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경향시선'에 해당되는 글 262건

  1. 2018.07.16 곁에 누워본다
  2. 2018.07.09 자작나무에게
  3. 2018.07.02 옥수수밭
  4. 2018.06.25 앵커
  5. 2018.06.18 지금 여기가 맨 앞
  6. 2018.06.11 언니들과의 저녁 식사
  7. 2018.06.04 물속까지 벚꽃이 피어
  8. 2018.05.28 초도에 가면
  9. 2018.05.21 환한 아침
  10. 2018.05.14 어디를 흔들어야 푸른 음악일까
  11. 2018.04.30 아름다운 너무나
  12. 2018.04.23 봄바람
  13. 2018.04.16 냉이꽃
  14. 2018.04.09 정처없는 건들거림이여
  15. 2018.04.02 새 떼를 쓸다
  16. 2018.03.26 데칼코마니
  17. 2018.03.19 녹색마차
  18. 2018.03.12 칠성무당벌레
  19. 2018.03.05 공터에서 먼 창
  20. 2018.02.26 흠향(歆饗)

달빛이 곤히 잠든

엄마 등을 적실 때

그냥 엄마하고 부르고

싶을 때가 있다

부르지는 못하고

그냥 곁에 누워본다

곁에 가만히 누워 곁에

혼자 자고 있는

강아지를 바라보다

너에게도 엄마가 있었구나

또 자리를 옮겨

그 곁에 누워본다

문동만(1969~)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밝고 고운 달빛이 내리고 있다. 고단해서 깊게 잠든 엄마의 등 위로 달빛이 내리고 있다. 엄마의 몸에 흰 달빛이 흥건하다. 엄마하고 부르려다 엄마 곁에 나란히 누워본다. 말없이 그냥 그렇게 해본다. 아무런 조건 없이. 그냥 엄마가 좋은 것처럼. 엄마 곁에 누운 마음이 뿌듯했을 것이다.

그리고 곁에 혼자 잠든 강아지에게 눈길을 준다. 강아지에게도 엄마가 있을 테지.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서 강아지 곁으로 가 강아지 옆에 가지런히 누워본다. 강아지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문동만 시인은 시 ‘어떤 언약에 부쳐’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사람은/ 사랑 때문에 살고/ 사랑은/ 사람으로서 살게/ 합니다” 서로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사람을 살게 한다. 사랑은 우리의 음식이요, 옷이요, 집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할 때가 있지만 어쩐지 마음이 흐뭇흐뭇하고, 또 조용한 때에 공연히 미소가 흐른다면 분명 지금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는 것이리라.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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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승은 바람이다

바람을 가르며 나는 새다

나는 새의 제자가 된 지 오래다

일찍이 바람을 가르는 스승의 높은 날개에서

사랑과 자유의 높이를 배웠다

 

나의 스승은 나무다

새들이 고요히 날아와 앉는 나무다

나는 일찍이 나무의 제자가 된 지 오래다

스스로 폭풍이 되어

폭풍을 견디는 스승의 푸른 잎새에서

인내와 감사의 깊이를 배웠다

 

자작이여

새가 날아오르기를 원한다면

먼저 나무를 심으라고 말씀하신 자작나무여

나는 평생 나무 한 그루 심지 못했지만

새는 나의 스승이다

나는 새의 제자다

- 정호승(195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리를 이끌어주지 않는 것은 없다. 바람과 새와 나무도 우리를 가르치는 스승이다. 바람과 새는 높다. 푸른 하늘로 올라간다. 여름날 분수처럼 위로 세차게 솟는다. 산봉우리보다 구름보다 한층 높은 그 높이에서 지고(至高)한 사랑과 자유를 배운다. 나무는 굳고 단단하다. 새들도 날아와 조용히 의지한다. 그리고 나무는 홀로 견딘다. 모든 고통을 무릅쓰는 수행자처럼. 나무는 거센 폭풍으로부터도 스스로를 보호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대지처럼 견고한 나무로부터 깊이 뿌리내린 인내와 감사의 자세를 배운다. 바람과 새와 나무는 우리가 지어서 부르는 그 이름 이상이다. 그것 이상으로 높고 깊다. 오늘은 바람과 새와 나무를 생각하고, 그때에 먼 여름산을 한번 바라보자. 딛고 일어서는 여름산을 우러러보자.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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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밭에 들어가면

옥수수밭이 되고 싶어요

 

옥수수밭에

옥수수가 커졌어

 

아가야, 옥수수밭에

들어가보렴!

