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서울지역 자립형사립고인 하나고가 낸 광고가 중앙일간지 5곳에 일제히 실렸다. 지난 26~27일 이틀간 진행된 서울시의회 행정사무조사에서 입시성적 조작과 설립과정 특혜 의혹 등이 제기된 데 대해 교직원 78명이 실명을 걸고 게재한 광고다.

교직원들은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본교가 마치 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 안타깝다. 그와 관련한 저희의 뜻을 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현재 특정고위층 자녀의 학교폭력과 성추행 건으로 불리고 있는 사안은 과장·왜곡된 바가 많다”며 “본교는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교정, 회복을 위한 교육적 지도에 최선을 다함에 있어 그 어떤 차별도 없었다는 것을 떳떳하게 밝힌다”고 말했다.

이 광고는 언론에 보도된 당사자가 반론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하나고 관계자는 “행정사무조사가 끝난 다음날인 28일 오후 4시쯤 긴급 교직원회의를 열어 의견을 수렴해 광고를 게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실상 광고 게재가 결정된 것은 이날 오전 김승유 이사장이 소집해 광고를 하라고 지시한 부장회의에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질문 듣는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전 회장_경향DB


정작 광고 내용은 ‘취사선택됐다’는 도마에 올랐다.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서울시의회 행정사무조사의 핵심이었던 입시성적 성비 조작 부분에 대해서는 학교 측이 “교육청 조사에서 밝히겠다”며 비켜갔기 때문이다.

광고에 실명이 나온 교직원 78명의 동의를 어디까지 받았는지도 의문이다. 학교 관계자는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게재한 것”이라고 했지만, 교사 1명은 회의에서 재단 측 소통 문제를 지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기숙사 사감과 학교 영양사 15명도 전원 광고에 이름이 포함됐지만, 이들 중 일부는 광고가 나간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한 교사는 “광고마감 시한인 6시를 15분쯤 앞두고 교직원회의를 마치면서 ‘동의하지 않는 교직원들은 문자로 의사를 밝혀달라’고 했다”며 “이사장 지시로 이뤄지는 회의에서 불참 의사를 밝히기는 사실상 어려웠다”고 전했다. 성비를 조작한 입시 비리의 출발점도, 교사와 광고를 앞세운 반격도 결국 ‘이사장의 뜻’이었던 셈이다.

교육기관에 어울리지 않는 일사불란함과 광고를 보면서 서울시교육청이 예고한 특별감사가 더 신속·엄정해져야 할 이유를 느낀다.


정원식 |정책사회부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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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영화 <소수의견>을 집에서 IPTV로 내려봤다. 개봉관에서 시간대가 맞지 않아 보지 못했던 영화다. 쉬는 날 집 근처 코엑스 메가박스에 가보니 하루에 두 차례만 상영하고 있었다. 다음 상영시간까지 기다릴 일이 막막해 발길을 돌렸다. <연평해전>이 극장가를 점령하던 때였다.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현실을 고발하는 영화는 종종 내용의 무게에 짓눌리거나 감정의 열도를 조절하지 못해 재미없고 촌스러워지곤 하는데 그런 우를 범하지 않았다. 영화 그 자체로 완성도가 높은 웰메이드 법정영화였다. 윤계상의 깊은 눈매, 유해진의 사려깊은 넉살, 김옥빈의 치기어린 터프함, 이경영의 흔들리는 눈빛, 김의성의 음산한 기운, 권해효의 권태로운 표정이 캐릭터에 잘 녹아들었다. 법정 공판 장면과 판검사들의 언행을 실감나게 묘사해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높였다.

철거용역과 한패가 된 경찰과 철거민이 충돌한 현장에서 의경 한 명과 철거민 박재호(이경영)의 아들이 죽임을 당한다. 의경을 죽인 사람은 박재호다. 박재호는 어쩌다 의경을 죽이게 됐는가, 박재호의 아들은 누가 죽였는가 쫓는 것이 영화의 뼈대다. 그 위에 진실을 밝히려는 쪽과 덮으려는 쪽의 대결과 수싸움이 펼쳐진다.


언론 시사회 끝난 소수의견 출연진들_경향DB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야 드러나지만 누가, 누구를 죽였는가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에 가깝다. 누구도 살인을 의도하지 않았고, 인물들은 주어진 상황에서 나름의 동기를 갖고 움직였기 때문이다. 문제로 삼아야 할 것은 누군가 죽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 ‘상황’ 자체이다. 자본과 한패가 된 공권력, 철거민을 양산하는 토건주의적 국가시스템이 그것일 테다. 박재호가 의경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자신의 행위를 “정당방위”라고 주장할 때, 또 죽은 의경의 아버지(장항)가 “그의 눈앞에서 아들이 죽었으니까요”라며 박재호의 주장을 옹호하면서도 “우리 아들은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고 절규할 때, 그들은 실은 국가야말로 유죄임을 논고하고 있는 것이다.

사법부는 국가라는 시스템을 단죄하는 데 한없이 무기력하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박재호와 죽은 의경의 아버지의 눈빛은 종종 갈피를 잃는다.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는데,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국가라는 추상적 실체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것 같다. 사건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검사직을 떠난 홍재덕(김의성)은 사건의 실체를 파헤친 변호사 윤진원(윤계상)에게 영화 말미에 비릿하게 말한다. “국가라는 건 말이다, 누군가는 희생을 하고, 누군가는 봉사를 하고, 그 기반 위에서 유지되는 거야. 말하자면 박재호는 희생을 한 거고 나는 봉사를 한 거지. 근데 너는… 결국 너는 뭘 한 거냐? 니가 하는 게 뭐야 인마.” 국가는 그 자체로 이유이자 목적이라는 홍재덕의 말은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도록 하는 역설적 효과를 낳는다.

영화는 용산참사를 모티브로 한 듯하지만 내용은 허구이다. 그러나 의도했건 안 했건 ‘국가의 폭력’이라는 용산참사의 본질을 드러내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국가를 묻는다는 점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영화적 응수로도 읽힌다. <국제시장> <연평해전> <암살> 등 애국주의적 정조의 영화가 대세를 점한 올해 한국 영화시장에서 <소수의견>은 38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것은 ‘좋은 국가’이고, 좋은 국가는 지금의 문제점을 부단히 환기하고, 공론화하고, 개선해야 만들 수 있다.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 행위는 좀 더 어엿한 국가를 만드는 첫걸음이다. 국가를 절대화하고 아무런 문제제기도, 비판도 하지 않는 것은 개선의 노력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소수의견>의 흥행부진이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이른바 애국주의 흐름의 기우뚱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정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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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의) 처에게 전화해서 2014년 12월22일 진료비 16만1720원 납부 여부를 고지함, 아직 여력이 없어서 납부하기 힘들다고 함.”

의정부교도소 수감 중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식물인간이 된 강모씨(58)의 간호기록 일부다. 이 기록은 지난 2월4일자에 남아 있다. 강씨는 지난해 11월 1차 척추수술을 받고 두 달 뒤인 1월부터 손발 마비 증상을 호소해왔다. 4월 2차 수술(경추)을 받았지만 다음달 형집행정지 다음날 의식을 잃었다 (경향신문 8월6일자 10면, 7일자 12면 보도).

비슷한 증세인데 1차 수술은 강씨가, 2차 수술은 국가가 비용을 부담했다. 1차 수술 후 더 심한 마비 징후가 있었는데도 교정당국이 한참 동안 이를 외면했다. 법무부는 함구하고 있지만, 그 답은 ‘가족이 돈이 없다’는 강씨의 의무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교도소의 3월4일자 기록엔 “외부의료시설에서 진료했으나, 진료비 16만1720원 중 5만1720원을 자비로 처리하고 나머지 금액은 영치금 미비(잔액 4206원)로 본인부담금 일부를 국가예산에서 지급했음”이라고 적혀 있다.

수용자가 아프자 처음엔 자비 치료를 신청한 것처럼 처리해 국가 예산 집행을 피하다가 강씨 가족이 몇 만원조차 낼 수 없게 됐음을 확인하고 그제서야 예산을 투입한 것이다.


탈세,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12일 항소심 선고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구급차에서 내려 휠체어를 타고 법정으로 가고있다._김영민 기자


이재현 CJ 회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수감 중 민간치료를 받았다. 이들은 거액을 들여서라도 이런 기회를 얻으려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강씨는 빈곤했다. 교정당국이 미적거리는 사이 그는 치료 적기를 놓쳐 회복 불능 상태에 빠졌다.

