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통계를 보면 중학교 한 학급에는 학생이 평균 30명 있다. 이 중 6~25등은 일반고에 가는 학생들이고, 대학입시에서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가지 못하지만 대학은 진학하는 수험생들이고, 대기업에는 가지 못해도 중소기업의 대부분을 채우는 사람들이다. 한국 사회에서 평범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다.

한국에서 입시 문제는 중학생 때부터 1~5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림잡아 1~2등을 모아놓은 과학고와 외고 등 특수목적고, 3~5등을 모아놓게 될 자립형 사립고가 쟁점이 된다. 특목고와 자사고를 해체하지 않을 경우 일반고는 실업계에 진학하는 나머지를 제외하면 중학교 때 6~25등을 하던 학생들의 학교가 된다. 대학입시에서 ‘성공’할 수 있는 1~5등을 어떻게든 확보해 실적과 학급 분위기를 잡으려는 공립 일반고의 발버둥을 읽어낼 수 있다. “수능 정시냐, 학생부종합전형이냐”라는 대입전형 논쟁도 초점은 1등급과 2등급이 나올 수험생들의 경쟁에서 제기되는 공정성에 대한 이야기다. 3등급 이하 수험생의 이야기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고등학생 중 75%가 대학에 진학하는 시대에, 60%가 넘는 수험생의 사정은 음소거 처리되는 셈이다.

대학생활도 1~5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울 소재 대학과 지방거점 국립대학 학생들의 공부와 대학원 진학, 취업이 주된 이슈가 된다. 대학생들이 스펙 쌓기로 대표 되는 영어점수, 각종 자격증, 인턴십, 교환학생, 해외 연수 등 자기계발에만 열중한다는 말도 1~5등 이야기다. 취업 준비에 대한 제대로 된 목표조차 정하기 어려운 지방대생들은 언급의 대상에서 빠지게 된다. 취업난도 1~5등 이야기다. 연초 대기업 집단의 경영계획이 발표되면 신규 채용 인원이 나온다. 언론은 대기업 공채, 공기업, 공사, 공무원 채용 인원을 통해 청년 취업문제에 대한 기사를 쓴다. 지레 겁먹고 9급 공무원 도전도 저어하고 중소기업에 가겠다고 말하는 지방대생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채용부터 ‘제도’와 ‘프로세스’가 미비한 중소기업의 실정은 예외일 따름이다. 그만두는 날까지 ‘부당함’에 대해 다른 감각을 갖고 살게 될 이들의 이야기는 ‘노동이슈’로만 등장한다.

대학교육이 취업으로 인해 본연의 가치가 사라졌다는 말이 10년이 넘게 반복 중이다. 한국사회학회에 발표된 최종렬의 ‘복학왕의 사회학’이라는 논문은 그 말이 얼마나 현실감이 없는지 드러낸다. 중·고등학교부터 교육은 그들에게 적절한 목표를 준 적이 없고 부족한 점을 채워준 적이 없다. ‘대학생이면 으레 기대되는’ 목표와 자신들의 삶이 유리되어 있음을 간파한 6~25등은 전공공부와 치열한 자기계발, 적극적인 구직 모두 동참할 생각이 없다. ‘복학왕’에 등장하는 행태만 떠돌 뿐 맥락은 묻히고 마는 게 문제다. 다른 한 편, 중소기업을 키워야 한다고 한다. ‘우수한’ 인재들이 가지 않는다는 한탄이 줄을 잇는다. 그런 서사 속에서도 여전히 강조되는 것은 1~5등이다. 성실함으로 회사를 떠받치고 있는 6~25등들은 자신들의 현장에 대한 이야기에서조차 주눅이 든다.

나는 6~25등의 관점에서 사회를 읽어보는 게 지금까지 다뤄보지 않은 한국 사회의 혁신이고 진보의 출발점이라 본다. 이들이 중등교육과 대학교육에서 배움의 재미를 포기하지 않고 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면 교육이 혁신한다. 이들의 직무역량이 올라가면 중소기업이 혁신된다. 이들이 직장에서 제 대접을 받으면 한국의 노동인권이 진보한다. 이들이 다니는 직장에서 여성들이 경력단절에서 밀려나지 않으면 한국의 유리천장에 큰 균열이 간다. 정권이 바뀌고, 수월성 교육에 대한 반성과 공교육 정상화에 대한 이야기가 늘었다. 교육과 노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지금 시급히 바꿔야 하는 것은 초점을 맞출 대상이다. 6~25등이 교육과 노동의 목표에서 유리되지 말아야 한다. 1~5등에 대한 투자는 이미 수확체감의 포화상태다. 6~25등에 대한 투자가 미래다.

양승훈 | 문화연구자·경남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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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다문화가정 학부모와 상담하면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초등학생 자녀들은 방과후 동네에 있는 공부방(지역아동센터)에 다녔다. 대부분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이용하는 시설인데, 아이들이 오랫동안 공부방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해온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는 것이다.

공부방 교사는 아이들에게 학습지를 풀어오라는 숙제를 내주고, 숙제를 다  못하거나 풀어온 문제가 틀린 경우 그 개수만큼 플라스틱 자와 장구채, 노트 등으로 때렸다. 아이들은 수십 대에서 많은 경우에 100대 넘게 맞기도 했다. 머리가 길다고 다른 아이들 앞에서 가위로 머리카락 일부를 자르기도 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고 폭언이나 욕설로 공포심을 주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피해를 당한 아이들은 자해, 등교거부, 부모와 대화 단절 등 이상행동 증상을 보였고, 우울증 진단까지 받은 아이도 있다. 이는 명백한 아동학대다.

부적절한 회계운영이 의심되는 정황도 있다. 학부모들은 센터의 요청에 따라 센터 운영기관의 후원계좌 또는 시설 대표자 개인계좌로 매월 5만~10만원씩 돈을 보냈다. 지역아동센터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시설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보조금 지원을 받기 때문에 무료이용이 원칙이다. 보건복지부 지침에서는 교재비, 야외현장체험비 등의 실비를 받는 경우에도 그 대상을 중위소득 85%를 초과하는 가정(4인 가구 기준 월수입 379만7000원 이상)으로 하되 최대 5만원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시설의 이용 아동 및 아동의 보호자로부터 센터 후원금을 받는 것은 지양하고, 지급된 후원금에 대해서는 반드시 기부금 영수증 발급 및 사용결과 보고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과태료 300만원이 부과된다. 그러나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하고 한국 생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다문화가정 학부모들은 센터가 납부하라는 대로 매달 돈을 낼 수밖에 없었고, 이후 어떠한 기부금 영수증이나 사용내역도 받지 못했다.

지역아동센터는 아동복지법에 규정된 아동복지시설이다. 방과후 돌봄 서비스가 필요한 18세 미만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보호·교육, 놀이와 오락의 제공, 보호자와 지역사회의 연계 등 아동의 건전 육성을 위하여 필요한 아동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과거 민간에서 공부방이라는 이름으로 소규모 자생적으로 운영되어 오다가, 2004년경 아동복지법에 따른 복지시설로 법제화되고 보조금이 지원되면서 숫자가 많이 늘어났다. 작년 기준 전국적으로 4100여개의 지역아동센터를 평균 10만명 이상의 아이들이 이용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매우 소중한 공간이다. 가정을 넘어 사회의 세심한 보호가 필요한 한부모·조손·다문화 가정이나, 부모가 모두 일하는 맞벌이 가정의 자녀들이 방과후 혼자 남겨지지 않도록 꼭 필요한 사회적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장이다. 소규모 가정 형태의 이용시설로 충분하지 않은 정부 지원과 박봉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담아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번에 드러난 아동학대 사례가 지역아동센터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관리감독이 세심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복지부 지침에 따르면 지역아동센터는 신규 시설의 경우 1회 진입평가를 받고, 이후 3년에 한 번 심화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평가 방법이 해당 시설이 자체적으로 평가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전문가 2인이 1조가 되어 해당 시설을 방문해 관련 서류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시설의 회계부정이나 아동학대를 방지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시설 이용 아동의 학부모가 평가에 직접 참여하거나, 시설 이용 아이들에 대한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정기적인 심리상담 프로그램 등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조영관 |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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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섬진강에 나섰다. 다행히 4대강 축에 끼지 못했던 섬진강에는 모래사장이 남아 있다. 발목쯤 잠기는 자리, 물속 모래를 헤치면 재첩이 있다. 발가락에 힘을 주고 모래를 휘저으면서 걷는다. 발가락에 단단한 껍질이 걸린다. 하나씩 재첩을 집어 올린다. 둘이 같이할 때는 한 사람은 모래를 헤집으면서 걷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뒤를 따라가면서 드러난 재첩을 줍는다. 이렇게만 해도 식구들이 두고두고 먹을 만치 재첩을 잡을 수 있다. 봄에 산나물하듯, 때맞춰 하는 살림살이. 아이들도 저마다 한 움큼 재첩을 잡았다.

세 아이와 함께 살고 있으니까, 아이를 키우는 것, 아이와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면 먼저 귀가 쏠린다. 그렇게 듣는 이야기가 노골적이든 그렇지 않든, 결과적으로는 부모가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릴 때가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친구 같은 아빠’다. 아이들이 친구와 노는 것이 그만큼 어려우니까 아빠한테 친구 노릇까지 떠맡기는 것이겠지. 친구 노릇에는 젬병인 나는, 내 속 편하자고 이렇게 생각하고 만다. 친구처럼 같이 노는 일은 아무래도 능력 밖의 일이니까, 재첩을 잡으러 갈 때에 섬진강에 함께 가고, 논두렁을 바를 때는 봇도랑에서 놀라 하고, 겨울에는 함께 산에 가서 갈잎과 잔가지를 주워 모은다. 때맞춰 일하러 나가는 길에 아이들이 가서 놀 만하다 싶으면, 아이들과 함께 가는 것이다. 속으로는 놀면서 봐 두었다가 어여 너희들이 이 일을 대신 해 주기를 바라는 심산인데,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그렇게 따라나선 길에 스스로 잘 논다는 것. 아마도 세 아이가 함께 있어서일 것이다. 저들끼리만도 친구처럼 놀 수 있으니까.

