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경영하던 회사가 송두리째 무너질 때 나는 내가 끝까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줄로 알았다. 힘들었지만 재수가 좋았던 덕에 나는 직원과 거래처 모두를 구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쳤지만 이제 와 고백하건대 내 목숨은 예외였으니, 내가 바친 모든 것은 내 목숨의 대가였다. 자기 목숨 걸고 어떤 책임을 진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우랴. 굳이 목숨까지 원치 않는 일이라 해도 난 그 뒤로 되도록 책임지는 일은 맡으려 하지 않았다. 책임져야 할 일이 하나씩 늘어나면 남몰래 실속의 잣대로 재서 그 가운데 어떤 책임은 체면 구기지 않으며 벗어던지고자 별별 수를 다 썼다. 그렇게 살았다.

권력을 누리면서 책임을 팽개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책임의 올가미에 걸리지 않으려면 권력을 탐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인면수심으로 부와 권력과 명예를 탐하면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자들에 비한다면 이런 안빈낙도의 도피가 어찌 욕먹을 짓이겠는가? 그래서 그렇게 살았다. 또다시 고난의 길에 들어서지 않고자 그저 내 앞가림 말고 더 넓게 세상을 보려 애쓰지 않았다. 명백한 불의와 싸우는 일에도 나 혼자 바보처럼 매달리면 손해니 명분 잃지 않으면서 발길을 끊는 재주를 익혔다. 그렇게 살았다.

그러니 마음속 모든 규칙이 느슨해지고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몰가치의 관용만이 늘어났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사정이 있게 마련이고, 악역 맡은 사람들도 오죽하면 저러겠느냐고,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대충대충 결과만 좋게 뽑아내면 된다고 허용해줄 때가 늘어났다. 나이 쉰에 이제 와서 그렇게 산 게 부끄러워질 줄이야 누가 알았겠느냐는 말이다.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세월호 희생자 추모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촛불로 ‘미안하다’라는 글씨를 만들고 있다.(출처 :경향DB)


비가 올 확률이 70%가 넘는다는 일기예보를 듣고도 지금 당장은 비가 오지 않으니 우산 들고 나가는 게 귀찮아서, 또는 사무실에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우산에 막연한 기대를 걸고 맨손으로 집을 나서는 일이 자꾸 늘어난다. 결국은 누군가 써야 할 우산을 내가 대신 쓰지는 않았을까? 사무실의 누군가는 준비하기 귀찮아하는 나 대신 머리에 비를 맞았을지도 모른다.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

도로 한복판에서 신호등이 멎을 줄 알면서도 조금 빨리 가고자 건널목에 몸을 내던지고 달려간다. 서 있던 차들이 빵빵대지만 내 앞사람만이 아니라 내 뒤를 따라오는 사람도 있다. 그들을 믿고 손잡고 달린다. 설마 차가 나를 치기야 하랴. 그 뻔뻔한 배포로 무사히 길을 건너간다. 누군가는 1분 1초 아까워하는 나 때문에 약속 시간에 늦었을 수도 있다.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

뒷자리에 앉으면 가끔 안전띠 매기가 귀찮아서 그냥 가곤 한다.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에서도 그럴 때가 있다. 경찰 단속 때문에 매는 게 아니라 내 안전 때문에 매는 건데 왠지 그게 권력을 조롱하는 행동같이 느껴져 그런 바보짓을 한다. 지하철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다 사람들이 내리기도 전에 밀고 들어가는 무리에 내가 섞여 있지는 않지만 그들보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싫다. 싸우기 귀찮아서 그들의 이기심을 눈감아준다.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인정 넘치는 관심을 베푸는 건 그저 오지랖이라고 조롱한 적도 있다. 모임 끝나고 다들 청소할 때 난 눈 나쁘다는 핑계로 슬쩍 빠진 적이 많다. 지나친 경쟁과 학벌 중시 풍조가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내가 학벌 때문에 우대받는 걸 가끔 당연시했고 우리 아이는 그래도 대학 잘 갔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재활용 쓰레기를 나누어 버려야 하는데도 깡통 모으는 곳에 플라스틱 병을 버리고는 꺼내지 않은 적이 있다.

다시는,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 그러니 제발 살아 돌아오라고, 그 어둡고 추운 곳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오라고 눈물 콧물 질질 흘리며 손 맞잡고 빌어도 오지 않는구나. 아, 잘못했다. 내가, 우리가 잘못했다. 원칙을 지킬 줄 모르고 대강대강 편하게 돈 되는 일이면 닥치는 대로 해도 된다고, 그렇게 살아도 될 거라고, 그럴 거라고 말한 우리가 잘못했다. 그러니, 그러니.


이건범 | 한글문화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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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사반세기 전, 그러니까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386세대의 진보적 엘리트 상당수는 당시 급부상하던 ‘중산층’이라는 계층에 상당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곤 했다. 그 일차적 이유는 ‘중산층’ 자체가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조국 근대화’의 부산물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의 한국 경제는 3저 호황의 흐름을 타고 본격적으로 중산층을 양산하고 있었다.

이 중산층 대열의 선봉은 4·19세대 엘리트들의 차지였다. 한때 변혁의 주역이었으나 이제는 산업화의 실무자로 변신한 그들은 서울 곳곳의 아파트에 안착하면서 새로운 일상의 소비 모델을 선보였다. 그러니 당시 ‘변혁’의 민중적 전망을 공유한 386세대 일부가 중산층을 ‘소시민’이나 ‘프티 부르주아’ 같은 단어로 낮춰 불렀던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이 계층은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표변할 수 있는 기회주의적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386세대의 이런 태도는 체제가 제공했던 계급적 전망을 부정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그들은 어쨌든 발전주의적 체제가 길러낸 ‘엘리트’였기에,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계층 상승의 대열에 끼어들 수 있었다. 따라서 ‘민중’의 역사적 전망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중산층이 향유하는 풍요로운 일상의 매혹을 부정해야만 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그런 태도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그들이 변혁의 주체로 믿고 의지했던 ‘민중’ 역시 이 시점이 되면 중산층의 삶을 욕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 추이를 꿰뚫어 보고 있었던 이들은 집권 군부 세력이었다. 그들은 1987년의 시민항쟁이 쟁취한 13대 대선에 나서면서, 중산층을 ‘보통 사람’이라는 일상 언어로 번역한 후 정치적 안정을 통해 “보통 사람의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주지하다시피, 그들의 선거 전략은 야권 분열의 틈을 파고 들어가 큰 성공을 거뒀다.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일대(출처 :경향DB)


하지만 ‘보통 사람의 시대’는 쉽사리 오지 않았다. 3저 호황의 여파가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시장을 강타하면서 수많은 거품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코스피 지수와 집값은 1988년에 정점을 찍었는데, 그해 주식과 토지 거래로부터 발생한 자본 이득 추정치는 국민총생산의 약 26%, 약 55%에 달했다. 이미 보통 사람이 된 이들에게는 ‘불로소득’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던 호시절이었던 반면, 아직 보통 사람이 되지 못한 이들에게는 열패감을 안겨준 고난의 시기였다.

집권 세력은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주택 200만가구 건설과 신도시 개발 등 값싼 아파트의 공급을 통해 보통 사람의 대상과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그리고 삼성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삼성은 ‘신경영 전략’과 자기 계발 프로그램을 통해 자사의 ‘보통’ 임직원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겠다고 선언했다. 한편, 그 반대 진영의 진보적 엘리트들은 당시 호황기를 벗어난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을 두고 논쟁에 나섰다. “발전의 한계에 봉착한 전반적 위기”라는 견해와 “경기 순환상의 일시적 하강세”라는 견해가 부딪쳤다.

그리고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1980년대의 민중은 한동안 중산층과 서민으로 분리되더니, 이제는 그 중산층조차도 정체불명의 그 무언가로 빠르게 분해되는 중이다. 아파트와 사교육으로 상징되던 중산층 모델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지만,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만큼은 관성의 힘에 의지해 버티기에 접어든 모양새다. 딱히 묘수가 없기 때문일까? 역전의 용사들이 득실대는 여권은 한동안 서랍 속에 감춰두었던 각종 개발 정책들을 꺼내 들고, 중산층 진입에 성공한 386세대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야권은 언제나 그렇듯이 진정성을 따지며 통합을 위한 편 가르기에 여념이 없다. 어디에도 중산층 모델을 대체할 새로운 삶의 모델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가 없다. 2014년, 모두가 병들었다고 아우성인데 그들만큼은 아프지 않은 듯 보인다.


박해천 |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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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책상물림으로만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두루두루 경험이 필요하다. 경험 역시 지식의 한 형태여서 쌓는 것이 만만치 않다. 언제부터인가 지식을 세 가지로 나누어보는 버릇이 있다. 하나는 누가 안 가르쳐도 저절로 알게 되는 자연의 지식이며 둘은 몸을 통해 알게 되는 경험적 지식 그리고 셋은 말과 글을 통해 습득하게 되는 언어적 지식이다. 이런 지식들은 어떤 게 더 좋은지 나쁜지 어떤 게 더 우월한지 열등한지 하는 우열의 관계에 있지 않다.

가끔 목공일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지 않다. 가르치는 소질도 없거니와 무얼 배워야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까닭에 물리치기는 하지만 실상은 가르치고 배우는, 말하자면 언어적 지식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의 폭이 너무 작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혼자 해보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애써 찾아온 손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나에겐 그 말이 최선이다.

목수 일을 하는 데는 언어적 지식이 아니라 경험적 지식이 절대적이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그 어떤 가르침도 스스로 하는 것 이상의 경험을 줄 수는 없는 일이다. 목공일 뿐 아니라 몸을 써서 하는 일 대부분은 물성을 이해하고 도구와 연장을 다루기 시작하면 저절로 늘어가는 경험적 지식의 세계 속에 있다는 말이다. 경험적 지식을 언어적 지식으로 전환시키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별 소용이 없다. 경험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뿐 아니라 신체의 모든 감각이 동원되어 얻게 되는 총체적인 지식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출처: 경향DB)


스스로 한다고 경험적 지식이 마냥 느는 것은 아니다. 또 경험을 많이 쌓는다고 살아가는데 더 유리할지는 의문이다. 걸음마를 갓 시작한 아이를 끼고 해외로 돌아다니는 부모도 제법 있으니 다양한 세상 경험이 아이의 미래에 도움이 되려니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어린아이가 세상을 보면 얼마나 볼 수 있을까 싶다. 늘 그렇듯이 교육열에 관한 한 무한히 열려 있는 우리나라 부모의 갸륵한 심성을 생각하면 아이에게 풍부한 체험을 통해 감각을 발달시키고 세상을 경험하게 한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하지 않으니만 못한 경험도 있으니 요즘 어디서나 벌어지고 있는 체험학습에 관한 이야기다.