법무부는 ‘죄수에겐 치료비도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형집행법엔 교도소 수용자의 건강과 치료는 국가가 책임진다고 명시돼 있다. 강씨에 대한 법원 선고는 ‘징역 7년’이지 ‘식물인간형’이 아니다


홍재원 사회부 기자 jw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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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지만 재밌는 작품이 있다. 신경숙 작가가 표절한 것으로 추정된 작품 ‘우국’이 그렇다. ‘우국’은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1925~1970)가 1961년 발표한 단편이다. 이 작품의 절반은 섹스 묘사고 나머지 절반은 죽음 묘사인데, 이렇게 자극적이면서 심오한 소재를 솜씨 있게 다룬다면 작품에 대한 호오와 상관없이 재미가 있을 수밖에 없다. 모든 인간은 섹스의 결과로 태어나고 또 언젠가 죽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마치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듯 혹은 영원히 죽지 않을 듯한 표정으로 살아간다. 소설가는 그런 사람들의 뒤통수를 때린다.

1936년 2월26일 천황 중심의 강력한 국가 개조를 주장하는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가 ‘우국’의 배경이다. 신혼의 단꿈에 빠져 동료들의 쿠데타에 끼지 못한 다케야마 중위는 다음날이면 동료들을 진압하러 나가야 한다. 친구들을 쏠 수 없다고 생각한 다케야마는 죽음을 다짐한다. 젊은 아내 레이코 역시 남편을 따르기로 결심한다.

부부는 죽음을 결행하기 전 마지막으로 동침한다. 미시마는 “젊고 건강한 육체”를 가진 남녀의 섹스를 묘사하는 데 탁월한 재주를 보인다. “중위의 눈이 본 그대로를 입술이 충실히 다시 그렸다” 같은 문장에는 탄식이 나온다. 젊은 신혼부부의 정사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던 이유는 곧이어 다가올 죽음 때문이다. 중위는 군복 상의의 단추를 푼 뒤 날카로운 칼 위로 잘 단련된 상체를 엎는다. 내장이 바깥으로 쏟아지며 내는 비린내와 날카로운 칼이 피부를 가르며 유발하는 찌릿한 고통이 글자 너머로 전해진다. 부부의 건강한 쾌락과 피·고통·죽음의 축제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면서 서로를 상승시킨다. 그러나 궁극의 파멸로 향하는 이 같은 대비는 매력적일지언정 건강하지 않다.

성인 관객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는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전체관람가 영화인 <인사이드 아웃>을 잔인하고 에로틱한 ‘우국’과 비교하는 건 어색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인사이드 아웃> 역시 정반대 속성을 가진 것들이 어울릴 때 내는 삶의 효과를 보여준다.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한 장면. _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인사이드 아웃>에는 감정이 의인화된 형태로 등장한다.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등의 감정은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사춘기에 접어들기 직전의 소녀 라일리를 움직인다. 다섯 감정 중에서도 주인공은 기쁨이다. 라일리가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기쁨은 라일리 유년기의 많은 시간 동안 본부의 움직임을 주도했다. 미국 중산층 가정의 딸 라일리는 대체로 밝고 명랑하고 행복한 나날들 속에 성장한다. 나머지 감정들도 역할이 있다. 예를 들어 소심은 라일리가 전깃줄 너머로 세차게 달려나가려는 순간 버튼을 누름으로써, 라일리가 속력을 줄이고 넘어지지 않게 한다. 그러나 기쁨은 의문을 품는다. “슬픔은 무슨 일을 하지?” 손대는 기억 구슬마다 우울한 푸른색으로 변하게 하는 슬픔을 나머지 감정들은 경계한다.

짐작할 수 있다시피, 영화는 우리의 삶에는 기쁨과 슬픔이 모두 필요하다는 결말로 향한다. 슬픔은 몸과 마음을 물에 젖은 솜처럼 처지게 하지만, 그러한 영육의 상태를 타인과 공유함으로써 사람들은 감정의 공동체를 이룬다. “결혼식엔 안 가도 장례식엔 가라”는 말이 있다. 기쁨을 나눌 때보단 슬픔을 나눌 때 더 큰 힘이 된다는 경험을 함축한 말일 것이다.

‘우국’의 섹스와 죽음은 서로를 극대화시키면서 인생을 찢어놓고,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과 슬픔은 서로 어울리며 인생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든다. 우리의 일상은 대체로 같은 궤도를 반복해 돌지만, 때로 양극의 경험을 피할 수 없는 때가 있다. 마음의 탄력성을 발휘해 극단의 체험을 극복하고 통합할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한 인간이 될 것이다. 무더위 뒤 찾아온 한줄기 서늘한 바람에 지복(至福)을 느끼는 사람처럼.


백승찬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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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 보면 유명인들에 관한 이런저런 소문들이 듣고 싶지 않아도 귀로 날아든다. 깔끔해 보이는 아무개는 사무실에서 일말의 거리낌도 없는 ‘방귀대장 뿡뿡이’라든지, 말이 정갈한 아무개가 크게 화가 나면 욕설을 호되게 퍼붓는다는 등의 이야기들이다. 인간인가 싶을 정도로 완벽한 사람이 품은 질그릇 같은 면모는 꽤나 유쾌한 반전이라서 대부분은 웃어넘긴다.

하지만 어떤 소문들은 당장 귀를 씻어내고 싶어진다. 헌신적인 직업윤리로 호평받은 아무개가 부하 직원을 성추행했다든지, 아무개가 상징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든지 하는 이야기들이다. 겉만 봐서는 모르는 게 사람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맥락의 불일치는 본능적인 불쾌감으로 이어진다. 그 불쾌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오는 건 ‘사람에게 희망을 걸어도 될까’ 싶은 불안이고,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 것은 ‘별수 있느냐’는 냉소였다.

일단 머리를 흔들어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냈다. ‘겉’은 한 사람의 편린 아니던가. 그가 사회에 보여주고자 의도하는 모습이자, 사람들이 그에게서 보고자 하는 모습이다. 그 일부를 보고 사람들은 나머지를 추론한다. 인격의 일관성에 대한 합리적인 기대인 셈이다.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 ‘착한 학생’일 것이라고, 직장에서 따뜻한 상사가 가정에도 충실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식인데, 그런 기대는 어느 정도 효용을 갖는다. 개인은 보통 그에 부응해서 사회적 수용과 인정을 받고자 노력하고, 결과적으로는 더 나은 개인과 사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완벽한 인격’을 기대할 때 발생한다. 보통의 사람은 대개 초콜릿 아이스크림과 마시멜로가 회오리 모양으로 맞물린 ‘구구콘’처럼 선과 악이 내면에 복잡하게 얽혀 있다. 스스로 경계하기를 조금만 게을리해도 마음의 균형이 깨지고 욕망이 대가리를 치켜든다. 오죽 마음 다스리기가 힘들면 ‘술에 취한 코끼리’ 비유가 나왔을까. 미디어 속의 유
명인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뮤지컬 캣츠_경향DB


하지만 현대의 ‘올림푸스 신전’ 격인 매스미디어를 통해 일종의 착시현상이 벌어진다. 뮤지컬 <캣츠>에서 선택받은 고양이가 승천하는 것처럼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신전에 오른 이들은 보통 이상의 자질을 기대받는다. 그는 ‘구구콘’이지만 ‘구구콘’이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 안의 가장 좋은 것들을 그 사람에게 투사한다. 변혁을 꿈꾸는 이들은 ‘미디어 신전’ 속의 그에게서 정의로운 용사의 모습을 본다. 포용을 바라는 이들은 누군가에게서 자애로운 어머니의 상을 발견한다. 그렇게 투사의 대상을 무결한 존재로 치켜세운다. 어쩌면 자신의 불완전함과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의 편법일 수도 있다. 그를 ‘숭배’함으로써 나는 완전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할 심적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그 끝은 그리 건강하지 못하다. 치켜세움을 받은 이의 자아가 거대하게 팽창하면서 결국 사고를 치는 이야기는 이미 뉴스 속에 넘쳐난다. 반대로 사람들은 그에게서 큰 흠이 발견됐을 때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맹목적으로 감싸거나, “그런 놈이었네”라며 매몰차게 내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기 일쑤다. 미디어 신전에서 내쫓길 위기에 놓인 대상 역시 좀처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아무도 성장하지 못하고 모두가 패자가 된다.

실망감에서 시작된 생각의 실타래는 타인이 실패하고 반성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믿어주는 신뢰와 무조건 잘해야 한다고 다그치는 기대는 매우 다르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나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넉넉하게 포용할 때 타인의 불완전함 역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얄팍한 기대보다는 묵직한 신뢰가 하나둘 모일 때에야 ‘변화’라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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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시청하면 고통과 우울이 동반된다. 한국에서는 19일 종영한 다섯번째 시즌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사이, 시청자들을 달래기라도 하려는 듯 비감한 첼로 선율로 편곡된 타이틀곡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어수선한 마음은 내년 여섯번째 시즌이 시작할 때까지 이어질 것 같다. 이 드라마에선 너무 많은 사람이 죽는다. 믿음직한 아버지가 죽고, 무고한 소녀가 죽는다. 불굴의 장군이 죽고, 탁월한 지도자가 죽는다. 물론 악당도 죽는다. 그러나 악당이 죽을 때조차 통쾌하기보다는 씁쓸하다.

