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15일 포항 북구 흥해에서 진도 5.4 지진이 발생했다. 세상사 ‘절대’라는 건 없다지만 설마설마했다. 낯익은 고향 도로, 밤낮으로 내달렸던 골목길이 산산이 부서졌다. 고향집은 진앙 반대쪽이라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늙은 부모는 “야야, 내 평생 여서(여기서) 이런 난리는 처음 본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어떻게든 고향 안부라도 듣기 위해 행정안전부에서 일하는 선배를 찾았다. 두툼한 외투 한 벌만 급히 챙겨 포항행 KTX를 탄 선배나 속만 타들어가는 나나 얼마를 더 뒤척여야 낯선 공포에서 헤어날지 가늠조차 어려웠다. 좀 수습됐나요, 이재민들은 괜찮나요. 미안한 질문과 지친 답변이 꽤 오래 이어졌다. 이재민 대피, 수능 연기, 자원봉사자 배정, 특별재난구역 선포….

겨우 진정 국면에 들어섰지만 선배는 ‘외로운 싸움’이라고 했다. “땅속만 갈라진 게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 단층대도 갈라졌다”면서. 실제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온갖 비난과 억측이 떠돌았다. ‘포항 지진’이 아닌 ‘흥해 지진’이라 불러야 한다, 잘사는 도시니 알아서들 하겠지, 심지어 ‘그’ 대통령을 배출한 지역이라는 말도 들린다. 하나같이 포항 지진을 ‘그들만의 재난’으로 가둔 이유가 되고 있었다. ‘이념 재해’까지 감당해야 하는 포항은 지금 너무나 아프다.

대통령 출신지? 포항이 그 시절 특혜를 받았었나. 포스코 인수·합병, 자원외교는 포항엔 차라리 재앙이었다. ‘형님 예산’도 포항 시민 몫이 아니었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 영일만 신항을 혜택이라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민주정부가 구상한 사업이다. 그렇다고 ‘그’ 대통령과 포항이 끈끈하기라도 했나. ‘그’ 대통령은 성금 500만원을 냈다고 한다. 딱 500만원어치 애정이다. ‘그’ 대통령이 자란 흥해 덕실마을 기념관은 사람들로 북적였던 때가 손에 꼽을 정도다.

좌익세력 때문? 일부에서 이념 문제를 들고나온다. 이런 분위기에 용기라도 얻었는지 보수정당은 이재민 대피소 부근에 ‘내년 정부예산은 복지 퍼주기’라는 플래카드를 버젓이 걸어놨다. 박정희 시대, 3당 합당,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는 동안 포항은 정경유착과 콘크리트 보수의 대명사로 불렸다. 그러나 지난해 촛불집회 이후 포항 시민들은 새로운 도시의 주체로 스스로를 호명했다. 19대 대선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는 포항에서 과반에 실패했다.

잘사는 지역? 경제산업메카니 알아서 복구하라는 말이다. 포스코가 포항의 든든한 방패인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정치에 휘둘리며 휘청이는 사이 철강경기까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1000명도 넘는 공단 노동자들은 새 일자리를 찾아 다른 도시로 떠나야 했다. IMF 구제금융 때도 불황을 모르던 오거리 중앙상가엔 빈 가게마다 임대 플래카드만 나부낀다. 재난의 상처를 한 지역의 문제로 고립시킬 때 어떤 고통을 겪는지 쌍용차, 용산, 밀양, 강정마을에서 이미 보지 않았나.

지진과 정치의 ‘이상결합’을 토로하다 선배는 다시 포항행 KTX에 올랐다. 이번엔 형산강을 가봐야겠다고 했다.

1500도가 넘는 용광로 쇳물을 펄펄 끓으며 받아내던 강, 3교대 자전거로 오가는 출선공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던 강. 죽도시장 비린내와 만날 때면 반짝이는 생선 비늘로 돌아오던 그 강. 이맘때면 고향집에선 ㎏당 2만원쯤 하는 삶은 문어 2~3마리를 택배로 보냈다. 올해는 “우짜노 딸, 올해는 작년 절반(크기)도 안되는 게 ㎏에 4만~5만원 하네. 지진 땜에 죽도시장에 제대로 된 게 없다”고 미안해하며 엄마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문어 다리 하나씩 잘라 냉동실에 넣어야하는데 상자 안 얼음이 녹을 때까지 가위를 들지 못했다. 엄마는 형산강 로터리를 건너오며 얼마나 긴 한숨을 내쉬었을까.

이제 동강 난 포항의 아픈 시절까지 감싸안고 흘러야 할 강. 그 강 한 줄기를 빌려 오랜 고향 안부를 묻는다. 형산강은 잘 있나요.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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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무릎을 꿇었다. 아이가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제발 짓게 해달라며.

지난주 봤던 한 컷의 사진은 일주일이 지나도 여전히 마음 한쪽을 아리게 한다. 서울 강서구에 추진 중인 특수학교 설립 얘기다. 지난 7월 토론회를 가졌지만 무산됐다. 이번에도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어머니들이 아예 무릎을 꿇어버렸다. 2019년 3월 계획대로 개교하려면 이달 중에는 설계공모 심사를 마치고 내년 3월에는 공사를 시작해야 한다. 어머니들은 절실했을 것이다. 동영상을 찾아봤다. 무릎을 꿇은 어머니 앞에 일부 사람들이 “쇼하지 말라”고 외쳐댔다. 화면으로 보는 나도 눈물이 나는데, 그 자리에 있는 어머니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장애아를 뒀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죄인처럼 살았을 어머니들이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교육감-주민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특수학교 먼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강서구 주민들도 반대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들어보니 국립한방의료원이 들어설 것으로 기대했다고 한다. 강서구는 <동의보감>을 편찬한 허준이 태어나 성장한 곳이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의 공약이라고 했다. 강서구에는 다른 장애인 시설이 많다는 주장도 한다. 서울시 8개 구에는 아직 특수학교가 없다는 주장도 편다. 강서 주민의 소외감도 일리는 있다. 다만 이는 서울시내 25개 구끼리 비교했을 때다.

지방과 비교하면 특수학교 꺼리기는 명함을 내밀기 어렵다. 울산 울주군은 신고리원전 5·6호기를 짓고 있다. 이미 부산과 울산은 세계에서 원전이 가장 많은 도시다. 인근 340만명은 사고가 나면 피난조차 어렵다. 여기서 만든 전기를 서울로 보내기 위해 밀양에는 송전탑을 세웠다. 북한 미사일 위협을 막는다며 경북 성주에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들였다. 안보를 위해 제주 강정에는 해군기지가 들어섰다. 대부분 고령이었던 지역민들의 엄청난 반대는 아랑곳없었다. 이들 지역에 원전, 송전탑, 사드, 미군기지 대신 특수학교를 짓게 해달라고 했더라면 어땠을까.

사실 강서구 주민들만 유별난 게 아니다. 특수학교 설립은 서울 전역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지난 15년간 설립된 특수학교는 단 한 곳뿐이다. 다들 내놓고 말을 안해서 그렇지 이유는 하나다. 땅값이다. 땅값에 관한 한 서울은 참 탐욕스럽다. 지방의 웬만한 아파트를 팔아도 서울 전세가 쉽지 않게 된 지금도 서울은 배고프다. 15년 전 상경해 처음 살았던 곳이 화곡동이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세대주택들 간 나름 인심도 좋았다. 

최근 가본 화곡은 많이 변해 있었다. 마곡지구의 영향이라고 했다. 재개발된 아파트들은 7억~8억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 변화가 강서 사람들을 바뀌게 했을까.

끝내 특수학교 설립이 중단된다면 강서구의 집값은 오를까? 아닐 것이다. 주민들이 얻을 것은 별로 없어보인다. 악화된 여론 속에 서울시교육청이 소유한 ‘학교용지’가 한방병원용으로 전용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강서는 ‘인심 험악한 동네’로 오랫동안 회자될 가능성이 크다. 명분도, 실리도 잃는 셈이다.

