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한 짓도 없는데 벌써 한 해가 가버렸다. 이맘때면 늘 매체에서는 ‘20○○년의 인물’을 뽑곤 한다. 그래서 나도 사모하는 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한 인물을 찾아냈다. 이 코너를 통해 공개적으로 그를 나의 ‘2016년의 인물’로 선정했다고 그에게 알리고 감사의 마음을 널리 전하고자 한다. 그는 경찰 물대포에 맞아 세상을 떠난 백남기 농민의 큰딸 백도라지, 일명 ‘나물’님이다. 마침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피격되었을 때 나는 늦둥이 트위터 사용자가 되었고, 그의 계정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고 이후 그의 삶을 1년간 목격하며 많은 것을 생각했다. 모두에게 잔인했던 2016년, 나는 툭하면 혼자 중얼거렸다. ‘나물아 다 죽여.’

나는 서너 해 전 정신분석학적으로 말하자면 ‘주양육자’를 상해사건으로 잃었다. 그전에도 다복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토록 하늘이 무너지는 일은 처음이었다. 내 주변은 한국적으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가득했고, 가해자를 용서하라고 예수의 이름으로 나를 거의 윽박질렀다. 충격이 가시지 않아 떠밀리듯 형식적인 법적 절차와 장례 절차를 밟고 나서 한동안 영혼이 얼얼했다. 비정상이 된 혼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는 대책 없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마음이 즐거우려고 하거나, 좋은 것 먹고 좋은 것 보고 좋은 일 같은 것을 했다간 죽은 이에게 하염없이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잘되고 즐겁게 지내는 것을 떠난 이가 더할 나위 없이 바랄 것임을 알면서도, 더 망가지는 것만이 나의 슬픔을 진정으로 증명하는 방법인 것만 같았다. 아니, 잘 지내면 내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즐거워하면 절대로 안되는 것 같았다. 몇 년째 그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나물님’을 알게 되었다. 정신과 의사들은 정신질환의 치료 첫 단계로 일상의 루틴, 그러니까 일어나서 밥 먹고 운동하고 직장 가고 퇴근하고 친구 만나고 하는 식의 사소한 과정을 지켜나가라고 말한다. 내가 가장 먼저 잃은 것도 그것이었다. 그리고 나물님의 놀라운 점도 그것이었다.

그는 결코 단 한순간도 인생을 놓지 않았다. 망가짐으로써 슬픔을 증명하려 하지 않았고 순결한 피해자의 프레임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다. 그는 누워 있는 아버지를 찾아갔고 가정 내에서 매일 생기는 사소한 일상들을 해결했고 직장에 출근하고 돈을 벌었다. 휴일이면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고 언론을 상대했으며 경찰을 상대로 법적 절차를 밟았다. 가끔 예쁜 것을 사고 맛있는 것도 먹었으며 책을 읽고 운동도 부지런히 했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각종 소수자들의 크고 작은 문제에 끊임없이 연대하고 발언했다. 그는 종종 썼다. ‘나물이는 다 죽입니다.’ 그런 다부진 모습에 어떤 이들은 진정 슬퍼하는 것이 맞냐며 비난을 종종 퍼부었다. 하지만 만일 그가 백남기씨의 장남이었다면, 그의 태도는 독함이 아니라 강인함으로 칭송받았을 것이다.

평범한 인간이 비극에 직면했을 때, 슬픔 속에 비참하게 매몰되지 않고 예쁜 조약돌을 줍듯 일상을 계속 이어나가면서 싸우는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그는 우리 모두에게 알려 주었다. 그래서 그는 나의 영웅이다. 피해를 당한 사람이 한껏 비참하게 일그러져서 슬픔의 ‘진정성’을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었다. 나는 머리채라도 풀어서 향유로 그의 발이라도 닦고 싶은 심정이지만, 나는 그가 나를 일으켜 향유를 다른 이들과 나눠 바를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충격과 슬픔에 빠져 있을 때 가장 지키기 어려운 일상이라는 것을 지켜 나가면서 싸우는 그의 하루하루 모습은 얼핏 소소한 듯 존엄했다. 오히려 그를 보는 사람들이 도리어 위로받는 일이 허다했다.

나의 영웅은 앞으로도 일상의 품위를 잃지 않는 그런 방식으로 싸워나갈 것이며, 나는 할 수 있는 한 무엇이든 도울 것이다. 나물아 다 죽여. You go, girl.

김현진 |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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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동료시민 여러분. 이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가 어떤 추악함을 품고 있는지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주에는 4%라는 기록적인 대통령 지지율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사람들이 청와대를 에워싸고도, 광화문과 종로거리에 여전히 엄청난 인파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거리는 여전히 깨끗했고, 불타거나 깨지는 것 하나 없이 질서정연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는 광장의 질서가 어떤 두려움들을 깔고 있다고 느낍니다. 폭력과 희생자는 없을수록 좋고, 누구에게나 안전한 광장이 되자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라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일까요? 이미 권위를 상실한 대통령일까요? 차벽 뒤의 경찰일까요? 아니면 선진국의 언론일까요? 지지율 4%라는 놀라운 결과를 두고 여전히 버티고 있는 대통령도 굉장하지만, 이 압도적인 여론을 등에 업은 우리들의 조심스러움도 놀랍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광장의 주인인가요? 아니면 법원의 허락과 경찰의 선처를 바라는 공포에 질린 사람들인가요? 저는 최근 일고 있는 ‘폭력 대 비폭력’의 논쟁에 허망함을 느낍니다. 지금의 비폭력은 오직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시위대를 마구잡이로 연행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뿐입니다.

5차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린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경찰이 차벽에 평화시위를 해달라며 걸어놓은 현수막은 저에겐 모욕처럼 느껴졌습니다. 트랙터를 몰고 열흘을 달려온 농민들은 서울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고속도로에서 경찰에게 봉쇄당했습니다. 우리의 눈앞에서 벌어지지 않는다고 폭력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새벽에,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시위에, 우리의 약한 고리들을 경찰은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주권자로서 우리는 권력에 저항하는 수단을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빌미를 제공해선 안 된다’, ‘너는 프락치가 아니냐’와 같은 내면화된 강박과 굴종이 아니라요. 보수언론과 기회주의자들이 우리를 평범한 시민이라 부르고, 시민의식이 돋보이는 평화시위를 찬양하는 것은 우리에게 족쇄를 채우기 위함입니다. 그들은 언제든지 불순세력과 폭력시위로 우리를 매도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정작 광장에 나온 동료시민들에게 충분한 배려와 예우를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광장에서 대통령의 여성성을 조롱하면 마음이 상하는 것은 그걸 듣는 다른 여성 동료시민들입니다. 생각 없이 내뱉는 대부분의 욕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사소한 문제보다 시국이 더 중요하다고요? 그런 말은 이 모든 시국이 끝난 뒤에도 그들을 위한 자리는 없을 것이라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광장을 좁게 만드는 것은 물리적 충돌이 아니라 이렇게 다른 동료시민들의 존재를 하나하나 지워가는 행위에서 비롯됩니다. 정권을 수백 번 바꿔낸들, 사회적 약자들의 삶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과연 정의로운 것일까요? 그렇게 만들어낸 새로운 세계가 어느 날 나를 밀어내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동료시민 여러분, 우리는 이 나라의 처음부터 끝까지 뿌리박혀 있는 불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든 것을 새롭게 세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것을 대신해줄 그 어떤 책임 있는 세력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곧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혁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권력의 시간과 자본의 시간을 정지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만의 호흡으로 새로운 시간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가 싸우는 것은 단지 차벽 너머에 있는 하나의 권력이 아니라, 우리를 고통에 빠트린 모든 억압과 불의, 그리고 그것에 끌려다니던 지난날의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누구의 인정도 바라지 말고 스스로 떳떳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새로운 법을 만들고, 또 그것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혁명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최태섭 | 문화비평가·‘잉여사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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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파이 받아가세요!”

혼잡한 광화문역을 겨우 빠져나오자마자 들린 첫 음성이었다. 엄마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 준비했다며 사람들에게 초코파이를 하나씩 나눠준다. 나도 받아들었다. 초코파이는 달콤하고, 사람들의 표정에는 활기가 넘친다. 차가 사라진 거리는 이미 남녀노소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많이 올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실제 인파를 확인한 사람들 사이에 묘한 동질감이 흐른다. 줄줄이 서 있던 통신사들의 중계기가 무색하게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은 터지지 않고 전화도 끊기기 일쑤였지만 불편하지 않다. 말 그대로 인파를 헤치며, 아니 떠밀리듯 이동했다. 집에 가는 지하철 막차 안보다 사람이 더 많다. 광화문 앞 세종대로에서 사람에 밀려다니는 경험은 또 처음이다.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아무도 짜증내거나 화내는 사람이 없다. 묵묵히 사람들이 움직이는 큰 방향을 따라 이동할 뿐.

“많아지면 달라진다”고 했던가. 21세기 들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지난 토요일의 광화문은 여러모로 진풍경이었다. 촛불 없이 팻말만 들고 있던 내게 누군가 불붙인 초를 건네주고, 옆자리 아주머니는 사탕을 한 움큼 꺼내 내 손에 쥐여줬다.

가수 이승환씨가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3차 집회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마스크와 모자에 붙인 스티커, 손에 들린 팻말까지 “박근혜는 하야하라”가 선명하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혼자 나온 사람들도 즐겁게 웃으며 인증샷을 찍는 풍경도 자주 보인다. 인기 만점 JTBC 중계차 주위에서는 “힘내세요! 사랑해요!”라는 응원이 들린다. 여기저기서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외침이 터져나오는 와중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던 통로는 빠르게 채워져 빈곳을 찾아보기 힘들어진다. 다양한 깃발 사이에서 “아~ 쫌!”이라 써있는 깃발도 눈에 띈다. 외국인에게 일부러 다가가 “위 아 소 앵그리(We are so angry)”라고 설명해주고 가는 사람도 있다.

