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 동네 사는 친구에게 문자를 받았다. 동네 외곽에 작고 낡은 교회가 있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방치된 채 학대받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전해 들은 사정은 더 끔찍했다. 거기 개집은 피자배달통에 구멍을 뚫어 만든 것이었는데 전혀 청소를 하지 않아 분변이 가득했다고 한다. 목줄이 짧아 강아지는 별수 없이 그 분변에 파묻혀 지냈다. 게다가 줄이 조금만 꼬이면 추운 겨울밤을 바깥에서 보내야 했고.

너무 안쓰러웠던 친구는 먹을 것과 핫팩을 넣어주었고, 동사무소를 통해 주인에게 보살핌을 부탁하는 말도 전했다. 친구는 한국의 법도 모르고 한국말에도 부담을 느낀 외국인이었지만 어떻게든 강아지를 살려보려고 했다. 그러나 며칠 후 울먹이며 말했다. 강아지가 죽었다고. 강아지가 보이지 않아 개집에 손을 넣었는데 싸늘한 시신이 있었다고.

그는 내게 교회에 함께 가줄 수 있느냐고 했다. 시신이라도 받아 장례를 치러주고 싶다고. 그런데 교회는 인적이 드문 곳에 있었고 여러모로 외국인 여성이 혼자 가기는 쉽지 않은 곳이었다. 게다가 밤이었다. 날이 밝은 뒤에 가면 어떨까 싶었지만 친구는 강아지 시신을 조금이라도 빨리 받아 장례 치러주고 싶다고 했다. 주인이 평소 강아지를 대하는 것으로 볼 때 시신도 함부로 처리할 것 같다고.

그를 따라 교회 공터에 갔을 때 백구 한 마리가 짖어댔다. 개를 무서워하는 내가 움찔하고 있을 때 친구는 차분하게 피자배달통을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강아지 시신이 사라졌다며 망연자실해했다. 내 딴에는 위로한답시고 주인이 잘 묻어주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그러자 친구가 답했다. 한국에서는 개나 고양이가 죽으면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린다고 들었다고. 평소 한국의 반려동물 문화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나로서는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그날 밤 그와 나는 교회 근처의 종량제 봉투들을 뒤졌다.

강아지 시신을 찾지는 못했다. 친구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속으로 안도했다. 그럴 리 없다는 내 믿음이 확인된 것 같아서. 그러나 내가 틀렸음을 알려주는 사건이 보도되었다. 천안의 어느 쓰레기 집하장에서 종량제 봉투에 담긴 살아 있는 개가 발견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살아 있는 개를 종량제 봉투에 버린 것에 분노했지만 나는 그 기사를 보고서야 알았다. 한국에서는 개를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린다는 친구 말이 맞았다는 것을.

현행법령에 따르면 동물 사체는 일반쓰레기라고 한다. 그러니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는 것이 법적으로도 맞고 많이들 그렇게 한다고 한다. 종량제 봉투에 넣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동물병원에서 죽은 경우인데 감염의 위험 때문이다. 죽은 동물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인간 건강에 대한 배려인 것이다. 요컨대 죽은 동물은 그냥 버려도 되는 일반쓰레기와 특별 관리가 필요한 위험쓰레기가 있을 뿐이다.

종량제 봉투에 담긴 생명, 즉 생명 쓰레기는 우리와 동물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생명체, 특히 동물을 산업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농장은 사실상 공장이다. 다만 제품이 살아있는 동물인 것뿐이다. 생산 공정에 대해서는 간단한 인터넷 검색으로도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여기서는 ‘효율’이나 ‘개량’이라는 말에서조차 ‘학살’의 냄새가 난다. 상품은 대부분 먹거리이고 일부가 정서만족을 위한 애완용이다.

그런데 모든 상품의 이면은 쓰레기다. 상품은 가치와 쓸모를 가진 물건인데 생산과정에서 하자가 발견되거나 소비과정에서 소모되면 폐기된다. 해당 상품이 심장을 가진 것이라 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소비된 뒤 종량제 봉투에 담겨 집하장으로 가는 것과 생산과정에서 하자가 발견되어 산 채로 집단 매립되는 것은 다른 원리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상품관계의 근간에 소유관계가 있다. 근대적 소유권의 핵심은 처분권이다.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는 것은 내 곁에 있어도 소유한 게 아니다. 반대로 처분권만 있다면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땅조차 소유할 수가 있다. 내가 사물을 소유했다는 것은 그것을 쓰거나 양도하거나 내다 버릴 권리를 가졌다는 뜻이다. 쓰고 버리든 내다 버리든 내 맘이다. 그래서 소유권이란 쓰레기에 대한 권리이기도 하다. 소유를 도둑질이라고 했던 프루동의 말을 흉내 내자면 소유란 얼마간의 쓰레기다.

내 친구가 죽어가는 강아지에 더 접근할 수 없었고 죽은 강아지를 데려올 수도 없었던 것은 강아지가 하나님의 공간에 있는 피조물이어서가 아니라 사유재산이었기 때문이다. 강아지에게는 주인이 있었고 주인에게는 처분권이 있었다. 반려견을 산 채로 종량제 봉투에 넣은 부녀는 그래도 사회적 비용을 줄여주는 선택을 했다. 그냥 길에 내다 버린 유기견만 1년에 10만 마리도 넘는다고 하니 말이다.

문제는 동물에게 주인이 없다는 데 있지 않다. 교회 강아지의 비극은 일차적으로는 그런 주인을 만난 것에 있고 더 일반적으로는, 세상의 모든 동물들이 그렇듯, 주인을 만난 것에 있다. 주인을 섬기라는 교회에서 내 친구는 동물에게 필요한 것은 주인이 아니라 친구라는 걸 보여주었다. 소유하지 않고 돌보는 사람 말이다. 동물을 필요 이상으로, 심지어는 과시적으로 먹어치우는 사회에서 동물과의 우정은 분명 먼 곳에 있다. 그래도 이미 친구, 아니 친구들이 있기에 적어도 길은 있다고 생각한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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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9일. 어떤 날을 거기까지 세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최강 한파가 덮친 지난 금요일, 세종로공원 한편에 세워진 작은 텐트를 찾았다. 기타 생산업체인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농성장이다. 4000일, 예정된 특별한 행사는 없다고 했다. “해탈한 것 같아요. 4000일이라고 뭔가 요란스레 할 것도 없고.” 그리고는 언제부턴가 시작한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의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고 했다.

나오는 길에 책 한 권을 받았다.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 임재춘씨의 농성일기를 묶어 펴낸 것이다. 집에 돌아와 한쪽한쪽, 그러니까 이들의 하루하루를 읽어가며, 나는 억울했던 날, 희망찼던 날, 정의를 울부짖던 날을 보았다. 그러다 책 제목을 다시 보고 알았다. 3999일이라는 긴 시간에도 가질 수 없었던 날이 있었음을. 하루를 이어 붙여 4000일을 만들어도 이를 수 없는 날이 있었음을. 그건 바로 ‘내일’이다. 해고된 날 사장이 빼앗아간 ‘내일’ 말이다.

5년 전쯤 이들과 짧게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 송년행사에 이들이 결성한 밴드 ‘콜밴’이 왔다. 그때 표정이 너무 밝았기에 나는 그 해에 대법원의 끔찍한 판결문이 나왔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투쟁을 안 했다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겠어요? 악덕 사장 만난 덕에 이 나이에 밴드도 하고 연극도 해보고….” 정말 그런 것 같았다. 그렇게 즐겁게 투쟁한다면 힘든 싸움이지만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주 콜트콜텍의 농성이 4000일이 되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4000일이라는 긴 시간은 날을 늘리지 않기 위해 이들이 필사적으로 몸부림쳐온 시간이기 때문이다. 노래하는 가수, 연극하는 배우, 고추장 만드는 농사꾼, 책 쓰는 저자가 되었던 것은 이들이 노동자로 남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5년 전쯤 내가 가수가 되고 배우가 된 노동자들에게 감탄하던 때, 이들은 그전 5년을 본사를 점거하고 철탑에 올라가고 분신을 하고 목까지 맸던 사람들이다. 악기박람회, 록페스티벌을 찾아다니며 해외 원정 투쟁도 벌였다. 그 후 다시 5년, 이들은 더 이상 잘 할 수도 없고 더 이상 잘 할 필요도 없는 묵묵한 해탈의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무슨 복잡한 사정이 이들을 여기까지 오게 한 걸까. 큰 억울함은 복잡한 것에서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아주 단순하고 명백한 것에서 온다. 너무나 뻔한 불의를 인정하지 않고 더 나아가 그것을 정의로 포장할 때 우리의 밑바닥 정의감이 뒤집어지는 것이다.

콜트콜텍의 사정도 단순했다. 2006년 4월 콜텍에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자꾸 창문을 쳐다보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며 창문 하나 만들지 않은 공장. 이런 공장이 어떻게 운영되었을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각종 유기용제와 분진이 가득한 작업장, 강제된 잔업, 성차별과 추행. 거기에 대규모 구조조정까지 시작되었다. 이때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수단이었다.

그런데 노동조합 설립 1년 후 노사협의회가 예정된 날 사장은 공장의 모든 출입문을 폐쇄하고 폐업절차에 들어갔다. 그리고 모회사인 콜트에서도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했다. 더 이상 주문량이 없다는 이유였다. 그것은 당연했다. 물량을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공장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매년 순이익을 60억원 이상씩 내고 폐업 직전에도 주문량이 늘었다며 임금인상에 합의한 회사가 물량이 없다며 폐업신고를 한 것이다. 지방노동위와 중앙노동위는 콜텍의 직장폐쇄와 콜트의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법정싸움이 이어졌다. 당연한 것이 뒤집힐 수는 없었다. 그런데 2012년 대법원은 고등법원 판결을 교묘하게 비틀었다. 사실상 한 회사인 콜트와 콜텍을 분리하고, 콜트악기에 대해서는 부당해고를 인정했지만, 콜텍에 대해서는 “장래의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한 인원감축도 정당”하다며 하급심 판결을 뒤집었다. 고등법원에서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없다며 부당해고라고 했던 것을 대법원은 ‘긴박함’을 ‘장래에 있을 수도 있는 위기’로까지 확대했다.           

