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경향시선'에 해당되는 글 228건

  1. 2016.08.08 ‘뱀에게 스치다니! -오솔길의 몽상 6’
  2. 2016.08.01 ‘낮잠을 부르며’
  3. 2016.07.25 높은 공
  4. 2016.07.18 ‘물방울들의 귀가’
  5. 2016.07.11 ‘두부’
  6. 2016.07.04 ‘북’
  7. 2016.06.27 ‘시 안 쓰는 시인들’
  8. 2016.06.20 ‘바탕’
  9. 2016.06.13 ‘풀 베기’
  10. 2016.06.06 ‘노인이 되는 방법’
  11. 2016.05.30 ‘품’
  12. 2016.05.22 ‘혼자’
  13. 2016.05.15 산소카페
  14. 2016.05.08 ‘미스터 엄마’
  15. 2016.05.01 [경향시선]‘햇빛은 어딘가 통과하는 게 아름답다’
  16. 2016.04.24 장편(掌篇)·1
  17. 2016.04.17 ‘목울대’
  18. 2016.04.10 묶음
  19. 2016.04.03 봄날
  20. 2016.03.27 뒤꿈치

반바지 차림의 산행길,

풀밭에 다리 쭉 뻗고 쉬는데

지게 작대기만 한 뱀 한 마리가 스스륵

종아리를 스쳐 넘는 게 아닌가

이런 이런, 뱀에게 스치다니,

뱀에게 스치다니!

하늘과 땅이 딱 붙어버린

뱀에게서 확 깨어난 순간

그 시리고 축축한 감촉이 으스스히

온몸을 휘어 감더니

눈앞엔 웬걸 개불알꽃들이

하늘과 땅이 딱 붙어버린 그 순간에

멍빛으로 납작해져선

꽃방석을 깔고 있는 게 아닌가

뱀에게 스치다니,

아직도 시리고 축축한 뱀의 세상이

날 그렇게 통과하다니!

그 순간 내 영혼까지 까마득해 버린 건

뱀의 길이에 새겨진

태초 이래의 긴 시간에 들렸던 탓인가

그러기에 꽃방석 위엔

나비 떼도 잠시 준동하던 것인가

 -고재종(1959~ )

출처: 경향신문DB

어쩌자고 뱀은 기다란 선 하나를 제 몸으로 갖고 있는가. 말도 울음도 없는 날름거림을 혀로 갖고 있는가. 여러 가지로 편리하고 유용한 신체 부위를 다 생략해버리고 잘 구부러지는 호스 같은 몸으로 사는가. 선 하나만 남은 몸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인가. 늘 땅과 맞닿아 있는 냉혈의 몸이 종아리에 스칠 때, 시인의 살갗에는 그 비밀도 얼핏 스쳤나 보다. 개불알꽃도 놀라서 꽃잎을 다 떨어뜨려 꽃방석을 까는 그 “시리고 축축한 감촉”이 전신을 훑고 지나갈 때, 시인은 인간의 시간에서 나와 팔다리 없는 시간, 인간이 알 수 없는 창세기의 시간을 슬쩍 보았나 보다. 그 천기를 누설해주면 좋겠는데, 시인은 한순간에 으스스한 딴 세상으로 갔다가 현실로 막 돌아와서 몹시 얼떨떨한가 보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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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놓친 잠을

머리맡에 불러 본다

어릴 제 실개울의

풀섶에서 놓쳤던 것

그 예쁜 피라미 떼를

잠 여울로 불러 본다.

뼘 남짓 뜨락에는

체로 거른 아침 나절

나무도 지난밤을

뜬눈으로 세웠던가

물든 잎 피라미 떼를

빈 마당에 놀려 놨다.

장독대 닦아 주며

바람 햇살 골라 주며

아내는 물새 다리

잔물결을 밟아 주며

엷은 꿈 베갯머리에

피라미 뗄 보내 준다.


 - 정완영(1919~ )

출처: 경향신문DB

연일 계속되는 열대야에 잠을 설치니 낮잠의 유혹이 반갑다. 바람 시원한 나무 그늘에 매미 소리 들리는 낮잠이면 좋겠다. 이 시조에 나오는 개울물과 피라미 떼와 햇살 좋은 마당을 불러오고 싶다. 낮에 놀던 일이 꿈속에서도 이어지던 어린 시절의 깊은 잠을 불러오고 싶다.

20세기 초에 10시간이던 평균 수면시간이 요즘은 6.5시간으로 줄었다고 한다. 적게 자고 많이 일해야 뒤처지지 않을 테니 앞으로 잠은 더욱 줄어들 것이고 잠을 줄여주는 기술도 더불어 발달할 것이다. 그 부족한 잠마저 악몽의 행패 탓에 품질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쉽게 폭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이상하지 않다.

이 시조를 음미하니 어린 시절 개울가에서 놀던 놀이와 막 잠이 드는 순간의 아늑한 여운이 운율을 타고 와서 절로 눈이 감길 것 같다. 나뭇잎 같은 피라미 떼의 헤엄이 옅은 잠을 자꾸 간질인다.         

