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경향시선'에 해당되는 글 237건

  1. 2016.10.31 흔들
  2. 2016.10.24 ‘소리’
  3. 2016.10.17 ‘어떻게 알았는지’
  4. 2016.10.10 새벽에 걷기
  5. 2016.09.26 ‘염소 씨의 외출’
  6. 2016.09.20 ‘사랑노래’
  7. 2016.09.12 간곡함
  8. 2016.09.05 ‘나무들의 변명’
  9. 2016.08.29 투명한 방
  10. 2016.08.08 ‘뱀에게 스치다니! -오솔길의 몽상 6’
  11. 2016.08.01 ‘낮잠을 부르며’
  12. 2016.07.25 높은 공
  13. 2016.07.18 ‘물방울들의 귀가’
  14. 2016.07.11 ‘두부’
  15. 2016.07.04 ‘북’
  16. 2016.06.27 ‘시 안 쓰는 시인들’
  17. 2016.06.20 ‘바탕’
  18. 2016.06.13 ‘풀 베기’
  19. 2016.06.06 ‘노인이 되는 방법’
  20. 2016.05.30 ‘품’

꽃들을 다 그리고도 남는 꽃들

나비가 앉았다 간 뒤에도 마저 흔들리는

나비

 

바람도 불지 않는 곳에서

애벌레 기어오르다가 슬몃 흘리고 간 애벌레

바람이 핥고 가고 햇볕이 남김없이

빨아들이고도 남는 햇볕

 

살랑살랑 나뭇잎을 흔들고

떨어지는 나뭇잎; 모두가 여기 있고

아무도 밟지 않은 이 연기를 타고 올라간다

 

다 자란 뒤에도 더 자라는 뱀이 기어간다


 - 김언(1973~ )

눈앞에서 한 마리 나비가 날아갈 때, 보는 사람의 내부에서도 나비 한 마리가 날아간다. 눈앞의 나비가 사라져도 기억 속에서 그 나비는 계속 날아간다. 나뭇가지에 피어난 밝은 전구 같던 목련도 지난봄에 벌써 졌지만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환한 불을 켜고 있다. 세상을 떠난 지 몇 년이 지난 지인도 나에게 종종 말을 건네거나 웃곤 한다. 기억이 너무 생생하면 나는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잊고 얼떨결에 그가 묻는 말에 대답하기도 한다. 과거의 일은 기억에 나타나는 순간 현재진행형이 되고 새로 태어나는 경험이 된다.

그 기억은 나에게 묻는다, 이미 떨어져 사라진 꽃이 진짜인지, 기억 속에서 지금 피어나고 있는 꽃이 진짜인지. 시인은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꽃에게 생명을 부여하려는 사람이다. 죽은 뒤에도 계속 말을 하는 사람에게, 사건이 지난 뒤에도 아직 진행되는 사건에게, 숨 쉬는 육체를 부여하려는 사람이다. 이별이 견딜 수 없는 사람에게는 아직도 살아있는 기억과 허구가 진짜일 수도 있으니까. 답답한 현실이 견딜 수 없는 사람에게는 벽 안에서도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는 상상의 산과 들과 바다가 진짜일 수도 있으니까.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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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를 걷다 보면

여름의 주머니를 뒤지는 소리들,

딱따구리는 제 골머리가 터지도록

나무의 속에다 딱딱한 공허를 털어놓고

날아가던 구름은 귀를 열고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나무들은 발가락으로 땅속을 헤집고

안 보는 듯 슬쩍 남의 허벅지를 훔쳐본다,

가끔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는 낙엽송들,

땀에 묻어나는 진하게 꿍친 생각들,

민들레는 고양이 눈을 노랗게 뜨고

 

입을 오므려 동그랗게 야옹 소리를 내고

돌멩이는 바람에 몸을 비비며

발꿈치를 돋운다.

도로를 달리는 차 소리,

무수한 소리들 사이로 전류가 흘러

세상의 정적에 불이 들어온다,

수첩을 꺼내 든 나무들 소리를 끼적거린다.

 - 김재혁(1959~ )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혼자 호젓하게 산책길을 걷는데도 시인은 몹시 바쁘고 흥겨운가 보다. 걱정거리와 생각들을 다 내려놓고 어린이가 되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이때 산책자는 어린이처럼 온몸이 감각 덩어리가 된다. 오감은 주변의 모든 풍경을 빨판처럼 빨아들일 준비를 한다. 그러면 온몸은 사물의 작은 움직임에도 활발하게 반응하면서 함께 놀고 싶어지는 것이다. 나무나 풀, 구름과 새는 비밀을 가득 품은 주머니가 되어 손을 넣어 뒤지고 싶어지는 것이다.

다비드 르 브르통에 의하면, 발로 걷는 것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이다. 걸으면 침묵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풍요로운 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귀를 한껏 열면 고요 속에는 얼마나 많은 소리들이 서로 어울리며 놀고 있는가. 이 소리의 축제에서는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조차 소음이 아니라 흥을 돋우는 전류가 되어 산책로를 환히 밝힌다. 이 감각의 향연, 호기심의 축제에서 어찌 시가 나오지 않으랴.