모두가 ‘긴박함’이라는 말뜻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사장은 콜트악기 공장까지 매각해서 그나마 대법원이 부당해고를 인정한 노동자들의 복귀도 막아버렸다.

이것을 인정할 것인가. 이 단순한 질문이 지난 4000일간 농성노동자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미래의 점을 치듯 서초동 대법관이 내린 판결에 내 양심의 법관이 펄쩍 뛰는데 달리 어쩌겠는가. 그래서 이들은 내일로 못 간 채 오늘을 붙들고 수천 일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에게 오늘을 물려줄 수는 없어요.” 너무나 뻔한 부당해고와 위장폐업, 너무나 어이없는 판결문을 쥐고 오늘 아플지언정 내일로 넘겨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2012년 이들은 <햄릿>을 무대에 올린 바 있다. 햄릿은 그의 사명이 ‘이음매가 어긋난 시간’을 바로잡는 데 있다고 했다. 시간이 어긋나니 과거는 어제가 아닌 오늘을 살고 미래는 내일이 없는 오늘에 붙는다. 이 불의의 시절이 4001, 4002로 숫자를 이어간다면, 그래서 우리가 오늘을 늘려 내일로 삼는다면, ‘내일’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 시간을 바로잡아야 한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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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하는 자가 동정받는 자의 무례에 분노할 때가 있다. 기껏 마음을 내어 돈과 선물을 보냈더니 그걸 받는 쪽에서 기쁜 내색을 하지 않는다고 하자. 돈이랑 선물은 매번 챙겨가면서도 감사의 표시가 없다면, 주는 쪽에서는 꽤나 서운할 것이고 그 서운함은 언젠가 분노로 돌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매년 이맘때쯤 많은 시설들에서는 후원자들의 방문일에 맞춰 대청소를 하고 며칠간 공연을 준비하고, 후원자들을 향해 활짝 웃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편지도 쓴다. 그것은 후원자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가질지도 모를 서운함과 분노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은망덕한 이들에 대한 자선가의 분노에는 따져볼 것이 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한 번 생각해보자. 자선가는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서도 왜 분노하는가. 그가 원한 것은 행위가 아니라 행위에 대한 보상이었던가.

철학자 니체는 선행을 통해 상대방을 소유하려는 자들의 책략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선행을 베풀고 헌신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선행과 헌신으로 상대방에 대한 소유권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니체에 따르면 이들의 소유욕은 선행을 구상할 때부터 발휘된다. 이를테면 자선가는 도움을 줄 대상을 먼저 상상한다. 그는 스스로를 그 사람의 위치에 놓아본다. 불쌍한 처지의 자신을 도와준다면 그는 고마움에 눈물까지 흘릴 것 같다. 이런 상상을 마친 그는 가난한 이에게 선행을 베푼다.

그의 상상대로라면 상대방은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야 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은 선행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마음과 알아서 하는 대견한 행동. 이런 게 연출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구현되지 않을 때 우리의 자선가는 끔찍한 배우를 만난 감독처럼 분노한다.

자선가의 분노는 그의 선행이 소유물에 대한 욕구에서 나왔음을 보여준다.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이미 구상에서부터 “소유물을 다루듯 가난한 사람들을 마음대로 취급”했다. 상대방이 자기가 원하는 행동을 할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전제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제에 입각한 선행은 그 자체로 상대방을 사물화한다. 인형놀이와 같다. 멋진 옷을 입혀주고 머리도 예쁘게 땋아주었지만 내가 원한 자리에 내가 원한 포즈로 있기를 바라는 그런 인형 말이다.

우리는 사랑과 헌신으로 상대방의 품행에 대한 명령권을 얻었다고 믿는 사람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연인 사이에서도 그렇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 권력자와 신민 사이에서도 그렇다.

대표적인 예는 부모와 자식일 것이다. 부모들은 자식들을 소유격으로 표현하곤 한다. 부모에게 자식은 모두 ‘내 자식’이다. 그리고 자식이 기대를 저버릴 때 부모들은 곧잘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말한다. 감정적으로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냉정하게 따지자면 이는 ‘나는 헌신함으로써 너를 소유했는데’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자선가, 박애주의자, 헌신하는 자가 느끼는 배신감에는 큰 무례함이 들어있다. 그는 미장센을 망친 상대방에 분노했지만 그보다 먼저 상대방을 미장센의 소품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마치 상대방의 품행에 대한 통제권이 자신에게 있는 듯 말이다. 말하자면 그는 상대방을 사물, 인형, 소유물로 다룬 것이다.

최근 ‘롱패딩 후원’ 문제 때문에 인터넷에 글을 올린 어느 후원자의 분노에서도 그런 걸 일부 느꼈다. 나는 그 후원자가 마음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절세나 이미지 세탁을 위해 어쩌다 한 번씩 선행을 연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복지재단을 통해 매달 5만원씩 가난한 아이를 꾸준히 후원해왔고,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에는 별도의 선물을 떠올리는 사람이었다.

문제의 ‘롱패딩’도 애초에는 훈훈한 이야기의 서두일 수 있었다. 이 추운 날, 게다가 롱패딩이 요즘 유행이라는 말까지 들었을 터. 롱패딩과 후원하는 아이를 동시에 떠올렸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10여만원짜리를 사주려고 했는데 아이가 20만원짜리를 말해서 분노했다는 게 언뜻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한 달치 소액 후원금에 해당하는 몇 만원이 자신이 후원한 아이의 선악을 가를 정도의 액수로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충격은 두 벌의 롱패딩이 아니라 두 아이 사이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가 선행을 베풀며 그린 아이와 현실의 아이가 너무 달랐던 것이다.

후원자와의 직접적인 만남도 거절하고 가난한 주제에 여느 아이들과 똑같은 롱패딩을 입으려는 아이. 그는 당장 후원 중단을 통보했고 아이에 대한 비난 글을 올렸다. 그는 아이가 자신을 ‘물주’로 본 것 같다며 분노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자신의 분노에 대해 되묻길 바란다. 후원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그의 말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저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이가 자신을 ‘물주’로 본 것 같다고 했지만 정작 자신이 아이를 ‘사물’로 본 것은 아닌지. 그는 후원자로서 돈을 주었지만 혹시 아이한테 인간을 빼앗은 것은 아닌지 말이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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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지진으로 흔들리는 나라가 되었다. 건물 외벽이 쏟아져내렸고 아파트는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포항의 많은 사람들이 기울어진 아파트의 각도만큼이나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졌다. 조금만 더 흔들렸다면, 아,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이제 집도 학교도 다시 지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다르게 지어야 한다. 한 번 일어난 것은 두 번 일어나고, 작게 일어난 것은 크게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건물도 건물이지만 금이 간 마음을 치유하는 데 많은 시간이 들 것이다. 이제 마음도 집을 잃어버렸다. 마음을 다시 지을 수 있을까. 건물은 지진을 반영해서 달리 설계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마음의 골조를 달리 세울 수 있을까.

육군2작전사령부 예하 50사단 장병들이 17일 오후 포항 청하면 지진 피해지역에서 굴삭기ㆍ덤프 등을 투입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거대한 재앙은 사람들의 생각을 크게 바꾸어놓는다. 대표적인 예가 리스본 대지진이다. 1755년 11월에 큰 지진이 리스본을 강타했다. 대규모 화재가 일어났고 엄청난 규모의 쓰나미가 덮쳤다. 수만명의 시민들이 죽었고 85% 이상의 건물이 파괴되었다.

당대 사상가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계몽주의자 볼테르는 세상일을 신의 뜻으로 설명했던 신정론을 강하게 비난했다. “모든 게 ‘신이 만든’ 최선이라 외쳤던 철학자여, 와서 이 폐허를 보라.” “신이 벌을 내렸다고 말하는 자여, 어미의 가슴에 안겨 피흘리고 있는 저 어린것에게 무슨 죄가 있는지 말해보라.” 그는 신의 섭리에 자신을 내던지느니 약한 인간들과 더불어 깊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겠다고 했다.

근대 계몽주의는 이렇게 태어났다. 자연은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자연은 맹목이며 믿을 것은 인간의 이성뿐이다. 재난을 신의 의지에서 떼어내어 인간 이성의 관리 아래 두는 것. 불확실한 자연을 인간의 과학기술로 지배해 나가는 것. 수잔 니먼의 표현을 빌리면 리스본에서의 깨달음은 “근대의 진정한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였다.

하지만 인간을 믿어도 좋은가. 과연 자연은 맹목이고 인간의 눈은 밝은가. 다시 포항 지진을 보자. 지진이 일어나자 많은 이들이 진앙지 근처의 핵발전소들을 보았다. 더 큰 재난을 의식한 것이다. 근대 이후 인간을 두렵게 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가장 끔찍한 재난이 인간 한테서 올 것임을 알고 있다. 리스본 지진은 근대를 낳은 재앙이지만 지금 우리는 근대가 낳은 재앙과 대면하고 있다.

리스본 지진에서 볼테르는 인간의 죄 때문에 자연재해가 일어난다는 생각을 비난했다. 하지만 10년 전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쓰촨성 대지진은 천재와 인재의 구분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댐에 담긴 물이 지반을 뚫고 들어가 단층을 끊어 지진이 일어났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자연재해를 신의 심판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자연재해에 인간의 죄가 없는지도 확실치 않다. 볼테르 이후 계몽의 역사는 재난을 막을 수호자가 재난의 유발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핵무기와 핵발전소는 이런 역설의 정점에 있다. 최고의 안보수단이 최악의 자기절멸수단이며, 최고의 발전설비가 최악의 황폐화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 야당과 주류 언론은 포항 지진이 탈핵 논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데 필사적이다. 한 신문은 사설을 통해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해서 비합리적 주장을 펴는 것이 광우병 사태와 같다”고 했다. 핵발전소에 대한 사람들의 우려가 비합리적 선동과 괴담에 놀아난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과학과 괴담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우려는 더 깊은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탈핵론자들이 아니라 “이번 지진으로 원전의 안전성이 입증되었다”고 외치는 사람들이다. 거기서 나는 안전성이 아니라 불감증을 본다. 핵무기가 최고의 방어수단이라고 하지만 핵무기를 끼고 사는 삶이 불안을 유발하듯, 핵발전소가 최고의 안전장치를 통해 관리되고 있다고 해도 핵발전소를 늘려감으로써만 영위할 수 있는 삶은 불안하다.