그래서 제안해본다. 역발상을 해보자고. 모두가 꺼리는 특수학교를 적극 유치하는 쪽으로 말이다. 장애아동을 위한 편의시설을 대폭 확대하고, 주민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으로 특수학교를 짓는 것이다. 그리고 명칭은 ‘허준학교’로 하자. 몸이 불편한 아이들을 위한 교육시설은 몸이 아픈 백성들을 위해 <동의보감>을 편찬한 허준의 정신과 맥이 닿아있다.

장애아들도 어울려 잘살 수 있는 마을. 이런 곳이라면 집값도 오르지 않을까? 당장 나부터 세종을 떠나는 날, 그런 강서를 다시 찾아갈 것이다. 수준 높은 시민들이 사는 지역이라면 아이들 키우기도, 어르신을 모시기도 좋다. 그런 동네, 상상만 해도 탐이 난다. 강서 주민들은 부디 재고해 주시라.

<경제부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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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의 친·인척 보좌진 채용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딸을 의원실 인턴으로 채용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은 뒤로만 여야 의원실에서 20여명의 보좌진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여야는 친·인척 보좌진 채용 실태를 조사하고 대책을 내놓는 등 불길 차단에 진땀을 빼고 있다. 국회 사무처도 친·인척 보좌진 채용 규제 방안을 이달 중 내놓기로 했다. 지금 분위기라면 뭔가 바뀌기는 바뀔 모양이다.

가족채용 논란에 휩싸인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당의 징계 결정에 앞서 최종 소명을 하기 위해 30일 오전 당사를 방문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수십년 이어진 낡은 관행이 타파 대상이 된 것은 사회 윤리적 기준이 높아져서가 아니다. 그 관행을 더 이상 참아내기 힘들 만큼 사회의 분노지수가 치솟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헬조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으로 대변되는 청년들의 분노와 좌절이 그것이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비판 여론의 쓰나미’는 그래서다.

정치권이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가장 편리하고 안전한 방법은 적당히 여론에 편승하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 생존법’ 또한 오랜 관행이다. 지금 여야의 보좌진 면직은 그야말로 무차별적이다. ‘갑질’과 ‘특혜’에 해당하는지 사례별로 옥석을 가리기도 전에 ‘친·인척’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처럼 낙인찍는 상황이다.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은 부인의 7촌 조카를 비서관으로 채용해 논란이 됐고, 송기석 의원은 형의 처남을 운전기사(7급)로 채용한 것이 문제가 됐다. 그러나 부인의 7촌 조카와 형의 처남은 법률적 의미의 친·인척 범위 밖이다. 더민주 안호영 의원실의 안호근 비서관은 6촌 동생이라는 이유로 사표를 냈지만 정당을 넘나들며 오랜 전문성과 실력을 갖춘 전문 비서관으로 알려져 있다. 19대 국회 때는 김광진 의원실에서 일하면서 ‘노크 귀순’을 밝혀내기도 했다. 지금 문제가 돼 면직된 친·인척 보좌진들 중에는 의원이 낙선해 국회의원이 아닌 시절에 줄곧 보좌한 경우도 있다. “이미 전문성과 능력이 검증됐는데 친·인척이라고 해서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해야 되느냐”(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친·인척 보좌진’ 논란의 본질은 채용 과정의 갑질과 특혜다. 전문성도 없는 사람을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채용하기, 보좌관 급여 일부를 후원금으로 돌려받기, 보좌진 급여 쪼개 채용 인원 늘리기, 의원실끼리 친·인척 채용 품앗이 등 행태가 문제다. 근본적으로는 투명한 보좌관 채용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정치 혐오’와 ‘채용 부조리’가 포개진 지점에 친·인척 보좌진 문제가 놓여 있다. 청년들에게 채용 현장은 금수저·흙수저, 학벌사회, 연줄사회 등 한국 사회 부조리와 미래 없는 삶의 모습이 집약된 곳이다. 그 근저에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에 대한 분노가 크다. 지금처럼 급한 불 끄고 보자는 식의 면피용 마녀사냥으로만 대응한다면 앞으로도 나아질 것은 없다.

정제혁 기자 jhjung@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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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프로농구(NBA)에서 코트 내 선수끼리 시비가 붙었을 때 벤치에 있던 선수가 한 발자국이라도 코트에 들어서면 곧장 벌금 500달러가 매겨진다. 자동으로 다음 경기 출전 정지 징계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는 더 심하다. 링크에서 두 선수가 서로 주먹을 날리는 일이 자주 나오는 종목인데, 만약 벤치에서 다른 선수가 나오면 첫발을 뗀 선수에게 벌금 1만달러와 함께 10경기 출전 정지 징계가 추가된다. 2번째로 나온 선수는 5000달러에 5경기 출전 정지 징계다.

그런데 야구는?

지난 8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매니 마차도는 캔자스시티 로열스 투수 요다노 벤추라의 강속구를 등에 맞았다. 곧장 마운드로 뛰어갔고, 벤추라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양 팀 선수들이 모두 그라운드로 뛰어나왔다. 볼티모어에서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을 치르고 있는 김현수도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달려가 합세했다. 대개 ‘집단 몸싸움’으로 번역하지만 벤치를 비운다는 뜻의 ‘벤치클리어링’이다. NBA, NHL과 달리 야구에서는 벤치를 비운다고 해서 바로 벌금이 매겨지지 않는다. 싸움의 숫자가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코트나 링크에서 같은 수의 선수가 겨루는 종목들과 달리 야구는 공격과 수비가 나뉜다. 수비팀은 9명이지만 공격팀은 만루 상황이라 하더라도 1·3루 코치 포함 6명밖에 되지 않는다. 인원수가 맞지 않는다. 벤치에 있는 야수뿐만 아니라 불펜에서 대기 중인 투수들도 다 출동한다. 물론 모두가 주먹을 주고받는 것은 아니다.

벤치클리어링은 대개 ‘존중하지 않음’에서 비롯된다.


지난달 17일 텍사스와 토론토가 벤치클리어링을 벌였다. 토론토 호세 바티스타의 2루 슬라이딩에 발끈한 텍사스 2루수 루그네드 오도어가 주먹을 날렸다. 앞서 바티스타를 향한 위협구가 발단이었다. 그 위협구는 지난해 포스트시즌 디비전시리즈, 바티스타가 텍사스 상대로 쐐기 3점홈런을 때리고 난 직후 보여준 방망이 던지기에서 비롯됐다.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을 때리고 방망이를 집어 던지는 것은 승리 팀의 기쁨을 표현하는 행동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으로 여겨진다. 승리했다고 해서, 이겼으니까 뭐든지 해도 된다는 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졌으니까 닥치고 있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 스포츠는 승패에 앞서 종목의 가치에 대한,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 그러니까 싸움을 하더라도 일단 숫자를 맞춰놓고 시작한다.

메이저리그 최고 명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토니 라루사 감독은 “야구의 신은 언제나 야구를, 혹은 상대를 존중하지 않을 때 패배라는 벌을 내린다. 나는 이것을 아주 어렵게 배웠다”고 말했다. 주먹을 날린 오도어 역시 거친 슬라이딩에 대해서는 “같은 상황이 또 되더라도 나는 나를 지킬 것”이라면서도 선수 바티스타에 대해서는 “항상 열심히 플레이하는 존경하는 선수”라고 말했다.


시민들이 20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지난 17일 새벽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여성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_경향 DB.


