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만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도 지구공동체를 이끌려면 강한 힘과 함께 합당한 뜻을 품어야 한다. 핵심 제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미국이 아직도 세계를 이끄는 힘은 군수, 금융, 정보산업 덕이라 한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미국을 떠받치는 동력은 다원성에 기초한 자유와 민주라는 보편적 이념이다. 미국의 역사가 짧다고들 하지만 그들만큼 빠르게 민속과 민족이라는 피의 공동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다원적 공동체를 실현한 국가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 경찰국가 행세를 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지만 미국은 여전히 지속가능한 자유와 민주의 땅이라고들 한다. 미국이 보여준 자유와 민주는 비록 인류가 꿈꾸어야 할 최대 이념은 아니지만 공존을 위해 인정해야 할 최소 이념임이 분명하다.


한때 중국의 부흥이 경찰국가 미국의 전횡을 견제할 힘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경제적 성장을 기초로 가파르게 자민족 중심주의로 회귀하는 중국에는 세계를 이끌 만한 이념이 없다. 그러니 중국이 지금보다 더 큰 제국이 되면 미국보다 더 세계를 불행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자민족 역사교육에 열중하는 중국에는 그저 중국인만 있을 뿐 세계인이 없기 때문이다.


2009년 9월 14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중국내 여러 민족간 단합을 상징하는 기둥들이 세워져 있는 모습. (연합)


적어도 경제영역에서 오랫동안 미국을 뒤쫓던 일본의 이념적 좌표는 더 한심스럽다. 아직 자신들의 원죄조차 인정하지 않으려고 끝없이 역사를 왜곡하니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들은 앞으로도 한참동안 3류 국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세계를 이끌어갈 이념은 없으면서 힘만 센 두 제국 사이에 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힘과 뜻 모두 앞서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최소한 그들보다 더 보편적인 이념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도 이 나라의 수구세력은 중국과 일본의 잘못된 장단에 맞춰 자민족 중심의 역사주의를 확산하는 데 혈안이다.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려는 정부·여당의 기획이 그 결정판이다. 300시간에 육박하는 한국사 시간을 잘못된 교육방법 때문에 허비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성도 없이 수능으로 학생들의 목을 틀어쥐고 역사를 주입하겠다는 이들의 발상은 유신체제를 옹호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뒤틀린 역사관만큼이나 위험해 보인다.


자연의 기억이 진화라면 역사는 인간의 기억, 특히 집단의 기억이자 소통이면서 동시에 정체성이다. 따라서 역사를 잃어버린 집단은 단순히 과거의 기억만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미래조차 빼앗긴 집단, 다시 말해 이미 생명을 다한 집단이다. 그러니 모든 집단은 역사교육을 생명처럼 강조하게 마련이다. 가족이나 민족, 국가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정치사 중심의 민족사나 국사교육이 문화 간 상호인정과 인류 평화에 기여하기보다 민족 분쟁과 갈등 그리고 전쟁의식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역사를 배울수록 자민족 영웅에 대한 향수와 함께 이민족에 대한 분노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 반성을 토대로 유럽에선 벌써부터 독일인, 프랑스인, 영국인이 아니라 유럽인, 세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키워가는 역사교육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일본보다 경제력은 약하지만 세계 정치를 이끌고 있다.


국회에서 열린 국사 수능필수과목 공청회 (경향DB)


분노와 슬픔의 역사에 사로잡히지 않고 세계 평화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려면 우리가 먼저 세계시민적 관점을 가진 역사교육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특수한 역사적 사실을 선택적으로 강조하거나 주입식으로 암기시키는 교육방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아가 평화를 키우는 역사교육은 지나간 폭력의 가해자나 피해자의 한쪽에 감정이입을 강요하지 말고 폭력의 뿌리와 구조를 파헤치는 과정이 돼야 한다. 이렇게 역사교육이 불의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아름다운 미래를 향한 열띤 토론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면 지금의 교육시간으로도 충분히 일본과 중국을 넘어 세계 평화를 선도하는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고귀한 역사에 수능이라는 족쇄를 채워서는 안되는 까닭이다. 뜻 있는 역사교사들이 사심에서 벗어나 바른말을 해야 할 때다.



박구용 | 전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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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雨期)라고 해도 남쪽은 온통 마른장마다. 열흘째 비소식은 없고, 그야말로 깡깡깡, 내려 퍼붓는 노란 볕살 일색이다. 더구나 내 집은 지붕이 낮은 한옥인 탓에 마치 그 혹서(酷暑)의 기운이 압축되기라도 한 듯 턱턱, 숨을 막는다. 씻고 벗고 선풍기 바람 쐬고 하느라 정신조차 산란하다. 어떤 러시아 기상학자는 사적 유물론보다 외려 태양의 흑점이 인류사를 더 좌우한다는 논지의 글을 발표한 적이 있어, 한편 고소를 금치 못하기도 했지만, 특별히 생태학적 이력이 적은 나도 근자에는 이런 주장에 차마 동조할 뻔했다.


당연히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의 관념론을 온전히 신앙하지는 않지만, 몸과 마음의 융통과 습합이야 다 아는 터, 외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리면서, 이른바 ‘슬금한 관념론’의 길에 나서야 할 법하다. 이를테면, 더위와 더불어 살아온 선조들의 자잘한 지혜 속에서 인생 그 자체를 대하는 큰 가르침을 유추할 수 있을 법하다. 그러니까, 더위가 실로 인생이 어찌할 수 없는 객관적 여건인 것처럼, 인생도 개인의 사사로운 생각과 관념으로써는 도통 슬기롭게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벽이나 대양과 같은 것이다.


‘슬금하다’라는 우리말은, 어리눅다 + 슬기롭다 + 너그럽다, 라는 세 가지 다른 의미가 덧입혀진 채 다소 두루뭉술하게 사용되는데, 나는 최근의 기상이변이나 온난화의 불길한 기운을 살피고 느끼면서, 지식인층에서는 이미 스캔들이 되어버린 ‘관념론’의 제한된 부활을, 그리고 슬금한 갱신을 연상해보곤 한다.


가령, 이런 식의 유추적 예시를 통해 혹서와 인생을 대하는 관념론의 길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철학자 중의 그리스도’라고도 불리는 스피노자는, 자신이 속했던 유대교로부터 갖은 저주 속에 파문당했을 뿐 아니라, 그의 중요한 저작들에서 보듯이 기독교에 대한 비판에도 시대를 앞서는 첨예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에서 돌아서려는 어느 전도사의 결심을 어리눅은 듯 만류했고, 그가 세든 집의 주인 내외가 주일예배에 다녀올 때면 식탁에 동석해서 그들이 전해주는 당일의 설교 내용을 너그럽게 경청하기를 즐기기도 했다. 


스피노자 (경향DB)


내가 20대 초반이던 어느 아득한 옛날의 단편적인 기억인데, 내가 내 기분에 취해 들뜬 채 알거냥하며 길게 뱉어낸 이야기를 너그럽고 어리눅은 듯이 듣고 있던 여자는 그저 슬기롭게 짧은 몇 마디로 응해주고 말았지만, 내가 나중에 알게된 진실(?)은 그런 이야기 정도는 그녀에게 이미 상식이었다는 사실이다. 


혹은 이런 이야기도 괜찮을 듯하다. 산사(山寺)는 언제 찾아도 제 나름의 정취와 품위가 있지만, 내겐 특히 여름의 산사에 마음이 머문다. 정갈하고 고풍스러운 산사는 그 존재만으로 더위나 세진(世塵)을 가라앉히거니와, 이상하게도 나는 부처상 앞에서 예불하는 불자들의 실없고 어리눅은 몸가짐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그런가 하면, 정작 나는 불자도 아니고 예불에도 관심이 적어, 그저 사찰의 안팎을 조용히 바장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동행한 이들이 불자 비슷하게라도 보이면, 냉큼 법당에 올라가서 부처님을 뵙고 오라고 굳이 선손 걸고 나서서 충고 혹은 강변한다. (내 충고나 강변이 마침내 어떤 슬기로움에 이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나는 최근에 발신인의 표기가 없는 어떤 편지를 한 통 받았다.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그는 글에서 별다른 내용 설명도 없이 자신이 오래전 내게 큰 죄를 지었노라고 고백하며 자책하고 있었다. 나는 어리눅은 듯 짧게, 그러나 너그러운 듯 부드럽게 답장을 띄웠다.


 “젊어 실수하지 않는 자 적고, 늙어 오염되지 않는 자 적지요….” 인생은 그 근본이 어긋남이고, 매사 일희일비의 대상이지만, 통으로 살피면 그것은 그야말로 한 시절의 혹서요, 존재의 열병과 같은 것이다. 마음속에서 허우적거리기를 즐기는 인간에게 이런 객관적 여건은 그 자체로 거대한 장벽이지만, 혹시 바로 그 마음속에도 작은 길이 숨어있을진대…. 나는 그것을 ‘슬금함’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김영민 |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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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영혼은 시를 통해서 무덤 너머에 있는 모든 찬란한 것들을 엿볼 수 있다고 보들레르는 말했다. 이때 ‘무덤 너머’라는 말은 물론 ‘죽음 이후에’라는 말인데, 이를 풀어서 말하자면 ‘우리의 정신이 이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견뎌내야 하는 모든 물질적인 제약을 벗어버린 후에’라는 뜻이 된다. 사후세계를 전혀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보들레르가 생각했을 한 점 티끌도 없이 완전히 찬란한 어떤 빛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보들레르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죽음 뒤에 얻게 될 휴식처를 상상했고, 동반 자살한 연인들이 죽음 뒤에 이루게 될 완전한 사랑을 꿈꾸기도 했다. 죽음 속에서만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적은 없다. 이 세상에서 그 빛을 볼 수는 없지만, 죽는 날까지 내내 시를 씀으로써 저 빛 속의 삶과 가능한 한 가장 가까운 삶을 이 땅의 우여곡절 안에서 실천하려고 했다. 이 열정은 현대시의 윤리가 되었다.


