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턴테이블이라고 할까? 아님 LP의 부활? 여하튼 LP 레코드와 턴테이블이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는 중이라고 하는데 얼마 전 ‘뉴욕타임스’조차 관련 기사를 낸 걸 보면 그게 전 세계적인 분위기인 듯.

국내에서는 정확히 아이유를 시작으로 에피톤프로젝트, 김동률, 버스커버스커, 인피니트, 혁오, 브라운아이드소울과 나얼 등 젊은 가수들이 제작한 한정판 LP 앨범이 발매되자 10대들까지 LP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덕분에 고가의 턴테이블 대신 LP 음악을 MP3 파일로 변환하는 기능까지 갖춘 휴대용 LP 플레이어 시장이 커졌고, 홍대와 강남, 이태원 등지의 LP바를 찾는 이들도 요즘 부쩍 많아졌다.

그 때문이겠지만 참 발 빠르다. 지난 5월 이태원에 뮤직라이브러리를 개관한 현대카드 말이다. 록,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LP 음반 1만여장을 보유한 채 방문객 누구나 직접 LP 음반을 턴테이블에 올려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꾸몄다고 하는데 역시 단박에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는 소식이다.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LP로 음악 듣는 재미에 대해서라면 나도 좀 안다. 무손실이든 고음질이든 여하튼 인터넷에 접속해서 쉽게 듣는 음악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다. LP판을 뒤적여 한 장 골라내고, 디스크를 꺼내 입으로 먼지를 후-우 불어 날린 후 살며시 트랙에 바늘을 내려놓는 재미. 턴테이블이 회전하고 아슬아슬하게 카트리지가 디스크 위를 스케이팅하면 아날로그 특유의 미세한 잡음과 함께 음악이 흘러나오는 거다. 바로 그 순간의 느낌. 뭐라 말할 수 없이 감동적인 그 느낌.


LK:강렬한 레드 컬러가 돋보이는 CD 플레이어 겸용 턴테이블_경향DB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음원사이트에 접속하면 스트리밍 서비스를 실시간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대에 LP로 음악 듣기란 얼마나 번거롭고 수고스러운가? 듣고 싶은 LP 한 장 골라내는 일조차 쉽지 않다. 게다가 그 한 장 한 장이 다 돈이다. 장르별로, 아티스트별로 잘 엄선된 고음질 음악 파일을 공짜로 수천곡씩 다운로드해 놓고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재생할 수 있는 시대에 LP도 턴테이블도 앰프도 스피커도, 심지어 바늘조차도 너무너무 돈이 많이 든다. 돈뿐 아니라 공간도, 시간도 많이 차지한다. 설사 돈이 많아도 마음의 여유는 물론 시간적 여유가 없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호사 취미. 예컨대 스티브 잡스에게나 어울리는 오만한 사치.

그렇다. 스티브 잡스는 디지털 선구자였지만 집에 돌아가면 LP판으로 음악을 듣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닐 영의 지적처럼 디지털로 구현되는 음악이 질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었다고 난 생각하지 않는다. 공짜로 공유할 수 있는 음악 파일 때문에 음악 산업이 무너졌지만 덕분에 돈 한 푼 없는 사람들도 수준 높은 음악을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게 됐다. 그런 점에서 음악이 돈 되는 산업에서 인류를 위한 축복으로 기꺼이 내려앉은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잡스는 뿌듯했을 거다. 하지만 아날로그적 소리의 질감, LP판 그 자체의 존재감, 그리고 판을 트는 수고롭지만 우아한 행위의 즐거움 때문에 본인은 집에서 LP를 틀었을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그나저나 소니가 1979년 처음 선을 보였던 워크맨처럼 걸으면서도 들을 수 있는 LP 플레이어가 곧 출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Rocket&Wink라는 디자인 그룹이 만들고 있는 ‘물건’이라 그런지 디자인이 출중하게 복고적이면서도 산뜻하다. 물론 존재감 큰 ‘물건’과 함께 걷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될지는 의문이지만….

그보다는 나는 플로팅 레코드(Floating Record)에 베팅하겠다. 일반 플레이어와 달리 LP판을 세로 방향으로 세워서 재생하는 턴테이블이어서 마치 레코드판이 공중부양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인테리어 효과가 굉장하다. 참고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통해 자금을 모으고 있는 중이라고 하니 관심 있는 분은 참여해 보실 것.

돌아온 LP 시대를 맞아 나도 모처럼 사고 싶은 것이 생겼다. 43년 만에 LP로 복각된 조용필의 진정한 데뷔 앨범. 1972년에 발표된 <스테레오 힛트 앨범>이라는 제목으로 무명 밴드에서 활동하다 막 데뷔한 스물두 살의 어리디 어린 조용필을 만날 수 있는 진귀한 앨범이다. LP로 재발매된 김현철 1집과 이소라 1집, 김광석 4집도 사고 싶다. 김광석 4집 LP는 희귀할뿐더러 찾는 사람도 많아서 50만원을 호가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 4만원이면 살 수 있게 됐다. 아, 좋구나. 돈은 좀 들겠지만…. 그렇다. LP엔 ‘음악을 통한 시간의 감촉’뿐만 아니라 고고한 ‘돈의 감촉’마저 담겨 있다는 사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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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7월 중 서울을 빠져나간 인구는 101만2000여명. 그 중 22만9010명이 경기와 인천으로 이동했고 그 나머지는 더 멀리 강원도나 충청도(특히 원주와 충주. 제2영동고속도로와 중부내륙철도로 서울과의 접근성이 한 시간 안으로 개선될 예정인 도시), 혹은 경상도나 전라도 등으로 이동한 모양이다. 덕분에 지방의 전원주택을 찾는 인구가 급증한 가운데 부동산 중개인들이 팔고 싶어도 팔 집이 없어서 ‘매물 찾아 삼만리’에 나섰다.

그 때문인지 택배 아저씨들이 ‘오지’라고 꺼리는 이 산동네까지 와서 굳이 명함을 주고 가는 업자들이 부쩍 많아졌다. “집 안 파세요?” “안 판다고 했잖아요. 지난해에도, 올봄에도 물으셨고 그때마다 안 판다고 했는데 굳이 다시 와서 묻는 이유가 있나요?” 따지는 게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그러자 부동산 중개인이 답했다. “그냥 와 봤어요. 찾는 사람은 많은데 매물이 하도 없어서…. 혹시라도 나중에 집을 파실 계획 있으면 연락 좀 주시라고요.” “네, 그럴게요.”

얼마 전에는 옆 동네에 사는 지인이 집 팔렸다는 소식과 함께 싱싱한 대하 한 보따리를 주며 자랑했다. “직거래라 어제 잔금 치르러 두 부부가 와서는 엄청난 양의 대하까지 선물로 주고 가더라. 중개수수료 없이 2억원에 팔았으니까 우리로서도 가격을 잘 받은 편이거든. 근데 그들한테도 그게 엄청 좋은 가격이었던 모양이야. 팔아줘서 고맙다며 생물 새우까지 사온 걸 보면….” 하기야 그새 너무 개발되긴 했지만 여하튼 자작나무숲 속에 지은 38평 신축 주택이고 심지어 마당과 밭으로 쓸 수 있는 땅이 무려 250평이나 딸려 있는 집이니 서울 살던 사람들은 좋아서 까무라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얼마 전 서울의 ‘미친 전셋값’이 이제 평균 3억원대로 올라섰다는 뉴스를 보고 얼마나 기겁했던가? 폭등한 전세금에 떠밀려 나온 ‘전세난민’도 안됐지만 더 저렴한 월세를 찾아 이동하는 ‘월세 유랑민’들은 더욱더 가련하다.

생각만으로도 앞이 깜깜하다. 도대체 은행 예금의 3배가 넘는 월세를 내고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심지어 그가 아직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한 20대의 비정규직 젊은이라면? 그런 이들에게 서울은 살길을 찾아 스스로를 방출해야만 하는 ‘팻 시티’(fat city·‘더할 수 없이 좋은 상태’라는 뜻과 달리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너무도 힘겨운 서민 루저들의 애환을 다룬 동명의 영화가 있다. 1972년 만들어진 존 휴스턴의 숨은 걸작으로 세대를 초월해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다.





그래서일까? 은퇴한 베이비부머와 40~50대 중장년층은 물론 대학을 갓 졸업한 20~30대 청년층의 상당수마저 일찌감치 귀촌에 뜻을 품고 탐색 중인 걸로 안다. 내가 만난 20대 중에는 ‘지상권’만 있는 저렴한 시골집만 알아본다는 이도 있었다. 심지어 아가씨였다. 남편은커녕 남자친구도 없는 젊은 처자 몸으로 할아버지 혹은 아저씨들 틈 사이에서 ‘내 손으로 짓는 황토구들방’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오너 셰프를 꿈꾸는 20대 후반의 잘생긴 훈남도 있었고, 결혼하면 신혼 생활을 시골집에서 시작하겠다는 젊은 커플도 있었다.

귀농·귀촌에 대한 막연한 로망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시골 생활은 그런 것이 아니다>라며 오싹할 정도로 마음껏 비웃어주는 마루야마 겐지 같은 작가도 있지만, (심지어 그의 말에 격하게 동감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여전히 ‘시골에 희망이 있다’고 믿고 있는 4년차 귀촌자다.

무엇보다 집값이 싸다. 요즘 무슨 새로운 트렌드라도 되는 양 귀촌 인구가 급속히 늘었다지만 시골엔 매매가 1억원도 안되는 살 만한 주택이 아직도 수두룩하다. 발품을 판다면 전세나 월세를 구할 수도 있다.

예컨대 마을 중심가에 위치해 있는, 방 두 개에 주방 딸린 가게가 보증금 500만원에 월 30만원이라니 정말 싸지 않나?

집값과 임대료가 쌀 뿐만 아니라 내가 보기에 시골은 할 일도 많은 곳이다. 물론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도시에서처럼 그저 남들 하는 대로 편안함을 추구하며 안일하게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시골은 별로 할 일 없고 벌어먹고 살 일은 더더욱 막막한 곳일 뿐이다.

하지만 “할 일이 왜 없어? 너무 많아서 탈이지” 하는 이들도 있다.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진취적으로 움직이며 때로는 혹독한 노동 속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의지가 강한 이들. 그런 이에게 시골은 발굴되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으로 꿈틀대는 일종의 보물섬이다.

세계적 투자가 짐 로저스도 지난해 서울대를 방문해 ‘지금이야말로 농업에 투자할 때’라고 했다. 시골은 그 어느 곳보다 그렇게 다르게 생각할 줄 아는 이들이 필요한 곳이다.

점점 더 심각해지는 식량 부족 시대에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스스로 재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활짝 열린 기회의 땅. 시골은 그런 곳이 아니며 또 그런 곳이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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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뉴스 페이지를 열면 우울한 얘기투성이다. 지하철 스크린도어가 삼킨 28살 청년 노동자 이야기며, 부자 동네 강남이 세금은 제일 안 낸다는 통계, ‘오류투성이 국정 교과서’ 소식. 거기에 홈플러스 인수전에 뛰어들어 논란이 된 국민연금이 지난해 가장 많이 투자한 주식 종목은 삼성전자라는 뉴스까지 읽으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가운데 순식간에 화가 솟구친다.

심지어 220억원을 들여 만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민족문화사전)에 친일부역자들이 독립운동가들로 둔갑해 있더라는 소식까지 더해지니 금방이라도 마음에 몹쓸 병이 날 것 같다. 그래, 그렇지. 그게 바로 ‘11년째 내내 자살률 1위’를 지킬 수 있는 나라 대한민국의 저력이라는 거지, 하며 남의 얘기인 듯 냉소하게 된다.

하지만 난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 그보다는 되레 ‘개 발바닥만 들여봐도 너무 좋아서 더럽게 오래 살고 싶다’고 했던 어느 노작가의 말을 곱씹으며 인생 구석구석을 가능하면 더 많이, 더 오래 음미하자는 주의다. 그 때문에 사실은 냉소랑도 별로 안 친하고 싶다. 우울증은 정신 건강에 나쁘고, 냉소는 두뇌 건강에 해롭다. 진짜다. 냉소적인 불신을 가진 사람은 치매에 걸릴 확률이 더 크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그러다 문득 오늘 점심엔 뭘 해 먹을까 생각한다. 오징어랑 양배추, 청량고추 팍팍 썰어 넣고 매콤하게 끓인 해물짬뽕이 어떨까? 아니면 통새우와 마늘을 넣은 올리브 오일 파스타? 아니다. 얼마 전 평창군 농업기술센터에 갔다가 어느 책자에서 봤던 비빔국수 생각이 난다. 정확히 복숭아 열무김치 비빔소면. 평소 자주 해 먹던 열무김치 비빔국수 조리법에 인근 농가에서 생산된 복숭아 두 개만 보태면 된다. 복숭아 하나는 강판에 갈아서 양념장에 넣어주고, 다른 하나는 채 썰어 열무국수와 같이 설렁설렁 무쳐주면 된다. 이마에 땀이 나도록 육체노동을 하다가 문득 그 생각을 하니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입 안에 침도 고이고.