원자로를 다섯 겹으로 둘러쌌으니 안전하다는 말은 다섯 겹을 둘러싸야만 안전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당장에는 그 다섯 겹이 충분한 것인지, 다섯 겹을 제대로 둘러싸기는 한 것인지 때문에 불안하다(경험상 한국사회에서 이런 불안은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다). 하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 우리는 최소 다섯 겹은 둘러싸야 하는 것을 이렇게 많이 만들어놓고, 더 늘리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 그런 맹목성 때문에 불안하다.

2009년에도, 2017년에도 우리를 불안케 한 것은 괴담이 아니라 불감증이다. 이 불안은 괴담으로 생겨난 게 아니므로 과학기술로 해소되지 않는다. 핵발전소에 대한 불안의 해법을 더 안전한 핵발전소의 건설에서 찾는 한 우리의 운명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핵발전소를 양산해온 우리 사회의 길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다.

그러나 이번 일로 우리 정신의 골조가 다시 짜일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지진에도 견디도록 내진설계된 정신들, 다섯 겹의 콘크리트로 밀봉된 정신들, 지진이 나면 오히려 핵발전소로 뛰어들어 가라는 저 낡은 볼테르들이 어떤 새로운 계몽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고려대 민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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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침팬지 부이(Booee). 그는 1967년에 태어났다. 부이의 엄마는 미국 국립보건원의 실험용 침팬지였다. 거기서 태어난 부이는 잦은 발작 때문에 뇌절제술을 받았다. 예후가 좋지 않아 고생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그를 가엾게 여긴 의사 한 사람이 몰래 데리고 나와 집에서 3년을 돌보았다. 그러고는 오클라호마에 있는 영장류 연구소로 보냈다. 부이는 거기서 젊은 연구자 로저 파우츠를 만났다. 파우츠는 영장류의 언어습득에 대해 연구하던 중이었다. 부이는 파우츠에게 수화를 배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파우츠는 논문을 쓴 후 다른 곳으로 떠났다. 그가 떠난 후 연구소는 부이를 뉴욕의 영장류 연구소에 팔아넘겼다. 그런데 이 연구소는 의약품을 개발하는 곳이었다. 부이는 여기서 약물 실험 대상으로 13년을 보냈다. 이때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던 방송사에서 파우츠에게 연락을 해왔다. 혹시 부이를 만날 생각이 있느냐고. 처음에 파우츠는 미안함과 두려움 때문에 주저했다고 한다. 연구를 마치고는 볼일 다 본 사람처럼 떠나버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게다가 그런 끔찍한 연구실에 자신을 팔아버린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방송 출연이 부이를 꺼내줄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파우츠는 부이를 찾아갔다.

파우츠는 자신과 부이의 재회 순간을 <가장 가까운 친척>(Next of Kin)이라는 책에 자세히 적었다. “안녕, 부이! 나, 기억해?” 파우츠를 보자 부이는 펄쩍 뛰며 답했다. “부이, 부이, 나, 부이야!” 그러고는 자신의 머리를 만졌다. 이것은 파우츠와 부이 둘만의 애칭이었다. 파우츠는 부이를 애칭으로 부를 때 머리를 만지곤 했다. 부이가 뇌수술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이는 파우츠만이 알고 있던 자신의 애칭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부이 자신이 파우츠에게 부여한 애칭도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의 머리를 만진 후 부이는 귓볼을 당겼다. 특색이 있는 귀를 가졌던 파우츠에게 부이 자신이 붙여준 애칭이었다. 파우츠를 보며 부이가 말했다. “그래, 너, 귓볼이잖아.” 이처럼 부이는 파우츠가 까맣게 잊어버린 것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좁은 철창을 사이에 두고 둘은 서로를 껴안았다.

파우츠는 책에 이렇게 적었다. “13년을 지옥에서 보낸 부이. 그런데도 그는 나를 용서했고 진심으로 대해주었다. 인간들이 저지른 끔찍한 짓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사랑해주었다.” 파우츠는 실험 때문에 간염을 앓고 있는 부이 앞에서 너무 부끄러웠다. 그리고 부이를 연구대상으로서만 다룬 뒤 여느 연구자들처럼 훌쩍 떠난 자신을 책망했다. 다행히 부이의 이야기는 방송을 탔고 책으로도 출간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덕분에 부이는 비영리 동물대피소로 옮겨진 뒤 거기서 여생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스노라 테일러의 책 <짐을 끄는 동물>(Beasts of Burden)에서 이 이야기를 읽었다. 이 책에서 테일러는 동물을 ‘말할 수 없는 존재’ ‘목소리 없는 존재’로 간주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목소리 없는 존재’ 같은 것은 없다고 했다. 사실 동물들은 끊임없이 말을 한다. 예컨대 개가 앞발을 그릇 위에 둘 때 그것은 먹을 것을 달라는 말이고, 문을 긁어대며 끙끙대는 것은 나가자는 말이다. 우리가 들으려고만 하면 꽤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이다. 하지만 고개를 애써 돌려버리는 상황에서는 그것들이 들릴 리가 없다. 우리는 부이처럼 인간의 언어를 구사했을 때만 깜짝 놀라며 그를 풀어주라고 소리친다. 부이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파우츠의 책 제목처럼 그가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척’임을 보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말을 하지는 못하는 존재들은 어떤가. 이제 의약품이나 독극물의 실험대상으로 침팬지를 이용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이의 자리는 부이보다 더 ‘먼 친척’인 다른 동물들이 지키고 있다. 그들의 말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는 이 동물들의 처지가 소수자들 일반의 처지와 많이 달라보이지 않는다. 동물들은 언제부턴가 소수자의 형상을 하고 있고, 인간 소수자들 역시 사람취급 받는 것이 쉽지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언어 능력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고, 그 덕분에 그저 소리만 질러대는 동물들과 달리 “정치적 존재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언어를 못하는 인간은 제대로 된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고, 인간이 아닌 존재의 말은 언어 취급을 받지 못하는 모양이다.

한때 나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소수자들에게 인문학은 언어를 줄 수 있다고, 그래서 그들이 정치적 존재가 되는 데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듣지 못함’을 상대방의 ‘말하지 못함’으로 교묘히 바꾸어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무능을 상대방의 무능으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그러나 테일러가 힘주어 강조했듯이, 세상에 말할 수 없는 존재란 없으며 단지 듣지 못하는 존재, 듣지 않는 존재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존재로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그들은 말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들을 수 있는가’이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고려대 민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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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 제1야당 원내대표가 대법원장 후보자와 관련해서 국회에서 한 말이다. “후보자는 지난 2012년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성소수자 인권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발제자들이 동성애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요구했다.”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밝히기 위해 근거로 삼은 말인데 여기서 도출한 결론이 이해가 안 된다. 정우택 원내대표에 따르면 ‘그러므로’ 김명수 후보자는 부적격이라는데, 나로서는 성소수자 인권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와 대법원장 부적격이라는 말 사이에 놓인 ‘그러므로’를 납득할 수가 없다.

보통의 논쟁에서 추론이 문제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근거에서 추론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누구나 동의하는 규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누군가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죽는다’라고 말했다면, 결론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소크라테스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근거가 된 사실에 동의함에도 거기서 확신을 갖고 추론한 결론을 이해할 수 없다면 어찌해야 할까. 누군가 ‘오바마는 흑인이다. 그러므로 이 버스에 탈 수 없다’라고 한다면, 우리로서는 어안이 벙벙해질 따름이다. ‘그러므로’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다른 시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유감스럽게도 민주당은 후보자가 동성애자를 옹호하지 않았다고 방어했다. ‘그러므로’가 아니라 근거가 된 ‘사실’을 부인하는 쪽으로 나아간 것이다(‘그러므로’ 민주당도 우리 시대의 정당인지 확실치 않다).

범죄성이 짙은 말도 있다. 이채익 의원이 인사청문회에서 했다는 말이다. “성소수자를 인정하게 되면 동성애뿐 아니라 근친상간 문제나 소아성애, 시체상간, 수간까지 비화가 될 것이다. 인간의 파괴, 파탄이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 5년 전 스웨덴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동성애를 비난하는 전단지를 돌리다 체포되어 유죄선고를 받았다. 전단지에는 동성애가 비정상적 성애이고, 사회에 파괴적 영향을 미치며, 에이즈에 책임이 있다는 식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스웨덴 법정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일군의 사람들에 대한 적대를 조장했다며 징역형(집행유예)과 벌금형을 선고했다. 아무런 합리적 근거도 제시할 수 없던 이들은 ‘표현의 자유’를 호소하며 유럽재판소에 청원했다. 그러나 유럽재판소는 이들의 표현이 “필요 이상으로 공격적이고” “편견에 사로잡혔다”며 스웨덴 법정의 판결에 동의했다.

실제로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스웨덴, 노르웨이,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 브라질, 미국, 멕시코 등 많은 나라들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이들 나라에서는 자기 머릿속 더러운 상상을 현실인 것처럼 외치는 사람들을 교정이 필요한 범죄자로 간주한다.

편견을 주입하는 말도 횡행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동성애 교육이 특정 교사들에 의해 학교현장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며 서울의 한 초등학교 영어교사가 “‘퀴어’(queer) 축제 영상을 보여주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대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섹슈얼리티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사가 되도록 노력하고 커밍아웃을 할 수 있는 학급이 되도록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내용의 성교육을 했다”며 비난했다.

그런데 초등학생들에게 퀴어 축제 영상을 보여주고 섹슈얼리티의 다양성을 존중하도록 교육하는 것이 왜 문제인지 알 수가 없다. 퀴어 축제는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축제이고, 한국 축제에는 여러 나라 대사관들도 참여하며 올해부터는 국가인권위원회도 참여한다. 교육자라면 아이들에게 ‘퀴어’라는 말의 역사가 보여주는 인류의 부끄러운 편견과 그 편견을 깨기 위한 성소수자들의 분투를 알려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전희경 대변인은 이것이 “특정한 성적 지향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내 생각에는 그 반대다. 오히려 특정한 성적 지향만을 ‘정상’인 것처럼 믿어온 무지와 편견을 반성하고, 우리의 좁은 두개골 안에 아이들의 미래가 갇히지 않도록 열어주는 것이 교육자의 책무일 것이다.

