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일러스트가 그려진 투명 유리컵에 아이스 커피를 채우고, 파란색 도라에몽 다이어리를 편다. 볼 때마다 괜히 웃긴 컵도, 몰스킨 뺨치는 다이어리도 돈 주고 산 게 아니고, 돈을 줘도 살 수 없는 물건이다.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살 때 받은 굿즈(goods)이기 때문이다. 머그컵이나 부채 정도로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었던 굿즈는 언제부턴가 냄비 받침, 파우치, 마우스패드, 담요, 북램프까지 나날이 다양해져 가고 있다. 도무지 안 사고 배길 수 없는 ‘취향 저격’ 굿즈도 점점 늘어난다.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하는 나에게 ‘그린 게이블즈’ 지도와 특별 제작한 찻잔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저런 찻잔 사고 싶었잖아.’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면, 예정에 없던 책을 사는 것은 순식간이다. 보는 순간 “어머, 이건 사야 해”를 외쳤던 굿즈도 있다. 

소설 <랑야방>과 함께 등장한 ‘상지기 노트’였다. 소설과 드라마 속 소품을 그대로 재현한 이 노트는, 내용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탁월한 아이템이자 뼛속까지 독자의 취향을 아는 이가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는 역작이었다. 

그래 봤자 끼워주는 사은품 아니냐고? ‘이렇게 좋은 걸 자꾸 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품질이 괜찮을뿐더러 돈 주고 사긴 아까운데, 있으면 유용한 아이템이라 자주 쓰게 된다. 문제는 이 아이템들을 갖기 위한 조건이 까다롭다는 점이다. 특정 장르나 출판사의 책을 사는 것은 기본, 일단 5만원 이상의 책을 구매해야 선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에는 마일리지를 써야 받을 수 있도록 기준이 대폭 강화되긴 했다. 그러나 갖고 싶은 아이템이 너무 자주 등장하고, 다른 독자의 굿즈 후기에 마음이 갈대처럼 팔랑거리기 일쑤다. 결국 “굿즈를 샀더니 사은품으로 책이 왔어요”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출처: 경향신문 DB

굿즈가 점점 쌓여가고, ‘산 책이나 다 읽자’ 싶어서 한동안 책을 안 사고 버틴 적도 있었다. 때마침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미니멀라이프’가 유행이었다. 그러자니 가장 먼저 버리고 줄여야 할 것이 책이었다. 읽지 않는 책이 쌓여가는 것이 스트레스이기도 했기에, 도서관을 다니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가득 책을 빌려오는 바람에 다 읽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고, 2주 안에 책을 읽고 반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반납 스트레스가 겹치자 도서관은 오히려 안 가느니만 못한 상황이 됐다. 빌리나, 사나 책을 다 읽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고, 신간을 읽는 즐거움마저 사라지자 아예 손에서 책을 놓게 됐다. <무소유>를 읽는다고 무소유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듯,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책을 읽는다고 ‘심플 라이프’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여전히 굿즈에 낚이는 ‘호갱(호구+고객)님’으로 돌아왔지만, ‘보고 싶은 책을 사는데, 유용한 아이템도 생긴다’고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이유야 어떻든 새로운 책을 사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들춰 보기 마련이고 그것만으로도 나쁘지 않다. ‘읽지 않은 책’에 스트레스를 받는 대신, ‘저 책들은 언제 읽을까’ 느긋하게 궁리한다.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듯, 내가 산 책이라고 해서 전부 읽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로 하니 마음이 편하다.

그래도 여전히 책은 서점에서 살 때가 가장 좋다. 동네 서점도, 요즘 많이 생기고 있는 독립서점도 괜찮은 선택이다. 속초 동아서점, 통영 남해의봄날, 괴산 숲속작은책방, 선릉 최인아책방, 인천 세든서점까지 지역별로 특색 있는 동네 서점들을 가보는 것도 새로운 재미다. 개성 넘치는 주인이 선별한 책으로 채워진 매력적인 공간에서의 시간은 인터넷 쇼핑으로는 얻을 수 없는 종류의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것보다 책을 고르고 사는 게 더 즐거운 요즘, 이 즐거움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 ‘다 읽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깨달은 이상, 세상은 넓고 살 책은 많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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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출신의 1962년생 K씨가 1989년에 결혼한 후 아내와 신혼살림을 꾸민 곳은 강북 변두리 동네의 양옥집 이층이었다. 방 두 개에다 화장실과 부엌이 딸린 전셋집이었다. 자식들을 전부 다 출가시킨 1층의 집주인 노인 부부는 온화하고 친절한 성격이었다.

K씨가 수도권 신도시의 20평형대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은 가정을 꾸린 지 4년 뒤의 일이었다. 취업 이후 꾸준히 부어온 주택청약통장과 재형저축통장의 힘이 컸다. 이미 몇 차례 분양권 추첨에서 고배를 마신 K씨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금액을 채권액으로 적어 넣었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떴다방에서 웃돈을 주고 분양권을 사야겠다고 결심한 터였다. 그런데 다행히 운이 따라주었다.

공교롭게도 그 시점에 김영삼 정권은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의 재산 공개를 단행했다. 언론은 연일 이들의 부동산 투기 사례들을 보도하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K씨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국회의원 Y씨의 부동산 취득 과정이었다. 1927년생으로 육사 1기 출신인 그는 12·12 군사반란의 주역으로 육군 제3군사령관, 안전기획부장 등을 거쳐 당시 국회 국방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Y의원은 군 장교 시절이던 1964년부터 세 아들의 명의로 서울 강남 일대의 땅을 매입했다. 맏아들에게는 13살이던 1964년 강남구 도곡동 대지 250평, 20살 되던 해인 1971년에는 경기 용인군 임야 286평을 사주었으며, 둘째 아들에게는 15살 때 강남구 대치동 대지 67평, 25살 때에 역삼동 대지 99평을 각각 사주었다. 막내에게도 14살 되던 해인 1969년 서울 대치동 대지 49평을 사주는 등 자식들 앞으로 ‘공평하게’ 땅을 구입했다. 부인 명의로는 1968년과 1977년에 강남구 대치동, 양재동 대지 142평을 사들이기도 했다.

K씨에게 Y의원의 사례는 원조 복부인의 전형적인 투기 행태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의 자산 증여 과정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나 다름없었다. 반면 신도시 아파트 입주는 또 다른 부동산 투기의 흐름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줬다. 당시 신문 기사에서 이런 흐름의 사례들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았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식이었다. 1945년생 전문직 여성은 20년간 서울 압구정동 H아파트에서 살다가 평촌의 60평대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녀가 신도시를 선택한 이유는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서였다.

K씨는 이런 기사들을 읽을 때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속으로 되뇌곤 했다. 과연 이들은 기존 보유 아파트를 팔고 신도시로 이주한 것일까, 아니면 전세를 내주고 그 보증금을 지렛대로 삼아 새 아파트를 구입한 것일까? 답은 뻔했다. 실제로 서울에 거주하던 50대 이상 중산층이 노후 대비나 증여를 위해 신도시의 대형 아파트를 구입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 무렵, K씨는 ‘1920·30년대생 상류층의 부동산 투기·증여’와 ‘1940년대생 중산층의 2주택 마련’이라는 두 유형의 흐름을 분별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후자의 중산층이 전자의 상류층을 자신의 역할 모델로 삼고 있는 듯 보일 정도로 시간차를 두고 닮은꼴의 행태를 반복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후자의 1980·1990년대는 전자의 1970·1980년대와 매우 유사했던 것이다.

K씨는 이런 사실을 알게 될수록 이전까지 인지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물질적 욕망에 바짝 다가서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당시만 해도 집 한 채를 어깨 위에 짊어진 대졸 월급쟁이 가장이자, 군인 출신 대통령이 실행에 옮긴 주택 200만호 건설정책의 수혜자로서 가족의 삶이 부침 없이 평탄하기만 바라는 쪽이었다. 물론 K씨가 아직 모르는 것도 있었다. 그것은 머지않아 그가 자신의 숨겨둔 욕망을 실현할 기회를 잡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외환위기가 부동산 시장을 뒤흔들어 놓기까지 3년여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박해천 |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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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중순, 서울 성동경찰서 사이버 수사팀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집단강간 모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제보에 따르면 한 남자가 “서울 왕십리 골뱅이 여친”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소라넷에 올렸다. 술 혹은 약물에 의해 정신을 잃고 벌거벗은 한 여성의 사진과 함께, 작성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소라를 잘 안 해서 랜덤 채팅 양톡으로 여태 3분 정도 와서 질사하고 가셨는데 ㅋㅋ 오늘은 소라에서 한번 해볼까요?”

‘골뱅이’란 술이나 약물 등에 의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여성을 상대로 한 강간을 뜻하는 은어다. ‘왕십리 골뱅이’의 작성자는 첫 게시물을 올리고 11분 후 두 번째 글을 업데이트했다. 역시 의식을 잃은 듯 보이는 여성의 나체 사진이 붙어 있었다. 게시물 아래에는 ‘줄 서봅니다’라는 식의 댓글이 달리는 중이었다.

한편 2016년 6월, 여성 커뮤니티 워마드에 묘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정보] 진짜 한남 재기시켜도 죄책감 안 느낄 수 있는 년들은 이거 먹여라”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게시물에는, “자동차 부동액은 물이랑 에틸렌글리콜 + 색소가 주성분”이라며 “용법은 1일 1회 5㎖”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물론 그 내용에는 어느 정도의 구체성이 있지만 “서울 왕십리 골뱅이 여친”과는 다르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거나 하고 있다는 내용이 아니다. 한남(한국 남자)을 재기(사망)시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라는 전제가 달린 가상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 그 흔한 ‘인증샷’도 없이 인터넷에서 그냥 하는 소리, 시쳇말로 ‘드립’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부동액 섞인 커피를 마시고 누군가가 병원에 입원했다면, 원인이 밝혀지면서 실제 범행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런 현실적 범죄의 정황이 없지만 경찰은 일단 수사를 개시했다. 허위 게시물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면서도 공권력은 작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반면 2015년 11월, 인터넷 성범죄 사이트 소라넷을 모니터링하던 활동가가 “서울 왕십리 골뱅이 여친”을 신고했을 때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페미니즘 활동가 단체인 ‘(RPO) 리벤지 포르노 아웃’팀이 공개한 당시 통화 내용을 들어보면, 담당자는 “요거를 전체적인 댓글이나 글 게시된 걸 분석해 보니까 범죄혐의는 전혀 없”다며,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결론을 내렸다. “장난한 것 같애요. 이 소라넷 사이트 이용하는 애들이~ 반응 보려고~.”

