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사람은 흔히 남김없이 쓴다 해도 결코 완전하게 쓸 수 없으리라는, 아무리 적게 쓴다 해도 너무 많이 쓰게 되리라는 불안을 느낀다. 이 불안이 글쓰기를 절대적으로 가로막지 못하는 이유는 글을 읽는 이들 역시 글을 쓰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글쓰기의 불완전성을 알고 있으리라 간주하기 때문이다.

만약 한 편의 글이 완전하다면 그 이유는 글 자체가 흠잡을 데 없이 정교해서가 아니라 글의 틈이나 군더더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채우고 소거하며 읽어주는 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이 그러하듯이 말 또한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완전해지는 듯하다.

여러 해 전 작가 체류 프로그램에 참여해 인도에 머문 적이 있다.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에 속한 오로빌이라는 곳이었는데 일종의 생활공동체였다. 거기에 정착한 사람들을 오로빌리언이라고 하는데 그 당시 한국인 오로빌리언도 예닐곱가량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내게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인도에서 여러 해를 지냈지만 형편이 닿지 않아 한국에 돌아갈 수가 없었다. 어느 해 여름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그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날아왔다. 공항이 있는 도시까지 마중을 나간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그가 사는 곳으로 왔다.

그가 머무는 공동체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인도 현지인들의 마을을 지나야 했다.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노인들이 반얀나무 그늘 아래 주르르 앉아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노인들 옆에 앉더니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노부인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뜨거운 여름날 고향 마을 들머리 정자에 모여 잠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과 그러하듯이 무람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의 말에 맞장구도 치고 고개도 끄덕이고 혀도 차면서. 그는 재촉하지 않고 두 노부인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그의 심사는 복잡해졌다. 어머니가 지금 이야기를 나누는 노부인은 열다섯 개나 되는 인도의 공용어 중 하나인 타밀어를 쓰는 사람이었다. 어머니 역시 표준 한국어가 아닌 고향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었다.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어머니는 족히 한 시간쯤 즐겁게 대화를 나눈 뒤에야 인사를 하고 일어섰다. 그가 어머니에게 말도 안 통하는데 무슨 얘기를 그리 오래 나누었냐고 묻자 어머니는 그게 대수냐는 듯 한숨을 푹 내쉬더니 “저이도 사는 게 힘든가보더라” 하고는 그만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흔흔히 웃고 말았지만 곱씹어 보면 기이한 사연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이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지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을 서로에게 비끄러매어준 힘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뜨뜻해졌다.

인종도 국가도 언어도 경험도 다른 두 사람이 서로에게 발견했던 것들, 어쩌면 볕에 그을리고 주름이 고랑을 이룬 얼굴이었거나 염소 목줄에 쓸려 생겨난 손목의 상처였거나 마디 굵은 손가락이었거나 혹은 푸른 하늘에 높이 뜬 부드러운 조각구름 하나였거나 반얀나무 잎사귀를 흔들고 지나는 바람이었을지도 모르는, 눈을 감아도 보이기에 서로에게서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들을 생각하면 ‘저이도 사는 게 힘든가보더라’는 말에 담긴 무수한 의미들이 섬돌에서 튀어 오르는 자디잔 빛 알갱이로 눈앞에 떠올랐다.

두 사람의 언어는 무관했지만 그러한 사실이 두 사람이 서로에게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애틋함과 공감을 느끼는 걸 가로막지는 못했다. 그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본 게 아니라 서로의 삶을 통째로 단번에 알아보았던 거다. 서로의 가슴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감으로써. 물론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나도 여느 소설가들처럼 소설을 쓸 때마다 불안하다. 내 소설이 완벽하지 못할까 봐 불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흠투성이의 글이라 할지라도 평생을 두고 쓰게 되면 소설을 쓰며 살았던 세월을 알아봐주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 같고 나 역시 그런 사람을 한눈에 알아보아 기꺼이 지나온 삶을 각자의 언어로 들려주고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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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과 혼술이 보편화됐다. 서울의 뜨는 동네들은 대규모 연회석보다는 1~2명을 상대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예 ‘혼술 환영’을 내건 가게들도 종종 보인다. 20대의 17%, 30대는 18%가 1인 가구다. 30대도 지난 나 또한 1인 가구다. 언젠가 생각을 해봤다. 이대로 혼자 살아도 괜찮을까? 일상적인 부분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살림 같은 건 충분히 가능하다. 쇼핑도 마찬가지다. 외로움을 거의 타지 않는 편인 데다가 누구 눈치도 보지 않기에 혼자서 밥도 잘 먹고 자잘한 살림도 싫지 않다. 여전히 혼자 사는 친구들도 많으니 밤이 외롭지도 않다. 유효 기간이 언제일지는 몰라도 연애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가정을 이룬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여행도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물론 이건 프리랜서의 특권이기도 하지만. 어느 나이가 되면 대학을 가야 하고 또 어느 나이가 되면 취직을 해야 하고 그리고 어느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해야 하고 결국 어느 나이가 되면 부모가 되어야 하는, 당연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당연하지 않은 인생의 매뉴얼북만 집어 던질 준비가 되어 있다면 혼자 산다는 건 충분히 매력적이다.

서울의 한 할리스 커피 매장에서 손님들이 1인용 테이블에 앉아 있다. 혼밥, 혼술 등 ‘1인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할리스는 최근 주요 매장에 1인 좌석 및 도서관 형태의 분리형 좌석을 설치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인생이란 뭔가가 일어나기 때문에 인생인 법이다. 나에게든, 남에게든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일이 일어난다. 반드시 그렇다. 몇 년 전, 혼자 살던 지인이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전날 밤까지 친구들이랑 거하게 마신 후 집에서 쓰러졌다. 함께 사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119를 불렀을 것이고, 소생의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 동안 꼬박 방치돼 있었다. 그는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갔다.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혼자 살았다. 슬픔을 나누고자 만든 술자리에서 누군가 말했다. “우리 매일, 아니 며칠에 한 번이라도 안부 문자라도 주고받으면서 살자.” 물론 말뿐이었다. 혼자 살지언정 매일 가족들과 안부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연애를 하지 않는다면 더욱 그렇다.

또 하나의 리스크가 있다. 늙어가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은 끼리끼리 갈라진다. 가족을 꾸리면 가족 단위의 모임이 생기고, 아직 그 단계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은 소외된다.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뜸해지더니 그렇게 비웃던 카카오스토리에 아기 사진을 올리는 친구를 봤을 때의 당혹감이란! 그 친구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더니 나만 쏙 빼놓고 가족끼리 휴가를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서러움이란! 술자리 맹세의 허무함을 깨닫는다.

가정을 만들기는 싫고 (혹은 자신이 없고) 언제까지 혼자 살 수는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은 그래서 공동체를 만든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끼리 정기적으로 모이는 작은 공동체부터, 아예 시민운동 개념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공동체까지. 1인 가구가 늘어가면서 후자의 실험들도 이어지고 있다. 혼자 사는, 그러나 콘텐츠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며 일상 속에서 재미있는 기획들을 꾸려내고자 만들어진 서울 성수동의 ‘디웰’ 같은 경우도 있고 시민단체에서 주택을 구입, 개조한 후 임대하는 형태도 있다. 이런 시도의 공통점은 현대의 주거 문화와는 달리 교류를 중점에 둔다는 데 있다. 생각해보라. 이웃집 사람과도 인사조차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게 우리의 생활이다. 아파트에 살건, 원룸에 살건 마찬가지다. 그러면서도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다 알고 산다는 시골 마을을 부러워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런데 막상 닥치면 불편하다.) 요컨대 집단주의의 환상과 개인주의의 편리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는 과도기적 상태다.

그래서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시도와 갈망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사이의 절충점일 것이다. 가족으로 대변되는 1차 집단도, 학교로 대변되는 2차 집단도 아닌 세대와 취향의 새로운 집단. 디지털시대가 만든 3차 집단 내부의 시도라는 이야기다. 원치 않는 간섭은 피하되, 이웃의 따뜻함은 누릴 수 있는 그런 공동체에 대한 시도 말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인류는 주거 환경을 바꿔 왔다. 세대라는 개념이 등장한 게 반세기가 지나지 않은 지금, 인생의 매뉴얼북에 연연하지 않으려는 세대의 실험은 한국 사회의 모습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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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사인 지인이 “요즘 학생들은 선생님을 존경하지도, 정을 주지도 않아서 예전만큼 가르칠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한탄하자, 부인께서 담담한 어조로 폐부를 찔렀다고 한다. “그 아이들도 젊은 선생님들한텐 다를걸.”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크게 웃다가, 남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늙음에 대한 자인(自認)은 환멸을 수반하는 계몽적 인식과도 같다는 사실을.

오늘날 노년이나 늙음과 관련된 문제는 예전과는 조금 다른 형편에 처한 듯하다. 늙음 자체보다는 제대로 늙을 수 없다는 것이 새로운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평생직장 개념이 붕괴한 무한 경쟁사회, 끝없는 자기혁신과 평생학습의 구호 속에서 한국인들은 더 이상 늙을 수가 없다.

사회적 안전망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에서 ‘호모헌드레드’ 시대의 개막이라는 소문은 불안만을 가중시킨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말이 허튼 표현이 아니다. 한국인들은 실제로 늙지 못한 채 나이만 먹고 있다. 낡은 것이 초단위로 폐기되는 사회에서 그들은 필사적으로 젊음을 유지하고자 한다.

늙거나 낡아서 오히려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고전문학이나 고전음악과 같은 ‘고전(古典)’ 텍스트가 그렇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고전의 가치조차 ‘새로운 것’ 혹은 ‘미래의 것’과의 관련성을 증명할 때에만 비로소 승인된다.

이 시대의 고전은 ‘명문대 선정 고전문학 100선’과 같은 표식을 붙이고서야, 혹은 종종 ‘K’자가 붙는 한류 문화 콘텐츠 개발을 위한 문화자원으로서 내세워질 때에야 그 효용이 인정된다. 미래를 위한 전략과 투자에 쓸모 있는 낡은 것들, 한국에서 고전이란 말하자면 재건축 가능성이 있는 낡고 비싼 아파트와 같은 것이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 전체가 사실상 ‘새로운 것’에 대한 추종과 ‘낡은 것’에 대한 폐기와 개조의 역사다.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맹종이 극에 달했던 시기가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박정희의 철권통치 시절이다. ‘근대화’가 동네 슈퍼의 이름이기까지 했던 당시에 ‘새로워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신앙이었다. ‘새마을운동’과 ‘새마음운동’, 이 시대 권력의 요구에 응답했던 순박한 국민들은 ‘새로움’을 향한 일사불란의 행진 대열에 기꺼이 동참했다. 그리고 한 세대 이상이 지난 지금, 그들 가운데 일부가 리프팅 시술을 거듭한 ‘유신(維新)의 공주’와 함께 제때 늙지 못하고 나이만 먹은 채 이른바 ‘태극기집회’에 모였다. 한 손에 성조기를 들고 여전히 저 1970년대식 근대화에 대한 청춘의 신념을 불태우면서.

