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식 강의실이 등장한다. 느리지만 정확한 어투로 계약법을 설명하는 노교수의 눈빛이 형형하다. 그는 종강을 선언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강의실 문을 향해 걸어간다. 학생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전원 기립박수를 날린다. 놀란 기색으로 제자들을 응시하는 교수. 영화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의 한 장면이다.

지금까지 이 영화를 다섯 번 보았다. 최선을 다한 뒤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건네는 작품. 영화는 자신의 실제 대학생활을 소재로 한 작가의 소설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에서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주는 인물은 계약법을 가르치는 킹스필드 교수이다. 법대생들은 수업시간마다 교수의 집요한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에 시달린다.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 포스터

얼마 전에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지인으로부터 답답한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원에서 실권을 가진 인문학 교수의 횡포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내용이었다. 강의시간에 대놓고 스승의 날 선물을 하려면 마시면 사라지는 고급양주 말고 오래도록 가치가 남을만한 선물을 달라는 발언. 논문지도랍시고 학생을 두 시간 가까이 기다리게 해놓고 자신에게 확인전화를 했다는 이유로 폭언하는 사례. 평소 마음에 들지 않는 학생을 논문평가에서 고의적으로 탈락시키는 횡포 등을 성토했다.

이 정도면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갑질교수임에 틀림없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런 저질교수의 전횡이 대학가에서 전방위적으로 벌어진다는 거다. 게다가 실력이 처지는 교수일수록 정치적인 입지에만 골몰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대학총장과 각별한 사이라는 소문이 파다한 해당 교수는 대학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적폐임에 틀림없다. 오로지 실력으로 학생과 소통하는 킹스필드와는 정확히 반대편에 위치한 인물이다.

일반적으로 교수가 갑의 위치를 점할 수 있는 무기는 다양하다. 학점, 논문평가, 조교 및 강사채용 등이 그것이다. 반대로 학생이 문제교수에게 자신의 권리를 피력할 수 있는 수단은 그리 많지 않다. 교수평가제가 시행되고 있다지만 무능교수를 대체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는 갖춰져 있지 않은 형편이다. 사설학원에서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개발해야만 살아남는 프리랜서 강사와는 경쟁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존재이다.

소개한 영화의 무대는 미국 보스턴 일대로 유학하려는 학생들이 한 번쯤은 진학을 꿈꾸는 하버드대학이다. 게다가 졸업과 함께 부귀영화가 보장된다는 법대가 그 배경이다. 금수저와 흙수저 영재들이 고루 모인 학업모임에서는 풍부한 법학지식만이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할 수 있다. 게다가 킹스필드 교수의 강의실에서는 학생의 출신이나 교수와의 사적인 관계가 예외사항으로 통하지 않는다.

쏟아지는 과제물을 감당하려고 새벽까지 책과 씨름하는 영화 속 법대생의 이미지가 신선해 보였다. 삶의 열정이 내리막길을 걸으려 하는 기색이 보이면 어김없이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을 찾았다. 누구든지 현실 속에서 넘어지거나 다치는 사건을 경험한다. 하지만 어떤 자세로 다시 일어서느냐가 인생 후반부를 좌우한다. 킹스필드는 오로지 강의와 질문, 과제를 통해서 무거운 현실과 맞서는 방법을 전파한다.

지인은 논문심사를 기다리는 연구생들이 갑질교수가 안식년을 가는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사라져야 공정한 논문평가가 가능하다는 신세타령이 이어졌다. 과연 한국 대학가에는 몇 퍼센트의 교수가 킹스필드에 근접하는 학문적인 존경을 받는지 궁금하다. 연구는 고사하고 정치적 가치관이나 소신도 없이 오로지 권력만을 위해 부나비처럼 외부활동에 전념하는 폴리페서 역시 존경의 대상은 아니다.

물론 부단한 노력으로 학문에 매진하는 교수다운 교수가 일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들만으로 대학의 미래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늦었지만 학생을 종으로 취급하는 갑질교수를 통제할 전방위적인 제도가 갖춰져야 한다. 이를 통해서 실력있는 교수가 대우받는 정상적인 대학으로 환골탈태해야만 한다. 동시에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대학의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마지막 강의를 마친 뒤에 후배들의 기립박수는 고사하고 손가락질은 받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그대의 이름은 이상한 대학에서 서식하는 교수님이다.

<이봉호 | 대중문화평론가·<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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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15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은 포항은 물론이고 서울과 강원도는 물론 제주도 지역까지 감지됐다. 전국 곳곳에서 건물의 흔들림이 느껴지는 등 지난해 경주지진(15㎞·5.8)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진원(9㎞)이 더 얕아 체감 위력은 더 컸다. 수능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발생한 강진은 크고 작은 여진을 낳았다. 교육부는 결국 16일 시행할 예정이던 수능을 일주일 뒤인 23일로 연기했다.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으로 수능을 연기한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동안 남의 일로 치부되던 지진이 어느덧 전 국민의 관심사인 수능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일부 학교의 시설이 파손돼 학생 안전이 우려되고, 시험시행의 형평성을 고려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정부는 수능 연기에 따른 입시혼란을 최소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한 명의 수험생도 피해를 입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15일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진원지 부근인 포항시 북구 흥해읍내 건물 외벽이 무너지면서 도로에 주차해 놓은 차량들을 덮쳤다. 규모 5.4의 이날 지진은 1978년 우리나라에서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두 번째로 큰 규모다. 경상일보 제공

이날 규모 5.4의 지진은 지난해 9월 지진 관측 이후 최대규모(5.8)였다는 경주지진에 이어 1년 2개월 만이다. 지진 안전지대로 치부되던 한반도에서 이토록 단기간 내에 큰 규모의 지진이 잇달았다는 것은 심상치 않다. 그사이 640여 차례의 여진이 일어났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 영향으로 한반도의 지반이 약해지면서 빚어진 현상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정부는 2020년까지 조기경보시스템과 내진설계대상의 강화 등 다양한 지진대책을 세운 바 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민간건축물 중에서 내진설계가 이뤄진 비율은 20%를 밑돌고 학교, 철도와 교량 등 공공시설물의 내진율도 40% 선에 머물고 있다. 게다가 한국은 원자력 발전소의 세계 최다 밀집지역이다. 공사재개가 확정된 신고리 5·6호기 등을 포함해서 고리(10기), 한울(8기), 한빛·월성(이상 6기) 등의 원전이 특정지역에 몰려있다. 이 중 고리·월성 일대에는 60여 개의 활성단층이 확인됐다. 한반도에서 7.0 이상의 대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이 제법 있다. 설마하고 수수방관할 때가 아니다. 노후원전의 조기폐로 문제도 이참에 거론되어야 한다.

지난해 9월 규모 5.8의 경주지진이 일어난 뒤 꼭 일주일만에 규모 4.5 여진이 이어졌다. 15일 오후의 지진은 더 강한 지진의 전조일 수 있다. 추호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시민들도 이번 지진을 계기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지진 발생 때 잠깐 안전에 관심을 갖다가 평상시엔 잊어버리는 망각증은 곤란하다. 재난 안전 대책에 부족한 곳이 없도록 총체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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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사무치는 즈음에 지나간 일은 글감으로 삼지 않는다는 칼럼의 불문율을 한 번 깨겠다. 2017년 한가위가 선물한 연휴가 꿈처럼 지나갔다. 지난 연휴는 밥벌이의 최전선으로 돌아온 생활인들에게 이미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게다가 11월도 하순이 코앞이다. 어정거리다 연말이 바로 코앞일 테다. 이때 하필 다시 펴느니 김매순(金邁淳, 1776~1840)의 <열양세시기>이다. 김매순은 신라의 “가배”에서 추석의 기원을 찾은 뒤 말한다. “이날은 아무리 구석진 시골 가난한 집이라도 으레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음식을 한다. 안주며 과일도 넘치도록 한 상 가득 차린다.” 이 때문에 당시에 이미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加也勿減也勿, 但願長似嘉排日)”라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 돌아다녔다고 한다. 정말 오래된 관용구 아닌가. 사대부 또한 이 분위기에 젖었던 모양이다. 설, 한식, 중추, 동지 가운데 중추, 곧 한가위의 묘제를 가장 풍성하고 크게 치르는 경향이 있다고 김매순은 설명한다. 부모형제, 고향, 고향을 지키는 친구를 떠올리는 마음에 상하귀천이 있을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김매순은 “하인, 종, 머슴, 거지 모두가 부모의 묘를 찾는다”는 옛글을 인용한 다음 마무리한다. “오직 이날이니까 그런 것이다”라고.

한국인은 이 문화를 이어는 받았다. 우리는 좀 더 맛나고 특별한 음식을 좇아다녔고, 일상과 다른 공간을 찾아 떠났다. 여기까지다. 휴가는 늘 짧기만 하고, 계획과 예산을 벗어난 지출은 11월까지도 돌아오는 짜증스러운 할부금으로 남았다. 음식은 어떤가. 남들이 사니까 덩달아 산, 송편을 필두로 한 떡이며 약밥이 지금 냉동고 속에서 잠자고 있지 않은가. 지금 냉동고 문을 열어볼거나. 그 송편은 필시 자다 못해 얼어 죽어버렸을 테다.

