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경향시선'에 해당되는 글 254건

  1. 2018.05.21 환한 아침
  2. 2018.05.14 어디를 흔들어야 푸른 음악일까
  3. 2018.04.30 아름다운 너무나
  4. 2018.04.23 봄바람
  5. 2018.04.16 냉이꽃
  6. 2018.04.09 정처없는 건들거림이여
  7. 2018.04.02 새 떼를 쓸다
  8. 2018.03.26 데칼코마니
  9. 2018.03.19 녹색마차
  10. 2018.03.12 칠성무당벌레
  11. 2018.03.05 공터에서 먼 창
  12. 2018.02.26 흠향(歆饗)
  13. 2018.02.19 대관령 1
  14. 2018.02.12 민달팽이를 보는 한 방식
  15. 2018.02.05 지금
  16. 2018.01.29 살았능가 살았능가
  17. 2018.01.22 그 손
  18. 2018.01.15 홍옥 한 알
  19. 2018.01.08 멧새소리
  20. 2018.01.02 산산산

새벽에 창을 사납게 두드리던 비도 그치고

이른 아침, 햇살이 미친 듯 뛰어내린다

온몸이 다 젖은 회화나무가 나를 내려다본다

물끄러미 서서 조금씩 몸을 흔든다

간밤의 어둠과 바람 소리는 제 몸에 다 쟁였는지

언제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느냐는 듯이

잎사귀에 맺힌 물방울들을 떨쳐 낸다

내 마음보다 훨씬 먼저 화답이라도 하듯이

햇살이 따스하게 그 온몸을 감싸 안는다

나도 저 의젓한 회화나무처럼

언제 무슨 일이 있어도 제자리에 서 있고 싶다

비바람이 아무리 흔들어 대도, 눈보라쳐도

모든 어둠과 그림자를 안으로 쟁이며

오직 제자리에서 환한 아침을 맞고 싶다

- 이태수(194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요란하게 천둥과 번개, 돌풍을 동반한 비가 새벽에 쏟아지더니 “언제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느냐는 듯이” 날이 환하게 갰다. 시인은 창 너머에 젖은 회화나무가 서 있는 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회화나무도 시인이 있는 쪽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둘 사이에 눈길이 오가고, 조용한 교감이 있다. 시인은 비바람과 눈보라가 오더라도 의연하게 당당하게 서 있는 회화나무를 바라보면서 변함이 없는 같은 자리, 제자리에 대해 생각한다. 본래 있던 그 자리로 돌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본래의 자리는 깨끗하고 맑고 밝다.

높이 솟아 우뚝한 회화나무처럼 기상이 좀 굳세고 또 끄떡없어서 더러는 “언제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느냐”면서 우리에게 닥쳐온 일의 고비나 곤란함을 넘기기도 할 일이다. 조금은 과장되게 씩씩하고 호방한 체하면서.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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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것을 도둑맞은 것 같다

거친 숨 몰아쉬며

여기까지 왔는데

무엇이 다녀간 것일까

 

아무것도 없다

공허뿐이라고

그냥 가 보는 거라고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구구구 모이 몇 알 주워 먹느라

할퀴며

깃털 뽑히며

두 날개 뭉개졌는데

벌써 떠나야 한다고 한다

 

어디를 흔들어야 푸른 음악일까

가랑잎도 아닌데

자꾸 떨어져 내리다가

내일은 어디일까

정말 어디를 흔들어야

다시 푸른 음악일까

 

문정희(194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일이 술술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간곡한 기대는 곧잘 도둑맞는다. 그럴 때는 “거꾸로 뒤집혀 버둥거리는/ 풍뎅이처럼” 되기도 한다. 허허벌판에, 폐허에 홀로 서게 되기도 한다. 무엇이 우리를 곤경에 처하게 이끌었을까. 시인은 이러한 일들에 대해 탄식을 실어서 시 ‘모래언덕이라는 이름의 모텔’을 썼고, “모래언덕이라는 이름의 모텔에서/ 솨아솨아 하룻밤을/ 한 생애처럼/ 모래알을 읽었다// 모래로 지은 집에서/ 모래에 파묻혀 모래가 되었다”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허탈감과 무력감이 높은 파도처럼 닥쳐왔더라도 우리는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하고, 야생처럼 뜨겁고 생생하게 살아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흔들었을 때 우리 삶의 실내(室內)에 푸른 음악이 흘러나오길 바란다. 마치 악기를 흔들면 아름다운 선율이 나오듯이. 산들바람이 버드나무를 부드럽게 흔들면 연녹색의 싱그러움이 나오듯이. 푸른 음악은 어디에 깃들어 있는 것일까.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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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누린 적 있는 눈부신 시간들은

 

잠시 걸친

옷이나 구두, 가방이었을 것이나

 

