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다. 동시에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 한국뿐 아니라 대통령제를 택한 수많은 나라들의 헌법에 그렇게 규정되어 있다. 이것은 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국왕이 없는 나라를 만들 때 논란이 있었던 대목이다. 누군가가 행정수반이면서 동시에 국가원수라면, 그것은 선거를 통해 왕을 뽑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계몽주의자들과 미국 헌법의 작성자들은 입법권과 사법권을 독립시킴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했지만, ‘민주주의임에도 선거로 왕을 뽑는다’는 대통령제의 근본적 결함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것은 대통령제만의 결함이 아니다. 모든 민주주의 국가가 나름의 방식으로 국가원수를 선출하거나, 세습된 국왕을 국가원수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지구상의 거의 모든 국가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21세기에도, 모든 국가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단 한 사람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그 사람이 바로, 우리의 경우, 국가원수로서의 대통령이다.

지난 4월16일, 세월호 참사 1주기인 바로 그날, 박근혜는 팽목항에 들러 문자 그대로 ‘쓱 둘러본’ 후 다시 차량에 탑승하여 청와대로 발길을 옮겼다. 만약 청와대가 세월호 피해자 및 유족들과 사전에 성의껏 만남을 갖고 일정을 조율했다면, 팽목항 분향소가 임시 폐쇄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고, 먼 길을 달려온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모든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해 향을 피우고 눈물을 흘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는, 혹은 박근혜를 ‘모시는’ 청와대는, 그런 결과를 애써 구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대통령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단둘이 만났고, ‘국정 현안’을 논의한 후, 중남미 해외 순방에 나섰다.

지금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 박근혜는 해외 순방 중이다.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원수로서의 임무를 다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가 ‘국가의 대표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대표할 자격을 지닌 단 한 사람이다. 거대한 참사의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그날 이후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국민들을 진정시켜야 한다. 국민이 대한민국에 손가락질하면 자신의 왼뺨과 오른뺨을 모두 대주어야 할 사람이다. 설령 사고 그 자체에 직접적으로 대통령의 책임이 전혀 없더라도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대통령은 현재 중남미 순방 중이다. 그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임시로 권한을 대행하게 될 국무총리는 현재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광화문에서 세월호 유족들은 겹겹이 버스로 차벽을 세워둔 전경들에게 가로막힌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희생자를 추모하고자 하는 시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시끄러운 경찰의 경고 방송과 물대포뿐이다.

이 국면에서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은 현장에서 물대포를 같이 맞는 게 아니다. 그 누구도 물대포를 맞지 않고 추모 행사를 평화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정부와의 입장에서 균형자 노릇을 해야 한다. 청와대로 흥분한 시민이 뛰어들어올지 모른다고 겁내는 정부와, 캡사이신 최루액에 눈물 흘리는 국민들이 있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과 정치적 명운을 걸고 이들을 다독여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진정 역사와 국민 앞에 책임감을 느끼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는 박근혜가 내팽개치고 가버린 국가원수로서의 역할을 대신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참사 1주기인 16일 오전 남미 해외순방 출발에 앞서 진도 팽목항을 방문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떠났고, 국무총리가 검찰의 수사 대상인 지금, 상징적 군주이며 국민의 구심점인 ‘대통령’ 자리는 사실상 비어 있다. 이럴 때 어떤 정치인이 정부, 경찰, 세월호 유족, 시민들을 설득해 광화문에서 평화적으로 추모 행사가 진행되는 장면을 이끌어낸다고 가정해보자. 국민들은 아마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을 진정한 ‘대통령’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김무성과 유승민, 문재인, 박원순 등에게 모두 열려 있는 정치적 기회다. 세월호 참사 이후 표류하는 대한민국은 그런 선장을, 책임지고 비난을 감수하며 국민을 하나로 묶어줄 대통령을 필요로 하고 있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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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미들랜드 버밍엄, 주택가 한복판에 소박하지만 잘 가꿔진 공원이 있다. 평범해 보이는 이 공원은 세상을 떠난 발달 장애 아이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메모리얼 파크’다. 이 공원에 가장 많은 것은 누군가의 이름들이다. 엄마 오리와 아기 오리 인형들이 놓인 수로의 맑은 물에는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돌들이 가득하다. 갖다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싱싱한 꽃다발과 누군가의 이름이 새겨진 벤치들도 곳곳에 보인다. 풀숲 중간중간에는 아이의 사진과 아이를 그리워하는 편지가 놓여 있기도 하다. 공원은 지나치게 엄숙하지 않고 편안하다. 이곳은 영국 중부의 대표적인 어린이 전문 호스피스 기관인 에이콘(Acorns)에서 운영하는 공원이다. 에이콘은 기관 이용 여부와 상관없이 발달 장애를 갖고 있다가 세상을 떠난 아이를 위해 누구에게나 이런 추모의 공간을 기꺼이 내어준다. 공원은 기관 뒤쪽에 있지만 가족과 친구들이 이용하고 방문하는 것만큼은 언제든 자유롭게 가능하다. 게다가 이미 세상을 떠난 아이들을 위한 곳만도 아니다. 공원은 에이콘에서 운영하는 호스피스 시설과 정원을 통해 연결되어 있고, 발달 장애 아이들을 위해 특수 제작된 놀이기구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기관을 이용하는 아이들도 공원을 자주 찾는다. 생전에 특별히 좋아했던 공간이 있는 아이라면 그곳을 추모 공간으로 삼는 가족들도 있다고 한다. 변변한 추모공간은 고사하고, 노란 리본을 다는 것만으로도 정치적인 해석이 덧붙여지는 한국의 상황과 너무 달라 한숨이 나온다.

민간 기관인 에이콘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는 이뿐만이 아니다. 장례식을 준비하고 비용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망 신고와 같은 행정 처리도 꼼꼼히 챙긴다. 가족들이 충분하게 슬픔에 젖을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 그만큼 아이를 잘 떠나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비스이자 기관의 사명 중 하나라는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아이를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아이의 생일이나 기일에 사별 가족을 방문하는 사후 서비스까지 잊지 않는다. 지역 사회의 구성원인 가족을 끝까지 챙긴다는 얘기다.

에이콘이 특수한 사례도 아니었다. 영국의 모든 지원기관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잘못된 문은 없다(NO WRONG DOOR POLICY)’는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최우선에 놓고,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기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도움을 요청한 이의 자격요건을 따지는 대신 우선순위가 있을 뿐이며, 이 우선순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약자인가’라는 원칙이다. 개별 기관에서 제공하지 않는 서비스라면, 다른 기관에 연락하고 서비스를 연계하는 것은 물론이다.

<세월호기획> 안산 단원고 생존학생들과 편지를 주고 받고 있는 덕성여고 학생들 (출처 : 경향DB)


세월호 희생 학생 앞으로 “주민증 신청하라”는 고지서를 보낸 한국의 관공서와 너무나도 대조적인 이야기 아닌가. 지난 토요일(11일), 경찰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둔 집회에서 캡사이신(최루액)을 발포했다고 한다. 노란 상의를 입은 세월호 유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히틀러의 생일에 그를 기념하고 시가행진을 벌인다는 독일에서도 네오 나치들에게 캡사이신을 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국민들을 이렇게 대하는 국가는 없다. 미국의 심리학자 퀴블러 로스가 말한 부정, 분노, 타협, 절망, 수용이라는 상실의 5단계에 비춰봐도 한국 사회는 아직 2단계에 멈춰 있는 셈이다. 다른 날도 아닌 4월16일에 해외 순방을 떠나는 대통령과 ‘4월의 어느 멋진 날에’ 콘서트를 열려다 부랴부랴 취소한 국회 사무처가 있는 한 우리는 2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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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검증되지 않은 무슨 무슨 요법으로 암을 고쳤다는 소리를 믿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산에서 나는 열매나 꽃이나 풀과 설탕을 섞어서 발효시킨 효소를 마시면 건강이 좋아진다는 그런 유행들 말이다. 분명 내가 보기에 설탕물인데, 그게 정말 좋다면 효소에서 추출한 신약이 나왔겠지. 특히 고치기 어려운 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의 절박한 마음을 이용하는 그런 종류는 어떤 이름을 붙이고, 믿을 만한 누구의 증언이 있더라도 믿지 않는다. 반대로 현대 의학은 신뢰한다. 더 정확하게는 새로운 약이나 의료기술이 상용화되기 위해 수많은 반복실험을 통해 오류를 줄이는 과정을 신뢰한다.

알고 보니 우리 민족이 전 세계를 지배했다는 주장도 믿지 않는다. 듣고 있으면 대륙을 지배하는 조상들의 호연지기가 나에게도 이어질 것 같지만, 그런 기분만으로 역사라는 학문이 완성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서다. 정확하게 출처도 모르는 연구보다는 충분히 검토되고, 논의된 역사의 진실을 신뢰한다.

게시판에 등장하는 ‘충격’류의 음모론도 믿지 않는다. 음모론은 불안과 분노를 자극한다. 그럴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결정적 고리가 오류인 경우가 많다. 얼마나 답답하면 그럴듯한 음모론이 계속 돌아다닐까 안타깝기는 하지만, 음모론을 퍼 나르는 것만으로 어떠한 변화도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다. 한두 가지 정황을 엮어 음모를 주장하는 것보다 진실을 정확하게 밝히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어서다.

불신과 신뢰의 차이는 상식적인 시스템이 작동하느냐에 있다. 우리 사회는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시스템은 신뢰를 기본으로 한다. 차를 운전할 때 신호를 지키고, 최고속도를 지키며, 통행방향을 지키는 것이 모두 시스템이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될 것이라 믿고 우리는 사회생활을 한다.

자, 이제 곧 1년이 되는 세월호 사고는 어떠했나? 난 세월호 침몰에 어떤 음모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배의 실소유자가 국정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마침 잠수함이 지나가고 있었다고도 믿지 않는다. 해양경찰이 구할 수 있는 아이들을 일부러 구하지 않았다는 건 더더욱 믿을 수 없다. 그런 음모론은 문제의 본질을 가린다. 세월호 침몰은 교통사고다. 교통사고인데, 시스템이 부패와 무능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럴듯한 음모론을 믿어주고 싶지만, 밝혀진 내용으로만 봐도 총체적 부패와 무능의 집약이니 치밀해야 할 뭔가를 조작할 실력도 없어 보인다.

할리우드 영화를 봐도, 무언가를 조작하는 이들은 훨씬 더 치밀하고, 영특하며, 능력이 있다. 똑같은 무게로 천안함도 마찬가지다. 자원외교라는 이름으로 허공에 돈을 뿌리고, 무기중개업자에게 사기나 당하는 수준의 정부가 음모론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잠수함이 쏜 어뢰를 맞았다는 것도 인정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하지만, 조사 끝에 나온 결론이니 믿는다.

