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저마다의 분주함의 무게에 짓눌려 살고 있다. 쫓기듯 밥을 먹고 허둥지둥 회사에 가서 각자에게 주어진 그 많은 일을 한다. 그러다 문득 궁지에 몰리기도 한다. 그래도 숨을 곳이 전혀 없다고 느낀다. 의문도 든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토록 실속 없이 바쁘게…, 무의미하게….”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답이 없고 가슴만 답답하다. 그래도 꾸역꾸역 밥을 먹고 일을 한다, 미련하게…. 산다는 게 이렇게 지긋지긋한 것인가 하는 절망감에 몸서리치다가 삶을 막 대하고 싶은 ‘나쁜 생각’마저 하게 된다.

“에라, 이놈의 미련한 몸 교통사고라도 좀 나라. 그러면 병원에 실려 갈 테고, 그러면 한동안 맘 편히 쉴 수 있지 않겠나?” 뭐 그런…. 하지만 교통사고라는 ‘불운’도 아무에게나 생기는 일이 아니어서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쳇바퀴를 굴리기 마련이다.

혹시 그 때문일까? 어떤 이들은 그러다 문득 덜컥 공황장애라는 병에 걸린다. 남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상황인데 본인만 혼자 어떤 상황 속에서 당장 죽을 것 같은 공포와 두려움, 숨막힘, 어지럼, 식은땀, 가슴 두근거림, 혹은 땅 밑으로 꺼질 것 같은 무기력 등을 호소하는 증상. 내가 경험한바 공황장애는 일종의 교통사고다. 정확히 정신적 교통사고로 인한 불안과 공포 후유증이 마치 ‘장애’인 것처럼 계속되는 현상.

복잡한 도심을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이 예기치 않게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을 안고 있듯 현대인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공포와 두려움, 무기력에 휩싸이는 공황장애는 흔한 병이 돼 버렸다. <내 마음이 지옥일 때>의 저자 이명수씨는 시 읽기를 통한 마음의 치유를 제안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런데 그런 장애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공해’처럼 흔한 질병이 돼 버렸다. 어느새, 공황장애 10만명 시대가 열렸다. 연평균 15.8%씩 증가해서 2015년 한 해 동안 공황장애로 병원을 찾은 사람이 10만명을 넘어섰는데 그중 절반 가까이가 일에 대한 중압감과 스트레스가 가장 큰 40~50대였다고 한다. 특히 40대 같은 경우 네 사람 중 한 사람이 공황장애라니 문득 놀라웠다.

내가 아는 한 40대는 인생의 최절정기이다. 이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한 자리씩 차지한 채 일의 숙련도 면에서 무르익는 시기다. 그런데 스트레스와 불안감으로 이런저런 병에 걸릴 확률이 가장 큰 세대이기도 하다. 왜 일까? 혹시 전 세계가 깜짝 놀랄 만큼 최장 시간 일하면서도 생산성은 낮고, 20대에게 미안할 만큼 월급은 높은데 스스로 느끼는 만족감은 낮기 때문일까? 여하튼 우리 사회의 중추라 할 수 있는 40대가 아프다. 치료하기 힘든 정신적 불치병을 앓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그토록 흔한 공황장애 환자에게 권하고 싶은 재미난 책을 발견했다. 마음 치유자 정혜신의 ‘영감’에 ‘힘’입어 심리기획자 이명수가 쓴 책 <내 마음이 지옥일 때>. 잠깐 읽었는데 대번에 이런 느낌을 받았다. “공황장애면 뭐 어때? 그냥 당신의 몸과 마음이 기우는 쪽으로 당신의 속도대로 가라는 신호에 불과한데. 그 신호를 따라 가다보면 ‘마음의 지옥’을 벗어나게 되니 되레 ‘축복’일 수도 있고. 물론 ‘부작용 없는 치유제’로서 시 읽기와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이야.”

제목과 달리 그 내용이 그다지 묵직하거나 암울하지 않았는데 의외의 방점은 놀랍게도 ‘재미’에 있었다. 한마디로 ‘시’를 좋아하는 심리학자가 시로써 ‘마음이 지옥’인 이들에게 치유적 메시지를 전한다는 의도의 책인데, 제 멋대로, 혹은 제 마음대로 시를 읽고 해석하는 심리학자의 글이 그가 꼽은 참신한 시와 함께 읽기가 매우 즐거웠다.

예컨대 ‘왼쪽으로 기운 것은 오토바이가 아니라 나의 생이야. (중략) 몸이 기운 쪽이 내 중심이야. 기울지 않으면 중심도 없어’라는 이원 시인의 시 ‘영웅’에 저자 이명수는 맞장구치듯 이렇게 대꾸한다.

“(암 그렇고 말고요.) 자전거 처음 배울 때처럼 기우는 쪽으로 핸들을 꺾어야 넘어지지 않잖아요.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꺾으라니 그러면 금방 잘못될 것 같지만 안 그렇잖아요.”

그건 바로 내가 선배로서 공황장애 환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그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너무 오랫동안 쫓기듯 허둥대며 일해서 그래요. 그만 내려와서 당신의 몸과 마음이 기우는 쪽으로 당신의 속도대로 천천히 가세요. 산다는 게 어차피 죽음을 향해 가는 일인데 좀 천천히 가면 어때요? 그게 옳지, 안 그래요?”

산다는 게 어떻게 지겨운 일이 될 수 있겠는가? 무서운 일도 아니다. 이렇게 멋진 시도 읽을 수 있는데….

‘웃음과 울음이 같은 音이란 걸 어둠과 빛이/ 다른 色이 아니란 걸 알고 난 뒤/ 내 音色이 달라졌다// 빛이란 이따금 어둠을 지불해야 쐴 수 있다는 생각’(천양희 ‘생각이 달라졌다’)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네모난 작은 새장이어서/ 나는 앞발로 툭툭 쳐보며 굴려보며/ 베란다 철창에 쪼그려앉아 햇빛을 쪼이는데// 지옥은 참 작기도 하지’(이윤설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산다는 건 크고 작은 ‘마음의 지옥’을 경험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내 알게 된다. “자기가 열쇠를 가지고 있는데 스스로 수갑을 채워놓고 불편하게 살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 많은 경우 지옥은 사라진다”는 걸. 하나하나 너무도 귀하게 읽히는 82편의 시와 함께 저자 이명수가 다다른 그런 깨달음에 이른다면 그건 분명 산다는 것의 축복이며 독서의 환희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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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41세의 노르웨이 여자를 알게 됐다. 서면을 통해 알게 된 그녀는 현재 방콕에 거주하며 전 세계를 여행하는 멋진 보헤미안이었다. 그런 그녀가 4월에 한국에 온다. 특별히 한국에 와야 하는 이유는 없다. 단지 인터넷을 통해서 강원도에 머물고 싶은 숙소를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놀랍게도 홀로 12박이나 머물며 컴퓨터로 일도 하고 충분한 휴식도 취할 거라고 했다.

그녀가 예약한 곳은 대체로는 4월까지 눈이 오는 곳이다. 늘씬하게 키가 큰 낙엽송 숲이 마치 집에 딸린 정원인 듯 인접한 강원도의 소박한 시골집. 그 풍경이 마치 자신의 고향 노르웨이처럼 애틋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자기 눈에는 그 민박집이 너무도 사랑스럽게 보인다고 했다. ‘자연’적이고 쉴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고 ‘아취’랄까 ‘우아’랄까 뭔가 그런 취향이 가득 느껴지는 공간처럼 보인다고 했다. 정확히는 ‘테이스트풀(tasteful)’이라는 단어를 썼고 ‘휘글링(hyggling)’이라는 표현도 썼다.

대관령 양떼목장에서 바라본 강원도의 겨울 풍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마침 전 세계적인 연구 대상이 된 덴마크인들의 ‘휘게 라이프(Hygge Life)’에 나 또한 지대한 관심을 품고 있을 때였다. 냉소적으로 빈정대기 좋아하는 영국인들이 이제 막 대학생들에게 ‘휘게’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가디언 표현에 의하면 ‘휘게 혁명이 로마제국보다 더 빨리 세계를 점령하고 있다’는데 내 어찌 ‘휘게’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혹시나 평창올림픽을 치러야 하는 강원도가 보다 매력적인 겨울 여행지가 되기 위해서 적용할 만한 것들이 있을까 싶어서 냉큼 읽어 봤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손꼽히는 나라 덴마크에서 ‘행복의 비밀’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쓴 <휘게 라이프(Hygge Life)>라는 책을. 오, 다행히도 밑줄 긋고 싶은 내용이 너무도 많았다. 예컨대 강원도에서 식당이나 카페, 숙박업을 하는 사람들이 주목해야 할 이런 내용들.

“<론니 플래닛>에 소개되어 있듯이, 덴마크 사람들은 아늑한 분위기에 목숨을 건다. (…) 가격, 상품, 판촉활동 등은 다 잠꼬대일 뿐, 덴마크에서 장사의 승패를 가름하는 것은 오직 휘게뿐이다.”

아 그런가? 그렇다면 ‘휘게’란 무엇인가? 어떻게 ‘휘게’할 수 있는가? ‘higge’는 ‘웰빙’을 뜻하는 노르웨이어 단어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그 어원에서 시작하면 너무 광범위하니 영어로 접근해 보자. 번역하면 ‘코지니스(cosiness)’다. 안락함, 특히나 소박하게 운치 있는 안락함. 예컨대 벽난로 같은….

실제로 벽난로는 휘게다. 그 말은 휘게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바로 ‘벽난로’라는 얘기다. 생활인으로서 하는 말이지만 난로는 매우 강원도스러운 아이템이다. 거실을 근사하게 꾸미기 위한 인테리어 소품이 아니라 살기 위해, 혹은 난방비를 절약하기 위해 난로를 사용하는 가정이 강원도엔 매우 많다. 벽난로가 사치스럽게 느껴진다면 장작난로라고 해도 상관없다. 화려할수록 덜 휘겔리하다고 하였으니 좀 더 검박하게 아궁이에 불을 때는 구들난방장치도 좋다. 

중요한 건 눈앞에서 장작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작은 불똥을 튀기며 타닥타닥 타오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특유의 나무 타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거다. 장작불이 만드는 그 특유의 시청각 안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돌연 느긋해진다. 따뜻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든다. 그뿐만 아니라 함께 파자마 같은 편한 옷을 입고 그 불빛을 보고 있는 사람들끼리 강한 유대감마저 생긴다.

덴마크에서 ‘휘게 라이프’를 위해 벽난로보다 더 많이, 더 자주 애용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양초다. 촛불이라면 우리에게도 너무도 의미심장한 무기가 아닌가? 평화롭게 혁명하는 이들의 아름다운 무기. 물론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내겐 너무 소중한 사업장 혹은 집을 전소시킬 위험이 있으니까.

그 때문에 나는 보다 휘겔리한 장소 꾸미기를 위해서 집안 구석구석 작은 램프를 사용할 것을 권한다. 조명기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덴마크 사람들처럼 폴 헤닝센의 고급한 램프를 구입할 수도 있지만 그 밖에도 선택의 폭이 무지 많다. 여전히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은 트렌드의 중심에 있는 ‘북유럽 디자인’이라는 검색어만 넣으면 인터넷에 부담 없는 가격의 멋진 조명기구가 얼마나 많은지 말도 못한다.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형광등을 주광색에서 전등색으로 바꾸기만 해도 달라진다. 집안 전체가 금세 휘겔리해진다. 진짜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조도를 낮추어야 한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덴마크인들의 행복의 원천 ‘휘게’는 이미 우리 안에 있다. 특히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강원도 안에 널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하얗게 눈이 내린 산과 들, 깨끗한 산 공기, 맑은 물. 마음 편하게 어울리는 이들이 함께 스키나 썰매를 타고 통나무집에 머물며 바비큐 파티를 하고 늦은 밤 장작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 그게 바로 최상의 ‘휘게’이기 때문이다.

물론 강원도가 좀 더 휘겔리해지려면 바꾸어야 할 것이 많다. 먼저 삶의 공간을 구석구석 누추하게 명명백백 밝혀주는 주광색 형광등을 떼어내자. 조도를 낮출수록, 빛의 웅덩이가 구석구석 많아질수록 휘겔리해진다. 양철 깡통이라도 좋으니 보다 많은 장작난로를 설치하자. 의자 위에 따뜻해 보이는 담요를 걸쳐두자. 평창올림픽시장 옆 빵집 ‘브레드 메밀’이 그러하듯이 갓 구운 빵 냄새를 풍기자. 강원도의 산과 나무를 연상시키는 소박하고 단순한 나무 가구를 공간 안에 들이자. 하다 못해 산에서 잔가지나 솔방울을 주워다 놓자. 

무엇보다 보기 싫은 ‘스뎅’ 밥그릇이나 플라스틱 그릇을 내다버리고 먹고 마시는 일에 아름다움을 부여할 수 있는 도자기 제품을 쓰자. 그 모든 것이 생각처럼 돈이 많이 드는 일이 아니다. 결단코.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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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할 때마다 이재명을 찾아보거나 듣는다. 그게 요즘 내 취미가 됐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른 이재명의 ‘핵사이다’ 발언. 유튜브에 많고 많은 것 중에 하나를 골라 보거나 듣고 있으면 역시나 가슴이 뻥 뚫린다. 국가를 철저하게 모독하고 국민을 개·돼지로 우롱한 자들이 아무리 뻔뻔한 거짓말로 요리조리 빠져나가도, 정곡을 찌르지 못하는 청문회와 국회가 아무리 지지부진 시들해 보여도 이재명을 통해 보면 다시금 활기를 되찾게 된다.

