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성

무관한 예화벌들이 눈 뜬다. 노동을 위한 생성. 우윳빛 겹눈 위로 그림자가 지나갈 때 검은 날개는 체제를 지배했다. 꽃과 집 사이를 오가며 지나는 계절. 꿀에 전 작업복을 버리듯 일벌 두셋이 바닥에서 식는다. 개미들의 환영이 파도처럼 밀려오길 바랐지만 실상 가다 막히는 좁은 시냇물에 불과했다.

- <전체성> 부분, 박희수(1986~ )

 

 

△ 총체가 불가능한 세계에 버려진 주체들의 외침으로부터, ‘근대’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좋을까. 이 시에서 벌이 일하는 모습은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노동 주체들의 알레고리일 것이다. 벌들에게 날아간다는 행위란 우선은 꿀을 모으기 위한 노동이며, 벌들의 노동이 가중될수록 이곳의 체제를 지배하는 논리는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그러나 또 벌들은 얼마나 비극적인가. 꽃에서는 꿀을 캐는 노동을 하고 벌집에 와서도 ‘질서정연’하게 꿀을 챙겨놓기 위해 노동을 한다. 다시 말해, 벌은 안식이 없는 오직 노동을 위해 기관화된 몸이다.

그렇게 노동으로 자신의 생애를 기관화시켰던 일벌 “두셋이 바닥에서” 식어가고 있지만, 아무도 그들을 애도하지 않고 개미에 의해 분해되어 장례가 치러지지도 않는다. 그저 노동자들은 질서 바깥에 존재하는 기관들이며 애도 없이 버려지는 ‘조각’들인 것이다. 그런데 끔찍하게도 시인은 이것을 ‘무관한 예화’라 했다. 아무런 자극을 줄 수 없는 개인의 사연이라는 것이다. 개별 노동자의 죽음은 그저 “좁은 시냇물”을 건널 때 느끼는 불편함일 뿐, 근대의 역사 속에서 어떤 자극이 되지 않는 하찮음이라, 우리는 그 광경을 관람할 때면 더 참혹해진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된다. 그들도 제 몸속에 하나같이 독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 유독 그 벌들의 독이 깊어 보인다.

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장편(掌篇)- 2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상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김종삼(1921~1984)







△ 10전의 화폐가치를 가늠해보기 위해 1924년에 발표된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을 읽는다. “김 첨지는 십 전짜리 백통화 서 푼, 또는 다섯 푼이 찰깍하고 손바닥에 떨어질 제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었다. 더구나 이날 이때에 이 팔십 전이라는 돈이 그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몰랐다. 컬컬한 목에 모주 한잔도 적실 수 있거니와 그보다도 앓는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도 사다줄 수 있음이다.” 10전짜리 백통화가 있었고, 백통화 단위가 푼(닢)이었고, 80전이면 모주(탁주의 일종)에 설렁탕(당시 설렁탕은 귀하고 비싼 보양식이었다)을 살 수 있었나 보다. 운수좋은 날 구걸한 1전, 2전을 모아 10전으로 바꾸기를 두 번! 선물이란 자기가 욕망하는 것을 주기 마련이다. ‘균일상’에 불과하더라도 ‘태연하게’ 돈을 내고 밥을 사먹는 이 사소한 다반사(茶飯事)가, 문전박대에 배를 주리며 떠돌던 거지소녀의 오랜 꿈이었으리라. 올해는 ‘10전짜리 두 개’뿐이었으나 내년에는 세 개를 들고 와 셋이서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 그 다음해는 세 사람의 생일에 맞춰 세 번쯤 와서 먹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배 고파서가 아니라 추억을 새기기 위해 먹으러 왔으면 좋겠다.


“참담한 나날을 사는 그 사람들을/ 눈물 지우는 어린것들을/ 이끌어 주리니/ 슬기로움을 안겨 주리니/ 기쁨 주리니”(‘내가 재벌이라면’) 하는 마음이었기에 시인에게는 ‘거지소녀’가 아닌 ‘어린 소녀’로 보였으리라. 긴 이야기와 커다란 울림을 담고 있는 손바닥만 한 장편(掌篇)의 시다!


정끝별 | 시인·문학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영향


눈물을 흘릴 때 내 얼굴은 할머니의 얼굴 같다


입술을 내밀 때 내 얼굴은 외증조할머니의 얼굴 같다

먼 옛날 할아버지가 집어던진 목침에 맞아 이마가

깨진 할머니의 얼굴이 어느 날 내 愛人의 얼굴에


가을, 붉은 단풍이 든다


- 신기섭(1979~2005)




시를 쓴다는 것은 세계에 대한 위반으로부터 시작이 된다. 시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를 초월하는 것이고, ‘언어의 초월’을 보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초월할 수 있는 ‘새로운 우주’가 필요하다. 그런데 왜 새로움은 불행을 담보한 후에야 도약하는 관념이어야만 하는가. 울고 있을 때 표정이 할머니와 닮아 있고, 입술을 내밀 때, 그러니까 말을 하려는 찰나이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을 구애할 때의 표정이 외증조할머니를 닮아 있는 사람이 있다. 나의 정서와 의지는 할머니와 외증조할머니 같은 모계사회의 질서 속에서 발발된 것이고, 나는 그들의 표정을 조금씩 나눠 가진 뒤에야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나 자신을 잉태한 어머니의 자리가 없다. 어머니는 공백이다. 어머니 대신 애인이 있고, 그 애인의 얼굴에는 폭력으로 훼손당한 할머니의 표정이 있다.


