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기업체가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순양함 돈스코이호를 발견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보물선이라는 흥미로운 소재 때문이겠지만 많은 언론이 이를 문제의식 없이 보도하면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돈스코이호 발견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경향신문은 2000년 12월 “돈스코이호가 확실한 선체 발견”이라고 보도했다. 2003년 6월3일에는 서울 유명 호텔에서 공식 기자회견까지 열렸다. 고위공직자까지 참석한 이 행사에서 침몰한 돈스코이호 선체 사진은 물론 동영상까지 모두 공개됐고, 이 역시 대부분 언론에 보도됐다. 따라서 ‘113년 만에 돈스코이호 발견’이라는 보도는 명확한 오보다.

러시아 발틱함대의 수송함 돈스코이호의 침몰전 모습

특히 중요한 것은 이번 돈스코이호 발견 소식과 과거 발견 보도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과거 돈스코이호 탐사는 정부(해양수산부)의 공식 매장물 발굴 허가를 통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해양연구원이 한 것이다. 초기 탐사자금을 지원한 동아건설은 당시 세계 굴지의 해양전문 플랜트 기업으로 인정받았다. 동아건설 부도로 자금지원이 끊기자 서울지방법원 파산부가 탐사자금을 계속 지원해 결국 돈스코이호를 찾았던 것이다. 당시 돈스코이호 탐사는 매우 공식적인, 사실상 정부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탐사는 전혀 다른 것 같다. 정부의 매장물 발굴 허가도 없었고, 탐사기관도 중국의 한 민간업체로 알려졌다. 탐사를 주도하는 기업 역시 공인될 정도의 기업이 아니고, 탐사비용을 비트코인을 판매해 마련한다는 보도까지 있다. 이것이 과거 돈스코이호 탐사와 지금 탐사가 다른 점이다. 이것은 요즘 돈스코이호를 투자 관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염두에 둬야 할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신일그룹이 지난 15일 오전 9시 50분께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서 1.3㎞ 떨어진 수심 434m 지점에서 돈스코이호 선체를 발견했다고 17일 밝혔다. 러시아 발틱함대 소속의 1급 철갑순양함 드미트리 돈스코이(Dmitri Donskoii)호는 1905년 러일전쟁에 참전했다가 일본군 공격을 받고 울릉도 인근에서 침몰했다. 2018.7.17 [신일그룹 제공=연합뉴스]

돈스코이호가 보물선이라는 주장은 한국해양연구원에서 비롯됐다. 한국해양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일본과 러시아 문헌을 연구해 ‘보물선’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일본은 오래전부터 러일전쟁 때 침몰한 이 배를 찾기 위해 상당한 자금을 투입해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은 그 배가 우리 영해에 침몰됐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 측에 공동탐사를 제의하기도 했다.

1999년 우리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라는 암울한 사회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보물선 발굴 허가를 남발했고, 한국해양연구원은 국책연구기관 통폐합을 극복하고 해저탐사 기술을 축적하기 위해 탐사를 맡았다. 마침 그해 영화 <타이타닉>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것도 한몫했다. 이 과정에서 부도 난 동아건설은 재기의 발판을 삼으려 시도했고 이를 투기세력이 이용했다. 이런 복잡한 이해관계가 돈스코이호 탐사에 내재된 것이다. 기자가 쓴 책 제목이 <보물선 돈스코이호를 쫓는 권력 재벌 탐사가>라고 정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돈스코이호에 실제 150조원어치의 금괴가 실려 있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단지 한국해양연구원의 문헌조사와 이를 바탕으로 동아건설이 70억원을 투자하려 했고, 서울지법 파산부 판사가 이를 면밀하게 검토해 탐사비용을 승인했다는 사실로 유추해 볼 뿐이다.

기자는 돈스코이호를 실제 탐사·인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이미 한국해양연구원은 이를 통해 상당한 해저탐사 기술을 축적했을 것이다. 해저탐사 기술은 미래 자원개발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분야다.

물론 여기에는 소유권을 주장하는 러시아와 국제법적인 문제, 유네스코 해저유물보호협약 등의 검토가 뒤따라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돈스코이호 탐사를 단순히 보물사냥꾼, 혹은 투기 시각으로 치부하는 것 역시 옳지 못하다. 돈스코이호 이야기는 철저하게 역사(문헌)와, 과학(심해저 탐사)을 바탕으로 한 흥미진진한 스토리(문학)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형의 금괴보다 더 소중할 수 있다.

<원희복 선임기자·<보물선 돈스코이호를 쫓는 권력 재벌 탐사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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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은 내게 남자 어른의 과일이었다. 무거운 수박을 번쩍 들고 어딘가로 갈 수 있는 사람은 가족 중 아버지뿐이었으니까.

삼복에 접어들었다. 아직도 농촌에서는 초복이면 웃어른께 수박 한 통을 사서 전하며 인사를 올린다. 복날을 여름 명절처럼 챙기는 전통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성하(盛夏)의 맛’이라고도 하는 이 수박이 요즘 위태롭다. 식구가 많았던 우리집에서 수박 한 통을 식구들이 골고루 먹는 방법은 화채를 만드는 것뿐이었다. 잘라 먹었다간 한 사람당 두어 쪽도 돌아가지 않는다. 사올 때 맛본다고 세모나게 잘라낸 부분을 얻어먹는 것이 막내인 나의 특권이었다. 화채에 넣는 사이다도 가욋돈이 드니 사지 않고, 숟가락으로 수박을 긁어 설탕을 뿌리고 얼음을 더한 수박화채로 주로 먹었다.

요즘은 반대다. 식구가 너무 없어서 수박 먹기가 부담스럽다. 한 통 사서 다 먹으려면 며칠간 열심히 먹어야 하고, 수박껍질을 버리는 데에도 돈이 든다. 대형마트에서는 수박 반통 판매 수준을 넘어 아예 8분의 1쪽 정도로 잘라 전용 용기에 담아 팔고 있다. 1인 가구의 증가와 생활양식이 변하면서 수박농가에서도 고민이 많다. 큰 수박(10㎏) 한 통을 5000원에 내놓아도 선뜻 들고 가지 않는 세상인 것이다. 그래서 크기가 작은 과일의 생산을 독려하고, 아예 한 손으로 쏙쏙 집어먹을 수 있는 대체작물을 찾으라고 한다. 근래 사과처럼 깎아 먹을 수 있는 작은 수박인 ‘애플수박’ 재배도 많이 늘어났다. 예전엔 크게 키우라 했는데 요즘은 작게 키우라 한다. 수박은 무거운 작물이어서 상차와 하역 작업에 엄청난 힘이 들어간다. 그러다보니 개별 농가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워 포전거래(밭떼기 거래) 형태가 많다. 그러면 업자들에게 고용된 이주노동자들이 수박을 나르고 싣는 작업을 한다.

2016년부터 농수산물시장에서 수박은 하차 거래가 의무화됐다. 예전에는 트럭에 싣고 온 그 상태에서 경매를 하는 상차 거래였다. 이제는 산지에서 처음부터 선별해 옥타곤박스라고 부르는 대형 박스에 넣어 보통 ‘빠레트’라고 부르는 ‘팰릿’에 얹어 경매에 부친다. 수박만이 아니라 점점 더 많은 농산물의 하차 거래가 의무화되고 있다.

문제는 박스 값이나 팰릿 값 같은 물류비 발생을 생산자들이 감당 못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물류보조비가 조금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소비부진과 수입 과일 증가로 경쟁이 가혹할 정도로 치열하다보니 수익률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 이런 마당에 물류의 현대화라는 것도 생산자들에게는 부담일 뿐이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이제 과일과 농수산물도 크기 경쟁을 하지 말고 당도와 맛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시대라고 한마디씩 보탠다.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 수박의 경우 크기가 작으면 그만큼 손이 많이 간다. 열매를 솎는 적과 작업의 방식도 달라져야 하고 처음부터 모종 심는 것도 다르다. 시간과 손이 더 많이 필요하단 뜻이다.

농촌의 일손은 이제 철저히 임금노동 체계다. 특히 시설원예 작물은 이주노동자들이 다수다. 농가 입장에서는 사람 한 명을 더 고용하면 그만큼 수익률이 저하된다. 최저임금 인상 논의에서 농촌 현장도 차등 적용 대상으로 해달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크기가 중간 이하인 수박의 값을 더 쳐주겠다는 보장도 없으니 혼자서 나설 수도 없다. 수박의 속내가 복잡하다. 쪼개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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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화된 폭력과 ‘혐오’의 언어, 피해의 폭로, 극단적인 미러링과 그것을 구실 삼은 반격. 섹스와 젠더가 전쟁터 같다. 하지만 그 싸움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페미니즘의 역사는 바로 그 싸움의 역사다. 싸움이 왜 특정한 노선을 취하는가를 살피면서 파악해야 할 것은 여성들이 무엇을 말하는가이다.

오늘 여성들의 성에 대한 인식은 바뀌었지만, 성적 자기결정권, 임신중단을 비롯한 재생산 자율권, 성소수자 인권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애와 섹스는 그야말로 일상적 권력투쟁의 지뢰밭이다. 여성은 여전히 대상화되고, 이젠 그 대상화에 대해 알게 됐으므로 몸을 어떻게 가꾸고 사용해야 할지를 주체적으로 궁리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인다. 신자유주의가 개인주의와 다양성의 가치를 교묘히 포획하여 구축한 경쟁구도에서, 남성 특권의 부분적 축소는 막연한 억울함으로 경험되고 여성을 비롯한 약자를 향한 분노로 표출되기 쉽다. 한편 인터넷과 모바일 플랫폼, 카메라 기술의 발전으로 다양한 디지털 성범죄가 현실 깊숙이 침투했고, 디지털 음란물 시장에서 여성을 소비하는 폭력은 막대한 이윤을 낳는다.

