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는 40대 젊은 여자가 흔치 않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많은 강원도 산골 같은 경우 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도 드물고 개 끌고 다니는 사람은 더더욱 흔치 않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에 젊은 여자가 나타나 개 두 마리를 끌고 다니는가 싶더니 이내 자전거를 타고 개를 끌고 다니는 일이 벌어졌다. 그게 그해 조용한 그 시골마을의 최대 사건이며 구경거리였는지 모른다. 정말이지 모두들 밭일하던 일손을 멈추고 기이한 구경거리라도 되는 듯 ‘그 여자’를 바라봤다.

그 이후 우리 동네에서 나는 ‘개 끌고 다니는 여자’로 통하게 됐다. 무슨 체호프 소설의 주인공처럼 여전히 미스터리한 구석이 많은 모양이다, 동네 사람들에게 나라는 여자는…. 개를 데리고 아침저녁으로 마을을 산책한 지 4년이 지났건만 동네 아주머니는 아직도 4년째 같은 질문을 하신다. “근데 개는 왜 끌고 다니는 거래? 덩치가 산만 한 녀석들을…. 고생스럽게 뭐하러…. 게다가 두 마리씩이나…. 내가 당최 알 수가 없어서 말이야.”

경기 용인시 기흥호수공원에 조성된 반려견 놀이터에서 반려견들이 뛰어놀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런 질문에 처음에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개의 마음으로 생각해 보면 맨날 끈에 묶여 있으면 답답하고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다행히 저도 산책을 좋아하고 개들도 좋아하니 같이 다니면 좋잖아요?”

그런 생각으로 아침저녁,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심지어 마감이나 숙취로 몸과 마음이 괴로운 날이라도 개와 함께 산책하는 일을 웬만해서는 거르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우리 개들이 바뀌었다. 길에서 만나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공격적으로 짖어대던 녀석들이 이제는 누구를 만나든 해맑게 웃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덕분에 요즘은 교대로 한 마리씩 풀어서 다니기에 이렇게 답변할 수 있게 됐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행복해서요. 개도 좋아하고, 걷는 것도 좋아해서 둘 다 같이 하니까 너무 좋아요.”

말하자면 나는 이른바 개를 사랑하는 애견인이다. 요즘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서 탈도 많고 말도 많은 문제의 애견인.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다. 그 모든 것이 사실은 개의 문제라기보다는 반려인들의 문제라는 걸. 한마디로 개통령이라고 불리는 사람 말이 맞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나쁘거나 생각이 짧은, 혹은 이기적이거나 게으른 견주가 있을 뿐.”

고백하자면 나의 개도 무는 개였다. 갈색개 나무와 검정개 개울이 중에서 더 소심하고 더 겁이 많은 개울이가 사람을 두 번이나 물었다. 한 번은 택배 아저씨를 물었고 한 번은 세탁 세제를 팔러 온 방문판매원을 물었다. 그때 남편은 매정하게 사람 무는 개는 안된다며 안락사를 고민했고, 나는 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울면서 사죄하고 만류했다.

그랬던 녀석이 지금은 얼마나 온순해졌는지 모른다. 심지어 이젠 맨날 보는 가족보다 새로운 얼굴의 손님을 더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리 집을 찾아오는 낯선 사람들과 잘 지낸다. 잘 모르는 자동차와 함께 손님이 도착하면 집으로 손님을 안내하고 고기를 굽거나 마당에서 공놀이하는 이들의 발치에 누워 있다가 함께 산책을 나간다. 처음엔 개가 무서워 자동차에서 내리기를 주저하던 아이들도 이내 개의 친구가 되어 단짝 친구인 듯 함께 놀다가 집에 돌아갈 때 개울이와 나무에게 편지를 써 놓고 갈 정도다. 개 때문에 집에 가기 싫다고 우는 아이들도 있는가 하면 개 때문에 부모를 졸라 다시 찾아오는 아이들도 있으니 홍보와 영업을 겸한 중독적인 매력의 ‘개부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나는 우리 개들을 이른바 학교에 보낸 일이 없다. 훈련사에게 특별 과외를 시키지도 않았다. 다만 집 안에 갇혀 살면서 인간의 방식과 규율만을 강요받는 현대의 개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키웠다. 개울이와 나무는 늑대의 후예다운 그들의 본성이나 행동방식을 충분히 존중받으며 컸다. 개의 마음으로 판단하건대 하루에 두 번, 세 번 산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어 야생에서 끈 없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줬고 그 때문에 마음고생이 크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둘 중 한 마리를 교대로 풀어 키울 수 있게 됐다.

물론 그 이후로도 산책은 계속됐고 사랑한다는 확신 아래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자주 웃는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때로는 울면서 걱정이나 슬픔을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개와 인간이 가족의 일원으로서 함께하는 삶의 행복감과 위안을 귀히 여겼고 그 행복감을 기꺼이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두려움 없이 그렇게 했다. 그랬더니 모든 것이 저절로 좋아졌다. 물론 시골이기에 가능했지만 시골이라도 개를 대부분 묶어 키운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환경보다는 네 발 달린 짐승답게 움직이고 뛰고 싶은 개의 본성과 욕구를 존중하는 마음과 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개와 인간이 보다 평화롭고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꼭 읽어야 하는 책 <당신의 몸짓은 개에게 무엇을 말하는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개에겐 운동이 필요하다. (중략) 내가 보아 온 수많은 개의 행동상의 문제들이 권태로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개들을 마음껏 뛰어놀지 못하게 하면서 동시에 더 많이 돌봐 줄 때 더 심각해지는 문제다.” 그게 바로 아파트에 살며 오늘날 회자되는 그런 엄청난 비극을 초래한 그 프렌치불독과 진돗개가 가진 문제의 본질 아니었을까 싶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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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책읽기는 닮은 점이 많다. 그것은 우리가 애타게 기다리던,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시간 보내기이며 달콤한 휴식이며 동시에 재충전을 의미한다. 그리고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여행과 책읽기는 우리를 다른 세계로 옮겨놓는다. 순식간에. 그리고 다른 세계로 이동한 우리는 잠시나마 우리가 떠나온 현실 세계를 그 어느 때보다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 때문에 얻게 되는 어마어마한 효과가 있다. 새로운 삶의 전망을 얻게 된다는 것. 독서와 여행을 통해 말이다.

세상에 여행과 독서의 힘으로 인생을 바꾼 수혜자 그룹이 있다면 나 자신이야말로 그 그룹의 중심에 있어야 할 것 같다. 사표 쓸 각오로 받아낸 1년 무급 휴가로 여행과 독서를 병행한 덕이다. 틀림없이 그 덕이 맞다.

거대한 나무뿌리에 깔리다시피 한 타프롬 사원.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 경험 이후 한참을 헤매긴 했지만 결국 나는 잡지사 기자 생활을 접고 원하던 대로 가끔 글 쓰고 수시로 몸을 놀려 노동하는 시골의 민박업자가 됐다. 하루 두 번 개와 함께 시골길을 산책하며 더 이상 감옥 같은 마감과 야근은 내 것이 아니다 되뇌는데 그러면 그때마다 얼마나 심장 뻐근하게 행복한지 모른다.

바로 그 여행과 독서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싶은 무의식의 발로 같은 걸까? 여권과 책만 챙기면 비행기 탈 준비가 다 된 것 같다. 대체로 여행가방 안에 무슨 책을 넣을지 고민하며 짐 싸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고민한다. 이걸 넣을까? 아니 뺄까? 혹시 너무 무거울까? 빼면 나중에 가져오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까? 읽을 게 없어서 손가락 빨며? 혹시 너무 심심해서 태국어로 쓰여 있는 음료수 병에 붙은 성분 표시 안내문 같은 걸 읽게 되는 건 아닐까? 비행시간이 총 9시간이고 그중 공항에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반인데, 걱정하며…. 늘 그런 식이다, 비행기 타기 전까지.

그런 과정을 통해 간택받은 책은 총 6권. 그중 2권은 우리의 여행 목적지 앙코르와트에 대한 것이고, 남편과 나의 책이 각각 2권씩이었다. 그중 내가 고른 책은 LP에 이어 카세트테이프로 음악 듣기가 다시 유행하고 있는 지금의 포스트디지털시대를 이해하기 딱 좋은 책 <아날로그의 반격>(데이비드 색스, 2016년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의 책)과 주진우 기자의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저수지를 찾아라>.

그 책들과 함께 캄보디아 여행을 다녀왔다. 인천공항이 생긴 이래 최대 인파가 이번 추석 연휴에 해외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는데 우리는 바로 그 직전 여유롭기 그지없는 비수기에 여행할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앙코르와트가 아닌가? 영화 <화양연화>에서 양조위가 자신의 소심함 때문에 한 번도 활짝 꽃피워 보지 못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앙코르와트의 돌틈 속에 봉인하는 모습을 본 이래로 늘 그곳에 가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곳은 남편과 나, 우리 두 사람이 꼽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첫 번째 여행지였다.

과연 좋았다. 컴퓨터도 포클레인도 없던 고대의 인간이 순수한 노동력만으로 그런 엄청난 보물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인간이 가진 위대한 창조력과 신비를 느끼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장소가 있을까? 1860년 밀림을 탐험하다 우연히 앙코르와트를 발견한 프랑스 식물학자 앙리 무오의 말처럼 이곳의 건축물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이 세운 것보다 더 장엄’하고, 거의 노예 상태에 가까웠을 수많은 도공들이 새긴 그 많은 조각품은 하나같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답고 창조적이어서 미켈란젤로가 눈곱만큼도 부럽지 않을 정도다.

가져온 책도 어쩜 그리 앙코르와트와 안성맞춤이던지. <아날로그의 반격> 거의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이런 글이 눈에 띄었다.

“디지털이 줄 수 있는 것은 현실세계의 풍성함을 흉내 낸 모사에 불과하다.”

맞다. 아무리 실감나는 영화를 본들 알 수 있겠나? 컴퓨터 게임 같은 액션영화 <툼레이더>를 아무리 여러 번 본다 해도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있겠나? 거대한 스퐁나무들이 뿌리를 내려 버려진 채 무너져 가고 있는 사원들을 움켜잡고 있는 현장 앞에 서 있는 경험이 어떤 것인지.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관능적인 그 많은 압사라 무희들의 부조작품을 실재하는 장소에서 손에 잡히는 물건으로 경험하는 일이 얼마나 감동적인 일인지.

그렇다면 앙코르와트를 여행하는 내내 우리와 함께한 <이명박 추격기>는 왜 여기에 온 것일까? 처음엔 몰랐다. 내가 왜 하필 이 책을 들고 캄보디아에 왔는지. 그런데 여행하면서 알았다.

“앙코르 왕조의 수리야바르만 2세는 자신의 왕권을 신격화하기 위해 앙코르와트를 지었어. 신에 가까워지고 싶은 그의 야망이 건축과 예술을 집대성한 이런 걸작을 만들게 한 거지. 그런데 이명박은 돈에 대한 야망으로, 그것도 그와 그 주변 인물들만 벌 수 있는 돈을 위해서 국민의 대다수에게 엄청난 해악이 되는 4대강 사업을 했어. 수리야바르만은 인공저수지 위에 앙코르와트를 지었지만 이명박은 저수지에 돈을 감춰뒀지. 우리만의 앙코르와트를 지을 수도 있는 엄청난 돈이야. 그걸 찾아내야 해. 백년, 천년 뒤의 후대를 위해서도. 앙코르와트든 이집트든 세계 어디에 있든 주진우의 책 <이명박 추격기>를 사서 읽어야 하는 이유지.” 집에 돌아가면 3권 더, 아니 가능하면 더 많이 이 책을 사야겠다며 내가 남편에게 한 말이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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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충제 계란’ 파장 속에서 누구든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보건 당국이 독성화학물질을 만들어 내거나 사용하는 기업 혹은 농장과 결탁을 하고 있다면?” 누구든 했을 법한 질문이다. ‘양심’에 따라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언론이라면 마땅히 해야만 하는 질문이었고. 영화 <공범자들>을 만든 최승호 PD가 집요하게 MB(이명박 전 대통령)를 잡고 늘어지며 하는 대사처럼 “언론이 질문을 못하면 나라가 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렇게 묻는 언론이 있었고 그 언론이 꼽은 최고의 전문가는 조심스럽게 ‘예스’나 다름없는 답을 내놓았다. 서울대 약학과 정진호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민정수석실에서 관리했다는 살충제 계란 문제에 대해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현재 발표되고 있는 인체의 유해성에 대해서 급성독성이라는 게 뭐냐면 단기간 많은 양에 노출되는 거거든요. 그 시나리오가 자꾸만 유해하다 안 하다 하는데 사실은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중략) 제 생각에는 정부 부처는 시끄러울 수 있는 문제를 피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니터링을 적극적으로 해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거든요.” 이해한다. 그렇게 소극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그의 사회적 위치와 상황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답은 내게 분명히 “예스”라고 읽혔다.

그 ‘예스’라는 희미한 신호음과 함께 읽기 시작한 책이 있다. <죽음의 식탁>이라는 책이다. 마리 모니크 로뱅이라는 프랑스의 한 공영방송 기자 출신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지난 수십년간 암, 백혈병,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불임, 자가면역질환 등의 질병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이유를 조사하기 위해 프랑스, 독일, 미국, 인도, 칠레 등 10개국에서 50명의 과학자, 활동가, 규제기관 대표들과 인터뷰해서 쓴 책이다. 2년간의 방대한 조사와 끈질긴 추적 끝에 저자는 밭이나 농장에서 쓰는 농약, 살충제부터 식품에 들어가는 첨가제와 플라스틱 용기까지 우리 일상에 만연한 독성화학물질이 바로 그 많은 질병의 주요 원인임을 알려준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독성화학물질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에겐 발이 없고 마땅히 신을 만한 신발도 없고, 자동차가 없으며 차표도 물론 없다. 인간에게 가서 인간을 무너뜨리고 싶은 의지나 야망도 당연히 있을 리 없다. 다만 인간의 건강이나 환경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기업과 규제기관의 논리가 있을 뿐이고, 그 논리로 잘 먹고 잘사는 대기업과 과학자, 규제기관의 기만과 속임수가 있을 뿐이다. 그로 인해 세상은 어디나 구석구석 독성화학물질과 그로 인한 갖가지 질병이 만연한 곳이 됐고.

