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번호가 일제히 자동으로 바뀐 후에도 내 번호의 첫 세 자리는 여전히 그대로다. 이유는 2G라서. 아직도 2G인가를 힐난하는 친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2G와 4G시스템이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바뀌지 않은 번호가 고맙기만 하다. 아직도 종이신문을 들고 화장실로 가 아침을 시작하는 낡은 습관만큼이나 변하지 않는 일상의 한 부분이 나를 그런대로 지탱해 줄 것 같은 착각에서이다.

착각은 곧바로 시대착오적인 생각과 행동을 낳는다. 어쩌다 모인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떠벌리는 잘난 척마저 이야기의 진위를 확인하려 꺼내든 스마트폰의 위력 앞에 속수무책이다. 세상이 정말 달라진 걸 안 것은 올해 초 전시를 하고 나서부터이다. 전시장에 들어온 관람객들 손에는 여지없이 스마트폰과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눈으로만 보아야 한다는 나의 시대착오적인 주장은 간단히 묵살되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전시된 작품을 보지 않는다. 카메라를 누르고 찍힌 화면을 들여다본다. 눈앞의 대상은 디지털프레임 속의 재현된 이미지로 포획되지 않는 한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때 알았다. 우리의 현실이 가상의 이미지 세계로 뒤바뀌고 있다는 것을. 나무와 쇠와 돌을 깎고 두드리고 갈아내 형상을 다듬는 일은 누군가에게 디지털 이미지의 표면을 제공하기 위한 1차적인 아날로그 작업으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을.

(경향DB)

 

 

시대에 뒤떨어진 세대의 자기연민의 시선으로 돌아보면 컴퓨터가 등장한 이래 악전고투의 세월이었다. 우리 세대는 우연히 현대문명의 첨단이 제공한 개인컴퓨터의 역사를 고스란히 뒤쫓아야 했다. 처음 잡지사에 글을 쓸 때는 원고지였다. 타자기를 구입하고 익숙해지기도 전에 문서입력기가 등장했고 그것을 사자마자 깡통컴퓨터를 구입해야 했다. 8비트 애플과 16비트의 아이비엠, 286 XT, AT, 386, 486을 거쳐 586펜티엄급 컴퓨터 그리고 나의 경우 파워 맥, 아이맥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컴퓨터를 거쳐야 했다. 매 순간 당혹스럽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새 컴퓨터를 사고 뒤돌아서면 여전히 책상 위의 컴퓨터는 낡은 기종이 되어버린다는 것. 세상은 언제나 편리함을 내세웠고 그건 곧바로 돈의 지출을 의미했으며 새로운 상품에 눈을 돌리자마자 새로운 디지털 언어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 와중에 몇몇은 컴맹으로 전락했고 몇몇은 근근이 살아남았다.

나는 거기서 살아남았다. 아이비엠과 매킨토시를 넘나들며 문서작성과 편집, 이미지그래픽과 영상편집까지. 필요한 소프트웨어는 언제든 불러 쓸 수 있으니 컴맹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얼마 전 ‘뽀샵’을 하는 젊은 친구에게 포토샵 1.0에서부터 현재의 PS5까지 모든 프로그램을 다 거쳐왔노라고 말하는 내가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정작 놓치고 있던 것은 현란하게 이어온 첨단의 문명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아니었다. 컴퓨터를 일을 위한 수단쯤으로 인식하고 있던 나는 여전히 세상을 아날로그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무와 풀과 벌레와 새, 하늘과 구름, 들과 산, 거리와 빌딩을 여전히 나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비극적인 사실.

이미지는 실재가 아니다. 대상을 재현한 것이다. 이미지의 스펙터클이 가득한 오늘날의 세계는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도 재현의 과정을 거친다. 사람들은 재현된 이미지에 빠져들 뿐 더 이상 눈앞의 대상과 마주하려 하지 않는다. 이미지로 재편집될 수 없는 실재의 대상은 점차 눈앞에서 사라진다. 사물뿐이 아니다. 내 앞에 마주한 사람은 시선에서 사라지고 다른 누군가의 이미지를 찾아서 우리는 스마트폰을 뒤진다.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 사회>라는 글이 나온 지 몇 십 년이 지났지만 이제 이미지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개인의 시선이 디지털로 완성되고 있는 걸 눈앞에서 보고 있다. 그 시선들에 대한 불안함과 불편함. 이게 새로운 사회에 대한 거부감인지 아니면 시대착오적인 시선에서 오는 두려움인지 알 길이 없다.

 

김진송 | 문화평론가·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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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뒤돌아볼 때면 거울 폴더를 펼치는 것 같다. 인정머리 없이 벌거숭이 날들이 딱 그만큼만 들어 있다. 부스러기 며칠 동안 술잔에 부어도 부풀기는커녕 미화도 산화도 되지 않는다. 더 쨍하게 말라붙어서는 내게 겨눈 칼끝이 된다. 올해는 유달리 지방을 다녀온 기억들이 반들거린다. 대부분 12월 말 DMZ프로젝트 작업을 위한 사전 답사와 보도연맹에 관한 작업 때문에 시작했던 발걸음이었다. 그중에서도 공주를 향해 가던 길, 수화기 너머 들려오던 거절이 아직도 귀에 멍하니 박혀 있다. “보도연맹? 왜! 왜!, 왜 물어! 알아도 몰라!” 그리고 지난 6일 함평 양민학살 합동 위령제에 갔을 때 대한민국의 고독이란 말이 떠올랐다. 너무 붉어 더 추웠던 노을을 등지고 돌아올 때였다.


그 말은 철원 퍼포먼스 장소를 궁금해하던 친구가 동행했던 날 처음 튀어나왔다. 나는 그녀를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강원도 최초 상수도 시설 수도국지에 데려갔고 국군 북진 시 300여명이 물탱크 속에 생매장된 현장이라는 설명을 전했다. 분단과 정체성 이야기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에서 ‘이해받을 수 없는’ 이야기로 튀었고 급기야는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노벨상 수상연설문 ‘라틴 아메리카의 고독’으로 튀었다.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과 63년 동안의 고독을 연상했다.


그건 물론 어떤 작가의 문학적 상상과 연관없는 기억에 관한 상상이었다. 불가능한 상상을 확인하는 말이었다. 함평의 1164명 희생자 이름들에서 포기하는 기억의 문제였다. 보도연맹 희생자 20만명과 우연히 만났던 89세 할머니의 진술은 그 이유에 가깝다. 그분의 남편은 1950년 함평수복작전 때 11사단 20연대 3대대 군인들에게 총살당했다. 시어머니는 독자였던 아들을 가까이 두려고 아예 안방 문 앞에다 묘를 썼다고 했다. 두 딸은 한여름 아버지 상석이 시원해서 모기 뜯기는 것도 잊은 채 별도 보고 시도 읊고 노래 부르며 무덤 위에서 컸다고 웃었다.


공주 상왕동 살구쟁이 민간인 집단 희생자 유해 추가 발굴 현장에 갔을 때도 해골들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진실화해위원회가 2009년 발굴 도중 예산 부족으로 인해 남겨둘 수밖에 없었던 ‘5구덩이’ 역시 불가능한 상상을 확인시킬 뿐이었다. 어디에 처형당해 묻혀 있는지를 알면서도 예산 부족으로 발굴할 수 없어서 그저 한을 삼키고 기다려오신 분들도 보았다. 유골들을 종이에 싸기 전, 나이 드신 인부 한 분이 국민을(?) 대신해서 어설프고 서글프게 건네던 작별 인사가 기억난다. “억울하셨죠, 어르신들, 수고하셨습니다. 지금이라도 잘 가셔요, 좋은 데 가서 이제 안정하셔요….”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한성훈 팀장이 국민보도연맹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출처: 경향DB)


돌아오던 모든 길은 거울의 관계에 놓여 있었다. 북한이라는 거울 없이는 자신을 스스로 생각할 수 없을까. 어떤 어린이가 살려달라는 애원 대신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는 나라. 무고하게 학살된 가족의 추모제에 자식들과 손자 손을 잡고 올 수 없는 나라. 어느 공중파 아나운서는 종북이 아니면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쳐보라 했다던가. 종북? 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 ‘주술적 사실주의’로 대한민국을 고독하게 만들고 있다. 전쟁 때 공산당이어도 죽고 공산당이 아니라고 해도 죽었던 사람들의 가족이 또다시 침묵 속으로 피란을 가야 하는 공안정국의 귀환을 우려한다.


마르케스는 연설문에서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억압과 약탈과 절망에 맞서 왔던 우리의 대답은 삶이라는 것, … 수세기 동안 지속된 영원한 전쟁도 죽음을 초월한 끈질긴 삶의 장점을 축소할 수는 없었다며 인간의 종말을 인정하기를 거부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예전 것과 반대인 유토피아를 창조하는 작업을 실행하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곳은 그 아무도 타인을 위해 심지어는 어떻게 죽어야 한다고까지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곳이며,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선고받은 가족들이 마침내 그리고 영원히 이 지구상에서 두 번째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곳”이라는 말을 대척점인 이곳 대한민국으로 끌어올려 붙들어 맨다.


임민욱 | 설치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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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 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김수영의 시 ‘봄밤’의 한 대목이다. 예전부터 “종이 들리고”가 좀 미심쩍었다. 종을 쳐서 현재 시각을 알리는 것은 서양 쪽 풍경이 아니던가. 최근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1912)를 읽다가 다음 구절에 새삼 눈길이 멈췄다.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황현산 역) 어느 봄밤 김수영의 귀에는 ‘미라보 다리’의 ‘종소리’가 들렸던 것일까. 여하튼 김수영은 서둘지 말자 했지만 지금은 봄밤이 아니라 겨울밤이어서 나는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1. 봄밤이 아니라 겨울밤이어서, 2013년의 12월이어서, 나는 김수영처럼 자신을 다독일 수가 없다. 작년 말과 올해 초에 받은 연하장들이 책상 위에 1년째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귀한 인사들에게 e메일이나 문자메시지로 답할 수는 없으니 나 역시 예를 갖추어 답장하자 했었다. ‘오랜만에 문구점에 들러 편지지를 사자. 찻집에 앉아서 손 편지를 쓰자.’ 그러나 나는 1년이 흘러가는 동안 그 결심을 실천하지 못했다. 1년 동안!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없는데 그분들이 이해할 리가 없다.


고 김수영 시인(출처: 경향DB)


2. 정년퇴임하신 H선생님을 만나 여쭈어보았다. “선생님, 시간의 가차 없는 흐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요.” 나이를 먹어가는 일이 두려워서 한 질문이라 생각하셨는지 이런 답을 주셨다.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까 인생의 모든 나이에는 각각의 나이에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있는 것이더군요.” 시간과 싸우려 하지 말고 함께 놀아보라는 말씀으로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선생님과 헤어진 이후에 내가 못다 한 말이 있음을 깨달았다. ‘선생님, 그럼 고통은요? 인생의 모든 나이에는 각각의 나이에 감당해야 할 고통도 있겠지요?’ 