신성모독처럼 들리는 말도 있다. 국내 최대 기독교 교단의 총회 결정이다. 이 총회에서는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노력해온 목사에 대해 ‘동성애 지지’와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섰다’며 성경에 위배되는 이단성을 지녔다고 결의했다. 성소수자 인권을 돌보는 것이 신에 대한 불경인지 신적인 사랑의 실천인지 나로서는 고개가 갸웃할 뿐이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때도 그랬다. 공학자였던 그는 신앙인의 관점에서 지구의 나이는 6000년이라고 했다. 자신의 자아를 신앙인과 공학자로 따로 관리하는 모습도 딱했지만, ‘지구 나이 6000년’이 어떻게 신에 대한 경건이 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글자만을 숭배하니 그것을 기록한 시대의 사고 속에 신을 가두어두는 꼴이 아닌가.

종이와 잉크를 숭배하는 이들로부터 신의 말씀을 지키고자 했던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선을 추구하는 신’보다 ‘무심한 신’이 진리에 가깝다고. ‘선’에 대한 제멋대로의 규정을 ‘신’에게 덮어씌우느니, 그런 것에 무심한 신이 차라리 신에 가깝다는 것이다. 에피쿠로스도 그렇게 말했다. 진정 불경한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를 신에게 덮어씌우는 사람들이라고. 신을 자신들의 수준으로 떨어뜨려 놓은 사람들 말이다. 요즘 성소수자에 대한 이런저런 말을 듣고 있다 보면 6000년 전 빚어져서 에덴동산 밖으로 한 번도 나가본 적 없는 사람들을 만난 느낌이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고려대 민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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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장애인 수용시설 이야기다. 지난 칼럼에 이어서 또 쓴다. 시설을 또 방문했기 때문이고 거기서 억울한 사람들을 또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얼마나 억울하냐면 그들 스스로 억울한 처지에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억울하다. 정서적 두려움 때문이든, 지적 역량 때문이든 자신의 처지를 따져볼 조건 자체를 상실한 사람들. 억울해서 울부짖을 수 있다면 그래도 덜 억울한 것이라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내가 만난 생활인들은 모두 1급장애인이었는데 대부분이 언어와 지체, 지능 등의 중복장애를 안고 있었다. 실태조사를 위해 조금이라도 대화가 가능한 소수의 사람들을 만났다. 대화라고는 했지만 힘겹게 낳은 단어들을 한 개씩 모으고, 손짓과 표정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가능한 대화였다.       

옆방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세상을 등진 것처럼 모로 누워 있었고, 한 젊은 남자는 전라의 몸으로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내 눈이 휘둥그레진 걸 본 생활교사는 ‘쟤는 원래 저래요’라고 했다. 그러고는 심상한 풍경을 보듯, 아니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 그냥 하던 일을 마저 했다. 밀폐된 공간이 아니었는데도 거기서 나는 숨쉬기 힘들었고, 어디 부딪치거나 묶인 적이 없는데도 근육통을 느꼈다. 무언가 안에서 차올랐는데 목 언저리에서 막혀 나오질 않았다.

2013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21회 세계장애인의 날 기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장애인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정근 기자

무언가 안에 쌓인 채 억눌려 있는 것. 그것을 ‘억울’이라고 한다. 나는 그날 억울을 체험했다. 그러나 거기서 내가 억울할 일은 없었다. 그러니 그 억울은 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것이었다. 언어장애가 있어 말할 수 없고, 지적장애가 있어 생각해낼 수 없는, 그러나 수십년의 시설생활 동안 쌓여왔던 것. 아마도 내 몸은 그들 몸에 쌓인 억울을 모방했던 모양이다. 답답했고 아팠고 나가고 싶었다. 몸 곳곳의 작은 성대들이 ‘내보내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바로 이 느낌 때문에 이번 칼럼의 제목을 ‘장애인들을 석방하라’고 쓸까 했다.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지만 사실상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들, ‘우리’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너희’는 거기 그렇게 갇혀 있으라는 선고를 받은 사람들. 그들을 석방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시설이 그렇게 끔찍한 곳이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시설을 함께 둘러보던 사람 중에는 시설이 생각보다 깨끗하고 생활교사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것 같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도 얼마 전에 여기 입소했다는 아이를 보는 순간, ‘어쩌다 이런 데 왔냐’며 눈물을 왈칵 쏟는다. 그런데 실은 그 아이 곁에 앉아있는 중년 남자도 삼십년 전 누군가의 손을 잡고 여기에 온 아이였다.

시설 조사를 마치고 나오던 늦은 오후, 결국 한 사람이 나를 붙잡았다. 대화 중에는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만약 나간다면 누구랑 살고 싶냐는 물음을 듣고는 나를 붙들었다. ‘나간다’는 말 한마디가 그를 일깨운 것이다. ‘언제, 언제요? 언제 나가요? 언제 나갈 수 있어요?’ 계속해서 내 손을 붙잡고 물었다. 요양시설이니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 나갈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와 눈을 오래 마주치지 못했다.

그사이 또 한 사람이 내 손을 잡았다. 휴대폰을 가진 극소수 중 한 사람인 그는 내게 휴대폰이 켜져 있는지를 봐달라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걸려오는 엄마 전화를 놓치면 안된다고.      

그러고 보니 거기 사람들 대부분은 텔레비전이 있는 안쪽 거실이 아니라 출입문 쪽 거실에 모여 있었다. 누군가 문을 열면 일제히 고개를 든다. 그들 모두가 수십년간 그렇게 물어온 것이다. ‘언제, 언제요? 언제 나가요?’라고.

내가 이번 칼럼 제목을 ‘약속’이라고 잡은 것은 지난 금요일 아침의 일을 적어두기 위해서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광화문 지하 역사의 농성장을 찾아왔다. 장애인 단체들이 ‘장애인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수용시설’의 철폐를 외치며 농성한 지 5년을 넘기던 시점이었다. 그는 농성장에 모셔둔 영정 속 장애인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광화문 농성장의 염원을 담아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는 약속했다. 장애인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단계를 밟아 완전히 폐지하겠으며, 장애인 정책을 수용시설 중심에서 탈시설로 바꾸겠다고. 정부를 대표해서 탈시설을 약속한 것을 내 귀로 똑똑히 들었다. 그는 분명히 말했다. 장애인들이 수용시설이 아니라 지역에서 함께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장관은 우리 앞에서 약속했지만 그것은 우리에 대한 약속일 수 없다. 그 자리에 있던 우리는 시설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이거나 이미 탈시설에 성공한 사람들이다. 장관은 우리 앞에 섰지만 우리 역시 누군가의 앞에 선 사람들일 뿐이다. 거기 서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들, 현관문이 열릴 때마다 일제히 고개를 들었던 사람들, ‘언제, 언제요? 언제 나가요?’라고 물었던 사람들. 지난 5년간 우리는 그들의 입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지난 금요일의 약속 또한 우리의 귀를 통해서 들었다. 우리 안에서 그들이 지켜보고 있음을 정부가 잊지 말기 바란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고려대 민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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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영국 여왕의 어린시절 영상 하나가 공개되면서 시끄러웠다. 엘리자베스 2세가 어머니, 삼촌, 여동생과 함께 나치식 경례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다. 당시 엘리자베스의 나이는 일곱살이었다고 한다. 왕실 측은 당시 어린 여왕이 TV에 나오는 동작을 따라하며 놀고 있었을 뿐이라고 했다. 확실히 특정 몸짓을 근거로 해서 일곱살 어린아이에게 나치즘을 추궁하는 것은 과해 보인다.

아마 이 영상을 문제 삼은 이들도 어린 엘리자베스의 사상을 검증하려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의심한 것은 엘리자베스가 아니라 영국 왕실 자체였다. 몇몇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독일계 혈통의 영국 왕가는 독일에 많은 친·인척을 두었는데 그들 중 상당수가 히틀러를 지지했다고 한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앞서의 영상에도 등장하는 엘리자베스의 삼촌인 에드워드 8세였다. 비록 한 해를 채우지 못하고 왕위를 내려놓았지만 그는 어떻든 영국의 왕이었다. 그런데 해당 영상을 찍을 때인 1933년은 물론이고 전쟁이 발발한 1939년에도 그는 나치를 지지했다. 지금으로서는 그가 개인적 일탈을 한 것인지, 영국 왕실 자체의 어떤 성향을 보여준 것인지 알 수 없다.

두 나라 지도자들의 미묘한 연관에 대해 들었을 때, 내게는 영국 공리주의와 독일 나치즘 사이에도 어떤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본격 연구를 해본 적이 없는 터라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의심이 최근 더욱 강해지고 있다. 물론 표면적으로 두 이념은 아주 다르다. 영국의 공리주의는 낭만적 영웅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판단을, 예외보다는 규칙을 중시한다. 행복조차 현실적 효용을 통해 접근했던 매우 실용적이고 계산적인 이념이다. 이런 공리주의를 히틀러를 영웅시하고 아리안종의 우수성을 설파하며, 수백만의 유태인을 가스실로 보낸 광기적 행동과 연결짓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제를 하나씩 파고들어 가면 헷갈리는 지점들이 자꾸 나타난다. 나치의 선동적 연설만 아니라 공리주의자들의 합리적 계획 속에서도 다수의 행복을 위한 소수의 제거, 인간 개량을 위한 유용성 평가 등을 발견하거나 추론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제러미 벤담이 구상한 수용소도 그런 예 중 하나다. 이 수용소는 쓸모와 비용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보는 사람이 인간을 그런 눈으로 볼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보여준다. 사회적 부만 축내는 쓸모없는 인간들, 생계 하나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는 쓰레기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벤담은 이들에 대한 교육이나 도덕적 호소는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내놓은 해법은 강제수용소를 통한 인간 개조였다.

1920년대 독일 헌법학자 칼 빈딩은 이 ‘쓸모없는 인간’에 대한 고민을 이어받았다. 처음에 그가 제기한 것은 안락사 문제였다. 더 이상의 치료가 의미 없고 온전한 의식도 없는 사람들. 자기 삶의 주권을 완전히 상실한 사람들에게 연명 치료를 해야 하는가. 삶의 가치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삶의 주권성에 있다고 본 그는 ‘살 가치가 없는 삶’이라는 개념을 제기했다. 그저 생존만 유지하는 그런 삶을 돌보기 위해 우리는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는 전쟁터의 병사들이나 탄광 등에서 죽어가는 노동자들과 시설에 수용된 정신장애인들을 대비시켰다. 그리고는 후자가 그 삶의 가치에 비해 너무 많은 돌봄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안락사 문제를 쓸모없는 인간에 대한 처분과 맞물리게 한 것이다.