세상에, 그래도 아무 문제 없단다. 많이 먹으면 나쁘지만 안 죽을 만큼 조금씩 먹기 때문에 괜찮다는 논리다. 그게 ‘살충제 계란’에 대한 정부의 논리고, 대한의사협회의 논리다. 하지만 왜 정부와 전문가가 괜찮다고 하는 독극물의 ‘일일 섭취허용량’ 개념을 비웃으며 하등 이로울 것이 없는 미량의 독을 우리에게 허용하여 결국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소비자이고, 그 이익은 기업들이 가져가게” 되어 있는 것이 현재의 체계라고 했던 영국인 교수 에릭 밀스톤의 말이 계속 귓속에 쟁쟁하게 울리는 것인지.

그렇다면 이 사태를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당분간 계란 섭취를 피하는 건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나는 물론 내 가족을 두고두고 괴롭히는 재앙에 가까운 질병을 피할 수 있다면 앞으로 계속 안 먹고 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없다. 계란 하나 안 먹는다고 우리 일상에 만연된 그 많은 먹거리의 위험과 질병에서 면제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어떤 면에서 <죽음의 식탁>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던 피터 싱어의 <죽음의 밥상>이 처음 출간됐을 때 생각이 난다. 그때는 경제적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업형 농장의 횡포와 이를 숨기거나 묵인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도 컸지만 그보다는 동물들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이전까지 인간의 식탁에 오르는 동물들이 사육되고 도축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잔인하고 비윤리적인 상황에 처하는지 몰랐던지라 어마어마한 충격 속에서 지금껏 아무 생각 없이 육식을 값싸게 즐긴 나 자신을 반성하기에도 벅찼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피터 싱어의 <죽음의 밥상> 출간과 광우병 사태 이후 나 자신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윤리적 소비에 대해 생각했고 조금 더 비용을 치르더라도 유기농 혹은 친환경이라는 딱지가 붙은 먹거리를 선택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났지만, 친환경 인증에 대한 신뢰는 되레 조금씩 배신당했고 세상은 조금씩 더 나빠졌다.

이제는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 유기농 채식주의자가 되지 못한 나는 혼자 그렇게 산다고 상황이 나아질까 비관한다. 그 편이 제일 속 편하니까.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에 물어보고 싶다. 국민이 원한다면 농약이나 독극물에 가까운 화학약품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기업이 사회적·환경적 비용을 기꺼이 감수하는 등의 시스템적 개혁에 앞장설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토록 지지율이 높은 국민의 정부라면 그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 누구도 아닌 국민된 자격으로 물으니 국민에 의해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답하길 바란다, 오버.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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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저널리즘의 거장 마시모 비탈리(Massimo Vitali)가 찍은 사진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인파로 장관을 이루는 해변 풍경이다.

그 사진을 보고 있으면 이름난 여름 해변 풍경 속에서 있을 수 있는 온갖 이야기를 상상하며 그곳에 가고 싶다는 열망을 품는 동시에 그것이 나의 현실이 아니라 그저 남의 이야기이고 또 사진이라는 사실에 이상하게 안도하게 된다.

그보다 더 잔인한 작가도 있다. 여행이나 휴가에 대해 누구보다 더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마틴 파(Martin Par)의 사진을 보면 안도감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해방감이 느껴진다.

천연기념물 제260호인 강원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백룡동굴. 경향신문 자료사진

진저리 칠 정도로 평범하고 재미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마틴 파는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에서 기가 막히게 재미난 사진을 뽑아내는 작가로 알려졌는데 특히 유명 관광지와 휴양지의 적나라한 사실 풍경 찍기가 그의 주특기다. 미안하게도 우리 관람객은 넘쳐나는 쓰레기통과 수영복 차림으로 매점 앞에 줄을 선 짜증난 얼굴들, 그 앞에서 빡빡 울다가 기껏 아이스크림(그것도 무더위 때문에 처량맞게 녹아내리고 있는 꼴의 아이스크림)을 빨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담은 휴양지 사진을 보며 키득거리는 가운데 굉장한 위로를 받는다는 사실. 이런저런 이유로 여름휴가를 못 간 채 뜨겁게 달구어진 도시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사실상 마틴 파의 사진만 한 선물이나 힐링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올여름 유럽의 에메랄드빛 해변에서 연일 40도를 넘는 이상 고온 현상으로 ‘힐링’은커녕 ‘럭셔리한 지옥의 맛’을 경험한 여행객들(특히 크로아티아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과 지중해 연안)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만약 그들이 여름휴가를 준비하며 관광업자들이 준비한 광고 사진이 아니라 마틴 파와 마시모 비탈리의 포토 저널리즘 사진을 봤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거기 갔을까 싶다. 아니 그보다 미국의 사상가 겸 시인 랄프 왈도 에머슨이 쓴 글귀 몇 가지만 읽었어도 해외 휴가 여행은 애초에 꿈도 안 꿨을 것 같다.

예컨대, “여행은 어리석은 자의 낙원이다” “여행에 대한 맹신은 자기 문화의 결핍에서 나온다” 같은 강렬한 지침의 문구들 말이다. 여담이지만 마시모 비탈리도, 마틴 파도, 에머슨도 좋은 작가다.

좋은 작가란 ‘우리가 일상에서 잘 볼 수 없는 삶의 중요한 면들을 상기시켜야 한다’는 시인 워즈워스의 기준에서 본다면 말이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일찍이 소로를 통해 에머슨을 알고 에머슨을 읽으며 그의 사상에 무릎을 꿇었던 나다. “여행이라는 미신에 매혹당하는 것은 자기 수양이 부족한 탓이다. 하지만 인간 내부에서 힘이 넘쳐 오르면 그는 자신의 의무 속에서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를 발견하게 된다.” 에머슨의 그와 같은 가르침을 읽으며 여행으로 잠시 한눈을 팔기보다 본질적으로 내 삶의 방향과 장소를 바꾸는 데 나의 모든 에너지와 열정, 시간을 쏟았다. 그로부터 7년쯤 지나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한 것일까?

이제 다시 나도 여행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솟구친다. 해외 휴가 여행의 유혹이 슬금슬금 수시로 머리를 쳐드는 가운데 아이슬란드나 피렌체, 치앙마이, 프롬펜 등 남 몰래 동경하던 몇 개의 지명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바람이 내 이름이라도 호출한 듯 설레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예전처럼 저가항공편을 검색하지는 않는다. ‘저가’라고 덜컥 예약했다가 일찍 취소한다고 했는데도 날린 돈이 너무 많아 이제는 아예 저가항공 사이트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그 대신 하는 일이 있다. 강원도 지도 살펴보기! 구석구석! 차를 몰고 나가기! 그다음 돌아다니기! 구석구석!

덕분에 숨겨진 보석 같은 강원도를 많이 알게 됐다. 그중 제일의 보석을 소개하라면 나는 주저없이 백룡동굴을 꼽을 것이다. 종교와 자본이 만나 출중하게 눈부신 오대산 월정사나 케이블카를 타고 쉽게 올라가 관람할 수 있는 설악산, 잘 정비된 동해 바다에 최첨단의 트렌디함까지 갖춘 강릉과 경포대도 좋지만 자본으로 분칠할 수 없는 놀라움이나 신비감 면에서 백룡동굴이 앞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실상 폭염을 피해 동굴만큼 시원한 피서지가 있을 수 없는데 백룡동굴은 탐사 인원이 제한되어 있고 동굴 내부의 훼손을 감추기 위한 인공조명이 거의 없기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다. 아주 최근까지 일반 공개를 금지하며 천연 그대로 잘 보존한 세계적인 수준의 석회암 동굴이기 때문에 ‘관람’이 아니라 진짜로 ‘탐사’ 수준의 복장과 자세를 갖출 것을 요구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뿐 아니라 동강을 따라 굽이굽이 가는 길 자체가 힐링이 되고 2시간 정도 걸리는 동굴 탐사는 한마디로 오감으로 체험하는 종합예술이고 신비다. 당연히 주말이나 여름휴가철에는 예약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곳이 됐으니 미리미리 챙겨두시길. 사전 예약은 필수고 9세 이하, 65세 이상의 제한 나이가 있다는 점도 기억해 두자. 또한 비수기 평일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일종의 ‘행운아’이니 그 행운 놓치지 말라는 말도 덧붙인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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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기간 동안 단칼에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 참 기뻤다. “입만 열면 4차 산업혁명 이야기하는 안철수는 4차 산업혁명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다. 4차 산업혁명은 실업자를 대량생산하는 산업이다. 국가의 주도적 대비가 필요한 이유이다.” 얼마나 좋던지…. 안철수 후보가 자기만 잘 알고 있는 세계인 양 TV 토론에서 주야장천 ‘4차 산업혁명’ 얘기하는 게 참 듣기 싫던 차였는데 팟캐스트에서 도올 김용욱이 이렇게 속시원하게 발언해 주니 좋았다. 역시 ‘우리 시대 최고의 석학 도올다운 명석한 해석’이라며 박수를 쳤다.

그렇다. 누구의 발언이든 간에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있다. 누구보다 우리 아이들이 로봇에게 일자리를 뺏긴 상황 속에서 그 끝을 알 수 없는 빈곤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상상하면 끔찍하다.

어린이들이 풀들을 바라보며 숲길을 걷고 있다. 자연은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생활 방식으로 둔화된 인간의 감각을 다시 일깨워주는 놀라운 회복력을 품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는 인간의 희망은 오히려 자연에 있을지 모른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실제로 경제 전문가들은 2020년까지 7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21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긴다고 전망하는가 하면 모든 사람이 비정규직화되어 기업이 필요할 때 잠시 일을 하다가, 필요 없을 때는 집에서 실직 상태로 쉬는 현상이 계속될 수 있다는 암울한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 때문에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는 상황 속에 처해질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LBS(런던비즈니스스쿨)의 코스타스 마카 교수 같은 전문 석학은 “현재 18세인 아이들이 40세가 됐을 때는 평균적으로 10~14개의 직업을 거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때문에 아이들 키우는 부모들 걱정이 크다. 살던 대로 사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도대체 내 아이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환영받을 수 있는 창의융합형 인재로 어떻게 키운다는 말인가? 여기저기 뒤져봐도 뾰족한 해법이 안 보인다는 하소연 속에서 ‘내 아이 창의융합형 인재로 키우기’를 내 건 이런저런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걸로 안다. 하지만 진정 그런 책을 읽으면 문제가 해결될까? 혹시 그런 식의 제목을 내건 책들은 안철수식 말로만 하는 ‘새 정치’ 같은 게 아닐까?

내가 추천하는 책은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이다. 이 책은 뉴욕타임스가 소개하듯 ‘자동 기계 같은 아이를 키우는 걸 막아주는 1인치 두께의 경고서’일 뿐만 아니라 미래 시대에 걸맞은 ‘창의성과 융합성이 뛰어난 행복한 인재 키우기’를 위한 ‘희망서’라고 나는 소개하고 싶다.

우리 세대 대부분은 자연에서 뛰놀면서 상상력의 축복을 받으며 자라났다. 하지만 오늘날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학교와 학원에 갔다가 그 나머지 시간엔 컴퓨터와 게임기, 텔레비전 앞에서 사는 세대(행복을 모두 남이나 기계에 맡겨버린다는 점에서)가 됐다.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은 바로 그 사태가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얼마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것인지 먼저 알려주는 책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자연은 아주 작은 미물처럼 보이는 것일지라도 있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나 자신보다 거대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불완전하게 완전한 세계랄까? 그 속에서 아이는 편안하다. 노력하지 않고 무언가에 편안하게 집중할 수 있다.

그 때문에 그 안에 있으면 정서장애가 있는 아이라도 금방 평정심을 되찾게 되고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자연계의 일부분으로서의 편안한 자존감과 호기심, 모험심을 갖게 된다.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은 자연이 가진 그 특별한 힘을 우리에게 다시금 강렬하게 환기시켜 주는 책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또한 자연은 어떤 것이라도 창조해낼 수 있는 원천 재료와 가능성이 넘쳐나는 곳이기에 그 속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아이는 스스로 자기 손으로 이것저것 융합해 보며 놀이하듯이 매우 창의적인 시도들을 해 볼 수도 있다는 점은 얼마나 또 희망적인가? 마치 알을 품은 에디슨이 나중에 전기를 발명할 생각을 하듯이 기존에 있던 것을 융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생각의 힘을 갖게 된다고 할까?

아무리 훌륭한 전자장비라도 인간의 모든 감각을 동시에 일깨워 줄 수 없다. 하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편의주의 혹은 전자화된 생활 방식에 둔화된 인간의 감각을 다시 일깨워 주는 놀라운 회복력이 자연 속에 있다. 게다가 컴퓨터로 못하는 일,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해야만 하는 고전적인 일들이 자연 속에는 널려 있다. 바로 그 속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는 인간의 희망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컴퓨터나 인공 지능 로봇이 못하는 일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셈이다.