신기섭은 고아였다.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 없던 불행한 시인은 어머니 대신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들에게서 어떤 근원의 표정을 찾으려고 애썼고, 그것은 가장 오래된 것이자 가장 새로운 것이었다. 가을에 단풍이 든 것처럼 원숙한 정서가 그런 원초적인 물음에 답을 달며 솟아난 것이다. 그리고 여기, 오직 눈물을 흘리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눈이 있다. 슬픔만을 감지하는 새로운 눈!



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용병 이야기


그날 우리는 짐을 싸면서도 용병인 줄 몰랐다. 끗발이나 빽도 없는, 대가리 싹뚝 민 개망초 보병들이다. 야간 군용 트럭으로 잠입한 오음리 특수훈련장, 이른 기상나팔에 물구나무 선 참나무, 소나무, 굴참나무. 아침 점호에 같이 고향을 본 후 힘차게 몇 개의 산을 넘었다. 이빨까지 덜덜거리는 상반신 겨울, 주는 대로 먹고, 찌르고, 던지고, 복종하는 훈련병. 정곡을 찌르는 기합에, 겨울 새떼들은 숨죽이며 날아올랐다. 하루 일당 1달러 80센트에 펄럭이는 성조기, 우리는 조국의 이름으로 낮은 포복을 하였다.*

오음리의 겨울은 이제 누구도 더 이상 귀 기울이지 않는다. 생선에게 고양이를 맡기든 말든 죽은 시인도 죽은 척할 뿐이다.


*통킹만 사건(1964년)을 빌미로 미국의 베트남전이 시작됐다. 2005년 10월 <뉴욕타임스>는 이 사건이 조작된 것임을 밝혔다.


- 김종철(1947~ )


△ 1965년 10월에는 해군 청룡부대가, 11월에는 육군 맹호부대가 대통령과 국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베트남을

일러스트 : 김상민

향해 떠났다. 1973년까지 매년 평균 4만8000여명이 주둔했으며 5000여명의 전사자와 2만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지금껏 10만여명이 고엽제 피해로 고통을 받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단 한 줄 시를 위해/ 참전한다고 호기있게 쓴 편지”(‘빨간 팬티’)가 친구 손에 닿기도 전에, “GNP 103달러밖에 안 된 피죽도 먹기 힘들었던 그 당시, 미국과는 참전 수당으로 1인당 월 200달러 받기로 계약했다. 


하지만 정부는 월 30∼40달러만 지급하고 국가경제 부흥 명목으로 차압”(‘슬픈 고엽제 노래’)해 ‘하루 일당 1달러 80센트’가 되었다는 걸 알게 된 파월장병들. “하늘에서 무심결 뿌려지는 물보라에 입 벌려 맛본 고엽제. 에디트 피아트의 ‘고엽’에 기도했던 우리는 슬픈 용병”(‘나라가 임하오시며’)이었던 그들에게 베트남전은 “생선에게 고양이를 맡겼”던 참극이었다. 돈의 전쟁이었다. 파월장병 훈련장이 있던 ‘오음리’(강원 화천군)는 잊고 싶은 그러나 잊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1970년대 초, 라디오에서는 김추자가 경쾌한 목소리로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의 금의환향을 노래했으나 우리 동네에는 ‘월남’에서 돌아온 상이군인이나 생활불능자들이 더 많았던가?



정끝별 | 시인·문학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두 마리 물고기

어린 시절 목도한 부모의 교합 장면은
지느러미를 잃은 두 마리 물고기가
진흙 속에서 허우적대는 모습 같았다
방은 어둡고 습했다
두 마리 물고기는 괴로워 보였고
오줌이 마려웠던 나는
조용한 가운데 모아지는 호흡 소리와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낯선 움직임이
무언가 애달프단 생각 때문에타
버린 숲처럼, 쓸쓸한 기분이 들어
눈을 감고 오줌을 참았다
어쩌면 그때, 그 슬픈 몸부림을 빌려
동생이 태어났는지도 모르겠다

- 박연준(1980~ )

 

 


많은 시인들이 태생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만 어떤 시인은 태생의 질문 대신 ‘질투’를 던진다. 내가 태어난 것이 질투라니! 아이는 뜻하지 않게 부모의 교합 장면을 훔쳐보게 되었고, 어둡고 습하고 가난한 방에서 정을 나누고 있는 부모는 아름답기보다는 살려고 몸부림치는 물고기 같다. 그들은 지느러미를 잃었고, 진창에서 뒹굴고 있으며 무엇보다 물고기가 물을 잃었다. 그러니 그들은 지금 이곳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곧 죽어버릴 존재들이다. 아이는 또 어떠한가.

죽음을 예비한 어른들의 세계를 바라보면서도 그렇게 물이 사라진 세계가 나의 태생이라는 정해진 답을 알아차려야 하고, 왠지 모를 불안감을 감당해야만 한다. 부모와 괴로움을 연대하는 형태로 아이는 오줌을 참아야만 한다. 아니 오줌보다 또 무언가를 참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부모의 욕망은 동생이라는 또 다른 결과의 가능성으로 귀결되겠지만 아이는 그들처럼 욕망을 배설할 수도 없는 어떤 곤욕에 시달릴 것이다.

범박하게 말하면, 박연준의 시는 이곳에서 솟아나는 질투로 시작한다. 아버지 세우기와 죽이기를 반복하고 그런 무능 곁에서 떠나기와 남아 있기를 반복했던 어미를 부정하는 ‘안티고네의 질투’가 박연준을 시인이게 하는 아픈 심연이다. “절망한 내 모습을 보고 싶어/ 혼자 사진을 찍었다”(‘환절기’)고 고백하듯이.

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술값은 누가 내?