예컨대 “돌 맞아도 할 얘긴 해야겠습니다”라는 부제와 함께 올라온 이재명의 경북 구미 거리강연 동영상을 한 번 보시라. 이 모든 것이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박정희 때문이라는 뼈아픈 자각 속에서 이제 정말 그를 떠나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는 사실에 기뻐하게 된다. 이재명은 어마어마한 박정희 동상이 세워진 도시 구미에서 감히 이렇게 말한다.

“시민들의 피 같은 세금으로 산 사람도 살기 힘든데 죽은 사람을 무덤에서 꺼내 기념하는데 그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사실은 박정희 덕이 아니라, 그 당시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이 전략적으로 한국의 경제를 키워준 것인데 그 많은 돈을 박정희 기념사업에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그 돈이면 성남시 같은 복지를 무려 10년 동안이나 할 수 있는 돈인데 말입니다.”

불과 몇 달 전 유튜브를 통해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비판적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볼 때만 해도 몰랐다. 유력한 대선 후보가 박정희의 고향에 가서 박정희 신화를 정면으로 짓밟는 얘기를 감히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할 수 있을 줄은….

다행히도 내게는 기회가 있었다. 수구 기득권 세력이 지배하는 언론이 아무리 방해해도 <백년전쟁>과 ‘프레이저’ 보고서에 실린 박정희의 진실을 엿볼 수 있는 기회.

‘미국과 한국 관계’를 조사하던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가 1978년 발행한 ‘프레이저 보고서’에 의하면 박정희는 유신체제에 비판적인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뇌물로 관계자를 매수하고, 각종 이권사업을 기업들에 나눠주는 대가로 불법 정치자금을 모아 스위스은행으로 보내고, 미국의 파격적 지원과 지도에 의한 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을 자신의 공으로 돌린 ‘뱀’ 같은 인간이었다. 그래서 별명이 ‘스네이크 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미국 의회가 발행한 보고서에 그렇게 적혀 있어도 우리는 그런 얘기를 공공연하게 할 수 없었다. ‘유사 박정희’인 이명박이 집권하고 뒤이어 ‘진짜 박정희 유전자’인 박근혜마저 집권한, 놀랍도록 잘 속는 나라의 국민이었으니까. 그런데 박정희의 유산이며 비극인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터지고 우리는 시원스럽게도 이렇게 외치는 정치인을 갖게 됐다.

“법과 안보를 지키려고 하는 보수를 존중하되 그 속에 숨어 있는 강도, 깡패, 사기꾼, 도둑들을 잡아서 감방에 보냅시다. 매국, 친일, 독재, 부패로 기세등등한 세력을 이제 작살을 냅시다. 이거 안 하니까 정의가 없고 희망이 없는 겁니다. 부당한 세력이 기득권이 되어 이 사회 구성원의 기회를 다 뺏으니까. 바로 지금이 최대의 기회입니다. 지난 70년 동안 염원했지만 한 번도 이룩하지 못한 나라,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과 복지가 살아 있는 진정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 대한민국을 이제라도 바로 세우기 위한 기회! 그 기회를 위해 끝까지 함께합시다, 구미 시민 여러분!”

예전의 나는 참 어리석었다. 박정희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무조건 선을 그었다. 심지어 그 상대가 연인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와 같은 고속 성장을 위해 박정희 같은 독재가 필요악이었다”고 믿고 있던 그 남자에게 소리쳤다. “위대한 아버지 수령님 덕분에 고깃국에 쌀밥을 먹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자신이 세뇌당한 줄도 모르는 불쌍한 북한 주민처럼?” 이재명을 알고 나서 그랬던 나 자신을 반성할 수 있게 됐다. 성남시 복지를 방해하려는 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단식투쟁을 하던 이재명 시장의 발언 덕이었다.

“상대방에게 판단을 요구하면 안됩니다. 이런 판단을 해라, 저런 판단을 해라, 나를 지지하라, 저쪽을 비판해라. 그런 건 무의미합니다. 판단을 요구하는 순간에 반발심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대신 정보를 전달해 주면 됩니다. 그럼 스스로 판단하니까.”

그러니까 이 말은 그냥 전달만 해 주면 된다는 얘기 아닌가? 시원한 ‘핵사이다 이재명’을 누군가에게 전달만 하면 된다. 그냥 손가락 하나로. 톡~. “어머 아직 박정희 좋아하세요? 그럼 이거 한 번 보세요. 톡~.” 그럼 얼굴 붉히며 싸울 필요가 없다. 적이라고 생각했던 이들과 동지가 될 수도 있다. 헌법을 수호하는 진정 공정하고 평화롭고 희망찬 나라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가 유형으로든 무형으로든 ‘촛불’을 들고 ‘정보’를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오랫동안 염원했지만 너무도 멀게만 느껴진 그 꿈의 나라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가뿐하고 분명하게 느껴진 적이 있던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자.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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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을 때 사실상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대중음악인이 웬 문학상, 그것도 천하의 노벨 문학상을?” 하고 놀랄 법도 한데 놀라기는커녕 “음, 언젠가 그럴 줄 알았지” 하고 말았다. 스웨덴 한림원이 노렸듯이 논란을 일으킬 만한 파격은 파격이되, 아는 사람은 누구나 예측 가능한 다소 ‘뻔한 파격’이었다고 할까?

내가 아는바 미국에는 일찍이 ‘딜런학(Dylanology)’이라는 학문이 있었다. 이 학문은 1960년대 전성기를 누린 ‘밥 딜런’이라는 뮤지션의 가사와 철학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보다 지적으로 ‘으쓱’하고픈 대중문화인, 혹은 대중문화 애호가를 위한 것이며 그쪽 방면에서 밥벌이를 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코스’ 같은 것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밥 딜런은 실제로 대학의 정식 커리큘럼으로 등장한 최초의 대중음악인이었으며, 그를 존 업다이크나 셰익스피어에 비견하며 노벨 문학상을 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일찍부터 진지하게 검토됐다.

물론 그건 ‘세상을 바꾼 가장 뛰어난 대중문화 1위’라는 거창하기 짝이 없는 수식어가 따라붙을 만큼 밥 딜런의 대중적 인기와 영향력이 엄청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가 쓴 가사가 마치 무슨 프랑스 상징주의 시처럼 매우 그럴듯하게 난해해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밥 딜런을 좋아한다고 하면 그냥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를 좋아하는 범인의 취향 그 이상의 무엇, 보다 심오하고 지적인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 때문에 밥 딜런을 유독 대단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한편 그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준비한 2016년 노벨상 수상 축하연은 물론 시상식조차 불참한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도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 생각했다. 게다가 다른 심각한 이유가 아니라 단지 ‘선약’ 때문이라니 얼마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시원한 대답인가? 역시 밥 딜런이구나, 생각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밥 딜런다운 것인가? 내가 아는 밥 딜런은 나 자신을 속박하는 타인의 기대를 가차 없이 걷어차는 인물이다. 처음부터 그랬다. 그 대상이 가족이었던 십대부터. 예술을 정신적 타락으로 치부하는 유대인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며 시집을 읽고 노래를 부르다 못해 아예 아버지를 갈아 치운 인물이라고 할까? 실제로 좋아하던 시인 토머스 딜런의 성을 따서 이름을 ‘로버트 짐머먼’에서 밥 딜런으로 바꾸는가 하면, 우디 거슬리라는 포크 가수를 좋아해서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는 고백이 밥 딜런의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에 써 있다.

‘노래하는 저항 시인’으로 추앙받기 시작하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민중을 위한 저항 시인으로 살았던 건 아주 잠깐뿐이었고, 그 이후엔 다른 무엇보다 자신을 가두는 그와 같은 수식어에 저항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저항’이라기보다는 ‘배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1965년 5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무대가 그 정점이었다. 밥 딜런은 느닷없이 통기타를 버리고 처음으로 전기기타를 들고나와 야유하는 관객들을 향해 ‘나는 너희 거짓말쟁이들을 믿지 않는다’며 악기를 부술 듯이 연주하고 공연을 끝까지 마쳤다. 나는 진정 반했다. 밥 딜런이라는 예술적인 반항아에게. 한마디로 그는 한바탕의 소란과 배신으로 신화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건 지금도 그러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밥 딜런을 잘 담아낸 영화가 있다. 토드 헤인즈 감독이 만든 <아임 낫 데어(I’m Not There)>다. 자신이 흠모하는 문화적 취향을 향해 계속 변화하고 변형하는 존재, 하나의 밥 딜런을 죽이고 다른 밥 딜런으로서 새 삶을 사는 존재인 그에게 집중하는 영화답게 ‘당신이 생각하는 밥 딜런은 거기 없다’는 뜻의 제목이 달렸다. 가령 그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노벨 문학상 그까짓 것 주면 받겠지만,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밥 딜런의 문학적 재능이나 성취를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는 바이런과 셸리와 롱펠로와 에드거 앨런 포와 랭보의 시를 사랑한 청년이었다. 그 덕분에 노래하는 훌륭한 시인이 되었다. 그의 노랫말이 셰익스피어의 비극소설보다 혹은 랭보의 시보다 못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예컨대 굳이 지적인 해석이 필요 없고 그저 글자 그대로 느껴지는 정서만으로 멜로디와 함께 지상의 그 어떤 시보다 더 멀리 공명하는 이런 노랫말들.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 타인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기분이 어때/ 집 없이 사는 것이/ 알아주는 사람 없이/ 구르는 돌처럼 사는 것이?”

밥 딜런에게 2016년 노벨 문학상을 안긴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바람만이 그 대답을 알지(Blowing in the wind)’와 ‘구르는 돌같이(Like a rolling stone)’의 후렴 가사다. 문득 그의 노래들이 지금 대한민국의 시민으로 사는 우리들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밤이다. ‘저녁의 제국이 모래로 돌아가버렸음’을 우리 모두가 누누이 전하고 있건만 비몽사몽 약에 취해 알지 못하는 그녀에게도 밥 딜런을 보내고 싶은 밤이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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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이었고 12월이었다. 때는 차은택이 진실로 잘나가던 때였다. 감각적인 영상 세대의 리더로서 웬만한 록스타보다 추종자가 많았고 12월의 대선후보만큼이나 바빠서 짬 날 때마다 아무 데나 기대어 쪽잠을 자야 할 판이었다. 회의하기 전 30분, 촬영하기 전 30분, 차 안에서 20분…. 그렇게 잠깐씩만 자는 일중독자였다 그는. 그 때문에 첫 번째 인터뷰 스케줄을 펑크 내고 두 번째 만나러 갔는데 그때도 그는 1인용 소파에서 곰인형을 끌어안고 웅크려 자고 있는 덩치 큰 남자의 모습이었다.

“왜 그러고 사세요?” 그때 나의 첫 번째 질문이 그랬다. “좋으니까요. 이건 좋아서 미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일이죠. 전 일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난 그가 좀 애처롭다고 생각했다. 당시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뮤직비디오 감독이었지만 광고에 대해서는 ‘끝없는 한계’를 느낀다고 했다. “내가 이만큼 했는데도 저기 가 있구나!” 그렇게 잠이 부족한 와중에도 간혹 밤잠을 설칠 만큼 질투한다는 박명천 감독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당시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내가 좀 더 저속해지더라도 장사가 잘되는 광고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요. (…) 지금 당장, 내일 아침이라도 나를 개조하기 위한 과제들을 만들어 나 자신을 더 무장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생각해 보면 질투심만큼 사람을 불명예스럽게 만드는 건 없다. 그건 그 대상이 ‘일’이 됐건 ‘돈’이 됐건 혹은 ‘사랑’이 됐건 ‘탐욕’이 됐건. 그렇지 않은가? 더 많은 일과 명예, 영향력을 좇던 남자는 자기 자신의 바람대로 끝없이 ‘저속’해졌다. 이런저런 저속한 욕망들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다 소화기관이 시한폭탄처럼 터진 괴물. 추악하다 못해 이제는 돌연 불쌍해 보이는 괴물.

다른 한편, 아니 정확히 차은택의 반대편에 정영두라는 무용가가 있다.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간 런던 주영 한국문화원 앞에서 “George Orwell’s 1984 is not fiction. It’s the reality in Park Geun-Hye’s South Korea. Not Censorship!(조지 오웰의 <1984>는 소설이 아닙니다. 2016년 박근혜의 한국에서는 현실입니다. 검열 반대!)”라는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던 현대무용 안무가 정영두.

한마디로 그는 차은택이 ‘문화계 황태자’로 군림하며 고위 공무원에 속하는 이런저런 문화계 부역자들과 함께 예술가를 검열하고 탄압하며 최순실과 함께 돈을 긁어모으는 사이 소위 ‘블랙리스트’로 낙인찍혔던 예술가다. 하지만 그러한 억압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보다 진취적으로 실천하는 예술가의 삶을 살고 있는 무용가.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사소한 발언이나 행동까지도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소설 <1984>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꼈다”면서 “예술가들의 입과 눈을 통제하는 것은 곧 사회 전체를 통제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검열이 존재하는 한 어떤 형태로든 끝까지 저항하려 한다”면서 자신의 활동이 ‘예술가 본연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말했다.