여전한 물리적 폭력, 제도적 불평등의 문제에 더해져 증폭되는 위협과 무력감에 여성들이 맞대응하고 있다. 지금 여성들은 여성으로 사는 삶의 불평등과 부조리한 위협을 전면적으로 대대적으로 말하는 중이다. 이는 여태껏 전개되어 온 페미니즘 운동의 한계를 돌아보는 동시에, 강남역 10번출구 사건 이후 시위에서처럼 현재의 요구를 표현하고 돌파구를 마련할 필요성에 기인한다. ‘남성혐오’ 사이트로 알려진 메갈리아, 워마드는 여성들이 이 시대의 여성혐오 문화에 대응하면서 인터넷상에서 만들어냈던 공간이다. 성피해자로 신분을 노출하는 고통을 불사하고 성피해 사실을 폭로한 일련의 여성들은 미투 운동을 촉발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최근의 혜화역 시위는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디지털 성범죄 근절 촉구라는 단일 의제 중심으로 조직된 운동이다. 이 현상들은 물론 각각 매우 다르지만, 구조화된 불평등과 성폭력에 대항하는 젊은 여성들의 절실한 자구 노력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젠더 권력의 불균형이 드러나는 양상의 변이에 따라 그 반작용 및 투쟁 방식도 변한다. 합리적 소통을 통한 제도개선과 동등한 위상의 추구가 여성운동의 주요 방식이었으나, 그것은 남성중심적 담론의 내면화, 남성들과의 일상적 타협을 상당부분 활용해야 하는 거기도 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나아가는 일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고 인내심이 바닥나고 두려움이 커진다면, 온건한 합리성의 테두리 안에 머무르기가 어려워진다.

앞서 언급한 현상들은 우리 사회의 젠더관계를 거시적으로 봐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극단적 과격성을 여성들 스스로 비판하고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나, ‘생물학적 여성만’을 투쟁 주체로 명시하고 ‘혐오’ 표현이 구호로 등장한 혜화역 시위가 진정 페미니즘인지를 묻는 질문은 그래서 핵심을 빗나간다.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여성을 제외한 다른 사회적 약자들을 조롱하고 폄하하는 입장은 정치적, 윤리적 정당성을 포기하는 셈이다. 하지만 워마드로 불리는 입장이 애당초 어떤 보편성을 전제하는 운동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워마드식 입장이 명백히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한 비판 자체는 거의 무의미하며, 어떻게 비판하느냐가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극단적으로 편향되고 공격적인 입장에 대한 비판이, 여성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의 적실함을 가리는 전략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워마드식 극단성만을 선정적으로 부각하는 주류 매체의 비난은, 그것을 여성 일반의 정서인 양 호도하고 여성혐오에 대한 규탄을 비합리적, 비윤리적 정서로 왜곡하여 일반화할 우려가 크다. 오히려 워마드식 혐오 성향은, 여성, 성소수자, 빈곤층, 장애인, 노년층,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멸시가 만연한 우리 문화의 한 단면이라는 차원에서 비판해야 한다. 혜화역 시위의 경우, ‘생물학적 여성만’을 위한 배타적 입장은 어쩌면 ‘헬조선’에서 우리가 훈련받는, 각자도생의 외로운 투쟁법이다. 방식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문제들로 인해 디지털 성범죄 근절이 부당한 요구가 되지는 않는다. 그것이 외로운 투쟁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 비판보다 더 필요한 일이다. 

올해 1~4월의 출산율로 추산한 결과,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1 이하로 떨어진다는 전망이 나왔다. 세계 유일의 0명대 출산율. 우리 사회가 이처럼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지 않은 곳, 행복하지 않은 사회라는 뜻이다. 사랑도 섹스도 결혼도 육아도, 일상이 지뢰밭 속 각자도생인 사회에서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키울 엄두를 내지 못한대도 놀라울 게 없지 않은가. 지금 여성들의 과격한 외침은 아픈 사회의 비명이다. 여성들이 지금 무엇을 말하는지 귀 기울이고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함께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윤조원 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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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상륙기동헬기 ‘마린온’이 지난 17일 시험비행 중 추락해 탑승한 해병대원 5명이 숨지고 1명이 부상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군 당국에 따르면 사고 헬기는 정비 후 시험비행을 하다 약 10m 상공에서 갑자기 추락해 활주로에 떨어진 뒤 전소됐다.

‘마린온’은 한국형 기동헬기로 개발된 ‘수리온’을 해병대의 상륙작전 임무에 적합하도록 개조한 헬기다. 그런데 모체격인 수리온은 2015년 12월 추락사고가 발생한 것을 비롯해 크고 작은 결함과 사고로 안전성이 의문스럽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감사원도 지난해 7월 수리온이 결빙성능과 낙뢰보호기능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엔진 형식인증을 거치지 않아 비행 안전성이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전력화된 점을 문제 삼아 장명진 방사청장 등을 수사의뢰하기까지 했다. 이런 전력이 있다보니 기체결함이 사고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하다.

18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 비행장 활주로에 추락한 해병대 상륙기동 헬기 '마린온'의 메인 로터(회전날개)가 부서진 채 놓여있다. 연합뉴스

해병대는 해군, 공군, 국방기술품질원,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등 5개 기관이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사고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군 관련 사고는 진상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어왔다. 군이 기밀 등을 이유로 조사결과를 뒷받침할 증거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사결과가 2023년까지 총 28대의 마린온을 도입할 계획인 해병대의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이런 우려를 더한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몇년 새 천문학적인 규모의 방산비리 실태가 속속 밝혀지면서 군에 대한 신뢰가 저하된 상황이다. 군은 명예회복은 물론 참변을 당한 5명의 장병과 유족들을 위해서라도 한 점 의혹도 남기지 말고 철저하게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육군은 마린온 헬기 추락사고 이후 각급 부대에 배치된 90여대의 수리온 헬기 운항을 전면 중지했다고 밝혔다. 사고를 계기로 소방청, 산림청 등에 도입된 수리온 계열 헬기의 안전성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수리온에 대해 “감사원이 지적했던 결빙의 문제는 완벽하게 개량됐다”면서 “수리온의 성능과 기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수리온 계열 헬기에서 사고가 난 마당에 고위 당국자의 이런 발언은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지금은 군의 사고조사가 최대한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당국자들이 말을 아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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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만난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경제학부 교수에게 “한국이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 수준으로 올릴 계획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다. 그는 2015년 소비와 빈곤, 복지에 대한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최저임금이 늘어나는 데 찬성한다. 그러나 최저임금이 오를 때 고려해야 할 것은, 어떤 이는 일자리를 잃고, 어떤 이는 소득이 는다는 것, 즉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정을 내리기 전에 전체적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경험적으로 조사를 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뜨거운 감자와 같다.

시장경제체제에서 임금은 노동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일자리를 찾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으면 임금은 하락하고, 적으면 올라간다. 그런데 대체로 비전문직 노동시장은 구직이 많다. 따라서 임금은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없이 낮은 수준에서 결정된다. 이에 정부가 개입해 최저임금을 올려 근로자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장에서 결정된 임금이 효율성에 근거한 것이라면, 최저임금은 사회정의에 부합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빈곤을 줄이고 소득 불평등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게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오히려 실업자들을 더 양산할 수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세번째)이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저소득층 지원대책'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1992년 미국 뉴저지에서 시간당 최저임금을 4.25달러에서 5.05달러로 18.8% 인상한 뒤 고용에 변화가 있는지 연구한 적이 있다. 식당 매니저들에게 최저임금을 올린 뒤 종업원을 줄였는가를 물어 통계를 냈다. 이를 근거로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카드와 앨런 크루거는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가 없진 않지만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미미하다고 결론냈다. 하지만 1996년 직원고용명부를 토대로 같은 연구를 한 데이비드 뉴마크는 종업원이 줄었다고 결론냈다. 최저임금과 고용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0.9% 오른 8350원으로 결정했다. 지난해에는 6470원에서 16.4% 올린 바 있다. 2년간 인상률은 29%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되자 자영업자를 비롯한 소상공인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최저임금은 손쉽게 다룰 사안이 아니다. 특히 한국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향을 받는 자영업자들이 유독 많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준비 없는 상태에서 감내할 수준 이상으로 오른다면 얘기가 다르다. 이 지점에서 정부는 몇 가지를 빠뜨렸다. 우선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역효과를 진지하게 고민했는가이다. 정부는 최저임금을 올리면 서민들의 지갑이 빵빵해져서 소비가 늘고, 투자로 이어져 일자리가 늘어나는 선순환만을 생각한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최저임금이 오르자 소상공인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력 감축에 나섰다. 디턴 교수의 지적대로 ‘어떤 이는 소득이 늘지만, 어떤 이는 일자리를 잃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올 들어 고용 증가는 참담한 수준이다. 연간 30만명에 이르렀던 고용 증가는 올 상반기 10만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보완대책도 소홀했다. 정부와 여당은 뒤늦게 영세자영업자를 위한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일자리안정자금 연장, 근로장려세제 확대, 가맹본부와 원청업체의 갑질 근절과 함께 상가임대차보호와 카드수수료율 인하와 관련된 법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대책들을 먼저 만들고 소상공인들에게 동참을 호소했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을까 의구심이 든다.