자주 듣는 이야기로, 아이가 셋이나 되니 얼마나 힘들겠냐고 한다. 하지만 세 아이가 모여서 늘 우당탕거리는 집구석에 살게 된 이후로, 우당탕의 힘겨움이야 뼈저린 것이 되었을지언정, 하루 종일을 아이 한 명과 단둘이 지내야 하는 엄마, 혹은 아빠의 괴로움은 나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 되었다. 한 아이와 지내는 부모일수록 ‘친구 같은’의 압박에 더 시달리는 것 같다. 그래 보인다. 일단 아이가 둘이면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하니까, 부모와 자신의 관계를 아이들도 쉽게 알아채지만, 아이가 혼자면 그것도 어렵다. 어쨌거나 세 아이와 함께 살면서,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있으면, (내가 듣기로는) 아이가 바라는 것도 결국은 ‘친구 같은 아빠’보다야 그냥 친구이다. 아빠는 아빠고, 친구는 친구. 좀 더 다정하다거나,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눌 수 있다거나, 아이 생활에 관심이 많다거나 하는, 아이가 그런 아빠를 바랄 수는 있겠지만.

아이는 여러 식구와 이웃,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자라게끔 되어 있다. 솔직한 심정으로 어린 시절을 돌아보자면 아빠가 친구의 자리를 넘보는 것이야말로 얼토당토않은 이야기. 부모 말고 다른 관계들이 파탄나면서, 그리고 그야말로 아이와 사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당장에 그 여러 사람이 나누어 맡던 역할들이 거의 부모한테로 넘겨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뾰족한 수가 없는 부모들은, (특히 육아를 전담하는 한쪽은) 그렇게 부여받은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차서는, 수시로 내 잘못이라고 되뇌고, 아이한테는 미안하다는 소리를 한다.

주위에서 누군가 아이를 낳고, 필요한 물건이 뭐냐 하고 물으면, 우선 두 가지를 먼저 얘기해 준다. 하나는 아기를 오래 업어도 불편하지 않을 아기띠(이것은 포대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아무래도 이 물건을 만든 것은 아이를 업고도 다른 일을 하기 쉽게 하기 위한 게 아닐까 싶다), 또 하나는 무릎의자(닐링체어). 이 두 가지가 있으면 잠든 아기를 업은 채로 책상머리에 앉아 꽤 오랜 시간 뭔가를 할 수 있다. 청소든 빨래든 집안 꼴이 성에 차지 않더라도, 잠시라도 짬이 나면, 나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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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에 대한 청와대의 태도는 수상하기 짝이 없다. 대체 왜 끝없이 어깃장을 놓는 것일까? 어차피 미국은 사드를 못 뺀다는 전제하에 벌이는 벼랑 끝 전술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 판단은 미국과 한·미동맹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하고 있다. 하나씩 따져보자.

‘한반도는 미국에 이른바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한·미동맹을 먼저 파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럴 리가. 한국은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가 결코 아니다. 미국에 전략적 요충지란 석유가 나오는 중동, 유럽을 향해 띄운 ‘항공모함’ 영국, 중국과 러시아 견제를 위한 최대 거점인 일본 등이다. 과거에 그어졌던 ‘애치슨 라인’이 보여주었다시피 한반도는 그에 포함되지 않는다. 2002~2004년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한국통’ 데이비드 스트라우브의 책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를 보자.

“역설적이게도 한국전쟁 전까지 한국은 미국에 전략적 중요성이 없었으며 아시아 본토에 미국의 병력이 존재할 경우 미국에 과도한 리스크만 안길 뿐이라는 것이 워싱턴 정가의 일치된 견해였다. (중략) 미국은 한국전쟁으로 4만2000명에 이르는 미국 시민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되는 등 큰 희생을 치렀다. 이 때문에 역대 미국 대통령들에게는 남한을 ‘잃어버려서’, 그런 희생을 헛된 일로 만들지 않는 것이 정치적으로 중요했다.”(50쪽) 미국에 한반도는 ‘중요하기 때문에 지키는’ 땅이 아니다. ‘지켰기 때문에 중요해진’ 곳에 가깝다. 한국 정부가 미국을 어떻게 대하건 미군이 남아 있으리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한미군이 철수한다 해도 북한은 한국을 선제공격할 수 없다?’ 그게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게 진짜 문제다. 주한미군 철수는 북한을 폭격해도 미군이 직접 반격을 당할 위험이 거의 없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미국은 자국 병력의 손실 없이 폭격이 가능할 경우 결코 폭탄을 아끼지 않는 나라다. 주한미군은 북한보다 오히려 미국의 군사 행동을 제약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안전핀이라는 뜻이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북한의 반격은 주일미군을 향할까, 한국을 겨냥할까? 진보 진영 자주파들은 ‘북한의 주적은 미국이지 한국이 아니다’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북한은 미국이 아무 공격을 하지 않았을 때에도 연평도를 포격하고 천안함에 어뢰를 쏜 바 있다. 북한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그릇된 종교적 믿음을 안보의 논거로 삼아서는 안된다.

‘한반도가 전쟁에 휩싸일 경우 발생하게 될 경제적 혼란을 미국이 원치 않으므로 북한 선제타격은 있을 수 없다?’ 과연 그럴까? 물론 미국은 혼란을 원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사정이 다르다.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폭로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가 임기를 다 채워나간다고 가정해 보자. 형사 피의자 신세로 전락하기 싫다면 무조건 재선에 성공해야 한다.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쇼’를 벌여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미 지난 4월13일, 별다른 전략적 실익 없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국가(IS) 지하기지에 ‘모든 폭탄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지닌 GBU-43/B를 투하했다. 핵무기를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폭탄이다. 그리고 언론 앞에서 우쭐거렸다. 트럼프가 재선용 카드로 북핵 문제를 ‘날려버리고’ 싶어한다면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그를 막을 방법이 없다.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고? 불과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트럼프의 당선 자체가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지 않았던가?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자주파들이 가지고 있는 미국과 세계에 대한 관념은 1970년대의 리영희가 1960년대 일본 좌파들의 그것을 참고하여 만든 것이다. 2017년 현재, 반세기 전의 세계관에 입각해 대한민국의 외교 안보 정책이 짜여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재인 정권의 정직한 입장 표명과 대국민 토론이 필요하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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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5시30분. 서울역이나 삼성역, 또는 종합운동장역 근처에 가면 수십명 또는 100명 넘는 사람들이 모여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젊은 남자들은 주말에 한 소개팅 이야기 또는 애인 이야기를 하고 40대가 넘어 뵈는 남자들은 애들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은 창원, 울산, 거제, 여수 등 산업도시 일터로 돌아가는 회사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직장인들이다. 1990년대 중후반엔 주로 40~50대 ‘기러기 아빠’들이 셔틀버스에 탑승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부터는 아이들을 ‘유학’ 보내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아빠들은 전세 등을 얻어 아내와 아이를 서울로 보냈다. 가족이 살던 아파트는 세주고 아빠는 사택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20년이 지난 지금 셔틀버스의 구성원은 훨씬 젊어졌다. 20~30대 남성들이 늘었다. 주말에는 서울에서 친구를 만나거나 소개팅을 하고, 주중에는 산업도시에서 근무하는 남자들이다. 자녀교육을 목적으로 한 주말부부는 남성 가장 한 명이 식구를 먹여살리는 ‘남성 생계부양자’ 시대의 산물이었다. 고소득과 장기근속의 힘이 이를 뒷받침했다. 하지만 2017년 젊은 부부에게 맞벌이는 시대정신에 가깝다. 높아지는 주거비 등 생활비, 산업 구조조정으로 인해 혼자 벌어 먹이는 ‘남성 생계부양자 가족’은 더 이상 재생산이 가능하지 않다고 그들은 판단한다. 떨어져 있더라도 둘 다 벌어야 한다. 

산업도시 지방정부에 셔틀버스는 예민한 문제다. 주말 셔틀버스야 막을 수 없지만, 근처 대도시로 매일 통근하는 버스 운용에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직원들이 스스로 버스를 임차해 이동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진다. 지방정부의 행태는 인구감소를 막기 위한 몸부림이지만, 직원들의 관점에서는 그저 복지를 막는 몽니일 뿐이다. 재생산에 대한 낡은 관점이 문제다. ‘든든한 남편 직장’이 있으면 여전히 여성들이 ‘전업 주부’로 남편을 따라올 거라는 가정 말이다. 회사의 시니어들은 후배들에게 젊은 때는 부부가 같이 사는 게 좋지 않냐고 설득한다. 젊은 남성 직원들에게는 이 말은 수도권에 간신히 일자리를 잡아 일하는 아내의 ‘경력 단절’로 다가올 뿐이다. 아내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기도 어렵다. 어느 지역이든 원할 때마다 옮겨가면서 일할 수 없는 직군이라면 당연히 그렇다. 현실적으로 지방의 산업도시를 재생산할 수 있는 방법은 남초 집단인 중공업 현장에 여성 엔지니어를 충분히 채용하는 것이다. 2016년 산업기술인력 수급 실태조사의 결과를 보면 조선·석유화학·자동차·기계 등의 산업을 보유한 경남, 울산, 전남의 여성 인력 채용은 10%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미래’를 보여주는 20대 여성 고용 또한 모두 7% 이내에 그친다. 공대 신입생의 4분의 1가량이 여학생이고, 자연계는 절반이 넘었지만 기업의 시선은 ‘제조업은 남자’라는 편견으로 가득하다. ‘남성 공대생’의 안전한 전공 선택지로 간주되는 ‘전화기’(전기·전자, 화공, 기계)를 선택한 여학생들은 동기 남학생보다 더 높은 취업 경쟁 앞에 망연자실한다. 지방근무를 여성들이 기피한다고만 말할 수 없다. 지방근무를 ‘회사가 막고’ 있는 상황도 적지 않다.

