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이렇게 해서 화나고, 저렇게 해서 화가 난다. 때론 참고, 때론 못 참는다. 대개 큰 화는 참고, 작은 화는 못 참는다. 작은 화가 차곡차곡 모여 거대한 신경증 사회가 되었다. 사람들은 무관심하다가 전혀 화를 내지 않아야 될 타이밍에 폭발한다. 예를 들어 아이유 사진 같은 경우에 말이다. 타블로 사건에서 얄팍한 교훈도 얻지 못한 듯하다. 그녀가 국민 여동생이건 꽃의 천사이건 간에 사생활은 사생활이다. 사진에서 나오지 않는 부분도 창의적으로 재해석한다. 나중에 아이유도 <힐링캠프> 나올라. 작은 화들이 거대하게 모여 신경증 사회가 되어버리자 선사에서 참선하던 스님들은 제각각 화를 못 참는 중생들을 위로한다. 참 고마운 일이지만 때론 답답하기도 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나도 거의 매일 화를 냈다. 때론 참고, 때론 못 참았다. 어떤 화는 자질구레하고, 또 어떤 화는 거창했다. 아니, 거의 대부분 자질구레하다. 자질구레한 화는 원인과 결과 모두 쌍으로 자질구레하다. 그래서 가능하면 화를 꾹꾹 참으려고 한다. 며칠 전에도 화를 눌러 담았다. 화내지 않은 날로 기록해 볼 요량이다.


(경향신문DB)


 부탁을 받아 등기를 하러 등기소에 갔다. 이런 관공서 일이란 게 잘 아시듯 어렵고 불편하다. 법무사에게 맡길까 하다가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격려에 힘입어 오전에 시간을 내 등기소를 찾았다. 정확히는 구청이 먼저다.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대로 구청에 들러 서류를 발급받았다. 구청에서는 운 좋게, 순전히 운 좋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같은 일로 첫 번째 구청을 방문했다가 등기소에 들른 날에는 서류 하나를 누락해 다시 갔었으니까. 이번 기록은 두 번째 방문에 대한 이야기다.


관공서 일이란 게 그렇듯 창구 찾기도 힘들다. 단 같은 일로 두 번째 방문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업무가 몇 번 창구인지 물어볼 사람도 없다. 창구에 앉아있는 사람은 그들끼리 아침 잡담 혹은 티 타임을 즐기기에 바빴으니까. 그들은 창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내 어수룩한 모습을 보고 자연발생적으로 나를 멀리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친절한 문답을 기대하는커녕 눈이라도 맞춰주기를 바랐지만 그들은 충분히 바빠보였다. 그래도 민원 어쩌구 써 있는 곳에 가서 물어본다. 대뜸 서류를 출력해 읽어보고 만들어 오라고 한다. 저쪽에 가서. 아, 고맙다. 진심이다.


서류를 만든다. 어린 시절, 박사라면 부리부리 박사나 남 박사처럼 뭐든 잘하거나 아니면 지구를 지키는 로봇 정도를 만드는 사람이었는데, 막상 박사 근처에 간 중년이 된 지금 내가 꿈꾸던 박사와의 거리는 백만 광년쯤이다. 서류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어렵다. 대충 어리버리 베껴 서류를 만들었다. 민원 창구에 가서 검사를 받은 뒤 제출처에 냈다. 아, 중간에 인지를 사러 2층에 올라가기도 했다.


서류를 접수하는 공무원은 세상에 어떻게 하면 더 불편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가를 연구한 것처럼 보였다. 아니면 아침에 부부싸움을 했던가. 최대한 공손하게 서류를 조아려 바치고, 한숨 한 번 쉬고 등기소를 떠났다. 다 끝났다. 내 손으로 등기를 했다고!


막 차를 돌리려는 순간 전화가 왔다. 서류에 문제가 있으니 다시 쓰라고 한다. 여전히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던 공무원이 담당계로 가라고 한다. 담당계의 공무원들은 그래도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아니 처음 민원접수 공무원이 이걸 가르쳐 줬으면 좋았을 텐데. 시키는 대로 다시 베껴 쓴 다음, 아까 그 불편한 표정의 공무원에게 다가갔다. 애니팡을 하고 계셨다. 난 잠깐 눈치를 봤고, 고맙게도 그는 내가 내민 서류를 접수해 주셨다. 아마 애니팡을 끊어 좀 기분 나쁘셨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등기와 관련된 일을 모두 끝내고 나오려는데, 화가 저 밑바닥에서 끌어올랐다. 부글부글. 들어가 애니팡 신기록을 경신하려는 그 판을 못하게 하고 싶었다.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는 표정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내가 주는 세금으로 당신이 먹고산다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래도 꾹 참았다.


모두들 화를 못 참는 것도 문제지만, 쉽게 화를 북돋는 것도 문제다. 화를 못 참는 현상과 쉽게 화를 북돋는 현상은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처럼 쌍으로 돌아다닌다. 누가 먼저인가를 따지는 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보다 더 어렵다. 유치원생에서 양로원의 노인(아니 어르신)까지, 화를 중심으로 북돋고, 또 못 참는다. 그러니 세상이 화로 가득이다.


화를 못 참고, 쉽게 화를 붇돋는 세상이 된 건 우리에게 정신적, 물질적 풍요와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정신과 물질 양쪽에서 모두 여유롭다면 화를 못 참지도 북돋지도 않을 터이다. 그런데 자꾸 위로만 한다. 문제를 찾아 바꿔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다. 바꾸거나 아니면 스님들처럼 산사에서 참선하거나. 잘 생각해 보시라. 스님들의 위로는 값지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이 치유되기 힘들어 보인다.


그 때문에 초기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인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낭만주의의 명령으로서 ‘세계를 낭만화해야 한다’라고 선언했고, 또 다른 핵심 멤버 노발리스는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시적 국가(poetic state)’라는 용어로 표현하기도 했다. 


시적 국가라, 왠지 백범 선생이 <나의 소원>에 쓴 ‘아름다운 국가론’이 떠오른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소망한다며 선생은 이렇게 쓰셨다. “우리의 경제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큼이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이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인류가 현재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 부족, 자비의 부족,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언제 읽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동시에 자긍심을 느끼게 되는 글이다.


김구 선생이야말로 가장 급진적인 진짜 낭만주의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문화(Bildung)를 통해 세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감히 이런 소망을 품고 있다. 김구 선생의 이루지 못한 그 소망이 문재인과 안철수의 ‘아름다운 단일화’를 통해 이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둘 중 누구라도 좋다. 좀 더 인의 있고, 좀 더 자비롭고, 좀 더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게 병신같이 새삼, 낭만에 대하여 쓴 내 진짜 속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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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 문화평론가 solbitur@gmail.com


 

위험하고 불편하고 지저분하다. 비싼데 환불이나 교환도 되지 않으며 심지어 앞으로 돈을 더 많이 내야 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울며 겨자먹기로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품이 있다. 이 마법(?) 같은 상품의 이름은 바로 경인고속도로다.


만일 당신이 처음 이 상품을 이용하게 된다면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화물차가 있는지 놀라게 될 것이다. 각종 트레일러와 탱크로리, ‘낙곡 방지’를 커다랗게 써 붙인 곡류 운반차량, ‘차이나 시핑(china shipping)’류의 컨테이너, 원목이 가득 실린 차도 자주 보인다. 한 연구기관이 내놓은 ‘인천항 화물자동차 통행특성 분석’에 따르면 인천항을 통행하는 화물차는 1일 평균 3000대, 이 차들 대부분이 경인고속도로를 이용한다는 얘기니, ‘화물 고속도로’라고 부를 만하다.


경인고속도로 부평톨게이트에서 통행료 징수 거부운동을 벌이고 있는 공익변호사 모임 (경향신문DB)


 나 역시 처음엔 새로운 차를 볼 때마다 신기했다. 하지만 이 호기심이 두려움으로 바뀌는 데에는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자동차를 가득 실은 수출용 차량 운반차 옆을 지나갈 때면 아직도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가장 무서운 차는 각종 폐기물을 운반하는 노후 차량들이다. 얼마나 낡았는지 녹이 금방이라도 부스러져 떨어질 듯한 차체를 자랑한다. 제대로 뚜껑을 닫지 않아 철사 뭉치나 스크랩 등을 여기저기 흘리거나 시커먼 매연을 내뿜기 일쑤다. 흙이나 모래를 운반하는 덤프트럭이 나타나면 주의보 발령이다. 일단 이 트럭들은 ‘얼마나 뿌옇게 먼지를 뒤집어썼나’를 자랑하는 대회에 참가라도 하고 오는지 원래의 차량 색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시각적 즐거움은 포기한 지 오래지만, 바로 옆이나 뒤를 달리게 되면 바로 삼십육계 줄행랑 치는 것만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가속도가 붙은 모래 알갱이가 유리창에 얼마나 많은 흠집을 낼 수 있는지 알게 된 후부터 ‘피하는 게 상책’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얼마나 많은 이물질이 도로에 떨어져 있는지 갓길에 파손된 타이어가 나뒹구는 풍경은 흔하디 흔하고, 대체 무엇인지 짐작 불가능한 물체가 이리저리 바람에 날리고 있을 때도 많다. 


이 우울한 풍경이 경인고속도로의 일상임은 지난 7월 실시한 관련 기관의 합동단속 결과를 살펴봐도 금방 알 수 있다. 단속 1시간 만에 등화 손상, 반사판 미부착, 번호판 봉인 탈락 등으로 10대의 화물차량이 적발됐다. 브레이크등이 미작동하거나 덮개 바깥까지 철근이 튀어나온 덮개 불량 화물차는 물론, 마모된 타이어로 달리는 ‘시한폭탄’ 차량이 대다수였다고 하니 어찌 무섭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인천항 주변 가로구간과 교차로는 화물차 통행 비율이 30%가 넘는다. 그 때문에 이 주변 도로 노면은 ‘사상이 울퉁불퉁한’ 싸이가 와도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누더기 상태다. 아무리 보수작업을 해서 메워놔도 일주일만 지나면 그 구간이 다시 똑같은 모양으로 파여 있다. 도심 내 화물차 통행이 일반적이다 보니 교통 혼잡, 배출가스와 미세먼지 증가도 심각하다. “화물차의 비중이 높은 일부 도로구간을 대상으로 화물자동차 전용차로를 우선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연구 제안까지 나올 정도다. 


경인고속도로의 문제점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서울을 오갈 때 가장 많이 이용하는 제1경인고속도로는 상습 정체구간이 많아 ‘거북이 도로’라는 별명이 붙을 지경인데도 오갈 때마다 통행료 900원씩을 내야 한다. 주 5일 근무자의 경우 출퇴근 통행료로만 연간 수십만원을 지출하는 셈이다. 참다 못한 시민들이 통행료 폐지 운동을 벌이고 도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다. 그 결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에 ‘유료도로폐지법안’이 발의되어 있지만 언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이 와중에 서울시는 신월 나들목에서 여의도까지의 지하구간에 서울제물포터널 7.35㎞를 민자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그런데 2017년 개통 예정인 이 도로를 이용할 경우 터널 왕복통행요금 4000원(소형차 기준 1890원)에 고속도로 통행요금 1800원까지 하루에 통행료만 6000원 가까이 지출해야 한다. 빨리 가려고 일부러 돈 내고 이용하는 고속도로가 빠르지 않다면 돈을 낼 이유가 없는데도 개선 노력은커녕 비용을 더 부담하라니…. 길 가는 사람 붙잡아 ‘통행세’ 내라고 윽박지르는 산적이 떠오를 지경이다. 


인천 쪽은 위험하고, 서울 쪽은 막히는 데다 돈까지 내야 하니 어느 방향으로 가나 경인고속도로 이용자들의 마음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깨끗하지도 편리하지도 안전하지도 않은데 비싸기까지 한 이 도로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국에서 올라온 화물차들은 오늘도 쌩쌩, 경인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이 상품을 이용하는 고객들은 언제쯤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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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휘 | 성북문화재단 대표


 

돌아보니 성북문화재단의 출범은 참 고즈넉했네요. 개소식도, 초대장도, 누리집도 미뤄 둔 첫날이었지요. 10월 중순에 치른 성북진경 축제를 빼면 그때나 지금이나 재단 직원들의 나날은 성북 ‘학’(knowledge)을 찾아 배우는 일과로 채워지고 있거든요. 성북의 경제학과 사회학을 익히면서 이 앎을 어느 곳 누구하고도 교류하며 상생할 수 있는 인류학으로 발견하고 호명하는 과정이 성북 ‘학’이라는 지역학의 쓰임새임을 새삼 느끼면서요. 같은 이치로 성북문화재단 ‘학’도 만드는 중이지요. 성북에 사는 사람과 성북을 찾는 사람을 더불어 흥하게 하는 문화학과 조직학을 묻고 찾는 것이 성북문화재단 ‘학’이다 하면서요.


‘학’이라고 썼지만 발품 팔고 진땀 흘리며 이곳의 역사와 생활사 현장들을 몸으로 만나가는 학습의 연속이지요. 요즘 지역문화의 진흥이 추세입니다만 그 요체를 찾아볼수록 담담해지네요. 지역문화의 진흥이란 그 지역이 ‘하던 것’을 더 잘되게 하는 것이고 그 지역에 ‘있던 것’을 더 잘 드러내는 일이 바탕임을 깨닫게 되니까요. 이 바탕을 이해하면서 그 지역에 ‘없던 것’을 새로 보태는 일이 지역문화의 진흥이었어요. 이 ‘없던 것’도 어느 지역이든 비슷하지요. 쪼개져서 따로 공급되던 일자리와 복지와 교육과 예술을 수요자 중심으로 붙여놓고, 윗사람이 결정하고 앞장서던 판에 아랫사람도 주도하게끔 여지를 넓히고, 안에서 방어하기보단 밖에서 좋은 것을 먼저 찾아내 들이는 것이 새로움의 양식이니까요.