<런치 박스>라는 제목의 인도 영화가 생각난다. 잘못 배달된 도시락에 얽힌 사랑 영화였는데 특별히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영화 <런치박스>_경향DB



콩나물시루처럼 사람들로 꽉꽉 들어찬 지옥철, 지옥버스를 타고 50년 가까운 세월을 아등바등 서서 출퇴근했다는 남자가 땅값이 올라서 묘지에 들어갈 관조차 세로로 맞추어야 한다며 푸념하는 대목이다. 죽어서도 앉거나 누울 수가 없는 거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오늘날 단테가 살고 있다면 <신곡>의 지옥편 개정판에 현대 대도시의 생활 양상을 집어넣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그릇의 음식이, 그리고 조그만 가능성을 품고 있는 한 조각의 사랑과 관심이 너나 할 것 없이 비참하고 비루한 우리의 일상을 보다 살 만한 것이 되도록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다는 거. 그게 바로 영화의 핵심이었던 것 같다.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도 생각난다. 물류 창고 같은 곳에서 일하는 모습으로 봐서 주인공 이치코는 도시에서 흔해 빠진 변변찮은 청춘이다. 그런 그녀가 눈이 내리면 고립되기 십상인 첩첩산중 고향 마을로 돌아가 살기 위해 요리도 하고 농사도 짓는 이야기다. 그것도 혼자서. 그런데 그 모습이 그렇게 예쁘고 씩씩할 수가 없다. 심지어 연신 군침이 도는 가운데 고귀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학창 시절 갑자기 사라져버린 엄마. 그때부터 줄곧 혼자 요리하고 혼자 먹었던 모양인데 스스로를 위해 제철 재료를 마련하고 천천히 시간과 공을 들여 요리라는 과정에서 건강하고 단단한 자기애가 느껴진다고 할까? 심지어 돈 없는 청춘이 제 손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역시 판타지인가, 싶기도 했고.

<여행하는 나무>라는 책을 쓴 일본의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가 그랬다. 우리 인류에게는 ‘오늘 아침 신문에 무엇이 실려 있었고, 나의 친구는 누구이며, 누구에게 빚이 있고, 또 누구에게 얼마의 돈을 빌려줬는가를 잊어버릴 수 있는 신성한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고 마음의 안식을 되찾을 수 있는 곳. 말하자면 마음의 고향 같은 곳 말이다.

모르겠다. 이 세상이 아무리 암담해 보여도 난 먹는 것 때문에도 자살하고 싶지 않다. 정확히 정성껏 요리해서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즐거움 때문에도 더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 특히 제철 식재료가 지천인 시골에서는 더욱 그렇다. 방금 전 수확이 끝난 이웃의 양배추밭에서 삶거나 튀겨 먹을 만한 새싹을 한 바구니 가득 따왔다. 그런가 하면 뒤뜰에는 해도 잘 안 드는 곳에 겨우 세 그루 심었을 뿐인데 얼마나 많은 꽈리 고추가 열렸는지 즐거운 비명이 흘러나올 정도다.

“이것 봐. 한 뼘 땅 뙈기가 완전 보물 창고라니까. 이렇게 많이 열렸다니. 이렇게 예쁘게 윤기 나는 꽈리 고추가! 오늘은 이걸로 뭘 해 먹을까?”


김경의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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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일이다. 한 항공사 상무가 신인류로 떠오른 젯셋(jet-set)족에 대해 얘기하며 이런 말을 했다. “2~3년 전만 해도 ‘여행=여름휴가’였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1년 내내 여행 중입니다. 둘 중 하나인 겁니다. 여행하고 있거나 여행 준비를 하고 있거나.”

그때만 해도 나 역시 굳이 분류하자면 젯셋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원래는 1950년대 말 제트 비행기가 출현했을 때, 이걸 타고서 세계 각국을 유람 다니던 부유층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1년 내내 어느 때고 마음만 먹으면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사람으로서의 젯셋족으로. 여하튼 그때만 해도 누구나 젯셋족을 꿈꿀 수 있었고 세상은 그렇게 어이없을 정도로 낙관적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종종 젯셋족을 위한 ‘머스트 해브 아이템’ 같은 기사가 잡지나 신문에 실리는 걸 종종 본다. 그걸 보면 피식 웃음이 난다. “이제 좀 유행이 지났어. 그렇지 않아?”라고 조소하던 칼 라거펠트 생각도 나고.

어떤 인문학자가 ‘진정한 사치가 젯셋에서 트랙팩으로 바뀌는 건 시간문제’라고 했는데 진짜 그렇게 돼버렸다. 자연 속에서 잠시나마 인간답게 머물며 보다 소박하게 먹고 단순하게 자고 싶은 이들의 캠핑 트렌드가 무섭게 번지더니 이제는 그것조차도 번거롭고 피곤하고 식상해진 것일까? 순식간에 바뀌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휴식’이라는 인식 아래 금쪽 같은 여름휴가를 빈둥빈둥 집에서 보내겠다고 선포하는 ‘스테이케이션족’들의 숫자가…. 거의 과반수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2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 일대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_연합뉴스


‘스테이케이션’은 2015년 만들어진 신조어다. ‘머무르다’는 뜻의 ‘스테이(stay)’와 휴가를 뜻하는 ‘베케이션(vacation)’을 합성해서 만든 새로운 단어. 물론 새로 이름 지어졌다고 그 존재 자체가 새로운 건 아니다. 짧게는 집에서 바캉스를 즐기는 사람들, ‘홈캉스족’의 일원이었던 그들이고 더 멀리는 자기들만의 동굴 속에 머물며 자족하던 원시 인류의 후예인 그들이다.

젯셋족에서 원시 인류로 거슬러 올라가니 누군가는 이 사태를 불황이 가져온 우리의 불운이며 퇴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루소가 썼듯이 세계의 역사가 야만에서 출발해 도시 문명으로 진보해온 게 결코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소박하게 살기는 했지만 우리의 요구가 매우 정확하고 단순했던 원시시대의 자연인 상태로부터 우리 영혼이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이 시대의 풍요로운 생활방식들에 선망을 느끼는 상태로 퇴보해온 것인지도 모른다.

선사인들은 여행이나 쇼핑에 대한 욕구를 느끼지 않았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몰랐고 신문이나 책을 읽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쉽게 파악하고 또 자족했을 거라고 루소는 추측하고, 나는 무릎을 친다.

생각해 보면 나 자신의 정직한 고백이 그렇다. 그렇게 많은 곳을 여행했고, 그렇게 많은 친구들이 있었으며, 그렇게 많은 물건을 사들였는데 그 때문에 행복하다고 느낀 건 아주 잠깐뿐이었다. 특히 여행이라면 남부럽지 않을 만큼 했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면 더 행복할 것 같았기에, 과연 그런지 내 몸으로 경험해 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비용을 치르고 나서야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고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파스칼의 이 경구가 부적처럼 나부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신의 방 안에서 조용히 혼자 있을 수 없다는 한 가지 사실에서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축하받아 마땅하다. 이제 우리 모두 여행이라는 망령에서 벗어나 자기 집에서 비로소 온전하게 쉴 수 있게 됐다는 사실 말이다. 젊은 직장인들 중심이긴 하지만 이제 그 절반이 휴가를 집에서 조용하게, 그것도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니 얼마나 고무적인가? 아무나 자주 할 수 없는 여행 관광객으로서 허겁지겁 세상을 헤매는 대신, 내 집에 앉아 내가 가진 것들을 음미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휴식이고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아는 최고의 휴식은 아무 걱정 없이 자는 거다. 시체놀이 하듯 자는 거다. 그동안 유능하고 쓸모있는 인간 행세를 하느라 몸과 마음이 그토록 지쳤으니 최대한 무능하고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보는 시간, 그게 휴식이다. 그렇게 자다 자다 지치면 배를 채우고 책을 좀 읽거나 산보를 하다가 밤이 되면 영화를 틀어놓고 또 자는 거다. 물론 그래도 괜찮다.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당신 자신밖에 없다는 에머슨의 말을 기억하자.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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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일이다. 아파트 임대료조차 내기 힘들었던 30대 남자가 자기 집 아파트 거실에 에어베드 3개를 깔고 숙박객들에게 잠자리와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민박사업을 시작했다. 그 수입이 제법 쏠쏠했던 모양이다. 마음 맞는 파트너들과 함께 아예 회사를 차렸다. 숙박업에 공유경제를 결합시킨 회사 에어비앤비. 2008년 창업 초기에는 1억5000만원이 없어서 7번이나 투자 유치에 실패했던 회사가 지금은 투자자들로부터 무려 200억달러(약 22조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는 공룡 기업으로 성장했다. 메리어트와 하얏트를 제치고 1위인 힐튼을 위협하는 공룡.

하기사 시골에 사는 나 같은 여자도 여행 욕구가 슬며시 고개를 쳐들면 에어비앤비에 들어가 개인 숙박 시설부터 찾아보게 됐다. 호텔과 달리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민박집에는 저마다 다른 집주인들의 취향과 개성, 그리고 지역색을 품은 특유의 어떤 정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위한 여행이 아니고, 여행이 진실로 시야를 넓히고 공감대를 확대하며 쳇바퀴 도는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면 그건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때문이지 장소 때문은 아닐 거다. 세계 어느 나라에 가나 똑같은 범세계적인 호텔에 머물면서 자기 나라에서 알고 지냈던 동료 여행객들과 어울리는 여행의 효과는 아닐 거라는 얘기다. 그 때문에 에어비앤비가 대세가 된 거고.

여하튼 그 덕분에 별이 몇 개가 됐든 기존의 호텔이나 호스텔은 이제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에어비앤비가 연결해주는 개인 민박집의 위력이 얼마나 기세등등한지 전 세계 호텔들이 엄청난 위기감 속에서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형편이다.

예컨대 요즘 유럽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포시텔’도 그런 위기감 속에서 탄생된 새로운 여행 트렌드가 아닐까 싶다. 일반 호스텔보다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숙박환경을 제공하되 가격은 호텔보다 저렴한 게 특징이어서, ‘우아한’ 혹은 ‘상류층’이라는 의미를 지닌 ‘포시(Posh)’와 ‘호스텔(Hostel)’을 합쳐 ‘포시텔(Poshtel)’이라고 불린다는 곳 말이다. 부티크 호텔 못지않은 디자인 감각을 자랑하는 객실에 조식은 물론 석식까지 제공하는 레스토랑이 있는가 하면 공동 주방과 서재,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한다는데 숙박료는 일반 호스텔보다 약간 더 비싼 수준이란다. 심지어 현지의 가정과 제휴해 가정집에서의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서비스까지 갖춘 곳도 있고.

하지만 표준화된 호텔이면 어떻고 싸구려 호스텔이면 어떤가? 그것도 나쁘지 않다. 여행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건 여하튼 좋은 일이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과 누군가 켜놓은 텔레비전 소리,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 수시로 ‘까톡’거리는 카톡이며 문자메시지, 페이스북, 트위터의 알림 소리. 무엇보다 우리가 쉬는 걸 절대 못 봐주겠다는 듯 수시로 달려드는 주변의 요구들! 그리고 그 많은 온갖 걱정거리들. 그렇게 우리의 정신과 신경을 갉아먹는 것들을 피해서 잠시나마 도망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기에 굳이 피곤하게도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게 아닌가?

물론 요즘 들어 여행할 여유가 통 없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도 위안은 있다. 여행만 갈 수 있다면, 낯선 도시의 안락한 호텔에 머물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소망하지만 알랭 드 보통이 썼듯, ‘어떤 장소에 대하여 느끼는 행복’은 사실상 매우 짧다. 중요한 건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는 얘기다.


준비 없이 걷기 서대문구 안산자락길_경향DB



여행할 수 없지만 걸을 수는 있다. 걷는 건 여행하는 것 못지않게 좋은 일이다. 특히나 마음이 괴로울 때나 울적할 때 혹은 스트레스가 목젖까지 차오를 때 하염없이 걸으면 신기하게도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이 문득 어디론가 사라지거나 매우 가볍게 느껴진다. 심지어 콧노래까지 나온다. 집이든 사무실이든 답답한 공간을 벗어나 걷다 보면 또 다른 시각, 후각, 청각들을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 그래서 임상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들이 우울증 환자들에게 가만히 있지 말고 무조건 몸을 움직이라고 충고하는 모양이다. 게다가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노라면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아주 멋진 아이디어가 불쑥 튀어나온다. 가장 신선하고 멋진 착상은 혹시 머리가 아니라 움직이는 동안 내 발바닥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과장이 아니라, 주로 걸으면서 가장 좋은 사색의 결과를 얻었다는 철학자 루소도 이런 말을 했다. “내 머리는 내 다리와 함께 움직인다.”

그 때문에 이렇게 장담해 본다. 에어비앤비를 탄생시킨 브라이언 체스키는 7년 전 아파트 임대료를 걱정하는 처지라 감히 여행할 수 없었다고. 그 갈증과 앞날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내고자 하염없이 걸었을 거라고. 그러다 불쑥 아이디어가 발바닥에 솟구쳤다고.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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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도 샌프란시스코 시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여름 내내 일요일 오후면 ‘스턴그로브 음악 축제’에 갈 수 있는 샌프란시스코 시민 말이다. 그들처럼 초여름 저녁 나무 그늘 풀밭에 모포를 깔고 싶었다.

파란 하늘 아래 비스듬히 누워서 라이브로 연주되는 바흐나 모차르트, 혹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듣는 거다. 100여년 전에 심어진 유칼립투스와 레드우드가 빽빽이 들어선 숲속 한복판에서 울려퍼지는 천상의 소리들.

그러나 시민들에게 무상으로 공급되는…. 손에 맥주나 와인이 들려 있다면 더 좋겠지? 음악을 들으며 아예 잠들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려면 모포보다는 텐트가 낫지 않나?… 해봐야 소용없지만 그냥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한여름 밤의 음악 축제.