강남역 살인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말할 것도 없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애달픈 청춘에 대한 존중은커녕 ‘안전 수칙’을 내세우며 피해자의 잘못이라고 떠들었다. 아파트 주민회장은 관리소장에게 욕설과 함께 ‘종놈’ 운운하며 폭언을 퍼부었다. 대학교의 남학생들은 단체 메신저를 통해 입에 담지 못할 말들로 여학생들을 비하하며 낄낄거렸다. 한국사회라는 리그에서 ‘존중’은 사라졌고, 구별 짓기와 혐오, 비하만 남았다. 상대를 존중하는 일은 사라졌고, 승자의 ‘존중받음’만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혐오와 비하는 ‘내가 속한 집단’이 더 강한 ‘갑’이라는 저열한 수준의 갑질이다. 하물며 벤치클리어링도 숫자를 맞춰서 힘의 규모를 정리한다. 만약 스포츠라면, 출전 정지를 넘어 리그에서 퇴출시키는 게 답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아 제발 야구라도 좀 봐라.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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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가 부정한 청탁을 받으면 법원에 신고하고, 법정 밖에서 변호사와의 의심스러운 만남도 금지한다.’ 최근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내놓은 전관예우 개선 방침이다. 행정처가 내놓은 시원스러운 대책에 여론은 나쁘지 않다. “지금까지 법원·검찰이 내놓은 방안 가운데 가장 강도 높은 것” 등 호평하는 기사도 이어진다.

하지만 그간 법원 내 상황을 돌아보면 마냥 행정처에 박수를 칠 수만은 없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법조 로비 사건이 터지기 전이었던 지난 4월초, 행정처는 사법행정에 반영하겠다며 일선 판사들의 의견을 모은 적이 있었다. 당시 법원 내부망에는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는데, “전직 법원장 등 전관이 판사들에게 전화해 법정 외 변론을 하려 할 때 신고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재판의 독립에 관한 것으로 눈에 띄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얼마 뒤 행정처가 상정한 안건에는 이런 내용이 빠졌다. ‘합의부 내부의 바람직한 문화’, ‘법관의 여가와 휴식을 보장하는 문화’ 등이 주된 안건이었다. 일부 판사들은 “민감한 문제들을 피해 비교적 온건한 안건을 다뤘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며 아쉬워했다. 그런데 얼마 뒤 정 대표 사건이 터지자 행정처는 앞서 제기된 의견과 유사한 아이디어로 전관예우 개선 방안 소개에 나섰다. 외면된 의견을 뒤늦게 ‘재활용’한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역대 전관예우 논란 고위 공직 후보자_경향DB

사실 행정처가 당초 전관예우 개선 의견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 자체를 비판하긴 힘들다. 사안의 중요성을 판단하는 데는 다양한 시각이 있다. 하지만 행정처는 그간 판사들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며 정작 안건 결정권은 처장 중심으로 독점하고 있었다. 이 같은 수직적인 의사결정 구조에서 전화변론 금지 같은 파격적 의견들이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까.

전관예우 개선을 위한 법원의 행보는 분명 의미 있고 지지할 만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개혁은 ‘정운호에 의한 강제개혁’에 가깝다. 타의에 의한 강제개혁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법원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


박용하 | 사회부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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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이 4~5년마다 하는 평가에서 A등급을 받았다. 2014년 3월부터 세 차례나 ‘등급 보류’ 수모를 겪는 등 4수 끝에 최고등급을 유지한 것이다. 이 소식이 얼마나 기뻤던지 인권위는 지난 24일 결과를 통보받자마자 밤 12시가 다 된 시각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과연 이게 자랑할 만한 일인가.

지난해 8월 판사 출신 이성호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인권위는 인권위법 개정을 주도하는 등 등급 심사 통과에 집중했다. 개정된 법의 내용은 인권위원의 다양성 확보, 선정 과정의 투명성 강화 등 모두 인권기구의 독립적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국제적 기준에 맞춘 것이다.

정작 인권위는 법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시행된 개정 인권위법은 11명의 인권위원 중 한쪽 성(性)이 60%를 넘지 못하도록 돼 있다. 현재 인권위는 남성이 7명, 여성이 4명이다. 지난 3월 새누리당 추천으로 검사 출신의 정상환 상임위원 임명 과정에서 시민사회와의 소통은 없었다. 인권위원 중 절대 다수인 8명이 법조인으로 편중된 구성도 여전하다.

주요 인권 침해 이슈 발생 시 긴급히 의견을 표명하고 적절하게 개입해 피해를 막고 재발 방지에 주력한다는 인권위의 애초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청와대 앞 집회를 금지한 경찰에 대한 재발 방지 권고는 2년이 지나서 나왔다. 한겨울 ‘평화의 소녀상’에서 노숙농성하는 대학생들의 텐트 사용을 허락해달라는 긴급구제 신청도 외면했다.

국가권력으로부터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다면 등급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인권위는 ‘모든 개인의 기본적 인권 보호’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구현’ 등을 설립 목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금의 인권위는 A등급 자랑이 아니라 스스로 내세운 설립 목적에 맞게 활동하고 있는지를 성찰해야 할 시점이다.


김형규기자 fidelio@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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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 계속 ‘묻지마 살인’이라고 하더라고요. 범인이 화장실에서 여성을 오래 기다렸다는데 그걸 왜 묻지마 범죄라고 포장하는 거죠?”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주점 건물 화장실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여성 피해자를 추모하는 메모들이 붙은 그곳에선 언론을 향한 날선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어느 20대 여성은 “마치 여자가 잘못해서 평범한 남자가 살인을 했다는 듯한 기사 제목에 화가 났다”고 했다. 다른 여성은 “ ‘강남 유흥가’라고 기사 쓰신 분들, 번화가와 유흥가 어감 차이 모르세요? 여자가 새벽까지 술 먹고 유흥해서 살해됐다는 식으로 기사 쓰지 마세요”라고 메모지에 써붙였다. 뜨끔하고 가슴 시린 말들이었다.

시민들의 지적은 언론의 사건 보도 태도를 되짚어보게 한다. 기자도 ‘묻지마 살인’이나 ‘번화가와 유흥가’라는 단어를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언론들은 조회수 경쟁에 몰두하다 보니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표피만을 두드린다. 기사는 점점 자극의 강도를 높여 경쟁하고 구조적인 문제를 파고드는 일은 뒷전이다.

22일 오전 대전도시철도 시청역 3번 출구에 마련된 서울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피해자 여성 추모의 벽에서 시민들이 추모의 메시지를 붙이고 있다_연합뉴스

국가기관도 다르지 않다. 지난 18일 피의자 김모씨에게 정신병력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전화를 건 기자에게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정신이상자(범인)가 한 얘기를 일일이 해서 뭐하시게요”라고 했다. 정신병력이 있다는 이유로 김씨가 하는 진술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식이었다. 그런 것은 기자가 알 필요 없고 사회적으로 논의될 가치도 없다는 경찰의 편협한 인권 감수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경찰은 여성혐오 범죄 아니냐는 논란이 일자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경찰 입장을 표명하겠다고 했다가 한나절 만에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그사이 장외 논란은 더 증폭됐다.

그동안 혹시 우리는 여성혐오, 그 무엇에 대한 혐오를 방조해오지 않았는가. 피해 여성에 대한 추모가 시작된 이후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혜리 | 사회부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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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경찰이 압수수색한 권모 LG전자 부장의 PC에서 나온 LG전자 내부문건엔 이 기업이 협력사 ‘미래지원’의 강모 대표를 괴롭힌 정황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LG전자의 목표가 ‘강씨 구속 수사’라거나, 그에게 혐의를 씌우는 과정에서 강씨의 친척을 매수하고 경찰에 수사를 청탁한 정황까지 나온다.

이 문건은 지금도 서울 여의도 LG전자 본사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건 내용대로 당시 미래지원 등에서 일하던 일부 직원들은 2009년 강씨가 1억4000만원대의 회사 돈을 횡령했다며 경찰에 고발했다.

검경은 이 ‘공작’의 실무 책임자로 권 부장을 지목했다. 권 부장이 미래지원과 또 다른 회사와의 거래내역(횡령 근거자료)을 강씨 고발 그룹에 제공한 점이 밝혀졌다. 물론 이 내역은 강씨 횡령과 무관한 것이었고, 심지어 금액 등이 3차례나 바뀌어 경찰에 제출됐다. 또 권 부장이 2억5000만원에 달하는 돈을 고발자 측의 개인 계좌로 지급한 사실도 확인됐다. 권 부장의 상관인 이모 그룹장의 캐비닛에선 내부 기안문서 다발이 나왔다.

