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경향시선'에 해당되는 글 272건

  1. 2018.09.17 반 다발
  2. 2018.09.10 잘 익은 시
  3. 2018.09.03 천관 (天冠)
  4. 2018.08.31 도시와 사진가
  5. 2018.08.28 서해
  6. 2018.08.20 어디서 사슴의 눈도 늙어가나 - 고산지대(高山地帶)
  7. 2018.08.13 레몬옐로
  8. 2018.08.06 무인도
  9. 2018.07.30 살구가 익는 동안
  10. 2018.07.23 다시 해바라기
  11. 2018.07.16 곁에 누워본다
  12. 2018.07.09 자작나무에게
  13. 2018.07.02 옥수수밭
  14. 2018.06.25 앵커
  15. 2018.06.18 지금 여기가 맨 앞
  16. 2018.06.11 언니들과의 저녁 식사
  17. 2018.06.04 물속까지 벚꽃이 피어
  18. 2018.05.28 초도에 가면
  19. 2018.05.21 환한 아침
  20. 2018.05.14 어디를 흔들어야 푸른 음악일까

꽃 한 다발을 사서

친구와 나눴다

오래도록 꽃이 없던

화병이 놓인

방이 활짝 밝아졌다

 

너, 아직도 꽃을 사는구나

언니가 말했다

이 꽃 누가 줬어?

대접받고 사는 친구가 말했다

넌 살 만한가 보다

일이 꼬인 친구가 말했다

드물게 지갑을 열어 꽃을 사는 나는

앞다퉈 피운 욕망의

뿌리가 잘린

꽃송이들을 보고 있다

 

반 다발의

뿌리 없는 꽃들

초연하다

조은(196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간만에 지갑을 열어 꽃을 한 다발 산 시인은 친구와 반을 나눠, 그 반 다발의 꽃을 빈 화병에 꽂는다. 그 순간 방이 마치 빛 속으로 열린 듯이 한껏 밝아진다. 반 다발의 꽃을 본 언니와 ‘대접받고 사는 친구’와 ‘일이 꼬인 친구’가 반 다발 꽃의 출처를 심드렁하게 묻는다. 그냥 얻는 경우 아니라면 뭐 하러 돈을 내서, 그 나이에 꽃을 다 사느냐고.

그러나 생각해보면 때로는 꽃이 없는 화병처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면의 밝음을 가꿔야겠다. 반 다발의 생화 같은 생기, 풋풋함, 빛, 그리고 향기의 개화가 마음속에 가득하도록. 시인은 시 ‘발자국’에서 “영혼을 외면했던/ 오늘 내 발자국이/ 불에 달군 쇳덩이처럼/ 위험해 보인다”라고 써서 영혼을 가꾸는 일에 대해 말했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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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돌아와 아궁이 앞에 앉은 외할머니가 무명 치마에 묻은 호미와 괭이질의 무늬를 불에 털어 넣어 한 끼 저녁을 차렸지 꺾어온 보릿대를 아궁이 불에 적당히 태워 검댕이 묻은 손으로 껍질 벗긴 보리알을 건네주셨지

 

옛날처럼

여름을 세웠던 입하(立夏)의 양식처럼

불에 그을린 말들을 비벼 말껍질을 벗겨버린다면

 

시는 어쩔라나

 

배고픈 날

잘 익어 푸르스름한 보리알은

오래 씹을수록 달았었는데

심재휘(1963~)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껍질을 벗기지 않은 곡식의 알을 약한 불 위에 잠깐 얹어 익힌 후에 손으로 비벼대고, 또 후우 하고 불면 푸르스름한 알곡이 나왔는데, 출출할 때 그걸 먹는 맛과 재미가 쏠쏠했다. 이따금 드물게 콩을 구울 때에는 타닥타닥 콩이 튀는 소리가 불 속에서 나기도 했다. 시인이라면 “잘 익어 푸르스름한 보리알” 같은 시를 쓰고 싶을 것이다. 잘 익고, 맛이 그윽하게 감미로운 시를 쓰고 싶을 것이다. 실속이 없는 빈말이나 꾸민 말, 화려한 말로 쓴 시가 아니라 씹으면 씹을수록 달차근한 맛이 찬찬히 우러나는 그런 시를 쓰고 싶을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만나고 싶은 맛도 그런 것일 테다. 조금은 심심한 듯해도 은근히 입맛을 조금씩 당겨놓는 그런 것일 테다. 이런 맛을 알려면, 이런 맛이 진실로 깊은 맛이라는 것을 알려면 많은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야 한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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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으로 간 새들이