4.16가족협의회와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5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촉구하며 서울 충정로 삼거리 인근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또 세월호가 아니다. 아직 세월호다. 세월호가 침몰한 건 대통령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세월호가 침몰하고, 서서히 기울어 가고 있고, 심지어 그 모습이 TV로 비친 그날, 대통령은 뒤늦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던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물었다. 정부는 사고 초기 입체적인 구조작업을 시행하고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줄곧 우왕좌왕하기만 했다. 구조뿐만 아니라 모든 대응이 엉망이었다. 원인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모든 게 유병언 때문이다, 가 아니다. 그건 박근혜 퇴진하라, 정도로 무책임하다.

낡은 배의 개조는 적합했는지, 평형수를 뺐다는데 도대체 어떻게 운항이 가능했는지, 왜 선원들은 승객들을 구하지 않고 먼저 도주했는지 뭐 하나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원인 규명은 계속 진행 중이라 치자. 그러면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시스템은 정비되었는가? 연안을 운항하는 배들의 안전을 점검할 수 있는 방안, 바다에서 조난이 벌어지면 누가 출동하고, 어떻게 구조가 이루어지고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믿을 만한 시스템을 만들어달라는 말이다. 수백명이 바다에서 죽었는데, 무려 1년이 지나도록 달라진 건 하나 없고 조롱만 있으니 답답하다.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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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 수도권 신도시는 유통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상권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주부들은 서울로 ‘장보기 원정’에 나서야 하는 형편이었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였다. 대형할인점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던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에 속하는 P씨가 주말 오후면 가족과 함께 대형할인점으로 쇼핑에 나선 것도 이 무렵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신도시 아파트의 실내는 거실 중심의 기존 평면 계획을 답습한 것이었다. 하지만 단지 바깥으로 시선을 옮겨보면 사정은 달랐다. 서울 신시가지의 아파트 단지는 외부의 이질적 요소와 어떤 식으로든 접촉할 수밖에 없는 도시 연속체의 일부였다. 반면 아파트 단지로 동질화된 신도시는 외부와는 가느다란 교통의 선들로 연결된 도시였다. 벌판 위에 짧은 기간에 건설된 터라, 도시 내부의 사회적 기능 상당수는 공백으로 남겨져 있었다. 대형할인점은 빠른 속도로 그 공백을 상업공간의 논리로 재편해냈다.

P씨를 비롯한 젊은 거주자들 상당수는 생애 처음으로 ‘내집’을 마련한 터라, 기존의 도시적 삶의 습속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거칠 것 없이 대형할인점을 향해 직진할 수 있었다. 물론 그곳으로 향하는 교통수단은 ‘자가용 승용차’였다. 실제로 1985년에는 55만대에 불과했던 자동차 등록대수가 신도시 입주가 마무리된 1995년에는 847만대를 기록했다. 신도시 거주자들은 이 마이카의 대열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들은 자가용 운전자를 위해 설계된 도시에서 거주하기 시작한 첫 번째 중산층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도착한 대형할인점 내부는 독특한 공간 질서를 지니고 있었다. 외견상 수많은 상품들이 거대한 창고 속에 쌓여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명료한 분류 체계에 따라 진열대에 배치되었고, 쇼핑객은 카트를 밀며 진열대 사이를 오가면서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선택할 수 있었다. 다양한 가격대의 유사 상품들이 한군데에 자리를 잡고 경쟁을 벌이고 있으니, 선택의 즐거움이 배가되기 마련이었다.

한편 위계가 사라진 이런 공간의 질서는 기존의 중산층이 추구하던 일상의 질서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기도 했다. P씨는 과거에 ‘샘이 깊은 물’ 같은 잡지들을 통해 교양 중산층의 세계를 엿보곤 했다. 그때마다 그 잡지들이 다루는 세련된 안목과 고상한 취향의 목록에 본능에 가까운 질투심과 함께 동경의 시선을 보내곤 했다. 언젠가는 당도하리라 다짐했던 문화적인 교양의 신세계, P씨는 그 세계가 대형할인점 앞에서 처절하게 박살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긴 유통 자본이 전면화한 ‘박리다매’의 논리 앞에서, 문화적인 교양이란 진열대의 수많은 상품들 중 하나에 불과하지 않은가. 물론 어떤 이들은 이런 변화를 두고 대중 소비 사회에 내재한 하향평준화의 결과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었다. 한때 ‘교양’의 품에 안겨 있던 ‘문화’는 이제 ‘서비스’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서울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사람들이 장을 보고 있다. (출처 : 경향DB)


돌이켜보면, P씨는 철든 이후 줄곧 개인과 사회라는 개념의 격자 사이에 국민, 민족, 민중, 시민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의 렌즈를 차례대로 삽입해보며 자신과 세상의 거리를 가늠해보곤 했다. 그때마다 초점이 흐릿한 안경을 착용한 듯한 느낌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대형할인점에서 카트를 밀기 시작한 이후 달라졌다. P씨는 자신이 3저 호황을 거치며 성취한 세 가지 정체성, 즉 ‘베이비붐 세대의 중산층’ ‘신도시의 거주자’ ‘마이카의 운전자’라는 정체성을 ‘소비자-고객’이라는 정체성으로 자연스럽게 단일화할 수 있었다. 마치 종교에 귀의해 세례를 받고선 새로운 세상에 눈뜬 것만 같았다. 그것은 총천연색의 고해상도로 명료하게 욕망의 이해관계를 표시하는 세상이었다. P씨는 대형할인점과 카트의 조합이 완성해낸 소비의 민주주의야말로 자본주의가 선사할 수 있는 최상의 상품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가 그 시절에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있다. 2015년이면 대형할인점이 수백개로 늘어나 전국 각지에서 고객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었다.


박해천 |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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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지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발언이다. 무상급식이냐 의무급식이냐, 보편복지냐 선별복지냐 등으로 해묵은 논쟁이 되살아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우리는 홍준표의 발언이 지니고 있는 더 큰 함의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643억원의 무상급식 지원비를 서민 자녀 지원사업에 투입한다는 것이 홍 지사의 입장이다. 그런 그가 ‘공부’와 ‘밥’을 대비시킬 때, 과연 그 ‘공부’는 무엇인가? ‘개천의 용’이 사라진 시대를 극복할 수 있도록, 가난한 집의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노라는 홍 지사. 그는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검사, 국회의원, 도지사까지 승승장구한 자신의 ‘휴먼 스토리’를 슬며시 포개어 놓는다.

요컨대 홍준표에게 ‘공부’란 남을 이기는 공부, 남보다 더 높은 시험성적을 얻어내어 판검사 되는 공부, 그래서 ‘개천’ 출신들이 ‘용’되어 개천을 탈출하기 위한 공부인 셈이다.

왕년의 학생 홍준표는 수돗물로 허기를 채우며 공부해서 명문대에 진학하고 사법시험도 붙으면 속된 말로 ‘팔자 바꾼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오늘날의 세상은 그런 곳이 아니다. 입시제도가 턱없이 복잡해진 탓에 사교육 시스템이 제공하는 온갖 정보를 동원하지 않는 한 ‘정상적’인 루트로 명문대 입학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지역균형선발로 대학에 들어오면 ‘지균충’, 기회균형선발전형으로 입학하면 ‘기균충’, 학생들은 끝없는 차별에 부딪힌다. 명문대 입학했다고 어깨 쭉 펴고 다닐 수 있던 그런 시절은 진작에 끝났다. 명문대를 졸업하면 명문대 나온 취업준비생이 될 뿐이다.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지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라는 홍준표는 여전히 개발독재시대의 환상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아침마다 울려퍼지는 새마을노래를 들으며 굶주린 배를 안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면 명문대 가고 판검사 될 수 있었던 그때 그 시절의 ‘희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현실 인식이 바닥에 깔려 있다. 본인 스스로가 ‘개천의 용’으로서, 20세기의 가난을 자기 힘으로 극복한 사람이니,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이 있다. 과연 그 20세기 ‘개천의 용’ 모델은 지금까지 유효한가?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누군가가 배고픔을 참고 공부해서 명문대 가고 사법시험이나 기타 취업 관문을 통과하면, 안정과 풍요가 보장되는가? 21세기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청년으로서, 나는 나의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다.

저소득층 학생에 대한 교육비 지원은 부질없는 짓이며, 따라서 시행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가 아니다. 교육에 대해, 그 교육을 통해 배분되는 직업들 사이의 소득 형평성에 대해, 각 가구의 자산 불평등에 대해 총체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는 학교 교육과 국가고시를 통해 엘리트를 선발하고, 그 엘리트들에게 부와 권력을 집중시켜주는 방식으로 수십년간 유지되었다.

이제 그렇게 만들어진 격차를 개인의 노력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다. 그 와중에 무상급식을 철회하며 ‘공부해’라고 윽박지른다 한들, 학생들이 희망을 느낄 성 싶은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오른쪽)와 홍준표 경남지사가 18일 경남 창원시 경남도청에서 무상급식에 대해 논쟁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_ 연합뉴스


‘개천의 용’을 위한 공부, 한 사람의 승자를 위해 아흔아홉 명의 패자를 만드는 교육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홍준표가 전국적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무상급식 발목잡기’에 나섰다면 그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 것 같지만, 정작 그는 한국 사회에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는 셈이다. 개발독재 시절에나 통했던 ‘개천의 용’ 타령을 되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홍준표의 ‘공부론’은 시대착오적이며, 자아도취적이기도 하다. 지금 학생들에게 필요한 ‘공부’는 그런 게 아니다. 계약서 쓰는 법, 노동3권 보장받는 법,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고 지키는 법, 협상하고 합의하는 법 등 기존의 교육 과정에서 무시되었지만 실은 반드시 필요한, ‘내 밥그릇 지키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면서 동시에 밥 먹는 곳이어야 한다. 특히 저소득층 학생일수록 그렇다. 이제는, 밥이 공부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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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한참 고민했어. 88만원 세대는 옛말이고 이케아 세대부터 달관 세대까지 우리에게 많은 건 이름뿐이거든. 뭐라고 부르든 큰 상관은 없어. 110만원 받는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너나, 어차피 돈 조금 받고 고생하는 건 마찬가지라며 시민단체로 옮긴 내 친구나 처지는 비슷하니까.

