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월(望月)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달을 바라본다’이고 다른 하나는 ‘보름달’이다.

망(望)에 담긴 뜻 가운데 ‘그리워하다’를 염두에 두면 ‘달을 그리워함’이라고 새겨 읽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망월 묘역에 다녀온 지 십수 년이 흘렀는데 그날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해서 그처럼 오랜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른바 IMF 사태가 터졌던 1997년 초겨울이었다. 이듬해 입대 예정이었던 나는 고향집에 머물면서 아침마다 휑한 들판을 거닐었고 발아래서 부서지는 단단한 서릿발들을 나 자신처럼 느끼며 정체 모를 슬픔에 사로잡혀 있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산책 삼아 집을 나섰다가 버스에 올랐는데 서너 차례 버스를 갈아타고 내려보니 어느덧 망월 묘역이었다. 정오가 가까운 시간이었으나 태양의 온기를 느낄 수는 없었다. 차가운 바람이 끊임없이 묘역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곳을 찾은 이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오래된 무덤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며 묘비에 새겨진 이름을 눈으로 더듬었다. 그리고 한 이름 앞에 오랫동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김준배였다. 잘 알지는 못해도 두어 번 본 적 있던 이가 그 아래 묻혔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무장 전경과 대치 상황에서 구호를 외치며 등록금 운영 감사, 공개와 교육제정 확보요구 시위를 하는 경기대 한총련 (출처 : 경향DB)


한총련 투쟁국장이었던 그는 그해 9월15일 경찰의 체포를 피해 아파트 13층에서 외벽을 타고 내려오다 추락사했다. 추락으로 인한 심장파열이 사인이었다. 오랫동안 그런 줄만 알았다. 덧붙이자면, 세월이 흘러 2002년에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그가 생각처럼 높은 층이 아닌 겨우 3층 정도의 높이에서 추락했다는 사실과 추락한 그를 경찰이 짓밟고 몽둥이로 폭행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로부터 13년이 더 흘렀으나 다른 많은 일들처럼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폭행으로 심장이 파열할 수도 있다는 걸 우리가 안다 해도 말이다.

여전히 바람은 차가웠고 여전히 묘역에는 나 혼자였다. 망월 묘역에서 광주시내를 오가는 버스는 드물었고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매점 앞에 앉아 소주 한 병을 마셨다. 그러다 누군가를 보았다. 검은색 모직코트를 입은 키가 크고 마른 여자였는데 잠깐 집 앞 슈퍼에라도 나온 것처럼 부드럽게 걸으며 묘역을 빠져나오더니 버스 정류장에 섰다. 묘역을 거니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전혀 몰랐던 이유가 그 걸음걸이 때문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비로소 그이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죽은 이의 연인이었다. 그해 2월 광주대에서 열린 문학행사에 참가했을 때 그이를 보았던 기억이 났다. 어떤 후배가 그이를 가리키며 나지막이 “저 언니랑 준배 오빠가 연인이에요”라고 했는데 그때 후배의 목소리는 푸른 하늘을 가리키며 “참 푸르죠?”라고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경탄으로 가득했다는 기억도 났다. 그 목소리만으로도 나는 두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고 그런 사랑은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이와 같은 버스에 탈 수 없었으므로 하릴없이 매점 앞에 앉아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두어 병의 소주를 더 마셔야 했다. 두 달 전에 죽은 연인의 무덤을 찾은 스물 서넛밖에 안 된 그이를 상상하기 싫어서였고 행여라도 나를 알아볼까봐 두려워서였다.

수십 걸음 떨어진 이쪽에는 심장이 파열된 젊은이가 주검으로 누워 있었고 수십 걸음 떨어진 저쪽에는 심장이 파열된 젊은이의 살아남은 연인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 도저한 거리감이 앞으로 끝없이 반복될 악몽의 하나임을 알 수 있었다. 이윽고 도착한 버스에 오른 그이는 결국 버스와 함께 사라졌다. 버스의 뒤꽁무니를 눈으로 좇으며 내가 해야 했으나 하지 못한 일들, 이를테면 무언의 눈길이라든가, 한마디의 위로라든가, 한 방울의 눈물이라든가, 그런 사소한 일을 용감하게 해내지 못했기에 언제까지나 그리움만 품은 채 다시는 쉬이 망월 묘역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나는 여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손홍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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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교과서를 들먹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치’라는 말이 지시하는 것과 현실에서 보여주는 ‘정치’는 다르다. 정치뿐인가? 지시하는 대상과 인식된 대상이 서로 겉도는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불일치는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동시에 그리고 유사한 형식으로 나타난다. 고향(평소에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으면서 명절 때가 되면 어머니의 품 같은 고향을 되뇌는)이나 어머니(필요할 때만 모든 걸 희생하도록 강요하는)와 같은 보통명사에서 정치, 철학, 예술과 같은 분야나 의사, 검사, 교사 등등의 직업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난다.

이를테면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전시를 하고 있는 작가들이 생각하는 미술과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술은 다르다. 전문가와 비전문가 혹은 창작자와 수용자와의 차이에서 오는 생각의 불일치 혹은 지적 수준의 편차를 말하는 게 아니다. 보통 사람들 중에서 미술은 아름다움을 다루는 예술일 거라는 생각이 아주 틀렸다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지만 전문가들에게 그 말은 생전 처음 듣는 말일 만큼 생소하다.

어쩌면 미술의 장에서 일하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그 말이 잘못되었거나 너무 거칠고 지나칠 만큼 단순한 말이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는 단순하든 심오하든 미술은 규정할 이유도 또 필요도 없다는 게 사실에 가깝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장소에서 미술은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묻는 평론가들조차도 그 질문과 이에 대해 내놓은 자신의 이론적인 답변이 그 장에서 아무런 파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단지 자신의 이론과 지식이 그 장이 존재하고 있는 혹은 존재해야 할 당위성을 설득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을 뿐이다. 그럴 때 그들이 말하는 미술은 마치 선거철만 되면 실패한 야당과 정치적 무관심을 질타하는 정치평론가의 칼럼과 유사하다.

사회의 모든 분야는 각각 전문적인 집단과 직업군 내에서 일정하게 합의된 원칙과 질서, 논리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의 발전이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발전을 가져오리라는 믿음이 근대주의 이후에 뒤바뀐 적은 없다. 그러나 원칙과 질서, 논리가 깨진 사회는 오직 형식적이고 관료적인 절차에 따라 구분된 전문가와 비전문가로 나누어지고 결국 그 분야의 전문화된 가치와 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분리된 심각한 언어의 불일치를 만들어낸다.

이야기를 좀 더 단순하게 하자. 미술은 예술의 한 형태이며 그것은 창의적인 상상력이 작용하는 생산 활동이다. 그런 미술은 사람이면 누구나 접하게 되는 예술 형태이며 그 미술이 도달하는 소통의 범주에 모든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미술의 장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미술을 움직이는 장의 범주에 보통의 사람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실제 많은 화랑들은 관객들을 배제하기 위해 디자인되며 작품을 발표하는 현장에 일반 관객이 개입되는 불상사를 초래하지 않기 위해 배려한다.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이 지난 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에서 ‘미술관의 탄생’이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설마 당신이 그렇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면 아마 미술계 밖의 사람일 것이다. 작품의 내용과 형식에서조차 그러하다. 오늘날 시가 그렇듯이 미술작품 또한 가장 불신받는 예술 형태이다. 대중이 작품을 접할 때 맞닥뜨리는 반응은 당혹스러움인데 그것이 미술작품의 가장 중요한 언어가 되어버렸다. 만일 누구든 한번 읽어서 무슨 내용인지 금방 알게 되는 시라면 그 시의 가치와 진정성을 의심받게 되듯이 한번 보고 좋아하게 되거나 그 의미를 알아볼 수 있는 작품이라면 적어도 그 장에 속한 전문가들의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 작품이 ‘모호함’의 외피와 ‘그럴듯함’의 내용을 가지게 된 건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 관객은 미술이란 장을 유지하기 위한 자장효과만을 가질 뿐이다. 관객은 미술이라는 장을 유지하고 확산시키는 효과만을 위해 존재하는 국외자들이다. 관객은 미술의 장에 결코 들어갈 수 없으며 단지 그 주위에 서성거릴 수 있는 가능성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대중이다. 정치가 그러하듯 일반 사람들에게 미술은 없다. 미술이 그러하듯 정치에 보통 사람들이 끼어들 틈은 없다.


김진송 | 목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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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은 대체로 또래의 아들들보다 더 일찍 현실을 깨치는 것 같다.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는 좀 더 일찍부터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누군가로부터 평가받는 일에 더 익숙해지기 마련이라는 점이 한 가지 이유가 될 것이다. 또한 가정 내에서 자식들의 현실 적응을 돕고 그들을 바람직한 삶의 방향으로 조련하는 일을 아빠보다는 여전히 엄마가 주도하는 경향이 있다. 동성 멘토(엄마)의 지도를 받는 딸들이 아들들보다 ‘길들여지기에는’ 좀 더 유리할 것이다.

오늘날의 엄마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높아진 사회적 성공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채 확신과 결의를 가지고 딸들을 대한다. 언제부턴가 중·고등학교의 학력 경쟁에서도 여학생들의 전반적 우위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하는데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전 지구화된 대중문화도 여성들의 현실참여 의지를 고무하고 있다. 최근 제작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여주인공들, 예컨대 <겨울왕국>의 여주인공들만 봐도 상황은 읽힌다. 마법으로 얼어붙은 누군가를 구출해 내는 것은 이제 남성이 아니라 여성의 일인 것이다.

여성적 섬세함이 요구된다고 하는 이 새로운 현실의 무대에서 엄마와 딸은 당당히 주인공으로서 만나게 된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엄마는 이 사회가 여전히 남성 주도의 거칠고도 냉혹한 현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엄마들은 더 가혹하게 딸들을 조련한다. 여성적 섬세함은 치밀하게 계산된 차가운 합리성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최근에 개봉된 피 칠갑의 누아르 영화 <차이나타운>은 의도치 않은 블랙코미디적 방식으로 이러한 현실을 비춘다. 폭력 조직의 일원인 여주인공(김고은)에게 ‘엄마’라고 불리는 보스(김혜수)는 이렇게 말한다. “증명해봐. 네가 아직 쓸모 있다는 증명.” 이렇게 해서 우리 사회의 오이디푸스는 성전환한다. 부친 살해는 모친 살해로, 무의식의 금기는 무기력한 아빠가 아닌 냉정한 엄마를 향한다. 얼마 전 화제가 된 이른바 ‘잔혹 동시’가 엄마에 대한 딸의 무의식적 살의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문제가 된 ‘학원 가기 싫은 날’이라는 동시 제목은 섬뜩하게 리얼하다. 아들들은 곧잘 PC방으로 샐 수도 있겠지만, 딸들은 가기 싫은 학원에 가서 엄마에 대한 무의식적 적의를 불태우는 것이다.

