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의 삶은 바쁘다. 미쳐 버릴 정도로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헛헛하다. 이유는 모른다. 여하튼 할 일 많은 걸로 헛헛함을 잊고 있을 뿐 그 헛헛함은 마치 신발 속의 깔개인 듯 도시 생활 속에 늘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러다 한 번씩 못 견디겠다 싶을 만큼 외로워진다. 진탕 술이라도 퍼마셔야 할 것 같은 날. 아님 온라인 쇼핑몰에서라도 충동구매를 충족시키든지…. 결핍감 때문이다. 술이라도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은 결핍감.

그런데 다행이다. 그 와중에 ‘식물’에게서 위로를 찾는 이들이 요즘 부쩍 많아졌다. 식물에게 물을 주며 헛헛하거나 건조한 도시 생활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소식. 심지어 식물을 구매하고 키우는 일이 일종의 트렌드가 아닌가 싶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요즘은 살짝 시들해진 감이 있지만 한때 다육이의 인기가 대단했다. 하기야 건조한 기후에 강해서 물줄기를 게을리해도 쉽게 죽지 않는 식물이라니 초보자들에게 이보다 더 매력적일 수는 없다. 게다가 척박한 환경에 스스로 적응하기 위해 체내에 물을 품고 있다니 뭔가 인간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러니까 너도 살아남을 수 있어. 너무 애 쓰지 않아도” 뭐 이런 식의….

심지어 다육식물은 증식 방법이 너무도 간단해서 금방 식구를 늘릴 수 있다. 인간 식구 대신 다육 식구 늘리는 방법은 거의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모양은 또 얼마나 다채롭고 사랑스러운가? 신비스러울 정도다. 흠이라면 통풍 안되고 햇볕 없으면 잘 못 살고 겨울에 너무 춥게 내버려두면 얼어죽기 쉽다는 건데 그 정도 최소한의 관리는 해줘야 식물에게 위로받을 수 있는 인간의 자격이 있는 거 아닌가 싶다.

하지만 다육이도 좋지만 공기정화식물만큼 도시인들에게 유익한 식물은 없을 것 같다. 예컨대 밀폐된 우주선 내 공기를 정화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던 중 미항공우주국 NASA가 발견하여 지구인 모두에게 추천하는 1위부터 50위까지의 식물들.

흔히 ‘황야자’라고도 불리는 아레카야자가 그 1위인데, 이 호리호리하게 울창한 나무는 실내가 건조하면 수분을 공기 속에 내뿜는 습도조절능력이 뛰어나 ‘천연 가습기’로 사용하기 그만이다.

한편 영화 <레옹>에서 마틸다가 들고 다니는 화분 속 식물로 알려진 아글라오네마는 NASA 추천 공기정화식물 38위다. 영화 역사상 존재감이 가장 큰 식물이어서 예전에는 그걸 구하려면 제법 발품을 많이 팔아야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왜 그렇게 가격이 다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인터넷에서 다양한 가격대로 팔리고 있다.

50위 안에 들지는 않지만 몬스테라라는 열대성 관엽식물도 인기다. 잎맥 사이에 뚫린 타원형의 구멍 때문에도 매우 이국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일까? 아님 수경 재배로 간단히 키울 수 있기 때문인가? 식물이 인테리어 오브제로 부상한 이후 셀프 인테리어족에게 유독 인기 있는 식물이 바로 이 몬스테라다.

하기야 몬스테라 한두 이파리를 미니멀한 화병에 꽂아 타일 붙인 싱크대 위에 두기만 해도 공간이 얼마나 사는지 그 효과가 마술 같을 정도다.

아예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현대의 도시인들에게 약 대신 ‘식물을 처방’해 준다는 콘셉트로 설계된 소규모 브랜드도 있다. 이름 하여 ‘느린 약국’이라는 뜻의 ‘슬로우파마씨’. 화분이 아니라 비커나 유리병에 식물을 기르는 풍토를 조성한 사람들이기도 한데 처음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주문을 받더니 이젠 용인의 쇼룸에 이어 온라인 쇼핑몰까지 생겼을 정도로 두루 사랑받고 있다.

슬로우파마씨처럼 식물을 그토록 창의적으로 다루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이다. 물론 창의적이지 않다고 주저할 것도 없다. 식물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다루어야 한다. “어, 얼굴이 쪼글쪼글한 게 저 녀석 목마르네, 미안, 물 줄게.” “아이코, 이거 너무 좁겠는데. 조만간 큰 집으로 옮겨줘야겠어.” 그런 마음. 그런 마음의 힘으로 조금씩 자신의 수고를 늘려가며 발견하는 행복과 위로. 그게 바로 ‘반려 식물 테라피’라고 나는 생각한다.

구절초, 쑥부쟁이, 벌개미취가 아무런 의도나 콘셉트 없이 그냥 막 피어 있는 시골의 가을 들녘은 아름답다. 음식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는 무슨무슨 꽃축제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개인적으로 장미나 튤립, 백일홍 같은 외래종에게 자리를 내주고 이름도 없이 사라져 가는 토종 야생화가 자꾸만 마음이 쓰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그렇다면 수고를 해야지. 이번 주말에 계방산이나 함백산, 혹은 인제 곤배령 쪽으로 가보리라. 가서 보고 함께 살고 싶은 꽃들을 입양해야겠다.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고 마음을 쓰고 말을 건네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것, 그게 바로 식물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이니까.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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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노동자로서의 예수를 사랑한다. 하지만 덮어놓고 육체 노동을 신성시하는 부류를 어떤 면에서 가장 경계하고 의심한다. 일보다는 여가를 사랑하는 러셀주의자랄까? 러셀 말대로 삶 그 자체보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 의해 우리 인류가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해왔고, 그 때문에 이 세상이 되레 더 나빠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도 나는 되도록 러셀의 충고에 따라 살려고 했다. 아예 모니터 위에 이런 내 마음의 강령을 적어 놓고 일했다.

‘조직으로 일을 줄여야 한다!’ 후배는 물론 심지어 상사에게도 그것이 ‘인류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고 강권하고 싶었다. 당연히 잘렸다. 17년 동안 그럭저럭 버티긴 했지만 결국 잘려 나갔다. 억압적인 위계 시스템에 버럭버럭 소리 지르며 대항하다가 제 발로 걸어나왔지만 사실상 잘린 거나 다름없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래도 눈곱만큼도 후회가 없다. 후회하기는커녕 그때 그렇게 꼴사납게 싸우지 않았더라면 월급에 목이 매여 제 발로 그만두지 못하고 아직까지 회사에 다녔겠지 생각하곤 하는데, 그럼 되레 식은땀이 난다.

정말이지 회사를 그만두고 4년을 즐겁게 헤맸다. 도서관에 다니며 전업작가로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다가 여의치 않아서 서둘러 귀촌했다. 귀촌 후 남편의 집 짓기를 도우며 두 권의 책을 냈다. 200장 벽돌을 날라주고 밥을 하고 원고를 쓰는 식이었다. 그 와중에 어느 지방 방송의 영화 프로그램에 출연한다고 무려 6개월 동안이나 서울과 부산, 평창을 오가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살았다. 플립보드라는 미국의 소셜 매거진 일에 이어 지금은 에어비앤비의 호스트로 살고 있으니 그야말로 디지털 잡(job) 노마드가 따로 없는 삶.

그런데 나 같은 사람들을 부르는 신조어가 생겼단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 ‘gig’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그렇듯 재즈 연주자들을 모으듯, 춤추듯 가볍게 스마트폰 앱을 플랫폼 삼아 언제 어디서나 유연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경제 시대가 왔다고.

이제 전문가들은 평생직장 시대는 갔다고 진단한다. 정규직은 없고 계약직, 비정규직만 있는 세상이라니, 매우 암담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틀에 박힌 직장보다는 ‘긱’과 같은 탄력 있는 일자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되레 더 크고 만족도도 더 높다고 한다. 긱의 주체들이 일정한 회사에 고용된 직장인보다 훨씬 직업을 즐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하는데, 나 자신의 경험을 말하자면, 거짓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나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을 응원하는 후원자다. 뭐 대단한 후원자는 아니지만 여하튼 후원자다. 5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가난한 프리랜서 작가이자 자영업자로 살기 시작한 이래 가지각색 고지서와 나날이 옥죄는 ‘빚’에 마음이 우중충할 때도 푼돈이지만 얼마 안되는 후원금을 냈다. 그리고 지난 7월부터 이것저것 다 빼고 처음으로 순수익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하자 그 수익의 10%를 다시금 2차 후원금으로 냈다.

‘꿀잠’을 생각하면 노순택 작가가 찍은 한 장의 사진부터 떠오른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요구하며 오체투지로 차가운 땅바닥을 기던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한없이 낮아진 모습. 그 중심에 이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아이콘이자 전설이 된 기륭전자 언니들이 있었는데 왜 그런지 그 모습이 비참해 보이기는커녕 어떤 종교적 의식보다 더 경건하고 또 성스럽게 느껴졌다.

그 사진 아래 노순택 작가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기륭일 수밖에 없는 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이 필요하다’고. 그런데 그건 기륭의 언니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긴 시간 지독하게 투쟁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복직과 생계를 원하는 기륭인이 아니라 그 이상의 ‘우리’였기에 가능했다는 걸 그때 노순택 작가의 사진과 글을 보며 처음 알았다. 미안하다. 그 이전까지 나는 10년 넘게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미련 곰탱이’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 귀한 줄 모르는 직장이 뭐라고 목을 매고 투쟁하나? 오죽 미련하고 무능하면 그렇게나 오래?’ 그렇게 생각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시덥지 않은 교만함으로….

그러다가 얼마 전 백기완, 문정현 두 어른이 ‘벽돌 몇 장 보태는 마음’으로 꿀잠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전시회에는 못 갔지만 두 분의 인터뷰 기사를 경향신문에서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나 이렇게 말하는 백기완 선생의 저렁저렁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예수는 노동자였어. 목수였잖아. 노동으로 단련된 몸으로 부당한 사회질서에 대항한 깡따구 있는 인물이었다고.”

그렇다, 난 노동자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노동자이고 싶다. “노동하지 않는 삶은 부패하고, 영혼 없는 노동은 삶을 질식시킨다”는 카뮈의 말을 마치 신앙처럼 믿는 노동자. 긱이든 긱이 아니든 사소한 경계를 너머 우리를 보는 노동자.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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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스마트폰 생방송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소식 때문일까? 며칠 전부터 크리스천 슬레이터가 해적 방송 DJ로 출연하는 영화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맞다, <볼륨을 높여라>. 때는 1990년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회원 가입만 하면 누구나 자기만의 방송을 만들 수 있던 때가 아니었다. 전학 후 외톨이가 된 마크는 아버지가 사준 무선 통신기로 밤마다 정체불명의 DJ 하드 해리가 되어 가슴에 응어리진 말들을 토해낸다.

ⓒ경향신문DB

“솔직히 기대할 일도 존경할 인물도 없는 이 날쌘 시대를 사는 게 지겹다고요. 제기랄, 안 그런가요? 이런 암흑 같은 생활이 당신을 미치게 하잖아요. 그러니까 뭐든 미친 짓을 해보자고요. 신나게, 창조적으로….”

DJ 하드 해리가 하는 말들이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움츠려 있던 내 청춘의 심장을 얼마나 고무시켰는지 모른다. 게다가 이제껏 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정말 멋진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예컨대, 레너드 코헨의 ‘Everybody Know’ 같은 곡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젊은 청취자들이 모처럼 뜨거워진 자신의 심장을 느끼며 좋아했겠는가? 급기야 경찰의 추적 대상이 되어 해리는 더 이상 방송을 못하게 됐지만 ‘진실은 바이러스 같은 거다’라는 그의 말대로 수많은 해적 방송의 1인 DJ가 바이러스처럼 퍼졌다.

해리는 DJ라기보다는 요즘 말로 BJ(Broadcasting Jockey)였다. 혼자 PD도 되고, 작가도 되고, 촬영감독도 되고, 진행자도 되는 1인 다역의 창작자. TV가 아닌 보다 사적인 소통 창구 앞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새로운 형태의 오피니언 리더. 어릴 때 “남 먹는 거 쳐다보지 말라”고 배운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지만 카메라 앞에서 그저 먹어대는 ‘먹방’으로 억단위 고수익을 버는 BJ가 있는가 하면, 게임을 소개하면서 재미있는 토크를 곁들인 방송으로 ‘1인 방송계의 유재석’이라 불리는 이도 있다.

그들은 더 이상 마이너가 아니다. 새로운 주류고 대세가 됐다. 한국에 ‘1인 인터넷 방송’ 채널만 무려 7000여 개, 방송 중인 BJ가 무려 150만명이라고 한다. 그중 스타급 BJ는 월 1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고 신변잡기에 가까운 수다만 떨어도 대기업 임원 못지않은 돈을 벌 수 있기에 초등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기 직업인이 됐다.

