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날 수도 있었어.
일어나야만 했었어.
일어났었어.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너무 가까이, 아니면 너무 멀리서.
일어났었어, 너에게, 혹은 너를 제외한 다른 누군가에게.

너는 살아남았지, 맨 처음이었기 때문에.
너는 살아남았지, 제일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혼자였기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왼쪽으로 갔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갔기 때문에.
비가 왔기 때문에. 그늘이 드리웠기 때문에.
날씨가 화창했기 때문에.

운 좋게도 거기 숲이 있었어.
운 좋게도 거기 나무가 있었어.
운 좋게도 철로, 갈고리, 대들보, 브레이크,
문설주, 갈림길, 일 밀리미터, 일 초가 있었어.
운 좋게도 지푸라기가 물 위에 떠다니고 있었어.

그렇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발을 움직여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할 수도
있었어.
우연의 일치에 좌우되는
불과 한 발자국도 안되는 거리 안에서, 일촉즉발의 오차 내에서.

그래서 넌 지금 여기에 있는 거니?
가까스로 열린 찰나의 순간에?
그물에 뚫린 단 하나의 구멍, 그리로 슬그머니 빠져나가 버렸니?
난 놀랄 수도, 침묵할 수도 없어.
자 귀 기울여봐.
네 심장이 내 안에서 얼마나 빠르게 두근거리는지.

- 비스와바 심보르스카(1923~2012)

우연 속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필연이 있나보다. 필연은 늘 우연으로 위장하나보다. 그때 그 길로 가지만 않았더라면, 거기서 그를 만나지만 않았더라면, 아무리 많은 가정법을 동원한들 삶이 쳐놓은 그물과 함정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불안과 두려움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다. 매일 그 양식을 먹어서 우리 심장은 이토록 빠르게 뛰는 건지 모른다. 막을 수 있었는데와 피할 수 있었는데는 숨막힘에다 뚫어놓은 자기 위안의 숨구멍일지 모른다. 그래도 내 심장은 아직 뛰고 있다. 가정법과 상상에는 내가 가지 않은 수많은 길과 이야기가 남아 있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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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을 쥔 아저씨
그렇게 자꾸만 줄을 돌리지 마세요
어지러워 죽을 지경이에요
줄넘기 놀이에 지쳤어요
하나 넘어주면 또 하나 금이 내려오잖아요
매일매일 그래프종이 밖에서
그래프종이 속으로 못 들어가 발발 떠는
기분이에요
아저씬 밥 먹고 있을 때에도
입에서 눈에서 줄이 나온다지요?
매일매일 나보고 넘어봐 넘어봐 하는 것
같애요
그렇게 줄 가지고 종아리 치지 마세요
숨차 죽을 지경이에요
발바닥이 이제 다 닳았어요
종아리가 짧아졌어요
땅속에 묻히는 것처럼 키가 작아지고
줄은 더 더 더 높아져요
아저씨가 헤아리는
숫자 소리
밤마다 온 마루를 갉아먹어요
빨랫줄에 매달린 빨래들처럼
줄 잡고 흔들리는 저 사람들 좀 쳐다봐요
저기 저 줄에서 떨어져 구겨져 밟히고
흙 묻은 사람들 좀 봐요
하늘엔 손잡이도 없는데
어떻게 자꾸자꾸 뛰라 그러세요?

장난 좀 그만하세요 - 김혜순(1955~ )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스며있는 죽음을 명랑하고 귀여운 소녀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느닷없이 덮쳐올 죽음으로 신나게 줄넘기 놀이하기. 재미있죠? 줄이 그치면 바로 죽으니까 아프다는 핑계는 안 통해요. 다리에 쥐가 나서 못하겠다는 엄살도, 화장실 갔다 온다면서 느긋하게 담배 한 대 피우는 꼼수도 안 통해요.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스트레스를 에너지로 만들고 실패를 추진력으로 만들어야 한대요. 정신없어서 밥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더 많은 야근, 더 높은 목표, 더 혁신적인 사고와 자기개발, 더 세게 성과를 쥐어짜는 자발적 헌신, 더 많은 ‘할 수 있다’와 ‘해야 한다’를 향해 달려야 한대요. 더 재미있으라고 죽음 아저씨더러 더 빨리 줄을 돌리라고 할까요?

올해 죽도록 줄을 넘었는데 또 넘어야 할 줄이 새해와 함께 오고 있네요. 짜증과 스트레스, 불안과 두려움을 유쾌하게 비틀어 놀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줄을 또 넘을 수 있겠어요.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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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와 새끼 염소 세 마리가 장날 나왔습니다.
따로 따로 팔려갈지도 모를 일이지요.
젖을 뗀 것 같은 어미는 말뚝에 묶여 있고
새까맣게 어린 새끼들은 아직 어미 반경 안에서만 놉니다.
2월, 상사화 잎싹만 한 뿔을 맞대며 톡, 탁,
골 때리며, 풀리그로
끊임없는 티격태격입니다. 저러면 참, 나중, 나중에라도 서로 잘 알아볼 수 있겠네요.
지금, 세밀하고도 야무진 각인 중에 있습니다. -문인수(1945~)


딸아이는 어렸을 때 종종 밤에 혼자 놀이터에 가서 그네를 타겠다고 고집을 부리곤 했다. 위험해서 가지 말라고 말리면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난 놀지 않으면 죽어.” 이 새끼 염소들을 보니 그 말이 생각난다. ‘상사화 잎싹만 한’ 어린 뿔은 무기가 아니라 장난감이고 놀이다. 제 어미 제 형제와 언제 헤어질지 모르지만, 두렵고 외로운 앞날이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지금 해야 할 유일하고도 가장 중요한 일은 노는 일이다. 제 안의 본성과 생명력이 마음껏 뛰게 하는 일이다.