설령 농담이라 해도 사람에게 독극물을 먹이자고 모의하는 것은 비난받을 만한 일이다. 전복적 발화로서 긍정적 기능을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나는 그런 ‘미러링’에는 반대한다. 하지만 사람을 기절시키는 약물을 누군가 먹였다는 제보를 받은 공권력이 그것을 장난으로 간주해버리는 것만큼 나쁜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전자는 발화자들의 개인적 존엄 및 품위의 문제인 반면, 후자는 우리 사회의 공권력이 얼마나 공정하게 작동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두 사건 모두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인터넷 게시물을 두고 신고가 들어갔다. 그런데 왜 여자가 남자에게 부동액을 먹였다는 신고와, 남자가 여자에게 ‘물뽕’을 먹였다는 신고에 대해, 경찰의 반응이 이토록 다른 것인가? 전자는 살인이지만 후자는 성범죄이므로 범죄의 무게가 달라서라면, 경찰은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 ‘저년 배를 칼로 쑤시겠다, 목을 졸라 죽이고 싶다’는 식의 살해 협박에 대해서도 일일이 수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아무리 꼬셔도 안 넘어” 오는 그녀를 함락시키라는 광고 문구를 달고 버젓이 데이트 강간 약물이 유통되고 있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를 때리고 죽이고 강간하겠다고 하면 ‘농담’이라고 대충 넘어가면서, 여자가 남자를 대상으로 비슷한 말을 하면 곧장 공권력이 투입되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것은 ‘물뽕’과 부동액이 아니라, 법 앞의 평등이라는, 훨씬 근본적인 가치의 문제인 것이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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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학교 다니면서 별일 다 했지만 해란씨는 정말 고난의 행군이었더라고. 요즘 애들 하듯이 인턴, 공모전 이런 식으로 채운 것도 아니야. 노동, 말 그대로 노동 현장에서 뛰었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 영주씨는 말 그대로 버젓한 경력, 응? 정식 회사에서 일한 경력으로 이 자리에 왔고 말하자면 팩에 든 고기지. 원래 생산할 때부터 정식 팩에 든 고기. 해란씨는 ‘주먹고기’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어. 목살 근처 아무 살이나 주먹구구식으로다가 막 썰다보니까 어, 제법 이게 어엿한 상품이 돼 있는 거 말이야. 주먹고기, 내가 비유가 이렇게 좋아. 주먹고기 좋아하나?” 퇴근길, 부장의 한마디로 졸지에 고기가 되어버린 영주씨와 해란씨는 김금희의 단편소설 <조중균의 세계>에 나오는 입사 동기다. 경력직과 신입으로 함께 들어왔지만 수습 기간이 끝나면 한 명만이 남게 되는 회사에서 ‘석연찮은 경쟁을 벌여야 하는 사이’다. 일단은 경력이 확실한 영주씨가 유리해 보이지만, 해란씨는 만만치 않을뿐더러 ‘반짝반짝’하기까지 하다.

청년층 첫 일자리 중 '1년 이하 계약직' 비율. ⓒ 경향신문DB

어쩌다보니 ‘팩에 든 고기’가 된 나는 소설 속 해란씨처럼 눈을 반짝이며 “문화예술계에서 일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20대들을 만날 때마다 심경이 복잡해진다. 과연 이렇게 반짝반짝하고 열정 넘치는 청춘들 대신 일할 자격이 충분한 걸까 싶어서. 단지 내가 몇 년 먼저 태어났기 때문에 (일자리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취업난과 스펙 경쟁이 본격화되기 전에 졸업했고, 덕분에 ‘팩에 든 고기’가 될 경력을 쌓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나나 영주씨가 가질 수 있던 기회의 문은 닫힌 지 오래다.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인데, 일할 기회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큰 간극이 생기고, 그 간극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계만 봐도 그렇다. 관련 교육기관이나 프로그램이 생기고, 법률과 자격증이 갖춰지는 등 제도가 정비되고 있다. 일하려는 사람도 넘쳐난다. 다만 일자리가 없을 뿐이다. 지역문화진흥법, 문화기본법, 문화다양성 관련 법 등 최근 새로 제정된 중요한 문화 3법에 ‘문화인력 양성’ 관련 내용이 모두 있음에도 ‘양성 그 후’에 대한 언급은 없다. 진입장벽이 높아지는 것도 문제다. 자격증 없이 진입이 가능했던 일자리도 자격증을 요구한다. 수백만원의 비용과 시간을 들여 자격증을 딴다 해도 지원할 자격이 생길 뿐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다 경력만 뽑으면 나 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느냐”는 항변은 ‘경력 있는 신입’을 요구하는 현실 앞에 무기력하다.

실제 최근 2주간 문화예술계의 채용 공고를 살펴봤더니 인턴, 단기 스태프, 보조인력, 기간제 근로자, 대체인력을 뽑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정규직을 명시한 채용은 단 1건, 그나마도 경력직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쪽 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20대를 만날 때마다, 여자 후배라면 더욱 “웬만하면 외국에 나가서 돌아오지 말라”고 권한다. 열심히 일해보고 싶다는 후배의 등을 두드려주지는 못할망정 밀어내는 나 자신이 부끄러우면서도 서글프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몇 십억원 규모의 국가 프로젝트 운영조차 용역업체 소속 파견직 직원에게 맡기는 것이 ‘문화융성’과 ‘문화가 있는 날’을 부르짖는 정부 산하기관의 현실이니까.

결국 소설의 마지막에 살아남는 사람은 영주씨다. “아무도 해란씨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있다 떠난 사람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것도 없다는 듯이, 마치 없었던 사람처럼” 해란씨는 그대로 사라진다. 인력 양성도 좋지만, 경력을 열심히 쌓아도 기회 자체가 차단되어 있는 이들이 갈 곳을 마련해주는 것이 먼저다. 해란씨 같은 사람들이 잠시 있다 떠나지 않도록, 남아서 일하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할 때다. 해법을 모색하고, 고민을 모을수록 해란씨가 돌아올 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이 책임만큼은 영주씨처럼 살아남아 ‘팩에 든 고기’가 되어버린 기득권의 몫이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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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후레자식>(김칸비 글, 황영찬 그림)이 고소당했다. 고소인은 <후레자식>을 “목적 없이 살인을 하는 살인자가 아버지인데, 자식에게 살인을 가르치고 함께”하는 작품으로 요약했다. 전체 92화 중 도입부 14화까지 내용 중 몇 장면을 캡처해 잔혹성, 여성비하, 노인멸시, 장기밀매, 원조교제에 대한 증거로 첨부했다. 아버지의 자식 사랑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나, 이건 틀렸다. 미디어의 노출, 콘텐츠의 표현 수위는 고소의 대상이 아니라 토론해야 할 문제다. 청소년 문제는 더욱 그러하다.

먼저 ‘전 연령 구독가능’이라고 하지만, <후레자식>을 초등학생들이 보지는 않는다.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보편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방귀대장 뿡뿡이>나 <꼬마버스 타요>를 청소년들이 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후레자식>도 스릴러라는 장르의 특성과 작화의 특징 등으로 인해 청소년 이상이 주로 구독한다. 두 번째, 미디어에서 묘사된 폭력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건 명확하게 결론 내리지 못한 논란의 대상이다. 연구자나 연구 설계와 방법에 따라 유해함과 무해함이 다르게 나타난다. 세 번째, 문화를 통제하는 것은 대부분 국가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통제 수단의 하나로 활용된다. 부작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통제보다는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보편적 합의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불안에 충분히 공감한다. 험한 세상에서 우리 아이가 좋은 것만 보고 자라나길 원하는 건 아버지로서 당연한 욕망일 것이다. 청소년들이 <후레자식>을 보는 것이 아이들의 정상적인 성장을 방해할 정도로 위험한 일일까? 큰 회사의 사장이자 평판이 좋은 선우동수는 사이코패스 연속살인자다. 그는 아들 선우진을 자신의 살인에 동참시킨다. 살아남기 위해 아버지의 악행에 동참하던 선우진은 17세가 돼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게 되고 아버지에게서 도망치려 한다. 아무리 “난 아버지의 소유물이 아니야”라고 결심하지만, 무게 추가 너무 기운다. 아버지는 모든 걸 갖고 있고, 아들은 약하고, 친구도 없는 왕따다. 그런 선우진이 학교 일진 재혁과 부모가 남긴 빚에 쫓기는 전학생 윤견과 친구가 돼 절대악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한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살인의 기술을 가르치는 만화가 아니라, 17세 소년의 성장 스토리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현실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예를 들어 학원 스포츠 같은 허무맹랑한 건강함 대신 사이코패스 아버지의 손에서 탈출하는 스릴러 장르의 틀 안에서 자신들이 처한 현실과 마주한 것이다. 청소년들은 일상에서 모든 기득권을 독점한 기성세대가 움직이라는 대로 움직이지만, 사실은 선우진처럼 탈출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청소년들이 보기에 기성세대는 모든 걸 독점하고 자신들을 경쟁의 틀 안에 밀어 넣은 사이코패스라 생각할 수도 있다.