무언가 하던 대로 하는데 구체적인 행동은 다르다. 자본제 시대, 산업화 시대니까 음식은 그저 “사 먹지 뭐”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여행 또한 “여행 상품” 구입이라는 지름길이 있다. 그동안 세상은 너무 급히 변했고, 우린 너무 지쳤고, 음식 하는 법도 여행 하는 법도 가꿀 기회가 별로 없었다. ‘개저씨’는 돈밖에 모르고, 청년은 취향을 벼릴 겨를이라고는 없는 시대라고 하면 지나칠까. 그래서 더욱, 세시가 남긴 문화와 행동을 나를 돌보고 나를 돌아보는 계기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매체와 기업은 동지, 성탄 전야, 연말연시를 굽이치며 탐식과 고급 숙박 상품 판매에 활활 불을 붙일 테지만, 일상과 문화 일체를 소비에 의지할 수만은 없다. 내 줏대와 내 손이 빛나는 시간을 만들어 보겠다는 시도가 귀하다. ‘주말이니까 사 먹자’가 아니라, 주말만큼은 반찬을 만들자는 골목길 여기저기의 모색과 한 길이다. 매끼는 어렵지만 하루 한 끼는 내가 장을 보아 내가 내 밥상을 차려보자는 온당한 마음가짐과 같은 궤다.

어정하다가 동지가 훅 닥칠 테다. 우리는 별로 우리 일상을 가꾸며 지내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과 준비가 필요하다. 지난 송편은 냉동고에다 장사 지냈다. 그렇다면 다가올 동지팥죽은 어떤가. 역시 나한테 돌아가야 한다. 내 입맛, 취향은 어떤가. 나는 별미 죽 가운데 실제로 팥죽에 입맛 다신 적은 있나. 덩달아 먹을 테냐, 내가 내게 다른 수를 낼 테냐.

팥죽도 김치찌개만큼이나 집집이 다 달랐다. 통팥 퍼진 팥죽, 팥물을 고듯 쑨 팥죽, 쌀알을 살린 팥죽, 쌀가루로 방점 찍은 팥죽 등등 천차만별이었다. 새알심의 탄성과 질감도 저마다의 입맛을 탔다. 찹쌀가루와 밀고 당길 갖가지 전분도 취향껏 쓰였다. 동지팥죽에는 꿀로 단맛을 더했다. 대추를 고아 풍미를 더하기도 했다. 저마다의 손이 사라지면서 다채로움도 빛을 잃었다. 소가죽 젤라틴에다 꿀, 계피, 생강, 정향, 후추, 대추고를 더해 굳힌 전약(煎藥), 그러니까 프랑스 제과로 치면 앙트르메 또는 데세르에 준하는 과자가 팥죽에 따라오기도 했다. 이런 맛의 설계는 사자고 해도 없는 노릇이다.

송편은 냉동고에서 얼어 죽었다 치고, 이제 팥죽이 냉장고 합성수지 찬통에서 보글보글 괼 차례인가. 아, 죽이 쉬다 괸다는 말 또한 오늘날에는 알아먹기 어려운 말이 되었다. 이러나저러나 한 해에 한 번이다. 한 번이니까 내가 해 보자, 같이 모여 배워서 해 보자 하는 마음이 골목골목 자랐으면 좋겠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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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십시오, 최준열 고객님. 재배열 클리닉에 잘 오셨습니다. 사전 주문서를 제출하지 않으셨군요. 상담을 원하십니까?”

준열은 다소 딱딱한 의자에 앉아 눈앞에 떠 있는 입체 영상을 바라보았다. 영상의 주인공은 삼십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이였다. 물론 준열은 젊은이의 그림 뒤에서 정말로 상담을 제안하는 존재가 인공지능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요. 상담을 해보고 결정할 생각입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러면 상담사를 선택하셔야 합니다. 모든 상담사는 재배열을 경험해 봤으므로 누구를 선택하든 유익한 상담이 될 겁니다. 우선 재배열 이전의 인간 속성을 고스란히 유지한 상담사가 있습니다. 재배열 후 선택할 직업에 맞게 신체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상담사가 있고요. 유전공학으로 노화 지연 시술을 받은 상담사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인공지능이지요? 바로 상담할 수 있습니까?”

“예. 인공지능과 상담하고 싶어 하시는 분이 제일 적어서 마지막에 소개드리려 했습니다만, 바로 시작하시죠. 최준열 고객님은 현재 110세이시고, 재배열 후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로 이주하실 계획이군요. 그러면 기계 신체로 교체하시는 건 필수고요. 남은 건 재배열 시 정신을 어떻게 편집할지 결정하는 일입니다. 원하는 바를 말씀해보시죠.”

상담이 끝나면 미래의 자신을 재정의해야 하기 때문에 준열은 근 1년가량 신중하게 골라놓았던 질문을 던졌다.

“기계 몸에 들어가는 전자두뇌는 육체의 두뇌가 품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재현한다고 들었습니다. 신체 반응과 즉각 연계되는 감정 상태를 시뮬레이션하는 거야 어렵지 않겠죠. 하지만 오랜 세월을 살면서 누적되는 생각이 있지 않습니까? 이를테면 사랑에 대한 관념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죠. 그건 어떻게 재현합니까?”

“아시다시피 재배열은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새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변형은 피할 수 없습니다. 변형을 극도로 싫어하시는 분들은 재배열을 안 받고 자연사를 선택하시든지, 유전공학으로 수명을 연장하시죠. 하지만 사랑이라는 관념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정신을 재배열하시겠다면, 저희 인공지능들과 같은 방식으로 사랑을 주입합니다. 우리에게 있어 사랑은 공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과 생명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고, 사랑은 존중에서 출발하지 않습니까?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온 사람은 더 많이 존중할 테고, 그처럼 사적인 존중은 보편적인 존중보다 조금 우위에 있겠지만요.”

준열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적인 수명을 다하고 재배열 시술을 받아 새로 태어나는 사람들은 더 보편적인 사랑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었다. 인류가 인공적인 몸으로 옮겨가면서 세상이 더 평화로워졌다는 건 통계가 증명하고 있었다.

“그럼 하나 더 묻죠. 낭만과 설렘과 동경은 어떻습니까? 예를 들어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를 알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를 과학자가 되도록 이끄는 건 진리를 향한 동경입니다.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척박한 행성에 굳이 식민지를 건설하는 탐험가들은 어떨까요? 알지 못하던 세계가 주는 설렘 때문에 무모한 도전도 마다하지 않는 겁니다. 이런 감정들이야말로 인류가 태양계 끝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 힘이었는데요.”

인공지능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새 전자두뇌를 주문하실 때 선택할 수 있는 항목에 낭만이나 설렘이나 동경은 없습니다. 아직 그런 감정을 완벽히 재현할 수 없으니까요.”

준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솔직한 대답을 원했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상담사로 선택했다. 재배열 시술을 받은 사람들은 재배열과 전자두뇌를 옹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이라면 동경심이 쓸데없는 감정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을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유로파에 가서 새 삶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설렘과 동경이야말로 인간의 중요한 특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들 없이 전자두뇌로 옮겨 갈 생각은 없습니다. 이번에는 수명 연장 시술만 한 번 더 받겠습니다. 의사는 그래봐야 7년이 한계라고 했습니다만. 7년 뒤에 한 번 더 상담하러 오겠습니다. 부디 그때까지는 전자두뇌가 설렘과 동경심까지 구현할 수 있기를.”

****************************************

두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지능이라고 단정짓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뇌의 작동 방식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공감 능력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도 그런 징후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는, 우리의 핵심인 두뇌는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일종의 관념적인 학습망을 형성하면서 발달한다고 한다. 이처럼 공감 능력과 관계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인공지능은 공감 능력이 없기 때문에 소시오패스와 마찬가지로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한때 금단의 영역이던 뇌의 작동 방식을 낱낱이 해부해보고 인지과학 분야가 본격적으로 걸음을 떼기 시작했으니, 그 끝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른다. 정말로 인간의 정신활동 전부를 인공적으로 구현하는 때가 오면 바람직하지 않은 속성을 삭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근거 없는 편견, 폭력에 의존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충동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그보다 앞서 ‘인간성’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하고 재정의하려는 인류 단위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노력은 과학과 인문 양자를 두루 아울러야 하기 때문에 한동안 우리에게 힘들고도 중요한 숙제로 남을 것이다.

<김창규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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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 동계올림픽(2월9~25일)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6년여 전인 2011년 7월 개최가 확정된 이후 경기 시설과 KTX·고속도로 등 기본적인 하드웨어 준비는 거의 완료되었다. 이제부터는 소프트웨어다. 대회 준비부터 홍보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잘 챙겨 나가야 한다.

평창 올림픽은 세계 유일의 분단지역인 한반도, 특히 남북이 같은 명칭을 사용하는 분단 도(道)인 강원도에서 개최되는 점을 부각하면서 ‘평화올림픽’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어느 올림픽이나 평화는 기본 콘셉트이지만, 평창과 평화의 연관성은 뚜렷하지 않다. 더구나 목전의 우리 한반도 상황은 너무나 위중하다. 일부 외신은 전쟁설을 퍼뜨리고, 또 일부 국가는 이를 이유로 불참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대회 조직위원회가 13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2018 평창올림픽 휴전 결의안'이 채택됐다고 14일 전했다. 사진은 연설하는 김연아의 모습. 연합뉴스

성공적인 평화올림픽 개최를 위해서는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보다 구체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가치에 중점을 둔 홍보활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비무장지대(DMZ)는 아주 안성맞춤인 아이템이다.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DMZ를 독일의 베를린 장벽처럼 ‘분단의 상흔’을 넘어 ‘평화의 상징’이 되게 하는 캠페인을 전개해 나가자.

북한이 비핵화 회담 테이블로 돌아오고, 북한 선수단이 휴전선을 넘어 참가한다면 가장 드라마틱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녹록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 창의적인 테마를 발굴하여 세계인의 심금을 울려야 한다. 길이 248㎞, 폭 4㎞의 DMZ는 과거 냉전기의 유산이다. 또한 대립과 평화가 공존하는 곳이자 세계적 수준의 ‘청정자연 보고(寶庫)’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환황해, 환동해, DMZ 등 3개의 ‘H 벨트’를 기본축으로 하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발표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의 호응이 없어 단 한발짝도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DMZ를 역발상으로 접근하여 ‘친환경·평화의 장’으로 만들어 나가면 이번 올림픽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 상당한 파급효과가 기대된다.

