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서울 도봉구 창동역 1번 출구에 ‘플랫폼 창동 61’이 개관했다. 컨테이너를 쌓아 음악, 패션, 음식 등 다양한 장르를 수용하는 문화예술 공간이다. 음악과 관련된 시설을 살펴보자면 이렇다. 3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탠딩 공연장이 있고 녹음실, 합주실, 스튜디오 등 음악 창작에 필요한 시설이 올인원으로 갖춰져 있다. 시나위의 신대철, 이한철, 아시안 체어샷, 잠비나이, 숨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인들이 우선 입주하고 20개 팀을 추가로 모집한다고 한다. 그동안 서울시가 추진해온 대중문화 관련 정책 중 가장 구체적이다. 새로운 음악 생태계 구축을 위한 플랫폼인 셈이다. 근 10년간 인디음악과 관련된 지원 정책은 시설만 갖춰놓고 소프트웨어를 고민하지 않았다면, 이 프로젝트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통해 창작의 활성화를 꾀하고 있어 기대가 크다.

이 계획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비대칭적이고 폐쇄적이며 망가지기까지 한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장르 음악이 설 자리는 없다. 혁오, 10센치 등 음원 차트에 이름을 올리는 음악가들의 지분은 아이돌과 오디션 프로그램 가수에 비하면 ‘기타’로 분류하기도 민망할 만큼 미미한 게 현실이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하향식으로 대중에게 살포되는 음악과 달리, 바닥에서 음악 그 자체의 힘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야 하는 음악인들에게 이런 지원책은 당연히 필요하다. 철강산업의 퇴조와 함께 쇠락하기 시작한 영국의 셰필드시가 1988년부터 시행한 문화산업지구제가 후일 펄프, 악틱 몽키스 등 지역 출신의 스타 밴드를 낳은 사례는 지역 문화정책이 시장 논리로 해결할 수 없는 음악적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플랫폼 창동 61’의 성공을 바라는 이유다.

서울 창동에 29일 문을 여는 복합문화공간 플랫폼 창동 61._경향DB

다만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한국에서 더 이상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하위 문화 신(scene)이 자생적으로 탄생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쎄시봉으로 대표되는 1970년대 명동의 청년 문화를 시작으로 1980년대 신촌 언더그라운드, 그리고 1990년대 홍대앞 인디음악의 탄생을 가로지르는 공통점이 있다. 명동은 산업화로 인한 경제성장 시기에 청년기를 누린 전후세대의 놀이문화로 시작했다.

5공화국 정권 출범과 함께 대학 정원이 대폭 늘어나면서 대학교가 밀집한 신촌에서 새로운 블루스와 록이 탄생했다. 1968년부터 1974년에 태어난 2차 베이비붐 세대들이 이미 사막화되기 시작한 신촌을 떠나 근처의 홍대앞에서 펑크와 모던 록을 중심으로 한 인디 신을 생성했다. 투박한 분류지만 경제적 환경과 인구 분포가 하위문화의 장소 이동을 견인한 셈이다. 하나를 더한다면 서구 음악 흐름의 변화가 동시대에 이식되면서 새로운 수요를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홍대앞 이후 문래동, 석관동 등지에서 새로운 신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확장되지 않았다. 연남동, 경리단길처럼 새로운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동네에는 하위문화가 없다. 30대 이상을 중심으로 한 먹고 마시는 소비문화만 있을 뿐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나는 생각한다. 결국 ‘쪽수’와 경제의 문제라고. 새로운 청년문화를 생성할 수 있는 연령대는 인구절벽 앞에 서 있다. 게다가 그들이 처한 현실은 88만원 세대를 지나 N포세대라는 용어로 정리된다. 여가는커녕 생존도 벅찬 세대다. 새로운 문화로 주장과 욕망을 펼칠 수도 없고, 설령 할 수 있어도 호응할 수 있는 아군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다.

‘플랫폼 창동 61’의 탄생은 한국 사회에서 하위문화 신의 탄생이 기존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단계에 와 있음을 보여주는 역설이 아닐까 싶다. 스타가 되기 위해 주체와 자아를 거세하고 아이돌이라는 이름의 컨베이어 벨트를 통과해야 되듯, 오디션을 통해 기성세대의 틀에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재단당해야 하듯, 어쩌면 장르 음악(또는 하위문화)도 비슷한 운명에 처해 있는 게 아닐까. 젠트리피케이션의 절정에 와 있는 홍대앞 이후의 대안을, ‘플랫폼 창동 61’은 마련할 수 있을까.


김작가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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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다. 어느 문학 강좌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세 딸이 달려왔다. 그중 누가 가장 서글프게 울까. 학생들은 저마다의 이유를 들어 큰딸을, 작은딸을, 막내를 꼽았다. 그때 나는 딴생각이 있어서 대답하지 않았다.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세 딸 가운데 가장 섧게 우는 이는 큰딸도, 작은딸도, 막내도 아니다. 그럼 누구인가요? 학생들이 묻자 교수는 그중 가장 가난한 이라고 답했다. 가장 가난한 이가 가장 섧게 운다. 퍽 인상적이었던 터라 이후로도 나는 이 장면을 복기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애정의 유무나 깊이와는 무관하게 어머니의 초상을 비빌 언덕 삼아 마음 놓고 울 수 있으려면 얼마나 한이 쌓여야 하는지를 헤아리지 않을 수 없어서였다.

그런 생각에는 순결하고 비참한 삶의 진실, 다시 말해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누군가를 깊은 울음으로 인도하는 슬픔이 그 자신의 존재의 형식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진실이 담긴 것만 같았다.

이 진실 탓에 나는 오랫동안 불편했다. 그 장면을 복기할 때마다 목에 걸린 가시와 같은 또 다른 장면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서였다. 중학생이었을 때 가까운 친척 어르신이 돌아가셨다. 솔밭에서 갈퀴질을 하다 쓰러져 사경을 헤매던 당신을 보았던 터라 내게는 가장 구체적이고 생생한 기억 가운데 하나다. 타지에 사는 어르신의 피붙이들이 달려왔다. 과묵한 아들들의 조용한 곡소리야 그러려니 했으나 딸의 울음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구석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역시 딸자식밖에 없다며 눈가의 눈물을 찍어냈는데 큰며느리가 상가에 도착하자 삽시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돌아가신 어르신은 욕쟁이 할머니로 유명짜했고 큰며느리는 천하제일의 ‘백여시’ ‘불여시’ ‘구미호’로 일컬어지는 분이었다.

장편소설 <서울>출간한 소설가 손홍규 _김정근기자


이 두 거인이 서로를 노려보면 볕 좋은 겨울날 떨어질락 말락 간당거리는 팔뚝만 한 고드름 밑에 선 것처럼 지켜보는 사람이 다 조마조마해졌다.

하늘 아래 둘도 없는 앙숙이었고 비록 큰며느리가 타지에 살아 일 년에 몇 번 모습을 드러내는 게 고작이었음에도 동네 사람들은 이웃하여 사는 것처럼 일쑤 큰며느리의 언행을 화제에 올리곤 했던 거였다. 어쩌면 모두들 큰며느리의 분탕질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큰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영정을 부여잡고 숨이 넘어가도록 통곡하고 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고 땅바닥을 구르고 기어이 피를 흘릴 때까지 입을 딱 벌린 채 아무 말도 못했을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큰며느리의 절망적인 통곡에 비하자면 심금을 울리던 딸의 울음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큰며느리의 통곡에는 까맣게 잊었던 고통스러운 기억마저도 불러들이는 힘이 있었다. 이제 정신을 차린 동네 사람들은 입을 모아 큰며느리의 효심을 칭송했다.

이로써 사태는 완전하게 정리가 되었다. 초상집의 승자는 큰며느리였고 길이길이 효부로 회자될 운명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이들의 눈을 잊을 수 없다. 절규하는 큰며느리가 불러일으킨 당혹, 순수에 가까운 몸부림이 불러일으킨 슬픔, 둘 사이가 어떠했느냐를 넘어 과연 인간이란 이처럼 외롭고 쓸쓸하며 불쌍한 존재가 아니냐는 깨달음이 번져가던 눈동자들. 원망을 담아 하늘을 우러르던 큰며느리의 눈까지도.

사실을 말하자면 가장 가난한 이가 가장 서럽게 운다는 해석에 동감했던 이유는 아마도 내가 가난해서였고 언제든 핑계만 생기면 울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동시에 완벽하게 공감하지 못한 이유는 서른 해 가까이 그 장면을 떠올리면서 어쩌면 큰며느리가 그토록 섧게 울었던 건 이제 결코 화해할 수 없다는 절망, 서로를 바라보며 따뜻하게 미소 지을 단 한순간을 영영 잃어버렸다는 상실감 역시 하나의 이유일 수 있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널브러진 갈퀴 옆에 곱게 쓰러져 있던 어르신을 등에 업은 막내아들이 고무신이 벗겨진 줄도 모른 채 맨발로 울면서 달려가던 장면이 떠올라서인지도 모른다.


손홍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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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차 안에서 라디오를 틀었다가 광주지역 외국어 라디오방송 프로그램의 ‘전라도 사투리 배우기’ 코너를 듣게 됐다. 장난기에 그치는 예능 코너라기보다는 지역 문화를 이해한다는 목표의식이 드러나는, 유쾌하지만 진지한 코너였다. 진행자들은 모두 영어가 모국어인 듯했는데, 외국어수업과 음악수업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이 기묘한 학습 풍경이 진지한 만큼 웃음을 자아냈다. 혼자서 미소를 지으며 방송을 듣다가 어느 순간 낯선 미학적 감흥에 빠져들었다. 그들이 애써 모방하는 전라도 사투리가 새삼 아름답게 들렸던 것이다.

사투리를 ‘촌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문화적으로 학습된 반응임이 분명하다. 처음부터 사투리인 언어는 없기 때문이다. 사투리는 근대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형성된 ‘중심-주변’의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호명된다. 하지만, 지구적으로 시야를 넓히면 그러한 정치적 구도는 흐려지거나 다른 양상으로 포착될 수 있다. 외국어 방송의 전라도 사투리가 아름답게 들린 것은 이러한 ‘지구화’의 문화적 효과와 연관될 것이다.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를 스스로 ‘촌스럽다’고 여기는, 사투리를 둘러싼 정서의 식민화 현상과 관련해 음악은 흥미로운 관찰거리다. 최근 개봉한 영화 <해어화>의 중심 소재를 이런 문제와 관련해 볼 수 있다. ‘조선 최후의 기생 이야기’를 표방하는 이 영화는 모더니티의 충격 속에서 한국 전통음악이 변방의 음악언어로, 곧 음악적 ‘사투리’로 전락하면서 20세기 내내 시달려온 문화적 열등감을 다루고 있다. 식민지 경성의 권번에서 한국 전통가곡을 전수받은 주인공 소율이 권번의 단짝 연희가 유행가수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극심한 열등감과 질투심에 빠져 파멸에 이른다는 줄거리다. 그런데 소율의 비뚤어진 인정 욕구는 현재의 시점으로 돌아와서 보상받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방송국 PD의 인정을 받은 늙은 소율은 후회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좋은 것을, 그땐 왜 몰랐을까요?”