눈부신

만큼 또 어쩔 수 없이 아팠을 것이나

 

한번쯤은

남루를 가릴 병풍이기도 했을 것이나

 

주인을 따라 늙어

이제

젊은 누구의 몸과 옷과

구두와 가방

아픔이 되었을 것이나

 

그 세월 사이로

새와 나비, 벌레의 시간을

날게 하거나 노래하게 하면서

 

이제 그 시간들마저

허락도

없이 데려가는 중일 것이나


박라연(1951~)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리는 빛이 가득한 때를 살기도 한다. 흐뭇하고 황홀한 시간을 살기도 한다. 시인은 그 시간을 옷과 구두와 가방을 걸치는 일에 비유한다. 그러나 눈부신 시간은 짧고, 연속적이지 않고, 사라진다. 마치 생화로 만들었으나 시들어 버리는 꽃다발처럼. 그렇지만 그 기쁜 순간들 덕택에 우리들은 삶이라는 의복의 낡음을 잠시 가릴 수 있다.

시인은 “세상의 어두운 창고 하나쯤/ 헐어서/ 남향을 찾아줄 상상을 하”기도 하는데, 남쪽으로 낸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우리 내면의 공간을 환하게 비추었으면 좋겠다. 금모래 같은 환하고 밝은 시간이 하루 낮 하루 밤 동안이라도 계속 쏟아지고 이어졌으면 좋겠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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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다 어디로 갔나

낙동강 청천강으로

백두산 한라산으로

훨훨 날아갔겠지

가서 잘 살겠지

식구들 늘어나면

봄바람에 소식 전해주겠지

새끼들 자랑하러 얼싸안고 오겠지

새들아, 훨훨 날아가라

김수복(1953~)

모여 살던 새들은 남쪽과 북쪽으로 날아가 흩어졌다. 영남을 휘돌아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낙동강으로 새들은 날아갔다. 평안도를 지나 황해로 흘러들어가는 청천강으로 새들은 날아갔다. 하얀 모래밭과 수풀과 들판과 습지와 마을로 날아갔다. 백두산과 한라산으로 멀리멀리 높이 날아갔다. 새들은 둥지를 짓고 하얀 새알을 낳겠지. 그러고는 눈 녹고 냇물이 다시 흐르는 날에 따뜻한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가면 서로의 안부를 실바람에 서신처럼 실어 보내겠지.

어느 날에는 새끼들을 업고 안고 옛날에 모여 살던 곳으로 돌아오겠지. 객지에 살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친척들처럼. 그러면 서로 얼싸안고 뜨거운 눈물을 쏟을 거야. 서로의 무릎에 새끼들을 앉히고 그간에 살아온 아득한 얘기들을 묻고 들을 거야. 할 얘기가 산처럼 쌓여 있어서 밤을 하얗게 지새우겠지. 그러나 마음은 풍성해질 거야. 옷과 밥과 자유와 평화를 함께 나눌 테니까.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되어 한마음이 될 테니까.

봄바람이 남북 사이에, 한반도에 불어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시인은 시 ‘남북우체통’에서 이렇게 썼다. “소식이 끊어져 할 말이 없어진 지 오래다/ 소식들은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기차바퀴 소리 들어본 지 오래되었을 것이다/ 언 강 풀리는 봄날/ 파랑새야,/ 파랑새야 날아와 다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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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가에 냉이꽃이 피었습니다

냉이꽃 저만치 조그만 돌멩이가 있습니다

 

돌멩이는 담장 그늘이 외로워서

냉이꽃 곁으로 조금씩 조금씩 굴러오는 중입니다

종달새도 텅 빈 하늘이 외로워서

자꾸 땅으로 내려오는데

 

그것도 모르는 냉이꽃이

냉이꽃이 종달새를 던지는 봄날입니다

유금옥(1953~)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나는 유금옥 시인의 동시를 좋아한다. 전교생이 열 명 남짓한, 대관령 골짜기의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걸작이다. 동시 ‘왕산초등학교’에서 “우리 학교는 산이 있네/ 우리 학교는 책이 많네/ 우리 학교는 놀이터가 있네/ 우리 학교는 새들도 많네// 우리 학교가 지지배배 웃네”라고 썼다.

시 ‘냉이꽃’에도 아이의 맑고 순수한 동심의 나라가 있다. 냉이에게는 흰 꽃들이 잇달아 피었다. 돌멩이는 담장의 그늘에 있으면서 말을 나눌 친구를 아직 사귀지 못했다. 그래서 무거운 몸을 굴려 냉이꽃 곁으로 조심스럽게 조금씩 가고 있다. 물론 꽤 오래 걸리겠지만. 높은 하늘을 날던 종달새도 혼자 하는 놀이가 심심해서 땅으로 포르릉 날아 내린다. 그러나 냉이꽃은 다가오는 종달새를 봄 하늘로 되던져 돌려보낸다. 종달새는 솟아오르며, 마치 마음에 들지 않아 삐치고 토라진 듯 날아간다.