한밤중 화장실에서 일을 보다가 친족이 쏜 석궁에 맞아 죽는다면, 그런 죽음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는 어렵다. 여름 극장가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죽음을 직접 다루지 않는다. 죽는다 해도 단역, 조연, 악당이다. 간혹 주인공도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있지만, 이때는 대의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라는 식의 메시지를 덧붙여 관객이 비참해지지 않도록 배려한다. 그 어느 때에도 아이들은 죽지 않는다는 게 불문율에 가깝다. 하지만 <왕좌의 게임>에서 죽음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아이들도 명분없이 죽어나간다. 북쪽에서 온 좀비들에게 물어뜯기거나, 포악한 군인의 칼에 죽는다. 심지어 아버지의 야망을 위해 산 채로 불태워지기도 한다.

<왕좌의 게임>은 가상의 대륙에 자리한 7개 국가를 배경으로 한다. 용과 마법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판타지이지만, 인물들의 복식, 행동양식, 세계관 등은 서양의 중세에서 따왔다. 원작자 조지 R R 마틴은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내 책이 역사에 근거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빛나는 갑옷을 입은 왕자가 아름다운 공주와 낭만적 사랑을 나누는 ‘디즈니랜드식 중세’는 없다.

중세는 극단의 시대였다. 중세인들은 죽음에 대한 생각에 무척이나 집착했다. 네덜란드의 역사가 요한 호이징가는 저서 <중세의 가을>에서 그 풍경을 묘사한다. 당시 <귀족들의 생활방식>이란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고 한다. “침대에 누울 때는 늘 이것을 생각하라. 잠자리에 들 듯이, 그대는 곧 다른 사람들에 의해 무덤에 들게 될 것이다.” 수도원은 창자가 벌레들에게 뜯어먹히는 시체들의 그림으로 장식됐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출처 : 경향DB)


반면 현대는 평평하다. 역병이 퍼지거나, 메뚜기떼가 창궐하거나, 마녀사냥이 벌어지거나, 귀족들의 자존심 싸움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빠르고 편리하게 목적지에 갈 수 있다. 조금 아프더라도 최신 의료장비를 갖춘 대형병원에 가면 노련한 의사들이 병을 고쳐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인터넷에는 또 얼마나 많은 정보와 여론이 있는가.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의사소통 수단을 가졌다. 이러한 현대 문명의 축복들로 인해 우리의 일상은 대체로 예측가능하고 안전한 궤도를 지난다고 알았다. 이제 ‘메르스 이후’다.

정부와 의료계는 메르스가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에게만 위험하고, 병원 안에서만 감염된다고 했다. 그런 줄 알고 안심했다. 그런데 자꾸 공식 발표를 의심케 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언론과의 인터뷰에 당당히 임했던 젊은 의사가 며칠 사이 ‘불안정’한 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병원 바깥에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들이 자꾸 나왔다. 1차 감염자, 2차 감염자, 3차 감염자에 이어 4차 감염자까지 나왔다. “이번 주말이 고비”라는 말이 몇 주째다. 정말 메르스가 병원 바깥에서도 감염된다면, 감염을 막을 길은 없다고 봐야 한다. 중세의 사람들이 그러했듯, 우리의 목숨은 운에 맡겨야 한다.

자동차 사이드 미러에 쓰여진 문구를 패러디하면 이렇다. “죽음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중세인들의 경구를 차용하면 ‘메멘토 모리’다. 이렇게 우리는 중세로 돌아왔다. 아니 어쩌면 세상은 언제나 잔혹한 중세였는지도 모른다.


백승찬 |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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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8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전문가와 함께 서울 강남구 일원동 대모초등학교를 찾아 학부모들과의 간담회를 열었다. 이틀 전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는 중동 독감과 같은 것”이라며 불안을 잠재우던 곳이다. 교육부는 간담회가 박 대통령 방문 당시 학부모들이 제기한 불안과 궁금증에 답하는 후속조치 성격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통령과 부총리가 이틀 새 같은 학교를 방문하는 것을 두고는 ‘과잉’이라는 지적이 겹친다. 그만큼 정부 차원에서 ‘강남 엄마 달래기’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대치동과 인근 지역은 메르스 2차 유행을 일으킨 삼성서울병원과 가깝다는 상징성도 있지만, 각종 루머와 불안 확산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학교 휴업의 불씨를 전국으로 댕긴 것도 이달 초 대치동 초등학교들의 휴업 결정이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해 휴업을 했던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가 등교를 재개해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손소독제를 뿌려주고 있다. (출처 : 경향DB)


교육수장의 방문 후에 정작 강남 학부모들 사이에선 정부가 번지수를 잘못 찾고 있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초등학교 남매를 둔 역삼동의 한 학부모는 “정부는 근거없는 소문을 퍼뜨리지 말라고 하지만 학부모·학교가 알아야 할 믿을 만한 정보는 왜 주지 않느냐”며 “어제만 해도 학원이 밀집한 건물의 병원에 확진자가 다녀갔다, 의심환자가 발생한 학교가 있다는 카톡 메시지로 하루 종일 불안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강남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확진자·사망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는 전혀 현실감 없는 쇼로만 보인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의 불안을 잠재우는 것은 ‘특별 서비스’가 아닌 정부가 일하고 있다는 믿음이다.


송현숙 정책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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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수학소녀’ 김모양의 이야기가 국내 언론에 대서특필됐을 때 경향신문도 뒤늦게 그 대열에 동참했다. 다른 보도를 인용하는 식이었지만 많은 독자들이 “어떻게 대학 측에 확인도 하지 않고 기사를 쓰느냐”며 항의해왔다.

‘기레기’라는 말도 들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대학과 해당 교수, 고등학교를 상대로 취재를 시작했다. 내심 김양의 이야기가 사실이기를 바라면서.

취재 과정에 처음 접한 말은 이랬다. “당신은 보도하기 전에 당연히 크로스체크 해야 한다.” 기자의 기본수칙을 미국의 젊은 수학자에게 듣게 되는 심정은 참담했다. 제이컵 폭스 스탠퍼드대 교수는 애초 하버드대에 조기합격한 김양의 천재성을 극찬하며 데려가려 하다가 결국 두 대학을 2년씩 나눠 다니도록 만들어줬다고 보도된 인물이다.

그는 “김양과 같이 연구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했다. 조지프 해리스 하버드대 교수는 “김양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김양의 하버드 합격증이 위조됐다고 확인한 하버드 공보팀장 애나 코웬호번은 “먼저 연락줘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김양 같은 특별전형에 지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학부모들의 문의가 와서 그런 보도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어느 언론도 하버드에 확인을 요청한 곳은 없었다고 했다. 대학 측이 나서서 바로잡고 싶던 차에 먼저 연락을 해줘서 고맙다는 것이다.

미국의 명문 하버드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에 동시 진학했다는 미국 유학 여고생 김정윤(18)양의 주장에 대해 스탠퍼드대학측은 합격사실을 부인했다. _ 연합뉴스


그는 김양의 합격 여부는 개인정보여서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공적인 관심사가 되었기 때문에 비보도를 전제로 ‘불합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김양의 아버지가 그 말을 믿을 수 없다며 합격증을 공개하자 대학 측은 “부모가 공개에 동의했다”는 이유로 비보도를 해제하고 합격증의 진위를 판별했다. 결과는 위조로 드러났다. 비슷한 과정을 거쳐 스탠퍼드 합격증도 위조됐음을 알게 됐다. 누가 김양의 합격증을 위조하고, 가짜 e메일을 동급생들과 언론에 보냈는지는 차차 드러날 것이다. 자식을 둔 부모로서 이런 소식을 전하는 마음이 결코 편치 않았다.

하지만 미국의 유명 대학 입학을 둘러싼 이번 소동은 한국사회에 뿌리깊은 학벌주의와 그것이 몸에 밴 젊은 학생들과 부모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확인 없이 확대재생산하는 언론에 울리는 경종이다.

