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 에세이스트·서울문화재단 근무 neopsyche@empas.com



 

시사in의 고재열 기자에게 박근혜 정부를 살아갈 마음의 각오랄까, 정신상태랄까 뭐 그런 걸 물었더니 답이 간단했다. 


“수신제가(修身齊家).” 


오오! 멋진 대답에 나는 감탄했다. 그러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전혀 멋지지 않은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무엇인가 하니, 모르는 척하기다. 포털뉴스가 뜨지 않는 사이트로 홈페이지를 바꾸고 TV를 더욱 멀리하며 못 들은 척, 못 본 척만 하는 중이다. 


왜냐고? 왜는 무슨, 속상하니까. 그렇지만 심대한 지장이 있었으니 아뿔싸, 내가 직장에서 하필 홍보팀 소속인 바람에 매일 아침 조간 브리핑이라는 피할 수 없는 임무가 기다리고 있다. 될 수 있는 한 곁눈질로 신문을 보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별로 입에 올리고 싶지 않다. 기어코 아버지의 뒤를 이은 훌륭한 딸이라는 측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보니, 아이고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는 나 때문에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싶기도 하고 여러모로 나에게 새 대통령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주제다. 


그러나 오늘만은, 한 번 써야만 한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오랫동안 대형할인점 홈플러스 때문에 힘들어하다 최근 협상을 타결했다는 망원 월드컵시장 안의 어떤 꽃 파는 분 때문이다.


작년 선거 결과가 발표된 지 얼마 안 된 날 꽃집을 찾다 망원시장으로 갔다. 꽃집 앞에서 붕어빵 굽던 분이 제가 꽃도 팔아요~ 하며 얼른 목장갑을 벗었다. 


드세지 않고 꽃순처럼 연한 전라도 말씨였다. 꽃이 안 팔리니까, 투잡이라도 해야 하나, 이렇게라도 해야 먹고 살아서요. 날이 얼다 보니 꽃이 너무 비싸네요… 미안해하는 말투였지만 번화가보다는 훨씬 쌌다. 


포장을 부탁하고 언뜻 보니 이 언니 손길이 참 야무졌다.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야말로 옛날 졸업식 스타일이었는데, 솜씨 덕분에 촌스러운 게 아니고 오히려 클래식했다. 


기다리는 동안 요즘 망원시장 형편은 어떤지 물으니 언니는 한숨을 쉬었다. 글쎄 가망이 있겠어요, 전폭적으로 우리를 밀어주고, 여기 찾아오던 분이 떨어졌으니, 1번분이 우리한테 별로 잘해주고 싶지 않겠죠. 아유, 속상하시겠어요. 언니는 가냘픈 한숨을 쉬었다. 그거는 속상한 것도 아니에요, 글쎄 손님 중에 꽃 사 가시는 어떤 할머니가 말예요, 내 귀에 대고 1번 찍어 알았지? 그러시더라구요.


그냥 웃으면서 저 1번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랬더니 아니 왜, 하잖겠어요? 그래서 쓴웃음만 지으면서 사모님, 제가 광주서 났는데 살림이 어려워 양껏 공부를 못해서 온갖 일을 다 했네요. 그러니 어찌 1번을 좋아하겠어요, 그랬죠. 그러니깐 아주 우아하게, 어머 과거 일은 다 잊어야지, 다 흘러간 옛날 일인데, 이러시더라구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있었더니 제 어깨를 툭툭 치면서 이러대요. 내가 꽃 많이 사 줄 테니까 다 잊고 1번 찍어, 알았지?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더라구요. 

(경향신문DB)


그날 어찌나 화가 치미는지 내가 속이 타서 콱콱 쥐어뜯고 두드리구 그러면서 붕어빵 구웠네요. 내가 스마트폰이라도 있으면, 신문, 방송에다 대고 동네방네 이야기하구 싶어요. 꽃을 아무리 사 주셔도 내 표는 내 거라구, 자기 일 아니고 남의 일이라고 어찌 그리 쉽게 잊으라고 하냐구, 잊으려 해도 안 잊혀지는 게 있다구, 신문, 방송에다 이야기하고 싶어요. 꽃 백 개를 사셔두 내 표 안 팔아요, 나 절대 못 잊어요, 하고 싶어도 내가 무슨 힘이 있나, 혼자 가슴만 쥐어뜯는 거지….


야무지게 예쁜 꽃다발 값을 치르고 오면서, 나는 신문에 다시 글을 쓰게 된다면 꼭 신문, 방송에 대고 외치고 싶다는 그 언니가 혼자 가슴만 쥐어뜯지 않도록 내가 그 이야기를 대신 하겠다 결심했다. 


마침내 정든 경향신문에서 다시 지면 한 쪽을 내 주셔서 이렇게 동네방네 떠든다. 망원시장 꽃집 언니 힘내요, 그리고 여보쇼, 요만한 선심 쓰면서 다른 사람 골수에 박인 한까지 쉽게 녹이려 하지 말아요. 잊으려고 해도 못 잊는 사람 앞에다 함부로 잊으라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 아니에요, 자기 일 아니라고 말 막 하시네. 사람 함부로 보지 말아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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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휘 | 성북문화재단 대표




백화점, 대형마트, 문예회관, 문화원, 주민자치센터, 도서관 등은 그 설립과 운영 목적이 죄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지요. 지역사회에서 비슷한 문화 강좌나 공연을 제공하면서 제로섬 게임을 합니다. 유명 강사를 데려오면 돈 있는 영리고 동네 강사나 자원 봉사자가 나서면 공공이라서 싸거나 무료라는 왜곡된 인식이 강하죠. 얼핏 지역시민 모두가 문화 소비자로 획일화된 것 같은 착시 현상이 생깁니다. 그 결과 공급자 주도의 판박이 경쟁만 반복되는 가운데 지역시민의 자발적 문화 역량을 육성하며 축적할 거점은 자꾸 빈약해져요. 이렇게 지역 공동체 지향의 사회적 자본은 각지에서 빈털터리가 되어갑니다.


문화 민생이 이럴진대 어제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국정목표인 ‘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 걸까요? 성적이 오른 뒤에, 대학에 가고 나서, 취직한 후에, 급여가 좀 더 올라간 다음에, 안전망 좀 더 강화한 후에나 하면 되는 것일까요? 그때서나 하겠다면 ‘창의 없는 교육’과 ‘문화 없는 삶’을 방치한 채로 이를테면 대기업 중심의 내수 없는 수출 성장과 비정규 불안정 노동의 일자리 양산에 대한 사후 약방문처럼 ‘교육’과 ‘문화’ 개념을 장식용으로 배치했다는 실토겠지요.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국정목표와 비전에 쓰여 있는 ‘시대적 여건과 소명’을 보면 그렇지는 않겠구나 기대가 생깁니다.


우리 사회엔 이미 ‘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의 창의 제도와 체감 행정에 대한 수요가 절절하지요. 성적보다 중한 청소년 인성을, 대학보다 중한 청년의 미래를, 취업보다 중한 저마다의 인생을 누구와 가꾸며 행복하게 지낼지를 찾는 감수성의 허기가 극해 달해 있으니까요. 이 갈급함을 당장 해소하는 것이 국가의 저성장과 개인의 저소득 문제보다 나의 행복을 좌우하는 선제적 접근임을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합니다. 이제 선택은 간판과 소득과 소비의 롤러코스터에서 내려와 먹고 자고 노는 생활권의 이웃과 같이 ‘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의 지역적 현장을 재활력화하는 길을 진짜로 가는 실천뿐입니다.


이 점에서 ‘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의 추진전략 중에 ‘나를 찾는 문화’와 ‘모두가 누리는 문화’가 연달아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 반갑네요. ‘나를 찾는 문화’는 소비로는 절대 충족이 안되거든요.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유명 강사와 연예인 공연이 아무리 그럴싸해도 공공과 공동체의 영역에서 봉사와 품앗이로 만드는 문화기획과 프로그램을 통해 ‘모두가 누리는’ 게 뭔지를 느껴봐야 비로소 ‘나를 찾는’ 길을 만납니다. 대량 공급과 대량 소비로 나뉘는 시장에는 변덕스러운 수치는 있을지언정 소량 다품 수요와 맞춤형 봉사가 어울리며 ‘나’와 ‘모두’를 생생하게 체감토록 촉진하는 안정된 관계의 지속성은 없으니까요.

명동성당에서 실시중인 꽃꽃이 강습에서 일반시민들이 강사의 지도를 받고 있다. (경향신문DB)


한마디로 지역시민이 운영하는 독서회, 문화기획단, 아마추어 예술동아리, 호혜와 환대의 동네 축제가 힘을 갖고 신명이 나면서 지역 현장에서부터 사회적 자본이 싹트고 자라나야 공동체 협동이 소비 경쟁보다 낫다는 체감이 우세해지면서 ‘나’라는 주체와 ‘우리’라는 공동체의 문화가 살아나는 것이겠지요. 문화재정 2%와 문화기본법 제정을 임기 내에 달성하겠다는 것이나, 올해 안에 지역문화진흥법과 문화예술후원활성화법을 제정하겠다는 포부도 환영하지만 이것 역시 지역사회에서 가장 먼저 체감되도록 하는 세심하고도 과감한 정책 의지가 중요합니다. 중앙의 공급과 중간의 전달체계부터 신경 쓰느라고 지역의 수요가 맥 빠지고 지친 뒤라면 어디에 써먹겠어요?


그래서 보태고 싶은 말은 같은 국정목표 아래 다른 추진전략으로 학교교육의 공공성 강화를 가리킨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은 정작 아이부터 어른까지 한데 어울려 만들어갈 지역사회의 문화 공동체 현장에서 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체감 지표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전문인재 양성과 평생학습 체제 구축’ 전략도 직업교육이나 평생교육으로 분할될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지역문화진흥법의 핵심 개념인 생활 문화예술의 영역에 잘 녹아들도록 연계성을 가진 전문인재와 평생학습이어야 맞겠다는 생각입니다. 칸막이 공급만 많아질수록 생활 현장의 지역시민은 점점 더 프랑케슈타인 같은 공공 소비자 신세만 남으니까요.


요컨대 ‘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의 관건은 백화점 강의와 도서관 강의를 선택하는 기준이 확연하게 구분되게 만드는 지역사회 공동체 활성화에 달려 있습니다. 유명 인사를 보고 싶으면 백화점에 가고 ‘나를 찾는’ 길로서 ‘모두가 누리는’ 문화를 만나고자 한다며 도서관에 갈 수 있게요. 이 분별을 체감하는 지역시민이라면 복지, 교육, 문화를 삶으로 통합해서 살아가는 풀뿌리 주체가 되어 제도의 틈과 경제의 모순을 스스로 하나둘 풀어갈 것입니다. 아무쪼록 박근혜 정부의 이 국정목표만은 부디 결실 맺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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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 대중문화평론가



이달 초, 한국은 영예롭지 못한 세계 1위 타이틀을 하나 더 얻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국제미용성형협회 보고서를 인용해 한국이 인구대비 성형수술 최다 국가임을 보도한 것이다. 성형대국임을 증명하듯 지난 주말 밤의 지상파TV에서도 성형이 화제였다. SBS드라마 <돈의 화신>에서는 여주인공이 전신성형을 통해 초미녀로 변신했고, MBC토크쇼 <세바퀴>에서는 왕년의 톱가수가 양악수술 경험담을 고백했다.


두 프로그램의 사례가 인상적인 것은 그것이 최근 우리 사회 성형담론의 특성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성형은, 뚱뚱한 외모로 따돌림에 시달리던 <돈의 화신> 복재인(황정음)에게 자신감을 되찾게 한 힘이었고, 그룹 룰라로 화려한 전성기를 보내다 연이은 사업 실패로 좌절에 빠진 김지현에겐 재기의 발판이었다. 성형은 어느덧 단순한 미용의 차원을 넘어 ‘치유와 생존’의 서사적 기능까지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사이 한국은 명실상부한 성형공화국이 되었다.


최근 지상파 방송국들의 자회사 케이블 채널까지 가세하며 앞다퉈 편성 중인 메이크오버 쇼의 유행은 성형대국 등극의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쇼들은 우리 사회 성형담론의 변화를 주도하며 성형 대중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원래 메이크오버 포맷은 어떤 대상을 개선해가는 과정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뜻하지만, 국내에선 주로 외모나 스타일을 변신시켜주는 프로그램을 지칭한다. 이 장르는 2003년 동아TV에서 처음 방영된 <도전, 신데렐라>의 성공 이후 케이블 매체 최고의 효자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이 장르를 국내에 본격적으로 정착시킨 <도전, 신데렐라>는 미국 방송의 포맷을 수입한 것으로, 성형수술과 각종 몸 관리를 통해 일반인 참가자들의 외모를 변신시켜주는 쇼다. 이 쇼가 큰 인기를 모은 데에는 그 당시 우리 사회의 자기계발 열풍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열풍의 일부이자 여성들 사이에 불어온 <섹스 앤 더 시티>류의 칙릿 유행 역시 그에 일조했다. 즉 이 쇼는 성형을 비롯한 미용에의 투자를 자기계발과 여성들의 자기연출 담론 안에 위치시켜, 외모지상주의와 여성상품화 논란을 돌파해가며 꾸준한 인기를 끌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현재의 메이크오버 쇼에서 성형은 자기계발 열풍이 잠잠해지고 난 후 찾아온 ‘힐링’ 열풍과 결합하는 특징을 보인다. 자기계발 열풍이 개인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성취에 대한 최소한의 긍정과 희망이 담겨 있었다면, ‘힐링’의 유행은 그 희망마저 좌절된 시대의 방증이다. 최근의 메이크오버 쇼에서 ‘도전’ 대신 ‘기적’이란 말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것이 아니고서는 절망의 근본적 치유가 불가능한 시대임을 모두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힐링 유행’과 결합한 성형담론을 가장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프로그램은 이른바 ‘메이크오버 쇼계의 블록버스터’라 불리며 화려한 스케일로 화제를 모은 스토리온 채널의 <렛미인>이다. 이 쇼는 단순한 외적 변신이 아닌 내면의 치유를 포함한 총체적 힐링으로서의 ‘인생 대반전 메이크오버’를 강조한다. 이를 위해 외모로 인해 좌절된 꿈이나 관계의 상처와 같은 심리적 문제에도 초점을 맞추며, 그를 도울 정신과 전문의가 포함된 ‘힐링 멘토’ 닥터진을 내세운다. <렛미인> 이후 등장한 패션N <미스 에이전트>, KBS W <손태영의 W> 같은 쇼들이 모두 출연자의 가슴 아픈 사연과 그 내적 치유를 함께 강조하고 있다.

