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신뢰도를 말하자면 바닥 정도가 아니라 지하실 수준이다. 검찰이 먹는 욕은 한마디로 ‘산 권력의 해결사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최근 수사 흐름을 봐도 의심을 살 만하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수영계 비리 수사에 착수해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수영계를 둘러싼 고질적인 비리의 단면이 드러난 것은 분명 성과다. 그러나 체육계에서는 정부가 추진한 체육정책에 반발한 이기흥 한국수영연맹 회장을 손보려는 의도란 말이 나왔다. 이 회장은 결국 사의를 밝혔다.

특수2부는 지난해 마무리하는 듯하던 KT&G 수사를 올해 다시 꺼내들었다. 지난해 7월부터 수사해 민영진 전 사장을 구속기소했지만 새로 취임한 백복인 사장을 추가로 겨냥한 모양새다. 정부가 특정 인물을 후임 사장으로 임명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압권은 형사1부의 허준영 측 압수수색이다. 검찰은 지난달 자유총연맹 회장 선거를 이틀 앞두고 용산개발 관련 비리 혐의로 허준영 전 코레일 사장의 측근 손모씨의 사무실 등을 덮쳤다. 허 전 사장은 연임에 실패했고 ‘친박’ 인사가 당선됐다.

일선 수사팀이야 최선을 다해 주어진 사건을 추적해나갈 뿐이지만,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 정치권력은 늘 ‘자리’가 필요하다. 크고작은 도움을 준 이들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보상이 없으면 따르는 이가 없는 게 정치판이다. 그러나 ‘자리’는 제한돼 있어, 때론 우악스러운 방식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또 권력 입장에선 손봐야 할 각계의 ‘삐딱이’들도 생겨난다. 이 과정에 검찰이 단골손님처럼 등장한다. 지난해 농협, 포스코 수사도 비슷한 맥락에서 회자된다. 재벌 비리 수사 따윈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검찰이 털면 십중팔구 먼지가 나오니 정치권력 입장에서는 요긴한 병기로 보일 수밖에 없다. 수사 착수만으로도 백기를 드는 사람도 제법 되니 더욱 그렇다.

'정윤회 문건' 유출 관련 조응천·박관천 1심 선고 결과_경향DB

‘해결사’의 진면목은 위기 때 더 두드러진다. 비선실세 의혹인 ‘정윤회 문건 파문’이 불거지자 검찰은 문건이 어떻게 유출됐는지에 수사력을 집중해 여론 방향을 틀었다. 세월호 침몰이 생중계되자 정부 대처문제와는 다소 동떨어진 유병언을 수사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온 국민은 유병언이라는 사람이 잡히기만을 기도했고 때아닌 사이비 종교 논란도 벌어졌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터지자, 검찰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청와대 비서실과 대통령의 대선캠프 출신만 제외하고 레이저 시술을 했다.

구조적으로 검찰이 청와대 수중에 있어서 그렇다. 청와대가 검찰 인사권을 틀어쥐고 있으니 승진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공무원’들이 꼼짝 못한다. 특히 이 정부는 검찰의 이런 취약한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아는 듯하다. 사실상 유일한 ‘불안 요소’였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도 없앤 마당이니, 마음 놓고 검찰의 내부 역학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활용한다. 한때 55명이던 검사장 수를 49명으로 줄여 숨구멍도 조여놓았다.

이런 구조로는 신뢰 회복은커녕 하는 수사마다 망하기 십상이다. 김수남 검찰총장이 예수라도 지금의 검찰을 구원할 수 없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병기’의 날을 무디게 만드는 것이다. 경찰이든 공수처든, 검찰의 힘의 요체인 ‘독점 기소권’을 분산하는 경쟁체제를 구축해 권력자의 장악 의지를 약화하는 쪽이 한 갈래다. 또 하나는 병기를 국민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고위직 검사 선출제 도입 등이 거론된다.

한때 권력이 검찰을 놓아준 적도 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이제 검찰을 다루는 권력자의 선의에만 기댈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이런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 정부는 검찰 대개혁의 출발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홍재원 |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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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유례 없이 정치·사회 이슈가 넘쳤다. 남녀 주·조연상 후보에 흑인 배우가 전무하다는 사실에서 촉발된 논란은 흑인 사회자의 아시아인 비하 농담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수상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성소수자, 성추행, 인종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그럼에도 올해 아카데미의 주인공을 한 명 꼽는다면 역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라 해야겠다. 디캐프리오는 22년의 기다림, 4번의 수상 실패 끝에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사실 아카데미의 역사를 살피면 디캐프리오보다 더 고생한 이들도 많다. 알 파치노는 8번의 후보 지명 끝에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피터 오툴은 남우주연상 후보로만 8번 올랐으나 결국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디캐프리오의 수상 혹은 수상 실패에 관심이 쏠렸던 이유는 그가 엄청난 스타이기 때문이다.

디캐프리오는 타고난 듯 스타가 됐다. 19살에 찍은 <길버트 그레이프>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더니, 22살엔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전 세계 소녀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스타덤의 정점은 역시 <타이타닉>(1997)이었다. 영화 흥행사를 다시 쓴 이 작품으로 디캐프리오는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거듭났다.

“스타덤은 충분히 누렸다”고 생각한 것일까. <타이타닉> 이후의 디캐프리오는 블록버스터 대신, 미국을 대표하는 명장들과의 작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우디 앨런, 스티븐 스필버그, 클린트 이스트우드, 마틴 스코세이지와 호흡을 맞췄다. 특히 스코세이지는 한때의 단짝 로버트 드니로 대신 디캐프리오를 자신의 페르소나로 삼았다. 타고난 스타성과 배우로서의 재능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던 1990년대와 달리, 이 시기 디캐프리오는 자신의 연기력을 인정받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는 느낌을 준다. ‘디캐프리오가 오스카상을 의식한 연기를 한다’는 비아냥이 나온 것도 이때부터다.

영화 '트와일라잇' 로버트 패틴슨과 크리스틴 스튜어트


디캐프리오는 개의치 않았다. 최고의 미녀들과 잇달아 연애를 즐기는 할리우드 스타의 삶을 살면서도 삶의 어두운 측면을 드러내는 영화에 지속적으로 출연했다. 자신의 인기를 이용해 환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환경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11번째 시간>을 직접 제작했다. 아카데미 수상소감을 22년간 준비하기라도 한 듯, 재빠르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에는 지구온난화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최근엔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배우들이 ‘디캐프리오의 길’을 걷고 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귀족적인 뱀파이어와 남성미 넘치는 늑대인간이 평범한 인간 소녀를 사이에 두고 사랑의 대결을 펼친다는 내용이다. 5년만 지나도 잊혀질, 굳이 찾아볼 영화는 아니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로 스타덤에 오른 뱀파이어 역의 로버트 패틴슨과 소녀 역의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이후 전혀 다른 색깔의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패틴슨은 자본주의의 기괴함을 그린 <코스모폴리스>나 할리우드의 이면을 그린 <맵 투 더 스타> 같은 영화에 출연했다. 스튜어트는 예술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그린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존재의 허무에 사로잡힌 대학원생을 연기한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 등을 골랐다. 두 배우가 <트와일라잇> 이후 출연한 영화들의 관객을 모두 합해도 <트와일라잇> 한 편의 관객에 못 미칠 텐데도 그들은 그런 선택을 했다.

영화 매체의 속성상, 영화배우는 대중의 취향에 민감한 엔터테이너인 동시에 영화 자체의 논리에 복무하는 아티스트다. 두 역할을 균형있게 잘하면 이상적이겠지만, 그런 일이 뜻대로 되진 않는다. 20대 초반에 스타가 된 디캐프리오, 패틴슨, 스튜어트는 이후 스타덤을 뒤로하고 미지의 길을 택했다. 누군가는 이런 선택을 ‘허영’이라고 부르겠지만, 때론 그런 허영이 우리의 삶에 작은 품위를 허락한다.


백승찬 | 대중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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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타임. time-out.