우선 평창 올림픽 홈페이지에 DMZ 관련 콘텐츠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통일전망대에서 본 북측 전경, DMZ 생태문화 다큐멘터리·음악회·트레킹, 한류 스타들의 뮤직비디오와 같은 평화 콘텐츠를 업로드할 필요가 있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세계 각국, 특히 16개 참전국 국민들을 위한 스토리가 있는 ‘맞춤형 접경지역 체험프로그램’을 점차 개발해 나가야 한다. 이는 기존의 안보 위주 관광을 ‘평화·친선·문화 관광’의 개념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북한의 대회 참가 유도는 물론 남북 교류협력 재개를 위한 물밑노력을 끊임없이 전개해 나가야 한다. 북핵위기 속에서 참가자들이 끊어진 금강산 육로관광길로 들어오는 장면은 지구촌의 톱뉴스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

외국인들은 한반도 관련 소식을 TV 뉴스를 통해 접하기 때문에 갈등, 전쟁 등 부정적인 인상을 많이 갖게 된다. 그래서 상당한 위기감도 표출하고 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DMZ의 또 다른 면, 평화의 잠재적 가치를 인식시키는 홍보를 치밀하게 전개해 나가야 한다. 이 같은 우리의 노력은 ‘평화올림픽’의 이미지를 고양시키고 ‘접경지역 관광브랜드 글로벌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곽길섭 원코리아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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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에 있을 때 면담하러 오는 학생들이 있다. 학생들은 진로를 묻기보다, 책벌레 선생에게 책 이야기를 묻고, 연애 상담을 하고,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 가곤 한다. 찾아오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다. “왜 남학생들은 배낭여행을 잘 가지 않을까?” 몇몇은 외국에 간단다. 방학이 되면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번 돈과 용돈으로 방학이 끝날 무렵 삼삼오오 일본이나 중국을 갈 거라고 했다. 극소수지만 부모와 함께라면 여행거리는 좀 더 길어진다. 싱가포르나 호주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방학 하기 전까지 줄창 안 가본 나라에 꼭 가보라고 당부했지만, 개강 후 물으면 정작 해외에 나간 학생들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여학생들이다. 얼마 전 캐나다에서 잠시 귀국한 선배는 비행기에 탄 한국인은 죄다 노인들이라고 했다.

1990년대 중반 국제화 물결을 타고 여행자유화가 시행되면서 배낭여행은 적지 않은 이들에게 청춘의 중요한 의식 중 하나로 여겨졌다. 특히 유럽 배낭여행이 그랬다. 10여년 전 대학 동기 중 적지 않은 숫자가 1~2학년 때 유럽으로 향하곤 했다. 그들은 로마와 파리, 런던으로 대표되는 로맨틱한 유럽 도시를 거닐며, 루브르 박물관과 대영박물관을 관람하고, 샹젤리제 거리를 사진으로 찍어 담아오겠노라고 하면서 항공기표를 자랑하곤 했다. 여행을 마친 친구들과 술자리를 할 때면 ‘로맨틱 유럽’ 이야기는 잠시, 대개 ‘고생담’만 한없이 풀어놓곤 했다. 함께한 친구와 싸워서 유럽 어느 도시에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고, 유스호스텔과 게스트하우스에서 ‘못볼 꼴’을 보고, 동양인이라서 인종차별을 받은 것 같다는 이야기 등등. 이야기는 “그래도 정말 좋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긴 했다. 스마트폰 없이 종이지도를 너덜너덜해질 지경까지 붙들고, 길을 물으려니 영어가 잘 안돼 손짓 발짓을 하면서 고생을 했어도 말이다.

젊은이들의 배낭여행 현황을 보려고 해외여행 통계를 뽑아봤다. 2006년 출국관광통계와 2016년 국민여행실태조사를 살펴봤다. 일단 40대 이상 해외여행객이 상대적으로 늘었다. 2006년에는 40대 이상의 비율이 48%가량이었는데, 2016년에는 57%로 늘었다. 특히 50~60대 관광객 비율이 증가했다. 고령화 사회와 청년세대의 어려움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그런데 데이터를 볼 때 정말 도드라진 특징은 성별 여행 패턴이다. 20~30대가 가장 많이 가는 유럽과 아시아를 살펴봤다. 일단 20대 남성은 점점 해외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유럽 여행의 경우 2006년에는 여행자 중 60%가 여성, 40%가 남성이었는데 2016년에는 80% 대 20%로 격차가 늘어났다. 10년 전 30대 남성들은 여성들보다 더 많이 유럽으로 나갔지만, 이제는 여성들이 유럽을 더 많이 간다. 아시아 관광에서는 65% 대 35%에서 60% 대 40%로 성별 격차가 줄었다. 

그런데 아시아에서 여행 목적지가 성별에 따라 달랐다. 일본은 성별 상관 없이 많이 찾지만, 남성들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를 찾을 때, 여성들은 홍콩이나 대만, 인도를 찾았다. 통계는 10년 사이 아시아를 벗어나지 않는 젊은 남성의 여행 성향과, 글로벌 세계를 누비는 젊은 여성의 여행 성향이 양극화되는 추세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유럽 여행을 가는 젊은이들의 성별이 확연히 갈린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유부터 따져봐야 한다. 남성과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 기대라는 ‘압력’이 달라서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남성들이 입대 전이라 먼 곳 가기를 꺼리고, 제대하면 취업 준비 때문에, 취업하고 나면 결혼 준비 때문에 해외여행을 꺼린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꼭 그런지는 의문이다. 10년 전에 남성에게 주어졌던 경제적 압력이 지금에 비해 더 작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취업경쟁에서 특별히 여성이 훨씬 많이 승리했다는 증거와, 남성의 임금이 여성에 비해 특별히 떨어졌다는 징후는 드러나지 않았다.

외려 가치관과 문화의 차이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취업, 연애, 결혼 등에 대한 ‘압력’을 느낄 때 한국의 젊은 여성과 남성이 서로 다르게 대응하는 경향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젊은 여성들이 ‘압력’에서 비켜나, 좀 더 민주적이고 수평적이며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알려진 유럽을 다니면서 ‘대안’과 ‘해방감’을 찾는 동안, 남성들은 그 ‘압력’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티는’ 방식으로 대응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해석을 그쳐서는 안된다. 젊은 여성들을 ‘무책임’하게 먼 나라 가서 소비나 하는 비난의 대상으로 만드는 여성혐오로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는 이런 여행에 대한 성별 가치관 차이가 한국의 가부장적인 문화와 남성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산업화 시기 경제가 만들어낸 산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검색을 하다가 유럽 여행 가서 ‘무시’를 당했다는 한국 남성들의 ‘경험담’을 많이 발견했다. 큰맘 먹고 갔는데 ‘대접’받질 못하고 백인들에게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다는 식이다. 글의 아래에는 며칠간 동남아 여행을 가는 게 낫다는 댓글이 달린다. 자신이 디뎌본 ‘장소’보다는 자신의 ‘지위’에 대해 더 예민한 것이 한국 남성들이라는 문화연구자들의 연구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오히려 젊은 남성들을 백인들이 많은 나라로 더 많이 배낭여행 보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한국 안에서 ‘소수자’가 되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세계 속에서 인종과 성별에 따라 어떤 시선들이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산 경험이 무엇일까.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인식틀과 세계관이 다양한 경험에서 온다는 것은 상식이다. 스스럼없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문화와 경관과 마주해 ‘나’와 ‘남’의 문제를 살피는 젊은 여성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감각과, 아시아를 잘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를 고려하는 젊은 남성의 감각은 서로 만날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젊은 남성들의 독서와 문화 향유가 십수년 새 큰 폭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말이다. 어떤 남성과 여성을 한국 사회가 길러내고 요구하고 있는지 ‘여행 감수성’이라는 기준으로 반문해봐야 하지 않나. 물론 그런 차이로 누군가를 규탄한다고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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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하나님이 두 분. 한 분은 별로 말이 없으신 분. 아무리 뒷방 어르신이어도 아버지는 아버지. 다른 한 분은 대형교회를 세습한 어떤 아들 목사. 자라면서 하나님으로 불렸다니 어째 거시기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았으나 도통 세상에선 관심이 없었는데, 제대로 홈런 한 방에다 관심 팍! 주위의 염려하는 목소리에 눈귀를 닫아걸고, 오로지 자기들 무리에서만 아멘 제창이구나.

우리 동네 교회 두어 곳. 목사 자녀에게 물려줄 거라곤 교인들보다 가난했을 기억과 감나무뿐인 작은 교회. 손때 묻은 의자와 기도 냄새가 좋아라. 한번은 젊은 목사가 나를 찾아와 전도를 감행. 장차 믿어보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흙구덩이 촌구석에서 자연에 의지하여 지내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 수 있단 말인가. 과일값이나 하시라고 헌금도 했지. 교회 바깥에 이름 없는 교회와 목사들이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신학자 서남동 선생 말씀처럼, 예수는 한국에 와서 ‘만적 임꺽정 박장각 갈처사 장길산 홍경래 전봉준 묘청 사명당 수운 만해 장일담 전태일 윤상원 박종철…’ 혁명적 반항아들의 족보 속에 있으면 있었지 목사들의 족보 따위엔 안 계신다.

