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경향시선'에 해당되는 글 220건

  1. 2016.06.13 ‘풀 베기’
  2. 2016.06.06 ‘노인이 되는 방법’
  3. 2016.05.30 ‘품’
  4. 2016.05.22 ‘혼자’
  5. 2016.05.15 산소카페
  6. 2016.05.08 ‘미스터 엄마’
  7. 2016.05.01 [경향시선]‘햇빛은 어딘가 통과하는 게 아름답다’
  8. 2016.04.24 장편(掌篇)·1
  9. 2016.04.17 ‘목울대’
  10. 2016.04.10 묶음
  11. 2016.04.03 봄날
  12. 2016.03.27 뒤꿈치
  13. 2016.03.20 자칭 詩
  14. 2016.03.13 릴레이
  15. 2016.03.06 달래 4대
  16. 2016.02.28 ‘바람은 개를 기르지 않는다’
  17. 2016.02.21 ‘물방울’
  18. 2016.02.14 설중행(雪中行)
  19. 2016.01.31 [경향시선]‘울화’
  20. 2016.01.24 겨울나기

숲 옆에서는 한 가지 소리밖에 아무 소리도 없었는데

 

그것은 내 긴 낫이 땅에 속삭이는 소리였다.

 

무얼 속삭였냐고? 나는 잘 모르겠다.

 

아마 햇볕이 뜨겁다거나

 

고요하다는 얘기였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소리 내어 말하지 않고 속삭였겠지.

 

한가해서 꿈을 꾸고 있었던 것도

 

요정한테 홀려 있었던 것도 아니다.

 

실은 어쩔 수 없는 애착에 못 이겨

 

잎끝이 연한 꽃들(파란 난초)도 없지 않은

 

풀 무성한 습지를 손질하면서

 

빛나는 초록 뱀을 놀라게 하는 것이다.

 

실은 노동이 알고 있는 제일 기분 좋은 꿈을

 

내 긴 낫은 속삭이면서 풀을 베어놓고 있었다.

 

 

-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 정현종 역

 

 

 

풀과 나무가 하는 일, 구름과 공기가 하는 일, 물과 계곡이 하는 일, 시인은 그 무위의 놀이에 끼고 싶었던 게 아닐까. 누가 죽거나 말거나 태어나거나 말거나 도대체가 슬픔이나 괴로움, 의무나 책임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는 곳에 오로지 근육과 땀과 귀만 가지고 참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낫이 땅에게 속삭이는 소리를 엿듣고 싶어 발자국 소리조차 참아가면서 습지에 들어간 게 아닐까. 그럴 때 시는 어떤 세계를 발견하거나 심오한 의미 같은 건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한다. 단지 인간이 없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인간에게는 하찮지만 자연에는 무진장한, 신비를 살짝 엿볼 뿐이다.

 

그러니 이 시는 생각하지 말고 시인이 눈치채지 못하게 엿볼 것. 풀 베는 소리가 목덜미 어디를 간질이게 놔둘 것. 풀이 닿을 때마다 차가워지는 공기의 느낌, 축 늘어졌다가 갑자기 깨어나 빳빳해지는 더위, 인공적인 향기에 익숙해진 코를 깨우는 비릿한 풀 냄새를 음미할 것. 핸드폰 영상을 본 일도 벨소리를 들어본 일도 없는 심심한 시간 속으로, 귀만 살아있고 온몸은 없는 것 같은 고요한 시간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볼 것. 그리고 오래된 골목길 허름한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을 때, 저절로 잠이 올 것 같은 이상한 평화가 비롯된 곳이 바로 낫이 땅에 속삭이는 소리였음을 살짝 떠올려볼 것.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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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밥을 먹어도 외롭지 않다. 식탐 때문에

혼자 밤늦게 산책을 해도 두렵지 않다.

미인이 쓰러져 뒹구는 술집 근처에 살기 때문에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

말할 사람도 없고

애써 기억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자세히보기 CLICK

친구를 만나도 심심하다. 친구는

사라진 일자리에 빠져 있고 나는

옆 테이블에 앉은 미인의 다리가 궁금해서

아내와 통화할 때도 할 말이 없다. 애인이라도

생겼다면 거짓말이라도 정성스럽게 할 텐데.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신기한 것이 하나도 없다.

사진을 몇 장 찍으며 나를 속인다.

혼자 밥을 먹으면 눈물이 난다. 식욕이 없어서

혼자 산책을 하면 외롭다. 상점이 모두 문을 닫아서

혼자 영화를 보면 구석에 가서 울고 싶다.

등이 갈라지면서 또 하나의 내가 기어나와

갈라진 등을 두드리며 나를 위로해줄 것 같아서

혼자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 집을 지나친다.

