반의 글을 올렸다가 홍역을 치른 ‘(전) 베스트셀러 시인’ 최영미가 훨씬 소설 속 인물처럼 느껴졌다. 시인의 현실이 소설이면 얼마나 좋겠냐만, 김명인 교수의 지적대로 이번 논란의 본질은 “시인이라는 돈 안되는 타이틀을 가진, 의식주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의 50대 중반 빈민 독신여성”의 문제다. 논란 이후 최 시인은 집주인의 월세 계약 연장과 함께 한 호텔에서 투숙 제공 의사까지 전달받은 상태다. 훈훈하게 끝났으니 해프닝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최 시인의 상황이 결코 특수하지 않다는 현실이 문제다. 최근 <반지하 앨리스>라는 시집을 내고 사진전을 연 신현림 시인도 하루에 한 시간만 햇빛이 들어오는 반지하에서 10년간 살았다고 하니 비슷한 처지다.

한국 사회가 돈 없는 사람에게 유독 가혹하다는 현실을 차치하고서라도 ‘여성, 비혼, 소속 없음’으로 살다 보면 가난 혹은 빈곤이라는 단어와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은 처참하다. 취업 시장에서 ‘남성이 최고의 스펙’이라는 말은 취업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정규직 근로자 중 여성 비율은 38.7%로 남성 62.3%에 한참 못 미치고, 여성 가구주의 절대 빈곤율은 20.1%인 데 비해 남성 가구주의 절대 빈곤율은 5.1%다. 여성 전체 노동자의 약 40%가 ‘일을 해도 가난한’ 근로 빈곤계층이고, 전문직 내 여성 집중 상위 6개 직업의 월평균 임금조차 214만원에 불과하다.

해외에서는 같은 커피를 팔면서 남성 손님에게 돈을 더 받는 카페까지 등장했다. 호주 멜버른의 ‘핸섬 허(Handsome Her)’ 카페는 같은 일을 해도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구조적 격차(Gender Gap)를 가격표에 반영, 남성에게 가격의 18%를 더 내게 한다. 15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인 한국의 남녀 간 임금 격차는 36.3%이니, 한국에도 이런 카페가 생긴다면 남성들은 37%쯤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모든 여성의 인생이 동화나 셰익스피어의 희곡처럼 결혼으로 끝나지 않는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삶은 계속되는데, 한국은 결혼하지 않은 가난한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아무런 답도 갖고 있지 않다. 30~40세 미혼 여성 인구는 10년 새 2배 넘게 급증한 반면 국가는 결혼하지 않는 여성에는 무관심하고 출산하지 않는 여성을 걱정하느라 바쁘다. 소설 속의 홍미영 교수와 현실의 최영미, 신현림 시인은 ‘열심히 일하지만 가난’하다는 점에서 꼭 닮았고, 그래서 슬프지만 이렇게라도 가시화되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기도 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혼자라서 더 괜찮지 않은 여성의 가난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이야기가 필요하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제주도 남서쪽 노을해안로 해안에 출현한 남방큰돌고래.

금등이와 대포는 서울대공원의 최장기 쇼돌고래였다. 무려 20년 동안의 수족관 생활을 마치고 올해 5월에 제주도로 이송되었다. 이 두 남방큰돌고래는 함덕 정주항 근처에 있던 가두리에서 약 두 달간의 방류적응훈련을 마치고 지난 7월18일 방류되었다. 안타깝게도 방류 이후로 이들은 한 번도 목격되지 않고 있다. 한 번에 다섯 팀이 나서서 동시에 모니터링을 시도하기도 하였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나는 남방큰돌고래를 보러 9월 초에 제주도를 찾았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고, 하루 종일 비가 온다는 예보도 있었다. 걱정하는 나에게 마중 나온 이화여대 장수진 연구원은 비가 오지 않는 지역으로 간다고 안심을 시킨다. 늦은 아침을 먹고 제주시에서 해안을 따라 반시계 방향으로 돌고래를 찾아 나섰다. 바다는 아주 잔잔했고, 날씨도 덥지 않았다.

남방큰돌고래는 일년 내내 제주도 바다에서 살고 있다. 가끔 3~4㎞ 앞바다까지 나가기도 하지만 제주도에 있는 남방큰돌고래는 해안에서 2㎞ 이내에서 자주 출현한다. 이들은 고등어와 전갱이 같은 군집성 어류 또는 오징어를 쫓아 연안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자주 발견된다. 덕분에 제주도에서 남방큰돌고래 모니터링은 해안에서 관찰만으로 가능하다. 이날은 제주도 서쪽에 있는 애월읍에서 시작하여 한림, 고산, 신도, 무릉, 영락을 거쳐 일과리까지의 해안도로로 이동하였다. 이 중 신도리에서 일과리 사이에 있는 ‘노을해안로’를 따라 해안을 돌다보면 돌고래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모슬포에 있는 한 돌고래 관광업체는 무려 85%가 넘는 발견율을 자랑하기도 한다.