하지만 그들은 <볼륨을 높여라>의 의식 있는 반항아 하드 해리가 아니다. 너무 변질됐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병적일 정도로 천편일률적이다. ‘자발적 시청료’라는 명목의 ‘별풍선’ 현금을 받을 수 없다면, 혹은 광고 수익을 얻을 수 없다면 그중 몇이나 1인 방송 활동을 계속할지 의문스럽다. 별풍선을 많이 받기 위해 자신의 외제차로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는 장면을 생중계하는 BJ가 있는가 하면, 안쓰러울 정도로 짧은 핫팬츠 차림으로 섹시 댄스를 추는 초등학생 BJ도 있어서 방송 보기가 겁난다. 아예 유통업계와 손잡고 상품 드라마 간접광고(PPL) 같은 광고를 해주거나 쇼핑 호스트로 나서는 BJ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갑자기 봇물 터지듯 확장된 ‘1인 생방송 시대’가 내게는 너무도 매력적인 세계로 느껴진다. 특히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페이스북 라이브’를 즐겨보는 편인데 얼마 전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실시간 토론 생방송을 지켜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마크 저커버그가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우주인들과 영상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페이스북 라이브 동영상으로 생중계될 때도 좋았다.

그러다가 문득 나도 ‘청취자’가 아니라 ‘생산자’ ‘창조자’로서의 1인 방송을 만들어 내보내야겠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중심으로 만들고 싶은 콘텐츠가 무궁무진하다. 예컨대 평창자생식물원은 아직 영업 허가를 받지 못했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 아무나 찾아갈 수 없는 곳이다. 인터넷에도 정보가 거의 없다. 하지만 내가 타샤 튜더의 정원 못지않게 아름다운 곳이라고 소개했던 곳. 그곳에 가서 페이스북 라이브 버튼을 누르리라.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몸이 동해의 짙푸른 바다 동네, 묵호에 있으니 어쩌면 첫 방송은 묵호에서 진행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페이스북의 니콜라 멘델손 부사장은 “이 추세대로면 5년 내 모든 글이 동영상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워싱턴포스트 같은 기존의 유력 신문도 독자를 현장으로 바로 데려다주는 ‘동영상’에 맞추어 회사를 리폼하겠다고 했다. 내가 사랑하는 ‘경향신문’도 그런 준비를 하고 있다면 참 좋겠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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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밥벌이의 지겨움’과 함께 ‘낭만적 밥벌이’란 말도 유행했다. 지겨운 일이지만 ‘도리’ 없이 해야 하는 일이 ‘밥벌이’라고, 기성세대는 말하고 청년세대는 ‘세상에는 낭만적 밥벌이도 있다’고 대답했다. 같은 제목의 책도 나왔다.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받은 김훈이 에세이 <밥벌이의 지겨움>을 낸 건 2003년이었고,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조한웅이 ‘어느 소심한 카피라이터의 홍대 카페 창업기’라는 부제를 단 책 <낭만적 밥벌이>를 낸 건 2008년이었다.

누군들 ‘밥벌이’가 지겹지 않을까? 그래도 ‘대책이 없다’고 하니 목이 멘다. 때로는 눈물도 난다. 상사든 클라이언트든 남의 눈치 안 보고 느긋하게 자기만의 사업장에서 우아하게 음악이나 틀고 커피나 내리면서 ‘밥’을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청년 구직자와 퇴직자의 창업 로망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홍대나 신사동 가로수길처럼 청년 상인들이 ‘낭만적인 밥벌이’를 꿈꾸며 주로 모여드는 동네일수록 임대료가 거의 ‘악마’적인 수준이다. ‘낭만’은커녕 본전도 못 찾고 임대한 가게에서 쫓겨나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티는 게 현실. 듣자 하니 <낭만적 밥벌이>의 저자조차 나날이 높아지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카페 문을 닫고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는 쓸쓸한 소식이다.


보증금·임대료별 전·월세 거래량_경향DB



그렇다고 너무 낙담하지는 말자. 내가 아는 이들 중에는 탄광 도시에 헌책방을 낸 사람들도 있으니까. <빅스톤 갭의 작은 책방>이라는 책을 낸 웬디와 그녀의 남편 잭. 언젠가 작은 책방을 내는 것이 꿈이었던 애서가 부부다. 책에 미쳐 꿈을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후예’ 같은 사람들이라고 할까?

요즘처럼 책이 안 팔리는 때가 없거늘, 대도시도 아니고 심지어 인구 5000명이 될까 말까 한 산골 마을에서 중고 책방이라니…, 그 발상 자체가 거의 ‘돈키호테식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나이도 적지 않다. 여자는 50대, 남자는 60대쯤 되어 보인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닳고 닳았을 나이. 그런데 이렇게 순진할 수가? 아니 순진할 만큼 대담하게 용기 있을 수가? 설상가상으로 돈도 별로 없고 책도 많지 않다. 그런데 해낸다. 기상천외하게 멋진 착상으로 이웃들의 중고 책을 모으고, 없을 것 같은 책벌레 고객까지 찾아낸다. 글쓰기 모임, 댄스파티, 뜨개질 모임, 소규모 콘서트가 열리는 산골 마을 책방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책방과 책방 주인장은 그렇게 무료한 폐광촌의 활력을 불어 넣어주어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보석’ 같은 존재가 된다.

그 책을 읽고 이것이야말로 진짜 ‘낭만’이구나 싶었다. 내가 아는 낭만은 ‘최백호 풍’도 아니고, ‘미사리 라이브 카페 풍’도 아니다. 선창가 다방이나 라이브 카페 같은 곳에서 이루지 못한 젊은 날의 ‘꿈’이나 ‘첫사랑’을 회상하는 거, 그런 게 진정 ‘낭만’은 아닐 테니까.

진짜 낭만주의자들은 ‘돈’이 누군가의 ‘꿈’을 집어삼키는 당대의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순응해서도 안 되고 체념해서도 안 된다. 웬디와 잭이 그랬듯이 누구나 우리의 삶을 소설이나 시, 에세이로 만들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내면의 깊은 곳에 잠자고 있는 예술가적 재능을 일깨워 각자가 자신의 삶을 아름다운 전체로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프레더릭 바이저의 명저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예술을 책과 연주회장, 박물관으로 한정시키고 세계를 매우 추한 곳으로 만들어버린 예술과 삶 사이의 장벽을 깨부수는 것. 우리의 삶이 파편화된 근대세계에서 잃어버린 의미와 신비, 마법을 되찾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세계를 낭만화하는 방법이고 진짜 예술이라는 얘기다. 남이 그린 화투 그림으로 대중을 속여 돈을 버는 게 예술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예술가’라 했던 요지프 보이스의 선언에 따라 나 자신이 예술의 주체가 되어 내 삶과 주변 세계를 더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만들면 그게 바로 ‘예술’이고 ‘낭만’이라는 얘기다.

다행이다. 최악의 경기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밥벌이로서 세계를 낭만화하려는 무리들이 속속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상암동에 술 팔고 음악 팔고 북 콘서트도 여는 동네 책방 ‘북 바이 북’이 생기더니, 괴산 칠성면 외사리의 미루마을 숲속에도 하룻밤 묵으며 북 스테이(Book Say)할 수 있는 책방이 생겼다는 소식이다. 요즘 ‘낭만적 밥벌이’라고 인터넷 검색을 하면 게스트하우스 창업에 대한 책이 먼저 뜨는데, 그만큼 자신의 삶과 세계를 낭만화하겠다고 작정한 듯 보이는 멋진 게스트하우스들이 엄청 많아졌다. 자신의 작은 단칸방을 게스트하우스로 꾸미고 그곳을 찾아온 흥미롭고 특별한 외국인 게스트들과의 이야기를 책 (<이토록 쉽고 멋진 세계여행>)으로 엮은 젊은이도 있다. 참고로 이 글을 쓰는 저자도 갤러리 겸 LP 음악감상실에 책방 역할까지 겸한 산중 게스트하우스(예술가의 시골집 & 운교산방)를 운영 중이니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살펴보실 것.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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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행이 아니라, 제주에서 한동안 살아보는 ‘제주 한 달 살이’ 열풍이 식을 줄 모른다. 이해한다. 이효리처럼 아예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길 수는 없지만 한동안 체험해 볼 수는 있다. 매일매일 바다를 보는 삶. 어슬렁어슬렁 산책하다가 동네 카페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는 삶. 텃밭을 가꾸고, 시장에 가고, 시장에서 사온 싱싱한 바다 먹거리로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 제주식 킨포크 라이프. 그런데 방이 없단다. 그 많은 ‘한 달 살이 달방’이 연초에 예약이 끝났을 정도다. 방학 시즌 월세가 무려 150만원 가까이 된다고 하는데 그조차도 올해는 끝나고 내년 시즌에나 입주가 가능하다고. 그런 가운데 ‘제주 한 달 살기’ 유행에 맞추어 분양과 동시에 월 단위 임대 서비스를 시작한 곳도 있어 살펴보니 ‘삶을 담은 공간’ 집의 느낌이라기보다는 세련된 디자인의 호텔이나 콘도 같다. 정확히 ‘달방’ 콘셉트의 호텔급 콘도미니엄이랄까?

그렇다면 시야를 좀 더 넓혀보면 어떨까? 사실상 ‘한 달 살이’는 세계 어디서나 가능하다. 내 경우 2006년과 2007년 사이 몰타에서 시작해 바르셀로나, 로마, 취리히, 부다페스트 등의 도시를 돌며 한 달 혹은 두 달, 세 달을 살았던 경험이 있다. 그중 가장 생각나는 도시는 부다페스트다. 롤랑 바르트가 <카메라 루시다>에서 “나에게 있어서 풍경사진(도시건 시골이건)은 그곳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일으켜 줘야 한다”고 했는데 내게는 부다페스트의 모든 풍경이 그랬다. 부다와 페스트를 가로지르는 안개 낀 다뉴브 강, 백발의 피아노 연주자가 들려주는 ‘글루미 선데이’, 고대 신전이나 왕궁 같은 느낌의 오래된 온천장, 다뉴브 강을 끼고 달리는 노란색 트램,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활기찬 재래 시장,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임시변통의 건물 안에 자리잡은 ‘폐허 선술집(Ruin Pub)’…. 한마디로 부다페스트는 내가 아는 한 노스탤지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였다.

그 도시의 모든 것이 나로 하여금 너무도 살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켰고 그 마음이 결국 일을 저지르게 만들었다. 난생처음으로 외국에서 내 이름으로 된 아파트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한 것. 페스트 지역 안쪽 바르톡벨라 대로에 위치한 작은 아파트먼트였는데, 유틸리티 비용(전기, 물, 인터넷 사용료)을 포함한 월세가 50만원이 안됐고 보증금은 한 달치 월세분에 불과했다.
그래도 다 있었다. 침대와 옷장이 놓인 방 하나에 소파 있는 거실, 식탁까지 갖춘 주방, 욕조 있는 욕실과 화장실까지. 그리고 그곳에서의 두 달은 여행이 아니라 진짜 삶이었다. 그때 난 모 신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기고하는 여행 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그 원고료로 겨우 먹고살았다. 이 때문에 주로 걸어서 마트나 시장에 갔다. 원고료가 들어온 날이면 털북숭이 남자가 자기 집 정원이나 산에서 꺾어다 파는 것 같은 꽃이랑 와인을 샀다. 그리고 2층에 위치한 내 집 창문으로 이웃집 남자가 길가에 개를 묶어 놓고 슈퍼 가는 걸 지켜봤다. 어느 날인가 남자가 술에 취해 묶어 놓은 개의 존재를 잊고 있다가 그 다음날 아침에 데려가는 것도 지켜봤다. 또 어떤 날인가는 내 방 창문 앞에 와서 지저귀던 새를 따라 다닌 적도 있었다. 그만큼 내 시간이 많았다. 한가한 시간…. 그 시간과 공간이 가슴 아프게 좋았다. 마치 ‘네가 옆에 있어도 네가 그립다’는 시인의 마음인 듯 좋았다.

몰타에서 보낸 세 달 살이도 좋았다. 고속도로가 필요 없는 아주 작은 섬나라여서 좋았다. 그 도시엔 트램은 없고 대신 박물관에 보내야 할 것 같은 노란색 버스가 돌아다녔다. 하지만 나는 주로 걸었다. 아침이면 걸어서 학교에 가고(배움의 의무밖에 없던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일종의 퇴행 심리로 다닌 단기 어학학교), 방과후에는 해변에 나가 책을 읽거나 일광욕을 하다가, 해질 무렵에는 반드시 슬리에마 해변을 끼고 조성된 해안 도로를 짧으면 한 시간, 길면 두 시간 가까이 걸었다. 그때 얼마나 날씬했는지 나이 서른여섯에 배꼽티를 입고 다니고 싶을 정도였다.