서적 '88만원 세대' (출처 : 경향DB)


“사람은 모든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된단다. 모든 것에 대답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어떻게 되는데?” “잃어버린단다. 자기 자신을.” 마스다 미리의 만화책에 나오는 구절이야. 나는 그동안 내게 주어지는 모든 질문에 필사적으로 대답하거나 적어도 대답을 찾기 위해 애써왔어. 질문이란 건 관심이거나 진심, 최소한 걱정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질문의 대부분이 자신들의 관심을 충족하고 정해진 답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숨겨진 칼날일 수 있다는 것, 질문들 앞에 일일이 대답할 필요도, 설득할 필요도 없다는 걸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지. 예를 들면 이런 질문. “너희는 왜 우리처럼 닥치는 대로 일하지 않니?” “너희는 왜 우리처럼 부당함에 맞서 싸우지 않니?” “너희는 왜 우리처럼 자유롭지 못하고 눈치를 보니?” 내가 뭐라고 대답하든 그들의 생각은 이미 정해져 있어서 바뀌지 않아. 자신들은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고, 부당함에 맞서 싸우고, 자유로운 영혼이라 성공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러니까 우리 세대에게 이 세상은 ‘아이를 사랑하지 않음으로써 아이를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나쁜 부모’ 같은 거야. 끝없이 노력해도 부모의 마음에 들 길은 요원한데도 아이는 자기를 덜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에 들려고 애쓴대. 자기를 마뜩지 않아 하는 부모의 마음에 드는 게 생존에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나. 아무것도 주지 않을 ‘나쁜 부모를 사랑하는, 사랑받고 싶어 하는 자식’인 우리는 더 이상 기대조차 하지 않아. 20~34세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바라는 미래상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라고 응답한 청년은 23%, ‘붕괴, 새로운 시작’이라는 응답이 무려 42%나 나왔다고 하잖아. 차라리 다같이 망하고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새로 시작하는 게 훨씬 나은 거야. 그치, 어차피 잃을 게 없으니까.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기억해? 지금도 그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투입되던 앳된 얼굴들을 잊을 수가 없어. 도쿄전력 직원은 당연히 아니겠지. 도쿄전력이 기계를 점검하라고 맡긴 업체의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고용한 알바 아니었을까? 정부가 30년 설계수명이 다해 멈춰 있던 월성원전 재가동을 승인한 날, 난 고리원전 사고를 가상으로 다룬 소설을 떠올렸어. 사고 이후 해운대를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수입 식료품을 택배로 주문해서 식사를 해결하는데, 택배기사들은 동료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죽어나가도, 보호장비 하나 없이 외국 생수와 시리얼을 배달하러 다니지. 일본의 사고는 실제 일어난 일이고 한국은 소설 속의 상황인데도 어쩌면 그렇게 젊은이들의 처지는 비슷한지. 복학을 앞두고 등록금을 버느라 대형 마트에서 야간작업하던 대학생이 가스에 질식해 숨진 사건도 있었잖아. 그 사고로 4명이 숨졌는데도 그 마트는 벌금 100만원을 냈을 뿐이야. 그게 지금 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야. 최저임금 올려달라고 징징대는 대신 능력을 키우고, 돈 없으면 비싼 햄버거 대신 ‘가성비 최고’인 밥버거나 편의점 도시락을 선택하라며 훈계하는 만화가 버젓이 신문에 실리는 세상. 이 세상에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지금처럼 으음 앞으로 뭐든 열심히 안 해야지. 아 잠만 열심히 자야지 열심히 안 해 아무것도. 지금까지 열심히 한 적도 없지만 앞으로도 안 한다. 안 해, 절대 안 해.”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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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읽고 싶지 않았다. 밀쳐냈고, 모른 척했다. 그래도 난 아마 읽게 될 것이다. 책 이야기다. 먼 곳으로 출장을 가기 전, <금요일엔 돌아오렴>(창비)에 삽화로 참여한 동료가 책을 건네주었다. 책을 손에 쥐었을 때, 딱딱하게 굳어진 내 감정들이 그 순간 파르르 살아나 책을 쥔 손끝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도저히 못 읽겠네. 울 것 같아요.” 내가 이렇게 말했다. “나도 힘들었어.” 그가 말했다. 감정이 화석이 된, 때론 그 단어만으로 혐오의 대상인 중년 남성들이 눈물이라니. 정신없이 떠돌다, 이제 더 이상 뿌리내릴 곳 없어 겨울가지처럼 말라가는 중년 남성들에게 눈물이 있을 리 있을까? 휴우, 깊은 한숨 내뱉고 감정과 ‘그 책’을 구석으로 밀어놓고 출장을 떠났다.

낮밤이 바뀐 그곳에서 일을 보고 지난 5일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영화 두 편을 내리 보고, 아내가 권해준 황현산 선생의 <밤이 선생이다>라는 책을 꺼냈다. 몇 장 넘기다 2009년 말에 선생이 쓴, 당시 시점으로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용산참사에 대한 글을 읽었다. “이제 1년이 다 되어가니 혹시라도 잊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손이 떨렸다. 애써 밀어놓은 그 책이, 아마도 그 책의 활자 하나하나에 꾹꾹 눌러담았을 고통이, 팽목항의 쓰린 바람처럼 불어닥쳤다.

지난 1월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지난 2009년 벌어진 용산참사를 추모하는 전시회가 개막됐다. 사진, 판화, 설치미술, 영상등이 전시됐다. (출처 : 경향DB)


마침 비행기에서 틀어주는 최신 가요에서 알리의 ‘펑펑’이라는 노래가 나왔다. 가수도 꾹꾹 어떤 감정을 눌러담듯 노래를 불렀다. “잘 지내란 말은 마요. 슬퍼지려 할 때면 따뜻했던 목소리 자꾸 내 귓가에 맴돌아서. 오늘도 널 잊어버리려 애써도 안간힘을 써봐도 잊혀지지가 않아. 펑펑 울고 싶은 날엔 널 보고 싶은 날엔 그리움이 울컥 차올라 미쳤나봐. 엉엉 울고 싶은 날엔 널 안고 싶은 날엔 사랑하나봐 난 아직도.”

펑펑 그리고 엉엉. 타인의 슬픔과 상처는 그의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슬픔과 상처를 안고 괴로워하고 울고 싶은 이들에게 그만두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는 그 자리에 가서 펼침막을 펼치기도 한다. 그런데, 딱 한번만 생각해보자. 누구의 잘못 그런 거 말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그래서 거기에서 넘실거리는 수많은 사연들을 생각해보자. 그런데 그 슬픔마저 제대로 추모하지 못하는 그들을 떠올려보자. 이제는 귀찮으니 다 잊자고 하지 말고. 그게 진정 잊을 수 있는 일인가를 한번만 생각해보자. 그리고 슬프다면, 그 슬픔에 공감하고, 감정의 한 조각이라도 그 슬픔에 반응한다면 그냥, 펑펑, 엉엉 그렇게 울자.

그들 옆에 다른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순수하지 못하다고, 그래서 자꾸 뭔가를 더 달라고만 한다고, 언제까지 그럴 거냐고, 경제가 어려우니까 이제 그만두자고 생각한다 해도, 딱 한번만 순수하게 슬픔에 반응해보자. 그들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1년 동안 안간힘을 다해 잊으려 했던 사람들이니까. 혹 당신이 함께 울기 싫다면 우는 이들을 울도록 내버려두자. 슬픔의 울음조차 허락해주지 않는 세상이라면, 생각하기도 싫은 지옥일 터이니 그렇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니며 불구덩이에 고통받는 지옥의 모습만 떠올렸다. 하지만 적당히 나이를 먹고 보니, 울음을 참는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여기가 지옥이다. 차라리 지옥불에서 함께 위로해준다면 거기는 어쩌면 천국이겠다. 이제 펑펑 울 마음으로 그 책을 읽어볼 생각이다. 그리고 펑펑, 엉엉 울 것이다. 아, 비행기에서 읽었던 황현산 선생이 2009년에 쓴 글의 제목은 ‘그 세상의 이름은 무엇일까’이다. 선생의 글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한다.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사람이 불타면, 사람이 어이없이 죽으면, 사람들은 자기가 그 사람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만 여길 것이다. 그러고는 내일이라도 자신이 그 사람이 될까봐 저마다 몸서리치며 잠자리에 누울 것이다. 그것을 정의라고, 평화라고 부르는 세상이 올 것이다.” 맞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증오와 조롱이 넘치는 이 세상은 지옥이다. 더 악독하게만 변해간다.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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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에서 특정한 기계장치가 인간과의 관계를 재조정하며 일상문화를 전면적으로 변모시킨 사건이라면 무엇이 있을까.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주목한다면, 군 훈련소에서 갓 입대한 청년들이 총기를 자기 몸의 일부처럼 다루기 시작하는 시점이나, 대규모 공업단지에서 산업 노동자들이 자동화 기계와 함께 작업하기 시작하는 시점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상문화의 차원으로 시선을 옮겨 보면 어떨까.

1980년대 중반부터 급속히 진행된 자동차의 보급을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라고 간주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1985년 55만대에 불과했던 자동차 등록 대수는 88올림픽과 3저 호황을 거치면서 200만대를 넘어서더니, 1990년에는 338만대를 기록했다. 그리고 외환위기에 직면한 1997년에는 1000만대의 벽을 훌쩍 넘어섰다. 1990년대 전반에 걸쳐 차량 증가율은 연평균 12.2%로 세계 1위를 기록할 정도의 위세였다. 이런 변화를 주도한 것은 단연 승용차였다.

도시 거주 인구가 전체 인구의 70~80%를 넘어서는 시점에 진행된 이러한 변화는 승용차의 문화적 의미도 변모시켰다. 이전까지 중상류층의 사치재로 특권적 지위를 확보했던 승용차는 배기량과 디자인에 따라 중산층 내부의 위계와 운전자의 취향을 반영하는 내구 소비재로 새롭게 영역 확장을 꾀했다.

이를테면 1986년의 강남을 무대로 삼은 이홍의 소설 <나의 메인스타디움>(2010)을 보자. 여기에서 주인공인 초등학교 2학년의 아빠는 “이제 우리나라에서 아시안게임도 하고 올림픽도 한다는데, 좀팽이처럼 구닥다리 차를 타고 다닐 순 없어서, 이 아빠가 너희를 위해 근사한 차를 쫙 뽑아왔다”고 말하는데, 그 “근사한 차”는 바로 그랜저였다.

또한 승용차는 운전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공간 압축의 경험을 확산시키는 미디어이기도 했다. 초보 딱지를 떼고 차량과의 묘한 일체감을 맛볼 무렵이면, 운전자는 대중교통 이용자나 거리 보행자와는 전혀 다른 감각으로 도시의 시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구효서의 소설 <자동차는 날지 못한다>(1990)의 한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차를 탄 지 일주일밖에 안됐는데 참 다른 세상이 보이더라 이거야. 차를 타지 않았을 때는 생각지 못했던 전혀 다른 경험들이 새록새록 생기더라는 거지.”

