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체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우선 공포를 들 수 있다고 한다. 그 공포는 생존을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에서 나온 것이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에 의하면 인간은 이른바 ‘생존 기계’에 해당한다. 인간이란 이 세상에서 육체적으로 계속해서 존재하려는 욕망, 즉 육체적 생존의 욕망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육체 밖의 공포와 불안을 극복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치열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삶이며 그렇기에 살아있는 존재는 본질적으로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싸우는 역동적 시스템에 해당한다.

한 개인의 육체가 그렇고 그것이 모여 이룬 사회, 국가가 다 그렇다. 그러나 사회나 국가는 한 개인의 삶을 불편하게 하거나 위협하기도 한다. 그러니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사회에서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 생명을 잘 누릴 수 있는 좋은 사회가 과연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따라서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것은 생존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이다. 예술 역시 그러한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란 것이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는 일이라면 예술 또한 그렇다. 그러니 작가란 존재들은 자신의 삶을 규정짓고 관리하고 간섭하는 모든 체제, 정치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한편 이를 작업으로 표현하고 발언하기도 하는 이들이다. 미술이란 것도 자신의 삶에서 유래하는 모든 문제를 시각적으로 해명하는 일이자 이런 식의 삶이 아닌 다른 식의 삶에 대해 꿈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의 상황은 모든 면에서 너무도 ‘문제적’이다. 지난 1980년대 민중미술은 폭력적인 국가 체제에 맞서고자 했다. 반면 오늘날 작가들은 우리 사회가 지닌 후기 자본주의에 따른 다양한 문제와 직면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무엇보다도 ‘자본주의’가 개입되어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경제성장만이 유일한 살길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사회적 합의를 거쳐 개인의 내면에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IMF라는 경제적 상황 앞에서 경제적 논리에 따라서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들과 그들의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재편되었다. 무한경쟁과 자본의 논리만이 삶의 척도가 된 것이다. 그에 따라 극도의 경쟁사회가 낳은 불안이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 한국 미술계는 오로지 미술시장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미술은 오로지 시장과 자본의 논리 속에서만 이해되고 유통된다. 이를 부정하기 어렵다. 대다수 작가들은 시장에서 팔리는, 팔릴 수 있다고 여겨지는 작품을 만드는 데 여념이 없는 장인, 인테리어 수공업자들로 전락되었다. 그래서 극사실적이거나 디자인적인 그림, 정교한 기교와 방법론으로 무장된 작업 등이 살아남는다. 언론과 저널 역시 오로지 미술품 가격과 시장 동향만이 초미의 관심이고 그것이 미술의 전부가 된 지 오래되었다.


1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11회 한국국제아트페어(KIAF2012)를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작품을 살펴보고 있다._경향DB


오늘날 미술계는 볼만한 기획전시가 거의 없고 대개 아트페어와 옥션이 주를 이루고 있다. 작가들은 아트페어와 옥션을 상대로 작품을 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불특정한 다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거나 집에 걸 만한 고만고만한 장식용 그림이 주가 될 수밖에 없다. 좋은 작가와 작품을 규정짓는 의미의 논쟁은 사라지고 시장에서 얼마나 선호되느냐, 작품가격이 얼마나 올랐는가 혹은 누구의 작품이 많이 팔렸는가 하는 소문만이 무성하다. 팔리지 못하는 작가들은 마치 무능력한, 의미 없는 작가처럼 자리매김되고 아트페어에 초대되지 못하는 작가들은 지속적으로 소외되고 전시와 비평은 무의미한 존재로 전락해버린 것이 오늘날 미술계의 풍경이다. 체제와 현실의 삶의 논리가 바뀌지 않으면 예술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운 미술계의 현실 위로 문화융성이니 문화경쟁력이니 창조니 어쩌고 하는 해괴한 수사들이 그저 공허할 뿐이다.


박영택 | 미술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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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소설 <변신>에는 당시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묘사가 있다.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는 외판사원인데 이 소설에서는 그 시절 외판사원의 일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정보들이 있다.

소설에 드문드문 언급되는 단편적인 내용들을 요약해보자면 그레고르 잠자의 자명종 시계는 새벽 4시에 맞춰져 있다. 5시 기차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6시30분을 지나는 중이었고 5시 기차를 놓친 데 대해 사장에게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동안 시간은 계속 흘러 순식간에 6시45분이 되었다. 다음 기차는 7시에 있으니 지금쯤은 일어나야 했으나 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그러는 동안 어느새 7시가 되었다.

그가 일단 출근해야 하는 매장은 7시 전에 개장을 하므로 그가 왜 출근하지 않았는지를 알아보러 매장에서 누군가 찾아올 거라는 생각을 하는 동안 7시10분쯤이 되었고 아니나 다를까 바로 그때 현관문 초인종 소리가 났다. 그는 방문객의 목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알아챘는데 방문객은 바로 지배인이었다. 아침 7시10분에 왜 외판사원이 출근하지 않았는지를 알아보러 지배인이 직접 찾아온 것이다. 드디어 방문이 열리고 기이한 벌레로 변해버린 그가 가족과 지배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지배인에게 다음 8시 기차를 꼭 탈 것이니 자신이 얼마나 충실한 사원인지를 사장에게 변호해달라는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동안 지배인은 이미 몸을 돌려 도망갈 준비를 했고 그가 지배인에게 다가가려 하다 넘어졌을 때 지배인은 모자, 외투, 단장마저 놓아둔 채 계단을 한 번에 훌쩍 뛰어내려 사라져버렸다.

지난 5년 동안 결근은커녕 몸조차 아플 수 없었던 그였다. 물론 그는 아프지 않았던 게 아니라 아플 수가 없었던 것인데 만약 그가 아프다는 이유로 결근이라도 한다면 사장이 의료보험회사 전속의사를 데려와(그 의사는 이 세상에는 건강하지만 일하기 싫어하는 인간들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를 해고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원했거나 원하지 않았거나 그에게 처음으로 무위의 하루가 찾아왔고 그는 처음으로 ‘육신의 편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 하루가 바로 그의 죽음의 시작임을 우리는 모두 안다.


아이슬란드 베스투르포트 극단의 카프카 '변신'_경향DB



<변신>을 읽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겠으나 외판사원의 일상이라는 한 측면에서 보자면 그레고르 잠자가 매번 영위해야 하는 하루가 그리 수월하지 않다는 것만은 알 수 있다. 또한 그의 하루가 낯설지만은 않은 이유는 지금 이 순간에도 도처에서 그레고르 잠자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 4시면 이미 우유배달 신문배달 오토바이가 거리를 질주하고 쓰레기 수거 차량이 경보음을 울리며 느릿느릿 골목을 지난다. 등교하는 학생들과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행렬이 아침 내내 이어지고 새벽부터 오전까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는 샴푸와 화장품 냄새가 고인 채 가시질 않는다. 출근하는 얼굴과 퇴근하는 얼굴이 똑같이 피곤에 절어 있고 내일은 좀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품은 채 더 나아질 것 없는 하루하루를 견디며 산다. 그레고르 잠자가 견뎌야 했던 하루가 지금 이 순간에도 끈질기게 되풀이된다.

소설에 묘사된 외판사원의 일상에 과장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카프카 소설의 현대성이란 인간이 만들어 낸 체제에 인간이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상황의 아이러니임을 인정한다면 설령 과장이 있다 해도 그 의미가 달라지지는 않을 듯하다. 그레고르 잠자가 두어 달 동안 식구들의 짐으로 살다가 결국 죽었을 때 남은 세 식구, 즉 그의 부모와 누이동생이 ‘특히 앞으로는 상당히 희망적’이며 ‘그들의 새로운 꿈과 좋은 계획의 확증’을 스스로 발견해내듯이 우리는 살아간다. 그들 역시 언젠가는 그레고르 잠자가 될 테지만. 미셸 푸코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를 혹사하는 체제를 전복하자.


손홍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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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스타일’의 인기를 정점으로 하는 K팝 한류 붐에 맞춰 한국 대중음악사에 대한 조명이 최근 들어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관련 서적 출간에서 박물관 개관까지 다양한 징후가 있는데, ‘김시스터즈’의 미국 진출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방의 푸른 꿈>이 지난달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 또한 그와 같은 대중적 관심과 추세를 반영한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한국 대중음악은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문화에서 생성되고 발전했다는 업보가 있다. 그리하여 해방 후 오래도록 이 시기의 유행가는 ‘왜색’ 논란으로 얼룩졌고 ‘뽕짝’이라는 경멸조의 별칭으로 불렸다. 대중음악의 초기 역사를 구제하려는 이들은 이러한 경멸의 시선을 거두는 데에 역점을 둔다. 피식민의 정치적 억압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당시의 대중예술가들은 나름의 자율성을 발휘하면서 식민지조선의 민중들과 공감의 공동체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대중음악의 생산자이자 수용자이기도 했던 이른바 ‘모던 걸’과 ‘모던 보이’가 왜색 취향만이 아닌, 제한적이나마 국제적인 감각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도 강조된다.

하지만, 초기 대중음악의 근본적 토대가 식민적이었음을 부정하기란 쉽지 않다. 제국주의 일본은 식민지 조선을 주변부 소비시장으로만 간주했을 뿐 녹음시설이나 프레스 공장 등의 기반시설 투자에는 인색했다. 결국 일본의 패망은 음악산업 자체의 붕괴를 의미했고 해방공간에서 어려움을 겪던 대중음악인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더 큰 곤경에 빠졌다. 전쟁 후 미8군 무대에서의 연주가 한국 대중음악가들의 거의 유일한 안정된 생계수단이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후로 한국 대중음악은 급속하게 미국 취향에 빠져들게 된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김시스터즈_경향DB


영화 <다방의 푸른 꿈>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를 잇는 한국 대중음악의 초기 역사적 산물로서 김시스터즈에 주목한다. 1950년대 말 미국 라스베이거스 쇼무대에 진출하여 ‘에드 설리번 쇼’와 같은 텔레비전 인기 쇼프로그램에 단골 출연하기도 했던 김시스터즈의 화려한 일면을 추적하면서도, 섣불리 그들의 ‘성공’을 확인하거나 기념하려 들지 않는 데에 이 영화의 미덕이 있다. 대신 1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데뷔하여 트럭에 실린 채 미군 천막 무대를 전전하던 전쟁터의 소녀들, 라스베이거스 무대에 진출해서도 음식과 언어 소통 문제로 눈물을 삼키며 고된 연습과 밤샘 공연을 견뎌내야 했던 벼랑 끝 낯선 땅의 소녀들을 담담하게 비춘다.