영화 <해어화>

소율의 가곡 창법에 연희의 유행가 창법과는 다른 미적 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고, 영화 <해어화>는 결론 삼아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최근 문화적 지구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 전통음악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자신감이 배경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실제로 2003년에 판소리가, 2010년에 영화 속 소율이 부르는 전통가곡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다른 한편 ‘월드뮤직’ 시장이 형성된 1990년대 이래로 한국의 젊은 전통음악인들의 참여가 가속화되면서 최근 들어 세계 음악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다. 이 점에서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 ‘소율’에서 미국 대중음악 장르 명칭인 ‘소울’이 연상되는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삼성이 한국기업이라는 점이 더 이상 크게 의식되지 않듯이 지구화의 흐름은 기존의 근대적 국민국가시스템이 형성한 ‘중심-주변’의 정치적 구도를 해체, 재편하고 있다. ‘지구화’가 역설적으로 ‘지역화’를 추동함으로써 ‘지구지역화’가 논의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서의 외국어 라디오방송에서 전라도 사투리가 촌스럽지 않게 들렸던 것처럼 한국의 전통음악 언어 또한 이러한 ‘지구지역화’의 부쩍 넓어진 시야에서 재발견되고 있다. 그것은 젊은 문화수용자들의 편견 없는 태도와도 결합된 문화적·미학적 가능성이지만, 아직은 잠재성이나 착시효과에 머무는 것도 사실이다. “그땐 왜 몰랐을까요?”라는 성찰적 물음이 “외국인들이 저렇게 인정하는데”라는 탄식에 머물거나 국수주의적 자부심으로 회귀한다면 말이다. 그것은 사실상 영화 <해어화> 속 소율의 왜곡된 인정 욕구와 다르지 않다.

모든 지역 언어가 온전히 촌스러움의 멍에를 벗는 날, 비로소 전통음악을 비롯한 한국의 전통문화도 고유한 미학적 차원을 회복하게 되지 않을까? 그 ‘촌스러움’과 열등감 형성의 정치적 메커니즘이 사실상 동일하기 때문이다. 모든 언어는 제 나름의 표준어일 수 있다는 것이 지구화 시대의 미학적 평등을 위한 실천적 명제일 수 있다. 돌이켜보면 전라도 사투리는 판소리의 표준어가 아니던가.


최유준 | 전남대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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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주 인사동과 사간동의 전시장에 나가서 전시를 보는 편이다.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곳뿐만 아니라 골동품 가게들 역시 부지런히 다닌다. 해찰이 심한 나로서는 다양한 볼거리에 탐닉한다. 가능하면 많은 전시를 보려고 애쓴다. 미술평론가로서의 죄의식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매혹적인 미술작품을 보면 여전히 감동스럽고 흥분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순간이 좋다. 내 몸의 감각이 죄다 살아나 발기하는 순간이다. 그러니 내 삶은 평생 나를 사로잡는 이미지 하나를 찾아 절박하게 떠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럴 때 나를 구원해주는 것은 소박한 골동품이다. 선인들이 만든 작고 아담하고 기품 있는 물건들 말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취향에 따른 것이다. 취향은 특정 이미지를 편애하고 옹호하는 일이다. 또한 취향은 단지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감정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이다.

내 취향을 전적으로 만족시켜주는 것은 자신의 삶에서, 생활에서 자연스레 길어 올린 소박한 아름다움이다. 자신만의 고유한 손맛으로, 지극한 정성으로 밀어낸 것들이다. 그런 것들은 동시대 미술보다 옛사람들이 만든 것들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선인들이 만든 것들은 일상적인 삶에서 쓰였던 실용적 차원의 물건이자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차원에서 기능했던 것들이다. 근대 이후 일상적 삶의 맥락에서 탈각된 그 사물들이 박물관으로 이동하면서 전시가치로, 미술작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고인들이 남겨 놓은 상당수 물건, 이미지에는 신실한 마음과 한없는 정성, 그리고 무심함이 스며들어 있고 당대 삶의 이치와 그로 인한 배태된 아름다움의 형식이 격조 있게 놓여있다. 과도함과 억지, 기이하거나 천박한 장식이 없다. 의도적인 꾸밈이나 과장된 수사가 지워진 저 물질의 민낯과 그 표면에 최소한으로 개입해 만든 인공의 흔적들이 조화를 이룬 것들을 보는 재미는 대단하다.

10일 서울 인사동 우림갤러리에서 열린 ‘인사 고미술 잔치’에서 관람객들이 도자기와 민속품 등 다양한 유물들을 관람하고 있다._경향DB

우리 옛사람들이 만든 모든 것들이 지닌 미감의 특성은 ‘생활 감정의 규모’를 결코 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의 생활환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우연한, 자연스러운 미감을 즐겨왔고 생활 가운데서 우러난 아름다움을 즐겼다.

지난주 인사동에 나가 작은 토기 잔 하나를 구입했다. 삼국시대 것이다. 오래전부터 옛사람들의 것을 하나씩 사서 모아두고 있다. 내 삶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은 작고 저렴한 것들이다. 그렇다 해도 분명 내 살림에는 부담이 되는 가격이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그 돈을 지불해 구입한 작은 토기나 목기 등을 연구실 책상에 풀어놓고 반복해서 바라본다. 이 비좁은 연구실에서 나는 저 사물들과 독대하면서 늙어간다. 책을 읽다가, 원고를 쓰다가 문득 고인들의 그림이나 그릇, 연장 등을 바라보면 문득 내 삶의 근원을 새삼 추억하게 된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을 억척스레 살아낸, 그 생의 이력들 속에서 비로소 가능했던 아름다움의 비밀도 마주한다.

미술이란 것이 결국 아름다운 생활을 위한 시각적 안목을 키우고 생활 속의 시각 언어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미술의 가치는 삶의 의미를 아름답게 보여주는 데 있다. 반면 오늘날 생산되는 무수한 미술품들은 과연 어떤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오늘날 우리 삶의 어떤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과연 자신들이 살고 있는 현재의 삶으로부터 고민해서 길어 올린 흔적들이나 자기 생의 가치와 철학, 의미를 담보하고 있기나 한 걸까?

그보다는 과도하게 현학적인 주제 혹은 서구의 현대사상과 미술개념 등에 휘둘리거나 과장된 수사, 공허한 수식어에 기대어 그럴듯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데 여념이 없거나 천박한 장식물을 만드는 데 열중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삶의 필요성에서 길어 올리면서도 그 안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미감을 절묘하게 두르고 있는 저 작은 토기 잔 하나를 보면서 떠오르는 상념들이다.


박영택 |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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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오늘은 너에게 아마 네가 읽어본 적이 없을 모옌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단편소설 <아들의 적>을 들려주고 싶구나. 어느 날 한 여인 앞에 아들의 동료 병사들이 시체 한 구를 가지고 오지. 그리고 여인에게 이 시체가 아들이 맞는지를 묻는단다. 여인이 아들임을 확인해 주면 정성껏 장례를 치러줄 테고 아들이 아니라고 일러주면 아마도 그들은 들개나 물어뜯으라며 길가에 아무렇게나 그 시체를 버려두겠지. 다른 사람은 알아볼 수 없다 해도 여인만은 단번에 그 시체가 아들이 아님을 알게 되지.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여인은 죽은 병사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본단다.

그러면서 미간에 관통상을 입고 죽은 시체를 자세히 묘사하는 문장이 이어지는데 이 문장들이 미묘한 떨림을 전달해주지. 마치 마르케스의 소설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익사체>에 등장하는 시체를 바라보는 여인들의 시선에서처럼, 로런스의 소설 <국화 냄새>에서 죽은 광부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에서처럼 경탄이라 해도 좋을 감정까지 느낄 수 있어.

모옌이 이 장면을 참혹하고 끔찍하게만 그리지 않은 이유는 죽은 적군 병사의 얼굴에서라도 아들의 얼굴을 연상해보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간절한 심정을 그 문장들에 새겨넣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아들 또래의 사내만 보아도 아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보통의 어머니들이 그러듯이 말이야.

이윽고 여인은 대담하게도 죽은 병사의 손목을 들어 올리지. 그리고 유별나게 굵고 거친 손가락 마디를 알아본단다. 담뱃진에 찌든 손바닥의 굳은살까지도 알아보면서 여인은 이렇게 중얼거려. “이 역시 고생을 많이 겪어 본 아이였구나!” 바로 이 장면, 여인의 마음속에서 적군의 병사를 자신의 아들과 최초로 동일시하게 되는 이 장면이 내게 서글프고도 아름답게 다가오는 이유는 가난하고 억압받고 착취당하던 사람들끼리만의 무언의 연대의식을 굵고 거친 손가락,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 등을 통해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한 수도원 인근 언덕에서 예수의 십자가 고행을 재현하는 폴란드 청년들_AP연합뉴스


잠시 상념에 잠겼던 여인은 죽은 병사의 속삭임을 환청으로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지. 그리고 죽은 병사의 뺨에 얼굴을 갖다 대며 이렇게 말해. “그래, 얘야, 넌 바로 내 아들이야.” 자신의 아들을 총으로 쏴 죽였을지도 모르는 적군 병사를 아들로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이 소설의 주요 내용인데 이 소설의 절정은 여인의 깨달음과 용기, 다시 말해 자기 앞에 놓인 적군 병사의 시체와 어딘가에 죽어 있을 자신의 아들의 본질적 동일성을 깨닫는 그 순간의 참혹한 진실의 현현이라고 할 수 있겠지.

내가 너에게 이 소설을 들려주고 싶었던 이유는 언젠가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라서였어. 그날 우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정말 가까이 하기 어려운 인간이란 누구일까를 생각해 보았지. 다양한 악인들이 떠올랐어. 곁에 있다고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쳐지는 종류의 악당들을 하나씩 언급하면서 다시 한 번 그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지.

놀라웠던 건 그렇게 하나하나 호명하면서 곱씹으니 이해하지 못할 인간이 없다는 사실이었지. 단 하나 인간의 욕망을 날것으로 체현했다고 여겨지는 어떤 정당의 지지자들만 빼고 말이야. 그렇지만 친구야 나는 이제 그날의 대화에서 그이들을 가까이 할 수 없고 결코 이해할 수도 없는 최후의 악인으로 인정했던 견해를 철회하고 싶구나.