‘나는 손만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니다. 내 발도 항상 한몫을 하고 싶어한다’고 니체도 말하지 않았는가.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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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알았는지

들킨 적 없이 들켜버린 나

집사람이 어느 날 느닷없이

내 얼굴을 정면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네가 잘났다고 쓰는 시라는 것

보나마나 쪼잔한 것들이지

별수 있나 좁쌀영감탱이

순간,

쪼잖지도 않게 돋은 내 혓바닥이 아리다

사실 나에 대해서 거의 모르는 게 없는

집사람이긴 하지만

어떻게 알았을까

장담하건대, 시 근처는 물론이고

글과 담을 쌓고 살면서도

역시 집사람은 내 아픈 곳을

정확하게 건드리는 명수다

벌렁, 뒤로 나자빠지겠다

가끔 뜨끔뜨끔하다가

지금처럼 한 방 맞고 나자빠지는 내가

나의 시다


 - 정대구(1936~ )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시인의 아내에 의하면 ‘손에 흙 안 묻히는 일들은 일도 아니다 거지발싸개다’ ‘밤새워 쓰는 시 나부랭이는 휴지 쪼가리에 불과하다’(‘위대한 김연복 여사’). 시인들은 뜨끔하겠다. 흙도 안 파고 땀도 안 흘리고 손바닥에 굳은살도 안 박이고 상상으로 이 모든 일을 하면서도 힘든 척하며 지금껏 안 들키고 잘 버텨왔는데, 정직하고 건강한 노동 앞에서 그 ‘쪼잔한’ 작업이 다 들통났으니 말이다. 창작의 고통이 꾀병이라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으니 말이다. 쌀 한 톨, 콩 한 쪽도 못 만드는 시를 갖고 어떻게 밥값을 하란 말인가.

김현에 의하면, 문학은 돈도 밥도 못 되므로 쓸모가 없다. 그러나 문학은 그 쓸모없음을 써먹는다. 돈이니 권력이니 하는 쓸모 있는 것들은 그 쓸모 있음의 억압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 돈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만 그걸 얻으려면 거기에 매이게 된다. 문학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억압받지 않고 자유롭다. 그 자유가 억압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인간다운 삶을 꿈꾸게 한다. 시인은 아내의 말에 급소를 한 방 맞고 나자빠졌는데, 그렇게 현실 앞에서 무력하게 패배하는 게 자신의 시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 패배는 불가능을 꿈꾸는 유쾌한 패배이기 때문이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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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흉(凶凶) 같은 한자를 쳐다보는 일,

같아지는 일,

새벽이 되어서 새벽을

걷는 발에 육박할 것이다

 

나무가 바라보는 방향을 알 수 없어

나무는 걷는다

나무와 같아지는 일,

가로수가 많아서 길이 길어진다

 

세계좀비지도나 쳐다보는 일,

좀비는 못 되고 좀비 같아지는 일,

발이 낯설어지고 방향이 없어지고

그럴 때는 몸을 기울여봐

다른 새벽을 향해 엎드려봐

발자국들을 모으는 동안

보도블록에 앉아

 

더 먼 아스팔트를 바라보는 일,

아스팔트와 같아지는 일,

나는 저기를 걸을 것이다

저기, 짐승,

나의 발에서 태어나는 나의

짐승을 견딜 것이다

 - 박진성(1978~ )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나는 내가 볼 수 있는 것만큼 크다! 매번 온 정신을 집중하여 이 문장을 떠올릴 때마다, 모든 천체를 포함한 우주가 새로이 구축되고 있다는 느낌이 점점 더 강하게 든다.’ 페르난도 페소아의 말처럼 새벽은 내가 보는 것만큼 커지고 내가 숨 쉬는 공기만큼 맑아지는 시간이다. “흉흉(凶凶) 같은 한자”를 보면 마음이 구덩이나 밀폐된 공간에 갇혀 답답해지고, 나무를 보면 “나무와 같아지는 일”이 일어나는 시간이다.

새벽은 하루의 첫 공기, 첫 햇빛으로 숨 쉬는 시간이다. 야근하고 들어와 아무것도 쳐다보기 싫은 눈이 되어 잠들거나 알코올에 찌든 폐로 잔 잠이 깨끗해져서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는 시간이다. 새벽은 걸어가는 “나의 발에서 태어나는 나의 짐승”이 가장 선명하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하늘을 보면 드넓은 넓이만 한 하늘이 되고 녹조가 낀 강물을 보면 그대로 온몸이 폐수가 되는 시간이다. 굳이 시를 쓰지 않아도 시가 들어와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몸에 슬어놓고 가는 시간이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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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염소가 푸른 언덕을 끌고 간다 볼 때마다 산의 위치가 바뀌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어제의 산에 가서 염소를 찾는다 염소가 없다 눈과 머리가 여러 개가 되어 펄럭이지만 염소는 보이지 않는다 몇몇의 노인들은 풀밭 위에 잠시 내려와 놀던 구름을 따라간 것이라고 수군거린다

염소가 옮겨다 놓은 산이 심심하게 혼자 논다 빈 의자처럼 눈앞의 바다만 온종일 바라보다 한 뼘 더 허리가 굽어진다 노인이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던 의자에 가끔 담배 연기처럼 왔다 가는 사람이 있다

하얀 플라스틱 의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오물오물 산등성이의 구름을 뜯어 먹고 있다 염소가 입안에서 굴리고 놀던 산을 뱉어놓고 슬그머니 해안 절벽 쪽으로 이동한다

낯선 산에 오른 사람들이 구름에 목줄을 매어 이건 쇠구슬처럼 부서지지 않는 염소라고 즐거워한다

- 홍일표(1958~)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시인은 어린 시절 염소에게 풀을 먹이다가 산에서 잃어버린 적이 있었을까. 매어 놨어야 하는데 깜빡 잊었더니 염소는 더 맛있는 풀을 찾아 계속 돌아다니다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염소 모양의 구름만 떠 있다. 그 한 마리 염소가 거대한 산을 옮기고 그 위치를 바꾼다. 염소의 행방을 찾느라 그의 눈이 산으로 언덕으로 산 넘어 바다로 계속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구름은 풀밭으로 내려와 염소가 되어 놀기도 한다. 염소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풍경이 나타나고 바뀌는 마술이 벌어진다.

