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경향시선'에 해당되는 글 224건

  1. 2016.12.19 기도-4·19 순국학도 위령제에 부치는 노래
  2. 2016.12.12 ‘옛날이야기’
  3. 2016.12.05 한 청년의 초상
  4. 2016.11.28 책을 받고
  5. 2016.11.21 ‘옥수수밭에서’
  6. 2016.11.14 ‘사람들’
  7. 2016.11.08 ‘죄책감’
  8. 2016.10.31 흔들
  9. 2016.10.24 ‘소리’
  10. 2016.10.17 ‘어떻게 알았는지’
  11. 2016.10.10 새벽에 걷기
  12. 2016.09.26 ‘염소 씨의 외출’
  13. 2016.09.20 ‘사랑노래’
  14. 2016.09.12 간곡함
  15. 2016.09.05 ‘나무들의 변명’
  16. 2016.08.29 투명한 방
  17. 2016.08.08 ‘뱀에게 스치다니! -오솔길의 몽상 6’
  18. 2016.08.01 ‘낮잠을 부르며’
  19. 2016.07.25 높은 공
  20. 2016.07.18 ‘물방울들의 귀가’

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물이 흘러가는 달이 솟아나는

평범한 대자연의 법칙을 본받아

어리석을 만치 소박하게 성취한

우리들의 혁명을

(…) - 김수영(1921~1968)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김수영 시인은 4·19 혁명에서 ‘사랑을 만드는 기술’(‘사랑의 변주곡’)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소리치지 않고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혁명하는 방법,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의 혁명은 “시를 쓰는 마음”,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다. 그것은 ‘물이 흘러가는 달이 솟아나는/ 평범한 대자연의 법칙’에 따른 순리이다. 사랑이 없는 정치를 사랑이 있는 정치로 바꾸려는 간절한 마음이 4·19 혁명을 이룬 동력이었다.

 

‘사랑의 마음에서 나온 자유는 여하한 행동도 방종이 아니지만, 사랑이 아닌 자유는 방종’이라고 김수영 시인은 말했다. 사랑이 있는 한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고도 노래했다. 탄핵 정국을 맞아 4·19 혁명을 이루어냈던 “어리석을 만치 소박”한 마음들을 생각한다. 소외된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 우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사랑을 생각한다. 전 세계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없는, 수백만명의 질서 있는 촛불 집회가 조용하고 평화롭게 웅변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김기택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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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옛날이야기가 있어. 정작 옛날에는 들려주지 못했던 이야기. 오늘날에 와서야 겨우 말할 수 있게 된 이야기. 말하려고 하면 사방에서 손이 날아와 입을 틀어막았다는 바로 그 이야기.

누구나 알지만 그 누구도 끝을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 끝까지 가려던 사람들이 도중에 끝을 맞이하고 말았다는 이야기. 끝끝내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 되풀이되는 이야기.

입에서 입으로 몰래 전해지던 이야기. 날이 갈수록 점점 은밀해지는 이야기. 누구누구가 죽었을 때에야 희미하게 퍼지기 시작한 이야기. 점점 혐의가 짙어지는 이야기.

내일도 모레도, 네가 여기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살아 있을 이야기. 어떻게든 혼자 있을 이야기. 옛날처럼 멀고 훗날처럼 막연하지만 오늘도 진행되는 이야기. 지하에서 허공에서 더욱 생생한 옛날이야기.

여기 옛날이야기가 있어. 여기 아직 있어. 여기 아직 그대로 있어. 우리가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이야기. 입을 벌려도 차마 나오지 않는 이야기. 귀를 기울여도 답이 없는 이야기. 마찬가지 이야기. - 오은(1982~ )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설화에는 꼭 해야만 하는 말과 절대로 발설해서는 안되는 금기가 충돌하고 있다. 근질근질한 말은 아무도 없는 대숲으로 가서 마음껏 외치지만 바람에 실려 세상에 퍼져나간다. <삼국유사> ‘경문대왕’조에 나오는 당나귀 귀 설화는 그리스 신화를 비롯해 여러 나라 설화에 퍼져 있고, 말 귀, 소 귀, 염소 귀, 뿔 등으로 변형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아무리 감추고 억눌러도 말은 스스로 주체가 되어 다리와 날개를 달고 어디든 돌아다닌다. 바람과 소문만으로도 이야기는 여러 나라에서 수천년간 이어지는 생명력을 과시하는데, 이제 인터넷이라는 초고속 엔진까지 장착했으니 그 힘이 어떠하겠는가.

혼자만 알고 남에게는 하지 말라는 말, ‘카더라’가 붙은 온갖 말들은 억누를수록 더 많은 가지를 뻗고 변종을 낳으며 자란다. 사실과 허구의 차이를 넘어, 설화가 되고 노래가 되고 문학이 되고 현실이 된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궁금한 결말을 향해 답이 없는 세상을 향해 지금도 달리고 있다. 쉬쉬하는 말은 언제든 폭풍이 되어 돌아올 준비가 되어 있다. 옛날이야기는 돌고 돌아서 오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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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쇠파이프를 차에다 싣는다.

파이프를 실을 때 자신도 싣는 듯한 그의

표정은 무엇을 수렴하는가. 구원이다.

순수집중의 순간.

파이프의 인력(引力). 청년을 끌어당기는

파이프. 끌려들어가는 청년의 전부. 그

부분이 환하다. 안 꺼지는 조명. 그의

표정에 실려 있는 청년의 전부. 삶과도

같은 풍부함. 부동(不動)의 풍부함. 구원.

