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년생 시절의 일이다. 어느 겨울, 실내 공기가 너무 건조하다는 윗분 말씀에 가습기가 덜컥 생겼다. 윗분들의 책상과 공용 테이블에 귀여운 곰돌이와 개구리 모양의 가습기들이 자리를 잡았다. 개구리와 곰돌이의 두 귀에서 일제히 촉촉한 물기가 뿜어져나오기 시작하자 확실히 사무실 공기가 촉촉해졌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출근해서 공용 테이블 위 가습기들에 물을 채운 후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선배 한 명이 나를 불렀다. 부장님이랑 차장님들 책상 위에 있는 가습기는 왜 그대로 뒀느냐는 거였다. 그러면서 앞으로 아침마다 저 가습기들에 물을 채워놓고, 물이 떨어지면 그때그때 갈아줘야 한다고 했다. “각자 책상에 있는 건 알아서 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했다가 “그걸 어떻게 부장님들한테 하시라고 하느냐, 이런 건 원래 여직원들이 하는 거다. 돌아가면서 알아서 해라” 한 소리 들었다. 설마, 싶어서 관찰해봤더니 (모두 남자인) 상사들은 가습기 물이 떨어졌는데도 아무도 물을 채우지 않았다. 하루를 버티던 나는 결국 백기투항했다. 매일매일 5개가 넘는 가습기에 물을 채워넣고, 물이 떨어질 때마다 갈다 보니 예쁘다고 좋아했던 가습기는 곧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 받는 물건으로 변해버렸다. 빙긋 웃고 있는 곰돌이와 개구리의 표정마저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심지어 몇 주 후에는 가습기를 돌리면 냄새가 나는 것 같으니 “물을 채울 때마다 깨끗이 닦아오라”는 지시까지 떨어졌다. “여직원들이 그 정도는 알아서 해야지 말이야”라는 말은 덤이었다. 그런 말을 들었는데도 나는 그 지시를 내린 남자 상사보다 가습기 물이 떨어졌는데도 먼저 갈지 않는 동료 여직원이 더 미웠다.

그러니까 가습기를 사준다고 할 때 뜨뜻미지근했던 선배들의 반응은 다 이유가 있는 거였다. 화장실에서 가습기를 닦고 있는 나와 마주친 선배 언니는 소곤소곤 털어놓았다. “말도 마, 사무실에서 왜 종이컵을 쓰는데. 원래 환경보호도 하고 부서 운영비도 아낀다고 다 개인컵 갖다놨었어. 근데 어떻게 됐게? 아침에 오자마자 스무 개가 넘는 컵 싹 다 걷어야지, 닦아서 다시 갖다놔야지, 커피 타다줘야지, 썼던 컵 다시 씻어서 갖다놔야지… 여직원들 있는 부서에서는 그게 다 여직원들 일이 된 거야. 결국 강력하게 항의 들어가서 다 종이컵으로 바뀐 거라니까. 아유, 말도 마. 그 많은 컵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 먹고 싶은 사람이 알아서 타먹고 알아서 챙기면 좀 좋아?”

일을 한다고 모인 직장에서 이 정도니, 가정이나 일상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말할 것도 없다. 여자는 너무 많이 배워도 안되고(여자가 너무 똑똑해도 피곤하니까), 남편보다 많이 벌어도 안되고(남자 기 죽이니까), 화장을 진하게 해도 안되고(화장을 안 하면 “예의가 아니다”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뿐인가? 여성을 ‘모 아니면 도’로 분류하고 갈등을 유발하는 방식 역시 여전하다. ‘전업주부 VS 직장맘’ ‘된장녀 VS 개념녀’ ‘순종적인 여자 VS 드센 여자’ ‘미녀 VS 추녀’까지…. 여기에서 ‘드센 여자’의 대명사가 바로 ‘페미니스트’다. 사실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성과 사회문화적 성별(젠더)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이론과 정치적 의제’를 뜻하는 것인데도 이 같은 오해는 꽤나 공공연하다. 에마 왓슨 역시 유엔 연설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발언하면 할수록 여성의 권리 확보를 위해 싸울수록, 남성 혐오와 같은 의미로 오해받곤 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 오죽하면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그래도’ 증후군까지 생겼을까.

2010 지방선거 홍보용으로 제작되었다가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을 담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던 '선거탐구생활' (출처 : 경향DB)


지금 트위터에서는 ‘IS보다 페미니즘이 위험하다’는 칼럼이 논란이 되면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캠페인이 한창 진행 중이다. “한 점의 열이 있으면 한 점의 빛을 발하라. 반딧불이처럼 어둠 속에서 한 점의 빛을 발할 수 있다면 꼭 횃불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는 루쉰의 말처럼, 작은 시작이지만 나 역시 이야기하려 한다.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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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경기도 외곽이라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버스를 타려면 한 30분 걸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결국 자가용을 운행할 수밖에 없다. 하루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차를 운행하는 것 같다.

시골 국도, 고속도로, 가끔은 대도시의 복잡한 도로까지 다양하다. 매일 차를 가지고 다니면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어쩌면 매일 한번씩 뭔가 울컥 솟아오르는 신묘한 경험을 한다. 화가 나는 결정적 지점, 발화점이라 부르면 어떨까, 나쁘지 않다.

그러니까 발화점은 두 꼭짓점이 있다. 하나는 난데없는 도발.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작은 규칙 무시. 이 둘이 한데 섞이면 발화의 강도가 세진다. 난데없는 도발은 이런 거다. 고속도로나 국도에서 지정된 차선을 가는 경우, 추월 차선을 달리며 추월해 나가거나, 아니면 주행차선을 달릴 때다. 느닷없이 뒤차가 상향등을 깜빡인다. ‘뭐지? 내가 뭘 잘못 했나?’ 급히 생각한다.

추월 차선에서 느리게 달리거나, 혹 제법 속도를 내 달리고 있어도 뒤차가 레이싱 트랙을 달리듯 달려오는 경우라면 양보한다.

그게 아니라 멀쩡하게 추월을 하고 나가고 있을 때나(뒤차와 거리도 꽤 되고), 아니면 내가 주행선에서 주행할 때 뒤차가 상향등을 켜는 건 발화의 꼭짓점이 된다. “(욕을 하고) 뭔데 번쩍이고 그래!”라며 어디에 숨겨놓았는지 모를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다.

얼마 전 일이다. 국도에서 갑자기 뒤차가 상향등을 켰다. 자동으로 화가 폭발한다. 그 차는 나를 추월해 갔다. “추월해 가면 되지 왜 상향등을 켜는 거야!” 그리고 바로 앞 신호등에 멈추었다. 그 뒤에 선 나는, 차에서 내려 “당신이 뭔데 상향등을 반짝거리는 거야!”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별거 아니다. 실수로 상향등 스위치를 건드릴 수도 있다.

오른쪽, 왼쪽으로 배치된 스위치를 헛갈릴 때도 많이 있다. 아니면 위험을 경고하려는 착한 마음에서 상향등을 켤 수도 있다. 백번 양보해, 그냥 나에게 뭔가를 경고했을 수도 있다. 진짜 사소하고 사소한, 상향등 한번 깜빡인 것뿐이다. 왜 난 거기에 도발 당하는 걸까?

규칙 무시는 좀 맥락이 다르다. 막히는 길에서 느닷없이 끼어드는 자동차, 주행차선이 비어있는 고속도로 추월 차선에서 느린 속도로 운행하는 자동차, 정지 신호에 서 있는데, 뒤에서 반짝이고 경적을 울리는 자동차. 이런 이들을 만나면 또 다른 발화의 꼭짓점을 자극받는다.

난데없는 도발과 비교해 조금 더 얄미움이 명백하지만, 내가 화를 내 봐야, 내가 응징해 봐야 해결될 일이 아니다. 길게 늘어선 줄의 맨 앞으로 끼어들지 못하게 좀 더 적극적으로 단속하고, 추월 차선은 주행차선이 아니라 추월 차선이라고 면허를 따기 전부터 제대로 교육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청원할 일이다.

서울 마포구 서부운전면허시험장 (출처 : 경향DB)


막 운전을 시작했을 때 일이다. 1차선보다 조금 넓은 길에서 뒤차가 거칠게 추월해 나갔다.

난 내가 무척 화가 났다는 걸 알리기 위해 상향등을 계속 깜빡였다. 난 화가 났고, 날 거칠게 추월해 간 그들에게 내 분노를 전해야만 했다. 차를 세우고 따져 묻고도 싶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앞차가 갑자기 정차하며 문이 열렸다. 순간, 화는 공포로 바뀌었다. 후진으로 도망갈까? 차 문을 잠그고 경찰에 신고할까? 그때, 정차한 차 옆쪽으로 차 한대가 지나갈 여유가 보였다. 급하게 그쪽으로 빠져나갔다. 혹시 우리 집으로 따라올까봐 전혀 다른 곳으로 한참 돌아돌아 집에 갔다.

그날 한참을 후회했다. 난 왜 사소한 일에 분노할까.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운전대만 잡으면 거리에서 만나는 사소한 일에 분노한다.

그게 내 삶에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닌데도. 어디 운전뿐이랴. 그게 우리 삶이다. 사소한 것들에 대해 조금만 대범해져도, 우리 삶은 더 행복해 질 터이다.

사소한 분노를 좀 아끼면 거대한 문제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015년에는 좀 대범해져야 되겠다. 적어도 운전을 할 때라도 말이다.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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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3년, 화제의 인물은 단연 이건희 삼성 회장이었다. 그해부터 본격적인 공개 행보를 시작한 이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임직원을 불러들여 최대 규모의 해외 현장 회의를 개최하면서, “초일류 기업 실현”을 위해 경영 혁신과 명품 전략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임직원 대상으로 행해진 그의 강연은 이후에 특집 프로그램으로 공중파를 타면서 여론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의 경영 전략을 담은 어록 역시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중 가장 널리 회자된 것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는 것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1년이 지난 후에야 국정 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세계화’를 내놓으며 ‘개혁의 아이콘’ 자리를 두고 이 회장과 경쟁을 벌여야만 했다.

흥미로운 점은 21세기 초반부터 “세계화”를 통해 “마누라와 자식”까지 바꾸려는 움직임이 중산층 상층부에서 표면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세계 일류”를 향한 욕망이 시간차를 두고 수십만명의 사원을 거느린 대기업에서 4인 구성의 중산층 가족으로 전이된 결과였을까? 아무튼 안정적인 직장인이라는 명함, 30·40평형대 아파트 거주, 중형 이상의 승용차 보유를 통해 ‘코리안 스탠더드’의 인증 마크를 획득한 이들이 자녀의 조기 유학을 통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타이틀에 도전을 시도했다.

