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내 사랑>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1959년 알랭 르네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한 프랑스 여인이 일본 히로시마에 영화 촬영차 방문했다가 일본인 건축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프랑스 여인은, 전쟁 중에 느베르라는 마을에서 독일군 병사와 나눈 사랑을 비극적으로 끝내야 했던 상처가 있는데, 원폭의 참상으로 뒤덮인 히로시마에서 새로운 사랑에 빠질수록 그 비극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면서 극중 인물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 여인은 남자에게 “당신은 히로시마”라고 부르고, 남자는 여자에게 “당신은 느베르”라고 대답한다. 당신은 히로시마? 무슨 말인가.

건축 없이 우리가 사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건축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요즘은 그래도 신문의 문화면에 건축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인식에 건축은 여전히 부동산이다. 모 경제지에서 대한민국건축문화대상이란 거창한 이름의 건축상을 주관하는 것도 그 연유일 게다.

건축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개 두 종류인데, 하나는 공학이나 기술로서의 건축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로서의 건축이다. 좀 더 식견이 있는 척하면 기술과 예술의 접합점에 있다고도 한다. 대학에서도 건축과는 공과대학이나 미술대학에 속하는 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적이었으니 학문적으로도 건축의 상위 분류는 기술과 예술이다. 그럴까?

옳지 않다. 그런 분류는 건축을 시각적 대상으로만 본 결과다. 즉 어떻게 이런 큰 건물을 지을 수 있을까라는 기술적 관심과 외부 모양에 대한 예술적 가치에 대한 시각인데, 이 두 가지는 모두 건축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예컨대 요란한 형태와 색채로 외부를 장식해 그 내부가 어떤지를 도무지 알 수 없게 한 건축은 유명한 건축이 될지는 몰라도 좋은 건축이 되기는 오히려 어렵다.

건축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 내부 공간을 형성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다. 그 공간이 보다 본질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공간은 불행하게도 눈에 보이는 물체가 아니어서 설명하기가 무척 어렵다.

우리가 어떤 건축에서 감동을 얻는다면 그것은 거의 다 그 건축 속에 빛이 내려앉아 빚어진 공간의 특별함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간은 보이지 않은 까닭에, 남에게 그 감동적 건축을 설명할 때면 대개 천장의 모양이나 벽과 바닥의 장식 등을 이야기할 뿐이어서, 이를 듣는 순간 공간은 사라지고 건축은 잘못 설명되고 만다. 그래서 건축은 어렵다고도 한다.

이 보이지 않는 공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실은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바로 그 건축 속에서 사는 방법과 분위기, 사건과 역사를 설명하면 된다.

 

건축 설계라는 것은 우리의 삶을 조직시켜 주는 일과 다름없다. 따라서 건축 설계를 하는 이들이 해야 하는 우선의 공부는 그 건축 속에서 살게 되는 이들의 삶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특히 남의 집을 짓는 일이 고유직능인 건축가라면 기본적으로 문학이나 영화, 여행을 통해 그들의 삶을 알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알기 위해 역사적이어야 하며, 왜 사는지를 알기 위해 철학을 해야 한다.

그래서 건축을 굳이 어떤 장르에 집어넣으려 하면 인문학에 가깝다. 물론 기술이나 공학적 요소도 있어야 하고 예술적 성취도 이뤄야겠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일 뿐 건축을 포괄하지 못한다. 인류가 시작되어 집이 먼저 생겼지 기술이나 예술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님을 상기하시라.

하이데거는 “우리는 건축으로 거주함으로써 존재한다”고 했다. 건축이 우리의 존재 자체라는 말일진대, 건축은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도시는 무엇일까. 도시는 익명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이다. 농촌은 기본적으로 혈연으로 구성되어 인륜이나 천륜만으로도 그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모여 만들어지는 도시 공동체는 합의된 규약에 의해 유지된다. 광장이나 도로, 공원 같은 도시의 공공영역이 바로 그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들이다. 이 공공영역이 잘 조직되고 연결된 도시가 공공성이 발달된 선진도시고, 파편적이어서 불연속적으로 이뤄진 도시는 미개도시이다.

민주주의의 도시에서는 그 공공영역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자유롭도록 만들어져 있고, 중심적 체제를 갖는 전제(專制) 도시에서는 권력의 안전과 권위를 위해 공공영역이 조직되며, 산업도시에서는 효율과 기능이 사람보다 우선되도록 구성된다.

그러나 사회 체제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늘 바뀌는 것이며 가치도 변하기 마련이어서, 이를 담아야 하는 도시도 생물체처럼 바뀌며 움직이기 마련이다. 이 변화를 수용하지 못했던 도시는 역사 속에서 늘 멸망되었다. 그래서 건축에서 공간이 본질인 것처럼, 도시에서도 보다 중요한 것은 몇개의 기념비적 건물이 결코 아니라 건물들로 둘러싸인 공공영역이다. 이 또한 보이는 물체가 아니다. 그러나 이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도시는 그 애환과 열정을 담아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면서 존속하게 된다.

<사회정의와 도시>를 쓴 미국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는 민주주의 시대의 새로운 도시와 건축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제시했다. “이미지에 대항하는 서사, 미학에 대항하는 윤리, 존재보다는 생성을 추구하는 기획.”

이는 단일 건축이나 기념비가 갖는 상징적 가치보다는 그 주변에 담겨 면면히 내려오는 일상의 이야기가 더욱 가치 있고, 시설물이나 건축물의 외형에 대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속에서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사는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며, 도시와 건축은 완성된 결과물에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을 담아 끊임없이 진화하고 지속되는 게 더욱 의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도시는 기억으로 남아 통합된다는 것이다.


‘당신은 히로시마’. 폐허가 된 히로시마를 몸과 정신에 기록하여 기억하는 ‘당신’은 바로 히로시마 자체요 또 다른 당신은 느베르였으니, 우리 모두가 하나의 도시라는 말이었다.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라는 제하의 이 칼럼은 그 바탕을 여기에 둔다. 이 귀한 지면을 한동안 둔필로 소비하는 게 민망하지만, 함께 이 시대 우리의 도시와 건축을 조금이라도 성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승효상 | 건축가·이로재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되는 순간은 소설가가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 아니라 독자와 소설이 만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소설은 세대를 거듭해 독자를 만나기에 다시 말해 좋은 소설이란 완성의 순간이 매 순간 지연되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금 과장하자면 결코 완성되지 않는 소설이야말로 가장 좋은 소설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소설 가운데 두 편을 언급하고 싶다. 작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작가라 일컬어지는 미국의 소설가 필립 로스의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독일의 소설가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가 그것이다.

이 소설들을 떠올리게 된 이유는 중앙대 총학생회가 청소노동자의 파업과 관련해 민주노총에 중앙대를 떠나라고 요구했다는 기사를 본 탓이다. 이 두 편의 소설은 각각 매카시즘의 광풍에 몰락하는 사람과 거대보수언론의 왜곡되고 선정적인 여론몰이에 의해 파멸하는 사람을 다룬다.

대체로 이 소설들은 사회공동체가 공유하는 오해와 편견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구성원을 짓밟는지를 보여주는 일례로 언급되지만 나는 오히려 개인의 신념과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한 개인의 선택과 용기가 어떻게 스스로를 파멸시키는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한다. 사회적 오해와 편견에 맞서 투쟁하려 애쓸수록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아이러니를 더 강렬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인물 스스로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기꺼이 몰락과 파멸을 감내한다는 점이다.

 

중앙대 규탄 회견 (경향DB)

두 소설의 인물들은 사회가 인정하는 진리의 편에 선 사람들은 아니다. 사회적 신분상승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획득한 신분계층이 요구하는 사상마저 받아들일 수는 없었던 필립 로스의 인물과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할 수단과 방법이 없어 결국 기자를 살해하게 되는 하인리히 뵐의 인물은 오해와 편견에 의해 부서졌다기보다 차라리 오해와 편견에 의해 부서지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루쉰이 <고향>에서 말한 희망의 정의를 인용해 생각해 볼 수 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희망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땅 위에는 길이 없지만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인 것이다.” 루쉰이 생략한 말을 굳이 되살려보자면, 인간의 희망이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그 무엇이 아니라 인간이 걸어가는 길 바로 그 노정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희망이란 만들어가는 것이며 어떤 길을 걷느냐가 곧 어떤 희망을 갖느냐이다.

필립 로스의 인물과 하인리히 뵐의 인물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몰락하고 파멸했으나 사회적 오해와 편견에도 불구하고 타협하지 않고 개인의 신념을 지켜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것이 곧 인간의 희망임을 보여준다. 그들은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갔고 결국 부서졌으나 인간의 희망을 보여주었다.

오해와 편견이 오해와 편견일 수 있는 이유는 나름의 논리를 지녔기 때문이다. 매카시즘이 그러했고 거대보수언론도 그러했다. 중앙대 총학생회가 제시한 이유들도 전혀 근거가 없지 않다. 중앙대의 이미지 하락을 당사자보다 더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느 쪽이나 논리는 충분하다. 최종적으로 어떤 가치를 지향하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며 올바른 선택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중앙대 총학생회는 용기 있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다만 나는 중앙대 총학생회가 바라는 대로 민주노총을 쫓아내고 그렇게 만든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퍽 궁금하다. 그 희망은 아름다운가. 그런 게 인간의 희망인가.

손홍규 |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한 달 전에 인터넷 유튜브라는 곳에 동영상을 하나 올렸다. “커피 나오셨습니다”라는 제목에다 ‘사물 존대의 논리’라는 부제를 붙였다. 사람들 반응이 제법 괜찮아 1만명이나 보았고 이른바 ‘화제의 동영상’으로 텔레비전에 소개되기도 했다. 묘미는 급반전이었을 것이다. “신상품이십니다” “5만원이십니다” 등 손님을 극진히 모시겠노라고 쓰는 존댓말이 의도와는 달리 물건이나 돈을 높이고 있는데, 동영상에서는 이런 현상이 어떤 슬픈 사정을 담고 있는지 비틀어서 보여줬다.

1990년대 중반부터 ‘손님은 왕’이라는 구호 아래 친절 판매술이 도입되면서 백화점 판매원과 전화 영업사원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 말투는 이제 편의점이든 다방이든, 옷가게든 어디서나 들려온다. 높임의 말꼬리 ‘시’를 붙이기만 하면 무조건 존댓말이 되는 줄 아는가보다. 학교의 말하기 교육이 얼마나 허술한지 잘 드러나는 장면이다.

“언어는 생물이다”라고 말하며 이런 현상을 그저 자연스러운 ‘변화’로 받아들이자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도무지 생물 아닌 것이 무엇이랴? 그런 어법에서는 ‘자본’도 생물이고, ‘정치’도 생물이다.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그 모든 것을 다 생물이라고 멋지게 부를 뿐일진대, 왜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무생물의 짓이라고 보는지 모르겠다.

 

(경향DB)

사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좀 틀린다고 무어 그리 큰 문제가 되겠느냐만, 존댓말은 사정이 좀 다르다. 우리말에 존댓말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존댓말이 버젓이 존재하는 바에야 이를 똑바로 사용하지 않으면 탈이 난다. 존댓말은 단순히 언어 내부의 어문 규정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말 사용법이기 때문이다. ‘시’를 마구 붙이는 이 말투만 해도 물건이나 돈에 존대하는 꼴이니 정작 손님은 존대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지 않는가.

그래서 이런 말투에 껄끄러움을 느껴 따따부따하고 고쳐주는 사람도 있는데,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거꾸로, 손님 가운데 어떤 이는 그렇게 ‘시’를 붙여가며 말하지 않으면 건방지다고 화를 낸단다. 그러니 가게 주인은 무조건 ‘시’를 붙이라고 점원들에게 가르친다. 맞고 그르고가 없다.