 - 정현종(1939~ )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1980년대에 가두시위를 하러 나가는 한 대학생의 모습을 포착한 것 같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려는 청년의 결연한 의지가 차에 무거운 쇠파이프 싣는 일을 가볍게 만든다. 고귀한 일에 제 젊음을 바친다는 그 신념이 팔다리에 신바람을 일으키니 청년이 파이프를 싣는 게 아니라 파이프가 청년을 잡아당기는 것 같다.

‘나’는 없고 오로지 에너지만 활발하게 활동하는 “순수집중의 순간”. 겉으로는 고요하지만 내면에서는 들끓는 정중동의 폭발력. 이 순도 높은 열정이 청년의 전부를 파이프 속으로 끌어당긴다. 우리 안에는 ‘떨어져도 튀는 공’과 같은 탄력, ‘쓰러지는 법이 없이 둥근 공’과 같은 탄력이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정지해 있는 것 같지만 언제든 공처럼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인 생명의 탄력이 있기 때문이다(정현종,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그 탄력에 도취되어 스스로 풍부해지고 충만해진 청년의 표정을 보라. 파이프와 청년 사이에서 빛나는 저 “안 꺼지는 조명”을 보라.

먹고사느라 지친 발걸음들을 저절로 광화문 앞으로 빨려 들어가게 하는 이 에너지는 무엇인가.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밤새워 촛불을 들게 하는 이 자발적인 힘은 무엇인가.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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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읽지 못할 점자를

손끝으로 스치니

 

처음인 듯 두 눈은

모르는 풍경 속으로

 

2

단단한 물방울 점자.

소름 돋은 살갗 점자들

 

모르고 살아온 삶과

이토록 닮았구나

 - 조원규(1963~ )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물방울을 닮은 글자들. 종이 위에 “소름 돋은 살갗”처럼 오톨도톨 돋아나 있는 글자들. 자신을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문맹으로 만드는 점자 앞에서 시인은 얼마나 난감했을까. 점자를 대하면 누구든 쓸모없는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더듬어야 한다.

스스로 눈멀지 않으면, 문맹이 되지 않으면, 이 돋을새김 글자에 다가갈 수 없다. 눈은 멀리 볼 수 있지만 손가락 감촉은 한 치 앞밖에 볼 수 없다. 점자는 눈과 지식과 오만을 겸손하게 한다.

보는 자 앞에 손가락의 감촉만 있는 캄캄한 길. 손가락 끝을 지팡이처럼 잡고 발 앞을 두드리며 나아가야 하는 길. 나아갈 길을 찾는 이에게 점자는 바로 한 발 앞이 풀밭인지 벼랑인지, 보도블록인지 허방인지 알 수 없는 길을 펼쳐놓는다. 그래서 글이 우리가 절실하게 간구해온 물음을 제대로 대답해 주지 못했음을 깨닫게 한다. 알면 알수록 지식이 더 많은 모름과 질문만 주었음을 깨닫게 한다. 그러니 우리가 모르고 헤맸던 길과 닮은 점자 앞에서 이렇게 탄식할 수밖에. “모르고 살아온 삶과/ 이토록 닮았구나.”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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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밭이 일여덟 마지기는 너끈하겠다 너무 맑아서 여차하면 살을 베일 것 같은 늦가을의 하늘 숫돌에 갈 듯 초록을 가으내 갈아내고, 겨우 남은 햇노란 줄거리며 햇노란 잎사귀가 햇노란 햇살을 받으며, 또 햇노랗게들 사각이며 지천이다 바람이 일 때마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햐! 노을구름떼처럼 모였다가는 배돌며 또 싹 빠지는 그 햇노란 사각과 햇노란 사각의 찬란한 틈서리들을 보면, 그냥 국으로 숨만 쉬어도 한 상 뻐개지게 차려먹은 듯싶다

햇노란 옥수수밭에 싸락눈이 내린다 은단 같은 싸락눈이 바람이 일 때마다 이리저리 쟁반 기울어지듯 짜르르 짜르르 몰리더니, 햇노란 줄거리며 햇노란 잎사귀에 가서 일일이 부딪는다 싸릉싸릉 싸릉싸릉 청까지 튕기며, 아주 쬐끄맣고 투명한 그늘처럼 뛰어올라갔다가는 자빠지고 자빠졌다가는 또 허천나게들 부딪는데, 싸릉싸릉 튕기는 맵시가 비장 속까지 햇노랗게 기뻐 죽겠단다

 - 오태환(1960~ )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늦가을 보도 위로 넙치같이 생긴 플라타너스 낙엽들이 몰려다닌다. 밟으면 양철 우그러지는 소리가 난다. 비스킷 부서지는 소리도 난다. 생명을 다 놓아버리고 이제는 아까울 것이 없어 가볍고 상쾌한 소리다. 푸른 기운이 다 빠져나가 곧 가루가 될 낙엽들은 이미 흙이 되는 법을 다 익힌 것 같다.