체험과 경험의 사전적 의미와 달리 체험은 어떤 일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사전에 조금 맛보기로 하는 경험쯤으로 정의된다. 체험이 어디까지여야 한다는 규정이야 있을 리 없지만 그저 신기한 것 만져 보고 구경하는 걸로 체험이 이루어진다. 벌레나 파충류를 주물럭거리는 전시회가 있는가 하면 소젖을 짜고 말을 타보는 생태체험을 내세운 관광 상품도 있다. 그런데 이런 체험이 꼭 경험적 지식을 쌓는 방식은 아닌 듯하다. 작업실 옆의 공방을 하는 친구에게 어느 날 주변 생태농장에서 체험학습을 위한 새집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아이들과 가족을 위해 가장 간단한 목공작업으로 새집을 선택한 것 같은데 그마저 미리 다 재단되어 있는 것을 가져다 못만 박아 조립하는 걸 새집 만들기 프로그램이라고 내건 모양이다. 고민 끝에 그는 거절하고 말았다. 고작 그걸로 나무의 체험이 될 리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옆 동네 도자기 굽는 체험도 크게 다르지 않다. 흙을 주물럭거려 간단한 그릇을 만들거나 초벌구이 된 그릇에 그림을 그려보는 게 도자 체험의 대부분이다.

나무에 못 몇 개 박아 넣고 흙 몇 번 주무르며 체험을 끝낸 아이가 나무와 흙의 물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나마 하지 않는 것보다 낫지 않겠느냐고?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섣부른 체험은 오히려 경험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미리 차단해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늘겠지만 딱 그만큼의 지식에 그칠 가능성이 너무 높다. 한 번의 단순한 체험으로 그 분야를 경험한 듯 말하는 것, 그건 차라리 무지에 가깝다. 모든 지식이 그렇듯이 속성으로 만들어진 경험은 꼭 그만큼의 탈이 나기 십상이다.


김진송 | 목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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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문학의 대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단편 소설 <겸손한 제안>은 지금 읽어도 몸서리칠 만큼 신랄하다.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런던 빈민층의 구제를 위해 겸손하게 정책 하나를 제안하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빈민층이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자녀를 사육해 런던의 부유층에게 음식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잘 기른 건강한 어린아이는 굽거나 삶거나 튀기거나 찌거나 어떤 방식으로 요리를 하든 대단히 맛이 좋고 영양이 많은 음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정책적으로 어린아이를 사육할 수 있게 홍보를 하고 부유층이 이 어린아이를 구매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내용이다. 물론 이 소설은 빈민층 구제에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아니 그럴 의지조차 없는 당국을 비판하는 풍자 소설이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그로테스크하다. 정책을 제안하는 화자의 목소리는 사뭇 진지하기까지 해서 얼토당토 않은 이 제안을 더욱 기괴한 것으로 여겨지게 한다.

그러나 돌아보면 이 소설이 추구하는 그로테스크는 현실과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성립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외려 이 소설의 기괴함은 소설이 주장하는 내용이 너무나 현실적이라는 사실에서 발생하는 듯하다. 그러니까 적어도 <겸손한 제안>은 현실보다는 덜 기괴하다. 스위프트가 위대한 풍자 소설가인 이유는 그가 추구하는 그로테스크가 단순하게 기괴하고 혐오스러운 무언가를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강렬하게 현실을 환기하면서 소설이 그려낸 현실보다 실제 현실이 더 기괴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근대 한국 소설도 그로테스크를 심각하게 다루어 왔다. 한국전쟁 뒤의 황폐화된 정신세계를 그려낸 손창섭, 장용학을 거쳐 근대적 생활방식이 자리를 잡은 시대의 정신적 공허를 묘사하는 남정현에 이르기까지 한국 소설가들은 기이하게 뒤틀리고 일그러진 한국인의 자화상을 그려내는 데 몰두했다. 그들은 그로테스크를 추구했다기보다 누구보다 사실적으로 현실을 재현하려 애썼을 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그들이 그려내려 애쓴 현실 자체가 그로테스크했기에 그들의 작품 역시 그러한 풍모를 띠게 되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오늘날 젊은 소설가들의 작품에서도 그로테스크를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한국 소설에서 그로테스크는 때로는 부분적으로 때로는 전면적으로 한 편의 소설에 깃들어 있다. 특히 올해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편혜영 소설가의 작품세계는 그로테스크의 전면화라 해도 무방할 만큼 그로테스크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 외에도 김숨, 백가흠, 김태용과 같은 소설가의 작품세계도 그로테스크에 가깝고 이들처럼 전면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기괴함을 불어넣지 않는다 해도 많은 소설가들의 작품에서 그로테스크를 엿볼 수 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제 그로테스크는 흔해졌다. 그리고 그로테스크가 흔해졌다는 말은 현실 자체가 그로테스크로 범람하는 공간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퀼텐 마세이스(추정)<그로테스크한 여인>(1525~1530)(출처 :경향DB)


아무리 파격적인 소설도 현실보다 탁월할 수 없게 되었다. 아무리 문학이 섬세하게 현실을 포착해 내도 그 순간 이미 현실은 한 걸음 더 기괴함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버린다. 이태 전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국가정보기관의 여론조작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거듭하며 여기까지 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 믿었기에 불가능한 일이 현실화되어 나타났을 때의 그로테스크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제 국정원이라는 존재는 하나의 현실이라기보다 하나의 추문처럼 여겨지게 되었고 진실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국정원은 더 기이하게 신비로워지고 있다.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국정원은 문학이 만들어 낸 은유가 아니다. 현실이다. 그래서 더욱 끔찍하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이처럼 기괴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구체적인 표상인 동시에 조너선 스위프트와 같은 소설가에게 영원히 영감을 불어넣는 현실이라는 괴물이다. 이제 문학에서 그로테스크는 손쉬운 기법이 되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할 것. 적어도 현실은 구체적으로 진보하는 그로테스크임을 알려주는 국정원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유용하리라.


손홍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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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시대가 현재와 분리되어 명백한 과거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20년의 숙성을 거친다. 30년 전은 너무 아득하고, 10년 전은 여전히 생생하기 때문이라는 막연한 이유도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인간의 삶과 맞닿아 있어서일 것이다. 인간이 대중문화를 가장 왕성하게 소비하는 나이는 10~20대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주저함이 없고 이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주변에 그득하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장 왕성한, 화양연화의 시기다. 그리고 20년이 흐른다. 도무지 요즘 아이들이 즐기는 첨단의 문화를 이해하기가 힘들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감성의 습도도 현저히 떨어진다. 섣불리 끼어들었다가는 자칫 ‘꼰대’ 소리를 들을까 두려워진다. 말하자면 기성세대가 되는 것이다. 자신이 지금의 그들과 같았던 시절의 문화는 그렇게 회고의 대상이 된다. 전두엽 깊은 곳 어딘가에 묻혀 있던 감성의 화석들이 회상의 밀물에 다시 생명력을 회복한다. 기억을 추억으로 만드는, 20년의 시간이다.

1994년 4월5일, 자신의 머리에 숏건을 쏜 남자가 있다. 너바나의 리더였던 커트 코베인. 1991년 두번째 앨범 <네버마인드>에 실린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으로 스타덤에 오른 그는 단 석 장의 앨범을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커트 코베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한국의 일간지 사회면에 부고가 실릴 정도로 컸다. 그의 요절은 얼터너티브 시대를 열었고 엑스 세대의 등장만큼이나 격변을 몰고 왔다. 미국에서는 벡, 그린데이 등이 등장하며 하이브리드와 네오 펑크의 시대를 도래시켰고 영국에서는 오아시스와 블러가 브릿팝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언더그라운드의 중심이 신촌에서 홍대 앞으로 이동하는 계기의 하나가 됐다.

록그룹 '너바나'의 공연에서 리드싱어 커트 코베인이 열창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1994년 극동방송국 근처에 문을 연 드럭이라는 가게가 있었다. 1960~1970년대의 록을 주로 틀어주던 신촌의 음악 술집들과는 달리 당시 하나둘씩 생겨나던 홍대 앞의 음악 술집과 클럽들은 레게, 메탈 등 주력하는 장르가 있었다. 드럭은 펑크와 얼터너티브만 트는 가게였다. 그 장르의 애호가들이 주로 모여드는 건 당연했다. 그들은 찢어진 청바지와 빨지 않은 스니커즈, 떡진 머리로 너바나와 그린데이, 섹스 피스톨즈와 클래시를 들으며 말없이 병맥주를 홀짝거렸다. 몇 번의 계절을 보낸 후인 1995년 4월5일, 드럭의 ‘죽돌이’들은 커트 코베인 추모 공연을 열었다. 싸구려 앰프와 드럼을 가져다놓고 너바나의 곡을 카피했다. 공연의 마지막, 너바나가 늘 그러하였듯이 기타와 드럼 세트를 부쉈다. 그저 추모를 위했을 뿐인 이 공연은 그러나, 한국 언더그라운드의 흐름을 바꾸는 단초기도 했다. 헤비메탈이 주도하던 직전의 시대에 중요한 건 기량이었다. 몇 년씩 레슨과 연습을 거쳐 달인의 경지에 이른 후에야 무대에 서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커트 코베인 추모 공연은 코드 세 개만 알아도, 단순한 비트만 칠 수 있어도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을 홍대 앞의 음악 키드들에게 일깨워줬다. 기량의 시대를 순식간에 태도와 표현의 시대로 전환시킨 것이다. 장소도, 장르도, 화두도 다른 이 새로운 흐름에 사람들은 ‘인디’란 이름을 붙였다. 커트 코베인의 요절이 태평양을 건너 딱 1년 만에 한국 언더그라운드의 항로를 뒤튼 것이다.

커트 코베인에게 영향 받아 음악을 시작했던 20대 청년들이 어느덧 40대가 됐다. 1995년부터 매년 열리던 커트 코베인 추모 공연도 언제부터인가 슬며시 사라졌다. 더 이상 아무도 너바나를 카피하지 않지만, 음악 술집에서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을 신청하는 게 ‘호텔 캘리포니아’와 ‘보헤미안 랩소디’를 신청하는 것만큼이나 촌스러운 일이 되었지만 올해는 다를 것 같다. <응답하라 1994> <건축학개론>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1994년 4월5일의 강렬한 기억들이 있으니까. 그 기억의 탄생일이 정확히 20년이 흘렀으니까.


