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엔 다양한 경향이 존재했다. 실추된 보수의 명예를 고민하는 사람들에서부터 자본주의 극복을 꿈꾸는 사람들까지. 그러나 가장 주요한 경향은 역시 그 중간쯤에 있는 사람들, 국가의 정상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국가의 정상화는 흔히 대한민국 헌법 1조를 되새기는 일로 표현되곤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많은 사람들을 가슴 뛰게 하지만 사실 헌법 제1조는 그 자체로 특별하진 않다. 가령 박정희의 유신헌법 제1조는 이렇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

한국 헌법 제1조는 20세기 헌법의 기초라 일컬어지는 독일 바이마르 헌법을 따른 것이다. “독일제국은 공화국이다.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바이마르 헌법은 나치 집권의 빌미가 되었고 2차 대전 후 독일 헌법 제1조는 바뀌었다.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권력의 책무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의 공허함은 정치 언어의 속성이자, 정확하게는 자본주의 체제의 속성이다. 자본주의는 노동을 하고 잉여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과 노동과정을 통제하고 잉여 생산물을 소유하는 사람들이 주요한 두 계급을 구성한다. 그러나 노예제나 봉건제에 비해 계급 관계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정치, 이른바 민주주의 정치라는 외피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투표하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등 정치적 민주주의가 유지되는 한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정치적 독재를 물리쳐도 실제 삶은 달라지지 않는 미심쩍은 경험조차도 믿음을 쉽게 흐트러트리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의 정상화를 말하기 전에, 국가의 정상화란 무엇인가 질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의 정상화는 단지 정치적 민주주의의 회복인가? 아니면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 사회적 경제적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것인가? 자본주의 사회는 시장 자유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시장 자유를 통제하거나 관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립한다.

사회적 경제적 민주주의에 관련해서도 둘은 대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늘 한국에서라면 둘은 꽤 행복하게 합작할 수 있다. 모두 재벌 덕이다.

재벌 문제는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사람은 물론 신봉하는 사람들에게도 피할 수 없는 숙제다. 재벌이 자유 시장의 가장 큰 적이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정권을 막론하고 독점적 성격을 강화해온 한국 재벌의 매출은 근래 국내총생산(GDP)의 85%를 넘어서게 되었다. 중소기업은 거의 대부분 재벌에 하청 계열화되어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차이가 갈수록 커지고 청년들 앞에 비정규직 노동만 존재하는 현실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재벌의 독점 상태를 유지 강화해주는 게 국가이기에 공무원과 공기업 노동자는 대기업 수준의 임금과 복지를 누린다.

재벌 독점 지배로 한국 사회는 1:9:90의 구조를 보인다. 1%와 그 체제를 지탱하는 9%, 그리고 나머지 90%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 가계부채 증가율 1위, 남녀 임금격차 1위, 노인 빈곤율 1위, 저임금계층 비율 1위 등등 끝없이 나열되는 이른바 ‘헬조선’의 지표들은 이런 극단적 독점 상태에 기인한다. 최순실 게이트 혹은 박근혜의 국정농단도 독점 상태가 길러낸 독버섯이다. 최순실은 충분히 처벌받아야 하고 박근혜는 퇴진해야 하며 새누리당의 재집권은 절대 없어야 한다.

그러나 그게 다 이루어진다 해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특정한 개인이나 윤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조에 있고, 최순실과 박근혜, 새누리당은 물론 야당 역시 국가 독점 재벌 체제의 구성물이기 때문이다.

맥락이 무엇이든 재벌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두고 여러 견해가 제출된 바 있다. 경제민주화론은 재벌과 국가의 유착이 문제이니 시장에 맡기자는, 이름과는 달리 경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주장이다. 그게 재벌을 국가 대신 국제 투기자본에 넘기자는 거라 비판하며 재벌과 사회적 대타협을 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한국 재벌은 그런 타협이 가능할 정도로 합리적이거나 유연하지 않다.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인 정치 체제가 타협적 방식으로 개선하려 해도 격한 충돌이 불가피하듯 한국 재벌이 그렇다. 연기금을 통한, 혹은 국영화 방식의 재벌 사회화는 원론적으론 급진적인 방법이지만, 한국 재벌에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

재벌의 사회화가 정말 가능할까? 우리에게 그럴 힘이 있음을 확인한 건 광장의 가장 큰 소득이다. 박근혜 퇴진을 외친 200만명이 재벌 사회화를 외친다면 단박에 구체적 상황으로 진척될 수 있다.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서 이재용의, 무중력 상태의 유영 같은 태도 또한 그걸 염려해서다.

일단 상황은 물 건너간 듯하다. 청문회 이틀 후 삼성전자 주가는 179만원으로 최고가를 기록했다. 사람들은 우병우를 골려준 의원에게 환호하거나 야당의 대선후보들을 비교하는 일에 열중이다. 긴 변화를 위한 첫걸음을 떼었을 뿐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두 번째 걸음을 뗄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자문할 필요는 있다.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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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위가 만들어내는 감동적인 장면들의 한 주인공은 10대들이다. 그들은 이번 시위에서 최초이자 거의 유일하게 ‘혁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급진적인 성인들도 꺼렸을 단어를 그들은 거리낌없이 내걸었고, 이 싸움이 박근혜 퇴진을 넘어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임을 환기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감동할 것 하나를 빠트린 듯하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런 걸 거의 가르치지 않았다. 우리가 가르친 건 이 고약한 자본 체제에서 나만 살아남는 법이었고, 그들의 미래를 위한 최선이라 믿었다. 그런데 혁명이라니, 세상에. 나는 잠시 어쭙잖은 감회에 젖는다.

15년 전 어느 날, 불현듯 나는 한국의 아이들이 전에 없던 특별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발견했다. 동네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일제히 사라졌다는 것과 함께 늘 이어오던 중요한 가르침이 일제히 중단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하지만 공부만 잘한다고 훌륭한 사람 되는 건 아니다.’ ‘돈 많이 벌면 좋지. 하지만 사람이 돈만 알면 죄 받는 법이란다.’ 상하좌우를 막론하고 제정신을 가진 어른이라면 으레 아이에게 거듭하던 가르침이었다. 한국 교육이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가 아니라 ‘얼마짜리가 되는가’에 관한 일이 되면서 가르침은 사라졌다.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죄책감을 물리치기 어려웠고, 어린이 책 출판과는 전혀 무관하던 나는 ‘고래가그랬어’를 만들게 되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2014년 ‘고그’(아이들은 ‘고래가그랬어’를 이렇게 부른다)의 지면 개편은 전에 없이 심각했다. 고그는 ‘어린이 교양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음에도 아이들에게 직접 강의하는 방식의 콘텐츠는 지양해왔다. 학과 공부에 짓눌린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공부거리를 만들어줄 게 아니라, 함께 놀며 느끼는 동무가 되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이 원칙을 재고하게 했다. 동료들과 나는 ‘그들은 왜 가만있었을까’라는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즈음 방한한 놀이터 연구가 귄터 벨치히는 우리에게 ‘독일 학생들이라면 절대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고, 대부분 생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의 실종이 아이들의 목숨마저 위협하는 긴급한 현실에서 고그의 원칙은 지나치게 낭만적이었다. 아이들에게 조기 교육을 해야 할 건 영어도 수학도 아닌 민주주의였다. 사회, 경제, 역사, 과학, 생태 등 전문가들의 흔쾌한 참여로 ‘아삭아삭 민주주의 학교’라는 이름의 지면 강의 섹션이 생겨났다.

옛 혁명가들이 파업을 ‘노동자의 정치학교’라 일컬었듯, 시위는 ‘시민의 민주주의 학교’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순간 전국 도처의 공간에서 각양각색의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자치적 민주주의 학교를 목격한다. 이번 시위는 고질적인 진영 논리를 넘어서 합리적 성향의 보수 시민들까지 참여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늘 시민들의 일반적 의식 수준과는 워낙 동떨어진 1970년대의 망령이 부활한 사건이다 보니 생긴 역설적 현상이다. 덕분에 시위는 왕의 목을 잘라본 경험이 없고, 스스로 공화정을 만들지 못한 탓에 살아남아 내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전근대적 병증들을 치유하는 학교 노릇을 하게 되었다.

이 시위가 갖는 또 하나 각별한 의미는 ‘아이들이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태어나 거의 처음으로 무기력한 각자도생의 태도를 벗어난 어른들을, 나와 내 새끼를 넘어 ‘사회’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며 함께 싸우는 어른들을 보고 있다. 시민의 민주주의 학교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민주주의 학교가 되고 있다. 이 귀한 사실 앞에서 우리는 좀 더 긴장하고 좀 더 성찰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우리는 교육에 대한 전향적 태도 변화를, 교육을 아이가 ‘얼마짜리가 되는가’에 관한 일에서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 관한 일로 바로잡는 일을 피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이 시위에서 갖는 자부와 희열만큼이나, 이 시위가 배제한 시위와 배제된 사람들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주요한 노동 의제를 가진 시위에 우리는 얼마나 연대하고 참여했던가. 우리는 단지 불행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동정하지 않은 게 아니라, 대다수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싸움을 외면해왔다. 우리는 시위의 방식을 누구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외면했다. 가장 간절하게 평화 시위를 원하는 사람들은 까마득한 고공이나 길바닥에서 몇달 몇년을 먹고 자며 싸워야만 하는 사람들과, ‘폭력적’이라 손가락질받으면서도 공권력과 격렬히 충돌해야만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외면해왔다. 10대들은 이미 ‘비폭력 프레임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시위는 시민의 민주주의 학교이자 아이들의 민주주의 학교가 되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학교는 시위의 시간을 넘어 지속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학교는 상당 기간 사회와 사회 성원의 가장 중요한 일이자 사명이어야 한다. 민주주의 학교는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나아가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힘과 지혜를 기르도록 도와야 한다. 민주주의 학교는 가급적 평화로워야 한다. 그러나 평화의 진열이 민주주의 학교의 목적은 아니다. 민주주의 학교의 목적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 혁명이어야 한다.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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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든 현실이든 음모론이나 궁중비화식 서술은 해악이 있다. 극소수 엘리트 영역을 위주로, 사회적 맥락보다는 개인 심리와 윤리 차원으로 상황을 단순화함으로써 대다수 인민의 구체적인 삶과 상황의 총체성을 소거하기 때문이다. 최순실 사태는 음모론과 궁중비화식 서술에 대한 그런 일반적 판단을 무색하게 한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들이 사실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해악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지배계급의 처지에서, 이 사태는 박근혜나 최순실 따위 지극히 비정상적인 인간들의 행태가 될수록 안전하다. 이 순간 거의 모든 사람이 입에 올리는 ‘국정농단’이라는 말은 그와 관련되어 있다. 국정을 농단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가정하여 그 결과가 정반대의 가치로, 친노동자·서민적 정책으로 나타났다면 어땠을까. 정체가 드러난 최순실은 ‘의적’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국정 운영의 합리성보다 중요한 건 사회에 어떤 가치를 가지는가, 어떤 계급의 이해에 기여하는가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지배계급은 온 나라가 한목소리로 ‘국정농단’을 외치도록 함으로써, 자신들도 똑같은 피해자가 되어 상황을 빠져나간다.

분노의 함성이 세상을 뒤덮고, 퇴진 여부와 관련 없이 박근혜가 기존의 권력을 회복하긴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사회에 어떤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올까. 박근혜의 무력화는 지배계급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고, 반대로 지배계급이 위기를 모면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변혁적 사회 변화는 사회적 분노가 다른 세상의 전망과 결합할 때 만들어진다. 분노는 내 밖의 것들에 대한 반응이지만, 전망은 내 안에서 진행하는 엄격한 지적 활동이다. 분노와 전망의 결합이야말로 공화국 시민의 요건이자 표징이다.

이번 사태로 분노는 혁명 전야 수준까지 올랐다. 그러나 진보정치의 쇠락을 비롯해 이미 미약해질 대로 미약해진 다른 세상의 전망이 그에 걸맞게 저절로 생겨난 건 아니다. 전망이 ‘박근혜 없는 세상’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지배계급은 이 소란 속에서도 ‘선수 교체’만으로 모든 걸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 지배계급의 2중대인 민주당도 당장은 욕을 먹고 있지만 적당히 시간이 지나면 ‘정권 교체’의 깃발 아래 다들 돌아올 거라 확신한다.

다른 세상의 전망에는 여러 차원과 갈래가 있다. 학자나 이론가의 역할도 있고 활동가의 실천도 있다. 그걸 기반으로 인민의 보편적 사회의식과 식견이 형성되고, 도달 가능한 사회의 수준과 상이 도출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전제는 지금 현실의 구조와 본질을 정확하게 보는 일이다. 그게 없다면 전망이나 대안은 초점을 잃고 해소되거나 기존 체제의 존속에 봉사하게 된다. 분노의 양은 부차적이다.