새끼 염소들의 뿔 놀이에 ‘각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시인의 감성이 애틋하다. 몹시 귀엽지만 그 귀여움에서 세상에 홀로 남는 단독자의 두려움과 슬픔이 보이기 때문이다. 刻印(각인)은 어떤 사건이나 느낌이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 시에서는 ‘角印(각인)’을 떠올리게 해서 더 묘미가 있다. 어리고 연약한 몸으로 혼자 힘든 삶을 견딜 때를 대비해 제 형제의 기억을 뿔에 도장을 찍듯 “세밀하고도 야무지게” 저장하는 일이다.이 놀이가 새끼 염소들에게 조금이라도 살아갈 힘이 되어주면 좋겠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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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평양 대동강변의 금수산 모란봉은 높이 96m의 비교적 야트막한 산이다. 원래 금수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의 생김새가 마치 모란꽃 같다고 해서 모란봉으로 불리다가 산 전체 이름이 됐다. 높지는 않아도 여러 봉우리와 골짜기가 어우러져 경치가 뛰어나고, 고구려 때부터 만들어진 고적도 많다. ‘평양 8경’ 중 을밀대, 부벽루, 영명사 등이 자리하고 있다.

북한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 모란봉악단은 젊은 여성 20명가량으로 구성된 걸그룹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로 은하수관현악단 출신인 부인 리설주가 결성을 주도했다. 모란봉악단에 들어가려면 성분과 외모, 음악적 재능을 두루 갖춰야 한다. 특히 신체 조건은 키 165㎝ 이상, 몸무게 50㎏ 이하를 유지해야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원은 결혼은 물론 연애도 할 수 없다. 과거 기획사로부터 ‘연애 금지’ 조항이 든 이면계약을 강요당한 한국 걸그룹이 연상된다.

2012년 7월 첫 공연에서는 영화 <록키> 주제곡 ‘Gonna Fly Now’와 프랭크 시내트라의 ‘My Way’ 등을 연주했고, 애니메이션 <곰돌이 푸>와 <백설공주>의 음악은 물론 장면도 배경에 등장했다. 미국 음악 못지않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상의와 무릎 위에서 한참 올라간 미니스커트를 입은 모습이었다. 미국 CNN은 최근 베이징에서의 모란봉악단 공연 기사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면서 한국의 걸그룹 ‘소녀시대’ 사진을 올리는 실수를 했다. 외국인 상당수는 김정은과 가수 싸이, 야구선수 류현진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니 그럴 법도 하다.

모란봉악단이 지난 12일 중국 베이징에서 공연 시작을 3시간여 앞두고 돌연 귀국해 사상 첫 해외공연이 무산됐다. 중국 측은 공연 무산과 관련해 ‘소통에 원인이 있다’고만 밝혀 양국 간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모란봉악단 공연은 무료초청권이 배부됐는데, 암표 호가가 1만5000위안(약 271만원)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중국 내 최고 한류스타인 배우 김수현이 지난 5월하나의 의자 위에 두 개
두 개의 의자 위에 세 개
세 개의 의자 위에 네 개
네 개의 의자 위에 다섯 개의 의자가 있다.

다섯 개의 의자 위에 아홉 개
아홉 개의 의자 위에 스무 개
스무 개의 의자 위에 쉰한 개의 의자가 있다.

의자, 의자, 의자가 의자 위에 있다.
더 많은 의자가 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의자가 있다.
우리는 날마다 더 많은 의자에 앉는다.
수백, 수천 개의 의자에 앉는다.

의자 위에서, 의자 아래서
의자의 무게는 없어진다.
의자 위에서, 의자 아래서
의자는 의자를 누르지 않는다.

우리는 의자를 누르지 않았다.

떠받들 뿐이다.
의자에 앉아서 의자들을,
머리 위의 의자들을
떠받칠 뿐이다.

-이수명(1965~ )


빼앗길까 봐 눈치 봐야 하는, 앉고 나면 목에 힘이 들어가는, 서로 차지하려고 안달인, 앉자마자 갑자기 사람이 달라지기도 하는, 의자. 얼굴이고 인격이고 월급이고 직위인 의자. 그래서 의자에 앉은 사람은 욕먹어도, 의자는 깍듯한 인사를 받으며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 된다. 머리 위의 의자를 잘 떠받치려면, 의자 위에 더 많은 의자가 있으려면, 빌딩은 더욱더 높아져야 되겠다.

이 의자 쌓기 놀이는 의자 위에 더 많은 의자가 있는 역삼각형 구조다. 의자는 한정되어 있는데 앉겠다는 사람은 의자보다 더 많으니까. 위험하더라도 높은 의자에 앉고 싶어 하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 의자가 무너질 때까지 의자는 계속 쌓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구조, 우리 욕망의 구조가 그렇게 생겼으니까. 의자 위에 의자가 너무 많아 시의 리듬이 불안하고 아슬아슬하다.
 개최한 팬미팅의 암표 값 2만위안 못지않다. 비록 공연은 무산됐지만 모란봉악단이 한국의 최고 한류스타 버금가는 인기를 확인한 셈이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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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 밑에 떨어지는 물방울
쇼팽의 흰 손을
섬세한 비단 숨결
그 숨결에서 떨리는
미풍의 살점

수면에 낭창거리는 햇살
바람은 면도날처럼
각(角)을 도려내고
적막한 물이랑에
미키에비츠의 시가 닿을 듯
닿을 듯 묻어나는 살점을
단단하게 굳은 뼈에
풀어지는 혈관
돌 속에 물이 흐르고
신경의 바늘 끝에서
천 개의 화살이 쏟아진다

척추 밑에 떨어지는 물방울
낭창거리는 물이랑에
영롱하게 춤추는 곡선
그 벼랑에서
우아한 품위를

- 김영태(1936~2007)




언어로 쇼팽의 피아노곡을 연주할 수 있을까? 상상의 귀를 기울여 “척추 밑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음미해보자. 귀만 가지고는 다 들을 수 없는 피아노 선율을 감상하기 위해 “단단하게 굳은 뼈에 풀어지는 혈관”을 느껴보고 “신경의 바늘 끝에서” 쏟아지는 “천 개의 화살”도 맞아 보자. 상상의 하늘과 바다로 나아가 “수면에 낭창거리는 햇살”을 만져보고 “면도날처럼 각(角)을 도려내”는 바람을 쐬어보고 “적막한 물이랑”에서 출렁거려 보자.