수도자 ‘토마스 머턴’은 <명상의 씨>에서 이렇게 경계하고 있다. “신비 생활(신앙 생활)에서 가장 나쁜 환상은 그대를 그대 마음속에다 가두어 놓고, 순수한 집념과 의지력만으로 밖에서 오는 모든 실재는 봉쇄해 버리고, 그대의 마음을 신념만으로 꽉 채우고, 바깥 세계와 이웃 사회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자라목처럼 움츠림으로서 주님을 찾아보려 드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짓을 하려던 사람은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목사는 길 위에 있는 순례자다. 목사의 가족조차도 보헤미아 집시들처럼 움직이는 ‘가족 순례단’이다. 장로가 촌장이라면 목사는 잠시 머무는 성경교사. “한 장의 잎사귀처럼 걸어 다니라. 당신이 언제라도 떨어져 내릴 수 있음을 기억하라. 자신의 시간을 갖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라.” 순례자 시인 나오미 쉬하브 니예의 고언을 새겨보는 시간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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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인물 가운데 누구보다 주목받은 이는 작곡가 윤이상이 아닐까 싶다. 매년 봄이면 그의 고향에서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TIMF)’가 오페라와 관현악곡, 실내악곡 등을 집중 조명한 것은 물론이고, 여러 오케스트라와 앙상블의 정기 연주회, 독주회와 독창회 등 크고 작은 음악회들에서 1년 내내 그의 음악이 울려 퍼졌다. 클래식 음악계는 매년 탄생·서거 몇 주년을 기념하는 연주회들로 넘쳐나지만, 20세기 한국 작곡가의 음악이 중심에 놓인 적은 별로 없었다. 서양음악 도입 이후 한 세기가 훌쩍 지나서야 이제 우리도 100주년을 기릴 만한 작곡가를 갖게 된 것이다.

작곡가 윤이상 (출처:경향신문DB)

이뿐이 아니다. 서울문화재단은 ‘프롬나드 콘서트’를 기획해 서울 도심 곳곳에서 윤이상 음악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고, 인간 윤이상의 모습을 담담히 풀어낸 연극 <상처입은 용>(이오진 작, 이대웅 연출)을 무대에 올려 호평을 받은 경기도립극단은 서울에서도 재공연을 했으며, 서울오페라앙상블은 동백림사건으로 감옥에 갇혀 있던 600일간을 다룬 나실인의 창작오페라 <나비의 꿈>을 선보였다. 하지만 촛불집회와 탄핵으로 변화된 정국이 아니었다면 이토록 광범위한 윤이상 재조명이 가능했을까? 작년 연말 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좌초 위기에 처했던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가 몇 달 후 추경예산 편성으로 기사회생했던 일을 생각해보면, 지휘자 성시연이 이끄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베를린음악축제’ 초청 윤이상 공연에 경기도지사와 도의회 의장까지 동행한 것에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1970~1980년대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윤이상의 음악은 국내 연주자에게는 물론이고 내한 공연 온 외국 연주자의 프로그램에서도 삭제되곤 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4년 예음문화재단이 주최한 ‘윤이상 음악축제’를 계기로 그의 음악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지만, 윤이상을 ‘친북인사’로만 여긴 정치세력은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분단과 냉전 체제에 온몸으로 맞서며 상처투성이가 된 음악가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그에 관한 왜곡과 음해는 사후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민족의 독립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세대, 불혹의 나이에 유럽 유학을 떠나 10년 만에 독창적인 작품 세계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자마자 국가권력에 의해 납치되어 간첩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예술가, 전 세계 음악인과 지식인의 구명운동으로 풀려나 독일로 돌아간 뒤 음악으로 남북의 평화 공존에 기여하려 한 이상주의자, 음악은 ‘진실하게 살려는 처절한 노력의 표현’임을 평생 간직했던 작곡가. 낡은 이념 프레임에 갇힌 우리 사회는 아직 한 예술가를 그가 처한 역사적 조건과 시대적 맥락 안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

윤이상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초기 가곡집 <달무리>에서 마지막곡 ‘에필로그’에 이르는 120여곡의 작품만이 아니다. 모순에 찬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한 그의 존재는 분단과 냉전 체제에서 형성된 이념 대립을 넘어설 때 온전히 평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정치의식과 문화의식이 얼마나 성숙해 가는지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100주년을 맞아 윤이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어났지만, 그의 음악은 많은 이들에게 아직 낯설게 다가온다. 그가 활동했던 20세기 후반은 어느 때보다 새로운 음악어법이 모색되던 시기였고 그 역시 한국의 음 관념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표현방식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올해 많은 연주자들이 그의 작품을 새롭게 해석하여 선보였듯이, 윤이상의 음악이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은 이제 우리 음악인들의 몫이다. ‘예악’ ‘무악’ 같은 역동적인 관현악곡이든, 자전적인 첼로 협주곡이나 ‘밤이여 나뉘어라’ 같은 강렬한 메시지의 곡이든, 특유의 음향제스처로 표현된 실내악곡·독주곡이든, 아니면 한국에서 쓴 가곡·동요·교가든, 윤이상의 음악 한 자락을 즐겨 들을 수 있게 될 날을 기대해본다.

<이희경 음악학자·한예종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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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일교차가 유난히 커 단풍이 화려했다. 요즘 농촌의 하루는 막바지 수확을 하거나 겨울이 오기 전 갈무리해 두어야 할 일들로 분주하다. 하지만 우리의 농촌은 줄어드는 인구와 노령화로 이중고를 겪으면서 일손 부족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지자체가 나서 농촌의 부족한 일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구책을 내놓고 있고, 여러 기관과 단체들의 농촌 일손 돕기도 끊이지 않고 있다.

농촌진흥청에서는 민간 의료기관과 공동으로 의료봉사와 영농 컨설팅을 함께하는 ‘이동식 농업종합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의료복지 인프라가 부족하고 각종 서비스를 제때 받지 못하는 전국 각지의 농촌마을을 찾아 의료봉사와 일손 돕기, 농기계·가전제품의 수리를 도맡아 하는 재능기부 활동이다. 2010년 6월부터 올해 10월 말까지 모두 21회 동안 이동식 농업종합병원을 다녀간 농촌 주민만 5700여명이 넘는다.

농업종합병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농기계 안전 점검 및 수리는 기본이고, LG전자 서비스센터가 참여해 가전제품 수리도 이루어진다.

농촌진흥청의 농업기술 전문가들이 마을 곳곳 농업현장을 둘러보고 토양관리, 병해충 등 분야별 문제점을 분석하고 상담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어르신의 장수사진을 촬영해 액자로 만들었고, 전문가 수준의 미용 봉사팀은 어르신이 원하는 커트와 염색을 하느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고된 농사일에 각종 질환을 앓고 있는 어르신임을 감안해 간단한 한방치료나 물리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여유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열악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헌신과 노고를 아끼지 않고 봉사에 동참하는 한림대와 순천향대, 우석대 의과대 의료진이 고맙고 든든했다. 농촌에는 워낙 고령인구가 많다 보니 고혈압,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 유병률이 도시보다 높다. 농촌에 보건의료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은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가장 큰 문제다.

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표한 ‘농림어업총조사 지역조사’를 보면 국내 농어촌 마을 10곳 중 6곳은 종합병원이 자동차로 30분 이상 걸리는 거리에 있다. 홀로 사는 어르신에게는 먼 거리의 병원 가기만큼 불편한 일도 없다. 이동식 농업종합병원의 방문이 무엇보다 반가운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이날만큼은 사람의 병도, 작물의 병도, 기계의 병도 한자리에서 진단하고 고친다.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이 있다. 조선시대 양반의 고택인 전남 구례 운조루의 뒤주에 새겨진 글귀다. 다른 사람도 능히 열 수 있다는 뜻이다. 배고픈 사람은 언제든지 와서 뒤주를 열고 쌀을 퍼가라는 집주인의 따뜻한 마음이 읽혀지는 글귀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조화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라승용 | 농촌진흥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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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 원년이자 6월항쟁 30주년인 올해, 권력의 비리와 음모를 폭로한 ‘딥스로트(Deep Throat)’ 얘기가 많이 나왔지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Bob Woodward)와 칼 번스타인(Carl Bernstein) 기자가 익명의 제보자를 보호하면서 붙인 별명이 ‘딥스로트’입니다.

KBS 다큐멘터리 <시민의 탄생>은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제보한 ‘딥스로트’를 다뤘습니다.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황당한 거짓말을 논파할 수 있었던 것은 교도소 내에 ‘딥스로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된 박종철을 고문 치사한 수사관 2명에게 “당신 둘이 죄를 모두 뒤집어쓰면 1억원씩을 주고 가족생활을 보장하겠다. 조만간 가석방으로 꺼내 주겠다”는 회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당시 보안계장이 이부영씨에게 알려주면서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합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부영씨는 그 내부고발자가 ‘정의감이 강하고 굉장한 친구였다’며, ‘참 양심적이었고, 민주인사들에게 잘 대해줬다’고 말하지요.

이 대목에서 불편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1992년 2월 비전향 장기수 42명은 비전향을 이유로 30년 넘게 징역을 살리고 가석방과 감형에서 제외하고 무기한 독방에 넣는 등 인간 이하의 처우를 강요하는 사상전향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박원순 변호사 등을 대리인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합니다. 그러자 중앙정보부 대공국장 출신인 당시 법무부 장관 김기춘씨는 헌법소원을 주도한 저를 비롯한 비전향수를 다른 교도소로 분산 이감시킵니다. 저는 대구교도소로 이감되어 징벌방에 갇혔습니다.

