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야구는 미국에서 먼저 끝났다. 월드시리즈에서 LA 다저스와 보스턴 레드삭스가 만났다. 동·서부를 대표하는 인기 구단의 맞대결은 1916년 이후 102년 만이었다.

다저스의 감독 데이브 로버츠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태어났다. 흑인 미군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뒀다. 보스턴 감독 알렉스 코라 역시 미국이 아닌 푸에르토리코에서 출생했다. 월드시리즈는 114회째를 맞았지만 ‘마이너리티 감독’끼리의 맞대결은 처음이었다. 로버츠 감독은 “모든 소수자들에게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대결이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코라 감독은 푸에르토리코 출신 감독으로 처음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더구나 2018시즌이 감독 데뷔 시즌이었다. 휴스턴 벤치 코치를 거쳐 이번 시즌을 앞두고 보스턴과 계약했다. 연봉이 80만달러로 메이저리그 감독 중 가장 적은 축에 속한다. 코라 감독은 보스턴과 감독 계약 때 인센티브 등 이런저런 부가 조건을 요청하지 않았다. 딱 한 가지 조건만 내세웠다. “내 고향에 수송기 한 대분의 구호물자만 보내주면 된다”고 했다.

코라 감독이 계약하기 직전이었던 2017년 9월, 푸에르토리코는 허리케인 마리아가 할퀴고 가는 바람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피해규모 자체가 제대로 집계되지 않을 정도였다. 당초 미국 정부에서 발표한 공식 사망자는 64명이었지만 지난 5월 하버드대 조사팀이 현지 방문 조사를 한 결과, 허리케인 마리아 때문에 숨진 주민 수가 무려 4645명이나 된 것으로 드러났다. 재산 피해 규모도 97조원 수준으로 파악됐다.

월드시리즈는 치열했다. 3차전은 연장 18회까지 치러졌다. 다저스가 맥스 먼시의 끝내기 홈런으로 이겼다. 2승1패를 하고도 보스턴 선수들이 1승2패인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코라 감독은 라커룸에서 “우리가 약해서 18회 끝에 진 것이 아니라 상대가 우리를 이기려면 18이닝이나 필요했던 것”이라고 격려했다. 보스턴 선수들이 힘을 되찾았다. 4차전 0-4로 뒤진 경기를 뒤집어 이겼고 4승1패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따냈다. 코라 감독은 우승 트로피를 들고 보스턴 구단 관계자들과 함께 푸에르토리코를 방문했다.

다저스는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준우승에 머물렀다. 팬들은 ‘패장’ 로버츠 감독을 향해 야유를 보냈다. 구단은 해고 대신 연장 계약을 택했다. 월드시리즈 패배라는 ‘결과’보다 2년 연속 월드시리즈에 오른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결과보다 과정’은 당연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덕목이다.

KBO리그의 가을야구도 치열했다. 히어로즈는 리그 최저연봉 팀이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상대를 끝까지 괴롭혔다. SK의 베테랑 외야수 김강민은 플레이오프 2차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뒤 “이제 미칠 시간도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팬들을 뭉클하게 했다. 두산 주장 오재원은 1루 주자로 타자의 파울 타구에도 3루까지 전력 질주했다. 오재원은 “전력을 다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두산 정수빈은 방망이를 짧게 쥐고도 결승 홈런을 때렸다. 작지만 강하다는 걸 보여줬다. SK 트레이 힐만 감독은 ‘업무’가 아닌 ‘가족’으로 팀 모든 구성원을 대했다. 선수들에게 ‘컨디션이 어떠냐’고 묻는 대신 ‘아내와 아이들은 잘 지내냐’를 먼저 물었고 팀을 하나로 만들어 우승으로 이끌었다.

야구는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가을의 승패는 한없는 기쁨과, 한없는 아쉬움의 골짜기를 잔인하게 가른다. 그래도 ‘가을의 전설(Fall classic)’이라 불리는 것은, 인생의 교훈을 딱딱하지 않은,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2018년의 야구가 끝났다. 이번 가을에도 우리는 야구를 통해 또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야구기자 하길 잘했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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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채’는 여전히 한국의 유효한 신입사원 채용 방식이다. 언론사도 그렇다. 어떤 부서를 다녔는지를 보여주는 경력과 함께 ‘○○년에 입사한 ○○기’가 나의 정체성으로 줄곧 따라다닌다.

그 ‘공채문화’의 상징과 같은 것이 수습기자 교육이다. 3~6개월 동안 경찰서의 지저분한 기자실에서 하루 2~3시간 ‘쪽잠’을 자면서 밤늦도록 사건 현장과 경찰서를 돌아다니면 육체가 너덜너덜해진다. 하루 종일 ‘1진’이라 불리는 선배에게 보고하면서 빠뜨리고 놓친 부분을 수없이 지적당하면 영혼도 너덜너덜해진다.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혹독함 때문인지 과거 경향신문 수습기자를 취재하러 왔던 한 방송사의 다큐 프로그램 이름은 <극한직업>이었다.

극한의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종종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나름의 결론은 다음 2가지였다. 주어진 일을 주어진 시간 안에 어떻게든 마무리해내는 능력과 그 누구에게, 뭐든 물어볼 수 있는 용기를 습관처럼 장착하는 것. 마감을 지키고 막힘없이 취재할 수 있는 것은 기자로서 일해나가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이를 뒤집어 말하면 기사를 잘 쓸 수 있는 교육과는 딱히 관련이 없었다는 얘기기도 하다. 연습기사가 시뻘겋게 되도록 ‘빨간펜’을 당했지만 빨간펜의 목적은 대개 기사를 특정한 형식으로 잘 정리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렇게 수습교육을 마치고 나면 모두가 파도에 잘 깎인 몽돌처럼 몇 가지 정형화된 기사에 익숙해졌다.

이건 종이신문을 제작하기 위해 최적화된 방식이기도 했다. 지면을 이리저리 갈라 한정된 분량만큼 기사를 넣어야 하니 기사는 무엇보다 ‘경제적’이어야 한다. 기사의 주제가 뭔지 가장 먼저 알려주고 핵심 팩트만 골라 압축해야 했다. 맥락과 전후 상황에 배려할 공간은 없었다. 기자의 주관은 금기시됐으며 그마저도 모두 발라냈다. 말 그대로 뼈만 남는다.

그런데 이제 독자들은 이런 기사가 불편하고 불친절하다고 말한다. 기자가 일방적으로 팩트의 중요도를 매겨 나열해놓고 맥락이 제대로 담기지 않으니 기사는 물 흐르듯 이해되지 않는다. 기자의 관점도 없으니 건조하기 짝이 없고 정작 사안을 어떻게 봐야 할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접근이 어려운 팩트를 발굴해내는 것은 여전히 기자의 경쟁력이지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팩트를 잘 정리하는 능력은 더 이상 경쟁력이 아니다. 팩트를 잘 정리하고 맥락과 관점까지 제시하는 좋은 글은 기사 말고도 많다.

기사를 선명하게 쓰기 위해 무리하게 주제를 뽑아 단정하는 일이 때로는 ‘폭력적’일 수도 있다. 세상일이 그렇게 무 자르듯 재단되지 않는 경우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재단되지 않는다면 재단하지 않는 방식으로 기사를 써야 한다. 사실 독자들은 신문이 ‘낡아서’ 안 보는 것이 아니라 기사가 ‘낡아서’ 안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임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임원 회의에서 파워포인트는 금지’라는 원칙을 강조했다. 회의에서는 파워포인트 대신 모두가 자신의 관점과 완결된 이야기를 담은 6장짜리 메모를 준비해 발표해야 한다. 일목요연한 파워포인트를 아무리 만들어도 회사에는 도움이 안된다는 얘기다.

올겨울에도 여전히 많은 수습기자들이 경찰서를 헤맬 것이다. 언론사의 수습교육 관행은 많이 달라졌다. 경향신문 수습기자들도 더 이상 경찰서에서 숙식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늘 써오던 기사 작성법을 가르치던 교육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미디어의 콘텐츠가 바뀌려면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지만 선행돼야 할 것 중 하나가 기자 교육을 바꾸는 일이다. 수습기자들이 배워야 할 것은 팩트를 잘 정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맥락과 관점을 담을 수 있도록 생각하는 법이다.

<이인숙 뉴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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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패션에 관심은 많은데, 정작 입고 다니는 옷은 거의 똑같아 보인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에서 일하다가 지난해 한국에 정착한 어느 프랑스인 패션 디자이너가 최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사 댓글을 보다가 웃음이 터졌다. “관심은 많다. 다만 내 옷보다 남이 뭐 입었는지 관심이 많을 뿐이다.”

한국식 ‘똑같은’ 패션의 정점인 ‘김밥 패딩’을 입는 겨울이 오고 있다. 기후이변으로 북극 얼음이 많이 녹아 올해도 제트기류가 한반도로 흘러내려올 것이라고 하니 이제 겨울철 롱패딩은 ‘생존템’ 내지 ‘국민복’으로 자리 잡을 듯하다. 롱패딩을 남과 다르게 개성 있게 입기는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혹한에는 그저 애벌레 고치 짓듯 껴입는 게 최고다. 하지만 아주 조금, 남과 똑같은 복장이 ‘몰개성’의 증거가 아닌지 마음 한편이 불편해지곤 한다.

개인주의는 각각의 고유한 개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남과 똑같은 것은 미덕이 아닌 게으름이므로, 자기만의 특질을 가꿔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개인주의보다는 집단주의가 더 두드러지는 사회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명제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를 분석한 장한업 이화여대 교수의 저서 &lt;차별의 언어&gt;에 따르면 한국어에는 유독 ‘우리’라는 표현이 많다. 엄마, 집, 회사 같은 단어 앞에 ‘나’가 아닌 ‘우리’가 붙는다. ‘우리’는 ‘울타리’와 어원이 같다. 나와 같은 울타리 안에서 정체성을 공유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한국인들은 유독 민감하다.