김영태 시인은 첼로 연주에서 “흰 눈이 저음으로” 내리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섬세한 귀를 갖고 있다. 자신의 몸이 첼로가 되거나 현이 되지 않고는 그 공감각의 화음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피아노 없는 피아노 연주인 이 시는 사물과 자연의 리듬이 나의 몸이 되는 체험, 우주의 떨림과 한 몸이 되는 체험, 온몸이 현이 되고 귀가 되는 체험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연주는 손이 저절로 하고 있었고, 나는 내가 연주하는 음악을 즐기면서 듣고 있었다”고 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은 말했다. 제 몸을 악기로 만들고 귀로 만들었기에 그런 연주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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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바깥의 서랍 바깥의 서랍 바깥까지 열었다
서랍 속의 서랍 속의 서랍 속까지 닫았다
똑같지 않았다
다시 차례차례 열었다
다시 차례차례 닫았다
세계의 구석구석을 끌어모은 검은 아침이 서서히 밝아왔다
누군가, 누군가 또 사라지는 속도로

- 김행숙(1970~ )



잘 사용하지 않는 서랍이 있다. 그 안의 물건들은 언제 무엇을 넣었는지 뭐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 엉망진창이고 뒤죽박죽인 게 당연하다. 찾으려 하면 쓸데없는 건 잘 보이고 중요한 건 어디 틀어박혀 있는지 모르는 게 정상이다. 아무리 찾아도 나타나지 않다가 필요 없어지면 슬쩍 나오는 물건들이 그 속에 가득하다. 서랍 속의 엉망진창과 뒤죽박죽과 어둠의 깊이는 밖으로 나오고 싶을 것이다. 밝고 무한하고 끝없이 사방이 열려 있는 서랍 바깥의 서랍 바깥의 서랍 바깥까지. 서랍 바깥에 노출되어 있으면 이름과 규칙과 의무와 책임은 깊이 숨어들고 싶을 것이다, 어질러지고 뒤엉킨 채 시간을 모르는 서랍 속의 서랍 속의 서랍 속까지.

인간과 삶과 서랍의 형식은 서로 닮은 것 같다. 마음은 언제 어디로 튈지 몰라야 인간적이고, 사랑은 변덕스러워야 더 안달이 나고, 감정은 날뛰거나 붉으락푸르락해야 제맛이다. 손이나 팔처럼 코나 입처럼 나는 내 소유인 줄 알았는데, 그 속은 까도 까도 알 수 없고,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제멋대로이다. 아무리 열어도 다 열리지 않고 아무리 닫아도 다 숨겨지지 않으니, 인간은 천사 같다가도 원수가 되고, 일상은 늘 애태우고 가슴 졸이고 정신없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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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다 타버린
연탄이 놓여 있는 줄 알았다.
골목에 쌓인 상자처럼 무뚝뚝하다.
문 닫힌 연탄가게 앞을 지날 때면
주름살에 가린 쑥 들어간 눈
언제나 거리의 사람들을 쫓는 늙은 여인.한쪽 다리를 의자에 올린 채 앉아 있다.
늙은 여인이 의자에 앉아 사람을 쬔다.
아침의 부신 빛에 다 타버린 연탄
하얗게 허물어져내린다. - 박형준(1966~ )



용달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골목길과 언덕길에는 아직도 연탄 때는 집들이 있다. 마당에 나와 늦가을 햇볕을 쬐는 한 할머니를 보며 시인은 놀란다, 다 타버린 연탄이 놓여 있는 줄 알았다고. 한때 그 검은 머리카락과 탱탱한 피부는 젊음을 다 감당하지 못해 윤기가 흘렀을 것이다. 젊음은 그 머리카락, 그 피부가 시키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시킨 일은 환희와 절망 그리고 즐거움과 한숨. 그렇게 다 태워버려서 머리카락은 하얘지고 피부에서는 허연 비듬이 일어나고 표정은 무뚝뚝해지는 것이다.

다시 겨울이 코앞이다. 아파트에서는 겨울이 오면 오는구나 하지만, 백화점에서 겨울이 왔다고 호들갑을 떨어야 겨울이구나 생각하지만, 달동네는 동장군의 힘에 시달렸던 기억을 꺼내야 하고 다시 싸울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좁은 골목길을 막으며 아낙들은 김장을 하고 남정네들은 연탄을 날라야 한다. 시커멓고 싱싱한 연탄은 다시 구불구불하고 좁고 가파른 골목길을 올라간다. 노동으로 단련된 알통과 장딴지를 시켜 두 장씩 세 장씩 날라다닌다. 마음껏 뜨거워지려고. 제 안에 든 열을 남김없이 탕진하려고. 가벼워지고 하얘지려고. 눈이 오면 빙판이 되는 언덕길에서 부서지려고.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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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으로 떡을 만든다
밥으로 술을 만든다
밥으로 과자를 만든다
밥으로 사랑을 만든다 애인은 못 만든다
밥으로 힘을 쓴다 힘 쓰고 나면 피로하다
밥으로 피로를 만들고 비관주의와 아카데미즘을 만든다
밥으로 빈대와 파렴치와 방범대원과 창녀를 만든다
밥으로 천국과 유곽과 꿈과 화장실을 만든다 피로하다 피로하다 심히 피로하다
밥으로 고통을 만든다 밥으로 시를 만든다 밥으로 철새의 날개를 만든다 밥으로 오르가즘에 오른다 밥으로 양심가책에 젖는다 밥으로 푸념과 하품을 만든다 세상은 나쁜 꿈 나쁜 꿈 나쁜
밥은 나를 먹고 몹쓸 시대를 만들었다 밥은 나를 먹고 동정과 눈물과 능변을 만들었다, 그러나
밥은 희망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밥이 법이기 때문이다 밥은 국법이다 오 밥이여, 어머님 젊으실 적 얼굴이여 - 이성복(1952~ )