옥수수밭에 들어가서

옥수수가 되어보렴

 

너풀거리는 이파리는

소낙비와 마주하는 7월의

검푸른 영혼일 거야

김명수(194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옥수수밭에 옥수수가 커가는 때이다. 7월의 옥수수밭에 가봐야겠다. 옥수수는 치아를 꽉 깨물고 커가고 있을 것이다. 웃을 때에는 튼튼하고 하얀 치아가 잘 드러날 것이다. 옥수수밭에 들어가서 옥수수가 되고 싶다. 점점 커가는 옥수숫대는 장수처럼 얼마나 의젓하고 당당하던가.

바람이 불어올 때 옥수수밭에 들어가서 옥수수 이파리들이 서걱대는 소리를 듣고 싶다. 옥수수밭을 지나가는 바람을 ‘옥수수바람’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박용래 시인이 ‘앵두, 살구꽃 피면’이라는 시에서 “앵두꽃 피면/ 앵두바람/ 살구꽃 피면/ 살구바람”이라고 썼듯이. 옥수수밭에 들어간 바람은 옥수수의 몸놀림과 옥수수의 소리를 내기도 할 것이다. 이승훈 시인이 ‘바람’이라는 시에서 “풀밭에서는/ 풀들의 몸놀림을 한다./ 나뭇가지를 지날 적에는/ 나뭇가지의 소리를 낸다”고 썼듯이.

7월에는 날이 불 땐 솥처럼 더욱 더 뜨거워지겠지만 푸른 옥수수밭 생각하면 설레고 청량한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다. 너풀거리는 옥수수 이파리에 떨어지는 소낙비 소리를 떠올리면 갑갑하던 가슴이 풀려서 후련해지기도 할 것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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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뉴스가 끝나면 한쪽 귀를 접습니다

뜨거운 수증기로 얼굴을 지웁니다

세수를 하면 자꾸 엄지손가락이 귀에 걸립니다

 

나는 조금만 잘 지냅니다

 

검은 양복을 차려입을 때만 나를 믿는 사람들은

각자의 TV 속에 손을 넣고

실을 뽑아 나누어 가집니다

 

불행은 정시에 시작됩니다

투명한 파문을 만듭니다

소문들이 쏟아져 내립니다

 

마이크는 얼굴을 편애하지 않습니다

거미는 먹이의 얼굴을 보지 않습니다


이상협(197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상협 시인은 현직 아나운서이다. 이 시는 정시에 뉴스를 전달하는 사람의 속내를 말하는 듯하다. 뉴스가 사실을 곧이곧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통제되던 시대가 있었으니 아나운서는 그럴 때마다 고통스럽고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게다가 뉴스로 인해 공통의 의견이 태어나기도 하고, 편견과 분열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언어가 억압되던 시대에 뉴스 기사문의 언어를 읽어야 했던 스스로의 괴로운 심사를 “나는 조금만 잘 지냅니다”라고 에둘러 고백한 것이 아닌가 한다. 자책하는 마음과 환멸과 부끄러움이 자신의 몫이라고 말한 것으로 이해된다. 시인은 최근에 펴낸 시집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에 실린 시인의 말에서 “우리는 진동한다/ 사이엔 두루 있으리”라고 썼다. 진동하지 않는다면, 밤새 부정하고 뉘우치고 요동치지 않는다면 새날도 탄생하지 않을 것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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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이문재(1959~)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모든 것의 처음은 사소하고 미약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거기서부터 쌓이고 쌓인다. 쌓여서 육중한 무게와 너른 넓이를 만든다. 쌓이면 누구도 꺾을 수 없다. 다발과 묶음과 무더기는 어떤 힘도 견뎌낸다. 마치 서로 의지한 갈대 묶음을 힘센 사람도 쉽게 부러뜨릴 수 없는 것처럼.

지금 여기가 맨 끝이라고 여기는 때가 맨 처음이다. 끝은 맨 앞이다. 끝에서 생겨난다. 실뿌리에서 생겨나 잔가지와 우듬지가 된다. 새순에서 생겨나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아, 이제 이곳이 끝이구나라고 자신을 아주 허물어버리지 않는다면 거기 그때가 맨 앞이 된다. 그리고 매 순간 놀랍고, 기적과도 같은 진전이 이뤄진다.

개개의 움직임이 중요하다. 낱낱의 존재들이 동일하게 소중하다. 이문재 시인은 시 ‘어떤 경우’에서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라고 썼다. 우리는 모든 경우에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고, 맨 앞이고, 당당한 정면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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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으러 오슈

전화받고 아랫집 갔더니

빗소리 장단 맞춰 톡닥톡닥 도마질 소리

도란도란 둘러앉은 밥상 앞에 달작지근 말소리

늙도 젊도 않은 호박이라 맛나네,

흰소리도 되작이며

겉만 푸르죽죽하지 맘은 파릇파릇한 봄똥이쥬,

맞장구도 한 잎 싸 주며

밥맛 없을 때 숟가락 맞드는 사램만 있어도 넘어가유,

단소리도 쭈욱 들이켜며

달 몇 번 윙크 하고 나믄 여든 살 되쥬?