“힘이 있다고 믿는 곳에 힘이 머무는 법입니다. 힘은 벽의 그림자 같은 것이죠. 그 그림자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아주 작은 남자도 아주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 수 있는 법이죠.”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온 대사다. 지금 청와대에 힘이 있다고 믿는 국민이 몇이나 될까. 2주 연속 5% 지지율이라는 객관적 숫자만으로도 이미 청와대는 힘을 잃었다.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어낼 만큼 거대한 권력인 줄 알았던 청와대와 대통령이 사실 누군가의 줄에 조종당하던 작은 꼭두각시 인형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제 모두 알아버렸다. 국민은 청와대가 더 이상 힘이 있다고 믿지도 않고, 있다고 믿었던 힘을 계속 줄 생각도 없다. 아무런 자격도 없던 비선 실세가 만들어낸 커다란 그림자는 빛에 노출되면서 걷혔고, 그 그림자에 기대던 권력은 힘을 잃었다. 벽의 그림자가 사라진 거리에서 국민들은 마음껏 떠들며 각자 새로운 역사의 페이지를 써가는 중이다.

“오늘은 여기서 끝내고, 다음주와 다다음주에 더 뜨겁게 다시 모이자”는 주최 측의 발언에 군중 속에서 누군가 외쳤다. “빨리 하야하면 그때는 모여서 놀면 되겠네?” 그 재치있는 대답에 예능프로그램에서 김건모가 혼자 술 마시다가 심심해서 아이폰의 인공지능 ‘시리(siri)’에게 말을 걸던 장면이 생각났다. 뭘 물어도 척척 대답하는 ‘시리’에게 말문이 막힌 쉰 살 김건모가 “너 몇 살이야?” 버럭 소리를 지르자 시리는 명랑하게 받아친다. “먹을 만큼 먹었어요.”

지난 12일, 이승환이 100만 군중 앞에서 부른 “야발라바 하야하라 박근혜” 노래 가사를 들려주면 ‘시리’는 뭐라고 답할까. 미리 테스트해본 결과 내 아이폰의 ‘시리’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했지만 적어도 그날 거리에서 마음으로, 몸으로 함께했던 사람들은 그 답을 분명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리’ 역시 그 답이 뭔지 빠른 시일 내에 알게 될 것 같다. 요즘은 인공지능도 그 정도쯤이야 금방 배우는 시대니까.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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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이 유명한 슬로건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나왔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쟁취했던 사회참여의 권리, 동등하게 교육받을 권리, 참정권 등이 주어졌음에도 왜 여성은 해방되지 않았는가라는 의문이 시발점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여성도 얼마든지 공적인 영역에 참여할 수 있는 문이 열린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상은 사회가 사적영역으로 몰아넣은 부분들에서 상존하는 성별위계, 성차별, 성별분업구조가 여성들을 여전히 종속적 위치에 머물게 하고 있었다. ‘마르크시스트도 파시스트도 집에서 설거지를 안 하는 것은 똑같다’는 결론. 그래서 단순히 여성의 사회참여 기회를 증진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여성을 종속적인 지위에 머물게 강제하는 성차별적 사회구조와 공사 구분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아야 한다는 것이 급진주의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 슬로건이 다소 극단적인 형태로 실천된 모습을 보고 있다. 우리가 선출한 대통령이 그 어떤 검증도 거치지 않은 사인에게 국정 운영에 대한 중요한 결정들을 맡겨왔다는 것이다.

심지어 국회도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국방이나 외교 같은 국가안보와 직결된 사안들도 모두 ‘최순실’이라는 사람에게 보고되었고, 그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지금까지 드러난 빙산의 일각이다.

이쯤 되면 앞서 문제가 되었던 ‘서별관회의’는 차라리 권위가 철철 넘쳐흐르는 회의체라고 생각될 판이다. 하다 못해 그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명백히 ‘공인’들이었으니 말이다. 공사 구분에 실패한 것은 대통령만이 아니다. 가령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각계를 불문하고 터져 나오고 있는 성폭력과 성차별에 대한 폭로를 생각해보자. 남성중심사회가 성폭력을 개인 간의 사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은폐하며, 방조한 결과 이제 한국사회는 성폭력과 그에 대한 묵인을 기반으로 세워졌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선언이 맞서 싸우고자 했던 것 중의 핵심이 바로 성폭력의 문제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오늘날 이 선언이 한국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이중으로 씁쓸하게 느껴진다.

권력자들의 사적인 이해·관심과 네트워크들이 온 나라의 공적질서를 교란시켰고, 공적으로 해결되었어야 하는 성폭력은 바로 그 공적 해결 가능성에 대한 뼈저린 학습효과 때문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의 폭로라는 거친 형식으로 터져 나왔다.

공과 사의 구분이 완벽한 반전상을 드러내고 있는 형국이다. 부모를 여의고 불쌍하게 살았으니 대통령이 되라고 투표를 하고, 목숨을 걸고 저항하지 않았다고 피해자를 매도하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고, 정치적인 것이 개인적인 세상인 것이다.

공과 사에 대한 왜곡된 기준을 바로잡는 일은 오늘날의 혼란을 수습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공사 구분법이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각 사회가 가진 공과 사에 대한 관념은 그 사회의 정치적 투쟁의 결과물이다. 개인의 자유를 증진하고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이들이 밀리면, 국가와 사회는 몇몇 권력자들의 주머니 속으로 흩어져 사사화(私事化)된다.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어떤 체계도 모든 것을 보장해줄 순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대화하고, 투쟁하고, 합의하며, 기준을 세우고, 변화시키고, 지켜야 한다. 이 웅성거림과 소란스러움이야말로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기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공공의 이익을 저해하는 이들을 향해 다시 외쳐야 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최태섭 문화비평가·‘잉여사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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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최순실(최서원)을 둘러싼 설왕설래로 들썩인다. 여러 가지 의혹이 쏟아지고 있지만, 가장 흥미롭게 지켜봤던 부분은 바로 재단 설립 인허가 과정이다. 재단법인 설립이 허가되기까지 평균 21.6일이 걸린다는데, 미르재단은 5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과정 또한 드라마틱하고 비현실적이다. 실무자가 세종시에서 서울까지 출장 가서 서류를 받고, 저녁 8시7분에 기안을 올린다. 8시10분에 사무관이, 8시27분에 과장이 원격 결재를 한다. 실시간 결재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속도인데, 결국 윗사람이 기다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문체부 고위공무원의 저녁 시간을 정지시킬 수 있는 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누군가의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권력의 힘이다. 사람들이 권력을 갖고 싶어 하는 것도,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 것도 생각해보면 타인의 시간을 사거나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회사에 매인 시간’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니까.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0월11일 출처: 경향신문DB

회사를 다니고 월급을 받는다는 건 결국 누군가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보내는 내 시간의 대가다. “월급이란 젊음을 동대문 시장의 포목처럼 끊어다 팔아 얻는 것이다. 월급을 받을수록 나는 젊음을 잃는다. 늙어간다. 가능성과 원기를 잃는 것이다. 존재가 가난해진다.” 이혁진의 소설 <누운 배>에 나오는 구절이다. 실제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소설을 썼다는 작가의 글이라 그런지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최근 읽은 소리꾼 이자람의 인터뷰가 겹쳐 떠올랐다.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러닝 타임 동안의 여행, 이것이 공연자로서 제 삶의 전부일 것 같은데요. 제 삶은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들로 쌓여가는 것 같습니다.” 읽는 순간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자신의 삶과 시간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정하고 그 길에서 매진하고 있는 사람 특유의 겸손하지만, 단호한 느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공연자 자신조차 오롯이 무대 위의 시간을 위해 쓰겠다고 작정하고 준비해 만드는 예술가의 작품, 그리고 그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가의 시간들은 얼마나 촘촘하고 단단하게 구성되어 있을까?

직장을 다니다가 전업 작가로 돌아선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전에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불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선택을 감행한 그들의 용기가 부럽고, 한 번도 결단하지 못한 채 조직에 머물러 있는 내가 비겁하게 느껴진다. 그들은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고 얻을 수 없는 것을 위해,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결단을 내린 사람들이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고 말하는 그들이 부럽지만 어쩌겠는가. 선택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 있기 마련이고 결국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선택과 그 결과는 본인의 책임이다.

물론 개인의 시간이 개인 한 사람만의 책임만은 아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할 책임은 분명하다. 후속 세대가 누리고 영위하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그 일상의 시간과 사회의 공기를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장 민주정부 10년 시기에 20대를 통과한 나와 이명박근혜 정부 시절에 20대를 보낸 후배들만 비교해 봐도 차이가 확연하다. 비상식이 상식처럼 버젓이 통용되고, ‘블랙리스트’가 돌아다니는 시대 분위기에서 과연 자기 검열에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 보고 듣고 느끼며 공기처럼 흡수한 동시대 시간의 영향력이 놀라운 이유다. ‘나는 비로소 내가 될 테지만 그 나는 얼마나 보잘것없을까.’ 소설 <누운 배> 속 구절을 다시 읽으며 내게 묻는다.

나는 내 시간을 무엇으로 보내고 있는가? 그 시간으로 이뤄진 나는 누구일까? 내가 듣고 보고 읽고 만나고 호흡하는 이 시대를 위해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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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세상에 나타났을 때, 죽음도 함께 있었다. 죽음은 지구의 운명을 좌우하게 된 콧대 높은 인류가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영역이다. 어쩌면 이 정해진 운명에 대해서 필멸자로서의 인류가 쳐왔던 발버둥의 흔적이 이름하여 ‘문명’일 터다. 무리를 짓고, 종교를 만들고, 자신의 육신이 다한 이후에도 기억되기 위하여 무언가를 위해 노력한 흔적들의 총체가 그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노력의 산물 중 하나가 다름 아닌 국가다. 국가의 기원과 발전과정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을지라도, 그 핵심기능이 국가에 속한 구성원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너무 오랜 시간 익숙해져서 잊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이 국가의 말에 따르기로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국가가 나를 보호해준다는 전제가 있을 때만이다. 이 약속을 깨트린 국가를 국가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런데 그 국가가 살인을 저질렀다. 모든 사람들이 고 백남기 농민을 향하는 물대포를 보았다. 이 사건에 미스터리는 없다.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고, 농민이 쓰러졌고, 그 이후로 의식불명 상태에서 10개월여를 힘겹게 투병하다 결국 세상을 떠났다. 증거와 목격자가 넘쳐나고, 미심쩍은 부분도 없다.