말라서 칼날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를 내는 옥수수 잎사귀들의 사각거리는 소리를 귀에 담아두고 음미해 본다. “햇노란”과 “사각사각”과 “싸릉싸릉”이 만드는, 외로울 것도 슬플 것도 없는, 가을의 후일담을 듣는다. 사람의 귀가 없는 곳에 사는 차가운 소리. 칼날 같아서 세상의 소음을 베어내기에 좋은 소리. “그냥 국으로 숨만 쉬어도 한 상 뻐개지게 차려먹은 듯” 천지간에 충만한 소리다. 이 소리를 귀에 잘 쟁여두었다가 심심하거나 우울하거나 어지러우면 보약처럼 들어야지.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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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게서 나왔다 예전에 나는 나로 가득 차 있었다

 

입안에서 우성이를 몇 개 꺼내 흔든다

사람들은 어떤 우성이를 좋아하지

 

우성이는 어둠이라고 부르는 곳에 살았다

그때는 우성이가 다를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미남일 필요조차

그러나 가장 다양한 우성이는 우성이었다

 

공기의 모양을 추측하는 표정으로 사람들이 서 있다

우성이가 사실인지 어리둥절하다

우성이를 만진다

우성이가 자신과 똑같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러나 우성이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나는 내가 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수십 수백만 개의 우성이가 떠오를 거라고 말했다 - 이우성(1980~ )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이우성 시인 안에 이렇게 우성이가 많으니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겠다. 제 몸 안에 ‘수십 수백만 개의 우성이’가 있으나 생긴 것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이 제각각이니, 혼자 놀아도 죽을 때까지 지루하지 않겠다. 다투고 징징거리고 깔깔대고 쫑알대고 왁자지껄, 우당탕, 빽빽, 쉴 틈이 없는 어린이 놀이방처럼 이 우성이들과 일일이 다 놀아주고 싸움 말리고 울음 다독이다 보면 커피 마실 시간은커녕 밥 먹을 시간, 오줌 누러 갈 시간도 모자라겠다.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과 표정에서 내 안의 수십 수백만의 내가 보이고, 내 안에 숨어 있는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들키니, 사람들 사이에 비밀도 없겠다. 내가 꾼 꿈 얘기를 하면 이미 다른 사람이 다 꾸어버렸던 꿈. 내가 당한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다른 사람들이 예전에 다 겪었던 일. ‘그래 맞아, 내 얘기가 그 얘기라니깐.’ ‘어떻게 내 마음에 있는 얘기를 그렇게 족집게 집듯이 얘기할까.’ 서로 제 안에 있는 우성이를 신기한 듯 맞춰 보는 사람들. 내 안의 우성이들이 서로 저랑 놀아달라고 아우성인데, 오늘은 어떤 우성이랑 놀아볼까.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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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왔다

등을 구부리고 앉아 떡을 먹는데 등에 담(痰)처럼 박힌 느낌,

느낌을 보내려고 저 이화령의 병꽃나무를 바라보았으나

저기 붉은색에 버무려져 뜨겁게 파닥대는 느낌, 추억처럼

다시 돌아와 한 사람의 모습으로 커지는 느낌

; 그는

병든 사람이다 팔뚝의 주사 자국들은 미친 별자리 같다

등을 구부리고 한 그릇 국수를 말아먹은 그는

지금 내 등에 박힌 느낌, 그는 이빨이 다 빠졌고

안타깝게 이빨을 놓치는 잇몸 사이로 하얀 혀가

넌출같이 흐느끼는 소리 어두운 방에서 혼자

그는 죽은 사람이다 더러운 요에 덮여, 지금 이 봄날

담처럼 내 등에 박힌 몸, 점점 내 등은 구부러졌으나

저기 병꽃나무의 붉은 품속에서 잠깐 잠깐씩

하얗게 병꽃나무를 늙게 하는 봄볕같이

나를 따뜻하게 늙게 하는 죽은 몸, 죽은 환한 몸,

내 몸에 겹쳐졌다가 서서히 사라지는

느낌이 몸처럼 왔다 가는 것이었다 날마다

그렇게 끈질기게 나를 찾아오는 몸이 있다이제야 그 몸을 사랑하였다

 - 신기섭(1979~2005)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등을 웅크릴 때 등에 담이 박히듯 찾아오는 사람. 생전에 외딴 방에서 홀로 외롭게 앓다 죽은 사람. 웅크려서 등만 보이던 사람. 죽어서 다 잊어버린 줄 알았던 사람이 등으로 오고 있다. 생전에 외면했던 외로움이 더 지독한 외로움이 되어 오고 있다. 타인의 외로움이 자신의 외로움이었음을 진저리치게 느끼게 하며 오고 있다. 죽음 앞에 홀로 선 지독한 외로움을 등과 등으로 나눈다.

등은 눈이 없고 코도 입도 없다. 심장은 등에서 두근거리지 않는다. 팔다리도 손도 앞으로 구부리지 뒤로 가지는 않는다. 등은 눈먼 방향이다. 팔과 가슴으로 체온으로 사랑과 정을 나누는 포옹과 달리 등과 등은 예리하게 박히는 외로움을 나눈다. 그 등에는 숨기고 싶은 치욕적인 삶의 내력이 표정보다 풍부하게 숨겨져 있을 것이다. 스물여섯 나이에 요절한 시인이 등으로 느낀 외로움의 깊이가 섬뜩하게 다가온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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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을 다 그리고도 남는 꽃들

나비가 앉았다 간 뒤에도 마저 흔들리는

나비

 

바람도 불지 않는 곳에서

애벌레 기어오르다가 슬몃 흘리고 간 애벌레

바람이 핥고 가고 햇볕이 남김없이

빨아들이고도 남는 햇볕

 

살랑살랑 나뭇잎을 흔들고

떨어지는 나뭇잎; 모두가 여기 있고

아무도 밟지 않은 이 연기를 타고 올라간다

 