설령 누군가가 심각한 과오를 저질렀다 해도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언덕을 오르면서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짓이 무엇인지 모르나이다”라고 기도했던 것처럼 정말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알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소설의 여인이 보여준 것과 같은 깨달음의 순간을 언젠가는 만나게 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까 만약 정말로 인간의 적이 있다면, 그건 바로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알면서도 저지르는 자일 것이며, 그자들이 누구인지는 너 역시 잘 알 것이라 믿기에 이만 줄이려 한다.


손홍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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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바둑 9단 이세돌이 처음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도전을 수락하면서 전승을 자신했을 때, 사람들은 ‘같은 인간으로서’ 그를 응원하면서도 내심 불안한 감정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저렇게 자신만만해도 되는 걸까?’ 나는 바둑을 잘 모르지만, 인문학 분야의 번역 작업을 떠올리며 이세돌의 자신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가령 구글번역기가 정교해졌다고 하지만, 인문사회 분야의 복잡한 영어 문장을 번역기에 입력해서 얻은 한글 번역문장은 읽어주기 힘든 수준이다. 만약 구글번역기가 내게 번역 작업에 대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해도 나는 이세돌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 같다.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첫 대국에서 패해 느꼈을 당혹감 역시 나는 그와 같은 식으로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예컨대 구글번역기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복잡하고 미묘한 영어 문장들을 나보다 더 매끈하고 이해하기 쉬운 한글 문장으로 옮겨냈을 경우 겪게 될 충격과 비슷하지 않을까?

실제로 구글의 개발자들은 최근 알파고의 딥러닝 기술을 구글번역기의 혁신적 기능 개발을 위해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말의 의구심은 남지만, 바둑의 천문학적 경우의 수를 파악해 프로 9단 이세돌을 압도할 정도의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될 경우 번역의 완성도를 인간 수준으로 높이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번역 역시 문장의 복잡성에 따라 경우의 수가 크게 늘어날 뿐인, 서로 다른 언어 사이의 통계적 치환 작업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적인 은유나 수사법적 표현의 경우도 대부분 관용적 어법의 테두리 안에서 선택되기 마련이다. 직업 번역가나 통역사들에게는 미안한 얘기가 될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고성능 번역기가 눈앞에 나타날 경우 놀랍기는 하겠지만 반갑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에도 별다른 거부감이 일어나지 않았다.

홍석현 바둑협회장이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시상식에서 알파고에게 명예9단 단증을 수여하고 있다._경향DB

흔히 인공지능이 예술과 감성의 영역은 넘볼 수 없으리라고 예단하고는 하지만, 영화나 미디어아트를 비롯해 음악의 경우에도 알파고와 같은 존재는 오래전부터 이미 익숙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종종 의식되지 않는 듯하지만, 음악만큼 첨단 기술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거리낌 없이 수용해 온 예술분야도 없을 것이다. CD에서 MP3, 그리고 온라인 스트리밍에 이르기까지 음악 매체의 디지털화가 오래전에 완결됐다는 사실은 둘째로 하더라도 오늘날 작곡이나 편곡, 연주와 녹음에 이르기까지 직업적 음악 생산의 전 과정에서 인공지능으로서의 컴퓨터가 개입하지 않는 경우란 사실상 없다. 인간을 대체한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할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만, 컴퓨터 가상 악기의 라이브 무대 투입으로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대거 해고되는 사태 때문에 브로드웨이 뮤지컬계에서 한창 논란이 벌어졌던 게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다.

이러한 인공지능 음악가들에 맞서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더 우월한 천재성과 연주력을 갖춘 인간을 내세워 이에는 이, 새로운 기술적 ‘능력’에 맞서는 인간의 한 단계 높은 초인적 ‘능력’을 과시하는 전략이다. 콩쿠르 등의 제도를 통해 초절기교로 무장한 연주자들을 키운 지난 세기의 전략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음악 정신과 예술 정신을 불필요한 긴장 속에 빠져들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 이세돌도 알파고에 진 마당에 좀 더 다른 전략을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 아닐까?

이를테면, 인간이 구글번역기와 번역 능력을 경쟁하려 들기보다는 녀석의 실용적 기능을 빌려 한껏 용이해진 국제적 소통의 폭을 넓히는 대신 한동안 잃어버렸던 언어의 유희를 되찾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노래를 ‘영언(永言)’, 길게 늘인 말이라고 했다. 구글번역기 덕분에 우리도 다시 길게 말을 늘여 일상을 노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면 섣부른 망상일까? 만일 인공지능이 인간의 예술을 흉내낼 수 없다는 말이 옳다면, 그것은 예술적 인간이 가진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 반대의 무엇 때문일 것이다. 미학자 크리스토프 멘케가 역설적으로 말하듯 예술적 주체가 할 수 있는 것은 ‘할 수 있음’이 아니다. 그는 기능 없음, 곧 ‘할 수 없음’을 할 수 있다.


최유준 | 전남대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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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홍대 앞에는 카페 붐이 불었다. 그 전까지 클럽이 주도하던 이 동네에 카페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건 이 ‘밤의 거리’의 낮이 살아난다는 걸 의미했다. 상수역 인근의 비하인드, 홍대와 신촌 중간쯤의 이리카페가 양대 축이었다. 이리카페의 운영진은 음악인과 미술가였다. 둘 다 시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주변의 예술가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하루종일 글을 쓰는 사람도 있었고, 기타 연습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많은 문화적 미팅과 프로젝트가 이리카페에서 열렸다. 자연스럽게 공연과 전시가 이뤄졌다. 카페가 단순히 차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는 공간의 개념에서 라이브 클럽과 갤러리, 소극장의 기능까지 겸하게 된 건 이리카페의 역할이 컸다.

황량했던 이 거리가 이리카페로 인해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됐다. 주변 상권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신축 건물의 지하임에도 사람들이 쏠쏠하게 드는 이 공간이, 건물주는 꽤 마음에 들었나 보다. 2009년 여름, 조카가 카페를 하고 싶다며 이리카페를 내보냈다. 짐도 제대로 못 건지고 이리카페는 상수동으로 옮겼다. 아직 상수동 상권이 발달하기 전이었다. 아니,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은 수십 곳의 카페와 술집이 있는 이 골목의 1층은 신문배달지국, 양장점, 피아노학원 등이 차지하고 있었다. 불과 몇 십 걸음만 걸으면 불야성의 땅이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없는 한적한 골목으로 이리카페가 옮겼다. 단골들도 함께 옮겼다. 시낭송회가 열리고 가극과 실내악 공연도 열렸고 전시와 상영회도 열렸다. 서교동 시절과 마찬가지로 상수동 시절도 이리카페로 인하여 멈춰진 골목에 시간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 골목도 다른 범홍대권과 마찬가지로 포화상태가 됐다.

LK:북 카페 '이리카페'의 직원들이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제작한 그림_경향DB

문화를 찾아 사람들이 다니고, 소문을 듣고 인파가 몰리는 곳엔 어디나 마찬가지로 이 골목에도 자본은 이빨을 드러낸다. 홍대 카페 역사의 중요한 한 축이자, 카페의 살롱화에 핵심 역할을 해온 이리카페 역시 그 공격에 예외는 아니다. 또 한 번, 이리카페는 쫓겨날 운명에 처했다. 보증금 2000만원에 월 235만원이었던 임대료가 385만원으로 훌쩍 올랐다. 운영진이 인건비를 못 가져간 지 몇 달째다. 그래도 버텼다. 이번에는 건물주가 바뀌었다. 그렇게 되면, 아예 쫓겨나거나 다시 한번 임대료 급등의 위협에 처하게 된다. 만에 하나 새로운 건물주가 선의를 갖고 있더라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수십억원을 주고 산 건물이다. 금융 이자도 만만치 않다. 이 상황에서 돈 대신 문화를 택할 이가 얼마나 있을까.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게 합법이라는 거다. 옛날 지주와 소작농들의 착취와 분쟁 대부분이 제도 안에서 일어난 일이듯 오늘날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착취와 분쟁도 마찬가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 쓰고 자본의 폭력이라 읽을 수 있는 이 현상에 대한 일반의 시선이다. 이태원 테이크아웃 드로잉 사태가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을 무렵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건물주인 싸이의 편을 드는 사람이 많았다. 세상에, 한국에 건물주가 이렇게 많았나 싶었다. 합법인데 뭐가 문제냐는 논리였다. 을의 횡포 운운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른바 진보적 커뮤티니에서조차 그랬다. 정치적 감각과 경제적 감각의 괴리를 실감했다. 이런 무의식적 동조 속에서 오늘도 거리를 만든 문화적 공간은 쫓겨날 위험에 처해 있다. 심지어 아직 아무 상권도 없는 한남동 우사단길에서 열리는 계단장은 무기한 휴장을 결정했다. 계단장으로 인해 조만간 이 동네가 뜰 것이라 기대하고 벌써부터 부동산 장난을 치는 투기세력 때문이다.

홍대앞이 지금 같은 막장으로 치닫기 전, 그러니까 이리카페가 개업하던 2004년 일이 떠오른다. 집을 구하러 부동산중개소에 들어갔다가 내가 홍대앞에 대해서 쓴 기사가 붙어 있는 것을 봤다. 그때 깨달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로 만들어진 거리를 부동산이란 이름의, 탐욕스러운 자본이 파괴할 거라는 걸.


김작가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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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를 구분하는 가장 우선적인 것은 몸이 다르다는 것이다. 유사하게 생겼고 동일한 사회 안에서 오랜 시간을 같이 살아왔지만 분명 나와 타자는 여러 모로 다르다. 생각하는 바와 감각이 다르며 사물을 보는 눈도 조금씩 다르다. 그것은 한 개인이 지닌 취향, 가치관, 세계관에 따른 것이다.

우리 몸 바깥의 모든 것을 흔히 세계라고 부른다. 우리 몸 전체가 세계를 만나고 파악하고 깨닫는다고 말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몸의 반응이다. 몸이 세계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온갖 것들을 다 하기에 그렇다. 따라서 어떤 몸으로, 어떻게 세계를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보이는/보이지 않는, 나를 둘러싼 이 세계를 어떻게 ‘제대로’ 볼 것인가. 그것을 정확하게 읽고 느끼고 파악하는 몸은 또 어떻게 만드는가, 그것은 가능한가? 바로 그러한 몸을 만드는 것을 흔히 공부라고 한다.

