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는 ‘크리스털 마운틴’이라는 맛있는 커피가 있다고 하지요. 헤밍웨이가 좋아한 커피라고도 합니다. 10년 전 쿠바에 갔을 때 좀 사오려고 했으나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크리스털 마운틴’은 일본인들이 만든 상술이었고, 정작 쿠바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커피였지요.

여기 ‘재범의 위험성’이라는 허위의 기초 위에 지어진 이상한 집이 있습니다. 그 집 밖으로 나가는 건 범죄고, 나가면 처벌한다고 합니다. 보안관찰법이라는 집입니다. 저는 보안관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는 내내 ‘크리스털 마운틴’이 떠올랐습니다.

법무부는 저에 대한 보안관찰 처분을 지난 19년 동안 모두 7차례 갱신했습니다. 2015년 7차 보안관찰 처분 사유는 ①신고의무 불이행 ②관련 조사 불응 ③반성이 없으며 보안관찰법에 대한 불복종 주장 ④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자와 자주 접촉 등 모두 4가지였습니다. 이 중 ①과 ②에 해당하는 신고의무 불이행과 관련 조사 불응은 처분 사유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고한 판례입니다. ③과 관련해서도 대법원은 ‘양심 및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재범 위험성 판단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결국 보안관찰 처분 사유 중 법원의 판례가 없는 것은 ④뿐입니다.

경찰 동태보고서는 “고문 피해자 치유를 빙자하여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자들이 주축이 된 재단법인 ‘진실의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진실의힘’은 군사독재 시절 고문으로 간첩으로 조작됐다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분들이 국가에서 받은 손해배상금을 출연하여 만든 재단입니다. 자신의 상처가 누구보다 깊으니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분들로, 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진실의힘’을 통해 노력해 온 ‘상처 입은 치유자’들입니다.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으니 법적으로 죄가 없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을 만난 사실을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자들과 만났다’는 혐의로 둔갑시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흰색이 검은색이고 검은색이 흰색’인 세상에서나 가능한 논리입니다. 검찰은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왜곡한 경찰 보고서에 기초하여 ‘재범의 위험성’을 이유로 저를 기소했고, 1심 판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33년 전인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간첩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을 때가 떠오릅니다. 당시 재판부는 광주 시민 누구나 아는 31사단이 오치동에 있다는 사실이 군사기밀이라고 했습니다. 서점에 버젓이 꽂혀 있던, 5·18 진상을 알린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의 내용이 국가기밀이라고 했습니다. ‘공지의 사실도 국가기밀’이라는 모순된 논리였지요. ‘A가 A이면 A는 B가 아니다(A=A이면 A≠B)’라는,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논리학의 기본 전제를 무너뜨리는 궤변이었습니다. 인류 이성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할 법정에서 ‘널리 알려진 것은 알려진 것이 아니다’라는 정신분열병자의 헛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제게 ‘예, 아니요’로만 대답하라고 윽박질렀고, 저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 채 사형을 구형받고 무기징역을 언도받았습니다.

그로부터 33년, 6월항쟁과 촛불혁명을 겪은 대한민국의 법정에서 검찰은 ‘재범의 위험성’이라는 황당한 논리를 다시 한 번 펼쳤습니다. 저는 대학생 시절이던 1985년 간첩으로 조작되어 1평도 안되는 독방에서 14년 동안 끊임없는 전향공작에 시달렸고, 1999년 출소한 뒤 지금까지 19년째 보안관찰법이라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보안관찰법은 제 삶을 악몽과도 같았던 과거에 묶어놓고 있습니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누구고, 어디로 놀러갔는지 신고하라고 강요합니다. 제가 가장 화나고 슬픈 지점은, 아픔을 치료하는 진정한 의미의 ‘의사’로서, 개인의 아픔만이 아니라 사회적 아픔까지 함께 나누고 더 나은 공동체의 삶을 만들어 가려는 저의 의지마저도 보안관찰법이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보안관찰법의 핵심은 ‘길들이기’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국민을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하는 수동적 존재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죄가 있다면 아마도 가만히 있지 않은 죄, 권력을 불편하게 한 죄일 것입니다. 보안관찰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란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에 정면으로 위배되며, 그 뿌리를 갉아먹는 구시대의 유물일 뿐입니다. ‘재범의 위험성’은 고문 피해자로 14년의 청춘을 억울한 옥살이로 보낸 제가 아니라, 독재정권의 안기부 등 폭압적 수사기관과 그것을 조종하며 정치적으로 악용한 폭력적 국가시스템 쪽에 있는 게 아닐까요?