다 자란 뒤에도 더 자라는 뱀이 기어간다


 - 김언(1973~ )

눈앞에서 한 마리 나비가 날아갈 때, 보는 사람의 내부에서도 나비 한 마리가 날아간다. 눈앞의 나비가 사라져도 기억 속에서 그 나비는 계속 날아간다. 나뭇가지에 피어난 밝은 전구 같던 목련도 지난봄에 벌써 졌지만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환한 불을 켜고 있다. 세상을 떠난 지 몇 년이 지난 지인도 나에게 종종 말을 건네거나 웃곤 한다. 기억이 너무 생생하면 나는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잊고 얼떨결에 그가 묻는 말에 대답하기도 한다. 과거의 일은 기억에 나타나는 순간 현재진행형이 되고 새로 태어나는 경험이 된다.

그 기억은 나에게 묻는다, 이미 떨어져 사라진 꽃이 진짜인지, 기억 속에서 지금 피어나고 있는 꽃이 진짜인지. 시인은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꽃에게 생명을 부여하려는 사람이다. 죽은 뒤에도 계속 말을 하는 사람에게, 사건이 지난 뒤에도 아직 진행되는 사건에게, 숨 쉬는 육체를 부여하려는 사람이다. 이별이 견딜 수 없는 사람에게는 아직도 살아있는 기억과 허구가 진짜일 수도 있으니까. 답답한 현실이 견딜 수 없는 사람에게는 벽 안에서도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는 상상의 산과 들과 바다가 진짜일 수도 있으니까.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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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를 걷다 보면

여름의 주머니를 뒤지는 소리들,

딱따구리는 제 골머리가 터지도록

나무의 속에다 딱딱한 공허를 털어놓고

날아가던 구름은 귀를 열고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나무들은 발가락으로 땅속을 헤집고

안 보는 듯 슬쩍 남의 허벅지를 훔쳐본다,

가끔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는 낙엽송들,

땀에 묻어나는 진하게 꿍친 생각들,

민들레는 고양이 눈을 노랗게 뜨고

 

입을 오므려 동그랗게 야옹 소리를 내고

돌멩이는 바람에 몸을 비비며

발꿈치를 돋운다.

도로를 달리는 차 소리,

무수한 소리들 사이로 전류가 흘러

세상의 정적에 불이 들어온다,

수첩을 꺼내 든 나무들 소리를 끼적거린다.

 - 김재혁(1959~ )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혼자 호젓하게 산책길을 걷는데도 시인은 몹시 바쁘고 흥겨운가 보다. 걱정거리와 생각들을 다 내려놓고 어린이가 되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이때 산책자는 어린이처럼 온몸이 감각 덩어리가 된다. 오감은 주변의 모든 풍경을 빨판처럼 빨아들일 준비를 한다. 그러면 온몸은 사물의 작은 움직임에도 활발하게 반응하면서 함께 놀고 싶어지는 것이다. 나무나 풀, 구름과 새는 비밀을 가득 품은 주머니가 되어 손을 넣어 뒤지고 싶어지는 것이다.

다비드 르 브르통에 의하면, 발로 걷는 것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이다. 걸으면 침묵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풍요로운 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귀를 한껏 열면 고요 속에는 얼마나 많은 소리들이 서로 어울리며 놀고 있는가. 이 소리의 축제에서는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조차 소음이 아니라 흥을 돋우는 전류가 되어 산책로를 환히 밝힌다. 이 감각의 향연, 호기심의 축제에서 어찌 시가 나오지 않으랴.

‘나는 손만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니다. 내 발도 항상 한몫을 하고 싶어한다’고 니체도 말하지 않았는가.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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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알았는지

들킨 적 없이 들켜버린 나

집사람이 어느 날 느닷없이

내 얼굴을 정면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네가 잘났다고 쓰는 시라는 것

보나마나 쪼잔한 것들이지

별수 있나 좁쌀영감탱이

순간,

쪼잖지도 않게 돋은 내 혓바닥이 아리다

사실 나에 대해서 거의 모르는 게 없는

집사람이긴 하지만

어떻게 알았을까

장담하건대, 시 근처는 물론이고

글과 담을 쌓고 살면서도

역시 집사람은 내 아픈 곳을

정확하게 건드리는 명수다

벌렁, 뒤로 나자빠지겠다

가끔 뜨끔뜨끔하다가

지금처럼 한 방 맞고 나자빠지는 내가

나의 시다


 - 정대구(1936~ )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시인의 아내에 의하면 ‘손에 흙 안 묻히는 일들은 일도 아니다 거지발싸개다’ ‘밤새워 쓰는 시 나부랭이는 휴지 쪼가리에 불과하다’(‘위대한 김연복 여사’). 시인들은 뜨끔하겠다. 흙도 안 파고 땀도 안 흘리고 손바닥에 굳은살도 안 박이고 상상으로 이 모든 일을 하면서도 힘든 척하며 지금껏 안 들키고 잘 버텨왔는데, 정직하고 건강한 노동 앞에서 그 ‘쪼잔한’ 작업이 다 들통났으니 말이다. 창작의 고통이 꾀병이라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으니 말이다. 쌀 한 톨, 콩 한 쪽도 못 만드는 시를 갖고 어떻게 밥값을 하란 말인가.