더 오랫동안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안주철(1975~ )




맛있는 걸 먹어도 즐겁지 않고 아름다운 곳에 가도 행복하지 않다면, 작은 일에도 설레는 마음의 운동이 없다면, 떨리거나 날아갈 것 같은 감정의 탄력이 줄어들었다면, 나는 웃고 있는 것 같은데 어디 아프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노인이 되었다는 신호가 아닐까. 아직 젊은 이 시의 화자도 제 마음에 벌써 노인이 와 살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말을 들어먹지 않는 몸과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끔찍해지지 않고 치욕스러워지지 않는지 나는 아직 잘 모른다. 죽음도 자꾸 아는 체해올 텐데 그놈과 친해지는 노하우도 없다. 늙음이 감기 걸린 것 같고 죽음이 주사 맞듯이 잠깐 따끔한 것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혼자 밥 먹기, 할 일 없기, 아무 때나 아프기, 기저귀 차기,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만나주지도 않는 걸 즐겁게 받아들이기. 젊은이는 모르는 이 새로운 몸, 새로운 말, 새로운 마음, 새로운 고독을 외국어 공부하듯 익혀야지.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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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아파트까지 흘러온 여치 한 마리

울음이 언어인데

너무 높은음자리에 울음 구멍이 시리다

몇 층까지 들릴까 내년에는

더 크게 울 수 있을까 궁리 끝에

산도 넘고 바다도 건널 수 있는

메아리를 낳으려고

산봉우리 몇 채쯤 먹여 살릴 밥을

짓기 시작했다

앞산은 뒷산을 뒷산은 옆 산을

옆 산은 또 다른 산을

메아리 밥으로 먹여 살리다 보면

그릇 없이도

가닿고 싶은 높이가 주시는 밥

받아안을 수 있을까니 - 박라연(1951~)

밥 먹이는 일로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 시인. 배고픈 얼굴만 보면 밥을 짓고 싶어 마음이 바빠지는 시인. 여치의 작고 연약한 울음소리를 듣더니 퍼뜩 한 그릇 고봉밥을 떠올린다. 그러나 쌀로 지은 밥이 아무리 따뜻하고 기름져도 반찬이 아무리 맛깔스러워도 여치에게는 그림의 떡. 그렇다고 저 야윈 울음을 굶길 수는 없는 일.

그리하여 밥을 지어주지 못하면 큰일을 저지른 것같이 죄스럽고 안타까운 모성은, 여치가 제 울음소리로, 아파트 서너 층도 넘지 못하는 작은 울음소리로, 밥을 짓는 상상을 한다. 여치의 작은 소리가 “산도 넘고 바다도 건널 수 있는/ 메아리”로 “산봉우리 몇 채쯤 먹여 살릴 밥을” 짓는 상상을 한다. 그 모성이 정성과 상상을 다해 여치 울음으로 지은 밥시, 마음과 생각과 세포까지도 배부르게 할 밥시, 메아리처럼 자라나서 산과 바다까지도 먹이는 엄청난 밥시, 얼마나 따뜻하고 풍성하고 맛있을까.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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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스며온 너라는 어둠

너에게 전염되어간 나라는 불치병

조금씩 일찍 떠나버리는 버스를 바라보며

혼자는 혼자를 만나 드디어 혼자가 된다

- 송태웅(1961~ )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다 보면 혼자 있고 싶어진다. 그럴 때 혼자는 고요하고 평화로우며 달콤하기까지 하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낄 때, 몸과 마음이 견디기 힘든 일을 경험할 때 몸속에서 몰래 자라온 혼자는 엄청난 위력으로 제 본성을 드러낸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고, 말 붙여올 수 없고, 도움의 손길을 뻗칠 수 없는 무서운 혼자의 실체가 드러난다. 눈물로도, 애원으로도, 기도로도 그 혼자의 막막함과 뼈저림과 진저리는 막을 수 없다. 네가 가까이 있어도, 너와 체온을 나누고 있어도 혼자는 너와 나 사이에 기어코 끼어들고 나를 가득 채운다.

혼자와 혼자가 만나 마음을 나누고 연민과 슬픔을 나누면 혼자가 아닌 것 같지만 결국 혼자가 된다. 서로 떨어지자마자, 불행이 둘 사이를 갈라놓자마자 그동안 감춰져 있던 혼자가 뼈저림과 차가움과 후들거림과 진저리치는 외로움을 동반하고 들이닥친다.

그 혼자는 모든 웃음과 다정한 표정과 따뜻한 촉감이 사실은 울음이었고, 차가움이었고, 두려움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너와 내가 나눈 온갖 말과 웃음과 위로가 혼자라는 것을 막기 위한 헛되고 무모한 몸부림이었음을 들통 나게 한다. 나를 향한 너의 사랑은 “어둠”이었으며 너를 향한 나의 연민과 애틋함은 “불치병”이었음을 인정하게 한다.

여러 굴곡과 파랑과 벼랑을 지나와서, 마음고생과 애태움과 노심초사를 지나와서 그 흔한 혼자는 진짜 혼자가 된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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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모두 북쪽의 차가운 숲을 생각하네

강남역 뉴욕제과 2층

순도 92퍼센트의 산소를 주문하고

코에 튜브를 끼운다

미국에서 직수입한 산소는

야생 커피 카페인보다 자극적이다

그곳에서 나는 보철을 낀 소녀처럼

말을 아낄 수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시계를 보는 사람들

밀려오는 자동차들

그곳에서는 누구나 코에 산소 튜브를 낀 채

차를 마신다

수면 위로 입을 내밀고 떠오르는

미지근한 어항 속 물고기의 심정으로

중환자실 폐암 환자의 절박한 눈빛은 아니어도

그곳에서는 누구나 말을 아낄 수 있다

빵꾸 난 대기

오존 주의보

지하도에서 빠져나온 무리들이

어디론가 구름처럼 밀려가는 오후

사막 낙타들을 홀리는

오아시스의 북소리

이 카페에서 저 카페로 이동하는

도시 유목민들

신선한 이온 산소 바람 한 줄기

소파에 늘어지는 산소 취객들

- 문혜진(1976~ )

퇴근하고 산소카페에서 산소 한 모금 어때? 휴대용 산소 다 떨어졌는데 오늘 어떻게 숨 쉬지? 지금은 산소마스크 착용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어제는 미세먼지 사망자 수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앞질렀대. 우리 카페에서는 100% 북극 산소만 사용합니다. 언젠가 이런 풍경을 보게 될지 모른다.