전화벨소리가 울릴 때마다 전화기 액정 화면엔 입력해둔 사람의 이름 대신 특징이 떠오릅니다
( 출처: 경향DB)
학습지 선생님이 전화하면 시간 맞춰 오질 않아
영어 학원에서 전화 오면 숙제에 깔려 죽어
빼빼 마른 이모 전화는 야식 필수
고모는 감자 먹고 이빨 튼튼


할머니는 시기면 시기는 대로 혀
엄마 휴대전화는 잠자리보다 더 눈 많아
아빠 사무실 전화는 야근 없인 못 살아
아빠 휴대전화는 밖에서만 폭탄주 아홉 잔
……
얼마 전 바뀐 새로운 아빠 휴대전화 닉네임은
술값은 누가 내?


- 곽효환(1967~ ) 부분



△ 주먹 쥐고 일어서, 발로 차는 새, 달과 함께 걷다, 숨죽인 천둥, 길을 여는 바람, 아침에 따라가, 대지 위에 살았던 어떤 … 기억에 남는 인디언 이름들이다. 군더더기 없는 직관의 명명법이다. 태어난 끝자리 연도와 월과 일에 맞춰 조합한 내 인디언식 이름은 ‘웅크린 바람은 말이 없다’고, 딸은 ‘백색의 늑대를 쓰러뜨린 자’다. 시가 탄생하는 은유의 자리다. 
초원을 달리다 저무는 저녁 해를 바라보는 유목민의 얼굴색, 잘 구운 벽돌색, 암탉의 온기가 남은 아침 첫달걀색, 맛있게 탄 커피색! 교보생명 창립자가 광화문 빌딩, 연수원, 자동차 등에 주문했던 색깔이란다. 시인의 딸 ‘오학년 민경이’가 지은 닉네임들은 아빠가 다니는 회사 창립자의 명명법을 닮아 있다.

학습지 선생은 자꾸만 한발 뒤처져 있고 무한경쟁 시스템의 메카인 영어학원은 성마르게 의욕적이다. 부계는 활달하고 모계는 예민한가 보다. 엄마는 아이 교육에, 아빠는 회사생활에 열심 중이다. 돈에 눈떠가는 민경이의 관심은 아빠 술값의 출처다(엄마나 할머니의 말이었을지도!). 그런 민경이도 알까? 아빠 어릴 적 닉네임이 구멍가게 외상장부 속 ‘연탄 두 장 막걸리 세 병’ 혹은 ‘목장갑 네 켤레’(‘연탄 두 장 막걸리 세 병’)였다는 것을.


정끝별 | 시인·문학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가위잠

수술만 잘되었다면
고장 난 엄마라도 가질 수 있었겠지
엄마의 똥을 닦으면 휴지엔
박하 향 웃음이 묻을까 먹물 같은 눈물이 묻을까
할머니의 똥을 치우고 손을 씻다가 죽은 엄마처럼
나도 엄마가 되었겠지 할머니가 되었겠지
마려운 줄도 모르고 내지른 줄도 모르고
실밥이 자꾸 비어져 나오는
항문이 꿰매진 인형이 되어 누군가의 머리맡에서
끝도 없는 자장가를 듣게 될까 부르게 될까
빈집 같은 몸속에 누워잠이 마려울 때마다 뒤척뒤척
머리를 열고 닫으며 혼자 누는 자장가
변기 뚜껑을 열고 닫듯관 뚜껑을 열고 닫듯

-이민하(1967~)

 

 

△ 환상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좀 더 참혹해졌기 때문이다. 자장가를 듣고 자란 아이가 자장가를 불러주는 엄마가 되고 그렇게 할머니를 수발하는 “고장 난 엄마”가 되고, 훗날 치매로 똥을 싸는 할머니가 되는 일대기를 생각해보자. 살아가는 동안,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객체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 불편한 사이클은 추상이 아니라 생활이다. 이처럼 배설 욕구를 해결하지 못한 여성들의 삶이 생활이라면, 항문을 꿰매는 수술을 하고 있는 폭력 주체들은 누구란 말인가.

잠이 마렵다는 것은 꿈이 마렵다는 것이고, 꿈이 억압되었다는 것은 그냥 숨만 쉬고 살아 있으란 말과 무엇이 다른가. 때문에 억압된 꿈(잠)을 개방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열고 닫으며” 나는 나를 해방시켜야 하고, “관 뚜껑을 열고 닫듯”이 생사의 경계에서 질문을 수행해야만 한다. 이런 점에서 이민하의 환상은 전략을 위한 절충이라기보다는 꿈을 배설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읽힌다. 그렇게 도약하는 말의 진통을 다시금 들어 보자. “혀를 심장에까지 던지고”(‘모조 숲-숨’)

 

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천안역이었다
연착된 막차를 홀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톡톡 이 죽이는 소리가 들렸다
플랫폼 위에서 한 노숙자가 발톱을 깎고 있었다
해진 군용 점퍼 그 아래로는 팬티 바람이었다
가랑이 새로 굽슬 삐져나온 털이 더럽게도 까맸다
아가씨, 나 삼백 원만 너무 추워서 그래
육백 원짜리 네스카페를 뽑아 그 앞에 놓았다
이거 말고 자판기 커피 말이야 거 달달한 거
삼백 원짜리 밀크 커피를 뽑아 그 앞에 놓았다
서울행 열차가 10분 더 연착될 예정이라는 문구가
전광판 속에서 빠르게 흘러갔다 천안두리인력파출소
안내시스템 여성부 대표전화 041-566-1989
순간 다급하게 펜을 찾는 손이 있어
코트 주머니를 뒤적거리는데
게서 따뜻한 커피 캔이 만져졌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이 온다던 그 시였던가
여성부를 이성부로 읽던 밤이었다

- 김민정(1976∼ )

 

 