배우 황신혜가 진행을 맡은 스토리온 <렛미인> (경향신문DB)


하지만 이러한 쇼들의 특징은 역설적으로 모든 삶의 문제를 다시 외모의 문제로 환원하는 결과를 낳는다. 출연자들의 사연 가운데 가족 해체, 가난, 관계의 폭력 등 상당 부분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관련된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힐링 열풍’이라는 것이 사회적 모순을 ‘정신 승리’와 유사한 개인적 심리의 차원으로 치환하는 임시처방임을 생각할 때, ‘총체적 메이크오버’의 정점에 성형수술을 위치시킨 이 쇼들의 ‘솔루션’이란 이중적 기만에 가깝다.


그리고 이러한 기만을 통해 이 쇼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실용적 정당성을 넘어, 아직까지 미용성형수술에 대한 심리적 저지선으로 남아 있는 윤리적 정당성의 담론일 것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메이크업으로 포장한다 해도 그 분장을 지우고 나면, 쇼 최후의 무대에 남는 것은 성형수술 홍보라는 거대자본의 욕망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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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흔히 노마드적인 삶은 현대인의 멋진 패션으로 칭송받는다. 노마드, 유목민은 어디에 정착할 수 없는 이들이다. 그들은 늘 전 재산인 가축과 천막을 들고 풀을 찾아 떠난다. 풀이 있는 곳에 천막을 치고, 가축을 풀어놓는다. 자연과 벗하며, 내일 또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난다.


많은 현대인들이 유목민을 꿈꾼다. 어디론가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고 싶어 한다. 유목민의 삶과 대비되는 삶이 농민의 삶이다. 농민은 오래된 마을 안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한곳에 정착해 땅을 일구며, 마을을 만들고,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 이런 삶은 필연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지켜야 될 땅이 있기 때문이다. 정주하지 못하고 어디론가 떠나려고 하는 많은 현대인들이 유목민의 삶을 꿈꾸고, 농민의 삶을 낡고 지겨운 것이라 생각한다.


유목민의 삶과 농민의 삶은 다른 가치를 갖고 있다. 유목민의 삶은 새로운 곳을 향해 이동하는 삶이고, 농민의 삶은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는 삶이다. 당연히 어느 삶이 우월하다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유목민의 삶에 대한 칭송은 자자하다. 반면 농민의 삶에 대한 칭송은 찾기 힘들다. 오히려 낡고 시대에 뒤떨어졌다 생각한다.


기계백작에게 엄마를 잃은 철이도 불멸의 몸을 얻기 위해 ‘은하철도 999호’를 탄다. 메텔에게 승차권을 얻은 순간 철이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기계백작에게 엄마를 잃은 그 순간 철이에게 기계몸을 얻기 위한 여행은 좋은 것이었다. 왜 기계몸을 얻어야 하지? 왜 여행을 떠나야 하지? 이런 질문보다는 그저 은하철도 999호에 탑승하는 것이 선이었다. 철이에게 있어 떠나는 것은 좋은 것이고 남는 것은 나쁜 것이다.


은하철도 999 (경향신문DB)


스마트기기를 들고 한국과 파리, 뉴욕을 넘나드는 삶을 꿈꾸는 많은 이들이 좋은 유목민의 삶과 나쁜 농민의 삶을 나눈다. 그런데 철이는 진짜 기계몸을 갖기 원했을까? 메텔과 함께 은하철도 999호에 오른 철이.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 유목민의 삶을 선택했지만 여행이 계속될수록 철이의 마음은 편치 못하다. 여행 중간에 기착한 여러 별에서 만난 쓸쓸한 이들의 얼굴을 보며 철이는 스스로를 돌아본다. 내가 왜 여행을 시작한 거지? 나는 무엇을 얻으려고 이 여행을 하고 있는 걸까?


철이는 여행을 즐기지 못한다. 낯선 여행지에 기착할 때마다 힘들어한다. 철이는 엄마와 함께 소박하게 농사를 지으며 살기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철이는 유목민을 선택했지만 늘 농민을 꿈꾸었다. 그렇게 되고 싶었던 유목민의 삶을 선택했지만 오로지 기계몸을 갖기 원하는 닫혀있는 마음의 철이는 여행을 즐기지 못한다. 만약 철이가 열린 마음으로 여행을 즐겼다면 어찌되었을까? 우리의 심금을 울린 걸작 <은하철도 999>는 태어나지 못했겠지만 철이의 여행은 행복했을 것이다. 새로운 여행지에 들를 때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새롭게 만난 도시와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철이의 마음은 닫혀있었다. 철이의 마음은 오로지 최종 종착지인 안드로메다에 도착해 기계몸을 얻을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그렇게 닫혀있는 마음으로 제대로 된 여행을 절대 즐길 수 없다.


유목민의 삶과 농민의 삶. 우리는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유목민의 삶은 좋은 것이고, 그 자리에 머무르는 농민의 삶은 낡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발 더 나아가 낡은 것은 나쁜 것이라고 판단한다. 유목민의 삶과 농민의 삶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할 수 없지만 우리는 버릇처럼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한다. 철이에게 유목민의 삶이 꼭 좋은 것이었을까?


문제는 삶의 양식이 아니라 태도다. 닫혀 있는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건 그저 헛된 욕망에 불과하다. 한곳에 머무르고 매번 똑같은 농사를 지어도 열려있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그는 공동체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삶의 양식과 태도 중에 더 중요한 건 태도다. 하지만 우린 삶의 양식에 자꾸 눈을 돌린다. 너는 어느 편에 서 있느냐고 물어본다. 유목민은 농민을, 농민은 유목민을 공격한다. 유목민이나 농민이나 모두 가치 있는 삶의 양식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공격한다. 자꾸 삶의 양식이 가치를 대변하게 된다. 중요한 건 태도다.


은하철도 999호를 처음 탑승했을 때 철이의 마음은 닫혀 있었다. 하지만 여행을 계속하면서 철이의 마음은 점점 열렸다. 그리하여 안드로메다에 도착했을 때 철이의 태도는 처음과 완벽하게 달라져 있었다. 철이는 기계몸을 얻었을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삶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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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 문화평론가


‘아스팔트 키드’가 가득한 도시에서 마을이 뜨고 있다. 지자체들은 앞다투어 마을과 공동체와 커뮤니티를 이야기하며 ‘마을 만들기’를 한다고 나서는 중이다. ‘마을공동체’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후 2017년까지 총 975개의 마을공동체 조성을 지원하고 3180명의 활동가를 양성하겠다는 방안까지 내놓은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가 대표적이다. 재개발 열풍이 휩쓸고 지나간 구도심을 재생하는 해법으로 마을을 선택하는 지자체도 있다.


화제가 되다 보니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이 얘기가 나왔다. 의견은 분분했지만 결론은 하나로 좁혀졌다. 막상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마을공동체가 되는 건 싫다는 거였다. 일단 살고 있는 동네에서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잘 모른다. 2년 후에 전셋값 올려달라고 해서 이사 가야 할지도 모르는 동네에 정 붙이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알고 지내야 하는 공동체가 불편할 뿐만 아니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도서관을 이용하거나 동아리 활동을 하는 수준이면 몰라도 그 이상으로 내 삶에 간섭해 들어오는 건 원치 않는다는 이야기다.


 

서울 종로구청에서 열린 ‘창신동 봉제마을 공동체 의류 판매전’ (출처 : 경향DB)



그런데 지금 진행되는 마을 만들기와 공동체는 요즘 사람들의 이러한 정서를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대도시에서 소비자로 살아온 사람에게 ‘그동안의 라이프스타일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라’고 요구하는 느낌이다. ‘어렵고 힘들어도 사람 사는 정이 있었다’며 그때 그 시절을 낭만처럼 제시한다는 것도 거북하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간디의 말은 대부분이 농사를 짓고 비슷비슷하게 살았던 근대화 이전의 농촌마을 공동체에서나 가능한 이상이지 아파트 가득한 도시에 적합한 모델은 아니다.


어떤 이상화된 모델을 놓고 모든 지역을 맞춰나가거나 ‘같이 살면 좋다’는 낭만적인 접근 대신 내가 사는 지역에 무엇이 필요한지부터 분석하는 게 먼저일 것이다. 필요로부터 시작하는 마을만들기는 구체적이고, 지속가능한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구성원에 따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해결할 문제는 무엇인지를 세세하게 따져 보는 것이 중요하다. 성미산마을이 맞벌이 부부들의 육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육아공동체로 시작했고, 요즘의 농촌은 오히려 경제공동체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중요하다.


결핍된 부분을 찾아낸 후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복원되고,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것이다.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동네 친구와 이웃은 남지 않을까? 이런 과정 없는 마을만들기는 모든 농촌의 지붕을 일괄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꿔버렸던 새마을운동과 비슷한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현재 마을만들기의 한계는 분명하다. 마을이 변하고 싶어도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게 힘들면 가슴이 딱딱해지나봐요”라는 드라마의 대사를 떠올릴 필요도 없다.하지만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겨운’ 가난한 사람들이야말로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활력과 마을에 사는 즐거움을 느낄 권리가 있다. 그렇지만 비정규직으로 해고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뿐인가? 명절 당일만 쉬는 백화점과 마트에서 일하는 엄마,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친구를 사귈 수 없는 초등생, 입시에 시달리는 중·고등학생, 스펙 쌓느라 바쁜 대학생, 야근에 지친 직장인, 일년에 두 번 쉬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삶을 외면하는 마을만들기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공허하다. 다들 살아남기 위해 발 동동거리며 “바쁘다, 바빠”를 외치는데 어떻게 마을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그래서 중요하다. 주 5일제를 시행해도 주당 평균노동시간이 49.1시간을 넘는 일상을 제도적으로 정비하지 않고서는 마을도, 공동체도, 함께 사는 삶도 기대하기 힘들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서울시립대만 살펴봐도 이런 결과는 단박에 나타난다. 반값 등록금 시행 1년 만에 사회봉사활동 참여자가 1414명에서 3105명으로 2배 이상 늘고, 학교에 사회공헌팀이 생긴 것은 학생들이 갑자기 착해지거나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반값 등록금 덕분이다.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장으로 변신한 짱가는 “공동체는 백수가 지킨다. 베짱이 없는 마을은 삭막한 마을이다. 마을의 백수, 베짱이 파이팅!”이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마을마다 한 명씩 있던 ‘동네 바보’를 깍두기로 껴주고 함께 놀 수 있는 아이들이 사는 곳. 그곳이 아파트이든 다세대이든 대도시이든 중소도시이든, 21세기의 마을은 바로 그런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무슨 행사에 몇 명이 참여했고, 경제효과는 몇 원임을 작성할 수 있는 그런 사업의 대상지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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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휘 | 성북문화재단 대표


곧 설날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신정이라고 바로 새해 결심을 하자니 지난해 12월의 무게와 무늬가 참 지난했잖아요. 세밑과 벽두에 쏠린 멘붕과 힐링을 보면 “한숨 대신 함성으로 걱정 대신 열정으로 포기 대신 죽기 살기로”라는 용감한 녀석들의 노래도 별무소용이고요. 마찬가지로 20대와 50대를 가르거나 5년 뒤를 거론하는 주장도 성마른 고함 같아 맥 빠지고요. 그리하여 2월9·10·11일의 빨간 날짜를 바라보면서 얼렁뚱땅 보내온 금년 1월을 좀 더 간명하게 추스르고 설날을 전후해 새해 결심을 재구성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나의 올해를 가늠하는 슬로건부터 시작해 우리 가족과 몸담은 조직의 슬로건을 정하는 순서로요. 


저는 거꾸로 순서를 밟았답니다. 참고로 ‘이야기와 꿈이 많은 성북’이 제가 몸담고 있는 재단의 슬로건이에요. 각 팀은 사업장 특색을 살려 저마다의 슬로건을 마련했고요. 실행계획을 토론하면서 슬로건을 만드는 일은 즐거웠지요. 그런데 취합해보니 개운치가 못해요. 슬로건을 놓고 달력을 앞뒤로 넘기다가 “정작 난 2월 설날 연휴에 뭘 전환하고 있을까?”하는 침묵이 길어졌거든요.