인간이 아무리 개발하고 훼손해도 자연은 말을 하지 않으며 비명을 지르지 않으며 저항하지 않는다. 아무리 겁탈하고 유린해도 오랜 세월 지켜온 제 순결한 몸을 묵묵히 내어줄 뿐이다. 아름답고 청정한 몸이 병든 흉물과 치명적인 독성과 난폭한 재해가 되도록 고분고분하게 파괴되어줄 뿐이다. 그 흉측한 모습으로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생겼는지 거울처럼 비춰줄 뿐이다. 자연의 순한 침묵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우리는 뼈아프게 경험해가고 있다.


김기택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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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이렇게 망가졌을까,

이마엔 정맥이 물컹물컹 돋아나고

손등엔 모래사막을 거느린 알타이 산맥 같은 힘줄이 불끈불끈,

엄마는 왜 저렇게 험악하고 향기가 없나

흰 눈을 마구 짓밟으며

김장독을 들고 땅구덩이에 묻으러 가다

막무가내 엎어지며

진흙 속의 햇빛을 쾅쾅 밟아 급기야

때려눕히는 그녀,

난자의 아름다운 우아함이라고는

전혀 사라진……

엄마라는……

콩, 옥수수, 치즈 듬뿍, 고운 두부

그라탕 접시를 밀쳐 내고

감자탕 속에 벌겋게 물든 돼지뼈를

발라먹고 있는,

똥 묻은 환자 기저귀를 빨랫방망이로

진탕 두들겨

사방으로 똥이 튀어 날아가게 만드는,

엄마라는 이름의

미스터……

종군기자와도 같은 하루 - 김승희(1952~ )


근육을 덜 사용하게 해주는 기술 덕분에 삽과 곡괭이를 들던 팔은 이제 펜을 들거나 마우스를 쥐고 있다. 인공지능처럼 뇌를 덜 쓰게 해주는 기술마저 일상화되면 몸 쓸 일이 없어진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나. 첨단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려 해도 아이 낳는 일을 대신해주지는 못한다. 이빨로 씹어야 하는 음식과 배설 기관을 통해서 나와야 하는 똥오줌은 고대나 현대나 달라진 게 없다. 엄마가 하는 일은 고대인들이 해오던 원시적인 방식 그대로 몸으로 해야만 한다. 그 일에는 거친 손발과 억센 악다구니와 남성적인 완력이 필요하다.

‘미스터 엄마’라는 모순적인 이름처럼 엄마는 성별을 초월한 성이다. 엄마는 여성이라는 연약한 이름에서 벗어나 남성적인 힘으로 무장할 것을 요구받는다. 처녀보다 예쁘고 늘씬한 엄마, 엄마 같지 않은 엄마, 미스터 엄마가 되지 않으려는 엄마도 있기는 하다. 엄마의 삶이 여성을 우악스럽게 남성으로 바꾸려 하지만 엄마도 여자가 되고 싶다. 그러나 문명과 기술이 인간을 다 차지한다 해도 엄마에게는 문명화될 수 없는 원시인이 남아 있다. 현대와 문명과 여성으로부터 소외된 이름이기에 엄마는 여자보다 훨씬 시적이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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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센티미터 두께의 손가락을 통과하는

햇빛의 혼잣말을 알아듣는다

불투명한 분홍 창이

내 손 일부이기 때문이다

국경선이 있는 손바닥은

역광을 움켜쥐었다만

실핏줄이 있는 종려 이파리는 어찌

얼비치는 걸까

구석구석 드러난 명암이기에

손가락은 눈이 없어도 표정이 있지

햇빛이 고인 손톱마다

환해서 비릿한 슬픔

손바닥의 넓이를 곰곰이 따지자면

넝쿨식물이 자랄 수 없을까

이토록 섬세한 공소(空所)의 햇빛이 키우고,

분홍 스테인드글라스가 가꾸는,

인동초 지문이

손가락뼈의 고딕을 따라간다

- 송재학(1955~ )

손가락을 투과하는 햇빛을 보며, 투명한 손가락에서 자라는 나뭇잎 잎맥을 읽으며, 시인은 투명한 몸을 꿈꾸는 모양이다. 엑스레이를 찍듯이, MRI 영상을 찍듯이, “인동초 지문”과 “손가락뼈의 고딕”이 보이는 몸을 완상하는 모양이다. 햇빛을 비추면 “불투명한 분홍 창”이 되는 몸을 잠시 동물적인 육체에서 해방시켜 보려나 보다. 고작 칠팔십 년 사는 몸에서 고생대, 원생대의 지층을 탐사하려나 보다. 식물에서 동물로 갈라져 나온 진화의 시간을 감상하려나 보다. 실핏줄을 잎맥으로 바꾸어 보고 뼈를 뿌리와 가지로 바꾸어 보려나 보다. 그래서 내 몸에서 피어날 꽃과 열매가 어떤 모양일지 상상하려나 보다.