딸들에게 더욱 가혹한 현실은 자신의 능력이 아름다운 외모와 결합될 때만 이상적으로 발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달아야 한다는 데에 있다. 일찍이 막스 베버가 말했던 자본주의 정신, ‘합리적 절제’의 정언명령은 여성들의 다이어트와 몸매 가꾸기에서 그 극점에 도달한다. 이미 수년 전 여성 2인조 펑크밴드 ‘무키무키만만수’는 이 가혹한 현실에 대고 이렇게 울부짖었다. “왜 내가 이러고 있나. 그냥 잘살고 싶다오. 편히 잘살고 싶다오. 있는 그대로 살고 싶다오. 그게 그리 큰 꿈이었던가.”

최근 화제가 된 박진영의 뮤직비디오 역시 이 잔혹한 딸들의 현실을 재현한다. 피트니스 클럽에서 운동 중인 여성에게 박진영은 다짜고짜 허리 사이즈와 히프 사이즈를 묻더니,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에 대한 찬사와 함께 특정 신체 부위에 대한 자신의 도착적 취미를 수다스럽게 노래하다가 후렴구에 와서 이렇게 말한다. “어머님이 누구니. 도대체 어떻게 너를 이렇게 키우셨니.”

박진영의 뮤직비디오 <어머님이 누구니>의 한 장면 (출처 : 경향DB)


‘어머님’이라는 단어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소격효과로 인해 뮤비 속 섹시한 ‘여자’는 다시 누군가의 ‘딸’이 된다. 이쯤 되니 드는 생각이 있다. 이 사회가 진정으로 요구하는 것은 ‘여자’가 아니라 ‘딸’이 아닐까? 염색체를 통해 나뉘는 생물학적 성구별로서의 ‘딸’이 아니라 어떤 가혹한 요구에도 인내하고 순응하며 사회적 시선을 내면화하여 냉정하게 성공을 모색하는 인간형으로서의 ‘딸’. 그러니 엄마와 딸의 득세가 곧바로 여성해방이나 역사의 진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음란서생’ 분위기를 풍기는 박진영의 ‘어머님이 누구니’라는 물음이야말로 이 고색창연한 21세기, 잔혹한 ‘딸들’의 사회를 여과 없이 비추어 보이는 듯하다.


최유준 | 전남대 HK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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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제이지, 마돈나, 다프트 펑크 등 당대의 스타들이 손잡고 새로운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내놨다. 타이달이라 이름 붙여진 이 서비스는 해당 아티스트의 최신 음원을 들을 수 있는 건 물론이고, 기존 서비스에서는 제공되지 않는 고음질 음원도 감상할 수 있다. 기대를 모았던 이 서비스에 대한 반응은 그러나, 영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음악 산업을 주도하는 이들이 모인 ‘어벤져스’임에도 불구하고 타이달이 힘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라는 불편하지만 당연한 사실 때문이다.

음악을 듣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있다. 음반이 가장 비싸고 음원 다운로드가 그 다음, 스트리밍이 가장 저렴하다. 음반은 음악이 담긴 CD알판, 패키지와 케이스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음악을 영구 소유할 수 있으니 높은 가격이 매겨지는 게 당연한 일이다. 물리적 패키지는 없지만 음원 역시 음악을 소유한다는 점에서 그 다음 순위를 차지할 수 있다. 반면 스트리밍은 음악을 감상할 수 있을 뿐 소유할 수는 없으니 비용이 가장 저렴하다. 요컨대 음악이란 소유와 감상, 두 가지 측면에 의해 가격이 매겨진다.

모바일 시대의 도래는 이 둘의 소비를 양극화시켰다. 과거의 유물로만 여겨졌던 LP는 전체 음악 플랫폼 시장에서 최근 몇 년간 괄목할 만한 점유율 상승을 보이고 있다.

2014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판매된 LP는 920만장에 이른다. 전년 대비 52%라는 놀라운 상승세다. 이 통계를 발표한 미국의 음반 판매량 집계기관인 닐슨 사운드 스캔이 집계를 시작한 1991년 이래 가장 많은 판매량이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 유의미한 판매량 증가는 없지만 다시 LP를 찍는 뮤지션들이 늘어나고 있다. 유재하, 들국화, 김광석 같은 고전부터 김동률, 이적, 아이유, 장기하와 얼굴들, 3호선 버터플라이 등 동시대 뮤지션들 또한 LP를 발매했다.

LP가 추억의 대상이 아닌 현재 진행형의 저장 플랫폼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다. 모든 음악 플랫폼 중 LP만큼 소유의 기쁨을 충족시키는 매체는 없기 때문이다. 30×30㎝의 커버가 있고 지름 12인치의 바이닐은 마치 대화면 TV와 같은 시각적 쾌감을 준다. 음악의 역사에서 LP의 전성기였던 1970~1980년대에 커버 아트가 가장 발달했던 이유도 이 크기에 있다. 또한 판을 꺼내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얹어 한 면을 들은 후 다음 면으로 뒤집는 일련의 과정은 음악 감상을 일종의 제의적 가치로 승화시킨다.

보관하기도, 감상하기도 가장 번거로운 장치지만 역으로 소유 가치를 최대화하는 것이다. 역시 소유 기능을 하는 CD와 음원 다운로드의 미국 내 판매량이 2014년 전년 대비 각각 9%, 12%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소유로서의 음악 플랫폼이 LP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LP판 (출처 : 경향DB)


하지만 LP의 시장 점유율은 아직 6%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문명 발전 과정과 마찬가지로 음악 시장의 논리 역시 편의성에 기대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2014년 판매량이 전년 대비 54%라는, 폭발적 증가세를 보인 것이 단적인 증거다. 모바일 시대에 ‘음악의 소유’라는 개념은 사실상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만 된다면 언제 어디서나 자기가 듣고 싶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수만권의 책이 소장된 도서관을 갖고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문제는 이 편리성에 지불하는 비용이다. 21세기 초 애플이 주도한 다운로드 시장에서는 음반과 음원의 가격에 큰 차이가 없었다. 이 정책은 하나의 표준이 되어 국내 음악 관계자들이 음원 유통사를 대상으로 벌여왔던 음원 가격 정상화 투쟁의 근거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트리밍 서비스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몇 천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 1위인 스포티파이의 경우 오프라인에서도 음악 감상이 가능한 프리미엄 버전이 고작 9.99달러다. 유료 결제 대신 광고를 듣는 버전은 심지어 무료다. 소유를 위해 필요한 공간(음반 수납장이건 하드 디스크건)은 사라지고 모든 음악을 들을 수도 있는데, 그 비용은 한없이 저렴해진 것이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달가울 리 없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인기 여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자신의 음악을 빼버리며 ‘스트리밍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유도 여기 있다.

타이달이 보여주듯, 스트리밍이 대세가 될수록 음악의 가치는 내려간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음악의 값을 소유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매기는 건 아날로그 시대나 디지털 시대 초기까지의 패러다임일 것이다. 더 이상 ‘소유로서의 음악’이라는 개념이 무의미해진 지금, 음악의 값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김작가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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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목감기로 내리 3주를 앓았다. 그 긴 시간 동안 내 삶은 엉망이 되어 마냥 우울했다. 유난히 병치레가 잦은 나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이 몸에 대해 늘 탄식한다. 내 몸은 결코 나의 것이 아니다. 병이 들면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헛된 나를 반성하고 삶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니 병든 몸이 나에게는 선생이다. 호된 감기를 겨우 물리치니 어느덧 4월이 간다. 유독 봄날은 슬프고 잔인하다. 물에 빠져 죽은 수많은 이들의 원혼이 4월 내내 흐드러진 꽃잎 속에서 흩어졌다. 그러자 이내 5월이 오고 이제는 아득해진 ‘80년 5월’의 무수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면 6월이 와서 한국전쟁 중에 죽어간 혼령들을 또 대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4월에서 6월까지의 계절이란 참혹한 죽음을 기억하는 나날들이다. 그런 죽음과 함께 내 주변에서 죽어간 이들의 얼굴도 떠올려본다. 가족과 지인들의 얼굴과 몸들이 마구 엉키고 좀처럼 또렷한 상을 이루지 못하고 죄다 문드러진다. 산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아프게 추억하고 절박하게 기억하는 일이다. 그러고는 이제는 더 이상 불리지 않는 이름을 잠시 호명해본다.

아리에스는 “죽음은 한 개인의 소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 집단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므로 그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 죽음은 늘 사회적이고 공적인 사실이었다”라고 말한다. 사회적이고 공적인 사실인 죽음을 상기해본다. 지난 역사 속에서 죽어간 목숨들도 기억해본다. 오늘날 우리는 지난 역사의 현장에서 죽어간 이들을 어떤 식으로 기억하고 인식하고 있을까?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산 자들의, 살아남은 자들의 일이자 의무는 아닐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공부이자 학문의 영역이고 예술의 자리다. 죽은 이를 기억하고 그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현재의 삶을 성찰하는 일이 결국 학문하는 일이자 예술의 일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김다영양의 어머니 정정희씨 작품 전시회가 열린 4일 안산 성포동 단원미술관에서 관람객이 정씨의 작품 ‘2학년 10반’ 을 감상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최근 ‘죽음’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죽음이 새삼 성찰의 대상으로, 문제적인 것으로 부상했다. 죽음이 빈번한 사건이자 핵심적인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서 죽음이 빈번해졌기에 그렇다. 그에 따라 죽음으로 내모는 이 척박한 사회현실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요구되는 한편 인간의 바람직한 삶과 죽음의 조건에 대한 인식도 뒤를 잇고 있다는 생각이다. 타자들의 죽음은 나의 실존에 영향을 끼치는 매우 중요한 변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타자의 죽음에 주목해야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미술이 자신의 삶에서 유래한 모든 문제를 시각적으로 해명하는 작업이라면 한국 사회에서 빈번하게 자행되는 여러 죽음에 대해서도 작가들이 고민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한 인식 아래 한국의 구체적인 정치와 현실, 그리고 문화적 현상 속에서 왜 죽음이 초래되고 있으며 어떤 죽음이 문제적인지, 과연 죽음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미술에서도 긴요하게 요구되는 일이다.

미술이 인간다운 삶과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려는 본능적인 욕망의 실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죽음과 죽음으로 이끄는 모든 것에 대해 저항하고 반성하려는 것은 당연한 시도다. 그러니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사유를 보여주려는 미술은 결코 죽음을 회피할 수 없다. 이미 인간 존재 자체가 근본적으로 떨쳐낼 수 없는 비극적인 조건 속에 놓여 있다. 그 안에서 미술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아마 ‘애도’일 것이다.