김작가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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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방송가 최대의 개편 시즌이다. 4월을 맞아 분주해진 방송가는 올해 유독 많은 새 프로그램을 예고했다. 이 중 제일 눈에 띄는 것은 연애 프로그램들의 경쟁이다. 솔로들을 위한 연애상담 프로그램 <연애고시>(MBC)를 비롯해서 지상파 3사 전부 연애 관련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케이블 TV와 종합편성채널을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연애 프로그램 열풍에 지상파가 뒤늦게 가세한 모양새다. 그리하여 방송가에 연애 프로그램 전성시대가 다시 찾아왔다. 돌이켜보면 최초로 열풍이 시작됐던 1990년대 이후 약 20년 만이다.

1990년대 방송가에는 신세대 문화를 대변하는 신종 장르들이 생겨났는데 트렌디 드라마와 함께 대표적인 장르가 ‘짝짓기 프로그램’이었다. 1992년 SBS <사랑 만들기>, 1994년 MBC <사랑의 스튜디오>, 1996년 SBS <TV 퀴즈미팅> 등이 신세대의 사랑법을 보여주며 인기를 모았다. 사회자의 중매가 큰 역할을 했던 이전의 연애 프로그램과 달리, 이들은 출연자들의 능동적인 구애방식이 특징이었다.

일요일 아침 일반 선남선녀를 출연시켜 시청자에게 큰 사랑을 받았고, 다른 방송사에도 영향을 준 MBC '사랑의 스튜디오'(출처 :경향DB)


이러한 짝짓기 프로그램이 예능계의 대세로 자리 잡은 해가 1999년이다. SBS <남희석·이휘재의 멋진 만남>과 <기분 좋은 밤> ‘결혼할까요’, MBC <이브의 성>, KBS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 ‘서바이벌 미팅’ 등이 동시에 방영을 시작하며 구애 경쟁을 펼쳤다. 이 열풍의 배경에는 IMF 외환위기 이후 치열해진 생존 경쟁 시대에 연애 프로그램의 대리만족이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데 그 이유가 있다. 실제로 이 시기 프로그램에는 판타지 성격이 훨씬 강해졌다. <남희석·이휘재의 멋진 만남>은 연예인과 일반인의 화려한 데이트였고, <이브의 성>과 ‘결혼할까요’는 공개 고백 이벤트 대행 프로그램에 가까웠다.

‘서바이벌’ 구도 강화도 중요한 변화였다. 이 프로그램들이 짝을 찾기 위한 단순 경쟁에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서바이벌 구도로 전환한 것은 무한경쟁체제로 돌입한 당대 현실의 반영과도 같았다. 현실의 경쟁체제가 심화될수록 짝짓기 프로그램의 서바이벌 구도도 독해졌다. 2011년 시작된 SBS <짝>은 그 절정이었다. 연애에만 집중하도록 설계된 ‘애정촌’은 사실 ‘스펙’에 따라 서열화된 현실사회 축소판이자 선택받지 못한 자의 비애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최근 그곳에서 일어난 비극과 ‘애정촌’의 폐쇄는 이 냉혹한 서바이벌의 끝이 어디인지를 말해주는 징후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재 제2의 전성기를 이끌어가는 연애 프로그램들 역시 유사한 징후를 보여준다. 일례로 요즘 연애 프로그램의 주류가 JTBC <마녀사냥>, tvN <로맨스가 더 필요해> 등의 상담 프로그램인 것은, 무한경쟁 시스템에 지친 ‘삼포세대’가 연애 고수들의 경험을 통해서라도 대리만족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대리만족의 성격도 IMF 이후의 연애 프로그램에 강화된 판타지와는 성격이 다르다. 그것은 연애가 곧 스펙인 시대에 경험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생존법으로서 대리경험이다. 이들 내용이 하나같이 처세법을 알려주는 ‘팁’으로 구성돼있고, 연애보다 그 직전의 감정인 ‘썸’을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요컨대 연애 프로그램의 변화가 그 시대의 사회 변화를 보여준다면, 현재의 연애 프로그램은 차마 ‘애정촌’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없는 자들과 그곳에서 밀려난 이들을 위한 생존지침서다. 프로그램이 알려주는 ‘유혹의 기술’은, 실은 유혹당하지 않기 위한 지식이며, 소위 ‘어장 관리’에 희생당하지 않기 위한 ‘방어의 기술’이다. 그래서 지금의 연애 프로그램 전성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오늘의 빈곤한 연애 현실을 증명한다. 연애시대는 진작 끝났다. 현재의 연애 프로그램들은 연애담이 종료된 이후의 후일담 혹은 퇴화의 흔적에 가까워 보인다.


김선영 | 드라마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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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찬바람이 매섭던 겨울 끝자락 어느 날, 전시장에 다녀왔다. ‘본업: 생활하는 예술가’란 제목을 단, 팔팔한 큐레이터들이 조직한 기획전이었다. 전시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았지만, 마침 전시를 보러간 날 있었던 아티스트 토크 역시 흘려듣기 어려운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기획전에 초대된 작가들은 거의 전업 작가로서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고, 그것을 자신의 작업에 끌어들이고자 했던 이들이었다. 지금이야 모든 삶이 처한 처지를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되었지만, 그들도 역시 아니 누구 못잖게 ‘불안’이란 낱말을 곱씹고 있었다. 어느 작가는 멋쩍은 표정으로 남들 다 살기 힘든데 유독 티를 내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또 어떤 작가는 굶어 죽기 십상이어서 배운 재주로 미술관의 전시디자인 용역을 해서 먹고산다면서 용역과 예술 사이에 놓인 자신의 처지, 외주화된 미술제도 내부의 노동 착취를 근심하고 있었다. 실은 이것이 그들의 작업이기도 했다. 바람에 펄럭이는 대형 면포 위에 허탈하게 담벼락 위에 걸터앉은 이들을 그린 작가는, 어느 자리에서인가 생활을 이야기한 친구들이며 지인들을 그리려 했다고 한다. 불안을 그리려 했던 셈이다.

예술가들이 자신이 하는 행위를 노동이라고 극구 주장한다는 것을 가볍게 여길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우리 시대에 횡행하는 풍경과 대조를 보여, 놀라게 한다. 모든 상품은 예술품처럼, 모든 노동은 예술가의 창작처럼, 모든 진열은 예술품 전시처럼, 쓸모 대신에 감성과 스타일로, 보수는 역량에 대한 보상으로! 이런 슬로건들이 여전히 난무하는 창조경제 시대의 경제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아프리카예술박물관 예술가 숙소 (출처 :경향DB)


언젠가부터 경제는 스스로 예술을 닮거나 흉내내려는 시늉을 접고 숫제 스스로를 예술이라 자처할 지경이 됐다. 그 가운데 노동의 미학화는 가장 앞서 나간 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터에서 일하는 이들은 모두 일을 자신이 지닌 솜씨와 재능, 열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받는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란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지만, 세상은 끈덕지게 자신의 일을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처럼 하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 탓에 일의 이름도 해괴하게 바뀌어왔다. 그런 우아한 이름을 갖지 못하면 마치 시대에 뒤처지고 창피하다는 듯이, 주방장을 셰프라 부르고, 제빵공을 파티시에라 부르고, 커피 뽑는 노동자를 바리스타라 부른다. 그건 그렇다 쳐도 햄버거 가게 오토바이 배달원을 라이더라고 부르는 것은 어쩐지 굴욕스러운 기분까지 안겨준다. ‘알바 노동’의 피해를 알리는 인터넷 누리집에 들어가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배달 알바의 고충은 라이더란 말을 마주하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미적인 자본주의라 불러도 좋을 이런 전환은 역겨운 기만이기도 하지만 또한 새로운 자본주의가 굴러갈 수 있도록 만드는 비결이기도 하다. 그런 예술가 이데올로기는 노동자들의 계급적인 연대와 단결을 막는 데 괜찮은 효과를 나타낼 수 있고, 생존을 위한 임금이 아니라 재능과 끼에 대한 포상으로 임금을 둔갑시키며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는 최고경영자를 궁극의 예술가로 우대하는 데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한계효용의 경제학은 이제 미적 가치의 경제학에 양보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젊은 예술가들은 그런 노동이 미적인 행위로 둔갑한 세계란 본 적도 없다는 듯이 예술가의 활동은 노동이라고 강변한다. 예술을 자처하는 노동 그러나 노동이라고 항변하는 예술. 이런 자리바꿈의 대위법을 조율할 수 있는 논리는 없을 것이다. 실은 예술과 노동은 모순이기 때문이고, 예술은 끝까지 노동의 반대편에서 자본주의적 노동의 문제를 응시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예술이 노동임을 자처한다면, 그것은 예술이 임계지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구는 문화융성을 꿈꾼다지만, 실은 오래 전 문화파탄이 벌어진 지 오래이다.


서동진 | 계원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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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1894년 2월 고부민란을 시작으로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난 지 두 갑자가 되는 해다. 나는 이 사건을 생각할 때마다 젊은 시절 품고 다니던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집 <금강>이 떠오른다. 갑오농민전쟁을 소재로 한 이 시에 곡을 붙여 만든 뮤지컬이 재작년 늦가을에 칸타타 형식으로 무대에 올랐는데, 그때 나는 우리 노동자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세종문화회관에서 노동절 기념으로 이 칸타타를 공연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했었다. 지금의 노동자가 당시의 주인공인 농민이니 그렇고, 역사와 시와 음악이 어우러진 감동의 주인 자리에서 노동자들이 배제되어야 할 어떠한 까닭이 없기에도 그렇다.

세상의 모든 문화예술 분야는 그 나름의 독특한 대화 구조를 가지고 고단한 영혼에 생명의 물을 뿌려준다. 그런데 아는 만큼 보인다, 아는 만큼 들린다는 말처럼 어떤 문화예술 분야에든 문턱이 있다. 문턱 낮은 쪽을 대개 대중문화, 대중예술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이는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래서 어느 수준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이나 즐거움의 울타리를 넘어서기는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문턱 높은 곳의 문화나 예술이 주는 감동은 따로 있다고 암시하는 이름짓기다.