활자들이 그대로 개울의 노래가 되고 피라미 떼의 율동이 되는 것 같다. 이 아름다운 잠을 되찾고 싶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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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높은 공이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쉬었고

멀어지면 그만두고는 했지만

너무 높은 공을 던졌다

 

떠올랐다 내려오면서 무거워지기도 했고

날아가는 중에 무게를 잃기도 했지만

그 공은 너무 높았다

 

공을 찾으러 가는 동안 겨울이 시작되었다

포물선이 공중에 얼어붙고 했다

그 공은 너무 느린 공이기도 했다

우리는 말도 없이 집으로 가 버렸다

높은 공은 공중에 얼마나 있었을까

공에 실린 겨울은 계속되었을까

피가 무거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확실해지지 않았다

  -김성대(1972~ )

ⓒ 경향신문 DB

 너무 멀리 던진 공. 어린 시절 어느 날 잃어버린 공. 아직도 겨울 하늘을 날고 있는 공. 몹시 아끼던 공이었기에, 공에 가벼움이라는 날개를 달아 공중에 날려 보내는 즐거움이 너무도 컸기에, 시인은 아직도 공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제 잃어버린 공이 있는 곳은 너무 높은 하늘. 까마득한 기억. 눈 부릅뜨고 찾아도 손이 닿을 수 없는 내밀한 상실과 욕망의 자리. 그러므로 그 공은 여전히 아름다운 포물선의 궤적을 그리며 날고 있어야 한다. 풀숲 어딘가에 떨어져 사라지는 순간을 영원히 지연시키며, 계속 공중에 떠 있어야 한다.

잃어버린 공을 포기하고 더 좋은 공을 사서 즐겁게 논다 해도 어린 시절의 상실감을 채울 수는 없으리라. 그 공에 깃든 간절함과 즐거움, 그 공과 하나가 되었던 마음까지 잃어버렸으니까. 삶이 힘들고 현실이 무거울수록 그 상실감은 더욱 커져서 화자의 내면에서 더 힘차고 가볍게 날고 있을 것이다. 상쾌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고 싶은 본능, 가벼움의 본능을 자극하고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공보다 아름답게 나는 공은 이제 기억 속에만 있고 욕망 속에서만 날고 있어서 결코 손에 쥘 수 없다. 오직 언어만이, 시만이, 그 공에 닿을 듯 말 듯 감질나게 다가갈 수 있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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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치고 공기가 가벼워져. 내려오던 물들이 방향을 바꿔 하늘로 향하네.
땅은 무덤처럼 물을 머금고 있다가, 조용히 뚜껑을 열어.
산에서 수증기가 피어올라. 보이지 않는 굴뚝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것을 하늘로 올려 보내는
사제라도 살고 있는 것처럼.
개울에서는 안개가, 오븐 속 빵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어.
물방울들이 몸을 던져. 지상에서 공중으로. 지구 중심의 반대 방향으로. 우주를 향해.
시작되었어. 떠오르는 물방울들의 파티. 붕붕거리는 물방울들의 허밍.
바람은 물방울들을 실어 나르며 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려.
바람이 내 피부에 닿으면 물방울들의 동그란 노래가 들려.
비가 그치고 공기가 가벼워져. 물방울들은 속속 공기 속으로 귀가하네.
나는 이름과 사람들의 발과 발의 티눈에 대해 적다가, 고개를 들고 창문을 연다. 영혼도 뒤도 없이,
물방울 같은 한 문장을 공중에 쓴다. - 이성미(1967~ )

ⓒ 경향신문

흠뻑 비를 맞아 물이 가득 찬 나무와 땅과 산과 개울이, 비 그치자마자, 일제히 공중으로 하늘로 수증기와 안개를 내뿜는다. 무거움을 가볍게 공중에 띄워올리는 물방울들의 운동이 상쾌하다. 숲에서 산에서 거리에서 피어나는 물방울들의 상쾌한 반동에서 자연의 맑은 호흡, 지구의 장엄한 호흡이 느껴진다. 우주 허파의 들숨과 날숨 앞에서 내 몸의 모든 숨구멍들도 즐겁게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 같다. 내 숨이 물방울들과 함께 광활한 허공으로 스며들고 하늘의 가장 신선한 공기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화선지 속으로 스며드는 수묵의 여백처럼 여름산도 한껏 가벼워진다. 물방울들의 율동과 음악으로, 물방울들이 하늘에다 쓰는 이 청정한 문장으로, 탁한 눈을, 컴컴한 두개골 속을, 마음이 수시로 뒤집어 놓는 몸을 씻는다.

김기택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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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살을 만지는 느낌

따뜻한 살갗 안쪽에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피가 흐르는 것 같다 곧 잠에서 깨어날 것 같다

순간의 촉감으로 사라진 시간을 복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두부는 식어간다

이미 여러번 죽음을 경험한 것처럼 차분하게

차가워지는 가슴에 얹었던 손으로, 이미 견고해진 몸을 붙잡고 흔들던 손으로

두부를 만진다

지금은 없는 시간의 마지막을, 전해지지 않는 온기를 만져보는 것이다

점점 사이가 멀어진다

피가 식어가고 숨소리가 고요해지는 느낌, 영혼의 머뭇거림에 손을 얹은 느낌

이것은 지독한 감각, 다시 위독의 시간

나는 만지고 있다

사라진 시간의 눈꺼풀을 쓸어내리고 있다 - 유병록(1982~ )

ⓒ 경향신문DB

두부를 먹으면 엄마 젖을 빨던 기억이 입에서 되살아나는 것 같다. 희고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감촉이 이빨의 날카로움을 무력하게 만들며 온몸으로 퍼진다.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눈은 그 촉감을 먹는다. 손바닥은 그동안 손이 쥐었던 온갖 부드럽고 탄력 있는 것들의 기억을 불러온다. 신경망은 그 말랑말랑한 온기를 전신에 퍼뜨린다. 그 순간에 몸속에 깊이 감춰진 어느 한 곳은 마냥 어려진다.