냉이꽃의 마음이 있고, 돌멩이의 마음이 있고, 종달새의 마음이 있다. 우리는 때때로 서로의 마음을 잘 몰라 “그것도 모르는” 일을 하곤 하지만, 이즈음은 외로운 마음들이 한 군데서 만나 얼굴을 익히고 친하게 지내려는 봄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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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풀들이 저 나무잎들이 건들거린다

더불어 바람도

바람도 건들거리며 정처없이

또 어디론가를…

 

넌 이미 봄을 살았더냐

다 받아내며 아픈 저 정처없는 건들거림

 

난 이미 불량해서 휘파람 휘익

까딱거리며 내 접면인 세계도 이미 불량해서 휘이익

 

미간을 오므려 가늘게 저 해는 가늘고

비춰내는 것들도 이미 둥글게 가늘어져

 

둥글게 휜 길에서 불량하게

아픈 저 정처없는 건들거림

더불어 바람도

또 어디론가를…

허수경(196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봄에 파릇한 풀들과 새잎이 가볍게 천천히 흔들린다. 땅 위에 공중에 떠서 이리저리 움직인다. 바람도 살랑살랑 더불어 부드럽게 불어오고 불어간다. 또 어딘가를 떠돌며 가려한다. 그렇게 우리에게 와서 가는 봄처럼 시인은 까딱거리며, 휘파람을 날리며, 건들거리며 봄을 산다고 말한다. 이 세계와 접면을 이뤄 아픈 시인은. 이 봄에는 좀 가볍게 봄바람 가듯이, 나른하게 졸음 오듯이, 낮잠 속 꿈 들듯이 살아도 좋겠다. 시인은 시 ‘정든 병’에서 “이 세상 정들 것 없어 병에 정듭니다/ 가엾은 등불 마음의 살들은 저리도 여려 나 그 살을 세상의 접면에 대고 몸이 상합니다/ 몸이 상할 때 마음은 저 혼자 버려지고 버려진 마음이 너무 많아 이 세상 모든 길들은 위독합니다”라고 썼다. 이제 더는 아프지 말고 이 봄 여린 생명들의 기쁨과 그 기쁨의 환호를 모두 다 소상하게 보시고 들으시길.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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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에 종아리를 씻는 소리처럼 새 떼가

날아오른다

 

새 떼의 종아리에 능선이 걸려 있다

새 떼의 종아리에 찔레꽃이 피어 있다

 

새 떼가 내 몸을 통과할 때까지

 

구름은 살냄새를 흘린다

그것도 지나가는 새 떼의 일이라고 믿으니

 

구름이 내려와 골짜기의 물을 마신다

 

나는 떨어진 새 떼를 쓸었다


-김경주(1976~)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새 떼가 퍼드덕대며 날아오른다. 대야에 물을 떠 발을 담그고 발과 종아리를 찬물로 씻을 때의 소리를 내면서. (이 이미지의 연결은 참으로 멋지다.) 찰방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새 떼가 날아올라 날아간다. 내 몸과 찔레꽃과 능선 위로 날아간다. 구름을 지나가고 사라진다. 골짜기에서 생겨난 구름도 둥둥 떠서 간다. 새 떼는 날아가서 아주 사라지고, 새 떼가 날아갔다는 움직임의 흔적만 남았다. 그 흔적은 낙엽처럼 지상으로 떨어진다. 이 시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처럼 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해와 짐작은 읽는 사람의 것이다.)

새 떼는 피어오른 구름과 같고, 큰 그릇이나 양동이에 담긴 물과 같다. 아니 새 떼의 움직임은 봄바람과 같고, 수증기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하얀 입김과 같고, 기침과 같고, 글썽임과 같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경험하는 일도 이와 같을 것이다. 불안정한 기류처럼 어떤 일은 발생하고 진행된다. 우리 존재도 이와 같을 것이다. 둥글넓적한 형태로 떠서 다니는, 혹은 무정형으로 떠서 다니는 유동성이 본질일지도 모른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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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감은 눈 위에 꽃잎이 내려앉으면

네 눈 속에 꽃이 피어난다.

 

네 감은 눈 위에 햇살이 내리면

네 눈 속에 단풍나무 푸른 잎사귀들이 살랑거린다.

 

네 감은 눈 위에 나비가 앉으면

네 눈동자는 꽃술이 되어 환하게 빛나고 있을까.

 

먼 항해에서 돌아온 배의 노처럼

네 긴 속눈썹은 가지런히 쉬고 있다.