사실 90년대 초반의 조기 유학 열풍을 상기해 보면, 이는 완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양자 간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90년대 초반의 열풍이 상류층의 자본 소득과 사업 소득을 동력원으로 삼았고 ‘도피성 유학’이라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반면, 21세기의 새바람은 상위 10% 내에 자리한 근로소득 가구가 주도했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조기 유학 모델의 확산은 ‘기러기 가족’이라는 변종 가족의 출현을 가져왔다. 어린 자녀는 뒷바라지해 줄 엄마와 함께 유학길에 나서고 아빠는 고국에 남아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며 다달이 생활비와 학비를 보내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등장했던 것이다. 상류층 일부는 자녀의 미국 국적 취득을 위해 ‘원정 출산’이라는 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중산층 상당수는 아파트 근처 학원가를 떠돌며 사교육에 몰두하던 시점, 그 시점에 기러기 가족은 중산층 내부의 치열한 경쟁을 우회하는 ‘세계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중산층 일부의 소득 증가도 큰 몫을 했다. 이 시기는 자산 소득을 추구하는 ‘일상의 금융화’가 부동산과 주식 시장의 폭등세를 틈타 확산된 시기이면서, 동시에 근로소득 상위 10%의 임금이 전체 임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증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1980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1995년에는 23.9%까지 내려갔던 그 비중은 IMF 외환위기 이후 급상승해 2005년에는 35%대에 육박했다. 이런 경제적 여건은 그들이 소비자로서 경쟁자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교육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이었다.

한국의 기러기 가족을 다룬 2008년 뉴욕타임스 인터넷판 기사.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의 어린이들은 아버지와 헤어지는 법을 배운다’는 제목이 달렸다. (출처 : 경향DB)


적어도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전까지 기러기 가족은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하나의 뚜렷한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기러기 가족의 부모가 속한 세대가 ‘도시화’의 흐름을 완성하며 ‘중산층’에 진입한 세대였으니, 경제적 여유가 있는 그들 중 일부가 대학 진학률 80%대의 시대를 맞이하여 자녀 교육의 명품화를 통해 ‘세계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중산층 이후의 가족 구성을 실험하는 것도 그럴듯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심화되는 양극화”와 “무너지는 중산층”이라는 수사가 보편화된 시점에 돌이켜보면, 기러기 가족은 고도성장기에 가능했던 계층 분화와 상승의 드라마가 새천년에도 종영을 거부한 채 억지로 만들어낸 마지막 스핀오프처럼 보인다. 지반이 흔들리고 있는 시점에 공통의 안전지대를 확보하기보다는 발 딛고 있는 곳으로부터 가족 단위로 먼저 탈출하고자 하는 몸부림, 아마도 그 성공 여부와는 무관하게 ‘기러기 가족’은 한국 중산층의 가족주의가 가닿을 수 있는 재생산 전략의 한계 지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박해천 |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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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좋은 친구인 가스파리 박사가 만약 내 어머니를 욕한다면, 그는 주먹질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일입니다. 여러분은 도발을 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모욕하거나 희화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난 1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 발언이다. 테러에는 반대하지만 신앙심 역시 존중받아야 하므로, 표현의 자유가 한발 물러서야 한다는 뜻이다.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우리는 이와 같은 의견을 숱하게 접할 수 있었다.

물론 테러는 나쁘지만, 그들이 테러범이 되도록 만든 구조적 문제가 있다. 물론 테러는 나쁘지만, 타인의 종교를 모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테러는 나쁘지만, 악의 씨앗을 뿌린 서구 제국주의가 더 나쁘다 등등….

‘물론 테러는 나쁘지만’으로 시작하는 이러한 주장들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표현의 자유가 갖는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그 가치를 절대적인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입장이 첫 번째이다. 이것을 ‘가치 상대론’이라고 하자.

표현의 자유를 누리면서 타인이 소중히 하는 무언가를 침해할 경우, 물론 그래도 테러는 나쁘지만, 이른바 ‘원인 제공자’ 역시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입장이 두 번째일 것이다. 이것을 ‘도발론’이라고 불러보자.

대부분의 경우 첫 번째와 두 번째 근거는 함께 작동한다. 앞서 인용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부터가 그렇다. 나의 것이건 타인의 것이건 신앙심은 표현의 자유만큼이나 소중하므로, 그것을 함부로 모욕하는 것은 ‘주먹질’을 불러오는 도발 행위가 된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발생 직후 주요 무슬림 종교 지도자들이 내놓은 성명도 이와 대동소이했다.

이슬람교는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결코 성전으로 부르지 않으며 용납하지 않지만, 종교와 신앙에 대한 도발은 나쁜 행동이라는 부연설명이 뒤따랐다. 결국은 ‘도발론’으로 향하는 셈이 된다.

종교 지도자가 아닌 사람들이 내놓은 발언들도 같은 틀에서 분석이 가능하다. 신앙심 대신 종교의 자유 혹은 서구 사회의 소수자로서 탄압받지 않을 자유가 ‘가치 상대론’의 저울 위에 올라 표현의 자유와 비교 대상이 된다.

‘도발론’의 경우도 그렇다. 서구 제국주의의 역사부터 시작해, 값싼 이주노동자를 얻기 위해 문화적 차이가 큰 무슬림들에게 취업 비자를 쉽사리 내주었던 서유럽 국가들의 역사,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극우적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극우 정당이 모두 ‘원인 제공자’로 간주되었다.

물론 표현의 자유도, 여타 기본권과 마찬가지로, 경우에 따라서 제한될 수 있다. 충돌이 발생했을 때 사실관계를 충분히 따져보지 않고 일방의 책임으로만 몰아붙이는 것 역시 부당한 일이다.

그러나 ‘샤를리 에브도’ 테러를 두고 ‘표현의 자유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라든가, ‘종교적 심성을 도발하지 말라’ 같은 말이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광경을 보면, 섬뜩하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명백히 퇴행하고 있다는 징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가톨릭에서 ‘어머니’는 성모 마리아를 뜻한다. 올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내 어머니를 욕하면 주먹질을 각오하라”고 농담처럼 말할 수 있었지만, 불과 500여년 전의 프랑스인들은 바로 그런 이유를 들먹이며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을 벌였다.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인 장 줄리엔이 7일 펜이 기관총 총구를 막고 있는 그림과 함께 “내가 샤를리다”라는 문구를 쓴 만평을 그렸다. (출처 : 경향DB)


‘샤를리 에브도’ 테러 역시 마찬가지다. 테러범들은 명백히 그들이 믿는 신과 그 신의 말씀을 가져다준 예언자의 이름을 외치며 범행을 저질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종교적으로 숭배하는 이들에게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는 한국의 ‘샤를리 에브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진 학살 앞에서 애써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핑계로 장막 너머의 신성한 권력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이만큼의 시민적 권리를 발견하고 정착시키기 위해 수많은 선각자들이 많은 것을 바쳐오지 않았던가.

‘신성불가침의 최고 존엄’과 표현의 자유는 언제나 불편한 관계일 수밖에 없다. 인류 진보의 역사는 종교와 신앙과 권위를 조롱하는 자들이, 그런 짓을 하고도 무사히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온 역사다. 그 희생과 헌신을 배신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나도 샤를리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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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다리타기를 할 때가 있다. 제비뽑기의 일종인 이 놀이는 종이에 그리지 않고도 사다리타기를 할 수 있는 앱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많다. 사다리타기를 하는 경우는 대부분 소소하고 시시한 내기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당첨된 사람이 커피를 쏜다거나 귀찮은 심부름을 하는 식이다.

주말 동안 인터넷은 신입생 예비소집일에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고급아파트와 임대아파트, 기타 등으로 구분한 팻말 앞에 줄을 세운 경북 안동의 한 초등학교 뉴스로 시끌시끌했다. 이 초등학교 근처에는 고급아파트와 장기임대아파트, 주택가 등이 혼재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 학교 교장은 “업무를 편리하게 하기 위해 다른 학교도 행정구역별로 나눠서 하며, 차별하기 위한 건 아니었다”고 얘기했지만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팻말 앞에 줄 서 있는 사진을 보면서 사다리타기 게임이 떠올랐다. 이 사진의 풍경이 게임과 다른 것은 이 사다리타기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는 거다. 거주하는 아파트처럼 어디에서 출발하느냐에 따라 탈 수 있는 사다리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취학을 앞둔 어린이와 학부모들이 14일 서울 홍은동 홍제초등학교에서 열린 2015학년도 신입생 예비소집에 참석해 취학 신청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사다리 출발 지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학연, 혈연, 지연인데 무작위로 선택된 혈연(부모를 골라 태어나는 건 불가능하니까)이 바탕이다. 신분을 나누는 것도 모자라 경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했던 신라의 골품제처럼, 이제 한국도 서울에서 자력으로 내 집을 갖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부모가 물려주는 사다리 없이 서울 입성은 불가능해진 시대인 만큼 부모에 따라 지연이 결정되고, 학연 역시 이 두 가지 요소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까 요새 젊은 남녀들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몇 마디만 해보면 ‘견적이 딱 나오는’ 거다. 구차하게 연봉이 얼마며 부모님은 뭘 하시는지 따질 것도 없다. 일단 집이나 직장이 서울이 아니면 “아아….” 그 후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데, 직장이 공공기관이라고 덧붙이면 “아, 그래요?”라며 다시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이 대화에서 상대방의 흥미는 ‘서울이 아니라는’ 것에서 뚝 떨어졌다가 ‘공공기관’에서 정점을 찍는다. 상대방과 앞으로 관계를 지속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몇 개의 기본적인 사다리를 통과해야 하는 거다. 남녀 불구하고 연애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다리는 계속 작동한다. 한국 사회의 사다리타기는 농촌으로 이주하면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한마디로 설명이 안되기 때문에 매번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홀연히 떠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도 ‘○○집 아들’ 혹은 ‘○○고등학교 ○기’라는 단 한마디로 설명이 끝나는 그 고장 출신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전혀 모르는 사이로 마주앉았다가 아는 사람이나 공통점이 등장하면 갑자기 화기애애해지는 분위기 반전은 그래서 가능하다. 한마디로 사다리 출발지점이 정해지는 다수자들과 달리 연결고리가 별로 없어 출발지점을 제대로 찾기 어려운 소수자는 “원래 뭐 하던 사람이야? 어디 출신이야?”류의 질문을 받으며 이방인 취급을 당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라는 건 거의 동창회라는 사적 조직들로 지배되어 있는 사회예요. 동창회라는 것은 공익성과는 거리가 먼 집단이기주의가 번성할 수밖에 없는 연줄조직입니다. 온갖 분야에서 이른바 출세를 하고 편안하게 살려면 이 연줄에 기대거나 잘 활용해야 합니다. 이 나라는 겉으로는 그럴듯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모두 이런 음성적 연줄로 돌아가고 있어요”라는 김종철 선생의 일갈은 정확하다.

