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그러니까 19세기 초반 프랑스에 나이 든 여자들만 골라 사랑하는 드메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의 사랑은 언제나 열정적이었지만 사회적 관습에 부딪혀 언제나 보답받지 못했다. 어느날 청년이 천재적인 지성과 마성에 가까운 매력으로 수많은 남성들을 사로잡았던 여류 작가 조르주 상드(쇼팽의 연상의 여인으로 유명한 그녀의 별명은 ‘쇼팽을 말려 죽인 늙은 암여우’였다)를 찾아가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사랑이 어디에 있기에 나에게 이토록 멀기만 한 겁니까?” 그녀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무심하게 “혹시 우물 속에 있을지 모르지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드메는 사랑을 찾기 위해 당장 우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드메라는 청년은 금지된 사랑에 굴복하지 않고 사랑을 향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던졌고, 사람들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연상의 여인과 연하의 남자가 사랑하는 것을 ‘드메 커플’이라고 불렀다.

요즘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JTBC 드라마 <밀회>의 김희애·유아인 커플 얘기다. 드메의 우물 투신사를 연상케 할 만큼 유아인이 연기하는 스무 살의 천재 피아니스트 ‘선재’는 김희애가 연기하는 마흔 살의 유부녀 ‘혜원’에게 푹 빠져 있다. 특히나 8회에서 선보인 첫 베드신이 압권이었다. 일명 ‘망봐주고 싶은 베드신’이라고 불리는….

남루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청년의 아파트에서 청년의 니트를 입고 있는 중년의 여자에게 청년이 홀릴 듯 말한다. “겁나 섹시해요.” 자신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에 대해서 무섭도록 솔직한 청년의 말이다. 여자도 이제 1백퍼센트 그 진심인 청년의 마음에 기꺼이 무너지고 싶은 모양이다. 살짝 나무라 듯 “그런데 그러고 서 있어?” 묻는다. 매우 시적인 움직임으로 카메라가 천천히 청년의 방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동안 카메라 저 뒤편에서 목소리만 들려온다. “저 잘 못할 수도 있어요.” “내가 너보다 못할지도 몰라.” “그건 내가 판단해요.”

삼십 대 중반부터였을 거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남자의 섹슈얼리티에 느닷없이 호기심을 품기 시작한 게. 물론 그건 정확히 어린 남자를 통해 성숙한 여자가 경험했을 열락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었겠지만. 여하튼 그때부터 나이 든 연상녀와 그보다 한참 어린 연하남(거의 소년에 가까운)의 ‘러브 어페어’를 다룬 영화들을 좋아했다. <아름다운 청춘>이나 <쿵후 마스터>, <피아니스트>, <이투마마>, <알피>, <사랑니>, <책 읽어 주는 여자> 같은 영화들.

그 중 특별히 좋아했던 영화가 있다. 제인 버킨이 나오는 <쿵푸 마스터>로 국내에서는 <아무도 모르게>라는 제목으로 출시됐던 영화다. 한마디로 30대 중반의 이혼녀가 사춘기 딸의 남자 친구를 사랑한다는 이야기다. 딸의 남자 친구에게 푹 빠진 제인 버킨의 매력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영화. 심지어 버킨의 친딸인 샤를로뜨 갱스부르가 엄마의 연적으로 출연하는 영화. 제인 버킨이 어린 딸에게 ‘솔베이지의 노래’를 나직하게 불러주는 장면(중학생 남자 아이마저도 친구 엄마에게 반하게 되는 장면). 황당하다 싶을 정도로 문제 많은 이 커플이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피해 무인도로 도피 여행을 떠났을 때도 생각난다. 버킨이 미끌거리는 바다 미역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한 후, 14살 애인한테 묻는다. “나 예뻐?”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영혼이 떨린다. 제인 버킨의 그 순진한 사랑스러움에.