3. 필립 로스의 소설 <에브리맨>(2006)의 37쪽 부분에는 현재 34세인 주인공이 행복의 절정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다가 문득 미래의 죽음을 상상하는 대목이 나온다. “수많은 별은 그가 죽을 운명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37쪽)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젓는다. “종말과의 무시무시한 만남? 나는 이제 겨우 서른넷인데! 망각을 걱정하는 일은 일흔다섯에 가서 하면 돼! 그는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머나먼 미래에는 궁극적인 파국 때문에 괴로워할 시간이 남아 돌 거야!”(39~40쪽) 그러나 그는 188쪽에서 심장마비로 죽는다. 미래에서 돌아보면, 인생은 200쪽도 안되는 소설일지도 모른다. 


4. 잘해 보려고 미루다 결국 못하게 되는 일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사람을 (못) 만나는 일도 그중 하나다. 만나기 가장 좋은 때라는 것이 있을까. 그냥 내일 아니면 모레 만나야 한다. J형을 십년 만에 만났다. 어떤 사람을 십년 만에 만나면 시간의 생생한 물질성을 실감하게 된다. 십년만큼을 정직하게 늙어 있는 상대방을 통해서 나의 늙음을 덩달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J형의 외모는 거의 달라진 게 없었는데, 변함이 없기로는, 한국사회를 바꾸겠다는 그의 열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기본소득운동’의 취지를 나에게 설명했다. 이런 변함없음은 뭔가 위안이 된다.


시간은 빠르다. (작년의 연하장에 답장을 쓰기도 전에 연말이 온다.) 시간은 정확하다. (삶의 각 시기에 겪어야 할 고통을 꼬박꼬박 청구한다.) 시간은 비정하다. (37쪽에서 죽음을 상상하고 터무니없어 하던 사내를 188쪽에서 죽인다.) 시간은 완벽하지 않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을 남겨 둔다.) 그렇다면 시간과 관련해서는 이런 일을 해야 하리라.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 변해가는 것을 받아들이고, 변하지 않으면 좋을 것들이 변하지 않도록 지켜내고, 변해야 마땅한데 변하지 않고 있는 것들이 변할 수 있도록 다그치기. 이 과분한 지면을 이제 반납하고, 그 일을 하러 가야겠다.


신형철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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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에게 가장 곤란한 순간은 지면과 소재, 둘 중 하나라도 없을 때다. 반대로 말하자면 지면과 소재가 맞아떨어질 때처럼 기쁜 일도 없다. 지금 나는 한 장의 앨범을 듣고 있다. 이 지면을 기꺼이 그 앨범을 위해 할애하려고 한다.


들국화의 새 앨범이 나왔다. 시장에는 6일 풀리지만 운 좋게 조금 빨리 앨범을 듣게 되었다. 1986년에 나온 2집 이후 최성원, 고 주찬권이 함께한 17년 만의 앨범이다(1995년에 들국화 3집이 나오긴 했지만 그 앨범은 사실상 전인권의 솔로 앨범이었다). 앨범 커버는 단출하다. 길가에 핀 흰 들국화 사진이 전부다. 실로 오랜만의 귀환치고는 너무도 담담하다. 다섯 곡의 신곡, 그리고 김민기와 조동진의 리메이크 곡, 두 곡의 팝송 리메이크가 첫 번째 CD를 채운다. 들국화 1, 2집의 노래를 비롯해 멤버들의 솔로 대표곡들을 포함한 열두 곡이 두 번째 CD에 실려 있다.


열정무대 펼치는 들국화 (출처 :경향DB)


올해 대중음악계의 키워드는 단연 ‘거장들의 귀환’이었다. 조용필의 ‘헬로’는 차트와 이슈에서 싸이마저 눌렀다. 신중현은 처음으로 록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다. 나미는 일렉트니카 뮤지션들과의 협업을 통해 녹슬지 않은 센스를 발휘했으며 최백호는 에코 브릿지와의 협업으로 석양에 서 있는 이만 들려줄 수 있는 어떤 경지를 보여줬다. 들국화의 새 앨범은 그 대미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니, 그 이상이다.


동시대와 발맞추는 과정에 있어서 들국화는 자신들의 본질을 잃지 않는다. 함춘호(어쿠스틱 기타), 정원영(키보드), 김광민(피아노), 한상원(기타) 등 국내 정상급 연주자들과 호흡을 맞추되, 신곡을 스스로 만들었다. 어설프게 최신 트렌드를 따르려 애를 쓰지 않는다. 오직 그들만이 만들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멜로디와 감성을 담았다. 그래서 이 앨범은 현재에 끼어든 과거가 아닌, 시제로부터 자유로운 문장처럼 스며든다. 그 음악의 문장들은 1980년대에 이미 완성된 것이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영향받았으되 넘어선 자는 없었다. 완성형이 아니었다면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제발’ 같은 노래들이 아직까지 살아있는 이유를 설명할 길 없다. 어떤 리메이크도 원곡을 능가하지 못한 이유를 말할 수 없다. 이 앨범에는 스스로에 대한 그런 믿음이 서려 있다. 빠져나갈 구멍 따위는 파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히, 하지만 치열하게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툭, 하고 세상에 내놓았다. 모든 노래가 단조풍이지만 청승이 아닌 쓸쓸함이요, 비관이 아닌 담담함이다. 이 앨범을 들으면서 슬픔이 아닌 숭고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 음악들이 인생의 프리즘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앨범에 담긴 신곡들 중 ‘들국화로 필래’를 제외한 네 곡, 그러니까 ‘걷고, 걷고’ ‘노래여 잠에서 깨라’ ‘재채기’ ‘하나둘씩 떨어져’의 가사는 전인권이 썼다. 우리는 전인권의 지난 삶을 알고 있다. 꽤 오랫동안 그는 대중의 조롱을 받았다. 들국화의 전설을 갉아먹는다고 손가락질받기도 했다.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나락까지 떨어뜨렸다. 그 몰락에 대중의 쾌감과 안타까움이 교차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다시 살아왔다. 작년 여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의 컴백 무대. 최성원은 전인권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전인권이 돌아왔습니다.” 머리는 백발이 되었으되 목은 전성기로 회귀한 그의 노래를 듣고 있던 관객들은 눈물을 흘렸다. 진정한 귀환이라 할 만한 신곡들은 작년 여름의 순간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는 시 같은 문장들에 자신의 인생을 담는다.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을 힘 있고 섬세한 희로애락의 목소리에 실어 음악으로 승화시킨다.


많은 음악이 있다. 많은 삶이 있다. 하지만 음악으로 음악 외적인 삶까지 말할 수 있는 음악은 많지 않다. 음악 외적인 삶을 작품에 투영해서 읽을 수 있는 음악 역시 많지 않다. 음악은 곧 삶이어야 하고 삶은 곧 음악이어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희귀해진 명제를 들국화는 영욕의 세월을 얹어 묵직하게 소환한다. 힘들었지만 포기하진 말자고, 그러다보면 다시 아침이 밝아올 거라고. 그때까지 걷고, 걷자고.


김작가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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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오랜만에 대형 할인매장에 들렀다. 아파트 바로 앞에 꽤 규모가 큰 재래시장이 있는 터라 굳이 장을 보러 그곳까지 갈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아이들과 함께 용산으로 향해야만 했다. 우리 동네에서는 아이들이 원하는 장난감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말 오후의 매장은 가족 단위의 쇼핑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가 카트를 밀고 있는 모습이었다. 문득 무엇이 이들을 이곳으로 이끄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표면적으로 쇼핑의 효율성과 편리성을 내세울 수 있겠지만, 이 공간이 제공하는 독특한 경험 패턴도 한몫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지하다시피 대형 할인매장은 꽤나 독특한 공간 질서를 지니고 있다. 수많은 상품들이 명료한 분류 체계에 따라 진열대 위에 배치되어 있고, 쇼핑객은 카트를 밀며 진열대 사이를 오가면서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선택한다. 다양한 가격대의 유사 상품들이 한 군데에 자리를 잡고 경쟁을 벌이고 있으니, 선택의 즐거움이 배가되기 마련이다. 언뜻 소비자 주권이 실현된 상품의 천국처럼 보인다.


하지만 쇼핑객의 시선이 아니라 카트의 시선으로 가늠해본다면 이 공간의 질서는 약간 다른 모양새다. 필요한 상품 한두 개만 구입하려는 이들은 굳이 카트를 밀면서 매장에 입장할 필요가 없다. 곧바로 해당 진열대로 이동해 상품을 집어든 뒤 계산대로 향하면 그만이다. 이들에게는 분명한 목적지가 있다. 반면 온 가족을 이끌고 주말 오후에 매장에 들른 이들에게 100원짜리 동전과 카트는 필수품이다. 그들에게는 상품 구매와 함께 얼마간의 시간을 이곳에서 소모해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따라서 그들이 일정 시간 동안 주변의 방해 없이 이 공간에서 방황하기 위해서는 카트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 카트는 구매 예정 물품의 운반 수단에 그치지 않고, 쇼핑객의 경험 패턴을 새롭게 정의하는 미디어 역할을 한다.


서울 도봉구 창동의 신창시장과 이마트(출처 :연합뉴스)


카트는 멈춰 서 있을 수는 있지만 질주할 수는 없다. 쇼핑객이 진열대 앞에서 특정 상품의 구매 여부를 가늠할 때 카트는 멈춰 선다. 한편 그가 다른 진열대로 이동할 때 카트는 이동 속도를 제어한다. 이때 카트는 쇼핑객의 발걸음뿐만 아니라 그의 시선과 보조도 맞춰 일정한 속도를 유지한다. 좌우 진열대를 훑어볼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때 쇼핑객의 시선은 영화의 수평 트래킹 촬영기법과 닮아 있다. 비좁은 통로를 이동하며 미로의 벽 같은 진열대를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선, 쇼핑객은 바로 이 시선을 통해 색다른 만남을 기대하며 상품의 세계를 관광하지만, 그 세계는 이미 그런 시선의 존재를 가정하고 평면화된 세계이기도 하다. 대형 할인매장은 카트에 의해 매개된 공간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형 할인매장은 백화점과 차별화된다. 백화점은 공간 한가운데에 에스컬레이터를 위치시킴으로써 수직적 이동을 통한 조감의 시선을 제공하고 그에 따라 개별 매장의 위계를 구획한다. 소비 행위는 전적으로 이 위계에 귀속되며, 구매자는 조감의 시선을 통해 이 위계를 자각한다. 반면 대형 할인매장은 무빙워크를 외곽에 배치해 납작한 경험의 연속성을 극대화한다.