LG전자 협력사 대표 청부고발 의혹 수사 일지_경향DB

강씨 고발 그룹 중 핵심인 김모씨는 양심선언도 했다. “LG전자에서 2억5000만원을 받고 강씨 죽이기 차원에서 사주 고발전을 펼쳤다”는 것이다. 경찰 수사기록을 보면 권 부장을 포함해 가담자 5명은 강씨의 횡령이 사실이 아닌 걸 알면서도 무고했다는 점을 시인했다.

경찰은 지난해 LG 직원을 포함한 관련자들을 무고와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해야 한다며 검찰에 넘겼다.

검찰 내부 보고서도 ‘기소’로 결론냈다. 지난 2월 법원은 권 부장의 배임 혐의 유죄 판결문에서 “권 부장이 협력업체 죽이기에 가담한 정황도 엿보여 죄질이 좋지 않다”고 언급했다.

검찰도 최근까지 강씨에게 “곧 LG전자 임직원을 기소한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그러나 3일 창원지검 마산지청은 이 부분을 돌연 무혐의 처분했다. “강씨의 거래내역에 의혹을 제기할 만한 부분이 있고, 권 부장이 고발 그룹 측에 제공한 내역에 신빙성이 있는 등 무고 혐의를 적용하기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러니 검찰의 기소권 독점 문제가 도마에 오르는 것이다.


홍재원 | 사회부 jw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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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는 눈물을 보일 수 없다. 조폭 같은 나쁜 놈들만 골라 상대해야 하는 게 수사 검사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수사는 실패한다. 한편으론 일단 포승줄로 묶어 놓으면 그 사람의 운명은 검사의 손아귀에 떨어진다. 약해서도 안되고 약해질 수도 없는 게 검사인 셈이다.

그런 검사가 울고 말았다. 지난달 26일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이철희 특별수사팀장이 피해자 가족들과 면담했다. 그들의 요청대로 수사 상황을 대략 설명해주는 자리였다. 피해자들은 떠나보낸 가족 이야기를 하며 오열했다. 얘기를 듣던 이 팀장도 함께 울었다고 한다. 그가 갑자기 약해진 건 아닌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이 눈물은 ‘나쁜 놈’을 겨냥하는 검찰의 칼끝을 더욱 벼릴 것이다.

요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믿을 건 검찰뿐”이라고 한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말인지 모르겠다. 옥시레킷벤키저가 사과를 해도 피해자들은 “검찰 수사부터 받으라”며 울부짖었다. ‘우리 뒤엔 대한민국 검찰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아내를 잃은 남편, 금쪽같은 아이를 떠나보낸 엄마, 코에 호스를 꽂은 아이에게 그 이상의 ‘빽’은 존재하기 어렵다.

검찰의 맹공에 5년간 눈 한번 깜빡하지 않던 옥시는 고개를 숙이고 수사 협조와 보상, 자체 조사를 약속했다. 외면과 무책임으로 일관하던 정부도 애경 제품에 대한 재검증과 피해자 추가 조사 등에 나섰다.

검사의 눈물 한 방울이 세상을 바꾼다는 걸 우리는 알게 됐다. 이 사건은 검찰에 오래 방치돼 있었다. 지금까지 검찰은 왜 이 문제를 파고들지 않았을까. 알 만한 사람들은 사건을 골라내는 눈, 이른바 ‘선구안’을 거론한다. 얘기 되는 사건을 잘 발굴해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다른 검사들은 성공할 만한 사건을 골라내는 안목이 부족했다는 해석이다.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가 개최한 기자회견에 참석한 살균제 피해자를 비롯한 참가자들이 옥시 영국 본사 CEO를 포함한 이사진 8명을 검찰에 형사고발한다고 밝히고 고발장을 접수하기 위해 검찰청사에 들어서고 있다._김정근기자

그러나 검찰 특별수사팀이 박수를 받는 진짜 이유는 힘없는 사람들 편에 섰다는 데 있다. 이 팀장의 눈물은 검찰이 가야 할 길을 웅변한다. 반대로 그동안 이 사건을 외면한 다른 검사들은 검찰이 요즘 보여준 바로 그 모습을 하고 있다.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외면하고 힘센 권력자의 비위나 맞추며 승진놀음을 하는 그 모습 말이다. 검찰의 선택은 자명해 보인다.

특별수사팀도 지금의 박수에 취해선 안된다. 옥시는 독성물질로 지목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제품에 활용·판매해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옥시가 사용한 PHMG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물질이 아니다. 독성 물질과 제품은 늘 정부 심사를 통과했고, 정부는 사태가 커진 뒤에도 책임 미루기와 외면으로 일관했다. 옥시와 닮은꼴이다.

옥시가 자사 제품의 유독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게 과실이라면, 그 원료인 독성물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정부의 과실은 없는지 의문이다. 정부가 발행하는 관보를 보면 PHMG는 환경부의 ‘심사’를 무사 통과해 1997년부터 유통됐다. 이런 물질을 걸러내라고 있는 게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 같은 정부 전문기관이다.

수사팀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기 전엔 옥시의 책임 규명도 어려워보였다. 정부 책임자를 수사해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것 또한 검찰의 몫일 수밖에 없다. 수사팀은 현재 11명의 검사로 대폭 증원돼 올 초의 2배 수준이 됐다. 관련 정보를 꽁꽁 숨겨놓고 버티는 정부 당국자들이 있는 한, 특별수사팀이 아니면 국민적 의혹을 해소할 길이 막막하다. 물론 이 부분은 국가의 배상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국가의 방패가 될 소송 대리인은 사실상 검찰과 한 몸인 법무부이다. 혹여 이런 부분을 신경 쓰면 ‘도로 검찰’이 된다. 검사의 눈물은 진실만을 향할 뿐이다.


홍재원 |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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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벨>은 영화사에 남을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거칠고 엉성하고 자기과시적이다. 영화의 목적이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을 위로하기 위함인지,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밝히기 위함인지, 큰 차원에서의 국가 개혁을 위함인지 알 수가 없다. 임권택 감독의 말마따나 “어쭙잖은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시작은 <다이빙벨>이었다. 20년 역사를 지닌 아시아 최고의 영화축제, 부산을 넘어선 한국문화계의 소중한 자산, 세계의 영화인들이 주목하는 아시아 영화의 창구, 무엇보다 세계의 그 어느 영화제도 넘볼 수 없는 뜨거운 열기를 가진 행사가 좌초 위기를 맞은 건 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서병수 부산시장이 <다이빙벨>의 상영을 막으려 한 때부터였다.

정치인이자 관료인 서 시장으로선 이 영화를 이해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다이빙벨>은 참사 직후의 울분에 가득 찬 영화다. 합리적인 해결책이나 이성적인 대응방식은 찾기 어렵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에 목마른 사람조차 호의적으로 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다이빙벨>은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는 300여편의 영화 중 하나였을 뿐이다. 영화제에는 <다이빙벨>보다 더 큰 논란을 부를 만한 영화도, <다이빙벨>보다 못 만든 영화도 많다. 심의 당국이 인상을 찌푸릴 영화도, 무심코 입장권을 산 관객이 거세게 항의할 영화도 있다. <다이빙벨>은 그런 수많은 영화들 중 한 편이었고, 그렇기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채 상영됐어야 한다. 지난 20여년간 전 세계의 수많은 영화들을 보고 골라 상영해왔던 영화제 집행위가 선택한 이상 조직위는 그 안목을 믿어야 했다. 심지어 <다이빙벨>의 상영 중단을 요청했을 당시 서 시장은 영화를 보지도 않은 상태였다.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영화제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올해 참가를 전면 거부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_경향DB

서 시장은 영화제가 완전히 검증된 영화만 상영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합리적이고, 따뜻하고, 성숙한, 그래서 누구라도 만족시키는 영화만이 상영되길 원했던 것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술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예술은 종종 누군가를 불편하게 한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수만번의 헛발질을 한다. 목불인견의 작품이 대다수다. 그렇게 수많은 졸작 중에 단 한 편의 걸작이 불현듯 탄생한다. <다이빙벨> 이후 한국 영화인들은 여러 편의 세월호 관련 작품을 내놨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 언젠가 세월호를 다룬 위대한 작품이 나올지도 모른다. <다이빙벨>은 그 초석이었을 뿐이다.

