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통일, 북한 관련 강의를 담당하며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 수업을 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 이를 위해 수업에 도움이 될 만한 새로운 북한 관련 자료를 찾기 위해 항상 신경을 쓰고 있다. 얼마 전 인터넷 검색사이트를 이용해 자료를 찾던 중이었다. 검색 과정에서 발견한, 북한 사회에 관한 자료를 클릭하자 갑자기 ‘국가보안법 위반 등 안보위해 정보가 제공되고 있어 접속이 차단된다’는 경고문이 떴다.순간적으로 ‘북한 자료에 접근하려고 했던 이력이 어딘가에 남아 행여 무슨 문제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움찔한 기분이 들었다. 과거 그런 일이 얼마나 많았는가. 남북 문화예술 공연단의 상호방문 공연이 이뤄지고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추진된 상황에서도 통일의 대상으로서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여전히 안보위해 행위로 간주되는 것이 과연 온당할까?

작년 필자가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통일 관련 과제를 담당하는 연구실의 책임자로 발령을 받자, 곧 정보기관의 직원이 인사를 드린다며 연락을 했다. 그 전에도 비슷한 연락을 받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크게 낯설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본격적인 ‘관리대상’이 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안하지는 않았다. 북한과 접경한 지역의 학교에서 통일교육에 열의를 가지고 활동하던 수학 선생님이 계셨다. 이 선생님이, 재직하던 학교에서 군 관계자를 강사로 초청하여 진행한 통일안보교육에서 이런저런 질문을 하셨다. 그 선생님의 질문이 초청강사를 불편하게 했는지 행사 후 학교로 연락이 오고 질문을 했던 교사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했다고 한다. 그 이후 선생님은 학교 관리자로부터 ‘왜 수학과목 교사가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가져서 괜히 학교가 신경을 쓰게 하냐’는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들어야 했다. 한 지역의 교육청에서 근무하던 장학사는 탈북청소년 교육지원의 활성화를 위해 ‘탈북학생 교육의 이해’라는 주제로 교사연수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지역의 정보기관 직원이 갑자기 연락을 하더니 자료를 미리 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의욕적으로 행사를 준비하던 그분은 ‘지금 내가 하면 안되는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어 적지 않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공공기관, 학교와 같은 공적 영역에서 통일, 북한 문제가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 동향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안보라는 막중한 과제와 관련하여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문제를 사전에 막기 위한 조치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렇다. 그러나 과거에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으나 그러한 방식의 관리가 지금도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의도했던 효과를 거두기보다 오히려 개인이 심하게 위축되게 함으로써 북한, 통일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실천 의지를 더 이상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최근까지의 상황을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하다. 통일,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마치 불온한 행동인 것처럼 느껴지게 함으로써, 현장의 통일교육 실천 의지를 위축시키는, 통일교육 활성화를 저해하는 관리 방식과 분위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남북한의 정상이 손을 맞잡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힘쓰기로 약속한 새로운 시대를 온 국민이 함께 제대로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세계적인 동영상 자료 공유사이트(유튜브)에는 북측이 직접 올린 북한 관련 동영상 자료들이 꽤 있고, 이러한 자료들은 남한에서도 자유롭게 시청이 가능하다. 또한 어느 정도 노력만 하면 우회적인 경로를 통해 북한 사이트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한 사이트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북한 자료를 접하지 못하게 하는 관리 방식의 실효성이 사실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북한 관련 자료를 볼 수 없게 차단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러한 내용을 보고 잘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이제는 통일교육의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

<강구섭 전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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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에 또 사달이 났다. 지난 21일 전남 나주의 산란계 농가에서 생산한 계란에서 작년 여름 우리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피프로닐’ 성분이 발견되면서 전량 회수 폐기 조치와 출하정지를 시켰다. 4만 수 정도의 농가이니 크지 않은 규모다. 작년에 워낙 살충제 계란 사태로 홍역을 치른 탓인지 수장도 없는 농림축산식품부가 그래도 사전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도 읽힌다. 언론과 소비자 단체들은 또다시 어떻게 살충제를 뿌려댔느냐며 신나게 물어뜯고 있지만 말이다. 

작년 살충제 계란 사태를 복기해보면 전체 적발 농가가 52곳이었다. 기준에 없던 ‘피프로닐’이 발견된 농가는 그중에서 8곳이었다. 나머지 농가는 허용 살충제 성분이었지만 기준치를 넘긴 사례다. 그만큼 사육환경이 좋지는 않았기 때문에 약을 점점 진하게 썼다는 뜻이다. 내성 문제도 있어서 약을 이리저리 돌려 써보다 무슨 성분인지도 모르고 쓴 경우도 많다. 심지어 지자체에서 권장해서 모르고 쓴 경우도 있었으니 사연은 복잡하다. 사료에서 유입된 건지, 계분 소독을 하다가 그리됐는지 원인조차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지만 여론의 치도곤 때문에 일단 머리 조아리고 넘어가고 말았다.

피프로닐 성분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3년 넘도록 계사에 악착같이 남아 닭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속 이후에 뿌리지 않았더라도 피프로닐 성분이 계사에 남아 있다면 검출될 공산이 크다 보니 올봄부터 대책을 세우기는 했다. 농식품부의 ‘산란계 농장 환경개선 지원사업 추진계획’의 주요 계획은 피프로닐 성분 제거 지원이다. 계사 청소를 하는 방법부터, 5만 수 이하의 양계농장에는 국비 지원계획도 세우고 각 지자체 지원도 독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닭이 꽉 들어차 있는 계사 청소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알을 더 이상 낳지 않는 노계 도태시기에 닭을 빼내고 하면 좋긴 하지만 농장마다 사정이 다르다. 닭이 꽉 들어차 있는 계사에는 분무기로 조심스럽게 뿌리고 키친타월로 일일이 닦아내고 소각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권장 세제는 청소전문업체나 식당의 찌든 때를 제거하는 데 쓰이는 강력세제이고, ‘강알칼리이므로 피부에 닿지 말아야 한다’는 주의사항을 농식품부에서도 알려주고 있다. 일반 세제로는 도저히 제거가 안 되기 때문이다. 맹물로는 헹궈지지 않고 그래서 헹굼제까지 따로 구비해 세척액 성분을 제거해야 한다. 게다가 살충제 성분이 기준치에 부합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청소를 해야 하는데 농장의 형편이 받쳐주지 않는다. 그래서 전문 청소업체에 맡기는 방법까지 정부가 고민 중이다. 하지만 5만 마리 이상 사육하는 35%의 농가는 지원비도 없다. 소독제도 사야 하고 인력도 부려야 하니 비용이 발생한다. 계란 값은 바닥을 찍고 있는데 말이다. 들리는 소식에는 대형 양계장의 경우 기천만원은 우습게 청소비로 나갈 수도 있다. 이제 살충제 성분을 없애는 청소작업과 닭진드기를 잡기 위해 살충제를 살포해야 하는 이중고가 생긴 것이다. 말이야 옳아서 사육환경 개선이 근본적인 대책이라고는 하지만 생산비에 턱없이 모자라는 판매비용을 벌충할 방법도 사육 두수를 늘리는 것뿐이다. 소비자의 이름으로 우리는 생산자들에게 싸고, 안전하고, 모양도 예쁘고, 게다가 맛있게 만들어내라며 불가능에의 도전을 요구하는 중이다. 여름이 오면 닭들도 덥고, 알 낳기도 귀찮아진다. 진드기가 괴롭혀서다. 그래도 우리는 서비스 계란찜은 먹어야겠고, 어쩌란 말인가. 대체!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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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24일 본회의를 열고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의결정족수(재적 3분의 2) 부족으로 투표가 성립되지 못했다. 이날 본회의장에는 더불어민주당 의원 114명만 참석하고 야당 의원들은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 헌법은 개헌안 표결을 ‘공고 후 60일 이내’로 규정하고 있어 이번 개헌안을 다시 표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권 초 개헌 논의에 부정적이던 다른 대통령들과 달리 이번에는 청와대가 앞장서 개헌을 주도했음에도 살리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아쉽고 안타깝다.

개헌 불발은 개헌에 따른 정치적 이해득실만을 따진 정치권의 정략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 투표가 실시되면 지방선거에 불리할 것이란 계산에 따라 반대로 일관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국회 통과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일방적으로 개헌안을 내놓고 야당을 압박만 했지, 이견을 좁히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1년 반 가까이 개헌논의를 이어오면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국회 개헌특위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 투표는 지난 대선에서 여야 후보가 한목소리로 내세운 공약이었다. 이유를 불문하고 시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청와대와 여야는 모두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6월 개헌이 무산되며 개헌의 동력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개헌 자체를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 1987년 이후 31년간 그대로인 헌법을 시대 변화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것은 온 시민의 요구이다. 시민의 기본권 강화와 참여 확대, 지방분권, 권력구조 개편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다. 선거연령 18세 인하와 소수자 및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비례대표제 확대 등 선거제도 개편은 개헌과 상관없이 추진해야 할 정치개혁 과제이기도 하다.