김현에 의하면, 문학은 돈도 밥도 못 되므로 쓸모가 없다. 그러나 문학은 그 쓸모없음을 써먹는다. 돈이니 권력이니 하는 쓸모 있는 것들은 그 쓸모 있음의 억압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 돈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만 그걸 얻으려면 거기에 매이게 된다. 문학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억압받지 않고 자유롭다. 그 자유가 억압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인간다운 삶을 꿈꾸게 한다. 시인은 아내의 말에 급소를 한 방 맞고 나자빠졌는데, 그렇게 현실 앞에서 무력하게 패배하는 게 자신의 시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 패배는 불가능을 꿈꾸는 유쾌한 패배이기 때문이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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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흉(凶凶) 같은 한자를 쳐다보는 일,

같아지는 일,

새벽이 되어서 새벽을

걷는 발에 육박할 것이다

 

나무가 바라보는 방향을 알 수 없어

나무는 걷는다

나무와 같아지는 일,

가로수가 많아서 길이 길어진다

 

세계좀비지도나 쳐다보는 일,

좀비는 못 되고 좀비 같아지는 일,

발이 낯설어지고 방향이 없어지고

그럴 때는 몸을 기울여봐

다른 새벽을 향해 엎드려봐

발자국들을 모으는 동안

보도블록에 앉아

 

더 먼 아스팔트를 바라보는 일,

아스팔트와 같아지는 일,

나는 저기를 걸을 것이다

저기, 짐승,

나의 발에서 태어나는 나의

짐승을 견딜 것이다

 - 박진성(1978~ )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나는 내가 볼 수 있는 것만큼 크다! 매번 온 정신을 집중하여 이 문장을 떠올릴 때마다, 모든 천체를 포함한 우주가 새로이 구축되고 있다는 느낌이 점점 더 강하게 든다.’ 페르난도 페소아의 말처럼 새벽은 내가 보는 것만큼 커지고 내가 숨 쉬는 공기만큼 맑아지는 시간이다. “흉흉(凶凶) 같은 한자”를 보면 마음이 구덩이나 밀폐된 공간에 갇혀 답답해지고, 나무를 보면 “나무와 같아지는 일”이 일어나는 시간이다.

새벽은 하루의 첫 공기, 첫 햇빛으로 숨 쉬는 시간이다. 야근하고 들어와 아무것도 쳐다보기 싫은 눈이 되어 잠들거나 알코올에 찌든 폐로 잔 잠이 깨끗해져서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는 시간이다. 새벽은 걸어가는 “나의 발에서 태어나는 나의 짐승”이 가장 선명하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하늘을 보면 드넓은 넓이만 한 하늘이 되고 녹조가 낀 강물을 보면 그대로 온몸이 폐수가 되는 시간이다. 굳이 시를 쓰지 않아도 시가 들어와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몸에 슬어놓고 가는 시간이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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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염소가 푸른 언덕을 끌고 간다 볼 때마다 산의 위치가 바뀌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어제의 산에 가서 염소를 찾는다 염소가 없다 눈과 머리가 여러 개가 되어 펄럭이지만 염소는 보이지 않는다 몇몇의 노인들은 풀밭 위에 잠시 내려와 놀던 구름을 따라간 것이라고 수군거린다

염소가 옮겨다 놓은 산이 심심하게 혼자 논다 빈 의자처럼 눈앞의 바다만 온종일 바라보다 한 뼘 더 허리가 굽어진다 노인이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던 의자에 가끔 담배 연기처럼 왔다 가는 사람이 있다

하얀 플라스틱 의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오물오물 산등성이의 구름을 뜯어 먹고 있다 염소가 입안에서 굴리고 놀던 산을 뱉어놓고 슬그머니 해안 절벽 쪽으로 이동한다

낯선 산에 오른 사람들이 구름에 목줄을 매어 이건 쇠구슬처럼 부서지지 않는 염소라고 즐거워한다

- 홍일표(1958~)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시인은 어린 시절 염소에게 풀을 먹이다가 산에서 잃어버린 적이 있었을까. 매어 놨어야 하는데 깜빡 잊었더니 염소는 더 맛있는 풀을 찾아 계속 돌아다니다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염소 모양의 구름만 떠 있다. 그 한 마리 염소가 거대한 산을 옮기고 그 위치를 바꾼다. 염소의 행방을 찾느라 그의 눈이 산으로 언덕으로 산 넘어 바다로 계속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구름은 풀밭으로 내려와 염소가 되어 놀기도 한다. 염소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풍경이 나타나고 바뀌는 마술이 벌어진다.

사물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놀려대며 얼마나 자주 변신하고 도망가고 숨었다가 느닷없이 나타나는가. 호기심 많은 눈으로 보면 사물은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계속 움직인다. 기분에 따라 제멋대로 변화한다. 매어 놓지 않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염소 같다. 구름에서 염소를 찾는 즐거운 숨바꼭질. 고삐 풀린 상상력. 죽은 노인의 담배 연기에서 살아있는 노인 찾기.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에서 변치 않는 형상과 이데아 찾기. 어떻게 “구름에 목줄을 매어” 놓을 수 있을까.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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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앞에 앉아 편지 봉투 뜯으니

그대 키운 연못 고기들이

갑자기 반기며 뛰노는구나.

물 면에 떠올라 입 뻥긋대며

눈웃음짓는 놈도 있구나.

우리가 방생교(放生橋)로 이름붙인 무지개다리가

거꾸로 비쳐

하늘 속에 둥근 문이 열린 것 같다.