그러니 촛불광장의 젊은이들로부터 ‘틀딱’(틀니 부딪치는 소리라는 뜻)이라 조롱받는다고 해서 그들을 주책없는 ‘늙은이’로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그들이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맹렬하게 ‘새로움’을 추구했던 세대라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된다. 요컨대 우리가 ‘틀딱세대’로부터 진정으로 청산하고 결별해야 할 것은 그들이 가진 유신의 기억, 반공 이념으로 화한 맹목적 개신(改新)의 신앙이다.

촛불시민의 자격이 ‘젊음’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청산해야 할 적폐를 늙음이나 낡음 그 자체로 착각할 경우 ‘틀딱’은 차례로 1980년대 민주화 세대, 1990년대의 IMF 세대, 심지어 2010년대의 세월호 세대로 이어질 것이다. 돌아보면 세월호 참사의 주원인 가운데 하나가 불법적 ‘개조’였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대응 또한 적반하장 ‘국가개조’였다. 대통령 탄핵선고 이후에도 적폐의 정치인들은 대놓고 ‘개헌’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새로워져야 할까?

모든 나이 듦이 ‘꼰대질’과 ‘갑질’이 되는 사회, 더 이상 향기 나게 늙지 못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죽은 시니어의 사회’는 젊은이들에게도 불행한 사회다. 그것은 다른 의미에서 ‘미래가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촛불의 광장은 ‘새로운 것’을 위한 자리만은 아니었다. 광장의 촛불이 밝혀주었던 것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낡고 진부한 이념이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소중한 것은 종종 그렇게 낡고 오래된 것들 속에 있다.

최유준 전남대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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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풍경 묘사는 언제나 심리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시선에 포착된 풍경은 그 시선에 의해 새로이 부각되거나 부식되거나 하기 때문이다.

바람 한 점 없이 맑은 날 바다 앞에 선 이가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를 가리켜 사납게 으르렁거린다 해도, 이와 반대로 폭풍우가 치는 날 바다 앞에 선 이가 숨 막힐 듯 고요하다 말한다 해도 기꺼이 동감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이가 보는 바다가 그이의 내면이 그려낸 풍경임을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풍경은 내면의 연장이며 형상을 부여받은 내면이다.

풍경과 내면은 구분하기 힘들 만큼 뒤엉켜 선명하게 그려지는 경우도 있고, 완벽하게 무관한 것처럼 암시적으로 그려지는 경우도 있다. 전자의 유명한 예 가운데 하나는 플로베르가 <보바리 부인>에서 에마의 내면을 묘사하는 장면이다. “그녀의 삶은 마치 햇빛받이 창이 북쪽으로 나 있는 지붕 밑 골방처럼 냉랭했고 소리없는 거미와도 같은 권태가 그녀의 마음 구석구석의 그늘 속에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에서 에마의 내면은 골방의 거미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월 25일 열린 17차 범국민행동의날 집회에서 한 시민이 촛불을 켜고 있다. 강윤중 기자

후자의 유명한 예 가운데 하나는 헤밍웨이의 단편 ‘흰 코끼리 같은 언덕’의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강 건너 저 멀리에 산들이 있었다. 구름 한 점이 그림자를 드리우며 곡식밭을 가로질러 지나고 있었고 아가씨는 나무 사이로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 건너의 산, 구름 한 점이 떠가는 곡식밭, 나무 사이로 보이는 강 등은 인물의 시선과는 무관해 보이는, 순수하게 객관적인 풍경으로 비치지만 두 인물의 대화 도중 한 인물의 시선에 포착된 이 무심한 풍경이야말로 시선을 보낸 이의 내면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회피하기 위한 의도적인 머뭇거림이자 부드러운 질책이며 잠시 상대방을 잊어버린 자기몰입이기도 하다.

플로베르와 헤밍웨이는 풍경과 내면을 긴밀하게 엮었느냐 아니냐는 스타일의 차이는 있지만 풍경이 내면의 연장이며 형상을 부여받은 내면이라는 태도를 취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겨울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그날은 하루 종일 스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창가에 선 채 목탄화로 그린 듯한 바깥 풍경을 보고 있었다. 이 쓸쓸하고 막막한 풍경이야말로 어린 시절부터 내가 무척 좋아하던 풍경이었다. 해가 질 무렵 갑자기 사위가 어두워지면서 광야에 내던져진 기분이 들던 시간들, 차갑지는 않으나 질감이 느껴지는 근육질의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오던 시간들, 장막이라도 쳐버린 듯 새까맣게 내리던 눈과 비의 시간들, 불길하게 새떼가 날아오르고 먹장구름이 순식간에 하늘을 점령해버리던….

그 시간들처럼 사위가 온통 잿빛으로 물들고 습한 공기를 호흡하며 불안에 떨어야 했던 그날 하루는 정말로 스산하기 짝이 없었다. 비가 내리는 어둑어둑한 세상 풍경에 마음이 끌리는 건 풍경이 내면의 반영이기 때문이며 나의 황량한 내면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다는 기이함과 그 풍경이 생각처럼 추하기는커녕 아름답기까지 하다는 데서 오는 위로와 안도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문득 이 풍경이 나의 내면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내면이기도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쓸쓸한 풍경은 누구의 내면일까. 창가에 바투 붙어 커튼을 살짝 젖혀 밖을 내다보는 당신의 내면이 아니던가. 우산을 쓰고 가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비스듬히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는 당신의 내면이 아니던가. 버스 차창에 이마를 대고 우울한 눈으로 바깥을 내다보는 당신의 내면이 아니던가.

저기 광화문광장의 촛불도 누군가의 내면일 것이며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자라면 그게 누구든 미래와 희망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 그 풍경은 내가 만들어 낸 것은 아니지만 내 안으로 들어와 버렸고 내면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므로 내면은 풍경의 연장이며 의미를 부여받은 풍경이기도 하다.

소설가 손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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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음악사를 다룬 알렉스 로스의 저서 <나머지는 소음이다>에 소개된 뜻밖의 사실 한 가지. 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을 점령한 미군정(OMGUS)이 다름슈타트 국제 신음악 하계음악제가 출범할 때부터 예산의 20%가량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다름슈타트의 하계음악제는 이후 아방가르드 현대음악의 국제적 산실이 된다. 슈토크하우젠, 불레즈, 존 케이지와 같은 굴지의 현대음악가들이 이 음악제를 거쳐갔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윤이상도 예외가 아니다.

미군정이 현대음악을 지원한 것은 독일의 ‘탈나치화’를 위한 이른바 ‘심리전’의 일환이었다. 이해가 쉽고 집단적 정서에 호소하는 조성음악 대신에 개인화된 자유로운 아방가르드 음악의 미학적 가치를 우위에 둠으로써 전체주의의 발흥을 저지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것은 물론 소련과 현실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견제의 의미도 있었다. 로스에 따르면, “OMGUS의 뒤를 따라 중앙정보국(CIA)이 가끔씩 심히 복잡한 아방가르드 작품들이 포함된 축제의 자금을 지원했다.”

윤이상 (출처: 경향신문DB)

위와 같은 사실은 한국의 냉전 정치세력들이 작곡가 윤이상을 대해왔던 방식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1960년대 후반 박정희 정권과 중앙정보부는 이른바 ‘동백림 사건’의 간첩 혐의로 윤이상을 독일에서 국내로 납치해와 고문을 자행하고 2년 가까이 교도소에 감금했으며, 세계적 비난 여론이 들끓자 마지못해 석방한 뒤 추방했다. 미국 정부와 CIA라면 음렬기법과 무조성을 고수했던 윤이상의 아방가르드적 현대음악을 오히려 지원했을 것(최소한 공산주의자로 몰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1980년대 이후로 특히 자주 있었던 윤이상의 방북 활동은 한국 내 냉전세력들이 최근까지 그의 이념을 문제 삼도록 만든 빌미가 되었다. 남한 입국이 거부되어 있던 당시에 윤이상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조국 방문’이었음을 고려해야 하지만 의문이 남는다. 북한 정권은 왜 윤이상과 그의 음악을 받아들였을까? 윤이상의 난해한 현대음악은 ‘인민이 이해하기 쉬운 음악’을 전체주의적 기조로 삼는 북한의 관료화된 문예정책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동백림 사건’이 없었다면, 북한 정권이 윤이상의 급진적 현대음악을 지원하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사실상 ‘남한 정부의 정치적 핍박을 받고 있는 세계적 명성의 작곡가’라는 윤이상 카드를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는 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북한 정권의 환영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윤이상의 음악 그 자체는 대중적 조성음악 언어로 바뀌지 않았다는 점, 즉 그의 음악은 단 한번도 ‘친북적’이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윤이상의 한국 방문이 시도됐다. 하지만 “지난날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미안하다는 것과 앞으로는 예술에만 전념하시겠다는 뜻을 밝혀” 달라는 당시 이홍구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의 서신을 전달받고 윤이상은 정중히 한국 방문을 거절했다. 이듬해에도 방한 기회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주사파 성향의 활동가들이 그를 찾아가 한국 방문을 강행할 경우 공항에서 분신자살이 행해질 것이라고 협박했다. ‘통일운동가’라는 이들의 위선적 행태에 실망한 나머지 윤이상은 이날 심장 발작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고 한다. 그해에 윤이상은 고향땅을 다시 밟지 못한 채 독일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사후 고향 통영에서는 윤이상을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최근 ‘윤이상 콩쿠르’의 지원금 중단 해프닝에서 볼 수 있었듯이 그는 여전히 누군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조차 종종 “예술에만 전념”이라는, 작곡가 자신이 모욕을 느꼈던 누군가의 바람을 넘어서지 못하는 듯하다. 윤이상의 삶은 모순으로 가득 찬 한국의 현대사이자 냉전의 세계사 그 자체다. 탄생 100주년, 윤이상을 기억하는 일이 작곡가로서 그의 세계적 명성이나 순수음악적 가치를 재확인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되는 이유다. ‘윤이상’이라는 이름은 한반도 평화의 미래를 향한 미학적·정치적 공감의 교두보다.