애초 했어야 할 일을 1주일이나 늦게 하는 바람에 얼마나 일이 커졌나. 그래서 더 아쉬울 뿐이다.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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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기부를 희망하는 변호사들이 마을 주민들에게 무료 법률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을변호사 제도’가 도입된 지 2년이 됐다. 4일 법무부는 마을변호사 제도 도입 2년을 맞아 보도자료를 내고 브리핑을 했다. 법무부는 올해 들어 월평균 상담건수가 50건으로 전년보다 2배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마을변호사 활용 사례를 알아보기 위해 마을변호사들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마을변호사를 검색하면 원하는 읍·면 지역 담당 마을변호사의 연락처와 e메일 주소를 알 수 있다. 1500명의 마을변호사 가운데 극히 드물게 휴대전화 번호를 등록한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사무실 유선전화 번호를 등록해놨다.

ㄱ변호사가 등록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마을변호사 때문에 연락드렸는데요. ㄱ변호사님 계세요?” “ㄱ변호사님이 이틀 전에 퇴사했습니다. 개인 번호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대한변협에 물어보시죠.”

대한변협이라고 했지만 실제 그가 알려준 번호는 서울지방변호사회 대표번호였다.

서울변회에 전화를 걸었다. 지루한 기계음의 자동응답시스템(ARS)을 거친 뒤 ‘사람’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변회 직원은 대한변협에 문의하라며 대표번호를 알려줬다. 대한변협에서도 수차례의 ARS 벽을 넘어 담당자와 겨우 통화할 수 있었다. 담당자는 “다른 전화번호가 없어서 따로 알려드릴 방법이 없다”며 기자가 처음 인터넷에서 찾은 번호를 알려줬다. 그 외의 번호는 없다고 했다.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지난 달 24일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마을변호사는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에 취임한 뒤 공격적으로 추진한 제도다. 법무부가 자랑하는 황 후보자의 치적 중 하나다.

그러나 상담건수로 보면, 매달 마을변호사 100명당 3명만 상담을 하는 셈이다. 마을변호사 제도가 황 후보자의 진정한 치적이 되려면 노력이 더 필요할 것 같다.


김경학 사회부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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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갈수록 긴 글을 읽지 않는다고들 한다. 18~19세기 유럽에서 단행본이 대중화되던 시절에는 <신 엘로이즈>처럼 숨막히는 두께에다 지금 기준으로는 따분하기 짝이 없는 소설도 대중의 가슴을 뛰게 했지만 지금은 첫 문단 아니면 제목만 읽고도 ‘노잼’(재미없음을 일컫는 온라인 조어) 판정을 내리고 흘려보낸다. ‘꿀잼’이 아닌 이상 긴 호흡이 필요한 콘텐츠는 갈수록 소비자들에게 외면받는다.

이 같은 현상은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바일 기기와 인터넷이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투자 회사 KPCB의 분석가 매리 미커의 ‘2015년 인터넷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모바일 사용시간은 2008년 0.3시간에서 올해 2.8시간으로 크게 늘었다. 특히 손바닥만 한 모바일의 작은 창에 담긴 사진과 짧은 텍스트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유되고 확산된다. 이 같은 콘텐츠에 익숙해지다보면 원고지 20장 길이의 글도 상대적으로 대하소설처럼 느껴진다. 길찾기 같은 ‘요약’ 없는 긴 글의 행간 사이를 헤매도록 만드는 건 바쁜 사람들에게는 불친절 그 자체다.

한 남성이 자신의 스마트폰 사진첩을 확인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 같은 영향 때문인지 미국에서는 주요 블로그 서비스의 트래픽이 지난해부터 급감하고 있다고 한다. 2013년 야심차게 선보였던 블로그서비스 ‘미디엄’은 트래픽 성장이 멈췄고, 또 다른 서비스인 워드프레스는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박상민씨는 이에 대해 전 세계 사용자가 14억명에 달하는 “페이스북이 오프라인 지인 관계에서 나아가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퍼블리싱 플랫폼까지 모두 먹어치우는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페이스북은 언론사 콘텐츠도 ‘인스턴트 아티클’ 서비스를 통해 자사 플랫폼에 끌어들이면서 기사링크가 열리는 몇 초의 시간을 지루하게 기다리는 독자를 배려하기 시작했다. ‘노잼’이야말로 모바일시대의 악덕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저널리즘의 고민은 한층 깊어진다. 읽는 데 10분 이상 걸리는 묵직한 스토리텔링 실험이나 개발이 복잡한 뉴스 콘텐츠는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볼 때 언론사에서 매력을 잃게 될 수 있다고 에밀리 벨 컬럼비아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최근 가디언 칼럼에서 지적했다. 언론사들은 이제 모바일 기기에 적합한 방식으로 소비될 더 많은 동영상과 사진을 비롯한 콘텐츠를 낮은 비용으로 확보해야 한다. 지면기사에 익숙한 방식의 글쓰기도 달라져야 한다. 종이가 한 시대 콘텐츠 문법의 바탕이 된 것처럼, 모바일 화면이 다음 시대의 콘텐츠 문법을 견인하고 있는 셈이다. 전통적 언론사들의 ‘노잼’ 콘텐츠는 갈수록 외면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꿀잼’이 반드시 미덕인가. 닐 포스트먼이 <죽도록 즐기기>에서 텔레비전의 등장 이후 정치사회의 공적담론들이 ‘쇼비즈니스’화되는 현상을 지적했듯이 모바일의 등장 이후 달라지는 담론의 결 역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적잖은 문화 콘텐츠 생산자들이 소비 호흡이 짧은 모바일 기기를 사용한 이후 ‘사고의 지구력’이 떨어지는 경험을 토로한다. 내 것으로 체화되지 못한 채 빠르게 손가락 끝을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허무함도 말한다. 자신과 사회적 계급과 지향점이 비슷한 사람들과 정보를 교류하는 과정에서 확증편향의 덫에 빠질 위험도 있다. 좋은 직관은 수고스러운 학습을 통해 얻는 선물인데 인터넷을 통해 스쳐간 정보는 그 같은 학습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모바일은 새로운 노마드가 된 현대인들을 연결하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동시에 현대인들의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는 양날의 칼 같은 혁신이기도 하다. ‘꿀잼’을 찾아 터치스크린을 헤매는 나의 손가락은 ‘콩’이란 보상을 얻으려고 부리를 놀리는 실험실의 비둘기와도 닮아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단 것 많이 먹으면 이가 썩는다고 했으니 오늘부터는 ‘꿀잼’ 챙길 때 스스로를 단속해야겠다.


최민영 미디어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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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분야의 유엔총회’로 불리는 ‘2015 세계교육포럼’이 21일 모두를 위한 포용적이고 평등한 양질의 교육과 평생학습을 강조하는 ‘인천선언’을 채택하고 막을 내렸다. 그러나 송도에서 사흘간 진행된 포럼은 세계 최대 교육행사라는 외형적 화려함에 가려졌을 뿐, 30~40년쯤 거슬러 올라간 듯한 구태가 이어졌다.

지난 20일 오후 학교나 학년 전체가 체험학습을 왔다는 인천의 5개 중·고교생들을 만났다. “정말 재미없었어요.” 건물 벽에 기대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아이들은 “아직도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며 입이 잔뜩 나와 있었다.

길 건너 편의점 앞에서 컵라면을 먹던 아이들은 “빨리 출첵(출석체크)하고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국내의 많은 초·중·고 학생들이 방문하여 ‘성황리’에 운영되었다”고 자평한 행사의 실상이다.

이례적인 취재 제한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난 19일 개막식 후 한 언론사 기자는 한국교육의 실상을 비판하는 교육단체들의 기자회견 자료를 들고 회의장에 들어가려다 제지당했다. “행사를 저해할 수 있어 반입할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다음날 기자도 정보통신기술(ICT) 첨단교실관 수업 현장을 찾았다가 제지당했다. 어떻게 오게 됐는지 물어보려 했지만, 현장 수업을 기획한 한국교육학술정보원 관계자는 “학교 측이 불편해 한다”며 기자의 팔을 붙잡았다. 알리고 싶은 것만 보여주려는 의도가 읽혔다.

분과회의장에선 예정된 시간을 10~15분 넘기도록 장소도 정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거나 한국어 통역서비스조차 제공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2015 세계교육포럼 둘째날인 20일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외국의 교육 관계자들이 회의 과정을 스마트폰으로 찍고 있다. (출처 : 경향DB)


메인 행사장 현관 앞,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자리잡은 새마을운동 홍보관은 교육부가 무엇을 알리고 싶은지, 우리 교육시계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보여줬다. ‘높은 사람’이 학교를 찾으면 각본을 짜 연습하고, 국가 원수 순방길에 태극기를 흔들던 부모 세대 모습을 아이들에게 물려준 듯해 부끄럽고 미안했다. 누구를 위한 포럼인가 묻게 된다.