△ 잘못 든 길이 새로운 길을 인도하기도, 잘못 읽은 글자가 새로운 의미를 개진하기도 한다. 무언가를 새롭게, 그것의 내면을 듣는 순간이다. 그때 우리는 처음의 발굴자가 된다. 막차는 연착되고 플랫폼 위에서 노숙자는 발톱을 깎고 있다. 군용 점퍼 아래 달랑 걸친 팬티가 무방비로 헐렁하다. 그런 그가 딱 ‘삼백 원’만을 구걸하며 자신의 커피 취향을 고수한다. “더러운 팬티를 수치스러워하기보다/ 낡은 팬티를 구차해하기보다/ 고무줄의 약해진 탄성을 걱정하는 데서부터/ 시라는 것을// 나는 처음, 느끼기 시작했던 걸까?”(시집 뒤표지 글) 엽기발랄시치미가 주특기인 시인은 노숙자의 추위를, 그에 대한 연민과 연대를 이렇게 엉뚱생뚱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도 이 시를 마음이 가닿는 대로, 읽고 싶은 대로 읽어도 좋겠다. 그러니까 나는 ‘굽슬’을 ‘굽실’로, ‘안내시스템’을 ‘아내시스템’으로 읽었다. ‘이 죽이는’을 ‘이죽이는’으로, ‘점퍼’를 ‘범퍼’로, ‘연착’을 ‘연락’으로 읽을 뻔했다. 나도 처음, 느끼기 시작한 것일까? 시인이, 삼백 원을 더해 네스카페를 뽑아다 준 것처럼, “기다리지 않아도 봄이 온다”는 이성부의 시 구절을 떠올린 것처럼, 하여 여성부를 이성부로 읽는 것처럼, ‘처음, 느끼기 시작하는’ 바로 그때 우린 시인이 된다.

 

정끝별 | 시인·문학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이별의 노래


나는 ‘목숨을 구하는 약이라도 되는 듯 네 이름을 혀 위에 올려놔 본다’라고 문자를 보낸다 곧 너는 ‘그럼 내가 약장수네?’라고 슬며시 피하는 답신을 보낸다 그러곤 우리는 인큐베이터 속에서 사라져가는 생명을 응시하듯 각자의 반짝이는 창문 앞에서 희미하게 웃는다 따라오지 마, 이곳은 죽는 길 그러면서 너는 벼랑 위를 사뿐사뿐 건너간다 나는 너와 계속 장난칠 수 있게 벼랑에 부딪치는 햇빛도 바람도 소나기도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네가 풀섶에서 우연히 찾아내고 기뻐하는 새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나는 죽을 몸, 어서 네 가족들에게 돌아가 멍멍개야! 그러면서 너는 내 앞발을 붙잡고 쎄쎄쎄 해 준 뒤, 쫑긋한 두 귀 사이를 여러 번 쓰다듬어 준다 이제 됐지? 입을 열면 할 말은 나오지 않고 그저 낑낑거리는 네발짐승의 목소리 꼬리는 이 동물의 몸에 붙은 습관대로 만날 때나 이별할 때나 다른 표현을 모른 채 똑같이 흔들리는데, 너는 태양 속에서 마개를 연 환타 한 병 같은 미소를 남기고, 벼랑 뒤로 사라진다


- 서동욱(1969~ )


아무래도 사랑은 고독을 동반하는 정서이다. 진실로 고독한 사람은 종종 자신의 존재가 둘로 나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하는데, 그것은 자기 속에서 분리되어 나온 자기 자신을 보는 일과 같다. 나에게서 빠져나온 꽤나 멀어진 ‘다른 나’, 그런 ‘타자’를 발견해내는 일이 고독이 아닐까. 나는 타자에 대해 낯설어하면서도 다가가고 싶고, 떨어지고 싶으면서도 매혹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스스로에게 몰입하기 위해 고독을 택했던 것처럼, 현현하는 누군가에게 나를 투사하는 일이 사랑인 것이다. 때문에 타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나는 살아갈 수 있고, 타인이 나의 목숨이자 벼랑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이 가능하려면 우선 나는 나와 이별을 해야만 한다. 그렇게 홀린 듯 복수주체가 돼야만 하고, 정인(情人)의 창문에 부딪치는 “햇빛도 바람도 소나기도” 모두 될 수 있다고 믿어야만 한다. 이렇듯 사랑은 ‘되기’의 생성 질서를 가지면서도 온전히 나를 포기하고 마는 고독이다. 우리는 또 어떤 고독에 나를 양보하며 질서를 깨야 할까. 이별이란 말 안에 나의 실존이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그날 우리는 우록에서 놀았다


(출처: 경향DB)


십만 원이면 사슴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는

우록에 갔다 동네 테니스회 야유회 날이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쭈그리고 앉은 사내들 운명적