공부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가 이해하는 공부란 대부분 지식, 책에 들어 있는 정보 등을 의미한다.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온갖 종류의 지식들은 하늘의 별처럼 많다. 그런데 진정한 공부는 단지 특정한 책에 갇혀 있는 학문의 체계만은 아닐 것이다. 세계를 제대로 보고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몸의 상태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공부일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 엇비슷한 몸을 지니고 있다. 얼굴과 몸통, 팔다리가 있고 약간씩 다르게 생긴 눈, 코, 입 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외형적인 몸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몸 안에서 자기 몸으로 받아들인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음미하며 그 가치를 판단하고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그 누구보다도 세계를 깊게 받아들이고 정확하게 바라보고 예민하고 섬세하게 반응하면서 읽어내는 힘이 있다면 그는 놀라운 이일 것이다. 지혜로우며 상상력과 창의성이 풍부한 인간은 그런 사람을 말한다. 그는 누구도 보지 못한 것을 보는 사람이고 당연하게 보는 것을 비껴난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진정으로 차이를 발생시키는 새로운 눈으로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며 그렇게 다시 본 세계를 우리에게 되돌려주는 사람이다. 그로 인해 우리 또한 사물과 세계를 새롭게 보는 법을 배운다.

루벤스 소묘_경향DB


미술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과 사물을 다시 보게 해준다.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이나 선입견에 사로잡혀서 보는 것이 아니라 처음 보는 것처럼 보는 일이고 자기만의 눈과 마음으로 새롭게 바라보는 일이다. 그로 인해 세계는 다시 창조되고 열린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고 일러주는 것이 바로 미술이다. 이처럼 좋은 미술작품은 늘 보던 것이지만 그것을 낯설고 희한하게 보여준다. 그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동시에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은밀히 알려준다. 그로 인해 우리는 사물과 세계를 새삼 다시 만나고 깨닫는다. 그것은 삶을 무척이나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알고 있고 보았던 것만이 아니라 남이 보고 깨달은 것까지 내 것으로 하는 일이니 어찌 풍요롭지 않을까?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예술을 향유하는 이유는 나를 넘어서고자 하는 일이다. 나 이외의 것이 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늘 나에 사로잡혀 있고 그 나를 만든 그간의 지식과 경험, 가치에 묶여 있다. 그것으로부터 어떻게 달아날 수 있을까?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나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무척 편협하게 되며 오로지 나만을 중심에 놓고 살아가게 된다. 그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삶이 아니며 다른 이의 생각과 감정을 억압하는 삶이기도 하다.

나와 다른 이의 생각과 감정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삶, 사회란 무척이나 공포스럽고 폭력적인 것이다. 우리가 수많은 사람들,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예술은 나와 다른 이의 감각, 세계관을 이해하고 공유하게 해준다. 이는 기존의 프레임/틀을 벗어나는 일이며 세계를 인식하고 재현하는 기존의 상투적인 방식을 전복하고, 상투적인 표현방법을 전복하고, 상투적인 사유를 전복하고, 세계를 전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영택 |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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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이 지닌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강력한 모티프가 소설 전체를 지배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보통의 경우 장편소설은 서너 개의 모티프가 중첩되고 확산되면서 서사가 완성되기 마련임을 고려하면 그의 방식이 남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눈이 멀게 된다는 <눈먼 자들의 도시>, 이베리아 반도가 분리되어 유럽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돌뗏목>, 어느 날 갑자기 아무도 죽지 않게 된다는 <죽음의 중지> 등등 그의 소설에서는 비현실적이고 마술적이기까지 한 상황이 압도적이며 인물들은 그 안에서 힘겹게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해 나간다. 그와 비슷하게 <눈 뜬 자들의 도시>에도 낯설고 기이한 풍경이 묘사되어 있다. 유권자의 83%가 백지 투표를 던져 선거가 무산되었다. 날씨가 좋지 않아 그런 일이 벌어진 거라고 생각한 정치인들은 다시 선거를 치르기로 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 뜻밖의 사태 앞에서 모든 정치인들이 당황한다. 시민들은 폭력혁명에 나서지도 않았고 국가 전복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백지투표를 했을 뿐이다. 그러나 마치 박근혜 대통령이 시위대를 가리켜 테러범 운운했던 것과 조금도 다름없이 그들 역시 시민들을 ‘반역자’라 규정지었다.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했다면서. 도시에 비밀경찰들이 투입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시민들이 반역자임을 증명하려 애쓰지만 그럴수록 백지투표의 진실은 의미심장해진다.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가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과 관련한 마지막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앞서 더민주당은 필리버스터 중단을 결정했다._강윤중 기자

이 소설에서 눈부신 장면을 하나 꼽으라면 침묵하는 시민들이 두려워 밤을 틈타 도시에서 도망치는 자들을 묘사하는 부분일 듯하다. 시민들은 도망치는 자들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아니 외려 무사히 이 도시를 빠져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라기도 한다. 시민들이 바랐던 건 기득권 세력의 추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도시에서 추방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시민들이 바란 건 정치권력의 근본적인 변화였지만 그런 변화를 가져올 만한 별다른 무기를 지니지는 못했다. 그래서 시민들은 백지투표라는 가장 부드러운 방식의 저항을 선택했다.

나는 십여년 전의 사건을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2004년 3월 당시 한나라당이 주도하여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통과시켰던 일을 말이다. 탄핵소추안에 반대하던 국회의원들을 강제로 끌어내고 일사천리로 투표를 진행하여 가결시키던 그들을 보면서 전율을 느꼈는데, 물론 감격에 겨워 몸이 떨렸던 건 아니고 몹시 무섭고 두려워서였다. 내가 무섭고 두려웠던 건 파렴치하고 외설적인 기득권 세력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저처럼 필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다시 말해 한 시대를 수탈하고 민중을 짓밟고 인간의 모든 희망을 압살하는 자들이 얼마나 주도면밀하고 강고한지를 보게 되어서였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비밀공작까지 포함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사람을 지배하려는 저들에 비하자면, 그저 백지투표로 저항한 <눈 뜬 자들의 도시>의 시민들이야말로 순진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부드럽고 미약해 보이는 저항이 견고한 폭력의 세계에 심각한 균열을 일으키고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젖혀 주듯이 야당이 선택한 필리버스터는 비록 소극적이고 결과가 불투명한 저항이지만 그 어떤 저항보다 강력하며 설령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한다 해도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백지투표에 비견할 만하다. 필리버스터의 역사적 의의는 세월이 흐른 뒤에야 좀 더 분명해지겠지만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이라고 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호통만은 변함없는 진실일 듯하다. 지금 우리는 유례없는 사태를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현실정치가 희망을 줄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손홍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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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면서 닮아간다고 했던가. 보수정권 집권 이후 남북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한국이 점점 북한을 닮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북한을 한국과 동일 수준에서 비교하거나 심지어 ‘물타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북한 체제의 비민주성과 북한 주민의 낮은 인권 수준을 한국의 여러 현실에 대한 비판과 성찰의 바로미터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종북’ 역사교과서를 척결하겠다면서 오히려 북한식 전체주의 국정교과서를 도입하는 식의 모순적 사례들이 한국 사회에서 익숙하게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 또한 그에 뒤지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아이돌 문화는 고도의 자본주의 문화가 맹목적으로 효율성을 추구할 때 어떻게 북한식 전체주의 문화와 닮아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한국 아이돌 팝의 생산 시스템은 사회주의적 집단창작 시스템과 흡사한 형태로 가동된다. 여기에 개인의 자율성이 개입할 여지란 거의 없다.

자본주의 대중문화가 으레 그런 것 아니냐는 점잖은 반론은 한국 아이돌 산업 구조의 특수성을 간과하는 데서 비롯된다. 한국의 아이돌 산업은 길게는 10년에 이르는 장기계약과 이성교제와 같은 개인 사생활을 금지하는 등 인권침해 요소가 다분히 전제된 불공정 전속계약 시스템에 의지해 발전해 왔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MBC ‘PD수첩’과 같은 비판 언론에 의해 ‘노예계약’으로 고발됐던 이러한 계약 관행은, 헨리 젠킨스가 말한 ‘컨버전스 문화’로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K팝’과 ‘한류’의 글로벌 경쟁력을 만드는 데 기여함으로써 서서히 ‘선진적’ 계약 시스템으로 인식 전환하는 데에 극적으로 성공했다. 소속사에 전권이 부여되는 한국식 계약 시스템이 아니라면, 예컨대 ‘걸스데이’의 혜리가 걸그룹 공연 활동과 함께 TV 예능 출연, 드라마 연기 활동까지 효율적으로 병행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대한 대중 앞에 노출될 기회를 갖고 싶은 아이돌 스타 지망생들은 소속사 대표의 손에 기꺼이 제 몸의 사용권을 내맡기는 것이다.

Mnet 프로듀스101’ 제작발표회_경향DB

이로써 한국의 아이돌 산업이 선진적이라 자부하는 스타 육성시스템은 역설적으로 관료화된 사회주의 예술교육 시스템과 닮아 간다. 중소기획사의 열악한 환경에서 장기 합숙생활을 불사하며 평균 4~5년 이상을 버티곤 하는 이른바 ‘연습생’들의 생활방식은 북한식 사회주의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공’을 위해, ‘꿈’을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라는 정언명령은 그들에게 맹목의 이데올로기가 되어가며 그 명령의 주체는 각자의 내면에 있기보다 소속사 대표로 인격화되고 권위주의적으로 우상화된다. 언젠가 SNS에 공개돼 화제가 된 유명 기획사 대표의 ‘지시사항’ 문건에서 연습생들에게 요구된 제일 명령은 “소속 가수들 및 직원 분들을 보면 90도로 큰소리로 인사하도록 해라”는 것이었다.

아이돌 산업에 관한 한 한국의 기업과 방송은 이미 전체주의적으로 통합됐다. 유력 연예기획사 대표들은 공중파 방송에서 시즌별로 수개월 동안 진행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자회사 홍보와 사실상의 신입사원 공개채용으로 사유화한다. 엠넷에서 현재 방영되고 있는 <프로듀스101>이라는 프로그램은 그 결정판이라고 할 만하다. 시청자들은 50여개의 기획사들이 위계적 구조 속에서 연합해 벌이는 공개채용 과정(사실상 인턴사원 해고 과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악의적 편집에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는 등의 독소 조항이 담긴 방송사와의 ‘노예계약서’가 공개돼 파문이 일었지만 이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프로그램은 여전히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101명의 ‘연습생’들은 매주 탈락과 좌절의 위협 속에서 출연료 한 푼 받지 않는 사회주의적 노동을 감수하고 있다.

평범한 10대들 다수가 자신의 일상적 태도와 정서적 모델을 아이돌 스타로부터 구하는 이 아이돌 공화국에서 그것은 북한식 국정교과서 도입만큼이나 무서운 일이 아닐까? 끝없이 지연되는 ‘성공’의 꿈에 가둬진 잠재적 아이돌 지망생들의 인권침해를 일상화하고 있는 저 거대한 권위주의적 구조를 용인하고 내면화하며, 심지어 즐기기까지 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말이다.