그런 맥락에서 ‘손석희 뉴스를 어떻게 보는가’는 의미 있는 질문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지배계급의 핵심 중 하나인 홍석현 그룹은 왜 사실 왜곡과 극우적 선전 선동이라는 기존 우파 언론의 방식을 답습하지 않고, 자그마치 한국에서 ‘가장 공정하고 정의로운 뉴스’를 만들었는가. 여기에 대해선 좀 더 자세하고 긴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흔히 ‘수구 꼴통’이라 통칭되는 지배계급이 그 내부로부터 매우 빠르게 혁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혁신 그룹은 조선일보로 대변되는 기존의 방식이 인민의 진전된 시민의식과 이념 성향으로 볼 때 한계에 봉착했음을 간파하고, 영리하게도 손석희라는 신망 높은 중도 우파 언론인과 손을 잡았다. 그들은 그런 선택이 종편 사업의 사업적 측면에서 최선의 선택일뿐더러, 지배계급의 습속에 어색할 뿐 지배계급의 이해를 거스르진 않는다는 걸 안다. 손석희씨 또한 독립적 권한을 가지고 소신대로 뉴스를 만들 수 있는 매우 특별한 기회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일이 그렇게 진행되는 동안 공공적 성격을 가진 방송과 상업주의적 목적의 방송(종편)이라는 이분법에 기초한 언론운동의 틀은 박살이 났다. 그리고 기존 언론에서 볼 수 없었던 손석희 뉴스의 중도 우파적 양식과 매력이 보다 급진적 관점의 존재 의미를 잊게 함으로써,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지배계급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을 세련되고 교양 있는 것으로 여기게 했다.

요컨대 손석희 뉴스의 애정어린 시청자들은 이건희 성매매 사건을 다루는 손석희에 거듭 신뢰를 보내면서, 이재용의 등기이사 선임을 비판적으로 다루지 않은 손석희를 관용하는 것이다.

손석희 뉴스는 오늘 자본의 권능이 어느 정도까지 왔는가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홍석현 그룹은 최선의 상업주의적인 뉴스를 기획했던 것이지만, 그 결과는 ‘가장 공정하고 정의로운 뉴스’다. 지상파 뉴스가 심각하게 반동화한 상태에서 손석희 뉴스의 미덕과 유익을 부인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그것을 지나치게 전면화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관점과 통찰을 잃는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의 분노에 전망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배계급은 이제 맞춤식으로, 한편으로 극우적 선동으로 한편으로 정의와 공정성으로 대중을 장악하고 지도하며 다음 세상을 구현해 나가고 있다. 우리는 이 매트릭스의 어디쯤에 있으며, 어디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까.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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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1900년>(1976)을 오랜만에 다시 봤다.

20세기가 시작되는 1900년 어느 날 이탈리아 농촌 마을에서 각각 소작농과 지주의 자식으로 태어난 올모(제라르 드파르디외)와 알베르토(로버트 드 니로)의 우정과 일생을 그린 영화다. 5시간이 넘는 영화지만 장면들은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두 배우가 출연했다는 건 기억했지만 그마저도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저렇게 생겼었구나’ 싶었다. 덕분에 마치 처음 본 영화처럼 영화 속 현실을 오늘 현실에 비추어가며 볼 순 있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영화의 끝 무렵, 1945년 이탈리아는 파시스트에게서 해방되고 지주 알베르토는 소작농들에게 체포되어 둘러싸인다.

올모는 말한다. “우리가 너를 비난하고 과거가 너를 비난하고 있어. 이제 지주는 없어. 지주는 죽은 자야.”

무력한 얼굴로 “난 아무도 해치지 않았어.” 읊조리는 알베르토에게 소작농들이 다가와 웃으며 말한다.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거라면 난 죽은 사람을 보는 거네.” “이 친구 살아 있어, 몸이 뜨거워. 시체는 차가워지는 법인데.”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에겐 그가 죽었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소작농들은 마치 노래하듯 목숨의 의미에 대해 말한다. 그들은 올모를 굳이 죽이지 않음으로써 실은 이미 죽은 사람임을 내내 진열하기로 한다.

우연치곤 묘한 일이었다. 영화를 보기 며칠 전 나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던 것이다. “목숨이란 무엇인가? 몸은 살아 있되 목숨은 이미 죽은 사람도 있고, 몸은 죽었지만 목숨은 생생히 살아 있는 사람도 있다. 몸은 죽은 지 수백수천 년이지만 여전히 우리와 대화하고 우리의 생각을 깨우치며 행동하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농민 백남기는 살았고 의사 백선하는 죽었다. 백선하는 실은 자신의 사망 진단을 했다.”

신약성서 복음서에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목숨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복음(하느님나라 운동)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입니다.” 예수는 사람에게 두 가지 목숨이 있음을 말한다. 예수는 육체의 목숨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공동체로부터 배제당하는 사람들을 언제나 정성으로 대하며 치유하곤 했다.

그러나 예수는 말한다. 육체의 목숨과 그에 관련한 삶의 가치들이 전부인 양 집착할 때 사람은 진정한 목숨을 잃는다. 예수의 부활 사건도 같은 맥락의 일이다. 예수의 부활이 단지 예수의 죽은 육체가 되살아난 사건이라면, 뿔뿔이 도망쳐 예수와 관계마저 부인하던 제자들이 갑자기 돌아서서 죽음을 두려워 않고 예수의 복음을 전할 이유가 없다. 죽은 육체가 사흘 만에 살아났다는 건, 단지 육체가 사흘 동안 노화를 멈추었다는 의미이니 말이다. 부활은 제자들이 예수가 말한 ‘목숨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는 사건이었다.

<1900년>에서 소작농들은 제 노동으로 평생 지주만 배 불리는 일이 하늘이 정한 운명이 아님을 깨닫고 싸우기 시작한다. 그것은 단지 불의한 경제 구조를 변혁하는 일이 아니다. 목숨의 의미를 확인하는 일이며, 새롭게 태어나는 일이다. 물론 그들은 충분히 단련된 투사나 지사가 아니기에 늘 용감하기만 할 순 없다.

파시스트 패거리가 그들 중 한 사람을 보란 듯 린치할 때 그들은 두려움에 움츠러든다. 보다 못한 그들 중 하나가 피해자의 이름을 외치며 다가가다 총에 맞고 쓰러진다. 한 여성이 제 가슴을 풀어헤치며 항의하다 역시 쓰러진다. “총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외친 사람이 쓰러지고, 누군가가 그들의 노래를 휘파람으로 불기 시작한다. 차례로 총을 맞고 쓰러지지만 휘파람은 멈추지 않는다.

목숨을 그렇게 포기하는 건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른다. 제 신념에 대해 사람들에게 설명하거나, 정연한 성명서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고작 휘파람을 불다 죽어가는 건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휘파람은 ‘나는 살아 있다’는 확인이자 ‘너희는 이미 죽었다’는 선언이다. 그들은 그렇게 목숨을 포기함으로써 목숨을 얻는다.

2016년 한국의 백남기도 그렇다. 농민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이름을 전에 들어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생각이 담긴 저작이 나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결코 유명 인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그를 단지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로 여기지 않고 마음 깊이 존경심을 갖는다. 우리는 그의 휘파람 소리를 듣는다.

목숨의 의미를 잊지 않는다고 해서 다 성인(聖人)이 되는 건 아니다. 영화 속의 등장인물이 되거나 당장 육체의 죽음을 맞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그런 사람들을 신앙의 대상으로, 존경과 추모의 대상으로 삼아 내 삶으로부터 밀어내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휘파람 소리를 듣고, 그들과 함께 내 휘파람을 부는 것이다.

대개의 사람이 ‘세상이 다 그런 거지’ ‘현실이 어쩔 수 없지’ 할 때 ‘그래도 사람이 그러면 안되지’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세상을 바꿔내야지’ 마음먹는 것이다. 수많은 살아 있는 시체들 속에서, 내가 정말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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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이래 철학자들은 인간의 도덕적 본성, 즉 인간이 특별한 압력이나 통제 없이도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성찰하고 되도록 인간답게 행동하려는 것에 대한 토론을 거듭해왔다. 근래 과학은 그런 본성이 뇌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혀내고 있다.

이를테면 뇌의 ‘피각’ 부위는 효율성에 반응하며 ‘뇌섬’은 공정성에 반응한다. ‘미상/중격슬하’는 그 둘을 중재하고 균형을 맞추는 부위다. 인간의 뇌는 그 자체로 정교한 도덕 계산기라는 것이다. 연쇄살인범의 뇌는 안와피질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정상 범주의 뇌를 가진 사람도 외상에 의해 관련 부위가 손상되면 도덕적 기능이 변화한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인간의 도덕적 기능이 전적으로 뇌에 의해 결정된다면, 모든 인간의 뇌를 검사하여 도덕적 등급을 매기고 관리하는 완결적 형태의 파시즘이 도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 뇌는 도덕적 기능과 작동에 전적이지 않다. 우리 가운데는 연쇄살인범이나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졌지만 충분히 사랑받고 자라고 안정된 환경에서 살아가는 덕에 큰 문제없이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또한 우리 가운데 정상 범주의 뇌를 가졌지만 성장 환경과 사회적 관계에 따라 뇌 본연의 도덕적 기능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뇌를 수정할 순 없고 사회가 개인의 환경에 낱낱이 개입할 방법도 없다. 도덕적 기능과 관련하여 우리가 함께 말할 수 있는 건 사회적 영향의 측면이다. 우리는 도덕적 본성을 고양하는 경향을 가진 사회에서 살 수도 있고 위축시키는 경향을 가진 사회에서 일생을 보낼 수도 있다. 우리가 사회에 관심을 갖는다는 건 사회가 우리의 도덕적 본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관심을 갖는 것이기도 하다.

시인 김수영은 그 문제에 대해 제 나름의 방식으로 반응한 사람이다.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라는 시에서, 그는 사회의 큰 구조에 분노하지 못하고 기름덩어리만 나온 갈비를 제공한 식당 주인이나 돈을 받으러 거듭 찾아오는 야경꾼(방범대원) 같은 작은 대상에만 분노하는 ‘나’를 조소한다. 김수영은 실은 그 구조에 분노할 때 심각한 불이익에 처하게 함으로써 도덕적 본성을 위축시키는 억압적 사회를 조소하는 것이다.

동시에 김수영은 도덕의 원근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멀리 있는 도덕은 작고 가까이 있는 도덕은 크다. 아무리 큰 일도 내 삶과 멀고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으면 작은 일일 뿐이다. 아무리 작은 일도 내 삶과 가깝고, 직접적 이해관계를 가지면 큰일이 된다. 원근법이 신이 아닌 인간이 주인인 세계를 그리려 한 르네상스 화가들의 고안품이었듯, 도덕의 원근법은 인간 도덕의 이상과 관념이 아닌 세속적 속성을 담고 있다.

김수영의 시대보다 나은 수준의 민주주의 절차가 작동하는 오늘 도덕의 원근법은 얼마간 변형된 형태로 나타난다. 큰 도덕은 멀고 작은 도덕은 가깝다. 김수영의 시대는 사회 구조에 분노할 때 심각한 불이익을 치러야 했지만, 이젠 상당 수준 허용된다. 대신 작은 것에 분노하는 게 구체적 불이익이 된다. 제 학교의 부당해고 강사나 비정규 노동 문제를 외면하는 좌파 교수. 전태일 이후 민주적 노동운동의 성과를 경제투쟁에만 쏟아붓는 조직노동. 수구 기득권 세력을 욕하며 제 기득권을 알뜰하게 챙기는 하고많은 진보시민들. 그들은 작은 것에 분노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큰 것에 분노한다. 그들의 도덕적 기능은 사회에 개입하는 게 아니라 제 기득권의 알리바이로 사회에 진열된다. ‘제 이해관계와 무관한 사회 문제에만 열을 내는 진상들’은 많은 인민들에게 진보의 일반적 이미지가 된 지 오래다.

그런 파탄적 상황은 사회 성원 전체의 도덕적 본성의 위축으로 이어진다. 다들 밥을 굶어 헬조선이 아니다. 더 가난하고 더 전망 없는, 지옥의 조건을 더 많이 가진 사회들이 적잖이 있다. 한국은 그런 조건을 불식하고 사회 성원들 스스로의 힘으로 얼마나 빠르게 지옥에 이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경이로운 사례다. 인간으로서 성찰과 인간적 행동의 욕구가 거세되어 가는 사회에서 혐오와 모욕은 사회적 소통의 골간이 된다.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마르고 거칠어진다. 사람의 가치를 외적 조건으로 평가하고 차별하고 배제하는 모습은 하위계급에서도 격렬하게 나타난다. 아이들은 경쟁 효율성을 위해 애초부터 도덕적 본성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키워진다. 지금 청년들은 그렇게 자란 첫 세대다.

빠져나갈 수 있을까. 김수영은 ‘지식인은 세계의 문제를 내 문제로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식인으로 분류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지성’에 대해 말한다. 인간은 지성의 힘으로 도덕의 원근법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강퍅한 사람도 제 식구나 제 아이가 당하는 부당한 고통을 외면하는 경우는 없다. 제아무리 신념에 찬 리버테리언도 제 사적 관계 속에서 벌어진 착취, 불공정에까지 ‘경쟁 본능’이나 ‘시장 원리’를 설파하진 않는다. 누구나 분노하고 누구나 변혁하려 한다. 지근거리의 세계에선 누구나 휴머니스트이며 사회주의자다. 지성은 그런 도덕적 본성을 기억하고, 더 먼 거리의 상황과 사회 구조가 만들어내는 현실에까지 일치시켜 보려는 인간 특유의 태도다.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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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리아에 대한 호오(好惡)를 떠나, 메갈리아가 페미니즘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건 이상한 일이다. 메갈리아는 미러링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미러링에서 내용들은 그 자체로 실제가 아니라 거울에 비친 상이다.    