히틀러는 빈딩의 이러한 사고를 받아들였다. 그는 삶의 존엄을 잃어버린 채 생존만을 이어가는 사람을 안락사시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살 가치가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삶의 효용이 없는 사람들에게 점차 확대 적용했다. 그렇게 해서 독일 각지의 정신병원에서 온 정신질환자들 6만명이 간단한 검사를 거친 후 가스실로 들어갔다. 아우슈비츠의 유태인들은 그다음에 불려온 사람들이었다.

지난주 나는 경기도의 한 정신장애인 요양시설을 둘러보고 왔다. 나무들이 높이 자란 숲속에 들어앉은 산뜻한 건물. 직원들도 친절했고 장애인들도 모두 선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금세 드러났다. 간식이 들어오자 수십 명이 조용히 줄지어 다가왔는데 놀랍게도 명부에 적힌 순서와 단 한 명도 다르지 않았다. 내가 인터뷰한 장애인은 “이곳은 정말 자유롭다”면서도 마당에 있는 벤치에는 혼자서 한 번도 앉아본 적이 없었다. “막는 사람은 없지만 나갈 수는 없다”는 알쏭달쏭한 말만을 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나처럼 쓸모없는 사람을 거둬준 것도 감사한데 어떻게 감히.”

시설장은 ‘여기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느냐’고 죽는소리를 하고,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은, 약 때문인지 훈련 때문인지, 스스로를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라고 여겨 숨죽이고 있는 곳. 물론 우리가 아직 가스실에 이른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저 수만명을 시설에 격리해 둔 채 안전, 효용, 비용을 계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시설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이런 시설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끔찍한 사람들이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고려대 민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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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미동맹을 앓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에서 한·미동맹은 병적인 것이다. 나라들끼리 공동의 목적을 위해 함께 행동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기본적인 생존 전략이다. 이 점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일어난 몇 가지 에피소드들은 한국이 미국의 정상적인 동맹국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미국에 무례한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미국에 대한 예를 다하느라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동의 목적과 행동이란 저마다의 목적과 행동이 전제된 것인데, 우리는 동맹을 위해 그 전제를 너무 자주 포기한다.

살기 위해 택한 동맹인데 거기에 생존의 멱살이 잡혀 있는 꼴이다. 저쪽은 이익을 고려하는데 이쪽은 생존을 고려한다면 공정하고 호혜적인 동맹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살기 위해서라면 뭐든 내놓을 테니 말이다. 생존과 주머닛돈의 교환. 작은 주머닛돈을 주고 귀한 생명을 지켰으니 남는 장사를 한 것인가. 실상은 생존 위협에 굴복해서 돈을 뜯긴 것임에도, 국제질서에서는, 특히 한·미동맹에서는 그것을 수지맞는 거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조폭의 구역관리를 받는 노점상들은 보호와 상납금의 교환이 실상은 교환이 아니라 예속임을 안다.

생존을 포기하고 무모한 행동을 하자는 말이 아니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거래든, 관계를 맺을 때는 생존에서 한 걸음 떨어져 볼 수 있어야 한다. 설령 거기에 생존이 걸려 있을지라도 그렇다. 그래야 그 관계가 더 나은 삶을 보장한다. 상대방에 내 생존이 걸려 있다는 신호를 주면 그는 우리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생존을 떠올리며 학대를 견뎌낼 수는 있겠으나(홉스식 신민도, 헤겔식 노예도 이렇게 탄생했다), 이것은 서로 어깨를 다독이며 포옹할 때조차 우정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안보에 대한 미국의 보증에 한국이 목을 건다는 신호를 보냈다면, 앞으로 치를 동맹의 대가는 정말 클 것이다. 국민의 생존에 비춰보면, 천문학적 가격의 무기도 싸 보이고, 세계 최고 수준의 방위비 분담액도 부족해 보이고, 자동차 한두 대 덜 파는 것도, 국내 산업 보호조치를 해제하는 것도 그리 중요해보이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이러다가는 북한이 미사일을 한 번 쏘아 올릴 때마다 남한은 미국의 물건을 하나 더 사주는 구조가 고착될지도 모르겠다.

요즘 한국의 정치권과 언론 분위기라면 트럼프 정부가 굳건한 한·미동맹을 굳건한 수익모델로 만드는 데 별 어려움도 없을 듯하다. 한·미동맹에 관해서는 재검토라는 말 자체가 금기어이다. 우리의 이익을 따져볼 용기를 못내는 것을 넘어 이성적 판단 기능 자체가 멈춘 것 같다. 마치 시설에 오래 수용된 사람들이 온갖 학대에도 불구하고 시설에서 쫓겨날까봐 시설장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것과 같다.

특히 최근 주류 언론의 태도는 정말 안쓰럽다. 지난 대선 때는 ‘코리아 패싱’이라는 말을 그렇게도 떠들어댔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 한국이 미국과 딴소리를 내면 미국이 한국을 빼고 갈 것이라고 했다. 전형적인 약자의 해석학이고 노예의 해석학이다. 자기 생각보다 주인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짐작해서 자기 행동을 정하는 것이다. 딴소리를 내면 우리를 데려가지 않을 거라는 말, 그 시비를 떠나 그런 생각으로 살아온 삶에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에는 대통령 특보가 학술행사에서 “사드 때문에 깨지면 그게 동맹이냐”는 말을 했다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 그리고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배치 지연과 관련해서 격노했다는 뉴스도 나왔다. 일부 언론에서는 ‘격노했다’는 말로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욕설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욕설’은 물론이고 ‘격노’도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서 가공된 것이었다. 한국 언론이 미국 대통령의 심기를 헤아리지 못하는 한국 정부에 대해 미국 대통령보다 더 격노해서 쓴 기사였다. 백악관 참모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문재인 대통령을 ‘믿지 말라’고 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그 출처는 한국에 앉아서도 저 멀리 백악관에서 일어나는 일을 훤히 내다보는 ‘워싱턴 정가에 밝은 한국의 소식통’이었다. 그런데 이 역시 백악관 참모들이 아니라 한국 언론이 미국 대통령에게 고하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지난 한 달간 이런 기사들이 넘쳐났다. 도대체 한·미동맹을 어느 나라의 시각에서 보고, 어느 나라의 목소리로 말하는지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다 ‘미국에 대한 은혜를 모르는 나라가 되지 말자’는 다짐까지 듣고 나면, 그리고 그것이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진심임을 확인하는 에피소드들을 듣고 나면 정말 앞이 캄캄해진다. 한쪽은 계산기를 두드리는데 다른 한쪽은 예쁨을 받으려 한다면 둘의 관계가 어찌될지는 더 말할 것이 없다. 이런 식이면 한국은 미국의 무릎 위에 앉을 수는 있어도 결코 테이블 맞은편에 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예전에 루쉰이 홍콩의 청년들에게 했던 말 중에 나를 참 아프게 한 구절이 있었다. 그는 온갖 수모를 겪고도 할 말을 못하는 중국의 현실을 언급하며, 청년들에게 중국을 ‘소리 있는 중국’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소리를 잃어버린 민족의 비참을 환기시키며 말했다.

“여러분, 조선의 소리를 들어보았습니까?”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고려대 민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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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여름, 아버지는 서울 당숙집 가는 길에 나를 데려갔다. 도회지라고는 장날 읍내 몇 번 가본 게 전부였던 내게 서울여행은 지금의 외국여행 못지않았다.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온종일 달려 도착한 서울. 이튿날 나는 아침을 먹자마자 무작정 집 밖으로 나왔다. 근처 당고모집에 내 또래의 친척 형제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주소도, 전화번호도 몰랐다. 그런데도 어떻게 혼자서 집을 나서려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아랫마을 살던 친구집을 찾을 때처럼 쉽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한참을 걸었다. 언제부턴가는 어디를 간다는 생각도 잊은 채 돌아다녔다.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배고픔을 느끼고는 집을 향해 걸었다. 신통하게도 길을 잃지는 않았다. 물론 난리가 났다. 모두가 사방으로 나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지금도 숨을 몰아쉬던 아버지와 ‘잘됐다, 잘됐다’만 연발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할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이번에 안 일이지만 내가 헤매던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시립아동보호소가 있었다.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그곳을 거쳐 갔다고 한다. 지난주 나는 아동보호소를 거쳐 소년수용소로 보내졌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모두 1960~70년대 서울의 어느 길에 있던 아이들이었다. 집을 뛰쳐나와 떠돌던 아이도 있었고, 친척집을 찾아가던 아이도 있었으며, 다른 아이들과 골목길에서 놀다가 단속 실적을 채우기 위해 일단은 경찰서에 넘기고 보는 공무원에게 잡힌 아이도 있었다. 공통점을 하나 더 찾자면 공무원이나 경찰에게 잡힌 뒤 겁에 질려 정확한 주소를 빨리 대지 못했다는 것. 한마디로 1979년 여름의 나 같은 아이들이었다.

어디에 사는지, 어디로 가는지, 주소도 전화번호도 모르고, 행여 그것을 알아도 경찰 앞에서 하얗게 질려 즉답을 못한 아이들. 나중에 뭔가를 기억해 낸 건 소용이 없었다. 부모의 이름을 기억하고 학교 이름을 기억해도 ‘부랑아’라는 새 이름을 얻은 뒤부터는 아무도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부랑아는 거짓말을 일삼는 예비 범죄자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예비검속된 것이다.