그나저나 다시 안철수로 돌아가면 그 모든 저열하기 짝이 없는 정치적 퇴행이 다 자기 잘못이라며 왜 구태여 정치계를 떠나지 않겠다고 버티는지 모르겠다. 걸핏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리더라고 스스로 치켜세우던 그가 혹시 일자리를 잃게 되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는 걸까? 그러게, 내 참…. 네팔까지는 못 가더라도 연구실을 뛰쳐나가 동네 야산에서라도 마음을 추스르고 치유를 얻고 비굴하지 않게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법을 배웠어야지, 쯧쯧.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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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만 해도 가장 경탄할 만한 상업 공간으로 라스베이거스의 베네치안호텔이 꼽혔다. 그곳은 라스베이거스의 다른 호텔들처럼 호화로울 뿐만 아니라 특유의 모방과 복사라는 측면에서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경지에 달해 있다. 베네치안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건축물과 장식을 거의 똑같이 옮겨 왔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탈리아의 진짜 베네치아는 아예 잊으라. 베네치안호텔이 한결 낫다”고 말할 정도였다. 리알토 다리나 콘타리니 궁전은 물론 대운하와 곤돌라 사공의 노랫소리, 심지어 20m 높이의 성당 천장에 드리워진 베네치아의 엷은 보랏빛 하늘까지 옮겨 왔다. 이곳에 발을 들여놓으면 넋이 나간 듯 “세상에 저게 왜 여기에 와 있지?”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게다가 진짜 베네치아처럼 역한 냄새가 없어서 좋았다. 느닷없이 비가 와서 옷이 젖는 일도 없었다. 더러운 개가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는 일도 없다. 대신 사계절 가장 쾌적한 온도와 습도 속에서 인공의 호사스러움이 구석구석에 배어 있어서 베네치아보다 낫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런데 베네치아를 똑같이 베낀 이 호텔이 가장 라스베이거스다운 곳으로 꼽힌 이유는 뭘까? 그건 모방 때문이다. 라스베이거스가 어머어마한 돈과 교활한 장삿속이 만든 허위의 모방 도시이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낡은 고가에서 사람이 걷기 좋은 길로 새롭게 태어난 서울역고가 ‘서울로 7017’. ‘7017’은 서울역고가가 개통했던 1970년의 ‘70’과 보행길로 다시 태어난 2017년의 17’을 합쳐 만든 이름이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가짜 베네치아 호텔 같은 곳이 아직까지도 인기가 있을 리 없다고 장담해 본다. 나라면, 공짜이거나 엄청난 헐값이라면 모를까 제 돈 주고 가서 숙박하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쇼핑센터 가듯 잠깐 놀러갈 수는 있겠다.) 왜냐하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놀라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그 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른 때가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러한 곳들이 죄다 한물간 퇴물처럼 느껴지는 때가 됐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유행이 지났다’는 말이다.

처음부터 ‘초’ 치기 싫어서 지나가는 말로 하지만 솔직히 걱정된다. 화산분화구나 오름 같은 가장 제주다운 절경을 모두 가져다 한자리에 모아둔다는 발상의 ‘제주 드림타워’의 미래가…. 야담이지만 말이다.

전 생애에 걸쳐 ‘매혹으로서의 대도시’에 대해 연구한 독보적인 사상가 발터 벤야민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이렇게 썼다.

“대중을 선도하는 것은 매번 최신의 것이지만 그것이 대중을 선도할 수 있는 것은 실제로는 가장 오래된 것, 이미 존재했던 것, 가장 친숙한 것의 매개를 통해 나타나는 경우에 한해서이다.”

마치 발터 벤야민이 오늘날의 건축계 흐름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그 옛날에 미리미리 쓴 글 같다. 한때는 대중의 이목을 끌었지만 어느새 수명을 다해, 혹은 더 이상 인기가 없어서 낡고 부서진 채로 철거 대상이 된 옛날 건물이 새로운 용도와 이름으로 멋지게 개조되어 다시 살아나는 현상이 전 세계적인 트렌드가 됐다. 목하 한창 유행 중인 ‘재생 건축’ 말이다.

그 포문을 연 건 한강의 버려진 정수장을 재생시켜 만든 생태공원 선유도. 때는 2003년이었는데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시적인 장엄함에 압도되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공공건축물이 생겼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에 단박에 건축가 조성룡을 찾아가 인터뷰를 청했던 일이 새삼 떠오른다.

그 이후 1925년 일제강점기 지어진 서울역이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로 태어났고 숙박요금이 8000원이던 시절에 멈추어 폐허가 된 보안여관이 대안미술공간으로 거듭났다. 문래동의 철공소 골목은 아예 그 골목 전체가 젊은 예술인들이 주도하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부활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가보지 못했지만 고구마 전분 공장의 흔적이 드라마틱하게 남아 있는 제주도 카페 앤트러사이트의 성공 신화는 질투가 날 정도다. 윤동주 문학관으로 탈바꿈한 인왕산 수도가압장 건물과 미술관이 된 찜질방 얘기는 어떤가? 한 번쯤 다 가보고 싶다.

그리고 아주 최근에 김어준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 나온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서울역고가 보행길 ‘서울로 7017’ 개장 소식을 들었다. “아 그러니까 버려진 고가 철도를 공원화하여 성공한 뉴욕의 하이라인(Friends of the High Line)을 모방한 거구나, 그렇죠?” 하고 김어준이 즐거운 듯 놀렸고 박원순이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아 모방 좀 하면 어때요? 그게 훌륭한 발상이고 모두를 위해 좋은 것이라면?”

맞다, 백번 맞는 말이다. 코코 샤넬도 모방했고 모방한 후에 이렇게 말했다. “복제는 사랑이다.” 사랑하면, 좋아 보이면 공공을 위해 모방할 수 있다. 그게 모방죄가 되지 않는 한도에서 말이다.

그리고 성공한 모방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 번째, 베낄 거면 진정 좋은 것을 베껴라. 두 번째, 유행 타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세 번째, 잘 베껴라. 네 번째, 원작을 뛰어넘겠다는 목표와 비전이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서울시 스스로 어떤 답을 내릴지는 나도 모르겠다. 여하튼 응원한다, 계속 잘하실 것을.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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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인에게 최초의 노벨평화상이 주어진다면 이 여자가 받아야 마땅하다. 생존하는 세기의 ‘걸크러시’ 패티 스미스. 밥 딜런과 함께 2017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라야 마땅했을 만큼 문학적인 재능이 남다른 음악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밥 딜런처럼 거만하지 않다. 애매모호한 가사로 심오한 척하지도 않는다. 성품은 강건하되 겸손하고 메시지는 한 편의 저항시인 듯 분명하되 아름답다.

그런 그녀가 2009년 생애 최초로 한국을 방문하여 지산록페스티벌에서 부른 노래가 있다. 노래하는 저항 시인으로서의 삶을 밥 딜런처럼 도망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선 40년 인생을 대표하는 곡 ‘피플 해브 더 파워(People Have The Power)’. “우리에게, 사람들에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그러니 “계속 꿈꾸고 희망하는 걸 멈추지 말라”고 주문하는 패티 스미스의 노래를 들으며 심장이 끓어올라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지만 사실은 속으로 울기도 했다.

지난 15일 서울 은정초등학교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사인을 받을 종이를 찾기 위해 다급하게 가방을 뒤지는 학생 앞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왼쪽 사진). 해당 학생이 문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사인이 담긴 공책을 펼쳐 들고 웃고 있는 사진도 인터넷에 공개됐다.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캡처

때는 그 꿈이, 그 희망이 너무도 요원해 보이던 이명박 정부 1주년 즈음이었다. 즐거운 일이라고는 기껏해야 후배 칼럼니스트 김현진이 이명박 정부 취임 100일을 맞아 음주 운전으로 먹은 벌점 100점을 사면받은 후 쓴 글조각을 읽고 낄낄대던 재미밖에 없었다. “내 벌점 돌려내라, 놈의 신세 따위 지고 싶지 않다, 적의 동정 따윈 필요 없다” 했던….

그랬다. 너무도 사사롭게 자기 이익을 알뜰하게 챙긴 이명박·박근혜 9년을 살며 즐거움이라고는 진정 그것밖에 없었다. ‘국민의 주권’으로 뽑은 ‘국민의 대표자’를 국민 스스로 미천한 동물 두 마리를 대동하여 놀려먹는 울적하기 짝이 없는 그 참담한 재미. 그것 말고는 아무런 공적 즐거움이 없는 시절이었다. 대통령 자격이 없는 잘못된 후보가 잘못된 언론의 눈가림 속에서 결국 대통령이 되는 나라가 싫어서 이민 갈 궁리를 하는가 하면 대통령이 나오는 뉴스라면 무조건 다 싫어서 TV를 끊고 신문마저 끊고 살던 때였다.

그런데 그 시절이 다 지나갔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꿈만 같다. 대통령 한 명 바꿨을 뿐인데, 심지어 며칠 안됐는데 이렇게 다를 수가…. 돈 한 푼 안 들이고 좋은 나라로 이민 간 것 이상이다.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는 물론 노르웨이나 핀란드마저도 부럽지 않다. 켄 로치나 아바스 키아로스타미풍의 멋진 로맨스 영화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매일 아침 대통령 뉴스를 찾아 듣거나 읽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힐링이 되는 나날이다.

그리하여 ‘후기 진실(post truth) 시대’ 사는 나는 오늘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유튜브 사설 뉴스를 본다. 대통령이 나오는 영국 영화 <러브 액추얼리>에 사랑스럽게 가난한 초등학생 아이가 나오는 이란 영화를 섞어 놓으면 이런 장면의 영화가 나오게 될까? 자기만 사인을 못 받게 될까봐 초조한 초등학생 아이가 가방에서 공책과 연필을 찾는 동안 기꺼이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는 대통령을 보게 될 줄을! 심지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쪼그려 앉아 있는 눈곱만큼도 권위의식 없이 듬직한 남자의 모습을 대한민국의 국민 된 자로서 보게 될 줄을…. 결코 ‘연출’이 아니라 자신의 살아온 ‘인생’으로, 지켜지지 않는 번지르르한 ‘말’이 아니라 오랜 시간 엄청나게 잘 준비된 진실한 ‘행동’으로 증명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에서 우리는 기꺼이 사랑과 자긍심을 느끼는 나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힘’ 안에서, 그 ‘힘’이 쌓이고 쌓여서 문재인이라는 대통령이 탄생한 거다. 답답하고 어눌하고 ‘권력욕’마저 없던 재수생 문재인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건 안철수와 함께 민주당 호남 의원들이 우르르 탈당했을 때부터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민주당 내부를 먼저 개혁하고 표창원이나 조응천 같은 참신한 외부 인사를 오랜 시간 공들여 끈기 있게 영입하는 문재인 당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난생처음으로 한 정당의 당원이 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자신의 금쪽같은 사생활을 반납하고 어이없이 무너져 버린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기꺼이 거리로 나온 촛불 시민들이 있었다. 사람의 에너지는 주고받으며 커진다. 매주 광장에서 촛불 시민들과 함께한 문재인은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힘으로 점점 더 막강하되 정의롭고, 막힘없이 따뜻한 리더로서의 자심감을 완벽하게 충전하게 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심지어 그 진정성은 의심하지 않지만 과연 적폐청산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지지자가 아닌 사람들조차 끌어안으며 통합할 수 있을지를 의심하며 끊임없이 이재명과 안희정을 곁눈질한 이들의 힘마저 흡수하여 더 유능하고 더 품이 큰 지도자로 거듭났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기존의 정통 미디어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대중의 시대’는 거의 다 끝나가고 있다.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는 TV조선의 2049 시청률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 정통 미디어가 감추는 진실의 이면을 서로를 공유하고 전파하고 학습하는 다중의 시대가 도래했고, 스스로 자신이 가진 ‘힘’을 인식하고 적극 행사하는 ‘시민 전성 시대’가 도래했다. 바로 그 다중과 시민이 9년간의 길고 긴 ‘대통령 스트레스 시대’를 ‘대통령 힐링 시대’로 산뜻하게 바꾼 것이다. 우리 모두 축하받아 마땅하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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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잘 알고 지낸다고 생각한 지인으로부터 충격적인 고백을 들었다. 지금껏 살면서 투표권을 행사해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이번에도 자신은 투표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정치인들에 대한 우리 모두 공감할 만한 불신과 혐오감을 감안하더라도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솔직히 말하면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너무도 당당한 그 태도에 말문이 막힐 정도로 당황하고 말았다.

어느새 오십의 나이였고 일하는 여자였다. 백화점의 이른바 명품 매장에서 일하는 용모 단정하고 야무진 성격의 꽃중년 여성. 산전수전 다 겪었을 것 같은 매니저급이었지만 ‘까칠한’ 부하 직원 때문에 때때로 울기도 하는 여자였다. 취향이랄까 가치관이랄까 뭐 그런 걸 공유할 만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난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적어도 인간에 대한 예의도 있고 말 못하는 짐승에 대한 연민도 있는 깔끔한 성격의 ‘천생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예전 같으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정치적 무지를 무관심으로 포장하지 말아라. 그건 쿨한 게 아니라 부끄러운 거다”라고 쏘아붙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19일 앞둔 20일 후보자 벽보가 부착된 서울 종로구 이화동 예술가의 집 울타리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parkyu@kyunghyang.com

더 이상 정치적 태도, 혹은 관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야유하거나 조롱하고 싶지 않았다. 역사적 관점에서 대한민국이 그렇게 흘러가서는 안되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시기가 왔고 그건 나 자신의 나이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오래 생각하고 싶었다. 최순실과 박근혜의 경악할 만한 국민주권 우롱사태를 겪고도 아직도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놈이 그놈이다’ 하며 투표권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나의 이웃이고 나의 친구이고 나의 가족일 수 있다는 사실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내 나름대로 그 해법을 찾고 싶었다.

“그들은 어쩌다 이 세상과 자신을 무관하게 여기며 자신의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을 되레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는가? 과연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생각해 보면 15년 전의 나 자신이 그랬다. 정치에 얼마나 무지하고 무관심했는지 여당과 야당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심지어 남자 친구에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박종필이 어느 당이냐”고 물었다. 그가 설마 하는 눈초리로 “혹시 정치 제일 오래 한 인간 김종필을 말하는 거냐”고 되물었을 때조차 나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다. 그때 내 나이 서른이었는데 그 나이까지 여전히 마감을 핑계로 한 번도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고 내가 사는 동네의 국회의원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부끄럽기는커녕 당당했다.