인간은 죽음에 대한 더 많은 앎과 성찰, 애도를 통해 삶을 더 존중하게 된다. 애초에 미술은 애도로부터 시작되었다. 죽어간 이들, 죽음과 부재에 대해 이미지로 저항하고자 한 것이 미술의 역사였다. 죽음을 불러내고 그 죽음에 대해 깊이 사유하며 비극적인 죽음을 위무하고 치유하는 기능이 미술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미술인들은 과연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숱한 죽음에 대해 어떤 애도의 작업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박영택 |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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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모든 교육감이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에 반대한다는 뜻을 한 입으로 밝혔지만, 교육부에서는 여론을 무시한 채 강행하려나 보다. 이게 왜 헛일이자 뒷걸음질인지 열 가지만 까닭을 추려보겠다.

첫째, 중·고교 교과서에는 한자를 병기할 수 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자가 점차 사라져 이제는 찾을 수 없다. 정부가 강제한 게 아니라 교과서 집필진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하여 일어난 일이다. 신문에서 한자가 사라진 것과 같은 현상이며, 시대의 큰 흐름이다. 대한민국의 문자 생활은 한자가 사라진 뒤 더욱 발전하였고, 초등 교육도 마찬가지다. 둘째, 국어사전에 나오는 낱말 가운데 한자어가 57%를 차지한다지만, 사전은 원래 낱말을 보관하고 찾아볼 요량으로 만든 것이니 쓰지도 않는 한자어가 수두룩하게 올라 있다는 게 병기의 근거일 수 없다. 평소에 쓰는 한자어는 우리가 ‘커피’를 coffee라고 적지 않아도 뜻을 아는 것처럼 한글로만 적어도 뜻을 알 수 있는 우리말이 되었다.

셋째, 한자 병기는 책 읽기를 방해하는 함정일 뿐이다. 한자를 읽을 줄 알아야 뜻을 알 수 있다고 믿는 아이들은 문장 전체를 읽기보다는 한자 함정에 빠져 바깥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한자를 모르는 아이들은 병기된 한자 함정 때문에 우물쭈물하다가 읽기의 맥이 끊긴다.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위험한 게 바로 한자 함정이다. 이 한자 함정에서 벗어났기에 우리나라의 15세 청소년들이 국제학업성취도평가 문해력 부문에서 최상위에 오른 것이다. 넷째, 고유어든 한자어든 낱말의 속성과 쓰임새를 맥락 속에서 풍부하게 알려주는 교육이 중요하지 그 시간을 병기된 한자 암기로 허비할 까닭이 없다. 더구나 낱낱의 한자 뜻과 그 한자로 이루어진 낱말의 뜻이 잘 어울리지 않는 경우도 숱하다. ‘방송’ ‘회사’ ‘주식’ ‘민주주의’ ‘선생’ ‘제자’ ‘함수’와 같은 말의 한자를 찾아보면 그 뜻의 조합이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말과 얼마나 다른지 쉽게 알 수 있다.

다섯째, 추상적인 개념을 구성하는 한자들은 낱자의 뜻도 추상적이거나 한자어인 경우가 많아 이를 가지고 뜻을 풀이해도 여전히 추상적이거나 동어반복에 그치기 쉽다. 재물은 재물 재(財)에 물건 물(物)인데, 두 글자의 뜻도 추상적인 한자어의 동어반복일 뿐이다. 이런 한자를 병기한다 하여 낱말의 뜻이 살아나겠는가?


여섯째, ‘부모’나 ‘학교’처럼 낯익은 한자어는 그 말뜻을 이해하는 데에 한자 병기가 전혀 필요하지 않고, 반면 ‘파충류’와 같은 전문용어들은 그 말을 이루는 한자도 자주 볼 수 없는 한자라 병기해도 도움이 안 된다. 대부분의 말은 병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고, 어려운 말은 한자도 어려우니 병기해도 소용이 없다. 말로 풀어줘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걸 병기하여 어려움만 키우는 꼴이다.

일곱째, 한자를 아는 아이와 모르는 아이 사이에 한자를 둘러싸고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기 시작하면 수업 운영이 어려워진다. 초등학교에서는 지식을 정교하게 심어주기보다는 공부하는 힘과 창의적인 태도를 길러주고 민주시민의 인성을 만들어가는 데에 힘써야 하는바, 한자 병기는 모든 과목에서 이걸 방해한다. 여덟째, 고유어든 한자어든 동음어는 맥락 속에서 그 뜻을 파악하는 능력을 키워야 하지만, 한자 병기는 그런 능력을 약하게 만든다. 수학의 ‘분자’와 과학의 ‘분자’는 같은 한자를 사용하지만, 결코 같은 뜻이 아니다.

아홉째, 하나의 한자에는 뜻이 한 가지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최소 두어 개에서 열 개 넘는 경우가 많다. 하늘 천(天)에는 10가지, 아비 부(父)에는 6가지의 뜻이 있으니, 이런 뜻 가운데 무엇과 무엇이 조합되었는가를 외우는 일은 암기할 거리만 늘리는 무모한 짓이다.

마지막으로, 한자가 병기된 교과서로 공부하려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한자를 익혀야 한다고 생각할 테니, 사교육과 선행학습이 번성한다.


이건범 | 작가·한글문화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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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다룬 문학작품은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유구하다. 격정적이고 숭고한 사랑을 보여준 <로미오와 줄리엣>, 끝내 스스로를 파괴시킬 수밖에 없었던 한 젊은이의 사랑을 묘사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그리고 <소나기>의 풋풋하고 순정한 사랑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사랑을 다룬 문학작품을 만날 수 있다. 기이한 사실 가운데 하나는 앞서 언급한 작품들의 경우 등장인물 대부분이 죽는다는 점이다. 로미오도 죽었고 줄리엣도 죽었다. 베르테르도 죽었고 윤초시댁 증손인 소녀도 죽었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이 죽음이라는 플롯을 애용한 것도 하나의 이유이겠지만 결국 죽음이 아니고서야 진정한 사랑을 드러내기가 묘연하다는 인식이 전제되어서였으리라.

다시 말해 현실 혹은 삶에서는 진정한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지녔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사랑을 다룬 문학작품이야말로 사실은 사랑의 불가능성을 다룬 것이며 사랑에 대한 이 비극적인 인식이야말로 우리가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진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태초에 사랑이 있었네> 역시 사랑을 다룬 소설이다. 다만 이 소설의 인물들은 기대한 것만큼 숭고하거나 격정적이지도 않고 우아하거나 은근하지도 않다. 원하는 것을 소유해보지 못한 적이 없는 부유한 사내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 여자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 여자는 사내에게 사랑을 바랐으나 사내는 지금까지 해온 방식대로 여자를 대한다. 여자가 떠난 뒤에야 사내는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깨닫게 되며 진정한 사랑을 찾아 모든 걸 버리고 길을 나선다. 여기까지는 진부하다 못해 진저리가 쳐질 만큼 익숙한 사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남다른 점은 바로 그 뒤의 상황인데 사내는 작은 항구 도시 술집에서 작부로 일하는 여자를 찾아내고 매일처럼 그 술집을 찾아간다. 여자는 사내를 구박할 뿐만 아니라 버러지 취급을 하며 온갖 모욕을 주지만 사내는 이 모욕을 참고 견디는 것이야말로 사랑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으며 꿋꿋이 자리를 지킨다. 독자로서 이 사내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내가 사랑을 증명하는 방식 역시 이전에 그가 그러했던 것처럼 독선적이며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사내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사내의 태도는 아름답다기보다 섬뜩하다. 집요함과 절박함은 있으나 사내는 여전히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이 사내를 비난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통째로 지불하려 한다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단 한 번도 소유해 본 적 없는 무리에 속했던 사내가 그 무리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사내는 불가능해 보이는 그 일을 해낸 셈이며 그런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 진상규명을 외치며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친구를, 선생님을 잃고 남겨진 이들의 시간이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참사를 불러일으킨 근본적인 패러다임과 대결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이들은 지금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고 있다. 학살과 다름없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해달라는, 책임자를 처벌해달라는 요구야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건 없다는 신념을 지닌 대통령부터 국무총리를 비롯해 이 시대를 떠받치는 패러다임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요구는 패러다임의 전면적인 해체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언제나 그렇지만 패러다임과 대결을 벌여야 하는 그이들은 무척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이들은 슬픔을 삼킨 채 거리로 나섰고 경찰의 폭력에 짓밟혀 피 흘리고 있다. 오직 그이들이 이 시대가 용납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그런 이유로, 인간의 역사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실현함으로써 한 걸음씩 전진해왔음을 돌이켜볼 때,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는 그이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걸어야 한다.

손홍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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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12일 이탈리아의 로마 오페라 극장에서는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가 공연되고 있었다. 3막의 유명한 합창곡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가 막 끝나고 객석에서 앙코르 요청이 쇄도하자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는 갑자기 객석을 향해 돌아서서 예정에 없던 짧은 즉흥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이탈리아 만세(Viva Italia!)’를 외쳤던 관객들에게 합창곡 가사의 한 구절을 빗대어 담담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탈리아 만세라, 글쎄요. 이탈리아가 이런 식으로 간다면 이 노래의 제목은 ‘아름답지만 잃어버린 조국’이 될 겁니다.”

당시 부패와 성추문으로 얼룩진 베를루스코니 정권이 포퓰리즘적 세금 완화 정책으로 악화된 정부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문화예술 예산의 대폭 삭감 조치를 취한 데 대한 비판이었다. 이어서 무티는 관객들을 향해 앙코르곡 합창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했고 기꺼이 기립하여 노래하는 청중들을 위해 오케스트라를 등지고 지휘하는 보기 드문 광경을 연출했다. 이 합창곡이 흔히 ‘히브리 노예의 합창’으로 불리는, 이탈리아인들의 비공식 애국가다.

실제로 1842년 초연 당시 작곡가 베르디는 오스트리아 지배하에 있던 이탈리아 민중의 처지를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에 투영했다. 하지만 베르디가 표현한 것은 맹목적 애국주의가 아니었다. 사회성 짙은 그의 오페라들은 사회적 개인이 가족애와 연인에 대한 사랑 등 실존적 갈등과 딜레마 속에서 지향하는 국가적(민족적) 명분을 표현하고 있으며 초기 걸작인 <나부코>도 예외가 아니다.