그래서 한국에서 패션은 ‘개인’보다는 ‘집단’의 동질감을 확인하는 소소한 의식처럼 보인다. ‘개성만점 에지 있는’ 유행 패션을 함께 소비하면서 한 사회 안에 연결된 너와 나를 확인하는 것이다. 쨍한 빛깔 등산재킷 차림의 단체관광객, 체크남방에 뿔테안경 쓴 공대생들,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직장 여성들이 ‘복제 패션’의 ‘유머짤’로 소비되곤 하는데 사실 다들 크게 다르지 않다. 약간의 변주만 있을 뿐이다. 김밥 패딩의 경우 허리선을 강조하거나, 라쿤이나 여우 같은 동물의 털을 달거나 하는 정도다.

이렇게 모두가 한꺼번에 소비 축제에 뛰어들면 회사의 명운이 바뀌기도 한다. 스포츠용품 업체 ‘휠라’는 국내 10~20대 소비자들 사이에서 2~3년간 크게 유행하면서 기울던 사세를 한 방에 역전시켰다. 김밥 패딩이 스트리트 패션에 밀려 고전하던 아웃도어 업체들의 둘도 없는 효자가 된 건 잘 알려진 얘기다.

군중의 소비를 폄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저널리스트 마이클 본드는 &lt;타인의 영향력&gt;에서 ‘군중심리’라고 하면 중심 없이 휩쓸리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사실 그보다 순기능을 가질 때도 적잖다고 지적한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뇌는 타인과 연결되고 소통해야 제 기능을 하도록 설계돼 있다. 나와 상대방이 같은 취향을 갖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패션은 즉각적인 소속감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한국처럼 내수시장이 그리 크지 않은 곳에서 ‘개성 넘치는’ 스타일의 차별화되는 제품은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도 비슷비슷하게 입는 게 이득인 셈이다.

다만 똑같이 입더라도 똑같은 사고를 하지는 않는다는 걸 서로 이해할 상상력이 있다면 모두가 사시사철 ‘김밥 패딩’ 같은 옷을 입더라도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애플의 창업자 고 스티브 잡스는 검은색 터틀넥에 청바지, 뉴발란스 운동화 패션만 고집했지만 누구보다도 창의적인 인간이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식은 무궁무진하고 패션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고유한 서로를 마주하기 위해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복장을 넘어 나와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타인의 삶에 귀기울이는 ‘환대’의 마음만 가지면 된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당신은 지금 입고 있는 옷 이상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머금은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최민영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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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초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가 불거졌을 때 시급히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전문가 확보였다. 교비로 명품 사고 아파트 관리비 내고, 있지도 않은 ‘가장거래’로 설립자 뒷주머니만 채우는, 일부겠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사립유치원들을 한때 유치원 자녀를 둔 학부모로서 욕만 할 게 아니라 실제로 뭐가 문제고 어떻게 고쳐나가야 하는지 기사를 쓰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희한했다. 생각보다 전문가라 할 만한 이들과 통화하기가 어려웠다. 대학입시나 사학비리, 사교육 문제 등과 관련해선 논리정연함으로 여론몰이를 능숙히 해대는 교육단체들도 사립유치원 문제에 대해 물어보면 “잘 모른다”고 했다. 교수들은 입 열기를 조심스러워하거나 피상적 말을 늘어놓았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해주기로 한 대학교수는 결국 “못하겠다”고 했다.

정부 정책이 마음에 안 들면 집단휴업 등으로 어깃장을 놓고, 유리한 입법을 위해선 로비도 서슴지 않는 사립유치원 단체의 영향력이 무서워서였을까 생각했던 것은 순진함이었다. 그보단 유아교육 전문가라 불릴 만한 분들이 의외로(?) 없다는 게 더 정확했다.

아동학을 전공한 어느 분도 “국내엔 유치원 전문가가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정책의 방향에 대해 코멘트해줄 만한 전문가라면 “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십년간 초등교육의 귀속 분야로서 유아교육이 다뤄지면서 국가가 맡아야 할 기본 교육에 사인(私人)이라는 시장논리가 자리 잡아 오늘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김용민의그림마당]2018년10월26일 (출처:경향신문DB)

사립 초·중·고교와 달리 개인이 임대건물만 있으면 유치원을 차릴 수 있는 현 구조는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2년 유아교육진흥법이 제정되면서 비롯됐다. 원장 기준에 대한 자격도 남발됐다. 그동안 툭하면 사립유치원들은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집단휴업 등으로 실력행사를 했지만 그럴 때마다 유력 정치인까지 합세해 정부에 “좀 봐달라”고 개입했다. 사립유치원들의 이기심과 정부의 무관심, 정치권의 부적절한 개입이 ‘형식은 교육기관인데 내용은 자영업’인 형태의 사립유치원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행정에서 유아교육은 ‘귀찮은 존재’ 정도로 여겨져왔다. 각 교육청의 조직도만 봐도 알 수 있다. 17개 시·도 중 유아교육이 ‘과’ 단위로 조직된 곳은 서울·경기·부산·대구 등 몇 곳 안된다. 초등교육과 내 유아교육팀으로 분류돼 있는 곳도 적지 않다. 서울시교육청도 2013년에서야 관련 팀을 유아정책과로 승격했다. 한마디로 유치원은 ‘돈 있으면 보내고 안 보내도 그만’이라는 30~40년 전 시각에서 진일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료조차 “유아교육과로 가게 되면 물먹는 것이란 인식이 많다”고 토로했다.

사회 전체가 유아들의 삶과 권리에 무관심해왔다는 점에서 학부모들도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개발 위주, 결과 중심의 사회에서 살아오면서 내 아이만 불이익받지 않으면 유치원이 어떻게 돌아가든 관심 없어하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촉발시킨 실시간 정보공유와 대응은 학부모들로 하여금 과거와는 다른 여론 형성을 가능케 하고 있다. 나 하나 달라져서 세상이 바뀔까 하고 심드렁했던 부모들은 이제 아이 손을 잡고 거리로 나선다. 민심 변화는 19대 대선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국공립 단설유치원 신설을 자제하겠다”고 발언했을 때부터 감지됐다. 그는 사립유치원의 표는 얻었을지 몰라도 그보다 훨씬 많은 학부모들의 표는 얻지 못했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조동화 시인의 이 작품은 공교롭게도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2012년 대선 출마 당시 정치적 포부를 드러내며 인용한 시다. 그가 말한 꽃이 ‘유아교육의 공공성’은 아니었겠지만서도 현재 국민의 꽃은 하나씩 하나씩 피어 꽃밭을 만들어가고 있는 듯하다.

<문주영 정책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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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사를 하면서 책 수백권을 정리했다. 책장에 두 겹으로 꽂아놓고도 모자라 종이 박스에 담아뒀던 책들을 이사하는 김에 떠나보냈다. 중고서점에 팔 수 있는 책들은 팔고, 그렇지 못한 책들은 기부했다. 이도저도 아닌 것들은 재활용쓰레기장에 내놨다.

읽지도 않을 책을 먼지가 쌓이도록 모아두는 오랜 악습을 갖고 있었다. 아내는 이사를 기회로 악습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침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용품이 늘어나면서 내 책을 놓아둘 공간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재밌게 읽었던 책이라도 다시 책장을 펼칠 일이 없다는 판단이 들면 택배 박스에 넣었다.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책들은 아이 핑계를 대고 남겨뒀다. 아내에게 “언젠가 아이들이 봤으면 하는 책들”이라고 했다. 아내는 “아이들이 글자를 깨우칠 때쯤이면 종이책이란 매체가 사라질 것”이라며 더 과감한 선택을 요구했지만, 나는 “그래도 1000년 이상을 버텨왔는데 그리 쉽게 사라지겠냐”며 버텼다. 다행히 이사를 한 뒤에 책장 1개는 채울 만큼의 책이 살아남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최근 내게 힘을 실어주는 보도가 나왔다. 호주와 미국 연구진이 책을 집 안 가득 쌓아놓는 것만으로도 지적 능력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지난 17일 서울신문이 보도한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아이들은 책을 읽지 않아도 집에 책이 쌓여 있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적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 또 집에 책이 많이 있는 것만으로도 교육 성취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사회학 및 통계학 분야 국제학술지 ‘사회과학연구(Social Science Research)’에 실렸으니 얼렁뚱땅 진행된 연구도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데이터 5년치를 분석했다고 한다. 31개국 성인 남녀 16만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중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집에 책이 얼마나 있었는지’와 ‘시험 결과’를 비교해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집에 책이 많은 분위기에서 자란 성인들은 언어 능력, 수학 능력, 컴퓨터 활용 능력이 뛰어났다. 학창 시절 학업성적도 집에 있는 장서의 규모와 비례했다. 반면 책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 자란 성인들은 읽고 쓰는 문해력, 수리력, 컴퓨터 활용 능력이 평균 이하로 나타났다. 특히 고소득층 가정보다 저소득층 가정에서 책이 하나씩 늘어나는 것이 학업 성적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정규 교육은 제대로 받지 못했더라도 책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자란 10대 청소년들은 책이 별로 없는 환경에서 자란 대학 졸업생만큼이나 지적 수준이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연구진의 설명도 있었다.

사실, 책이 존재 자체로 공부를 시켜주지는 않는다. 책을 만드는 종이나 잉크에서 뇌를 활성화시키는 물질이 분비되는 것도 아닌데 책을 근처에 쌓아둔 것만으로 문해력이나 수리력이 늘어날 리가 없다. 짐작컨대 저런 결과를 초래한 가장 큰 이유는 ‘책 읽는 분위기’가 아닐까 싶다. 집에 책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의 공간과 비용을 책에 할애했다는 의미다. 그런 부모가 책을 적게 읽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저소득층 가정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없는 살림에 책을 사는 사람이라면 더 열심히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집에서 자란 아이라면 손쉽게 책읽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다시 책을 쌓아둘 명분이 생겼다. 다만 앞으로는 책을 쌓아두기만 해서는 안된다. 아이들 앞에서 책을 읽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지난 2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7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독서율은 1994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성인은 책 읽기가 어려운 이유로 ‘시간이 없다’ 다음에 ‘휴대전화, 인터넷, 게임’ 등을 들었다. 학생은 ‘시간이 없다’ 뒤로 ‘책 읽기가 싫고 습관이 들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한국에 사는 성인으로서 뒤통수가 따갑다.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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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나는 귀가 얇다. 이건 좋다더라, 저건 진짜 좋다더란 말에 귀가 팔랑거린다. 인터넷에 올라온 후기만 봐도 그런데, 직접 눈으로 본 것들에 대해서는 오죽할까. 기자라는 직업의 드문 장점 중 하나는 가고 싶은 곳에 직접 가보고, 궁금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때론 ‘부작용’을 낳기도 하는데 그중 하나가 ‘지름신’이다. 눈앞에서 좋은 것을 보고 나면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취재를 하면서 적잖게 ‘지름신’을 영접했다. 소소하게는 동물을 착취하지 않는 비건(vegan) 패션을 구매하고, 재활용 쓰레기 대란을 취재하다 텀블러와 손수건을 구매한 것까지. 개중에 가장 크게 지른 것을 꼽자면 단연 공동육아일 것이다. 취재차 방문했던 집 근처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게 된 것이다.