부산시는 내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다이빙벨> 문제가 불거진 건 2014년이었고, 지난해엔 별 갈등 없이 영화제를 치렀다. 그러나 서병수 시장이 <다이빙벨> 상영 중단을 요구하면서 만들어진 ‘탄압의 프레임’이 이후 상황에 대한 인식을 좌우했다. 예산, 조직, 인력 등을 둘러싼 부산시와 영화제 간 갈등이 모두 이 프레임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탄압의 프레임’을 만들어낸 건 다름 아닌 서 시장 자신이었다.

얼마전 부산시는 평소 접촉이 없던 서울 지역 영화 기자들과의 간담회를 자청했다. 김규옥 경제부시장이 나와 그간의 사태에 대한 부산시의 입장을 밝혔다. 김 부시장은 부산시와 영화제를 언론사의 발행인과 편집국의 관계에 비유했다. 발행인은 편집국의 독립성을 보장하되, 행정·예산의 측면에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부산시 역시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되, 잘못된 행정·예산의 운용 관행에 대해서는 간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 비유를 고스란히 이용하자면, <다이빙벨> 사태는 발행인이 편집국장에게 정치적으로 민감한 기사를 빼라고 요구한 사건이다. 그것도 기사를 읽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제대로 된 언론사라면 한바탕 평지풍파가 일어나고, 발행인이 기자들에게 사과하고 남을 사안이다. 그러나 서병수 시장은 <다이빙벨> 사태에 대해 사과는커녕 그 흔한 유감 표명도 한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누굴 바보로 아는가.


백승찬 | 대중문화부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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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거짓말과 해소되지 않는 의혹은 불신을 낳는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 원인을 규명하겠다” “책임질 사람이 있다면 엄벌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이 있었지만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외딴섬에 텐트를 치고 8개월 넘게 버티고 있는 것은 참사 2년이 지나도록 회복되지 않는 불신 탓이다.

21일 라디오에서 방송된 해양수산부 관계자의 발언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의 가슴에 또 한 번 멍을 남겼다.

이날 MBC 라디오에 출연한 홍모 세월호인양추진단 현장감독관은 “유가족들이 현장 접근이 안된다는 (해수부의) 말씀 때문에 산 위에서 망원경으로 촬영을 하고 있는데 유가족이 현장 접근을 하면 안되는 이유가 있나”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렇지 않다. 최근에 유가족을 모시고 현장에 가기로 했는데 기상 상황이 악화돼 탑승을 못했다”고 답했다.

마치 해수부가 유가족 현장 방문을 추진할 의사가 있었지만, 기상 상황 탓에 여의치 않았다는 식의 발언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해수부 공무원의 세월호 유가족 고발 사주 의혹'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_경향DB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부모들에게는 처음부터 바지선에 오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가족들은 인양작업이 개시될 때부터 현장 방문을 요구했지만 해수부가 작업에 지장을 미칠 수 있다며 탑승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현장에 접근할 수 없는 가족들이 사고 지점 부근 동거차도에 텐트를 치고 망원경으로 인양작업을 주시해온 243일 내내 기상 상황이 나빴던 걸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가족들과 특조위의 승선 요구는 거절됐지만 유기준 전 해수부 장관은 현장 시찰을 목적으로 승선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뒤늦게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가 ‘그간 탑승이 안됐는데 앞으론 할 계획이 있느냐’고 질문한 줄 알았다”고 해명했다. 불리한 질문에 ‘아니다’라고 발뺌하고 ‘착오였다’고 해명하면 그걸로 끝인가.

이래저래 세월호 희생 가족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깊어갈 뿐이다.


조형국 | 경제부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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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참사 희생자 및 미수습자 분향소 앞에 시민들이 추모 헌화를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_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지난 16일 오후 7시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우비를 입었지만 빗물이 새어들어왔다. 신발과 양말, 바지까지 온통 축축해졌다. 기온도 뚝 떨어져 몸이 덜덜 떨렸다. 우산끼리 부딪쳐 제대로 이동하기도 힘들었다.

그곳에 시민 1만2000여명이 모였다. 세종문화회관 계단과 KT 건물 로비가 꽉 찼다. 비와 추위를 이기고 한자리에 모인 그들의 가슴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광화문 분향소 앞에는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손팻말을 들고 있는 한 무리의 청년들이 눈에 띄었다. 젖은 팻말에는 ‘고맙습니다. 밝혀진 것 없는 세월호 참사에 가슴 아파하는 당신의 마음이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일본인은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건 정말로 대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이날 오전과 오후 경기 안산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기억식과 걷기대회도 시민들의 참여 열기로 뜨거웠다. 정부합동분향소에는 추모객의 줄이 하루 종일 끊어지지 않았다. 시민 4000여명은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이 오갔던 안산 시내길 5㎞를 그대로 따라 걸었다. 그들은 추모 행진에 미수습자 9명을 형상화한 높이 3m의 종이인형 9개를 앞세웠다. 1m 높이의 장대 위에 올라가 허우적거리며 종이인형 곁을 지킨 청년들의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됐다. 그렇지만 그들은 연신 “힘들지 않다” “계속 가야 한다”고 서로를 격려했다. 행진 대열을 지켜보던 시민들도 거리로 나와 “벌써 2년이 됐구나”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빗물과 눈물이 뒤섞인 세월호 참사 2주기. 고통과 추모, 좌절과 분노는 여전했다. 그러나 1주기와 달리 희망과 기대의 분위기도 엿보였다. “2년간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절망 가운데서도 ‘여소야대’의 20대 국회에 대한 기대감은 강했다. 유족과 시민들은 20대 국회가 세월호특조위 활동기간 보장과 특검 수사 등을 반드시 관철시켜주길 요구하고 있었다.

전명선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누군가는 잊으라고, 가만히 있으라고, 이제는 끝내자고 끊임없이 되뇌고 주입하려고 했지만 국민들은 속지 않았다. 국민들의 위대한 힘을 봤다”며 “많은 당선자로부터 세월호 문제 해결을 약속받았다. 그 약속 지켜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방송인 김제동씨는 “여기에 (국회의원) 당선자분들이 많이 오셨다”며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배지를 지키는 열정만큼 (희생자) 304명을 지키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광장에서 만난 한 가족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추운 날씨에 몇 시간 동안 마땅히 앉지도 못하는 기다림이 계속되자 초등학생 아들이 아버지에게 “집에 가자”고 툴툴거렸다. 아버지는 다정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비가 오고 추운데 여기 나왔는지를 생각해보겠니. 우리는 그걸 꼭 기억해야 해. 알았지?” 세월호 진상규명, 이제 다시 시작이다.


사회부 | 이혜리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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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분노하고 있었다. 회사가 내게 이럴 수는 없다고 외치다 끝내 눈물을 쏟았다. 경력으로 들어와 16년을 일했다. 출산휴가가 끝난 직후에도 새벽 1~2시까지 일했다. 프로젝트마다 성과도 좋았고, 나름 능력 있다는 소리도 들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직원인 김모씨(45)의 이야기다.

지난 1월 인사과는 그녀에게 “3월까지 퇴직하면 1년치 연봉을 챙겨주겠다”며 “그러지 않으면 재교육을 통해 재배치를 받게 될 것”이라고 통보했다. 그녀는 전산분야의 프로그램 컨설턴트였다. 말이 재교육에 재배치일 뿐 24시간 3교대로 서버를 관리해야 하는 한직으로 밀려날 게 뻔했다. 무조건 나가라는 얘기였다. 그녀는 노조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성실한 근로자’였다. 그녀는 “내가 왜 나가야 하느냐. 진짜 무능한 사람은 따로 있다”고 버텼다. 그러자 팀장이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 “당신이 안 나가면 내가 아주 곤란해져. 사실 나도 어쩔지 몰라. 연말까지 또 정리해고가 있을 거야. 나는 애가 셋인데….”