그러므로 이 시는 우리 몸이 기억하고 있는 연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부 같은 살에, 그 예민한 감각에, 닿을 듯 말 듯 사라져가는 모든 촉촉한 탄력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촉감의 기억으로 차갑고 거칠고 건조하고 딱딱한 현실을 견디는 “지독한 감각, 위독의 시간”의 이야기이다. 이제 그 내밀한 욕망은 우리 몸의 알 수 없는 장소에 깊이 숨어서 두부를 부른다.

김기택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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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낡았어요.
피도 살도 다 말랐어요.

아무 야망도 없이
흐느끼는 사람아

쳐라, 더 세게
쳐라,
그대를 생각하며 낮게 울리라.

 -장석주(1955~ )

경향신문DB

한 번만 쳐도 북 가죽은 백 번 천 번을 떨며 파동을 허공에 퍼뜨린다. 가죽도 살이라 북소리는 목소리를 닮았고 심장 소리를 닮았고 울음소리를 닮았다. 그래서 북소리는 귀에 닿기 전에 먼저 살과 가죽과 심장으로 들어와서 마음껏 떨리면서 울음이나 흥을 자극하는 것 같다.

이 시를 읽으니, 울음은 살의 떨림이요 가죽의 떨림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처음 알게 된 사실인 양 새삼스럽게 실감난다. 소가죽으로 만든 북에서는 소 울음소리가 난다. 다 마른 가죽이 깨어나 생전의 소가 되어 우는 것만 같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가죽은 미리 준비한 듯 제 안의 수많은 진동을 꺼낸다. 가죽과 살로 된 몸들은 무엇이 조금만 건드려주기만 하면 울음이 나오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떨고 싶어서, 몸 안의 참을 수 없는 진동을 밖으로 내보내고 싶어서, 우리 몸은 무엇이 쳐주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울음을 참는 것은 생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몸 안에서 나올 곳을 찾아 헤매는 울음에게 예의가 아니다. 살아서 참았던 모든 울음은 북이라도 되어 마저 울고 싶을 것이니 “쳐라, 더 세게/ 쳐라,/ 그대를 생각하며 낮게 울리라.”

김기택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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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도 섬마을에서 문학교실을 하는데, 갯벌에서 박하지 잡다 오고 산밭에서 도라지 캐다 오고 당산에서 벌초하다 오고 연필 대신 약통 메고 긴 지팡이 짚고 왔습니다

저 고개 너머, 자월도 살던 대님이라고 있어

키가 작달막하고 얼굴 모냥 갸름한 게 여자는 여자여

내가 죽으면 어느 누가 우나

산신령 까마구 드시게 울지요

일본 말루다 그렇게 슬픈 노랠 했어

첩으로 살다 아이 하나 낳구는

덕적도로 시집가 죽었어

경향신문DB

공중에 펼쳐진 넓디넓은 종이에 한 자 한 자 새겨지는 까막눈이 시 속으로 대님이가 까악까악 날아왔습니다 이 땅에 시 안 쓰는 시인 참 많습니다 명녀 아지 은심이 숙희 승분이 경애 춘자 상월이 이쁜이, 시보다 더 시 같은 생애 지천입니다 - 김해자(1961~ )

문학교실로 수십 권의 소설이 담긴 인생이 걸어온다. 절절한 시 수백 편이 담긴 가슴이 온다. 이렇게 뛰어난 작품이 있는데 왜 문학공부를 하러 온단 말인가. 그 소설과 시는 글이 되어 몸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말들이기 때문이다. 두근거리는 심장과 끓는 내면과 눈물과 웃음 안에 갇혀 살도록 운명 지어진 글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의도 섬마을 까막눈들이야말로 글 쓸 줄 모르는 대시인들이요, 씌어지지 않은 그들의 작품이야말로 세상의 언어를 입지 못한 명시 아닌가.

오규원 시인은 살아 있는 시를 읽기 위해 책상과 시집과 작시법을 버리고 ‘버스 정거장’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물었다. ‘노점의 빈 의자를 그냥/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노점을 지키는 저 여자를/ 버스를 타려고 뛰는 저 남자의/ 엉덩이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글로 쓴 시보다 언어가 되기 이전의 사물이나 존재가 삶과 인간과 세상을 훨씬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시보다 더 시 같은 생애 지천”이니, 표정과 주름과 말 속에 숨어 있는 그 작품에 귀 기울여보자. 말이 되지 못해서 오히려 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책 밖의 세상을 읽어보자.

김기택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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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동 골목, 노루가 지나갔다 눈썹 밑 허공과 마주친 순간 엎어졌다

발목을 삐고 손에 생채기가 났다 고무줄 퉁긴 듯 돋는 구름의 보풀들

잊었던 달개비꽃밥이 떠올랐다 돌멩이로 찧던 다섯 살의 소꿉밥, 문득

숨었던 이름들 파다닥 날개 턴다 눈밭에 찔레열매 가득 붉었다, 와락

천둥처럼 달려드는 진흙 냄새, 갈색털 덮힌 슬픔이 물끄러미 돌아본다

추억은 초식동물로 살아 있다

그런데 저 앞을 지나간 건 정말 노루였을까 - 김수우(1959~ )



동네 골목에서 갑자기 마주친 노루의 눈이 얼마나 깊고 맑았으면 “눈썹 밑 허공”이라고 했을까. 그 허공이 얼마나 푸르고 넓었으면 가던 길은 안 보이고 눈앞에서 “구름의 보풀들”이 일어났을까. 눈앞이 온통 허공이니 발을 헛디디고 넘어져 삐고 깨질 만도 하겠다.

