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돈이 없다”며 초·중·고 급식을 유상으로 바꿨다. 명분은 ‘부자 자식들에게 공짜 밥을 줄 필요가 없다’였다. 홍 지사는 과연 ‘부자 자식들’의 숟가락만 빼앗았을까.

경남도는 완전 무상급식을 하고 있지 않다. 지난해 경남도에서 무상급식 혜택을 받은 학생들은 초등학생 전원과 농촌지역인 읍·면지역 중·고등학생들이었다. 이들은 도내 학생 44만7000명 중 절반이 약간 넘는 28만5000명이었다. 나머지 도심지역 중·고등학생들은 원래 돈을 내고 먹었다. 홍 지사는 이런 수준의 무상급식 때문에 경남도의 재정이 위태롭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가구 학생 6만6000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밥값을 내도록 만들었다. 이제 도내 학생 중 밥값을 내지 않는 학생은 15%다. 85%는 돈을 내야 한다. 즉 소득하위 15%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밥값을 내야 한다. 소득계층을 5분위로 나눌 때 최저소득계층인 1분위는 소득하위 20%까지다. 경남도에서는 소득하위 20% 학생들 중에서도 밥값을 내야 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의미다. 홍 지사가 ‘부자’ 운운하면서 뺏은 숟가락에는 중산층은 물론이고 서민층 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경남도가 생각하는 선별복지의 기준은 어딜까. 무상급식 대신 하겠다는 저소득층 교육지원사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소득하위 30%다. 경남도는 소득하위 30%는 4인가족 기준으로 연봉 3000만원쯤 된다고 했다. 3인가구 기준으로 하면 연봉 2600만원쯤 된다. 경남도 기준이라면 월소득 200만원만 되면 복지를 해줄 필요가 없는 계층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왜 아이들 밥만 문제를 삼는 것일까. 초·중·고 학생들에게만 국가재정 위기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해 보인다. 형평성을 따진다면 복지혜택을 받는 7세 이하 유아와 65세 이상 고령자도 동참해야 한다. 유아라면 누구나 받는 보육비는 저소득층으로 한정하고, 할아버지·할머니라면 누구나 공짜로 타는 지하철도 저소득층으로만 한정해야 한다. 또 있다. 65세 이상 소득하위 70%가 받는 기초연금 기준도 너무 높다. 저소득 고령자들에게만 줘야 한다.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먹일 밥값조차 없는 나라가 보육비나 어르신들 용돈은 있다고 보기 힘들다.

1일 오후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신방초등학교 급식소에서 한 교사가 무상급식 지원 중단에 항의하는 뜻에서 '한 끼 단식'을 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초·중·고 학생들의 밥이 유상급식으로 전환되면 틀림없이 다음은 보육비와 지하철 무임승차, 기초연금으로 향한다. 경남도의 무상급식 예산은 전체 예산의 0.5%. 300만원 월급을 받는 가정에 비유해보면 1만5000원을 아낀 꼴인데 이것을 줄여서는 적자투성이 가정경제가 나아질 리 없다. 밖에서 골프채 들고 모범택시를 타고 다니던 아버지는 아들 밥값을 깎았으니 이번에는 아기 분유값과 부모님 용돈도 깎자고 나올 게 틀림없다. 무상급식 논란이 그저 초·중·고 자녀를 둔 학부모 이야기만으로 치부돼서는 안되는 이유다. 머지않은 장래에는 유아를 가진 가정과 고령자들에게도 복지 삭감의 칼날이 돌아온다. 내 일이 아니겠지 하는 순간에 대세는 복지축소로 이어지고, 그때는 내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도 없다. 단지 언제 시행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복지줄이기 경쟁’의 결과는 “내 돈 벌어 내 부모·자식 먹여 살리자”로 끝난다. 1970년대로의 회귀다. 다시 장남이 가족을 책임지는 시대가 올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부모님 부양책임은 가족’이라는 답변이 1998년 90%에서 지난해에는 33%까지 줄어들었다. 대신 ‘가족과 정부, 사회의 공동책임’이라는 응답이 2%에서 47%로 늘어났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퇴행한 것들이 많다. 이젠 복지도 퇴행의 시대에 동참하고 있다. 가족에게서도, 정부와 사회에서도 도움받지 못하는 자식들과 부모들은 어디로 내몰리게 될까. 참고로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박병률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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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대가에 최소한의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먼저 주장한 쪽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진 자’들이었다. 14세기 유럽 전체를 휩쓴 흑사병으로 영국 인구 3분의 1이 목숨을 잃었다. 일꾼과 농부로 부릴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해지자 임금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콧대가 높아진’ 평민들은 예전보다 돈을 3배 이상 더 달라고 요구했다. 귀족들은 에드워드 3세 왕에게 임금의 ‘상한선’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1351년 ‘노동자 법령’이다.

이 법은 국왕이 정한 최대 임금보다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할 경우 벌금을 물리도록 했다. 법을 지탱할 논리가 필요해졌다. 그들은 중세 신학교리를 접목해 이렇게 설파했다. “부는 삶의 조건을 충족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 그보다 더 적어도 안되고, 그보다 더 많으면 죄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이 논리가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임금 상한선만 있어선 곤란했다.