 

경향신문DB


내가 나에게 거는 주문, 나의 올해 슬로건을 쏙 빼놓은 탓이었어요. 내가 어찌 살겠다는 것은 미정인데 동료에게 이러자 저러자며 특정한 것만 쏟아놓은 게지요. 계기가 있었습니다만 후술하고요. 현재 메모장에는 이리 써 있답니다. “허공 대신 바닥에, 공상 대신 추억을.” 내가 부여잡고자 애썼던 그 허공들과 내 머릿속을 비좁게 옭아맸던 그 공상들의 지난해 대표 목록을 작성하고 하나씩 퇴출 명령을 내리기로 했어요. 그랬더니 남는 것이 ‘바닥’과 ‘추억’이었습니다. 이제부터 새로 확인해야 할 나의 첫 바닥과 지금부터 새로 가꾸어갈 나의 첫 추억이 내 가장 가까운 주변 어디에서 누구와 같이 시작해야 하는지를 다시 보는 것.


이것은 달을 따고 별에 닿는 허공에 마음을 빼앗겨서 출발선상의 달리기 선수처럼 두 발뿐 아니라 두 손도 단단히 짚어야 아는 ‘그 바닥의 감각’이 마비된 것은 아닌지, 각색된 과거나 황홀한 미래로 가는 공상에 몸을 맡겨둬서 농부처럼 하루를 부대끼며 고단해야 만들어지는 ‘그 추억의 오늘’이 실종된 것은 아닌지 다시 느끼는 일입니다. 이게 설날 연휴 때 결심할 알맹이구나 했지요. 허공을 휘저으며 공상을 일삼는 것은 혼자라면 가장 손쉬운 저비용 대처법일지 모르나, 나날이 서로를 챙기면서 뚜벅뚜벅 가는 우리가 되려는 한 온당히 치러야 할 고비용은 결코 신용카드나 대출 빚처럼 연기나 탕감될 수 없는 것이다 하면서요.


한 달 전에 꾼 꿈 이야기입니다. 변기에 똥이 있고 주변에도 똥이 있어 손으로 담아 넣고 압축기로 내렸더니 그 아래에 좀 더 큰 변기 바닥이 나오고 똥이 널려 있었어요. 허리를 숙여 한 번 더 뚫었더니 맨 밑에 거대한 바닥이 나오고 엄청난 똥 산이 나오더군요. 놀라운 건 그 똥 산 위로 작은 인간들이 수도 없이 달려들어서 명랑한 소리를 다 같이 웅얼거리며 똥을 치우는 장면이었습니다. 똥 속에 빠지고 얼굴에 묻고 해도 모두가 즐겁게요. 그렇게 똥 산을 다 치우고 물청소를 했더니 작지만 빛나는 빨간색 보도블록 광장이 광대하게 펼쳐져 있더군요. 평소 꿈 잔상을 기억하지 못하는 편인데 선명해서 아내에게 자문을 했지요. 


꿈 분석 공부를 하는 아내에게 일부 실마리를 구한 다음에 중요하다 느껴지는 꿈이라면 계속 다시 기억하라는 조언을 따라 그리 하다가 달력의 설날 연휴 빨간 날짜들에 넋을 놓고 침묵하던 중 뭔가가 겹쳐졌던 겁니다. “꾸우, 아이, 암, 에헤, 테테, 마, 아, 빠, 야. 난.” 올해로 4년차를 사는 우리 아이가 아빠를 볼 때마다 밝게 웃으며 암송하는 슬로건인데요, 꿈속의 거대한 똥 산을 즐겁게 치우던 작은 인간들이 웅얼대던 합창이 이건가 번쩍 했지요. 그래, 넌 바닥에 누워 있었고 바닥을 기어 다녔고 바닥을 딛고 섰고 걷고 뛰었구나, 날마다 먹고 자고 싸고 만지고 보는 것에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서 오늘의 추억의 소리를 내는구나 싶대요. 


독특한 억양과 리듬으로 똑같이 반복하는 아이의 슬로건을 아빠는 “허공 대신 바닥에, 공상 대신 추억을”이라는 슬로건으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맨 밑바닥의 거대한 똥 산을 치우던 그 작은 인간들이 모두 우리 아이였구나, 나와 너였구나 하면서요. 곧 설날 연휴입니다. 새해 결심이 미진했던 분들이나 올해의 슬로건이 미정이신 분들께서는 멘붕이나 힐링하곤 그만 헤어지시고 자신의 새 출발을 위한 바닥을 재확인하면서 하루하루 만들어갈 추억이 무엇일지 정해보시면 어떨까요. 저는 설날 전에 아내의 꿈 분석 모임에 따라 가서 참여자들의 투사를 좀 더 받아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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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이건 만화 이야기다. 초등학교 6학년 다카마쓰 쇼가 엄마와 싸우고 학교에 온 그날. 거대한 굉음과 함께 학교 건물이 통째로 사라져버린다. 건물이 있던 자리에 커다란 구멍만 남기고 완전히 사라져버린 학교. 사람들은 가스폭발 등을 의심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흔적도 없다. 그럼 학교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거대한 힘으로 가루도 안남기고 폭파된 것인가? 겨우 지각을 면한 다카마쓰 쇼. 운동장에서 하는 월요일 조례에 참석하고 교실로 돌아간다. 엄마와 싸워 아침밥을 먹지 못한 쇼의 배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고 아이들은 크게 웃는다. 그 순간 쇼는 교실이 흔들리는 걸 느낀다. 세워 놓은 분필이 흔들리다 넘어지고 엄청난 굉음이 교실을 흔든다. 선생님의 지시로 아이들은 책상 밑으로 들어가고 다시 세상이 잠잠해진다. 다시 수업을 시작하는데 운동장에서 다른 선생님이 쓰러진다. 선생님들이 모두 교문으로 몰려가는데 교문 바깥은 황폐한 사막이 펼쳐져 있다. 학교 바깥이 모두 사라져버린 이 난데없는 상황에 학교에 남은 아이들은 공포에 빠진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교문으로 달려간다. 바깥으로 나가겠다는 아이들을 교사들이 어르고 달래 교실로 들어간다.


(경향신문DB)


이 만화는 일본에서 1972년에서 1974년까지 ‘주간 소년선데이’에 연재된 일본 공포, 재난만화의 고전인 우메즈 가즈오의 <표류교실>이다. 제목 그대로 학교가, 인류가 모두 멸망한 근미래로 표류해 온 것이다. 뭔가 폭발이 있었고, 그 이후 학교가 미래로 날아갔다. 하나의 공동체가 생명 하나 찾을 수 없는 절망의 시간에 떨어진 것이다. 거대한 재난 앞에서 어른들이 주도적으로 문제를 극복할 것 같지만 오히려 어른들은 공포에 굴복한다. 학교에 급식을 배달하던 급식아저씨 세키야가 급식실을 차지하고 자신이 학교의 주인이라 주장한다. 교사들도 혼돈에 빠지기는 마찬가지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고 분노와 절망에 울부짖다가 다른 사람을 살해하기도 한다.


<표류교실>은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대한 절망에 마주한, 그러니까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삶을 보장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한 인간이 공포와 마주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여준다. 아무것도 모르고 미래로 표류해 온 아이들은 외부에서 오는 위해에 맞서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공동체를 지키려 한다. 하지만 협력은 작은 균열에 의해 쉽게 깨어진다. 


아이들은 별것 아닌 일로 서로를 의심한다. 그리고 불안해 한다. 작은 의심과 불안이 어느 순간 거대한, 제어할 수 없는 분노가 된다. 분노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서로 편을 갈라 목숨을 건 싸움을 한다. 어린 아이들이 서로를 죽이는 잔혹한 사건이 연이어 벌어진다. 죄책감 없이 상대를 죽이기도 한다. 편을 갈라 싸우다 그대로 모두 멸망할 것 같았지만 의외의 순간 진실을 고백하는 아이가 나오면서 상황이 급변한다. 아이들이 다시 손을 잡는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는 방법을 발견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겨우 손을 잡아 생긴 희망이 다시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 주인공 쇼는 “우린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미래에 뿌려진 씨앗”이라고 이야기한다. 현재를 인정하고 긍정하자는 말이다. 쇼와 늘 대립하던 오토모도 쇼의 말에 동의하며 말한다. “여기가 우리 세계야! 그 증거로 우리가 해온 일들이 조금씩이나마 이 세계를 바꾸고 있잖아! 우리가 조금 더 궁리하고 조금 더 행동하면 더욱 더 바뀔 거야! 봐, 학교 안에도 이렇게 초록이 가득하잖아!!”라고 말한다.


현실의 우리도 만화처럼 느닷없이 한순간에 절망의 세계로 표류할 때가 종종 있다. 덜컥 종이 한 장으로 직장에서 쫓겨난다. 갑자기 마을 한가운데 거대한 고압선이 지나간다. 어제까지 내일 아침이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거라는 희망만 가득했는데, 막상 아침이 되니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는 지독한 절망만 남기도 한다.


마음이 표류하는 우리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원인도 모른다. 표류사회에서 어떤 이들은 공포에 질려 똑바로 바깥세상을 바라보지 못한다. 그리고 자꾸 자기가 본 것만 이야기한다. 또 어떤 이들은 누군가를 표류의 원인으로 지목해 마녀사냥에 나서기도 한다. 때론 서로 편을 갈라 한줌 남은 양식을 빼앗기 위해 싸우기도 한다. 그렇게 양식을 먹어버리면 결국 다 죽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표류사회는 희망보다는 절망이, 웃음보다는 공포가 지배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만화에서는 진실을 고백하고 함께 손을 잡았다. 절망과 공포를 바꾸는 일은 그렇게 진실을 고백하고 함께 손을 잡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들은 멸망한 미래를 바꾸는 씨앗이 된다. 만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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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 문화평론가


 

태국, 베트남, 미국, 호주, 러시아, 북한, 칠레, 캐나다, 노르웨이… 며칠간 내가 간 식당의 원산지 표시 메뉴판에 적혀있던 나라들이다. 적어도 밥상만은 어느 나라 못지않게 글로벌해진 셈이다. 식품도 여행을 하는 시대다 보니 ‘푸드 마일리지’라는 개념도 등장했다. 식품 수송량에 수송거리를 곱한 수치로 계산하는 푸드 마일리지는 높을수록 건강에는 나쁘다. 한국인의 1인당 푸드 마일리지는 프랑스의 10배 수준인 t당 7085㎞로 식량 자급률만큼이나 걱정스러운 수준이다. 밥상뿐인가? 요새는 맛집도 마일리지 카드가 필요해보일 만큼 전국 단위의 맛집이 일반화된 시대다.


대구 납작만두, 통영 꿀빵, 부산 유부전골, 진해 벚꽃빵, 속초 닭강정, 하동 재첩국 등… 언제부턴가 인터넷에서는 ‘전국 5대 짬뽕집’ 같은 맛집 리스트까지 회자되기 시작했다. 인증샷과 방문기가 넘쳐나는 것은 물론 성지순례처럼 그 지역에 가면 꼭 들러야 하는 명물이 되어 사진기 들고 줄 서 있는 관광객이 많은 집으로 변한 곳도 있다. 배달의 나라답게 택배 서비스가 가능한 맛집도 꽤 많다.


(경향신문 DB)


하지만 이런 맛집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식당의 유명세가 꼭 식재료나 음식의 질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과 타 지역 사람들에게서 광풍을 일으키는 맛집들이 정작 그 지역민들에게는 외면받는 경우도 많다. 푸짐한 반찬으로 유명한 오래된 백반집의 반찬이 얼마나 건강한 재료일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혹시 싼 재료를 써서 착한 가격에 푸짐하게 내줄 수 있는 건 아닐까? 유명한 닭강정집에 갔다가 가게 앞에 떡하니 쌓여있는 치킨파우더 박스를 보고 그 길로 돌아나왔다는 음식 칼럼니스트의 목격담은 희귀한 사례가 아니다. 


김종덕 경남대 교수의 분류에 따르면 사람은 ‘음식 문맹자’와 ‘음식 시민’으로 나뉜다. 음식의 중요성을 모르는 ‘음식 문맹자’는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는 것은 물론이고 먹을거리의 이면도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치킨 하나만 놓고 봐도 그렇다. 우리가 흔히 먹는 닭들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닭의 자연수명은 길게는 30년이지만 공장형 농장에서 사육되는 육계는 35일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 삼계탕 한 그릇에 쏙 들어가는 크기의 삼계닭은 20일 정도 키운 닭이다. 지인 중의 한 명은 삼계탕도 닭을 잘 고르지 않으면 보양식이 아니라 몸에 해로운 음식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나하나 따지기 시작하면 정말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거의 남지 않는 게 현실이지만 우리는 맛집 간판 아래 서는 순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먹고 보는 ‘맛집 문맹자’가 되어버린다. 사실 음식은, 그리고 밥은 정치경제적 접근이 필요하다. 식당이나 소비자 한쪽에만 각성을 요구한다고 바뀔 문제도 아니다. 한국에서 좋은 식재료를 사용하면서 식당 영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손님들이 맛있고 값싼 음식을 요구하는 이유는 그들의 입맛이 진짜 맛 대신 인공의 맛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닭 육수를 열심히 만들어봐야 치킨스톡 넣은 가짜 치킨육수를 더 선호하는데 어느 누가 열심히 닭을 끓이고 재료를 손질하겠는가? “임차료는 오르고 가격 인상에는 한계가 있으니 원료값을 절감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식재료의 질은 떨어지지만 음식값은 오른다”는 박찬일 셰프의 이야기가 서글픈 이유다. 저질의 음식을 비싼 값 주고 먹는 소비자도, 맛있는 요리에 대한 고민 대신 프랜차이즈 가맹점비와 임차료 내느라 벅찬 자영업자도 불행하긴 마찬가지다. MSG만 안 쓴다고 착한 식당이 아니다. 식재료를 값싸고 먼 곳에서 조달할 수밖에 없는 ‘글로벌 푸드 시스템’은 무시하고, 건강한 식재료를 사용해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비싸지 않은 가격에 팔아야만 ‘착한 식당’으로 선정해주는 방송 프로그램이 불편한 이유다. 