영화 '아무도 모르게'의 한장면 (출처 :경향DB)


제인 버킨이 사랑한 상대는 부모와 떨어져 사는 할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였다. 좀 외롭고 조숙한 아이. 쿵푸 마스터라는 비디오 게임을 즐겨하고, 콘돔에 물을 부어 아이들 머리 위에 떨어뜨리는 장난꾸러기 중학생. 슬프게도 녀석이 게임을 완전히 마스터할 무렵에는 그들의 사랑도 끝나게 되는데, 영화의 거의 마지막 순간에 녀석이 담배를 꼬나물고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을 보면 가슴이 무너진다. “어떤 돈 많은 여자를 사귀었는데 말야. 가슴도 납작하고 늙어서 차 버렸어.” 애통한 마음마저 들었다. 저 어린 것이 벌써 정복과 복종이라는 남성적 질서 안에 편입되어 사랑을 비루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구나, 하고 말이다.

소년이 오직 사랑을 위한 순수한 존재일 수 있는 건, 래퍼 에미넴의 표현을 빌리자면 ‘페니스는 짧아지고 고환이 커지기 직전’까지 일뿐이다. 그리고 나면 책임과 권위의 족쇄에 갇히게 되는데, 그때가 되면 그는 앞뒤 안 가리고 순수하게 사랑만 할 수 있는 열정적인 존재가 더 이상 아니다.

하지만 여자는 다르다. 여자는 언제나 사랑을 원한다. 사랑은 여자의 전 생애를 아우른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걸 깜빡 했던 거다. 언제나 사랑을 원했지만, 악마의 속삭임에 돈과 지위와 서열과 스펙에 따랐던 그 이율배반적인 면 때문에 여자의 삶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거짓과 기만에 찬 것이 되고 말았다. 많은 아름다운 여자들이 의사와 변호사를 선택하고, 그리고 매우 부유한 여자들조차 자신보다 돈이 더 많고 지위도 더 높은 남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게 너무도 당연한 세상에서 자신이 무엇보다 사랑을, 사랑의 순수를 원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그 순수한 기쁨을 되찾고 싶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여자가 두려운 것은 세상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있는 사랑에 대한 배신이니까.

근대 성 이론은 소년들이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사랑의 감정에 대해 강박적이고 감정적으로 절제하지 못하는 여자들의 성향을 공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면에서 자신이 가지지 못한 지혜와 충만한 정신, 에고를 어루만져 주는 어머니 같은 너그러움까지 지닌 중년 여성에게 끌리는 젊은 남자와 부과 권력이 있다 해도 사랑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지는 중년 여성의 결합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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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명세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메시지를 원한다면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부쳐라.” 그 말은 영화라는 매체에서 메시지보다 우선하는 건 스타일이라는 말이다.

자기만의 양식과 관점, 태도. 그게 스타일(Style)이다. 그리고 훌륭한 감독은 저마다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다. 홍상수, 김기덕,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이명세의 영화는 감독 타이틀을 지운다 해도 영화적 스타일만 보고 그게 누구의 작품인지 눈 밝은 관객은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베를린>과 <설국열차>의 감독 정보를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라면 아무리 눈 밝은 독자라도 그 감독을 가려낼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 외국 자본(특히 할리우드)이 끼어들면 감독 저마다 스타일이 조금 옅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건가?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좋아한다. 자기만의 스타일이 가장 돋보이는 감독이다. 어떤 자본으로 영화를 만들든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고 할까? <로얄 터넌바움>부터 <다즐링 주식회사> <문라이즈 킹덤>까지 대단히 미학적이며 유희적인 그 특유의 스타일에 난 늘 박수갈채를 보내왔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웨스 앤더슨 스타일의 정점을 보여준다니 궁금해죽겠다.

하지만 그걸 보자고 만사 제쳐두고 서울에 갈 만큼 한가하지 않아서(내가 사는 강원도 평창에서 서울까지는 왔다 갔다 무려 4~5시간 거리다) 그 대신 부다페스트에 대한 회상에 젖어본다. 영화에서는 주브로브카공화국이라는 가상의 동유럽 국가를 만들었다. 20세기에 접어들기 전에 급부상하기 시작한 동유럽의 온천 도시, 주브로브카. 영화 타이틀이 증명하는바 틀림없이 부다페스트에서 영감 받은 도시다.

