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6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나는 올해 초까지 10년 남짓 일본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돌이켜보면 너무나 바쁜 나날이었다. 명목상 쉬는 날은 있었지만 실제로 쉬는 날은 아니었다. 출입처에 작은 일만 생겨도 먹던 밥을 내려놓고 달려가 기사를 썼다. 문화부에 있던 지난해에는 기무라 다쿠야가 속한 아이돌그룹 ‘스마프’의 해체 소식에 부리나케 소속사 사무실로 뛰기도 했다.

게다가 주로 서울에서 일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의 신문사에는 전근이 많다. 나도 입사한 뒤로 나라, 도야마, 오사카, 도쿄를 돌며 일했다. 회사 선후배들을 보면 배우자가 전업주부가 아닌 이상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오사카에서 결혼한 직후 도쿄로 발령 나면서, 오사카 지방 공무원인 남편과 떨어져 살았다.

지난 1월 신문사를 그만두고 곧바로 서울로 한국영화 유학을 왔지만, 도쿄에서 일할 때보다 지금 더 자주 오사카 집에 간다. 신칸센으로 도쿄-오사카를 다니는 것과 비행기를 타고 서울-오사카를 오가는 것이 교통비나 시간에서 차이가 없다. 오히려 지금은 일 때문에 느닷없이 호출되는 일이 없어 남편과 더 가까워졌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남편이 대단하다”는 뜬금없는 얘기를 한다. 어떤 남성들은 “나 같으면 (아내의 유학을) 허락하지 않겠다”고도 한다. 10년 남짓 뼈빠지게 일해 마련한 돈으로 온 유학이고, 내 미래에 대한 투자다. 일본에서 잘 살고 있는 다 큰 어른이 대단할 것도 없고,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내 유학을 허락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이상한 것은 어린애들을 외국으로 보내고는 홀로 떨어져 사는 한국 사람들이다. 심지어 그런 남편들을 가리키는 ‘기러기 아빠’라는 말까지 있다는 걸 나는 알았다.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 <싱글라이더>를 보면서다. 영화는 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기러기 아빠가 된 주인공과 그 가족의 해체에 관한 이야기다.

‘기러기 아빠’라는 말은 일본어에 없다. 단어만 없는 것이 아니라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애들을 외국에 보내는 일 자체가 없다. 일본인에게 외국에서 유학하는 것은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이고 더러 고등학생이 있다 해도 엄마가 따라가지 않는다.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뿔뿔이 흩어져 사는 사회에서, 서른이 넘은 나와 남편을 대단하다고 말할 일은 아니다. 교육 아니 출세에 대한 한국인의 욕심은 나 같은 외국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초등학생들이 학원을 전전하다가 밤이 늦어서야 집에 들어간다는 말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쏟아붓는 교육비가 한국과 일본의 소득 수준을 고려하면 2배에 가깝다는 얘기도 들었다. 한참 놀고 싶은 나이에 학원에만 다니는 아이도, 아이를 위해 밤새도록 돈을 버는 부모들도 내 눈에는 정상이 아니다. 만약 내가 한국에서 자랐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일본사람을 ‘회사 인간’이라고 하고, 일본 사회를 ‘과로사회’라고 부르지만 다 옛날 얘기다. 일본은 변하고 있다. 신문사 입사 설명회를 찾아오는 대학생들도 “결혼은 할 수 있냐”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냐”고 먼저 묻는다. 나는 “결혼은 해도 같이 살기 힘들 수 있다” “육아는 남편이나 부모가 도와주지 않으면 힘들다”고 솔직히 답했다. 사양산업으로 지목받는 신문사가 변하지도 않으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할 수 없다. 발행부수 1000만부 안팎으로 세계 1~5위를 석권하던 일본 신문사들도 하락세는 부인할 수 없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신문사들도 과거와는 달라졌다. 요즘 입사하는 후배기자들은 사생활을 지켜가면서 일한다.

<싱글라이더>의 주연배우 이병헌이 일본에서도 인기가 많으니 조만간 이 영화도 일본극장에 걸릴 것이다. 일본사람들이 한국에는 ‘기러기 아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일본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싶어 기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설 것이다.

나리카와 아야 동국대 대학원생 전 아사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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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보 위에 딱새가 둥지를 틀었다. 지난해와 같은 자리를 찾는다. 봄날이 금세 더워졌다. 처마 아래 새가 둥지를 트는 것도, 마당에 도마뱀이 돌아다니는 것도, 뒤안 감나무 잎 쪼삣(뾰족)하던 것이 피는 것도 후다닥이다. 집은 금세 들이닥칠 여름맞이가 한창이다.

날이 하루하루 더워지는 사이에, 구들장을 새로 놓았다. 이사왔을 때에 놓은 구들을 들어낸 것이니까, 십 년 만. 처음 시골 살림을 시작할 때는 불 때는 구들방에 대한 막연한 기대 같은 것이 있어서 집을 고칠 때 구들부터 새로 놓았다. 1960년대에 지어진 작은 세 칸 집인데, 구들장 위에 보일러가 깔려 있었다. 그래 방 두 칸 가운데 한 칸은 보일러를 뜯고, 구들을 다시 놓아서 잠자는 방으로 쓰자 했던 것. 그러나 그때에는 구들을 새로 놓는 것하고, 보일러 새로 바꾸는 것하고 무슨 차이가 있는가를 잘 몰랐다. 보일러 스위치만 누르고 살았으니, 구들방이라는 것도 나무막대기 몇 개 아궁이에 집어넣으면 될 줄 알았다. 그 장작을 해마다 어찌 마련해다가, 집 안에 들여 젖지 않게 재어서는, 저녁마다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잘 피우지도 못하는 불을 붙인다고 매캐한 연기를 맡아가며, 온 집에 그을음을 묻히고 검댕을 날리는 일이 있으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끼니로 치자면 밥 사 먹을 식당도 없고, 즉석식품 같은 것도 없이, 오로지 밥때마다 쌀을 씻어 안치고 푸성귀를 조물거려야,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처음에는 얼마쯤 구들방에 불을 넣다가, 슬그머니 보일러 방으로 옮기는 날이 많아졌다. 구들방이라는 게 한번 식은 것을 다시 데우려면 몇 배는 더 애를 써야 하니 점점 악순환. 구들방은 냉골일 때가 더 많아졌는데, 그랬던 것을 집을 새로 고치면서 아예 잠자는 방 두 개 모두에 구들을 놓기로 했다. 불 좀 때고 살았다는 주위 사람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아니, 나무꾼도 아니고 그것을 이제 와서 왜?”라거나, “나무할 산은 있나?”라거나 했다. 아마도 나 또한 누군가 구들방을 놓겠다고 하면 비슷한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여하튼 결심이 서고 일을 벌여서, 있는 구들장을 들어냈는데, 두 평 될까 한 작은 방에 구들돌이며 그 위에 깔아 놓은 흙이 하염없이 두꺼웠다. 구들장을 놓은 옆마을 목수 아저씨가 젊은 사람이 이사왔다고 아주 공을 들여서 일을 해 놓았던 것. 아침 저녁으로 아궁이에서 밥을 하고 소죽을 끓이고 그러는 삶이라면, 늘 불이 있어서 한번 데운 방바닥이 식지 않고 따뜻했을 테고, 저녁에 불 넣는 것도 수월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집처럼 불이라고는 잠자리나 데우는 군불만 넣는 집에서는 나무만 많이 잡아먹는 구들이 되어버린 꼴이었다. 사는 꼴에 맞지 않는 집 꼴.

도시 사람들이 시골 내려와서 처음에 힘들어 하는 것 하나가, 마을 사람들이 집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제는 나도 그렇게 되었다. 마음 쓰이는 사람이 있으면 집은 어떤가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마을에서는 지나다니기만 해도, 그 집 꼴이 보인다. 먹고 자고 놀고 일하는 것이 다 한 자리니까, 집을 보면 무슨 농사를 짓는지,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성품이 어떤지, 그런 것이 고스란하다. 아파트하고는 다르다. 사람이 궁금하니 자연스레 집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우리 집도 새로 구들을 놓는 것에 견주면 단열을 좋게 하려는 것은 영 건성이다. 다섯 식구 모두 여름에는 마루가 시원하고, 겨울에는 방바닥이 뜨끈한 집에 길이 들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시골에 왔을 때, 누군가 “십 년은 되어야 살림이 정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십 년이 되어 가니까 들었던 말을 주워섬겨서는 새로 이사온 사람한테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뭣 좀 안다는 투로 한마디씩 흘리듯 하는 것이다. 구들을 새로 놓고, 집을 손봤지만 처음 지은 집 모양새를 바꾸는 일은 줄이려고 애썼다. 장맛비 같은 봄비가 쏟아진 저녁에 처음으로 구들에 나무를 넣었다. 불이 잘 든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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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폐(積弊)’라는 개념을 사람에게 붙이는 화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종북’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이 폭력적인 것과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표현을 꼭 써야 한다면, 상대편뿐 아니라 스스로의 적폐 또한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진보에도 적폐가 있다. 음모론자들이 바로 진보의 적폐세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은 진보 개혁 세력의 현실 인식을 방해하며, 사안에 대한 상식적 토론을 가로막음으로써, 사회 전체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 보수 적폐세력과 적대적 공존을 이어간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 역시 음모론자들의 개입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 그들은 그 참사의 배후에 단일한 ‘악의 세력’이 존재하기를 원했다. 과적으로 인한 복원력 상실이라는 가장 합리적이고 단순한 이유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 결과 국가정보원의 레이더 무기부터, 미국인지 이스라엘인지 알 수 없는 어떤 나라의 잠수함까지, 수많은 ‘아니면 말고’가 밑도 끝도 없이 던져졌다. 선박 및 교통안전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대신, 음모론을 퍼뜨리는 사람들을 검증하느라 귀중한 논의의 기회가 날아가버렸다.