100% 유기농 식재료와 로컬푸드로 만드는 무공해 청정 밥상을 일반화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원료를 국내산으로 써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 역사와 전통과 명성이 있는 집이라면 요리의 기본인 식재료에 대한 고민과 철학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구례의 우리밀, 상주의 곶감, 성주의 참외, 광양의 매실, 파주의 장단콩처럼 메뉴 중의 하나는 그 지역의 식재료나 특산물을 활용해 만들면 어떨까? 특산물이라고 파는 어느 지역의 유명한 빵도 주원료 성분표를 보면 앙금부터 시럽까지 온통 외국산이다. 중국산 팥앙금과 수입 밀가루와 미국산 호두로 만든 호두과자는 굳이 천안에 가지 않아도 먹을 수 있지 않은가?


해녀 할머니가 그날 잡아온 해산물을 가져다주면, 그제서야 주문을 받고 요리를 시작하던 제주도의 작은 식당이 떠오른다. 외국산 냉동 해물을 푸짐하게 올려주는 짬뽕집과 앞바다에서 갓 잡아온 문어를 썰어넣고 간단하게 끓인 라면집이 있다면 진정한 맛집은 어디일까? 당신의 대답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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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친절이 과하면 병이 된다. 문제의 근본을 바라보고, 고치기보다 현상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속칭 게임 셧다운제라 불리는 제도가 있다. 개정된 청소년보호법에 포함되어, 2012년 1월부터 계도기간을 거쳐 시행되고 있다. 게임 셧다운이라고 하면 뭔가 있어 보이지만 내용은 간단하다. 밤 12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만 16세 미만 청소년들의 인터넷 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법이다.


첫 이슈는 ‘청소년의 수면권 확보’라는 친절하고 다정한 이름으로 추진됐다. 내일의 꿈나무인 청소년들이 밤에 잠을 제대로 자야 하는데 게임을 하느라 잠을 못 잔다. 이 때문에 청소년들이 잠자리에 들 시간이면 게임 접속을 못하게 하자는 취지다. 내 유년시절에 라디오와 TV에서 밤 10시가 되면 어린이 여러분 잠자리에 들 시간 운운, 청소년들은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운운 이런 코멘트가 나오기도 했다. 정말 친절해도 너(어어어어어)무 친절하다. 그런데 출발이 잘못됐다. 청소년들이 잠을 자지 못하는 게 게임 때문이라고?


 상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주변에 청소년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이렇게 말하지 못한다. 세상을 이렇게 각박하게 만들어 놓은 어른들은 원인을 알면서도 모르쇠. 일단 게임이 문제라고 깃발을 들고 법을 만들어 놓았다. 법은 시행됐고, 열두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는 신데렐라처럼 접속이 차단되지만 상식적으로 게임하고 싶은 청소년들이 “아이코 열두시가 되었네. 집으로 돌아가자”라며 PC방에서 집으로 뛰어갈까? 당연히 효과가 없다고 한다. 주무부서인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청소년 인터넷 게임 건전이용 제도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셧다운 제도 시행 이후 거둔 심야 게임시간 감소율은 0.3%에 불과하다. 0.3%의 감소를 위해 법이 제정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셧다운제 논의는 모바일로까지 확대되고 있고, 완전접속차단이라는 카드도 나왔다. 이제 수면권 확보라는, 누가 봐도 낯간지러운 이야기 대신 인터넷 중독 치료를 이야기한다. 인터넷 중독에 대응하기 위해 완전히 접속을 차단해야 된다는 말이다. 고도비만인 사람들이 선택하는 최후의 치료법이 위절제술이다. 위를 물리적으로 잘라내면, 위가 작아지기 때문에 많이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다. 탐식을 질병으로 봐서, 물리적 조절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윤쓰리양이 셧다운제 폐지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경향DB)


보통 수준의 비만인들을 데려다가 “당신은 뚱뚱하다. 너무 많이 먹어 문제니까 위를 자르자!”고 한다면? “고맙습니다. 너무 친절하세요”라며 감동의 도가니에 빠질까? 비유하자면, 셧다운제는 지방함량이 기준치를 넘는 이들에게 다정한 얼굴로 위절제술을 처방하는 형국이다.


과장되었다고? 청소년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았다면, 이런 법률이 고안되거나 시행돼서는 곤란하다. 셧다운을 이야기하기 전에 왜 청소년들이 밤에 잠을 못 이루는지, 게임에 몰입하는지, 인터넷 중독이 되는지를 살펴야 하고 근본적 원인을 고치려고 해야 한다.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잠을 빼앗은, 청소년들이 게임에만 몰입하게 한, 그리고 인터넷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현실이 모두 일그러진 우리 사회에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사회 안전망이 무너지고, 가정이 붕괴된 지점에 청소년들은 방황하고 PC방에 처박혀 게임에 몰입한다. 경쟁 위주의 사회 > 서열화된 대학 구조 > 거기에 편승하는 입시제도 > 성과 위주의 교육은 많은 청소년들을 실패자로 만들었다. 꿈도 희망도 없는, 심지어 위로도 받을 수 없는 청소년들이 오로지 게임 안에서 위로를 받는다. 학교에서도 관심받지 못하고, 따뜻하게 기댈 가정도 망가졌고, 또래 친구들은 학원으로 돌아다니는 상황에서 유일한 위로가 게임이다. 그런 게임을 셧다운하게 만들었다. 뚱뚱한 사람들 모두에게 의무적으로 위절제술을 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아, 비슷한 맥락의 정책이 어제 대선 토론회에서 나오기도 했다. 선행학습이 문제이니까 법으로 금지한다고 했다.인터넷 접속을 차단하기 전, 청소년들의 비명을 들어야 한다. 승자독식의 사회구조를 바꾸고,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일자리를 통해 생계를 해결하며, 자아를 찾아갈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게 불가능하니까 아이들이 게임에 매달린다. 오늘, 우리 아이들의 밤잠을 빼앗아 가고, 게임에 과몰입하게 만들고, 인터넷 중독에 빠트린 자들은 바로 희망 없는 우리 사회다.


아무 소용 없는 게임 셧다운 같은, 선행학습 금지법 같은 친절을 가장한 권위적 법보다 더 중요한 건 벼랑 끝에 몰린 청소년들, 그리고 그들의 부모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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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 문화평론가


 

오늘은 화요일, 집 앞에 순대 트럭이 오는 날이다.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이 순대 트럭은 맛있는 순대와 친절한 아줌마 덕에 제법 손님이 많다. 몇 번 사먹었더니 아줌마는 간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기억하고 있다가 간을 듬뿍 넣어주곤 한다. 아줌마의 사소한 친절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순대를 썰다가 크게 쓱싹 썰어서 “아, 해봐” 하며 내 입에 쏙 넣어주는 순대 한 조각이 그것이다. 어차피 집에 가져가서 먹을 순대지만, 발 동동거리며 기다리는 동안 입에 넣어주는 순대는 유난히 맛있고 따뜻하다. 김장날 엄마가 고무장갑 낀 손으로 즉석에서 돌돌 말아주던 배추쌈 같기도 하고 소풍날 아침 집어먹던 김밥 꼬투리 맛 같기도 하다. 순대를 고르고 썰고 포장하고 돈을 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줌마와 나는 날씨부터 정치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사실 순대 아줌마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아줌마들은 벽이란 게 없다. 아줌마의 위엄이라고 해야 하나? 아줌마들은, 그리고 여성들은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도, 말 붙이기에도 어려움이 없는 폭풍 친화력과 오지랖을 자랑한다. “아유, 아기가 정말 귀엽다. 몇 살이에요?” 전철에서 아이를 안고 탄 엄마에게 자연스레 말을 건네는 아줌마는 흔하디흔하다. 오늘 처음 본 사이여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도, 누가 예쁜 가방만 들고 있어도 한 시간은 족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줌마들, 아니 바로 여성들의 능력이다. 여성의 평균수명이 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마음껏 떠는 수다의 힘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여자들의 수다는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친구에 따라 수다의 주제가 달라지는 것은 기본이다. 직장, 남자친구, 요리비법, 좋은 쇼핑 사이트, 어제 본 드라마 얘기부터 자녀 교육, 육아, 맛집, 새로 생긴 가게나 좋은 공연까지…. 취업과 연애는 시작에 불과하다. 결혼, 임신, 출산, 육아의 4종 세트를 통과하는 20대 말, 30대 초·중반을 거치는 동안 이야깃거리는 폭증하고, 생애 주기별로 풍성하고 다양한 수다의 장이 펼쳐진다. 맛있는 음식과 차 한잔을 앞에 두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둘러앉아 떠는 수다만큼 즐거운 시간이 어디 있으랴!


이 수다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화려한 말발이 아닌 공감 능력이다. 서로의 상황, 같음과 다름을 공유하고 생각을 교환하고, 감정을 털어놓으며 사람들은 서로 솔직해지고, 진실해지며 가까워진다. 시시콜콜하고 사적이고 감정적인 이야기들은 털어놓기도 쉽지 않지만 듣는 것도 쉽지 않다. 듣는 사람이 맞장구치며 같이 웃고 같이 울며 들어야 한다. 자기의 감정과 상태를 솔직하게 말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고 맞장구쳐주는 것, 소통과 공감을 통해 오고가는 이야기가 진정한 수다의 기본이다. 일방적인 연설이나 감정 토로에 그친다면, 그걸로 끝이다.



(경향신문DB)


수다는 쉬워보이지만 그 사안에 대해 자세히 알거나 관심이 있거나 들은 게 없으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어머, 그 옷 정말 예쁜데 얼마니, 어디서 샀니’ 정보공유부터 ‘송중기 진짜 멋있다’ 잘생긴 남자 연예인 품평까지 수다에도 늘 새로운 관심사와 소재가 필요하다. 어떤 영역이든지 호기심이 있어야 수다를 떨 만한 거리도 생기는 법이다. 사회생활 오래한 남성들이 업무 얘기를 빼고는 이야기할 게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일 빼고, 돈 빼고, 정치(인) 얘기 빼면 대체 관심영역이 없으니까. 마찬가지로 지금 정치에서 빠져 있는 영역이 바로 이 수다의 핵심인 소소한 일상의 공유다. 대중교통 정책을 바꾼다고 백날 떠드는 대신, 방향이 표시되어 있는 제대로 된 버스 노선 안내도를 만드는 작은 실천이 중요하고 와닿는 법이다. 


친한 친구 같은 정치인, 생활밀착형 정치인, 수다쟁이 정치인은 그래서 필요하다.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케이크까지 먹을 수 있는 서로의 식욕을 확인하며 깔깔대고, 여자들끼리 있을 때만이라도 음식 만들지 말고 편하게 시켜먹자는 그 정서를 이해하는 정치인 말이다. 여자들의 정서를, 또 수다를 이해하는 정치인이라면, 그런 대통령이라면 경력 단절 문제도, 육아도, 생활도, 먹거리도, 장바구니 물가도 정말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헤어지면서도 다시 전화하자며 수다 떨고 싶은 그런 친구 같고 언니 같은 대통령을 원하는 건 너무 과한 욕심일까? “맞아, 맞아” 등 두드리고 박수쳐가며 신나게 수다 떨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다. 일방적이고 지루한 연설 대신 의제별로, 사안별로 즐거운 수다를 떨 수 있는 대통령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본다. 우리에겐 과묵하고 근엄한 대통령 대신 수다쟁이 대통령이 필요하다. 대선 이후 새로운 대통령과 국민의 진솔한 수다 한 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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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휘 | 성북문화재단 대표


 

2002년 12월이었어요. TV에 나온 권영길 대통령 후보가 어눌한 목소리로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고 덜컥 안부를 물었을 때 먹먹한 울림이 일었던 기억, 혹시 있으신가요? 개그맨들의 유행어가 되어 아이들도 따라 했던 이 인사말은 그러나 한 해 전인 2001년 12월에 첫 방송을 탄 BC카드의 광고 인사말과 싸우기엔 역부족이었지요. 


권영길 (경향신문DB)


스타 연예인 김정은씨가 달콤하게 외쳤던 “여러분 부자 되세요!”는 안녕을 묻거나 끼니를 챙겨주거나 복 받으라며 건넸던 우리의 소박한 덕담을 싹 집어삼킨 ‘국민 메아리’가 되어 오늘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우리 모두가 부자가 될 것 같은, 아니 네가 어떻게 되든 나는 꼭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그 고독한 다수의 자기계발 주기도문들.