비록 이번 기회는 놓쳤지만 개헌의 필요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공은 이제 국회로 넘어왔다. 한국당은 ‘6월 개헌안 발의, 9월 개헌’을 대안으로 내놓은 바 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6월30일까지 교섭단체 간 국민 개헌안을 만들고 반드시 완수해 가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도 대통령 개헌안 무산이란 현실을 받아들이고 개헌 청사진을 다시 짜기 바란다. 개헌이란 국가 대사(大事)는 여야 간 협의와 협치 없이는 불가능하다. 여야는 정치공방을 중단하고 6월 안에 국회 단일안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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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개헌

세계 최대 가사도우미 송출국인 필리핀은 지난 3개월간 쿠웨이트와 첨예한 외교 갈등을 빚었다. 올해 2월 쿠웨이트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던 필리핀 여성이 살해된 뒤 1년 넘게 아파트 냉동고에 방치된 사건이 발단이 됐다. 필리핀 여론은 분노로 들끓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필리핀인은 누구의 노예도 아니다”라며 쿠웨이트에서 일하는 노동자 25만명을 철수시킬 수도 있다는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특히 필리핀 외교부가 지난달 쿠웨이트 집주인에게 학대당하고 있다고 호소한 가사도우미 26명을 필리핀 대사관으로 탈출시키자 쿠웨이트 정부는 “주권침해 행위”라며 자국 주재 필리핀 대사를 추방하는 조치를 취했다. 악화일로를 치닫던 ‘가사도우미 분쟁’은 지난 11일 쿠웨이트에 취업한 필리핀 가사도우미의 인권을 보호하는 협약이 체결되면서 해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를 연수생으로 위장취업시킨 뒤 불법으로 고용했다는 의혹을 받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4일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기 위해 출석하면서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해외에서 일하는 필리핀 노동자는 1000만명가량으로 전체 인구(1억600만명)의 10%에 육박한다. 여성 노동자들은 대부분 가사도우미로 일한다. 해외 체류 노동자들의 본국 송금액은 연간 300억달러가량으로 국내총생산의 9%를 차지한다. 해외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들이 필리핀 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은 인건비가 저렴한 데다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해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연합 등 비영어권 국가에서 인기가 높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4일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로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조 전 부사장은 모친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과 함께 지난 10여년간 필리핀 노동자 20여명을 대한항공 연수생으로 가장해 입국시킨 뒤 가사도우미로 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할 수 있는 외국인은 재외동포나 결혼이민자, 방문취업 자격 소지자 등 내국인에 준하는 신분을 가진 이들로 제한된다. 출입국당국은 대한항공 총수 일가가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는지 철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 해외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의 인권침해 행위에 강경 대응하고 있는 필리핀 정부가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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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베드(시험장): “일반적으로 과학 이론의 타당성과 적용 가능성을 증명하거나,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개발한 각종 신기술 및 시제품의 성능, 효과, 안정성, 양산 가능성, 편의성 등을 시험하기 위한 환경, 공간, 시스템, 설비(시설) 등을 의미한다.” ‘테스트베드’라는 용어를 이렇게 정의하는 <두산백과>는 “한국은 모든 플랫폼과 다양한 기술을 시험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으며,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의 보급률이 높아 세계 IT기술의 테스트베드로 주목받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테스트베드는 새로운 기술이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거치는 곳이다. 미래를 미리 테스트하는 곳이다.

테스트베드는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각광받는 테스트베드, 미래가 가장 바쁘게 미리 돌아가는 곳은 세종시다. 2016년 세종시는 국토교통부의 ‘U-시티 체험형 테스트베드 구축 공모 사업’에 선정되었다. “첨단 유비쿼터스 기술을 기반으로 24시간 가동되는 도시통합운영센터에서 원격으로 다양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미래형 도시모델”을 테스트하는 사업이다. 시민들에게 언제든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미디어파사드와 미디어보드판이 설치된다고 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같은 해 세종시는 두레농업타운에 ‘노지형 스마트팜 실증 테스트베드’를 조성했다. 스마트 환경제어시스템과 관제실을 갖추고서 땅속과 땅 위의 상태를 자동으로 측정하고 판단해서 작물을 재배하는 시험이다. 미래형 농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배우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2017년에는 같은 곳에서 ‘친환경 전기농기계 실증 테스트베드 구축을 위한 사업’을 시연했다. “위성신호를 받아 밭을 가는 자율주행 트랙터, 드론을 이용한 방제작업, 승용관리기 및 전기 다목적 이식기, 여성과 노인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전기 다목적 운반차량” 등이 출동해서 농업 분야 4차 산업혁명이 어떤 모습일지를 보여주었다.

또 세종시는 올해 4월에 자율주행자동차 연구개발을 위한 테스트베드를 구축하겠다고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역산업 거점기관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앞으로 5년 동안 모두 145억원을 투자한다고 한다. 상용화되기 전에 실제 도로에서 생길 수 있는 안전문제를 꼭 해결해야 하는 자율주행차는 그 어떤 기술보다 테스트베드가 절실히 필요하다. 테스트베드가 클수록, 실제 교통 환경에 가까울수록 자율주행차가 약속하는 미래가 더 가까이 왔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세종시가 자율주행차 테스트베드가 되는 것은 정부가 내세우는 ‘스마트 시티 추진 전략’의 일부이다. 올해 1월 4차 산업혁명 위원회는 세종시 5-1 생활권과 부산 에코델타시티를 ‘스마트 시티 국가 시범도시’로 선정했다. 274만㎡에 이르는 세종시의 스마트 시티는 앞서 열거한 각종 테스트베드를 포괄하는 하나의 거대한 테스트베드인 셈이다. 그 안에는 스마트팜, 스마트 교육시스템, 미세먼지 모니터링, 자율주행 대중교통, 혁신창업 구역, 제로에너지 특화 단지 등이 들어있다. 테스트베드는 말로만 읊을 때는 잘 실감나지 않는 미래 시나리오를 더 그럴듯하게 보이게 한다.

테스트베드에서는 혁신적인 실험을 촉진한다는 명분으로 규제가 쉽게 사라진다. 지난 1월 ‘조선비즈’ 기사는 새 스마트 도시가 ‘탈규제’의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손병석 국토부 1차관은 이 ‘국가 시범도시’를 “백지상태에서 조성하는 신도시”라고 표현했다. 또 여기에는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한다고도 했다. 아이들이 모래 놀이터에서 마음대로 노는 것처럼,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해서 기업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마음껏 시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당시 규제혁신 토론회에 참석한 대통령 앞에는 실제로 아이들의 모래 장난 도구가 놓여 있었다.

테스트베드는 혁신가들의 놀이터이자 이상향이다. 간섭 없는 곳에서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하고 실험해서 미래 세계를 건설할 토대를 만들고자 한다. 가령 곳곳에 센서를 달아 데이터를 최대한 많이 수집하고, 최소의 절차만 거쳐서 자율주행차를 완전 무인 모드로 시험하기를 원한다. 이들에게 테스트베드는 자유와 기회의 땅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새로 등장한 테스트베드 후보지가 바로 북한이다. 남북정상회담 성공 이후 쏟아진 미래 전망 속에서 북한은 갑자기 “스마트 시티 등 4차 산업혁명 시험무대”가 되었다. 지난 16일 열린 ‘아시아 리더십 콘퍼런스’를 보도한 ‘조선비즈’ 기사에서 북한은 ‘IT 원시림’으로 규정되었다. 한 발표자는 “오래전부터 얘기가 됐지만 현실화되지 못한 스마트 시티를 북한의 도시에 구현할 수 있고, 남한에서는 규제 때문에 불가능한 원격 진료나 인공지능 의료 시스템도 북한에서는 가능하다”라며, 북한을 세종시보다 더 크고 깨끗한 ‘백지상태’의 테스트베드로 보았다. 이 백지 혹은 원시림에서 북한 사람들의 존재와 목소리는 지워진다.

세종시든 북한이든, 물리적이고 정치적인 영토의 일부를 테스트베드로 삼고 싶은 이들은 그 공간을 백지, 원시림, 놀이터라고 생각한다. 혁신가들에게는 매력적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섬뜩할 수 있는 비유다. 나의 테스트베드는 타인의 생활세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혁신가들의 미래 전략은 테스트베드를 차츰 늘려서 결국 이 사회 전체를 테스트베드로 만드는 것이다. 테스트베드를 정의하고 확보하고 확대하는 세력이 곧 미래의 주도권을 쥔다.

미래는 테스트베드에 잠복하고 있다. 미래에 개입하려는 사람들은 지금 테스트베드에서 벌어지는 일에 주목해야 한다. 테스트베드는 세계와 동떨어진 무풍지대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상이한 비전과 이해관계가 팽팽하게 경합하는 곳이다. 사람과 역사가 깃들지 않은 완전한 백지란 어디에도 없고, 한반도의 원시림은 이미 사라졌으며, 요즘 부모들은 모래 놀이터가 오염되어 있다고 의심한다. 완벽하게 자유롭고 안전한 놀이는 없다. 우리는 어떤 놀이터에서 미래를 테스트할 것인가?

<전치형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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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반격(Backlash)이 과격화되고 있다. 5월19일 혜화동 시위에 가서 여자들에게 염산을 투척하겠다는 게시물(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았다)이 여러 건 올라왔고, 일베의 몇몇 유저가 시위를 훼방 놓으러 갔다가 연행되기도 했다. 요즘 온라인에서는 ‘페미를 다 죽여버리고 싶다’는 댓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지난주 한 유튜버가 폭로한 사진계 성폭력 사건 수사청원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한 여자연예인의 사형을 요구하는 경악스러운 청원이 올라오기까지 했다.

여자들의 분노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남자들은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났을까? 그간 누려왔던 가부장제적 특권이 공격받는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일까? 하지만 그런 ‘이성적’인 계산속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그야말로 ‘뭐가 문젠지 울지 말고 똑바로 말해보라’고 얘기해야 할 지경이다. 이들은 대체 무엇으로부터 이렇게 상처를 받은 것일까?

어쩌면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곳은 좀 더 깊은 곳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한국의 ‘일부’ 남자들이 내뱉고 있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들이 그들이 가지고 있던 ‘환상’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진부하지만 엄연한 현실로부터 시작된다. 여자와 남자를 불문하고 모든 청년들의 삶이 근 10년간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다는 것은 사회적 사실이다. 여전히 믿기 어렵다면 청년임대주택이나 대학 기숙사를 자신들의 이익(땅값과 임대료)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 건물주들이나, 지역 SOC 예산을 900억원가량 증액하고 청년 관련 예산 1000억원을 삭감한 국회를 보면 될 것이다.