경기 시간이 잠시 멈춘다. 뛰던 선수들이 한데 모여 의사소통을 하는 시간이다. 대부분 작전을 논의하지만 사기를 끌어올리거나 상대의 흐름을 끊는 데도 이용된다. 감독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스포츠의 1차 목적은 승리다. 작전타임 역시 승리를 목표로 한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지난해 10월17일 프로배구 남자부 현대캐피탈은 대한항공과 시즌 2번째 경기를 치렀다. 선수에서 곧바로 감독이 된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3세트 작전타임을 불렀다. 선수들을 모았고 “우린 지금이 중요한 게 아니다. 미래가 중요한 거다”라고 말했다. 경기는 0-3으로 졌다. 11월15일 다시 대한항공을 만났다. 5세트 다시 작전타임. “겁이 난다고 피하면 다음에 누가 해? 미스 해, 과감히 미스 해. 범실해도 상관없어.” 그날 역시 2-3으로 졌다. 최 감독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지금 지더라도 변화를 위해 도전해야 한다는 것. 경기 결과에 호통치는 대신 거꾸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경계를 강조했다. 2월2일 KB손해보험과의 경기에서 “못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오늘은 너희가 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작전타임 때 얘기했다.

작전타임이 쌓였다. 변화를 향한 도전이 계속됐다. 최 감독의 말은 ‘어록’이 됐고, 현대캐피탈은 강팀이 됐다. 2월7일 한국전력과의 경기 5세트, 최 감독은 “그렇게 자신감이 없어? 우리는 10연승을 하는 팀이다. 자부심을 갖고 경기하라”고 말했다. 5세트 11-14로 지고 있던 경기를 뒤집었다. 이틀 뒤 OK저축은행과의 경기에서는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너희를 응원하고 있다. 한 번 뒤집어 보자.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연승 기록이 17까지 이어졌고, 현대캐피탈은 7년 만에 정규시즌에서 우승했다.

추일승, 유재학, 김승기, 추승균 감독이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_연합뉴스

프로농구 KCC 추승균 감독 역시 첫 시즌을 치르는 초보 감독이다. 2월16일 고양 오리온과의 경기였다. 종료 7초를 남기고 70-71로 지고 있었다. 작전타임을 불렀다. 추 감독은 호통 대신 “이겨낼 것이다. 이때까지 다 이겨냈으니 1점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종료 직전 전태풍의 결승골이 터졌고 10연승을 이어갔다. KCC 역시 창단 후 15시즌 만에 첫 정규시즌 우승을 이뤘다.

2014년 4월11일 잠실구장. NC 초보 마무리 김진성은 12-11로 앞선 9회말 2사 만루 위기에 몰렸다. 포수 김태군이 마운드에 올랐다. 야구의 작전타임. 김태군은 “형, 심장이 좀 떨리나? 이게 마무리다, 형. 내가 막아줄게. 다 막아줄게. 자신있게 던져”라고 했다. 김진성은 주무기 포크볼을 자신있게 던졌다. 조쉬 벨을 삼진으로 잡았고, 이후 진짜 마무리 투수가 됐다. 그해 NC는 창단 2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올랐다.

2012년 NBA 파이널 5차전. 1승3패 벼랑 끝에서 또다시 패배 앞에 놓인 오클라호마시티 스캇 브룩스 감독은 경기 종료 직전 의미없는 작전타임을 요청했다. “고개 숙일 필요 없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여름 동안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작전타임은 전술적 모험을 위한 임기응변이 아니다. 흐름을 바꾸고, 분위기를 다잡고, 다음 경기에 대비하는, 함께 모여서 공유하는 메시지다. 변화를 추구하고 자신감을 한데 모으고, 서로를 믿게 만들고, 그렇게 내일을 준비한다.

테러방지법 통과 저지를 위한 야3당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의 마지막 발언으로 종료됐다. 지난달 23일 오후 더민주 김광진 의원으로 시작해 192시간26분 만이다. 192시간26분간의 작전타임이었다. 누군가는 억지로 외면했지만, 많은 이들이 목소리를 들었다. 역전승은 없었고 법안은 통과됐지만, ‘민주주의’라는 경기는 아직 남아 있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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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다 원칙은 알아도 압수수색을 하기 전 대상자에게 미리 알려줘야 한다는 걸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세월호 집회 ‘가만히 있으라’를 기획한 용혜인씨 사건이 이 법조항을 새삼 드러냈다. 용씨 측은 경찰 수사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인적인 카카오톡 메시지가 압수수색을 당했다는 점을 눈치챘다. 법원은 이런 압수수색은 안된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발끈했다. “앞으로 수사하지 말란 얘기냐”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는 살인·마약 등 강력범 사례를 들면서 “조폭 사무실을 압수수색한다고 미리 알려주면 그들이 가만히 기다리고 있겠느냐”고 했다.

형사소송법 122조는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함에는 미리 집행의 일시와 장소를 당사자나 변호인 등에게 통지해야 한다. 단, 이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시한 때 또는 급속을 요하는 때는 예외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압수수색은 당사자에게 사전 통보돼야 한다. 이게 원칙이다.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1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로부터 카카오톡 압수수색을 받은 사실을 공개하고 있다._연합뉴스

그런데 검찰은 해당 조항 뒷부분의 예외를 내세운다. 급할 땐 통보 없는 압수수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은 그동안 이 예외 조항을 주된 원칙처럼 활용해왔다. 수사의 기밀성을 내세워 사전 통보 없는 압수수색을 당연시해왔다. 압수수색 열에 아홉은 예외적 급속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수사경험상 자신감도 쌓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압수수색 원칙은 사라져갔다.

이번에 법원이 압수된 용씨 카톡 내용을 분석해보니 대부분 내밀한 사생활의 영역이었다. 카톡 메시지는 다음카카오 서버에 보관돼 개인이 인멸하기도 어렵다. 누가 봐도 급속을 요하는 압수수색 상황이 아닌데도 검찰이 ‘급박한 상황’이라고 우기니 설득력이 떨어진다. 도심 난투극을 준비하던 범서방파 압수수색을 통보해주지 않는다고 제동을 걸 법원은 없다. 열에 아홉이 아닌 나머지 한 사건에서는 원칙을 지키라는 법원의 이번 결정은, 아홉 개의 급한 수사엔 아무런 악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검찰이 다른 포석을 위해 대법원에 재항고했다는 의심도 든다. 용씨 같은 집회 관련자 또한 강력사건 용의자 수준의 급박한 위험요소란 점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깔린 듯하다. 또 혐의자의 내밀한 정보를 불편 없이 수집하기 위해 법률적인 원칙 자체를 대법원 판례를 통해 조금씩 바꿔가고 싶은 의도도 엿보인다. 물론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검찰은 굳이 이 같은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홍재원 | 사회부 jw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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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엄마가 보고 싶다”며 보채던 아들을 아버지가 숨지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설날인 지난 8일 오후 3시45분쯤 경남 창녕군 자신의 집에서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9)에게 수면제를 먹인 후 비닐봉지를 씌워 질식사시킨 혐의로 아버지 이모씨(49)가 긴급체포됐다. 이씨는 “내가 앓는 정신질환을 물려받고 나처럼 살까봐 죽였다”고 진술했다. 앞서 지난 3일엔 경기 부천시에서 중학생 딸(13)을 5시간에 걸쳐 구타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11개월 동안 집 안에 방치한 목사 아버지(47)와 의붓어머니(40)가 경찰에 구속됐다.

부모가 어린 자식을 살해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14일에는 아들(7)을 2시간 동안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을 훼손해 냉장고에 3년 넘게 넣어둔 최모씨(33) 부부가 붙잡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난달 21일 경기 광주시에선 40대 가장이 불면증 때문에 두 자녀와 부인을 살해하고 자신도 아파트에서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

‘부천 초등생 아들 시신 훼손 사건’에 대한 현장검증에서 어머니가 범행을 재연하고 있다._경향DB

자녀를 대상으로 한 범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설 연휴에는 경남 거제시에서 30대 가장이 생활고로 부인과 어린 자식 등 3명을 살해하고 자살했다. 지난해 6월 울산과 7월 충북 청주에서는 30대 여성 2명이 자녀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때리거나 목을 졸라 친딸(30개월)과 아들(6)을 각각 살해했다.