최유준 | 전남대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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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 신문사가 주관한 신춘문예 시상식에 참석했다. 미술평론 분야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경쟁을 뚫고 당선된 수상자들이 기뻐하고 들떠있었다. 앞으로 글을 써서 살겠다는 이들이다. 그 길이 과연 어떤 길일까? 아득하고 난감하다. 그래도 지금 세상에 책상에 고독하게 앉아서 어지러이 떠도는 상념을 글로 안착시키면서, 애써 문자 꼴을 더듬어가며 자신의 생각을, 음성을 전하려는 이들이 기특하기만 했다. 밥벌이가 되지 못하는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시나 소설 분야는 수백편 넘게 응모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미술평론은 기껏해야 스무편을 넘지 못했다. 미술인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나라에서 미술평론을 꿈꾸는 이들은 20명이 안된다! 하긴 오늘날 누가 미술평론을 하려고 할까?

미술평론가가 활동하려면 우선 매체가 있어야 하고 그 매체에서 글을 청탁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글이 미술계에 나름 영향력이 있거나 최소한의 울림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미술계는 그 모든 것이 열악하기만 하다. 주요 일간지의 미술란은 미술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과 분석, 비평은 부재하고 그저 유명 화랑이나 미술관의 전시일정을 소개하는 정도에서 머문다. 국내 중요 상업화랑과 국립, 시립미술관 정도의 전시만이 거론될 뿐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기사들은 현재 어떤 전시가 중요하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로 나가기 어렵다. 그저 소식이나 동정을 알리는 게시판 수준이다.

신문에 실린 미술기사가 대중들에게 작품을 보는 안목이나 최근 미술계의 흐름 등을 이해시키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당연히 신문매체에 미술평론가의 글은 거의 실리지 않는다. 텔레비전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텔레비전에서 미술계를 심층적으로 다루거나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진단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KBS에서 오래전 <명작스캔들>이란 꽤나 유익한 프로그램을 진행했지만 시청률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EBS 라디오의 <한영애의 문화 한 페이지> 역시 이명박 정권 때 영어교육방송으로 교체됐다. 방송에서 작가나 전시를 다룬다 해도 그 작품이 무엇인지, 미술사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등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저 피상적인 상찬이나 작가의 과도한 자기주장, 자랑을 그대로 옮기는 수준이다.

미술평론가 윤범모 경원대교수와 경원대(가천대) 출신 작가들_경향DB

특히 케이블TV A&C의 한국작가 작업실 탐방이 그 대표적 예다. 작가의 작업을 모르니 제대로 질문할 수가 없어서 그저 감탄을 쏟아내고, 작가는 그런 진행자를 향해 자기 자랑만 잔뜩 늘어놓는다. 그런 방송은 미술에 대해 거의 아무런 말을 전해주지 않는다. 하나마나한 얘기들뿐이다. 전문적인 미술매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술 전문잡지들이 몇 개 있다. 그러나 한 군데를 빼고는 나머지 잡지사는 필자들에게 거의 원고료를 주지 않는다. 못한다.

열악한 잡지사는 기자들이 거의 모든 기사, 리뷰를 쓴다. 평론가에게 청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만큼 전문성이 떨어지고 읽을 만한 내용이 드물다는 얘기다. 잡지사 자체가 운영이 어려우니 원고지 장당 7000원 정도의 원고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이 원고료는 필자가 처음 원고를 쓰기 시작한 1990년도와 동일하다. 보통 작가론은 20장 정도 쓰는데 세금을 떼고 받는 돈이 12만원 정도 된다. 리뷰는 6장이니까 4만원 정도다. 결코 생활이 될 수 없다. 그나마 원고료를 주는 잡지사는 좋은 잡지사다. 원고료를 주지 못하는 곳은 아예 작가에게 부담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작가의 경우는 자신의 글이 잡지에 실리고 홍보가 된다고 여기니까 자기 돈을 내서라도 싣고 싶어 한다. 작가에게 부스비를 부담시키고 아트페어에 나가는 화랑이나 똑같은 경우다.

미술평론가로 등단해도 글을 쓸 곳이 없고 글을 써서 생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평론가의 전문성에 대한 대우도, 인식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미술평론에 누가 귀 기울이나? 미술계는 이제 자본이 움직이고 화상, 옥션 등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작가들 또한 평론 따위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들에게 절대적인 것은 시장이 되었다. 그 외에 나머지는 그저 장식에 불과하고 요식행위에 머무는 것이다. 그러니 미술평론가를 누가 꿈꾸기나 하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 스무편이 안 되는 응모편수가 결코 적은 게 아닌 것도 같다.


박영택 | 경기대 교수,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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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관심은 많지만 입장 표명은 꺼리는 편이다. 입장을 내세울 필요도 없을 만큼 한심하기 때문이다. 분노에 쓰이는 에너지를 축적해둬 일상을 버텨나가고 싶다. 영화 <내부자들>의 대사를 빌려 말하자면 정의는커녕 희망조차 없어져버린 ‘헬조선’ 아닌가. 그러니 사람들이 미국 민주당 대선 레이스에 관심을 가지는 건 일종의 판타지 시청과도 같다.

2007년, 2012년 대선을 거치며 공허와 좌절을 맛봤던 우리니까. 그러니 오바마가 외친 ‘변화’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낳는 과정을 보며 대리만족하는 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구체적인 정책을 떠나 그가 연설을 통해 제시하던 명징한 메시지와 세련된 화술을 부러워하는 것 역시 당연했다. 그의 집권 8년 동안 한국은 뭐든지 해봐서 아는 대통령과 아무것도 안 해봐서 뭘 할지 모르는 대통령이 다스리고 있지 않은가.

거꾸로 흐르는 한반도의 시간이 과거의 어느 시점까지 도달할지 예측조차 불가능한 지금, 힐러리 대세론을 무색하게 하고 급부상 중인 버니 샌더스에게 한국인들이 느끼는 건 또 하나의 대리만족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본산 미국에서 사회주의자를 자처하고 불공평의 해소를 강력한 메시지로 전달하는 그다. 선거용 캠페인이 아닌 50년의 정치 인생을 통해 일관되게 하나의 메시지를 주장해온 진정성이 최대의 무기다.

오바마의 등장으로 다시 존경받을 만한 세계 최강국의 이미지를 회복한 미국에 그보다 더 개혁적이고 급진적인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미국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후보들의 세부 정책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지지를 결정하기보다는 핵심 아젠다와 이를 메시지화하는 방식, 그리고 이미지가 선택의 동인이다. 후보를 지지하고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게 일종의 용기처럼 여겨지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그런 행동이 극히 일상적이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_AP연합뉴스

이번 민주당 대선 후보 레이스는 특히 흥미롭다. 힐러리와 샌더스의 지지자들이 극명히 갈리기 때문이다. 힐러리 지지자들은 ‘팝스타’들이 많다. 음악을 통해 막대한 부귀영화를 일궈낸, 즉 보다 상업적인 스타들이라는 얘기다. 카니예 웨스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비욘세, 머라이어 캐리, 존 본 조비, 엘튼 존, 퀸시 존스, 레이디 가가, 그리고 민주당 지지 음악인의 대모격인 바버라 스트라이샌드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샌더스 지지자들은 60~70년대 히피-프로테스탄트 시대의 음악인들과 90년대 이후의 인디 성향 음악인들이 많다. 아트 가펑클이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America’를 샌더스의 캠페인송으로 사용하게 해준 것을 비롯하여 닐 영, 잭슨 브라운, 핑크 플로이드 출신의 로저 워터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톰 모렐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슬립낫 등이다. 그 외에도 최근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 인기를 끄는 젊은 음악인들은 대부분 샌더스를 지지한다고 봐도 좋다.

나에게도 미국 대선은 일종의 정치 판타지다. 하지만 두 후보를 지지하는 음악계의 형세에서 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읽는다. 후보들이 가진 ‘가치의 지도’가 명확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선구자들, 비주류에 머물지언정 자신의 음악적 지향을 버리지 않는 도전자들, 음악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선동가들이 있다. 그들에게 메시지는 음악 그 자체이며 삶이 곧 음악이다. 그런 이들이 하나같이 샌더스를 지지하고 있다. 예술이 예술 그 자체로 정치와 만나고, 정치는 이 만남을 통해 정체성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럴 때마다 느낀다. 미국의 힘을. 그리고 한국의 현실을. 누굴 탓하지는 말자. 한국의 영향력 있는 문화예술인들이 정치적 소신을 드러내기가 힘든 이유는 그저 탄압에 대한 두려움뿐이 아니니까.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이분법적 배제, 문화예술인들을 하등하게 보는 무의식 같은 건 어떤 진영에만 국한된 게 아니니까.


김작가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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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하나. 벌써 이십 년 가까이 흘렀지만 생생하게 기억한다. 1996년 세밑에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이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노동자뿐만 아니라 민주세력 대부분이 거세게 저항했고 해가 바뀌어서도 이 저항은 이어졌다. 이십대 초반이었던 나는 서울 거리를 행진하던 시위대를 자주 볼 수 있었는데 몸이 부르르 떨리던 날카로운 추위 탓에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가 있다. 그 감정을 설명하기란 무척 곤란하지만 아마 내가 종교를 지녔다면 고통받는 선지자를 지켜볼 때의 느낌이라고 표현했을 법한 감정이었다.

추억 둘. 그로부터 얼마 안 되어 IMF 사태가 터졌다. 군 입대를 앞두었던 나는 친한 후배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스키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여기저기서 해고당한 사람들, 파산한 사람들이 자살하던 시절인데도 흥청거리는 분위기가 낯설었다. 스키장 건물 내부에는 IMF를 살짝 비튼 I’M FINE이라는 표어가 붙어 있었다. 어려운 시기이지만 희망을 잃지 말자는 식의 제안으로 이해해주기에는 너무나 외설적인 표어였다.