1389년 법령의 일부가 개정됐다. 식량 물가에 맞춰 임금을 보장해주는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이것을 최저임금제의 시초라고 본다.

도입 과정 자체는 상당히 기득권층의 자기편의적인 요소가 많지만, 사실 그들이 내세웠던 논리가 지금처럼 와닿는 때도 없다. 한쪽에서는 ‘죄의 유혹’에 빠지기 쉬울 만큼 너무 많은 보너스를 챙기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삶의 조건’을 충족할 수 없을 만큼 너무 적은 임금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이달 초 미국 정책연구소(IPS)가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월가 금융가 종사자 16만여명이 받은 보너스 총액은 285억달러(약 31조9200억원)였다. 이는 미국에서 연방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시간당 7.25달러)으로 생활하는 사람들 모두의 연봉 총액을 합친 것보다 많고, 패스트푸드점 노동자 220만명의 시간당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시켜 주고도 남을 액수다.

반면 최저임금 생활자들의 삶은 어떨까. 영국은 지난 17일 올해 최저임금을 지난해보다 3% 인상된 6.70파운드(약 1만1140원)로 결정했다. 정부는 물가를 감안한 실질 인상률로 따지면 2008년 이후 가장 큰 폭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BBC방송 등은 “먹지도 않고, 전기도 안 쓰고, 옷도 안 사고, 세금도 안 내고, 몽땅 저축해도 런던에서 침대 1개짜리 볼품없는 방 월세를 겨우 낼 수 있는 정도”라고 비판했다.

12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열린 '민주노총 최저임금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한국의 상황도 더하면 더했지 나을 것이 없다. 최저임금 5580원은 유명 커피 체인점에서 파는 커피 한 잔 값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14세기에도 “임금은 삶의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공감대라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임금을 올리면 그나마 지금 가진 일자리도 뺏기게 될 것”이라는 협박 아닌 협박만 돌아온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자영업자와 알바생들 사이에 ‘을과 을’의 싸움을 부추길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어째서 ‘을과 을’의 싸움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최소한의 삶의 조건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결국 그것은 사회 모두가 책임져야 할 문제로 돌아온다. 단기적으로 종업원을 고용한 자영업자들의 부담이 늘어날 수는 있지만,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골목상권 보호와 적정 하도급 단가 보장 등 경제민주화 정책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자영업자의 가족들이 저임금 노동자인 경우도 많다.

최저임금 제도의 목표는 ‘일자리 늘리기’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이 말한 것처럼 “인간은 바나나나 버터가 아니다”.

노동의 대가를 상품 가격을 매기듯 ‘수요와 공급’의 논리로 결정해선 안된다.


정유진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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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는 열사의 시대였다. 민주주의는 젊은이들의 피를 먹고 자랐다. 숱한 젊은이들이 거리에서, 조사실에서, 외딴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며 죽어갔다. 87년 1월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숨진 박종철의 나이는 23세였다. 그해 6월 거리에서 전경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의 나이는 21세였다. 88년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분신한 박래전의 나이는 25세였고, 89년 여수 거문도에서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된 이내창의 나이는 27세였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는 서울지검 형사2부 검사로 있던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1차 수사에 참여했다. 임관 4년차이던 박 후보자는 수사팀의 막내 검사였다. 그의 나이 31세였다.

수사는 엉망이었다.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수사가 아니라 덮는 수사였다. 검찰의 공소장은 2명의 경찰관이 고문에 가담했다는 경찰의 조작된 결론을 그대로 따랐다.

박 후보자가 당시 작성한 조서를 읽다 보면 ‘이게 뭔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최초 허위보고서를 누가 작성토록 지시했는지 추궁한 흔적이 없다. 범행의 알리바이를 둘러싼 엇갈린 진술이 나오는데도 더 이상 캐묻지 않는다.

조서는 기계적인 문답의 지루한 나열일 뿐이다. 바늘 틈새만 한 허점이라도 파고들어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집요함이 보이지 않는다. 전문적 수사기법은 고사하고 일반인의 상식적 추궁에도 못 미친다. 박 후보자가 봐주기 수사, 부실 수사의 일익을 담당했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박 후보자보다 어린 청년들이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를 외치던 시절이다. 범죄가 있으면 혐의를 밝혀내 법대로 처벌받게 하는 것이 검사의 의무다. 막내 검사라고 예외가 아니다. 실체적 진실에 눈을 감고 상사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르는 검사가 좋은 검사라고 가르치는 법학 교과서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부당한 압력이나 지시에 맞서고, 정 안되면 옷이라도 벗는 게 검사의 직업윤리이자 최소한의 시민적 양심이다. 엄혹한 시대일수록 그렇다.

드물지만 한국 검찰사에도 그런 사례가 있다. 1964년 1차 인혁당 수사 때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 3명은 공소제기를 거부하고 사표를 제출했다. 중앙정보부가 사건을 과장하고 압력을 행사한 데 대한 항의 표시였다. 가까운 예로는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의 악전고투를 들 수 있다.