“배고픔을 더는 견딜 수 없을 때면 입천장이 당긴다. 갓 잡은 토끼 가죽을 말릴 때처럼 누가 얼굴 피부를 아래로 팽팽하게 당기는 것 같다. 볼은 꺼지고 그 위로 창백한 솜털이 뒤덮는다.”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를 읽으면 허기를 통해 밥의 진정한 위력이 느껴진다. “슈호프는 겉옷의 앞섶 호주머니에서 얼지 않게 흰 마스크에 싸놓았던 반원형의 빵 껍질을 꺼냈다. 그는 그것으로 정성스럽게 싹싹 훑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껍질에 묻어나온 죽 찌꺼기를 혀로 한 번 핥은 다음, 다시 그것으로 죽그릇을 닦았다.”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역시 밥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느끼게 한다.

요즘은 굶는 사람이 없다지만 찬밥 먹는 사람과 더운밥 먹는 사람은 있다. 허겁지겁 때우는 밥이 있고 온갖 고명으로 장식한 밥이 있다. 밥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지만 밥 때문에 생명을 빼앗기기도 한다. 어느 분야든 밥그릇 싸움이 가장 치열하다. 세월호를 침몰시킨 것도 따지고 보면 밥이었다. “밥은 희망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밥이 법이기 때문이다 밥은 국법이다”라는 말이 슬프게 다가온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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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행이 걸어간다 랄랄랄 시냇물 따라
3행이 걸어간다 겅중겅중 걸어간다
4행이 걸어간다 악기들과 걸어간다
5행이 걸어간다 콧노래 부르며 걸어간다
6행이 걸어간다 발 달린 가을도 걸어간다
7행이 걸어간다 하늘을 와삭와삭 베어먹으며
8행이 걸어간다 사과나무 걸어간다
9행이 걸어간다 포도나무 걸어간다
- 함기석(1966~ )




어린이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 경험하는 모든 것을 생동감 있고 재미있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어른들이 보기에 참 시시하고 별 볼 일 없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신기하고 특별한 것이 된다. 너무 뻔해서 아무런 의문이 없을 것 같은 것도 아이들에게는 알고 싶은 것이 무궁무진한 의문이 되고 물음이 된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구는 어른이 잃어버린 것, 어른이 다시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글자들이 걸어가고 소풍 가는 놀이가 있는 이 시는 줄 서서 산으로 계곡으로 재잘거리고 노래 부르며 소풍 갔던 초등학교 때를 떠올리게 한다. 그 설렘과 행복이 글자가 되고 문장과 리듬이 되어 있다. 글자와 문장이 의미나 개념을 나타내려고 애쓰지 않으니, 저희들끼리 스스로 모여 놀며 시가 되고 있다. 어른에게 말은 기호이고 관념이지만 아이에게 말은 곧 사물이고 놀이다. 글자와 문장이 가는 곳으로 해바라기 꽃길과 시냇물과 발 달린 가을과 하늘, 과실나무들이 따라오지 않는가. 말하는 순간 허공에서 없어지는 말이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 시인은 어른이 되어도 어린이를 잃지 않은 사람인가 보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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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은 항상 얼굴뼈에 걸려 있는 돌이다,
만져본다, 태초의 시간이 얼굴에 걸어놓은 뼈를.
잎자루 같은 뼈가 두개골의 얼굴 속에 둥글게 내려와
너의 얼굴의 윤곽을 잡아준 턱뼈,
너는 비명을 지를 때 그 턱뼈를 아래로 내려뜨리며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인중 속의 뼈로 으르렁댄다
누가 너의 턱을 굵은 실로 꿰맸을까,
웃음이 터져 나오는 비통과 분노와 절망과 생존.
턱이 악어의 주어로서, 턱은 슬픈 감각의 영구치.
악어의 발바닥으로 얼굴을 만진다,
고갈되는 늪, 악어의 가뭄은 대체 누구의 나인가. -고형렬(1954~ )



‘악어의 주어’가 되는 턱을, 도망치는 동물을 단숨에 부수는 턱을, 악어는 어찌해야 할까. 물 위에 눈만 내놓고 숨어 있다가 느닷없이 사슴이나 누를 덮쳐 시뻘건 고깃덩이로 만드는 이 거역할 수 없는 천직을 악어는 어찌해야 할까. 악어에게 제 강력한 턱을 반성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왜 그렇게 생겨 먹었느냐고, 왜 그렇게 태어났느냐고, 따질 수 있을까. 생명을 부수고 찢는 턱의 명령을 어떻게 악어가 거부할 수 있겠는가. 수천만년 진화의 산물인 그 생김새와 습성을 반성할 수 없기 때문에,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악어는 악어다.

악어가 돼서는 안 된다고, 애초에 사슴이나 토끼로 태어났어야 했다고 충고하거나 악어 없는 평화로운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떨까. 자연 생태계의 질서를 훼손한 것은 악어의 턱이 아니라 인간이다. 경쟁사회, 계급사회를 더 살벌하게 만드는 우리 본능 속의 악어도 약한 자를 누르고 경쟁자를 밀어내며 충실하게 제 본분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개발과 발전이라고 합리화하면서 지구 생태계를 마음껏 파괴하고 있지 않은가.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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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자동차 보닛이 하얗게 스쳐가는데요
바람은 하늘을
비눗방울처럼 가벼이 치켜올리는데요
사람들은 마주 웃고 햇빛은 창창한데요
나는 얼른 나무 그늘에 숨었어요
나는 입을 꼭 다물었어요
(잇새로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아!)
자꾸만 눈물이 흘렀어요
내 얼굴은 으깨어진 토마토
어두워지기 전에는 한 발짝도
예서 나를 끌어낼 수 없을 거예요


(웃음은 웃음을 늘게 하고
눈물은 흘릴수록 많아지는 것)


맨 처음 만날 때의 그를 생각해보았어요
그때의 그가 나를
이렇게 울게 할 수 있었을까요?
두번째는? 세번째는요?