사실 사다리타기 게임을 해서 떡볶이를 사와야 한다고 해서 분노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의 사다리타기 게임은 결론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고, 또 불안하다. 출발지점이 같아도 결론은 다를 수 있으며, 중간 어디쯤에서 또 다른 사다리로 넘나들 수 있을 때 사회구성원들은 웃으며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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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의 페이스북에는 다양한 소식들이 배달되었다. 한 덩어리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소식이고, 다른 한 덩어리는 내가 공감하는 소식이다. 내가 ‘좋아요’를 누른 페이지나, 아니면 친구가 된 이들이 공유한 소식들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페북이 제공해 주는 소식을 확인한다. 그리고 적당히 ‘좋아요’를 누르고, 적당히 공유한다. 분노도, 연민도, 욕망도, 슬픔도 대개 페북을 통해 공유하고, 표시하는 걸로 끝낸다. 참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딱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을 통해서다. 어디 페북뿐일까. 오늘도 나의 인스타그램에는 정사각형의 멋진 사진들이 클로즈업되어서 올라온다. 음식이나 신발, 옷, 아주 가끔 풍경 따위의 사진들이다. 짤막한 글이 붙기도 하지만 사진으로 소통하면 끝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 현실이라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뉴스를 간단하게 접하며 공유한다. 마치 네트처럼 광대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광대한 세계를 스마트폰 안으로 집중시킨다. 이건 마치 셀카와 같다. 셀카, 즉 셀프카메라는 내가 나를 찍는다. 셀카의 관심은 오직 나이다. 셀카를 찍는 사람들을, 그들이 찍은 사진을 보자. 자신의 얼굴에 집중하고, 그 얼굴을 꾸며내는 방법을 탐구한다. 셀카뿐만이 아니라 사회관계망서비스로 공유되는 다른 사진도 셀카처럼 세계의 맥락이 거세된 개인적 관심사에 불과하다. 내 얼굴, 내가 먹은 음식, 내가 방문한 장소, 내 물건들처럼 말이다.

20세기 격동의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긴 로버트 카파는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페인 내전, 중일전쟁, 2차 세계대전의 북아프리카 전선과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을 취재했다. 그의 렌즈는 자신이 아니라 세계를 향해 있었다. 그가 충분히 다가가 포착한 건 꾸며낸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우리 모두가 로버트 카파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모든 이들의 주머니에 20세기 로버트 카파가 들고 다니던 사진기보다 더 좋은 성능의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오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는 고민해 볼 여지가 있다.

20세기 우리는 타인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연민과 배려가 존재했고, 과감하게 연대에 나서기도 했다. 21세기 우리는 타인을 향한 관심을 거두고 내 얼굴, 내가 먹은(먹을) 음식, 내 물건을 찍는다. 21세기의 카메라 렌즈는 타인에게 다가가지 않을 뿐 아니라 타인을 바라보지도 않는다. 가장 안전하게 나를 향하고, 그 안에서 만족한다. 그럴수록 우리의 시야는 셀카에 맞게 좁아졌다. 그리고 묻는다. “분노하라고? 왜? 나는 편안하게 잘살고 있는데?”

검찰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한 7일 서울 외발산동 대한항공 본사 뒤로 대한항공 비행기가 착륙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2014년 벌어져 여전히 진행 중인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 지난 10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사건의 발단이 되기도 한 여승무원에게는 교수 자리로 입을 다물라고 회유했고, 박창진 사무장도 역시 기업의 간부가 회유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사무장은 회사 측의 제안과 협박에도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작년 12월 KBS와 최초 인터뷰에서 그는 “회사라는 큰 힘에 의해 빼앗긴 개인의 존엄함을 찾기 위해서 인터뷰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셀카의 시대, 나만 바라보며 좁아진 시야를 갖고 있는 시대에 보기 드문 선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년에도 여전히 셀카의 시대는 계속될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셀카 나르시시즘의 시대가 될 듯하다. 분노하는 이들에게 “나는 행복하고 만족하는데?”라며 그들을 조롱할 것이다. 노골적으로 시끄럽다고 구박할 수도 있다. 타인에 대한 관심은 극도로 줄어들고,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이들은 빨갱이라 불릴지도 모르겠다.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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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후반부터 서울의 도시 경관은 빠르게 변모했다. ‘디자인 서울’의 구호를 내세운 전임 서울시장의 대대적인 공공 디자인 사업은 서막에 불과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명동과 동대문 같은 강북의 핵심 상권을 뒤흔들어 놓았고, 그곳에서 밀려난 청년층들은 2호선 지하철을 타고 홍대 앞으로 향했다.

지하철 역세권의 상권들도 변화의 흐름에 가담했다. 이동통신 영업점 간판의 진두지휘 아래 카페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화장품 로드숍, 제과점 프랜차이즈, 음식점 프랜차이즈의 간판들이 해당 지역의 경관을 뒤바꿔놓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변화를 가속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떠맡은 것은 자영업에 뛰어든 중산층 출신의 베이비붐 세대였다. 은퇴 이후의 삶에 별다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이들에게 프랜차이즈 가맹점 창업은 맞춤형 선택지였다.

개별 상권마다 비슷비슷한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상권의 경관 이미지가 모두 똑같은 표정으로 변모한 것은 아니었다. 주지하다시피, 특정 프랜차이즈의 개점 여부는 지역의 경제적 특성, 거주자의 계층적 분포, 유동 인구의 추이, 임대료의 수준 등을 반영하기 마련이기에 해당 상권의 경관은 일정 수준의 차별화를 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의 차별화는 업종별로 서열화된 프랜차이즈의 간판들이 지역의 변수에 따라 조합된 결과였다. 따라서 위계적인 동질화나 다름없었다. 웬만한 역세권 어디에서나 프랜차이즈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지만, 모든 곳에서 커피빈의 ‘얼티메이트 모카 아이스 블렌디드’를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상권의 변화에 보조를 맞추듯 새로운 유형의 보행자들도 등장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2009년 11월 국내 서비스를 개시한 스마트폰이었다. 바로 이 새로운 정보기기의 주사용자층이었던 20·30대들은 촘촘하게 연결된 대중교통망을 통해 도시 내부를 이동하면서, 독특한 형태의 보행자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제 나름의 지도를 머릿속에 간직한다. 그 지도의 기본 골격은 지하철이나 시내버스의 노선도 형태를 띠고 있겠지만, 특정 지역의 경관은 보행자의 눈높이에서 수집된 파편적 이미지의 형태로 기억속에 보관되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곳에서 걷는다는 것은 머릿속 한귀퉁이에 돌돌 말려 있던 나만의 지도를 펼쳐보며 기억의 이미지를 되새김질해보는 인지적 행위를 동반하곤 한다.

스마트폰은 보행의 의미를 크게 바꿔놓았다. 보행은 더 이상 그 자체로 목적을 지니지 않은 채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출처 : 경향DB)


하지만 스마트폰이 등장하자, 머릿속 지도는 스마트폰의 지도 앱이 대신했고, 기억의 이미지는 터치스크린 위의 음식이나 실내 사진으로 대체되었다. 소요(逍遙)의 테크닉은 낡은 것이 되었고, 보행의 의미 역시 크게 변했다.

어떤 이들에게 이제 보행은 그 자체의 목적을 지닌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일련의 ‘사용자 경험’을 경유해 특정한 ‘과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수단일 뿐이다. 카카오톡으로 만남을 약속하고, 맛집 검색을 통해 약속장소를 정하며, 멀티플렉스 전용 앱으로 영화표를 예매한 다음, 대중교통을 이용해 목적지 근처로 이동하고 지도 앱으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다.

여기에서 거리의 프랜차이즈 간판들은 그 자체로 보행자에게 친숙한 이정표 구실을 해준다. 길눈이 어둡다면, 지도 앱의 거리 뷰 이미지를 찾아보면 그만이다.

결과적으로 스마트폰이 매개하는 도시 경험은 카페, 멀티플렉스, 음식점, 술집 등 각종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연결하는 이동 경로로 요약되며, 보행의 감각적 차원은 손바닥만 한 터치스크린의 표면 위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초박형으로 납작해진다. 이제 상당수의 보행자들은 누군가의 ‘고객’이 되기 위해 바쁘게 거리에서 움직일 따름이다. 낯선 풍경과 조우했을 때 곧바로 터치스크린 속으로 도망갈 마음의 준비를 한 채 말이다. 그러니 이런 도시 경험 속에서 유흥과 소비의 시간만이 지루하게 되풀이된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박해천 |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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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이후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1988년 10월로 돌아가보자. 그해 10월8일 한 젊은 범죄자가 일당들과 함께 호송 중 탈출했다. 그는 560만원을 훔쳤는데 새로 도입된 보호감호제 때문에 징역만 17년에 10년의 보호감찰 처분이 덧붙었다. 560만원을 훔쳤는데 감옥에서 27년이다. 반면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은 밝혀진 것만 수십억원에 달하는 사기 및 횡령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고작 2년 정도 옥살이를 한 후 풀려났다.

절도는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재물을 훔치는 것이고, 횡령은 자신이 점유하고 있는 재물을 훔치는 것이다. 두 범죄는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도둑질이다. 하지만 1988년의 대한민국은 560만원을 훔친 사람에게 27년간 사회로부터의 격리를 명령하면서 수십억원을 훔친 사람은 고작 2년 만에 그 죄를 사하여 주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바로 그런 부조리하에서 터져나온 절규였다.

‘지강헌사건’이 벌어진 후 벌써 26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느리지만 분명 우리 사회는 진보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회장님’들은 얼마를 횡령하고 무슨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배임을 저지르건, 거의 무조건적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음을 떠올려보자. 당시에는 ‘기업인 가석방’ 따위는 논의의 대상도 아니었다. 애초에 ‘회장님’들이 감옥에 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갇혀 있는 ‘회장님’을 가석방해야 한다는 여론몰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2014년의 대한민국은 1988년보다 분명 법 앞의 평등이 조금씩이나마 실현되고 있는 곳이다.