미러링은 그 가짜 상을 통해 은폐된 현실을 환기함으로써 사회적 토론을 만들어내는 소통방식이다. 메갈리아는 한국 남성의 성차별적 태도와 행동들을 거울에 비추어 낱낱이 보여줌으로써, 그런 태도와 행동이 얼마나 일상적이며 뿌리 깊은지 환기하려 했다.

출처: 경향신문DB

오히려 메갈리아는 이른바 제대로 된, 건강한 페미니즘으로 보여선 안 된다. 페미니즘이라고 보기엔 지나쳐 보이는 것, 불편함과 거부감을 주는 것일 때 비로소 미러링의 효과가 생겨난다. 메갈리아의 일부 행태가 페미니즘의 범주를 넘는다는 비판은 싱거운 것이다. 메갈리아 미러링의 범주는 ‘한국 남성이 여성에게 한 적이 있는 모든 것’이다. 일베의 행태도 당연히 포함될 수 있다.            

그럼에도 문제 삼는다면 ‘감히 여자가 남자 하는 걸 다 하려 하는가’라는 말일 뿐이다.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미러링이 아니라 진짜라는 비판도 마찬가지다. 미러링이 미러링으로만 여겨질 거라면 뭣 하러 미러링을 하겠는가.

두 주류 성 안에서 메갈리아에 대한 반응은 대략 여섯가지로 나타난다.

1-① 페미니즘 반대 메갈리아 반대 남성.

1-② 페미니즘 지지 메갈리아 반대 남성. 1-③ 페미니즘 지지 메갈리아 지지 남성. 2-① 페미니즘 반대 메갈리아 반대 여성. 2-② 페미니즘 지지 메갈리아 반대 여성. 2-③ 페미니즘 지지 메갈리아 지지 여성.

메갈리아는 주로 2-③ 여성이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1-① 남성은 당연히 적대와 배제의 대상이다. 1-② 남성은 메갈리아를 빌미로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1-①과 다를 바 없는 남성으로 여겨진다. 1-③만 유일하게 개념을 가진 남성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그들 역시 마냥 당당하긴 어렵다. 2-② 여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공통점은 미러링을 실제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미러링을 미러링으로 생각한다면 서로 그토록 화낼 일도 없었을 텐데 왜 다들 굳이 착각하는 걸까. 메갈리아조차 더는 그런 착각에 항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체의 착각은 더 이상 착각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로 봐야 한다. 왜 다들 착각할까가 아니라, 다들 착각해야 할 필요가 뭘까라고 질문해야 한다. 누구도 선뜻 말하지 않지만, 우리는 실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고 있다. 우리가 이미 우리 삶에 잔뜩 화가 나 있다는 것, 화를 낼 정당한 이유를 찾고 있다는 것, 그래서 미러링이 실제일 필요가 있다는 것.

우리는 왜 토론하는가. 한가지 옳음만 존재하는 사회가 가장 끔찍한 사회라는 걸 체험과 역사를 통해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이 전적으로 옳은 사람들과 전적으로 그른 사람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걸 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옳음과 옳음의 조각들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 조각들을 모으고 합쳐서 좀 더 나은 사회와 삶을 얻기 위해 우리는 성가심과 고단함을 무릅쓰고 토론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걸 민주주의라 부른다.

토론의 예의는 화를 내지 않고 평온함을 잃지 않는 것 따위에 있지 않다. 토론 예의는 토론의 기본을 지키는 데 있다. 토론의 기본은 나와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내 의견에 모자람과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토론의 기본만 지킨다면 토론 과정에서 나타나는 감정이나 충돌은 서로 인간임을 확인하는 일일 수 있다.        

지금 우리의 토론엔 예의가 있는가. 우리의 토론은 오히려 무례를 기본으로 한다. 나와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일은 의견이 다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일로, 내 의견에 모자람과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일은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을 찾아다니며 패거리를 짓는 일로 대체된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토론 예의가 얼마나 더 망가질 수 있는지 경연하는 공간이다.

이런 상황이 모든 걸 더 나쁘게 만들 거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모두에게 나쁜 건 아니다. 이런 상황이 매우 유익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헬조선’에서 살게 된 덕에 지상 천국을 확보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오래전 우리를 서로 빨갱이가 아닐까 의심하고 신고하게 만들어 유익했다. 우리가 그런 무지를 벗어난 다음엔 우리로 하여금 피 터지게 경쟁하게 만들어 유익했다. 그리고 우리가 경쟁의 결과가 헬조선일 뿐임을 깨닫고, 토론의 칼날이 드디어 저희를 향할 가능성이 보이자 짐짓 긴장했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새 희색이 만면하다. 우리가 서로 벌레라 부르며 혐오의 수렁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혐오가 지배전략의 최정점임을 잘 안다.

이소룡 영화 <용쟁호투>엔 수천개의 거울로 만들어진 방 장면이 있다. 그 방에서 전투가 힘겨운 이유는 적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의 상들 속에 숨어 있다. 적을 발견하기 어려운 이유는 나를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소룡은 나의 상을 한개씩 깨트려간다. 나를 발견해감으로써 적을 발견해간다. 우리는 지금 그런 방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왜 이미 내 삶에 화가 나 있는지, 내 삶을 그렇게 만든 건 과연 누구인지 비추어볼 때다.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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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침공은 어디인가>(2015)에서 마이클 무어는 스스로 미국의 전사가 되어 다른 나라들을 침공하기로 한다. 단, 세 가지 규칙이 있다. 누구에게도 총을 쏘지 말 것, 기름을 약탈하지 말 것, 친애하는 미국인들에게 유익한 것을 가지고 돌아올 것. 총을 쏘지 않고 기름을 약탈하지 않는다면, 진지한 의미에서 미국식 침공은 아니다. 결국 침공은 세 번째 규칙을 위해서다. 무어는 미국인에게 유익한 것을 가지고 돌아가기 위해 이탈리아의 휴가, 프랑스의 학교 급식, 독일의 과거사 성찰, 아이슬란드의 양성평등 그리고 핀란드의 교육을 침공한다.

마이클 무어의 Where to invade next 핀란드 편의 한 장면 캡쳐.

핀란드 침공에서 무어는 묻는다. 예전엔 핀란드 교육이 미국처럼 엉망이었고 학력 수준도 다를 바 없이 바닥이었는데 어떻게 세계 최고가 되었을까. 무어는 적국 교육부 장관을 찾아간다.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핀란드 교육부 장관은 ‘일급비밀’을 털어놓는다. “핀란드 학교엔 숙제가 없습니다.” 경악한 무어는 아이들을 만난다. 상대적으로 숙제가 많을 법한 고학년 아이들은 말한다. “숙제는 없어요. 있다고 해도 10분밖에 걸리지 않아요.” 핀란드 교육부 장관은 이어 말한다. “아이들에겐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로 지낼 시간, 청소년으로 지낼 시간, 삶을 즐길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국에서도 핀란드 교육을 주목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공부를 많이 하지 않는데 교과 학력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서 방점은 학력 수준이 높다에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렇게 놀리니 공부를 못할 수밖에 없지. 복지병의 또 한 사례군.’ 비웃고 넘어가지 않았을까. 독일 교육이 여러 장점과 미덕을 가지면서도 한국에서 그리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도 학력 수준이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독일 내에서도 비판 여론이 있지만, 남의 평가 방식(PISA, OECD 국제학생평가 프로그램을 말한다)에 휘둘리지 않고 독일 교육 나름의 철학과 기준을 믿는 사람이 여전히 더 많다. 그리고 인문계 아이들이 대학에 이르고 실업계 아이들이 산업 현장에 이르면 독일 교육의 진가는 확인된다.

한국 아이들의 교과 학력 수준은 핀란드 못지않다. 대신 아이로 지낼 시간, 청소년으로 지낼 시간, 삶을 즐길 시간은 모조리 반납된다. 대학이 민망할 정도의 지적 수준을 보이는 건 그 자연스러운 결과다. 얼마 전 작고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10여년 전 말했다.

“한국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교육이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학교와 학원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을 배우기 위해,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는 직업을 위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토플러는 한국 교육이 ‘산업화 시대의 인력’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라 평가했다.

토플러는 한국 교육을 오해했거나,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한 셈이다. 한국 교육의 목적은 산업화 시대의 인력을 만들어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오로지 대학 입시에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대학 입시의 목적은 오로지 아이들의 이마에 등급을 새겨 인생을 줄 세우는 데 있다. 토플러가 한국 교육을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는, 잘못된 교육이어서가 아니라 교육이 아닌 어떤 것이었기 때문이다.

부모 강연을 하면 굳이 꺼내지 않아도 핀란드나 독일 교육, 혹은 프랑스 학교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부모들은 볼멘소리를 한다. ‘나도 핀란드나 독일, 프랑스 같은 데 살면 그렇게 하죠. 하지만 한국에 살잖아요.’ 당연히 수긍이 가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엔 빠진 게 있다. 핀란드나 독일 교육, 프랑스 학교가 처음부터 지금 같았던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사회들 역시 교육 문제로 홍역을 앓고, 부모들은 불안감과 이기적 태도로 만연한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이대로 가면 모두 망한다’는 문제의식이 부모의 연대를 만들면서 변화했다.

문제의식이 부모의 연대를 만들었다는 말은 단순하고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현실에선 무척 어려운 일이다. 문제의식은 대개 ‘현실이 어쩔 수 없다’는 말에 차단되며, 연대보다 각자도생의 태도를 양산한다. 문제의식이 연대를 만들어냈다는 건, 구체적으로 말해서 ‘내 아이만 손해 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뚫고 나아가는 소수의 부모들이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유럽 노동자들의 연대임금이, 대기업 등 기존의 임금보다 오히려 덜 받게 되는 노동자의 연대로 시작되었음을 안다. 그들은 당장 나만 손해 보는 기분을 누르고 장기적으로 더 이로운 선택을 했다. 아이 문제는 내 문제보다 훨씬 더 많은 두려움과 번민을 안겨준다. 핀란드와 독일, 프랑스 부모들은 그걸 이겨냈던 것이다.

재난상황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한국 교육 현실에서 내 아이부터 살리고 보겠다는 부모들의 태도는 본능적인 것이다. 그러나 (할리우드 재난영화가 반복해서 보여주는 교훈처럼) 재난상황의 가장 큰 특징은, 나부터 살겠다는 본능적 태도가 나를 더 나쁜 상황으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내가 재난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과 힘을 모으는 것이다. 내 아이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 역시 내 아이만 뒤처질 것 같은 두려움을 누르고 다른 부모와 연대하는 것이다. 함께 우리 아이들이 행복할 가능성을 좀 더 높이는 교육 체제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손잡을 수 있다면 변화는 시작된다.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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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 뒤집어도 한국한이라 이름을 잊기 어려운 그는, 같은 5학년이지만 세 살 더 많았고 덩치는 고등학생에 이미 골초였다. 한국한은 이따금 발작이라도 하듯 동네 아이 하나를 골라 이유 없이 때리곤 했다. 결국 나도 그 대상이 되었고 맞서려 한 탓에 매를 벌었다. 하필이면 집 앞 골목에서 한참을 맞고 있는데 그가 움찔했다. 골목 어귀에 어머니가 나타난 것이다. 한국한과 나와 구경하던 아이들이 정지화면처럼 굳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코피를 흘리며 땅바닥에 짓눌려 있는 나를 흘끔 보더니 지나쳐 집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얼이 빠진 얼굴로 흩어졌다.

경향신문 DB

동네엔 부잣집이 있었다. 주인이 무슨 공장 사장이랬는데 담이 어른 키를 훌쩍 넘겼고 자가용도 있었다. 그 집에 한 학년 아래 쌍둥이가 살았다. 아이들에게 온갖 못된 짓을 하고 다녔지만 아이들은 물론 동네 어른 누구도 감히 말을 못했다.

어느 날 하교하는 녀석들을 막아섰다. 내 딴엔 말로 주의를 줄 요량이었는데 둘이 달려드는 바람에 싸움이 되었다. 저녁 무렵 그들 어머니가 그들을 양손에 하나씩 끌고 찾아왔다. “곱게 키운 자식들인데 얼굴을 이 꼴로….” 그는 어머니를 세워놓고 고함을 질러댔다.

“아이들 싸움에 어른이 끼어드는 것보다는 저희들끼리 해결하도록 해보는 게….” 어머니의 말은 화를 더 돋울 뿐이었다. “집도 없이 단칸 셋방 사는 주제에….” 한참이 지나서야 그들이 돌아가고, 어머니는 별말 없이 하던 일을 하는데 나는 어머니에게 미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잘못했어요.” 어머니는 나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뭘 잘못했다는 거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그 일들을, 어머니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가치’를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해했든 못했든 가르침은 나에게 새겨졌고, 그 덕에 나는 삶의 많은 국면에서 나를 지켜낼 수 있었다. 나는 사람이 어떤 가치를 사수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나를 포함하여, 대개의 사람은 가치와 그걸 거스르는 현실적 편익 사이를 비틀거리며 살아간다. 가치는 그 일반적 인생에서 덜 비틀거릴 수 있도록, 적어도 넘어지진 않도록 도와준다.