어느 날 아침 회사로부터 “그동안 수고하셨다”는 말을 듣는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예상을 했든, 하지 않았든 그 충격의 강도는 별 차이가 없다. 눈앞은 까매지고 머릿속은 하얘진다. 만약 가장이라면 아이들의, 아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갈지도 모른다. 미혼자도 마찬가지다. 어디 기댈 사람도 없는데, 무얼 해야 할지 막막하다.

정부에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구조개혁을 해달라고 했더니 옳거니 하면서 ‘노동개악’을 들고나왔다. 저성과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하고, 기간제 근무자는 근무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렇게만 되면 기업의 부담이 줄어들어 취업이 더 잘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해고, 그까짓 것은 좀 견디라고 한다. 정말 그런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노동자·서민 살리기 범국민 서명운동'에 동참하고 있다._경향DB

공무원들의 의도가 악의적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칼자루를 쥔 사람들이 해고의 위협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공무원의 가장 큰 고민은 승진이다. 회사가 어려워져서 망한다는 개념도 없다. 임금이 연체되는 불안감도 모른다. 국가부도 사태만 아니라면 말이다.

쉬운 해고를 추진할 묘안은 있다. 퇴직 후 사회보장을 충분히 해주면 된다. 하지만 올해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은 월 34만원에 불과하다. 보험료를 적게 낸 탓도 있지만 더 받기도 쉽지 않다. 20~30년 장기근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재정지원도 없다. 반면 공무원연금 평균 수령액은 월 240만원이다. 평소 일반인보다 조금 더 떼이지만 훨씬 많이 받는 구조다. 지난해에만 2조9000억원의 혈세가 지원됐다.

고용이 보장되고 연금제도가 잘 갖춰진 공무원들에게 맡기는 노동개혁은 그래서 한계가 있다. 한국은 북유럽처럼 2년에 걸쳐 실업급여가 나오는 구조도 아니다. 50세 미만이라면 최장 7개월 지급되고, 그나마 월 120만원가량이 상한이다. 그런데도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실업급여가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인식이 그런 수준이다.

지난해 정부는 공무원 임금을 평균 3.8%나 올렸다. 공무원이 임금을 올려야 민간기업도 올린다는 논리를 폈다. 같은 의미로 ‘쉬운 해고’도 공무원부터 먼저 도입해보는 것은 어떨까. 야당도 반대하고 노조도 반대하는 ‘쉬운 해고법’이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공무원부터 파격적으로 도입을 해보자는 것이다. 먼저 담당부처인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부터 시범도입하면 되겠다. 공무원의 신분보장은 법률로 정해져 있다지만 두 부처 공무원들이 동의하면 법은 얼마든지 개정이 가능하다. 그 정도의 의지가 없다면 국민들에게 쉬운 해고를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다. 그게 공무원만 모르고 있는 냉혹한 현실이다.


박병률 |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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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수원의 안전한 관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상식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시민들의 인식과 환경당국·지자체의 인식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난 13일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사무처장과 함께 경북 칠곡군 칠곡보 인근 낙동강에서 확인한 강준치의 복부는 길이 40~50㎝에 달하는 리굴라촌충 2마리로 가득 차다 못해 부풀어 있었다. 30여분 동안 확인한 감염된 강준치 폐사체만 10여마리로, 지난 2월부터 확인된 강준치 폐사체는 1000마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4대강 사업으로 ‘녹조라떼’에 이어 부산·경남 주민의 식수원인 낙동강에 새로운 환경재앙이 일어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경북 구미시의 낙동강 칠곡보에 지난달 6일 녹조로 인해 짙은 녹색 물감처럼 변한 물이 저장돼 있다._대구환경운동연합 제공

그러나 환경당국과 지자체들은 낙동강 기생충 문제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담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환경부 대구지방환경청은 지난달 말 “낙동강 강준치 폐사 원인은 리굴라촌충으로 보이며, 이 기생충은 사람에는 감염되지 않는다. 수질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발표했다. 환경부와 대구환경청은 강준치 폐사체를 관찰·수거하는 정도의 후속조치만 실시하고 있다. 칠곡군, 달성군 등 인근 지자체들은 일요일이었던 지난 13일에도 공무원들을 보내 폐사체를 수거하는 등 문제를 감추는 데만 급급할 뿐이었다.

유람선이 여전히 운영되고 낚시도 허용돼 있는 달성군 화원유원지에서는 아버지가 낚은 강준치를 들고 관찰하는 어린이의 모습도 목격할 수 있었다. 기생충이 들끓는 것을 시민들이 알았다면 벌어질 리 없는 광경이었다. 칠곡보뿐 아니라 낙동강 곳곳에서 강준치 폐사체가 발견되는 상황에서 환경당국과 지자체가 해야 할 일은 폐사체 수거에만 급급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단체들의 요구대로 “낙동강 전 구간에 대한 전수조사 실시와 기생충 창궐의 근본원인 조사”에 나서는 일일 것이다.


김기범 | 정책사회부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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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10일 오후 1시 서울 청담동 한 식품점. 방울토마토, 유기농 오이 등 8만3000원어치가 한 국책연구기관 ‘법인카드’로 결제됐다. 5일 뒤 이 카드는 같은 매장에서 총각무, 호박고구마, 배 등(9만7000원)을 계산하는 데도 쓰였다. 전후 반년간 이 연구기관 ‘원장님’은 장바구니를 채우는 용도로만 카드를 128만7000원어치 긁었다.

업무시간을 쪼개 장을 보고 법인카드로 계산한 ‘짠순이 원장님’ 같아 보이지만 그런 것만도 아니다. 백화점 명품 매장과 공항 면세점에서도 과감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 백화점에서 ‘아닉구딸’(일명 고소영 향수) 2개(88만원), 삼성동 백화점에선 에르메스 넥타이 3개(78만원)를 구입했다. 명목은 ‘연구사업비’ ‘경상운영비’였고, 총 314만원이 지출됐다.

이 같은 사실은 2014년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질타를 받은 ‘원장님’은 이은재 당시 한국행정연구원장이다. 이명박 정부 막바지 연구원장 자리를 꿰찬 그는 지난 20일 서울 강남병 지역구에 새누리당 후보로 확정됐다. 강남에서도 특히 여당이 우세한 도곡동·삼성동·대치동이 지역구다 보니 당선도 ‘따 놓은 당상’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한국행정연구원장_경향DB

이 전 원장은 비례대표로 18대 의원을 지냈다. 충분히 검증 가능한 인물이란 얘기다. 그는 2010년 12월 새해 예산안 날치기 과정에서 야당 여성 의원 가슴을 향해 발길질을 해 검찰에 고발당하는가 하면 ‘국감 방해’로 국회 윤리위에 제소되기도 했다.

친이계 중에서도 ‘SD(이상득)계’로 분류됐던 그는 세종시 수정안 의총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해 “벌거벗은 임금님의 오만”이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새누리당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윤상현 의원을 공천 배제시킨 ‘품위 저해’라는 사유에 이런 행태는 포함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양반집 도련님’이 아닌 ‘마나님’이라서 봐 준 걸까. 이 공천 발표 직후 혀를 차던 한 당직자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이 공천, 이해되세요?”


정환보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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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신뢰도를 말하자면 바닥 정도가 아니라 지하실 수준이다. 검찰이 먹는 욕은 한마디로 ‘산 권력의 해결사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최근 수사 흐름을 봐도 의심을 살 만하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수영계 비리 수사에 착수해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수영계를 둘러싼 고질적인 비리의 단면이 드러난 것은 분명 성과다. 그러나 체육계에서는 정부가 추진한 체육정책에 반발한 이기흥 한국수영연맹 회장을 손보려는 의도란 말이 나왔다. 이 회장은 결국 사의를 밝혔다.