현대에 이르러 얻게된 마이카 문화로 현대인들은 자유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국민' 또는 '시민'의 자유와 거리가 먼 '이동'의 자유였다. (출처 : 경향DB)



한편 박완서의 소설 <저문 날의 삽화 4>(1987)에서는 승용차가 ‘자유’의 상징으로 의미화되기도 한다. 조카들의 마이카족 행세가 못마땅했던 50대 후반의 여성은 “차가 곧 자유”라는 한 조카의 말을 듣고선 “빈속에 마신 맥주의 첫 잔처럼” 짜릿함과 상쾌함을 느낀다.

그녀가 살아온 삶 속에서 ‘자유’란 “맨 존엄하고 비통하고 난해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자유’라는 단어를 보고 떠올리는 것은 기껏 “자유 그것 아니면 죽음을 달라”나 “자유에서는 왜 피의 냄새가 나는가” 같은 문장이었다.

하지만 미국 유학을 다녀온 조카에게 자유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속도와 방향의 선택을 통한 물리적 이동의 자유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추상적 관념이었던 ‘자유’가 마이카를 경유해 일상의 구체적 차원으로 착지하는 순간을 목격하면서, “자유가 그런 손쉬운 지름길을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주목해야 할 것은 여기서 이동의 자유란 ‘국민’의 자유나 ‘시민’의 자유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것은 민주화를 경험하며 중산층 진입에 성공한 ‘소비자’의 자유에 가까웠다. 승용차는 소비를 욕망케 하는 사물이면서 동시에 소비문화의 첩경으로 인도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실제로 운전자들이 가족과 함께 자동차를 몰고 당도한 곳은 도심 광장이나 집회 장소가 아니라 도시 외곽의 대형 할인매장이나 지방의 관광명소였다.

이렇게 ‘이동’의 자유가 휩쓸고 지나가자 ‘항해’의 자유가 그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컴퓨터의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통해 ‘소비자’를 ‘사용자’로 전환시키며 일상문화를 재구성할 준비를 마쳤던 것이다.


박해천 |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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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는 설악산 소탕작전을 교대하고 휴식하는 사병들을 위해 이 굴 속에 후방에서 여자를 데려다놓고 사병들의 동물적 욕구를 해소케 하는 은전을 베풀었다. 원하는 병사는 자기 월급에서 표를 사가지고 들어가면 되었다. 굴 속은 가마니를 깔고, 그 위에 비닐 우비의 베드시트를 덮은 침대이다. 가마니를 드리운 굴 문 앞에는 언제나 병사들의 줄이 끊이지 않았다.”

리영희. 한국의 양심적 지식인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다. 위 문단은 그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고한 책 <역정>의 198쪽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통역장교로 복무했다. 저 문단에서 인용된 ‘시설’은 국군이 운영하던 것이다. 국군은 “후방에서 여자를 데려다” 놓았다. 그 과정에 대해 리영희는 별다른 설명을 붙이고 있지 않다. 그렇게 ‘데려다 놓은’ 여자를 “원하는 병사는 자기 월급에서 표를 사가지고 들어가면 되었다”.

“전쟁 중의 이야기인데 적이 있는 전선에 가기 위해서 ‘코코포’라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이런 곳에는 반드시 삐야(ピ-屋)가 있다. 삐야라는 것은 위안소를 가리킨다.” <게게게의 기타로> 등으로 국내에도 친숙한, 일본 호러 만화의 거장 미즈키 시게루의 회고 만화에서 인용한 대사다. ‘삐’는 종군위안부로 동원된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지만, 작가는 당시의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그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다.

“이 많은 남자를 한 명의 여자가 처리하는 것이다. (중략) 병사들도 지옥에 있었지만 이건 지옥 그 이상이 아닌가, 라고 화장실로 나온 조선삐를 보고 생각했다.”

해방 이후 한국군은 미군의 무기를 손에 들고 북한과 싸웠다. 그러나 그들은 일제가 남겨놓은 수많은 악습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었다. 리영희가 증언하는 바, “사병들의 동물적 욕구를 해소하는 은전”이 대표적이다.

한국군은 일본군이 하던 그대로 위안소를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일본군의 위안소에는 “일본삐” “나와삐(오키나와 출신)” “조선삐” 등이 있었던 반면, 한국군의 위안소에는 같은 한국인밖에 없었다는 것 정도다.

2015년 2월17일. 대한민국의 법원은 박유하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가 ‘사실관계를 왜곡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청구를 받아들여 “책 내용 가운데 34곳을 삭제하지 않으면 출판·판매·배포·광고 등을 할 수 없다”는 일부 인용 결정을 내렸다. 이 책의 몇몇 구절이 종군위안부를 성매매 여성과 동일하게 취급함으로써 명예를 훼손했다는 원고 측의 주장이 일부 받아들여진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황금자 할머니의 1주기를 맞아 23일 서울 가양동 겸재정선미술관에서 열린 ‘아낌없이 주고 날아간 나비전’을 찾은 시민들이 위안부 피해자를 주제로 한 미술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독자의 양심에 질문을 던져보자. 리영희가 묘사한 한국군 위안소는 과연 정당한가? “후방에서 여자를 데려”올 때, 설령 그 여성들을 강제로 납치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병사들이 “자기 월급에서 표를 사가지고 들어”갔다고 해서, 여성들이 수많은 남자들의 성욕 해소 대상이 됨으로써 심각한 학대를 당한 사실 자체가 조금이라도 달라지는가? 마찬가지로, 일본군 위안소에서 설령 ‘조선삐’를 폭력적으로 납치해오지 않았거나, 그들에게 경제적 대가를 지불했다 한들, 일본군의 위안소 운영이 갑자기 아무런 비난을 받을 수 없는 일이 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강제로 납치한 게 아니니 문제 없다, 돈 줬으니 된 것 아니냐’는 것은 일본의 극우들이 일본군 위안소를 부정할 때 동원하는 논리다. 그러한 억지주장에 맞서는 해법은 ‘돈을 받지 않았다, 납치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강제로 납치당한 사례가 많건 적건, 금전적 보상이 있었건 없었건, 국가가 여성을 전쟁터에 동원하여 위안소를 운영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인권 침해’라는 입장을 단단히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소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 대만, 오키나와,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등의 여성 인권을 짓밟은 파렴치한 전쟁범죄다.

그러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할 때 우리는 일본의 극우와 맞서면서 동시에 일본 및 전 세계의 양심적 세력들과 손을 잡을 수 있으며, 대한민국이 스스로 저지른 여성 인권 학대에 대해서도 올바른 반성과 재발 방지 노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방식으로 명예를 되찾길 희망한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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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초년생 시절의 일이다. 어느 겨울, 실내 공기가 너무 건조하다는 윗분 말씀에 가습기가 덜컥 생겼다. 윗분들의 책상과 공용 테이블에 귀여운 곰돌이와 개구리 모양의 가습기들이 자리를 잡았다. 개구리와 곰돌이의 두 귀에서 일제히 촉촉한 물기가 뿜어져나오기 시작하자 확실히 사무실 공기가 촉촉해졌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출근해서 공용 테이블 위 가습기들에 물을 채운 후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선배 한 명이 나를 불렀다. 부장님이랑 차장님들 책상 위에 있는 가습기는 왜 그대로 뒀느냐는 거였다. 그러면서 앞으로 아침마다 저 가습기들에 물을 채워놓고, 물이 떨어지면 그때그때 갈아줘야 한다고 했다. “각자 책상에 있는 건 알아서 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했다가 “그걸 어떻게 부장님들한테 하시라고 하느냐, 이런 건 원래 여직원들이 하는 거다. 돌아가면서 알아서 해라” 한 소리 들었다. 설마, 싶어서 관찰해봤더니 (모두 남자인) 상사들은 가습기 물이 떨어졌는데도 아무도 물을 채우지 않았다. 하루를 버티던 나는 결국 백기투항했다. 매일매일 5개가 넘는 가습기에 물을 채워넣고, 물이 떨어질 때마다 갈다 보니 예쁘다고 좋아했던 가습기는 곧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 받는 물건으로 변해버렸다. 빙긋 웃고 있는 곰돌이와 개구리의 표정마저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심지어 몇 주 후에는 가습기를 돌리면 냄새가 나는 것 같으니 “물을 채울 때마다 깨끗이 닦아오라”는 지시까지 떨어졌다. “여직원들이 그 정도는 알아서 해야지 말이야”라는 말은 덤이었다. 그런 말을 들었는데도 나는 그 지시를 내린 남자 상사보다 가습기 물이 떨어졌는데도 먼저 갈지 않는 동료 여직원이 더 미웠다.

그러니까 가습기를 사준다고 할 때 뜨뜻미지근했던 선배들의 반응은 다 이유가 있는 거였다. 화장실에서 가습기를 닦고 있는 나와 마주친 선배 언니는 소곤소곤 털어놓았다. “말도 마, 사무실에서 왜 종이컵을 쓰는데. 원래 환경보호도 하고 부서 운영비도 아낀다고 다 개인컵 갖다놨었어. 근데 어떻게 됐게? 아침에 오자마자 스무 개가 넘는 컵 싹 다 걷어야지, 닦아서 다시 갖다놔야지, 커피 타다줘야지, 썼던 컵 다시 씻어서 갖다놔야지… 여직원들 있는 부서에서는 그게 다 여직원들 일이 된 거야. 결국 강력하게 항의 들어가서 다 종이컵으로 바뀐 거라니까. 아유, 말도 마. 그 많은 컵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 먹고 싶은 사람이 알아서 타먹고 알아서 챙기면 좀 좋아?”

일을 한다고 모인 직장에서 이 정도니, 가정이나 일상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말할 것도 없다. 여자는 너무 많이 배워도 안되고(여자가 너무 똑똑해도 피곤하니까), 남편보다 많이 벌어도 안되고(남자 기 죽이니까), 화장을 진하게 해도 안되고(화장을 안 하면 “예의가 아니다”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뿐인가? 여성을 ‘모 아니면 도’로 분류하고 갈등을 유발하는 방식 역시 여전하다. ‘전업주부 VS 직장맘’ ‘된장녀 VS 개념녀’ ‘순종적인 여자 VS 드센 여자’ ‘미녀 VS 추녀’까지…. 여기에서 ‘드센 여자’의 대명사가 바로 ‘페미니스트’다. 사실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성과 사회문화적 성별(젠더)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이론과 정치적 의제’를 뜻하는 것인데도 이 같은 오해는 꽤나 공공연하다. 에마 왓슨 역시 유엔 연설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발언하면 할수록 여성의 권리 확보를 위해 싸울수록, 남성 혐오와 같은 의미로 오해받곤 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 오죽하면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그래도’ 증후군까지 생겼을까.