세상이 좋은 지도자에 의해 좋아진다는 믿음은 미신이다. 세상은 평범한 사람의 삶에서 작은 가치들이 쌓일 때 조금씩 좋아진다. ‘사람이 그러면 안되지’ ‘조금 불편을 겪더라도 쪽팔리게 살 순 없지’ 하는 생각들이다. 세상은 나쁜 지배자에 의해 나빠지는 것도 아니다.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서 작은 가치들이 무너져내림으로써 조금씩 나빠진다. ‘세상이 다 그런 거지’ ‘잘못된 거지만 현실이 어쩔 수 없지’ 하는 생각들이다. 좋은 지도자, 나쁜 지배자는 그런 상황의 반영일 뿐 결코 원인은 아니다.

3년 전까지 몇 해 동안 교육 강연에서 대학입시의 비현실성에 대해 열심히 떠들고 다녔다. 진보적 성향의 중산층 인텔리들은 제 교육관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들은 아이 인생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나는 교육관 이전에 그런 생각이 실은 현실적이지 않음을 설득하려 했다. 대학 진학률과 취업의 상관관계만 봐도 전혀 계산이 안 나온다, 대학 입시만 생각하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그 비용과 노고의 절반만 투자하여 자립 교육을 모색하는 게 오히려 현실적이다. 그들은 내게 ‘좋은 말씀 잘 들었다’ 인사했지만 돌아서선 ‘현실이 어쩔 수 없지’ 되뇔 뿐이었다. 파국은 예상보다 빨리 왔다. 이른바 일류대 졸업생조차도 절반밖에 취업을 못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부모들은 더 이상 ‘현실이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보수 부모도 가난한 부모도 아닌 그들이 조금씩 힘을 모아 교육을 바꾸려 했다면, 적어도 이 지경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20여년 동안 그들이 ‘현실’만 되뇌다 파탄 낸 현실보다 더 심각한 파탄은 교육에서 가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아이들은 혹독하게 공부에 시달리지만, 공부가 무엇인지 공부를 왜 하는지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다. 아이들은 오로지 대학입시를 위해 십대를 바치지만 대학이 무엇이며 왜 대학에 가는 건지 질문하거나 생각할 기회는 없다.

4차 산업혁명이니 인공지능이니, 세상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고들 한다. 현재 교과 교육은 이미 쓸모없는 게 되었고, ‘취업 시대’도 끝나간다고 한다. 파탄 난 교육 상황에 대한 보상심리가 그런 이야기들을 좀 더 부풀리게 하는 면이 있지만, 큰 흐름에선 경청할 만한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 역시 중요한 게 빠져 있다. 사람은 현실 적응 능력으로만 살아가는 게 아니다. 사람에게 더 중요한 건 제 삶의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것이다. 가치를 배우지 못한 사람은 남과의 비교 가치로만 살아간다. 인생을 우월감과 열등감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땅콩 회항이 어쩌니 갑질 폭력이 어쩌니, 부자의 자식들이 저지르는 패악질이 공분을 일으키곤 한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어쨌거나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문제는 가치를 배우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부자의 아이들이 가치를 배우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폭력보다, 부자가 아닌 부모의 아이들이 가치를 배우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비굴이 조금은 나은 걸까.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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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현인을 통틀어 여성을 시중들게 한 게 아니라 제자로 삼은 사람은 예수가 유일했다. 예수의 여성 제자들은 여러 면에서 남성 제자들을 압도했다. 최후까지 예수와 함께한 것도 여성 제자들이었다. 예수가 체포되자 남성 제자들은 모두 배신하거나 도망쳐버렸다.

그러나 여성 제자들은 정치적 반란범의 동조자로 몰려 죽을 위험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떠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그들이 더 충직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의 생각을 더 잘 이해했기 때문이다.(남성 제자들이 배신하거나 도망친 주요한 이유 역시 예수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의 무덤에서 주검이 사라진 걸 발견한 것도 여성 제자들이었고, 부활한 예수가 처음 만난 사람들도 여성 제자들이다.

복음서에는 이런 사실들이 대체로 기록되어 있다. 제자가 아니라 ‘예수를 따르던 여자들’로 말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여성 제자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다. 도마복음을 비롯한 정경 밖 성서에는 마리아가 예수의 가장 신뢰하는 제자이자 가장 긴밀한 동지였음을 드러내는 대목, 남성 제자들이 그걸 시기하는 대목이 많다. 예수가 떠나고 예수를 기억하는 공동체가 가부장적 종교로 발전하면서, 베드로와 남성 제자들이 권력을 갖는 대신 여성 제자들은 철저히 제거된다. 남성 제자들이 눈엣가시이던 막달라 마리아를 제거하는 방법은 교활하면서도 손쉬웠다. 그가 ‘창녀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성서 어디에도 근거가 없음에도 기독교 전통에서 마리아는 내내 창녀였다. 로마 가톨릭이 마리아를 ‘사도 중의 사도’라 인정한 건 1988년이다. 예수의 생모 마리아가 동정녀여야만 했던 이유와 최고의 제자 마리아가 창녀여야만 했던 이유는 전적으로 같다.

예수는 대중 앞에서 이야기할 때 언제나 ‘비유’ 형식을 사용했다. 비유의 소재는 모두 인민의 노동과 일상에서 가져왔다. 그래서 남의 노동 덕에 살아가는 유한계급과 책과 관념으로 지식을 쌓은 사람보다는 제 몸으로 노동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당시 팔레스타인 인민들은 대부분 글을 몰랐다. 예수의 언어 속에서 교육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으로 대변되는 계급 질서는 전복된다. 비유의 소재 가운데는 특히 가사노동과 살림에 관한 게 많았다. 예수의 언어 속에서 계급 질서는 한번 더 전복된다. 예수의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 그중에서도 여성이었다.

우리는 예수를 일컬어 성평등 의식이 높은 사람이었다, 페미니스트 혹은 우머니스트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 당시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복음서에서 예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군중의 수를 표현하는 대목엔 ‘사람들 가운데 남자가 몇명’이라는 표현 대신 ‘사람이 몇명’이라는 표현이 빈번하다. 당시 사람들에게 여성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남성)을 섬기고 보조하는 ‘존재 없는 존재’였다. 여성이 남성과 다름없는 인간이라는 의식이 존재할 때, 예수의 행동이 이해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그런 사고 틀 자체가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행동은 존중할 것도 비판할 것도 없는 그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일 뿐이었다.

여성 문제의 맥락에서 본다면,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예수를 이해할 수 있는 거의 첫 세대에 가깝다. 뒤집어 말하면 예수는 우리와 동세대의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예수 당시 사람들의 시간에 머문다.

우리는 분명히 모두 2016년을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모두 2016년을 살아가지 않는다. 누군가는 1916년을 살아간다. 누군가는 서기 16년을 또 다른 누군가는 516년을 살아간다. 일부만이 2016년을 살아간다. 성폭행 피해자의 옷차림이나 귀가 시간을 문제 삼는 사람은 결코 2016년을 살아가지 않는다. 일본군 위안부를 말할 때 ‘순결한 소녀’ 이미지에 집착하는 사람은 결코 2016년을 살아가지 않는다.

물론 이건 여성 문제에 국한하지 않는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를 ‘단지 안전사고일 뿐’이라 말하는 사람과 ‘19세/컵라면’ 서사에 빠져드는 사람과 사고의 근본 원인과 구조를 고민하며 그 구조 속의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은 결코 같은 시간을 살아가지 않는다.

세계의 고통은 바로 그런 차이에서 발생한다. 전혀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뒤섞여 동일한 시간을 동일한 자격으로 살아간다고 전제하는 근대적 가설이, 무수한 충돌과 통증과 누적되는 피로감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종종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듯한 절망감과 무력감에 빠져드는 건 버젓이 과거를 살아가는 유령들 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 늘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시간은 실은 여러 개이며 불균등하다. 적어도 그 일부에서 나는 과거의 유령일 수 있다. 나는 여성 문제의 맥락에서 2016년 즈음을, 노동 문제의 맥락에선 1816년을 살아갈 수 있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런 가능성을 인정하고 실존적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또한 시간을 앞서 살아가며 우리를 일깨우는 사람들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물론 그들은 대개의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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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어린이날, 고래가 그랬어는 경향신문과 함께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이라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그중 4번 항목은 ‘아이와 노동자가 행복해야 좋은 세상입니다’였다. 아이들의 미래와 관련하여 분명한 것 하나는 대부분 노동자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생산직이든 사무직이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그래서 노동자의 현실은 아이의 미래다.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있는 사회는 노동자가 살 만한 사회이기도 하다. 노동자의 삶이 불안정한데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있는 사회는 없다.

그러나 그 항목은 경향신문 지면에 실릴 때 ‘남의 아이 행복이 내 아이 행복이다’라는 다소 모호한 말로 바뀌었다. 아이들 관련 캠페인에 노동자가 들어갈 때 독자의 거부감이 예상된다는 이유에서 수정 요청이 있었다. 조·중·동이 아닌 경향 독자가 그렇다는 건 매우 애석한 일이었지만, 어쨌거나 운동은 실재하는 현실에서 출발하는 것이라 수용했다. 그리고 이번 어린이날 즈음, 노동 교육과 아이들의 왜곡된 노동 의식 등을 주제로 한 경향신문 기사와 카드뉴스가 인터넷에서 널리 공유되는 걸 본다. 4년 동안 우리는 적어도 그만큼은 나아간 것이다.

박근혜 정권이, 아니 박근혜라는 사람이 주는 고통은 확실히 특별한 데가 있다. 그가 독재자의 자질 면에서 제 아버지 못지않다는 건 이미 확인된 바다. 아버지가 죽고 한국 사회가 정치적 민주화의 길로 접어든 지 수십 년임을 고려한다면, 아버지보다 훨씬 더한 사람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소리를 해도 괜찮을까. 박정희 때 이런 소리를 했다면 당장 잡혀가거나 간첩으로 몰렸을 텐데 말이다. 박근혜에게 박정희와 다른 무엇이 있는 건가. 아니다. 박정희도 박근혜도 제 욕하는 사람 잡아가고 싶은 건 마찬가지인데, 박정희는 했지만 박근혜는 못하는 것이다. 박정희와 박근혜의 차이가 아니라 박정희 시절 인민과 박근혜 시절 인민의 차이다.

지난 총선이 남긴 가장 큰 의미는 여소야대가 아니라 그것이다. 여야가 이념과 정책의 차이가 없는데 여소야대가 그리 큰 의미가 있겠는가(19대 국회가 며칠 안 남은 이 순간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새누리당이 추진하던 최악의 의료영리화법에 합의했다). 지난 총선이 남긴 가장 큰 의미는 하한선,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인민의 하한선을 확인한 것이다. 선거 직전만 해도 곧 영구집권으로 간다느니, 박근혜의 지지율을 들며 어리석은 국민들이니 뭐니, 지식인 나부랭이들이 어지간히 호들갑을 떨지 않았던가. 인민은 단 한나절에 그런 호들갑을 잠재웠다.

1998년 박노해씨가 출소하여 한창 말을 많이 하고 다닐 때 그랬다. ‘김대중 정부의 개혁이 성공하지 못하면 한국은 87년 이전으로 돌아간다.’ 어리석은 소리였다. 87년 이전으로 돌아가려면 87년 이전의 인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98년의 인민은 87년 이전의 인민과 달랐다. 그런데 심지어 2016년의 인민 앞에서 영구집권 운운이라니. 인민은 좀처럼 쉽게 변화하지 않지만, 한번 만들어진 하한선 역시 좀처럼 쉽게 무너트리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87년 이전에 살았다면, 박근혜가 주는 고통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개탄하고 분개하는 상황들 중 상당 부분은 별문제라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가 완벽할 순 없는 거지.’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서양처럼 민주주의를 할 순 없지.’ 넘어갔을 것이다. 개탄하고 분개할 일들이 그 시절보다 훨씬 많아져서 더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훨씬 많이 개탄하고 분개할 수 있게 되어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사회적 상황에 대한 다양한 감정은 해당하는 사회의식을 통해서만 생겨난다. 별다른 학습이나 계몽 없이 인간이라면 본디 느끼는 거라 여겨지는 것들조차도 다 그렇다.