김시스터즈의 재능과 노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그들의 미국 연예활동은 오리지널 히트곡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동양 소녀’에 대한 미국 관객들의 이국(異國) 취미에 기댄 표피적 성공으로서 지나치게 포장하거나 과장해서도 곤란하다.

식민지 조선의 ‘모던 걸’과 ‘모던 보이’는 세간의 편견과는 달리 진지하고 사려 깊은 계층이었지만 새로운 외래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 속에서 종종 속물주의나 자기폄훼에 빠지곤 했다. 지금도 ‘강남스타일’의 해외반응에 과도한 관심을 기울이거나 김시스터즈의 미국 진출에 과장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 혹시 그러한 취약한 식민적 주체성의 연장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한국의 대중음악이 자신의 역사를 갖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역사의 필요성은 기념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성찰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다방의 푸른 꿈> 개봉을 기념해 김시스터즈의 멤버 가운데 한 명이었던 김민자씨가 고국을 방문했는데, 일흔 넷의 그녀가 홍대앞 어느 지하 음악주점에서 한국의 젊은 여성 그룹들과 함께 무대에 선 공연이 인상 깊었다. “기쁘다 민자 언니 오셨네”라는 발랄한 제목을 단 그날의 공연은 여성 뮤지션으로서의 애환을 공유하는 이들이 반세기의 시간차를 훌쩍 넘어 정서적으로 연대한 일종의 ‘역사적’ 굿판이었다. 그것을 기념도 성찰도 아닌 공감을 통한 제3의 역사 마주하기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자신의 역사를 향해 새로운 세대들이 발휘하는 공감의 힘은 그 자체로 탈식민적이다. 광복 70년의 ‘모던 걸’과 ‘모던 보이’는 이렇듯 포스트모던하게 진화하는 중이다.


최유준 | 전남대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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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 밤늦게 잔 것도 아닌데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SNS 링크를 타고 보기 시작한 웹툰을 그만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해버린 것이다. 마침 그날 최종화가 나왔기에 아쉬움 없이 완주할 수 있었다. 이 웹툰은 <Ho!>, 평범한 남성과 청각장애인의 오랜 인연과 연애를 다룬 작품이다. 일본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았던 실화를 웹툰작가 억수씨가 각색, 웹툰으로 표현했다.

내용을 대충 요약하자면 이렇다. 대학 입학을 앞둔 원이는 아르바이트로 학원 강사를 하게 된다. 1 대 1 지도에 가까운 이 학원에서 원이가 맡게 된 학생은 초등학교 6학년인 호, 어릴 때 청각을 잃었지만 입술 모양을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아이다. 처음부터 자신을 특별하지 않게 대하는 원이에게 호는 마음을 열고 일년 동안 수업을 듣는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호는 학원을 그만두고 원이는 입대한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 둘은 우연히 재회한다. 원이는 회사원이고, 호는 고등학생이다. 실직과 실연, 이어지는 방황의 나날. 모든 과정을 지켜본 호는 어느덧 예비 대학생이 된다. 호는 오랜 마음을 원이에게 고백하고 둘은 연인이 된다. 재취업에 성공한 원이는 호에게 프러포즈를 한다.

평범한 멜로물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 작품은 여러 상황을 통해 음성 언어는 우리 소통 도구의 전부가 아님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마음을 전하는 것임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미숙함은 결코 신체의 발달과 완성 여부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도 보여준다. 자신의 장애를 일찌감치 인정하고 스스로 돌파하기로 진작 마음먹었던 호를, 실직과 실연이라는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있었던 원이는 ‘자신보다 낫다’고 인정한다. 그 감정들이 쌓여 둘을 연인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호와 원이의 첫만남_경향DB


둘의 관계에 감정이입하게 되는 이유는 결국 <Ho!>의 메인 스토리 라인이 원이의 1차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평범하고 때로는 찌질한 한 소년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결국 한 여자를 평생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에 이르기까지, 스스로를 준비해나가는 이야기라는 거다. 이런 장르를 누군가는 ‘남자멜로’라 부른다. <건축학 개론>이 남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이런 서사에는 공통점이 있다. 미숙한 사람이 어른이 되는 과정, 나이는 먹어가는데 그 속도를 미숙함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성장통, 그래서 성장하되 성숙하지 못하는 사람이 겪는 사건과 자각의 순간들에 몰입하게 된다. 그 이정표, 혹은 방아쇠가 오랜 세월의 로맨스 아닌 로맨스일 때는 더욱 그렇다. 로맨스는 인생의 책갈피처럼 불쑥 끼어들고 나타난다.

대부분의 첫사랑은 이루지 못한 사랑이다. 가장 뜨겁고 가장 순수하며 가장 달콤한 상상을 자극하는 첫사랑은 역설적으로 ‘가장’이라는 부사 때문에 마침표를 부르곤 한다. 그 상태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으며, 시간과 함께 마주하는 새로운 현실들은 끊임없이 인생의 다음 단계로 사람을 떠민다. 3년 만에 교체된다는 온몸의 세포들과 함께 ‘지금의 우리’는 ‘그때의 우리’와 다름을 인정하게 된다. 첫사랑이 그렇게 옛사랑이 될 때, 절대 되고 싶지 않았던 시시한 어른이 되었다고 문득 자각할 때 지금보다 순수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분명히 안 좋은 일들도 있었을 텐데, 신기하게도 그때의 기억들은 시간을 먹고 추억으로 발효되어 있다. 과거보다 현재의 상황이 좋지 않다면, 혹은 권태로운 일상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어렴풋하게나마 이해될 때 옛사랑은 떠오른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떨까, 혹은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판타지 속에서 ‘남자멜로’는 그렇게 공감대를 얻는다.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에게 <Ho!>를 추천한다. 작품의 어떤 대목들에서 나는 살짝 눈물을 흘렸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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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락한 집 마당에는 잡풀이 우거지고 부서진 냉장고와 텔레비전이 쌓여 있다. 빈틈을 찾아볼 수 없는 서울과 달리 지방 소도시의 모퉁이에는 한때 삶으로 충만했을 공간이 미처 채워지지 못한 채 폐허로 남은 자리를 흔히 보게 된다. 오래전 한쪽이 무너진 블록담은 양철판으로 막아놓았다. 철사로 대충 엮어 놓은 철판은 잔뜩 녹이 슬어 가장자리의 함석이 회청색으로 남아 있는 곳을 빼고는 모두 핏빛의 선홍색을 띠고 있다. 그때 마침, 햇빛을 받아 붉은색이 더욱 짙게 보이는 녹슨 철판은, 영락없이 두어 달 전 서울에서 전시를 마친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다. 색면추상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로스코의 그림.

전시는 보지 못했다. 어딘가에서 본 대로 ‘감정과 색채의 휴먼드라마를 통해 인간의 깊은 슬픔을 해소하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로스코는 갸륵하게도 자신의 그림으로 인한 깊은 울림을 통해 관람객들의 감정과 마음을 움직이고자 하였다고 하니 위로와 치유의 기회를 한꺼번에 놓친 셈이다. 그런 그림을 복작거리는 서울이 아니라 한적한 동네 골목에서 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가. 하지만 골목을 지나던 사람들은 그 그림에 경탄의 시선을 주기는커녕 쳐다보지도 않는다.

로스코는 ‘내 그림 앞에서 우는 사람은 내가 그것을 그릴 때 가진 것과 똑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던가. 문득 짓궂은 의문이 들었다. 예술의전당에서 로스코의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린 사람이 (정말 있다면) 이 양철판 앞에서도 눈물을 흘릴까?


마크 로스코의 '붉은색 띠'(1955)_경향DB



절대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 양철판 따위는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무너질 듯한 흙벽 한쪽에는 황토와 진흙이 섞이고 갈라져 멋진 표면 효과를 만들어낸 작품도 있고 짙푸른색의 풀과 황홀한 대비를 이루는 회벽이 있다. 그런 것들에 감동을 받기 시작하면 눈물샘이 마르기 전에는 골목을 빠져나오지도 못할 것이다. 붓으로 캔버스에 칠한 색면의 대비들과 철판의 부식으로 만들어진 색면의 대비가 우연히 완전하게 일치했다고 가정한다면 그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다. 그의 눈물이 거짓이 아니라면 말이다.

재현으로서의 예술적 행위와 우연으로 만들어진 자연적 생산물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예술적 생산물에 대한 반응과 이해는 극히 제한적이다. 말하자면 행위의 과정을 제거한 예술작품이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뜯겨진 벽지와 다를 바 없는 무제의 그림들에서 감동을 찾을 수 없는 초조감을 전시장을 둘러싼 아우라가 메워주지 않으면 예술적 감흥은 사라진다. 어쩌다 보니 현대미술은 작품이 아니라 그 주변을 생산하는 시스템이 되어버렸다. 거금의 티켓을 구입하여 로스코 채플이 연출했다는 신성한 예술 공간에 들어가 철학자와 비평가의 화려한 수사가 덧붙여진 책자를 들고 감동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친 사람들은 비로소 로스코의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다. 거기에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라거나 세계적 리더들과 부호들이 그의 그림에 주목하고 이유를 찾아낸다면 감동은 배가된다.

길거리의 양철판 따위를 로스코의 그림과 견주어 그 위대한 거장에게 흠집을 내려는 의도가 아니다.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런데 수상하지 않은가? 현대미술을 더 이상 작가의 예술적 창조행위만으로 말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되었음에도 작가는 더 도드라진다. ‘나는 추상주의에 속하는 화가가 아니다. 나는 색채나 형태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비극, 아이러니, 관능성, 운명 같은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고 그가 말했다면 양철판도 똑같이 말해 보자. ‘나는 예술작품이 아니다. 나는 색채나 형태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비극, 관능성, 운명과 같은 인간의 근본적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아무 관심이 없다.’ 더 쿨하지 않은가?

수잔 손탁의 말대로 ‘있는 그대로의 사물의 반짝임’을 보기 위해 이론만 풍성한 해석에 반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제기랄. 손탁은 또 뭔가. 양철판이면 양철판이지 로스코는 뭐고 손탁은 또 뭔 말라비틀어진 손탁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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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불황이 내리누르는 미술계에 희한하게도 단색주의 그림들만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난 1970년대를 풍미했던 그 그림들은 구체적인 형상을 지우고 평면 안에 오로지 물감과 붓질만으로, 희미한 단색을 칠해 마감한 벽지 같은 그림들인데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유령처럼 출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단색주의 그림은 1975년 일본에 소개되면서 그들에 의해 가장 한국적인 그림, 흰색을 주조로 한 단색주의 그림이라 호명되었던 그림들이다. 우리 미술의 정체성은 항상 타자에 의해, 일본인들에 의해 우선적으로 자리매김되어왔다.