이탈리아의 통일 150주년을 기념한 이날 오페라 공연에서 지휘자 무티는 베르디식의 애국가가 어떻게 불려야 감동을 만들 수 있는지를 음악가의 직관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애국가, 즉 나라 사랑하는 노래는 국가를 향한 시민의 자발적 외침일 때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자칫 그 반대가 될 때는 추악한 노래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제국주의와 파시즘의 역사를 배운 이탈리아인들이라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윤치호가 쓴 애국가. 1907년 작사한 것으로 현재의 가사와는 군데 군데 다른 곳이 보인다. (출처 : 경향DB)


나라 사랑하는 노래는 인류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 부르게 된 노래다. 한반도 사람들도 20세기 들어서야 그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암울한 식민지 시기 독립군가가 그랬고 ‘올드랭사인’ 곡조에 맞추어 부르던 애국가가 그랬다. 해방 이후 같은 가사에 다른 곡조로 부르게 된 지금의 애국가 또한 그렇다. 작곡가의 친일 행각이 밝혀져 적잖은 오점이 찍혔지만 1960년 4·19혁명의 학생들도 1980년 오월 광주의 시민군들도 안익태 작곡의 이 애국가를 불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도 시민들은 애국가를 불렀다. 월드컵의 애국가는 격이 떨어진다고 얘기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애국가 역시 이상적 공동체를 꿈꾸며 불렀던 자발적 시민들의 노래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애국가가 위와는 정반대 의미로 불렸던 기억들이 있다. 영화 <국제시장>의 유명한 국기 하강식 장면은 그 집단적 기억을 풍자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주인공들이 부부싸움까지 멈춘 채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선 채로 찡그린 표정으로 듣던 영화 속 그 애국가는 국가와 사회의 존재 의의를 묻고 요청하는 시민의 노래가 아니었다. 정반대로 시민의 자격을 억압적으로 심사하는 권력자와 관료들의 노래였을 뿐이다.

최근 여당에서 추진하는 이른바 ‘애국3법’에는 애국가를 국가(國歌)로 정식 제정하고 공적 행사에서 애국가 제창을 의무화하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애국가와 애국심을 강조하는 저의를 의심하는 국민들의 시선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정치인들은 성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애국가는 국민이 국가를 호출하는 노래여야지 그 반대일 수는 없다. 애국가가 진정 ‘나라 사랑하는 노래’라면 국가 공동체의 위기 상황에서 더욱 애절하게 불릴 것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이것이 나라인가!’라는 탄식 속에서도 한국의 시민들이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애국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국제시장> 국기 하강식 장면의 기억이 새겨진 애국가,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이 각인된 그 노래를 진도 앞바다를 향해서 차마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최유준 | 전남대 HK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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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애국가

한대수는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통기타 문화가 막 발아하던 시절, 모두가 외국 팝을 부르거나 가사를 번안해 노래하던 때 미국에서 돌아온 스무 살 청년은 ‘행복의 나라로’ ‘물 좀 주소’ 같은 자작곡을 불렀다. 한국 최초의 싱어송라이터였다.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김민기의 데뷔 앨범과 더불어 통기타 문화는 여기에서 청년 문화로 발전했다.

나이를 먹어도 그는 ‘어른’보다는 ‘영원한 히피’에 가깝다. 그는 사인에 언제나 ‘peace(평화)’라는 단어를 넣는다. 모든 공연에서도 평화를 이야기한다.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다. 그의 음악을, 인생을 보면 자유로부터조차 자유롭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한대수를 위한 트리뷰트 앨범이 나왔다. 앨범과 더불어 가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사랑은 사랑, 인생은 인생>도 냈다.

가수 한대수 (출처 : 경향DB)


지난 8일 열린 앨범 및 책 발간 기자회견에서 한대수는 신곡 ‘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앨범에 신곡이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옛날 노트를 뒤졌다”며 설명을 시작했다.

미국에서 갓 귀국한 후 종로의 음악다방에서 공연을 시작한 한대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1960년대 후반의 서울, 아무리 젊은 세대라도 그의 긴 머리와 히피 스타일의 차림새에 익숙할 수는 없을 때였다.

그런 그를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 음악다방의 DJ였다. 음악에 대한 호감은 자연스레 인간에 대한 연정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한대수의 하숙방에 와서 살림도 도맡았던 모양이다. 단벌 신사였던 한대수의 바지를 빨래 방망이로 두들겨 빠는 모습을 보며 20대 초반의 한대수는 ‘내 사랑은 꿈같이 내 옷 빨아주지요’로 시작되는 노래를 썼다.

하지만 이 노래는 한 번도 녹음된 적이 없다. 곡은 미완성 상태로 누렇게 변해가는 노트 속에서 40년을 머물러 있었다. “가사를 다시 보니 너무 민망하더라고요.” 한대수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한대수의 미발표곡을 포함, ‘행복의 나라’ ‘물 좀 주소’ ‘바람과 나’ 등 대표곡 13곡이 담긴 <Rebirth>는 여러 면에서 기념할 만하다.

애초에 기획 자체가 음반 제작사에 의해 시작된 게 아니다. CBS <라디오 3.0>에서 라디오 실험으로 1974년 발표된 한대수 1집 40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음반을 만들기로 했다. 지난해 5월 시작된 이 기획은 제작 전 과정을 생중계했다. 방송뿐만 아니라 SNS를 통해 청취자들과 소통하며 진행된 이 기획은 11월까지 이어졌고, 소셜펀딩과 팬클럽의 후원으로 제작비를 마련했다. 한대수 3집 <무한대>에 기타 세션으로 참여했던 손무현 성신여대 교수가 프로듀서를 맡았고, 자신의 제자들로 밴드를 꾸려 사운드의 기반을 닦았다.

한국 최초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한국 대중음악에 ‘사랑과 평화’로 요약되는 1960년대 히피 정신을 불어넣었던 이 위대한 선배를 위해 후배들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였다. <Rebirth>에 참여한 음악가들의 면면은 화려함을 넘어 한국 대중음악의 계보를 보여준다. ‘쎄씨봉’ 시절부터 그의 친구였던 조영남이 에코브릿지가 편곡한 ‘바람과 나’를 불렀다. YB는 ‘행복의 나라’를 동시대적 포크 록 사운드로 들려주고 이현도는 ‘물 좀 주소’를 일렉트로니카로 재창조했다. 전인권이 ‘자유의 길’을, 강산에가 ‘옥의 슬픔’을 원곡 이상으로 뽑아낸다. 호란과 이상은도 각각 ‘그대’와 ‘One Day 나 혼자’를 여성의 목소리로 흘려 보낸다. 한대수는 그들의 사이에서 40년 동안 발효된 굵직하고 흐트러진 육성을 입힌다. 여느 리메이크, 혹은 트리뷰트 앨범들에 비해 전체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이 한국 대중음악사의 거장에 대한 진정한 존중과 원곡에 대한 이해, 그리고 탁월한 해석이 어우러진다. 한대수 또한 팔짱 끼고 근엄하게 인사를 받는 대신, 그들과 함께 논다. 과연 영원한 청춘이요 히피다.

우리 음악계에는 많은 어른들이 있지만 한대수 같은 이는 극히 드물다. 스스로 권위의 벽을 세우거나 존경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격없이 머물며 자연스러운 권위와 존경을 만들 뿐이다. 그런 사람이 한대수와 김창완을 빼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Rebirth>의 높은 완성도는 한대수의 곡이 동시대의 문법으로 충분히 자연스럽게 소화될 수 있다는 증거이자, 그가 음악계에 몸담아온 시간 동안 마주쳤던 이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인증서다.


김작가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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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기 전부터, 아니 집을 짓기 위해 나무를 자르고 숲을 파헤치기 전부터 그곳에 정원이 있었다. 정원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자연의 한가운데를 파헤치고 들어앉아 다시 자연을 끌어들일 인위의 공간을 만든다는 건 우스운 일이다. 숲은 사람이 들어앉을 공간을 내주기 위해 이미 충분히 양보한 터였다. 앞마당 한가운데에는 두 그루의 소나무와 세 그루의 참나무가 살아남았다. 그 사이의 빈 공간은 무엇으로든 채워져야 했다.

아파트 베란다에 처박혀 있던 난초, 무심한 주인을 닮아 십여 해 동안 한 번도 꽃을 보여주지 않았던 난초가 화분에서 해방돼 자리를 잡았다. 실상은 그곳에 버려졌다. 숲 아래 대나무 사이로 자라던 후박나무는 숲을 가로지르는 수도공사를 하며 뜯겨와 그곳에 심어졌다.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키 작은 몇 그루의 나무들과 풀 몇 포기가 있게 되자 졸지에 정원은 나름의 모양새를 원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키 큰 진달래 앞에 작은 진달래가 하나 더 놓여 있어야 제격일 것 같았고, 한 뼘만 하게 자란 소나무가 자리 잡을 공간이 또 필요했으며 오솔길을 가로막은 정금나무를 후박나무 옆에 놓아야 했을 때는 이미 정원이라고 불러야 할 곳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푸근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듯 말 듯 감질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사정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뒤뜰에 심어놓은 매화 때문인지도 몰랐다. 꽃망울 끝이 조금 갈라져 비율로 치자면 노루 엉덩이만큼의 흰빛을 보여주었을 때, 그리고 그로부터도 한참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는 매화에 그만 화를 내고 말았다. 급기야 장날 읍내로 나가 꽃을 사오게 됐다. 히아신스와 무스카리. 바람이 드세고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꽃이 한두 포기 심어지자 꽃밭에 대한 욕망이 더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였다. 숲에 들어가 씨가 떨어져 한 뼘도 못되게 자란 편백나무와 어린 삼나무를 캐어와 심기도 하고 어디나 지천인 사스레피 나무를 둔덕에 심기도 했지만 꽃에 대한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자연이 인간이 사는 공간을 꾸미는 장식의 일부가 되었을 때 정원이 시작되었다. 정원을 가꾸는 일은, 인간이 하는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욕망의 산물이다. 마당 한 귀퉁이에 꽃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고, 퇴비를 덮고, 물을 주고, 벌레를 잡고, 잡초를 거두어내며, 가지를 치는 일들이 거실에 모노륨을 깔고, 벽지를 바르며, 소파를 들이고, 텔레비전을 사 걸고, 커튼을 새것으로 바꾸는 일과 얼마나 다른가? 뒷마당의 매화가 얼마나 멋지게 피었는지 이웃의 손을 잡아끌고 가 기어이 코앞에 들이대고야 마는 행위와 엊그제 새로 들여놓은 냉장고의 문을 우아하게 열어 보이는 행위는 또 얼마나 다른가?

순천만 정원 국가정원 1호로지정 _ 연합뉴스


욕망의 크기와 성격, 대상의 차이가 있을 거라고, 물질에 대한 욕망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원사가 딸려 있는 저택의 향나무나 강변에 자리 잡은 별장의 뒤틀린 소나무를 보면 두 욕망이 그리 다를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과꽃과 채송화와 맨드라미가 피어 있는 시골 외갓집의 소박한 꽃밭과 글라디올러스와 튤립과 칸나가 자라는 별장의 정원이 어떻게 다른지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자연을 소유하는 것 역시 물질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자부심의 소산일지도 모르겠다. 번쩍거리는 주상복합의 아파트를 감싼 소나무, 기하학적 건물 사이를 채운 대나무들은 자연과 극단적으로 멀어졌을 때 자연조차 인위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 강박의 결과이다.

꽃과 나무를 소유하려는 욕망에 대해서는 그게 아무리 지나치더라도 우리는 관대하다. 자연에 대한 본능이 아직 남아서일까? 매화는 3월 중순이 되어서야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작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다 간난아이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릴 때 드러나는 하얀 앞니처럼 꽃잎을 한두 개 내놓더니 잔뜩 웅크린 모습으로 나머지 꽃잎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오늘내일한 지 보름 만이다. 한 번 꽃을 틔우자 언제 새침을 떨었나 싶게 꽃들이 만발하기 시작했다. 자연은 때가 되면 욕망을 자연스럽게 채워준다. 인간이 안달하거나 말거나.