아, 그런데 이게 무슨 행운이란 말인가? 이번 주말, 우리 동네에서 클래식 음악 축제가 열린다. 알려지지 않은 작은 시골 마을에 전교생 모두 오케스트라 단원인 초등학교가 있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데, 그 학교 앞마당에서 클래식 축제가 펼쳐진다니….

현대차 정몽구재단이 주최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학협력단이 주관하는 ‘예술세상 마을프로젝트’의 주요 프로그램인 계촌 클래식 축제. 더구나 정명화가 함께하는 축제다.




연극배우 출신의 계촌 이장님이 말씀하셨다. “정명화가 얼마나 대단한 첼리스트입니까. 그분이 그냥 참여 정도가 아니라 한예종 음악원 출신의 연주자들이랑 함께 아이들을 가르쳤다니까요.”

계촌초등학교 전교생으로 구성된 별빛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좋겠다. 올해뿐 아니라 앞으로 3년간, 어쩌면 더 길게 그 쟁쟁한 선배 연주자들에게 매주 1회씩 지도를 받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무대에도 설 예정이라니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그 파랗게 예쁜 친구들이 이번 축제에서는 어떤 곡을 연주할까? 지난해 ‘한여름 밤의 음악회’에서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헝가리안 무곡 5번’ ‘윌리엄 텔 서곡’ 등을 들려줬던 그들이다. 계촌을 상징하는 음악 ‘송어’나 별빛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자주 연주하는 곡 ‘위풍당당 행진곡’은 어떨까?

얼마 전 학교 담장 너머에서 들려오던 곡이 뭐였더라? 제목은 잘 모르겠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왈츠곡 같았다. 아담한 시골 정경 속에서 춤추듯 울려퍼지는 음표들이 굉장히 예뻐서 어쩐지 목이 메는 느낌이었다. 혹시 그 곡을 다시 듣게 될까?

시골에는 없는 게 너무 많다. 책방이나 도서관, 미술관이 없는 것은 물론 카페나 베이커리, PC방조차 없다. 영화 한 편 보기 위해 극장에 가려면 자동차로 왕복 2시간을 달려야 한다. 문화적 결핍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공백 상태에 가까울지도 모르는 예술 황무지.

하지만 결핍이나 공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누군가’가 있다. 그 ‘누군가(계촌초등학교 같은 경우 강릉시교향악단 창단 멤버로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권오이 교장과 원주리코더교육연구회 회장이었던 이경우 교사)’에 의해 시골 학교 학생들이 처음으로 악기를 배우고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고 클래식 공연의 주역이 된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 ‘결핍’에서 되레 ‘꿈’과 ‘낭만’을 발견하고 ‘부재’에서 새로운 문화적 에너지를 만들어낸 내 이웃의 누군가들. 그들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기쁜 소식을 전한다.

7월10일부터 12일까지 평창군 방림면 ‘계수나무마을’ 계촌에서 클래식 축제가 열린다. 시골 축제치고는 라인업이 굉장하다. 한국 클래식계의 새로운 바이올린 여제 신지아, ‘젊은 거장’의 대열에 들어선 실력파 피아니스트 김태형, 각종 국제콩쿠르를 휩쓴 ‘첼로 영재’ 여윤수를 비롯해 세종문화회관 세종유스오케스트라, 서울심포니브라스, 강릉소년소녀합창단 등이 계촌 별빛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오른다.

참고로 여건상 마을에 오기 힘든 클래식 마니아들을 위해 마을 현지와 서울을 연결해 공연 실황을 온라인 중계한다는 소식도 전한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유행에 집착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지만 정작 우리에게 살아가는 힘을 주는 음악이나 풍경은 매우 영속적이고 고전적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 런 점에서 시골 마을과 클래식 음악은 아주 잘 어울린다. 밭 갈던 농부와 그의 아내, 인근 펜션에 놀러 온 도시인 가족이 함께 어울려 음악의 환희에 마음을 열 수 있는 축제의 날. 그날을 위해 난 모처럼 원피스를 꺼내 입으려고 한다.

첼로 소리와 함께 초여름 저녁 어스름이 밀려올 때 가방 속에 숨겨 온 와인이나 맥주를 홀짝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클래식을 듣고 자란 우리 개들을 데려가면 혹시 동네 사람들이 욕할까? 뭐 어떤가? 축제일인데…. 도시의 대형 콘서트홀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소박한 환희가 그곳에 있으리라.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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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 ‘메르스’ 뉴스만 보고 듣고 사는 와중에 얼마 전 눈에 띄는 전혀 다른 뉴스가 있었다. ‘집 짓고 나면 10년 늙는다, 왜 그럴까?’라는 제목의 오마이뉴스 기사였다. 횟수로 3년째 집을 짓고 있는 와중이라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클릭해서 읽어봤다. 공감을 원했건만 공감은커녕 코웃음이 나오는 가운데 약간 비위마저 상하게 하는 뻔한 기사였다. 요는 ‘10년 늙기 싫으면 설계비 아까워하지 말고 설계는 설계자에게 맡기고, 시공도 직접 한다고 까불지 말고 전문 시공팀에 맡겨라, 그리고 맡겼으면 그들을 무조건 믿고 따르라’는 것. 뭔가 냄새 난다 싶어서 살펴보니 역시나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대표가 쓴 글이었다. 그나마 이런 댓글이 있어서 속이 후련했다.

“건축주가 짜증 나는 요소는 위의 다섯 가지가 아니다. 대충 비슷한 설계도 약간만 바꿔서 5000만원씩 받아내는 설계사가 첫 번째. 자잿값으로 원가의 2배씩 뜯어내는 시공. 돈만 뜯어내는 감리--- ㅋㅋㅋ. 정말이지 집을 두 채 세 채 짓는다면 직접 건축을 공부하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다- ㅋㅋㅋ.”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다행히 우리에겐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들에게 뜯기고 싶어도 뜯길 만한 돈이 없었다. 대신 돈은 없지만 시간이 있었다. <조화로운 삶>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니어링 부부의 후예답게 스스로 자기 집을 짓겠다는 배짱도 있었고.

물론 끈기도 필요했다. 내게는 없고 내 남편에게만 있는 엄청난 자산, 끈기. 남편은 그 끈기로 무려 7개월 동안 혼자 4만장의 벽돌을 쌓아올려서 지금의 1층 구조를 완성했다. 보통 사람들이 말하듯 미련한 짓이었는지도 모른다. 전문 벽돌공 둘과 그의 조수 네 사람이 2~3주, 길어도 4주면 쌓고도 남을 일을 1000만원도 안 되는 인건비를 아끼겠다고 그걸 혼자 쌓았으니…. 그 때문에 ‘고행에 가까운 개고생’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고생스럽지. 그런데 그게 어떤 면에서 그림 그리는 거랑 비슷해. 목표를 향해 하나씩 내 손으로 쌓아올리는 중독적인 재미가 있거든. 오체투지까지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명상 효과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남을 의심할 필요가 없어. 스스로 아니까. 얼마나 꼼수 없이 튼튼한지.”

새들은 제 둥지를 스스로 마련하며 늘 노래를 부른다. 2층 목조 구조에 지붕 작업까지 마친 남편은 요즘 다시금 구들방을 위한 벽돌 작업을 하며 휴대폰으로 재즈나 블루스 음악을 듣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니 애덤스라는 블루스 가수가 부른 노랫말이 떠오른다. “당신이 흔들어보지 않는 한 무엇이 흔들릴지 결코 알 수 없지.”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듯 직접 해보지 않고는 결코 안다고 할 수 없다. 이제야 알겠다. 왜 니어링 부부가 존 버로스라는 수필가의 말을 빌려 “살면서 가장 큰 기쁨 가운데 하나는 자기가 살 집을 짓는 것이다”라고 했는지. 우리는 3년째 집을 지으며 수많은 희열(고통이 있기에 희열이 있다)을 느꼈다. 그 희열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있고.

‘어린이 창조학교’ 프로그램에 참가한 어린이가 집짓기 놀이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쯤에서 건축가들에게 묻고 싶다. 정녕 전문가만 집을 지을 수 있는 건지. 거미나 까치, 오소리처럼 인간이 제집을 스스로 짓던 때가 있었다. 그 대단한 창조력이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건지. 스스로 자기 집을 짓는다는 건 그 사라진 창조력을 되찾는 엄청나게 재미난 일인데, 그 재밌는 걸 전부 전문가한테 맡겨두고 진정 돈만 잘 내면 해피한 건지. 학자이며 생활 예술가였던 니어링 부부는 그 어렵다는 돌집을 어떻게 열 채씩이나 짓고 100세 가까이 행복하게 살았는지. 그것도 스스로 곡기를 끊어서 죽어야 할 정도로 건강하게.

플래그라는 뉴욕의 건축가에게 영향받은 니어링 부부는 <조화로운 삶>에 이렇게 썼다. ‘보통의 머리에 경험도 재산도 별로 없는 사람일지라도 시간과 끈기, 마음만 있으면 누구라도 수수하게 아름다운 집을 지을 수 있다.’

사실이다. 세상에는 자기 손으로 자기 집을 지은 수많은 아마추어 빌더들이 있다. 실용적이고 경제적이고 아름다울뿐더러 장인 정신이 깃든 핸드빌트 집. 1973년 여름에 출판되어 무려 42년 동안 30만부 이상이 팔린 <셀터>와 그 후속편 <행복한 집구경>이라는 책이 그 수많은 예를 증명한다.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 모두의 숨어 있는 잠재적 창조력이 고무되는 흥미진진한 책이다. 그와 함께 크리스 앤더슨의 <메이커스>라는 책도 추천한다. 단순 소비자의 한계에서 벗어난 그 시작부터 끝까지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제작자로 변신한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될 거라고 예고하는 책이다.

참고로 서점가에서 여전히 뜨거운 <1억원대 집짓기>라는 책은 추천하지 않겠다. 땅값, 토목공사비, 설계비, 건축 인허가비까지 포함시키면 1억원이 아니라 2억원, 3억원, 그 이상이 드는 비싼 집들이 태반이라 돈이 많지 않은 건축주는 되레 주눅 들기 십상이니까.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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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집짓기

▲ 밭두렁 돌로 화단 만들고
라일락·홍매화·나무수국 심었다
몇 평 안 되는 헐벗은 땅을
천국으로 바꿔놓는 ‘텃밭정원’


태초에 하느님이 정원을 만드셨다. 그곳은 이름하여 지상낙원의 원형, 에덴동산이라는 곳인데 벌거벗은 아담과 이브가 분별없이 까부는 바람에 우리는 영원히 그곳에 갈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담과 이브를 원망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대신 인간은 손수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그래서 세상에는 이런 진리가 통용된다. ‘모든 정원은 잃어버린 낙원을 다시 찾으려는 시도와 닮았다.’

어떤 면에서 상상력을 좇아 살아 있는 자연의 일부분을 만들어내는 정원사의 일은 시인이나 화가의 일과도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보다 열심히 정원을 가꾸었던 소설가 헤르만 헤세를 보며 그걸 알았다. 심지어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 특히 늙은 그가 허름한 옷을 입고 꽃밭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잡초를 뽑는 사진을 보며 왜 이 모습이 내게 이토록 아련할 정도로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생각했다.<정원 일의 즐거움>이라는 그의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는데, 그건 아름답게 사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타샤 튜더도 그랬다. 그때 내 나이 서른둘이나 셋쯤이었고 그녀의 나이는 무려 아흔이 넘은 때였을 거다. 그런데도 내 눈에는 다 늙어빠진 이 할머니가 세상의 어떤 여자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정원 때문이었을까? 정원에 관해서라면 결코 겸손하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정원은 내가 지금껏 본 세상의 어떤 지상낙원보다 눈부셨다. 소녀처럼 단아한 몸매의 90세 노인이 직접 천을 짜서 만든 목가적인 옛날 여인의 옷을 입은 채 손에는 방금 전 강가에서 꺾어 온 듯한 갯버들을 수줍은 듯 들고 있는데, 그 모습이 하도 예뻐 보여서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한동안 그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며 심장의 떨림을 다 느낄 정도였다.

정원 일의 즐거움과 놀라움에 대해 얘기하는 헤르만 헤세와 타샤 튜더의 책을 읽으며 나도 꿈을 키웠다. 영국인들이 한탄한바 ‘손질할 정원 한 뼘도 없는 처지’였지만 언젠가 내 정원을 갖고 말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그날이 오면 내 손끝이 녹색으로 물들 때까지 실컷 정원 일을 하리라 고대하며.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신이 좋아하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을 닮아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취향이 중요한 거고. <황야의 이리>도 좋아했지만 정원사로서의 헤르만 헤세를, 동화작가였지만 원예가로서의 타샤 튜더를 더 사랑했던 나는 요즘 정원 가꾸기에 매여 산다. 지난해 봄 동네 밭두렁에서 주워온 돌로 화단을 만들고 사철나무와 쥐똥나무, 조팝, 나무수국, 불두화, 라일락, 홍매화, 황매화 등을 심었는데 올해는 먹을거리로 활용할 수 있는 채소와 허브를 이런저런 꽃들과 함께 섞어 심고 있다.

이름하여 ‘텃밭 가든’(채소정원, 혹은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절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여 ‘빅토리안 키친 가든’이라고도 한다) 콘셉트다. 정원 트렌드의 중심에 있는 영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가 요즘 관상용 정원보다는 텃밭정원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고 한다. 미셸 오바마도 백악관의 정원을 텃밭으로 바꾸어버렸을 정도로 그 열풍이 대단한 걸로 안다.