- 황인숙(1958~ )




일 년 중 가장 맑고 푸른 가을날에 그늘에 숨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입을 꼭 다물어도 잇새로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슬픔은 웬일일까요. 시의 가장 오래된 소재, 아무리 퍼내도 고갈되지 않는 소재, 오랜 세월 반복되었지만 한번도 지루한 적이 없었던 소재, 바로 사랑 때문이지요. 햇살이 아무리 맑으면 뭐해. 눈앞이 캄캄한 걸. 눈물이 다 가려버리는 걸.

이 사랑이 처음엔 어땠는지 아세요? “그를 위해 무얼 살까 둘러보았죠./ 수줍은 제비꽃에 벗은 완두콩./ 그에게는 아무짝에 소용없는 것./ 그럼그럼 딸길 살까 바나날 살까?/ 아니면 익살맞은 쥐덫을 살까?/ 그를 위해 무얼 살까 둘러보았죠./ 한 쾌의 말린 뱀, 목에 늘인 할아범./ 아아아아 재밌어 이걸 사줄까?/ 뽀골뽀골 미꾸라지 시든 오렌지/ 아니면 특제실크덤핑넥타이./ 아아아아 재밌어 이걸 사줄까?”(황인숙, ‘시장에서’) 뭐든 보이는 것은 다 그이를 위한 선물이었죠. 발바닥은 늘 땅에서 일 센티쯤 떠 있었고, 얼굴에 그려진 웃음은 잘 때도 지워지지 않았죠. 그 웃는 얼굴이 어떻게 으깨진 토마토가 되었을까요.

봐도 또 보고 싶은 사랑스러운 얼굴을 한 대 갈기고 싶은 낯짝으로 바꿔버리는 이 마술은 대체 뭐죠?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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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비 잠깐 다녀가신 뒤
물기 질척한 보도블록에 지렁이 두 분 뒹굴고 계십니다

한 분이 천천히 몸을 틀어
S?
물으십니다 그러니까 다른 한 분,
천천히 하반신을 구부려
L……
하십니다. 그렇게 천천히
U?
하시면
C……
하시고
J?
하시면,
O…… 하시고

쬐한 가을 햇살에
붉고 탱탱한 몸 시나브로 마르는 줄 모르고
그분들, 하염없이 동문서답 중이십니다

그사이, 볼일 급한 왕개미 두 분 지나가시고
어디선가 젖은 낙엽 한 분 날아와 척, 붙으십니다

아아, 그때, 우리
이목구비 있었습니까?
주둥이도 똥구멍도 있었습니까?

그 진창에서 도대체
당신은 몇 번이나 C 하시고
나는 또 몇 번이나 S 하셨던 겁니까?



우리 삶을 지렁이로 압축시켜 보니, 이런 코미디가 없구나. 지렁이들의 S, L, U, C, J, O의 동문서답 안에는 에스라인 하고 브이라인 하느라 삶은 안 보이는, 얼짱과 몸짱 하느라 다른 것은 안 보이는 우리 모습이 보이는구나. 이목구비 있고 대뇌 소뇌 있고 주둥이 똥구멍 있으니, 우리는 지렁이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서로 S 하고 L 하느라, U 하고 C 하느라, 좌 하고 우 하느라, 나 하고 너 하느라, 옳음 하고 그름 하느라, 핏대 올리고 목소리 높이고 삿대질하고 울고 웃는 사이, 왜 사는가 묻는 물음은 점점 멀어지고 가을 한 햇살에 한평생은 금방 마르는구나.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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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가을 하늘에 노란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들판을 달려가며 나는 딸아이에게 은근한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발가벗긴 닭에 수십 개 주삿바늘을 꽂아 염장한 닭이 그렇게 먹고 싶디? 치킨을 먹으러 읍내로 나가는 길이다. 그래도 담배보다 해로울라고요. 고스란히 돌아온 카운터펀치. 그런 걸 먹고 싶은 입맛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라고 말하는 순간 느껴질 괴리감. 서둘러 입을 닫는다. 하긴 치킨 절교 두 달이면 많이 참은 셈이다.

치킨을 먹는 행위는 치킨이란 언어를 먹는 것이다. 세상에는 치킨으로 가득하고 나의 치킨 언어에 대한 금기가 시작되었다. 스마트폰, 햄버거, SNS, 피자, 결혼식 가기, 인터넷뉴스, 카드 사용, 치킨, 예술가, 안부전화, 동창회. 금기는 끝도 없이 나열된다. 무슨 심오한 철학이나 특별한 동기가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다고 말하는 게 속 편하지만 굳이 이유를 찾자면 대개는 난감하다는 것. 웨딩마치 뒤에 곧바로 한복으로 갈아입으려 허둥대는 신랑 신부를 보아야 하는 민망함, 그 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로 동참해야 하는 수상한 동질감, 도무지 차이를 느낄 수 없는 치킨의 똑같은 맛, 덕지덕지 달라붙은 지저분한 광고 사이로 읽어야 하는 인터넷뉴스의 허망함, 사물의 불편함을 보지 못하게 하는 스마트폰의 편리함, 시를 쓰고 싶은 게 아니라 시인이 되고 싶어하는 시인들. 더 나열하다가는 사회적 자폐로 오인할 테니 그쯤 해두는 게 좋겠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은 익숙하지만 낯선 사물의 언어를 거부하는 초조감에 더 이상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낡은 언어에 익숙한 몸이 먼저 반응하는 탓이다. 물론 치킨이 통닭의 언어를 낚아챘을 때 통닭이 좌절했던 것처럼 나 역시 언제든 좌절할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약간의 갈등과 불편을 감내한다면 더 이상 사회적 억압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다. 말이란 게 원래 그렇다. 언어는 언제나 사물을 뭉뚱그려 하나의 표상만 보여준다. 사물에 대한 선택과 포기는 언어에 대한 선택과 포기이다. 치킨을 멀리하면 치킨으로 표상된 언어와 결별하는 것이다. 언어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행위를 중지한 마당에 그 언어의 의미조차 속절없다. 버려야 할 언어가 너무 많아질 언제쯤 아예 입을 닫고 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 전에 이런 변명을 딸에게 들려주고 싶다. 언어에 익숙해지면 사물의 뒤쪽을 보는 눈을 닫아버리거든. 육회로 나온 고기가 냉동차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바로 그 고기라는 사실을 알고도 육회를 먹는 것처럼, 터무니없는 세계관을 지닌 정치가가 제시하는 달콤한 정책에 맥없이 지지를 보내는 것처럼 말이지. 정치와 경제와 사회는 그것이 지시하는 말처럼 언제나 그렇게 굴러갈 거라고 믿게 되는 거지. 그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 체념한 구조주의자가 되어버렸단다. 변화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보수적인 편견이 몽땅 구조로 귀결되고 말듯이 제도와 구조의 견고한 틀이 생물학적 개인을 사회적 삶으로 분리시킨 바로 그 공간에 갇혀버리게 되는 것이지. 거기서 빠져 나오려면 사물의 언어를 버릴 수밖에 없어. 치킨처럼 말이지.