대중들이 열광하는 많은 콘텐츠들은 당대를 반영한다. 특정 작품에 대중들이 환호하는 건, 그 작품이 바라보고 있는 세계에 대한 태도와 대중들이 갖고 있는 세계에 대한 태도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후레자식> 말고도 더 높은 수위의 스릴러들이 많이 있지만, 청소년들이 이 작품에 환호하는 까닭은 선정적인 설정이나 장면(은 의외로 많이 나오지 않는다)을 은밀하게 즐기려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이 보여주는 미감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아이가 <후레자식>을 즐겨 보았다면, 아버지로서 함께 토론했어야 한다. 그게 옳은 길이다. 하지만 <후레자식>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콘텐츠의 자율규제는 창작자와 유통사, 이를 구독하는 수용자 간에 문제제기와 합의를 통해 그 선이 정해진다. 분노와 고소가 아닌 비판과 토론이 필요하다. 이번 이슈가  생산적 토론으로 나아가길 기대하고, 가능하다면 그런 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보려고 한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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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노동운동가 박점규는 주간경향의 ‘노동여지도’라는 연재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울산의 노동자는 40~50평 아파트에 살며 쏘나타와 그랜저를 타고 다니는 ‘직영계급’과 20평 임대주택에서 엑센트와 아반떼를 타는 ‘하청계급’, 이 공장 저 공장을 떠돌아다니는 ‘알바계급’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후, 울산을 비롯한 동남권 공업벨트는 조선업의 위기로 인해 아래로부터 크게 부침을 당하는 중이다.

연일 쏟아져 나오는 투자실패, 부실경영, 분식회계 등에 대한 뉴스들로부터 잠시 숨을 돌린 후, 박점규가 “직영계급”으로 명명한 ‘정규직 노동자-중산층 모델’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먼저 1970년대 중반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당시 서울로의 순유입 인구수는 1975년에 정점을 찍었다. 당시 경제호황은 인구이동의 동력원 구실을 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시점을 기준으로 서울로 유입되던 영남 인구가 급속히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신 이후 중화학공업 육성책에 따라 새로 건설된 동남권의 공업벨트가 서울을 대신해 이 인구를 흡수한 결과였다.

당시 이 지역에 유입된 인구 상당수는 국가 주도의 직업훈련프로그램을 거친 예비 노동자였다. 박정희 정권은 1967년 이후 ‘직업훈련법’에 의거, 기술자격증 제도와 직업훈련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인력관리의 일환으로 대체복무 제도를 마련했다. 사회학자 문승숙이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에서 지적한 대로, 중등교육까지 마친 하층계급의 젊은이들에게 정부의 프로그램에 참여해 국가의 지원 아래 제조업 사업장에 취업하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사회진출 전략이었다.

누군가는 베이비붐 세대를 대상으로 행해진 이런 “숙련노동의 남성화” 과정을 두고 ‘난민촌에서 병영화된 공장으로의 이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영남권에 집중된 국지적 현상이기도 했다. 중화학공업 육성책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호남권과 충청권 출신들은 여기에서 비켜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들 중 하층 계급 출신은 서울 이외에는 다른 선택지를 찾기 힘들었고, 이주 후에는 주로 일용직 혹은 비공식 부문의 산업예비군으로 편입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향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 중 하나는 동남권 공업벨트의 대표주자, 울산의 출생지별 인구분포일 것이다. 2000년 기준, 울산 인구 중 울산 출신은 46.1%, 부산·경남 출신은 19.1%, 대구·경북 출생자는 18.3%로, 영남 출신이 전체의 83.5%였다. 반면 광주·호남 출신은 4.3%, 대전·충청 출신은 3.9%에 불과했다. 따라서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남권의 이주는 계층에 따라 상이한 목적지로 분화되었다고 말이다. 즉 영남의 구중산층은 관료진출이나 사업확장을 위해, 엘리트들은 대학 진학을 목표로 서울로 이주한 반면, 농촌 퇴출 인구의 상당수는 동남권 공업벨트로 이동했던 것이다.

이 지역 특유의 중산층 모델이 등장한 것은 바로 후자의 경로를 통해서였다. 70년대 중반, 이 경로의 초입에 진입했던 베이비붐 세대들은 1987년의 노동자 대투쟁을 경유해 ‘남성 노동자’라는 집단적 정체성을 획득했고, 90년대에는 임금인상과 사내 복지제도 도입에 힘입어 ‘정규직 노동자-중산층 가족’이라는 새로운 중산층 모델을 고안하기에 이르렀다.

1987년이라는 시점과 관련해 흥미로운 점은 수도권의 1940·50년대생 도시 중산층이 주도적으로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던 시점에, 동남권 공업벨트의 베이비붐 세대 노동자들은 결혼-출산·육아-집 장만과 관련된 생애주기상의 과업수행을 앞둔 상태에서 저임금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대규모 파업투쟁에 돌입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두 유형의 중산층 모델은 가파른 내리막길 앞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몰락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도 사라진 시대, 각자도생의 열망만이 아우성치는 시대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박해천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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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연말로 돌아가보자. 벌써 4년 전이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영화 <레미제라블>은 그다지 훌륭한 작품이 아니었다. 소설이 가지고 있었던 모순과 복잡성은 평평해졌고, 뮤지컬이 가지고 있었던 본연의 에너지는 스크린을 찢고 튀어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관객들, 특히 정치적으로 ‘진보’라 분류되는 관객들은 열광했다. 작품 속에 묘사되는 실패한 혁명의 이야기를 보며 18대 대선 패배의 아픔을 달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극장에서는 여성 참정권 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서프러제트>가 상영 중이다. 놀랍게도 이 작품은 서프러제트 운동을 다룬 최초의 장편 상업 영화인데, 그래서인지 해당 운동이 지니고 있었던 사회적 맥락을 최소화하고, 강경파와 온건파가 다양한 각도에서 대립하던 모습도 깊게 조명하지 않는다. 대신 감독은 그 작품을 철저한 ‘운동권 영화’로 만들어냈다.

주인공인 모드 와츠(캐리 멀리건 분)는 우연히 서프러제트의 시위 현장에서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되고, 어쩌다가 운동권에 휘말려, 결국 투사로 거듭난다. 동료가 이탈하고, 배신의 유혹을 받고, 어떤 이는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캐리 멀리건의 선한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다. 그저 착하고 순수했던 그가 한 사람의 ‘운동권’으로 재탄생하는, 꽤나 고전적인 서사가 2016년 극장가에서 상영 중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레미제라블>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왕년의 운동권’들은 왜 극장으로 몰려가지 않을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레미제라블>을 ‘운동권 영화’로 소비하는 데에는 일종의 비평적 곡예가 필요했다. 반면 <서프러제트>는 그럴 필요가 없다. 대놓고 ‘운동권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때 ‘짱돌’ 좀 던져봤다고 으스대다가 ‘문화운동’ 한다고 방향을 돌렸던 수많은 남성 비평가들은 <서프러제트>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매년 극장가에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다룬 대체로 뻔한 영화들이 절찬 상영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내부자들>을 꼽아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경상도 방언을 쓰는 ‘꼴통 검사’가 전라도 방언을 쓰는 ‘착한 건달’과 손을 잡고, 한국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내부자들’에게 한 방 먹인다는 줄거리이다.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고 ‘치부’를 보여준다는 그런 작품들은 한 해에도 몇 편씩 나온다. 대체로 여성들은 피해자의 위치에서 폭언을 듣고, 두들겨 맞고, 강간당하고, 시신으로 발견되기 일쑤다. 그러면 남자인 주인공이 절규하면서 정의 구현을 위해 힘쓴다. 그리고 관객들은 폭력의 무신경한 재현 앞에 ‘날것’이라며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그 맥락에서 이경미 감독의 신작 <비밀은 없다>를 생각해보자. 자신이 태어난 경북의 한 도시에서 처음 출마한 정치 신인이 해당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탈당파 현역 국회의원과 맞붙는데, 그의 아내가 호남 출신이라는 것이 ‘추문’으로 취급되며, 하나뿐인 딸은 실종됐다. 전라도 여자는 경상도 한복판에서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 광기 어린 추적을 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호남차별, 여성차별, 학교폭력, 동성애, 불륜 등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뜨거운 감자를 한꺼번에 씹어삼킨다.

그럼에도 <서프러제트>와 마찬가지로, <비밀은 없다>는 저평가 혹은 무(無)평가 당하고 있다. 나는 그 이유가 매우 명백하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단지 희생자에 머무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주인공들은 어떤 일을 겪고, 위협을 당하고, 폭력에 노출된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판단하고, 책임을 진다.

그러자 관객뿐 아니라 비평가들 역시 형식적인 코멘트만을 남겨놓고 침묵을 지키는 중이다. 그 침묵은 열렬한 예찬보다 우리 사회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말해준다. 한국 사회는 피해자가 아닌 주체로서의 여성을 순순히 용납하려 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주체-되기. 2016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겁게 논의되어야 할 ‘정치적’ 주제다.

노정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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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문화대혁명 시기의 특징이었다. 조반파 사이의 논쟁이건 홍위병 사이의 논쟁이건, 아니면 부녀자들 사이의 말다툼이건 간에 최종적인 승리는 마오쩌둥의 말을 들고나오는 사람의 차지였다. 마오쩌둥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결론이 나고 쟁론과 말다툼도 즉시 끝이 났다. … 그 시기에는 신문에 실리든 방송에서 방영되든, 아니면 대자보에 나붙든 간에 거의 모든 글이 마오쩌둥 어록 다음으로 루쉰의 말을 인용했다.”

중국 소설가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책에서 읽은 구절이다. ‘태양이 언제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가’를 놓고 친구와 1년 가까이 논쟁을 벌이던 소년 위화는 “루쉰 선생님께서도 정오에 태양이 지구에서 가장 가깝다고 말씀하셨단 말이야!”란 거짓말로 지루한 논쟁을 한 방에 끝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루쉰이 그런 말을 한 적도 없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문화대혁명 때 ‘루쉰’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중국에서 얼마나 엄청난 위력을 갖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당시 중국의 ‘루쉰’ 같은 단어가 지금 한국에서는 ‘비용’이 아닐까? 이 단어는 몇 개의 유사어를 갖고 있는데, ‘비용 절감’ ‘경영 효율화’ ‘구조조정’ 등이 대표적이다. 일단 ‘비용’으로 잡히는 모든 것은 절감해야 할 대상이며, 효율화의 타깃이자, 혁신해야 할 그 무엇이다. 이 필터를 거치면 ‘사람’은 ‘인건비’로, ‘안전’은 ‘유지보수비’로, ‘고용 안정성’은 ‘경상비 부담’으로 바뀐다.