2010 지방선거 홍보용으로 제작되었다가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을 담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던 '선거탐구생활' (출처 : 경향DB)


지금 트위터에서는 ‘IS보다 페미니즘이 위험하다’는 칼럼이 논란이 되면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캠페인이 한창 진행 중이다. “한 점의 열이 있으면 한 점의 빛을 발하라. 반딧불이처럼 어둠 속에서 한 점의 빛을 발할 수 있다면 꼭 횃불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는 루쉰의 말처럼, 작은 시작이지만 나 역시 이야기하려 한다.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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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경기도 외곽이라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버스를 타려면 한 30분 걸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결국 자가용을 운행할 수밖에 없다. 하루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차를 운행하는 것 같다.

시골 국도, 고속도로, 가끔은 대도시의 복잡한 도로까지 다양하다. 매일 차를 가지고 다니면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어쩌면 매일 한번씩 뭔가 울컥 솟아오르는 신묘한 경험을 한다. 화가 나는 결정적 지점, 발화점이라 부르면 어떨까, 나쁘지 않다.

그러니까 발화점은 두 꼭짓점이 있다. 하나는 난데없는 도발.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작은 규칙 무시. 이 둘이 한데 섞이면 발화의 강도가 세진다. 난데없는 도발은 이런 거다. 고속도로나 국도에서 지정된 차선을 가는 경우, 추월 차선을 달리며 추월해 나가거나, 아니면 주행차선을 달릴 때다. 느닷없이 뒤차가 상향등을 깜빡인다. ‘뭐지? 내가 뭘 잘못 했나?’ 급히 생각한다.

추월 차선에서 느리게 달리거나, 혹 제법 속도를 내 달리고 있어도 뒤차가 레이싱 트랙을 달리듯 달려오는 경우라면 양보한다.

그게 아니라 멀쩡하게 추월을 하고 나가고 있을 때나(뒤차와 거리도 꽤 되고), 아니면 내가 주행선에서 주행할 때 뒤차가 상향등을 켜는 건 발화의 꼭짓점이 된다. “(욕을 하고) 뭔데 번쩍이고 그래!”라며 어디에 숨겨놓았는지 모를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다.

얼마 전 일이다. 국도에서 갑자기 뒤차가 상향등을 켰다. 자동으로 화가 폭발한다. 그 차는 나를 추월해 갔다. “추월해 가면 되지 왜 상향등을 켜는 거야!” 그리고 바로 앞 신호등에 멈추었다. 그 뒤에 선 나는, 차에서 내려 “당신이 뭔데 상향등을 반짝거리는 거야!”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별거 아니다. 실수로 상향등 스위치를 건드릴 수도 있다.

오른쪽, 왼쪽으로 배치된 스위치를 헛갈릴 때도 많이 있다. 아니면 위험을 경고하려는 착한 마음에서 상향등을 켤 수도 있다. 백번 양보해, 그냥 나에게 뭔가를 경고했을 수도 있다. 진짜 사소하고 사소한, 상향등 한번 깜빡인 것뿐이다. 왜 난 거기에 도발 당하는 걸까?

규칙 무시는 좀 맥락이 다르다. 막히는 길에서 느닷없이 끼어드는 자동차, 주행차선이 비어있는 고속도로 추월 차선에서 느린 속도로 운행하는 자동차, 정지 신호에 서 있는데, 뒤에서 반짝이고 경적을 울리는 자동차. 이런 이들을 만나면 또 다른 발화의 꼭짓점을 자극받는다.

난데없는 도발과 비교해 조금 더 얄미움이 명백하지만, 내가 화를 내 봐야, 내가 응징해 봐야 해결될 일이 아니다. 길게 늘어선 줄의 맨 앞으로 끼어들지 못하게 좀 더 적극적으로 단속하고, 추월 차선은 주행차선이 아니라 추월 차선이라고 면허를 따기 전부터 제대로 교육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청원할 일이다.

서울 마포구 서부운전면허시험장 (출처 : 경향DB)


막 운전을 시작했을 때 일이다. 1차선보다 조금 넓은 길에서 뒤차가 거칠게 추월해 나갔다.

난 내가 무척 화가 났다는 걸 알리기 위해 상향등을 계속 깜빡였다. 난 화가 났고, 날 거칠게 추월해 간 그들에게 내 분노를 전해야만 했다. 차를 세우고 따져 묻고도 싶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앞차가 갑자기 정차하며 문이 열렸다. 순간, 화는 공포로 바뀌었다. 후진으로 도망갈까? 차 문을 잠그고 경찰에 신고할까? 그때, 정차한 차 옆쪽으로 차 한대가 지나갈 여유가 보였다. 급하게 그쪽으로 빠져나갔다. 혹시 우리 집으로 따라올까봐 전혀 다른 곳으로 한참 돌아돌아 집에 갔다.

그날 한참을 후회했다. 난 왜 사소한 일에 분노할까.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운전대만 잡으면 거리에서 만나는 사소한 일에 분노한다.

그게 내 삶에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닌데도. 어디 운전뿐이랴. 그게 우리 삶이다. 사소한 것들에 대해 조금만 대범해져도, 우리 삶은 더 행복해 질 터이다.

사소한 분노를 좀 아끼면 거대한 문제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015년에는 좀 대범해져야 되겠다. 적어도 운전을 할 때라도 말이다.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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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3년, 화제의 인물은 단연 이건희 삼성 회장이었다. 그해부터 본격적인 공개 행보를 시작한 이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임직원을 불러들여 최대 규모의 해외 현장 회의를 개최하면서, “초일류 기업 실현”을 위해 경영 혁신과 명품 전략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임직원 대상으로 행해진 그의 강연은 이후에 특집 프로그램으로 공중파를 타면서 여론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의 경영 전략을 담은 어록 역시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중 가장 널리 회자된 것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는 것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1년이 지난 후에야 국정 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세계화’를 내놓으며 ‘개혁의 아이콘’ 자리를 두고 이 회장과 경쟁을 벌여야만 했다.

흥미로운 점은 21세기 초반부터 “세계화”를 통해 “마누라와 자식”까지 바꾸려는 움직임이 중산층 상층부에서 표면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세계 일류”를 향한 욕망이 시간차를 두고 수십만명의 사원을 거느린 대기업에서 4인 구성의 중산층 가족으로 전이된 결과였을까? 아무튼 안정적인 직장인이라는 명함, 30·40평형대 아파트 거주, 중형 이상의 승용차 보유를 통해 ‘코리안 스탠더드’의 인증 마크를 획득한 이들이 자녀의 조기 유학을 통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타이틀에 도전을 시도했다.

사실 90년대 초반의 조기 유학 열풍을 상기해 보면, 이는 완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양자 간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90년대 초반의 열풍이 상류층의 자본 소득과 사업 소득을 동력원으로 삼았고 ‘도피성 유학’이라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반면, 21세기의 새바람은 상위 10% 내에 자리한 근로소득 가구가 주도했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조기 유학 모델의 확산은 ‘기러기 가족’이라는 변종 가족의 출현을 가져왔다. 어린 자녀는 뒷바라지해 줄 엄마와 함께 유학길에 나서고 아빠는 고국에 남아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며 다달이 생활비와 학비를 보내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등장했던 것이다. 상류층 일부는 자녀의 미국 국적 취득을 위해 ‘원정 출산’이라는 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중산층 상당수는 아파트 근처 학원가를 떠돌며 사교육에 몰두하던 시점, 그 시점에 기러기 가족은 중산층 내부의 치열한 경쟁을 우회하는 ‘세계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중산층 일부의 소득 증가도 큰 몫을 했다. 이 시기는 자산 소득을 추구하는 ‘일상의 금융화’가 부동산과 주식 시장의 폭등세를 틈타 확산된 시기이면서, 동시에 근로소득 상위 10%의 임금이 전체 임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증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1980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1995년에는 23.9%까지 내려갔던 그 비중은 IMF 외환위기 이후 급상승해 2005년에는 35%대에 육박했다. 이런 경제적 여건은 그들이 소비자로서 경쟁자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교육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이었다.

한국의 기러기 가족을 다룬 2008년 뉴욕타임스 인터넷판 기사.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의 어린이들은 아버지와 헤어지는 법을 배운다’는 제목이 달렸다. (출처 : 경향DB)


적어도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전까지 기러기 가족은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하나의 뚜렷한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기러기 가족의 부모가 속한 세대가 ‘도시화’의 흐름을 완성하며 ‘중산층’에 진입한 세대였으니, 경제적 여유가 있는 그들 중 일부가 대학 진학률 80%대의 시대를 맞이하여 자녀 교육의 명품화를 통해 ‘세계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중산층 이후의 가족 구성을 실험하는 것도 그럴듯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심화되는 양극화”와 “무너지는 중산층”이라는 수사가 보편화된 시점에 돌이켜보면, 기러기 가족은 고도성장기에 가능했던 계층 분화와 상승의 드라마가 새천년에도 종영을 거부한 채 억지로 만들어낸 마지막 스핀오프처럼 보인다. 지반이 흔들리고 있는 시점에 공통의 안전지대를 확보하기보다는 발 딛고 있는 곳으로부터 가족 단위로 먼저 탈출하고자 하는 몸부림, 아마도 그 성공 여부와는 무관하게 ‘기러기 가족’은 한국 중산층의 가족주의가 가닿을 수 있는 재생산 전략의 한계 지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박해천 |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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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좋은 친구인 가스파리 박사가 만약 내 어머니를 욕한다면, 그는 주먹질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일입니다. 여러분은 도발을 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모욕하거나 희화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난 1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 발언이다. 테러에는 반대하지만 신앙심 역시 존중받아야 하므로, 표현의 자유가 한발 물러서야 한다는 뜻이다.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우리는 이와 같은 의견을 숱하게 접할 수 있었다.

물론 테러는 나쁘지만, 그들이 테러범이 되도록 만든 구조적 문제가 있다. 물론 테러는 나쁘지만, 타인의 종교를 모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테러는 나쁘지만, 악의 씨앗을 뿌린 서구 제국주의가 더 나쁘다 등등….

‘물론 테러는 나쁘지만’으로 시작하는 이러한 주장들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표현의 자유가 갖는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그 가치를 절대적인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입장이 첫 번째이다. 이것을 ‘가치 상대론’이라고 하자.

표현의 자유를 누리면서 타인이 소중히 하는 무언가를 침해할 경우, 물론 그래도 테러는 나쁘지만, 이른바 ‘원인 제공자’ 역시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입장이 두 번째일 것이다. 이것을 ‘도발론’이라고 불러보자.