대어(大漁)를 꿈꾸는 유료 낚시터 지나, 빠듯한 외통수

길을 따라갔다 맑은 물 흐르는 시냇가에 봄풀을

뜯는 염소들 뾰족한 입에서 흰 이빨이 빛났다


마리당 이십만 원에 두 마리를 잡았다고 회장님

말씀하시자 모두들 기립 박수를 했다 미리 연락

받고 상 차려놓은 터라, 손 씻으러 수돗가에 갔다

비누와 수건이 놓여 있는 그곳에 아직 치우지 않은

식칼과 도마가 있었고 군데군데 염소 수육이 흩어져

있었다 수육의 살점이 성기 속살처럼 거무튀튀했다


- 이성복(1952∼ ) 부분




△ 산록(山麓·산기슭)의 신록(新綠)에 묻혀 우록(암사슴)과 더불어 우륵이 만들었다는 가야금이라도 뜯어야 할 것만 같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첩첩산중 ‘우록(友鹿, 사슴을 벗 삼다)’은 대구 인근의 계곡마을이다. 은거와 은둔, 신선과 도학(道學)의 기세가 등등했던 이곳은 백록고시원이 생기고 고향염소집이 생기더니 어느덧 돈과 도살 위에 꽃핀 음주가무와 노소동락(老少同樂)의 명소가 되었다. 십만 원이면 사슴피가 한 잔, 이십만 원이면 염소가 한 마리! 대어를 낚기 위한 유료 낚시터가 있고 성기 속살처럼 거무튀튀한 수육과 염소의 피냄새가 그득한 곳, 색(色)스럽고 육(肉)스러운 보양과 취흥의 “붉은 해가 산꼭대기에 찔려/ 피 흘려 하늘 적시고” “-여기가 어디냐고?/ -맨날 와서 피 흘려도 좋으냐고?”(‘여기가 어디냐고’) 물어야 할 곳이 되었다.  사슴 뛰놀던 심심산천의 우록은 말이 없고, 우록에서 놀던 우리는 우록의 살과 피로 불끈불끈하곤 한다. 자연의 신비와 현실의 적나라(赤裸裸)는 이렇게 한통속이기 십상이다. 생명과 욕망은 펄떡펄떡 살아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하나로 잇대져 있다. 우록처럼. 그러니 우록, 너무 환해 캄캄하니, “가지 마라, 굳이 못 갈 것도 없지만/ 가지 마라, 다시는 당신 못 돌아온다”(‘동곡엔 가지 마라’)!


정끝별 | 시인·문학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슈퍼 마氏

사람의 키가 작아진 왕국에서 태어난 그는

어둠의 성채에서 버섯처럼 차분한 살을 가진 여자와

깊은 구멍을 파기 시작했어

구멍의 끝에서 불꽃을 터뜨리고 최후의 버섯을 캤단다

마리슈퍼, 구멍 뚫린 마리오의 버섯

주인공이 변신하는 동안의 불문율을 지키러

사람들은 천장이 높은 마트로마트로간다간다간다간다

왕국 사람들의 키는 자꾸만 낡아 간단다


지금이다

어두운 구멍에서 쏘아 올린 버섯들을 봐라

잘생긴 마트가 사정하는 빛 사이로

굴욕보다 단단한 습지를 딛고 진열된

쌓인 먼지를 끌어안고 스스로 열을 내는

봉지 과자와 하우스 밀감과 물렁해진 껌들의

하이퍼바이오닉크리스탈에너지

그것을 감싸는 일수 대금과 명함판 대출 광고의

방어력증강붐붐매트릭스파워업

히어로를 향한 마리오의 변신은


- ‘슈퍼 마氏’ 부분, 서효인(1981~)




‘슈퍼마리오’라는 게임이 있다. 악당 쿠파에게 잡혀간 공주를 구하기 위해 멜빵바지를 입은 이탈리아의 배관공 마리오가 동생 루이지와 겪는 여정을 게임으로 제작한 것이다. 서효인의 상상력은 아마 마리오 캐릭터가 배관공이라는 데서 착상했을 것으로 보인다. 게임 스토리상 배관공이라는 직업 때문에 비밀스럽고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경로를 하수관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서효인은 마리오의 그런 직업을 노동자, 서민 계급이 겪는 어떤 곤욕으로 그린다. 시의 설정도 이채롭다. 슈퍼를 경영하는 마氏의 아들은 마리오이고, 마氏는 골목 상권까지 위협하는 대형마트 때문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 대출 광고에 자주 눈이 가고, 슈퍼의 물품들은 먼지를 머금고 물렁해진다. ‘버섯’(=자본)을 제 힘으로 마련할 수 없는 슈퍼 주인은 제 아들을 결국에 또 노동자로 키울 것이고, 그렇게 가난은 대물림될 것이다. 이것이 소인국에 사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이다. 과연 소년 마리오는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 시인은 돌파구가 없는 영세한 삶을 게임 속 정황과 교차시켜 이토록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아프지만, 아프지 않도록.


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추석 무렵


흙냄새 나는 나의 사투리가 열무맛처럼 담백했다

잘 익은 호박 같은 빛깔을 내었고

벼 냄새처럼 새뜻했다

우시장에 모인 아버지들의 텁텁한 안부인사 같았고

돈이 든 지갑처럼 든든했다

빨래줄에 널린 빨래처럼 평안한 나의 사투리에는

혁대가 필요하지 않았다

호치키스로 철하지 않아도 되었고

일기예보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나의 사투리에서 흙냄새가 나던 날들의 추석 무렵

시내버스 운전사의 어깨가 넉넉했다

구멍가게의 할머니 얼굴이 사과처럼 밝았다

이발사의 가위질소리가 숭늉처럼 구수했다

신문대금 수금원의 눈빛이 착했다


- 맹문재(1965~)


 


△ ‘처럼’으로 엮인 은유의 매듭이, 촌스럽기 그지없는 이 순박한 환유의 두름이 우리를 무장해제시킨다. ‘흙냄새 나는 사투리’가 불러들이는 것들은 무엇인가. 그 고향의 말은 어떻게 곰살스럽고 나긋해지고 있는가. 하늘은 청신하고 바람은 선량하다. 세상은 잘도 익어서 돈이 든 지갑처럼 든든하다. 그 맛은 담백하고 냄새는 새뜻하고 소리는 구수하다. 사람들 눈꼬리 입꼬리가 한결 순해져 바라보는 시선 또한 멀고 깊다. 그러니, “대출이자는 푯대처럼 저 멀리에서/ 다시 손짓하고 있”(‘이자를 향해 달린다’)더라도 잠시 접어두자. “아파트 관리비며 도시가스비며 전기세며 아이들 학원비를/ 구호를 외치며 납부”(‘착지점, 이자’)해야 하더라도 그것들도 잠시 묻어두자.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조차도 네온사인 불빛에서 고향을 느끼는 추석 무렵이라 하지 않는가. 수구초심의 무렵이라 하지 않는가.