사물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놀려대며 얼마나 자주 변신하고 도망가고 숨었다가 느닷없이 나타나는가. 호기심 많은 눈으로 보면 사물은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계속 움직인다. 기분에 따라 제멋대로 변화한다. 매어 놓지 않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염소 같다. 구름에서 염소를 찾는 즐거운 숨바꼭질. 고삐 풀린 상상력. 죽은 노인의 담배 연기에서 살아있는 노인 찾기.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에서 변치 않는 형상과 이데아 찾기. 어떻게 “구름에 목줄을 매어” 놓을 수 있을까.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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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앞에 앉아 편지 봉투 뜯으니

그대 키운 연못 고기들이

갑자기 반기며 뛰노는구나.

물 면에 떠올라 입 뻥긋대며

눈웃음짓는 놈도 있구나.

우리가 방생교(放生橋)로 이름붙인 무지개다리가

거꾸로 비쳐

하늘 속에 둥근 문이 열린 것 같다.

편지 속에서 귀 익은 발자국 소리 들리고

그대 모습 나타난다.

사라지기 전 그 모습 잡으려 손가락 세우고 공중에서 떠는

열 개의 지문(指紋).

 - 황동규(1938~ )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편지에는 펜으로 글을 쓴 사람의 마음과 표정이 글자 하나하나에 비쳐 보이는 것 같다. 행간에는 여러 번 망설인 흔적이 보인다. 마침표에는 다음 문장을 어서 잇고 싶어 하는 펜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힘껏 눌러쓴 글자에는 감정의 활발한 맥박이 보인다. 성급하게 달려오려는 몸과 마음의 뜀박질과 거친 호흡을 달래서 글자에 겨우 집어넣은 힘의 절제가 느껴진다. 어서 글자에서 해방되어 목소리로 표정으로 심장의 박동으로 읽는 이에게 들어오려는 조급한 마음이 느껴진다. 그 글은 읽는 이의 마음에 따라 변화하고 부풀려지면서 생생하게 재생된다. 그것이 사랑이 시킨 일이라면 어찌 그 글씨에서 “그대 키운 연못 고기들이/ 갑자기 반기며 뛰노는” 활기가 느껴지지 않으랴. “귀 익은 발자국 소리 들리고/ 그대 모습”이 어찌 보이지 않으랴.

편지를 다시 봉투에 넣으면 그 모습과 목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사라질 것 같아 떨리지 않으랴. 읽고 또 읽으며 봉투 속으로 사라지려는 사람을 다시 꺼내 붙잡고 싶지 않으랴. 사랑을 전하는 말은, 얇은 종이에 펜 자국이 푹푹 들어가는, 읽을 때마다 그 펜 자국이 감정으로 변역되는, 편지가 잘 어울린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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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혀에 닿는 네 살같이

미세한 굴곡의 허공이 있다

작은 새가 힘겹게

터널을 뚫고 있다

저 순간의 새의 심장을 만지면

가파르고 뜨거운 숨결이

울컥울컥 솟구쳐 나올 것

 

네 살에 닿는 혀가

한 겹 종이같이 구겨지는 건

네 살이 내 혀를 간곡하게 받아들이기 때문

작은 새도 한 겹 종이에 불과하지만

허공이 간곡히 받아들여

새는 추락하지 않는다

 

미추가 없는 간곡함의 결이여

내 혀에 닿는 네 살의 결이여

허공의 살을 어르고 가는 새의 깃털이여

 

티가 들어간 내 눈 속으로

부드럽게 들어와 핥는

어머니의 혀여

 - 김충규(1965~2012)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어떻게 잊겠는가, 어린 눈에 들어온 티를 빼내려고 어머니의 혀가 눈을 핥아주었을 때, 온몸이 전율하던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의 사건을. 그 아들이 어른이 된 후에도 어머니의 혀의 느낌은 기억 속에서 살아나 괴롭고 힘들 때마다 그 고통을 빼내주려고 몸으로 마음으로 들어와 핥아주었을 것이다. 그 혀처럼 이제 시인도 혀로 세상을 만지고 혀로 사랑하는 사람을 느끼고 혀로 이웃의 고단한 삶을 헤아린다.