독일의 사례는 더욱 인상적이다. 히틀러 집권 이듬해인 1933년 6월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프리틀바흐 지역 담당검사 조지프 하르팅거는 ‘다하우 강제수용소’에서 유대인 4명을 사살한 혐의로 수용소장과 나치 친위대원 3명을 기소했다. 서슬 퍼런 나치 권력을 단죄한 그는 기소 당일 부인에게 “내가 스스로에게 사형을 선고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민가협, 박종철기념사업회, 민변 등 사회단체 회원들이 4일 서울 종로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 동의 철회를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박 후보자의 대법관 임명은 단지 대법관 한 명을 새로 뽑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문제이다. 불의의 시대에 공직자는, 법률가는, 검사는 어떤 처신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신호다. 검사가 권력과 타협해도 되는지, 법률가가 법의 논리보다 권력의 의중을 따라도 되는지, 공직자가 사회의 공익보다 정권의 사익에 충실해도 되는지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어떤 삶의 태도를 지니고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는 작업이다. 최고 법관에 대한 불신이 사법부와 사법체계 전반에 대한 불신과 냉소로 이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우리 사회의 운영원리인 법치주의에 이것만큼 해로운 것도 없다.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보다 엄정하고 치열한 검증과 토론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검찰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기록 전체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


정제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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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박상옥

꼬마 때부터 발레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배우기를 미뤘다. 가장 큰 장애물은 ‘내가 본 거울 속의 내 몸’이었다. 짧은 다리에 통허리, 운동으로도 좀처럼 덜어내기 어려운 ‘맥주의 업보’이자 사무직의 ‘평생 친구’인 볼록한 아랫배는 당최 발레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다 새해 어느 휴일, 낮잠에서 깨어나려던 찰나에 번개 같은 확신이 정수리를 강타했다. ‘숨 끊어지면 먼지로 돌아갈 이 몸이 무엇이기에 나는 발레 한번 배우지 않고 이 삶을 마감하는가’라고 마지막 눈감는 순간 회한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곤란했다. ‘미래의 나’가 ‘과거의 나’를 원망하지 않도록 나는 얼마 뒤 동네 발레학원 문을 두드렸다. 빈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직원은 대수술이라도 결심한 듯한 비장한 표정으로 나타난 방문객에게 약간 놀란 듯했다. 그는 입문반에서 한 달을 경험해본 뒤 발레를 배울지 말지를 결정할 것을 권했지만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신용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석 달, 선등록해주세요.”

준비물 구입에 나섰다. 수영에는 수영복이 있듯 발레에는 ‘레오타드’가 있다. 발레용품 직원은 내게 스몰 사이즈를 권했다. 착의실에서 낑낑거리며 옷을 위로 끌어올린 뒤 거울을 살폈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조명이 볼록 나온 아랫배를 거쳐 정직하게 그림자를 빚어내고 있었다. 이러다 봉제선이라도 터지면 꼼짝없이 돈을 물어내야 하는 건 아닐까. 조바심에 나는 “미디엄 사이즈! 미디엄 갖다주세요!”를 수줍게 외쳤다. 발레 ‘요정’들은 도대체 얼마나 작고 섬세한 몸을 가진 것인가. 연습용 천신발 역시 두 사이즈 반이 더 큰 것을 신은 뒤에야 발가락을 펼 수 있었다. 조금 시무룩해졌다. 발레 나라의 코끼리라도 된 것만 같았다.

잔뜩 긴장한 2월 첫 수업일, 복장을 갖추고 스튜디오로 쭈삣거리며 발을 디뎠다. 열 명 남짓한 여성들이 하늘색 운동매트에 앉아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뒤쪽으로 냉큼 자리를 잡고는 스트레칭을 하며 분위기를 살폈다. 다들 어색한 모양이다. 긴장이 풀리면서 은근한 동지애가 물에 보름 불린 콩처럼 가슴에서 움트는 듯했다.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섰을 때 편안하게 만족감을 느끼는 여성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몸에 대해 이런저런 불평을 할 때는 “그 정도면 괜찮은데 무슨 걱정이세요”라고 곁에서 토닥거리다가도 정작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마음속으로 걱정하고 비난하고 호통친다. 타인에게 친절하고 자신에게는 가혹하다. 자신을 비난하는 내면의 목소리는 유년기에는 생존전략으로 유효하지만 성년기에는 극복의 대상이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유니버설발레단 ‘발레 춘향’ (출처 : 경향DB)


주 2회 발레수업을 하며 그렇게 몸을 통해 깨닫는 것들이 생겨났다. 일단 근육의 부피와 힘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무거운 바벨도 곧잘 들어올리는 편인데 맨손으로 하는 발레의 기본동작은 쉽지 않았다. 우아하고 느린 움직임은 매우 강한 근력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팔을 옆으로 드는 동작도 ‘어깨부터 팔꿈치까지 빨래짜듯 근육을 비틀어’야 제 모양이 나왔다. 한쪽 다리를 들어올리고 차는 동작도 바닥을 디딘 다리가 ‘엉덩이에 쥐날 듯한 느낌’으로 힘을 줄 때에만 가능하다.

‘갈비뼈는 잠그고, 아랫배는 넣고, 어깻죽지는 뒷주머니에 넣는 느낌’으로 기본자세를 가다듬어도 피케, 아라베스크, 주테를 비롯한 여러 동작 속에 헤매다보면 어느 순간 자세가 무너져있었다. 아마도 초심을 잃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겠구나 싶었다. 까치발을 드는 렐르베 동작 때 ‘균형을 잃으면 어떡하지’라고 자신감을 잃으면 십중팔구는 어김없이 휘청이기 마련이었다. 마음과 몸은 연결돼 있으니까. 그리고 모든 이들의 몸은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답기 마련이다. 거울 너머 나 자신을 향해 웃어본다.