경기도 어느 지역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열아홉 살 청년이 평소에 알고 지내던 한 10대 소녀를 모텔로 끌어들여 성폭행을 하려던 끝에 목 졸라 살해했다. 그가 잔혹하게 시신을 훼손한 이야기는 차마 입에 담기조차 어렵다. 그는 인터넷 어느 구석에 남겨 놓은 글에서 자신이 살해한 여자에게 “활활 재가 되어 날아가세요”라고 썼다. 악감정이건 좋은 감정이건 어떤 감정도 없었다는 말끝에 “날 미워하세요”라고 덧붙인 것을 보면, 그 무도한 마음속에도 후회의 감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지옥에 가고 싶었던 자기에게 동반자가 필요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도 했다. ‘지옥’을 넓게 해석하자면 죽음 뒤의 세계 전체를 가리키는 말일 터인데, 그 어둠의 세계에 가려 했다는 고백이 빈말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은 그가 두 해 전에 인천의 월미도를 찾아가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슬픈 감정도 분노도 없이 “오늘 이 피비린내에 묻혀 잠들어야겠다”는 말도 동일한 감정의 표현이다. 그에게는 죽음의 세계에 대한 어떤 정염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경향DB)


그의 평소 생활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사실이 알려졌다. 그는 기타에 특별한 애착을 나타냈다. 그는 이름 있는 기타를 소유했으며, 그가 마지막까지 지니고 있던 기타는 이미 생산이 중단되어 전 세계에 20대밖에 남아 있지 않은 명품이라고 한다. 기타에 대한 그의 열정이 깊었다는 것은 그가 악기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프랑스의 어느 예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유학정보를 모으고 있었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그의 기타연주 실력도 상당한 정도였다고 하니,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그가 보인 죽음의 열정에는 어느 정도 예술가적 기질이 결부되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와 예술가들, 좁게 말해서 시인들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보들레르의 열정을 이어받은 현대의 시인들은 ‘무덤 뒤의 찬란함’에 자주 도취하면서도, 현실에서는 그 빛을 일상적 실천의 등대로 삼는다. 언제나 물질의 제약을 받는 이 세상에 그 찬란한 빛을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도달할 수 없는 곳을 향해 가는 발걸음은 바로 그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결코 멈추어지지 않는다. 시인들에게는 다른 세계의 빛이 이 세계의 실천을 지시한다. 저 불행한 청년은 이 실천이 두렵고 세상의 온갖 장애가 두려워, 이 세상을 파괴하고 저를 파괴하였으며, 마침내 저 찬란한 빛을 꺼버림으로써 자신이 가고 싶어 했던 죽음 뒤의 세계마저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가 어떤 글을 써서 어떻게 자신을 과시하건 그는 패배한 사람일 뿐이다.


문제는 이 패배가 그에게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흉악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폐지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형제도를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나 같기에 우리의 패배를 증명하는 꼴이 된다. 게다가 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다. 흉악범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일상이기 때문이다.



황현산 |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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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여름 어느 모임에 참가하느라 숲속 깊은 곳에 있는 숙소에 묵었을 때 일이다. 이른 아침 옆방에서 울려오는 휴대폰 알람 소리에 잠이 깼다. 새 지저귀는 소리로 설정된 그 신호음은 2~3분 계속 울려댔다. 도대체 이런 곳에까지 와서 이른 시각에 일어날 일이 뭐가 있는가. 그리고 소리가 울리면 빨리 깨어나서 끌 일이지 왜 다른 사람들의 단잠을 설치게 하는가. 짜증이 났다. 그런데 잠을 포기하고 방을 나섰을 때,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것은 진짜로 새가 지저귀는 소리였다. 숲속에 있는 새 한 마리가 나를 깨운 것이다. 방금 전까지 성가셨던 소리가 이제는 고마운 선물로 다가왔다.


인지는 습관의 지배를 받는다. 시청각 정보를 수용하는 틀이 생활환경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매미가 서식하지 않는 북미나 유럽에서는 그 울음소리가 불쾌한 소음으로만 들린다고 한다. 그래서 그쪽 지역에 수출하는 영화나 드라마에 배경음으로 매미 소리가 깔려 있으면 모두 지워야 한다.


인지의 틀은 공간 못지않게 시간의 축을 따라서도 바뀐다. 사회사의 여러 연구는 감각이 시대에 따라 다르게 형성돼 왔음을 밝혀준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시대의 오감(五感)과 정보 수용 양식 역시 매우 독특하게 구성되고 변형되어 간다고 할 수 있다.


오래전 딸아이가 세 살 무렵 동네 뒷산에 함께 산책을 나갔을 때의 일을 잊지 못한다. 나무의 가지에 어떤 새가 앉아 지저귀고 있기에 나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딸에게 잘 보라고 했다. 아이는 한참 응시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빠, 저 새, 텔레비전에 있지.” 무심코 한 말이었지만, 도시인의 생활세계를 반영하는 듯했다. 숲이나 꽃이나 짐승을 실물이 아닌 영상을 통해서 훨씬 더 많이 접하는 삶 말이다. 맨눈으로 보는 새는 ‘재현’이고 텔레비전에 ‘원본’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지각 구조가 아이의 짧은 한마디에 함축돼 있었다.


각종 미디어가 첨단화되면서, 편집되고 가공된 정보가 실제의 생생한 경험을 압도한다. 정교한 디지털 신호가 바람 소리나 풀벌레 울음 등의 이미지와 음향을 전해주는 가운데, 인공과 자연 사이의 구분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리고 정보의 홍수 속에 사고능력이 감퇴하듯, 넘쳐나는 자극들 속에서 감동은 점점 무디어진다. 우리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보다는 촬영하기에 바쁘고, 그것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카톡에 전시하는 데 더 관심이 많다. 그래서 광활한 자연을 마주하면서도 존재로 연결하지 못한다. 자기 앞에 펼쳐지는 천혜의 선물을 온 마음으로 어루만지고 누릴 수는 없을까. 겉으로 드러난 것을 넘어 속 깊은 무늬까지 체감할 수는 없을까.


여의도 KBS본관 뒤편 여의서로를 찾은 한 연인이 만개한 살구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경향DB)


<대동야승>에는 장애인이기에 가질 수 있는 감각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 하나가 실려 있다. 어느 맹인이 여러 사람들(비장애인)과 함께 금강산을 다녀왔는데, 누군가가 그 일행에게 그곳에 있는 어떤 절의 기둥과 지붕이 어떻게 생겼는지 물어보았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는데, 그 맹인이 나서서 ‘불전(佛殿)의 기왓골이 120개’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신기해하면서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에 갔을 때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기왓골에서 떨어진 물이 땅을 파서 오목하게 되었다. 내가 그것을 더듬어 세어보아 알게 되었다.” (정창권의 <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 중)


이제 휴가철이 다가온다. 많은 사람들이 산과 계곡, 강과 바다로 몰려들 것이다. 고루한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여행은 도시인들의 낭만이요, 때로 유일한 숨통이다. 여행은 무엇인가. 그것은 관광과 다르다. 한자에 나타나듯이 관광은 구경하는 것이고, 여행은 움직이는 것이다. 몸으로 낯선 공간을 만나는 것이 여행이다. 어리석은 인간 군상의 사악한 세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면서 드넓은 우주의 마음으로 나와 일상을 새삼스럽게 발견하는 눈길이 거기에서 열린다. ‘여름 아침에는/ 자비로운 하늘이 무수한 우리들의 사진을 찍으리라/ 단 한 장의 사진을 찍으리라’ (김수영 ‘여름 아침’ 중)



김찬호 | 성공회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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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만 보면 안철수의 새 정치는 헌 정치에 가깝다. 그의 정책 방향과 판단은 대체로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중간이라기보다 오히려 후자에 가깝다. 그러나 형식이나 절차를 보면 진보당보다 더 민주적이고 그만큼 새롭다. 이렇듯 이념이 밋밋한 정치는 권력에서 멀어지는 순간 분해된다. 최장집 교수가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생소한 이념으로 안철수 신당을 포장하려는 이유다. 


자유는 철학하는 나에게 목숨만큼 귀한 이념이다. 자유는 한갓 낱말이 아니라 정신(넋과 얼)이 살아 숨쉬는 삶의 상징이다. 그러니 정신 차린 사람이라면 그 무엇과도 자유를 바꾸지 않는다. 자유를 무시하는 사랑이나 행복이라면 포기해야 한다. 자유 없는 사랑이 넋 나간 몰입이듯 자유를 잃은 행복도 얼빠진 체념일 뿐이다. 그래서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의 목을 건 투쟁으로 지금의 민주주의가 탄생했다.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자유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으로서 헌법의 구성 원리면서 동시에 규제 원칙이다. 그러므로 민주적 법치국가의 모든 구성원은 자유인이며 이를 부정하는 모든 조직과 규범은 심지어 그것이 국가나 헌법이라도 불법이다. 민주국가에서 자유는 이렇게 모든 조직과 규범이 가져야할 정당성의 원천이면서 비판의 기준이자 법치의 출발점이다. 민주 없는 자유가 지배자의 특권이었다면 자유 없는 민주는 무법자의 독재일 뿐이다. 