정영두의 무용 작품을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난다. 놀랍게도 난 울고 있었다. 춤 공연을 보며 감동에 젖어 울기는 피나 바우슈 이후 처음이었다. 아름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한 삶의 주름들이 담긴 순수하고 진실된 몸의 언어를 어렵사리 읽으며, 그걸 읽을 수 있고 그것에 감동받을 수 있는 나 자신이 그 어느 때보다 좋았던 기억이 난다. ‘삶이 때때로 우리를 비속하게 만들어도 우리 자신의 몸과 영혼은 결코 저속할 수 없다’고 정영두의 춤은 말해주는 것 같았고, 난 그 무언의 진실된 춤에 울고 말았다.

솔직히 차은택이 연출한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이나 폐막식을 안 보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그 자신도 고백하는바 그는 매우 장식적인 인간이다. 여백의 미를 모르고 감동은 아예 엄두도 못 낸다. 대신 온갖 잡다한 기호와 상징, 문화 코드를 게걸스럽게 집어삼킨 한 편의 화려한 뮤직비디오 같은 올림픽 개막식 혹은 폐막식을 만들었을 인간이다. 생각만 해도 싫다. 그걸 보는 동안 평창군민으로서 창피했을 것 같다.

대놓고 바란다. 대신 정영두가 예술감독으로서 연출한 평창올림픽 개막식 혹은 폐막식이 보고 싶다고. 정영두는 2004년 일본 요코하마 댄스컬렉션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대상을 탔고 당대 최고의 댄스 마스터 수잔 버지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안무가이다. 무엇보다 평창올림픽은 두 괴물 때문에도 돈이 없지 않은가? 그게 가장 큰 문제이지 않은가? 그런데 정영두는 그런 평창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예술가이기도 하다. ‘가난한 무용’으로 감동 주기가 그의 주특기이기 때문이다. 농담이 아니다. 올림픽 역사상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진짜 예술로 전 세계인을 울릴 수 있다. 정영두라면 그럴 수 있다. 꿈이 아니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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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연휴 전날이었다. 우리는 ‘영악’하게도 바라는 것도 없이 열심히 일해주는 시댁 식구들의 노동력을 거저 확보하자는 욕심에, “연휴 동안 놀면 뭐하냐”며 “보람차게 다 같이 마당에 잔디나 깔아보자”며 부부가 함께 잔디를 사러 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횡단보도 앞에서 한 노인이 유령처럼 나타나 자동차 뒷문 손잡이를 잡고 매달렸다. 태워달라고. 그 모습이 하도 절박해 보여서 그냥 태워드렸다. 어디까지 가시는지 묻지도 않고….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미안해. 염치 불고하고 무작정 태워달라고 해서…. 너무 아파서 그랬어. 그러니까 너그럽게 좀 용서해줘요. 그냥 딱 죽고 싶을 정도로 아픈데 내일 자식들이 온다잖아. 자식들 앞에서 아프다고 울 수도 없고. 그래서 연휴 닥치기 전에 병원 가서 주사라도 한 대 맞고 물리치료라도 좀 받으려고. 그러니까 나 대화면의 병원 앞까지만 태워줘. 염치 불고하구지만….”

“염치라니요? 당연히 태워드려야죠. 근데 많이 아프세요?”

“안 아픈 데가 없어. 그냥 온몸이 다 잘못된 것 같아. 젊어서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인대가 늘어나고, 뼈가 다 닳았대. 수술도 못하고 치료약도 없대. 그냥 이렇게 아프다 죽는 수밖에 없다는데 그 고통을 누구한테 말해. 자식들한테? 말도 안되지. 니들 키운다 이리 됐다 할 수도 없고. 그냥 마누라 하고 나누는 거지. 그 고통…. 그러니까 젊은이도 젊다고 일을 너무 많이 하면 안돼. 죽어라 일만 하면 늙어서 후회해. 그건 대체로 아무 소용없는 후회고.”

남의 아버지이지만 내 가슴도 아픈 얘기였다. 병원 앞에서 힘없이 손을 흔들며 고맙다고, 고맙다고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던 노인의 모습이 얼마나 처연하게 선량해 보이던지 살짝 눈물도 났다. 아파서 그런 건지, 아니면 고마워서 그런 건지 그 순간 노인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는데, 그 눈물을 보는 순간 알았다. 지금 내 인생의 잊을 수 없는 찰나 중 하나가 지나가고 있음을 ….

그 노인이 갔을 법한 시골 의원 대기실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칠순에 절정의 행복을 느낀다고 썼던’ 내 어머니가 지금 많이 아프시다. 몇 년 전 수술한 허리를 삐끗 다친 후 처음엔 119에 실려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졌고 그 다음은 시 외곽의 종합병원에서 열흘을 지내셨는데 갈 때마다 엄마는 이런 하소연을 하셨다.

“대학병원이고 종합병원이고 다 필요 없다. 의사 진료고 물리치료고 우리의원 찜질팩 하나만도 못해. 나 퇴원해서 우리의원 다닐란다.”

우리의원은 횡성군 안흥면에 있는 국민건강보험 소속의 작은 시골 의원이다. 자식들을 위해 지나치게 과로했던 시골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아플 때 찾아가 늙고 병든 몸을 무작정 내맡기는 곳. 무엇보다 성심으로 아픔 몸들을 어루만져주며 환자에게 이것저것 묻고 경청해 주고 사적인 고통을 알아주는 젊은 물리치료사가 있어서 우리 어머니는 세상의 다른 어떤 병원보다 이곳을 사랑하신다.

“여기 오면 일단 마음이 치료돼. 놀라고 주눅 들고 서러운 늙은 병자의 마음을 얼마나 다정하게 데워주는지 모른다. 장갑도 안 끼고 맨손으로 구석구석 아픈 몸을 마사지해 주는 젊은 치료사 손길에서 자식들에게 받은 상처와 무관심을 보상받는 기분마저 든다면 너 이해하겠니?”

이해할 것 같다. 이해할뿐더러 아픈 내 어머니를 보살펴주는 ‘천사의 손길’을 느낀다. 존 버거의 어느 시골 의사 이야기 <행운아>를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책의 주인공이 따로 없구나 생각했다. 그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불행한 사람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취급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존 버거의 글에 내 어머니가 덧붙였다. “맞다. 종합병원에서 느낀 내 불행감에 딱 걸맞은 얘기로구나. 그런데도 돈은 얼마나 뜯어가든지…. 그에 비해 일부러 고향으로 돌아온 이 젊은 물리치료사는 얼마나 훌륭하냐? 그 선생에게 어린아이처럼 몸을 맡기고 싶은 환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소홀함이 없더구나. 내 몸이 느끼는 소홀함 말이다.”

한편 또 놀라운 건 그렇게 훌륭한 성심의 의료서비스를 받고 우리 모녀가 지불한 치료비가 2200원이라는 사실. 처음이었다. 아프지 않아 병원 갈 일이 거의 없었던 내가 그간 수천만원대의 건강보험료를 떼어간 국가라는 ‘약탈자’를 처음으로 대견하게 느낀 건.

당연히 의료민영화는 안된다. 의료가 민영화되면 늙고 병든 내 어머니 아버지의 몸 하나하나가 돈벌이로 환원되고 만다. ‘천사’가 상주하는 시골 의원은 다 사라지고 만다는 얘기다. 공공병원 성과연봉제도 마찬가지다. 의료민영화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국가가 국민의 아픈 몸을 돈벌이로 치환시키려 한다면, 지금껏 건강한 몸으로 군소리 없이 건강보험료를 낸 국민 모두가 국가를 대상으로 소송을 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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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의 삶은 바쁘다. 미쳐 버릴 정도로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헛헛하다. 이유는 모른다. 여하튼 할 일 많은 걸로 헛헛함을 잊고 있을 뿐 그 헛헛함은 마치 신발 속의 깔개인 듯 도시 생활 속에 늘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러다 한 번씩 못 견디겠다 싶을 만큼 외로워진다. 진탕 술이라도 퍼마셔야 할 것 같은 날. 아님 온라인 쇼핑몰에서라도 충동구매를 충족시키든지…. 결핍감 때문이다. 술이라도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은 결핍감.

그런데 다행이다. 그 와중에 ‘식물’에게서 위로를 찾는 이들이 요즘 부쩍 많아졌다. 식물에게 물을 주며 헛헛하거나 건조한 도시 생활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소식. 심지어 식물을 구매하고 키우는 일이 일종의 트렌드가 아닌가 싶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요즘은 살짝 시들해진 감이 있지만 한때 다육이의 인기가 대단했다. 하기야 건조한 기후에 강해서 물줄기를 게을리해도 쉽게 죽지 않는 식물이라니 초보자들에게 이보다 더 매력적일 수는 없다. 게다가 척박한 환경에 스스로 적응하기 위해 체내에 물을 품고 있다니 뭔가 인간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러니까 너도 살아남을 수 있어. 너무 애 쓰지 않아도” 뭐 이런 식의….

심지어 다육식물은 증식 방법이 너무도 간단해서 금방 식구를 늘릴 수 있다. 인간 식구 대신 다육 식구 늘리는 방법은 거의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모양은 또 얼마나 다채롭고 사랑스러운가? 신비스러울 정도다. 흠이라면 통풍 안되고 햇볕 없으면 잘 못 살고 겨울에 너무 춥게 내버려두면 얼어죽기 쉽다는 건데 그 정도 최소한의 관리는 해줘야 식물에게 위로받을 수 있는 인간의 자격이 있는 거 아닌가 싶다.

하지만 다육이도 좋지만 공기정화식물만큼 도시인들에게 유익한 식물은 없을 것 같다. 예컨대 밀폐된 우주선 내 공기를 정화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던 중 미항공우주국 NASA가 발견하여 지구인 모두에게 추천하는 1위부터 50위까지의 식물들.

흔히 ‘황야자’라고도 불리는 아레카야자가 그 1위인데, 이 호리호리하게 울창한 나무는 실내가 건조하면 수분을 공기 속에 내뿜는 습도조절능력이 뛰어나 ‘천연 가습기’로 사용하기 그만이다.

한편 영화 <레옹>에서 마틸다가 들고 다니는 화분 속 식물로 알려진 아글라오네마는 NASA 추천 공기정화식물 38위다. 영화 역사상 존재감이 가장 큰 식물이어서 예전에는 그걸 구하려면 제법 발품을 많이 팔아야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왜 그렇게 가격이 다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인터넷에서 다양한 가격대로 팔리고 있다.

50위 안에 들지는 않지만 몬스테라라는 열대성 관엽식물도 인기다. 잎맥 사이에 뚫린 타원형의 구멍 때문에도 매우 이국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일까? 아님 수경 재배로 간단히 키울 수 있기 때문인가? 식물이 인테리어 오브제로 부상한 이후 셀프 인테리어족에게 유독 인기 있는 식물이 바로 이 몬스테라다.

하기야 몬스테라 한두 이파리를 미니멀한 화병에 꽂아 타일 붙인 싱크대 위에 두기만 해도 공간이 얼마나 사는지 그 효과가 마술 같을 정도다.

아예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현대의 도시인들에게 약 대신 ‘식물을 처방’해 준다는 콘셉트로 설계된 소규모 브랜드도 있다. 이름 하여 ‘느린 약국’이라는 뜻의 ‘슬로우파마씨’. 화분이 아니라 비커나 유리병에 식물을 기르는 풍토를 조성한 사람들이기도 한데 처음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주문을 받더니 이젠 용인의 쇼룸에 이어 온라인 쇼핑몰까지 생겼을 정도로 두루 사랑받고 있다.

슬로우파마씨처럼 식물을 그토록 창의적으로 다루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이다. 물론 창의적이지 않다고 주저할 것도 없다. 식물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다루어야 한다. “어, 얼굴이 쪼글쪼글한 게 저 녀석 목마르네, 미안, 물 줄게.” “아이코, 이거 너무 좁겠는데. 조만간 큰 집으로 옮겨줘야겠어.” 그런 마음. 그런 마음의 힘으로 조금씩 자신의 수고를 늘려가며 발견하는 행복과 위로. 그게 바로 ‘반려 식물 테라피’라고 나는 생각한다.

구절초, 쑥부쟁이, 벌개미취가 아무런 의도나 콘셉트 없이 그냥 막 피어 있는 시골의 가을 들녘은 아름답다. 음식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는 무슨무슨 꽃축제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개인적으로 장미나 튤립, 백일홍 같은 외래종에게 자리를 내주고 이름도 없이 사라져 가는 토종 야생화가 자꾸만 마음이 쓰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그렇다면 수고를 해야지. 이번 주말에 계방산이나 함백산, 혹은 인제 곤배령 쪽으로 가보리라. 가서 보고 함께 살고 싶은 꽃들을 입양해야겠다.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고 마음을 쓰고 말을 건네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것, 그게 바로 식물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이니까.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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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노동자로서의 예수를 사랑한다. 하지만 덮어놓고 육체 노동을 신성시하는 부류를 어떤 면에서 가장 경계하고 의심한다. 일보다는 여가를 사랑하는 러셀주의자랄까? 러셀 말대로 삶 그 자체보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 의해 우리 인류가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해왔고, 그 때문에 이 세상이 되레 더 나빠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도 나는 되도록 러셀의 충고에 따라 살려고 했다. 아예 모니터 위에 이런 내 마음의 강령을 적어 놓고 일했다.

‘조직으로 일을 줄여야 한다!’ 후배는 물론 심지어 상사에게도 그것이 ‘인류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고 강권하고 싶었다. 당연히 잘렸다. 17년 동안 그럭저럭 버티긴 했지만 결국 잘려 나갔다. 억압적인 위계 시스템에 버럭버럭 소리 지르며 대항하다가 제 발로 걸어나왔지만 사실상 잘린 거나 다름없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래도 눈곱만큼도 후회가 없다. 후회하기는커녕 그때 그렇게 꼴사납게 싸우지 않았더라면 월급에 목이 매여 제 발로 그만두지 못하고 아직까지 회사에 다녔겠지 생각하곤 하는데, 그럼 되레 식은땀이 난다.