최민영 미디어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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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도 사람이다. 팬들도 아이돌이 연애하고, 방귀 뀌고, 잘 때 이 간다는 사실을 짐작하지만, 그건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예전의 팬들은 아이돌의 연애 사실이 밝혀지면 ‘팬질’을 그만두기도 했다. 아이돌이 “사랑해”라고 노래할 때, 그건 노래를 듣는 모든 팬을 위한 메시지여야 하기 때문이다. 특정인을 위한 연인이 된 순간, 아이돌에 대한 환상은 부서진다. 어떤 직업군에는 그에 기대되는 환상이 있다. 교사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교육에 헌신해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의 사진 밑에 성적 암시가 담긴 글을 남긴 예비 교사에 대해 대중은 분노했다. 대중의 사랑에 기대어 사는 연예인은 모든 사람에게 친절해야 한다. 연예인이라고 짜증스럽고 화나는 순간이 없겠냐마는, 만일 진짜 짜증을 내는 모습이 누군가의 스마트폰 카메라에 잡힌다면 그는 인터넷 공간에서 큰 곤욕을 치를 것이다.

판사는 어떨까. 따져보면 판사는 법조문의 이해와 적용에 능숙한 기능인이다. 기자가 사건의 실체를 간결한 글로 전하는 데, 택배기사가 정확한 주소지로 신속하게 물건을 나르는 데, 투수가 공을 빠르고 변화무쌍하게 던지는 데 능숙한 것과 같다. 판사라고 평균 이상으로 검소하고 선량하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최근 ‘악플 판사’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수도권 법원에 근무 중인 이모 부장판사는 2000년대 중반부터 여러 포털 사이트의 기사, 댓글에 5개의 서로 다른 아이디, 닉네임을 이용해 댓글을 달았다. 댓글은 특정 지역을 상습적으로 비하하고, 과거사 사건 피해자를 조롱하고, 동료 법관을 비난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노동조합, 촛불집회 참가자 등에 대해서는 저급한 표현을 사용했다. ‘독재 정권 시대의 물고문, 전기고문이 좋았다’는 말도 있었다. 비유의 수위, 방식, 정서가 정확히 ‘일베’를 가리킨다.

법관윤리강령은 판사에게 품위 유지, 공정성, 정치적 중립을 요구한다. 하지만 판사는 댓글에서 신분을 감췄다. 해당 판사의 정치적 편향성, 퇴행적 역사관, 인간에 대한 무례가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도 없다. 한마디로 온라인에서 해당 판사가 벌인 활동은 철저히 사적 개인으로서 벌인 일이었다.

그렇지만 대중, 특히 법정에 선 사람들은 판사에게 법 전문가로서의 기능 이상을 기대한다. 판사도 악플을 달고, 밤에 ‘야동’을 보고, 긴 줄 앞에서 새치기를 할지 모른다. 하지만 판사에 대한 환상은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전제한다. 판사는 법 전문가임을 넘어, 윤리적으로도 평균 이상 도야한 사람일 것이라고 믿는다. 판사의 한마디에 재판 받는 사람은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다. 판결은 그만큼 절대적이다. 그런데 나보다, 아니 사회 평균보다 인격적으로 미숙한 사람에게 받는 판결을 이의 없이 수긍할 수 있겠는가.

이정렬 전 창원지법 부장판사(사진)가 '막말 댓글'로 파문을 일으킨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출처 : 경향DB)


간혹 언론에 나오는 판결 기사에는 “재판부는 준엄히 꾸짖었다”는 투의 표현이 나온다. 말이 안되는 표현이다. 판사는 양형 기준에 따라 판결하면 될 뿐, 누군가를 꾸짖을 권리는 없다. 꾸짖는 것은 부모, 스승, 사제가 할 일이다. 그럼에도 기사에 이런 표현이 나오는 건, 판사에 대한 윤리적 기대치가 높음을 암시한다.

군자는 유가가 그리는 이상적 지식인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그릇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훌륭한 사람이라면 책상, 찻잔같이 한 가지 목적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인격을 갖춰 두루 신망을 얻어야 한다는 뜻이다. 임금 앞에서 정적을 탄핵할 때면, 실제 행위와 함께 인격의 용렬함까지 비판하곤 했다. 글이나 그림에 사용된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선비다운 정신이 담겨 있지 않으면 높게 치지 않았다.

법관에게 군자가 되길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이 수긍할 만한 ‘한 줌의 도덕’조차 갖지 못한 사람이 있을지는 미처 몰랐다.


백승찬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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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틴’이라는 여성이 있다. 한 남자를 사랑했으나 곧 버림받고 홀로 딸 ‘코제트’를 낳는다. 딸을 직접 기를 수 없자 한 여관에 맡겼다. 공장에서 일해 번 돈을 매달 딸에게 부쳤다. 어느날 공장 반장의 성희롱에 항의하다 해고된다. 더 이상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그녀는 몸을 판다. 그렇게 번 돈을 코제트에게 보낸다. 성을 구매하려는 선원이 괴롭히자 저항한다. 자베르 경감은 다짜고짜 그녀를 붙잡는다. 그녀는 이미 ‘죄인’으로 낙인찍혀 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얘기다.