김진송 | 목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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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에 갔다 왔다. 태화산의 기운과 봄날의 공기, 바람, 햇살이 모두 좋다.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는 말이 있듯이 봄날 마곡사 운치가 제법이다. 투명한 녹색의 새싹들이 가시처럼 박혀 있는 모습이 그저 경이롭다. 꽃을 보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노란 산수유만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마곡사 대광보전 앞에서 강세황의 필세를 유심히 보다가 그 옆에 자리한 작은 건물에 들렀다.

김구 선생이 머물던 곳인 백범당이다. 개화기와 일제 사이의 만 3년을 민족의 영원한 사표인 백범 김구가 입산하여 그의 청년시대의 은신처로 삼았던 곳이 이곳 마곡사다.

충남 공주 마곡사 백범당 (출처 : 경향DB)


그는 하은의 상좌가 되어 입산한 그 다음날 득도식을 마치고 원종이라는 법명을 받고 머리를 깎았다. 1898년 그의 나이 23세 때 일이다. 그는 1년간의 출가생활을 끝내고 환속하였다.

오늘날 그가 거처했던 곳은 문이 굳게 잠겼고 다만 벽면에 사진 몇 장과 그의 글이 액자로 걸려 있다. 한쪽 벽면에는 사진을 복사해서 흡사 동상처럼 기대어놓았다. 그 형색이 조악하고 초라하기 그지없다.

김구 선생의 동상은 1969년에 김경승에 의해 제작된 것이 최초의 것이다. 김경승은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돌아온 이로 전형적인 구상조각, 이른바 아카데미즘에 충실한 작가였다. 그러나 그는 대표적인 친일 미술인이기도 하다. 그런 이가 김구 선생의 동상을 제작했다는 사실이 너무 아이러니하다. 결코 반성을 모르고 부끄러움을 잊고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우가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된다.

1936년 8월에 제7대 총독으로 미나미 지로가 경성에 부임했다. 만주사변을 거친 후 중일전쟁과 향후 태평양전쟁으로 치닫는 상황 속에서 그는 내선일체와 황민화정책을 추진했으며 철저한 사상통제를 실시했다. 그에 따라 신사참배와 황지요배(아침마다 천황이 사는 동쪽을 향해서 절을 올리는 의식) 및 일장기 게양 독려와 기미가요 제창, 황국신민의 서사 제창이 잇따랐다. 조선어말살과 창씨개명이 줄을 이었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많은 예술인들 역시 각종 시국강연회에 동원되었고 전선을 방문하여 전쟁문학을 쓰고 전쟁화를 그렸다.

주요한은 당시 전선에서 “반도의 2400만은 혼연일체가 되어 대동아성전의 용사되기를 맹세하고 있다”고 써 보냈다. 대다수 미술인들도 멸사봉공의 국방국가체제 구축을 위한 그림을 그리거나 국민총력전람회 등에 동원되었다.

전쟁을 미화하는 여러 미술행사들도 줄을 이었다. 경성미술가협회 회원 150여명은 “국가의 비상시국에 직면하여 신체제 아래서 일억일심으로 직역봉공하여야 할 이때, 미술가 일동도 궐기하여 서로 단결을 굳게 하고 조선총력연맹에 협력하여 직역봉공을 다하자”라고 주장했다. 고희동, 김기창, 김은호, 김인승, 김경승, 박득순, 배운성, 배렴, 손응성, 심형구, 윤희순, 이봉상, 이상범, 이승만, 이종우, 이한복, 장발, 장우성, 정현웅, 허건 등 많은 작가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이들은 해방과 분단을 거친 후 남한 미술계의 주도적 인사로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그들에게서 배운 후학들은 현재 한국현대미술계의 어른들이 되었다.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가 얼마 전 ‘우당의 나라 만들기’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고 한다. 정치하기 가장 쉬운 게 과거를 들추어내서 비난하는 것이라면서 이는 ‘과거 포퓰리즘’이라고 했단다. 반면 우남(이승만 전 대통령)은 그렇게 과거를 들추어내는 대신 미래를 지향했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그게 바로 반민특위에 반대한 것이었단다. 반민특위를 결정할 때 무조건 친일분자 청산으로 나가서는 안된다고 국회 안에서 제동을 걸었는데 그것이 우남의 미래지향적인 사고였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반민특위가 무산된 결과 김경승 같은 친일미술인들이 기념동상사업을 따내 김구 선생 동상을 만들 수 있었다. 이게 문창극씨의 논리에 의하면 무척이나 미래지향적인 일이 된다.


박영택 |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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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 말에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심장이 멎어 위험에 빠진 승객을 다른 승객과 역무원들이 살린 일이 있었다. 그때 사용한 ‘자동심장충격기’가 너무 어려운 말로 표시돼 있어서 지하철역마다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처음에는 ‘A.E.D.’라는 로마자 약어만 눈에 띄고 작은 글씨로 그 밑에 ‘자동제세동기’라고 적었던 이 정체모를 장비가 위급상황에서 사람을 살리는 데에 큰 몫을 했다. 사고가 났을 때 응급조치에 앞장섰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연구원이 이 장비가 있다고 일깨워준 덕에 재빨리 사용했다고 한다. 물론 역무원들이 그런 장비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는 없다. 다만 평소에 너무나도 낯설고 어려운 말로 표시돼 있던 이 장비가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어려운 이름 때문에 응급상황에서 장비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고 나는 정부와 서울시에 몇 차례 지적했었다. 서울시는 2014년에 행정용어 79개를 쉬운 말로 바꾸면서 자동제세동기라는 말 대신 자동심장충격기라는 말을 사용하라고 발표했다. 그래서 지금 서울 지하철 1~4호선 역에는 딱지를 붙여 바꿔 놓았고, 도시철도 5~8호선 역에는 아직도 예전 그대로다. 한글문화연대에서 공문을 보내 확인했더니 도시철도공사도 표현을 바꾸겠다고 답해왔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승강장 안전문 유리에 ‘하이얀 이삿짐’이라는 제목의 시가 적혀 있다. (출처 : 경향DB)


어려운 말이 국민의 안전과 권리를 위협한다는 사실이 조금씩 사람들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 같다. ‘스크린 도어’를 ‘안전문’으로 바꾸었을 때 시민들이 반기던 모습이나 이번 홍제역 사건을 마주하고 시민들이 ‘자동제세동기’라는 말에 보인 뜨악한 반응이 그렇다. 하지만 송파에서 땅이 꺼져 큰 구덩이가 생긴 것을 ‘싱크 홀’이라고 보도하던 언론의 말버릇은 여전하다. 최근 신촌에서 땅이 꺼지는 바람에 생긴 구덩이 때문에 사고가 난 사실을 보도할 때에도 ‘싱크 홀’이라고 사용한 언론이 많았다. 그것이 설사 전문가들 사이에서 쓰는 말일지라도 일반 국민을 상대로 이야기할 때는 알아듣기 쉬운 말로 바꾸어야 한다. 어려운 말은 행정에서든 기업활동에서든 일의 효율을 떨어뜨린다. 최근 서울문화재단이 “무너진 삼풍백화점, 시민들의 기억으로 다시 세웁시다”라는 제목으로 광고를 낸 사업의 이름은 ‘메모리인서울프로젝트’이고, 그 내용 가운데에는 “그날의 아픔을 기록하고 아카이빙하여…”라는 말이 나온다. 이 사업은 삼풍백화점 사고를 당했던 생존자와 유가족, 당시 봉사자나 구조대로 일했던 사람들의 기억을 모으고 보관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아카이빙’이라는 낯선 외국어 낱말을 사용해 목적을 밝히면 그 말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 목적이 제대로 들어올 리 없다. 이런 낯선 외국어 낱말도 문제지만, ‘메모리인서울프로젝트’(여기서 ‘인’은 한자로 적어 재단의 국제 감각을 한껏 뽐냈다)처럼 우리말로 ‘서울의 기억 남기기’라고 해도 충분할 것을 외국어로 포장해 정체를 아리송하게 만드는 것 역시 이 사업의 값어치를 떨어뜨리고 시민의 협조나 참여를 막는 짓이다. 쉬운 외국어 낱말일지라도 이를 남용하면 곧 낯선 외국어도 거리끼지 않고 사용하게 되며, 이는 외국어를 잘 모르는 국민을 차별하는 결과를 낳는다.

초등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겠다는 교육부의 방침을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 모두가 반대한다고 뜻을 모았다. 어린 시절에 한자를 배워야 하느냐의 논란 이전에 우리의 문자 환경에 한자를 다시 끌어들이는 게 문제인 까닭도 앞의 사정과 같다. 초등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면 한자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자꾸 한자를 앞세우려 할 것이다. 국한문혼용을 거리끼지 않을 사람도 나타날 수 있다. 문자 환경이 그렇게 어지러워지면 당연히 국민의 안전과 권리와 참여에 구멍이 난다. 공공언어가 알기 쉬운 말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과 개인의 취향을 가릴 줄 알아야 한다.


이건범 | 작가·한글문화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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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단편소설 가운데 한 편을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학생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는 한국어문학을 공부하는 러시아 학생 대여섯을 비롯해 한국인 학생도 두엇 있었고 번역을 지도하는 교수도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간 뒤에 러시아 학생 가운데 한 명이 이 소설의 주인공인 노부부는 왜 서로 대화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각자의 고통과 슬픔을 가장 가까운 사이인 부부끼리도 나누지 않는 이유가 무어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좀 당황했다. 내가 곧바로 대답을 못하자 한국인 학생들이 대신 대답을 해줬다. 한국의 문화적 풍토에서는 특히 이 소설의 주인공과 비슷한 세대의 부부들은 대체로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설명해줬으나 질문을 던진 학생뿐만 아니라 러시아 학생들 모두가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이유를 설명하는 대신 질문을 던진 학생에게 되물었다.

그렇다면 학생의 부모님은 사소하건 중요하건 늘 대화를 나누는지, 학생 또한 부모와 그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는지를 물었더니 조금도 망설이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대답하는 거였다. 학생은 그처럼 대화를 나누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자신은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물론 나는 안톤 체홉의 여러 작품을 예로 들며 많은 대화를 나눈다 해도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님을, 반대로 전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해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님을 말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그 학생이 진실을 말한다고 믿어서였다. 다만 그 진실이 어떤 시련에 부딪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순간을 겪지 않았을 뿐이라고 믿어서였다. 어차피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게 될 그 쓸쓸함을 강요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아모스 오즈의 소설 <친구 사이>는 열일곱 살 딸을 둔 쉰 살쯤의 홀아비에 대한 이야기다. 아직은 어린 딸이 아버지뻘인 사내와 동거를 시작하자 주인공은 번민에 휩싸인다. 딸이 선택한 남자는 공교롭게도 그의 친구였다.