그때 난 이렇게 항변했다. 우리에겐 민주주의 국가에 살면서 ‘선거하지 않을 권리’ 또한 있는 거라고. 보수든 진보든 결국 자기 밥그릇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시시한 인간들이 모여서 국민 핑계 대며 자기 잇속이나 챙기기 바쁜 정치판을 최소한 ‘인정해 주지는’ 않을 권리도 우리에겐 있는 거라고. 또한 우리가 정치에 무관심한 건 그만큼 정치에 관심 쏟아봐야 좋은 꼴 못 보고 열이나 받을 뿐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고. 어디 그뿐인가? 투표율이 높아진다고 해도 제대로 된 정치인을 뽑힐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며, 설사 제대로 된 정치인 몇이 국회로 간다 해도 이 웃기는 나라는 예전에 하던 대로 돌아갈 뿐이라고. 그렇게 냉소하며 나는 나의 ‘정치적 무지’ 혹은 ‘무관심’을 항변하며 쿨한 제스처를 취했고, 그 제스처에 얼마간 나 스스로 취해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어느 날 문득 깨지고 말았다. 나 자신이야말로 내 일 바쁘다는 이유로 내가 속한 집단의 논리에 갇혀 세상일에 전혀 관심 갖지 않고 있다가 선거철만 되면 느닷없이 멋진 냉소주의자 행세하며 자신의 무지하고도 무관심한 현실 인식, 혹은 현실 참여 태도를 스스로 합리화하기 바쁜 시시한 소시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마도 그 기반엔 사랑의 힘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이제 막 깨어나고 있던 ‘의식 있는 시민의 힘’에 주목하고 있던 지나간 내 연인의 냉철한 비판이 어느 날 내 심장에 비수처럼 꽂혔던 거다. ‘혹시 네가 정치에 무관심한 건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누군가 그렇게 되도록 만든 것이 아니냐’고. ‘그 누군가는 그래야만 자신을 비롯한 특수한 사람들의 이익만을 위한 정책을 제멋대로 펼칠 수 있을 테니까’ 했던.

그러고 보니 갑자기 ‘사드’라는 키워드가 섬광처럼 떠오른다. 사드는 우리가 북한을 견제하기 위해 필요한 게 아니라,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필요한 거다. 이제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알게 됐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왜 합당한 ‘딜’도 없이 그걸 한반도에 설치하기로 합의해줬을까? 자기한테 무슨 이익이 있다고? 여하튼 그 때문에 이미 중국 정부의 경제 보복이 심화되고 있고 그 때문에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에서 ‘탈탈’ 빠졌고 그 때문에 백화점에서 일하는 당신의 일자리가 흔들흔들 불안해졌다는 걸 나의 이웃사촌인 그녀에게 ‘사랑’을 담아 넌지시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정치는 그렇게 당신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고, 그놈이 그놈인 것도 절대로 아니니, 안철수와 문재인을 비롯한 주요 대선주자들이 ‘사드’ 문제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지 무엇보다 먼저 체크해야 한다고. 그런 다음 함께 투표장에 갈 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고. 왜냐하면 나는 당신을 좋아하고 당신과 함께 더 좋은 세상에서 살 고 싶기 때문이라고.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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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저마다의 분주함의 무게에 짓눌려 살고 있다. 쫓기듯 밥을 먹고 허둥지둥 회사에 가서 각자에게 주어진 그 많은 일을 한다. 그러다 문득 궁지에 몰리기도 한다. 그래도 숨을 곳이 전혀 없다고 느낀다. 의문도 든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토록 실속 없이 바쁘게…, 무의미하게….”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답이 없고 가슴만 답답하다. 그래도 꾸역꾸역 밥을 먹고 일을 한다, 미련하게…. 산다는 게 이렇게 지긋지긋한 것인가 하는 절망감에 몸서리치다가 삶을 막 대하고 싶은 ‘나쁜 생각’마저 하게 된다.

“에라, 이놈의 미련한 몸 교통사고라도 좀 나라. 그러면 병원에 실려 갈 테고, 그러면 한동안 맘 편히 쉴 수 있지 않겠나?” 뭐 그런…. 하지만 교통사고라는 ‘불운’도 아무에게나 생기는 일이 아니어서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쳇바퀴를 굴리기 마련이다.

혹시 그 때문일까? 어떤 이들은 그러다 문득 덜컥 공황장애라는 병에 걸린다. 남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상황인데 본인만 혼자 어떤 상황 속에서 당장 죽을 것 같은 공포와 두려움, 숨막힘, 어지럼, 식은땀, 가슴 두근거림, 혹은 땅 밑으로 꺼질 것 같은 무기력 등을 호소하는 증상. 내가 경험한바 공황장애는 일종의 교통사고다. 정확히 정신적 교통사고로 인한 불안과 공포 후유증이 마치 ‘장애’인 것처럼 계속되는 현상.

복잡한 도심을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이 예기치 않게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을 안고 있듯 현대인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공포와 두려움, 무기력에 휩싸이는 공황장애는 흔한 병이 돼 버렸다. <내 마음이 지옥일 때>의 저자 이명수씨는 시 읽기를 통한 마음의 치유를 제안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런데 그런 장애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공해’처럼 흔한 질병이 돼 버렸다. 어느새, 공황장애 10만명 시대가 열렸다. 연평균 15.8%씩 증가해서 2015년 한 해 동안 공황장애로 병원을 찾은 사람이 10만명을 넘어섰는데 그중 절반 가까이가 일에 대한 중압감과 스트레스가 가장 큰 40~50대였다고 한다. 특히 40대 같은 경우 네 사람 중 한 사람이 공황장애라니 문득 놀라웠다.

내가 아는 한 40대는 인생의 최절정기이다. 이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한 자리씩 차지한 채 일의 숙련도 면에서 무르익는 시기다. 그런데 스트레스와 불안감으로 이런저런 병에 걸릴 확률이 가장 큰 세대이기도 하다. 왜 일까? 혹시 전 세계가 깜짝 놀랄 만큼 최장 시간 일하면서도 생산성은 낮고, 20대에게 미안할 만큼 월급은 높은데 스스로 느끼는 만족감은 낮기 때문일까? 여하튼 우리 사회의 중추라 할 수 있는 40대가 아프다. 치료하기 힘든 정신적 불치병을 앓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그토록 흔한 공황장애 환자에게 권하고 싶은 재미난 책을 발견했다. 마음 치유자 정혜신의 ‘영감’에 ‘힘’입어 심리기획자 이명수가 쓴 책 <내 마음이 지옥일 때>. 잠깐 읽었는데 대번에 이런 느낌을 받았다. “공황장애면 뭐 어때? 그냥 당신의 몸과 마음이 기우는 쪽으로 당신의 속도대로 가라는 신호에 불과한데. 그 신호를 따라 가다보면 ‘마음의 지옥’을 벗어나게 되니 되레 ‘축복’일 수도 있고. 물론 ‘부작용 없는 치유제’로서 시 읽기와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이야.”

제목과 달리 그 내용이 그다지 묵직하거나 암울하지 않았는데 의외의 방점은 놀랍게도 ‘재미’에 있었다. 한마디로 ‘시’를 좋아하는 심리학자가 시로써 ‘마음이 지옥’인 이들에게 치유적 메시지를 전한다는 의도의 책인데, 제 멋대로, 혹은 제 마음대로 시를 읽고 해석하는 심리학자의 글이 그가 꼽은 참신한 시와 함께 읽기가 매우 즐거웠다.

예컨대 ‘왼쪽으로 기운 것은 오토바이가 아니라 나의 생이야. (중략) 몸이 기운 쪽이 내 중심이야. 기울지 않으면 중심도 없어’라는 이원 시인의 시 ‘영웅’에 저자 이명수는 맞장구치듯 이렇게 대꾸한다.

“(암 그렇고 말고요.) 자전거 처음 배울 때처럼 기우는 쪽으로 핸들을 꺾어야 넘어지지 않잖아요.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꺾으라니 그러면 금방 잘못될 것 같지만 안 그렇잖아요.”

그건 바로 내가 선배로서 공황장애 환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그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너무 오랫동안 쫓기듯 허둥대며 일해서 그래요. 그만 내려와서 당신의 몸과 마음이 기우는 쪽으로 당신의 속도대로 천천히 가세요. 산다는 게 어차피 죽음을 향해 가는 일인데 좀 천천히 가면 어때요? 그게 옳지, 안 그래요?”

산다는 게 어떻게 지겨운 일이 될 수 있겠는가? 무서운 일도 아니다. 이렇게 멋진 시도 읽을 수 있는데….

‘웃음과 울음이 같은 音이란 걸 어둠과 빛이/ 다른 色이 아니란 걸 알고 난 뒤/ 내 音色이 달라졌다// 빛이란 이따금 어둠을 지불해야 쐴 수 있다는 생각’(천양희 ‘생각이 달라졌다’)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네모난 작은 새장이어서/ 나는 앞발로 툭툭 쳐보며 굴려보며/ 베란다 철창에 쪼그려앉아 햇빛을 쪼이는데// 지옥은 참 작기도 하지’(이윤설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산다는 건 크고 작은 ‘마음의 지옥’을 경험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내 알게 된다. “자기가 열쇠를 가지고 있는데 스스로 수갑을 채워놓고 불편하게 살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 많은 경우 지옥은 사라진다”는 걸. 하나하나 너무도 귀하게 읽히는 82편의 시와 함께 저자 이명수가 다다른 그런 깨달음에 이른다면 그건 분명 산다는 것의 축복이며 독서의 환희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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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41세의 노르웨이 여자를 알게 됐다. 서면을 통해 알게 된 그녀는 현재 방콕에 거주하며 전 세계를 여행하는 멋진 보헤미안이었다. 그런 그녀가 4월에 한국에 온다. 특별히 한국에 와야 하는 이유는 없다. 단지 인터넷을 통해서 강원도에 머물고 싶은 숙소를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놀랍게도 홀로 12박이나 머물며 컴퓨터로 일도 하고 충분한 휴식도 취할 거라고 했다.

그녀가 예약한 곳은 대체로는 4월까지 눈이 오는 곳이다. 늘씬하게 키가 큰 낙엽송 숲이 마치 집에 딸린 정원인 듯 인접한 강원도의 소박한 시골집. 그 풍경이 마치 자신의 고향 노르웨이처럼 애틋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자기 눈에는 그 민박집이 너무도 사랑스럽게 보인다고 했다. ‘자연’적이고 쉴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고 ‘아취’랄까 ‘우아’랄까 뭔가 그런 취향이 가득 느껴지는 공간처럼 보인다고 했다. 정확히는 ‘테이스트풀(tasteful)’이라는 단어를 썼고 ‘휘글링(hyggling)’이라는 표현도 썼다.

대관령 양떼목장에서 바라본 강원도의 겨울 풍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마침 전 세계적인 연구 대상이 된 덴마크인들의 ‘휘게 라이프(Hygge Life)’에 나 또한 지대한 관심을 품고 있을 때였다. 냉소적으로 빈정대기 좋아하는 영국인들이 이제 막 대학생들에게 ‘휘게’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가디언 표현에 의하면 ‘휘게 혁명이 로마제국보다 더 빨리 세계를 점령하고 있다’는데 내 어찌 ‘휘게’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혹시나 평창올림픽을 치러야 하는 강원도가 보다 매력적인 겨울 여행지가 되기 위해서 적용할 만한 것들이 있을까 싶어서 냉큼 읽어 봤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손꼽히는 나라 덴마크에서 ‘행복의 비밀’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쓴 <휘게 라이프(Hygge Life)>라는 책을. 오, 다행히도 밑줄 긋고 싶은 내용이 너무도 많았다. 예컨대 강원도에서 식당이나 카페, 숙박업을 하는 사람들이 주목해야 할 이런 내용들.

“<론니 플래닛>에 소개되어 있듯이, 덴마크 사람들은 아늑한 분위기에 목숨을 건다. (…) 가격, 상품, 판촉활동 등은 다 잠꼬대일 뿐, 덴마크에서 장사의 승패를 가름하는 것은 오직 휘게뿐이다.”

아 그런가? 그렇다면 ‘휘게’란 무엇인가? 어떻게 ‘휘게’할 수 있는가? ‘higge’는 ‘웰빙’을 뜻하는 노르웨이어 단어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그 어원에서 시작하면 너무 광범위하니 영어로 접근해 보자. 번역하면 ‘코지니스(cosiness)’다. 안락함, 특히나 소박하게 운치 있는 안락함. 예컨대 벽난로 같은….

실제로 벽난로는 휘게다. 그 말은 휘게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바로 ‘벽난로’라는 얘기다. 생활인으로서 하는 말이지만 난로는 매우 강원도스러운 아이템이다. 거실을 근사하게 꾸미기 위한 인테리어 소품이 아니라 살기 위해, 혹은 난방비를 절약하기 위해 난로를 사용하는 가정이 강원도엔 매우 많다. 벽난로가 사치스럽게 느껴진다면 장작난로라고 해도 상관없다. 화려할수록 덜 휘겔리하다고 하였으니 좀 더 검박하게 아궁이에 불을 때는 구들난방장치도 좋다. 

중요한 건 눈앞에서 장작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작은 불똥을 튀기며 타닥타닥 타오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특유의 나무 타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거다. 장작불이 만드는 그 특유의 시청각 안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돌연 느긋해진다. 따뜻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든다. 그뿐만 아니라 함께 파자마 같은 편한 옷을 입고 그 불빛을 보고 있는 사람들끼리 강한 유대감마저 생긴다.

덴마크에서 ‘휘게 라이프’를 위해 벽난로보다 더 많이, 더 자주 애용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양초다. 촛불이라면 우리에게도 너무도 의미심장한 무기가 아닌가? 평화롭게 혁명하는 이들의 아름다운 무기. 물론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내겐 너무 소중한 사업장 혹은 집을 전소시킬 위험이 있으니까.