애썼슈 나이 잡수시느라,

관 속같이 어둑시근한 저녁

수런수런 벙그러지는 웃음소리

불러주셔서 고맙다고, 맛나게 자셔주니께 고맙다고

슬래브 지붕 위에 하냥 떨어지는 빗소리

김해자(1961~)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김해자 시인이 최근에 시집 <해자네 점집>을 펴내면서 ‘시인의 말’에 이렇게 썼다. “사람과 꽃과 나비와 알곡과 대지에 경배하며. 그 모든 계절의 바람과 떨어진 꽃과 주검들이여. (…) 밥과 술 그리고 웃음까지 나눠 먹는 이웃들과 친구들이 이 시들 중 몇 편이라도 듣고 껄껄 웃었으면 좋겠다.” 이 소박하고 진솔한 문장이 시 ‘언니들과의 저녁 식사’를 읽은 나의 소회를 대신해도 좋겠다. 푸르죽죽할 때에도 파릇파릇하게 수식해주는 사람, 가꾸어주는 사람이 우리의 곁에, 아랫집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행복할까. 맞들어주는 사람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매일매일 애쓰느라 버거운 우리는 서로서로 맞장구도 쳐주고 달콤한 소리도 하자. 그리고 활짝, 꽃처럼 웃자.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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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이 들여다보여 봄이 온 줄 알았다

저녁엔 강으로 나가 물속까지 자라는 벚나무를 보았다

물속까지 핀 벚꽃을 보았다

물속까지 벚꽃 피어 봄도 절정인 줄 알았다

 

자꾸 눈길이 가서 네가 온 줄 알았다

내 안에서 밤낮없이 피어나는 너를 보았다

벚꽃 눈부신 봄날 내내

네 안에도 벚꽃을 피우고 싶어 사랑인 줄 알았다

- 오창렬 (1963~)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물속이 훤히 보인다는 것은 사랑하는 이의 속마음이 그처럼 잘 보인다는 것일 테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물비늘이 반짝이고, 맑은 물은 거울 같고, 바닥에는 고운 모래가 쌓였다 살살 풀리며 흐른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안쪽에는 꽃이 피어 향기와 빛깔의 절정을 보여준다. 사랑하면 또 어떤 기미에 의해 눈이 자꾸 한 곳으로 가게 되니, 미묘한 알아차림이 있으니, 눈길이 가 닿는 그곳에는 어김없이 사랑하는 이가 와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내가 당신의 안에서 꽃 피는 일이요, 당신이 내 안에서 꽃피는 일임을 알겠다.

오창렬 시인의 시에는 은은한 사랑의 노래가 가득하다. 시인은 시 ‘바람 지날 만한’에서 “나와 너 사이로 바람 분다면/ 눈 녹고 꽃피는 일이 우리 사이의 일이겠다/(…)/ 너와의 사이라면 바람에 꽃잎 지는 것도 나는 춤이라 여기고/ 낙화도 하냥 꽃이라 하겠다 쓸어내지 않겠다”라고 썼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부드럽게 설레는 공간이 있다. 이 홍조(紅潮)의 공간에서는 꽃 지는 일도 꽃피는 일과 다르지 않고, 떨어진 꽃도 막 핀 꽃과 다르지 않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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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별이 진 사람 초도로 가라

 

여수항 뱃길로 48마일

삼산호, 신라호, 덕일호, 훼리호,

순풍호, 데모크라시, 줄리아나 오가고

뱃길 빨라질수록 발길은 멀어도

해초처럼 설레는 낭만은 있다

 