 이 메아리 따라 10년 세월을 살고는 다시 12월이에요. 한 해를 갈무리하는 세밑에서 코앞의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나의 감수성이 지금은 과연 무엇일지 돌아봅니다. 부자가 되려다가 되지 못한 절망감과 상대적 박탈감의 발로에서 나오는 복수심 같은 것일지 아니면 사람살이의 기본을 되찾으려는 차분한 회심일지, 이 분별력으로 가늠하는 우리들 저마다의 회고와 선택이 대통령 선거보다 실은 더 중요한 것 아닌가 싶어요.


살림살이를 늘려나가는 재미 가지고는 기어코 부자가 되겠다는 우리 내면의 광기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많이 겪었으니까요. 그리하여 대통령을 뽑는 금번 12월에 너와 나의 사람살이를 톺아보는 동병상련의 마음을 회복하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우두커니 찾는 심정, 저만 아닐 거예요.


그러던 중 연달아 혈연, 무연, 인연이란 이 세 단어가 또렷한 이미지로 확대되는 체험을 했는데 이 또한 저만 아닐 것 같네요. 혈연이란 이젠 이웃과 통하는 사랑방을 영영 폐쇄해버린 가족이라는 문패의 쪽방촌 이미지로 다가왔고, 이 쪽방촌 가족들이 무리지어 무연 사회라는 망망대해를 만들고 있는 이미지였어요.


그런데 혈연에서 무연으로 넘어가는 똑같은 패턴으로 새로운 인연을 갈구하게 된 사람들의 이미지가 무더기로 뒤따랐는데, 압축 성장하느라 100년을 10년처럼 살아온 우리 사회의 연결 고리이자 상호 반전의 계기로서 혈연, 무연, 인연이 인과를 이루며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것인가 하는 데까지 상념이 다다른 직후에 “너 안 자?” 하는 아내 소리에 멈추었지요. 


밤새 혼자 횡설수설한 잔상을 달고 출근한 다음날 종일, 평소처럼 일과 속에서 만나던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공동체, 생활예술, 지역문화 같은 사업계획 속의 단어들이 전부 ‘인연’이라는 한 단어에 쏙 들어가 있는 것을 봤답니다. ‘혈연을 넘어서고 무연을 치유하는 너와 나의 새로운 인연 맺기’, 이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로구나 하면서요. 


금번 세밑과 벽두를 돌아보며 내다볼 주제어를 찾은 심정이었지요. 아마도 오는 12월19일 수요일엔 투표를 하고 저녁께부터 아내와 밤새 TV를 지켜보면서 맥주를 마실 것 같지만, 새벽께엔 확인될 다음 대통령과 한 하늘 아래 살아갈 시간 동안에 제가 어떤 마음자세로 살아가야 할지를 조금은 더 분명하게 찾게 된 하루 같아서 그날은 비교적 무탈하게 보낼 것 같네요.


하도 수상하고 맥 빠지며 스산한 11월을 보내던 중에 우연히 SBS TV 4부작 다큐멘터리 <제국의 최후>를 접했다가 3부작까지 찾아보고는 그 이상하고도 강렬한 심리적 여파를 여기 ‘별별시선’ 올해 마지막 칼럼으로 대신하게 되었음을 밝힙니다. 1부 ‘최후의 경고’, 2부 ‘슬픈 제국의 추장’, 3부 ‘돈과 꽃’까지 보면서 이거 시청자 힐링 프로그램인가 또는 유권자 투표 독려 캠페인인가 그랬거든요. 인터넷 다시보기를 하신 다음 이번주 일요일 마지막 4부 ‘공존, 생존을 위한 선택’을 꼭 챙겨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19일 투표하신 다음날 12월20일 하루를 잘 보내시며 송구영신하시길 기원할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부자 되기나 살림살이로 잴 수 없는 저마다 받고 누려야 할 그 복을 꼭 찾는 새해를 맞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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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 대중문화평론가


 

올해처럼 다양한 사극이 쏟아져 나온 해도 드물다. 선거의 시기가 돌아올 때면 권력 다툼을 중심으로 하는 사극을 통해 정치적 열기가 표현되곤 했으니 유별난 현상은 아니다. 그런데 올해의 사극 열풍은 일견 예년의 정치사극 붐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띤 것도 같다. 상반기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판타지 사극 <해를 품은 달>,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닥터 진>과 <신의>, 멜로와 호러와 코미디와 활극을 뒤섞은 <아랑사또전> 등 다양한 하위장르적 재미를 내세운 퓨전사극들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들 역시 다양한 장르적 외피 아래 은근한 정치적 화두를 품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해를 품은 달> <닥터 진> <신의>는 남녀 주인공의 운명적 로맨스를 그린 사극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패한 기득권 세력에 맞서 개혁을 꿈꾸는 지도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아랑사또전>도 아랑(신민아)과 은오(이준기)의 멜로 플롯 외에 탐욕스러운 양반들의 수탈하에 굶주린 백성들의 삶을 원귀들의 그것에 빗대 양극화의 현실을 풍자한 바 있다.


 이러한 공통점은 현재 방영 중인 사극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정통왕조사극 <대왕의 꿈>을 제외하면, <마의> <대풍수> <전우치>는 모두 정치적 주제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하위장르적 재미에 집중한 중심 플롯의 이면에 담아낸다. <마의>는 전형적인 이병훈표 전문직 성공기, <대풍수>는 풍수지리학 관점으로 풀어보는 조선 건국기, <전우치>는 B급 정서를 기반으로 한 활극이면서 흥미로운 정치적 화두로 묶일 수 있다. 그것은 ‘미완의 개혁에 대한 열망’이란 주제다. 


(경향신문DB)


<마의>는 주인공 백광현(조승우)의 아버지 강도준(전노민)과 그의 정치적 동지 소현세자(정겨운)의 이상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들이 바라던 조선은 개인의 꿈이 신분제에 가로막히지 않는 사회이며 그래서 백성들이 보다 개선된 삶을 누릴 수 있는 국가다. 하지만 이 이상은 공고한 기득권 세력에 부딪혀 좌절되고 도준의 가문은 순식간에 와해되고 만다. 그리하여 다음 세대인 광현이 천민의 신분에서 인의의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은 단순한 개인의 성공을 넘어 아버지 세대가 못다 이룬 개혁의 꿈을 완수하는 의미를 지닌다.


<대풍수>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앞서 월화드라마로 방영된 같은 방송사의 <신의>와 이어 보면 더 흥미롭다. <신의>는 강력한 외세에 기생하는 귀족들과 대립하며 백성들을 위한 자주국가를 세우려는 개혁 군주 공민왕(류덕환)을 다뤘다. 그리고 <대풍수>는 그의 개혁이 좌절되면서 기득권이 더 득세하는 암울한 시대로부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고려 제일의 풍수가 동륜(최재웅)이 발견한 명당은 아직 하늘의 때가 아니어서 봉인되었고, 그 미완의 과제는 아들 지상(지성)에게 남겨진다. 지상은 그 과제를 이어받아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할” 지도자를 찾게 된다. 


앞선 세대가 완성하지 못한 개혁의 과제를 새로운 세대가 이어받는 이야기는 <전우치>에서도 다뤄진다. 이 드라마는 조선의 대표 민중 영웅 홍길동의 후예들 이야기다. 홍길동이 세운 율도국은 후계자 다툼으로 패망했으며, 그가 떠난 뒤의 조선은 여전히 부패관리들에 의해 억압받는 백성들의 한탄으로 가득하다. 전우치(차태현)는 율도국의 패망을 주도한 반란자를 잡기 위해 조선에 왔으나 점차 홍길동의 뒤를 이어 차세대 민중 영웅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렇듯 최근의 사극들이 공통적으로 내포한 주제를 따라가다 보면 2007년 대선 시기 정치사극 붐을 이끌었던 정조 드라마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시 <한성별곡-정> <이산> <정조 암살 미스터리 8일> 등의 작품들은 곧은 이상을 품었으나 결국 보수층에 의해 좌절하고 만 개혁 군주로서의 정조를 그렸다. 그 모습에 노무현 정부 개혁의 한계가 투영되었다는 것이 평자들의 지배적 견해다. 그리하여 최근 사극들이 보여주는 새 세대를 통한 ‘미완의 개혁에 대한 열망’은 정조 이후의 이야기처럼 읽혀진다. 


대신 이 작품들이 바라는 개혁이란 거대한 혁신보다는 일상적 차원의 개선에 가깝다. 홍길동과 같은 이상국가가 아니라 사랑하는 여인과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바라는 전우치의 소망처럼. 가난한 이들을 치료하는 의사(<닥터 진> <마의>), 비리를 추적하는 수사관(<아랑사또전>), 백성들의 길흉화복을 점쳐주는 도사(<대풍수>) 등 민초들의 삶에 밀착된 사극 주인공들의 직업적 특성에서도 암시된다. 


요컨대 최근 사극들의 정치적 화두는 보수 대 진보라는 거대한 이념적 프레임이 아니라 복지, 인권과 같은 민생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최소한의 삶마저 무너져가는 작금의 현실을 반영한, 2012년 사극들의 변화된 정치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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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이렇게 해서 화나고, 저렇게 해서 화가 난다. 때론 참고, 때론 못 참는다. 대개 큰 화는 참고, 작은 화는 못 참는다. 작은 화가 차곡차곡 모여 거대한 신경증 사회가 되었다. 사람들은 무관심하다가 전혀 화를 내지 않아야 될 타이밍에 폭발한다. 예를 들어 아이유 사진 같은 경우에 말이다. 타블로 사건에서 얄팍한 교훈도 얻지 못한 듯하다. 그녀가 국민 여동생이건 꽃의 천사이건 간에 사생활은 사생활이다. 사진에서 나오지 않는 부분도 창의적으로 재해석한다. 나중에 아이유도 <힐링캠프> 나올라. 작은 화들이 거대하게 모여 신경증 사회가 되어버리자 선사에서 참선하던 스님들은 제각각 화를 못 참는 중생들을 위로한다. 참 고마운 일이지만 때론 답답하기도 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나도 거의 매일 화를 냈다. 때론 참고, 때론 못 참았다. 어떤 화는 자질구레하고, 또 어떤 화는 거창했다. 아니, 거의 대부분 자질구레하다. 자질구레한 화는 원인과 결과 모두 쌍으로 자질구레하다. 그래서 가능하면 화를 꾹꾹 참으려고 한다. 며칠 전에도 화를 눌러 담았다. 화내지 않은 날로 기록해 볼 요량이다.


(경향신문DB)


 부탁을 받아 등기를 하러 등기소에 갔다. 이런 관공서 일이란 게 잘 아시듯 어렵고 불편하다. 법무사에게 맡길까 하다가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격려에 힘입어 오전에 시간을 내 등기소를 찾았다. 정확히는 구청이 먼저다.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대로 구청에 들러 서류를 발급받았다. 구청에서는 운 좋게, 순전히 운 좋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같은 일로 첫 번째 구청을 방문했다가 등기소에 들른 날에는 서류 하나를 누락해 다시 갔었으니까. 이번 기록은 두 번째 방문에 대한 이야기다.


관공서 일이란 게 그렇듯 창구 찾기도 힘들다. 단 같은 일로 두 번째 방문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업무가 몇 번 창구인지 물어볼 사람도 없다. 창구에 앉아있는 사람은 그들끼리 아침 잡담 혹은 티 타임을 즐기기에 바빴으니까. 그들은 창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내 어수룩한 모습을 보고 자연발생적으로 나를 멀리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친절한 문답을 기대하는커녕 눈이라도 맞춰주기를 바랐지만 그들은 충분히 바빠보였다. 그래도 민원 어쩌구 써 있는 곳에 가서 물어본다. 대뜸 서류를 출력해 읽어보고 만들어 오라고 한다. 저쪽에 가서. 아, 고맙다. 진심이다.


서류를 만든다. 어린 시절, 박사라면 부리부리 박사나 남 박사처럼 뭐든 잘하거나 아니면 지구를 지키는 로봇 정도를 만드는 사람이었는데, 막상 박사 근처에 간 중년이 된 지금 내가 꿈꾸던 박사와의 거리는 백만 광년쯤이다. 서류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어렵다. 대충 어리버리 베껴 서류를 만들었다. 민원 창구에 가서 검사를 받은 뒤 제출처에 냈다. 아, 중간에 인지를 사러 2층에 올라가기도 했다.


서류를 접수하는 공무원은 세상에 어떻게 하면 더 불편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가를 연구한 것처럼 보였다. 아니면 아침에 부부싸움을 했던가. 최대한 공손하게 서류를 조아려 바치고, 한숨 한 번 쉬고 등기소를 떠났다. 다 끝났다. 내 손으로 등기를 했다고!


막 차를 돌리려는 순간 전화가 왔다. 서류에 문제가 있으니 다시 쓰라고 한다. 여전히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던 공무원이 담당계로 가라고 한다. 담당계의 공무원들은 그래도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아니 처음 민원접수 공무원이 이걸 가르쳐 줬으면 좋았을 텐데. 시키는 대로 다시 베껴 쓴 다음, 아까 그 불편한 표정의 공무원에게 다가갔다. 애니팡을 하고 계셨다. 난 잠깐 눈치를 봤고, 고맙게도 그는 내가 내민 서류를 접수해 주셨다. 아마 애니팡을 끊어 좀 기분 나쁘셨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등기와 관련된 일을 모두 끝내고 나오려는데, 화가 저 밑바닥에서 끌어올랐다. 부글부글. 들어가 애니팡 신기록을 경신하려는 그 판을 못하게 하고 싶었다.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는 표정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내가 주는 세금으로 당신이 먹고산다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래도 꾹 참았다.