지난달 25일 경남 통영에서 한 티켓다방 여성이 자살을 했다. 경찰이 티켓다방에 전화를 걸어 그녀에게 매춘을 유도했다. 그녀는 “옷 좀 입게 나가달라”고 요청한 뒤 모텔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녀는 미혼모였다. 이곳에서 번 돈을 매달 고향 아버지와 딸에게 부쳤다. 그녀의 사연을 듣는 순간 팡틴이 떠올랐다.

경찰은 심드렁하다.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티켓다방 홍보전단을 보고 전화를 걸었기 때문에 ‘함정단속’이 아니란다. 범죄를 저지를 의사가 있는 사람에게 범죄를 유도하는 것은 합법적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경찰은 이런 식으로 22명을 단속했다고도 했다. 경찰의 눈에 그녀의 인권은 애초에 없었던 것 아닐까. 그녀는 성매매단속의 실적치를 나타내는 숫자 1,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수 있다.

격무에 시달리는 경찰을 이해하고 싶다. 그런데 화를 삭일 수 없다. 경찰이 아니라 우리 사회 때문이다. 왜 하필 그녀만 죽어야 했을까. 그녀를 내보낸 포주는 문제가 없었나. 성매매가 의심되는 여성에게 매춘을 유도하는 것처럼 성매수가 의심되는 남성들에게는 왜 유도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

영화 <레미제라블> (출처 : 경향DB)


그녀는 사회적 약자였다. 어떤 식으로 처리해도 돌 던질 사람이 없다. 그녀는 몸파는 여자였고, 여론은 정의로운 경찰편이었다. 반면 포주는 그녀보다는 부담스럽다. 지역유지일 수도 있고, 조직폭력배가 뒤에 있을 수도 있다. 성매수 의심이 가는 남성들은 경찰이 상대하기 더 어렵다. 괜히 유도전화를 했다가는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필요한 건 단속실적이었을 것이다. 실적은 만만한 대상에게서 채우면 된다.

어디 그녀만 그렇겠나. 한국사회는 약자에게 냉혹하다. 많은 것을 가진 강자에게 양보를 권유하는 게 아니라 가진 것 없는 약자에게 그것마저 내놓으라고 한다. 기업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저항한 노동자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아파트 주민의 폭언에 견디다 못해 한 경비원이 자살하자 입주민들은 이 경비원이 소속된 회사의 경비원 모두를 잘랐다.

화룡점정은 정부다.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한다며 노동자 간 싸움을 붙이고 있다. 최경환 경제팀은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로 기업이 겁이 나 (인력을) 못 뽑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그에게는 당장 연말까지 잘려나가는 수백명의 금융권 노동자들은 보이지도 않는다. “정년을 60세까지 보장해줬으니 (쉬운 해고가 가능토록 해서)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부총리의 발언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정작 힘있는 자는 사상최고의 유보자금을 축적한 기업이지만 손댈 엄두를 못 낸다.

참다못한 대학생들이 학내에 대자보를 붙였다. 이른바 ‘최씨 아저씨께 보내는 협박편지’다. 학생들은 대자보를 통해 “아저씨, 다 같이 망하자는 거 아니면 우리 같이 좀 삽시다”라고 외쳤다. 위고가 <레미제라블>을 세상에 내놓은 것은 1862년이다. 160여년이 지난 2014년. 한국사회는 19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상황은 더 나쁘다. 팡틴에게는 장발장이 있었지만 한국인들은 그마저 없다. 자베르 경감만 득실하다. 한국사회의 서민들은 누구에게 기대야 하나. 체한 듯 명치 끝이 답답한 이유다.


박병률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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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비극의 탄생>,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같은 책이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주요 인터넷 서점들은 하루 종일 과부하 상태더니, 저녁 무렵부턴 아예 접속조차 되지 않았다. 접속자가 갑자기 증가해 서버가 다운된 모양이었다.

도서정가제가 실시되기 전날인 20일의 풍경이었다. 매일이 이렇다면 저자, 출판사, 서점이 모두 콧노래를 부르겠지만, 이런 소동도 이날이 마지막이다. 유행 지난 옷가지를 팔아치울 때나 쓰던 ‘창고정리’ ‘폭탄세일’이란 말을 책 사면서 들을 줄이야. 이 소동 속에 살 사람도 사고 안 살 사람도 샀다. 며칠 뒤 독자에게 배송될 <순수이성비판>은 아마도 책장에 고이 모셔진 채 위풍당당함을 뽐내지 않을까. “그 책 언제 읽을 거냐”고 묻지는 말자. “읽어야 한다는 말은 많지만 정작 끝까지 읽은 사람은 별로 없는 책”이 고전의 오래된 정의다.