최유준 전남대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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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회화의 전통에서 누드란 궁극적으로 그것을 보는 남자의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그려진 것이다. 그림 속 여자는 미리 잘 검토된 여성성을 구경거리로 제공하고 있다. 그림은 화가의 예술적 비전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소유한 자의 지위와 재산을 표현하고 그의 관음증적 욕망을 충족하는 차원에서 기능한다. 이처럼 유럽의 누드 예술형식에서 화가와 관객은 보통 남자이며 대상으로 취급받는 인물은 보통 여자다.

이런 불평등한 관계는 우리 문화에 아주 깊이 각인되어 있다. 마네는 이런 장르에 대해 질문을 던진 최초의 작가다. 그의 그림으로 인해 누드화의 이상은 깨졌다. 바로 ‘올랭피아’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관자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올랭피아는 실재하는 인간이고 완전 나체다. 여인의 다리 부분에는 흑인 하녀가 흰 종이에 싸인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서 있다. 당시 파리의 젊은 여성들 중에는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는 고급매춘부, 즉 ‘코르티잔’들이 많았고 그들의 일을 거드는 역할은 흑인여자들이 도맡았다고 전한다. 마네는 이런 당시의 현실을 그림 속에 반영한 것이다. 이 그림은 1865년 살롱전에 출품되었는데 전례가 없을 정도로 관객과 비평가들로부터 공격과 비난을 받았다. 신화가 아니고 현실 속의 여인을 나체로 그렸기 때문이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등 55개 예술단체 예술인들이 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나체를 표현한 그림 ‘더러운 잠’ 훼손 사건을 비판하는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당시 서구미술에서 여성 누드를 표현할 때는 실제 모델이 아니라 미의 여신인 비너스나 사냥의 여신인 디아나 같은 여신들을 빗대어 이상화된 누드를 그리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마네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현실 속 여인의 벗은 모습을 전혀 미화하지 않은 채 그렸기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던 것이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신화 속의 누드, 이상화된 누드가 아니라 그냥 회화로서의 누드를 그렸고 그에 따라 회화는 신화나 종교적 담론의 기능에서 해방되었으며 지배계급의 지위와 욕망, 그들의 관음증을 제공하는 차원에서도 벗어나게 되었다. 또한 이 그림에서 배경의 깊이는 차단되어 있고 인체 묘사 역시 납작하게 칠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회화란 평면의 캔버스에 물감으로 이루어진 구성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서구전통회화가 추구해온 원근법과 눈속임을 기반으로 한 회화의 역사에 이의제기를 한 최초의 작품에 해당한다. 비로소 현대미술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 1월20일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 ‘표현의 자유를 향한 예술가들의 풍자연대’가 주최한 ‘곧, BYE’전이 열렸다.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을 등장시킨 이구영의 작품 ‘더러운 잠’이 새누리당과 보수단체에 의해 격렬한 비판을 받고 결국 전시 중에 무자비하게 훼손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새누리당은 “풍자를 가장한 인격모독과 질 낮은 성희롱이 난무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인격살인 행위에 다름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이 전시를 주선한 표창훈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다. 한 정치인은 “대통령을 소재로 한 여성비하”이며 “성폭력 수준”이라고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표 의원에게 당직 정지 6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정작 이 일에 대해 미술계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미술작품을 자의적으로 재단하고 평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142년 전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건이 현재 이곳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것도 의아했고 외설, 예술의 논의가 오래전 종결된 것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도 새삼스러웠다. 오늘날 올랭피아는 모든 서양미술사 책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명화가 되었고, 현대미술을 태동시킨 중요 작품으로 인정된 지 오래다. 그리고 올랭피아를 통한 풍자와 패러디는 흔해 빠졌다. 더러운 잠과 같은 유형의 작품은 전 세계에서 무수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그것을 두고 성폭력, 여성혐오, 국격을 훼손한 작품이라는 등의 궤변으로 폄하하는 이들의 미술에 대한 인식에 놀랐고 더구나 민주와 진보를 표방한다는 더불어민주당 역시 표 의원에게 6개월의 당직 정지를 내렸다는 것에 더욱 놀랐다. 정치인들의 이런 저급한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인식이 우리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미술전문가가 배제된 상태에서 미술이 논의되고 재단되는 이 희한한 상황에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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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었는지 잘 모른다. 내 기억력이 유독 허약해서였는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내가 다섯 살 무렵에 돌아가셨다는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아도 생판 모르는 남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었을 거라는 짐작이 짐작으로 그치지 않고 확고한 이미지로 내 가슴에 남은 이유는 작은할아버지 때문이었다.

다른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는 누가 형제 아니라고 할까봐 부러 유세라도 하듯 답답할 만큼 무던한 성격이며 잔입이라고는 모르는 과묵함 등이 판박이였다고 한다. 아마도 그런 말에 익숙해진 터라 아직 살아 계신 작은할아버지에게서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이미지를 찾아내려 했을 테고 부지불식간에 할아버지를 보듯 작은할아버지를 보게 되었을 것이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중학생 시절까지 내가 지켜본 작은할아버지는 측은하기 짝이 없는 분이었는데 그렇게 여기게 된 이유는 작은할머니 때문이었다. 작은할머니는 우리 동네뿐만 아니라 근동에서도 따라올 자가 없을 만큼 뜨르르한 욕쟁이였다. 첫닭이 울고 나면 작은할머니의 사나운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목소리는 하루 종일 내가 어디에 있든 환청처럼 들려왔으며 밤이 이슥해져서야 겨우 잠잠해졌다. 작은할머니의 삿대질과 바가지 욕설을 누군들 피해갈 수 있었으랴만 하물며 매일처럼 밥상에 마주 앉아야 했던 작은할아버지가 어떠했을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작은할아버지는 가히 성불에 가까울 만큼 초연했는데 어쩌면 작은할아버지의 그런 태도가 작은할머니의 부아를 돋웠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되도록 작은할머니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기척만 들려도 도망가거나 피해 다니기에 바빴다. 할머니마저 돌아가신 뒤로는 일가붙이 가운데 가장 큰 어른이 작은할아버지와 작은할머니 내외였던지라 시늉일지언정 어려운 어른 대하듯 조심스러워서가 아니라 기가 막히게도 야단칠 꼬투리를 잡아내는 작은할머니가 무섭고 지긋지긋해서였다. 언젠가는 머리에 키를 쓰고 소금을 얻으러 갔다가 작은할머니의 부지깽이에 호되게 얻어맞기도 했던 터라 일가 어른만 아니었다면 나 역시 동네의 다른 아이들처럼 등 뒤에서 주먹감자를 날리는 졸렬하고도 통쾌한 짓을 서슴지 않았을 거다.

중학생이었던 어느 여름날 어머니가 등을 떠미는 바람에 더위 먹어 골골대는 작은할아버지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보건소에 다녀와야 했다. 무엇 때문에 심사가 뒤틀렸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무척 귀찮고 짜증이 났던 것만은 기억이 난다. 좁다란 신작로에서 마주 오는 차를 비켜 가다 논두렁에 처박힐 뻔한 위태로운 순간을 겪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어쨌거나 뙤약볕을 맞으며 먼 길을 갔고 링거 주사를 맞으며 잠든 작은할아버지를 두 시간 동안 지켜보다 다시 오토바이에 태워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기진맥진해 잠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해질 무렵이었다. 자박자박 마당을 가로질러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방문이 벌컥 열렸다. 작은할머니였다. 보건소 댕겨오느라 욕봤다. 아나, 아이스께끼 사 먹어라. 꼬깃꼬깃 접힌 지폐가 내 앞에 툭 떨어졌다. 펴보니 삼천원이었다. 부라보콘을 열다섯개나 까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세뱃돈으로 오백원짜리 동전 한 번 준 적 없던 당신이었는데 말이다.

그로부터 몇 달 지나지 않아 작은할머니는 마을 근처 솔밭에서 솔가리를 긁다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문상객으로 북적이던 작은집에서 시중을 들다 아랫방 문을 벌컥 열었던 나는 어두운 방에 홀로 앉은 작은할아버지를 보았고 그 순간 무언가가 내 가슴을 슬쩍 베고 사라졌다.

이듬해에는 작은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냥 허깨비처럼 살다 가셨다. 그 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내 가슴을 슬쩍 베고 사라졌던, 내가 방문을 열었을 때 그 안으로 스며든 빛낱이 작은할아버지의 눈물에 닿아 번득였을 그 날카로운 그리움에 머물러야 했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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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연휴를 앞두고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고’가 한국에도 상륙했다. 지난해 여름 출시된 후 한국에서는 속초 등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가능했던 게임을 전국 어디서나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거리의 풍경이 달라졌다. 연휴 첫날 동대문에서 약속을 잡았다. 1차가 끝나고 나니 주변에 갈 곳이 없었다. 날이 날이니만큼 택시도 안 잡혔다. 20분 가까이 걸어 종로3가까지 갔다. 꽤 추운 날이었다. 일행들의 불만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런데 다들 조용했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긴 이동 시간 동안 포켓몬 사냥에 여념이 없었던 거다. 시내 중심가다보니 포켓몬도 꽤 많았나 보다.

내가 사는 홍대 앞도 다르지 않았다. 워낙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니 포켓몬도, 포켓스탑도, 체육관도 즐비하다. (용어설명은 생략한다.) 내 방에서도 두어마리쯤 잡았다. 연휴 기간 내내 액정을 보며 손가락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다가 멈춰 포켓몬을 잡거나 근처 포켓스탑으로 이동하는 이들이었다. 평소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집 앞 동네 슈퍼 근처에는 새벽에도 빛나는 액정들이 반딧불 군락처럼 반짝였다. 그 슈퍼가 체육관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게임을 시작한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밤에 약속이 끝나고 귀가하는 시간이 평소보다 몇 갑절은 걸렸다.

나를 포함, 평소 게임은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왜 갑자기 포켓몬고에 몰두하게 된 걸까. 이미 많은 분석들이 있었다. 어릴 때 포켓몬을 보고 자란 세대가 어른이 된 후 그 시절 감정이입했던 경험을 게임으로 녹인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른 게임들에 비해 직접 행동으로 얻는 성취감이 높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캐릭터들이 귀엽고 친근한 덕에 신규 사용자들의 호기심을 이끈다는 이야기 또한 있다. 이런 분석들에 하나를 더하자면, 결국 증강현실을 통해 경험의 영역을 확장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기술 시대 이후 인류는 그 전 세대와 비교할 수 없는 경험들을 해왔다. 인쇄술의 보급으로 누구나 책을 접하게 됐고, 기차의 등장으로 장거리 여행이 가능해졌다. 영화의 출현으로 회화의 시대엔 불가능했던 시각적 경험이 확장됐다. 녹음 기술과 음반의 발명은 시공간의 제약 없이 누구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했다. PC의 대중화를 거쳐 모바일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언제나 네트워크를 통한 간접경험의 세계 안에 있다. 그런데 간접경험은 직접경험과 다르다. 전자가 액정과 이어폰을 통해 언제든 접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 후자는 특정한 곳에 가서 모든 감각기관을 활용해야 체험할 수 있는 세계다.