정말이지 회사를 그만두고 4년을 즐겁게 헤맸다. 도서관에 다니며 전업작가로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다가 여의치 않아서 서둘러 귀촌했다. 귀촌 후 남편의 집 짓기를 도우며 두 권의 책을 냈다. 200장 벽돌을 날라주고 밥을 하고 원고를 쓰는 식이었다. 그 와중에 어느 지방 방송의 영화 프로그램에 출연한다고 무려 6개월 동안이나 서울과 부산, 평창을 오가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살았다. 플립보드라는 미국의 소셜 매거진 일에 이어 지금은 에어비앤비의 호스트로 살고 있으니 그야말로 디지털 잡(job) 노마드가 따로 없는 삶.

그런데 나 같은 사람들을 부르는 신조어가 생겼단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 ‘gig’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그렇듯 재즈 연주자들을 모으듯, 춤추듯 가볍게 스마트폰 앱을 플랫폼 삼아 언제 어디서나 유연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경제 시대가 왔다고.

이제 전문가들은 평생직장 시대는 갔다고 진단한다. 정규직은 없고 계약직, 비정규직만 있는 세상이라니, 매우 암담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틀에 박힌 직장보다는 ‘긱’과 같은 탄력 있는 일자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되레 더 크고 만족도도 더 높다고 한다. 긱의 주체들이 일정한 회사에 고용된 직장인보다 훨씬 직업을 즐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하는데, 나 자신의 경험을 말하자면, 거짓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나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을 응원하는 후원자다. 뭐 대단한 후원자는 아니지만 여하튼 후원자다. 5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가난한 프리랜서 작가이자 자영업자로 살기 시작한 이래 가지각색 고지서와 나날이 옥죄는 ‘빚’에 마음이 우중충할 때도 푼돈이지만 얼마 안되는 후원금을 냈다. 그리고 지난 7월부터 이것저것 다 빼고 처음으로 순수익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하자 그 수익의 10%를 다시금 2차 후원금으로 냈다.

‘꿀잠’을 생각하면 노순택 작가가 찍은 한 장의 사진부터 떠오른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요구하며 오체투지로 차가운 땅바닥을 기던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한없이 낮아진 모습. 그 중심에 이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아이콘이자 전설이 된 기륭전자 언니들이 있었는데 왜 그런지 그 모습이 비참해 보이기는커녕 어떤 종교적 의식보다 더 경건하고 또 성스럽게 느껴졌다.

그 사진 아래 노순택 작가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기륭일 수밖에 없는 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이 필요하다’고. 그런데 그건 기륭의 언니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긴 시간 지독하게 투쟁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복직과 생계를 원하는 기륭인이 아니라 그 이상의 ‘우리’였기에 가능했다는 걸 그때 노순택 작가의 사진과 글을 보며 처음 알았다. 미안하다. 그 이전까지 나는 10년 넘게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미련 곰탱이’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 귀한 줄 모르는 직장이 뭐라고 목을 매고 투쟁하나? 오죽 미련하고 무능하면 그렇게나 오래?’ 그렇게 생각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시덥지 않은 교만함으로….

그러다가 얼마 전 백기완, 문정현 두 어른이 ‘벽돌 몇 장 보태는 마음’으로 꿀잠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전시회에는 못 갔지만 두 분의 인터뷰 기사를 경향신문에서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나 이렇게 말하는 백기완 선생의 저렁저렁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예수는 노동자였어. 목수였잖아. 노동으로 단련된 몸으로 부당한 사회질서에 대항한 깡따구 있는 인물이었다고.”

그렇다, 난 노동자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노동자이고 싶다. “노동하지 않는 삶은 부패하고, 영혼 없는 노동은 삶을 질식시킨다”는 카뮈의 말을 마치 신앙처럼 믿는 노동자. 긱이든 긱이 아니든 사소한 경계를 너머 우리를 보는 노동자.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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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스마트폰 생방송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소식 때문일까? 며칠 전부터 크리스천 슬레이터가 해적 방송 DJ로 출연하는 영화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맞다, <볼륨을 높여라>. 때는 1990년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회원 가입만 하면 누구나 자기만의 방송을 만들 수 있던 때가 아니었다. 전학 후 외톨이가 된 마크는 아버지가 사준 무선 통신기로 밤마다 정체불명의 DJ 하드 해리가 되어 가슴에 응어리진 말들을 토해낸다.

ⓒ경향신문DB

“솔직히 기대할 일도 존경할 인물도 없는 이 날쌘 시대를 사는 게 지겹다고요. 제기랄, 안 그런가요? 이런 암흑 같은 생활이 당신을 미치게 하잖아요. 그러니까 뭐든 미친 짓을 해보자고요. 신나게, 창조적으로….”

DJ 하드 해리가 하는 말들이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움츠려 있던 내 청춘의 심장을 얼마나 고무시켰는지 모른다. 게다가 이제껏 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정말 멋진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예컨대, 레너드 코헨의 ‘Everybody Know’ 같은 곡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젊은 청취자들이 모처럼 뜨거워진 자신의 심장을 느끼며 좋아했겠는가? 급기야 경찰의 추적 대상이 되어 해리는 더 이상 방송을 못하게 됐지만 ‘진실은 바이러스 같은 거다’라는 그의 말대로 수많은 해적 방송의 1인 DJ가 바이러스처럼 퍼졌다.

해리는 DJ라기보다는 요즘 말로 BJ(Broadcasting Jockey)였다. 혼자 PD도 되고, 작가도 되고, 촬영감독도 되고, 진행자도 되는 1인 다역의 창작자. TV가 아닌 보다 사적인 소통 창구 앞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새로운 형태의 오피니언 리더. 어릴 때 “남 먹는 거 쳐다보지 말라”고 배운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지만 카메라 앞에서 그저 먹어대는 ‘먹방’으로 억단위 고수익을 버는 BJ가 있는가 하면, 게임을 소개하면서 재미있는 토크를 곁들인 방송으로 ‘1인 방송계의 유재석’이라 불리는 이도 있다.

그들은 더 이상 마이너가 아니다. 새로운 주류고 대세가 됐다. 한국에 ‘1인 인터넷 방송’ 채널만 무려 7000여 개, 방송 중인 BJ가 무려 150만명이라고 한다. 그중 스타급 BJ는 월 1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고 신변잡기에 가까운 수다만 떨어도 대기업 임원 못지않은 돈을 벌 수 있기에 초등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기 직업인이 됐다.

하지만 그들은 <볼륨을 높여라>의 의식 있는 반항아 하드 해리가 아니다. 너무 변질됐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병적일 정도로 천편일률적이다. ‘자발적 시청료’라는 명목의 ‘별풍선’ 현금을 받을 수 없다면, 혹은 광고 수익을 얻을 수 없다면 그중 몇이나 1인 방송 활동을 계속할지 의문스럽다. 별풍선을 많이 받기 위해 자신의 외제차로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는 장면을 생중계하는 BJ가 있는가 하면, 안쓰러울 정도로 짧은 핫팬츠 차림으로 섹시 댄스를 추는 초등학생 BJ도 있어서 방송 보기가 겁난다. 아예 유통업계와 손잡고 상품 드라마 간접광고(PPL) 같은 광고를 해주거나 쇼핑 호스트로 나서는 BJ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갑자기 봇물 터지듯 확장된 ‘1인 생방송 시대’가 내게는 너무도 매력적인 세계로 느껴진다. 특히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페이스북 라이브’를 즐겨보는 편인데 얼마 전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실시간 토론 생방송을 지켜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마크 저커버그가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우주인들과 영상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페이스북 라이브 동영상으로 생중계될 때도 좋았다.

그러다가 문득 나도 ‘청취자’가 아니라 ‘생산자’ ‘창조자’로서의 1인 방송을 만들어 내보내야겠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중심으로 만들고 싶은 콘텐츠가 무궁무진하다. 예컨대 평창자생식물원은 아직 영업 허가를 받지 못했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 아무나 찾아갈 수 없는 곳이다. 인터넷에도 정보가 거의 없다. 하지만 내가 타샤 튜더의 정원 못지않게 아름다운 곳이라고 소개했던 곳. 그곳에 가서 페이스북 라이브 버튼을 누르리라.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몸이 동해의 짙푸른 바다 동네, 묵호에 있으니 어쩌면 첫 방송은 묵호에서 진행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페이스북의 니콜라 멘델손 부사장은 “이 추세대로면 5년 내 모든 글이 동영상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워싱턴포스트 같은 기존의 유력 신문도 독자를 현장으로 바로 데려다주는 ‘동영상’에 맞추어 회사를 리폼하겠다고 했다. 내가 사랑하는 ‘경향신문’도 그런 준비를 하고 있다면 참 좋겠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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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밥벌이의 지겨움’과 함께 ‘낭만적 밥벌이’란 말도 유행했다. 지겨운 일이지만 ‘도리’ 없이 해야 하는 일이 ‘밥벌이’라고, 기성세대는 말하고 청년세대는 ‘세상에는 낭만적 밥벌이도 있다’고 대답했다. 같은 제목의 책도 나왔다.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받은 김훈이 에세이 <밥벌이의 지겨움>을 낸 건 2003년이었고,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조한웅이 ‘어느 소심한 카피라이터의 홍대 카페 창업기’라는 부제를 단 책 <낭만적 밥벌이>를 낸 건 2008년이었다.

누군들 ‘밥벌이’가 지겹지 않을까? 그래도 ‘대책이 없다’고 하니 목이 멘다. 때로는 눈물도 난다. 상사든 클라이언트든 남의 눈치 안 보고 느긋하게 자기만의 사업장에서 우아하게 음악이나 틀고 커피나 내리면서 ‘밥’을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청년 구직자와 퇴직자의 창업 로망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홍대나 신사동 가로수길처럼 청년 상인들이 ‘낭만적인 밥벌이’를 꿈꾸며 주로 모여드는 동네일수록 임대료가 거의 ‘악마’적인 수준이다. ‘낭만’은커녕 본전도 못 찾고 임대한 가게에서 쫓겨나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티는 게 현실. 듣자 하니 <낭만적 밥벌이>의 저자조차 나날이 높아지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카페 문을 닫고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는 쓸쓸한 소식이다.


보증금·임대료별 전·월세 거래량_경향DB



그렇다고 너무 낙담하지는 말자. 내가 아는 이들 중에는 탄광 도시에 헌책방을 낸 사람들도 있으니까. <빅스톤 갭의 작은 책방>이라는 책을 낸 웬디와 그녀의 남편 잭. 언젠가 작은 책방을 내는 것이 꿈이었던 애서가 부부다. 책에 미쳐 꿈을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후예’ 같은 사람들이라고 할까?

요즘처럼 책이 안 팔리는 때가 없거늘, 대도시도 아니고 심지어 인구 5000명이 될까 말까 한 산골 마을에서 중고 책방이라니…, 그 발상 자체가 거의 ‘돈키호테식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나이도 적지 않다. 여자는 50대, 남자는 60대쯤 되어 보인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닳고 닳았을 나이. 그런데 이렇게 순진할 수가? 아니 순진할 만큼 대담하게 용기 있을 수가? 설상가상으로 돈도 별로 없고 책도 많지 않다. 그런데 해낸다. 기상천외하게 멋진 착상으로 이웃들의 중고 책을 모으고, 없을 것 같은 책벌레 고객까지 찾아낸다. 글쓰기 모임, 댄스파티, 뜨개질 모임, 소규모 콘서트가 열리는 산골 마을 책방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책방과 책방 주인장은 그렇게 무료한 폐광촌의 활력을 불어 넣어주어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보석’ 같은 존재가 된다.

그 책을 읽고 이것이야말로 진짜 ‘낭만’이구나 싶었다. 내가 아는 낭만은 ‘최백호 풍’도 아니고, ‘미사리 라이브 카페 풍’도 아니다. 선창가 다방이나 라이브 카페 같은 곳에서 이루지 못한 젊은 날의 ‘꿈’이나 ‘첫사랑’을 회상하는 거, 그런 게 진정 ‘낭만’은 아닐 테니까.

진짜 낭만주의자들은 ‘돈’이 누군가의 ‘꿈’을 집어삼키는 당대의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순응해서도 안 되고 체념해서도 안 된다. 웬디와 잭이 그랬듯이 누구나 우리의 삶을 소설이나 시, 에세이로 만들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내면의 깊은 곳에 잠자고 있는 예술가적 재능을 일깨워 각자가 자신의 삶을 아름다운 전체로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프레더릭 바이저의 명저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예술을 책과 연주회장, 박물관으로 한정시키고 세계를 매우 추한 곳으로 만들어버린 예술과 삶 사이의 장벽을 깨부수는 것. 우리의 삶이 파편화된 근대세계에서 잃어버린 의미와 신비, 마법을 되찾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세계를 낭만화하는 방법이고 진짜 예술이라는 얘기다. 남이 그린 화투 그림으로 대중을 속여 돈을 버는 게 예술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예술가’라 했던 요지프 보이스의 선언에 따라 나 자신이 예술의 주체가 되어 내 삶과 주변 세계를 더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만들면 그게 바로 ‘예술’이고 ‘낭만’이라는 얘기다.