안식년을 맞은 그해 정말이지 원 없이 여행했고 또 머물며 살며 다른 곳에서의 삶을 충분히 경험했다,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미련이 남는다. 갈증을 느낀다. 가장 후회스러운 것이 ‘제주 살이’를 해 보지 못한 거다. 이제는 수요가 너무 많아서도 못 가겠다. 하지만 제주가 아니면 어떤가? 부안이나 나주, 상주, 임실, 장흥, 통영 등 한동안 살아보고 싶은 도시는 얼마든지 더 있다. ‘여수살이’도 근사할 것 같다.개인적인 취향이지만 한강의 단편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냥 그 인연과 취향의 끈을 믿고 덜컥 여수에 달방을 계약하는 거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그런 로망을 품고 산다는 게 일상을 지탱시키는 힘 아닌가?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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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5일장을 사랑한다. 5일장을 도는 장돌뱅이 상인들이 익숙한 솜씨로 좌판을 펼치고, 인근 마을에서 보퉁이를 이고 지고 찾아온 할머니들이 갓 캔 푸성귀들을 펼치며 하나둘씩 자리를 잡는 곳. 계절을 반영하는 제철 생선이며 채소를 마트보다 싼값에 살 수 있다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손바닥만 한 좌판을 놓고 옹기종기 앉아 있는 시골 ‘할매’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그 특유의 정서 때문에도 자주 가고 싶어진다.

개인적으로 애용하는 장은 5일, 10일에 열리는 평창장. 즉석에서 들기름에 구워내는 김을 사기 위해서도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가게 되는 곳이다. 김을 사고 나면 대관령 황태를 산다. 강추위와 눈 속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만들어진 대관령 황태는 부드럽고 노란 속살에 양념을 발라 구워 먹어야 제일 맛있지만 대개는 황태채를 산다. 황태북엇국, 황태칼국수, 황태골뱅이소면 등 여러모로 쓸모가 많기 때문이다. 북유럽 디자인이 부럽지 않은 예쁜 뜨개 버선도 두 켤레 산다. 그래봐야 만원도 안되기 때문에 한 켤레 더 살까 고민하며 둘러보니 ‘몸뻬’ 파는 할아버지는 오늘도 장사는 뒷전이고 장기에 빠져 있다. 그러다 살짝 배가 고파지면 경이로울 정도로 얇게 부친 메밀전이나 김치를 넣은 메밀전병을 사먹는다.

며칠 전에는 1일과 6일에 열리는 횡성장에 다녀왔다. 오, 여기는 평창장보다 규모가 더 크고 다채롭다. 장옥 내 전문 장사꾼의 가게가 많은 장보다 인근 농촌에서 나물이나 채소를 들고나온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주로 난전을 펼치는 장을 개인적으로 더 좋아하는데 여기는 그 두 종류의 장이 적절히 섞여 있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매던 작약을 살 수 있어 좋았다. 손두부도 겨우 2000원. 하나로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두 배나 많아 보이는 싱싱한 파도 한 단 샀다. 한 바구니에 5000원 하는 토마토는 어찌나 싱싱한지 그 자리에서 바지에 쓱쓱 닦아 단숨에 먹어버리고 말았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문화관광형으로 개선된 정선장이나 봉평장보다 현지인 중심의 생활용 5일장인 평창장이나 횡성장을 더 선호한다. 그러나 평창에도, 횡성에도 미안하지만 강원도 최고의 5일장으로 꼽는 곳은 따로 있다.

5일장_경향DB


동해시에 위치한 200년 전통의 5일장, 북평장. 지금과 같은 방식의 3일, 8일장이 열리게 된 것이 1796년 정조 때부터라고 하니 어지간한 문화유산 못지않은 셈이다. 물론 단지 오래됐다고 무턱대고 최고 점수를 주진 않는다. 이 시장의 매력에 대해서 물으면 난 늘 이렇게 말한다.

“자전거만 한 문어가 꿈틀대며 수족관이나 빨간 ‘다라’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참문어가 즉석에서 삶아지는 대형 어물전 옆에서 촌로가 작은 소쿠리 몇 개를 앞에 두고 냉이며 쑥을 팔고 있는 모습도 정겹고. 어물 따로, 청과 따로 구획별로 정리가 안됐다는 점이 오히려 이 시장의 매력이랄까? 게다가 소머리국밥이 얼마나 맛있고 푸짐한지 말도 못해.”

북평장은 예전부터 우시장으로 유명했다. 덕분에 소머리국밥 잘하는 식당도 많았다. 우시장은 사라졌지만 우시장이 사라진 뒤에도 그 맛을 유지하는 집들이 아직까지 건재하게 영업을 하고 있어서 반갑다. 그중 제일 유명한 집에 갔다.

가마솥에서는 모락모락 김을 올리며 국을 끓이고 있는 ‘43년 전통’의 모 식당. 그곳에서 퍼지는 구수한 냄새가 마치 자석인 듯 우리를 끌어당겼다. 역시 그 맛이 그윽했다. 국물에서 느끼한 맛이 하나도 안 나면서도 아주 깊은 맛이 났다. 고기는 입안에서 스르르 녹을 정도로 부드럽고 양도 엄청 많았다. 대를 이어 국밥을 끓이고 있는 여사장에게 ‘맛의 비결’을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냥 어머니 말씀대로 하는 거죠. 첫째, 식재료 외상 달지 말아라, 그래야 좋은 물건 들인다. 둘째, 냉장고는 늘 채워 놓아라, 그래야 손이 커진다.”

‘좋은 식재료를 아낌없이 푸짐하게 내주어라’ 하지 않고, 저절로 실천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고안하셨다니 더욱더 감탄사가 나왔다.

“와, 그 어머니 굉장한 분이셨네요. 장사의 여신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시마다 마사히코는 <퇴폐예찬>이라는 책에서 ‘시장에서 살고 싶다’며 이렇게 썼다. “다녀왔습니다, 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그리운 장소로 돌아온 느낌이다.” 그게 바로 시골 5일장의 느낌이다. 우리 삶의 근원에 다가가 서로 냄새 맡고 만져보고 어깨를 부딪치는 듯한 정겹고 애틋한 느낌.

봄나들이하기 좋은 날들이다. 바다 냄새 나는 북평장에 가서 참문어님과 ‘장사의 여신들’에게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다녀왔습니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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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혼자 유럽을 여행했다. 그때 알았다. 한국의 모든 것을 다 버려도 단 하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음식이라는 걸. 전 세계 미식가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나라, 이를테면 프랑스나 이탈리아,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어찌나 한국 음식이 그립던지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 식당 음식으로 배를 양껏 채웠는데도 늘 뭔가 허기진 느낌이었다. 정말 한국의 음식만큼 그리운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어쩔 수 없이 한국의 가족들에게 몰타로, 이탈리아로, 부다페스트로 한국 음식이나 재료들을 공수받아야만 했다. 당연히 그때부터 한국 음식이 그리우면 닭볶음탕이며 삼겹살, 김치찌개, 비빔밥 같은 걸 직접 만들어 먹고 또 때로는 현지의 친구들과 작은 파티를 열며 “이게 바로 한국의 매운맛이다. 어떠냐? 죽이지?” 하며 자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다가 바르셀로나에 가서 알았다. 일식이나 태국 음식에 질린 유럽의 미식가들에게 이제 한국의 음식만큼 매력적인 미식의 신세계는 없다는 걸.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그는 울적함을 평생의 기질처럼 달고 사는 영국인이었는데 어느 날 내게 미국에 상륙한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을 무슨 신의 재림인 양 소개한 ‘뉴욕 타임스’의 기사를 보여주며 ‘도대체 두 번 튀긴 닭’이 과연 어떤 맛이냐고 물었다.

“아주 바삭하지. 게다가 그냥 마일드한 프라이드 치킨과 한국 특유의 매콤한 양념을 곁들인 두 가지 스타일로 즐길 수 있어. 두 가지 스타일을 반 마리씩 섞어 먹을 수도 있고.” 그러자 아시아 음식 열성 팬인 마이클이 진심으로 침을 흘리며 먹고 싶어 했다. 뭐 레시피가 필요 없을 정도로 쉬운 요리니 못해 줄 것도 없었다. 그동안 수도 없이 먹어온 입의 감각에 따라 있는 양념으로 대충했다. 닭 조각에 칼집을 넣어 두 번, 심지어 세 번 튀긴 후 고추장에 고춧가루, 후추, 통깨, 꿀, 마늘에 양파즙까지 섞어서 양념 소스도 만들었다. 웁스, 그랬더니 이 남자 거의 ‘천국의 맛’이란다. 하기야 영국인들이 늘 먹는 그 느끼하다 못해 고도비만으로 이끄는 악당 ‘피시 앤 칩스’에서 버스 터미널 맛이 난다면 내가 만든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은 정성이 들어간 나름 ‘전라도 여자 손맛’이니 천국은 천국이겠지.

최고의 슬로푸드, 사찰음식_ 경향DB

그때부터 요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내 손으로 뚝딱 만든 한 그릇의 음식으로 누군가에게 ‘천국’을 선사할 수 있다니, 이보다 더 기쁘고 만족스러운 일이 있을까?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혼 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을 정도로 우울증이 심각한 여자 후배 둘을 내가 사는 평창 집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곤 먹였다. 2박3일 동안 다섯 끼를 해먹였다.

“언니, 밥과 우울증이 관련이 있는 것 같아. 틀림없이…. 나 언니랑 언니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있으니까 약 안 먹어도 마음이 평온하고 좋아. 특히 아침밥이 중요한 것 같아. 아침을 안 먹으면 하루종일 기운도 없고 기분이 엉망진창이거든. 그러니까 일종의 기원이랄까? 내 우울증의 기원 말이야. 그게 먹는 즐거움을 모르고 산 데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유진 오닐이 아침밥을 먹었다면 그렇게 빨리 안 죽었을 것 같기도 하고.”

마법 같은 일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전화해서 이런 말을 쏟아내던 후배였다. “언니, 언니는 왜 살아요? 나는 내 자식을 자살한 엄마의 아들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겨우 살아요. 밥도 딱 그만큼만 먹어요. 죽지 않을 만큼만…. 그러니 당연히 밥맛도 모르고.” 그랬던 그녀다. 그런데 엄마가 점심으로 만들어 준 잔치국수를 한 그릇 뚝딱 비우더니 이제는 이렇게 말한다. “언니 나 여기 와서 해답을 얻은 것 같아. 우울할 이유가 없어. 이제 잘 먹고 잘살 수 있을 것 같아.” 너무도 갑작스러운 변화라 나조차도 믿기지 않았다. 요리에는, 사랑이 담긴 한 그릇의 음식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믿어왔지만 그 힘이 이렇게 강하고 전복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19세기 미식가 브리아 샤뱌랭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미각을 만족하지 못하면 결코 완전하게 행복해질 수 없다.’ 맞는 말이다. 나는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서 먹는다. 물론 무엇을 먹는다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누구와 같이 먹는가?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혼자 먹으면 맛이 없다. 하지만 같이 먹으면 국수 한 그릇도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변화시키는 연금술과 같은 신비한 힘’을 발휘한다. 우울증 환자들에게 권한다. 다이어트는 금물이다. 우울증 환자 중에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 건 다 그놈의 다이어트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침밥이 먹기 싫다면 사과 한 알을 먹으라. 그게 정신과 의사의 처방전보다 낫다. 그리고 혹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친구나 가족이 있다면 함께 자주 음식을 만들어 먹으라고 권한다.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나누어 먹는 행위 안에는 사랑이 있고, 사랑이 충족되면 우울이 들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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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우리가 만나는 곳. 단연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존 버거의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을 오랜만에 펼쳐 본다.

작가 그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화자 존이 리스본에서 늙은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 그 어머니는 이미 수년 전 돌아가신 분이다. 죽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망자와 만나는 그 장소에서 어머니는 존에게 이렇게 말한다.

“(영화를 전망대의 승강기와 비교하며) 그런데 영화도 똑같은 것 같아, 존. 우리를 올렸다가 같은 자리에 다시 내려놓으니까. 그것도 사람들이 영화관에서 우는 이유 중 하나란다.”

지난 일요일 오전 영화관에 갔다. <귀향>을 보기 위해 갔다. 예전 같으면 서울이나 가야 볼 수 있는 화제의 저예산 독립영화. 근래 군 소재지마다 작은 영화관이 생겼는지 인터넷 검색창에 ‘귀향’을 치니 우리집에서 가까운 영화관이 무려 3곳이나 떴다. 평창시네마, 영월시네마, 제천시네마….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작은 시골 영화관에서 <귀향> 같은 귀한 영화를 볼 수 있다니…. 그 사실만으로도 난 이미 너무도 고무되어 승강기를 타고 에펠탑 위로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마을마다 있는 복지회관을 리모델링했는지 1층은 웨딩홀이고, 2층은 영화관인 곳에 왔다. 평창군민으로서 평창군에 처음 생긴 영화관에 와서 그런지 영화관의 모든 것이 ‘리본 달린 일요일의 선물 상자’인 듯 사랑스럽다. 심지어 상영관이 2개고, 상영작이 무려 3개나 됐다. 팝콘을 산 할머니가 영감님 손을 잡고 <동주> 포스터 앞에 앉아 있다가 우리와 함께 <귀향> 상영관을 향해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그 장소에 놓인 그 모든 상황이 그렇게 천국인 듯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내 영화가 시작되고 나는 꽃다운 처녀들이 겪는 끔찍한 지옥을 맛보고 말았다. 울었다.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열다섯, 혹은 열넷, 나비를 쫓던 순진무구한 처녀들이 짐승 같은 남자들에게 끝없이 끝없이 찢기고 밟히고 채찍질 당하다 이내 버려지는 현장을 목격하고도 울지 않을 수 있는 강심장은 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는 다행히도 아름다웠다. 참담한 아픔을 다룬다 해도 꽃다운 처녀들의 이야기이기에 감독은 그리도 아름다운 영상에 담고 싶었던 모양이다. 남의 지옥불을 구경하는 관람자가 그렇듯 그다지 불편하지도 않았다.