그 때문에 나는 보다 휘겔리한 장소 꾸미기를 위해서 집안 구석구석 작은 램프를 사용할 것을 권한다. 조명기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덴마크 사람들처럼 폴 헤닝센의 고급한 램프를 구입할 수도 있지만 그 밖에도 선택의 폭이 무지 많다. 여전히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은 트렌드의 중심에 있는 ‘북유럽 디자인’이라는 검색어만 넣으면 인터넷에 부담 없는 가격의 멋진 조명기구가 얼마나 많은지 말도 못한다.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형광등을 주광색에서 전등색으로 바꾸기만 해도 달라진다. 집안 전체가 금세 휘겔리해진다. 진짜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조도를 낮추어야 한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덴마크인들의 행복의 원천 ‘휘게’는 이미 우리 안에 있다. 특히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강원도 안에 널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하얗게 눈이 내린 산과 들, 깨끗한 산 공기, 맑은 물. 마음 편하게 어울리는 이들이 함께 스키나 썰매를 타고 통나무집에 머물며 바비큐 파티를 하고 늦은 밤 장작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 그게 바로 최상의 ‘휘게’이기 때문이다.

물론 강원도가 좀 더 휘겔리해지려면 바꾸어야 할 것이 많다. 먼저 삶의 공간을 구석구석 누추하게 명명백백 밝혀주는 주광색 형광등을 떼어내자. 조도를 낮출수록, 빛의 웅덩이가 구석구석 많아질수록 휘겔리해진다. 양철 깡통이라도 좋으니 보다 많은 장작난로를 설치하자. 의자 위에 따뜻해 보이는 담요를 걸쳐두자. 평창올림픽시장 옆 빵집 ‘브레드 메밀’이 그러하듯이 갓 구운 빵 냄새를 풍기자. 강원도의 산과 나무를 연상시키는 소박하고 단순한 나무 가구를 공간 안에 들이자. 하다 못해 산에서 잔가지나 솔방울을 주워다 놓자. 

무엇보다 보기 싫은 ‘스뎅’ 밥그릇이나 플라스틱 그릇을 내다버리고 먹고 마시는 일에 아름다움을 부여할 수 있는 도자기 제품을 쓰자. 그 모든 것이 생각처럼 돈이 많이 드는 일이 아니다. 결단코.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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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할 때마다 이재명을 찾아보거나 듣는다. 그게 요즘 내 취미가 됐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른 이재명의 ‘핵사이다’ 발언. 유튜브에 많고 많은 것 중에 하나를 골라 보거나 듣고 있으면 역시나 가슴이 뻥 뚫린다. 국가를 철저하게 모독하고 국민을 개·돼지로 우롱한 자들이 아무리 뻔뻔한 거짓말로 요리조리 빠져나가도, 정곡을 찌르지 못하는 청문회와 국회가 아무리 지지부진 시들해 보여도 이재명을 통해 보면 다시금 활기를 되찾게 된다.

예컨대 “돌 맞아도 할 얘긴 해야겠습니다”라는 부제와 함께 올라온 이재명의 경북 구미 거리강연 동영상을 한 번 보시라. 이 모든 것이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박정희 때문이라는 뼈아픈 자각 속에서 이제 정말 그를 떠나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는 사실에 기뻐하게 된다. 이재명은 어마어마한 박정희 동상이 세워진 도시 구미에서 감히 이렇게 말한다.

“시민들의 피 같은 세금으로 산 사람도 살기 힘든데 죽은 사람을 무덤에서 꺼내 기념하는데 그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사실은 박정희 덕이 아니라, 그 당시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이 전략적으로 한국의 경제를 키워준 것인데 그 많은 돈을 박정희 기념사업에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그 돈이면 성남시 같은 복지를 무려 10년 동안이나 할 수 있는 돈인데 말입니다.”

불과 몇 달 전 유튜브를 통해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비판적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볼 때만 해도 몰랐다. 유력한 대선 후보가 박정희의 고향에 가서 박정희 신화를 정면으로 짓밟는 얘기를 감히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할 수 있을 줄은….

다행히도 내게는 기회가 있었다. 수구 기득권 세력이 지배하는 언론이 아무리 방해해도 <백년전쟁>과 ‘프레이저’ 보고서에 실린 박정희의 진실을 엿볼 수 있는 기회.

‘미국과 한국 관계’를 조사하던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가 1978년 발행한 ‘프레이저 보고서’에 의하면 박정희는 유신체제에 비판적인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뇌물로 관계자를 매수하고, 각종 이권사업을 기업들에 나눠주는 대가로 불법 정치자금을 모아 스위스은행으로 보내고, 미국의 파격적 지원과 지도에 의한 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을 자신의 공으로 돌린 ‘뱀’ 같은 인간이었다. 그래서 별명이 ‘스네이크 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미국 의회가 발행한 보고서에 그렇게 적혀 있어도 우리는 그런 얘기를 공공연하게 할 수 없었다. ‘유사 박정희’인 이명박이 집권하고 뒤이어 ‘진짜 박정희 유전자’인 박근혜마저 집권한, 놀랍도록 잘 속는 나라의 국민이었으니까. 그런데 박정희의 유산이며 비극인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터지고 우리는 시원스럽게도 이렇게 외치는 정치인을 갖게 됐다.

“법과 안보를 지키려고 하는 보수를 존중하되 그 속에 숨어 있는 강도, 깡패, 사기꾼, 도둑들을 잡아서 감방에 보냅시다. 매국, 친일, 독재, 부패로 기세등등한 세력을 이제 작살을 냅시다. 이거 안 하니까 정의가 없고 희망이 없는 겁니다. 부당한 세력이 기득권이 되어 이 사회 구성원의 기회를 다 뺏으니까. 바로 지금이 최대의 기회입니다. 지난 70년 동안 염원했지만 한 번도 이룩하지 못한 나라,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과 복지가 살아 있는 진정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 대한민국을 이제라도 바로 세우기 위한 기회! 그 기회를 위해 끝까지 함께합시다, 구미 시민 여러분!”

예전의 나는 참 어리석었다. 박정희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무조건 선을 그었다. 심지어 그 상대가 연인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와 같은 고속 성장을 위해 박정희 같은 독재가 필요악이었다”고 믿고 있던 그 남자에게 소리쳤다. “위대한 아버지 수령님 덕분에 고깃국에 쌀밥을 먹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자신이 세뇌당한 줄도 모르는 불쌍한 북한 주민처럼?” 이재명을 알고 나서 그랬던 나 자신을 반성할 수 있게 됐다. 성남시 복지를 방해하려는 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단식투쟁을 하던 이재명 시장의 발언 덕이었다.

“상대방에게 판단을 요구하면 안됩니다. 이런 판단을 해라, 저런 판단을 해라, 나를 지지하라, 저쪽을 비판해라. 그런 건 무의미합니다. 판단을 요구하는 순간에 반발심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대신 정보를 전달해 주면 됩니다. 그럼 스스로 판단하니까.”

그러니까 이 말은 그냥 전달만 해 주면 된다는 얘기 아닌가? 시원한 ‘핵사이다 이재명’을 누군가에게 전달만 하면 된다. 그냥 손가락 하나로. 톡~. “어머 아직 박정희 좋아하세요? 그럼 이거 한 번 보세요. 톡~.” 그럼 얼굴 붉히며 싸울 필요가 없다. 적이라고 생각했던 이들과 동지가 될 수도 있다. 헌법을 수호하는 진정 공정하고 평화롭고 희망찬 나라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가 유형으로든 무형으로든 ‘촛불’을 들고 ‘정보’를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오랫동안 염원했지만 너무도 멀게만 느껴진 그 꿈의 나라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가뿐하고 분명하게 느껴진 적이 있던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자.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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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을 때 사실상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대중음악인이 웬 문학상, 그것도 천하의 노벨 문학상을?” 하고 놀랄 법도 한데 놀라기는커녕 “음, 언젠가 그럴 줄 알았지” 하고 말았다. 스웨덴 한림원이 노렸듯이 논란을 일으킬 만한 파격은 파격이되, 아는 사람은 누구나 예측 가능한 다소 ‘뻔한 파격’이었다고 할까?

내가 아는바 미국에는 일찍이 ‘딜런학(Dylanology)’이라는 학문이 있었다. 이 학문은 1960년대 전성기를 누린 ‘밥 딜런’이라는 뮤지션의 가사와 철학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보다 지적으로 ‘으쓱’하고픈 대중문화인, 혹은 대중문화 애호가를 위한 것이며 그쪽 방면에서 밥벌이를 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코스’ 같은 것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밥 딜런은 실제로 대학의 정식 커리큘럼으로 등장한 최초의 대중음악인이었으며, 그를 존 업다이크나 셰익스피어에 비견하며 노벨 문학상을 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일찍부터 진지하게 검토됐다.

물론 그건 ‘세상을 바꾼 가장 뛰어난 대중문화 1위’라는 거창하기 짝이 없는 수식어가 따라붙을 만큼 밥 딜런의 대중적 인기와 영향력이 엄청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가 쓴 가사가 마치 무슨 프랑스 상징주의 시처럼 매우 그럴듯하게 난해해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밥 딜런을 좋아한다고 하면 그냥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를 좋아하는 범인의 취향 그 이상의 무엇, 보다 심오하고 지적인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 때문에 밥 딜런을 유독 대단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한편 그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준비한 2016년 노벨상 수상 축하연은 물론 시상식조차 불참한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도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 생각했다. 게다가 다른 심각한 이유가 아니라 단지 ‘선약’ 때문이라니 얼마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시원한 대답인가? 역시 밥 딜런이구나, 생각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밥 딜런다운 것인가? 내가 아는 밥 딜런은 나 자신을 속박하는 타인의 기대를 가차 없이 걷어차는 인물이다. 처음부터 그랬다. 그 대상이 가족이었던 십대부터. 예술을 정신적 타락으로 치부하는 유대인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며 시집을 읽고 노래를 부르다 못해 아예 아버지를 갈아 치운 인물이라고 할까? 실제로 좋아하던 시인 토머스 딜런의 성을 따서 이름을 ‘로버트 짐머먼’에서 밥 딜런으로 바꾸는가 하면, 우디 거슬리라는 포크 가수를 좋아해서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는 고백이 밥 딜런의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에 써 있다.

‘노래하는 저항 시인’으로 추앙받기 시작하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민중을 위한 저항 시인으로 살았던 건 아주 잠깐뿐이었고, 그 이후엔 다른 무엇보다 자신을 가두는 그와 같은 수식어에 저항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저항’이라기보다는 ‘배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1965년 5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무대가 그 정점이었다. 밥 딜런은 느닷없이 통기타를 버리고 처음으로 전기기타를 들고나와 야유하는 관객들을 향해 ‘나는 너희 거짓말쟁이들을 믿지 않는다’며 악기를 부술 듯이 연주하고 공연을 끝까지 마쳤다. 나는 진정 반했다. 밥 딜런이라는 예술적인 반항아에게. 한마디로 그는 한바탕의 소란과 배신으로 신화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건 지금도 그러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밥 딜런을 잘 담아낸 영화가 있다. 토드 헤인즈 감독이 만든 <아임 낫 데어(I’m Not There)>다. 자신이 흠모하는 문화적 취향을 향해 계속 변화하고 변형하는 존재, 하나의 밥 딜런을 죽이고 다른 밥 딜런으로서 새 삶을 사는 존재인 그에게 집중하는 영화답게 ‘당신이 생각하는 밥 딜런은 거기 없다’는 뜻의 제목이 달렸다. 가령 그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노벨 문학상 그까짓 것 주면 받겠지만,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밥 딜런의 문학적 재능이나 성취를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는 바이런과 셸리와 롱펠로와 에드거 앨런 포와 랭보의 시를 사랑한 청년이었다. 그 덕분에 노래하는 훌륭한 시인이 되었다. 그의 노랫말이 셰익스피어의 비극소설보다 혹은 랭보의 시보다 못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예컨대 굳이 지적인 해석이 필요 없고 그저 글자 그대로 느껴지는 정서만으로 멜로디와 함께 지상의 그 어떤 시보다 더 멀리 공명하는 이런 노랫말들.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 타인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기분이 어때/ 집 없이 사는 것이/ 알아주는 사람 없이/ 구르는 돌처럼 사는 것이?”

밥 딜런에게 2016년 노벨 문학상을 안긴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바람만이 그 대답을 알지(Blowing in the wind)’와 ‘구르는 돌같이(Like a rolling stone)’의 후렴 가사다. 문득 그의 노래들이 지금 대한민국의 시민으로 사는 우리들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밤이다. ‘저녁의 제국이 모래로 돌아가버렸음’을 우리 모두가 누누이 전하고 있건만 비몽사몽 약에 취해 알지 못하는 그녀에게도 밥 딜런을 보내고 싶은 밤이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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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이었고 12월이었다. 때는 차은택이 진실로 잘나가던 때였다. 감각적인 영상 세대의 리더로서 웬만한 록스타보다 추종자가 많았고 12월의 대선후보만큼이나 바빠서 짬 날 때마다 아무 데나 기대어 쪽잠을 자야 할 판이었다. 회의하기 전 30분, 촬영하기 전 30분, 차 안에서 20분…. 그렇게 잠깐씩만 자는 일중독자였다 그는. 그 때문에 첫 번째 인터뷰 스케줄을 펑크 내고 두 번째 만나러 갔는데 그때도 그는 1인용 소파에서 곰인형을 끌어안고 웅크려 자고 있는 덩치 큰 남자의 모습이었다.