세월호가 인양되고 난 후 속된 말로 가장 ‘멘붕’에 빠진 쪽도 다름 아닌 일부 진보 세력이었다. 그들은 세월호의 침몰 원인이 잠수함과의 충돌이라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월호가 인양되면 모든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고, 굉장한 음모가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지만 정부에서 그것을 은폐하고 있다는 듯이 분위기를 조성하던 사람들. 세월호가 떠오르자 그들의 목소리는 가라앉았다.

그럼에도 계속 음모론을 생산하는 사람이 있다. 세월호 승무원들이 닻을 던져서 고의로 배를 침몰시켰다고 주장하던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이 대표적이다.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서 세월호 인양 후에도 ‘고의침몰설’을 고수하더니, 지난 14일에는 18대 대선에서 개표 부정이 벌어졌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 <더 플랜>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더 플랜>에서 인터뷰한 UC 버클리대 통계학과 교수 필립 스타크의 말을 통해 <더 플랜>의 기본적 오류를 반박해보자. “옵티컬(광학) 스캐너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종이 기록지가 남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기록지를 재확인할 수 있지만 전자투표는 오류를 확인하거나 수정이나 복원을 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요.”

한국의 선거는 정확히 “옵티컬 스캐너를 이용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전자투표가 아니다. 투표지분류기는 이름 그대로 투표지를 ‘분류’만 해줄 뿐이고, 실제 개표는 사람이 한다. 애초부터 한국의 선거는 수개표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다만 수개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기계를 동원해 표를 ‘분류’할 뿐이다. 미분류표에 박근혜 표가 많았건 문재인 표가 많았건 결과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최종적으로 사람이 손으로 넘겨보고 눈으로 확인하기 때문이다. 개표소에는 각 후보 및 정당에서 추천한 참관인들이 있다. 18대 대선에서 여당에 유리하도록 부정개표가 이루어졌다면 민주통합당에서 추천한 참관인 중에 매수 혹은 협박당한 사람, 혹은 그런 상황을 목격한 증인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물론 그런 사례는 확인된 바 없다.

김어준도 그 사실을 안다. 하지만 ‘아니면 말고’ 아니겠는가. 그러니 나라고 이 시점에서 음모론을 하나 던져보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 19대 대선을 앞두고 18대 대선 개표부정설을 퍼뜨린다니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패배할 경우 불복 운동을 벌이려는 냄새가 나지 않나? 뭐, 아니면 말고. 동쪽에는 트럼프, 서쪽에는 시진핑, 북쪽에는 김정은이 둘러싸고 있는 지금, 음모론 따위에 낭비할 여력은 없다. 진보의 고질병인 음모론, 적폐세력인 음모론자들을 떨쳐내고, 새로운 시대를 헤쳐 나가자.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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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모두에게 소중하다. 몸이 유일한 재산인 노동자들에게 집은 특히 소중하다.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돌아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므로 소모된 노동력은 오로지 충분한 휴식을 통해 재충전할 수밖에 없다. 만약 제대로 된 휴식이 불가능한 숙소에서 머물게 하면서 계속 일을 시킨다면 이는 사실상 강제노동이다.

1970년대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던 청년 전태일도 평화시장 사무실에 찾아가 맨 먼저 요구한 것이 일터 다락방에 마련된 노동자 숙소를 폐지하고 정식 기숙사를 설치하라는 것이었다. 일터 다락방에 얼기설기 만든 숙소는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5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에서 살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업 이주노동자 중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에 살고 있다고 응답한 노동자가 85%를 넘었다.

비닐하우스는 농작물을 재배하는 시설이지 사람을 위한 주거시설이 아니다. 추위와 더위를 제대로 피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화장실이나 욕실 등 기본적인 설비도 열악하다. 직원은 30명이 넘는데 화장실이 1개뿐이거나, 한겨울에도 찬물만 나오는 야외 수도꼭지가 욕실이 된다. 좁은 컨테이너에 10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몰아넣거나, 내부에 얇은 합판으로 공간을 쪼개 남녀의 공동숙소로 사용하는 곳도 있었다. 인권과 노동권의 심각한 침해다.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어서 이주한 노동자들은 일터 이외에 다른 생활터전이 없고, 지출을 최대한 줄여 돈을 모아야 하므로 열악한 주거환경을 견뎌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한 사용자의 숙소제공을 의무화하고, 안정적인 휴식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숙소의 면적, 안전, 위생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다. 미국의 경우, 최소한 1인당 9.29㎡ 이상의 수면 공간, 21.1도 이상을 유지할 수 있는 난방시설, 목욕과 세탁을 위한 온수 설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전에 숙소를 점검해서 기준에 미달하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도록 했다.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고용되어 임금을 받는 ‘을’의 지위에 있으므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할 수 없는 일자리가 처음부터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는 오히려 정반대로 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얼마 전 발표한 ‘외국인 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에 따르면, 사용자가 비닐하우스와 같은 임시시설을 노동자의 숙소로 제공하더라도 월 급여의 최대 13%까지 숙식비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간단한 동의서만 받으면 숙식비를 월급에서 미리 떼고 지급할 수도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비인간적이고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이는 현실을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인권을 침해하는 비인간적인 숙소 사용료를 사용자가 월급에서 먼저 떼어가도록 한 것이다.

이번 지침은 근로기준법에서 선언한 임금의 전액지급 원칙에 위배된다. 무엇보다 앞으로 비닐하우스와 같은 열악한 주거 시설을 계속 늘어나게 만들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노동권을 보장해야 하는 고용노동부가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휴식과 노동력의 재충전에는 관심이 없고, 사용자들이 보다 쉽게 숙소 사용료를 챙기는 데에만 관심을 두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지금이라도 고용노동부는 관련 지침을 개정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기숙사의 기준을 마련하고, 잘 지켜질 수 있도록 점검하는 것이 고용노동부가 해야 할 일이다.

조영관 |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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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닫았던 학교에 다시, 아이가 왔다. 올해 새 학기에 그런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마을의 모든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문을 닫았던 작은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다. 한 명의 입학생으로 시작하는 학교. 예전에 어느 나라에선가는 학생 한 명의 통학을 위해, 폐선될 예정이었던 기차를 졸업 때까지 몇 년이나 더 연장해서 운행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한 명의 학생을 태우기 위해 다니던 작은 기차.

우리집 아이가 다니는 학교도 몇 년 새 아이들이 조금 늘어나는 듯하다가 다시 줄고 있다. 면 지역 안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누구누구 있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 앞으로 이사 오는 집이 많지 않다면 얼마나 학생 수가 줄어들지 어림짐작하고 있다. 이제는 온 나라에 아이들이 줄고 있으니까, 이곳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한 명의 아이를 위해 학교를 다시 열었다는 소식은 반갑기 그지없었지만, 아마도 비슷한 소식을 또 듣게 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현실은 그나마 있는 학교를 지키는 일도 버거우니까.

대개는 작은 학교일수록 학생 수가 적다는 이유로, 학교 살림을 꾸리기가 어렵다. 작년, 학교 운영위원회에 참석하면서 돈 쓰는 일을 들여다보니 사정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전교생이 다 합쳐 100명이 될까 말까 턱걸이를 하다가 한두 명이 모자라게 되면서, 급식소에서 아이들 밥을 챙기는 사람이 두 명에서 한 명으로 줄었다. 병설유치원도 10명이 되지 않으니까, 오후 시간 아이들 간식을 챙기고, 잔손을 거들던 한 사람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몇 명, 몇 명 하는 기준을 만들어 두고 가장 먼저 줄이는 것들이 이런 예산이다.

학교가 작은 만큼 돈 쓰는 것도 적을 수밖에 없다지만, 그게 돈이 모자라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달에는 학교 통학버스 주차장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덧씌우는 공사를 했다. 여름에 그늘을 드리우고, 겨울에는 서리를 막으려 했다는데, 공사를 마친 모양새는 버스 앞머리에 우산 하나 씌워 놓은 꼴이다. 학교 안에 아무도 쓰지 않는 주차장을 몇 면 더 늘리는 공사도 했다. 꼭 필요한 공사는 아닌 것 같았지만, 그것은 ‘시설 예산’으로 정해진 것이라, 다른 곳에 쓸 수 없다고 했다. 없는 형편에 돈주머니를 몇 개 따로 찬 살림이다. 당장 한쪽으로는 돈이 없어 절절매면서도, 반대편에서는 두둑한 돈주머니를 들고서는 어디 돈 쓸 만한 데가 없나 두리번거린다. 규모가 작은 살림의 예산 내역을 보니 이런 것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학교의 살림살이를 결정하는 과정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돈 쓰는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학교에 있다면, 이렇게 돈을 함부로 쓰는 일은 어렵지 않게 바로잡힐 것이다.

나랏돈이 어떻게 쓰이는가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것은, 돈의 쓰임새를 결정할 때 자기 의견을 낼 수 있는 통로가 잘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고, ‘저게 내 살림이라면, 절대 나는 그렇게 돈 안 쓴다’ 싶을 만큼 어이없게 쓰는 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에는 운영위원회라는 것이 있어서 법적으로는 운영위원장이 학교 재정을 집행하는 결정권자이지만, 이름으로만 운영위원회가 굴러가는 학교가 수두룩하다. 이런 학교일수록 정작 학교에서 살아가는 아이들과 선생님에게 필요한 곳에 돈이 쓰이지 않고, 몇몇 사람이 멋대로 쓰거나, 혹은 그보다 더 큰 권력을 쥔 기관이 돈 쓸 곳을 정해 버린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 경선후보는 교육 정책을 말하면서 초·중등 교육에 관한 것은 각 시·도교육청에 맡기고, 학교 자치기구도 제도화하겠다고 했다. 어쨌거나 모여 있는 권력을 자꾸 나누겠다는 뜻일 것이다. 권력이 작고 가까워야 거기에 속한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가 쉬워진다. 그렇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더 가까워지는 일일 테고, 작은 학교가 형편껏 살림살이를 굴릴 수 있는 길도 가까워질 것이다.