사실 부다페스트만큼 천연 온천수로 축복받은 도시가 없다. 그 역사는 무려 20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역사상 ‘온천 냄새’를 가장 잘 맡았던 로마인들이 처음으로 부다페스트에서 온천수를 발견했다. 당시 로마인들이 세웠다는 아퀸쿰이라는 이름의 ‘물의 도시’는 지금은 거의 지명이나 거리 이름으로만 남아 있고, 부다페스트의 온천이 지금과 같은 황금기를 맞게 된 배후에는 역설적으로 150년간 오스만튀르크의 지배가 있었다. 로마인 못지않은 목욕 문화를 가졌던 터키인들은 그들만의 개성이 듬뿍 담긴 새 목욕탕을 건설했는데 그중 몇몇은 아직도 성업 중이라 그 오래된 신비와 역사 속에 누구나 몸을 담글 수 있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출처: 경향DB)


관광객들에게는 무슨 근대 왕궁처럼 보이는 세체니와 헝가리에서 가장 오래된 아르누보 스타일의 온천장 호텔 겔레르트가 가장 인기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키렐리와 루다스를 더 좋아했다.

키렐리 같은 경우 16세기 후반에 지어진 것으로 부다페스트에 남아 있는 오스트만튀르크 시대의 건축물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곳이다. 19세기 초까지 이 욕장의 소유주가 왕족이어서 ‘왕의 온천’이라고 불렸다고 하는데 요금이 겨우 1만원 안팎이다. 가장 오래된 온천답게 모든 것이 ‘구식’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하얀색 유니폼을 입은 안내원이 탈의실로 안내해주고 손님이 보는 앞에서 두 개의 열쇠로 꼼꼼하게 잠근 후 하얀색 분필로 나무 문 위에 사용자가 있음을 표시하는 모습 같은 것. 욕탕 내부는 더욱 클래식하다. 욕탕에 누우면 정교한 8각형으로 장식된 천장이 보이고 손바닥만 한 원형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신비롭게 물 위에 반짝이는 걸 음미할 수 있다.

오랜 기간 리모델링을 거쳐 최근에 다시 개장한 루다스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온천장이었다. 만병통치약이라며 온천수를 그냥 막 마시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수질이 좋을 뿐만 아니라 실내 분위기도 황홀하다. 높은 돔 천장과 그 천장을 장식하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연출하는 빛의 향연. 가슴이 드러나는 모양의 하얀색 가운을 입고 머리로 폭포수를 맞는 여자들이 이상할 정도로 에로틱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어느 계절에나 근사한 부다페스트의 온천장들이 그립다. 지금 이 순간, 루다스온천장에 앉아서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돔 천장을 올려다보면 기분이 얼마나 좋을지 상상해본다. 다시 헝가리에 간다면 호수 온천으로 알려진 헤비즈에도 가보리라. 그리고 헝가리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열렬히 마시고 흠뻑 취하리라. 그래도 괜찮다. 몸 안의 독소를 가장 우아하고 관능적인 방법으로 제거할 수 있는 유서 깊은 온천장에 언제라도 몸을 적실 수 있으니.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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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의 금메달 소식을 듣고 갑자기 미켈란젤리의 피아노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원래 불현듯 떠오르는 충동대로 움직이는 매우 경박한 성격의 인간인지라 단박에 목표물을 찾아 돌진한다. 


‘BBC Legends’ 시리즈로 나온 <michelangeli> 앨범. 한때 정말 마르고 닳도록 듣던 앨범이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2번과 4번, 드뷔시의 이미지 중 ‘Hommage a Rameau’,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등 총 5곡의 피아노 솔로 연주곡이 실린 앨범인데 그중에서 한 곡을 골라 내 멋대로 빅토르 안에게 바칠 셈이다. 도대체 무슨 의도냐고?