22일 서울 용산구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사무실이 불도 꺼진 채 굳게 닫혀 있다. 한유총은 정부가 사립유치원 감사 방침과 ‘폐원 엄단’ 등의 조치를 발표한 뒤 “비리 공무원 명단도 공개하라”며 연일 비난 성명을 내고 있다. 권도현 기자

부모가 직접 어린이집 운영과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공동육아는 꿈은 이상적일지 몰라도 맞벌이 집안에는 무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기 신청을 넣지 않았던 ‘게으른 부모’에 속했던 나는 공립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아파트 단지에 있는 민간 어린이집에 만족해야 했다. 심심치 않게 올라오던 어린이집 학대 뉴스에 뒷목이 뻐근해 오기도 했지만, 인상 좋은 어린이집 원장을 믿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등원을 3개월 앞둔 상황에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마침 자리 하나가 남았다는 소식에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전국 어린이집의 10%에 불과한 국공립 어린이집에 미리 신청하는 기민함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던 터였다. 아이에게 좋은 게 나한테도 좋은 게 아니겠나, 일단 지르고 보자. 그렇게 공동육아를 시작했다.

공동육아가 쉬운 것은 아니다. 어린이집 운영과 의사결정이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된다는 것, 선생님과 아이가 신뢰를 바탕으로 비교적 평등하고 민주적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공동육아의 이점이다. 하지만 ‘부모의 참여와 노동’이 뒤따랐다. 지르기 전 세세하게 읽어보지 못한 약관을 마주하는 심정으로, 나는 주말과 연차를 공동육아에 투자했다. ‘이런 건 줄 알았으면…’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것은 공동육아의 절대적 장점이었고, 그 장점에 나의 내적 갈등은 상쇄됐다.

최근 사립유치원 비리라는 판도라 상자가 열리면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사립유치원은 지난 대선에서 유력한 대선후보를 초청해 “단설 유치원 신설 자제”라는 엄한 소리를 하게 만들어 훅 가게 할 정도로 입김이 센 단체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박용진 의원이 등장해 사자의 코털을 단번에 뽑아버렸다. 학부모들이 낸 돈으로 명품백을 사고, 아이들 100명이 수박 한 통을 나눠먹는 등 상식 밖의 비리가 터져나왔다. 나는 분노하는 한편 가슴을 쓸어내렸다. 공동육아 때문에 수고로울지라도 이런 비리 때문에 고민할 일은 없구나. 이런 식으로 나의 ‘지름신’을 합리화하고 싶진 않았는데. 

공동육아가 이상적인 해법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동육아라는 특정한 형태의 보육 시스템이 필요 없는 현실이 이상적일 것이다. 부모의 참여 속에 투명하게 운영되는 시스템, 자연에서의 놀이가 중심이 되는 교육방식이 확대되고, 모든 보육시설이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되는 현실 말이다. 정부와 국회가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고, 비리가 터져나온 유치원에 부모를 중심으로 대책위원회가 꾸려지는가 하면 이참에 유치원 운영에 참여하려는 부모가 늘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공동육아를 선택한 나나, 아이에게 해가 갈까봐 유치원 비리를 알면서도 눈감아야 했던 부모 모두 ‘아이를 위해서’라는 마음만은 같았다는 점이 서글프다. 국공립 유치원 부족, 신뢰할 수 없는 사립 유치원이란 현실이 ‘거대한 비리’로 나타났다. 이제 진정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이영경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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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ings we touch have no permanence…. There is nothing we can hold onto in this world. Only by letting go can we truly possess what is real.”

2000년 개봉해 세계적 찬사를 받은 영화 <와호장룡>의 대사다. 무당파의 고수 리무바이가 가지고 있던 청명검을 둘러싼 얘기다. 청명검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는 스토리다. 누군가에게 ‘청명검’은 권력, 명예일 수도 있고, 또 많은 이들에겐 떼돈일 거다.

리무바이가 후학들에게 전하려던 바는 아마도 위 대사일 테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쥐고 있을 수 있는 영원한 건 없다. 내려놓아야만 참된 것을 진정으로 소유할 수 있다.’

리무바이 역을 맡은 홍콩 영화계의 거목 저우룬파(주윤발·63)가 최근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약 8100억원대 재산이라니…. 싱가포르 갑부의 딸이란 그의 아내도 뜻을 같이했다고 한다. 어쩌면 저우룬파는 리무바이의 현신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와호장룡>의 주윤발.

사람이 떵떵거리며 살아가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까. 집은 적어도 서울 강남에 30평대 아파트가 있고, 고급 수입차를 굴리며, 물 건너온 명품으로 몸을 감싸야 할까.

누구도 정확히 계산하기는 어려울 텐데, 혹자는 ‘적어도 현금 20억원 남짓이면 더 이상의 돈은 별 의미가 없다’고도 한다. 혹시 너무 많은 재산이 지금 자신에게 모여 있다면 왜, 무엇을 위해서인지 이번 기회에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럼 왜 우리는 놓지 못하는가. 일단 인생의 업보인 자식새끼 때문이다. 저우룬파에게 자녀가 없는 점도 결단에 영향을 미쳤을 듯하다. 수년 전 역시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한 다른 유명배우는 얼마 전 말을 뒤집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아들 때문이라고도 하니 씁쓸하다.

우리가 아등바등하는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노후 걱정이다. 여기서 S·K·Y로 대표되는 학벌이 불거지고, 강남 집값 타령을 비롯한 부동산 문제가 얽히고설킨다. 우리 사회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상태’에 가까운 정글이다.

이런 실타래를 끊을 진짜 ‘청명검’은 뭔가. 사실 답은 웬만큼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후 걱정을 덜어주는 복지체계가 모범답안에 가깝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살면 늙어서 호강은 못해도 폐지를 주워야 하는 걱정은 떨치게 해야 한다. 공부머리가 안되는데 굳이 학원 뺑뺑이를 돌리거나, 빚내가며 ‘엉터리 학종’을 억지로 채울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악연이 끊길 것이다.

독일형 마이스터고 어쩌고저쩌고 백날 떠들어봐야 안 먹힌다. 자기가 좋아하는 기술을 배워 사회에 나왔다가 협력업체나 프랜차이즈 본사에 갑질을 당할 수 있어서다. 부동산 투자인지, 투기인지 광풍이 부는 이유도 비슷하다. 근본 원인은 노후 걱정에 임대료라도 받겠다는 불안감이 커서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옛말이 있다. 만약에 재벌 총수가 자식에게 최소한 삶을 보장할 만큼만 빼고 전 재산을 환원했다고 치자. 그래도 그의 아들, 손자까지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 아닐 공산이 크다. 누구든 한두 번 미끄러지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대한민국 사회다.

지분 일부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며 모두 자신의 것인 양 행세하는 총수일가들 모습에선 깃털 같은 존재의 가벼움을 느낀다. 리무바이가 극중 대나무를 타는 모습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그는 말했다. “돈은 내 것이 아니고 잠시 보관하는 것일 뿐이다.” 그럼 영원한 건? 혹자에겐 사랑이고 다른 누구에겐 아름다운 이름일 것이다. 리무바이처럼 살아도 되는 날을 꿈꾼다.

<전병역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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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할 때 야구선수 오승환·임창용씨가 도박 혐의로 약식기소된 사건에 개입했다며 ‘견책’ 징계를 받은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지난 12일 낸 A4용지 1장 분량의 입장문은 상당히 격앙된 톤이었다. “미국 진출을 막았다는 비판을 받을 게 우려돼 조언한 것이지 결코 결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도대체 (해당 재판을 담당한) 김모 판사가 조언이 재판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나 압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사법행정권의 정당한 범위를 벗어났다는 징계사유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불복의 소송을 내겠다고도 했다.

그의 억울함은 정당한가. 현행법 어디에도 법원장이나 수석부장판사와 같은 사법행정권자에게 재판에 대해 ‘조언’하라는 권한은 부여하고 있지 않다. “인사·예산·회계·시설·통계·송무·등기·가족관계등록·공탁·집행관·법무사·법령조사 및 사법제도 연구에 관한 사무”가 법원조직법에 규정된 사법행정사무의 전부다.

특히 판사에 대한 인사 평정과 사무분담을 담당하는 수석부장판사의 ‘조언’은 그 자체로 조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법농단 의혹이 촉발된 계기인 지난해 3월 국제인권법연구회 설문조사를 보면 간단히 설명된다. 법관 500여명이 참여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9명은 ‘법원장 등에 반하는 의사표시를 했을 때 불이익을 우려한다’고 답했다. 기타 의견 중에는 ‘직간접적인 사건 처리 관여’도 포함됐다.

피고인들에게 사건이 약식명령으로 끝날지, 공판에 회부될지는 차이가 크다. 김 판사 판단에 임 부장판사의 조언이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 판사는 임 부장판사 말을 들은 뒤 공판 회부 결정을 바꿨다. 번복의 특혜는 야구선수들이 입었다. 한 해 70만건에 이르는 다른 약식기소 사건에도 이런 ‘조언’이 반영되는지 궁금하다. 이 사건에서 다시 확인한 건 법원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곳은 바로 법원이라는 점이다.