그리하여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도 잊어버리고, 방금 무슨 일을 하려고 했는지도 잊어버리고, 노루가 뛰노는 푸른 들과 산으로, “돌멩이로 찧던 다섯 살의 소꿉밥”이 있던 어린 시절로 무작정 뛰어들고 싶기도 하겠다. 기억 속에 깊이 숨어 있던 이름들 파다닥 날개 털며 깨어나기도 하겠다.

남포동 골목길에 잘못 들어선 노루는 다른 데에 한눈팔 여유를 주지 않는 일상에 무진장한 낯선 공기를 풀어놓는다. 그래서 먹고사느라 바쁜 이 현실 말고 다른 삶, 다른 현실이 세상에 또 있음을 일깨워준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늘 똑 같은 생각과 항상 만나는 사람 속에 불쑥 끼어들어 거기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세상을 펼쳐놓는다. 그러니 방금 마주쳤다가 달아난 것은 노루가 아니라 내가 잃어버린 또 다른 나, 어린 시절과 기억과 꿈속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나인지 모른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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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옆에서는 한 가지 소리밖에 아무 소리도 없었는데

 

그것은 내 긴 낫이 땅에 속삭이는 소리였다.

 

무얼 속삭였냐고? 나는 잘 모르겠다.

 

아마 햇볕이 뜨겁다거나

 

고요하다는 얘기였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소리 내어 말하지 않고 속삭였겠지.

 

한가해서 꿈을 꾸고 있었던 것도

 

요정한테 홀려 있었던 것도 아니다.

 

실은 어쩔 수 없는 애착에 못 이겨

 

잎끝이 연한 꽃들(파란 난초)도 없지 않은

 

풀 무성한 습지를 손질하면서

 

빛나는 초록 뱀을 놀라게 하는 것이다.

 

실은 노동이 알고 있는 제일 기분 좋은 꿈을

 

내 긴 낫은 속삭이면서 풀을 베어놓고 있었다.

 

 

-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 정현종 역

 

 

 

풀과 나무가 하는 일, 구름과 공기가 하는 일, 물과 계곡이 하는 일, 시인은 그 무위의 놀이에 끼고 싶었던 게 아닐까. 누가 죽거나 말거나 태어나거나 말거나 도대체가 슬픔이나 괴로움, 의무나 책임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는 곳에 오로지 근육과 땀과 귀만 가지고 참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낫이 땅에게 속삭이는 소리를 엿듣고 싶어 발자국 소리조차 참아가면서 습지에 들어간 게 아닐까. 그럴 때 시는 어떤 세계를 발견하거나 심오한 의미 같은 건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한다. 단지 인간이 없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인간에게는 하찮지만 자연에는 무진장한, 신비를 살짝 엿볼 뿐이다.

 

그러니 이 시는 생각하지 말고 시인이 눈치채지 못하게 엿볼 것. 풀 베는 소리가 목덜미 어디를 간질이게 놔둘 것. 풀이 닿을 때마다 차가워지는 공기의 느낌, 축 늘어졌다가 갑자기 깨어나 빳빳해지는 더위, 인공적인 향기에 익숙해진 코를 깨우는 비릿한 풀 냄새를 음미할 것. 핸드폰 영상을 본 일도 벨소리를 들어본 일도 없는 심심한 시간 속으로, 귀만 살아있고 온몸은 없는 것 같은 고요한 시간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볼 것. 그리고 오래된 골목길 허름한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을 때, 저절로 잠이 올 것 같은 이상한 평화가 비롯된 곳이 바로 낫이 땅에 속삭이는 소리였음을 살짝 떠올려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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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밥을 먹어도 외롭지 않다. 식탐 때문에

혼자 밤늦게 산책을 해도 두렵지 않다.

미인이 쓰러져 뒹구는 술집 근처에 살기 때문에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

말할 사람도 없고

애써 기억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자세히보기 CLICK

친구를 만나도 심심하다. 친구는

사라진 일자리에 빠져 있고 나는

옆 테이블에 앉은 미인의 다리가 궁금해서

아내와 통화할 때도 할 말이 없다. 애인이라도

생겼다면 거짓말이라도 정성스럽게 할 텐데.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신기한 것이 하나도 없다.

사진을 몇 장 찍으며 나를 속인다.

혼자 밥을 먹으면 눈물이 난다. 식욕이 없어서

혼자 산책을 하면 외롭다. 상점이 모두 문을 닫아서

혼자 영화를 보면 구석에 가서 울고 싶다.

등이 갈라지면서 또 하나의 내가 기어나와

갈라진 등을 두드리며 나를 위로해줄 것 같아서

혼자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 집을 지나친다.