도시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는 창조적 인재가 몰려야 기업과 도시의 발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했다. 다양성 수용과 기술적 인프라가 그 핵심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통한 성평등, 산업도시의 재생산을 통한 균형발전, 산업의 진화를 통한 경쟁력 향상. 여성 엔지니어들을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채용하려는 산업도시의 제조기업이 출발점이다. 여성 엔지니어가 산업도시의 기둥이 되도록 도시 인프라와 돌봄환경을 정비하고 기업의 채용을 확장하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일.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등 이미 지방 이전이 완료됐거나 이전이 진행 중인 공기업도 같은 궤에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국토의 균형발전과 산업진화뿐 아니라, 수많은 젊은 주말 엔지니어 커플의 생이별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양승훈 | 문화연구자·경남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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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면 서랍 속 여권을 종종 꺼내본다. 올여름 몽골을 방문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 머무는 이주 외국인들의 법률지원 활동을 주로 하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고 있는데 올여름 그동안 이 단체에서 도움을 받고 자기 나라로 돌아간 이주민들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오래간만의 해외여행이기도 하고, 짧은 시간이지만 마음을 나누었던 친구들을 그들의 나라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은 팍팍한 일상의 작은 활력소가 된다.

빳빳한 여권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첫 장 중앙에 커다랗게 찍힌 ‘대한민국’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국적란의 ‘REPUBLIC OF KOREA’라는 영문자도 낯설지 않았다. 두 단어는 낯설어 보이는 증명사진 속 나의 모습보다 더 익숙했다. 여권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출신지뿐만 아니라 나의 정체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주는 작지만 강력한 기호이다.

그러나 세상엔 이 작은 여권도 만들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정확하게는 만들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와 관련 없는, 멀리 떨어진 나라의 이야기도 아니다.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 그곳에 지금은 역사책에서 찾아볼 수 있는 ‘조선’ 국적자로 분류된 동포들이 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과거의 나라,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되기 전 하나인 한반도를 영토로 삼았던 나라의 국민임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고집하는 사람들, 바로 ‘자이니치’로 불리는 재일(在日)조선인이다.

재일조선인은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이나 징병이 되거나, 또는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이주한 사람과 그 후손들 가운데 해방 이후 일본국적으로 귀화하지 않은 동포들을 말한다. 한반도가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되면서 일본 내 조선인들은 일본 국민이 아니라 ‘외국인’으로 분류됐다. 일본 정부는 이들을 외국인으로 분류하면서 편의상 ‘조선적’(조선국적자)으로 표시하여 등록했다. 이것이 재일조선인의 시초가 되었다.

그 후 조선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한반도에는 남한과 북한이라는 분단된 두 개의 나라가 생겨났다.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은 남한이나 북한 국적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러나 재일조선인들은 남한과 북한 중에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여전히 조선적을 고집하고 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남북의 한쪽 국민이라는 ‘국적’이 이들에겐 하나의 민족을 두 개로 단절시킨 ‘분단 국적’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전히 하나로 통일된 나라를 꿈꾸고 있다. 2015년 12월 기준으로 조선적 재일동포는 약 3만4000명에 이른다.

재일조선인들은 일본에 살면서 수많은 차별과 적대를 경험한다. 우리나라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정부는 재일조선인을 재외동포가 아닌 무국적자로 분류하고, 외국인보다 엄격한 입국심사를 하고 있다. 재일조선인이 우리나라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임시여권인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여행증명서 발급률이 급감했다. 주일 한국영사관은 한국을 방문하고자 하는 재일조선인들에게 한국국적 선택을 요구했고, 이를 거부한 재일조선인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여행증명서 발급이 거절되었다. 통일된 조국을 소망하며 차별과 적대를 인내하고 있는 동포들에게 우리 정부는 인내와 포용이 아닌 선별적 포섭과 배제로 답했다.

우리 헌법은 통일의 지향을 선언하고, 대통령에게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재일조선인은 차별과 배제의 공포 속에서도 자신의 삶으로 통일된 조국을 기록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먼저 재일조선인의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하는 것이 첫 단추가 되어야 한다.

조영관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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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열하루가 지났다. 혹여 놓치는 뉴스가 없는가 짬짬이 챙겨 보고 있으면, 날마다 선물처럼 소식들이 쌓인다. 경남하고도 시골 마을인 이곳에서, 다른 대선후보를 찍었음에 틀림없었을 사람들이 흐뭇한 표정으로 세상 바뀌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그 열하루가 지난 사이,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한결 가뿐해졌다. 풀 베는 낫은 더 잘 드는 것 같고, 집 고치느라 뚝딱거리는 나무는 아귀가 잘 맞아떨어진다. 저녁 밥상에 앉은 식구들이 더 웃게 되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잘 믿게 되었다.

일본의 이름난 대목장으로 니시오카 쓰네카즈라는 사람이 있다. 우리로 치면 경복궁이나 종묘 같은 건물을 짓거나 새로 고치는 일의 우두머리 목수. 그는 작은 몸놀림 하나, 말 한마디, 허투루 뱉는 법이 없었고, 원칙을 지키는 데에는 물러서는 법이 없어서 ‘자를 든 사제’라고 불렸다.

평생을 그렇게 살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을 고치고, 새로 짓고, 돌보았다. 10년 전, 시골 살림을 시작하고, 아이를 낳고 모든 것이 어설프고 우왕좌왕일 때 밤마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을 다독였다. 그리고 지난 열흘 동안 니시오카 쓰네카즈가 말한 일을 한다는 것, 건물을 짓는다는 것이 정치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있다.

“백 점을 맞으면 훌륭하다고 박수를 치는 학교와는 다른 것입니다, 일은. 백 점을 맞아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는 대대로 대목장에게 내려오는 구전을 몇 가지 사람들에게 소개했는데, 그 가운데 스스로 가장 중히 여기는 것으로 “백 가지 생각을 하나로 모으는 기량이 없는 자는 조심스럽게 대목장 자리에서 떠나라”라는 말을 꼽았다.

대목장의 자리는 목수가 맡게 되는데, 건물을 지으려면 목수도 여럿이 있어야 하지만, 기와장이, 미장이, 석수장이, 칠장이 같은 여러 사람이 모여야 일이 된다. 건물을 지을 때마다 늘 새로운 사람들을 모아서 일을 해야 하고, 저마다 자기 성깔이 뚜렷한 사람들인데도, 그 사람들의 성깔을 잘 살려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것. 그런 사람들을 이끌고 건물을 짓는 일이 잘되지 않으면 그것이 스스로의 책임이라는 것을 늘 가슴에 두고 일했다고 한다. 새 정부의 사람들이 하나씩 이름 불릴 때마다, 저마다 성깔을 살려, 일이 되게끔 하려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환히 드러난다.

또한 니시오카 쓰네카즈는 대목장으로서 완벽에 가까운 솜씨와 여러 일꾼들의 우두머리로 일을 제대로 완성해 나갔던 삶의 모습과는 다르게, 식구들에게는 그리 좋은 가장이 아니었음을 고백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날마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 때만큼은 함께 곁에 누워 잠이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일에도 사람에게도 온 마음을 쏟았다. 5월18일에 태어난 광주의 한 사람을 껴안는 대통령의 모습도 그랬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로하고 돌보는 마음으로 시작해서, 일들이 꾸려지고, 정책이 마련되고, 다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달라질 것이다.

새로운 대통령의 지난 열하루(마치 백 일, 혹은 열 달과도 같았던)를 돌아본다. 하나씩 되짚는다. 앞으로 다가올 날들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지난 정부들도 그러했으니까. 니시오카 쓰네카즈가 말했다.

“우리는 편백나무를 써서 탑을 지을 때 적어도 삼백 년 후의 모습을 생각해 가며 짓습니다. 삼백 년 뒤에는 설계도 같은 모습이 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서까래와 들보를 올리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정성껏 하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온 정성을 다해 한다, 이것뿐입니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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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을 바란다. 동시에 그가 국민들을 실망시키기를 기원한다. 위 두 문장은 모순이 아니다. 향후 5년의 성패는 그가 얼마나 국민, 특히 자신의 지지층을 효과적으로 실망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정권은 국민들의 절망을 딛고 큰 기대를 받으며 출범했다. 그러나 그들은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들이 불편해 할 수 있는 진실을 전하고 이해를 구하는 대신 회피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바로 그 지점부터 문제적이다.

문재인은 자신의 공약을 전부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주변인들 역시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민 대다수의 심기를 거슬러야만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지난 4월28일, 문재인 캠프 선대위 윤호중 공동정책본부장은 “어떤 국민도 자신이 세금을 더 내게 될 것이라고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공약 실현을 위한 세율 인상의 구체적인 수치를 밝히지 않았던 것이다.

문재인과 그의 대선 캠프는 선거 과정에서부터 국민들의 ‘기분’을 고려하여 복지 공약에 수반하는 증세 논의를 회피해왔다. 사드 배치를 철회할 경우 우리가 치러야 할 외교안보적 비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안으로는 경기침체, 밖으로는 북핵 위기와 싸워야 하는 지금, ‘불편한 진실’을 입에 담지 않으려던 대통령 후보와 캠프가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대통령은 권력자 맞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며, “대통령보다 더 오래 살아남고, 바꿀 수도 없고, 더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기득권 권력들이 사방에 포진하고 연합해서 또 괴롭힐” 것이므로 ‘진보 어용지식인’이 되겠다는 유시민 작가는 그 우려를 배가한다. 얀 베르너 뮐러의 책 <누가 포퓰리스트인가>를 펼쳐보자. 유시민의 발언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 “집권한 포퓰리스트는 집권 기간의 실패를 국내외에서 활약하는 기존 엘리트가 뒤에서 훼방을 놓은 탓으로 돌릴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는 결국 “일종의 종말론적 대립 상태를 꾸며내 국민을 계속 분열하고 동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문재인이 포퓰리스트라는 말이 아니다. 문재인이 내세운 온갖 ‘사이다’ 공약들은 현실 속에서 한계에 부딪히고 좌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미리 지적하고자 할 따름이다. 수많은 이해당사자의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표출되고 어우러지는 민주주의의 본성 때문이다. 만약 여기서 대통령이 그와 같은 현실적 한계를 수긍하고 국민들에게 설명하여 합의점을 찾는 대신, ‘수구 기득권’ 같은 가상의 적을 설정하고 모든 비난을 떠넘긴다면, 비로소 그때 문재인은 포퓰리스트가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란 다양한 이해관계와 가치관을 지닌 집단과 개인을 조율하고 합의점을 찾아 공존하는 과정이다. 어떤 정책이 구현된다면 누군가는 절대적으로 혹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반대자의 입을 억지로 다물게 하는 대신, 그들의 불만을 끌어안고 함께 가야만 한다.