세월이 흐른 뒤 나는 이 두 가지 추억과 관련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로 신한국당이 민중의 거센 저항을 예상했음에도 노동법 날치기를 강행했던 이유는 그만큼 절박해서였다는 점이다. 당시 OECD 가입의 사후조건이 정리해고 등 소위 노동시장 유연화 실현이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우리 경제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완벽히 편입하게 되면 받게 될 충격을 알고 있었다는 거다. 거기에는 IMF의 관리를 받게 될 거라는 시나리오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사회, 경제에 가해질 충격을 극복할 수단으로 노동자들의 희생을 선택했다. 둘째로 그 시절에 정말 ‘나는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었던 자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점이다. 재벌들이 그랬다는 건 상식에 속하지만 이 외에도 개인의 파산을 기회 삼아 부동산 투기 세력과 금융자본들이 엄청나게 재산을 불렸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바로 그들 때문에 보통 사람들까지 재테크에 몰두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노동 관계법 개악에 항의 시위하는 전국 민주 노동조합 총연맹 조합원들(1996년)_경향DB


지금까지 언급한 건 나의 추억들이다. 밀란 쿤데라는 추억이란 망각의 부정이 아니라 망각의 한 형태라고 말한 적이 있다. 추억에 대한 쿤데라식 표현이 쓸쓸한 이유는 우리가 경험한 모든 것들이 필연적으로 망각에 이른다는 생각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아무리 끔찍했던 사건들일지라도 심지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재난들마저 추억이 되고 결국 망각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표현을 이해하는 다른 방식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과거 혹은 역사가 추억이 될 수 있다는 관념을 포기하면 된다. 다시 말해 망각이 예정된 과거의 일들을 현재진행형인 삶의 차원으로 옮겨놓을 수만 있다면 무언가를 추억하는 대신 무언가를 실현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밀란 쿤데라 역시 이런 뉘앙스였으리라. 추억하려 하지 말 것. 기억하려 애쓰지 말 것. 대신 지금 이 순간 행동할 것.

박근혜 정권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특히 최근의 연속적인 사건들인 역사교과서 국정화, 위안부협상, 양대지침, 사드배치 등을 징후로 받아들이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할 수 있다. 어떤 저항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지 않으면 안 되는 그들의 절박함에서 우리는 조만간 새로운 재난이 엄습하리라고 예상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앞으로 다가올 재난을 효과적으로 피하려는 목적으로 또다시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을 희생양으로 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나는 외려 민주세력을 향해 말하고 싶다. 저들이 재난을 대비해 노동자, 농민 등을 희생시킬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는 이 시기에 당신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다가올 재난에서는 재벌과 부도덕한 정권을 희생시켜 민중을 구할 방도를 고심하고 있으리라 믿어도 되겠는지를.


손홍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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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이란 용어가 널리 쓰이는 데에서 볼 수 있듯이 사적인 감정이 교환가치를 갖는 시대다. 사람들은 웃음과 친절에는 헤퍼지는 반면, 부끄러움의 감정과 연관된 사과 행위에는 점점 더 인색해진다. 사과 행위는 종종 물질적 보상에 대한 책임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동차사고가 나면 일단 상대에게 목소리부터 높여야 한다는 게 이 사회의 격률이 된 지 오래다. 요즘에는 그조차도 감정 낭비일 뿐, 차분하게 보험사에 전화하는 것이 세련된 해법이 되었다. 사과가 필요하다면 모든 문제가 정리된 후에 보험사에서 대신 해주는 것이다. 물론 그 사과의 형식은 보상금 지불이다.

사람들은 공적으로 이루어지는 사과에 피상적으로는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서비스센터 감정노동자들의 의례적 사과가 그렇듯, 그것은 감성적 주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실질적 사과 행위가 아니다. 수년 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나섰던 어느 유력 후보는 막바지 선거유세장에서 비장한 사과의 말을 공개적으로 남겼다. ‘교육감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친딸의 SNS 폭로로 지지율이 폭락한 데 따른 것이었다. 그가 한 손을 높이 치켜들면서 비명을 지르듯 “못난 애비를 둔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을 때, 그 과장된 제스처와 목소리로 표현된 작위적 메시지는 대중들에게 수많은 패러디 작품들을 만들게 하는 영감을 주었다. 그 가운데에는 그의 음성이 절묘하게 편집되어 헤비메탈 기타 반주와 결합된 음악작품, 일명 ‘애비메탈’도 있었는데, 사과라는 표피적 행위 속에 감춰진 모종의 분노와 격정을 풍자적으로 드러냈다.

정치적·경제적 이해득실에 따라 공적 무대에서 연출되는 사과라는 게 대개 이런 ‘애비메탈’ 수준을 넘지 못한다. 최근 동아시아 정치계를 뒤흔들기까지 한 대만 출신 K팝 걸그룹 멤버 쯔위의 대만 국기 사건에 대한 소속사 대표 명의의 홈페이지 사과문도 그랬다. 그에 곁들여진, 화장기 없이 수수한 학생 복장으로 묵묵히 반성문을 읽는 쯔위의 사과 동영상도. 소속사 대표는 “못난 애비…” 수준의 사과(“쯔위의 부모님을 대신하여 잘 가르치지 못한 저” 운운)를 중국인들을 향해 국제적으로 행한 셈이다. 그 사과는 ‘중국 활동 잠정 중지’로 인한 기회비용을 보상금 형태로 지불하면서 ‘불가역적’ 해결이기를 요구하는 표정 없는 제스처일 뿐이었다.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_경향DB

쯔위의 사과가 소속사에 의해 강제된, 사실상 하지 말았어야 할 사과라면, 했어야 하는데 끝내 하지 않은 사과도 있다. 지난 연말 정식 사퇴를 선언하고 프랑스로 떠난 정명훈 서울시향 전 감독의 경우다. 마지막 공연에서 관객들에게 눈물의 호소문을 전한 서울시향 단원들을 포함하여 정 전 감독이 박현정 전 대표의 정치적 물타기 전략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이들이 있지만, 정 전 감독 가족에 대한 서울시향의 편법적 특혜 논란으로 그간의 악화된 여론이 최근 그의 부인의 사건개입 정황이 밝혀지면서 임계점에 도달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식의 결말은 정명훈 정도의 거장 음악가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임에 분명하지만, 단원들에게 쓴 공개편지를 통해 그 모든 책임을 타인에게, 나아가 한국사회 전체에 던지고(“문명화된 사회에서 용인되는 수준을 훨씬 넘은 박해” 운운) 홀연히 외국으로 사라져간 그의 뒷모습은 결코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지 못했다.

타자에 대한 배려와 성찰, 그리고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적 소통이 이루어질 때에야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사과 행위는 예술을 닮았다. 정치인은 지지층의 움직임에만, K팝 기획사 대표는 영향력 있는 글로벌 시장의 동향에만, 시립교향악단의 예술감독은 자신을 추종하는 음악인들에게만 시선을 고정한 채 사과 여부를 약삭빠르게 저울질했다.

결국, 그의 가족이 아닌, 중국인들이 아닌, 악단 단원들이 아닌, 그렇지만 그들의 권력과 부, 명예와 결코 무관하지 않은 평범한 시민들은 그들로부터 책임감 있는 해명과 사과를 받지 못했다. 당혹감과 모멸감을 얻었을 뿐. 사과하지 않는 사회, 어느덧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일도 받는 일도 모두에게 낯선 탓인지도 모른다.


최유준 | 전남대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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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션>의 하이라이트는 NASA가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를 구출하기로 결정하는 장면이다. 구조선과의 접선을 위해 기지를 떠나는 그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 데이비드 보위의 ‘Starman’이다. 생존의 고단함으로 가득 차 있던 분위기는 이 노래가 나오는 순간, 거대한 역동으로 가득 찬다.

영화 중간중간마다 흐르는 어떤 디스코 음악들도 결코 이 순간의 힘을 능가하지 못한다. 마크는 그렇게 지구로 떠나는 여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데이비드 보위는 지구를 떠났다. 불과 며칠 전(1월8일) 발매한 새 앨범이자 25번째 앨범인 <Black Star>가 유작이 됐다. 너무 갑작스러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마지막 뮤직 비디오가 된 <Lazarus>에서 침대에 누워 안대를 두른 채 노래하는 모습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을 거라 생각하니 새삼 마음이 아플 뿐이다. 그런 상태에서도 촬영에 임하고 녹음을 마쳤을 거라 생각하니 새삼 대단하기도 하다.

196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한 데이비드 보위가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포크 록 아티스트로 데뷔한 그는 1970년대와 함께 지기 스타더스트라는 페르소나를 내세워 센세이션을 불렀다. 퇴폐적이고 양성적이며 신비한 그의 이미지는 찬반양론을 불러일으켰다. 훗날 펑크 록 아티스트들은 물론 마돈나도 데이비드 보위의 이런 자장 안에 있었다.

그의 세계는 하나의 음악, 하나의 이미지에 머물지 않았다. 록을 기반으로 솔, 디스코, 일렉트로니카 등 그는 언제나 동시대의 흐름을 시도하고 소화하며 자신의 음악으로 만들어왔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는 언제나 자신의 우주를 넓혀 갔다. 약물을 끊고 베를린으로 날아가 70년대 독일의 진보적 음악이었던 크라우트 록을 대중적으로 승화시켜 ‘Heroes’ 같은 명곡을 만들기도 했고 80년대의 화두였던 뉴 웨이브를 받아들여 ‘Let’s Dance’ 같은 인기곡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10년의 침묵을 깨고 내놓았던 2013년작 <The Next Day>는 차트에서의 높은 성적과 비평적 찬사를 모두 거머쥐며 ‘전설의 귀환’이란 문장을 상투적 수식어 이상의 의미로 증명해냈다.


영국 가수 겸 배우 데이비드 보위_AP연합뉴스


이런 행보는 타고난 재능도 있었지만 그의 시선이 늘 지금 이곳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그의 인생은 발굴의 연속이었다. 뉴욕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영국에 소개, 재발굴한 것도 데이비드 보위였다. 나인 인치 네일스를 오프닝 밴드로 투어에 동행시켰고 스티비 레이 본을 자신의 밴드로 기용, 그 재능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아케이드 파이어의 데뷔 앨범이 갓 나왔을 때 그는 아예 CD를 박스째 차에 두고 다니며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다녔다. 이 앨범은 2000년대의 가장 중요한 명작 중 하나가 됐고 아케이드 파이어는 후일 3집으로 그래미까지 거머쥐는 거물로 성장했다. 그 외에도 많은 인디 밴드들과 함께 작업했고 자신의 노래가 후대 음악인들에게 리메이크될 때도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모두가 그런 데이비드 보위를 사랑했다. 옛 영화에 머물지 않고 항상 동시대와 호흡하는 거장은 어느 분야든 많지 않은 법이니까. 젊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데이비드 보위는 언제나 멋졌다. 정말이지, 단 한 순간도 멋지지 않을 때가 없던 남자였다. 절대 은퇴하지 않을 것 같았던 스타 이상의 스타가 자신의 별로 돌아갔다.

지구인들은 그를 그냥 보내지 않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날, 온 세계가 추모했다. 폴 매카트니, 마돈나, 노엘 갤러거 등은 SNS에 생전의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그가 살던 런던 브릭스턴에는 1만여명의 추모객들이 모여 들었다. 그들은 보위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누군가의 선창에 이어 그의 명곡들을 합창했다. 유튜브를 통해 살펴본바, 군중의 합창 소리는 ‘Starman’을 부를 때 가장 높았다. 그들의 목소리는 물론, 내뿜는 이산화탄소에도 온통 보위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있는 듯했다. 그날 밤의 별들이 왠지 달라 보였다.