미켈란젤리는 이탈리아 태생이다. 좀 지나치다 싶을 만큼 무결점의 완벽주의를 지향했던 천재 피아니스트다. 천재라는 표현에 그 누구도 딴죽을 걸 수 없었던 것이 그는 14세라는 어린 나이에 베르디 음악원을 졸업한 뒤 6년간 의학을 공부한 의사였으며, 나치를 혐오해서 공군에 자원입대한 공군조종사이며, 카레이서이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피아노 한 대를 철저하게 분해하여 다시 완벽하게 조립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연주자였다니, 말 다했지. 그런가하면 녹음할 때든, 공연할 때든 단 한번의 미스 터치도 허용하지 않는 무결점의 명료한 연주(거기에 섬세함과 우아함을 겸비한)를 지향했는데 유별난 것은 전용 피아노를 비행기에 싣고 다닐 정도였다고. 그만큼 자기 피아노를 분신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사랑하는 조국 이탈리아가 미켈란젤리를 감히 욕보였다. 분신 같은 피아노 두 대를 압류하고 집과 현금까지 뺏어 갔다. 그것도 미켈란젤리의 전속계약사인 BDM 레코드 회사가 파산했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거의 깡패질이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사실상 국가가 마피아였다. 이에 불 같은 성격의 미켈란젤리는 뒤도 안 돌아보고 스위스로 망명해 버린 후 이탈리아라면 평생 이를 갈고 살았다.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공연장에 이탈리아인들의 입장을 불허했으며 주최 측이 그 룰을 어기면 아예 공연을 취소해버렸다. 이 부분에서 ‘뒤끝 작열’이라며 미켈란젤리를 속 좁은 인간 취급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지만 나는 그를 옹호한다. 기질적으로 이탈리아인과 무척이나 달랐던 그는 오스트리아로 연주여행을 갈 때마다 한번도 거주한 적 없는 그 나라를 ‘우리나라(My Country)’라 불렀다고 한다. 그는 개인의 인권과 개성을 존중한 세계주의자였고 또 자유주의자였다.


솔직히 난 이 놈의 나라가 싫다. 그냥 싫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쪽 팔려 죽겠다. 이석기 판결을 두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 같은 주요 외신들의 기사를 보고 있으면 화딱지가 난다. 그러니 서세원같이 약삭빠른 자가 애국 노인들을 앞세워 ‘빨갱이를 몰아내자’며 <건국 대통령 이승만> 영화를 만들겠다고 큰소리 치는 거 아닌가? 아이고, 열 불 나. 그뿐인가? ‘자녀를 한 명밖에 안 낳은 사람은 반성하라’는 김무성 의원의 흰소리는 또 뭔가? 여당의 대표 의원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일개 개인에게 돌리는 수작 아닌가? 대통령은 한 수 더 뜬다. ‘의료자법인 설립 통해 많은 일자리 창출’이라니, 그거 의료영리화를 위한 ‘설레발’ 아닌가? 입에서 당장에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안현수가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10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따고 빙판에 키스하고 있다(출처: 연합뉴스)


“의료영리화 된 나라에서는 살고 싶지 않으니 진짜 그렇게 할 거면 내가 지금까지 낸 국민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 다 돌려줘. 지금까지 받은 보험 혜택 전부 까도 좋다. 그것만 돌려주면 이 나라를 떠나주마. 아주 아쌀하게!”


농담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유례없는 이동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자기가 태어난 곳을 떠나 얼마든지 스스로 살고 싶은 곳에 정착할 수 있다. 자기가 살 곳을 스스로 결정하는 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결정하는 가장 극적인 방법이다. 국가든 체제든 회사든 조직이 우리에게 좌절감과 수치심을 안겨 주는 것도 모자라 욕보이고 배신하고 ‘물’ 먹인다면 적극적인 반항의 의미로 얼마든지 이민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조직은 힘이 세지만 대신 무겁다. 나라는 한 인간은 힘이 없지만 가볍다. 얼마든지 이동할 수 있다. 그것이 ‘참을 수 없는’, 더 이상 참지 않아도 되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물론 리스크가 없는 건 아니다. ‘안현수현상’을 두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는 매우 위험한 성공 사례를 보여준다’고 쓴 트윗이 요 며칠 트위터상에서 아주 인기였는데 그 말이 맞다. 한국인이 러시아 국기를 가슴에 단 안현수를 뜨겁게 응원한 이유는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의 대리만족과 열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현수가 아니다. 안현수가 아니기에 맨땅에 헤딩할 각오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모국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 에밀 시오랑처럼 모국어 루마니아어를 버리고 프랑스어로 글을 쓰며 자신과 외국어 사이의 메울 수 없는 틈 때문에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은가? 그렇담 용기를 내보자. 국민 귀한 줄 모르는 국가를 넘어서자. 어떤 식으로든.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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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의 김윤숙 기자로부터 집필 안내 메일을 받을 때마다 즐겁다. 일상에서 느끼는 이런저런 소회를 적은 글과 함께, 직접 찍은 사진까지 담아 보내는데 그게 마치 한 편의 짧은 포토 에세이를 보는 듯한 여운을 줄 때가 많다.