이슬아침 소바탕길로 상산봉에 오르면

낮고 낮은 햇살에도 퍼덕이는 금비늘

희망은 가슴 터질 듯 수평선에 이르고

달빛 수줍은 갯바탕길을 따라

은하수와 시거리 이야기꽃 정다운

초도, 그 아름다운 풀섬에 가면

아직도 총총한 별들이 뜬다


김진수(1959~)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시인은 고향 초도에 대해 말한다. 초도(草島)는 풀이 많은 풀섬이라고 한다. 여수에서 여객선을 타고 남쪽으로 가면 있는 이 초도에는 상산봉이 우뚝 솟아 있다. 상산봉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갯바람 언덕이 있고, 파도가 하얗게 무너지는 바닷가가 있고, 밀물과 썰물이 흐르는 해조음(海潮音)이 들려오고, 고깃배가 가고, 넓고 평평한 망망대해가 있고, 바다는 햇살 아래 사금처럼 반짝이고, 저 멀리에는 수평선이 한 줄로 걸려 있고, 밤이면 밤바다 위엔 총총한 별과 만월(滿月)이 있다. 시인은 이 고향에 갈 때마다 푸른 해초처럼 설렘이 자라난다. 앞으로 어떤 일이든 잘될 것 같고, 소년과 소녀가 그러하듯이 수줍어하는 마음도 생겨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 한복판에 밝고 또렷또렷한 별이 뜬다.

시인은 “시는 나의 벗이었으며 피난처였고 구원이었으며 아랫목을 데워둔 아늑한 내 고향 풀섬이기도 했다”고 썼다. 우리의 고향 역시 우리의 벗이며 삶의 피난처이며 구원일 것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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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창을 사납게 두드리던 비도 그치고

이른 아침, 햇살이 미친 듯 뛰어내린다

온몸이 다 젖은 회화나무가 나를 내려다본다

물끄러미 서서 조금씩 몸을 흔든다

간밤의 어둠과 바람 소리는 제 몸에 다 쟁였는지

언제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느냐는 듯이

잎사귀에 맺힌 물방울들을 떨쳐 낸다

내 마음보다 훨씬 먼저 화답이라도 하듯이

햇살이 따스하게 그 온몸을 감싸 안는다

나도 저 의젓한 회화나무처럼

언제 무슨 일이 있어도 제자리에 서 있고 싶다

비바람이 아무리 흔들어 대도, 눈보라쳐도

모든 어둠과 그림자를 안으로 쟁이며

오직 제자리에서 환한 아침을 맞고 싶다

- 이태수(194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요란하게 천둥과 번개, 돌풍을 동반한 비가 새벽에 쏟아지더니 “언제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느냐는 듯이” 날이 환하게 갰다. 시인은 창 너머에 젖은 회화나무가 서 있는 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회화나무도 시인이 있는 쪽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둘 사이에 눈길이 오가고, 조용한 교감이 있다. 시인은 비바람과 눈보라가 오더라도 의연하게 당당하게 서 있는 회화나무를 바라보면서 변함이 없는 같은 자리, 제자리에 대해 생각한다. 본래 있던 그 자리로 돌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본래의 자리는 깨끗하고 맑고 밝다.

높이 솟아 우뚝한 회화나무처럼 기상이 좀 굳세고 또 끄떡없어서 더러는 “언제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느냐”면서 우리에게 닥쳐온 일의 고비나 곤란함을 넘기기도 할 일이다. 조금은 과장되게 씩씩하고 호방한 체하면서.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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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것을 도둑맞은 것 같다

거친 숨 몰아쉬며

여기까지 왔는데

무엇이 다녀간 것일까

 

아무것도 없다

공허뿐이라고

그냥 가 보는 거라고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구구구 모이 몇 알 주워 먹느라

할퀴며

깃털 뽑히며

두 날개 뭉개졌는데

벌써 떠나야 한다고 한다

 

어디를 흔들어야 푸른 음악일까

가랑잎도 아닌데

자꾸 떨어져 내리다가

내일은 어디일까

정말 어디를 흔들어야

다시 푸른 음악일까

 

문정희(194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일이 술술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간곡한 기대는 곧잘 도둑맞는다. 그럴 때는 “거꾸로 뒤집혀 버둥거리는/ 풍뎅이처럼” 되기도 한다. 허허벌판에, 폐허에 홀로 서게 되기도 한다. 무엇이 우리를 곤경에 처하게 이끌었을까. 시인은 이러한 일들에 대해 탄식을 실어서 시 ‘모래언덕이라는 이름의 모텔’을 썼고, “모래언덕이라는 이름의 모텔에서/ 솨아솨아 하룻밤을/ 한 생애처럼/ 모래알을 읽었다// 모래로 지은 집에서/ 모래에 파묻혀 모래가 되었다”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허탈감과 무력감이 높은 파도처럼 닥쳐왔더라도 우리는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하고, 야생처럼 뜨겁고 생생하게 살아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흔들었을 때 우리 삶의 실내(室內)에 푸른 음악이 흘러나오길 바란다. 마치 악기를 흔들면 아름다운 선율이 나오듯이. 산들바람이 버드나무를 부드럽게 흔들면 연녹색의 싱그러움이 나오듯이. 푸른 음악은 어디에 깃들어 있는 것일까.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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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누린 적 있는 눈부신 시간들은