“루쉰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틀림없이 네 말이 맞을 거야.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봐.” 슬픈 표정으로 패배를 인정한 소년 위화의 친구처럼, 용역 결과 보고서 하나면 “컨설팅 회사에서 전문가들이 그렇게 진단했다면 그 말이 맞겠지요. 저희가 잘못해 왔나봅니다”라며 정부조차 고개를 숙이고,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중국 작가 루쉰_경향DB



한때 중국에는 마오쩌둥의 어록이 밥그릇과 컵에도 인쇄돼 있을 정도로 생활을 지배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국은 어떤가? ‘비용 절감’ ‘경영 효율화’라는 키워드는 이미 사회 전반은 물론 사람들의 머릿속에조차 뿌리를 내리고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관리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경비 인력을 줄이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며, 산업이 어려워지면 ‘구조조정’이 가장 먼저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공공영역도 결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부채 감축과 적자 개선, 인건비 절감은 공공기관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에서 확인했듯, 핵심 업무들은 경비 절감을 명분으로 민간에 넘어간 지 오래인데도 외주화는 여전히 공공부문 경영 효율화의 주요 평가지표로 남아 있다.

마오쩌둥 어록 다음으로 루쉰의 말을 인용했던 중국처럼 한국에서는 ‘비용 절감’이 절대적인 마오쩌둥의 어록 대접을 받고, ‘수익 창출’이 루쉰 선생님의 말씀처럼 떠받들어진다. 그러나 어떤 ‘비용’을 절감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접대비’는 필수 비용이지만, 안전 관련 비용은 절감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어떤 비용은 ‘지출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해야 할 때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엄청난 위력을 갖고 있던 ‘루쉰’은 이제 대명사로서의 무게를 내려놓고, 작가의 운명을 되찾았다. 작가가 하나의 단어로 소비되는 것만큼 작가에게 비극적인 일이 또 있을까? 루쉰은 작가의 위치로 돌아왔으니 다행이지만, 한국의 ‘비용’은 언제쯤 다른 운명을 맞이할 수 있을까? 과연 단어 원래의 운명을 찾아갈 수 있기는 한 걸까? 만능 키워드처럼 ‘비용 절감’만 내세우면, 모든 사회적 합의가 실종되는 지금이야말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때다. ‘비용’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비용’은 한때의 ‘루쉰’만큼이나 오용되는 단어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치르게 될 터이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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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이슈가 되고 있는 미소지니(misogyny)에 대한 의견을 블로그에 올렸다. ‘여성혐오는 나의 문제다’라는 글이었는데, 5월23일에 올린 글의 링크가 소셜미디어에서 한창 돌아다녔다고,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어쩐지…. 며칠 동안 보기 드물게 블로그 트래픽이 나오더라니. 그 며칠 사이에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댓글이나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간혹 저주에 가까운 욕을 듣기도 했다.

인상적인 건 나를 규정하는 표현이 ‘중년, 남자, 교수’였다는 거다. 중년, 남자, 교수 말고도 나를 규정하거나 설명하는 단어가 많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 길게 쓰다가 지웠는데, 이 지면을 전부 다 채워도 모자라다. 중년, 남성, 교수라는 단어는 서로를 수식하며 어떤 권위를 만든다. 권위는 중년, 남성, 교수에서 전부 발화해 나를 덮는다.

중년, 남성, 교수라는 권위의 옷을 입는 순간 좀 어설프고, 모자란 개인인 ‘나’는 사라진다. 예컨대 원고 몇 줄을 제대로 쓰지 못해 끙끙대다가 한밤중 홈쇼핑 채널을 보다 잠이 든 구체적인 ‘나’는 없다. 권위의 옷은 나를 무겁게 짓누른다. 권위가 나를 규정할수록 자유는 속박된다. 멀쩡하던 남자들도 예비군복만 입으면 시정잡배처럼 껄렁거리게 되고, 익명의 게시판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댓글을 달지 않던가. 누군가는 지능이 모자란 거 아니냐고 묻지만, 길들여져서 그렇다.

권위에 길들여지면, 상대를 만나도 권위를 먼저 본다. 킁킁, 내가 해볼 만한 사람인가? 우리 사회가 유독 약한 이들에게 잔혹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나보다 더 세 보이는 권위에는 감히 도전하지 못한다.


26일 검은 옷을 입고 근조 표시가 붙은 거울을 든 시민들이 살인사건 현장에서 강남역까지 행진을 하며 여성혐오범죄를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막아야 할 사회적 문제임을 표현하고 있다._경향DB


권위를 입고 있으면, 내 맨얼굴이 사라진다. 내 얼굴과 마주하지 못하니 내가 원하는 나를 모른다. 그러니 목덜미를 세우고 있다. 으르렁! 뭘 해도 피곤하고, 피곤이 누적되니 화가 난다. 걸리기만 해 봐라, 하는 마음뿐이다. 이미 누더기가 된 내 권위를 지키려 해 봐야 돌아오는 건 피곤뿐이다. 이제 좀 버리자.

우리는 여성을 혐오하지 않아요, 우리 친하게 지내요, 라고 말하는 뒤에 버려야 할 권위가 있다. 권위를 지키려고 지성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혐오’라는 단어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면서 권위의 옷을 추스른다. 오늘 이 문제는 토론이 아니라 요구다. 이건 누더기가 된 권위를 벗어버릴 기회다. 내가 중년, 남자, 교수가 아니라 딩가딩가 만화와 게임과 쓸데없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 달콤한 제안을 거부할 필요가 없다.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사선을 넘나들던 고난의 서사가 먹히는 시대가 끝이 났다. 세상은 자학으로 위로받기엔 너무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그러니 내려놓고, 벗어놓고, 편하게 살자.

문득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항상 바쁘게 살다 지금 내 나이 무렵 어떤 사정으로 직장을 퇴직하고 저 멀리 서해 바닷가로 내려갔다. 중학교 3학년이던 나는 여름방학이 되어서야 겨우 연고도 없던 바닷가에 가 보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바닷가를 찾은 몇 안되는 이들에게 음료수를 팔았고, 나무를 다듬었고, 난을 채집하러 다녔다. 그 해인가 아니면 그 다음 해인가 신춘문예에 보낼 단편소설을 써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소설의 줄거리를 설명하는 아버지의 얼굴은 지금까지 봤던 어떤 표정보다 밝았다.

이제는 잔치도 하지 않는다는 환갑을 1년 앞두고 돌아가신 후 서재를 정리하다 동창회보에 쓴 수필을 봤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소설을 썼고, 소설가로 살고 싶었다는 내용이었다. 문득 청소년 시절 봤던 아버지의 그 얼굴이 떠올랐다. 중년, 남성이 중년, 남성들에게 말한다. 낡은 권위 따위는 벗어버리면 어떨까? 이런 권유라도 하고 보니 2012년 4월부터 써 왔던 이 지면도 내 권위의 한 조각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인하 | 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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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영국. 그나마 개혁적이고 온건하며 사회변화를 추구한다는 자유당이 여당이었고, 자유당의 가장 큰 맞상대는 보수당이었다. 노동당과 아일랜드 자치파 등은 그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들의 지분을 최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그와 비슷한 사회적 신분 및 교양 수준을 가진 이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자유당을 지지했다. 수많은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처럼 말이다.

자유당은 그러한 기대를 저버리고 여성들의 권리를 한없이 유보시켰다. 그럼에도 자유당은 자신들이 ‘차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자서전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를 인용해보자. “자유당은 여성이 투표권을 혹시 얻게 된다 해도 자유당을 통해야만 하는데, 자유당을 공공연히 적으로 돌리는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냐며 비난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른바 ‘잠재적 아군’들의 논리다. 너희들이 지금 뭘 요구하는지 모르지 않지만, 당장 그것보다 시급한 일이 산적해 있다. 그러니 일단 너희들의 요구사항을 접어두고 ‘대의’에 복무하라. 우리 ‘잠재적 아군’들을 적으로 돌리지 말고 ‘조곤조곤’, ‘사근사근’하게 설득하는 태도를 보여라.

이런 주장에 혹하는 사람들 역시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여성 자유당원이나 합법적 참정권론자들 역시 이런 현명한 체하는 논의를 펼쳤다. 그들은 정당을 위해 일하는 것만이 제대로 된 방식이라고 충고했다.” 서프라제트(선거권을 쟁취하려는 여성들)는 콧방귀를 뀌며 자유당을 상대로 한 낙선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를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이렇게 회고한다. “우리가 진지하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자유당 후보를 낙선시키는 데 처음으로 성공한 후라고 생각된다.”


23일 강남역 살인사건을 ‘묻지마 범죄’로 규정한 경찰에 항의하기 위해 SNS를 통해 모인 시민들이 서울 서초경찰서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_경향DB


여기서 잠시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보자. 한반도 역사상 단 한 번도 여성들은 인간으로서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사회적 차별은 말할 것도 없다. 인터넷이 전국 방방곡곡에 깔리면서 상스러운 여성혐오적 표현이 전국을 누볐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의 뒷모습, 약물에 정신을 잃고 나체가 된 사진, 원치 않게 촬영된 성관계 장면 등을 남자들은 돌려보고 시시덕거리며 자기들끼리 품평회를 즐겨왔다.

이 도저한 차별과 폭력과 혐오와 멸시의 역사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몇몇 용감한 여성들이 바로 그 공격적인 언어를 되돌려주는, 이른바 ‘미러링’을 시작하면서부터다. ‘김치녀’라고 10년 넘게 멸시당해오던 여성들은 이제 더 이상 ‘하지 마세요’라고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남자들을 향해 ‘김치남’이라고 맞받아친다. 놀랍게도, 그러자 비로소 남자들이 ‘온라인 언어폭력’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자기들도 맞아보고 이제서야 아프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나는 이 시위를 지휘할 것이고, 돌멩이야말로 내가 사용하려는 논쟁 방식입니다. 돌멩이야말로 가장 쉽고 직접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서프라제트는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고, 우체통에 불을 지르면서 여성 투표권을 외쳤다. 우리가 오늘날 당연하게 여기는 여성의 투표권은 바로 그렇게 쟁취된 것이다.