그렇다면 깨어 고통스러운 게 나은가, 잠들어 평온한 게 나은가. 사실 우리는 깨어 느끼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종종 모순된 태도를 보인다. 깨어 있는 주체들의 사회를 지향하면서도, 덜 깨어 있다는 게 공동체적 평온과 높은 행복도의 주요한 이유인 사회(전적이진 않지만, 부탄 같은)를 상찬하며 ‘오염된’(혹은 계몽된) 나를 탄식한다. 심지어 근대성의 폐해에 집착한 나머지 전근대 소농 공동체를 이상적인 사회 모델처럼 말하는 경우도 있다. 여성은 기본적 인권이 없었고, 공동체란 그저 가부장의 독재 체제였다는 사실은 온데간데없다.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모두 중산층 인텔리 남성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저런 부정의 정서는 결국 우리로 하여금 지금 여기가 ‘더 나쁜 적이 없었던 사회’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사회’라 믿게 한다. 부정의 정서는 사회 비판에 효율성을 주고, 사회를 비판하는 나에게 한결 정당한 기분을 갖게 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선을 넘어서면 걷잡을 수 없는 우울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절망적인 현실을 희망적으로만 보는 건 현실에 눈감는 일이다. 그러나 존재하는, 확보한 희망을 절망의 필터로 덮어버리는 건 더욱 그렇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절망은 절망으로 희망은 희망으로 봐야 한다. 우울의 늪에서 우리는 그런 분별을 잃고 만다.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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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또.’ 옥시(옥시레킷벤키저)가 사람이 죽어나간 게 자사의 가습기 소독제 때문이 아니라 봄철 황사 때문이라는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했다는 기사를 읽다가 훅 한숨이 나왔다. “김앤장의 자문을 받아”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몇해 전 일이 떠올랐다. 낯모르는 고등학교 후배 몇이 불쑥 찾아왔다. 유유상종이라, 차례로 자기 소개를 하는데, 다들 주류 사회에서 행세하는 직업을 가진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그중 한 친구가 죄라도 지은 듯, 명함을 건네며 유난히 겸연쩍어했다. 김앤장 변호사였다. 어디서고 대접받는 게 습관이 되었을 텐데, 다른 생각 하는 선배 앞이라고 그러는 게 밉지 않아서 “밥벌이가 거기서 거기지 뭘 그래” 하고 말았다. 오버였다. 거기서 거기가 아닌 밥벌이, 끔찍한 밥벌이가 있다.

세상이 어떤가를 아는 가장 정확한 방법 중 하나는 가장 머리 좋은 청년들이 어떤 밥벌이에 몰리는가를 보는 것이다. 1980년대는 그런 청년들이 변혁운동에 투신했다. 변혁운동은 밥벌이가 아니다. 그러나 밥벌이를 작파하고 다른 가치에 투신하는 게 그들에게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그 청년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기분이 켕기긴 하지만, 어쨌거나 80년대는 변혁의 세상이었다는 뜻이다. 근래 머리 좋은 청년들은 어떤 밥벌이에 몰리는가. 가장 머리 좋은 청년들은 이미 충분히 양극화한 세상에서 1%를 더 부자로 만들어주는, 1%의 악행을 덮는 이런저런 밥벌이를 선호한다. 김앤장 같은 대형로펌을 비롯, 유수의 투자(투기), 유수의 금융, 유수의 컨설팅 따위 이름이 붙은 밥벌이들이다. 근래 세상은 변혁이 불가능한 세상, 1%가 완전히 틀어쥔 세상이라는 뜻이다.

선거 즈음 야당의 외부 영입인사 면면도 세상이 어떤가를 보여주는 사례일 게다. 예전엔 ‘재야파’라 불리는, 밥벌이를 작파하고 운동에 투신해 이력을 쌓은 사람들이 일순위였다. 대중이 그런 사람들을 신뢰했고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야당다운 야당’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래는 밥벌이에 성공한 사람들, 기업에서 이력을 쌓은 사람들이 일순위다. 대중도 그런 사람들에게 호감을 갖고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능력있는 야당’이 된다고 생각한다. 여야, 상하 구분없는 온전한 자본의 세상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니 지난 총선 결과도 마냥 상찬되긴 어렵다. 자본의 세상에 녹아나는 사람들이, ‘헬조선’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자본에 기생하는 정당들 사이에서 표를 이동했을 뿐이니 말이다. 자본의 세상에 이견을 표시하는 대안정당들은 오히려 쪼그라들었다.

누가 부인할까. 밥벌이가 어려운 세상이다. 그런데 밥벌이가 어려운 세상이 주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굶어 죽을 걱정인가. 그런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밥벌이의 비교,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소비 능력의 비교가 자아내는 고통이다. 밥벌이가 어려운 세상이 주는 가장 큰 문제는 밥벌이 자체가 아니라, 밥벌이 외엔 생각할 줄 모르게 되는 것이다. 밥벌이 외엔 생각할 줄 모르니, 1%는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물론, 앞서 열거한 밥벌이들도 사회적으로는 욕하는 사람이 꽤 많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자식이나 인척이 그런 밥벌이를 한다는 걸 심각하게 불편해하는 일은 거의 없다.)

부러움은 나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부러움보다 강력한 복종은 없다. 1%를 부러워하는 나는 1%가 정해주는 질서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1%가 내 밥을 앗아가는 일은 갈수록 더 용이해지며, 내 밥벌이는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나와 1% 사이에서, 1%의 기득권을 수호하며 기생하는 9%(여야 정치인, 보수 진보 지식인, 보수 진보 언론, 관료 등)의 밥벌이만 안정을 구가한다. 남보다 더 ‘노오력’한다고 해서 혼자 예외가 되거나 벗어날 순 없다. 내가 복종하는 체제에서 내가 해방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9%에 대한 취향의 이동, 내 면전에 땅콩을 던지며 욕하거나 운전하는 나를 때리는 1%에게 ‘매너를 갖추어 달라’ 항의하는 것 정도다. 이 체제를 깨뜨리는 것 말곤 벗어날 방법이 없다.

다들 밥벌이를 작파하고 혁명에 투신해야 할까. 모든 사람이 전업적 혁명가로 살 순 없는 노릇이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혁명에 참여하면 된다. 지금 당장 혁명에 참여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불복종, 복종의 철회다. 복종이 부러움에서 나오니, 자기 최면이나 마인드 컨트롤로 부러움을 조작하자는 게 아니다. 부러움의 원인을 없애야 한다. 인생에서 밥벌이 외엔 생각하지 않는 것, 남의 밥벌이와 비교로 내 가치를 평가하는 것 말이다. 밥벌이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인생에는 밥벌이 외에도 중요한 것들이 많다는 걸 기억하는 것이다. 대단한 이념도 특별한 실천도 아니다. 인간이라면, 당연한 일일 뿐이다.

그러나 그 당연한 일로 나는 혁명에 참여할 수 있으며, 이 체제는 금이 갈 수 있다. 흔히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이 체제는 노골적인 폭력이나 고문, 살해, 투옥이 아니라, 수많은 내면적 복종으로 유지되는 투명한 유리성이다. 내가 내 인생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금이 가고 깨뜨려진다. 그런데 그 간단한 일이 그리 어렵다. 두가지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간단해 보여도 혁명은 혁명이라는 것, 우리 인생이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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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 정원을 못 채우는 대안학교가 꽤 늘고 있다고 한다. 고생 고생해서 대학을 나와 봐야 살기 막막한 현실이니 지금이야말로 제도학교보다 대안학교가 더 빛을 볼 때지 싶기도 한데 왜일까. 이유는 간명하다. 대안학교에 대안이 없다고들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안학교는 제도 학교가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대안학교는 새로운 교육을, 대안적 삶의 모델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진 못했다. 거기에 경쟁 교육 현실로 인한 부모의 불안감이 운영을 압박하면서 대안학교의 정체성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대안학교가 다 같진 않지만, 대안학교를 선택 가능한 교육상품의 하나로 보는 시류 속에서 부모들의 호감이 전보다 덜한 건 도리 없는 일인 듯하다.

대안은 언제나 기존 체제의 부정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부정은 대안으로 이어지지 않은 채 부정적 태도로만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리는 흔히 부정적 태도를 부정이라 착각한다. 부정적 태도는 부정의 축소판이 아니라 부정의 시늉으로 기존 체제에 기생하는 것이다. 대안에 관한 또 하나의 착각은, 대안이란 밝고 진취적인 느낌을 갖는다는 것이다. 대안의 싹을 자르기 위해 유포된 오랜 편견이다. 대안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경험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마냥 밝고 진취적일 수 있겠는가. 대안 앞에서 우리는 오히려 두렵고 불안하다. 그러나 더는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기에, 그 극단적 비현실성 너머로 발걸음을 떼는 것이다.

대안과 관련한 착각과 편견들은 오늘 대안과 진보를 말하는 세력에게 만연하다. 이를테면 이 순간 거리에 나붙은 선거 플래카드를 보자. 민주당(더불어민주당)의 것들은 그 당이 이념도 정체성도 없이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부정적 태도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반면에 녹색당과 노동당, 정의당의 것을 보면 기존 체제의 부정과 나름의 대안이 보인다. 그럼에도 진보 성향 시민의 대안은 민주당이다. 승산이 있으면 승산이 있다는 이유로, 승산이 없으면 승산이 없다는 이유로 민주당이다. 민주당이 의석이 부족해서 새누리당을 견제하지 못한 게 아니라는 사실과 박근혜 정권에 부정적 태도로 기생한다는 사실은 슬그머니 감춰진다. 저희끼리 탈당과 분당, 합당 논의, 공천 갈등을 벌이는 것 빼곤 아무런 정책 이슈가 없어도 여전히 절대적 대안이다. 이쯤 되면 정치가 아니라 종교적 신앙의 단계다.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들도 당연히 늘어만 간다. 진보 성향 시민 가운데는 야권이 선거에서 이기기 어려워진 게 무작정 새누리를 찍는 사람들 때문에, 낮아진 민도 때문에 생긴 일인 양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은 반대로 민도가 높아져서, 민주당의 기만성을 꿰어보는 눈 밝은 사람들이 많아져서 생긴 필연적 상황이다. 박근혜 정권의 실정과 패악질을 말하면 그들은 ‘너희도 나을 건 없지 않은가’ 코웃음이 돌아온다. 현실 문제에선 딱히 들고나올 게 없어 늘 대신 들고나오는 옛 민주화운동 타령도 ‘고생한 거 이상으로 해먹고 있지 않은가’ 받아쳐진다. 초유의 민주주의 향연으로 극찬된 필리버스터는 ‘10개월 동안 반 협조 상태에 있다가 통과가 기정사실이 되자 벌인 싱거운 쇼’로 치부된다. 민주당이 대안이라는 건 한마디로 웃기는 소리라는 것이다.

현실과 여론의 향방은 이런데 여전히 선거를 ‘새누리: 민주당 중심의 야권’ 대결로만 보는 건 바람직한가. 새누리와 새누리에 기생하는 민주당을 하나로 묶어, ‘새누리와 민주당: 대안정치 세력’ 대결로 보는 시각도 필요하지 않을까.

현실이 어려울수록 더 철저히 현실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볼모가 되는 것보다 더 비현실적인 것은 없다. 의회 정치가 짜고 치는 고스톱판을 벗어날 가능성은 대안정치 세력의 성장에 달려 있다. 설사 야권이 이기더라도 대안정치 세력이 현재 상태에 머문다면, 그게 바로 패배고 절망이다.

이번 선거에서 대안정치 세력이 새누리나 민주당에 견줄 의석을 가질 가능성은 물론 없다. 그러나 단 몇 석이 판의 균열을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의석 부족이 아니라 대안 부족이다.

30여년 이어온 민주당 대안론의 숨은 목적은 진보정치 소멸이었다. 목적은 상당 수준 달성되었고 진보정치는 지리멸렬한 처지에 있다. 정의당은 진보정치 독자성보다는 민주당 중심 야권 연대 속에서 정치적 생존에 집중해야 한다. 당원이 대거 정의당으로 빠져나간 노동당은 자신을 사수하는 숙제가 엄중하다.

그런 와중에 녹색당의 행보는 이채롭다. 녹색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기본소득’이라는 정치와 경제의 두 정책 틀을 분명히 하며 대안정당의 면모를 갖추어가고 있다. 청년의 관심도 높고, 평당원으로부터 올라오는 활력도 돋보인다. 지지 여부를 떠나, 녹색당은 근래 정치적 대안의 지평에서 제 걸음을 걷는 거의 유일한 정당이다.

몇해 전만 해도 ‘개량한복 입은 옛 운동권 아저씨 동아리’쯤으로나 여겨지던 녹색당이 그리 일신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뭘까. 그들은 기존 진보정치 세력이 엄혹한 현실에서 살아남으려 부정적 태도에 빠져들어 갈 때, 거꾸로 부정의 첫 질문을 부여잡았던 게 아닐까.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대안과 진보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품어야 할, 그러나 다들 언젠가부터 잊어버린 질문 말이다. 야권 패색이 짙은 선거를 앞두고 전전긍긍하는 당신이 기억할 질문이기도 하다.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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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미국은 좌파가 없는 사회, 대표적인 보수 양당제 사회라 불린다. 그러나 미국도 한때는 노동운동을 비롯, 좌파 세력이 꽤 활발했다. 유럽 같은 사민주의 사회로 진전할 여지가 있었던 셈이다.

미국 좌파는 선거에서 ‘현실적 선택’을 거듭하면서 민주당에 흡수되고 괴멸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미국, 극우적 보수와 리버럴이 바통 터치하듯 정권을 주고받으며 미국식 자본주의를 수호하는, 다수의 삶에선 어느 정권이든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는 사회가 되었다. 버니 샌더스의 선전은 그 공고한 체제에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다.

샌더스 선전은 단지 민주당 내의 이변이 아니라 보수 양당체제의 이변이다. 민주당 경선에 나섰지만, 샌더스는 이념과 정책 면에서 민주당을 뛰어넘는 좌파 정당 후보와 다름없다. 미국 보수 양당체제를 실제적으로 수호하는 건, 공화당이 아니라 좌파 정치를 흡수하는 역할을 맡은 민주당이다. 민주당 엘리트는 그 대가로 공화당 엘리트와 함께 미국 사회의 상층 계급을 형성한다.