 

잠시 걸친

옷이나 구두, 가방이었을 것이나

 

눈부신

만큼 또 어쩔 수 없이 아팠을 것이나

 

한번쯤은

남루를 가릴 병풍이기도 했을 것이나

 

주인을 따라 늙어

이제

젊은 누구의 몸과 옷과

구두와 가방

아픔이 되었을 것이나

 

그 세월 사이로

새와 나비, 벌레의 시간을

날게 하거나 노래하게 하면서

 

이제 그 시간들마저

허락도

없이 데려가는 중일 것이나


박라연(1951~)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리는 빛이 가득한 때를 살기도 한다. 흐뭇하고 황홀한 시간을 살기도 한다. 시인은 그 시간을 옷과 구두와 가방을 걸치는 일에 비유한다. 그러나 눈부신 시간은 짧고, 연속적이지 않고, 사라진다. 마치 생화로 만들었으나 시들어 버리는 꽃다발처럼. 그렇지만 그 기쁜 순간들 덕택에 우리들은 삶이라는 의복의 낡음을 잠시 가릴 수 있다.

시인은 “세상의 어두운 창고 하나쯤/ 헐어서/ 남향을 찾아줄 상상을 하”기도 하는데, 남쪽으로 낸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우리 내면의 공간을 환하게 비추었으면 좋겠다. 금모래 같은 환하고 밝은 시간이 하루 낮 하루 밤 동안이라도 계속 쏟아지고 이어졌으면 좋겠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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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다 어디로 갔나

낙동강 청천강으로

백두산 한라산으로

훨훨 날아갔겠지

가서 잘 살겠지

식구들 늘어나면

봄바람에 소식 전해주겠지

새끼들 자랑하러 얼싸안고 오겠지

새들아, 훨훨 날아가라

김수복(1953~)

모여 살던 새들은 남쪽과 북쪽으로 날아가 흩어졌다. 영남을 휘돌아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낙동강으로 새들은 날아갔다. 평안도를 지나 황해로 흘러들어가는 청천강으로 새들은 날아갔다. 하얀 모래밭과 수풀과 들판과 습지와 마을로 날아갔다. 백두산과 한라산으로 멀리멀리 높이 날아갔다. 새들은 둥지를 짓고 하얀 새알을 낳겠지. 그러고는 눈 녹고 냇물이 다시 흐르는 날에 따뜻한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가면 서로의 안부를 실바람에 서신처럼 실어 보내겠지.

어느 날에는 새끼들을 업고 안고 옛날에 모여 살던 곳으로 돌아오겠지. 객지에 살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친척들처럼. 그러면 서로 얼싸안고 뜨거운 눈물을 쏟을 거야. 서로의 무릎에 새끼들을 앉히고 그간에 살아온 아득한 얘기들을 묻고 들을 거야. 할 얘기가 산처럼 쌓여 있어서 밤을 하얗게 지새우겠지. 그러나 마음은 풍성해질 거야. 옷과 밥과 자유와 평화를 함께 나눌 테니까.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되어 한마음이 될 테니까.

봄바람이 남북 사이에, 한반도에 불어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시인은 시 ‘남북우체통’에서 이렇게 썼다. “소식이 끊어져 할 말이 없어진 지 오래다/ 소식들은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기차바퀴 소리 들어본 지 오래되었을 것이다/ 언 강 풀리는 봄날/ 파랑새야,/ 파랑새야 날아와 다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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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가에 냉이꽃이 피었습니다

냉이꽃 저만치 조그만 돌멩이가 있습니다

 

돌멩이는 담장 그늘이 외로워서

냉이꽃 곁으로 조금씩 조금씩 굴러오는 중입니다

종달새도 텅 빈 하늘이 외로워서

자꾸 땅으로 내려오는데

 

그것도 모르는 냉이꽃이

냉이꽃이 종달새를 던지는 봄날입니다

유금옥(1953~)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나는 유금옥 시인의 동시를 좋아한다. 전교생이 열 명 남짓한, 대관령 골짜기의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걸작이다. 동시 ‘왕산초등학교’에서 “우리 학교는 산이 있네/ 우리 학교는 책이 많네/ 우리 학교는 놀이터가 있네/ 우리 학교는 새들도 많네// 우리 학교가 지지배배 웃네”라고 썼다.