전광진 | 상추쌈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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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신화’가 허물어졌다. 재벌 중심 수출 경제의 신화 역시 동시에 무너지고 있다. 청년들은 절망하고 노인들은 폭주한다. 아이들은 더 이상 태어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지식인들은 침묵하거나 공회전하고 있다.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바에 따라 대통령을 파면해낸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국가의 이상을 제시하고 토론해야 할 시점임에도 말이다.

그런데 대체 그 논의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어떤 관점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해석하며 대안을 찾아나가야 하는가? 철학자 존 롤스가 제시한 ‘무지의 장막’을 드리워볼 때이다. 어떤 사회가 근본적인 규칙을 형성해나가고 있다. 그런데 만약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지는 새로운 사회 속에서, 자신이 어떠한 조건에 처하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다고 해보자. 특권층에 유리한 사회 구조를 만든다 해도 내가 그 특권층이 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을 상상해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무지의 장막’이 쳐져 있다면, 사람들은 최대한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규칙을 수립할 것이라는 것이 존 롤스의 생각이었다.

무지의 장막을 쳐놓고 대한민국을 검토해보자. 이 글을 읽는 독자는, 본인에게 어떤 조건이 주어질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인으로 태어나고 싶은가? 자신의 성별, 성정체성, 신체적 장애, 부모의 재산, 교육, 가정환경, 신분 등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대한민국에 태어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라는 말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3월 13일 (출처: 경향신문DB)

무지의 장막에 싸여진 아기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태어나는 그 자체가 엄마의 경력 단절을 낳는 원인이다. 게다가 여자로 태어나면 내 엄마가 겪고 있는 차별이 내게 넘어올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확률은 반반이다. 운 좋게 남자로 태어났다 한들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사회의 일원으로 공정한 대우를 받기 위해 끝없이 투쟁해야 한다. 성소수자라면 본인의 성정체성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리며, 결혼 등 동등한 법적 제도를 누릴 수 없다. 상위 10%에 해당하는 정규직 일자리를 얻는 것이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인생의 목표가 되는데, 일단 그 속에 끼어들지 못한다면 경제적 궁핍을 각오해야 한다. 고소득 정규직 혹은 전문직이 된다 한들 워낙 긴 노동시간으로 인해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은 그저 꿈일 뿐이다.

이런 나라에서 출산율이 높다면 그것은 너무도 이상한 일이 아닐까? 한 여론조사기관이 2016년 1월 수행했던 여론조사에 의하면, 다시 태어나도 대한민국을 선택하겠다는 사람은 조사 대상자 1000명 가운데 30.2%에 지나지 않았다. 11.9%는 잘 모르겠다며 대답을 유보했고 57.9%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응답했다. 같은 조사에 의하면 69.0%가 막연하게나마 이민을 꿈꿔보았다. 이미 대한민국 국민들의 절반 이상이 마음속에서 이 나라를 버린 것이다.

출산율이 낮다. 그러므로 ‘대중에게 무해한 음모론 수준’의 문화 콘텐츠를 만들자, 이런 소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절반 이상의 한국인에게 대한민국은 태어나고 싶은 나라가 아니다. 이미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도 기회만 된다면 ‘탈조선’하겠다는 소리를 공공연하게 한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이 나라에서 많은 것을 얻고 누려왔던 사람들조차 자기 자식은 ‘탈조선’시키겠다며 온갖 편법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그에 대해 사회적으로 지탄하기보다 오히려 부러워하는 듯한 분위기이다. 수십 년에 걸쳐 대한민국에 ‘빨대’를 꽂아온 최순실 일당의 목적도 결국은 ‘탈조선’ 아니었던가?

이 땅에 남아 가치 있는 것들을 만들고, 지키고, 일구고, 가꾸고, 이루어내고, 남기고자 하는 사람들은 바보 취급을 당한다. 이미 정신적으로 죽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이 분위기 속에서 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야 하는지, 무지의 장막 너머의 아기를 설득해낼 수 있는가? 태어나고 싶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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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없는 3월, 그래야 봄이다!” 3월4일, 제19차 촛불집회의 구호였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10일, 헌재의 판결로 구호는 현실이 되었다. 11일, 제20차 촛불집회는 그야말로 봄맞이 축제였다. 날씨도 영락없는 봄날, 낮부터 광화문 광장은 기쁨과 설렘을 감추지 못한 사람들로 붐볐다. 블랙리스트, 비정규직, 정리해고, 노조 파괴 없는 세상을 위한 퍼레이드가 벌어졌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6주기를 맞아, 탈핵을 정부에 요구하고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나비행진’이 이어졌다.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흥겨운 한마당이었다. 그렇게 봄이 온 것 같았다.

같은 날, 이순신 장군 동상 아래. 지난 1월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 중 자살한 한 여고생의 추모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학생은 어른도 견디기 힘든 감정노동에 실적 부족과 장시간 근무로 시달렸다고 한다. “콜 수 못 채웠어.” 언제 오느냐고 묻는 아빠에게 보낸 문자였다. 2013년 너무 힘들고 배고파 못 살겠다며 자살한 삼성전자 서비스 수리기사,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이 떠올랐다. 안타깝지만 문제는 없다는 것이 LG유플러스 고객센터의 입장이다. 문제가 없어도 사람이 죽어 나가니, 영락없이 살인적인 노동 구조다. 위험과 고통의 외주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았다.

전격적인 사드 알박기 반입에 대한 성토와 규탄의 소리도 들려왔다. “여기도 사람 있다. 사람이 살고 있다.” 성주에 내걸린 현수막은 용산, 밀양, 청도가 계속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사드 부지로 제공된 롯데골프장 안팎으로 경찰과 군 병력이 깔렸다. 길도 막았다. 원불교 성직자들은 철야 연좌농성에 돌입했다. 안보와 국익을 앞세운 국가폭력이 여전히 힘없는 사람들의 삶을 짓뭉개고 있다. 아예, 봄은 오지도 않은 것 같았다.

12일 저녁, 청와대를 떠나 삼성동 집으로 돌아간 박근혜씨가 차에서 내렸다. 웃고 있었다. 웃는 얼굴로 지지자들과 담소를 나누고 집안으로 사라졌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도 했다. 자신이 공모한 국정농단 사태가 훤히 드러났는데도 오직 국익을 위해 살았다고 강변하다 파면된 대통령다웠다. 후안무치함에 소름이 돋았다.

“하필왈리(何必曰利).” 국익을 찾는 양나라 혜왕에게 맹자는 인의(仁義)를 찾으라 했다. 맹자는 ‘인’과 ‘의’가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에서 나온다 했다. 아마 맹자는 혜왕이 말하는 국익이 실은 군주의 사익이라는 걸 꿰뚫어 본 것 같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의 마음, 내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세상의 불의를 미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국익은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될 수 없다. 그런 국익은 유력한 소수의 배를 채우는 사익의 분칠일 뿐이다.

정의가 사회적 약자의 이익을 최대화할 때 이루어진다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정의롭지 못하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태도가 그 사회의 수준을 말해준다면, 우리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국익을 앞세운 강자들의 사익 추구는 해방 이후만 따져도 70년을 넘었다. 이 ‘적폐’를 뿌리째 드러내고 도려내야 ‘청산’이 된다. 쉬울 리가 없다. 그래서 세상의 똑똑하다는 사람은 재빨리 국익에 충성하고 사익을 취한다. 출중한 능력은 현실의 변화가 아니라 유지에 사용된다. 세상이 변할 리 없다.

정작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이다(신영복, <담론>). 그리스도교의 표현으론, 십자가의 역설이다.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에도, 주말이면 휴식을 마다하고 거리로 나온 ‘어리석은’ 촛불시민들이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다. 아니, 직접 보고 겪었다.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는, 자연이 사람과 공존하는 평화의 세계를 향해 함께 걸었다. 그런 세상이 마냥 꿈이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하여, 촛불의 마음을 놓지 않는 한, 봄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

조현철 서강대 교수·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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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4차 산업혁명 이야기가 뜨겁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신설하고 사물인터넷(IoT)망 구축 등을 포함한 과학기술정책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은 규제를 개혁하고, 창업 드림랜드와 스타트업 특구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이 왜 시작했는지에 대해서 고민이 깊어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고민은 2009년 오바마 행정부의 ‘리메이킹 아메리카(Remaking America)’라는 슬로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조대기업들은 생산원가의 압박과, 글로벌 기업을 유치해 고용을 늘리겠다는 아시아 국가들의 노력으로 해외로 나섰다. 군수산업을 제외한 제조업 분야를 별 신경쓰지 않으며 금융자본만 키워온 부시 행정부의 기조까지 겹쳤다. 제조업 생산을 이끌던 러스트 벨트의 실직이 만성화 됐다. 실리콘밸리의 IT기술을 제조대기업에 최대한 접목하는 방식으로 방향이 잡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다시 어떻게 제조업을 본국으로 데려올 수 있을까”가 미국 고민의 출발이다.

사물인터넷(IoT), 사이버물리시스템(CPS)을 먼저 정착시켜온 독일 ‘인더스트리 4.0’의 고민도 제조업이 시작이다. BMW, 메르세데스 벤츠로 대표되는 고부가가치 제조업을 선도하면서도 한국과 중국 등 후발주자에 쫓기면서 이윤 압박을 받는 상황이 있었다. ‘히든 챔피언’으로 불리는 중소기업들과 대기업 간의 연계망을 효율적으로 엮어내고, 공장 내부에서 사람이 하던 공정 간 연계를 고도의 생산기술과 SAP 등의 정보기술을 결합해 푸는 것이 스마트팩토리의 구상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 이야기는 IT산업을 다시 육성하자는 플랜에 가깝다. 제조업을 살리기 위해 IT산업의 지혜를 끌어오자는 메시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시급한 고민은 엔지니어들이 당면한 문제를 슬기롭게 푸는 데 있다. 제조업 엔지니어링 역량 축적부터 다양한 산업의 엔지니어들이 함께 협업할 수 있는 방안까지 고민해야 한다. 선진국에선 STEM(과학·테크놀로지·엔지니어링·수학) 역량을 갖춘 엔지니어를 학교가 길러내고, 관록 있는 선배 엔지니어가 코칭해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지 않더라도 엔지니어들은 사내벤처 등을 통해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업계 ‘선수’들은 다 아는 알짜 중견기업 또는 ‘강소기업’으로 길러낸다.