우리들 추석 무렵 또한 보름달만 같기를, 그 달빛을 마음의 랜턴 삼아 남은 한 해 비출 수 있기를, 얄따란 돈지갑도 덩달아 두둥실 두둑해지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 시만 같기를!




정끝별 | 시인·문학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방황하는 기술*

친구가 있고 여자친구가 있으며
토론이 있고 회합 장소가 있다
내가 하룻밤 묵었던 호텔이 있고
매음굴이 있으며 유치원이 있고
가끔 쉬어가는 벤치가 있다
학교로 가는 길이 있으며
장례를 지켜보는 무덤들이 있다
지금은 잊혀진 유명한 카페가 있고
한번은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미로의 입구에서 나를 발견했다
얼마나 많은 방황이 필요하고
얼마나 많은 기술이 필요한가
이런 것들을 잃어버리기 위해서는
지나온 길을 또 지나가기 위해서는

- 김언(1973~ )

(*발터 벤야민의 저서명에서 차용)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어떤 장막에 의해 앞이 캄캄할 때, 지금의 선택이 우리를 막다른 길로 인도할까봐 주저할 수밖에 없을 때,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미궁에 빠진 것이다. 우리 앞에 장막이 있다. 장막을 친 힘은 누구이며 사건의 본질은 어디에 있을까. 어떤 힘이 사건의 개연성을 만들기 위해 사건을 일부러 제조한 것은 아닐까. 그래, 앞이 보이지 않는다.

쉽게 지나치거나 잠시 머물다 간 공간, 만나고 헤어질 잠깐의 관계들을 시 속에서 병치시켜 놓음으로써 김언은 이미지의 미로를 만들고 있다. 제시된 대상들은 다만 서로가 서로를 휘발시킨다는 관련성을 가지고, 시 말미의 마지막 진술을 돕기 위해 모여 있다. 이렇게 시인이 이미지들을 방황시킨 이유는 과거가 후회되지 않도록 반성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삶에서 잃어버릴 것들은 잃어버리고, 또 나아가야 하는 길을 다시 가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표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궁을 빠져나와 이 방황을 다 그칠 수 있을까. 어차피 시작된 방황이라면 막다른 길 앞에 한번은 서 봐야 한다. 시인은 그것을 먼저 알아차리고 차라리 ‘방황하는 기술’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무엇이 필요하다. 정체된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할 무엇.

 

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고추값


어머니,

올해도 어머니 맘과 하늘의 마음은

서로 잘 맞아 곡식들이 이렇게 저렇게

소담스럽습니다.

사람들은 콩 심으랄 때 고추 심고

고추 심으랄 때 콩 심었으나

어머님은 이제나 저제나 고추를 심으셨습니다.

저렇게 보기도 좋은 곡식을 자식들같이 가꾸어

이렇게 먹기도 좋게 다듬어서

누구 좋은 일만 시키고

어머니, 어머님은

쭉정이나 벌레 먹은 것들을 잡수시며 사셨습니다.

잘되면 잘되어 걱정으로

고추가 저렇게 불송이같이 이글거리는데

어머님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올해도 고춧금은 똥금입니다.


- 김용택(1948~ )


 


△ 간(된)장이나 소금에 절인 고추는 내 밥상의 감초다. 어지간한 요리에 빼놓지 않는 청양고추는 내 요리의 방점이다. 쌈장에 찍어 먹는 풋고추나 오이고추는 내 식욕의 마지막 비상구다. 멸치랑 볶은 꽈리고추조림, 고명으로 얹는 붉은 고추, 갖은 양념을 소로 넣어 튀긴 고추튀김, 밀가루를 묻혀 쪄낸 후 무친 고추무름과 튀겨낸 고추튀각, 무생채와 함께 버무린 고추김치에 이르기까지 고추가 들어간 음식을 나는 다 좋아한다. 늦은 출근길, 아파트 단지에 일렬로 주차된 자동차들 중 하나가 불타는 듯하다. 보닛, 지붕, 트렁크 위에 촘촘히 널어놓은 “고추가 불송이같이 이글거렸다”. 햇고추가 출하되었구나, 저게 바로 태양초지, 가을맞이 전위예술품이 따로 없네, 싶었다. 올해 고추가 유난히 맛이 좋고 가격도 반값이니 고춧가루를 넉넉히 준비해야겠다는 친정엄마의 저녁 전화 한 통!


“올해도 고춧금이 똥금”인지라, 20여년 전에 발표됐던 시인데도 절실하기만 하다. 고추농사가 잘돼 생산량이 크게 늘어난 데다 수입으로 재고량도 많아 가격이 반토막이란다. 생산비도 못 건지는 상황이란다. 군의회나 농민회는 고추 국가수매제 조기 실시, 가격보장, 중국산 고추의 수입 중단, 고추농가에 대한 지원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잇달아 채택하고 있다. 마늘, 햇고구마, 감자, 옥수수, 벼까지도 걱정이다. 추석은 가까워 오는데 농심에 시름이 깊다.