시 ‘냉이꽃’에도 아이의 맑고 순수한 동심의 나라가 있다. 냉이에게는 흰 꽃들이 잇달아 피었다. 돌멩이는 담장의 그늘에 있으면서 말을 나눌 친구를 아직 사귀지 못했다. 그래서 무거운 몸을 굴려 냉이꽃 곁으로 조심스럽게 조금씩 가고 있다. 물론 꽤 오래 걸리겠지만. 높은 하늘을 날던 종달새도 혼자 하는 놀이가 심심해서 땅으로 포르릉 날아 내린다. 그러나 냉이꽃은 다가오는 종달새를 봄 하늘로 되던져 돌려보낸다. 종달새는 솟아오르며, 마치 마음에 들지 않아 삐치고 토라진 듯 날아간다.

냉이꽃의 마음이 있고, 돌멩이의 마음이 있고, 종달새의 마음이 있다. 우리는 때때로 서로의 마음을 잘 몰라 “그것도 모르는” 일을 하곤 하지만, 이즈음은 외로운 마음들이 한 군데서 만나 얼굴을 익히고 친하게 지내려는 봄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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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풀들이 저 나무잎들이 건들거린다

더불어 바람도

바람도 건들거리며 정처없이

또 어디론가를…

 

넌 이미 봄을 살았더냐

다 받아내며 아픈 저 정처없는 건들거림

 

난 이미 불량해서 휘파람 휘익

까딱거리며 내 접면인 세계도 이미 불량해서 휘이익

 

미간을 오므려 가늘게 저 해는 가늘고

비춰내는 것들도 이미 둥글게 가늘어져

 

둥글게 휜 길에서 불량하게

아픈 저 정처없는 건들거림

더불어 바람도

또 어디론가를…

허수경(196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봄에 파릇한 풀들과 새잎이 가볍게 천천히 흔들린다. 땅 위에 공중에 떠서 이리저리 움직인다. 바람도 살랑살랑 더불어 부드럽게 불어오고 불어간다. 또 어딘가를 떠돌며 가려한다. 그렇게 우리에게 와서 가는 봄처럼 시인은 까딱거리며, 휘파람을 날리며, 건들거리며 봄을 산다고 말한다. 이 세계와 접면을 이뤄 아픈 시인은. 이 봄에는 좀 가볍게 봄바람 가듯이, 나른하게 졸음 오듯이, 낮잠 속 꿈 들듯이 살아도 좋겠다. 시인은 시 ‘정든 병’에서 “이 세상 정들 것 없어 병에 정듭니다/ 가엾은 등불 마음의 살들은 저리도 여려 나 그 살을 세상의 접면에 대고 몸이 상합니다/ 몸이 상할 때 마음은 저 혼자 버려지고 버려진 마음이 너무 많아 이 세상 모든 길들은 위독합니다”라고 썼다. 이제 더는 아프지 말고 이 봄 여린 생명들의 기쁨과 그 기쁨의 환호를 모두 다 소상하게 보시고 들으시길.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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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에 종아리를 씻는 소리처럼 새 떼가

날아오른다

 

새 떼의 종아리에 능선이 걸려 있다

새 떼의 종아리에 찔레꽃이 피어 있다

 

새 떼가 내 몸을 통과할 때까지

 

구름은 살냄새를 흘린다

그것도 지나가는 새 떼의 일이라고 믿으니

 

구름이 내려와 골짜기의 물을 마신다

 

나는 떨어진 새 떼를 쓸었다


-김경주(1976~)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새 떼가 퍼드덕대며 날아오른다. 대야에 물을 떠 발을 담그고 발과 종아리를 찬물로 씻을 때의 소리를 내면서. (이 이미지의 연결은 참으로 멋지다.) 찰방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새 떼가 날아올라 날아간다. 내 몸과 찔레꽃과 능선 위로 날아간다. 구름을 지나가고 사라진다. 골짜기에서 생겨난 구름도 둥둥 떠서 간다. 새 떼는 날아가서 아주 사라지고, 새 떼가 날아갔다는 움직임의 흔적만 남았다. 그 흔적은 낙엽처럼 지상으로 떨어진다. 이 시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처럼 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해와 짐작은 읽는 사람의 것이다.)

새 떼는 피어오른 구름과 같고, 큰 그릇이나 양동이에 담긴 물과 같다. 아니 새 떼의 움직임은 봄바람과 같고, 수증기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하얀 입김과 같고, 기침과 같고, 글썽임과 같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경험하는 일도 이와 같을 것이다. 불안정한 기류처럼 어떤 일은 발생하고 진행된다. 우리 존재도 이와 같을 것이다. 둥글넓적한 형태로 떠서 다니는, 혹은 무정형으로 떠서 다니는 유동성이 본질일지도 모른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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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감은 눈 위에 꽃잎이 내려앉으면

네 눈 속에 꽃이 피어난다.