그리하여 시인의 눈은 혀가 된다. 식별하고 판단하는 날카로운 눈 대신 추위를 데워주고 딱딱한 것을 녹여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혀가 된다. 그리하여 시인의 펜은 혀가 된다. 볼 줄도 들을 줄도 모르고 손가락처럼 수를 셀 줄도 모르고 주먹처럼 칠 줄도 모르고 얼굴처럼 꾸밀 줄도 모르는 혀. 핥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지만 아픔의 세밀한 결과 미세한 굴곡과 여린 떨림은 더욱 잘 느끼는 혀. 그 혀로 쓴 시에는 부드러운 간곡함이 있다. 그 간곡함이 닿는 곳에서 건조한 것은 촉촉해지고 날카로운 것은 물렁물렁해지며 차가운 것은 따뜻해진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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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실 안

한 친구의 지갑이 사라졌다

해진 스웨터를 입고 있던

내가

억울하게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솔직히 얘기하면

용서해주겠다고

없던 일로 해주겠다고

선생님이 날 달래고 있었다

수군거리는

아이들과

문틈으로 보이는

교장선생님의 무서운 얼굴

간신히 울음을 참고 있는데

창밖 나무들이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그게 아니라고

그런 게 아니라고

대신 변명을 해준다

 -양해기(1965~ )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지갑이 없어진 것과 창밖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은 아무 관계가 없지만, 시에서는 긴밀한 관계가 있다. 관계가 있어야만 한다. 내가 도둑이 아니라는 말을 믿어줄 사람이 교실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의심하지 않을 이는, 제 억울한 심정을 들어주고 믿어줄 이는, 말 못하는 나무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간절한 말이 나뭇가지라도 되어서 그게 아니라고 열심히 손을 휘젓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훔친 게 아니라는 마음의 외침은 얼마나 오랫동안 세상을 떠돌며 제 말을 들어주고 믿어줄 귀를 찾아 헤맸을까. 이 아이는 얼마나 오랫동안 내면에 숨어 의심하는 친구들 같고 자백을 강요하는 선생님 같은 세상 사람들을 피해왔을까. 가난해서 도둑 누명을 쓴 이 작은 사건이 한 아이를 시인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눈멀고 힘센 세상이 착하고 힘없는 이를 누를 때, 진실한 말을 들어주는 귀가 세상에 없다고 느껴질 때, 시는 인간에게 소외된 사물에게 다가간다. 거짓을 모르는 순수한 자연과 사물과 터놓고 이야기함으로써 자유를 느끼고 위로를 받고 부조리한 삶을 견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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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새와 함께 깰 때
귀가 있는 듯 없는 듯하기

차를 마실 때
입술이 있는 듯 없는 듯하기

의자에서 자세를 고쳐 앉을 때
등이 있는 듯 없는 듯하기

복도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갈 때
다리가 있는 듯 없는 듯하기

병실로 들어섰을 때
흰 살결이 있는 듯 없는 듯하기

바다 쪽으로 쳐진 커튼을 젖힐 때
두 팔이 있는 듯 없는 듯하기

이제 바다로 갈 때
눈물이 있는 듯 없는 듯하기

 - 신영배(1972~ )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올여름 폭염과 열대야는 유난히 드세고 끈질겼다. 끈적거리는 열기가 숨을 막으니 뭔가 불편하다고 제발 어떻게 좀 해달라고 몸이 계속 신호를 보내왔다. 몸은 물을 잔뜩 먹은 무거운 덩어리 같았고 어디 안 보이는 데다 치워버렸으면 싶은 짐 같았다. 몸 안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다. 불면을 틈타 자질구레한 걱정거리들도 ‘나’에게 매달려 보채고 짜증을 내곤 했다. 몸이 투명해서 있는 듯 없는 듯 살 수는 없을까.

아침에 새소리에 잠이 깰 때 나도 없고 귀도 없고 새소리만 들리는 일. 새소리가 투명한 나를 관통하는 일. 몸이 없는 것 같은, ‘나’가 없어진 것 같은, 이 사소한 방심상태에 머물고 싶다. 아무것도 욕망하는 게 없을 때, 고요한 심심함에 머물러 있을 때, 행복이니 즐거움이니 하는 것조차 필요하지 않을 때, 몸도 ‘나’도 의식되지 않는다. 내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움직임이 있는 곳에 손이 있고 걷는 곳에 발이 있고 말하는 곳에 입이 있을 뿐이다. 아무런 생각이 없는 이 진공상태에서는 귀가 새소리가 되고 새소리는 귀가 된다. 이 투명한 방 안에서 있는 듯 없는 듯한 내 손을 움직여 시를 쓰는 이는 누구인가.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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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바지 차림의 산행길,

풀밭에 다리 쭉 뻗고 쉬는데

지게 작대기만 한 뱀 한 마리가 스스륵

종아리를 스쳐 넘는 게 아닌가

이런 이런, 뱀에게 스치다니,

뱀에게 스치다니!

하늘과 땅이 딱 붙어버린

뱀에게서 확 깨어난 순간

그 시리고 축축한 감촉이 으스스히

온몸을 휘어 감더니

눈앞엔 웬걸 개불알꽃들이

하늘과 땅이 딱 붙어버린 그 순간에

멍빛으로 납작해져선

꽃방석을 깔고 있는 게 아닌가

뱀에게 스치다니,

아직도 시리고 축축한 뱀의 세상이

날 그렇게 통과하다니!