문제는 자유의 뜻이 많다보니 그만큼 탈도 많다. 타인의 구속에서 해방되는 것도 자유지만,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도 자유다. 원하지 않는 것을 안하는 것도 자유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도 자유다. 앞쪽을 ①소극적 자유, 뒤쪽을 ②적극적 자유라 한다. 대체로 ①을 중시하는 자유주의는 개인과 시장의 자유를 배타적 권리로 설정하고 이를 위협하는 모든 것을 악으로 간주한다. 이런 유형의 자유주의는 폭력(간섭과 잔혹)의 최소화에 이바지했지만 누진세조차 개인의 자유를 침범한 악으로 폄훼할 만큼 보수적이다. 반면 ②를 중시하는 자유주의는 자본과 시장 권력의 과잉을 통제함으로써 소외 없는 자유의 최대화를 지향했지만 국가행정 권력의 비대화를 초래함으로써 무기력에 빠졌다. 앞쪽에 자유민주주의, 신자유주의, 자유지상주의가 선다면 뒤쪽엔 사회민주주의, 사회적 자유주의, 정치적 자유주의가 있다.


최장집 교수가 제안한 ‘진보적 자유주의’는 언뜻 뒤쪽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자유주의는 국가 권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역으로 국가 권력을 제한하고 견제함으로써 ‘폭력의 최소화와 자유의 최대화’를 동시에 성취하려는 ‘중간’ 전략에 가깝다. 무엇보다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개인의 자유, 개인의 자율성, 개인의 기본권이 부족하다는 확신하에 이런 개인의 소극적 자유를 견고하게 구축하고자 한다. 그런 다음 ‘사회적 시장경제’를 통해 약자와 소외자의 권익을 증진시킴으로써 진보의 강도를 높이자는 것이다. 이는 안철수의 책사들이 잘 알고 있듯이 독일의 보수정당인 기독교 민주연합(CDU) 노선과 거의 일치한다.


국민의례하는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창립 기념 심포지엄 참석자들 (경향DB)


찬반 여부와 무관하게 최장집 교수의 시도는 세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먼저 그의 학문적 노력은 ‘이념은 없고 인물만 있는 신당 창당’이라는 또 한 번의 우스꽝스러운 반복을 막을 것으로 보이며, 나아가 한국정치사에서 보수의 전유물로 전락하면서 더럽혀진 자유 개념의 위상과 명예를 조금이나마 되찾을 가능성을 제공했다. 마지막으로 새누리당과의 적대적 공존관계를 과시하며 권력을 분할 받느라 개혁 능력을 상실한 민주당을 긴장시킨 것이다.


관련 당사자들이 완전히 소통할 때까지 결정을 유보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진정한 자유인은 알 때까지 판단을 중지할 힘을 가져야 한다. 그러니 진보적 자유주의에 대한 평가보다 바로알기가 먼저다. 우선 자유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모두 자유주의자는 아니며, 자유에 진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자유주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의 역사가 사라지진 않는다. 정희란 이름에 독재 없고 두환이란 이름에 살인 없지만 그들은 아직 독재자고 살인자다.



박구용 | 전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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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베유(Simone Weil, 1909~1943)는 제 깜냥껏 혁명가의 노릇에 투철했으면서도 신비체험에 노출되곤 했던 모순덩어리의 존재였다. 그녀의 짧은 삶과 기이한 죽음은, 성속(聖俗)을 일관해서 지켜나가려 했던 어떤 ‘정화된 의욕’을 증거한다. 신(神)이라면, 그 발톱조차 잘 보이지 않는 이 시대에, 그녀가 검질기게 유지했던 어떤 종류의 ‘세속적 경건’을 통해 우리는 우리 시대에 가능한 ‘영혼의 길’을 톺아보게 된다. 자본과 기계들에 뒤덮인 채 이제는 자욱길이 되어버린 그 인간의 길, 말이다. 


그녀는 그 신비체험의 한 사례로 그리스도가 친히 강림해서 자신의 손을 잡았다는 기록을 남겼다. 물론 이런 식의 체험은 별스러운 게 아니다. 그리스도와 부처를 비롯한 수많은 신들이 그 신자들의 정성에 현신응대(現身應待)했다는 기록과 전승은 관료와 사업가들 사이의 향응만큼이나 부지기수로 널려 있기 때문이다. 정작 인상적이며 시사깊은 대목은, “그리스도가 강림해서 그 손에 잡힌 것은 제가 암송할 때”였다는 말이다. 


그러면 왜 하필 암송할 때에 신이 찾아왔으며, 암송이란 대체 무엇일(수 있을)까? ‘생각은 공부가 아니’라는 내 지론에 얹어 재서술하자면, 암송이란 그 무엇보다 ‘내 생각’이 아닌 것이다. 생각이란 그 근본에서 개인의 욕망과 기분에 부닐기 마련이며, 그런 뜻에서 아직 ‘이론’이 아닌 것을 말한다. (이론은 늘 개인들의 자기중심성 너머에서 작동하는 이치들을 품는 넉넉한 품을 지닌다.) 그러므로 거두절미하고 요점을 짚자면, 암송이란 결국 자아와 싸우는 행위에 다름 아닌 것이다. 내(1)가 죽어야 그(3)가 찾아온다는 이치는 여기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된다. 더구나 베유가 특히 ‘집중’을 통해 정신의 정화와 상승을 노렸다는 사실은 그녀가 누린 신비체험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이런 뜻에서 암송(혹은 낭독)과 닮은 이치를 품은 것은 약속이다. 약속은 암송과 마찬가지로 필경 ‘자아’의 욕망으로 돌아가는 갖은 생각들을 제어한 채 ‘타아(他我)’에 직심스레 충실하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내가 약속의 대척점에 있는 것을 역시 ‘생각’이라고 여기는 이유도 결국 개인의 생각이란 기분과 변덕의 회오리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탓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늘 주목해왔던 생각과 변덕의 매체는 휴대폰이며, 이미 인간의 육체를 경미하게 사이보그화하고 있는 이 기기의 최대 미덕은 파약(破約)이다. 그나저나 생각이 아닌 낭독에 집중했을 때에 그리스도가 주어졌다면, 생각이 아닌 약속에 집중할 경우에도 우리에게 신(神)이 주어질 수 있을까? 이 경박부조(輕薄浮躁)한 시대에 암송의 집중과 약속의 집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물론, 나만, 내 생각만, 내 변덕과 기분만, 내 욕망과 자기보존만 있는 이 시대에서 암송과 약속의 윤리학적 실천은 그 무엇보다도 타인들 타자의 실재성에 다가서게 돕는다. 나는 이 취지를, 암송과 약속에 이어 ‘연극’이라는 개념과 실천을 통해 구체화할 수 있다고 본다. 자서전을 대필시키는 이들의 심리에서 엿볼 수 있듯이, 나는 ‘연극적 실천’의 반대말로 ‘자서전적 태도’를 꼽는다. 그리고 자서전적 태도에 전형적인 게 ‘내 생각’이므로 역시 연극은 그 무엇보다 내 생각의 늪을 넘어 타인과 타자의 존재감에 이르는 훈련이 된다. 


(경향DB)


혹자들은 이미 우리가 신경증을 넘어 나르시시즘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진단한다. 개성과 자유라는 이름 아래 에고의 생각과 변덕이 극성을 부리는 시대, 말이다. 나는 이 에고의 극성을 제어하고 타인/타자와 더불어 슬금하게 살아가는 세속적 경건의 지혜를 암송과 약속과 연극적 실천 속에서 찾아본다. 이 세가지 매체는 한결같이 자기 생각과 기분을 넘어가는 훈련을 제공하며, 낯선 역할에 집중함으로써 타인/타자의 지평으로 몸을 조금씩 끄-을-고 나가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구동존이(求同存異)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길이 아니겠는가? 알량한 ‘너’를 넘어가려면, 암송하고 약속을 지키고, 연극적 실천을 하시라!


김영민 |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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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일보를 구독하기 시작한 것은 김훈, 박래부 두 기자가 번갈아서 ‘시를 찾아서’를 연재하고 있을 때이니, 1980년대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였고 문학비평가가 되기 위해 이것저것 준비를 하던 나는 그 연재를 꼼꼼히 읽었고, 자주 메모도 해두었다. 박래부 기자의 글은 진중하고 철학적이었고, 김훈 기자의 글은 경쾌하고 감각적이었다. 나는 두 기자의 문체를 모두 좋아했다. 내가 매우 늦은 나이에 비평가로 문단에 나왔을 때는 김훈이 한국일보를 떠난 뒤였다. 그는 이미 널리 알려진 문장가였고 나는 어쩔 수 없는 신인 비평가였지만, 그와 내가 같은 시기에 같은 대학을 다녔다는 이유로 둘을 엮어서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는 그런 이야기를 유쾌한 마음으로 들었다.


내가 한 문학잡지의 편집위원으로 일할 때, 한국일보의 문학담당은 서화숙 기자였다. 어느 날 그 잡지의 저녁 회식 자리에 서 기자가 한국인의 피를 물려받기도 했다는 일본작가 사기사와 메구부와 함께 나타났다. 당시 한국어를 배우고 있던 사기사와는 우리말에 관해 여러 가지 까다로운 질문을 했고, 내가 주로 대답을 해주었다. 서 기자와 사기사와가 2차를 마다하고 일어설 때, 내게는 그 두 사람이 어쩐지 자매처럼 보였다. 사기사와가 2005년 어느 날 도쿄의 자택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한 후, 서 기자의 기사를 읽을 때마다 내게 짠한 마음이 드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서화숙 기자는 씩씩하다. 문장이 잘 조직된 그의 칼럼에는 늘 높은 통찰력이 담겨 있다. 게다가 인터뷰어로서 그는 우리의 삶과 사회에 대해 누구보다도 통렬한 고뇌를 지니고, 그것으로 대화 상대의 깊은 속이야기를 끌어내곤 한다.