당연히 청년들의 삶은 궁핍해지고, 그들의 필요와 욕망 역시 많은 제약 속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젠더질서의 불균형이 성별에 따라 대응방식을 갈라놓았다. 남자들은 ‘여자 탓’을 하며 자신들의 분노를 해소했고, 여자를 성욕해소를 위한 물건처럼 여김으로써 욕망을 해소했으며, 아직은 오지 않았지만 언젠가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주어질 ‘조신하고, 살림 잘하고, 내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를 떠받들어 주면서, 맞벌이도 해줄 개념녀’를 꿈꾸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간직했다. 반면 여자들은 우울함에 빠져드는 와중에도 자력생존을 위해 노력했고, 변화를 위해 싸웠으며, 없는 가운데서도 서로를 도우려 했다. 여자들이 차근차근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미래를 모색하는 동안, 남자들은 오로지 자신들이 멋대로 만들어놓은 환상 속의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을 비난하고, 추행하고, 의존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2015년부터 터져나온 여자들의 분노는 이런 남자들의 환상을 심대하게 위협하고 있다. 때리면 맞기만 하는 줄 알았던 김치녀들에게 나를 상처 입힐 수 있는 힘이 있었다는 것, 불법촬영물 속의 벗은 몸들과 예쁘게 웃기만 하던 여자아이돌에게도 인격이 존재한다는 것, 나를 구질구질한 삶에서 구해줄 것이라 막연히 여기던 여자들은 세상의 불공평함을 모르는 순진한 바보가 아니며, 그런 게임에 놀아날 생각도 없다는 것. 그러므로 남자들의 사회인식과, 포르노와, 미래계획 속의 여자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자꾸 일깨우려 하는 것이다.

그것이 모두 인간이라는 사실, 그들과 눈이 마주칠 수 있고 그들 또한 나를 바라본다는 사실이 남자들에게는 공포가 되었다. 남자들은 이 환상의 여자들을 자신의 궁핍과 어려움에 대한 모종의 보상이자 권리처럼 여겨왔다. 그리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환상을 만들고, 키우고, 공유하며 낄낄거렸다. 나의 힘듦을 알리바이 삼아서, 나보다 더 힘든 처지에 놓인 이들의 얼굴을 외면하고 착취했다.

그리고 오늘 남자들이 받아보고 있는 것은 그 행동들에 대한 인간성의 정산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으로서 물어야 할 죗값의 크기는 커질 것이다. 단언컨대, 어떤 협박이나 폭력도 여자들의 눈을 감게 할 수 없다. 응분의 대가를 치르고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거나, 혹은 환상의 세계와 함께 멸망하거나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이미 너무 늦지 않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잉여사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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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가 사는 동네에 새 도서관이 생겼다. 1년 전에 이사 올 때 한창 공사 중이던 도서관을 보면서 가슴을 두근거리며 개관을 기다렸었다. 바로 옆에 호수가 있고 숲도 있고 공원도 있어서 이런 도서관이라면 소풍처럼 놀러다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개관날만 기다리다 설레며 가보았더니 아직 문도 열기 전이었다. 대신 개관식 준비가 한창이어서 난생처음 기념식수를 준비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리본 단 삽이 눈에 띄었다. 나무는 벌써 심어져 있었고, 그 앞에 현직 시장의 이름이 담긴 명패도 이미 붙어 있었다. 그 명패를 보고서야 그 도서관은 우리 동네 도서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옆 동네 도서관. 당연히 명패 속 시장의 이름도 우리 동네 시장의 이름은 아니었다. 그날 옆 동네 시장이 황금빛 리본을 단 삽으로 흙을 푸는 것을 보았다.

내가 사는 집은 시 경계선에 붙어 있어서 매일 다니다시피 하는 마트도 옆 동네, 다른 시에 있는 마트다. 공원을 산책하다보면 툭하면 시 경계선을 넘어 우리 동네와 옆 동네를 오고간다. 물론 시 경계선이라는 게 신고하고 넘어가고, 허가받고 출입해야 하는 건 아니다. 살다보면 그건 그냥 편의상 그어진 선이거나, 필요한 사람이나 알 필요가 있는 구획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불편한 점도 있다. 택시를 타면 이해할 수 없는 할증이 붙는다. 겨우 요기서 조기 가는데 시 경계를 넘기 때문이다. 쓰레기봉투를 살 때도 주의해야 한다. 잘못했다가는 옆 동네에 낸 세금으로 우리 동네 쓰레기를 버리는 셈이 된다.

도서관 대출증을 만들면서 이 동네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동네는 달라도 경기도민이라 괜찮은 모양이다. 내 주소지가 경기도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종종 내가 경기도민이 맞긴 한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혹시 절반쯤은 서울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살아가는 일의 대부분이 서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직장이랄 게 없는 사람이지만 내 가족의 직장은 서울에 있다. 신분당선을 타고 강남에 가서 2호선을 갈아타고 출퇴근을 한다. 내 볼일도 대부분 서울에서 있으니 같은 동선으로 움직일 때가 많다. 지하철에 올라타서는 신분당선은 왜 요금체계가 그렇게 복잡한가, 왜 그렇게 비싼가 생각하곤 한다. 신분당선 일은 서울 일인가, 경기도 일인가도 생각한다. 지하철에서 할 일이 없으니 하는 생각이다. 보통 때는 집세나 집값과 관련하지 않고서는 내가 어디 사는지를 생각할 때가 거의 없다. 지방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당황스러운 이유다.

내가 어디 사는지도 별로 주의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내가 사는 곳의 대표를 뽑아야만 한다. 그것도 한꺼번에 일곱 명이나 뽑아야 한다. 그 일곱 명을 뽑기 위해서는 그 일곱 명의 몇배수인 후보들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터이니 숫자로만 생각해도 이게 엄청난 일이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들이 받게 될 세비, 내가 낸 세금으로 그들이 할 일들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간혹 뉴스에 보도되곤 하는 그들의 소란과 추태를 떠올려보면 그만큼 그들에게 권한과 권력이 있다는 뜻이고, 그건 다시 말하면 그들이 그만큼 좋은 일, 필요한 일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일 터이다. 교육감과 시장, 도지사 등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니 잘 뽑아야 할 터인데, 믿을 수 있는 후보를 골라내는 건 고사하고 절대로 믿을 수 없는 후보를 찍어내는 것도 쉽지 않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데, 나는 어떻게 꽃과 잡초를 구분해 꽃들을 잘 키우고, 내 꽃밭을 잘 가꿀 수 있나.

새로 생긴 도서관 얘기를 조금 더 하자. 새로 생긴 도서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터여서 개관을 하고 며칠 동안은 열람실 안이 시끌시끌했다. 새로 생긴 도서관의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사항을 건의하는 동네사람들 때문이다. 며칠 동안 책을 읽기에는 좀 소란스러운 환경이었지만, 그래도 보기가 나쁘지는 않았는데, 우리 도서관이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동네사람이 없다면 동네도서관은 어떻게 더 좋아질 수 있겠는가 싶어서였다. 나는 옆 동네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의견 하나를 보태기로 했다. 자전거 거치대가 좀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도서관에 좋은 책 구입을 요청하는 대신 자전거 거치대를 요청해놓고는 기분이 좋아졌다. 자전거 타는 취미가 생긴 지 얼마 안된지라 내친김에 공용자전거 수를 늘리는 것에 대해서도 제안하고 싶었는데, 그건 도서관에 제안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 어디에다 하나? 그런 공약을 내건 후보자를 찾아야 하나? 그렇게 사소한 이유로 후보자를 결정해도 되는 건가? 그렇게 한다면 그건 민주주의의 낭비가 아닌가. 선거란 건 뭔가 좀 더 심각하고 진지한 자세여야 하지 않나.

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내 한 표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나는 참 작고, 나는 참 사소한 개인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사소한 표가 모여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구호처럼 여겨지고 교과서식의 교훈처럼만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도 그런 사소한 개인들이 모여 촛불을 켜고, 그 촛불로 나라를 바꾸었던 걸 생각해보면 이게 분명 엄청난 일이기는 하고, 투표도 분명히 촛불을 밝히듯이 해야 하는 것이기는 하겠다.

지방선거가 한 달도 안 남았다. 얼마 뒤면 노는 날이네 생각하다가 노는 날인 거 말고도 생각할 게 많구나 생각해보는 날이다. 평화를 위해, 복지를 위해.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사람들을 그만 좀 보기 위해. 그 지긋지긋한 좌파 타령 좀 그만 듣기 위해. 전쟁 없는 미래를 위해. 해외여행을 가면 사우스냐 노스냐 묻는 질문에 그만 난처해지기 위해. 자전거를 위해. 도서관을 위해. 재활용품의 원활한 수거를 위해. 미세먼지 없는 환경을 위해. 집값을 위해. 가족 중에 더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없는 나이가 되기는 했지만, 내 아이든 남의 아이든, 그 아이들 모두의 학교를 위해. 그 아이들의 선생님들을 위해. 청년들의 일자리를 위해, 그들의 월급을 위해. 여자를 위해, 남자를 위해. 우리 모두를 위해.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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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알라는 ‘물을 마시지 않는다’라는 뜻. 호주 원주민들은 코알라를 제 아기처럼 예뻐한다. 엄마 잃은 코알라를 데려다 키우기도 하는데, 아침마다 유칼립투스 나뭇잎을 대령했다. 코알라는 하루 종일 유칼립투스 나뭇잎을 씹어 먹는다. 이게 밥이고 물인 게다. 다른 잎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잎에 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어 달큰히 먹으면 취기가 돈다. 코알라의 낙천성은 유칼립투스 잎에서 나오는가 보다.