<이혜리 | 사회부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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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들이 모였다. 한데 어울려 몰려다니던 어린 시절, 야구장도 함께 가고 그랬다. 그때 야구장에는 소주가 흔했다. 3회가 지나기 전, 불콰해진 아저씨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때였다.

이후 다들 사느라 바빴다. 야구가 멀어졌다. 한때 ‘야구가 없으면 어떻게 사냐’던 친구들은 나이와 함께 ‘야구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가는구나’를 깨달았다. 가끔 일본을 이겼을 때, 금메달을 땄을 때 한 번쯤 아, 야구가 잘했구나. 그 정도.

한 친구가 묻는다. “근데 말야, 유격수가 실책이 많으면 문제 있는 거 아냐?”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나름 전문가라고 불리는 적도 있으니, 설명을 시작한다. “실책이라는 기록은 말야, 심판이 아니라 기록원이 판단하는 거거든. 정상적인 수비로 처리할 수 있었던 타구인지 여부를 판단해서 결정하는데, 실책은 포구와 송구를 모두 따져봐야 해. 무엇보다 실책은 종종 어려운 타구를 처리할 때 벌어지거든. 정작 수비능력이 떨어지는 내야수는 건드리지도 못할 타구를 쫓아가서 잡아낸 뒤 1루에 던지다가 실책이 기록되는 경우도 많아. 실책 숫자는 되레 수비를 잘한다는 뜻이기도 해. 그거 알아? 데릭 지터라는 메이저리그 유명 유격수는 마이너리그 첫해 실책을 56개나 저질렀어. 구단이 외야수로 전향시키려고 하다가 실책을 분석했지. 절반 정도는 사실상 1루수 실책이었어. 송구가 일단 바운드가 되면, 쉬운 바운드였다 하더라도 무조건 송구한 선수의 실책이거든. 실책 숫자만 보고 그 선수를 외야로 돌렸다면, 메이저리그는 역대 최고 선수를 잃었겠지.”

또 다른 친구가 묻는다. “야, 아무리 홈런 많이 치는 타자라도 삼진이 많으면 문제 있는 거 아냐?” 답은 의무감이다. “홈런과 삼진은 비례하는 기록이야. 홈런을 때리려면 풀스윙을 해야 하니 삼진을 각오해야 해.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게 세상 이치야.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에서 타격 트리플크라운이 81년째 안 나왔어. 올해 크리스티안 옐리치라는 선수가 가까이 갔다가 실패했지. 아, 트리플크라운은 말야, 한 선수가 홈런, 타점, 타율에서 모두 1위를 하는 거거든. 홈런과 타율에서 동시에 잘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거야.”

“그래도 득점권 타율이 낮은 건 문제 맞지?”

“득점권이라는 게 그렇게 자주 찾아오는 게 아니라서, 한 시즌의 샘플로 그 선수의 능력을 평가하기는 어렵지. 3할3푼 타자가 꼬박꼬박 3타석마다 안타를 때리는 건 아니잖아. 평소에도 잘 치는 타자가 결국 기회가 왔을 때 잘 친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야. 선수의 능력을 평가할 때 해당 스탯이 연도별 연관성을 얼마나 갖고….”

옆에 있던 또 다른 친구가 “야, 너 그거 TMI야. 너네 TMI가 뭔지는 아냐”면서 낄낄거리고 잘라 들어온다. 고애신이 떠올랐다. 분명 내 T를 배우기는 했는데.

‘투 머치 인포메이션’의 약자란다. 처음 뜻과 달리 지나치게 상세한 정보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낼 때 쓰인다. TMI는 ‘호오(好惡)’의 영역에 대한 설명을 거부한다. 나는 이게 싫은데, ‘네가 그걸 싫어하면 안돼’라고 설명하는 순간 TMI 경고다. 거꾸로, 나는 이게 좋은데, ‘너는 그걸 좋아하면 안돼’라고 설명하는 것 역시 TMI다. ‘선비질’이고 ‘설명충’이 된다.

자, 그러면 여기서 추석 전후 최고의 유행어. ‘기자란 무엇인가.’ 가짜뉴스가 파고드는 곳은 ‘호오’의 영역이다. 공감을 핑계로, 원하고 바라는 답을 뉴스로 꾸며 뿌린다. 혹시라는 음모에 거짓 팩트를 얹어 ‘역시 그렇군’이라는 반응을 이끈다. ‘가짜뉴스’는 결국 공감이 아니라 증오를 부추긴다. 기자에게 TMI는 의무다. 잘못된 정보는 고치는 게 맞다.

그래서 나는 오늘 밤, 누군가 물어보면 또 설명한다. “아까 어디까지 얘기했지? 아, 해당 스탯의 연도별 연관성이 말야….”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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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지방의 사립학교다. 조선시대 마지막 왕인 순종 때 설립된 꽤 오래된 학교라는 점을 빼곤 평범한 여고였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사회 활동을 하면서 동문을 만나 본 적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고교서열화가 암묵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이 사회 기준으로 봤을 때 내세울 만한 학교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창피해 할 학교도 아니었다.

몇 년 전 학교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됐다. 당시 교장 주도로 학교생활기록부 조작 사건이 발생했고, 그 사건으로 학교는 경찰 수사를 받았으며 해당 교장은 불명예 퇴진을 했다는 것이다.

그 교장은 고1 때 나를 가르쳤던 국어 선생님이셨다. 지금의 내 나이 정도 혹은 더 젊었을까. 당시 선생님은 수업에 열의가 있었고 사고방식도 유연한 편이라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어쩌다가 그런 일이 생겼을까 잠시 안타까움이 일었지만 사는 게 바빠 그 뒤로 잊고 지냈다.

최근 일 때문에 만난 한 입시전문가로부터 다시 내 모교 이야기를 듣게 됐다. 강남 숙명여고의 시험지 유출 의혹 사건에 대해 언급하던 중이었다. “지방 학교로 입시설명회를 다닐 때 보면 보통 학교장은 얼굴도 안 내비치고 교감이 인사하는 게 일반적이에요. 그런데 몇 년 전 ○○여고를 방문했는데 교장이 직접 나오더니 교장실로 안내하는 게 아니겠어요? 들어가보니 음식이 차려져 있고 다른 교사들도 배석해 있어 놀랐어요. 그러고 나서 몇 달 후 이 학교에서 내신비리 사건이 터졌죠.”

좋은 입시결과를 내보겠다는 교사의 열망이 지나치면 비리에도 쉽게 무뎌지는 걸까. 제자가 아닌 자녀 성적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숙명여고와는 경우가 사뭇 다르지만 두 사건 모두 학교생활기록부라는 내신 때문에 발생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대입 전형에서 내신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지면서 내신 경쟁의 불투명성, 불공정성도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신 불신이 심화되면서 수능에 근거한 ‘정시’ 확대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정부도 2022학년도 대입부터 정시 비중을 더 늘리기로 했다. 이 논쟁에서 정시 확대가 강남 8학군, 외고·자사고에 유리하냐 아니냐는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정시 지지층에선 내신 기반의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야말로 고액 컨설팅 등으로 강남에 더 유리한 전형이라고 말하고 있고, 이에 대해선 교사와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엇갈린다.

더 들여다보면 학종에 대한 반감은 패자부활의 가능성을 줄이는 시스템에 있는 듯하다. “한국은 매우 짧은 기간에 저개발 전통사회에서 선진경제 국가로 성장했다”는 유발 하라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한국은 한 세기 만에 엄청난 변화를 겪은 지구상의 유일무이한 나라다. 그 같은 변화는 교육이 이끌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교육지표 2018을 봐도 한국은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의 열망이 다른 선진국들보다 높다. 그런데 학종의 경우 뒤늦게 철들어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지 못하고 있다. 내신으로는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없으니 재수를 하게 되는데 패자부활전 성격의 정시를 줄이고 100% 학종으로 바꾸겠다고 하니 이 사달이 난 게 아닌가 싶다. 평소 학종 지지파였던 지인들의 입에서조차 “(자녀가) 만점에 가까운 수능 성적에도 불구하고 (내신이 안 좋아) 원하는 대학을 못 갔다”, “고2 때부터 공부해 현재 내신 1등급이지만 3년치를 계산해보니 학종으로는 좋은 대학은 어림없더라” 등 볼멘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 번 실패는 영원한 실패’라는 공포가 퍼지고 있다. 대학입시 과정에서 체화된 이 논리는 대학 졸업 후 공시족 등 각종 시험족을 낳는 또 다른 이유가 되고 있다.

<문주영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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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해도 된다면서 세상은 늘 실패하지 않는 법을 배우게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곤 하지만,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해야 하는 실패는 그 자체로 두려움이다. 어쩌면 실패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학교, 취업, 사랑, 돈 때문에 세상은 패배자란 낙인을 찍는다. 그래서 실패는 꼭꼭 묻어두었다가 성공하고 나서야 꺼내보이는 후일담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어릴 적부터 실패하지 않으려면 덮어놓고 노력하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그 노력에 걸맞은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밤을 새워 연습한다고 해서 누구나 방탄소년단이 되진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기적이나 행운은 우리 곁으로 날아들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우리들 대부분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실패를 반복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8 실패박람회’ 현장을 방문해 한 참가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좇을 수 없는 성공스토리 대신 실패의 과정을 모으고 나누는 움직임들이 활발하다. 실패가 달가울 순 없지만, 인생을 성공이나 실패로만 구분짓지 말자는 취지다. 2008년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페일콘’은 벤처 사업가들이 모여 자신의 실패담을 공유하는 행사다. ‘실패’(fail)와 ‘콘퍼런스’(conference)의 합성어에서 행사명을 따왔다. ‘실패’를 주제로 삼은 이 회의는 이제는 프랑스, 이스라엘 등 전 세계 도시에서 열린다. 2014년 멕시코에서 시작된 실패 공유 네트워킹 운동 ‘퍽업 나이츠’도 있다. ‘퍽업’은 ‘개판’ ‘엉망이 되게 함’이라는 뜻으로, 퍽업 나이츠는 여러 차례 시도했다 ‘개판’을 만들어본 사람들이 그 경험을 나누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지난 주말 광화문광장에서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인 ‘실패박람회’가 열렸다. 박람회라는 이름이 걸리긴 하지만, ‘실패를 넘어 도전으로’란 주제로 행정안전부와 중소벤처기업부가 마련한 행사다. 박람회에서는 한때 피자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여 ‘대박’을 터트렸지만 수차례 파산을 겪은 ‘성신제피자’의 성신제씨, 첫 식당을 개업할 때 전 재산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방송인 홍석천씨 등이 자신의 실패담을 풀어놓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폐막일인 일요일에 박람회장을 찾아 ‘국민 모두의 마음을 응원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물론, 실패박람회 한번 열렸다고 세상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는다. 과정이 아닌 결과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성공이 아닌 실패로 끝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쉽게 잊혀지기 때문이다.