국가가 혐의를 받고 있는 다른 죽음들은 하다못해 사고였노라고 주장할 여지라도 있었다. 그러나 이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총으로 사람을 쏜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이 사실이 왜곡되기 위해서는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개입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 국가는 자꾸 이 사건의 장르를 미스터리 추리극으로 만들고 싶은 모양이다. 멀쩡하던 사람이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왜 죽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부검을 해봐야 한다고 우겼고 결국 영장이 발부되고야 말았다.

고작 정권 차원의 면피를 위해, 말조차도 아닌 모호하고 구역질 나는 무언가를 공식적으로 토해내기 위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고인의 시신을 파헤치려 한다.

아무도 해치지 않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그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5년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고 있는데, 같은 광장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대한 심판은 끔찍하게도 더디다. 그 와중에 음모론자들과, 폴리스라인을 밟았으니 죽어 마땅하다는 얼치기 법치주의자들이 더해졌다.

이들의 목적은 진실을 빌미 삼아 진실에 먹칠을 하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바보가 되라며 협박하는 일이다.

그러나 국가가 어떤 공식입장을 발표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전달될 메시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이 국가는 구성원을 보호할 의지가 없고, 죽음조차도 존중할 생각이 없다.

이 국가는 아무것도 보장할 생각이 없고, 오로지 통치자들의 안위만이 중요하다. 망루에 불이 나고, 배가 침몰하고, 굶어 죽고, 공중화장실에서 살해당하고, 달려오는 열차에 치여도 이 국가는 관심이 없다.

조용히 그리고 가만히 있다가 죽으라는 것이 이 국가가 사람들의 목숨을 대하는 태도이다. 자살하지 말고 애나 많이 낳으면서 필요한 만큼의 인구로서만 존재하라는 것이다.

국가가 사람들을 영원히 살도록 해줄 수는 없지만, 막을 수 있는 죽음을 예방하고 어쩔 수 없는 죽음들에 대하여 예를 갖춰 애도하는 것은 할 수 있다. 그런데 국가가 그 최소한의 책임을 방기하고 제멋에 겨운 통치놀이에 열중하게 된 결과, 그 죽음들을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것은 오롯이 사람들의 몫으로 떠넘겨졌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에는 ‘나였을지도 모르는’ 죽음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국가는 이 최소한의 책임을 방기할 것이라면 하루빨리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혀주길 바란다. 그래야 우리들도 하루빨리 이것은 더 이상 국가가 아니라는 선언을 공식적으로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최태섭 문화비평가·‘잉여사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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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내작은말학교’에서 말과 함께 일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전처럼 마음 편하게 영화 같은 걸 즐기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얼마 전 <황야의 7인>을 리메이크했다고 하는 <매그니피센트 7>을 보러 갔다.

그런데 다이너마이트가 뻥 터져서 말들이 내팽개쳐지는 장면이나 말 우리를 가운데 두고 총격전이 벌어지는 것에만 신경을 쓰며 “아니 말! 말 어떡해!” 하며 피 흘리는 미남 배우의 안위보다 넘어져 네 다리를 버둥거리는 말의 생사만 확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영화 사상 가장 멋진 기병전으로 꼽히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 중 ‘로한’ 기마대 돌격전 같은 장면도 전처럼 편하게 볼 수 없다. 창에 꿰뚫리고 화살의 비를 맞아 쓰러지는 말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말 산업은 현재 경마에 대부분 편중돼 있다. 그래서 ‘말 산업’ 같은 기사를 보면 혈통이 어떠어떠한 잘생긴 말의 얼굴을 떡하니 올려놓고 “XXX 드디어 씨수말 데뷔! 데뷔 기념으로 목장당 1회씩 무료 교배!” 이런 커다란 글씨에 느낌표를 아끼지 않는 광고 천지라 “아이고 말의 세계는 좀 노골적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보니 노골적인 것은 사람이지 말이 아니다.

나는 경마의 매력을 잘 모르지만, 그 짜릿함을 알고 말을 빨리 달리게 하고 싶은 것도 결국 사람의 욕심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말은 참 신기한 동물이다. 세상천지에 어느 동물이 등에 누굴 태우고 걷거나 달리고 싶을까. 그런데 순순히 안장을 올리고 복대를 차고 사람이 가자는 대로 가는 걸 보면 신기하기 짝이 없다.

몽골 설화에 따르면 사슴이 말이 먹을 풀을 몰래 먹어치워 말이 화가 나 있었다. 그때 사람이 말에게 다가와 안장과 굴레를 채우게 해 준다면, 사슴을 잡아 복수를 해 주겠다고 제안한다. 말은 그만 그걸 받아들여 그때부터 말은 사슴 사냥을 하고, 사람을 태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홋카이도의 농사말처럼 몸무게가 1t이나 나가는 힘센 짐말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작은말학교의 말들은 고작해야 염소만 한 조그만 말들이다 보니 위압감보다는 귀엽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50㎏ 정도 나가는 조그만 막내말 ‘제니’가 갑자기 마장을 마구 달리기 시작하자 한가롭게 마장을 노닐던 다른 말들도 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마침 말똥을 치우느라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고 엉거주춤 서 있는 내 앞을 말들이 갈기를 휘날리며 휙휙 무섭게 달려 나갔다. 조그만 ‘고셔’가 내 발을 밟아 엄지발톱이 그대로 빠진 다음이라 덜컥 무서웠다. 부딪혀서 짓밟혔다간 갈비뼈 서너 대 나가는 건 금방일 거 같았다. 일단 말똥이 잔뜩 든 쓰레받기를 꼭 붙잡고 벽에 바짝 붙었다.

‘다그닥다그닥’ 소리를 내며 네 다리로 땅을 박차고 아무 이유 없이 무조건 달리는 말들의 모습이 문득 무척 아름다워 보여서, 나는 숨을 죽였다. 사람에게 잘 보이건 말건 전혀 상관하지 않는 존재들이 간혹 내뿜는 아름다움은 그렇게 압도적이다. 이럴 때면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다’라는 릴케의 글귀를 떠올린다.

인간은 우리가 세상의 중심에 존재하는 게 너무나 마땅한 듯이 지금껏 살아와서, 다른 동물들에게는 잘 보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달리는 말들의 그 자체로 당당한 아름다움을 보면, 마치 그것이 우리를 멸시하는 듯 느끼게도 된다.

일상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이러한 아름다움을 볼 때, 인간으로 태어난 비루함과, 인간으로 태어난 고마움이 동시에 찾아온다. 우리는 더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등에 태워 주고, 무시무시한 창을 향해 함께 내달리고, 안겨 주고, 쓰다듬게 해 주고, 위로해 주고 심지어 털가죽을 내주고 잡아먹혀 주는 그 모든 인간 아닌 것들에게.

김현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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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는 신기한 직업이 있다. 바로 가스등의 불을 켜고 끄는 일이다. 자그레브 구시가지(Upper city) 내 건물에 달려있고, 번호가 부여돼 있는 이 가스등들은 일일이 수작업으로 불을 붙이고 꺼야 하는 옛날 가로등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전기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200여개에 달하는 구시가지 내 가스등 전부의 불을 밝히고, 끄러 다니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고 한다. 그게 직업이라는 것도 신기한데 심지어 공무원이란다.

오래된 도시를 구석구석 돌면서, 긴 막대기로 가스등의 불을 하나하나 직접 밝히고, 끄는 직업이라니! 2인 1조로 다닌다는 그분들은 번호만 말해도 그 가스등이 어느 건물에 붙어있는지 알 테고, 매일매일 도시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샅샅이 파악하고 있을 테다. 자동으로 켜졌다 꺼지는 현대식 가로등보다 비효율적일지는 몰라도, 꽤 낭만적이지 않은가. 비 오는 날 구식 가스등이 만들어내는 빛이 어우러지는 오래된 도시의 풍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이 옛날 가스등은 관광이 중요한 수입원인 크로아티아에서 제공하는 볼거리면서, 중세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구시가지만의 매력을 한층 더하는 아이템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 만약 자그레브 구시가지의 가로등이 최신식이라면, 어디에도 없는 번호 붙은 구식 가스등이 만들어내는 도시의 풍경과 하나뿐인 직업의 이야기도 사라질 테다.

한국에 이런 직업이 생긴다면 어떨까. 친척들이 “취직은 했니?”라고 물으면 “가로등을 켜고 끄는 일을 하고 있어요”라고 답하는 대신 “공무원 됐어요”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한국에서는 “삼성 다녀요”, “선생님입니다”처럼 한 문장으로 설명 가능한 직업이 아니면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뭐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길어지면 일단 불합격이다. “그거 해서 먹고살겠나”와 ‘알 만한 기업’을 다니느냐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그 사람이 행복한지, 삶에 만족하는지는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다. “그림 그리고 글씨도 쓰고 이것저것 합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늘 “뭐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만 듣는다며 괴로워하던 친구 하나는 전략을 바꾸더니 얼굴이 폈다. “먹고살 만합니다”라고 대답하면 만사 오케이라나.