그들에 의해 한국의 미술은, 식민지 시대에는 ‘향토주의 미술’이나 ‘동양주의 미술’로 그리고 1965년 한일협정 이후에는 ‘백색주의 미술’로 명명되어왔다. 우리 근대미술 자체가 일본에 의해 규정되어왔으며 오랫동안 그 영향력 아래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물론 지금은 그로부터 매우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 있지만 이전의 흔적은 여전히 강고하다.

해방 이후 우리 미술계는 식민미술의 청산, 민족미술의 수립, 전통미술의 계승, 그리고 서구미술의 수용이라는 여러 과제를 동시에 껴안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우선 해방 이후 정권을 잡은 이승만 정부는 친일청산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분단과 전쟁의 길을 갔다.

흔히 20세기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불행한 날은 1949년 반민특위(反民特委)의 좌절이라고들 한다. 이후 분단과 전쟁, 쿠데타를 통해 반민족, 친일세력들이 권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왜곡된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지금 이 순간까지 이어져오고 있기에 그렇다. 결과적으로 이는 그 이전의 식민지 시기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한국 화단은 일제강점기의 화풍과 영향이 변함없이 온존되어 있었고 한편으로 젊은 세대들은 서구미술에 급속히 경도되어 갔다. 우리의 불우한 근대와 식민지는 서구와의 접촉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일본을 통해서였기에 우리는 한 번도 서구를 (직접적으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서구를 늘 ‘구원과 동경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일제강점기 동안은 일본미술 혹은 일본화된 서구미술의 어법을 충실히 모방했다가 해방과 전쟁 이후에는 다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미술의 어법을 추종해왔다는 이야기다. 이렇듯 식민지 청산에 실패함으로써 우리의 독자적인 미술문화를 만드는 일은 무척이나 지난했으며 끊임없이 좌절하게 되었다.




친일세력을 등에 업고 반공을 내세우며 독재로 치닫던 이승만 정권은 4·19 혁명으로 막을 내렸다. 4·19 혁명을 시작으로 열린 1960년대는 전후의 폐허와 허무를 딛고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근대적 가치에 대한 열망이 확산된 시기였기에 이에 따른 미술문화가 이루어져야 했지만 곧바로 이어진 5·16 군사쿠데타는 이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버렸다.

일제청산이란 과제 역시 기약 없이 미뤄졌다. 박정희 체제는 이념적으로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속되면서 조국 근대화와 민족주의 이념이 강화된 시기다. 그는 문화를 집권 연장과 독재 강화 그리고 경제 성장의 도구로 인식했다. 그에 따라 작품의 창의성이나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 및 진보적 성향의 예술이 싹을 틔우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의 재임 기간에 미술문화는 철저히 사전검열을 받아야 했으며 표현의 자유는 극도로 제약당했다. 정권 역시 예술작품이 정권의 홍보물에 머물 것을 요구했으며 정권의 이데올로기인 반공과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차원에서만 기능하기를 암묵적으로 강요했다. 대다수 미술작품들이 그에 순응해서 제작되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어둡고 불행한 전쟁이 시작된 그 참혹한 시대에, 수교로 인해 한국에 들어온 일본인들에 의해 단색주의라는 화풍이 발아했다. 서구 미니멀리즘의 외형에 지난 시간대의 동양주의 담론이 얹혀지고 다시 일본인들이 보는 한국적 정체성이 포개진 것이다. 그 유령들이 다시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에 번성하고 있다.


박영택 | 미술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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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에 관해 널리 퍼진 오해 가운데 하나는 뷔퐁의 다음과 같은 말, 문체는 곧 개성이다, 라는 금언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 생겨난 듯하다. 문체는 작가의 독특한 개성의 표현인 동시에 작가 그 자신이라 해도 무방하다는 인식이 일견 타당해 보일지 몰라도 이것이 곧 작가 자신을 작품에 드러내야 한다는 의미로 읽혀서는 안 된다. 유머러스하고 시니컬한 문체를 구사하는 소설가와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다. 그이가 소설가로 활동을 시작할 무렵 문단의 다른 많은 작가들도 대체 이처럼 흥미진진한 소설을 쓰는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퍽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어떤 자리에 그이가 모습을 드러냈고 작가들이 주변에 몰려들었다. 그리고 모두들 이제 그이가 어떤 방식으로 좌중을 웃겨줄 것인지를 기대하며 가벼운 흥분에 사로잡혔다. 이윽고 하나 둘 실망의 한숨을 내쉬었다. 직접 만나보니 기대만큼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어서였다.

그러니까 작가들마저 어떤 소설가의 문체가 곧 그 사람의 개성의 표현이라는 그릇된 믿음을 지녔던 거다. 문체는 작가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지만 다른 한편으로 작가와는 무관한 독립체라고 할 수 있다. 문체는 단어 하나 구두점 하나까지 아울러서야 형성되는 작품의 형식적 요소의 총체인 동시에 문체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의미도 구조화될 수 없다는 점에서 볼 때 내용적 요소의 총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문체라는 개념은 형식과 내용이라는 이분법을 동원하지 않고서도 어떤 작품을 기술적으로 분석하는 틀을 유지할 수 있는 유용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문체에 관해 좀 더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면, 문체는 작가의 개성의 표현인 동시에 작가와는 무관한, 작품이 스스로 발언하는 그 무엇이라고 덧붙여야 한다. 예를 들어 주제 사라마구의 문체는 무척 독특해서 웬만한 독자라면 작가의 이름을 가려놓아도 그의 작품임을 눈치챌 수 있다. 아예 그의 문체를 두고 ‘사라마기아노 스타일’이라 부를 정도인데 대체로 그의 문체는 마침표를 아끼고 쉼표로 문장과 문장을 이어가며 대화를 분리하지 않고 문장에 섞어버리는 만연체로 요약할 수 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_경향DB


물론 이런 문체가 주제 사라마구만의 것은 아니다. 이미 그에 앞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족장의 가을>이라는 소설에서 마치 사라마구 문체의 탄생을 예견이라도 하듯 훌륭하게 구사한 적이 있다. 이 두 소설가가 자신들의 작품에서 이와 같은 문체를 구사한 건 개성의 표현이라는 이유도 있었겠으나 마르케스의 경우 독재자의 삶을 그런 방식이 아니고서는 표현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사라마구의 경우 이런 문체를 통해 요지부동인 세계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내몰린 인간의 의지를 종교적 열정보다 숭고한 그 무엇으로 드러내주는 효과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사라마구 소설의 인물들은 끈질기게 사유해서 장엄하게 자기 인식에 도달한다. 그리고 문체가 바로 이런 의미를 가능하게 해준다.

소설은 여전히 인간의 형식이다. 소설의 문체가 소설의 특징이듯이 다시 말해 인간의 특징이듯이 우리 시대의 민주주의는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만들어낸 우리의 문체이며 우리에서 비롯되었으나 우리와는 무관한 그 무엇이다. 그것이 우리와 무관한 이유는 스스로의 원리로 작동하기 때문인데, 진정한 민주주의는 설령 우리가 나태와 실수로 극악한 인물을 통치자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하더라도 그 인물이 자신의 개성과 악덕을 발휘할 수 없도록 제어하는 힘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 역시 문체처럼 단어 하나 구두점 하나까지 아울러서야 형성되고 의미화될 수 있는 일상과 삶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 한 사람의 악덕에 의해 사회가 흔들린다면 그건 대통령을 좋은 인물로 대체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위기다. 새로운 문체가 필요하다.


손홍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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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이잖아요. 거기 오시는 분들은요. 즐기려고 오시는 거예요. 같이 놀 수 있는 걸 해줘야 돼요.” <무한도전>의 ‘무도가요제’ 코너에서 박명수가 한 말이다. 작곡가 파트너로 자신과 짝을 맺게 된 아이유가 느린 발라드 음악을 하고 싶어하자 축제 형식의 ‘가요제’에서는 신나는 일렉트로닉 댄스음악(EDM)을 해야 한다며 특유의 ‘버럭’ 개그를 보여준 것이다.

위압적 태도로 아이유에게 ‘갑질’을 한다며 박명수를 비난하는 시청자들도 있었지만, 프로그램 속 박명수와 아이유는 시청자들의 서로 다른 감수성을 대변하는 일종의 ‘롤플레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박명수의 주장이 결국 관철될 수 있었던 것 또한 그가 가요제, 나아가 음악축제에 대한 좀 더 대중적 취향이나 관점을 대변하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축제를 즐기기 위해 신나는 음악이 필요하다는 박명수의 주장을 반박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2007년부터 홀수년에 개최되는 ‘무도가요제’의 인기는 지난 10여년간 한국에서 급속도로 대중화된 음악축제의 성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최근 음악축제는 대중음악만이 아니라 전통음악과 클래식음악 등 음악의 전 분야에서 활성화되고 있다. 한국에서 음악축제의 외적 성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던 2004년 무렵은 디지털 음원의 판매 수익이 음반 판매 수익을 앞지르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전 같으면 음반 제작과 판매에 집중됐던 자본이 이때부터 서서히 공연이나 음악축제로 움직이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실력 있는 뮤지션들의 활용가치를 높이는 데 있어 디지털 음원 판매보다는 대규모 라이브 공연이 좀 더 안전한 수단이 됐기 때문이다. 하루 티켓 값만 15만원을 육박하는 한국의 록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라고 불리는 세계적 밴드들의 개런티는 한 회 공연에 이미 수억원을 넘고 있다고 한다.