“요즘은 직접 기른 농작물을 식탁에 올리는 운동, 이른바 ‘Farm to Table’ 혹은 ‘Garden to Kitchen’이라는 개념이 생겨나 급속히 번지고 있어. 그런데 정원에 왜 꼭 잔디를 심어야 하느냐고? 단지 보기 좋을 뿐. 관리하기 힘들고 쓸모도 없는데…. 대신 상추 옆에 금잔화를 심는 식으로 텃밭정원 만들고 보행로에는 자갈 깔고 민들레를 심을래. 당신 민들레 좋아하잖아. 먹을 수도 있고 꽃도 예쁘고 어떤 환경에서든 잘 자라고 잘 퍼지고.”

남편에게 그렇게 말하고 본보기로 동네 이곳저곳에서 민들레를 데려와 심었다. 그것만으로 성에 안 차서 아예 민들레 씨앗 1㎏을 사서 집 뒤 법면에 뿌리고 볏짚으로 덮었다. 그 다음 이런저런 고민 끝에 재활용 목재로 텃밭 프레임을 만든 후 갖가지 모종과 씨앗을 구입했다.

지금은 토마토를 심어 놓고 그 옆에 어떤 꽃을 심을지 고민 중이다. 토마토 열매와 잘 매치될 붉은색 꽃, 백일홍 레드가 좋을 것 같다. 아스파라가스 옆에는 레몬 벨가못이나 히솝을 심으리라. 청양고추와 양귀비, 루콜라와 피튜니아 화이트, 양상추와 베고니아, 당근과 채송화, 봄동과 백화 민들레…. 그런 식으로 모양과 색깔을 그려보며 짝을 지어본다. 그러면 가슴이 뛴다.

사람들은 몇 평 안되는 헐벗은 땅을 자신의 의지와 노고로 작은 천국으로 바꾸어 놓는다. 여름을 기대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꽃과 채소, 과일, 그리고 그것들의 색과 향기를 창조해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보람찬 일인가? 각종 허브는 물론 청양고추와 호박, 오이에 로메인, 비트, 루콜라까지 갖가지 동서양의 채소가 가득한 작은 텃밭정원을 꿈꾸며 나는 오늘도 손에 호미를 든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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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버 택시·에어비앤비 등
화두 된 공유경제 개념
점포·옷·집·농산물까지
현실 속 재능·자산 나누기


공유경제의 대표적 키워드가 된 우버와 에어비앤비가 세계적으로 연일 화제다. 요즘 인도에서도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우버의 차량 공유 서비스가 인도 특유의 삼륜차 오토릭샤에 응용되고 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우버가 불법이라니…. 공유경제를 내세우는 서울시의 ‘모순이다’ ‘퇴행이다’ 하며 여전히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다.

그런가 하면 세계적인 주택공유기업 에어비앤비가 쿠바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소식(덕분에 단박에 쿠바 여행을 계획하는 미국인들이 늘어났다고)과 함께 어떻게든 에어비앤비의 무서운 질주를 막고 싶은 기존의 호텔과 업계들이 세금 문제를 들고나오며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막기 어렵지 싶다. 자기 집을 여행자들에게 빌려주며 짭짤한 부수입을 챙기고 있는 개인들이 세금을 더 잘 낼 수 있도록 에어비앤비 측이 적극 협조하겠다는데 시비 걸기가 어렵지 않겠나?

여하튼 이런저런 불협화음이 있긴 하지만 우버와 에어비앤비로 대표되는 공유경제가 경제계의 최고 화두가 됐다. 그 때문일까? 제품이나 장소, 혹은 서비스 등을 혼자 점유하거나 독점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나눠 쓰는 공유경제의 참신한 예가 요즘 우리 주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예컨대 서울 연남동의 ‘어쩌다 가게’라고 들어봤나? ‘공유의 가치’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는 소상공인들의 성지랄까? 그도 그럴 것이 마당 딸린 2층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어쩌다 가게’는 정원과 라운지 등을 서로 공유하는 8개의 숍과 작업실이 이웃하여 만든 복합 매장으로 일종의 ‘셰어 스토어(share store)’ 콘셉트로 탄생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최근 문화예술인 사이에서 한창 이슈가 됐던 ‘문화 백화현상’(임대료 상승으로 예술가적 소상인들이 떠나가고 기존의 개성 있는 문화가 점차 사라짐)에 대응하기 위해 ‘5년 월세 동결’이란 조건을 실현한 1호점으로서 갖는 의미가 크다고 한다.

주인이 무려 17명이나 되는 ‘요일 가게’라는 것도 있다. 인천 배다리에 있는 이 가게는 요일별로 공방, 극장, 그림수업, 사진 작업실, 손뜨개 공방, 디저트 카페 등을 운영하는 7명의 가게 주인이 있고 가게 벽면에 마련된 12개의 선반 역시 모두 주인이 다르다고. 이른바 ‘가게 인 가게’라고 하는 ‘12개의 선반’ 물건들은 요일별 가게 주인들이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대신 팔아주기 때문에 선반 주인은 굳이 가게에 나올 필요가 없다. 대신 판매한 상품 가격의 10%는 요일 가게 주인의 몫으로 돌아간다고.


힘없는 청년 구직자들에게 힘내라며 정장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영리단체도 있다. ‘열린 옷장’이라는 곳으로 2012년 7월, 직원 스스로 기증한 정장 9벌로 시작한 이 서비스는 현재 800벌 이상의 정장과 셔츠, 구두 등 200여점을 갖춘 곳으로 성장했다. 평소 이용자는 30~40명이지만 대기업 공채 시즌이 닥치면 하루 대여자가 70~80명이 넘을 정도여서 직원 9명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며 ‘열린 옷장’을 관리해야 할 판이다.

서울의 전셋값, 월셋값이 기세등등하게 오르자 전·월세 주택을 공유하자는 취지의 사회적기업도 설립됐다. 수도권 18개 중·대형 주택을 통째로 빌려 카페형, 포토 스튜디오형, 영화관형, 오피스형 등 독특한 콘셉트로 개조해 재임대하는 ‘우주(woozoo)’라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얼마 전부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속으로 동경하게 된 시골 마을이 있다. 장흥과 괴산. 공통점이라면 취미 생활의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는 마을이랄까?

전라남도 장흥에 가고 싶은 이유는 한 달에 한 번 귀농·귀촌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마실장’이라는 작은 장터가 열리기 때문이다. 외로운데 ‘마실 나가서 같이 어울리자’라는 의미의 마실이리라. 어떤 이는 텃밭에서 캔 작물을 들고나오고, 어떤 이는 우리밀 누룩으로 막걸리를 만들어 나오고, 어떤 이는 이웃 마을 장인 할아버지에게 대나무 공예를 배우고, 어떤 이는 고양이 그림을 그려 팔고, 어떤 이는 팬플루트를 불고, 어떤 이는 노래를 부르는 시장. 자급자족하는 고졸한 시골살림이지만 그렇게 오순도순 다 같이 함께 나누는 즐거움에 싱글벙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시골 마을 작은 장터. 장터에서 뭐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에 자신도 평생 모르고 살았던 재능을 비로소 발견하게 됐다는 이들이 꽃보다 예뻐 보이는 곳.

한편 괴산에 가고 싶은 이유는 그곳에 탑골만화방이 있기 때문이다. ‘시골 마을에도 쾌락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귀촌한 예술가 양철모씨가 개인 주택에 지은 만화방이다. 시골 생활이 좀 심심했던 모양이다. 좀 더 재밌는 일을 도모하고자 ‘누구나 좋아하고’ ‘아무나 들러 쉴 수 있는’ 만화방을 만들었다니 한번 가보고 싶다. 19금 일본 만화가 있는 시골 만화방. 여러 종류의 젊은 사람들이 마당 평상에 둘러앉아 같이 저녁을 만들어 먹고, 악기를 배우고, ‘사다리 타기’ 게임을 한다니 전원풍의 쾌락이 너무도 살갑게 느껴진다. 하기야 혼자만 잘살면 뭐 하나? 재미도 없게…. 켄 로치 감독이 보여주었듯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위스키도 나눠 마셔야 더 맛있다. 뭉치고 나누면 더 커진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저마다의 자산과 재능, 가능성은….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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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만들고 돈 아끼는 재미에
대세가 된 ‘셀프 인테리어족’들
고가 브랜드·이케아 공세에도
DIY 등 관련시장 ‘저 홀로 호황’


오랜 경기침체 속에서 ‘셀프 인테리어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이른바 ‘대세’가 된 모양이다. 인터넷 블로그와 참고 도서를 통해 그 사례들을 살펴보니 과연 대단했다.

단지 그 수만 많아진 게 아니다. 그 수준들이 너무 놀라워서 입이 벌어질 정도. 간단한 집수리나 가구 리폼은 기본이고, 침실·거실 인테리어와 달리 왠지 손대기 겁나는 주방과 욕실 개조까지 자기 손으로 직접 디자인하고 시공하는 솜씨들이 거의 전문가 수준이었다. 그것도 홍대 앞이나 가로수길 카페 인테리어를 전문으로 하는 ‘인테리어계의 미다스의 손’ 비스름하다.

불황기의 소비자들이 한 푼이라도 아끼고자 스스로 망치와 톱을 들고 참신한 창조자들로 변신하고 있는 중이랄까? 영화 <지옥이 뭐가 나빠> 식으로 얘기하자면 ‘불황이 뭐가 나빠?’쯤 되겠다.

좋다. 나도 해보자. 이전 집주인 부부가 격렬한 다툼 끝에 남편이 사랑채 문을 도끼로 부수는 사태가 벌어졌던 걸로 안다. 그 ‘분노의 상처’를 성당 달력으로 살짝 봉합해 놓은 채 집을 팔았던 그들. 결국 그 가여운 문은 우리 몫이 됐다. 무엇보다 먼저 그 구멍 난 문에게 새 삶을 주고 싶었다. 기왕이면 예쁘고 상큼한 모습의 새 삶.

인터넷 검색창에 ‘방문 리폼’이라는 검색어를 넣자마자 신세계가 열렸다. 볼썽사납게 낡았거나 못 견디게 촌스러운 갈색 방문에 6~8㎜ 간격으로 자른 얇은 미송합판 패널을 덧붙이고 흰색 또는 파스텔톤의 화사한 페인트칠을 한 후 손잡이까지 바꾸니 인상이 180도 달라지는 게 아닌가. 흡사 성형외과 의사들의 도움으로 신데렐라로 변신한 추녀의 반전을 보는 것 같았다. 심지어 방문에 불투명유리창이 끼워진 창문을 만들어 다는 게 최신 트렌드인 듯싶었다. 욕심이 났지만 한편 나 같은 초보자가 저런 고난도 기술까지 넘보는 건 역시 지나친 ‘과욕’이 아닐까 싶어서 주눅도 들었다.


역시 골치가 아팠다. 방문에 창문 넣을 구멍을 만드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사이에 삼나무 패널로 창틀 자리를 확보하고 그 중간에 나왕쫄대를 박은 후 유리를 넣은 다음 미송합판으로 가장자리를 액자 식으로 정리하라니…. 말이 쉽지 각각의 사이즈를 몇으로 정해야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재단을 잘할 자신도 없고.

그런데 의외로 엄청나게 쉬운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른바 반제품이라는 걸 주문하는 거다. 액자 식으로 재단한 창틀에 샤방샤방한 고방 유리나 아쿠아 무늬 유리를 끼워 파는 반제품을 파는 DIY 전문 쇼핑몰이 있었다.

이제 알겠다. 어떻게 해서 전문가 수준의 셀프 인테리어족이 대세가 됐는지…. 과거 전문가의 전유물이던 인테리어 시공법이 블로거들을 통해 사진과 함께 인터넷에 세세하게 공개되면서 관련 시장이 덩달아 비약적으로 섬세해졌달까? 예전에는 재료를 발품 팔며 직접 사러 다녀야 했지만 이제는 유통망 확대로 내가 원하는 수준의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예컨대 이제는 싱크대 교체 비용으로 몇 백만원씩 쓸 필요가 없다. 사이즈만 알려주면 이른바 인터넷 철물점이라는 곳에서 저마다의 사이즈에 맞게 최고급 원목(예컨대 물푸레나무)을 재단해서 싱크볼 넣을 구멍까지 깔끔하게 뚫어 택배로 보내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원목으로 싱크대 상판만 교체하고 문짝을 리폼해주면 주방 개조 비용을 70% 가까이 절감할 수 있다는 사실. 대폭 비용을 줄일 수 있을뿐더러 내 취향에 맞는 컬러와 재료를 사용해 상큼한 부엌으로 그 누구도 아닌 내 손으로 개조할 수 있다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셀프 인테리어족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중독적이라는 것. 리폼을 시작하면 다음 목표가 생기고 그 목표는 끝없이 늘어난다. 할수록 속도가 붙고 기술과 요령이 늘기 때문에 갈수록 재밌다. 돈 아끼는 재미, 스스로 만드는 재미, 나날이 늘어가는 손재주와 요령에 고무되어 몸이 고단해도 고단한 줄 모르고 몰입하게 된다. 그렇게 써버린 주말이 아깝기는커녕 그 어느 때보다 생산적으로 느껴진다. 텔레비전이나 스포츠, 영화 관람이라니? 그동안 시시한 일에 너무 많은 시간과 아드레날린을 낭비했던 게 아닌가 싶어 애통한 생각마저 든다.