김작가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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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 미술인들마다 먹고살기 힘들다고, 어렵다고들 말한다. 내가 미술계에서 일하면서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긴 하지만 그 강도는 날이 갈수록 세지고 있다. 한국 미술계에서 ‘미술’에 대한 논의는 거의 실종되고 있다. 작품을 팔아서는 도저히 기본적인 생활이 되지 않기에 많은 작가들이 제작활동을 접고 있거나 마냥 위축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인지 개인전이 대폭 줄었다. 이제 전시라고는 아트페어만이 존재하고 있다. 많은 돈을 들여 개인전을 준비할 수 없다 보니 작품 발표를 못하고, 그러다 보니 그나마 팔릴 수 있는 기회조차 없어지고 있다. 용케 지원금 혜택을 받는 몇몇 작가 내지는 집안 형편이 좋은 작가들, 그러니까 경제력을 갖춘 작가들만이 지속해서 전시를 할 수 있는 구조다. 그래서인지 지금 한국 화단은 경제력 있는 아줌마 작가들만이 생존할 수 있는 지형으로 바뀌고 있다. 거칠게 말해 돈 있는 남편을 둔 작가들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오늘날 한국 화단에서 살아남는 작가들, 작품 발표를 하고 있는 작가들 상당수는 작품이 좋아서 인정받기보다는 자본의 힘에 의존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니 자본도 없고 학연, 인맥도 없는 작가들은 더더욱 어려운 형편으로 내몰리고 있다. 물론 우리 미술계의 여러 조직, 예를 들어 미술관, 레지던시 프로그램, 미술비평 등에서는 나름 의미 있는 작업을 하는 작가들을 발굴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큰 힘이 되고 있지 못하다.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화랑의 책임도 크다. 상업화랑은 좋은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해서 이를 시장에 내놓아야 하는데 현재 한국 화랑 중에서 그런 안목과 지원,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일하는 것을 찾기는 어렵다. 그저 지금 당장 팔리는 작가들, 고객이 원하는 지명도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납품해주는 곳이거나 조악한 인테리어 작품들을 파는 구멍가게 같다는 느낌이다.

신진 작가 전시회_경향DB


지난 한 해 미술시장은 단색화를 그리는 원로들의 작품 거래만이 잠시 반짝했을 뿐 차갑기 그지없었다. 사실 단색화 작업들도 메이저 화랑들이 부추기며 그 화랑들이 관여하는 옥션이 만들어낸 혐의가 짙다. 워낙 이슈가 없고 시장이 불황이다 보니 무엇인가 화제가 필요했고 그것이 단색화 작업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고 그 결과 이우환의 위작도 나돌아 다니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반짝경기가 과연 미술계를 튼실하게 해줄 수 있을까? 이것이 정상적일까?

단색화만이 판매가 되다 보면 다양한 경향의 작업들이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전시 기회를 잡지 못한 작가들은 경비부담이 크다 보니 개인전보다는 차라리 자기 비용을 들여서라도 아트페어에 나가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 아니면 아예 전시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현재 한국 미술계에서 대다수 작가들은 열악한 상황에 몰려 있다. 문제는 이런 구도 속에서 작가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지자체에서 마련한 지원금제도나 미술은행과 같은 지원제도가 그나마 도움을 주지만 이것도 늘 선택받는 작가들이 돌아가며 타고 있는 형편이다. 학벌과 경력이 좋고 현대미술의 현학적인 논리들로 포장된 작품들만이 심사위원들의 눈에 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심사위원의 안목과 평가기준이다. 물론 작가들의 작품 수준 역시 문제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전시장에서는 새로운 작가, 작품이 거의 눈에 띄지 않은 채 온통 저급한 장식으로 치장한 조악한 키치들만이 가득하다. 특히 지난해 대부분의 아트페어에서는 그런 작품들만이 번성했다. 그것은 미술이라기보다는 공예나 디자인에 가까운 것들이다. 아니 인테리어 물건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은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 물론 미술은 장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순한 장식품에 머물지는 않는다. 미술이 단지 장식이라고 말해질 수는 없다. 미술품이란 한 작가가 보고 깨달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물질화시켜놓은 것이다. 미술에 대한 흥미로운 생각을 부려놓은 것이기도 하다.

부디 올 한 해는 미술작품에 대한 그와 같은 이해가 자리 잡아 갔으면 한다. 어렵고 힘든 시기이지만 그래도 좋은 미술작품은 우리에게 사물과 세계를 보는 새로운 시선, 매력적인 감각을 안겨준다. 그로 인해 나와 다른 타자의 삶을 공유하게 하고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작품을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눈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박영택 | 경기대 교수·미술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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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낙관의 상관관계는 생각처럼 간단하지가 않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절대적으로 희망을 고수할 수 있으려면 낙관적이어야 하고 그냥 그런 수준에서가 아니라 필사적으로 낙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낙관할 수만 있다면 희망을 품고 살 수 있다는 식의 말은 희망과 낙관의 상관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지금 ‘절대적으로’와 ‘필사적으로’라는 수식어로 의미를 드러내려 했던 시도마저 단순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진정한 희망이란 이처럼 찡그린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수식어 너머에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새해가 밝아버렸다. 차마 새해가 밝았다고는 쓸 수가 없다. 이런 식으로 지난해가 과거가 되기를 원치 않았으나 새해는 밝아버렸고, 나는 우울하게도 프리모 레비를 떠올린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다음과 같은 문장을 떠올린다. “새벽이 배신자처럼 우리를 덮쳤다. 새로운 태양은 우리를 파멸시키려는 적들과 결탁이라도 한 것 같았다.”(이것이 인간인가) 약력에 따르면 프리모 레비는 토리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한 화학자였다. 무솔리니에 저항해 빨치산 활동을 하던 그는 1943년 체포되어 이듬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평균 생존 기간이 3개월이라던 그곳에서 11개월을 보낸 뒤 연합군에 의해 풀려났다. 그는 수용소의 경험을 소설로 썼고 1987년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것도 특별한 일이지만 그보다 특별한 건 그의 소설들이 온화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온화함은 그가 소설에서 그려낸 낙관적인 인물들에 상당히 의거한다. 구타, 굶주림, 모욕, 죽음의 공포가 일상적임에도 빛을 잃지 않는 낙관적인 인물을 그려낼 수 있다는 건 정말 특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인터뷰를 읽어 보면 당시의 독자들 가운데 소설의 온화함을 ‘불온하지 않음’과 동일시하여 비판했던 이들이 많았던 듯하다.

이런 비판이 부당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낙관적인 인물들이 나치즘에 의해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를 보여준 그의 시도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문학적이고 미학적이기 때문이다. 프리모 레비에 따르면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이 악착같이 살아남으려 애썼던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겪은 일을 이야기해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야기하기 위해 살아남았다는 순진하고도 낙관적인 이 증언이야말로 실제로 나를 전율시킨다. 수용소를 관리하던 이들, 수용소장부터 경비병이나 하급 관리자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수용소에 대해 증언하지 않을 것이며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만이 수용소의 진실을 말해줄 수 있다. 프리모 레비의 통찰은 그 자신에게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기를 삶의 근원적 목표로 삼은 소설가들이 왜,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말해주는 것만 같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나 또한 거대한 수용소에 산다. 내가 사는 수용소에는 눈에 보이는 울타리가 없으나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모욕을 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지만 합법으로 위장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저항조차 쉽지 않다. 수용소의 역사는 내가 아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기술되고 역사를 기술하려는 자들은 이를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야합하고 왜곡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까지 나는 살아 있다. 만약 앞으로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내가 겪은 이 일들을 들려주게 될 것이다. 살아남아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을 지녀야 하고 그런 희망을 품을 수 있으려면 낙관해야 한다. 비관하지 않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되며 절대적이고 필사적으로 낙관해야 한다. 새해가 밝아버렸다. 며칠 전만 해도 올해는 미래였는데 현재가 되어 버렸다. 미래는 불가피하다. 반드시 맞닥뜨리게 된다. 그때 내가 여전히 살아남았는데도 누군가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없다면 얼마나 쓸쓸하랴.

손홍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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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12월 거리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기 어려워진 듯하다. 올해에는 여러 언론 매체에서까지 ‘크리스마스 캐럴의 실종’을 쟁점으로 다루고 있는 걸 보면 막연한 인상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인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지난 9일 문화체육관광부와 음악 저작권 단체들이 크리스마스 캐럴의 저작권이 문제될 것 없으니 마음껏 틀어도 된다는 내용의 홍보자료를 배포했을까. 실제로 저작권 지불에 대한 걱정 때문에 거리의 상인들이 캐럴을 틀지 않는다는 진단이 있었고, 이를 뒷받침할 만한 사실 정황도 있다. 그래도 문화부와 저작권협회가 직접 나서서 해명까지 했으니 이제 거리에서 캐럴이 다시 힘차게 울려 퍼지게 될까?

최근 음악 저작권 분쟁의 전제가 되는 토대적 조건은 만연한 디지털 문화다. 음반이 음악산업의 주도적 매체였던 시대에는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나 상품 매장에서 공공연히 재생되는 음악이 (이른바 ‘길보드’ 불법복제 음악조차도) 음반 판매를 위한 홍보 효과를 발휘했다. 하지만 무형의 소리 그 자체에서 이윤을 얻어내야 하는 디지털음원 시대에 이르러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인터넷 가상공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도적 힘이 미치기 쉬운 현실의 공적 공간에서 음악 저작권 관련 규제는 앞으로도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활 소음에 대한 각종 민사 갈등이 불거지면서 최근 강화되고 있는 ‘소음·진동관리법’ 역시 거리에 무차별 살포되는 음악을 제어하는 요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더 이상 사람들이 거리에서 음악을 듣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거리에서의 음악 청취가 폭넓게 이루어지는 시대이기도 하다. 거리의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스마트폰에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자기만의 ‘음풍경(soundscape)’ 속을 거닌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버튼으로 골라 듣는 음악들, 거의 한 세기 단위로 펼쳐진 디지털 아카이브의 음악목록에서 ‘현재’라는 시간은 종종 상실된다. 동물원의 ‘혜화동’, 이문세의 ‘소녀’와 같은 수십년 전 노래를 신곡처럼 듣는 이들의 평면화된 시간감각과 개인화된 디지털 음풍경 속에서는 ‘지금이 크리스마스와 연말’이라는 사실은 별다른 고려 사항이 못 된다.