실패를 허락하지 않는 한국과는 달리 실패가 낙인이 되지 않는 나라도 있다. 에릭 와이너는 <행복의 지도>에서 아이슬란드는 실패를 찬양하는 나라라고 썼다. 이 한마디에 아이슬란드로 떠난 이가 있다. 공사판, 식당, 과수원에서 일하며 30년 가까이 신춘문예에 매달렸지만 번번이 낙선한 50대의 작가 강은경이다. 자신이야말로 패배자라고 여겼던 그는 되레 실패를 찬양한다는 말에 오랜 꿈을 접고 아이슬란드로 떠났다. “소설가가 되려다가 좋은 시절 흘려보내고 노년의 문턱에 들어선 실패자!” 아이슬란드 호숫가에서 만난 할머니에게 그는 고해성사를 하듯 인생의 추레한 시간들을 늘어놓았다. 그때 할머니가 물었다. “당신, 인생 실패한 사람 맞아요? 쓰고 싶은 글 쓰며 살았잖아요. 그랬으면 됐지, 왜 실패자라는 거죠? 당신에겐 사는 게 뭐죠?”(<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세상일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도 실패를 비난하기는커녕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응원을 아끼지 않는 사회라면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실패를 성공에 이르는 경로가 아니라 삶 그 자체로 받아준다면 말이다. 인생의 많은 부분을 포기한 ‘N포세대’라는 말까지 나온 마당에 젊은이들이 실패해도 상처받지 않게 하는 것은 사회의 몫이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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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 남쪽의 도시 자카르타는 겨울에서 여름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대회 폐막을 하루 앞둔 2일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아레나에서는 여자 농구 결승전이 열렸다. 남북단일팀과 중국이 맞붙었다. 세계 정상을 넘보는 중국을 상대로 단일팀은 예상 외의 팽팽한 승부를 펼쳤다. 북측 로숙영이 석연치 않은 파울 판정으로 파울 트러블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경기가 어찌 될지 몰랐다. 단일팀은 65-71로 졌고 은메달을 땄다. 단일팀을 이끈 이문규 감독은 미국여자프로농구(WNBA)에서 뛰고 있는 박지수를 대표팀에 뽑았다. WNBA 일정상 대표팀 합류가 불투명했다. 박지수가 빠진 채 11명의 대표팀으로 조별리그 경기를 모두 치렀다. 4강부터 합류한 박지수는 결승에서 몸이 부서져라 뛰고도 눈물을 쏟았다. “농구선수가 코트에서 체력이 부족하다는 건 말이 안된다”며 울었다. “내가 0점짜리 경기를 했는데, 언니들이 잘해줘서 접전을 펼칠 수 있었다”고 했다. 주장 임영희는 “지수가 미안하다고 하는데, 지수가 있었으니까 이런 경기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감독 입장에서 선수들이 기대 이상으로 해줬다. 정말 고맙다”고 했다.

금메달 따고도 웃지 못하는 선동열호 2018 자카르타·팔렘방에서 금메달을 딴 야구대표팀 선수들이 3일 인천공항으로 귀국한 뒤 해단식을 하며 기념 촬영하고 있다. 인천공항 _ 연합뉴스

야구 대표팀은 일본에 3-0으로 이기고 금메달을 땄다. 목에는 금메달이 걸려 있는데 표정은 예선 탈락 팀이었다. 라커룸에서 나온 선수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모두 휴대전화에 고개를 박고 있었다. 수없이 쏟아진 축하 메시지에 기계적으로 ‘고맙다’는 답만 달고 있었다. 사적인 대화에서도 섣불리 기쁨을 드러낼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오지환이 굳은 표정으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금메달 축하한다”는 인사에도 그저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이어 열린 축구 결승전. 연장까지 가는 치열한 승부 끝에 축구 대표팀은 일본을 2-1로 이기고 금메달을 땄다. 선수들은 한데 엉켜 마음껏 기쁨을 누렸다. 김학범 감독은 “선수들이 열심히 해줘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황의조 발탁 때 불거진 ‘인맥선발’ 논란에 대해 “나는 학연이나 지연, 의리를 가지고 축구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던 김 감독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황의조는 9골을 터뜨리며 감독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선동열 야구 대표팀 감독은 ‘부담감’과 ‘압박감’을 얘기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할 것인지는 얘기하지 않았다. 다음 대회에 또 “최고의 선수를 뽑겠다”고 했다.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고도 죄인처럼 고개를 박는 건, “최고의 선수”라는 말 때문이었다. 최고를 뽑았는데, 최고로 인정받지 못했고 최고의 경기를 보여주지도 못했다. 선 감독은 이들이 왜 최고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오지환은 겨우 3타석만 나왔다. 역시 설명은 없었다. 선 감독은 방송 인터뷰에서 응원과 질책을 함께 보낸 팬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질문에 “다음에 합시다”라며 피했다. 사과도, 감사도 없었다.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어쨌든 따낸 금메달과 침묵으로 대신하고 싶어했다.

앞서 지켜본 또 하나의 장면이 생각났다. 여자 농구 결승전이 끝난 뒤 중국팬들은 ‘야오밍’의 이름을 외쳤다. 중국의 ‘국보급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야오밍은 중국 농구협회 임원 자격으로 이번 대회에 함께했다. 중국 선수들의 세리머니가 끝난 직후였다. 야오밍은 코트 건너편 스태프를 만나기 위해 코트 안에 들어섰다가 서둘러 물러났다. 코트를 밟는 대신 골대 뒤쪽으로 천천히 돌아 건너편으로 넘어갔다. 코트 안에 함부로 자신을 들이지 않았다. 그 큰 키를 낮춰 자기가 주인공이 아님을 선언하듯 발걸음을 뗐다. 국보의 품격이 느껴졌다.

과정이야 어떻든 자신의 결정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했던, 설명해달라는 요구에 다 나라를 위한 것이라며 침묵으로 버텼던 몇몇 이들이 떠올랐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그런 이들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게 이미 2년 전 겨울 증명됐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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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지난 7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이 담당 기자들에게 보낸 사진을 보며 15년 전 개봉한 한 영화의 카피를 떠올렸다. 이런 사진을 받아보게 될 것이라고 몇시간 전에 예고를 받기는 했지만 직접 보니 말 그대로 상상 이상이었다. 사진을 계속 보고 있자니 초현실적인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사진 속에서는 눈썹까지 하얀 노스님이 누군가의 손 앞에 입을 벌리고 있었다. 조계종 총무원은 사진에 이런 해설을 달아 보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은 서울지방법원 제25민사부로부터 유전자 감정일을 지정받고 금일(8월7일) 오전 9:30분 서울의대 법의학교실 연구실에서 구강 점막세포 채취를 진행했습니다.’ 설정 스님이 ‘친자확인’을 위해 유전자 검사에 응했음을 증명하는 사진이었다.

조계종의 현 상황은 짧은 기사로는 설명을 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설명도 어려울뿐더러 드라마 뺨치는 빠른 전개와 반전에 ‘경마식 중계’를 하지 않으면 따라가는 것조차 벅차다. 현 총무원장이 ‘은처자’(숨겨둔 부인과 자식)가 있다는 의혹을 받는 것으로도 이미 ‘갈 데까지 간 상황’인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진짜 권력다툼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됐다.

불교계 개혁을 요구하는 재야세력과 조계종 내부 모두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자 설정 스님은 지난달 27일 ‘퇴진’을 공언했다. “종단 주요 구성원분들께서 현재의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하기 위한 뜻을 모아주신다면 그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명분을 만들어주면 사퇴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어 지난 1일에는 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인 성우 스님을 만나 “16일 이전에 용퇴하겠다”고 밝혔다.

‘아름다운 사퇴’가 이뤄지나 싶었다. 그러나 ‘반전’은 남아 있었다. 설정 스님은 지난 9일 갑자기 인사권을 행사했다. 성문 스님을 총무부장, 진우 스님을 기획실장으로 새로 임명했다. 자신의 사퇴를 압박하는 ‘조계종 내부 세력’에 대한 저항으로 읽혔다.

여기서 끝났으면 굳이 칼럼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신임 총무부장인 성문 스님은 임명 하루 만인 지난 10일 사퇴해버렸다. 설정 스님의 퇴진을 종용하고 있는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힘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바로 돌았다. 설정 스님은 13일 다시 새로운 총무부장을 선임하려 시도했으나 또 실패했다. 그리고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기득권 세력에 의해 은밀하고도 조직적으로 견제되고 조정되는 상황을 목도했다”며 연말까지 총무원장직을 수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달 중순 새로운 부서에 와서 종교 취재를 담당한 지 한달도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이 모든 ‘반전’들이 일어났다. 종교 담당으로서 ‘좋은 말씀’만 독자들에게 전하려 했던 순진한 희망은 금방 물거품이 됐다.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소개를 받아 연락한 한 불교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웬만한 정치인들 뺨치는 일들을 더 보게 될 겁니다. 너무 놀라지는 마세요.”

사실 더 놀라운 일은 따로 있다. 조계종 안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일부 교인을 제외하면 아무도 관심이 없다. 지난 6월부터 조계종 종단개혁과 설정 스님 퇴진을 요구하며 설조 스님이 40여일간 단식을 이어갈 때도 불교계 내부에서만 반향이 일어났다.