송현숙 정책사회부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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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국회에서 가계통신비 인하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가계통신비 경감 당정협의’가 열렸다. 원유철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홍문종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회의에서 단연 화제가 된 건 이동통신사들이 최근 발표한 ‘데이터중심요금제’다. 월 최저 2만원대 요금으로 음성통화를 무제한 제공하는 게 이 요금제의 주요 골자다.

참석자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통신비 인하는 마침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때 공약이다.

새누리당은 협의 결과자료를 배포해 “우리나라 이동통신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며 “당이 공약한 가계통신비 경감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이라고 밝혔다. 최 장관은 “데이터중심요금제가 방송 등 콘텐츠 산업의 혁신을 불러일으키고, 사물인터넷 등 산업의 개편을 가져다 줄 잠재력을 가진 요금제”라고 말했다.

당정 평가만 들어보면 ‘천지개벽’을 일으킬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음성통화량은 2011년 이후 가입자 대비 감소 추세라 큰 수익원이 되지 못한다. 수익이 덜 되는 음성통화를 싸게 파는 대신 돈이 되는 데이터를 비싸게 팔겠다는 게 이 요금제의 본모습이다.

이 때문에 데이터가 ‘중심’이 되는 요금제임에도 기본으로 제공되는 데이터양은 오히려 기존 요금제들보다 적다. 최저 2만9900원 요금제에서 제공되는 300MB(메가바이트)의 데이터로는 고화질 드라마 한 편 보기도 힘들다.

LTE 데이터 중심 VIDEO 요금제6종 (출처 : 경향DB)


미래부는 “음성통화가 많은 자영업자, 택배기사, 주부 등이 큰 혜택을 볼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말이다. 요즘 택배기사들과 자영업자도 스마트폰으로 업무를 본다. 데이터 사용량이 결코 적지 않아 실제 혜택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상호 의원은 성명을 내고 “이 요금제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통신요금에 포함된 기본요금 폐지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송진식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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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시대는 아니었으나 시절의 공기에는 혁명의 신열이 가시지 않고 남아 있었다. 군부정권이었지만 군부독재라고 부르기도 힘들었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정권 타도’를 외쳤지만 정권이 정말 타도될 것이라고 심각하게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시대였다. 몸에 밴 비장함은 영화 속 찰리 채플린의 기계적 움직임처럼 우스웠고, 저마다 비극의 주인공을 자처했지만 실은 소극의 주인공일 뿐이었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1990년대 초반의 이야기다.

내가 손석희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의 원형이 만들어진 것도 그 시기였다. 한 장의 사진이 특히 강렬했다. 푸른 수의를 입고 수갑과 포승에 묶인 채 법정에 들어서는 손석희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당시 MBC 파업의 도덕적 자신감을 이보다 잘 보여주는 장면은 없다. 기억이 흐릿해 기사를 검색해보니 1992년 사진이라고 나온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따른 농가의 피해를 보도하려는 걸 사측이 막자 노조가 파업에 나섰고, 당시 MBC 아나운서였던 손석희도 파업에 참여해 구속됐다.

그때부터 손석희는 내게 직업윤리의 어떤 표상처럼 느껴졌다. 바야흐로 혁명가의 시대는 가고 전문가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는데, 손석희는 모름지기 전문가의 마음자세와 직업윤리는 어때야 하는지 몸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받은 그런 인상에는 이미지 시대의 도래라는 흐름도 영향을 준 게 아닌가 싶다. 여러모로 손석희는 그 시대가 호출하기 제격인 사람이었다.

jtbc가 경향신문의 ‘성완종 인터뷰 녹음파일’을 옳지 않은 방법으로 습득해 내보내는 것을 보고 우울했던 건 그것이 손석희의 방송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매우 단순하다. jtbc는 한 보안 전문가가 경향신문 측으로부터 빼돌린 녹음파일을 받아 경향신문이 인터뷰 전문을 보도하기 7시간 전 방송에 내보냈다. 취재윤리? 어겼다. 남의 것을 훔치고 가로채면 안된다는 단순한 사실을 논하기 위해 언론학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다. 보도의 공익성, 다시 말해 jtbc의 7시간 전 육성 보도로 새롭게 얻게 되는 진실은? 아무리 봐도, 없다. 간혹 ‘정당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부당한 수단의 사용’류의 윤리적 딜레마 비슷하게 이번 일을 보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손석희가 보도의 명분으로 ‘사실과 진실’ ‘국민의 알 권리’ 등을 내세우며 짜놓은 프레임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도해서 얻는 부가적 진실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누구도 설명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음성이 문자보다 더 생생하다’는 정도인데, 그 ‘생생함’을 통해 진실의 어떤 부분이 베일을 벗고 드러났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4월 16일자 jtbc 뉴스룸 방송캡쳐. (출처 : 경향DB)


더욱이 경향신문은 김기춘, 허태열, 홍준표, 이완구의 금품수수 의혹 등 주요 내용은 음성파일을 공개한 터였다. jtbc의 보도가 미친 영향은? 하나 있다. 그 시간대 jtbc 뉴스 시청률이 2배 가까이 올랐다고 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웠지만 공익보다 사익을 위한 보도였다. 정작 jtbc가 ‘국민의 알 권리’라는 기준을 들이댈 곳이 있다면 jtbc가 보도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는 진실 혹은 사실과 관련된 건이다. 이를테면 지난해 말 파문을 일으켰던 비선농단 의혹 사건 때 민정수석실로부터 회유를 받았다는 한모 경위와의 인터뷰 음성파일 같은 것이다.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 담겨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그 음성파일을 왜 온전히 방송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손석희에 대한 대중의 지지와 환호는 그가 곧은 언론인으로 살아온 데 따른 응당한 결과물일 것이다. ‘기레기’라는 말에서 보듯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시대에 손석희처럼 신뢰받는 언론인이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영향력의 크기만큼 윤리적 책임도 무거워지는 법이다. 이번 잘못을 거울삼아 시민의 지지를 공적으로 선용하는 언론인으로 남기를 바란다.


정제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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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손석희

주말이면 옛 한국 영화를 본다. 한국영상자료원이 필름을 모으고 복원해 온라인에 공개해놨다. 1960~1980년대 시대상을 타임머신 탄 듯 관찰하면 현재를 낯설게 바라보게 되는데, 동시대의 ‘날줄’만으로는 잡을 수 없던 생각의 ‘씨줄’이 손끝에 닿는다.

여성상은 그 씨줄의 한 가닥이다. <오발탄>(1961)에서 해방촌의 명숙은 가난한 가족을 위해 자발적으로 ‘양공주’가 된다. <영자의 전성시대>(1975)에서 식모였던 주인공은 사고로 한 팔을 잃고는 종로 뒷골목으로 흘러든다. <뽕>(1986)은 가난하고 억척스러운 인협이 일제 치하 산골에서 몸 파는 이야기를 해학적으로 그리고 있다. 상류층 여성이 등장하는 <맨발의 청춘>(1964)같은 경우는 비교적 드물다. 여성들은 가난의 최전선에서 힘겹게 버텨낸다.

이들을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에는 온기가 어려 있다. 여성의 아름다운 몸을 욕망하고 손찌검하고 차별하다가도 끝내 기구한 삶을 동정하고 연민한다. 얼핏 모순적인 이 같은 태도는 여성 가족구성원의 희생에 대한 한국 남성들의 집단적 부채의식, 그러니까 미안함과 죄의식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희생했고, 딸은 고등교육의 기회를 오빠나 남동생에게 양보하고 공장 노동자와 식모같이 저임금의 열악한 조건으로 일하던 시절이었다. 가부장사회에서 한 가족이 성공을 꾀할 때, 집중된 자원의 수혜를 입는 쪽은 대개 남성이었다. 자동차 운전을 배워 성공하겠다던 영자가 학원비가 없어 포기했던 것처럼, 여성들에게 현실은 좀체 벗어날 수 없던 강력한 중력장이었다.

이들 영화와 비교하면 오늘날 여성에 대한 싸늘한 온도는 두드러진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된장녀’ ‘김치녀’ 같은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최근 모 개그맨의 여성 비하 발언은 글로 옮기기 참담할 지경이다.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수준의 혐오는 이미 오프라인으로 울타리를 넘었다. 각종 TV쇼에서는 재능있는 여성 희극인들을 ‘오크녀’인 주제에 예쁜 척한다며 웃음거리로 만든다. 지상파의 막장드라마에는 욕심 많고 그악스러운 여성 캐릭터가 시청률 상승을 위한 ‘욕받이 무녀’처럼 등장한다. <무한도전> <1박2일> 같은 인기 예능 프로그램들은 남성천하다. 한국 영화산업은 2013년 매출 1조8839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여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은 가뭄에 콩 나듯 했다.