'2015 서울 크리스마스 페스티벌'이 열리는 청계천에서 시민들이 다양한 조명들을 감상하고 있다. _경향DB


‘음풍경’ 개념을 제시한 머레이 쉐퍼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회의 일반적인 음환경은 그것을 탄생시키는 사회적 상황의 지표로 읽혀질 수 있으며, 그 사회의 경향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캐럴이 사라진 한국 거리의 음풍경은 어떠한 ‘사회적 상황의 지표’로서 읽을 수 있을까? 자본의 요구는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사람들은 고립된 자기 세계 속에서 주변을 돌아볼 틈이 없는 상황, 크리스마스의 정적은 이런 상황을 의미하지 않을까.

크리스마스에 대한 한국적 심상은 한국전쟁 이후 근대화와 산업화 초기 연말에 특별 보급되던 구호물품, 그리고 교회를 통로로 가난한 이웃들에게 전달되던 선물에서 비롯되었으며, 캐럴은 이러한 국가주의적 근대화와 서구화의 한 가지 배경음악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캐럴이 표상해온 따뜻함의 정서가 상업화와 소비주의(‘크리스마스이브의 낭만’과 같은 방식으로)에 포섭되어오면서 이미 오래전부터 그 의미를 상실했던 만큼 이제는 청산되는 것도 자연스럽거나 어쩌면 바람직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캐럴이 실종된 조용한 크리스마스가 아쉬움을 주는 것은 이 디지털 시대에서 음악을 통한 공동체의 의미가 해체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환기시켜주기 때문이다. 쉐퍼는 청각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접촉하는 하나의 방법”, 즉 잠재적 촉각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특별한 음악을 함께 들을 때 서로 손을 잡거나 포옹하는 듯한 일체감을 느낀다. 그 연원이야 어떻든 캐럴은 그런 일체감을 만들어내던 몇 안 되는 음악들 가운데 하나였던 것 같다. 물론 그것이 꼭 캐럴이어야만 할 이유는 없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에는 이어폰을 벗고 누군가와 함께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나눔’의 의미를 새기면서. 메리 크리스마스!


최유준 | 전남대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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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밑에 이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한 해를 되돌아보게 마련이다.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어두운 대낮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어느 해라고 유난스럽지 않았으랴만 올해 역시 지독한 한 해였다. 지독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하고 절망하지 않은 게 기이할 만큼 절망적인 시간들이었다.

절망이라는 낱말은 환자복과 비슷한 면이 있어서 멀쩡한 사람도 환자복을 입으면 중병을 앓는 것처럼 보이듯이 절망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모든 희망이 사라져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절망이 일상적이 되면 절망을 초래한 상황에 무심해지고 자신이 절망하고 있는지 아닌지조차 구분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흔해 빠진 절망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쉽게 절망하지 말아야 하며 일단 절망하게 되면 그것을 깊이 사랑해야 한다.

나는 이 비루함을 한없이 사랑하여 숭고해지고 장엄해진 사람을 알고 있다. 그이는 바로 오래전 세상을 떠난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내가 아직 초등학생일 때 세상을 떠났다. 상여가 나가던 날 진눈깨비가 흩날렸는데 차갑고 어둡던 그 겨울의 이미지는 오래도록 내 안에서 살아남아 절망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생생하게 되살아나곤 했다. 낡은 책상의 서랍에서 뜻밖에 찾아낸 어린 시절의 보물을 보듯 반쯤은 애틋하고 반쯤은 서러운 마음으로 그날을 비롯해 할머니와 나누었던 추억들을 되새겨보곤 했다.

내 기억 속에서 할머니는 정갈하기 그지없었다. 말수가 적었던 분인지라 사기그릇에 담긴 물처럼 고요한 분이었는데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때로는 야속하다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 시절 할머니 연배의 동네 어른들도 대체로 그러했다. 기쁘다고 너무 큰 소리로 웃으면 들어온 복이 나갈까 두려워 슬쩍 웃고 말았으며 슬프다고 통곡하면 더 큰 화를 불러들일까 두려워 애써 참으며 속울음만 울고 말던 이들이었다. 희망에 열광하지 않고 절망에 좌절하지 않던 사람들이었다. 중용이라 해도 좋을 법한 삶의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정말 그랬을까. 나 역시 나이를 먹어가면서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도 다른 이들처럼 사연 많은 사람이었다. 당신은 모두 아홉 명의 자녀를 출산했으나 그 가운데 겨우 둘만이 살아남았다. 자식 하나를 앞세워도 어미는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느끼게 마련인데 일곱 자녀를 앞세워 보낸 어미의 심정이 어떠할지는 짐작하기조차 쉽지 않다. 더러는 병으로 더러는 사고로 잃었다. 그때마다 당신은 죽어가는 자식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을 것이다.


11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민중대회에 참석했던 농민 백남기씨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있다._경향DB


그러나 살아생전의 할머니 얼굴에서 일곱 자식을 앞세운 어미의 표정이라 할 법한 특별한 고통을 읽어낼 수는 없었다. 고통스러운 삶이었음이 분명한데도 고통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그 고통은 어디로 간 것일까. 치유되어 사라졌던 것일까. 지금에 이르러서야 나는 할머니가 그 고통을 껴안고 살았던 것이리라 짐작한다. 고통은 치유되지 않았고 치유될 수도 없었다.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내칠 수도 없었다. 슬픔에 빠져 있을 수만도 없었다. 그런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고통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었으리라. 고통과 더불어 산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는 나 역시 알 수 없다. 다만 그와 같은 절망적인 현실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리라 짐작할 수밖에.

올해도 저물어간다.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농민은 한 달 남짓 의식불명 상태이건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커녕 진심이 담긴 사과를 표명했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세월호 참사를 목격했던지라 새삼스럽지는 않다. 우리는 절망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공권력에 의해 한 시민이 죽어가는데도 반성하지 않는다면 이런 권력을 대체 무어라고 불러야 할까. 이런 게 바로 학살정권 아니던가. 반성하지 않는 권력이라면 부숴야 함이 옳지 않겠는가.


손홍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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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친구 집에 모여 낮부터 술을 마셨다. 곱창전골을 끓이고 소고기도 좀 구웠다. 모이면 수다가 끊이지 않는 모임이건만 몇 시간 동안 대화가 거의 없었다. 함께 <응답하라 1988>을 몰아서 봤기 때문이다. 평소 TV를 보지 않는 터라 말만 들었지 실제로 시청하는 건 처음이었다.

이 드라마는 1971년생 친구들과 그 부모들의 이야기다. 1980년대와 함께 그들은 10대를 맞이했다. 통행금지가 해제되고 교복 및 두발 자율화가 시행됐다. 컬러TV의 시대가 열렸다. 자유라는 개념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기도 전에 자유와 풍요 속에서 사춘기를 맞이했던 세대다. 그들에게 가장 큰 자유, 즉 드라마에 나오듯 매일 친구 집에서 함께 놀 수 있었던 자유는 어디서 왔을까. 사교육 금지다. 단과 학원을 제외한 일체의 사교육이 허용되지 않았으니 엄청난 잉여 시간이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물론 드라마에도 나오듯 비밀과외가 있었지만 보편적이진 않았다.

공부를 잘한다고, 집이 잘산다고 무조건 과외를 하지는 않았다. 해봐야 일주일에 두 세번, 두시간씩이 고작이었다. 과외를 하든 안 하든 시간이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많으면 놀기 마련이다.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모여 공통의 관심사를 추구한다. 그러면서 자의식을 성장시키고 평생 잊혀지지 않는 추억거리를 채워나간다. TV와 잡지, 라디오가 신문물을 접할 수 있는 통로의 전부였던 그 시절, 취미의 대부분은 독서와 음악감상이었다. 여가 시간은 많았으나 여가를 채울 내용은 아직 발달하지 않았던 때였으니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자신의 방에 전화나 TV가 있는 경우는 희박했지만 웬만하면 엄마를 졸라서 산 워크맨 하나씩은 있었다. 밤마다 이어폰을 끼고 라디오를 듣는 건 그때 누릴 수 있는 온전한 개인만의 시간이었다.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교양 필수였다면 황인용의 <영팝스>, 김광환의 <팝스 다이얼> 등이 전공 필수였다. 전영혁의 <음악세계>는 파고드는 자들을 위한 전공 선택이었다. 동물원의 ‘거리에서’가 별밤을 통해 처음으로 흘러나온 다음 날, 학교에서는 “야 어제 그 노래 들었냐”로 시작되는 얘기가 오가기 마련이었다. 반마다 몇 명씩 있었던 골수 음악 마니아들은 그들과 말을 잘 섞지 않았다. 원래 어설픈 고수들은 초보를 상대하지 않는 법이니까. 대신 쉬는 시간마다 <음악세계>에서 들었던 70년대 록 명반을 화제로 토론을 벌였다. 이 토론의 승자는 역시 음악 마니아를 형 누나로 둔 아이들이었다.


아날로그 감성 ‘워크맨’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방송 장면 캡처._경향DB


라디오에서 쌓인 지식과 호기심을 푸는 곳은 청계천이었다. 청계고가가 서울의 중심부를 가르고 있었던 그 시절, 청계천4가 세운상가와 청계천8가 황학동은 애호가들의 메카나 마찬가지였다. 4가에는 음반 도매상들과 ‘빽판’ 가게들이, 8가에는 ‘원판’ 가게들이 있었다. 국내에서 불법으로 복제된 음반을 빽판이라, 중고 수입 음반을 원판이라 불렀다. 주말이 되면 버스를 타고 청계천4가에서 빽판과 신보를 가득 고른 후 8가까지 걸어갔다. 원판은 비쌌기에 주머니 사정상 함부로 살 수 없었다. 좀 유명하다 싶으면 당시 가격으로 3만~5만원은 기본이었다. 대신 교보문고에서 책을 읽듯 음반을 구경했다. 빽판, 심지어 라이선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선명한 인쇄의 커버를 구경하는 게 곧 음악 공부였다. 음악을 들어볼 수 없으니 처음 보는 음반 안에 어떤 음악이 담겨 있을지 상상하기도 했다. 커버가 맘에 들어 질렀다가 후회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응답하라 1988>에선 아마 청계천 키드들의 주말을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2차 베이비붐 세대들 중에서도 그런 마니아들은 소수였으니. 다만 워낙 사람 수가 많다 보니 소수의 비율로도 충분히 상권 하나를 형성하고 라디오 프로그램 한 두개를 지속시킬 힘이 되었던 것이다. 해가 넘어가기 전, 청계천8가에 오랜만에 가볼 생각이다. 최근 LP붐 때문에 다시 활기를 띠고 있는 ‘원판’가게에 마니아들의 ‘응답하라 1988’이 있을 터이니.


김작가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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