아모스 오즈의 소설 <친구 사이> (출처 : 경향DB)


그와 친구는 사사건건 의견 대립은 있었으나 상대방의 성품에 경외심을 품기도 한 미묘한 관계이다. 친구로는 훌륭한 인물일지 몰라도 아버지 입장에서라면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이기도 하다. 서른 살 남짓의 나이 차이도 그러려니와 소문난 바람둥이이기도 한 친구, 그 친구와 동거를 선택한 딸. 그는 딸의 속내를 알 수 없어 괴롭다. 이 소설의 기묘한 점 가운데 하나는 이처럼 소설의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고 그런 상황에서 인물들이 느낄 수밖에 없는 갈등을 손에 잡힐 듯이 구체적으로 보여주는데도 불구하고 독자 입장에서 주인공의 속내를 비롯해 딸의 속내까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는 비 오는 어느 날 밤 기어이 딸을 만나러 간다. 그와 친구 사이에 핵심을 피한 대화만이 오가고 뒤늦게 딸이 말한다. ‘안녕하세요, 아빠.’ 그러자 그가 답한다. ‘너를 집에 데려가려고 왔다?’ 단호하게 말하지는 못하고 물음표를 붙여 소심하게 말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 이 소설은 끝까지 인물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독자는 소설이 펼쳐 보인 상황 속에 스스로를 몰아넣어야 하고 아버지와 딸이 왜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하는지를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끊임없이 내리는 빗소리와 그 빗물이 배수구로 흘러드는 소리와 히터의 내관을 따라 등유가 보글거리는 소리 등등을 그들과 함께 들으면서 그들이 지금 이 순간 느낄 수밖에 없음에도 결코 말하지 않는 무언가를 스스로 상상해야 한다. 이 몰두가 감동적인 이유는 소설에서 묘사된 아버지와 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대체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러시아 학생의 질문을 되새겨본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노부부는 서로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왜 각자의 고통과 슬픔을 대화를 통해 풀려고 하지 않는 거죠.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학생의 질문을 받고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소설을 썼는지도 모른다는 서글픈 대답을 갈무리한 채, 너무나 사랑해서 증오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을 떠올려보았다.


손홍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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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찍은 멋진 풍경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하거나 촌철살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들을 블로그에 포스팅하고, 자신이 직접 노래하거나 연주하는 동영상을 인터넷 플랫폼으로 공유하는 등의 일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재능을 갖춘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는 것이 아니다. 관습적 의미의 ‘예술가’는 아니지만 일상에서 예술을 실천하는 사람들, 즉 우리 모두는 ‘예술인간(homo artis)’이다.

예술인간이란 조정환이 자신의 최근 저서에서 탈산업화 사회가 탄생시킨 새로운 인간형을 가리키기 위해 쓴 용어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은 ‘예술인간의 시대’로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시대’다. 이 시대는 우리에게 감성적 풍요를 안겨주고 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예술인간의 시대는 이전에는 상품이 될 수 없었던 감정, 상상력, 기분 등에 새롭게 경제적 교환가치가 부여되는 지식정보화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시대는 ‘창조경제’의 시대, ‘창조하지 못하는 자 먹지도 말라’는 암묵적 명령이 관철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평범한 개인에게 이러한 시대를 맞이하는 일이 그저 반가울 수만은 없다. 이전 시대라면 예술가가 도맡아주었던 창작의 고통을 이제는 우리 스스로 일상 속에서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예술인간이 처한 이러한 딜레마를 당혹스러우리만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아마추어 음악가였던 평범한 참가자들이 프로그램 속 피 말리는 경쟁 속에서 창조하고 또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직업음악가를 향한 진입 문턱을 현저히 낮추는 효과를 가져 왔다. 하지만, 그러한 진입 장벽이 허물어지고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의 경계가 흐려질수록 직업음악가의 입지 또한 약화되기 때문에, 그것은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 된다.

유명 연예기획사 대표들이 직접 심사에 나서는 지상파 오디션 프로그램도 있다. 이들은 각자의 기획사에 영입할 연습생들을 선발할 것이라는 의도를 프로그램 시작 때부터 명확히 드러낸다. 시청자들은 연예기획사의 연습생 선발 과정을 겸한 홍보의 시간을 무려 90여분 동안이나 숨죽이며 지켜보게 되는 셈이다.

기획사와 방송제작자, 그리고 시청자 사이에서 이런 식의 이해관계가 조율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지만, 어쨌든 예술인간은 이쯤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것을 오디션인간으로 부르기로 하자.

예술인간은 자율적일 수 있지만 오디션인간은 그렇지 않다. 예술인간은 스스로 듣지만 오디션인간은 들려질 뿐이다. 누군가의 평가와 선택을 통해서만, 그리고 경쟁에서의 승리라는 비교우위를 통해서만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존재, 그것이 오디션인간이다.

‘슈퍼스타K6’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인 윤종신 (출처 : 경향DB)


오디션인간은 대중음악의 본질과는 대체로 무관하다. 오히려 오디션인간은 ‘제도적 예술’인 클래식음악계에서 일찍이 출현했다. 클래식 연주자들의 길고 긴 프로필을 장식하는 화려한 콩쿠르 입상 경력은 오디션인간으로서의 자기증명이다.

최근 국내의 유명 오케스트라들에서 모든 단원을 오디션인간으로 길들이려 하는 것도 이 점에서 뜻밖의 일이 아니다.

오디션인간은 신자유주의적 모범으로서의 경쟁력 있는 개인을 표상한다. 이러한 오디션인간이 예술인간을 대체하려 들기 때문에 이 시대의 감성은 활력을 찾기보다는 쉽게 피로감에 빠진다. ‘창조경제’라는 용어가 주는 불편함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경제를 예술화한다는 구실로 예술을 경제화한다.

예술인간의 시대에 오히려 오디션인간들이 득세하는 것은 무엇보다 예술이라는 개념이 깊이 오염된 탓이다. 돌이켜보면 여러 세대에 걸쳐 한국의 제도는 예술가와 예술작품을 점수로 키우고 점수로 평가했다. 그 결과 ‘예술적’이라는 말은 ‘고득점’과 거의 같은 뜻이 되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제도가 가르쳐준 적 없는 ‘삶의 기술’을 독학한 예술인간들이 ‘예술적’이라는 단어의 뜻을 제자리로 돌려놓아 주기를 바랄 수밖에. 그리하여 평범한 개인들 사이의 예술적 소통이 자기배려의 일상적 미학 속에서 빛나게 될 그날까지는 춘래불사춘, 예술인간의 시대는 아직 예술인간의 시대가 아니라 오디션인간의 시대일 것이다.


최유준 | 전남대 HK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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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을 맞아 동생 가족이 놀러 왔다. 소고기 몇 근 사 들고 일곱 살 난 조카를 데려왔다. 결혼하지 않은 나에게 조카는 가장 가까운 다음 세대의 혈육이지만 사이가 그리 살갑지는 않다. 인사하는 것조차 부끄러워서 제 엄마 뒤에 숨는 조카를 집요하게 공격해서 친해져야 할 텐데, 나도 그러지 못하고 머쓱하게 있는 게 지난 몇 년간 조카와 나의 일상이었다. 처음에는 난처해하던 제수씨도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다.

이번에도 그렇겠지 싶었는데 웬걸, 조카가 먼저 배꼽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물론 동생이 시켰기 때문이지만 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이 감격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다. 대화를 시도했다. 머릿속에 그렸던 매뉴얼대로 우선 조카와 눈높이를 맞춘 후 말을 걸었다. “유치원은 재미있어?” 어색한 표정으로 조카는 고개를 끄덕인다. “제일 친한 친구는 누구야?” 계속 눈을 마주치는 큰아빠의 시선을 피하며 친구의 이름을 댄다. 여기까지 대화가 이어진 적이 없기에 나는 다음 질문을 뭐로 할까,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웬만한 뮤지션 인터뷰를 할 때도 질문을 주저하지 않았는데, 일곱 살 꼬마 앞에서 말문이 막히다니. 목 끝까지 ‘어디 사는 친구야?’라는 말이 올라왔다.

순간적으로 아니다 싶었다. 동생이 사는 동네의 주변 지리 정보를 내가 알 턱이 없으니 그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할 게 뻔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그 아이와 왜 친해?’였다. 그대로 말하면 안될 것 같았다. 아무리 친절하게 물어봐도 조카 입장에서는 왠지 부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 않을까. 방향을 살짝 틀어 결국 물었다. “그 친구 제일 잘하는 게 뭐야?” 친구 자랑을 시킨 셈이다. “그림 잘 그려. 상도 받았어”라며 조카는 그제야 비로소 큰아빠와 눈을 마주쳤다. 생각해봤다. 왜 친구가 어디 사는지 물으려 했을까. 아파트 평수 기준으로 친구 집단을 만든다는 강남 학부모의 마음은 분명히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그 질문에 익숙해졌을 뿐이었다.

홍대 앞에서 작은 공간을 운영한 지 1년이 됐다. 일종의 네트워킹 공간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음악, 언론, 문화계 쪽에 한정되었던 인간관계가 꽤 다양해졌다. 그들과의 첫 대화가 항상 어디 사느냐였던 것 같다. 대뜸 나이나 하는 일을 물어보기가 머쓱해서였을까. 대화의 물꼬를 틔우기 위한 질문일 뿐이지만 사는 동네를 안다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다. 사실 잘 기억도 못한다. 결국은 그 사람이 하는 일이나 관심사에 대한 얘기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영국의 한 펍(Pub)에서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즐기고 있다. (출처 : 경향DB)


우리에겐 낯선 사람들끼리 관계를 맺는 문화가 없다. 일로 만나거나, 누구 소개로 만나거나 하는 경우가 고작이다. 서구의 펍에서 모르는 사람들끼리 잔을 부딪치며 수다를 떨다가도 막상 귀국해서 한국 술집에 가게 되면 일행들끼리만 논다. 그러다보니 그네들의 날씨 이야기 같은, 대화의 운 떼기도 빈약하다. 뭘 해도 어색하고 전형적이다. 조카와의 대화를 계기로 처음 보는 이에게 호구조사 말고 어떤 질문을 하면 좋은 임팩트가 있을까 고민해봤다. 우선 하는 일은 배제하기로 했다. 비즈니스적 관계에서는 명함에 박힌 이름보다 직함과 소속이 더 중요하지만, 사적 네트워킹에서는 이름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 이름을 말해주는 건 뭘까. 일을 벗어난 관심사, 취미, 장기 같은 거다. 1차 집단의 요건에 해당하는 지역, 2차 집단의 그것에 해당하는 학교나 회사 같은 게 아닌 디지털 시대에 맞는 취향의 공동체로서 3차 집단을 구성하는 요소들 말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출신과 소속, 이해관계를 떠나 새로운 관계를 맺기는 쉽지 않다. 살아온 관성 때문이다. 그 관성을 깨고 사람이 사람과 사람으로서 만나기 위해서 던질 수 있는 첫 질문은 무엇일까. 글을 쓸 때 첫 문장을 놓고 한참을 고민하듯, 적절한 해답을 찾을 때까지 다양한 시도를 해볼 생각이다. 나름의 답을 찾는 날, 조카와도 더욱 친해질 수 있으리라.