“왜 그러고 사세요?” 그때 나의 첫 번째 질문이 그랬다. “좋으니까요. 이건 좋아서 미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일이죠. 전 일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난 그가 좀 애처롭다고 생각했다. 당시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뮤직비디오 감독이었지만 광고에 대해서는 ‘끝없는 한계’를 느낀다고 했다. “내가 이만큼 했는데도 저기 가 있구나!” 그렇게 잠이 부족한 와중에도 간혹 밤잠을 설칠 만큼 질투한다는 박명천 감독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당시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내가 좀 더 저속해지더라도 장사가 잘되는 광고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요. (…) 지금 당장, 내일 아침이라도 나를 개조하기 위한 과제들을 만들어 나 자신을 더 무장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생각해 보면 질투심만큼 사람을 불명예스럽게 만드는 건 없다. 그건 그 대상이 ‘일’이 됐건 ‘돈’이 됐건 혹은 ‘사랑’이 됐건 ‘탐욕’이 됐건. 그렇지 않은가? 더 많은 일과 명예, 영향력을 좇던 남자는 자기 자신의 바람대로 끝없이 ‘저속’해졌다. 이런저런 저속한 욕망들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다 소화기관이 시한폭탄처럼 터진 괴물. 추악하다 못해 이제는 돌연 불쌍해 보이는 괴물.

다른 한편, 아니 정확히 차은택의 반대편에 정영두라는 무용가가 있다.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간 런던 주영 한국문화원 앞에서 “George Orwell’s 1984 is not fiction. It’s the reality in Park Geun-Hye’s South Korea. Not Censorship!(조지 오웰의 <1984>는 소설이 아닙니다. 2016년 박근혜의 한국에서는 현실입니다. 검열 반대!)”라는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던 현대무용 안무가 정영두.

한마디로 그는 차은택이 ‘문화계 황태자’로 군림하며 고위 공무원에 속하는 이런저런 문화계 부역자들과 함께 예술가를 검열하고 탄압하며 최순실과 함께 돈을 긁어모으는 사이 소위 ‘블랙리스트’로 낙인찍혔던 예술가다. 하지만 그러한 억압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보다 진취적으로 실천하는 예술가의 삶을 살고 있는 무용가.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사소한 발언이나 행동까지도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소설 <1984>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꼈다”면서 “예술가들의 입과 눈을 통제하는 것은 곧 사회 전체를 통제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검열이 존재하는 한 어떤 형태로든 끝까지 저항하려 한다”면서 자신의 활동이 ‘예술가 본연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말했다.

정영두의 무용 작품을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난다. 놀랍게도 난 울고 있었다. 춤 공연을 보며 감동에 젖어 울기는 피나 바우슈 이후 처음이었다. 아름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한 삶의 주름들이 담긴 순수하고 진실된 몸의 언어를 어렵사리 읽으며, 그걸 읽을 수 있고 그것에 감동받을 수 있는 나 자신이 그 어느 때보다 좋았던 기억이 난다. ‘삶이 때때로 우리를 비속하게 만들어도 우리 자신의 몸과 영혼은 결코 저속할 수 없다’고 정영두의 춤은 말해주는 것 같았고, 난 그 무언의 진실된 춤에 울고 말았다.

솔직히 차은택이 연출한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이나 폐막식을 안 보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그 자신도 고백하는바 그는 매우 장식적인 인간이다. 여백의 미를 모르고 감동은 아예 엄두도 못 낸다. 대신 온갖 잡다한 기호와 상징, 문화 코드를 게걸스럽게 집어삼킨 한 편의 화려한 뮤직비디오 같은 올림픽 개막식 혹은 폐막식을 만들었을 인간이다. 생각만 해도 싫다. 그걸 보는 동안 평창군민으로서 창피했을 것 같다.

대놓고 바란다. 대신 정영두가 예술감독으로서 연출한 평창올림픽 개막식 혹은 폐막식이 보고 싶다고. 정영두는 2004년 일본 요코하마 댄스컬렉션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대상을 탔고 당대 최고의 댄스 마스터 수잔 버지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안무가이다. 무엇보다 평창올림픽은 두 괴물 때문에도 돈이 없지 않은가? 그게 가장 큰 문제이지 않은가? 그런데 정영두는 그런 평창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예술가이기도 하다. ‘가난한 무용’으로 감동 주기가 그의 주특기이기 때문이다. 농담이 아니다. 올림픽 역사상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진짜 예술로 전 세계인을 울릴 수 있다. 정영두라면 그럴 수 있다. 꿈이 아니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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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연휴 전날이었다. 우리는 ‘영악’하게도 바라는 것도 없이 열심히 일해주는 시댁 식구들의 노동력을 거저 확보하자는 욕심에, “연휴 동안 놀면 뭐하냐”며 “보람차게 다 같이 마당에 잔디나 깔아보자”며 부부가 함께 잔디를 사러 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횡단보도 앞에서 한 노인이 유령처럼 나타나 자동차 뒷문 손잡이를 잡고 매달렸다. 태워달라고. 그 모습이 하도 절박해 보여서 그냥 태워드렸다. 어디까지 가시는지 묻지도 않고….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미안해. 염치 불고하고 무작정 태워달라고 해서…. 너무 아파서 그랬어. 그러니까 너그럽게 좀 용서해줘요. 그냥 딱 죽고 싶을 정도로 아픈데 내일 자식들이 온다잖아. 자식들 앞에서 아프다고 울 수도 없고. 그래서 연휴 닥치기 전에 병원 가서 주사라도 한 대 맞고 물리치료라도 좀 받으려고. 그러니까 나 대화면의 병원 앞까지만 태워줘. 염치 불고하구지만….”

“염치라니요? 당연히 태워드려야죠. 근데 많이 아프세요?”

“안 아픈 데가 없어. 그냥 온몸이 다 잘못된 것 같아. 젊어서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인대가 늘어나고, 뼈가 다 닳았대. 수술도 못하고 치료약도 없대. 그냥 이렇게 아프다 죽는 수밖에 없다는데 그 고통을 누구한테 말해. 자식들한테? 말도 안되지. 니들 키운다 이리 됐다 할 수도 없고. 그냥 마누라 하고 나누는 거지. 그 고통…. 그러니까 젊은이도 젊다고 일을 너무 많이 하면 안돼. 죽어라 일만 하면 늙어서 후회해. 그건 대체로 아무 소용없는 후회고.”

남의 아버지이지만 내 가슴도 아픈 얘기였다. 병원 앞에서 힘없이 손을 흔들며 고맙다고, 고맙다고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던 노인의 모습이 얼마나 처연하게 선량해 보이던지 살짝 눈물도 났다. 아파서 그런 건지, 아니면 고마워서 그런 건지 그 순간 노인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는데, 그 눈물을 보는 순간 알았다. 지금 내 인생의 잊을 수 없는 찰나 중 하나가 지나가고 있음을 ….

그 노인이 갔을 법한 시골 의원 대기실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칠순에 절정의 행복을 느낀다고 썼던’ 내 어머니가 지금 많이 아프시다. 몇 년 전 수술한 허리를 삐끗 다친 후 처음엔 119에 실려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졌고 그 다음은 시 외곽의 종합병원에서 열흘을 지내셨는데 갈 때마다 엄마는 이런 하소연을 하셨다.

“대학병원이고 종합병원이고 다 필요 없다. 의사 진료고 물리치료고 우리의원 찜질팩 하나만도 못해. 나 퇴원해서 우리의원 다닐란다.”

우리의원은 횡성군 안흥면에 있는 국민건강보험 소속의 작은 시골 의원이다. 자식들을 위해 지나치게 과로했던 시골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아플 때 찾아가 늙고 병든 몸을 무작정 내맡기는 곳. 무엇보다 성심으로 아픔 몸들을 어루만져주며 환자에게 이것저것 묻고 경청해 주고 사적인 고통을 알아주는 젊은 물리치료사가 있어서 우리 어머니는 세상의 다른 어떤 병원보다 이곳을 사랑하신다.

“여기 오면 일단 마음이 치료돼. 놀라고 주눅 들고 서러운 늙은 병자의 마음을 얼마나 다정하게 데워주는지 모른다. 장갑도 안 끼고 맨손으로 구석구석 아픈 몸을 마사지해 주는 젊은 치료사 손길에서 자식들에게 받은 상처와 무관심을 보상받는 기분마저 든다면 너 이해하겠니?”

이해할 것 같다. 이해할뿐더러 아픈 내 어머니를 보살펴주는 ‘천사의 손길’을 느낀다. 존 버거의 어느 시골 의사 이야기 <행운아>를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책의 주인공이 따로 없구나 생각했다. 그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불행한 사람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취급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존 버거의 글에 내 어머니가 덧붙였다. “맞다. 종합병원에서 느낀 내 불행감에 딱 걸맞은 얘기로구나. 그런데도 돈은 얼마나 뜯어가든지…. 그에 비해 일부러 고향으로 돌아온 이 젊은 물리치료사는 얼마나 훌륭하냐? 그 선생에게 어린아이처럼 몸을 맡기고 싶은 환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소홀함이 없더구나. 내 몸이 느끼는 소홀함 말이다.”

한편 또 놀라운 건 그렇게 훌륭한 성심의 의료서비스를 받고 우리 모녀가 지불한 치료비가 2200원이라는 사실. 처음이었다. 아프지 않아 병원 갈 일이 거의 없었던 내가 그간 수천만원대의 건강보험료를 떼어간 국가라는 ‘약탈자’를 처음으로 대견하게 느낀 건.

당연히 의료민영화는 안된다. 의료가 민영화되면 늙고 병든 내 어머니 아버지의 몸 하나하나가 돈벌이로 환원되고 만다. ‘천사’가 상주하는 시골 의원은 다 사라지고 만다는 얘기다. 공공병원 성과연봉제도 마찬가지다. 의료민영화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국가가 국민의 아픈 몸을 돈벌이로 치환시키려 한다면, 지금껏 건강한 몸으로 군소리 없이 건강보험료를 낸 국민 모두가 국가를 대상으로 소송을 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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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의 삶은 바쁘다. 미쳐 버릴 정도로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헛헛하다. 이유는 모른다. 여하튼 할 일 많은 걸로 헛헛함을 잊고 있을 뿐 그 헛헛함은 마치 신발 속의 깔개인 듯 도시 생활 속에 늘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러다 한 번씩 못 견디겠다 싶을 만큼 외로워진다. 진탕 술이라도 퍼마셔야 할 것 같은 날. 아님 온라인 쇼핑몰에서라도 충동구매를 충족시키든지…. 결핍감 때문이다. 술이라도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은 결핍감.

그런데 다행이다. 그 와중에 ‘식물’에게서 위로를 찾는 이들이 요즘 부쩍 많아졌다. 식물에게 물을 주며 헛헛하거나 건조한 도시 생활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소식. 심지어 식물을 구매하고 키우는 일이 일종의 트렌드가 아닌가 싶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요즘은 살짝 시들해진 감이 있지만 한때 다육이의 인기가 대단했다. 하기야 건조한 기후에 강해서 물줄기를 게을리해도 쉽게 죽지 않는 식물이라니 초보자들에게 이보다 더 매력적일 수는 없다. 게다가 척박한 환경에 스스로 적응하기 위해 체내에 물을 품고 있다니 뭔가 인간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러니까 너도 살아남을 수 있어. 너무 애 쓰지 않아도” 뭐 이런 식의….

심지어 다육식물은 증식 방법이 너무도 간단해서 금방 식구를 늘릴 수 있다. 인간 식구 대신 다육 식구 늘리는 방법은 거의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모양은 또 얼마나 다채롭고 사랑스러운가? 신비스러울 정도다. 흠이라면 통풍 안되고 햇볕 없으면 잘 못 살고 겨울에 너무 춥게 내버려두면 얼어죽기 쉽다는 건데 그 정도 최소한의 관리는 해줘야 식물에게 위로받을 수 있는 인간의 자격이 있는 거 아닌가 싶다.

하지만 다육이도 좋지만 공기정화식물만큼 도시인들에게 유익한 식물은 없을 것 같다. 예컨대 밀폐된 우주선 내 공기를 정화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던 중 미항공우주국 NASA가 발견하여 지구인 모두에게 추천하는 1위부터 50위까지의 식물들.

흔히 ‘황야자’라고도 불리는 아레카야자가 그 1위인데, 이 호리호리하게 울창한 나무는 실내가 건조하면 수분을 공기 속에 내뿜는 습도조절능력이 뛰어나 ‘천연 가습기’로 사용하기 그만이다.

한편 영화 <레옹>에서 마틸다가 들고 다니는 화분 속 식물로 알려진 아글라오네마는 NASA 추천 공기정화식물 38위다. 영화 역사상 존재감이 가장 큰 식물이어서 예전에는 그걸 구하려면 제법 발품을 많이 팔아야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왜 그렇게 가격이 다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인터넷에서 다양한 가격대로 팔리고 있다.

50위 안에 들지는 않지만 몬스테라라는 열대성 관엽식물도 인기다. 잎맥 사이에 뚫린 타원형의 구멍 때문에도 매우 이국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일까? 아님 수경 재배로 간단히 키울 수 있기 때문인가? 식물이 인테리어 오브제로 부상한 이후 셀프 인테리어족에게 유독 인기 있는 식물이 바로 이 몬스테라다.

하기야 몬스테라 한두 이파리를 미니멀한 화병에 꽂아 타일 붙인 싱크대 위에 두기만 해도 공간이 얼마나 사는지 그 효과가 마술 같을 정도다.

아예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현대의 도시인들에게 약 대신 ‘식물을 처방’해 준다는 콘셉트로 설계된 소규모 브랜드도 있다. 이름 하여 ‘느린 약국’이라는 뜻의 ‘슬로우파마씨’. 화분이 아니라 비커나 유리병에 식물을 기르는 풍토를 조성한 사람들이기도 한데 처음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주문을 받더니 이젠 용인의 쇼룸에 이어 온라인 쇼핑몰까지 생겼을 정도로 두루 사랑받고 있다.