아이들이 끌려간 곳은 선감도라는 경기도 안산 인근의 작은 섬이었다. 거기에 선감학원이라는 수용시설이 있었다. 선감학원은 일제 말기 “불량행위를 하거나 불량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8세에서 18세의 아이들을 감화시킨다는 목적으로 만든 시설이다. 학원이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행태상으로는 틀림없는 강제수용소였다. 아이들은 머리를 밀고 수용자복을 입은 뒤 군대식 규율에 따라 생활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이들이 여기서 노역과 폭행, 굶주림에 시달리다 죽었고, 탈출을 시도하다가 바닷물에 휩쓸려 죽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수용소는 1982년까지 운영되었다. 정부는 해방과 한국전쟁, 산업화를 거치는 동안에도 부랑아를 줄곧 ‘관계기관 대책회의’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는 수십 년간 수천 명의 아이들을 여기에 수용했다. 정부의 인식은 일제 식민주의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길에서 배회하는 빈민은 어른이든 아이든 예비범죄자라는 것. 따라서 이들을 잡아들여 영혼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1980년의 악명 높은 삼청교육대까지 이런 인식이 이어졌다. 선감학원은 어린이 판본의 삼청교육대였던 셈이다(실제로 선감학원을 탈출했다가 나중에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아이도 있었다).

이미 쉰을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내가 지난주에 본 당시의 아이들은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1970년대 말 서울의 거리를 나처럼 헤매다가 선감학원에 끌려왔던 중년 남자는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은 후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피해자들 중에는 국가에 의해 언제든 강제납치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증언을 거부하거나 구술자료 반환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수용소에서의 강제노역과 구타, 암매장, 수용소를 탈출했다가 주민들에게 재납치된 이야기까지. 나와 시간과 장소를 아슬아슬하게 비켜나 있었을 뿐인 아이들의 증언은 내 머리카락을 쭈뼛하게 만들었다. 가난했던 어린 우리들이 헤매며 걸었던 길들이 우리를 매장할 수도 있는 얇은 얼음이었던 것이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였던 프리모 레비는 수용소란 세상에 대한 인식의 산물이라고 했다. 우리에게는 평소 잠복성 질병처럼 영혼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다가 일이 터지면 삼단논법의 대전제처럼 기능하는 인식이 있다. 대부분 근거 없는 선입견인지라 보통 때 입 밖으로 나오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터지면 해당 인식이 자극을 받는다. 우리의 이후 생각과 행동은 모두 거기서 도출된다. 이를테면 영혼 밑바닥에 ‘이방인은 모두 적이다’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사건에 임하여 이방인들을 가둘 죽음의 수용소를 추론해낸다. 사건의 충격파가 그 인식의 나뭇가지를 잠시 흔들기만 하면 된다.

선감학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영혼의 밑바닥에 빈곤과 범죄, 길거리를 잇는 짧은 문장 하나가 심어져 있다면, 우리는 길거리를 배회하는 여덟 살의 아이마저 범죄 예방을 목적으로 잡아들일 수 있다. 수용소가 이미 폐쇄되었는지, 아직 건립되지 않았는지는 부차적이다. 영혼 밑바닥의 인식의 나무가 건재하는 한 수용소는 시공 허가만을 기다리는 건물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문을 열었는지도 몰랐던 선감학원은 이미 문을 닫았다. 그러나 그 죽음의 수용소를 낳은 문장들은 우리 인식에서 전혀 시들지 않았고, 게다가 요즘에는 또 다른 소수자들을 거명하는 온갖 위험한 문장들이 봄날의 홀씨처럼 우리 영혼의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고려대 민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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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외국 활동가들에게 한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소개할 일이 있었다. 강연을 준비하면서 여러 영상자료들을 연표 순으로 정리해서 보았다. 그야말로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문득 역사 속 우리의 희망과 절망이 참으로 섣부른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세의 부침 속에서 정세보다 크게 들뜨고 정세보다 빨리 좌절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물론 역사의 연표를 쥔 후세의 사람이 역사적 사건 속에서 절규하는 사람의 태도를 평가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1980년 ‘오월 광주’를 아는 눈으로 그 몇 달 전 ‘서울의 봄’에 대한 기대로 들뜬 사람들을 보는 것은 괴롭지만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그들의 무지를 탓할 수는 없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이미 일어난 일로 볼 수 있는 존재는 신이거나 후세의 역사가뿐이다.

최근 일들만 해도 그렇다. 불과 1년여 전만 해도 여당이 총선에서 개헌선을 확보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수감되었고 조금 있으면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한다. 만약 미래를 알았다면 우리가 헛된 희망과 불필요한 절망에 빠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무지는 우리가 제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반대 방향이다. 무지 때문에 생겨나는 희망과 절망이 아니라 희망과 절망 때문에 생겨나는 무지 말이다. 그리고 이 무지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미 일어났거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 희망과 절망에 빠져 있으면 과거를 제대로 기억하지 않고 현재를 주의 깊게 살피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미래에 대해서는 섣불리 판단한다. 그런 식으로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다. 똑같은 사람에게 상반된 두 감정이 교차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희망에 도취된 사람일수록 절망에 취약하고 절망이 커질수록 헛된 희망을 찾아나서기 십상이다.

스탕달은 철학자와 은행가는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훌륭한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은행가처럼 환상 없이 실상을 냉정하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훌륭한 민주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돈에 대한 속물적 집착이 혐오스럽기는 하지만, 돈 빌려준 곳을 정확히 적어두고, 감정에 휩싸여 자기 이익을 놓치는 일이 결코 없는 대부업자에게는 배울 만한 구석이 있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불과 몇 개월 전의 촛불집회인데도 벌써 오래전의 일처럼 아득하다. ‘이게 나라냐’는 절망은 절망했다는 사실로만 남아 있고, ‘정권교체’라는 희망은 그저 들떠 있는 감정뿐인 것은 아닌지. 일수공책에 적어둔 것이 없으니 이러다가 이자는 고사하고 원금까지 떼이게 생겼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일수공책을 써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적어둔 게 없다면 지난 몇 개월 치라도 기억나는 대로 적어 둘 필요가 있다. 우리가 무엇을 견딜 수 없었는지, 우리가 무엇을 외쳤고 무엇을 들었는지, 우리는 어떻게 싸웠는지, 그때의 분노도 적고, 투지도 적고, 다짐도 적고, 웃음도 적어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집권자와 민주주의의 대차대조를 해볼 수가 있다.

지금은 민주주의 운동의 시야가 선거운동으로 극도로 좁혀져 있는 시점이다. 내가 미는 후보를 당선시키는 것이 한국 사회를 민주화시키는 길이라는 믿음이 가장 강한 때이고, 후보들 역시 자기의 기억과 의지를 모두의 것으로 확신하는 때이다. 우리의 지배자가 된 충동이 우리의 경험에 대한 해석의 전권을 얻듯이, 새 집권자는 촛불집회의 원인과 과정에 대한 기억을 상당부분 장악할 것이다. 일수공책이 없다면 그는 우리에게 이자를 갚기는커녕 빚 갚으라는 독촉장을 내밀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승리자에게 완전한 믿음을 주는 일은 삼가야 하며 그를 독촉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에 관한 한 지도자로 선출된 이는 채무자라는 사실을 채권자가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언제든 승리에 도취된 그를 깨울 찬물 한 바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나도 일수공책에 하나 적었다. 지난 4월21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행진에 나섰던 우리는 대구시립희망원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에 항의하며 대선후보자들의 당사를 찾았다. 희망원은 대구시가 설립한 수용시설로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위탁운영을 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지난 6년간 무려 309명의 수용자들이 사망했고, 그중 최소 29명이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결과 의문사를 당했다.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느냐고 운영자만을 욕하는 사람들은 장애인들을 격리시켜 수용하는 시설자체가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는 모르는 사람들이다. 유력 대선후보들의 캠프 인사를 만난 우리는 공약집에 ‘대구희망원 장애인 수용시설의 즉각적 폐쇄’와 ‘장애인 탈시설 정책 추진’을 적어 넣을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그제 대구시에서 희망원의 장애인수용시설을 내년까지 폐쇄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일단 이자 일부를 받아낸 셈이다.

지난 6년간 309명의 사람들이 죽어간 희망원 홈페이지에는 “생활인들에게 ‘새삶’의 목표를 지향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위에 서비스의 차별성을 더한 감동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말과 현실의 격차란 게 이런 것이다. 그러니 후보들 공책에 적힌 말만을 읽고 들떠서는 안된다. 지금은 냉정하게 내 공책에도 뭔가를 적을 때이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고려대 민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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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피터, 그는 목소리가 정말 컸다. 말하는 게 사자후를 토하는 듯했다. 은유 작가는 그를 두고 ‘아이를 낳듯’ 말한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그가 온몸을 비틀어 내보내는 말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에 나오는 아이들 같았다. 그 목소리는 노들야학 첫 수업 때 분위기에 눌려 백기투항 직전에 있던 나를 살려준 지원군이기도 했다. ‘야, 이거 골 때리네!’ 그가 간간이 넣어주던 추임새가 내게는 참으로 고마운 환영사였다.

내 친구 피터, 그가 제일 힘들어 한 과목은 한글이었다. 복지관에서 시작해 20년을 배웠다는데 여전히 글 읽는 것이 신통치 않았다. 낱글자는 소리내서 읽을 수 있는데, 단어가 되고 구절이 되면 처음 읽은 글자들이 궁둥이를 슬슬 빼기 시작하고, 문장 끝에 이르면 앞서 읽어둔 단어와 구절들이 다 도망치고 없다고 했다. 지독한 난독증이었다. 그런 그가 철학을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듣기 능력 덕분이다. 그는 읽을 수 없지만 들을 수 있었다. 귀를 통해 들어온 것들은 신통하게도 기억에 뿌리를 내리고 튼튼하게 자랐다. 그러니 누군가 소리를 내서 읽어만 준다면 철학책도 거뜬히 읽어낼 수 있었다.

내 친구 피터, 그는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 사실 그는 좋은 작품을 하나 썼다. ‘국회의원들에게 드리는 보고’라는 글인데 참으로 명문이다. 카프카의 소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차용한 것으로 원고지 20장 분량의 짧은 인생담이다. 뒤늦게 이 인생담을 읽었을 때 나는 그가 ‘빨간 피터’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그 이름으로 불러야겠다고 다짐했을 때 그는 이미 그 글만큼의 짧은 삶을 마감해버렸다.