2014펜타포트 록페스티벌_경향DB


음악축제의 기획과 운영이 자발적 시민의 문화적 욕구보다는 외적인 제도 변화(예컨대 지방자치제의 정착)나 문화산업 구조의 변화에 따른 자본 흐름에 따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음악축제의 체험을 유명 뮤지션들의 실물을 확인하는 정도로 단순화하고, 놀이동산이나 테마파크에서 얻는 오락적 체험과도 구별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무도가요제’의 박명수가 음악축제의 목적으로 잘라 말했던 ‘즐김’이라는 단어 속에는 물신화된 음악축제 체험과 관련해 기획자와 참여자가 공유하는 심리적 강박이 담겨 있다. 축제 참가자들에게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쾌락과 만족을 서비스해줘야 한다는 식의 강박. 그것은 일상 너머를 꿈꾸는 축제적 상상이라기보다는 교환가치가 지배하는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서비스 산업의 경쟁적 요구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삶의 본래적 의미와 자기정체성을 돌아보게 해주는 축제적 기능은 공연 예술로서 음악이 갖는 본질적 사용가치다. 음악 공연이 교환가치에 가려졌던 음악의 사용가치를 되찾고 일상 너머의 축제적 체험을 실현시켜주기 위해서는 역설적이지만 먼저 음악 공연이 일상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 이 점에서 지난 7월 한 달간 국내외의 여러 도시에서 하우스콘서트식의 소규모 공연들을 400개 이상(한국 내에서만 전국적으로 180개 이상) 치러낸 ‘원먼스 페스티벌’을 의미 있는 음악축제 기획의 하나로 꼽을 만하다. 점조직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이 음악축제는 우리 곁에 훌륭한 음악가들이 정말 많다는 사실, 그리고 음악적 체험을 함께 나누고 즐길 수 있는 공간과 청중은 그렇게 넓거나 많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축제적 체험에 대한 고정관념이야말로 가장 반(反)축제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장르와 규모의 차이에 따라 음악축제가 추구하거나 목표하는 내용은 달라질 수 있지만, 중요한 점은 관습적 사고와 제도적 경계를 넘어선 심미적 경험을 수용하고 거기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준비가 되어 있다면 ‘신나는 음악’이 아니더라도 음악축제는 짜릿한 일탈의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다.


최유준 | 전남대 HK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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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안산 M밸리록페스티벌에서 일어나선 안될 일이 일어났다. 가수 장기하가 경호원에게 폭행당한 것이다. 뉴스를 탄 사건이지만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24일 저녁, 장기하는 영국 록 밴드 모터헤드의 공연을 보고 있었다. 그를 알아본 관객들이 몸을 들어올려 보디 서핑을 시도했다. 이를 본 경호원이 달려들어 장기하를 끌어내리고 아티스트 팔찌를 뺏은 후 뒷목을 붙잡고 공연장 밖으로 쫓아냈다. 이를 제지하는 관객의 얼굴에 헤딩을 날려 안면 골절을 입히기까지 했다.

경호팀으로 인해 벌어진 불상사는 이뿐만 아니다. 미국 밴드 오케이 고 공연 때는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들과 함께 어울리려는 멤버의 허리띠를 붙잡으며 퍼포먼스를 제지했다. 트웬티 원 파일럿츠의 공연 때는 통역까지 올려 관객들에게 무동을 타고 놀자는 제안을 했으나 경호원은 객석을 향해 그러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록 페스티벌이란 원래 고생스럽다. 여름의 교외에서 열리기에 해는 뜨겁고 때론 비도 내린다. 원래 있던 시설이 아니니 화장실도 부족하고 씻기도 편하지는 않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어느 페스티벌을 다녀봐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런 고생과 불편을 무마하는 건 공연과 페스티벌 문화 때문이다.

따가운 햇볕 아래서 슬램을 하고, 비를 맞으며 ‘떼창’을 한다. 혹독한 자연환경을 뚫고 함께하는 수만명이 만들어내는 어떤 동질감과 연대의식이 비싼 돈을 주고 고생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혼돈 속의 질서가, 격렬함 속의 배려가 생겨난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몸을 부딪치며 슬램을 하고 누군가의 몸을 떠받쳐 보디 서핑을 한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폭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슬램 도중 누군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기적처럼 주변 사람들이 일으켜 세워준다. 보디 서핑을 하다가 떨어질 것 같으면 모르는 손들이 안전한 낙하를 돕는다. 스스로 놀고 스스로 질서를 만드는 게 록 페스티벌의 문화다. 그 과정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돌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가능성들에 대비하여 존재하는 게 공연 경호팀이다. 허가되지 않은 무대 난입을 막기도 하고, 객석 앞쪽에서 힘들어 하는 관객에게 물을 건네주기도 한다. 그리하여 아티스트가 안심하고 최선의 공연을 펼칠 수 있게 돕고 관객들이 마음껏 놀며 젊음을 불태울 수 있게끔 하는 게 공연팀의 업무다.


2013 안산밸리록페스티벌에서 공연이 열리고 있다. _경향DB



밸리록 경호팀은 오히려 공연 진행을 방해하고 관객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장기하의 목을 붙잡고, 관객에게 박치기를 한 문제의 경호원은 후에 자신의 SNS에 해명의 글을 올렸다. 곧 삭제된 이 글에는 이런 표현이 등장한다. ‘과잉 진압이었음을 인정합니다.’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진압이라니, 관객을 대하는 태도가 그대로 드러나는 단어다. 객석에서 폭동이 일어난 것도 아니다. 해외 록 페스티벌처럼 약에 취해 이상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던 것도 아니다. 그들은 록 페스티벌을 한껏 즐기는 평범한 관객이었고, 심지어 아티스트였다. 그런 모습이 진압의 대상? 한국 록 페스티벌의 10년 역사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1969년 8월, 우드스톡 페스티벌로 정점에 달한 ‘사랑의 여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해 12월 롤링 스톤스는 캘리포니아 알타몬트에서 공연을 열었다. 이 공연의 경비는 전문업체가 아닌 폭주족 단체인 헬스 앤젤스가 맡았다. 공연이 절정에 달할 무렵, 헬스 앤젤스 단원이 한 흑인 청년의 가슴을 칼로 찔렀다. 경찰 조사에서 그는 청년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현장을 기록한 영상에 청년이 총을 가졌다는 증거는 없었다.

어쨌건 이 사건으로 인해 히피 무브먼트는 종언을 고하고 말았다. 한국의 록 페스티벌은 많은 관계자와 아티스트, 그리고 팬들의 염원이 모여 힘겹게 탄생했고 지금의 역사를 쌓아 왔다. 많은 고생과 불편에도 여름을 록 페스티벌의 계절로 이끌었고 나아가 한국의 페스티벌 문화를 견인했다. 경호업체의 어이없는 인식이 그 수고를 무위로 만드는 건 아닌지, 생각된다. 안전이란 진압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김작가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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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다 만 집은 주인이 현관에 새 자물쇠를 달기 전까지는 폐허와 다름이 없다. 덧대다 만 석고보드 사이로 삐죽이 튀어나온 전선, 잘려나간 콘크리트 벽체, 문틀 위에 매달려 있는 시멘트 덩어리, 그리고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나무토막과 쓰레기들. 어쩌다 잠깐 남이 짓다 만 집을 마무리하는 데 손을 보태게 되었다. 목수라고 불리지만 나는 집 짓는 대목이 아니라 소목이었음에도 그렇게 되었다.

집을 지으면 십년은 늙는다는 말에 한술 더 떠, 다시는, 절대로 따위의 말을 보태는 주인이라면 틀림없이 소위 업자의 일처리에 속깨나 끓였을 거였다. 보지 않아도 주인은 적은 비용으로 그럴듯한 집을 지으려 했을 거고, 건축업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더 많은 이윤을 챙기려 했을 터이니 분쟁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자재가 어째 싸구려처럼 보이는 건 주인의 눈이고 그만하면 쓸 만한 건 업자의 눈이니 눈을 서로 바꾸어 달기 전까지 해결은 요원하다. 주인의 말을 들으면 괘씸하기 짝이 없는 업자의 탓이로되 그의 말대로 한쪽만을 탓할 수 없는 일이다. 비싸고 좋지 않은 집은 있을 수 있어도 싸고 좋은 집은 있을 수 없다는 진리는 망각하기 마련.

남이 한 일에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게 예의는 아니지만 현장을 살펴보면 이빨로 물어뜯어도 그보다 낫겠다는 말이 절로 나올 때가 있다. 대부분은 서로 다른 영역의 일들이 어긋나면서 오는 불협화음일 터. 서로의 작업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일의 순서는 뒤죽박죽이 되고 그 결과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다. 목공은 벽체공사를 원망하고 미장은 목공을 탓하며 전기는 미장을 욕하는 일련의 수순을 거치는 험난한 노정. 그림 같은 집을 꿈꾸던 주인은 끝없는 분쟁과 참혹한 일처리를 바라보며 그저 어서 공사가 끝나기만을 바라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목수 김진송. 미술평론가, 기획자, 공예가. 책 ‘나무로 깍은 책벌레 이야기’의 저자._경향DB


누구의 말이 옳으니 그르니 하는 사후의 준엄한 비판과 분석은 벽체 하나 세우지 못한다. 하지만 집 짓는 일의 복잡하고 전문적인 과정은 접어두고라도 적어도 주인과 업자의 제대로 된 대화만 가능했어도 일은 훨씬 수월할 수 있었다. 돈 문제 말고, 눈에 보이는 그럴듯한 설계와 취향의 차이로 우겨야 하는 디자인에 대한 것 말고, 우선해야 할 요소는 두 가지다. 하나는 물성이고 둘은 중력이다.

물성과 중력? 이런 건 전문가들이 알아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중력이 무시되면 집은 구조적인 문제를 안게 되고 물성을 무시하면 결함투성이가 되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른 채 속만 끓이며 물러나 있지 않으려면 모른 채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집은 수많은 물질, 이를테면 돌, 쇠, 나무, 유리, 플라스틱, 콘크리트 등등이 섞이고 맞물리며 완성된다. 집의 자잘한 결함들은 전문가들의 미흡한 손놀림 이전에 서로 다른 물질이 만나는 것 자체에서 시작된다. 콘크리트와 나무가 다르다는 걸 고려하지 않으면 그 두 가지가 결합하면서 오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니 상대가 다루는 물질에 대한 배려를 하지 못하는 벽돌공과 목수가 짓는 집은 춤을 추기 마련이다. 이보다 더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은 바로 중력이다. 공간을 나누고 동선을 고려하여 설계된 집의 구조는 결국 중력과 타협하며 최종 결정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벽체와 기둥이 똑바로 서야 하는 이유는 미학적이거나 편리함 때문이 아니라 그게 중력에 가장 잘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집을 짓는 일은 중력을 다루는 일이다. 돈이 아무리 궁해도 중력에 버티지 못하는 서까래를 쓸 수는 없는 일이다.

놀랍게도 조금만 눈여겨보면 물성과 중력이 무시된 채 지어진 집들이 너무 많다. 어디 집뿐이랴. 물질과 중력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집짓기는커녕 살아가는 것 자체가 어렵다. 자연의 물질을 변형시켜 끊임없이 쓰임을 만들어내며 살아가는 걸 우리는 인간의 문명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일은 중력에 저항하거나 타협하는 일이다. 사는 것도 그렇다. 일어나 앉을 힘이 없거나 숟가락 들 힘조차 없을 때, 말하자면 더 이상 중력에 저항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집이라고 다를 리 없다.


김진송 | 목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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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식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병, 그릇 등도 ‘세계 내에 존재’한다. 실용적 차원의 물건인 병은 인간의 육체에 접속되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지만 그 자체로 굳건하고 당당한 조각품, 오브제이기도 하다.