소셜미디어에서 ‘좋아요’를 가장 쉽게 받을 수 있는 콘텐츠가 음식인 이유가 그렇다. 보고 듣고 읽는 건 누구나 동시에 확인 가능하지만, 맛이란 직접 먹어봐야 알 수 있다. 추천하고 싶은 음악을 아무리 정성스러운 문장으로 올려봤자, 대충 찍어서 올린 맛집 사진보다 반응이 한참 못 미치는 이유다. 라디오의 전성 시대에 친구들의 아침 대화가 “야, 어제 <별밤>에서 무슨 노래 들었냐?”로 시작했던 건, 그때는 음악이 그런 직접 경험의 영역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좀처럼 보기 힘든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 티켓을 오픈할 때마다 서버가 터져나가는 이유도 설명이 된다. 단순히 ‘듣는’ 음악보다는 시간과 돈을 할애해야 ‘경험’할 수 있는 음악에 대한 욕구가 대중을 지배하는 것이다.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의 가치란 마치 공기와 같아지는 법이다.

포켓몬고를 경험 확장의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는 까닭도 마찬가지다. 다른 게임들과 달리 포켓몬고는 언제 어디에서 하든 상관없는 게임이 아니다. 일상의 공간과 익숙한 거리가 몬스터 사냥터가 되고 특정한 곳에 직접 가야 전설의 포켓몬을 잡을 수 있다. 네트워크 속 액정의 세계를 네트워크 밖 현실의 세계와 연결시킨다. 영화 <매트릭스>를 응용하자면 빨간 약을 먹어야 파란 약 또한 섭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결국 육체적 경험이 주는 만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임을, 거리의 포켓몬을 잡으며 새삼 확인한다. 다음 세대의 콘텐츠를 고민하는 이라면 함께 포켓 마스터를 꿈꾸며 손시림을 무릅써보자. 음악이건, 영상이건 아이디어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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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부 누리꾼들이 걸그룹 멤버 수지(배수지)의 화보집 속 사진 몇 장에서 매춘과 로리타 콘셉트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늘 그렇듯 당사자의 입장은 알 길 없고 소속사에서 법적 대응을 한다는 둥 으름장이다. ‘뭘 새삼스럽게…’ 하고 관심을 거두다가, 문득 그 화보집의 제목에 눈이 갔다. <하루라도 젊을 때>. 그러고 보니 ‘하루라도 젊을 때’(‘한 살’도 아니고 ‘하루’다)는 우리 사회에서 이미 관용어처럼 쓰이고 있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는 실용주의적 처세의 논리가 일상의 정치를 장악한 결과일 것이다. 어쨌거나 자존심 따위는 내버린 듯한 그 화보집의 제목은 문제가 된 화보 이미지들과는 별개로 보는 이에게 민망함을 안겨주었다.

2002년 어느 신용카드 회사의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당시 한국 사회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신자유주의적 경쟁사회로 급격히 변모하고 있었다. 신용카드를 내밀며 부자 되라고 덕담을 건네는 부조리도 문제였거니와, ‘빈락(貧樂)’을 논하던 전통적 삶의 품위와 자존심이 상실되는 징후로 보였기 때문이다. 15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 ‘부자 되세요’ 정도의 말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금수저’든 ‘흙수저’든 부자로 살기 위해 ‘노오력’하면서 자존심 따위는 접어두는 것이 오늘날 ‘헬조선’의 풍경이다.

가수 겸 배우 수지가 출연한 화보

총체적으로 자존심을 잃어버린 한국 사회의 반영일까? 최근 들어 ‘자존감’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자존감을 다루는 심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듯 ‘높은 자존감’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부자 되세요’라는 구호가 유행할 무렵이었을 것이다. 식당에서 난동을 부리는 꼬마를 주변 손님이 타이르면 오히려 그 손님에게 “아이 기죽이지 말라”고 득달같이 따지던 부모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은 높은 자존감을 가지며 자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인을 존중하는 일에 무능한 이들이 자기에 대한 존중에 유능할 리 없다. “아이 기죽이지 말라”며 생떼를 부리던 부모들은 정작 ‘기죽어 살았던’ 이들일 가능성이 높다. 군사독재 시기,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되었던 교육 현장의 무자비한 폭력들. 힘센 자들의 폭력에 길들여져 자존감이 결핍된 이들이 상상할 수 있는 자존감이란 겨우 그 비합리적 권력자를 모델로 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뻔뻔스러워지는 것,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높은 자존감은 사실상 자존감의 결핍에 다름 아니다. 진정한 자존감에 전제되는 도덕 감정이 여기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도 그렇다.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뒤 발표한 대국민담화에서 그는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라는 뜻의 ‘자괴감’이라는 단어조차 ‘후회’나 ‘억울한 마음’이라는 뜻으로 썼다.

박 대통령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까? 어린 시절부터 청와대에서 공주 대접을 받으며 자라 왔으니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 박정희의 폭력적 권력 남용을 자존감의 모델로 삼고 있었다. 그렇게 왜곡 형성된 자의식으로부터 성찰과 부끄러움을 아는 진정한 자존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충격적인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난 지 3개월이 되도록 스스로 책임지고 나서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자괴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눈을 돌려보면, 어떤 부당한 지시에도 순응하는 공무원들, 소속사에 대한 순종과 복종을 당연시하는 아이돌 멤버들이 이 시대 젊은이와 청소년들에게 성공의 표상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제 섬뜩하기까지 한 일이다. 한국인의 잃어버린 자존감을 되찾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존감을 지키는 삶이란 어떤 방식의 개인적 삶을 택하는가에 달려 있기보다는 이 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바꾸어내는가에 달려 있다. 저 촛불의 광장에 기대를 품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광장에 봄이 찾아올 무렵 한국인의 잃어버린 자존감도 다시 꽃필 수 있으리라는.

최유준 전남대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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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미술’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미술이란 근대에 태동된 새로운 개념이다. 근대 이전에 만들어졌던 것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미술이라 부르는 것들은 실은 대부분 생활에서 쓰이던 물건들이었다. 그러니 그것들은 크게 말해 민속공예에 해당한다. 따라서 우리 전통 미술의 큰 줄기는 단연 공예인 셈이다. 근대에 들어와 미술이란 개념이 태동된 후 이제 미술은 실생활에 쓰이는 물건, 공예적 차원에서 벗어나 순수시각적인 차원으로 이동했고, 전시가치를 지닌 그 무엇으로 위상이 바뀌었다. 그로 인해 오랫동안 우리들의 삶과 함께해왔던 물건들은 대부분 망실되었다. 대신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값싼 상품들이 이를 대신해왔다. 사라진 것들은 고물이 되어 버려지거나 이후 골동으로 보존되어 기적적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전통시대에 쓰이던 물건, 민속 공예품들은 이제 골동품이 되고 더러 뛰어난 미술품으로 새삼 인식되어 박물관에 진열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전부터 서화나 백자, 청자와 같은 고급 고미술품은 진즉에 인정받아왔지만 일상에서 쓰던 물건들, 민예품이 문화재로 등극되기는 대략 1975년이 되어야 가능했다. 우리 민예품의 진가를 일찌감치 알아본 이는 1920년대 조선에 온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로 거슬러 올라가야겠지만 본격적으로는 혜곡 최순우 전 국립박물관 관장의 역할이 지대했다. 그는 1975년 광복 30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국민예미술대전’을 개최해 아름다운 우리 공예미를 선보였다. 그 전시는 한국 전통공예의 미의식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결정적 사건이 되었다. 물론 근원 김용준과 수화 김환기 역시 조선 공예미에 일찌감치 눈뜬 화가들이고 이후 권옥연, 변종하, 이대원, 김종학 같은 분들 역시 그런 미감에 뛰어난 안목을 지닌 분들이다. 그러나 최순우 선생이야말로 조선시대 공예의 높은 미의식과 풍부한 공예 소재를 일찍이 인식하고 이를 대중들과 미술사학계에 널리 알리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이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던 대표적인 분이었다.

올해는 최순우 선생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해 현재 ‘조선공예의 아름다움’전이 열리고 있다. 모두 656점이나 되는 조선시대 공예품들이 전시됐다. 꽤나 알려진 유명 작가의 산수화나 초상화도 좋고 추사의 글씨도 좋지만 무명의 장인들이 만든 이런 소박한 공예품들이 주는 미감은 그것대로 불가사의한 매력이 존재한다. 더구나 그것들은 삶에서 수시로 썼던 것들이고 그로 인해 손때를 탔던 것들이자 실용적인 것이 우선되었으면서도 그 안에 절묘한 조형감각을 비벼 넣어 만든 것들이다. 보면 볼수록 감탄스럽다.

최순우 선생은 우리 전통미술을 극진히 사랑한 만큼 평생 한옥(현재 보존되어 있음)에서 살았고 그 안에 조선시대 민속 공예품들을 부려놓고 그것들과 함께 소박한 삶을 사셨다. 당시 사진을 보면 조선시대 사랑방을 그대로 연상시키는 검소하고 감각적인 방안에는 꾸밈새 없고 간소한 서안과 촛대, 사방탁자와 느티나무로 만든 둥근 재떨이 등이 놓여 있고 벽에는 박수근의 작은 그림이 걸려 있다. 마당 한쪽에는 여러 개의 항아리, 오지그릇이 가득하다. 그런 것들로 단출하고 멋지게 꾸며진 집이 더없이 매력적이다. 이런 게 진정한 의미에서 미술의 생활화일 것이다.