내가 사물 존대의 잘못된 높임말을 문제 삼는 건 이 말버릇이 우리 사회의 존댓말과 반말에 관한 통념을 바꾸는 첫 단추가 될 거라는 기대가 있어서다. 과거에는 존댓말과 반말이 신분이나 지위, 나이 등의 차이를 나타내는 노릇을 했다. 어린 양반 도령이 버젓이 반말을 하면 늙은 종이 존대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사극의 장면을 떠올려보자. 신분제가 없어지면서 이런 모습은 거의 다 사라졌지만, 존경하고 말고를 떠나 나이 든 사람에게 존댓말을 하지 않으면 아직도 크나큰 시빗거리가 된다.

존대를 해야 하나 반말을 써도 될까 계산하느라 서로 마음 터놓고 대화하기 어려운 때를 다들 한두 번쯤은 겪어보지 않았을까? 상대가 한두 살이라도 어리다는 걸 알면 바로 반말이 나오는 세태다보니, 초면부터 서로의 진면목보다는 나이를 파악하는 데에 열심이다. 존댓말은 나이에 따른 차별의 장치로 악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참으로 고약하다. 하지만 사람의 존귀함이 어찌 나이가 많고 적음에 달렸겠는가.

이런 점에서 독일의 변화는 눈여겨볼 만하다. 독일어는 서구의 다른 언어에 비해 존대가 발전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와 비슷한 사정이 있었는지, 1970년대부터 공적인 모든 관계에서는 존대를 사용하고 서로가 정말 친한 사이라고 인정하는 경우에만 반말을 사용하는 사회 관행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와의 차이는 반말을 하는 친한 사이가 나이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무 살 차이가 나더라도 서로 반말을 한단다. 마치 우리 사회에서 젊은 부모와 자식 간에 벌어진 존댓말 사라짐 현상과 비슷하다.

공적인 생활의 영역에서 모두가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은 시민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표현이다. 손님이든 종업원이든 주인이든 부하직원이든 이런 점에서 차별을 두어선 안된다. 그러니 최근 직장에서 다시 살아나는 신분제적 반말, 즉 나이 어린 상사가 나이 많은 부하직원에게 반말을 하는 작태를 그냥 놔둬서는 곤란하다. 사물 존대의 일그러진 세태를 고치고, 이를 넘어서 사람 존중의 말 문화를 뿌리내리자. 말의 겉치레에 구속받지 않으면서 모든 시민이 서로 존중하는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관행이 먼저 정비되어야 한다.

이건범 | 작가·한글문화연대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12월31일 밤, 제야의 종 타종행사를 보려고 집을 나섰다. 제야의 종이 울리는 거리를 한번 경험해 보자고 딸에게 큰소리쳤다. 그러나 그것이 딸아이를 전장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줄은 몰랐다. 끝도 없이 진을 친 경찰 버스는 시민을 상대로 토끼몰이를 하고 있었다.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포위당한 축제 인파는 무대를 향해 떠밀렸고 떠밀었다.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제야의 종 행사를 보는 것을 포기하고 옆으로 빠져나갔다. 경찰은 정조준하듯 시민들을 감시하고, 연인들은 그 앞에서 수줍게 껴안은 채 2013년의 마지막 밤이 저물어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10, 9, 8, 7,… 군중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하자 시동을 건 채 대기하는 경찰 버스에서 있는 대로 매연을 뿜었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매연에 잠기고 말았다. 사람들은 서로 쓰다듬고 축하하며 입맞춤이라도 해야 할 그 순간에 휴대폰만 어루만졌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허공에는 초라한 폭죽 몇 개가 피식거리며 솟아 올랐다. 그렇게 감시의 감시에 의한 감시를 위한 박근혜 정부와 어울리는 제야의 종이 새마을 새벽종처럼 땡땡땡 깨며 울렸다. 정말 썰렁하게 맞이한 새해였다.


보신각 종로거리에서 전경과 '촛불집회 참가자'가 뒤엉켜 있는 모습(출처 :경향DB)


흔히 새해를 ‘맞이한다’고 표현했을 때는 마치 시간의 객관적 실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유수처럼 흐른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어디선가 와서 어디론가 흘러가는 방향성을 부여한다. 새로운 미래를 위해 과거를 청산하자는 주장은 당연히 미래에서 과거로 흘러가는 시간의 편에 서있을 것이다. 그때 미래는 현재를 향해 다가오는 구도에서 수용시킬 뭔가를 쥐고 있다. 그런데 누가 선취해서 거머쥔 미래인가?


신영복 선생은 새천년을 바라보는 2000년 벽두에 그런 인식의 문제점을 진보평론에 이렇게 썼다. “새로운 미래라는 관념은 현재를 왜소하게 만들고 우회하게 만든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래를 현재와 다른 어떤 것으로 대치한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 점이 사회변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실천에 있어 매우 중대한 오류의 근거가 된다. 현실의 모순을 은폐하거나 유보하거나 우회하는 이데올로기가 된다.


선취된 미래담론은 현실의 발전과정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고 우민화하면서 가장 먼저 ‘통합’이라는 형식논리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탈정치화라는 통제방식이 가장 성공적이 되고 현재의 모순을 직시할 수 없이 미래의 계기는 점령당한 채 하달된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도 그러한 전략기획의 영역으로 접수된 미래개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은폐와 우회를 위해 ‘국민 대통합’ 포장지로 감싼 후 ‘우리가 남이가’ 아버지 그림자들을 덕지덕지 달고 나타났다. 과거가 누적된 현재에 ‘환희와 비탄,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승인하는 용기’ 없이 누가 그 미래에 춤을 추는가.


나처럼 현실정치에 무심했던 예술가들도 확연히 감지했던 2013년의 모순적 변화들이 있었으니, 으뜸이 국정원의 존재감이었고 둘째가 군인들의 타이밍이었다. 음지에서나 헌신하겠다던 맹세는 어디가고 대놓고 활보하는 폼이 인상적이었다. 매트릭스 영화 같은 까만 선글라스 끼고 대통령을 호위하는 것도 재미있게 지켜봤다. 셋째는 뻔한 결론, ‘나머지는 알아서 긴다’는 명령 일반화가 자체 검열로 창조의 씨를 말리는 사회 분위기였다. 선거조작 선배들이 돌아와 병풍처럼 대통령을 보좌하는데 뭘 더 기대하는가.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런 걸 가르치는 거였구나, 곱씹고 있다.


국민을 적으로 몰아넣고 뜯어고쳐 보겠다는 식의 위협적 선도에 올해의 키워드는 단연코 공포가 될 것 같다. 그런데 누가 두려운가. 나를 미래로 이끄는 것은 자유다. 신영복 선생이 말했듯 “자기의 이유로 걸어가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정권의 미래와 혁명에 누가 춤추는가. 20세기 초 혁명가 에마 골드먼은 말했다. “만약 내가 춤출 수 없다면 그것은 나의 혁명이 아니다.” 혁명 대신 점령당한 미래를 되찾아와야 한다. 내가 춤출 수 없는 미래는 나의 미래가 아니다.


임민욱 | 설치미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2013년 마지막 날을 제주에서 보냈다. 지난해 6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협재해수욕장 인근 게스트하우스에서 진행해온 콘서트 때문이다. 보사노바 뮤지션인 나희경, 들국화의 최성원, 모던록 밴드 언니네 이발관이 무대에 올랐다. 아니, 노래하고 기타를 들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게스트하우스 거실에서 마이크도, 앰프도 없이 진행되는 공연이니 말이다. 


‘최대한의 침묵’을 요구한 나희경은 스탠드 조명 하나에 의존해서 나긋나긋하되 작디작은 목소리로 보사노바곡들을 불렀다. 객석의 숨소리마저 소음으로 느껴질 만큼 밀도 높은 시간이었다. ‘제주도의 푸른 밤’을 기타 연주곡으로 들려주며 공연을 시작한 최성원은 어떤날의 ‘그런 날에는’과 조동익의 ‘함께 떠날까요’를 마치 한 노래인 듯 붙여 불렀다. 언니네 이발관의 ‘2002년의 시간들’이 공연의 대미를 장식했다. 안녕하지만은 않았던 2013년, 적어도 마지막 날만큼은 충분히 안녕했다고 믿고 싶다. 


‘큰 것’에 집착한 시기가 있었다. 압도적 규모의 외국 페스티벌은 경이로웠고, 스타디움을 가득 채우는 공연은 동경 그 자체였다. 티라노사우루스, 울트라사우르스 같은 거대 공룡 이름을 외우며 어떤 공룡이 더 큰지를 친구들과 다투던 어린 시절의 심리에서 비롯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화는 공룡과 달랐다. 자연의 선택과 진화의 신비가 공룡의 크기를 결정하지만 현대 대중문화에서 거대함은 투입 자본에 정비례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치보다는 이익을 추구하는 대자본의 속성은 이상의 영역에 있는 것들을 현실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형태를 바꾸고 본질을 흐트러뜨리곤 했다. 당연하다. ‘로망’과 ‘비즈니스’는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거대 문화 상품들이 한국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게 당연한 걸 몰랐다. 순진했다. 그렇다고 딱히 실망하거나 분노하지는 않았다. 그저 재미가 없어졌을 뿐이다.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그룹 들국화의 멤버 최성원(출처 :경향DB)


다른 쪽으로 시선이 가기 시작한 건, 제주도를 알고 나서부터였다. 2011년 초 생전 처음 그 섬에 발을 들이자마자 흠뻑 빠져 한 달에 한 번꼴로 비행기를 탔다. 아득한 수평선에 눈은 시원했다. 바람소리를 제외하면 절대적 정적에 가까운 공기에 귀는 편했다. 불필요한 정보들로 가득한 주변의 통화소리 안에서 살아갈 때는 닿지 못했던 세계였다. 무엇보다, 경쟁과 숫자를 피해 내려온 사람들이 집을 짓고 서로 서로 어울리며 관계망을 형성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새로운 문화적 경험이었다. 그렇게 제주도는 나에게 관광지를 넘어 여행지가, 여행지를 넘어 다른 일상의 공간이 됐다. 딱히 무슨 논리적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그즈음부터 ‘작은 것’들이 좋아졌다. 십수명의 사람들이 오가는 술자리보다는 오붓하되 지속적인 자리를 더 자주 찾게 됐고, 숨 쉴 틈 없이 꽉 찬 공연장보다는 맥주 한 병 들고 여유있게 보는 공연들을 선택한다. 생각해보면 90년대 중반 발아하기 시작한 홍대앞 인디 신에 녹아들게 된 이유 역시 그 날것의 에너지와 공동체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시스템도, 비즈니스도 낯선 단어였던 시절이었다. 나이를 먹으며 에너지와 분위기보다 숫자와 크기를 들여다보다가 다시 원점 비슷한 곳으로 돌아가게 된 셈이다. 


마흔이 됐다. 서른이 됐을 때는 십년 후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 희미하지만 짐작은 된다. 힘들 것이다.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지하기 위해서 돈도 계속 벌어야 할 것이다. 건강 역시 30대와는 다를 것이다.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 할 것들이 더 많은 단계가 됐다고 생각하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큰 위안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게 있다. 작은 것들에 더 집중하려 한다. 하나의 큰 것보다는 수백개의 작은 것이 발아하고 자라나는 문화 생태계를 지향하려고 한다. 어른이 된 후 늘 재미를 추구하며 살았다. 앞으로도 그 재미를 지키고 싶다. 작은 것들이 재미의 엔진을 돌리는 휘발유가 될 것이다. ‘나’와 ‘우리’를 느낄 수 있는 작은 것들이.