특히 이번 집필 안내 메일이 그러한데, 열 살 된 여 조카가 만들어 준 핸드 메이드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모니터를 두드리는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보낸 준 글(‘그다지 예쁘지도 않은 제 손이 아름다워 보일뿐더러 이 조그만 책상이 지구처럼 느껴집니다’)이 내게 일종의 영감을 줬다.

함께 공방에 다니며 가구 만들기를 배웠던 내 조카 생각이 났다. 언젠가 이 지면에도 썼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 책을 선물했더니 대학 못 가 삼수하고 있는 처지에 “청춘이 왜 아파요? 청춘은 즐거운 거예요” 했다던 녀석이다. 그 녀석이 얼마 전 내게 손수 만든 가구를 선물했다. 삼수 끝에 모 대학의 공모전 대상을 차지하며 결국 대학에 갔는데 그게 다 내 덕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저한테 만드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셨잖아요. 저에게 창조적인 능력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해 준 분한테 선물하고 싶어서 지난 학기 내내 틈나는 대로 만들어봤어요.” 솔직히 나 울었다. 조선시대 문갑을 응용한 현대적인 느낌의 책장을 손으로 쓸고 닦고 냄새 맡으며 그걸 만든 조카의 수천 번의 손길을 느끼고 또 느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우리 아이들이 저마다 물건을 구매하거나 얻기보다 스스로 만들어 쓸 줄 아는 능력을 얻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스스로 뭔가 창조했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내 조카가 한 말이 있다. “저처럼 둔한 놈이 이런 걸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했어요. 내내 열등생으로 살았던 제가 처음으로 자긍심이라는 걸 갖게 됐다고 할까요?”

 

(경향DB)

그 다음 자신이 만든 물건을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결코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사랑하는 법’을 덤으로 얻게 될지도 모르고. 예컨대 전설의 영화배우이며 연애 박사였던 캐서린 햅번의 사랑에 대한 이러한 경험적 지성 같은 걸 - ‘사랑은 당신이 받고자 하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당신이 주고자 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뿐이다’ 했던- 어슴푸레 터득하게 되는 거다.

세 번째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인간적인 온기를 품은 단순하고 소박한 물건의 아름다움과 진가에 눈뜨게 된다는 거다. “아직 숙련된 기술이나 예술적인 재능이 부족해서 될수록 단순하게 디자인했거든요. 처음엔 칸마다 서랍을 다 넣으려고 했는데 그조차도 여의치 않아서 일단 서랍 없이 가져왔어요. 근데 작은 어머니가 그게 더 실용적이고 아름답다고 하시니 말할 수 없이 뿌듯하네요.” 내 조카가 했던 그 말에 내가 이렇게 답해줬던 기억이 난다. “Less and More, 덜어낼수록 풍요로워진다! 미술과 공예를 통합한 생활 예술 운동을 전개했던 윌리엄 모리스의 혁명적 구상이 결국 실패한 것도 실은 디자인이 너무 화려했기 때문이야. 화려하면 할수록 가격이 높아지니까. 보통 사람들이 실용적인 생활용품으로 쓰기에 지나치게 비싼 게 문제였지. 그 점 알아 두고.”