그 순간 내 영혼까지 까마득해 버린 건

뱀의 길이에 새겨진

태초 이래의 긴 시간에 들렸던 탓인가

그러기에 꽃방석 위엔

나비 떼도 잠시 준동하던 것인가

 -고재종(1959~ )

출처: 경향신문DB

어쩌자고 뱀은 기다란 선 하나를 제 몸으로 갖고 있는가. 말도 울음도 없는 날름거림을 혀로 갖고 있는가. 여러 가지로 편리하고 유용한 신체 부위를 다 생략해버리고 잘 구부러지는 호스 같은 몸으로 사는가. 선 하나만 남은 몸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인가. 늘 땅과 맞닿아 있는 냉혈의 몸이 종아리에 스칠 때, 시인의 살갗에는 그 비밀도 얼핏 스쳤나 보다. 개불알꽃도 놀라서 꽃잎을 다 떨어뜨려 꽃방석을 까는 그 “시리고 축축한 감촉”이 전신을 훑고 지나갈 때, 시인은 인간의 시간에서 나와 팔다리 없는 시간, 인간이 알 수 없는 창세기의 시간을 슬쩍 보았나 보다. 그 천기를 누설해주면 좋겠는데, 시인은 한순간에 으스스한 딴 세상으로 갔다가 현실로 막 돌아와서 몹시 얼떨떨한가 보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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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놓친 잠을

머리맡에 불러 본다

어릴 제 실개울의

풀섶에서 놓쳤던 것

그 예쁜 피라미 떼를

잠 여울로 불러 본다.

뼘 남짓 뜨락에는

체로 거른 아침 나절

나무도 지난밤을

뜬눈으로 세웠던가

물든 잎 피라미 떼를

빈 마당에 놀려 놨다.

장독대 닦아 주며

바람 햇살 골라 주며

아내는 물새 다리

잔물결을 밟아 주며

엷은 꿈 베갯머리에

피라미 뗄 보내 준다.


 - 정완영(1919~ )

출처: 경향신문DB

연일 계속되는 열대야에 잠을 설치니 낮잠의 유혹이 반갑다. 바람 시원한 나무 그늘에 매미 소리 들리는 낮잠이면 좋겠다. 이 시조에 나오는 개울물과 피라미 떼와 햇살 좋은 마당을 불러오고 싶다. 낮에 놀던 일이 꿈속에서도 이어지던 어린 시절의 깊은 잠을 불러오고 싶다.

20세기 초에 10시간이던 평균 수면시간이 요즘은 6.5시간으로 줄었다고 한다. 적게 자고 많이 일해야 뒤처지지 않을 테니 앞으로 잠은 더욱 줄어들 것이고 잠을 줄여주는 기술도 더불어 발달할 것이다. 그 부족한 잠마저 악몽의 행패 탓에 품질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쉽게 폭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이상하지 않다.

이 시조를 음미하니 어린 시절 개울가에서 놀던 놀이와 막 잠이 드는 순간의 아늑한 여운이 운율을 타고 와서 절로 눈이 감길 것 같다. 나뭇잎 같은 피라미 떼의 헤엄이 옅은 잠을 자꾸 간질인다.         

활자들이 그대로 개울의 노래가 되고 피라미 떼의 율동이 되는 것 같다. 이 아름다운 잠을 되찾고 싶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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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높은 공이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쉬었고

멀어지면 그만두고는 했지만

너무 높은 공을 던졌다

 

떠올랐다 내려오면서 무거워지기도 했고

날아가는 중에 무게를 잃기도 했지만

그 공은 너무 높았다

 

공을 찾으러 가는 동안 겨울이 시작되었다

포물선이 공중에 얼어붙고 했다

그 공은 너무 느린 공이기도 했다

우리는 말도 없이 집으로 가 버렸다

높은 공은 공중에 얼마나 있었을까

공에 실린 겨울은 계속되었을까

피가 무거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확실해지지 않았다

  -김성대(1972~ )

ⓒ 경향신문 DB

 너무 멀리 던진 공. 어린 시절 어느 날 잃어버린 공. 아직도 겨울 하늘을 날고 있는 공. 몹시 아끼던 공이었기에, 공에 가벼움이라는 날개를 달아 공중에 날려 보내는 즐거움이 너무도 컸기에, 시인은 아직도 공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제 잃어버린 공이 있는 곳은 너무 높은 하늘. 까마득한 기억. 눈 부릅뜨고 찾아도 손이 닿을 수 없는 내밀한 상실과 욕망의 자리. 그러므로 그 공은 여전히 아름다운 포물선의 궤적을 그리며 날고 있어야 한다. 풀숲 어딘가에 떨어져 사라지는 순간을 영원히 지연시키며, 계속 공중에 떠 있어야 한다.

잃어버린 공을 포기하고 더 좋은 공을 사서 즐겁게 논다 해도 어린 시절의 상실감을 채울 수는 없으리라. 그 공에 깃든 간절함과 즐거움, 그 공과 하나가 되었던 마음까지 잃어버렸으니까. 삶이 힘들고 현실이 무거울수록 그 상실감은 더욱 커져서 화자의 내면에서 더 힘차고 가볍게 날고 있을 것이다. 상쾌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고 싶은 본능, 가벼움의 본능을 자극하고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공보다 아름답게 나는 공은 이제 기억 속에만 있고 욕망 속에서만 날고 있어서 결코 손에 쥘 수 없다. 오직 언어만이, 시만이, 그 공에 닿을 듯 말 듯 감질나게 다가갈 수 있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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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치고 공기가 가벼워져. 내려오던 물들이 방향을 바꿔 하늘로 향하네.
땅은 무덤처럼 물을 머금고 있다가, 조용히 뚜껑을 열어.
산에서 수증기가 피어올라. 보이지 않는 굴뚝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것을 하늘로 올려 보내는
사제라도 살고 있는 것처럼.
개울에서는 안개가, 오븐 속 빵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어.
물방울들이 몸을 던져. 지상에서 공중으로. 지구 중심의 반대 방향으로. 우주를 향해.
시작되었어. 떠오르는 물방울들의 파티. 붕붕거리는 물방울들의 허밍.
바람은 물방울들을 실어 나르며 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려.
바람이 내 피부에 닿으면 물방울들의 동그란 노래가 들려.
비가 그치고 공기가 가벼워져. 물방울들은 속속 공기 속으로 귀가하네.
나는 이름과 사람들의 발과 발의 티눈에 대해 적다가, 고개를 들고 창문을 연다. 영혼도 뒤도 없이,
물방울 같은 한 문장을 공중에 쓴다. - 이성미(1967~ )