대부분의 경우 첫 번째와 두 번째 근거는 함께 작동한다. 앞서 인용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부터가 그렇다. 나의 것이건 타인의 것이건 신앙심은 표현의 자유만큼이나 소중하므로, 그것을 함부로 모욕하는 것은 ‘주먹질’을 불러오는 도발 행위가 된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발생 직후 주요 무슬림 종교 지도자들이 내놓은 성명도 이와 대동소이했다.

이슬람교는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결코 성전으로 부르지 않으며 용납하지 않지만, 종교와 신앙에 대한 도발은 나쁜 행동이라는 부연설명이 뒤따랐다. 결국은 ‘도발론’으로 향하는 셈이 된다.

종교 지도자가 아닌 사람들이 내놓은 발언들도 같은 틀에서 분석이 가능하다. 신앙심 대신 종교의 자유 혹은 서구 사회의 소수자로서 탄압받지 않을 자유가 ‘가치 상대론’의 저울 위에 올라 표현의 자유와 비교 대상이 된다.

‘도발론’의 경우도 그렇다. 서구 제국주의의 역사부터 시작해, 값싼 이주노동자를 얻기 위해 문화적 차이가 큰 무슬림들에게 취업 비자를 쉽사리 내주었던 서유럽 국가들의 역사,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극우적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극우 정당이 모두 ‘원인 제공자’로 간주되었다.

물론 표현의 자유도, 여타 기본권과 마찬가지로, 경우에 따라서 제한될 수 있다. 충돌이 발생했을 때 사실관계를 충분히 따져보지 않고 일방의 책임으로만 몰아붙이는 것 역시 부당한 일이다.

그러나 ‘샤를리 에브도’ 테러를 두고 ‘표현의 자유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라든가, ‘종교적 심성을 도발하지 말라’ 같은 말이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광경을 보면, 섬뜩하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명백히 퇴행하고 있다는 징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가톨릭에서 ‘어머니’는 성모 마리아를 뜻한다. 올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내 어머니를 욕하면 주먹질을 각오하라”고 농담처럼 말할 수 있었지만, 불과 500여년 전의 프랑스인들은 바로 그런 이유를 들먹이며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을 벌였다.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인 장 줄리엔이 7일 펜이 기관총 총구를 막고 있는 그림과 함께 “내가 샤를리다”라는 문구를 쓴 만평을 그렸다. (출처 : 경향DB)


‘샤를리 에브도’ 테러 역시 마찬가지다. 테러범들은 명백히 그들이 믿는 신과 그 신의 말씀을 가져다준 예언자의 이름을 외치며 범행을 저질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종교적으로 숭배하는 이들에게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는 한국의 ‘샤를리 에브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진 학살 앞에서 애써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핑계로 장막 너머의 신성한 권력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이만큼의 시민적 권리를 발견하고 정착시키기 위해 수많은 선각자들이 많은 것을 바쳐오지 않았던가.

‘신성불가침의 최고 존엄’과 표현의 자유는 언제나 불편한 관계일 수밖에 없다. 인류 진보의 역사는 종교와 신앙과 권위를 조롱하는 자들이, 그런 짓을 하고도 무사히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온 역사다. 그 희생과 헌신을 배신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나도 샤를리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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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다리타기를 할 때가 있다. 제비뽑기의 일종인 이 놀이는 종이에 그리지 않고도 사다리타기를 할 수 있는 앱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많다. 사다리타기를 하는 경우는 대부분 소소하고 시시한 내기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당첨된 사람이 커피를 쏜다거나 귀찮은 심부름을 하는 식이다.

주말 동안 인터넷은 신입생 예비소집일에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고급아파트와 임대아파트, 기타 등으로 구분한 팻말 앞에 줄을 세운 경북 안동의 한 초등학교 뉴스로 시끌시끌했다. 이 초등학교 근처에는 고급아파트와 장기임대아파트, 주택가 등이 혼재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 학교 교장은 “업무를 편리하게 하기 위해 다른 학교도 행정구역별로 나눠서 하며, 차별하기 위한 건 아니었다”고 얘기했지만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팻말 앞에 줄 서 있는 사진을 보면서 사다리타기 게임이 떠올랐다. 이 사진의 풍경이 게임과 다른 것은 이 사다리타기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는 거다. 거주하는 아파트처럼 어디에서 출발하느냐에 따라 탈 수 있는 사다리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취학을 앞둔 어린이와 학부모들이 14일 서울 홍은동 홍제초등학교에서 열린 2015학년도 신입생 예비소집에 참석해 취학 신청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사다리 출발 지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학연, 혈연, 지연인데 무작위로 선택된 혈연(부모를 골라 태어나는 건 불가능하니까)이 바탕이다. 신분을 나누는 것도 모자라 경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했던 신라의 골품제처럼, 이제 한국도 서울에서 자력으로 내 집을 갖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부모가 물려주는 사다리 없이 서울 입성은 불가능해진 시대인 만큼 부모에 따라 지연이 결정되고, 학연 역시 이 두 가지 요소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까 요새 젊은 남녀들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몇 마디만 해보면 ‘견적이 딱 나오는’ 거다. 구차하게 연봉이 얼마며 부모님은 뭘 하시는지 따질 것도 없다. 일단 집이나 직장이 서울이 아니면 “아아….” 그 후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데, 직장이 공공기관이라고 덧붙이면 “아, 그래요?”라며 다시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이 대화에서 상대방의 흥미는 ‘서울이 아니라는’ 것에서 뚝 떨어졌다가 ‘공공기관’에서 정점을 찍는다. 상대방과 앞으로 관계를 지속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몇 개의 기본적인 사다리를 통과해야 하는 거다. 남녀 불구하고 연애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다리는 계속 작동한다. 한국 사회의 사다리타기는 농촌으로 이주하면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한마디로 설명이 안되기 때문에 매번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홀연히 떠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도 ‘○○집 아들’ 혹은 ‘○○고등학교 ○기’라는 단 한마디로 설명이 끝나는 그 고장 출신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전혀 모르는 사이로 마주앉았다가 아는 사람이나 공통점이 등장하면 갑자기 화기애애해지는 분위기 반전은 그래서 가능하다. 한마디로 사다리 출발지점이 정해지는 다수자들과 달리 연결고리가 별로 없어 출발지점을 제대로 찾기 어려운 소수자는 “원래 뭐 하던 사람이야? 어디 출신이야?”류의 질문을 받으며 이방인 취급을 당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라는 건 거의 동창회라는 사적 조직들로 지배되어 있는 사회예요. 동창회라는 것은 공익성과는 거리가 먼 집단이기주의가 번성할 수밖에 없는 연줄조직입니다. 온갖 분야에서 이른바 출세를 하고 편안하게 살려면 이 연줄에 기대거나 잘 활용해야 합니다. 이 나라는 겉으로는 그럴듯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모두 이런 음성적 연줄로 돌아가고 있어요”라는 김종철 선생의 일갈은 정확하다.

사실 사다리타기 게임을 해서 떡볶이를 사와야 한다고 해서 분노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의 사다리타기 게임은 결론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고, 또 불안하다. 출발지점이 같아도 결론은 다를 수 있으며, 중간 어디쯤에서 또 다른 사다리로 넘나들 수 있을 때 사회구성원들은 웃으며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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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의 페이스북에는 다양한 소식들이 배달되었다. 한 덩어리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소식이고, 다른 한 덩어리는 내가 공감하는 소식이다. 내가 ‘좋아요’를 누른 페이지나, 아니면 친구가 된 이들이 공유한 소식들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페북이 제공해 주는 소식을 확인한다. 그리고 적당히 ‘좋아요’를 누르고, 적당히 공유한다. 분노도, 연민도, 욕망도, 슬픔도 대개 페북을 통해 공유하고, 표시하는 걸로 끝낸다. 참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딱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을 통해서다. 어디 페북뿐일까. 오늘도 나의 인스타그램에는 정사각형의 멋진 사진들이 클로즈업되어서 올라온다. 음식이나 신발, 옷, 아주 가끔 풍경 따위의 사진들이다. 짤막한 글이 붙기도 하지만 사진으로 소통하면 끝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 현실이라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뉴스를 간단하게 접하며 공유한다. 마치 네트처럼 광대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광대한 세계를 스마트폰 안으로 집중시킨다. 이건 마치 셀카와 같다. 셀카, 즉 셀프카메라는 내가 나를 찍는다. 셀카의 관심은 오직 나이다. 셀카를 찍는 사람들을, 그들이 찍은 사진을 보자. 자신의 얼굴에 집중하고, 그 얼굴을 꾸며내는 방법을 탐구한다. 셀카뿐만이 아니라 사회관계망서비스로 공유되는 다른 사진도 셀카처럼 세계의 맥락이 거세된 개인적 관심사에 불과하다. 내 얼굴, 내가 먹은 음식, 내가 방문한 장소, 내 물건들처럼 말이다.

20세기 격동의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긴 로버트 카파는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페인 내전, 중일전쟁, 2차 세계대전의 북아프리카 전선과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을 취재했다. 그의 렌즈는 자신이 아니라 세계를 향해 있었다. 그가 충분히 다가가 포착한 건 꾸며낸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우리 모두가 로버트 카파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모든 이들의 주머니에 20세기 로버트 카파가 들고 다니던 사진기보다 더 좋은 성능의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오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는 고민해 볼 여지가 있다.

20세기 우리는 타인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연민과 배려가 존재했고, 과감하게 연대에 나서기도 했다. 21세기 우리는 타인을 향한 관심을 거두고 내 얼굴, 내가 먹은(먹을) 음식, 내 물건을 찍는다. 21세기의 카메라 렌즈는 타인에게 다가가지 않을 뿐 아니라 타인을 바라보지도 않는다. 가장 안전하게 나를 향하고, 그 안에서 만족한다. 그럴수록 우리의 시야는 셀카에 맞게 좁아졌다. 그리고 묻는다. “분노하라고? 왜? 나는 편안하게 잘살고 있는데?”