강을 물고 돌아오는 저물녘에 차를 마신다


막 돋아난 개밥바라기를 보며

별의 뒤편 그늘을 생각하는 동안


노을은 바위에 들고

바위는 노을을 새긴다


오랜만에 바위와

놀빛처럼 마주 앉은 그대와 나는 말이 없고

먼 데 갔다 온 새들이

어둠에 덧칠된다


참 멀리 갔구나 싶어도

거기 있고


참 멀리 왔구나 싶어도

여기 있다

 
이대흠(1968~)

언젠가 전라남도 장흥에 가서 천관산을 바라본 적이 있다. 봉우리와 기암괴석이 솟아오른 모양새가 면류관(冕旒冠)과도 같다고 해서 천관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했다. 어느 날 해질 녘에 시인은 천관산을 마주 대하고 있었으리라. 새들은 날아 돌아오고, 서쪽 하늘에는 별이 떴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의 붉은빛이 바위를 물들였다. 시인은 바위와 마주 앉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마주 앉았다. 그러나 별다른 말은 없고, 말 없어도 의중을 알아차릴 듯하다. 이 조용한 조응은 참 근사하다. 마주앉아 서로 비춘다. 헤아림과 수긍과 보살핌이 오고간다. 그러면서 시인은 떠나가고 돌아오는 일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아주 안 볼 듯이 떠나가도 그 자리요, ‘거기’와 ‘여기’가 멀지 않다. 모든 ‘거기’와 ‘여기’ 사이에도 아름다운 조응이 있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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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ston from a tethered balloon. 1860. ⓒJames Wallace Black

사진 속 도시 풍경은 1860년 미국 보스턴이다. 이제 드론을 띄워 무인 항공촬영을 하고, 구글어스로 항공사진을 볼 수 있는 시대라 큰 감흥을 주진 못한다. 하지만 당시 매우 특별했던 장면을 위해 사진가는 작은 열기구에 몸을 의지한 채, 공중에서 위험천만하게 사진을 찍었다.

거대한 도시만큼 사진가들에게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은 드물다. 실제로 사진의 역사는 도시의 발달과 변화와 관계가 깊다. 19세기 프랑스 파리에서는 ‘오스망화’로 알려진 도시 재설계가 추진되면서 도로 구축과 함께 백화점, 아케이드 등이 건설되었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유리와 철근 등 새로운 건축 재료와 공법이 개발되면서 고층빌딩이 생겨났다. 이처럼 현대화된 도시와 마천루의 스카이라인은 매력적인 촬영 대상이 되었다. 세계대전 당시에는 파괴되는 도시의 모습이, 전후에는 도시의 재건 모습에 카메라가 따라붙었다.

1960~70년대의 사진가들은 개발 논리로 무분별하게 파괴되는 도시를 비판적으로 관찰하기도 했다. 도시와 사진가 그리고 카메라는 언제나 서로에게 긴밀하게 맞닿아 상대를 비추며 수많은 장면들을 탄생시켰다. 이 순간에도 사진가들은 자신의 몸을 움직여 도시를 답사하고 해석한 장면을 세상에 내놓는다. 앞으로도 지구상에서 도시가 아예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 그럴 것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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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개펄에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 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내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속에서나 파도치고 있습니다

이성복(1952~)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서해가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썰물이 되어 물이 빠진 갯벌에는 게들이 살고, 또 밀물이 올라오면 서해는 질퍽하고 평평한 갯벌에 몸을 뒤척인다. 서해가 내 마음에도 펼쳐져 있다. 늘 파도가 치는, 붉은 낙조가 아름다운, 까마득한 서해 바다가 내 마음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그곳 서해에 끝내 가지는 않겠노라고 말한다. 혹여 그곳에 사랑하는 당신이 계실지 모르는 까닭에. 내가 다 가보면 당신이 계실 곳이 줄어들 것이기에. 당신에게도 당신이 계실 자리와 시간이 있어야 하기에. 당신에게도 어떤 여지가 필요하기에.