<강용주 | (재)진실의힘 이사·아나파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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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민주가족 송년의 밤’에 참석할 수 있냐기에 ‘병원 일이 바빠서 못 간다’고 했습니다. ‘따뜻한 손길 마주잡고 새 하늘 새 땅을 열어가는 뜻깊은 자리’…. 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간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금은 고문 같은 국가폭력을 치유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2008년만 해도 생소한 이야기였습니다. 오직 ‘진실의 힘’만 믿고 재심으로 간첩 누명을 벗고자 한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고문조작 피해자들이 공신력 있고 권위 있는 국가기구에서 고문 치유 상담을 받을 때, 훨씬 치유효과가 좋고 안정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고문 치유를 제안하고 2대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일이 기념관 짓고 기념비 세우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설득했습니다. 함 신부님도 동의하셨지요. 실무팀과 수차례 회의를 하고 상담을 진행할 정신과 전문의와 함께 햇빛 따스하고 나무 잘 보이는 치유 공간을 구해서 커튼도 달고 소파와 테이블도 들여놓았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치유 대상자를 정하는 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기념사업회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정신적 피해를 입은 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조작간첩’이나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치유 대상에 넣을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민주화운동’은 3·15의거, 4·19혁명, 6·3한일회담반대운동, 3선개헌반대운동, 유신헌법반대운동,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 및 6·10항쟁에 국한된다는 법 규정을 내밀더군요. 저는 “정 안되면 1차는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하고, 2차나 3차에 ‘조작간첩’들도 포함시키자”고 호소했지만 기념사업회는 “안된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고문 없는 세상’을 위해서는 고문 생존자의 치유를 최우선의 인권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진실화해위원회’란 이름은 빌려왔지만 칠레·남아공 역사의 상처를 안고 있는 모든 나라에 있는 ‘고문피해자 재활센터’ 하나 없는 대한민국…. 민주정부 10년의 과거사 청산은 법적, 제도적 차원에 그쳤고, 국가폭력 피해자 개인의 상처는 뒷전이었습니다. 독재정권의 감옥에서 ‘조작간첩’들이 겪었던 차별과 배제가 민주정부의 기념사업회에서 똑같이 반복되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고, ‘민주화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치유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말은 또 다른 트라우마를 안겨주었습니다.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방치했기 때문에 결국 인권 운동가와 변호사, 정신과 전문의를 도와서 의사이자 고문생존자인 저도 힘 보태 봉은사에서 고문피해자 치유프로그램을 시작했고, 뜻있는 분들의 힘으로 마침내 광주트라우마센터가 만들어졌습니다. 고립무원 상태에서 고문당하고 불공정한 재판의 피해자가 되고 하소연 한 번 변변히 못한 이들이 겪어 온 겹겹의 트라우마는 치유 역시 복합적이고 중층적입니다. 고문 때문에 파괴된 자아와 일상을 회복해야 하고, 트라우마를 야기한 원인을 밝혀서 책임을 물어야 하고, 진실과 정의를 세우기 위해 다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법적, 제도적, 사회적 보장이 있어야 제대로 된 치유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박정희·전두환 군부정권 시절,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국가권력에 의해 고문당하고 간첩으로 조작됐습니다. 이 ‘조작간첩’들은 수십년 감옥에서 고난의 청춘을 보냈고, 출소 뒤엔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사회에서 배척당하며 울분과 눈물의 세월을 견뎌야 했습니다. ‘민주화운동’이 독재권력에 반대하는 투쟁만이 아니라, 독재권력의 그늘에서 눈에 띄지 않게 희생된 분들의 아픔을 먼저 보듬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의를 실현하는 데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면, 우선 이 국가폭력 희생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게 ‘기념사업’의 순서 아닐까요? 독재와 야만의 세월을 견뎌온 다른 나라처럼 고문피해자 치유센터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만들고자 한 저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민주인사’가 이사장을 맡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내세운 ‘민주’와 ‘인권’은 ‘조작간첩’ 앞에서는 또 다른 폭력일 뿐이었습니다.