정끝별 시인·문학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신뢰

기계가 되고 싶다고 했지? 기계가 되는 법을 너는 몰랐지? 아직 몰라 답답하고 안타깝게도
우린 아직 기계 되는 법을 모르고 기계들은 네가 된다
본질적으론, 기계들이 네가 되면 기계가 너고 기계인 너는 오늘 되고 싶은 게
되어 있고 너는 이제 만족했을까?
입력하면 기계들은 믿는 것이다 믿기지가 않을 텐데 망설임 없이
기계에게 입력했다 너는 부자야 기계가 대답했다 나는 부자야 누가
내게 물어봤다
너는 부자야? 기계처럼 대답했다 나는 부자야
기계처럼 대답해도 나는 부자가 아니구나
만약 내가 진짜 부자면 … 믿을 수가 없을 거다 너무 좋아서

- ‘신뢰’ 부분, 김승일(1987~)

 

(경향DB)

 

△ 인간은 본질적으로 변화를 꿈꾸는 존재이며, 때때로 그 변화는 현재를 풍요롭게 하기보다는 위태롭게 하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답이 한 가지라면 이런 위험은 없을 테지만, 대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몫을 구하려고 할 때 변화의 과정에서 논의된 최선은 당장의 최선일 때가 많았다. 이 때문에 우리는 믿을 수 없는 것들을 믿어야 할 때가 있다. 삼백년 전 기계를 만든 사람이 있었고, 삼백년 후 기계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어느 지점에서 슬퍼해야 할까. 기계에 입력해 당신이 부자라고 답을 구해주고, 그때부터 내가 부자라고 믿기 시작하는 ‘불행한 신인류’에 대해 고민해본다. 생각과 질문을 지우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재빠르게 부품이 된 정신의 둔감은 인간에게 아무것도 감당하지 않아도 살 수 있게 하는 ‘편의’를 주었다.

김승일은 우리의 정신을 독재하는 것들을 찾아 고발하면서, 그렇게 정신의 내란을 일으키면서 정신이 정신을 초월하게 하는 화학작용 같은 시를 쓰고 있다. 단지 시간이 지나간다고 미래가 아니다. 이곳의 위기를 직시하는 윤리가 없다면 다음은 없다. 그렇다면 친구들이여, 이제 어떤 꿈을 꿀 것인가. 또 얼마나 슬퍼해야 변화가 시작될까.


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 꾀병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이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 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 박준(1983~ )





△ 시 한 편을 써내려가는 힘은 어쩌면 유서를 쓸 때의 그것과 같다. 이런 경우 견딜 수 없음을 견디기 위해, 언어로 삶을 교환하는 일은 오직 시다. 우리는 이런 시를 겪고 나면 자주 몸이 아프다. 내가 시를 읽은 것이 아니라 시가 나를 읽어서, 시의 정황 속에 우리를 놓아두고 오기 때문이다. 꾀병이라고 했다. 몸살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통증은 엄살에 의한 통증이겠지만 이토록 아프고 아름다운 엄살이 있다면, 우리는 그 꾀병을 조금씩 나눠 앓고 싶다.


곁에서 오래 머물던 귀신, 시인이 맞은 살(煞)은 ‘미인’으로 표상되고 있는, 이미 이곳에 없는 몸의 기억이다. 몸의 운명이다. 때문에 화자는 미인을 만나기 위해 먼저 미래에 가 살고 온 셈이다. 자신에게 낀 모질고 독한 살을 풀어내며, 자신의 장례를 치르는 아픔을 먼저 앓고 있다. 정해진 제 삶을 다 살아 늙어버린 통증으로 이곳의 결을 느낀다. 괜찮다고 이젠 참을 만하다고, 그렇게 유서를 쓰는 것이다. 여기 없는 미인을 “보고 싶은 듯 눈가를 자주” 비비면서, 꾀병 아닌 꾀병을 앓았다고 고백을 해오는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정끝별 | 시인·문학평론가


 


▲ 훔쳐가는 노래


우리는 봄의 능란한 손가락에

흰 몸을 떨고 있는 한그루 자두나무 같네

우리는 둘이서 밤새 만든

좁은 장소를 치우고

사랑의 기계를 지치도록 돌리고

급료를 전부 두 손의 슬픔으로 받은 여자 가정부처럼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나의 가난한 처녀야

절망이 쓰레기를 쓸고 가는 강물처럼

너와 나, 쓰러진 몇몇을 데려갈 테지

도박판의 푼돈처럼 사라질 테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고개 숙이고 새해 첫 장례행렬을 따라가는 여인들의

경건하게 긴 목덜미에 내리는

눈의 흰 입술들처럼

그때 우리는 살아 있었다


-‘훔쳐가는 노래’ 부분, 진은영(1970∼) 



△ 나에게 매혹되었다면 너는 내 ‘주머니에 있는 걸 다’ 훔쳐야만 한다. 내 모든 걸 훔치고 빼앗을 때 날 사랑한다 말할 수 있으리. 시인의 눈에 사랑은 봄에 속수무책인 ‘한그루 자두나무’라면, 자본가의 눈에는 급료 기계에 불과한 ‘여자 가정부’다. 자연론의 관점에서는 죽음을 슬퍼하는 여인의 목덜미에 내리는 ‘눈의 흰 입술’이라면, 자본론의 관점에서는 ‘도박판의 푼돈’이다.


더 많이 가진 자가 덜 가진 자의 돈을 훔쳐간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덜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훔쳐간다. 사랑은 그렇게 자본을 닮았다. 기쁘게 서로의 모든 것을 훔쳐가는 것, 서로를 훔치고 서로에게 훔침을 당하는 것. 그것이 이해든 오해든 진실이든 거짓이든. 자본론을 공부한 철학도이자 자연과 낭만을 동경하는 시인의, 한없는 사랑 노래다! “만일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너는 참 좋을 텐데//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너를 위해 시를 써줄 텐데”(‘시인의 사랑’), 너를 위해 매일매일 네가 훔쳐갈 ‘자줏빛 녹색주머니’ 속 노래를 꺼내줄 텐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 강은아와 은반지


은반지를 끼고 깍두기를 담갔네

빨갛게 물이 든 은반지

누가 누가 사줬나 우리 그이가 사줬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열성으로 끼고 다니던 은반지