슬로우파마씨처럼 식물을 그토록 창의적으로 다루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이다. 물론 창의적이지 않다고 주저할 것도 없다. 식물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다루어야 한다. “어, 얼굴이 쪼글쪼글한 게 저 녀석 목마르네, 미안, 물 줄게.” “아이코, 이거 너무 좁겠는데. 조만간 큰 집으로 옮겨줘야겠어.” 그런 마음. 그런 마음의 힘으로 조금씩 자신의 수고를 늘려가며 발견하는 행복과 위로. 그게 바로 ‘반려 식물 테라피’라고 나는 생각한다.

구절초, 쑥부쟁이, 벌개미취가 아무런 의도나 콘셉트 없이 그냥 막 피어 있는 시골의 가을 들녘은 아름답다. 음식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는 무슨무슨 꽃축제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개인적으로 장미나 튤립, 백일홍 같은 외래종에게 자리를 내주고 이름도 없이 사라져 가는 토종 야생화가 자꾸만 마음이 쓰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그렇다면 수고를 해야지. 이번 주말에 계방산이나 함백산, 혹은 인제 곤배령 쪽으로 가보리라. 가서 보고 함께 살고 싶은 꽃들을 입양해야겠다.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고 마음을 쓰고 말을 건네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것, 그게 바로 식물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이니까.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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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노동자로서의 예수를 사랑한다. 하지만 덮어놓고 육체 노동을 신성시하는 부류를 어떤 면에서 가장 경계하고 의심한다. 일보다는 여가를 사랑하는 러셀주의자랄까? 러셀 말대로 삶 그 자체보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 의해 우리 인류가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해왔고, 그 때문에 이 세상이 되레 더 나빠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도 나는 되도록 러셀의 충고에 따라 살려고 했다. 아예 모니터 위에 이런 내 마음의 강령을 적어 놓고 일했다.

‘조직으로 일을 줄여야 한다!’ 후배는 물론 심지어 상사에게도 그것이 ‘인류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고 강권하고 싶었다. 당연히 잘렸다. 17년 동안 그럭저럭 버티긴 했지만 결국 잘려 나갔다. 억압적인 위계 시스템에 버럭버럭 소리 지르며 대항하다가 제 발로 걸어나왔지만 사실상 잘린 거나 다름없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래도 눈곱만큼도 후회가 없다. 후회하기는커녕 그때 그렇게 꼴사납게 싸우지 않았더라면 월급에 목이 매여 제 발로 그만두지 못하고 아직까지 회사에 다녔겠지 생각하곤 하는데, 그럼 되레 식은땀이 난다.

정말이지 회사를 그만두고 4년을 즐겁게 헤맸다. 도서관에 다니며 전업작가로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다가 여의치 않아서 서둘러 귀촌했다. 귀촌 후 남편의 집 짓기를 도우며 두 권의 책을 냈다. 200장 벽돌을 날라주고 밥을 하고 원고를 쓰는 식이었다. 그 와중에 어느 지방 방송의 영화 프로그램에 출연한다고 무려 6개월 동안이나 서울과 부산, 평창을 오가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살았다. 플립보드라는 미국의 소셜 매거진 일에 이어 지금은 에어비앤비의 호스트로 살고 있으니 그야말로 디지털 잡(job) 노마드가 따로 없는 삶.

그런데 나 같은 사람들을 부르는 신조어가 생겼단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 ‘gig’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그렇듯 재즈 연주자들을 모으듯, 춤추듯 가볍게 스마트폰 앱을 플랫폼 삼아 언제 어디서나 유연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경제 시대가 왔다고.

이제 전문가들은 평생직장 시대는 갔다고 진단한다. 정규직은 없고 계약직, 비정규직만 있는 세상이라니, 매우 암담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틀에 박힌 직장보다는 ‘긱’과 같은 탄력 있는 일자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되레 더 크고 만족도도 더 높다고 한다. 긱의 주체들이 일정한 회사에 고용된 직장인보다 훨씬 직업을 즐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하는데, 나 자신의 경험을 말하자면, 거짓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나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을 응원하는 후원자다. 뭐 대단한 후원자는 아니지만 여하튼 후원자다. 5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가난한 프리랜서 작가이자 자영업자로 살기 시작한 이래 가지각색 고지서와 나날이 옥죄는 ‘빚’에 마음이 우중충할 때도 푼돈이지만 얼마 안되는 후원금을 냈다. 그리고 지난 7월부터 이것저것 다 빼고 처음으로 순수익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하자 그 수익의 10%를 다시금 2차 후원금으로 냈다.

‘꿀잠’을 생각하면 노순택 작가가 찍은 한 장의 사진부터 떠오른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요구하며 오체투지로 차가운 땅바닥을 기던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한없이 낮아진 모습. 그 중심에 이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아이콘이자 전설이 된 기륭전자 언니들이 있었는데 왜 그런지 그 모습이 비참해 보이기는커녕 어떤 종교적 의식보다 더 경건하고 또 성스럽게 느껴졌다.

그 사진 아래 노순택 작가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기륭일 수밖에 없는 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이 필요하다’고. 그런데 그건 기륭의 언니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긴 시간 지독하게 투쟁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복직과 생계를 원하는 기륭인이 아니라 그 이상의 ‘우리’였기에 가능했다는 걸 그때 노순택 작가의 사진과 글을 보며 처음 알았다. 미안하다. 그 이전까지 나는 10년 넘게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미련 곰탱이’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 귀한 줄 모르는 직장이 뭐라고 목을 매고 투쟁하나? 오죽 미련하고 무능하면 그렇게나 오래?’ 그렇게 생각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시덥지 않은 교만함으로….

그러다가 얼마 전 백기완, 문정현 두 어른이 ‘벽돌 몇 장 보태는 마음’으로 꿀잠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전시회에는 못 갔지만 두 분의 인터뷰 기사를 경향신문에서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나 이렇게 말하는 백기완 선생의 저렁저렁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예수는 노동자였어. 목수였잖아. 노동으로 단련된 몸으로 부당한 사회질서에 대항한 깡따구 있는 인물이었다고.”

그렇다, 난 노동자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노동자이고 싶다. “노동하지 않는 삶은 부패하고, 영혼 없는 노동은 삶을 질식시킨다”는 카뮈의 말을 마치 신앙처럼 믿는 노동자. 긱이든 긱이 아니든 사소한 경계를 너머 우리를 보는 노동자.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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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스마트폰 생방송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소식 때문일까? 며칠 전부터 크리스천 슬레이터가 해적 방송 DJ로 출연하는 영화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맞다, <볼륨을 높여라>. 때는 1990년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회원 가입만 하면 누구나 자기만의 방송을 만들 수 있던 때가 아니었다. 전학 후 외톨이가 된 마크는 아버지가 사준 무선 통신기로 밤마다 정체불명의 DJ 하드 해리가 되어 가슴에 응어리진 말들을 토해낸다.

ⓒ경향신문DB

“솔직히 기대할 일도 존경할 인물도 없는 이 날쌘 시대를 사는 게 지겹다고요. 제기랄, 안 그런가요? 이런 암흑 같은 생활이 당신을 미치게 하잖아요. 그러니까 뭐든 미친 짓을 해보자고요. 신나게, 창조적으로….”

DJ 하드 해리가 하는 말들이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움츠려 있던 내 청춘의 심장을 얼마나 고무시켰는지 모른다. 게다가 이제껏 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정말 멋진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예컨대, 레너드 코헨의 ‘Everybody Know’ 같은 곡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젊은 청취자들이 모처럼 뜨거워진 자신의 심장을 느끼며 좋아했겠는가? 급기야 경찰의 추적 대상이 되어 해리는 더 이상 방송을 못하게 됐지만 ‘진실은 바이러스 같은 거다’라는 그의 말대로 수많은 해적 방송의 1인 DJ가 바이러스처럼 퍼졌다.

해리는 DJ라기보다는 요즘 말로 BJ(Broadcasting Jockey)였다. 혼자 PD도 되고, 작가도 되고, 촬영감독도 되고, 진행자도 되는 1인 다역의 창작자. TV가 아닌 보다 사적인 소통 창구 앞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새로운 형태의 오피니언 리더. 어릴 때 “남 먹는 거 쳐다보지 말라”고 배운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지만 카메라 앞에서 그저 먹어대는 ‘먹방’으로 억단위 고수익을 버는 BJ가 있는가 하면, 게임을 소개하면서 재미있는 토크를 곁들인 방송으로 ‘1인 방송계의 유재석’이라 불리는 이도 있다.

그들은 더 이상 마이너가 아니다. 새로운 주류고 대세가 됐다. 한국에 ‘1인 인터넷 방송’ 채널만 무려 7000여 개, 방송 중인 BJ가 무려 150만명이라고 한다. 그중 스타급 BJ는 월 1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고 신변잡기에 가까운 수다만 떨어도 대기업 임원 못지않은 돈을 벌 수 있기에 초등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기 직업인이 됐다.

하지만 그들은 <볼륨을 높여라>의 의식 있는 반항아 하드 해리가 아니다. 너무 변질됐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병적일 정도로 천편일률적이다. ‘자발적 시청료’라는 명목의 ‘별풍선’ 현금을 받을 수 없다면, 혹은 광고 수익을 얻을 수 없다면 그중 몇이나 1인 방송 활동을 계속할지 의문스럽다. 별풍선을 많이 받기 위해 자신의 외제차로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는 장면을 생중계하는 BJ가 있는가 하면, 안쓰러울 정도로 짧은 핫팬츠 차림으로 섹시 댄스를 추는 초등학생 BJ도 있어서 방송 보기가 겁난다. 아예 유통업계와 손잡고 상품 드라마 간접광고(PPL) 같은 광고를 해주거나 쇼핑 호스트로 나서는 BJ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갑자기 봇물 터지듯 확장된 ‘1인 생방송 시대’가 내게는 너무도 매력적인 세계로 느껴진다. 특히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페이스북 라이브’를 즐겨보는 편인데 얼마 전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실시간 토론 생방송을 지켜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마크 저커버그가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우주인들과 영상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페이스북 라이브 동영상으로 생중계될 때도 좋았다.

그러다가 문득 나도 ‘청취자’가 아니라 ‘생산자’ ‘창조자’로서의 1인 방송을 만들어 내보내야겠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중심으로 만들고 싶은 콘텐츠가 무궁무진하다. 예컨대 평창자생식물원은 아직 영업 허가를 받지 못했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 아무나 찾아갈 수 없는 곳이다. 인터넷에도 정보가 거의 없다. 하지만 내가 타샤 튜더의 정원 못지않게 아름다운 곳이라고 소개했던 곳. 그곳에 가서 페이스북 라이브 버튼을 누르리라.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몸이 동해의 짙푸른 바다 동네, 묵호에 있으니 어쩌면 첫 방송은 묵호에서 진행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페이스북의 니콜라 멘델손 부사장은 “이 추세대로면 5년 내 모든 글이 동영상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워싱턴포스트 같은 기존의 유력 신문도 독자를 현장으로 바로 데려다주는 ‘동영상’에 맞추어 회사를 리폼하겠다고 했다. 내가 사랑하는 ‘경향신문’도 그런 준비를 하고 있다면 참 좋겠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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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밥벌이의 지겨움’과 함께 ‘낭만적 밥벌이’란 말도 유행했다. 지겨운 일이지만 ‘도리’ 없이 해야 하는 일이 ‘밥벌이’라고, 기성세대는 말하고 청년세대는 ‘세상에는 낭만적 밥벌이도 있다’고 대답했다. 같은 제목의 책도 나왔다.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받은 김훈이 에세이 <밥벌이의 지겨움>을 낸 건 2003년이었고,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조한웅이 ‘어느 소심한 카피라이터의 홍대 카페 창업기’라는 부제를 단 책 <낭만적 밥벌이>를 낸 건 2008년이었다.

누군들 ‘밥벌이’가 지겹지 않을까? 그래도 ‘대책이 없다’고 하니 목이 멘다. 때로는 눈물도 난다. 상사든 클라이언트든 남의 눈치 안 보고 느긋하게 자기만의 사업장에서 우아하게 음악이나 틀고 커피나 내리면서 ‘밥’을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청년 구직자와 퇴직자의 창업 로망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홍대나 신사동 가로수길처럼 청년 상인들이 ‘낭만적인 밥벌이’를 꿈꾸며 주로 모여드는 동네일수록 임대료가 거의 ‘악마’적인 수준이다. ‘낭만’은커녕 본전도 못 찾고 임대한 가게에서 쫓겨나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티는 게 현실. 듣자 하니 <낭만적 밥벌이>의 저자조차 나날이 높아지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카페 문을 닫고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는 쓸쓸한 소식이다.


보증금·임대료별 전·월세 거래량_경향DB



그렇다고 너무 낙담하지는 말자. 내가 아는 이들 중에는 탄광 도시에 헌책방을 낸 사람들도 있으니까. <빅스톤 갭의 작은 책방>이라는 책을 낸 웬디와 그녀의 남편 잭. 언젠가 작은 책방을 내는 것이 꿈이었던 애서가 부부다. 책에 미쳐 꿈을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후예’ 같은 사람들이라고 할까?

요즘처럼 책이 안 팔리는 때가 없거늘, 대도시도 아니고 심지어 인구 5000명이 될까 말까 한 산골 마을에서 중고 책방이라니…, 그 발상 자체가 거의 ‘돈키호테식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나이도 적지 않다. 여자는 50대, 남자는 60대쯤 되어 보인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닳고 닳았을 나이. 그런데 이렇게 순진할 수가? 아니 순진할 만큼 대담하게 용기 있을 수가? 설상가상으로 돈도 별로 없고 책도 많지 않다. 그런데 해낸다. 기상천외하게 멋진 착상으로 이웃들의 중고 책을 모으고, 없을 것 같은 책벌레 고객까지 찾아낸다. 글쓰기 모임, 댄스파티, 뜨개질 모임, 소규모 콘서트가 열리는 산골 마을 책방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책방과 책방 주인장은 그렇게 무료한 폐광촌의 활력을 불어 넣어주어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보석’ 같은 존재가 된다.