보안과 지하에서 교도관이 “강용주씨 머리 길렀네, 짤라야겠군” 하면 “예, 자르세요” 했습니다. 거부하면 징벌의 빌미를 주거든요. 이송 보따리를 뒤져 물건을 압수하겠다면 그러라고 했습니다. 항의하면 덫에 걸려 징벌방에 끌려갈 수 있거든요. 그 교도관은 나를 운동장과 노역장 건너편에 있는 조그만 별채로 데려갔습니다. 창문조차 없는 ‘중벌자 수용 완전폐쇄 독거실’이었습니다. 거기엔 3명의 중징벌자, 3명의 정신이상자, 1명의 난동주모자를 수용하고 있었지요. “아무런 규정도 위반하지 않았는데 왜 징벌방에 넣었느냐”고 항의하는 나를 ‘지시 불이행’이라며 포승줄로 묶고 수갑을 채워 ‘개밥’을 먹게 했습니다. 어머니가 찾아와도, 민가협 회원들이 항의해도, 박계동 국회의원이 진상조사차 찾아와도 겨우 포승줄만 풀어주고 한 달 가까이 이 완전폐쇄 독거실에 저를 가두었습니다. 1992년 7월8일자 신문 기사입니다.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며 징벌방에서 전방을 요구하는 강씨에게 대구교도소 보안과장은 ‘여기에서 전방 갈 생각을 하지 말고 전향서를 쓰고 빨리 나갈 생각을 하라’고 전향서 쓸 것을 강요하고 전방을 아직 허가하지 않고 있다.”

제게 인간 이하의 가혹행위를 가한 대구교도소의 그 보안과장이 바로 KBS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6월항쟁의 ‘딥스로트’입니다. 1992년은 87년 6월항쟁으로 독재정권의 야만적 전향공작이 사라졌다고 여겨진 시기였습니다. 광주나 전주로 이감 간 사람들은 징벌방 수용이나 전향 강요를 겪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구교도소 보안과장의 손으로 전향공작을 당했습니다. ‘참 양심적이었고’, ‘민주인사들에게 잘 대해 준’ 바로 그 사람 손에서 말입니다.

90년대 중반, 최형우 내무장관이 ‘말’지 인터뷰에서 “고문하면 안 되죠” 하다가 김삼석 남매 간첩단 사건이 고문으로 조작됐다는 지적을 받자 “그건 간첩이니 다르죠”라고 대답한 게 기억납니다. 저를 가둔 보안과장도 이러한 이중잣대를 사용한 것입니다. ‘민주인사’에게 잘해 주지만 나 같은 ‘조작간첩’에게는 가혹행위를 해도 된다는 거지요. ‘애국’과 ‘반공’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가혹행위의 당사자가 의인으로 나오는 KBS 다큐멘터리는 고문과 가혹행위를 겪은 나 같은 사람에겐 상처를 덧나게 하는 일입니다. 담당 PD는 인터뷰에서 “내부고발자가 사상범과 학생들을 얼마나 가혹하게 다뤘는지 알고 있었다”며 “그는 가혹행위에 대해서 사죄의 말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내용은 “편집하며 시간상 뺐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말은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진실을 포기했다”는 말처럼 모순되게 들립니다. ‘딥스로트’에 대해 몰랐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알면서도 그랬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민주인사’에게 잘해 준 보안과장이 조작간첩에게 가혹행위를 하는 이중잣대가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 자연스레 통용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정의가 가끔씩만 이기는’ 불완전한 사회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닐까요?

가끔 이기는 정의를 위해 여전한 어둠과 부자유 가운데서도 저 푸른 감람나무를 바라봐야겠습니다.

<강용주 | (재)진실의힘 이사·아나파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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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명 연예인의 반려견이 이웃을 무는 개물림 사고가 발생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적이 있다. 충북 제천에서는 수렵을 하는 사냥개가 한 농가의 염소 19마리를 물어 죽여 재산상의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또한 지난달에는 충남 서천에서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중앙선을 넘은 차량 때문에 3명이 중상을 입었고, 차 안에 있던 반려견은 현장에서 즉사한 일도 있었다.

반려견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친근한 동물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외로움을 달래주는 역할을 하면서 우리는 이른바 ‘반려견 1000만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 교통단속을 하다 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반려견을 조수석이나 뒷좌석에 태운 채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그대로 방치한 상태에서 운전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열린 창문 밖으로 개가 머리를 내밀어 바람을 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심지어 반려견을 무릎에 앉힌 채로 운전하는 사례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모든 행위는 교통사고의 위험성을 높이는 행위이다.

도로교통법 39조 5항을 보면 ‘모든 차의 운전자는 영·유아나 동물을 안고 운전장치를 조작하거나 운전석 주위에 물건을 싣는 등 안전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는 상태로 운전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승합차 5만원, 승용차는 4만원의 범칙금을 부과한다. 영·유아에게 보호용 장비나 안전벨트를 장착하도록 규정한 것처럼, 동물을 차에 태우고 운행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 신설도 시급하다.

선진국의 경우 반려동물을 차에 태울 경우 안전벨트나 반려견 우리 등 안전장치를 장착하도록 시행하고 있으며, 많은 다른 나라에서도 의무화하는 추세이다.

운전석에 반려동물을 안고 운전하거나 안전장치 없이 반려견을 태우고 운전했을 때, 반려견이 갑작스럽게 돌발 행동을 하거나 호기심에 이리저리 움직일 경우 운전에 심각한 방해를 줄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행위들이 타인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주는 교통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이종성 | 경위·횡성경찰서 횡성지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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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탁상시계, 화재경보기 등에 부착된 위장형 카메라로 모텔·화장실 등에서 120명이 넘는 불특정 다수를 촬영한 2명이 구속됐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범죄’로 구속된 인원은 2011년 30명에서 지난해 155명으로 5년 사이 5배 이상 급증했고, 수법 또한 매우 교묘해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사용되는 불법 촬영기기는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카메라 탐지 장비 없이 육안으로 발견하기는 힘들고, 유포된 영상은 공유파일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가 개인이 피해 확산을 막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에서는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범죄’를 ‘불법촬영’으로 규정하고 아무런 규제 없이 수입·판매·구입되는 촬영기기에 대한 체계적 관리를 위해 수입·판매업자에 대한 등록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경찰에서는 다중운집시설에 대해 정기적인 점검 및 단속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10일 이상 소요되는 불법 촬영물 삭제 심의과정을 3일로 단축하고 수사기관이 요청할 경우 즉시 삭제·차단하는 이른바 ‘패스트 트랙(Fast Track)’ 제도도 시행할 예정이다.

한 피해 여성은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한강으로 가서 세상과 등져야 하나 고민했다”고 한다. 이처럼 불법촬영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리는 명백한 범죄행위다. 불법촬영 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강력한 예방과 단속을 실시하고, 불법촬영이 중대한 범죄라는 인식을 높이고, ‘호기심에 그랬다’는 말로 면죄가 될 수 없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유승목 | 순경·삼척경찰서 여성청소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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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넘게 결연을 맺은 남수단의 아이는 그동안 내전으로 인해 몇 번인가 소식이 끊겼다가 얼마 전 제3국에 있는 난민수용소로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후원단체를 통한 도움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하니 기존의 후원금을 어떤 방식으로 대체하겠느냐는 질문이 담긴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다른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엄마가 밤새 끙끙 앓는 바람에 한숨도 못 잤다며 더는 간병을 못하겠다고 그냥 가겠다는 간병인의 전화가 새벽부터 걸려온 참이었다. 무책임하게 도망가 버린 간병인에게 항의하면서 동시에 새 간병인을 구하는 와중에 내전으로 집을 잃은 남수단의 아이를 그래서 어째야 하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화가 잔뜩 난 상태로 후원에 대한 절차는 단체가 정한 방식에 따르겠다고 영혼 없이 대답하다가 문득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이는 무사한가요?”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을 가장 나중에 건네면서 목소리가 떨렸다. 전쟁으로 집을 잃은 아이에 대한 걱정보다 새롭게 결정해야 하는 행정적 절차가 더 번거로웠던 나는 사실 엄마에게도 화를 내고 있었다. 아무리 아파도 좀 참지. 간병인 구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데, 엄마는 밤새 왜 그렇게 앓았을까 원망 섞인 분노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던 것이다. 말기암 환자인 엄마의 통증보다 간병인의 피곤에 더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서늘한 덩어리가 목울대에 얹혀 전화를 끊고 비로소 나는 좀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입원했던 날 공교롭게도 보건복지부는 소위 ‘존엄사법’이라 불리는 ‘연명의료결정시범사업’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엄마는 물론 우리 가족 모두 연명의료는 하지 않기로 결심이 서 있었다. 연명의료로 2년이나 식물인간 상태에 머물렀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때는 연명이, ‘의학적으로의 삶’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작별할 수도 있던 아버지를, 의식도 없이 억지로 육체만 세상에 붙들어놓았다 보내고 난 후에야 우리는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리 가족은 다짐했다. 누구도 그렇게 보내지 않기로,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그렇게 보내지 말아달라고 서로가 서로에게 부탁도 했다. 그 약속은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의식이 있던 엄마는, 임종 직전의 고통 속에서도 거듭 그 의사에 변함없음을 밝혔다. 그러나 우리가 비장하게 눈물로 결심한 존엄은 지켜지지 못했다. 임종의 과정을 지키고 있던 의료진이 연명치료에 동의하지 않았다며, 사람은 살리고 보아야 하는 거 아니냐며 큰소리로 비난을 퍼부었던 것이다. 우리가 오랜 세월 어렵게 결심하고 다짐했던 존엄한 죽음은 졸지에 방치한 죽음이 되었다. 세상 마지막까지 살아 있는 것이 청각이라면서 그는 그 비난을 임종 과정에 있는 어머니 앞에서 퍼부었다. 그러므로 엄마가 세상에서 들은 마지막 말은 당신 자식들이 당신을 죽도록 방치했다는 비난일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는 우리의 울음이 그 비난 속에서 전달은 되었을까. 아버지의 연명치료를 결정하고 오래 마음 아팠던 것 이상으로 나는 그 의료진의 비난에 오래 가위눌릴 것이다. 그리고 그 가위눌림은 앞으로 존엄사를 선택하게 될 적잖은 이들이 짊어지고 가게 될 운명이기도 할 것이다.