김작가 | 대중문화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두 달 전, 서울의 어느 대학에서 강의를 마친 후 시내버스를 탔을 때의 일이다. 정문 앞 정류장에는 학교 수업을 마친 대학생들로 북적거렸고, 버스가 도착할 때마다 많은 학생들이 줄지어 승차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타려던 버스가 도착했다. 근처에 종점을 두고 있는 버스라서 꽤 많은 학생들이 좌석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버스가 출발할 때, 나를 포함해 서너 명만이 선 채로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도심으로 향하던 그 버스의 승객 구성비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서너 정거장을 통과한 후였다. 내리막 고갯길에 위치한 정거장에서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대여섯 명의 노인분들이 승차했다. 버스에 올라선 그들은 빈 좌석이 없음을 확인하고선 좌석 앞으로 걸어가 손잡이를 잡고 섰다. 흥미로운 것은 노약자석에 앉은 학생들 중 누구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로부터 2주일 정도 지났을까? 이번에는 동네 마을버스 안에서 위와는 정반대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날, 지하철역 옆에서 대기 중이던 마을버스 안은 한가했다. 늦은 오후이긴 했지만 퇴근 시간이 되려면 아직 멀었던 탓에 승객이 많지 않았다. 주부와 학생들, 그리고 할머니 몇 명이 전부였다. 당연히 빈 좌석도 남아 있었다. 그런데 약간 선이 굵은 인상의 노인분이 버스에 오르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그 노인분은 빈 좌석에 앉지 않고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대학생에게 다가서더니 “여긴 노약자석이야, 네가 앉을 자리가 아니라고”라는 말을 큰 소리로 서너 번 반복했다.


일러스트 : 김상민


좌석에 앉아 있던 학생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빠르게 빈 좌석으로 몸을 옮겼다. 노인분은 노약자석을 차지한 이후에도 혼자 중얼거렸다. “요즘 젊은것들은 위아래가 없어. 어른을 공경할 줄도 모른다니까.” 승객들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실 청년 세대와 노년 세대가 버스나 지하철의 좌석을 두고 마찰을 빚는 풍경은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의 마찰 양상은 이전보다 더욱 빈번해지고 좀 더 극단으로 흐르는 듯 보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일단 서울의 대중교통이 지닌 독특한 면모에서 기인하는 바가 클 것이다. 30~50대 중산층 상당수는 개인용 차량으로 이동하는 반면, 20~30대 직장인과 도시 서민 상당수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리고 이 후자의 대열에 서울 소재 대학생과 노인 이용객이 합류한다. 따라서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 간의 마찰이 벌어지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집으로 돌아가면 누군가의 손자이고 누군가의 할아버지이겠지만, 이전까지 집단적으로 조우할 기회를 거의 가진 적 없는 두 세대가 대중교통의 비좁은 공간에서 아무런 완충재 없이 서로 부대낄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의 상황은 사회경제적 변수까지 이 두 세대 사이에 끼어들어 그들의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는 형국이다. 청년 세대는 ‘삼포 세대’로 불리는 와중에도 드높은 취업 장벽을 넘어서려고 발버둥치고 있으며, 노년 세대는 50%대에 육박하는 최악의 빈곤율을 기록하며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빠른 속도로 내리막길에 접어들고 있다. 대중교통에 몸을 실은 그들 모두는 피곤함에 찌든 얼굴이다. 앞서 언급한 두 사례는 그런 그들이 빚어내는 갈등의 두 가지 양상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앞의 사례처럼 젊은 세대가 ‘모두가 한 명의 승객일 뿐’이라는 소비자 의식에 의지해 자기 좌석을 지키고 노년 세대가 ‘장유유서’라는 유교적 관념에 기대 막무가내로 호통 치는 일이 반복된다면, 결국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특정 계층 내부에 세대 간 감정의 골만 더욱 깊어지고 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저성장 고령화 사회의 가까운 미래 살풍경이 버스와 지하철 안에 이미 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박해천 디자인 연구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이탈리아에 다녀왔다. 로마, 폼페이, 나폴리, 피렌체, 피사, 밀라노, 베네치아 등을 짧은 시간에 달리기하듯 바삐 구경한 여행이었다. 수박 겉핥기였지만, 2000년 전 로마의 영광과 15세기 르네상스, 근세 대형 상가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움은 제쳐 놓더라도 어느 하나 그 규모와 역사가 뿜어내는 멋만으로도 입을 벌리게 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여러 도시 가운데 단연코 흥분을 가라앉히기 어려운 곳은 폼페이였다. 기원전 89년부터 로마에 편입된 이곳은 그리스 쪽에서 넘어온 헬레니즘 문화의 기반 위에 로마의 황금기 문화를 얹은 도시다. 흔히 ‘시간이 멈춰버린 도시’라고 부르는 폼페이는 서기 79년 8월에 근처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 때문에 화산재로 뒤덮여 사라졌다. 그러다 16세기에 수로 공사 도중 유적이 발견되어 그 이후 지금까지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듬성듬성 남아 있는 거대한 유적들이 한눈에도 관광도시라는 인상을 주는 21세기 로마와 달리, 폼페이는 방금까지 누군가가 살다가 어디로 단체여행을 떠나 비어 있는 마을에 몰래 들어왔다는 느낌을 준다.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매력이다. 거리는 모두 포장되어 있었고, 차도와 인도가 나뉘어 있는 시내 거리에는 차도로 다니는 마차 바퀴가 빠져 나갈 수 있는 징검다리 건널목이 눈길을 끈다. 매우 섬세한 문명의 손길이 체온 그대로 남아 있어서 혹시 당시에 전기도 사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황당한 상상을 하게 만들 정도다.

 

폼페이 (경향DB)

남부 이탈리아 나폴리 남동부의 항구도시였던 폼페이는 농업과 상업이 성한 인구 2만의 도시였고, 로마 귀족들의 휴양지로 각광받았다. 상점과 술집 등이 늘어서 있는 중심 거리에는 매춘을 제공하는 공창 건물이 있고, 근처에는 사창 표시를 한 집과 윤락가 위치를 안내하는 길바닥 표지까지 버젓이 새겨져 있다. 100억t에 이르는 화산재와 화산암이 쏟아져내려 무려 5m 넘게 쌓였다니 이를 치우고 도시를 재건하는 일은 쉽지 않았으리라. 도시의 전성기였음을 증명하듯이 경기장과 극장, 공동 우물과 상수로, 공중 목욕탕 등이 모두 그리 오래지 않은 시대의 시설 같은데 2000년 전의 문명이라는 사실에 섬뜩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슴을 뛰게 만드는 시설은 폼페이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도시 서쪽의 공회장이다. 신전과 동상, 시청이 둘러싸고 있는 넓은 광장. 그리스에서 아고라라 부르고 로마에서는 포럼이라고 불렀다는 그 광장에서 시민들이 모여 정치집회를 열었을 광경을 떠올리니, 과연 이게 2000년 전의 사람살이인가 싶어 가슴이 서늘해졌다.

라틴어에 ‘화산’이라는 낱말이 없었을 정도로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에 자취를 감춘 도시, 폼페이. 비록 그곳이 당시 로마의 문화가 만들어낸 향락과 방탕의 극단이었다한들 어찌 폼페이의 모든 것이 퇴폐 일색이었겠는가. 당연히 광장에 모여 도시 운영을 토론하는 시민들도 있었을 것이고, 쾌락의 수렁에 빠진 도시를 걱정하는 시민도 있었으리라. 나는 그 광장 한복판에 서서 불통의 시대라 불리는 오늘의 한국을 떠올렸다. ‘안녕들 하십니까’ 하며 나태와 이기심과 두려움과 안락에 부끄러워하는 시민들이 어느 광장에서 이런 마음들을 털어놓고 있을지 아득한 심경이었다. 우리의 광장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다시 대학가 벽보 민주주의로 후퇴한단 말인가.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지만, 자연은 인간이 피해갈 수 없는 높디높은 벽이다. 그래서 하늘의 노여움이라고 불렀으리라. 만일 우리 사회가 폼페이처럼 어떤 재앙을 당한다면 그 재앙의 원인은 무어라 설명될까. 부패와 불통, 정치인과 시민들의 뻔뻔함, 오로지 돈과 권력만을 좇는 이기심의 만연. 나는 이런 사회 현상들이 자연재해에 비상하게 대처하는 현대의 과학기술을 무색하게 만들면서 우리 사회를 타락과 퇴보로 몰아넣지 않으려나 걱정하며 폼페이 광장에서 발을 뗄 수 없었다.

이건범 | 작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휴대전화 번호가 일제히 자동으로 바뀐 후에도 내 번호의 첫 세 자리는 여전히 그대로다. 이유는 2G라서. 아직도 2G인가를 힐난하는 친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2G와 4G시스템이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바뀌지 않은 번호가 고맙기만 하다. 아직도 종이신문을 들고 화장실로 가 아침을 시작하는 낡은 습관만큼이나 변하지 않는 일상의 한 부분이 나를 그런대로 지탱해 줄 것 같은 착각에서이다.

착각은 곧바로 시대착오적인 생각과 행동을 낳는다. 어쩌다 모인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떠벌리는 잘난 척마저 이야기의 진위를 확인하려 꺼내든 스마트폰의 위력 앞에 속수무책이다. 세상이 정말 달라진 걸 안 것은 올해 초 전시를 하고 나서부터이다. 전시장에 들어온 관람객들 손에는 여지없이 스마트폰과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눈으로만 보아야 한다는 나의 시대착오적인 주장은 간단히 묵살되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전시된 작품을 보지 않는다. 카메라를 누르고 찍힌 화면을 들여다본다. 눈앞의 대상은 디지털프레임 속의 재현된 이미지로 포획되지 않는 한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때 알았다. 우리의 현실이 가상의 이미지 세계로 뒤바뀌고 있다는 것을. 나무와 쇠와 돌을 깎고 두드리고 갈아내 형상을 다듬는 일은 누군가에게 디지털 이미지의 표면을 제공하기 위한 1차적인 아날로그 작업으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을.

(경향DB)

 

 

시대에 뒤떨어진 세대의 자기연민의 시선으로 돌아보면 컴퓨터가 등장한 이래 악전고투의 세월이었다. 우리 세대는 우연히 현대문명의 첨단이 제공한 개인컴퓨터의 역사를 고스란히 뒤쫓아야 했다. 처음 잡지사에 글을 쓸 때는 원고지였다. 타자기를 구입하고 익숙해지기도 전에 문서입력기가 등장했고 그것을 사자마자 깡통컴퓨터를 구입해야 했다. 8비트 애플과 16비트의 아이비엠, 286 XT, AT, 386, 486을 거쳐 586펜티엄급 컴퓨터 그리고 나의 경우 파워 맥, 아이맥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컴퓨터를 거쳐야 했다. 매 순간 당혹스럽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새 컴퓨터를 사고 뒤돌아서면 여전히 책상 위의 컴퓨터는 낡은 기종이 되어버린다는 것. 세상은 언제나 편리함을 내세웠고 그건 곧바로 돈의 지출을 의미했으며 새로운 상품에 눈을 돌리자마자 새로운 디지털 언어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 와중에 몇몇은 컴맹으로 전락했고 몇몇은 근근이 살아남았다.