전날까지 반값 또는 그 이하로 할인 판매된 책들이 21일부터는 정가를 회복했다. 신간, 구간, 실용서, 참고서 등 예외가 없다. 가격, 쿠폰, 마일리지를 합해도 할인율은 15% 이내로 제한됐다. 이제 서점은 태풍이 쓸고간 뒤처럼 조용하다. 모두들 숨죽인 채 빼꼼히 창밖을 내다보며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지켜보고 있다. 출판계에서는 향후 6개월 정도는 책 판매량이 뚝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도서정가제는 출판계의 오랜 염원이었다. 누가 시작했는지 모를 할인 경쟁 속에 모두들 지쳐 있었다. 작은 반칙은 큰 반칙을 불렀다. 모두 힘을 합해 자정했으면 좋았겠지만, 21세기의 혼탁한 시장에서 점잖은 선비님 말씀은 듣기 힘들었다. 이럴 때는 법·제도 정비가 우선이다.

도서정가제 시행을 하루 앞둔 20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서점에서 시민들이 도서정가제 시행 전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책들을 살펴보고 있다. 도서정가제는 출판사에서 결정한 가격보다 서점에서 더 싸게 팔 수 없도록 한 제도로 신·구간 상관없이 할인율이 15% 이내로 제한된다. (출처 : 경향DB)


도서정가제의 영향에 대해 솔직하게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우선 도서정가제는 인터넷 서점과 할인 경쟁을 할 수 없었던 동네서점을 살릴까. 그렇지 않다. 십수년 전 인터넷 서점이 등장한 이래 동네서점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이제 동네엔 동네서점이 없고, 있다 해도 학생 참고서를 판매할 뿐이다. 독자의 책 소비 패턴은 대형 오프라인 서점 혹은 인터넷 서점으로 양분됐다. 동네서점을 이용하면 골목상권을 살리고 이웃도 도울 수 있겠지만, 소비자는 윤리가 아니라 편익을 따라 움직인다. 같은 가격이라도 독자는 수만종의 책을 세련되게 진열한 대형 오프라인 서점이나, 택배 기사가 책을 손에 쥐여주는 인터넷 서점을 이용할 것이다. 이제 동네서점엔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엔 없는 특별한 무엇이 필요하다. 손님과의 스킨십, 주인의 독특한 취향 표출, 머물기 편안한 분위기 등 무엇이든 좋다.

다음으로, 도서정가제는 ‘제2의 단통법’일까. 과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분석 결과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책 가격은 평균 220원 상승한다. 220원 더 쓰기 싫어서 사고 싶었던 책을 안 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할인율이 컸던 구간이나 실용서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입겠지만, 지금까지 할인을 염두에 두고 가격을 책정했던 출판사들이 앞으로는 정가를 낮출 가능성도 있다.

이제는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책값이 낮아지면 책을 사서 읽을 것인가. ‘싼 맛에 책 읽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당장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을 관찰해봤다. 같은 칸에 탄 40여명 중 신문 읽는 사람이 5명 정도, 나머지는 스마트폰을 보거나 자거나 멍하니 있었다. 종이책 읽는 사람은 1명도 없었다.

사람들의 생활습관은 변하고 있다. 문명과 기술의 변화를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옛 습관을 회복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흘러간 강물을 되돌리려는 시도와 같다. 책은 인류 지식문화의 보고다. 책에는 가격을 올리거나 내리는 잔재주를 넘어, 문명의 전환에 대한 근본적 성찰, 구태를 일거에 무너뜨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출판인들은 그 길을 찾아내야 한다.


백승찬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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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대법원은 2009년 쌍용자동차의 구조조정이 적법하다는 판단을 내놨다. 아스팔트에서, 농성장에서, 법정에서 5년 넘게 싸워온 153명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바람 찬 거리에서 다시 기약없는 싸움을 벌여야 할 처지에 놓였다. 지난 5년간 25명의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이 세상을 떠났다. 삶의 기반이 통째로 무너져내린 극한의 상황에서도 쌍용차 해고자들이 2000일 넘게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언제든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나와 가족과 동료의 삶의 존엄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들의 마음을 밝히던 희망의 불빛을 야멸차게 꺼버렸다. 승리의 전망은 흐릿해졌다. “어떻게 싸워야 할지 모르겠다. 별의별 것과 싸워왔는데 잘 모르겠다, 이제는. 남은 해고자를 어떻게 보듬어야 할지 모르겠고,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조정실장인 이창근씨가 대법원 선고 직후 한 말은 이들이 느끼는 당혹감과 막막함, 절망의 깊이를 보여준다.

대법원의 판결문에 적힌 언어는 짧고, 단순하고, 건조하다. “정리해고를 단행할 만한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가 있었다” “예상매출 추정이 합리적이고 객관적 가정을 기초로 한 것이라면 그 추정이 다소 보수적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합리성을 인정해야 한다” “기업 운영에 필요한 인력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잉여인력은 몇 명인지 등은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나열돼 있다. 2심을 뒤엎는 판결이라면 2심과 달리 판단한 구체적 근거를 제시할 법도 한데, 판결문을 눈 씻고 뒤져봐도 없다. 대법원의 권위에 기댄 친기업·반노동 가이드라인, 또는 ‘사법적 판단’보다 ‘정치적 결단’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대법원의 판결이 있던 날은 공교롭게도 전태일 열사 44주기였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노동3권 보장하라’고 요구하며 열사가 제 몸을 불사른 지 44년이 지났지만 오늘 노동이 처한 상황은 춥고 엄혹하다. 정리해고에 맞서, 비정규직 처지에 절망해 목숨을 버리는 노동자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평화시장 ‘시다’의 눈물은 의류업계 인턴의 눈물이 돼 오늘도 마를 날이 없다. 파리 같은 목숨에 중노동·저임금이 서러워 노조 좀 만들어보겠다고 나섰다가 재계약을 거부당하거나 회사가 폐업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얼마인가. 한 번 찍히면 업계에 소문이 돌아 영영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될까봐 숨죽이며 일하는 인턴은 또 얼마인가.