자식을 살해한 부모 가운데 대다수는 계부·계모가 아닌 친부모다. 친족 살인에는 부모의 분노 조절 문제, 가정 형편에 따른 스트레스, 알코올 중독 등 여러 원인이 따르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녀를 다른 삶을 사는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고 소유물로 여기는 그릇된 관념이다.



김정훈 | 전국사회부 jhkim@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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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보수인가 진보인가? 이 질문은 사람을 곤란하게 한다. 보수는 ‘새로움이나 변화보다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하는데, 전통적 가치의 소중함을 외면하는 진보는 없다. 진보는 ‘역사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 변화나 발전을 추구’한다는데, 긍정적인 변화나 발전이 싫다는 보수 또한 없다.

북한·미국, 노동, 환경, 성장·분배 등 주제별로 구분하려는 시도도 있는데,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이런 구분법은 불완전해진다. 그때그때 입장이 달라지고 뒤엉키니, 난감해진 사람들은 “나는 이도저도 아닌 중도”라고 말하게 된다.

답은 의외로 쉬운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주말, 택시기사에게 “인사동 가주세요” 하니 그는 “오늘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가 있다”며 불만스러워했다. 택시기사가 말을 이었다.

“주말에 집회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뭡니까.” 영업에 지장이 있다는 뜻인 줄 알았는데 그가 덧붙였다. “영업엔 지장 없어요. 내 말은, 손님처럼 주말에 가족 나들이하는 사람도 많은데 불편하게 도심에서 왜 저 난리냐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보수라고 스스로 여기는 사람은 대개 거리의 집회를 반대한다. 차가 막혀서든 시끄러워서든, 불법이든 합법이든 집회 거부감이 강하다. 반면 한국에서 진보라 불리는 사람들은 집회를 지지한다. 이보다 현실적으로 한국의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준을 아직 못 봤다. 이 얘기를 꺼낼 때마다 각계의 인사들이 무릎을 쳤다.

그런데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 ‘제1항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제2항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직장의보노동조합 통합반대집회_경향DB


물론 소음 문제나 주변 상가의 매출감소, 교통불편의 문제가 있고 ‘주말 나들이의 자유’도 침해될 수 있다. 집회의 본성상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보장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집회 등 표현의 자유는 다른 헌법적 권리보다 ‘우월적 지위’를 가진다. 마음대로 생각해 표현하는 게 인간의 핵심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양심·종교·학문의 자유 등도 여기에 속한다.

집회가 열리면 다소 불편해도 감내해야 한다. 구급차가 다가오면 불편해도 내 차를 옆으로 옮겨준다. ‘불편’보다 우월한 가치란 게 있다. 한국적 보수는 헌법에 명시된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셈이다. 자유로운 생각과 목소리를 금지한, 일제와 군사독재에서 비롯된 ‘복종 사회’의 뒤틀린 관성이다.

집회는 소통을 위한 인간의 기본권이자 사회적 역동의 전제 조건이다. 그 반대는 통행금지다. 지금 야간 통행금지를 되살리면 국민들은 화병에 걸린다. 내수경기를 시작으로 국가경제는 쓰러져버린다. 한국적 보수는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경제가 좋았으므로 다시 실시해야 한다”는 말이 개그란 걸 알면서도, 그 반대 방향이 옳다는 생각까진 못한다.

전체 비율은 몰라도 각계의 지도층 인사들 상당수는 한국적 보수인 듯하다. 8만명 중 80명이 과격한 행동을 하면 ‘폭력시위 프레임’을 갖다대 전체 집회를 비난한다. 완벽에 가까운 평화적 집회를 해도 ‘시민불편’ 운운하며 욕한다. 정부와 검찰·경찰은 “불법 집회에는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지만, 나중에 법원 판결을 보면 뭐가 불법이고 합법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냥 집회는 안된다는 것이다. 항공모함을 움직이는 해외 강자들에겐 찍소리 못한다. 중무장한 ‘반국가단체’가 우리 민가를 포격해도 그대로 얼어붙는다. 그러면서 비무장한 자국민들은 사상 최대량의 캡사이신과 물대포로 공격하는 ‘비겁 국가’를 이끄는 사람들이다. 오늘도 이들은 부지런히 ‘엄정한 법 집행’을 외치며 승승장구한다.


홍재원 | 사회부 jw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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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예술은 썩은 연못에 피어난 연꽃처럼 보인다. 우연히 마주친 예술의 감동은 삿된 세상에 찌든 영육을 고양시키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결한 연꽃조차 썩어들어가는 진흙 속에서 양분을 퍼올리고 있으니, 예술도 다를 바 없다. 예술은 속세의 바깥이 아니라 안에 있다. 이를 모르는 예술가는 무지하거나 어리석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예술감독과 대표의 동반 사퇴를 불러온 서울시향 사태의 발단은 박현정 전 대표의 폭압적 경영방식이었다. 언론에 공개된 녹취록에 나왔다시피 박 전 대표는 “방만한 행태를 바로잡겠다”는 이유로 직원들에게 막말을 일삼았고, 박 전 대표 취임 2년 만에 이를 견디지 못한 직원 절반이 퇴사했다. 법적으로 죄가 되는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드러난 사실만으로 박 전 대표는 경영인으로서 실격이다.

박 전 대표가 분란만 일으키고 떠났다면, 정명훈 전 예술감독은 서울시향의 존재 가치를 고양시켰다. 그가 포디엄에 선 지난 10년간, 서울시향이 음악적으로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나 서울시향의 음악적 성과가 정 전 감독을 둘러싼 불투명한 예산 집행 의혹까지 가릴 수는 없다. 세계적 지휘자를 클래식 변방의 단체로 끌어오기 위해선 고액 연봉과 각종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서울시민의 세금이 들어간 이상, 예산의 집행 방식은 투명해야 한다. 게다가 일정 수준에서 공공의 가치를 구현해야 하는 시립 예술단체의 리더는 음악 너머의 세상에까지 관심의 촉수를 뻗어야 한다. 정 전 감독은 “난 음악밖에 모른다”고 뒷짐 지고 있을 게 아니라, 음악 바깥 사회의 목소리에 더 많이 귀 기울였어야 했다.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 사태도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쯔위는 MBC TV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 제작진이 준비해준 청천백일기를 들었다가 곤욕을 치렀다.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기는 일각에서 대만의 분리독립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는 중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상징이다.

그룹 트와이스의 대만인 멤버 쯔위의 사과 동영상 모습_경향DB


물론 데뷔한 지 4개월 된 16세의 쯔위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갓 데뷔한 아이돌 그룹은 말, 행동, 표정, 옷차림까지 기획사, 제작진의 주도로 연출된다. 그렇다면 이 사태의 책임은 청천백일기가 내포한 의미를 모른 채 쯔위에게 들게 한 MBC, 초췌한 모습의 쯔위를 카메라 앞에 세워 중국팬을 향해 과도한 사과문을 읽게 한 기획사 JYP에 있다. 특히 JYP의 박진영 대표는 “쯔위는 지난 며칠 동안 많은 걸 느끼고 깨닫고 반성했다, (…) 부모님을 대신하여 잘 가르치지 못한 저와 저희 회사의 잘못도 크다고 생각한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1차적인 잘못은 쯔위에게 돌린 뒤, 자신과 회사는 그를 통제하지 못한 2차적이고 도의적인 책임만 지겠다는 것이다. 이는 ‘부모님 대신’이라는 어른으로도, 대형 연예기획사의 대표로도 어울리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다.