내 친구 피터, 그는 술을 참 많이 마셨다. 그건 두 방의 총탄 때문이다. 그 점에서도 카프카의 피터와 같았다. 원숭이 피터는 사냥꾼에게 두 방의 총탄을 맞았는데, 한 방은 얼굴을 스치며 붉은 흉을 남겼고, 다른 한 방은 둔부에 박혀 평생 다리를 절뚝거리게 만들었다. 첫 총탄이 ‘빨간 피터’라는 이름을 주었고(사람들이 그 붉은 자국만을 주목했기에), 두 번째 총탄은 그를 절뚝거리며 살아가게 했다. 내 친구 피터도 두 방의 총탄으로 ‘장애인’이라는 이름과 ‘절뚝거리는’ 인생을 얻었다. 다만 그는 카프카의 피터와 달리 두 방 모두 가슴에 맞았다고 했다. 장애인인 주제에 성깔까지 못돼먹었다고 한 방 맞았고, 절뚝거리는 주제에 큰 소리로 웃는다고 또 한 방을 맞았다. 가슴이 그렇게 뚫렸으니 술을 마셔도 고이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계속 부어댄 모양이다.

내 친구 피터, 그가 총 맞은 후 깨어난 곳도 카프카의 피터처럼 궤짝이었다. 열아홉 살이 되어서야 정신이 들었는데 그때까지는 궤짝 같은 방구석에만 갇혀 지냈다. 겨우 정신을 차린 후 복지관에도 나가고 했는데 궤짝 크기만 달라졌지, 가두다 풀어주다 하는 식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안전하다며 궤짝 같은 곳에 가두었다가, 장애인의날이 되면 올림픽공원에 잠시 풀어놓고, 다시 버스를 태워 복지관에 풀어놓고, 그런 식이었다.

내 친구 피터, 그에게는 출구가 필요했다. 세상을 여기저기로 날아다니는 자유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었다. 곡예사처럼 공중그네를 구르고 날아서 상대방의 품에 뛰어드는 그런 기예 같은 자유는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자유를 바란 것도 아니다. 그놈의 ‘함부로’ 하는 자유가 무엇인지는 몸서리치게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숱하게 당해온 폭력의 다른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자유보다 소중한 것은 출구였다. 절박한 사람, 숨 막히는 사람에게는 출구만이 자유의 제대로 된 이름이었다.

내 친구 피터, 그는 마침내 야학에서 출구를 찾았다. 공부도 시위도 신통치는 않았지만 확실한 것은 술맛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는 궤짝 같은 집과 복지관에서 나와버렸다. 집 밖으로 나간다는 게 두려웠지만 마구 ‘개겼다’고 한다. 활동보조인도 없던 때였는데 좀 무모한 탈출이었다. 그러다가 야학수업에서 나를 만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니체를 만났다. 그는 니체를 읽고는 ‘야, 이거 골 때리네’를 연발했다. 내가 미국에서 지낼 때 야학교사 한 분이 그의 근황을 전해주었다. “딴 건 안 해도 반드시 철학공부는 하고 싶다고 술주정하신다”고.

내 친구 피터, 그는 스스로 공부하며 출구를 찾아갔다. 정부가 거지 취급한다면, 이참에 당당한 거지근성도 발휘해보고 싶다고. 정부를 상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얻어내서, 뭘 좀 하는 장애인이 되어야겠다고. 그리고 예전에는 잘살든 못살든 혼자 살다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공부를 하고 나서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울린다는 것이 무언지는 알게 되었다고. 그리고 언젠가 자신이 뛰고 날고 춤추겠지만 지금은 일어서는 법, 걷는 법부터 배우겠다고. 그는 그걸 동화로 써보고 싶어 했다.

내 친구 피터, 그는 모난 성질을 죽이지 않았고, 술도 계속 마셔댔으며, 무엇보다 꿋꿋했다. 술자리에서 그의 불편해 보이는 몸짓을 의식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일침을 놓기도 했다. “음식은 흘리면 닦으면 돼. 근데 왜 내가 내 손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을 그만둬야지 되냐.”

작년 이맘때였다. 내 친구 피터, 그는 가슴의 흉터가 더 이상 저리지는 않은지, 동화는 어느 정도나 진척되었는지, 어울려 산다는 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고 그냥 훌쩍 떠나버렸다. 내 친구 피터, 그의 이름은 김호식이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고려대 민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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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견유주의자 디오게네스는 왕관을 쓴 왕을 허깨비 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알렉산더 왕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다. 그는 모든 걸 들어주겠다는 왕에게 그냥 비켜서라고 했다. 햇볕! 그는 원하는 것을 이미 누리고 있었다. 왕이란 기껏해야 우리에게 그늘을 드리우는 존재가 아니던가. 왕궁과 군대를 빼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 왕관을 벗겨놓으면 왕이었다는 사실조차 믿기지 않는 존재가 누구를 구원한단 말인가. 왕관 하나를 차지하려고 온갖 음모를 꾸몄고 그걸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는 존재, 이미 그것으로 충분히 병든 존재가 누구를 치유한단 말인가. 그래서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를 ‘아틀리오스의 아들 아틀리오스’라고 불렀다. 아버지인 필리포스 왕이나 그 자식인 알렉산더나 똑같이 가련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왕에게는 왕관이 필요 없다. 이것이 견유주의의 가르침이다. 그 삶이 온전히 왕인데 별도의 표시가 왜 필요한가. 왕관은 오히려 가짜왕의 징표이다. 이와 반대로 인류사에는 넝마를 두르고도 왕이었던 사람들이 있다. 왕관을 벗어던졌으되 사람들이 법왕이라고 부르는 석가가 그렇고 왕관 대신 가시 면류관을 썼던 예수도 그렇다. 왕관도 없고 왕궁에도 살지 않은 사람들. 그들이 왜 왕인가. 그것은 그들이 기꺼이 처했던 자리, 그들이 기꺼이 떠맡았던 일 때문이다.

허깨비 왕과 진정한 왕에 대한 디오게네스의 생각은 로마 시대의 스토아주의자 에픽테토스로 이어졌다. 그는 노예로 태어났으나 디오게네스만큼이나 권력자 앞에서 당당했던 사람이다. 왕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왕의 임무가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라면 왕이 어디에 있을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아픈 사람들이 있는 곳, 거기가 왕의 자리다. 그는 의사처럼 뛰어다니며 맥박도 재고 처방전도 써야 할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진정한 왕은 “왕이라기보다는 집사”라고도 했다. 왕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가정을 제 가정처럼 돌봐야 하고 아이들을 제 자식처럼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로지 공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 진정한 왕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사람의 삶이다. 이것이 알렉산더 같은 이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디오게네스 같은 이들의 삶이다. 강연을 듣던 누군가 에픽테토스에게 물었다. “그럼 견유주의자는 정치를 안 하는 겁니까.” 에픽테토스가 답했다. “그대는 이미 어마어마한 정치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정치 참여를 묻는가. 그가 높은 직책에 앉을지 더 물어보라. 그러면 나는 말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아, 도대체 어떤 직책이 지금 그가 하는 일보다 더 높다는 것인가?’”

지난 금요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국민이 위임한 지위와 권한을 최순실 일당의 사적 이익을 돌보는 데 썼다는 이유였다. 정말, 그는 청와대를 사적인 집으로 만들었고, 가정과 자식은 없었으되 특정한 가정만을 제 가정처럼 돌봤다. 그러나 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했어야 하는 더 결정적 이유는 세월호 때 보인 행태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대통령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에 거처한다는 것, 그것이 그가 대통령임을 보여주는 유일한 표식이었다. 그뿐이었다. 왕관만 썼을 뿐 허깨비였다. 그는 수장된 아이들을 두고서 발을 동동 구르던 유족들, 엉엉 울며 청와대를 찾아온 유족들을 길바닥에 내버려두었다.

대통령은 헌법 69조에 따라 취임선서를 한다. 자신이 수행해야 할 일들을 나열한 뒤 그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맹세한다. 직책은 이미 규정된 것이므로 대통령이 되려는 자가 맹세할 수 있는 것은 ‘성실히’라는 말뿐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성실’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그 위반으로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직무의 ‘성실한’ 수행은 대통령을 대통령답게 만들어주는 맹세의 유일한 내용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으로는 대통령을 파면할 수 없는 셈이다. 그러나 어떻든 이것은 왕관을 벗기는 법적 선고의 문제일 뿐이다. 왕관을 써도 있어야 할 곳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왕은 왕이 아니다. 그는 왕관을 쓴 허깨비다. 세월호 사건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미 허깨비였다.

그렇다면 진정한 왕은 없었는가. 그렇지 않다. 제 일을 제쳐두고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길바닥으로 뛰쳐나온 사람들. 진정한 왕이 아니고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서 함께 울고, 그 어깨 위에 모포를 덮어주며 따뜻한 차를 내온 사람들, 무엇보다 허깨비 왕을 끌어내기 위해 함께 싸웠던 사람들. 왕의 자리에 있었고 왕의 일을 한 사람들, 바로 그들이 왕관을 쓰지 않은 왕, 진정한 주권자가 아니었던가.

대선이 다가오니 성군이 되겠다며 청와대로 가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한때의 민주화 운동이 그들에게 높은 직책에 올라야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가르쳤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허깨비 왕에 대한 가르침에 유념하기 바란다. 그들이 타도한 독재자는 왕이 아닌데도 왕의 자리에 앉았던 사람이 아니다. 그는 왕의 자리에 있지 않았고 왕의 일을 하지 않았기에 독재자였다. 독재자가 앉았던 그 자리에 뛰어들어 성군을 다짐하는 사람에게는 에픽테토스처럼 말할 수밖에 없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그 자리가 아니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고려대 민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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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연구공동체 생활을 할 때는 대학 강의를 가급적 하지 않으려 했다. 공부 시간을 확보하려는 욕심도 있었지만 상업화된 대학에 대한 거부감이 컸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비싼 등록금과 강사의 값싼 노동력을 쥐어짜서 높은 건물을 세우고 그 이마에 진리니 자유니 하는 말들을 거침없이 써대는 그 대담한 위선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런데 생계가 그리 여유 부릴 형편은 아닌지라 욕을 하면서도 그놈의 강사 자리를 찾아 대학 언저리를 들락거린다.