이런 대비 구도 때문인지 흔히 고급예술은 부자나 공부 많이 한 사람들 것이고, 대중문화는 서민과 무식한 사람들에게 어울린다는 이분법이 작동한다. 사람의 일상을 다루는 방송 꼭지들은 이런 식의 대비를 아주 교묘하게 활용한다. 매우 유식한 지식인이나 상류사회 인물이 대중과 호흡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트로트 같은 대중가요를 부른다든가 개그 방송의 유행어를 사용한다든가 하는 게 이미 틀 지워진 문화 양극화를 바닥에 깔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양극화는 대중의 머릿속에서도 작동한다. 고급예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서민이나 노동자는 좀 별종이라고 보는 시선 따위가 그렇다. 노동자라면 소주나 막걸리를 마셔야지 무슨 와인이나 그런 야릇한 술을 마시느냐는 선입관처럼 말이다. 그야 비싸서 그럴 뿐인데도. 하지만 문화예술을 놓고 보자면 요즘은 값이 비싸다는 문턱보다는 관심과 시야가 좁은 탓에 시간 투자를 하지 못한다는 문턱이 더 높은 것 같다. 배우고자 한다면 고급문화나 예술이라고 제쳐둔 것도 돈 별로 들이지 않고 배울 곳이 많은 세상이다. 문제는 관심에서 나오는 시간 투자다.

폐광된 삼척탄좌 정암 광업소를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든 강원도 정선 삼탄아트마인 (출처: 경향DB)


내가 이소선합창단에 가입하여 배우는 노래는 대개 ‘민중가요’라 노래 멜로디가 어렵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화음은 그리 쉽지 않다. 당초 합창을 염두에 두고 만든 노래가 아닌지라 그걸 합창곡으로 편곡하면 멜로디 이외의 부분들은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악보를 보면서 바로 노래를 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몇몇 단원들에게 이런 편곡은 상당히 벅찬 도전의 과제다. 그런데 해법은 뜻밖에 간단하다. 시간을 투자하면 된다. 출퇴근 길에, 청소하면서, 설거지하면서 듣고 또 들으면서 따라하면 못 따라갈 노래는 없다. 그렇게 극복하니 울림과 떨림의 새로운 감동이 우리 것으로 남는다. 하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이며 들리는 것이다.

우리 노동자에게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진 문화예술 영역이란 없을 터인데도 우리에게는 ‘대중’이라는 딱지가 붙은 곳에서만 놀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은 아닐까? 옛날에는 그게 돈 때문에 자연스러운 문턱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돈 때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그어놓은 금 때문에 우리는 어떤 문턱을 넘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노동자들은 인류가 빚어내는 여러 차원의 감동을 골고루 맛보지 못하고, 그런 탓에 인류의 문화를, 예술을 이끌어가는 주역으로서 나설 수 없는 한계를 지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려울 때일수록 사명감보다는 감동이 우리를 일으켜 세우고 더 멋진 미래를 꿈꾸게 북돋는 법이다. 


이건범 | 한글문화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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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괜찮다는데 우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정작 본인은 의연한데 우리나라 전체가 온통 분노로 끓어올랐다. 아무리 다시 봐도 김연아가 더 잘했다.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외신들도 흥분했고 금메달 청원에도 많은 외국인들이 서명했다니 말이다. 그러나 올림픽의 문제가 어디 심판의 편파 판정만이겠는가. 올림픽이 스포츠를 통해 평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고 승리보다는 참가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본래의 숭엄한 취지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 그것은 나라의 힘을 과시하거나 스타를 만들어내는 거대한 이벤트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도 금메달이 아니면 성에 차지 않는다. 금메달을 못 딴 선수는 아무리 최선을 다했어도 국민들께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여야 하고, 올림픽에 여섯 번이나 출전한 위대한 영웅의 뒷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메달을 향한 치열한 경쟁이 스포츠 세계의 일만은 아니다. 음악을 하는 아이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콩쿠르에 나가 승부를 겨룬다. 재능이 뛰어난 것인지 아니면 심하게 단련된 덕분인지 우리 아이들은 유독 경쟁에 강하다. 이제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입상을 하는 것은 더 이상 화젯거리도 아니다. 1974년 정명훈의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수상이 온 나라를 열광시켰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1995년 이후 차이코프스키, 쇼팽, 퀸 엘리자베스 등 세계적인 음악 콩쿠르에서 300명이 넘는 한국인이 결선에 진출했고 이 중 70여명이 최종 우승을 했다. 이 정도면 콩쿠르 무대에서 한국은 단연 세계 1등 국가이다. 클래식 음악의 불모지에서 일구어낸 놀라운 기적이다.

이것이 외국인들에게는 불가사의로 보였나 보다. 급기야 벨기에 공영방송의 음악감독이 그 비밀을 추적하겠다며 나섰다. 직접 서울에 와서 많은 음악계 인사와 수상자들을 만나고 난 후 만들어진 것이 <한국 클래식의 수수께끼>라는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다. 수수께끼 치고는 싱거운 면이 없지 않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교육열, 자녀들에게 올인하는 맹모삼천 어머니들의 헌신, 그리고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과 피나는 노력이란다. 역시 우리 어머니의 힘은 위대하다.

한국 젊은이들이 세계 콩쿠르를 점령하다시피 하니, 클래식 음악 본토의 저항이나 반발도 점차 노골화하고 있다. 결선 진출자나 수상자를 정할 때 동양인에 대한 쿼터가 있다는 말이 나돈 지도 꽤 오래다. 한국인은 상만 휩쓸어 가고 세계 음악계에 아무런 공헌도 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기도 한다. 한국 연주자들이 기교는 뛰어나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음악적 감성조차 기계적으로 교육된 것에 불과하다는 비아냥도 적지 않다. 사정이 이러니까 심사 과정에서 텃세를 피하기 어렵고 편파 판정에 대한 시비가 일어나는 일도 적지 않다. 임동혁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3위에 그치자 2등 수상자의 자질을 문제 삼아 수상을 거부한 일은 아직도 음악계에서 유명한 사건이다.

인천시립교향악단과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협연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그래서 일찍이 작곡가 벨라 바르톡이 “시합은 달리는 말들이나 하는 것이지 예술가들이 할 만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새삼스럽게 콩쿠르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경쟁할 무대가 없는 음악이나 스포츠는 공허하고 쓸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만 하고, 역사는 일등만을 기억한다는 우리의 생각을 이제는 되돌아볼 때다. 적어도 예술이나 스포츠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말이다. 메달을 딴 사람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 말라. 우리의 젊은이들이 최선을 다하되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몫이다. 혹독하기 짝이 없는 경쟁세계에서도 진정한 승자는 과정까지 즐길 수 있는 사람이다. 예술과 스포츠를 구경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관객에게도 품격과 너그러움이 필요한 때가 왔다.


민은기 | 서울대 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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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나 공기업 노조의 대규모 파업이 사회 쟁점으로 떠오를 무렵이면, 정부나 보수 언론은 반대 여론의 형성을 위해 ‘귀족 노동자’라는 꼬리표 달기에 열을 올린다. 일종의 ‘구사대’로 동원된 이 호명법에 따르면 ‘귀족’에 해당하는 노동자의 평균연봉은 대략 5000만∼6000만원 선이다. 지난해 말,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에 나섰던 코레일 노동자의 경우 6300만원이었다. 2013년 기준으로 한국의 국민소득이 2만4000달러니, 코레일의 평균연봉 수령자를 4인 가족의 가장으로 가정할 경우, 그 금액은 중산층적 삶의 기준에 겨우 턱걸이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귀족 노동자’라는 꼬리표가 민심의 향방을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국세청의 소득세 관련 자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총소득을 신고한 1887만명의 국민 중 절반인 943만명의 평균 월 소득은 140만원대에 불과하며, 과세 미달자는 560만명에 달한다. 반면 근로소득자 상위 10%인 155만명의 평균연봉은 약 9456만원이며, 이들의 급여 총액은 전체의 33.5%를 차지한다.

바로 이런 소득 불균형의 상황이야말로 ‘귀족’이라는 표현이 일반 시민의 정서에 파고들어 파업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필요조건이 아닐까? 실제로 ‘나’와 계층적으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고 생각했던 노동자들의 소득이 예상치를 훨씬 웃돌 때, 상대적 박탈감의 강도는 높아지게 마련이다. 물론 1980년대적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많은 노동자들이 타인의 연봉을 확인한 후 더 나은 삶을 위해 ‘임금 인상 투쟁’에 나서는 시나리오를 떠올려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의 양상이다. 일상의 정상적 삶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는 양극화의 거센 소용돌이 앞에서 각성은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힘겨운 의식 전환의 제의인 반면, 질시는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감정의 진통제이기 때문이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이 질시의 감정이 종종 적대적 태도로 증폭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가운 벗은 전공의 ˝우리도 노동자˝ (출처: 경향DB)


특히 “고객 감동”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1990년대식 기업 광고에 익숙한 이들이 소비자로 변신해 ‘노동 귀족’과 직간접적으로 대면할 때, 증폭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손님은 왕”인데 ‘나’를 왕으로 대접해줘야 하는 이들이 ‘나’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왕’이라고 생각하는 소비자와 ‘귀족’이라는 수식어를 단 노동자 사이에 날카로운 대립각이 세워진다고 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