ⓒ 경향신문

흠뻑 비를 맞아 물이 가득 찬 나무와 땅과 산과 개울이, 비 그치자마자, 일제히 공중으로 하늘로 수증기와 안개를 내뿜는다. 무거움을 가볍게 공중에 띄워올리는 물방울들의 운동이 상쾌하다. 숲에서 산에서 거리에서 피어나는 물방울들의 상쾌한 반동에서 자연의 맑은 호흡, 지구의 장엄한 호흡이 느껴진다. 우주 허파의 들숨과 날숨 앞에서 내 몸의 모든 숨구멍들도 즐겁게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 같다. 내 숨이 물방울들과 함께 광활한 허공으로 스며들고 하늘의 가장 신선한 공기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화선지 속으로 스며드는 수묵의 여백처럼 여름산도 한껏 가벼워진다. 물방울들의 율동과 음악으로, 물방울들이 하늘에다 쓰는 이 청정한 문장으로, 탁한 눈을, 컴컴한 두개골 속을, 마음이 수시로 뒤집어 놓는 몸을 씻는다.

김기택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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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살을 만지는 느낌

따뜻한 살갗 안쪽에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피가 흐르는 것 같다 곧 잠에서 깨어날 것 같다

순간의 촉감으로 사라진 시간을 복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두부는 식어간다

이미 여러번 죽음을 경험한 것처럼 차분하게

차가워지는 가슴에 얹었던 손으로, 이미 견고해진 몸을 붙잡고 흔들던 손으로

두부를 만진다

지금은 없는 시간의 마지막을, 전해지지 않는 온기를 만져보는 것이다

점점 사이가 멀어진다

피가 식어가고 숨소리가 고요해지는 느낌, 영혼의 머뭇거림에 손을 얹은 느낌

이것은 지독한 감각, 다시 위독의 시간

나는 만지고 있다

사라진 시간의 눈꺼풀을 쓸어내리고 있다 - 유병록(1982~ )

ⓒ 경향신문DB

두부를 먹으면 엄마 젖을 빨던 기억이 입에서 되살아나는 것 같다. 희고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감촉이 이빨의 날카로움을 무력하게 만들며 온몸으로 퍼진다.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눈은 그 촉감을 먹는다. 손바닥은 그동안 손이 쥐었던 온갖 부드럽고 탄력 있는 것들의 기억을 불러온다. 신경망은 그 말랑말랑한 온기를 전신에 퍼뜨린다. 그 순간에 몸속에 깊이 감춰진 어느 한 곳은 마냥 어려진다.

그러므로 이 시는 우리 몸이 기억하고 있는 연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부 같은 살에, 그 예민한 감각에, 닿을 듯 말 듯 사라져가는 모든 촉촉한 탄력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촉감의 기억으로 차갑고 거칠고 건조하고 딱딱한 현실을 견디는 “지독한 감각, 위독의 시간”의 이야기이다. 이제 그 내밀한 욕망은 우리 몸의 알 수 없는 장소에 깊이 숨어서 두부를 부른다.

김기택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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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낡았어요.
피도 살도 다 말랐어요.

아무 야망도 없이
흐느끼는 사람아

쳐라, 더 세게
쳐라,
그대를 생각하며 낮게 울리라.

 -장석주(1955~ )

경향신문DB

한 번만 쳐도 북 가죽은 백 번 천 번을 떨며 파동을 허공에 퍼뜨린다. 가죽도 살이라 북소리는 목소리를 닮았고 심장 소리를 닮았고 울음소리를 닮았다. 그래서 북소리는 귀에 닿기 전에 먼저 살과 가죽과 심장으로 들어와서 마음껏 떨리면서 울음이나 흥을 자극하는 것 같다.

이 시를 읽으니, 울음은 살의 떨림이요 가죽의 떨림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처음 알게 된 사실인 양 새삼스럽게 실감난다. 소가죽으로 만든 북에서는 소 울음소리가 난다. 다 마른 가죽이 깨어나 생전의 소가 되어 우는 것만 같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가죽은 미리 준비한 듯 제 안의 수많은 진동을 꺼낸다. 가죽과 살로 된 몸들은 무엇이 조금만 건드려주기만 하면 울음이 나오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떨고 싶어서, 몸 안의 참을 수 없는 진동을 밖으로 내보내고 싶어서, 우리 몸은 무엇이 쳐주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울음을 참는 것은 생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몸 안에서 나올 곳을 찾아 헤매는 울음에게 예의가 아니다. 살아서 참았던 모든 울음은 북이라도 되어 마저 울고 싶을 것이니 “쳐라, 더 세게/ 쳐라,/ 그대를 생각하며 낮게 울리라.”