뛰어난 에세이스트이며 소설가인 고종석씨도 잠시 한국일보에 몸을 담았다. 그의 칼럼이 또한 아름다웠다. 그의 산문에는 분노와 아이디어가 동시에 충만했다. 우리가 일상으로 쓰고 만들어가는 말을 그보다 더 다각도로 생각해온 사람은 드물다. 내가 번역에 관해 생각할 때 가장 많은 영감을 주었던 것도 언어에 대한 그의 긴 연재였다. 그가 한국일보에서 물러나고 기자로서의 직업에서 멀어졌을 때 아쉬워하는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았을 터이지만, 그 아쉬움의 심도는 매우 컸다.


(경향DB)


내가 지난해 초에 번역 출간한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에 관해 서평 기사를 쓴 것은 이훈성 기자였다. 그는 번역에 붙인 내 해설이 문예사조의 본질을 짚은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뒤이어 발간된 두 번째 평론집 <잘 표현된 불행>과 관련해 인터뷰 기사를 쓴 것도 역시 이훈성 기자였다. 그는 시가 기존의 이론체계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내 말을 특히 강조해 기사의 제목으로 삼았다. 나는 이 두 기사가 고마웠다. 내가 한국일보사에서 주관하는 팔봉비평문학상을 수상할 때, 인터뷰를 했던 이훈성 기자는 수상식 전날 국제부로 발령을 받았다. 그래서 수상식에 참석해 그 기사를 쓴 것은 이윤주 기자였다. 이 기자는 나에게 지난겨울 신춘문예 심사를 맡긴 데 더하여 그 수상식의 축사를 할 사람으로 나를 지명했다. 최윤필 기자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내가 지난번에 쓴 칼럼은 그의 기사에서 착상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김정환 시인의 집안 혼사에서 그를 만났을 때 나는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내가 개인사에 해당하는 이런 이야기를 여기에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은 저 씩씩한 기자들이 지금 거리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사를 경영한다는 사람들이 편집실을 폐쇄하고 용역을 불러 기자들의 출입을 가로막고 있다. 나는 이 사태에 관해 나름대로 정리해둔 의견이 있지만, 아직은 그걸 드러내놓고 말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다만 나는 한 사람의 문인으로서, 실력과 열성을 두루 갖춘 저 기자들이 아니었더라면 한국의 문학이 이 만큼의 발전을 누리기도 어려웠을 것이라고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악독한 강철이가 지나간 자리는 봄도 겨울이라는데, 이 얼어붙은 여름을 보자고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민주화를 염원해온 것은 아닐 터이다.


(경향DB)



황현산 |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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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길거리나 대중교통 공간에서 종종 보게 되는 광경이 있다. 항공사 스튜어디스들이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마주치기 어려운 모습이다. 한국에서도 근무복을 입고 출퇴근하는 직종은 거의 없다. 그들은 왜 평상복으로 갈아입지 않을까? 자기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스튜어디스는 소녀와 젊은 여성들에게 대단한 선망의 대상이다.


그런데 최근의 어느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감정노동의 강도가 가장 센 직종이 스튜어디스라고 한다. 얼마 전 항공기 일등석에서 어느 대기업 임원이 물의를 빚은 것은 정도가 너무 지나쳐 터져 나온 빙산의 일각인 듯하다. 생각해보면 서비스 분야에서 그렇게 값비싼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들을 한꺼번에 응대해야 하는 업종은 없다. 이코노미석이라 해도 국제선은 100만원을 훌쩍 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백화점에서라면 그 모두가 VIP다. 게다가 한국 승객이 기대하는 서비스 수준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이는 국제항공업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그 결과 한국 스튜어디스들의 친절함도 최고에 이르렀다. 손님이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하고 때로 억지를 피워도 절대로 상냥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하찮은 일에 성질을 부리는 막무가내 고객도 만족을 시켜야 한다. 그래서 모든 언행이 보는 이에게 감동을 줄 만큼 깍듯하다. 문제는 그런 정성에 고마움을 느끼기는커녕 옥에 티를 물고 늘어지면서 횡포를 부리는 진상 손님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 이들에게 시녀 노릇을 더욱 충실하게 수행해야 하는 괴로움은 중대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공공장소에서 그토록 화사한 맵시를 자랑하고 뭇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사는 스튜어디스들이 업무 현장에서는 극도의 난폭함에 노출되어 있고 비굴함을 강요받는다. 이 아이러니에서 한국 사회의 자화상을 마주한다. 지금도 스마일 운동이라는 기이한 캠페인을 가끔 벌이고, 이제는 서비스업계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젊은 여성들 사이에 입꼬리 성형 수술까지 유행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실종되고 경멸과 모욕이 일상화되는 가운데 인격은 점점 저열해진다. 가학과 피학의 관계가 확대 재생산되면서 복수심이 증폭된다.


예절과 공손함은 상호 존중을 전제로 한다. 서로에 대한 경외가 교차하면서 인격은 고양된다. 그렇지 않고 그 흐름이 일방적일 때, 권력과 화폐를 매개로 갑과 을의 비대칭적인 관계가 형성될 때, 미덕은 악덕으로 돌변한다. 서비스는 봉사와 섬김이 아니라 하인(servant)의 굴종으로 전락한다. 친절과 미소가 안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화기(和氣)가 아니라 영리를 위한 술책으로 수단화되는 것이 감정노동의 비애다. 온갖 몰상식한 요구들을 고스란히 떠안고 울분과 치욕을 꾹꾹 삼키면서 두려움을 상냥함으로 감춰야 하는 그 종사자들은 병든 사회의 말단이다.



타인 위에 군림하지 않고 위엄을 누릴 수 있을까. 부드러우면서도 당당한 기품은 어디에서 우러나올까.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어느 수도원 사제들의 우아한 자태로부터 받은 깊은 인상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들의 복장은 순종과 절제를 의미하는 동시에 그것을 입고 있는 사람에게 상당한 위엄을 부여해주었다. 그들은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고서도 겸손하게 보이도록 행동할 줄 알았다. 그러다가도 다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을 때면, 다른 어떤 신분의 사람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을 자족감을 보이고 있었다.’


우아함(elegance)은 겉멋이 아니다. 예절은 단순한 고분고분함을 넘어선다. 자기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너그러운 성품에서 격조 있는 삶이 가능하다. 스스로 채워진 마음이 타인에게 스며들 때 품위 있는 관계가 형성된다. 작위적 상냥함과 천박한 권력욕이 맞물리는 감정노동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 길은 자존의 각성과 결단에서 열린다.



김찬호 | 성공회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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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교수협의회에 대한 과도한 탄압으로 인권문제까지 제기된 수원대학교에 다녀왔다. 수원지역 4개 대학의 교수협의회가 연대하여 공동으로 수원대 사태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수업시간 지키기를 철칙으로 삼고 있는 필자가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해 수업을 조금 일찍 마치고 수원까지 가게 된 것은, 평소 사학문제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맡게 된 역할도 역할이지만 수원대 교수들이 겪고 있는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원대 교수들은 이번 학기 초 26년 만에 교수협의회를 결성했지만 대학당국의 탄압을 받았다. 교수들에 따르면 교수협의회 대표들에 대해 상시적인 사찰 등 감시가 이어졌고 일반 교수들에게 교수협의회 반대 성명서에 서명하게 하여 교수사회를 분열시키고자 하였다. 지성의 전당에서 이런 해괴한 일이 버젓이 벌어지는 것이 한국 사학의 현실이다. 필자가 재직하는 대학도 15년 전 유사한 일을 겪었다. 


당시 재단의 눈에 벗어난 교수가 누가 보아도 부당한 재임용 탈락을 당해 사회문제가 되었음에도 캠퍼스에는 “재임용 탈락은 정당하다”는 내용의 교수 성명서가 도처에 나붙었다. 이는 대학 풍토가 극도로 억압적임을 말해주는 징표로 결국 참다못한 교수들의 반발로 분규가 터졌고 구성원들이 엄청난 고통을 치른 끝에 전횡을 휘두르던 재단이 퇴진함으로써 대학이 안정되었다.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일까? 당시에는 필자가 재직하던 대학만이 아니라 영남대·상지대·조선대·광운대·세종대·경기대·대구대 등 전국 수십개 대학에서 잇달아 분규가 발생하였고 그 결과 사립대학을 지배하던 족벌재단들이 대거 물러났다. 분규란 것이 교수나 학생 모두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얼마나 대학교육의 현장을 황폐하게 하는지 경험한 필자로서는 수원지역 교수들의 하소연과 결의를 들으면서도 착잡한 심정이 들었다. 그러나 오죽하면 교수들이 신분위협까지 감수하며 학교를 살리겠다고 나설까 하는 공감은 컸다. 


사실 한국에서 대학의 75%를 차지하는 사학들이 대부분 족벌체제로 운영되면서 비리·부패·전횡 등을 저질러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이것이 분규로 비화되어 사회문제가 되자 대학운영을 민주화하고 공익성을 강화하기 위해 사립학교법을 민주적으로 개정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사학재단과 결탁한 보수세력의 반발로 결국 사립학교법 개혁이 후퇴한 결과 사학문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국 사학재단 관계자들이 7일 서울역 광장에서 '사학법 개정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경향DB)


수원대 사태는 한국 대학이 처해 있는 위기, 나아가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위기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위기다. 필자의 대학을 비롯하여 과거 문제를 일으키고 퇴출된 옛 족벌재단들이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모두 복귀한 것이다. 이것은 대학에서 다시 족벌과 세습이라는 전근대적인 지배구조가 복원되고 있음을 말해주며, 대학을 옥죄는 이 구조가 굳어질수록 대학이 또다시 소용돌이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말해준다. 수원대 사태가 보수정권 10년의 의미를 심문하는 한 징후가 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선진 외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 봉건유습이 아직도 한국 대학을 지배하고 있고 그것이 보수적인 정권에 의해 비호받고 오히려 강화되고 있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정부가 대학의 구조조정과 개혁을 아무리 외쳐도 이 같은 족벌구조를 해체하거나 최소한 완화하지 않고는 공염불이 될 것이다. 억압적 실상이 알려진 바로 그 수원대가 불과 2년 전 중앙일보 등 보수언론들에 의해 교수연구년을 자진 반납한 개혁의 모범사례로 꼽혀 상찬되었다는 것은 무늬뿐인 개혁의 단면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현 정부는 보수정권임에도 전 정권과의 일정한 차별성을 부각시키고자 해왔는데, 그것이 말뿐인지 아니면 내실을 가지는지 가늠할 척도 가운데 하나는 바로 사학문제에 대한 해결의지라고 할 것이다.