요약하자면 일반 시민 상당수는 한 번은 노동시장의 경쟁자로, 또 한 번은 상품이나 서비스의 소비자로, 그렇게 두 차례에 걸쳐 ‘노동 귀족’과 직간접적으로 마주치는 셈이다. 전자의 대면은 하향평준화를 향한 기괴한 평등주의에 속절없이 휘둘린다. 자본과 노동의 갈등을 무력화시킬 정도로 급속도로 확대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재벌과 중소기업,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남녀 간의 소득 격차는 이 평등주의의 에너지원이나 다름없다. 한편 후자의 대면은 지독한 소비자 중심주의의 자장 안에서 진행된다. 저녁이 사라진 세상에서 소비의 쾌감을 통해 한 뼘의 자존감이라도 확보하려는 ‘고객님들’의 옹색한 발버둥이 이 소비자 중심주의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하향 평등주의와 소비자 중심주의라는 장애물을 뛰어넘어 공화국 시민으로서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어쩌면 의료영리화 및 원격진료 반대와 수가체계 개선을 내걸고 집단휴진에 나선 의사들, ‘노동 귀족’과는 전혀 다른 사회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이 전문직 종사자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문제가 그런 모색의 첫 출발점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박해천 |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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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0년 전의 일이다. 전시를 열고 있는데 역사학을 전공했다는 분이 찾아왔다. 미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는 내가 만든 목물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즈음 나온 근현대사와 관련된 내 책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현대성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가 코카콜라에 대한 글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코카콜라는 맥도널드 햄버거와 함께 미국 대중소비사회의 상징적인 아이콘이다. 그 코카콜라를 통해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싶다는 거였다. 코카콜라가 세계를 장악하게 되는 과정은 현대가, 자본이 어떻게 세계화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코카콜라를 통해 현대성을 해부하려는 그의 시도는 나에게도 흥미로운 것이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엊그제 집으로 책을 한 권 보내왔다. 바로 그가 쓴 코카콜라에 대한 것이었다. 10년 동안 스스로에 대한 약속을 지키려는 듯 책은 두툼하고 내용은 촘촘하다. 코카 성분도 없고 콜라 성분도 없으며 그저 설탕물에 불과한 코카콜라가 어떻게 욕망을 자극하는 자본의 상징이 되었는지, 그 역사가 조밀하고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현대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우리에게 현대는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를 이해하려 골머리를 앓는 시절이 있었다. 어느 날 느닷없이 우리에게 다가온 현대는 처음엔 낯설고 어색하게 그리고 곧바로 매우 익숙하게 자리 잡았고 미심쩍은 회의의 눈길도 주기 전에 우리의 사회 문화현상 그대로의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이론으로 가늠하는 현대는 일상의 삶에서 늘 삐딱한 모습으로 등장하곤 했다. 현대는 아버지와의 작은 의견차이로도 확인된다. 집을 지으며(물론 현대적으로) 흙 마당에 콘크리트를 깔자고 고집하는 아버지가 모더니스트임에 틀림없다면, 잔디를 깔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는 포스트모던인가? 매번 그런 식이다. 현대가 시작된 후로 일상의 삶은 근거 없는 새로움의 주장과 속절없는 변화의 널뛰기 끝에 오늘 우리의 모습이 되었다.

서로 다른 세계 속에서 현대는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어느 한 지점으로 쏠려 가고 있는 건 분명하다. 소비사회의 부박한 대중문화가 우리의 모습이라면 그 끝에는 여지없이 자본이 자리 잡고 있다. 코카콜라가 그렇듯이 현대화니 세계화니 하는 말들은 그 미끼였던 셈이다. 설탕물에 불과한 코카콜라에 대한 환호는 단지 욕망의 자극과 반응에 휩쓸리는 대중들의 모습을 말해주는 것만이 아니다. 자본은 모든 걸 상품화시킨다. 사람과 사물, 직업과 제도, 역사와 문화, 사건과 이벤트 그리고 풍경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마저도. 아무것도 아닌 것의 절대적인 신화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대중들은 그걸 새로운 신으로 받든다. 한없이 가벼운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의식을 지배하는 신이다.


욕망의 코카콜라 이미지 (출처 :경향DB)



모든 것은 상품으로 전락하고 일상은 속절없이 그 속으로 빨려든다. 대중문화의 소비사회는 새로운 변화 그 자체에 대한 찬양으로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환호에 이은 망각의 패턴은 요지부동이다. 대책 없는 쏠림과 망각의 반복적인 패턴 속에 일상의 작은 틈조차 낯설고 익숙한 상품으로 메워져 버린다. 애써 사유와 휴식의 공간을 찾는 순간조차 우리들의 손엔 스타벅스 커피와 코카콜라가 들려 있을 것이다.

어떤 다른 현대적 사회보다 새로움의 변화에 민감하며 끊임없이 요동치는 사회가 바로 우리일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겨누는 자본의 욕망은 끝을 보이지 않는다. 이미 일상의 삶을 지배하는 것도 모자라 삶 자체를 끊임없이 재편집하는 자본의 거대한 힘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버린 우리의 삶은 이제 무심코 집어든 코카콜라만큼이나 무감각하다.


김진송 | 목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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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특별한 방법이란 없다. 그러나 소설가를 꿈꾸는 누군가가 물을 때면 소설가처럼 읽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소설가처럼 읽는다는 건 그 소설을 쓴 소설가가 어떻게 고군분투했는지를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소설가 공선옥의 오랜 독자다. 지난해 출간된 그의 장편소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를 읽었을 때 이전까지 그가 머뭇거렸던 어떤 지점을 이번에는 사뿐히 통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그런 변화는 사소하다. 하지만 눈에 띄지도 않는 이 사소한 변화가 사실은 심오한 변화다. 그는 흔히 광주의 작가로 기억된다. 그의 문학적 이력과 삶의 이력 모두 광주민중항쟁에 탯줄을 두기 때문인 듯하다. 이 소설 역시 광주 이야기다. 그가 광주에 천착하는 방식에는 남다른 점이 있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모든 소설에는 광주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으며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학살자들을 용서한 적이 없다. 그가 광주를 다루었거나 다루지 않았거나 그의 모든 소설에는 차분한 분노가 흐른다. 어쩌면 그는 글쓰기를 통해 상처를 치유해 왔다기보다 혹시라도 누가 자신의 슬픔과 분노와 상처를 빼앗아 가기라도 할까봐 두려워하며 곱씹어 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많은 이들이 시효가 지나버린 슬픔이라 치부하는 광주를 여태도 홀로 생생한 아픔으로 간직한 거의 유일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에서는 기묘한 방식으로 이전까지의 자신을 수정하고 있다. 이 소설의 제목에서 ‘노래’는 다른 낱말로 대체할 수 있다. 슬픔을 넣어도 되고 희망을 넣어도 된다. 혹은 화해나 용서를 넣어도 된다. 궁극적으로 이 소설은 ‘그 용서는 어디서 왔을까’라는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작가 공선옥 (출처: 경향DB)


그럼으로써 이 소설은 용서하되 결코 용서하지 않는, 양립이 불가능해 보이는 두 정서를 동시에 품는다.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용서한 적이 없던 그가 최초로 용서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여전히 용서하지는 않았다. 그가 이 소설에서 새로이 통과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러한 사소하지만 중요한 변화를 깨달았을 때 나는 전율을 느껴야 했다. 비유하자면 부드럽고 차가운 손이 내 심장을 움켜쥐는 듯했다. 그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단 한 번도 용서하지 않았던 그가 최초로 용서했으나 또한 결코 용서하지 않았음을 이처럼 절묘하게 보여줄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어둡고 긴 통로를 홀로 걸어야 했을까. 한 편의 아름다운 소설은 태생부터 참혹한 법이다. 이 소설이 돌풍을 일으켰다는 소문도 듣지 못했고 그가 어디선가 한몫 잡았다는 풍문도 듣지 못했으므로 그는 여전히 가난한 소설가로 살아가고 있으리라. 그러니까 그는 아주 잘살고 있을 것이다.


나이 마흔에 이르러 처음으로 딸을 얻었다. 며칠 전 딸이 태어나던 날 내 손바닥으로 두 개의 의지가 지나갔다. 처음에는 산통을 겪던 아내의 손이었다. 내 손을 꼭 쥔 아내의 손에는 적의에 가까운 절실함이 있었다. 나는 그걸 가난한 소설가의 아내가 보여줄 수 있는 호의적인 원망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딸의 손이 찾아왔다. 간호사가 목욕을 시켜주는 동안 딸의 두 손을 잡은 나는 손을 타고 전해지는 의지를 느꼈으나 무어라고 화답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필이면 소설가의 딸로 찾아온 이 아이의 운명에 미리부터 사과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어쩌면 이 아이야말로 소설가는 기꺼이 가난해야 함을 잊지 말라는 유서 깊은 계시일 거라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분명히 그런 대답을 기대하며 나와 아내를 찾아왔을 이 작은 아이에게 아빠는 여전히 가난한 소설가이지만 아직은 고군분투할 세월이 남았다고 속삭여주었던 거다. 아이가 언젠가 나의 고군분투를 읽어 주리라는 사소한 희망을 품고서.


손홍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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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열기가 뜨겁다. 중계자의 상기된 목소리를 듣고 있다가 기대하는 것은 왜 ‘뜨겁게 달군다’고 표현하는지 몽상에 빠진다. 벌겋게 달아오른 스타디움이 철제 쟁반처럼 휘어지고 사람들이 팝콘처럼 튀어 오르는 것 같다.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 운동선수들에게 올림픽 정신은 속도와 경쟁을 체화시키지만, 자신만의 속도를 가지고 자신만의 이유로 소진하는 미술가들은 카메라의 위치나 미디어의 퍼포먼스 속에서 다른 것을 본다. 그러다 문득 미술계와 미디어, 미술계와 올림픽 정신을 반문해봤다.


<아트스타코리아>라는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두고 시작 전부터 미술계가 후끈 달아올랐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이미 명품 브랜드가 해외 유명 미술 관계자들을 모셔와 미술상을 만들었을 때 미디어의 활기 띤 발품은 어떤 징조였다. 평론가로 행세하는 저널리스트들은 ‘관전 포인트’라는 걸 유행시키며 차별적 서비스에 열중했고 미디어가 원하는 것을 줬다. 그러자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작가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은 비평보다 훨씬 손쉽고 즐거운 스포츠가 되었다. 미술계에 찾아온 이런 식의 활력은 국가대표를 뽑고 스타작가를 만들어서 하루빨리 아트 한류를 펼쳐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술 체육관 정치’에도 힘을 실어줬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취지도 그런 염원을 잘 반영한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제도적 변화와 노력 속에서 상복 많은 작가로 불리며 혜택을 받은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과정이 어떤 순환고리를 만드는지 조금은 말할 수 있다. 굳이 후기 식민주의 같은 걸 말하지 않아도 ‘인증샷’은 서구에서 받아와야 지적, 재정적 엘리트들이 뭔가를 쓰기 시작한다는 걸 생각하면 크로아티아의 개념미술작가 믈라덴 스틸리노비치가 “영어를 못하는 작가는 작가가 아니다”라고 했던 말 속에서 인정의 폭이란 게 무언지 짐작해야 한다. 따라서 젊은 작가들은 시각의 종류를 어디서 배웠는지 무얼 헷갈리면 안되는지 알아야 한다. 


일례로 한국 신문의 현실은 법원 출입하던 기자가 스포츠 기자도 되고 언젠가는 미술 기사마저 쓰고 있다. 그래서 밥 나오는 화랑 소식이 자주 뜨고 사랑받는 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기자들은 현대미술이 너무 난해하다는 타령만 하면서 순위 매김은 어려운 줄 모른다. 올림픽 정신으로 통폐합된 아트 한류 얘기가 거품처럼 불어나는 이유다. ‘바깥에서’ 보기엔 ‘통일은 대박이다’ 같은 열정의 진상이다.