마치 살풀이하듯, 눈물과 통곡으로 토해내면 설움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와 얽매였던 마음도 풀리고 몸도 편해지는 식의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아버지가 열네살이나 먹은 딸아이를 지게에 태우고 덩실덩실 춤을 출 만큼 귀하게 자란 주인공 말고도 더 많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 땅에 있었을 테니까. 이미 돌아가셨든 아직 살아 계시든.

그 때문에 얼마 전 사이행성이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25년간의 수요일>이라는 책을 급하게 주문해서 읽었다. 그 안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우리들에게 전하는 가슴 뭉클하고 심지어 미소짓게 하는 희망의 이야기가 가득 실려 있었다.

할머니들은 영화에서처럼 한때 아름다웠지만 전쟁의 폭력으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해진 여자가 아니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이후,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이어온 수요시위를 통해 어느덧 평화를 위한 투사이며 인권운동가가 된 할머니들의 이야기. 예컨대 이용수 할머니의 얘기를 듣고 용기 있을뿐더러 더없이 멋있고 사랑스러운 여자들이구나 생각했다.

“저는 이제 여러분의 힘을 받아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두 번 다시 우리 후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저는 결사적으로 싸울 겁니다. 저는 아직 나이 젊습니다. 나이 88세 뭐 그리 많습니까? 활동하기 딱 좋은 나이입니다.” 멋있지 않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어느 여성인권운동가가 한 말이라고 해도 난 믿겠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아직도 진심어린 사죄를 하지 않은 가운데 세상을 떠나는 할머니들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9명 중 47명이 생존해 있는 걸로 안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자. 그까짓 것 ‘10억엔 합의’에도 체념하지 말자. 88세에 비하면 우린 얼마나 새파랗게 젊은가?

죽음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탄생이다. “죽은 후에, 손상된 것들을 고칠 기회를 제공받았다”는 존 버거의 메시지가 그러하듯. “그게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라고 했던….

<귀향>을 봤다면 이젠 <25년간의 수요일>을 기꺼이 사서 읽자. -인세가 전 세계 전시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나비기금에 기부된다- 그러고 난 다음 수요시위에 나가 할머니들의 손을 잡아 드리자.

폐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던 강덕경 할머니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내가 아프다고 이렇게 쓰러져 있으면 일본은 내가 포기한 줄 알 거야. 가야겠어”라고 말하며 함박웃음으로 달려갔던 곳.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위 공간. 평화와 희망이 나비처럼 날아드는 곳. 거기, 우리가 만나는 곳.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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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하게 지내던 사이도 아닌데, 사실은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데…, 문득문득 말을 건네고 싶은 친구가 있다. “잘 지내고 있죠? 어디서든 씩씩하게, 생각한 대로, 마음먹은 대로?”

그러다 문득 걱정이 되어 그의 최신 안부를 찾아 인터넷을 뒤적인다. ‘김예슬 선언, 그 이후’라고 검색어를 넣고 이것저것 클릭해서 읽다가 다음 문장을 발견하고는 비로소 안도의 미소를 짓는다.

“고려대 정문 앞에서 ‘대학 거부 선언’ 1인 시위를 벌였던 김예슬. 그는 현재 비영리 사회단체 ‘나눔문화’ 연구원의 길을 걷고 있다. <용기 있는 작은 돌멩이들의 외침, 김예슬 선언> 7쇄 인쇄 중.”

기쁜 일이다. 처음엔 너무도 뜨거웠지만 금방 잊혀질까 봐 걱정했더랬다. 나도 그 책을 읽었으니까.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선언 아래 담긴 스물다섯 살 여대생의 글들이 얼마나 칼날같이 예리하게 메아리치던지 한동안 가슴이 아픈 가운데 어디선가 둥둥둥 북소리가 들려왔다.

스스로 ‘친구들을 넘어뜨리고 제치며 기뻐하는 우수한 경주마’로 살았다고 고백한 그녀였다. 그랬을 거다. 이름하여 SKY에, 그것도 최고 인기학과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녀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그녀가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 구도 앞에서 ‘이제 아무리 스스로를 채찍질해도 가슴이 뛰지 않는다’며 기업을 위한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피 끓는 청춘답게 되바라진 용기를 봤나? 책 속에서만 본, 진정 젊은이다운 용기였다.

예컨대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교사 생활을 시작했으나 체벌이 일상화된 교육현장에 염증을 느끼고 곧바로 그만둔 젊은 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이야기…. 미국 정부가 흑인 노예제도와 영토 확장을 위해 멕시코 전쟁까지 일으켰다는 이유로 세금 내기를 거부했던 그가 아닌가? 그 때문에 감옥에 갔고 감옥에서 나와 <시민불복종> 선언을 썼던 그다.




난 김예슬 선언이 소로의 책처럼 우리 시대의 혁명적 고전이 되어 두고두고 읽히길 바랐다. 그래서 주머니 속에 쏙 들어가는 그 작은 책을 소중히 여겼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책을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되는 조카에게 보내는 선물 봉투에 편지와 함께 넣어 보냈다.

너무 빠른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조카 경서는 초등학교를 다닐 때 이미 자기만의 비전을 가지고 사업을 구상하여 그것을 실행에 옮긴 매우 신기한 아이가 아니던가? 처음엔 무슨 아이돌 밴드를 좀 과하게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초등학생이 팬 페이지를 만들어 관리하는가 싶더니, 나중에는 자신과 같은 또래 팬들이 주문하는 스티커 상품까지 만들어 팔았다. 그 일 때문에 초등학생이 새벽까지 코피를 쏟으며 철야 작업을 하고 심지어 동생에게 아르바이트를 시킨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웃었다. 그러자 바쁜 언니를 돕고 있는 그 여동생이 이렇게 말했다.

“고모, 웃지 마세요. 언니는 나름 심각해요. 처음엔 아빠 혼자 너무 고생하신다고 자기도 돈을 벌어서 보탬이 되겠다고 시작한 거예요. 근데 벌써 1년째 주문이 계속 밀려 있어서 이제는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가 없대요. 고객과의 약속 때문에….”

그랬던 아이다. 각종 상하수도 설비는 기본이고 전기 공사, 방수 공사, 겨울철 동파 해결, 막힌 변기 뚫기 등 집수리와 관련된 모든 것을 존경스러울 정도로 성심껏 다루는 아빠를 사랑해서 밤이면 그 아빠의 발을 닦아주던 아이. 생긴 건 또 얼마나 예쁜지 배우 고현정의 어린 시절을 연상케 한다. 그렇다고 공부를 못하는 아이도 아니다. 솔직히 대충 해도 잘한다. 그런데 그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얼마 전 이렇게 선언하더란다.

“나 대학 안 갈래. 그거 꼭 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 대학 가야 훌륭하고 안 간다고 안 훌륭해지는 거 아니잖아. 아빠도 대학 안 나왔지만 훌륭하잖아. 대학 갈 돈으로 일찍 내 사업을 할 수도 있는 거고. 그 돈으로 가족 여행을 할 수도 있는 거고.”

그리하여 지금 그 가족이 장인과 장모, 처제에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지금 제주도에 있다. 제주도에서 내가 쓴 편지와 김예슬의 책을 다 같이 돌려 읽으며 회의 중일 것이다. 대학에 안 가겠다는 딸의 선언을 벌써부터 지지하고 응원하는 철부지 고모의 편지와 책을 본인에게 과연 줘도 될지, 안 될지.

우리 엄마 말이 그렇다. “너는 대학 나왔기 때문에 결코 알 수 없는 게 있어. 대학으로 신분을 가르는 이 한국 사회에서는.” 맞는 말이다. 따라서 난 내 편지와 김예슬의 책이 조카에게 전달되지 않아도 결코 속상해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늘 응원할 듯하다. 자기 생각과 의지가 분명한 내 조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보호 아래서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떤 삶을 살든. 다만 김예슬과 그의 어린 후예들에게 전한다.

인간다운 삶의 빛을 스스로 구하고자 하는 당신은 이미 누구보다 강하다고. 처음에는 이런저런 그늘 아래 있겠지만, 그게 필수일 터이지만 결국 그 빛을 찾게 될 거라고. 당신을 당신만의 별로 인도하는 용기의 빛. 그러니 모두 힘을 내어 전진하자고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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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다닐 때 내 별명 중 하나는 ‘택배의 여왕’이었다. 마트 갈 시간이 없어 별의별 물건들을 다 인터넷으로 샀는데 집에서 택배 받을 사람이 없어서 주로 회사로 배달시켰다. 그런데 도시와 달리 엄청나게 한가한 시간에 놓인 공간으로 이사와서도 난 여전히 택배의 여왕으로 산다.

시골에는 없는 게 많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유리컵 몇 개, 혹은 쟁반 하나 사려고 원주까지 나가곤 했다. 왕복 두 시간 거리. 그 기름값이면 유리컵을 20개 더 사고도 남는다. 그래서 요즘은 뭐든지 다 인터넷으로 시킨다.

전경린 소설이었을 거다. 이웃의 쓰레기봉투를 뒤져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보를 캐내는 인물이 나왔던 소설인데, 그 소설집 제목이 <염소를 모는 여자>였던 걸로 기억한다. 매일매일의 영수증 일기 같은 걸 써서 그걸 책으로 묶어 낸 정신이라는 여자 작가도 있었다. 내가 산 물건이 나를 규정하고 내 삶의 공간을 구성하기 때문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 재밌다. 내가 주문한 택배 물건들을 배달해주면서 택배 아저씨들은 나를 어떤 여자라고 생각할까?

“여자들이 보통 옷이나 화장품 같은 걸 배달시키잖아요. 그런데 이 여자는 현무암 돌덩이 한 팰릿을 시키더니 얼마 전에는 거지 발싸개 같은 중고 마루를 시켰더라고. 도대체 뭐하는 여자인지….”(경동 택배 아저씨) “황토는 그렇다 쳐. 석고랑 석회, 아마인유 같은 건 도대체 어디에 쓰려고 주문하는 건지 알 수가 없죠.”(한진 택배 아저씨) “그 여자, 말도 마세요. 얼마 전에는 대패 삼겹살이랑 족발을 시켜 먹던 걸요. 좀 게으른 여자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CJ 택배 아저씨)

변명하자면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요즘은 라면, 쌀, 휴지, 세제 등 생필품들을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게 대세다. 대형 마트보다 싸고 선택의 폭이 넓을뿐더러 시간이 절약되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건축 자재처럼 덩치가 큰 물건은 물론 세탁기 거름망이나 똑딱단추처럼 작고 소소해서 어디서도 팔지 않는 걸 구입할 때도 인터넷만큼 요긴한 것은 없다. 심지어 고기나 야채처럼 신선도가 생명인 식품도 인터넷으로 구입하니 만족도가 의외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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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간에서 살다 보니 가장 아쉬운 게 싱싱한 바다 먹거리들이다. 혹시 그것도 인터넷으로 살 수 있을까? 살 수 있다. 신안군 군수님이 직접 나서서 육질이 탱탱한 최상급 완도 광어와 전복을 전국 어디든 택배로 보내주겠다고 광고하는 시대니까. 하지만 온갖 물건을 인터넷과 택배로 구입하는 내가 꼽는 베스트 아이템은 따로 있다. 중고 오디오 기기들. 예전 같으면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팔았을 것 같은 옛날 오디오 기기들을 오디오 애호가들의 사랑방 같은 온라인 장터에서 샀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막상 받고 보니 감동이 밀려든다. 그다지 고가도 아닌 것을 얼마나 꼼꼼하게 포장해서 보내주는지 목이 메인다. 가격에 대비해 얼마나 훌륭한 기기들을 보내주는지 소리를 들으며 감동한다. 음악을, 소리의 작은 차이를 중요시하는 오디오쟁이들의 그 섬세한 열정이 그대로 느껴진다고 할까?

하지만 진심으로 덧붙이건대 나는 사실 인터넷 쇼핑 못지않게 시골 5일장도 좋아한다. 5일장을 도는 장돌뱅이 상인들이 익숙한 솜씨로 좌판을 펼치고, 인근 마을에서 보퉁이를 이고 지고 찾아온 할머니들이 갓 캔 푸성귀들을 펼치며 하나둘씩 자리를 잡는 곳. 산 오징어가 수족관에서 탈출을 시도하고, 꿈틀대는 참문어가 즉석에서 삶아지기도 하는 곳. 그곳에 가면 늘 마음이 설렌다. 얼마나 좋은가? 사람 냄새 맡으며 북유럽 디자인이 아쉬울 것 없는 두툼한 덧버선을 4000원에 살 수 있고 들기름에 막 구워낸 김을 5000원에 3봉 살 수 있다는 게? 튀겨 먹고 구워 먹고 파스타에 넣어 먹기도 좋은 통통한 새우가 20마리에 1만원인 곳.