그런데 카트의 권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쇼핑객이 소비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구성하는 기본 프레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미로같이 펼쳐진 매장의 통로는 쇼핑의 컨베이어 벨트이고, 반복되는 상품 선택은 소비자 정체성의 조립 과정이다. 계산대 옆의 실제 컨베이어 벨트는 이 공간의 동학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제유적 사물인 셈이다.


섣부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혹시 대형 할인매장이 지금 사회에 만연한, 시민 의식을 압도하는 소비자 주권 의식의 주요 학습장 중 하나였던 것은 아닐까? 1990년대 중반부터 신도시를 근거지로 삼아 전국 곳곳으로 빠르게 증식한 그 소비의 공간 말이다.


박해천 | 디자인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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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 활동으로 무얼 즐기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글을 쓴다고 답했었다. 그런데 이게 좀 어처구니없는 답변이다. 애송이일지라도 명색이 ‘작가’라는 작자가 취미로 글쓰기를 즐긴다니. 어쨌거나 글자판 위에 손가락을 얹고 있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곧 탐색과 상상으로 머리가 요동친다. 다만 차이는 있다. 어떤 계획이나 납기를 갖고 쓰는 글과 의무 없이 자유롭게 쓰는 글은 긴장의 정도가 하늘과 땅 차이다. 두 종류의 글쓰기에서 모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몰입을 맛볼 때가 있지만, 아무래도 앞뒤 없는 엉터리 상상과 논리의 비약은 취미 생활처럼 끼적일 때 더 자주 나타난다. 그러다 보니 이런 끼적 글이 정식 글의 밑감 노릇을 할 때가 늘어나 결국은 업무와 여가 생활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일 중독일 공산이 크다.


그러던 내게 정말로 여가를 즐길 취미 생활이 생겼다. 1년 전에 시험을 보고 ‘이소선 합창단’에 들어간 것이다. 1970년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별이 된 전태일 열사.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께서 돌아가실 때 남긴 ‘노동자 단결’의 뜻을 받들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두루 모여 만든 합창단이다. 작가가 무슨 노동자냐고 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지휘자님 지론처럼 세상에 노동자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직함이 그럴싸하지만 난 수입 면에서는 비정규직보다도 못한 불안정 노동자다.


서울 마포구 성산2동 마을합창단이 연습을 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배달민족 핏줄 아니랄까, 난 노래 부르는 걸 무척 좋아한다. 겸손 빼고 말하면, 내 노래 실력은 중상급이다. 눈이 나빠 악보에 적힌 노랫말조차 읽지 못하지만 악보를 볼 수 있더라도 악보대로 부를 정도의 능력은 없다. 호흡도 짧다. 사실 가사를 외우는 일이 내겐 제일 큰 숙제다. 그래서 연습할 때 녹음한 것을 지하철 탈 때마다 수십 번씩 들으며 외운다. 처음 참여한 연습 때 기존 단원들의 그리도 허술했던 화음이 한 시간 만에 가슴 터질 듯한 울림으로 내 기억에 남은 덕이다.


누구든 경험해 보았겠지만 자기의 목소리라고 생각하는 소리와 녹음해서 듣는 목소리는 사뭇 다르다. 내 목소리만 녹음해서 들어보면 내 글을 남이 소리 내어 읽어줄 때처럼 어색하고 손발이 오그라든다. 그나마 내가 남들 목소리 속에 섞이기 때문에 합창에서는 고양이 발톱으로 유리창 긁는 느낌이 훨씬 덜하다. 지휘자 선생님은 고운 소리만이 아니라 그런 다양한 소리가 제각각의 음색으로 조화를 이루는 게 우리 수준의 합창으로는 바람직하다고 하니, 그 포용력에 그저 용기백배다.


글쓰기와 합창은 성취의 방식이 좀 다른 것 같다. 글은 내가 만족스러울 때조차 남의 평이 걱정된다. 칭찬이나 감탄류의 반응이 돌아와야만 비로소 마음을 놓게 되고, 그런 반응이 오지 않거나 미약하면 마음이 무겁다. 반면 합창을 할 때면 실시간으로 울림과 떨림을 만끽한다. 물론 각자가 제 몫을 못하면 서로 안타까워하며 함께 도전 의욕을 불태우기도 한다. 연습에 빠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데, 그건 동료들이 곁에 없을 때 내가 무력함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 이게 합창의 매력이다. 한데 40명 넘는 단원 가운데 집회나 회의, 연대 투쟁 때문에 연습에 나오지 못하는 이가 많다. 3조 2교대하는 노동자들도 있는데, 우리 합창단의 어려움을 비유하여 나는 합창단이 3조 5교대라고 농하며 그 안타까움을 푼다.


어떨 때는 불의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의 친구로 그들 옆에서 힘을 북돋우는 구실을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이런 합창 문화가 우리네 생활 아주 깊숙이 자리 잡기를 바란다. 옆 사람과 벽 없이 채워가는 울림과 떨림의 그 닭살 돋는 시간은 내 피를 맑게 해주고 나의 영혼과 다른 이들의 영혼이 서로 부딪쳐 용오름을 이루는 벅찬 환희를 부른다. 그런 느낌이 고단한 일상에서 나를 놓지 않고 곧추세운다. 아름다움의 힘, 행복의 힘을 조금이라도 맛본 사람이라면 절대 더럽고 구차한 현실에 주눅이 들지 않으며 그저 한탄만 하고 살지도 않는 법이다. 내겐 참된 취미가 생겼다.


이건범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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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대미술에 새집이 생겼습니다. 작은 섬들을 이루며 경복궁 옆에 나지막하니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웃집처럼 접근도 쉬워졌습니다. 접근성이 좋아진 점은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미술관이 과천에 있을 적에는 외국인 관광객뿐만 아니라 국민에게도 약간 숨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숲속의 요새 같았던 동물원 옆 미술관은 코끼리 열차도 타야 했고 가기가 참 복잡했는데 벌써 추억거리가 된 것 같습니다. 이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벙커를 닮은 기지답게 근현대미술자료 수집 및 연구와 관련 전시로 명맥을 이어간다고 합니다. 긴 세월 작품들을 더 잘 보호하고 빛나게 해줄 것 같아 반갑습니다. 그렇다면 새로 생긴 서울관은 동시대 미술관으로서 좀 더 역동적이 될 수도 있겠구나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딸아이를 데리고 개관전에 가보았습니다. 사방으로 환히 트인 마당을 지나 주 출입구가 있는 옛 기무사 건물로 다가갔습니다. 1928년 당시 건물의 붉은 벽돌이 시멘트 덧칠을 걷어내고 과거와 현재를 접속시키고 있었습니다. 접속은 곧이어 반전을 숨긴 공간으로 초대했습니다. 거대한 무의식을 드러내듯 겉모습과 다른 ‘내면’의 깊이로 파 내려간 설계였습니다. 건축가는 섬세하고 담대하게 공간을 구상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술인이기 전에 먼저 시민으로서 이런 미술관이 생겼다는 게 감사하고 기쁩니다. 자랑스러운 작가들과 비평가, 큐레이터들, 그리고 현대미술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분들의 노고가 맺은 결실이라고 느꼈습니다. 전 세계 미술 관계자들의 관심과 선망도 높다고 합니다. 해외 미술관들은 신자유주의의 폐해로 인한 재정위기를 직격탄으로 맞으며 예산의 절반이 삭감됐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지요. 그렇다보니 한국이 현재 기울이고 있는 문화예술에 대한 공공적 노력은 가히 세계적으로 소중한 일입니다.


개관 앞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출처: 연합뉴스)


그 가운데 외국인들이 고유명사로 발음할 줄 아는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 운동이 하나 있습니다. 군부의 폭압에 맞서 표출된 민중미술입니다. 그 중요성에 대해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고 공부한다는 사실도 간과하면 안될 겁니다. 그런데 해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했던 개관식이 끝나자 미술관은 검열의 논쟁에 휩싸였습니다.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 전에 예정돼 있던 몇몇 민중미술 계열의 작품들 선정과정에서 불거진 일이랍니다. 저는 검열은 없었다는 사후 미술관의 보도자료를 믿습니다. 다만 일사불란하게 충성하는 청와대 직원들이 검열의 향수만 몇 방울 뿌리고 ‘극적으로’ 미술관에 들어와 ‘조용하게 퇴장’했겠지요.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도 보았듯이 ‘기체의 미학’은 몸통이 없습니다.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고 부러워하는 이런 역사적 순간에 정치적 안배로 상상력을 도배해버리는 그런 찌질한 스케일로 서울관 전시를 기획했을 거라고 누명을 씌워서는 안됩니다. 기껏 세계적 건축물을 지어놓고 학벌 중심 채용과 대학 동창회 전시 같은 것을 본다는 것 또한 실망스러운 반전이자 우물안의 ‘연결-전개’일 테니까요. 가짜 이데올로기의 싸움터에는 미술협회나 지역작가들의 불만도 높은 모양입니다. 그러나 미술관은 미술인을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미술관을 나서는데 내 딸이 예술가가 되고 싶답니다. 예술가가 꿈이 될 수도 있나…. 저는 예술가의 꿈을 가져본 적도 없고 아직 진정한 예술가도 못됐기에 잠시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예술가는 직업이 아니라 정신의 ‘상태’ 같은 것이라 말했습니다. 아이의 일기장에서, 기자의 수첩에서, 어느 주부의 한낮, 어느 직장인의 퇴근길, 어느 교사의 눈물과 항해사의 가슴속에서 살고 있는 어떤 정신 말입니다. 곽재구 시인은 “아름다움은 별이 아닌 우리의 가슴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전이 있는 관점이 아닐까요. 당대성을 보여주는 미술관의 반전도 그려봅니다. 앞으로 더욱 세계적으로 문제적인 작업들을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합니다. 관능적인 미술관, 반전 있는 미술관, 딱 서울 같은 미술관에서, ‘기억한다는 것은 담론이 아니고 신체이자 실천’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국립현대서울미술관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임민욱 | 설치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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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잘 지내고 계신지요. 벌써 가물가물합니다. 우리가 가장 최근에 만난 것이 올해 초였던가요. 대선이 치러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고 무척 추운 날이었다고 기억합니다. 7~8년 만에 만난 것이었지요. 