우리 마음속에는 파도치는 바다가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서해 바다가 있다. 시인은 이 감정을 시 ‘거울’에서 “하루종일 나는 당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 길은 끝이 있습니까”라고 썼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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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고산지대엔 벌써 가을

처연함에 반소매는 아무래도 짧은 것 같죠

또 언제 이렇게 되었나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첫가을이 온 것은

 

아침 해도 스치면 떨어지는 이슬을 먹으려고

산마루에 떠올랐다 그 해 있는 곳은

시의 나라에선 천공 속의 바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지 않은 적이 없었다

파도와 흰 구름과 새벽과 함께

 

이렇게 파란 배추와 무는 처음 보았네

한 번쯤 팔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게 되는 것은

다시 거둘 수 없는 생의 높이 때문일지

어른보다 먼저 아이들 얼굴에

가을이 와 있었다

 

아이들이 늘 세상과 아버지를 걱정하죠

가을은 그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또 지나가고

생채기 하나 유리금 긋는 저 고산지대

어디서 사슴의 눈도 늙어가나

고형렬(195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해발 높은 곳에 파란 무와 배추가 자라고 있다. 고산지대는 기온이 보다 차고, 가을이 먼저 와 있었으리라. 그곳에서 시인은 아이의 마음같이 새파란, 신생의 시간을 만났으리라. 해는 떠오르고 지고,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건너가고, 아이는 어른이 된다. 기다리지 않아도 어김이 없이 그렇게 된다.

우리는 언젠가 생(生)의 고산지대에서 한 마리 사슴의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신성함과 그 높이와 이슬과도 같은 맑음과 새롭게 온 가을을. 그리고 어떤 쓸쓸함과 늙음과 쇠약함도 보게 될 것이다. 또 언제 이렇게 되었나, 라며 낮고 가만하게 말하면서.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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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마음이 되돌아오면

식구들끼리 하얀 옷 해 입고

깨끗한 식당에 가서 외식이라도 해야지.

 

집에만 처박혀 있는

쓸쓸한 개를 앞세우고

그 널찍한 등짝을 쓸어주면서

가까운 유원지에 소풍이라도 가야지.

 

그러나

마음이 되돌아오면,

 

하늘은 또

알타이어족의 언어로는 표현할 길 없는

이 세상에서 나만 아는

노란빛 되어

내 방의 창문을 물들이고

나는 다시 뾰족하게 성을 내는 아이가 되겠지.

벼락이거나 장대비겠지.

 

마음이 되돌아오면

화를 내다가 우는 아이가 되겠지.

장이지(1976~)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레몬옐로는 어떤 빛깔일까. 시인은 “어렸을 때부터 동경해오던 빛, 장대비가 내리던 날의 제 창문에 비친 빛, 이번에는 그것을 ‘레몬옐로’라고 불러봅니다”라고 썼다. 이 레몬옐로는 빛깔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어떤 예감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혹은 불안과 혼란과 기대에 함께 휩싸인, 헝클어진, 설명하기 참 쉽지 않은 마음의 묘한 상태를 말하는 듯도 하다. 어쨌든 마음은 본래 마음으로 잘 되돌아오지 않는다. 화염처럼 타오르고, 불규칙하게 튀고, 방죽 너머로 넘쳐나고,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그러니 마음이 잘 개켜진 상태로 있기만을, 잘 단속된 상태로 있기만을 바라지는 말 일이다. 마음에 벼락이 치고 장대비가 내릴 때도 있다. 마음이 거세고 요란한 소나기 내리는 여름날 같을 때가 있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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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것 같을 때면 어디

섬으로 가고 싶다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결별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떻게 죄짓고 어떻게 벌받아야 하는지

힘없이 알 것 같을 때는 어디든

무인도로 가고 싶다

가서, 무인도의 밤 무인도의 감옥을,

그 망망대해를 수혈받고 싶다

어떻게 망가지고 어떻게 견디고 안녕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그만 살아야 하는지