고등학생으로 1980년 5월 광주에서 총을 들고 지키려 했던 민주주의, 14년 비전향으로 온몸에 새긴 양심의 자유, 인류 공동체가 간절하게 염원하는 고문 없는 세상. 제가 꿈꾸는 민주, 인권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민주’ ‘인권’과 다르다는 걸 저는 압니다. 아쉽고 슬프지만 그때 이후 저는 ‘당신들의 천국’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가지 않습니다.

<강용주 | (재)진실의힘 이사·아나파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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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 원년이자 6월항쟁 30주년인 올해, 권력의 비리와 음모를 폭로한 ‘딥스로트(Deep Throat)’ 얘기가 많이 나왔지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Bob Woodward)와 칼 번스타인(Carl Bernstein) 기자가 익명의 제보자를 보호하면서 붙인 별명이 ‘딥스로트’입니다.

KBS 다큐멘터리 <시민의 탄생>은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제보한 ‘딥스로트’를 다뤘습니다.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황당한 거짓말을 논파할 수 있었던 것은 교도소 내에 ‘딥스로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된 박종철을 고문 치사한 수사관 2명에게 “당신 둘이 죄를 모두 뒤집어쓰면 1억원씩을 주고 가족생활을 보장하겠다. 조만간 가석방으로 꺼내 주겠다”는 회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당시 보안계장이 이부영씨에게 알려주면서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합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부영씨는 그 내부고발자가 ‘정의감이 강하고 굉장한 친구였다’며, ‘참 양심적이었고, 민주인사들에게 잘 대해줬다’고 말하지요.

이 대목에서 불편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1992년 2월 비전향 장기수 42명은 비전향을 이유로 30년 넘게 징역을 살리고 가석방과 감형에서 제외하고 무기한 독방에 넣는 등 인간 이하의 처우를 강요하는 사상전향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박원순 변호사 등을 대리인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합니다. 그러자 중앙정보부 대공국장 출신인 당시 법무부 장관 김기춘씨는 헌법소원을 주도한 저를 비롯한 비전향수를 다른 교도소로 분산 이감시킵니다. 저는 대구교도소로 이감되어 징벌방에 갇혔습니다.

보안과 지하에서 교도관이 “강용주씨 머리 길렀네, 짤라야겠군” 하면 “예, 자르세요” 했습니다. 거부하면 징벌의 빌미를 주거든요. 이송 보따리를 뒤져 물건을 압수하겠다면 그러라고 했습니다. 항의하면 덫에 걸려 징벌방에 끌려갈 수 있거든요. 그 교도관은 나를 운동장과 노역장 건너편에 있는 조그만 별채로 데려갔습니다. 창문조차 없는 ‘중벌자 수용 완전폐쇄 독거실’이었습니다. 거기엔 3명의 중징벌자, 3명의 정신이상자, 1명의 난동주모자를 수용하고 있었지요. “아무런 규정도 위반하지 않았는데 왜 징벌방에 넣었느냐”고 항의하는 나를 ‘지시 불이행’이라며 포승줄로 묶고 수갑을 채워 ‘개밥’을 먹게 했습니다. 어머니가 찾아와도, 민가협 회원들이 항의해도, 박계동 국회의원이 진상조사차 찾아와도 겨우 포승줄만 풀어주고 한 달 가까이 이 완전폐쇄 독거실에 저를 가두었습니다. 1992년 7월8일자 신문 기사입니다.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며 징벌방에서 전방을 요구하는 강씨에게 대구교도소 보안과장은 ‘여기에서 전방 갈 생각을 하지 말고 전향서를 쓰고 빨리 나갈 생각을 하라’고 전향서 쓸 것을 강요하고 전방을 아직 허가하지 않고 있다.”