그 책을 읽고 이것이야말로 진짜 ‘낭만’이구나 싶었다. 내가 아는 낭만은 ‘최백호 풍’도 아니고, ‘미사리 라이브 카페 풍’도 아니다. 선창가 다방이나 라이브 카페 같은 곳에서 이루지 못한 젊은 날의 ‘꿈’이나 ‘첫사랑’을 회상하는 거, 그런 게 진정 ‘낭만’은 아닐 테니까.

진짜 낭만주의자들은 ‘돈’이 누군가의 ‘꿈’을 집어삼키는 당대의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순응해서도 안 되고 체념해서도 안 된다. 웬디와 잭이 그랬듯이 누구나 우리의 삶을 소설이나 시, 에세이로 만들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내면의 깊은 곳에 잠자고 있는 예술가적 재능을 일깨워 각자가 자신의 삶을 아름다운 전체로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프레더릭 바이저의 명저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예술을 책과 연주회장, 박물관으로 한정시키고 세계를 매우 추한 곳으로 만들어버린 예술과 삶 사이의 장벽을 깨부수는 것. 우리의 삶이 파편화된 근대세계에서 잃어버린 의미와 신비, 마법을 되찾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세계를 낭만화하는 방법이고 진짜 예술이라는 얘기다. 남이 그린 화투 그림으로 대중을 속여 돈을 버는 게 예술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예술가’라 했던 요지프 보이스의 선언에 따라 나 자신이 예술의 주체가 되어 내 삶과 주변 세계를 더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만들면 그게 바로 ‘예술’이고 ‘낭만’이라는 얘기다.

다행이다. 최악의 경기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밥벌이로서 세계를 낭만화하려는 무리들이 속속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상암동에 술 팔고 음악 팔고 북 콘서트도 여는 동네 책방 ‘북 바이 북’이 생기더니, 괴산 칠성면 외사리의 미루마을 숲속에도 하룻밤 묵으며 북 스테이(Book Say)할 수 있는 책방이 생겼다는 소식이다. 요즘 ‘낭만적 밥벌이’라고 인터넷 검색을 하면 게스트하우스 창업에 대한 책이 먼저 뜨는데, 그만큼 자신의 삶과 세계를 낭만화하겠다고 작정한 듯 보이는 멋진 게스트하우스들이 엄청 많아졌다. 자신의 작은 단칸방을 게스트하우스로 꾸미고 그곳을 찾아온 흥미롭고 특별한 외국인 게스트들과의 이야기를 책 (<이토록 쉽고 멋진 세계여행>)으로 엮은 젊은이도 있다. 참고로 이 글을 쓰는 저자도 갤러리 겸 LP 음악감상실에 책방 역할까지 겸한 산중 게스트하우스(예술가의 시골집 & 운교산방)를 운영 중이니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살펴보실 것.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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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행이 아니라, 제주에서 한동안 살아보는 ‘제주 한 달 살이’ 열풍이 식을 줄 모른다. 이해한다. 이효리처럼 아예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길 수는 없지만 한동안 체험해 볼 수는 있다. 매일매일 바다를 보는 삶. 어슬렁어슬렁 산책하다가 동네 카페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는 삶. 텃밭을 가꾸고, 시장에 가고, 시장에서 사온 싱싱한 바다 먹거리로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 제주식 킨포크 라이프. 그런데 방이 없단다. 그 많은 ‘한 달 살이 달방’이 연초에 예약이 끝났을 정도다. 방학 시즌 월세가 무려 150만원 가까이 된다고 하는데 그조차도 올해는 끝나고 내년 시즌에나 입주가 가능하다고. 그런 가운데 ‘제주 한 달 살기’ 유행에 맞추어 분양과 동시에 월 단위 임대 서비스를 시작한 곳도 있어 살펴보니 ‘삶을 담은 공간’ 집의 느낌이라기보다는 세련된 디자인의 호텔이나 콘도 같다. 정확히 ‘달방’ 콘셉트의 호텔급 콘도미니엄이랄까?

그렇다면 시야를 좀 더 넓혀보면 어떨까? 사실상 ‘한 달 살이’는 세계 어디서나 가능하다. 내 경우 2006년과 2007년 사이 몰타에서 시작해 바르셀로나, 로마, 취리히, 부다페스트 등의 도시를 돌며 한 달 혹은 두 달, 세 달을 살았던 경험이 있다. 그중 가장 생각나는 도시는 부다페스트다. 롤랑 바르트가 <카메라 루시다>에서 “나에게 있어서 풍경사진(도시건 시골이건)은 그곳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일으켜 줘야 한다”고 했는데 내게는 부다페스트의 모든 풍경이 그랬다. 부다와 페스트를 가로지르는 안개 낀 다뉴브 강, 백발의 피아노 연주자가 들려주는 ‘글루미 선데이’, 고대 신전이나 왕궁 같은 느낌의 오래된 온천장, 다뉴브 강을 끼고 달리는 노란색 트램,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활기찬 재래 시장,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임시변통의 건물 안에 자리잡은 ‘폐허 선술집(Ruin Pub)’…. 한마디로 부다페스트는 내가 아는 한 노스탤지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였다.

그 도시의 모든 것이 나로 하여금 너무도 살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켰고 그 마음이 결국 일을 저지르게 만들었다. 난생처음으로 외국에서 내 이름으로 된 아파트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한 것. 페스트 지역 안쪽 바르톡벨라 대로에 위치한 작은 아파트먼트였는데, 유틸리티 비용(전기, 물, 인터넷 사용료)을 포함한 월세가 50만원이 안됐고 보증금은 한 달치 월세분에 불과했다.
그래도 다 있었다. 침대와 옷장이 놓인 방 하나에 소파 있는 거실, 식탁까지 갖춘 주방, 욕조 있는 욕실과 화장실까지. 그리고 그곳에서의 두 달은 여행이 아니라 진짜 삶이었다. 그때 난 모 신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기고하는 여행 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그 원고료로 겨우 먹고살았다. 이 때문에 주로 걸어서 마트나 시장에 갔다. 원고료가 들어온 날이면 털북숭이 남자가 자기 집 정원이나 산에서 꺾어다 파는 것 같은 꽃이랑 와인을 샀다. 그리고 2층에 위치한 내 집 창문으로 이웃집 남자가 길가에 개를 묶어 놓고 슈퍼 가는 걸 지켜봤다. 어느 날인가 남자가 술에 취해 묶어 놓은 개의 존재를 잊고 있다가 그 다음날 아침에 데려가는 것도 지켜봤다. 또 어떤 날인가는 내 방 창문 앞에 와서 지저귀던 새를 따라 다닌 적도 있었다. 그만큼 내 시간이 많았다. 한가한 시간…. 그 시간과 공간이 가슴 아프게 좋았다. 마치 ‘네가 옆에 있어도 네가 그립다’는 시인의 마음인 듯 좋았다.

몰타에서 보낸 세 달 살이도 좋았다. 고속도로가 필요 없는 아주 작은 섬나라여서 좋았다. 그 도시엔 트램은 없고 대신 박물관에 보내야 할 것 같은 노란색 버스가 돌아다녔다. 하지만 나는 주로 걸었다. 아침이면 걸어서 학교에 가고(배움의 의무밖에 없던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일종의 퇴행 심리로 다닌 단기 어학학교), 방과후에는 해변에 나가 책을 읽거나 일광욕을 하다가, 해질 무렵에는 반드시 슬리에마 해변을 끼고 조성된 해안 도로를 짧으면 한 시간, 길면 두 시간 가까이 걸었다. 그때 얼마나 날씬했는지 나이 서른여섯에 배꼽티를 입고 다니고 싶을 정도였다.

안식년을 맞은 그해 정말이지 원 없이 여행했고 또 머물며 살며 다른 곳에서의 삶을 충분히 경험했다,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미련이 남는다. 갈증을 느낀다. 가장 후회스러운 것이 ‘제주 살이’를 해 보지 못한 거다. 이제는 수요가 너무 많아서도 못 가겠다. 하지만 제주가 아니면 어떤가? 부안이나 나주, 상주, 임실, 장흥, 통영 등 한동안 살아보고 싶은 도시는 얼마든지 더 있다. ‘여수살이’도 근사할 것 같다.개인적인 취향이지만 한강의 단편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냥 그 인연과 취향의 끈을 믿고 덜컥 여수에 달방을 계약하는 거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그런 로망을 품고 산다는 게 일상을 지탱시키는 힘 아닌가?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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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5일장을 사랑한다. 5일장을 도는 장돌뱅이 상인들이 익숙한 솜씨로 좌판을 펼치고, 인근 마을에서 보퉁이를 이고 지고 찾아온 할머니들이 갓 캔 푸성귀들을 펼치며 하나둘씩 자리를 잡는 곳. 계절을 반영하는 제철 생선이며 채소를 마트보다 싼값에 살 수 있다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손바닥만 한 좌판을 놓고 옹기종기 앉아 있는 시골 ‘할매’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그 특유의 정서 때문에도 자주 가고 싶어진다.

개인적으로 애용하는 장은 5일, 10일에 열리는 평창장. 즉석에서 들기름에 구워내는 김을 사기 위해서도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가게 되는 곳이다. 김을 사고 나면 대관령 황태를 산다. 강추위와 눈 속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만들어진 대관령 황태는 부드럽고 노란 속살에 양념을 발라 구워 먹어야 제일 맛있지만 대개는 황태채를 산다. 황태북엇국, 황태칼국수, 황태골뱅이소면 등 여러모로 쓸모가 많기 때문이다. 북유럽 디자인이 부럽지 않은 예쁜 뜨개 버선도 두 켤레 산다. 그래봐야 만원도 안되기 때문에 한 켤레 더 살까 고민하며 둘러보니 ‘몸뻬’ 파는 할아버지는 오늘도 장사는 뒷전이고 장기에 빠져 있다. 그러다 살짝 배가 고파지면 경이로울 정도로 얇게 부친 메밀전이나 김치를 넣은 메밀전병을 사먹는다.

며칠 전에는 1일과 6일에 열리는 횡성장에 다녀왔다. 오, 여기는 평창장보다 규모가 더 크고 다채롭다. 장옥 내 전문 장사꾼의 가게가 많은 장보다 인근 농촌에서 나물이나 채소를 들고나온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주로 난전을 펼치는 장을 개인적으로 더 좋아하는데 여기는 그 두 종류의 장이 적절히 섞여 있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매던 작약을 살 수 있어 좋았다. 손두부도 겨우 2000원. 하나로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두 배나 많아 보이는 싱싱한 파도 한 단 샀다. 한 바구니에 5000원 하는 토마토는 어찌나 싱싱한지 그 자리에서 바지에 쓱쓱 닦아 단숨에 먹어버리고 말았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문화관광형으로 개선된 정선장이나 봉평장보다 현지인 중심의 생활용 5일장인 평창장이나 횡성장을 더 선호한다. 그러나 평창에도, 횡성에도 미안하지만 강원도 최고의 5일장으로 꼽는 곳은 따로 있다.

5일장_경향DB


동해시에 위치한 200년 전통의 5일장, 북평장. 지금과 같은 방식의 3일, 8일장이 열리게 된 것이 1796년 정조 때부터라고 하니 어지간한 문화유산 못지않은 셈이다. 물론 단지 오래됐다고 무턱대고 최고 점수를 주진 않는다. 이 시장의 매력에 대해서 물으면 난 늘 이렇게 말한다.

“자전거만 한 문어가 꿈틀대며 수족관이나 빨간 ‘다라’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참문어가 즉석에서 삶아지는 대형 어물전 옆에서 촌로가 작은 소쿠리 몇 개를 앞에 두고 냉이며 쑥을 팔고 있는 모습도 정겹고. 어물 따로, 청과 따로 구획별로 정리가 안됐다는 점이 오히려 이 시장의 매력이랄까? 게다가 소머리국밥이 얼마나 맛있고 푸짐한지 말도 못해.”

북평장은 예전부터 우시장으로 유명했다. 덕분에 소머리국밥 잘하는 식당도 많았다. 우시장은 사라졌지만 우시장이 사라진 뒤에도 그 맛을 유지하는 집들이 아직까지 건재하게 영업을 하고 있어서 반갑다. 그중 제일 유명한 집에 갔다.

가마솥에서는 모락모락 김을 올리며 국을 끓이고 있는 ‘43년 전통’의 모 식당. 그곳에서 퍼지는 구수한 냄새가 마치 자석인 듯 우리를 끌어당겼다. 역시 그 맛이 그윽했다. 국물에서 느끼한 맛이 하나도 안 나면서도 아주 깊은 맛이 났다. 고기는 입안에서 스르르 녹을 정도로 부드럽고 양도 엄청 많았다. 대를 이어 국밥을 끓이고 있는 여사장에게 ‘맛의 비결’을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냥 어머니 말씀대로 하는 거죠. 첫째, 식재료 외상 달지 말아라, 그래야 좋은 물건 들인다. 둘째, 냉장고는 늘 채워 놓아라, 그래야 손이 커진다.”

‘좋은 식재료를 아낌없이 푸짐하게 내주어라’ 하지 않고, 저절로 실천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고안하셨다니 더욱더 감탄사가 나왔다.

“와, 그 어머니 굉장한 분이셨네요. 장사의 여신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시마다 마사히코는 <퇴폐예찬>이라는 책에서 ‘시장에서 살고 싶다’며 이렇게 썼다. “다녀왔습니다, 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그리운 장소로 돌아온 느낌이다.” 그게 바로 시골 5일장의 느낌이다. 우리 삶의 근원에 다가가 서로 냄새 맡고 만져보고 어깨를 부딪치는 듯한 정겹고 애틋한 느낌.

봄나들이하기 좋은 날들이다. 바다 냄새 나는 북평장에 가서 참문어님과 ‘장사의 여신들’에게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다녀왔습니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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