더 놀라운 건 중국 시장을 대상으로 활동하겠다는 연예사업가들이 중국 문화와 정서에 거의 무지했다는 사실이다. 한국 대중을 상대로 사업을 하겠다는 이들이 독도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대중의 정서를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이돌 그룹의 본령은 춤, 노래, 연기 등 예능에 대한 소질이겠지만, 아무리 빼어난 예능 감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해당 시장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인기도 얻을 수 없다.

지휘자에게 사회의 공기가 돼 달란 말이 아니다. 아이돌 그룹이 아시아 역사를 숙지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세상 돌아가는 일은 모른 채 마음껏 춤추고 노래할 수 있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마누엘 칸트는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라고 말했다. 조금 바꿔보자. 예술 없는 사회는 공허하고, 사회 없는 예술은 맹목적이다.


백승찬 | 대중문화부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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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의) 사업별 특성 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참여자 표본 집단의 취업률과 고용형태만 의미하는 것으로 시행 후 수개월에 불과한 청년대책의 효과성으로 해석하기엔 무리다.”

청년고용대책 지원사업을 통해 취업한 청년들의 비정규직 비율이 높고, 임금도 적게 받는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보도된 후(경향신문 1월20일자 12면 보도)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설명자료의 일부다.

노동부는 “청년고용대책의 본격적인 사업은 8월 이후로, 수개월에 불과한 청년고용대책의 효과성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해당 보고서의 내용은 상세하고 풍부하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온 청년고용대책을 지난해 7월 종합대책이 발표되기 전과 후로 나누어 소개하고 각 부처 사업 담당자를 상대로 추진상황을 분석한 내용을 담았다. 청년고용대책 사업에 참가한 500명과 참가하지 않은 500명을 상대로 지난해 9월부터 실태조사도 했다.

3년간 20만개 일자리 창출효과(2015~2017년),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_경향DB


청년고용대책을 통해 취업한 청년의 정규직 비율이 낮다는 것은 보고서가 지적한 내용이다. 보고서는 “청년고용대책을 통한 취업 성공자의 정규직 비율은 56.8%로, 다른 경로를 통해 취업에 성공한 자의 정규직 비율(70.0%)보다 상대적으로 낮다”며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굉장히 낮다’거나 ‘청년 실업률을 낮추려는 임시방편일 뿐 정규직 전환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현장 목소리도 담겨 있다.

4500만원이나 들인 실태 보고서를 정부 부처는 간단히 무시했다. 보고서는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은 본 보고서의 핵심 연구 대상”이라고 했지만 해명에선 “효과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라는 식이다. 연구를 수행한 한국고용정보원 관계자는 “정책이 실제 수요자에게 잘 전달되고 있는지 보려는 게 연구의 목적이었다.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그렇다면 조사는 왜 한 건가.


조형국 기자 situation@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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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일 새해를 맞아 떡국을 채 먹기도 전인 이른 아침, 스마트폰으로 긴급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거주 지역의 자치구의회에서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아 구립시설이 잠정 휴관에 돌입한다는 내용이었다. 집앞 체육센터에서 수업을 듣고 있어 황당했지만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지역 언론에서 ‘초유의 준예산 사태’ 어쩌구저쩌구했던 이 작은 소동은 4일 오후 구 예산안이 의결되면서 일단락됐다. 자치구 예산안 때문에 잠시나마 마음써보긴 처음이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만 3~5세 누리과정 지원을 둘러싼 정부와 지방 교육청 및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 때문에 요즘 연일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실 ‘(누리과정에 사용할) 교부금을 줬네, 안 줬네’ ‘누리과정 예산안을 편성하네, 마네’와 같은 레퍼토리는 2012년 무상보육 실시 후 매년 되풀이되는 연례행사다. 그리고 어물쩍 서로 한발씩 양보하는 척, 국민을 위하는 척하며 적당히 타협해왔다.

그런데 올해는 총선 때문인지 양측 갈등이 봉합되기는커녕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현재 누리과정 예산안을 편성하지 않은 교육감에 대해 감사 청구 및 검찰 고발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고, 반대쪽도 물러서질 않고 있다. 시작은 이명박 정부가 했지만 박근혜 정부의 대표 공약이기도 한 무상보육(실제론 무상보육이라고 부르기도 뭐하지만)이 이번에 ‘진짜로’ 어그러지면 당장 이달 말부터 아이의 원비는 22만원 증액된다. 지난 1년간 받은 혜택이 260만원가량됐는데 이걸 갑자기 내야 한다면 많이 억울할 것 같다.


어떤 이는 경제적 여력이 있는 계층까지 보편적 복지 혜택을 받는 것을 비난하며 세금은 보다 어려운 사람, 힘든 계층에게 몰아줘야 한다고 말한다. 마냥 틀린 말은 아니다. 경험상 정치적 색깔과 무관하게 무상보육에 반대하는 이들은 크게 두 부류다. 정부 지원을 ‘자발적으로’ 거부하고 값비싼 시설에 보내는 상위 1% 부자이거나 아니면 수혜 대상이 아닌 자들이다. 이들은 스스로 애초부터 받을 생각이 없고, 또 해당자가 없어 받지 못하니 정책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그렇다면 여유있는 계층마저 왜 무상보육에 적극 반대하지 않을까. 최근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발표한 ‘계층에 대한 자가인식’ 조사 결과가 의미심장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산층 가운데 본인을 중산층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10명 중 2명뿐이고, 나머지 8명은 빈곤층이라고 여겼다. 고소득층의 생각 역시 비슷해 절반은 빈곤층(49.1%), 절반은 중산층(47.0%)이라고 생각했다. 고소득층 100명 중 자신을 고소득층이라고 여긴 이는 불과 3.9명이었다.

계층의 하향인식이 팽배하다는 것인데 이는 지금 벌이가 잠깐 괜찮더라도 언제 추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원인으로 보인다. 불안감의 배경엔 높은 집값과 사교육비로 대변되는 불평등한 사회구조, 즉 양극화가 자리 잡고 있다. 실제 이 조사에서 고소득층 10명 중 2명은 은퇴 후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양극화에 대한 정책적 처방 없이는 평범한 국민이라면 지금 먹고살 만하더라도 무상복지를 외면하기는 힘들다. 흔히 무상복지의 예상되는 결말을 각종 포퓰리즘 정책 때문에 경제가 몰락한 베네수엘라의 사례에서 찾곤 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부모들은 22만원을 지원받아도 한 달에 수십만원을 더 내야 보낼 수 있는 민간 유치원보다는 몇 만원의 육성회비만 내면 질 좋은 교육서비스를 받는 국공립 유치원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사실 무상보육 정책을 도입한 이명박 정부는 민간 보육시설의 양적 성장을 이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국공립 어린이집, 병설 유치원 확충과 같은 질적 성장엔 별 관심이 없었다. 무상보육 논란이 없어지려면 보육부문과 관련해 누구든 이용할 수 있는 질 좋고 저렴한 공공 시설과 서비스를 확충해 국민 스스로가 실생활에서 체감하는 양극화를 해소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문주영 | 산업부 차장 moon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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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정부의 위안부 관련 이슈에 대한 태도나 정책 방향이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11일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업과 관련한 업무를 민간단체에 위탁하려다 위안부 합의 이후 백지화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설명자료를 냈다. “백지화한 사실이 없다”면서도 “등재는 민간단체가 추진하고 있는 일”이라는, ‘매우 신중한’ 입장 표명이었다.

위안부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업을 민간단체에서 주도하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4월 결성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한국위원회’가 맡아 하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도 국제협력 등 여러 측면에서 봤을 때 정부가 아니라 민간에서 맡아 추진해야 하는 사업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하지만 문제는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이 사업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변했다는 데 있다. 여가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등재 사업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난해 업무보고에도 등재 사업 관련 항목이 명시돼 있으며, 김희정 여가부 장관은 위안부 기록물을 세계유산에 올려야 한다고 연설까지 했다. 하지만 여가부는 위안부 합의 후 태도가 180도 달라져 “민간의 일”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이날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된 강은희 여가부 장관 후보자도 청문회에서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민간에서 할 일”이라고 반복해 답변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한 관계자는 “한·일 합의 후 기록유산 등재 등 위안부 이슈에 대한 정부의 태도 변화가 극명하다”고 말했다. 결국 위안부 합의가 정부의 위안부 정책 방향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여가부는 피해자 생활안정자금 지원, 위안부 교육용 교재 배포 등을 맡아 하는 주무부처다. 합의와 무관하게 위안부 백서 발간도 추진 중이다.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는 이런 과제들이 위안부 합의의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가뜩이나 여가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선 위안부 관련 답변에 대해 “여가부 장관이 아니라, 외교부 대변인 같다”는 지적이 이어졌던 터다.