삶은 과연 어떤 형태로 마무리 지을 때 그 존엄을 인정받을 수 있는 걸까.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사흘 후, 딸아이는 소아암 환우들에게 기부하기 위해 2년 넘게 기르던 머리를 잘랐다. 좋은 상태로 보내야 한다며 오래 가꾸고 다듬은 한 타래의 머리를 봉투에 넣으면서, 한 삶과 이별하고 죽음과 맞서 싸우는 다른 삶에게 위로가 될 무언가를 보내면서 나는 엄마와의 작별을 떠올렸다. 그 비난이 여전히 마음 아프지만 무엇을 선택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선택했는가 말고 누가 무엇이 삶의, 죽음의 가치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엄마는 누구보다 존엄하게 세상과 작별했다. 그리고 나도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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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 너머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대표의 목소리는 울분에 차 있었다. 가정폭력보호시설에 가해자가 침입했는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가해자 격리 등의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오히려 가정폭력 가해자를 옹호하고 비호했다는 것이었다. 참 어처구니없다 싶었는데 이어진 그녀의 말에 더 기가 막혔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과 대처는 어쩌면 이렇게 바뀌지 않을까요? 세상이 변하지 않으니 기자회견 구호가 30년 전과 똑같아요. 다르게 정해보려고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는지 몰라요.” 이럴 땐 분노보다 절망감이 앞선다.

올 상반기에만 4565명이 ‘데이트폭력’으로 검거됐다. 폭행, 스토킹, 온라인 성범죄 등 주로 여성들을 겨냥한 ‘젠더폭력’은 갈수록 심각한 이슈가 되고 있으나 가정폭력처럼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격리해 보호하는 조치도 없고 강력 대응할 법적 근거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출처: 경향신문DB

사건은 이랬다. 지난 2일 저녁 8시경, 한 가정폭력피해자 보호시설에 가해자가 ‘침입’했다. 그는 “자녀를 보기 전에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며 버텼다. 흔히 ‘쉼터’라고 부르는 보호시설은 단어 뜻과 달리 쉬는 곳이 아니다. 무자비한 폭력에서 탈출해 갈 곳 없는 피해자들이 최소한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받기 위해 찾는 피난처이자 삶의 마지막 보루다. 이곳에 가해자가 무단 침입한다는 것은 쉼터 거주자들에게는 공포와 위협이자 또 다른 폭력임을 의미한다.

그날 그 가해자가 보자고 했던 아이는 엄마와 함께 쉼터에 온 뒤 꿈을 꿨다고 한다. “꿈에서 몸에 개미가 자꾸 나와 옷을 열어보니 아빠가 나왔다”며 엄마에게 “너무 무섭다. 여기는 안전하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가정폭력에 대해 무지하고 무능했으며 피해자 보호라는 책무를 방기한 채 오히려 가해자 편에 서서 사태를 악화시켰다. 피해자와 활동가가 보호시설 위치를 노출시켰다며 근거 없는 비난을 하는가 하면, “가해자가 자녀만 보면 돌아갈 사람이다”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며 가해자를 격리시켜 달라는 보호시설 측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은 한 수 더 떴다. 가해자에게 “피해자들이 빠져나가야 하니 이동해 달라”고 ‘부탁’까지 했단다.

결국 격리조치돼야 할 가해자는 남고 11시가 넘은 한밤중에 피해자가 공포에 떨며 피신해야 했다. 활동가들이 현수막으로 가해자의 시야를 가리며 최소한의 안전조치를 취하는 동안 가해자는 활동가들의 사진을 찍으며 위협했지만 경찰은 이마저도 방치했다.

가정폭력특별법이 제정된 지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피해자 보호시설을 설치한 지는 30년이 흘렀다. 지난 5년간 신고건수는 20배가량 늘었지만 제대로 사법처리된 것은 극히 드물다. 여성단체들은 최근 ‘1OF10000TO10000OF10000’이란 암호 같은 숫자를 새긴 팔찌를 나눠주며 가정폭력 추방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 1만명 중 신고한 이는 130명에 불과하며 이 중 1명만이 구속되는 현실에서 범죄자 모두 제대로 처벌받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하는 간절함을 담은 것이다.

가정폭력에 대응하는 경찰의 안이하고 미흡한 조치로 피해를 신고한 여성이 가해자에게 더 큰 보복을 당하는 일은 가정폭력특별법이 제정된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이번 사건 이후 여성단체가 전개하고 있는 ‘#경찰이라니_가해자인줄’이라는 해시태그 운동에는 10만명가량이 동참해 자신이나 이웃이 당한 사례를 줄지어 고발하고 있다. 이웃의 가정폭력을 신고했더니 현장에 온 경찰이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저 사람 원래 자주 그러는 사람이고 여자도 드세고 자꾸 대들어서 그렇다”고 말하는가 하면 신고한 이웃에게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가해자를 전혀 제지하지도 않았다는 등의 폭로가 잇따르고 있다.

경찰의 안이한 인식과 대응, 가해자에 대한 미진한 처벌은 현행법의 한계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폭력 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고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가정폭력은 가정 내의 경미하고 사소한 다툼이라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지 않고서는 이런 법 조항이 만들어질 수 없다. 이 경우 가정폭력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기란 더욱 어렵다.

가정폭력은 사적이고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성별 권력관계에 근원을 둔 성차별이며 젠더폭력이다. 가정폭력이 심각한 이유는 신체적으로 때리고 공격할 뿐만이 아니라 여성의 온 삶을 통제하고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을 훼손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오늘 쓴 글 중 새로운 관점이나 이론은 없다. 지겹지만 30년 동안 제기된 주장을 고스란히 다시 담았다. 여성단체들이 외쳐온 것처럼 “가정폭력은 전혀 사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며 인간적 삶과 존엄한 삶의 복원을 위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세상이 이런데 민주화가 됐다고, 촛불혁명을 완수했다고 자축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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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을 앞둔 공무원의 사회적응 능력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공로연수제도가 예산만 축내며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2012~2016 국가직·지방직 공로연수 현황’을 보면 지난해 국가직 1752명, 지방직 3658명에 대해 공로연수 명목으로 2502억원이 지출됐다. 1인당 4626만원으로 각종 수당을 제외한 금액이다. 정규직 근로자의 평균임금보다 높다. 2014년에는 1821억원(4575명), 2015년에는 2097억원(4975명)이 지출된 것을 포함해 최근 3년간 6420억원에 달한다.

정년까지 1년이 남지 않은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재교육은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사정을 감안할 때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공무원 재교육 프로그램이 퇴직 전 ‘놀고 먹는’ 휴양 수단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인사혁신처 예규에 따르면 연수자들은 각급 교육기관에서 60시간 이상의 퇴직 준비교육 계획을 짜고 참여하도록 돼있으나 대부분 참여하지 않는다. 의무사항이 아니라 권장사항이기 때문이다. 등산이나 다니며 논다는 말이 파다하다. 이를 증명하듯 각 부처가 지원한 연수비 지원 내역을 보면 헬스클럽, 요가, 노래교실 등이 있다. 사실상 공무원이 세금으로 유급휴가를 간 것이다. 개인적인 취미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라고 세금을 지원해 준 것은 아닐 것이다. 공로연수제는 이름을 달리해 공기업과 공공기관에서도 시행되고 있으나 실태는 대동소이하다.

이뿐 아니다. 공로연수제도는 ‘인사적체 해소’ 방안으로도 악용되고 있다. ‘후배에게 길을 터 준다’는 명분을 들어 퇴직을 앞둔 공무원을 강제연수 보내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강제연수 보내려는 지자체와 이를 거부하는 공무원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공무원 공로연수제도의 부실한 관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사혁신처는 “내실화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세금의 씀씀이를 줄이려 허리띠를 조이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놀고 먹으며 낭비하는 일은 묵과할 수 없다. 베이비붐세대의 은퇴로 공로연수제 대상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정부는 입에 발린 말로 얼버무리려 해선 안된다. 퇴직공무원의 놀이터로 전락한 공로연수의 전면개편에 당장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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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과 폭우가 교차하는 8월 하순의 월요일이었다. 오전에는 흐렸지만 오후에는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높게 걸려 있다. 게다가 공기도 선선해져 가을에 들어섰다는 느낌이 물씬 났다. 늦은 오후에 솔부엉이를 탐조하러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꾸룩새연구소’를 찾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마을 주변의 새들을 관찰하고 기록해온 정다미 소장과 그의 어머니인 부소장이 운영하는 연구소이다. 하루가 다르게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는 파주이지만 그래도 꾸룩새연구소와 그 주변은 아직도 전형적인 농촌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솔부엉이. 정다미 꾸룩새연구소 소장 제공

4월 초부터 제비를 시작으로 후투티, 솔새, 숲새, 꾀꼬리, 솔부엉이 등의 여름철새가 순서대로 고향인 파주로 돌아온다. 솔부엉이는 5월 말에 우리나라에 도래하는데 다른 여름철새에 비해 늦게 오는 편이다. 늦게 번식을 시작하는 새에도 자연은 기회를 준다. 솔부엉이는 나무 구멍에서 둥지를 틀 수도 있지만 번식을 마친 까치의 빈 둥지를 재활용하기 좋아한다. 솔부엉이는 보통 6월 초에 산란을 시작하여 8월 초면 이소한다. 솔부엉이의 새끼는 부모의 둥지를 바로 떠나지 않고 가을에 이주할 때까지 부모와 같이 지낸다. 그래서 8월 하순 즈음은 어미와 새끼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아직 어두워지지 않아 꾸룩새연구소 주변을 둘러보았다. 꾸룩새연구소를 내려다보는 참죽나무 두 그루가 눈에 띈다. 솔부엉이가 이 나무의 죽은 가지를 횃대로 이용하기 좋아한다고 설명해 준다. 참죽나무 뒤로는 바로 장명산과 연결되어 있다. 꾸룩새연구소 앞쪽으로는 논이 넓게 펼쳐져 있고, 산도 있다. 장명산이나 앞에 있는 산은 참나무와 밤나무가 우거져 있고, 여기에는 사슴벌레, 하늘소, 나방 등과 같은 대형 야행성 곤충이 많이 살고 있다. 솔부엉이는 매년 이 숲에 찾아와서 대형 야행성 곤충을 잡아먹으면서 번식을 한다. 솔부엉이의 발톱은 다른 부엉이처럼 날카로운 고리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곤충은 미끈한 외골격으로 보호받고 있어서 이런 발톱으로 곤충을 잡으면 미끄러져 도망가기 쉽다. 그래서 솔부엉이의 발에는 뻣뻣한 털이 잔뜩 나있다. 이런 털이 있는 발톱으로 잡으면 곤충은 쉽게 도망가지 못한다. 그래서 솔부엉이의 ‘솔’은 발톱에 있는 뻣뻣한 털에서 유래한다.