나는 늘 병이 지닌 완벽한 대칭 형태와 견고한 물성에 매료된다. 병 자체만을 단독으로 설정해 그린 모란디의 정물화는 병을 병으로만 보지 않고 그것을 구축적인 건축물의 일부, 그러니까 그에게 친숙한 고대 이탈리아 신전이나 성당 등의 기둥이나 벽면과 대등한 존재로 바라보았을 때 가능했던 것이다.

일상 속의 친숙한 사물, 도구들을 관습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바라본다면 소소하고 하찮은 것들이 얼마나 매력적인 존재인지 새삼 깨달을 것이다. 이처럼 예술가란 존재는 기존의 사물과 인간의 관계를 전복적으로 사고하는 이들이다. 그래서 ‘아름답다’는 것의 지평을 확장하고 그것을 발견하는 놀라운 눈과 마음을 안기는 이들이다.

사실 하나의 병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보다는 그 안에 담길 수용성의 액체를 보관한다는 점에 방점이 놓여있다. 따라서 유리가 지닌 투명성과 단호한 물질감은 자신이 내포하고 있는 액체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것을 보호한다는 이중의 역할로 인해 요구된 것이다.

이처럼 유리의 발명과 그로 인해 탄생한 다양한 병, 용기는 인간의 삶을 실용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미적인 차원 모두에서 충족시켜왔다. 그것은 특정한 용기가 아니라 개별적인 미술품, 조각이자 오브제로 인식된다.



레이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장태영의 사진전은 일상에서 흔히 보는 다양한 종류의 맥주병을 찍은 사진을 모아놓았다. 작가는 관능적인 형태를 지닌 맥주병과 거기에 붙은 레이블을 정면으로 응시해서 촬영했다. 단독으로 설정된 맥주병은 자신의 존재감을 다소 비장하고 당당하게 보여준다. 몇 군데에서 쏟아지는 강렬한 빛을 받은 맥주병은 허공에서 흡사 부양하는 듯하다. 그로 인해 현실적인 병이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 맥주병은 무엇보다도 유선형의 형태를 지닌 병의 표면에 부착된 레이블로 인해 빛을 발한다. 레이블의 역할은 상표, 상품에 관한 일련의 정보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소비자의 욕망을 시각적으로 흡입해내기 위한 전략 아래 고려된 뛰어난 디자인이자 ‘회화’이기도 하다.

작가는 아름답고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이루어진 맥주병을 선별해서 수집한 후에 흡사 증명사진을 찍듯 하나씩 촬영했다. 광고사진과 별다른 구분이 없어 보이지만 여기에는 선전문구가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작가는 흔한 맥주병 하나를 다시 보게 해주고 그것을 오랫동안 응시하게 해준다.

그러자 맥주병은 단지 맥주를 담은 유리 용기가 아니라 레이블과 함께 어우러져 매력적인 오브제, 조각 작품, 혹은 극사실주의 회화처럼 존재한다. 일상 속에서 경이를 발견하는 시선이고 미술과 비미술의 경계를 지우고 있다. 장태영의 이 사진은 오늘날 소비사회에서 대량생산되는 특정 상품, 그 유리병과 레이블의 관계를 다시 보게 해주는 한편 그것이 지닌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오늘날 고도 소비자본주의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른바 ‘상품미학’이 그만큼 강력하게 장악하고 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여간 환상적인 분위기를 배경으로 자리한 맥주병이 화려한 레이블을 부착한 상태에서 자신의 존재를 더없이 ‘블링블링’하게 보여준다. 장태영의 사진을 통해 우리는 맥주병을 치장한 모든 미학적 요소를 섬세하게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주변의 모든 일상적 용품들이 모두 다 의미심장한 미술품이 아닌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음료수병 하나도 쉽게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고 있다. 그저 바라보기 위해서 말이다.


박영택 | 미술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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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다 보면 유독 어떤 지점에서 뜻밖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 어려움은 소설가마다 다를 테고 그러한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의 문제가 사소해 보일지라도 어쩌면 각자의 창작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본질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내가 소설을 쓸 때 여전히 곤란을 겪는 지점 가운데 하나는 부정적 인물, 덧붙이자면 단순히 부정적인 게 아니라 인간의 악 그 자체를 가리킨다고 여겨지는 인물을 그려내야 하는 경우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로베르토 볼라뇨의 <칠레의 밤>은 경이로운 소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여긴 이유는 나라면 결코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인간의 심연을 볼라뇨는 냉정하고도 침착하게 바라보며 치밀하게 그려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심연을 지녔으되 어떤 심연은 신비로운 반면에 어떤 심연은 끔찍하다. 그리고 우리는 본능적으로 어떤 심연이 끔찍한지를 알 수 있기에 그러한 심연을 들여다보느니 차라리 외면하는 쪽을 선택하기 쉽다. 나도 그렇다. 상상하기조차 싫은 내면이란 게 있는 거다. 그것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파괴되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인간의 심연이라는 게 있는 거다.

볼라뇨가 그려낸 인물은 웬만한 독재자들은 애송이 취급을 해도 좋을 만큼 극악했던 피노체트의 군사정권에 기생했던 문학 비평가이다. 이런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간다는 건 보통의 용기로는 어려운 일이다. 생각해보라. 만약 당신이 박정희나 전두환의 내면으로 들어간다면 얼마나 소름이 끼칠지. 만약 살인마들의 내면으로 들어간다면 어떤 기분일지. 그것만으로도 진저리가 쳐지는데 이들을 능가하는 독재자와 거기에 빌붙은 인물의 내면이란 곁눈질조차 하고 싶지 않을 지경이다.


로베르토 볼라뇨 작가_경향 DB


이 소설에서 여느 장면 못지않게 섬뜩한 장면이 하나 있다. 어느 저택의 지하실에서 고문이 자행되는 동안 위층 살롱에서는 칠레 문학인들이 파티를 즐기고 있다. 화장실을 찾아 나선 한 작가는 저택에서 길을 잃고 우연히 지하실에 이르게 된다. 거기에서 고문 탓에 피투성이가 된 누군가를 목격한다. 그 작가가 목격한 장면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칠레의 현실이었으나 작가는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아무 말 없이 문을 닫고 뒤돌아선다.

그의 침묵이 소설을 읽던 내게 고통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내가 침묵하지 않을 수 없었던 비열한 순간들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볼라뇨가 보여준 용기를 딱히 용기라고 일컬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종류의 용기야말로 소설가라면 누구나 마땅히 지녀야 할 기본적인 태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태도를 지니는 것과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는 지난 문학사를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지금 이 순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불가사의한 일들, 제왕이나 다름없는 대통령과 요지부동인 그의 측근들이 한국사의 한 페이지를 더럽히는 동안 마치 그런 일들과는 무관하다는 듯 날마다 서점으로 쏟아져 나오는 명랑한 소설들. 차라리 이국의 소설이라 해도 상관없을 듯한, 우리가 견디는 현실과는 외설적인 방식으로만 근친관계에 있는 소설들을 보면 볼라뇨의 용기가 귀중한 용기임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소설가들을 믿는 이유는 비록 지금 이 순간 그러한 심연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 없다 해도 언제까지나 그럴 수 없는 노릇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문을 닫고 뒤돌아서면서 기어이 눈물 한 방울 떨군 사람도 그이들임을 잘 알기에, 언젠가 우리 모두 박근혜라는 불가해한 인물의 심연을 치밀하게 묘사한 소설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아무도 들어가고 싶지 않을 그 내면에 들어가야 할 유일한 누군가가 있다면 분명 소설가 가운데 한 사람일 것이므로.


손홍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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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을 지켜보면서 한국의 대중음악계를 떠올렸다. 문학애호가들의 입장에서는 비교가 달갑지 않을 수 있겠지만, 저작권 침해와 표절 문제에 관한 한 대중음악계보다 더 경험이 풍부한 분야도 없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 대중음악의 수많은 표절 의혹이 대부분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에 의해 제기된다는 사실이다. 대중예술의 속성 탓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1990년대부터 일찌감치 ‘디지털 시대’를 맞은 대중음악계에서 창작 윤리와 관련한 일종의 집단지성이 한발 앞서 형성돼 왔다고도 볼 수 있다. 최근 누리꾼들은 표절이 의심되는 부분을 원곡과 대조해 들어볼 수 있도록 직접 편집 음원을 만들어 SNS 등을 통해 공유하는 방식으로 문제제기를 한다. 표절 의혹 제기가 남발되면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고 음악가들의 창작 의욕이 위축되는 면도 있지만, 악의적인 표절자들과 표절 의혹 제기자들 사이에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누리꾼의 날카로운 표절 의혹 제기가 빈번하게 이루어진 결과 대중음악계에는 저작권 보호와 관련한 나름의 관습법적 질서가 만들어져 있다. 표절이 인정되면 법정으로 가는 대신 원곡의 작곡가를 정식 저작권자로 대체하거나 추가로 등록시켜 정당한 지분을 마련해주는 식으로 막후에서 해결하곤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외국의 많은 뮤지션들이 ‘본의 아니게’ K팝의 저작권자가 된다. K팝의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일면이라고 할까.


소설가 신경숙_경향DB


표절 의혹에 대한 신경숙 작가와 출판사 측의 초기 대응은 재작년 아이유의 새 앨범 타이틀곡이었던 ‘분홍신’에 대해 표절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보인 소속사의 대응과 닮았다. 당시에 소속사는 발 빠르게 공식 입장을 내놓으면서 ‘표절 아님’을 단언했다. 누리꾼이 제시한 원곡과는 ‘코드진행이 다르다’며, 난해한 코드기호들과 재즈화성학 용어가 담긴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제시했다. 곧이어 SNS를 통해 ‘업계의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이 가세해 또다시 전문용어를 써가면서 의혹 제기자들을 향해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는 식의 권위주의적 태도를 보였다. 인터넷에서 비교 음원을 직접 들어보고 표절임을 확신했던 대중은 어리둥절했지만, ‘전문가’의 권위에 호소하는 화법이 오래지 않아 인터넷 담론장의 우위를 점했다.