캄캄히 다 알아버린 것 같은 밤이면 반드시,

그 절해고도에 가고 싶다

가서, 모든 기정사실들을 포기하고 한 백 년

징역 살고 싶다

돌이 되는 시간으로 절반을 살고

시간이 되는 돌로 절반을 살면,

다시는 여기 오지 말거라

머릿속 메모리 칩을 그 천국에 압수당하고

만기 출소해서

이 신기한 지옥으로, 처음 보는 곳으로

두리번두리번 또 건너오고 싶다

이영광(196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보통은 처세를 배우려고 하는데 시인은 이를 거부한다. 이미 정해진 대로 고분고분 따라가는 것을 물리친다. 모든 기정사실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한다. 그럴 때면 무인도에 가서 망망대해가 되고, 절해고도가 되겠다고 한다. 재지 않고, 몸으로 부딪치고, 삶과 겨루며, 길들여지지 않는 섬이 되겠다고 말한다. 그렇지, 가령 우는 일에 무슨 방법이 따로 있겠는가. 그냥 펑펑 우는 것이지. 시인은 시 ‘촛불’에서 “나는 타오른다/ 나는 일어선다/ 나는 물결친다/ 나는 나아간다”라고 노래한다. 이 두둑한 배짱과 겁 없음과 원시림 같은 영혼이 좋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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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유모차가 살구나무 아래 서 있구요

지팡이와 털신이 뜰팡에 기대어 있습니다

살구가 한 소쿠리 담겼구요

처마 아래 신문지와 골판지가 쌓였습니다

 

살구를 소쿠리에 담아 샘에서 씻은 유모차가

천천히 마당을 지나 툇마루에 앉습니다

깡마른 두 발이 문턱을 먼저 넘어오고

이어서 무릎걸음으로 퀭한 얼굴이 밖으로 나옵니다

좀 잡숴봐, 이래 봬두 달아

 

살구꽃이 피었다 지고 풋살구가 열리고

연두에서 노랑으로 익어가는 동안

낙상이 있었고

119구급차가 두어 번 다녀갔지만

그런대로 아직은 지낼 만합니다

송진권(197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어머니는 몸이 불편해 유모차를 밀고 다닌다. 헐고 너절하게 된 유모차는 늘 살구나무 아래에 서 있어서, 살구나무에 꽃이 오고 풋살구가 열리고 살구가 노랗게 익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왔다. 그리고 오늘은 생긴 건 곱지 않아도 맛이 잘 든 살구를 나눠 먹으려고 맑고 푸르고 차가운 샘물에 갓 딴 살구를 씻어서 툇마루에 앉는다. 비록 살구꽃이 오고 가고, 푸른 풋살구가 매달리고, 살구가 여무는 동안 넘어져 다친 일이 있었고, 또 위급하게 병원으로 실려 가기도 했지만. 송진권 시인은 시 ‘느티나무슈퍼’에서 “느티나무슈퍼에 가면 안채에서 말매미만큼 늙은 할머니가 나와/ 달팽이자물쇠를 풀고 드르륵 미닫이문을 열지요”라고 썼는데, 이 시를 읽으니 이 시의 안채에서 고향집 어머니가 퀭한 얼굴로 바깥으로 나오신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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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가자,

해서 오아시스에서 만난 해바라기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겠으나

딱 한 송이로

백만 송이의 정원에 맞서는 존재감

사막 전체를 후광(後光)으로 지닌 꽃

 

앞발로 수맥을 짚어가는 낙타처럼

죄 없이 태어난 생명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는

성모(聖母) 같다

검은 망사 쓴 얼굴 속에 속울음이 있다

너는 살아 있으시라

살아 있기 힘들면 다시 태어나시라

 

약속하기 어려우나

삶이 다 기적이므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사막 끝까지 배웅하는 해바라기

김중식(196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혹여 비라도 오면 “한 호흡으로 1년 치 폐활량을 들이켜고는/ 또다시 속타는 잠을 잔다”는 사막에 한 송이의 해바라기가 기적처럼 서 있다. 오직 한 송이만 서 있지만 백만 송이의 꽃이 핀 정원에 버금가는 존재감이다. 해바라기의 배광(背光)은 사막 전체요, “지평선이 (해바라기) 한 송이를 위한 꽃받침이다”. 사막에 서 있는 해바라기는 속울음을 울면서도 낙타처럼 억세고 질기고, 성모처럼 성스럽고 인자한데, 열사(熱沙) 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격려하며 사막의 끝까지 따라와 배웅을 한다. “수초가 물결 속에 뿌리를 내리고/ 바람이 노래 속에 집을 짓듯이” 우리는 이 세월을 살아가는 것이지만 삶이 곧 기적이므로 잘 견뎌내서 후일에 다시 만나자면서. 그러니 우선 이 순간순간을 살자, 살아보자며.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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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곤히 잠든