언론이 보도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탓도 조금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언론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사안이 아예 묻히는 시대가 아니다. 언론의 도움 없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만으로도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 단지 이번 사안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관심을 두지 않을 뿐이다. 2005년 통계청 조사에서 1058만명으로 집계됐던 불교인구는 10년 만인 2015년에는 761만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기대가 없으면 관심도 생기지 않는다.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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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대항해시대, 지리적 발견을 가능하게 한 것은 마젤란, 콜럼버스 등으로 대표되는 모험가의 목숨 건 도전이 아니었다.

배가 안전하게 더 멀리 갈 수 있었던 것은 온도계의 발명 덕분이다. 17세기 초, 기초적인 온도계가 발명됐고 18세기 들어 온도를 보다 세밀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됐다. 항해사들은 이를 이용해 해수 온도를 잴 수 있었다. 텅 비어 있던 해도에 온도가 다른 해류의 흐름이 표시되기 시작했다. 배들은 보다 멀리 이동할 수 있게 됐다. 과학사에서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다. 측정기술의 발달은 세계관을 이전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꿔놓는다.

메이저리그는 지난겨울 ‘혹독한 구조조정기’를 겪었다. 이전까지 자유계약선수(FA)라는 수식어는 ‘비싼 몸값’이라는 말과 동의어였다. 지난겨울은 달랐다. 30대 초중반의 FA들이 된서리를 맞았다. FA 최대어 중 하나였던 3루수 마이크 무스타커스(30)는 소속구단 캔자스시티의 퀄리파잉오퍼(1년 1740만달러)를 거절했다. 퀄리파잉오퍼란 메이저리그에서 FA들의 보상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장치다. 선수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FA 자격을 얻고, 원소속팀은 이듬해 신인 드래프트 때 보상 지명권을 받는다.

무스타커스는 홈런을 38개나 때렸다. FA 시장 전문가들은 적어도 5~6년에 8000만~1억달러 정도의 대형 계약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무스타커스를 원하는 구단이 없었다. 무스타커스는 울며 겨자 먹기로 친정팀 캔자스시티와 1년 650만달러에 계약했다. 퀄리파잉오퍼 금액보다 1000만달러 이상 줄어든 것은 물론, 직전 시즌 연봉(870만달러)보다도 220만달러가 깎였다. 이 밖에도 수많은 FA들이 찬밥 신세가 됐다. 당황한 메이저리그 선수노조는 플로리다에 ‘실업자 FA’를 위한 스프링캠프 무대를 마련했다. 이들은 이름 없는 유니폼을 입고 외인구단처럼 훈련했다.

메이저리그는 더 어린 선수들에게 관심을 집중했다. 2017시즌 메이저리그 홈런은 모두 6105개였다. ‘약물의 시대’였던 2000년의 5693개보다 더 많았다. 젊은 선수들의 힘이었다. 2000년 대비 2017년 기록에서 25세 이하 선수들이 때린 홈런 숫자 비율이 무려 55%나 늘었다. 25세 이하 젊은 선수들은 점점 더 빨라지는 투수들의 공에 반응할 힘과 순발력을 지녔다. 부상 위험은 나이와 비례한다. 젊은 야수들의 부상 위험성은 베테랑보다 적다. 무엇보다 FA 자격을 얻기 전이어서 몸값이 싸다.

유일한 약점은 ‘경험’이다. 베테랑들은 오랜 경기 경험을 바탕으로 슬럼프를 빠져나가는 노하우를 지녔다. 상대의 허를 찌를 줄도 안다. 어떤 상황에서 투수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구단들은 베테랑들의 경험을 평가절하했다.

측정기술의 발달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선수의 능력 판단은 ‘눈’과 ‘감’에 의존했다. 공끝의 힘이 떨어졌다는 판단은 감독·코치의 눈과 포수가 가진 손의 느낌이 했다. 이제 메이저리그 30개 구장에 레이더가 설치됐다. 눈이 보지 못하는 100분의 1초 동안 몇 ㎜의 움직임이 있었는지를 측정할 수 있다. 류현진이 올 시즌 커브의 회전수를 분당 2400회에서 2600회 이상으로 끌어올리려 시도하는 것도 레이더의 측정 때문에 가능했다.

베테랑 홀대, 젊은 선수 우대라는 결정은 수년간 쌓인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측정 데이터가 베테랑의 경험을 대신할 수 있게 됐다는 판단에서 나왔다. 야구의 세계관이 바뀌었다. 100년 넘게 야구를 지배했던 느낌과 감은 새로운 측정기술과 그에 따른 데이터가 대체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옛날에 해봤더니”라는 말은 더 이상 소용없다는 뜻이다. 청춘들을 향한 “너희들이 뭘 알아”라는 말도 유효기간이 끝났다. 정작 뭘 모르는 건, 우리 어른들이다. 오랜 영화 제목처럼, 더 이상 경험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스포츠부 ㅣ 이용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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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최근 개막한 ‘이성자 :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전 자료를 찾다가 서정주(1915~2000)의 짧은 전시 평을 봤다. 1988년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에 부친 글이다. “‘(프랑스 소설가 미셸 뷔토르는 이성자가) 프랑스의 깊숙한 시골의 야성의 들꽃들을 비롯한 프랑스의 자연에 대해서도 가장 정통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여인이다’는 뜻의 말을 했거니와, 나는 그 역으로 ‘이성자는 어느 나라에 가서 얼마를 살건 간에 자기 조국 한국의 전통의 정신적인 장점과 그 끈기와 또 처녀적인 순수성을 언제나 잘 아울러 간직하고 있는 신화적인 화가다’고 하고 싶다.” ‘처녀적인 순수성?’ 프랑스에서 활동한 이성자(1918~2009)는 1960년대 ‘여성과 대지’라 불리는 작품 시기를 거친 적이 있는데, 그때 ‘여성’이 가리킨 대상은 주로 어머니였다. 대지는 나중 우주로 확장되기 전 이성자 미술철학의 주개념이었다. 음양과 우주의 예술 철학 세계를 이룬 주체적인 작가의 초대전에 기대하는 것이 처녀적인 순수성이라니…. 보부아르의 말을 빌리자면, 이성자는 처녀적인 순수성을 간직해야 할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개념조차 낯설던 말 그대로 ‘쌍팔년’ 이야기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고은의 말은 어떤가. 그가 정치인들을 ‘숫처녀’와 ‘똥갈보’로 구분한 건 2012년이다. ‘처녀적인 순수성’이나 ‘숫처녀’는 억압의 말이다. 접두사 ‘숫’의 용법을 보면 된다. 숫은 명사에 붙어 ‘더럽혀지지 않아 깨끗한’이나 ‘새끼를 배지 않는’ 뜻을 더한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왜곡되며 축적된 젠더 의식을 노골적으로 반영한다. 스테레오 타입의 이 말이 왜 성차별과 젠더를 반영하는지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다. 여성의 자리에 남성을 대입하면 성차별을 조장하고 성역할을 강요하는 말들을 금세 알 수 있다. ‘숫총각 그대로의 정치인’ ‘총각적인 순수성’…. 1950년대 서정주의 추천으로 등단했다가 1970년대 그의 보수성과 군사독재정권과의 친화성을 비판하며 절연했던 고은도 ‘처녀’나 ‘순수’에 관한 고정 관념 또는 판타지는 떨쳐내지 못했다. 좌우 가리지 않고 터져나온 문화예술계 성폭력·성차별 기원의 지류 하나를 나는 두 시인의 발화에서 확인한다.

순수와 순결의 이데올로기는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단적인 예로 지금도 뉴스 검색창에 ‘처녀작’이니 ‘처녀비행’을 치면 수많은 결과가 나온다. 사회의 진보는 차별의 언어에 어떻게 대응하고, 변화시키는지와 직결된다. 한국 사회는 아직 이런 언어에 민감하지 못하다. 이 문제는 때로 폭력의 양상을 띤다. 아이린은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로 사이버 폭력을 당했다. 걸그룹 멤버에게 요구하는 ‘섹시’나 ‘순수’ 기준에 어긋난 것이다. 이 폭력엔 수잔 팔루디가 1991년작 <백래시>에서 규명한 반페미니즘 흐름이 들어 있다. 일군의 남성들은 아이린과 <82년생 김지영>에 ‘페미니즘’ 딱지를 붙였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불순한 말’(a dirty word)로 바꾸려는 시도다. ‘걸그룹다운 순수성을 언제나 잘 아울러 간직해야’ 할 멤버가 ‘불순한 페미니즘’에 물드는 걸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이 왜 소수자인지도 이 사태에서 볼 수 있다.

책 한 권 읽었다는 말을 한마디 했다고 언제든 내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을 만들든 오로지 ‘처녀적 순수성’이나 여성성으로 재단되는 것도 소수자라서 그렇다. 순수? ‘순수의 시대’를 검색하면 동명 영화에 나온 배우의 베드신과 몸매에 관한 기사나 블로그 글이 우후죽순 뜬다. 한국 사회의 ‘순수’가 실제 욕망하는 것들의 단면을 아이로니컬하게 드러낸다. 이 욕망은 30년 전 서정주의 평에서부터 지금의 반페미니즘 흐름까지 내재돼 있다. 이 욕망은 은폐되거나 용인되면서 때로 범죄와도 이어진다는 사실을 지금의 미투·페미니즘 운동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종목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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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경주에서 전략적으로 투입되는 ‘페이스메이커’가 있다. 이들의 결승점은 42.195㎞ 지점이 아니다. 대략 30㎞이다. 여기까지 열심히 뛰어 다른 선수들의 페이스를 흩트려 놓으면 자신의 역할을 다한 거다. 마라톤, 사이클, 수영 같은 기록경기에서 ‘오버페이스’는 금물이다. 세계신기록을 갖고 있는 슈퍼스타도 오버페이스를 하면 제 실력을 내기 힘들다. 그러다보니 상대로부터 오버페이스를 이끌어내는 것은 주요한 작전 중 하나다. 페이스메이커는 자신을 위해 뛰는 선수가 아니다. 자신을 죽여 팀의 다른 선수를 살린다.