우리가 민중가요를 부르는 노래 동아리에서 처음 만난 것이 1995년이었으니 형과 알고 지낸 것도 20년이 다 되어 갑니다. 학부 시절 내내 우리는 거의 매일 붙어 있다시피 했었지요. 돌이켜 보면, 일사불란함과는 거리가 먼, 들끓는 도가니 같은 모임이었습니다. 노래패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1990년대 중반이었으니까요. 형은 특유의 온화함으로 동아리를 조용히 보살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우리는 자연스럽게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제가 여러 지면에 드문드문 발표한 글들을 챙겨 읽은 형이 먼저 연락을 해왔지요. 반갑게 서로 안부를 묻다가 문득 생각해 보니, 저는 형이 졸업 후에 어디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민망함을 무릅쓰고 물어보았고, 형은 조금 머쓱해하면서 말해주었습니다. 국가정보원에서 일하고 있다고요. 물론 다소 놀랐던 게 사실입니다. 저는 국정원을 잘 모르지만 온화한 형이 일하기에는 너무 삼엄한 조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만나자마자 형은 제가 쓴 글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형은 제가 하는 일이 아주 대단한 일이라고 말해주었지요. 인생과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문학작품을 매개로 자기 생각을 펼치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일이냐고요. 형의 말들은 과분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저 자신에게야 소중하지만, 이 세상에는 글쓰기보다 중요한 일이 수없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형은 형수와 함께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하셨지요. 저는 형이 하는 일이 훨씬 더 위대한 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또 두 아이의 아빠로서, 형이 살아낸 지난 세월들의 무게를 저는 감히 짐작도 못합니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국가정보원 청사.(출처 :경향DB)


이미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던 때였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것과 관련된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지만, 정치를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래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는 신중하게 남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형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으므로 저도 그 화제를 굳이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국정원 내부 사정도 궁금했고 형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묻지 않았지요. 말할 수 없는 것을 묻는 일이 형을 불편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형도 아시다시피 우리가 만난 이후로 국정원 사태는 국정조사를 거치면서 점입가경으로 치달았습니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저 역시 화가 많이 났었습니다. 국정원의 높으신 분들이 갖고 있는 생각은 제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었습니다. 진보와 보수가 (혹은 그 어떤 사상이든) 선거를 통해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기관인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해 국민의 세금을 쓰면서 특정 후보의 당선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이것이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저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형과 재회한 이후 몇 달 동안 뉴스를 보면서, 제가 좋아하는 형이 몸 담고 있는 직장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새삼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그리고 주제넘게도 요즈음 형의 마음은 어떠할까를 생각했습니다. 조직의 지침에 동의하지 않을, 대다수의 상식적인 국정원 소속 공무원들의 고뇌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이런 글 따위, 아무것도 아닙니다. 형수와 두 아이를 위해 사는 형의 삶이야말로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형의 직장이 형의 아름다운 삶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저는 속상합니다. 형, 다시 만나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신형철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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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에 이어 무한도전까지, 지금 대중음악계는 표절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아이유의 ‘분홍신’에 이어 박명수와 프라이머리의 ‘아이 갓 씨’가 외국곡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 자리를 빌려 우선 밝히자면 ‘분홍신’은 분명히 표절이 아니다. ‘아이 갓 씨’는 일단 표절 대상곡의 원작자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상황이다.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가요계에 심심하면 터지는 게 표절 논란이다. 예전에는 표절이 확실한 경우가 많았다. 반면 최근에는 억지성 표절 제기가 많아지는 추세다. 몇 년 사이 한국 대중음악이 내수용에서 수출용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에 창작자들을 포함한 관계자들은 스스로에게 엄격해졌다. 또한 그사이에 작곡가들이 대거 세대교체 된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표절 제기는 끊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전에 비해 빈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과거의 사례들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실제로 표절을 통해 인기를 끈 노래들이 적지 않았다. 그것도 해외 인기곡을 대놓고 표절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유명 작곡가들 중에서도 단골로 표절 논란에 오르는 이들이 있었고, 비교 대상이 되는 노래들은 전문가와 일반 대중을 가리지 않고 너무나 흡사했다. 하지만 실제로 표절 여부가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표절은 민사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즉, A라는 창작자가 B라는 작곡가의 노래가 자신의 작품과 유사하다고 판단했다고 하자. A는 법원에 B를 저작권 침해 혐의로 제소한다. 법정은 양측이 제시하는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저작권 침해 여부를 가리게 된다. 재판이란 게 으레 그러하듯 시간과 비용이 만만찮다. 이익보다는 사실상 창작자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절차다.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자존심 회복의 투쟁에 나서는 경우는 국내 작곡가들밖에 없다. 저작권 침해 소송이 손에 꼽을 만큼 적은 까닭이다. 반면, 해외 저작권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저작권 대행사를 통해 조용히 합의를 본다. 한때 시끄러웠던 표절 의혹곡들이 있다. 시간이 지난 후 저작권협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보면, 표절 대상곡의 원작자와 공동 작곡으로 올라가 있는 일이 많다. ‘물밑’에서 조용히 합의했다는 얘기다. 이 멀지 않은 과거의 관행들이 여전히 표절 여부에 대한 민감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표절 시비에 휘말린 가수 지드래곤(왼쪽)과 씨엔블루 (출처 :경향DB)


둘째, 음악 다양성의 부족이다. 우리 사회의 문화적 쏠림 현상이야 장르를 가리지 않지만 대중음악은 특히 심하다. 음악 소비자의 90%가 댄스와 발라드만 듣는다. 팝과 가요의 비중 역시 절대적으로 가요 쪽에 쏠려 있다. 팝을 전문으로 틀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하나밖에 없는 상황이니 굳이 긴 설명이 필요없다. 그중에서도 최신 해외 음악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줄어든다. 공급 측면에서는 이전에 비할 바 없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양한 음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시장의 폐쇄성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런 경향은 훈련된 대중의 축소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어떤 문화건 다양하고 깊게 접할수록 작품의 맥락을 파악하고 개성을 인지할 수 있게 되는 건 물론이다. 향유되는 장르가 편중된 시장에서 누군가가 같은 장르의, 비슷한 두 노래를 들려줬을 때 훈련되지 못한 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다른 인종의 얼굴들을 첫눈에 명확히 구분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다.


마지막, 권력과 체제에 대한 불신이다. 국정원에 이어 군대까지, 우리를 지켜야 할 대상이 역으로 여론을 조작해왔다는 게 밝혀지는 상황이다. 정치인들과 재벌들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친지는 이미 오래다. 힘을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을, 믿을 수가 없게 됐다. 대중은 연예인과 권력을 동일시하곤 한다. 그들의 인기와 수입이 권력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조차 공인의 굴레를 씌운다. 권력의 거울, 혹은 유사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표절이란 창작자가 가진 가장 기본적인 양심의 문제다. 의혹은 있으되 명확히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지금의 정국과 닮았다. 끊임없는 표절 논란은 권력의 양심이 사라지고 검은 베일만 드리워진 시대에 대한, 무의식의 성토일지도 모른다.


김작가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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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푸른 만큼 가을이 깊다. 전남 장흥의 한 농가. 여럿이 툇마루에 앉아 밥을 먹고 있다. 품앗이로 가을걷이에 한창인 귀농인들의 점심이다. 낯선 방문. 초면에 머쓱하기도 하련만 체면 불고하고 수저를 놓은 자리에 끼어들어 한술 뜨려는데 파리 떼가 먼저 달려든다. 찬은 김치와 두부와 깻잎장아찌가 전부다. 늦은 점심이라 시장하기도 했지만 한손으로 파리를 쫓으며 넘기는 밥이 꿀맛이다. 소쿠리에 내온 고구마에 김치를 얹어 먹는 후식도 기가 막히다.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나서야 서로 알은체한다. 아무렴 밥이 먼저지. 비로소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귀에 들리기 시작한다.


젊은 부부가 있다. 아내는 스물 후반, 남편은 서른을 겨우 넘긴 부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할 나이의 그들이 농사를 택한 게 의아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연유를 물었다. 아내의 말이 당돌하다. 이렇게 살고 싶었단다. 유학을 가겠다는 남자친구에게 회유와 협박과 질책을 퍼부은 끝에 발목을 잡아 시골에 눌러 앉혔다. 나랑 살자, 그렇게 꼬드기고, 그렇게 살면 행복할 것 같아? 그렇게 협박하고, 네가 했던 말에 책임을 져야지, 그렇게 질책했단다. 그들은 세 칸짜리 집을 얻어 살면서 화덕으로 밥을 끓이고 농사를 짓는다. 전기도 없다.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도 있나? 아니다. 아예 쓰지 않는단다. 그럼 전화는?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휴대폰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건 아니다. 태양광을 이용한 충전지를 쓴다. 이런! 이런 깜찍한 삶을 꾸려가는 이들이 있다니. 그날 젊은 부부가 정말 예뻐 보였다.


벼가 노랗게 익어가는 황금들판 (출처: 경향DB)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나이의 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무렵 그들의 삶과 비슷한 어떤 것도 꿈꾸지 못했다. 나이가 어리다는 뜻은 아직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많은 일들이 모든 사람들과 겹칠 때 경쟁이 시작된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취업의 문을 두드리지만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어쩌면 그 과정과 결과에서 얻을 수 있는 성공과 성취보다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삶을 위해 모두들 목숨을 건다. 많은 가능성은 더 많은 좌절을 요구한다. 그건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삶은 자신들의 내면적인 가치로 채워가는 것 이상의 가치는 없다는 것.


살 만큼 살고 나서 도시의 묵은 때를 씻어내듯 시골로 내려가 새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은 적지 않다. 하지만 처음부터 작정하고 농사를 시작하는 젊은이는 드물다. 줄어드는 인구를 늘리려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적인 배려에도 불구하고 시골의 장벽이 녹록지 않은 탓이다. 현지인의 배타적인 시선과 터무니없이 치솟는 땅값, 낯선 환경이 걸림돌이다. 그게 다가 아니다. 시골 정서와 도시 젊은이의 문화적 정서가 충돌한다. 어머니 품 같은 고향, 넘쳐나는 인정, 깨끗한 자연환경 등등의 수사가 얼마나 낯간지러운 수사인지 시골에 조금만 깊이 발을 디디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농약으로 범벅이 된 들판, 방치된 비닐과 쓰레기, 썩어가는 냇물, 거기에 정이라는 이름으로 간섭하고 도움을 앞세워 얽어매려는 인간관계, 때로 귀농을 빌미로 노동의 착취가 이루어지기도 하는 현실을 젊은이들은 견디지 못한다. 애써 새로운 삶을 꿈꾸었던 발길은 다시 도시로 향한다. 그런 이도 적지 않다.


시골에 남아 농사짓는 사람들은 거의 노인들이다. 그들이 손을 놓을 때가 되면 농촌은 텅텅 비게 될 것이다. 시골의 빈자리를 개발과 도시화로 메워가는 게 답일 리가 없다. 시골을 미개발의 땅으로만 아는 개발주의자들의 손에 농촌을 넘겨준다면 더 끔찍한 결과만 있을 뿐이다. 시골은 도시가 아니다. 그곳은 저개발과 미개발의 공간이 아니라 자연의 시스템이 작동해야 할 공간이다. 그 공간은 자연과 인간이 균형을 이루는 새로운 삶의 조건을 만들어갈 젊은이들에게 열려야 한다. 활짝. 그게 농촌의 새로운 가능성이다. 그곳을 자신들의 가치로 당당히 채워가는 그 젊은 부부를 다시 보고 싶다. 가을이 가기 전에.