우리 공예품에 대한 빼어난 안목과 미적인 감수성과 감각, 그리고 그것을 탁월하게 표현해내는 매력적인 문장력을 두루 겸비한 동시에 그것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멋을 즐기는 삶을 살다간 최순우 선생의 생의 자취가 새삼 그립다. 지금 이곳에서 미술품과 골동은 투기나 과시욕이 되어버렸고 졸부들의 과시욕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우리 선조들의 저 빼어난 공예품들의 생활화도 진즉에 사라졌다. 그만큼 멋을 아는 생활문화나 격조 있는 삶도 죄다 없어졌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정부관리라는 이들이 ‘문화융성’을 내걸면서 결국은 기업들 돈을 갈취하고 블랙리스트나 만드는 이런 나라에서 무슨 문화나 예술, 격조 있는 미감 등이 있을 수나 있겠는가? 최순우 선생의 한옥과 그 안에서 소박한 것들과 함께했던 그의 무욕과 미적인 삶의 이력이 더욱 새삼스럽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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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주변이 없어 사람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터라 나는 말 잘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부러웠다. 그런 이들을 흉내도 내보았지만 그이들의 재미난 이야기도 내가 옮겨 하면 별 재미가 없는 듯했고 외려 의도와는 다르게 받아들여져 난처해진 경우가 더 많았다. 대체 말 잘하는 이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다 겨우 찾아낸 게 하나 있다. 이게 정말 비결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말 잘하는 이들은 대체로 남의 말에도 귀를 잘 기울였다.

이문구 선생은 어느 산문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낙향해 살던 선생은 어느 날 시내로 장을 보러 나갔다가 맘에 쏙 드는 생선을 보았으나 혼자서 사 먹기에는 분에 넘치는 반찬거리인지라 값을 물을 엄두도 내지 못한채 머뭇거렸다. 한 노부인이 생선장수 함지박 앞에 서더니 다짜고짜 넙치를 손에 들고 “월매나 헌댜?”라고 물었다. 생선장수는 만원은 받아야 하지만 마수걸이니 팔천원만 달라고 했다. 노부인은 넙치를 던지듯이 놓으면서 “팔천원이라구 이름 붙였남” 하고 불퉁거렸다. 그때부터 생선장수와 노부인 사이에 흥정이 시작되는 거였다.

소설가 한창훈도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고추를 좀 사기 위해 여수항 근처를 기웃거리던 그는 때깔 좋은 고추를 늘어놓은 노점상을 발견하곤 주인사내에게 얼마냐고 물었다. 그해 고추 작황이 좋지 않아 웬만하지는 않으리라 짐작은 했으나 듣기에 귀가 아플 만큼 비쌌던지라 그도 고추값이 뭐 이리 비싸냐고 투덜댔다. 그 말에 주인사내는 기분이 좋다 나쁘다 식의 말 대신 “그러게 말이오, 사람 고추값은 싸디 싼디”라고 하는 거였다. 주인사내의 신세한탄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런 말을 듣게 되면 고추를 두어 근쯤 팔아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인정일 테다.

그 소설가들의 문장이 일상에서 길어올린 평범한 언어임에도 싱싱하고 눈부실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이들이 남의 말에 무심하기는커녕 외려 사소한 한마디에 담긴 진정을 헤아릴 줄 알았기 때문이리라. 그러기에 말 잘하는 이들은 그냥 말을 잘하는 이들이 아니라 분주하고 각다분한 일상을 견디는 사람들에게 귀 기울일 줄 아는 이들이려니 싶은 것이다. 그에 비견할 만한 나만의 언어와 문장이 없다는 건 곧 내가 그이들만큼 남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탓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럼에도 늘 이처럼 새해 벽두가 되어 올해를 어찌 살아갈지 생각하다보면 나를 사로잡았던 지난날의 한 풍경으로 되돌아가곤 한다.

대학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여름이었다. 가망도 없는 소설을 계속 써야 할지 아니면 다른 학생들을 본받아 취업준비를 해야 할지 작정하지 못했던 나는 고향집 대문을 나서는 것으로 도보여행을 떠났다.

더러 가스 배달차며 우유 배달차며 지나가는 승용차도 얻어 타면서 일정을 맞췄는데 해남에서 강진으로 건너갈 때는 버스를 탔다. 승객이라곤 나 말고 강진읍내로 가는 아낙 두엇뿐인 버스가 어느 정류장에 섰다. 버스 기사가 뒤돌아보며 마을 쪽에서 할머니 한 분이 오고 있으니 기다려도 되겠냐기에 다들 그러자고 했다. 마을은 정류장에서 이삼백 미터쯤 안쪽으로 쑥 들어간 곳이었고 거기에서 허리가 심하게 굽은 노부인 한 분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노부인은 좀처럼 버스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지 못했고 오 분쯤 지난 뒤에야 왜 그런지 알게 되었다. 노부인은 두 팔을 단거리 선수처럼 앞뒤로 흔들기는 했으나 두 다리는 아주 느릿느릿 떼었던 거다. 멀리서 보기에는 마구 달려오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오 분이 지나 숨을 헐떡이며 버스에 오른 노부인은 미안하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 했다. 잠시나마 마음속에 짜증이 치솟기도 했던 스스로가 열없어서 나야말로 그이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두 팔을 힘차게 흔들던 그이가 오래오래 내 가슴에 남아 사람과 세계에 대한 예의가 무엇인지를 매번 일깨워줄 것임을 알아서였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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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살을 더 먹었다. 나이를 의식하고 사는 편은 아니라 큰 감흥은 없지만, 친구들과의 대화를 생각해 보면 노화를 자각하게 된다. 음악을 비롯한 온갖 풍류를 소재로 밤을 지새우던 이들과 하는 이야기의 주된 주제가 어느새 건강이 됐다.

최신 음악의 동향을 논하던 때엔 알지도 못했던, 간수치와 혈당, 혈압 같은 것들이 등장하고 또한 모두가 알아듣는다. 주거 환경, 즉 부동산에 대한 근심도 빼놓을 수 없다. 어디가 얼마 올랐다더라류의 화제면 얼마나 좋겠냐만 현실은 그래도 거긴 싸다더라류가 전부다. 벌어 놓은 건 없고 생물학적 노화는 시작된 이들의 술자리다. 술마저 끊은 친구들을 보면 세월이란 영원할 것 같던, 남다른 청춘도 풍화시킴을 새삼 깨닫곤 한다. 육체가 풍화하는 대신 연륜이라든가 식견 등이 쌓이면 괜찮을 텐데, 알다시피 잘 늙는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지간하면 꼰대가 되기 십상이다.

관찰해온 바, 꼰대로 가는 으뜸의 징후가 있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어느 술자리에서 있던 일. 그렇잖아도 원래 제 말만 하기로 유명한 인물이 오랜만에 동석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간에 필드의 지배자라도 된 것처럼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하루 이틀 그런 모습을 본 게 아니다. 우리도 대처 요령이 생겼다. 남이 말하는 동안 손을 내민다든가, “그러니까~” “내가 있잖아~” 등의 문장이 등장할 때 과감히 무시하고 하던 말을 계속한다. 그리고 한 사람이 말을 끝내면 잽싸게 다른 사람이 받는다. 마치 스페인 축구팀의 티키타카 전술처럼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다. 대화 점유를 내주지 않자 그는 파할 때까지 안절부절못하며 온몸을 비틀었다. 주변에 그런 캐릭터가 그 한 명이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간다. 패스를 할 줄도 받을 줄도 모르고 오로지 ‘뻥축구’만 하는 선수들이 많아지면 경기가 재미있을 리가 없다.

태아가 외부와 소통하는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수단은 듣기다. 태아는 달팽이관이 형성되는 4개월 반이 되기 전부터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양수의 진동을 통해서 말이다. 자궁에 빛이 없으므로 10개월 내내 보지 못한다. 탯줄로 영양을 공급받기에 먹지 못한다. 태아가 만질 수 있는 건 고작 태반의 벽일 뿐이다. 오직 듣는다.

그래서 옛 인디언 임신부들은 끊임없이 자연의 소리를 태아에게 들려주고 인디언의 이야기를 노랫가락으로 불러줬다. 소리로 상상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그렇게 10개월 내내 소리로 태교를 받은 인디언 아이는 태어나서도 칭얼대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자궁 속에 있을 때부터 듣는 걸 통해 세상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너무 빨리 청각에 민감해진 탓일까. 가장 빨리 보수화가 되는 감각도 청각인 듯하다. 대부분 20대가 지나면 새로운 음악에 귀를 열지 않는다. 능동적으로 음악을 찾아 듣지 않고 들리는 음악만 듣는다. 혹은 그때까지 들었던 음악만 평생 들으며 산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보위가 특별했던 이유는 일생에 걸쳐 새로운 해석과 시도로 무장한 신예들을 발굴하고 자기 음악에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끝까지 과거의 거장이 아닌 동시대에 머물 수 있던 이유이리라.

남의 말을 잘 듣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학생부터 로타리클럽까지, 각계각층을 상대로 강연을 하며 전국을 누비는 친구가 있다. 그는 미리 강연 장소에 가곤 한다. 화장실이나 로비 등에 앉아 그들의 언어 습관을 캐치하여 강연 내용에 녹인다. 그러면 청중의 집중도뿐 아니라 자기 말의 밀도도 높아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 자기 말도 잘한다.

나이를 먹으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는 금언이 있다. 끝없는 불황의 시대, 나이를 먹었다고 지갑이 두툼해지는 건 옛말이다. 그러니 귀라도 열자. 귀가 닫혀 있어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인간 유형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이름 박근혜. 두렵지 않은가? 그러니 출생연도가 e메일 주소에 붙어 있는 게 스트레스가 될 무렵의 사람들은 더더욱 잘 듣는 수련을 해야 할 것이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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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에서 비롯한 대통령 탄핵 정국이 촛불에서 횃불로 옮겨붙었다. 부문별, 계열별 전문가 집단이나 협회, 단체들의 자잘한 이해관계를 넘어서 대한민국의 기틀을 혁신하려는 이 도도한 흐름은 국민·시민 주체가 만들어내는 촛불공론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이나 시민이라 불리는 주체들이 단일한 실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따로따로 존재하지만 서로 강고하게 연대한 개별주체들이다. 이렇듯 파편화한 개인들을 엮어주는 공론장은 소셜미디어로 무장한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일궈내고 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거대한 퍼포먼스와 섬세한 몸짓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내는 시민운동가와 문화예술인들의 역할도 매우 크다.

탄핵안 가결 이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변혁의 에너지를 지켜내는 일은 100만 촛불의 몫으로만 남겨진 것은 아니다. 그 힘을 연결해주는 매개자들의 지속적인 대화와 협업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한겨울 추위가 강해질수록 현장을 지키는 문화예술인들의 강단있는 활동이 도드라져 보인다. 단 한 명의 입건 사례 없이 평화롭게 이어온 촛불집회는 공연을 매개로 한 정서적 공감의 장이다. 그것은 장르와 세대를 넘어 정신적 가치를 공유하게 만드는 예술의 역할을 재확인시켜준다. 민중가요와 대중가요가 공존하는 촛불문화제는 투쟁의 장을 축제의 장으로 확장시켜 놓고 있다.