네 번째. 자기 손을 써서 일하는 타인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 “예전에는 교수나 기업가, 혹은 영화배우 같은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는데, 요즘은 숙련된 기술의 장인들을 더 존경하게 됐어요.” 아무렴 그래야지. 학벌이나 재산, 혹은 인맥이 아니라 오랜 세월 정직하게 갈고 닦은 몸의 기술로 승부하는 사람들이 존경받는 사회가 가장 이상적인 사회니까.

다섯 번째. 창조적인 부의 영역 안에서 누구보다 더 능동적으로 살 수도 있다는 점. “제가 암기력이 시원치 않아서 수학도 영어도 정말 못 했거든요. 그래서 남들처럼 성공한다거나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아예 해 본 적도 없어요. 다만 내 손으로 가구를 만들 수 있고 그걸 구매한 누군가가 작은어머니처럼 애정을 갖고 사용해 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바로 그거다. 나날이 향상시킨 내 기술로 누군가에게 고용되지 않더라도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내 삶을 내 스스로 개척하며 살 수 있다는 자신감. 나아가 누구나가 단순히 소비자가 아닌 창조자로서 세계에 관여하며, 심지어 세상을 구하고 바꿀 수도 있다는 의지. 그게 바로 우리 시대 청춘들의 로망이어야만 미래에 비로소 희망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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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맘때가 생각난다. TV조선에서 2013년 최신 ‘등골 브레이커’는 여학생들의 ‘파우치 속 고가의 명품 화장품’이라며 수입 화장품을 쓰면 ‘엘프(리니지 게임에 등장한 늘씬한 미모의 종족)’고 고가의 국산 화장품을 쓰면 그냥 ‘인간’, 저가의 국산 화장품을 쓰면 ‘괴물’이라며 무슨 자료 사진까지 넣은 도표를 만들어 보여주는 화면을 보고는 부들부들 떨었던 기억이 난다. 조선 특유의 그 느글거리는 속물성에 참을 수 없는 구토감을 느끼며.


<허영의 시장>을 쓴 영국 작가 윌리엄 새커리는 이미 그 옛날에 영국인이 높은 지위와 귀족계급에 매달리는 원인이 궁극적으로 언론에 있다고 주장했다. 언론이 매일 작위가 있는 사람과 유명한 사람이 존엄한 존재인 듯 보도하는데, 이는 결국 작위가 없는 사람들을 시시하다고 역설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강남의 어느 여학교 학생들 일부 경향을 보여주며 마치 그게 대세인 듯 일반화하는 TV조선의 위와 같은 뉴스 말이다. “이런 같잖은 기사들이 눈앞에 놓여 있으니 어떻게 속물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새커리의 말이다.


‘캐몽’이 뭔가 했다. 2013년 교육계 최고의 신조어라기에, 처음엔 ‘코코몽’의 동생뻘쯤 되는 무슨 만화 캐릭터인가 했다. 아니다. 100만원, 혹은 200만원, 심지어 300만원이 넘는 초고가 패딩 브랜드 ‘캐나다구스’와 ‘몽클레어’를 합쳐 부르는 말로 ‘노스페이스’에 만족하던 학생들이 이제 모두 ‘캐몽’을 원하고 있단다. 그러니까 캐몽은 새로운 ‘등골 브레이커의 지존’인 셈이다.


몽클레어 패딩(출처 :경향DB)


‘캐몽’이 학생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회자된 건 지난해부터라고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설 연휴를 맞아 가족과 함께 청와대 인근 통인시장을 찾았는데, 그때 손녀가 입고 있던 옷이 몽클레어의 프리미엄 패딩이었던 것. 그 옷이 몽클레어라는 걸 누가 학생들에게 알려줬을까? 당연히 언론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너무도 존중하시는 대한민국 언론. 이명박 전 대통령이 즐겨 입는다는 이탈리아 브랜드 ‘로로피아나’의 존재감을 부상시켜 매출을 급격히 올려준 것도 물론 대한민국 언론이었고.


그래 놓고는 학생들이 도대체 왜 이러냐고 전문가 집단에게 묻는 게 언론이다. 병 주고 약 주는 식이다. 하지만 내게는 작위도 없고 학위도 변변치 않고 돈도 명예도 없어서 언론이 내 의견 따위는 무시할 게 뻔하다. 그래서 또 하는 수 없이 나보다 영향력 있는 명사들의 의견에 기대게 된다.