반면 한국에서 제조업 엔지니어어의 미래는 ‘치킨집’으로 상징되는 암울함이다. 엔지니어들은 늘 미래에 대해 걱정한다. 산업도시 근무도 기피하게 되는데, 단순히 ‘시골’이 싫어서가 아니라 ‘현장’에만 있다가 ‘우물 안 개구리’가 될 것이라는 공포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 엔지니어는 채용이 적고 입사해도 ‘현장 정서’ 때문에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 퇴근 후 교류의 장이 ‘밋업’(meet-up) 같은 네트워킹이 아닌 선배들과 ‘팀워크’를 다지기 위한 회식자리가 주라는 점도 압박이다. 일을 효율적으로 하면서 좋은 성과를 내기보다는 혹사로 때우는 일하는 방식도 여전하다. 40대가 되어 새로운 아이디어가 고갈되고 회사에서 밀려나면 그 경험은 축적하지 못한 채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기다릴 뿐이다.

제조업 구조조정은 4차 산업혁명과 무관하지 않다. 제조업 공정 상류부문(R&D, 설계)을 분사해 엔지니어링 회사를 만들 수 있고, 스마트팩토리 도입을 통해 자동화로 생산의 고도화를 할 수도 있다. 그때 현장에서 소외되고 회사를 나갈 확률이 높은 시니어 엔지니어들에게 어떤 몫을 줄 것인가? 새로 유입되는 ‘많이 배운’ 엔지니어들과 현업의 키를 쥐고 있는 중견 엔지니어들에게는 어떤 성장의 전망을 보여줄 것인가? 대선후보들은 엔지니어들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고 꼭 필요한 방안을 찾아낼 때가 아닐까 싶다. 산업진화든, 구조조정이든, 미래산업 양성이든 시간이 별로 없다.

양승훈 | 문화연구자·경남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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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땅값이 제일 비싸다는 강남, 그것도 지하철 2호선 강남역 8번 출구 바로 코앞 역세권에 비닐로 만든 둥지를 틀었다. 제대로 된 지지대 하나 없이 박스와 우산으로 천장을 겨우 받치고 있는 이곳은 비라도 조금 내리면 천장 구석구석에 물웅덩이가 고이고, 입구가 어디인지 찾기 힘든 기묘한 구조물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활동가들은 이곳을 ‘오성급 호텔’이라 부르며 500일이 넘도록 머물고 있다.

오성급 비닐 둥지 뒤로는 44층 높이의 마천루가 자리 잡고 있다. 롯데월드타워를 디자인하기도 한 미국의 유명한 건축설계업체 KPF가 설계한 삼성 서초사옥이다. 삼성전자 본사는 수원에 있지만, 삼성 서초사옥은 그동안 삼성그룹의 심장부 역할을 해왔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등으로 얼마 전 해체를 선언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을 비롯해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의 집무실이 이곳에 있었다. 매끈한 대리석 바닥, 화려한 조명, 웅장한 유리벽 외관을 보더라도 오성급 호텔이라는 설명은 아무래도 이쪽이 더 어울린다.

반올림의 둥지와 삼성의 서초사옥. 이들의 이야기는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 속초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아빠에게는 아끼던 딸이 있었다. 대학 입학을 권유하는 아빠에게 빨리 취직해서 남동생 학비를 마련하겠다고 나선 듬직한 딸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회사인 삼성전자에 취직할 만큼 그는 아빠의 자랑거리였다. 그러던 딸이 삼성전자 입사 2년도 되기 전에 급성골수성백혈병에 걸렸고, 병마와 싸우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2007년 3월6일. 딸 황유미의 나이는 고작 스물셋이었다.

딸의 억울한 마음을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한 아빠는 그날 이후 딸의 죽음의 원인을 찾아 나섰다. 유미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동료들이 백혈병, 비호지킨 림프종과 같은 희귀성 질환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이 진실을 알아주기를 기대했지만, 반도체 산업이 우리나라 경제를 먹여살린다는 판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유독성 화학물질의 위험성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그렇게 그는 반올림을 만나게 되었다.

2014년 8월, 유미가 세상을 떠난 뒤 7년에 걸친 힘겨운 소송 끝에 반도체 노동자 황유미의 죽음은 개인의 질병이 아닌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유미 아빠 황상기씨는 아직도 정확하게 무엇 때문에 유미가 백혈병에 걸리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유미가 삼성전자 반도체 공정에서 다루었던 화학약품 성분이 ‘영업기밀’이라는 이유로 삼성과 고용노동부가 끝까지 공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기업들은 한목소리로 반도체 제작 공정은 안전성이 100% 보장되는 무인 자동화 시설을 갖추어 노동자들의 건강에 어떠한 악영향도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에 따르면 여전히 공정 과정에서 고약한 약품 냄새를 맡으며 일하고 있으며, 생리불순 등 원인을 알 수 없는 질환을 앓고 있는 노동자들이 많다고 한다. 지금까지 반올림에 접수된 피해 제보만 370여건에 달하고, 이 중 230여건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피해 사례다. 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에서 벌거벗은 채 길거리를 활보하는 임금님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옷에 대한 입 발린 칭찬이 아니라, 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부끄러운 진실이다. 화려한 이름에 가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어쩌면 외면해왔던 민낯을 지금이라도 솔직히 마주해야 한다.

오늘은 반도체 노동자 황유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그녀의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강남역 8번 출구 앞 오성급 호텔 앞에서 추모와 기억의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임금님의 길거리 행차를 향해 용감히 진실을 전하던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그곳에서 새로운 봄날의 저녁을 함께 나누자.

조영관 |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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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다쳤다. 엄지손가락 뼈가 그야말로 ‘똑’ 부러졌다.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을 가리키면서 “아주 말끔하게 부러졌네요”라고 했다. 초등 2학년 마지막 날. 온몸으로 기뻐하며 봄방학을 맞이한 결과였다. 이 추운 날에 친구들과 징검다리를 놓겠다며 커다란 돌덩이를 들다가 자기 손을 찧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상처도 크지 않았고, 별로 아파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손가락에 밴드 따위를 붙이고는 몇 시간이나 더 놀다가 저녁 먹을 때 집에 돌아와서는, 그제서야 손가락을 내보였다. 그 정도였으니 뼈가 부러졌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에야 읍내 병원엘 갔다. “오늘, 큰 병원으로 가실 거죠? 여기는 마취전문의가 없어서 수술 못해요. 단순골절이고, 핀 박는 거는 아주 간단한데, 아이라서 전신마취 해야 되거든요.” 의사는 아이에게 석고 붕대를 한 다음 소견서를 써 줬다.         

집으로 돌아와 이런저런 것들을 챙겨서, 큰 병원으로 갔다. 꼬박 한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거리. 읍내에는 병원도 여럿이고, 정형외과도 몇 개 있다. 그러나 아이의 손가락 골절을 치료할 수는 없는 형편.

처음 시골 내려올 때, 주위에서 걱정하면서 물었던 것이 돈벌이, 교육, 의료, 이렇게 세 가지가 가장 많았다. 돈벌이는 점점 적게 벌고 그만큼만 쓰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고, 교육은 아이들이 (그래도 도시에서보다는) 잘 놀면서 자라고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의료는 간단하지 않다.         

사실 병원은 잘 가지 않는 편이고, 건강은 스스로 돌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플 때 기댈 수 있는 좋은 의사가 얼마나 귀한 사람인가는 잘 알고 있다.

귀농, 귀촌한 사람 가운데 꽤 많은 사람이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고 한다. 무엇보다 돈벌이가 어려워서이겠지만, 그 다음으로는 살기에 불편하다는 것이 이유로 꼽히는데, 의료 문제가 빠지지 않는다. 읍내에는 하나뿐이던 응급의료기관이 있다. 그러나 얼마 전 간호사를 구하지 못해서 응급실 지정이 해제되었다고 했다.

전국으로 따져서는 외과가 없는 지역이 서른 곳쯤,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는 각각 쉰 곳. 시골이니 사람이 적게 살고, 그만큼 병원 가기가 불편한 것이야 당연하겠다 싶으면서도, 응급실 가는 데에 한 시간이 넘게 걸리고, 소아과를 가려 해도 그만큼이라니.

이럴 때 가장 눈에 밟히는 것은 크고 번듯한 군청 옆 보건소 건물이다. 언제 가도 그 넓은 건물이 조용하다. 진료를 기다리는 대기자가 여러 사람인 것도 거의 본 적이 없다. 아마 보건소 건물을 짓는 예산도 보건복지 예산이었을 것이다. 10년도 되지 않은 건물이었는데, 지난해에는 멀끔한 건물 내부를 수리한답시고 다시 돈을 들였다. 가까이 있는 면 보건소도 지난해 몇 달 동안 보건소 문을 닫고 공사를 했다.

언젠가 감기가 심해서 이 보건소에 간 적이 있었는데, 처음 받아 온 약(알약 한 알)이 도통 듣지 않아서, 증상을 다시 얘기하고 다른 처방을 부탁드렸다. 그랬더니 “감기약은 그거 하나뿐인데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몇 달 공사를 할 돈은 있어도, 감기약 몇 가지 더 구비할 돈은 없는 보건소였다.

다행히도 아이가 수술을 받은 병원은 여러 가지로 마음이 놓였다. 의사든 간호사든 바쁘긴 해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무슨 이야기든 잘 듣고 찬찬히 이야기해 주었다. 병원 일을 처리하는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       

수술은 잘 받았고, 아이는 그저 석고 붕대가 갑갑할 뿐이라, 벌써 붕대 풀 날짜만 헤아리고 있다. 앞으로 한 달 넘게 꼬박꼬박 그 먼 길을 다녀야 하는 일이 남았다.