문화예술인들이 12일 서울 대치동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 사무실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과 관련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특검에 고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여기에 더해서 시각예술가들의 다양한 표현물들이 집회장을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은 텍스트 작업은 물론 걸개그림과 포스터, 깃발, 퍼포먼스, 스티커, 조형물에 이르기까지 풍자와 비판정신 가득한 작품들로 광화문광장을 예술의 거리로 만들고 있다. 100만의 촛불파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퍼포먼스여서 예술적 이벤트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광장의 갤러리 ‘궁핍현대미술광장’을 열고 개관전 ‘내가 왜’를 시작했다. 촛불이 만들어내는 감동의 공론장을 기록하고 그것을 재해석하고 확산하는 예술적 소통공간이다.

이제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마음은 국가위기에 대한 정서적 공감을 넘어 이성적인 합의로 진화하고 있다. 이번 일의 초기부터 광장에 자리 잡고 광화문텐트촌을 꾸리고 있는 예술인들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고 있다. 집회 현장의 공연 및 전시 프로그램을 통하여 광장의 에너지를 집결하는 한편, 그 너머 새로운 사회를 열망하는 문화예술 개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언론 보도가 아무래도 비리의 폭로에 주력하느라 차분한 성찰과 대안 논의가 부족하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들의 광장토론은 성숙한 시민사회의 힘을 실감하게 한다.

이번 국정농단 사건이 특히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과 사업 분야에 집중해 있다는 점에서 문화예술인들이 느끼는 자괴감은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 예술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가 돌았다. 민관협치 개념으로 출범했던 예술위원회는 오작동을 연발했다. 공공기관의 인사 문제 또한 무방비로 농단의 무대로 전락했으며, 문화융성의 이름으로 깨알 같은 사익편취가 만발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는 동안 문체부의 행정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행정적 과실 유무 여부를 떠나서 공직자 윤리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참담하기 그지없으니, 이제 문화예술의 영역에서도 대한민국의 기틀을 다시 논의할 때가 왔다.

국가단위 행정을 지자체단위 행정으로 세분화·지역화하고, 아카데미와 시장과 행정이 주도하는 제도예술과 그 바깥 비제도예술의 공존과 균형을 맞추며, 예술위원회를 되살려 민관협치를 복원하고, 기관장 인선 관련 전문성 강화 및 국정농단의 비리 관련 부역행위에 관한 행정적·윤리적 책임을 묻는 일 등 무수한 사안들이 있다. 나아가 국정 전반에서 문화예술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에 대해 매우 근본적인 재구조화 논의가 절실하다. 지금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최순실은 현 정권의 비선 실세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도처에 똬리 틀고 있는 모순덩어리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김준기 | 제주도립미술관장·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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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들에 거친 바람이 매섭게 몰려다닌다. 몸을 피할 곳이 없어 나는 저 바람을 고스란히, 죄다 받아냈다. 비교적 이른 아침이고 인적이 없는 경주 황룡사 폐사지에 그렇게 홀로 서 있었다. 갑자기 현실로부터 이격되어 이곳에 던져진 느낌이다. 그저 남은 것이라곤 땅에 박힌 몇 개의 둥글고 납작한 돌뿐이거나 당간지주만이 덩그러니 서 있다. 그 거대한 돌들, 한때는 구체적인 형상을 지녔다가 지금은 모조리 마모되고 문드러져 버린 최후의 흔적만을 겨우 거느린 파편들이 드센 바람과 추위 속에 완강하게 박혀 있다. 아득한 시간의 입김 아래 무너진 돌은 거의 땅과 하나가 되어 가라앉아 있다. 모든 것은 결국 이렇게 수평의 존재가 되어 지워질 것이다. 이곳은 그렇게 지워져 버린 것들, 비어 버린 것들로 채워진 역설의 공간이다. 텅 빈 자리를 대신해 바람소리와 지난 자취들이 환영처럼 몰려다닌다. 이 자리에서 지난 시간을 악착스레 기억하고 죽은 이들을 애도하고 그들의 삶의 자리와 생의 욕망을 위무하고 그들 하나하나의 존재에 연민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곳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공간이다. 이 점이 지금 살아있는 존재를 흔드는 마력인가 보다.

저쪽으로 황룡사 복원연구소인가 하는 건물이 거창하게 자리하고 있다. 조악하고 괴이하다. 앞으로 이 자리에 황룡사를 복원할 예정이라고도 한다. 과연 그런 황룡사는 어떤 황룡사일까? 왜 이 빈자리, 소멸의 자리, 텅 빈 공간 그 자체를 남겨두지 않으려 할까? 산 자들이 이곳을 순례하면서 볼 수 없는 것을 통해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헤아리고 부재와 소멸을 기억하고 앞서 간 모든 이들을 애도하는 자리를 남겨두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황룡사 절터와 그 앞에 위치한 분황사, 저쪽으로 보이는 첨성대 그리고 계림과 양동마을 등을 둘러보는 짧은 경주의 일정이었다. 경주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나를 사로잡는다. 이곳은 죽은 이와 산 자들이 공존하는 공간이고 옛사람들의 유물과 지금 살아 있는 이들의 삶의 힘들이 공모 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자리는 형편없이 사라지거나 끔찍하게 각색되어 버렸다. 도시 전체가 전통의 키치화로 포장되거나 조악한 사물들로 대체되고 있다. 이상하고 조잡한 관광지로 변모하고 있는 경주는 진정한 애도의 흔적을 만나려는 이들을 억압한다.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폐사지와 흩어진 돌무더기, 마모된 석불, 곳곳에 융기된 큰 무덤과 오래된 나무만으로도 경주는 여전히 경주다. 특히 나는 계림 안에서 크고 둥근 무덤과 느티나무를 보았다. 단단하고 차가운 피부로 응축된 나무는 길고 혹독한 겨울추위를 견딜 최소한의 신체성으로 직립하고 있었다. 그 단호한 나무의 물성과 색채는 처연하고 신비로웠다. 언어와 문자의 그물 사이로 빠져나가는 색채, 형언할 수 없는 기이한 색상을 몸에 감은 나무들 사이로 벅차게 부풀어 오르는 무덤들은 수평으로 돌아가길 거부했던 이들의 간절한 저항이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항거와 불멸에 대한 기원이 들러붙어 이룬 무덤의 곡선이 태양을 향해 이룬 수직의 나무들과 공존하는 계림은 죽음과 삶, 부재와 영원이 길항하는 공간이다. 동에서 터 오는 태양빛을 가장 먼저, 충만하게 받아내는 이 계림은 죽은 이가 영생을 도모하는 공간적 연출이자 영원한 생명의 순환을 몸소 겪어내는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는 장소성을 제공한다.

경주에 머문 반나절의 여정은 소멸과 부재, 죽은 이들의 빈자리를 둘러보는 일이었다. 유적지를 다니는 일이나 예술작품을 보는 일도 그렇고 박물관에 진열된 유물들을 응시하는 일도 결국은 무엇인가를 애도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애도란 단지 죽은 이를 추억하고 기념하는 일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의 삶을 반성하고 지금의 삶에 구멍을 내는 일이기도 하다. 나를 있게 한 기원과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는 일이자 신비하면서도 덧없는 조건인 삶을 헤아리는 것이다. 조르조 아감벤은 “살아남은 자의 소명은 기억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곳에서 선인들의 자취를 헤아리고 그들의 삶을 떠올리고 부재의 자리를 들춰낸다.

문화와 예술은 그 애도를 표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애도의 의미와 의례를 상실한 지 오래되었다. 사라진 이들과 남은 이들에 대한 애도가 절실한 때다.

박영택 |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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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이면 고드름을 씹어 먹던 열두어 살 무렵의 내가 떠오른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윗방을 쓰고 내가 아랫방을 쓰던 시절이었으니 그 무렵이 맞을 것이다. 그날 정확히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어머니가 화를 낼 만한 짓을 해서 야단을 맞았고 저녁밥을 먹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리다 아버지에게 회초리로 얻어맞았다는 것만 기억할 뿐이다. 내 방으로 쓰던 아랫방에 누워서도 잠이 오지 않아 달아오른 얼굴이나 식혀보려 마당에 나섰다. 어두운 마당을 서성거리다 빨랫줄에 걸린 옷가지들을 보았다. 꽝꽝 얼었으나 손으로 비틀면 마른 명태처럼 쩍쩍 소리를 내며 구부러졌다. 소매 끝에 매달린 작은 고드름을 툭 떼어내 어둠 속으로 던지면 얼어붙은 마당 위를 구르는 맑고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빨랫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옷가지들에 매달린 고드름을 전부 따 어둠 속으로 던졌다. 그중 몇 개는 입에 넣고 씹어 먹기도 했다.

딱딱하게 굳은 옷가지들의 근육을 풀어주듯 구부리고 문지른 뒤 한결 부드러워진 거기에 얼굴을 대고 숨을 들이쉬었다. 새물 냄새가 나던 그 옷가지에는 어머니 혹은 아버지의 체취도 조금쯤은 남아 있는 듯했다. 머리끝까지 솟았던 열기가 사라지자 몸이 으스스 떨렸다. 그리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늬 아버지가 너 미워서 그런 게 아녀. 소리 없이 마당가에 섰던 어머니는 마치 내 물음에 답해주기라도 한다는 듯이 그 말을 툭 내던진 뒤 한밤중에 당신이 늘 하던 일, 아궁이에서 불이 뻗쳐 나오지는 않았는지, 집에서 기르는 가축들이 얼어 죽지는 않았는지 등을 살피고 뒷간에 들렀다가 방으로 돌아갔다. 물론 어머니의 그 말에 마음이 풀렸다고 한다면 거짓일 테다. 미워서 그런 게 아니면 뭔데? 이런 반발이 왜 생기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얼마 전 촛불집회에서 아내는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나는 정권교체를 바라는 젊은 시인·소설가 137인 선언으로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당해 재판을 받았다. 그때 아내는 지금의 딸아이를 임신 중이어서 몸과 마음이 힘든 상태였다. 아내는 그때 나를 껴안아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아내의 말을 듣자 순식간에 삼십여년 저쪽의 일이 떠올랐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건만 어머니는 내가 어떤 말을 듣고 싶었는지 잘 알았다. 억울했던 나는 당장에는 그 말을 귀에 담지 않았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말에서 위안을 찾았을 테고 겨울날 옷가지들이 빨랫줄에 걸린 채로 낮과 밤을 보내다 어느 결에 다 말라 곱게 개켜 옷장 속에 들어가게 되듯 나의 상심도 스르르 녹아 사라졌을 것이다. 아버지가 직접 그런 말을 해주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아버지야 워낙 그런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 치고 어머니마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오래도록 속을 끓였을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은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노라고. 나는 상처받지 않았노라고. 그런데도 내게 미안하다고 말해주어 고맙다고.