종교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은 워싱턴시의 포스터 (출처 : 경향DB)


여성혐오의 여러 사회적 원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괜찮은 일자리’ 부족이 아닐까. 남성에게 여성은 연민이 아닌 경쟁 상대이다. 1990년 33.2%였던 대학진학률은 2008년 83.8%로 정점을 찍었다. 2009년에는 남학생보다 더 많은 여학생이 고등교육에 진입했다. 여성고용률은 지난해 54.9%로 30여년 만에 13%포인트 넘게 늘었다. 하지만 일자리는 외환위기 이후 대부분 비정규직화됐고 청년실업률은 올 3월 10.7%로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양성평등은 그렇잖아도 작아진 ‘밥그릇’을 나누자는 고까운 얘기로 들릴 것이다.

노동시장 변화 여파로 달라진 결혼과 연애의 룰도 남성들에게는 불편하다. 일부일처제가 대부분의 남성에게 허용됐던 시기는 인류사상 2차 세계대전 이후 폭발적 경제성장기에 불과했다. 빈부격차가 큰 사회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은 안정적 파트너를 구하기 어렵다. 하지만 구조는 멀고 개인은 가깝다보니, ‘거절’에 좌절한 남자들은 여자를 미워한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한 랍비는 카인이 아벨을 죽도록 미워한 이유가 ‘여자’(성), ‘땅’(경제), ‘정체성’(인정욕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오늘날의 여성혐오는 그 중 ‘성’과 ‘경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지만 문화시민이라면 아무 데서나 배설하지 않듯이 대중을 상대로 혐오같은 부정적 감정을 투척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 같은 룰은 점점 희미해지는 듯해 걱정이다.


최민영 미디어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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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돈이 없다”며 초·중·고 급식을 유상으로 바꿨다. 명분은 ‘부자 자식들에게 공짜 밥을 줄 필요가 없다’였다. 홍 지사는 과연 ‘부자 자식들’의 숟가락만 빼앗았을까.

경남도는 완전 무상급식을 하고 있지 않다. 지난해 경남도에서 무상급식 혜택을 받은 학생들은 초등학생 전원과 농촌지역인 읍·면지역 중·고등학생들이었다. 이들은 도내 학생 44만7000명 중 절반이 약간 넘는 28만5000명이었다. 나머지 도심지역 중·고등학생들은 원래 돈을 내고 먹었다. 홍 지사는 이런 수준의 무상급식 때문에 경남도의 재정이 위태롭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가구 학생 6만6000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밥값을 내도록 만들었다. 이제 도내 학생 중 밥값을 내지 않는 학생은 15%다. 85%는 돈을 내야 한다. 즉 소득하위 15%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밥값을 내야 한다. 소득계층을 5분위로 나눌 때 최저소득계층인 1분위는 소득하위 20%까지다. 경남도에서는 소득하위 20% 학생들 중에서도 밥값을 내야 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의미다. 홍 지사가 ‘부자’ 운운하면서 뺏은 숟가락에는 중산층은 물론이고 서민층 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경남도가 생각하는 선별복지의 기준은 어딜까. 무상급식 대신 하겠다는 저소득층 교육지원사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소득하위 30%다. 경남도는 소득하위 30%는 4인가족 기준으로 연봉 3000만원쯤 된다고 했다. 3인가구 기준으로 하면 연봉 2600만원쯤 된다. 경남도 기준이라면 월소득 200만원만 되면 복지를 해줄 필요가 없는 계층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왜 아이들 밥만 문제를 삼는 것일까. 초·중·고 학생들에게만 국가재정 위기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해 보인다. 형평성을 따진다면 복지혜택을 받는 7세 이하 유아와 65세 이상 고령자도 동참해야 한다. 유아라면 누구나 받는 보육비는 저소득층으로 한정하고, 할아버지·할머니라면 누구나 공짜로 타는 지하철도 저소득층으로만 한정해야 한다. 또 있다. 65세 이상 소득하위 70%가 받는 기초연금 기준도 너무 높다. 저소득 고령자들에게만 줘야 한다.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먹일 밥값조차 없는 나라가 보육비나 어르신들 용돈은 있다고 보기 힘들다.

1일 오후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신방초등학교 급식소에서 한 교사가 무상급식 지원 중단에 항의하는 뜻에서 '한 끼 단식'을 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초·중·고 학생들의 밥이 유상급식으로 전환되면 틀림없이 다음은 보육비와 지하철 무임승차, 기초연금으로 향한다. 경남도의 무상급식 예산은 전체 예산의 0.5%. 300만원 월급을 받는 가정에 비유해보면 1만5000원을 아낀 꼴인데 이것을 줄여서는 적자투성이 가정경제가 나아질 리 없다. 밖에서 골프채 들고 모범택시를 타고 다니던 아버지는 아들 밥값을 깎았으니 이번에는 아기 분유값과 부모님 용돈도 깎자고 나올 게 틀림없다. 무상급식 논란이 그저 초·중·고 자녀를 둔 학부모 이야기만으로 치부돼서는 안되는 이유다. 머지않은 장래에는 유아를 가진 가정과 고령자들에게도 복지 삭감의 칼날이 돌아온다. 내 일이 아니겠지 하는 순간에 대세는 복지축소로 이어지고, 그때는 내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도 없다. 단지 언제 시행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복지줄이기 경쟁’의 결과는 “내 돈 벌어 내 부모·자식 먹여 살리자”로 끝난다. 1970년대로의 회귀다. 다시 장남이 가족을 책임지는 시대가 올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부모님 부양책임은 가족’이라는 답변이 1998년 90%에서 지난해에는 33%까지 줄어들었다. 대신 ‘가족과 정부, 사회의 공동책임’이라는 응답이 2%에서 47%로 늘어났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퇴행한 것들이 많다. 이젠 복지도 퇴행의 시대에 동참하고 있다. 가족에게서도, 정부와 사회에서도 도움받지 못하는 자식들과 부모들은 어디로 내몰리게 될까. 참고로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박병률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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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대가에 최소한의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먼저 주장한 쪽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진 자’들이었다. 14세기 유럽 전체를 휩쓴 흑사병으로 영국 인구 3분의 1이 목숨을 잃었다. 일꾼과 농부로 부릴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해지자 임금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콧대가 높아진’ 평민들은 예전보다 돈을 3배 이상 더 달라고 요구했다. 귀족들은 에드워드 3세 왕에게 임금의 ‘상한선’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1351년 ‘노동자 법령’이다.

이 법은 국왕이 정한 최대 임금보다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할 경우 벌금을 물리도록 했다. 법을 지탱할 논리가 필요해졌다. 그들은 중세 신학교리를 접목해 이렇게 설파했다. “부는 삶의 조건을 충족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 그보다 더 적어도 안되고, 그보다 더 많으면 죄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이 논리가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임금 상한선만 있어선 곤란했다.

1389년 법령의 일부가 개정됐다. 식량 물가에 맞춰 임금을 보장해주는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이것을 최저임금제의 시초라고 본다.

도입 과정 자체는 상당히 기득권층의 자기편의적인 요소가 많지만, 사실 그들이 내세웠던 논리가 지금처럼 와닿는 때도 없다. 한쪽에서는 ‘죄의 유혹’에 빠지기 쉬울 만큼 너무 많은 보너스를 챙기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삶의 조건’을 충족할 수 없을 만큼 너무 적은 임금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이달 초 미국 정책연구소(IPS)가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월가 금융가 종사자 16만여명이 받은 보너스 총액은 285억달러(약 31조9200억원)였다. 이는 미국에서 연방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시간당 7.25달러)으로 생활하는 사람들 모두의 연봉 총액을 합친 것보다 많고, 패스트푸드점 노동자 220만명의 시간당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시켜 주고도 남을 액수다.

반면 최저임금 생활자들의 삶은 어떨까. 영국은 지난 17일 올해 최저임금을 지난해보다 3% 인상된 6.70파운드(약 1만1140원)로 결정했다. 정부는 물가를 감안한 실질 인상률로 따지면 2008년 이후 가장 큰 폭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BBC방송 등은 “먹지도 않고, 전기도 안 쓰고, 옷도 안 사고, 세금도 안 내고, 몽땅 저축해도 런던에서 침대 1개짜리 볼품없는 방 월세를 겨우 낼 수 있는 정도”라고 비판했다.

12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열린 '민주노총 최저임금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한국의 상황도 더하면 더했지 나을 것이 없다. 최저임금 5580원은 유명 커피 체인점에서 파는 커피 한 잔 값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14세기에도 “임금은 삶의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공감대라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임금을 올리면 그나마 지금 가진 일자리도 뺏기게 될 것”이라는 협박 아닌 협박만 돌아온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자영업자와 알바생들 사이에 ‘을과 을’의 싸움을 부추길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어째서 ‘을과 을’의 싸움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최소한의 삶의 조건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결국 그것은 사회 모두가 책임져야 할 문제로 돌아온다. 단기적으로 종업원을 고용한 자영업자들의 부담이 늘어날 수는 있지만,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골목상권 보호와 적정 하도급 단가 보장 등 경제민주화 정책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자영업자의 가족들이 저임금 노동자인 경우도 많다.