혼란의 핵심은 영세사업자들이 너무 많다는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 한국에서 자영업자 등 비임금 근로자는 683만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25%를 차지한다. 주요 선진국(12%)의 두 배 수준이다. 그렇다고 줄어들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구직활동을 하다가 여의치 않자 창업에 나선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위한 해결책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염두에 둘 것은 기존 산업에서 일자리가 생기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라는 사실이다. 청년 일자리든, 노년층 일자리든 일자리는 대부분 새로운 산업이나 비즈니스에서 나온다. 기존의 산업은 자동화, 효율화를 통해 일자리를 줄일 뿐이다. 미래의 먹거리가 될 산업이나 비즈니스를 찾고 이를 지원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이를 통해 영세자영업자를 줄여야 한다. 이와 함께 사회안전망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직장을 잃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회는 소자본으로 무리한 창업에 뛰어들게 만든다. 최저임금 사태를 보면 정부는 단기간에 모든 것을 완수하겠다는 조급증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당장이 아닌 미래를 위한 대책이 무엇인가 고민해야 한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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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의 계엄령이다. 꼬마 호떡이 엄마 호떡에게 너무 뜨겁다고 하자 엄마가 그랬다. “얘야! 그럼 얼른 뒤집어.” 평화로운 촛불을 총과 탱크로 뒤집겠다고 군인들이 아무개씨들이랑 머리를 짜냈다는 소문. 촛불광장이 뜨거우면 차가운 바닷물 쪽으로 수영이나 하러 갈 일이지 말이야.

알베르 카뮈는 연극쟁이여서 희곡을 쓰기도 했다. <계엄령>이라는 희곡은 증오와 공포의 도가니 속에서도 민중의 사랑과 저항을 눈여겨 따라간다. 디에고와 빅토리아는 계엄령 속에서도 사랑하고, 아리아를 합창한다. “디에고: 당신 머리칼은 밤의 공기처럼 신선해. 빅토리아: 밤마다 창문 앞에서 당신을 기다려. 디에고: 당신 몸에서 레몬 향내가 나. 서늘한 밤과 맑은 물 때문인가 봐. 빅토리아: 아냐. 당신 사랑이 나를 꽃으로 덮어주어 그래. 디에고: 꽃들은 결국 시들고 말 텐데…. 빅토리아: 그다음은 열매들이 있잖아! 디에고: 겨울이 오면 어떡해? 빅토리아: 그때도 우린 같이 있으니 무슨 상관. 당신이 들려준 노래처럼. 디에고: 이 노래? ‘내가 죽어 백년이 지난 뒤 대지가 그댈 잊었냐고 물으면 대답하려네.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느냐고.’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 디에고: 왜 말을 하지 않아? 빅토리아: 너무 행복해서, 목이 메어서….” 사랑의 힘은 강인하고 뜨거운 것. 동토처럼 차가운 계엄령, 빙하처럼 얼어붙은 땅에도 사랑하고 기억하며 옹기종기 모여든 마을의 위대함.

나는 지난주부터 대서양 가장 북쪽에 위치한 빙하의 섬나라 아이슬란드에 머물고 있다. 이곳의 서울은 레이캬비크. 곁에 ‘비데이’란 작은 섬이 있는데 존 레넌을 기념한 이매진 피스 타워가 있다. 존 레넌의 생일과 기일, 그리고 성탄과 봄날. 오노 요코의 생일에도 빛을 쏜다. 얼음의 계엄령 속에도 ‘이매진 피스’라 24개 국어로 적힌 평화의 탑에선 백야와 극야, 오로라와 함께 ‘빛의 춤’을 춘다. 여름엔 시규어 로스나 지역가수들이 공연을 하는데 ‘이매진’을 합창한다. 겨울엔 빙하 바다에 뛰어든다. 여름의 계엄령, 겨울의 계엄령에도 아랑곳 않는 빛의 춤, 촛불의 노래. 얼마간 이곳에 머물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비는 춤과 노래를 보태보련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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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3일에 탐 루앙 동굴에 들어갔다가 실종된 태국 축구팀 소년 열두 명과 코치를 영국에서 온 동굴 구조 전문가들이 발견한 것은 7월2일이었다. 이제 열세 명을 동굴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일이 남았다. 동굴은 길었고, 어떤 곳은 한 사람 몸이 통과하기도 쉽지 않을 만큼 좁았다. 잠수를 해서 통과해야 하는 구간이 1㎞도 넘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동굴 구조 전문가들이 도착했다. 태국 네이비실(해군특수부대)도 나섰다. 자원봉사자들이 현장에서 사람과 물자를 실어나르고, 음식을 만들고, 화장실을 청소했다.

구조 방법을 정해야 했다. BBC 보도에 따르면 세 가지 구조 방법이 주로 논의되었다. 물에 잠긴 구역을 지날 수 있도록 소년들에게 잠수를 가르치는 방법이 있었다. 베테랑 동굴 구조 전문가에게도 어려운 구간을 새로 잠수를 배운 소년이 통과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선택이었다. 둘째 방법은 동굴의 물을 계속 뽑아내면서 수위가 자연적으로 낮아지기를 기다렸다가 빼내는 것이다. 하지만 최대 넉 달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셋째 방법은 소년들이 있는 곳에 이르는 다른 통로를 찾아내거나 직접 뚫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하나같이 어렵고 위험한 계획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구조 준비가 한창일 때 미국의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와 우주개발 회사 스페이스엑스 등의 대표인 일론 머스크가 자신이 고안한 장치를 들고 태국으로 갔다. 그의 팀은 우주 로켓에 들어가는 부품을 사용해서 소년 한 명이 들어갈 크기의 미니 ‘잠수함’을 만들었다. 잠수에 익숙하지 않은 소년을 이 잠수함에 태워 밖으로 데리고 나온다는 아이디어였다. 머스크의 로켓-잠수함이 오직 기술의 힘을 빌려서만 갈 수 있는 미래적인 공간(우주)에서 소년들이 맨몸으로 들어가 있는 과거적인 공간(동굴)으로 이동한 셈이다. 머스크의 팬들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부유한 엔지니어가 소년들을 구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러나 동굴이 있는 지역의 전 주지사로서 구조 작업을 총지휘했던 나롱삭 오솟타나콘은 머스크의 미니 잠수함 아이디어가 “실용적이지 않다”며 거절했다. 나롱삭은 “그들의 장비는 기술적으로 세련된 것이지만, 동굴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우리 임무에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년들은 로켓 부품으로 만든 미니 잠수함 대신 구조대가 인간 사슬을 만들어 옮긴 들것에 실려나왔다. 물속으로 들어가는 구간에선 소년에게 공기를 공급하는 마스크를 씌우고 구조대 두 사람이 앞뒤에서 지키며 전진했다. BBC 보도에 따르면 소년들이 공포에 떨지 않도록 진정제를 투여한 상태에서 구조 작업을 벌였다 한다. 본격적인 구조 작업에 돌입한 지 3일 만인 7월10일 모두 무사히 빠져 나왔다.

구조 완료 이후 태국 네이비실은 감격에 찬 메시지를 내보냈다. “이것이 기적인지, 과학인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것은 분명히 과학이 기적적으로 작동한 사례였다. 다만 로켓 과학이 아니었을 뿐이다. 수십 년 동안 동굴을 탐사하고 분석해 온 과학, 소년들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서 구조 방법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한 의학, 수많은 동굴 구조 작업에서 쌓아온 잠수 지식과 경험, 언제쯤 폭우가 와서 동굴이 물에 잠길지를 예측하는 지역 주민들의 살아있는 지식과 현대 기상학 지식. 이 모든 것들이 결합해서 기적인지 과학인지 모를 일이 일어났다.

머스크는 사용되지 못한 자신의 장치가 ‘미래에 유용해질 경우’를 생각해서 잠수함을 태국 해군에 넘겨주고 떠났다. 타임머신을 타고 나타난 미래의 과학자가 지금은 현실성이 없어 보일지 몰라도 미래에 쓸모가 있을 거라며 자신이 들고 온 신기한 장치를 남겨두고 떠나는 장면 같았다. 구조 작업 전체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한 동굴 전문가는 머스크의 제안이 “홍보성 곡예”였다고 비판했다. 머스크의 장치가 언론의 조명을 받기에 좋았을 뿐 동굴에서 사용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는 것이다. 머스크는 트위터에서 그 동굴 전문가를 “소아성애자”라고 불렀다가 곧 삭제했다. 머스크는 또 자신의 잠수함 제안을 거절한 나롱삭 전 주지사가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나롱삭은 구조 작업 전체를 침착하게 잘 지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머스크의 오만과 무례에 대한 비판과 그의 능력과 선의에 대한 칭찬이 엇갈리고 있다.

기술사회학자 제이넵 투펙치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머스크와 실리콘 밸리가 태국 동굴 구조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기술 분야에서 성공하고 억만장자가 되었다고 해서, 그 경험을 다른 분야로 쉽게 옮겨서 세상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낙관하지 말자는 뜻이다. 투펙치는 머스크가 보여준 과도한 자신감과 다른 분야의 전문성에 대한 무시가 실리콘 밸리 기업들이 복잡한 정치, 경제, 사회 문제들을 알고리즘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할 때 보이는 태도와 비슷하다고 보았다. 구조 작업을 도우려는 머스크의 선의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오랜 시간 현장에서 일하며 쌓아온 전문성과 경험을 무시한다면 이는 결국 쓸 곳 없는 로켓-잠수함을 동굴 입구에 두고 떠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머스크의 미니 잠수함 소동은 기술의 미래성에 대한 은유로 읽을 수 있다. 머스크와 그의 동료들이 내놓는 멋진 미래(기술)를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오기는 올 것이다. 하지만 그전까지 많은 경우에 그것은 사용할 수 없는 미래로 남아 있기 마련이다. 미래를 사용할 수 있게 되려면 현재 동굴이 어떻게 생겼고 통로는 얼마나 좁은지, 우기는 언제인지, 동굴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이며, 작업을 잘 뒷받침할 수 있는 조직과 제도는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즉 현재의 지식, 제도,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바로 그때 비현실적인 마법처럼 보이던 미래가 현실이 된다.