나는 그 미술계에 속한다. 그러나 내 미술은 그 미술계에 속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미술 실천과 생산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인정투쟁과 작품생산은 같은 불안으로 영혼을 잠식하지 않는다. 나는 수상한 컨테이너를 보았고 버려져 있는 유골들을 계속 본다. 법적 보호를 못 받는 삶들이 있듯이 애도될 수 없는 죽음들이 있다. 앤디 워홀 때문인가, 영악한 작가들은 “돈을 버는 게 예술이고 훌륭한 비즈니스가 최고의 예술”로 여긴다지만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죽음을 다루는 사회의 수준과 나이테 속에 담겨 있다. 존 케이지는 “나는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고, 말할 것이 없음을 말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이 사회 속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볼 수 없다는 것을 보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틀렸다. 배운 것을 버려야 보이고 안다는 것을 버려야 보일 때도 있다.


앤디워홀의 '수프 깡통'(출처 :경향DB)


국가는 작가를 납치할 수 있어도, 노예가 되는 건 ‘반복하는 사람들’이다. 아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좋다. 많은 사람이 스스로 재조합하고 재배치하는 자신만의 아트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만드느라 다시 미술을 배우는 계기도 되길 빈다. 미술 올림픽은 스포츠 올림픽 정신과 서로 ‘너무 먼 당신’이라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아침은 알고 있기 때문에 뜨지 않는다. 갈지자 글쓰기를 한 지 벌써 일 년도 더 넘었다. 배운 적 없는 글쓰기, 더듬는 내 목소리를 헤아리며 읽어주신 독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임민욱 | 설치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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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처럼 보이는 ‘포스트모던’에 관한 꽤나 유명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보자.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 작가 노트에서 다음과 같은 사례를 통해 “포스트모던의 상황”을 정리한 바 있다.


여기 한 남성이 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으며, 그녀는 매우 교양이 넘친다. 그는 그녀에게 “나는 당신을 정말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못하다. 왜냐면 그 여인은 영국의 유명한 로맨스 작가 바버라 카틀랜드가 이미 그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역시 그녀가 알고 있다는 것을 숙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란 이런 것이다. 그는 억누르기 어려운 격렬한 사랑의 감정을 맛보고 있지만,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자니 그 구애의 표현이 유명 작가의 진부한 문구를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코가 보기에 이런 상황이야말로 포스트모던 시대에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 문제적 상황이다. 자기감정의 유일한 주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이라면, 가슴 벅찬 사랑의 감정을 상투형의 뻔한 모양새로 표현하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랑 고백을 데이터베이스화한 대중매체의 기억력 앞에서 어쩔 도리가 없다.


물론 에코는 이 난감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묘안도 제시한다. “나는 당신을 정말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고백하되, 그 앞에 “바버라 카틀랜드가 말한 것처럼”이라는 단서를 붙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용 출처를 밝힘으로써 독창적인 고백이 불가능한 시대의 아이러니를 공유하고 즐기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감정은 이제 매니지먼트의 대상으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살구꽃 배경으로 사진찍는 연인 (경향DB)



그러면 에코의 사례를 변형시켜 현재의 문화적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자. 여기에 한 남자가 있으며,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 남자나 여자나 바버라 카틀랜드는 물론이거니와 움베르토 에코 역시 누군지 전혀 모르지만, 양자 모두 철든 이후부터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와 TV 미니시리즈를 꾸준히 봐온 터이다. 지금 남자는 청혼을 위한 이벤트를 준비 중이다. 문제는 그가 작성한 프러포즈의 문구가 영화나 드라마의 대사를 짜깁기한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세기의 에코라면 포스트모던의 문제적 상황이라며 휘슬을 불며 등장했을 법하다. 하지만 우리의 남자 주인공은 이런 표절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적극 활용하려는 편이다. 그렇다고 그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그는 ‘진정성’이야말로 소통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보통의 남자일 뿐이다.


다만 방식이 앞의 사례와는 다를 뿐이다. 그는 여자가 자신의 고백을 듣고 자연스럽게 영화 속 대사를 떠올리며 극중 주인공이 된 듯한 황홀한 기분에 빠져들기를 원하며,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자신의 진심이 전달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목에 이르면 ‘감정의 매니지먼트’는 ‘경험의 디자인’이라는 다음 단계로 진화한 듯 보인다. 여기에서 경험의 디자인이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무수한 감정 중 어렵지 않게 자극과 반응의 패턴으로 유형화할 수 있는 일부를 데이터베이스화한 다음, 그것을 바탕으로 경험의 프레임 내부에 특정 자극을 배치해 상대방의 감정을 컨트롤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스마트폰의 게임과 상업 공간의 고객 서비스부터 정치인의 행보나 남녀 간의 사랑 고백까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일상 세계는 그런 식의 디자인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지 않은가? 에코가 돌파구로 언급했던 ‘아이러니’마저도 용납하지 않는 빈틈없는 세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누구나 ‘진정성’을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진정성’을 믿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진정성’ 역시 특정 패턴의 자극이 우리가 ‘내면’이라고 믿는 마음속 윈도에다 꽃무늬 형상의 감정을 시뮬레이션한 결과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박해천 | 디자인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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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돈을 쓰는 곳이 많지 않다. 옷도 일 년에 몇 번 살까말까다. 운전면허가 없기에 차에도 관심이 없다. 직업상 주위에서 흔히 보는 오디오에 대한 관심도 정보 습득 정도에 머문다. 그럼에도 카드 결제일이 다가오면 늘 생각한다. 술만 좀 덜 마셨어도….


어른이 된 후 술을 알았다. 어른이 되기 전 음악을 알았다. 술과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지난 음주 생활의 단골집으로 자리잡은 건 그러니 당연한 일이다. 시작은 신촌이었다. 신촌의 우드스탁, 도어스, 놀이하는 사람들 등 20세기 후반에 신촌을 누볐던 사람들이라면 기억할 만한 이름들이 1990년대 초반의 밤을 책임졌다. 신촌의 문화적 에너지가 홍대 앞으로 넘어오고 나서는 스미스, 벨 앤 세바스찬 등의 술집들이 그랬다. 가게 이름들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음악 취향, 혹은 애호가의 트렌드 변화를 상징하는 흐름이기도 했다.


음악을 듣고 이야기하는 게 취미에서 직업이 된 후의 단골가게들은 술과 음악만으로 성립하지 않았다. 아지트여야 했다. 그러니까, 늘 음악하는 사람들이 죽치고 앉아 있는 곳이었다. 거의 매일 술을 마시다보니 거의 매일 약속을 잡아 마실 수야 없는 노릇이다. 때로는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혼자 가도 같이 놀 수 있는 사람들이 늘 그곳에 있을 때 단골, 나아가 동네 술집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곳들에서 정보와 야사가 축적되고 흐름이 만들어지곤 했다.



(경향DB)



사람들은 말한다. 홍대 앞은 끝났다고. 불경기가 웬말이냐는 듯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임대료에 예술가들이 망원동, 연남동으로 밀려난 지는 오래다. 그럼에도 그들이 홍대 앞에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그런 아지트들이 남아 있는 곳이 홍대 앞이기 때문이다. 이사는 가되 전학은 못 가는 형국이랄까.


최근 한 패션지로부터 ‘단골’에 대한 에세이를 청탁받았다. 당연히 아지트 같은 술집을 고르기로 하고 그간 나의 지갑을 털어온 홍대 앞 가게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아지트의 자격을 부여해도 좋을 바가 있었다. 바의 안쪽과 바깥쪽이 동등한 높이로 존재했다. 물리적 높이뿐만 아니라 심리적 높이까지 그랬다. 주인과 손님의 경계가 없었다. 주인은 늘 손님들 사이에 섞여 술에 취하고 손님들은 주인 대신 자기가 좋아하는, 하지만 가게의 흐름에 벗어나지 않는 음악을 틀었다. 적어도 나에겐 그런 곳이 명확하게 아지트라 부를 만한 곳이었다.


지금의 확실한 아지트는 홍대 걷고 싶은 거리 인근의 술집이다.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 제목에서 따온 가게 이름에 갈색 나무 위주의 인테리어와 어둑한 조명. 흔히 말하는 ‘젊음의 거리’스러운 이미지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종로, 신촌 일대의 전형적 음악 술집에 가깝다. 넥타이 맨 아저씨들이 맥캘란 한 병 시켜놓고 ‘호텔 캘리포니아’나 ‘스테어웨이 투 헤븐’을 추억어린 표정으로 듣고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여기에 모이는 사람들은 주로 모던록 계열의 음악을 하고 그런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다. 사장이 가게에 잘 안 붙어 있는 탓에 단골들이 음악을 트는 일이 잦다. 그 음악들은 가게의 이름, 인테리어와는 얼핏 어울리지 않는다. 비치 보이스부터 1990년대의 송가들을 관통하는 어떤 정서, 마빈 게이부터 비스티 보이스에 이르는 어떤 그루브가 있다. 이름과 인테리어에 상관없이, 모여 있는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취향의 공감대를 만들고 역시 같은 취향을 가진 이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다.


맛있다고, 화려하다고 모든 손님을 단골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실력과 자본만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어떤 느슨한 세월이 퇴적될 때 사람들은 모여든다. 공간의 문화란 그렇게 만들어진다.


김작가 |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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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얼떨떨했다. 느닷없는 통일 이야기도 그렇고, 다분히 요행수를 부추기는 낱말을 대통령이 쓴다는 게 너무 품격이 떨어져 보여서였다. 흥부전에서 나온 말인지 도박판에서 나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대박’은 사람의 노력보다는 운이 좌우하는 영역에서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다. 속된 말로 써왔는데, 이게 드디어 국정 용어로 등극한 것이다.

그런데 그 얼떨떨함은 우리 정부가 통일을 무슨 횡재와 같은 것으로 보지는 않나 해서 곧 걱정으로 변했다. 세상에 그냥 터지는 대박이란 없다. 싹 다 잃을 위험을 알면서도 지르고 또 지를 때 대박이 나지 구경만 하는 사람에게 대박의 운이 오지는 않는 법이다. 벤처 투자나 영화 투자가 대개 그렇지 않은가. 대박은 어떤 계획대로 터지지 않으려니와 대박을 노리고 질러대면 오히려 쪽박 차기 일쑤이니 걱정은 더 커진다.