대기업에 들어간다고 삶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이 27.7%라는 통계를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이,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제주 이민’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제주로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덕후 투어’만 기획하는 여행사, 지리산 자락에 식당을 차린 청춘들, 한 달에 한 도시씩 24개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도 있다. ‘직장’을 다닌다고 ‘직업’이 생기는 게 아니라는 현실을 일찍 깨닫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아직 대세는 아니다. 대학 나와서 백수가 되느니 일찍부터 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생(고딩), ‘공딩족’이 등장할 정도로 안정적인 직업에 대한 선호도는 여전하다. 하지만 살펴보면 ‘남들 다 가는 길’은 정답이 아닌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전화번호를 ‘오리구이’와 소리가 비슷하게 ‘5292’를 많이 쓸 정도로 유행했다는 오리구이집을 비롯해 찜닭 전문점, 조개구이집, 닭강정집 등이 우후죽순 생겨났다가 어느새 없어져 버린 것처럼 말이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절대 과제라고 한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인 지금, 안정적인 일자리는 창출하기도 어렵고, 그 일자리가 언제까지 안정적일지 아무도 보장할 수 없다. 오히려 정규직으로 살지 않아도 기본적인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만들고, 다양한 직업과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것이 훨씬 빠른 길이다. 크로아티아의 ‘가로등 켜고 끄는 공무원’처럼, 매력적이면서 지속 가능한 틈새들이 한국 사회에는 더 많이 필요하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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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씨가 봉급생활자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진 것은 2008년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 기회가 처음 주어진 것은 1999년의 일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의 한파가 몰아닥쳤지만, 다행히도 ㄱ씨는 그 격변의 흐름에서 한발짝 비켜나 있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ㄱ씨는 한숨을 돌린 뒤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바이 코리아’ 열풍이 한창일 때였다. 아파트 대출금을 갚은 뒤 고금리 적금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목돈을 주식에 투자했고, 그 돈은 몇 번에 걸쳐 상승의 흐름을 타면서 빠르게 몸집을 불려갔다. ㄱ씨는 이 돈의 투자처를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 ㄱ씨가 ㄴ일보의 부동산 칼럼을 보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늦은 퇴근길에 들른 음식점에서였다. 그 칼럼은 1999년의 주가 상승이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2000년의 주택 공급 물량 부족이 부동산 시장의 가격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꽤나 설득력있는 주장있었다. 그날 이후 ㄱ씨는 매일 그 신문의 부동산면을 챙겨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 기사의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정말로 2000년 3월부터 부동산 시장은 밀레니엄의 들뜬 분위기와 함께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외환위기 직후 530만원대까지 폭락했던 서울 아파트의 평당 가격은 600만원대에 재진입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부동산 시장으로의 이동은 당연한 일처럼 보였다. 문제는 시기였다. ㄱ씨는 재건축 대상으로 회자되던 강남 저밀도 아파트의 동향을 투자 시기를 가늠하는 지표로 주목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수그러지는 듯했던 재건축의 소문은 1999년부터 다시 신문 지면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2000년 2월 중반, ㄴ일보의 부동산 칼럼은 강남의 일부 부유층이 자녀에게 증여하기 위해 개포동 주공아파트를 매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양도세나 증여세의 기준이 되는 국세청의 기준시가가 일반 아파트의 경우 시세의 80% 수준인 반면, 이 아파트는 시세의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이 주목하는 이유였다. 상대적으로 세금 부담이 적었기 때문이다. ‘강남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1930~1940년대생 중상류층은 재건축 아파트를 통해 편법 증여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ㄱ씨는 적당한 매물을 찾기 위해 주말마다 강남 일대의 부동산중개업소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얼마 후 마음에 쏙 드는 아파트를 발견했다. 반포의 저밀도 아파트 단지였다. 중개업자에 따르면 25평 아파트의 시세는 2억8000만~3억5000만원 선, 전세가는 25평이 9000만~1억원 선이었다. ㄱ씨는 강남의 역사를 다룬 손정목 선생의 글을 챙겨 읽었던 터라, 이 아파트 단지가 1970년대 중반부터 예비 중산층에게 내집 마련의 기회이자 강남으로의 진입로 구실을 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고층 아파트가 세워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재건축 아파트는 일단 강남으로의 진입로를 봉쇄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건설사와 조합원의 이익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터라 중대형 아파트 위주로 높은 분양가가 책정될 것이고, 그 분양가는 다시 주변 아파트의 시세를 끌어올릴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연쇄반응은 강남 아파트의 가격을 상향조정하면서 진입장벽을 이전보다 훨씬 높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렇다면 한강변을 따라 반포에서 잠실까지 이어진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은 일종의 폐쇄형 주거지역으로 진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상황 전개는 강남의 미래에 대한 청신호나 다름없었다. ㄱ씨는 주저 없이 반포의 아파트를 매입했다.

ㄱ씨의 바람대로 타워형의 재건축 아파트들이 완공된 것은 2008년 가을의 일이었다. 평당 분양가는 3000만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점에 ㄱ씨가 다음 투자처로 강북 번화가의 상업용 부동산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가 그리 익숙지 않은 시점이었다.

박해천 |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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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수영 선수들이 여자 탈의실에 카메라를 설치해 알몸을 찍었다는 보도가 나와도, 대한민국은 큰 충격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남성 위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피해자인 여자 국가대표 수영 선수들이 누구일지 추측하며 시시덕거리기까지 했다. 물론 훨씬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시피, 대한민국은 ‘몰카’의 왕국이다.

이토록 ‘몰카 범죄’가 만연한 것은 기술적 이유 때문인가? 다시 말해, 스마트폰과 초소형 녹화 장비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진 탓에 벌어지고 있는 불가피한 현상인가? 자동차가 보급되면 교통사고가 늘어나듯, 인터넷에서 검색만 해도 CCTV부터 뿔테 안경까지 온갖 일상적 사물로 위장한 카메라를 구입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몰카’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가?

경찰이 몰카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지하철역 계단에서 몰카 근절 캠페인을 벌인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와 함께 가산디지털단지·광화문·공덕역에 '몰카 아웃 계단'을 3주 동안 운영한다고 18일 밝혔다. 사진은 이날 오후 공덕역에 설치된 몰카 아웃 계단. 연합뉴스

인터넷이라는 것이 이 땅에 도입된 후, 동의 없이 촬영하거나 유포한 성관계 영상은 언제나 어딘가의 하드디스크 속에 존재해왔다. 모 연예인의 성관계 장면이 담긴 ‘O양 비디오’부터, 중학생으로 추정되는 청소년들의 성행위가 찍힌 ‘빨간 마후라’ 등, 한국의 네티즌남(男)들은 ‘몰카’ 혹은 이른바 ‘리벤지 포르노’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즐겨오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적잖은 남자들은 ‘그렇다’라고 대답하고 싶을 것이다. 나와 내 친구들이 잘못한 게 아니라, 카메라와 인터넷이 잘못한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그것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이다. 주요 국가들 가운데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할 때 소리가 나도록 규제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하지만 공공장소, 특히 대중교통에서 ‘몰카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나라 역시 한국과 일본이다.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 특히 남자들의 문제다. ‘몰카를 찍는 것은 비겁한 죄를 저지르는 것이며 그걸 본다면 그 죄에 동참하는 것과 같다’는 도덕적 기준이 작동하지 않는 일종의 아노미 현상인 것이다.

그 남자들은 타인의 알몸, 성기, 항문, 성행위 장면, 심지어 배설 장면 등을 몰래 찍고 돌려보면서도 자신의 존엄성이 깎여나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이 남의 치부를 훔쳐봄으로써 상대방을 모욕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쾌감을 느낀다. 성적 쾌감 이전에 모욕하는 쾌감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몰카 범죄’의 본질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몰카’를 문제로 인식하는지부터가 의심스럽다는 데 있다. 가령 <내부자들>은 결국 ‘몰카로 정의구현’하는 영화인데, 대략 1000만명가량의 관객이 그 작품을 봤지만, 문제의식은커녕 대다수가 후련함과 통쾌함을 느꼈다고 한다. 최근 <뉴스타파>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성매매 현장이 담긴 ‘몰카’를 입수해 공개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 기업이 회삿돈을 ‘오너’의 성매매 비용으로 썼다면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몰카’ 공개가 과연 독립언론의 품격에 어울리는 일인지, 그 영상을 편집해서 공개하는 것은 정당한 일인지, 그런 도덕적 차원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나는 성판매자가 아니라 성구매자를 처벌해야 성매매의 해악을 근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수요억제론자다. 이건희도 예외일 수 없다. 그를 옹호하기 위해 이 칼럼을 쓰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 있는 사람 중 하나인 그가 피해자가 됐는데도 ‘몰카’에 대해 이토록 무덤덤하다는 사실이 소름 끼칠 뿐이다. 이건희가 당해도 다들 시시덕거릴 뿐이라면, 그 많은 ‘몰카’와 ‘리벤지 포르노’의 피해자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단 말인가.

‘몰카’는 잠재적 피해자인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잠재적 가해자인 남성들의 인간적 품위와 존엄의 문제이기도 하다. 엄정한 수사와 처벌이 요구되는 것은 그래서다. 도덕적 기준이 삐뚤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사회적 당위를 추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몰카’에는 우리 사회의 곯아버린 내면이 찍혀 있는 것이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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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권쯤 되는 책과 한 편의 장편영화 각본을 썼지만, 그것들 중 무엇도 내 이름 앞에 ‘전업’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게 해주지 않았다. 주부 말고 ‘작가’ 말이다. 어찌 보면 저렇게 많은 글을 생산해놓고도 전업작가로 생활하지 못한다는 데서 내 한계를 절감해야 했건만, 둔한 것은 늘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만둔 직장은 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공기업이었고, 처음으로 어머니가 우리 딸이 어디서 뭐 한다고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해준 곳이었지만, 몸과 마음이 가눌 수 없이 너덜너덜한 정신상태가 되어 사표를 냈다.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연달아 잃은 것, 거기에 적절히 애도하지 못한 것이 밤에 잠자고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가는 일상적인 활동조차 할 수 없는 중증의 우울증으로 이어졌다. 그걸 이겨내기 위해 정신과 치료도 받고 글도 쓰고 책도 내고 자원봉사도 하고 팟캐스트도 하고, 내리 3년을 악전고투했지만, 정신차려 보니 나는 중풍환자처럼 누워만 지냈다. 그것도 빚만 늘어가는 상태로, 세상에서 30대 중반에 접어드는 여성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뭐 하나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내도 아니고 엄마도 아니고 효도하는 딸도 아니고 유능한 직장인도 아니고.

그때 지금 직장의 대표를 만났는데, 그는 내 독자였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런저런 하소연을 읽은 상태라 필요 반 측은지심 반으로 일감을 좀 줄 셈이었을 뿐인데, 나는 그가 하는 일을 알고서 거의 몸을 내던지듯 애걸했다. 저 거기 취직시켜 주세요. 그리로 이사도 가겠습니다. 몇 년 전 어느 동물원에서 아주 조그만 말 ‘미니어처 호스’를 보고 홀딱 반한 적이 있는데, 이 분이 운영하는 ‘별내작은말학교’에는 그런 말이 무려 열여덟 마리나 있다는 거였다. 큰 말을 탈 수 없는 꼬마 아이들이 와서 큰 개나 염소만 해서 귀엽고 안전한 이 작은 말들을 타고 함께 노는 곳이었다.