김기택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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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도 섬마을에서 문학교실을 하는데, 갯벌에서 박하지 잡다 오고 산밭에서 도라지 캐다 오고 당산에서 벌초하다 오고 연필 대신 약통 메고 긴 지팡이 짚고 왔습니다

저 고개 너머, 자월도 살던 대님이라고 있어

키가 작달막하고 얼굴 모냥 갸름한 게 여자는 여자여

내가 죽으면 어느 누가 우나

산신령 까마구 드시게 울지요

일본 말루다 그렇게 슬픈 노랠 했어

첩으로 살다 아이 하나 낳구는

덕적도로 시집가 죽었어

경향신문DB

공중에 펼쳐진 넓디넓은 종이에 한 자 한 자 새겨지는 까막눈이 시 속으로 대님이가 까악까악 날아왔습니다 이 땅에 시 안 쓰는 시인 참 많습니다 명녀 아지 은심이 숙희 승분이 경애 춘자 상월이 이쁜이, 시보다 더 시 같은 생애 지천입니다 - 김해자(1961~ )

문학교실로 수십 권의 소설이 담긴 인생이 걸어온다. 절절한 시 수백 편이 담긴 가슴이 온다. 이렇게 뛰어난 작품이 있는데 왜 문학공부를 하러 온단 말인가. 그 소설과 시는 글이 되어 몸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말들이기 때문이다. 두근거리는 심장과 끓는 내면과 눈물과 웃음 안에 갇혀 살도록 운명 지어진 글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의도 섬마을 까막눈들이야말로 글 쓸 줄 모르는 대시인들이요, 씌어지지 않은 그들의 작품이야말로 세상의 언어를 입지 못한 명시 아닌가.

오규원 시인은 살아 있는 시를 읽기 위해 책상과 시집과 작시법을 버리고 ‘버스 정거장’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물었다. ‘노점의 빈 의자를 그냥/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노점을 지키는 저 여자를/ 버스를 타려고 뛰는 저 남자의/ 엉덩이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글로 쓴 시보다 언어가 되기 이전의 사물이나 존재가 삶과 인간과 세상을 훨씬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시보다 더 시 같은 생애 지천”이니, 표정과 주름과 말 속에 숨어 있는 그 작품에 귀 기울여보자. 말이 되지 못해서 오히려 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책 밖의 세상을 읽어보자.

김기택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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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동 골목, 노루가 지나갔다 눈썹 밑 허공과 마주친 순간 엎어졌다

발목을 삐고 손에 생채기가 났다 고무줄 퉁긴 듯 돋는 구름의 보풀들

잊었던 달개비꽃밥이 떠올랐다 돌멩이로 찧던 다섯 살의 소꿉밥, 문득

숨었던 이름들 파다닥 날개 턴다 눈밭에 찔레열매 가득 붉었다, 와락

천둥처럼 달려드는 진흙 냄새, 갈색털 덮힌 슬픔이 물끄러미 돌아본다

추억은 초식동물로 살아 있다

그런데 저 앞을 지나간 건 정말 노루였을까 - 김수우(1959~ )



동네 골목에서 갑자기 마주친 노루의 눈이 얼마나 깊고 맑았으면 “눈썹 밑 허공”이라고 했을까. 그 허공이 얼마나 푸르고 넓었으면 가던 길은 안 보이고 눈앞에서 “구름의 보풀들”이 일어났을까. 눈앞이 온통 허공이니 발을 헛디디고 넘어져 삐고 깨질 만도 하겠다.

그리하여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도 잊어버리고, 방금 무슨 일을 하려고 했는지도 잊어버리고, 노루가 뛰노는 푸른 들과 산으로, “돌멩이로 찧던 다섯 살의 소꿉밥”이 있던 어린 시절로 무작정 뛰어들고 싶기도 하겠다. 기억 속에 깊이 숨어 있던 이름들 파다닥 날개 털며 깨어나기도 하겠다.

남포동 골목길에 잘못 들어선 노루는 다른 데에 한눈팔 여유를 주지 않는 일상에 무진장한 낯선 공기를 풀어놓는다. 그래서 먹고사느라 바쁜 이 현실 말고 다른 삶, 다른 현실이 세상에 또 있음을 일깨워준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늘 똑 같은 생각과 항상 만나는 사람 속에 불쑥 끼어들어 거기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세상을 펼쳐놓는다. 그러니 방금 마주쳤다가 달아난 것은 노루가 아니라 내가 잃어버린 또 다른 나, 어린 시절과 기억과 꿈속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나인지 모른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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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옆에서는 한 가지 소리밖에 아무 소리도 없었는데

 

그것은 내 긴 낫이 땅에 속삭이는 소리였다.

 

무얼 속삭였냐고? 나는 잘 모르겠다.

 

아마 햇볕이 뜨겁다거나

 

고요하다는 얘기였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소리 내어 말하지 않고 속삭였겠지.

 

한가해서 꿈을 꾸고 있었던 것도

 

요정한테 홀려 있었던 것도 아니다.

 

실은 어쩔 수 없는 애착에 못 이겨

 

잎끝이 연한 꽃들(파란 난초)도 없지 않은

 

풀 무성한 습지를 손질하면서

 

빛나는 초록 뱀을 놀라게 하는 것이다.

 

실은 노동이 알고 있는 제일 기분 좋은 꿈을

 

내 긴 낫은 속삭이면서 풀을 베어놓고 있었다.