“지금까지 당신이 먹은 음식을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는 프랑스의 저명한 미식가가 있었다. 글쎄,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사랑하는 음악과 책, 그리고 구입하거나 만든 물건들로 채워진 삶의 공간을 보여주면 당신의 머리와 가슴 속을 그려볼 수 있다”고. 내가 만들고 있는 이 공간이 그런 곳이길 바란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화로운 공존 속에서 주인장이 애장하는 사물들의 가치가 구석구석 느껴지는 곳. 아는 사람만 아는 그 공간의 개봉박두 신호를 조심스럽게 보낸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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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내리던 눈이 그쳤다. 삽 말고는 별다른 제설 장비가 없으니 별수 있나? 우리 손으로 마을 입구까지 눈을 치운다. 그렇지 않으면 한 걸음에 갈 수 있는 삼거리 매점도 왕복 두 시간을 걸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며칠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이웃집에 마실 가다가 자동차가 빙판에서 돌았다. 잘못하면 전복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기일발의 상황. 긴급출동 구난서비스를 불렀다. 불러 놓고 이웃집에 가서 삽을 빌려다가 얼음을 퍼냈다. 1시간30분 동안이나 얼음을 퍼내어 밭두렁에 버렸다. 빙판 위에서라면 ‘구난차’가 아니라 ‘구난차 할아버지’가 와도 소용없을 테니까.

퍼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독일에서는 벚꽃이 피었고, 러시아와 북유럽에서는 눈과 얼음이 거의 녹아내렸다는데, 우리 동네 겨울은 왜 아직 추운 거지?” 물론 예년에 비하면 확실히 덜 춥다. 눈도 적게 내렸고.

슈퍼 엘니뇨 현상으로 알프스에도 눈이 없다고 들었다. 눈이 없어서 반팔 차림으로 잔디 스키를 탄다니…. 79년 만에 가장 따뜻한 겨울을 맞아 모스크바에 있는 자연 아이스링크도 문을 못 열었고 핀란드 헬싱키의 겨울도 영상이라니 참 별꼴이다. 폭설 대신 토네이도와 물난리를 겪고 있는 도시들 소식까지 보태지면 우리 동네에 내려진 ‘대설주의보’가 되레 반갑다.물론 강원도도 나름대로 이상고온 현상을 겪고 있다. 기상 관측 이래 평균적으로 가장 높은 기온 속에서 빙어축제, 고드름축제 등 강원도의 겨울축제들이 취소됐고 스키장도 눈 부족으로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도 비밀리에 비상 대책을 수립했다. 2018년 겨울을 위해 소치 때처럼 눈을 특수 단열재로 냉동시킨 후 재활용하는 ‘눈 저장 프로젝트’를 시행할 방침이라고. 걱정이다. 가뜩이나 돈이 없어 울상인 조직위가 눈 저장을 위한 추가 비용을 또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지금부터라도 집집마다 ‘금’을 모으듯 ‘눈’을 모아 김치냉장고에 보관했다가 평창올림픽조직위에 가져다 주어야 할까?


미 항공우주국(NASA)이 슈퍼 엘니뇨가 강타한 1997년 12월28일 지구와 올해 12월27일 위성으로 찍은 지구 모습_연합뉴스


프랑스 기상학자 다니엘 괴츠는 “앞으로 겨울철에 눈을 보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미래에는 눈 내린 슬로프를 제공하기가 힘들겠다”고 말했다. 스웨덴 기상청은 “눈이 오는 날 수가 금세기 말쯤에는 최소 40일, 최대 80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진짜 ‘눈’이 ‘금’이 되겠구나 싶다. 운이 좋아야 1년에 한두 번 눈 오는 풍경을 볼 수 있고, 운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눈을 모르고 산다고 생각하니 삭막하기 그지없다. 그런 우울한 미래를 생각하니 눈이 펑펑 내리다 못해 재난처럼 느껴지는 겨울 영화들이 문득 보고 싶다. 눈 덮인 평원이 한없이 펼쳐지는 <닥터 지바고>나 <러브 스토리> 같은 영화들. 유리 지바고와 그의 부인 토냐의 가족이 모스크바를 떠나 지방 영지로 향하는 겨울철 기차 여행은 전부 캐나다에서 찍은 걸로 안다. 그곳에는 아직 눈이 올까? 곱슬머리 남자와 털모자를 쓴 여자가 눈싸움하다가 눈을 막 퍼먹고는 웃음을 터뜨리는 <러브 스토리>의 로케이션 장소가 어디였더라? 뉴욕의 센트럴파크였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언감생심, 20도가 넘는 영상 기온 속에서 반팔 입고 다닌다는 뉴욕 말이다.

아니다. 쓰고 보니 왠지 진부하다. 그보다는 스웨덴판 <렛미인> 같은 영화가 좋겠다. <렛미인>은 내가 사랑한 거의 유일한 공포영화였다. 호러영화도 이토록 그림처럼 아름답고 또 한 편의 시처럼 서정적일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을 정도. 무엇보다 눈에 파묻힌 스웨덴의 겨울을 배경으로 한 영화 속의 고요와 침묵이 좋았다. 인공적인 요소를 가미하지 않은 아날로그적인 소리와 침묵을 통해 세상의 온갖 소음에 묻혀버린 미세한 소리를 끌어들이고자 했던 감독의 연출력이 너무도 예술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이제 스웨덴에서조차 <렛미인>에서 보았던 그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겨울 풍경을 볼 수 없게 됐다니 슬프다. 이제 눈이 내리면 ‘스밀라’처럼 느껴보리라. ‘눈이 내려앉은 하얀 들판’이 정말로 ‘어둠 속에서 육각형’을 이루는지 뚫어지게 봐야지. 마치 기적을 보듯.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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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런 토머스의 시를 사랑한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말라. 빛이 꺼져감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라”고 노래하는 시다.

밥 딜런이 자신의 예술적 아버지로 삼을 정도로 사랑했던 시인 딜런 토머스가 1951년, 임종을 앞둔 부친을 위해 썼던 시다. 시인이 처한 그 암담하고 절망적인 상황 때문일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의 꺼져감에 분노하라고 노래하는 격렬한 시정 때문일까?

나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에서 종종 자살하는 친구들 소식을 들어야만 하는 이 땅의 청춘들을 생각하다가 불현듯 그 시를 떠올렸다.

그렇다. 우리는 분노해야만 한다. 젊은 청년들에게 꿈과 미래를 빼앗고 생을 포기하게 만드는 이 나라의 암담한 현실에 대해서 분노해야만 한다.

물론 분노의 방식이 문제이다. 어떻게 분노할 것인가? 목표와 목적이 불분명한 분노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폭발하는 분노조절장애나 다름이 없다. 무고한 시민들을 향한 이슬람국가(IS)식 테러도 일종의 분노의 표출일 테니까.

나는 일단 책을 선택했다. ‘한국 자본주의 Ⅱ, 분배의 실패가 만든 한국의 불평등’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의 신작 <왜 분노해야 하는가>다.

장 교수는 먼저 ‘왜’에 방점을 찍는다. ‘재벌 100대 기업이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4%에 불과한 반면 중소기업은 무려 72%이다. 그런데 중소기업 임금은 대기업의 절반 수준이다. 1980년대 중소기업 임금이 대기업의 90%가 넘는 수준일 정도로 격차가 적었다. 그런데 지난 30년 동안 임금 격차가 점점 확대된 거다. 그뿐인가? 예전에는 비정규직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그런데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은 비정규직이라는 새로운 고용형태(일본과 한국에만 있는)를 만들어 낮은 임금을 지급할뿐더러 임의로 해고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한국은 고용을 창출하지 않는 초대기업이 순이익을 독차지하고 대다수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는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됐다.’ 그게 내가 읽은 ‘왜’의 핵심이다.



요즘 유행하는 ‘수저론’은 사실상 핵심을 흐리는 문제인 셈이다. 200년 이상 부를 축적한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지난 30년간의 소득 불평등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거다. 가진 게 별로 없어도 일한 만큼 제대로 분배된다면, 고작 질투심 때문에 자살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거다. 또한 장 교수는 불평등의 원인이 재산의 격차가 아니라 소득의 격차이므로 당연히 그 해법도 기존 논의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예컨대 복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애초부터 잘못 작동하고 있는 원천적 분배를 두고 사후에 교정하는 재분배만으로는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효과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맞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개봉한 노르웨이 영화 <사라짐의 순서: 지옥행 제설차>에서 듣고 한참을 웃은 대사가 생각난다.

“복지? 그런 건 노르웨이처럼 추운 나라에서 필요한 거고.” 우리나라처럼 애초부터 잘못 분배되고 있는 곳에서는 잘못된 걸 고치는 게 먼저인 거다.

좀 더 정확히 가계에 노동소득으로 분배되어야 할 몫을 재벌 대기업이 분배하지 않고 자기 곳간에 쌓아두고, 중소기업에 돌아가야 할 이익을 재벌 대기업이 차지하는 고용구조와 기업구조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복지 예산을 늘리는 재분배 확대만으로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말인가? 그게 이 책의 두 번째 방점이다. 재벌 대기업이 탐욕에 눈이 멀어 앞장서서 불평등한 나라를 만들었고 기성세대는 그걸 방치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건 없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 맡겨두면 이 세상은 더욱더 암담해질 것이다. 미안하지만 청년세대가 나서야 한다는 게 장 교수의 결론이다. 다행스럽게도 장 교수가 청년 세대에게 제안하는 실천적 방안은 매우 구체적이다.

예컨대 인턴이나 비정규직 제도, 알바 최저임금, 주거비, 학력 차별처럼 20대가 ‘잉여’가 되고 30대가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가 된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수많은 문제들을 제기하여 사회적 이슈로 만들고, 자기 세대의 이익을 대표하는 시민단체 혹은 조직적 연대와 함께 기업과 정당을 압박하여 불평등이 개선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것.

장 교수는 단언한다. 한국 정치가 아무리 혐오스러워도 결국은 정치라고. ‘청년세대가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 참여가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다. 그런 시시한 위안에 침을 뱉어야 한다. 기성세대의 잘못으로 빛이 꺼져감에 분노하고 또 분노해야 한다. 스스로 잘못된 세상을 고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청년들의 표를 얻고 싶은 정치인들을 적극 이용해야 한다. 그게 청춘이고 희망이라는 확신으로 장하성 교수의 책을 2권, 3권, 10권, 100권 사서 이 땅의 젊은이에게 강권하리라.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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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내가 사는 강원도 산간 지방에 올해 들어 첫눈이 왔다. 밖에 나가보니 온 세상이 하얗다. 그 모습을 보고 엄마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신다. “올 것이 왔구나. 큰일이다.”

눈이 오면 일이 많아지고 불편하다. 무엇보다 고립되지 않으려면 집집마다 필요한 만큼 알아서 척척 제설작업을 해야 한다. 그건 기본이다. 우리 집 같은 경우 설상가상으로 그 와중에 이사해야 한다. 옆구리 간격만큼 붙어 있는 헌 집에서 새집으로 옮겨 가는 이사라 일일이 우리 손으로 날라야 한다. 눈을 맞으며. 눈길 위를 종종걸음치며 책이며, LP며, 냄비며, 옷가지를 날라야 한다.

어라, 근데 이상하지 않나? 내 맘 속에 눈곱만큼도 걱정이 없다. 심지어 은근히 기대가 된다. 혹시 구들 때문인가? 역시나 구들 생각이 들자 돌연 마음이 훈훈해지고 그 어느 때보다 의기양양해지는 나를 느끼게 된다. 내가 뭘 믿고 그러는지 잘 아는 엄마가 말씀하신다.

“하기사 이제 누가 훔쳐 갈 수도 없는 저 엄청난 보석을 바닥에 깔고 살게 될 터인데 뭐가 걱정이냐? 그 방에 누워 있으니 세상만사 부러운 게 없더라. 머리는 시원하고 몸 안에는 뼛속 깊이 따뜻한 온기가 가득한 그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진짜 오리지널 토종 불 맛이지.”

미국 건축사의 가장 유명한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가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제국호텔 설계차 일본에 왔다가 부호 투자자 집에 마련된(사실상 경복궁에서 강탈해서 떼어다 놓은) 조선관에서 하룻밤 묶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온돌방은 푸근하다. 그 방에 들어가자 계절이 바뀌어 버렸다.” 그러면서 이렇게 격찬했다고 한다. “조선의 온돌이야말로 ‘마법의 방’이다.” 그리곤 그 마법을 미국에 돌아가 대중을 위한 주택설계에 적용했다. 조선의 온돌방에서 힌트를 얻어 뜨거운 물을 파이프로 흘려보내는 방식의 바닥 난방 시스템을 최초로 실현했던 인물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였다니, 놀랍고도 재밌다.

프랭크씨라고 해야 할지, 라이트씨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하튼 그 양반도 확실히 불 맛을 좀 알았던 게 틀림없다.


세계 최초의 온돌마루 열차 코레일 '서해금열차'_경향DB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12년 6월 왕이 경상감사에게 전지를 내려 이씨 형제가 수분할 때 생기는 병을 막기 위해 온돌에 기거하도록 하였다’고 전해진다. 민간에서도 아이를 낳고는 뜨끈한 아랫목에서 산후조리를 했다.