더 오랫동안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안주철(1975~ )




맛있는 걸 먹어도 즐겁지 않고 아름다운 곳에 가도 행복하지 않다면, 작은 일에도 설레는 마음의 운동이 없다면, 떨리거나 날아갈 것 같은 감정의 탄력이 줄어들었다면, 나는 웃고 있는 것 같은데 어디 아프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노인이 되었다는 신호가 아닐까. 아직 젊은 이 시의 화자도 제 마음에 벌써 노인이 와 살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말을 들어먹지 않는 몸과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끔찍해지지 않고 치욕스러워지지 않는지 나는 아직 잘 모른다. 죽음도 자꾸 아는 체해올 텐데 그놈과 친해지는 노하우도 없다. 늙음이 감기 걸린 것 같고 죽음이 주사 맞듯이 잠깐 따끔한 것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혼자 밥 먹기, 할 일 없기, 아무 때나 아프기, 기저귀 차기,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만나주지도 않는 걸 즐겁게 받아들이기. 젊은이는 모르는 이 새로운 몸, 새로운 말, 새로운 마음, 새로운 고독을 외국어 공부하듯 익혀야지.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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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아파트까지 흘러온 여치 한 마리

울음이 언어인데

너무 높은음자리에 울음 구멍이 시리다

몇 층까지 들릴까 내년에는

더 크게 울 수 있을까 궁리 끝에

산도 넘고 바다도 건널 수 있는

메아리를 낳으려고

산봉우리 몇 채쯤 먹여 살릴 밥을

짓기 시작했다

앞산은 뒷산을 뒷산은 옆 산을

옆 산은 또 다른 산을

메아리 밥으로 먹여 살리다 보면

그릇 없이도

가닿고 싶은 높이가 주시는 밥

받아안을 수 있을까니 - 박라연(1951~)

밥 먹이는 일로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 시인. 배고픈 얼굴만 보면 밥을 짓고 싶어 마음이 바빠지는 시인. 여치의 작고 연약한 울음소리를 듣더니 퍼뜩 한 그릇 고봉밥을 떠올린다. 그러나 쌀로 지은 밥이 아무리 따뜻하고 기름져도 반찬이 아무리 맛깔스러워도 여치에게는 그림의 떡. 그렇다고 저 야윈 울음을 굶길 수는 없는 일.

그리하여 밥을 지어주지 못하면 큰일을 저지른 것같이 죄스럽고 안타까운 모성은, 여치가 제 울음소리로, 아파트 서너 층도 넘지 못하는 작은 울음소리로, 밥을 짓는 상상을 한다. 여치의 작은 소리가 “산도 넘고 바다도 건널 수 있는/ 메아리”로 “산봉우리 몇 채쯤 먹여 살릴 밥을” 짓는 상상을 한다. 그 모성이 정성과 상상을 다해 여치 울음으로 지은 밥시, 마음과 생각과 세포까지도 배부르게 할 밥시, 메아리처럼 자라나서 산과 바다까지도 먹이는 엄청난 밥시, 얼마나 따뜻하고 풍성하고 맛있을까.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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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스며온 너라는 어둠

너에게 전염되어간 나라는 불치병

조금씩 일찍 떠나버리는 버스를 바라보며

혼자는 혼자를 만나 드디어 혼자가 된다

- 송태웅(1961~ )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다 보면 혼자 있고 싶어진다. 그럴 때 혼자는 고요하고 평화로우며 달콤하기까지 하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낄 때, 몸과 마음이 견디기 힘든 일을 경험할 때 몸속에서 몰래 자라온 혼자는 엄청난 위력으로 제 본성을 드러낸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고, 말 붙여올 수 없고, 도움의 손길을 뻗칠 수 없는 무서운 혼자의 실체가 드러난다. 눈물로도, 애원으로도, 기도로도 그 혼자의 막막함과 뼈저림과 진저리는 막을 수 없다. 네가 가까이 있어도, 너와 체온을 나누고 있어도 혼자는 너와 나 사이에 기어코 끼어들고 나를 가득 채운다.

혼자와 혼자가 만나 마음을 나누고 연민과 슬픔을 나누면 혼자가 아닌 것 같지만 결국 혼자가 된다. 서로 떨어지자마자, 불행이 둘 사이를 갈라놓자마자 그동안 감춰져 있던 혼자가 뼈저림과 차가움과 후들거림과 진저리치는 외로움을 동반하고 들이닥친다.

그 혼자는 모든 웃음과 다정한 표정과 따뜻한 촉감이 사실은 울음이었고, 차가움이었고, 두려움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너와 내가 나눈 온갖 말과 웃음과 위로가 혼자라는 것을 막기 위한 헛되고 무모한 몸부림이었음을 들통 나게 한다. 나를 향한 너의 사랑은 “어둠”이었으며 너를 향한 나의 연민과 애틋함은 “불치병”이었음을 인정하게 한다.

여러 굴곡과 파랑과 벼랑을 지나와서, 마음고생과 애태움과 노심초사를 지나와서 그 흔한 혼자는 진짜 혼자가 된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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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모두 북쪽의 차가운 숲을 생각하네

강남역 뉴욕제과 2층

순도 92퍼센트의 산소를 주문하고

코에 튜브를 끼운다

미국에서 직수입한 산소는

야생 커피 카페인보다 자극적이다

그곳에서 나는 보철을 낀 소녀처럼

말을 아낄 수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시계를 보는 사람들

밀려오는 자동차들

그곳에서는 누구나 코에 산소 튜브를 낀 채

차를 마신다

수면 위로 입을 내밀고 떠오르는

미지근한 어항 속 물고기의 심정으로

중환자실 폐암 환자의 절박한 눈빛은 아니어도

그곳에서는 누구나 말을 아낄 수 있다

빵꾸 난 대기

오존 주의보

지하도에서 빠져나온 무리들이

어디론가 구름처럼 밀려가는 오후

사막 낙타들을 홀리는

오아시스의 북소리

이 카페에서 저 카페로 이동하는

도시 유목민들

신선한 이온 산소 바람 한 줄기

소파에 늘어지는 산소 취객들

- 문혜진(1976~ )

퇴근하고 산소카페에서 산소 한 모금 어때? 휴대용 산소 다 떨어졌는데 오늘 어떻게 숨 쉬지? 지금은 산소마스크 착용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어제는 미세먼지 사망자 수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앞질렀대. 우리 카페에서는 100% 북극 산소만 사용합니다. 언젠가 이런 풍경을 보게 될지 모른다.