그 유명하신 알랭 드 보통이 <불안>이란 책에 썼다. 언론의 문제에 대해서. ‘속물은 독립적 판단을 할 능력이 없는 데다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갈망한다. 따라서 언론의 (그러한 속물적) 분위기가 그들의 사고를 결정해버리는데 그 수준은 위험할 정도다’라고. 그러면서 아주 화끈하게 외쳐주신다. ‘속물근성을 만들어내고 퍼뜨리는 신문을 타도하라!’ 어디 신문뿐이겠는가?


한편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캐몽’의 인기는 ‘자녀의 자부심이 떨어져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공감한다. 생각해 봐라. 아이들이 고가의 옷 말고 어떻게 자부심이라든가 자긍심 같은 걸 가질 수 있겠나?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건 소비 말고는 사실상 거의 아무것도 없는데.


얼마 전 다섯 살짜리 딸과 아홉 살짜리 아들을 둔 후배 가족이 내가 사는 강원도 평창 집에 놀러 왔다. 학교 가는 것보다 엄마랑 집에서 공부하는 게 훨씬 더 즐겁고 행복하다는 아들의 주장에 따라 후배 부부는 홈 스쿨링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 의견을 묻기에 이렇게 답했다.


“나에게 만약 자녀가 있다면 학교에 가지 않을 자유를 줄 거야. 집에서 책이나 읽고 음악이나 들으며 마음껏 빈둥거릴 자유 말이야. 그리고 필요하다면 빚을 내어 며칠, 몇 주, 몇 년이라도 여행할 자유를 주고 싶어.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는 교학사 따위의 교과서를 보지 않아도 될 자유. 어떠한 주입식 교육도 받지 않을 자유. 루소가 <에밀>에서 주장했듯 ‘틀에 찍어 낸 듯한 인간이 되지 않을 자유’ 말이야.”


유럽의 파시즘 시대를 예견한 ‘서머힐’의 창시자 닐의 교육관은 이런 것이었다. ‘행복한 사람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 (…) 자유의 증여는 곧 사랑의 증여다. 그리고 사랑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서머힐은 없다. 그 말은 온갖 말도 안 되는 교육 지침과 유행이 난무하며 종종 추하기까지 한 환경에서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이는 오직 부모 그 자신들뿐이라는 거다. 부모 스스로 자녀를 위한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됐다는 것.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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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사람>을 쓴 커트 보네거트의 심정이 절절히 와 닿는 나날이다. 이라크와의 전쟁으로 전 국민을 벼랑 끝으로 몰았던 부시 행정부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썼다. 그들이 ‘백만장자를 억만장자로 만들고 억만장자들을 조만장자로 만드는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마당에 ‘언론과 통신, 교육까지 모두 그들 손에 들어가’ 있어서 ‘우리는 나치에게 점령당한 폴란드 국민보다 나을 게 없는 신세가 되었다’.

바로 우리 얘기다. 가장 답답한 건 사람들이 매일매일 접하는 뉴스 매체인 TV와 신문이 우리를 철저하게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권력에 도취된 미치광이 정치 집단이 철도와 의료를 대기업화하려고 온갖 꼼수를 다 부리고 있는데도 ‘조·중·동·매·종편’에서는 ‘장성택 3년상’ 치를 기세로 ‘남’의 집 얘기만 ‘열불나게’ 하고 있다. -이쯤에서 ‘저 종북 아닙니다’ 미리 도장을 받아두기 위해서 일부러 북한을 ‘남’이라 규정하는 바이다- 공영방송 KBS는 더 가관이다. 북한 얘기만 실컷 하다가 내일 날씨가 추워지니 블랙박스 켜고 주차하지 말란다. 그러고도 뻔뻔하게 수신료를 올리겠단다. 스마트폰과 PC 사용자들 몫까지 챙겨서. 환장할 노릇이다.