다행이다. 최악의 경기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밥벌이로서 세계를 낭만화하려는 무리들이 속속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상암동에 술 팔고 음악 팔고 북 콘서트도 여는 동네 책방 ‘북 바이 북’이 생기더니, 괴산 칠성면 외사리의 미루마을 숲속에도 하룻밤 묵으며 북 스테이(Book Say)할 수 있는 책방이 생겼다는 소식이다. 요즘 ‘낭만적 밥벌이’라고 인터넷 검색을 하면 게스트하우스 창업에 대한 책이 먼저 뜨는데, 그만큼 자신의 삶과 세계를 낭만화하겠다고 작정한 듯 보이는 멋진 게스트하우스들이 엄청 많아졌다. 자신의 작은 단칸방을 게스트하우스로 꾸미고 그곳을 찾아온 흥미롭고 특별한 외국인 게스트들과의 이야기를 책 (<이토록 쉽고 멋진 세계여행>)으로 엮은 젊은이도 있다. 참고로 이 글을 쓰는 저자도 갤러리 겸 LP 음악감상실에 책방 역할까지 겸한 산중 게스트하우스(예술가의 시골집 & 운교산방)를 운영 중이니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살펴보실 것.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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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행이 아니라, 제주에서 한동안 살아보는 ‘제주 한 달 살이’ 열풍이 식을 줄 모른다. 이해한다. 이효리처럼 아예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길 수는 없지만 한동안 체험해 볼 수는 있다. 매일매일 바다를 보는 삶. 어슬렁어슬렁 산책하다가 동네 카페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는 삶. 텃밭을 가꾸고, 시장에 가고, 시장에서 사온 싱싱한 바다 먹거리로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 제주식 킨포크 라이프. 그런데 방이 없단다. 그 많은 ‘한 달 살이 달방’이 연초에 예약이 끝났을 정도다. 방학 시즌 월세가 무려 150만원 가까이 된다고 하는데 그조차도 올해는 끝나고 내년 시즌에나 입주가 가능하다고. 그런 가운데 ‘제주 한 달 살기’ 유행에 맞추어 분양과 동시에 월 단위 임대 서비스를 시작한 곳도 있어 살펴보니 ‘삶을 담은 공간’ 집의 느낌이라기보다는 세련된 디자인의 호텔이나 콘도 같다. 정확히 ‘달방’ 콘셉트의 호텔급 콘도미니엄이랄까?

그렇다면 시야를 좀 더 넓혀보면 어떨까? 사실상 ‘한 달 살이’는 세계 어디서나 가능하다. 내 경우 2006년과 2007년 사이 몰타에서 시작해 바르셀로나, 로마, 취리히, 부다페스트 등의 도시를 돌며 한 달 혹은 두 달, 세 달을 살았던 경험이 있다. 그중 가장 생각나는 도시는 부다페스트다. 롤랑 바르트가 <카메라 루시다>에서 “나에게 있어서 풍경사진(도시건 시골이건)은 그곳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일으켜 줘야 한다”고 했는데 내게는 부다페스트의 모든 풍경이 그랬다. 부다와 페스트를 가로지르는 안개 낀 다뉴브 강, 백발의 피아노 연주자가 들려주는 ‘글루미 선데이’, 고대 신전이나 왕궁 같은 느낌의 오래된 온천장, 다뉴브 강을 끼고 달리는 노란색 트램,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활기찬 재래 시장,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임시변통의 건물 안에 자리잡은 ‘폐허 선술집(Ruin Pub)’…. 한마디로 부다페스트는 내가 아는 한 노스탤지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였다.

그 도시의 모든 것이 나로 하여금 너무도 살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켰고 그 마음이 결국 일을 저지르게 만들었다. 난생처음으로 외국에서 내 이름으로 된 아파트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한 것. 페스트 지역 안쪽 바르톡벨라 대로에 위치한 작은 아파트먼트였는데, 유틸리티 비용(전기, 물, 인터넷 사용료)을 포함한 월세가 50만원이 안됐고 보증금은 한 달치 월세분에 불과했다.
그래도 다 있었다. 침대와 옷장이 놓인 방 하나에 소파 있는 거실, 식탁까지 갖춘 주방, 욕조 있는 욕실과 화장실까지. 그리고 그곳에서의 두 달은 여행이 아니라 진짜 삶이었다. 그때 난 모 신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기고하는 여행 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그 원고료로 겨우 먹고살았다. 이 때문에 주로 걸어서 마트나 시장에 갔다. 원고료가 들어온 날이면 털북숭이 남자가 자기 집 정원이나 산에서 꺾어다 파는 것 같은 꽃이랑 와인을 샀다. 그리고 2층에 위치한 내 집 창문으로 이웃집 남자가 길가에 개를 묶어 놓고 슈퍼 가는 걸 지켜봤다. 어느 날인가 남자가 술에 취해 묶어 놓은 개의 존재를 잊고 있다가 그 다음날 아침에 데려가는 것도 지켜봤다. 또 어떤 날인가는 내 방 창문 앞에 와서 지저귀던 새를 따라 다닌 적도 있었다. 그만큼 내 시간이 많았다. 한가한 시간…. 그 시간과 공간이 가슴 아프게 좋았다. 마치 ‘네가 옆에 있어도 네가 그립다’는 시인의 마음인 듯 좋았다.

몰타에서 보낸 세 달 살이도 좋았다. 고속도로가 필요 없는 아주 작은 섬나라여서 좋았다. 그 도시엔 트램은 없고 대신 박물관에 보내야 할 것 같은 노란색 버스가 돌아다녔다. 하지만 나는 주로 걸었다. 아침이면 걸어서 학교에 가고(배움의 의무밖에 없던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일종의 퇴행 심리로 다닌 단기 어학학교), 방과후에는 해변에 나가 책을 읽거나 일광욕을 하다가, 해질 무렵에는 반드시 슬리에마 해변을 끼고 조성된 해안 도로를 짧으면 한 시간, 길면 두 시간 가까이 걸었다. 그때 얼마나 날씬했는지 나이 서른여섯에 배꼽티를 입고 다니고 싶을 정도였다.

안식년을 맞은 그해 정말이지 원 없이 여행했고 또 머물며 살며 다른 곳에서의 삶을 충분히 경험했다,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미련이 남는다. 갈증을 느낀다. 가장 후회스러운 것이 ‘제주 살이’를 해 보지 못한 거다. 이제는 수요가 너무 많아서도 못 가겠다. 하지만 제주가 아니면 어떤가? 부안이나 나주, 상주, 임실, 장흥, 통영 등 한동안 살아보고 싶은 도시는 얼마든지 더 있다. ‘여수살이’도 근사할 것 같다.개인적인 취향이지만 한강의 단편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냥 그 인연과 취향의 끈을 믿고 덜컥 여수에 달방을 계약하는 거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그런 로망을 품고 산다는 게 일상을 지탱시키는 힘 아닌가?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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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5일장을 사랑한다. 5일장을 도는 장돌뱅이 상인들이 익숙한 솜씨로 좌판을 펼치고, 인근 마을에서 보퉁이를 이고 지고 찾아온 할머니들이 갓 캔 푸성귀들을 펼치며 하나둘씩 자리를 잡는 곳. 계절을 반영하는 제철 생선이며 채소를 마트보다 싼값에 살 수 있다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손바닥만 한 좌판을 놓고 옹기종기 앉아 있는 시골 ‘할매’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그 특유의 정서 때문에도 자주 가고 싶어진다.

개인적으로 애용하는 장은 5일, 10일에 열리는 평창장. 즉석에서 들기름에 구워내는 김을 사기 위해서도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가게 되는 곳이다. 김을 사고 나면 대관령 황태를 산다. 강추위와 눈 속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만들어진 대관령 황태는 부드럽고 노란 속살에 양념을 발라 구워 먹어야 제일 맛있지만 대개는 황태채를 산다. 황태북엇국, 황태칼국수, 황태골뱅이소면 등 여러모로 쓸모가 많기 때문이다. 북유럽 디자인이 부럽지 않은 예쁜 뜨개 버선도 두 켤레 산다. 그래봐야 만원도 안되기 때문에 한 켤레 더 살까 고민하며 둘러보니 ‘몸뻬’ 파는 할아버지는 오늘도 장사는 뒷전이고 장기에 빠져 있다. 그러다 살짝 배가 고파지면 경이로울 정도로 얇게 부친 메밀전이나 김치를 넣은 메밀전병을 사먹는다.

며칠 전에는 1일과 6일에 열리는 횡성장에 다녀왔다. 오, 여기는 평창장보다 규모가 더 크고 다채롭다. 장옥 내 전문 장사꾼의 가게가 많은 장보다 인근 농촌에서 나물이나 채소를 들고나온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주로 난전을 펼치는 장을 개인적으로 더 좋아하는데 여기는 그 두 종류의 장이 적절히 섞여 있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매던 작약을 살 수 있어 좋았다. 손두부도 겨우 2000원. 하나로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두 배나 많아 보이는 싱싱한 파도 한 단 샀다. 한 바구니에 5000원 하는 토마토는 어찌나 싱싱한지 그 자리에서 바지에 쓱쓱 닦아 단숨에 먹어버리고 말았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문화관광형으로 개선된 정선장이나 봉평장보다 현지인 중심의 생활용 5일장인 평창장이나 횡성장을 더 선호한다. 그러나 평창에도, 횡성에도 미안하지만 강원도 최고의 5일장으로 꼽는 곳은 따로 있다.

5일장_경향DB


동해시에 위치한 200년 전통의 5일장, 북평장. 지금과 같은 방식의 3일, 8일장이 열리게 된 것이 1796년 정조 때부터라고 하니 어지간한 문화유산 못지않은 셈이다. 물론 단지 오래됐다고 무턱대고 최고 점수를 주진 않는다. 이 시장의 매력에 대해서 물으면 난 늘 이렇게 말한다.

“자전거만 한 문어가 꿈틀대며 수족관이나 빨간 ‘다라’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참문어가 즉석에서 삶아지는 대형 어물전 옆에서 촌로가 작은 소쿠리 몇 개를 앞에 두고 냉이며 쑥을 팔고 있는 모습도 정겹고. 어물 따로, 청과 따로 구획별로 정리가 안됐다는 점이 오히려 이 시장의 매력이랄까? 게다가 소머리국밥이 얼마나 맛있고 푸짐한지 말도 못해.”

북평장은 예전부터 우시장으로 유명했다. 덕분에 소머리국밥 잘하는 식당도 많았다. 우시장은 사라졌지만 우시장이 사라진 뒤에도 그 맛을 유지하는 집들이 아직까지 건재하게 영업을 하고 있어서 반갑다. 그중 제일 유명한 집에 갔다.

가마솥에서는 모락모락 김을 올리며 국을 끓이고 있는 ‘43년 전통’의 모 식당. 그곳에서 퍼지는 구수한 냄새가 마치 자석인 듯 우리를 끌어당겼다. 역시 그 맛이 그윽했다. 국물에서 느끼한 맛이 하나도 안 나면서도 아주 깊은 맛이 났다. 고기는 입안에서 스르르 녹을 정도로 부드럽고 양도 엄청 많았다. 대를 이어 국밥을 끓이고 있는 여사장에게 ‘맛의 비결’을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냥 어머니 말씀대로 하는 거죠. 첫째, 식재료 외상 달지 말아라, 그래야 좋은 물건 들인다. 둘째, 냉장고는 늘 채워 놓아라, 그래야 손이 커진다.”

‘좋은 식재료를 아낌없이 푸짐하게 내주어라’ 하지 않고, 저절로 실천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고안하셨다니 더욱더 감탄사가 나왔다.

“와, 그 어머니 굉장한 분이셨네요. 장사의 여신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시마다 마사히코는 <퇴폐예찬>이라는 책에서 ‘시장에서 살고 싶다’며 이렇게 썼다. “다녀왔습니다, 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그리운 장소로 돌아온 느낌이다.” 그게 바로 시골 5일장의 느낌이다. 우리 삶의 근원에 다가가 서로 냄새 맡고 만져보고 어깨를 부딪치는 듯한 정겹고 애틋한 느낌.

봄나들이하기 좋은 날들이다. 바다 냄새 나는 북평장에 가서 참문어님과 ‘장사의 여신들’에게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다녀왔습니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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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혼자 유럽을 여행했다. 그때 알았다. 한국의 모든 것을 다 버려도 단 하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음식이라는 걸. 전 세계 미식가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나라, 이를테면 프랑스나 이탈리아,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어찌나 한국 음식이 그립던지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 식당 음식으로 배를 양껏 채웠는데도 늘 뭔가 허기진 느낌이었다. 정말 한국의 음식만큼 그리운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어쩔 수 없이 한국의 가족들에게 몰타로, 이탈리아로, 부다페스트로 한국 음식이나 재료들을 공수받아야만 했다. 당연히 그때부터 한국 음식이 그리우면 닭볶음탕이며 삼겹살, 김치찌개, 비빔밥 같은 걸 직접 만들어 먹고 또 때로는 현지의 친구들과 작은 파티를 열며 “이게 바로 한국의 매운맛이다. 어떠냐? 죽이지?” 하며 자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다가 바르셀로나에 가서 알았다. 일식이나 태국 음식에 질린 유럽의 미식가들에게 이제 한국의 음식만큼 매력적인 미식의 신세계는 없다는 걸.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그는 울적함을 평생의 기질처럼 달고 사는 영국인이었는데 어느 날 내게 미국에 상륙한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을 무슨 신의 재림인 양 소개한 ‘뉴욕 타임스’의 기사를 보여주며 ‘도대체 두 번 튀긴 닭’이 과연 어떤 맛이냐고 물었다.