 같은 발상에서 성북의 문화 진흥을 위해 성북 ‘학’과 성북문화재단 ‘학’을 묵묵히 찾아가는 중이랍니다. 그런데 이들 ‘학’은 홀로 빛나는 것이 아니어서 성북 같은 다수의 생활권을 아우르는 서울시의 핵심 정책과 맞물리는 ‘전략’(strategy)으로 추진되어야 성북 시민이 체감하는 생활의 진흥으로 발현되겠지요. 그러자면 서울시의 사회적 경제와 마을 공동체, 에너지 자립과 복지 기본선 등의 정책 사업이 지역적 삶의 개인 일상에서 마치 깔때기처럼 합쳐져서 실감나게 하는 문화적이고 조직적인 촉매자의 활동이 필히 활발해져야 합니다.


분야별 지원센터와 또 다르게 지역의 촉매 조직 활성화를 꾀한다면 성북의 문화정책과 서울의 문화정책이 합류하면서 비로소 샛길과 큰길이 동시에 날 수 있겠다 싶네요. 하여 성북문화재단의 130여명 직원들이 기꺼이 그런 촉매자를 자임해서 도서관, 미술관, 영화관, 미디어센터, 구민여성회관에서 저마다 지닌 생활문화 ‘술’(knowhow)을 맘껏 발휘할 때 동원이나 수혜가 아닌 자발적 생비자(生費者)로서 동네 예술가의 본성을 표현할 성북 시민과 마주하며 환히 웃겠네 해요. 성북에는 이미 ‘하던 것’과 ‘있던 것’이 좋은 상태로 많아서 약간만 ‘없던 것’을 보태어 한 해가량 농사 지으면 결실이 제법 열리겠지 내심 설레면서요. 이렇듯 서울과 성북이 상호 작용하는 지역 생활문화의 현장을 활성화하는 촉매 역량의 강화와 함께 다른 한편에선 서울과 성북의 동시적이고 지속가능한 도시 경쟁력을 발굴하고 키워가는 4대 특별 정책 사업(killer contents)을 준비하고 있어요.


한양 도성의 생태관광 여행을 널리 알리면서 도성 밑에 자리한 마을 공동체 및 지역 예술가를 한꺼번에 활성화하는 것, 간송미술관의 상징성과 통하며 성북동의 미술관과 갤러리들을 엮어 한국의 근현대 미술거리로 활성화하는 것,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심우장을 비롯한 고택이나 역사적 문화 인물의 생가 등 서울의 대표적 미래유산을 묶어서 다음 세대를 위한 역사문화의 교육장으로 활성화하는 것, 최근 시민 관람을 개시한 한국가구박물관과 성북 및 종로의 생활민속 사립박물관을 연결해서 서울을 인상짓는 문화외교 명품 코스로 활성화하는 것. 이것이 성북문화재단이 준비하는 2013년의 4가지 특별 정책 사업입니다. 


11월 중순 무렵이면 얼추 내년 사업계획과 예산을 짜놓고서 정릉과 의릉 일대 등 성북의 호젓한 곳곳에서 마을과 경제와 예술을 알아서 함께 일궈왔던 풀뿌리 활동가들을 한 분씩 만나려 해요. 이분들에게 열쇠가 있거든요. 경청하고 거든 다음 한 걸음 물러서 있으면 자물쇠가 풀리겠지요. 왜냐하면 성북(城北)의 ‘성’이 한양 내부를 지키는 예민한 경계감이라면 그 ‘성’의 북에 있는 ‘성북’은 경계에 서서 비움으로써 두터워지는 성숙미가 아닐까 해서죠. 오늘의 다툼이 도드라지는 대신 어제와 내일에 싸인 오늘의 홀가분함이 뭔지를 알려주는 곳이 여기 성북이거든요.


해서 ‘이야기와 꿈이 많은 성북문화 일구기’라는 성북문화재단의 소명이자 좌표는 오래된 서울의 성북 이곳에서 2013년을 준비하는 오늘 하루의 일과를 고즈넉하게 채워가는 중이랍니다. 그러면서 만들어가는 성북문화재단 직원들의 약속이 있는데요. ‘3하4말’이라고 3가지는 하고 4가지는 말자는 건데 궁금하시면 연락 주세요.따로 답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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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 대중문화평론가 herland@naver.com


 

아줌마가 돌아왔다. 올해 TV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적 활약을 펼친 인물군은 단연 아줌마다. ‘시월드’와의 인위적 가족관계에 의문을 제기한 며느리 차윤희(<넝쿨째 굴러온 당신>), ‘아내의 자격’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그 이전에 ‘여자이자 인간’임을 선언하는 윤서래(<아내의 자격>), 가사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재평가하게 한 고봉실(<고봉실 아줌마 구하기>)까지. 


이들은 며느리, 아내, 엄마라는 역할에 한정되며, ‘아줌마’라는 호칭으로 뭉뚱그려진 기혼여성들의 익명성과 타자성에 맞서 부단한 실명의 전투를 벌인 올해의 캐릭터들이다.


 여기에 최근 ‘대한민국 아줌마’의 대변자를 자처하며 전업주부의 고충을 고하는 또 한 여성이 가세했다. KBS 월화드라마 <울랄라 부부>의 나여옥(김정은)이 그 주인공이다. 


<울랄라 부부>는 여옥이 가부장적 남편, 이기적인 시댁, ‘미친 사춘기’ 아들까지 다 챙기느라 지쳐가면서, 결국 주부 파업을 선언하고 남편의 외도에 이혼을 결심하기까지 긴 과정을 1회 안에 담아낸다. 그 속에서 여옥은 마치 앞선 드라마들 속 기혼여성의 수난기를 압축해서 연기하는, 극중극 배우처럼 그려진다. “내가 쌍팔년도 드라마에 나오는 식모야?” 항변하는 그녀 자신의 대사가 말해주듯이. 


(경향신문DB)


여기까지가 도입부였다면 본격적인 드라마는 그 다음부터다. 이 작품은 여옥이 기혼여성 수난담의 압축 재현을 통해 ‘대한민국 아줌마’의 대표성을 획득한 바로 그 자리에서 그녀와 남편의 위치를 뒤바꾼 ‘부부 간 성역할 체험극’이라는 2막을 시작한다. 


그동안 여옥이 아줌마의 자리에서 겪어온 수난과 차별이 이제 고스란히 수남(신현준)의 몫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남편들이 맨 정신으로는 받아들일 리 없는 이 상황을 강제 실행하게 하는 것은 ‘영혼 체인지’라는 판타지 장치다.


<울랄라 부부>는 그동안 여러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익숙해진 이 설정을, 부부 간 젠더(사회적 성) 관계 역전을 통해 기혼여성의 사회적 조건을 드러내는 흥미로운 장치로 사용한다. 특히 영혼보다는 육체의 교환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체인지 이후 극의 초점은 주로 수남이 체험하는 ‘여성의 몸’이 얼마나 불편한가에 맞춰져 있다. 여옥의 몸을 입은 수남이 느끼는 불편함은 반대 상황의 여옥이 겪는 어색함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수남이 갑갑해하는 브래지어처럼 여성 신체에 대한 사회적 제약에서 비롯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수남이 체험하는 여성 신체의 제약은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 문화를 드러내는 꽤 효과적인 장치가 된다. 대표적 예가 6회 호텔 룸메이드 면접신이다. 지배인 자리에서 해고된 수남은 재기를 노리고 메이드직에 지원해 그동안 쌓은 전문지식을 펼쳐 보인다. 그러나 면접관의 눈에 비친 그는 단정치 못한 옷차림과 남자처럼 쩍 벌린 다리가 거슬리는 아줌마일 뿐이다.


이 면접신은 남자일 때의 수남에게는 능력이었던 전문지식과 당당함이 아줌마의 몸일 때는 감점 요인이 되는 모순적 상황을 통해, 여성에게 파편적 기준을 요구하는 성차별적 시선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이 역할극 효과는 한 발 더 나간다. 첫 회에서 철저하게 분리되었던 호텔과 가정이라는 주무대 역시 뒤바뀌면서 두 공간에서의 노동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이 밝혀지는 것이다. 이를 통해 비가시적이던 여성들의 가사노동이 가시화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가령 수남이 고객에게 제공하던 서비스는 그가 가정에 돌아와 여옥에게 제공받던 노동과 매우 유사하게 그려진다. ‘고객들은 내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보살폈다’며, 호텔서비스를 가사노동자 입장에서 해석한 여옥의 하소연은 그 점을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결국 <울랄라 부부>의 역할극을 통해 드러나는 사실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가치를 지닌 두 노동에 대한 사회적 대우와 시선의 차이다. 임금을 받는 공적 노동과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 그리고 지배인, 요리사, 메이드 등 전문 인력이 분담하는 노동과 오로지 주부가 전담하는 노동의 차이. 


극중 완벽한 지배인이던 수남이 평소 “집안 일도 일이냐”며 폄하하던 가사노동에 무능하기만 한 모습이 단순한 웃음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은, 이처럼 가사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환기시키는 역할극 효과 때문이다. 물론 이 극에는 여러 불안요소도 존재한다. 여성의 고통을 체험하기 위한 수남의 임신이 단순한 재결합의 계기로 그칠 수도 있고, 부부가 서로의 성역할 차이를 이해하며 화해하는 개인적 차원의 해결로 결말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한 이 작품의 시선만큼은, 적어도 국내 최초 여성 대통령 배출을 꿈꾸는 여당 선대위원장의 ‘솥뚜껑 운전’ 인식 수준보다는 진보적일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올해 유독 큰 목소리로 돌아온 아줌마들의 귀환을 환영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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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


 

우리는 지금 상상력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다양한 상상력은 새로운 시대의 경쟁력이라 칭송받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희한하게 창의력과는 상관없는 방향의 상상력만 끓어 넘친다. 가장 많은 이들을 사로잡는 과잉 상상력은 연예인에 대한 뒷소문이다. 신문기사에서는 이니셜로 연예인의 사생활을 기사화하고, 게시판이나 e메일, 최근에는 SNS를 통해 차수를 바꾼 엑스파일이 돌아다닌다. 그나마 이런 상상력은 자본주의 사회라면 어디에나 있는 가십거리라고 치자. 그런데 정말 곤란한 건 국가기관의 과잉 상상력이다. 애초에 747이라는 놀라운 상상력으로 집권에 성공한 MB 정부의 스펙터클 판타지 상상력은 <트루맛쇼>를 연출한 김재환 감독의 으로 정산하고, 난 음란마귀에 사로잡힌 이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최근 결혼 소식을 발표한 하하의 처절한 토로를 빌려 설명하자면, ‘음란마귀’에게 지배당한 이들이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어딘가에 꽤 많은 이들이 음란마귀에게 지배당했다. 그들이 보기에 세상은 온갖 음란한 것들 투성이다. 마치 개그콘서트 멘붕스쿨의 소심해서 사고 한번 안치던 승환이처럼. 음란마귀에게 지배당한 그들은 모든 걸 음란하게 본다. 어머, 닭가슴 살이 너무 야해요! 응? 그건 개그라고? 놀랍게도 우리 세상은 개그가 현실에서 벌어진다.


최근 여성가족부에서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중 제9조(청소년유해매체물의 심의 기준) 법 제9조 제3항에 따른 청소년 유해매체물의 구체적인 심의 기준은 별표 2를 개정한다고 개정령을 예고했다. 10월4일 공고문에, 개정이유를 “청소년 연예인을 성적 침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청소년 유해매체물 심의 기준’에 관련 규정을 정하고자”한다고 밝히며 ‘청소년의 특정 신체 부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등 청소년을 성적 대상으로 묘사하는 것’을 심의기준에 포함시켰다.


아동, 청소년의 성을 보호한다는 대의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아동, 청소년의 성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방식이건 아동, 청소년을 성적으로 착취, 이용하려는 것도 엄격히 막아야 한다. 아동, 청소년을 성적으로 착취, 이용하려는 것은 범죄행위이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그것을 매체로 옮기는 것도 범죄행위다. 이런 명백한 범죄행위를 막기 위해 추가된 규정이 ‘청소년의 특정 신체 부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등’이다. 특정 신체 부위라면 어느 부분일까? 가슴? 엉덩이? 허벅지? 목덜미? 발목? 발? 손? 게다가 지나치게 강조하는 등은 어떤 묘사일까? 클로즈업? 아니면 로 앵글이나 하이 앵글? 게다가 ‘등’이라니! 이런 정도의 모호함을 심의 기준으로 제시했으니, 당연히 그 심의 기준의 대상이 되는 콘텐츠를 제작, 유통, 소비하는 사람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경향신문DB)


당연히 심심하면 아랫도리를 벗고 성기를 노출하는 <짱구는 못말려>의 경우 문제가 되느냐, 라는 질문이 나왔고 친절하게도 경찰은 <짱구는 못말려>는 청소년 음란물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설명까지 해 주었다. 앞서가는 걸 바라지는 않는다. 적어도 일반인의 시선으로 봤을 때 상식적인 수준의 법이었으면 좋겠다. 미성년 아이돌을 성적으로 소비하는 쇼 프로그램이나 뮤직 비디오가 부담스럽다면, 지금처럼 19금으로 지정하면 될 일이다.