편지 속에서 귀 익은 발자국 소리 들리고

그대 모습 나타난다.

사라지기 전 그 모습 잡으려 손가락 세우고 공중에서 떠는

열 개의 지문(指紋).

 - 황동규(1938~ )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편지에는 펜으로 글을 쓴 사람의 마음과 표정이 글자 하나하나에 비쳐 보이는 것 같다. 행간에는 여러 번 망설인 흔적이 보인다. 마침표에는 다음 문장을 어서 잇고 싶어 하는 펜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힘껏 눌러쓴 글자에는 감정의 활발한 맥박이 보인다. 성급하게 달려오려는 몸과 마음의 뜀박질과 거친 호흡을 달래서 글자에 겨우 집어넣은 힘의 절제가 느껴진다. 어서 글자에서 해방되어 목소리로 표정으로 심장의 박동으로 읽는 이에게 들어오려는 조급한 마음이 느껴진다. 그 글은 읽는 이의 마음에 따라 변화하고 부풀려지면서 생생하게 재생된다. 그것이 사랑이 시킨 일이라면 어찌 그 글씨에서 “그대 키운 연못 고기들이/ 갑자기 반기며 뛰노는” 활기가 느껴지지 않으랴. “귀 익은 발자국 소리 들리고/ 그대 모습”이 어찌 보이지 않으랴.

편지를 다시 봉투에 넣으면 그 모습과 목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사라질 것 같아 떨리지 않으랴. 읽고 또 읽으며 봉투 속으로 사라지려는 사람을 다시 꺼내 붙잡고 싶지 않으랴. 사랑을 전하는 말은, 얇은 종이에 펜 자국이 푹푹 들어가는, 읽을 때마다 그 펜 자국이 감정으로 변역되는, 편지가 잘 어울린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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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혀에 닿는 네 살같이

미세한 굴곡의 허공이 있다

작은 새가 힘겹게

터널을 뚫고 있다

저 순간의 새의 심장을 만지면

가파르고 뜨거운 숨결이

울컥울컥 솟구쳐 나올 것

 

네 살에 닿는 혀가

한 겹 종이같이 구겨지는 건

네 살이 내 혀를 간곡하게 받아들이기 때문

작은 새도 한 겹 종이에 불과하지만

허공이 간곡히 받아들여

새는 추락하지 않는다

 

미추가 없는 간곡함의 결이여

내 혀에 닿는 네 살의 결이여

허공의 살을 어르고 가는 새의 깃털이여

 

티가 들어간 내 눈 속으로

부드럽게 들어와 핥는

어머니의 혀여

 - 김충규(1965~2012)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어떻게 잊겠는가, 어린 눈에 들어온 티를 빼내려고 어머니의 혀가 눈을 핥아주었을 때, 온몸이 전율하던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의 사건을. 그 아들이 어른이 된 후에도 어머니의 혀의 느낌은 기억 속에서 살아나 괴롭고 힘들 때마다 그 고통을 빼내주려고 몸으로 마음으로 들어와 핥아주었을 것이다. 그 혀처럼 이제 시인도 혀로 세상을 만지고 혀로 사랑하는 사람을 느끼고 혀로 이웃의 고단한 삶을 헤아린다.

그리하여 시인의 눈은 혀가 된다. 식별하고 판단하는 날카로운 눈 대신 추위를 데워주고 딱딱한 것을 녹여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혀가 된다. 그리하여 시인의 펜은 혀가 된다. 볼 줄도 들을 줄도 모르고 손가락처럼 수를 셀 줄도 모르고 주먹처럼 칠 줄도 모르고 얼굴처럼 꾸밀 줄도 모르는 혀. 핥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지만 아픔의 세밀한 결과 미세한 굴곡과 여린 떨림은 더욱 잘 느끼는 혀. 그 혀로 쓴 시에는 부드러운 간곡함이 있다. 그 간곡함이 닿는 곳에서 건조한 것은 촉촉해지고 날카로운 것은 물렁물렁해지며 차가운 것은 따뜻해진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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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실 안

한 친구의 지갑이 사라졌다

해진 스웨터를 입고 있던

내가

억울하게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솔직히 얘기하면

용서해주겠다고

없던 일로 해주겠다고

선생님이 날 달래고 있었다

수군거리는

아이들과

문틈으로 보이는

교장선생님의 무서운 얼굴

간신히 울음을 참고 있는데

창밖 나무들이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그게 아니라고

그런 게 아니라고

대신 변명을 해준다

 -양해기(1965~ )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지갑이 없어진 것과 창밖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은 아무 관계가 없지만, 시에서는 긴밀한 관계가 있다. 관계가 있어야만 한다. 내가 도둑이 아니라는 말을 믿어줄 사람이 교실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의심하지 않을 이는, 제 억울한 심정을 들어주고 믿어줄 이는, 말 못하는 나무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간절한 말이 나뭇가지라도 되어서 그게 아니라고 열심히 손을 휘젓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훔친 게 아니라는 마음의 외침은 얼마나 오랫동안 세상을 떠돌며 제 말을 들어주고 믿어줄 귀를 찾아 헤맸을까. 이 아이는 얼마나 오랫동안 내면에 숨어 의심하는 친구들 같고 자백을 강요하는 선생님 같은 세상 사람들을 피해왔을까. 가난해서 도둑 누명을 쓴 이 작은 사건이 한 아이를 시인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눈멀고 힘센 세상이 착하고 힘없는 이를 누를 때, 진실한 말을 들어주는 귀가 세상에 없다고 느껴질 때, 시는 인간에게 소외된 사물에게 다가간다. 거짓을 모르는 순수한 자연과 사물과 터놓고 이야기함으로써 자유를 느끼고 위로를 받고 부조리한 삶을 견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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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새와 함께 깰 때
귀가 있는 듯 없는 듯하기