<전치형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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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를 운영하는 지인이 페이스북에 사연을 올렸다. 직원을 채용하기 위하여 지원자격과 복리후생이 적혀 있는 채용공고를 올렸는데, 소수자를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여성주의자 혹은 연대자일 것을 자격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당장 여성주의라는 말만 보고 찾아와서 악플을 달고 메시지를 보내는 남자들이 등장했는데, 그중 한 명이 지인을 당연히 남자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배신자(?)를 비난하는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기가 찼던 지인이 자신은 여성이라고 밝히자, 악플러는 갑자기 태세를 전환하여 가게가 있는 지역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의 기사를 보내왔다. 방화협박이라고 판단한 지인은 경찰에 신고를 했고, 순식간에 해당 악플러의 신상이 경찰을 통해 추적되어 전해졌다. 그렇게 알게 된 그 악플러의 신분은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이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데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우리 사회의 교육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을 단지 더 많이 가르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사례를 들어보자. 내 트위터 계정에서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혐오와 소수자혐오에 대한 분노, 그리고 고양이가 언제나 화제다. 페이스북 계정에서는 각계 전문가와 기자들이 펼치는 고담준론과 여행기가 대세다. 유튜브에 들어가면 내가 즐겨보는 게임, 스포츠, 음악, 1인 스트리머들의 영상이 목록을 모두 채우고 있다. 한편 이제는 잘 가지 않게 된 남초 커뮤니티 사이트들에서는 메갈의 폐단과 악행을 성토하는 글이 넘쳐나고, 포털 뉴스의 댓글과 청와대 청원 사이트에는 난민을 반대한다는 사람들이 어림잡아 100만명은 넘게 존재한다. 박근혜는 무죄이고 모든 것은 음모라고 주장하는 동영상이 태극기집회 참가자들 사이에 역병처럼 돌고, 동성애의 해악을 고발하겠다는 강연이 크고 작은 교회들에서 매일같이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각각의 서로 다른 현실을 구성하고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같은 땅에 발을 딛고 있음에도 전혀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예의 남학생 입장에서 페미니즘은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치보다 나쁜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자주 가는 사이트, SNS, 스트리머가 모두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페미니즘에 반대하여 의견을 내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며, 심지어는 이것을 그 나름의 ‘성평등’을 위한 실천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차별, 괴롭힘, 주목경쟁, 혐오표현의 놀이화가 일어나는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 무지도 악의도 아닌, 하나의 구성된 그러나 그 당사자들이 믿고 있으며 믿고자 하는 현실이라고 생각해본다면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더 복잡한 고민을 요하게 된다.

진실을 몰라서 저런다는 주장은 모든 입장들이 적을 향하여 외치는 바이므로 의미가 없다. 하나의 주장이 반박되면 두 개의 새로운 주장이 나타나고, 진위 여부를 가릴 새도 없이 곱절로 늘어난다. 이것은 논쟁이 아니라 전쟁이고,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이 동원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싸움들이 상정하는 적은 파편화된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추악함을 엮어 만든 괴물이다. 그리고 이후의 싸움은 존재와 존재가 맞부딪치는 것이라기보다는 내가 만들어낸 허상과의 싸움에 가깝다. 서로가 서로를 편견에 근거하여 유형화하고, 그에 맞는 템플릿을 통해 대응하는 모습은 기묘하다. 특히 한쪽에서 뜬금없는 승리선언을 외칠 때 그 기괴함은 극에 달한다.

우리는 공통의 기반을 잃어버리고 있다.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을 전제들, 사상들, 사실들이 제각각의 구성된 현실 속에서 조각나버렸다. 하지만 서로의 처지를 터놓고 얘기하며 머리를 맞대지 않는다면, 우리는 고통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도 모르는 채로 각자의 지옥에서 고통받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갈등을 억누르고 무조건 대타협을 이룩하자는 것이 아니다. 싸움을 피할 수 없다면, 싸우면서 크는 법이라도 알아내야 한다. 이 모든 정념과 분노와 에너지가 무의미한 것이 되지 않도록. 훗날 더 나은 세상과 삶을 위한 성장통이었다며 돌아볼 수 있으려면 말이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잉여사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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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을 배경으로 글을 쓸 일이 있어서 당시 신문을 살펴보았다. 굳이 오래된 기사를 읽어 기억을 환기시키지 않더라도 1994년은 여러모로 기억에 남아있는 한 해이다. 그해에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고, 대만과 우크라이나에서 비행기가 떨어져 수많은 승객들이 목숨을 잃었고, 성수대교 붕괴와 아현동 가스폭발 사고가 있었고, 지존파 사건이 있었다. 그런가하면 팝 가수 커트코베인이 유명을 달리했고, 자살골을 넣은 콜롬비아 축구선수가 12발의 총격을 당해 죽었다. 1994년은 또한 역사적인 폭염으로 사람들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남겼다. 그때만 하더라도 좀 사는 사람들이 아니면 에어컨을 설치하고 사는 게 그리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다. 관측소가 생긴 이래로 매일같이 최고기온의 기록을 갈아치우던 그해 여름, 노약자들이 더위를 못 이기고 사망에 이르는 일들이 속출했다.

출처:경향신문DB

사건 사고는 지나가기도 하고, 또 새로운 사건 사고로 대체되기도 하지만 폭염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감당이 안되는 속수무책의 일이었을 것이다. 1994년의 폭염을 직접 겪지는 못했다. 그해에 나는 해외에 있었고, 그것도 남반구의 나라에 있었다. 7, 8월이 한겨울인 그 나라에서 교민 소식지를 통해 우리나라의 사건 사고 소식과 폭염 소식을 읽곤 했다. 인터넷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절, 해외에서 사는 교포들은 국내 신문을 구독하는 것보다 생활정보지에 실린 단신들로 소식을 접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일주일인가 2주일에 한 번씩 무료로 배포되던 소식지에는 매번 경악스러운 기사들이 실렸다. 소식지의 단신이라는 것이 그야말로 간략하기 그지없는 것이라 상세한 내용을 알지 못해 덜 충격적이었는지, 아니면 혼자 상상해야 하는 빈틈이 너무 많아서 더 충격적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마 후자였을 것이다. 성수대교 붕괴 기사를 보면서는 믿을 수 없었고, 지존파 기사를 볼 때는 정보지에서 만들어낸 과장 기사일 거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폭염이 이어진 18일 서울 경복궁을 관람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부채, 양산, 선풍기 등을 이용해 더위를 식히고 있다. 김창길 기자

폭염은 기사보다 전화로 더 자주 접했다. 부럽다는 말을 그때처럼 많이 들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겨울인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해 정보지로만 접했던 기사들을 오래된 신문을 통해 다시 살펴보면서 그해의 폭염이 새삼스러워졌다. 7, 8월에는 살인더위라는 제목이 붙은 기사가 가장 많이 보였다. 온열질환이 급증하고, 가축은 폐사하고, 가로수도 죽고, 어느 기관의 중앙전산망은 작동을 멈춰버렸다는 기사들이다. 흥미로운 기사도 보인다. 그해 7, 8월에 범죄율이 뚝 떨어졌다는 것이다. 범죄자들까지 더위를 못 이겨 잠시 범죄를 쉬었다는 뜻이다. 통계가 항상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범죄율이 떨어진 것은 통계적으로 사실일지 모르지만, 그게 더워서 그런 거라고 판단하는 것은 너무 더운 나머지 얻게 된 결론이었을 듯싶다.

그해에 구속된 영생교 교주는 자기가 감옥에 있는 탓에 나라가 그렇게 더운 거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감옥에 있으니 하나님하고 통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위에 잠깐 헛웃음이라도 웃게 하는 기사였을 것이다. 어이없어 웃고나서 기분이 나빠지는 게 아니라 정말로 기분이 좋아지는 기사도 없지 않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7월27일 프로야구 선수 박철순은 최고령 완봉승이라는 기록을 수립했다. 나는 박철순 선수의 팬이었다. 정보지에서는 보지 못했던 그 기사를 그해에 보았다면 아마도 먼 나라에서나마 한껏 함성을 질렀을 것이다. 아무리 더워도 시즌은 계속되고, 누군가는 기록을 세우고, 그 아름다운 기록으로 사람들을 감동하게 한다. 말하자면, 아무리 더워도 삶은 계속된다.

1994년에만 폭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해에 하도 사상 최고, 유사 이래, 그런 제목의 기사들이 많아서 사람들의 기억에 더 많이 남게 되었을 것이다. 그해에 벌어졌던 재앙과 같은 사건들이 또 기억에 남아 그 폭염과 얽히게 되었을 것이다.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있는 뉴스 기사는 검색하기가 편리해서 날짜와 검색어를 입력하면 그 결과들이 컴퓨터 모니터에 주루룩 뜬다. 그해 여름을 기간으로 설정하고 검색어로 ‘훈훈한’ ‘감동’ 그런 제목을 입력해보았다. 올해도 이렇게 더우니, 잠깐 읽는 글이라도 뭔가 좀 시원한 내용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서였다. 안타깝게도 훈훈하고 감동적인 기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더워서 범죄자들이 범죄를 멈췄다고 말하는 것처럼 훈훈하고 감동적인 일도 잠시 멈췄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훈훈하고 감동적인 일이라는 게 기사화될 일이 아니어서뿐일 것이다. 그런 일들은 그냥 소소하게, 일상 속에서 일어난다. 손뼉치고 환호할 일만 감동적인 것은 아니다. 그저 잠깐 미소짓고, 선선한 바람을 맞은 듯이 기분이 좋아지고 그러는 일들은 그냥 내 주변에서 일어난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택배, 친절한 에어컨 수리기사님, 평양냉면의 차가운 육수 맛, 그 냉면을 같이 먹던 남북 정상의 모습을 기억하는 것, 엘리베이터에서 배꼽인사를 하는 옆집 아이, 시원하게 쏟아지는 소나기, 옛날 빙수, 겨울에 가족과 함께 갔었던 추운 여행지에서의 추억, 기타 등등.