만약 문재인이 합리적 목표 설정과 달성을 위해 국민을 실망시키고 그로 인해 비판받는다면, 나는 기꺼이 그를 옹호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어용 지식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럴듯한 이상만을 내세운 채 소위 ‘기득권’의 피해자 행세를 한다면,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권력을 가진 자에게는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권리뿐 아니라 그 권력 행사의 방법과 목적을 국민에게 납득시켜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은 성공하기 위해 국민을 실망시켜야 한다. 자신들의 세상이 펼쳐진 양 의기양양한 지지자들을 진정시키고, 현실 속에서 가능한 일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며 국민을 설득해나가야 한다. 그와 같이 성숙한 민주적 정치 행보를 보일 때, 더불어민주당 정권은 참여정부의 성공과 실패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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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대기업 근무할 때, 주중 저녁 8시쯤이면 부모님과 통화할 때가 있었다. 아버지가 말씀하곤 했다. “얼른 쉬어라. 피곤하겠다.” 퇴근해 저녁 먹고 운동 마치고 나면 보통 그 시간이었다. 잠들기 아쉬운 시간이었다. 책을 읽거나 자격증 또는 영어 공부를 했다. 12시쯤에 자야 보람차게 보낸 느낌이었다. 주말이 되면 카페나 도서관을 가거나, 다양한 분야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교류하는 자리에 갔다.

주5일제가 2005년 즈음 공공기관부터 시작돼 대기업까지 빠른 속도로 전파됐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대기업 중 많은 경우도 주말근무와 야근이 당연했지만 어쨌거나 “토요일은 쉬는 날”이라는 생각이 금방 자리잡혔다. 많은 사람들은 ‘저녁이 있는 삶’과 ‘주말이 있는 삶’을 강조했고, 쉬지 못하는 박탈감은 공분의 대상이 됐다.

그런데 ‘휴일’과 ‘휴식’의 의미는 점차 변화하고 있고 전통적인 휴식에 대한 감각은 해체되는 중이다. 베이비부머와 60년대생들에게까지 휴식은 취미 활동을 하거나 TV를 보거나, 가족·연인·친구들과 어딘가를 ‘놀러가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멍 때리면서” 쉰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늘어가고 있다. 구직자에게 휴일은 그저 달력에 달려 있는 날 중 하나다. 정년이 없어졌다는 것을 구직과정부터 간파하고 있는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에게 휴일은 ‘뭔가를 배워야 하는’ 시간이 됐다.

단순히 ‘자기계발 이데올로기’라고만 봐야 할까? 짧게는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간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다른 차원에서는 배움의 양상이 ‘재생산’의 측면으로 들어왔다는 의미일 것이다. 반복적으로 단순노동을 하던 시기에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체력의 비축이었다. 하지만 산업이 고도화되고 사회의 문맥이 복잡해지고 수리통계적인 기술이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요구되는 상황에서 재생산에는 ‘배움’이 추가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은 자기충전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런 차원에서 중등교육 수준의 ‘기술교육’을 강조하고 앞으로 ‘덜 배워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는’ 사회를 언급하는 정치인들에 대해서 불신의 눈초리를 갖게 된다. 솔직하지 못하다. ‘장인’이 될 정도로 기술을 단련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은 옳다. 그러나 ‘장인’은 이제 작업장을 넘어 분야 전체에서 통용되는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엔지니어’가 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 ‘4차산업혁명’을 앞세워 창의성을 강조하는 흐름에도 경계심이 든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물리학의 법칙을 세우게 한 ‘창의성’은 치밀한 이론적 고찰과 공부의 누적이 만들어낸 직관에 가깝다. 재미있는 것만 하라는 게 아니라, 재미있는 것을 단단하게 써먹을 수 있게 단련할 수 있게끔 해 줄 준비가 교육의 목표여야 한다.

끊임없이 개인들이 ‘함께 배우는’ 환경을 통해 집단지성을 구축할 수 있는 플랫폼과 문화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배움의 공동체’를 어떻게 일터와 삶터 모두에 구축할지도 질문이 된다. 공공도서관과 다양한 평생교육 콘텐츠를 제대로 자리잡게 하는 문제도 제기된다. 청년들이 고시와 공무원 시험으로 몰리는 ‘골방’의 비용을 풀어내는 것도 숙제가 될 것이다.

한 가지 일만 잘해 평생 정년까지 먹고살 수 있는 세계는 자본주의 황금기의 일시적 현상이었다. 선진국일수록 대규모로 안정적으로 정규직을 수십년간 고용하기는 어려워졌다. 공공부문의 신규 고용도 중요하지만, 뭇사람이 다양한 직업을 오가는 사이 연애, 결혼, 가족부양 등 안정적인 생활을 영유하며 배울 수 있는 게 소득을 보전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 됐다. 탈진해 쉬고 싶은 사람들에게 재충전을 위한 기본소득을 주는 것도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급격히 변해버린 일과 배움의 문제에 대한 비전을 세우는 일. 이제 정치의 몫이다.

양승훈 | 문화연구자·경남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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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6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나는 올해 초까지 10년 남짓 일본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돌이켜보면 너무나 바쁜 나날이었다. 명목상 쉬는 날은 있었지만 실제로 쉬는 날은 아니었다. 출입처에 작은 일만 생겨도 먹던 밥을 내려놓고 달려가 기사를 썼다. 문화부에 있던 지난해에는 기무라 다쿠야가 속한 아이돌그룹 ‘스마프’의 해체 소식에 부리나케 소속사 사무실로 뛰기도 했다.

게다가 주로 서울에서 일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의 신문사에는 전근이 많다. 나도 입사한 뒤로 나라, 도야마, 오사카, 도쿄를 돌며 일했다. 회사 선후배들을 보면 배우자가 전업주부가 아닌 이상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오사카에서 결혼한 직후 도쿄로 발령 나면서, 오사카 지방 공무원인 남편과 떨어져 살았다.

지난 1월 신문사를 그만두고 곧바로 서울로 한국영화 유학을 왔지만, 도쿄에서 일할 때보다 지금 더 자주 오사카 집에 간다. 신칸센으로 도쿄-오사카를 다니는 것과 비행기를 타고 서울-오사카를 오가는 것이 교통비나 시간에서 차이가 없다. 오히려 지금은 일 때문에 느닷없이 호출되는 일이 없어 남편과 더 가까워졌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남편이 대단하다”는 뜬금없는 얘기를 한다. 어떤 남성들은 “나 같으면 (아내의 유학을) 허락하지 않겠다”고도 한다. 10년 남짓 뼈빠지게 일해 마련한 돈으로 온 유학이고, 내 미래에 대한 투자다. 일본에서 잘 살고 있는 다 큰 어른이 대단할 것도 없고,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내 유학을 허락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이상한 것은 어린애들을 외국으로 보내고는 홀로 떨어져 사는 한국 사람들이다. 심지어 그런 남편들을 가리키는 ‘기러기 아빠’라는 말까지 있다는 걸 나는 알았다.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 <싱글라이더>를 보면서다. 영화는 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기러기 아빠가 된 주인공과 그 가족의 해체에 관한 이야기다.

‘기러기 아빠’라는 말은 일본어에 없다. 단어만 없는 것이 아니라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애들을 외국에 보내는 일 자체가 없다. 일본인에게 외국에서 유학하는 것은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이고 더러 고등학생이 있다 해도 엄마가 따라가지 않는다.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뿔뿔이 흩어져 사는 사회에서, 서른이 넘은 나와 남편을 대단하다고 말할 일은 아니다. 교육 아니 출세에 대한 한국인의 욕심은 나 같은 외국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초등학생들이 학원을 전전하다가 밤이 늦어서야 집에 들어간다는 말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쏟아붓는 교육비가 한국과 일본의 소득 수준을 고려하면 2배에 가깝다는 얘기도 들었다. 한참 놀고 싶은 나이에 학원에만 다니는 아이도, 아이를 위해 밤새도록 돈을 버는 부모들도 내 눈에는 정상이 아니다. 만약 내가 한국에서 자랐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일본사람을 ‘회사 인간’이라고 하고, 일본 사회를 ‘과로사회’라고 부르지만 다 옛날 얘기다. 일본은 변하고 있다. 신문사 입사 설명회를 찾아오는 대학생들도 “결혼은 할 수 있냐”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냐”고 먼저 묻는다. 나는 “결혼은 해도 같이 살기 힘들 수 있다” “육아는 남편이나 부모가 도와주지 않으면 힘들다”고 솔직히 답했다. 사양산업으로 지목받는 신문사가 변하지도 않으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할 수 없다. 발행부수 1000만부 안팎으로 세계 1~5위를 석권하던 일본 신문사들도 하락세는 부인할 수 없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신문사들도 과거와는 달라졌다. 요즘 입사하는 후배기자들은 사생활을 지켜가면서 일한다.

<싱글라이더>의 주연배우 이병헌이 일본에서도 인기가 많으니 조만간 이 영화도 일본극장에 걸릴 것이다. 일본사람들이 한국에는 ‘기러기 아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일본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싶어 기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설 것이다.