정책사회부 | 남지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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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건 야구 얘기다. 마이크 매시니는 메이저리그 포수였다. 메이저리그에서 13시즌을 뛰었다. 35세 되던 2006시즌 5월 어느 날 갑자기 방망이도 공도 쥘 수가 없게 됐다.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일상적인 대화도 어렵게 됐다. 30년 가까이 계속해온 야구가 준 후유증이었다. 포수는 파울 타구에 맞기 일쑤다. 마스크를 썼어도 머리에 맞을 때 충격이 상당하다. 홈으로 들어오는 주자에게 부딪힌다. 그러다 땅바닥에 고꾸라지는 일도 흔하다. 의사는 매시니에게 뇌진탕 진단을 내렸다. 복서로 치자면 ‘펀치 드렁크’였다.

고향인 오하이오주로 돌아갔다. 쉬는 동안 후유증이 잦아들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아들을 둔 부모들이 더욱 그랬다. “메이저리거 출신이 우리 동네로 돌아왔어. 우리 애들을 가르치면 정말 좋지 않을까.” 몇몇은 용기를 내서 매시니를 찾아갔다. “여기서 야구팀을 만들어 우리 애들을 가르쳐 주면 어때요.”

그럴듯한 제안이었지만 매시니는 단칼에 거절했다. “제가 은퇴할 때 결심한 게 하나 있습니다. 전, 고아팀이 아니면 안 가르칩니다.” 이유도 명확했다. “왜냐고요? 학생 스포츠에서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부모님이니까요.”

그래도 동네 부모들의 설득이 계속됐다. 매시니는 고심 끝에, 부모들을 자기 집 거실에 모두 모이게 했다. 그리고 직접 쓴 긴 편지를 읽었다. 수년 전 미국 스포츠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매시니 선언(The Matheny Manifesto)’이었다. 여기에 나온 내용들을 모두 지켜야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일종의 계약서였다.


세인트루이스의 아담 웨인라이트가 번트를 대고 있다._경향DB


금지사항이 적지 않았다. 일단, 관중석에서 부모들이 외치는 ‘파이팅’을 금지했다. “힘내” “가자” “할 수 있어” 아무리 좋은 말도 금지였다. 매시니는 “아이들에게 ‘경기 중에 부모님이 어떤 걸 해줬으면 좋겠니’라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아무것도 안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한다”고 했다. 경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견뎌야 할 압박감이 상당하다. 야구 경기를 위한 반복 훈련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되다. 부모의 응원 함성은 부담감을 덜어주기보다는 더욱 키우기 마련이다. 매시니는 “부모님들은 조용하지만 꾸준한 지원자 역할을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부모의 함성은 함께하는 스포츠의 재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의 격려가 아니라 팀 동료의 칭찬이다.

‘자기 물은 자기가 싸가지고 다니게 할 것’이 또 하나의 원칙이었다. 아이가 덥다거나, 목이 마르다고 할 때 쪼르르 달려와 물을 건네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규칙이다. 최소한의 독립심을 키우기 위한 규칙이다.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므로 쉽게 손 벌려서 얻지 못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야구는 부모와 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동료들과 하는 스포츠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투수가 어울리지 않을까요?’ ‘우리 아이는 7번보다는 4번 타자가 낫지 않을까요?’ 하는 질문 또는 부탁도 금물이다. 매시니의 선수들은 모두가 투수이고, 모두가 4번 타자를 하는 게 또 규칙이다. 여러 포지션을 경험함으로써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찾도록 하는 게 목표다. 가뜩이나 열심히 뛰는 선수들에게 “할 수 있어”라고 외치는 ‘파이팅’은 얼핏 격려 같지만 그 자체로 ‘노오력’ 강요와 다르지 않다. 어른들이 할 일은 그들이 함께 어깨를 겯고 삶을 즐길 수 있도록, 재미있게 포지션을 나눠 야구를 할 수 있도록 그라운드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목 마르다고 얼른 물을 건네주고, 미래를 미리 재단해 포지션을 결정하는 것 역시 야구를 망치는 일이다. 그 야구는 재미도 없을뿐더러 꼭 진다.

매시니는 2012년 세인트루이스의 감독이 됐다. 세인트루이스는 올시즌에도 메이저리그 최다인 100승을 거뒀다. 그러니까, 이건 야구 얘기다.


이용균 | 스포츠부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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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작은 나라를 다녀온 친구가 그곳에는 ‘연애 자격증’이라는 이상한 국가제도가 운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남아선호와 낮은 출산율 때문에 성비불균형이 심각해서라는데, 2030년엔 남성 100명 중 29명이 결혼을 못할 것이라는 전망치까지 있다고 하니 문제가 심각하긴 한 모양이다.

한때 이 나라도 일부일처 핵가족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가난하게 결혼해도 20년이면 내 집 마련이 가능했다. 오랜 내전이 끝난후 시작된 산업화 시대에 인프라 재건과 해외수출 호조 덕이었다. 그런 기적의 시기는 1990년대 말에 ‘쫑’이 났다.

내전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이곳 국민들의 성품은 늘 초조한 편이었다. 그래서 성비불균형에 경제위기까지 겹칠 경우 벌어질 사회적 혼란을 심각하게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급기야 ‘연애 자격증’ 도입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능력 있는 남성만 연애와 결혼, 출산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함으로써 사회적인 혼란을 최소화한다는 게 골자였다. 여론이 처음부터 개인을 가축 취급하는 국가자격증에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국가가 정한 사회적 아젠다에 동원되는 데 길들여진 국민들은 정부가 언론을 동원해 ‘이러다간 나라 망한다’며 위기론을 펴기 시작하자 결국 찬성으로 돌아섰다. 어떤 학자는 방송에서 “자연에서 능력 있는 수컷이 암컷 여럿을 거느리는 것은 강력한 유전자를 번성하게 하려는 자연의 섭리”라며 사이비 이론을 떠벌렸는데, 권위에 눈이 먼 사람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집 밖 자살 비율_경향DB



자격증 도입에 따라 결혼적령기 남성들은 등급심사를 받았는데 큰 심리적 저항은 없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성적순으로 줄세우는 것을 국가 차원으로 조금 확대한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성들은 경제·사회적 상태를 엄밀하게 쪼갠 자격조항에 따라 등급이 매겨졌다. 시민단체들은 “사실상 카스트 제도”라며 비판 목소리를 높였지만, 대부분 남성들은 조용했다. 불만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순간 ‘루저충’ ‘분열충’ 같은 막돼먹은 비난을 감수해야 할 터였다. 내면화된 수치심 속에 남성들은 흩어져 침묵했다.

연애 자격 최상위 등급은 물론 이 나라의 경제귀족인 10대 재벌 그룹의 청년들이었다. 하지만 외부 충격에 취약한 경제 탓에 언제든 등급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그 다음 등급은 준재벌, 그 다음은 상위 1%의 고소득층, 얼추 이런 식이었는데 아주 세밀하게 단위를 쪼개놓은 평가지표를 보노라면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경제능력 이외의 것은 거의 장신구 수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건 이 나라 사람들의 배금주의 때문인지 미심쩍었다.