햇살에 온몸을 비벼보고 싶은 5월이다. 들숨을 크게 쉬면 하늘이 통째로 몸으로 들어올 것 같은 5월이다. 이 푸른 5월에 할 일. 생각과 욕심과 스마트폰 정보가 가득한 몸에 햇빛과 바람을 넣어 주기. 햇빛이 투과시켜 몸을 한껏 투명하게 하기. 내 몸에서 넝쿨식물의 줄기처럼 뻗어가는 식물성 뼈와 핏줄과 신경을 느끼기. 털구멍마다 가지와 뿌리가 돋아나는 식물성 육체 되기. 그래서 육식과 잡식으로 생긴 동물성 비린내 대신 풋내와 향기가 나게 하기.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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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작아작 크고 작은 두 마리의 염소가 캬베스를 먹고 있다

똑똑 걸음과 울음소리가 더 재미있다

인파 속으로 열심히 따라가고 있다

나 같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녀석들을 죽이지 않겠다

- 김종삼(1921~1984)



한나 아렌트는 2차대전 때 수백만명의 유태인을 학살 현장으로 보낸 나치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면서, 그 엄청난 범죄의 원인이 생각하고 느낄 줄을 모르는 데 있다고 진단했다.

무지하다는 것은 아는 것이 적다는 뜻보다 생각하는 능력이나 느끼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을 더 많이 갖고 있다. 그것은 타인의 느낌이나 생각에 공감하는 능력, 마음 깊은 곳에서 아픔이나 슬픔,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전문 분야에서 많은 지식을 갖고 있거나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이런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무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임마누엘 레비나스에 의하면 사람의 얼굴에는 ‘상처받을 가능성, 무저항성’에서 오는 ‘도덕적 호소력’이 있다고 한다. 얼굴은 괴롭히지 말고 살생하지 말라는, 어떠한 말보다도 준엄한, 도덕적 명령인 것이다. 그것을 읽지 못하는 무지가 폭력이나 범죄를 낳는 것이다.

캬베스를 아작아작 씹는 귀엽고 순진무구한 염소의 표정, 재미있는 “똑똑 걸음과 울음소리”는 시인의 마음에서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지워버린다. 팔리기 위해 시장으로 가는 것으로 보이는 이 염소의 얼굴과 동작은 저절로 시인의 몸속 깊은 곳에서 기쁨과 슬픔과 사랑이 우러나오게 하며, “나 같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녀석들을 죽이지 않겠다”는 뜨겁고 단호한 결심을 불러온다. 온몸을 울리면서 나온 이 단순하고 소박한 말이야말로 큰 지혜가 아닌가.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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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목울대라는 말이 참 좋다.

목울대 목울대 하고 부르면

내 몸 어디에선가 슬픈 나무

냄새가 난다.

여자에겐 없는 이 나무는

후두를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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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코 눈물샘과 연결되어 있다.

설움에 복받쳐 우는 여인들의 양 어깨가

위아래로 들썩이는 까닭은 바로

슬픔의 원천인 이 나무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를 나무라고 하는 까닭은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들의 울림통이 나무이기 때문이다.

이 나무가 물렁하지 않다면

누구도 이렇게 큰

울음소리를 내지는 못할 것이다.

내장 깊은 곳에서 더 이상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복받쳐 올라 목울대를 칠 때

비로소 울음이 완성된다.

코가 시큰거리고

눈물샘에 수정보다 맑은 물이 고인다.

목이 울 때가 된 것이다.다

- 원구식(1955~)


최초로 ‘목울대’라고 말한 사람은 그 말에 ‘목이 울 때’라는 뜻도 숨어있다는 걸 생각했을까? 말은 뇌가 명령하여 목울대를 울려 나오지만, 울음은 뇌의 명령이 아니라 피의 명령, 심장의 명령을 받아 나온다. 울음이 폭발하면 뇌가 아무리 울지 말라고 해도 듣지 않는다. 울음은 자체의 의지와 힘으로 나온다. 이미 몸에 울음이 가득 차 있다면, 이미 목울대가 충분히 예열되어 있다면, 뇌와 이성은 무력해진다.

웃을 일은 적고 울 일은 많아지지만 정작 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아무 데나 배설하지 않도록 교육 받아왔으므로 울고 싶으면 울음을 배설할 화장실을 찾아야 한다. 우울 사회인데도 사회는 울음을 참고 웃으라고 조언한다. 그래서 주변에 안구건조증 환자가 꽤 많다. 이제 울고 싶으면 울음을 노래로 변형시켜 노래방에 가거나 술주정으로 바꾸러 술집에 가야 한다. 시 쓰기도 말 속에 숨어서 안 우는 척 우는 기술이다.


김기택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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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이 지는 열흘 동안을 묶었다

꼭대기에 앉았다 가는 새의 우는 시간을 묶었다

쪽창으로 들어와 따사로운 빛의 남쪽을 묶었다

골짜기의 귀에 두어마디 소곤거리는 봄비를 묶었다

난과 그 옆에 난 새 촉의 시간을 함께 묶었다

나의 어지러운 꿈결은 누가 묶나

미나리처럼 흐르는 물에 흔들어 씻어 묶을 한단

- 문태준(1970~ )


꽃사진 찍는 일은 꽃이 떨어지기 전에 나무에 묶어두는 일. 쉬 떨어지는 꽃을 지지 않는 꽃으로 만들어 눈동자에 박아 두는 일. 꽃시를 쓰는 일이 어찌 다르랴.

365일 중에 열흘밖에는 볼 수 없는 꽃, 나머지 355일은 기다려야 하는 꽃을 마음에 묶어서 두고두고 보는 일이 아니겠는가. 꽃노래를 부르는 것도 꽃빛 꽃향기의 흥과 낙화의 아쉬움을 추억에 묶어두는 일. 그래서 노래할 때마다 사라진 꽃이 하나씩 풀려나오게 하는 일.