나는 거기서 살아남았다. 아이비엠과 매킨토시를 넘나들며 문서작성과 편집, 이미지그래픽과 영상편집까지. 필요한 소프트웨어는 언제든 불러 쓸 수 있으니 컴맹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얼마 전 ‘뽀샵’을 하는 젊은 친구에게 포토샵 1.0에서부터 현재의 PS5까지 모든 프로그램을 다 거쳐왔노라고 말하는 내가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정작 놓치고 있던 것은 현란하게 이어온 첨단의 문명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아니었다. 컴퓨터를 일을 위한 수단쯤으로 인식하고 있던 나는 여전히 세상을 아날로그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무와 풀과 벌레와 새, 하늘과 구름, 들과 산, 거리와 빌딩을 여전히 나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비극적인 사실.

이미지는 실재가 아니다. 대상을 재현한 것이다. 이미지의 스펙터클이 가득한 오늘날의 세계는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도 재현의 과정을 거친다. 사람들은 재현된 이미지에 빠져들 뿐 더 이상 눈앞의 대상과 마주하려 하지 않는다. 이미지로 재편집될 수 없는 실재의 대상은 점차 눈앞에서 사라진다. 사물뿐이 아니다. 내 앞에 마주한 사람은 시선에서 사라지고 다른 누군가의 이미지를 찾아서 우리는 스마트폰을 뒤진다.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 사회>라는 글이 나온 지 몇 십 년이 지났지만 이제 이미지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개인의 시선이 디지털로 완성되고 있는 걸 눈앞에서 보고 있다. 그 시선들에 대한 불안함과 불편함. 이게 새로운 사회에 대한 거부감인지 아니면 시대착오적인 시선에서 오는 두려움인지 알 길이 없다.

 

김진송 | 문화평론가·목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한 해를 뒤돌아볼 때면 거울 폴더를 펼치는 것 같다. 인정머리 없이 벌거숭이 날들이 딱 그만큼만 들어 있다. 부스러기 며칠 동안 술잔에 부어도 부풀기는커녕 미화도 산화도 되지 않는다. 더 쨍하게 말라붙어서는 내게 겨눈 칼끝이 된다. 올해는 유달리 지방을 다녀온 기억들이 반들거린다. 대부분 12월 말 DMZ프로젝트 작업을 위한 사전 답사와 보도연맹에 관한 작업 때문에 시작했던 발걸음이었다. 그중에서도 공주를 향해 가던 길, 수화기 너머 들려오던 거절이 아직도 귀에 멍하니 박혀 있다. “보도연맹? 왜! 왜!, 왜 물어! 알아도 몰라!” 그리고 지난 6일 함평 양민학살 합동 위령제에 갔을 때 대한민국의 고독이란 말이 떠올랐다. 너무 붉어 더 추웠던 노을을 등지고 돌아올 때였다.


그 말은 철원 퍼포먼스 장소를 궁금해하던 친구가 동행했던 날 처음 튀어나왔다. 나는 그녀를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강원도 최초 상수도 시설 수도국지에 데려갔고 국군 북진 시 300여명이 물탱크 속에 생매장된 현장이라는 설명을 전했다. 분단과 정체성 이야기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에서 ‘이해받을 수 없는’ 이야기로 튀었고 급기야는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노벨상 수상연설문 ‘라틴 아메리카의 고독’으로 튀었다.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과 63년 동안의 고독을 연상했다.


그건 물론 어떤 작가의 문학적 상상과 연관없는 기억에 관한 상상이었다. 불가능한 상상을 확인하는 말이었다. 함평의 1164명 희생자 이름들에서 포기하는 기억의 문제였다. 보도연맹 희생자 20만명과 우연히 만났던 89세 할머니의 진술은 그 이유에 가깝다. 그분의 남편은 1950년 함평수복작전 때 11사단 20연대 3대대 군인들에게 총살당했다. 시어머니는 독자였던 아들을 가까이 두려고 아예 안방 문 앞에다 묘를 썼다고 했다. 두 딸은 한여름 아버지 상석이 시원해서 모기 뜯기는 것도 잊은 채 별도 보고 시도 읊고 노래 부르며 무덤 위에서 컸다고 웃었다.


공주 상왕동 살구쟁이 민간인 집단 희생자 유해 추가 발굴 현장에 갔을 때도 해골들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진실화해위원회가 2009년 발굴 도중 예산 부족으로 인해 남겨둘 수밖에 없었던 ‘5구덩이’ 역시 불가능한 상상을 확인시킬 뿐이었다. 어디에 처형당해 묻혀 있는지를 알면서도 예산 부족으로 발굴할 수 없어서 그저 한을 삼키고 기다려오신 분들도 보았다. 유골들을 종이에 싸기 전, 나이 드신 인부 한 분이 국민을(?) 대신해서 어설프고 서글프게 건네던 작별 인사가 기억난다. “억울하셨죠, 어르신들, 수고하셨습니다. 지금이라도 잘 가셔요, 좋은 데 가서 이제 안정하셔요….”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한성훈 팀장이 국민보도연맹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출처: 경향DB)


돌아오던 모든 길은 거울의 관계에 놓여 있었다. 북한이라는 거울 없이는 자신을 스스로 생각할 수 없을까. 어떤 어린이가 살려달라는 애원 대신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는 나라. 무고하게 학살된 가족의 추모제에 자식들과 손자 손을 잡고 올 수 없는 나라. 어느 공중파 아나운서는 종북이 아니면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쳐보라 했다던가. 종북? 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 ‘주술적 사실주의’로 대한민국을 고독하게 만들고 있다. 전쟁 때 공산당이어도 죽고 공산당이 아니라고 해도 죽었던 사람들의 가족이 또다시 침묵 속으로 피란을 가야 하는 공안정국의 귀환을 우려한다.


마르케스는 연설문에서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억압과 약탈과 절망에 맞서 왔던 우리의 대답은 삶이라는 것, … 수세기 동안 지속된 영원한 전쟁도 죽음을 초월한 끈질긴 삶의 장점을 축소할 수는 없었다며 인간의 종말을 인정하기를 거부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예전 것과 반대인 유토피아를 창조하는 작업을 실행하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곳은 그 아무도 타인을 위해 심지어는 어떻게 죽어야 한다고까지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곳이며,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선고받은 가족들이 마침내 그리고 영원히 이 지구상에서 두 번째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곳”이라는 말을 대척점인 이곳 대한민국으로 끌어올려 붙들어 맨다.


임민욱 | 설치미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문화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폼페이 최후의 날  (0) 2013.12.28
디지털 시대, 이미지를 바라보는 시선들  (0) 2013.12.27
대한민국, 63년 동안의 고독  (0) 2013.12.16
시간의 네 가지 흐름  (0) 2013.12.11
걷고, 걷자  (0) 2013.12.04
카트를 민다는 것의 의미  (0) 2013.11.25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 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김수영의 시 ‘봄밤’의 한 대목이다. 예전부터 “종이 들리고”가 좀 미심쩍었다. 종을 쳐서 현재 시각을 알리는 것은 서양 쪽 풍경이 아니던가. 최근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1912)를 읽다가 다음 구절에 새삼 눈길이 멈췄다.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황현산 역) 어느 봄밤 김수영의 귀에는 ‘미라보 다리’의 ‘종소리’가 들렸던 것일까. 여하튼 김수영은 서둘지 말자 했지만 지금은 봄밤이 아니라 겨울밤이어서 나는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1. 봄밤이 아니라 겨울밤이어서, 2013년의 12월이어서, 나는 김수영처럼 자신을 다독일 수가 없다. 작년 말과 올해 초에 받은 연하장들이 책상 위에 1년째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귀한 인사들에게 e메일이나 문자메시지로 답할 수는 없으니 나 역시 예를 갖추어 답장하자 했었다. ‘오랜만에 문구점에 들러 편지지를 사자. 찻집에 앉아서 손 편지를 쓰자.’ 그러나 나는 1년이 흘러가는 동안 그 결심을 실천하지 못했다. 1년 동안!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없는데 그분들이 이해할 리가 없다.


고 김수영 시인(출처: 경향DB)


2. 정년퇴임하신 H선생님을 만나 여쭈어보았다. “선생님, 시간의 가차 없는 흐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요.” 나이를 먹어가는 일이 두려워서 한 질문이라 생각하셨는지 이런 답을 주셨다.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까 인생의 모든 나이에는 각각의 나이에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있는 것이더군요.” 시간과 싸우려 하지 말고 함께 놀아보라는 말씀으로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선생님과 헤어진 이후에 내가 못다 한 말이 있음을 깨달았다. ‘선생님, 그럼 고통은요? 인생의 모든 나이에는 각각의 나이에 감당해야 할 고통도 있겠지요?’ 


3. 필립 로스의 소설 <에브리맨>(2006)의 37쪽 부분에는 현재 34세인 주인공이 행복의 절정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다가 문득 미래의 죽음을 상상하는 대목이 나온다. “수많은 별은 그가 죽을 운명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37쪽)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젓는다. “종말과의 무시무시한 만남? 나는 이제 겨우 서른넷인데! 망각을 걱정하는 일은 일흔다섯에 가서 하면 돼! 그는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머나먼 미래에는 궁극적인 파국 때문에 괴로워할 시간이 남아 돌 거야!”(39~40쪽) 그러나 그는 188쪽에서 심장마비로 죽는다. 미래에서 돌아보면, 인생은 200쪽도 안되는 소설일지도 모른다. 


4. 잘해 보려고 미루다 결국 못하게 되는 일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사람을 (못) 만나는 일도 그중 하나다. 만나기 가장 좋은 때라는 것이 있을까. 그냥 내일 아니면 모레 만나야 한다. J형을 십년 만에 만났다. 어떤 사람을 십년 만에 만나면 시간의 생생한 물질성을 실감하게 된다. 십년만큼을 정직하게 늙어 있는 상대방을 통해서 나의 늙음을 덩달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J형의 외모는 거의 달라진 게 없었는데, 변함이 없기로는, 한국사회를 바꾸겠다는 그의 열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기본소득운동’의 취지를 나에게 설명했다. 이런 변함없음은 뭔가 위안이 된다.


시간은 빠르다. (작년의 연하장에 답장을 쓰기도 전에 연말이 온다.) 시간은 정확하다. (삶의 각 시기에 겪어야 할 고통을 꼬박꼬박 청구한다.) 시간은 비정하다. (37쪽에서 죽음을 상상하고 터무니없어 하던 사내를 188쪽에서 죽인다.) 시간은 완벽하지 않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을 남겨 둔다.) 그렇다면 시간과 관련해서는 이런 일을 해야 하리라.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 변해가는 것을 받아들이고, 변하지 않으면 좋을 것들이 변하지 않도록 지켜내고, 변해야 마땅한데 변하지 않고 있는 것들이 변할 수 있도록 다그치기. 이 과분한 지면을 이제 반납하고, 그 일을 하러 가야겠다.


신형철 | 문학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글쟁이에게 가장 곤란한 순간은 지면과 소재, 둘 중 하나라도 없을 때다. 반대로 말하자면 지면과 소재가 맞아떨어질 때처럼 기쁜 일도 없다. 지금 나는 한 장의 앨범을 듣고 있다. 이 지면을 기꺼이 그 앨범을 위해 할애하려고 한다.


들국화의 새 앨범이 나왔다. 시장에는 6일 풀리지만 운 좋게 조금 빨리 앨범을 듣게 되었다. 1986년에 나온 2집 이후 최성원, 고 주찬권이 함께한 17년 만의 앨범이다(1995년에 들국화 3집이 나오긴 했지만 그 앨범은 사실상 전인권의 솔로 앨범이었다). 앨범 커버는 단출하다. 길가에 핀 흰 들국화 사진이 전부다. 실로 오랜만의 귀환치고는 너무도 담담하다. 다섯 곡의 신곡, 그리고 김민기와 조동진의 리메이크 곡, 두 곡의 팝송 리메이크가 첫 번째 CD를 채운다. 들국화 1, 2집의 노래를 비롯해 멤버들의 솔로 대표곡들을 포함한 열두 곡이 두 번째 CD에 실려 있다.