김작가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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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가는 걸 끔찍해 하는 대부분의 남자들처럼 내가 마트에 가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내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카트가 어서 빨리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일밖에 없다. 쌓인 물건 사이를 헤매다 보면 살아가는 일이 두렵고 아득해진다. 그곳의 물건을 모두 소유할 수 없다는 좌절감? 그건 아니다. 풍요의 한복판에서 선택의 무한한 자유로움 속에서 느끼는 혼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사람이 버글버글한 장소에 대한 거부감? 그것일 것 같았지만 오전이나 늦은 저녁의 휑한 마트는 더 우울하다.

사람들은 상품에 의해 길들여진다. 좋건 싫건 상품은 사물의 이상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일상의 모든 꿈은 상품을 통해 이루어진다. 상품은 실현 가능한 집단적 꿈이자 사물의 궁극적 스펙터클이다. 상품을 소유할 수 있건 없건 간에 사물의 이상적 형태에 길들여지고 감각적으로 훈련된 사람들은 완벽하고 이상적인 삶이 상품을 통해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삶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현대사회의 완전 부적응 상태. 마트에서의 방황이 시작된다.

소비의 쾌락은 삶의 목적 혹은 본질과 닿아 있다. 렇더라도 상품을 소유하면서 느끼는 소비의 쾌락은 생산 과정에서 오는 고통과 쾌락을 알지 못한다. 책상을 구입하는 사람이 느끼는 즐거움과 스스로 책상을 만들어 쓰는 사람의 즐거움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생산의 즐거움은 생산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권리이자 특권이다. 책상을 구입하면 소유의 만족이란 단 한 가지 즐거움을 얻을 수 있지만 책상을 만들 때는 도면을 그리고 나무를 고르고 깎고 다듬고 칠하고…. 적어도 열 배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물론 그만큼의 번거로움과 난감함이 뒤따르겠지만 소유의 즐거움과 생산의 즐거움을 모두 얻을 수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DIY 가구를 만드는 과정이 그렇듯이 생산이 아닌 창작에서조차도 상품의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수많은 상품이 범람하고 있는 시대에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조차 이미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마트 창고에 쌓여있는 다양한 상품들 (출처 : 경향DB)


모든 상상은 꿈꾸는 대상의 본질에 집착하면서 얻어지는 환상이다. 생산 혹은 창작은 사물(생산물)과 사물(질료)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환영의 어디엔가 존재한다. 그것은 상상으로 가득할 것 같은 모든 아이들의 장난감이 이미 존재하는 상품의 모사인 것과 다를 바 없다. 상품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계층조차 상품에 종속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내가 어릴 때 흙을 주무르며 그랬듯이 장난감을 소유할 수 없는 아이들은 주어진 물질이 최대한 기존의 장난감(상품화된)과 흡사하게 되기를 꿈꾼다. 아프리카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은 철사를 구부리고 병뚜껑을 조합해 멋진 자동차를 만들어내지만 생산된 장난감과 흡사하거나 유사한 상품을 만들어내기란 불가능하다. 단지 만들어진 물건에, 각인된 상품의 이미지를 전이시킬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도달 불가능에서 오는 좌절을 메우기 위한 영악스러운 합리화 혹은 타협책이다. 물론 이것 역시 그들에게는 최선의 상상력이다.

산업화된 시대, 제품이 생산된 이후의 모든 상상력이란 어떤 경우에도 기계적으로 대량생산된 상품의 이미지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개인이 상품의 이미지를 능가하는 물건을 생산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어쩌면 물질적 창의 과정에서의 상상력이란 상품이 주는 사물의 이상적 형태에 도달할 수 없다는 좌절이 낳은 사생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매일 쏟아지는 수많은 상품으로부터 독창적이라고 말하는 예술가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산물이 여기에 속한다. 최근의 현대미술 작품이 상품의 매끄러운 사출성형의 표면을 차용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물질 중심적인 세계에서 삶이란 물질의 이상을 완벽하게 구현한 사물로서의 상품으로 구현된다는 믿음만큼 확고한 것도 없다. 이것이 새삼스레 창의성을 말하는 시대가 맞이하고 있는 문화적인 그리고 물적인 토대이다.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부지런히 상품의 이미지를 뒤쫓아가야 한다. 카트를 몰며 자꾸 아득해지는 이유이다. 마트에서의 방황은 끝나지 않는다.


김진송 | 목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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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라면서, 교육을 받으면서 세계와 삶에 대해 배운다. 그런데 그것은 결국 기존의 가치관에 의해 물든 사유의 편린을 수용하는 일이자 나 스스로 보고 깨우치는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와 현실이 인식하고 있는 틀을 반성 없이 배우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실체와 본질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기보다는 이미 갖고 있던 관념이나 이미지를 현실에 덮어씌우려 한다. 그래서 정보와 지식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사물과 세계에 대해 피상적이고 단순한 이미지에 갇히기 쉽다.

반면 예술가란 존재는 비록 불완전하더라도 자기 눈으로 세계를 보고 그에 관해 말하고자 하는 이들이다. 스스로 보고 느낀 것을 표현하고자 한다. 여기서 그는 비로소 주체가 된다. 모든 예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이른바 창의성과 상상력이 움튼다. 기존의 삶이 강제하고 요구하는 시스템과 가치관에서 빠져나온 이들이 비로소 예술가가 된다. 자기중심적이 아니라 타자와의 연관성 속에서 나를 사유하는 이들, 삶의 모서리에서 버티는 이들!

예술가란 사물이나 세계에 부여된 관념이나 상식을 따르는 이들이 아니라 그것을 물리친 자리에서, 여백 같고 공(空)한 자리에서 무엇인가를 보려고 노력하는 이들이다. 사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낯설고 의아하고 생경한 타자들이다. 인간은 그 타자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자신과 관계 맺는 타자에 대한 포용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술가란 존재는 타자에 대해 그런 마음을 지닌 이들을 일컫는다.

세계는 결국 타자이다. 주체에게 그것은 늘 수수께끼다. 그러니까 카뮈식으로 말하면 부조리하다. 그것은 우리가 배운 언어와 문자의 틀을 유유히 빠져나간다. 지식은 날것의 세계, 대상 앞에 한없이 무력하다. 외계는 자신의 내부로 들어와 매 순간 암전된다.

이때 예술가는 자신을 둘러싼 외부세계를 관습이 아닌 그것 자체로 생생하게 접촉할 때 생기는 생소함을 표현하고자 한다. 그러자 기능과 의미가 지워진 자리에는 기묘하고 낯선 이미지만 남게 된다.

이런 생경한 이미지로부터 사물은 비로소 의미의 대상이 아닌 ‘의미의 주체’가 된다. 알려진 모든 선입견과 편견이 지워진 지점에서 사물과의 우연한 만남, 맞닥뜨림, 그리고 이로부터 또 다른 가능한 세계와 대면하는 것이 좋은 예술작품인 것이다.

예술의 전당으로 가는 길 (출처 : 경향DB)


화가들이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도 결국 자신의 일상에서 만난 사물, 세계이다. 그 특정한 소재인 타자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존재다. 그것이 어느 날 자신에게 다가와 감정의 파문을 일으키는가 하면 익숙한 세계에 구멍을 내고 파열음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일상에서 매번 접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 어느 날 낯설고 기이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낯섦이란 특정한 외부의 경험에 의해 생성된 내적인 심리상태를 지칭한다.

순간 작가는 자신이 보고 있는 지금의 풍경, 대상을 의심한다. 자신이 보고 있고 알고 있는 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또한 눈에 보이는 것만이 세계는 아니다. 그는 인간이 감지하는 이 세계 외에 어떤 것을 본다. 일상의 시간 속에서 느닷없이, 불현듯 나타나는 것들을 만난다. 현실세계에 비이성적이고 신화적인 세계가 순간 침입한 것이다. 순간 현실은 금이 가고 이른바 ‘이격’(離隔)된다. 작가들은 자신의 신체가 받아들인 그 지각, 감각을 형상화하고자 한다. 자신이 문득 접한 타자로 인해 발생한 ‘순간적인 느낌들을 재구성’하면서 ‘그것’(it)을 그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 응시의 욕망은 사물의 이면을 보고자 하는 것이자 시선이 도달할 수 없는 곳까지 보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욕망은 충족되거나 실현되기 어렵다. 매번 미끄러진다.

그러나 예술은 그러한 불가능을 반복적으로 수행한다. 이를 통해 익숙하지만 알 수 없는 주변의 사물, 타자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들이 뿜어내는 영기를, 놀라운 매혹, 빛나는 존재성을 낚아채고자 하는 이들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이 세계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다. 타자와의 접점을 마련할 수 있다. 타자 없는 나란 가능하지 않으니까.


박영택 |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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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2018년부터 초등학교 모든 교과서에 한자를 함께 적겠다는 방침을 검토 중이나, 초등학교 현장의 반대는 거세다. 한국초등국어교육학회가 초등교사 1000명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초등교사들의 65.9%가 교과서 한자병기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 결과를 두고 젊은 교사와 나이 든 교사 사이의 의식 차이를 점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젊은 일반교사는 64.0%, 교장선생님들은 64.1%가 교과서 한자병기에 반대하여 세대간 차이가 전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을 오랫동안 가르치면서 현장 교육을 주도하고 있는 부장교사들은 69.5%나 한자병기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에 책임을 가장 많이 느끼는 분들의 반응이다.

교사들의 의견을 요약하면 교육 내적으로는 실익이 없고 오히려 부작용만 커진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학습부담이나 사교육, 선행학습이 극도로 높아져 결국 아이들에게는 좋지 않다는 결론이다. 우선, 한자를 병기하면 아이들이 교과서를 읽는 속도가 느려질 것이라는 응답이 84%를 넘는다. 가장 큰 문제다. 교과서에 대한 아이들의 흥미가 두루 떨어지겠지만, 특히 한자 사교육이나 선행학습을 통해 한자를 이미 익힌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 교과서 읽기 흥미도의 격차를 부를 것이다. 한자교육을 강조하는 쪽에서는 인성교육에 한자가 좋다고 주장하지만, 초등교사 58%는 한자교육이 인성과는 관계없다고 답했다. 교육 속 문제도 문제지만 우리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악폐는 장기적인 골칫거리로 떠오른다. 한자병기가 실시되면 아이들의 학습 부담이 늘어날 거라는 응답이 94%, 한자 사교육이 늘 거라는 응답이 91%, 한자 급수시험 응시가 높아지리라는 응답은 96%, 유치원부터 선행학습이 일어날 거라는 응답은 94%였다. 어떤 이는 어린 시절에 영어를 배우면 좋다고 하여 영어를 많이 가르치자고 하고, 어떤 이는 한자를, 어떤 이는 또 무엇무엇을 가르치자고 한다. 그 아이들이 도대체 이 모든 요구를 다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아니, 그렇게 강요해야 하는가?