뉴욕타임스를 애독하고 폴 크루그먼의 ‘인간적 경제학’을 신뢰하는 그들에게 필요한 건 좀 더 상식적인 사회, 즉 그들의 집권이지 결코 계급적 변화는 아니다.

그들은 연일 샌더스의 정책들이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실은 샌더스가 가져올 수 있는 현실의 변화를 두려워한다.

700여명의 ‘슈퍼 대의원’ 대다수가 힐러리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힐러리를 압도하지 않는 한 샌더스가 이길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런데, 만일 샌더스가 지면 모든 것은 바람처럼 사라질까? 미국 민주당은 당내 정치 분파 활동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1988년 민주당 예비 경선에서 파란을 일으킨 제시 잭슨 목사도 패배 후엔 바람처럼 사라진 사례가 있다. 그러나 샌더스 현상은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사회에 남아 리버럴을 견제하고 체제를 위협하며 다음 희망을 만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샌더스 현상은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니라 일련의 큰 흐름을 타고 있다. 시작은 2011년 월가 점령 시위다. 자본주의 비판이 쏟아져 나오자 ‘고목나무에 꽃이 피었다’고들 했다가 별 소득 없이 사그라들자 ‘미국이 그렇지 뭐’했던 점령 시위의 에너지는, 사그라든 게 아니라 수면 아래에서 숨을 고르다 대선을 통해 다시 분출되고 있다.

미국 대선의 예비 경선제는 대중의 참여도 높고 매우 민주적으로 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대기업과 주류 미디어가 후보를 낙점하고 지배하는 구조다. 양당 모두 그렇다. 오바마는 그 구조에 영리하게 적응하며 승리했다. 그러나 샌더스는 대중의 모금과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젊은 세대의 활동으로 그걸 넘어서고 있다.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거대하고 강력한 힘은 잠시 잠잠해질 순 있겠지만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은 작다.

또 하나는 샌더스 현상이 오바마 정권의 성공과 상호적으로, 그리고 단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두 번 집권하는 중간에 월가 점령 시위를 겪었으며, 그로부터 재선에 도움을 받기도 한 오바마 정권은 최선의 리버럴 정권이 갖는 미덕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샌더스 현상의 중요한 기반을 만들었다. 좀 더 상식적인 사회를 구현해 보임으로써 시민들에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에너지를 심어주었고, 역시 미국식 자본주의의 골간은 건드리지 못한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결심을 만들어냈다.

샌더스 현상은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버니 샌더스의 메시지는 매우 단순하다. 샌더스는 질문한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극소수가 사회적 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다수의 사회 성원들이 열심히 일해도 살기 어렵고 불안한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런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는 정치를 바꿔야 한다. 기존 정치체제 안에서 상대적으로 선한 것을 선택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체제 자체를 넘어서는 정치여야 한다.

한국의 진보 경향 시민들은 그와 반대다. 그런 변화는 당장은 불가능하니 정권교체에 집중하는 게 현실적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대중은 지금 미국인들처럼 성공적 리버럴 정권을 경험한 게 아니라 노무현 정권의 실패가 남긴 상처와 거대한 반동에 젖어 있다. 청년들은 보수 엘리트 못지않은 기득권을 구가하면서도 박근혜 욕만 일삼으며 여전히 저항 세력의 표정을 짓는 진보 엘리트들에게 호감을 갖지 못한다. 아예 정치에 관심을 끊어버리거나 보수화하는 대중이 늘어난다. 결국 정권교체에 집중할수록 정권교체가 요원해지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이 수렁을 빠져나가는 유일한 길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다시 질문하는 것이다. 필리버스터를 보며 민주주의를 연호하는 사람들이, 무덤덤한 대중을 계몽의 표적으로 삼는 게 아니라, 왜 내가 열광하는 민주주의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지, 그들의 삶에 다가가는 민주주의는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할 때 희망이 싹튼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버니 샌더스라는 인물의 영웅적 투쟁기가 아니다. 비현실적인 것을 선택함으로써 현실을 바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용기와 행동이며, 샌더스는 그 반영 혹은 매개일 뿐이다.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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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본격화한 건 1991년 김학순 할머니(1924~1997)의 증언부터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의 첫 증언자는 김 할머니가 아니라 오키나와에 살던 배봉기 할머니(1914~1991)다. 배 할머니는 김 할머니보다 16년 먼저인 1975년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언론에 밝힌다.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난 그는 7살 때 식모로 팔려간다. 첫 결혼에 실패하고 조선 각지와 만주 등을 떠돌던 그는 29살이 되던 1943년 “일을 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가 있다. 누워만 있어도 입으로 바나나가 떨어지는 곳에 간다”는 위안부 모집 업자의 꾐에 위안부가 된다.

‘전쟁터에서의 일이 부끄러워’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조선말마저 잊은 채 살아가던 그가 증언을 결심한 이유는 일본에서 계속 살기 위해서였다(1972년 오키나와를 되찾은 일본 정부는 1945년 8월15일 전에 일본에 입국한 조선인들에게 신고를 거쳐 특별 영주권을 준다).

일본군 위안부 ‘최초 증언자’인 그가 한국에서 잊혀진 이유는 무엇일까. 일차적으로는 독재정권이 위안부 문제를 덮으려 했다는 것, 증언이 조총련계를 통해서였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도, 위안부 운동이 본격화한 후에도, 파국적 한·일 위안부 협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한 현재까지도 그의 존재가 부각되지 않는 데는 다른 정서적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그는 ‘순결한 조선처녀’라는 위안부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배 할머니를 취재한 기사(한겨레 2015년 8월7일자)에 따르면 그는 위안부였음을 털어놓을 때 “유군가 마케타노가 구야시이사”(일본군이 져서 분하다)라고 거듭 말하곤 했다. 할머니는 일본군이 져서 세상이 변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조국 해방’을 뜻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그는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었고, 민족의식이 없었으며, 자신이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에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위안부들이 위안부가 되어야만 했던 다양한 사연과 삶의 배경을 그 자체로 이해하고 존중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가 원하는 위안부상에 얼마나 부합하는가에 좀 더 집중한다. ‘순결한 조선처녀’라 여겨지면 존중심을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구석이 있다면 외면하거나 아예 눈감아 버린다.

위안부를 대상화하는 그런 위선적 태도는 위안부 문제가 국제 사회에서 폭넓은 설득력을 갖지 못한 주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위안부는 모두 강제로 끌려간 소녀였다’는 우리의 강변은 ‘위안부는 모두 자발적 매춘부였다’는 일본 우익의 강변과 쌍을 이루어왔다.

배봉기 할머니는 전쟁이 끝나고도 한동안 미군을 상대로 같은 일을 해야 했다. 위안부 문제는 단지 ‘일본놈들의 만행’이 아니라, 가부장제 국가에서 언제나 여성에게 존재하는 폭력 구조의 일부다. 폭력 구조는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도 남성 수용자를 위한 위안부가 존재했을 만큼 일반적이며 뿌리 깊다. 우리는 위안부 문제의 그러한 본질을 직시하려 하지 않는다.

2014년 6월 미군 위안부 122명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들이 위안부가 된 경로 역시 다양했다. 인신매매로 끌려온 소녀도 있고 가족에 의해 팔려온 사람도 있고 돈을 벌기 위해 온 경우도 있다. 그들에게 ‘애국교육’을 하고 미군의 건강을 위해 성병관리를 하고 도망치면 경찰을 통해 잡아오기까지 했던 한국 정부는 그 모든 사실을 부인한다. 우리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와 그들을 동등하게 지지하거나 연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은 순결한 처녀들이 아니라 ‘양갈보들’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저희가 괜히 나섰다가 일본 우익들만 좋은 일 시키는 거 아닐까, 고민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연대 요청을 거부하고 위안부 소녀상에 온전히 자신을 일치시키는 걸 비판하거나 사실 여부를 따지려 드는 건 인간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행동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위안부 문제를 위안부 소녀상으로 단일화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다. 우리가 우리의 알량한 역사의식과 지배체제로부터 주입된 민족의식과 전근대적 여성관을 위안부 소녀상을 내세워 은폐하려 드는 건 말이다.

“여성이 성을 파는 것은 자유의사에 의한 ‘자발적’인 일 같아 보여도, 결코 그렇지는 않다. 그것은 여성이 국가와 남성에게 봉사하게 되어 있는 가부장제 구조 속의 일이다. 위안소가 ‘인정된’ 장소였고 ‘합법적’이었다는 그들의 주장은 그 ‘법’이 국가와 군이 만든, 남성을 위한 ‘법’이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다른 일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자원’한 처녀들이었건, ‘매춘’을 하게 될 것을 알고 간 여성들이었건, 그 구조적인 강제성은 결코 희석되지 않는다.”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들’이라는 일본 우익의 주장을 반박하는 박유하의 말이다. 과연 위안부 할머니들을 더러운 여자들로 모욕하는 건 누구인가. 더러운 여자는 없다. 더러운 게 있다면 여성을 깨끗한 여자와 더러운 여자로 구분하고 억압하는 가부장제의 폭력, 그에 기반을 둔 우리의 싸구려 정의일 것이다.

(박유하의 책 <제국의 위안부>는 전문을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http://parkyuha.org/)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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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흙수저(수저론) 등은 매우 급진적인 언어다. 한국이 봉건적 지옥이자 계급을 넘어 신분이 고착된 사회라는 뜻이니 말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급진적이었다는 80년대에도 그만 한 말은 드물었다. 이상한 일은 그 급진적 언어들을 우익 언론에서도 반감을 보이지 않고 동조한다는 것이다. 인정할 만한 사실이기 때문일까. 만일 한국 우익 언론이 그런 곳들이었다면 이미 존중받았을 것이다. 이유는 그 언어들이 매우 급진적이지만 전혀 불온하진 않기 때문이다. 아직은 연대가 아니라 각자도생, 저항이 아니라 신세 한탄에 머물기 때문이다.

‘노력을 안 한다’고 호통치고 ‘청춘은 원래 아픈 거’라고 설레발치는 자칭 멘토들 앞에서, 청년들이 반성과 깨달음의 눈물을 흘리고, 없는 형편에 그들의 책까지 팔아주던 기막힌 풍경이 불과 한두 해 전이다. 나도 그즈음 이 지면에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할 일은 이런 세상을 만들어놓은 것에 대해 미안해하는 것이라고 적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호통과 설레발에 대한 청년들의 반감이 팽배해지고 호통과 설레발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헬조선, 흙수저 같은 급진적 언어들이 등장했고 그에 동조하며 ‘미안해하는 얼굴’이 호통과 설레발의 자리를 차지했다. 외양은 매우 다르지만 역할은 같다.

그것은 민주화 이전까지 봄가을이면 방송과 일간지를 정기적으로 장식하던 ‘부유층의 사치행각’ 기사와 같은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노력하는데 일부 부유층은 골프니 해외여행이니 과소비에 열중하며 사치를 누린다’는 기사. 거기에 이따금 ‘부유층 2세들의 행각’이 부록으로 붙곤 했다. 그럼 ‘대다수 국민들’은 타락한 부유층과 ‘강남놈들’에게 혀를 끌끌 차며 하던 일을 열심히 했던 것이다. 일부 순진한 우익은 부유층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자유시장 체제를 위협하는 것처럼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정기적인 기사들은 열심히 일하면 다 잘사는 사회가 온다는 거짓말을 더는 숨기기 어려운, 다수의 노력을 소수가 가로채는 사회로 가는 행로에서 일어나는 반감과 분노를 어르고 달래 차단하는 체제의 전략이었다.

그런 기사들은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보편화하고 ‘부자 되세요’가 모두의 덕담이 되면서 효용성을 잃는다. 헬조선, 흙수저 같은 급진적 언어에 대한 동조와 ‘미안해하는 얼굴’은 ‘부유층의 사치행각’ 기사의 30년 후 버전이다. 옛 동조가 여전히 전근대적 사회에서 자신을 국가의 일원으로만 여기던 사람들에게 맞춰진 것이었다면, 지금의 동조는 시민의식을 확보했으나 소비자 의식이 노동자 의식을 압도하는 사람들에게 맞춰진 것이다.



체제가 분노의 사회화를 차단하는 전통적이고도 세련된 방법은 분노를 뭉뚱그리는 것, 분노가 그 대상을 정확하게 분별하고 날이 서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30년 전 타락한 부유층에 대한 반감이 그 매개였다면 지금은 ‘꿀세대론’이 그 역할을 한다. 기성세대가 청년일 때 경제가 지금보다 좀 더 역동적이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래서 기성세대가 다 살기 좋았던 건 전혀 아니다. 이를테면 ‘그 시절엔 대학만 나오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는 말을 살펴보자. 80년대 중반까지 대학진학률은 채 20퍼센트가 못 되었다. 대학 나온 사람이 다섯명 중 하나가 안되니 대학을 나오면 일자리 구하기가 수월한 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당시 대학을 못 간 사람들이 치러야 했던 삶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다섯 중 하나도 안되면서도 또래 사람을 만나면 으레 ‘학번’을 묻는 그 세대 엘리트의 뒤틀린 정서와 대학은 누구나 가는 거라 생각하는 현재 정서가 묘하게 결합해 만들어낸 착각이자 기만이다. 헬조선의 요체는 세대 문제가 아니라 극심한 계급적 양극화, 즉 1퍼센트의 몫을 무한정 늘리기 위해 90퍼센트의 몫을 줄이는 공정에 있다. 다루기 어려운 조직노동보다 미조직 노동 부분이 더 쉬운 먹이가 될 수밖에 없고 청년들은 대부분 그에 해당한다. 비정규 불안전 노동 상태에 있는 기성세대의 형편이 청년들보다 결코 낫지 않다는 건 그 사실을 방증한다. 청년들이라고 해서 다 흙수저는 아니라는 사실도.