덕분에 주거용 인테리어 시장이 저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마치 패션업계 SPA 브랜드 같다고 할까? 저렴한 가격에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 고가 브랜드 못지않게 감각적인 즐거움까지 선사해 불경기에도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을 두루 갖추었다. 게다가 스스로 조립해서 사용하는 세계적인 저가 가구업체 이케아의 한국 상륙까지 보태지면서 셀프 인테리어의 유행이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물론 나도 이케아 광명점에 다녀왔다. 놀이동산 못지않게 즐거운 눈요기를 실컷 했다. 천만원대 주방 인테리어 쇼룸을 보면서 영감만 받고 국자 하나 사지 않았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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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암동에 맥주 파는 동네서점이 있다. 북바이북(Book By Book)이라는 곳으로 단지 책만 파는 동네서점도 흔치 않은데 이곳에서는 커피는 물론 맥주까지 판다. 집집마다 운 닿는 대로 조금씩 재개발이 진행 중인 주택가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으나 한 번 찾으면 ‘발견의 기쁨’을 두고두고 누릴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서점을 운영하는 젊은 처자들(자매)이 어찌나 상냥하고 예쁜지 송창식의 ‘담뱃가게 아가씨’라는 노래가 절로 생각날 정도다. 그뿐만이 아니다. 동네 총각들 설레게 하는 미모는 기본이고 책을 고르고 배열하고 홍보하는 감각과 취향까지 훌륭하다.

책을 파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독자이자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애정이 시냇물처럼 졸졸 흐르는 곳이랄까? 심지어 66㎡(20평)도 채 안되는 조그만 공간에서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북콘서트를 여는 배짱과 수완까지 겸비하고 있다. 덕분에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책과 음악으로 지친 영혼을 달래려는 이들의 작은 아지트이자 ‘상암동의 보석’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비유하자면 ‘서촌’을 띄운 제2의 ‘대오서점’인 셈이다.

서울 상암동 동네서점 북바이북 본점 외부 (출처 : 경향DB)


파리의 전설적인 영어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1919년 파리에 오픈한 것도 여성이었다. 선교사 아버지를 따라 파리에 온 미국인 여성 실비아 비치. 그녀 역시 단순히 책만 파는 서점 주인이 아니었다. 파리와 문학에 대한 지극한 애정으로 겁도 없이 젊은 처자의 몸으로 서점을 연 그녀는 무명의 가난한 작가들에게 외상으로 책을 빌려주며 뜨거운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 때문에 헤밍웨이나 앙드레 지드가 사랑한 서점으로서 전설을 쌓을 수 있었다. 심지어 실비아 비치는 일개 서점 주인의 몸으로 당시 풍기문란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던 제임스 조이스의 문제작 <율리시즈>를 출판하는 엄청난 일을 도모하지 않았던가?

그 때문에 서점 문을 닫게 됐지만 10년 후 미국인 방랑시인 조지 휘트먼에 의해 젊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책방 한쪽에 숙소까지 마련한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명맥이 계속 이어져 오늘날 파리의 중요한 관광 명소가 됐다.

인터넷 서점과 전자책에 밀려 서점이 대표적인 사양산업이 됐지만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정신을 잇는 동네서점들이 애틋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책 더미 속의 밤’을 마련하는 어느 서점처럼 말이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강한 이 서점 주인은 일반 독자들을 위해 서점에 침대 몇 개를 들여놓고 침대마다 작은 전등 하나씩을 놓아준다고 한다. 서점 문을 닫고 서점 주인은 집으로 가고 미리 신청한 사람들은 문 닫힌 서점 안에서 밤을 보낸다. 책들을 꺼내다 침대 옆에 쌓아두고 열심히 읽는다. 아침이 되어 서점 문을 다시 연 주인장은 밤 사이 파손된 책이 한 권도 없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는 얘기.

나는 사소하지만 잊을 수 없이 감동적인 그 얘기를 <제3의 공간>이라는 책에서 읽었다. 트렌드 분석가이며 무드 매니지먼트의 대가로 알려진 크리스티안 미쿤다가 쓴 책이다. 그에 의하면 1980년대에 들어 감각적인 체험을 강조하는 마케팅이 등장하면서 대중들이 이용하는 상업 공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제 호텔은 더 이상 잠만 자는 장소가 아니고 상점은 더 이상 물건만 파는 장소가 아닌 시대가 도래한 것. 기분 좋은 정서적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곳, 재충전은 물론 잠시나마 영혼의 도피처로 삼을 수 있는 곳, 내 집도 아니고 일터도 아니지만 누구나 찾아갈 수 있는 곳. 심지어 관광 명소로서의 가치를 지닌 상점이나 호텔. 미쿤다는 그런 공간을 ‘제3의 공간’이라고 명명했다. 말하자면 진보적인 브랜드나 상점들은 이제 너나없이 단지 빨리 팔아치우려고 하는 대신 세련되게, 혹은 세심하게 연출된 공간에서 뭔가 체험할 만한 이야깃거리나 흔치 않은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고객들을 완전히 사로잡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거 낭패다. 북바이북의 자매 사장님 얘기(동생 김진양씨)를 들어보니 ‘마케팅 전략’을 운운하는 나 자신이 왠지 좀 멍청이처럼 느껴진다.

“아, 북콘서트요? 작으면 작은 대로 서점 운영 하면서 저희가 좋아하는 책의 저자도 만나고 작은 음악회도 열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뭐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거죠. 아버지께서 저희 북바이북의 ‘비밀요원’이 아니라 ‘비닐요원’으로 활동 중이세요. 책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아버지가 집에서 입고되는 모든 책마다 비닐 포장을 하고 계시거든요. 그런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좋아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일을 위한 마음요.”

샤롯 브론테가 한 말이 떠오른다. ‘인간의 심장은 보물을 숨기고 있다’는. 그 보물을 귀히 여기며 누구에게든 기꺼이 손 내밀 수 있다면 스스로 보물이 되리.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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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종일 선생님. 먼저 단 한번의 일면식도 없는 분에게 이렇듯 편지를 쓰게 된 경유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가장 사소한 구원>이라는 화제의 신간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이런저런 실패와 상처, 분노, 좌절로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30대의 젊은 여성 칼럼니스트 김현진이 자신이 발견한 구원의 노신사와 주고받은 편지를 묶어낸 책이지요. 그 노신사는 서울대를 나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주영대사와 주일대사, 대학총장,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거친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습니다.

서적 '가장 사소한 구원' (출처 : 경향DB)


처음엔 뭔가 살짝 아니꼽더군요. 제가 아는 김현진은 주류라든가 엘리트, 기득권들의 논리를 태연하게(심지어 유머를 섞어 매우 희극적으로) 무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젊고 도발적인 여성 작가인데, 그런 그녀가 책이 지독히 안 팔리는 ‘루저의 궁지’에 몰려 엘리트 중의 엘리트에게 ‘구원의 SOS’를 청한 것인가 싶어서 다소 굴욕적으로 느껴졌달까요? 읽어보기도 전에 말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부터 굴욕에 대한 그러한 준비된 저항감이 슬그머니 무장해제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세상에 무서운 일 없고, 우스운 일뿐이다.” ‘대부분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혀 지낸’ 이들이 만들어 낸 무섭고도 우스운 일. “감옥은 권력을 놓고 각축을 벌이는 정치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 사람들이 함께 사는 모든 곳에 스스로 만든 감옥이, 그리고 그 안에 갇혀 무서워하고 무섭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현진 작가에게 보내는 선생님의 답장을 읽으며 시종일관 저 자신의 감옥을 느꼈습니다. 제 스스로 만든 우습고도 가련한 감옥 말입니다. 특히나 ‘일베’와 ‘서북청년단’에 대한 라종일 교수님의 의견을 읽을 땐 뼈아픈 반성이 느닷없이 몰려와 제 심장을 강타하는 느낌이었지요.

‘종북’이든 ‘일베’든 ‘일정한 명칭의 이름표’를 붙여 편리하게 분류하지 말고, 한 개인이 구체적인 삶을 들여다보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해하기 힘든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하셨던가요? 그 이야기를 읽고 일류가 됐건 이류가 됐건, 설사 삼류라 하더라도 글을 쓰는 자로서 나 자신이 얼마나 판에 박힌 단층적인 의견만을 추구하며 안일하게 살아왔는지 생각하니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부끄러웠습니다.


한편 선생님께서 쓰신 앙드레 말로 이야기를 통해서 사소하지만 큰 위안과 용기도 얻었습니다. 작가로서 매우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드골 대통령 집권 시절에 문화부 장관까지 지낸 앙드레 말로의 업적이라는 것이 선생님이 보시기에 실상은 쓴웃음을 짓게 하는 허풍 혹은 자기 기만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일화 말입니다. “성공적인 사기꾼은 다른 사람을 속이기 전에 자신이 먼저 자기 거짓말에 속는 사람”이라고 하셨던가요? 그렇다면 성공적인 작가보다는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진실된(‘스스로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이 되자는 다짐을 하게 되더군요.

반면 감히 반발하고 싶었던 내용도 있었답니다. 무엇보다 먼저 묻고 싶었습니다. 이 세상은 진정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것인가요? 선생님 말씀처럼 사형 제도가 없어졌다거나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었다는 것만으로 이 세상을 진정 그렇게 낙관해도 좋은 것일까요? ‘혁명’과 ‘그 이후 세상의 변화’에 대해서 그토록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는 분의 의견이라 저로서는 더더욱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또한 ‘무자식 상팔자’가 아니라 ‘아이가 구원’이었다는 개인적인 경험을 예로 들며 출산을 독려하던 부분도 그랬지요. 뭐랄까? 제게는 저마다 다른 개인차를 고려하지 않은 ‘일반화의 오류’처럼 읽혔습니다. 물론 제가 틀렸을 수도 있지요. 지난 밤 <천국의 아이들>이라는 이란 영화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학교에 신고 갈 운동화가 단 한 켤레밖에 없는 가난한 집안의 두 아이가 보여주는 눈물과 잔꾀가 얼마나 예쁜지, 비참한 현실을 느닷없이 ‘천국’으로 만드는 ‘구원’으로서의 아이들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으니까요. 혹시 안 보셨다면 꼭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

슬프게 이런 의문이 듭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천사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볼품없이 처량해진 루저로 만드는 것일까? 패배 의식에 젖은 채 나날이 시들어가고 있는 이 땅의 청춘들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왜 못나게 취직할 생각만 하는 것이냐? 남에게 직장을 만들어 줄 생각은 못하는가?” 격하게 공감했던 부분입니다. 그러면서 “세상은 여전히 사람으로서 추구하는 가치의 문제보다 경제와 분배 문제에 몰두해 있는 것 같다. (…) 우리 모두가 이 문제에 갇혀 있는 것 같다”고 하셨지요. 그 마지막 추신에서 저처럼 아쉬움이나 절망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독자가 더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공개적인 편지를 마칠까 합니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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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한 해를 고요히 정리하고 청결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기 위해 몇 주 전부터 담배를 끊고 술도 끊었다. 그리고 뜨개질을 시작했다. 왜 하필 뜨개질이냐고 묻는다면 글쎄, ‘잃어버린 시간’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정확히 시간이 만드는 아름다움으로 보상받고 싶은, 지난 20년간 술과 담배로 잃어버린 나의 애달픈 청춘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라고.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뜨개질에 대한 로망을 갖기 시작한 게. 서른다섯의 나는 유럽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스페인 발렌시아의 한 공원에서 뜨개질을 시작했다. 때는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내 손에는 아라곤행 기차표가 들려 있었는데 기차는 다섯 시간 후에나 떠날 예정이었다. 그랬다. 내게는 숙취와 함께 견뎌야 하는 길고 긴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고 인근에는 시장도 있었다. 시장에는 알록달록 가지각색의 예쁜 털실들을 파는 가게가 있었고 가게 안에서는 동네 할머니들이 담소를 나누며 뜨개질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그때 알았다. 술 마시는 여자보다는 뜨개질 하는 여자로 늙고 싶은, 나도 몰랐던 내 미래의 소망이 내 안에 잠자고 있었다는 걸.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을까? 안나 리사라는 핀란드 여자가 뜨다 만 털양말 사진을 봤다. 아마도 세 살 정도일 거라고 짐작되는 아이의 고사리 같은 발에 겨자색 털양말이 신겨져 있는데 한 발은 아직 미처 완성되지 않은 채 엄마의 세심한 마무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이 실려 있는 책의 페이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내 결핍을 보여주는 어떤 아름다움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랄까? 심지어 문득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면서 전시장에서 본 어떤 예술작품보다 더 아름답고, 더 숭고하고, 더 의미심장한 걸 보고 있다는 확신마저 들었다.

그때 나는 나 자신에게 왜, 라고 물었다. 오늘날 물질적인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주로 예술품을 사고팔며 예술을 논하는 것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까? 전시장의 값비싼 미술품보다 안나 리사라는 핀란드 여자가 서툴게 손수 짠 털양말이 오히려 더 예술작품처럼 느껴진 이유 말이다.

예전에는 거의 모든 여자들이 손뜨개질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이 풍요로운 시대에 지하철에서 손뜨개질 하는 여자가 있다면 여기저기서 그 구경거리를 찍고자 스마트폰 터지는 소리가 날 거다. 손을 움직여 뭔가 만드는 일의 가치를 대량 생산이 대신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만드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더 안타까운 건 그 잃어버린 능력을 아쉬워하는 이도 거의 없게 되었다는 거고.