‘미러링’이 불편한가? ‘증오의 총량’이 늘어날까 우려되는가? 20세기 초의 서프라제트와 달리, 21세기 초 대한민국에서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유리창 하나도 깬 적 없다. 한없이 온건하게 포스트잇을 붙이고, 슬픔을 나누고, 지금까지 너무도 속 편하게 기득권으로 살아온 ‘한국 남자’들의 행태를 거울에 비춘 듯 되돌려 보여줬을 뿐이다. 혹자는 여성혐오를 둘러싼 현재의 논란이 ‘남녀 대결 구도’로 향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아니다. ‘남녀 대결 구도’가 맞다. 그리고 여자들이 이겨야 옳다. 여성혐오와 맞서는 여성들을 한 사람의 남성으로서 전적으로 지지한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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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박정희 대통령은 ‘승리하는 자는 중단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연두교서를 발표하면서 “조국 근대화”의 목표를 제시한다. 그것은 추상적 구호나 통계 수치가 아니라 구체적인 일상의 모습으로 제시된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 가족의 삶이었다. “그때 국민 대다수는 안정된 직장을 갖고, 가족과 더불어 주말을 즐기며, 주부는 편리한 부엌을 갖춘 살기 좋은 주택에서 알뜰한 생활을 꾸밀 것이며, 자녀는 씩씩하게 자라고 슬기롭게 배워 세계에서 으뜸가는 한국인의 자질을 자랑하게 될 것이다.” 이후 정권은 출생-교육-취업-결혼-출산·육아-집 장만-자녀 교육-부모 공양 등 사회 구성원이 수행해야 할 과업을 생애주기별로 배치하기 시작했고, 실제로 두 유형의 집단이 ‘국민’으로서 위의 과업 일부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중산층 가족’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첫 번째 유형의 1세대는 1970년대 중반 이후 강남의 아파트 단지에 등장했던 1940년대생 대졸 엘리트들이었다. 이들은 명문고-명문대라는 학벌을 동력으로 삼아 대기업 관리직이나 전문직으로 성장하면서 현대적인 핵가족 모델을 완성해냈다. 두 번째 유형의 1세대는 대기업 사업장에서 정규직 노동자로 성장한 베이비붐 세대였다. 이들은 공고 졸업·직업훈련소 이수-취업·병역특례 등의 경로를 거친 후 동남 공업 지역을 거점으로 성장했고, 87·88년의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자신의 이해관계를 ‘민중주의’와 결합시켜 중산층의 삶을 위한 경제적 여건을 마련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주했던 이 두 유형의 중산층 대다수는 봉건적 가부장제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극단적인 남아선호 현상으로 표출되기도 했던 가부장제의 혈통주의는 도시적 삶의 역동적 면모를 견뎌내기 위한 방패막이면서, 개인의 성취를 가족의 역사로 확장할 수 있는 서사적 장치이기도 했다. 물론 이런 식의 중산층-국민 만들기 프로젝트는 경제 성장의 뒷받침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도성장기가 저물자, 국가가 내건 과업의 목록은 역순으로 체념과 절망의 대상으로 변모했다. 아파트 가격 폭등과 양육비용 증대로 집 장만과 출산을 뒤로 미루거나 단념하기 시작했고, 얼마 후 저성장 시대의 본격화와 더불어 결혼과 연애와 취업을 차례대로 포기하기 시작했다.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강화방안 주요내용_경향DB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그저 중산층 진입의 불가능성만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불가능성은 ‘국민’이라는 정체성의 불가능성과 곧바로 연결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국민’이라는 호명을 받아들인 것은 중산층 양성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일정 정도 자기 삶의 비전으로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목표의 부분적인 실현조차 국가가 보증해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N포 세대”라는 명명법의 등장 직후 “헬조선”이라는 유행어가 출현한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셈이다.

주지하다시피, “헬조선”의 세계에서 비정규직은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젊은 세대는 극심한 취업난에 부표 없이 표류하며, 여성들은 가부장제의 여성 혐오에 희생양으로 동원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세계에서 가부장제의 권력은 뭇 남성들이 동원할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자원들 중 가장 강력하고 친숙한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보다 7% 넘게 앞선 시대에 그 권력이 과거의 영광을 반복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가부장제의 성역할을 거부하는 젊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반감과 증오가 가시화되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일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이런 맥락들로 인해 젊은 세대의 여성들을 중산층 가족 모델과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집단적 주체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사회적으로 확장해 간다면,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국민 이후의 현대적 개인’을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다만 문제는 모색을 위한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해천 |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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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이 눈과 귀가 피로해지는 요즘이다. 밖에 나갈 때 이어폰을 챙기는 게 어느새 습관이 됐다.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해 멀리 가야 할 때, 이어폰은 필수품이다. 눈을 가릴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귀는 막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전철 스크린도어에는 무슨 기준으로 골랐는지 알 수 없는 시가 쓰여 있고, 손잡이부터 의자까지 눈 닿는 곳마다 형형색색 요란한 광고판으로 가득하니 어디 한 곳 편하게 눈 둘 곳이 없다.

물론 이어폰을 끼고 있다고 해서 머리 위로 광고 전단지를 쓱 붙이고 사라지는 사람, 사연을 담은 쪽지를 무릎 위에 올려놓는 사람, ‘예수 믿고 천국 가라’는 사람들까지 피해가긴 어렵지만 고육지책이다. 지하철에서 내렸다고 끝난 게 아니다. 출구까지 가는 길도 지난하다. “선진국도 우측통행을 한다”, “에스컬레이터는 한 줄로 타라”, “운동할 시간 없으시죠?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대한민국 모든 곳이 운동이 됩니다”. 안내인지 계도인지 알 수 없는 문구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하다못해 계단도 말을 한다. “당신을 위한 건강 디딤돌, 저는 계단입니다”, “헌혈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세요”…. 도심을 벗어나면 괜찮을까? 집 앞 공원도, 울창한 산속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리 손바닥만 한 공원일지라도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훈수를 피해갈 수는 없다. ‘돗자리를 펴지 마라’부터 시작해 ‘금지’된 것들은 차고 넘친다. 쓰레기 무단 투기 금지, 텐트 설치 금지, 낚시 금지, 야영 및 취사행위 금지…. 금지의 이유가 되는 관련 법률과 어겼을 때의 벌금, 관리 주체까지 빨갛고 커다란 글자로 적힌 현수막들이 곳곳에서 나부낀다.

얼마 전에 다녀온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기억이 떠오른다. 국립공원 내에 수많은 나무가 있었지만, 어느 나무에서도 인위적인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동네 뒷산 나무에도 형형색색 산악회들의 리본이 달려 있는 것에 익숙했던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5시간 가까이 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산불 조심’, ‘흡연 금지’ 등과 같은 현수막은 단 하나도 보지 못했다. 일부러 찾아보기까지 했는데 넓은 공원을 어디에서 관리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트레킹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탄 보트도 마찬가지였다. 환경 보존을 위해 전기로 움직인다는 보트는 단순함 그 자체로, 어디까지 간다는 안내 문구판 하나 붙어 있지 않았다. 출발 안내는 없었지만, 보트는 정확하게 안내판에 적힌 시간에 맞춰 사람들을 태웠고, 시간이 되자 출발했다. 햇빛은 따뜻했고, 호수는 적막할 정도로 조용했다. 사람들 역시 고요히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인형을 안고 타이타닉을 한 장면을 연출하며 키득거리던 아이들도 사진을 찍고 나자 조용해졌다.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 새 소리, 물결도 일렁이지 않는 호수를 가르는 보트 소리뿐이었다. 호수는 호수 가득 산과 구름과 하늘을 담고 있었고, 보트는 조용히 그 호수의 풍경 속을 흘러갔다.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고요는 계속되었다. 평화롭고 고요했으며, 깨끗했다. 어떠한 안내도, 홍보성 멘트도 필요하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어느 순간보다 평화로웠다.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시민들이 지난 21일 오후 강남역 살인사건 여성 피해자를 추모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_연합뉴스

지난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젊은 여성이 살해당했다. 강남역 10번 출구는 여성 혐오 범죄에 희생된 한 젊은 여성을 애도하는 공간이 됐다. 그런데 이 작은 추모의 공간이 불편한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바로 그런 불편함의 정서가 정당하고 당연한 추모와 애도에는 ‘유난스럽다’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게 하고, “여성이 무시했다”는 가해자의 말 안 되는 이야기는 분석을 거듭해 이유를 찾게 만드는 원동력일 터다. 어떻게 보면 강남역 10번 출구야말로 거리를 뒤덮고 있는 수많은 계도성 현수막이 정말 필요한 곳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할 지점에서 버젓이 폭력을 자행하는 세력들을 방조하는 지금의 상황이 참담한 이유다. 광고가 듣기 싫으면 이어폰이라도 낄 수 있지만, 이 악다구니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걸까.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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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찾은 외국 스타들의 인터뷰어로 활동한 한희준과 에릭남이 게스트로 나온 TV 토크쇼를 봤다. 에릭남은 15개월 만에 새 앨범이 나와 리포터를 그만두었다고 말했고, 한희준은 인터뷰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해 3개월 만에 하차하게 됐다고 했다. 이후 서로의 인터뷰를 과장되게 재현하고 마무리됐다.

어쨌건 결론은 에릭남. 인터뷰를 몇 개 찾아봤다. 에릭남은 인터뷰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유도해 냈다. 에릭남의 인터뷰에는 “김치 좋아하세요?” 따위의 질문이 없었다. 보는 이가 부끄러워질 바로 그 질문이 안 나오는 인터뷰가 모두를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단체 사진 찍을 때 ‘파이팅’ 구호가 없는 것처럼. 누군가의 말처럼 비정상의 정상화가 중요하다.