전광진 | 상추쌈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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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79년 만에 처음으로 삼성그룹의 총수가 구속되었다고, ‘삼성 불구속 신화’가 깨졌다고 거의 모든 언론이 보도하고 있다. 물론 합법적으로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약간 다른 각도에서 역사를 바라보면, 이미 삼성그룹의 회장은 한 차례 권력에 의해 붙잡힌 후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난 바 있다. 1961년 5월28일, 일본에서 귀국한 이병철 회장이 박정희 장군을 ‘만났다’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박정희는 쿠데타에 성공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업인들을 ‘부정축재자’로 지적하고 체포했다. 그런데 그 시점에 이병철은 일본에 있었고 한 박자 늦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감옥에 갈 줄 알았던 그는, 삼성그룹 비서실에 몸담았던 손병두 전 전경련 상근부회장의 증언에 따르면, 메트로호텔이라는 곳에서 박정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온 어떤 ‘신화’가 이어진다. 박정희는 자신이 경제를 잘 모르므로 어떻게 해야 하냐고 이병철에게 물어보았다고 한다. 이병철은 박정희에게 기업인들을 석방해달라고 직언한 후, 일본의 일본경제인연합회(게이단렌)를 모델로 삼아 오늘날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된 한국경제인연합회를 창설하였으며 국가중심의 경제개발 전략 수립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9일 오전 대치동 특검사무실로 구속된 이후 이틀 연속 소환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적잖은 이들이 박정희 신화, 혹은 한국의 재벌 신화를 윤색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을 일종의 평화로운 회의처럼, 혹은 이병철의 ‘돌직구’가 한국 경제 성장의 방향을 제시한 사업 설명회인 양 포장하곤 한다. 하지만 이병철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계엄 상황이고, 상대는 바로 그 쿠데타의 주인공이다. 형무소가 아니라 호텔에서 만났다 해도 실질적으로 구금 상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박정희의 요구를 받아들이거나 박정희가 생각하던 것보다 더 큰 이익을 안겨줄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만 할 상황이다. 박정희를 오래도록 보좌해온 누군가를 익명으로 인터뷰한 후 다니엘 튜더는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에서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병철은 모종의 방법으로 귀국하라는 설득을 받았고, 돌아오자마자 서울 모처에 감금됐다. 그러나 재능 있는 사업가이자 설득력 있는 화술의 소유자였던 이병철은 박정희 장군과의 협상 끝에, 그가 지닌 대부분의 재산을 국가에 ‘기부’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다른 기업가들이 박정희가 제시하는 경제개발 전략에 따르도록 설득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이병철은 오늘날까지 존속하며 기업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초대 회장이 되었다.”(36쪽)

대한민국의 기업과 정부의 관계란 바로 이렇게 형성되었다. 정권을 손에 쥔 자는 기업의 목에 칼자루를 들이댈 힘을 갖는다. 기업은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며, 그 대신 정부의 경제발전계획에 따라 주요 사업에 참여할 권리와 더불어 해당 사업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시중 금리보다 훨씬 저렴하게 대출받을 수 있다. 물론 그 대출받은 돈 중 일부는 다시 정치인의 뒷주머니로 흘러들어가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재용 측에서 최순실 딸 정유라의 말 구입 및 승마 비용을 지불해놓고도 그것이 뇌물로 제공된 것이 아니라 협박을 받아 내놓은 것이라고 항변하는 것에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강제로’ 돈을 내놓으면 권력으로부터 더 많은 이권을 얻어낼 수 있다는 기대하에 행동했을 따름이다. 1961년 이병철이 불법적으로 ‘구속’될 때부터 2017년 이재용이 합법적으로 구속될 때까지 이어져온 게임의 법칙을 따른 것이다.

‘삼성 불구속 신화’는 없다. 깨진 것이 아니라 원래 없었다. 다만 재벌과 정권의 결탁이 너무도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었기에 그런 신화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이제는 가짜 신화가 사라진 자리에 공정하고 민주적인 시장경제를 수립할 때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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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퇴직하고 영국여행을 다녀왔다. 오래된 산업도시의 ‘현재’가 궁금했다. 북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도시에서 마르크스가 언급했던 영국의 ‘상업 자본주의’가 어떻게 ‘산업 자본주의’의 중심지로 진화했는지 궁금했다. 그 지역에서는 이제 ‘산업’은 찾을 수 없었다. 한때 조선산업을 제패했던 글래스고의 ‘드라이 도크’에선 망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텅 빈 지 이미 수십년이라 했다. 맨체스터의 방직공업부터 중공업 부지에는 박물관과 미디어 단지가 들어섰다. 리버풀은 비틀스 관광상품으로 도배된 도시였다. 뉴캐슬 타인강에서는 ‘조선소’가 있었다는 푯말 하나를 찾았다. 영광을 누렸다던 산업도시들은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 등장했던 노인 연금생활자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 도시들은 반세기 동안 각각 100만 인구에서 절반이 줄었다. 리버풀과 맨체스터의 유별난 축구사랑 뒤에는 별 희망이 없는 북부 잉글랜드의 우울함이 있었다.

산업도시들은 재탄생하는 중이라 했다. 맨체스터는 엔지니어링과 첨단 산업을 육성하는 대학도시로, 리버풀은 문화도시로 거듭나고 있었다. 런던의 금융업은 뉴욕에 패권을 넘겼지만, 정보·기술(IT) 산업이 유럽의 중심이 되고 있다 했다.

마음이 답답했다. 한국의 남동임해공업지역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40년 전 수출보국을 목표로 세운 포항, 울산, 창원, 거제, 여수의 거대한 산업벨트. 조선, 철강, 자동차 산업으로 먹고살았던 도시들은 지속가능할까? 세계 10위 안에 들던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STX 고성조선소가 문을 닫거나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의 수요급감 때문이다. ‘희망버스’만으로 고용을 살리기엔 구조적 변화가 크다. 자동차도 기계장치 산업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업은 원가, 생산, 고용은 몰라도 수요는 관리할 수 없다. 대규모 고용으로 부를 창출했던 산업도시의 미래는 밝지 않다.

영국은 북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제조업을 버렸다. 대처부터 블레어까지 영국의 정치지도자들은 한결같이 경쟁력이 떨어진 굴뚝산업 대신 세련된 금융업과 지식산업의 나라를 만들려 했다. 산업구조조정으로 인해 장인으로 불렸던 노동자들은 불안정노동으로 내몰리거나 연금생활자가 됐다. 연대와 우애로 뭉친 노동계급의 건강한 모습은 철 지난 유행가처럼 잊혀졌다. 노동자들의 다음 세대는 일할 의욕 없이 행패만 부리는 ‘차브’(양아치) 취급이나 받는다. 그래도 영국은 문화의 힘과 역사를 통해 쌓은 대학의 역량으로 그나마 버티고 있다. 노동계급의 역사는 각 도시의 민중사박물관에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그럼에도 노동계급의 분노는 막을 수 없었다. 브렉시트는 그 결과에 가깝다.

한국으로 눈을 돌려본다. 한국은 당장 제조업을 포기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남동임해공업지역의 산업 종사자만 수백만명이다. 그럼 제조업을 그대로 둘 수 있나? 그것도 아니다. 구조조정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거나 원가를 줄여야 한다. 생산직 숙련도를 최고로 올려 최고급 기술로 먹고살든지, 제품개발과 엔지니어링만 남기고 생산을 인건비가 싼 나라로 외주화시켜야 한다. 이주노동자를 많이 고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기술고도화를 통해 공장 내부의 노동력 구성을 바꿀 수도 있다. 원래 GM의 공장이었던 테슬라 공장은 다시 문을 열 때, 비슷한 인원을 고용했다. 생산직은 줄었지만 고학력 설계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늘었다.

고민이 깊었다. 소용돌이 속에서 착실히 생산현장을 지키며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해온 기존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존엄은 지켜질 수 있을까? 인력을 외주화하거나 해고를 해야 하는 것은 기업의 사정이라 하더라도, 지자체와 국가는 당장 준비하고 대비할 게 얼마나 많은가. 뜨거운 정치의 계절, 대선 후보들의 경제와 산업 공약에서는 이런 위기의식이 반영되고는 있을까?

양승훈 |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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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법학교수와 변호사들이 길거리에 나앉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16일 동안 법원 앞에 천막을 쳤다. 278명의 법률가들이 마음을 모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두 사건이 떠오른다. 지난 1월 특검이 신청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청구가 법원에서 기각된 것과 얼마 전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이 청와대의 물리적 거부로 불발된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은 법이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음을, 청와대 압수수색 불발은 법이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특검이 신청한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조의연 판사는 뇌물죄에 대한 특검의 수사가 충분하지 못했고, 구체적 사실관계와 법률적 평가를 둘러싸고 다툼의 여지가 있는 점을 영장기각사유로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의 강요에 의해 최순실 등에게 회사 자금을 지원하였다면 삼성으로선 억울하게 빼앗긴 돈이지, 대가를 바라고 준 뇌물이 아닐 수 있다는 논리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막강한 힘과 권력을 가진 대기업이 억지로 돈을 빼앗겼다는 것도 믿기 어렵거니와, 강요에 의해서라 할지라도 7조원이 넘는 이 부회장 개인 재산을 두고 회사 자금으로 지원한 것은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조직적인 증거인멸을 통해 실체적 진실이 은폐될 위험이 매우 높은 집단범죄의 경우, 의사 결정권을 가진 최고책임자를 조직과 분리할 필요가 있는데도 이 점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법을 공정하게 해석해야 할 법원의 혜량(惠諒)이 유독 기업 총수 같이 힘 있는 사람들에게만 관대하다는 점은 큰 문제다. 수백억 회사자금을 횡령한 범죄를 저지른 재벌총수도 ‘기업을 경영해 국가경제에 기여한 사정’을 유리한 양형사유로 인정하지만, 수년간 성실하게 일한 버스노동자가 착오로 2400원을 회사에 적게 입금한 것을 두고 ‘기본적인 신뢰를 저버리는 중대한 위반 사유’라며 해고가 적법하다고 판결한다. 평등과 정의를 실현해야 할 법원이 약자에게 가혹하게 군림하고 강자에게는 한없이 관대했던 잘못을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 법률가들이 농성에 나선 첫 번째 이유다.