유칼립투스란 꽃이 덮여 있어서 지어진 이름. ‘덮여 있다, 가려져 있다’라는 뜻. 유칼립투스의 꽃말은 ‘추억’이다. 추억 또한 덮여 있거나 가려진 일들이 배나 많은 법이렷다.

코알라는 유칼립투스를 사랑한다. 마치 판다곰이 대나무 순과 잎을 아껴먹는 것처럼. 세상에 이 나무 이 그늘뿐이라는 듯 한번 타고 올라가면 내려올 줄 모른다. 한번은 이브가 아담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자꾸 캐물었다. “여보! 나만 사랑해?” 이브는 더 당겨 앉아 아담에게 물었다. “날 진짜 사랑하냐구… 응?” 그래도 시큰둥. 뿔딱지가 난 이브가 아담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너 나 사랑해?” 그제서야 아담이 한마디. “여기에 당신 말고 누가 또 있다구 그러셩. 안심하셩. 증말~”

사랑한다는 말. 꼭 말로 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 시골에선 이런 일도 있다. 엉덩이에 종기가 난 아주머니가 병원에 가서 생긴 일. “선상님. 요거이 그냥 종기 맞지요?” “암 그라지요. 걱정 마시쑈잉.” 아낙은 그길로 병원을 빠져나와 대성통곡. 암이라는 말이 그 나쁜 암을 가리킨 게 아닌데….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아아. 향기로운 꽃보다 진하다고. 오오. 사랑 사랑 그 누가 말했나. 아아. 바보들의 이야기라고. 오오.” 단점, 약점, 흠과 티를 물고 흔드는 것도 모자라 거짓부렁까지 해가면서 갈라서게 만들고 미워하게 만드는 짓들. 사람과 사람뿐만 아니라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이런 어깃장을 부리는 자들이 있다. 코알라에게 유칼립투스를 빼앗고, 판다에게 대나무를 빼앗으려는 자들. 사랑 노래를 진창 불러도 모자랄 판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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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수수·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처음 법정에 섰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 재판이 열린 지 1년 되는 날이었다. 이 전 대통령 재임 중 검찰 수사를 받고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9주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의 얼굴에선 회한의 빛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장문의 입장문을 읽어내려갔으나 부인과 변명뿐이었다. 주권자를 배신한 데 대한, 진심 어린 사죄는 없었다.

뇌물수수와 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해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 전 대통령은 “오늘 비통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검찰의 무리한 증거의 신빙성을 재판부가 검토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의 소송 비용 대납과 관련해서는 “사면을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는 공소 사실은 충격이고 모욕”이라고 주장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국익을 위해 삼성 회장이 아닌 이건희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의 사면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다스 비자금 조성·횡령에 대해서도 “형님과 처남이 회사를 만들었고, 30여년간 회사의 성장 과정에서 소유나 경영을 둘러싼 어떤 다툼도 없었는데, 국가가 개입한 게 온당하냐”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 전 대통령은 주변에서 재판을 거부하라는 주장이 많았지만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그럴 수 없었다”며 법정에 나온 이유를 설명했다. 공판준비절차에서 검찰이 제출한 모든 증거에 동의한 배경을 두고는 “증인 대부분이 금융위기를 극복하고자 밤낮 없이 일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을 법정에 불러 추궁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둘 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궤변이다. 재판에 출석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피고인의 의무다. 박 전 대통령이 재판을 거부했다고 자신의 출석을 대단한 일로 ‘포장’하는 건 어처구니없다. 증거 동의 사유를 밝힌 대목도 군색하다. 측근들이 등 돌린 상황에서 그들을 법정에 불러내 다퉈봐야 승산 없다고 판단한 것 아닌가. 일부에선 사법절차를 신속히 마무리하고 사면을 기대하려 한다는 관측까지 내놓는 터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무죄 추정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증거와 진술이 차고 넘치는데, 언제까지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려 할 참인가. 진실을 숨기려 할수록 죄만 더 커질 뿐이다. 이제라도 법정에서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고 시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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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에 광주에 간 건 처음이었다. 시내 곳곳에는 5·18광주민주화운동 38주년 기념식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금남로에는 전야제가 치러질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길을 돌아가야 하는 택시기사는 백미러로 승객을 힐끔대면서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만 좀 하지, 엥간히들 한다요. 질문인 것 같았는데, 나는 그 말의 진의를 알 수 없어 대답하지 못했다. 행사 준비로 분주한 시내 상황은 안중에 없이 빨리 달리라고 재촉한 외지 사람을 탓하는 것인지, 정말 이제 그만 과거의 악몽과도 같은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안타까움인지….

나는 문득 몇 년 전 만난 교사가 떠올랐다. 국어 교사들의 독서모임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나는 내가 쓴 1980년 오월을 배경으로 한 동화에 대해 얘기했다. 그해 봄을 모를 리 없는 교사들에게 하는 얘기라 별스러울 게 없었다. 글을 쓰려고 광주에 머물면서 찾아다닌 오래된 골목과 없는 게 없던 양동시장과 포장마차에서 사먹은 기막히게 맛있는 호떡과 여전히 그때의 기억을 말하기 꺼려하던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에 대해 얘기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중간에 질문을 하겠다고 손을 번쩍 든 교사의 표정이 사뭇 비장했다.

“제가 하고 싶은 질문을 칠판에 적어도 될까요?”

설마 수학이나 물리학 공식을 적으려는 건 아니겠지,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칠판 앞에 선 교사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그런데 그가 10여분에 걸쳐 칠판에 빼곡하게 쓴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인터넷에 떠도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낭설이었다. 그는 쓰기를 끝낸 뒤 물었다.

“이런 자료를 본 적이 있나요?”

그 질문의 진의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날 나는 그 교사에게 칠판을 직접 지우도록 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내 다리가 후들거렸다. 분노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실을 외치는 간절한 목소리보다 거짓을 설파하는 목소리가 더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이 두려웠다. 심지어 그가 아이들 앞에 서는 교사라서 섬뜩했다. 그의 오월은 여전한 것일까? 빗방울이 떨어지는 광주를 빠져나오면서 나는 그의 거짓된 오월을 염려했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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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은 천하를 삼분하자는 항우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때 휘하에 있던 괴철은 한신의 마음을 돌리고자 여러 차례 건의한 끝에 탄식한다. “공을 이루기는 어렵지만 무너지기는 쉬우며, 때를 얻기는 어렵지만 잃기는 쉽습니다. 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괴철이 요구한 것은 당시 초와 한의 정세, 이미 유방 밑에 있기에는 너무 커져버린 한신의 공과 힘 등을 종합적으로 ‘숙려(熟慮)’하라는 것이었지만, 한신은 짧은 생각에 갇혀서 끝내 괴철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교육부가 학교생활기록부의 신뢰도 제고 방안을 ‘정책숙려제’에 부친다고 하여 논란이 일고 있다. 국가교육회의에서는 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지역과 성, 연령 등을 안배하여 선정하는 시민참여단 400여명의 의견을 중심으로 개편 권고안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비전문가들에게 무작정 의견을 물어서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고, 공공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모형과 자료를 마련하고 여러 검증 과정을 거칠 예정이라고 한다.

도무지 답이 없다고들 하는 교육의 문제를 위해 모두가 나서서 신중하게 ‘숙려’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려’가 매우 ‘우려’되는 것은, 이런 물음들이 꼬리를 물기 때문이다. 정작 그동안 교육정책을 세우고 수행해 온 전문가와 교사들의 경험과 의견이 묵살됨으로써 교육의 일관성이 훼손될 소지가 크지 않을까? 의제 선정과 제시 자료 작성 등의 과정을 전문가와 함께할 ‘이해관계자’를 어떻게 구성하는가에 따라서 ‘숙려’의 방향성이 상당 부분 좌우될 텐데, 이에 대한 원칙 수립이 가능할까? 무작위 추출하여 참여 의사를 묻는 방식으로 시민참여단을 선정하는 방식이 올바른 공론을 끌어내는 데에 적절할까? 겨우 두 달 정도의 시간에 다양한 이견들을 수렴해서 개편 권고안에 넣을 만한 ‘공론’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숙려하라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한신은 결국 유방에게 철저히 이용당하고 허무한 최후를 맞는다. 숙려하지 않아서 놓친 때는 다시 오지 않는다. 문제는 숙려의 방식이다. 한신이 유방으로부터의 독립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무작위 추출한 군사들의 의견을 물었다면 온전한 숙려라고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이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교육의 문제다. 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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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술은 사람이 사람을 돌봐주는 참 아름다운 행위라 생각한다. 위급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때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개인적으론, 가족이 입원했을 때 주치의의 헌신적 진료를 기억한다. 병실을 오가는 다른 의사들 역시 혼신을 다했다. 가끔 병원에서 환자들이 의사에게 꽃다발을 주는 장면도 보았다. 그 고마움을 어찌 다 전할 수 있으랴.

그러다 의사가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다가올 때가 있다. 지난 일요일 의사집회에서 열변을 토하는 의사협회 지도부의 모습이 그러하다. 우리는 일반 시민과 다른 특권인이라고 과시하는 듯하다. 솔직히 나의 느낌이 그렇다.

“하나를 내어주고 둘을 내어주다가 결국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하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더 잃을 게 없는 자들은 두려울 게 없습니다.” 의사협회 회장이 회원들에게 집회 참여를 독려하며 보낸 서신의 일부이다. 누구든 이 정도로 절박함을 호소한다면 마음으로 공감해야겠지만, 난 오히려 거북하다. 하루하루 어려운 여건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겐 기가 찰 표현이다. 묻고 싶다. 정말 잃을 게 없으신가?