대체로 우리는 우리가 했던 일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는 경우보다 하지 않았던 일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는 경우가 더 많다. 실수로 그랬든, 고의적으로 그랬든 이미 저질러진 일이 두 사람의 관계를 영영 회복이 불가능할 만큼 악화시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하지 않은 일 탓에 그렇게 될 수는 있다.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아직 말하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해야 한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손을 내밀어야 한다. 박근혜와 그의 정부는 그들이 했던 일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지 않은 일, 아마 그들이 앞으로도 결코 할 생각이 없는 일, 바로 그 일 탓에 국민과 영영 화해 불가능한 상태에서 망각의 늪에 고이 모셔질 것이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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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체육과 관광을 포함해서 소위 문화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쉽게 몇몇 사람들의 작당으로 좌우된 정황들이 드러나 전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 정국과 맞물려 예술계 안팎에서도 개혁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건설하거나 회복하는 일과 같은 맥락의 일이기도 하거니와, 국정농단의 주요 대상으로서 처절하게 무너져 내린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문화는 국정철학의 부재와 정책기조의 결핍 속에서 완벽하게 유린당했다. 차관에서부터 실국장, 과장에 이르기까지 행정관료 조직의 골간이 흔들린 상태에서 무방비로 당했다. 대통령의 거취만이 문제가 아니다. 정치와 행정의 오작동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그 해답의 일단이 제주도와 서울 성북구에 있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중심과 변방으로서의 서울과 제주를 집약한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옛말일 뿐이다. ‘사람도 말도 제주로.’ 급속한 팽창으로 인해 사회 및 환경 문제가 발생할 정도로 제주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가운데 가장 뜨거운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이제 제주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다녀오고 싶다’에서 ‘살아보고 싶다’로 바뀌고 있다. 따라서 제주도의 정책은 관광 일방주의에서 탈피해 관광과 주거의 두 축을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다. 다녀가는 여행지에서 머물러 살고 싶은 거주지로 확장하고 있는 제주도는 도민의 문화향유권 신장을 위해 ‘문화예술의 섬’을 추진하고 있다. 그것은 원희룡 도정의 핵심 정책으로 자리 잡으면서 3%에 근접하는 문화예산 수립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제주도의 문화정치는 ‘문화예술의 섬’이라는 정책의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예산배치와 더불어 민간의 공론을 행정에 반영하는 민관협치에 의해 작동한다. 그것은 문화국과 문화재단, 박물관, 미술관 등의 행정조직이 정책수립과 실행과정에서 제주도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의 대리보충 역할과 만나는 구조다. 도지사와 함께 김수열 시인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예술위는 도정 전반의 문화정책을 다루는데, 단기 현안들은 물론 중장기 현안에 대해서도 심의 의결하는 기능을 가짐으로써 ‘제주문화정책의 주류화’를 위해 민간과 관료의 협치를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 성북구는 스물다섯개의 서울 자치구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문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김영배 구청장은 민관협치의 관점으로 마을 만들기와 협동조합, 청년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지방자치구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생활정치로 주목받고 있다. 성북문화재단은 정릉, 성북동, 미아리고개 등의 거점 공간에 예술마을 만들기를 추진하면서, 인문학, 역사문화, 생활문화의 3대 축으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재단의 김종휘 대표는 홍대 앞 인디레이블 실험과 노리단 등을 주도했던 경험을 살려 성북구 전반의 문화정책을 추진하면서 성북구를 문화예술계의 새로운 중심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대한민국 문체부는 탐욕스러운 통치자의 그물망에 포획된 후 스스로 국정농단의 한가운데 들어서 버렸다.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행정조직으로 낙인찍혀 이제는 문체부 해체 주장까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제 문체부는 처절한 자기반성과 더불어 강도 높은 개혁의 과제를 안고 있다. 가장 큰 과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민관협치 구조로 되돌려 놓는 일이다. 행정조직과 협의하여 민간의 소통능력을 배가하는 자문기구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예술위를 되돌려놔야 한다. 그것이 비선 실세의 음험한 농단으로부터 벗어나 행정과 민간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집단지성의 묘미를 살리는 지름길이다.

서울에는 성북이 있고, 대한민국에는 제주가 있다. 제주도와 성북구의 문화정치는 행정과 민간 간의 소통 가능성을 넓히는 협치의 문화정치다. 민간의 참여와 협업을 중요시하는 제주도의 예술위는 무늬만 위원회가 아니다. 문화를 도정 전면에 내세운 만큼 문화 관련 정책과제의 발굴과 토론, 자문을 맡는 실질적인 정책자문기구로 작동하고 있다. 서울시 성북구의 문화정치는 마을과 청년 속에서 공동체예술과 행동하는 예술을 길러내는 사회예술로 이어진다. 혼돈의 와중에서 신음하고 있는 대한민국 문화정책 행정을 차분하게 돌아보고 행정의 오작동을 대리보충할 수 있는 기제로 민관협치에 주목해볼 일이다.

김준기 | 제주도립미술관 관장·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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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의 갖가지 추문을 단박에 잠재운 강력한 사건이 터졌다.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이다. 이 사건은 미르와 K스포츠재단 등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그간 박근혜 정권 아래 이루어진 모든 일과 맞물려있다. ‘문화융성’이란 모토 아래 추진된 여러 행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지 문화예술 관련 기관장 선임이 최순실의 영향력 아래 이루어졌다.

그 무리들에 의해 온갖 비리가 저질러졌고 블랙리스트도 작성되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문화예술계의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는 등의 지시를 내리는가 하면, 당시 정무장관이었던 조윤선 현 문체부 장관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의심을 사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사람들을 배제하기 위해 작성한 리스트란다. 2014년부터 2015년 1월까지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지원하지 말아야 할 문화예술계 인사와 단체들의 명단을 작성했고, 이 명단을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내려 보내 지원사업 선정에 반영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는 박근혜 정부가 문화예술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옥죄고 탄압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방증하고 있다. 이미 이명박 정권 때부터 정부는 돈줄을 풀거나 조이는 방식으로 문화계를 길들여왔다. 자신들과 정치적 이념이 다르거나 비판적인 이들을 모조리 좌파로, 빨갱이로 몰아 뽑아내고는 전문성이나 능력과 무관하게 선거캠프와 새누리당 출신 친정부 인사들을 기관장으로 내리꽂았다. 그렇게 자리를 차지한 이들이 갖은 비리와 전횡을 일삼아 왔음도 익히 접하고 있다. 그들은 오로지 동일한 욕망으로 공동체를 이룬 무리이다. 자신들의 기득권과 권력, 자본을 확장하고 대를 이어 보존하고자 하는 탐욕으로만 점철된 강고한 카르텔이다.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은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물인 차은택의 스승이란 이유로 장관에 임명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김형태 전 국립박물관 문화재단 사장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대통령 소속 문화융성위원회에서 활동한 이였는데 최근 성추행과 인사전횡 등으로 해임됐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대통령 관심사항인 전시를 추진하지 않는다고 진즉에 파리 목숨이 된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운영부를 관리하는 간부직엔 대선캠프에서 활약한 기업인이 추천한 인사가 낙하산 임용됐다는 설이 오래전부터 파다했다. 그리고 이 사람이 국내 미술상황에 대해 거의 무지할 수밖에 없고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외국인 관장 뒤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을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로 인해 서울관의 위상이 추락하고 전시 내용이 부실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덕 전 장관이 국립현대미술관장 공모에 응모해서 선별된 후보자를 선임하지 않고 미루다가 끝내 무산시키고 뜬금없이 낯선 외국인을 관장으로 선임한 배경을 이제야 알 것도 같다. 여타 미술관의 관장이나 문화재단 이사장 선임 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윗선과 연결된 문체부 관리들이 주축이 돼 그들의 표현에 의하면 진보나 좌파적 성향이 있다고 여겨지는 인사들을 적극 소탕하고 내치는 한편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입맛에 맞는 인사를 조직적으로 앉혀왔다고 본다.

그렇게 기관의 장이 된 이들이 각종 행사에 나와서 문화융성에 대해, 문화예술의 창조성에 대해 온갖 수사로 지껄이던 장면이 떠오른다. 공무원들은 그 ‘말씀’을 충실히 따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주도해나갔다.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특정 예술인들을 속아내고 지원금을 차단하고, 직장에서 내쫓거나 검열을 일삼는가 하면 대통령 측근 인사를 심어주는 일을 충실히 집행한 대가로 승진하거나 해외 문화원 원장으로 영전돼 나갔다. 이게 우리나라 문화현실의 꼬락서니다. 이러한 문체부는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고 본다. 괴벨스나 매카시, 박정희가 지배했던 그 시대를 아직도 살고 있는 이 현실이 너무 참담하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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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마감일을 앞두고 한 편의 글을 써보려고 애쓰다 결국 쓰지 못한 일이 있었다. 나는 오래도록 어떻게 써야 할까 고심하다 포기했고 글쓰기를 포기했다는 사실 탓에 열패감에 사로잡혔다. 사소해 보이는 이 문제가 내게는 퍽 중요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지 십오륙 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청탁받은 원고를 쓰지 못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마감일을 넘기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되도록 마감일에 맞춰 송고하기 위해 애썼다. 때로는 마음에 흡족한 글일 수도 있었고 아닐 수도 있었지만 단번에 명문이나 명작을 쓰겠다는 야심은 없었으므로 끈질긴 글쓰기의 과정 자체를 즐기는 쪽이었다. 그런 내가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멍하니 시간만 흘려보냈다.