17일 폐막되는 패럴림픽을 끝으로 평창 동계올림픽이 모두 막을 내린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스포츠를 넘어선 많은 질문을 한국 사회에 던졌다. 그중 하나가 ‘페이스메이커’ 논란이다. 이승훈 선수가 금메달을 딴 매스스타트에서 후배인 정재원 선수가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한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유시민 작가는 “매스스타트는 개인경기인데 (정 선수가 페이스메이커를 해 희생하는 것은) 올림픽 헌장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촛불혁명 이후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최고의 화두는 ‘공정’이다. 모든 선수에게 똑같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공정’은 올림픽 내내 불거졌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그랬고,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경기가 그랬다. 스포츠를 통해 터져나온 공정에 대한 열망은 어느 때보다 강했다. 그만큼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불공정’에 이골이 나 있었다는 말도 된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공정한 자유경쟁은 언제나 선이 될 수 있을까. 싫든 좋든 현실적으로 우리는 ‘팀코리아’의 멤버다. 다른 팀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팀플레이 없는 자유경쟁은 우리끼리 싸우다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 수도 있다. 실제 여자 쇼트트랙 1000m 결승에서는 우리 선수끼리 부딪쳐 모두 탈락했다.

이 딜레마는 스포츠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빅3의 침몰 이면에는 우리 업체끼리의 제 살 깎아먹는 수주경쟁이 있었다. “글로벌 빅3가 한국 기업이라 가격결정권을 우리가 쥐고 있었어요. 조금만 더 전략적으로 접근했으면 모두 윈윈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끼리 싸웠어요. 차라리 다른 나라가 가져갔으면 가져갔지 경쟁사는 못 주겠다는 심리가 있었어요.”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하면서 하늘만 바라봤다. 똑같은 얘기를 건설업계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2010년 초반 찾아왔던 해외건설 호황기에도 우리 건설사들끼리 플랜트 경쟁을 벌이다 저가수주를 떠안았다.

페이스메이커를 ‘불공정하다’고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보상체계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기껏 희생해 누군가를 승자로 만들어줬더니 승자가 그 고마움도 모르고 모두 독식해버리더라는 것이다. 재벌들이 대표적이다. 언젠가 만났던 고위 공무원은 “삼성전자가 1983년 반도체 사업을 하려 할 때 범정부 차원에서 수원 땅 매입과 반도체 설비 수입을 도왔고, 초기 반도체 기술 개발도 지원해줬다”며 “반드시 잘되어서 국민들을 먹여살려달라는 뜻이었던 만큼 삼성은 국민들의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현대차, SK, 롯데 등 다른 재벌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강력한 유치산업보호정책과 시민들의 국산품 애용, 중소기업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신화는 없었다. 강남도 나홀로 부를 이룬 게 아니다. 강북과 지방이 낸 세금이 없었다면 1980년대 중반 강남 개발은 힘들었다.

공동체를 위해서 누군가는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희생이 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할 사람이 없다. 강요하면 폭력이 된다. 같은 전략을 썼음에도 ‘팀네덜란드’에서는 페이스메이커 논란이 없었다. ‘특정 선수 밀어주기’ 논란이 페이스메이커의 존재, 그 자체에 맞춰져서는 안되는 이유다.

<경제부 |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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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에 맞춰 여러 미술 행사도 막을 열었다. 국내외 유명 작가들이 여러 작품을 출품했다. 그 집결지 중 한 곳이 강원국제비엔날레가 열리는 강릉녹색도시체험센터다. 강릉 아이스아레나와 평창올림픽플라자에도 대형 설치 작품이 들어섰다.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 위주의 ‘평창·피스 오버 윈도우’(平窓·peace over window)전도 열리고 있다.

미술 작품에 금·은·동을 매기는 건 가당치 않으나, 화제작은 꼽을 수 있다. 조각가 김지현이 2013년 평창 올림픽 유치를 기념하는 비엔날레에 낸 ‘총알맨’이다. 원작은 2008년 제작했다. 세상은 선정적인 이유로 이 작품에 주목했다. 프레스센터 주변 알펜시아 리조트의 이 작품을 보고 호기심을 느낀 일본 언론이 먼저 보도했다. 언뜻 남근을 떠올리게 하는 형상은 일본에 이어 한국 온라인에도 화제가 됐다. 외설이니 하는 말들도 나왔는데, 김지현의 말대로 작품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작품에 대한 미적 판단은 수용자의 몫으로 남겨둬야 할 것 같다. 이 글에선 ‘현대인의 욕망과 그 껍데기’를 형상화한 작품이란 작가의 말만 전한다.

2013년 평창 비엔날레 당시 알펜시아 리조트에 설치한 ‘총알맨’(원작은 2008). 김지현 제공

김지현과 인터뷰를 하고 포트폴리오를 보면서 ‘화제’를 잣대로 재단할 작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트폴리오에서 더 눈길이 가고, 더 생각을 하게 만든 건 김지현이 2017년 8~9월 ‘녹·색·공·조’전에 내놓은 동명의 ‘녹색공조’와 ‘녹색향수’ 두 설치 작품이다. ‘녹색향수’에서 철제 탑에 오른 이명박은 긴 녹색 혀를 녹색광장에 드리운다. 이명박의 긴 혀는 그로테스크하다. 녹색 토사물을 쏟아내는 이명박을 발포우레탄으로 재현한 ‘녹색공조’도 추하다. 김지현의 두 작품을 보며 “추한 현실 속에서 발버둥치는 인간이 창작하는 미술은 추한 것이 당연하다”(서경식), “부패한 사회에서, 예술이 만약 진실하다면, 예술은 부패를 반영해야 한다”(에른스트 피셔)는 말이 떠올랐다.

이른바 ‘이명박근혜’ 9년을 거치면서 그 추하고 부패한 현실을 비판하는 작품은 많이 나왔다. 여러 작가들이 글로, 그림으로, 설치미술로, 퍼포먼스로 그 9년을, 그 정권을, 두 사람을 고발했다.

김지현의 작품이 새삼스러운 건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자기비판’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김지현은 ‘녹색공조’의 녹색 토사물을 쏟아내는 이명박 흉상 맞은편에 자신의 얼굴을 빚어 넣었다. 이명박에 공조한 이는 결국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는 점을 반성적으로 성찰한 것이다. ‘녹색향수’ 녹색 광장에 쓰러진 이의 손엔 ‘유토피아’라고 적힌 종이가 들려 있다. ‘테이블 위의 미사여구’(2016)에서 화려한 수사로 유토피아를 보여주겠다고 현혹하는 남북한 위정자들의 두상 사이에 자신의 두상도 넣었는데 김지현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알량함으로 그릇된 현실과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공모하는 자아에 대한 조소”를 담으려 했다고 말한다.

지금 정치사회나 문화예술계의 언어와 표현 양식은 첨예할 뿐 자기비판과 고백, 성찰의 작업은 보기 힘들다. 잇단 성폭력 파문과 설화에서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된” 듯한 모습도 더러 목격한다. 분명한 잘못과 오류를 지적해도 ‘~라면 사과’ ‘~라면 유감’이라는 가정법이 따라붙는다. 대중의 비판을 두고 특정 진영과 세력의 음모로 치부하는 일도 나온다.

자기비판과 성찰의 결여는 우리를 지배하는 질서나 삶의 방식과도 이어진다. 성찰 없는 사회에서는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허황된 약속이나 그 누구의 자식이라는 허명은 언제든지 다시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다.

지금도 돈, 직업, 학력, 위계, 착취의 문제들은 촛불에도 쉽사리 바뀌지 않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그런 것들을 욕망하고 있다. ‘우리’에게 ‘공조’의 혐의는 없는가? ‘자기비판을 통한 작업’을 수행하는 김지현의 작품을 다시 들여본 것도 이런 물음 때문이다.

<문화부 | 김종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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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수필집 &lt;랑겔한스섬의 오후&gt;에서 ‘소확행’(小確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이를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풀이했다. 무라카미는 ‘막 구운 따끈한 빵을 손으로 뜯어 먹는 것, 오후의 햇빛이 나뭇잎 그림자를 그리는 걸 바라보며 브람스의 실내악을 듣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이 소확행이라고 했다.

자신만의 소박한 행복을 찾는 것이 소확행의 핵심이지만, 일상에는 우리를 화나게 하는 일들도 소확행만큼이나 많다. 억지스럽지만 이를 ‘소확분’(小確憤·소소하지만 확실한 분노)이라고 한다면, 나의 소확분은 잔뜩 있다. 녹색 신호등에도 멈추지 않고 우회전하는 운전자를 어이없이 바라봐야 할 때, 터무니없이 비싼 찻값을 받으면서도 셀프서비스라는 가게 주인에게 화가 난다. 뒷사람이 따라오는 데도 출입문을 그대로 놓아버리는 얌체를 만나는 것도 여지없이 소확분이다. 최근 한 페친은 페이스북에 “뚜벅이여 단결하라”라는 장난 섞인 글과 함께 인도 위 불법 주정차 차량 등을 신고할 수 있는 앱 ‘서울스마트 불편신고’를 링크했다. 아마도 그의 소확분에는 보행로를 막은 불법 주정차 차량이 올라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소소한 분노를 얘기하려니, 오래전 봤던 영화 &lt;폴링 다운&gt;이 떠올랐다. 영화는 방위산업체에서 해고당한 중년 남성의 하루를 좇는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고속도로는 출근차량과 도로공사로 정체를 빚고 있고, 하필 빌(마이클 더글러스)의 차는 에어컨이 고장이 났다. 이혼한 아내와 살고 있는 딸을 만나러 가던 빌은 차를 버리고 걷기 시작한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불과 1분이 지났다는 이유로 아침 메뉴를 거절당하고, 메뉴판 사진과는 딴판인 햄버거를 받아들고서 그는 결국, 폭발한다. 그의 분노는 해마다 도로공사를 반복하는 정부, 일자리를 뺏은 다인종 사회, 대기업의 과장광고 등 사회문제들과 맞닿아 있다.