엄마 등을 적실 때

그냥 엄마하고 부르고

싶을 때가 있다

부르지는 못하고

그냥 곁에 누워본다

곁에 가만히 누워 곁에

혼자 자고 있는

강아지를 바라보다

너에게도 엄마가 있었구나

또 자리를 옮겨

그 곁에 누워본다

문동만(1969~)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밝고 고운 달빛이 내리고 있다. 고단해서 깊게 잠든 엄마의 등 위로 달빛이 내리고 있다. 엄마의 몸에 흰 달빛이 흥건하다. 엄마하고 부르려다 엄마 곁에 나란히 누워본다. 말없이 그냥 그렇게 해본다. 아무런 조건 없이. 그냥 엄마가 좋은 것처럼. 엄마 곁에 누운 마음이 뿌듯했을 것이다.

그리고 곁에 혼자 잠든 강아지에게 눈길을 준다. 강아지에게도 엄마가 있을 테지.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서 강아지 곁으로 가 강아지 옆에 가지런히 누워본다. 강아지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문동만 시인은 시 ‘어떤 언약에 부쳐’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사람은/ 사랑 때문에 살고/ 사랑은/ 사람으로서 살게/ 합니다” 서로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사람을 살게 한다. 사랑은 우리의 음식이요, 옷이요, 집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할 때가 있지만 어쩐지 마음이 흐뭇흐뭇하고, 또 조용한 때에 공연히 미소가 흐른다면 분명 지금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는 것이리라.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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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승은 바람이다

바람을 가르며 나는 새다

나는 새의 제자가 된 지 오래다

일찍이 바람을 가르는 스승의 높은 날개에서

사랑과 자유의 높이를 배웠다

 

나의 스승은 나무다

새들이 고요히 날아와 앉는 나무다

나는 일찍이 나무의 제자가 된 지 오래다

스스로 폭풍이 되어

폭풍을 견디는 스승의 푸른 잎새에서

인내와 감사의 깊이를 배웠다

 

자작이여

새가 날아오르기를 원한다면

먼저 나무를 심으라고 말씀하신 자작나무여

나는 평생 나무 한 그루 심지 못했지만

새는 나의 스승이다

나는 새의 제자다

- 정호승(195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리를 이끌어주지 않는 것은 없다. 바람과 새와 나무도 우리를 가르치는 스승이다. 바람과 새는 높다. 푸른 하늘로 올라간다. 여름날 분수처럼 위로 세차게 솟는다. 산봉우리보다 구름보다 한층 높은 그 높이에서 지고(至高)한 사랑과 자유를 배운다. 나무는 굳고 단단하다. 새들도 날아와 조용히 의지한다. 그리고 나무는 홀로 견딘다. 모든 고통을 무릅쓰는 수행자처럼. 나무는 거센 폭풍으로부터도 스스로를 보호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대지처럼 견고한 나무로부터 깊이 뿌리내린 인내와 감사의 자세를 배운다. 바람과 새와 나무는 우리가 지어서 부르는 그 이름 이상이다. 그것 이상으로 높고 깊다. 오늘은 바람과 새와 나무를 생각하고, 그때에 먼 여름산을 한번 바라보자. 딛고 일어서는 여름산을 우러러보자.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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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밭에 들어가면

옥수수밭이 되고 싶어요

 

옥수수밭에

옥수수가 커졌어

 

아가야, 옥수수밭에

들어가보렴!

옥수수밭에 들어가서

옥수수가 되어보렴

 

너풀거리는 이파리는

소낙비와 마주하는 7월의

검푸른 영혼일 거야

김명수(194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옥수수밭에 옥수수가 커가는 때이다. 7월의 옥수수밭에 가봐야겠다. 옥수수는 치아를 꽉 깨물고 커가고 있을 것이다. 웃을 때에는 튼튼하고 하얀 치아가 잘 드러날 것이다. 옥수수밭에 들어가서 옥수수가 되고 싶다. 점점 커가는 옥수숫대는 장수처럼 얼마나 의젓하고 당당하던가.