설사 그걸 인식하고 있는 이가 있다 해도 슬픈 건 우리로 하여금 정신 없이 일하고 정신 없이 소비하게 만드는 이 물질문명이 우리에게서 뜨개질 할 수 있는 시간을 몽땅 빼앗아 버렸다는 거다.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누군가 미완성의 털양말 두 짝과 털뭉치를 전시장에 들여다 놓으면 뒤샹이나 요셉 보이스의 설치작품보다 더 의미심장한 예술품처럼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건.

뜨개질 소품으로 꾸며진 겨울 인테리어 (출처 : 경향DB)


찾아보니 실제로 손뜨개를 전시장의 예술작품으로 승화하여 주목받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있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폴란드 작가 아가타 올렉(Agata Olek)과 얼마 전 한국에서 첫 전시를 연 핀란드 작가 아누 투오미넨. 작품 스타일이 다르고 스케일도 다르지만 그들이 만든 뜨개질 작품을 보고 있으면 색색의 실뭉치와 바늘로 인간의 손이 부릴 수 있는 마법에 고무되고 만다. 심지어 그 마법은 특별한 재능이나 능력을 요구하기보다 시간과 겸손한 마음만 있다면 누구라도 부릴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 더 설렜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뜨개질을 하고 있다. 알코올과 니코틴이 대부분 빠져 나간 육체와 맑은 정신으로 앉아 한 땀 한 땀 뜨개질을 하고 있다. 해보니 알겠다. 왜 지난 소치 올림픽의 스노보드 슬로프스타일 경기 결승전에서 핀란드 선수단의 코치가 그 절체절명의 긴장된 순간에 뜨개질을 했는지. 두려움, 불안, 상처, 심지어 권태마저 치유되는 느낌이다. 게다가 무념무상의 명상 효과 때문인지 손발이 절여도 계속하게 될 만큼 중독적이다. 무해하고 건전할뿐더러 매우 창조적인 중독.

리스본에서 만나 내게 손뜨개로 만든 작은 브로치를 선물했던 덴마크 아가씨가 그랬다. ‘덴마크는 물론 핀란드나 스웨덴에서는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뜨개질을 배운다’고. 그래, 뜨개질부터 배워보자. 저임금 저숙련 시대가 도래한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 만드는 힘이다. 비용적인 면에서 가장 쉽게 시도해 볼 수 있는 것. 누구나 적은 비용으로 작업장에 묶이지 않고 이동하면서 아무 때나 느긋하게 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뜨개질이니까.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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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12월 연말이었다. 휴대폰으로 이상한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저는 지금 큰 배들이 있는 도시에서 길을 잃고, 많은 것을 잃고 헤매고 있어요.” 일 때문에 두어 번 만났고 서로 호감을 갖고 있는 남자에게 온 것이었는데, 처음엔 ‘다 큰 남자가 이런 감상적인 메시지를 잘도 보낸다’ 싶어 무시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급기야 자살 직전에 나에게 ‘도와달라’고 가느다란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진짜로 죽기라도 한다면 나는 평생을 죄책감 속에서 시달리겠다 싶어서, 심사숙고해서 답변을 보냈다.

“알이 꽉 찬 꽃게찜을 드세요. 소주도 한잔 하고요. 그 다음엔 포만감 속에서 일단 자고 보는 거예요. ‘길’은 그 다음날 찾아도 되니까.” 마침 그 전 주에 안면도에 가서 제철 꽃게찜 한 접시가 주는, 그 기적 같은 만족감을 체험했던 터였다. 탐욕스럽게 꽃게 다리를 빨며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작지만 행복해질 수 있는 이런 확실한 방법을 더 일찍 알았다면 지난여름 그 악당 때문에 폭우 속에서 울고불고 그따위 청승은 떨지 않았을 텐데. 꽃게만도 못한 망할 놈의 사랑, 차라리 몹쓸 병이나 들어라!”

하루키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 마시는 차갑게 얼린 맥주 한 잔 같은 것이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하고 혼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는 새 중얼거리는 것 같은 즐거움.”

지금 바로 그런 느낌이다. 내 평생 이렇게 고된 하루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당연히 각오는 물론 울 준비까지 되어 있었다. 내 손으로 집짓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심지어 우리에겐 건축주이며 시공자로서 밑바닥 일당 잡부 일까지 내 손으로 한다는 원칙이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나도 모르게 정말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연이틀째 무릎으로 기거나 누워서 질질 몸을 끌며 콘크리트 타설할 부분에 얼어붙은 눈과 얼음을 녹이고 걸레로 닦아내는 작업을 할 때였다. 때 이른 한파 속에서 낮에도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두려웠다. 해지기 전에 이 작업을 못 끝낸다면? 다시금 눈이 온다면? 얼음 때문에 기껏 죽도록 고생해서 쳐놓은 콘크리트가 무너진다면? 조지 오웰이 탄광 광부로서 밑바닥 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위건부두의 갱에 들어갔을 때도 이렇게 암담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심지어 우리는 해가 완전히 진 다음에도 쉬지 못하고 평창 시내에 가서 연탄을 사다가 콘크리트 타설 아래 불을 지펴야만 했다.

하지만 결국 해냈다. 밤 9시 무렵 하루 종일 추위와 막노동에 시달린 몸을 욕조에 담그자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내전 중인 사라예보를 방문한 수전 손택에게 어느 중년 여성이 했다는 말도 떠올랐다. “목욕 못한 지 16개월이 되었어요. 그 기분이 어떤지 알아요?”

샤워 후 늦은 저녁을 만들어 먹자 남편도 그제야 행복하다는 듯 해맑게 웃었다. “그래 이 맛이야.” 제철 꽃게 생각이 났지만 그 대신 집에서 만든 수제 돈가스에 차가운 막걸리 한 병을 내주자 남편이 했던 말이다. 돈이 없어서, 머리가 나빠서, 꼴에 자존감은 커서 몸이 좀 고생이지만 뭐 어떠냐 싶은 기분이었다. 격렬한 육체 노동 끝의 막걸리 한 잔의 맛은 하루키 같은 문단 권력자는 모르지 싶은 의기양양한 기분마저 드는 밤이었다. 심지어 땅콩 몇 알 때문에 화가 나서 뉴욕공항에서 수백명을 실은 비행기를 후진시켰다는 ‘월드챔피온 능력자’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에 대한 얘기를 나누자 육체를 고생시키는 우리의 무능력이 새삼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리턴' 사건 이후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바로 그 땅콩 _ 트위터 캡쳐


1930년에 런던에서 출판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고전 버트런트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을 좋아한다. 겨우 ‘땅콩리턴’ 때문에 세상의 구경거리가 된 조현아씨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러셀의 충고를 옮겨보자면 이렇다. 1.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기보다 과소평가하는 편이 행복을 느끼기 쉽다.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뜻밖의 성공에 놀란다. 2. 적당한 음식에 만족하는 사람이 낫다. 미식가는 인생이 제공하는 즐거움의 절반은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다고 푸념하는 까다로운 사람과 비슷하다. 3. 자신이 맡은 일에 지나친 관심을 쏟는 사람은 극단주의로 빠져들 위험이 있다. 극단주의적인 경향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간의 삶과 우주 속의 인간의 위치에 대해서 폭넓게 이해하는 것이다. 즉 자기보다 큰 어떤 것에 유대감을 느끼며 자신이 우주의 작은 점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큰 어떤 것의 일부임을 깨닫는 것.

혹시 다 가졌는데도 행복하지 못해서 자꾸만 남을 괴롭히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마지막 이 대목에 방점을 찍어야 하실 듯.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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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가는 서울행. 옷장 앞에서 잠시 서성댄다. 뭘 입을까? <너라는 우주에 나를 부치다>라는 첫 소설을 낸 저자로서 인터뷰를 해야 하는 처지라 가능하면 그 처지에 맞게 입고 싶었다. 실패한 연애를 하도 많이 해서 되레 천진해진 여자가 진짜 사랑을 찾아 겁도 없이 전진하는 로맨스 소설이니 원피스를 입어야 하지 않을까? 기왕이면 밝고 산뜻하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걸로? 그런 생각으로 이것저것 입어본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 내키지 않는다. 그냥 평소 가장 즐겨 입는 청바지에 맨투맨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최소한의 격식을 부여하는 의미에서 두툼한 회색 재킷을 걸쳤다. 그리곤 늦가을 일교차를 고려하여 사파리 코트를 하나 더 입을까 하다가 짐을 줄이는 차원에서 코트 대신 엄마가 짜 준 털목도리로 대신했다. 좋았다. 뭔가 애쓰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없는 것이 나 스스로 편안했다. 심지어 무언가에 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느낌마저 드는 것이….

어쩌면 트렌드를 좀 의식했는지도 모르겠다. 놈코어(normcore)라는 신조어와 스티브 잡스라는 대표 아이콘을 앞세워 ‘일상적 평범함을 추구하는 패션이 무엇보다 더 스타일리시한 시대가 됐다’는 소식이 초고속 인터넷선이 안 깔린 나의 적막한 산골 마을에까지 전파된 요즘이다. 개 짖는 소리와 함께 요란하게 나타나지만 기껏 해봐야 신용카드 청구서만 가져다주는 우체부 아저씨 대하듯 어떤 트렌드이든 오면 오고 가면 가는가 보다 했지만 놈코어만큼 어딘지 좀 반가운 구석이 있었다. 베블런이 제기한 유행론의 핵심, 나와 다른 사람을 구별 짓기 위한 패션에 무심한 이들의 ‘반트렌드적 트렌드’가 바로 놈코어가 아닌가 싶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놈코어는 ‘다르지 않음’에서 오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태도”라 했던 뉴욕의 트렌드 예측 회사 케이-홀(K-Hole)의 설명에 이상하게 마음이 동요되고 있던 차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마을 입구 가게 앞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내 손엔 방금 끊은 분홍색 버스표가 들려 있다. 하루에 다섯 번밖에 없는 서울 가는 버스표. 그 버스표를 손에 쥐기 위해서는 누구나 ‘백운상회’ 할머니가 조금도 서두르는 기색 없이 느긋하게 앉아 돋보기를 쓰고 손으로 날짜를 적어주는 모습을 지켜보며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 처음엔 답답했지만 어느새 그 리듬에 익숙해진 나는 할머니와 이런저런 한담을 나누며 내가 속한 시골 공동체의 아우라를 느낀다. 이제는 그 느낌이 내 몸에 잘 맞는 데님 팬츠처럼 편안하게 애틋하다.

패션 잡지에 있는 놈코어 패션


‘뉴욕 매거진’ 표현대로라면 놈코어는 ‘자신이 전 세계 70억 인구 중 하나임을 깨달은 사람들을 위한 패션’이다. 그런 차림으로 버스에 오른 나는 괜히 설레는 마음으로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당신의 서쪽에서>. 뒤늦게 제주의 서쪽에 꽂힌 탁현민이 한동안 그곳에 내려가서 생계형 한량 낚시꾼처럼 살며 쓴 제주 찬가 에세이다.

잘 읽혔다. 제주를 사랑하게 됨으로써 스스로 좀 더 아름다워진 기분이 든다는 마흔 줄의 남자 이야기가…. 심지어 애틋해서 매만지듯 읽었다. 그러다 몇몇 대목들을 읽으며 깜짝 놀라고 말았다.

“너를 사랑하게 됨으로써 내가 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건 서로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이며 가장 뜨거운 고백이다.” “누구든 자기가 선택한 것을 보며 살게 된다. 나는 이제 다만 아름다운 것만을 보려 한다. 어떻게든, 그렇게 살고 싶다.”

그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아름답다고 느낀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서울을 떠나간 여자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며…. 아, 그랬구나. 이 사람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구나. 대체 불가능한 어떤 특별한 한 사람, 어떤 특별한 한 장소에게 느끼는 사랑 이야기를 서로 다른 형식의 책으로 구현했지만 우리가 느끼는 분노와 좌절, 무기력, 해법은 결국 비슷한 것이구나, 생각했다.

탁현민은 “유토피아란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라고 썼지만 난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것”이라는 표현을 덧붙이고 싶다. 그건 아름다움이다. 그건 사랑이고 또 행복이다. SNS를 열면, TV를 켜면, 뉴스에 접속하면 우리를 한없이 무기력하고 하찮은 존재로 만드는 이 세상을 우리 모두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살아가야만 한다. 서로 독려해야만 한다. 우리 각자 계속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갈 수 있도록. 누군가에게 열광하고 무언가에 아름다움을 느끼며 계속 사랑하고 창조할 수 있도록.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다. 어두운 밤의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나는 우리 모두가 “함께 있다”고 느낀다. 가방에 책이 두 권 더 있다. 표준을 뜻하는 ‘norm’과 핵심을 뜻하는 ‘core’의 합성어 놈코어를 처음 사용한 SF 대가 윌리엄 깁슨의 책 <뉴로맨서>와 평범한 부부의 매우 비범한 여행기 <한 달에 한 도시>. 트렌드와 SNS는 흘러간다. 하지만 책은 내 가방 안에 있다. 든든하다. 행복하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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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 중이었다. 그때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한마디도 놓치면 안될 것 같은 매우 중요한 전화였던 터라 자동차를 갓길에 세웠다. “네, 네. 그렇군요.” 안경을 쓴 채 영혼 없이 기계적으로 주판알을 튀기고 있을 것 같은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내 신용등급과 이런저런 부채 내용을 읊었고 나는 그 내용을 야단 맞는 학생 심정으로 듣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외국에서 송금되는 고정적인 수입이 저희 은행으로 들어오고 있어서 심사 과정에서 별 문제가 없으면 마이너스 통장은 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중요한 과정이 하나 남았는데, 혹시 지금 받아 적으실 수 있나요?” 나는 얼른 종이와 펜을 꺼내어 남자가 불러 주는 내용을 받아 적었다. ‘채·무·변·제·능·력·검·증’ 또박또박 적었다. 자신을 ○○은행 스마트뱅킹 대출 담당 심사관이라고 소개한 남자가 불러주는 내용을…. 요는 마이너스 통장을 받으려면 부채 상환 능력을 검증 받아야 하는데 그 내용과 관련해서는 실무 담당자가 다시 전화를 할 거니까 잘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그때부터 또 전화를 기다렸다. 애타는 마음으로….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실무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매우 퉁명스러웠다. “심사관 하고 통화하셨죠? 그런데 왜 이게 저에게 다시 내려온 거죠?” “아, 글쎄요. 저한테 채무변제능력검증을 받아야 하는데 실무 담당자에게 설명 들으라고 하던데요?” 그리고 또다시 이어지는 기다림의 시간.