차를 마실 때
입술이 있는 듯 없는 듯하기

의자에서 자세를 고쳐 앉을 때
등이 있는 듯 없는 듯하기

복도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갈 때
다리가 있는 듯 없는 듯하기

병실로 들어섰을 때
흰 살결이 있는 듯 없는 듯하기

바다 쪽으로 쳐진 커튼을 젖힐 때
두 팔이 있는 듯 없는 듯하기

이제 바다로 갈 때
눈물이 있는 듯 없는 듯하기

 - 신영배(1972~ )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올여름 폭염과 열대야는 유난히 드세고 끈질겼다. 끈적거리는 열기가 숨을 막으니 뭔가 불편하다고 제발 어떻게 좀 해달라고 몸이 계속 신호를 보내왔다. 몸은 물을 잔뜩 먹은 무거운 덩어리 같았고 어디 안 보이는 데다 치워버렸으면 싶은 짐 같았다. 몸 안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다. 불면을 틈타 자질구레한 걱정거리들도 ‘나’에게 매달려 보채고 짜증을 내곤 했다. 몸이 투명해서 있는 듯 없는 듯 살 수는 없을까.

아침에 새소리에 잠이 깰 때 나도 없고 귀도 없고 새소리만 들리는 일. 새소리가 투명한 나를 관통하는 일. 몸이 없는 것 같은, ‘나’가 없어진 것 같은, 이 사소한 방심상태에 머물고 싶다. 아무것도 욕망하는 게 없을 때, 고요한 심심함에 머물러 있을 때, 행복이니 즐거움이니 하는 것조차 필요하지 않을 때, 몸도 ‘나’도 의식되지 않는다. 내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움직임이 있는 곳에 손이 있고 걷는 곳에 발이 있고 말하는 곳에 입이 있을 뿐이다. 아무런 생각이 없는 이 진공상태에서는 귀가 새소리가 되고 새소리는 귀가 된다. 이 투명한 방 안에서 있는 듯 없는 듯한 내 손을 움직여 시를 쓰는 이는 누구인가.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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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바지 차림의 산행길,

풀밭에 다리 쭉 뻗고 쉬는데

지게 작대기만 한 뱀 한 마리가 스스륵

종아리를 스쳐 넘는 게 아닌가

이런 이런, 뱀에게 스치다니,

뱀에게 스치다니!

하늘과 땅이 딱 붙어버린

뱀에게서 확 깨어난 순간

그 시리고 축축한 감촉이 으스스히

온몸을 휘어 감더니

눈앞엔 웬걸 개불알꽃들이

하늘과 땅이 딱 붙어버린 그 순간에

멍빛으로 납작해져선

꽃방석을 깔고 있는 게 아닌가

뱀에게 스치다니,

아직도 시리고 축축한 뱀의 세상이

날 그렇게 통과하다니!

그 순간 내 영혼까지 까마득해 버린 건

뱀의 길이에 새겨진

태초 이래의 긴 시간에 들렸던 탓인가

그러기에 꽃방석 위엔

나비 떼도 잠시 준동하던 것인가

 -고재종(1959~ )

출처: 경향신문DB

어쩌자고 뱀은 기다란 선 하나를 제 몸으로 갖고 있는가. 말도 울음도 없는 날름거림을 혀로 갖고 있는가. 여러 가지로 편리하고 유용한 신체 부위를 다 생략해버리고 잘 구부러지는 호스 같은 몸으로 사는가. 선 하나만 남은 몸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인가. 늘 땅과 맞닿아 있는 냉혈의 몸이 종아리에 스칠 때, 시인의 살갗에는 그 비밀도 얼핏 스쳤나 보다. 개불알꽃도 놀라서 꽃잎을 다 떨어뜨려 꽃방석을 까는 그 “시리고 축축한 감촉”이 전신을 훑고 지나갈 때, 시인은 인간의 시간에서 나와 팔다리 없는 시간, 인간이 알 수 없는 창세기의 시간을 슬쩍 보았나 보다. 그 천기를 누설해주면 좋겠는데, 시인은 한순간에 으스스한 딴 세상으로 갔다가 현실로 막 돌아와서 몹시 얼떨떨한가 보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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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놓친 잠을

머리맡에 불러 본다

어릴 제 실개울의

풀섶에서 놓쳤던 것

그 예쁜 피라미 떼를

잠 여울로 불러 본다.

뼘 남짓 뜨락에는

체로 거른 아침 나절

나무도 지난밤을

뜬눈으로 세웠던가

물든 잎 피라미 떼를

빈 마당에 놀려 놨다.

장독대 닦아 주며

바람 햇살 골라 주며

아내는 물새 다리

잔물결을 밟아 주며

엷은 꿈 베갯머리에

피라미 뗄 보내 준다.


 - 정완영(1919~ )

출처: 경향신문DB

연일 계속되는 열대야에 잠을 설치니 낮잠의 유혹이 반갑다. 바람 시원한 나무 그늘에 매미 소리 들리는 낮잠이면 좋겠다. 이 시조에 나오는 개울물과 피라미 떼와 햇살 좋은 마당을 불러오고 싶다. 낮에 놀던 일이 꿈속에서도 이어지던 어린 시절의 깊은 잠을 불러오고 싶다.