이 ‘연애 자격증’을 발급받은 남성들은 성적으로 호감 가는 여성을 만나면 빽빽하게 자랑스러운 내용들을 적은 서류를 내밀었다고 한다. 여자를 유혹할 때 ‘이번에 대기업 정규직 합격했다’며 귀엣말을 달콤하게 속삭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물론 자격 등급을 뻥튀기하거나 심지어 문서를 위조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따로 규율하지 않아도 귀신같이 ‘자정’이 이뤄졌다. 다들 서로의 등급을 면밀하게 따지고 감시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연애 자격증’을 얻지 못한 남성들이었다. 재벌만 살찌우는 정부의 정책 때문에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청년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랑하고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큰 고통이었다. 그러나 능력주의 신화에 사로잡힌 비정한 사회는 이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이 나라를 떠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떤 남자들은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 여자들을 ‘된장녀’ ‘김치녀’라고 부르며 미워했다. 정부와 재벌을 비판하느니 그 편이 더 쉽고 안전했기 때문이다.

그런 나라가 세상에 어딨냐고 기가 막힌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는 웃으며 “다 ‘뻥’이야”라고 말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최민영 | 미디어기획팀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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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광화문집회엔 주최 측 추산 13만명, 경찰 추산 8만명이 모였다. 정부는 전가의 보도 같은 위기대응 매뉴얼을 꺼내들었다. 바로 ‘폭력집회’ 프레임이다.

정부가 불법·폭력집회로 몰아가자 보수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집회 비판 보도를 녹음기처럼 몇 주째 반복했다. 10만명이 모인 것만으로도 강력한 반정부 메시지를 보여준 ‘사건’이었지만, 극히 일부의 폭력 행동에 묻혀버렸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14일 집회에 대한 자체 현장감시 결과를 보고서로 내면서 “불법행위는 차벽을 기준으로 가장 앞에 선 일부 인원에 의해 행해졌고 절대 다수의 시위대는 뒤쪽에서 평화롭게 집회를 했다”면서 “사다리를 경찰이 탄 버스를 향해 휘두르는 사람 한 명을 저지하는 수명의 시위대의 모습을 직접 확인했다”고 밝혔다.

불법행위를 한 그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국민의 목소리가 전달되지 못하도록 재를 뿌린 사람들 말이다.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경찰 짐작대로 전문 폭력 시위꾼일 가능성이 있다.


5일 서울 대학로에서 2차 민중총궐기 평화행진을 마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마무리집회를 갖고 있다._서성일 기자

만약 그렇다면 이들은 아직도 구태를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다. 한풀이를 해보겠다는 자들이거나, 폭력이 아니면 그 판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그런 부류일 것이다. 차벽이 반헌법적이긴 하지만 경찰버스에 올라가 뭘 어쩌겠다는 건가. 10만명의 목소리를 일거에 매장시켜 버리는 폭력집회 프레임의 좋은 먹잇감만 되기 십상이다. 만에 하나 이들이 집회 반대세력에 의해 동원된 사람들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10만명의 목소리를 폭력 논쟁으로 덮어버리려는 공작이다.

둘 중 어느 쪽이라 해도 폭력 시위꾼은 민주주의 발전의 걸림돌일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은 5일 2차 집회에서 시위대가 먼저 체포하라. 형사소송법 제212조에 따르면 현행범은 누구든지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 다만 체포한 뒤엔 지체없이 경찰에 인도해야 한다.

지금 이 나라 권력자들은 집회 중 누군가 폭력 비슷한 행동이라도 해주길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홍재원 | 사회부 jw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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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모른다”면서도 아무도 “아니다”라고 말하진 않는다. ‘괴문서’가 공개된 지 보름이 돼 가고, 증거와 정황은 한 곳을 가리키지만 정작 지목당한 곳은 ‘나 몰라라’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방해 시나리오 문건 작성지로 지목된 해양수산부는 13일째 ‘무대응’ 중이다.

지난달 19일 새누리당 추천 특조위 위원의 ‘행동지침’을 담은 문건이 공개됐다. 특조위가 청와대 조사를 추진하면 여당 추천 위원들이 의결과정상 문제를 제기하고 전원 사퇴의사를 표명하라는 내용이었다. ‘여당 추천 위원들과 해수부 차관·파견 공무원의 협조·소통을 강화한다’ ‘(여당이 주장하는) 특조위 개시일을 고수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문건에 적힌 ‘해수부’ ‘우리부 입장’ ‘해수부 장관 내정자’ 등은 해수부가 생산한 문건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표현이다. “(수중조사에 대해) 이미 특조위와 협의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인양 후) 미수습자 발견 가능성이 낮은 곳은 특조위 조사를 최대한 허용한다”도 그렇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_경향DB


이 문건에 대해 해수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해명·참고 자료도 내지 않았다. 지난달 20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윤학배 해수부 차관은 “(문건 작성자를) 아직도 못 찾았다”고 했다. 1일 통화한 모든 실·국장급 간부들은 한결같이 “관여를 안 해서 모른다”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변했다. “지시를 받고 작성자를 파악해 봤다”고 답한 간부는 한 명도 없었다.

해수부 일선 직원들은 쏟아지는 비판 여론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문건을 접한 공무원들은 “100% 공무원 보고서가 맞다”면서도 “업무 내용을 다룬 걸 보면 해수부 같지만 해수부가 국회·특조위에 그만 한 힘을 행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공무원은 “우리가 했다면 진짜 나쁜 짓을 한 거고, 아니라면 억울한 일이니 얼른 진상이 밝혀졌으면 좋겠다”며 한탄했다.

괴문건을 대하는 해수부의 태도는 밀실행정·불통·무대응으로 점철된 세월호 참사와 닮았다.


조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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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은 40년간 교편을 잡았다. 모친은 ‘유신독재’, ‘군사독재’ 같은 말을 싫어한다. “어머니는 그 시절 어떠셨느냐”는 아들의 은근한 시선을 몇번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은 그가 따졌다. “내가 독재에 부역이라도 했니?”

군사독재는 1~2년이 아니다. 박정희·전두환 시절만 해도 25년, 노태우 통치까지 합치면 30년이다. 그 시절 그 정권에 직·간접적으로 협조하지 않은 국민이 몇이나 있을까.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 찬성률은 91.5%였다. 일제시대는 더 길었다. 국권을 잃은 1910년부터 광복까지 무려 35년이 걸렸다. 외교권이 박탈된 을사늑약 전후부터 따지면 40년이 넘는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시절, 적극적인 친일파도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시대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조선인 90%가 창씨개명했다).

세계 제 2차대전 때 독일에 협조한 프랑스 비시정부는 기껏해야 4년에 불과했다. 프랑스는 전후 곧바로 나치 협력자들을 색출해 처단하기 시작한다. 짧은 기간 부역했다며 처형한 사람만 10만명이다. 우리는 달랐다. 몇 세대에 걸친 뒤틀린 역사 속에서 대부분의 국민이 일제에 머리를 숙였고 독재에 찬성했는데 누굴 처단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일제와 독재에 목숨 걸고 맞선 이들도 적지만 존재했다. ‘정의’는 이들 소수의 차지여야 마땅하지만, 다수의 국민이 뒤틀린 역사에 연루된 상황은 이를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일제통치나 독재정권이 한국 근대화에 공헌했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때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등장했다. 대통령의 부친은 일제 만주군 장교를 지내고 훗날 독재정권을 이끈 인물이다. 부친 서거 후 대통령은 은둔해 박제가 됐다. 박 대통령은 경험과 비전을 가진 새 시대 정치인이라기보다 ‘그 시절’의 상징에 가깝다.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11차 사회보장위원회 회의가 시작하기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_청와대사진기자단


박 대통령 당선은 자칫 부역자로까지 몰리게 된 적잖은 이들과, 밥상머리 교육·각종 혈연 학연 지연 등으로 얽혀 영향을 주고받은 수많은 이들, 또 이들이 구축해온 각종 구조들이 모종의 ‘역사적 재평가’를 원했던 결과다. 그래서 대통령은 ‘콘크리트 지지’를 받는다. 그가 노골적으로 역사교과서에 손을 대겠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과거를 손보면 쉽사리 고통에서 벗어난다. 태어나보니 일본인이었고, 원치 않게 청춘의 한복판을 독재정권과 함께 보냈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갑자기 바뀐 세상 저편에서 날아오는 아들·딸의 질문. “아버지·어머니는 그때 안녕하셨나요?” 대통령의 독주와 그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는 이 질문에 대한 무언의 답변이자 시위인 셈이다.