얼마 전 의협 집행부가 ‘더 뉴 건강보험’이란 제목의 문서를 공개했다. 의협이 제안하는 건강보험 개혁안인데, 민간보험을 축소하고 건강보험을 강화하자는 다소 획기적인 내용이다. 이를 위해선 건강보험 재정을 확충하자며 국고지원금 확대, 유해 상품에 대한 건강부담금 신설 등 구체적 방안도 제시했다. 반가웠다. 내가 바라는 건강보험 개혁의 방향과 비슷했으니.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 뒤따른다. 비급여의 급여화를 반대한단다.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이 광범위한 비급여에서 비롯되기에 건강보험을 강화하자면 비급여를 급여로 전환해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낮춰야 하는데도 “현행 비급여 항목의 대폭 존치”를 요구한다. 정말 나의 논리체계에선 따라가기 어려워 묻는다. 비급여를 놔두고서 어떻게 건강보험 보장성을 늘릴 수 있는가?

더 실질적 논점으로 들어가자. 왜 의협은 비급여의 급여화를 반대하면서도 건강보험 강화와 재정 확충을 강조하는 걸까? 의사 일부에서도 의구심이 제기되자 마침내 의협 회장이 회원에게 보낸 서신에서 속내를 실토한다. 재정투입 증가를 통한 수가 정상화! 건강보험 강화를 명분으로 재정을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수가를 인상하자는 구상이란다. 모두가 예상했던 목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병·의원은 사적 기관이다. 병·의원의 운영을 위해선 비용이 보전돼야 하고 수익도 필요하다. 일단 비급여의 급여화는 의사 수입을 감소시킬 것이다. 기존 거품이 제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케어는 비급여의 급여화로 인한 수입 감소를 현행 급여진료 수가를 인상해 보전해준다는 원칙을 세웠다. 사실 시민단체의 입장에선 그리 내키지 않는 원칙이다. 사람들이 의사라는 직업을 선망하는 이유에는 고소득도 포함되는데, 문재인케어는 현행 수준을 보장하겠단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의사의 적정 수입은 어느 정도여야 할까? 시민들은 차마 이 질문을 꺼내지 않는다. 비급여의 급여화가 원활하게 진행되기를 바라기에 수입 보전 원칙에 시비를 걸지 않는 거다. 그래서 물어야겠다. 의사들도 이 정도에서 타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진료권도 핵심 논점이다. 현재 비급여 진료는 전적으로 의사 재량에 속한다. 이후 급여로 전환되면 의사들은 진료비 청구를 위해 진료내역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제출해 심사를 받아야 한다. 자신의 진료를 같은 전문가가 들여다보는 게 불편할 수 있다. 나아가 과도하게 심사해 진료비를 삭감할 거라는 우려도 가질 수 있다.

이해한다. 정부와 의사 사이 불신의 골이 깊다면 더욱 그럴 수 있다. 그렇다고 비급여의 급여화 자체를 반대하는 건 논리도 명분도 취약하다. 어찌해야 할까? 의료 이용자인 시민들과 협력해 이 우려를 푸는 게 정공법이다. 시민들은 비급여의 급여화를 통해 과잉진료가 사라지길 바라지만 필요한 진료까지 침해받는 건 결코 원하지 않는다. 환자에게 요청되는 진료를 심사평가원이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그건 환자 건강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적절한 진료권에 대해선 의사와 시민의 이해가 같다는 의미이다.

시대의 변화를 직시하자. 나라다운 나라, 병원비 걱정 없는 대한민국을 열망하는 촛불시민에게 비급여의 급여화는 너무도 당연한 개혁이다. 더불어 의사들은 수입이 보전되고 진료권도 존중받는 길이 있다. 의사들이 강조하는 진료과별 수가 균형, 필수의료 지원 등도 함께 추진하면 되는 일이다. 헌신적으로 환자를 돌보는 의사들을 기억하기에 거듭 묻는다. 이제 시민들과 손잡지 않겠는가?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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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시절 좋은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교수 아닌 학생이 그 연구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된 것은 모교 최초라는 연락도 받았다. 이른 아침이었다.

소식을 들은 지도교수님은 오전 일정을 미루고 곧장 학교로 오셨다. 지금 태연하게 공부가 되겠냐며 교내 커피가게로 향하시더니, 주문하다 말고 주인아주머니께 “얘가 제 제자인데 이번에 하버드 가요. 좋은 장학금 받고.” 자랑을 하셨다. 아주머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얼핏 보면 선생님은 얼음 같은 이미지였으니까. 그러다 뒤늦게 “아유 교수님, 얼마나 자랑스러우시겠어요!” 덧붙였다. 민망해하며 엉거주춤 있던 나는 원두를 갈던 알바생과 시선이 마주쳤다. 안경 너머로 빙글 웃는 그녀 눈길엔 ‘저런 팔불출 선생님이 다 있나요’ 쓰여 있었다. 덩달아 쿡 웃다 다음 순간 뭉클했다. 살면서 누군가 나를 위해 팔불출이 된 것은 처음이었다. 대학 합격했을 때 부모님조차 그러시지 않았다.

그로부터 여러 해 지나서였다. 단짝친구가 유학에서 돌아와 유수 대학에 임용되었다. 교수가 된 것이다. 세부전공은 달랐어도 서로의 지도교수님을 알던 터라 친구는 인사드리러 찾아뵈었다고 했다. 참 잘되었다고 기뻐하시며 선생님이 말미에 이렇게 덧붙이셨단다. “근데 우리 소영이도 그 전공 자리가 워낙 안 나서 그렇지, 곧 교수 될 거야”라고. “으아, 음성자동지원 된다”며 친구 앞에서 킥킥 웃었다. 그리고 그날 밤, 자다가 깨어나 울었다.

오래전 ‘내 제자 하버드’ 하신 그날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다. 이제 주위에서 축하인사 건넬 텐데 유심히 관찰해보라고, “근데 난 언제쯤” 혹은 “근데 우리 애도 곧” 식으로 말미에 한마디씩 얹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 상대를 축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저렇게 덧붙이는 건 산뜻하지 못하다고, 그런 못난 사람이 또 없다 하셨다. 나로 인해 선생님이 부지불식간에 산뜻하지 못한 부류가 되셨구나 싶어 마음 아팠다. 당시 난 비정규직으로도 좋은 선배 연구자들과 즐겁게 공부하던 중이었지만, 그날 하루는 선생님이 다시금 팔불출 되실 현실여건이 주어지길 간절히 바랐다.

‘홀레 아주머니’(Frau Holle)라는 독일 옛이야기에는 우물가에서 날마다 손가락에 피가 날 정도로 베를 짜는 소녀가 등장한다. 핏물 든 실타래를 씻다 물에 빠뜨린 소녀는 의붓어머니 질책에 못 이겨 그것을 찾으려 우물로 뛰어든다. 그 아래에서 그녀는 친어머니 손길을 지닌 홀레 아주머니를 만나 살뜰한 보살핌과 가르침을 얻는다. 내겐 대학원 진학이, 말하자면 그 우물이었다. 소녀가 우물 아래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예상 못한 채 현실이 고통스러워 무작정 뛰어들었듯 나 역시 그랬다. 고시공부만큼은 싫었고, 자정까지 입시학원 알바를 하지 않아도 조교일 하며 학비 벌 수 있다기에 발을 떼었다. 시작은 그랬다. 그리고 거기서 나의 홀레 아주머니들께 닿았던 것이다. 모교 울타리 안과 밖, 전공 내부와 외부, 학생시절과 이후를 넘나들며 보살핌과 가르침을 받았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많이 받았다.

아주머니 품을 떠나 다시 세상으로 나온 소녀가 먼저 들른 곳은 아무도 반기지 않을 의붓어머니 집이었다. 좋은 대체부모를 통해 채워지고 성장한 아이는 이렇듯 상처의 근원을 찾아 묵은 실타래를 풀고 한 발 더 내디딘다고, 옛이야기를 연구해온 분이 알려주셨다. 수많은 메르헨이 이 서사구조를 갖는다고 말이다. 이른 시각 깨어, 풀어야 할 실타래에 관해 생각해본다. 그러자 여기 미처 못 적은 고마움들이 기억 저편에서 아침 해처럼 솟아난다.

가정의달을 맞아 “스승의 은혜는 어버이시라” 노랫말을 되뇌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 경우 부모마음, 혹은 자녀가 갖는 애틋함이 일반적으로 어떠한가를 스승들과의 관계에서 비로소 유추하여 헤아려볼 수 있었다. 처음부터 갖지 못했던 원형이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내면에 만들어진 셈이다. 찾아갈 가정이나 애착할 가족 없는, 그래서 이웃이 무심코 던진 “성장배경이 중요해” 같은 말에 마음 다쳐본 다른 누군가도 기억의 방에서 자신만의 홀레 아주머니를 찾아내기를, 그(그녀) 역시 고마움을 품고 한 발 더 내딛게 되기를 소망한다.

<이소영 | 제주대 교수 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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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들 상품이 아니겠는가. 훔치면 절도가 되고 소유하려면 구매해야 하니 책 또한 영락없이 상품이다. 그런데 책을 무료로 빌려주는 공공도서관이 있는 걸 보면 책은 다른 상품과는 좀 다른가 보다. 세상 사는 데 인간에게 필요한 물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개인에게 무료로 빌려주는 상품으론 책이 유일하다. 냄비와 옷을 거저 대여해주는 기관은 어디에도 없다. 