또한 유사 사례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있다. 이번에 아동, 청소년 음란물의 제작과 배포와 발견을 위한 조치를 추가하며 아동, 청소년 음란물에 대해 2조 5항의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로 지칭했다. ‘청소년의 특정 신체 부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등’이나 ‘인식될 수 있는’이라는 조항을 가지고 승환이가 심의를 한다면, 마트에서 팔리는 닭가슴살도 음란물이다. 과장되었다고? 맞다. 과장했다. 하지만 매체를 단속하기 위한 기준이라면 보다 엄격해야 한다. 특정 신체 부위를 거론했으니 부위별 등급표라도 만들어야 한다. 돼지고기나 소고기처럼, 안심을 5초 이상 클로즈업하면 음란하다, 이런 식으로 등급표를 제시하라. 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 애초에 기존의 법으로 해결하거나, 사회적 책임을 함께 가져가면 될 일이다. 음란물을 단속하기 위한 기준이라면 보다 엄격한 법적 기준이 필요하다. 음란하라고 만든 작품이 아닌데, 음란하게 바라본다면 창작자, 유통업자, 소비자 모두 억울한 범법자가 된다. 


엄청나게 광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하나하나 타기팅해 무언가를 단속하고, 거기에 대한 모호한 기준을 제시하기보다는 정확한 등급으로 유통될 수 있는 콘텐츠 유통 질서를 세우고, 대중문화의 창조적 소비를 도와주는 편이 좋다. 세상은 생각보다 음란하지 않다. 하루 빨리 음란마귀에서 벗어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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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 문화평론가


 

고백하자면 내 펀드 투자의 역사는 꽤 성공적인 편이었다. 모 자산운용사의 중국펀드가 대세라며 너도나도 펀드에 ‘몰빵’하던 그때, 이미 나는 가입했던 채권형과 주식형, 국내 및 해외 펀드를 환매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3월, 펀드 하나를 들어도 이리 재고 저리 재고 이것저것 따져묻던 나를 무장해제시키고 ‘묻지마 투자’를 하게 만든 펀드가 나타났으니….


 이름하여 바로 ‘맨땅에 펀드’. 정원은 100명, 1인 1계좌로 30만원씩, 총 자산운용규모 3000만원인 이 소규모 펀드의 정체는 뭘까? 투자설명서부터 살펴보자. “호랭이 똥구녕을 씹어불란게”란 살벌한 멘트를 날리시는 다라이 든 할머니가 표지모델로 등장한다. 이 분은 최소 30년에서 최대 50년의 운용 경력을 자랑하는 ‘농사의 달인’ 전문 펀드 매니저다. 집합투자업자인 지리산닷컴(www.jirisan.com)은 펀드 운영이나 투자 경험이 전혀 없음에도 투자위험 특등급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여의도 대신 구례군 토지면 오미동 일원의 모 컨테이너 박스를 근거지로 삼고 있으며, ‘하늘에 수익률을 맡기는 초절정 무책임 펀드’라는 문구로 예비 투자자들을 유혹한다.


‘맨땅에 펀드’는 구례 오미동 마을의 밭 2100평과 논 2000평에 30만원을 투자한 사람들에게 제철 유기농산물을 연 7~10회 택배로 보내주는 상품이다. 


남은 농산물을 팔아 이익금이 남을 경우가 생긴다면 그때 배당을 받을 수 있다. 펀드 운용 목표는 수익 극대화와 투자자의 이익 추구가 아닌 ‘조금 더 행복해지는’ 것이다. 기후에 따라 운용실적이 달라질 수 있으며, 펀드매니저의 철학에 공감해야 하고, 온라인 판매만 하는 까다로운 조건에도 1주일 만에 완판되는 기염을 토했다. 전남지사와 전라관찰사까지 투자자로 만든, 이 무모하지만 신통한 펀드의 최초 제안자인 권산 지리산닷컴 이장은 ‘경제 관념 없는 사람들’이란 말로 고마움을 표현한다. 


투자자를 고객으로 모실 생각이 애초에 없는 배짱 영업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펀드 가입에 성공한 투자자들은 희희낙락이다. 농부의 정직한 생산물을 나누면서 그들에게 정당한 이익이 돌아가는 직거래 유통구조 확대에 기여하고, 농촌을 살리는 기회까지 얻게 된 셈이니까. 


사실 이 펀드는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권산 이장은 2006년 구례에 정착한 이후 유기농 쌀과 우리밀, 감, 청국장, 부각 등 마을의 농산물과 가공물을 직거래로 판매하는 한편 ‘구례를 걷다’는 포토에세이집을 만들기도 했다. 마을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시작조차 되지 않았을 일이다.


작은 마을이 도시의 월급생활자들에게 인간적인 식재료를 공급하고, 도시민들은 밥상을 책임지는 농부의 얼굴과 펀드 상황을 알 수 있다. 온라인의 도시민과 오프라인의 농촌민이 밥상을 매개로 구체적인 관계를 맺고 작은 시골 마을 경제를 책임지는 것이다. ‘마을 공동체의 경제적 자립을 실험하고, 도시와 농촌의 상생을 꾀하며, 진정한 협동과 네트워크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민간의 자발적 사례’라는 해석은 너무 거창하다. 모든 평가의 기준이 ‘돈’인 이 미친 세상에서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 눈에 힘 주지 않고 ‘즐겁게 돈을 쓰는 놀이’를 1년 동안 마음 맞는 사람들과 즐긴다는 표현이 맞겠다.


(경향신문DB)


말린 표고버섯, 산마늘장아찌, 산마늘잎, 오이, 두릅, 감자, 수제 허브차티백, 토종꿀, 우리밀가루, 우리밀통곡, 3년 묵힌 매실효소… 이 먹거리들이 바로 펀드의 배당금이다. 누가 키웠는지, 진짜 유기농인지, 어떻게 먹으면 좋은지 등의 설명자료를 읽고 웹사이트에 들어가 투자자들끼리 댓글 달아가며 맛있게 먹은 이야기를 하는 경험은 분명 다른 펀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기쁨이다. 지리산닷컴에 올라오는 ‘오미동 귀염둥이’ 윤하의 성장 모습과 초보 귀농자들의 실수연발 마을 적응기를 함께 지켜보는 즐거움 또한 만만치 않다. 게다가 우리밀 축제, 쌀밥 축제, 감 축제, 배추밭 투어, 김장 축제 등 제철맞춤 오프라인 행사도 수시로 진행된다.


‘맨땅에 펀드’는 올해 말쯤 지리산닷컴을 통해 내년 투자자를 모집할 계획이다. 펀드 운용 보고서는 토씨 하나까지 전부 이해 가능한 쉽고 즐거운 보고서라는 점을 보장드린다. 지리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온라인 주간 운용 보고는 물론 운영자가 깨알같이 하나하나 달아주는 댓글은 서비스다. 내년에는 VOL.2 버전으로 ‘맨땅에 펀드 강화’ ‘맨땅에 펀드 나주’ ‘맨땅에 펀드 남원’ 등등 작지만 특색있는 ‘맨땅에 펀드’들이 전국에 생겨나는 즐거운 상상도 해본다. 원조인 ‘맨땅에 펀드 오미동’의 완판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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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 대중문화평론가 herland@naver.com


 

이영훈의 단편 소설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소녀시대는 기적 같은 존재였다. 복통마저도 소녀시대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어느새 가라앉고 있었다.” G20 세계정상회의 때문에 화장실이 폐쇄된 아케이드 내에서 갑작스러운 변의를 느끼고 고통스러워하다가 소녀시대 생각에 잠시 통증을 잊게 되는 주인공의 말이다.


 소설에서 아케이드는 배설이 은유하는 개인들의 다양한 욕망에 대한 규제로 매끈하게 위생 처리된 문명 시스템을 구조화하고, 소녀시대는 그 안에 은폐된 억압을 잊게 하는 판타지로 기능한다. 소설은 주인공의 복통과 진통제로서의 소녀시대를 통해, 힘겨운 현실에 대한 힐링 판타지로서의 아이돌에 도취된 지금의 우리 사회를 증후적으로 보여준다.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라는 제목은 그러한 ‘사회 전체의 아이돌 팬덤화’ 현상을 뜻한다.


흥미롭게도 최근에, 일부 집단의 우상에서 어느덧 전 사회적 신화로 확대된 아이돌의 위상과 팬덤 현상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두 드라마가 등장했다. 얼마 전 종영된 tvN <응답하라 1997>과 현재 방영 중인 SBS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가 그것이다. 두 작품은 모두 스타를 동경하는 열여덟 살 소녀의 시점을 중심으로 하지만, 그 팬덤 현상이 드러나는 방식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경향신문DB)


먼저 <응답하라 1997>은 199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아이돌 1세대 팬덤 문화를, 사실적으로 재현된 시대상과 성장 서사 속에 아우르며, 급부상하는 10대 하위문화의 풍요로움을 이야기했다. 그 세계에서는 판타지와 현실이 서로 긴장관계에 놓여 있다. 시원(정은지)의 팬덤 활동은 10대 소녀의 현실에 가로놓인 입시사회의 그늘과 젠더적 규범이라는 이중적 억압의 분출구로 기능했다. 그녀의 팬픽은 아이돌 기획사에서 제공한 판타지를 전유하는 능동적 팬덤 문화였으며, ‘안승 부인(안승호는 토니의 본명, 즉 그의 아내라는 뜻)’이라는 닉네임은 스타와의 분명한 거리를 인식하고 그 간극을 좁히려는 팬덤 주체의 다중적 정체성이었다.


(경향신문DB)


하지만 <아름다운 그대에게>에는 그러한 간극과 긴장관계가 완전히 사라지고 아이돌 판타지가 현실을 잠식한 시대의 증후만이 떠다닌다. 단적인 예로 <응답하라 1997>에서 시원이 스타 토니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 앞에서 노숙을 하고 담을 넘다 혼이 나는 에피소드는 ‘사생팬의 현실’을 리얼하게 재현하며 현실과의 간극을 확인시키지만, <아름다운 그대에게>에서 재희(설리)가 동경하는 스타 태준(민호)에게 다가가기 위해 그의 학교로 전학하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는 ‘사생팬 판타지’에는 최소한의 현실성조차 거세되어 있다.


그 세계를 지탱하는 것은 현실성과 개연성이 아니라 그 위에 덧 씌워진 아이돌 신화다. 이 드라마는 국내 최대의 연예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가 자사의 문화자본을 총동원해서 제작하여 일방적으로 배포한 판타지이며, 따라서 거기에는 팬덤의 주체적인 자리도, 현실과의 간극 자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주인공 재희는 시원처럼 닉네임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캐릭터를 코스프레하는 아이돌 스타 설리의 닉네임에 머문다.


이 드라마에 반영된, 현실을 잠식한 아이돌 신화의 가장 궁극적인 사례는 지난 8월에 열린 SM엔터테인먼트의 가상 국가 선포식에서 엿볼 수 있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는 “SM 음악으로 전 세계가 하나 되는 가상 국가”를 상정하고, 그를 ‘뮤직네이션 SM타운’이라 명명했다. 비록 가상 국가이지만, 아이돌 1세대 당시 ‘타운’에 불과했던 SM엔터테인먼트가 어느덧 ‘네이션’으로 성장한 것은 우리 사회 아이돌 위상의 변화를 반영한 상징적 사건이다.


그리고 이 ‘네이션’은 최근 SM이 강호동, 신동엽, 김병만 등의 톱 예능인과 장동건, 김하늘 등 톱 배우 소속사와 연이어 합병을 이루어내면서 ‘제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물론 그 제국 신화의 구심점에는 여전히 아이돌이 위치한다. SM의 행보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1인자 자리를 공고히 함으로써 그 대표 상품인 아이돌의 경쟁력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그로써 아이돌이 주도적으로 세운 ‘가상’ 국가는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을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더 강력한 신화로의 예고편이 된다.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에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었던 아케이드의 입구는 소녀시대의 화려한 광고판이 장식하고 있었다. 소설 속 모든 이야기는 그 입구를 통과하면서 시작된다. 그 장면이 마치 모든 길은 아이돌 제국으로 통하는 근미래 풍경에 대한 예언처럼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기분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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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 


송강호의 애드리브라고 알려진 영화 <살인의 추억>의 대사다. 


연이어 성범죄가 보도된다. 차마 입에 올리기 싫은 사건이 방송과 신문과 인터넷에 가득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도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난 깜짝 놀란다. ‘강간’ 같은 단어를 말할 때면 마음이 편치 않고 옆에 누가 있는지 눈치도 살피게 되는데, 요즘은 뉴스만 틀면 성범죄의 세부 과정이 다 등장한다. 그러니 초등학생 아이들의 대화에 성폭행 사건이 아무렇지 않게 등장한다. 정말 우리나라가 강간의 왕국이 된 걸까? 


 인터넷에서 ‘한국, 성범죄’라는 두 키워드로 검색해 보기만 해도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범죄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고,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높은 수치이며, 게다가 미신고 범죄나 합의로 고소가 취하된 경우를 따지면 숫자가 훨씬 더 증가한다고 한다. 구태여 숫자를 따져봐야 뭐하나. 방송이나 신문의 보도만 보더라도 우리 현실이 적나라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음란물을, 그러니까 포르노를 문제의 원인으로 꼽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포르노는 우리나라에서 조금의 여지도 없이 불법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강력한 청소년보호법이 있어, 합법적인 콘텐츠라 하더라도, 청소년의 정서를 해칠 것 같으면 여성가족부에서 유해매체로 지정할 수 있다. 유해매체가 되면 함부로 열어볼 수 없게 포장돼야 하고, 공개된 장소에서 진열도 할 수 없다. 그런데 만연한 음란물이 문제라고? 


포르노가 문제라면, 포르노가 합법인 일본은 그야말로 지옥불구덩이 속이어야 한다. 하지만 창피하게도 일본의 우익 누리꾼들은 우리나라를 강간의 나라라고 조롱할 정도다. 그러니까 포르노는 문제될 게 없는 게 아닌가? 아니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포르노는 불법이다. 그게 문제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불법이어서 문제다. 불법이기 때문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데, 버젓이 존재한다. 다만, ‘야동’이라는 귀여운 이름이 붙어서. 누가 만든 이름인지 모르겠지만, 포르노가 야동이 되는 그 지점이 문제의 시작이다. 