이날 꾸룩새연구소에서 경험한 탐조는 특별했다. 탐조는 보통 망원경이나 필드스코프를 이용하여 멀리서 새를 관찰한다. 그러나 꾸룩새연구소 소장은 솔부엉이를 우리 가까이 불러들일 생각이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연구소장은 양손을 모아 “호~호~” 하며 솔부엉이 소리를 흉내 냈다. 그러나 솔부엉이의 화답은 없었다. 계속 불어봐도 반응이 없어 우리는 망원경을 들고 앞산으로 이동하였다. 솔부엉이가 번식했던 까치둥지에서도 솔부엉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직 이주할 때가 아닌데…’ 하며 살짝 걱정이 스쳐지나갔다. 그때 갑자기 우리 머리 위를 지나 숲속으로 새가 날아갔다. 그리고 “호~호~” 하고 소리를 냈다. 연구소장은 반가워서 같이 화답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시 꾸룩새연구소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솔부엉이를 불렀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솔부엉이는 꾸룩새연구소 앞의 전봇대 위에 내려앉아 우리를 경계하듯 계속 소리를 냈다. 이때 또 다른 솔부엉이 한 마리가 날아와 참죽나무에 내려앉았다. 어미 솔부엉이 소리를 듣고 온 새끼 같았다.

우리는 망원경으로 전봇대 위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전봇대 위에 검은 물체가 있지만 주위의 어둠으로 스며들어 정확하게 구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끔뻑끔뻑하는 눈을 보니 솔부엉이가 분명하다. 옆에서 다시 “호~호~” 소리를 내며 솔부엉이를 불렀다. 그런데 갑자기 솔부엉이가 전봇대에서 뛰어내려 내 앞으로 날아왔다. 순간 망원경은 날아오는 솔부엉이로 가득 차서 마치 나를 덮치려는 것 같아 깜짝 놀라 물러섰다. 다행히도 솔부엉이는 우리 머리 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전봇대로 날아갔다.

솔부엉이 같은 올빼밋과 새들은 번식을 할 때 영역을 가지고 있다. 영역을 보유하고 있는 새는 그 영역에 존재하는 자원을 독점할 수 있다. 그러나 영역을 유지하는 일은 비용이 따른다. 영역 보유자는 끊임없이 자기의 영역을 다른 새들에게 알리고, 침범하는 새를 쫓아내야 한다. 새들은 주로 소리를 이용하여 영역행동을 한다. 솔부엉이의 “호~호~” 소리는 바로 영역을 주장하는 신호이다. 만약 영역 내에서 다른 솔부엉이의 소리를 들으면 영역 보유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바로 침입자를 찾아 나서고, 소리로써 대응한다. 침입자가 물러서지 않을 경우 싸움으로 악화될 수도 있다.

영역을 보유한 새는 영역 밖에서 발생하는 소리에 대해 점차로 구분하여 반응한다. 예를 들면 이웃하는 새의 소리에는 처음에는 민감하게 대꾸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습관화(habituation)되어 덜 공격적으로 된다. 심지어 반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꾸룩새연구소 근처에 사는 솔부엉이는 지난 몇 주 동안 매일같이 불러도 어김없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것은 솔부엉이가 경계를 게을리할 수 없는 요인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새끼의 존재가 그런 요인이 될 수 있다. 새끼가 침입자의 소리를 듣고 다가간다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어미는 침입자의 소리가 들리면 매번 확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직 이 가설을 검증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날은 여름밤 탐조의 백미였다.

<장이권 | 이화여대 교수·에코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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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를 적어보자. 연상된 단어는 당신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당신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해외여행, 휴가, 신난다” 등이 먼저 떠오를 수 있다. 하지만 해외 출장이 잦은 사람이라면, “시차, 피곤하다, 울고 싶다” 등이 먼저 떠오를지도 모른다.

■ 저마다 다른 뇌 속 사전

이처럼 단어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데 실험을 통해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보트, 호수, 물, 시내”처럼 서로 관련된 단어들의 목록을 피험자에게 보여주고 기억하게 하는 실험을 생각해보자. 잠시 후 목록에 있던 단어와 없던 단어를 섞어서 보여주면서, 목록에 있던 단어만 고르게 한다. 그러면 목록에는 없었지만, 목록에 있었다고 잘못 기억하는 단어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예컨대, “물, 강, 컴퓨터”를 보여주면 목록에 있었던 “물”뿐만 아니라 “강”도 목록에 있었다고 응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사람들에게 “강”은, “강”이 목록에 없었다고 생각한 사람들보다 “보트, 호수, 물, 시내”와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런 차이는 뇌 활동에도 나타난다. 측두엽의 앞쪽 끝부분은 단어의 의미를 처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작년에 출간된 한 연구에서는 피험자들이 단어를 하나씩 보는 동안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활용해서 측두엽의 앞쪽 끝부분의 활동을 관측했다. 그리고 목록에 있는 단어를 볼 때의 뇌 활동과 목록에 없는 단어를 볼 때의 뇌 활동이 얼마나 비슷한지 비교했다. 연구자들은 두 경우의 뇌 활동이 비슷할수록 목록에 없던 단어를 목록에 있었다고 착각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자들은 이 방법을 사용해서 사람마다 뇌 속에서 단어들이 다르게 표현됨을 알 수 있었다.

■ 경계의 언어

필자는 심리학, 생물학, 인지과학, 인공지능 등 여러 분야들이 얽혀있는 학문인 뇌과학에 종사하면서, 뇌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과도 자주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보니 사람에 따라 단어의 뜻이 다른 상황을 자주 경험한다.

“기억”을 예로 들어보자. 일상적인 상황에서 “기억”이라고 하면, 어제 있었던 일, 학창시절에 있었던 일처럼 과거 사건에 대한 기억을 의미한다. 하지만 심리학이나 뇌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필요한 내용을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작업 기억, “우리나라의 수도는 서울”처럼 말로 진술할 수 있는 지식에 대한 기억, 자전거 타기처럼 행동에 대한 절차 기억 등 여러 종류의 기억이 모두 “기억”의 의미에 포함된다.

한편, 신경세포 수준의 뇌 활동을 연구하는 뇌과학 전공자라면 “기억”의 의미는 훨씬 더 포괄적이다. 신경세포에 전해진 입력이 신경세포의 구조, 유전자 발현 등에 영향을 미쳐서 나타난 신경세포의 현재 상태에 가깝다. 신경세포의 상태는 신경세포의 작동 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컴퓨터에서는 기억장치와 처리장치가 구분되어 있는 반면, 뇌에서는 기억장치와 처리장치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단어의 용법이 다른 경우도 있다. 신경세포들이 서로 연결된 신경망에서는, 신경망의 한 부분을 활성화시키면 이 부분과 강하게 연결된 부분들이 연쇄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다. 패턴 속의 일부 정보(예: 비행기)만으로도 패턴 속의 나머지 정보들(예: 해외여행, 휴가)이 연달아 활성화된다는 의미에서 이 과정을 패턴 완성이라고 부른다. 패턴 완성은 기억 회상의 원리이기에 기억의 회상과 동시에 일어난다. 하지만 행위의 주체를 염두에 두는 사고에 익숙한 우리는 “기억을 회상함으로써 (주체의 의도 때문에) 패턴 완성이 일어난다”고 잘못 말하기도 한다. 이런 표현은 주체를 염두에 두는 사고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기 전까지는 바뀌기 어렵다.