기존 음원을 ‘참조’(업계 은어로는 ‘레퍼런스’)하는 것은 창작 행위의 일부라고 대중음악 작곡가들은 항변하지만, ‘참조’와 ‘표절’의 차이가 사실상 무의미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분홍신’에서 문제가 된 부분도 그랬다. ‘코드진행’이 다르다느니, ‘클리세’라느니, ‘장르적 유사성’이라느니 ‘스윙’에 ‘비밥’에 ‘전문가’들은 참으로 다양한 전문용어를 들이대며 누리꾼들의 의혹 제기를 묵살했지만, 사실상 여러 말 할 것 없었다. 그냥 원곡과 비교해 들어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신경숙의 소설 속 문제가 된 문장들을 누구라도 비교해서 읽어보면 표절 여부를 알 수 있었듯이 말이다. ‘동업자 정신’을 ‘전문가의 식견’으로 착각하는 이들만이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신경숙에 대한 동일한 표절 의혹이 15년 전에도 제기됐지만 당시에는 별다른 반향이 없었다고 한다. 15년 사이에 달라진 것은 표절에 대한 의혹이 디지털 매체를 통해 제기되고 SNS 등을 통해 대중에게 확산됐다는 점이다. 문학계도 이제는 대중음악계에서처럼 표절 의혹 제기가 일상화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실상 소설이나 음악의 표절 여부에 대한 판단은 디지털 생태계의 표본집단에 의해 직관적으로 수행될 수 있는, ‘얼마나 닮았나’를 판단하는 ‘튜링테스트’와 같은 것이라 하겠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집단지성의 감시기능과 자정작용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전문가나 평론가의 역할은 표절에 대한 최종 심판관으로서의 권력을 발휘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표절에 대한 대중적 문제제기를 지적 소유권의 관점을 넘어서 폭넓은 미학적·윤리적 성찰로 이어지게 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최유준 | 전남대 HK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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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밍이 음악 청취의 대세가 되면서 인류는 그 어떤 때보다 가장 편하게 음악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음반을 사는 수고는 물론이거니와 다운로드해서 하드디스크에 저장하는 일조차 불필요해졌다.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다면, 필요한 앱만 깔려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어떤 음악이든 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급격하게 변하는 시장 환경이 이렇듯 편리함만을 제공하는 건 아니다. 대신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인 물성의 소유가 안겨주는 쾌감을 박탈한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말하는 ‘아우라’가 음악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이 아우라에 대한 갈망은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공연장으로 이끈다. 네트워크에서 나와 네트워크로 가는 음악이 아닌, 무대에 선 가수의 복제할 수 없는 목소리를 듣고 그 모습을 보며 비로소 진짜 음악을 만난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공연이란 일회적이라는 특성을 가진다. 느낄 수는 있으되 소유할 수는 없다. 사진을 찍고 녹음을 해도 그건 이미 복제된 순간일 뿐, 원본이 될 수 없다. 인간의 역사란 곧 소유의 역사, 음악도 예외는 아니다. 저장이라는 개념을 전제하는 다운로드의 유사 소유감마저 스트리밍은 제공하지 않는다. 즉 스트리밍이 시장을 장악할수록 역으로 소유의 결핍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27일, 28일 서울 가양동 한일창고에서 열린 레코드 페어는 이 결핍을 채우려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행사였다. 올해로 다섯 번째 행사를 치른 레코드 페어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음반 중심의 음악 축제다.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음반의 가치를 느끼려는 이들이 서로 음반을 사고팔며 기쁨을 느끼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넓은 창고로 장소를 옮기며 어느 때보다 많은 참가자들이 셀러로 참여한 이번 행사에 다녀왔다.


4인조 밴드 혁오_경향DB



지난번 행사까지와는 여러 가지로 다른 모습이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지난번에 비해 압도적으로 LP의 비중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판매자들의 매대에도 CD보다는 LP가 많았다. 아예 LP만 가져다놓은 판매자들도 대폭 늘어났다. 구매자들 또한 그랬다. CD보다는 LP를 고르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턴테이블 판매량도 대폭 늘었다고 한다. 총 열 종의 레코드 페어 한정 LP 중 최근 음악계의 대세로 떠오른 밴드 혁오의 음반은 반나절도 안되어 품절됐다. 이 말은 곧 한국 음반 애호가들의 축제인 레코드 페어가 보다 LP 중심의 행사가 되어 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증거다.

참가자들 중 20~30대의 비중이 높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메르스의 여파로 40~50대, 즉 어릴 때부터 레코드로 음악을 들어온 세대의 참여가 줄어든 대신 어쩌면 첫 음악 청취의 경험을 mp3플레이어로 시작했던 세대의 방문이 늘어났다는 사실은 한국의 매체에서 LP를 다루는 방식이 틀렸음을 시사한다. 많은 매체에서 LP붐을 이야기할 때 추억이란 단어를 엮곤 한다. 하지만 현재 20~30대는 LP에 대한 추억이 없는 세대다. 오히려 휴대용 CD플레이어나 MD플레이어가 유년 시절의 음악 소비에 대한 추억일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 세대에게 LP는 오히려 새로운 음악 플랫폼이다. 디지털은 물론이거니와 CD조차 주지 못하는 압도적인 물성의 플랫폼. 30×30㎝라는 압도적 크기에 담긴 커버 아트가 주는 시각적 흐뭇함, 음반을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바늘을 얹어 나오는 소리를 듣는 제의적 과정은 비로소 음악을 소유한다는 만족감을 극대화한다.

현재 미국에서 성장하는 음악 플랫폼은 스트리밍과 LP뿐이다. 감상으로서의 음악과 소유로서의 음악이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고 있는 형국이다. IT가 아직까지 오감을 두루 만족시키는 경험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음식과 관련된 콘텐츠가 대세가 된 이유 중 하나도 그런 경험에 대한 결핍 때문이 아닐까. 가상 세계의 간접 경험보다는 실제 세계의 직접 경험을 갈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질로 인한.

김작가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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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가까이 있어서인지 사람 소리보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더 많이 듣는다. 다른 새들은 몰라도 집 가까이 둥지를 트는 박새나 딱새의 말은 조금 알아듣는데 그중 딱새 부부가 주고받는 말들은 재미있다. 새끼를 키우는 딱새는 어찌나 경계가 심한지 암수 번갈아 들락거리면서 대략 네다섯 차례의 신호를 주고받은 뒤에야 집으로 들어가는데 그때마다 비비비 하거나 비빅비빅 하는 단절음을 낸다. 자세히 들어보면 멀리서 나왔어! 하거나, 조금 가까이서 누가 있어! 조심해, 하는 소리 그리고 이제 들어갈 거야! 등등의 소리를 구분할 수 있다. 딱새의 언어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는 없지만 무심코 현관을 나서다 집 마당에 둥지를 튼 딱새의 경고음을 알아듣고 지레 물러설 줄 아는 정도는 되었다.

한 달여 낯선 새소리가 숲 이곳저곳에서 끊임없이 울렸다. 호잇호잇 하며 우는 그 새를 좀처럼 볼 수 없었는데 어느 날 가까이 들리기에 나가보니 등과 날개는 녹색과 파란색으로 반짝이고 하얀 배에 붉은색이 예쁜 팔색조가 편백나무 위에 앉아 울고 있다. 팔색조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 눈이 호강이다. 멀리서 청아하게 들렸던 울음소리가 가까이에서는 약간 탁하게 들린다. 호잇호잇할 때의 첫소리가 마치 불어의 유음과 후음이 섞인 r 발음과 흡사하기 때문인데 그 네 마디의 음절 말고 다른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끝을 약간 올리고 내리는 성조의 변화에 따라 신호를 주고받는 듯하다. 이 단순 반복의 음절로 대화를 나누는 모양인데 물론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은 내게 없었다.

멸종위기 팔색조_경향DB


숲을 떠나 모처럼 지인의 집에서 모인 술자리에서였다. 세태가 그러니만큼 당연히 메르스에 관한 이야기가 한창 오고 갔는데 예의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시스템에 대하여, 누군가에 대하여 성토하는 말들에 그만 심드렁해져 마침 그 집 탁자의 유리 밑에 끼워놓은 네 칸짜리 만화를 보게 되었다. 집주인이 신문에서 오려내 그곳에 놓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스쳐 본 탓인지 딱히 재밌지도 않았고 무슨 뜻인지도 알 수 없었다. 메르스를 대처하는 정부의 무능을 풍자한 내용인 줄 알겠는데 거기 적힌 말이 이상했던 것이다. 단순한 팔색조의 울음보다 난해한 그 말은 ‘우리의 핵심 목표는 달성해야 될 것은 이것이다 하는 것을 정신 차리고 나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였다. 이런! 어쩌다 새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이 사람의 말을 못 알아듣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나는 이 말이 횡설수설하는 누군가의 말을 빗대 작가가 지어낸 말인 줄 알았다. 아니란다. 그 말 그대로란다. 정말! 정말이란다. 누군가 스마트폰을 꺼내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그 말의 해석본을 보여주었다.

더 이상 은유와 풍자마저 필요 없는, 말 그 자체가 은유와 풍자인 언어는 놀라운 발견이다. 이건 비난이나 냉소의 차원을 넘어선다. 실제로 글로 적어놓아 올바른 문장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말을 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 누구나 말을 버벅거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의 말도 글로 적어보면 대개는 비문으로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말은 글보다 훨씬 더 다양한 요소 이를테면 표정이나 성조, 어감, 분위기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말하기보다 조금 더 어렵게 느껴지는 까닭은 바로 그런 요소들을 오로지 글로 나타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가들은 글에 쓰려는 내용에 더해 표정까지 만들어내야 한다. 그게 얼마나 힘이 들면 표절의 유혹에 빠져드는 것일까. 그러니 누군가 조금 말을 이상하게 한다고 해서 시시콜콜 그런 것까지 꼬투리를 잡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상황은 비교적 명확하다. 그럴듯한 말을 해야겠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경우 말은 꼬이고 이상해진다. 그럴 때는 입 다물고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지만 그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면 어쩔 수 없다. 모르는 말이라도 지저귀는 수밖에. 그럴 때 사람의 말은 딱새의 말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참한 소리로 전락한다. 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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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말들이 횡행한다. 궤변과 억측과 요상한 말들이 정치판과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 텔레비전 켜기가 무섭고 신문 펼치기가 두렵다. 생각 없는 이들의 희한한 언변을 듣고 있노라면 말이 싫어지고 그 모든 입을 지우고 싶다. 하여간 나는 그 되지도 않은 말들이 너무 싫어서 말을 지운 그림과 사물 앞에 홀로 서 있다. 모든 색채를 지우고 화려한 장식과 문양을 최소화한 백자 앞에 직립했다. 이화여대 박물관에서 열린 조선백자 전시를 이른 아침에 보았는데 전시실에는 나와 백자뿐이다. 차분함 속에 담긴 풍요로운 단색조의 생기 넘치는 깊은 맛을 즐기고 있었다. 저 백색을 무엇이라 호명하기는 어렵다. 이때 말과 문자는 궁핍해진다.