나리카와 아야 동국대 대학원생 전 아사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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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보 위에 딱새가 둥지를 틀었다. 지난해와 같은 자리를 찾는다. 봄날이 금세 더워졌다. 처마 아래 새가 둥지를 트는 것도, 마당에 도마뱀이 돌아다니는 것도, 뒤안 감나무 잎 쪼삣(뾰족)하던 것이 피는 것도 후다닥이다. 집은 금세 들이닥칠 여름맞이가 한창이다.

날이 하루하루 더워지는 사이에, 구들장을 새로 놓았다. 이사왔을 때에 놓은 구들을 들어낸 것이니까, 십 년 만. 처음 시골 살림을 시작할 때는 불 때는 구들방에 대한 막연한 기대 같은 것이 있어서 집을 고칠 때 구들부터 새로 놓았다. 1960년대에 지어진 작은 세 칸 집인데, 구들장 위에 보일러가 깔려 있었다. 그래 방 두 칸 가운데 한 칸은 보일러를 뜯고, 구들을 다시 놓아서 잠자는 방으로 쓰자 했던 것. 그러나 그때에는 구들을 새로 놓는 것하고, 보일러 새로 바꾸는 것하고 무슨 차이가 있는가를 잘 몰랐다. 보일러 스위치만 누르고 살았으니, 구들방이라는 것도 나무막대기 몇 개 아궁이에 집어넣으면 될 줄 알았다. 그 장작을 해마다 어찌 마련해다가, 집 안에 들여 젖지 않게 재어서는, 저녁마다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잘 피우지도 못하는 불을 붙인다고 매캐한 연기를 맡아가며, 온 집에 그을음을 묻히고 검댕을 날리는 일이 있으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끼니로 치자면 밥 사 먹을 식당도 없고, 즉석식품 같은 것도 없이, 오로지 밥때마다 쌀을 씻어 안치고 푸성귀를 조물거려야,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처음에는 얼마쯤 구들방에 불을 넣다가, 슬그머니 보일러 방으로 옮기는 날이 많아졌다. 구들방이라는 게 한번 식은 것을 다시 데우려면 몇 배는 더 애를 써야 하니 점점 악순환. 구들방은 냉골일 때가 더 많아졌는데, 그랬던 것을 집을 새로 고치면서 아예 잠자는 방 두 개 모두에 구들을 놓기로 했다. 불 좀 때고 살았다는 주위 사람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아니, 나무꾼도 아니고 그것을 이제 와서 왜?”라거나, “나무할 산은 있나?”라거나 했다. 아마도 나 또한 누군가 구들방을 놓겠다고 하면 비슷한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여하튼 결심이 서고 일을 벌여서, 있는 구들장을 들어냈는데, 두 평 될까 한 작은 방에 구들돌이며 그 위에 깔아 놓은 흙이 하염없이 두꺼웠다. 구들장을 놓은 옆마을 목수 아저씨가 젊은 사람이 이사왔다고 아주 공을 들여서 일을 해 놓았던 것. 아침 저녁으로 아궁이에서 밥을 하고 소죽을 끓이고 그러는 삶이라면, 늘 불이 있어서 한번 데운 방바닥이 식지 않고 따뜻했을 테고, 저녁에 불 넣는 것도 수월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집처럼 불이라고는 잠자리나 데우는 군불만 넣는 집에서는 나무만 많이 잡아먹는 구들이 되어버린 꼴이었다. 사는 꼴에 맞지 않는 집 꼴.

도시 사람들이 시골 내려와서 처음에 힘들어 하는 것 하나가, 마을 사람들이 집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제는 나도 그렇게 되었다. 마음 쓰이는 사람이 있으면 집은 어떤가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마을에서는 지나다니기만 해도, 그 집 꼴이 보인다. 먹고 자고 놀고 일하는 것이 다 한 자리니까, 집을 보면 무슨 농사를 짓는지,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성품이 어떤지, 그런 것이 고스란하다. 아파트하고는 다르다. 사람이 궁금하니 자연스레 집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우리 집도 새로 구들을 놓는 것에 견주면 단열을 좋게 하려는 것은 영 건성이다. 다섯 식구 모두 여름에는 마루가 시원하고, 겨울에는 방바닥이 뜨끈한 집에 길이 들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시골에 왔을 때, 누군가 “십 년은 되어야 살림이 정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십 년이 되어 가니까 들었던 말을 주워섬겨서는 새로 이사온 사람한테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뭣 좀 안다는 투로 한마디씩 흘리듯 하는 것이다. 구들을 새로 놓고, 집을 손봤지만 처음 지은 집 모양새를 바꾸는 일은 줄이려고 애썼다. 장맛비 같은 봄비가 쏟아진 저녁에 처음으로 구들에 나무를 넣었다. 불이 잘 든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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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숙소 ‘또 다른 착취’  (0) 2017.04.03
작은 학교의 살림살이  (0) 2017.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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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나는 ‘적폐(積弊)’라는 개념을 사람에게 붙이는 화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종북’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이 폭력적인 것과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표현을 꼭 써야 한다면, 상대편뿐 아니라 스스로의 적폐 또한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진보에도 적폐가 있다. 음모론자들이 바로 진보의 적폐세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은 진보 개혁 세력의 현실 인식을 방해하며, 사안에 대한 상식적 토론을 가로막음으로써, 사회 전체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 보수 적폐세력과 적대적 공존을 이어간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 역시 음모론자들의 개입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 그들은 그 참사의 배후에 단일한 ‘악의 세력’이 존재하기를 원했다. 과적으로 인한 복원력 상실이라는 가장 합리적이고 단순한 이유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 결과 국가정보원의 레이더 무기부터, 미국인지 이스라엘인지 알 수 없는 어떤 나라의 잠수함까지, 수많은 ‘아니면 말고’가 밑도 끝도 없이 던져졌다. 선박 및 교통안전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대신, 음모론을 퍼뜨리는 사람들을 검증하느라 귀중한 논의의 기회가 날아가버렸다.

세월호가 인양되고 난 후 속된 말로 가장 ‘멘붕’에 빠진 쪽도 다름 아닌 일부 진보 세력이었다. 그들은 세월호의 침몰 원인이 잠수함과의 충돌이라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월호가 인양되면 모든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고, 굉장한 음모가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지만 정부에서 그것을 은폐하고 있다는 듯이 분위기를 조성하던 사람들. 세월호가 떠오르자 그들의 목소리는 가라앉았다.

그럼에도 계속 음모론을 생산하는 사람이 있다. 세월호 승무원들이 닻을 던져서 고의로 배를 침몰시켰다고 주장하던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이 대표적이다.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서 세월호 인양 후에도 ‘고의침몰설’을 고수하더니, 지난 14일에는 18대 대선에서 개표 부정이 벌어졌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 <더 플랜>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더 플랜>에서 인터뷰한 UC 버클리대 통계학과 교수 필립 스타크의 말을 통해 <더 플랜>의 기본적 오류를 반박해보자. “옵티컬(광학) 스캐너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종이 기록지가 남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기록지를 재확인할 수 있지만 전자투표는 오류를 확인하거나 수정이나 복원을 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요.”

한국의 선거는 정확히 “옵티컬 스캐너를 이용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전자투표가 아니다. 투표지분류기는 이름 그대로 투표지를 ‘분류’만 해줄 뿐이고, 실제 개표는 사람이 한다. 애초부터 한국의 선거는 수개표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다만 수개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기계를 동원해 표를 ‘분류’할 뿐이다. 미분류표에 박근혜 표가 많았건 문재인 표가 많았건 결과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최종적으로 사람이 손으로 넘겨보고 눈으로 확인하기 때문이다. 개표소에는 각 후보 및 정당에서 추천한 참관인들이 있다. 18대 대선에서 여당에 유리하도록 부정개표가 이루어졌다면 민주통합당에서 추천한 참관인 중에 매수 혹은 협박당한 사람, 혹은 그런 상황을 목격한 증인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물론 그런 사례는 확인된 바 없다.

김어준도 그 사실을 안다. 하지만 ‘아니면 말고’ 아니겠는가. 그러니 나라고 이 시점에서 음모론을 하나 던져보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 19대 대선을 앞두고 18대 대선 개표부정설을 퍼뜨린다니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패배할 경우 불복 운동을 벌이려는 냄새가 나지 않나? 뭐, 아니면 말고. 동쪽에는 트럼프, 서쪽에는 시진핑, 북쪽에는 김정은이 둘러싸고 있는 지금, 음모론 따위에 낭비할 여력은 없다. 진보의 고질병인 음모론, 적폐세력인 음모론자들을 떨쳐내고, 새로운 시대를 헤쳐 나가자.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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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모두에게 소중하다. 몸이 유일한 재산인 노동자들에게 집은 특히 소중하다.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돌아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므로 소모된 노동력은 오로지 충분한 휴식을 통해 재충전할 수밖에 없다. 만약 제대로 된 휴식이 불가능한 숙소에서 머물게 하면서 계속 일을 시킨다면 이는 사실상 강제노동이다.

1970년대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던 청년 전태일도 평화시장 사무실에 찾아가 맨 먼저 요구한 것이 일터 다락방에 마련된 노동자 숙소를 폐지하고 정식 기숙사를 설치하라는 것이었다. 일터 다락방에 얼기설기 만든 숙소는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5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에서 살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업 이주노동자 중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에 살고 있다고 응답한 노동자가 85%를 넘었다.