여기서 잠시 눈을 감옥 밖으로 돌려보자. 굳이 남의 돈을 훔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늘 겪으며 살아간다. 교통사고의 과실 비율 계산 및 수리비 산정 방식 때문에 그렇다. 고급차를 탄 사람과 소형차를 탄 사람이 교통사고를 냈는데, 과실 비율이 9 대 1로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고급차를 탄 사람이 9배는 더 잘못했지만, 그의 차는 고급차이기 때문에 수리비가 5000만원이고, 소형차는 100만원이다.

이 경우 우리의 도로교통법은 총 수리비 5100만원을 9 대 1로 분할한다. 소형차 운전자는 사실상 본인 잘못이 매우 경미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차 수리비 100만원뿐 아니라 상대방 차량의 수리비 410만원을 더 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도로 위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 할 수 있다. 값싼 차를 타고 다니면 설령 내 과실이 매우 적더라도, 비싼 차와 충돌했을 경우 덤터기를 쓰게 된다는 말이다.

도로 위의 법이 이런 식이니, ‘운전대만 잡으면 성격이 확 달라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도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내가 고급차를 몰고 있다면 값싼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 앞에서는 운전을 좀 함부로 해도 된다. 사고 나면 가난뱅이만 손해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소형차 운전자는 고급차 운전자 앞에서 잘못도 없는데 쩔쩔매야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일상적으로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회를, 지금껏 우리는 이토록 방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로 상에는 갑을이 명확히 존재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있다. (출처 : 경향DB)


‘기업인 가석방’에 반대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니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시민사회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도로 위의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조장하는 교통사고 과실 산정 방식의 변화를 촉구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 선진국은 교통사고 발생 시 두 운전자 중 조금이라도 과실이 큰 사람이 수리비를 전액 부담하는, 이른바 ‘51% 룰’을 적용한다.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모두 적극적으로 방어 운전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교통 법규를 알아서 잘 지키는 가운데 갓 운전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은 경찰과 공권력에 대한 존중심을 익힌다.

단지 감옥에 갇힌 ‘회장님’들이 형량을 다 채우고 나오는 것을 넘어서, 일상적으로 타인과 부대끼는 도로 위에서도,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통하지 않는 사회를 우리는 원한다.

법 앞의 평등과 예측 가능한 절차와 정의가 실현되기를, 2014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기원해보자.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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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이 최근 발표한 <영자>라는 소설을 읽었다. 노량진에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구준생(9급 공무원 시험 준비생) 남자 주인공과 동거하는 여자 ‘영자’의 이야기다. 영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한편 1인분이 최소한 10만원이 넘는 강남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화장실 담당으로 일하며 한 시간에 6000원을 받는다. 영자의 일은 화장실 앞에서 지키고 서 있다가 손님이 용무를 마치고 나올 때마다 ‘변기 밑에 눌어붙은 배설물을 솔로 닦아내고 물 위에 단풍잎을 띄우는’ 것이다. 변기의 물 위에 단풍잎이 떠 있으니 화장실에 들어선 손님은 ‘깊은 산속의 맑은 옹달샘 위에 걸터앉아’ 있는 기분으로 용변을 볼 수 있다. 영자의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단풍잎을 따로 걸러내도록 특별 제작한 변기 파이프에 걸리지 않을 작고 여린 단풍잎을 찾아 주워가는 것도 포함된다.

소설적 상황에 기반해 두 개의 계산을 해봤다. 노량진에서 강남까지 전철로 1시간쯤 걸린다고 나오니 영자의 왕복 출퇴근 시간은 2시간, 공원에 들러 단풍잎을 주워가는 시간은 시급에 포함되지 않으니 제외하면 아마도 영자의 유급 노동 시간은 6시에서 11시, 하루 5시간 정도일 것으로 짐작된다. 일당 3만원이다. 레스토랑은 월 추가 비용 60만원으로 ‘명품 아이디어로 인터넷에 소개되는 단풍잎 화장실’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셈이다. 하루 5시간의 유급 노동을 제공하기 위해 2시간 반 이상의 시간과 왕복 교통비를 덤으로 지불해야 하는 노동자 입장에서 한 달 60만원은 과연 많은 돈일까? 소설의 상황에 따르면 그나마 많은 돈이다. 소설 속의 영자는 두어 달에 한 번쯤 일이 바뀌고, 서너 가지 알바를 병행하고 있으며 노량진 김밥집에서 시금치, 계란프라이 등의 식재료를 다듬는 시급 4500원의 김밥 보조로 일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이 화장실 알바를 구한 것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경영자라면 테이블당 최소 2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려줄 손님들을 위해 하루 3만원의 아르바이트를 쓰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영자 입장에서도 1500원이나 시급을 많이 주는 데다 상대적으로 일이 쉬운 이 화장실 알바가 나을 것이다. 객관적으로는 분명 그렇지만, 식당 화장실 알바가 더 힘든 알바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노동력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노동의 성격은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이 찜찜함은 무엇일까. 이 노동을 제공해서 번 돈으로 버티고 노력해서 획득하고자 하는 일상은 어떤 것일까?

소설에 따르면 ‘시장한 구준생 백여 명이 컵밥 노점 앞에 줄을 선다고 할 때 그중 1.3명 정도가 9급 시험에 합격’한다. ‘경쟁의 틀에 갇혀 있는 자들을 모두 똑같이 만들면서 차별하는’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이 되면? 먼저 합격한 남자 주인공은 5급 중앙 사무관이 된 같은 마을 출신의 청년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만들어 거는 일 외에도 ‘이것저것 다 하는’ 면사무소 총무계 서기보로서의 일상을 얻는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 고시촌에 한 경찰고시 학원의 강좌 개설 안내문이 나붙어 있다. (출처 : 경향DB)


사실 소설 속의 노량진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와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나 역시 최근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바로 “버티라”는 말이다. 상황도, 장소도, 말을 꺼낸 사람도, 참석자도 다 달랐는데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 말을 하고, 그때마다 좌중의 광범위하고 전폭적인 동의를 얻어내는지 놀라웠다. 다섯 번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였으니까. 지금도 많은 영자들은 ‘그래도 살 만한 인생’인 직장인 ‘미생’으로서의 일상을 꿈꾸며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을 테고, 그 일상을 획득한 남자 주인공은 며칠 전 종영한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처럼 “이왕 들어왔으니까 어떻게든 버텨봐라. 여긴 버티는 게 이기는 데야”라는 상사의 충고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것이다.

소설은 “지금 거신 번호는 고객님의 요청으로 사용하지 않는 번호입니다”라는 영자의 휴대폰 기계음 대답으로 끝난다. 힘겨웠던 2014년을 견딘 사람들의 일상이 오차장의 말처럼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아가는” 과정이길 바란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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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1일 오전 11시58분44초. 진도 7.9의 강진이 도쿄와 인근 간토지역을 흔들었다. 목조주택이 붕괴되었고, 그나마 멀쩡하던 집은 때마침 점심을 준비하려던 아궁이나 풍로가 넘어지며 일어난 화재에 불타버렸다. 도쿄에서만 187곳에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번졌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정보를 찾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때, 조선인이 방화를 했고,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확산되었다. 그날 저녁부터 광기에 사로잡힌 일본인들은 조선인을 죽이기 시작했다. 평범했던 이들이 학살자로 돌변했다. 일본도, 쇠갈고리, 톱, 도끼, 낫, 죽창을 들고 무차별적으로 조선인을 잡아 죽이기 시작했다.

하급관리들은 떠도는 괴담을 적극적으로 유포했다. 계엄령이 내려지고 난 뒤 군인들이 나서 조선인을 학살했다. 1919년 3·1만세운동이라는 조선인들의 강력한 저항을 기억하던 관료와 군인들은 의도적으로 괴담을 확산시켰고, 계엄령 이후 학살에 개입한 것이다. 그들은 조선인 폭동과 사회주의자를 엮었다. 조선인과 함께 사회주의자들도 살해당했다.(강덕상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 역사비평사 참조)

2014년 우리나라에도 공포와 혐오를 자극하는 불안의 광기가 떠돌아다닌다. 공포와 혐오는 인종차별 심리와 가장 파괴적인 상호작용을 낳는다. 불법체류자들이 애만 낳으면 돈을 지원하고, 추방도 하지 않는 법을 입법한다는 앞뒤 없는 괴담은 일 년 내내 다양한 방식으로 게시판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보다 더 자극적인 이야기도 있다. 조선족들이 사람을 납치해 장기를 적출한다는 괴담은 다양한 버전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중이다. 아마 수원 사건 이후 이런 게시글을 SNS에서 더 자주 만나야 될 것 같다. 괴담에서는 악의 축이지만, 사실 우리나라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의 범죄가 우리나라의 평균 범죄 발생건수보다 특별히 높지 않다. (궁금하면 e나라지표에서 확인하면 된다.) 하지만 오늘도 게시판과 SNS에서는 다양한 괴담들이 판을 치고 있다.

지금도 인터넷 게시판과 SNS에서는 국내 체류 외국인에 대한 괴담과 불신이 끊임 없이 확산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일본에서 재특회(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 등이 주도하는 한국에 대한 차별, 혐오시위를 보며 분노하지만, 똑같은 차별논리로 한국 내에서 퍼지는 인종차별의 논리에는 둔감하다.

일본의 인종차별주의자들도 온라인에서 확대, 재생산된 괴담을 진실로 믿고 마침내 거리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외국인 체류자에 대한 차별의 감정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종북몰이 혹은 종북사냥은 온라인에서 나와 거리로 진출했다.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건 사실상 종북세력이라는 그들의 주장이 끊임없이 확산되면 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공포와 종북이라 지목받은 이들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낳는다. 마침내 고교생이 황산테러를 자행했다. 그건 다르다고? 다시 간토대지진을 보자.

간토대지진에서 벌어진 관민 일체의 대학살은 조선인에 대한 적대적 감정 때문이다. 그 적대 감정은 조선의 식민지 저항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알고 보니 그들도 저항을 했다는 기저의 공포와 우리와 다른 불량선인들에 대한 혐오와 증오는 괴담을 확증하고, 극단적 행동을 낳았다. 조선인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는 불안이 없었다면, 학살도 없었을 것이다.