모두들 화를 못 참는 것도 문제지만, 쉽게 화를 북돋는 것도 문제다. 화를 못 참는 현상과 쉽게 화를 북돋는 현상은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처럼 쌍으로 돌아다닌다. 누가 먼저인가를 따지는 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보다 더 어렵다. 유치원생에서 양로원의 노인(아니 어르신)까지, 화를 중심으로 북돋고, 또 못 참는다. 그러니 세상이 화로 가득이다.


화를 못 참고, 쉽게 화를 붇돋는 세상이 된 건 우리에게 정신적, 물질적 풍요와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정신과 물질 양쪽에서 모두 여유롭다면 화를 못 참지도 북돋지도 않을 터이다. 그런데 자꾸 위로만 한다. 문제를 찾아 바꿔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다. 바꾸거나 아니면 스님들처럼 산사에서 참선하거나. 잘 생각해 보시라. 스님들의 위로는 값지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이 치유되기 힘들어 보인다.


그 때문에 초기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인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낭만주의의 명령으로서 ‘세계를 낭만화해야 한다’라고 선언했고, 또 다른 핵심 멤버 노발리스는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시적 국가(poetic state)’라는 용어로 표현하기도 했다. 


시적 국가라, 왠지 백범 선생이 <나의 소원>에 쓴 ‘아름다운 국가론’이 떠오른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소망한다며 선생은 이렇게 쓰셨다. “우리의 경제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큼이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이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인류가 현재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 부족, 자비의 부족,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언제 읽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동시에 자긍심을 느끼게 되는 글이다.


김구 선생이야말로 가장 급진적인 진짜 낭만주의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문화(Bildung)를 통해 세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감히 이런 소망을 품고 있다. 김구 선생의 이루지 못한 그 소망이 문재인과 안철수의 ‘아름다운 단일화’를 통해 이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둘 중 누구라도 좋다. 좀 더 인의 있고, 좀 더 자비롭고, 좀 더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게 병신같이 새삼, 낭만에 대하여 쓴 내 진짜 속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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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 문화평론가 solbitur@gmail.com


 

위험하고 불편하고 지저분하다. 비싼데 환불이나 교환도 되지 않으며 심지어 앞으로 돈을 더 많이 내야 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울며 겨자먹기로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품이 있다. 이 마법(?) 같은 상품의 이름은 바로 경인고속도로다.


만일 당신이 처음 이 상품을 이용하게 된다면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화물차가 있는지 놀라게 될 것이다. 각종 트레일러와 탱크로리, ‘낙곡 방지’를 커다랗게 써 붙인 곡류 운반차량, ‘차이나 시핑(china shipping)’류의 컨테이너, 원목이 가득 실린 차도 자주 보인다. 한 연구기관이 내놓은 ‘인천항 화물자동차 통행특성 분석’에 따르면 인천항을 통행하는 화물차는 1일 평균 3000대, 이 차들 대부분이 경인고속도로를 이용한다는 얘기니, ‘화물 고속도로’라고 부를 만하다.


경인고속도로 부평톨게이트에서 통행료 징수 거부운동을 벌이고 있는 공익변호사 모임 (경향신문DB)


 나 역시 처음엔 새로운 차를 볼 때마다 신기했다. 하지만 이 호기심이 두려움으로 바뀌는 데에는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자동차를 가득 실은 수출용 차량 운반차 옆을 지나갈 때면 아직도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가장 무서운 차는 각종 폐기물을 운반하는 노후 차량들이다. 얼마나 낡았는지 녹이 금방이라도 부스러져 떨어질 듯한 차체를 자랑한다. 제대로 뚜껑을 닫지 않아 철사 뭉치나 스크랩 등을 여기저기 흘리거나 시커먼 매연을 내뿜기 일쑤다. 흙이나 모래를 운반하는 덤프트럭이 나타나면 주의보 발령이다. 일단 이 트럭들은 ‘얼마나 뿌옇게 먼지를 뒤집어썼나’를 자랑하는 대회에 참가라도 하고 오는지 원래의 차량 색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시각적 즐거움은 포기한 지 오래지만, 바로 옆이나 뒤를 달리게 되면 바로 삼십육계 줄행랑 치는 것만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가속도가 붙은 모래 알갱이가 유리창에 얼마나 많은 흠집을 낼 수 있는지 알게 된 후부터 ‘피하는 게 상책’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얼마나 많은 이물질이 도로에 떨어져 있는지 갓길에 파손된 타이어가 나뒹구는 풍경은 흔하디 흔하고, 대체 무엇인지 짐작 불가능한 물체가 이리저리 바람에 날리고 있을 때도 많다. 


이 우울한 풍경이 경인고속도로의 일상임은 지난 7월 실시한 관련 기관의 합동단속 결과를 살펴봐도 금방 알 수 있다. 단속 1시간 만에 등화 손상, 반사판 미부착, 번호판 봉인 탈락 등으로 10대의 화물차량이 적발됐다. 브레이크등이 미작동하거나 덮개 바깥까지 철근이 튀어나온 덮개 불량 화물차는 물론, 마모된 타이어로 달리는 ‘시한폭탄’ 차량이 대다수였다고 하니 어찌 무섭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인천항 주변 가로구간과 교차로는 화물차 통행 비율이 30%가 넘는다. 그 때문에 이 주변 도로 노면은 ‘사상이 울퉁불퉁한’ 싸이가 와도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누더기 상태다. 아무리 보수작업을 해서 메워놔도 일주일만 지나면 그 구간이 다시 똑같은 모양으로 파여 있다. 도심 내 화물차 통행이 일반적이다 보니 교통 혼잡, 배출가스와 미세먼지 증가도 심각하다. “화물차의 비중이 높은 일부 도로구간을 대상으로 화물자동차 전용차로를 우선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연구 제안까지 나올 정도다. 


경인고속도로의 문제점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서울을 오갈 때 가장 많이 이용하는 제1경인고속도로는 상습 정체구간이 많아 ‘거북이 도로’라는 별명이 붙을 지경인데도 오갈 때마다 통행료 900원씩을 내야 한다. 주 5일 근무자의 경우 출퇴근 통행료로만 연간 수십만원을 지출하는 셈이다. 참다 못한 시민들이 통행료 폐지 운동을 벌이고 도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다. 그 결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에 ‘유료도로폐지법안’이 발의되어 있지만 언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이 와중에 서울시는 신월 나들목에서 여의도까지의 지하구간에 서울제물포터널 7.35㎞를 민자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그런데 2017년 개통 예정인 이 도로를 이용할 경우 터널 왕복통행요금 4000원(소형차 기준 1890원)에 고속도로 통행요금 1800원까지 하루에 통행료만 6000원 가까이 지출해야 한다. 빨리 가려고 일부러 돈 내고 이용하는 고속도로가 빠르지 않다면 돈을 낼 이유가 없는데도 개선 노력은커녕 비용을 더 부담하라니…. 길 가는 사람 붙잡아 ‘통행세’ 내라고 윽박지르는 산적이 떠오를 지경이다. 


인천 쪽은 위험하고, 서울 쪽은 막히는 데다 돈까지 내야 하니 어느 방향으로 가나 경인고속도로 이용자들의 마음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깨끗하지도 편리하지도 안전하지도 않은데 비싸기까지 한 이 도로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국에서 올라온 화물차들은 오늘도 쌩쌩, 경인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이 상품을 이용하는 고객들은 언제쯤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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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휘 | 성북문화재단 대표


 

돌아보니 성북문화재단의 출범은 참 고즈넉했네요. 개소식도, 초대장도, 누리집도 미뤄 둔 첫날이었지요. 10월 중순에 치른 성북진경 축제를 빼면 그때나 지금이나 재단 직원들의 나날은 성북 ‘학’(knowledge)을 찾아 배우는 일과로 채워지고 있거든요. 성북의 경제학과 사회학을 익히면서 이 앎을 어느 곳 누구하고도 교류하며 상생할 수 있는 인류학으로 발견하고 호명하는 과정이 성북 ‘학’이라는 지역학의 쓰임새임을 새삼 느끼면서요. 같은 이치로 성북문화재단 ‘학’도 만드는 중이지요. 성북에 사는 사람과 성북을 찾는 사람을 더불어 흥하게 하는 문화학과 조직학을 묻고 찾는 것이 성북문화재단 ‘학’이다 하면서요.


‘학’이라고 썼지만 발품 팔고 진땀 흘리며 이곳의 역사와 생활사 현장들을 몸으로 만나가는 학습의 연속이지요. 요즘 지역문화의 진흥이 추세입니다만 그 요체를 찾아볼수록 담담해지네요. 지역문화의 진흥이란 그 지역이 ‘하던 것’을 더 잘되게 하는 것이고 그 지역에 ‘있던 것’을 더 잘 드러내는 일이 바탕임을 깨닫게 되니까요. 이 바탕을 이해하면서 그 지역에 ‘없던 것’을 새로 보태는 일이 지역문화의 진흥이었어요. 이 ‘없던 것’도 어느 지역이든 비슷하지요. 쪼개져서 따로 공급되던 일자리와 복지와 교육과 예술을 수요자 중심으로 붙여놓고, 윗사람이 결정하고 앞장서던 판에 아랫사람도 주도하게끔 여지를 넓히고, 안에서 방어하기보단 밖에서 좋은 것을 먼저 찾아내 들이는 것이 새로움의 양식이니까요.


 같은 발상에서 성북의 문화 진흥을 위해 성북 ‘학’과 성북문화재단 ‘학’을 묵묵히 찾아가는 중이랍니다. 그런데 이들 ‘학’은 홀로 빛나는 것이 아니어서 성북 같은 다수의 생활권을 아우르는 서울시의 핵심 정책과 맞물리는 ‘전략’(strategy)으로 추진되어야 성북 시민이 체감하는 생활의 진흥으로 발현되겠지요. 그러자면 서울시의 사회적 경제와 마을 공동체, 에너지 자립과 복지 기본선 등의 정책 사업이 지역적 삶의 개인 일상에서 마치 깔때기처럼 합쳐져서 실감나게 하는 문화적이고 조직적인 촉매자의 활동이 필히 활발해져야 합니다.


분야별 지원센터와 또 다르게 지역의 촉매 조직 활성화를 꾀한다면 성북의 문화정책과 서울의 문화정책이 합류하면서 비로소 샛길과 큰길이 동시에 날 수 있겠다 싶네요. 하여 성북문화재단의 130여명 직원들이 기꺼이 그런 촉매자를 자임해서 도서관, 미술관, 영화관, 미디어센터, 구민여성회관에서 저마다 지닌 생활문화 ‘술’(knowhow)을 맘껏 발휘할 때 동원이나 수혜가 아닌 자발적 생비자(生費者)로서 동네 예술가의 본성을 표현할 성북 시민과 마주하며 환히 웃겠네 해요. 성북에는 이미 ‘하던 것’과 ‘있던 것’이 좋은 상태로 많아서 약간만 ‘없던 것’을 보태어 한 해가량 농사 지으면 결실이 제법 열리겠지 내심 설레면서요. 이렇듯 서울과 성북이 상호 작용하는 지역 생활문화의 현장을 활성화하는 촉매 역량의 강화와 함께 다른 한편에선 서울과 성북의 동시적이고 지속가능한 도시 경쟁력을 발굴하고 키워가는 4대 특별 정책 사업(killer contents)을 준비하고 있어요.


한양 도성의 생태관광 여행을 널리 알리면서 도성 밑에 자리한 마을 공동체 및 지역 예술가를 한꺼번에 활성화하는 것, 간송미술관의 상징성과 통하며 성북동의 미술관과 갤러리들을 엮어 한국의 근현대 미술거리로 활성화하는 것,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심우장을 비롯한 고택이나 역사적 문화 인물의 생가 등 서울의 대표적 미래유산을 묶어서 다음 세대를 위한 역사문화의 교육장으로 활성화하는 것, 최근 시민 관람을 개시한 한국가구박물관과 성북 및 종로의 생활민속 사립박물관을 연결해서 서울을 인상짓는 문화외교 명품 코스로 활성화하는 것. 이것이 성북문화재단이 준비하는 2013년의 4가지 특별 정책 사업입니다. 


11월 중순 무렵이면 얼추 내년 사업계획과 예산을 짜놓고서 정릉과 의릉 일대 등 성북의 호젓한 곳곳에서 마을과 경제와 예술을 알아서 함께 일궈왔던 풀뿌리 활동가들을 한 분씩 만나려 해요. 이분들에게 열쇠가 있거든요. 경청하고 거든 다음 한 걸음 물러서 있으면 자물쇠가 풀리겠지요. 왜냐하면 성북(城北)의 ‘성’이 한양 내부를 지키는 예민한 경계감이라면 그 ‘성’의 북에 있는 ‘성북’은 경계에 서서 비움으로써 두터워지는 성숙미가 아닐까 해서죠. 오늘의 다툼이 도드라지는 대신 어제와 내일에 싸인 오늘의 홀가분함이 뭔지를 알려주는 곳이 여기 성북이거든요.