제게 인간 이하의 가혹행위를 가한 대구교도소의 그 보안과장이 바로 KBS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6월항쟁의 ‘딥스로트’입니다. 1992년은 87년 6월항쟁으로 독재정권의 야만적 전향공작이 사라졌다고 여겨진 시기였습니다. 광주나 전주로 이감 간 사람들은 징벌방 수용이나 전향 강요를 겪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구교도소 보안과장의 손으로 전향공작을 당했습니다. ‘참 양심적이었고’, ‘민주인사들에게 잘 대해 준’ 바로 그 사람 손에서 말입니다.

90년대 중반, 최형우 내무장관이 ‘말’지 인터뷰에서 “고문하면 안 되죠” 하다가 김삼석 남매 간첩단 사건이 고문으로 조작됐다는 지적을 받자 “그건 간첩이니 다르죠”라고 대답한 게 기억납니다. 저를 가둔 보안과장도 이러한 이중잣대를 사용한 것입니다. ‘민주인사’에게 잘해 주지만 나 같은 ‘조작간첩’에게는 가혹행위를 해도 된다는 거지요. ‘애국’과 ‘반공’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가혹행위의 당사자가 의인으로 나오는 KBS 다큐멘터리는 고문과 가혹행위를 겪은 나 같은 사람에겐 상처를 덧나게 하는 일입니다. 담당 PD는 인터뷰에서 “내부고발자가 사상범과 학생들을 얼마나 가혹하게 다뤘는지 알고 있었다”며 “그는 가혹행위에 대해서 사죄의 말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내용은 “편집하며 시간상 뺐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말은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진실을 포기했다”는 말처럼 모순되게 들립니다. ‘딥스로트’에 대해 몰랐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알면서도 그랬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민주인사’에게 잘해 준 보안과장이 조작간첩에게 가혹행위를 하는 이중잣대가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 자연스레 통용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정의가 가끔씩만 이기는’ 불완전한 사회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닐까요?

가끔 이기는 정의를 위해 여전한 어둠과 부자유 가운데서도 저 푸른 감람나무를 바라봐야겠습니다.

<강용주 | (재)진실의힘 이사·아나파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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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쏟아지는 비와 따가운 햇살 아래 446.44㎞를 묵묵히 걷는 사람들이 있다. ‘부랑인’으로 낙인찍혔던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이 부산 주례동 형제복지원 터 앞부터 청와대까지 22일 동안 국토대장정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외친다. “우리를 왜 가두었는가? 특별법 제정으로 형제복지원 진상을 규명하라!”

행진을 시작하기 전, 피해 생존자 한종선씨가 나를 찾아와 감기약, 진통제, 해열제를 챙겨 갔다. 여덟 살 어린 나이에 열한 살 누나와 함께 끌려간 한종선씨는 84-10-3618이다. 1984년 10월에 3618번째 입소한 ‘부랑인’이란 뜻이다. 그는 2012년 여름,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 형제복지원의 민낯을 다시 세상에 알리고 망각의 벽을 깨뜨렸다. ‘84-10-3618’이란 숫자가 아니라 ‘한종선’이란 인간으로 살고 싶다고 절규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사회정화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을 목표로 해서 국가가 밀어붙인 것입니다. 전국의 공권력이 움직였기에 가능했던, 대한민국의 어두운 역사입니다. 형제복지원의 기억이 저로 인해 다시 파헤쳐지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이제 저희들이 트라우마 없이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프레모 레비가 증언했듯, 유태인들도 수용소에 끌려가면 이름 대신 왼쪽 팔뚝에 문신으로 헤프틀링(포로) 번호를 새겼다. 레비의 왼쪽 팔뚝에 새겨진 ‘174517’은 그의 묘비명이 됐다. 아우슈비츠도, 형제복지원도 끌려가면 머리를 빡빡 깎인다. 레비의 표현처럼 ‘머리카락도, 명예도 이름도 없이, 날마다 구타당하고 추접하게 사는’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숫자가 된 사람은 짓밟고 학대해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물화된 존재’일 뿐이다.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형제복지원의 수용자들도 이름 대신 78-374, 82-2222 등 숫자로 불렸다.