열정무대 펼치는 들국화 (출처 :경향DB)


올해 대중음악계의 키워드는 단연 ‘거장들의 귀환’이었다. 조용필의 ‘헬로’는 차트와 이슈에서 싸이마저 눌렀다. 신중현은 처음으로 록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다. 나미는 일렉트니카 뮤지션들과의 협업을 통해 녹슬지 않은 센스를 발휘했으며 최백호는 에코 브릿지와의 협업으로 석양에 서 있는 이만 들려줄 수 있는 어떤 경지를 보여줬다. 들국화의 새 앨범은 그 대미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니, 그 이상이다.


동시대와 발맞추는 과정에 있어서 들국화는 자신들의 본질을 잃지 않는다. 함춘호(어쿠스틱 기타), 정원영(키보드), 김광민(피아노), 한상원(기타) 등 국내 정상급 연주자들과 호흡을 맞추되, 신곡을 스스로 만들었다. 어설프게 최신 트렌드를 따르려 애를 쓰지 않는다. 오직 그들만이 만들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멜로디와 감성을 담았다. 그래서 이 앨범은 현재에 끼어든 과거가 아닌, 시제로부터 자유로운 문장처럼 스며든다. 그 음악의 문장들은 1980년대에 이미 완성된 것이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영향받았으되 넘어선 자는 없었다. 완성형이 아니었다면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제발’ 같은 노래들이 아직까지 살아있는 이유를 설명할 길 없다. 어떤 리메이크도 원곡을 능가하지 못한 이유를 말할 수 없다. 이 앨범에는 스스로에 대한 그런 믿음이 서려 있다. 빠져나갈 구멍 따위는 파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히, 하지만 치열하게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툭, 하고 세상에 내놓았다. 모든 노래가 단조풍이지만 청승이 아닌 쓸쓸함이요, 비관이 아닌 담담함이다. 이 앨범을 들으면서 슬픔이 아닌 숭고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 음악들이 인생의 프리즘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앨범에 담긴 신곡들 중 ‘들국화로 필래’를 제외한 네 곡, 그러니까 ‘걷고, 걷고’ ‘노래여 잠에서 깨라’ ‘재채기’ ‘하나둘씩 떨어져’의 가사는 전인권이 썼다. 우리는 전인권의 지난 삶을 알고 있다. 꽤 오랫동안 그는 대중의 조롱을 받았다. 들국화의 전설을 갉아먹는다고 손가락질받기도 했다.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나락까지 떨어뜨렸다. 그 몰락에 대중의 쾌감과 안타까움이 교차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다시 살아왔다. 작년 여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의 컴백 무대. 최성원은 전인권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전인권이 돌아왔습니다.” 머리는 백발이 되었으되 목은 전성기로 회귀한 그의 노래를 듣고 있던 관객들은 눈물을 흘렸다. 진정한 귀환이라 할 만한 신곡들은 작년 여름의 순간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는 시 같은 문장들에 자신의 인생을 담는다.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을 힘 있고 섬세한 희로애락의 목소리에 실어 음악으로 승화시킨다.


많은 음악이 있다. 많은 삶이 있다. 하지만 음악으로 음악 외적인 삶까지 말할 수 있는 음악은 많지 않다. 음악 외적인 삶을 작품에 투영해서 읽을 수 있는 음악 역시 많지 않다. 음악은 곧 삶이어야 하고 삶은 곧 음악이어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희귀해진 명제를 들국화는 영욕의 세월을 얹어 묵직하게 소환한다. 힘들었지만 포기하진 말자고, 그러다보면 다시 아침이 밝아올 거라고. 그때까지 걷고, 걷자고.


김작가 | 대중문화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문화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 63년 동안의 고독  (0) 2013.12.16
시간의 네 가지 흐름  (0) 2013.12.11
걷고, 걷자  (0) 2013.12.04
카트를 민다는 것의 의미  (0) 2013.11.25
여럿이 만들어내는 영혼의 용오름  (0) 2013.11.20
반전이 있는 미술관  (0) 2013.11.18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몇 주 전 오랜만에 대형 할인매장에 들렀다. 아파트 바로 앞에 꽤 규모가 큰 재래시장이 있는 터라 굳이 장을 보러 그곳까지 갈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아이들과 함께 용산으로 향해야만 했다. 우리 동네에서는 아이들이 원하는 장난감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말 오후의 매장은 가족 단위의 쇼핑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가 카트를 밀고 있는 모습이었다. 문득 무엇이 이들을 이곳으로 이끄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표면적으로 쇼핑의 효율성과 편리성을 내세울 수 있겠지만, 이 공간이 제공하는 독특한 경험 패턴도 한몫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지하다시피 대형 할인매장은 꽤나 독특한 공간 질서를 지니고 있다. 수많은 상품들이 명료한 분류 체계에 따라 진열대 위에 배치되어 있고, 쇼핑객은 카트를 밀며 진열대 사이를 오가면서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선택한다. 다양한 가격대의 유사 상품들이 한 군데에 자리를 잡고 경쟁을 벌이고 있으니, 선택의 즐거움이 배가되기 마련이다. 언뜻 소비자 주권이 실현된 상품의 천국처럼 보인다.


하지만 쇼핑객의 시선이 아니라 카트의 시선으로 가늠해본다면 이 공간의 질서는 약간 다른 모양새다. 필요한 상품 한두 개만 구입하려는 이들은 굳이 카트를 밀면서 매장에 입장할 필요가 없다. 곧바로 해당 진열대로 이동해 상품을 집어든 뒤 계산대로 향하면 그만이다. 이들에게는 분명한 목적지가 있다. 반면 온 가족을 이끌고 주말 오후에 매장에 들른 이들에게 100원짜리 동전과 카트는 필수품이다. 그들에게는 상품 구매와 함께 얼마간의 시간을 이곳에서 소모해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따라서 그들이 일정 시간 동안 주변의 방해 없이 이 공간에서 방황하기 위해서는 카트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 카트는 구매 예정 물품의 운반 수단에 그치지 않고, 쇼핑객의 경험 패턴을 새롭게 정의하는 미디어 역할을 한다.


서울 도봉구 창동의 신창시장과 이마트(출처 :연합뉴스)


카트는 멈춰 서 있을 수는 있지만 질주할 수는 없다. 쇼핑객이 진열대 앞에서 특정 상품의 구매 여부를 가늠할 때 카트는 멈춰 선다. 한편 그가 다른 진열대로 이동할 때 카트는 이동 속도를 제어한다. 이때 카트는 쇼핑객의 발걸음뿐만 아니라 그의 시선과 보조도 맞춰 일정한 속도를 유지한다. 좌우 진열대를 훑어볼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때 쇼핑객의 시선은 영화의 수평 트래킹 촬영기법과 닮아 있다. 비좁은 통로를 이동하며 미로의 벽 같은 진열대를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선, 쇼핑객은 바로 이 시선을 통해 색다른 만남을 기대하며 상품의 세계를 관광하지만, 그 세계는 이미 그런 시선의 존재를 가정하고 평면화된 세계이기도 하다. 대형 할인매장은 카트에 의해 매개된 공간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형 할인매장은 백화점과 차별화된다. 백화점은 공간 한가운데에 에스컬레이터를 위치시킴으로써 수직적 이동을 통한 조감의 시선을 제공하고 그에 따라 개별 매장의 위계를 구획한다. 소비 행위는 전적으로 이 위계에 귀속되며, 구매자는 조감의 시선을 통해 이 위계를 자각한다. 반면 대형 할인매장은 무빙워크를 외곽에 배치해 납작한 경험의 연속성을 극대화한다.


그런데 카트의 권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쇼핑객이 소비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구성하는 기본 프레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미로같이 펼쳐진 매장의 통로는 쇼핑의 컨베이어 벨트이고, 반복되는 상품 선택은 소비자 정체성의 조립 과정이다. 계산대 옆의 실제 컨베이어 벨트는 이 공간의 동학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제유적 사물인 셈이다.


섣부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혹시 대형 할인매장이 지금 사회에 만연한, 시민 의식을 압도하는 소비자 주권 의식의 주요 학습장 중 하나였던 것은 아닐까? 1990년대 중반부터 신도시를 근거지로 삼아 전국 곳곳으로 빠르게 증식한 그 소비의 공간 말이다.


박해천 | 디자인 연구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문화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간의 네 가지 흐름  (0) 2013.12.11
걷고, 걷자  (0) 2013.12.04
카트를 민다는 것의 의미  (0) 2013.11.25
여럿이 만들어내는 영혼의 용오름  (0) 2013.11.20
반전이 있는 미술관  (0) 2013.11.18
국정원의 K형에게  (0) 2013.11.13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여가 활동으로 무얼 즐기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글을 쓴다고 답했었다. 그런데 이게 좀 어처구니없는 답변이다. 애송이일지라도 명색이 ‘작가’라는 작자가 취미로 글쓰기를 즐긴다니. 어쨌거나 글자판 위에 손가락을 얹고 있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곧 탐색과 상상으로 머리가 요동친다. 다만 차이는 있다. 어떤 계획이나 납기를 갖고 쓰는 글과 의무 없이 자유롭게 쓰는 글은 긴장의 정도가 하늘과 땅 차이다. 두 종류의 글쓰기에서 모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몰입을 맛볼 때가 있지만, 아무래도 앞뒤 없는 엉터리 상상과 논리의 비약은 취미 생활처럼 끼적일 때 더 자주 나타난다. 그러다 보니 이런 끼적 글이 정식 글의 밑감 노릇을 할 때가 늘어나 결국은 업무와 여가 생활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일 중독일 공산이 크다.


그러던 내게 정말로 여가를 즐길 취미 생활이 생겼다. 1년 전에 시험을 보고 ‘이소선 합창단’에 들어간 것이다. 1970년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별이 된 전태일 열사.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께서 돌아가실 때 남긴 ‘노동자 단결’의 뜻을 받들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두루 모여 만든 합창단이다. 작가가 무슨 노동자냐고 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지휘자님 지론처럼 세상에 노동자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직함이 그럴싸하지만 난 수입 면에서는 비정규직보다도 못한 불안정 노동자다.


서울 마포구 성산2동 마을합창단이 연습을 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배달민족 핏줄 아니랄까, 난 노래 부르는 걸 무척 좋아한다. 겸손 빼고 말하면, 내 노래 실력은 중상급이다. 눈이 나빠 악보에 적힌 노랫말조차 읽지 못하지만 악보를 볼 수 있더라도 악보대로 부를 정도의 능력은 없다. 호흡도 짧다. 사실 가사를 외우는 일이 내겐 제일 큰 숙제다. 그래서 연습할 때 녹음한 것을 지하철 탈 때마다 수십 번씩 들으며 외운다. 처음 참여한 연습 때 기존 단원들의 그리도 허술했던 화음이 한 시간 만에 가슴 터질 듯한 울림으로 내 기억에 남은 덕이다.


누구든 경험해 보았겠지만 자기의 목소리라고 생각하는 소리와 녹음해서 듣는 목소리는 사뭇 다르다. 내 목소리만 녹음해서 들어보면 내 글을 남이 소리 내어 읽어줄 때처럼 어색하고 손발이 오그라든다. 그나마 내가 남들 목소리 속에 섞이기 때문에 합창에서는 고양이 발톱으로 유리창 긁는 느낌이 훨씬 덜하다. 지휘자 선생님은 고운 소리만이 아니라 그런 다양한 소리가 제각각의 음색으로 조화를 이루는 게 우리 수준의 합창으로는 바람직하다고 하니, 그 포용력에 그저 용기백배다.