최저임금 제도의 목표는 ‘일자리 늘리기’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이 말한 것처럼 “인간은 바나나나 버터가 아니다”.

노동의 대가를 상품 가격을 매기듯 ‘수요와 공급’의 논리로 결정해선 안된다.


정유진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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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는 열사의 시대였다. 민주주의는 젊은이들의 피를 먹고 자랐다. 숱한 젊은이들이 거리에서, 조사실에서, 외딴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며 죽어갔다. 87년 1월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숨진 박종철의 나이는 23세였다. 그해 6월 거리에서 전경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의 나이는 21세였다. 88년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분신한 박래전의 나이는 25세였고, 89년 여수 거문도에서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된 이내창의 나이는 27세였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는 서울지검 형사2부 검사로 있던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1차 수사에 참여했다. 임관 4년차이던 박 후보자는 수사팀의 막내 검사였다. 그의 나이 31세였다.

수사는 엉망이었다.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수사가 아니라 덮는 수사였다. 검찰의 공소장은 2명의 경찰관이 고문에 가담했다는 경찰의 조작된 결론을 그대로 따랐다.

박 후보자가 당시 작성한 조서를 읽다 보면 ‘이게 뭔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최초 허위보고서를 누가 작성토록 지시했는지 추궁한 흔적이 없다. 범행의 알리바이를 둘러싼 엇갈린 진술이 나오는데도 더 이상 캐묻지 않는다.

조서는 기계적인 문답의 지루한 나열일 뿐이다. 바늘 틈새만 한 허점이라도 파고들어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집요함이 보이지 않는다. 전문적 수사기법은 고사하고 일반인의 상식적 추궁에도 못 미친다. 박 후보자가 봐주기 수사, 부실 수사의 일익을 담당했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박 후보자보다 어린 청년들이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를 외치던 시절이다. 범죄가 있으면 혐의를 밝혀내 법대로 처벌받게 하는 것이 검사의 의무다. 막내 검사라고 예외가 아니다. 실체적 진실에 눈을 감고 상사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르는 검사가 좋은 검사라고 가르치는 법학 교과서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부당한 압력이나 지시에 맞서고, 정 안되면 옷이라도 벗는 게 검사의 직업윤리이자 최소한의 시민적 양심이다. 엄혹한 시대일수록 그렇다.

드물지만 한국 검찰사에도 그런 사례가 있다. 1964년 1차 인혁당 수사 때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 3명은 공소제기를 거부하고 사표를 제출했다. 중앙정보부가 사건을 과장하고 압력을 행사한 데 대한 항의 표시였다. 가까운 예로는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의 악전고투를 들 수 있다.

독일의 사례는 더욱 인상적이다. 히틀러 집권 이듬해인 1933년 6월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프리틀바흐 지역 담당검사 조지프 하르팅거는 ‘다하우 강제수용소’에서 유대인 4명을 사살한 혐의로 수용소장과 나치 친위대원 3명을 기소했다. 서슬 퍼런 나치 권력을 단죄한 그는 기소 당일 부인에게 “내가 스스로에게 사형을 선고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민가협, 박종철기념사업회, 민변 등 사회단체 회원들이 4일 서울 종로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 동의 철회를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박 후보자의 대법관 임명은 단지 대법관 한 명을 새로 뽑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문제이다. 불의의 시대에 공직자는, 법률가는, 검사는 어떤 처신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신호다. 검사가 권력과 타협해도 되는지, 법률가가 법의 논리보다 권력의 의중을 따라도 되는지, 공직자가 사회의 공익보다 정권의 사익에 충실해도 되는지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어떤 삶의 태도를 지니고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는 작업이다. 최고 법관에 대한 불신이 사법부와 사법체계 전반에 대한 불신과 냉소로 이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우리 사회의 운영원리인 법치주의에 이것만큼 해로운 것도 없다.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보다 엄정하고 치열한 검증과 토론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검찰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기록 전체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


정제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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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박상옥

꼬마 때부터 발레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배우기를 미뤘다. 가장 큰 장애물은 ‘내가 본 거울 속의 내 몸’이었다. 짧은 다리에 통허리, 운동으로도 좀처럼 덜어내기 어려운 ‘맥주의 업보’이자 사무직의 ‘평생 친구’인 볼록한 아랫배는 당최 발레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다 새해 어느 휴일, 낮잠에서 깨어나려던 찰나에 번개 같은 확신이 정수리를 강타했다. ‘숨 끊어지면 먼지로 돌아갈 이 몸이 무엇이기에 나는 발레 한번 배우지 않고 이 삶을 마감하는가’라고 마지막 눈감는 순간 회한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곤란했다. ‘미래의 나’가 ‘과거의 나’를 원망하지 않도록 나는 얼마 뒤 동네 발레학원 문을 두드렸다. 빈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직원은 대수술이라도 결심한 듯한 비장한 표정으로 나타난 방문객에게 약간 놀란 듯했다. 그는 입문반에서 한 달을 경험해본 뒤 발레를 배울지 말지를 결정할 것을 권했지만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신용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석 달, 선등록해주세요.”

준비물 구입에 나섰다. 수영에는 수영복이 있듯 발레에는 ‘레오타드’가 있다. 발레용품 직원은 내게 스몰 사이즈를 권했다. 착의실에서 낑낑거리며 옷을 위로 끌어올린 뒤 거울을 살폈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조명이 볼록 나온 아랫배를 거쳐 정직하게 그림자를 빚어내고 있었다. 이러다 봉제선이라도 터지면 꼼짝없이 돈을 물어내야 하는 건 아닐까. 조바심에 나는 “미디엄 사이즈! 미디엄 갖다주세요!”를 수줍게 외쳤다. 발레 ‘요정’들은 도대체 얼마나 작고 섬세한 몸을 가진 것인가. 연습용 천신발 역시 두 사이즈 반이 더 큰 것을 신은 뒤에야 발가락을 펼 수 있었다. 조금 시무룩해졌다. 발레 나라의 코끼리라도 된 것만 같았다.

잔뜩 긴장한 2월 첫 수업일, 복장을 갖추고 스튜디오로 쭈삣거리며 발을 디뎠다. 열 명 남짓한 여성들이 하늘색 운동매트에 앉아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뒤쪽으로 냉큼 자리를 잡고는 스트레칭을 하며 분위기를 살폈다. 다들 어색한 모양이다. 긴장이 풀리면서 은근한 동지애가 물에 보름 불린 콩처럼 가슴에서 움트는 듯했다.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섰을 때 편안하게 만족감을 느끼는 여성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몸에 대해 이런저런 불평을 할 때는 “그 정도면 괜찮은데 무슨 걱정이세요”라고 곁에서 토닥거리다가도 정작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마음속으로 걱정하고 비난하고 호통친다. 타인에게 친절하고 자신에게는 가혹하다. 자신을 비난하는 내면의 목소리는 유년기에는 생존전략으로 유효하지만 성년기에는 극복의 대상이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유니버설발레단 ‘발레 춘향’ (출처 : 경향DB)


주 2회 발레수업을 하며 그렇게 몸을 통해 깨닫는 것들이 생겨났다. 일단 근육의 부피와 힘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무거운 바벨도 곧잘 들어올리는 편인데 맨손으로 하는 발레의 기본동작은 쉽지 않았다. 우아하고 느린 움직임은 매우 강한 근력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팔을 옆으로 드는 동작도 ‘어깨부터 팔꿈치까지 빨래짜듯 근육을 비틀어’야 제 모양이 나왔다. 한쪽 다리를 들어올리고 차는 동작도 바닥을 디딘 다리가 ‘엉덩이에 쥐날 듯한 느낌’으로 힘을 줄 때에만 가능하다.

‘갈비뼈는 잠그고, 아랫배는 넣고, 어깻죽지는 뒷주머니에 넣는 느낌’으로 기본자세를 가다듬어도 피케, 아라베스크, 주테를 비롯한 여러 동작 속에 헤매다보면 어느 순간 자세가 무너져있었다. 아마도 초심을 잃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겠구나 싶었다. 까치발을 드는 렐르베 동작 때 ‘균형을 잃으면 어떡하지’라고 자신감을 잃으면 십중팔구는 어김없이 휘청이기 마련이었다. 마음과 몸은 연결돼 있으니까. 그리고 모든 이들의 몸은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답기 마련이다. 거울 너머 나 자신을 향해 웃어본다.