“아주 바삭하지. 게다가 그냥 마일드한 프라이드 치킨과 한국 특유의 매콤한 양념을 곁들인 두 가지 스타일로 즐길 수 있어. 두 가지 스타일을 반 마리씩 섞어 먹을 수도 있고.” 그러자 아시아 음식 열성 팬인 마이클이 진심으로 침을 흘리며 먹고 싶어 했다. 뭐 레시피가 필요 없을 정도로 쉬운 요리니 못해 줄 것도 없었다. 그동안 수도 없이 먹어온 입의 감각에 따라 있는 양념으로 대충했다. 닭 조각에 칼집을 넣어 두 번, 심지어 세 번 튀긴 후 고추장에 고춧가루, 후추, 통깨, 꿀, 마늘에 양파즙까지 섞어서 양념 소스도 만들었다. 웁스, 그랬더니 이 남자 거의 ‘천국의 맛’이란다. 하기야 영국인들이 늘 먹는 그 느끼하다 못해 고도비만으로 이끄는 악당 ‘피시 앤 칩스’에서 버스 터미널 맛이 난다면 내가 만든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은 정성이 들어간 나름 ‘전라도 여자 손맛’이니 천국은 천국이겠지.

최고의 슬로푸드, 사찰음식_ 경향DB

그때부터 요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내 손으로 뚝딱 만든 한 그릇의 음식으로 누군가에게 ‘천국’을 선사할 수 있다니, 이보다 더 기쁘고 만족스러운 일이 있을까?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혼 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을 정도로 우울증이 심각한 여자 후배 둘을 내가 사는 평창 집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곤 먹였다. 2박3일 동안 다섯 끼를 해먹였다.

“언니, 밥과 우울증이 관련이 있는 것 같아. 틀림없이…. 나 언니랑 언니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있으니까 약 안 먹어도 마음이 평온하고 좋아. 특히 아침밥이 중요한 것 같아. 아침을 안 먹으면 하루종일 기운도 없고 기분이 엉망진창이거든. 그러니까 일종의 기원이랄까? 내 우울증의 기원 말이야. 그게 먹는 즐거움을 모르고 산 데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유진 오닐이 아침밥을 먹었다면 그렇게 빨리 안 죽었을 것 같기도 하고.”

마법 같은 일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전화해서 이런 말을 쏟아내던 후배였다. “언니, 언니는 왜 살아요? 나는 내 자식을 자살한 엄마의 아들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겨우 살아요. 밥도 딱 그만큼만 먹어요. 죽지 않을 만큼만…. 그러니 당연히 밥맛도 모르고.” 그랬던 그녀다. 그런데 엄마가 점심으로 만들어 준 잔치국수를 한 그릇 뚝딱 비우더니 이제는 이렇게 말한다. “언니 나 여기 와서 해답을 얻은 것 같아. 우울할 이유가 없어. 이제 잘 먹고 잘살 수 있을 것 같아.” 너무도 갑작스러운 변화라 나조차도 믿기지 않았다. 요리에는, 사랑이 담긴 한 그릇의 음식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믿어왔지만 그 힘이 이렇게 강하고 전복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19세기 미식가 브리아 샤뱌랭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미각을 만족하지 못하면 결코 완전하게 행복해질 수 없다.’ 맞는 말이다. 나는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서 먹는다. 물론 무엇을 먹는다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누구와 같이 먹는가?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혼자 먹으면 맛이 없다. 하지만 같이 먹으면 국수 한 그릇도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변화시키는 연금술과 같은 신비한 힘’을 발휘한다. 우울증 환자들에게 권한다. 다이어트는 금물이다. 우울증 환자 중에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 건 다 그놈의 다이어트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침밥이 먹기 싫다면 사과 한 알을 먹으라. 그게 정신과 의사의 처방전보다 낫다. 그리고 혹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친구나 가족이 있다면 함께 자주 음식을 만들어 먹으라고 권한다.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나누어 먹는 행위 안에는 사랑이 있고, 사랑이 충족되면 우울이 들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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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우리가 만나는 곳. 단연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존 버거의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을 오랜만에 펼쳐 본다.

작가 그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화자 존이 리스본에서 늙은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 그 어머니는 이미 수년 전 돌아가신 분이다. 죽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망자와 만나는 그 장소에서 어머니는 존에게 이렇게 말한다.

“(영화를 전망대의 승강기와 비교하며) 그런데 영화도 똑같은 것 같아, 존. 우리를 올렸다가 같은 자리에 다시 내려놓으니까. 그것도 사람들이 영화관에서 우는 이유 중 하나란다.”

지난 일요일 오전 영화관에 갔다. <귀향>을 보기 위해 갔다. 예전 같으면 서울이나 가야 볼 수 있는 화제의 저예산 독립영화. 근래 군 소재지마다 작은 영화관이 생겼는지 인터넷 검색창에 ‘귀향’을 치니 우리집에서 가까운 영화관이 무려 3곳이나 떴다. 평창시네마, 영월시네마, 제천시네마….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작은 시골 영화관에서 <귀향> 같은 귀한 영화를 볼 수 있다니…. 그 사실만으로도 난 이미 너무도 고무되어 승강기를 타고 에펠탑 위로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마을마다 있는 복지회관을 리모델링했는지 1층은 웨딩홀이고, 2층은 영화관인 곳에 왔다. 평창군민으로서 평창군에 처음 생긴 영화관에 와서 그런지 영화관의 모든 것이 ‘리본 달린 일요일의 선물 상자’인 듯 사랑스럽다. 심지어 상영관이 2개고, 상영작이 무려 3개나 됐다. 팝콘을 산 할머니가 영감님 손을 잡고 <동주> 포스터 앞에 앉아 있다가 우리와 함께 <귀향> 상영관을 향해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그 장소에 놓인 그 모든 상황이 그렇게 천국인 듯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내 영화가 시작되고 나는 꽃다운 처녀들이 겪는 끔찍한 지옥을 맛보고 말았다. 울었다.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열다섯, 혹은 열넷, 나비를 쫓던 순진무구한 처녀들이 짐승 같은 남자들에게 끝없이 끝없이 찢기고 밟히고 채찍질 당하다 이내 버려지는 현장을 목격하고도 울지 않을 수 있는 강심장은 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는 다행히도 아름다웠다. 참담한 아픔을 다룬다 해도 꽃다운 처녀들의 이야기이기에 감독은 그리도 아름다운 영상에 담고 싶었던 모양이다. 남의 지옥불을 구경하는 관람자가 그렇듯 그다지 불편하지도 않았다.

마치 살풀이하듯, 눈물과 통곡으로 토해내면 설움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와 얽매였던 마음도 풀리고 몸도 편해지는 식의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아버지가 열네살이나 먹은 딸아이를 지게에 태우고 덩실덩실 춤을 출 만큼 귀하게 자란 주인공 말고도 더 많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 땅에 있었을 테니까. 이미 돌아가셨든 아직 살아 계시든.

그 때문에 얼마 전 사이행성이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25년간의 수요일>이라는 책을 급하게 주문해서 읽었다. 그 안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우리들에게 전하는 가슴 뭉클하고 심지어 미소짓게 하는 희망의 이야기가 가득 실려 있었다.

할머니들은 영화에서처럼 한때 아름다웠지만 전쟁의 폭력으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해진 여자가 아니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이후,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이어온 수요시위를 통해 어느덧 평화를 위한 투사이며 인권운동가가 된 할머니들의 이야기. 예컨대 이용수 할머니의 얘기를 듣고 용기 있을뿐더러 더없이 멋있고 사랑스러운 여자들이구나 생각했다.

“저는 이제 여러분의 힘을 받아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두 번 다시 우리 후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저는 결사적으로 싸울 겁니다. 저는 아직 나이 젊습니다. 나이 88세 뭐 그리 많습니까? 활동하기 딱 좋은 나이입니다.” 멋있지 않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어느 여성인권운동가가 한 말이라고 해도 난 믿겠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아직도 진심어린 사죄를 하지 않은 가운데 세상을 떠나는 할머니들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9명 중 47명이 생존해 있는 걸로 안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자. 그까짓 것 ‘10억엔 합의’에도 체념하지 말자. 88세에 비하면 우린 얼마나 새파랗게 젊은가?

죽음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탄생이다. “죽은 후에, 손상된 것들을 고칠 기회를 제공받았다”는 존 버거의 메시지가 그러하듯. “그게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라고 했던….

<귀향>을 봤다면 이젠 <25년간의 수요일>을 기꺼이 사서 읽자. -인세가 전 세계 전시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나비기금에 기부된다- 그러고 난 다음 수요시위에 나가 할머니들의 손을 잡아 드리자.

폐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던 강덕경 할머니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내가 아프다고 이렇게 쓰러져 있으면 일본은 내가 포기한 줄 알 거야. 가야겠어”라고 말하며 함박웃음으로 달려갔던 곳.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위 공간. 평화와 희망이 나비처럼 날아드는 곳. 거기, 우리가 만나는 곳.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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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하게 지내던 사이도 아닌데, 사실은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데…, 문득문득 말을 건네고 싶은 친구가 있다. “잘 지내고 있죠? 어디서든 씩씩하게, 생각한 대로, 마음먹은 대로?”

그러다 문득 걱정이 되어 그의 최신 안부를 찾아 인터넷을 뒤적인다. ‘김예슬 선언, 그 이후’라고 검색어를 넣고 이것저것 클릭해서 읽다가 다음 문장을 발견하고는 비로소 안도의 미소를 짓는다.

“고려대 정문 앞에서 ‘대학 거부 선언’ 1인 시위를 벌였던 김예슬. 그는 현재 비영리 사회단체 ‘나눔문화’ 연구원의 길을 걷고 있다. <용기 있는 작은 돌멩이들의 외침, 김예슬 선언> 7쇄 인쇄 중.”

기쁜 일이다. 처음엔 너무도 뜨거웠지만 금방 잊혀질까 봐 걱정했더랬다. 나도 그 책을 읽었으니까.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선언 아래 담긴 스물다섯 살 여대생의 글들이 얼마나 칼날같이 예리하게 메아리치던지 한동안 가슴이 아픈 가운데 어디선가 둥둥둥 북소리가 들려왔다.

스스로 ‘친구들을 넘어뜨리고 제치며 기뻐하는 우수한 경주마’로 살았다고 고백한 그녀였다. 그랬을 거다. 이름하여 SKY에, 그것도 최고 인기학과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녀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그녀가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 구도 앞에서 ‘이제 아무리 스스로를 채찍질해도 가슴이 뛰지 않는다’며 기업을 위한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피 끓는 청춘답게 되바라진 용기를 봤나? 책 속에서만 본, 진정 젊은이다운 용기였다.

예컨대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교사 생활을 시작했으나 체벌이 일상화된 교육현장에 염증을 느끼고 곧바로 그만둔 젊은 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이야기…. 미국 정부가 흑인 노예제도와 영토 확장을 위해 멕시코 전쟁까지 일으켰다는 이유로 세금 내기를 거부했던 그가 아닌가? 그 때문에 감옥에 갔고 감옥에서 나와 <시민불복종> 선언을 썼던 그다.




난 김예슬 선언이 소로의 책처럼 우리 시대의 혁명적 고전이 되어 두고두고 읽히길 바랐다. 그래서 주머니 속에 쏙 들어가는 그 작은 책을 소중히 여겼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책을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되는 조카에게 보내는 선물 봉투에 편지와 함께 넣어 보냈다.

너무 빠른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조카 경서는 초등학교를 다닐 때 이미 자기만의 비전을 가지고 사업을 구상하여 그것을 실행에 옮긴 매우 신기한 아이가 아니던가? 처음엔 무슨 아이돌 밴드를 좀 과하게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초등학생이 팬 페이지를 만들어 관리하는가 싶더니, 나중에는 자신과 같은 또래 팬들이 주문하는 스티커 상품까지 만들어 팔았다. 그 일 때문에 초등학생이 새벽까지 코피를 쏟으며 철야 작업을 하고 심지어 동생에게 아르바이트를 시킨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웃었다. 그러자 바쁜 언니를 돕고 있는 그 여동생이 이렇게 말했다.

“고모, 웃지 마세요. 언니는 나름 심각해요. 처음엔 아빠 혼자 너무 고생하신다고 자기도 돈을 벌어서 보탬이 되겠다고 시작한 거예요. 근데 벌써 1년째 주문이 계속 밀려 있어서 이제는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가 없대요. 고객과의 약속 때문에….”

그랬던 아이다. 각종 상하수도 설비는 기본이고 전기 공사, 방수 공사, 겨울철 동파 해결, 막힌 변기 뚫기 등 집수리와 관련된 모든 것을 존경스러울 정도로 성심껏 다루는 아빠를 사랑해서 밤이면 그 아빠의 발을 닦아주던 아이. 생긴 건 또 얼마나 예쁜지 배우 고현정의 어린 시절을 연상케 한다. 그렇다고 공부를 못하는 아이도 아니다. 솔직히 대충 해도 잘한다. 그런데 그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얼마 전 이렇게 선언하더란다.

“나 대학 안 갈래. 그거 꼭 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 대학 가야 훌륭하고 안 간다고 안 훌륭해지는 거 아니잖아. 아빠도 대학 안 나왔지만 훌륭하잖아. 대학 갈 돈으로 일찍 내 사업을 할 수도 있는 거고. 그 돈으로 가족 여행을 할 수도 있는 거고.”