당시 자경단들은 조선인으로 의심되는 이들을 붙잡으면 ‘15엔50전’을 말해보라고 시켰다. 조선인에게 어려운 발음이었는데, 이 말을 제대로 못하면 그 자리에서 죽였다.

우리 사회는 ‘15엔50전’ 대신 ‘김정일 김정은 개새끼’를 해보라 묻는다. 이미 수년 전의 일이다. 그뿐인가, 신문과 종편 뉴스는 치고받으며 끊임없이 종북의 뇌관을 자극한다. 91년 전 폐허가 된 도쿄에서 손에 피 묻은 죽창을 들고 돌아다니는 야만이 2014년에 우리가 반복해야 할 일인가 진짜 묻고 싶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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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21세기의 첫 십 년은 ‘명품’이 넘쳐나던 시대였다.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떠올려 보면, 명품이란 단어는 최상의 품격을 갖춘 대상을 수식하려는 의도로 사용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약간, 이상한 모양새였다. 사람들이 ‘명품 도시’부터 ‘명품 각선미’까지 별 고민 없이 최상급의 매김말로 사용하자, 이 단어는 정보량 제로의 ‘싸구려 관용어’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대상의 특질을 포착하려는 수고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외려 단어 사용자의 태만함만이 묻어날 뿐이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1980년대만 해도 ‘명품’의 의미는 사전적인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고려청자 명품전’ 같은 용례가 일반적이었다.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1990년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이 개장과 함께 ‘명품관’의 문을 열면서부터였다. 해외 고급 패션 브랜드의 제품을 ‘명품’으로 호명하는 홍보 전략의 출발점이었고, 당시 국내 유명 디자이너가 운영하던 부티크의 단골들이 이 전략이 노린 주요 고객층이었다. 중산층은 애당초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이제 막 1인당 소득 5000달러의 문턱을 넘어선 시기의 중산층에게 ‘명품’은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호화 사치품’에 불과했다.

강남의 부촌 일대에서 맴돌던 ‘명품’이라는 단어는 얼마 후 세력 확장의 기회를 맞이했다. 1993년, 삼성그룹이 “국제 경쟁력의 획기적인 개선”이라는 경영 목표를 내세우며, 그 실천 전략 중 하나로 “전 계열사 1사 1명품 생산체계 확립”을 내세웠던 것이다.

이 ‘명품화’ 전략은 당시 이 기업이 제조업 분야에서 처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 기업의 최고 의사 결정권자는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전자는 3만명이 만든 물건을 6000명이 하루에 2만번씩 고치고 다닌다”며, 2류 수준의 “비효율 낭비적 집단”이라고 혹독한 자체 평가를 내놓은 바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명품은 “초일류 품질의 공산품”을 의미했던 것이다.

1994년, 드디어 이 전략은 나름의 첫 결실을 맺는데, 그 주인공은 컬러TV였다. 삼성전자는 그해 8월, “일반 브라운관 방식의 월드베스트 TV를 개발했다”고 발표하면서, 이 제품에 ‘명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이 이름은 이 기업의 TV 브랜드명으로 자리를 굳혔다.

이렇게 1990년대 전반에 걸쳐 ‘명품’이라는 단어는 해외 고급 패션 브랜드와 최고 품질의 공산품 사이를 오가고 있었지만, 아직 일반인의 일상 언어 차원으로 침투하진 못한 상태였다. 이 단어가 도약의 시기를 맞이한 것은 IMF 외환위기 이후였고, 그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역시 삼성이었다. 이 기업은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명품’의 의미망을 신축 아파트에 덧씌우려고 시도했다. 1999년에 분양된 타워팰리스가 그 서막이었다.

이 주상복합 아파트가 세워진 도곡동 일대 부지는 본래 삼성물산이 102층짜리 본사 사옥을 짓기 위해 서울시로부터 매입한 것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대로 사옥 신축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외환위기 직후였다. 유동성 확보를 위해 토지를 매각하려던 시도가 실패로 끝났지만, 정부가 상업용지 관련 각종 규제 정책을 완화하자, 삼성물산은 “명품 아파트를 건설하라”는 그룹 총수의 독려를 받으며 분양가 총액 1조원대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건설했다.

다양한 과정을 거치며 명품은 중산층들에게도 동경과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잡는다. (출처 : 경향DB)


‘명품’이라는 단어의 21세기적 의미는 바로 이런 과정을 거치며 점차 완전한 모양새를 갖춰갔다. 해외 고급 패션 브랜드, 최고 품질의 공산품, 고분양가 아파트를 꼭짓점으로 삼아 작도된 의미론적 삼각형. 그것은 이전까지 ‘호화 사치품’으로 분류되던 재화가 그 부정적 어감을 희석하고 중산층 고객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으로 자리잡았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첫 십 년, 카드 연체와 부동산 거품과 가계 대출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명품’의 시대가 그렇게 화려한 불꽃놀이를 시작할 준비를 마쳤던 것이다.


박해천 |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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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명품

“김일성은 국내의 민중적 지지 기반, 다양한 정치 세력들의 대남한 강경 정책에 대한 정치적 물질적 정신적 도덕적 지원, 중국 공산당의 승리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자신감 등 모든 대내외적 조건들이 압도적 우세에 있었다. 그의 우세에 대한 지나친 과신이 그를 전쟁을 통한 총체적 승리라는 유혹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하였고, 결국 그는 전면전이라는 역사적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1998년, 국민의정부 시절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최장집의 책에서 인용된 문구다. 당시 ‘월간조선’은 이 ‘발견’을 대서특필하며 최장집을 청와대에서 쫓아냈다. 뒤이어지는 문장이 “무엇보다도 김일성의 오판을 유도하였던 요소는 한반도의 국내 정치적 조건이라기보다는 국제 정치적 조건, 즉 급속하게 변하고 있었던 냉전 체제의 성격과 그곳에서의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미국의 힘이었다”라는 것은 그 시점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문장 하나, 표현 하나를 꼬투리 잡아 ‘빨갱이 사냥’이 벌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무기 소유는 열강에 에워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할 때 민족 생존권과 자립을 위해 약소국이 당연히 추구할 수밖에 없는 비장의 무기일 수 있다.” 현재 정당해산심판 선고를 앞두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핵심 인사가 내뱉은 말이 아니다. 김상률 신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2005년 저서 <차이를 넘어서>에 나오는 문장이다.

적어도 인용된 문장의 ‘수위’만 놓고 보면, 1998년의 최장집이나 2005년의 김상률이나, 비슷한 말을 했다. 오히려 김상률의 경우가 더 심각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국전쟁은 지나간 일이지만 북한의 핵무장은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니 말이다. 이에 고무된 보수 언론들은 앞다투어 <차이를 넘어서>를 입수한 후 ‘문제 발언’들을 더욱 캐내기 시작했다. 최장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전후 맥락 없이 툭툭 잘려나간 문장들이, 신문 지면을 수놓고 있다.

북한은 대한민국의 주적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더욱 잘 이해해야 한다. 전략적 판단에는 역지사지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북한 입장에서야 당연히 생존을 추구하기 위해 핵무기를 보유하려 들 테니 말이다. 문제는 저 인용된 문장이 과연 북한의 뜻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의 정치적 입장은 다르다’는 것인지, 언론 보도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1998년과 거의 유사한 풍경을 연출해내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객관적 서술인지, 비판하기 위해 남의 말을 적어둔 것인지, 아니면 저자가 실제로 동의하는 정치적 주장인지 아무런 구분도 없이 마구잡이로 인용된 문구가 언론 지면을 장식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니 어떻게 저런 빨갱이가 청와대에 들어가나’라는 대중의 비난 어린 손가락질이, 이번 경우에는 대통령 쪽으로는 결코 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뿐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출처 : 경향DB)


그리고 우리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의 선고를 앞두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그 선고를 앞두고 있다. 나 너 우리가 ‘종북’이라는 말이 아니다. 이 선고는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인지, 아니면 북한이라는 ‘적’을 상정해야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는 허약한 군사독재 국가의 연장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그것을 판가름하는 결정적 국면이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된다면 우리는 1998년 이전으로 후퇴한다. 반대의 결과가 나온다면, 우리는 비로소, 청와대에 ‘종북’ 의혹을 받는 수석이 임명될 수도 있는, 2014년 이후의 세상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최장집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학자로서의 양심을 걸고 설명하며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김상률은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의 책에 적힌 내용은 에드워드 사이드 및 미국 좌파 지식인들 세계관의 연장선상에 놓인 것이니 말이다. 통합진보당 역시 그들 스스로가 아닌 대한민국의 명예를 위해, 존속되어야 한다. 그들의 시대착오적 대북관을 심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권자이며 유권자인 국민의 몫이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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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에는 두 종류가 있다.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비 오고 난 후 하늘에 뜨는 일곱 빛깔 무지개도 있지만, 빨주노초파남보 7개 색에서 남색이 빠진 ‘여섯 빛깔 무지개’도 있다. 여섯 빛깔 무지개는 성 소수자 혹은 다양성의 상징이다.

이 무지개는 1979년 이래 가장 대중적이고 국제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퍼레이드 등의 행사에 깃발로도 자주 등장하는데, 지금 소개하려는 팟캐스트의 타이틀이기도 하다. 오픈리 게이인 미술디자인 평론가 임근준이 진행하고 인천문화재단이 지원하는 <여섯 빛깔 무지개> 팟캐스트는 다양한 LGBT들이 출연해 자신들의 속얘기를 들려준다. 레즈비언 변호사, 게이 번역가, 트랜스젠더 뮤지컬 배우, 드랙 아티스트 등 출연자들의 면면만 봐도 다채롭기 이를 데 없다. 16회까지 올라가는 동안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팟캐스트의 ‘핫 아이템’으로 등극, 업데이트할 때마다 관련 분야의 상위에 랭크되는 인기를 조용히(!) 누리는 중이다. LGBT가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를 의미한다는 것도 모르던 사람들이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고 청취 소감을 전해올 때의 뿌듯함이란!

그 청취자의 말마따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해야 하는 팟캐스트의 특성상 우여곡절도 많았다. 일단 출연자 섭외부터가 쉽지 않다. 진행자의 인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실 이 팟캐스트에 출연하기 위한 조건은 꽤 까다로운 편인데 커밍아웃을 하고, 전문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2시간 가까이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사를 공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보니 생각 외로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사람이 드물었다. 게이는 상대적으로 섭외가 쉬운 반면 다른 성 소수자들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홍석천이나 하리수처럼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이 없는 레즈비언이나 F2M(여성에서 남성으로 전환) 트랜스젠더의 경우가 특히 그랬다. 성 소수자 내의 상대적 소수자들은 정체성을 대표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스피커’가 드물다 보니, 사회적으로도 더욱 고립되는 것은 물론이고 잘못된 정보가 유통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출연을 약속해놓고 번복하는 건 예사, 녹음을 다 끝내고 없던 일로 하고 싶다는 게스트도 있었다. 온라인에서는 활발하게 활동하지만 출연을 요청하면 한마디로 거절하거나 아예 무응답인 경우도 있었다.