“김치 좋아하세요? 싸이 아세요? 말춤 춰 볼까요?” 우린 이런 상투적이고, 일방적이며 무례한 질문들과 함께 살아간다. 질문을 바꿔볼까? “애교 부탁해요. 섹시 댄스 보여주세요.” 앞 질문은 국가주의의 극단이고, 뒤의 질문은 남성중심주의 극단이다.

완전히 다른 질문처럼 들리지만 두 질문 모두 내가 속해 있지 않은 타자들을 만나 발화한다. 놀랍게도 이 질문이 나오는 순간 상대방은 어쨌든 한국을 사랑해야 하는 외국인과 가끔은 섹시하기도 한 국민여동생으로 일반화돼 소비된다. 다른 것 같지만 국가주의와 남성중심주의는 한 몸에서 나온 두 머리를 한 괴물이다. 약해 보이면 물어뜯는다.

발렌타인데이(2월14일)가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살해한 안중근 의사의 사형 선고일로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13일 서울 중구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돌아보고 있다._강윤중 기자

걸그룹 멤버인 설현과 지민이 이 괴물에게 물렸다. 생방송에서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여줬는데, 누군지 몰랐다. 잘 걸렸다. 모두 달려서 물어뜯자. 아이돌의 역사의식 부재를 지탄했고, 외적인 것만이 아니라 내적인 것들도 채우라는 훈수도 나왔다. 외적인 것, 그러니까 몸매를 만들고, 칼 군무를 연습하는 일 따위를 말하는 것 같다. 대중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 노력과 고단한 삶은 리얼리티 쇼프로그램에서 훔쳐볼 수 있었다. 무려 국민 프로듀서들에게 선보일 노래를 연습하기 위해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소녀’들이 매번 밤을 새우는 걸 볼 수 있었다. 몇몇은 탈진해서 응급실로 실려 가기도 했다. 기계처럼 맞아 돌아가는 칼 군무는 가학적인 수준의 연습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그리고 여성 연예인들에게 강요되는 비현실적인 몸매 역시 고통을 통해 깎인 것들이다. 그러니까 이런 외적인 것들을 채우는 노력만큼 내적인 것들도 채우라는 말이다.

내적인 것을 채우라고 요구하기 전에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여주고 누구인지 맞히라고 요구하는 질문이 정당한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한두개의 질문으로 상대방의 사상을 검증할 수 있는 것일까? 애초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동의할 수 없다. 게다가 외적인 것이건, 내적인 것이건 뭔가를 빼거나 채우거나 우리가 참견할 문제도 아니다. 그녀들을 개인으로 존중한다면 말이다. 우리는 유독 만만한 이들에게만 가혹하다.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갖추어야 할 사람들이 어디 설현과 지민뿐일까. 인생 참 피곤하게 산다.


두 여자 아이돌은 국가주의의 이빨 앞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급기야 무대 위로 올라 사과를 한다. “무지야말로 가장 큰 잘못임을 배웠다”며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고, 또 불편을 느꼈을 분들에게 마음속 깊이 죄송한 마음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이건 독립운동가 사진을 구분하지 못한 아이돌이 해야 할 사과가 아니라 세상을 엉망으로 만든 누군가들이 해야 할 사과다.

우리 주변을 배회하는 두 머리의 괴물은 언제라도 우리를 집어삼킬 준비가 되어있다. 나와 다른 걸 인정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주체적 개인이 아닌 무언가의 대상으로 받아들일 때 두 머리의 괴물이 너와 나를, 우리 공동체를 집어삼킨다. “김치 좋아하세요? 싸이 아세요? 말춤 춰 볼까요?”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부끄러웠다면, 다른 일에도 괴물이 되지 말기를 노력하자.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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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모든 피해자들은 유일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건 바로 한국사회에서 피해를 입으면 어떻게 되는지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는 본보기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악순환을 발생시킨다. 피해자들을 모욕하면서 그들의 상처를 헤집어놓은 까닭에 피해자들은 이미 겪은 사건의 상처에 더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어야 한다.

아무리 심신이 건강한 사람이라도 이런 상황에서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터져 나오는 피해자들의 이상행동을 두고 사회는 그들이 원래부터 이상하고, 사실상 피해를 당할 만했으며, 피해를 빌미 삼아 사회에 기생하려는 파렴치한 존재였다는 것을 입증하려 한다.

이렇게 피해자를 괴물로 만들어 놓고 사회는 그들에게 발생한 불행이란 결국 그들 자신의 것이었으니 우리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손을 씻는다. 즉 피해자를 모욕하고, 괴물로 만들고, 그들에게 발생한 불행을 사사로운 것으로 만드는 게 오늘날 한국사회가 피해자를 대하는 방식의 전형이다.

어쩌면 사형제도보다도 훨씬 더 잔혹한 이 과정에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 침묵하게 되는 것은 일종의 공갈협박 효과라고 보는 것이 맞다. 불행을 입에 담지 말고, 불행을 피하고, 오로지 안전하게 초원 한가운데를 거니는 양떼의 무리에 끼어 있는 것만이 중요해진다. 종종 피해자 본인보다도 더 비대해진 피해의식을 갖게 된 ‘잠재적 피해자’들은 할 수만 있다면 사회를 하나의 거대한 무균실로 만들고 싶어 한다. 불행의 작은 씨앗이라도 달라붙을까 전전긍긍하며, 국가를 상대로 ‘안전’과 ‘더 큰 권력’을 기꺼이 맞바꾸려고 한다.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 회원들이 '해수부 공무원의 세월호 유가족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_경향DB

불행을 피하기 위한 예방적 조치들은 점점 강박적 조치로, 결벽적인 태도로 이어진다. 합리적 세계를 만들라는 합리적 요구는 점점 증폭되어, ‘무통’한 사회에 대한 요구로 바뀐다. 고통도, 트라우마도, 불행도 없이 오직 평온과 안락만을 제공하는 어떤 세계 말이다. 그러나 어떤 시스템도 모든 불운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 되레 점점 늘어나는 위협요인들의 목록을 보며 왜 간편하게 자살을 택하면 안되는지에 대하여 고민하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

불행을 우리들의 삶으로부터 몰아내려는 모든 호들갑은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그 호들갑의 효과는 뒤따라올 좌절보다도 더 큰 것이다. 우리가 강박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것은 우리의 삶을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세계관은 피해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설 수 없도록 만든다.

인간을 지금 맞이한 불행과 다가올 불행에 의해 규정된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고, 만남이 아니라 폐절과 고립으로 이끈다. 작은 상처에도 쉽게 굴복하고, 새로운 것과 다른 것을 피하게 한다.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가능성들은 질식한다. 결국 그 어떤 피해자도, 또 예비적 피해자도 구제하지 못한 채 사고사와 폐사만이 유일한 미래로 주어진다.

물론 예비할 수 있었거나, 막을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해서까지 해결하려는 노력을 멈춰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노력이야말로 우리가 숙명적인 불행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불행을 우리 삶과 사회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호들갑을 떨거나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누구의 창문으로도 날아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불행을 맞아들인 이웃을 위해 힘을 보태는 것이 혹여 나에게도 날아들지 모르는 불행에 맞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을 누구나 깨달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최태섭 | ‘잉여사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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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됐다. 버나드 샌더스 상원의원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이길 가능성은 없다. 이번 미국 대선은 힐러리 대 트럼프 구도로 전개될 예정이다.

그런데 미국 대선 경선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이 발견됐다. 도널드 트럼프, 혹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인들을 비웃거나 비판하는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이, 동시에 ‘버니’ 샌더스를 열렬히 옹호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트럼프는 극우적인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며 인기몰이를 하는 포퓰리스트이고, 반대로 샌더스는 진정성 있게 진보적인 입장을 고수해온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한쪽을 비판하고 한쪽을 옹호하는 것이 왜 ‘흥미로운’ 현상일까? 왜냐하면 트럼프와 샌더스는 모두 미국인들의 어떠한 정서를 좌우 양쪽에서 대변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두 사람의 인기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문제는 그들이 대변하는 정서가 과연 무엇이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것은 ‘억울함’이다. 1945년 역사학자 이안 브루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0년”부터 최근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미국인들은 억울해하고 있다. 트럼프 열풍, 샌더스 열풍은 동일한 대중적 에너지가 발현된 두 개의 양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민자와 여성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앞세운다. 샌더스는 무슨 질문을 받더라도 ‘그것은 월스트리트가 부를 독점하고 그 밖의 99%를 가난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표면적으로 두 사람은 전혀 만나는 지점이 없어 보인다.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4일(현지시간) 켄터키주 볼링그린에 있는 지역 선거캠프를 찾아 자원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볼링그린_AP연합뉴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을 뜯어보면 그들이 의존하는 대중적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트럼프는 일본이나 한국 같은 동아시아의 동맹국들이 미국의 방위력에 무임승차한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샌더스는 미국이 일본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체결해 대기업의 배만 불리려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안보건 경제건, 바깥 세계와 담을 쌓자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미국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는 것을 일종의 자연 현상처럼 여긴다. 전 세계의 기업들이 미국 시장 진출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 것도 마찬가지로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미국은 자국 영토 외의 문제에 대해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잠자는 거인’이었던 것이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통해 그 거인은 깨어났고,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가 시작됐으며, 대한민국은 미국이 제공해주는 안보와 그 안보를 바탕으로 한 세계 무역 체계 속에서 성장해 나갔다.

주한미군을 철수하거나 방위분담금을 전부 대한민국이 지불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발언을 보며 한국인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미국은 국내에서 소비되는 공산품을 중국이나 그 밖의 저임금 국가가 아닌 미국 내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샌더스의 말은 어떠한가. 전자만큼이나 후자 역시 위험천만한 발언이다. 영국과 프랑스 등 주요 열강들은 샌더스의 말처럼 자국 경제 보호를 위해 식민지를 중심으로 ‘블록 경제’를 구축해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세계 경제의 파이 자체가 줄어들고 있었기에 열강들 역시 불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고, 결국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고작 한 세기 전의 일이다.