특수2부는 지난해 마무리하는 듯하던 KT&G 수사를 올해 다시 꺼내들었다. 지난해 7월부터 수사해 민영진 전 사장을 구속기소했지만 새로 취임한 백복인 사장을 추가로 겨냥한 모양새다. 정부가 특정 인물을 후임 사장으로 임명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압권은 형사1부의 허준영 측 압수수색이다. 검찰은 지난달 자유총연맹 회장 선거를 이틀 앞두고 용산개발 관련 비리 혐의로 허준영 전 코레일 사장의 측근 손모씨의 사무실 등을 덮쳤다. 허 전 사장은 연임에 실패했고 ‘친박’ 인사가 당선됐다.

일선 수사팀이야 최선을 다해 주어진 사건을 추적해나갈 뿐이지만,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 정치권력은 늘 ‘자리’가 필요하다. 크고작은 도움을 준 이들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보상이 없으면 따르는 이가 없는 게 정치판이다. 그러나 ‘자리’는 제한돼 있어, 때론 우악스러운 방식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또 권력 입장에선 손봐야 할 각계의 ‘삐딱이’들도 생겨난다. 이 과정에 검찰이 단골손님처럼 등장한다. 지난해 농협, 포스코 수사도 비슷한 맥락에서 회자된다. 재벌 비리 수사 따윈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검찰이 털면 십중팔구 먼지가 나오니 정치권력 입장에서는 요긴한 병기로 보일 수밖에 없다. 수사 착수만으로도 백기를 드는 사람도 제법 되니 더욱 그렇다.

'정윤회 문건' 유출 관련 조응천·박관천 1심 선고 결과_경향DB

‘해결사’의 진면목은 위기 때 더 두드러진다. 비선실세 의혹인 ‘정윤회 문건 파문’이 불거지자 검찰은 문건이 어떻게 유출됐는지에 수사력을 집중해 여론 방향을 틀었다. 세월호 침몰이 생중계되자 정부 대처문제와는 다소 동떨어진 유병언을 수사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온 국민은 유병언이라는 사람이 잡히기만을 기도했고 때아닌 사이비 종교 논란도 벌어졌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터지자, 검찰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청와대 비서실과 대통령의 대선캠프 출신만 제외하고 레이저 시술을 했다.

구조적으로 검찰이 청와대 수중에 있어서 그렇다. 청와대가 검찰 인사권을 틀어쥐고 있으니 승진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공무원’들이 꼼짝 못한다. 특히 이 정부는 검찰의 이런 취약한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아는 듯하다. 사실상 유일한 ‘불안 요소’였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도 없앤 마당이니, 마음 놓고 검찰의 내부 역학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활용한다. 한때 55명이던 검사장 수를 49명으로 줄여 숨구멍도 조여놓았다.

이런 구조로는 신뢰 회복은커녕 하는 수사마다 망하기 십상이다. 김수남 검찰총장이 예수라도 지금의 검찰을 구원할 수 없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병기’의 날을 무디게 만드는 것이다. 경찰이든 공수처든, 검찰의 힘의 요체인 ‘독점 기소권’을 분산하는 경쟁체제를 구축해 권력자의 장악 의지를 약화하는 쪽이 한 갈래다. 또 하나는 병기를 국민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고위직 검사 선출제 도입 등이 거론된다.

한때 권력이 검찰을 놓아준 적도 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이제 검찰을 다루는 권력자의 선의에만 기댈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이런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 정부는 검찰 대개혁의 출발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홍재원 |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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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유례 없이 정치·사회 이슈가 넘쳤다. 남녀 주·조연상 후보에 흑인 배우가 전무하다는 사실에서 촉발된 논란은 흑인 사회자의 아시아인 비하 농담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수상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성소수자, 성추행, 인종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그럼에도 올해 아카데미의 주인공을 한 명 꼽는다면 역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라 해야겠다. 디캐프리오는 22년의 기다림, 4번의 수상 실패 끝에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사실 아카데미의 역사를 살피면 디캐프리오보다 더 고생한 이들도 많다. 알 파치노는 8번의 후보 지명 끝에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피터 오툴은 남우주연상 후보로만 8번 올랐으나 결국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디캐프리오의 수상 혹은 수상 실패에 관심이 쏠렸던 이유는 그가 엄청난 스타이기 때문이다.

디캐프리오는 타고난 듯 스타가 됐다. 19살에 찍은 <길버트 그레이프>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더니, 22살엔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전 세계 소녀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스타덤의 정점은 역시 <타이타닉>(1997)이었다. 영화 흥행사를 다시 쓴 이 작품으로 디캐프리오는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거듭났다.

“스타덤은 충분히 누렸다”고 생각한 것일까. <타이타닉> 이후의 디캐프리오는 블록버스터 대신, 미국을 대표하는 명장들과의 작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우디 앨런, 스티븐 스필버그, 클린트 이스트우드, 마틴 스코세이지와 호흡을 맞췄다. 특히 스코세이지는 한때의 단짝 로버트 드니로 대신 디캐프리오를 자신의 페르소나로 삼았다. 타고난 스타성과 배우로서의 재능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던 1990년대와 달리, 이 시기 디캐프리오는 자신의 연기력을 인정받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는 느낌을 준다. ‘디캐프리오가 오스카상을 의식한 연기를 한다’는 비아냥이 나온 것도 이때부터다.

영화 '트와일라잇' 로버트 패틴슨과 크리스틴 스튜어트


디캐프리오는 개의치 않았다. 최고의 미녀들과 잇달아 연애를 즐기는 할리우드 스타의 삶을 살면서도 삶의 어두운 측면을 드러내는 영화에 지속적으로 출연했다. 자신의 인기를 이용해 환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환경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11번째 시간>을 직접 제작했다. 아카데미 수상소감을 22년간 준비하기라도 한 듯, 재빠르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에는 지구온난화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최근엔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배우들이 ‘디캐프리오의 길’을 걷고 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귀족적인 뱀파이어와 남성미 넘치는 늑대인간이 평범한 인간 소녀를 사이에 두고 사랑의 대결을 펼친다는 내용이다. 5년만 지나도 잊혀질, 굳이 찾아볼 영화는 아니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로 스타덤에 오른 뱀파이어 역의 로버트 패틴슨과 소녀 역의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이후 전혀 다른 색깔의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패틴슨은 자본주의의 기괴함을 그린 <코스모폴리스>나 할리우드의 이면을 그린 <맵 투 더 스타> 같은 영화에 출연했다. 스튜어트는 예술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그린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존재의 허무에 사로잡힌 대학원생을 연기한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 등을 골랐다. 두 배우가 <트와일라잇> 이후 출연한 영화들의 관객을 모두 합해도 <트와일라잇> 한 편의 관객에 못 미칠 텐데도 그들은 그런 선택을 했다.

영화 매체의 속성상, 영화배우는 대중의 취향에 민감한 엔터테이너인 동시에 영화 자체의 논리에 복무하는 아티스트다. 두 역할을 균형있게 잘하면 이상적이겠지만, 그런 일이 뜻대로 되진 않는다. 20대 초반에 스타가 된 디캐프리오, 패틴슨, 스튜어트는 이후 스타덤을 뒤로하고 미지의 길을 택했다. 누군가는 이런 선택을 ‘허영’이라고 부르겠지만, 때론 그런 허영이 우리의 삶에 작은 품위를 허락한다.


백승찬 | 대중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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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타임. time-out.

경기 시간이 잠시 멈춘다. 뛰던 선수들이 한데 모여 의사소통을 하는 시간이다. 대부분 작전을 논의하지만 사기를 끌어올리거나 상대의 흐름을 끊는 데도 이용된다. 감독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스포츠의 1차 목적은 승리다. 작전타임 역시 승리를 목표로 한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지난해 10월17일 프로배구 남자부 현대캐피탈은 대한항공과 시즌 2번째 경기를 치렀다. 선수에서 곧바로 감독이 된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3세트 작전타임을 불렀다. 선수들을 모았고 “우린 지금이 중요한 게 아니다. 미래가 중요한 거다”라고 말했다. 경기는 0-3으로 졌다. 11월15일 다시 대한항공을 만났다. 5세트 다시 작전타임. “겁이 난다고 피하면 다음에 누가 해? 미스 해, 과감히 미스 해. 범실해도 상관없어.” 그날 역시 2-3으로 졌다. 최 감독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지금 지더라도 변화를 위해 도전해야 한다는 것. 경기 결과에 호통치는 대신 거꾸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경계를 강조했다. 2월2일 KB손해보험과의 경기에서 “못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오늘은 너희가 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작전타임 때 얘기했다.