가끔씩 배가 출렁이는지

넌 가끔 두 주먹을 꼭 쥐기도 한다.

 

네 감은 눈 속에 눈이 내리면

나는 새하얀 자작나무숲을 한없이 헤매고 있을 거야.

지친 발걸음이 네 눈동자 위에 찍힌다.

 

네가 눈을 뜨면 내 눈은 까맣게 감기고 말 거야.

 

나는 너를 채우고 너는 내게서 빠져나간다.

우리는 번지면서 점점 뚜렷해진다.

 

신철규(198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데칼코마니는 하나의 무늬를 종이 같은 것에 찍어서 다른 표면에 눌렀다 뗌으로써 무늬를 옮겨 붙이는 기법이다. 그러므로 이 둘은 대칭을 이룬다. 우리의 바깥 혹은 외면과 우리의 안쪽 혹은 내면도 짝을 이룬다. 그래서 봄의 언덕에 산수유와 매화가 피면 우리의 속마음에도 산수유와 매화가 핀다. 그 빛깔과 향기에 화사하게 물든다. 이 둘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연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폴 엘뤼아르는 시 ‘사랑하는 여인’에서 “그녀는 내 눈꺼풀 위에 있고/ 그녀의 머리칼은 내 머리칼 속에/ 그녀는 내 손과 같은 형태/ 그녀는 내 눈과 같은 빛깔/(…)/ 나를 웃게 하고, 울고 웃게 하고/ 할 말이 없어도 말하게 한다”라고 노래한 것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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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 피면 간다고 전해라

 

그대에게 당도하기엔

아직 멀고 추운 사랑의 온도

 

이곳은 여전히 바람 불고 말들은 지쳤다

 

허물어진 집터 사람들이 떠난

난롯가엔 몇알의 소금만 흩어져 있다

 

추억을 봉쇄한 자작나무 문 밖에서

몇잎씩 날리고 있을 눈발들

 

도화 이파리 눈발처럼 날리거든

간다고 전해라

 

추운 사랑의 온도 저 너머

사랑이 뿌리처럼 젖어 있는 곳

 

사랑의 온도 꽃으로 피어오르는 그곳으로

간다고 전해라

 

리산(1966~)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복숭아꽃 피는 때에 오겠다고 한다. 말들이 끄는 녹색마차를 타고 사랑이 꽃으로 피는 이곳으로 오겠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당신은 “추운 사랑의 온도”가 지배하는 얼어붙은 땅에 있고, 난롯가에서 온기를 함께 나누던 사람들도 유랑민처럼 흩어졌고, 눈발은 날리고 있으니, 봄이 돌아와 복숭아꽃이 마치 수줍어하고 부끄러워하는 듯이 연분홍의 뺨으로 이 세계에 피면 당신은 내게 돌아오겠다고 한다.

이 땅에 봄바람이 불어온다. 산 너머 남녘에는 봄기운이 완연해 앙상하던 가지마다 꽃망울이 터지고 매화와 산수유가 웃는다고 한다. 여기저기 양지바른 곳이니 사랑의 온도도 올라간다. 건강한 말들이 갈기를 날리며 모든 곳으로 녹색마차들을 끌고 오리라. 봄은 광야를 질주해 이곳으로 오리라.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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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이 많다.

별명이 점박이다.

나는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다.

나에겐 까만 마침표가 많다.

복잡한 게 아니라 풍부하게 산다.

문장을 다듬듯 알뜰살뜰 산다.

밤하늘처럼 초롱초롱

추억의 문장이 빛난다.

당신이 주어일수록

더 반짝거린다. 이정록(196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칠성무당벌레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몸은 짧은 달걀 모양이고 몸 전체가 됫박을 엎어놓은 것 같다”라고 설명을 멋지게 해놓았다. 진딧물을 잡아먹고 사는 익충이라는 풀이와 함께. 내 어릴 적 놀던 뒷동산같이 생긴, 언덕같이 생긴 칠성무당벌레.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면 꼼짝을 않고 죽은 척을 하던 칠성무당벌레. 붉은색 딱지날개에 7개의 검은 점무늬가 있다.

시인은 이 점박이 칠성무당벌레의 생김이 단조롭거나 간단하지 않고 문양과 그것의 멋이 오히려 넉넉하고 많다고 말한다. 몸통이 작지만 나름대로 정성을 쏟아가며 살림을 규모에 알맞게 꾸려간다고 말한다. 칠성무당벌레가 바라보는 밤하늘에는 밝고 또렷한 별이 옛 추억처럼 언제나 빛난다고 말한다.

둥지의 알 같은 칠성무당벌레. 아기의 꼭 쥔, 조그마한 주먹처럼 걸어가는 칠성무당벌레. 넘어져도 금방 오뚝이처럼 잘도 일어서는 칠성무당벌레. 날아갈 때에는 헬멧을 쓰고 공중으로 신나게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칠성무당벌레.