1994년 7월15일자 경향신문에는 동물 가족들의 여름나기에 관한 기사가 보인다. 북극곰은 6월이 되면 털갈이를 해서 여름을 대비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비한다고 해서 더위를 모두 피할 수 있는 건 아닐 터이다. 보통은 냉수욕으로 체온을 식혀 더위를 견디지만, 그렇게 해서도 안될 때는 견디지 못하고 트위스트 춤을 추게 된단다. 좋고 신나서 추는 춤이 아니다. 사람들 눈에는 춤으로 보여도 그게 실은 몸부림이라는 뜻이다.

진작부터 시작된 폭염이 올해는 한 달 이상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각오부터 단단히 해야 할 일이다. 불쾌한 일들이 있으면 솜털을 벗어내듯이 벗어내고, 몸부림을 칠 정도로 더울 때는 소소한 기쁨들을 생각해볼 일이다.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기보다는 차라리 트위스트라도 춰볼 일이다. 그래서 오늘 일어날 좋은 일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택배가 오기로 되어 있다. 그 초인종 소리, 아주 잠깐이나마 기분이 좋아질 게 틀림없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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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폭염

돌이키면 밥상에서 깨지락거리는 자식들한테 한국전쟁 때 배곯은 얘기를 하던 어른들의 불행한 과거는 먼 옛날이 아니다. 남들은 다 피란 가는데 우린 거동 힘든 할아버지 때문에 죽게 생겼다고 발을 동동 구르던 아이는 몸피가 불어 어른이 되었어도 어머니가 볶고 빻아서 피란 짐에 넣은 미숫가루 냄새를 톺아낼 만큼 가까운 시간에 머물러 있었다. 과거는 가깝고, 오늘은 무거운 세대들에게 기억은 행여 내일도 같은 해가 뜰까 봐 두려운 미래의 불안이었다. 소멸되지 않는 기억의 무게를 평생 짊어진 이들의 자식들은 무조건 앞을 향해서 묵묵히 달려야 했다.

그는 엄청난 나뭇짐을 지게에 짊어지고도 비탈진 길을 서붓서붓 오르던 아버지 얘기를 했다. 그의 고향 앞바다는 본디 옛날부터 봄이면 은빛 조기가 바다를 뒤덮었다지만, 그의 아버지는 배를 타지 않고 땅을 갈았다고 했다. “우리 아버지 힘이 장사였어요. 저도 아버지 따라 땔나무를 하러 다녔는데, 고등학생 때도 아버지만큼 지게질을 하지 못했어요.”

그의 아버지는 소처럼 일했고, 자식들도 학교만 끝나면 논으로 밭으로 등 떠밀려 나가야 했다. 때때로 일손이 달리면 학교도 걸렀다고 했다. 동네에서는 제법 잘 사는 집이었는데도 그랬다. 그의 형제들은 고등학교만 마치면 부지런히 고향을 떠났고, 그도 대학 때부터 객지 생활을 했다. 그때부터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제 손으로 등록금을 벌려고 공사판에도 나갔고, 공장도 다니고, 장사도 했다. 농사만 아니면 어려운 일이 뭐가 있겠냐 싶었는데,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그의 청춘은 내내 고단했지만, 그래도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아버지가 겪은 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산업용 천막 공장을 운영하며 자리를 잡았다는 그는 자식들한테 자신이 고생한 얘기를 다해준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말한다. “나는 안 해본 일이 없는데, 세상 참 좋아졌지요. 그리고 요새 최저임금 봐요.”

그는 쌀 한 톨도 고마워하라는 그의 아버지를 그대로 닮았다. 세상이 이쯤이면 되었으니 묵묵히 일이나 하라는. 일하는 청년 73%가 필수생활비도 부족하다는데 정말 이쯤이면 되는 것일까.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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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취미는 취미생활에 도전만 하는 것이다. 피아노, 바느질, 발레에 이르기까지 안 해 본 취미생활이 없다. 물론 이 중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은 여전히 하나도 없지만. 최근에는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 역시 처음은 아니다. 1년 전에도 그림 수업을 신청했다가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게 귀찮아서 딱 한 번 나가고 돈만 날렸다.

한 개도 끝까지 못하면서 왜 자꾸 이것저것 찔러만 보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나 자신이 조직의 부속품인 무채색 벽돌 한 장처럼 느껴질 때마다, 한번쯤 ‘예술가’로 살아보고 싶다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며 ‘현실도피’를 하는 버릇을 아직도 못 버린 건가 싶기도 하다.

그럼 왜 꿈만 꾸면서 단 하나도 진득하게 배우지 않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것 역시 딱히 할 말은 없다. 내가 만든 에코백은 곧 솔기가 뜯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바늘땀이 엉성했고, 내가 그린 그림은 내 눈으로 봐도 영 볼품없기 짝이 없었다. 결국 이건 내 적성이 아니라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금세 포기해 버리고 마는 패턴의 반복. 취미생활조차 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몹쓸 ‘프로병’을 못 버린 탓이다.

그런데 그림 수업 첫날, 강사가 수업을 시작하기 전 이런 말을 했다.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눈은 TV에 나오는 화려한 색감과 쇼윈도에 전시된 아름다운 디자인에 익숙해져 있어요. 눈은 고급스러운데 손이 그걸 따라가지 못하니 자신의 그림이 성에 찰 리 없죠. 여러분은 분명 자신의 작품을 보고 실망하게 될 겁니다.” 너무 맞는 말이긴 한데, 그래도 배워보겠다고 찾아온 사람한테 넌 곧 자신에게 실망하게 될 거라고 예언을 하다니.

대신 그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과 시간 자체에 집중하라고 했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그 말. 우리가 살아 오면서 가장 많이 들어본 거짓말 중 하나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그의 말은 묘한 울림을 주었다.

“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IT 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어요. 좋지 않은 학벌을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무실에서 먹고 자길 밥 먹듯 했죠. 덕분에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승진도 하고 이만 하면 성공했다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에 병이 들었나봐요. 가족 얼굴 보는 것조차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대인기피증에 걸린 겁니다.”

일종의 공황장애였다. 그는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카페에 가서 남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에 하루 종일 앉아 시간을 보냈다. 회사를 원망하고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고 결국엔 자기 자신을 원망하면서. 그런 그를 구원해준 것이 그림이었다. 멍하니 앉아있는 것도 지칠 무렵 심심풀이 삼아 눈 앞에 있는 지우개를 그려봤는데, 얼마나 집중했던지 정신을 차려보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더란 것이다. 마음의 병에 걸린 후 처음으로 불안과 미움에서 해방된 몇 시간이었다고 했다.

“여러분은 프로가 되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니잖아요. 그림을 그리는 시간과 과정에 집중하면 내 작품이 아무리 엉망이더라도 예뻐 보일 겁니다. 그 그림을 그리는 동안 느꼈던 즐거운 기억이 떠오를 테니까요.” 이것이 바로 ‘프로’가 되기만을 강요받는 세상에서 ‘아마추어’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 아닐까.

위키리크스 외교문건 보도, 에드워드 스노든의 감청 폭로 등 세계적 특종을 일궈낸 ‘가디언’의 전설적 편집장이었던 앨런 러스브리저는 택시기사로 일했던 아마추어 연주자가 쇼팽의 곡을 멋지게 연주하는 모습에 반해 자신도 그 곡을 완주해 보겠다며 1년간 노력하는 과정을 엮어 <다시, 피아노>란 책을 냈다.

러스브리저는 이 책에서 ‘뉴요커’ 기자이자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던 찰스 쿡의 말을 인용한다. “대부분의 프로페셔널보다 아마추어인 당신의 처지가 더 낫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아마추어에게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해야 한다는 엄혹한 멍에가 없다. 부담감과 책임감에 짓눌릴 일도 없고, 치열한 경쟁도 없다. 아마추어는 모든 취미가 본래 그렇듯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다. 그 결과로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당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온정적인 자세로 연주를 들어줄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기쁨을 줄 수 있다.”

정말 그랬다. 첫 수업에서 그렸던 내 별 볼 일 없는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니, 온정적 태도로 그림을 감상해 준 한 회사 후배가 댓글을 달았다. “우와 이런 건 어떻게 그려요? 존경의 눈빛!!”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란 말이 무능함을 질타하는 용도로 쓰이는 사회에서 이런 아마추어 예찬은 현실도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주 52시간제’가 시행됐지만, 직장인들은 여전히 퇴근 후에도 더 완벽한 프로가 되기 위해 자기계발을 하러 가야 한다. 그래도 피아니스트 콘래드 윌리엄스가 말했던 것처럼 “성실한 준비, 약간의 용기와 음악에 대한 사랑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아마추어”의 세계는 때로 치열한 프로의 세계보다 더욱 아름답다.