검찰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한 7일 서울 외발산동 대한항공 본사 뒤로 대한항공 비행기가 착륙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2014년 벌어져 여전히 진행 중인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 지난 10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사건의 발단이 되기도 한 여승무원에게는 교수 자리로 입을 다물라고 회유했고, 박창진 사무장도 역시 기업의 간부가 회유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사무장은 회사 측의 제안과 협박에도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작년 12월 KBS와 최초 인터뷰에서 그는 “회사라는 큰 힘에 의해 빼앗긴 개인의 존엄함을 찾기 위해서 인터뷰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셀카의 시대, 나만 바라보며 좁아진 시야를 갖고 있는 시대에 보기 드문 선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년에도 여전히 셀카의 시대는 계속될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셀카 나르시시즘의 시대가 될 듯하다. 분노하는 이들에게 “나는 행복하고 만족하는데?”라며 그들을 조롱할 것이다. 노골적으로 시끄럽다고 구박할 수도 있다. 타인에 대한 관심은 극도로 줄어들고,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이들은 빨갱이라 불릴지도 모르겠다.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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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후반부터 서울의 도시 경관은 빠르게 변모했다. ‘디자인 서울’의 구호를 내세운 전임 서울시장의 대대적인 공공 디자인 사업은 서막에 불과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명동과 동대문 같은 강북의 핵심 상권을 뒤흔들어 놓았고, 그곳에서 밀려난 청년층들은 2호선 지하철을 타고 홍대 앞으로 향했다.

지하철 역세권의 상권들도 변화의 흐름에 가담했다. 이동통신 영업점 간판의 진두지휘 아래 카페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화장품 로드숍, 제과점 프랜차이즈, 음식점 프랜차이즈의 간판들이 해당 지역의 경관을 뒤바꿔놓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변화를 가속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떠맡은 것은 자영업에 뛰어든 중산층 출신의 베이비붐 세대였다. 은퇴 이후의 삶에 별다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이들에게 프랜차이즈 가맹점 창업은 맞춤형 선택지였다.

개별 상권마다 비슷비슷한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상권의 경관 이미지가 모두 똑같은 표정으로 변모한 것은 아니었다. 주지하다시피, 특정 프랜차이즈의 개점 여부는 지역의 경제적 특성, 거주자의 계층적 분포, 유동 인구의 추이, 임대료의 수준 등을 반영하기 마련이기에 해당 상권의 경관은 일정 수준의 차별화를 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의 차별화는 업종별로 서열화된 프랜차이즈의 간판들이 지역의 변수에 따라 조합된 결과였다. 따라서 위계적인 동질화나 다름없었다. 웬만한 역세권 어디에서나 프랜차이즈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지만, 모든 곳에서 커피빈의 ‘얼티메이트 모카 아이스 블렌디드’를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상권의 변화에 보조를 맞추듯 새로운 유형의 보행자들도 등장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2009년 11월 국내 서비스를 개시한 스마트폰이었다. 바로 이 새로운 정보기기의 주사용자층이었던 20·30대들은 촘촘하게 연결된 대중교통망을 통해 도시 내부를 이동하면서, 독특한 형태의 보행자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제 나름의 지도를 머릿속에 간직한다. 그 지도의 기본 골격은 지하철이나 시내버스의 노선도 형태를 띠고 있겠지만, 특정 지역의 경관은 보행자의 눈높이에서 수집된 파편적 이미지의 형태로 기억속에 보관되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곳에서 걷는다는 것은 머릿속 한귀퉁이에 돌돌 말려 있던 나만의 지도를 펼쳐보며 기억의 이미지를 되새김질해보는 인지적 행위를 동반하곤 한다.

스마트폰은 보행의 의미를 크게 바꿔놓았다. 보행은 더 이상 그 자체로 목적을 지니지 않은 채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출처 : 경향DB)


하지만 스마트폰이 등장하자, 머릿속 지도는 스마트폰의 지도 앱이 대신했고, 기억의 이미지는 터치스크린 위의 음식이나 실내 사진으로 대체되었다. 소요(逍遙)의 테크닉은 낡은 것이 되었고, 보행의 의미 역시 크게 변했다.

어떤 이들에게 이제 보행은 그 자체의 목적을 지닌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일련의 ‘사용자 경험’을 경유해 특정한 ‘과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수단일 뿐이다. 카카오톡으로 만남을 약속하고, 맛집 검색을 통해 약속장소를 정하며, 멀티플렉스 전용 앱으로 영화표를 예매한 다음, 대중교통을 이용해 목적지 근처로 이동하고 지도 앱으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다.

여기에서 거리의 프랜차이즈 간판들은 그 자체로 보행자에게 친숙한 이정표 구실을 해준다. 길눈이 어둡다면, 지도 앱의 거리 뷰 이미지를 찾아보면 그만이다.

결과적으로 스마트폰이 매개하는 도시 경험은 카페, 멀티플렉스, 음식점, 술집 등 각종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연결하는 이동 경로로 요약되며, 보행의 감각적 차원은 손바닥만 한 터치스크린의 표면 위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초박형으로 납작해진다. 이제 상당수의 보행자들은 누군가의 ‘고객’이 되기 위해 바쁘게 거리에서 움직일 따름이다. 낯선 풍경과 조우했을 때 곧바로 터치스크린 속으로 도망갈 마음의 준비를 한 채 말이다. 그러니 이런 도시 경험 속에서 유흥과 소비의 시간만이 지루하게 되풀이된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박해천 |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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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이후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1988년 10월로 돌아가보자. 그해 10월8일 한 젊은 범죄자가 일당들과 함께 호송 중 탈출했다. 그는 560만원을 훔쳤는데 새로 도입된 보호감호제 때문에 징역만 17년에 10년의 보호감찰 처분이 덧붙었다. 560만원을 훔쳤는데 감옥에서 27년이다. 반면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은 밝혀진 것만 수십억원에 달하는 사기 및 횡령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고작 2년 정도 옥살이를 한 후 풀려났다.

절도는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재물을 훔치는 것이고, 횡령은 자신이 점유하고 있는 재물을 훔치는 것이다. 두 범죄는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도둑질이다. 하지만 1988년의 대한민국은 560만원을 훔친 사람에게 27년간 사회로부터의 격리를 명령하면서 수십억원을 훔친 사람은 고작 2년 만에 그 죄를 사하여 주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바로 그런 부조리하에서 터져나온 절규였다.

‘지강헌사건’이 벌어진 후 벌써 26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느리지만 분명 우리 사회는 진보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회장님’들은 얼마를 횡령하고 무슨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배임을 저지르건, 거의 무조건적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음을 떠올려보자. 당시에는 ‘기업인 가석방’ 따위는 논의의 대상도 아니었다. 애초에 ‘회장님’들이 감옥에 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갇혀 있는 ‘회장님’을 가석방해야 한다는 여론몰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2014년의 대한민국은 1988년보다 분명 법 앞의 평등이 조금씩이나마 실현되고 있는 곳이다.

여기서 잠시 눈을 감옥 밖으로 돌려보자. 굳이 남의 돈을 훔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늘 겪으며 살아간다. 교통사고의 과실 비율 계산 및 수리비 산정 방식 때문에 그렇다. 고급차를 탄 사람과 소형차를 탄 사람이 교통사고를 냈는데, 과실 비율이 9 대 1로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고급차를 탄 사람이 9배는 더 잘못했지만, 그의 차는 고급차이기 때문에 수리비가 5000만원이고, 소형차는 100만원이다.

이 경우 우리의 도로교통법은 총 수리비 5100만원을 9 대 1로 분할한다. 소형차 운전자는 사실상 본인 잘못이 매우 경미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차 수리비 100만원뿐 아니라 상대방 차량의 수리비 410만원을 더 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도로 위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 할 수 있다. 값싼 차를 타고 다니면 설령 내 과실이 매우 적더라도, 비싼 차와 충돌했을 경우 덤터기를 쓰게 된다는 말이다.

도로 위의 법이 이런 식이니, ‘운전대만 잡으면 성격이 확 달라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도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내가 고급차를 몰고 있다면 값싼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 앞에서는 운전을 좀 함부로 해도 된다. 사고 나면 가난뱅이만 손해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소형차 운전자는 고급차 운전자 앞에서 잘못도 없는데 쩔쩔매야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일상적으로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회를, 지금껏 우리는 이토록 방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로 상에는 갑을이 명확히 존재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있다. (출처 : 경향DB)


‘기업인 가석방’에 반대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니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시민사회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도로 위의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조장하는 교통사고 과실 산정 방식의 변화를 촉구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 선진국은 교통사고 발생 시 두 운전자 중 조금이라도 과실이 큰 사람이 수리비를 전액 부담하는, 이른바 ‘51% 룰’을 적용한다.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모두 적극적으로 방어 운전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교통 법규를 알아서 잘 지키는 가운데 갓 운전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은 경찰과 공권력에 대한 존중심을 익힌다.

단지 감옥에 갇힌 ‘회장님’들이 형량을 다 채우고 나오는 것을 넘어서, 일상적으로 타인과 부대끼는 도로 위에서도,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통하지 않는 사회를 우리는 원한다.

법 앞의 평등과 예측 가능한 절차와 정의가 실현되기를, 2014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기원해보자.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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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이 최근 발표한 <영자>라는 소설을 읽었다. 노량진에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구준생(9급 공무원 시험 준비생) 남자 주인공과 동거하는 여자 ‘영자’의 이야기다. 영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한편 1인분이 최소한 10만원이 넘는 강남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화장실 담당으로 일하며 한 시간에 6000원을 받는다. 영자의 일은 화장실 앞에서 지키고 서 있다가 손님이 용무를 마치고 나올 때마다 ‘변기 밑에 눌어붙은 배설물을 솔로 닦아내고 물 위에 단풍잎을 띄우는’ 것이다. 변기의 물 위에 단풍잎이 떠 있으니 화장실에 들어선 손님은 ‘깊은 산속의 맑은 옹달샘 위에 걸터앉아’ 있는 기분으로 용변을 볼 수 있다. 영자의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단풍잎을 따로 걸러내도록 특별 제작한 변기 파이프에 걸리지 않을 작고 여린 단풍잎을 찾아 주워가는 것도 포함된다.

소설적 상황에 기반해 두 개의 계산을 해봤다. 노량진에서 강남까지 전철로 1시간쯤 걸린다고 나오니 영자의 왕복 출퇴근 시간은 2시간, 공원에 들러 단풍잎을 주워가는 시간은 시급에 포함되지 않으니 제외하면 아마도 영자의 유급 노동 시간은 6시에서 11시, 하루 5시간 정도일 것으로 짐작된다. 일당 3만원이다. 레스토랑은 월 추가 비용 60만원으로 ‘명품 아이디어로 인터넷에 소개되는 단풍잎 화장실’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셈이다. 하루 5시간의 유급 노동을 제공하기 위해 2시간 반 이상의 시간과 왕복 교통비를 덤으로 지불해야 하는 노동자 입장에서 한 달 60만원은 과연 많은 돈일까? 소설의 상황에 따르면 그나마 많은 돈이다. 소설 속의 영자는 두어 달에 한 번쯤 일이 바뀌고, 서너 가지 알바를 병행하고 있으며 노량진 김밥집에서 시금치, 계란프라이 등의 식재료를 다듬는 시급 4500원의 김밥 보조로 일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이 화장실 알바를 구한 것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경영자라면 테이블당 최소 2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려줄 손님들을 위해 하루 3만원의 아르바이트를 쓰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영자 입장에서도 1500원이나 시급을 많이 주는 데다 상대적으로 일이 쉬운 이 화장실 알바가 나을 것이다. 객관적으로는 분명 그렇지만, 식당 화장실 알바가 더 힘든 알바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노동력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노동의 성격은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이 찜찜함은 무엇일까. 이 노동을 제공해서 번 돈으로 버티고 노력해서 획득하고자 하는 일상은 어떤 것일까?