 

(경향DB)

그리하여 참다못한 사람들이 손으로 쓴 대자보를 붙이기 시작했고 그 대자보 열풍을 트위터로 지켜보며 더할 나위 없이 가슴이 뜨거워진 요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개 대학생이 붙인 대자보 몇 장이 희망의 불씨가 되어 산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결코 희망이 없지 않다! 나도 뭐라도 해야 한다. ‘뭐라도 되겠지’ 방관할 때가 아니다. 뭘 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먼저 ‘부패한 정권은 모든 걸 민영화한다’고 했던 세계의 지성 노엄 촘스키에게 좀 더 배우고 내가 배운 걸 사람들과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라는 책을 뒤적였다. ‘언론이 도대체 왜 이러냐’고 묻고 싶을 때가 많았는데 거기에 이런 답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 교육제도와 전문직 훈련 과정이라는 게 아주 정교한 여과장치입니다. 너무나 독립심이 강하거나,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하거나, 순종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솎아내지요. 언론은 ‘제도’를 무시하고 곤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언론사 안에 있는 것을 커다란 역기능으로 보는 거지요.”

아, 알겠다. 국민들이 마땅히 알아야만 하는 권리를 무시할 만큼 언론이 망가진 건 결국 ‘밥그릇’ 문제였던 거다. 아무렴, 밥그릇은 소중하니까. 심지어 눈물 나게 숭고한 거라고 찬양하던 기자 출신의 유명 소설가도 있었다. 그분 때문에도 몇몇 언론인들이 나날이 용기백배 비겁해졌을 거라 추측한다. 이해한다. 동정한다.

그러다 문득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 생각이 났다. 원래는 MBC 기자였는데 정치권과 대기업의 비리를 지나치게 열정적으로 취재하는 바람에 해고당한 남자. 그러나 조용히 찌그러져 있지 않고 저 홀로 인터넷 뉴스포털 ‘고발뉴스’를 만들어 이 시대의 진정한 기자 정신을 보여주고 있는 용감한 남자. 갑자기 그의 밥그릇이 걱정됐다. 도대체 뭘 먹고 하시는지. 밥은 먹고 다니시는지. 찾아보니 고발뉴스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금으로 운영되는데 정기회원이 5000명 넘으면 이상호 기자도 월급을 받을 수 있다고 어떤 기사에 쓰여 있었다. 그걸 읽고 당장 고발뉴스 닷컴에 들어가 정기회원 등록하고 트위터에도 ‘이상호 기자님 우리 손으로 월급 줍시다’라는 글을 올렸다. ‘조세회피처 프로젝트’로 부활한 해직 언론인들의 매체 ‘뉴스타파’처럼 ‘고발뉴스’도 당신과 나의 가열찬 응원과 후원이 필요하다고.

그 다음 우리가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작은 것들의 신>으로 부커 상을 받은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같은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무수한 방법으로 시민 불복종 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 우리의 예술, 우리의 음악, 우리의 문학, 우리의 완강함, 우리의 기쁨, 우리의 명민함, 우리의 꾸밈 없는 활력을 바탕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어야 한다. 우리가 믿도록 세뇌 받고 있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말이다. … 다음의 사실을 잊지 마라. 우리는 많고 그들은 적다.

한참을 고민했다. 12월19일 촛불 시위에 참여할까? 나도 동네 노인정이나 슈퍼마켓 앞에 대자보를 붙일까? 그러다 아룬다티 로이의 윗글에 고무되어 인터넷에서 선별해낸 최신 뉴스에 내가 사랑하는 음악과 문학, 예술 속에 우리들의 이야기까지 담은 나만의 웹 매거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플립보드(Flipboard)라는 소셜 매거진 서비스를 이용하니 이틀 만에 무려 6가지 테마의 매거진을 만들 수 있었다. 놀라운 세상이다. 대자보라는 클래식한 시민 저항 운동에 트위터와 나만의 웹 매거진이라는 최신 무전기로 혁명도 이룰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이다. 돈과 권력을 쥔 자들이 하루가 멀다 않고 빌어먹을 짓을 하고 있다. 그들이 망쳐 놓은 이 세상을 구하는 일이 당신의 손끝에서부터 이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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