지난주 특검은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았다. 그러나 청와대 직원들이 물리적으로 막아서는 바람에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직책과 권한이 없는 민간인 최순실, 주사아줌마 등은 보안손님으로 자유롭게 드나들던 청와대에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가진 특검 수사관은 들어가지 못했다.

압수수색 장소는 청와대 경호실, 의무실, 민정수석비서관실 등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죄, 세월호 7시간, 블랙리스트 등 지금까지 밝혀진 국정농단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안보시설에 대한 압수수색 제한 규정과 압수수색을 받은 전례가 없다며 막아서는 청와대의 억지에 법원이 발부한 영장도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사실 전례가 없기로는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 견줄 것이 없다. 수천만의 주권자가 촛불을 들고 매주 광장에 모여 박근혜 퇴진과 국정농단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했고, 이를 위해 특검이 활동을 시작했다. 즉, 특검이 발부받은 압수수색 영장은 진실을 밝히라는 수천만 주권자의 요구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궁색한 법 규정을 형식적인 방패막이로 엄중한 주권자의 명령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법을 정의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방해하기 위해 악용하는 권력자의 잘못을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 농성에 나선 또 다른 이유다.

법은 결국 최소한이다. 그동안 법은 공평하지 못했고, 정의와 민주주의 실현에 걸림돌이 되었던 적이 많았다. 지금이라도 주권자의 이름으로 그동안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추운 겨울 강단과 법정 대신 법원 앞 노숙농성을 택한 법률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조영관 |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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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는 순조로웠다. 상제들은 마음을 다치지 않았다. 허투루 쓰이는 돈이 적었고, 마음에 없이 예를 차리지도 않았다. 길고도 짧았던 이틀밤 동안 큰소리도 한번 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병원에 실려 가신 것도, 그리고 그 다음 일도 모든 것이 급작스러웠던 까닭에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순조로웠다’라고 적어 둘 수 있을 것이다.

장례 문화를 바꾸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연명치료에 대한 뜻을 미리 밝혀 놓듯이 자신의 장례를 치르는 절차를 미리 적어 두거나, ‘조문보’, ‘엔딩 노트’ 같은 것을 만들거나, 무엇보다 ‘작은 장례’라는 이름으로 장례식에 드는 시간과 돈을 줄이려고 하는 것들이다. 서울 서대문구는 지자체가 나서고 있고, 몇몇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 가운데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이름을 알고 있어서 이곳에 장례를 맡겼다.

병원에 딸린 장례식장, 그곳에서 이어지는 장례 절차는 2박3일 동안 거침이 없다. 전국 어디를 가나 별로 다르지 않다. 장례식장 안에서는 그렇다. 그리고 흔히 상제들 속을 뒤집어 놓는 것은 그 모든 절차마다 장사치들의 뻔한 수작질이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부모가 돌아가신 사람을 앞에 두고, 그 마음을 휘젓고 긁어서 돈을 뽑아낸다. 앞서 다행이라고 한 것은 장례를 맡긴 조합이 그런 수작질만큼은 하지 않으려는 곳이어서였다. 조합에서 나온 장의사(장례지도사)의 말투는 차분했고, 공손했다. “수의는 평소에 아끼던 옷이 있으시면 그것으로 하셔도 좋습니다.”, “여기 장례식장이나, 납골당 비용에서 저희 조합으로 나중에 리베이트가 오는데요, 그런 것은 모두 돌려 드립니다.” 무엇도 권하는 투로 말하는 것이 없었고, 하나하나 내가 처음 듣고도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여유 있고 꼼꼼하게 설명을 했다. 납골당에서 장의사는 관리인에게 리베이트에 해당하는 금액을 아예 할인해서 계산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30만원이 줄어들었는데, 며칠 지나서 장의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쪽에서 제 말을 잘못 알아들었나 봐요. 30%라고 했는데, 30만원만 깎고 나머지는 여기로 보냈더라구요. 이 돈은 오늘 보내 드릴게요.”

발인날 새벽, 장의사는 작은 종이 가방을 들고 왔다. 긴 밤을 보낸 상제들과 친척들이 탁자 사이에 몸을 누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장의사는 제단 앞에 서서 잠시 고개를 숙이고는, 한 송이씩 꽃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철끈으로 꽃송이 몇 개씩을 묶어서는 어버이날 가슴에 달 만한 크기로 꽃다발을 만들기 시작했다. 조금 더 큰 것도 몇 개 만들고, 아주 큰 것도 하나. 그새 잠에서 깬 우리집 아이들은 옆에 바짝 붙어 앉아서는 저들도 하나씩 꽃다발을 묶었다. “납골당에 가셔서 상제분들이 하나씩 놓아 드리면 좋을 것 같아서요. 꽃이 싱싱하고 좋네요.”

그날의 일을 되짚어 글로 쓰는 동안 절로 고마운 마음이 되살아난다. 거의 모든 일을 장의사에게 맡겨 두었고, 특별히 장례 절차를 치르는 일로 마음고생, 돈고생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고마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장례를 치르는 다른 숱한 사람들이 어처구니없는 사기와 기만을 당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지난해에 마을에서 상을 치르면서 두 번쯤 무덤에 뗏장을 입히는 데에 손을 보탰다. 일을 마치고 어른들과 밥을 먹는 사이, 돌아가신 분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둘 오고 갔다. 젊어서 결혼하고 아이들 낳아 살았던 이야기,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이야기, 여기서 한마디 하면, 옆에서 한 자락 받아서 덧붙이는 식으로. 흙으로 덮일 만큼 떼를 눌러 주어야 떼가 잘 퍼진다면서, 이제 그만해도 될 성싶은데도 무덤가에 오랫동안 둘러서서는 이야기도 그만치 흘러나왔다. 죽은 이 곁에 산 사람이 둘러앉아 서로 그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이 장례의 마지막이라는 듯, 이야기가 얼마큼 차올라서야 사람들이 일어섰다.

전광진 | 상추쌈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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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닐 미(未), 죽을 사(死). 아직 죽지 않았다는 뜻을 담아 은퇴 후 고령층을 국가에서 ‘미사자(未死者)’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다. 대중매체는 ‘미사자 과잉 사회, 잉여 인구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식의 여론몰이를 일삼고 있다. 그런 분위기를 부추기기라도 하는 듯 행정자치부에서는 ‘대한민국 미사자 지도’를 지자체별로 순위를 붙여서 공개한다. 인터넷에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늙은이들 잡으러 가자’, ‘우리 도시를 고려장 특화 도시로’ 같은 ‘농담’이 횡행한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은 가정법이다. 하지만 아마도 독자인 당신에게는 강한 불쾌함과 거부감이 느껴졌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국가 경제’를 앞세워 멀쩡히 살아 있고 앞으로도 쾌적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는 고령의 시민들을 ‘아직 안 죽은 짐짝’ 취급하는 내용이 한가득 담겨 있었으니 말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나는 지금 ‘대한민국 출산지도’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대한민국의 공론장에서 발언하는 그 누구도 ‘고령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고려장을 부활시키자’ 따위의 발언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절대 선택 가능한 대안으로 취급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대신 은퇴 연령 조정이라던가, 연금 정책, 그 외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고령층을 보호하고 그들이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고령층은 ‘인구(人口)’이기에 앞서서 ‘인간(人間)’이다. 인간의 주체성을 박탈하는 사회 정책은 용납될 수 없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상식이 왜 출산율 문제 앞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것일까? 대한민국 출산지도가 공개된 후 얼마 되지 않아 한 인터넷 매체에서는 ‘남자들이 국방의 의무를 지듯이 여성들도 출산의 의무를 지고 애를 낳도록 해야 한다’는 칼럼이 버젓이 게재되었다. 인간을 강제로 죽이는 사회 정책이 용납될 수 없듯, 인간을 강제로 낳게 하는 사회 정책 역시 용납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발언이나 정책에서 인권의 기준치가 확 낮아진다. 나치 독일에서나 시행했었던 ‘의무 출산’ 정책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거론되는 그런 나라가 되어 있다는 말이다.

2017년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은 여자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인간이 아니라 인구로, 인구를 재생산하는 도구로만 바라보고 있다. ‘가임기 여성’들은 단지 자신들의 숫자를 세서 공개했다는 사실 때문에 분노한 게 아니다. 그 숫자, ‘빅데이터’를 취급하는 방식부터가 모욕적이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다.

여성을 ‘주체’로, ‘주어’로 존중한다면, 대한민국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기 위해 ‘도와주는’ 방향을 모색할 것이다. 가임기 여성들의 숫자를 지자체별로 공개한다면 동시에 육아 시설이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성별 임금 격차가 어떠한지 등을 함께 제시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가임기 여성들이 어느 곳에서 아이를 낳고 기를지 결정할 때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정부에서 자료를 공개한 방식은 그와 정반대였다. 지자체별로 ‘순위’를 매겼다. 여성을 ‘목적어’로만 취급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여성들을 보조하는 게 아니라, 지자체를 향해 ‘출산율을 높이라’는 지시를 내리고, 그 순위 경쟁을 위해 여자들이 아기를 ‘낳게 만들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 단순히 통계를 제시했을 뿐이지만 그 숫자가 제시되는 맥락과 방향 속에 너무도 많은 여성혐오와 멸시가 드러나 있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 절실한 것은 ‘출산율 대책’이 아니다. 여성을 온전히 주어의 자리에 놓는, 한낱 목적어의 대상으로 전락시키지 않는 여성 정책이 먼저다. 여자들이 볼 때 이 나라가 아이를 낳아도 되는 나라라면, 아이를 낳을 것이다.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는 대의명분을 내걸고 온갖 여성혐오적 발언을 내뱉는 것이 별문제 아니라는 듯 받아들여지고 있는 한, 이 나라는 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출산율이 아니라 여성 인권이 문제의 본질이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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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들은 얼마 전까지 시민들이 의견을 자유로이 교환하고 토론하고 합의하는 민주주의 마당으로서 온라인 공간, 특히 소셜미디어의 가능성을 말해왔다. ‘아랍의 봄’, 오바마 재선에서 드러났던 시민의 참여, 한국의 촛불시위는 모두 그러한 흐름을 기술적으로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브렉시트, 미국 대선에서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 여론조사에는 응답하지 않는 ‘숨은 보수’ 현상 등은 온라인 공간에 대한 몇 가지 근본적인 의심을 갖게 한다.