단순한 형태와 순백의 색감으로 인해 한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논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백자다. 백자는 흰색 하나만으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데 이런 경지를 흔히 선경(禪境) 혹은 열반(涅槃)의 경지라고 한다. 또한 ‘관조’나 ‘고요’와 같은 키워드와 더불어 한국적인 미, 한국성에 관한 논의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어 온 것도 백자였다.

본래 백자는 조선시대에 사용된 실용적 차원의 물건이자 동시에 유교적 이념을 투여하는 상징적 매개이기도 했다. 그런 백자가 1930년대 조선의 전통으로 불려 나왔다. 야나기 무네요시를 비롯한 몇몇 일본인들의 심미감이 작동한 결과이다. 한국의 도자기는 한국인이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의 아름다움은 일본인의 안목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타자의 시선에 의해 백자는 조선의 의미 있는 미술품이자 전통이 된 것이다.

이른바 동양주의의 담론 속에서 김환기, 도상봉과 같은 작가들이 백자를 즐겨 그렸으며 이후 70년대에는 몇몇 작가들이 백자의 백색을 원용한 단색의 추상화를 그렸다. 오늘날도 여전히 백자를 소재로 한 다양한 작업들이 줄을 잇고 있으며 가장 대표적인 전통으로 호출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가장 조선적인 아름다움과 멋으로 이해되었다가 해방 이후에는 민족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전통적 가치를 지니는 고전으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반면 그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표상이란 본질적으로 사물을 일면적으로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측면에 대해서는 배제적인 성격을 피할 수 없다. 그러니 백자에 달라붙은 이데올로기적 표상과 강박적인 이미지를 지울 필요가 있다. 또한 현재 전통이라고 여기는 백자를 둘러싼 표상과 개념들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현재 우리에게 전달되었는지를 밝히는 것도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어떤 고정된 전통문화 원형론이나 본질론에서 벗어나서 ‘골동이 되어버린 옛것에 새것의 아우라를 뒤집어씌우는 그 원동력’이 과연 무엇인가를 질문해 보아야 한다.

'조선백자 명품전- 순백과 절제의 美'에 전시되는 '백자반합' (출처 : 경향DB)


이처럼 미술작품도 불필요한 말을 지워야 본질이 드러나는 법이다. 그간 백자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이나 과잉된 관념적인 수사는 백자와는 다소 무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서구 현대미술과 전통을 결합시켜 한국적 모더니즘을 만들고자 하는 의욕 아래 재단된 혐의도 있고 타자들의 시선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려는 욕망으로 인해 형성된 것이기도 했다. 한국미와 이의 현대화란 문제를 다분히 조선조 문인의 미적 취향, 백자 등으로만 제한시켜 소재주의화하거나 전통을 박제화하는 아쉬움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화여대 박물관이 마련한 이번 전시는 백자에 들러붙은 기존의 선입견이나 여러 수사를 지우고 오로지 백자 그 자체만을 차분히 감상하게 해준 전시다. 어떠한 수식도 없이 ‘조선백자’라는 타이틀을 내건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백자와 흰색에 기생한 이데올로기와 강박적 이미지를 모두 지운 자리에서 오직 저 순연한 순백으로, 혹은 형언하기 어려운 미묘한 백색의 변주 앞에, 기형의 오묘함 앞에 서게 한다. 모든 허황한 수사와 구차한 말들을 다 지우고 백자 자체의 매력을 고요히 음미하게 한다.


박영택 |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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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밤공기는 아카시아, 밤나무, 쥐똥나무 꽃들이 풍기는 향기로 가득해 심호흡이라도 하면 머리가 어찔해질 정도이다. 그러면 벌써 10여년이나 지난 일이건만, 소나무에 올라 전지 작업을 하다 추락해 목뼈에 금이 가 수술을 받아야 했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를 병실에 남겨둔 채 홀로 포장마차에 앉아 술을 마시던 그해 초여름 나는 30대 초반이었고 첫 소설집 출간을 앞두고 있었다. 병실에는 수술 탓에 금식 중인 데다 목뼈를 가지런히 하기 위해 관자놀이 부근에 나사를 박고 거기에 무거운 추가 달린 줄을 매단 채 신음하는 아버지가 있었다.

그때 나를 괴롭혔던 문제는 아버지의 수술이 아니라 아버지의 수술비였다. 적게는 1000만원에서 많게는 2000만원가량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내가 마련할 수 있는 액수를 가늠해 보았다. 나는 그때 보증금 400만원짜리 옥탑방에 살고 있었고 그게 내가 가진 돈의 거의 전부였다. 대출은 꿈도 꿀 수 없었는데 보증금 400만원도 바로 아버지가 농협에서 대출받아 내게 준 돈이기 때문이었다. 대학 시절에 대출받은 학자금도 갚아가는 중이라 생활비마저 부족한 시기였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별다른 수가 생겨날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사채를 쓰거나 장기를 팔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하여튼 뭔가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다. 그러기로 굳게 결심을 하고 나니 지나온 생이 쓸쓸해졌다. 나는 처음으로 내 삶에서 개인사적 재난에 맞닥뜨린 기분이었고 그 재난을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나갈 수 없다는 무능에 상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늦봄이거나 초여름이거나 그러한 계절이 아니라면 맡을 수 없는 새벽공기를 마시며 병원으로 향했다. 간신히 잠들었을 아버지 옆에 앉아 날이 새는 걸 지켜보았다. 아침은 오랜 노동을 마치고 귀가하는 사람의 낯처럼 파리했다.

조금 뒤 아직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50대 후반의 사내가 문병을 왔다. 아버지 못지않게 시커멓게 탄 얼굴이며 삐쩍 마른 몸이며 평상복인지 작업복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허름한 입성이며 한눈에 보아도 아버지의 동료인 것만 같았으나 알고 보니 아버지가 일하던 조경업체의 사장이었다.

그는 초조해하는 내게 두어달 전 산재보험에 가입했으니 아버지 수술비도 보험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산재보험 가입 의무에서 제외되어 왔던 5인 이하 사업장도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법률이 시행된 거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밤새 사채니 장기매매니 도둑질이니 하며 혼자 비장했던 일이 열없어졌다.

까다로운 수술이었으나 수술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마취에서 깨어난 아버지 앞에서 나는 병원비로 고심했던 흔적을 지우느라 애써 웃었는데 그 웃음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지금도 아버지는 당신의 사고 탓에 노심초사했던 기특한 자식으로만 안다.

이 법률이 시행된 시기가 ‘참여정부’이기는 했으나 그것이 참여정부만의 공적일 리는 없다. 수십년 동안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해 투쟁했던 노동자들 덕분임을 그때나 지금이나 잘 안다. 그리고 국가, 정부와 같은 권력기구들이 누구에게 권력을 부여받았느냐에 따라 성격이 무척이나 달라진다는 사실도 잘 안다.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왼쪽)과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이 22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세월호 인양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우리는 지금 재난의 시대를 살고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 재난 같지 않은 하루가 어디 있으랴만 재난을 재난으로 인식하는 한 재난을 극복할 가능성 역시 분명히 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그리고 지금 메르스 사태를 지켜보면서 많은 이들이 국가와 정부의 부재 혹은 무능을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재난을 재난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그것을 국가와 정부의 부재 혹은 무능이라 말하지 않는 이유는 국민이 죽어 가는데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에, 국민이 공포를 느끼는데도 진실을 감추려 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지키려 하기에 결코 부재나 무능이란 말 따위로는 설명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국가와 정부는 국민에게 적대적인 국가와 정부일 뿐이다. 국민을 적대하는 자들일 뿐이다.


손홍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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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세계적 열풍을 일으키고 있을 때, 이 소식을 다루던 외신 기사에서 ‘바이럴(viral)’이라는 영단어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바이러스성의’, ‘전염성이 강한’과 같은 뜻을 가진 단어로 당시 ‘강남스타일’ 뮤비의 급속한 전파력을 가리키기 위해 쓰였다.

마케팅 분야에서 ‘바이럴’이라는 용어는 이미 친숙하다. 인터넷 동영상이나 개인 블로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상품 홍보기술을 가리켜 ‘바이럴 마케팅’이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소비자 대중이라는 ‘숙주’에 상품 구매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바이러스’를 ‘전염’시킨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바이럴 마케팅’이 소비자의 능동적 참여를 이끄는 새로운 홍보 방식이라고 자랑하지만, ‘바이러스’라는 은유가 암시하듯 ‘전염’ 과정에서 능동적 인식과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여지는 많지 않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속 ‘간접광고(PPL)’와 연동하여 시청자의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식으로, 그것은 더욱 치밀하게 의도된 수동적 소비를 조장한다. 많은 경우 대행업체를 통해 전문적으로 행해지는 일종의 여론 조작 내지는 댓글 조작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의 일부 직원들이 자행한 ‘댓글 사건’은 ‘바이럴 마케팅’의 타락한 형태가 암암리에 공공 업무 영역에까지 침투하게 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정 대선후보에 대한 일방적 지지의 ‘바이러스’를 유포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린 그들의 행위로 인해 우리 사회의 공공성과 민주적 가치는 크게 훼손되었다.

비유적 의미에서 ‘바이러스 유포’는 사실상 민주적 지향과 배치된다. 그것은 불특정 다수로부터 특정한 행위나 반응을 유도해 내기 위한 밀실의 전략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와 합의의 정신과도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바이러스’와 ‘전염’은 자본주의적 가치 증식의 효율성을 나타내면서 우리 삶의 전 영역을 지배하는 상상력의 한 가지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화예술 영역의 ‘대중화’에 대한 논리 역시 많은 경우 ‘바이러스’라는 은유적 상상력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클래식 대중화’에 있어서 암묵적 관건은 어떻게 더 많은 대중에게 ‘클래식 바이러스’를 ‘전염’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오래전 방영되어 화제가 되었던 클래식음악 소재의 텔레비전 드라마 제목이 ‘베토벤 바이러스’였던 것도 이 점에서 우연이 아닐 것이다. ‘대중화’라는 말에서 기실 더 많은 관객이나 청중들의 확보에 대한 맹목적 의지가 읽힐 뿐이라면, 그것은 여느 영업사원의 마케팅 전략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실제로 문화예술의 공공성, 사회적·시민적 가치와 같은 논점들은 유료 관객수나 예술감독의 연봉 액수와 같은 회계 장부의 수치에 가려지기 일쑤다.