조금은 어수룩한 듯이 보이지만 누구보다 정이 두텁고 너무나 인간적인 칠성무당벌레. 찾으면 찾을수록 모자라는 점보다는 나은 점과 매력이 더 여럿인 칠성무당벌레. 자세히 보면 우리 곁에 있는 모든 사람도 그렇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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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훔치고 싶은 재주는 어둠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저녁의 오래된 기술

 

불현듯 네 방 창에 불이 들어와, 어둠의 벽돌 한장이 차갑게 깨져도

허물어지지 않는 밤의 건축술.

 

검은 물속에 숨어 오래 숨을 참는 사람처럼,

 

내가 가진 재주는 어둠이 깨진 자리에 정확한 크기로 박히는,

슬픔의 오래된 습관. 신용목(197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시를 읽으니 밤은 하나의 건축된 구조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둠이라는, 꼭 같은 크기의 벽돌 한장 한장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건물로 이해된다. 밤이라는 구조물에서 한장의 벽돌을 누군가 빼가지만, 그 자리에는 슬픔이라는 벽돌이 정확한 크기로 그 결여를 메운다.

모든 대상은 우리가 감각하는 내용보다 훨씬 입체적일지도 모른다. 가령, 신용목 시인이 시 ‘그림자 섬’에서 “빗방울에도 얼굴이 있다는 것이 신비로웠고, 목소리에도 해변이 있다는 것이 아름다웠다”라고 썼을 때, 이 시구를 읽는 순간 ‘목소리’라는 것이 내 상상 속에서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해변처럼 입체적으로 펼쳐졌다. 그리고 내게 말하는 당신의 목소리에는 하얀 모래알들이 쌓인 모래사장이 들어 있고, 파도소리가 들어 있고, 외줄의 무덤덤한 수평선이 들어 있고, 출렁이는 푸른빛이 들어 있다.

우리도 지금 ‘봄’이라는 건물 속에 있다. 3월, 새싹, 약하게 부는 바람, 둥근 빗방울, 얇아진 옷, 흐르는 물, 노란 햇살, 새 학기 등의 벽돌이 차곡차곡 쌓여 이룬 ‘봄’이라는 건물 속에.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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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아버지가 군대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 우린 어떻게 살아?

 

아버지는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더니

 

사라졌다

실눈을 뜨고

잠에서 겨우 달아났을 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

사과 깎는 소리

 

발을 길게 끌며 향기가

둥글게 깎여나가고 있었다

 

 

박연준(198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혼백(魂魄)이 와서 제사에 바친 음식을 받아서 먹는 것을 흠향이라고 한다. 이 시에서는 아버지의 넋이 꿈을 꾸는 어렴풋한 동안에 넌지시 다녀간다. 그런데 아버지는 느닷없이 알 듯 모를 듯 한 말을 하신다. 군대에 가야 한다고. 시인은 아버지의 그 말씀을 듣고 놀라며 묻는다. 그럼 남은 식구들은 뭘 먹고 사느냐고. 아버지 아니면 누가 생계를 책임지느냐고. 아버지는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고 사라져간다. 꿈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아버지는 부재하게 된다. 한 차례 찾아온 기억 속의 아버지를 그린 듯한 이 시는 그 여운에 묘한 매력이 있다. 외면하듯 사라져가는, 신발을 끌며 천천히 눈앞에서 멀어지는 아버지의 뒷모습과 자취가 둥글게 깎여져 나오는 사과 껍질에 빗대어져 있다. 사과의 향기를 풀어놓으면서 아버지는 다시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이다. 아마도 제사상을 물리고 제물로 올렸던 사과를 깎는 식구를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아 이처럼 썼겠지만, 한 존재의 부재에서 생겨나는 애틋함과 회오 같은 감정도 때로는 풋풋하게, 싱그러운 사과 향기처럼 기억된다면 좋겠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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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감자를 깎는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감자를 깎아 항아리에 담근 어머니

앙금을 내려 떡을 빚으면

떡을 빚으면

대관령 호랑이도 내려온다고

떡을 먹지 않는 호랑이도 굶지 않는다고

어머니는 감자를 깎는다

감자꽃빛 새벽별이 머리 위에 빛날 때

치성 올려

내 안에 앙금을 내리고 있다

내 안에 별빛을 내리고 있다

 

 -윤후명(1946~)

출처:경향신문DB

어머니들은 감자를 깎는다. 어머니들은 감자를 삶아 그릇에 담아낸다. 감자를 갈아 그 앙금과 건더기로 반죽을 해서 쫄깃쫄깃한 감자떡을 쪄서 내놓으신다. 감자를 깎는 일은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배워온 일. 흰색 또는 자줏빛의 소박한 듯 고운 감자꽃이 피고, 감자를 캐는 날이면 뽀얀 분이 잘 오른 토실토실한 감자들이 흙냄새와 함께 비탈진 밭에 가득하여 먹고사는 일에 잠시 걱정을 덜기도 했다.