이런 반응은 성 소수자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처럼 완전히 이성애자인 척하는 패싱(passing), 벽장 안에 들어간 것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다는 뜻의 클로짓(closet) 등 정체성을 부정하고 낮과 밤에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성 소수자들이 많다는 것도 한국의 특징이다. 팟캐스트에 나온 사람들마저 사적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하던 이야기를 마이크 앞에서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되고, 어색하다는 반응이 많았으니 오죽하겠는가.

20일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강당에서 열릴 예정이던 서울시민 인권헌장 공청회가 동성애 반대단체들의 실력행사로 무산되자 성소수자들이 단상에 올라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존중"을 주장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팟캐스트의 모든 에피소드에는 커밍아웃부터 시작해 한 개인이 성 정체성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과정, 출연자의 인생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 있다. 목이 메고 때로는 눈물을 보이기도 하는 출연자들의 사연은 하나하나가 절절해서 16회를 진행하면서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정체성을 고민하는 많은 성 소수자 청소년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와 경험에 바탕을 둔 실질적인 조언도 에피소드마다 빠지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지점은 자신이 행동하고 느끼는 대로 움직이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부딪치면서 해결해가는 과정으로서의 인생 그 자체다. 성 소수자의 정체성에 짓눌리거나 피해자 콤플렉스에 빠지지 않으면서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성 소수자로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과 전혀 다르지 않다.

여섯 빛깔 무지개가 일곱 빛깔 무지개와 공존할 수 있는 사회라면, 우리는 다같이 조금 더 행복해질 것이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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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미생> 신드롬이다. 드라마에 환호하고, 웹툰을 찾아 읽고, 책을 구매한다. <미생>은 2012년 1월20일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연재를 시작해 2013년 7월19일 145수로 마무리되었다. 2012년 9월15일 1권이 출간되어 2013년 10월5일 9권으로 완간되었다.

2012~2013년 <미생>으로 뜨거웠는데, 2014년 하반기에 다시 <미생>이다. 한번 제 수명을 다한 콘텐츠가 다시 타오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드라마의 역할도 크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마치 새롭게 생명을 얻은 유기체처럼, <미생>은 2014년을 사는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유기체 <미생>은 사람들의 공감을 먹고 산다. 매회 바로 내가 앉아 있을 것 같은 사무실을 보고, 때론 부질없어 보이는 노력을 보고, 답답해 옥상에 올라가는 상사의 모습을 보고, 자기만 잘난 줄 아는 신입사원의 모습을 보고, 그 안에서 나를 본다. 놀랍게도 어디에서도 보여주지 않았던, 미치도록 답답한 자질구레한 노동들이 그 안에 있다. 게다가 그 노동들은 대기업과 하청기업, 대기업의 정규직 상사와 부하직원, 비정규직 직원까지 다양한 층위를 갖고 있다. 가만히 보여주고, 동참하고, 공감하게 만든다. 그 노동을 본 우리는 생각한다. ‘이게 우리의 노동이야.’

양복을 입고, 빌딩에 출근해, 책상에 앉아 전화와 컴퓨터로 업무를 하는 이들에게 ‘노동’이라는 이름을 쉬 붙이지 않았다. 관리자라 부르거나, 고임금 화이트칼라라 부른다.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그들의 일을 ‘노동’이라 부르기 꺼린다. 하지만 <미생>은 이곳에도 노동이 있다고 증언한다.

케이블채널 tvN의 금토극 ‘미생’ (출처 : 경향DB)


<미생>은 고졸 계약직 직원 장그래의 성공담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고도성장을 이끌어갔던 상사맨들의 활약상이나 재조명도 아니다. 겉으로는 쌀쌀맞게 대하지만 마음으로는 나를 도와주려는 직장 상사에 대한 고마움이나 달콤한 러브라인의 두근거림도 아니다. 놀랍게도 수많은 샐러리맨 만화, 직장 만화 심지어 드라마의 전형적 구조를 모두 버렸다.

1982년 연재를 시작한 일본만화 <시마과장>은 일본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시마 고사쿠의 성공 스토리다. 만화는 <시마부장>, <시마이사>, <시마상무>, <시마전무>, <시마사장>, <시마회사>로 시리즈가 계속된다. 만화 안에 일본의 버블경제시대도 나오고, 잃어버린 10년도 나오고, 중국의 부상도 나오지만 중심은 잘난 시마의 영웅 서사다. 영웅 서사는 지친 독자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주겠지만, 상처를 어루만져 주지는 않는다. 한국에도 직장만화가 있었다. 1980년대에는 <날자! 고도리>(김수정), 1990년대에는 <천하무적 홍대리>(홍윤표), <용하다 용해>(강주배)가 있었다. 이들 만화에는 웃음과 조금은 짠한 슬픔이 있었지만, 역시 구체적인 노동을 보여주지 않았다. 1990년대 허영만 작가는 <아스팔트 사나이>, <미스터 Q>, <세일즈맨> 같은 보다 전문적인 영역을 다룬 기업만화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허영만 작가의 기업만화도 고난을 극복하는 성공에 집중했다.

그 시절에는 직장의 웃음만으로도 좋았다. 성공 스토리는 속이 다 시원했다. 하지만 2014년은 다르다. 지금 우리는 나의 노동이 가치 있다고, 너는 잘하고 있다고, 격려를 받고 싶다. 격려라도 받지 않으면, 금방 무너질 것 같다. 뉴스는 자꾸 평온한 마음에 돌을 던진다. 수조원의 차익을 얻었다는 소식이나, 싱글세 같은 헛발질 말이다. 전자는 이미 사법적 판단이 끝난 상황이고, 후자는 정책 담당자의 농담이었다고 하지만, 무심히 지나치기에는 내가 보낸 오늘이 너무 힘겹다.

이 우울한 일상의 와중에 <미생>은 나의, 우리의 노동을 가까이 보여준다. 우리도 진심으로 <미생>에 호응한다. <미생>의 인기는, 나와 우리의 노동에 대해 스스로 보내는 격려다. 윤태호 작가는 말했다. “자연스럽게 1%가 아닌 99% 다수의 가치가 수면 위로 발현”되기를 바랐다고. 당신의 노동은 소중하다. 우리의 노동은 소중하다.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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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미생

지난 10월 한 달 동안 ‘요우커’로 불리는 중국인 관광객으로 난리였다. 서울 사대문 안의 거리는 셀카봉을 든 젊은 남녀와 뒤엉킨 중국인 관광객들로 주말마다 북새통을 이뤘고, 언론은 기회가 날 때마다 2020년의 “요우커 천만 시대”를 점치며 내수 시장에 화색이 돌기를 기원했다.

두 달 전 필자는 이 칼럼에서 중국인 관광객의 증가세가 서울의 문화적 지형을 바꾸고 있다는 가설을 제기한 바 있다(9월15일자 29면). 그러면 시류에 발맞춰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인 통계와 지표를 통해 명동과 홍대 앞 상권의 변화상을 살펴보면 어떨까?

먼저 명동 상권부터 들여다보자. 이곳에 큰 변화가 시작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였다. 당시 강남 아파트 재건축을 불쏘시개로 삼아 부동산 호황의 불꽃놀이를 벌인 것과 마찬가지로, 명동 상권 역시 상업용 빌딩의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도약대로 그와 유사한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둘 사이는 큰 차이도 있었다. 강남의 아파트가 ‘중산층’ 내 상위 소득자의 요새로 변모한 반면, 명동의 상업용 빌딩은 해외 SPA 브랜드의 간판을 건물 전면에 내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건물들은 본래 두산타워나 밀리오레 정도를 꿈꾸며 세워졌지만, 당시 빠른 속도로 매출을 늘려가던 인터넷 의류 쇼핑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이 건물들이 매출 하향세에서 벗어나 임대업자들의 아우성을 잠재우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해외 SPA 브랜드의 입점을 추진하는 것뿐이었다. 2007년 리모델링을 마친 후 유니클로가 입점한 명동의류 건물은 첫 성공 사례였다.

21세기 명동을 강타한 퍼스트 임팩트가 “명동 거리가 일본과 너무 비슷해서 마음이 편하다”는 일본인 관광객의 인터뷰 기사가 언론에 등장할 무렵 대충 마무리되었다면, 세컨드 임팩트는 바로 그 뒤를 이어 2009년부터 시작됐다. 그 주인공은 중국인 관광객이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 200만명대 초반을 유지하던 일본인 관광객의 수는 2009년에 300만명의 문턱을 넘어선 이후부터 주춤하는 모양새였다. 반면 2009년 134만명이던 중국인 관광객의 수는 2013년 392만명으로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중국 국경절 연휴를 맞아 한국을 찾은 요우커들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면세점이 붐비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런 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한 지표 두 가지는 화장품 판매점의 증가와 매장 임대료의 상승이었다. 2008년만 해도 명동의 화장품 판매점은 21곳에 불과했으나, 2012년 81곳, 2014년 105곳으로 급증했다. 또한 상업용 건물의 매장 임대료도 껑충 뛰어올랐다. 2009년 ㎡당 19만원대이던 1층 매장의 평균 임대료는 2012년에는 28만원대에 도달했다. 이와 더불어 오랜 세월 명동의 기나긴 보행로를 차지했던 젊은이들은 중국인 관광객과의 자리다툼에서 밀려났다. ‘88만원 세대’의 구매력은 공시지가 최고 지역의 임대료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러면 그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들의 행적을 완벽하게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 일부를 추측해볼 수 있는 한 가지 단서가 있다. 젊은층이 주로 이용하는 지하철의 주요 역 하차 인원이 그것이다. 이 시기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 지하철역은 홍대입구역이었다. 이 역의 하차 인원은 2005년, 2009년에 각각 1700만명대, 1900만명대였다. 이런 증가세는 2010년을 기점으로 확연히 달라졌다. 2010년 2128만명, 2013년 2501만명으로, 4년 동안 무려 600만명이 늘어난 것이다. 홍대 앞 상권은 유동인구의 증가와 맞물려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지만, 그 반대급부로 본래의 특색을 잃은 채 건물주와 자영업자 간의 임대 분쟁 다발 지역으로 변모했다.