책도 상품인 한 다른 상품처럼 판매되고 구매되는 장소가 필요하다. 그곳을 책을 파는 가게, 즉 서점이라 부른다. 공산품에 비유하자면 책이 생산되는 곳이 출판사라면, 서점은 생산된 책이 판매를 위해 전시되는 상점이다. 서점이 있어야 생산된 상품인 책이 전시되고, 책이 전시되어야 소비자인 독자는 책을 고를 수 있다. 선택권은 서점의 소비자인 독자에게 있는 듯하다. 그러나 소비자의 선택권은 현실에서 사실상 보장되지 않는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엄청난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기차역과 백화점을 끼고 있는 영화관이 있다고 하자. 그 영화관에 10개나 되는 스크린이 있어도, 스크린 중 무려 8개를 한 영화가 독점하고 있다면 그 영화의 흥행은 보증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관객의 자유로운 선택은 이미 제한되어 있다. 새로운 쇼핑몰이 들어설 때마다 어김없이 매장을 확대하는 대형 체인 서점도 영화관 체인을 흉내 내고 있다.

몇 안되는 대형 서점 체인이 책과 소비자가 만나는 플랫폼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매장이 넓으니까 선택할 수 있는 책도 다양해 보인다. 매해 7200개가 넘는 출판사라는 공장에서 7만5000종이 넘는 책이라는 신상품이 출시된다. 하지만 정작 전국에 체인망을 갖고 있는 대형 서점에 7만5000종이 넘는 책이 빠짐없이 전시되지 않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대형 서점에는 책이 전시되는 장소인 매대를 구매한 출판사의 책이 주로 전시된다. 아는 사람은 아는 비밀, 대형 서점은 책이라는 상품이 아니라 책이 전시되는 장소, 이른바 매대를 생산자인 출판사에 파는 곳이 되어 버렸다. 그러하니 대형 서점에서 소비자인 독자가 고를 수 있는 책의 폭은 원천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대형 서점에는 판매된 매대를 관리하는 직원은 있지만 책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점원조차 없다.

작은 서점 혹은 독립 서점이라는 곳은 그래서 생겨났다. 힘든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책이 판매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 있는 대형 서점에서 제대로 전시되지 않는 상황, 잘 팔리는 책에 질식해 양서가 사라지는 현실이 아쉬워 용감한 사람들이 작은 서점을 만들기 시작했다. 독서인구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작은 서점은 다행스레 늘어 가고 있다. 작은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에게 왜 서점을 열었는지, 서점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수원에 있는 작은 서점 ‘마그앤그래’의 운영자는 이렇게 말했다. “책을 고르는 일을 좋아하고, 그걸 권해주는 일을 예전부터 좋아했어요. 열심히 읽어도 한 사람이 꼼꼼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란 한계가 있는데요. 저를 거쳐간 책들을 통해서 굉장히 여러 가지의 독서 인생을 살고 있는 기분입니다.” 서울 서촌 이상의 집 근처에 있는 ‘서촌 그 책방’의 운영자는 대형 서점과 달리 작은 서점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라 생각한다. 작은 서점의 꽃은 독자들이 모여 함께 책 읽고 토론하는 독서모임이다. “독서모임을 통해 아무데서도 말하지 못한 자신의 치부나 고민을 털어내고 살짝 눈물을 보일 때, 다달이 회원들의 표정이 밝아질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작은 서점에서는 책이라는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책을 읽고 지식을 공유하는 독자로 변신하는 마법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대자본이 운영하는 서점과 달리 이러한 작은 서점은 자영업의 방식으로 보통 운영된다. 서점 운영자는 한국의 자영업자를 곤란하게 만드는 모든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굳이 묻지 못했고 굳이 서점 주인도 털어놓지 않은 서점업의 장사 내막을 궁금해하는 분을 위해 <출판하는 마음>이라는 책에 실린 작은 서점 주인의 말을 그대로 옮겨본다. “기본적으로 서점은 음식점이나 옷가게처럼 원가의 두세 배를 남기는 장사가 아니다. … 책 팔아서 남는 돈은 빤하고 매달 나가는 월세는 비싸다. … 가령 월세 50만원에 관리비 등 한 달 유지비 50만원, 인건비 100만원이라고 하면 매월 수익이 총 200만원은 발생해야 한다. 책을 팔아 월 200만원을 마련하려면 하루에 열여덟 권을 팔아야 가능하다. 책의 평균 정가를 1만5000원으로 잡았을 때, 공급률 75%에 받아서 한 권 팔면 3750원이 남는다.”

작은 서점에는 대자본이 운영하는 대형 서점의 현대식 시스템은 없다. 그 대신 단순 소비자가 독자로 변신하도록 돕는 사람, 책에는 단순한 상품 그 이상의 가치가 들어있다고 믿는 사람이 거기에 있다. 대전에 있는 한 작은 서점의 상호는 ‘You are what you read’이다.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책 읽는 사람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이제 하나를 덧붙여야 한다. 우리는 책이라는 상품의 소비자도 될 수 있고, 책의 독자도 될 수 있다. 그런데 당신은 소비자입니까, 독자입니까? 아니면 책과 서점을 사진으로 찍기에 바쁜 인스타그래머입니까?

<노명우 | 아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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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영화감독은 1993년에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조연출로 데뷔해서 1997년에 첫 감독 작품으로 <초록물고기>를 내놓았다. 그후 <박하사탕>(1999), <오아시스>(2002), <밀양>(2007), <시>(2010)에 이어 이번에 8년 만에 신작 <버닝>을 선보였다. 데뷔 후 25년 동안 6개의 작품을 만든 셈인데, 작품 수가 적은 편에 속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는 40대 초반에 데뷔해서 그나마 50대에 작품활동을 왕성히 한 셈이고, 60대에 접어들어서는 중반에 이르러 신작을 선보인 게 됐다. 그의 이력을 보면 영화계 데뷔 전 1992년에 한국일보 문학상(소설)을 수상한 게 눈에 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나는 <밀양><시>에 이어 이번 작품 <버닝>을 몇몇 친구와 함께 극장에 가서 봤다. 그의 영화에는 전통시장의 뒷골목, 작은 읍내 미장원, 허름한 호프집 등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의 적나라한 일상의 장면들이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담긴다. 그 장면들 속의 배우들도 평상 생활의 화법, 행동방식, 일상적 습관들을 그대로 리얼하게 연기한다. 특히 이번 영화 <버닝>에는 법정 장면이 나오는데 판사가 어찌나 말투까지 현실적으로 연기하는지 영화를 보고 나온 친구가 진짜 판사인 줄 알았다는 말을 했다. 지난 작품들에 비해 <버닝>은 한국 사회 부의 상징인 서울 강남이 등장한다는 것이 새롭다.

주인공 청년 종수(유아인)의 아버지는 강남에 부동산을 사서 부를 축적할 기회를 놓친, 파주에서 소를 키우는 사람인데, 공무원을 폭행해서 구속되어 재판을 받는다. 종수와 대척지점의 청년 벤(스티븐 연)이 강남에 살면서 외제차를 몰며 초호화생활을 하는 사람인지라 이 영화에서는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의 생활공간과 벤의 강남 공간이 번갈아가며 어우러져 등장한다. 여주인공 해미(전종서)는 종수의 어릴 적 동네 친구인데, 그 중간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서울 남산자락 후암동 고지대 원룸에서 산다. 해미의 방 창문으로 남산타워가 보이고, 여주인공이 여행을 가거나, 나중에 실종된 후에도 종수는 그 방에서 창밖으로 남산타워를 바라본다. 함께 영화를 본 Q는 남산타워와 해미 원룸방의 대비를 눈여겨보고 감상을 얘기하기도 했다.

배우 유아인이 출연한 영화 '버닝'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세 청년의 이야기를 줄거리로 한다. 감독은 “지금 젊은이들은 자기 부모 세대보다 더 못살고 힘든 최초의 세대다. 지금까지 세상은 계속 발전해왔지만 더 이상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이 없다. 요즘 세대가 품고 있는 무력감과 분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한다. 주인공 종수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작가가 되는 게 꿈이지만 택배 알바로 힘들게 살면서 재판받는 아버지 뒷바라지하느라 쫓아다닌다. 눈은 조금 풀어져 있고 무표정하게 고개를 갸웃하고 무기력감을 드러내는 모습으로 나온다. Q는 종수가 계속 (불안한 듯) 몸을 흔들더라고 예리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P는 종수에게 감정이입이 된다고 했다. 이 영화를 본 다음날 아침에 나 역시 이 세 명의 청년들을 떠올리며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무엇보다도 세 청년 모두 무기력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주인공 해미는 어렵게 살면서도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와서 부시맨들의 문화 속 ‘그레이트 헝거’(Great Hunger·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뜻있는 배고픔)를 얘기하며 그들의 춤을 추기도 하지만, 영화 속에서 결국 ‘실종’되는 걸로 처리된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우리 삶 속에 의미를 찾는 갈망의 결핍과 좌절을 표현하는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벤도 젊은 나이에 어찌 그런 호화생활이 가능한가 의아함을 불러일으키고 해미의 실종과 연관된 다소 사이코패스적 인물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계속 불러일으키지만, 마지막에 가서 그가 보여준 너무 슬픈 눈빛 연기가 잊히질 않는다. 돌이켜보면 한 세대 전에는 힘들었어도 공장에서 일하며 현실과 싸우는 노동자, 정치상황에 항거하는 운동가라는 의지와 열정의 건강한 청년상이 있지 않았던가.

이 영화는 철저한 사실주의 영화이면서도 장면 하나하나가 매우 철저하게 기획되고 공들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실감이 전달될 정도로 깊이가 묻어난다. 배우들의 연기와 미스터리한 스토리, 현실적 장면들과 그 안에 묵직하게 담겨 있는 의미망들, 섬세한 상징들, 긴장감을 더하는 음악, 새벽빛과 노을의 아름다운 풍경 등 영화의 모든 것이 하나로 조화롭게 무르익어 잘 녹아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러닝타임이 두 시간이 넘지만, 장면 장면이 속도감 있게 전환하면서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영화를 보고나서는 이창동 감독이 지금의 한국을 대표하는 정신적 삶의 전형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고, 또 그가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했구나 하는 평가를 하게 됐다.