대체로 사회에서 이상적이라 여겨지는 4인 가구 손님이 많았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여성들이 아이, 배우자와 함께 와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갔다. 사무실에만 앉아 있을 수 없어 꼬마들이 말을 타도록 돕는 일을 하다 보면, 아이를 낳지도 않았고 결혼 상태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 숙련이 필요한 직무에 임하고 있는 것도 아닌 게 분명한 나를, 또래 여성 고객들은 아주 어리게 봤다.

외모가 어려 보인다는 게 아니라, 아직 미성숙한 존재, 불완전한 존재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간의 삶에서 나를 아직 ‘진짜 삶’에 돌입하지 않은 상태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고교를 중퇴했기 때문에, 예술계통 전공을 가졌기 때문에, 중소기업에 다니기 때문에, 알바를 하고 있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고 보니 우리 사회에서 ‘아직 진짜로 살고 있지 않다’는 ‘미생’의 낙인이 찍히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소위 ‘진짜 직업’이 아닌 비정규직(알바)이기 때문에 정규직의 책임과 고통을 모른다, 아직 남자 맛을 제대로 못 봐서 레즈비언이다, 진정 남자답질 못해서 게이다, 인생을 반쪽만 알아서 페미니스트다, 제 자식을 안 낳아 봐서 반려동물에 환장한다, 세상 뜨거운 맛을 못 봐서 예술 한답시고 한다, 결혼을 하지 않아서 어른이 안 됐다, 부모가 안 됐으니 인간으로 미완성이다 등. 그러다 보니 ‘N포 세대’들은 아직 나의 진짜 인생이 시작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사회 데뷔를 필사적으로 늦추기도 하는데, 그건 그들이 나약한 겁쟁이라서가 아니라 그런 낙인이 너무나 진하고 뜨겁기 때문이다. 

이곳 ‘별내작은말학교’에는 백구보다 작아서 계속 먹이통에서 밀려나는 ‘바비’부터 빗질해주려는 내 배까지 뒷발로 걷어차는 ‘마스터’, 사람 나이로는 환갑을 넘었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활약하는 조용한 ‘미씨’까지 다양하다. ‘캐롤’은 통통해서 늘 손님들에게 임신 의혹에 시달리고, ‘로라’는 툭하면 울타리 빗장을 열고 남의 선산으로 도망친다. 그렇지만 다 다르고 달라서 귀엽다. 

그간 사람에 대한 이런저런 편견들을 나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못나진 게 아니었는지, 누워만 지내는 동안 괴물처럼 자라난 열등감이 근래 조금씩 날이 무뎌졌다. ‘정상 가족’을 이루지 못했다는 열등감이 누그러지자 아이들을 더 반기게 되었다. 

애초에 내가 엄마로서의 삶을 굳이 택하지 않은 것은 오랫동안 버려진 개들을 데려다 돌보면서 누군가를 보살피고 싶은 마음이 충족된 게 컸다. 사람 탓에 다치고 영영 고치지 못하는 장애가 있는 개들을 보면 지구에서 제일 힘센 종자인 사람인 게 참 미안했다. 

내 새끼를 낳아 잘해줄 힘이 있지만 그 힘을 굳이 쓰지 않고 다른 생명들이 이어져 나가는 걸 돕는 것도 인간의 특권이다. 유독 꼬맹이 말들이 큰 눈을 뜨고 입술을 오물대며 몸을 비빌 때, 꼬마들이 손을 꼭 잡아올 때, 그토록 긴 폐인 생활을 하고도 아직 내 안에 그런 힘이 남아 있다는 걸 순간순간 깨닫는다. 참 고맙게도.


| 김현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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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일러스트가 그려진 투명 유리컵에 아이스 커피를 채우고, 파란색 도라에몽 다이어리를 편다. 볼 때마다 괜히 웃긴 컵도, 몰스킨 뺨치는 다이어리도 돈 주고 산 게 아니고, 돈을 줘도 살 수 없는 물건이다.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살 때 받은 굿즈(goods)이기 때문이다. 머그컵이나 부채 정도로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었던 굿즈는 언제부턴가 냄비 받침, 파우치, 마우스패드, 담요, 북램프까지 나날이 다양해져 가고 있다. 도무지 안 사고 배길 수 없는 ‘취향 저격’ 굿즈도 점점 늘어난다.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하는 나에게 ‘그린 게이블즈’ 지도와 특별 제작한 찻잔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저런 찻잔 사고 싶었잖아.’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면, 예정에 없던 책을 사는 것은 순식간이다. 보는 순간 “어머, 이건 사야 해”를 외쳤던 굿즈도 있다. 

소설 <랑야방>과 함께 등장한 ‘상지기 노트’였다. 소설과 드라마 속 소품을 그대로 재현한 이 노트는, 내용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탁월한 아이템이자 뼛속까지 독자의 취향을 아는 이가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는 역작이었다. 

그래 봤자 끼워주는 사은품 아니냐고? ‘이렇게 좋은 걸 자꾸 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품질이 괜찮을뿐더러 돈 주고 사긴 아까운데, 있으면 유용한 아이템이라 자주 쓰게 된다. 문제는 이 아이템들을 갖기 위한 조건이 까다롭다는 점이다. 특정 장르나 출판사의 책을 사는 것은 기본, 일단 5만원 이상의 책을 구매해야 선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에는 마일리지를 써야 받을 수 있도록 기준이 대폭 강화되긴 했다. 그러나 갖고 싶은 아이템이 너무 자주 등장하고, 다른 독자의 굿즈 후기에 마음이 갈대처럼 팔랑거리기 일쑤다. 결국 “굿즈를 샀더니 사은품으로 책이 왔어요”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출처: 경향신문 DB

굿즈가 점점 쌓여가고, ‘산 책이나 다 읽자’ 싶어서 한동안 책을 안 사고 버틴 적도 있었다. 때마침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미니멀라이프’가 유행이었다. 그러자니 가장 먼저 버리고 줄여야 할 것이 책이었다. 읽지 않는 책이 쌓여가는 것이 스트레스이기도 했기에, 도서관을 다니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가득 책을 빌려오는 바람에 다 읽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고, 2주 안에 책을 읽고 반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반납 스트레스가 겹치자 도서관은 오히려 안 가느니만 못한 상황이 됐다. 빌리나, 사나 책을 다 읽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고, 신간을 읽는 즐거움마저 사라지자 아예 손에서 책을 놓게 됐다. <무소유>를 읽는다고 무소유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듯,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책을 읽는다고 ‘심플 라이프’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여전히 굿즈에 낚이는 ‘호갱(호구+고객)님’으로 돌아왔지만, ‘보고 싶은 책을 사는데, 유용한 아이템도 생긴다’고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이유야 어떻든 새로운 책을 사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들춰 보기 마련이고 그것만으로도 나쁘지 않다. ‘읽지 않은 책’에 스트레스를 받는 대신, ‘저 책들은 언제 읽을까’ 느긋하게 궁리한다.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듯, 내가 산 책이라고 해서 전부 읽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로 하니 마음이 편하다.

그래도 여전히 책은 서점에서 살 때가 가장 좋다. 동네 서점도, 요즘 많이 생기고 있는 독립서점도 괜찮은 선택이다. 속초 동아서점, 통영 남해의봄날, 괴산 숲속작은책방, 선릉 최인아책방, 인천 세든서점까지 지역별로 특색 있는 동네 서점들을 가보는 것도 새로운 재미다. 개성 넘치는 주인이 선별한 책으로 채워진 매력적인 공간에서의 시간은 인터넷 쇼핑으로는 얻을 수 없는 종류의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것보다 책을 고르고 사는 게 더 즐거운 요즘, 이 즐거움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 ‘다 읽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깨달은 이상, 세상은 넓고 살 책은 많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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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출신의 1962년생 K씨가 1989년에 결혼한 후 아내와 신혼살림을 꾸민 곳은 강북 변두리 동네의 양옥집 이층이었다. 방 두 개에다 화장실과 부엌이 딸린 전셋집이었다. 자식들을 전부 다 출가시킨 1층의 집주인 노인 부부는 온화하고 친절한 성격이었다.

K씨가 수도권 신도시의 20평형대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은 가정을 꾸린 지 4년 뒤의 일이었다. 취업 이후 꾸준히 부어온 주택청약통장과 재형저축통장의 힘이 컸다. 이미 몇 차례 분양권 추첨에서 고배를 마신 K씨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금액을 채권액으로 적어 넣었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떴다방에서 웃돈을 주고 분양권을 사야겠다고 결심한 터였다. 그런데 다행히 운이 따라주었다.

공교롭게도 그 시점에 김영삼 정권은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의 재산 공개를 단행했다. 언론은 연일 이들의 부동산 투기 사례들을 보도하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K씨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국회의원 Y씨의 부동산 취득 과정이었다. 1927년생으로 육사 1기 출신인 그는 12·12 군사반란의 주역으로 육군 제3군사령관, 안전기획부장 등을 거쳐 당시 국회 국방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Y의원은 군 장교 시절이던 1964년부터 세 아들의 명의로 서울 강남 일대의 땅을 매입했다. 맏아들에게는 13살이던 1964년 강남구 도곡동 대지 250평, 20살 되던 해인 1971년에는 경기 용인군 임야 286평을 사주었으며, 둘째 아들에게는 15살 때 강남구 대치동 대지 67평, 25살 때에 역삼동 대지 99평을 각각 사주었다. 막내에게도 14살 되던 해인 1969년 서울 대치동 대지 49평을 사주는 등 자식들 앞으로 ‘공평하게’ 땅을 구입했다. 부인 명의로는 1968년과 1977년에 강남구 대치동, 양재동 대지 142평을 사들이기도 했다.

K씨에게 Y의원의 사례는 원조 복부인의 전형적인 투기 행태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의 자산 증여 과정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나 다름없었다. 반면 신도시 아파트 입주는 또 다른 부동산 투기의 흐름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줬다. 당시 신문 기사에서 이런 흐름의 사례들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았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식이었다. 1945년생 전문직 여성은 20년간 서울 압구정동 H아파트에서 살다가 평촌의 60평대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녀가 신도시를 선택한 이유는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서였다.