해서 ‘이야기와 꿈이 많은 성북문화 일구기’라는 성북문화재단의 소명이자 좌표는 오래된 서울의 성북 이곳에서 2013년을 준비하는 오늘 하루의 일과를 고즈넉하게 채워가는 중이랍니다. 그러면서 만들어가는 성북문화재단 직원들의 약속이 있는데요. ‘3하4말’이라고 3가지는 하고 4가지는 말자는 건데 궁금하시면 연락 주세요.따로 답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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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 대중문화평론가 herland@naver.com


 

아줌마가 돌아왔다. 올해 TV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적 활약을 펼친 인물군은 단연 아줌마다. ‘시월드’와의 인위적 가족관계에 의문을 제기한 며느리 차윤희(<넝쿨째 굴러온 당신>), ‘아내의 자격’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그 이전에 ‘여자이자 인간’임을 선언하는 윤서래(<아내의 자격>), 가사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재평가하게 한 고봉실(<고봉실 아줌마 구하기>)까지. 


이들은 며느리, 아내, 엄마라는 역할에 한정되며, ‘아줌마’라는 호칭으로 뭉뚱그려진 기혼여성들의 익명성과 타자성에 맞서 부단한 실명의 전투를 벌인 올해의 캐릭터들이다.


 여기에 최근 ‘대한민국 아줌마’의 대변자를 자처하며 전업주부의 고충을 고하는 또 한 여성이 가세했다. KBS 월화드라마 <울랄라 부부>의 나여옥(김정은)이 그 주인공이다. 


<울랄라 부부>는 여옥이 가부장적 남편, 이기적인 시댁, ‘미친 사춘기’ 아들까지 다 챙기느라 지쳐가면서, 결국 주부 파업을 선언하고 남편의 외도에 이혼을 결심하기까지 긴 과정을 1회 안에 담아낸다. 그 속에서 여옥은 마치 앞선 드라마들 속 기혼여성의 수난기를 압축해서 연기하는, 극중극 배우처럼 그려진다. “내가 쌍팔년도 드라마에 나오는 식모야?” 항변하는 그녀 자신의 대사가 말해주듯이. 


(경향신문DB)


여기까지가 도입부였다면 본격적인 드라마는 그 다음부터다. 이 작품은 여옥이 기혼여성 수난담의 압축 재현을 통해 ‘대한민국 아줌마’의 대표성을 획득한 바로 그 자리에서 그녀와 남편의 위치를 뒤바꾼 ‘부부 간 성역할 체험극’이라는 2막을 시작한다. 


그동안 여옥이 아줌마의 자리에서 겪어온 수난과 차별이 이제 고스란히 수남(신현준)의 몫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남편들이 맨 정신으로는 받아들일 리 없는 이 상황을 강제 실행하게 하는 것은 ‘영혼 체인지’라는 판타지 장치다.


<울랄라 부부>는 그동안 여러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익숙해진 이 설정을, 부부 간 젠더(사회적 성) 관계 역전을 통해 기혼여성의 사회적 조건을 드러내는 흥미로운 장치로 사용한다. 특히 영혼보다는 육체의 교환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체인지 이후 극의 초점은 주로 수남이 체험하는 ‘여성의 몸’이 얼마나 불편한가에 맞춰져 있다. 여옥의 몸을 입은 수남이 느끼는 불편함은 반대 상황의 여옥이 겪는 어색함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수남이 갑갑해하는 브래지어처럼 여성 신체에 대한 사회적 제약에서 비롯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수남이 체험하는 여성 신체의 제약은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 문화를 드러내는 꽤 효과적인 장치가 된다. 대표적 예가 6회 호텔 룸메이드 면접신이다. 지배인 자리에서 해고된 수남은 재기를 노리고 메이드직에 지원해 그동안 쌓은 전문지식을 펼쳐 보인다. 그러나 면접관의 눈에 비친 그는 단정치 못한 옷차림과 남자처럼 쩍 벌린 다리가 거슬리는 아줌마일 뿐이다.


이 면접신은 남자일 때의 수남에게는 능력이었던 전문지식과 당당함이 아줌마의 몸일 때는 감점 요인이 되는 모순적 상황을 통해, 여성에게 파편적 기준을 요구하는 성차별적 시선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이 역할극 효과는 한 발 더 나간다. 첫 회에서 철저하게 분리되었던 호텔과 가정이라는 주무대 역시 뒤바뀌면서 두 공간에서의 노동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이 밝혀지는 것이다. 이를 통해 비가시적이던 여성들의 가사노동이 가시화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가령 수남이 고객에게 제공하던 서비스는 그가 가정에 돌아와 여옥에게 제공받던 노동과 매우 유사하게 그려진다. ‘고객들은 내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보살폈다’며, 호텔서비스를 가사노동자 입장에서 해석한 여옥의 하소연은 그 점을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결국 <울랄라 부부>의 역할극을 통해 드러나는 사실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가치를 지닌 두 노동에 대한 사회적 대우와 시선의 차이다. 임금을 받는 공적 노동과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 그리고 지배인, 요리사, 메이드 등 전문 인력이 분담하는 노동과 오로지 주부가 전담하는 노동의 차이. 


극중 완벽한 지배인이던 수남이 평소 “집안 일도 일이냐”며 폄하하던 가사노동에 무능하기만 한 모습이 단순한 웃음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은, 이처럼 가사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환기시키는 역할극 효과 때문이다. 물론 이 극에는 여러 불안요소도 존재한다. 여성의 고통을 체험하기 위한 수남의 임신이 단순한 재결합의 계기로 그칠 수도 있고, 부부가 서로의 성역할 차이를 이해하며 화해하는 개인적 차원의 해결로 결말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한 이 작품의 시선만큼은, 적어도 국내 최초 여성 대통령 배출을 꿈꾸는 여당 선대위원장의 ‘솥뚜껑 운전’ 인식 수준보다는 진보적일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올해 유독 큰 목소리로 돌아온 아줌마들의 귀환을 환영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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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


 

우리는 지금 상상력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다양한 상상력은 새로운 시대의 경쟁력이라 칭송받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희한하게 창의력과는 상관없는 방향의 상상력만 끓어 넘친다. 가장 많은 이들을 사로잡는 과잉 상상력은 연예인에 대한 뒷소문이다. 신문기사에서는 이니셜로 연예인의 사생활을 기사화하고, 게시판이나 e메일, 최근에는 SNS를 통해 차수를 바꾼 엑스파일이 돌아다닌다. 그나마 이런 상상력은 자본주의 사회라면 어디에나 있는 가십거리라고 치자. 그런데 정말 곤란한 건 국가기관의 과잉 상상력이다. 애초에 747이라는 놀라운 상상력으로 집권에 성공한 MB 정부의 스펙터클 판타지 상상력은 <트루맛쇼>를 연출한 김재환 감독의 으로 정산하고, 난 음란마귀에 사로잡힌 이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최근 결혼 소식을 발표한 하하의 처절한 토로를 빌려 설명하자면, ‘음란마귀’에게 지배당한 이들이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어딘가에 꽤 많은 이들이 음란마귀에게 지배당했다. 그들이 보기에 세상은 온갖 음란한 것들 투성이다. 마치 개그콘서트 멘붕스쿨의 소심해서 사고 한번 안치던 승환이처럼. 음란마귀에게 지배당한 그들은 모든 걸 음란하게 본다. 어머, 닭가슴 살이 너무 야해요! 응? 그건 개그라고? 놀랍게도 우리 세상은 개그가 현실에서 벌어진다.


최근 여성가족부에서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중 제9조(청소년유해매체물의 심의 기준) 법 제9조 제3항에 따른 청소년 유해매체물의 구체적인 심의 기준은 별표 2를 개정한다고 개정령을 예고했다. 10월4일 공고문에, 개정이유를 “청소년 연예인을 성적 침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청소년 유해매체물 심의 기준’에 관련 규정을 정하고자”한다고 밝히며 ‘청소년의 특정 신체 부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등 청소년을 성적 대상으로 묘사하는 것’을 심의기준에 포함시켰다.


아동, 청소년의 성을 보호한다는 대의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아동, 청소년의 성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방식이건 아동, 청소년을 성적으로 착취, 이용하려는 것도 엄격히 막아야 한다. 아동, 청소년을 성적으로 착취, 이용하려는 것은 범죄행위이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그것을 매체로 옮기는 것도 범죄행위다. 이런 명백한 범죄행위를 막기 위해 추가된 규정이 ‘청소년의 특정 신체 부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등’이다. 특정 신체 부위라면 어느 부분일까? 가슴? 엉덩이? 허벅지? 목덜미? 발목? 발? 손? 게다가 지나치게 강조하는 등은 어떤 묘사일까? 클로즈업? 아니면 로 앵글이나 하이 앵글? 게다가 ‘등’이라니! 이런 정도의 모호함을 심의 기준으로 제시했으니, 당연히 그 심의 기준의 대상이 되는 콘텐츠를 제작, 유통, 소비하는 사람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경향신문DB)


당연히 심심하면 아랫도리를 벗고 성기를 노출하는 <짱구는 못말려>의 경우 문제가 되느냐, 라는 질문이 나왔고 친절하게도 경찰은 <짱구는 못말려>는 청소년 음란물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설명까지 해 주었다. 앞서가는 걸 바라지는 않는다. 적어도 일반인의 시선으로 봤을 때 상식적인 수준의 법이었으면 좋겠다. 미성년 아이돌을 성적으로 소비하는 쇼 프로그램이나 뮤직 비디오가 부담스럽다면, 지금처럼 19금으로 지정하면 될 일이다.


또한 유사 사례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있다. 이번에 아동, 청소년 음란물의 제작과 배포와 발견을 위한 조치를 추가하며 아동, 청소년 음란물에 대해 2조 5항의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로 지칭했다. ‘청소년의 특정 신체 부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등’이나 ‘인식될 수 있는’이라는 조항을 가지고 승환이가 심의를 한다면, 마트에서 팔리는 닭가슴살도 음란물이다. 과장되었다고? 맞다. 과장했다. 하지만 매체를 단속하기 위한 기준이라면 보다 엄격해야 한다. 특정 신체 부위를 거론했으니 부위별 등급표라도 만들어야 한다. 돼지고기나 소고기처럼, 안심을 5초 이상 클로즈업하면 음란하다, 이런 식으로 등급표를 제시하라. 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 애초에 기존의 법으로 해결하거나, 사회적 책임을 함께 가져가면 될 일이다. 음란물을 단속하기 위한 기준이라면 보다 엄격한 법적 기준이 필요하다. 음란하라고 만든 작품이 아닌데, 음란하게 바라본다면 창작자, 유통업자, 소비자 모두 억울한 범법자가 된다. 


엄청나게 광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하나하나 타기팅해 무언가를 단속하고, 거기에 대한 모호한 기준을 제시하기보다는 정확한 등급으로 유통될 수 있는 콘텐츠 유통 질서를 세우고, 대중문화의 창조적 소비를 도와주는 편이 좋다. 세상은 생각보다 음란하지 않다. 하루 빨리 음란마귀에서 벗어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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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 문화평론가


 

고백하자면 내 펀드 투자의 역사는 꽤 성공적인 편이었다. 모 자산운용사의 중국펀드가 대세라며 너도나도 펀드에 ‘몰빵’하던 그때, 이미 나는 가입했던 채권형과 주식형, 국내 및 해외 펀드를 환매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3월, 펀드 하나를 들어도 이리 재고 저리 재고 이것저것 따져묻던 나를 무장해제시키고 ‘묻지마 투자’를 하게 만든 펀드가 나타났으니….


 이름하여 바로 ‘맨땅에 펀드’. 정원은 100명, 1인 1계좌로 30만원씩, 총 자산운용규모 3000만원인 이 소규모 펀드의 정체는 뭘까? 투자설명서부터 살펴보자. “호랭이 똥구녕을 씹어불란게”란 살벌한 멘트를 날리시는 다라이 든 할머니가 표지모델로 등장한다. 이 분은 최소 30년에서 최대 50년의 운용 경력을 자랑하는 ‘농사의 달인’ 전문 펀드 매니저다. 집합투자업자인 지리산닷컴(www.jirisan.com)은 펀드 운영이나 투자 경험이 전혀 없음에도 투자위험 특등급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여의도 대신 구례군 토지면 오미동 일원의 모 컨테이너 박스를 근거지로 삼고 있으며, ‘하늘에 수익률을 맡기는 초절정 무책임 펀드’라는 문구로 예비 투자자들을 유혹한다.


‘맨땅에 펀드’는 구례 오미동 마을의 밭 2100평과 논 2000평에 30만원을 투자한 사람들에게 제철 유기농산물을 연 7~10회 택배로 보내주는 상품이다. 


남은 농산물을 팔아 이익금이 남을 경우가 생긴다면 그때 배당을 받을 수 있다. 펀드 운용 목표는 수익 극대화와 투자자의 이익 추구가 아닌 ‘조금 더 행복해지는’ 것이다. 기후에 따라 운용실적이 달라질 수 있으며, 펀드매니저의 철학에 공감해야 하고, 온라인 판매만 하는 까다로운 조건에도 1주일 만에 완판되는 기염을 토했다. 전남지사와 전라관찰사까지 투자자로 만든, 이 무모하지만 신통한 펀드의 최초 제안자인 권산 지리산닷컴 이장은 ‘경제 관념 없는 사람들’이란 말로 고마움을 표현한다. 