그리하여 지금 그 가족이 장인과 장모, 처제에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지금 제주도에 있다. 제주도에서 내가 쓴 편지와 김예슬의 책을 다 같이 돌려 읽으며 회의 중일 것이다. 대학에 안 가겠다는 딸의 선언을 벌써부터 지지하고 응원하는 철부지 고모의 편지와 책을 본인에게 과연 줘도 될지, 안 될지.

우리 엄마 말이 그렇다. “너는 대학 나왔기 때문에 결코 알 수 없는 게 있어. 대학으로 신분을 가르는 이 한국 사회에서는.” 맞는 말이다. 따라서 난 내 편지와 김예슬의 책이 조카에게 전달되지 않아도 결코 속상해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늘 응원할 듯하다. 자기 생각과 의지가 분명한 내 조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보호 아래서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떤 삶을 살든. 다만 김예슬과 그의 어린 후예들에게 전한다.

인간다운 삶의 빛을 스스로 구하고자 하는 당신은 이미 누구보다 강하다고. 처음에는 이런저런 그늘 아래 있겠지만, 그게 필수일 터이지만 결국 그 빛을 찾게 될 거라고. 당신을 당신만의 별로 인도하는 용기의 빛. 그러니 모두 힘을 내어 전진하자고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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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다닐 때 내 별명 중 하나는 ‘택배의 여왕’이었다. 마트 갈 시간이 없어 별의별 물건들을 다 인터넷으로 샀는데 집에서 택배 받을 사람이 없어서 주로 회사로 배달시켰다. 그런데 도시와 달리 엄청나게 한가한 시간에 놓인 공간으로 이사와서도 난 여전히 택배의 여왕으로 산다.

시골에는 없는 게 많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유리컵 몇 개, 혹은 쟁반 하나 사려고 원주까지 나가곤 했다. 왕복 두 시간 거리. 그 기름값이면 유리컵을 20개 더 사고도 남는다. 그래서 요즘은 뭐든지 다 인터넷으로 시킨다.

전경린 소설이었을 거다. 이웃의 쓰레기봉투를 뒤져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보를 캐내는 인물이 나왔던 소설인데, 그 소설집 제목이 <염소를 모는 여자>였던 걸로 기억한다. 매일매일의 영수증 일기 같은 걸 써서 그걸 책으로 묶어 낸 정신이라는 여자 작가도 있었다. 내가 산 물건이 나를 규정하고 내 삶의 공간을 구성하기 때문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 재밌다. 내가 주문한 택배 물건들을 배달해주면서 택배 아저씨들은 나를 어떤 여자라고 생각할까?

“여자들이 보통 옷이나 화장품 같은 걸 배달시키잖아요. 그런데 이 여자는 현무암 돌덩이 한 팰릿을 시키더니 얼마 전에는 거지 발싸개 같은 중고 마루를 시켰더라고. 도대체 뭐하는 여자인지….”(경동 택배 아저씨) “황토는 그렇다 쳐. 석고랑 석회, 아마인유 같은 건 도대체 어디에 쓰려고 주문하는 건지 알 수가 없죠.”(한진 택배 아저씨) “그 여자, 말도 마세요. 얼마 전에는 대패 삼겹살이랑 족발을 시켜 먹던 걸요. 좀 게으른 여자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CJ 택배 아저씨)

변명하자면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요즘은 라면, 쌀, 휴지, 세제 등 생필품들을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게 대세다. 대형 마트보다 싸고 선택의 폭이 넓을뿐더러 시간이 절약되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건축 자재처럼 덩치가 큰 물건은 물론 세탁기 거름망이나 똑딱단추처럼 작고 소소해서 어디서도 팔지 않는 걸 구입할 때도 인터넷만큼 요긴한 것은 없다. 심지어 고기나 야채처럼 신선도가 생명인 식품도 인터넷으로 구입하니 만족도가 의외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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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간에서 살다 보니 가장 아쉬운 게 싱싱한 바다 먹거리들이다. 혹시 그것도 인터넷으로 살 수 있을까? 살 수 있다. 신안군 군수님이 직접 나서서 육질이 탱탱한 최상급 완도 광어와 전복을 전국 어디든 택배로 보내주겠다고 광고하는 시대니까. 하지만 온갖 물건을 인터넷과 택배로 구입하는 내가 꼽는 베스트 아이템은 따로 있다. 중고 오디오 기기들. 예전 같으면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팔았을 것 같은 옛날 오디오 기기들을 오디오 애호가들의 사랑방 같은 온라인 장터에서 샀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막상 받고 보니 감동이 밀려든다. 그다지 고가도 아닌 것을 얼마나 꼼꼼하게 포장해서 보내주는지 목이 메인다. 가격에 대비해 얼마나 훌륭한 기기들을 보내주는지 소리를 들으며 감동한다. 음악을, 소리의 작은 차이를 중요시하는 오디오쟁이들의 그 섬세한 열정이 그대로 느껴진다고 할까?

하지만 진심으로 덧붙이건대 나는 사실 인터넷 쇼핑 못지않게 시골 5일장도 좋아한다. 5일장을 도는 장돌뱅이 상인들이 익숙한 솜씨로 좌판을 펼치고, 인근 마을에서 보퉁이를 이고 지고 찾아온 할머니들이 갓 캔 푸성귀들을 펼치며 하나둘씩 자리를 잡는 곳. 산 오징어가 수족관에서 탈출을 시도하고, 꿈틀대는 참문어가 즉석에서 삶아지기도 하는 곳. 그곳에 가면 늘 마음이 설렌다. 얼마나 좋은가? 사람 냄새 맡으며 북유럽 디자인이 아쉬울 것 없는 두툼한 덧버선을 4000원에 살 수 있고 들기름에 막 구워낸 김을 5000원에 3봉 살 수 있다는 게? 튀겨 먹고 구워 먹고 파스타에 넣어 먹기도 좋은 통통한 새우가 20마리에 1만원인 곳.

“지금까지 당신이 먹은 음식을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는 프랑스의 저명한 미식가가 있었다. 글쎄,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사랑하는 음악과 책, 그리고 구입하거나 만든 물건들로 채워진 삶의 공간을 보여주면 당신의 머리와 가슴 속을 그려볼 수 있다”고. 내가 만들고 있는 이 공간이 그런 곳이길 바란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화로운 공존 속에서 주인장이 애장하는 사물들의 가치가 구석구석 느껴지는 곳. 아는 사람만 아는 그 공간의 개봉박두 신호를 조심스럽게 보낸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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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내리던 눈이 그쳤다. 삽 말고는 별다른 제설 장비가 없으니 별수 있나? 우리 손으로 마을 입구까지 눈을 치운다. 그렇지 않으면 한 걸음에 갈 수 있는 삼거리 매점도 왕복 두 시간을 걸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며칠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이웃집에 마실 가다가 자동차가 빙판에서 돌았다. 잘못하면 전복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기일발의 상황. 긴급출동 구난서비스를 불렀다. 불러 놓고 이웃집에 가서 삽을 빌려다가 얼음을 퍼냈다. 1시간30분 동안이나 얼음을 퍼내어 밭두렁에 버렸다. 빙판 위에서라면 ‘구난차’가 아니라 ‘구난차 할아버지’가 와도 소용없을 테니까.

퍼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독일에서는 벚꽃이 피었고, 러시아와 북유럽에서는 눈과 얼음이 거의 녹아내렸다는데, 우리 동네 겨울은 왜 아직 추운 거지?” 물론 예년에 비하면 확실히 덜 춥다. 눈도 적게 내렸고.

슈퍼 엘니뇨 현상으로 알프스에도 눈이 없다고 들었다. 눈이 없어서 반팔 차림으로 잔디 스키를 탄다니…. 79년 만에 가장 따뜻한 겨울을 맞아 모스크바에 있는 자연 아이스링크도 문을 못 열었고 핀란드 헬싱키의 겨울도 영상이라니 참 별꼴이다. 폭설 대신 토네이도와 물난리를 겪고 있는 도시들 소식까지 보태지면 우리 동네에 내려진 ‘대설주의보’가 되레 반갑다.물론 강원도도 나름대로 이상고온 현상을 겪고 있다. 기상 관측 이래 평균적으로 가장 높은 기온 속에서 빙어축제, 고드름축제 등 강원도의 겨울축제들이 취소됐고 스키장도 눈 부족으로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도 비밀리에 비상 대책을 수립했다. 2018년 겨울을 위해 소치 때처럼 눈을 특수 단열재로 냉동시킨 후 재활용하는 ‘눈 저장 프로젝트’를 시행할 방침이라고. 걱정이다. 가뜩이나 돈이 없어 울상인 조직위가 눈 저장을 위한 추가 비용을 또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지금부터라도 집집마다 ‘금’을 모으듯 ‘눈’을 모아 김치냉장고에 보관했다가 평창올림픽조직위에 가져다 주어야 할까?


미 항공우주국(NASA)이 슈퍼 엘니뇨가 강타한 1997년 12월28일 지구와 올해 12월27일 위성으로 찍은 지구 모습_연합뉴스


프랑스 기상학자 다니엘 괴츠는 “앞으로 겨울철에 눈을 보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미래에는 눈 내린 슬로프를 제공하기가 힘들겠다”고 말했다. 스웨덴 기상청은 “눈이 오는 날 수가 금세기 말쯤에는 최소 40일, 최대 80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진짜 ‘눈’이 ‘금’이 되겠구나 싶다. 운이 좋아야 1년에 한두 번 눈 오는 풍경을 볼 수 있고, 운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눈을 모르고 산다고 생각하니 삭막하기 그지없다. 그런 우울한 미래를 생각하니 눈이 펑펑 내리다 못해 재난처럼 느껴지는 겨울 영화들이 문득 보고 싶다. 눈 덮인 평원이 한없이 펼쳐지는 <닥터 지바고>나 <러브 스토리> 같은 영화들. 유리 지바고와 그의 부인 토냐의 가족이 모스크바를 떠나 지방 영지로 향하는 겨울철 기차 여행은 전부 캐나다에서 찍은 걸로 안다. 그곳에는 아직 눈이 올까? 곱슬머리 남자와 털모자를 쓴 여자가 눈싸움하다가 눈을 막 퍼먹고는 웃음을 터뜨리는 <러브 스토리>의 로케이션 장소가 어디였더라? 뉴욕의 센트럴파크였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언감생심, 20도가 넘는 영상 기온 속에서 반팔 입고 다닌다는 뉴욕 말이다.

아니다. 쓰고 보니 왠지 진부하다. 그보다는 스웨덴판 <렛미인> 같은 영화가 좋겠다. <렛미인>은 내가 사랑한 거의 유일한 공포영화였다. 호러영화도 이토록 그림처럼 아름답고 또 한 편의 시처럼 서정적일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을 정도. 무엇보다 눈에 파묻힌 스웨덴의 겨울을 배경으로 한 영화 속의 고요와 침묵이 좋았다. 인공적인 요소를 가미하지 않은 아날로그적인 소리와 침묵을 통해 세상의 온갖 소음에 묻혀버린 미세한 소리를 끌어들이고자 했던 감독의 연출력이 너무도 예술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이제 스웨덴에서조차 <렛미인>에서 보았던 그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겨울 풍경을 볼 수 없게 됐다니 슬프다. 이제 눈이 내리면 ‘스밀라’처럼 느껴보리라. ‘눈이 내려앉은 하얀 들판’이 정말로 ‘어둠 속에서 육각형’을 이루는지 뚫어지게 봐야지. 마치 기적을 보듯.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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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런 토머스의 시를 사랑한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말라. 빛이 꺼져감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라”고 노래하는 시다.

밥 딜런이 자신의 예술적 아버지로 삼을 정도로 사랑했던 시인 딜런 토머스가 1951년, 임종을 앞둔 부친을 위해 썼던 시다. 시인이 처한 그 암담하고 절망적인 상황 때문일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의 꺼져감에 분노하라고 노래하는 격렬한 시정 때문일까?

나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에서 종종 자살하는 친구들 소식을 들어야만 하는 이 땅의 청춘들을 생각하다가 불현듯 그 시를 떠올렸다.

그렇다. 우리는 분노해야만 한다. 젊은 청년들에게 꿈과 미래를 빼앗고 생을 포기하게 만드는 이 나라의 암담한 현실에 대해서 분노해야만 한다.

물론 분노의 방식이 문제이다. 어떻게 분노할 것인가? 목표와 목적이 불분명한 분노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폭발하는 분노조절장애나 다름이 없다. 무고한 시민들을 향한 이슬람국가(IS)식 테러도 일종의 분노의 표출일 테니까.

나는 일단 책을 선택했다. ‘한국 자본주의 Ⅱ, 분배의 실패가 만든 한국의 불평등’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의 신작 <왜 분노해야 하는가>다.

장 교수는 먼저 ‘왜’에 방점을 찍는다. ‘재벌 100대 기업이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4%에 불과한 반면 중소기업은 무려 72%이다. 그런데 중소기업 임금은 대기업의 절반 수준이다. 1980년대 중소기업 임금이 대기업의 90%가 넘는 수준일 정도로 격차가 적었다. 그런데 지난 30년 동안 임금 격차가 점점 확대된 거다. 그뿐인가? 예전에는 비정규직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그런데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은 비정규직이라는 새로운 고용형태(일본과 한국에만 있는)를 만들어 낮은 임금을 지급할뿐더러 임의로 해고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한국은 고용을 창출하지 않는 초대기업이 순이익을 독차지하고 대다수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는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됐다.’ 그게 내가 읽은 ‘왜’의 핵심이다.