어머니들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치성을 올린다.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드린다. 치성을 올리는 일은 감자를 심던 아득한 때부터 이어져온 일. 내 고향에서도 밥할 때 감자를 함께 쪄 먹곤 했다. 배가 고픈 때에 끼니로 먹던, 주먹만 하던 통감자들.

강릉이 고향인 윤후명 시인은 강릉을 일러 “뒷산 호랑이가 나무 되어 걸어내려와/ 처녀 데려가 살았다는 옛 곳”(시 ‘강릉 가는 길’)이라고 썼고, 한 산문에서는 “대관령은 커다란 고래처럼 넘실거린다. 눈으로 가늠할 수 없는 한 더미의 고래다. 바다는 큰 산을 받들고 있다. 큰 산의 지느러미가 하늘을 너울거린다. 대관령이다!”라고 썼다.

큰 산이 우뚝 솟고, 해송(海松)과 곱고 흰 모래톱의 바닷가 너머로 넓고 격렬한 대양(大洋)이 끝없이 펼쳐진 곳이 강릉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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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이 아닌 출가이길 바란다

떠나온 집이 어딘가 있고 언제든 거기로 돌아갈 수 있는 자가 아니라

 

돌아갈 집 없이

돌아갈 어디도 없이

돌아간다는 말을 생의 사전에서 지워버린

집을 버린 자가 되길 바란다

매일의 온몸만이 집이며 길인,

 

그런 자유를……

 

바란다, 나여


 
 - 김선우(197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민달팽이는 껍데기집이 없는 달팽이다. 찬 이슬과 매서운 바람과 폭우와 거친 눈보라를 피할 곳이 따로 없다. 돌아갈 곳도 끊어버렸다. 지나온 길은 무너뜨렸다. 근심과 슬픔이 오면 온몸으로 맞이한다. 실컷 울고 가던 길 또 간다. 나아갈 길과 다가올 내일을 미리 헤아려 홀로 열어 나간다. 뿔처럼 단단한 의지를 세우고서. 오직 스스로를 의지하면서.

두고 갈 것이 없고, 지나온 시간을 모두 버렸으니 참 홀가분하다. 밀고 밀며 가는 이 순간의 꽃핌만이 있을 뿐이다. 이 순간을 횃불처럼 살기 때문에 마음은 늙지 않는다. 매일매일이 생화(生花)로 만든 꽃다발처럼 싱싱하고 향기롭다.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는다. 깨끗한 달 가듯이 먼 데 가는 자유만이 있을 뿐이다. 김선우 시인은 시 ‘고쳐 쓰는 묘비’에서 “태어날 때의 울음을 기억할 것// 웃음은 울음 뒤에 배우는 것// 축하한다 삶의 완성자여// 장렬한 사랑의 노동자여”라고 썼다. 온몸으로 온전히 사랑해야 할 삶의 시간이 우리에게 있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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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말하라. 나중에 말하면 달라진다. 예전에 말하던 것도 달라진다. 지금 말하라. 지금 무엇을 말하는지. 어떻게 말하고 왜 말하는지. 이유도 경위도 없는 지금을 말하라. 지금은 기준이다. 지금이 변하고 있다. 변하기 전에 말하라. 변하면서 말하고 변한 다음에도 말하라. 지금을 말하라. 지금이 아니면 지금이라도 말하라. 지나가기 전에 말하라. 한순간이라도 말하라. 지금은 변한다. 지금이 절대적이다. 그것을 말하라. 지금이 되어버린 지금이. 지금이 될 수 없는 지금을 말하라. 지금이 그 순간이다. 지금은 이 순간이다. 그것을 말하라. 지금 말하라. 김언(1973~)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존재하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전부이다. 바로 지금, 여기가 있을 뿐, 다른 더 좋은 시절은 없다. 지나간 과거에 붙들려 있지 말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지도 말 일이다. 오직 현재의 마음을 얻을 일이다. 지금 이 순간도 변하고 있다. 그대로 있는 것은 없다. 잘 깎아놓은 한 알의 사과도 곧 과육의 색깔이 변한다. 순간순간이 있을 뿐이다. 시간도 왔다 간다. 고통도 지나간다. 우리의 얼굴에 핀 미소도 물 위를 떠내려가는 종이배처럼 흘러간다. 지금 일어나는 것을 바로 보라. 지금은 금방 빠져나간다. 움켜쥐었으나 곧 손바닥에서 빠져나가는 물처럼. 그래서 참선 수행자들에게 염기즉각(念起卽覺)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리라. 한 생각이 일어나면 곧바로 알아차려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리라. 이 시는 집요하게 ‘지금’을 말하라고 요구한다. 내 손과 발이 움직이는 이 순간을, 내 생각이 안개처럼 피어나고 뭉쳐지고 흩어지는 이 순간을, 내가 전면적으로 마주 보고 대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아주 명백하게 보라고 말한다. 사실과 꼭 같게, 있는 그대로를 보라고 말한다. 그렇다. 그것이 정견(正見)일 것이므로.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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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능가 살았능가