트럼프를 비난하고 샌더스를 응원하는 것은 마치 ‘미국의 좌파’가 된 것 같은 기분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하지만 우리는 거의 대부분이 대한민국에 사는 한국인들이다. 샌더스가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선언하며 월스트리트를 비판하는 모습을 보면 속이 후련한가? 그는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억울해하는 미국인들의 고립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우리가 마땅히 느껴야 할 감정은 공포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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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생 문학평론가 김현은 1970년대 후반에 발표한 어느 에세이에서 아파트의 평면적 실내 구조와 동질화된 일상 문화를 비평적인 시선으로 응시한 후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아파트는 하나의 거주 공간이 아니라 중산층의 사고 양식”이라는 것. 지방 중소도시의 구중산층 출신으로 결혼 후 서울 연희동의 단독주택과 여의도의 전세 아파트를 거쳐 반포의 32평 아파트에 당도한 신중산층의 지식인으로서, 자신이 속한 계층의 행태를 성찰한 결과였다.

그러면 김현과는 약간 다른 각도에서 신중산층과 아파트의 결합 양상을 들여다보기 위해 1985년의 인구센서스 자료를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흥미롭게도 이 시기에 서울 강남 거주 20세 이상 인구는 약 45만7000명이었고, 전문대 이상 대졸자는 19만3000명으로 전체의 약 42%를 차지했다. 그러니까 강남 거주자 10명 중 4명이 대졸자였던 셈이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1975년 통계와 비교해보면 명확해진다. 당시 강남에 거주하던 20대 이상의 인구 약 16만9400명 중 대졸자는 약 1만9700명으로 전체의 약 12%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10년 동안 무려 17만여명의 대졸자가 강남으로 이주했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연령대별 대졸자의 강남 집중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1985년 기준, 30대 거주자 13만5400명 중 대졸자는 6만9100명이었고, 40대 거주자 11만2000명 중 대졸자는 6만1500명이었다. 모두 50%를 넘어선 수치였다. 또한 김현이 속한 서울 거주 1940년대생 대졸자 중 약 27%가 강남에 거주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사무 관리직의 임금 상승과 재형저축제도,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를 활용해 강남에서 ‘내집 마련’의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현의 생전 모습._문학과 지성사 제공

이들의 정치적 성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중선거구제로 치러진 1985년의 12대 국회의원 선거였다. 강남구에서 신민당과 민한당의 후보가 승리했고 민정당의 후보는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만 했다. 두 야당은 신흥 부촌으로 급부상하던 압구정동에서조차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반면, 민정당은 내곡동, 세곡동 등 강남에서 비교적 낙후된 지역에서만 겨우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신중산층과 아파트의 관계는 한 단계 더 진척되었다. 3저 호황의 영향으로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해지자, 이 돈의 상당 부분은 부동산으로 몰려들었고, 1987년부터 1989년까지 전국의 땅값은 매년 10%, 27%, 39%씩 올랐다. 그중 가장 가파른 기울기의 가격 상승 그래프를 그린 것은 바로 강남의 아파트였다. 1985년에 9500만원대였던 압구정 현대아파트 48평 시세는 불과 4년 뒤 3억3000만원대로, 그리고 4800만원대였던 반포주공아파트 25평은 1억5000만원대로 각각 세 배 넘게 상승했다. 결국 국민 일부는 지역에 따른 부동산 오름폭의 차이를 응시하며 정부가 주장하던 “선 성장 후 분배론”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들은 고도성장의 ‘보너스’가 부동산 시세차익의 형태로 강남과 비강남, 특별시와 광역시, 도시와 시골 등에 따라 차등 배분된다는 사실, 그리고 더 나아가 학력과 아파트가 계층상승의 방정식에서 지대 추구형 변수로 기능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한편, 이 시점에 정부는 주택난과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토지공개념’ 관련 개혁 법안과 수도권 신도시 개발안을 내놓았다. 1970년대 말에 특혜 분양으로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입주했던 경제기획원 출신의 1939년생 고위 관료가 주도한 것이었다. 또한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동남 공업지역의 중공업 사업장을 중심으로 노동자 임금도 상승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를 앞두고 중산층 진입의 게임이 업그레이드될 준비를 마쳤던 것이다.


박해천 |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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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을 전공하고 ‘엘포’라는 이름으로 만화를 그리는 잔카를로 아스카리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상상의 힘을 믿고, 행복하고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려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렸다. 2012년에 이탈리아에서 출판됐고, 우리나라에는 2015년에 번역됐다. 엘포의 표현을 빌리면 “지상 최대의 식물원 안에는 온갖 종류의 동물들이 있고, 동산의 한가운데에는 멋진 오아시스”가 있는 “환경친화적인 장소”인 ‘에덴동산’에서 시작한 이상향에 대한 탐험을 시작한다.

에덴동산이 환경친화적이라면, 12세기 프랑스의 짧은 시에 등장한 ‘코카인 나라’는 파마산 치즈 가루로 되어있는 산이 있고, 와인이 흐르는 강이 있으며, 우유와 꿀로 된 호수가 있고, 보석이 열리는 나무가 있는 곳이다. 결정적으로 일을 하지 않아야 돈을 벌고, 일을 하면 감옥에 간다! 1516년 영국의 대법관이자 정치가인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인류의 욕망을 문자로 구체화한다. 유토피아는 재산을 공유하고, 필요한 모든 걸 무상으로 제공받으며, 하나의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고, 소유욕을 방지하기 위해 십년에 한 번씩 사는 곳을 바꾼다.

작가 라블레의 소설 <가르강튀아>에 나오는 텔렘수도원은 자고 깨는 시간이나 일하거나 먹고 마시는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 게으르고 멋대로인 공동체는 가르강튀아가 제정한 지원금으로 유지된다. 로빈슨 크루소는 베네수엘라 해안 근처에 표류해 무인도에 들어가 28년을 살게 된다. 다니엘 디포는 <해적들에 대한 이란 역사>라는 책에서 17세기 인도양에 세워진 자유롭고 평등한 국가 리베르탈리아를 그렸다. 여기까지는 모두 가상의 공간이었다. 그런데 상상의 공동체를 구체화하려는 이들이 있었다.


1890년 1월20일 제노바에서 출항한 ‘치타 디 로마’호를 탄 무정부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은 브라질에 도착해 체칠리아라는 공동체를 건설했다. 전염병과 회계담당자의 도주로 4년 만에 공동체가 해체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1693년 스위스에서 야콥 아만에 의해 창설된 단순하고 엄격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프로테스탄트 공동체 아미시는 19세기 초 신대륙에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검소하며 겸손한 규율을 지키며 살고 있다.

1928년 건축가 헬만 죄르겔은 지브롤터와 시칠리아, 튀니지를 거대한 제방으로 연결해 새로운 땅을 만들려는 아트란트로파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자신의 국경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공간을 상상한 것이다. 히틀러는 평화로운 공간을 꿈꾸는 상상력에 아무런 흥미가 없었다. 1963년 피터 슈만과 밥 에른스탈은 뉴욕의 로어이스트사이드에 ‘브레드 앤 퍼펫 시어터’를 창립했다. 이름처럼 그들은 빵을 만들어 나누었고, 인형극을 공연했다.

1968년 5월1일 이탈리아와 유고슬라비아 사이 아드리아해의 바다에 기둥을 세워 20m×20m의 공간을 만든 뒤 독립국 ‘장미섬 에스페란토 공화국’을 세웠다. 냉전시기 동과 서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신생 공화국은 1969년 2월11일 이탈리아가 설치한 폭탄과 26일 불어닥친 폭풍우에 결국 바닷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1973년 히피족 젊은이에서 히피족 부모들이 됐다. 리즈 크리스티와 그린 게릴라 그룹은 뉴욕의 버려진 공간에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었다. 엘포는 “그들은 도시의 부패에 투쟁하기 위해 괭이와 갈퀴를 무기로 휘두르는 것에 반대하는 학생, 주부, 전문직 종사자, 은퇴한 사람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고 한다.

건국대와 국민대의게릴라 가드닝 동아리 회원들이 식재한 꽃에 물을 주고 있다. _경향DB

게릴라 가드닝은 런던, 코펜하겐, 밀라노까지 확산됐다. 상상의 힘은 시대에 맞게 변주되지만 모두 함께 적당히 일하고, 즐겁게 휴식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아! 이 책 제목은 <엘포의 유토피아 기행>이다.

“그래, 그래, 우리로 인한 승리! 우리는 사회적 권리를 찬양한다. 우리는 자유롭고, 평등하다. 우리의 이상은 승리를 거둘 것이다.”(체칠리아 공동체의 노래)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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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시인이 청주 흥덕구 선거구에서 제20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19대에서는 비례대표로 의정 활동을 했던 도종환 시인은 이번 20대에서는 지역구 선거를 통해 재선에 성공한 셈이다. 어쨌든 이로써 도종환 시인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문화예술계를 의원 한 명이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는 여야 모두 비례대표 후보 당선권에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이름이 올라가지 않았다. 게다가 공약집에도 그와 관련된 공약 한 줄 제대로 된 것이 없으니, 작금의 정치가 문화를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배제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문제다.

시인이 정치를 한다? 허무맹랑한 말만은 아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 보자.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은 이상국가를 위해 ‘시인 추방론’을 논했다. 그는 시인(화가)은 모방을 통해 세계를 재현하려고 하기 때문에 본질에 접근할 수 없게 만드는 불필요한 집단이라고 규정했다. 한데 이 대목에서 우리가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그가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집단은 엄밀히 말해 ‘시인’이 아니라 ‘수사학자’였다. 당대 헬라의 청년들은 수사학을 통한 교육법에 매료돼 있었는데, 이 때문에 재현을 통해 진리의 접근을 차단하는 수사학에 대한 전면적 비판이 있었던 것이지, ‘시인 그 자체’를 부정했다고만은 볼 수 없다.

그러니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과 <정치학>을 통해 문학의 효용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들을 시사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 이론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당대 청년들은 시(예술)를 사랑했기 때문에 플라톤은 끝끝내 시인을 추방할 수가 없었다. 그때가 아니라 지금의 관점에서 이 논의들을 이해해보면 어떨까. ‘시인(예술가)들이 살 수 없는 국가는 야만’이라는 것! 더 나아가 예술의 윤리적 관점을 이해하고 있는 시인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시인이 정치를 해야 한다? 이 말이 위험한가?