우리나라 아이들이 학습에 쏟는 시간은 상상을 초월한다. 통계청이 5년마다 벌이는 국민생활시간 조사에 따르면 2009년 초등학생들의 주당 평균 학습 시간은 44시간, 중학생은 52시간, 고등학생은 64시간이다. 이 수치는 그 10년 전인 1999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성인들은 어떤가? 대학생의 주당 평균 학습시간은 중학생의 절반 수준인 26시간이며, 고용노동부가 조사한 근로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당 40시간 남짓이다. 그저 아이들이 봉이다.

2015학년도 초등학교 신입생 예비소집이 서울 시내 초등학교에서 일제히 실시된 14일 서울 홍은동 홍제초등학교에 배정된 한 어린이가 교실 책상에 앉아보고 있다. (출처 : 경향DB)


15세 학생들을 상대로 실시하는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우리나라 아이들이 세계 1, 2위를 다투고, 국제성인역량평가의 독해력 부문에서도 우리나라 16~24세 젊은이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3위 수준이다. 그런데 취업을 하고 나이가 들면 그 능력은 뚝뚝 떨어져 노년 세대에 이르면 꼴찌에서 3위 수준으로 처진다.

어린 시절의 대입 성적으로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우리나라 교육, 사회 구조가 아이들에게 이런 해괴한 부담을 계속 짐 지우는 것이다. 성인의 독서량을 비교해보면 미국과 일본은 월 6권 넘게, 중국은 문맹이 많음에도 월 3권 가까이 책을 읽는데, 우리나라 성인들은 겨우 월 0.8권의 책을 읽는단다. 어른들은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경제 지식이 중요하다고 초등학생에게 회계 과목을 가르칠 수는 없다. 용돈 출납부만 제대로 적어도 될 일이다. 아니, 그것도 하찮은 일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생활 속에서 경제관념을 키워주는 중요한 공부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교육이 뭔가 부족하다고 자꾸 욕심을 내면 배탈이 난다. 초등학생 시절에 아이들이 낱말의 뜻을 익혀가는 방식과 아이들의 생활, 그리고 그들에게 지워질 짐의 무게 등을 적절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건범 | 한글문화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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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내게도 그런 책이 몇 권 있는데 그중 하나는 세르반테스 작품인 <돈키호테>다. 아마도 어린 시절에 읽은 <돈키호테>는 요약본이었을 테지만 처음으로 완역본을 접한 뒤로도 두어 번을 더 읽었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왜 <돈키호테>를 두고 최초의 소설이라고 일컫는지를 납득할 수 있게 되었고 더 나아가 단지 최초의 소설일 뿐만 아니라 소설의 가능성 자체일 수도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돈키호테>를 거듭 읽어가는 과정이 감탄에서 또 다른 감탄으로 이어지는 형태였다면 <논어>를 읽는 과정은 혐오에서 공감으로 공감에서 경탄으로, 그러니까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으나 결국 완벽하게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된 독서였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젊은 시절에 <논어>를 무척이나 혐오했다. 그 시절에는 제대로 읽어볼 생각도 없었지만 몇 구절 읽고 나면 하품이 나왔다. 내가 <논어>를 진부하고 무가치한 책으로 여긴 까닭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서 별로 주의를 기울이고 싶지 않아서였고 무엇보다 그 시절의 내게 <논어>는 하나의 처세술로 여겨졌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는 처세술을 혐오해도 좋을 만큼 젊었다.

살면서 많은 좌절을 겪었다. 어느 날 문득 별 기대 없이 <논어>를 펴들었는데 첫머리에서 만난 낯익은 구절이 새삼 가슴에 다가왔다. "때때로 익히고 배우는 즐거움은 생계에 밀려난 지 오래였고 오래된 벗들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살아 일 년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렵지 않던가. 누가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면 군자라 할 만하지 않은가."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다시 세월이 흘러 <논어>를 펴들었을 때 비로소 나는 익숙한 구절들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었다. 불혹을 넘겨 간신히 하나 깨달은 게 있다면 진실이란 비밀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외려 진실은 우리 눈앞에 너무나 버젓이 놓여 있어 우리가 지나치고 마는 그 무엇에 가까우며 진정으로 진실과 관련하여 중요한 문제는 진실이 무엇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연극 '돈키호테'의 한 장면 (출처 : 경향DB)


우리가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정권 아래 외롭고 쓸쓸한 삶을 겨우 영위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진실이냐를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진실이 무엇인지 몰라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정권을 용납하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진실을 따지는 것보다 진실을 실현하는 게 중요하다. 진실을 실현한다는 건 잉에보르크 바흐만의 소설 <빌더무트라는 이름의 사내>에 등장하는 판사 빌더무트처럼 ‘세계와 한 몸으로 일치’하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엄격한 아버지로부터 항상 진실을 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물려받았다. 그는 판사직을 수행하면서 진실만을 선택해 왔다는 자부심을 지녔으나 같은 성을 지닌 살인자를 재판하는 과정에서 그가 지금까지 선택한 진실은 하나의 의견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진실이 통용 가능한 대중적인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진실과는 무관한 존재가 되어버림을 통감하면서 스스로 판사직을 그만둔다.

그가 한평생 진실을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추구하면 할수록 진실이 한 걸음 더 멀리 도망가 버린 것처럼 느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소설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세계에 몰두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판사 빌더무트의 실수는 진실을 우리가 반드시 찾아내고 밝혀내야 할 비밀스러운 영역에 속한 것으로 간주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끔찍하게도 진실은 진부하다. 다시 말할 가치를 느끼지 못할 만큼 평범하고 지루하다. 평범하고 지루한 탓에 아무도 감당하지 않으려 한다. 말하자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저 굴뚝 위에 올라 고립을 자처한 이유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감당하지 않으려 했던 일, 즉 진실을 실현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손홍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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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으로도 가족여행으로도 가본 적 없는 제주도는 언제나 여행지 순위권 밖에 있었다. 제주도 하면 신혼여행 가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였다. 몇 년 전 지인이 제주도로 이주를 했고, 얼굴이나 볼 겸 떠났던 첫 제주행에서 나는 제주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그 뒤로 제주도를 한 달에 일주일꼴로 찾았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아예 제주로 이사한 줄 알 지경이었다. 사람 많은 곳은 아무리 유명해도 일부러 피했다. 제아무리 절경이라도 사람의 손을 타면 그 맛이 없어지기 마련이다. 특히 한국처럼 이상한 관광정책을 가진 나라에서는 관광객들의 편의를 제공한다는 미명하에 경치를 훼손한다. 다시 제주 붐이 불면서 한적했던 곳에 사람들이 몰리고 중국인들이 득시글거리지만 그래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좋은 곳들이 많다.

우선, 좌보미오름이 떠오른다. 제주는 서저동고 지형의 섬, 화산 분화 작용으로 형성된 오름이 동쪽에 몰려 있다. 동쪽 하면 성산일출봉, 섭지코지를 떠올릴 테지만 거긴 연중무휴 관광객들로 가득 찬 곳이다. 요즘은 중국인들까지 가세해 ‘인간이 갈 곳’이 못 된다. 조용한 곳에서 오름으로 가득 찬 제주 동쪽의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한눈에 보고 싶다면 좌보미오름을 추천한다. 성산일출봉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아는 사람은 드물다. 느린 걸음으로 15분 정도 올라가면 사방이 탁 트인 정상이 기다리고 있다. 올라가는 길 주변에도 억새가 가득하여 눈이 온통 시원하다. 정상에 올라 머리를 한 바퀴 돌려 보라. 신비의 섬을 느낄 수 있다. 화창한 날보다는 흐린 날을 권한다. 약간의 안개가 곁들여지면 금상첨화다.

제주의 바다가 경국지색인 것이야 모두가 아는 사실, 하지만 민물로 인해 조성된 환경도 절경인 건 마찬가지다. 제주의 냇가는 거의 다 건천이다. 계곡 지형이 형성되어 있으되 물은 땅속으로 흐른다. 장마가 질 때나 비로소 우리가 아는 냇가가 형성된다. 현무암이 주된 지질을 이루고 따라서 물이 스며들기 쉬워서다.

이런 특성으로 육지에서는 보기 힘든 지형이 형성된다. 방송에도 몇 번 나왔던 엉또폭포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평소에는 평범한 벼랑이지만 한라산에 폭우가 내린 다음날이면 폭포가 떨어져 내리는 게 그렇게 장관일 수가 없다. 현지인이 아닌 이상, 아무 때나 구경할 수 없는 행운의 선물이기도 하다.

서귀포 엉또폭포 장관 (출처 : 경향DB)


건천들이 바다로 흘러가기 직전, 가끔 한 곳에 모여 호수 비슷한 형태를 띨 때가 있다. 그런 곳들의 물은 한결같이 파랗다. 바다의 파랑도 냇물의 파랑도 아니다. 오직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그런 파랑이다. 한국에서도 가장 푸른 하늘을 가지고 있는 제주에는 이렇게 또 하나의 파랑이 있다. 서귀포시의 상수도 공급원이기도 한 냇길이소를 찾아가 보시길.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했다면 딱 이곳일 것이다.

어디 오름과 물만 있는가. 제주의 숲은 예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사려니숲, 비자림, 환상숲…. 그 많고 많은 예쁜 숲들 중 알려지지 않은 곳이 있다. 아예 이름도 없는 곳이다.

이 숲을 포함한 일대를 돌오름임도라고 부른다.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는 이곳은 숲계의 엄친아라 할 만하다. 숲이 가져야 할, 가졌으면 하는 모든 것을 갖고 있다. 온갖 활엽수와 침엽수들이 울창하디 울창하다. 너르게 이어진 평지를 걷다 보면 완만한 내리막과 오르막이 조화를 이루고 개활지와 조림지가 심심치 않게 어울려 있다. 아무리 걸어도 들리는 건 바람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내 발소리뿐이다.

혹여 이 정적을 발소리로 깨는 게 미안하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완전한 침묵에 몸을 맡겨도 좋다. 그렇게 쉬엄쉬엄 걷다 보면 너른 억새밭이 펼쳐진다. 좋은 날씨라고 하는 행운을 만나게 된다면 눈 덮인 한라산 백록담이 시선에 들어온다. 정말, 눈물이 난다.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다면 함께 말없이 이 숲을 걷고 싶다. 백마디의 말과 천 잔의 술보다 더 큰 힘이 될 것이다. 닷새나 되는 연휴, 그 섬에 가지 못해 아쉬워 써봤다.


김작가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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