네이버 지식인의 질문 답변글을 바탕으로 확산된 ‘라조육이사이’ 괴담. 현재까지 지배적인 해석은 '라디오 이벤트' 바이럴마케팅 연습이라는 것이다. (출처 : 경향DB)


지금 한국 사회는 치명적 바이러스인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유입과 확산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채 혼란과 불안에 휩싸여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어쩌면 메르스 이전에 이미 독한 ‘바이러스’들에 감염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 사적 이윤 추구를 위해 유포된 ‘바이러스’들은 개개인을 숙주 삼아 기생하며 공적 신뢰를 침식하고 무력화해 왔다. 그런 ‘바이러스’ 유포의 장본인이기도 한 정부가 실제 바이러스가 유입된 위기 상황에서 시민들을 안심시키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음악에는 바이러스를 방불케 하는 강한 전파력이 있지만, 음악의 본질적 가치는 사실상 ‘전염(傳染)’이 아닌 ‘공명(共鳴)’에 있다. ‘전염’이 자신도 모르게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면, ‘공명’은 사고와 인식의 패턴을 공유한 주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와 설득, 그리고 타협의 목소리를 은유한다. 메르스 사태가 빠르게 진정되기를 바라지만, 지금 겪고 있는 사회적 혼란의 교훈이 음악적 비유와 함께 기억되었으면 한다. ‘공명’ 없는 ‘전염’은 ‘공멸’이라는 것.


최유준 | 전남대 HK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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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아직 홍대앞의 거대 상권이 만들어지기 전의 한적한 거리에 작은 술집이 문을 열었다. 술과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함께 놀기 위한 아지트 같은 공간이었다. 스트레인지 프룻이라는, 부르기도 힘든 이 가게의 간판은 알아보기도 힘들 만큼 작았다. 진정한 술꾼이라면, 게다가 이 가게 이름이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 제목에서 따온 것임을 아는 술꾼이라면 오히려 이 작은 간판은 매력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숨어있는 듯한 공간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음악과 술을 사랑하는 한량들의 즐거움이니까.

이 공간을 찾는 친구들의 수는 조금씩 늘어났다. 문화예술인들이 즐겨 찾는 공간의 수많은 전설이 증명하듯, 이곳도 손님과 주인의 경계가 뚜렷하지는 않았다. 취한 손님들은 신청곡을 종이에 적는 걸로 모자라 바에 앉아 음악을 틀었다. 그들 중에서는 음악인도 많았다. 단골이 된 뮤지션들은 어느덧, 이 공간에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한 팀 두 팀 있는 그대로의 공간에서 공연을 하더니 자신의 장비를 하나둘씩 가져다 놓았다. 그렇게 조금씩 그럴듯한 앰프와 드럼을 모두 갖추게 됐다. 술집의 공연장화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이런 스토리는 90년대 홍대앞 인디 문화의 출발을 상기시킨다.

문화의 기반은 공간이다. 하나의 지역에서 문화가 만들어진다면 색다른 공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명동에 쎄씨봉이 있었고 이태원에 문라이트가 있었다. 그리고 홍대앞에는 드럭, 스팽글 같은 라이브 클럽이 있었다. 새로운 지역의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졌다. 세상은 홍대앞의 그런 문화를 인디라 불렀다. 지금에야 음악인들이 이 클럽 저 클럽을 다니며 공연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일종의 전속 밴드 개념이었다. 크라잉 넛, 노 브레인을 보기 위해서는 드럭을 가야 하고 델리 스파이스, 코코어를 보려면 스팽글을 가야 했다. 다시 말해 공간마다 음악적 특색이 있었고 음악인들과 그들의 팬이 모여 만드는 개성이 공간에 스며들었다. 그런 사람들과 그런 분위기들이 합쳐져 라이브 클럽은 단순한 공연장이나 술집이 아닌 아지트가 됐다. 굳이 공연이 없어도 객석에서 안면을 익힌 사람들끼리 친구가 되어 밤마다 술잔을 부딪치고 음악을 들었다.

인디 신이 성장하면서 아지트로서의 클럽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레이블이 생기고, 공연을 할 수 있는 곳도 늘어났다. 뮤지션들은 클럽이 아닌 레이블에 소속됐고 객석의 규모와 음향 환경에 따라 공연할 곳을 고르게 됐다. 2000년대 초·중반 사운드홀릭, 쌈지스페이스 등이 생기며 본격적인 공연장 형태를 띤 공간이 등장했고 상상마당, 무브홀 등은 대학로 등지에 있던 소극장의 홍대앞 버전이었다. 즉, 홍대앞에 현존하는 10여개 공연장은 대부분 공연이 없을 때는 세상과 단절된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지트가 사라지더라도 아지트에 대한 욕망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취향이 뚜렷한 사람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래서 많은 술집, 카페가 라이브 클럽이 갖고 있던 아지트 역할을 해왔다. 그곳에서는 때로 공연도 벌어진다. 초기의 라이브 클럽들이 기본적으로 음악 술집에서 출발했던 걸 생각한다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개의 문화는 시스템 바깥에서 형성되는 법이다.

정기고, 홍대에서 펼쳐진 열띤 무대 (출처 : 경향DB)


음악 술집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공연장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한 스트레인지 프룻이 10주년을 맞았다. 뮤지션이자 이곳의 단골손님들, 혹은 띄엄띄엄 놀러 왔던 이들이 한 달 동안 연달아 공연을 벌인다. 6월1일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와 360크루가 시작했다. 27일 김대중, 김일두, 김태춘, 바버렛츠까지 총 14회에 거쳐 35개팀 이상의 뮤지션들이 무대에 선다. 웬만한 페스티벌을 능가하는 이 라인업은 10년 동안 음악인들의 술집으로서 기능해왔다는 작지만 묵직한 증거다. 홍대앞을 홍대앞으로 머물게 하는 공간에 대한 많은 뮤지션들의 헌사다. 라이브 클럽이 공연장 이전에 술집이자 아지트였던 시절의 흔적을 그리워하고 동경하는 이들에게, 2015년 6월 홍대앞의 작은 술집에서 그 추억과 동경을 재발견하게 해줄 것이다.


김작가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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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근처에 가면 얼마간은 자연주의자가 된다. 풀과 꽃, 나무와 숲 그리고 벌레와 새들이 사는 자연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아닌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숲을 두려워한다. 벌레 한 마리에 기겁하는 사람은 숲 근처에 가기를 꺼릴지도 모르겠다. 편견 몇 가지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가끔은 자연주의자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가끔 자연주의자라고? 자연을 문명의 건너편에 있는 무엇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쩌다 자연주의자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오롯이 자연과 더불어 지내기는 힘들다. 자연주의자란 문명 이후에 일부 인간들에게 나타나는 행동양식일 따름이다.

자연은 한 번도 나를 위해 존재한 적이 없다. 꽃만 해도 그렇다. 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정작 꽃은 사람에게 잘 보일 이유가 없다, 벌레라면 모를까. 말하자면 자연은 언제나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고 있을 뿐, 인간들은 자연 앞에서 언제나 국외자들이다. 그럼에도 자연의 존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훔쳐보는 것만으로 자연주의자가 된다. 숲에 가까이 있다 보면 자연이 주는 너무 많은 호사에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다. 그동안 사람들이 자연에 해온 짓을 생각해보면 더 그렇다.

숲에 딱따구리 부부가 산다. 늘 같이 붙어 다닌다. 날개 아랫부분이 검은색과 흰색의 알락무늬를 이루고 배 아래쪽이 붉은색인 걸 보면 오색딱따구리일 것이다. 가끔 건넛산에 머물기도 하지만 대개는 이곳 북쪽 사면에서 아침을 해결한다. 이들은 식량 창고 두 채를 임대해 놓았다. 두 그루의 죽은 소나무다. 아침이면 딱따구리 부부가 번갈아 구멍을 뚫으며 내는 드라마틱하고 공학적인 소리가 들린다.

딱따구리는 몸 자체가 고속회전 장치가 달린 해머 드릴이다. 머리뼈와 연결된 부리는 부러질 염려가 없어 쓸 때마다 갈아 끼우는 나의 스테인리스 드릴 날보다 몇 배는 유용하다. 물론 훌륭한 연장을 지니고 있는 목수가 해머 드릴만 다루지는 않는다.

또르르르 하는 기계음과 달리 나무를 쳐내듯 톡, 토독 하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자귀질 소리다. 주로 나무껍질을 벗길 때 머리의 방향을 틀어 여기저기를 번갈아 쪼아대며 나무껍질을 아래로 떨어뜨린다. 어쩜, 내가 하는 동작과 똑같아! 딱따구리가 아침 식사를 위해 다시 숲을 찾았다. 소나무 꼭대기에 자리를 잡은 녀석이 뽁뽁 하는 소리를 내며 즐겁게 테이블보를 펼쳐 놓는다.

몰래 나무 밑으로 가 한 아름이 넘는 소나무를 끌어안았을 때, 녀석이 드디어 포크를 들어 접시를 공략하기 시작한다. 순간 탁자가 흔들리며 해머 드릴 소리가 숲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소리는 손바닥으로 전해지고 나무의 진동이 가슴으로 파고든다. 새가 내는 소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큰 소리가 나는데 구멍을 뚫으며 나는 소리는 나무 기둥을 타고 밑으로 퍼지며 울린다. 나무에 귀를 대고 들어보면 소리는 마치 나무 속에서 나는 것 같다. 다른 쪽 귀는 숲에 퍼지는 소리를 들으니 말 그대로 서라운드 입체 음향이다. 감동적이다. 그 소리 하나로 나는 자연주의자가 된다.

까막딱따구리 어미가 둥지 안을 살피고 있다. (출처 : 경향DB)


며칠 뒤 새벽. 집이 울리는 요란한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예의 그 해머 드릴 소리였다. 순간 일요일 아침 아파트의 어느 집 벽에 액자라도 걸기 위해 뚫는 드릴 소리 때문에 아침잠을 설쳤던 때의 푸념이 저절로 나왔지만 곧바로 그게 우리 집에서 내는 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딱따구리가 지붕 어딘가를 쪼아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아스팔트 싱글로 된 지붕 속에 벌레가 살 리도 없고 여간해선 뚫어지지도 않을 테지만 도대체 왜 지붕을 쪼아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뒤로도 몇 번인가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 밖으로 나가보면 녀석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난 뒤였다. 흔적을 발견한 것은 다시 며칠 뒤, 딱따구리는 지붕 처마 밑에 덧대놓은 삼나무를 뜯어대고 있었다. 오일스텐이 발라져 있던 삼나무 판재는 여기저기 뜯겨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대로 두었다간 딱따구리 때문에 처마를 보수해야 할 날이 앞당겨질 판이었다. 딱따구리를 어떻게 쫓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자연주의자가 되기는 영 글러 먹었다.


김진송 | 목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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