바람이 불어올 때 옥수수밭에 들어가서 옥수수 이파리들이 서걱대는 소리를 듣고 싶다. 옥수수밭을 지나가는 바람을 ‘옥수수바람’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박용래 시인이 ‘앵두, 살구꽃 피면’이라는 시에서 “앵두꽃 피면/ 앵두바람/ 살구꽃 피면/ 살구바람”이라고 썼듯이. 옥수수밭에 들어간 바람은 옥수수의 몸놀림과 옥수수의 소리를 내기도 할 것이다. 이승훈 시인이 ‘바람’이라는 시에서 “풀밭에서는/ 풀들의 몸놀림을 한다./ 나뭇가지를 지날 적에는/ 나뭇가지의 소리를 낸다”고 썼듯이.

7월에는 날이 불 땐 솥처럼 더욱 더 뜨거워지겠지만 푸른 옥수수밭 생각하면 설레고 청량한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다. 너풀거리는 옥수수 이파리에 떨어지는 소낙비 소리를 떠올리면 갑갑하던 가슴이 풀려서 후련해지기도 할 것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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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뉴스가 끝나면 한쪽 귀를 접습니다

뜨거운 수증기로 얼굴을 지웁니다

세수를 하면 자꾸 엄지손가락이 귀에 걸립니다

 

나는 조금만 잘 지냅니다

 

검은 양복을 차려입을 때만 나를 믿는 사람들은

각자의 TV 속에 손을 넣고

실을 뽑아 나누어 가집니다

 

불행은 정시에 시작됩니다

투명한 파문을 만듭니다

소문들이 쏟아져 내립니다

 

마이크는 얼굴을 편애하지 않습니다

거미는 먹이의 얼굴을 보지 않습니다


이상협(197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상협 시인은 현직 아나운서이다. 이 시는 정시에 뉴스를 전달하는 사람의 속내를 말하는 듯하다. 뉴스가 사실을 곧이곧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통제되던 시대가 있었으니 아나운서는 그럴 때마다 고통스럽고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게다가 뉴스로 인해 공통의 의견이 태어나기도 하고, 편견과 분열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언어가 억압되던 시대에 뉴스 기사문의 언어를 읽어야 했던 스스로의 괴로운 심사를 “나는 조금만 잘 지냅니다”라고 에둘러 고백한 것이 아닌가 한다. 자책하는 마음과 환멸과 부끄러움이 자신의 몫이라고 말한 것으로 이해된다. 시인은 최근에 펴낸 시집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에 실린 시인의 말에서 “우리는 진동한다/ 사이엔 두루 있으리”라고 썼다. 진동하지 않는다면, 밤새 부정하고 뉘우치고 요동치지 않는다면 새날도 탄생하지 않을 것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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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이문재(1959~)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모든 것의 처음은 사소하고 미약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거기서부터 쌓이고 쌓인다. 쌓여서 육중한 무게와 너른 넓이를 만든다. 쌓이면 누구도 꺾을 수 없다. 다발과 묶음과 무더기는 어떤 힘도 견뎌낸다. 마치 서로 의지한 갈대 묶음을 힘센 사람도 쉽게 부러뜨릴 수 없는 것처럼.

지금 여기가 맨 끝이라고 여기는 때가 맨 처음이다. 끝은 맨 앞이다. 끝에서 생겨난다. 실뿌리에서 생겨나 잔가지와 우듬지가 된다. 새순에서 생겨나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아, 이제 이곳이 끝이구나라고 자신을 아주 허물어버리지 않는다면 거기 그때가 맨 앞이 된다. 그리고 매 순간 놀랍고, 기적과도 같은 진전이 이뤄진다.

개개의 움직임이 중요하다. 낱낱의 존재들이 동일하게 소중하다. 이문재 시인은 시 ‘어떤 경우’에서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라고 썼다. 우리는 모든 경우에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고, 맨 앞이고, 당당한 정면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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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으러 오슈

전화받고 아랫집 갔더니

빗소리 장단 맞춰 톡닥톡닥 도마질 소리

도란도란 둘러앉은 밥상 앞에 달작지근 말소리

늙도 젊도 않은 호박이라 맛나네,

흰소리도 되작이며

겉만 푸르죽죽하지 맘은 파릇파릇한 봄똥이쥬,

맞장구도 한 잎 싸 주며

밥맛 없을 때 숟가락 맞드는 사램만 있어도 넘어가유,

단소리도 쭈욱 들이켜며

달 몇 번 윙크 하고 나믄 여든 살 되쥬?