비닐하우스는 농작물을 재배하는 시설이지 사람을 위한 주거시설이 아니다. 추위와 더위를 제대로 피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화장실이나 욕실 등 기본적인 설비도 열악하다. 직원은 30명이 넘는데 화장실이 1개뿐이거나, 한겨울에도 찬물만 나오는 야외 수도꼭지가 욕실이 된다. 좁은 컨테이너에 10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몰아넣거나, 내부에 얇은 합판으로 공간을 쪼개 남녀의 공동숙소로 사용하는 곳도 있었다. 인권과 노동권의 심각한 침해다.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어서 이주한 노동자들은 일터 이외에 다른 생활터전이 없고, 지출을 최대한 줄여 돈을 모아야 하므로 열악한 주거환경을 견뎌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한 사용자의 숙소제공을 의무화하고, 안정적인 휴식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숙소의 면적, 안전, 위생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다. 미국의 경우, 최소한 1인당 9.29㎡ 이상의 수면 공간, 21.1도 이상을 유지할 수 있는 난방시설, 목욕과 세탁을 위한 온수 설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전에 숙소를 점검해서 기준에 미달하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도록 했다.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고용되어 임금을 받는 ‘을’의 지위에 있으므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할 수 없는 일자리가 처음부터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는 오히려 정반대로 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얼마 전 발표한 ‘외국인 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에 따르면, 사용자가 비닐하우스와 같은 임시시설을 노동자의 숙소로 제공하더라도 월 급여의 최대 13%까지 숙식비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간단한 동의서만 받으면 숙식비를 월급에서 미리 떼고 지급할 수도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비인간적이고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이는 현실을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인권을 침해하는 비인간적인 숙소 사용료를 사용자가 월급에서 먼저 떼어가도록 한 것이다.

이번 지침은 근로기준법에서 선언한 임금의 전액지급 원칙에 위배된다. 무엇보다 앞으로 비닐하우스와 같은 열악한 주거 시설을 계속 늘어나게 만들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노동권을 보장해야 하는 고용노동부가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휴식과 노동력의 재충전에는 관심이 없고, 사용자들이 보다 쉽게 숙소 사용료를 챙기는 데에만 관심을 두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지금이라도 고용노동부는 관련 지침을 개정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기숙사의 기준을 마련하고, 잘 지켜질 수 있도록 점검하는 것이 고용노동부가 해야 할 일이다.

조영관 |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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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닫았던 학교에 다시, 아이가 왔다. 올해 새 학기에 그런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마을의 모든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문을 닫았던 작은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다. 한 명의 입학생으로 시작하는 학교. 예전에 어느 나라에선가는 학생 한 명의 통학을 위해, 폐선될 예정이었던 기차를 졸업 때까지 몇 년이나 더 연장해서 운행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한 명의 학생을 태우기 위해 다니던 작은 기차.

우리집 아이가 다니는 학교도 몇 년 새 아이들이 조금 늘어나는 듯하다가 다시 줄고 있다. 면 지역 안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누구누구 있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 앞으로 이사 오는 집이 많지 않다면 얼마나 학생 수가 줄어들지 어림짐작하고 있다. 이제는 온 나라에 아이들이 줄고 있으니까, 이곳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한 명의 아이를 위해 학교를 다시 열었다는 소식은 반갑기 그지없었지만, 아마도 비슷한 소식을 또 듣게 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현실은 그나마 있는 학교를 지키는 일도 버거우니까.

대개는 작은 학교일수록 학생 수가 적다는 이유로, 학교 살림을 꾸리기가 어렵다. 작년, 학교 운영위원회에 참석하면서 돈 쓰는 일을 들여다보니 사정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전교생이 다 합쳐 100명이 될까 말까 턱걸이를 하다가 한두 명이 모자라게 되면서, 급식소에서 아이들 밥을 챙기는 사람이 두 명에서 한 명으로 줄었다. 병설유치원도 10명이 되지 않으니까, 오후 시간 아이들 간식을 챙기고, 잔손을 거들던 한 사람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몇 명, 몇 명 하는 기준을 만들어 두고 가장 먼저 줄이는 것들이 이런 예산이다.

학교가 작은 만큼 돈 쓰는 것도 적을 수밖에 없다지만, 그게 돈이 모자라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달에는 학교 통학버스 주차장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덧씌우는 공사를 했다. 여름에 그늘을 드리우고, 겨울에는 서리를 막으려 했다는데, 공사를 마친 모양새는 버스 앞머리에 우산 하나 씌워 놓은 꼴이다. 학교 안에 아무도 쓰지 않는 주차장을 몇 면 더 늘리는 공사도 했다. 꼭 필요한 공사는 아닌 것 같았지만, 그것은 ‘시설 예산’으로 정해진 것이라, 다른 곳에 쓸 수 없다고 했다. 없는 형편에 돈주머니를 몇 개 따로 찬 살림이다. 당장 한쪽으로는 돈이 없어 절절매면서도, 반대편에서는 두둑한 돈주머니를 들고서는 어디 돈 쓸 만한 데가 없나 두리번거린다. 규모가 작은 살림의 예산 내역을 보니 이런 것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학교의 살림살이를 결정하는 과정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돈 쓰는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학교에 있다면, 이렇게 돈을 함부로 쓰는 일은 어렵지 않게 바로잡힐 것이다.

나랏돈이 어떻게 쓰이는가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것은, 돈의 쓰임새를 결정할 때 자기 의견을 낼 수 있는 통로가 잘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고, ‘저게 내 살림이라면, 절대 나는 그렇게 돈 안 쓴다’ 싶을 만큼 어이없게 쓰는 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에는 운영위원회라는 것이 있어서 법적으로는 운영위원장이 학교 재정을 집행하는 결정권자이지만, 이름으로만 운영위원회가 굴러가는 학교가 수두룩하다. 이런 학교일수록 정작 학교에서 살아가는 아이들과 선생님에게 필요한 곳에 돈이 쓰이지 않고, 몇몇 사람이 멋대로 쓰거나, 혹은 그보다 더 큰 권력을 쥔 기관이 돈 쓸 곳을 정해 버린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 경선후보는 교육 정책을 말하면서 초·중등 교육에 관한 것은 각 시·도교육청에 맡기고, 학교 자치기구도 제도화하겠다고 했다. 어쨌거나 모여 있는 권력을 자꾸 나누겠다는 뜻일 것이다. 권력이 작고 가까워야 거기에 속한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가 쉬워진다. 그렇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더 가까워지는 일일 테고, 작은 학교가 형편껏 살림살이를 굴릴 수 있는 길도 가까워질 것이다.

전광진 | 상추쌈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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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신화’가 허물어졌다. 재벌 중심 수출 경제의 신화 역시 동시에 무너지고 있다. 청년들은 절망하고 노인들은 폭주한다. 아이들은 더 이상 태어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지식인들은 침묵하거나 공회전하고 있다.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바에 따라 대통령을 파면해낸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국가의 이상을 제시하고 토론해야 할 시점임에도 말이다.

그런데 대체 그 논의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어떤 관점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해석하며 대안을 찾아나가야 하는가? 철학자 존 롤스가 제시한 ‘무지의 장막’을 드리워볼 때이다. 어떤 사회가 근본적인 규칙을 형성해나가고 있다. 그런데 만약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지는 새로운 사회 속에서, 자신이 어떠한 조건에 처하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다고 해보자. 특권층에 유리한 사회 구조를 만든다 해도 내가 그 특권층이 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을 상상해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무지의 장막’이 쳐져 있다면, 사람들은 최대한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규칙을 수립할 것이라는 것이 존 롤스의 생각이었다.

무지의 장막을 쳐놓고 대한민국을 검토해보자. 이 글을 읽는 독자는, 본인에게 어떤 조건이 주어질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인으로 태어나고 싶은가? 자신의 성별, 성정체성, 신체적 장애, 부모의 재산, 교육, 가정환경, 신분 등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대한민국에 태어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라는 말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3월 13일 (출처: 경향신문DB)

무지의 장막에 싸여진 아기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태어나는 그 자체가 엄마의 경력 단절을 낳는 원인이다. 게다가 여자로 태어나면 내 엄마가 겪고 있는 차별이 내게 넘어올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확률은 반반이다. 운 좋게 남자로 태어났다 한들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사회의 일원으로 공정한 대우를 받기 위해 끝없이 투쟁해야 한다. 성소수자라면 본인의 성정체성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리며, 결혼 등 동등한 법적 제도를 누릴 수 없다. 상위 10%에 해당하는 정규직 일자리를 얻는 것이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인생의 목표가 되는데, 일단 그 속에 끼어들지 못한다면 경제적 궁핍을 각오해야 한다. 고소득 정규직 혹은 전문직이 된다 한들 워낙 긴 노동시간으로 인해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은 그저 꿈일 뿐이다.

이런 나라에서 출산율이 높다면 그것은 너무도 이상한 일이 아닐까? 한 여론조사기관이 2016년 1월 수행했던 여론조사에 의하면, 다시 태어나도 대한민국을 선택하겠다는 사람은 조사 대상자 1000명 가운데 30.2%에 지나지 않았다. 11.9%는 잘 모르겠다며 대답을 유보했고 57.9%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응답했다. 같은 조사에 의하면 69.0%가 막연하게나마 이민을 꿈꿔보았다. 이미 대한민국 국민들의 절반 이상이 마음속에서 이 나라를 버린 것이다.

출산율이 낮다. 그러므로 ‘대중에게 무해한 음모론 수준’의 문화 콘텐츠를 만들자, 이런 소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절반 이상의 한국인에게 대한민국은 태어나고 싶은 나라가 아니다. 이미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도 기회만 된다면 ‘탈조선’하겠다는 소리를 공공연하게 한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이 나라에서 많은 것을 얻고 누려왔던 사람들조차 자기 자식은 ‘탈조선’시키겠다며 온갖 편법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그에 대해 사회적으로 지탄하기보다 오히려 부러워하는 듯한 분위기이다. 수십 년에 걸쳐 대한민국에 ‘빨대’를 꽂아온 최순실 일당의 목적도 결국은 ‘탈조선’ 아니었던가?