통일이 대박일지 아닐지 따져보려면 그 낱말의 뜻부터 분명하게 짚어야 한다. 분단 때문에 일어난 우리 민족의 길고 긴 비극을 연민의 눈으로 쓸어안으려는 일부의 폭넓은 해석을 예외로 한다면, 통일은 남한과 북한의 영토를 합치고 하나의 정부가 통치하는 하나의 나라로 합침을 뜻한다. 사전의 뜻도 그러려니와 우리 국민 대부분도 그렇게 알고 있다. 두 나라가 합치지 않고 그저 서로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만으로는 통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평화 공존이다. 평화 공존이 통일로 가는 첫걸음일 수는 있겠지만 그 자체로 통일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춘추관에서 신년 내외신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통일의 방법으로는 크게 흡수통일과 평화통일의 두 가지 길이 제시된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둘 중에 어느 통일을 말하고자 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발언의 진정성을 떠나 통일의 두 방안 모두 우리 국민에게 이제는 무슨 신화 속 예언처럼 들린다는 데에 이 시대 통일론의 아픔이 있으니 말이다.

흡수통일은 내 어릴 적 기억으로 멸공통일 등 전쟁을 치러서라도 북을 타도해야 한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폭력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인류의 지성이 성숙하면서 그 발톱을 감추고 이제는 북에 급변사태가 일어났을 때 불가피하게 남이 북을 흡수한다는 논리로 변신한 것이다. 내가 보기엔 참으로 케케묵은 이야기다. 김일성 생전에도 김정일 생전에도 무수하게 이런 말이 나돌았다. 그럼 평화통일은? 이 역시 케케묵은 순박한 원칙일 뿐인 것 같다. 전쟁을 되풀이 않고 평화롭게 통일하자는 원칙은 매우 당연하고 옳지만, 그것은 원칙이지 무슨 방법론일 수가 없다. 흡수통일과 마찬가지로 평화통일의 노력 앞에서도 북이 남의 예상이나 바람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소한 지난 30년, 즉 한 세대를 거치면서 남북관계의 현실과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은 정말 눈곱만큼밖에 변하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지난 30년 동안 남북관계를 제외한 이 지구 전체는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 이렇듯 통일은 그저 당연한 미래의 과제일 뿐이었으니, 그 미래가 가깝다고 구체적으로 묘사할수록 대박 유혹은 커지고, 묻지마 심리가 작동한다.

난 평화 공존조차 이루어내지 못하면서 그 불투명한 통일을 외치는 것은 흡수통일이든 평화통일이든 모두 도박판 판돈 키우기에 다름 아니라고 본다. 평화 정착이 쉬운가, 제도와 문화가 영판 다른 두 나라가 하나로 합치는 게 쉬운가? 주도권부터 셈하는 통일 구상 이전에 평화 공존부터 이룩하자. 두 가지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선후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시간 순서대로 평화체제부터 만들어 보자는 말이다. 북이나 외세만 탓하지 말고 한국 독자적으로 이를 주도할 방법을 고안하자. 불투명한 대박 이전에 할 수 있는 일부터 실속있게 해내자.

이건범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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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일만큼 더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건 없다. 사회적 성공에 이르는 인맥을 얻기 위한 매우 효율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아이들은 몰라도 그걸 모르는 어른은 이 사회에 단 한 명도 없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그 문에 진입하지 못하는 책임은 온전히 개인적인 능력과 자질과 노력이다(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이런 사회에서 경쟁을 통한 성공은 언제나 비합리적으로 완성된다. 하지만 이런 비합리적 구조는 학력에 실패한 삶을 그런 대로 살 만한 세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 경쟁이란 거기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포함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실패한, 열등감으로 자책하는 인간에게 ‘네 탓이 아닐 수 있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다. 거기에 ‘그게 바로 인생이야’라는 심오한 깨달음을 덧붙이면 개인과 사회의 무기력한 가치관은 깊은 일체감을 갖게 될 것이다. 사회는 바람직한 시스템을 하나 완성시킨 것이다.

큰 기업들이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다는데 정작 일상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경기는 위축되고 폐업은 늘어간다. 뭐가 잘못된 거지? 잘못된 건 처음부터 없었다, 경제적 성장에 이윤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것은 거기서 소외된 사람들조차 자신의 능력과 기회가 점점 축소되고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희망’과 ‘긍정’을 자신의 가치로 확립한다. 누구나 ‘희망을 잃지 않는 것’에 희망을 건다. 내세울 수 있는 사회의 가치가 ‘희망’밖에 없다면 그 사회는 ‘불행을 감내하는 걸 강요하는 사회’라는 걸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사회는 바람직한 시스템을 또 하나 완성시킨 것이다.

 

삼성 그룹 신입사원 채용 직무적성검사를 치른 취업준비생들이 고사장은 나서고 있다 (출처: 경향DB)

아무도 그 내용을 모르지만 누구나 창의성을 앞에 내세운다. 사람들은 미래를 꿈꾸는 상상력이 유일한 희망일 수 있다고 믿는다. 성공과 실패의 조건은 개인적인 자질과 능력이 아니라 창의적인 발견에 이익을 얻는 집단이 제시하는 조건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상상은 자유이며 창의성은 너의 능력이다. 마음껏 발휘하라. 단, 그걸 받아들이는 것은 네가 아니라 나에게 달렸다.’ 당연히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수위의 상상력만이 허용되며 그런 창의성만이 성공을 가져온다. 이 사회의 시스템이 제시하는 해법은 여기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는다(기껏해야 경쟁을 통해 창의적인 사업체를 선정하고 몇 푼의 돈을 꿀 수 있는 자격을 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같은 해법이 그들이 제시할 수 있는 전부다). 사회적 성공과 실패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윤리적인 개인에게는 ‘난 자질이 없어’라고 말하거나 ‘세상이 날 알아주지 않아’라는 공정한 심리적 위안이 마지막으로 남는다. 그렇지 않다면 ‘좌절과 실패를 딛고 끊임없이 다시 일어서는 불굴의 도전정신’을 내재화하는 무한긍정의 아이콘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이제 창의적인 개인의 노력마저 ‘우연’과 ‘비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장의 질서에 편입시키면 권력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경제의 장을 완성시킬 수 있게 된다.

창의성에 의한 개인의 사회적 성공의 패러다임은 도박의 패러다임과 흡사하다. 확률? 그것도 아마 도박이 제시하는 확률과 흡사할 것이다. 0.1%의 확률을 위해 경쟁적으로 창의력을 키우고, 실패해도 여전히 자신의 책임으로만 남는 그런 게임에 우리는 인생을 걸어야 한다. 카지노에서 이기는 길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카지노 주인이 되는 것. 그 전까지는 아무리 많은 우연과 기회가 있다고 해도 실패할 확률은 여전히 99.9%다. 이것이 바로 자신들의 경제적 위기를 교묘히 사회적 위기로 포장해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시킨 뒤 개인의 경쟁을 통해 이윤을 얻으려는 집단이 주장하는 창의성이다.

 

김진송 | 목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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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내 사랑>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1959년 알랭 르네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한 프랑스 여인이 일본 히로시마에 영화 촬영차 방문했다가 일본인 건축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프랑스 여인은, 전쟁 중에 느베르라는 마을에서 독일군 병사와 나눈 사랑을 비극적으로 끝내야 했던 상처가 있는데, 원폭의 참상으로 뒤덮인 히로시마에서 새로운 사랑에 빠질수록 그 비극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면서 극중 인물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 여인은 남자에게 “당신은 히로시마”라고 부르고, 남자는 여자에게 “당신은 느베르”라고 대답한다. 당신은 히로시마? 무슨 말인가.

건축 없이 우리가 사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건축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요즘은 그래도 신문의 문화면에 건축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인식에 건축은 여전히 부동산이다. 모 경제지에서 대한민국건축문화대상이란 거창한 이름의 건축상을 주관하는 것도 그 연유일 게다.

건축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개 두 종류인데, 하나는 공학이나 기술로서의 건축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로서의 건축이다. 좀 더 식견이 있는 척하면 기술과 예술의 접합점에 있다고도 한다. 대학에서도 건축과는 공과대학이나 미술대학에 속하는 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적이었으니 학문적으로도 건축의 상위 분류는 기술과 예술이다. 그럴까?

옳지 않다. 그런 분류는 건축을 시각적 대상으로만 본 결과다. 즉 어떻게 이런 큰 건물을 지을 수 있을까라는 기술적 관심과 외부 모양에 대한 예술적 가치에 대한 시각인데, 이 두 가지는 모두 건축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예컨대 요란한 형태와 색채로 외부를 장식해 그 내부가 어떤지를 도무지 알 수 없게 한 건축은 유명한 건축이 될지는 몰라도 좋은 건축이 되기는 오히려 어렵다.

건축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 내부 공간을 형성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다. 그 공간이 보다 본질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공간은 불행하게도 눈에 보이는 물체가 아니어서 설명하기가 무척 어렵다.

우리가 어떤 건축에서 감동을 얻는다면 그것은 거의 다 그 건축 속에 빛이 내려앉아 빚어진 공간의 특별함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간은 보이지 않은 까닭에, 남에게 그 감동적 건축을 설명할 때면 대개 천장의 모양이나 벽과 바닥의 장식 등을 이야기할 뿐이어서, 이를 듣는 순간 공간은 사라지고 건축은 잘못 설명되고 만다. 그래서 건축은 어렵다고도 한다.

이 보이지 않는 공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실은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바로 그 건축 속에서 사는 방법과 분위기, 사건과 역사를 설명하면 된다.

 

건축 설계라는 것은 우리의 삶을 조직시켜 주는 일과 다름없다. 따라서 건축 설계를 하는 이들이 해야 하는 우선의 공부는 그 건축 속에서 살게 되는 이들의 삶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특히 남의 집을 짓는 일이 고유직능인 건축가라면 기본적으로 문학이나 영화, 여행을 통해 그들의 삶을 알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알기 위해 역사적이어야 하며, 왜 사는지를 알기 위해 철학을 해야 한다.

그래서 건축을 굳이 어떤 장르에 집어넣으려 하면 인문학에 가깝다. 물론 기술이나 공학적 요소도 있어야 하고 예술적 성취도 이뤄야겠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일 뿐 건축을 포괄하지 못한다. 인류가 시작되어 집이 먼저 생겼지 기술이나 예술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님을 상기하시라.

하이데거는 “우리는 건축으로 거주함으로써 존재한다”고 했다. 건축이 우리의 존재 자체라는 말일진대, 건축은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도시는 무엇일까. 도시는 익명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이다. 농촌은 기본적으로 혈연으로 구성되어 인륜이나 천륜만으로도 그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모여 만들어지는 도시 공동체는 합의된 규약에 의해 유지된다. 광장이나 도로, 공원 같은 도시의 공공영역이 바로 그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들이다. 이 공공영역이 잘 조직되고 연결된 도시가 공공성이 발달된 선진도시고, 파편적이어서 불연속적으로 이뤄진 도시는 미개도시이다.