칫솔로 아무리 닦아도 은색이 되지 않던 은반지

그이는 어딨나 지난 가을에 떠났지

은반지 같지 않은 은반지

가짜 은반지를 끼고 혼자 저녁을 먹네

새로 담근 깍두기를 상 위에 올려놓고

저녁을 먹으며 보고 또 보는 은반지

강은아는 어딨나 지난 가을에 죽었지

도무지 은반지 같지 않은 은반지

치약을 아무리 발라도 은색이 되지 않던 은반지

아무도 가지려 하지 않던 은반지

가짜 은반지를 끼고

죽은 강은아가 혼자 저녁을 먹네 


- ‘강은아와 은반지’ 부분, 황병승(1970~)


은(銀)은 참 민감한 금속이다. 공기 중에 놓아 둔 것뿐인데 쉽게 녹이 슬고 색이 검게 변한다. 은으로 반지를 만들다니! 은반지를 지니고 있으면 내 몸에서 가장 민감한 곳은 손가락이다. 은반지는 온몸을 다해 바깥과 접촉하고 제 색을 버린다. 은반지를 끼고 밤거리를 걸었다 치자. 그렇다면 우리가 기억 못하는 밤을 은반지가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깍두기를 담근다면? 손이 기억 못하는 붉음을 반지는 아주 오래 기억할 것이다. 나와 관련된 모든 행위를 은반지가 가장 민감한 감성으로 겪고, 느낄 것이다. 자신이 망가지는 것을 끝끝내 용인하면서 은반지는 은반지답게 우리의 곁에서 스스로를 놓쳐버린다. 


혹은 시인의 삶이 그렇지 않은가. 가장 민감한 감성으로 세계를 옮겨 적으면서도 빛나기보다 스스로 무너질 줄 아는, 그 무너짐마저도 세계에 대한 맹렬한 반응일 수 있는, 우리 곁에 시인보다 더 시인 같은 황병승이 있다. 그리고 여기 귀신의 말을 옮겨 적는다. 보이지 않는 것을 봐야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끝끝내 들어버린 화자. 강은아의 은반지에서 지독하게 아름다운 검은 빛이 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정끝별 | 시인·문학평론가



▲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그 암무당 손때 묻은 징채 보는 것 같군.

그 징과 징채 들고 가던 아홉 살 아이 -

암무당의 개와 함께 누룽지에 취직했던

눈썹만이 역력하던 그 하인 아이

보는 것 같군. 보는 것 같군.

내가 삼백 원짜리 시간강사에도 목이 쉬어

인제는 작파할까 망설이고 있는 날에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 서정주(1915∼2000)


 



△ 시간강사 시절이었다니 1960년 전후의 겨울방학 직전이나 개학 직후였나 보다. 목이 쉬도록 말품을 팔고 나오는 날 싸락눈이 내린다. 싸락싸락 숱 많은 눈썹에 싸락눈이 내려앉자, 선득하니, 암무당의 손때 묻은 징과 징채를 들고 다녔던 ‘눈썹만은 역력했’던 아홉 살 아이를 떠올린다. “암무당의 개와 함께 누룽지에 취직했”다니, 그것도 ‘취직’이라면 ‘취직’이겠다. 누룽지든 남은 밥이든 눈칫밥을 얻어먹는 걸로 치자면 개나 아홉 살 아이나 시간강사나 매한가지겠다. 오십보백보겠다! 


차디찬 눈발을 눈썹에서부터 맞으며 십리, 이십리를 걸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싸락눈은 내리지 않고 때린다. 바람은 차고 싸락눈은 때리는데, 징과 징채는 절어만 가고, 개꼬리는 말려들어만 가고, 배고픈 아홉 살 눈썹은 날로 역력해져만 가고, ‘삼백 원짜리’ 시간강사의 목은 쉬어만 가고… 인제는 그만 작파해버리고 싶은 날, 싸라기 같은 눈을 맞으며 암무당을 따라다녔던 아홉 살 아이를 생각하면, 그래도 이게 어디냐며 싸락눈이 죽비처럼 눈썹을 때린다. 쌀랑쌀랑 하늘의 흰 것들이 땅의 검은 것들을 때린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너와 내가 까 놓은/저 어린것들은 어찌할꼬?”(‘신년유감’)라며, “괜,찬,타,… 괜,찬,타,…”(‘내리는 눈발속에서는’)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사과한알이떨어졌다. 지구는부서질정도로아팠다. 최후.

이미여하한정신도발아하지아니한다.


- 이상(1910~1937)


△ 뉴턴은 사과가 떨어진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단순히 사과가 땅으로 떨어졌을 뿐인데, 이 사건 때문에 근대 과학이 출발했고 중세 봉건 질서와 사상이 무너졌다. 시인의 말대로 지구는 정말 부서질 정도로 아팠을 것이다. 저 사과 한 알 때문에 문명은 더욱 더 난폭하게 발전했고 서로가 서로를 침략했으며, 20세기 초 우리는 식민지였다. 어떠한 정신도 새롭게 싹 틔우지 못할 것 같은 현실. 말 그대로 당대 사람들에게는 매순간이 “최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李箱)은 억압 속을 건너며 상상해야만 했다. 미래로, 먼 미래로 자신을 견인해 나가면서 새로운 상상력이 암흑시대의 한 아이를 키워냈다. 그의 시가 대체 무슨 뜻이냐고? 어떤 필요성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음을 받고 또 그 물음들을 묵묵히 거절하면서, 시인은 당대를 견뎌냈을 것이다. 그리고 미래가 된 우리에게 여전히 그는 우리의 미래에 가 닿아 있다. 상상력은 무엇 때문에 우리를 견디게 하는가? 


시인은 다시 말한다. ‘절망은 기교를 낳고, 그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고. 우리는 그의 시에서 절망을 읽는가. 기교를 읽는가. 오늘 당신에게 ‘비범한 사과 한 알’이 아프게도 쥐어져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