 

네 감은 눈 위에 햇살이 내리면

네 눈 속에 단풍나무 푸른 잎사귀들이 살랑거린다.

 

네 감은 눈 위에 나비가 앉으면

네 눈동자는 꽃술이 되어 환하게 빛나고 있을까.

 

먼 항해에서 돌아온 배의 노처럼

네 긴 속눈썹은 가지런히 쉬고 있다.

가끔씩 배가 출렁이는지

넌 가끔 두 주먹을 꼭 쥐기도 한다.

 

네 감은 눈 속에 눈이 내리면

나는 새하얀 자작나무숲을 한없이 헤매고 있을 거야.

지친 발걸음이 네 눈동자 위에 찍힌다.

 

네가 눈을 뜨면 내 눈은 까맣게 감기고 말 거야.

 

나는 너를 채우고 너는 내게서 빠져나간다.

우리는 번지면서 점점 뚜렷해진다.

 

신철규(198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데칼코마니는 하나의 무늬를 종이 같은 것에 찍어서 다른 표면에 눌렀다 뗌으로써 무늬를 옮겨 붙이는 기법이다. 그러므로 이 둘은 대칭을 이룬다. 우리의 바깥 혹은 외면과 우리의 안쪽 혹은 내면도 짝을 이룬다. 그래서 봄의 언덕에 산수유와 매화가 피면 우리의 속마음에도 산수유와 매화가 핀다. 그 빛깔과 향기에 화사하게 물든다. 이 둘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연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폴 엘뤼아르는 시 ‘사랑하는 여인’에서 “그녀는 내 눈꺼풀 위에 있고/ 그녀의 머리칼은 내 머리칼 속에/ 그녀는 내 손과 같은 형태/ 그녀는 내 눈과 같은 빛깔/(…)/ 나를 웃게 하고, 울고 웃게 하고/ 할 말이 없어도 말하게 한다”라고 노래한 것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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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 피면 간다고 전해라

 

그대에게 당도하기엔

아직 멀고 추운 사랑의 온도

 

이곳은 여전히 바람 불고 말들은 지쳤다

 

허물어진 집터 사람들이 떠난

난롯가엔 몇알의 소금만 흩어져 있다

 

추억을 봉쇄한 자작나무 문 밖에서

몇잎씩 날리고 있을 눈발들

 

도화 이파리 눈발처럼 날리거든

간다고 전해라

 

추운 사랑의 온도 저 너머

사랑이 뿌리처럼 젖어 있는 곳

 

사랑의 온도 꽃으로 피어오르는 그곳으로

간다고 전해라

 

리산(1966~)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복숭아꽃 피는 때에 오겠다고 한다. 말들이 끄는 녹색마차를 타고 사랑이 꽃으로 피는 이곳으로 오겠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당신은 “추운 사랑의 온도”가 지배하는 얼어붙은 땅에 있고, 난롯가에서 온기를 함께 나누던 사람들도 유랑민처럼 흩어졌고, 눈발은 날리고 있으니, 봄이 돌아와 복숭아꽃이 마치 수줍어하고 부끄러워하는 듯이 연분홍의 뺨으로 이 세계에 피면 당신은 내게 돌아오겠다고 한다.

이 땅에 봄바람이 불어온다. 산 너머 남녘에는 봄기운이 완연해 앙상하던 가지마다 꽃망울이 터지고 매화와 산수유가 웃는다고 한다. 여기저기 양지바른 곳이니 사랑의 온도도 올라간다. 건강한 말들이 갈기를 날리며 모든 곳으로 녹색마차들을 끌고 오리라. 봄은 광야를 질주해 이곳으로 오리라.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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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이 많다.

별명이 점박이다.

나는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다.

나에겐 까만 마침표가 많다.

복잡한 게 아니라 풍부하게 산다.

문장을 다듬듯 알뜰살뜰 산다.

밤하늘처럼 초롱초롱

추억의 문장이 빛난다.

당신이 주어일수록

더 반짝거린다. 이정록(196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칠성무당벌레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몸은 짧은 달걀 모양이고 몸 전체가 됫박을 엎어놓은 것 같다”라고 설명을 멋지게 해놓았다. 진딧물을 잡아먹고 사는 익충이라는 풀이와 함께. 내 어릴 적 놀던 뒷동산같이 생긴, 언덕같이 생긴 칠성무당벌레.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면 꼼짝을 않고 죽은 척을 하던 칠성무당벌레. 붉은색 딱지날개에 7개의 검은 점무늬가 있다.