김진송 | 목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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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양일간 당인리발전소 인근 카페에서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북페어 행사가 열렸다. 젊은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자신이 제작한 책과 잡지, 음반을 직접 들고 나와 전시·판매하는 이 행사는 홍대 앞 서점 ‘유어마인드’가 해마다 주최하는 것으로,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았다.


100여개 팀이 참여한 가운데, 꾸준히 청년 세대의 문화적 관심사를 담고 있는 ‘도미노’나 ‘월간 잉여’ 같은 독립 잡지가 눈에 띄었고, 건축, 패션, 영화 등 특정 분야의 전문성에 바탕을 둔 비정기 잡지나, 특색 있는 출판물도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취향의 향방은 제각각이었지만, 전시된 책들이 공들여 만들어진 것만큼은 분명했다.


 

잉여들을 위한 <월간 잉여> 7월호 표지 (출처 :경향DB)



돌이켜보면, ‘홍대 앞 청년문화’의 주요한 지류로 성장한 이 행사가 2009년에 시작되었다는 점은 무척 시사적이다. 주지하다시피 2008년에는 미국 금융위기가 일어났고, 국내 경기도 빠른 속도로 움츠러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시점에 홍대 앞 상권의 부동산 경기는 활황세를 띠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시장의 유동성 일부가 흘러든 결과였다. 실제로 당시 보수 일간지의 부동산 재테크 관련 기사들은 이미 정점을 찍은 아파트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말고 주요 상권의 건물을 눈여겨보라고 조언하고 있었다.


투자의 전략적 목표를 시세차익에서 임대수익으로 전환하라는 메시지가 제대로 수신인을 찾아간 덕분이었을까? 지난 5년간 홍대 앞 일대에서는 부동산의 복마전이 펼쳐졌다. 자유분방한 혈기를 내뿜던 인디밴드들의 공연장은 하나둘 사라졌고, 이정표 구실을 하던 유명 제과점은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에 밀려났으며, 국내외 소규모 출판물의 허브 역할을 했던 서점 북소사이어티는 홍대 앞을 떠났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프랜차이즈 카페와 떡볶이집과 일본식 주점과 패스트패션 매장과 저가 화장품 점포였다. 강북의 젊은이들도 이런 변화에 한몫 거들었다. 그들은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명동과 동대문에서 밀려나, 2호선을 타고 홍대 앞으로 몰려들었다.


‘젊음의 문화’보다는 지방세 수입에 더 관심이 높을 법한 지방자치단체로서는 반길 만한 사태의 추이였지만, 결과적으로 홍대 앞 거리는 강북의 여느 번화가와 비슷한 모양새로 변모했다. 건물주인 담배 회사가 운영하는 복합 문화공간과 건물주인 대형 출판사가 운영하는 북카페와 건물주인 연예기획사 사장이 운영하는 클럽 정도가 지역색의 마지막 보루로 남았을 뿐이다.


다시 ‘언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돌아가 보자. 지난 5년간의 변화 한복판에서 홍대 앞의 청년 예술가나 디자이너들은 마포의 주변부로 밀려나면서, 문화적 표현과 소통의 출구로 ‘공간’이 아니라 ‘출판물’을 주목했고, 기성의 출판 제도를 우회해 자립의 영역을 확보하겠다는 야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이런 욕구와 야심의 일시적 해방구로 제구실을 해왔다. 그런데 지금,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과연 이 행사의 참여자들은 호황기에 ‘문화의 산업화’에 성공해 지금은 홍대 앞 건물주로 변모한 기성세대의 일부 문화 자본들, 그리고 그들의 경제적 성공 덕분에 자율성의 제도 내부에 제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던 여타의 문화 생산자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소소하지만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비관적인 질문이지만 이에 대한 답변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이 행사의 참여자들은 종국에는 임대료만 올려놓고 사라지는 상권 재활성화의 촉매제이자 문화적 화전민으로 전락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왜냐면 그들이 사라지면 이 도시가 우리에게 남겨놓은 것은 비용 지불 능력과 회전율로 측정되는 ‘고객님’의 자리뿐이기 때문이다. 한 명의 독자로서, 그들이 좀 더 큰 야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해천 | 디자인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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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썽사나운 짓을 하는 사람을 비웃을 때 쓰는 말이 있다. “병신도 급수가 있다더니, 꼴값을 떨어요.” 얄궂다. 나는 눈 병신, 시각장애인이다. 급수가 있다. 나는 1급이다. 1급이 가장 눈이 나쁜 사람이고 그로부터 6급까지 등급이 있다. 1999년에 처음 장애 진단을 받았을 때만 해도 시각 장애 5급으로 비교적 장애 정도가 가벼웠지만, 2005년에 1급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1급 판정을 받고 병원을 나서면서 두 가지 야릇한 생각이 나를 휘감았다. ‘흠, 이런 정도라면 정말 언젠가는 아예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수 있겠네.’ 걱정이었다. ‘그런데 등급이 올랐으니 혜택도 늘어나겠는걸.’ 무슨 어려운 자격증을 딴 사람처럼 으쓱했다.


5급 진단을 받았을 때부터 나는 지하철을 공짜로 탔고, 국내선 여객기와 철도도 절반 요금으로 이용했다. 자동차를 새로 살 때엔 세금을 감면받았다. 주차료를 면제받거나 할인받는 경우도 있었다. 장애인 주차 구역에 편하게 차를 세우기도 했다. 이런 종류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치사하게 가짜 장애인 노릇을 하거나 장애인인 부모의 이름으로 차를 사서 혜택을 보려는 사람도 있긴 하다. 사실 몇 푼 되지 않는 혜택인데 말이다. 내가 1급을 받고 으쓱했던 까닭 가운데에는 혹시라도 나를 가짜라고 의심하는 눈길로부터 떳떳해졌다는 객기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1급이 되어도 추가되는 혜택은 별로 없었다. 국내선 여객기와 철도를 이용할 때 보호자 한 사람까지 반액으로 깎아주는 정도였을까. 이런 작은 실망은 내가 장애인 등급 체계를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에 생긴 결과다. 장애의 정도가 다르니까 사회생활에도 그만큼 어려움이 있을 테고, 그렇다면 사회 보장의 폭도 달라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닐까?


장애인들 광화문 광장서 신문고 울리며 절규 (출처 ;경향DB)


없는 돈으로 살림을 하다 보면 지출 순위를 매겨야 한다. 우선은 먹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 비와 추위를 막아줄 집이 있어야 한다. 벗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마지막이 걸칠 옷이다. 음식의 맛, 집의 넓이, 옷의 멋은 한참 뒤의 일이다. 그렇듯이 가장 어려움이 클 것 같은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삶의 기초를 보장하는 원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나라에 돈이 넉넉하지 않다니, 없는 재원을 나누려면 장애의 정도에 따라 분배하는 게 정의에도 부합하지 않겠는가? 여기까지가 누구에게나 존엄한 인간의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치지 못했을 때 우리가 인간을 그저 하나의 생명체 정도로 보던 태도다.


광화문 지하철역에서 400일 넘게 장애 등급 철폐 서명운동을 벌여온 장애인들이 있다. 장애인인 나 역시 퍼뜩 의문이 들었다. 이게 어떻게 딴 1급인데 등급을 철폐하자는 말인가. 그러다 1년 전에 내가 장애인 활동 보조 제도를 신청할 때의 상황이 떠올랐다. 지체 장애인은 3급까지인가 활동 보조를 신청할 수 있지만, 시각 장애인은 오로지 1급만 신청이 가능했다. 정말 병신도 급수가 있다는 말을 그 경계선에서 실감한 것이다.


들어보니 월 최대 17만원가량의 장애 연금도 1급부터 중복3급까지 소득이 적은 사람 순으로 차등 지급된단다. 확실히 병신도 급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험을 돌아보면 5급일 때나 1급일 때나 일반 문서를 읽을 수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나처럼 아주 운이 좋은 경우를 제외한다면 시각장애인이 일반적인 업무를 처리하기란, 거스름돈을 제대로 헤아려 주기란 다 어렵다. 돈을 벌기 어렵다는 말이다.


등급을 없애고 모든 장애인에게 장애 연금을 지급하라고 하면 당장 두 가지 질문이 나오리라. 재원은 어찌 마련하며, 돈 잘 버는 장애인은 어쩌냐고. 재원은 세금을 더 걷는 수밖에 없다. 사회복지세 같은 복지 목적의 세금을 걷어가면서 장애 연금 받는 폭을 전체로 넓혀가야 한다. 그럼 돈을 잘 버는 장애인에게도 연금을 주고 세금을 더 걷으면 된다. 보편 복지의 원리다. 찝찝한 질문이 하나 남는다. 왜 우리가 장애인에게 그런 투자를 해야 하느냐고. 답은 간단하다. 나도 내가 1급 장애를 갖게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이건범 작가·한글문화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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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거꾸로 가는 작업시계가 있다. 이 시계는 새롭게 알게 된 역사적 사실들이나 사람들, 혹은 장소 때문에 거꾸로 간다. 


요즘 1970년대의 엄혹했던 유신 시절도 아닌데 감시와 색출, 또다시 새마을 깃발을 휘날리며 뒷걸음질치는 시계와는 다른 것이다. 오히려 사라지는 것이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에 거꾸로 가는 시계다. 갈수록 기억력이 나빠지자 정신차려 더 배우라고 재촉하는 시계가 끊임없이 ‘왜, 왜, 왜’ 되물으며 째깍거리니 어쩌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장도리]2013년 10월22일 (출처: 경향DB)



원인을 묻는다. 내 눈앞에 모든 것이 점차 복잡해져만 가기 때문이다. ‘복잡해진다’는 것은 뭔가가 많아졌다는 것보다 어느새 사라졌다고 느낄 때다. 다시 말하자면 사라진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느낄 줄 모르는 무감각한 상태가 나를 복잡하게 만든다. 


사람이 다치고, 알고 있던 장소가 사라지고, 인간답다, 살아 있다…, 이런 것들을 느끼게 해 주던 조건들이 따라서 잊혀져 간다. 그럴수록 대세는 ‘침묵’이라는 최고급 작가 포장지를 덮어쓰고 인내하라는 가르침이다. 그사이 정당화된 공권력의 폭력은 일상의 전기와 수돗물로 이미 내 몸에 스며 들어와 있다. 그러니까 내 몸이 폭력의 혜택으로 살찌고 있거나 자행하고 있기 때문에 복잡한 심정은 분열을 키워만 간다.


밀양의 전기가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데, 오염된 원전수가 입 안에서 녹고 있다는데, 그래도 상상력과 아름다움을 팔아서 내 자식 교육비 정도는 벌어놔야 할 것 아닌가. 