애썼슈 나이 잡수시느라,

관 속같이 어둑시근한 저녁

수런수런 벙그러지는 웃음소리

불러주셔서 고맙다고, 맛나게 자셔주니께 고맙다고

슬래브 지붕 위에 하냥 떨어지는 빗소리

김해자(1961~)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김해자 시인이 최근에 시집 <해자네 점집>을 펴내면서 ‘시인의 말’에 이렇게 썼다. “사람과 꽃과 나비와 알곡과 대지에 경배하며. 그 모든 계절의 바람과 떨어진 꽃과 주검들이여. (…) 밥과 술 그리고 웃음까지 나눠 먹는 이웃들과 친구들이 이 시들 중 몇 편이라도 듣고 껄껄 웃었으면 좋겠다.” 이 소박하고 진솔한 문장이 시 ‘언니들과의 저녁 식사’를 읽은 나의 소회를 대신해도 좋겠다. 푸르죽죽할 때에도 파릇파릇하게 수식해주는 사람, 가꾸어주는 사람이 우리의 곁에, 아랫집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행복할까. 맞들어주는 사람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매일매일 애쓰느라 버거운 우리는 서로서로 맞장구도 쳐주고 달콤한 소리도 하자. 그리고 활짝, 꽃처럼 웃자.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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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이 들여다보여 봄이 온 줄 알았다

저녁엔 강으로 나가 물속까지 자라는 벚나무를 보았다

물속까지 핀 벚꽃을 보았다

물속까지 벚꽃 피어 봄도 절정인 줄 알았다

 

자꾸 눈길이 가서 네가 온 줄 알았다

내 안에서 밤낮없이 피어나는 너를 보았다

벚꽃 눈부신 봄날 내내

네 안에도 벚꽃을 피우고 싶어 사랑인 줄 알았다

- 오창렬 (1963~)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물속이 훤히 보인다는 것은 사랑하는 이의 속마음이 그처럼 잘 보인다는 것일 테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물비늘이 반짝이고, 맑은 물은 거울 같고, 바닥에는 고운 모래가 쌓였다 살살 풀리며 흐른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안쪽에는 꽃이 피어 향기와 빛깔의 절정을 보여준다. 사랑하면 또 어떤 기미에 의해 눈이 자꾸 한 곳으로 가게 되니, 미묘한 알아차림이 있으니, 눈길이 가 닿는 그곳에는 어김없이 사랑하는 이가 와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내가 당신의 안에서 꽃 피는 일이요, 당신이 내 안에서 꽃피는 일임을 알겠다.

오창렬 시인의 시에는 은은한 사랑의 노래가 가득하다. 시인은 시 ‘바람 지날 만한’에서 “나와 너 사이로 바람 분다면/ 눈 녹고 꽃피는 일이 우리 사이의 일이겠다/(…)/ 너와의 사이라면 바람에 꽃잎 지는 것도 나는 춤이라 여기고/ 낙화도 하냥 꽃이라 하겠다 쓸어내지 않겠다”라고 썼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부드럽게 설레는 공간이 있다. 이 홍조(紅潮)의 공간에서는 꽃 지는 일도 꽃피는 일과 다르지 않고, 떨어진 꽃도 막 핀 꽃과 다르지 않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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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별이 진 사람 초도로 가라

 

여수항 뱃길로 48마일

삼산호, 신라호, 덕일호, 훼리호,

순풍호, 데모크라시, 줄리아나 오가고

뱃길 빨라질수록 발길은 멀어도

해초처럼 설레는 낭만은 있다

 

이슬아침 소바탕길로 상산봉에 오르면

낮고 낮은 햇살에도 퍼덕이는 금비늘

희망은 가슴 터질 듯 수평선에 이르고

달빛 수줍은 갯바탕길을 따라

은하수와 시거리 이야기꽃 정다운

초도, 그 아름다운 풀섬에 가면

아직도 총총한 별들이 뜬다


김진수(1959~)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시인은 고향 초도에 대해 말한다. 초도(草島)는 풀이 많은 풀섬이라고 한다. 여수에서 여객선을 타고 남쪽으로 가면 있는 이 초도에는 상산봉이 우뚝 솟아 있다. 상산봉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갯바람 언덕이 있고, 파도가 하얗게 무너지는 바닷가가 있고, 밀물과 썰물이 흐르는 해조음(海潮音)이 들려오고, 고깃배가 가고, 넓고 평평한 망망대해가 있고, 바다는 햇살 아래 사금처럼 반짝이고, 저 멀리에는 수평선이 한 줄로 걸려 있고, 밤이면 밤바다 위엔 총총한 별과 만월(滿月)이 있다. 시인은 이 고향에 갈 때마다 푸른 해초처럼 설렘이 자라난다. 앞으로 어떤 일이든 잘될 것 같고, 소년과 소녀가 그러하듯이 수줍어하는 마음도 생겨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 한복판에 밝고 또렷또렷한 별이 뜬다.