글쓰기와 합창은 성취의 방식이 좀 다른 것 같다. 글은 내가 만족스러울 때조차 남의 평이 걱정된다. 칭찬이나 감탄류의 반응이 돌아와야만 비로소 마음을 놓게 되고, 그런 반응이 오지 않거나 미약하면 마음이 무겁다. 반면 합창을 할 때면 실시간으로 울림과 떨림을 만끽한다. 물론 각자가 제 몫을 못하면 서로 안타까워하며 함께 도전 의욕을 불태우기도 한다. 연습에 빠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데, 그건 동료들이 곁에 없을 때 내가 무력함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 이게 합창의 매력이다. 한데 40명 넘는 단원 가운데 집회나 회의, 연대 투쟁 때문에 연습에 나오지 못하는 이가 많다. 3조 2교대하는 노동자들도 있는데, 우리 합창단의 어려움을 비유하여 나는 합창단이 3조 5교대라고 농하며 그 안타까움을 푼다.


어떨 때는 불의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의 친구로 그들 옆에서 힘을 북돋우는 구실을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이런 합창 문화가 우리네 생활 아주 깊숙이 자리 잡기를 바란다. 옆 사람과 벽 없이 채워가는 울림과 떨림의 그 닭살 돋는 시간은 내 피를 맑게 해주고 나의 영혼과 다른 이들의 영혼이 서로 부딪쳐 용오름을 이루는 벅찬 환희를 부른다. 그런 느낌이 고단한 일상에서 나를 놓지 않고 곧추세운다. 아름다움의 힘, 행복의 힘을 조금이라도 맛본 사람이라면 절대 더럽고 구차한 현실에 주눅이 들지 않으며 그저 한탄만 하고 살지도 않는 법이다. 내겐 참된 취미가 생겼다.


이건범 | 작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문화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걷고, 걷자  (0) 2013.12.04
카트를 민다는 것의 의미  (0) 2013.11.25
여럿이 만들어내는 영혼의 용오름  (0) 2013.11.20
반전이 있는 미술관  (0) 2013.11.18
국정원의 K형에게  (0) 2013.11.13
표절 논란  (0) 2013.11.06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한국의 현대미술에 새집이 생겼습니다. 작은 섬들을 이루며 경복궁 옆에 나지막하니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웃집처럼 접근도 쉬워졌습니다. 접근성이 좋아진 점은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미술관이 과천에 있을 적에는 외국인 관광객뿐만 아니라 국민에게도 약간 숨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숲속의 요새 같았던 동물원 옆 미술관은 코끼리 열차도 타야 했고 가기가 참 복잡했는데 벌써 추억거리가 된 것 같습니다. 이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벙커를 닮은 기지답게 근현대미술자료 수집 및 연구와 관련 전시로 명맥을 이어간다고 합니다. 긴 세월 작품들을 더 잘 보호하고 빛나게 해줄 것 같아 반갑습니다. 그렇다면 새로 생긴 서울관은 동시대 미술관으로서 좀 더 역동적이 될 수도 있겠구나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딸아이를 데리고 개관전에 가보았습니다. 사방으로 환히 트인 마당을 지나 주 출입구가 있는 옛 기무사 건물로 다가갔습니다. 1928년 당시 건물의 붉은 벽돌이 시멘트 덧칠을 걷어내고 과거와 현재를 접속시키고 있었습니다. 접속은 곧이어 반전을 숨긴 공간으로 초대했습니다. 거대한 무의식을 드러내듯 겉모습과 다른 ‘내면’의 깊이로 파 내려간 설계였습니다. 건축가는 섬세하고 담대하게 공간을 구상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술인이기 전에 먼저 시민으로서 이런 미술관이 생겼다는 게 감사하고 기쁩니다. 자랑스러운 작가들과 비평가, 큐레이터들, 그리고 현대미술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분들의 노고가 맺은 결실이라고 느꼈습니다. 전 세계 미술 관계자들의 관심과 선망도 높다고 합니다. 해외 미술관들은 신자유주의의 폐해로 인한 재정위기를 직격탄으로 맞으며 예산의 절반이 삭감됐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지요. 그렇다보니 한국이 현재 기울이고 있는 문화예술에 대한 공공적 노력은 가히 세계적으로 소중한 일입니다.


개관 앞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출처: 연합뉴스)


그 가운데 외국인들이 고유명사로 발음할 줄 아는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 운동이 하나 있습니다. 군부의 폭압에 맞서 표출된 민중미술입니다. 그 중요성에 대해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고 공부한다는 사실도 간과하면 안될 겁니다. 그런데 해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했던 개관식이 끝나자 미술관은 검열의 논쟁에 휩싸였습니다.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 전에 예정돼 있던 몇몇 민중미술 계열의 작품들 선정과정에서 불거진 일이랍니다. 저는 검열은 없었다는 사후 미술관의 보도자료를 믿습니다. 다만 일사불란하게 충성하는 청와대 직원들이 검열의 향수만 몇 방울 뿌리고 ‘극적으로’ 미술관에 들어와 ‘조용하게 퇴장’했겠지요.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도 보았듯이 ‘기체의 미학’은 몸통이 없습니다.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고 부러워하는 이런 역사적 순간에 정치적 안배로 상상력을 도배해버리는 그런 찌질한 스케일로 서울관 전시를 기획했을 거라고 누명을 씌워서는 안됩니다. 기껏 세계적 건축물을 지어놓고 학벌 중심 채용과 대학 동창회 전시 같은 것을 본다는 것 또한 실망스러운 반전이자 우물안의 ‘연결-전개’일 테니까요. 가짜 이데올로기의 싸움터에는 미술협회나 지역작가들의 불만도 높은 모양입니다. 그러나 미술관은 미술인을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미술관을 나서는데 내 딸이 예술가가 되고 싶답니다. 예술가가 꿈이 될 수도 있나…. 저는 예술가의 꿈을 가져본 적도 없고 아직 진정한 예술가도 못됐기에 잠시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예술가는 직업이 아니라 정신의 ‘상태’ 같은 것이라 말했습니다. 아이의 일기장에서, 기자의 수첩에서, 어느 주부의 한낮, 어느 직장인의 퇴근길, 어느 교사의 눈물과 항해사의 가슴속에서 살고 있는 어떤 정신 말입니다. 곽재구 시인은 “아름다움은 별이 아닌 우리의 가슴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전이 있는 관점이 아닐까요. 당대성을 보여주는 미술관의 반전도 그려봅니다. 앞으로 더욱 세계적으로 문제적인 작업들을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합니다. 관능적인 미술관, 반전 있는 미술관, 딱 서울 같은 미술관에서, ‘기억한다는 것은 담론이 아니고 신체이자 실천’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국립현대서울미술관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임민욱 | 설치미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문화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트를 민다는 것의 의미  (0) 2013.11.25
여럿이 만들어내는 영혼의 용오름  (0) 2013.11.20
반전이 있는 미술관  (0) 2013.11.18
국정원의 K형에게  (0) 2013.11.13
표절 논란  (0) 2013.11.06
가을에 만난 젊은 귀농 부부  (0) 2013.10.30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형, 잘 지내고 계신지요. 벌써 가물가물합니다. 우리가 가장 최근에 만난 것이 올해 초였던가요. 대선이 치러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고 무척 추운 날이었다고 기억합니다. 7~8년 만에 만난 것이었지요. 


우리가 민중가요를 부르는 노래 동아리에서 처음 만난 것이 1995년이었으니 형과 알고 지낸 것도 20년이 다 되어 갑니다. 학부 시절 내내 우리는 거의 매일 붙어 있다시피 했었지요. 돌이켜 보면, 일사불란함과는 거리가 먼, 들끓는 도가니 같은 모임이었습니다. 노래패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1990년대 중반이었으니까요. 형은 특유의 온화함으로 동아리를 조용히 보살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우리는 자연스럽게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제가 여러 지면에 드문드문 발표한 글들을 챙겨 읽은 형이 먼저 연락을 해왔지요. 반갑게 서로 안부를 묻다가 문득 생각해 보니, 저는 형이 졸업 후에 어디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민망함을 무릅쓰고 물어보았고, 형은 조금 머쓱해하면서 말해주었습니다. 국가정보원에서 일하고 있다고요. 물론 다소 놀랐던 게 사실입니다. 저는 국정원을 잘 모르지만 온화한 형이 일하기에는 너무 삼엄한 조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만나자마자 형은 제가 쓴 글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형은 제가 하는 일이 아주 대단한 일이라고 말해주었지요. 인생과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문학작품을 매개로 자기 생각을 펼치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일이냐고요. 형의 말들은 과분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저 자신에게야 소중하지만, 이 세상에는 글쓰기보다 중요한 일이 수없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형은 형수와 함께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하셨지요. 저는 형이 하는 일이 훨씬 더 위대한 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또 두 아이의 아빠로서, 형이 살아낸 지난 세월들의 무게를 저는 감히 짐작도 못합니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국가정보원 청사.(출처 :경향DB)


이미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던 때였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것과 관련된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지만, 정치를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래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는 신중하게 남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형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으므로 저도 그 화제를 굳이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국정원 내부 사정도 궁금했고 형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묻지 않았지요. 말할 수 없는 것을 묻는 일이 형을 불편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형도 아시다시피 우리가 만난 이후로 국정원 사태는 국정조사를 거치면서 점입가경으로 치달았습니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저 역시 화가 많이 났었습니다. 국정원의 높으신 분들이 갖고 있는 생각은 제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었습니다. 진보와 보수가 (혹은 그 어떤 사상이든) 선거를 통해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기관인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해 국민의 세금을 쓰면서 특정 후보의 당선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이것이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저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형과 재회한 이후 몇 달 동안 뉴스를 보면서, 제가 좋아하는 형이 몸 담고 있는 직장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새삼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그리고 주제넘게도 요즈음 형의 마음은 어떠할까를 생각했습니다. 조직의 지침에 동의하지 않을, 대다수의 상식적인 국정원 소속 공무원들의 고뇌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이런 글 따위, 아무것도 아닙니다. 형수와 두 아이를 위해 사는 형의 삶이야말로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형의 직장이 형의 아름다운 삶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저는 속상합니다. 형, 다시 만나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신형철 | 문학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문화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럿이 만들어내는 영혼의 용오름  (0) 2013.11.20
반전이 있는 미술관  (0) 2013.11.18
국정원의 K형에게  (0) 2013.11.13
표절 논란  (0) 2013.11.06
가을에 만난 젊은 귀농 부부  (0) 2013.10.30
독립 출판물 축제에서  (0) 2013.10.28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아이유에 이어 무한도전까지, 지금 대중음악계는 표절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아이유의 ‘분홍신’에 이어 박명수와 프라이머리의 ‘아이 갓 씨’가 외국곡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 자리를 빌려 우선 밝히자면 ‘분홍신’은 분명히 표절이 아니다. ‘아이 갓 씨’는 일단 표절 대상곡의 원작자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상황이다.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가요계에 심심하면 터지는 게 표절 논란이다. 예전에는 표절이 확실한 경우가 많았다. 반면 최근에는 억지성 표절 제기가 많아지는 추세다. 몇 년 사이 한국 대중음악이 내수용에서 수출용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에 창작자들을 포함한 관계자들은 스스로에게 엄격해졌다. 또한 그사이에 작곡가들이 대거 세대교체 된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표절 제기는 끊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전에 비해 빈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과거의 사례들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실제로 표절을 통해 인기를 끈 노래들이 적지 않았다. 그것도 해외 인기곡을 대놓고 표절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유명 작곡가들 중에서도 단골로 표절 논란에 오르는 이들이 있었고, 비교 대상이 되는 노래들은 전문가와 일반 대중을 가리지 않고 너무나 흡사했다. 하지만 실제로 표절 여부가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표절은 민사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즉, A라는 창작자가 B라는 작곡가의 노래가 자신의 작품과 유사하다고 판단했다고 하자. A는 법원에 B를 저작권 침해 혐의로 제소한다. 법정은 양측이 제시하는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저작권 침해 여부를 가리게 된다. 재판이란 게 으레 그러하듯 시간과 비용이 만만찮다. 이익보다는 사실상 창작자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절차다.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자존심 회복의 투쟁에 나서는 경우는 국내 작곡가들밖에 없다. 저작권 침해 소송이 손에 꼽을 만큼 적은 까닭이다. 반면, 해외 저작권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저작권 대행사를 통해 조용히 합의를 본다. 한때 시끄러웠던 표절 의혹곡들이 있다. 시간이 지난 후 저작권협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보면, 표절 대상곡의 원작자와 공동 작곡으로 올라가 있는 일이 많다. ‘물밑’에서 조용히 합의했다는 얘기다. 이 멀지 않은 과거의 관행들이 여전히 표절 여부에 대한 민감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표절 시비에 휘말린 가수 지드래곤(왼쪽)과 씨엔블루 (출처 :경향DB)