이제 마무리해보자. 중국인 관광객 증가세와 서울 주요 상권 변화 간의 연관관계를 인정한다면, 명동과 홍대 앞, 두 상권의 최근 변모는 “요우커 천만 시대” 서울의 미래를 예고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도시 차원의 대책 없이 관광객 증가의 경제적 효과에만 열을 올리는 한, 서울 곳곳은 중국인 관광객의 눈높이와 건물주의 이해관계에 떠밀려 하향 평준화의 블랙홀에 빠져들고 말 것이다.


박해천 |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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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요우커

어린 시절의 내게 신해철은 넥스트의 신해철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라는 노래를 쓰고 부른 바로 그 신해철이었다. 그는 동성동본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대한민국 사회의 인습에 도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가 그런 시대이기도 했다. 서태지는 북한을 향해 “시원스레 맘의 문을 열”자고 노래했고 “매일 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우리들을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있는 공교육을 비판했다. H.O.T.의 데뷔곡은 ‘전사의 후예’인데, 학교폭력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담아 “그들은 나를 짓밟았어”라고 노래한다. 젊은이들이 소비하는 대중문화는 이른바 ‘기성세대’와 날카롭게 대립했다.

1990년대는 ‘문화 전쟁’이 한창이었다. 연세대학교의 마광수 교수가 소설 <즐거운 사라>를 썼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고 교수직을 잃은 것이 1992년의 일이었다. ‘무한궤도’를 통해 혜성처럼 데뷔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마초 사범이라는 딱지를 달게 된 신해철은 1995년에 동성동본 연인들을 위한 송가를 불렀다.

신해철의 저항은 구체적이었다. ‘이 사회가 이래서는 안된다’는 식의 추상적인 내용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동성동본 연인들의 결혼을 합법화해야 한다고, 간통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학생들에 대한 체벌을 금지해야 한다고, 한국 사회는 “대마가 가지고 있는 환각 증상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과장함으로 인해서 예술가들에게 인격적 모욕을 주고 인간 쓰레기로 만든다”고, 1990년대를 넘어 2000년대까지 목청을 높였다. 가수로서, 또 라디오 DJ로서 활동하면서 그는 ‘마왕’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것을 기꺼이 자신의 두 번째 이름으로 삼았다.

그의 느닷없는 죽음에 대한 추모 분위기 속에서, 당시 신해철에게 쏟아졌던 온갖 비난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너의 꿈을 비웃는 자는 애써 상대하지 마”처럼 낭만적인, 요즘 말로 ‘중2병’스러운 가사는, 그가 감당해야 했던 사회적 반감과 비판을 염두에 두고 음미되어야 한다.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로 속에 묻어버릴 수는 없”다는, 철들지 않는 소년과 같은 순수함이 없다면, 스스로를 동성동본 연인을 앞에 둔 누군가로 상정하고는 “아직 단 한번의 후회도 느껴본 적은 없”다고 외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테니 말이다.

그 모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신해철은 구체적인 사안을 두고 사회와 대립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매번 구체적인 욕망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비록 동성동본이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싶은 욕망. 비록 학생일지라도 학교에서 ‘사랑의 매’를 맞지 않고 싶은 욕망. 비록 법으로 금지된 대마초를 흡입한 사람이라 해도 사회적으로 멸시당하고 싶지 않은 욕망. 소년의 꿈과 희망은 현실의 벽 앞에 자주 부딪쳤다. 우리는 언젠가 그 벽이 깨질 것이라 믿었지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어느 날, 그는 얄리를 따라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세상의 벽을 무너뜨리고자 끊임 없이 부딪친 故 신해철 (출처 : 경향DB)


1997년 7월16일,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의해 동성동본의 결혼을 금지하는 민법 제809조 제1항이 효력을 잃었다. 그러나 이 하나의 승리를 제외하고 나면, 신해철이 지지했던 구체적인 욕망들은 아직도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2008년 헌법재판소는 한 표 차이로 간통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이미 합법화 혹은 비범죄화의 길을 걷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대마의 재배와 사용이 엄격하게 처벌되고 있다. 학생들의 인권 보호는 학부모가 선출하는 교육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좌우된다.

한국은 아직도 개인과, 그 개인들이 누리는 행복에 대해, 너그럽지 않은 나라다. 공개적으로 동성 연인과 결혼식을 올렸지만 김조광수 감독이 제출한 혼인신고서는 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모든 욕망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무죄다. 모든 사랑은 합법이다.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1995년의 신해철이 만들었던 노래를, 그가 느닷없이 세상을 떠난 지금까지도, 우리가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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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신해철

전철역에서 누군가와 부딪칠 뻔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꽤 세게 박치기를 할 상황이었다. 둘 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걸어오는 중이었기에 서로 머쓱하게 웃고 지나쳤다. 뒤돌아보니 그분은 다시 스마트폰에 고개를 박고 있다. 요새 워낙 자주 있는 일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는 건 사실이다. “에이! 저놈의 폰을 다 없애든지 해야지!” 역정을 내면서 사람들을 밀치며 걸어가는 할아버지를 본 적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쉽게 고쳐지지는 않는다. 길을 걷다가 가로등에 머리를 박을 뻔한 적도 있으니까. 운전을 하다보면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화면을 들여다보느라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다 아슬아슬하다. 이어폰까지 끼고 있으면 경적을 울려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사실 나는 걷기를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그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었다. 몇 해 전 방문한 일본 요코하마에서의 경험 덕이다. 요코하마의 인도는 놀랄 정도로 넓고 쾌적했다. 차도보다 인도가 넓다니!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풍경이었다. 사람들은 넓은 인도를 자유롭게 오갔고, 자전거도 막힘없이 달렸다. 워낙 인도가 넓다보니 옹색하게 자전거 전용도로를 굳이 따로 만들 필요가 없었다. 널찍한 인도를 걷는 기분은 색달랐다. 도시에서 걷는다는 게 힘든 것만은 아니라는 걸 그때 느꼈다. 여기라면 누군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천천히 걸어다녀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이것저것 구경하며 걷는 기분은 꽤 괜찮았고, 상쾌해지기까지 했다. 누군가와 부딪칠 걱정 없이 종종걸음으로 걷지 않아도 되니 가슴이 쭉 펴지는 것은 물론 왠지 느긋하고 여유로워졌다. 인도를 넓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니 놀라웠다. 인도 바닥마다 도시의 역사를 그려넣은 부조들이 새겨져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물론 요코하마의 넓은 인도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폐허가 된 도시를 아예 처음부터 다시 설계할 수밖에 없었던 아픈 역사가 숨어 있긴 하다. 하지만 신도시마저 인도보다 도로를 훨씬 넓게 설계하는 우리에 비하면 신선하기 그지없었다.

우리의 길은 어떤가? 가뜩이나 좁은 길에 내놓고 쌓아둔 물건들과 입간판들, 모아놓은 쓰레기봉투와 음식점 앞에 버젓이 놓여 있는 음식물쓰레기통, 인도를 침범해 아무렇게나 대놓은 차들, 노점상까지 합세해 제대로 걷기 자체가 불가능하다. 요새는 건물 지하와 연결된 주차장이 많아져 주차장에서 나오는 차까지 신경쓰며 걸어야 하는 지경이다. 가로수가 있는 좁은 길의 경우 두 사람만 지나가도 좁은 인도가 태반이다. 이러니 내가 천천히 걷고 싶어도 뒤에서 보폭을 빨리해 오는 사람들이 스쳐가며 나를 앞질러가거나 팔꿈치로 스치고 지나간다. 스치는 것은 양반이고 가방이나 팔꿈치로 치고 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누군가와 천천히 걷고 있기라도 하면 뒤에서 사람들이 힐난하는 눈초리로 휙휙 지나간다. 인도가 아예 없고 차도만 있는 시골길보다는 낫다고 위로해야 하는 수준이다.

대학로를 따라 걷는 시민들 (출처 : 경향DB)


현재 우리의 도시가 걷기 좋은 곳은 결코 아니지만 그래도 걷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다니구치 지로의 <우연한 산보>의 주인공의 말을 빌리자면 “TV나 잡지에 나온 곳을 찾아가는 산책은 산책이 아니다”. 이상적인 산책은 태평한 미아처럼 돌아다니는 “우아한 헛걸음”이기 때문이다. 모든 걷기가 다 산책일 필요는 없지만, 일상의 장소를 재발견하는 방법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기에는 산책만 한 것이 없을 터다. 나의 경우 출근길이나 퇴근길 한 정거장 먼저 내려 걷는 짧은 산책이 가장 실행력이 높았다.

걷기 좋은 계절인 가을도 이제 끝나간다.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이 거리를, 사랑하는 그대와 단둘이 손잡고 알 수 없는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버스커버스커의 노래처럼 걸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혼자라도 상관없다. 말로만 하지 말고 나부터 짬을 내어 회사 근처의 공원이라도 좀 걸어야겠다. 색색의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한 그 오래된 공원을.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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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말아야 된다고 늘 생각하면서도 항상 빠듯하게 길을 나선다. 그날도 학교 강의를 마친 뒤, 뭔가를 분주하게 서두르다 길을 나섰다.

이대로 길만 막히지 않는다면, 약속에 늦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차를 몰아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방향을 잡아 고속도로에 올라서려던 때, 양복을 차려입은 분이 고급차 옆에서 긴박하게 손을 흔들었다. ‘어? 무슨 일이지? 차가 망가졌는데 휴대전화가 없나?’ 이런 생각이 찰나에 스쳐갔다. 급하게 고급차 앞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니 손을 흔들던 분이 다가섰다. “사장님!” 일단, 사장님이라는 호칭부터 의심스러웠다. 요약하면, 자기가 골프채를 빼돌렸으니 싸게 사 달라는 말이다. 불현듯 1990년대 중반 처음 직장에 들어가 수습할 때 겪었던 민망한 기억이 떠올랐다.

노원구 노원역 근처의 풍경 (출처 : 경향DB)


대학 4학년 2학기에 한 잡지사에 수습기자로 입사했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글을 쓰는 일이 즐겁던 때였다. 그다지 잘 가는 곳은 아니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노원역 앞 백화점 건너편을 걸어가던 중이었다. 승합차 문이 열리더니 착해 보이는 사내가 말을 걸었다. “잠시만요!” 내가 승합차로 납치될 만한 일은 없을 것 같고 해서 대답을 했다. “네? 무슨 일이세요?” 사내의 얼굴에 웃음이 보였다. “저희가 미도파백화점에 모피 코트를 납품하는데, 두 벌을 빼돌렸어요. 급하게 돈이 필요해서 그런데 한번 보세요.”