<정유진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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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과 관련된 불편한 진실부터 알아본다. 패스트 패션으로 만들어진 옷은 즉흥적으로 구매하기에도 부담없는 가격이다. 패스트 패션 매장은 주머니 사정은 넉넉지 않지만 멋내기에 관심 있는 사람으로 늘 붐빈다. 그런데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소유주는 우리처럼 궁색하지 않다. 자라(ZARA)의 창업자 아만시오 오르테가는 포브스 선정 2018년 세계 부자 순위 6위에 오른 거부다. 이케아(IKEA)와 더불어 스웨덴을 대표하는 패스트 패션 기업 H&M의 옷은 한 시즌 입고 버려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저렴하지만, 그 소유주의 재산은 결코 저렴하지 않다. H&M의 소유주 스테판 페르손의 세계 부자 순위는 73위다. 유니클로의 창립자 야나이 다다시는 유니클로가 팔고 있는 소박한 가격의 속옷과는 달리 세계 부자 순위 55위에 오른 195억달러의 자산가다. 우리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매 시즌마다 수없이 사고 미련 없이 버린 패스트 패션 특유의 소비 방식이 반복될수록 그들은 부자가 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세상에는 수많은 패션 브랜드가 있다. 각각 다른 상표를 달고 있기에 때로 경쟁관계에 있는 브랜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리, 랭글러, 잔 스포츠, 이스트 팩, 반스 오프 더 월, 노스 페이스, 팀버랜드는 모두 VF라는 회사가 소유하고 있다. 타미 힐 피거와 캘빈 클라인의 주인도 같고, 갭과 바나나 리퍼블릭도 한 회사다. 세계 부자 순위 4위인 베르나르 아르노와 그의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LVMH(루이비통 모에 헤네시)는 브랜드를 싹쓸어 담았다. 크리스티앙 디오르, 루이비통, 셀린, 겐조, 지방시, 마크 제이콥스, 펜디, DKNY, 불가리, 태그호이어, 헤네시, 모에&상동은 아르노와 그의 가족 소유다. 그들은 페이스북의 창립자 저커버그보다 돈이 더 많다. 

패션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은 이것만이 아니다. 매년 생산되는 직물의 65%를 차지하는 폴리에스터는 자연분해되는 데 500년이나 걸린다. 목화 재배지는 전체 농지의 3%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농약의 10%와 살충제의 22%가 목화 재배지에서 사용된다. 티셔츠 한 장을 염색하려면 16~20ℓ의 물이 필요한데, 염료의 80%만 옷감에 남고 나머지 20%는 물에 씻겨 내려간다. 의류산업은 여전히 가장 전형적인 저임금 노동착취 공장인 스웨트숍(sweatshop)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버리기 위해서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패스트 패션의 세련된 광고와 라벨 뒤에는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의 스웨트숍이 숨어 있다.  

따지지 말고 아무 옷이나 입을 사람이라면 상관없겠으나, 아무 옷이나 걸치기에는 찜찜한 사람이라면 뭔가 탈출구를 모색해야 한다. 트렌드라는 유령에 의해 누군가가 버려 쓰레기 신세로 전락한 옷을 리메이크해 생명을 연장시키는 사람을 만났다. “이미 존재하던 것을 새롭게 다시 만듦”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스트 오캄’을 운영하고 있는 손헌덕씨다.

그는 데님이라는 소재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데님은 아주 흔한 소재다. 누구나 청바지 한두 벌은 갖고 있다. 데님은 아주 내구성이 강한 소재이기도 하다. 멋을 내려고 일부러 청바지를 찢기도 하지만, 청바지의 자연수명이 다해 저절로 찢어지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처럼 내구성이 강한 소재로 만든 청바지를 사용가치가 소진되어서 버리는 사람은 없다. 여전히 입을 수 있는 옷인데도 유행이 바뀌면 우리는 청바지를 버린다. 그는 마치 주술사처럼 유행에 의해 생명 단축이 강요되고 있는 옷에 새 숨을 불어넣는다. 아니 그 옷은 생명만 연장된 게 아니다. 연장된 삶의 질 자체가 달라진다.

리메이크되기 이전 그 옷은 대량생산되고 대량소비되는 흔한 공산품에 불과했다. 그의 손을 거치면 그 옷은 세상에서 가장 유니크해진다. 그 옷을 입는 사람까지도 유일한 존재로 변신하기를 기대하며 그는 서울숲길 어느 빌딩의 지하에서 데님과 테일러 원단을 조합해 리메이크 옷을 만들며 시장지향적 패션산업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지 명령을 내리고 있다. 나지막한 중지 명령은 리메이크된 옷의 소비자를 만날 때 힘을 얻을 수 있다.  

리메이크된 옷을 소비자가 얼마 동안 입었으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다 떨어질 때까지 입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 대답을 듣고 자문해봤다. “다 떨어질 때까지” 입은 마지막 옷이 언제였는지? 가장 최근에 버린 옷은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다 떨어질 때까지” 입은 옷은 도통 기억나지 않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바람처럼 “다 떨어질 때까지” 입어보겠다고 리메이크를 통해 그 어떤 옷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고유성을 획득한 그가 만든 귀한 옷을 구입했다. 패스트 패션이 지배하는 시대에 리메이크한 옷을 “다 떨어질 때까지” 입는 행위는 과장되게 말하자면 조용하지만 사회운동가가 아니어도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탈시장주의적 라이프스타일 행동이기도 하다. 과격한 구호가 적혀 있는 티셔츠는 아니어도, 리메이크된 옷은 그 자체로 세상의 변화를 바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가 리메이크한 이 옷을 “다 떨어질 때까지” 입어보리라. 그래서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또 다른 목소리를 보태보리라.

<노명우 | 아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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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광장에서 퀴어퍼레이드가 열렸다.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아직 더 많은 이해와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 필자는 2014년부터 젠더클리닉을 시작해 100명에 가까운 트랜스젠더의 호르몬 치료와 상담을 하고 있다. 15세부터 66세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트랜스젠더들이 찾는다. 진료실을 찾은 분들은 과거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호르몬에 대한 상담도 받는다.

상담의 대부분은 커밍아웃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이나, 커밍아웃을 할 것에 대한 두려움에 관한 것들이다. 성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고민하고, 좌절하며 우울감과 불안감을 호소한다. 심지어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해한 경험도 털어놓는다. 자신의 성정체성 자체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받게 될 차가운 시선, 편견, 차별에 대한 두려움, 부모와 가족 및 주변으로부터 거절당할 것에 대한 공포, 이미 거절당한 데 대한 좌절로 인한 것들이다.

부모들의 내면에도 트랜스젠더 자식의 미래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이 크게 자리한다. <커밍아웃 스토리>라는 책을 보면 게이 혹은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부모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잘 그려져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던 자녀의 어두운 모습, 은폐하고자 하는 모습에 걱정을 하다가, 커밍아웃 후에는 혼란과 갈등으로 자녀의 정체성을 부인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자녀의 성정체성 혹은 성적 지향을 존중하고, 여전히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자녀라는 것을 깨닫는다.

필자가 병원에서 만나는 트랜스젠더들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다. 누군가의 자식이고 형제자매이며 친구이다. 머리가 뛰어난 사람도 있고, 미모가 뛰어나거나 기술이나 예술적인 재능이 풍부한 사람도 있다. 직업도 교사, 노동운동가, 최고경영자(CEO), 일반 직장인 등 다양하다.

간혹 주변에서 이들을 치료하는 것이 “신의 섭리에 위배된다는 생각을 안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한동안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결론은 ‘신은 살인자도 용서한다는데 스스로 인간답게, 자신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 뿐인 이들을 용서 못할까’라는 답을  찾았다.

<커밍아웃 스토리>의 한 구절이다. ‘저는 제 자식 ○○와 같은 성소수자들의 존재는 하느님이 창조한 이 세상의 놀라운 다양함의 귀한 일부라고 믿습니다. 풍성한 피조물들의 꽃밭의 한 부분에는 ○○와 같은 트랜스젠더들도 당당하게 자신의 색깔과 향기를 발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의 삶은 하나하나가 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입니다. 누구도, 어떤 제도나 힘도, 그 삶의 신비로운 빛을 함부로 가리거나 꺼뜨려서는 안됩니다.’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은 존중받아 마땅한 평범한 인격체이다. 그들의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존중해줘야 한다. ‘다름’은 ‘틀림’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다.

<이은실 | 순천향대 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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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의료체계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시급하다. 최근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병사가 두드러기 치료약과 감기약 처방만 받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첨단화한 민간 의료기관을 군 병원이 따라잡겠다는 방식은 과욕이다. 두 가지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먼저 군 의료영역을 국가 공공의료체계로 통합해 민간의료와 협업하는 방안이다. 군 병원은 총상, 화상, 외과질환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고 특화하는 쪽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 그 외 영역은 민간의료를 아웃소싱하거나 민간위탁하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이미 선진국들은 군 의료체계 개혁을 통해 그 길로 간 지 오래다. 우리 군은 지역중심의 주둔군 개념이기 때문에 굳이 전국에 걸쳐 군 병원을 별도로 유지할 이유가 없다.

다음 대안은 장병 모두가 군 병원만을 이용하는 안이다. 합참의장부터 하사까지 모든 현역 간부의 국민건강보험을 법률로 거둬들이고 군 의료시설만 이용하도록 ‘강제’하면 바로 개혁이 된다. 대다수 간부들은 군 병원보다는 건강보험을 이용해 민간 의료기관에서 선진화된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군 병원 이용자의 주축인 병사 환자만 의무, 간호, 의정병과의 이익을 위한 볼모로 잡혀 있는 형국이다. 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해치는 일이기도 하다. 의무 복무 병사를 군복 입은 시민으로 제대로 처우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처럼 군 의료 자체를 없애고 공공의료로 흡수통합하거나 모든 군인은 동일하게 건강보험을 없애고 군 의료시설만 이용하게 하는 특단의 대책이 아니면 향후 어떤 정부가 나서도 군 의료체계 개혁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평소 전시 대비 국가적 차원의 동원훈련을 하고, 유사시에는 해당 자원의 동원을 통해 군 의료 능력을 확보하면 된다.