우선 시민들의 생각이 데이터 과학 알고리즘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걸러지고 서로 교류하지 않고 서로 접촉하지 않게 될 수 있음이 드러났다. 최근 실리콘밸리 데이터 과학자 사이에서 뜨거웠던 논쟁이 ‘필터 버블’이었다. 필터 버블은 위키백과에 따르면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의 인터넷 정보제공자가 각각의 사용자에 맞추어 개인화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사용자가 이미 필터링된 정보만을 접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상품이나 콘텐츠는 나와 취향이 비슷한 동료도 좋아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도 마찬가지였다. 진보진영 지지자가 페이스북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기사와 팟캐스트 링크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기다 보면, 보수진영 지지자들의 포스팅은 못 볼 확률이 높아진다. ‘대통령 선거 후보’를 검색할 경우, 민주당 ‘잠룡’들만 보이는 식이다. 사용자는 구글과 페이스북을 자신에게 ‘길들인다’고 느끼겠지만 은연중에 무의식적으로 편향된 정보만 접하게 된다.

‘예측’이 불발되고 온라인에 떠도는 정보의 신뢰도가 심각하게 떨어지는 경우가 생겼다. 2012년 미국 대선 결과를 주 단위까지 예측했던 데이터 과학자 네이트 실버는 2016년의 예측 불발로 망신을 샀다. 이론적 기반 중 하나인 ‘베이즈 통계학’은 사전 경험과 현재의 증거를 토대로 정확성을 높인다. 하지만 데이터 과학의 금언처럼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 여론조사나 출구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자나 무당파들의 목소리가 가려진 채 민주당 지지자들의 목소리로 과장된 ‘빅데이터’가 제공됐다. 예측 역시 편향되었다.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정보를 알 수 없는 이상 복잡한 ‘소음’ 속에서 ‘신호’를 잡아낸다는 기획은 맞을 리 없었다.

계층과 세대에 따라 다른 소셜미디어 활용에 따라 ‘분리의 정치’와 ‘혐오’가 강화된다는 것도 큰 위험이다. 한국의 장년층 이상은 정치적 정보를 교류하기 위해 카카오톡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단체 카톡방’에서는 기초적인 사실부터 의심해봐야 할 다양한 정보가 떠다닌다. 트위터는 읽고 싶은 사람의 축약된 메시지만 보게 하고 자신의 무리와 적대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조리돌림’하기에 최적화된 플랫폼이 됐다. 페이스북은 긴 글을 쓰는 식자층의 게시판이 됐다. ‘우리 편 전문가’의 이야기가 ‘우리끼리’ 회자되어 공유되고 ‘좋아요’로 정체성이 된다. 서로서로 “그런 건 궁금하지 않으니 안 보면 된다”는 인식도 더 강해진다.

물론 한국은 미국과 달리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사이트가 여전히 뉴스 소비의 주된 원천이고, 시민 전체의 선호도를 기준으로 뉴스가 배분되는 방식에 가깝다. 촛불시위를 통해 서로 생각이 다른 시민들끼리도 한목소리를 모을 수 있다는 것도 경험했다. 의식적인 필터링이 발생할 수 있는 편향도 소셜미디어 인심과 오프라인 인심의 편차를 확인한 정당과 정치인들이 이해하게 됐다.

그렇다고 온라인 공간과 민주주의에 대해 낙관할 순 없다. 우리는 가정과 학교와 일터에서 토론해 민주적으로 합의하는 것보다 누군가 결정하고 따르는 것에 익숙하다. 취약한 민주주의적 배경에서 다른 생각과 타협하기보다 눈앞에서 ‘치워 버리길’ 원하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경제적 위기는 그러한 혐오가 발산될 판을 깔 수 있다. 세계적인 민주주의 위기는 모두 그렇게 증폭됐다.

양승훈 |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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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이라는 표현으로는 충분치 않은 묵은 해가 지나고 기어코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 해 우리는 존재한다고 믿었던 상식과 원칙이 모두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아니, 보다 분명하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무너져 있었지만 그동안 감춰졌던 우리 사회의 적폐(積弊)의 일부가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엄청난 권한을 선거에서 주권자에게 약속한 대로만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국민에게 약속한 선거 공약은 제대로 지키지 않고,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재벌과 기업은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권력자를 돈으로 매수했고, 부정한 청탁으로 제 잇속을 챙겼다. 직언을 해야 할 참모들은 의식적으로 외면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거나, 적극적으로 공모했다.

그동안 정부는 분초를 다투는 국가적 재난에 무능력하고 무책임하게 대응했고, 결국 절대로 그렇게 보낼 수 없는 보석 같은 아이들이 우리의 곁을 떠났다. 충분한 토론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정책이 정부의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결정으로 밀어붙여지는 경우도 많았다. 경제정책도 낙제점이다. 가계빚은 지난 3년간 240조원이나 폭증했고, 국가채무도 600조원을 넘어섰다. 우연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계획적으로 힘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정책들이 많아졌고,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악재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12월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서 거대한 파도를 연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절망의 순간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지만, 시민들은 그 절망 속에서도 ‘촛불’이라는 희망을 피워냈다. 12월의 마지막 날까지 모두 열 번에 걸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누적 인원의 숫자는 1000만명을 넘겼다. 숫자의 헤아림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경험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변화하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자발적으로 광장에 나온 한 사람, 한 사람이 당당하게 주권자인 자신의 목소리를 표현하고, 서로의 목소리에 최선을 다해 귀 기울이던 촛불집회의 모습은 새로운 사회의 밑그림이 되기 충분하다. 그러나 한 편의 예술작품이 완성되려면 밑그림 위에 반드시 아름다운 색칠이 더해져야 한다. 광장에서 확인한 민주주의라는 밑그림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다양하고 풍부한 상상력의 색깔이 칠해질 때까지 촛불은 계속되어야 한다. 새로운 한 해의 출발점에서, 1000만의 촛불이 그려온 우리 사회의 밑그림에 칠해지길 희망하는 새해 소망을 두서없이 적어본다.

2017년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그 자체로 충분히 존중받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남녀노소, 국가, 종교, 장애, 빈부가 개인을 설명하는 개성 넘치는 내용일 뿐, 부당한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성’이 국가가 관리하는 출산의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임신과 출산을 결정할 권리를 가진 온전한 인간으로 존중받고, ‘이주민’이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공존과 다양성의 원천이 되길 소망한다. 힘 있는 사람들만 누리던 특권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장되는 보편적 인권의 기준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안전’ ‘평등’ ‘민주주의’ ‘사랑’과 같은 아름다운 단어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화석화된 문자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 살아 숨쉬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는 결코 바라고 소망한다고 해서 자연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른 누군가가 대신 만들어줄 수도 없다. 1000만 촛불의 바다를 만들어낸 한 부분이자, 제 몫의 어둠을 온전히 지워낸 하나의 촛불이 올 한 해 각자의 삶의 일터에서 제 몫의 빛을 밝혀내어야 한다. 오늘보다 더 아름다울 내일을 위해서.

조영관 |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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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면 못난 구석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나도 그렇다.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무서운 부끄럽고 못된 생각들이 마음속에 한가득이다. 당연하게도 입 밖으로 튀어나오거나 저지르지 않기 위해 만고의 노력을 다한다. 그럼에도 가끔씩 삐져나오는 못남을 모두 다 막아낼 수는 없다. 어떤 이들은 내 곁을 떠났고, 누군가는 그 못남까지도 끌어안아 주었다. 나는 그들의 관대함으로부터 살아갈 힘을 얻었고, 끊임없이 스스로의 못남과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이것이 나만의 사정은 아닐 터다. 어쩌면 고결하다고 칭송받는 이들도 마음속에서는 자신과의 사투를 벌여야 했을 것이다. 자기합리화의 유혹은 본능적인 것이다. 자기 자신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당연히 자기 자신이고, 그러니 어찌 그 가련한 존재의 사정을 봐주고 싶지 않겠는가. 작은 게으름에서부터 거대한 실수에 이르기까지 누구라도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바깥의 이유들을 찾고 싶어 한다. 만약 자기의 명백한 잘못이 있더라도 그것은 동정과 용서의 대상이지 비난과 처벌의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여기에 억울함이 더해지면 ‘나’는 순식간에 강철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존재가 된다. 억울함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제1의 정서다. 물론 이유야 많다. 당장 매주 토요일 칼바람을 맞고 길거리에 서있어야 하는 일 자체가 억울하다. 잘못한 이들은 따로 있는데 수습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피해자들이다. 어찌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억울함은 위험한 감정이다. 억울함이 나를 사로잡고 나면, 내 허물들은 순식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향해 비난을 퍼붓는 것이 정당화되고, 나의 잘못과 앞으로 저지를 잘못까지도 면죄부가 주어진다. 밝혀지는 모든 진실의 가치는 나의 오류 없음을 증명하는 것에만 쓰이게 된다. 그 억울함이 세상에서 가장 정당한 것일지라도, 그것에 잡아먹히는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편협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종종 한국사회가 억울함의 경기장처럼 느껴지곤 한다. 모두가 소리 높여 자신의 억울함을 외치고 있다. 정당한 억울함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인정과 도움을 바라는 것을 무어라고 할 것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억울함을 경쟁하는 것이다. 조금만 살펴보면 나보다 더 억울하고 고통받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 경쟁은 그런 객관적이고 공정한 경쟁이 아니고, 무질서한 싸움이 되기 십상이다. 약자를 배려하고 그들에게 좋은 자리를 양보하는 연대가 아니라, 그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까지도 내 억울함을 충족시키기 위해 빼앗는 약탈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모든 것에 비난과 책임을 돌리며, 그중에서도 약자들을 기꺼이 짓밟는 비열함이 우리들의 억울함 속에 독버섯처럼 자리 잡고 있다.