그러나 이 시위는 사회 진보엔 도움이 되지 못한다. 과거가 옳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거 방식대로 하려 한다. 경제 정책은 늘 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이어야 한다. 다 죽은 ‘낙수효과’를 아직도 유행가처럼 부르는 사람들이다. 내수부양을 외치면서도 노조는 막고 직원 월급은 줄이자고 한다. 어딘가 큰 조직에 속해 있어야 안정적이며 자유롭게 활동하려는 꿈은 ‘낙오’다. 경쟁할 준비만 해야 하고, 토 달면 혼난다.

일제와 군사독재는 역동 대신 복종을 요구했다. 그 방향으로의 회귀는 창조적 도약의 최대 적이다. 창조경제를 말로 외치긴 쉽지만, 회귀적 발상의 주역들은 필연적으로 ‘창조경제 3개년 계획’ 같은 허무개그를 하게 된다. ‘헬조선(가망 없는 한국사회를 뜻하는 인터넷 용어)’의 뿌리를 봐야 탈출구를 찾는다.

우리는 중대한 선택 앞에 서 있다. 판단은 사회 전체의 몫이지만, 진통제는 한 시대의 고통을 잠시 감춰줄 뿐 암 덩어리를 제거하지 못한다는 걸 다 안다. 아프고 두렵더라도 결국 ‘정의’와 ‘미래’를 향할 것이다. 이런 선택은 빠를수록 좋다.


홍재원 | 사회부 jw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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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제17회 쇼팽 피아노콩쿠르 우승 실황 음반을 들었다. 24곡의 전주곡을 차례로 연주한 뒤 녹턴, 소나타, 폴로네즈 등을 조금씩 들려줬다. 콩쿠르는 세계의 젊은 음악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짧은 시간에 실력을 뽐내는 대회다. 대회 특성상 열정적이고 다소 과시적인 연주가 나오지 않을까 짐작했다. 예상과 달랐다. 순진한 표정의 21세 피아니스트는 오히려 차갑고 절제된 연주를 들려줬다.

조성진의 연주는 차분했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초도 발매된 음반 5만장은 1주일 만에 매진됐다. 발매 당일에는 새벽부터 음반 매장에 줄을 선 이들도 있었다. 통상 클래식 음반은 많이 팔려봐야 2000~3000장이지만, 음반사는 조성진 음반의 판매량을 10만장까지 내다보고 있다.

지난달 조성진이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조짐이 있었다. 어떤 신문은 한창 뜨거웠던 국정 교과서 공방을 제쳐두고 우승 소식을 1면 톱기사로 전했다. 콩쿠르 우승을 올림픽 금메달에 견주기도 했다. KBS는 조성진의 우승자 갈라 콘서트와 본선 연주를 이틀에 걸쳐 방영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축전을 보냈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특별상을 수여했다. 1974년 정명훈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2등을 차지한 뒤 김포공항부터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인 것에 비견되는 열기다.

조성진 열풍은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피아니스트 문지영의 부조니 콩쿠르 우승 때의 차분했던 분위기와 비교된다. 둘 다 올해의 일이고, 한국인 최초였다. 특히 조성진과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문지영은 올해 부조니와 쇼팽 콩쿠르를 모두 준비하다가 부조니에서 우승한 뒤 쇼팽을 포기했다. 부조니의 권위가 쇼팽 못지않다는 뜻이다.


조성진씨가 일본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_연합뉴스


2000년 제14회 쇼팽 콩쿠르에서 18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우승자 타이틀을 거머쥔 윤디 리는 지난달 내한공연 중 대형 사고를 쳤다.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에서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다가 박자를 놓치는 등 실수를 연발한 끝에 연주를 일시 중단한 것이다. ‘쇼팽 스페셜리스트’인 윤디 리에게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수천번 쳐봤을 레퍼토리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진 격이다. 윤디 리는 황당한 실수를 저지른 그날 밤 핼러윈 분장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번 쇼팽 콩쿠르 심사 중에는 며칠간 자리를 비운 뒤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친구 연예인 부부의 결혼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랑랑과 함께 중국의 슈퍼스타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그가 쇼팽 콩쿠르 우승 15년 만에 실력과 정신력 면에서 완전히 무너진 모습을 보였다.

15년 뒤의 조성진은 어떨까. 물론 예술가가 온전히 독립적인 존재라는 믿음은 환상이다. 바흐와 모차르트는 종교의 광휘, 귀족의 희열을 위해 곡을 썼다. 자유분방한 시민 작곡가로 여겨지는 베토벤도 사교계 귀족의 후원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오늘날의 클래식 음악가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많은 연주자들이 현대의 귀족이라 할 수 있는 기업(인)의 후원에 기대 음악 활동을 펼친다. 언론의 조명, 대중의 반짝이는 눈빛은 덤이다.

하지만 예술가는 궁극적으로는 혼자다. 내면의 심연에 침잠한 뒤에야 사회와 연결된 길을 찾을 수 있다. 조성진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유명인이 되기보단 훌륭한 음악을 연주하는 데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난 그가 자신의 말을 지켰으면 한다. 조성진이 국가의 영광을 위해 피아노치지 않길 바란다. 대중이 아니라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길 바란다.

조성진의 음악은 조성진의 것이다. 피아노 연주는 손가락 훈련을 넘은 마음의 도야이기에, 그 자신만을 위한 오롯한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조성진을 아주 가끔씩만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백승찬 | 문화부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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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안 한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최근 KT 관계자들을 만나면 듣는 말이다. 일명 ‘박근혜 펀드’로 불리는 ‘청년희망펀드’에 KT가 기부를 해야 하는지 고민이라는 얘기다. 청년희망펀드는 9월15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청년 고용을 해결하자”며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개인 재산 2000만원과 월급 20%를 매월 기부키로 하면서, ‘1호 기부자’가 됐다.

그러자 기업 기부가 줄을 섰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 사재 200억원 및 임직원 모금 50억원 등 250억원을 기부했다. 현대차는 200억원, LG 100억원, 롯데 100억원, SK가 100억원을 냈다. 포스코, 효성, GS, 두산, 한화, 신세계, 한진, 코오롱, LS, CJ 등 대기업들도 수십억원대의 기부금을 냈다.


MD(미사일방어),노동법개악 반대,헬조선,청년희망펀드_경향DB


KT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이 23조4215억원으로, 재계 10위권이다. 비슷한 규모인 CJ는 이재현 회장 사재 20억원 등 25억원을 냈다. KT도 20억~30억원을 기부해야 할 판이다.

한데 KT의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 지난해 대규모 감원도 하고, 사상 첫 적자를 냈다. 총수가 아닌 황창규 회장의 사재 출연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러자 임직원 모금도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KT 직원은 “동료들이 실직하는 와중에 자발적 기부가 몇 건이나 될까 의문”이라고 말했다.

재계 불만도 높다. 청와대에서 경제활성화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기업들이 반강제적으로 동원되다시피 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전국 곳곳에 정부 주도로 개설된 창조경제혁신센터만 해도 기업별로 많게는 수백억원씩 돈을 넣었다”며 “기업들 입장에선 이 같은 경제활성화 대책이 ‘준조세’나 다름없는 부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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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뒤에 것은 보지 않아도 된다. 진도는 다 나갔다.”

항상 그랬다. 30여쪽이 더 남아있었지만 국사 선생님은 책을 덮으라고 했다. 국사책 마지막장이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이 없다. 단군시대부터 신라, 고구려, 조선시대를 넘어 광복까지 달려왔던 국사 수업은 제3공화국에 다다르면서부터는 힘이 확연히 빠졌다. 그리고 제5공화국 부분은 아예 펼쳐보지도 않았다.