시인은 이 점박이 칠성무당벌레의 생김이 단조롭거나 간단하지 않고 문양과 그것의 멋이 오히려 넉넉하고 많다고 말한다. 몸통이 작지만 나름대로 정성을 쏟아가며 살림을 규모에 알맞게 꾸려간다고 말한다. 칠성무당벌레가 바라보는 밤하늘에는 밝고 또렷한 별이 옛 추억처럼 언제나 빛난다고 말한다.

둥지의 알 같은 칠성무당벌레. 아기의 꼭 쥔, 조그마한 주먹처럼 걸어가는 칠성무당벌레. 넘어져도 금방 오뚝이처럼 잘도 일어서는 칠성무당벌레. 날아갈 때에는 헬멧을 쓰고 공중으로 신나게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칠성무당벌레.

조금은 어수룩한 듯이 보이지만 누구보다 정이 두텁고 너무나 인간적인 칠성무당벌레. 찾으면 찾을수록 모자라는 점보다는 나은 점과 매력이 더 여럿인 칠성무당벌레. 자세히 보면 우리 곁에 있는 모든 사람도 그렇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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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훔치고 싶은 재주는 어둠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저녁의 오래된 기술

 

불현듯 네 방 창에 불이 들어와, 어둠의 벽돌 한장이 차갑게 깨져도

허물어지지 않는 밤의 건축술.

 

검은 물속에 숨어 오래 숨을 참는 사람처럼,

 

내가 가진 재주는 어둠이 깨진 자리에 정확한 크기로 박히는,

슬픔의 오래된 습관. 신용목(197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시를 읽으니 밤은 하나의 건축된 구조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둠이라는, 꼭 같은 크기의 벽돌 한장 한장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건물로 이해된다. 밤이라는 구조물에서 한장의 벽돌을 누군가 빼가지만, 그 자리에는 슬픔이라는 벽돌이 정확한 크기로 그 결여를 메운다.

모든 대상은 우리가 감각하는 내용보다 훨씬 입체적일지도 모른다. 가령, 신용목 시인이 시 ‘그림자 섬’에서 “빗방울에도 얼굴이 있다는 것이 신비로웠고, 목소리에도 해변이 있다는 것이 아름다웠다”라고 썼을 때, 이 시구를 읽는 순간 ‘목소리’라는 것이 내 상상 속에서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해변처럼 입체적으로 펼쳐졌다. 그리고 내게 말하는 당신의 목소리에는 하얀 모래알들이 쌓인 모래사장이 들어 있고, 파도소리가 들어 있고, 외줄의 무덤덤한 수평선이 들어 있고, 출렁이는 푸른빛이 들어 있다.

우리도 지금 ‘봄’이라는 건물 속에 있다. 3월, 새싹, 약하게 부는 바람, 둥근 빗방울, 얇아진 옷, 흐르는 물, 노란 햇살, 새 학기 등의 벽돌이 차곡차곡 쌓여 이룬 ‘봄’이라는 건물 속에.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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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아버지가 군대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 우린 어떻게 살아?

 

아버지는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더니

 

사라졌다

실눈을 뜨고

잠에서 겨우 달아났을 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

사과 깎는 소리

 

발을 길게 끌며 향기가

둥글게 깎여나가고 있었다

 

 

박연준(198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혼백(魂魄)이 와서 제사에 바친 음식을 받아서 먹는 것을 흠향이라고 한다. 이 시에서는 아버지의 넋이 꿈을 꾸는 어렴풋한 동안에 넌지시 다녀간다. 그런데 아버지는 느닷없이 알 듯 모를 듯 한 말을 하신다. 군대에 가야 한다고. 시인은 아버지의 그 말씀을 듣고 놀라며 묻는다. 그럼 남은 식구들은 뭘 먹고 사느냐고. 아버지 아니면 누가 생계를 책임지느냐고. 아버지는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고 사라져간다. 꿈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아버지는 부재하게 된다. 한 차례 찾아온 기억 속의 아버지를 그린 듯한 이 시는 그 여운에 묘한 매력이 있다. 외면하듯 사라져가는, 신발을 끌며 천천히 눈앞에서 멀어지는 아버지의 뒷모습과 자취가 둥글게 깎여져 나오는 사과 껍질에 빗대어져 있다. 사과의 향기를 풀어놓으면서 아버지는 다시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이다. 아마도 제사상을 물리고 제물로 올렸던 사과를 깎는 식구를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아 이처럼 썼겠지만, 한 존재의 부재에서 생겨나는 애틋함과 회오 같은 감정도 때로는 풋풋하게, 싱그러운 사과 향기처럼 기억된다면 좋겠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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