인간이 아무리 개발하고 훼손해도 자연은 말을 하지 않으며 비명을 지르지 않으며 저항하지 않는다. 아무리 겁탈하고 유린해도 오랜 세월 지켜온 제 순결한 몸을 묵묵히 내어줄 뿐이다. 아름답고 청정한 몸이 병든 흉물과 치명적인 독성과 난폭한 재해가 되도록 고분고분하게 파괴되어줄 뿐이다. 그 흉측한 모습으로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생겼는지 거울처럼 비춰줄 뿐이다. 자연의 순한 침묵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우리는 뼈아프게 경험해가고 있다.


김기택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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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이렇게 망가졌을까,

이마엔 정맥이 물컹물컹 돋아나고

손등엔 모래사막을 거느린 알타이 산맥 같은 힘줄이 불끈불끈,

엄마는 왜 저렇게 험악하고 향기가 없나

흰 눈을 마구 짓밟으며

김장독을 들고 땅구덩이에 묻으러 가다

막무가내 엎어지며

진흙 속의 햇빛을 쾅쾅 밟아 급기야

때려눕히는 그녀,

난자의 아름다운 우아함이라고는

전혀 사라진……

엄마라는……

콩, 옥수수, 치즈 듬뿍, 고운 두부

그라탕 접시를 밀쳐 내고

감자탕 속에 벌겋게 물든 돼지뼈를

발라먹고 있는,

똥 묻은 환자 기저귀를 빨랫방망이로

진탕 두들겨

사방으로 똥이 튀어 날아가게 만드는,

엄마라는 이름의

미스터……

종군기자와도 같은 하루 - 김승희(1952~ )


근육을 덜 사용하게 해주는 기술 덕분에 삽과 곡괭이를 들던 팔은 이제 펜을 들거나 마우스를 쥐고 있다. 인공지능처럼 뇌를 덜 쓰게 해주는 기술마저 일상화되면 몸 쓸 일이 없어진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나. 첨단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려 해도 아이 낳는 일을 대신해주지는 못한다. 이빨로 씹어야 하는 음식과 배설 기관을 통해서 나와야 하는 똥오줌은 고대나 현대나 달라진 게 없다. 엄마가 하는 일은 고대인들이 해오던 원시적인 방식 그대로 몸으로 해야만 한다. 그 일에는 거친 손발과 억센 악다구니와 남성적인 완력이 필요하다.

‘미스터 엄마’라는 모순적인 이름처럼 엄마는 성별을 초월한 성이다. 엄마는 여성이라는 연약한 이름에서 벗어나 남성적인 힘으로 무장할 것을 요구받는다. 처녀보다 예쁘고 늘씬한 엄마, 엄마 같지 않은 엄마, 미스터 엄마가 되지 않으려는 엄마도 있기는 하다. 엄마의 삶이 여성을 우악스럽게 남성으로 바꾸려 하지만 엄마도 여자가 되고 싶다. 그러나 문명과 기술이 인간을 다 차지한다 해도 엄마에게는 문명화될 수 없는 원시인이 남아 있다. 현대와 문명과 여성으로부터 소외된 이름이기에 엄마는 여자보다 훨씬 시적이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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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센티미터 두께의 손가락을 통과하는

햇빛의 혼잣말을 알아듣는다

불투명한 분홍 창이

내 손 일부이기 때문이다

국경선이 있는 손바닥은

역광을 움켜쥐었다만

실핏줄이 있는 종려 이파리는 어찌

얼비치는 걸까

구석구석 드러난 명암이기에

손가락은 눈이 없어도 표정이 있지

햇빛이 고인 손톱마다

환해서 비릿한 슬픔

손바닥의 넓이를 곰곰이 따지자면

넝쿨식물이 자랄 수 없을까

이토록 섬세한 공소(空所)의 햇빛이 키우고,

분홍 스테인드글라스가 가꾸는,

인동초 지문이

손가락뼈의 고딕을 따라간다

- 송재학(1955~ )

손가락을 투과하는 햇빛을 보며, 투명한 손가락에서 자라는 나뭇잎 잎맥을 읽으며, 시인은 투명한 몸을 꿈꾸는 모양이다. 엑스레이를 찍듯이, MRI 영상을 찍듯이, “인동초 지문”과 “손가락뼈의 고딕”이 보이는 몸을 완상하는 모양이다. 햇빛을 비추면 “불투명한 분홍 창”이 되는 몸을 잠시 동물적인 육체에서 해방시켜 보려나 보다. 고작 칠팔십 년 사는 몸에서 고생대, 원생대의 지층을 탐사하려나 보다. 식물에서 동물로 갈라져 나온 진화의 시간을 감상하려나 보다. 실핏줄을 잎맥으로 바꾸어 보고 뼈를 뿌리와 가지로 바꾸어 보려나 보다. 그래서 내 몸에서 피어날 꽃과 열매가 어떤 모양일지 상상하려나 보다.