둘째, 음악 다양성의 부족이다. 우리 사회의 문화적 쏠림 현상이야 장르를 가리지 않지만 대중음악은 특히 심하다. 음악 소비자의 90%가 댄스와 발라드만 듣는다. 팝과 가요의 비중 역시 절대적으로 가요 쪽에 쏠려 있다. 팝을 전문으로 틀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하나밖에 없는 상황이니 굳이 긴 설명이 필요없다. 그중에서도 최신 해외 음악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줄어든다. 공급 측면에서는 이전에 비할 바 없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양한 음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시장의 폐쇄성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런 경향은 훈련된 대중의 축소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어떤 문화건 다양하고 깊게 접할수록 작품의 맥락을 파악하고 개성을 인지할 수 있게 되는 건 물론이다. 향유되는 장르가 편중된 시장에서 누군가가 같은 장르의, 비슷한 두 노래를 들려줬을 때 훈련되지 못한 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다른 인종의 얼굴들을 첫눈에 명확히 구분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다.


마지막, 권력과 체제에 대한 불신이다. 국정원에 이어 군대까지, 우리를 지켜야 할 대상이 역으로 여론을 조작해왔다는 게 밝혀지는 상황이다. 정치인들과 재벌들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친지는 이미 오래다. 힘을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을, 믿을 수가 없게 됐다. 대중은 연예인과 권력을 동일시하곤 한다. 그들의 인기와 수입이 권력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조차 공인의 굴레를 씌운다. 권력의 거울, 혹은 유사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표절이란 창작자가 가진 가장 기본적인 양심의 문제다. 의혹은 있으되 명확히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지금의 정국과 닮았다. 끊임없는 표절 논란은 권력의 양심이 사라지고 검은 베일만 드리워진 시대에 대한, 무의식의 성토일지도 모른다.


김작가 | 대중문화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문화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전이 있는 미술관  (0) 2013.11.18
국정원의 K형에게  (0) 2013.11.13
표절 논란  (0) 2013.11.06
가을에 만난 젊은 귀농 부부  (0) 2013.10.30
독립 출판물 축제에서  (0) 2013.10.28
장애에도 급수가 있다더니  (0) 2013.10.23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하늘 푸른 만큼 가을이 깊다. 전남 장흥의 한 농가. 여럿이 툇마루에 앉아 밥을 먹고 있다. 품앗이로 가을걷이에 한창인 귀농인들의 점심이다. 낯선 방문. 초면에 머쓱하기도 하련만 체면 불고하고 수저를 놓은 자리에 끼어들어 한술 뜨려는데 파리 떼가 먼저 달려든다. 찬은 김치와 두부와 깻잎장아찌가 전부다. 늦은 점심이라 시장하기도 했지만 한손으로 파리를 쫓으며 넘기는 밥이 꿀맛이다. 소쿠리에 내온 고구마에 김치를 얹어 먹는 후식도 기가 막히다.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나서야 서로 알은체한다. 아무렴 밥이 먼저지. 비로소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귀에 들리기 시작한다.


젊은 부부가 있다. 아내는 스물 후반, 남편은 서른을 겨우 넘긴 부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할 나이의 그들이 농사를 택한 게 의아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연유를 물었다. 아내의 말이 당돌하다. 이렇게 살고 싶었단다. 유학을 가겠다는 남자친구에게 회유와 협박과 질책을 퍼부은 끝에 발목을 잡아 시골에 눌러 앉혔다. 나랑 살자, 그렇게 꼬드기고, 그렇게 살면 행복할 것 같아? 그렇게 협박하고, 네가 했던 말에 책임을 져야지, 그렇게 질책했단다. 그들은 세 칸짜리 집을 얻어 살면서 화덕으로 밥을 끓이고 농사를 짓는다. 전기도 없다.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도 있나? 아니다. 아예 쓰지 않는단다. 그럼 전화는?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휴대폰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건 아니다. 태양광을 이용한 충전지를 쓴다. 이런! 이런 깜찍한 삶을 꾸려가는 이들이 있다니. 그날 젊은 부부가 정말 예뻐 보였다.


벼가 노랗게 익어가는 황금들판 (출처: 경향DB)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나이의 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무렵 그들의 삶과 비슷한 어떤 것도 꿈꾸지 못했다. 나이가 어리다는 뜻은 아직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많은 일들이 모든 사람들과 겹칠 때 경쟁이 시작된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취업의 문을 두드리지만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어쩌면 그 과정과 결과에서 얻을 수 있는 성공과 성취보다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삶을 위해 모두들 목숨을 건다. 많은 가능성은 더 많은 좌절을 요구한다. 그건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삶은 자신들의 내면적인 가치로 채워가는 것 이상의 가치는 없다는 것.


살 만큼 살고 나서 도시의 묵은 때를 씻어내듯 시골로 내려가 새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은 적지 않다. 하지만 처음부터 작정하고 농사를 시작하는 젊은이는 드물다. 줄어드는 인구를 늘리려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적인 배려에도 불구하고 시골의 장벽이 녹록지 않은 탓이다. 현지인의 배타적인 시선과 터무니없이 치솟는 땅값, 낯선 환경이 걸림돌이다. 그게 다가 아니다. 시골 정서와 도시 젊은이의 문화적 정서가 충돌한다. 어머니 품 같은 고향, 넘쳐나는 인정, 깨끗한 자연환경 등등의 수사가 얼마나 낯간지러운 수사인지 시골에 조금만 깊이 발을 디디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농약으로 범벅이 된 들판, 방치된 비닐과 쓰레기, 썩어가는 냇물, 거기에 정이라는 이름으로 간섭하고 도움을 앞세워 얽어매려는 인간관계, 때로 귀농을 빌미로 노동의 착취가 이루어지기도 하는 현실을 젊은이들은 견디지 못한다. 애써 새로운 삶을 꿈꾸었던 발길은 다시 도시로 향한다. 그런 이도 적지 않다.


시골에 남아 농사짓는 사람들은 거의 노인들이다. 그들이 손을 놓을 때가 되면 농촌은 텅텅 비게 될 것이다. 시골의 빈자리를 개발과 도시화로 메워가는 게 답일 리가 없다. 시골을 미개발의 땅으로만 아는 개발주의자들의 손에 농촌을 넘겨준다면 더 끔찍한 결과만 있을 뿐이다. 시골은 도시가 아니다. 그곳은 저개발과 미개발의 공간이 아니라 자연의 시스템이 작동해야 할 공간이다. 그 공간은 자연과 인간이 균형을 이루는 새로운 삶의 조건을 만들어갈 젊은이들에게 열려야 한다. 활짝. 그게 농촌의 새로운 가능성이다. 그곳을 자신들의 가치로 당당히 채워가는 그 젊은 부부를 다시 보고 싶다. 가을이 가기 전에.


김진송 | 목수·문화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문화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정원의 K형에게  (0) 2013.11.13
표절 논란  (0) 2013.11.06
가을에 만난 젊은 귀농 부부  (0) 2013.10.30
독립 출판물 축제에서  (0) 2013.10.28
장애에도 급수가 있다더니  (0) 2013.10.23
‘전문가’와 타인의 고통  (0) 2013.10.22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 주말 양일간 당인리발전소 인근 카페에서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북페어 행사가 열렸다. 젊은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자신이 제작한 책과 잡지, 음반을 직접 들고 나와 전시·판매하는 이 행사는 홍대 앞 서점 ‘유어마인드’가 해마다 주최하는 것으로,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았다.


100여개 팀이 참여한 가운데, 꾸준히 청년 세대의 문화적 관심사를 담고 있는 ‘도미노’나 ‘월간 잉여’ 같은 독립 잡지가 눈에 띄었고, 건축, 패션, 영화 등 특정 분야의 전문성에 바탕을 둔 비정기 잡지나, 특색 있는 출판물도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취향의 향방은 제각각이었지만, 전시된 책들이 공들여 만들어진 것만큼은 분명했다.


 

잉여들을 위한 <월간 잉여> 7월호 표지 (출처 :경향DB)



돌이켜보면, ‘홍대 앞 청년문화’의 주요한 지류로 성장한 이 행사가 2009년에 시작되었다는 점은 무척 시사적이다. 주지하다시피 2008년에는 미국 금융위기가 일어났고, 국내 경기도 빠른 속도로 움츠러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시점에 홍대 앞 상권의 부동산 경기는 활황세를 띠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시장의 유동성 일부가 흘러든 결과였다. 실제로 당시 보수 일간지의 부동산 재테크 관련 기사들은 이미 정점을 찍은 아파트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말고 주요 상권의 건물을 눈여겨보라고 조언하고 있었다.


투자의 전략적 목표를 시세차익에서 임대수익으로 전환하라는 메시지가 제대로 수신인을 찾아간 덕분이었을까? 지난 5년간 홍대 앞 일대에서는 부동산의 복마전이 펼쳐졌다. 자유분방한 혈기를 내뿜던 인디밴드들의 공연장은 하나둘 사라졌고, 이정표 구실을 하던 유명 제과점은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에 밀려났으며, 국내외 소규모 출판물의 허브 역할을 했던 서점 북소사이어티는 홍대 앞을 떠났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프랜차이즈 카페와 떡볶이집과 일본식 주점과 패스트패션 매장과 저가 화장품 점포였다. 강북의 젊은이들도 이런 변화에 한몫 거들었다. 그들은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명동과 동대문에서 밀려나, 2호선을 타고 홍대 앞으로 몰려들었다.


‘젊음의 문화’보다는 지방세 수입에 더 관심이 높을 법한 지방자치단체로서는 반길 만한 사태의 추이였지만, 결과적으로 홍대 앞 거리는 강북의 여느 번화가와 비슷한 모양새로 변모했다. 건물주인 담배 회사가 운영하는 복합 문화공간과 건물주인 대형 출판사가 운영하는 북카페와 건물주인 연예기획사 사장이 운영하는 클럽 정도가 지역색의 마지막 보루로 남았을 뿐이다.