형제복지원은 사회복지시설이라는 간판을 달고 1975년부터 1987년까지 12년간 운영됐다. 1975년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고아·장애인뿐 아니라 밤늦게 역에서 TV를 보는 사람, 술 취해 거리에서 자는 회사원도 주민등록증이 없으면 연행해서 수용했다. 형제복지원은 12년 동안 1만8000여명, 많을 때는 한꺼번에 3146명이나 수용했다.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정부 보조금을 따내기 위해 상품처럼 분류되는 숫자에 불과했다. 이렇게 해서 박인근 원장이 챙긴 정부 보조금은 1987년 한 해에만 무려 20억원이었다. 불법 감금된 수용자들은 하루 10시간의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고, 심지어 살해하여 암매장했다. 형제복지원 서류로 밝혀진 공식 사망자만 최소 513명인데, 대부분은 굶어 죽거나 맞아 죽었다니 생지옥이 따로 없었던 것이다. 시신 중 일부는 300만~500만원에 의과대학 해부 실습용으로 팔려나갔다.

6월항쟁 30년, 원생 35명의 집단 탈출로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30년이지만 ‘숫자로 남은 사람들’은 잊히고 있다. 가해자인 박인근 원장은 특수감금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고, 수감 중에도 사우나를 하는 호사를 누리며 횡령죄로 2년6월의 징역을 사는 데 그쳤다. 박 원장과 그의 가족들은 수백억원대 재산을 소유하고 형제복지원의 이름만 바꿔 사회복지법인을 최근까지 운영했다. 반면 피해 생존자들은 여전히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국가폭력의 진상은 여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사람들은 민주인사로 대접받았지만, 그 독재하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온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은 문전박대를 당했다. 독재정권은 민심을 얻기 위해 부랑인 청소나 범죄 척결을 단골로 써먹었다. 이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은 세월호 유가족,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5·18민주화운동 유가족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아픔을 위로받을 권리가 있다. “가축처럼 새겨진 기억 속의 숫자를 떨쳐내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 이들의 외침에 언제까지 귀를 막을 것인가? 우리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모르는 게 아니라, 알기를 거부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하여, 독재정권이 저지른 비인간적인 인권 유린에 ‘묵시적 공범자’가 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6월항쟁 30주년, 다시 민주정부가 들어선 지금, 구조되었으나 여전히 ‘가라앉은 자’인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이 그 먼 길을 걸어야 하는 게 아닐까?

국토대장정 8일차인 오늘, 이들은 성주군청에서 농소면 사무소까지 25.95㎞를 걷는다. 이들은 ‘육체적·정신적으로 괴롭고 힘들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국토대장정을 이어간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이 조속히 규명되도록 돕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을 떠올리며 환하게 서울로 걷고 또 걷는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국토대장정 후원계좌> 우리은행 이은애 1002-557-424264

<강용주 | (재)진실의힘 이사·아나파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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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 동신고등학교 3학년, ‘내 영혼이 쨍 하고 금이 가 버린’ 기억. 그 5·18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았습니다. 1980년대 수많은 사람들을 군사독재와 싸우게 만들었던 ‘광주 비디오’를 만든 독일기자 힌츠페터와 그를 도운 택시기사 김만섭 이야기입니다.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는 정권을 잡기 위해 ‘광주사태’를 일으켜 민주화를 요구하는 무고한 시민들을 짓밟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영문도 모른 채 죽고 다쳤습니다.

전두환 신군부는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이 광주 밖으로 알려지는 걸 엄격히 통제했고, 가까운 순천 사람들도 뉴스에 세뇌되어 “서울에서 폭도들이 몰려갔다던데?” 얘기할 정도였지요. 그 학살과 야만의 한가운데서 고립된 광주 시민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였습니다. “제발 바깥에 알려주시오. 여기 일은 여기 사람한테 맡기고.”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진실을 알려달라는 광주 시민들의 간절함은 평범한 소시민 만섭(송강호)을 변화시킵니다. “학생들이 공부는 안 하고 데모만 한다”며 못마땅해하던 택시운전사 만섭은 ‘두고 온 손님’인 독일기자를 도와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세계에 알리는 데 성공합니다. 5·18을 회고하며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한 최초의 엄청난 슬픔과 서러움”이라 했던 힌츠페터는 대학가요제를 꿈꾸던 광주 청년 재식(류준열)에게 말합니다. “뉴스를 내보내면 혼자가 아니게 될 거다.”