도종환 의원이 2015년 10월16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국사 교과서를 들고 질의하고 있다._경향DB

그럼 동양에서는 어땠을까. 송나라에서 시작된 ‘과거제도’는 고려 광종 9년(958년)에 유입돼 비로소 조선 건국 공신들이었던 사대부들에 의해 정착됐다. 이때의 과거제도는 창작된 시문을 통해 국가의 관료를 선발하는 제도였다. 봉건 질서와 현재 풍토를 그대로 비교해서 논해볼 수는 없겠으나, 세습이 가능했던 음서제도에 반발하는 측면에서 과거제도를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즉 양인 신분 이상의 응시자에게 균등한 기회를 보장한다는 제도적 장치라는 것. 게다가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정치를 해도 좋다는 생각이 과거제 내부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용사(用事)의 활용이나 그 유교적 의미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당대 시문은 글쓴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거울이었다. 다시 말해 선발된 인재의 ‘청렴도’나 ‘학문적 성취’, ‘삶에 대한 태도’를 시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고 당대에는 믿었다.

이것이 지금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 이를테면 우리가 어떤 정치인에 대해 의혹이나 혐의를 제기할 때, 여기 나열한 부분들이 거의 전부가 되고 있지 않은가. 측근비리, 본인이나 자식의 병역특례, 범죄이력, 납득이 되지 않는 재산 정도, 당선 전후로 달라지는 태도 등은, 어떨 때는 그간의 정치적 행보와 공약 수행 능력보다도 인물을 평가할 때 더 예리한 잣대로 적용된다. 우리는 정치인에 대해 능력과 정치관만큼이나 그들이 가진 윤리성을 여전히 평가하고 싶어 한다. 윤리적인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

여소야대 정국이다. 겉으로는 야당의 승리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4월16일. 여야 지도부는 당 차원의 세월호 추모제 참석에 관해서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선거철에는 하루 스무 곳도 넘는 지역구를 돌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했던 이들이 말이다. 정쟁이나 득실을 논하기 전에, 정치도 기본적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가운데 가능한 일이다.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되었는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이렇게 또 속으면서 지켜보기로 한다. 사람의 꽃이 필 때까지.


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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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일정을 미루고 집에 일찍 들어왔다. 주말은 ‘위데이’, 바로 <위장자:감춰진 신분> 드라마가 방영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종영한 <태양의 후예>를 방영하는 수·목요일이 ‘태후 데이’였다던데, 내게는 ‘위데이’가 있다. 방영 시간을 챙겨가며 중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중국 드라마는 <포청천>과 <황제의 딸> 외에 본 것이 없었고, 편견도 심했다. 촌스럽고, 재미없고, 유치하고, 과장된 액션까지…. 볼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 보게 된 <랑야방: 권력의 기록>이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리모컨을 돌리다 중간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며칠 밤을 지새우며 정주행을 하고도, 54화가 끝나는 순간 다시 1화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그런데 랑야방에서 정왕 역을 맡은 배우 ‘왕개(왕카이)’를 좋아하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원래 드라마나 영화가 좋으면 반복해서 즐기긴 해도, 며칠 그러다가 넘어가는 편인데 이번엔 달랐다. 어쩌다 본 중국 드라마에서 이렇게 ‘덕통사고(덕후+교통사고의 합성어로 덕후가 된 계기를 뜻함)’를 당할 줄이야! 이 나이에 연예인을 좋아하게 되다니, 그것도 외국배우를!

배우 한 명이 좋아졌을 뿐인데 내 일상의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일단 중국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했다. 전혀 모를뿐더러 배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중국어 공부를 하고 있으니 말 다 했다. 공부한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지만, 가끔 알아듣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어찌나 기쁜지! 중국 뉴스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중국의 근대사에도 관심이 생기고 있다.

배우 송중기, 송혜교가 출연하는 KBS2 드라마 ‘태양의 후예’ OST 앨범 표지

드라마가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중국의 항일운동을 다루고 있고, 주인공이 친일파와 국민당, 중공지하당을 넘나드는 3중 첩자로 설정된 덕에 뜻밖에 역사 공부까지 하고 있는 참이다. 그뿐인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도 가입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배우가 바쁘면 팬들도 덩달아 바빠지기 마련. 드라마 외에도 볼 게 많다. 매일 사진과 각종 영상이 업데이트되고, 체크할 사이트는 늘어만 간다. 2차 창작에 팬아트, 사고 싶은 굿즈는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세상은 넓고 능력자는 많다는 말이 실감 난다.

친구가 김연아 선수의 마지막 경기라며 소치 올림픽에 다녀오는 걸 보면서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경기 한 번 보겠다고 러시아까지 가다니’…. 내 친구지만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나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간다. 왕카이가 서툰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영상을 처음 본 날, 하루종일 너무 기분이 좋았다.

퇴근하자마자 책상에 앉아서 영상을 틀어놓고, 그가 부르는 노래 가사를 받아적고, 뜻을 찾느라 끙끙대는 모습을 본 동생은 기가 차다는 표정이다. 민망하긴 하지만 좋은 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좋아하는 배우가 10년 무명의 세월을 견딘 힘으로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고, 응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겁다.

요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중드’ 영업은 물론이고, “이 배우에 빠져 산다”는 자랑을 잊지 않고 있다. 심드렁한 사람도 많지만, 의외로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나이를 먹을수록 모든 게 심드렁하고 너무 좋아서 설레는 감정도 느껴본 지 오래됐는데, 기쁨을 마음껏 드러내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나? 나 역시 누군가를 목적 없이 좋아하는 내 에너지가 다른 사람에게 닿는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선배 덕후의 책 <어쩌다 어른>에는 “좋아하는 것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시간, 나만 아는 기쁨을 점점 늘려가는 삶. 그것만으로 썩 괜찮아 보인다”는 구절이 나온다. 맞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초보 팬의 무(無)해한 덕질은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된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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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보 정당의 고집불통 지지자였다. 진보 정당 지지자들은 대체로 총선에서 자신이 속한 지역구에 진보 정당의 후보가 없으면 민주당 계열에 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다. 대선은 중요한 무대니까 잠시 내 정치적 의지를 접어두고 ‘비판적 지지’를 하는 것 역시 흔한 패턴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투표를 하지 않았다. 내가 진정 옳다고 생각하는 정책, 정당, 후보에게만 표를 주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백지 투표를 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는 그러한 신념을 지키기 어려워졌다. 새삼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진보 정당들이 보여주는 ‘이념’ 중 그 무엇에도 전적인 동의를 표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순서에 따라 기호 4번 정의당부터 짚어보자. 지난 7일, 경찰은 네덜란드와의 국제 공조수사를 통해 ‘소라넷’의 핵심 해외 서버를 폐쇄했다고 발표했다. 소라넷은 몰래카메라, 도촬, 사적인 모습을 상대방의 동의 없이 공개하는 이른바 ‘리벤지 포르노’가 올라오는 성인 사이트다. 속칭 ‘골뱅이’라는, 심신상실 상태에 빠진 여성에 대한 강간 모의와 실행 ‘인증’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나랑 사귈 때에 너는 저런 체위 한 적 없는데 화면으로 보니까 내 꼬추가 더 크다”고, 정의당과 총선 홍보 영상 및 공식 테마송 협약을 맺은 ‘중식이 밴드’는 노래했다. ‘야동을 보다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노래는, 위에서 우리가 말한 이른바 ‘리벤지 포르노’를 보던 남자가 자신의 옛 여자친구를 발견하고 신세 한탄을 하는 내용이다. 논란이 커지자 정의당은 여성위원회를 앞세워 사과의 말을 전했으나 어떤 후속 조치도 없다. 공개된 당원게시판에서 당원들이 목청 높여 반여성주의적, 심지어 성폭력에 가까운 언사를 내뱉는데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고 있다. 정의당의 공식 홍보 밴드는 ‘소라넷 보는 남자’의 입장에서 쓰인 노래를 부른다. 소라넷에 대한, 여성 인권에 대한 정의당의 입장은 무엇인가?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중식이밴드' 멤버들이 총선 테마송 협약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_경향DB

투표용지를 한참 훑어내려가면 기호 14번 노동당이 나온다. 노동당은 정의당처럼 여성 인권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마포을 선거구에 출마한 하윤정 후보의 경우 대단히 적극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선거구는 마포을이 아니다. 정당으로서의 노동당을 평가하기 위해 선거 공보물을 펼쳐든다. 한숨이 나온다.

노동당은 “재벌증세 기본소득”을 핵심 구호로 내세우고 있다. 증세는 복지 확대를 위해 필수적이므로 원론적으로 그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본질적으로 ‘작은 정부 옹호론’이다. 진보 진영에서 불과 10년 전만 해도 절대악으로 상정하던 ‘신자유주의’와도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다. 국가 기구를 축소하고 보다 효율적인 시장을 통해 복지를 실현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판을 하면 기존의 복지는 그대로 두고 재벌에만 세금을 거둬서 나눠주면 된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재벌증세 기본소득’이 그런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5000만 국민에게 월 30만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연간 180조원이 필요하다. 2015년에 정부가 고용, 보건, 복지에 지급한 총예산이 115조7000억원이다. 나는 노동당이 무슨 ‘계획’을 가지고 이런 공약을 내거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기호 15번 녹색당도 마찬가지다. 녹색당은 ‘탈핵’과 ‘탈성장’을 정책의 근간으로 삼는다. 원론 차원에서 재생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 그 자체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탈성장’이다. 안타깝게도,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행복하기 어렵다. 녹색당은 실업률을 끌어내리고 경제의 활력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가?

20대 총선의 풍경이다. 진보 정당들이 여성 인권 문제를 회피하고, 구체성 없는 ‘대안’을 주워섬기며, 대중적 분위기만 좇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세계의 문제를 올바로 파악, 구현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진보 정치 운동을 희망한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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