주인공 종수는 어릴 적 어머니가 가출했고 아버지가 어머니 옷을 모두 불태우게 해서 그 불타는 장면을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종수를 통해 드러나는 ‘버닝’은 단순히 소멸시키는 행위이거나, 잔혹한 파국에 불과하거나, 종수 내면에 갇혀 있던 복잡한 좌절과 분노, 고조되는 강박을 표출하는 것만으로 읽히지는 않는다. 프랑스 신학자 테야르 드 샤르댕의 말에 의하면, ‘버닝’-불은 ‘존재가 발원한 샘’이며, 태초에 불이 있었다. 우주 시작의 빅뱅은 최초의 불꽃으로 묘사된다. 그러기에 ‘버닝’은 한 젊은 청년이 삶에 주어진 트라우마와 모든 대내외적 장애를 활짝 벗어던지고 존재의 근원적 샘으로 솟아오르는 적극적 행위이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어떠한 인간의 현실에서도 인간은 존재의 근원을 꿈꾸며 현실의 몰락을 정신적 상승으로 전환하며 비약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강금실 | 법무법인 원 변호사·포럼 지구와사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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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사는 마을의 위법적인 난개발을 막겠다고 나선 주민이자 환경운동가인 최병성 목사가 검찰로부터 징역 5년을 구형받았다. 산등성이를 깎아 난개발을 추진하는 업체의 일방적 주장을 검찰이 엄밀하게 검토하지 않고 받아들인 결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백보를 양보해도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댓글 사건’ 수사와 재판을 방해한 혐의를 받은 남재준 전 국정원장과 같은 형을 구형받을 정도로 최 목사가 큰 잘못을 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최 목사가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믿는다.

나는 약 20년 전 언론사 기자 시절부터 최 목사를 알아왔다. 1990년대 후반 영월 동강의 댐건설 문제로 여론이 들끓었을 때 동강과 짝을 이루는 강줄기인 영월 서강 살리기 운동을 펼치는 최 목사를 처음 만났다. 그때 최 목사는 서강을 오염시키는 주범인 시멘트회사들의 무분별한 개발에 맞서고 있었다. 나는 당시 최 목사의 도움을 받아 서강의 오염 실태 등에 관해 크게 기사를 쓸 수 있었다.

2007년 미국 유학에서 귀국한 뒤에 만난 최 목사는 산업용 폐기물이 잔뜩 들어간 이른바 ‘쓰레기 시멘트’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당시 서울시 정책전문관으로 일하게 된 나는 최 목사의 도움을 받아 서울시에서 ‘쓰레기 시멘트’ 사용을 억제하는 정책을 입안할 수 있었다. 이후 최 목사는 이명박 정부 4대강사업의 문제점을 전국 곳곳을 돌며 고발하는 활동을 열정적으로 펼쳤다. 하지만 오랫동안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활동해온 탓에 건강이 악화됐다.

악화된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찾아들어간 곳이 지금 그가 사는 용인시 지곡동이다. 하지만 그는 쉬지 못했다. 각종 위법적인 방식으로 초등학교 옆 산등성이를 깎아 들어서는 시멘트혼화제 시설 건립 반대 활동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개발을 추진하는 업체 측으로부터 소송을 당했고, 검찰이 업무방해 혐의와 명예훼손 혐의로 그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나는 검찰의 판단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위법적 행위를 저지르고 행정기관과 주민들을 기만한 업체는 처벌받지 않고, 그런 업체의 잘못된 행태를 비판한 환경운동가는 중형을 구형받는다? 법리와 일반인의 법감정이 항상 같을 수는 없다고 해도 이번에는 그 괴리가 너무 크다.

업무방해 혐의부터 보자. 개발추진 업체의 자금을 받아 진행되는 국내 환경영향평가는 법적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주문자’의 입맛에 맞춰 진행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 사건에서도 사업추진 업체 측에 유리하도록 환경영향평가가 이뤄진 정황이 여러 건 드러났다. 그런데 이에 대해 최 목사가 “허위로 환경영향평가서를 조작했다”고 주장한 것이 업무방해 혐의로 징역 5년을 구형받을 정도로 중한 범죄인가. 또한 일부 잘못된 사실(검찰 출신이 아닌 업체 대표를 검찰 출신으로 표현)을 포함했다고 해도 페이스북에 짧게 업체 측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것이 그토록 중한 범죄인가. 정말 그렇다면 대한민국 국민 중에 누가 자신의 마을에 비슷한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검찰이 이번에 최 목사에게 구형한 형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최 목사는 오히려 상을 받아야 한다. 그는 남들이 나서기 꺼리는 일을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수십년간 해온 사람이다. 모두 합쳐 30여억원의 벌금을 요구하는 업체와의 소송전에 휘말려 지곡동 주민들은 큰 심적 압박을 느끼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열심히 싸웠던 최 목사는 육체적 피로와 심적 부담으로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말랐다.

그런 그에게 우리가 격려는 못할망정 이렇게 가혹한 형사처벌을 받게 해서는 안된다. 검찰이 지금이라도 잘못된 판단을 수정하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검찰의 잘못된 판단을 법원이라도 바로잡아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최 목사를 응원해주길 바란다. 우리는 최 목사에게 빚진 게 너무 많다.

<선대인 |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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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등록일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선거 이슈가 별로 떠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공약 1호가 ‘미세먼지 해결’이고, 그 다음이 ‘집값 상승’이라고 합니다. 미세먼지 해결은 국가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이지 지방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리고 집값이 좀 오른다고 모든 일이 해결될까요? 그럼 어떤 이슈가 좋을까요? 2012년의 대통령 선거 직전에는 “교육을 잡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는 말이 있었는데 교육은 어떤가요? 더구나 이번에 교육감 선거도 함께 있으니까요! 요즘은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잘 키우고, 은퇴해서 연금으로 편안한 노후생활을 꿈꿀 수 있는 세상은 아닙니다. 정신건강전문의 하지현은 <불안 위에서 서핑하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인도에 홀로 서 있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그 스트레스는 “예측 가능성과 조절 가능성”에 의해 움직이는데 “세상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흐름이 지속될 때에는 삶의 예측 가능성과 조절 가능성을 올리려는 개인의 노력이 효과적으로 결과에 반영될 수”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그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나라는 존재가 컵이라고 합시다. 컵 안에 물이 담겨 있어요. 이 물이 넘치지 않게 하려고 나는 열심히 컵 안의 물을 관리하면서 컵이 흔들리지 않게 잘 잡고 있는 방법을 배웁니다. 하지만 애초에 이 컵이 놓인 테이블의 다리 하나가 짧다면? 그때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컵이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겠죠?”

테이블의 다리 하나가 짧아진 이유는 뭘까요? 인공지능의 출현 때문이 아닐까요? 인간의 지능지수(IQ)는 평균 100이지만 인공지능은 1만이나 됩니다. 100배나 머리가 좋은 비서를 활용할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비서를 잘 활용하면서 자신의 가능성을 키워야만 합니다.

일본의 교육계는 이런 변화에 발 맞춰서 2020년부터 4지선다형 대학 입시인 ‘센터 시험’을 폐지하고 ‘대학 입학 공통 테스트’를 도입했습니다. 새 시험에는 마크 시트 방식의 문제에 서술형 시험이 추가되고, 영어에서는 ‘읽기·듣기’에 ‘말하기·쓰기’가 더해진 4개의 기능을 시험하고, 영어검정시험, 토익, 토플 등 민간시험이 도입됩니다. 수학에서도 서술식 문제가 출제되고, 국어에서도 소논문을 쓰는 능력이 요구됩니다.

대학입시부터 이렇게 바꾼 것은 아동과 학생이 주체적으로 액티브 러닝(배우는 쪽이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형태의 수업)을 통해 사고력이나 표현력을 기를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세계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초연결사회에서 개인이 가능성을 열어가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죠.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직업이 자주 바뀔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는 어려서부터 주체적인 학습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따라서 교육은 그런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이걸 효과적으로 반영하려면 객관식 대학입시부터 폐지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생산자인 기업이 대량생산한 제품을 되도록 많은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는 프레임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만들어진 프레임도 ‘보텍스(vortex)’라는 소용돌이가 한 번 일어나면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지는 세상입니다. 그러니 이제 개인은 어떤 소용돌이가 일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 교육도 그런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마땅합니다.

교육 평론가 이범은 <나의 직업 우리의 미래>에서 “일생 동안 직업을 여러 번 바꿔야 할 확률이 높아졌고, 그때마다 본인이 뭘 배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4차 산업 혁명이 우리 교육에 던지는 화두”가 되는 세상에서 “교육의 초점은 창의력 자체보다는 자기 주도 학습 능력, 특히 본인이 스스로 학습 목표를 설정하는 능력”에 맞춰야 한다며 교과서 자유발행제 도입을 주장합니다.