영화를 보고 온 날 저녁, <전두환 회고록>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결정이 났습니다. 5·18의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내란 수괴’ 혐의로 무기징역을 받은 전두환씨는, 회고록에서 “(나는)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을 치유하기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2016년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군이)어디로 왔는데? 난 오늘 처음 듣는 말”이라고 북한군의 5·18개입설을 강력하게 부인한 그는 회고록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에 참가한 600명의 시위대가 북한에서 내려온 특수군”이라고 말을 바꿉니다. 이미 가짜뉴스로 판명된 지만원씨의 주장을 그대로 베낀 것이지요.

전두환씨의 거짓말은 이어집니다. “선량한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눈 일은 없다. 계엄군은 죽음 앞에 내몰리기 직전까지 총을 겨누지 않았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습니다.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5월21일 도청 앞 집단발포는 아직도 누가 사격명령을 내렸는지 모릅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아직도 모르는 게 현실입니다. 전두환씨는 “5·18 사태는 ‘폭동’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고 회고록에서 단언합니다. 진실은 아직 거짓에 가려져 있고 5·18 희생자들의 상처는 여전히 깊습니다.

<택시운전사>와 <전두환 회고록>…. 문득 진실규명, 책임자 처벌, 명예회복, 피해보상, 기념사업이라는 광주 문제 해결의 5원칙이 떠올랐습니다. 이 중 가장 먼저 할 일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왜 그랬는지 진실을 밝히는 일일 겁니다. 광주 택시기사 태술(유해진)이 서울 택시기사 만섭(송강호)에게 “머시가 미안혀라. 나쁜 놈들은 따로 있구만” 했던 그 진실 말이지요. 하지만 현실은 전두환씨가 회고록에서 거짓을 유포했듯, 박근혜씨가 ‘님을 위한 행진 곡’ 제창을 금지했듯, 가해자들은 진실을 감추고, 왜곡하고, 망각을 강요합니다. “이제 그만 화해해야 한다”든가, “이제 그만 용서하자”든가, “이제 그만 미래를 바라보자”면서 말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기 몸을 희생하며 “도망가라”고 외치던 광주 청년 재식(류준열), 반찬 없어도 맛있는 주먹밥 나눠주던 여학생…. 이들이 총 맞던 순간을 생생한 현재로 재현하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합니다. 우리의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올바르게 기억하고 기념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실을 기억하고 아픈 과거를 증언하는 것은 정의를 실현하여 다시는 아픈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래야만 다시는 국가권력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삶을 짓밟는 야만의 시간이 되풀이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기억’은 망각을 요구하는 자들에 대한 가장 인간적인 저항입니다. 도무지 잊히지 않는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깊은 연대고 위로입니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시대, 야만의 시간을 통과해 온 사람들과 함께 떠나는 우리 모두의 시간여행입니다. 진실을 찾아가는 우리 자신의 치유여행입니다. “함께 기억을 공유할 때, 어두운 시간과 공간 속에서 가늘지만 선연한 빛이 떠오를 것이다.”(박동운의 논문 <생애와 국가의 품격>에서)

강용주 | (재)진실의힘 이사·아나파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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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요즘 나는 ‘보안관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탄원서를 보내주셨습니다. ‘#내가_강용주다’, 많은 분들이 해시태그 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해시태그 중 특히 제 마음을 콕 찌른 내용이 있었습니다. ‘#강용주를 맘껏 놀게 하라.’ 비틀스의 노래 렛잇비(Let It Be)가 떠오르고 저는 우울해집니다.

이제 휴가철입니다. 여행이란 낯선 것과의 만남이면서 기존의 억눌림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 여행을 제한받고 감시당하고 보고해야 한다면, 휴식이나 충전이 아니라 또 하나의 굴레가 됩니다. 여행 갈 때마다 ‘이번엔 괜찮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어떻게 여행이 즐거울 수 있겠어요. 그래서 저는 아직 여름휴가 계획을 못 세웠습니다.