그러니까 구들은 왕가 사대부부터 민가를 아우르는 우리네 전통 난방 방식이자 질병 치료의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였다는 말이다.

지난봄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가 잠시 스승으로 모셨던 구들문화원 오홍식 원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구들은 두한족열의 가장 이상적인 건강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난방 시스템일뿐더러 돌과 황토에서 생체 세포에 활력을 주는 원적외선까지 나와서 그 방에 있으면 행복한 기분이 듭니다. 그냥 기분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실제로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과 엔도르핀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뿐만 아니다. 구들만큼 경제적인 난방시스템은 더 이상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축열과 방열을 오랜 시간 유지하는 구들은 전도, 복사, 대류열을 모두 쓸 수 있는 고효율 시스템이죠. 한 번 불을 때면 24시간 정도 난방이 되는 것은 기본이고 필요에 따라서 며칠씩 온기가 식지 않는 방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칠불사의 아짜방은 그 온기가 무려 100일이나 갔다고 하죠. 게다가 연료는 주변에 버려진 나무 자재들을 주워다가 때면 됩니다. 화목보일러는 5년, 태양열 시스템은 10년인데 구들은 반영구적이죠.”

‘내 손으로 만드는 황토구들방’ 수업을 들으며 여러 번 전율했다. 이렇게 이상적이고 훌륭한 난방시스템이 우리 고유의 것이라니…. 무엇보다 그 이상적인 적정 기술을 백성 모두가 평등하게 나누어 쓸 수 있다는 점에 감동했다.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유럽에서는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도 온돌을 몰라 벽난로에 장작을 때고 개나 고양이를 끼고 자야 할 정도로 춥게 지낸 반면 우리는 찢어지게 가난한 백성들도 온돌 덕에 추운 줄 모르고 지냈다는 거. 자랑스러운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전 인류가 함께 누릴 만한 지복인 거다. 한식의 세계화로 미는 떡볶이 따위가 아니라.

그동안 우리 부부는 무려 두 달 동안이나 침실과 거실을 구들방으로 만드는 일에 온갖 공을 들였다. 다행히 초보 솜씨임에도 불이 잘 들어가고 온기가 제법 오래 유지된다. 다만 아쉬운 건 함께 구들 수업을 들은 동기들과 품앗이하지 못했다는 거다. 온기는 삶의 본질이다. 구들방의 그 천국 같은 온기도 나누면 더 커진다. 구현하기 더 쉬울뿐더러.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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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위치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아파트먼트(L’appartement)라는 이름의 디자인 숍 앞을 지나가는 중이었고 그 쇼윈도에 눈길을 끄는 의자 두 개가 전시돼 있어 걸음을 멈추고 멍청히 안을 들여다보았다.

둘 다 제법 귀티가 나는 낡은 나무 의자인데 한 녀석은 방금 외과의사에게 다리 수술을 받은 듯 네온 그린 컬러의 플라스틱 다리를 가지고 있었고, 또 다른 녀석은 고장 난 엉덩이를 갈아치운 듯 역시 같은 소재의 새로운 엉덩이 받침대를 달고 있었다.

나는 형광색 플라스틱 보철물을 달고 있는 낡은 나무 의자가 뿜어내는 독특한 아우라에 이끌려 숍 안으로 들어갔다. 의자 다리에 붙은 꼬리표를 살펴보니 ‘5.5 designer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프랑스의 젊은 디자이너 그룹이 만든 재활용 상품으로 의자 가격은 210유로이고 높이 조절이 가능한 버팀목 다리만은 125유로라고 쓰여 있었다.

“진지하면서도 유머를 아는 아주 괜찮은 친구들이죠.” 그 특별한 아파트먼트를 지키는 젊은 관리인에게 패션지 기자 명함을 내밀자 그가 5.5에 대한 몇 가지 재미난 사실을 알려주었다.

“파리에 있는 ‘ENSAAMA’라는 아트 스쿨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다섯 명의 친구들이 서로 의기투합해서 만든 팀이라 이름을 ‘5.5’라고 지은 모양인데, 그중 한 명이 밴드 뮤지션이 되겠다며 탈퇴했다고 하더군요. 암튼 중요한 건 스스로 ‘사물들의 치료(medicine of objects)’라고 명명한 그들의 디자인 전략인데, 얼마 전에는 ‘병원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바르셀로나까지 왕진을 왔더랬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들은 의사고, 또 환자를 가리지 않는다나요(웃음). 그러니까 부서지거나 고장 난 어떤 사물이라도 좋으니 환자들을 모아달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몇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어떤 환자도 “세상 사람들아, 나 수술 받았어. 오늘 구멍 난 엉덩이를 새것으로 갈아치웠다고!”라고 광고할 것 같지 않은데 왜 갈색 나무에 여봐란듯이 튀는 컬러의 플라스틱 소재를 매치시킨 것일까?



“그들 말로는 그게 파리에서는 약국을 상징하는 색이며 소재라고 하더군요.” 좋다. 그건 그렇다 치고 싸디싼 플라스틱으로 만든 교체용 의자 다리 하나가 10만원이나 넘어야 하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 질문에 와타나베 준야의 것처럼 보이는 검은색 셔츠를 입은 아파트먼트 매니저는 당황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글쎄요.”

하기야 버려진 나뭇조각들을 모아 만든 피트 하인 이크(Piet Hein Eek)의 가구에 비하면 5.5는 비싼 축에도 못 낄 거다. 10여년 전 비록 책을 통해서였지만 피트 하인 이크의 가구를 처음 봤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먼저 그 가격에 놀랐고 그 다음에는 그 가치와 철학에 놀랐다.

원목 그대로의 자연 형태에 충실한 조지 나카시마 혹은 조지 나카시마 풍의 가구가 최고인 줄 알던 때였다. 그런데 쓸모없이 버려진 조각 목재로 이렇게 고급스럽고 아름다우며 또 매우 실용적인 가구를 만들 수 있다니. 게다가 닳고 색이 바랜 나뭇조각들의 이 오묘한 조화라니! 심지어 ‘흠 없이 완전한 것에 대한 갈망에 반대하는 작업’이라니. 그 의도와 철학까지 남다르게 훌륭하지 않은가? 뒤통수와 심장을 함께 두드리는 아주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그렇기에 피트 하인 이크라는 생소한 네덜란드 남자 이름을 기꺼이 외우고 싶었다.

나로서는 5.5와 피트 하인 이크를 통해서 배운 게 너무도 많다. 버려지는 건축물 잔해, 폐목재, 낡고 고장 난 가구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서 재탄생시키면 남부럽지 않은 게 되는 것. 또한 믿을 수 없이 비싼 조지 나카시마 가구나 스칸디나비아 가구보다, ‘좋은 눈으로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굿 디자인’의 정수라는 것을 배웠달까?

덕분에 요즘 디자인계의 최고 화두라는 ‘업사이클링(up-cycling)’이 내 삶의 일부가 됐다. 상품 가치가 없다고 버려진 배추로 해마다 김장을 하는데 할 때마다 놀란다. “어쩜 어쩜 버려진 배추가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작아서 그런가? 아님 못생겨서 그런가? 기형 배추가 더 맛있다는 걸 사람들은 알까?”

얼마 전에는 일명 ‘폐교 마루’라는 걸 깔았다. 30년, 40년 전에 초등학생들이 왁스질하며 윤을 냈을 것 같은 마루다. 설마 저런 걸 누가 돈 주고 살까 싶은 너무너무 낡아빠진, 일부는 썩고 너덜거리는 마루를 일부러 돈 주고 구해서 깔았다. 그런데 이렇게 흡족할 수가! 제 눈에 안경이겠지만, 내 눈에는 새것보다 더 고급스럽고 근사해 보인다.

요즘 유행하는 헤링본 마루가 부럽지 않다. 아니, 폐교 마루를 헤링본 스타일로 시공하면 더욱 근사할 것 같다. 내 스스로 발견하고 구현하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에 오늘도 내 가슴이 뛴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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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턴테이블이라고 할까? 아님 LP의 부활? 여하튼 LP 레코드와 턴테이블이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는 중이라고 하는데 얼마 전 ‘뉴욕타임스’조차 관련 기사를 낸 걸 보면 그게 전 세계적인 분위기인 듯.

국내에서는 정확히 아이유를 시작으로 에피톤프로젝트, 김동률, 버스커버스커, 인피니트, 혁오, 브라운아이드소울과 나얼 등 젊은 가수들이 제작한 한정판 LP 앨범이 발매되자 10대들까지 LP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덕분에 고가의 턴테이블 대신 LP 음악을 MP3 파일로 변환하는 기능까지 갖춘 휴대용 LP 플레이어 시장이 커졌고, 홍대와 강남, 이태원 등지의 LP바를 찾는 이들도 요즘 부쩍 많아졌다.

그 때문이겠지만 참 발 빠르다. 지난 5월 이태원에 뮤직라이브러리를 개관한 현대카드 말이다. 록,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LP 음반 1만여장을 보유한 채 방문객 누구나 직접 LP 음반을 턴테이블에 올려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꾸몄다고 하는데 역시 단박에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는 소식이다.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LP로 음악 듣는 재미에 대해서라면 나도 좀 안다. 무손실이든 고음질이든 여하튼 인터넷에 접속해서 쉽게 듣는 음악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다. LP판을 뒤적여 한 장 골라내고, 디스크를 꺼내 입으로 먼지를 후-우 불어 날린 후 살며시 트랙에 바늘을 내려놓는 재미. 턴테이블이 회전하고 아슬아슬하게 카트리지가 디스크 위를 스케이팅하면 아날로그 특유의 미세한 잡음과 함께 음악이 흘러나오는 거다. 바로 그 순간의 느낌. 뭐라 말할 수 없이 감동적인 그 느낌.


LK:강렬한 레드 컬러가 돋보이는 CD 플레이어 겸용 턴테이블_경향DB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음원사이트에 접속하면 스트리밍 서비스를 실시간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대에 LP로 음악 듣기란 얼마나 번거롭고 수고스러운가? 듣고 싶은 LP 한 장 골라내는 일조차 쉽지 않다. 게다가 그 한 장 한 장이 다 돈이다. 장르별로, 아티스트별로 잘 엄선된 고음질 음악 파일을 공짜로 수천곡씩 다운로드해 놓고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재생할 수 있는 시대에 LP도 턴테이블도 앰프도 스피커도, 심지어 바늘조차도 너무너무 돈이 많이 든다. 돈뿐 아니라 공간도, 시간도 많이 차지한다. 설사 돈이 많아도 마음의 여유는 물론 시간적 여유가 없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호사 취미. 예컨대 스티브 잡스에게나 어울리는 오만한 사치.

그렇다. 스티브 잡스는 디지털 선구자였지만 집에 돌아가면 LP판으로 음악을 듣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닐 영의 지적처럼 디지털로 구현되는 음악이 질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었다고 난 생각하지 않는다. 공짜로 공유할 수 있는 음악 파일 때문에 음악 산업이 무너졌지만 덕분에 돈 한 푼 없는 사람들도 수준 높은 음악을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게 됐다. 그런 점에서 음악이 돈 되는 산업에서 인류를 위한 축복으로 기꺼이 내려앉은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잡스는 뿌듯했을 거다. 하지만 아날로그적 소리의 질감, LP판 그 자체의 존재감, 그리고 판을 트는 수고롭지만 우아한 행위의 즐거움 때문에 본인은 집에서 LP를 틀었을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그나저나 소니가 1979년 처음 선을 보였던 워크맨처럼 걸으면서도 들을 수 있는 LP 플레이어가 곧 출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Rocket&Wink라는 디자인 그룹이 만들고 있는 ‘물건’이라 그런지 디자인이 출중하게 복고적이면서도 산뜻하다. 물론 존재감 큰 ‘물건’과 함께 걷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될지는 의문이지만….

그보다는 나는 플로팅 레코드(Floating Record)에 베팅하겠다. 일반 플레이어와 달리 LP판을 세로 방향으로 세워서 재생하는 턴테이블이어서 마치 레코드판이 공중부양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인테리어 효과가 굉장하다. 참고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통해 자금을 모으고 있는 중이라고 하니 관심 있는 분은 참여해 보실 것.

돌아온 LP 시대를 맞아 나도 모처럼 사고 싶은 것이 생겼다. 43년 만에 LP로 복각된 조용필의 진정한 데뷔 앨범. 1972년에 발표된 <스테레오 힛트 앨범>이라는 제목으로 무명 밴드에서 활동하다 막 데뷔한 스물두 살의 어리디 어린 조용필을 만날 수 있는 진귀한 앨범이다. LP로 재발매된 김현철 1집과 이소라 1집, 김광석 4집도 사고 싶다. 김광석 4집 LP는 희귀할뿐더러 찾는 사람도 많아서 50만원을 호가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 4만원이면 살 수 있게 됐다. 아, 좋구나. 돈은 좀 들겠지만…. 그렇다. LP엔 ‘음악을 통한 시간의 감촉’뿐만 아니라 고고한 ‘돈의 감촉’마저 담겨 있다는 사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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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7월 중 서울을 빠져나간 인구는 101만2000여명. 그 중 22만9010명이 경기와 인천으로 이동했고 그 나머지는 더 멀리 강원도나 충청도(특히 원주와 충주. 제2영동고속도로와 중부내륙철도로 서울과의 접근성이 한 시간 안으로 개선될 예정인 도시), 혹은 경상도나 전라도 등으로 이동한 모양이다. 덕분에 지방의 전원주택을 찾는 인구가 급증한 가운데 부동산 중개인들이 팔고 싶어도 팔 집이 없어서 ‘매물 찾아 삼만리’에 나섰다.