벽을 두드리는 소리

대답하라는 소리

살았능가 죽었능가

죽지도 않고 살아 있지도 않고

벽을 두드리는 소리만

대답하라는 소리만

살았능가 살았능가

 

삶은 무지근한 잠

오늘도 하늘의 시계는

흘러가지 않고 있네

 

 - 최승자(1952~)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누군가 문이나 벽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을 때 떠오르는 시구가 있다. 자크 프레베르가 시 ‘누군가 문을 두드리네’에서 “누구세요/ 아무도 없는데/ 그건 단지/ 너 때문에/ 두근거리는/ 아주 거친 소리로 두근거리는/ 내 마음의 소리일 뿐”이라고 쓴 것이 그것이다. 참 멋지게 잘 썼다. 생겨난 모든 소리는 생생하다. 바깥에서 오는 소리이든 내면에서 울려오는 소리이든. 두드리는 소리는 깨우는 소리이다. 질문하는 소리요, 응답하라는 요구이다.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삶의 생기와 의욕과 진전을 증거를 들어 밝히라는 요구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에 눌린 듯 무거운 잠 속에서 살고 있지는 않은가. 무기력하게, 꺾인 갈대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가. 벽이 된 나의 몸과 마음을 두드리자. 그래서 얼음을 깨듯 나를 깨트리자. 눈보라 가듯 움직여가자. 삶이 무지근한 잠이라고 하더라도 사랑이 그 속에 생화(生花)처럼 놓여 있다면 말은 달라진다. 알프레드 드 뮈세는 “삶은 잠, 사랑은 그 꿈”이라고 노래했으니 말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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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것은 커다란 손 같았다

밑에서 받쳐주는 든든한 손

쓰러지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옆에서 감싸주는 따뜻한 손

바람처럼 스쳐가는

보이지 않는 손

누구도 잡을 수 없는

물과 같은 손

시간의 물결 위로 떠내려가는

꽃잎처럼 가녀린 손

아픈 마음 쓰다듬어주는

부드러운 손

팔을 뻗쳐도 닿을락 말락

끝내 놓쳐버린 손

커다란 오동잎처럼 보이던

그 손  김광규(1941~)

생각해보면 뒤에서 나를 도와주는 존재가 있다. 나는 원조를 받고, 나는 지지를 받는다. 반짝이는 별에게 밤의 하늘이, 캄캄한 어둠이 배경이 되어주는 것처럼 누군가 혹은 어떤 힘은 나의 배경이 되어준다. 험한 낭떠러지로 내몰리지 않도록 밑과 옆에서 내 존재의 근거가 되어준다. 기초로 받쳐 놓은 주춧돌처럼. 그러나 그 후원의 손은 스쳐가는 바람 같고, 움켜쥘 수 없는 물과 같아서 대면하기가 쉽지 않다. 오동잎처럼 큼직하고 묵직해서 듬직하다고 느낄 뿐이다. 나를 잡아주었던 손들을 생각해본다. 외할머니가 감나무 아래에서 어릴 적 나를 잡아주었고, 누나가 여름밤의 들마루에서 사춘기 적 나를 잡아주었다. 뻗어가는 산등성이, 고요한 저수지, 풀벌레 소리, 어린 염소와 잠자리, 토끼와 강아지, 마당에 세워두었던 눈사람이 내겐 “커다란 오동잎처럼 보이던” 손이었다. 요즘엔 나의 손이 아버지의 손을 잡는다. 나를 꽉 잡아주던, 평생 농부로 살아온 아버지의 늙은 손을 나의 희고 가녀린 손이 잡는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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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눈 오는 날 청계천 헌 책방엘 갔다 김종삼 특집 낡은 시 잡지 표지에 이름도 없는 내가 김수영 전봉건 김종문 신동문 김광림 시인과 함께 섞여 내다보고 있었다 움, 무우순, 무순(無順), 번외(番外)라고 금방 끼룩거렸다 성중천(性中天)이 거기 있었다 맨 꽁무니 기러기 한 마리여

그즈음 어느 겨울날 아리스 다방 골목길 과일 가게에서 김종삼 시인이 하얀 손수건 꺼내 조심스럽게 싸들던 홍옥 한 알과 김하림 시인도 이 겨울 생각났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열애 중인 그들이었다

 -정진규(1939~201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시인은 눈 오는 날에 찍었던 옛 사진 두 장을 기억의 서랍에서 꺼낸다. 한 컷은 헌 책방에 들렀던 때이고, 또 한 컷은 과일 가게에 들렀던 때이다.