다시 ‘언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돌아가 보자. 지난 5년간의 변화 한복판에서 홍대 앞의 청년 예술가나 디자이너들은 마포의 주변부로 밀려나면서, 문화적 표현과 소통의 출구로 ‘공간’이 아니라 ‘출판물’을 주목했고, 기성의 출판 제도를 우회해 자립의 영역을 확보하겠다는 야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이런 욕구와 야심의 일시적 해방구로 제구실을 해왔다. 그런데 지금,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과연 이 행사의 참여자들은 호황기에 ‘문화의 산업화’에 성공해 지금은 홍대 앞 건물주로 변모한 기성세대의 일부 문화 자본들, 그리고 그들의 경제적 성공 덕분에 자율성의 제도 내부에 제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던 여타의 문화 생산자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소소하지만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비관적인 질문이지만 이에 대한 답변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이 행사의 참여자들은 종국에는 임대료만 올려놓고 사라지는 상권 재활성화의 촉매제이자 문화적 화전민으로 전락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왜냐면 그들이 사라지면 이 도시가 우리에게 남겨놓은 것은 비용 지불 능력과 회전율로 측정되는 ‘고객님’의 자리뿐이기 때문이다. 한 명의 독자로서, 그들이 좀 더 큰 야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해천 | 디자인 연구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문화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표절 논란  (0) 2013.11.06
가을에 만난 젊은 귀농 부부  (0) 2013.10.30
독립 출판물 축제에서  (0) 2013.10.28
장애에도 급수가 있다더니  (0) 2013.10.23
‘전문가’와 타인의 고통  (0) 2013.10.22
네가 왜 미안해?  (0) 2013.10.16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볼썽사나운 짓을 하는 사람을 비웃을 때 쓰는 말이 있다. “병신도 급수가 있다더니, 꼴값을 떨어요.” 얄궂다. 나는 눈 병신, 시각장애인이다. 급수가 있다. 나는 1급이다. 1급이 가장 눈이 나쁜 사람이고 그로부터 6급까지 등급이 있다. 1999년에 처음 장애 진단을 받았을 때만 해도 시각 장애 5급으로 비교적 장애 정도가 가벼웠지만, 2005년에 1급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1급 판정을 받고 병원을 나서면서 두 가지 야릇한 생각이 나를 휘감았다. ‘흠, 이런 정도라면 정말 언젠가는 아예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수 있겠네.’ 걱정이었다. ‘그런데 등급이 올랐으니 혜택도 늘어나겠는걸.’ 무슨 어려운 자격증을 딴 사람처럼 으쓱했다.


5급 진단을 받았을 때부터 나는 지하철을 공짜로 탔고, 국내선 여객기와 철도도 절반 요금으로 이용했다. 자동차를 새로 살 때엔 세금을 감면받았다. 주차료를 면제받거나 할인받는 경우도 있었다. 장애인 주차 구역에 편하게 차를 세우기도 했다. 이런 종류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치사하게 가짜 장애인 노릇을 하거나 장애인인 부모의 이름으로 차를 사서 혜택을 보려는 사람도 있긴 하다. 사실 몇 푼 되지 않는 혜택인데 말이다. 내가 1급을 받고 으쓱했던 까닭 가운데에는 혹시라도 나를 가짜라고 의심하는 눈길로부터 떳떳해졌다는 객기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1급이 되어도 추가되는 혜택은 별로 없었다. 국내선 여객기와 철도를 이용할 때 보호자 한 사람까지 반액으로 깎아주는 정도였을까. 이런 작은 실망은 내가 장애인 등급 체계를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에 생긴 결과다. 장애의 정도가 다르니까 사회생활에도 그만큼 어려움이 있을 테고, 그렇다면 사회 보장의 폭도 달라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닐까?


장애인들 광화문 광장서 신문고 울리며 절규 (출처 ;경향DB)


없는 돈으로 살림을 하다 보면 지출 순위를 매겨야 한다. 우선은 먹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 비와 추위를 막아줄 집이 있어야 한다. 벗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마지막이 걸칠 옷이다. 음식의 맛, 집의 넓이, 옷의 멋은 한참 뒤의 일이다. 그렇듯이 가장 어려움이 클 것 같은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삶의 기초를 보장하는 원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나라에 돈이 넉넉하지 않다니, 없는 재원을 나누려면 장애의 정도에 따라 분배하는 게 정의에도 부합하지 않겠는가? 여기까지가 누구에게나 존엄한 인간의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치지 못했을 때 우리가 인간을 그저 하나의 생명체 정도로 보던 태도다.


광화문 지하철역에서 400일 넘게 장애 등급 철폐 서명운동을 벌여온 장애인들이 있다. 장애인인 나 역시 퍼뜩 의문이 들었다. 이게 어떻게 딴 1급인데 등급을 철폐하자는 말인가. 그러다 1년 전에 내가 장애인 활동 보조 제도를 신청할 때의 상황이 떠올랐다. 지체 장애인은 3급까지인가 활동 보조를 신청할 수 있지만, 시각 장애인은 오로지 1급만 신청이 가능했다. 정말 병신도 급수가 있다는 말을 그 경계선에서 실감한 것이다.


들어보니 월 최대 17만원가량의 장애 연금도 1급부터 중복3급까지 소득이 적은 사람 순으로 차등 지급된단다. 확실히 병신도 급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험을 돌아보면 5급일 때나 1급일 때나 일반 문서를 읽을 수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나처럼 아주 운이 좋은 경우를 제외한다면 시각장애인이 일반적인 업무를 처리하기란, 거스름돈을 제대로 헤아려 주기란 다 어렵다. 돈을 벌기 어렵다는 말이다.


등급을 없애고 모든 장애인에게 장애 연금을 지급하라고 하면 당장 두 가지 질문이 나오리라. 재원은 어찌 마련하며, 돈 잘 버는 장애인은 어쩌냐고. 재원은 세금을 더 걷는 수밖에 없다. 사회복지세 같은 복지 목적의 세금을 걷어가면서 장애 연금 받는 폭을 전체로 넓혀가야 한다. 그럼 돈을 잘 버는 장애인에게도 연금을 주고 세금을 더 걷으면 된다. 보편 복지의 원리다. 찝찝한 질문이 하나 남는다. 왜 우리가 장애인에게 그런 투자를 해야 하느냐고. 답은 간단하다. 나도 내가 1급 장애를 갖게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이건범 작가·한글문화연대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문화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에 만난 젊은 귀농 부부  (0) 2013.10.30
독립 출판물 축제에서  (0) 2013.10.28
장애에도 급수가 있다더니  (0) 2013.10.23
‘전문가’와 타인의 고통  (0) 2013.10.22
네가 왜 미안해?  (0) 2013.10.16
허구 속의 사과  (0) 2013.10.09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나에게는 거꾸로 가는 작업시계가 있다. 이 시계는 새롭게 알게 된 역사적 사실들이나 사람들, 혹은 장소 때문에 거꾸로 간다. 


요즘 1970년대의 엄혹했던 유신 시절도 아닌데 감시와 색출, 또다시 새마을 깃발을 휘날리며 뒷걸음질치는 시계와는 다른 것이다. 오히려 사라지는 것이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에 거꾸로 가는 시계다. 갈수록 기억력이 나빠지자 정신차려 더 배우라고 재촉하는 시계가 끊임없이 ‘왜, 왜, 왜’ 되물으며 째깍거리니 어쩌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장도리]2013년 10월22일 (출처: 경향DB)



원인을 묻는다. 내 눈앞에 모든 것이 점차 복잡해져만 가기 때문이다. ‘복잡해진다’는 것은 뭔가가 많아졌다는 것보다 어느새 사라졌다고 느낄 때다. 다시 말하자면 사라진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느낄 줄 모르는 무감각한 상태가 나를 복잡하게 만든다. 


사람이 다치고, 알고 있던 장소가 사라지고, 인간답다, 살아 있다…, 이런 것들을 느끼게 해 주던 조건들이 따라서 잊혀져 간다. 그럴수록 대세는 ‘침묵’이라는 최고급 작가 포장지를 덮어쓰고 인내하라는 가르침이다. 그사이 정당화된 공권력의 폭력은 일상의 전기와 수돗물로 이미 내 몸에 스며 들어와 있다. 그러니까 내 몸이 폭력의 혜택으로 살찌고 있거나 자행하고 있기 때문에 복잡한 심정은 분열을 키워만 간다.


밀양의 전기가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데, 오염된 원전수가 입 안에서 녹고 있다는데, 그래도 상상력과 아름다움을 팔아서 내 자식 교육비 정도는 벌어놔야 할 것 아닌가. 


이런 정신분열증적 성격에 이르게 되면, 몇 해 전 읽었던 인도의 여성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작가와 세계화>란 글이 떠오른다. (아마 그때부터 거꾸로 가는 작업시계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양 극단으로 치달으며 신분제에 의한 대량 학살과 핵 실험, 노예 노동과 디지털 혁명, 결혼 지참금 문제로 아내를 태워 죽이는 남편들과 세계 미인대회에 나가는 여성들에 관한 소식을 늘 동시에 접하며 살아가는 인도에서, 3억 인구가 문맹인 나라에서, 이른바 ‘유명한 작가’라는 미심쩍은 영예란 무엇인가.


대한민국에서는 어떠한가. 똑같이 묘사하며 시작할 수 있다. 조금 다른 질문을 덧붙이기 위해….


진실이 채 밝혀지지 않은 학살… 대량 해고와 디지털 혁명,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여론조작과 감시, 매년 증가하는 고독사와 굶어 죽는 북한 아이들 소식. 이 모든 걸 늘 동시에 접하며 살아가는 한국에서, 이른바 ‘세계적 작가’가 되라고 주문하는 ‘전문가’들의 미심쩍은 채찍은 또 무엇인가.


이른바 “전문성이라는 외양간 속에는 수상쩍은 정치적 이해가 숨어” 있다는 것, 누구나 다 안다. 세계적 작가를 승인하는 외양간 속은 말할 것도 없다. 아예 작품성이 세계화의 패턴을 모방하느라 바쁘다. 거기서 전문가는 ‘침묵하라’는 또 하나의 정치적 행위를 학습시키며 타인의 고통을 유통한다. 나도 똑같이 장차 작가가 되고 싶다는 딸아이와 학생들 앞에서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할 수 있는 어떤 비법이라도 전수해야 하는 것 아닐까. 


영국의 현대미술가 데미언 허스트처럼 해골에 보석을 처박아라. 재료가 너무 비싸다고? 제프 쿤스처럼 사탕을 뻥튀기해라. 그것도 비싸다고? 그럼 트레이시 에민처럼 연애라도 많이 해서 네 침대라도 갖다놓지 그래? 그래도 가장 무난한 것은 ‘내면화된 추상’일 거야!


그런데 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그 다음이다. 전문가들 원전비리? 일단 할머니들부터 치워! 4대강 오염? 대통령이 막아줄게! ‘오염은 우리가 시키지만 대가는 너희가 지불하라’는 특권을 가진 전문가는 타인의 고통을 염려하는 이보다 진정성이 우월하다고?!


'밀양 송전탑 반대' (출처: 경향DB)


아룬다티 로이는 유례없이 작가가 환대받는 시대에 인도가 세계화를 향해 내놓을 수 있는 최상의 수출품은 ‘이의를 제기하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커가는 딸아이를 보면서 이의를 제기하는 행동은커녕 세계적 작가가 되려는 꿈도 접는다. 대신 시민 한 사람으로서 세계화보다 지역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세계적 규모보단 일교차가 클수록 잘 익는다는 밀양의 단감 속에서 할머니들 얼굴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문화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립 출판물 축제에서  (0) 2013.10.28
장애에도 급수가 있다더니  (0) 2013.10.23
‘전문가’와 타인의 고통  (0) 2013.10.22
네가 왜 미안해?  (0) 2013.10.16
허구 속의 사과  (0) 2013.10.09
[문화와 삶]사회가 피곤해지는 이유  (0) 2013.10.03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