최민영 미디어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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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도 사람이다. 팬들도 아이돌이 연애하고, 방귀 뀌고, 잘 때 이 간다는 사실을 짐작하지만, 그건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예전의 팬들은 아이돌의 연애 사실이 밝혀지면 ‘팬질’을 그만두기도 했다. 아이돌이 “사랑해”라고 노래할 때, 그건 노래를 듣는 모든 팬을 위한 메시지여야 하기 때문이다. 특정인을 위한 연인이 된 순간, 아이돌에 대한 환상은 부서진다. 어떤 직업군에는 그에 기대되는 환상이 있다. 교사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교육에 헌신해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의 사진 밑에 성적 암시가 담긴 글을 남긴 예비 교사에 대해 대중은 분노했다. 대중의 사랑에 기대어 사는 연예인은 모든 사람에게 친절해야 한다. 연예인이라고 짜증스럽고 화나는 순간이 없겠냐마는, 만일 진짜 짜증을 내는 모습이 누군가의 스마트폰 카메라에 잡힌다면 그는 인터넷 공간에서 큰 곤욕을 치를 것이다.

판사는 어떨까. 따져보면 판사는 법조문의 이해와 적용에 능숙한 기능인이다. 기자가 사건의 실체를 간결한 글로 전하는 데, 택배기사가 정확한 주소지로 신속하게 물건을 나르는 데, 투수가 공을 빠르고 변화무쌍하게 던지는 데 능숙한 것과 같다. 판사라고 평균 이상으로 검소하고 선량하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최근 ‘악플 판사’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수도권 법원에 근무 중인 이모 부장판사는 2000년대 중반부터 여러 포털 사이트의 기사, 댓글에 5개의 서로 다른 아이디, 닉네임을 이용해 댓글을 달았다. 댓글은 특정 지역을 상습적으로 비하하고, 과거사 사건 피해자를 조롱하고, 동료 법관을 비난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노동조합, 촛불집회 참가자 등에 대해서는 저급한 표현을 사용했다. ‘독재 정권 시대의 물고문, 전기고문이 좋았다’는 말도 있었다. 비유의 수위, 방식, 정서가 정확히 ‘일베’를 가리킨다.

법관윤리강령은 판사에게 품위 유지, 공정성, 정치적 중립을 요구한다. 하지만 판사는 댓글에서 신분을 감췄다. 해당 판사의 정치적 편향성, 퇴행적 역사관, 인간에 대한 무례가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도 없다. 한마디로 온라인에서 해당 판사가 벌인 활동은 철저히 사적 개인으로서 벌인 일이었다.

그렇지만 대중, 특히 법정에 선 사람들은 판사에게 법 전문가로서의 기능 이상을 기대한다. 판사도 악플을 달고, 밤에 ‘야동’을 보고, 긴 줄 앞에서 새치기를 할지 모른다. 하지만 판사에 대한 환상은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전제한다. 판사는 법 전문가임을 넘어, 윤리적으로도 평균 이상 도야한 사람일 것이라고 믿는다. 판사의 한마디에 재판 받는 사람은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다. 판결은 그만큼 절대적이다. 그런데 나보다, 아니 사회 평균보다 인격적으로 미숙한 사람에게 받는 판결을 이의 없이 수긍할 수 있겠는가.

이정렬 전 창원지법 부장판사(사진)가 '막말 댓글'로 파문을 일으킨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출처 : 경향DB)


간혹 언론에 나오는 판결 기사에는 “재판부는 준엄히 꾸짖었다”는 투의 표현이 나온다. 말이 안되는 표현이다. 판사는 양형 기준에 따라 판결하면 될 뿐, 누군가를 꾸짖을 권리는 없다. 꾸짖는 것은 부모, 스승, 사제가 할 일이다. 그럼에도 기사에 이런 표현이 나오는 건, 판사에 대한 윤리적 기대치가 높음을 암시한다.

군자는 유가가 그리는 이상적 지식인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그릇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훌륭한 사람이라면 책상, 찻잔같이 한 가지 목적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인격을 갖춰 두루 신망을 얻어야 한다는 뜻이다. 임금 앞에서 정적을 탄핵할 때면, 실제 행위와 함께 인격의 용렬함까지 비판하곤 했다. 글이나 그림에 사용된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선비다운 정신이 담겨 있지 않으면 높게 치지 않았다.

법관에게 군자가 되길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이 수긍할 만한 ‘한 줌의 도덕’조차 갖지 못한 사람이 있을지는 미처 몰랐다.


백승찬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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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틴’이라는 여성이 있다. 한 남자를 사랑했으나 곧 버림받고 홀로 딸 ‘코제트’를 낳는다. 딸을 직접 기를 수 없자 한 여관에 맡겼다. 공장에서 일해 번 돈을 매달 딸에게 부쳤다. 어느날 공장 반장의 성희롱에 항의하다 해고된다. 더 이상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그녀는 몸을 판다. 그렇게 번 돈을 코제트에게 보낸다. 성을 구매하려는 선원이 괴롭히자 저항한다. 자베르 경감은 다짜고짜 그녀를 붙잡는다. 그녀는 이미 ‘죄인’으로 낙인찍혀 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얘기다.

지난달 25일 경남 통영에서 한 티켓다방 여성이 자살을 했다. 경찰이 티켓다방에 전화를 걸어 그녀에게 매춘을 유도했다. 그녀는 “옷 좀 입게 나가달라”고 요청한 뒤 모텔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녀는 미혼모였다. 이곳에서 번 돈을 매달 고향 아버지와 딸에게 부쳤다. 그녀의 사연을 듣는 순간 팡틴이 떠올랐다.

경찰은 심드렁하다.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티켓다방 홍보전단을 보고 전화를 걸었기 때문에 ‘함정단속’이 아니란다. 범죄를 저지를 의사가 있는 사람에게 범죄를 유도하는 것은 합법적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경찰은 이런 식으로 22명을 단속했다고도 했다. 경찰의 눈에 그녀의 인권은 애초에 없었던 것 아닐까. 그녀는 성매매단속의 실적치를 나타내는 숫자 1,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수 있다.

격무에 시달리는 경찰을 이해하고 싶다. 그런데 화를 삭일 수 없다. 경찰이 아니라 우리 사회 때문이다. 왜 하필 그녀만 죽어야 했을까. 그녀를 내보낸 포주는 문제가 없었나. 성매매가 의심되는 여성에게 매춘을 유도하는 것처럼 성매수가 의심되는 남성들에게는 왜 유도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

영화 <레미제라블> (출처 : 경향DB)


그녀는 사회적 약자였다. 어떤 식으로 처리해도 돌 던질 사람이 없다. 그녀는 몸파는 여자였고, 여론은 정의로운 경찰편이었다. 반면 포주는 그녀보다는 부담스럽다. 지역유지일 수도 있고, 조직폭력배가 뒤에 있을 수도 있다. 성매수 의심이 가는 남성들은 경찰이 상대하기 더 어렵다. 괜히 유도전화를 했다가는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필요한 건 단속실적이었을 것이다. 실적은 만만한 대상에게서 채우면 된다.

어디 그녀만 그렇겠나. 한국사회는 약자에게 냉혹하다. 많은 것을 가진 강자에게 양보를 권유하는 게 아니라 가진 것 없는 약자에게 그것마저 내놓으라고 한다. 기업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저항한 노동자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아파트 주민의 폭언에 견디다 못해 한 경비원이 자살하자 입주민들은 이 경비원이 소속된 회사의 경비원 모두를 잘랐다.

화룡점정은 정부다.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한다며 노동자 간 싸움을 붙이고 있다. 최경환 경제팀은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로 기업이 겁이 나 (인력을) 못 뽑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그에게는 당장 연말까지 잘려나가는 수백명의 금융권 노동자들은 보이지도 않는다. “정년을 60세까지 보장해줬으니 (쉬운 해고가 가능토록 해서)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부총리의 발언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정작 힘있는 자는 사상최고의 유보자금을 축적한 기업이지만 손댈 엄두를 못 낸다.

참다못한 대학생들이 학내에 대자보를 붙였다. 이른바 ‘최씨 아저씨께 보내는 협박편지’다. 학생들은 대자보를 통해 “아저씨, 다 같이 망하자는 거 아니면 우리 같이 좀 삽시다”라고 외쳤다. 위고가 <레미제라블>을 세상에 내놓은 것은 1862년이다. 160여년이 지난 2014년. 한국사회는 19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상황은 더 나쁘다. 팡틴에게는 장발장이 있었지만 한국인들은 그마저 없다. 자베르 경감만 득실하다. 한국사회의 서민들은 누구에게 기대야 하나. 체한 듯 명치 끝이 답답한 이유다.


박병률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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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