그렇지만 가끔 외면했던 언어들과 어쩔 수 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인터넷에 접속해 뉴스를 확인해야 할 때, 누군가에게 안부전화를 걸어야 할 때, 동창들과 만나야 할 때, 그리고 지금처럼 치킨을 먹어야 할 때. 금기는 해체되고 관계가 살아나고 언어는 생각과 의식을 다시 규정한다.

묻고 따지고 의심하며 비판하고 분노하고 체념하는 일련의 과정이 다시 시작된다. 그랬다. 처음부터 언어의 금기는 느슨한 구속력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애써 마련한 금기의 언어조차 일상의 삶에 주어진 일탈의 짧은 만족을 위해 마련된 장치에 불과했다는 미심쩍은 사실이 다시 드러난다.

그날 작은 가게에 들어가 우리는 절인 무와 콜라를 앞에 두고 흐뭇한 표정으로 프라이드와 양념이 반씩 섞인 치킨을 먹었다.


김진송 | 목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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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커가는 아이의 치수에
맞춰 얼마나 많은 기다림을 짜고
풀어내고 짜고 풀어내고 하였던가


세월이 흘러도 그 집은 오래도록 불빛이 꺼지지 않았다
언젠가 나도 그 앞을 지나가다 불빛에 들킨 적 있다
거기 문밖에 누가 와서 울고 있니?
희망이냐, 희망이냐


불빛은 미동도 없이
고요히 타오르고 있었다
뜨개질은 멈출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때의 그 나지막한 읊조림을 무어라 할까
창문의 그 꺼지지 않고 옹송그리는 그림자를
세상의 모든 여자들의 입술을 지나가는 그들의 노래를


공장에서 니트 원단을 공업용 재봉틀로 박으면 수천벌 니트 제품이 단숨에 쏟아지는데, 이런 세상에 한 코 한 코 느리게 손뜨개질하는 사람이 있답니다.



뜨개질은 너무 느려서 코바늘이 한 코, 한 코, 씨실과 날실을 엮는 동안은 그 실이 무엇이 될지 보이지 않는답니다. 모자나 장갑, 목도리나 스웨터는 상상 속에 있지요. 뜨개질하는 동안 연인은 상상 속에서 그 목도리를 수백번 둘러볼 것이고 자식은 스웨터를 수천번 입어 보겠지요. 느릴수록 그 즐거움은 더 길어진답니다. 그래서 빠른 시간은 제동이 걸리고 제 리듬이 회복되겠죠. 그러는 사이 뜨개질하는 여자들의 노심초사와 전전반측과 언제 닥칠지 모르는 비극과 꿰매도 너덜너덜한 마음과 날뛰는 심장은 느린 시간 속으로 들어가 편안한 리듬을 회복하겠지요.

달은 늘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올려다보면 어느새 훌쩍 가 있지요. 뜨개질도 늘 제자리인 것 같지만 한참 있다 보면 조금씩 자라 있지요. 기억도 사랑도 아픔도 슬픔도 겉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것 같지만 안으로는 열심히 움직인답니다. 내면의 상처도 그대로인 것 같지만 쉬지 않고 아무는 중이지요.

한 해에 가장 아름다운 보름달을 보며 풍성한 한가위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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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쥐가 나듯
방송원고를 이십년간 써댄
마누라 팔을 데리고가
식물학자한테 보여준다.


시 쓰다 말고 잠시 한눈판
이 손도 슬쩍 보여준다.


겨울나무들 영양제 꽂고 살고 있다.


죄송스런 이 손 식물원에 입원시킬까.


피로회복차 소주잔 들었던 이 손,
무거운 몸뚱이도 같이 들어올렸던
이 손, 마당에 내려놓고 싶다.


안구나 신장 따위 없는 겨울나무들
산소호흡기 매달고 사는 겨울나무들.
공중에 주렁주렁 매달려 살고 있다.


시 쓰던 팔 내려놓을 곳,
눈 둘 바를 모르고, 멀뚱히 뜨고 있는
안구 기증할 곳이 보이지 않는다.




한 청년이 길을 가다가 무언가 떨어뜨린다. 지나가던 노인이 그것을 주워 청년을 부르지만 청년은 듣지 못한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이 있는 힘을 다해 느릿느릿 뛰어가 등을 칠 때까지 청년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아무것도 듣지 않는 귀는 불안하다. 무엇으로든 즉시 채워지지 않는 침묵과 여백은 불안하다. 무언가 읽거나 보지 않는 눈은 불안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입은 불안하다. 아무것도 쓰지 않는 손은 불안하다. 스마트폰과 이어폰이 늘 붙어 있어야 하고 수다 떨 친구가 있어야 한다. 이목구비와 마음과 정신을 그토록 혹사하고도, 잠깐의 휴식은 벌 받는 것처럼 힘들고 불안하다.