K씨는 이런 기사들을 읽을 때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속으로 되뇌곤 했다. 과연 이들은 기존 보유 아파트를 팔고 신도시로 이주한 것일까, 아니면 전세를 내주고 그 보증금을 지렛대로 삼아 새 아파트를 구입한 것일까? 답은 뻔했다. 실제로 서울에 거주하던 50대 이상 중산층이 노후 대비나 증여를 위해 신도시의 대형 아파트를 구입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 무렵, K씨는 ‘1920·30년대생 상류층의 부동산 투기·증여’와 ‘1940년대생 중산층의 2주택 마련’이라는 두 유형의 흐름을 분별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후자의 중산층이 전자의 상류층을 자신의 역할 모델로 삼고 있는 듯 보일 정도로 시간차를 두고 닮은꼴의 행태를 반복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후자의 1980·1990년대는 전자의 1970·1980년대와 매우 유사했던 것이다.

K씨는 이런 사실을 알게 될수록 이전까지 인지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물질적 욕망에 바짝 다가서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당시만 해도 집 한 채를 어깨 위에 짊어진 대졸 월급쟁이 가장이자, 군인 출신 대통령이 실행에 옮긴 주택 200만호 건설정책의 수혜자로서 가족의 삶이 부침 없이 평탄하기만 바라는 쪽이었다. 물론 K씨가 아직 모르는 것도 있었다. 그것은 머지않아 그가 자신의 숨겨둔 욕망을 실현할 기회를 잡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외환위기가 부동산 시장을 뒤흔들어 놓기까지 3년여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박해천 |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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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중순, 서울 성동경찰서 사이버 수사팀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집단강간 모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제보에 따르면 한 남자가 “서울 왕십리 골뱅이 여친”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소라넷에 올렸다. 술 혹은 약물에 의해 정신을 잃고 벌거벗은 한 여성의 사진과 함께, 작성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소라를 잘 안 해서 랜덤 채팅 양톡으로 여태 3분 정도 와서 질사하고 가셨는데 ㅋㅋ 오늘은 소라에서 한번 해볼까요?”

‘골뱅이’란 술이나 약물 등에 의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여성을 상대로 한 강간을 뜻하는 은어다. ‘왕십리 골뱅이’의 작성자는 첫 게시물을 올리고 11분 후 두 번째 글을 업데이트했다. 역시 의식을 잃은 듯 보이는 여성의 나체 사진이 붙어 있었다. 게시물 아래에는 ‘줄 서봅니다’라는 식의 댓글이 달리는 중이었다.

한편 2016년 6월, 여성 커뮤니티 워마드에 묘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정보] 진짜 한남 재기시켜도 죄책감 안 느낄 수 있는 년들은 이거 먹여라”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게시물에는, “자동차 부동액은 물이랑 에틸렌글리콜 + 색소가 주성분”이라며 “용법은 1일 1회 5㎖”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물론 그 내용에는 어느 정도의 구체성이 있지만 “서울 왕십리 골뱅이 여친”과는 다르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거나 하고 있다는 내용이 아니다. 한남(한국 남자)을 재기(사망)시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라는 전제가 달린 가상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 그 흔한 ‘인증샷’도 없이 인터넷에서 그냥 하는 소리, 시쳇말로 ‘드립’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부동액 섞인 커피를 마시고 누군가가 병원에 입원했다면, 원인이 밝혀지면서 실제 범행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런 현실적 범죄의 정황이 없지만 경찰은 일단 수사를 개시했다. 허위 게시물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면서도 공권력은 작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반면 2015년 11월, 인터넷 성범죄 사이트 소라넷을 모니터링하던 활동가가 “서울 왕십리 골뱅이 여친”을 신고했을 때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페미니즘 활동가 단체인 ‘(RPO) 리벤지 포르노 아웃’팀이 공개한 당시 통화 내용을 들어보면, 담당자는 “요거를 전체적인 댓글이나 글 게시된 걸 분석해 보니까 범죄혐의는 전혀 없”다며,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결론을 내렸다. “장난한 것 같애요. 이 소라넷 사이트 이용하는 애들이~ 반응 보려고~.”

설령 농담이라 해도 사람에게 독극물을 먹이자고 모의하는 것은 비난받을 만한 일이다. 전복적 발화로서 긍정적 기능을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나는 그런 ‘미러링’에는 반대한다. 하지만 사람을 기절시키는 약물을 누군가 먹였다는 제보를 받은 공권력이 그것을 장난으로 간주해버리는 것만큼 나쁜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전자는 발화자들의 개인적 존엄 및 품위의 문제인 반면, 후자는 우리 사회의 공권력이 얼마나 공정하게 작동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두 사건 모두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인터넷 게시물을 두고 신고가 들어갔다. 그런데 왜 여자가 남자에게 부동액을 먹였다는 신고와, 남자가 여자에게 ‘물뽕’을 먹였다는 신고에 대해, 경찰의 반응이 이토록 다른 것인가? 전자는 살인이지만 후자는 성범죄이므로 범죄의 무게가 달라서라면, 경찰은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 ‘저년 배를 칼로 쑤시겠다, 목을 졸라 죽이고 싶다’는 식의 살해 협박에 대해서도 일일이 수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아무리 꼬셔도 안 넘어” 오는 그녀를 함락시키라는 광고 문구를 달고 버젓이 데이트 강간 약물이 유통되고 있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를 때리고 죽이고 강간하겠다고 하면 ‘농담’이라고 대충 넘어가면서, 여자가 남자를 대상으로 비슷한 말을 하면 곧장 공권력이 투입되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것은 ‘물뽕’과 부동액이 아니라, 법 앞의 평등이라는, 훨씬 근본적인 가치의 문제인 것이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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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학교 다니면서 별일 다 했지만 해란씨는 정말 고난의 행군이었더라고. 요즘 애들 하듯이 인턴, 공모전 이런 식으로 채운 것도 아니야. 노동, 말 그대로 노동 현장에서 뛰었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 영주씨는 말 그대로 버젓한 경력, 응? 정식 회사에서 일한 경력으로 이 자리에 왔고 말하자면 팩에 든 고기지. 원래 생산할 때부터 정식 팩에 든 고기. 해란씨는 ‘주먹고기’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어. 목살 근처 아무 살이나 주먹구구식으로다가 막 썰다보니까 어, 제법 이게 어엿한 상품이 돼 있는 거 말이야. 주먹고기, 내가 비유가 이렇게 좋아. 주먹고기 좋아하나?” 퇴근길, 부장의 한마디로 졸지에 고기가 되어버린 영주씨와 해란씨는 김금희의 단편소설 <조중균의 세계>에 나오는 입사 동기다. 경력직과 신입으로 함께 들어왔지만 수습 기간이 끝나면 한 명만이 남게 되는 회사에서 ‘석연찮은 경쟁을 벌여야 하는 사이’다. 일단은 경력이 확실한 영주씨가 유리해 보이지만, 해란씨는 만만치 않을뿐더러 ‘반짝반짝’하기까지 하다.

청년층 첫 일자리 중 '1년 이하 계약직' 비율. ⓒ 경향신문DB

어쩌다보니 ‘팩에 든 고기’가 된 나는 소설 속 해란씨처럼 눈을 반짝이며 “문화예술계에서 일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20대들을 만날 때마다 심경이 복잡해진다. 과연 이렇게 반짝반짝하고 열정 넘치는 청춘들 대신 일할 자격이 충분한 걸까 싶어서. 단지 내가 몇 년 먼저 태어났기 때문에 (일자리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취업난과 스펙 경쟁이 본격화되기 전에 졸업했고, 덕분에 ‘팩에 든 고기’가 될 경력을 쌓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나나 영주씨가 가질 수 있던 기회의 문은 닫힌 지 오래다.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인데, 일할 기회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큰 간극이 생기고, 그 간극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계만 봐도 그렇다. 관련 교육기관이나 프로그램이 생기고, 법률과 자격증이 갖춰지는 등 제도가 정비되고 있다. 일하려는 사람도 넘쳐난다. 다만 일자리가 없을 뿐이다. 지역문화진흥법, 문화기본법, 문화다양성 관련 법 등 최근 새로 제정된 중요한 문화 3법에 ‘문화인력 양성’ 관련 내용이 모두 있음에도 ‘양성 그 후’에 대한 언급은 없다. 진입장벽이 높아지는 것도 문제다. 자격증 없이 진입이 가능했던 일자리도 자격증을 요구한다. 수백만원의 비용과 시간을 들여 자격증을 딴다 해도 지원할 자격이 생길 뿐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다 경력만 뽑으면 나 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느냐”는 항변은 ‘경력 있는 신입’을 요구하는 현실 앞에 무기력하다.

실제 최근 2주간 문화예술계의 채용 공고를 살펴봤더니 인턴, 단기 스태프, 보조인력, 기간제 근로자, 대체인력을 뽑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정규직을 명시한 채용은 단 1건, 그나마도 경력직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쪽 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20대를 만날 때마다, 여자 후배라면 더욱 “웬만하면 외국에 나가서 돌아오지 말라”고 권한다. 열심히 일해보고 싶다는 후배의 등을 두드려주지는 못할망정 밀어내는 나 자신이 부끄러우면서도 서글프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몇 십억원 규모의 국가 프로젝트 운영조차 용역업체 소속 파견직 직원에게 맡기는 것이 ‘문화융성’과 ‘문화가 있는 날’을 부르짖는 정부 산하기관의 현실이니까.

결국 소설의 마지막에 살아남는 사람은 영주씨다. “아무도 해란씨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있다 떠난 사람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것도 없다는 듯이, 마치 없었던 사람처럼” 해란씨는 그대로 사라진다. 인력 양성도 좋지만, 경력을 열심히 쌓아도 기회 자체가 차단되어 있는 이들이 갈 곳을 마련해주는 것이 먼저다. 해란씨 같은 사람들이 잠시 있다 떠나지 않도록, 남아서 일하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할 때다. 해법을 모색하고, 고민을 모을수록 해란씨가 돌아올 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이 책임만큼은 영주씨처럼 살아남아 ‘팩에 든 고기’가 되어버린 기득권의 몫이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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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후레자식>(김칸비 글, 황영찬 그림)이 고소당했다. 고소인은 <후레자식>을 “목적 없이 살인을 하는 살인자가 아버지인데, 자식에게 살인을 가르치고 함께”하는 작품으로 요약했다. 전체 92화 중 도입부 14화까지 내용 중 몇 장면을 캡처해 잔혹성, 여성비하, 노인멸시, 장기밀매, 원조교제에 대한 증거로 첨부했다. 아버지의 자식 사랑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나, 이건 틀렸다. 미디어의 노출, 콘텐츠의 표현 수위는 고소의 대상이 아니라 토론해야 할 문제다. 청소년 문제는 더욱 그러하다.