이런 정신분열증적 성격에 이르게 되면, 몇 해 전 읽었던 인도의 여성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작가와 세계화>란 글이 떠오른다. (아마 그때부터 거꾸로 가는 작업시계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양 극단으로 치달으며 신분제에 의한 대량 학살과 핵 실험, 노예 노동과 디지털 혁명, 결혼 지참금 문제로 아내를 태워 죽이는 남편들과 세계 미인대회에 나가는 여성들에 관한 소식을 늘 동시에 접하며 살아가는 인도에서, 3억 인구가 문맹인 나라에서, 이른바 ‘유명한 작가’라는 미심쩍은 영예란 무엇인가.


대한민국에서는 어떠한가. 똑같이 묘사하며 시작할 수 있다. 조금 다른 질문을 덧붙이기 위해….


진실이 채 밝혀지지 않은 학살… 대량 해고와 디지털 혁명,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여론조작과 감시, 매년 증가하는 고독사와 굶어 죽는 북한 아이들 소식. 이 모든 걸 늘 동시에 접하며 살아가는 한국에서, 이른바 ‘세계적 작가’가 되라고 주문하는 ‘전문가’들의 미심쩍은 채찍은 또 무엇인가.


이른바 “전문성이라는 외양간 속에는 수상쩍은 정치적 이해가 숨어” 있다는 것, 누구나 다 안다. 세계적 작가를 승인하는 외양간 속은 말할 것도 없다. 아예 작품성이 세계화의 패턴을 모방하느라 바쁘다. 거기서 전문가는 ‘침묵하라’는 또 하나의 정치적 행위를 학습시키며 타인의 고통을 유통한다. 나도 똑같이 장차 작가가 되고 싶다는 딸아이와 학생들 앞에서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할 수 있는 어떤 비법이라도 전수해야 하는 것 아닐까. 


영국의 현대미술가 데미언 허스트처럼 해골에 보석을 처박아라. 재료가 너무 비싸다고? 제프 쿤스처럼 사탕을 뻥튀기해라. 그것도 비싸다고? 그럼 트레이시 에민처럼 연애라도 많이 해서 네 침대라도 갖다놓지 그래? 그래도 가장 무난한 것은 ‘내면화된 추상’일 거야!


그런데 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그 다음이다. 전문가들 원전비리? 일단 할머니들부터 치워! 4대강 오염? 대통령이 막아줄게! ‘오염은 우리가 시키지만 대가는 너희가 지불하라’는 특권을 가진 전문가는 타인의 고통을 염려하는 이보다 진정성이 우월하다고?!


'밀양 송전탑 반대' (출처: 경향DB)


아룬다티 로이는 유례없이 작가가 환대받는 시대에 인도가 세계화를 향해 내놓을 수 있는 최상의 수출품은 ‘이의를 제기하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커가는 딸아이를 보면서 이의를 제기하는 행동은커녕 세계적 작가가 되려는 꿈도 접는다. 대신 시민 한 사람으로서 세계화보다 지역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세계적 규모보단 일교차가 클수록 잘 익는다는 밀양의 단감 속에서 할머니들 얼굴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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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버스 영화 <어떤 시선> 시사회에 다녀와서 이 글을 쓴다. 지금부터 나는 내게 주어진 지면을 이 영화를 홍보하는 데 다 투자하려고 한다. 이 홍보가 용서받으려면 <어떤 시선>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프로젝트 영화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런데 어느 편이냐 하면, 나는 인권위 운운하는 설명들을 다 지워버렸으면 싶다. 바로 그 설명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지 않기로 결정하게 될까 싶어서다. ‘옳은’ 영화니까 의무적으로 보자는 게 아니라, ‘좋은’ 영화니까 안 보면 손해라는 얘기다. 세 개의 단편을 희미하게만 소개하자.


박정범 감독의 <두한에게>는 장애가 있는 소년 ‘두한’과 그의 친구 ‘철웅’의 이야기다. 두한의 말은 어눌해서 알아듣기 힘들고 동작도 굼떠서 동전치기에 백전백패다. 철웅은, 두한의 말을 유일하게 알아듣고, 두한을 지켜주려다 얻어맞기까지 하는, 좋은 친구다. 여기까지는 일방적인 관계다. 그리고 장애인은 늘 도움이 필요한 ‘객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선입견에 부합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둘 사이에 벌어진 어떤 사건 하나를 해결해 나가면서, 오히려 두한을 이해와 용서의 ‘주체’로 힘 있게 세운다. 그 빛나는 결말부에서 나는 여전히 어눌한 두한의 진심을 다 알아들었다.



일러스트 : 김상민


이상철·신아가 감독의 <봉구는 배달 중>에서 주인공 ‘봉구’가 불편한 몸으로 오늘도 택배 배달을 하는 것은 로또에 당첨돼 미국에 있는 딸과 손자를 보러가기 위해서다. 어느 날 그는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방황 중인 꼬마 ‘행운’이를 만나 먼저 그 아이부터 ‘배달’하려다 유괴범으로 몰린다. 자연스러운 웃음을 이끌어내는 소동극이지만, 더 깊숙이는, 의사소통과 존재배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노인과 아이는 처음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었고, 또 상대방을 더 좋은 곳(상황)으로 배달하는 데 성공했다. 노인과 아이여서 가능해진 일이다. 그들은 어리석고 약하지 않다.


민용근 감독의 <얼음 강>은 종교적 신념(양심)에 따라 입대를 거부하고 교도소에 가기로 결심한 청년 ‘선재’의 속내를 따라간다. 이미 두 아들을 같은 이유로 교도소에 보낸 전력이 있는 어머니는 막내아들마저 같은 길을 걷게 할 수 없다고 진저리를 치지만, 아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 그는 총을 ‘안’ 드는 것이 아니라 ‘못’ 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답답하다. ‘의지’와 ‘선택’의 문제인 것처럼 오도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명칭 때문에 오히려 ‘비양심적 병역기피자’로 오해되는 것은 아닌지.) 모자(母子)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설득하는 장면에서 많은 관객들은 함께 울었다.


아름답게 고유한 이야기들이지만, 공통점을 억지로라도 말해 볼까. 못 하는 일이 하나씩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이 말의 폭력성을 용서해주길)에게 더 큰 무능력이 있음을 알려주는 이야기다. 동전치기를 잘 못하고(두한), 한글을 못 읽고(봉구), 총을 못 든다(선재). 다시 강조하자.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다. 동전치기를 잘 못하는 두한이 자책하자 철웅이 소리를 지른다. “원래 그런 건데, 네가 뭐가 미안해!” 그래 미안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사람들. 귀가 있는데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세 이야기 모두에 나온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길을 묻는 두한을 사람들은 외면한다. “미안해, 못 알아듣겠네.” 봉구가 자신의 무죄를 해명할 때 경찰은 잘 안 듣는다. “이 양반, 치매인가?” 선재의 경우는 아예 말할 엄두조차 못 낸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이 세상은 ‘얼음 강’이어서 귀가 없기 때문이다. 


인권에 대해 이미 충분히 섬세한 사람들이 이 섬세한 영화를 보고 자신이 그동안 더 섬세했었어야 했다고 자책하는 일이 벌어지기보다는, 다 알기 때문에 안 봐도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보면 좋겠다. 이 세상에서 가장 열기 어려운 것은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의 문이다. 잘 만들어진 ‘이야기’는 강철로 된 그 문을 연다.


신형철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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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을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 지난 20년을 돌아볼 때가 있다. 확실히 재밌는 시절이었다. 대중문화의 황금기였던 90년대에 20대의 대부분을 보낸 것도 행운이었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죽던 날, 등장인물의 갈등이 클라이막스로 향하는 닉 혼비의 소설 <어바웃 어 보이>처럼 사회적, 문화적으로 굵직한 일들이 빵빵 터질 때마다 실시간으로 그 감흥들을 느꼈기에 많은 순간들을 또렷이 기억할 수밖에 없다. 단, 흐릿한 시간들이 있다. 군생활을 했던 26개월이 그렇다.


후방에서 있었기에 몸이 고될 만큼의 훈련은 없었다. 그러나 26개월 내내 나를 괴롭혔던 건 상하관계였다. ‘짬’이 달릴 때 악질 선임들에게 당했던 구타와 갈굼은 적어도 그 전의 나에게는 상상도 해본 적 없는 폭력의 나날이었다. 상병을 거쳐 병장을 단 후 이제야 몸과 마음이 좀 편해지려나 싶었는데 이게 웬걸, 간부들의 온갖 부당한 지시와 압력이 기다리고 있었다. 돈 없고 ‘빽’ 없는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하는 군생활이라지만, 그 시간을 거치면서 나는 분명히 달라졌다. 에너지가 소진되고, 권위와 폭력에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되었던 것 같다. 제대한 지 15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때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자신은 없다. 애써 기억하지 않으면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머릿속에서 빠르게 그 시간은 사라졌다. 일종의 선택적 기억상실처럼. 아직도 내가 꿀 수 있는 최고의 악몽은 다시 군대에 가는 꿈이다. 차라리 귀신 나오는 꿈이 낫다.


군대 내 구타 및 가혹행위에 대한 병사들 설문조사 결과 (출처 ;경향DB)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이 논란이 된 바 있다. 3부를 끝으로 종영한 SBS <송 포 유> 말이다. ‘일진’들을 모아서 음악으로 갱생시킨다는 의도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었다. 출연 학생들은 스스로의 악행들을 고백했다.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동안 인터넷은 들끓었다. 멘토로 출연한 이승철은 출연자들을 옹호하다가 SNS 계정을 폐쇄했다. 출연자들 역시 누리꾼들의 비난에 시달렸고, 제작진은 어설픈 해명으로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곤 했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SBS 3부작 특별기획 <송포유> (출처 :경향DB)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생은 바꿀 수 있다. 사춘기의 어느 날 음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분명히 문제아로 살았을 거라는 고백은 뮤지션들에게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음악을 소재로 한 창작물의 등장인물 중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종종 등장하는 것 또한, 그런 사례들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개봉한 <파파로티> 또한 실화를 토대로 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이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허구이기 때문이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종이나 스크린 속에 있을 뿐이다. 그들은 향유자의 욕망 안에서 행동하고 반성하고 용서한다. 허구의 세계에선 가식이 없다. 진심을 확인할 필요가 없다. 감정이입과 믿음만이 존재한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허구가 현실이 되면 다르다. <송 포 유>의 출연자들에게 당했던 피해자들은 분명히 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해야 했던 아이들이 있다. 과연, 그들은 자신을 때리고 돈을 빼앗고 땅에 묻었던 사람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니, 차마 고개를 들어 TV 화면이나 쳐다볼 수 있었을까.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경험을 당했던 수많은 학교폭력 피해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테다. 비단 <송 포 유>에서 다뤘던 학교폭력만이 아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일은 좀처럼 많지 않다. 크게 보자면 독재정권 때의 여러 사건들을 합리화하려는 세력이 있다. 가깝게 보자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성추행을 무마하려는 상사가 있다. 그들이 사과하지 않는 이유는 강자이기 때문이다. 이미 확립된 강약의 구도에서 그들은 굳이 참회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허구의 세계에서나마 가해자가 용서를 구하는 모습에 진심을 투영한다. 허구이기 때문에 가능한 카타르시스다. 허구는 허구의 역할이, 현실은 현실의 역할이 있다. <송 포 유>는 그 역할을 착각했다. 아니, 무시했다. 그 누구를 위한 노래도 아니었다.