시인은 “시는 나의 벗이었으며 피난처였고 구원이었으며 아랫목을 데워둔 아늑한 내 고향 풀섬이기도 했다”고 썼다. 우리의 고향 역시 우리의 벗이며 삶의 피난처이며 구원일 것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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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창을 사납게 두드리던 비도 그치고

이른 아침, 햇살이 미친 듯 뛰어내린다

온몸이 다 젖은 회화나무가 나를 내려다본다

물끄러미 서서 조금씩 몸을 흔든다

간밤의 어둠과 바람 소리는 제 몸에 다 쟁였는지

언제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느냐는 듯이

잎사귀에 맺힌 물방울들을 떨쳐 낸다

내 마음보다 훨씬 먼저 화답이라도 하듯이

햇살이 따스하게 그 온몸을 감싸 안는다

나도 저 의젓한 회화나무처럼

언제 무슨 일이 있어도 제자리에 서 있고 싶다

비바람이 아무리 흔들어 대도, 눈보라쳐도

모든 어둠과 그림자를 안으로 쟁이며

오직 제자리에서 환한 아침을 맞고 싶다

- 이태수(194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요란하게 천둥과 번개, 돌풍을 동반한 비가 새벽에 쏟아지더니 “언제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느냐는 듯이” 날이 환하게 갰다. 시인은 창 너머에 젖은 회화나무가 서 있는 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회화나무도 시인이 있는 쪽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둘 사이에 눈길이 오가고, 조용한 교감이 있다. 시인은 비바람과 눈보라가 오더라도 의연하게 당당하게 서 있는 회화나무를 바라보면서 변함이 없는 같은 자리, 제자리에 대해 생각한다. 본래 있던 그 자리로 돌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본래의 자리는 깨끗하고 맑고 밝다.

높이 솟아 우뚝한 회화나무처럼 기상이 좀 굳세고 또 끄떡없어서 더러는 “언제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느냐”면서 우리에게 닥쳐온 일의 고비나 곤란함을 넘기기도 할 일이다. 조금은 과장되게 씩씩하고 호방한 체하면서.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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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것을 도둑맞은 것 같다

거친 숨 몰아쉬며

여기까지 왔는데

무엇이 다녀간 것일까

 

아무것도 없다

공허뿐이라고

그냥 가 보는 거라고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구구구 모이 몇 알 주워 먹느라

할퀴며

깃털 뽑히며

두 날개 뭉개졌는데

벌써 떠나야 한다고 한다

 

어디를 흔들어야 푸른 음악일까

가랑잎도 아닌데

자꾸 떨어져 내리다가

내일은 어디일까

정말 어디를 흔들어야

다시 푸른 음악일까

 

문정희(194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일이 술술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간곡한 기대는 곧잘 도둑맞는다. 그럴 때는 “거꾸로 뒤집혀 버둥거리는/ 풍뎅이처럼” 되기도 한다. 허허벌판에, 폐허에 홀로 서게 되기도 한다. 무엇이 우리를 곤경에 처하게 이끌었을까. 시인은 이러한 일들에 대해 탄식을 실어서 시 ‘모래언덕이라는 이름의 모텔’을 썼고, “모래언덕이라는 이름의 모텔에서/ 솨아솨아 하룻밤을/ 한 생애처럼/ 모래알을 읽었다// 모래로 지은 집에서/ 모래에 파묻혀 모래가 되었다”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허탈감과 무력감이 높은 파도처럼 닥쳐왔더라도 우리는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하고, 야생처럼 뜨겁고 생생하게 살아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흔들었을 때 우리 삶의 실내(室內)에 푸른 음악이 흘러나오길 바란다. 마치 악기를 흔들면 아름다운 선율이 나오듯이. 산들바람이 버드나무를 부드럽게 흔들면 연녹색의 싱그러움이 나오듯이. 푸른 음악은 어디에 깃들어 있는 것일까.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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