먼저 ‘전 연령 구독가능’이라고 하지만, <후레자식>을 초등학생들이 보지는 않는다.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보편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방귀대장 뿡뿡이>나 <꼬마버스 타요>를 청소년들이 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후레자식>도 스릴러라는 장르의 특성과 작화의 특징 등으로 인해 청소년 이상이 주로 구독한다. 두 번째, 미디어에서 묘사된 폭력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건 명확하게 결론 내리지 못한 논란의 대상이다. 연구자나 연구 설계와 방법에 따라 유해함과 무해함이 다르게 나타난다. 세 번째, 문화를 통제하는 것은 대부분 국가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통제 수단의 하나로 활용된다. 부작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통제보다는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보편적 합의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불안에 충분히 공감한다. 험한 세상에서 우리 아이가 좋은 것만 보고 자라나길 원하는 건 아버지로서 당연한 욕망일 것이다. 청소년들이 <후레자식>을 보는 것이 아이들의 정상적인 성장을 방해할 정도로 위험한 일일까? 큰 회사의 사장이자 평판이 좋은 선우동수는 사이코패스 연속살인자다. 그는 아들 선우진을 자신의 살인에 동참시킨다. 살아남기 위해 아버지의 악행에 동참하던 선우진은 17세가 돼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게 되고 아버지에게서 도망치려 한다. 아무리 “난 아버지의 소유물이 아니야”라고 결심하지만, 무게 추가 너무 기운다. 아버지는 모든 걸 갖고 있고, 아들은 약하고, 친구도 없는 왕따다. 그런 선우진이 학교 일진 재혁과 부모가 남긴 빚에 쫓기는 전학생 윤견과 친구가 돼 절대악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한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살인의 기술을 가르치는 만화가 아니라, 17세 소년의 성장 스토리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현실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예를 들어 학원 스포츠 같은 허무맹랑한 건강함 대신 사이코패스 아버지의 손에서 탈출하는 스릴러 장르의 틀 안에서 자신들이 처한 현실과 마주한 것이다. 청소년들은 일상에서 모든 기득권을 독점한 기성세대가 움직이라는 대로 움직이지만, 사실은 선우진처럼 탈출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청소년들이 보기에 기성세대는 모든 걸 독점하고 자신들을 경쟁의 틀 안에 밀어 넣은 사이코패스라 생각할 수도 있다.

대중들이 열광하는 많은 콘텐츠들은 당대를 반영한다. 특정 작품에 대중들이 환호하는 건, 그 작품이 바라보고 있는 세계에 대한 태도와 대중들이 갖고 있는 세계에 대한 태도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후레자식> 말고도 더 높은 수위의 스릴러들이 많이 있지만, 청소년들이 이 작품에 환호하는 까닭은 선정적인 설정이나 장면(은 의외로 많이 나오지 않는다)을 은밀하게 즐기려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이 보여주는 미감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아이가 <후레자식>을 즐겨 보았다면, 아버지로서 함께 토론했어야 한다. 그게 옳은 길이다. 하지만 <후레자식>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콘텐츠의 자율규제는 창작자와 유통사, 이를 구독하는 수용자 간에 문제제기와 합의를 통해 그 선이 정해진다. 분노와 고소가 아닌 비판과 토론이 필요하다. 이번 이슈가  생산적 토론으로 나아가길 기대하고, 가능하다면 그런 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보려고 한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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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노동운동가 박점규는 주간경향의 ‘노동여지도’라는 연재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울산의 노동자는 40~50평 아파트에 살며 쏘나타와 그랜저를 타고 다니는 ‘직영계급’과 20평 임대주택에서 엑센트와 아반떼를 타는 ‘하청계급’, 이 공장 저 공장을 떠돌아다니는 ‘알바계급’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후, 울산을 비롯한 동남권 공업벨트는 조선업의 위기로 인해 아래로부터 크게 부침을 당하는 중이다.

연일 쏟아져 나오는 투자실패, 부실경영, 분식회계 등에 대한 뉴스들로부터 잠시 숨을 돌린 후, 박점규가 “직영계급”으로 명명한 ‘정규직 노동자-중산층 모델’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먼저 1970년대 중반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당시 서울로의 순유입 인구수는 1975년에 정점을 찍었다. 당시 경제호황은 인구이동의 동력원 구실을 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시점을 기준으로 서울로 유입되던 영남 인구가 급속히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신 이후 중화학공업 육성책에 따라 새로 건설된 동남권의 공업벨트가 서울을 대신해 이 인구를 흡수한 결과였다.

당시 이 지역에 유입된 인구 상당수는 국가 주도의 직업훈련프로그램을 거친 예비 노동자였다. 박정희 정권은 1967년 이후 ‘직업훈련법’에 의거, 기술자격증 제도와 직업훈련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인력관리의 일환으로 대체복무 제도를 마련했다. 사회학자 문승숙이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에서 지적한 대로, 중등교육까지 마친 하층계급의 젊은이들에게 정부의 프로그램에 참여해 국가의 지원 아래 제조업 사업장에 취업하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사회진출 전략이었다.

누군가는 베이비붐 세대를 대상으로 행해진 이런 “숙련노동의 남성화” 과정을 두고 ‘난민촌에서 병영화된 공장으로의 이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영남권에 집중된 국지적 현상이기도 했다. 중화학공업 육성책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호남권과 충청권 출신들은 여기에서 비켜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들 중 하층 계급 출신은 서울 이외에는 다른 선택지를 찾기 힘들었고, 이주 후에는 주로 일용직 혹은 비공식 부문의 산업예비군으로 편입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향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 중 하나는 동남권 공업벨트의 대표주자, 울산의 출생지별 인구분포일 것이다. 2000년 기준, 울산 인구 중 울산 출신은 46.1%, 부산·경남 출신은 19.1%, 대구·경북 출생자는 18.3%로, 영남 출신이 전체의 83.5%였다. 반면 광주·호남 출신은 4.3%, 대전·충청 출신은 3.9%에 불과했다. 따라서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남권의 이주는 계층에 따라 상이한 목적지로 분화되었다고 말이다. 즉 영남의 구중산층은 관료진출이나 사업확장을 위해, 엘리트들은 대학 진학을 목표로 서울로 이주한 반면, 농촌 퇴출 인구의 상당수는 동남권 공업벨트로 이동했던 것이다.

이 지역 특유의 중산층 모델이 등장한 것은 바로 후자의 경로를 통해서였다. 70년대 중반, 이 경로의 초입에 진입했던 베이비붐 세대들은 1987년의 노동자 대투쟁을 경유해 ‘남성 노동자’라는 집단적 정체성을 획득했고, 90년대에는 임금인상과 사내 복지제도 도입에 힘입어 ‘정규직 노동자-중산층 가족’이라는 새로운 중산층 모델을 고안하기에 이르렀다.

1987년이라는 시점과 관련해 흥미로운 점은 수도권의 1940·50년대생 도시 중산층이 주도적으로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던 시점에, 동남권 공업벨트의 베이비붐 세대 노동자들은 결혼-출산·육아-집 장만과 관련된 생애주기상의 과업수행을 앞둔 상태에서 저임금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대규모 파업투쟁에 돌입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두 유형의 중산층 모델은 가파른 내리막길 앞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몰락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도 사라진 시대, 각자도생의 열망만이 아우성치는 시대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박해천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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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연말로 돌아가보자. 벌써 4년 전이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영화 <레미제라블>은 그다지 훌륭한 작품이 아니었다. 소설이 가지고 있었던 모순과 복잡성은 평평해졌고, 뮤지컬이 가지고 있었던 본연의 에너지는 스크린을 찢고 튀어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관객들, 특히 정치적으로 ‘진보’라 분류되는 관객들은 열광했다. 작품 속에 묘사되는 실패한 혁명의 이야기를 보며 18대 대선 패배의 아픔을 달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극장에서는 여성 참정권 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서프러제트>가 상영 중이다. 놀랍게도 이 작품은 서프러제트 운동을 다룬 최초의 장편 상업 영화인데, 그래서인지 해당 운동이 지니고 있었던 사회적 맥락을 최소화하고, 강경파와 온건파가 다양한 각도에서 대립하던 모습도 깊게 조명하지 않는다. 대신 감독은 그 작품을 철저한 ‘운동권 영화’로 만들어냈다.

주인공인 모드 와츠(캐리 멀리건 분)는 우연히 서프러제트의 시위 현장에서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되고, 어쩌다가 운동권에 휘말려, 결국 투사로 거듭난다. 동료가 이탈하고, 배신의 유혹을 받고, 어떤 이는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캐리 멀리건의 선한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다. 그저 착하고 순수했던 그가 한 사람의 ‘운동권’으로 재탄생하는, 꽤나 고전적인 서사가 2016년 극장가에서 상영 중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레미제라블>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왕년의 운동권’들은 왜 극장으로 몰려가지 않을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레미제라블>을 ‘운동권 영화’로 소비하는 데에는 일종의 비평적 곡예가 필요했다. 반면 <서프러제트>는 그럴 필요가 없다. 대놓고 ‘운동권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때 ‘짱돌’ 좀 던져봤다고 으스대다가 ‘문화운동’ 한다고 방향을 돌렸던 수많은 남성 비평가들은 <서프러제트>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매년 극장가에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다룬 대체로 뻔한 영화들이 절찬 상영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내부자들>을 꼽아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경상도 방언을 쓰는 ‘꼴통 검사’가 전라도 방언을 쓰는 ‘착한 건달’과 손을 잡고, 한국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내부자들’에게 한 방 먹인다는 줄거리이다.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고 ‘치부’를 보여준다는 그런 작품들은 한 해에도 몇 편씩 나온다. 대체로 여성들은 피해자의 위치에서 폭언을 듣고, 두들겨 맞고, 강간당하고, 시신으로 발견되기 일쑤다. 그러면 남자인 주인공이 절규하면서 정의 구현을 위해 힘쓴다. 그리고 관객들은 폭력의 무신경한 재현 앞에 ‘날것’이라며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그 맥락에서 이경미 감독의 신작 <비밀은 없다>를 생각해보자. 자신이 태어난 경북의 한 도시에서 처음 출마한 정치 신인이 해당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탈당파 현역 국회의원과 맞붙는데, 그의 아내가 호남 출신이라는 것이 ‘추문’으로 취급되며, 하나뿐인 딸은 실종됐다. 전라도 여자는 경상도 한복판에서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 광기 어린 추적을 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호남차별, 여성차별, 학교폭력, 동성애, 불륜 등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뜨거운 감자를 한꺼번에 씹어삼킨다.