불법 음란물 혹은 포르노라는 문제적 단어를 대치한 야동. 어감도 귀여운 야동은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를 이야기하는 토크쇼, 스포츠신문 기사, 유머 게시판 등에 빠지지 않는 에피소드다. 심지어 어느 시트콤에서는 완고한 할아버지 캐릭터가 야동을 보기 위해 말도 안되는 일을 벌이는 에피소드가 나왔고, 한때 국회의원을 지낸 한 배우는 ‘야동순재’라는 별명을 얻었다. 포르노는 불법적인데, 이걸 야동으로 바꿔 모든 세대의 상큼한 취미활동쯤으로 덧칠을 했다. 이런 상황이니 어른들은 물론이고, 청소년 심지어 초등학생들도 야동을 찾아본다. 포르노가 불법인 나라에서, 포르노는 야동으로 개명하고, 국민적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다.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순재 패러디. (경향신문DB)


야동이 된 포르노. 분명 불법인데 합법처럼 보이는 이 진기한 현상의 핵심에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많은 불법들이 제 이름을 버리고, 다른 이름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5·16과 12·12다. 5·16과 12·12 모두 불법적으로 권력을 찬탈한 반란, 그것도 무력을 사용한 군사반란이다. 그런데 그 불법적 행위를 반란이라 부르지 않고 5·16, 12·12라고 부른다. 5·16? 12·12? 무슨 암호인가? 그래서인지 그 암호에 응답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뭐, 자신의 가치관과 역사의식에 따라 군사반란을 옹호할 수도 있다고 치자. 하지만 반란을 숫자로 치환하지는 말자. 그렇게 군사반란이 우리나라를 공산당의 침략에서 구한 구국의 결단이라 생각한다면, 좋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구국의 군사반란이라고 부르시라. 다만, 5월16일 새벽 전차를 몰고, 군대를 동원해 멀쩡한 정부를 전복시킨 명백하고도 객관적인 반란은 반란으로 부르면 될 일이다.


포르노는 포르노로 불러야 하고, 군사반란은 군사반란이라 불러야 한다. 포르노를 야동으로 부르는 순간, 유통과 시청이 말썽꾸러기들의 장난 정도로 포장된다. 근엄한 이순재씨가 ‘야동순재’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군사반란을 숫자의 조합으로 부르는 순간, 불법이 모호함으로 포장된다. 본질인 반란을 숫자로 가리고 나면,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이라는 따위의 주장이 나오게 된다.


5.16혁명? 군사반란


포르노가 야동이 된 우리 사회는 불법이 합법으로 가장되는 사회다. 합법으로 가장된 불법은 약한 자들을 짓누르고 착취하는 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병을 뿌리 뽑을 때는 원인균을 박멸해야 한다. 성범죄를 줄이고 싶다면, 우리 사회에서 작동되는 이 왜곡의 메커니즘을 뿌리 뽑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포르노는 포르노라 부르고, 군사반란은 군사반란이라 부르자. 용어가 인식을 만들고, 인식이 행동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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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 문화평론가


 

“언니야, 혹시 남는 영수증 있어?” 세일기간이라 혼잡한 백화점, 친근하게 말을 붙여온 아줌마는 20만원을 구매해야 주는 1만원 상품권을 받고 싶은데 5만원쯤 모자란다며 남는 영수증을 요구하신다. 일종의 영수증 호객행위다. 연말만 되면 인터넷에서 보이는 ‘스벅 스티커’를 구한다는 광고와 비슷하다. 12개의 스티커를 모으면 1만2000원인 스타벅스의 다이어리를 공짜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인데, 스티커를 모을 수 있는 기간이 짧고, 특정 음료를 3잔 이상 마셔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보니 서로 돕자는 취지다. 너무 합리적이어서 눈물이 다 난다.


 요즘은 20만원을 구매해도 1만원 상품권을 받기 위해서는 충족해야 하는 조건이 많다. 일단 그 백화점 계열사의 신용카드나 최소한 포인트 카드라도 있어야 한다. 상품권 수령처는 백화점의 후미진 지하, 각종 행사장을 다 지나쳐야 어렵게 찾을 수 있는 곳에 있다. 그곳까지 내려가다 보면 왜 그리 지치는지, 음료수라도 하나 사서 먹게 되어 있다. 꾸역꾸역 행사장에 도착해 겨우 상품권을 받고 나면 3만원 이상 구매한 영수증 제시 시 선착순 증정한다는 세제, 식용유 등의 사은품이 눈에 들어온다. 20만원 넘게 샀으니 의기양양, 그 줄에 다시 서서 영수증을 내밀면 아르바이트생의 차가운 한마디 “우편으로 받으신 쿠폰 가져오셨나요?” 쿠폰이 없으면 “고객님은 대상이 아니세요” 그것으로 끝이다. 


그런가 하면 언젠가부터 생일을 알게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은 e메일이다. 각종 사이트들은 회원가입 시 입력한 생일에 맞춰 축하 메일을 정중하게 보내온다. 문자메시지도 빠지지 않는다. 정확히 자정에 기계적으로 발송된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는 문자 때문에 단잠에서 깨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찜찜한 기분이 무엇인지 아실 것이다. 이사 등으로 더 이상 갈 일이 없는 가게에서 지속적으로 보내오는 판촉용 메시지는 ‘안습’ 그 자체다.


(경향신문DB)


사실 한 푼이라도 아낀다며 모으는 각종 쿠폰과 마일리지, 포인트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내 구매 이력은 시스템에 차곡차곡 등록되고 있다.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아이가 있는지, 무슨 커피를 마시는지, 주로 이용하는 매장은 어디인지, 어느 시간대에 가장 많이 이용하는지…. 아예 주문 시마다 매장 포스(POS)에 성별과 나이대, 일행 수를 입력하는 프랜차이즈도 있다. 이는 연령별, 성별, 지역별 구매 패턴을 분석하는 유용한 데이터로 이용될 것이다. 일정 기간 이상 로그인하지 않는 고객에게 ‘부담 없이 신상품 구경하러 들어와달라’고 e메일을 보내는 것은 기본이다. 만약 이 e메일을 클릭한 누군가가 오랜만에 물건을 산다면 쇼핑몰 운영자는 ‘역시 고객관리가 중요해’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고객의 선택권은 알량하거나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은행이 스마트폰 전용 고금리 예·적금을 출시하면 구형 핸드폰 사용자는 가입이 불가능하다. 인터넷을 이용할 줄 모르는 노인분들은 창구 이용에 높은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은행은 수수료를 아끼려면 인터넷 뱅킹을 활용하라고 친절히 조언한다. 그러나 인터넷 뱅킹은 컴퓨터 구비 및 인터넷 연결이란 조건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대다수 저소득층 노인들에게는 불가능한 ‘선택’일 뿐이다.


우리는 쿠폰과 각종 마일리지에 연결된 보이지 않는 끈에 나 자신의 동선과 구매 내역과 날짜까지 맡겨놓은 꼭두각시들이다. 이 끈은 은행, 신용카드사, 대형마트, 대기업 계열의 각종 프랜차이즈 등등을 종횡무진 넘나든다. 기왕이면 포인트 적립되는 곳으로 가야 하니까! 차곡차곡 모아 공짜로 먹는 뿌듯함을 포기할 수 없으니까! 생일 쿠폰은 쓰라고 준 거니까! 이런저런 조건을 꼼꼼히 따져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선택이 아닌 셈이다.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를 물었던 홍세화의 질문을 던져보면 답은 더욱 분명해진다. 필요한 서비스만 쏙쏙 골라 이용한다는 체리피커는 전용 앱이 나올 정도로 알뜰한 소비자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체리피커는 신용카드 서비스에 자신의 소비욕구와 동선과 일시를 맞춘 것에 불과하다. 


과거 구매 내역을 바탕으로 다음달에 구매할 만한 물품의 쿠폰을 맞춤형으로 제공하고, 그 쿠폰을 이용해 싼 가격에 그 물품을 구매한다면 이 소비는 과연 누구의 것일까? 쿠폰을 보내준 기업인지, 그 쿠폰을 선택한 나인지 알쏭달쏭하다. 내가 적립받고 아꼈다고 생각하는 그 몇 천원은 정말 절약한 것일까? 골목골목 울려퍼지고 있는 광고와 마케팅의 현란한 피리 가락에 너무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우리 모두가 ‘현명한 소비자’란 피리 가락에 취해 눈감고 귀 막은 채 피리 부는 사나이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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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휘 | 성북문화재단 대표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2리에는 500여 사람이 삽니다. 이분들 중에는 50년째 이발소를 운영하는 주인장이 있어요. 외관부터 소품까지 모두 근대 박물관인 이발소를 지키며 강화 토박이로 살아온 67세 이발사는 숨 쉬는 역사 교과서예요. 과묵한 인상과 달리 입만 떼면 강화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지요. 직접 키운 순무와 신선한 야채를 파는 천막 가게의 67세 주인장은 전에 물레 양장점을 오래 해서 동네에선 “물레야~”로 불려요. 쾌활하고 붙임성 좋은 주인장은 도시에서 온 낯선 청년들에게 순무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쳐주면서 길가다 훈수 두는 이웃들을 끌어들여 잔치판을 벌이지요. 배우는 청년들보단 사실 이분들이 한 가득씩 순무 김치를 휘리릭 버무리고 끝낸답니다. 


 분홍색 지붕집에서 병아리와 닭을 키우며 동네 고양이들 밥상도 같이 차려주는 75세 주인장은 “닭이 크지 않아 걱정”이고 손님들이 오면 “고양이들이 오지 않아 걱정”이라면서도 활달하게 웃으세요. “도라지는 묵히면 약이 되는데 사람은 묵히면 바보가 된다”와 같은 명언을 쏟아놓는 유창한 달변가지요. 불쑥 찾아온 도시 청년들에게 담에 올 땐 떡을 해놓겠다고 약속했어요. 나란히 붙어 있는 은하 미장원과 은하 악기사는 부부가 운영하는데 안쪽엔 늘 대문이 열려 있는 가정집이 있어요. 장사보다는 가게문을 열어둔 채 마실 나가는 게 일이라서 부부가 순무가게나 길에서 만날 때가 더 많다며 수줍게 웃는 은하 미장원의 65세 주인장은 지금도 새댁 같아요. 


(경향신문DB)


사는 데는 인천이나 온수리에 정을 붙인 지 10년차인 과일 트럭의 60세 주인장은 파란만장 인생사를 들려주면서도 사진을 찍으면 미소를 날리지요. 전기공사 사업을 하다 IMF로 접은 뒤 옷장사로 떠돌다가 몸이 아파 한 군데서 오래 단골 장사를 하기로 맘먹었는데 그곳이 온수리였대요. 가난해서 공부 대신 일찍 시계 기술을 배워 가족을 건사했고 아들은 서울대 나와 특파원한다며 자랑하는 광명당 주인장은 아직 이름과 나이를 안 알려주었어요. 한창 때는 장사하러 김포를 나가는데 배를 못 타면 맨몸으로 바다를 건넜다면서 이젠 벌이가 안 된대요. 그래도 매일 광명당을 열고 있었더니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마을의 중심 복덕방이 되었다면서 싫지 않은 표정이에요. 


지금까지 소개한 이분들을 다시 소개하지요. 이발소의 유길희 교수님, 순무가게의 김정자 교수님, 분홍색 지붕집의 고정숙 교수님, 은하 미장원의 유영원 교수님, 과일 트럭의 김희규 교수님, 광명당의 ○○○ 교수님입니다. 가르치는 과목은 손수 이발하는 법, 순무 김치 담그는 법, 닭 기르고 고양이 밥 주는 법, 값싸고 튼튼한 시계 사는 법부터 강화에서 이웃되는 법, 전쟁 통에 살아가는 법, 사기당하지 않는 법, 부부로 오래가는 법, 인생을 알아가는 법 등 갈수록 늘어나네요. 그런데 이분들이 자청해 교수님이 된 건 아니에요. 서로를 많이 알지도 않았고 교류가 잦았던 것도 아니고요. 이분들이 줄줄이 교수님이 된 사연에는 작년 8월부터 온수2리 마을을 쏘다닌 두 청년이 있었습니다. 


20대 후반의 우민정, 우민희 자매. 파주에 사는 이 자매는 작년부터 이곳에 온수리대학을 열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교수가 되고 도시에서 찾아오는 청년과 청소년들이 학생이 되는 이상하고도 재미있는 대학이지요. 올해 8월엔 수도권의 중1 청소년부터 대학생과 30대 청년까지 14명이 2박3일간 온수리대학 캠프에 참여했네요. 이 캠프를 계절별로 열고 월별로 특화해서 온수리대학 교수님들께 지속적인 강사료와 수입을 드리는 것이 우씨 자매의 목표더군요. 온수2리만 봐도 교수님들이 무궁무진하다면서 이분들의 경험과 이야기가 곧 우리 시대의 청년과 청소년에게 긴요한 산지식이자 기술이라면서요. 이 사례를 접하는 순간 한 방에 감이 옵디다.


뭔 감이냐고요? 700만을 웃도는 베이비 부머 은퇴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할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감이지요. 한국전쟁 직후부터 1960년대 중반에 난 이분들은 온수리대학의 교수님들 세대와 또 다른 지식과 네트워크와 자산이 많지요. 이분들의 경험을 불안에 내몰리는 자영업과 단순 근로가 아닌 제3섹터로 안내하여 적정 노동과 적정 임금의 창의적 생태계로 가꾸는 것, 이것은 이분들의 인생에 녹아든 희로애락의 가치와 쓸모를 재발견하는 정중한 태도와 꼼꼼한 관계 재형성을 통해야만 작동될 겁니다. 그 가능성을 우씨 자매가 세대 간 연대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네요. 