햇살에 온몸을 비벼보고 싶은 5월이다. 들숨을 크게 쉬면 하늘이 통째로 몸으로 들어올 것 같은 5월이다. 이 푸른 5월에 할 일. 생각과 욕심과 스마트폰 정보가 가득한 몸에 햇빛과 바람을 넣어 주기. 햇빛이 투과시켜 몸을 한껏 투명하게 하기. 내 몸에서 넝쿨식물의 줄기처럼 뻗어가는 식물성 뼈와 핏줄과 신경을 느끼기. 털구멍마다 가지와 뿌리가 돋아나는 식물성 육체 되기. 그래서 육식과 잡식으로 생긴 동물성 비린내 대신 풋내와 향기가 나게 하기.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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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작아작 크고 작은 두 마리의 염소가 캬베스를 먹고 있다

똑똑 걸음과 울음소리가 더 재미있다

인파 속으로 열심히 따라가고 있다

나 같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녀석들을 죽이지 않겠다

- 김종삼(1921~1984)



한나 아렌트는 2차대전 때 수백만명의 유태인을 학살 현장으로 보낸 나치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면서, 그 엄청난 범죄의 원인이 생각하고 느낄 줄을 모르는 데 있다고 진단했다.

무지하다는 것은 아는 것이 적다는 뜻보다 생각하는 능력이나 느끼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을 더 많이 갖고 있다. 그것은 타인의 느낌이나 생각에 공감하는 능력, 마음 깊은 곳에서 아픔이나 슬픔,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전문 분야에서 많은 지식을 갖고 있거나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이런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무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임마누엘 레비나스에 의하면 사람의 얼굴에는 ‘상처받을 가능성, 무저항성’에서 오는 ‘도덕적 호소력’이 있다고 한다. 얼굴은 괴롭히지 말고 살생하지 말라는, 어떠한 말보다도 준엄한, 도덕적 명령인 것이다. 그것을 읽지 못하는 무지가 폭력이나 범죄를 낳는 것이다.

캬베스를 아작아작 씹는 귀엽고 순진무구한 염소의 표정, 재미있는 “똑똑 걸음과 울음소리”는 시인의 마음에서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지워버린다. 팔리기 위해 시장으로 가는 것으로 보이는 이 염소의 얼굴과 동작은 저절로 시인의 몸속 깊은 곳에서 기쁨과 슬픔과 사랑이 우러나오게 하며, “나 같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녀석들을 죽이지 않겠다”는 뜨겁고 단호한 결심을 불러온다. 온몸을 울리면서 나온 이 단순하고 소박한 말이야말로 큰 지혜가 아닌가.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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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목울대라는 말이 참 좋다.

목울대 목울대 하고 부르면

내 몸 어디에선가 슬픈 나무

냄새가 난다.

여자에겐 없는 이 나무는

후두를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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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코 눈물샘과 연결되어 있다.

설움에 복받쳐 우는 여인들의 양 어깨가

위아래로 들썩이는 까닭은 바로

슬픔의 원천인 이 나무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를 나무라고 하는 까닭은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들의 울림통이 나무이기 때문이다.

이 나무가 물렁하지 않다면

누구도 이렇게 큰

울음소리를 내지는 못할 것이다.

내장 깊은 곳에서 더 이상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복받쳐 올라 목울대를 칠 때

비로소 울음이 완성된다.

코가 시큰거리고

눈물샘에 수정보다 맑은 물이 고인다.

목이 울 때가 된 것이다.다

- 원구식(1955~)


최초로 ‘목울대’라고 말한 사람은 그 말에 ‘목이 울 때’라는 뜻도 숨어있다는 걸 생각했을까? 말은 뇌가 명령하여 목울대를 울려 나오지만, 울음은 뇌의 명령이 아니라 피의 명령, 심장의 명령을 받아 나온다. 울음이 폭발하면 뇌가 아무리 울지 말라고 해도 듣지 않는다. 울음은 자체의 의지와 힘으로 나온다. 이미 몸에 울음이 가득 차 있다면, 이미 목울대가 충분히 예열되어 있다면, 뇌와 이성은 무력해진다.

웃을 일은 적고 울 일은 많아지지만 정작 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아무 데나 배설하지 않도록 교육 받아왔으므로 울고 싶으면 울음을 배설할 화장실을 찾아야 한다. 우울 사회인데도 사회는 울음을 참고 웃으라고 조언한다. 그래서 주변에 안구건조증 환자가 꽤 많다. 이제 울고 싶으면 울음을 노래로 변형시켜 노래방에 가거나 술주정으로 바꾸러 술집에 가야 한다. 시 쓰기도 말 속에 숨어서 안 우는 척 우는 기술이다.


김기택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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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이 지는 열흘 동안을 묶었다

꼭대기에 앉았다 가는 새의 우는 시간을 묶었다

쪽창으로 들어와 따사로운 빛의 남쪽을 묶었다

골짜기의 귀에 두어마디 소곤거리는 봄비를 묶었다

난과 그 옆에 난 새 촉의 시간을 함께 묶었다

나의 어지러운 꿈결은 누가 묶나

미나리처럼 흐르는 물에 흔들어 씻어 묶을 한단

- 문태준(1970~ )


꽃사진 찍는 일은 꽃이 떨어지기 전에 나무에 묶어두는 일. 쉬 떨어지는 꽃을 지지 않는 꽃으로 만들어 눈동자에 박아 두는 일. 꽃시를 쓰는 일이 어찌 다르랴.

365일 중에 열흘밖에는 볼 수 없는 꽃, 나머지 355일은 기다려야 하는 꽃을 마음에 묶어서 두고두고 보는 일이 아니겠는가. 꽃노래를 부르는 것도 꽃빛 꽃향기의 흥과 낙화의 아쉬움을 추억에 묶어두는 일. 그래서 노래할 때마다 사라진 꽃이 하나씩 풀려나오게 하는 일.