헬조선, 흙수저 같은 급진적 언어들은 노력해도 안되는 사회에서 ‘노오력하라’는 호통과 설레발에 대한 반감에서 생겨났다. 그런데 노력해도 안되는 사회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노력하면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체제는 청년들이 그런 세상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걸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그래서 급진적 언어들에 교활하게 동조하며 짐짓 미안한 얼굴로 ‘그래 그래 노력해도 안되지. 헬조선 흙수저 맞는 말이지’ 한다.

변화는 청년들이 저항할 때, 교활한 동조를 거부하고 세상을 뒤집어엎겠다고 나설 때 시작된다. 이렇게 말하면 즉각 ‘지금 청년들 형편에 어떻게 저항씩이나 할 수 있단 말이냐’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바로 교활한 동조의 좌익 버전이다.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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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시립미술관 남서울관에서 ‘공허한 제국’이라는 이름의 아트페어 전시가 열렸다. 개관 며칠 후 홍성담 작가의 작품 ‘김기종의 칼질’이 주최 측에 의해 철거되었다. 전시 총감독 홍경한씨는 “참여작가들과 작품들을 문제화되고 있는 작품 한 점으로부터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철거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당 작품이 전시에 참여한 정황으로 볼 때 설명은 석연치 않았다. 홍성담 작가는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서 ‘세월오월호’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경험도 있고 해서 애초 참여 요청을 고사했지만 홍경한씨의 설득으로 참여했던 것이다. 광주비엔날레 때는 작품의 참여 여부를 놓고 말썽이 난 데 반해 이번엔 기획자가 작품을 확인한 상태이기도 했다.

그런데 논란의 기미가 보이자마자 주최 측에서 작품을 자진 철거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홍경한씨는 한동안 ‘잠적’했다. 전시 작가와 작품을 지키는 것은 전시 기획자의 기본 윤리라는 점에서 황당한 상황이었다.

전시에 함께 참여한 작가들은 침묵했다. 동료 작가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그 작가나 작품에 대한 호오가 어떻든 작가로서 모욕감과 분노를 느꼈을 법도 한데 말이다. 미술계 안에서 이렇다 할 토론이나 논쟁도 없었다. 일련의 침묵을 보며 나는 몇 달 전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에서 열린 지드래곤 전시 때의 침묵을 떠올렸다. 당시 그 희한한 침묵에 의아해하던 나에게 미술계 사정에 밝은 친구가 말했다. “작가는 서울시립에서 전시해야 하니 말 못하고, 평론가나 기획자는 관장과의 안면 때문에 못하고, 결국 말할 사람이 없지.” 그런 건가 하면서도 선뜻 믿기지 않았던 건 그런 해설이 평소 미술계가 보이는 언어나 담론에 비해 어이없을 만치 싱거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미술계는 다른 어떤 예술계와도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사회 혹은 자본주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언어와 담론이 많은 곳이다. 이를테면 홍경한씨는 ‘공허한 제국’ 전시 소개 글에 이렇게 적고 있다.

“전시의 내용은 자본주의 시대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을 테제로, 우리 역사와 정치, 사회에 있어 반드시 기억되고 환류되어야 할 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중략) 작가 홍성담은 핵으로 만든 ‘공허한 밥’을 절대 마다하지 않는 현실을 빗댄 ‘핵-거룩한 식사’와 ‘공허한 칼질’로 표현된 김기종의 칼질을 통해 ‘천근처럼 무거운 역사 아래 분노와 항의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중략) 이번 전시는 훼손되어선 안될 ‘표현의 자유’ 속에서 일궈진 모든 예술이 우리 사회에 보편적 가치로 수용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기 위한 첫 시도임과 동시에….”



미술계의 그런 말과 행동의 괴리가 좀 더 중첩된 차원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로부터 두어 달 후 알 수 있었다. 11월 미술인 500여명은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MACBA) 관장 재직 시 검열 의혹으로 논란을 빚은 바르토메우 마리가 유력한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후보로 떠오르자 “예술의 자율성을 확고히 지켜야 할 미술관장직으로 검열 논란의 와중에 있는 인물을 왜 선임하려 하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요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마리가 결국 관장에 취임하게 되자 미술가들은 그에게 “일체의 권력으로부터의 검열과 통제에 반대한다”는 공개적인 윤리선언을 요구했다.

마리의 검열 사건은 사실 애매한 부분이 있다. 현존하는 입헌군주국가들은 공공 미술관에서 왕을 소재로 한 작품을 전시하지 않는 관행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왕을 소재로 창작할 수 없다는 말인가’라는 질문과는 무관한 불문율에 가까운 관행이다. “큐레이터들이 나를 속였다”는 마리의 주장도 결국 그런 맥락에 있다. 또 하나의 이슈인 큐레이터 해고 건도 그가 물러난 후 일이라 그에게 책임을 따지기엔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입길에 오른 사람이 나라를 대표하는 미술관 관장으로 부임하는 일에 대해 미술인들이 공개적으로 의구심을 표시하고 윤리선언을 요구하는 건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저간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로선 미술인들의 그런 의미 있는 행동이 코미디로 보일지도 모른다. 동료 작가의 작품들이 검열되고 표현의 자유가 탄압될 때 침묵해온 그들이 정색을 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모습이 말이다.

물론 이건 미술계만의 풍경이 아니다. 헬조선이 괜히 헬조선인가. 오늘 한국이라는 곳에서 살면서 제 삶의 일부도 코미디로 내어주지 않기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만연한 ‘기득권과 저항적 태도의 병존’이라는 삶의 코미디는 이미 20대의 보수화 현상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비록 우리 삶이 코미디라 할지라도 그 사실에 무감각해지기까지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여전히 자의식을 유지하며 부조리한 세계에 맞서 의미 있게 꿈틀거릴 수 있다.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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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 트위터를 일년쯤 하다가 그만두었다. 누군가 연유를 물어오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사람은 누구나 똥을 눈다. 하지만 남 앞에서 똥을 누진 않는다. 그런데 트위터에서 사람들은 남 앞에서 똥을 눠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트위터의 지나친 속도와 가벼움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 물론 이건 트위터라는 미디어가 본질적으로 어떻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게 트위터가 어떻더라는 이야기다. 그러고 일년쯤 후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대개 하루 한번쯤은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훑어보는데 근래 그곳엔 유명한 악귀가 있다. 그곳에서 박근혜씨는 나쁜 대통령을 넘어 악귀다.

그곳 분위기로 본다면 박근혜씨는 이미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재판정 혹은 감옥에 있고도 남았어야 한다. 그런데 건재한 이유는 아마 두 가지일 게다. 그곳에 박근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몰려있다는 것, 그들이 그들 바깥의 대중에게 별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들은 매일같이 박근혜라는 악귀를 성토하며 반대운동을 벌이지만 아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대중에게 나쁜 대통령이라는 정도의 생각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계속 자기들끼리만 뜨거울 게 아니라 그런 온도 차이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온도 차이는 박근혜 반대운동뿐 아니라 ‘사회적 분노’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시위대는 경찰 차벽보다 완고한 ‘대중의 마음’이라는 차벽에 막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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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보수 신문과 기레기 미디어가 대중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고 말한다. 대중에게 ‘사회의 진실’을 알리는 일이 결정적인 때도 있었다. 전태일이 ‘대학생 친구’를 갈망하던 시절처럼 말이다. 그러나 오늘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사회의 진실을 알려고만 하면 당장에라도 얼마든지 알 수 있는 세상이다. 인터넷 검색 몇번이면 국정교과서나 개정 노동법이 왜 나쁘다는 건지도 알 수 있고 노무현이 정말 좌익이었나 같은 제법 까탈스러운 문제도 개괄할 수 있다. 오늘 대중이 사회적 분노에 공감하지 않는 이유는 사회의 진실을 몰라서가 아니다. 자신이 사회 안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분노가, 사회에 관한 이야기들이 제 삶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 밖에 있다.


반세기를 국가라는 신체의 일부로 살아온 그들은 민주화 이후 비로소 사회와 조우했다. 그들은 사회를 환대했지만 사회는, 정확하게 말해서 사회를 말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철저히 배신했다. 국가를 말하는 사람들이 1% 특권층을 대변하듯 사회를 말하는 사람들은 10% 기득권을 대변했다. 사회를 말하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가져다준 지위는 국가의 굴레에서 벗어난 사회적 개인이 아닌, 사회와 무관하게 각자도생하는 개인이었다. 요컨대 그들은 사회 밖으로 강제 이주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중이 부재한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라진 건 실은 그들이 아니라 사회 자체다. 오늘 한국은 신자유주의의 기수이던 대처의 말마따나 ‘사회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사회다. 사회가 없으니 사회적 분노도 사회적 변화도 있을 수 없다. 사회적 분노는 예의 현격한 온도 차이에 막혀 있고, 사회적 변화는 개혁 우파로 정권교체조차 비현실적 이상처럼 여겨질 만큼 난망하다.

사회를 말하고 싶다면, 먼저 사회를 복원해야 한다. 사회를 복원한다는 건 사회 밖에 있는 대중이 다시 사회 안으로 들어오는 일이다. 사회적 분노가 사회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들 자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가 되는 일이다. 과연 사회를 말하는 사람들이 10%의 기득권을 90%에 재분배하기로 결단할 수 있을까. 이를테면 ‘그나마 민주노총이니까 이번처럼 대규모 집회도 치를 수 있다’며 민주노총이 10% 노동을 대변한다고 비판하는 걸 저어하는 사람들이, 그나마 민주노총이니까 이번처럼 대규모 집회도 치를 수 있다는 사실과 민주노총이 10% 노동을 대변한다는 사실을 동시에 인정할 수 있을까. 지당한 일이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중은 주야장천 사회 밖에 머물지 않고 결국 국가의 신체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를 말하는 사람들이 실은 ‘현재 사회’를 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박근혜의 흉포함을 빌미로 독재/반독재라는 30, 40년 전 프레임에 현재 사회를 퉁침으로써 10%의 기득권을 지키려 한다는 사실을 삶의 직관으로 알아채고 있다. 그들 중 20대가 보이는 급격한 우경화 현상은 그런 기만에 대한 복수다. 그들은 사회 밖으로 맥없이 강제이주당한 윗세대의 몫까지 보태어 복수를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보수 신문과 기레기 미디어에 눈이 가린 우매한 사람들, 철없고 무지한 아이들로 치부하는 건 얼마나 안이한 태도인가. 복수극이란 모름지기 일찍 해결하지 않을수록 처참하기 마련이다.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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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은 국가의 부정을 목표로 하는 좌파들의 영향력을 일소해야 한다. 역사는 ‘올바르게 해석된’ 공정성에 기초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누군가가 한 말일까? 나치 정권의 말이라 한다. 국정화 역사교과서를 반대하는 사람들로선 ‘역시 박근혜 정부는 나치와 다름없구나’ 탄식이 나올 만하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히 다른 게 있다. 과연 오늘 한국에 ‘국가의 부정을 목표로 하는 좌파들’이 역사 교육의 향방에 영향을 미칠 만한 수준으로 존재하는가?

박근혜 정권이 좌파라 지칭하는 대상은 주로 새정치민주연합을 중심으로 한 야권이다. 그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십년 전 국가의 부정을 목표로 하는 좌파였던 건 사실이다. 그 일부는 북한 체제에 호감을 가지거나 신봉하는 경향을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들이 자본주의 체제의 신봉자로 전향한 건 오래전 일이다. 그들은 국가를 부정하는 좌파가 아니라 국가 안에서 권력과 헤게모니에 집중하는 우파다. 그들은 여권과 적대적이지만 그 적대성은 이념적 적대성이 아니라 정권과 헤게모니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적대성이다.

국가의 부정을 목표로 하는 좌파들이 없다는 말이냐? 물론 있다.(이른바 ‘자유 민주주의 사회’라면 있어야 당연한 거 아닌가?) 종북 세력? 있다 뿐인가. 북한과 연루된 간첩도 있다. 그러나 사회에 혼란을 가져오기엔 턱도 없는 영향력을 가질 뿐이며, 국가를 부정하는 혹은 종북이라는 본연의 활동은 고사하고 제 존재를 지탱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형편이다.