윤지관 | 덕성여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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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고만 있어도 좋았던 사람, 가까이 마주보며 이야기 나누진 않았지만 언제나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을 것 같았던 사람, 그가 떠났다. 함께 흉보고 미워도 했던 놈, 소리 없이 자라 온몸을 파고드는 종양처럼 여겼던 종편의 품으로 떠났다. 배신일까, 모욕일까? 아니면 그저 짝사랑의 끝인가?


손석희 교수가 삼성에 사적(私的)으로 예속되어 있는 무력집단인 JTBC의 사병(私兵) 지휘관, 곧 삼성가의 가병(家兵)이 되었다. 균형 잡힌 판단력으로 공적(公的) 담론을 이끌어왔던 그였기에 충격이 만만치 않다. 양편을 동시에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어정쩡한 타협이 아니라 옳음을 위해 기꺼이 한쪽 편에 서서 수의를 입었던 그였기에 허탈하고 당혹스럽다. 그래서일까? 비판이 없다.

(경향DB)


‘GO발뉴스’ 이상호 기자의 말처럼 언론내부 인사들이야 삼성의 은밀한 전화를 기다리며 말을 아낄 수 있겠다지만 왜 언론 외부의 논객들조차 침묵하는 것일까? 과거의 연인에 대한 의리일까, 아니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는 것일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그처럼 단단하게 살아오지 못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비판이란 인격이 아니라 행위를 향한 문제 진단이니 허술하게 살고 있는 내가 적격인 듯하다. 한데 빛나는 말로 세상을 바꾸고 있는 진중권 교수까지 그답지 않은 궤변으로 침묵을 강요하니 손발이 떨린다.


진중권의 주장은 간단하지만 명확하다.손석희는 존중받아야할 개인적 선택을 한 것이며, 그가 바뀔 수도 있지만 바꿀 수도 있으니, 선악의 이분법으로 미리 재단하지 말고 담담하게 결과를 지켜보자는 것이다. ①과 ②의 논리에 동의하진 않지만 굳이 반박하고 싶진 않다. 몸도 마음도 뒤돌아선 연인의 뒤통수를 때리는 것처럼 치사하게 보일 수 있어서다. 더구나 손석희의 선택으로 JTBC는 벌써부터 양성도 악성도 아닌 경계성 종양처럼 보이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양성 판명이 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종양을 종양이라고 말하는 것이 흑백논리라고 밀어붙이는 진중권의 주장이야말로 비판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흑백논리다.


‘동지 아니면 적’이라는 편 가르기가 횡행하면 어디든 전체주의 사회다. 현실에서 빛과 어둠은 서로를 적대시하지만 동시에 서로 의존하고 있다. 빛과 어둠은 서로를 구성하면서 규제한다. 그러므로 흑백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강요에서 빠져나와 흑 속에 백, 백 속에 흑을 보려는 사람들이 참으로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어 간다. 그렇다고 흑백의 구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무의미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흑백논리에 빠지는 것만이 흑백논리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길이다.


흑백논리는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강자의 무기다. 그런데 흑백논리를 비판하며 양자긍정과 양자부정의 논변술로 물타기를 함으로써 비판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 또한 강자의 술수다. 이런 협박에 농락당하지 않으려면 판단 중지에 앞서 ‘흑은 흑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니 손석희의 선택에도 존중받아야할 이유야 있겠지만 그의 현실 왜곡에 대한 준엄한 비판이 있어야 공영방송이 공영이 된다.


마음이 변해서 떠난 것이라면 배신이 아니다. 지나간 사랑을 부인한 것도 아니라면 모욕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종편이 현실이 되었으니 배척하는 것보다는 수준을 높이는 게 현실적이지 않느냐”는 주장은 명백한 현실 왜곡이자 이상의 교란이다. 무엇보다 그가 말하는 현실은 모두가 인정해야할 불변의 과학적 세계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비추어 자의적으로 구성한 그의 세계일 뿐이다. 그처럼 야만적 현실을 인정하기보다 인정할 수 있는 현실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기만하는 현실론으로 이완용이 나라를 팔았고 이광수가 문학을 팔았다. 그리고 또 흑과 백을 뒤집으며 수많은 변절자들이 흑백논리의 저편에서 자신을 변론했다. 나도 끝없이 변절하지만 그 변절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기는 못 친다. 가병 지휘관이 주인의 조직과 조직원을 자기 뜻대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확증편향 환자는 아니니까!



박구용 | 전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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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친구’와 ‘동무’라는 말을 각각 다르게 써왔다. ‘동무’의 용례를 만들고, 그 의미를 채워 넣어, 이 개념이 설핏 개창(開創)해준 삶의 다른 자리에 주목했고, 그 자리에 터를 둔 새로운 관계를 조형하고 실천하려 애써왔다. 


몇몇 철학자들의 말과는 달리, 개념의 창안은 단지 철학하기도 아니며 자아의 심화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좁은 문’이라는 종교신화적 메타포가 시사하듯이 새로운 관계와 삶, 그리고 새로운 ‘세계의 개창’(Welterschließung)을 마련하는 ‘터 다지기’의 일종이기도 하다.


친구와 동무를 가르는 기준과 잣대는 여러 가지이지만,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의 하나는 ‘술’이라는 매체와 접속시켜 각각의 성분과 삶의 태도를 살펴보는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자신의 마음으로 헤집고 자신의 입으로 외는 것은 그저 맨망을 떠는 짓이다. 사람의 존재증명은 늘 타자의 길과 매체의 길을 통해 에둘러 가능해질 뿐이기 때문이다. 매체로 치면, 특별히 내 관심을 끄는 게 몇 있는데 휴대폰, 힐링 테크닉, 그리고 술 등이 그러하다. 혁명과 깨침의 ‘그 다음날’을 기약하는 생활정치란 기실 모짝 ‘매체정치’이기 때문이다.


한 포장마차에서 친구들이 새해 덕담을 하며 술을 마시고 있다 (경향DB)


나는 술에 대한 통념과 태도를 대략 5~6가지로 대별한다. 그 첫째는 종교주의, 혹은 도덕주의와 결부된 것으로, 이를테면 ‘술은 죄의 씨앗이고 악마의 덫이며 유혹의 미끼’라는 식이다. 둘째는 ‘술이란 그저 음식의 일종’이라는 평심한 명제이며, 셋째는 ‘술은 음주자 개인의 취미나 취향을 드러내는 기호(嗜好)이자 기호(記號)’라는 문화주의적 해설이다. 내가 보기에 첫째는 과람한 해석이고, 둘째는 안이한 해석이며, 셋째는 전형적인 부르주아적 태도다.


나는 동무를 ‘인문적 연대의 미래형식’이라고 간결히 정의하곤 하였는데, 술이라는 매체가 이 미래형식과 관련되는 방식은, 없다. 바로 이 점에서 ‘술친구’라는 평범한 말이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내가 분류한 바, 술에 대한 네 번째 통념은 ‘술은 친구를 찾아, 혹은 친구가 좋아, 마시고 즐기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래 그런지, 친구(親舊)는 술처럼 묵은 게 좋다는 상식이 만연한데, 그것은 필경 공통의 장소와 시간, 그리고 공동의 추억과 경험에 터하는 낭만주의적 회귀이기 때문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임순례, 2001)가 잘 응집해 놓았듯이, 세속의 체계와 알알이 버성기는 상식적인 도시인들의 축제는 술자리이고, 그 사제(司祭)는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술처럼, 친구도 낭만주의적 동일시의 기제이자 관념론적 자기방호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출연한 이얼.박원상.황정민(왼쪽부터)


이 네 가지 입장에 공통된 것은 이들이 모짝 술을 개인주의적 차원에 묶어 둔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관계와 체계의 문제를 개인의 심리와 그 취향으로 환원한다는 게 이들의 병통이자 고질이다. 취향조차도 계급의 지표이며, 심지어 냄새마저도 계급의 차이를 드러낸다고 하지 않던가? ‘비관주의자는 체계적 사고를 한다’(조르주 소렐)고 여긴다면, 이들이 술과 친구, 즉 술친구에 의탁해서 이 세속적 체계 속을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은 깜찍할 뿐이다.


일종의 ‘공동체주의적 비관주의자’인 동무는 스스로 견결하게 가꾼 생활양식으로써 세속의 체계를 돌파하려는 이들이다. 이들은 개인의 자유와 희망을 말할 때조차도 관계와 체계를 에둘러서 ‘마침내 성취한’ 그 이야기를 한다. 술은 이들에게 개인의 것이 아니다. 외려 술은 자본제적 세속의 체계 속에서 특정한 생활의 양식을 요구하는 계고장과 같은 것이다. 술이 흔히 개인들의 낭만과 우정, 쾌락과 도피의 골방처럼 여겨지지만, 실은 이 통념 자체야말로 체계가 술친구들을 포획하는 방식을 여실히 증거한다. 체계 속에서 순수한 개인은 없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체계와 개인의 사통이기 때문이다. 술이 매체기술적 결정인자가 되고, 친구들이 이 규정력 속에서 오락가락, 일희일비할 때, 동무들은 ‘술’이라는 좁은 길을 통하여 체계의 너머까지를 꿈꾸는 것이다.