제주도 북동쪽에도 돌고래가 자주 출현하는 경로가 있다. 신촌리에서 시작하여 함덕, 행원, 세화, 종달을 거쳐 성산읍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도 돌고래를 보고 싶다면 가볼 만한 곳이다. 2015년 이전에도 북동쪽과 남서쪽 연안에서 남방큰돌고래가 자주 발견되었지만, 제주 다른 해안에서도 종종 출현하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거의 이 두 해안 지역에서만 돌고래들이 발견된다.

이것은 다른 지역이 돌고래가 활동하기에 적당하지 않아 대부분의 돌고래들이 이 두 지역에 쏠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장 연구원은 전방과 바다를 능숙하게 번갈아가며 주시한다. 연안에서 수평선까지 훑으면서 떠 있는 건 다 본다. 가마우지, 부표, 쓰레기, 파도, 해녀, 모자반 등이 주로 보인다.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숭어도 자주 본다. 그렇지만 우리가 찾는 것은 남방큰돌고래의 삼각형 등지느러미이다. 가끔 차에서 전망이 좋은 지점으로 가서 조사하기도 한다. 우리는 오전 내내 찾았지만 돌고래를 보지 못했다.

차귀도에서 점심을 먹고 노을해안로에 들어섰다. 무릉리를 지날 무렵 장 연구원은 연안에서 돌고래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바로 길가에 주차했다. 나도 뛰어내려 갯바위 끝으로 다가갔다. 반짝이는 하얀 바다에 대조하여 검은색의 뚜렷한 삼각형이 보인다. 그리고 곧 아치를 그리면서 물 위로 올라갔다 내려가는 돌고래 무리가 보였다. 나는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데 장 연구원은 한 15마리의 돌고래 무리라고 알려준다. 내 눈에 보인 것은 대여섯마리 정도인데 이 숫자에 2, 3을 곱하면 무리의 수를 가늠할 수 있다. 모든 돌고래가 숨을 쉬러 동시에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날 나는 2013년에 방류한 제돌이를 보았다. 돌고래 무리 중에서 살짝 바랜 숫자 ‘1’이 있는 등지느러미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작년에 출산하여 새끼와 같이 있는 삼팔이도 있었다. 이제 새끼도 제법 성장하여 삼팔이를 따라가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또 작년에 방류한 복순이도 보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금등이와 대포는 이 무리에서 찾을 수 없었다.

수족관에 오래 있었던 돌고래들은 생리나 행동이 야생의 개체와 다르다. 그래서 해양포유류의 방류는 방류개체의 선정에서부터 야생적응훈련, 방류 및 모니터링까지 국제적인 권고사항을 준수해야 한다. 방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야생에서 스스로 먹이를 추적하여 사냥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또 포식자에 대해 방어를 할 수 있도록 야생의 돌고래와 비슷한 운동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만약 이런 절차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 방류는 유기와 다름없다.

이런 방류 기준을 모두 통과했더라도 금등이와 대포의 방류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 수족관에서 오랜 기간을 보냈기 때문에 제주도 해안에 대한 지식이나 필수적인 생존기술이 부족할 수 있다. 금등이와 대포같이 수족관에서 오랜 기간 살아온 돌고래들이 전 세계적으로 많이 있다. 또 이런 돌고래를 야생으로 방류해야 하는가에 많은 논란이 있다. 그래서 금등이와 대포의 방류 결과는 해외에서도 관심이 많다.

돌고래는 인간과 비슷하게 가족이나 친구들과 끈끈한 정을 나누며 산다. 가두리에 갇힌 돌고래나 죽은 돌고래에게 보이는 반응을 보면 우리가 가까운 친구나 가족과 이별할 때의 반응과 비슷하다. 뿐만 아니라 돌고래는 우리 인간만의 전유물로 여겨왔던 자의식이나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돌고래는 이제 인간은 아니지만 인격체로 인정한다. 돌고래는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인격체로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

해가 지는 노을해안로를 벗어나면서 금등이와 대포가 저기 어딘가 살아있기를 기원했다.

<장이권 |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