고정숙 교수님 말대로 베이비 부머도 청년도 따로 묵혀야 될 이유가 없어요. 같은 부류끼리 무리지어 경계에 갇혀 있으면 더 외로워져서 웰빙에 이어 힐링 상품을 소비하다 끝날 뿐이에요. 그러나 이렇게 세대가 서로 만나면 누구도 바보가 되질 않고 도리어 총기가 살아나며 살맛이 나요. ○○은대학이 번지는 사정도 이거지요. 잉여 바보가 아니라 내 인생의 주인장들끼리 어울려 살아가는 그 희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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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 대중문화평론가


요즘 가장 뜨거운 화제의 드라마는 tvN <응답하라 1997>이다. 33세의 방송작가 시원(정은지)이 고등학교 동창회를 계기로 ‘찬란했던 90년대’와 10대 시절을 돌아보는 내용의 이 드라마는, 최근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 중인 1990년대 회고담에 속한다. 특히 이 작품은 당시 급부상하던 아이돌과 10대 팬덤 문화를 적극적으로 소환함으로써 단순한 유행상품을 뛰어 넘는 독특한 개성을 획득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응답하라 1997>은 소위 ‘빠순이’ 문화로 폄하돼온 팬덤 문화, 더 나아가 소녀문화 중심으로 재해석한 90년대 이야기다.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의 1997년은 외환위기, 첫 정권교체 등 정치·경제·사회적 이슈 못지않게 중요한 아이돌의 해로 호출된다. 바로 그 전 해인 1996년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하고 국내 최초의 기획형 아이돌 H.O.T가 데뷔했다. 그러니까 1997년은 서태지 이후의 대중음악계가, H.O.T와 그 대항마로 데뷔한 젝스키스라는 대형 아이돌그룹에 의해 양분된 해였다.


X세대의 기수로 출발한 서태지가 곧 세대를 초월한 ‘문화 대통령’으로 대중문화를 장악했다면 ‘High-five of Teenager’의 약자인 H.O.T는 그 이름처럼 10대를 겨냥한 그룹이었다. 그들은 ‘전사의 후예’, ‘열맞춰’, ‘위 아더 퓨쳐’처럼 청소년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은 노래들을 발표하며 10대들의 대변자를 자처했다.


하지만 이들이 더 정확하게 공략한 대상은 10대 전체가 아니라 소녀들이었다. 즉 기획 당시부터 미소년들을 선발해 순정만화 속 캐릭터를 부여하는 등 소녀들을 위한 맞춤 상품으로 탄생한 것이 아이돌 보이그룹이다. 이들의 상업적 위력에 비해 초라한 문화적 위상과 폄하 섞인 시선은 10대, 특히 소녀들의 사회적 위상과도 관련이 있다.


이를테면 소녀들은 기성세대가 청소년 모두에게 요구하는 규율과 금기의 법칙에 더해 ‘소녀다움’이라는 젠더적 규범까지 요구받는다. 힙합 바지, 멜빵 바지, 폭탄 머리 등 좋아하는 보이그룹의 스타일을 모방한 중성적 패션, 혈서까지 불사하는 격렬하고 공개적인 애정 표현, 팬픽으로 대변되는 성적 판타지의 노골적 표출 등 소녀들에게 요구하는 규범에서 일탈한 팬덤 문화의 대표적 요소들은 그것이 ‘빠순이’ 문화로 폄하당하는 주 이유가 되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 출연하는 서인국과 정은지 (출처: 경향DB)


<응답하라 1997>이 인상적인 것은 그 소녀들에 대한 기대와 규범을 모조리 배반하는 ‘천방지축 소녀’ 시원과 그 또래 소녀들을 통해 10대 소녀 팬덤 문화를 긍정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들이 H.O.T나 젝스키스 같은 아이돌스타를 사랑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억누르고 자제하라는 것만 배워 온 소녀들의 욕망에 적극적으로 부응해 준 최초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에 대한 애정을 공유하는 감정공동체로서의 팬덤 문화는 소녀들이 자신의 욕망을 더 당당하고 용감하게 표출하는 데 든든한 울타리로 기능했다. 소녀들은 그 안에서 팬픽의 생산과 소비를 통해 스타를 마음껏 재생산하며 자신만의 판타지를 구축하고, 스타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또래공동체에 대한 열정을 통해 공감과 유대의 중요성을 배우며 성장한다.


그리고 <응답하라 1997>은 이러한 팬덤 문화의 재해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힘의 근원이 소녀문화 자체의 풍요로운 자산에 있음을 보여준다. 가령 이 작품에서 소녀들의 문화는 소년들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그려진다. 윤제(서인국)와 소년들이 기껏해야 농구를 하고 야한 사진을 공유하며 스타크래프트를 즐길 때, 시원과 소녀들은 만화와 잡지를 읽고, 라디오를 들으며 사연을 쓰고, 드라마와 영화와 콘서트를 감상하며, 유행하는 패션과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따라한다.


소녀들의 다채로운 문화 향유는 그들이 세간의 시선처럼 단순한 ‘빠순이’가 아닌 1990년대 대중문화의 능동적 주체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더 나아가 이 작품 첫 회에 등장한 1997년 최고의 인기 드라마 MBC <별은 내 가슴에>는 그녀들의 문화적 감수성이 그 시대의 지배적 감수성이었음을 상징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최진실이 연기하는 평범한 여주인공이 당대의 톱가수 강민(안재욱)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은 10대 소녀들이 꿈꾸던 팬픽의 판타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시원과 친구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원하는 대학은 무리’였던 학창 시절 성적에도 불구하고 2012년 현재 방송작가, 큐레이터, 편파 중계 아나운서 등 트렌드를 주도하는 직업에 종사할 수 있는 원동력은 그녀들의 그러한 문화적 감수성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응답하라 1997>은 그동안 대중문화 담론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온 소녀문화 복권에 대한 외침이자 1990년대 회고담 열풍 속에서 발굴한 빛나는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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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


 

1990년대 중반, 만화가 좋아 만화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고, 글을 쓰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일간지 신춘문예 만화평론 부문에 당선됐다. 순전히 ‘운빨’이라고 생각한다. (신춘문예 만화평론은 다섯 해인가 지속됐다가 사라졌다.) 햇병아리, 얼치기 평론가이지만, 다른 글쟁이들의 만화에 대한 비유는 영 거슬렸다. 특히 영화평에 자주 등장한 문장이었는데, 뭔가 이야기 전개가 느슨하거나 황당한 연출이 등장하면 어김없이 ‘만화 같은’이라는 수식이 등장했다. 난 이 수식을 참 싫어했다. 만화를 무시한다고 분개하기도 했고, 그런 표현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자본과 비평이 만나 활짝 피어나던 영화산업, 영화문화가 부러웠고 배아팠다.만화 같은 영화, 만화 같은 드라마, 만화 같은 뮤직 비디오, 만화 같은 인생…. 리얼리티가 떨어지거나, 스테레오 타입이거나 아무튼 뭔가 좀 부족한 모든 것들을 전부 만화 같았다고들 했다. 그게 정말 싫었고, 만화 안에 내재한 가치를 찾으려 동분서주했다.


 만화 같은 것들을 경계하며 세상은 만화가 꿈꾸던 21세기가 됐다. 요즘은 만화 같다는 표현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 아마 그만큼 만화의 시민권이 회복되었기 때문이리라. 지금 생각해 보면, 지난 시절 만화 같다고 한꺼번에 정의된 사람, 이야기, 사건, 표현 등은 뭔가 유사한 맥락에 존재했다. 그건 조금은 부족하지만 악의적이지 않은, 어수룩한 낭만과 순수한 열정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만화 같은 것들을 광속으로 밀어냈다. 빠름 빠름 빠름!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재빨리 아파트를 사고팔았고, 주식이 오르면 얼른 주식과 펀드에 돈을 넣었다. 만화 같은 것들을 밀어낸 자리를 차지한 건 빛나는 돈의 아우라를 두른 욕망. ‘부자 되세요’ 따위의 카피가 CF에 지겹게 나올 때부터 우리 삶은 망가지기 시작했다. 휘황찬한한 돈의 아우라는 모든 추악한 걸 감추어 버렸다. 그렇게 어떤 이는 대통령이 됐고, 1% 살찌고 99%는 야위어갔다. 심지어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누구는 폐쇄된 직장을 지키고, 누구는 그 직장을 빼앗고 노조를 깨기위해 소화기를 뿌린다. 시끄러운 컨택터스 사건을 보라. TV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에 나오는 용역들을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이유는 ‘돈’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난 10여년간 우리가 밀어낸 만화 같은 것들이다. 1970~1980년대에 만화를 본 40대들이라면 명랑만화를 기억할 것이다. 꺼벙이의 어리숙함, 고집세의 밉지 않은 고집, 두심이의 모험, 요철발명왕의 황당한 상상력, 번데기 야구단 주인공들의 끈기, 오학년오반 삼총사의 우정. 아마 하나하나 기억날 것이다. 


1980~1990년대에 만화를 본 30대들이라면 아마 이런 만화가 기억날 것이다. 새엄마를 오해하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오늘도 달리는 소녀 하니, 낯선 이방인들의 짓궂음이 함께하는 고길동씨네, 말썽꾸러기 학동들을 달래기 위해 늘 선대왕 이야기를 해 주는 맹꽁이 서당의 훈장님, 저 멀리 그린우드에서 이 세상으로 온 요정 핑크. 덧붙이자면 수도 없이 나올 그 시절의 만화들이다.


길창덕의 만화 <꺼벙이> (경향신문DB)


꺼벙이처럼 어리숙해지면 삶이 행복해진다. 고집세의 밉지 않은 고집은 공동체의 가치를 지킬 것이다. 두심이의 모험은 새로운 창의로 미래를 개척하게 할 것이고, 요철발명왕의 황당한 상상력은 놀라운 벤처정신과 다를 바 없다. 번데기 야구단 주인공들의 끈기는 좌절하는 당신의 오늘을 이길 힘이 된다. 오학년오반 삼총사의 순전한 우정은 경쟁이 아닌 협업의 사회를 만들 것이다. 소녀 하니와 새엄마의 화해는 무너지고 있는 가정을 새롭게 돌아보게 할 것이고, 모든 이방인들을 품어주는 소시민 고길동씨는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그들의 모습과 다름없다. 맹꽁이 서당 훈장님의 모습에서 공교육의 모델을 보고, 그린우드에서 온 요정 핑크를 통해 환상과 만난다.


우리는 이런 만화 같은 것들을 모조리 내 삶에서 밀어내고 팍팍하게도 살았다. 만화 같은 것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만화를 보자. 어떤 만화라도 좋다. 만화를 통해 내 삶을 느슨하게 풀어보자. 증오와 분노를 잠시 내려놓고, 허망한 키보드질도 그만두고, 만화를 보자. 가족이 있다면 가족과 함께 만화를 보자. 어느 순간, 내가 밀어냈던 만화 같은 것들을 다시 만날 때, 우리 삶은 행복의 길로 한 발 더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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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휘 | ○○은대학연구소 2소장


 

탈토건과 탈핵의 문턱에 선 요즘 여러 화두가 명멸합니다만 그 바탕이 되는 으뜸 화두는 단연 ‘마을만들기’인 것 같네요. 이 ‘마을만들기’는 전통 한옥이나 씨족 마을을 복원하자는 것은 당연히 아니겠고요. 새벽종과 통금 사이렌이 울리던 새마을운동의 그 마을도 아닐 테고요. 공인중개사 간판들로 에워싸인 뉴타운 아파트 신축 현장도 아니지요. 그래서 서울시 마을종합지원센터에 계신 분께 물으니 귀농귀촌의 대표격 마을들이나 도시형 마을의 독보적 사례인 성미산마을을 따라 해서 되는 것도 아니랍니다. 그럼 뭘까요?


 옛 마을의 정취와 미담 되살리기나 뉴타운 부작용의 단계적 출구 제시나 대안적 성공 사례의 복제 확산이나 각기 일리가 있습니다만, 이중 무엇이 모델이라고 단정해선 절대 안 될 복합적 질문이 우리 사회의 ‘마을만들기’ 같더군요. 우리가 만들어갈 마을은 매사에 정답과 오답의 경계가 분명했던 과거의 ‘토박이형 마을’이 아니라 정답이 아예 없어진 당대와 근미래에 작동할 ‘움직이는 마을’이 아닐까 해서입니다. ‘없어진 정답’을 찾는 대신에 서로 마주하고 상호 응답하는 일에 공을 들이게 된 사람들이 이동하며 닻을 내리는 곳곳에서 번창할 관계의 꿈꾸기, 이걸 촉진하는 게 ‘마을만들기’의 전략이어야 할 것 같아서죠.


이런 ‘마을만들기’에는 관과 행정이 맡아야 할 공공의 몫이 크지요. 사적 개발이익에 끌려 다닌 주거정책의 폐해를 완화, 예방할 수 있는 제도를 정비하면서 생활권마다 적절하게 개발과 보존의 기반을 조성하는 일인데 이거 쉽지 않아요. 한 치도 물러섬 없는 이해의 충돌이 겹겹으로 맞물린 장소라면 해법이라고 보탤수록 더 망칠 수 있기에 문제의 매듭이 헐거워지도록 기다려야 할지 몰라요. 이점에서 ‘마을만들기’는 투기와 개발의 바벨탑 뉴타운에 들어가 묘책이 되려는 과욕을 주의하면서 오히려 그 주변과 외각에서 새로운 이웃 관계의 잔잔한 바람을 일으키며 신명을 북돋는 나날의 마을축제로 시작해야 좋아요


그런데 우리의 마을축제가 어떠한지는 서울 어디든 주택가에 가서 한나절 지내보면 압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미취학 아동, 주부, 노인, 자영업자만 있지요. 청소년과 청년, 사회 초년생과 중장년은 거기 없습니다. 잠만 자고는 공부하러, 돈 벌러, 놀러 종일 딴 데를 다니는 것이 서울 같은 대도시와 주변 소도시에 사는 학업기 인구나 경제활동 인구의 획일적인 생활 패턴이지요. 이런 상태를 그대로 두고 마을축제를 하면 참가자는 늘 주부와 노인 아니면 관광객과 구경꾼입니다. 재미는 고정되고 의미는 반감되면서 활기가 줄어들기 쉽지요.