흘깃 넘겨본 기억으로는 ‘정의사회구현’ ‘조국’ ‘민족’ 등의 단어가 수두룩했다. 국사책에서 제3공화국 이후의 단원은 별책부록과 같았다.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1970년대생은 국정교과서 세대다. 교과서는 으레 한 권인 줄 알았다. 참고서는 몇 권 있었다. 동아전과와 표준전과가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편집의 차이였을 뿐 내용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교과서를 그냥 줄줄 외웠다.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인쇄된 문구를 외우는 것이 최고였다. 어떤 친구는 외운 것을 잊지 않기 위해 교과서를 찢어 씹어먹었다며 자랑했다. 그런 시대였다. 대학에 들어갔다. 첫 시간. 교수님은 수많은 책을 꺼냈다. 그러고는 모든 것이 ‘교과서’라고 했다. 이 중 한 권으로 수업은 하지만, 다른 책에서 언제든 시험문제를 낼 수 있다고 했다. 당혹스러웠다. 텍스트(Text)가 여러 가지일 수 있다는 상상은 해보지 못했다. 혹시 교수가 책을 팔기 위해 학교 앞 출판사와 짠 것 아니냐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세상에는 정말로 많은 지식이 있다는 것을. 그 지식은 한 권에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심지어 자연과학마저도 말이다.

문재인, 심상정 대표와 천정배 의원이 국정교과서 반대 대국민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_경향DB


국정교과서 사태를 보면서 새삼 빛바랜 교과서에 대한 추억들이 떠올랐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많은 것을 되돌리겠다 싶었다. 새마을운동도 다시 나올 테고, 반공방첩도 시간 문제라 봤다. 4대악에 불량식품이 거론될 때도 그러려니 했다. 사실 박근혜 정부가 꺼내는 아젠다는 예측가능했다. ‘국민학교’ 때 이미 겪었던 사건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교과서까지 손댈 줄은 몰랐다. 자칭 ‘창조경제’를 모토로 내건 정부였다. 이런 정부가 지식의 화석화를 추진할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국정화와 창조적 사고는 하늘과 땅만큼 거리가 멀다.

대통령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은 국가적 아젠다가 된다. 그게 최고권력자의 힘이다. 이를 중심으로 국가의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이 동원된다. 대통령의 ‘역사전쟁’에 경제와 외교 등의 모든 아젠다가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가고 있다. 뉴스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청년실업과 미국의 금리 인상도 지워졌다. 위태위태한 가계부채나 전·월세 폭등 얘기도 줄었다. 경제부 기자마저도 교과서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미래를 생각해도 부족한 마당에 한국사회는 끊임없이 과거로 간다. 과거에서 답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회귀하고 있으니 답답한 거다.

10월21일은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 주인공들이 30년 뒤 미래로 간 바로 그날이다. 미국사회는 30년 전 예측한 미래와 오늘을 비교하며 즐거운 축제를 벌였다. 30년 전 과거가 그립다며 역주행하는 한국과는 딴판이다.

2045년 10월, 한국사회는 30년 전 교과서 국정화사태를 어떻게 볼까. 아니, 30년까지 갈 필요도 없다. 박근혜 정권이 끝날 2년 뒤가 당장 문제다. 5년짜리 정권에서 ‘대못’은 없다. 이명박 정권이, 박근혜 정권이 증명한 사실이다.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국정을 영원히 하자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뭔가 켕기는 것은 있는 모양이다.


박병률 | 경제부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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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수도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인근에 있는 유대인 홀로코스트 기념관에는 크고 작은 콘크리트 조각 2700개가 놓여 있다. 나치에 희생된 사람들의 묘석을 상징하는 숫자다. 그 자리를 지날 때 나치 만행을 잊지 말자는 외침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이들은 왜 이렇게 가혹하게 자신의 과오를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현행 역사교과서가 우리 역사를 부정하는 반(反)대한민국 사관으로 쓰여 있다”고 말했다. ‘자학사관’이라는 말도 썼다. 박근혜 정부가 검정해 통과시켰던 교과서를 ‘반대한민국 사관’으로 몰아붙이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질문을 달리해보자. 정부와 여당은 왜 스스로 검정한 교과서까지 ‘좌편향’으로 몰아 역사교과서를 바꾸려고 하는 것일까.


이들이 ‘가리려고 하는 역사, 띄우려고 하는 역사’에는 일정한 공식이 있다. 김 대표의 부친인 김용주씨는 일제에 비행기를 헌납했다. 1944년 ‘징병제 시행에 감사해 미국·영국 격멸을 결의하는 공직자대회 발언’을 통해 징병제 참여를 촉구했다. 그렇지만 김 대표는 아버지 평전을 만들면서 이 같은 내용은 뺐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 인터뷰에서 정치를 하는 이유로 독재를 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이라 밝힌 바 있다. 이들이 ‘아버지 행적 지우기’ 목표를 완수하려면 역사교과서에서 친일과 독재 서술을 줄이거나 미화해야 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_경향DB


이렇게 하려다 보니, 같은 역사지만 다른 내용이 줄어들어야 한다. 바로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이다. 중학교 역사에서 1930년대 이후 독립운동을 다룬 부분이 없어졌고, 1948년 8월15일을 뉴라이트 학자들의 ‘건국절’ 주장이 담긴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표현했다.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그 후 이뤄진 독립운동을 줄이게 된 것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는 ‘독재’라는 말도 없다. 박정희 정권 18년을 ‘권위주의 정권’이라 서술하고 있다. 독재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에 대한 서술도 모호하다. 민주화에 대한 서술은 약화시키면서 산업화에 따라붙는 논란은 없애고 경제성장사로 기술하고 있다.

일가의 부끄러운 역사는 가리고 잘했던 일은 몹시 띄우려고 하다 보니 상식적인 역사적 사실들이 뒤틀려 버렸다. 결국 친일·독재를 축소하면서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도 함께 톤과 양을 낮춰 역사교과서의 근현대사 분량은 50% 아래로 줄게 됐다. 근현대사를 강조하는 국제적 추세와도 반대로 가게 된 것이다.

과거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지 못하는 역사라면 그런 역사교육은 무슨 소용인가.


임아영 | 정책사회부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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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는 ‘허무극’으로 끝났다. 야당이 제기한 대통령의 검찰 독립성 훼손이라는 의혹에 검찰은 버티기로 일관했고, 야당은 빈손으로 돌아섰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춘석 의원은 이날 국감 초기에 법무부가 대검에 ‘대통령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이에 관한 후속대책·추진 계획 등을 요구하는 문건 12개를 보냈고, 대검이 후속대책·추진 계획 문건 4개를 회신했다면서 공개를 요구했다. 대통령이 검찰에 구체적 사건과 관련해 지시사항을 수시로 전달해 지시함으로써 검찰의 독립성을 해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검찰청법은 법무부 장관만 구체적 사건과 일반적 업무에 대해 각각 검찰총장과 검사를 지휘·감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_서성일 기자


김진태 검찰총장을 비롯한 대검 관계자들은 구체적 사건에 대한 지시도 아니었고, 노무현 정부 때부터 늘 있어왔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야당 의원들이 해당 문건 공개를 요구하면서 국감은 중단됐다. 1시간30분가량 정회되는 동안 일부 의원은 대검이 표본으로 제공한 일부 공문을 확인했다. 그러나 대검이 공개한 공문은 제목과 부제뿐이었다. 새누리당 이한성 의원조차도 공개된 내용이 부실하다고 질타했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등에 따르면 군사·외교·대북관계의 국가기밀 등 국가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 아니면 정부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그럼에도 검찰은 “범죄 단속 계획 등이 있어 공개하기 어렵다”며 버티기로 일관했다. 검찰이 떳떳하다면 공개를 못할 이유가 없다. 처음 자료 공개를 요구한 이춘석 의원과 이상민 위원장은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자괴감은 더 크다. 정작 자신은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국민들에게는 준법을 요구하는 검찰을 어떻게 해야 할까.


김경학 | 사회부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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