소설에 따르면 ‘시장한 구준생 백여 명이 컵밥 노점 앞에 줄을 선다고 할 때 그중 1.3명 정도가 9급 시험에 합격’한다. ‘경쟁의 틀에 갇혀 있는 자들을 모두 똑같이 만들면서 차별하는’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이 되면? 먼저 합격한 남자 주인공은 5급 중앙 사무관이 된 같은 마을 출신의 청년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만들어 거는 일 외에도 ‘이것저것 다 하는’ 면사무소 총무계 서기보로서의 일상을 얻는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 고시촌에 한 경찰고시 학원의 강좌 개설 안내문이 나붙어 있다. (출처 : 경향DB)


사실 소설 속의 노량진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와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나 역시 최근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바로 “버티라”는 말이다. 상황도, 장소도, 말을 꺼낸 사람도, 참석자도 다 달랐는데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 말을 하고, 그때마다 좌중의 광범위하고 전폭적인 동의를 얻어내는지 놀라웠다. 다섯 번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였으니까. 지금도 많은 영자들은 ‘그래도 살 만한 인생’인 직장인 ‘미생’으로서의 일상을 꿈꾸며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을 테고, 그 일상을 획득한 남자 주인공은 며칠 전 종영한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처럼 “이왕 들어왔으니까 어떻게든 버텨봐라. 여긴 버티는 게 이기는 데야”라는 상사의 충고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것이다.

소설은 “지금 거신 번호는 고객님의 요청으로 사용하지 않는 번호입니다”라는 영자의 휴대폰 기계음 대답으로 끝난다. 힘겨웠던 2014년을 견딘 사람들의 일상이 오차장의 말처럼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아가는” 과정이길 바란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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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1일 오전 11시58분44초. 진도 7.9의 강진이 도쿄와 인근 간토지역을 흔들었다. 목조주택이 붕괴되었고, 그나마 멀쩡하던 집은 때마침 점심을 준비하려던 아궁이나 풍로가 넘어지며 일어난 화재에 불타버렸다. 도쿄에서만 187곳에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번졌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정보를 찾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때, 조선인이 방화를 했고,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확산되었다. 그날 저녁부터 광기에 사로잡힌 일본인들은 조선인을 죽이기 시작했다. 평범했던 이들이 학살자로 돌변했다. 일본도, 쇠갈고리, 톱, 도끼, 낫, 죽창을 들고 무차별적으로 조선인을 잡아 죽이기 시작했다.

하급관리들은 떠도는 괴담을 적극적으로 유포했다. 계엄령이 내려지고 난 뒤 군인들이 나서 조선인을 학살했다. 1919년 3·1만세운동이라는 조선인들의 강력한 저항을 기억하던 관료와 군인들은 의도적으로 괴담을 확산시켰고, 계엄령 이후 학살에 개입한 것이다. 그들은 조선인 폭동과 사회주의자를 엮었다. 조선인과 함께 사회주의자들도 살해당했다.(강덕상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 역사비평사 참조)

2014년 우리나라에도 공포와 혐오를 자극하는 불안의 광기가 떠돌아다닌다. 공포와 혐오는 인종차별 심리와 가장 파괴적인 상호작용을 낳는다. 불법체류자들이 애만 낳으면 돈을 지원하고, 추방도 하지 않는 법을 입법한다는 앞뒤 없는 괴담은 일 년 내내 다양한 방식으로 게시판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보다 더 자극적인 이야기도 있다. 조선족들이 사람을 납치해 장기를 적출한다는 괴담은 다양한 버전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중이다. 아마 수원 사건 이후 이런 게시글을 SNS에서 더 자주 만나야 될 것 같다. 괴담에서는 악의 축이지만, 사실 우리나라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의 범죄가 우리나라의 평균 범죄 발생건수보다 특별히 높지 않다. (궁금하면 e나라지표에서 확인하면 된다.) 하지만 오늘도 게시판과 SNS에서는 다양한 괴담들이 판을 치고 있다.

지금도 인터넷 게시판과 SNS에서는 국내 체류 외국인에 대한 괴담과 불신이 끊임 없이 확산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일본에서 재특회(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 등이 주도하는 한국에 대한 차별, 혐오시위를 보며 분노하지만, 똑같은 차별논리로 한국 내에서 퍼지는 인종차별의 논리에는 둔감하다.

일본의 인종차별주의자들도 온라인에서 확대, 재생산된 괴담을 진실로 믿고 마침내 거리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외국인 체류자에 대한 차별의 감정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종북몰이 혹은 종북사냥은 온라인에서 나와 거리로 진출했다.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건 사실상 종북세력이라는 그들의 주장이 끊임없이 확산되면 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공포와 종북이라 지목받은 이들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낳는다. 마침내 고교생이 황산테러를 자행했다. 그건 다르다고? 다시 간토대지진을 보자.

간토대지진에서 벌어진 관민 일체의 대학살은 조선인에 대한 적대적 감정 때문이다. 그 적대 감정은 조선의 식민지 저항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알고 보니 그들도 저항을 했다는 기저의 공포와 우리와 다른 불량선인들에 대한 혐오와 증오는 괴담을 확증하고, 극단적 행동을 낳았다. 조선인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는 불안이 없었다면, 학살도 없었을 것이다.

당시 자경단들은 조선인으로 의심되는 이들을 붙잡으면 ‘15엔50전’을 말해보라고 시켰다. 조선인에게 어려운 발음이었는데, 이 말을 제대로 못하면 그 자리에서 죽였다.

우리 사회는 ‘15엔50전’ 대신 ‘김정일 김정은 개새끼’를 해보라 묻는다. 이미 수년 전의 일이다. 그뿐인가, 신문과 종편 뉴스는 치고받으며 끊임없이 종북의 뇌관을 자극한다. 91년 전 폐허가 된 도쿄에서 손에 피 묻은 죽창을 들고 돌아다니는 야만이 2014년에 우리가 반복해야 할 일인가 진짜 묻고 싶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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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21세기의 첫 십 년은 ‘명품’이 넘쳐나던 시대였다.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떠올려 보면, 명품이란 단어는 최상의 품격을 갖춘 대상을 수식하려는 의도로 사용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약간, 이상한 모양새였다. 사람들이 ‘명품 도시’부터 ‘명품 각선미’까지 별 고민 없이 최상급의 매김말로 사용하자, 이 단어는 정보량 제로의 ‘싸구려 관용어’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대상의 특질을 포착하려는 수고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외려 단어 사용자의 태만함만이 묻어날 뿐이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1980년대만 해도 ‘명품’의 의미는 사전적인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고려청자 명품전’ 같은 용례가 일반적이었다.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1990년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이 개장과 함께 ‘명품관’의 문을 열면서부터였다. 해외 고급 패션 브랜드의 제품을 ‘명품’으로 호명하는 홍보 전략의 출발점이었고, 당시 국내 유명 디자이너가 운영하던 부티크의 단골들이 이 전략이 노린 주요 고객층이었다. 중산층은 애당초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이제 막 1인당 소득 5000달러의 문턱을 넘어선 시기의 중산층에게 ‘명품’은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호화 사치품’에 불과했다.

강남의 부촌 일대에서 맴돌던 ‘명품’이라는 단어는 얼마 후 세력 확장의 기회를 맞이했다. 1993년, 삼성그룹이 “국제 경쟁력의 획기적인 개선”이라는 경영 목표를 내세우며, 그 실천 전략 중 하나로 “전 계열사 1사 1명품 생산체계 확립”을 내세웠던 것이다.

이 ‘명품화’ 전략은 당시 이 기업이 제조업 분야에서 처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 기업의 최고 의사 결정권자는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전자는 3만명이 만든 물건을 6000명이 하루에 2만번씩 고치고 다닌다”며, 2류 수준의 “비효율 낭비적 집단”이라고 혹독한 자체 평가를 내놓은 바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명품은 “초일류 품질의 공산품”을 의미했던 것이다.

1994년, 드디어 이 전략은 나름의 첫 결실을 맺는데, 그 주인공은 컬러TV였다. 삼성전자는 그해 8월, “일반 브라운관 방식의 월드베스트 TV를 개발했다”고 발표하면서, 이 제품에 ‘명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이 이름은 이 기업의 TV 브랜드명으로 자리를 굳혔다.

이렇게 1990년대 전반에 걸쳐 ‘명품’이라는 단어는 해외 고급 패션 브랜드와 최고 품질의 공산품 사이를 오가고 있었지만, 아직 일반인의 일상 언어 차원으로 침투하진 못한 상태였다. 이 단어가 도약의 시기를 맞이한 것은 IMF 외환위기 이후였고, 그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역시 삼성이었다. 이 기업은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명품’의 의미망을 신축 아파트에 덧씌우려고 시도했다. 1999년에 분양된 타워팰리스가 그 서막이었다.

이 주상복합 아파트가 세워진 도곡동 일대 부지는 본래 삼성물산이 102층짜리 본사 사옥을 짓기 위해 서울시로부터 매입한 것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대로 사옥 신축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외환위기 직후였다. 유동성 확보를 위해 토지를 매각하려던 시도가 실패로 끝났지만, 정부가 상업용지 관련 각종 규제 정책을 완화하자, 삼성물산은 “명품 아파트를 건설하라”는 그룹 총수의 독려를 받으며 분양가 총액 1조원대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건설했다.

다양한 과정을 거치며 명품은 중산층들에게도 동경과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잡는다. (출처 : 경향DB)


‘명품’이라는 단어의 21세기적 의미는 바로 이런 과정을 거치며 점차 완전한 모양새를 갖춰갔다. 해외 고급 패션 브랜드, 최고 품질의 공산품, 고분양가 아파트를 꼭짓점으로 삼아 작도된 의미론적 삼각형. 그것은 이전까지 ‘호화 사치품’으로 분류되던 재화가 그 부정적 어감을 희석하고 중산층 고객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으로 자리잡았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첫 십 년, 카드 연체와 부동산 거품과 가계 대출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명품’의 시대가 그렇게 화려한 불꽃놀이를 시작할 준비를 마쳤던 것이다.


박해천 |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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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명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