이 땅에 남아 가치 있는 것들을 만들고, 지키고, 일구고, 가꾸고, 이루어내고, 남기고자 하는 사람들은 바보 취급을 당한다. 이미 정신적으로 죽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이 분위기 속에서 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야 하는지, 무지의 장막 너머의 아기를 설득해낼 수 있는가? 태어나고 싶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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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없는 3월, 그래야 봄이다!” 3월4일, 제19차 촛불집회의 구호였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10일, 헌재의 판결로 구호는 현실이 되었다. 11일, 제20차 촛불집회는 그야말로 봄맞이 축제였다. 날씨도 영락없는 봄날, 낮부터 광화문 광장은 기쁨과 설렘을 감추지 못한 사람들로 붐볐다. 블랙리스트, 비정규직, 정리해고, 노조 파괴 없는 세상을 위한 퍼레이드가 벌어졌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6주기를 맞아, 탈핵을 정부에 요구하고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나비행진’이 이어졌다.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흥겨운 한마당이었다. 그렇게 봄이 온 것 같았다.

같은 날, 이순신 장군 동상 아래. 지난 1월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 중 자살한 한 여고생의 추모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학생은 어른도 견디기 힘든 감정노동에 실적 부족과 장시간 근무로 시달렸다고 한다. “콜 수 못 채웠어.” 언제 오느냐고 묻는 아빠에게 보낸 문자였다. 2013년 너무 힘들고 배고파 못 살겠다며 자살한 삼성전자 서비스 수리기사,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이 떠올랐다. 안타깝지만 문제는 없다는 것이 LG유플러스 고객센터의 입장이다. 문제가 없어도 사람이 죽어 나가니, 영락없이 살인적인 노동 구조다. 위험과 고통의 외주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았다.

전격적인 사드 알박기 반입에 대한 성토와 규탄의 소리도 들려왔다. “여기도 사람 있다. 사람이 살고 있다.” 성주에 내걸린 현수막은 용산, 밀양, 청도가 계속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사드 부지로 제공된 롯데골프장 안팎으로 경찰과 군 병력이 깔렸다. 길도 막았다. 원불교 성직자들은 철야 연좌농성에 돌입했다. 안보와 국익을 앞세운 국가폭력이 여전히 힘없는 사람들의 삶을 짓뭉개고 있다. 아예, 봄은 오지도 않은 것 같았다.

12일 저녁, 청와대를 떠나 삼성동 집으로 돌아간 박근혜씨가 차에서 내렸다. 웃고 있었다. 웃는 얼굴로 지지자들과 담소를 나누고 집안으로 사라졌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도 했다. 자신이 공모한 국정농단 사태가 훤히 드러났는데도 오직 국익을 위해 살았다고 강변하다 파면된 대통령다웠다. 후안무치함에 소름이 돋았다.

“하필왈리(何必曰利).” 국익을 찾는 양나라 혜왕에게 맹자는 인의(仁義)를 찾으라 했다. 맹자는 ‘인’과 ‘의’가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에서 나온다 했다. 아마 맹자는 혜왕이 말하는 국익이 실은 군주의 사익이라는 걸 꿰뚫어 본 것 같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의 마음, 내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세상의 불의를 미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국익은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될 수 없다. 그런 국익은 유력한 소수의 배를 채우는 사익의 분칠일 뿐이다.

정의가 사회적 약자의 이익을 최대화할 때 이루어진다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정의롭지 못하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태도가 그 사회의 수준을 말해준다면, 우리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국익을 앞세운 강자들의 사익 추구는 해방 이후만 따져도 70년을 넘었다. 이 ‘적폐’를 뿌리째 드러내고 도려내야 ‘청산’이 된다. 쉬울 리가 없다. 그래서 세상의 똑똑하다는 사람은 재빨리 국익에 충성하고 사익을 취한다. 출중한 능력은 현실의 변화가 아니라 유지에 사용된다. 세상이 변할 리 없다.

정작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이다(신영복, <담론>). 그리스도교의 표현으론, 십자가의 역설이다.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에도, 주말이면 휴식을 마다하고 거리로 나온 ‘어리석은’ 촛불시민들이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다. 아니, 직접 보고 겪었다.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는, 자연이 사람과 공존하는 평화의 세계를 향해 함께 걸었다. 그런 세상이 마냥 꿈이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하여, 촛불의 마음을 놓지 않는 한, 봄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

조현철 서강대 교수·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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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4차 산업혁명 이야기가 뜨겁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신설하고 사물인터넷(IoT)망 구축 등을 포함한 과학기술정책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은 규제를 개혁하고, 창업 드림랜드와 스타트업 특구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이 왜 시작했는지에 대해서 고민이 깊어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고민은 2009년 오바마 행정부의 ‘리메이킹 아메리카(Remaking America)’라는 슬로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조대기업들은 생산원가의 압박과, 글로벌 기업을 유치해 고용을 늘리겠다는 아시아 국가들의 노력으로 해외로 나섰다. 군수산업을 제외한 제조업 분야를 별 신경쓰지 않으며 금융자본만 키워온 부시 행정부의 기조까지 겹쳤다. 제조업 생산을 이끌던 러스트 벨트의 실직이 만성화 됐다. 실리콘밸리의 IT기술을 제조대기업에 최대한 접목하는 방식으로 방향이 잡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다시 어떻게 제조업을 본국으로 데려올 수 있을까”가 미국 고민의 출발이다.

사물인터넷(IoT), 사이버물리시스템(CPS)을 먼저 정착시켜온 독일 ‘인더스트리 4.0’의 고민도 제조업이 시작이다. BMW, 메르세데스 벤츠로 대표되는 고부가가치 제조업을 선도하면서도 한국과 중국 등 후발주자에 쫓기면서 이윤 압박을 받는 상황이 있었다. ‘히든 챔피언’으로 불리는 중소기업들과 대기업 간의 연계망을 효율적으로 엮어내고, 공장 내부에서 사람이 하던 공정 간 연계를 고도의 생산기술과 SAP 등의 정보기술을 결합해 푸는 것이 스마트팩토리의 구상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 이야기는 IT산업을 다시 육성하자는 플랜에 가깝다. 제조업을 살리기 위해 IT산업의 지혜를 끌어오자는 메시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시급한 고민은 엔지니어들이 당면한 문제를 슬기롭게 푸는 데 있다. 제조업 엔지니어링 역량 축적부터 다양한 산업의 엔지니어들이 함께 협업할 수 있는 방안까지 고민해야 한다. 선진국에선 STEM(과학·테크놀로지·엔지니어링·수학) 역량을 갖춘 엔지니어를 학교가 길러내고, 관록 있는 선배 엔지니어가 코칭해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지 않더라도 엔지니어들은 사내벤처 등을 통해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업계 ‘선수’들은 다 아는 알짜 중견기업 또는 ‘강소기업’으로 길러낸다.

반면 한국에서 제조업 엔지니어어의 미래는 ‘치킨집’으로 상징되는 암울함이다. 엔지니어들은 늘 미래에 대해 걱정한다. 산업도시 근무도 기피하게 되는데, 단순히 ‘시골’이 싫어서가 아니라 ‘현장’에만 있다가 ‘우물 안 개구리’가 될 것이라는 공포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 엔지니어는 채용이 적고 입사해도 ‘현장 정서’ 때문에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 퇴근 후 교류의 장이 ‘밋업’(meet-up) 같은 네트워킹이 아닌 선배들과 ‘팀워크’를 다지기 위한 회식자리가 주라는 점도 압박이다. 일을 효율적으로 하면서 좋은 성과를 내기보다는 혹사로 때우는 일하는 방식도 여전하다. 40대가 되어 새로운 아이디어가 고갈되고 회사에서 밀려나면 그 경험은 축적하지 못한 채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기다릴 뿐이다.

제조업 구조조정은 4차 산업혁명과 무관하지 않다. 제조업 공정 상류부문(R&D, 설계)을 분사해 엔지니어링 회사를 만들 수 있고, 스마트팩토리 도입을 통해 자동화로 생산의 고도화를 할 수도 있다. 그때 현장에서 소외되고 회사를 나갈 확률이 높은 시니어 엔지니어들에게 어떤 몫을 줄 것인가? 새로 유입되는 ‘많이 배운’ 엔지니어들과 현업의 키를 쥐고 있는 중견 엔지니어들에게는 어떤 성장의 전망을 보여줄 것인가? 대선후보들은 엔지니어들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고 꼭 필요한 방안을 찾아낼 때가 아닐까 싶다. 산업진화든, 구조조정이든, 미래산업 양성이든 시간이 별로 없다.

양승훈 | 문화연구자·경남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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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땅값이 제일 비싸다는 강남, 그것도 지하철 2호선 강남역 8번 출구 바로 코앞 역세권에 비닐로 만든 둥지를 틀었다. 제대로 된 지지대 하나 없이 박스와 우산으로 천장을 겨우 받치고 있는 이곳은 비라도 조금 내리면 천장 구석구석에 물웅덩이가 고이고, 입구가 어디인지 찾기 힘든 기묘한 구조물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활동가들은 이곳을 ‘오성급 호텔’이라 부르며 500일이 넘도록 머물고 있다.

오성급 비닐 둥지 뒤로는 44층 높이의 마천루가 자리 잡고 있다. 롯데월드타워를 디자인하기도 한 미국의 유명한 건축설계업체 KPF가 설계한 삼성 서초사옥이다. 삼성전자 본사는 수원에 있지만, 삼성 서초사옥은 그동안 삼성그룹의 심장부 역할을 해왔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등으로 얼마 전 해체를 선언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을 비롯해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의 집무실이 이곳에 있었다. 매끈한 대리석 바닥, 화려한 조명, 웅장한 유리벽 외관을 보더라도 오성급 호텔이라는 설명은 아무래도 이쪽이 더 어울린다.

반올림의 둥지와 삼성의 서초사옥. 이들의 이야기는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 속초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아빠에게는 아끼던 딸이 있었다. 대학 입학을 권유하는 아빠에게 빨리 취직해서 남동생 학비를 마련하겠다고 나선 듬직한 딸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회사인 삼성전자에 취직할 만큼 그는 아빠의 자랑거리였다. 그러던 딸이 삼성전자 입사 2년도 되기 전에 급성골수성백혈병에 걸렸고, 병마와 싸우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2007년 3월6일. 딸 황유미의 나이는 고작 스물셋이었다.