13일 대법원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에 대한 무효확인소송에 대해 '해고는 유효하다'는 취지로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판결 후 대법원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저 참혹한 독재 시절에는 그래도 희망이란 게 있었다. 민주화가 되고 민주노조가 만들어지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때 ‘노동’이라는 어휘에는 ‘불온’과 ‘천대’의 어감과 함께 어떤 ‘신성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오늘 ‘노동’은 경멸의 언어가 되었다. 신자유주의의 해악 중 하나는 ‘노조’를 악마화했다는 데 있다. 비정규직을 외면했다고 정규직 노조를 욕하면서, 정작 비정규직과의 연대에 헌신적인 노조 간부나 활동가는 ‘외부세력’이라고 비난한다. 이런저런 구실을 둘러댈 뿐 이들이 말하고 싶은 바는 하나다. ‘노조는 싫다’는 것이다. 이들 역시 비정규직이나 저소득층의 고단한 삶을 위무하지만 온정주의의 수인한계는 분명하다. ‘동정과 시혜의 대상’에 머물 때는 너그럽지만 ‘권리의 주체’로 나서는 순간 온갖 공격이 가해진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그랬던 것처럼. 대법원의 판결도 이런 시류를 반영한 것일 터이다.

공동체 구성원 대다수는 노동자이고, 어떤 권리도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노동의 상황이 엄혹하다는 건 노조 바깥에 있는 90%의 노동자를 권리의 주체로 묶어세우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사회적 의제가 됐다는 의미다. 절망이 깊을수록 먼 미래를 내다보고 첫걸음을 떼야 한다. 다시 문제는 ‘조직화’다.


정제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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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쌍용차

“기자님, 진짜 이거는 바꿔야 됩니다. 1심 2심 3심까지 가면 몇 년 걸리잖아요. 사장이야 오래 끌수록 좋겠지만 회사에서 잘린 노동자는 그 시간을 도대체 어떻게 견딥니까. 이것 좀 어떻게 해야 한다니까요 정말.”

지방의 한 노동조합 사람들을 취재하고 기차역으로 향하는 길에 중년의 노동자가 수차례 반복했던 말이다. 해고의 부당함을 확신하고 있는 그에게 세상은 납득되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부도덕한 사장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비용을 줄이고 싶거나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 직원들이 있다면, 해고하면 된다. 법은 부당한 해고를 못하도록 하지만 법이 최종적으로 부당성 여부를 판단하기까지는 해고 상태가 유지된다. 부당 해고가 아니라는 최종 판결이 나오면 좋고, 부당하다고 하면 그때 가서 복직시키면 된다. 욕먹는 것만 감수하면 크게 손해날 일이 없다. 물론 소송에는 돈이 들지만 인건비 절감액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반면 당장 먹고살 일이 막막한 해고 노동자에게는 소송 비용 대기도 벅차기만 하다. 법은 평등하지만 판결을 받기까지의 부담은 평등하지 않다.

명진 스님은 최근 케이블 설치·수리 노동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회사가 어렵다며 나가라는 것은 굶어 죽으란 소리다. 예전처럼 농사짓는 시대도 아니고, 일이 세분화돼 있어서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1980년대 구로공단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은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올라 재취업이 사실상 봉쇄됐다. 20여년이 흘러 민주화되고 경제가 발전했다지만 2009년 해고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택 바닥에서는 발붙일 곳이 없어서” 일자리를 찾아 타지를 전전하다 쓸쓸한 죽음을 맞기도 했다.

오는 11일이면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2000일을 맞는다. 눈뜨면 절망인 날들을 2000번이나 견뎌냈다. 쓰러져 있는 이들은 수십억원의 손해배상 판결로 다시 한번 짓이겨졌고 동료와 그 가족들의 잇따른 부음은 가장 힘든 고통이었다. 아예 다 잊고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해고는 부당했기 때문에 버티며 싸웠다. 무엇보다 구조조정의 근거가 됐던 회계 자료들이 엉터리였다. 지난 2월 서울고등법원의 ‘해고 무효’ 판결에서 인정한 유형자산손상차손의 과대계상의 핵심이다. 쉽게 말하면, 향후 생산 설비(유형자산)에서 예상되는 매출이 아예 없는 것으로 간주해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회계에 반영했던 것이다. 기존 차종을 단종시키고 후속 신차는 개발하지 않는다는 전제다. 이 전제대로라면 회사를 접겠다는 의미여서 앞뒤가 맞지 않다. 회계는 숫자의 정확성이 생명인데 감사조서(감사보고서의 기초 자료)와 감사보고서의 숫자가 일치하지 않았다. 감사조서에는 작성한 회계사의 서명조차 없었다.