시인은 책방에 가서 본 잡지의 표지에 자신이 여러 시인들 속에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한다. 비록 이름이 다른 시인들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고, 또 밑천도 없는 때여서 자신이 기러기 행렬의 끝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그 모임의 한데 섞임에는 배열이나 분류의 차례가 없고, 순번도 없고, 다만 하늘 아래 타고난 마음의 본바탕이 자연스럽게 드러났었다고 회상한다. 또 하나의 필름에는 홍옥 한 알을 손수건으로 감싸서 들던 김종삼 시인이 있다. 사과를 흰 손수건으로 둘러싸 들어 올렸으니 사과의 빛깔이 더욱 더 선명하게 붉었을 것이다. 눈이 내리던 겨울 어느 날의 풍경들이었다.

재지 않고 터놓고 어울리고, 눈빛에서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서로를 격려하고, 멋스러운 데도 좀 있게 살았던 그 시절의 얼굴들. 열렬하게 생업과 세상을 사랑하며 살았던 때의 사진들이 따뜻하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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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끝에 명태(明太)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문(門)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 백석(1912~1996)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백석은 이 시를 스물일곱 살에 발표했다. 숲처럼 짙푸르고 무성한 나이에 썼다. 얼굴에 혈기가 도는 나이에 썼지만, 이 시에는 겨울이 한가득 들어 있다. 명태는 함경도의 특산물. 처마 끝에 명태를 매달아 말리는 것을 시인은 본다. 몸의 등이 길고, 조금 마른 명태를 보고 시인은 명태가 자신을 닮았다고 말한다. 초췌하고 핼쑥한 자신의 모습이 명태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꼬리지느러미에 얼음이 붙은 명태와 가슴에 고드름이 달린 자신을 같은 처지로 본다. 처지만 같은 것이 아니라 심정 또한 매한가지라고 말한다. 마음은 어떤 형편에 있는가?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저물어가고, 볕이 노루꼬리처럼 짧게 남아 있긴 하지만 차가운 바람을 이기지 못하는 상황에 빗대었다. 백석은 이 시를 객지인 함흥에 살 때에 썼다. 타향에서 느꼈을 쓸쓸함과 근심이 드러나 있다. 함흥 살 때의 생활을 기록한 한 산문에서 “한없이 착하고 정다운 가재미만이 흰밥과 빨간 고추장과 함께 가난하고 쓸쓸한 내 상에 한 끼도 빠지지 않고 오른다”고 쓰기도 했다. 그런데 왜 제목을 ‘멧새소리’라고 했을까? 멧새소리는 고향에서 듣던 경쾌하고 정겨운 소리였을 것이니, 그 그리운 소리에서 아주 먼 곳 객지에서 느꼈을 시인의 깊은 객수(客愁)는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뼈가 시리도록 혹독한 추위가 닥쳐오는 날에는 이 시가 문득 생각난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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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일자 지면기사-

지구엔

돋아난

산이 아름다웁다.

 

산은 한사코

높아서 아름다웁다.

 

산에는

아무 죄 없는 짐승과

에레나보다 어여쁜 꽃들이

모여서 살기에 더 아름다웁다.

언제나

나도 산이 되어 보나 하고

기린같이 목을 길게 늘이고 서서

멀리 바라보는

 

 - 신석정(1907∼197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신석정 시인은 이 시를 1953년 1월에 발표했다. 언제 보아도 산(山)은 또렷하게 솟아올라 있다. 하늘에 별이 하나둘 돋아나듯, 산은 지구의 표면으로부터 볼록하게 쑥 돌올하게 솟아 있다. 산은 굳세고 위엄스러운 기개로 섰다. 시인은 그 산의 높이를 정신의 높이로 읽는다. 산은 고결하고 신성한 정신의 높이로 섰다. 뿐만 아니라 산은 그 품에 생명을 화목하게 거느린다. 골짜기와 산등선에는 순한 눈망울의 산짐승이 깃들여 살고, 꽃의 꽃핌이 있고, 이 생명들은 모여 정답게 살아간다. 시인은 이러한 산이 좋아서 기린의 목처럼 길게 목을 빼어 자신도 산이 되기를 열망한다.

새해에는 산처럼 숭고한 큰 뜻을 품어보고, 산처럼 힘차고 튼튼할 것을 생각해볼 일이다. 산속 생명들처럼 사이좋게 살 일을 꿈꿔볼 일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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