이범은 인터넷에 검색하면 정답이 나오는 시대에 “자꾸 ‘출제자의 의도’만 따지게 되니 자기 생각을 구성하는 힘을 기르기 어렵”게 만드는 객관식 시험문제도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도 펼칩니다. 객관식은 교권침해의 소지도 있다는 것이지요. 또한 “제로섬 경쟁”으로 “협력적인 인성을 키우는 것을 방해하는 제도”인 상대 평가도 폐지해야 마땅하다는 주장도 전개합니다. 회사에 입사하면 경쟁의 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조직인 사회에서 그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게다가 이범은 최근 학벌과 스펙의 중요성이 낮아진 이유를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경제 구조의 변화, 즉 정부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학연과 같은 ‘연고’의 중요성이 낮아진 것, 둘째는 고용 형태의 변화, 즉 정기 채용해서 교육·훈련 후 배치하는 모델에서 수시 채용해서 즉시 배치하는 모델로의 변화, 셋째는 기존 채용 방식의 결점으로 간주되는 기술적인 문제들, 즉 도련님·공주님의 증가라든가 이직률이 높다는 점 등. 이 세 가지는 서로 상당히 다른 차원의 문제인데, 동시에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학벌과 ‘스펙’의 가치가 예전에 비해 낮아졌다는 느낌이 들죠.”

최근 교육부는 대학입시 개혁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스스로 개혁안을 만들지 못하고 하청, 재하청으로 임해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심각한 학력사회인 일본이 대학입시 개혁을 통해 교육을 근원적으로 개혁하는 것에서 우리도 타산지석의 지혜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학벌과 학력보다 개인의 생존 능력이 중요해지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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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릅, 두습, 세습, 사습, 다습, 여습, 이롭, 여듭, 구릅, 담불. 옛날에 소나 말, 개 등 주요 가축의 나이는 이렇게 별다르게 불렸습니다. 100세 인간은 10년 단위로 희비가 갈마드나 10세 남짓으로 한살이 마치는 가축은 1년 단위로 성장을 가늠했겠지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에서 ‘하룻강아지’로 잘못 쓰이는 ‘하릅강아지’는 생후 1년 된 개입니다. 그런데 하릅강아지는 정말 범 무서운 줄 모를까요? 네, 진짜 무서운 줄 모릅니다.

사냥개는 생후 1년은 돼야 비로소 사냥터에서 제 몫을 할 수 있습니다. 개의 한 살은 사람 나이로 치면 15세 정도로, 그때부터 성견다운 면모를 보이기 시작합니다-사람도 과거에는 16세부터 성인으로 쳤지요. 그리고 이 시기는 사람도 개도 질풍노도 혈기왕성한 ‘청소년기’입니다. 힘과 혈기가 넘쳐나 무엇도 두렵지 않을 때죠. 그래서 곰이나 호랑이 같은 거대 맹수를 사냥하러 갈 때는 바로 이 겁 모르는 1년생 개, 즉 하릅강아지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혈기 넘치고 호랑이를 겪어본 적 없으니 덩치 큰 맹수에게 겁 없이 달려들며 맹렬히 몰아붙일 수 있거든요.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젊은 혈기나 어쭙잖은 실력만 믿고 주제도 모른 채 함부로 실력자에게 덤비거나 철없이 날뛰는 사람을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릅강아지에 비유하게 됩니다.

하릅강아지들은 자신이 가진 것, 아는 것이 최고고 전부인 양 자만합니다. 상대가 가만있으니 이빨 빠진 호랑이쯤으로 얕보고 잽 날려대다 카운터펀치 한 방에 뻗어버립니다. 물 만났다 교만 떨다 임자 제대로 만나 영혼까지 탈탈 털립니다. 무람없이 굴다 큰코다치고 깨갱 합니다. 하룻강아지든 하릅강아지든 피차없이 경험 없는 강아지일 뿐입니다. 지피지기 해보면 세상에 만만한 사람 별로 없습니다. 만만해 보였다면 어쩌면 상대를 잘못 골랐을 것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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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매미는 언제쯤 귓전을 두드릴까, 생각하다가 그보다 먼저 개미와 나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했다. 순결한 지면에 먹물로 개미, 개미, 개미라 쓰면 검은 행렬이 꼬물꼬물 어디로 진군하는 듯하다. 어린 시절 길에서 만나면 그냥 꾹꾹 눌러 밟기가 일쑤였다. 아파트에는 개미가 없는 줄로 알았지만 이사하고 방바닥을 쓸면 한두 마리의 개미가 쓰레받기에 얼씬거렸다.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창문 너머로 휙 던져버린 경험이 여러 번이다.

ⓒ이해복

요즘 개미에 관해 실감나는 게 있다. 그것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발짝 이내에서 개미와 맞닥뜨린다는 사실이다. 이는 내가 완벽하게 그들에게 포위된 형국임을 뜻하는 게 아닐까. 노벨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무크의 소설, &lt;내 이름은 빨강&gt;의 첫 문장은 파격적이되 명징하다.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뉘라서 주인공의 저 운명을 피할 수 있으랴. 언젠가 나도 그 신세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올 손님은 아마 개미일 것이다. 혹 오래전 나에게 당했다가 몇 생을 거듭난 그 녀석일지도 모를 일!

평창을 찾았다가 정선으로 넘어가는 어느 길목에서 희귀한 꽃을 만났다. 물소리가 은근한 공터에 차를 대고 개울을 건너니 멸종위기식물 안내문과 철조망이 있었다. 왕제비꽃 자생지였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제비꽃은 종류가 많다. 제비꽃만을 다룬 단행본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니 제대로 알기가 어려운 게 제비꽃의 세계이기도 하다. 제비꽃은 원줄기의 유무에 따라 크게 구분된다. 대부분의 제비꽃이 앉은뱅이 방석처럼 지면에 도톰하게 퍼져 있는 것에 비해 왕제비꽃은 원줄기가 뚜렷하다. 흰 꽃은 잎의 겨드랑이에서 나온다. 제비꽃 중에서 키가 가장 커서 무릎을 때릴 정도이다. 그래서 왕을 이름 앞에 얹었나 보다.

왕제비꽃은 그 경계를 간단히 뛰어넘어 바깥으로 진출해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왕제비꽃을 보는데 개미 한 마리가 꽃과 잎을 드나드는 게 아닌가. 제비꽃을 퍼뜨리는 데 개미가 큰 역할을 한다. 개미와 나는 오늘 또 이렇게 얽혔다.

내가 매미를 기다리듯 성질 급한 개미는 벌써 씨앗을! 왕제비꽃, 멸종위기 2급,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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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뜨겁다. 국민적 관심사가 주류지만 개인적 감정이나 분노 표출도 있는 모양이다. 지난 8개월간의 국민청원을 정리해 보니 가장 많이 등장한 키워드는 대통령, 아기, 여성, 처벌, 정책, 학생 순이고, 국민의견이 수렴된 분야의 순서는 인권·성평등, 보건복지, 안전·환경이라고 한다. 이를 결합해보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특별한 배려를 호소한 것으로 보인다. 그때그때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반응이 많았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사회복지국가에 대한 열망으로도 읽힌다.

헌법 제34조에 규정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열거된 특정 계층과도 거의 일치한다. 헌법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천명하면서 국가의 사회보장·사회복지 증진 의무, 여자의 복지와 권익 향상,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 정책실시 의무,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이 ‘사회국가’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제10조), 평등권(제11조) 등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및 사회적 기본권 등을 합해보면 사회국가와 복지국가의 이념이 헌법에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사회국가를 ‘사회주의국가’와 혼동하거나 ‘사회’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은 달리 해석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가 사회적 안전과 사회적 정의를 지향하는 국가임은 부인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도 인정한 바 있다. ‘사회’라는 단어를 좌파나 빨갱이로 인식하면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노동권, 주거권, 경제민주화 등 사회복지와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기본권 강화를 특징으로 하는 대통령 개헌안을 좌편향 사회주의 개헌안으로 몰아세우기도 했다.

사회국가란 사회적 안전과 사회적 정의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국가다. 복지국가와 혼용해 쓰기도 한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로 인해 야기된 폐해를 시정하여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경제적·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국가체제를 말한다. 산업화로 왜곡된 사회경제구조 속에서 희생되거나 불이익을 받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사회적 정의가 실현된다. 공동체 내에서 상대적으로 지위가 약하거나 경제적으로 빈곤한 이들이 사람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유지해야 실질적 평등이 실현될 수 있다. 양극화와 소득불평등이 어느 정도 해소되어야 계층 간 불화와 적대감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줄어들고 공동체의 평화가 유지되어 사회적 공존이 가능해진다. 의료체계, 최저 생활 보장, 질병·고령화·사고·실업에 대한 공적 보험 등과 같은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는 것이 사회국가의 주요 과제다. 국가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공동체 구성원도 사회적 연대성과 기독교적 형제애를 발휘해야 한다.

국민청원에 등장하는 여성, 학생 또는 청소년, 아기 등은 사회적 약자다. 여기에는 노인, 장애인이나 외국인 노동자, 북한이탈주민 등도 포함된다. 물론 이들 중에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안의 구성원이거나 본인의 경제적 형편이 좋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 모두가 사회적 약자는 아니다. 경제적 사정과 무관하게 질병이나 고령 등으로 인하여 사회적 지원과 보호가 필요한 계층도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과 보호를 내용으로 하는 법률과 제도가 구비되어 있고 사회정책도 시행되고 있지만 사회적·경제적 양극화는 여전히 심각한 사회문제다. 사회적 안전과 사회적 정의를 지향하는 사회국가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고, 누구나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정의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사회주의국가의 계획경제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사회국가 내지 복지국가 원리가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분배보다는 성장을 우선시하는 보수층에 깔려 있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국가의 목표는 민주적 및 법치국가적 기본 원리 속에서 추구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국가와 다르다. 법치국가 안에서의 사회적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경제성장은 자유시장에 맡긴다고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사회·문화·교육 등 모든 정책을 통하여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형성하기 위하여 사회현상에 국가가 관여하고 간섭하고 분배하고 조정하는 임무를 잘 수행해야 한다”고 헌법재판소도 결정한 바 있다.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위하여 사회국가원리와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를 수용하고 있는 헌법 정신을 다시 새겨야 한다. 헌법은 사람답게 사는 세상,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지향하고 있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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