쌍용차 정리해고 무효소송 최종 선고(13일)를 앞둔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무효판결'을 바라는 2천배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쌍용차 정리해고 2002일째인 오는 13일 대법원의 선고가 내려질 예정이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그동안 형극의 시간들을 살아냈던 것은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와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아니 그 이전에 받아들일 수 없는 부당함에 대한 가슴속 깊은 분노와 저항이 밑바탕이 됐을 것이다.

겨울로 가는 길목이다. 철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누군가 좋아하는 계절을 물으면 괜히 겨울이라고 답하곤 했다. 군대에 가서야 뼈저리게 느꼈다. 없는 사람들에게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겨울 바람은 잔인하다. 그 바람은 몸을 지나 마음까지 얼어붙게 한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에게 올해 겨울은 확실히 다를 것이다.

봄 같은 겨울이 될지, 아니면 더욱 혹독한 겨울이 될지는 11월13일 결정난다.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상식과 신뢰의 둑이 무너진 듯하다. 영혼을 잠식한다는 불안만 커져간다. 대법원의 쌍용차 정리해고 판결만큼은 상식의 선을 벗어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박철응 정책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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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쌍용차

방송인 김제동씨의 만담에는 페이소스가 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탁월한 공감능력이 바탕에 있는 듯하다. 지난 8월말 김씨는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상대로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김씨는 이런 말을 했다. 세월호 사고 이후 나온 숱한 말들 중 사람의 사람됨에 호소하는 가장 강력한 발언으로 생각되기에 다소 길지만 인용한다.

방송인 김제동씨가 지난 달 29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대통령의 결단과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인근 서울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농성중인 유가족들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제가 어렸을 때 촌에서 자라서 그 새끼 송아지를 먼저 팔면 어미소나 아빠소가 밤새도록 웁니다. 그냥 하루만 우는 것이 아니고, 일주일 열흘을 끊이지 않고 웁니다. 그냥 우는 것이 아니고 막 끊어질 듯이 웁니다. 그러면 적어도 제 기억에는 새끼 소를 팔았던 우리 삼촌, 우리 동네 아저씨가 (울먹이면서) 이렇게 그 다음날 아침에 담배 하나 피워 물고 소죽을 더 정성껏 끓였고 영문도 몰랐지만 동네 아이들은 그 소 앞에 가서 지푸라기 들고 뭐라도 먹이려고 했어요.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꼈고, 어떤 이웃도 어떤 사람도 저 소새끼 왜 우느냐고 하는 이웃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다못해 소에게도 짐승에게도 그렇습니다. 적어도 그 소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요. 기한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 슬픔이 멈추는 날까지 그때까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과 사회구성원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필요한 건 공감과 진실이었다. 공감은 두 차원에 걸쳐 있다. 하나는 유가족의 슬픔을 내 슬픔에 가깝게 느끼고 배려하는 것이다. 위 발언으로 김씨가 말하려던 게 이것이 아닌가 싶다. 사람됨의 기초를 이루는 이런 성정을 연민이나 연대감이라고 달리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세월호 참사가 곧 내 일이라는, 참사를 불러온 정치·사회·경제적 구조에서 나도, 내 자식도 희생자가 될 수 있었고 언제고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구체적 실감이다. 유가족의 문제를 내 문제로, 사회구성원 모두의 문제로 확장하는 것이다.

진실의 효용 역시 두 가지로 나눠봄직하다. 첫째, 피해자 치유적 측면이다. 진실이 바탕이 됐을 때 유가족의 상처는 치유된다. 유가족에 대한 동료 시민의 연민은 유가족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진실규명으로 향하는 게 자연스럽다. 둘째, 시스템 치유적 측면이다. 진실을 토대로 잘못된 것을 모조리 뜯어고칠 때 비로소 사회는 참사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은 사회구성원 모두의 직접적인 삶의 문제이다.

공감과 진실은 동전의 양면이다. 둘 중 하나만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진실 규명에 소극적인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유가족에게 모질고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7시간의 진실’에 대해 침묵하고, 새누리당은 유가족이 아니라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통에 공감한다. 극우세력은 단식하는 유가족 앞에서 ‘폭식투쟁’이니 뭐니 하는 저열한 퍼포먼스를 벌이고, 해방공간에서 백색테러로 악명을 떨친 서북청년단의 재건을 주장한다. 보수언론은 소위 ‘정치화된’ 유가족의 개인사를 침소봉대하며 ‘말 몽둥이’ ‘글 몽둥이’로 두들겨패는 데 여념이 없다. 유가족이 ‘정치적 행동’의 전면에 나선 것은 정부·여당이 진실 규명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세월호 문제의 가장 큰 책임자는 유가족이 아닌가 착각이 들 지경이다.

며칠 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특별법에 대한 3차 합의안을 내놨다. 유가족의 의사는 그다지 반영되지 않았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유가족을 이긴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조성된 거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허물고 사회를 ‘내 편, 네 편’으로 찢어놓은 대가로 얻은 승리다. ‘참사 이후’ 한국 사회는 도리어 ‘참사 이전’보다 퇴행했다. 박 대통령은 승리했지만 한국 사회는 패배했다. 대통령이 참사 피해자인 유가족과 싸울 때부터 예고된 패배였다.


정제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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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