아무 글도 쓰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잡거나 쥐지 않고, 나무는 온종일 전 생애를 공중에 팔을 든 채 서 있는데, 그렇게 팔을 들기만 하고도 많은 잎과 꽃과 열매를 맺는데, 이 눈, 이 머리, 이 팔, 이 마음은 왜 그렇지 못할까. 병이, 늙음이, 죽음이 강제로 내려놓아주기 전에, 먼저 자발적으로 내려놓을 수는 없을까.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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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에는

누군가
나보다 먼저 다녀간
흔적이 있다

- 장경린(1957~ )






조금 전에 내가 한 말은 이미 누군가가 했던 말, 오늘 내가 했던 생각은 누군가의 머리와 마음을 거쳐 갔던 생각,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은 이미 수많은 마음과 근육이 하고 또 했던 행동이다. 어젯밤 내가 꾸었던 꿈은 누군가가 꾸었던 꿈이고, 지금도 누군가가 꾸고 있는 꿈이다. 그 말, 그 생각, 그 행동을 마치 나인 것처럼 다른 누군가가 또 하고 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몸을 거쳐 갔던 고민과 슬픔과 괴로움과 분노와 좌절이 지금 내 몸에서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아무리 참고 통제하려고 해도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내 몸에서 제멋대로 움직이는 감정이나 욕망을 경험할 때, 후회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몸이 시키는 대로 따라갈 때,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말과 나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될 때 나는 내 몸에 살고 있는 누군가를 느낀다. 그는 내 안에서 나에게 명령을 내리고, 내 감정과 감각과 의식과 무의식을 활동시킨다. 아버지, 할아버지, 그 윗대조의 수많은 선조들이 그가 시키는 대로 해왔을 것이고 그들 또한 내 안의 타자가 되어 그러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단수가 아니라 일인칭 복수이다.

지금 도저히 출구가 없을 것 같은 이 고민은 이미 누군가가 분노하고 소리 지르며 경험했던 고민이며, 앞으로 누군가가 똑같이 울며 한숨 쉬며 하게 될 고민이다. 나와 같은 고민을 했거나 하게 될 누군가에게 연민과 위로를 보낸다.


김기택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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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섶에서 쇳조각을 주워들자
주위 덩굴이 뿌리째 뽑혀 나왔다
이 쇳조각도
내년쯤엔 꽃망울 피우고 바람에 하느작거렸을 텐가
산길에 졸며 서 있는 전봇대
반은 나무가 되었다
두드려보면 오래 스민 수액이 찰랑거린다
딸애 머리에 들꽃을 꽂아주고도 모자라
토끼풀로 팔찌 발찌를 엮었다
사람이 꽃으로 피는 건 백년도 안 걸린다
산자락을 넘어선 바람이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물속을 헤엄친다
겨우 한나절 동안 이 별에서 생긴 일이다





“죽음이 저렇게 많은 사람을 죽게 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런던교를 가득 메우며 지나가는 인파를 보고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은 시 ‘황무지’에서 이렇게 탄식했다. 그중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자 이렇게 묻는다. “자네 밀라에 해전 때 나와 같은 배에 있던 친구로군!/ 자네가 작년에 정원에 심었던 시체에선/ 싹이 트기 시작했던가? 올해도 꽃이 필까?” 그 많은 사람들이 백년도 안되어 풀꽃이나 나무와 한몸이 되다니!

사람이 죽어 꽃으로 피어나듯이 나무 전봇대도 썩으면 거름이 되어 꽃 피고 잎 다는 나무가 될 것이다. 쇳조각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분해되고 양분이 되어 풀꽃으로 돋아날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왜 이 모든 일이 “겨우 한나절 동안 이 별에서 생긴 일”이라고 했을까? 우주 공간에 시공간과 별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있듯이 이 지구별에도 생명과 죽음을 빨아들이고 지수화풍의 인연으로 뒤섞고 생사를 순환하게 하는 블랙홀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나절 동안 딸애와 산책하고 놀면서 그는 이 블랙홀의 힘을 느낀다. 상상 속에서는 이 모든 일들이 한나절 아니 한순간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김기택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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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위에 물 아래

관광객들이 잔잔한 호수를 건너갈 때

수부(水夫)는 시체를 건지려
호수 밑바닥으로 내려가
호수 밑바닥에 소리 없이 점점 불어나는
배때기가 뚱뚱해진 쓰레기들의 엄청난 무덤을,
버려진 태아와 애벌레와
더러는 고양이도 개도 반죽된
개흙투성이 흙탕물 속에
신발짝, 깨진 플라스틱통, 비닐조각 따위를
먹고 배때기가
뚱뚱해진 쓰레기들의 엄청난 무덤을,
갈수록 시체처럼 몸집이 불어나는 무덤을
본다 폐수의 독에 중독된 채
창자가 곪아가는 우울한 쇠우렁이를
물가에 발상했던 문명이
처리되지 않은 뒷구멍의 온갖 배설물과 함께
곪아가는 증거를

호수를 둘러싼 호텔과 산들의 경관에
취하면서 유원지를 향해
관광객들이 잔잔한 호수를 건너갈 때





△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계절이다. 아름답고 재미있는 휴양지를 찾느라 분주할 때다. 즐거운 휴식을 위해 정말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불편하게 썩은 내부를, 구역질나는 환부를 투시경으로 보듯 불편하게 까발려서 보여줄까. 우리가 사는 세상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습이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자연과 사회는, 삶과 현실은,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 가보면,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시는 고발이 아니라 질문이다. 왜 점점 아름다움이 많이 소비되는가. 왜 갈수록 디자인과 이미지가 중요해지는가. 왜 포장은 내용물에 비해 턱없이 커지고 화려해지는가. 왜 말은 그토록 매끄럽고 기름지며 많은 장식이 달리는가. 왜 갈수록 법은 정교해지고 제도는 복잡해지는가. 이 시는 이런 불편한 질문을 회피하고 편안하고 좋은 것만 보려는 이들에게 충격을 주는 몽둥이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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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산