10년 전 쿠바를 한 달 다녀왔습니다. 물론 ‘신고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은 “쿠바에는 맛있는 ‘크리스털 마운틴’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행 때마다 늘 준비하던 커피를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런데 쿠바에 가 보니 ‘크리스털 마운틴’이 없었습니다. 쿠바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데 우리는 모두 거기 있다고 믿는 거였죠. ‘크리스털 마운틴’은 일본의 커피 수입상이 만든 상품 이름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쿠바여행 동안 ‘향기는 와인보다 달콤하고, 맛은 키스보다 부드러운’ 크리스털 마운틴을 한 번도 마시지 못했습니다.

이번 보안관찰법 재판을 받으며 자꾸 ‘크리스털 마운틴’과 쿠바여행이 떠올랐습니다. ‘보안관찰법’은 참 어이없는 법입니다. 보안관찰법 폐지를 주장한다고 보안관찰 처분을 당한 사람도 많습니다. 이건 낯익은 논리입니다. ‘폐지나 개정’을 주장하면 긴급조치로 처벌하던 ‘유신헌법’이지요. 유신헌법이 폐지된 지 언제인데 그 쓰레기는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재)진실의힘 박동운 이사장님도 오랫동안 보안관찰 처분자였습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8년 만에 출소한 그분을 보안관찰 처분한 이유는 ‘무죄를 주장하고 재심을 신청’했다는 것입니다. 28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후에야 보안관찰 처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며칠 전 ‘김제간첩단 사건’의 재심에서 재판부는 “국가가 범한 과오에 대해 진정으로 용서를 구한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미 돌아가신 세 분 중에 최낙전 선생이 계십니다. 9년간 억울한 징역살이하고 나온 세상은 ‘또 다른 감옥’이었습니다. 신고의무를 이행해야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정보과 형사의 조사에 시달려야 했지요. 보안관찰법의 망령에 쫓기던 최 선생은 출소 4개월 만에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보안관찰이 내거는 ‘재범의 우려’는 한낱 핑계일 뿐입니다. 이 법은 국가가 조작한 사건의 피해자에게 오히려 반성하라고 윽박지릅니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누구고 어디로 놀러 갔는지를 신고하라고 강요합니다. 보안관찰법의 핵심은 ‘길들이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존재로 국민을 길들이는 게 목적이라는 거지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국가 권력이 오히려 주권자인 국민을 길들이려 한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      

국가권력이 국민을 그렇게 대하는 것은 집에서 키우던 맹견이 시민을 무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맹견이 사람을 못 물게 하려면 목줄을 채우고 입마개를 채워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고 비판하는 시민의 힘에 기반을 둡니다. 우리의 불복종은 바로 국가권력이라는 맹견의 목줄을 잡는 일이고, 입마개를 채우는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보안관찰이 제게 가장 힘든 건, 제 삶을 과거에 묶어놓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32년 전 남산 안기부의 고문, 14년의 비전향장기수의 상처투성이의 그 시절로 저를 되돌려 놓습니다.       

1999년 14년 만에 세상에 나온 후 10년 동안 의대를 졸업하고 수련을 받아 2008년 가정의학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고문 피해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의식도 없던 우리 사회에 왜 치유가 필요한지를 열심히 얘기했습니다. 인권운동가, 정신과 전문의들과 함께 고문피해자 집단상담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활동의 결과 고문과 치유 문제가 우리 사회의 주요한 인권 이슈가 되었고 (재)진실의힘과 광주트라우마센터 같은 치유센터가 만들어졌습니다.

의사로서 개인의 질병만이 아니라 사회적 아픔에 연대하며 새로운 삶을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보안관찰법’은 그 자유로운 일상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과거에 옭아매어 한 걸음도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내가 보안관찰법을 생각할 때, 가장 화나는 지점이자 슬프게 만드는 지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과거가 아니라 오늘을 딛고 내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저를 내버려 두십시오. Let It Be, 제발 저를 내버려 두십시오.

강용주 | (재)진실의힘 이사·아나파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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