지는 꽃은 무심한데 왜 보는 사람이 서운하고 슬프다 하는가. 꽃을 사진과 시와 노래에 담는 것은 바로 그 흥과 슬픔의 변덕이 시키는 일. 부지런히 타이어를 굴리고 카메라를 부리고 언어를 불러와 새소리를 묶고 풍경을 묶고 봄비를 묶고 꽃 진 자리에 돋는 연한 새잎들을 묶고 자꾸 달아나는 계절과 세월도 묶어야지. 언제 떠나가 버릴지 모를 사랑도 가기 전에 잘 묶어놔야지. 떠나간 사랑에는 우두둑 뜯겨버린 마음 몇 단도 묶어 보내야지. 보고 싶으면 언제나 기억에서 불러낼 수 있도록 죽은 이들도 그렇게 내 삶에다 꽁꽁 묶어야지. 부질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마음이 시키면 따르지 않을 수 없으니.


김기택 시인 | 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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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본관 앞

부아앙 좌회전하던 철가방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저런 오토바이가 넘어질 뻔했다

청년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막 벙글기 시작한 목련꽃을 찍는다.

아예 오토바이에서 내린다.

아래에서 찰칵 옆에서 찰칵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찰칵찰칵

백목련 사진을 급히 배달할 데가 있을 것이다.

부아앙 철가방이 정문 쪽으로 튀어나간다.

계란탕처럼 순한

봄날 이른 저녁이다. - 이문재(1959~ )



택배에도 철가방에도 오토바이에도 배달원에게도 봄은 온다. 1분 1초가 급한 배달을 잠시 멈추게 하고, 복잡한 거리에서 차량과 사람 사이를 곡예하듯 빠져나가는 속도를 급정거시키며, 봄은 온다. 봄은 제 생애의 가장 빛나는 색깔과 향기를 통해 지금 이 순간에 젊음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한다. 봄은, 생명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 이 극적인 시간에 아르바이트에 끌려다니는 청년의 감성과 정신을 후려친다. 그리하여 이 도취의 순간을 시급 7000원 때문에 잃지 말고 막무가내로 아름다움에 매혹될 것을 준엄하게 명령한다.

그러니 짜장면이 퉁퉁 불어터지고 배고픈 위장이 사납게 꼬르륵거려도 속도를 급정거시키고 볼 일. 세상의 모든 급하고 중요한 일들을 정지시키고 단호하고 엄숙한 태도로 스마트폰을 꺼내어 볼 일. 이 순간 세상 모든 것은 다 사라지고 봄꽃만이 있다는 듯, 우리 삶에서 오직 봄꽃만이 제 시간과 정열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듯, 목련과 벚꽃이 맞이한 천국을 스마트폰에 담아둘 일. 그래서 혼탁하고 무질서하고 뭐가 뭔지 모르게 뒤죽박죽되어 있는 이 세상을 몇 십초 동안만이라도 완벽한 질서와 조화를 갖춘 유토피아가 되게 할 일. 무심하게 지나가는 사소한 장면에 숨겨져 있는 이 혁명적 순간을 어찌 시인의 눈이 놓치겠는가.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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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그렇게 가지런히 모으고 있으니
참 따뜻하지? 이제 갓 낳은 달걀
솜털 둥지 기댄 모습
뽀얗고 둥근 복사꽃 향기 너
봄날 오후 단잠보다 부드러워라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세상
남몰래 제 등짝에 굳은살 박이느라
티눈처럼 뾰족하게 주목받지도 못하면서
뒷감당 혼자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앞걸음 밀고 갈 때 한 겹씩 벗겨지고
뒷걸음 물러설 때 두 겹씩 굳어지다
마침내 생의 가장 끝자리에서 밀려나
누구보다 단단해진 너

걸음 배운 뒤 한번도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뒷눈으로만 비춰 보던 세상
보드라운 이불 밑으로 반쯤 비어져 나온
저 성스러운 발의 맨 얼굴.

- 고두현(1963~ )


갈라지고 각질이 일어나 보기 흉한 뒤꿈치는 양말과 구두로 가리는 게 편하다. 뜨거운 물에 불려 씻어도 떨어지지 않고 깎아내도 벗겨지지 않는 딱딱한 살 껍질은 주위에 보는 사람이 없어야 떳떳하게 바람을 쐴 수 있다. 웃음으로 사랑스러운 얼굴을 완성시키는 눈을 놔두고, 립스틱과 말로 치장하는 입을 놔두고, 하필이면 시인은 볼 것 없는 뒤꿈치에다 시선을 두었을까.

시인이 이삼십대였다면 당연히 눈이나 입, 손이나 목에 눈길이 갔으리라. 그러나 그는 세상 험한 길을 걷느라 두꺼워지고 거칠어져서 자꾸 이불 속에 숨으려는 뒤꿈치의 수줍은 아름다움을 느낄 나이. 굳어지고 갈라져도 그 안에는 아직 세상을 모르는 아기의 부드러운 발바닥과 아무리 깨물어도 간지럽기만 한 새끼 강아지의 이빨 같은 어린 기억이 있다는 걸 알 나이. 우리가 명함처럼 자랑스럽게 내보이고 다니는 눈과 귀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이기주의자다. 뒤꿈치는 남에게 보여줄 일도, 치장할 일도 없지만 한 발 한 발 삶을 떠받치고 있으니, 순수하고 성스러운 영역 아닌가.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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