그는 나를 끌고 승합차로 들어갔다. 충분히 뿌리칠 수 있었다.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빼돌렸어요’라는 단어가 나를 승합차로 들어가게 했다. 그들은 모피 코트 한 벌과 악어가죽 코트 한 벌을 보여줬다. “실수로 두 벌이 남았어요. 싸게 가져가세요. 원래 한 벌에 200만원짜리인데… 100만원에….” 모피 코트? 당황스러웠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그들은 다른 옷을 내보였다. “이건 악어가죽인데요. 두 벌에 100만원만 내세요. 저희가 회식이라도 하려고 그래요.” 백화점에 납품하던 고급 모피와 가죽 코트를, 실수로 남겼는데, 두 벌에 100만원! 사내가 갑자기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켜 악어가죽에 댄다. “진짜 가죽이라니까요!”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치고 말했다. “현금이 없는데요.” 사실 은행에 들러 뽑으면 될 일이었다. 나름 머리 굴린 작전이기도 했다.

“카드는 있죠?” “예.” “대리점에 가서 TV하고 비디오 사오세요. 그러면 대충 100만원어치 정도 되니까.” 새로운 제안이다. 이내 통장 잔액을 떠올렸다. 50만원 정도였을까? 난 승부사처럼 “카드는 없고, 통장에 40만원 정도 있는데…” 전체 금액에서 10만원을 다시 뺐다. “에이, 뭐 저희도 남은 거니까 그냥 40만원에 가져가세요.” 한 벌에 200만원인 옷을 두 벌에 40만원에 사게 되는 순간이다. 난 내 승부사 기질에 만족하며 은행으로 달려갔다. 맞다. 사기다. 그들에게 돈을 주고 받은 봉투에서 옷을 꺼내 보는 순간, 비로소 내 눈에 조잡한 옷이 들어왔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에 출근해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철훈아, 내가 속아서 옷을 샀는데 가져가서 너네 집 개 깔아줘라.”

1990년대 중반 노원역 사거리에서 당한 사기의 시작은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 대한 관심이었고, 끝은 ‘400만원짜리를 40만원에 사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었다. 연민에서 시작한 관심이 개인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으로 들어선 순간 정상적인 사고회로는 모두 끊겼다. 사적 이익에 대한 욕망은 거대했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다는 종이처럼 얇은 방어막이 불법성에 대한 이성의 작동을 막아버렸다. 그 뒤로도 몇 번 비슷한 경험을 했다. 휴게소에서 슬쩍 다가와 “저희가 납품하고 남은 물건이 있는데요”라고 말해도 따라가지 않는다. 그래서 골프채를 권유하는 양복쟁이의 말을 듣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노원역 사거리의 추억이 백신이 된 듯하다. 연민을 이용하는 그들이 나쁜 건지, 불법적 사적 이익에 반응하는 내가 나쁜 건지 도통 모르겠지만.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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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얼마 전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1990년도만 해도 전체 가구의 9.0%에 불과했던 1인 가구의 비중이 작년에는 25.9%로 증가했으며, 2025년에는 세 집 건너 한 집이 1인 가구일 것이라고 한다.

이에 맞장구라도 치듯이 고령화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2012년 기준 12%였던 고령화율은 2025년이면 20%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두 예측 시나리오를 겹쳐보면, 고도성장기에 전성기를 누렸던 4인 핵가족의 모델은 이제 황혼기에 접어들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주거, 출산, 양육 문제로 결혼을 포기하거나 거부한 청년 세대뿐만 아니라, 10년 뒤면 저소득의 노년층이 되어 있을 그들의 부모 세대, 즉 베이비붐 세대까지 1인 가구의 대열에 가세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에 큰 반전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2020년대 중반이면, 40만명대의 출생인구를 기록했던 저출산 1세대가 청년으로 성장해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할 시점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그들의 부모인 1970년대생 대다수는 2000년대 초·중반의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해, 자기 힘으로 ‘내 집’을 마련할 수 없었던 첫 세대, 그러니까 4인 핵가족 모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자산 증여나 은행의 담보 대출, 혹은 이도저도 아니면 부부 맞벌이가 필수적이었던 첫 세대였다는 사실이다.

달리 말하자면, 저출산 1세대의 상당수는 부모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핵가족 모델의 문제점을 집단적으로 체험했을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니 저성장 시대에 성장한 그들이 굳이 고도성장기의 가족 모델을 선택할 이유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물론 1인 가구의 급증이 누구에게나 우울한 소식인 것은 아니다. 노후 대비를 위해 원룸이나 오피스텔, 소형 아파트에 투자했던 중산층이라면 확실히 쾌재를 부를 만한 뉴스일 것이며, 중산층의 4인 가족에 초점을 맞춰왔던 내구소비재 제조업체라면 ‘상품의 소형화’를 통해 시장 전략의 다변화를 꾀할 기회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반응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주류 언론이다. 그들은 발 빠른 움직임으로 1인 가구를 겨냥한 창업 시장을 소개하면서, 은퇴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 중산층의 시선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들에게 ‘1인 가구의 증가’는 시장의 행위자가 각자 알아서 대처해야 할 트렌드의 변화로 간주될 뿐, 사회 구성원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결해야 할 정치적 의제로 다뤄지지 않는다.

달리 말하자면, 이들의 시점은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아니라, ‘강 건너 불’을 구경하며 자신의 손익을 따져보는 관찰자의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위치 선정은 나름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왜냐면, ‘1인 가구의 증가’가 ‘저출산’과 ‘고령화’와 보조를 맞춰 더디게 진행되지만 거스를 수는 없는 거대한 변환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한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방식으로 변화를 받아들이고 나면, 개인적 차원에서 대처 방안을 모색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회 변화가 ‘나’의 문제로 전이되지 않도록 안전지대로 대피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 안전지대는 연령대에 따라서는 죽음 이후의 종교적 세계일 수도 있고, 자산 증여와 교육 투자를 통해 계층 재생산이 안정적으로 이뤄지는 특정 지역일 수도 있으며, 수많은 ‘기러기 아빠들’이 동경하던 한국 바깥의 선진 세계일 수도 있다. 만일 여기에 ‘시대정신’ 같은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몇 년 전 어느 유명 연예인의 유행어였던 “나만 아니면 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만 아니면 돼”의 복불복 게임에서 탈락한 이들, 더 나아가 그런 게임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이들이 대면하게 될 미래란 어떤 모습일까?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연대의 가능성을 경험해 보지 못한 개개인의 절망과 분노, 원망과 증오가 계층·성·세대·지역의 경계선을 따라 폭력적인 형태로 분출되더라도 그리 이상할 것 같지는 않다.


박해천 |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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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특별법에 여야가 합의하면서 이른바 ‘세월호 정국’이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사건 초기부터 넓은 의미에서 야권과 적잖이 다른 입장을 표명해온 사람으로서, 나는 이 결말 앞에 한없이 착잡한 심정이다.

야권은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의 입장을 대변해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그로 인해 세월호특별법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 그 중에서도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줄 것이냐 말 것이냐가 논의의 쟁점이 되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다면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모든 의혹을 낱낱이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이 야권의 설명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이미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고 있는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성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영역을 수사하고 기소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특검이 됐건 진상조사위원회가 됐건, 수사를 하고 기소를 하면,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의해 많은 경우 공소가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그러므로 세월호특별법에 부여하고자 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은 ‘성역’을, 다시 말해 청와대를 겨냥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이 시점까지 왔으니 부디 아니라고 하지 말자. 굳이 범위를 더 넓히자면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정도가 기존 합동수사본부의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셋째, 그렇다면 야권은 세월호특별법을 통해, 청와대를 수사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청와대에 요구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 요구를 상대방이 받아줄 턱이 없다. 설령 야권이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을 모두 압승했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선거에 졌기 때문에 세월호특별법을 통과시키지 못했다기보다는, 통과시킬 수 없는 법을 선거의 쟁점으로 부각시켰기 때문에 선거에서 진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은가?

전국 단위의 지방선거라 해도 지방선거는 어디까지나 지방의 살림을 책임질 사람들을 선출하는 선거다. 제아무리 규모가 커도 재·보선은 국회의 빈자리를 채워넣기 위한 선거다. 하지만 야권은 이 각각의 선거에 세월호특별법의 명운이 달려 있다는 뉘앙스를 한껏 깔았다.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할 수 있는 세월호특별법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주장하는 바는 다를 수 있지만, 앞서 말했듯 ‘성역’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 대해서는 이미 수사가 진행 중이므로, 여권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하는 세월호특별법’을 ‘박근혜 특별법’쯤으로 받아들인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논의의 초점은 어느새 세월호에서 박근혜로 넘어가 버렸다. 닳고 닳은 표현을 빌리자면 ‘프레임’을 빼앗긴 셈이다. 경제학자 우석훈이 <내릴 수 없는 배>에서 말한 것처럼, 세월호가 침몰한 후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정작 사람들은 여객선이 아니라 박근혜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니 27년 된 노후 선박 바캉스호가 세월호 참사 다음날 안전검사를 통과해 운항하고 있었던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세월호 참사 이후, ‘특별법’에 정신이 팔려 ‘세월호’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문재인 의원을 포함해 야권의 주요 정치인들이 단식까지 해가며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요구했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진상 없는 성역 규명’뿐이다. 우리는 세월호라는 배에 대해, 그 배의 침몰 원인 등에 대해,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이번 세월호 정국을 통해, 박근혜라는 한 정치인이 한국 사회의 성역으로 올라섰다는 것만큼은 확실해졌다.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인신공격과 비방을 삼가라고 대통령이 국민들을 향해 직접 훈계하는 시대가 열리고 만 것이다.

기다림의 버스 성공을 기원하며 (출처 : 경향DB)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한, 스스로를 성역으로 규정하는 성역의 존재는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위주의적·구시대적 사고방식에 맞서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치권과 시민들의 몫이다. 가족과 친지를 잃고 형언할 수 없는 비탄에 빠진 세월호 유족들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한 것부터가 큰 잘못이라는 말이다. 세월호 유족을 앞세웠던 야권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다. 통렬한 반성과 자기 비판을 요구한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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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