그 때문인지 택배 아저씨들이 ‘오지’라고 꺼리는 이 산동네까지 와서 굳이 명함을 주고 가는 업자들이 부쩍 많아졌다. “집 안 파세요?” “안 판다고 했잖아요. 지난해에도, 올봄에도 물으셨고 그때마다 안 판다고 했는데 굳이 다시 와서 묻는 이유가 있나요?” 따지는 게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그러자 부동산 중개인이 답했다. “그냥 와 봤어요. 찾는 사람은 많은데 매물이 하도 없어서…. 혹시라도 나중에 집을 파실 계획 있으면 연락 좀 주시라고요.” “네, 그럴게요.”

얼마 전에는 옆 동네에 사는 지인이 집 팔렸다는 소식과 함께 싱싱한 대하 한 보따리를 주며 자랑했다. “직거래라 어제 잔금 치르러 두 부부가 와서는 엄청난 양의 대하까지 선물로 주고 가더라. 중개수수료 없이 2억원에 팔았으니까 우리로서도 가격을 잘 받은 편이거든. 근데 그들한테도 그게 엄청 좋은 가격이었던 모양이야. 팔아줘서 고맙다며 생물 새우까지 사온 걸 보면….” 하기야 그새 너무 개발되긴 했지만 여하튼 자작나무숲 속에 지은 38평 신축 주택이고 심지어 마당과 밭으로 쓸 수 있는 땅이 무려 250평이나 딸려 있는 집이니 서울 살던 사람들은 좋아서 까무라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얼마 전 서울의 ‘미친 전셋값’이 이제 평균 3억원대로 올라섰다는 뉴스를 보고 얼마나 기겁했던가? 폭등한 전세금에 떠밀려 나온 ‘전세난민’도 안됐지만 더 저렴한 월세를 찾아 이동하는 ‘월세 유랑민’들은 더욱더 가련하다.

생각만으로도 앞이 깜깜하다. 도대체 은행 예금의 3배가 넘는 월세를 내고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심지어 그가 아직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한 20대의 비정규직 젊은이라면? 그런 이들에게 서울은 살길을 찾아 스스로를 방출해야만 하는 ‘팻 시티’(fat city·‘더할 수 없이 좋은 상태’라는 뜻과 달리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너무도 힘겨운 서민 루저들의 애환을 다룬 동명의 영화가 있다. 1972년 만들어진 존 휴스턴의 숨은 걸작으로 세대를 초월해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다.





그래서일까? 은퇴한 베이비부머와 40~50대 중장년층은 물론 대학을 갓 졸업한 20~30대 청년층의 상당수마저 일찌감치 귀촌에 뜻을 품고 탐색 중인 걸로 안다. 내가 만난 20대 중에는 ‘지상권’만 있는 저렴한 시골집만 알아본다는 이도 있었다. 심지어 아가씨였다. 남편은커녕 남자친구도 없는 젊은 처자 몸으로 할아버지 혹은 아저씨들 틈 사이에서 ‘내 손으로 짓는 황토구들방’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오너 셰프를 꿈꾸는 20대 후반의 잘생긴 훈남도 있었고, 결혼하면 신혼 생활을 시골집에서 시작하겠다는 젊은 커플도 있었다.

귀농·귀촌에 대한 막연한 로망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시골 생활은 그런 것이 아니다>라며 오싹할 정도로 마음껏 비웃어주는 마루야마 겐지 같은 작가도 있지만, (심지어 그의 말에 격하게 동감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여전히 ‘시골에 희망이 있다’고 믿고 있는 4년차 귀촌자다.

무엇보다 집값이 싸다. 요즘 무슨 새로운 트렌드라도 되는 양 귀촌 인구가 급속히 늘었다지만 시골엔 매매가 1억원도 안되는 살 만한 주택이 아직도 수두룩하다. 발품을 판다면 전세나 월세를 구할 수도 있다.

예컨대 마을 중심가에 위치해 있는, 방 두 개에 주방 딸린 가게가 보증금 500만원에 월 30만원이라니 정말 싸지 않나?

집값과 임대료가 쌀 뿐만 아니라 내가 보기에 시골은 할 일도 많은 곳이다. 물론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도시에서처럼 그저 남들 하는 대로 편안함을 추구하며 안일하게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시골은 별로 할 일 없고 벌어먹고 살 일은 더더욱 막막한 곳일 뿐이다.

하지만 “할 일이 왜 없어? 너무 많아서 탈이지” 하는 이들도 있다.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진취적으로 움직이며 때로는 혹독한 노동 속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의지가 강한 이들. 그런 이에게 시골은 발굴되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으로 꿈틀대는 일종의 보물섬이다.

세계적 투자가 짐 로저스도 지난해 서울대를 방문해 ‘지금이야말로 농업에 투자할 때’라고 했다. 시골은 그 어느 곳보다 그렇게 다르게 생각할 줄 아는 이들이 필요한 곳이다.

점점 더 심각해지는 식량 부족 시대에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스스로 재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활짝 열린 기회의 땅. 시골은 그런 곳이 아니며 또 그런 곳이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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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뉴스 페이지를 열면 우울한 얘기투성이다. 지하철 스크린도어가 삼킨 28살 청년 노동자 이야기며, 부자 동네 강남이 세금은 제일 안 낸다는 통계, ‘오류투성이 국정 교과서’ 소식. 거기에 홈플러스 인수전에 뛰어들어 논란이 된 국민연금이 지난해 가장 많이 투자한 주식 종목은 삼성전자라는 뉴스까지 읽으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가운데 순식간에 화가 솟구친다.

심지어 220억원을 들여 만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민족문화사전)에 친일부역자들이 독립운동가들로 둔갑해 있더라는 소식까지 더해지니 금방이라도 마음에 몹쓸 병이 날 것 같다. 그래, 그렇지. 그게 바로 ‘11년째 내내 자살률 1위’를 지킬 수 있는 나라 대한민국의 저력이라는 거지, 하며 남의 얘기인 듯 냉소하게 된다.

하지만 난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 그보다는 되레 ‘개 발바닥만 들여봐도 너무 좋아서 더럽게 오래 살고 싶다’고 했던 어느 노작가의 말을 곱씹으며 인생 구석구석을 가능하면 더 많이, 더 오래 음미하자는 주의다. 그 때문에 사실은 냉소랑도 별로 안 친하고 싶다. 우울증은 정신 건강에 나쁘고, 냉소는 두뇌 건강에 해롭다. 진짜다. 냉소적인 불신을 가진 사람은 치매에 걸릴 확률이 더 크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그러다 문득 오늘 점심엔 뭘 해 먹을까 생각한다. 오징어랑 양배추, 청량고추 팍팍 썰어 넣고 매콤하게 끓인 해물짬뽕이 어떨까? 아니면 통새우와 마늘을 넣은 올리브 오일 파스타? 아니다. 얼마 전 평창군 농업기술센터에 갔다가 어느 책자에서 봤던 비빔국수 생각이 난다. 정확히 복숭아 열무김치 비빔소면. 평소 자주 해 먹던 열무김치 비빔국수 조리법에 인근 농가에서 생산된 복숭아 두 개만 보태면 된다. 복숭아 하나는 강판에 갈아서 양념장에 넣어주고, 다른 하나는 채 썰어 열무국수와 같이 설렁설렁 무쳐주면 된다. 이마에 땀이 나도록 육체노동을 하다가 문득 그 생각을 하니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입 안에 침도 고이고.

<런치 박스>라는 제목의 인도 영화가 생각난다. 잘못 배달된 도시락에 얽힌 사랑 영화였는데 특별히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영화 <런치박스>_경향DB



콩나물시루처럼 사람들로 꽉꽉 들어찬 지옥철, 지옥버스를 타고 50년 가까운 세월을 아등바등 서서 출퇴근했다는 남자가 땅값이 올라서 묘지에 들어갈 관조차 세로로 맞추어야 한다며 푸념하는 대목이다. 죽어서도 앉거나 누울 수가 없는 거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오늘날 단테가 살고 있다면 <신곡>의 지옥편 개정판에 현대 대도시의 생활 양상을 집어넣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그릇의 음식이, 그리고 조그만 가능성을 품고 있는 한 조각의 사랑과 관심이 너나 할 것 없이 비참하고 비루한 우리의 일상을 보다 살 만한 것이 되도록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다는 거. 그게 바로 영화의 핵심이었던 것 같다.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도 생각난다. 물류 창고 같은 곳에서 일하는 모습으로 봐서 주인공 이치코는 도시에서 흔해 빠진 변변찮은 청춘이다. 그런 그녀가 눈이 내리면 고립되기 십상인 첩첩산중 고향 마을로 돌아가 살기 위해 요리도 하고 농사도 짓는 이야기다. 그것도 혼자서. 그런데 그 모습이 그렇게 예쁘고 씩씩할 수가 없다. 심지어 연신 군침이 도는 가운데 고귀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학창 시절 갑자기 사라져버린 엄마. 그때부터 줄곧 혼자 요리하고 혼자 먹었던 모양인데 스스로를 위해 제철 재료를 마련하고 천천히 시간과 공을 들여 요리라는 과정에서 건강하고 단단한 자기애가 느껴진다고 할까? 심지어 돈 없는 청춘이 제 손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역시 판타지인가, 싶기도 했고.

<여행하는 나무>라는 책을 쓴 일본의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가 그랬다. 우리 인류에게는 ‘오늘 아침 신문에 무엇이 실려 있었고, 나의 친구는 누구이며, 누구에게 빚이 있고, 또 누구에게 얼마의 돈을 빌려줬는가를 잊어버릴 수 있는 신성한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고 마음의 안식을 되찾을 수 있는 곳. 말하자면 마음의 고향 같은 곳 말이다.

모르겠다. 이 세상이 아무리 암담해 보여도 난 먹는 것 때문에도 자살하고 싶지 않다. 정확히 정성껏 요리해서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즐거움 때문에도 더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 특히 제철 식재료가 지천인 시골에서는 더욱 그렇다. 방금 전 수확이 끝난 이웃의 양배추밭에서 삶거나 튀겨 먹을 만한 새싹을 한 바구니 가득 따왔다. 그런가 하면 뒤뜰에는 해도 잘 안 드는 곳에 겨우 세 그루 심었을 뿐인데 얼마나 많은 꽈리 고추가 열렸는지 즐거운 비명이 흘러나올 정도다.

“이것 봐. 한 뼘 땅 뙈기가 완전 보물 창고라니까. 이렇게 많이 열렸다니. 이렇게 예쁘게 윤기 나는 꽈리 고추가! 오늘은 이걸로 뭘 해 먹을까?”


김경의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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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7년 전 일이다. 한 항공사 상무가 신인류로 떠오른 젯셋(jet-set)족에 대해 얘기하며 이런 말을 했다. “2~3년 전만 해도 ‘여행=여름휴가’였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1년 내내 여행 중입니다. 둘 중 하나인 겁니다. 여행하고 있거나 여행 준비를 하고 있거나.”

그때만 해도 나 역시 굳이 분류하자면 젯셋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원래는 1950년대 말 제트 비행기가 출현했을 때, 이걸 타고서 세계 각국을 유람 다니던 부유층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1년 내내 어느 때고 마음만 먹으면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사람으로서의 젯셋족으로. 여하튼 그때만 해도 누구나 젯셋족을 꿈꿀 수 있었고 세상은 그렇게 어이없을 정도로 낙관적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종종 젯셋족을 위한 ‘머스트 해브 아이템’ 같은 기사가 잡지나 신문에 실리는 걸 종종 본다. 그걸 보면 피식 웃음이 난다. “이제 좀 유행이 지났어. 그렇지 않아?”라고 조소하던 칼 라거펠트 생각도 나고.

어떤 인문학자가 ‘진정한 사치가 젯셋에서 트랙팩으로 바뀌는 건 시간문제’라고 했는데 진짜 그렇게 돼버렸다. 자연 속에서 잠시나마 인간답게 머물며 보다 소박하게 먹고 단순하게 자고 싶은 이들의 캠핑 트렌드가 무섭게 번지더니 이제는 그것조차도 번거롭고 피곤하고 식상해진 것일까? 순식간에 바뀌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휴식’이라는 인식 아래 금쪽 같은 여름휴가를 빈둥빈둥 집에서 보내겠다고 선포하는 ‘스테이케이션족’들의 숫자가…. 거의 과반수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2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 일대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_연합뉴스


‘스테이케이션’은 2015년 만들어진 신조어다. ‘머무르다’는 뜻의 ‘스테이(stay)’와 휴가를 뜻하는 ‘베케이션(vacation)’을 합성해서 만든 새로운 단어. 물론 새로 이름 지어졌다고 그 존재 자체가 새로운 건 아니다. 짧게는 집에서 바캉스를 즐기는 사람들, ‘홈캉스족’의 일원이었던 그들이고 더 멀리는 자기들만의 동굴 속에 머물며 자족하던 원시 인류의 후예인 그들이다.