김영민 |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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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팝아트협동조합이 ‘박정희와 팝아트투어’라는 이름의 ‘박정희 관광’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한 일간지 지면을 통해 읽었다. 그 행사의 기획자인 강영민씨의 팝아트작품 ‘박정희’는 박정희의 흑백사진을 화면 한가운데 박아 넣고 그 둘레에 각기 다른 색깔의 사진을 배치하고 있다. 흑백을 넘어서서 각자의 다양한 감성으로 박정희를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나만 하더라도 머리와 가슴에 여러 개의 박정희가 있다. 나는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서슴지 않고 말하며, 앞으로도 그러겠지만, 우리의 경제발전에 그의 공이 적지 않다는 의견을 완전히 부인하지 않으며, 그 나름대로는 애국자였다고 믿고도 싶다. 그러나 모든 감성이 이런 해석의 노력에 보답해줄 수 있는 감성일까.


나의 이런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예의 신문기사는 비평가 전인권씨의 말을 전한다. 전인권씨는 “민주 발전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관용의 시간’을 통과할 때”이며, 반대파 용인의 단계가 곧 “민주주의의 핵심적 단계”라고 말했다. 그 반대파에는 화해의 감정을 느끼기 불가능할 정도로 적대적 감정을 자극하는 반대파가 포함된다고도 말했다. 훌륭한 말이지만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우리가 반대파를 용인하게 되는 저 민주주의의 핵심적 단계는 우리가 반대파를 용인함으로써 오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민주 발전의 결정적인 순간을 통과했기 때문에 반대파를 용인하고 관용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 단계들은 선후 관계가 아니라 동시적 관계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 때에도 최소한 쌍방이 모두 민주 발전을 염원하고 민주화의 온갖 노력을 존중한다는 전제나 조건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관용과 용인이 무엇을 위한 용인이고 무엇을 위한 관용인지 모호해질 것이며, 끝내는 그 노력이 딛고 설 바탕 자체가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5·18의 서른세 돌이 되는 날이다. 그런데 보훈처장이란 사람이 그 기념행사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시키려 애쓰고 있다. 국가의 돈으로 노래를 하나 만들어 주겠다는 생각이야 갸륵하지만, 만일 그날 광주에서 봉기했던 사람들을 여전히 저주하고 지난 1980년대에 그 행진곡을 부르며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증오하는 마음에서, 결국 민주주의를 부인하려는 마음에서, 그런 의견이 나온 것이라면, 민주 발전의 초보 단계에서건 핵심 단계에서건 그 의견을 어떻게 용인할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선 그것을 의견이라고 말할 수 있기나 한 것일까.


5·18 전야제 모인 사람들 (경향DB)


프랑스는 16세기에 극심한 종교전쟁을 치렀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하루 동안에 학살된 3000명의 위그노 신교도들을 포함해서 수만 명의 시민들이 그 전쟁에서 죽었다.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사를 강의하는 시간에 한 학생이 물었다. “이 사람들의 복수는 누가 해 줍니까?” 복수를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유럽에서건 우리 사회에서건 종교나 종파가 다르다고 해서 서로 죽이지는 않는다. 이것이 복수라면 복수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거대한 복수다. 그것은 바로 화해이면서 복수고, 복수이면서 화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 대답이었다. 그해 5월 광주에서 학살되었거나 모진 고문을 받고 감옥살이를 했던 사람들의 복수는 누가 해주는가. 아무도 해 주지 않는다. 그들이 바라던 세상이 한 걸음 가까워졌다는 것만이 복수라면 복수다. 그들을 폭도라고 부르고 싶은 생각이 어떤 세력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한, 용인과 관용의 터전은 성립하지 않는다. 대통령을 수행하여 외국에 나갔던 고위관리가 인턴으로 일하는 젊은 여자를 옛날 양반지주들이 여종을 대하듯 하는 한, 어떤 늙은이가 29만원을 내세우며 버티고 있는 한, 계약서에 갑을 대신 무슨 말을 쓰건 모든 갑들은 세상을 비웃을 것이며, 모든 을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질 것이다. 쓰러지는 자가 누구를 용인하고 무엇을 관용하겠는가. 문제는 민주주의다. 민주주의 안에서만 민주발전의 결정적 순간도 있고 핵심 단계도 있다.



황현산 |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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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에서 목격한 장면이다.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 다섯 명이 맨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서 재잘거리고 있었다. 유치원 친구들이 엄마들과 함께 외출한 듯했다. 한 여자아이가 옆에 있는 남자아이에게 말했다. “야야, 내가 비밀 하나 이야기해줄게.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돼. 알았지?” 나는 귀가 솔깃해졌다. 그 여자아이가 하는 말, “나, 집에서 코딱지 먹는다~”. 웃음이 터질 지경이었지만 꾹 참으며 남자아이의 대꾸에 귀기울였다. 그 아이, 아주 태연하게 물어본다. “맛있구나?” 그랬더니 여자아이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데, 요새는 잘 안 먹어.”


아이들이 귀여운 것은 그 단순함과 투명함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은 그런 마음과 어우러지는 데 있으리라.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육아는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더 많은 ‘일’로 체감되는 듯하다. 핵가족 시대에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마을이 사라져 자녀를 오롯이 집 안에서 돌보아야 하는 상황에서 육아는 짐으로 여겨진다. 전업주부들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아이를 맡긴다. 문제는 아이들이 거기에서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최근에 어린이집 교사들이 아이를 신체적으로 학대한 사건이 보도됐고, 경향신문이 가정의 달을 맞아 연재한 ‘영유아 병드는 사교육’에서 ‘정신적인 학대’의 현장이 드러났다.


한편으로는 열악한 공간과 폭력적인 관계 속에 방치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모들의 과도한 욕구에 짓눌리는 현실에서 아이들의 성장은 비틀릴 수밖에 없다. 어른들이 갖지 못한 맑음과 밝음, 발랄한 호기심, 꾸밈없는 표현, 솟구쳐 오르는 기운 같은 것이 너무 일찍 자취를 감춘다. 그런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육아의 즐거움을 느끼기 어렵다. 함께 노는 재미를 맛보지 못하기에 누군가에게 맡기려고만 한다. 그리고 조기교육에 대한 강박만 가중된다.


아이를 키우는 것, 그들의 웃음을 대하는 것은 고귀한 선물이다. 그 기쁨을 누릴 수 있으려면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존재를 펼칠 수 있게 해야 한다. 어른들이 그 생명의 힘을 나눠 가지면서 일상에 윤기를 더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을에서 개구쟁이들이 자유롭게 어울려 다니고, 그 재잘거림이 새들의 지저귐으로 들려올 때,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은 세상이 된다.


지난해 가을, 동네 숲길에서 마주친 꼬마들을 잊을 수 없다. 눈부신 날씨를 즐기기 위해 근처의 어린이집에서 다섯 살 정도 되는 아이 수십명이 선생님들과 함께 여러 모둠으로 나뉘어 나들이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무리를 오솔길에서 정면으로 마주쳤다. 맨 앞에 있던 아이가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무심코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그랬더니 뒤에 따라오던 아이 열명 정도가 덩달아 일제히 ‘안녕하세요~’ 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고 얼떨결에 박수를 치면서 함박웃음으로 응해주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총총걸음으로 언덕을 올라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나는 한참 바라보았다. 불과 2~3초 정도 사이에 스치듯 주고받은 인사였지만, 그 순간 그리고 이후 계속 걸어가면서 나는 어떤 황홀함 같은 것에 사로잡혔다. 이게 뭘까?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언젠가? 복잡한 계산과 습관적인 감정들에 갇혀 지내는 어른들 사이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런 목적 없이 그냥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세계에 거리낌 없이 자아를 열어젖히는 아이들에게서만 가능하다. 삶 속에서 그런 마음의 약동을 마주칠 수 있음은 크나큰 축복이다.



“인생이란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그냥 내버려 두면 축제가 될 터이니/ 길을 걸어가는 아이가/ 바람이 불 때마다 날려오는/ 꽃잎들의 선물을 받아들이듯이/ 하루하루가 네게 그렇게 되도록 하라.// 꽃잎들을 모아 간직해두는 일 따위에/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제 머리카락 속으로 기꺼이 날아 들어온/ 꽃잎들을 아이는 살며시 떼어내고/ 사랑스러운 젊은 시절을 향해/ 더욱 새로운 꽃잎을 달라 두 손을 내민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인생이란’)



김찬호 | 성공회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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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로 시작하는 시가 있다. 식민지시대 시인 이상이 1934년 신문에 발표한 ‘오감도-시 제1호’다. 전통시의 어법에서 파격적으로 벗어난 이 모던한 시는 독자들을 당혹하게 만들어 결국 오감도 연작은 다 발표되지 못하고 중단된다. 그렇지만 이후 이 작품은 현대인의 불안감을 형상화한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로 문학사에 자리 잡았다.


이 유명한 난해시를 떠올린 것은 최근 학생들과 교실에서 이 작품을 읽다가 우리 사회의 가슴 아픈 현실을 상기했기 때문이다. 막힌 도로를 질주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근래 학교폭력 때문에 일어난 중·고등학생들의 잇따른 자살 사건과 겹쳐진 것이다. 학교라는 틀 속에서 호소할 곳 없는 폭력에 노출된 학생들이 어느 날 옥상에서 투신하고 홀로 방에서 수면제를 털어넣는다. 막다른 골목에서 공포와 절망에 사로잡힌 아이들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리고 만다.