지는 꽃은 무심한데 왜 보는 사람이 서운하고 슬프다 하는가. 꽃을 사진과 시와 노래에 담는 것은 바로 그 흥과 슬픔의 변덕이 시키는 일. 부지런히 타이어를 굴리고 카메라를 부리고 언어를 불러와 새소리를 묶고 풍경을 묶고 봄비를 묶고 꽃 진 자리에 돋는 연한 새잎들을 묶고 자꾸 달아나는 계절과 세월도 묶어야지. 언제 떠나가 버릴지 모를 사랑도 가기 전에 잘 묶어놔야지. 떠나간 사랑에는 우두둑 뜯겨버린 마음 몇 단도 묶어 보내야지. 보고 싶으면 언제나 기억에서 불러낼 수 있도록 죽은 이들도 그렇게 내 삶에다 꽁꽁 묶어야지. 부질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마음이 시키면 따르지 않을 수 없으니.


김기택 시인 | 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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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본관 앞

부아앙 좌회전하던 철가방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저런 오토바이가 넘어질 뻔했다

청년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막 벙글기 시작한 목련꽃을 찍는다.

아예 오토바이에서 내린다.

아래에서 찰칵 옆에서 찰칵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찰칵찰칵

백목련 사진을 급히 배달할 데가 있을 것이다.

부아앙 철가방이 정문 쪽으로 튀어나간다.

계란탕처럼 순한

봄날 이른 저녁이다. - 이문재(1959~ )



택배에도 철가방에도 오토바이에도 배달원에게도 봄은 온다. 1분 1초가 급한 배달을 잠시 멈추게 하고, 복잡한 거리에서 차량과 사람 사이를 곡예하듯 빠져나가는 속도를 급정거시키며, 봄은 온다. 봄은 제 생애의 가장 빛나는 색깔과 향기를 통해 지금 이 순간에 젊음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한다. 봄은, 생명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 이 극적인 시간에 아르바이트에 끌려다니는 청년의 감성과 정신을 후려친다. 그리하여 이 도취의 순간을 시급 7000원 때문에 잃지 말고 막무가내로 아름다움에 매혹될 것을 준엄하게 명령한다.

그러니 짜장면이 퉁퉁 불어터지고 배고픈 위장이 사납게 꼬르륵거려도 속도를 급정거시키고 볼 일. 세상의 모든 급하고 중요한 일들을 정지시키고 단호하고 엄숙한 태도로 스마트폰을 꺼내어 볼 일. 이 순간 세상 모든 것은 다 사라지고 봄꽃만이 있다는 듯, 우리 삶에서 오직 봄꽃만이 제 시간과 정열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듯, 목련과 벚꽃이 맞이한 천국을 스마트폰에 담아둘 일. 그래서 혼탁하고 무질서하고 뭐가 뭔지 모르게 뒤죽박죽되어 있는 이 세상을 몇 십초 동안만이라도 완벽한 질서와 조화를 갖춘 유토피아가 되게 할 일. 무심하게 지나가는 사소한 장면에 숨겨져 있는 이 혁명적 순간을 어찌 시인의 눈이 놓치겠는가.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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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가지런히 모으고 있으니
참 따뜻하지? 이제 갓 낳은 달걀
솜털 둥지 기댄 모습
뽀얗고 둥근 복사꽃 향기 너
봄날 오후 단잠보다 부드러워라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세상
남몰래 제 등짝에 굳은살 박이느라
티눈처럼 뾰족하게 주목받지도 못하면서
뒷감당 혼자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앞걸음 밀고 갈 때 한 겹씩 벗겨지고
뒷걸음 물러설 때 두 겹씩 굳어지다
마침내 생의 가장 끝자리에서 밀려나
누구보다 단단해진 너

걸음 배운 뒤 한번도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뒷눈으로만 비춰 보던 세상
보드라운 이불 밑으로 반쯤 비어져 나온
저 성스러운 발의 맨 얼굴.

- 고두현(1963~ )


갈라지고 각질이 일어나 보기 흉한 뒤꿈치는 양말과 구두로 가리는 게 편하다. 뜨거운 물에 불려 씻어도 떨어지지 않고 깎아내도 벗겨지지 않는 딱딱한 살 껍질은 주위에 보는 사람이 없어야 떳떳하게 바람을 쐴 수 있다. 웃음으로 사랑스러운 얼굴을 완성시키는 눈을 놔두고, 립스틱과 말로 치장하는 입을 놔두고, 하필이면 시인은 볼 것 없는 뒤꿈치에다 시선을 두었을까.

시인이 이삼십대였다면 당연히 눈이나 입, 손이나 목에 눈길이 갔으리라. 그러나 그는 세상 험한 길을 걷느라 두꺼워지고 거칠어져서 자꾸 이불 속에 숨으려는 뒤꿈치의 수줍은 아름다움을 느낄 나이. 굳어지고 갈라져도 그 안에는 아직 세상을 모르는 아기의 부드러운 발바닥과 아무리 깨물어도 간지럽기만 한 새끼 강아지의 이빨 같은 어린 기억이 있다는 걸 알 나이. 우리가 명함처럼 자랑스럽게 내보이고 다니는 눈과 귀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이기주의자다. 뒤꿈치는 남에게 보여줄 일도, 치장할 일도 없지만 한 발 한 발 삶을 떠받치고 있으니, 순수하고 성스러운 영역 아닌가.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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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다시 말해볼까.