저녁 무렵에야 기다리던 전화가 왔고 그 목소리에 하루의 피로가 담겨 있었다.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가장 쉬운 건 저희 은행 계열사 카드사에서 카드론 받으신 다음 바로 상환하는 겁니다. 바로 상환하면 이자는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오늘 중으로 받아보신 다음 얼마 나오는지, 이자가 얼마인가 저에게 알려주세요. 그 금액과 이자율에 따라 마이너스 통장 액수와 금리가 달라지거든요. 전화 번호 아시죠? S은행 스마트뱅킹 센터 1599-3576으로 전화하신 다음 1번 누르시면 됩니다.”

바보가 아니라면 그때 알아야만 했다. 중국 어디쯤에 있는 남자가 지금 돈이 필요한 한 멍청한 여자를 상대로 ‘보이스 피싱’ 중이라는 걸…. “참 눈 가리고 아웅 식이네요. 채무변제능력검증이라는 게….” 내가 약간 어이가 없다는 듯 그렇게 묻자 남자가 대답했다. “계열사지만 실적 때문에 사실 경쟁관계에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편법을 쓰기도 하는데 그 사실에 대해선 그쪽 카드사 담당자에게는 말씀하시면 안됩니다.” 세상에, 나 바보 맞다. 남자의 말을 들으며 요즘은 은행원들도 실적 때문에 야근을 하는구나, 하며 짠한 마음까지 들었으니…. 심지어 12.90%로 스피드론 1200만원을 받은 후 남자에게 득달같이 전화해서 알려줬다. 금액과 이자가 얼마나 나왔는지….

낚시의 묘미는 물고기와의 여유 있는 줄다리기라고 했던가? 남자는 다음날까지 계속 내 애간장을 태우며 기다리게 했다. 저녁 일곱 시 넘어 전화한 남자는 마이너스 통장이 3500만원까지 나왔으며 이자는 4.20%라고 했다. 남자는 그 희소식을 전하며 받은 카드론은 오늘 밤 중으로 상환해야 한다면서 카드사 야간콜센터 전화번호를 가르쳐줬다. 야간콜센터 남자에게서 상환을 위한 가상계좌번호를 받는 순간 알았다. 지금 남자의 낚시찌가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다는 사실을…. 남자는 낚시를 낚아챌 만반의 준비를 하며 미소짓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불현듯 하찮은 용량이긴 하지만 내게도 두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물고기가 여유 있게 “그럼 계속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는 유유히 몸을 뺐다.

정말 무서웠던 건 남자가 내 남편에게 사과를 받아야겠다며 그날 밤 세 번, 네 번, 다섯 번 계속 전화했다는 사실이다. 112에 ‘보이스 피싱 미수 사고’를 신고한 후 남편이 남자에게 전화해서 한바탕 욕을 퍼부은 직후였다. 그의 뻔뻔함에 몸이 떨려 왔다. 남편은 마지못해 사과했다.

보이지 않는 어둠의 전화, 보이스 피싱 (출처 : 경향DB)


사과는 내가 편해지기 위해서 하는 것만이 아니다.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내 어리석음과 게으름 때문에 매우 치밀하게 일을 꾸민 남자가 무려 이틀 동안이나 헛공을 들였다. 그 점 사과한다. 진심으로 미안하다. “돈이 필요하시면 은행에 가세요. 제 발로 은행에 가는 수고 정도는 하셔야죠. 전화로 모르는 사람이 내 편리를 봐준다고 하면 100프로 다 사기라는 거 잊지 마시고요.” 내 전화를 받은 112 담당 형사는 그렇게 훈계했다. 그의 말이 맞다. 우리의 신용정보는 대부분 다 털렸다. 그 신용정보 안에 당신을 낚아챌 수 있는 미끼의 내용이 담겨 있다. 편리할수록 의심하시라. 전화는 안된다. 그보다는 우리의 발이 더 믿을 만하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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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대 남성이 돌연사할 확률이 가장 높다는 이 나라에서 ‘중년 남성’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왠지 울적하다. 모든 것을 서열화하고 약육강식의 원리로 쉴새없이 찍어누르는 사회 속에서 알맞게 구겨지고 비굴해진 남자의 씁쓸한 모습. 하지만 그 살찌고 망가진 육체 안에 여전히 풋풋한 ‘소년’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문득 슬퍼진다.

앗, 그런데 그런 그들이 최근 느닷없이 출판계의 새로운 ‘총아’로 떠오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 오십대가 되면 감수성이 예민해진 남성들이 여성보다 소설이나 시집 같은 문학책을 더 많이 읽는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문학 중년’이라는 말까지 유행하고 있다니…. 매우 센티멘털하게 느껴지는 굿 뉴스여서 오랜 만에 가슴까지 설렜다. 심지어 혼자 신이 났다. 중년 남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의 리스트를 떠올리며….

제일 먼저 떠오른 이름은 레이먼드 챈들러. 석유회사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지만 ‘자기 내면에서 살고 있던 소년의 불꽃’이 저지른 일련의 실수 때문에 해고당한 후 실업자가 되어 비로소 소설을 썼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단연 첫 번째로 꼽고 싶다. 44세부터 쓰기 시작해서 51세가 돼서야 마침내 첫 장편 소설 <빅 슬립>을 출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의 대가가 된 그다. 무엇보다 그가 창조한 필립 말로라는 탐정이 너무도 매력적이다. 부패와 탐욕이 들끓는 시대의 욕망과 절망을 추적하는 외롭고 위험한 인물. 냉철하지만 감상적이고, 신랄할 정도로 지성적인 남자. 타락하지 않았기에 언제나 가난했던 패배자. 하지만 그 영혼만큼은 결코 패배할 수 없는…. 그 남자 필립 말로가 등장하는 탐정 소설 <빅 슬립>이나 <안녕, 내 사랑>, 그리고 그를 창조한 레이먼드 챈들러의 창작 비밀이 담긴 에세이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를 함께 추천한다.

두 번째 추천작은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폴 고갱의 삶을 모델로 한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마흔에 집을 떠난다. 버젓한 사회적 지위를 지닌 증권 중개인이며 아내와 두 아이까지 거느린 사람이 마흔이 되어 느닷없이 그림을 그리겠다고, 몰인정하게 처자식을 내팽개친다. 그리곤 세상 사람들이 비열하다고 욕해도 본인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남들 눈에는 ‘승산 없는 도박처럼 보이는 일’이었겠지만 그 자신에게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어떤 진실한 열정이 이끄는 일이었으니까. 천하의 악질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암처럼 자라고 있던 창조 본능’에 따라 화가가 된 남자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중년이라는 나이가 마치 ‘악의 꽃’처럼 매우 유혹적으로 느껴진다.

한 중년 신사의 독서 삼매경 (출처 : 경향DB)


세 번째는 언젠가 ‘내일이 새로울 수 없으리라는 확실한 예감에 사로잡히는 중년의 가을은 난감하다’고 했던 분에게 추천하고 싶었던 책이다.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 맞다, 얼마 전 제레미 아이언스가 그 주인공 역을 연기했던 동명의 영화 원작 소설. 라틴어 교사로 조용하고 정돈된 삶을 살던 한 남자가 수업을 하다 말고 ‘그냥’ 떠나버리는 이야기. 심지어 그는 가방조차 챙기지 않았다. 가방을 교실 탁자에 그대로 남겨둔 채 남자는 리스본으로 떠나 버린다. 그의 나이 57세였다. 포르투갈의 한 귀족이 쓴 책에 이끌려 저자가 침묵한 책 속의 비밀들을 파헤쳐 보고자 리스본으로 떠났을 때의 나이가…. 나라는 한 인간을 규정하던 직업, 관계, 도시, 나라 같은 매우 익숙한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에 종종 목이 멘다면 나이를 떠나 누구에게든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정확히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이런 질문이 나온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아주 작은 것만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게 바로 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는 이유라고 난 생각한다. 그 나머지 세계, 우리가 그 나이가 되도록 미처 경험하지도 생각지도 못했던 세계를 엿보고 새로운 인생, 새로운 나에 대한 전망을 얻고자 하는 중년의 독서 말이다.

누구보다 중년의 위기와 그 가능성에 주목했던 심리학자 칼 융에 의하면 중년은 새로운 중심이 ‘자기’가 될 절호의 타이밍이며, ‘자기로 살아가는 평화’와 ‘변화를 통한 치유’를 모색할 때다. 무엇보다 중년에겐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자의든 타의든 경쟁 구도를 떨어져 나가 얼마간 체념한 자의 정신적 여유.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 경험에 의해 폭넓게 확장된 의식과 비전을 가지고 나 자신이 품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여유 말이다. 그러니 즐겁게 골라 보자. 무슨 책을 읽을지…. 자기계발서는 가련한 청년들에게나 던져주고 이제는 시집이나 소설을 읽을 때라는 거 잊지 마시고.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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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엄마 나이, 올해 71세다. 그런데 얼마 전 하시는 말씀이 찬란하게 놀라웠다. ‘지금 인생에서 절정의 행복을 느낀다’는…. 엄마의 고향은 전라북도 부안이다. 가난한 농촌 출신의 젊은 부부는 삶이, 무엇보다 자식들의 삶의 조건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도시로 이주했다. 하지만 고향을 떠난 남편은 뿌리 뽑힌 수목처럼 안절부절못하며 방황하다가 먼저 서둘러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막내딸이 아홉 살 되던 해였다. 그 이후 젊은 부안댁은 아이들을 혼자 키웠다. 남편도 없이 도시에서 세 아이를 혼자 키운다는 건 온갖 설움과 수모, 육체적 고통을 수족인 듯 달고 살아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얼마나 악착스럽게 살았던지 남자 몫의 일당을 받기 위해서 벽돌 70장 얹은 지게도 졌다는 게 이제 와 무용담처럼 들려주는 엄마의 얘기다.

“외로움이니, 두려움이니 그런 거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런 감정은 내게 사치였어. 어쨌든 살아가야 하니까. 어린 새끼들을 굶길 수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엄마에게 물었다. “그래서 행복한 거야? 그렇게 키워낸 자식들이 이제 다들 그런 대로 먹고살 만하니까?”

“올해 니 오빠 막내까지 대학 보내고 나서 비로소 내 시간, 내 인생을 마음껏 누리게 됐으니까. 여행가듯 내 발로 시골 딸네 집 와서 이렇게 산으로 들로 실컷 쏘다니다 지치면 커피 한 잔 마시고 책을 읽고 낮잠을 잘 수 있다니…. 그냥 행복한 정도가 아니라, 최고의 행복이라니까. 황혼의 행복…. 아주 황홀할 정도다.”

그렇게 말하는 엄마가 얼마나 신선하게 빛나 보이던지…. 신비로울 정도였다. 누군가 엄마에게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문득 그날 엄마가 읽고 있던 책이 궁금해졌다. 강상중 선생의 <살아야 하는 이유>였다. TV가 없는 산골 딸네 집에서 너무도 심심해진 나머지 읽게 된 책. 엄마는 그 책을 읽다가 몇 번인가 돋보기를 내려 놓고 눈물을 찍어냈다.

김상중 저서 '살아야 하는 이유'


“아들이 죽었나봐. 극도의 신경증인지 우울증인지 뭐 그런 병에 걸려서 많이 아팠던 모양인데 그 때문에 자신의 출생을 저주했다는구나. 자식이 그리 죽으면 얼마나 비통할까? 나라도 살기 싫어서 구태여 살아야 하는 이유를 묻겠구나 싶어 절로 눈물이 났다.”

19세기 미국인 비어스의 <악마의 사전>에는 행복이 ‘타인의 불행을 바라볼 때 생기는 일종의 안도감’이라고 정리되어 있다. 그렇다면 혹시 엄마가 일흔이 넘어 느낀다는 그 ‘절정의 행복’은 그런 안도감과 비슷한 것일까?