말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한 분야에서 중요한 단어가 다른 분야에서는 논의되기 힘들 때도 있다. 예컨대 뇌과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하기 전부터 서구 철학에서는 의식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의식은 본질적으로 내면적이고 주관적이다. 어떤 사람이 사고로 뇌가 손상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깨어있음을 알릴 방법이 전혀 없다고 해도, 그가 생각하거나 느낄 수 있으면 의식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객관적인 관측과 실험을 중시하는 과학에서는 이토록 내면적이고 주관적인 특성이 강한 의식을 다루기가 어려웠다. 많은 사람들이 의식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의식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토론을 하기 전에는 단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좋다고들 한다. 하지만 의식의 사례는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다르면 단어를 정의하는 것부터가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단어의 의미를 규정하는 것 자체가 세상을 보는 특정한 방식을 규정하는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다. 분야 간의 교류가 늘어나는 요즘에는, 정의에 연연하다가 의미 있는 논의를 못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다른 정의에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되, 소통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준으로 용어를 정하기도 한다. 의식을 연구하는 토노니, 공감의 부정적인 효과를 다룬 폴 블룸, 김재인 교수의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에서 이런 사례를 보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엄밀한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전문가들이 이럴 정도라면 일상적인 소통에서는 말해 뭘 할까. 정확한 소통을 위해서 가능하면 일반적인 용례를 따르는 것이 좋겠지만, 각자의 경험에 따라 ‘일반적인 용례’라는 것도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말이 통해서 뜻이 통하지 않는 줄 모르지 않도록,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달을 가리지 않도록,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과 뜻이 통하는 말을 하고 있는지 한번 더 돌이켜본다.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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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 추리소설계의 황제라 할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들을 섭렵하고 있는데, 마쓰모토의 작품 중에는 픽션 외에 논픽션들도 꽤 있습니다. 지금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처럼 미궁에 빠진 실제 사건을 추적하여 재구성한 것이죠. 그 가운데 <두 사람의 진범>이란 미스터리 논픽션이 있습니다. 살해 용의자로 체포한 사람이 죄를 자백했지만 공판에 가서는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며 무죄를 주장합니다. 사건이 떠들썩해지자 진짜 범인이 화가 나서 자수합니다. 하지만 경찰은 끝까지 애초의 용의자를 진범으로 밀어붙입니다. 경찰의 위신을 지키고 조작한 증거물들을 감추기 위해서 말입니다. 결국 ‘진짜 진범’이 형을 받게 되었지만 경찰은 그 뒤로도 자신들이 ‘만든 진범’을 한동안 석방하지 않습니다.

가끔 방송으로 억울하게 옥살이하고 몇 십 년 만에 누명을 벗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봅니다. 공권력의 강압적이고 무리한 수사로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과 그 가족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가정이 무너진 채 비참하게 살아온 것이죠. 증거가 없고 정황만 있는 상황이거나 오리무중으로 시간만 흘러 상부의 질책이 내려올 때, 적당한 누군가를 사건에 꿰맞춰 협박과 고문으로 자백을, 그렇게 범인을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속담에 ‘늦게 잡고 되게 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늑장 부리다 다급해져 함부로 서두르거나 애를 많이 먹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여기서 ‘되게 친다’는 ‘심하게 때린다’는 뜻 같지만, 사실 ‘(사건이/범인이) 되게 때린다’는 것이 숨은 맥락입니다. 당장의 자기 면피를 위해 범인 아닌 사람을 범인으로 모는 일이 있었을 겁니다. 일상의 평범한 사람을 사건의 지도와 동선에 올리고 구색 맞춘 증거와 시나리오대로 강제로 자백하게 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닌 오로지 어제의 일이어야만 하겠지요. 죄가 되게 만드는 건 공권력 범죄니까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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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기구로 한 일생을 요약할 수도 있겠다. 가갸거겨를 쓰고 구구단을 외울 무렵엔 연필이다. 이 컴컴한 지하자원은 그 품질이 울퉁불퉁해서 가끔 침을 묻혀야 했다. 중학교 땐 만년필이었다가 손가락이 제법 굵어지면서 모나미 볼펜을 잡았다. 귀퉁이에 볼펜똥을 닦으며 공책을 갈아치웠다. 칠판을 등지자 꿈도 떨어져 나갔다. 건조하고 메마른 일상의 연속이었다. 크게 변화할 일도 꾸중 들을 일도 없는 시기. 습관은 딱딱해지고 고집은 힘이 세졌다. 그동안 각종의 볼펜을 사용했고 드물게 만년필을 가까이했다. 이제 육필은 멀어지고 필기는 손가락 담당이다. 쓰는 게 아니라 구타하듯 자판을 때린다.

꿈 대신 꽃을 좇아 산에 출몰하기를 여러 해. 골짜기의 기운을 쬐고 꼭대기에서 고개를 숙이며 먼 곳을 본 효과일까. 부드러운 것은 부드러운 것으로 대접하는 게 마땅하고 옳을 것 같았다. 몸에서 흘러내리는 생각을 받아 적는 것으로 부드러운 붓을 택했다. 요즘 이동할 때를 제외하고 의사표시는 주로 붓으로 한다. 잘 쓸 수는 없지만 그저 많이 쓰고 싶다는 욕심은 낸다. 먹이나 벼루는 그런대로 갖추었는데 마음에 드는 붓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마음에 착 감기는 애인 같은 붓은 어디에 있는가.

우연한 기회에 유필무 붓장을 알게 되었다. 마침 가평의 취옹예술관에서 전시회를 한다기에 단풍 나들이를 겸해서 찾아갔다. 족제비나 토끼의 털만 알았는데 칡, 억새 등 식물을 소재로 한 붓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천하의 기운이 붓 끝으로 고스란히 수렴되고 있는 듯했다. 붓대에 조각을 넣은 것 하나하나가 예술이었다. 그중에서 갈대로 만든 붓에 마음이 쏠렸다.

갈대는 갈대. 왜 갈대는 이름이 갈대인가. 왜 갈대는 이 시기에 누군가의 가슴을 깊게 찌르는가. 왜 갈대는 흐르는 강가에 늘 우두커니 서 있는가. 왜 갈대는 항상 저런 특별한 동작을 취하는가. 갈대붓을 만나고서 쬐끔 알게 되었다. 지금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허공에 ‘제 조용한 울음’을 필기하는 중이란 것을! 갈대, 벼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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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박근혜’ 하나로 돌리면서 우리의 정치의식은 또 후퇴하고 있었다. 단 하나의 예만 들어보자. 밀양의 송전탑이 박근혜의 작품인가, 또 박근혜 아닌 전임정부들은 정말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았을까? 김대중은, 노무현은? 그렇다면 농민시위에서 경찰에 맞아죽은 농부는, 태안반도는 어찌 가능했을까?

이명박 정부하에서 우리는 전임 정부와의 연속성에 대해 자각하게 됐다. 괴물정부 하나의 존재에 분노하면서, 그들이 하는 수많은 일들이 전임정부에서 결정되고 후임 이명박 정부에서 집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명박의 실정을 비판하는 것은 그 이전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실정과 반민주성을 비판하는 것과 같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그렇고, 제주 해군기지가 그렇고 정보통신법이 그렇고 자본 통상법이 그렇고 나아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그렇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며 지난해 10월29일부터 시작된 촛불집회 1주년을 맞아 지난 28일 서울 광화문광장 등 전국에서 이를 기념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에 나란히 놓아둔 종이컵들에서 촛불이 타오르는 가운데 한 시민이 ‘촛불은 계속된다’고 적힌 종이컵을 놓고 있다. 이준헌 기자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은 유신의 악령이 깃든, 웬 야만과 변종의 지도자 박근혜와 그의 옆에 인의 장벽을 치고 있는 꼴통 소수가 문제였다. 새누리당도 들러리인 양 취급됐다. 그리고 심지어, 자본들- 박근혜의 배후에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와 노동정책을 좌지우지했던 자본은 눈에서 멀어졌다. 노동자 투쟁만이 자본의 그림자를 언뜻언뜻 보여줄 뿐이다. 그런 현실에 대한 쉬운 표현이 바로 ‘적폐’란 단어다. 아이러니는 이 단어를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씨가 처음 쓰고 우리는 그 단어의 사용을 조롱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지금 그 단어가 전부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프레임이 향할 방향은 어디인가? 이명박 시절에 그 전임 김대중·노무현의 자유주의정부의 공과를 깨닫게 됐다면, 박근혜 시절에서는 고작 차라리 전임 이명박이 더 낫다거나(실제로 그런 말도 했었다) 혹은 그러니 박근혜와 그 정치일당이 아니면 다 괜찮다는 앙상한 결론이면 될까?

내가 박근혜 정부하에서 바란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전과 14범 이명박 전 대통령 앞에서 처절하게 선거민주주의의 한계를 목도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바로 앞선 자유주의정부의 공과를 함께한다는 점도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각성과 절망의 상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 어떻게 할 것인가와 누가 주체가 될 것인가는 더욱 오리무중이었다. 자유주의정치가 민주주의를 배반했던 30년의 역사를 꿰뚫어보면 희망의 그림자는 더욱 멀어져갔다.

우파와 자유주의 세력이 함께 망친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적인 민주주의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바꾸어 나갈, 즉 민주주의의 민주화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들이 주체라는 믿음은 없었다. 그것이 노무현 정부의 말기였다. ‘진보개혁세력의 위기.’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다. 우리는 이제 알 만큼 안다. 우파의 국가통치철학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선거만 민주주의가 얼마나 무늬만 민주주의인지. 민중과 노동과 결합하지 않은 정치엘리트, 선거엘리트, 운동엘리트들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그러니 박근혜 정부에서 내가 기대했던 것은 이것이었다. 박근혜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래서 유신체제만 벗어나면 된다는 생각으로 다시 1980년, 혹은 87년을 재탕하지 말길. 좌절과 절망을 모아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잡길. 진정 민중과 노동자와 서민의 이해가 정치적인 힘이 되길.

하지만 촛불이었다. 짱돌도 아니고 스크럼도 아닌 촛불을 들자고 했다. 촛불은 절묘하게 법과 제도와 타협하면서 박근혜를 퇴진시켰다. 그 프레임은 결국 우려한 대로, 박근혜를 모든 ‘적폐’의 화신으로 삼는 것이었다. 이제 박근혜가 남긴 적폐를 청산하자고 한다. 그러나 집권세력은 구자유주의세력이 공유하는 적폐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와 한·미 FTA에 대한 모호함, 노동에 대한 모호함, 미국에 대한 모호함으로 나타나고 있다. 촛불은 자유주의정치를 위기에서 구출하였다. 그러나 과연 민주주의는 위기에서 구출하였을까? 촛불 1주년을 맞아, 의문은 이 지점이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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