분노는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심리와는 달리 대개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식되어 절제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한마디 할라치면 별수 없이 ‘까칠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하지만 마땅히 분노해야 할 대상에 침묵하는 순간, 타자를 향한 ‘졸렬한’ 분노가 그 자리를 메워 버린다. 내 뒤에 서 있는 누군가를 찾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는 것이다. 재벌의 불법 상속보다 연예인들의 탈세에 더 분노하고, 찔끔 오른 최저임금에 엄살을 부리는 대기업이 아니라 알바에게 화를 낸다. 성폭력 사건을 쓸어 담으려는 검찰 조직이 아닌 내부고발자를 몰아세운다. 제천·밀양 화재참사는 소방관 탓이 아니다.

&lt;분노사회&gt;의 작가 정지우는 “나와 세계가 어긋날 때 생기는 부적절감이 분노의 근원”이라고 규정했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논란은 불행히도 우리 모두에게 일어났을 법한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어디에서 왔는지 되묻는 과정이다. 기회는 평등하지 않았고, 과정은 공정하지 못했으며, 결과는 정의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진 자의 죄는 실수이고, 못 가진 자의 실수는 죄가 되어선 안된다.

시인 김수영이 “왜 나는 작은 일에만 분노하는가”라고 물었지만, 분노하지 말란 뜻은 아니었다. 일상에서 촉발되는 분노가 나보다 약해 보이는 존재에게만 향하고 있다는 데 대한 반성이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이발쟁이에게/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들고, 때론 화가 치밀어 오르는가? ‘이발쟁이’ 때문이 아니다.

<이명희 ㅣ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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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15일 포항 북구 흥해에서 진도 5.4 지진이 발생했다. 세상사 ‘절대’라는 건 없다지만 설마설마했다. 낯익은 고향 도로, 밤낮으로 내달렸던 골목길이 산산이 부서졌다. 고향집은 진앙 반대쪽이라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늙은 부모는 “야야, 내 평생 여서(여기서) 이런 난리는 처음 본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어떻게든 고향 안부라도 듣기 위해 행정안전부에서 일하는 선배를 찾았다. 두툼한 외투 한 벌만 급히 챙겨 포항행 KTX를 탄 선배나 속만 타들어가는 나나 얼마를 더 뒤척여야 낯선 공포에서 헤어날지 가늠조차 어려웠다. 좀 수습됐나요, 이재민들은 괜찮나요. 미안한 질문과 지친 답변이 꽤 오래 이어졌다. 이재민 대피, 수능 연기, 자원봉사자 배정, 특별재난구역 선포….

겨우 진정 국면에 들어섰지만 선배는 ‘외로운 싸움’이라고 했다. “땅속만 갈라진 게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 단층대도 갈라졌다”면서. 실제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온갖 비난과 억측이 떠돌았다. ‘포항 지진’이 아닌 ‘흥해 지진’이라 불러야 한다, 잘사는 도시니 알아서들 하겠지, 심지어 ‘그’ 대통령을 배출한 지역이라는 말도 들린다. 하나같이 포항 지진을 ‘그들만의 재난’으로 가둔 이유가 되고 있었다. ‘이념 재해’까지 감당해야 하는 포항은 지금 너무나 아프다.

대통령 출신지? 포항이 그 시절 특혜를 받았었나. 포스코 인수·합병, 자원외교는 포항엔 차라리 재앙이었다. ‘형님 예산’도 포항 시민 몫이 아니었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 영일만 신항을 혜택이라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민주정부가 구상한 사업이다. 그렇다고 ‘그’ 대통령과 포항이 끈끈하기라도 했나. ‘그’ 대통령은 성금 500만원을 냈다고 한다. 딱 500만원어치 애정이다. ‘그’ 대통령이 자란 흥해 덕실마을 기념관은 사람들로 북적였던 때가 손에 꼽을 정도다.

좌익세력 때문? 일부에서 이념 문제를 들고나온다. 이런 분위기에 용기라도 얻었는지 보수정당은 이재민 대피소 부근에 ‘내년 정부예산은 복지 퍼주기’라는 플래카드를 버젓이 걸어놨다. 박정희 시대, 3당 합당,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는 동안 포항은 정경유착과 콘크리트 보수의 대명사로 불렸다. 그러나 지난해 촛불집회 이후 포항 시민들은 새로운 도시의 주체로 스스로를 호명했다. 19대 대선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는 포항에서 과반에 실패했다.

잘사는 지역? 경제산업메카니 알아서 복구하라는 말이다. 포스코가 포항의 든든한 방패인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정치에 휘둘리며 휘청이는 사이 철강경기까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1000명도 넘는 공단 노동자들은 새 일자리를 찾아 다른 도시로 떠나야 했다. IMF 구제금융 때도 불황을 모르던 오거리 중앙상가엔 빈 가게마다 임대 플래카드만 나부낀다. 재난의 상처를 한 지역의 문제로 고립시킬 때 어떤 고통을 겪는지 쌍용차, 용산, 밀양, 강정마을에서 이미 보지 않았나.

지진과 정치의 ‘이상결합’을 토로하다 선배는 다시 포항행 KTX에 올랐다. 이번엔 형산강을 가봐야겠다고 했다.

1500도가 넘는 용광로 쇳물을 펄펄 끓으며 받아내던 강, 3교대 자전거로 오가는 출선공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던 강. 죽도시장 비린내와 만날 때면 반짝이는 생선 비늘로 돌아오던 그 강. 이맘때면 고향집에선 ㎏당 2만원쯤 하는 삶은 문어 2~3마리를 택배로 보냈다. 올해는 “우짜노 딸, 올해는 작년 절반(크기)도 안되는 게 ㎏에 4만~5만원 하네. 지진 땜에 죽도시장에 제대로 된 게 없다”고 미안해하며 엄마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문어 다리 하나씩 잘라 냉동실에 넣어야하는데 상자 안 얼음이 녹을 때까지 가위를 들지 못했다. 엄마는 형산강 로터리를 건너오며 얼마나 긴 한숨을 내쉬었을까.

이제 동강 난 포항의 아픈 시절까지 감싸안고 흘러야 할 강. 그 강 한 줄기를 빌려 오랜 고향 안부를 묻는다. 형산강은 잘 있나요.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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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무릎을 꿇었다. 아이가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제발 짓게 해달라며.

지난주 봤던 한 컷의 사진은 일주일이 지나도 여전히 마음 한쪽을 아리게 한다. 서울 강서구에 추진 중인 특수학교 설립 얘기다. 지난 7월 토론회를 가졌지만 무산됐다. 이번에도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어머니들이 아예 무릎을 꿇어버렸다. 2019년 3월 계획대로 개교하려면 이달 중에는 설계공모 심사를 마치고 내년 3월에는 공사를 시작해야 한다. 어머니들은 절실했을 것이다. 동영상을 찾아봤다. 무릎을 꿇은 어머니 앞에 일부 사람들이 “쇼하지 말라”고 외쳐댔다. 화면으로 보는 나도 눈물이 나는데, 그 자리에 있는 어머니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장애아를 뒀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죄인처럼 살았을 어머니들이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교육감-주민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특수학교 먼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강서구 주민들도 반대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들어보니 국립한방의료원이 들어설 것으로 기대했다고 한다. 강서구는 <동의보감>을 편찬한 허준이 태어나 성장한 곳이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의 공약이라고 했다. 강서구에는 다른 장애인 시설이 많다는 주장도 한다. 서울시 8개 구에는 아직 특수학교가 없다는 주장도 편다. 강서 주민의 소외감도 일리는 있다. 다만 이는 서울시내 25개 구끼리 비교했을 때다.

지방과 비교하면 특수학교 꺼리기는 명함을 내밀기 어렵다. 울산 울주군은 신고리원전 5·6호기를 짓고 있다. 이미 부산과 울산은 세계에서 원전이 가장 많은 도시다. 인근 340만명은 사고가 나면 피난조차 어렵다. 여기서 만든 전기를 서울로 보내기 위해 밀양에는 송전탑을 세웠다. 북한 미사일 위협을 막는다며 경북 성주에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들였다. 안보를 위해 제주 강정에는 해군기지가 들어섰다. 대부분 고령이었던 지역민들의 엄청난 반대는 아랑곳없었다. 이들 지역에 원전, 송전탑, 사드, 미군기지 대신 특수학교를 짓게 해달라고 했더라면 어땠을까.

사실 강서구 주민들만 유별난 게 아니다. 특수학교 설립은 서울 전역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지난 15년간 설립된 특수학교는 단 한 곳뿐이다. 다들 내놓고 말을 안해서 그렇지 이유는 하나다. 땅값이다. 땅값에 관한 한 서울은 참 탐욕스럽다. 지방의 웬만한 아파트를 팔아도 서울 전세가 쉽지 않게 된 지금도 서울은 배고프다. 15년 전 상경해 처음 살았던 곳이 화곡동이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세대주택들 간 나름 인심도 좋았다. 

최근 가본 화곡은 많이 변해 있었다. 마곡지구의 영향이라고 했다. 재개발된 아파트들은 7억~8억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 변화가 강서 사람들을 바뀌게 했을까.

끝내 특수학교 설립이 중단된다면 강서구의 집값은 오를까? 아닐 것이다. 주민들이 얻을 것은 별로 없어보인다. 악화된 여론 속에 서울시교육청이 소유한 ‘학교용지’가 한방병원용으로 전용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강서는 ‘인심 험악한 동네’로 오랫동안 회자될 가능성이 크다. 명분도, 실리도 잃는 셈이다.

그래서 제안해본다. 역발상을 해보자고. 모두가 꺼리는 특수학교를 적극 유치하는 쪽으로 말이다. 장애아동을 위한 편의시설을 대폭 확대하고, 주민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으로 특수학교를 짓는 것이다. 그리고 명칭은 ‘허준학교’로 하자. 몸이 불편한 아이들을 위한 교육시설은 몸이 아픈 백성들을 위해 <동의보감>을 편찬한 허준의 정신과 맥이 닿아있다.

장애아들도 어울려 잘살 수 있는 마을. 이런 곳이라면 집값도 오르지 않을까? 당장 나부터 세종을 떠나는 날, 그런 강서를 다시 찾아갈 것이다. 수준 높은 시민들이 사는 지역이라면 아이들 키우기도, 어르신을 모시기도 좋다. 그런 동네, 상상만 해도 탐이 난다. 강서 주민들은 부디 재고해 주시라.

<경제부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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