삶에 관하여, 삶의 풍경에 관하여,

주리를 틀 시대에 관하여.

아니 아니, 잘못하면 자칭 시가 쏟아질 것 같아

나는 모든 틈을 잠그고

나 자신을 잠근다.

(시여 모가지여,

가늘고도 모진 시의 모가지여)

그러나 비틀어도 잠가도, 새어나온다.

썩은 물처럼,

송장이 썩어나오는 물처럼.

내 삶의 썩은 즙,

한잔 드시겠습니까?

(극소량의 시를 토해내고 싶어하는

귀신이 내 속에서 살고 있다.)

- 최승자(1952~ )



‘자칭 시’란 남이 시라고 보건 말건 쓴 사람이 스스로 시라고 주장하는 시를 일컫는다. 평균적인 수준에 한참 못 미쳐도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눈을 가리면 자칭 시가 나오게 된다. 세상의 탁한 기운이 몸 안으로 들어와 분탕질을 하면서 뒤섞인 후 끔찍한 화합물이 되어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고 할 때, 삶의 쓰고 괴로운 성분들이 몸을 한껏 괴롭히고 나서 몸 밖으로 흘러나오려고 할 때, 시인은 그것이 세심한 취급주의가 필요한 치명적인 독극물이 될 것임을 예감한다. 그리고 시의 이름으로 나오려는 이 정화되지 않은 말에 ‘자칭 시’라는 모멸적인 이름을 부여한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새벽 공기를 양심적인 목소리로 울리는 닭 모가지야 권력의 손아귀가 비틀겠지만, 현실 앞에서 무력하면서도 독성은 강한 시의 모가지는 시인이 스스로 비틀어야 한다. 시인은 위험한 언어가 나오는 제 몸을 비틀고 막고 저주함으로써 현실의 모순과 삶의 고통에 무감각한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세상이 시라고 인정하든 말든, 이 지독한 말에는 기성의 시적 관습에 안주하는 시들을 반성하게 하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있다. 시에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과 광기의 힘이 있다.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자칭 시’가 넘치는 시대에 80년대의 거울로 오늘의 시, 나의 시를 다시 들여다본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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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뛴다 머리통을 들고 뛰어온 너에게 머리통을 받아들고 뛴다 이 둥근 바통을 누구에게 건네주어야 하나 아무도 없는 트랙을 뛴다 밥의 트랙 눈물의 트랙 한숨의 트랙 벗어나서는 안되는 트랙을 나는 뛴다 머리통이 식기 전에 눈알이 굳기 전에 누구에게 이 골칫덩어리를 건네주어야 하나 나는 트랙을 이탈한다 흰 트랙으로부터 탈출한다 무단횡단을 한다 나는 이면도로를 거꾸로 뛰어간다 나는 젖이 큰 여자 젖이 퉁퉁 불어 있는 여자를 찾는다 머리통을 받아들고 앞섶을 풀어제치고 젖을 먹일 여자를 찾는다 트랙이 어느새 나를 쫓아와 있다

- 유홍준(1962~ )

초·중학교 운동회 때 릴레이는 인기 있는 종목이었다. 릴레이 경주는 실력보다 실수가 승부를 결정하는 일이 종종 있다. 잘 뛰는 것 못지않게 바통을 잘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바통이 다른 손으로 넘어가면 역전되는 일도 자주 있어서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곤 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바통 대신 머리통을 받아 달려야 하는 인생이라는 릴레이 경주라면 어떨까. 아버지처럼 살기 싫다고, 아버지가 가던 길로 달리기 싫다고, 목에서 떼어내 다른 사람에게 줘버릴 수도 없는 머리통. 이걸 목 위에 얹어놓고 어떻게 해야 하나.

어느 날 아침에 눈떠 보니, 제집은 이웃집보다 가난하고 자신은 친구보다 못생겼으며 엄마 친구의 아들보다 성적은 형편없다면? 자신이 부모로부터 받은 삶의 내용물이란 게 터무니없이 초라하다면? 어른들이 하라는 것 다하고 교과서에서 가르쳐 준 대로 충실하게 살았는데 알바 트랙과 비정규직 트랙만 보장된다면? 그게 싫어서 이 시의 화자는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 온갖 일탈을 일삼으며 별짓을 다해 봤지만, 어느새 여자가 붙고 자식이 붙어서 어쩔 수 없이 “밥의 트랙 눈물의 트랙 한숨의 트랙”을 뛰고 있다. 그래도 달려야지 어떡하겠는가. 아, 어쩌자고 시인은 이 구차하고 절망스러운 삶을 이렇게 흥이 나고 유쾌하게 썼단 말인가.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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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를 흔들며 나에게 달려들 때, 개의 눈에는 오래전부터 나를 잘 아는 누군가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만 가지 궁금증만 일으켜 놓고는 눈 뒤에 태연하게 숨어 있다. 개의 몸에 갇혀 있는 그를 꺼내주고 싶어도 너무 깊이 숨어 있으니,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 속에 태연히 들어가 있으니, 어림없는 일이다.

기꺼이 개의 몸속으로 들어가 네 발로 걷고 목줄에 매이고 개 사료를 먹는 그는 누구인가. 개와 나 사이의 경계는 왜 이렇게 아득한 두께인가. 왜 그 앞에서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게 될까. 개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무수한 힌트를 보고도 왜 눈만 끔벅거리게 될까. 개와 내가 서로의 몸에서 나오기만 하면 제 몸속에 갇혀 있었던 비밀을 마음껏 털어놓으며 수다를 떨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쉬운 일을 영원히 차단한 이 경계는 무엇인가.