<고성윤 | 한국군사과학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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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국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총 21만6335건이다. 이 중 부상자는 32만2829명, 사망자는 4185명이다. 하루 평균 884.5명이 교통사고로 부상을 당하고 11.5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특히 본격적인 휴가철인 7월부터 교통사고 사망자는 급증한다. 휴가철이면 어김없이 발생하는 음주운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경찰청에서는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전국적으로 음주운전 단속을 벌이고 지방청별로 시간 및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 1회 단속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운전자 스스로 법규를 준수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선 음주운전은 자신뿐 아니라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잠재적 살인행위이다. 술로 인해 통제력, 판단력 등을 잃은 운전자의 차량은 그 자체로 엄청난 흉기가 되며 다른 교통법규 위반에 비해 11배나 교통사고 위험이 높다.

두 번째는 안전벨트 착용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실험결과 안전벨트 미 착용 시 머리와 가슴 등을 크게 다칠 확률은 안전벨트 착용 시에 비해 최대 16배나 높게 나타나고 사망률 또한 4배 이상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나라 앞좌석 안전벨트 착용률은 95% 정도로 주요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이나, 뒷좌석 안전벨트 착용률은 독일(97%), 영국(89%)에 비해 턱없이 낮은 30% 정도로 안전에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임에도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다. 금년 9월28일부터는 고속도로뿐만 아니라 일반도로에서도 전 좌석에서의 안전띠 착용이 의무화되고 동승자 안전띠 미착용 시 운전자에게 과태료 3만원(13세 미만의 경우는 6만원)이 부과될 예정이다.

만약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면 “차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을 꼭 기억하도록 한다. 대다수 운전자들이 사고 시 차량 상태를 살피는 데 정신을 빼앗기는데 이는 2차 사고를 유발하는 아주 위험한 행동이다. 비상등을 켜고 트렁크를 여는 등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만 취하고 신속히 도로 밖으로 벗어나 사고 신고 등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한다.

<박광웅 | 경남청 양산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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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계(六癸) 부적을 사용하면 한여름 땡볕 아래 두꺼운 가죽옷을 입고 화롯불 열 개를 둘러놓아도 뜨거운 줄 모르고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 <포박자(抱朴子)>에 실린 더위 피하는 방법이다. 이런 부적을 구할 길은 물론 없다. 그저 상상으로 더위를 달랠 뿐이다. 윤기라는 인물은 열두 살 때 지은 ‘고열(苦熱)’이라는 시에서, 하늘까지 닿는 사다리에 올라가 은하수를 기울여 불볕더위를 씻어낼 시원한 비를 뿌리고 싶다고 하였다. 많은 시인들이 폭염을 주제로 시를 지으면서 얼음 담긴 옥병이나 서늘한 바람과 이슬을 꿈꾸곤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상상으로만 더위를 피할 수 없다면 잠시나마 더위를 잊을 수 있는 풍류를 즐기는 것도 방법이었다. 정약용은 더위를 없애는 여덟 가지 일을 시로 읊었다. 소나무 그늘 아래 활쏘기, 시원한 바람 맞으며 그네 타기, 왁자지껄 투호 겨루기, 돗자리에 앉아 내기 바둑 두기, 술잔 기울이며 연꽃 즐기기, 새벽 숲속의 매미소리 듣기, 비 오는 날 어려운 운자로 시 짓기, 모두 잠든 달밤에 시냇물에 발 담그기.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 며칠째 폭염특보가 발효 중이고, 이 무더위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폭염이지만, 냉장고와 에어컨이 있어 옛사람들이 상상으로만 그렸던 얼음 옥병과 서늘한 바람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다. 더위를 잊을 수 있는 각종 레저 활동 역시 더 많은 이들에게 열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위를 이기기는커녕 여전히 더위에 쩔쩔매고 있다.

일본의 집중호우 피해지역에 다시 39도에 이르는 폭염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주말과 휴일 3일 동안 4만명의 자원봉사자가 복구 활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일면식 없는 이웃을 위해 폭염에 맞서 땀 흘리는 분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옛사람들이 더위를 피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역시 부채였다. 부채에 쓰인 청량한 글 역시 더위를 잊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 가운데 “무더위는 혹독한 관리 떠나듯 물러가고, 맑은 바람이 정든 벗 찾아오듯 불어온다(大暑去酷吏, 淸風來故人)”는 두목(杜牧)의 시구가 유명하다. 생활 터전을 잃고 안간힘을 쓰는 이들에게 자원봉사자들만큼 시원한 바람이 또 있을 수 있을까. 날이 아무리 무더워도, 우리는 사람으로 인해 살아간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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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 기원전 1750년쯤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의 함무라비왕이 만들었다는 세계 최고(最古)의 성문법 ‘함무라비 법전’에서 유래한 문구다. 이 법전은 282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는데, 제196조와 제200조에 각각 ‘다른 사람의 눈(이)을 상하게 했을 때는 그 사람의 눈(이)도 상해져야 한다’고 쓰여 있다.

이는 범죄 피해를 봤으면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한다는 의미의 ‘상응보복법’ ‘동해(同害)보복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함무라비 법전은 고대의 야만스러운 보복 형벌의 상징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조항은 사실 보복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 죗값 이상의 사적인 과잉 처벌을 막자는 문명화된 취지를 담고 있다. 눈을 다쳤다고 가해자에게 무자비한 복수를 해선 안되고 그저 눈만 다치게 하자는 것이다. 법전은 절도, 폭행 등 형법은 물론 채권·채무 관계, 관세, 혼인, 이혼 등 민법, 상법, 가족법 등의 사안도 두루 포괄하고 있는 선진적 법 체계다.

판사가 충분한 심리 재판시간을 확보해야만 좋은 판결을 내릴 수 있다. 판사 개인의 성실성에만 기대어서는 안되고, 제도적으로 안착시켜야 한다. 법적 분쟁은 증가하고 있는데 사법부가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사법부를 불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진은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의 한 장면.

JTBC의 법원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가 지난 16일 막을 내렸다. 한 재판부의 인간미 넘치는 부장판사와 원리원칙에 충실한 우배석 판사, 정의감에 불타는 신참 좌배석 판사가 좋은 판결을 내리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줄거리다. 작가가 현직 판사(서울중앙지법 문유석 부장판사)다 보니 법원의 현실을 세밀한 부분까지 정확하게 묘사해 화제가 됐다. 여성 판사에 대한 성차별, 판사 금품 수수 사건, 법원행정처를 출세의 도구로 인식하는 판사들의 모습 등 사법부의 어두운 면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판사들 간의 로맨스 등 극적 요소도 가미되면서 최종회 전국 시청률이 5.3%(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 전체를 꿰뚫는 흐름은 ‘젠더 감수성’이다. 그런데 제목에 ‘미스’라는 성차별적 뉘앙스의 용어가 들어간 건 왜일까. ‘미스 함무라비’는 잘못된 사회구조에 거세게 도전하는 주인공 신참 판사를 비난하는 드라마 속 누리꾼들이 붙인 별명이다. 작가가 이를 역설적으로 제목에 가져왔다. 주인공이 차별과 편견을 감내하며 여성스러움에 안주하는 ‘미스’도 아니고, 남성들에게 무자비하게 보복하는 ‘함무라비’도 아니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김준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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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분야를 공부하면서 늘 의아한 주제가 국민건강보험이다. 올해 건강보험의 지출은 70조원으로 우리나라 사회보험에서 독보적이다(장기요양 포함). 아니 어느 행정부처보다 많다. 31조원의 국방부, 40조원의 국토교통부는 가볍게 제치고 자신의 상관인 보건복지부 63조원보다 많다. 현재 지출이 가장 많은 교육부가 68조원이니 실제론 우리나라에서 건강보험공단이 최대 부처라 말할 수도 있다.

재정은 국민들이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돈이다. 당연히 수입과 지출은 국민의 대표자인 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건강보험도 주요 수입이 가입자가 소득에 따라 납부하는 보험료이고, 지출 방식도 법정 기구에서 정해진다. 그런데 건강보험의 재정은 국회가 확정한 올해 정부총지출 429조원에서 빠져 있다. 정부가 지원하는 약 9조원만 계산되고 나머지는 국가재정, 즉 기획재정부의 총괄 편성 및 국회의 심의 밖에 있다. 건강보험공단이라는 공공기관의 일반회계로서 보건복지부의 승인을 받을 뿐이다.

대한의사협회 회원들이 5월 20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문재인케어’ 철회를 요구하며 제2차 총궐기대회를 열고 있다. 정부는 의료비에서 건강보험으로 보장되는 비중을 현재의 63% 수준에서 2022년까지 70%대로 끌어올리려 하고 있으나, 의사들은 ‘비급여’ 항목이 줄면 낮은 건보 수가만으로는 의료시설을 운영할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건강보험이 처음 도입될 당시에는 불가피한 사연이 있었다. 건강보험은 시작부터 단일 체계로 운영된 산재보험이나 고용보험과 달리, 수백개의 지역·회사별 조합으로 출발했다. 조합마다 보험료율이 다르고 독립채산제로 운용되어 국가재정으로 편입되기 어려웠다. 이후 이러한 조합주의 방식에선 재정 형편이 조합마다 달라 전국적으로 보장성을 확대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확인되었고, 노동·시민단체의 적극적 활동에 힘입어 2000년대 들어 지금의 건강보험으로 조직과 돈주머니가 모두 통합되었다. 명실상부하게 국가재정으로서 자격을 갖춘 셈이다. 우리나라 국가재정법에선 어떠한 사업이 국가재정에 속하려면 일반회계, 특별회계, 기금 중 하나의 옷을 입어야 한다. 다른 사회보험들이 산재보험기금, 고용보험기금 방식을 택하듯이 건강보험도 기금으로 전환하면 된다.