김작가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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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회경험’이라는 말을 쓴다. 사회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사회경험을 통해 ‘인생이란 말이야’ 혹은 ‘세상은 말이지’ 하며 그럴듯하게 말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게 사회에서 살아가야 할 삶일지는 몰라도 개인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전부는 아니다. 사회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정치적 부조리, 경제적 불평등에 더해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사회에 대한 불안이 원인이라고 말하면 틀리지 않는 대답일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스트레스는 살면서 겪어야 하는 경험의 전부를 사회에서 얻는 사람들(바로 ‘사회란 말이지’ 하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우리들 말이다)이 만들어낸 피곤함이 아닐까?

우리는 상상과 현실을 분리시키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개인과 사회를 분리시킨다. 사회를 통해 경험되지 않는 것은 개인적이며 상상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비사회적이며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런 영역이 없다면 개인은 자신을 경험하지 못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공간 바깥 어느 곳에서도 나라는 존재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곳이 바로 자아의 공간이다. 근대적 주체로서의 자아가 성립하지 않았다는 말은 서구적 의미에서 개인주의의 발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개인의 가치가 사회적 가치와 일치되는 한에서만, 개인을 사회의 일원으로 수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서 벗어난 개인의 생각과 가치는 제도적으로 거부되거나 최소화됐다.

 

(경향DB)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에서 자아는 개인적 공간의 경험이 아니라 사회적 공간의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다. 사회의 교육시스템은 마치 개인에 대한 경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프로그래밍된 것처럼 보인다. 창의적인 교육에서조차 개인적 경험을 체험학습이라는 사회화된 프로그램으로 대치해버린다. 사회에 나가면 개인은 사회를 구성하는 개체의 삶을 살도록 강요된다. 말하자면 우리는 살아오면서 세계의 절반만을 경험하도록 사회화됐다. 이런 상황이 일상화된 사회 속에서 개인은 현실에 대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가늠한다. 이를테면 한 가족의 가장이자 한 기업의 과장인 당신은 당신이 지닌 사회적 위치가 자신의 자아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자아만이 강요되는 그곳에서 개인은 스스로를 경험하지 못한다. 그리고 개인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자아는 없다.

자신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누구나 자신을 경험한다. 그러나 자신을 경험한다는 말은 자신과 대면한 모든 세계와 현상을 자신의 생각으로 재배치하고 재해석하며 그것을 스스로에게 다시 다가오도록 한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으로 말이다. 만일 자신의 생각이 완벽하게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일치한다면 즉 사회적 질서와 가치에 일치한다면 개인이 자아를 가질 이유는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니 그런 사회가 있다면 자아를 갖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우리 모두 그런 사람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세계와 자신에 대한 의심과 회의는 나를 포함한 세계의 실체적 본질에 한 걸음 더 접근하는 출발점이다. 이런 불안한 비사회적 통과의례를 경험하지 못한 개인에게 자아는 없다.

우리는 개인의 경험을 통해 사회의 가치와 공유될 수 없는 지점이 자신에게 남아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개인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사회는 그렇게 태어난 서로 다른 개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사회가 피곤한 이유는 서로 다른 가치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틈을 어느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대개는 ‘사회란 말이지’라고 말하면서) 메워버리려 하기 때문이다.

현실 속에서 개인의 경험은 사회와 분리된 시간과 비어있는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유감스럽게 이 사회는 게으름과 여유와 나태의 그 비어있는 틈마저 샅샅이 찾아내 사회적 효율성과 경쟁이란 이름으로 메워버렸다. 사회가 자꾸 피곤해지는 이유이다.

 

 김진송 | 목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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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9일 한글날이 23년 만에 공휴일로 돌아왔다. 올해부터 쉬는데, 아직 모르는 사람이 많다. 국어 단체가 앞장서기는 했지만 학부모, 시민, 노동 단체들이 모두 힘을 모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회와 국민의 압도적인 호응이 정부를 움직였고, 마침내 2012년 12월24일에 한글날이 공휴일로 확정됐다. 2005년 말에 국경일로 정해진 뒤 7년 만의 일이다. 공무원의 주 40시간 노동 도입에 따라 2008년부터 제헌절이 공휴일에서 빠진 점에 비춰보면 뜻밖이지만, 그만큼 우리 국민이 문화의 가치를 인정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신호가 아닐까 한다.


쉬는 날이니 푹 쉬자. 집에서만 뒹굴기에 아깝다면 여기저기서 열리는 행사에 가족과 함께 참여하는 것도 좋겠다. 한글날 아침에 광화문에서 출발해 세종대왕께서 태어나신 집터와 주시경 선생 집터 등을 둘러보는 걷기대회도 열리고 한글옷 맵시자랑을 비롯해 여러 행사가 열린다. 무엇을 하며 보내든 단 한 가지만은 되돌아보는 날로 삼자.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 아니다. 그건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세계의 언어학자들도 인정한다. 얼마나 과학적이었으면 아무리 어리석어도 열흘이면 깨칠 수 있다는 이야기가 한글 반포 당시에도 나왔겠는가.

 

한글날 서예 퍼포먼스 (출처 :경향DB)



한글날에는 세종의 마음을 되새기자. 세종대왕께서는 백성이 제 뜻을 펼 수 있게 하고자 한글을 만드셨다. 품은 뜻을 펴 사람들끼리 서로 통하게 하겠다는 소통의 정신이고, 오늘날의 가치 가운데서는 ‘인권’이나 ‘차별 줄임’과 맞닿아 있다. 그런 마음에 세종의 천재성이 더해졌으니 우리나라의 문맹률이 낮은 건 자랑거리도 아니다. 한글 반포 567돌이 된 오늘날, 모두가 제 뜻을 펴게끔 하겠노라던 세종의 바람이 문자 생활에서는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그런데 궤변 같지만, 한글의 뛰어남이 이제 세종의 한글 창제 정신을 위협하고 있다. 한글이 역모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워낙 뛰어난 문자다 보니 한글은 외국어를 소리대로 적는 데에도 아주 탁월하다. 마음, 태도, 자세, 심성 따위를 써야 할 자리에 버젓이 들어서고 있는 ‘마인드’라는 말을 영어 알파벳으로 적는 사람은 이제 드물다. 어떤 ‘싱크탱크’에서 붙인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소득층이나 장애인에게 지급하는 복지 이용권은 ‘바우처’라고 적는다. 이렇게 영어 낱말을 술술 적을 수 있는 걸 보면 확실히 한글은 ‘베스트로 엑설런트한’ 문자다.


문제는 글자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말인 것이다. 차별 없이 제 뜻을 펴게 하려던 세종의 정신은 영어 능력 격차 때문에 위협받고 있다. 영어 낱말 섞어서 말할 줄 모르면 가방끈 짧고, 돈 없고 시대에 뒤떨어진 국수주의자 취급을 받으니, 따돌림당하지 않으려 너도나도 기를 쓰고 그렇게들 말한다. 격차가 커지는 만큼 영어 광기는 더 이글거린다. 이 사슬 구조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학력이나 영어 능력에 따른 양극화를 정당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글자는 말 다음에 오는 것이니, 사실은 우리말 생태계가 파괴돼 가는 꼴이 글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날 뿐이다. 공무원들이 공문서 한글 전용을 규정한 국어기본법을 위반하지 않으려면 외국어를 소리나는 대로 한글로 적으면 된다. 이렇게 영어 낱말을 한글로 적는다 하여 문자 체계인 한글이 파괴될 리는 없다. 우리말 생태계가 파괴되어도 한글은 그 파괴된 말을 다 적을 수 있는 뛰어난 글자니 한글이야 어찌 파괴되겠는가?


[김용민의 그림마당] 2009년 10월 9일 (출처 :경향DB)

한글에는 외국말을 막을 힘도 방법도 없다. 그렇게 한글은 살아남으면서 세종의 창제 정신인 ‘차별 없는 소통’에 반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물론 한글 스스로 꾸민 역모는 아니다. ‘월드 베스트’라며 한글의 우수성을 자랑하는 데에만 빠진다면, 당신도 그 역모에 가담한 대역죄인 누명을 벗기 어려울 것이다. 영어 낱말은 혼자 오지 않는다. ‘디지털’은 ‘사진기’라는 말을 ‘카메라’로 완벽하게 바꾸었고, ‘라이브러리, 리터러시’ 등 다른 말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리고 한국어 생태계의 파괴는 점차 한글의 설 자리도 좁힐 것이다. 한글날에 세종의 마음과 우리말을 되돌아봐야 할 까닭이다.


이건범 | 작가·한글문화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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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중산층의 삶을 꿈꾸는 젊은 남성 K씨가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식구를 먹여 살리는 것이 가정을 가진 남자의 의무라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다. 


가장의 의무라니? 지금의 시선으로 보자면 왠지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K씨가 외면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가족의 시간은 바깥 세계의 시간과 다른 속도로 흐르고 보통 부모의 시계에 맞춰져 있게 마련이니까.


영화 '행복을 찾아서' 윌스미스 (출처 :경향DB)


1950년대 중후반생인 K씨의 부모는 그 세대 태반이 그랬듯이 청년기에 고향을 떠나 어렵게 서울에 정착했고, 남이 뭐라고 하든 자신은 중산층의 삶을 살고 있다고 믿었다. K씨는 해마다 명절이 돌아오면 아버지가 운전하는 자가용에 몸을 실은 채 귀성길에 나서야만 했다. 주차장으로 변한 고속도로가 그의 조부모보다 먼저 나서 그를 맞이해 주었고, 그때마다 그는 농경문화에 뿌리를 둔 자기 가족의 정체된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K씨가 정말로 가장이 되고 싶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아무튼 식구를 먹여 살릴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학교’라는 무대에서 경쟁에 나서야만 했다. 그는 행복한 삶을 꿈꾸었고,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자신의 미래 가족에서 찾으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경쟁 상대가 또래의 남성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승수를 늘려가며 계단을 올라갈수록 상황이 예상과는 다르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또래의 여성들 역시 남성 못지않은 실력을 겸비하며 경쟁의 장에 뛰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여성들이 사회에서 상당한 차별과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만큼 무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냥 알고만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막상 또래 여성들이 경쟁자로 모습을 드러내자 그의 표정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경쟁률이 높아지면 낙오자의 수는 늘게 마련이니까. 그는 여성 경쟁자들로 인해 패자의 대열에 끼지 않을까 두려웠다.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었지만, K씨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살아남았고 드디어 결혼을 준비할 나이가 됐다. 그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가장의 의무를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걸 어쩌지, 세상은 이미 그의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가장의 외벌이 임금 소득만으로는 ‘내 집 마련’을 꿈꿀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한 중년 남성이 계단을 오르고 있다. (출처 :경향DB)


세상의 변화를 눈치챈 상당수의 경쟁자들은 이미 짝을 이루어 맞벌이 전선에 뛰어든 지 오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경향을 두고선 남녀평등의 결실이자 자아실현의 계기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K씨가 보기에 그저 부모의 자산을 증여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 이들의 생존 전략에 불과했다. 그는 결혼 역시 또 다른 경쟁의 무대라는 사실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번 경쟁은 혼합복식전이었다. 그의 경쟁자였던 또래의 남성과 여성이 이번에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팀을 이뤄 그가 무대 위로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개인전과 혼합복식전이라는 두 겹의 경쟁 앞에서, 그리고 개인의 거의 모든 선택이 경제적 합리성에 좌우되어야 하는 상황 앞에서 점점 전의를 잃어갔다. 물론 이런 상황을 돌파하는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했다. 국가가 나서서 주거와 교육에 관한 복지 제도를 강화해 개인에게 강요되는 경쟁의 하중을 분산시켜주는 것이었다. K씨가 보기에 꽤 그럴싸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무상급식에 대한 반발을 보건데, 자신들의 세대가 이런 대책의 수혜자가 되기란 애초에 불가능해 보였다.