우리 집 개 세 마리 중의 한 마리가
달래이다
달래라는 이름은
몇년 전 김형균이 지었다
달래 어미의 어릴 적부터 달래이니
지금은 달래 4대
그간 몇번 떠돌이 개한테
물어뜯겨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살아나
살아나
새끼 낳으니
처음에는 여덟 마리 낳아
몇마리 죽고
이번에는 여섯 마리 낳아
두 마리 살았다
내가 사람이고
달래가 개인 것
이것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한다


허나 달래는

추호도 고은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꼬리친다
이런 달래의 삶 속에 들어가고 싶은 것
어림없구나 - 고은(1933~ )


김기택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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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혓바닥이 맑게 닦은 개밥그릇에 햇살이 반짝 제 눈을 달아놓는다 한 되들이 개밥그릇
마당을 지나간 바람은 백만 되 다시 백만 되
누가 바람의 등에 개 문신을 새겼을까―너무 많은 눈빛을 어슬렁거리느라 흘려보냈다
개의 내장처럼 찌그러진 개밥그릇
어제는 종일 잠만 잤고 오늘은 허공을 컹컹 짖는다 오랫동안 구름이 지나가는 바람의 내장처럼
잠잘 때마다 몸이 주리고 짖을 때마다 허공이 환하다
누가 바람의 목에 개목걸이를 채웠을까―너무 많은 걸음을 땅을 파느라 심어버렸다
몸 한쪽을 울 끝에 묶어놓고
햇살을 잘게 빻는 빈 마당으로 서서 사립으로 열린 내장의 처음과 끝을 본다 컹컹
개밥그릇에 반짝이는 허기는 다시 백만 되
개는 바람에 짖지 않지만 바람은 개를 먹이지 않는다 개의 내장에는 바람 문신

- 신용목(1974~ )

길 위에 떠도는 플라타너스 낙엽들이 한자리에서 빙빙 돌고 있다. 낙엽을 돌리는 바람이 제 꼬리를 잡으려고 빙빙 도는 고양이 같다. 죽은 고양이들의 영혼이 바람이 되어 노는 것 같다. 길가의 전봇대에는 개 한 마리가 매여 있고 그 옆에는 숯불돼지갈비집이 있다. 코를 고문하는 갈비 냄새를 피해 개는 허공을 쳐다보고 있다. 아는 척해도 반응하지 않는다. 백만 되가 있어도 먹을 수 없는 바람. 먹으려 하면 백만 되만큼 커지는 허기. 그러니 “개밥그릇에 반짝이는 허기는 다시 백만 되”. 그 허기 때문에 “개의 내장에는 바람 문신”. 먹고 싶지만,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먹을 수 없는 저 바람 같은 것들을 나도 가끔 간절하게 쳐다보지. 그 내면의 허기에는 어떤 문신이 새겨져 있을까.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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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고 긴, 딱딱한 나무껍질
속을 밀며 올라갔다
저 밖에…… 숨죽인
많은 창문들이 달려 있었다

아직 나는 그곳을 넘어
들어오는 햇빛을 보지 못하였다
웅크린, 많은 날 흘러갔고
저녁마다에 나는 잠들었다 - 이학성(1961~ )


아직은 영하의 바람이 불고 눈도 오지만, 조금씩 봄기운이 느껴진다. 지금 추위를 견디며 겨울나무 안에서 꽃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수액에게 햇빛과 공기와 바람은 얼마나 멀게 보일까. 가지로 올라가 꽃과 잎으로 스며들어 마음껏 광합성을 하고 바람에 흔들릴 시간은 얼마나 까마득하게 느껴질까. 물방울이 도달해야 할 그 수많은 잎들을 “숨죽인 많은 창문들”이라고 한 표현에서 시인이 견디고 있는 현실이 느껴진다. 동시에 만 개도 넘는 잎이 되어 바람에 마구 흔들릴 날을 꿈꾸는 반동의 힘이 느껴진다.

이학성 시인은 시 ‘달’에서 “나의 길을 찾아 오래 헤매인 끝에/ 나를 찾아 오래 헤매이던 길과 만났다”고 쓰고 있다. 알 속에서 껍질 밖으로 나가려 애쓰는 아기 새의 몸짓과 밖에서 껍질을 톡 쪼아주는 어미 새의 부리가 만나 알이 깨지고 새가 태어나듯이, 지금 딱딱한 껍질 속에서 한 방울 수액은 꽃과 잎이 되기 위해 가지 밖의 햇볕과 부드러운 바람과 드넓은 하늘을 찾아 헤매고 있으리라. 가지로 하늘로 도약하기 위한 수액의 웅크림은 얼마나 힘차고 적극적인 자세인가.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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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으로 눈 속으로 걸어들어가니 산이 있고 논밭이 있고 마을이 있고,
내가 버린 것들이 모여 눈을 맞고 있다.
어떤 것들은 반갑다 알은체를 하고 또 어떤 것들은 섭섭하다
외면을 한다.
나는 내가 그것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나를 버렸다고 강변하면서,
눈 속으로 눈 속으로 걸어들어가다가 내가 버린 것들 속에 섞여
나도 버려진다.
나로부터 버려지고 세상으로부터 버려진다.