그럼에도 기금화 논의는 오랫동안 등장하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이해관계자들의 자율 협상 취지가 훼손된다는 비판이 영향을 미쳤다. 현재 건강보험의 보험료, 보장 범위 등 핵심 사안들은 가입자단체, 의료공급자, 공익위원이 3분의 1씩 참여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에서 결정되는데, 기금화가 되면 국회가 보험료, 급여 등을 함부로 정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형식 논리로 보면, 국회가 심의권을 지니기에 제기될 수 있는 걱정이다. 하지만 현행 국가재정 체계에서도 보험료와 보장성 범위를 결정하는 권한은 계속 사회적 기구에 둘 수 있다. 지금 산재보험, 고용보험에서도 노동자, 사용자, 공익위원이 모인 위원회가 보험료율을 사실상 의결한다. 건강보험도 기금화가 되더라도 이해관계자 대표들이 지금처럼 건정심에서 보험료뿐만 아니라 보장 항목까지 다루면 된다. 집은 그대로 두고 문패만 바꾸는 작업이기에 제도적으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얼마 전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도 건강보험의 기금화를 권고했다. 건강보험이 국민이 의무적으로 내는 돈으로 운영되고, 특히 어느 부처보다 많은 재정을 지닌 제도이기에 국가재정으로 통합해 수입과 지출을 국회가 감독하고 국민은 투명하게 파악하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제안이다.

결국 기금화를 표류시켜 온 실질적 쟁점은 건강보험을 둘러싼 정치에 있다. 나는 이해관계자들이 기금화를 불편해하는 배경으로, ‘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방식에 안주하려는 관성을 주목한다. 매년 건강보험료를 조정하고 보장성 범위를 정하는 건정심의 존재를 아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주제인데도 어디서 결정되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면, 위원회에 참여하는 단체들이 대표자 역할을 다하지 못한 거다. 조직과 재정을 통합했음에도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그대로인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기금화 반대 주장이 곧이 들리지 않는 이유이다.

이제 건강보험 재정을 제자리에 놓자. 더 많은 사람들이 들여다볼수록 사회적 논의는 활성화된다. 기금화는 당사자의 자율협상을 존중하면서도 건강보험의 의사결정과정에 활력을 부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국회는 전체 지출을 점검하고, 건정심은 일반 시민들과 소통하라. 근래 현안인 문재인케어의 비급여의 급여화, 보장성 강화, 보험료 인상 등도 모두 건정심이 의결하는 사안이다. 한발 더 나아가, 병원비 대책으로 계속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할지, 아예 보험료를 더 내서라도 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할지를 주제로 건정심이 전국 순회 토론을 주관할 수는 없는가. 앞으로 건강보험의 의사결정과정에 새 바람이 불기 바란다. 기금화도 그 방향의 길이다.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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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동료와 교내식당에 가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수저를 뜨다 말고 우리는 첫눈에 반함이 과연 가능한지에 관해 논쟁을 벌였다. 처음 만난 날 ‘저 사람이다’라는 느낌을 받아야 차후 연인관계로 발전하는 경우가 경험적으로 많더라는 그분의 분석에 나는 첫 느낌이란 대부분 외모에서 비롯되는 것 아니냐며, 남자들에게는 진정 예쁜 얼굴만이 이끌림의 조건인지 물었다. 그분은 그런 이끌림은 객관적 외모의 문제가 아니고 성차의 문제만도 아니며, 인간 본연의 속성이라 반박하셨다. “선생님도 평소 흠모하던 모 교수나 모 평론가 닮은 사람이면 첫눈에 끌리지 않겠어요?” 되물으셨다.

“그건 이야기가 다르죠.” 당황하여 얼버무리자, 무엇이 다르냐며 곧장 반격에 들어가셨다. 가만히 보면 이소영 선생님은 동성에 대해선 친한 순서대로 예쁘다 하는 반면 이성에 대해선 엄정한 잣대를 지녔다는 것이다. 발끈한 내가 반박할 논거를 고르는데, 탁자 저편에서 우리 대화를 가만히 듣던 같은 단과대 선생님께서 “젊은 교수님들 이야기에 끼어들기 민망하지만 제 경우는요,”하며 말문을 떼셨다.

영화 <원더풀 라이프> 스틸 이미지

유학을 길게 다녀온 데다 연구를 위해 자연 속으로 자주 들어가는 전공인지라, 선생님은 늦도록 연애나 결혼에 관심을 두지 않으셨단다. 지인의 지인을 소개받는 자리에도 엉겁결에 지리답사 다녀오던 작업복 차림새 그대로 나갔는데, 여자분께 죄송하고 부끄러워 그 자리에서는 아무 생각도 안 드셨다 했다. 불쾌할 법한 상황임에도 개의치 않던 상대방에게 고마운 마음이 일어 제대로 된 만남을 청했고, 그렇게 두번째로 만난 날이었다.

영화 관람 후 고궁 안뜰을 산책하던 중, 둘은 서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어 뜰 내부를 몇 바퀴나 걸었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상대방이 말을 어찌나 사랑스럽게 하던지, 말하는 모습 자체도 그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마음 씀씀이도 일관되게 예뻐서 꼭 안아주고 싶었다고, 결혼하자는 소리가 여러 차례 입 밖으로 나오려 하였으나 두번째 만남부터 청혼하면 ‘없어 보일까봐’ 말 삼키느라 무척 힘들었다고, 고궁 안뜰에 서 있던 십수년 전의 아내 모습이 지금도 선연히 떠오른다 하셨다.

“제가 정말이지 꼭 안아주고 싶어가지고” 하며 품에 안는 몸짓하던 사춘기 소년 같은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말수 적고 항상 조용조용하던 선생님은 오래전 그날의 설렘을 재연하며 목소리가 몇 톤 높아지고 두 뺨은 복숭아처럼 되셨다. 여섯 학기째 함께 지내며 그분의 그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짐작건대 앞으로도 두 번 다시 목도하기 어려울 찰나였을 테다.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초기작 <원더풀 라이프>를 보면, 세상을 떠나는 여정 중에 사람들이 하늘로 향하는 길모퉁이 사진관에 일주일 동안 머물며 생의 가장 반짝이던 순간을 고르는 설정이 나온다. 작중 인물은 저마다의 기억을 사진으로 찍어서 품에 안고 천상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거기서 한 할머니는 어릴 적, 터울 많이 나던 오빠가 꼬까옷 사준 기억을 고른다.

동네 유지 딸들이 입고 다니던 원피스가 마음에 들었던지, 어느 날 오빠가 도쿄 시내를 뒤져 똑같은 옷을 구해왔단다. 그걸 입혀놓은 꼬맹이 동생을 자랑하고 싶던 오빠는 “빨간 밥 사줄게” 구슬려 자신을 데리고 나갔는데 돌이켜보면 그게 치킨라이스였지 싶다고. 경양식집 가서 오늘 배운 빨간구두 춤춰 보라 하면 치킨라이스 먹고 싶은 마음에 또 그걸 하고, 그러면 오빠 친구들이 아이스크림 사준다며 데려가고 그랬다고 말이다. “그런 게 얼마나 재밌었는지 몰라요. 그 옷 그대로 입고서. 먹을 것에 낚여 여기저기 따라다니고”하며 할머니가 감자꽃처럼 웃으시는데, 영화를 보다 슬퍼서가 아니라 아름다워서 눈물 흘린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날 교내식당을 나서며 깨달았다. 선생님은 언젠가 훗날 길모퉁이 사진관에서 떠올릴 생의 가장 반짝이던 순간을 좀전에 우리에게 들려주셨던 것임을. 글자로만 접해본 ‘해처럼 웃는 얼굴’이 무엇인지 내가 보았음을. 3000원짜리 학식 먹다 뜻밖의 선물을 받았으니 삶이란 이렇듯 찬미할 만한 것이다.

<이소영 | 제주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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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국가인권위원장에 최영애 서울시 인권위원장이 내정됐다. 최 내정자는 한국 최초의 성폭력 전담 상담기관인 한국성폭력상담소 설립을 주도하는 등 여성 인권 신장에 힘써왔고 인권위 사무총장과 상임위원을 지냈다.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추천위의 공모·심사를 거쳐 내정된 첫 사례다. 최 내정자가 국회 인사청문절차를 거쳐 임명되면 첫 여성 국가인권위원장이 된다. 역대 인권위원장은 모두 남성 법조인이거나 법학자였다. 최초의 여성·시민운동가 출신 인권위원장 내정이 각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내정자가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시절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여성 인권위원장이라고 여성만을 강조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 사회 전반적인 인권과 민주적 절차에 대해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발언 취지를 짐작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성폭력특별법 제정 추진위원장과 서울대 조교 성희롱사건 공동대책위원장을 지내는 등 반(反)성폭력 운동을 주도해온 인사를 내정하며 굳이 그런 설명까지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올해 초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 이후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들불처럼 확산된 터다. 불법촬영 등 디지털 성폭력 근절을 요구하고, 임신중단 합법화(낙태죄 폐지)를 외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성평등 문제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또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지 가름할 중대 이슈로 부상했다. 청와대는 사회 일각의 백래시(반격·역풍)에 주춤할 게 아니라, 여성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 개선에 보다 과감하고 단호한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

2001년 출범한 인권위는 사형제와 국가보안법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등에 대한 권고·의견표명을 통해 한국 사회에 새로운 인권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위상이 급락했다.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에서 2004년 A등급을 받았던 한국 인권위는 2014~2015년 세 차례나 등급보류 결정을 받는 수모를 겪었다. 용산참사 등 심대한 인권침해 사안을 외면하고, 공권력의 반인권적 행태를 옹호한 결과였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인권위원장의 대통령 특별보고를 부활하는 등 인권위 위상 강화를 지시한 바 있다. 인권위가 새로운 위원장 내정을 계기로 약자와 소수자들의 ‘인권 지킴이’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국회와 정부도 인권위 위상이 정권에 따라 부침을 겪지 않도록 법적·제도적 뒷받침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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