‘마을만들기’의 전략으로서 마을축제를 활성화한다면 청년과 청소년이 각종 마을 프로젝트를 주도하게 하세요. 그 과정에서 집에서 잠만 자던 또래와 중장년층을 초대하는 기획을 지원하세요. 유명해진 홍대앞 칼국수집 두리반, 옥수동 어쩌면사무소, 해방촌 게스트하우스 빈집 등 여기에선 별별 청년들의 네트워킹이 이미 활발해서 지역민과의 교류도 점차 잦아지고 있어요. OO은대학도 바로 이런 걸 합니다. 부천은창조대학, 부평은아파트대학, 구로는예술대학, 부산 남항시장은대학 등 각자 붙박여 꼼짝 않는 게 아니라 마실 나가듯 서로 왕래하면서 그 활력으로 또래나 후배 청년을 마을일꾼으로 발굴하는 성과를 내지요.


이들 청년은 그곳에 정주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곳에서 새로운 이웃 관계가 형성되느냐 아니냐를 따라 움직인다는 특징이 있어서 한번 불이 붙으면 금세 친구들을 불러 모으지요. 이렇듯 이미 있는 청년들의 자발적 마을 프로젝트에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자치구마다 신설되는 마을종합지원센터의 전략 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토박이형 마을’을 넘어 ‘움직이는 마을’이 강조되어야 할 또 하나의 큰 이유는 장소의 경계를 지우며 활동하는 딴따라댄스홀(6월19일자 칼럼) 같은 사회적 동아리의 증가에 있어요. 이들과 만나야 ‘마을만들기’도 휴먼웨어의 이종간 연대를 뜻하는 사회적 자본을 제대로 만들 겁니다.


서울 삼선동 장수마을의 한 주민이 옥상에 마련한 텃밭에 물을 주고 있다. (경향신문DB)


마침 서울시와 자치구들이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마을만들기’의 시야를 확장하고 있네요. 목수 노인이 많은 삼선동의 장수마을, 조선족이 많은 대림동의 다문화마을, 도봉산 길목의 도봉동 베이스캠프마을 등 특색을 살려 다양한 ‘마을만들기’ 시범 사례를 모색하는 중이라는군요. 이런 시도가 단지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공급자 위주의 전시행정에서 탈피하려면 휴먼웨어 결합이 강조되어야 하고, 그것도 ‘마을=정주’의 고정 관념을 넘어서 움직이는 휴먼웨어의 주도가 충분히 일어날 수 있어야 해요. 


이제부턴 이렇게 생각해보죠. 마을은 그곳에 머물기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그럼 없어진 옛 마을을 어떻게 다시 만들까 하는 막막함 대신에 소소하게 마을 프로젝트를 이미 하고 있는 청년들 모습이 우리 두 눈에 쏙쏙 들어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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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 대중문화평론가


17세 소녀 한명이 응급실로 실려 왔다. 교통사고로 극심한 외상을 입은 환자였다. 소녀는 의식 한번 찾지 못하고 끝내 사망하고 만다. 더 큰 비극은 죽음의 원인이 사고에만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이면에는 부조리한 시스템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숨어 있었다. 이것은 올해 최고의 화제작으로 평가받는 SBS 드라마 <추적자>의 도입부로 낯익은 설정이다. 그런데 소녀의 억울한 죽음이라는 이 소재가 현재 방영 중인 또 한 편의 드라마에서도 인상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MBC <골든 타임> 얘기다.


<골든 타임>은 응급의학과를 중심으로 한 의학드라마다. 그 중에서도 각종 사고나 재난 등으로 심각한 다중 손상을 입은 중증 외상 환자를 다룬다. 말 그대로 ‘응급 상황’이 계속해서 펼쳐지니 긴박함을 강조하는 의학드라마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소재인 셈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러한 응급실의 스펙터클을 과시하는 데는 큰 관심이 없다. 대신 긴급 처방과 수술만으로는 완치가 불가능한 국내 의료시스템의 근본적 모순을 겨냥해 메스를 든다.


 다시 소녀 이야기로 돌아가면 <골든 타임>의 응급실에 도착한 그녀는 이미 위독한 상태였다. 버스 사고로 뼈가 으스러지고 장기가 손상되었으며 목에는 커다란 파편까지 박혀 있었다. 중증 외상 환자가 생존을 위해 치료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 이른바 ‘골든 타임’이 그녀에겐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세중대병원에는 그 수술을 감당할 의사가 없었고 결국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소녀는 길 위에서 목숨을 잃는다.


드라마는 묻는다. 이 죽음은 누구의 책임인가. 다른 과 수술이 더 시급하다며 순서를 미룬 의사들인가 아니면 규모가 더 작은 2차 병원에서는 수술이 어려움을 뻔히 알고도 이송을 결정한 병원인가. 그리고 드라마는 스스로 답을 찾고자 애쓴다. 일단 “의사 개인이나 일개 병원의” 책임만은 아니라고. 그것은 훨씬 더 복합적인 문제다. 어떤 것보다 환자의 생명이 우선이라는 의학드라마의 휴머니즘적 이상은 <골든 타임>의 응급실 안에서 다양한 현실적 문제와 부딪힌다.


MBC 드라마 ‘골든타임’에 출연하는 배우 이성민 (출처: 경향DB)


예컨대 그 이상의 실천자이자 응급실의 지휘자 최인혁(이성민) 교수는, 병원 운영자 입장에서는 적자 폭을 늘리는 골칫거리이며, “병원 인증평가”를 준비하는 행정실 직원에게는 규칙 위반자이자, 다른 동료 의사들에게는 엄연한 절차와 질서를 어지럽히는 문제인물일 뿐이다. 최 교수에 비해 한없이 이기적이지만 한정된 예산과 인력이라는 조건 속에서 그들의 입장 역시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인혁의 헌신은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개인의 희생은 결코 근본적 해답이 될 수 없다.


실제로 <골든 타임>에서 가장 섬뜩한 부분은 한 전공의가 최인혁이 없던 시절의 세중대병원 응급실이 어떠했는지 묘사하는 장면이었다. 수술실이, 수술할 의사가, 중환자실이 없어서 “응급실에 깔려 있다 수술도 못해보고 죽”는 환자가 부지기수였다는 이야기. 앞선 소녀의 죽음도 그가 병원을 사직한 뒤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그리고 이는 최인혁이라는 의사를 가지지 못한 수많은 병원의 실제 모습이기도 하다. 이것이 기존의 의학드라마가 보여주지 못한 <골든 타임>의 잔혹한 의료 현실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드라마는 더 나아가 국가의료시스템 문제를 지적한다. 국가라면 적어도 생사의 기로에 선 국민들이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길에서 죽는 일이 생기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런 맥락에서 중증 외상 시스템은 국민건강보험 제도 못지않게 중요한 국가의료복지의 최전선을 의미하게 된다. 외상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 ‘골든 타임’은 그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으로서 의료복지시스템에 대한 은유다.


지난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 가장 큰 화제는 영국의 무상의료제도인 국민건강서비스 홍보였다. 우리나라 역시 그에 비견할 만한 국민건강보험제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중증 외상시스템은 영국에 비해 전무한 게 사실이다. 이는 중증 외상 환자의 사회적 조건과도 관련된 문제다. 최인혁 교수의 실존 모델이기도 한 이국종 아주대 중증외상센터장은 한 인터뷰에서 “노동층은 외상으로 사망할 확률이 화이트칼라보다 20배 이상 높다”고 말했다. 


<골든 타임>에서 음식점 배달업자인 외상 환자가 병원 수익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응급실에 방치되듯이 병원과 국가의 이익 논리는 중증외상센터 설립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올해 11월부터 드디어 중증외상센터 설치법이 시행되지만 센터 규모는 애초의 계획에서 자꾸만 줄어들고 있으며, <골든 타임>은 이러한 현실 역시 비판하고 있다.


초보 의사 성장기와 병원 내 권력 갈등이 주를 이루던 장르에서 이 같은 비판성향은 <골든 타임>을 단순한 의학드라마라기보다 사회고발 드라마로 보게 하는 요인이 된다. 


이 작품이 종종 <추적자>와 비교되는 이유도 그래서다. 이 작품의 응급실은 우리 사회의 모순과 병폐의 압축판과도 같다. 의학드라마의 진화이자 또 하나의 반가운 사회극의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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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 | 영화감독

 

1995년 4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관한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를 극장에서 개봉하는 날, 대학로의 조그만 극장에 영화에 출연한 할머니들이 설레는 표정으로 모였다. 첫 상영 종료 후부터 관객과의 대화를 하신 할머니들의 표정이 하루하루 바뀌었다. 자신들이 농담을 하고, 밥을 먹고, 노래를 부르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고, 자신의 역사를 카메라에 담아내는 그 모습들을 관객들이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할머니들에겐 위로가 된 것 같았다. 영화를 함께 만들어 세상에 그것을 보여주고, 그 보여주는 순간들을 함께하는 모든 시간들이 자신들에게 기쁨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된 거다. 그것이 가장 기뻤다. 우리가 잘할 수 있다고 믿는 일로 할머니들에게 정신적인 위안이 되었으니.

시간은 흐르고 할머니들과 우리는 그후로도 4년 동안 두 편의 영화를 더 만들었고 어떤 할머니들과는 영화 안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3부작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비록 그 영화로 인해 할머니들이 요구하던 많은 것들이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아직도 일본 정부는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고 있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 시위도 지속되고 있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스럽고 더 잘 만들었어야 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영화가 세상의 어떤 것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하지만, 바꾸려는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고 위안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2012년 <두 개의 문>이 더 큰일을 해내고 있다. 단순하게 개봉관에서만 독립 다큐멘터리로는 유례없이 6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 관객 수를 넘어 <두 개의 문>이 하고 있는 가장 멋진 일은 세상을 바꾸고 있는 일이다. 영화 <두 개의 문>은 용산과 강정과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문제를 하나로 연대하여 마치 깃발처럼 함께 모인 사람들의 중심에 서 있다. 개인적으로 한때 나는 <두 개의 문>이 보다 다양한 관객을 만나기 위해서는 조금은 탈정치적인 ‘웰 메이드 다큐멘터리’로 포장되기를 바란 적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3-숨결' ㅣ 출처:경향DB

그러나 <두 개의 문> 제작진은 뚝심있게 스스로의 영화를 깃발로 높이 올렸다. 폭력에 저항하고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말하는 것이야말로 <두 개의 문>이 가장 대중적인 관객과 만나는 방법이라고. 그들은 그렇게 믿고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 부디 이 폭염의 여름, <두 개의 문>이 우리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연대의 방법을 지속적으로 완성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두 개의 문>을 보셨다면 이제 <두 개의 문>을 만든 제작진인 연분홍치마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성소수자 문제를 비롯해 다양한 영화들을 만들어온 그들의 <두 개의 문> 이전의 작품과 <두 개의 문> 이후의 작품을 눈여겨봐주시길. 그리고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진영의 다양한 작품들도 봐주시길 바란다.

1988년 김동원 감독의 <상계동 올림픽> 이후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는 지속적으로 당대의 문제들, 세상 안에서 손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왔다. 바로 지금 전국의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모든 현장에서 카메라를 든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작품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비록 그 작품들을 손쉽게 보실 수는 없다. 하지만 <두 개의 문>을 통해 한번 경험해 보시지 않았는가! 지역의 독립영화 상영관에서, 그리고 함께 십시일반 돈을 모아 가까운 상영관에서 지인들과 함께 관람을 하셔도 좋다. 그렇게 이 보석같은 친구들과 손을 잡아주시길. 왜냐하면 독립 다큐멘터리야말로 바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지지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부터 오늘까지 6회에 걸쳐 이 지면을 통해 부족한 글을 실었다. 최근에 여러분께 보여드린 나의 영화가 조금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여서 이 글들만큼은 조금 가볍고 즐거워지려 했지만 실패했다. 세상은 언제나 긴급했고, 여러분에게 호소해야 할 일이 매번 있었다. 그리고 오늘로 이 지면에서의 만남을 끝내려 한다. 한 가지만 기억해주시면 좋겠다. 우리는 우리를 지지해야 한다. 우리의 삶을, 우리의 희망을 지지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건 그런 거다. 서로에게 위안이 되며 바로 지금 거리에서 내일을 꿈꾸는 사람과 만나는 것.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당신과 나의 삶의 공통점을 찾고 그 공통점을 더욱 확대해 보는 것. 차이가 아니라 같은 것을 보는 것. 그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제 다음 영화를 준비하면서 나는 매일 꿈꾸듯 바랄 것이다. 새 영화로 당신과 만나는 날, 우리가 함께 일궈 놓은 몇 걸음 더 걸어간 그곳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그 다음의 걸음을 약속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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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


얼마 전 복날이 지났다. 그날을 위해 태어나 한 달이 조금 넘게 살다 맛난 국물과 부드러운 살을 남기고 사라진 닭들이 있다. 아! 닭이 아니지. 그 병아리들은 기계에서 태어나, 폐쇄된 공간에서 햇빛 한줌 보지 못하고 제 수명의 200분의 1도 살지 못한 채 식탁에 올랐다. (만약 그 닭이 자연에서 태어나 제 수명을 채웠다면 무려 25년까지 살 수 있다고 한다.) 공장식 밀집사육, 항생제 과다투여, 건강하지 못한 고기 뭐 이런 소식을 들으면 무척 찜찜해 하다가도, 고소함에 길들여진 혀를 어떻게 바꾸지는 못한다.