그럼에도 <서프러제트>와 마찬가지로, <비밀은 없다>는 저평가 혹은 무(無)평가 당하고 있다. 나는 그 이유가 매우 명백하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단지 희생자에 머무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주인공들은 어떤 일을 겪고, 위협을 당하고, 폭력에 노출된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판단하고, 책임을 진다.

그러자 관객뿐 아니라 비평가들 역시 형식적인 코멘트만을 남겨놓고 침묵을 지키는 중이다. 그 침묵은 열렬한 예찬보다 우리 사회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말해준다. 한국 사회는 피해자가 아닌 주체로서의 여성을 순순히 용납하려 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주체-되기. 2016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겁게 논의되어야 할 ‘정치적’ 주제다.

노정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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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문화대혁명 시기의 특징이었다. 조반파 사이의 논쟁이건 홍위병 사이의 논쟁이건, 아니면 부녀자들 사이의 말다툼이건 간에 최종적인 승리는 마오쩌둥의 말을 들고나오는 사람의 차지였다. 마오쩌둥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결론이 나고 쟁론과 말다툼도 즉시 끝이 났다. … 그 시기에는 신문에 실리든 방송에서 방영되든, 아니면 대자보에 나붙든 간에 거의 모든 글이 마오쩌둥 어록 다음으로 루쉰의 말을 인용했다.”

중국 소설가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책에서 읽은 구절이다. ‘태양이 언제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가’를 놓고 친구와 1년 가까이 논쟁을 벌이던 소년 위화는 “루쉰 선생님께서도 정오에 태양이 지구에서 가장 가깝다고 말씀하셨단 말이야!”란 거짓말로 지루한 논쟁을 한 방에 끝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루쉰이 그런 말을 한 적도 없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문화대혁명 때 ‘루쉰’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중국에서 얼마나 엄청난 위력을 갖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당시 중국의 ‘루쉰’ 같은 단어가 지금 한국에서는 ‘비용’이 아닐까? 이 단어는 몇 개의 유사어를 갖고 있는데, ‘비용 절감’ ‘경영 효율화’ ‘구조조정’ 등이 대표적이다. 일단 ‘비용’으로 잡히는 모든 것은 절감해야 할 대상이며, 효율화의 타깃이자, 혁신해야 할 그 무엇이다. 이 필터를 거치면 ‘사람’은 ‘인건비’로, ‘안전’은 ‘유지보수비’로, ‘고용 안정성’은 ‘경상비 부담’으로 바뀐다.

“루쉰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틀림없이 네 말이 맞을 거야.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봐.” 슬픈 표정으로 패배를 인정한 소년 위화의 친구처럼, 용역 결과 보고서 하나면 “컨설팅 회사에서 전문가들이 그렇게 진단했다면 그 말이 맞겠지요. 저희가 잘못해 왔나봅니다”라며 정부조차 고개를 숙이고,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중국 작가 루쉰_경향DB



한때 중국에는 마오쩌둥의 어록이 밥그릇과 컵에도 인쇄돼 있을 정도로 생활을 지배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국은 어떤가? ‘비용 절감’ ‘경영 효율화’라는 키워드는 이미 사회 전반은 물론 사람들의 머릿속에조차 뿌리를 내리고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관리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경비 인력을 줄이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며, 산업이 어려워지면 ‘구조조정’이 가장 먼저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공공영역도 결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부채 감축과 적자 개선, 인건비 절감은 공공기관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에서 확인했듯, 핵심 업무들은 경비 절감을 명분으로 민간에 넘어간 지 오래인데도 외주화는 여전히 공공부문 경영 효율화의 주요 평가지표로 남아 있다.

마오쩌둥 어록 다음으로 루쉰의 말을 인용했던 중국처럼 한국에서는 ‘비용 절감’이 절대적인 마오쩌둥의 어록 대접을 받고, ‘수익 창출’이 루쉰 선생님의 말씀처럼 떠받들어진다. 그러나 어떤 ‘비용’을 절감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접대비’는 필수 비용이지만, 안전 관련 비용은 절감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어떤 비용은 ‘지출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해야 할 때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엄청난 위력을 갖고 있던 ‘루쉰’은 이제 대명사로서의 무게를 내려놓고, 작가의 운명을 되찾았다. 작가가 하나의 단어로 소비되는 것만큼 작가에게 비극적인 일이 또 있을까? 루쉰은 작가의 위치로 돌아왔으니 다행이지만, 한국의 ‘비용’은 언제쯤 다른 운명을 맞이할 수 있을까? 과연 단어 원래의 운명을 찾아갈 수 있기는 한 걸까? 만능 키워드처럼 ‘비용 절감’만 내세우면, 모든 사회적 합의가 실종되는 지금이야말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때다. ‘비용’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비용’은 한때의 ‘루쉰’만큼이나 오용되는 단어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치르게 될 터이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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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이슈가 되고 있는 미소지니(misogyny)에 대한 의견을 블로그에 올렸다. ‘여성혐오는 나의 문제다’라는 글이었는데, 5월23일에 올린 글의 링크가 소셜미디어에서 한창 돌아다녔다고,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어쩐지…. 며칠 동안 보기 드물게 블로그 트래픽이 나오더라니. 그 며칠 사이에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댓글이나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간혹 저주에 가까운 욕을 듣기도 했다.

인상적인 건 나를 규정하는 표현이 ‘중년, 남자, 교수’였다는 거다. 중년, 남자, 교수 말고도 나를 규정하거나 설명하는 단어가 많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 길게 쓰다가 지웠는데, 이 지면을 전부 다 채워도 모자라다. 중년, 남성, 교수라는 단어는 서로를 수식하며 어떤 권위를 만든다. 권위는 중년, 남성, 교수에서 전부 발화해 나를 덮는다.

중년, 남성, 교수라는 권위의 옷을 입는 순간 좀 어설프고, 모자란 개인인 ‘나’는 사라진다. 예컨대 원고 몇 줄을 제대로 쓰지 못해 끙끙대다가 한밤중 홈쇼핑 채널을 보다 잠이 든 구체적인 ‘나’는 없다. 권위의 옷은 나를 무겁게 짓누른다. 권위가 나를 규정할수록 자유는 속박된다. 멀쩡하던 남자들도 예비군복만 입으면 시정잡배처럼 껄렁거리게 되고, 익명의 게시판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댓글을 달지 않던가. 누군가는 지능이 모자란 거 아니냐고 묻지만, 길들여져서 그렇다.

권위에 길들여지면, 상대를 만나도 권위를 먼저 본다. 킁킁, 내가 해볼 만한 사람인가? 우리 사회가 유독 약한 이들에게 잔혹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나보다 더 세 보이는 권위에는 감히 도전하지 못한다.


26일 검은 옷을 입고 근조 표시가 붙은 거울을 든 시민들이 살인사건 현장에서 강남역까지 행진을 하며 여성혐오범죄를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막아야 할 사회적 문제임을 표현하고 있다._경향DB


권위를 입고 있으면, 내 맨얼굴이 사라진다. 내 얼굴과 마주하지 못하니 내가 원하는 나를 모른다. 그러니 목덜미를 세우고 있다. 으르렁! 뭘 해도 피곤하고, 피곤이 누적되니 화가 난다. 걸리기만 해 봐라, 하는 마음뿐이다. 이미 누더기가 된 내 권위를 지키려 해 봐야 돌아오는 건 피곤뿐이다. 이제 좀 버리자.

우리는 여성을 혐오하지 않아요, 우리 친하게 지내요, 라고 말하는 뒤에 버려야 할 권위가 있다. 권위를 지키려고 지성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혐오’라는 단어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면서 권위의 옷을 추스른다. 오늘 이 문제는 토론이 아니라 요구다. 이건 누더기가 된 권위를 벗어버릴 기회다. 내가 중년, 남자, 교수가 아니라 딩가딩가 만화와 게임과 쓸데없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 달콤한 제안을 거부할 필요가 없다.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사선을 넘나들던 고난의 서사가 먹히는 시대가 끝이 났다. 세상은 자학으로 위로받기엔 너무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그러니 내려놓고, 벗어놓고, 편하게 살자.

문득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항상 바쁘게 살다 지금 내 나이 무렵 어떤 사정으로 직장을 퇴직하고 저 멀리 서해 바닷가로 내려갔다. 중학교 3학년이던 나는 여름방학이 되어서야 겨우 연고도 없던 바닷가에 가 보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바닷가를 찾은 몇 안되는 이들에게 음료수를 팔았고, 나무를 다듬었고, 난을 채집하러 다녔다. 그 해인가 아니면 그 다음 해인가 신춘문예에 보낼 단편소설을 써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소설의 줄거리를 설명하는 아버지의 얼굴은 지금까지 봤던 어떤 표정보다 밝았다.

이제는 잔치도 하지 않는다는 환갑을 1년 앞두고 돌아가신 후 서재를 정리하다 동창회보에 쓴 수필을 봤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소설을 썼고, 소설가로 살고 싶었다는 내용이었다. 문득 청소년 시절 봤던 아버지의 그 얼굴이 떠올랐다. 중년, 남성이 중년, 남성들에게 말한다. 낡은 권위 따위는 벗어버리면 어떨까? 이런 권유라도 하고 보니 2012년 4월부터 써 왔던 이 지면도 내 권위의 한 조각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인하 | 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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