젯셋족에서 원시 인류로 거슬러 올라가니 누군가는 이 사태를 불황이 가져온 우리의 불운이며 퇴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루소가 썼듯이 세계의 역사가 야만에서 출발해 도시 문명으로 진보해온 게 결코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소박하게 살기는 했지만 우리의 요구가 매우 정확하고 단순했던 원시시대의 자연인 상태로부터 우리 영혼이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이 시대의 풍요로운 생활방식들에 선망을 느끼는 상태로 퇴보해온 것인지도 모른다.

선사인들은 여행이나 쇼핑에 대한 욕구를 느끼지 않았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몰랐고 신문이나 책을 읽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쉽게 파악하고 또 자족했을 거라고 루소는 추측하고, 나는 무릎을 친다.

생각해 보면 나 자신의 정직한 고백이 그렇다. 그렇게 많은 곳을 여행했고, 그렇게 많은 친구들이 있었으며, 그렇게 많은 물건을 사들였는데 그 때문에 행복하다고 느낀 건 아주 잠깐뿐이었다. 특히 여행이라면 남부럽지 않을 만큼 했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면 더 행복할 것 같았기에, 과연 그런지 내 몸으로 경험해 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비용을 치르고 나서야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고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파스칼의 이 경구가 부적처럼 나부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신의 방 안에서 조용히 혼자 있을 수 없다는 한 가지 사실에서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축하받아 마땅하다. 이제 우리 모두 여행이라는 망령에서 벗어나 자기 집에서 비로소 온전하게 쉴 수 있게 됐다는 사실 말이다. 젊은 직장인들 중심이긴 하지만 이제 그 절반이 휴가를 집에서 조용하게, 그것도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니 얼마나 고무적인가? 아무나 자주 할 수 없는 여행 관광객으로서 허겁지겁 세상을 헤매는 대신, 내 집에 앉아 내가 가진 것들을 음미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휴식이고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아는 최고의 휴식은 아무 걱정 없이 자는 거다. 시체놀이 하듯 자는 거다. 그동안 유능하고 쓸모있는 인간 행세를 하느라 몸과 마음이 그토록 지쳤으니 최대한 무능하고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보는 시간, 그게 휴식이다. 그렇게 자다 자다 지치면 배를 채우고 책을 좀 읽거나 산보를 하다가 밤이 되면 영화를 틀어놓고 또 자는 거다. 물론 그래도 괜찮다.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당신 자신밖에 없다는 에머슨의 말을 기억하자.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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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일이다. 아파트 임대료조차 내기 힘들었던 30대 남자가 자기 집 아파트 거실에 에어베드 3개를 깔고 숙박객들에게 잠자리와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민박사업을 시작했다. 그 수입이 제법 쏠쏠했던 모양이다. 마음 맞는 파트너들과 함께 아예 회사를 차렸다. 숙박업에 공유경제를 결합시킨 회사 에어비앤비. 2008년 창업 초기에는 1억5000만원이 없어서 7번이나 투자 유치에 실패했던 회사가 지금은 투자자들로부터 무려 200억달러(약 22조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는 공룡 기업으로 성장했다. 메리어트와 하얏트를 제치고 1위인 힐튼을 위협하는 공룡.

하기사 시골에 사는 나 같은 여자도 여행 욕구가 슬며시 고개를 쳐들면 에어비앤비에 들어가 개인 숙박 시설부터 찾아보게 됐다. 호텔과 달리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민박집에는 저마다 다른 집주인들의 취향과 개성, 그리고 지역색을 품은 특유의 어떤 정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위한 여행이 아니고, 여행이 진실로 시야를 넓히고 공감대를 확대하며 쳇바퀴 도는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면 그건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때문이지 장소 때문은 아닐 거다. 세계 어느 나라에 가나 똑같은 범세계적인 호텔에 머물면서 자기 나라에서 알고 지냈던 동료 여행객들과 어울리는 여행의 효과는 아닐 거라는 얘기다. 그 때문에 에어비앤비가 대세가 된 거고.

여하튼 그 덕분에 별이 몇 개가 됐든 기존의 호텔이나 호스텔은 이제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에어비앤비가 연결해주는 개인 민박집의 위력이 얼마나 기세등등한지 전 세계 호텔들이 엄청난 위기감 속에서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형편이다.

예컨대 요즘 유럽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포시텔’도 그런 위기감 속에서 탄생된 새로운 여행 트렌드가 아닐까 싶다. 일반 호스텔보다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숙박환경을 제공하되 가격은 호텔보다 저렴한 게 특징이어서, ‘우아한’ 혹은 ‘상류층’이라는 의미를 지닌 ‘포시(Posh)’와 ‘호스텔(Hostel)’을 합쳐 ‘포시텔(Poshtel)’이라고 불린다는 곳 말이다. 부티크 호텔 못지않은 디자인 감각을 자랑하는 객실에 조식은 물론 석식까지 제공하는 레스토랑이 있는가 하면 공동 주방과 서재,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한다는데 숙박료는 일반 호스텔보다 약간 더 비싼 수준이란다. 심지어 현지의 가정과 제휴해 가정집에서의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서비스까지 갖춘 곳도 있고.

하지만 표준화된 호텔이면 어떻고 싸구려 호스텔이면 어떤가? 그것도 나쁘지 않다. 여행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건 여하튼 좋은 일이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과 누군가 켜놓은 텔레비전 소리,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 수시로 ‘까톡’거리는 카톡이며 문자메시지, 페이스북, 트위터의 알림 소리. 무엇보다 우리가 쉬는 걸 절대 못 봐주겠다는 듯 수시로 달려드는 주변의 요구들! 그리고 그 많은 온갖 걱정거리들. 그렇게 우리의 정신과 신경을 갉아먹는 것들을 피해서 잠시나마 도망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기에 굳이 피곤하게도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게 아닌가?

물론 요즘 들어 여행할 여유가 통 없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도 위안은 있다. 여행만 갈 수 있다면, 낯선 도시의 안락한 호텔에 머물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소망하지만 알랭 드 보통이 썼듯, ‘어떤 장소에 대하여 느끼는 행복’은 사실상 매우 짧다. 중요한 건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는 얘기다.


준비 없이 걷기 서대문구 안산자락길_경향DB



여행할 수 없지만 걸을 수는 있다. 걷는 건 여행하는 것 못지않게 좋은 일이다. 특히나 마음이 괴로울 때나 울적할 때 혹은 스트레스가 목젖까지 차오를 때 하염없이 걸으면 신기하게도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이 문득 어디론가 사라지거나 매우 가볍게 느껴진다. 심지어 콧노래까지 나온다. 집이든 사무실이든 답답한 공간을 벗어나 걷다 보면 또 다른 시각, 후각, 청각들을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 그래서 임상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들이 우울증 환자들에게 가만히 있지 말고 무조건 몸을 움직이라고 충고하는 모양이다. 게다가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노라면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아주 멋진 아이디어가 불쑥 튀어나온다. 가장 신선하고 멋진 착상은 혹시 머리가 아니라 움직이는 동안 내 발바닥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과장이 아니라, 주로 걸으면서 가장 좋은 사색의 결과를 얻었다는 철학자 루소도 이런 말을 했다. “내 머리는 내 다리와 함께 움직인다.”

그 때문에 이렇게 장담해 본다. 에어비앤비를 탄생시킨 브라이언 체스키는 7년 전 아파트 임대료를 걱정하는 처지라 감히 여행할 수 없었다고. 그 갈증과 앞날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내고자 하염없이 걸었을 거라고. 그러다 불쑥 아이디어가 발바닥에 솟구쳤다고.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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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예전에 ‘나도 샌프란시스코 시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여름 내내 일요일 오후면 ‘스턴그로브 음악 축제’에 갈 수 있는 샌프란시스코 시민 말이다. 그들처럼 초여름 저녁 나무 그늘 풀밭에 모포를 깔고 싶었다.

파란 하늘 아래 비스듬히 누워서 라이브로 연주되는 바흐나 모차르트, 혹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듣는 거다. 100여년 전에 심어진 유칼립투스와 레드우드가 빽빽이 들어선 숲속 한복판에서 울려퍼지는 천상의 소리들.

그러나 시민들에게 무상으로 공급되는…. 손에 맥주나 와인이 들려 있다면 더 좋겠지? 음악을 들으며 아예 잠들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려면 모포보다는 텐트가 낫지 않나?… 해봐야 소용없지만 그냥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한여름 밤의 음악 축제.

아, 그런데 이게 무슨 행운이란 말인가? 이번 주말, 우리 동네에서 클래식 음악 축제가 열린다. 알려지지 않은 작은 시골 마을에 전교생 모두 오케스트라 단원인 초등학교가 있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데, 그 학교 앞마당에서 클래식 축제가 펼쳐진다니….

현대차 정몽구재단이 주최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학협력단이 주관하는 ‘예술세상 마을프로젝트’의 주요 프로그램인 계촌 클래식 축제. 더구나 정명화가 함께하는 축제다.




연극배우 출신의 계촌 이장님이 말씀하셨다. “정명화가 얼마나 대단한 첼리스트입니까. 그분이 그냥 참여 정도가 아니라 한예종 음악원 출신의 연주자들이랑 함께 아이들을 가르쳤다니까요.”

계촌초등학교 전교생으로 구성된 별빛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좋겠다. 올해뿐 아니라 앞으로 3년간, 어쩌면 더 길게 그 쟁쟁한 선배 연주자들에게 매주 1회씩 지도를 받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무대에도 설 예정이라니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그 파랗게 예쁜 친구들이 이번 축제에서는 어떤 곡을 연주할까? 지난해 ‘한여름 밤의 음악회’에서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헝가리안 무곡 5번’ ‘윌리엄 텔 서곡’ 등을 들려줬던 그들이다. 계촌을 상징하는 음악 ‘송어’나 별빛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자주 연주하는 곡 ‘위풍당당 행진곡’은 어떨까?

얼마 전 학교 담장 너머에서 들려오던 곡이 뭐였더라? 제목은 잘 모르겠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왈츠곡 같았다. 아담한 시골 정경 속에서 춤추듯 울려퍼지는 음표들이 굉장히 예뻐서 어쩐지 목이 메는 느낌이었다. 혹시 그 곡을 다시 듣게 될까?

시골에는 없는 게 너무 많다. 책방이나 도서관, 미술관이 없는 것은 물론 카페나 베이커리, PC방조차 없다. 영화 한 편 보기 위해 극장에 가려면 자동차로 왕복 2시간을 달려야 한다. 문화적 결핍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공백 상태에 가까울지도 모르는 예술 황무지.

하지만 결핍이나 공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누군가’가 있다. 그 ‘누군가(계촌초등학교 같은 경우 강릉시교향악단 창단 멤버로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권오이 교장과 원주리코더교육연구회 회장이었던 이경우 교사)’에 의해 시골 학교 학생들이 처음으로 악기를 배우고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고 클래식 공연의 주역이 된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 ‘결핍’에서 되레 ‘꿈’과 ‘낭만’을 발견하고 ‘부재’에서 새로운 문화적 에너지를 만들어낸 내 이웃의 누군가들. 그들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기쁜 소식을 전한다.

7월10일부터 12일까지 평창군 방림면 ‘계수나무마을’ 계촌에서 클래식 축제가 열린다. 시골 축제치고는 라인업이 굉장하다. 한국 클래식계의 새로운 바이올린 여제 신지아, ‘젊은 거장’의 대열에 들어선 실력파 피아니스트 김태형, 각종 국제콩쿠르를 휩쓴 ‘첼로 영재’ 여윤수를 비롯해 세종문화회관 세종유스오케스트라, 서울심포니브라스, 강릉소년소녀합창단 등이 계촌 별빛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오른다.

참고로 여건상 마을에 오기 힘든 클래식 마니아들을 위해 마을 현지와 서울을 연결해 공연 실황을 온라인 중계한다는 소식도 전한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유행에 집착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지만 정작 우리에게 살아가는 힘을 주는 음악이나 풍경은 매우 영속적이고 고전적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 런 점에서 시골 마을과 클래식 음악은 아주 잘 어울린다. 밭 갈던 농부와 그의 아내, 인근 펜션에 놀러 온 도시인 가족이 함께 어울려 음악의 환희에 마음을 열 수 있는 축제의 날. 그날을 위해 난 모처럼 원피스를 꺼내 입으려고 한다.

첼로 소리와 함께 초여름 저녁 어스름이 밀려올 때 가방 속에 숨겨 온 와인이나 맥주를 홀짝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클래식을 듣고 자란 우리 개들을 데려가면 혹시 동네 사람들이 욕할까? 뭐 어떤가? 축제일인데…. 도시의 대형 콘서트홀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소박한 환희가 그곳에 있으리라.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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