민주주의의 도시에서는 그 공공영역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자유롭도록 만들어져 있고, 중심적 체제를 갖는 전제(專制) 도시에서는 권력의 안전과 권위를 위해 공공영역이 조직되며, 산업도시에서는 효율과 기능이 사람보다 우선되도록 구성된다.

그러나 사회 체제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늘 바뀌는 것이며 가치도 변하기 마련이어서, 이를 담아야 하는 도시도 생물체처럼 바뀌며 움직이기 마련이다. 이 변화를 수용하지 못했던 도시는 역사 속에서 늘 멸망되었다. 그래서 건축에서 공간이 본질인 것처럼, 도시에서도 보다 중요한 것은 몇개의 기념비적 건물이 결코 아니라 건물들로 둘러싸인 공공영역이다. 이 또한 보이는 물체가 아니다. 그러나 이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도시는 그 애환과 열정을 담아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면서 존속하게 된다.

<사회정의와 도시>를 쓴 미국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는 민주주의 시대의 새로운 도시와 건축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제시했다. “이미지에 대항하는 서사, 미학에 대항하는 윤리, 존재보다는 생성을 추구하는 기획.”

이는 단일 건축이나 기념비가 갖는 상징적 가치보다는 그 주변에 담겨 면면히 내려오는 일상의 이야기가 더욱 가치 있고, 시설물이나 건축물의 외형에 대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속에서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사는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며, 도시와 건축은 완성된 결과물에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을 담아 끊임없이 진화하고 지속되는 게 더욱 의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도시는 기억으로 남아 통합된다는 것이다.


‘당신은 히로시마’. 폐허가 된 히로시마를 몸과 정신에 기록하여 기억하는 ‘당신’은 바로 히로시마 자체요 또 다른 당신은 느베르였으니, 우리 모두가 하나의 도시라는 말이었다.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라는 제하의 이 칼럼은 그 바탕을 여기에 둔다. 이 귀한 지면을 한동안 둔필로 소비하는 게 민망하지만, 함께 이 시대 우리의 도시와 건축을 조금이라도 성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승효상 | 건축가·이로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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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소설이 완성되는 순간은 소설가가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 아니라 독자와 소설이 만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소설은 세대를 거듭해 독자를 만나기에 다시 말해 좋은 소설이란 완성의 순간이 매 순간 지연되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금 과장하자면 결코 완성되지 않는 소설이야말로 가장 좋은 소설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소설 가운데 두 편을 언급하고 싶다. 작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작가라 일컬어지는 미국의 소설가 필립 로스의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독일의 소설가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가 그것이다.

이 소설들을 떠올리게 된 이유는 중앙대 총학생회가 청소노동자의 파업과 관련해 민주노총에 중앙대를 떠나라고 요구했다는 기사를 본 탓이다. 이 두 편의 소설은 각각 매카시즘의 광풍에 몰락하는 사람과 거대보수언론의 왜곡되고 선정적인 여론몰이에 의해 파멸하는 사람을 다룬다.

대체로 이 소설들은 사회공동체가 공유하는 오해와 편견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구성원을 짓밟는지를 보여주는 일례로 언급되지만 나는 오히려 개인의 신념과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한 개인의 선택과 용기가 어떻게 스스로를 파멸시키는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한다. 사회적 오해와 편견에 맞서 투쟁하려 애쓸수록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아이러니를 더 강렬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인물 스스로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기꺼이 몰락과 파멸을 감내한다는 점이다.

 

중앙대 규탄 회견 (경향DB)

두 소설의 인물들은 사회가 인정하는 진리의 편에 선 사람들은 아니다. 사회적 신분상승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획득한 신분계층이 요구하는 사상마저 받아들일 수는 없었던 필립 로스의 인물과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할 수단과 방법이 없어 결국 기자를 살해하게 되는 하인리히 뵐의 인물은 오해와 편견에 의해 부서졌다기보다 차라리 오해와 편견에 의해 부서지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루쉰이 <고향>에서 말한 희망의 정의를 인용해 생각해 볼 수 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희망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땅 위에는 길이 없지만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인 것이다.” 루쉰이 생략한 말을 굳이 되살려보자면, 인간의 희망이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그 무엇이 아니라 인간이 걸어가는 길 바로 그 노정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희망이란 만들어가는 것이며 어떤 길을 걷느냐가 곧 어떤 희망을 갖느냐이다.

필립 로스의 인물과 하인리히 뵐의 인물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몰락하고 파멸했으나 사회적 오해와 편견에도 불구하고 타협하지 않고 개인의 신념을 지켜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것이 곧 인간의 희망임을 보여준다. 그들은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갔고 결국 부서졌으나 인간의 희망을 보여주었다.

오해와 편견이 오해와 편견일 수 있는 이유는 나름의 논리를 지녔기 때문이다. 매카시즘이 그러했고 거대보수언론도 그러했다. 중앙대 총학생회가 제시한 이유들도 전혀 근거가 없지 않다. 중앙대의 이미지 하락을 당사자보다 더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느 쪽이나 논리는 충분하다. 최종적으로 어떤 가치를 지향하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며 올바른 선택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중앙대 총학생회는 용기 있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다만 나는 중앙대 총학생회가 바라는 대로 민주노총을 쫓아내고 그렇게 만든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퍽 궁금하다. 그 희망은 아름다운가. 그런 게 인간의 희망인가.

손홍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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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에 인터넷 유튜브라는 곳에 동영상을 하나 올렸다. “커피 나오셨습니다”라는 제목에다 ‘사물 존대의 논리’라는 부제를 붙였다. 사람들 반응이 제법 괜찮아 1만명이나 보았고 이른바 ‘화제의 동영상’으로 텔레비전에 소개되기도 했다. 묘미는 급반전이었을 것이다. “신상품이십니다” “5만원이십니다” 등 손님을 극진히 모시겠노라고 쓰는 존댓말이 의도와는 달리 물건이나 돈을 높이고 있는데, 동영상에서는 이런 현상이 어떤 슬픈 사정을 담고 있는지 비틀어서 보여줬다.

1990년대 중반부터 ‘손님은 왕’이라는 구호 아래 친절 판매술이 도입되면서 백화점 판매원과 전화 영업사원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 말투는 이제 편의점이든 다방이든, 옷가게든 어디서나 들려온다. 높임의 말꼬리 ‘시’를 붙이기만 하면 무조건 존댓말이 되는 줄 아는가보다. 학교의 말하기 교육이 얼마나 허술한지 잘 드러나는 장면이다.

“언어는 생물이다”라고 말하며 이런 현상을 그저 자연스러운 ‘변화’로 받아들이자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도무지 생물 아닌 것이 무엇이랴? 그런 어법에서는 ‘자본’도 생물이고, ‘정치’도 생물이다.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그 모든 것을 다 생물이라고 멋지게 부를 뿐일진대, 왜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무생물의 짓이라고 보는지 모르겠다.

 

(경향DB)

사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좀 틀린다고 무어 그리 큰 문제가 되겠느냐만, 존댓말은 사정이 좀 다르다. 우리말에 존댓말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존댓말이 버젓이 존재하는 바에야 이를 똑바로 사용하지 않으면 탈이 난다. 존댓말은 단순히 언어 내부의 어문 규정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말 사용법이기 때문이다. ‘시’를 마구 붙이는 이 말투만 해도 물건이나 돈에 존대하는 꼴이니 정작 손님은 존대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지 않는가.

그래서 이런 말투에 껄끄러움을 느껴 따따부따하고 고쳐주는 사람도 있는데,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거꾸로, 손님 가운데 어떤 이는 그렇게 ‘시’를 붙여가며 말하지 않으면 건방지다고 화를 낸단다. 그러니 가게 주인은 무조건 ‘시’를 붙이라고 점원들에게 가르친다. 맞고 그르고가 없다.

내가 사물 존대의 잘못된 높임말을 문제 삼는 건 이 말버릇이 우리 사회의 존댓말과 반말에 관한 통념을 바꾸는 첫 단추가 될 거라는 기대가 있어서다. 과거에는 존댓말과 반말이 신분이나 지위, 나이 등의 차이를 나타내는 노릇을 했다. 어린 양반 도령이 버젓이 반말을 하면 늙은 종이 존대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사극의 장면을 떠올려보자. 신분제가 없어지면서 이런 모습은 거의 다 사라졌지만, 존경하고 말고를 떠나 나이 든 사람에게 존댓말을 하지 않으면 아직도 크나큰 시빗거리가 된다.

존대를 해야 하나 반말을 써도 될까 계산하느라 서로 마음 터놓고 대화하기 어려운 때를 다들 한두 번쯤은 겪어보지 않았을까? 상대가 한두 살이라도 어리다는 걸 알면 바로 반말이 나오는 세태다보니, 초면부터 서로의 진면목보다는 나이를 파악하는 데에 열심이다. 존댓말은 나이에 따른 차별의 장치로 악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참으로 고약하다. 하지만 사람의 존귀함이 어찌 나이가 많고 적음에 달렸겠는가.

이런 점에서 독일의 변화는 눈여겨볼 만하다. 독일어는 서구의 다른 언어에 비해 존대가 발전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와 비슷한 사정이 있었는지, 1970년대부터 공적인 모든 관계에서는 존대를 사용하고 서로가 정말 친한 사이라고 인정하는 경우에만 반말을 사용하는 사회 관행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와의 차이는 반말을 하는 친한 사이가 나이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무 살 차이가 나더라도 서로 반말을 한단다. 마치 우리 사회에서 젊은 부모와 자식 간에 벌어진 존댓말 사라짐 현상과 비슷하다.

공적인 생활의 영역에서 모두가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은 시민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표현이다. 손님이든 종업원이든 주인이든 부하직원이든 이런 점에서 차별을 두어선 안된다. 그러니 최근 직장에서 다시 살아나는 신분제적 반말, 즉 나이 어린 상사가 나이 많은 부하직원에게 반말을 하는 작태를 그냥 놔둬서는 곤란하다. 사물 존대의 일그러진 세태를 고치고, 이를 넘어서 사람 존중의 말 문화를 뿌리내리자. 말의 겉치레에 구속받지 않으면서 모든 시민이 서로 존중하는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관행이 먼저 정비되어야 한다.

이건범 | 작가·한글문화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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