어지간히 세상 물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왜 만날 야권이 국가의 부정을 목표로 하는 좌파들인 양 말할까? 물론 그들 패거리엔 수십년 전 눈과 뇌가 콘크리트처럼 굳어 우파적 상식조차 빨갛게 보는 가련한 사람들(최근 사례로는 방송문화재단 이사장 고영주씨처럼)도 있긴 하다. 그러나 여권 주류가 그런 건 아니다. 설사 정서적으로는 그렇더라도 그걸 그리 즉자적으로 정치적 행동에 옮길 만큼 어리숙하진 않다. 두 번이나 집권 중이고 한쪽에선 사람 취급을 못 받으면서도 여전히 상당 수준의 지지율을 유지하는 능력자들 아닌가. 그들은 철저한 계산과 전략 아래 이 놀음을 벌이는 것이다.


이상한 건 오히려 야권이다. 그런 거짓 딱지놀음을 당하면서도 딱히 반발하거나 항변하지 않는다. 수십년 전 박근혜씨의 아버지와 그 후계자들 앞에선 극구 좌파가 아니라 항변하던 사람들이 왜 지금은 짐짓 그 놀음을 즐기는 얼굴들일까. 수십년 전 좌파 딱지는 그들을 곤경에 몰아넣고 목숨마저 앗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 딱지는 그들을 좀 더 야권스럽게, 진보스럽게 치장해주는 훈장이다. 그런 딱지놀음을 통해 두 세력은 ‘싸우는 여야’의 모양도 만들고 ‘대립하는 좌우’의 모양도 만들면서 ‘적대적 공생관계’를 구가한다.

지난 100여년 한국 역사에서 주요한 지배 체제는 대략 셋이다. 일본제국주의 체제, 극우독재 체제, 그리고 신자유주의 체제. 앞의 두 체제에서 두 세력은 적대적인 편이다. 특히 두번째에서 그렇다. 그러나 세번째, 오늘 우리 삶을 경제는 물론 사회 문화, 인생관과 교육관과 영혼의 말단까지 규정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두 세력은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오히려 야권이 두 번의 집권 시절 체제의 기틀을 잡고 여권이 이어받았다는 게 객관적 사실관계다.

결국 교과서 논란은 현재 지배체제의 두 분파가 노동악법 등 대다수 사회 성원의 삶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들을 무리 없이 돌파하려는 전략에 이용되고 있는 셈이다. ‘야권이 국정화 교과서 논란에 말려들어 민생 현안을 도외시한다’는 비판은 거꾸로 된 말이다. 야권은 민생 현안에 집중하면 할수록 ‘야당 같지 않은 야당’이니 ‘2중대’니 하는 비난에 처할 수밖에 없다. 야권의 소망은 무엇이든 야당스럽게 보일 수 있는, 여당과 치열하게 싸울 수 있는 소재를 찾는 것이다. 국정화 역사 교과서는 그들에게 여권이 제공한 고마운 선물이다.

물론 국정화 역사교과서를 반대한 모든 사람이 그런 더러운 정치놀음에 가담한 건 아니다. 그러나 그 반대가 반대의 함성에 그친다면 필시 동원되고 놀아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역사 교육에서 좀 더 주인이 되어야 한다. 나쁜 교과서에 아이들이 풀빵처럼 찍혀나오는 것처럼 생각하는 건 천박한 교육관이다. 국정화를 반대한다고 검인정이 목표가 되어서도 안된다. 더 대안적인, 더 다양한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 노동자는 노동자의 관점에서, 평화주의자는 평화의 관점에서,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역사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노동악법을 비롯한 문제들은 한번 밀리면 좀처럼 돌이켜지지 않는다. 저들도 그걸 잘 알기에 저러는 것이다. 순정한 분노만으로도 충분하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저들이 저리 교활하기에 좀 더 현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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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두어 달 전, 인천 동구는 괭이부리마을(김중미의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널리 알려진 그 마을이다)에 ‘쪽방 체험관’을 만들려다 “가난을 상품화해 마을과 주민들을 구경거리로 만들고 있다”는 반발과 비난 여론으로 접었다. 그 얼마 후,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축제 주점에서는 학생들이 ‘오원춘 세트’라는 이름의 안주 메뉴를 만들어 팔다가 비난 여론 때문에 전체 축제 일정이 취소되었다. 오원춘은 2012년 한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살해하고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한 사람이다. 비슷한 즈음, 출판사 문학동네는 김훈 에세이집 <라면을 끓이며>를 예약 구매하면 ‘마음의 허기를 채워줄 김훈 양은 냄비’를 주겠다고 홍보해 입길에 올랐다. 1800개의 냄비가 이틀 만에 동이 나 행사 취소 사태까진 갈 것도 없었지만 김훈이라는 작가의 무게감과 냄비의 대비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에 잠기게 했다.

상황과 정서의 차이가 있는 세 가지 에피소드를 하나로 묶어 말하는 게 부적절하게 느껴지거나 억울한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나는 세 가지 에피소드를 보며 그것들을 관통하는 형용사 하나가 떠올랐다. ‘던적스럽다.(하는 짓이 보기에 매우 치사하고 더러운 데가 있다.)’ 그렇다. 그것은 ‘팔기 위한 던적스러움’이었다.

대개의 사람이 그런 대로 사람꼴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비결은 두 가지 눈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내가 나를 보는 눈’이다. 양심, 윤리의식 등으로 표현되는 것으로 ‘이 행동을 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그러나 만일 눈이 그것뿐이라면 단지 자기 내면 안에서 시야일 뿐이라면,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실제로 하지 않는 사람은 지금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보완하는 또 하나의 눈이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눈’이다. 체면이나 위신, 인정 욕구 등으로 일컬어지는 것으로 ‘이 행동을 하면 다른 사람에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전자의 눈은 ‘이득이긴 하지만’이라는 전제가 들어 있지만, 후자의 눈은 ‘오히려 손해를 본다’는 매우 현실적인 그래서 좀 더 강력한 억지력을 가진 전제가 들어 있다.

에피소드들은 우리 사회가 첫 번째 눈은 고사하고 두 번째 눈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히려 손해를 보는 행동조차 스스로 알아채지 못할 만큼 팔기 위한 던적스러움에 몰입해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렇게 볼 수 있는 좀 더 분명한 이유는 그 에피소드들이 결코 개인의 즉흥적 해프닝이 아니라는 것, 일련의 조직적 논의의 결과라는 데 있다. 누군가 그 아이디어를 내고 여럿이 진지한 숙고와 토론을 벌였으며 좋은 안이라는 합의와 결론이 내려져 실행에 옮겨진 것이다. 물론 이건 막 시작된 일은 아니다.


15년 전 내가 ‘어린이 교양잡지’를 만들기로 결심한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어느 날 불현듯 ‘누구도 아이들에게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예전엔 극우 꼴통 아비도 제 아이에게 ‘사람이란’ ‘인생이란’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사람이 공부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동무들에게 양보할 줄 알아야 하고 신의가 있어야 한다.’ ‘돈은 꼭 필요한 거지만 사람이 너무 탐욕 부리면 죄받는다.’ 자신은 전혀 그렇게 살지 않더라도 ‘어른은 아이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자신도 어릴 적 그런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전 수백년 동안도 그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한국의 진보적인 부모, 아니 사회주의자 부모조차도 아이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길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아이가 시장에서 싸게 팔리는 상품이 될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고래가그랬어’ 창간 독자이던 초등학생들은 이제 20대를 넘긴다. 인천 동구청장 이홍수가 예의 반발과 비난 여론 속에서도 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그 후 우리 사회에서 팔기 위한 던적스러움이 어디까지 갔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언론에서 괭이부리 체험관 때문에 야단이 났다. 이 체험관을 누가 계획하고 추진했는지 아직 관광개발과에 묻고 있지 않다. 난 그 사람이 누구든지 적당한 기회를 봐서 칭찬하고 격려해 줄 생각이다. 진정 용기있고 일할 의욕이 있는 직원이기 때문이다. 변화와 개혁. 누군가가 그랬다. 그것은 피를 흘리는 전쟁보다 어려운 것이라고.”

이 소신 충만한 언사 앞에서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반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갈수록 줄고 있다. 오늘 던적스러운 일은 내일 그다지 던적스럽지 않다. 상한선은 넘은 지 오래고 속도는 오히려 가파르다. 이대로라면 ‘가난 체험 상품’ 정도는 무난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의 도래가 그리 머지않다. 너나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리는 팔기 위한 던적스러움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이제 우리가 우리 삶과 관련해 가질 수 있는 자부는 그 대열의 비교적 후미에 있다는 사실에나 근거한다. 정말 이렇게밖엔 살 수 없는 걸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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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3일 삼성전자는 갑작스레 ‘보상위원회 발족’을 발표했다. 참으로 삼성스러웠다. 일이 시작된 건 2007년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같은 공장에 백혈병 환자가 여럿임에 주목하면서부터다. 삼성은 산재가 아닌 개인적 질병이라고 강변하며 유족들을 돈으로 회유하려 했다. 2008년 반올림(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이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대중의 관심이 조금씩 늘어가던 2013년 1월 삼성전자는 반올림과 교섭에 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압적인 태도와 사실 왜곡, 피해자 회유 시도 등은 달라진 게 없었다. 2014년 3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되면서 삼성에 대한 비난 여론이 급등하자 삼성의 태도가 돌변했다. 5월14일 삼성전자 권오현 사장은 백혈병 피해자에 대해 공식 사과하며 보상을 약속했다.

8월 문제 해결을 위한 외부 조정위원회 구성이 제안되었다. 2015년 1월 조정위원회는 교섭의 세 주체(삼성전자, 반올림, 가족대책위)에게서 주장과 근거를 제출받고 공개적으로 설명하게 했다. 7월23일 조정위원회는 ‘보상’ ‘사과’ ‘재발방지책’에 대한 구체적인 권고를 담은 110여쪽짜리 ‘조정권고안’을 발표했다. 권고안은 삼성이 1000억원을 출연하되 삼성으로부터 독립된 사회적기구를 만들어 문제 해결을 해나갈 것을 제안했다.

그런데 9월3일 삼성은 조정위원회의 권고안을 거부하고 ‘보상위원회’를 만들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삼성은 보상위원회가 조정위의 권고 사항을 수용하면서도 좀 더 실효성있는 방안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애초 직접 교섭보다 외부 조정위원회가 유리할 거라 판단했던 삼성이 조정위원회가 예상보다 중립적이고 공정한 경향을 보이자 아예 조정위원회를 무력화하고 모든 문제를 다시 제 통제 범위로 끌어들이려 한다는 건 저간의 경과를 살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삼성은 조정위원회 권고안에 제시된 금액인 1000억원의 사내 기금을 만들어 보상위원회를 운영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보상위원회로 가면 1000억원의 지출 내역은 누구도 알 수 없게 된다. 삼성은 2011년 직업병 논란이 일자 ‘퇴직자 암 발병자 지원제도’라는 것을 자체적으로 시행한 바 있지만 누가 어떤 혜택을 받았는지는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또한 보상 재원은 1000억원으로 부족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반올림에 제보된 피해자만 200명이 넘고, 본격 보상이 시작되면 훨씬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올 것이다. 삼성은 조정위원회 권고안의 보상 대상과 보상 액수가 과다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희귀질환 피해자와 ‘생식독성’(2세의 선천적 질환, 유산 등) 피해자들은 아예 제외하고 있어서 많은 피해자들이 보상 대상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재발방지책도 문제다. 조정위원회 권고안은 공익법인이 재발방지책도 총괄하도록 했지만 보상위원회로 가면 재발방지책은 삼성이 알아서 하게 된다. 말이 되는가. 삼성이 알아서 재발방지책을 만들고 실천할 기업이라면 애초부터 이 문제는 시작되지 않았거나 진즉 해결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지난 8년 동안 삼성의 태도는 시계추처럼 오갔다. 여론의 관심이 적으면 파렴치한 태도로 일관하다 여론이 나빠지면 사과를 하는 등 고개 숙이는 비굴한 태도를 보였다. 그렇게 눈치를 살피다가 여론이 어지간해지면 그들이 장악한 언론의 호위를 받으며 원래 태도로 돌아가는 것이다. 파렴치한 태도든, 비굴한 태도든 다 삼성스러운 태도이며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삼성스러움의 요체는 ‘이윤이 사람 목숨보다 중요하다’는 경영 철학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건, 삼성을 압박하여 삼성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내는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여론, 즉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달려있다. 만일 우리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되 특별한 불행에 처한 사람들의 일이라 여겨 동정하는 데 머문다면 어려울 것이다. 동정심은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약속>을 보며 눈물 흘리는 순간엔 치솟다가 고단한 일상에 파묻히다 보면 어느새 사그라드는 게 동정심이다. 우리는 동정심을 넘어서야 한다. 우리는 이 문제와 내 삶의 관련성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물론 모든 직장과 노동현장에 백혈병 위협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모든 직장과 노동현장엔 산재 위험이 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낸다면 내 노동 안전도 그만큼 진전을 이루지만, 이 문제가 이대로 삼성의 손아귀로 넘어간다면 내 노동 안전은 2007년 이전 수준으로 퇴행하게 된다. 미래에 내 아이의 노동 안전은 또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동정이 아니라 연대다. 나와 무관한 불쌍한 사람들을 동정하는 게 아니라 내 노동과 내 삶이, 내 아이의 미래가 걸린 싸움이기에 연대해야 한다. 자본과 그들의 언론은 이미 오래전부터 강고하게 연대하고 있다.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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