(경향DB)


사랑에 실패하여 자살한 베르테르도 있고 자신의 주체성을 입증하기 위해 목숨을 끊은 몽상적 허무주의자 키릴로프도 있다. 혹자는 어떤 이유에서든 자살이란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그 독자적인 결단이 실은 자유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학교라는 시스템이 타율적으로 강제한 것임은 명백하다. 


첫 연에 이어 “제1의 아해”부터 “제13의 아해”까지 하나같이 무섭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무서운 아이’와 ‘무서워하는 아이’로 그렇게만 모였다고 시인은 말한다.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 공존하는 학교사회,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이 되고 피해학생이 가해학생이 되기도 하는, 그 학교폭력의 현장이 바로 이상의 ‘오감도’의 세계이기도 함을 우리는 느낀다. 식민지시대의 상황이나 현대인의 공포를 그린 면도 있겠지만, 그것은 참혹한 우리 교육현실의 적나라한 묘사이기도 하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아이들의 질주를 내려다보고 있는 까마귀(烏)의 눈이다. 이 눈의 존재가 바로 식민권력의 감시체제를 은유하는 것이라고 볼 소지는 크다. 푸코가 원형감옥에 대해서 말한 것처럼 권력의 작용은 인간들 사이의 관계와 그 내면까지 지배한다. 아이들끼리 서로에게 무서운 존재가 되는 그 공포와 폭력의 도가니는 결국 권력이 이들의 내면에 미세하게 퍼뜨려놓은 통제의 올가미였던 것이다.


학교폭력과 학생들의 자살에 대해 많은 진단과 처방이 내려졌다. 요즘 학생들의 정신적 나약함에 대한 우려에서부터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가 원인임이 지적되기도 한다. 어떤 승려는 학생의 자살을 그치게 하기 위해 맨발로 국토횡단을 하는 고행을 선언하기도 한다. 국가기관도 가만 있지 않는다. 경찰청은 감시의 부족을 말하며 학교 안팎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교육부는 폭력과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지도와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프로그램을 내놓는다. 


그러나 구조적인 데서 발생한 아이들의 공포를 선도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통제 때문에 무서워진 아이들을 다시 CCTV로 감시하겠다는 발상이야말로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문제는 결국 학교사회를 경쟁으로 몰아넣은 사회의 구조요, 그런 경쟁논리를 강화하려는 권력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민주화하고 함께 사는 공동체를 이룩해나가자는 지향이 좌절되고 기득권과 위계질서가 강조될 때, 까마귀의 음산한 시선 아래 미시 차원의 인간관계도 그런 권력의 속성을 되풀이하게 된다.


최근 보수정권이 재창출된 이후 ‘혁신학교’의 기획이나 ‘학생인권조례’ 등의 개혁조치들을 무산시키려는 정치권력이야말로 이 모든 아이들의 질주와 무서움의 배후에 도사린 까마귀의 눈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학교라는 골목을 벗어난다 해도 그 벗어난 공간 자체가 이미 더 큰 폭력의 원천이라고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이상은 이 시를 이렇게 마무리짓는다. “(길은 뚫린 길이어도 적당하오)/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



윤지관 | 덕성여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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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여동생은, 조카는 여자일까, 아닐까? 혹은 돌려 말해서, 아버지는, 삼촌은, 혹은 오빠는 그 관계와 역할과 지위를 얌전히 보전하기 위해서 자신의 남자를 얼마나 감추거나 변색, 혹은 탈색해야 할까? 마찬가지로 이들은 생활의 여러 계기와 관계의 변화에 따라 겨끔내기로 소용되는 자신의 여자, 혹은 남자를 어떻게 배치하고 분배하는 게 현명할까? 아내와 어머니가 가족 속의 남자들(남편과 아들들)과 관련해서 이미 충분히 안전하게 동화된 반면, 남편과 특히 아버지는 그 여자들(아내, 그리고 특히, 딸들)을 향해서 아직 충분히 ‘중성화’되지 못한 존재일까? 여태 적절히 중성화되지 못한 아버지들이라면 그들은 ‘실내’에서 그들의 딸들과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가족의 역사는 내적 결속과 안정을 기할 정도로 튼실해 보이고, 족외혼(族外婚)의 배치에 그 기원을 두는 가부장적 체제는 여태 지속되건만, 딸들은 왜 여태 그 아버지들의 성적 먹잇감이 되고 있는가? 왜 그들은 위험과 낙인의 수치를 무릅쓰면서까지 족내(族內)에서, 실내에서, 제 핏줄 속에서 쾌락을 구하려 하는가? 더구나 우리 사회처럼 어느 초등학교로부터 반경 수백m의 거리 내에서만 20여개의 성매매업소를 적발할 수 있다는 접근-‘성(性)높은’ 편리한 사회에서, 왜 딸들은 지속적으로 아버지들에 의해 강간당하는가?


근자의 검찰 통계에 따르면, 2008년에 293건이었던 친족 성범죄는 2010년 369건에 이어 지난해 469건으로 늘었다. 불과 4년 동안 60% 이상 늘어난 셈이다. 물론 내게 이 따위 통계는 달밤에 원숭이 하품 하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내 추정은, 누구나 그 실상을 들으면 입이 떡 벌어져서 2박3일 동안 차마 닫지 못해 턱주걱이 마비될 정도의 수치에 이른다. 그러나 앞의 통계치는, 이미 그것만으로 온몸을 관변식(官邊式)으로 파르르 떨면서, “최근에는 이혼율이 높아져 의붓아버지로 인한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고 구차스러운 사족을 달아, 굳이 친아버지들을 구제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물론 내 추정은 냉소적이거나 외람되어 보이기까지 하고, 이를 실증할 통계자료도 빈약하다. 그러나 그 누구의 표현처럼, 때론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보다 ‘가능성의 중심’으로부터 사유하는 것이 외려 더 진실에 바투 다가선다. 욕망의 진실과 관계의 이면에 대한 대범하고 근본적인 탐색과 분석은 생략한 채, 어렵사리 폭로되어 겨우겨우 처벌되는 범죄 사례들에 호들갑스럽게 반응하면서 기존의 체제와 관행을 서둘러 미봉하려는 태세는 단지 무책임할 뿐 아니라 사악하기까지 하다.


‘스위트 홈’의 이상을 품은 가족이기도 하지만, 밖에서 보자면 그것은 일종의 이익집단이기도 하다. 학자들은 아예 자본주의적 단말기로 여기거나 마지막 이데올로기적 장치의 일종으로 보기도 하지 않던가? 그러나 구성원들 간의 내부 관계는 이해(利害)보다는 사랑이니 친밀성이니 추억이니 하는 ‘리비도적 결속’을 그 알짬으로 한다. 그러므로 가족 공동체의 성립요건과 유지의 비결은 당연히 때로 위험할 수도 있는 리비도적 결속의 정념을 성공적으로 승화하는 것에 있다. 당연한 것이지만, 이 지침은 엄격히 성행위를 금지하는 관계들(가령 부녀관계)의 경우에 극도로 중요해진다.


그러나 터부시된 이 금지의 지침이 도덕적·법적 규제의 안목으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태곳적 깊이에 닿아 있다면 대체 어쩔 것인가? 강한 의미의 터부(taboo)에는 다 그런 점이 있듯이, 터부시된 행위 그 자체 속에 인간의 가장 깊은 욕망이 내내 들끓고 있다면 어쩔 텐가? 친아버지가 친딸을 겁간하는 일에 경악하고 사갈시하거나, 차츰 잦아지는 사건보도를 놓곤 혀를 차면서 시태(時態)만을 탓하거나, 혹은 ‘미친놈들이 제법 있군!’이라면서 고함을 지르는 일로서는 영영 볼 수 없고 풀 수 없는 것들이 바로 우리들 속에서 암약하고 있다면 대체 어떻게 할 텐가? 혹시라도, 애초에 남자들은 야성의 외부로부터 실내로 들어와 중성화된 아버지 되기의 문턱에서 좌절한 존재였다면 어쩔 것인가, 말이다.



김영민 |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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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보스턴 참사가 마치 자기 일인 듯 언론은 빠르고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내 삶에 별 관계가 없는 먼 이웃의 변고와 아픔에 공감하는 것은 도덕적이니만큼 권장할 만하다. 반면 가까운 사람이 겪는 고통에 반응하는 것은 도덕적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것이니 권고할 필요조차 없다. 그래선지 도덕적 감수성이 높은 것처럼 보이는 한국 언론이 제 나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에 둔감한 것은 너무도 부자연스럽다.


“자식에게 비정규직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며 또 한명의 노동자가 분신을 했다. 그동안 있었던 수많은 비정규직의 죽음은 우발적 자살이 아니라 고의적 타살이다. 문제는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가 없다는 것이다. 사고는 반복되고 있지만 노동부나 검찰은 물론이고 국회도 사건을 접수할 의지조차 없다. 그러니 죽음의 행진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노동조합, 특히 그동안 힘이 세진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구제하길 바라는 게 아니다. 모든 노동자, 특히 생산직 노동자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직장, 그래서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주인으로 대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노동조합의 오랜 꿈이자 내일의 숙제다. 그런데 최근 현대·기아차 노조는 숙제를 안 한 데서 멈추지 않고 꿈 자체를 버린 듯하다. 겉으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외치고 있지만 속으론 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범퍼로 비정규직을 이용한다는 혐의를 벗지 못하고 있다. 예전엔 신규 직원 채용 과정에서 회사와 짜고 노동자로부터 돈을 받더니만 이젠 정규직 자리를 자식들에게 세습하는 내부 규정을 만들고 있다.