경남 고성의 아파트 놀이터에서 목줄을 푼 진돗개가 달려 들어 사람을 문 사건이 있었다. 사고가 일어나자 개 주인은 사고 2시간 만에 개를 개장수에게 팔아버렸고, 경찰은 수소문 끝에 도살된 개(그러니까 개고기)를 찾아 광견병 검사를 의뢰했다. 애완견을 반려견이라 부르는 세상이라 해도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애정을 주고 기르던 개를 개장수에게 팔아 도살하는 일이 낯설지 않다.

경기도 용인의 사육장을 탈출한 반달곰 두 마리가 모두 사살되었다. 그런데 가슴엔 총알 구멍 말고도 이상한 흔적이 있었다. 곰 가슴에 생긴 저 흔적은 무엇일까?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 움푹 패인 흔적이 살아있는 곰의 쓸개즙(웅담)을 빼기 위한 구멍이란 걸 안다. 왜냐하면 이게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니까.

 

삼계탕 일러스트 ㅣ 출처:경향DB

불과 지난 일주일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다. 뭐, 내일이 되어도 별반 달라질 건 없다. 사육장에서는 애완용도 아니고, 식용도 아닌 곰 가슴에 구멍을 내 쓸개즙을 뽑아낼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주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며 기르던 개도 때가 되면 도살되어 고기가 될 것이다. 제 수명의 200분의 1도 살지 못하는 병아리들이 단지 우리의 입맛과 단백질을 위해 공장에서 생산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어디에서 생명의 존엄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욕망에 충실한 괴물이 되어, 반달곰의 가슴에 구멍을 내고 쓸개즙을 뽑아낸다.

어디 반달곰 가슴뿐이랴. 반달곰 가슴에 뚫린 구멍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가슴의 구멍이다. 복잡하게 숫자를 들어 설명하지 않아도 살기가 참 팍팍하다. 인간의 삶을 규정할 사랑, 자비, 희망 이런 단어는 내세에서나 가능한 종교적 구호가 되었고, 공정, 정의, 복지 같은 단어는 허망한 정치 슬로건으로만 남았다. 총체적으로 우리 사회는 생명의 존엄을, 자존감을 지켜주지 못한다. 열 살짜리 여자 아이를 납치해 살해하고 스스로 목격자라 칭하며 인터뷰를 하는 이의 얼굴을 봐야 하는 세상이다. 이런 뉴스에 놀라지 않을 내성을 지니기 위해 내 가슴에 난 구멍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임기 내내 ‘상왕’이라는 전근대적 표현으로 호칭된 대통령의 형이나, ‘멘토’라는 유행어로 포장된 측근이 모조리 감옥에 들어가는 꼴을 보면서 아이쿠! 저 도적놈들! 화병이 나기보다는 가슴에 구멍을 더 크게 만들어 흘려 보내야 한다. 커다란 구멍으로 휭, 바람이 지나가듯, 이런저런 소식에 가슴의 구멍은 조금씩 더 커진다.

우리는 가슴에 난 구멍을 메우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을 선택한다. 나보다 약한 이들이나 소수자들을 찾아내 조롱하고, 증오하고, 분노한다. 놀이를 빼앗긴 어린이들,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 피곤한 노동에 내몰린 어른들,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장년들까지. 인간의 존엄과 자존감을 빼앗겨 가슴에 구멍 뚫린 우리는 타인의 존엄과 자존감을 깎아내어 구멍을 메우려 한다. 우린 모두 정상이 아니다.

모두들 이 상황이 비정상이고,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키워드는 ‘치유’다. 다만, 모두들 고침을 받고 싶어 할 뿐이다. 아무리 손을 내밀어 봐야, 내 가슴의 구멍이 메워지지 않는다. 그저 치유 장수들의 배만 불린다. 내 가슴의 구멍은 내가 메워야 한다. 우리 함께 치유하자.

첫 번째. 내 가슴에 난 구멍을 바라보자. 내 가슴에 구멍이 나 있음을 인정하자. 위로나 치유의 말처럼 달콤하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에 난 구멍은 날 괴롭게 한다. 그래도 인정하자. 두 번째, 내 쓸개즙에 박힌 고무관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가를 확인하자. 나의 희생을 담보 삼아 쓸개즙을 빼는 이들이 누군가를, 확실하게 바라보자. 세 번째, 그들의 협박이나 사탕발림에 속지 말자. 이 학원이 아니면, 이 회사가 아니면, 이 프로젝트가 아니면, 이 사람이 아니면 안된다고 소리치는 이들을 멀리하자. 좀 불안해도, 결별할 것과 결별하자. 당연히 쓸개즙에 박힌 관을 뽑아내면 쓰디쓴 쓸개즙이 흘러나올 것이다. 무척 아프겠지만, 헛된 욕망과 결별하고 내 진짜 욕망을 찾아보자. 그게 좀 쓸데없어 보이더라도, 괜찮다. 쓸모없는 것들이 우리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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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휘 | ○○은대학연구소 2소장

  

만나신 적 있나요? 뭐든 같이해보신 적은 있는지요? 우리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청년 사회적 기업가들 말입니다. 정부 위탁으로 전국 20개 민간단체가 수행한 ‘청년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만 지난 1년간 310개 팀, 현재 2기엔 330개 팀이 참여 중이네요. 근 2년 새에 2000명 남짓한 청년들이 청년 사회적 기업가의 활동을 개시한 겁니다. 같은 취지의 각종 경연대회에 참가하는 청년들을 더하고, 지원 없이 독립군처럼 활동하면서 같은 목적을 추구하는 각지의 청년들까지 보태면 한 세력 된다고 봐야겠지요.

 이들이 망해가는 세상을 잠깐 땜질하는 일회성 도구가 아니라 새 희망을 전염시키는 끈질긴 생명력의 바이러스이길 원하는 분들이라면 각별히 주의하셔야 합니다. 이 시대에 청년 사회적 기업가가 된다는 게 뭘 뜻하는지 말이지요. 후세에 태어난 탓에 과거 세대의 문제까지 뒤집어쓴 신빈곤 ‘청년’에게, 그 티끌조차 알기 힘들게 부서진 ‘사회적’ 자원을 손수 복구 창조해서, 대박 좇다 쪽박 차기 태반인 창업 경쟁판의 ‘기업가’로 번창하라는, 이 대담하기 짝이 없는 콘셉트가 뭐로 읽히시는지요?

 이거 ‘불가능한 가능성’에 도전하라는 미션입니다. 폐허 위의 건국, 한강의 기적, 민주화 운동, 미래의 통일 한국에 견줄 당대의 ‘초특급 울트라 대한국민 구출 미션’이죠. 이 막중한 대업을 권하면서 의뭉스레 간보듯 떠보면 안되겠죠. 사회적 기업가라는 신개념의 태생부터 그래요. 착한 일 하면 돈 못 벌고 돈 벌면 착한 일에 등 돌리는 사람살이가 흉악해서 ‘사회적’과 ‘기업가’를 접붙여 딴판의 인생 모델 찾는 거잖아요. 성공한 선배 있나요? 가뭄에 콩 나듯 있죠. 그라민은행의 무하마드 유누스, 노벨상 받았잖아요. 아름다운 가게의 박원순, 서울시장 뽑혔잖아요. 이 정도의 ‘불가능한 가능성’입니다.

 

 이 극소수 사례는 무산소 상태로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오르고 무사 귀환한 기적이에요. 청년 사회적 기업가 콘셉트는 다른 겁니다. 그런 기적이 평소에 더 작게 더 꾸준하게 이어져야 살 만한 세상 된다고 통찰한 시민, 기업, 정부가 정성껏 염원을 모으다보니 “해볼까?” 하는 청년들이 느는, 하나 성공률이 워낙 희박하니 곳곳에 캠프 차리고 별별 셰르파 붙이고 신기능 산소통 써서 “다시 해보자!”는 청년들끼리 손 맞잡는, 이렇게 ‘계속 더 많이 하다 보니 정말 그렇게 되는’ 희망의 인해전술 프로젝트예요. 초인의 기적 대신에 풋내기 청년들의 땀방울 바다로 메마른 불가능의 대지를 흠뻑 적셔보자는 삽질이지요.

 이 프로젝트에 청년들이 기웃기웃하는 중입니다. 1%의 기득권에 끼지 못할까봐 불안해하다 진 빠진 청년들의 마음이 99%의 세상을 청년 사회적 기업가들의 공동 삽질로 채우면 어떨까 하는 무모함으로 살짝 기운 거지요. 이 선택을개인 책임으로 돌리면서 선배 사회적 기업가들에게 했듯 각자 수익 창출해서 각자 성공 가능성을 입증하라는 경쟁 잣대를 들이대면 희망은 쪼그라들 겁니다. 모처럼 물길 튼 이 흐름을 큰 줄기로 살리려면 사회적 기업에 대한 획일적인 수익성 위주의 심사표부터 확 바꿔야 해요.

 남을 너로 바꾸는 이해관계자 만들기를 얼마나 두텁게 개척하는가를 먼저 가늠하고 여기에 높은 점수를 부여해야 합니다. 사회적 미션, 수익모델, 아이디어 참신성, 실현가능성으로 나열하는 점수표는 버리고요. 이런 배점표 따라 경쟁하다간 모두 소진될 테니까요. 청년 문제, 사회적 문제, 기업가 문제를 동시에 한 방에 성공하는 초인은 짜깁기 허상에 가까워요. 청년, 사회적, 기업가 이 각각의 문제가 심각하니 이 문제들 사이의 쉼표를 채울 청년들의 협력 삽질로 신동력 만들고 해결책 찾자는 게 실상이죠.

 그래서 이 길에서는 각자 살아남아 홀로 성공하는 길이란 없다는 것을, 같이 실패하다보니 같이 살아가는 법도 배운다는 것을, 그러면서 사업도 조직도 개인도 산다는 것을 일깨우는 삽질들에 격려가 쏟아져야 마땅한 거죠. 그런 여럿의 삽질이 일구는 작은 생태계의 경험을 지켜주고 응원하면서 과거의 성패 기준과 다른 연대의 사회경제학을 생활 감각으로 만들어가는 주체 회복이 핵심이라는 걸 대놓고 알려야 좋아요. 이런 변화라야 선배 사회적 기업가들의 지난 시행착오도 보람차겠고요.

 청년 사회적 기업가의 이 길은, 아무 때고 홀연히 여행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의 도피성 로망이 실패하고, ‘사회적’인 것을 착한 봉사나 소비로만 접근하는 시도가 실패하고, 대박 창업의 불타는 ‘기업가’의 욕망이 실패하는, 이 실패들이 줄줄이 만나는 넓은 교차로입니다. 이 교차로를 그대로 목적지로 삼는 극단적인 삽질 비전이 돋보일 회식지대고요. 아직도 점점점 늘어나는 반딧불 같은 청년 사회적 기업가들을 못 봤다고요? 곧 만날 겁니다. 그때 뭐든 작게라도 같이해보시길, 그럼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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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 | 영화감독

 

비 피해가 있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가 왔다. 최불암 선생이 안내를 하는 음식 프로그램에서조차 가뭄으로 인한 농민의 고통을 이야기할 정도로 가뭄이 심했는데 비가 와서 참 다행이다. 작년 이맘때 <화차>의 촬영을 하고 있었다. 우린 매일 서너 개의 일기예보 어플을 살펴보며 비가 오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촬영을 하다가도 영화의 도입부에 나오는 휴게소 촬영 때는 비가 오기만을 바라며 지냈었다. 그렇게 사람의 바람과 자연의 현상 사이에서 우리는 기뻐하고 절망하고 행복하고 섭섭해한다.

자연의 현상은 기다림이다. 혹은 기원이다. 어쩔 수 없다. 물론 4대강처럼 인간의 탐욕이 촉매가 되어 자연의 현상을 재앙으로 몰아가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우리의 행동으로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건 자연의 현상보다 훨씬 쉬운 일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이 글을 읽으실 때쯤 용산 참사의 진실을 찾는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이 누적 3만 관객을 돌파하고 있을 것이다. 상업영화의 흥행과 비교했을 때 대단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다큐멘터리 영화가, 그 적은 상영관의 규모에도 불구하고 3주차에 접어들며 매주 1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고 있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야당의 국회의원들이 단체관람을 하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분들도 몇 분 영화를 보셨다. 역시 기쁜 일이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박 시장은 자신의 임기 동안 강제철거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건 정말 신나는 일이다. <두 개의 문>을 만들며 제작진과 용산의 유가족들이 가장 꿈꾸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국회에선 쌍용차 문제와 관련해서 국회의원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것이 인간의 일이다.

한 편의 영화가 이명박 정부의 폭력의 상징과도 같은 ‘용산’의 진실을 세상과 공유하며 시민으로서 ‘보호’받을 권리를 이야기한다. 스물두 명의 죽음 앞에서 더 이상 무기력하지 않고,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리고, 재능교육 농성텐트와 마주보며 비정규직과 해고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자 세상이 노동의 권리에 눈을 뜬다.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애초의 인간과 닮아가려 애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그 모든 하나하나는 우리들의 한 걸음 한 걸음에 달려있다. 그래서 2012년 여름이 시작된 지금, 마치 기다리던 비가 온 것이 기쁜 것처럼 우리들의 한 걸음이 즐겁다.

 

참여연대 주최로 열린 영화 <두 개의 문> 관람행사에서 시민들이 입장을 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이 지면을 통해서도 홍보를 한 기억이 있는데, 지난 6월16일 열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 복직을 위한 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 행진 걷자!’는 많은 분들의 관심 속에서 진행됐다. 행사 담당자들과 국회의원들이 직접 찾아가 끊임없이 설명하고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신고를 허가하지 않았다. 비록 원래의 바람대로 여의도에서 대한문까지 직접 걸을 수는 없었지만, 중간중간 함께 모여 걷고 대한문에 모여 손을 잡았다. 쌍용차 해고자 친구들의 자녀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며칠 동안 고생해서 만든 소품을 들고 노래를 부를 땐 모두들 우리가 왜 지금 여기에 있는지를 새삼 느꼈을 것 같다.