대체 누가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차별의 해소는 고사하고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여성들에게 욕설과 조롱으로 일관하는 남성들이 그렇다. 누군가의 특권을 소리 높여 성토하지만, 내가 가진 특권과 욕망은 되돌아보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다. 자신이 대의를 위한다는 사실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용납하지 않으면서, 다른 모든 목소리를 분열의 음모라며 의심하는 이들이 그렇다. 내가 받은 작은 피해에 온 힘을 다해 분노하면서, 다른 이들의 아픔에는 한없이 무딘 사람들이 그렇다. 이것이 절대로 내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뻔뻔하게 주위를 둘러보는 당신과 내가 바로 그렇다.

민주주의자로서 우리는 결국 우리 스스로가 상상하고 만들어낸 공동체를 갖게 될 것이다. 공동체를 파탄으로 몰아넣는 “편협한 개자식”이 바로 나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갖게 될 때, 싸워야 할 악마가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가장 약한 자들의 승리가 나의 승리라는 것을 믿게 될 때 우리들의 억울함은 마침내 해소될 것이다. 우리들이 원하는 것들은 억울함 너머에 있다.

최태섭 | 문화비평가·‘잉여사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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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의 한 장면을 펼쳐보자. 백정인 꺽정이는 양반인 덕순이와 죽이 좀 맞는 편이었다. 하지만 서로 존대와 하대를 해야 하는 처지다. 그런 차별을 순순히 받아들일 임꺽정이 아니다. 두 사람 사이에 존대와 하대에 대해 논쟁이 오가던 중, 머리 깎고 병해대사가 된 갖바치 선생이 꺽정이의 성정을 좀 다스려 보려 한다. “우리말에 층하가 너무 많은 것은 사실이겠지. 그렇지만 어른 아이는 고사하고 양반이니 상사람이니 차별이 있는 바에야 말이 자연 그렇게 될 것 아닌가.”

 

계급 차별을 없애버리면 되지 않느냐는 꺽정이의 반론에 대해 병해대사는 이렇게 논리적으로 응수한다. “벌써 영 내리는 사람과 영 받는 사람에 차별이 있지 아니한가.” 그러나 순순히 물러설 임꺽정이 아니다. “못쓸 차별을 없애려면 영을 내릴 사람이 있어야지요.” 설령 영을 내린다 한들 그 차별이 하루아침에 없어지겠는가? 그러자 결국 임꺽정은 본인의 명성에 걸맞은 대답을 하고야 마는 것이었다. “영을 아니 좇는 놈은 깡그리 죽여버리면 될 것 아니오.” 병해대사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대화는 마무리된다.

 

이 대화에서 임꺽정과 병해대사가 놓치고 있는 지점이 무엇인지 우리는 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조선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영 내리는 사람’과 ‘영 받는 사람’ 사이에 차별이 없다. 그게 바로 민주공화국의 본질이다.

 

우리 대한국민은 모두 같은 법의 지배를 받는다. 차별적 특권 계급의 존재는 용인되지 않고, 모든 이는 법 앞에서의 평등을 누리며 동시에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할 의무를 진다. 그리고 그 법은 국민의 대표 기관인 입법부에서 만들고, 행정부에서 실행에 옮기며, 사법부를 통해 갈등을 법적으로 해결하도록 되어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에서 ‘영 내리는 사람’과 ‘영 받는 사람’은 결국 동일하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와 결합된 법치주의의 핵심인 것이다.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보자. 박근혜 게이트는 왜 문제인가? ‘민주적 법치주의’의 근간이 되는 믿음을 뒤흔들었다는 점이 가장 심각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영 내리는 사람’과 ‘영 받는 사람’이 궁극적으로는 동일하다는 가정을 깨뜨렸다는 말이다.

 

이것은 단순한 비리 사건이 아니다. ‘선출된 권력’ 박근혜의 뒤에 ‘선출될 생각도 없었던 권력’인 최순실 일당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설령 최순실이 ‘착한 비선 실세’였다고 해도 사안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국민은 박근혜를 뽑았지 최순실을 대통령으로 뽑지 않았다. 그러므로 최순실이 기밀로 취급되는 대통령 연설을 주무르고, 온갖 인사에 개입한 것은, 그 자체가 민주공화국의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우리는 법의 지배를 ‘당하는’,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에 ‘복종’하는 임꺽정 같은 신분사회의 피지배계층이 아니다. 우리는 울화가 터진 꺽정이처럼 “영을 아니 좇는 놈은 깡그리 죽여버리”는 식으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헌법, 법률, 조례, 규칙 등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움직이고, 필요하다면 유권자를 대의하는 기관인 의회에서 법규를 바꾸거나 새로 만든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국민의 뜻이 아니라 ‘비선 실세’의 뜻에 따라 나라를 운영하고 있었으니,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그의 권한을 정지시키고 헌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은 그러므로 혁명이 아니다.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적 법치주의의 근본 원리가 온전히 작동했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그 어떤 ‘민란’이나 ‘혁명’보다 급진적인 사건이다. 드디어 우리는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공화국의 시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노정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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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이야기’라는 메뉴를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www.jirisan.com)가 있다. 사이트 주인장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밥상 사진을 올린다. 반찬과 식재료에 관한 간단한 코멘트와 음식에 대한 기억이나 소소한 이야기가 함께 올라온다. 식당에서 사 먹는 밥이 아니라 집밥 사진이다. 아침, 점심, 저녁 대중없고 세계를 넘나드는 사람들의 밥상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하다. 사실 남의 집 밥상 구경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 먹는 밥이다. 아무리 서먹한 사이라 해도 먹을 것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기 마련이다. 뭘 먹느냐에 따라 회의석상에서 나올 일 없는 이야기도, 숟가락을 놓고 컵에 물을 따르며 음식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풀려나온다. 그 사람과의 새로운 기억이 생긴 만큼 ‘밥이라도 한 번 먹은’ 관계는 이전과 다른 질감을 갖게 된다.

“그녀는 생각난 듯이 앉은뱅이 의자를 밥상 앞에 당겨놓고 벽에 걸린 밀짚모자를 내려 자신이 앉은 맞은편에 내려놓는다. 혼자 밥 먹기 싫을 때마다 하는 행동이다. 앉은뱅이 의자를 맞은편에 두고 밀짚모자를 내려놓고 있으면 누군가와 마주 앉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신경숙 소설 <바이올렛>에 나오는 구절이다. 예전에 읽었지만 ‘혼밥’이 싫은 주인공의 심정과 의지할 사람 없는 외로운 주인공의 처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 인상에 남아있었다. 이 대목을 호출한 건 바로 대통령의 ‘지극한 혼밥 사랑’이었다. 대통령 탄핵이 가결되기까지 쏟아진 수많은 충격적인 기사 중에서도 잊혀지지가 않았다.

대통령의 혼밥은 화장실에 자주 가지 않기 위해 국물이 없는 돼지불백을 선호하는 택시기사나, 돈도 시간도 부족해 ‘컵밥’이나 편의점 도시락으로 한 끼를 때우는 취업준비생들의 혼밥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통령이 밥 먹자고 부르면 그야말로 ‘열 일 제쳐 두고’ 달려올 사람도 많을 텐데 업무 시간에 혼자 밥을 먹는다니? 의아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깨어 있으면 집무 중이시고 주무시면 퇴근한 것”이라는 김기춘 실장의 표현대로라면 대통령의 식사 시간이야말로 엄연한 업무 시간 아닌가? 대통령이 “평소 혼자 TV를 보며 식사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는데, 국민 대신 TV와 함께 업무를 본 셈이다. 이쯤 되면 청와대 관저 TV 시청 내역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늘 관저(집)에서 혼자 식사를 했다고 하니, 그동안 집에서 혼자 TV 보면서 밥 먹는 자유로운 직장 생활을 해온 셈이다. 평범한 직장인이었어도 진작에 직장 생활이 끝났을 일인데,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먹을 것을 나눠먹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위로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속 풍경은 비극적이지만 따뜻하다. 아들을 사고로 잃고 슬퍼하는 부부를 만난 빵집 주인은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라며 갓 구워낸 롤빵을 건네고, 부부는 시나몬 롤빵을 나눠먹으며 아침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눈다. 즉석에서 해결책을 제시해 타인의 슬픔을 위로한 빵집 주인과 달리,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당일에도 평소처럼 혼자 관저에서 점심과 저녁을 먹었다고 한다. 대통령이라면 응당 국민과 아픔을 함께 나눠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지금껏 자식을 잃고 상처받은 국민들을 불러 따뜻한 밥 한 끼 나눈 적 없다. 대통령의 의지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가능했을 일이고 어려운 일도 아니다. 매주 일요일 회의를 하러 들어왔다는, ‘경계의 담장을 낮췄던’ 최순실과도 밥은 같이 안 먹은 분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을까?

직무정지된 이후에도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고독하고 익숙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신분만 대통령’인 분께, 지금이라도 함께 먹는 밥을 권하고 싶다. 혼밥을 좋아하는 대통령을 뽑은 국민은 이미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대통령은 맡은 책임을 지는 자로서 외로워야지, 식탁에서조차 외로운 사람이어서는 곤란하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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