작전타임이 쌓였다. 변화를 향한 도전이 계속됐다. 최 감독의 말은 ‘어록’이 됐고, 현대캐피탈은 강팀이 됐다. 2월7일 한국전력과의 경기 5세트, 최 감독은 “그렇게 자신감이 없어? 우리는 10연승을 하는 팀이다. 자부심을 갖고 경기하라”고 말했다. 5세트 11-14로 지고 있던 경기를 뒤집었다. 이틀 뒤 OK저축은행과의 경기에서는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너희를 응원하고 있다. 한 번 뒤집어 보자.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연승 기록이 17까지 이어졌고, 현대캐피탈은 7년 만에 정규시즌에서 우승했다.

추일승, 유재학, 김승기, 추승균 감독이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_연합뉴스

프로농구 KCC 추승균 감독 역시 첫 시즌을 치르는 초보 감독이다. 2월16일 고양 오리온과의 경기였다. 종료 7초를 남기고 70-71로 지고 있었다. 작전타임을 불렀다. 추 감독은 호통 대신 “이겨낼 것이다. 이때까지 다 이겨냈으니 1점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종료 직전 전태풍의 결승골이 터졌고 10연승을 이어갔다. KCC 역시 창단 후 15시즌 만에 첫 정규시즌 우승을 이뤘다.

2014년 4월11일 잠실구장. NC 초보 마무리 김진성은 12-11로 앞선 9회말 2사 만루 위기에 몰렸다. 포수 김태군이 마운드에 올랐다. 야구의 작전타임. 김태군은 “형, 심장이 좀 떨리나? 이게 마무리다, 형. 내가 막아줄게. 다 막아줄게. 자신있게 던져”라고 했다. 김진성은 주무기 포크볼을 자신있게 던졌다. 조쉬 벨을 삼진으로 잡았고, 이후 진짜 마무리 투수가 됐다. 그해 NC는 창단 2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올랐다.

2012년 NBA 파이널 5차전. 1승3패 벼랑 끝에서 또다시 패배 앞에 놓인 오클라호마시티 스캇 브룩스 감독은 경기 종료 직전 의미없는 작전타임을 요청했다. “고개 숙일 필요 없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여름 동안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작전타임은 전술적 모험을 위한 임기응변이 아니다. 흐름을 바꾸고, 분위기를 다잡고, 다음 경기에 대비하는, 함께 모여서 공유하는 메시지다. 변화를 추구하고 자신감을 한데 모으고, 서로를 믿게 만들고, 그렇게 내일을 준비한다.

테러방지법 통과 저지를 위한 야3당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의 마지막 발언으로 종료됐다. 지난달 23일 오후 더민주 김광진 의원으로 시작해 192시간26분 만이다. 192시간26분간의 작전타임이었다. 누군가는 억지로 외면했지만, 많은 이들이 목소리를 들었다. 역전승은 없었고 법안은 통과됐지만, ‘민주주의’라는 경기는 아직 남아 있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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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다 원칙은 알아도 압수수색을 하기 전 대상자에게 미리 알려줘야 한다는 걸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세월호 집회 ‘가만히 있으라’를 기획한 용혜인씨 사건이 이 법조항을 새삼 드러냈다. 용씨 측은 경찰 수사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인적인 카카오톡 메시지가 압수수색을 당했다는 점을 눈치챘다. 법원은 이런 압수수색은 안된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발끈했다. “앞으로 수사하지 말란 얘기냐”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는 살인·마약 등 강력범 사례를 들면서 “조폭 사무실을 압수수색한다고 미리 알려주면 그들이 가만히 기다리고 있겠느냐”고 했다.

형사소송법 122조는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함에는 미리 집행의 일시와 장소를 당사자나 변호인 등에게 통지해야 한다. 단, 이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시한 때 또는 급속을 요하는 때는 예외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압수수색은 당사자에게 사전 통보돼야 한다. 이게 원칙이다.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1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로부터 카카오톡 압수수색을 받은 사실을 공개하고 있다._연합뉴스

그런데 검찰은 해당 조항 뒷부분의 예외를 내세운다. 급할 땐 통보 없는 압수수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은 그동안 이 예외 조항을 주된 원칙처럼 활용해왔다. 수사의 기밀성을 내세워 사전 통보 없는 압수수색을 당연시해왔다. 압수수색 열에 아홉은 예외적 급속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수사경험상 자신감도 쌓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압수수색 원칙은 사라져갔다.

이번에 법원이 압수된 용씨 카톡 내용을 분석해보니 대부분 내밀한 사생활의 영역이었다. 카톡 메시지는 다음카카오 서버에 보관돼 개인이 인멸하기도 어렵다. 누가 봐도 급속을 요하는 압수수색 상황이 아닌데도 검찰이 ‘급박한 상황’이라고 우기니 설득력이 떨어진다. 도심 난투극을 준비하던 범서방파 압수수색을 통보해주지 않는다고 제동을 걸 법원은 없다. 열에 아홉이 아닌 나머지 한 사건에서는 원칙을 지키라는 법원의 이번 결정은, 아홉 개의 급한 수사엔 아무런 악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검찰이 다른 포석을 위해 대법원에 재항고했다는 의심도 든다. 용씨 같은 집회 관련자 또한 강력사건 용의자 수준의 급박한 위험요소란 점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깔린 듯하다. 또 혐의자의 내밀한 정보를 불편 없이 수집하기 위해 법률적인 원칙 자체를 대법원 판례를 통해 조금씩 바꿔가고 싶은 의도도 엿보인다. 물론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검찰은 굳이 이 같은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홍재원 | 사회부 jw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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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엄마가 보고 싶다”며 보채던 아들을 아버지가 숨지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설날인 지난 8일 오후 3시45분쯤 경남 창녕군 자신의 집에서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9)에게 수면제를 먹인 후 비닐봉지를 씌워 질식사시킨 혐의로 아버지 이모씨(49)가 긴급체포됐다. 이씨는 “내가 앓는 정신질환을 물려받고 나처럼 살까봐 죽였다”고 진술했다. 앞서 지난 3일엔 경기 부천시에서 중학생 딸(13)을 5시간에 걸쳐 구타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11개월 동안 집 안에 방치한 목사 아버지(47)와 의붓어머니(40)가 경찰에 구속됐다.

부모가 어린 자식을 살해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14일에는 아들(7)을 2시간 동안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을 훼손해 냉장고에 3년 넘게 넣어둔 최모씨(33) 부부가 붙잡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난달 21일 경기 광주시에선 40대 가장이 불면증 때문에 두 자녀와 부인을 살해하고 자신도 아파트에서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

‘부천 초등생 아들 시신 훼손 사건’에 대한 현장검증에서 어머니가 범행을 재연하고 있다._경향DB

자녀를 대상으로 한 범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설 연휴에는 경남 거제시에서 30대 가장이 생활고로 부인과 어린 자식 등 3명을 살해하고 자살했다. 지난해 6월 울산과 7월 충북 청주에서는 30대 여성 2명이 자녀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때리거나 목을 졸라 친딸(30개월)과 아들(6)을 각각 살해했다.

자식을 살해한 부모 가운데 대다수는 계부·계모가 아닌 친부모다. 친족 살인에는 부모의 분노 조절 문제, 가정 형편에 따른 스트레스, 알코올 중독 등 여러 원인이 따르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녀를 다른 삶을 사는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고 소유물로 여기는 그릇된 관념이다.



김정훈 | 전국사회부 jhkim@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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