투자자를 고객으로 모실 생각이 애초에 없는 배짱 영업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펀드 가입에 성공한 투자자들은 희희낙락이다. 농부의 정직한 생산물을 나누면서 그들에게 정당한 이익이 돌아가는 직거래 유통구조 확대에 기여하고, 농촌을 살리는 기회까지 얻게 된 셈이니까. 


사실 이 펀드는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권산 이장은 2006년 구례에 정착한 이후 유기농 쌀과 우리밀, 감, 청국장, 부각 등 마을의 농산물과 가공물을 직거래로 판매하는 한편 ‘구례를 걷다’는 포토에세이집을 만들기도 했다. 마을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시작조차 되지 않았을 일이다.


작은 마을이 도시의 월급생활자들에게 인간적인 식재료를 공급하고, 도시민들은 밥상을 책임지는 농부의 얼굴과 펀드 상황을 알 수 있다. 온라인의 도시민과 오프라인의 농촌민이 밥상을 매개로 구체적인 관계를 맺고 작은 시골 마을 경제를 책임지는 것이다. ‘마을 공동체의 경제적 자립을 실험하고, 도시와 농촌의 상생을 꾀하며, 진정한 협동과 네트워크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민간의 자발적 사례’라는 해석은 너무 거창하다. 모든 평가의 기준이 ‘돈’인 이 미친 세상에서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 눈에 힘 주지 않고 ‘즐겁게 돈을 쓰는 놀이’를 1년 동안 마음 맞는 사람들과 즐긴다는 표현이 맞겠다.


(경향신문DB)


말린 표고버섯, 산마늘장아찌, 산마늘잎, 오이, 두릅, 감자, 수제 허브차티백, 토종꿀, 우리밀가루, 우리밀통곡, 3년 묵힌 매실효소… 이 먹거리들이 바로 펀드의 배당금이다. 누가 키웠는지, 진짜 유기농인지, 어떻게 먹으면 좋은지 등의 설명자료를 읽고 웹사이트에 들어가 투자자들끼리 댓글 달아가며 맛있게 먹은 이야기를 하는 경험은 분명 다른 펀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기쁨이다. 지리산닷컴에 올라오는 ‘오미동 귀염둥이’ 윤하의 성장 모습과 초보 귀농자들의 실수연발 마을 적응기를 함께 지켜보는 즐거움 또한 만만치 않다. 게다가 우리밀 축제, 쌀밥 축제, 감 축제, 배추밭 투어, 김장 축제 등 제철맞춤 오프라인 행사도 수시로 진행된다.


‘맨땅에 펀드’는 올해 말쯤 지리산닷컴을 통해 내년 투자자를 모집할 계획이다. 펀드 운용 보고서는 토씨 하나까지 전부 이해 가능한 쉽고 즐거운 보고서라는 점을 보장드린다. 지리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온라인 주간 운용 보고는 물론 운영자가 깨알같이 하나하나 달아주는 댓글은 서비스다. 내년에는 VOL.2 버전으로 ‘맨땅에 펀드 강화’ ‘맨땅에 펀드 나주’ ‘맨땅에 펀드 남원’ 등등 작지만 특색있는 ‘맨땅에 펀드’들이 전국에 생겨나는 즐거운 상상도 해본다. 원조인 ‘맨땅에 펀드 오미동’의 완판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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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 대중문화평론가 herland@naver.com


 

이영훈의 단편 소설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소녀시대는 기적 같은 존재였다. 복통마저도 소녀시대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어느새 가라앉고 있었다.” G20 세계정상회의 때문에 화장실이 폐쇄된 아케이드 내에서 갑작스러운 변의를 느끼고 고통스러워하다가 소녀시대 생각에 잠시 통증을 잊게 되는 주인공의 말이다.


 소설에서 아케이드는 배설이 은유하는 개인들의 다양한 욕망에 대한 규제로 매끈하게 위생 처리된 문명 시스템을 구조화하고, 소녀시대는 그 안에 은폐된 억압을 잊게 하는 판타지로 기능한다. 소설은 주인공의 복통과 진통제로서의 소녀시대를 통해, 힘겨운 현실에 대한 힐링 판타지로서의 아이돌에 도취된 지금의 우리 사회를 증후적으로 보여준다.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라는 제목은 그러한 ‘사회 전체의 아이돌 팬덤화’ 현상을 뜻한다.


흥미롭게도 최근에, 일부 집단의 우상에서 어느덧 전 사회적 신화로 확대된 아이돌의 위상과 팬덤 현상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두 드라마가 등장했다. 얼마 전 종영된 tvN <응답하라 1997>과 현재 방영 중인 SBS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가 그것이다. 두 작품은 모두 스타를 동경하는 열여덟 살 소녀의 시점을 중심으로 하지만, 그 팬덤 현상이 드러나는 방식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경향신문DB)


먼저 <응답하라 1997>은 199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아이돌 1세대 팬덤 문화를, 사실적으로 재현된 시대상과 성장 서사 속에 아우르며, 급부상하는 10대 하위문화의 풍요로움을 이야기했다. 그 세계에서는 판타지와 현실이 서로 긴장관계에 놓여 있다. 시원(정은지)의 팬덤 활동은 10대 소녀의 현실에 가로놓인 입시사회의 그늘과 젠더적 규범이라는 이중적 억압의 분출구로 기능했다. 그녀의 팬픽은 아이돌 기획사에서 제공한 판타지를 전유하는 능동적 팬덤 문화였으며, ‘안승 부인(안승호는 토니의 본명, 즉 그의 아내라는 뜻)’이라는 닉네임은 스타와의 분명한 거리를 인식하고 그 간극을 좁히려는 팬덤 주체의 다중적 정체성이었다.


(경향신문DB)


하지만 <아름다운 그대에게>에는 그러한 간극과 긴장관계가 완전히 사라지고 아이돌 판타지가 현실을 잠식한 시대의 증후만이 떠다닌다. 단적인 예로 <응답하라 1997>에서 시원이 스타 토니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 앞에서 노숙을 하고 담을 넘다 혼이 나는 에피소드는 ‘사생팬의 현실’을 리얼하게 재현하며 현실과의 간극을 확인시키지만, <아름다운 그대에게>에서 재희(설리)가 동경하는 스타 태준(민호)에게 다가가기 위해 그의 학교로 전학하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는 ‘사생팬 판타지’에는 최소한의 현실성조차 거세되어 있다.


그 세계를 지탱하는 것은 현실성과 개연성이 아니라 그 위에 덧 씌워진 아이돌 신화다. 이 드라마는 국내 최대의 연예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가 자사의 문화자본을 총동원해서 제작하여 일방적으로 배포한 판타지이며, 따라서 거기에는 팬덤의 주체적인 자리도, 현실과의 간극 자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주인공 재희는 시원처럼 닉네임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캐릭터를 코스프레하는 아이돌 스타 설리의 닉네임에 머문다.


이 드라마에 반영된, 현실을 잠식한 아이돌 신화의 가장 궁극적인 사례는 지난 8월에 열린 SM엔터테인먼트의 가상 국가 선포식에서 엿볼 수 있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는 “SM 음악으로 전 세계가 하나 되는 가상 국가”를 상정하고, 그를 ‘뮤직네이션 SM타운’이라 명명했다. 비록 가상 국가이지만, 아이돌 1세대 당시 ‘타운’에 불과했던 SM엔터테인먼트가 어느덧 ‘네이션’으로 성장한 것은 우리 사회 아이돌 위상의 변화를 반영한 상징적 사건이다.


그리고 이 ‘네이션’은 최근 SM이 강호동, 신동엽, 김병만 등의 톱 예능인과 장동건, 김하늘 등 톱 배우 소속사와 연이어 합병을 이루어내면서 ‘제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물론 그 제국 신화의 구심점에는 여전히 아이돌이 위치한다. SM의 행보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1인자 자리를 공고히 함으로써 그 대표 상품인 아이돌의 경쟁력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그로써 아이돌이 주도적으로 세운 ‘가상’ 국가는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을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더 강력한 신화로의 예고편이 된다.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에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었던 아케이드의 입구는 소녀시대의 화려한 광고판이 장식하고 있었다. 소설 속 모든 이야기는 그 입구를 통과하면서 시작된다. 그 장면이 마치 모든 길은 아이돌 제국으로 통하는 근미래 풍경에 대한 예언처럼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기분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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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 


송강호의 애드리브라고 알려진 영화 <살인의 추억>의 대사다. 


연이어 성범죄가 보도된다. 차마 입에 올리기 싫은 사건이 방송과 신문과 인터넷에 가득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도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난 깜짝 놀란다. ‘강간’ 같은 단어를 말할 때면 마음이 편치 않고 옆에 누가 있는지 눈치도 살피게 되는데, 요즘은 뉴스만 틀면 성범죄의 세부 과정이 다 등장한다. 그러니 초등학생 아이들의 대화에 성폭행 사건이 아무렇지 않게 등장한다. 정말 우리나라가 강간의 왕국이 된 걸까? 


 인터넷에서 ‘한국, 성범죄’라는 두 키워드로 검색해 보기만 해도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범죄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고,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높은 수치이며, 게다가 미신고 범죄나 합의로 고소가 취하된 경우를 따지면 숫자가 훨씬 더 증가한다고 한다. 구태여 숫자를 따져봐야 뭐하나. 방송이나 신문의 보도만 보더라도 우리 현실이 적나라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음란물을, 그러니까 포르노를 문제의 원인으로 꼽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포르노는 우리나라에서 조금의 여지도 없이 불법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강력한 청소년보호법이 있어, 합법적인 콘텐츠라 하더라도, 청소년의 정서를 해칠 것 같으면 여성가족부에서 유해매체로 지정할 수 있다. 유해매체가 되면 함부로 열어볼 수 없게 포장돼야 하고, 공개된 장소에서 진열도 할 수 없다. 그런데 만연한 음란물이 문제라고? 


포르노가 문제라면, 포르노가 합법인 일본은 그야말로 지옥불구덩이 속이어야 한다. 하지만 창피하게도 일본의 우익 누리꾼들은 우리나라를 강간의 나라라고 조롱할 정도다. 그러니까 포르노는 문제될 게 없는 게 아닌가? 아니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포르노는 불법이다. 그게 문제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불법이어서 문제다. 불법이기 때문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데, 버젓이 존재한다. 다만, ‘야동’이라는 귀여운 이름이 붙어서. 누가 만든 이름인지 모르겠지만, 포르노가 야동이 되는 그 지점이 문제의 시작이다. 


불법 음란물 혹은 포르노라는 문제적 단어를 대치한 야동. 어감도 귀여운 야동은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를 이야기하는 토크쇼, 스포츠신문 기사, 유머 게시판 등에 빠지지 않는 에피소드다. 심지어 어느 시트콤에서는 완고한 할아버지 캐릭터가 야동을 보기 위해 말도 안되는 일을 벌이는 에피소드가 나왔고, 한때 국회의원을 지낸 한 배우는 ‘야동순재’라는 별명을 얻었다. 포르노는 불법적인데, 이걸 야동으로 바꿔 모든 세대의 상큼한 취미활동쯤으로 덧칠을 했다. 이런 상황이니 어른들은 물론이고, 청소년 심지어 초등학생들도 야동을 찾아본다. 포르노가 불법인 나라에서, 포르노는 야동으로 개명하고, 국민적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다.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순재 패러디. (경향신문DB)


야동이 된 포르노. 분명 불법인데 합법처럼 보이는 이 진기한 현상의 핵심에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많은 불법들이 제 이름을 버리고, 다른 이름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5·16과 12·12다. 5·16과 12·12 모두 불법적으로 권력을 찬탈한 반란, 그것도 무력을 사용한 군사반란이다. 그런데 그 불법적 행위를 반란이라 부르지 않고 5·16, 12·12라고 부른다. 5·16? 12·12? 무슨 암호인가? 그래서인지 그 암호에 응답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뭐, 자신의 가치관과 역사의식에 따라 군사반란을 옹호할 수도 있다고 치자. 하지만 반란을 숫자로 치환하지는 말자. 그렇게 군사반란이 우리나라를 공산당의 침략에서 구한 구국의 결단이라 생각한다면, 좋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구국의 군사반란이라고 부르시라. 다만, 5월16일 새벽 전차를 몰고, 군대를 동원해 멀쩡한 정부를 전복시킨 명백하고도 객관적인 반란은 반란으로 부르면 될 일이다.


포르노는 포르노로 불러야 하고, 군사반란은 군사반란이라 불러야 한다. 포르노를 야동으로 부르는 순간, 유통과 시청이 말썽꾸러기들의 장난 정도로 포장된다. 근엄한 이순재씨가 ‘야동순재’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군사반란을 숫자의 조합으로 부르는 순간, 불법이 모호함으로 포장된다. 본질인 반란을 숫자로 가리고 나면,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이라는 따위의 주장이 나오게 된다.


5.16혁명? 군사반란


포르노가 야동이 된 우리 사회는 불법이 합법으로 가장되는 사회다. 합법으로 가장된 불법은 약한 자들을 짓누르고 착취하는 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병을 뿌리 뽑을 때는 원인균을 박멸해야 한다. 성범죄를 줄이고 싶다면, 우리 사회에서 작동되는 이 왜곡의 메커니즘을 뿌리 뽑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포르노는 포르노라 부르고, 군사반란은 군사반란이라 부르자. 용어가 인식을 만들고, 인식이 행동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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