“말도 안돼. 이 나이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불행을 목격했겠니? 그런 걸 보면 내 일인 듯 가슴이 아프지, 안도감이라니…. 그런 게 아니라, 뭐랄까. 난 못 배운 사람이잖니? 자식들한테 물려줄 재산도 없고. 살 날도 얼마 안 남았고. 그런데도 순간순간 사는 기쁨을 느끼는 내가 새삼 고마운 거지. 이런 삶도 하늘의 축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엄마와 함께 기억되는 그 인연 때문에도 나는 지난 봄부터 강상중 선생의 신작을 기다렸다. 놀랍게도 이번에는 소설이었다. 친구를 잃은 스무 살 대학생과 아들을 잃은 중년의 교수가 죽음과 삶에 관해 주고받는 편지로 구성된 소설. ‘죽는다는 건 무의미하게 그냥 사라지는 건지, 그렇게 죽을 거라면 우리는 왜 태어났는지, 인생에 살 의미가 있는지’ 묻는 청년의 편지에 소설 속 화자이며 작가 그 자신이기도 한 강 교수가 답한다. “사람이 사는 의미는 다른 사람에게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며 “과거는 그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가 죽었다 해도 분명히 존재했던 그만의 과거로 있는 거라고.

실제 아들의 죽음과 함께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수많은 죽음들을 목격하면서 그 많은 죽음을 이대로 잊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했던 강 교수 자신의 체험담과 마음이 담긴 소설 <마음>을 읽고 생각했다. 돌아가신 내 아버지와 세월호와 함께 사라진 300여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했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있는 과거로서 우리에게 전하는 유산이 무엇인지….

“내 어머니를 보렴. 시장에서 다라이 파는 여자의 고맙다 소리가 이상하게 가슴을 울린다며, 마당에 호박이 이렇게 예쁘게 열렸다며 좋아하는 내 어머니…. 우리 삶 속으로 스며드는 생의 기쁨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단다. 넌 그걸 발견해야 해. 살면서 그때그때, 그 장소에 있는…. 다른 사람들 말은 듣지 마. 특히 괴물 같은 국가나 기관에 종속된 어른들 말.”

죽은 내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다. 난 내 아버지와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들을 통해 ‘죽은 사람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삶에 대한 더 많은 중요한 얘기를 들려준다’는 걸 알았다. 따라서 우리는 제대로 살기 위해 죽은 자에게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행히 죽은 자들은 책 속에 살아 있다. 귀 기울이면 그들이 응답한다. “새로운 세대는 마치 난파된 배를 버리듯이 지나간 세대가 벌여놓은 사업을 버리는 법이라오” 했던 소로처럼 말이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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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에로 연애소설’ 3부작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대해서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일반의 성도덕과 삐딱하게 대립하는 이 작품은 서로 속박하고 학대당하는 가운데 쾌감을 느끼는, ‘BDSM’이라는 은밀하고 괴이한 성생활을 중심으로 한 어느 남녀의 연애 이야기다. ‘BDSM(구속과 순종, 지배와 굴복,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뜻하는 약어)’이라는 단어가 낯설다면 그냥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뜻하는 약어 ‘SM’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 같다. 여하튼 순결한 여대생이 돈 많은 부자 청년과 노예 계약을 맺고 결박당한 채 매를 맞으면서 쾌락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의 어른으로 성장하며 자아정체성을 찾는다는 이 소설이 <해리포터> 시리즈와 비슷한 속도로 많이 팔려서 영어권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랐다고 한다. 이해가 되나? 난 안 된다. 너무도 낯설고 기이해서 연구 대상으로 삼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실제로 그 책을 연구 대상으로 삼은 사회학자가 있다. 얼마 전 출간된 에바 일루즈의 신작 <사랑은 왜 불안한가>는 일명 ‘엄마 포르노’라고 불리는 ‘그레이’ 시리즈가 어떻게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는지 주목하며 현대인의 섹스와 애정 생활의 짐작하지 못했던 어떤 차원을 폭로한다.

에바 일루즈에 의하면 ‘그레이 시리즈’는 여성이 여성을 위해 쓴 소설이다. 그것도 아마추어 여성 작가가 인터넷 게시판에 평범한 여자들을 위해 쓴 소설. 이 때문에 사도마조히즘적 섹스를 전면에 내세운 에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 특히 어머니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인기를 누렸다. 그래서 ‘엄마 포르노’라고 한다는데 도대체 어떤 점이 엄마들의 폭발적인 지지와 공감을 이끌어낸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에바 일루즈에 의하면 이 책은 포르노에 가까운 특성을 보여주면서도 우리가 익히 아는 통념 즉 전형적인 연애 소설적 요소를 모두 갖춘 러브스토리다.

무엇보다 남자 주인공 ‘그레이’가 평범한 여자들이 남성에게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춘 인물이라는 점. 사랑 없이 오직 즐거움과 기분 전환을 위한 사도마조히즘적인 섹스를 선호하는 인물이긴 하지만 그는 젊고 매력적인 데다가 무엇보다 막강한 경제력과 정력을 자랑하는 최상류층 남자다. 그런 남자가 모든 평범한 여자와 마찬가지로 내심 자신이 아름답지 않다거나 충분할 정도로 특별하지도 않다는 것을 두려워하는 여자 ‘아나’를 선택한다. 심지어 사랑 없이 시작한 가학과 피학의 변태적 섹스 게임이 처음엔 쾌락으로 그 다음엔 사랑으로 변한다. 그 과정에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오로지 공격적이고 지배적인 섹스에만 집착하고 사랑을 기피하던 남자가 변한다. 한 여자에게 헌신하는 지극히 낭만적인 애인으로의 변신! ‘신데렐라’로 대표되는 진부할 정도로 흔해빠진 러브스토리라는 말이다! 다만 “빅토리아 시대의 남자가 자신의 연정을 시와 꽃다발로 증명했다면 ‘그레이 시리즈’에서는 남자가 연인에게 바이브레이터와 항문섹스, 그리고 헬리콥터 소풍으로 대신한다”고 에바 일루즈는 재치있게 폭로한다.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작가 E L 제임스가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출처 :AP연합뉴스)


한편 이 문제의 책은 포르노라기보다 ‘할리퀸’류의 전형적인 러브스토리이면서 ‘에로티시즘의 자기계발서’에 가깝다니 재밌다. ‘포르노’가 외로운 남성에게 성적 자극을 주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이 책은 상대방이 섹스를 보다 흥미진진하게 끌어올릴 기발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을 독자들에게 매우 자세하게 가르쳐주기 때문이란다. 일례로 이 책이 출간된 후 ‘눈가리개’나 ‘회초리’ ‘나를 묶어줘 세트’ 같은 성인용품 매출이 미국에서 급증했다. 심지어 소설에 나오는 모티브에 맞춘 특별한 옷차림과 호텔방을 찾는 마니아들이 있는가 하면 ‘그레이 시리즈’ 팬들을 위한 공식적 편집 음악 앨범까지 나왔단다.

흥미로운 건 저명한 여성 사회학자인 저자가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현대의 애정관계와 한없이 권태로운 성생활에 대한 대안, 혹은 처방전으로서 ‘놀이 혹은 유희로서의 사도마조히즘’을 권한다는 사실이다. ‘정상적 섹스관계가 언제나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얼룩지는 반면’ 고도로 형식화된 BDSM은 ‘파트너의 역할과 위상’을 확실히 설정해 줌으로써 오히려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한다고.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국내에서도 출판된 ‘그레이 시리즈’는 반응도 판매도 영 시원치 않았다. 왜일까? 오늘날 미국 인구의 5~10퍼센트 사람들이 사도마조히즘 섹스를 경험하고 있으며 사도마조히즘이 일종의 문화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다. 진부해도 정상적인 섹스에서 되려 안정감을 느끼는 ‘미개한 국민’일 뿐이다.

에바 일루즈라는 여성 사회학자의 가장 신선한 주장은 ‘평등이 섹스 욕구를 퇴색시켰다’는 거다. 다시 말해서 남녀평등은 그다지 섹시하지 못하다는 지적. 동의한다. 그렇다고 굳이 민망한 것은 물론 돈 아깝게 성인용품 매장을 찾을 필요는 없을 터다. 오늘 밤 당장 아내든 연인이든 당신 옆에 누워 있는 여자의 눈을 땀에 젖은 당신의 손수건으로 가리고 손은 넥타이로 묶어보자. 그리고 명령하는 거다. “자, 말해. 내 옷을 찢고 날 정복해달라고.” 일종의 게임이며 연극 무대에 오른 배우로서의 섹스! 흠, 확실히 남녀평등보다는 섹시하게 느껴진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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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아마 누구나 그럴 거라 믿는다. 요즘은 뭘 하든 세월호와 함께 바닷속에 잠긴 아이들을 생각하게 된다. 설거지를 하거나 정원 일을 하다가 문득문득 몸서리를 치기도 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한다. 슬퍼하고 분노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욕이나 하며 넋 놓고 앉아 있는 자신을 책망하기도 하고.

정말이지 뭐라도 하고 싶다. 그래서 어떤 이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고, 또 어떤 이는 목숨 걸고 청와대 게시판에 실명으로 ‘이런 대통령 필요 없다’는 글을 올렸다.

5월11일 ‘뉴욕타임스’ 일요판에는 세월호 비극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의 무능력과 부패를 고발하는 전면 광고가 실리기도 했다. 미국에 사는 교포 여성들이 ‘미시USA’라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서 기획하고 4000여명이 함께 돈까지 모아서 실현시킨 엄청난 금액의 매우 의미심장한 광고였다.

이 세상의 끔찍함과 절망감 앞에서 무기력해지면 안된다고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기력해지는 것을 원하는 자들이 있고, 그자들이 지금 우리를 지배하며 이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걸 모두들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이 사는 이 나라를 그들 손에 맡겨두어서는 안된다는 자각 말이다.

그런데 그 광고에 대한 새누리당의 반응이 재밌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에 의하면 미국에 사는 한국인 어머니들이 ‘세월호 비극을 정치적으로 악용’했단다? 어쩜 발상들이 그리 똑같은지? 머리가 나쁜 건가? 사흘 전 새누리당 홍문종 사무총장이 했던 말과 똑같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일부 세력이 세월호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선동하고 있다’는…. 그런데 이걸 어쩌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우려를 통해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뭔지 알게 됐다고 할까? 거대한 이 국민적 슬픔과 분노의 힘을 정치화하기! 정치화해서 시민들 스스로 힘을 갖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못된 정치인들부터 몰아내기!!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신성한 주권의 힘으로!

속지 말고 쫄지도 말자. ‘정치’ 혹은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는 결코 나쁜 말이 아니다. 진짜 ‘정치’는 결코 ‘밥그릇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편 가르기’가 아니고 ‘줄 서기’도 아니다. ‘짜고 치는 고스톱’도 아니고, ‘눈 가리고 아웅 하기’ 같은 기만적 시늉도 아니다. 이 잘못된 세상을 개선하고 싶은 열망을 지닌, ‘빽’ 없고 ‘줄’ 없고 ‘힘’ 없는 일개 개인들이 그 뜻을 모아 연대하고 세력화하여 국가적 이상을 실현하는 도구가 바로 진정한 의미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총리나 국회의원 같은 이름으로 권력을 얻고 돈을 버는 직업적 정치인들 때문에 그 의미가 좁아지고 그 가치가 말할 수 없이 훼손된 정치가 아니라, ‘진흙 속에 연꽃 피워내기’ 같은 진짜 아름다운 정치 말이다.

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1618선거권을 위한 시민연대'소속 청소년들이 "가만히 있지 않으려는 작은 발걸음, 청소년 정치적 권리 선언"을 주제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


누가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 트위터에서 이런 명언을 봤다.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가장 큰 벌은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맞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세월호와 함께 심장이 아픈 그 수많은 사람들의 슬픔과 열망을 담아낼 정치적 그릇이 없다는 거다. 대다수 시민들의 안전과 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과 정치인 말이다. 잘못된 것을 고치고, 그걸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킬 정당과 국회의원들 말이다.

지금으로서는 여당은 물론 야당도 믿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여당은 물론 여당보다 더 떨어진 야당 지지율이 그 사태를 방증하고 있다. 도무지 믿을 만한 정치 집단이 없다는 것. 너무도 탐욕스럽거나 타협적이거나 무능하거나 다소 수상스럽거나 아니꼬운 고만고만한 정당이 있을 뿐.

그러던 며칠 전 마당에 생울타리용 사철나무를 심고 있을 때였다. 불현듯 우리에게는 ‘시민연대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0원짜리 사철나무 120그루가 모이면 듬직하고 아름다운 생울타리가 만들어진다. 그렇듯 시민 연대의 필요성을 느끼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지만 깨끗한 돈으로 정당 회비를 내고 스스로 이 나라의 기본적인 안전과 품위, 아름다움을 지켜내기 위한 한 그루의 사철나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 그릇이 되어줄 정당이 우리에게 있다면? 이보다 더 이상적일 수는 없을 것 같다, 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요즘은 나 혼자 이런 꿈을 꾸고 있다. “정치적으로 자각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여 ‘참여연대’와 함께 시민연대당을 만든다. 그러자 당비 내겠다는 시민 진성당원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든다. 이에 고무된 기존 정치인들이 이제야말로 정당과 지역, 이념, 온갖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 활동을 해야만 하는 때가 왔다며 너도나도 자발적으로 자기 정당을 버리고 시민연대당으로 모여든다. 예컨대 박원순, 문재인, 박영선, 심상정, 이정희, 노회찬, 유시민, 문성근, 장하나, 김상곤, 김두관 같은 야당 정치인은 물론 새누리당의 혁신파 의원들까지 품은 사상 초유의 범국민적 거대 야당 시민연대당의 탄생!” 감히 그런 꿈을 꾼다. 물론 그 꿈이 실현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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