눈 속으로 눈 속으로 걸어들어가면서 나는 한없이 행복하다.
내가 버린 것들 속에 섞여 버려져서 행복하고 나로부터 버려져서 행복하다. - 신경림(1935~)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백석의 이 시구처럼 눈의 순백에는 세상을 더러워지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세상을 잠시 백지상태로 만들어 우리의 생각에 들어 있는 모든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판단중지시키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치우치고 경직되고 관습화된 관념을 지워서 그것이 비롯된 시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처음부터 다시 보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 순백의 판단중지 상태에서 나 자신을, 내 삶을 들여다본다면 내가 목표하고 도달하려고 그토록 애쓰던 일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지 다 드러나 보이지 않을까.

“내가 버린 것들”에는 가난도 있고, 촌스러운 것도 있고, 오늘날의 유행이나 가치관으로 봤을 때 무가치하고 형편없는 것들도 있으리라. 눈은 깨끗함과 순수함으로 우리가 버리거나 잃은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닌 것이었는지 일깨운다. 눈은 가난의 공동체에 잠재해 있던, 우리가 잃어버린 행복한 유토피아를 체험시켜 준다. ‘도둑맞은 가난’(박완서)을 되찾아준다. “내가 버린 것들 속에 섞여 버려져서 행복하고 나로부터 버려져서 행복하다”는 얼마나 큰 울림을 함축한 역설인가.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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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르 몸이 떨려올 때 있어요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뼛속에 심은 기억이 깨어나
꽃 피우는 순간이래요
무슨 꽃이 이렇게
가슴 뻐근한 게 있냐고
되묻는 나를 쓰다듬으며
꽃은 원래 울먹이며 피는 거래요
낮술을 퍼먹다 나와
밭고랑에 퍼질러 앉은 내게
네게도 한 무더기 피려나 보다
봄볕처럼 따뜻하게 웃어요

그 말에 더 답답해져 얼굴 돌리면
팔랑팔랑 또 날아와서는
순을 자꾸 꺾으면 가슴이 썩는다고
꽃 피어나려 대궁을 흔들면
조용히 숨길 열어주래요
화병으로 돌아가시더니
어찌 그리 유해졌는지
부드럽게 바람을 타다가
말도 없이 유유히 멀어지네요
할머니가 쉬었다 가는 자리마다
자그마한 꽃들이 피어 있어요

- 길상호(1973~ )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갈등이 얽혀 있는 사회는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일일이 챙겨줄 수 없다. 권력과 다수의 힘으로 굴러가는 사회는 개인의 요구나 희망사항을 가차 없이 막거나 잘라버리기 일쑤다. 그렇게 해서 생긴 좌절과 분노, 괴로움과 슬픔 등은 누가 처리하나. 훼손된 내면은 누가 치유하나. 다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마다 자기도 모르게 진행되거나 전혀 다른 증상인 것처럼 위장하는 정신 질환이 조금씩은 생기게 된다.

시인의 할머니는 여성이고 어머니여서 울화를 온몸으로 삭여야만 하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그는 할머니를 죽음으로 내몬 울화를 “뼛속에 심은 기억이 깨어나” 피는 꽃이라고 부른다. 울화(鬱火)는 우는 꽃(울 ‘花’)이란다. 부르르 몸이 떨리는 건 그 꽃이 울기 때문이란다. 시인도 자신의 떨리는 몸과 뻐근한 가슴에서 할머니가 겪은 울화를 느끼고 있다. 하지만 시는 내면의 상처를 꽃으로 만들어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시 쓰기는 그 꽃을 꺾거나 제거하는 일이 아니라 꽃에게 숨길을 열어주어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는 일이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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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고 겹겹이 옷 껴입은 나와

우수수 옷 벗어 땅을 덮어주고 있는 나무가

마주보고 섰다

그러고도 추워 떨고 있는 나와

그러고도 맨살로 사지를 활짝 펴고 있는 나무가

그러고도 춥지도 않니?

그러고도 춥다고 하니?

말을 건넨다

나무가 깔아준 이불을 덮은 흙과

바람 씽씽 오가는 하늘에서도 알몸인 해가

마주보고 섰다

그러고도 추워 웅크린 흙과

그러고도 더운 김을 내뿜는 해가

그러고도 미안하지도 않니?

그러고도 미안하다고 하니?

말을 건넨다

- 최영철(1957~ )




겨울이 사라졌나 했더니, 겨울다운 겨울이 드디어 왔다. 연일 수은주가 영하 10도 밑으로 내려가지만 체감온도는 더 낮다. 오대산에 겨울 야간산행 갔을 때, 눈과 코만 내놓고 온몸을 다 싸맸는데도 바늘처럼 옷 사이로 파고들어오던 그 추위가 생각난다. 오대산의 나무들은 그 혹한을 맨몸으로 견뎌내고 있었다. 수액이 다 얼어버릴 것 같은 그 나무들을 생각하면 그 추위가 내 핏줄로도 들어오는 것 같아 소름이 돋는다. 자연은 생명을 저렇게 가혹하게 방치한다. 그렇게 놔둬야 꽃향기가 진하고 열매가 많이 맺힌다고 하니,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 살과 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추위를 막고 피하기만 할 게 아니라, 겨울나무처럼 몸의 기억에 간직했다가 한여름에 온몸이 나른해지고 축축 늘어질 때 약으로 꺼내어 쓰고 싶다.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는 데 요긴하게 쓰고 싶다. 시 쓸 때 안이하고 나태한 마음이 끼어들면 이 추위로 빳빳하게 얼려 긴장시키고 싶다.


김기택 시인·경희사이버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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