 

 

-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 정현종 역

 

 

 

풀과 나무가 하는 일, 구름과 공기가 하는 일, 물과 계곡이 하는 일, 시인은 그 무위의 놀이에 끼고 싶었던 게 아닐까. 누가 죽거나 말거나 태어나거나 말거나 도대체가 슬픔이나 괴로움, 의무나 책임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는 곳에 오로지 근육과 땀과 귀만 가지고 참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낫이 땅에게 속삭이는 소리를 엿듣고 싶어 발자국 소리조차 참아가면서 습지에 들어간 게 아닐까. 그럴 때 시는 어떤 세계를 발견하거나 심오한 의미 같은 건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한다. 단지 인간이 없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인간에게는 하찮지만 자연에는 무진장한, 신비를 살짝 엿볼 뿐이다.

 

그러니 이 시는 생각하지 말고 시인이 눈치채지 못하게 엿볼 것. 풀 베는 소리가 목덜미 어디를 간질이게 놔둘 것. 풀이 닿을 때마다 차가워지는 공기의 느낌, 축 늘어졌다가 갑자기 깨어나 빳빳해지는 더위, 인공적인 향기에 익숙해진 코를 깨우는 비릿한 풀 냄새를 음미할 것. 핸드폰 영상을 본 일도 벨소리를 들어본 일도 없는 심심한 시간 속으로, 귀만 살아있고 온몸은 없는 것 같은 고요한 시간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볼 것. 그리고 오래된 골목길 허름한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을 때, 저절로 잠이 올 것 같은 이상한 평화가 비롯된 곳이 바로 낫이 땅에 속삭이는 소리였음을 살짝 떠올려볼 것.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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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밥을 먹어도 외롭지 않다. 식탐 때문에

혼자 밤늦게 산책을 해도 두렵지 않다.

미인이 쓰러져 뒹구는 술집 근처에 살기 때문에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

말할 사람도 없고

애써 기억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자세히보기 CLICK

친구를 만나도 심심하다. 친구는

사라진 일자리에 빠져 있고 나는

옆 테이블에 앉은 미인의 다리가 궁금해서

아내와 통화할 때도 할 말이 없다. 애인이라도

생겼다면 거짓말이라도 정성스럽게 할 텐데.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신기한 것이 하나도 없다.

사진을 몇 장 찍으며 나를 속인다.

혼자 밥을 먹으면 눈물이 난다. 식욕이 없어서

혼자 산책을 하면 외롭다. 상점이 모두 문을 닫아서

혼자 영화를 보면 구석에 가서 울고 싶다.

등이 갈라지면서 또 하나의 내가 기어나와

갈라진 등을 두드리며 나를 위로해줄 것 같아서

혼자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 집을 지나친다.

더 오랫동안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안주철(1975~ )




맛있는 걸 먹어도 즐겁지 않고 아름다운 곳에 가도 행복하지 않다면, 작은 일에도 설레는 마음의 운동이 없다면, 떨리거나 날아갈 것 같은 감정의 탄력이 줄어들었다면, 나는 웃고 있는 것 같은데 어디 아프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노인이 되었다는 신호가 아닐까. 아직 젊은 이 시의 화자도 제 마음에 벌써 노인이 와 살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말을 들어먹지 않는 몸과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끔찍해지지 않고 치욕스러워지지 않는지 나는 아직 잘 모른다. 죽음도 자꾸 아는 체해올 텐데 그놈과 친해지는 노하우도 없다. 늙음이 감기 걸린 것 같고 죽음이 주사 맞듯이 잠깐 따끔한 것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혼자 밥 먹기, 할 일 없기, 아무 때나 아프기, 기저귀 차기,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만나주지도 않는 걸 즐겁게 받아들이기. 젊은이는 모르는 이 새로운 몸, 새로운 말, 새로운 마음, 새로운 고독을 외국어 공부하듯 익혀야지.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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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아파트까지 흘러온 여치 한 마리

울음이 언어인데

너무 높은음자리에 울음 구멍이 시리다

몇 층까지 들릴까 내년에는

더 크게 울 수 있을까 궁리 끝에

산도 넘고 바다도 건널 수 있는

메아리를 낳으려고

산봉우리 몇 채쯤 먹여 살릴 밥을

짓기 시작했다

앞산은 뒷산을 뒷산은 옆 산을

옆 산은 또 다른 산을

메아리 밥으로 먹여 살리다 보면

그릇 없이도

가닿고 싶은 높이가 주시는 밥

받아안을 수 있을까니 - 박라연(1951~)

밥 먹이는 일로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 시인. 배고픈 얼굴만 보면 밥을 짓고 싶어 마음이 바빠지는 시인. 여치의 작고 연약한 울음소리를 듣더니 퍼뜩 한 그릇 고봉밥을 떠올린다. 그러나 쌀로 지은 밥이 아무리 따뜻하고 기름져도 반찬이 아무리 맛깔스러워도 여치에게는 그림의 떡. 그렇다고 저 야윈 울음을 굶길 수는 없는 일.

그리하여 밥을 지어주지 못하면 큰일을 저지른 것같이 죄스럽고 안타까운 모성은, 여치가 제 울음소리로, 아파트 서너 층도 넘지 못하는 작은 울음소리로, 밥을 짓는 상상을 한다. 여치의 작은 소리가 “산도 넘고 바다도 건널 수 있는/ 메아리”로 “산봉우리 몇 채쯤 먹여 살릴 밥을” 짓는 상상을 한다. 그 모성이 정성과 상상을 다해 여치 울음으로 지은 밥시, 마음과 생각과 세포까지도 배부르게 할 밥시, 메아리처럼 자라나서 산과 바다까지도 먹이는 엄청난 밥시, 얼마나 따뜻하고 풍성하고 맛있을까.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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