요즘 유행하는 ‘수저론’은 사실상 핵심을 흐리는 문제인 셈이다. 200년 이상 부를 축적한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지난 30년간의 소득 불평등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거다. 가진 게 별로 없어도 일한 만큼 제대로 분배된다면, 고작 질투심 때문에 자살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거다. 또한 장 교수는 불평등의 원인이 재산의 격차가 아니라 소득의 격차이므로 당연히 그 해법도 기존 논의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예컨대 복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애초부터 잘못 작동하고 있는 원천적 분배를 두고 사후에 교정하는 재분배만으로는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효과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맞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개봉한 노르웨이 영화 <사라짐의 순서: 지옥행 제설차>에서 듣고 한참을 웃은 대사가 생각난다.

“복지? 그런 건 노르웨이처럼 추운 나라에서 필요한 거고.” 우리나라처럼 애초부터 잘못 분배되고 있는 곳에서는 잘못된 걸 고치는 게 먼저인 거다.

좀 더 정확히 가계에 노동소득으로 분배되어야 할 몫을 재벌 대기업이 분배하지 않고 자기 곳간에 쌓아두고, 중소기업에 돌아가야 할 이익을 재벌 대기업이 차지하는 고용구조와 기업구조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복지 예산을 늘리는 재분배 확대만으로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말인가? 그게 이 책의 두 번째 방점이다. 재벌 대기업이 탐욕에 눈이 멀어 앞장서서 불평등한 나라를 만들었고 기성세대는 그걸 방치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건 없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 맡겨두면 이 세상은 더욱더 암담해질 것이다. 미안하지만 청년세대가 나서야 한다는 게 장 교수의 결론이다. 다행스럽게도 장 교수가 청년 세대에게 제안하는 실천적 방안은 매우 구체적이다.

예컨대 인턴이나 비정규직 제도, 알바 최저임금, 주거비, 학력 차별처럼 20대가 ‘잉여’가 되고 30대가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가 된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수많은 문제들을 제기하여 사회적 이슈로 만들고, 자기 세대의 이익을 대표하는 시민단체 혹은 조직적 연대와 함께 기업과 정당을 압박하여 불평등이 개선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것.

장 교수는 단언한다. 한국 정치가 아무리 혐오스러워도 결국은 정치라고. ‘청년세대가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 참여가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다. 그런 시시한 위안에 침을 뱉어야 한다. 기성세대의 잘못으로 빛이 꺼져감에 분노하고 또 분노해야 한다. 스스로 잘못된 세상을 고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청년들의 표를 얻고 싶은 정치인들을 적극 이용해야 한다. 그게 청춘이고 희망이라는 확신으로 장하성 교수의 책을 2권, 3권, 10권, 100권 사서 이 땅의 젊은이에게 강권하리라.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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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오늘 새벽 내가 사는 강원도 산간 지방에 올해 들어 첫눈이 왔다. 밖에 나가보니 온 세상이 하얗다. 그 모습을 보고 엄마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신다. “올 것이 왔구나. 큰일이다.”

눈이 오면 일이 많아지고 불편하다. 무엇보다 고립되지 않으려면 집집마다 필요한 만큼 알아서 척척 제설작업을 해야 한다. 그건 기본이다. 우리 집 같은 경우 설상가상으로 그 와중에 이사해야 한다. 옆구리 간격만큼 붙어 있는 헌 집에서 새집으로 옮겨 가는 이사라 일일이 우리 손으로 날라야 한다. 눈을 맞으며. 눈길 위를 종종걸음치며 책이며, LP며, 냄비며, 옷가지를 날라야 한다.

어라, 근데 이상하지 않나? 내 맘 속에 눈곱만큼도 걱정이 없다. 심지어 은근히 기대가 된다. 혹시 구들 때문인가? 역시나 구들 생각이 들자 돌연 마음이 훈훈해지고 그 어느 때보다 의기양양해지는 나를 느끼게 된다. 내가 뭘 믿고 그러는지 잘 아는 엄마가 말씀하신다.

“하기사 이제 누가 훔쳐 갈 수도 없는 저 엄청난 보석을 바닥에 깔고 살게 될 터인데 뭐가 걱정이냐? 그 방에 누워 있으니 세상만사 부러운 게 없더라. 머리는 시원하고 몸 안에는 뼛속 깊이 따뜻한 온기가 가득한 그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진짜 오리지널 토종 불 맛이지.”

미국 건축사의 가장 유명한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가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제국호텔 설계차 일본에 왔다가 부호 투자자 집에 마련된(사실상 경복궁에서 강탈해서 떼어다 놓은) 조선관에서 하룻밤 묶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온돌방은 푸근하다. 그 방에 들어가자 계절이 바뀌어 버렸다.” 그러면서 이렇게 격찬했다고 한다. “조선의 온돌이야말로 ‘마법의 방’이다.” 그리곤 그 마법을 미국에 돌아가 대중을 위한 주택설계에 적용했다. 조선의 온돌방에서 힌트를 얻어 뜨거운 물을 파이프로 흘려보내는 방식의 바닥 난방 시스템을 최초로 실현했던 인물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였다니, 놀랍고도 재밌다.

프랭크씨라고 해야 할지, 라이트씨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하튼 그 양반도 확실히 불 맛을 좀 알았던 게 틀림없다.


세계 최초의 온돌마루 열차 코레일 '서해금열차'_경향DB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12년 6월 왕이 경상감사에게 전지를 내려 이씨 형제가 수분할 때 생기는 병을 막기 위해 온돌에 기거하도록 하였다’고 전해진다. 민간에서도 아이를 낳고는 뜨끈한 아랫목에서 산후조리를 했다.

그러니까 구들은 왕가 사대부부터 민가를 아우르는 우리네 전통 난방 방식이자 질병 치료의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였다는 말이다.

지난봄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가 잠시 스승으로 모셨던 구들문화원 오홍식 원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구들은 두한족열의 가장 이상적인 건강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난방 시스템일뿐더러 돌과 황토에서 생체 세포에 활력을 주는 원적외선까지 나와서 그 방에 있으면 행복한 기분이 듭니다. 그냥 기분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실제로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과 엔도르핀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뿐만 아니다. 구들만큼 경제적인 난방시스템은 더 이상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축열과 방열을 오랜 시간 유지하는 구들은 전도, 복사, 대류열을 모두 쓸 수 있는 고효율 시스템이죠. 한 번 불을 때면 24시간 정도 난방이 되는 것은 기본이고 필요에 따라서 며칠씩 온기가 식지 않는 방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칠불사의 아짜방은 그 온기가 무려 100일이나 갔다고 하죠. 게다가 연료는 주변에 버려진 나무 자재들을 주워다가 때면 됩니다. 화목보일러는 5년, 태양열 시스템은 10년인데 구들은 반영구적이죠.”

‘내 손으로 만드는 황토구들방’ 수업을 들으며 여러 번 전율했다. 이렇게 이상적이고 훌륭한 난방시스템이 우리 고유의 것이라니…. 무엇보다 그 이상적인 적정 기술을 백성 모두가 평등하게 나누어 쓸 수 있다는 점에 감동했다.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유럽에서는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도 온돌을 몰라 벽난로에 장작을 때고 개나 고양이를 끼고 자야 할 정도로 춥게 지낸 반면 우리는 찢어지게 가난한 백성들도 온돌 덕에 추운 줄 모르고 지냈다는 거. 자랑스러운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전 인류가 함께 누릴 만한 지복인 거다. 한식의 세계화로 미는 떡볶이 따위가 아니라.

그동안 우리 부부는 무려 두 달 동안이나 침실과 거실을 구들방으로 만드는 일에 온갖 공을 들였다. 다행히 초보 솜씨임에도 불이 잘 들어가고 온기가 제법 오래 유지된다. 다만 아쉬운 건 함께 구들 수업을 들은 동기들과 품앗이하지 못했다는 거다. 온기는 삶의 본질이다. 구들방의 그 천국 같은 온기도 나누면 더 커진다. 구현하기 더 쉬울뿐더러.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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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정확한 위치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아파트먼트(L’appartement)라는 이름의 디자인 숍 앞을 지나가는 중이었고 그 쇼윈도에 눈길을 끄는 의자 두 개가 전시돼 있어 걸음을 멈추고 멍청히 안을 들여다보았다.

둘 다 제법 귀티가 나는 낡은 나무 의자인데 한 녀석은 방금 외과의사에게 다리 수술을 받은 듯 네온 그린 컬러의 플라스틱 다리를 가지고 있었고, 또 다른 녀석은 고장 난 엉덩이를 갈아치운 듯 역시 같은 소재의 새로운 엉덩이 받침대를 달고 있었다.

나는 형광색 플라스틱 보철물을 달고 있는 낡은 나무 의자가 뿜어내는 독특한 아우라에 이끌려 숍 안으로 들어갔다. 의자 다리에 붙은 꼬리표를 살펴보니 ‘5.5 designer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프랑스의 젊은 디자이너 그룹이 만든 재활용 상품으로 의자 가격은 210유로이고 높이 조절이 가능한 버팀목 다리만은 125유로라고 쓰여 있었다.

“진지하면서도 유머를 아는 아주 괜찮은 친구들이죠.” 그 특별한 아파트먼트를 지키는 젊은 관리인에게 패션지 기자 명함을 내밀자 그가 5.5에 대한 몇 가지 재미난 사실을 알려주었다.

“파리에 있는 ‘ENSAAMA’라는 아트 스쿨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다섯 명의 친구들이 서로 의기투합해서 만든 팀이라 이름을 ‘5.5’라고 지은 모양인데, 그중 한 명이 밴드 뮤지션이 되겠다며 탈퇴했다고 하더군요. 암튼 중요한 건 스스로 ‘사물들의 치료(medicine of objects)’라고 명명한 그들의 디자인 전략인데, 얼마 전에는 ‘병원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바르셀로나까지 왕진을 왔더랬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들은 의사고, 또 환자를 가리지 않는다나요(웃음). 그러니까 부서지거나 고장 난 어떤 사물이라도 좋으니 환자들을 모아달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몇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어떤 환자도 “세상 사람들아, 나 수술 받았어. 오늘 구멍 난 엉덩이를 새것으로 갈아치웠다고!”라고 광고할 것 같지 않은데 왜 갈색 나무에 여봐란듯이 튀는 컬러의 플라스틱 소재를 매치시킨 것일까?



“그들 말로는 그게 파리에서는 약국을 상징하는 색이며 소재라고 하더군요.” 좋다. 그건 그렇다 치고 싸디싼 플라스틱으로 만든 교체용 의자 다리 하나가 10만원이나 넘어야 하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 질문에 와타나베 준야의 것처럼 보이는 검은색 셔츠를 입은 아파트먼트 매니저는 당황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글쎄요.”

하기야 버려진 나뭇조각들을 모아 만든 피트 하인 이크(Piet Hein Eek)의 가구에 비하면 5.5는 비싼 축에도 못 낄 거다. 10여년 전 비록 책을 통해서였지만 피트 하인 이크의 가구를 처음 봤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먼저 그 가격에 놀랐고 그 다음에는 그 가치와 철학에 놀랐다.

원목 그대로의 자연 형태에 충실한 조지 나카시마 혹은 조지 나카시마 풍의 가구가 최고인 줄 알던 때였다. 그런데 쓸모없이 버려진 조각 목재로 이렇게 고급스럽고 아름다우며 또 매우 실용적인 가구를 만들 수 있다니. 게다가 닳고 색이 바랜 나뭇조각들의 이 오묘한 조화라니! 심지어 ‘흠 없이 완전한 것에 대한 갈망에 반대하는 작업’이라니. 그 의도와 철학까지 남다르게 훌륭하지 않은가? 뒤통수와 심장을 함께 두드리는 아주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그렇기에 피트 하인 이크라는 생소한 네덜란드 남자 이름을 기꺼이 외우고 싶었다.

나로서는 5.5와 피트 하인 이크를 통해서 배운 게 너무도 많다. 버려지는 건축물 잔해, 폐목재, 낡고 고장 난 가구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서 재탄생시키면 남부럽지 않은 게 되는 것. 또한 믿을 수 없이 비싼 조지 나카시마 가구나 스칸디나비아 가구보다, ‘좋은 눈으로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굿 디자인’의 정수라는 것을 배웠달까?

덕분에 요즘 디자인계의 최고 화두라는 ‘업사이클링(up-cycling)’이 내 삶의 일부가 됐다. 상품 가치가 없다고 버려진 배추로 해마다 김장을 하는데 할 때마다 놀란다. “어쩜 어쩜 버려진 배추가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작아서 그런가? 아님 못생겨서 그런가? 기형 배추가 더 맛있다는 걸 사람들은 알까?”

얼마 전에는 일명 ‘폐교 마루’라는 걸 깔았다. 30년, 40년 전에 초등학생들이 왁스질하며 윤을 냈을 것 같은 마루다. 설마 저런 걸 누가 돈 주고 살까 싶은 너무너무 낡아빠진, 일부는 썩고 너덜거리는 마루를 일부러 돈 주고 구해서 깔았다. 그런데 이렇게 흡족할 수가! 제 눈에 안경이겠지만, 내 눈에는 새것보다 더 고급스럽고 근사해 보인다.

요즘 유행하는 헤링본 마루가 부럽지 않다. 아니, 폐교 마루를 헤링본 스타일로 시공하면 더욱 근사할 것 같다. 내 스스로 발견하고 구현하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에 오늘도 내 가슴이 뛴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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