마감일이 다가왔다는 재촉 문자를 받은 뒤부터 마감일이 지났으나 며칠 더 말미를 주겠다는 문자를 받게 된 날까지, 기어이 그 며칠의 말미를 넘길 때까지도 쓸 수 없었다. 다뤄야 할 소재가 주어진 원고였다는 점도 하나의 이유였다. 학살이나 다름없는 백남기 농민 사건을 프리즘 삼아 국가폭력을 논하기로 한 시론(時論)이었다. 그러나 글을 쓰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사전적 정의에 따르자면 ‘그때그때 일어나는 시사에 대한 평론이나 의론’인 시론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사태, 그이의 죽음이라는 막대한 사태 앞에 속수무책이어서였다. 진정으로 그이가 살아 돌아오길 바랐기에 내가 맞닥뜨린 현실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다. 상상을 능가하는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 그 현실을 다루는 글을 쓴다는 사실이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한 사람의 목숨조차 지켜낼 수 없는 글쓰기, 사후에 그 의미를 다루는 글쓰기가 대체 무슨 쓸모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글쓰기 자체를 회의하게 되는 이런 순간을 처음으로 겪는 것은 아니었으나 정수리에 찬물이 끼얹어진 듯한 놀라움을 느꼈고 여태까지 내가 써왔던 모든 글들이 나를 조롱하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사태는 점점 심각해져 하나의 추문으로만 여겨졌던 대통령에 관한 소문들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온 나라가 들끓게 되었다.

지난 주말 아내와 더불어 세 살배기 딸을 유모차에 태워 광화문으로 나갔다. 글을 쓰지 못하는 작가라서 더는 글 뒤에 숨을 명분도 없었으므로 한 목소리나 보태자는 심산이었다. 백만의 인파가 몰려든 그곳에서 뜻밖에도 수많은 글들과 마주쳤다. 박근혜 하야, 아무것도 하지 마라, 너 없이 더 잘산다, 민주주의 파괴자 박근혜를 우주로, 우주가 무슨 죄냐…. 이 단순하고 명쾌한 문장들이 어떤 명문장보다 절실하게 다가온 이유는 내가 글을 쓰지 못하는 작가여서만은 아니었으리라. 현실이 아무리 압도적일지라도 인간의 희망을 짓밟을 수 있을 만큼 압도적인 현실은 없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우리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쓴 것으로 보이는 글 앞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왜 구하지 않았는지 알고 싶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었다. 내가 쓰고 싶었으나 쓰지 못했던 글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사위는 어두웠으나 그날 거리에는 어둠이 내려앉지 못했다. 우리는 어깨 위에 머문 밤이 그 위에서 홀로 깊어가게 내버려두었다.

작가란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분노, 증오, 슬픔, 기쁨, 고통 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작가에게서 그가 무얼 확신하는가를 느끼는 대신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에 아파하는지를 느끼게 된다. 나는 그날 광화문 거리에서 보았다. 한 시대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아름다운 작가로 빚어내는지, 한두 사람이 아니라 100만을 1000만을 어떻게 아름다운 작가로 만드는지. 나도 거기에 편승하여 문장 하나를 지어보았다. 박근혜씨 좋은 말로 할 때 내려오시죠. 흡족하지는 않으나 다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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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일원에서 사단법인 숲길(이사장 도법)이 주최하는 행사 ‘지리산프로젝트 2016: 우주여자’(10·22~11·20, 전북 남원 실상사 및 경남 하동 일대)가 열리고 있다. 필자가 예술감독으로 동참해온 이 프로젝트는 예술과 학술의 소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 위해 지리산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예술적 감성과 과학적 진리의 수준에서 접목하는 우주적 관점의 융합프로젝트다. 자연과 공동체로부터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지리산둘레길 일원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답사와 토론, 캠핑, 퍼포먼스, 지리산 종주, 공연, 학술, 전시 프로그램을 열었다. 지리산 종주와 둘레길 걷기, 강연과 토론 등으로 배움의 시간을 가졌고, 기획전시와 학술심포지엄으로 그 뜻을 나눈다.

2014년 ‘우주예술집’, 2015년 ‘우주산책’에 이은 세 번째 지리산프로젝트의 주제는 ‘우주여자’다. 이번 행사는 남성-자본 중심의 현대사회가 인간과 자연에 가하는 모든 종류의 지배, 억압과 착취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동시에 인간해방의 차원에서 자연의 섭리와 생태 질서를 돌아보는 자리다. 남원 실상사와 하동 둘레길 일원에서의 전시행사와 더불어, 현재 진행 중인 여성담론의 쟁점들을 살펴보는 학술심포지엄 ‘다시, 여성주의와 예술’(경남도립미술관, 11·4)이 열린다. 여성주의 연구자 및 활동가들이 ‘현실 운용 원리로서의 여성혐오-남성공포에서 통감과 분노의 정치학으로’(윤지영), ‘한국의 여성주의 미술운동’(정필주), ‘지리산의 여성주의 예술활동’(이유진) 등의 주제로 발제하고 토론한다.

지리산을 두고 사람들은 흔히 ‘어머니 산’이라 부른다. 그것은 생명과 포용, 자비, 해방을 뜻한다. 그러나 지리산에 덧붙는 ‘어머니’는 여성에게 희생과 순종을 강요한다는 면에서 비판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어머니 지리산’ 담론에 대한 예찬 수준을 넘어 그 속에 담긴 차별과 억압의 기제를 걷어내고, 자유와 평화, 공존, 공유 등의 가치를 중심으로 새로운 연대를 모색할 일이다.

특히 지리산에 사는 여성들의 생활 속 여성주의 운동은 매우 근본적인 수준에서의 실천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메갈 논쟁’이라는 혐오의 정치학이 남긴 것은 상처만이 아니었다. 여성주의 의제들이 미해결 상태로 방치돼 있다는 데 주목하고 메갈 논쟁의 경과와 함의를 돌아봐야 한다.

이렇듯 지리산의 가치를 우주적 관점에서 성찰하고자 하는 지리산프로젝트가 현 시국과 맞물려 묘하게 읽히고 있다. 정권의 스캔들과 얽혀들어 ‘우주’와 ‘여자’라는 단어가 오해를 받고 있다. 억울하고 못마땅한 일이다. ‘우주’를 그렇게 쉽사리 오염된 단어로 치부하기에는, 인류가 갈망해온 천문우주에 관한 경이로운 세계가 너무나도 넓고 크다. 게다가 지금껏 남자들이 저질러온 죄악이 훨씬 더 극심한데도, ‘여자’라는 단어를 조롱과 멸시의 뜻을 담아 사용하는 데에는 공감할 수 없다. 자신이 싫어하는 누군가가 우주를 언급했다고 해서 우주라는 개념을 폄하할 이유가 없고, ‘여자(들)’ 운운하며 양성평등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더욱 한심한 일은 ‘무당정치’라는 말을 동원해, 최근의 국정혼란 상황에 대한 비판을 샤머니즘에 대한 공격으로 돌리는 반문화적 태도다. 민속학 전공자인 주강현 박사는 최근 페이스북 포스팅에서 다음과 같이 무당정치 담론을 언급했다. “무당정치라는 말보다 그냥 신정정치라 명명하고 쓰는 게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굳이 복잡하게 말한다면 기독교 영생에 기반을 둔 무속기독교융합과 삼류정치권력의 권력독점 야망이 결합되고, 자본의 부패와 관료 전문가 사회의 침묵과 동조가 빚어낸 퇴행적 신정정치다.” 우주적 존재론과 여성주의, 샤머니즘에 관한 재인식이 없는 한 우리는 퇴행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정치권력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뿌리에 자리 잡은 정신문화이기 때문이다.

김준기 | 제주도립미술관장·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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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결혼할 때 아내가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소설가들은 이혼도 밥 먹듯이 한다던데 그 사람과 결혼해서 잘살 수 있겠냐는 식의 충고들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을 때도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소설가에 대한 그런 식의 오해가 부당하다고 느끼지 않아서가 아니라 소설가라면 마땅히 감수해야 할 오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소설가에 대한 이 뿌리 깊은 편견은 내게 소중하지 않다. 내게 소중한 건 그런 편견들이 버젓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소설가인 나를 이해해주려는 시선이다. 이를테면 결혼을 앞두었을 때 처가 식구들이 아내와 나의 결혼을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내 나이가 마흔에 가까움에도 전 재산이 몇천만원밖에 안 된다는 거였다.

그런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을 때도 그리 서운하지는 않았다. 사실이니까. 그런 정당한 반대 사유가 있었음에도 내가 아내와 결혼할 수 있었던 데에는 지금의 장인어른 말씀이 크게 작용했다. 그때 장인어른은 다른 식구들을 이렇게 설득했다고 한다. 그 사람은 소설가다. 소설가가 돈이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 않으냐. 내게 소중한 건 바로 이거다. 서로 다르고 어쩌면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인간에게 부여된 고유한 장점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장인어른과 나는 세계관이 무척 다르다. 장인어른은 새누리당 지지자다. 그 탓에 사위들과 모인 자리에서 조금 불편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동서 중에 맏형님이 대표가 되어 장인어른과 말씨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다툼은 오래가지 않는다. 가족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서로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해도 알지 못하는 걸 그냥 내버려 두려 하지 않고 이해하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결코 용납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을 듯한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 차이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그 단순하기 짝이 없고 순결한 노력 하나뿐이다.

소설에 관한 정의야 다양하겠지만 인물에 한정 지어 말하자면 현실 세계에서 이해 불가한 인물을 이해 가능한 인물로 제시하는 게 소설이다. 그래서 소설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간극을 줄일 수 있고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현상을 이해의 여지가 있는 무언가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소설의 인물은 실재 인물과는 다른 허구의 인물이지만 실재 인물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인물일 수 있다. 지금까지 많은 소설가들이 현실의 어떤 인물보다 실재에 가까운 인물, 다시 말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인간이 어떤 가능성을 지녔는지를 소설에서 보여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다.

내가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인물을 소설의 인물로 고려하지 않는 이유는 그 인물이 너무나 불가해하기에 소설에서 이해 가능한 인물로 묘사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외려 그 인물이 너무나 뻔해서, 인간의 가장 어두운 부분, 인간의 가장 탐욕스러운 부분을 상징하기에 소설로 그린다면 한심한 유형적인 인물이 될 것이기에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삼류 소설 중에 전형적인 악당의 유형으로 묘사되어 등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그리하여 감히 장담하건대 동시대의 소설가뿐만 아니라 내 후대의 소설가들 중에도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인물을 모델로 삼아 소설의 인물로 제시하는 경우란 없을 것이다. 요컨대 고뇌하는 인물만이 소설의 인물이 될 수 있다. 고뇌하지 않는 인물은 현실 세계에서 높은 지위를 획득하며(예를 들어 대통령이나 집권 여당의 대표와 같은) 부유하게 권력을 누리며 살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소설의 인물은 될 수 없다. 어떤 소설가도 인간의 희망을 그런 인물에게서 찾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혹여 소설의 인물이 못 되는 게 무슨 대수냐고 생각할까 봐 좀 더 쉽게 풀어서 말해준다면, 그건 곧 역사가 그대를 지워버릴 거라는 의미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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