딸의 억울한 마음을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한 아빠는 그날 이후 딸의 죽음의 원인을 찾아 나섰다. 유미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동료들이 백혈병, 비호지킨 림프종과 같은 희귀성 질환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이 진실을 알아주기를 기대했지만, 반도체 산업이 우리나라 경제를 먹여살린다는 판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유독성 화학물질의 위험성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그렇게 그는 반올림을 만나게 되었다.

2014년 8월, 유미가 세상을 떠난 뒤 7년에 걸친 힘겨운 소송 끝에 반도체 노동자 황유미의 죽음은 개인의 질병이 아닌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유미 아빠 황상기씨는 아직도 정확하게 무엇 때문에 유미가 백혈병에 걸리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유미가 삼성전자 반도체 공정에서 다루었던 화학약품 성분이 ‘영업기밀’이라는 이유로 삼성과 고용노동부가 끝까지 공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기업들은 한목소리로 반도체 제작 공정은 안전성이 100% 보장되는 무인 자동화 시설을 갖추어 노동자들의 건강에 어떠한 악영향도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에 따르면 여전히 공정 과정에서 고약한 약품 냄새를 맡으며 일하고 있으며, 생리불순 등 원인을 알 수 없는 질환을 앓고 있는 노동자들이 많다고 한다. 지금까지 반올림에 접수된 피해 제보만 370여건에 달하고, 이 중 230여건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피해 사례다. 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에서 벌거벗은 채 길거리를 활보하는 임금님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옷에 대한 입 발린 칭찬이 아니라, 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부끄러운 진실이다. 화려한 이름에 가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어쩌면 외면해왔던 민낯을 지금이라도 솔직히 마주해야 한다.

오늘은 반도체 노동자 황유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그녀의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강남역 8번 출구 앞 오성급 호텔 앞에서 추모와 기억의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임금님의 길거리 행차를 향해 용감히 진실을 전하던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그곳에서 새로운 봄날의 저녁을 함께 나누자.

조영관 |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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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다쳤다. 엄지손가락 뼈가 그야말로 ‘똑’ 부러졌다.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을 가리키면서 “아주 말끔하게 부러졌네요”라고 했다. 초등 2학년 마지막 날. 온몸으로 기뻐하며 봄방학을 맞이한 결과였다. 이 추운 날에 친구들과 징검다리를 놓겠다며 커다란 돌덩이를 들다가 자기 손을 찧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상처도 크지 않았고, 별로 아파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손가락에 밴드 따위를 붙이고는 몇 시간이나 더 놀다가 저녁 먹을 때 집에 돌아와서는, 그제서야 손가락을 내보였다. 그 정도였으니 뼈가 부러졌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에야 읍내 병원엘 갔다. “오늘, 큰 병원으로 가실 거죠? 여기는 마취전문의가 없어서 수술 못해요. 단순골절이고, 핀 박는 거는 아주 간단한데, 아이라서 전신마취 해야 되거든요.” 의사는 아이에게 석고 붕대를 한 다음 소견서를 써 줬다.         

집으로 돌아와 이런저런 것들을 챙겨서, 큰 병원으로 갔다. 꼬박 한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거리. 읍내에는 병원도 여럿이고, 정형외과도 몇 개 있다. 그러나 아이의 손가락 골절을 치료할 수는 없는 형편.

처음 시골 내려올 때, 주위에서 걱정하면서 물었던 것이 돈벌이, 교육, 의료, 이렇게 세 가지가 가장 많았다. 돈벌이는 점점 적게 벌고 그만큼만 쓰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고, 교육은 아이들이 (그래도 도시에서보다는) 잘 놀면서 자라고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의료는 간단하지 않다.         

사실 병원은 잘 가지 않는 편이고, 건강은 스스로 돌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플 때 기댈 수 있는 좋은 의사가 얼마나 귀한 사람인가는 잘 알고 있다.

귀농, 귀촌한 사람 가운데 꽤 많은 사람이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고 한다. 무엇보다 돈벌이가 어려워서이겠지만, 그 다음으로는 살기에 불편하다는 것이 이유로 꼽히는데, 의료 문제가 빠지지 않는다. 읍내에는 하나뿐이던 응급의료기관이 있다. 그러나 얼마 전 간호사를 구하지 못해서 응급실 지정이 해제되었다고 했다.

전국으로 따져서는 외과가 없는 지역이 서른 곳쯤,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는 각각 쉰 곳. 시골이니 사람이 적게 살고, 그만큼 병원 가기가 불편한 것이야 당연하겠다 싶으면서도, 응급실 가는 데에 한 시간이 넘게 걸리고, 소아과를 가려 해도 그만큼이라니.

이럴 때 가장 눈에 밟히는 것은 크고 번듯한 군청 옆 보건소 건물이다. 언제 가도 그 넓은 건물이 조용하다. 진료를 기다리는 대기자가 여러 사람인 것도 거의 본 적이 없다. 아마 보건소 건물을 짓는 예산도 보건복지 예산이었을 것이다. 10년도 되지 않은 건물이었는데, 지난해에는 멀끔한 건물 내부를 수리한답시고 다시 돈을 들였다. 가까이 있는 면 보건소도 지난해 몇 달 동안 보건소 문을 닫고 공사를 했다.

언젠가 감기가 심해서 이 보건소에 간 적이 있었는데, 처음 받아 온 약(알약 한 알)이 도통 듣지 않아서, 증상을 다시 얘기하고 다른 처방을 부탁드렸다. 그랬더니 “감기약은 그거 하나뿐인데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몇 달 공사를 할 돈은 있어도, 감기약 몇 가지 더 구비할 돈은 없는 보건소였다.

다행히도 아이가 수술을 받은 병원은 여러 가지로 마음이 놓였다. 의사든 간호사든 바쁘긴 해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무슨 이야기든 잘 듣고 찬찬히 이야기해 주었다. 병원 일을 처리하는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       

수술은 잘 받았고, 아이는 그저 석고 붕대가 갑갑할 뿐이라, 벌써 붕대 풀 날짜만 헤아리고 있다. 앞으로 한 달 넘게 꼬박꼬박 그 먼 길을 다녀야 하는 일이 남았다.

전광진 | 상추쌈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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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79년 만에 처음으로 삼성그룹의 총수가 구속되었다고, ‘삼성 불구속 신화’가 깨졌다고 거의 모든 언론이 보도하고 있다. 물론 합법적으로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약간 다른 각도에서 역사를 바라보면, 이미 삼성그룹의 회장은 한 차례 권력에 의해 붙잡힌 후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난 바 있다. 1961년 5월28일, 일본에서 귀국한 이병철 회장이 박정희 장군을 ‘만났다’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박정희는 쿠데타에 성공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업인들을 ‘부정축재자’로 지적하고 체포했다. 그런데 그 시점에 이병철은 일본에 있었고 한 박자 늦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감옥에 갈 줄 알았던 그는, 삼성그룹 비서실에 몸담았던 손병두 전 전경련 상근부회장의 증언에 따르면, 메트로호텔이라는 곳에서 박정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온 어떤 ‘신화’가 이어진다. 박정희는 자신이 경제를 잘 모르므로 어떻게 해야 하냐고 이병철에게 물어보았다고 한다. 이병철은 박정희에게 기업인들을 석방해달라고 직언한 후, 일본의 일본경제인연합회(게이단렌)를 모델로 삼아 오늘날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된 한국경제인연합회를 창설하였으며 국가중심의 경제개발 전략 수립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9일 오전 대치동 특검사무실로 구속된 이후 이틀 연속 소환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적잖은 이들이 박정희 신화, 혹은 한국의 재벌 신화를 윤색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을 일종의 평화로운 회의처럼, 혹은 이병철의 ‘돌직구’가 한국 경제 성장의 방향을 제시한 사업 설명회인 양 포장하곤 한다. 하지만 이병철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계엄 상황이고, 상대는 바로 그 쿠데타의 주인공이다. 형무소가 아니라 호텔에서 만났다 해도 실질적으로 구금 상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박정희의 요구를 받아들이거나 박정희가 생각하던 것보다 더 큰 이익을 안겨줄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만 할 상황이다. 박정희를 오래도록 보좌해온 누군가를 익명으로 인터뷰한 후 다니엘 튜더는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에서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병철은 모종의 방법으로 귀국하라는 설득을 받았고, 돌아오자마자 서울 모처에 감금됐다. 그러나 재능 있는 사업가이자 설득력 있는 화술의 소유자였던 이병철은 박정희 장군과의 협상 끝에, 그가 지닌 대부분의 재산을 국가에 ‘기부’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다른 기업가들이 박정희가 제시하는 경제개발 전략에 따르도록 설득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이병철은 오늘날까지 존속하며 기업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초대 회장이 되었다.”(36쪽)

대한민국의 기업과 정부의 관계란 바로 이렇게 형성되었다. 정권을 손에 쥔 자는 기업의 목에 칼자루를 들이댈 힘을 갖는다. 기업은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며, 그 대신 정부의 경제발전계획에 따라 주요 사업에 참여할 권리와 더불어 해당 사업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시중 금리보다 훨씬 저렴하게 대출받을 수 있다. 물론 그 대출받은 돈 중 일부는 다시 정치인의 뒷주머니로 흘러들어가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재용 측에서 최순실 딸 정유라의 말 구입 및 승마 비용을 지불해놓고도 그것이 뇌물로 제공된 것이 아니라 협박을 받아 내놓은 것이라고 항변하는 것에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강제로’ 돈을 내놓으면 권력으로부터 더 많은 이권을 얻어낼 수 있다는 기대하에 행동했을 따름이다. 1961년 이병철이 불법적으로 ‘구속’될 때부터 2017년 이재용이 합법적으로 구속될 때까지 이어져온 게임의 법칙을 따른 것이다.

‘삼성 불구속 신화’는 없다. 깨진 것이 아니라 원래 없었다. 다만 재벌과 정권의 결탁이 너무도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었기에 그런 신화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이제는 가짜 신화가 사라진 자리에 공정하고 민주적인 시장경제를 수립할 때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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