대학 강의에 다시 나섰을 때 나는 내 발로 걸어 들어가면서도 누군가 내 목을 끌고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내게 숨구멍을 터준 것은 학생들이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은 어느 순간 빛난다. 아마도 그 빛에 홀려 대학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구나 싶다. 작년에 세미나 수업을 함께 진행했던 학생들이 특히 그랬다. 학생들 대부분이 독서와 토론에 열심이었다. 자기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펴는 모습이 놀랍기까지 했다. 대학원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소위 잘 나가는 대학이라 입학 때부터 논술로 무장된 학생들이 많아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어떻든 내가 짐작했던 풍경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시대의 희귀한 젊은이들로 보였던 그들에게도 그늘이 있었다. 종강하던 날 찻집에 모였을 때 자연스레 시국 이야기가 나왔다. 다음날 대규모 촛불집회가 예정되어있던 터라 학생들 생각이 궁금했다. 곁에 있던 학생이 말했다. 학생 운동 같은 데 별 관심 없는 자기 같은 사람도 나가는데 많이들 나오지 않겠냐고. 왜 나가려 하는지 묻자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는 답변이 나왔다. “정말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내 눈길을 끈 것은 말이 아니라 어두운 표정과 이어져 나온 한숨이었다. “근데 한숨은 왜 쉬는 거예요?” 웃으며 묻는 말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그냥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답하고….”

이것은 분노가 아니라 그늘이다. 분노는 감정을 달구는데, 이 경우에는 온도가 내려간다. 뜨거워지는 게 아니라 싸늘해지는 것이다. 대통령은 당연히 물러나야 한다. 말이 안 되니까.

그런데 왜 그런지는 몰라도 대통령이 물러난 뒤에도 그다지 행복한 세상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대통령에 대한 분노보다 ‘헬조선’에 대한 체념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가 보일 때는 눈앞의 불의가 사람을 뜨겁게 만들지만 미래가 없을 때는 차갑게 만든다.

아직 탄핵국면은 끝나지 않았지만 이미 대선국면은 시작된 것 같다. 후보들이 전국을 다니며 사실상의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국정농단의 온갖 추악한 언어들을 대체하려는 듯 ‘정의로운 대한민국’, ‘개혁을 위한 대연정’, ‘4차 산업혁명’ 등등의 아름다운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말은 말을 대체할 수 있고 지도자는 지도자를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말의 교체이고 대표의 교체이다. 그런데 말이 지나간 자리에 한숨이 남는다. 대통령이 거기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고 거침없이 답하던 학생의 명료한 말에 까닭 모를 한숨이 이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대의제를 붙여놓은 체제에 살고 있다. 워낙 여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원리적으로는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둘이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탄핵에서 대선으로 이어지는 국면을 너무 자연스럽게 느낀다. 대표를 탄핵한다는 것은 곧이어 새로운 대표를 뽑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사이 카메라 조명의 방향이 바뀐다는 걸 알아채지 못한다. 민주주의의 관심사는 ‘데모스의 힘’이지만 대의제에서 최대 관심사는 대표의 유능함이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고 우리에게 어떤 힘이 있는가보다, 후보들 중 누가 더 매력적이고 유능한가에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우리는 광장에 나온 서로에 대한 관심 대신에 박근혜 대통령 옆에 이어붙일 필름조각의 주인공을 찾고 있다.

대선이 다가오는 상황이라 대표에 대한 관심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대의제에 살고 있는 이상 좋은 대표를 고르는 게 중요한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대의제 틀에서만 상황을 보면 우리는 문제를 무능하고 나쁜 지도자가 만들어낸 거라고, 또 유능하고 좋은 지도자만 고르면 문제가 다 해결될 거라고 착각할 수 있다. 게다가 지도자들이 아름다운 말들까지 늘어놓으니 지금 여기가 헬조선이라는 사실도 잊어버리기 쉽다. 우리의 눈과 귀를 그들의 몸짓과 말들에 너무 많이 내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눈을 우리 처지를 더 자세히 살피는 데 쓰고, 우리 귀를 우리 한숨 소리를 더 크게 듣는 데 써야 한다. 더 나아가 그들 후보들의 눈과 귀도 우리를 향하게 해야 한다.

그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답”하다던 학생의 그늘진 말에 나는 루쉰이 청년들에게 던진 말을 전해주었다. 이렇게 막연할 때는 기본적이고 절실한 것을 움켜쥐어야 한다. 당장 시급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고, 어떻게 해서든 잘 챙겨 먹고 따뜻하게 입고 다녀야 한다. 그리고 다음에는 좀 더 나아지려 노력하고, 여력이 되거든 애인들을 돌봐야 한다. 하지만 그때 내가 못다 한 말이 있었다. 루쉰은 그런 말들 뒤에 이런 말을 덧붙였었다. “이러한 앞길을 가로막는 자가 있다면, 옛것이든 지금의 것이든, 사람이든 귀신이든…모조리 짓밟아버려야 한다.” 정신 차리자, 여기는 헬조선이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고려대 민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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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쯤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첫 수업을 하던 날,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고요였다. 내 학창시절 선생님들은 수업 종이 쳤는데도 떠들어대던 아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꽤나 고생했다. 그런데 첫 수업에서 나는 소란이 아니라 고요를 이겨내야 했다.

좁은 교실에 열 명 안팎의 학생이 있을 뿐인데도 상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전화기에 더 고함을 질러대는 사람처럼 나는 목청을 한껏 높였다. 그러나 내가 그날 들은 소리라고는 전동휠체어를 움직일 때 나는 전자음을 빼고 나면 대부분이 내가 낸 소리였다. 나는 내 말만 들었던 것이다.

그날 학생들 중 음성 대화가 가능한 사람은 서넛 정도였다. 그것도 힘겹게 한 단어씩, 아니 한 글자씩 발성하기 때문에 한 문장을 말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어떤 학생은 소리가 너무 작아 귀를 바싹대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 없었고, 겨우 한 마디 소리를 내던 어떤 학생은 고개를 갸웃하는 나를 보고 결국 가방 속에서 글자판을 꺼내야 했다. 손발을 전혀 쓸 수가 없고 내가 듣기에는 그저 길이와 강약으로만 구분되는 ‘에~’하는 소리만 내는 학생도 있었다. 물론 그중에는 큰 소리를 낼 수 있지만, 그다지 와 닿지도 않는 내 말에 답하느라 온몸을 비틀어대는 수고를 원치 않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데 꽤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학생들은 데시벨은 낮지만 상당히 수다스럽다는 것을. 기쁨이든 슬픔이든 참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소리를 내지르고 온몸을 휘저으며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기도 한다. 내 이야기가 와 닿을 때나 내가 잘 듣는 것 같을 때, 학생들은 더 많은 소리를 내며 더 큰 표정을 지었다. 한 학생은 학기 내내 단 1데시벨의 목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입가의 미소로 동의했고 눈밑 그늘로 물음을 던졌다. 내가 정 알아듣지 못하면 책상에 한두 글자를 적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수업은 학기 후반으로 갈수록 활기를 띠었고 데시벨을 올리지 않은 채로도 꽤나 소란스러워졌다. 소리 없는 소리들이 계속 더해졌기 때문이다.

겨우내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커다란 함성이 울린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 그 함성소리가 가장 컸던 12월3일은 세계장애인의 날이었다. 마침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며칠 전 일어난 끔찍한 두 사건을 언급했다. “11월20일, 전주에서 아버지가 장애인 아들을 목 졸라 죽였습니다. 11월23일 또다시 경기도 여주에서 어머니가 장애인 아들을 목 졸라 죽였습니다.” 그는 이것이 국가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어 했다. 부양을 가족에게 떠맡기는 나라에서 장애인 자식을 둔 부모는 도무지 감당이 안 될 때 자식을 살해하고 곧이어 자식을 죽인 자신을 살해한다. 국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살인은 부모가 저지른다. 그런데 부모가 살인을 저지른 것은 국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은 국가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을 숱하게 당해왔다. 활동보조인을 곁에 두지 못한 중증장애인은 불이 난 방에서 5m 앞 현관문을 열지 못해 타죽고, 보일러가 동파되었을 때 전화 한 통을 걸지 못해 얼어 죽는다. 수십 년을 헌신한 부모가 갑자기 절망한 눈빛의 살인자로 돌변할 때도 있다. 국가는 제 일을 하지 않을 때 살인을 한다. 장애인들은 ‘세월호 7시간’의 공포가 무엇인지 누구보다 절절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힘껏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또 세월호의 진실이 규명되기를 바란다. 물론 데시벨이 높지 않아 얼마나 많은 이들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지상의 함성과 대비되는 지하의 고요. 광화문 지하에는 ‘장애인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며 1500일을 넘긴 농성장이 있다. 그리고 농성장 앞쪽 통로를 따라 환한 미소를 짓는 사람들의 사진이 있다. 사진은 원래 말이 없지만 영정 사진이라 더욱 말이 없다. 그 사진들을 보면서 나는 내가 질러댄 소리만 듣고 돌아왔던 첫 수업 날을 떠올렸다.

지금 많은 시민들이 대통령에게 똑똑히 들으라고 더 가까이서 더 크게 외치고 있다. 그렇게 많은 시민들이 한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발화자와 청취자가 너무 단순화된 건 아닌지 걱정이다. ‘박근혜는 즉각 퇴진하라’는 큰 함성은 여러 사연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거기에는 세월호의 절규도 있을 것이고, 강남역의 비명도 있을 것이며, 구의역의 흐느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1500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광화문 지하의 소리 없는 고함도 있을 것이다. 함성이란 큰 소리이면서 동시에 여럿이 내는 소리이다. 거기에는 모든 집합에 포함되는 공집합처럼 묵음 즉 ‘소리 없는 소리’까지 참여하고 있다. 이 소리들이 비단 대통령에게만 향하고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오늘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내 소리만 듣고 왔다면, 즉 광화문 지상의 데시벨을 올렸을 뿐 광화문 지하의 소리는 듣지 않았다면, 우리의 청취력은 우리말을 도무지 듣지 않는 청와대의 그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내가 쓰는 칼럼의 제목을 ‘묵묵(默墨)’이라 한 것은 소리 없는 ‘묵’을 검정 ‘먹’으로 적고 싶었기 때문이다. 글이란 본래 소리가 나지 않지만, 정작 소리 나지 않는 것을 글로 쓰는 건 정말 어렵다. 묵음을 들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들은 작은 소리가 있거든 한 자라도 적어보려는 심정에서 그렇게 했다. 실제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제목을 단 셈이다. 어떻든 이렇게 독자들께 첫인사를 드린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고려대 민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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