둥글게 휜 풀잎의 둥긂
둥긂 위에 앉은 잠자리의 투명
투명 위에 앉은 여름산

비 온 뒤
이목구비 뚜렷한
여름산 메아리 속으로
먼 훗날 살 집을
걸려 보낸다

둥글게 휜 풀잎의 둥긂
둥긂 위에 앉은
이슬과 해와,
발자국




△ 혹독한 가뭄을 견디느라 잎이 마르거나 죽어가는 가로수들이 종종 보인다. 하지만 여름산의 나무들은 여전히 푸르다. 마른장마가 끝나 세수를 하고 난 듯 깨끗해진 여름산. 둥근 것들은 더 둥글어지고 푸른 것들은 더 푸르러지고 투명한 것들은 더 투명해진 여름산. 가뭄에 거칠어졌던 피부가 되살아나 매끈매끈해지는 느낌으로, 싱싱한 푸른빛으로, 바람에 살랑거리는 풀나무들이 대견하다. 제각기 휘어지고 구부러진 둥긂의 여유와 탄력을 누리는 잎들과 가지들이 더 사랑스럽다.

산과 바다가 부르니 도시는 텅텅 비고 고속도로와 공항은 붐빌 것이다. 하지만 불황이 깊어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푸른 바다와 맑은 계곡을 달력 그림처럼 쳐다봐야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피서 갈 여유가 없더라도, 시장이나 일터나 지하철이나 복잡한 거리에서도 “비 온 뒤/ 이목구비 뚜렷한/ 여름산 메아리 속”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마음에 “둥글게 휜 풀잎의 둥긂”을 불러올 수 있다면, 거기서 상상으로 지은 물소리, 바람소리, 매미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 일상은 얼마나 풍요로워지고 넓어질 것인가.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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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해고의 합리적인 기준을 설정한다는 전제하에서 ○○해고제 도입은 바람직하다. … ○○해고제는 그간 대법원에서 일관되게 나오던 판례를 법제화한 것에 불과할 뿐 특별히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일반해고 도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떠드는 논리와 많이 닮아 있는 위 얘기는 어디서 누가 한 말일까? 놀라지 마시라. 무려 19년 전인 1996년 12월5일, 노동관계법 토론회에서 당시 김영배 경총 상무가 ‘정리해고제’ 도입 필요성을 설명한 내용이다.

꼭 3주 뒤인 12월26일, 김영삼 정권은 노동법 개악을 새벽에 날치기 통과시켰다. 자, 그렇다면 19년 전에 도입된 정리해고는 과연 대법원 판례를 단순히 법제화한 것에 불과했는가? 해고의 합리적 기준을 마련해 억울한 노동자들을 구제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안다. 정리해고라는 말도 잘 몰랐던 기업들조차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정리해고를 할 수밖에 없다는 말 한마디에, 희망퇴직·권고사직으로 회사를 떠난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19년 사이 김영배 상무는 경총의 상근 부회장으로 승진했지만, 수백만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쫓겨나야 했다.

그사이 대법원 판례는 더 보수화되어 2002년에는 미래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리해고도 정당하다고 판시했고, 지난해 쌍용차 대법원 판결에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며 칼자루를 기업에 완전히 쥐여주고 말았다. 정리해고 법제화 이후 해고의 기준은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해왔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와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이 4일 국회 정론관에서 정부의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추진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_강윤중 기자




한국의 노사관계는 1996년 정리해고 도입 이전과 이후로 크게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까지 겹치며 한국 사회는 ‘우울한 격변’을 겪지 않았던가. 평생직장이란 단어는 잊혀졌고, 비정규직·저임금·실업과 고용불안이 사회 전반을 휘감게 된다.

19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똑같은 거짓말을 듣는다. “취업규칙 관련 대법원 판례를 가이드라인으로 정하자는 것일 뿐인데 왜 호들갑이냐, 해고 기준을 명확히 한다는 점에서 노동자에게도 유리한 것 아니냐, 오히려 늘어가는 해고 관련 법적 분쟁을 줄여줄 것이다.”

이제 사기 좀 그만 치자. 이런 내용이 제도화되면 ‘일반해고’라는 말도 잘 몰랐던 사업장에서 직무평가를 핑계로 인력감축에 나설 게 분명하다. 그냥 쫓겨날래, 한 푼이라도 챙겨서 나갈래 이런 공포를 조장해 희망퇴직·명예퇴직도 성행할 것이다. 법적 분쟁이 줄어들기는커녕 일반해고 관련 소송은 늘어날 것이고, 법원에서 보수적인 판례 하나만 나와도 해고 기준을 더 완화하려고 덤빌 것이다.

취업규칙 변경 역시 임금피크제만을 노린 것이 아니다. 더 낮은 임금체계, 특히 직무·성과급과 연봉제 도입으로 연공급·호봉제라는 단어를 잊게 만드는 수단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라는 대법원 판례 문구는 도깨비 방망이가 되어 또다시 한국 사회를 ‘심각한 우울증’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가증스럽게도 정부는 이 모든 것이 청년실업 해결을 위한 것이라고 둘러댄다. ‘에코 세대’라 불리는 현재의 청년들은 부모 세대가 겪은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의 아픔을 함께 경험했다. 대법원 판례를 제도화하는 것일 뿐이며 해고의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라는 거짓말을 ‘에코(메아리)’처럼 또다시 듣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와 에코 세대를 이간질하려는 농간에 맞서 분노의 화살은 다른 쪽을 향해야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장·회장 자리에 앉아 있는 자들, 그때보다 수십, 수백 배의 이윤을 벌면서도 호시탐탐 해고와 비정규직을 늘리려는 자들 말이다. 임금피크제가 아니라 이윤피크제를 실시하라고, 그동안 벌어먹은 수백 조원의 이윤에 세금을 매기라고, 그 돈으로 공공부문부터 청년들에게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하라고 말이다.


오민규 |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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