그 꽃 같은 행사를 치른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은 며칠 전, 집으로 한 통의 우편물이 날아왔다. 경찰서에서 온 출석요구서였다. “6월16일 미신고집회에 참여하였고 차도를 점거하여 교통을 방해한 것으로 확인되므로 그 경위 등을 수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방패를 든 경찰로 모든 인도를 막아 갈 수 없게 만들었고, 실제 차들의 통행을 방해한 것 역시 경찰이었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웃으며 걷고 있는지 그 이유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물고 뜯을 생각만 하는 그 속내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뿐이다. 다만 이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 그런 출석요구서를 이제 자신만의 공간에서 한 걸음 튀어나와 기쁜 마음으로 스스로 세상의 깃발을 든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젊은 청춘에게 보낸다면 그는 어떤 심정일까?

실제 그런 일들이 있다. 85호 크레인의 김진숙과 함께하겠다고 부산으로 찾아왔던 많은 청춘들에게 출석요구서가 날아갔고, 벌금 폭탄이 떨어졌다. 해고와 비정규직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행복하게 노동하고 즐겁게 삶을 꾸릴 자유를 위해 거리로 나온 이 청춘들과 함께해 주었으면 한다. 집회할 자유, 연대할 권리를 위해 희망버스 기소자들은 공동으로 정식재판을 청구하며 당당하게 맞서고 있다. 그리고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희망버스 돌려차기 선수단”을 모집하고 있다.

우리의 청춘들에게 희망을 주자. 세상에 시선을 돌리고 한 걸음 걸었더니 전국의 친구들이 생기고 손을 잡아준다는 또 하나의 기적 같은 현실을 선물해 주었으면 한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cafe.daum.net/happylaborworld를 찾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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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

 

지난 20일 하루짜리 시한부 택시파업이 있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사업주와 노조가 함께 집회를 열기도 했다. 언론에 의해 보도된 업계의 요구는 택시의 대중교통 법제화, LPG 가격 상한제 도입, 택시연료 다양화, 요금 현실화 등이다. 아주 가끔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으로,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오르는 연료대와 사납금 제도라는 이상한 고용제도 등으로 인해 고생하는 택시기사의 사정이야 잘 모르는 바 아니어서, 뭔가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네, 라고만 생각하고 말았다.

며칠 뒤 택시파업에 대해 그린 만화를 보았다. 택시가 없으니 길이 뻥뻥 뚫려 편안하고, 출근길이 빨라졌고, 택시의 불법정차나 난폭운전 등이 없어져 쾌적한 하루였으니 파업을 좀 더 오래하거나 택시를 없애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택시파업을 보도한 기사의 댓글, 그리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보면 이 만화처럼 역설적으로 택시파업을 지지하는 의견이 많았다. 간혹 좋은 기사님들도 계시지만, 으로 시작하는 의견들조차 그간 당했던 난폭한 택시운전이나 불법운행 사례 등을 털어놓으며 ‘택시’를 성토했다.

분명 택시(기사)에 대해 좋은 기억들도 있을 터인데, 하나같이 택시(혹은 택시기사)에 대해 증오하고 분노했다. 증오와 분노는 다른 어느 감정보다 더 강력하고 발빠르다. 그러니 좋았던 기억을 생각할 틈이 없다. 서로를 존중해주는 사회에서는 증오와 분노가 잘 관리된다. 그런데 2012년 우리의 증오와 분노는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 같은 상태다. 비등점에 거의 도달한 증오와 분노에 떡밥이 떨어지면 모두가 우~ 몰려간다. 그 다음은 마치 피냄새를 맡은 피라냐같이 살벌하다. 이건 정당한 분노가 아니다.

 

텅빈 서울역 택시 승강장 ㅣ 출처:경향DB

<분노하라>의 저자 스테판 에젤은 사회적 저항이 분노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정당한 분노는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를 실천하게 한다. 그런데 택시파업에 대한 여론의 분노는 사회적 무시와 모욕에 반응하는 도덕적 분노가 아니라 증오와 한묶음이 된 분노였다. 증오의 분노는 택시가 보인 온갖 부정적 모습들을 내세워 정당함의 방어막을 친다.

하지만 증오는 본질을 가린다. 택시 문제는 우리나라의 다른 문제가 그렇듯 열악한 노동의 문제이고, 핵심은 1997년 관련법령 개정으로 불법이 된 사납금제도다. 개인택시가 아닌 회사택시를 모는 기사들에게는 매일 정해진 사납금(차종, 운행시간 등에 따라 차이가 있다)을 회사에 내고 남는 나머지가 수익이 된다. 이런 구조에서 기사는 수익을 위해 불법을 자행하게 된다. 모든 위험은 기사가 지고, 회사는 돈을 번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벌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직률이 높고, 그 빈자리를 불황으로 일자리에서 쫓겨난 이들이 채운다. 우리가 그동한 경험했던 불편하고 위험한 택시를 만든 이들은 위험하고 불안한 노동을 하는 기사들이 아니라 그런 구조를 바꾸지 않은 정부와 회사다.

분노하라.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세상을 바꾸기 위한 우리의 분노는 정당하다. 하지만 증오의 분노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증오의 분노는 문제의 본질을 향하기보다 나와 다른 이들을 향한다. 그리고 모든 문제가 그들 때문이라 말한다. 우리 주변에서 증오의 분노는 낯설지 않다. 이주노동자들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인터넷 주장은 일본 극우파의 광기어린 목소리와 다를 게 없다. 단군상의 목을 자르고 땅밟기를 하는 보수적 종교인들의 행태는 순전하고 아름다운 처녀(호라)들을 기대하고 폭탄에 자기 몸을 맡긴 자살특공대와 다를 게 없다.

세계 만화에서 가장 유명한 악당 중 한 명인, 초록머리에 하얀 분칠을 한 얼굴의 조커. 조커의 탄생을 그린 여러 만화가 있지만, 가장 강렬한 작품은 <배트맨 킬링 조크>(앨런 무어, 브라이언 볼런드)다. 만삭의 아내를 둔 무명의 코미디언, 한때 화학약품회사의 실험실 보조로 일했던 경력 때문에 두 악당에게 안내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이 사내는 “화학약품회사라는 데는 워낙 섬뜩하고 흉물스럽”기 때문에 내켜하지 않지만 악당은 “자네 애를 가난 속에서 키우고 싶은 건가?”라고 협박한다. 그 일을 실행하기로 한 날, 두 사내를 만난 코미디언에게 경찰이 찾아와 부인이 아기 젖병 보온기를 시험가동하다가 누전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한꺼번에 잃은 사내는 그 황망한 중에 악당에게 끌려 화학약품회사로 가고 어쩔 수 없이 레드후드를 쓴다. 하지만 금방 경비원에게 발각 당하고, 배트맨에게 쫓기다 화학약품이 가득한 물속으로 뛰어든다. 그날 이후 그 사내는 세상에 대한 증오와 분노에 사로잡힌다. 희대의 악당 조커는 그렇게 증오와 분노 속에서 탄생했다. 어린이부터 노인들까지 누구나 쉽게 증오하고 분노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제대로 된 분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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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김종휘 | ○○은대학연구소 2소장 whee212@oouniv.org

 

저번에 ‘멘붕’(멘털 붕괴) 이야기(5월29일자 ‘멘털 붕괴 5월아’)를 했지요. 한 청년이 화답하듯 ‘멘털 복귀 콘서트’ 개최 소식을 알려와 바로 큰일 날 소리라 답신했죠. 그 멘털은 붕괴될 때가 지나 와르르 무너진 거고, 너무 오래 꾸역꾸역 버티다 산산이 부서진 거라고요. 그렇게 붕괴된 멘털을 복구하며 과거로 회귀하는 기득권자들이 여태 작당 중이라 포기시켜야 할 차제에, ‘원점에 다시 서자’는 소박한 취지로라도 ‘복귀’라는 말에 신중하자고요. ‘멘붕’은 심신의 원점을 차원 이동하는 새로운 길찾기의 결정적 계기일 수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면서 복구, 복원, 복귀는 죄 하지 말자 했어요.

사고 치고 은퇴 선언한 뒤 잠적하거나 오지에서 선행하다가 쓰~윽 복귀하는 거 연예계에만 있지 않지요. 이런 꼼수 떨치려면 멘붕 왔을 때 자신을 그냥 놔둬야 좋아요. 그럼 물 흐르듯 ‘멘창’(멘털 창조)로 이동할지 모르니까요.

멘붕에서 멘창으로 넘어가게 돕는 주문이 각자 있다면 교류하자고 제 것을 먼저 보냈지요. 이 주문 첫마디는 부산 동료에게 선물처럼 얻어들은 건데 효능이 있더라고요. 이 첫마디를 발음하는 순간, 내가 그동안 잘하려고 애쓰느라 번번이 속 끓이고 졸이다가 나를 태워먹고는 아닌 척 굴었는지 아프게 그리고 시원하게 명치가 콕콕 찔렸답니다.

“잘하려고 하지 마.” 주문은 이렇게 시작하죠. “잘하려고 하니까 점점 더 실패하는 게 무서워지잖아. 실패를 안 하려고 하니 자꾸 실수만 줄이고 감추려 하지. 실수 줄이고 감추느라 실수를 의식할수록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실수가 왜 이리 많아지고 커지는지 몰라. 정말 잘하려고 노력했는데 지금껏 난 해놓은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잘하려고 했지만 내가 부족한 건가? 다들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왜 안되는 걸까?”

주문은 다시 첫마디로 돌아가요. “잘하려고 하지 마. 결국엔 다 실패하는 거야. 그냥 해. 실패하려고 하는 거야. 그냥 하고 실패해. 그럼 되기 시작해.”

 

멘붕중인 황재균, 탈출을 원해? ㅣ 출처:경향DB

뭐가 되냐고요? 잘하려고 하지 않으면 비로소 내가 잘되는 게 뭔지 보여요. 불안해하면서 잘하려고 할수록 내가 내 따귀 때리고 입꼬리 올리면서 날 괴롭힌 거죠. 그러느라 보지 못하던 날 보게 되는 입구가 멘붕이에요. “이렇게 사는 건 불가능하구나” 하고 “누구도 그렇게 살 수 없구나” 하는 걸 실감하며 다른 출구로 이어진 터널에 입장했다는 신호가 멘붕이에요.

하여 혼자 잘해서 인정받으려 말고 곁에 있는 너에게 눈길 돌리고 허허실실 이거저거 같이 하다 실패라는 걸 겪으면서 그냥 서로 만나는 걸 일삼는 거지요. 이때부터 됩니다. 내가 쓸모 있고 사랑받고 행복해지는 거.

요즘 청년들 보니 생애 첫 20년 이상 일방향으로 달려온 인생궤도를 어떻게든 각도 틀려는 사례가 느는 것 같더군요. 경제적 손익계산 없이 모임을 찾아다니고 모르는 이들과 어울리는 친목과 사교 차원의 사회적 동아리 활동이 번성하는 게 그래요.

지난 16일 토요일 광화문광장에서는 ‘딴따라댄스홀’의 홍대앞, 대학로, 강남반에서 각기 스윙댄스를 배운 청년 수백여명이 모여 대낮 뙤약볕 아래에서 춤판을 벌였잖아요. 로버트 D 버트넘 교수가 나홀로 볼링을 하는 미국인의 증가를 사회공동체 해체와 사회적 자본 축소로 개탄한 것과 반대 방향의 풍경이지요.

같은 맥락에서 한 걸음 더 내디뎌 여럿이 협동조합을 공부하고, 마을 만들기와 사회적기업을 준비하고, 커뮤니티 축제나 장터를 기획하고, 집회·시위에 참여하면서 왕래 없던 청년들끼리 만나고 모이는 사회적 연대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네요.

사례로는 지난해 ‘청춘회춘 프로젝트’에 이어 올해 더 확장된 ‘청년문화수도 프로젝트’의 8월 개최를 앞두고 도시 간 청년 교류를 모색하는 부산의 청년그룹 네트워크가 대표적이죠. 부산의 클럽, 동네잡지, 1인 출판사, 예술단체, 사회적기업 등에 속한 다양한 청년들이 따로 있으면서도 더 큰 사회적 공동체로 연결되는 유연한 과정이 인상적이에요.

이렇듯 새로 등장한 사회적 흐름에 한 발 담그고도 실은 홀로 멘붕 몸살을 앓느라 안간힘 쓰는 청년들에게 꼭 나누고픈 한마디는 댄스든 창업이든 축제든 뭘 하든 “잘하려고 하지 마”예요. “하면 된다”는 토건시대의 멘털이 최종 붕괴한 다음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대안적 삶을 탐색하면서도 자칫 ‘일단 잘하려고 애쓰기’의 덫에 발목부터 잡힐 수 있으니까요.

아무쪼록 잘하려고 하지 말아요. 그냥 하고 빨리 실패하세요. 그때부터 같이 잘되는 게 보이거든요. 그럼 뭘 해도 되기 시작합니다.

아셨죠. 멘털 붕괴의 반대말은 멘털 복귀 아닌 거예요. 멘털 창조예요. 이건 잘하려고 하지 말아야 되는 거예요. 그 청년은 재답신에서 콘서트 홍보 문안을 바꾸긴 늦었으니 당일 다 모이면 “멘털 창조 콘서트”로 정정하고 놀겠노라고 하더군요.

5월에 이어 6월에도 멘붕인 분들, 그냥 만나고 노세요. 곧 멘창 이동 일어날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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