20세기 초에 10시간이던 평균 수면시간이 요즘은 6.5시간으로 줄었다고 한다. 적게 자고 많이 일해야 뒤처지지 않을 테니 앞으로 잠은 더욱 줄어들 것이고 잠을 줄여주는 기술도 더불어 발달할 것이다. 그 부족한 잠마저 악몽의 행패 탓에 품질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쉽게 폭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이상하지 않다.

이 시조를 음미하니 어린 시절 개울가에서 놀던 놀이와 막 잠이 드는 순간의 아늑한 여운이 운율을 타고 와서 절로 눈이 감길 것 같다. 나뭇잎 같은 피라미 떼의 헤엄이 옅은 잠을 자꾸 간질인다.         

활자들이 그대로 개울의 노래가 되고 피라미 떼의 율동이 되는 것 같다. 이 아름다운 잠을 되찾고 싶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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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높은 공이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쉬었고

멀어지면 그만두고는 했지만

너무 높은 공을 던졌다

 

떠올랐다 내려오면서 무거워지기도 했고

날아가는 중에 무게를 잃기도 했지만

그 공은 너무 높았다

 

공을 찾으러 가는 동안 겨울이 시작되었다

포물선이 공중에 얼어붙고 했다

그 공은 너무 느린 공이기도 했다

우리는 말도 없이 집으로 가 버렸다

높은 공은 공중에 얼마나 있었을까

공에 실린 겨울은 계속되었을까

피가 무거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확실해지지 않았다

  -김성대(1972~ )

ⓒ 경향신문 DB

 너무 멀리 던진 공. 어린 시절 어느 날 잃어버린 공. 아직도 겨울 하늘을 날고 있는 공. 몹시 아끼던 공이었기에, 공에 가벼움이라는 날개를 달아 공중에 날려 보내는 즐거움이 너무도 컸기에, 시인은 아직도 공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제 잃어버린 공이 있는 곳은 너무 높은 하늘. 까마득한 기억. 눈 부릅뜨고 찾아도 손이 닿을 수 없는 내밀한 상실과 욕망의 자리. 그러므로 그 공은 여전히 아름다운 포물선의 궤적을 그리며 날고 있어야 한다. 풀숲 어딘가에 떨어져 사라지는 순간을 영원히 지연시키며, 계속 공중에 떠 있어야 한다.

잃어버린 공을 포기하고 더 좋은 공을 사서 즐겁게 논다 해도 어린 시절의 상실감을 채울 수는 없으리라. 그 공에 깃든 간절함과 즐거움, 그 공과 하나가 되었던 마음까지 잃어버렸으니까. 삶이 힘들고 현실이 무거울수록 그 상실감은 더욱 커져서 화자의 내면에서 더 힘차고 가볍게 날고 있을 것이다. 상쾌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고 싶은 본능, 가벼움의 본능을 자극하고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공보다 아름답게 나는 공은 이제 기억 속에만 있고 욕망 속에서만 날고 있어서 결코 손에 쥘 수 없다. 오직 언어만이, 시만이, 그 공에 닿을 듯 말 듯 감질나게 다가갈 수 있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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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치고 공기가 가벼워져. 내려오던 물들이 방향을 바꿔 하늘로 향하네.
땅은 무덤처럼 물을 머금고 있다가, 조용히 뚜껑을 열어.
산에서 수증기가 피어올라. 보이지 않는 굴뚝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것을 하늘로 올려 보내는
사제라도 살고 있는 것처럼.
개울에서는 안개가, 오븐 속 빵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어.
물방울들이 몸을 던져. 지상에서 공중으로. 지구 중심의 반대 방향으로. 우주를 향해.
시작되었어. 떠오르는 물방울들의 파티. 붕붕거리는 물방울들의 허밍.
바람은 물방울들을 실어 나르며 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려.
바람이 내 피부에 닿으면 물방울들의 동그란 노래가 들려.
비가 그치고 공기가 가벼워져. 물방울들은 속속 공기 속으로 귀가하네.
나는 이름과 사람들의 발과 발의 티눈에 대해 적다가, 고개를 들고 창문을 연다. 영혼도 뒤도 없이,
물방울 같은 한 문장을 공중에 쓴다. - 이성미(1967~ )

ⓒ 경향신문

흠뻑 비를 맞아 물이 가득 찬 나무와 땅과 산과 개울이, 비 그치자마자, 일제히 공중으로 하늘로 수증기와 안개를 내뿜는다. 무거움을 가볍게 공중에 띄워올리는 물방울들의 운동이 상쾌하다. 숲에서 산에서 거리에서 피어나는 물방울들의 상쾌한 반동에서 자연의 맑은 호흡, 지구의 장엄한 호흡이 느껴진다. 우주 허파의 들숨과 날숨 앞에서 내 몸의 모든 숨구멍들도 즐겁게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 같다. 내 숨이 물방울들과 함께 광활한 허공으로 스며들고 하늘의 가장 신선한 공기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화선지 속으로 스며드는 수묵의 여백처럼 여름산도 한껏 가벼워진다. 물방울들의 율동과 음악으로, 물방울들이 하늘에다 쓰는 이 청정한 문장으로, 탁한 눈을, 컴컴한 두개골 속을, 마음이 수시로 뒤집어 놓는 몸을 씻는다.

김기택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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