그 무렵 K씨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갖가지 여성 혐오를 담은 글 타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그 글들을 읽으며 묘한 쾌감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고선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의 부모가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시대’를 살았다면, 자신은 ‘복지는 멀고 혐오는 가까운 시대’를 견뎌내고 있다고 말이다.


박해천 | 디자인 연구가 ecri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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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이 답답하게 돌아가니까 애매한 캔버스 밑바탕 칠만 하게 된다. 그럴수록 캔버스는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말하며 나를 더 자극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하얗게 튕기고 있는 표면을 노려보자니 어떤 새로운 원근법을 강제하고 싶은 욕망도 강하게 생겨난다. 가령 목표도 소실점도 없이 서로 연관이 없는 기억들을 덧대다 보면 새로운 별자리가 생겨나겠거니 하는 식으로. 그러나 소망하는 그림과 달리 펼쳐져 있는 현실은 파국적이라 할 만하다.


예컨대 화면의 근경에는 혼외 자식을 둔 의혹을 받아 결국 사의를 표명한 검찰총장이 건물을 나서고 있고 육체관계는 있었으나 교제는 없었다는 희한한 내용을 발표한 대형교회 아들이 모텔 창문에서 얼굴만 삐죽 내밀고 있다. 온 나라가 난데없는 외설로 채워진 광장에는 벌거벗겨진 열 살 또래 두 남자아이가 각각 유전자 검사를 기다리며 면봉을 입에 물고 있다. 한구석에서는 치마폭 속을 뒤지느라 바쁜 신문사주가 자신의 혼외 자식은 몰라본 채 다음 눈엣가시를 한 방에 날릴 ‘어게인 혼외 자식 시리즈’를 검토하고 있다. 전혀 1등 신문다워 보이지 않는 품위다.


 

하수구 저널리즘을 규탄한다 (출처 :경향DB)



그 중경에는 대선개입 증거가 드러나자 난데없이 NLL 관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카드를 꺼내 들고 나타난 국정원이 있다. 그들은 장난감 총을 개조하여 무장한 이석기를 내란음모죄로 끌고 가면서 회심의 미소를 띠며 정국을 전면 장악하고 있다. 그사이 새누리당 역사 교실에서는 맛있는 아침밥을 먹으며 종북좌파척결 방안이나 연구하고 있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정권세력은 공안정국 부흥회를 열어 빙의하고 있다. 


개인들이 미미한 원경에는 정국 규탄 촛불과 살수차가 뒤엉켜 진창을 이루고 있는데 한강 다리에서 몸을 던지려는 사람도 보이고 아파트 베란다 15층 아래로 작은 종이상자 하나를 던지는 여중생도 보인다. 그 종이상자 속에는 부모가 TV를 보고 있는 사이에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게 된 여중생이 흉기로 수차례 찌른 영아가 담겨 있다. 너무 끔찍해 한 걸음 물러서자 그림 전체에는 통제 불능한 원전오염수가 MB 4대강 녹조라떼와 뒤엉켜 흘러내린다.


영산강 '녹조라떼' (출처 : 경향DB)


이 모든 것은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대치의 균형을 이룬 파국의 그림이었다. 반공 이념에 기대어 성장한 근대화의 이분법적 사고가 모든 것을 되풀이하게 만드는 원근법. 이러한 파국의 원근법을 파국적 균형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김호기 교수는 현 사회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설명한 이 파국적 균형 사태로 진입했다고 진단하고 그것이 가질 수 있는 세 가지 미래를 예로 들었다. 첫 번째, 확장적 헤게모니로 변화돼 새로운 균형으로 나아가거나 두 번째, 불행히도 균형의 파국으로 나아가는 상황, 세 번째는 구조화된 대립과 갈등의 만성화라고 한다. 


지금 한국의 정치상황은 세 번째 미래를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파국적 균형은 피터 브뤼헬의 ‘장님의 우화’처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다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 해도 아무도 먼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권력의 배후에서 언제든 존엄을 절멸시키려 들고 복종을 종용하는 자칭 보수들과 구석기 시절에서 살다 나온 것 같은 자칭 진보들, 둘 다 똑같은 맹인들로 보이는 것은 나만 그럴까. 어떤 희한한 과대망상 환자에 따르면 “현재 좌파 진영이 교육계와 언론계의 70%, 예술계의 80%, 출판계의 90%, 학계의 60%, 연예계의 70%를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참 인색하다. 미안하게도 진정한 예술가라면 100% 좌파다. 예술창작행위가 불일치와 불복종을 통과하지 않으면 그건 유사품이지 창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은 다 사고뭉치였고 사건들이었다. 그렇다면 직시해야 할 이 파국의 시대에 우리가 요청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파국의 원근법에서 어떻게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깨고 환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될까. 내가 위에서 묘사한 그림이 주는 외설적인 느낌과 파국적 균형을 뚫어내기 위해 기꺼이 캔버스를 찢고 창문을 연다. 파국의 원근법은 변증법적 상상력을 요청하고 있다.


임민욱 | 설치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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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헌법이 선포되고 몇 달 뒤 소설가 이청준은 연작소설 ‘언어사회학서설’의 첫 단편 <떠도는 말들>(1973년 봄)을 발표했다. 당시 시대상의 한 본질을 말의 타락이라는 측면에서 성찰한 작품이었다. 그 시대상이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 많은 말을 하여 말들의 주소를 바꿔 놓음으로써 말들을 혹사했고 말들을 배반했고 결국에는 그 말들이 기진맥진 지쳐나게 했다.” 유신헌법 탓에 ‘유신(維新)’이라는 좋은 말이 주소를 잃어버린 때였다. 40년 전 소설 얘기지만 안타깝게도 주소를 잃고 떠도는 말들은 지금도 많다. 말들이 우리에게 혹은 우리가 말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마녀사냥’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봤다. 남자들이 보기에 밉살스럽다 할 만한 여성 캐릭터를 대중문화 생산물들에서 골라내고 그녀의 ‘죄질’을 신랄하게 공표하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여성 패널들이 변호인 자격으로 참석해 있기도 하니 일방적인 매도만 행해지는 것은 아니며, 남녀 간 상호 이해를 증진시켜 보자는 취지도 희미하게나마 감지되기는 했다. 아무리 그래도 제목이 ‘마녀사냥’이라니, 좀 심하다 싶었다. 예능 프로그램에 정색하고 시비를 걸고 싶지는 않지만, 중세시대의 그 끔찍한 집단 테러를 자꾸만 떠올리게 하는 이 제목에 도대체 무슨 이점이 있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위 사례는 말에 우리가 상처를 입는 경우다. 정치권에서는 반대의 경우가 많다. 많은 좋은 말들이 무참히 상처를 입는다. 어느 집단이 좋은 이름을 내걸고 그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 상처를 입는 것은 그 집단이 아니라 이름이다. 예컨대 ‘통합된 진보’를 주창한 집단의 어떤 구성원들은 진보적이기는커녕 30년 전에 멈춘 시계를 차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니, 이제 진보를 자임하는 사람은 오해받지 않기 위해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는 긴 부연 설명을 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진보’라는 말이 입은 상처는 계량하기 어렵다. 벅찬 희망을 품게 하는 이 말은 독선적 망상과는 늘 무관하다. 


[시사2판4판]국민대통합 막말 대상 (출처: 경향DB)


위 집단의 진상을 국민들에게 알린 조직의 명칭은 ‘국가정보원’이다. 이름과 실질이 어긋나기로는 그들도 만만치 않다. ‘국가정보원’이란 ‘국가’의 안녕에 유용한 ‘정보’를 수집·관리하는 집단이라는 취지의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지난 대선 때 한 일을 안다. 그들은 제 이름과는 달리, ‘여당’의 안녕에 유용한 ‘흑색선전’을 창작·배포하는 데 혼신을 다했다. ‘국가’라는 말이 오염됐고 ‘정보’라는 말이 희화화됐다. 그들은 그것이 애국이라 생각했겠지만, 애석하게도 ‘한국은 국가기관이 선거에 은밀하게 개입하는 정치후진국’이라는 일급비밀 정보를 전 세계에 알렸을 뿐이다.


그 ‘국가적 정보’의 은덕을 입었건 입지 않았건 해당 정보기관과 가깝게 지낸 여당은 낯이 뜨거울 텐데, 국정조사 현장에서 여당 의원들이 취한 느긋하고 당당한 태도는 인상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자주 ‘글로벌 스탠더드’를 들먹이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들의 이해와 체화의 수준이 그 기준에 턱없이 미달한다는 것을 모른다. 그 당의 이름이 ‘새누리’인 것은 비참한 아이러니다. ‘새누리’가 무슨 뜻인지 묻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슬픈 표정으로 긴 설명을 해야 한다. 이 아름다운 우리말이 겪고 있는 모욕을 어찌해야 하나.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 당의 이름이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최근에 가장 참혹하게 상처 입은 말은 ‘민주화’일 것이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한국 사회가 성취한 가장 숭고한 전진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는 ‘민주화’라는 말이, 그 이름을 여기에 적고 싶지 않은 모 인터넷 집단에서는 가장 추악한 욕설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그들의 폭언을 어떻게든 견뎌보려 애쓰고 있는 것은 그들이 그토록 조롱하는 그 민주화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다. 


일베 저장소 그들은 누구인가? (출처 : 경향DB)


그들은 ‘민주화’ 덕분에 자신들이 계속 ‘민주화’를 욕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모욕을 가할수록 그 말이 더 숭고해진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학대해도 어떤 말은 제 자신을 지킨다.




신형철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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