고공농성 중인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경향DB)


자기 일터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사람이 많다면 분명 좋은 사회일 것이다. 얼마나 보람이 크면 대를 이어 같은 회사에서 생산직 노동자로 일하고 싶을까! 아마도 현대·기아차의 생산 공장은 오랫동안 인류가 꿈꾸던 노동자의 해방구인가 보다. 그러나 연봉이 아무리 높고 복지가 잘된 직장이라도 동료가 죽어 나가는 곳이라면 대물림할 터는 아닐 것이다. 더구나 이런 방식으로 제 조합원의 이익만을 챙기는 노조는 그야말로 폭력적 사조직일 뿐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이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면, 다수가 선망하는 직업들이 모두 세습되길 바라지 않는다면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노노차별 철폐를 최우선 숙제로 삼아야 한다. 우선 일자리 세습과 관련된 모든 밀약을 폐기한 다음, 갖가지 형태로 노동자를 나누고 분할하는 자본의 지배전략에 맞서야 한다. 그래야만 전체 여성노동자의 19%(135만명),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23%(125만명), 전체 55세 이상 노동자의 35%(76만명), 전체 5인 미만 사업체 노동자의 30%(96만명)에 달하는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말할 수 있다.


10년 동안 대학과 약속한 교육과 연구실적을 충족시킨 대가로 얼마 전 나는 정년보장 교수가 되었다. 책임만큼 자부심도 느껴진다. 그런데 나와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연구와 교육에 비슷한 열정을 쏟고 있지만 정년보장이나 정규직은커녕 시간제 비정규직에서 벗어나지 못한 동료 교수들이 넘쳐나는 대학에서 내가 갖는 자부심은 부끄럽고 무책임한 감정이다.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인 동료의 아픔에 반응하지 못하는 나의 심장도 어쩌면 언론마냥 엉뚱한 곳에서 뛰고 있는지 모른다.


별 생각 없이 세상을 바라보면 폭력이 점차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폭력은 없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감추어지고 있을 뿐이다. 토요일 아침, 모양 나게 차린 음식이 어우러진 식탁의 평화는 사육장과 도축장에 감추어진 폭력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다. 그러니 어딘가에서 은밀하게 자행되는 모든 폭력에 나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든 관여하고 있다는 반성이 필요하다. 나의 안락이 타자의 고통에 빚지고 있다는 것을 의식해야만 그나마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탄식의 소리라도 제대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구용 | 전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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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의 나는 무엇이었던가? 나는 오늘날에야 내 모습을 다시 보게 된다. 이제는 방랑자도 없고, 이제는 이유가 불분명한 전쟁도 없다. 열등 민족이 모든 것을 덮고 있다.” 천재시인이라고 일컬어지는 랭보가 그의 산문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의 ‘나쁜 피’에 썼던 말이다. 랭보는 인류가 진보한다는 생각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지만, 자기처럼 좋은 혈통을 물려받지 못한 평민이 역사적으로 자의식을 갖게 되고, 거지의 행렬이나 다름없는 유랑자의 무리들이 사라졌으며, 귀족 영주들의 땅따먹기일 뿐이었던 전쟁이 없어진 것 따위가 진보라면 진보라고 생각했다. 


랭보의 이 생각이 전적으로 맞는 것은 아니다. 유랑민들은 사라졌지만, 이 시집이 인쇄된 시기를 전후해서 이주노동자와 이민노동자들이 유럽의 대도시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전쟁에 대해서도 그렇다. 랭보의 문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1870년의 프러시아-프랑스 간 전쟁만 해도 나폴레옹 3세와 프랑스의 우파들이 조금만 더 현명했더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재난이었다. 이 전쟁에 패한 나폴레옹 3세는 3년 뒤 망명지 영국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패전의 여파로 성립한 1871년의 파리코뮌에서는 수만명이 학살을 당해 센강이 일주일 넘게 붉은 물을 흘려보냈다.  


전쟁은 없어지지 않았다. 전쟁의 기술은 더욱 발전했고, 랭보의 시대에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웠을 만큼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뽐내는 살상무기들이 앞을 다투어 개발되었다. ‘불분명한 이유’는 폐기된 것이 아니라 그럴싸한 이데올로기와 찬란한 명분을 둘러썼을 뿐이다. 세계의 질서나 국가의 안녕 같은 말은 그렇다 치더라도 평화라는 말까지 전쟁의 명분이 되었다. 그러나 이유와 명분이 일치하는 경우는 드물고, 전쟁의 진정한 목적은 자주 감춰져 있기에 그 불분명함은 여전하다.


평화라는 말은 추상적인 개념을 담고 있지만, 전쟁이라는 말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무고한 사람들의 무수한 죽음이며, 우리가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이 터전의 돌이킬 수 없는 파괴다. 전쟁에 패한 집단의 불행이야 말할 나위도 없고, 승리한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행복한 것은 아니다. 이긴 쪽도 물질과 정신의 양면에서 후유증에 시달려야 하며, 나쁜 믿음에 빠지기 십상이다. 실제로 프러시아-프랑스 간 전쟁에서 승리한 독일이 그런 경우였다. 그 전쟁에서 세력을 얻은 국가주의의 망령은 독일에 두 번에 걸쳐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했고,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독일의 통일은 그 불행의 마지막 청산과 다른 것이 아니다.


지금 남북관계는 한국전쟁 이후 어느 때보다도 더 위급한 상황을 맞고 있다. 남북 평화의 마지막 보루이자 가장 효과적인 보루인 개성공단은 폐쇄 위기에 놓여 있고,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전쟁은 이제 시간문제이며 남은 것은 무자비한 징벌뿐”이라고 말했다는 단신도 읽게 된다. 어느 장관이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북한이 전쟁에 돌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소식도 있다. 아마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전쟁이 항상 이성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전쟁은 그것이 처참할수록 이유가 불분명했다.


워치콘 격상, 피스아이 철통감시 이상무 (경향DB)


긴말이 필요 없이 우리에게 전쟁은 민족의 공멸을 뜻한다. 남북의 삶이 뿌리까지 파괴되고 민족이 돌이킬 수 없는 불행에 빠지게 된다면 경제적으로 부를 쌓은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젊은 두뇌들이 학문을 연마하고 재주 많은 사람들이 문예의 꽃을 피운들 그게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민족의 한쪽이 나쁜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도와야 하는 것은 우리다. 남북은 가장 가까운 핏줄로 연결되어 있고, 수천년 동안 같은 운명 앞에 서 있었고, 또다시 긴박한 위험을 목전에 두고 같은 운명을 고뇌하고 있다. 함께 번영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실천하는 지혜가 진정한 앎이며, 한쪽의 동포가 비극적인 결단을 내리지 않도록 도울 수 있는 힘이 진정한 국력이다. 거기에서가 아니라면 한 국가의 자존심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황현산 |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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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 | 성공회대 초빙교수


 

일본의 후지산이 300년 만에 다시 폭발할 조짐이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보다 충격이 훨씬 더 클 것이라는 백두산 폭발의 징후들은 진작부터 포착되어 왔다. 중국에서는 인간에게만 치명적인 신종 변형 조류 독감이 전염되면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재난은 기존의 설명 체계와 대처 방식을 무색하게 한다. 2년 전 일본의 3·11 대지진도 그러했다. 원전 사고가 너무 끔찍해서 지진 그 자체는 별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지만, 당시에 지층이 흔들린 메커니즘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일본 지진학자들도 전혀 알지 못한 것이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연구 끝에 ‘메가 어스페러티(mega-asperity)’라는 새로운 모델을 내놓았다.


자연과학과 공학에서 놀라운 혁신이 거듭되고 있지만, 거대한 자연현상 앞에서는 아직도 속수무책이다. 인간의 앎이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소설 <쥬라기 공원>에서 공원의 성공을 장담하는 법률 자문 변호사에게 수학자 말콤은 이렇게 반박한다. “이른바 ‘자연’이란 것은 사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훨씬 미묘하고 복잡합니다. 우리는 자연에 대한 단순화된 이미지를 만들어놓고, 그걸 어설프게 엮어내지요. 난 환경보호주의자는 아니지만 우린 우리가 지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 참된 지식이라는 공자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인류는 앎을 통해 모름을 추방해왔다. 그런데 지식이 폭발하면서 역설적으로 무지의 영역이 새롭게 생겨난다. 자동차의 급발진 사고, 전자파의 신체적 영향, 각종 의약품의 부작용 등 끝이 없다. 무지의 영역은 왜 확장되는가. 예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물질들이 생성되어 돌아다니면서 기이한 합성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갈수록 세분화되는 전문 영역들 사이에 미증유의 연계가 일어나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빚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일수록 오히려 무식해지는 측면이 있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그 핵심을 한마디로 꿰뚫었다. ‘어떤 전문가도 자신의 전문지식을 적용한 결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인류가 물질세계를 변형시키는 기법은 엄청나게 진척되었지만, 그 파급 효과를 이해하고 예측하고 통제하는 기법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원전은 마구잡이로 건설되지만 핵폐기물 처리는 원시적인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특정 질병에 효험이 있는 신약들이 속속 개발되지만, 그 부작용을 헤아리기에 연구자들은 너무 세분화된 영역에 갇혀있다. 새집 증후군이나 각종 알레르기 현상에도 과학은 무기력하다. 의학자는 물질을 모르고, 화학자는 몸을 모르기 때문이다.


(경향DB)


자연과학과 물질세계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가 정책의 시행에서도, 사회에 대해 ‘단순화된 이미지를 만들어놓고, 그걸 어설프게 엮어내’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그러나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아 대비하지 않은 부정적 사태들에 부딪혀 난감해한다. 행정수도 이전, 무안공항, 용산개발, 용인의 경전철…, 야심차게 출범한 거대 프로젝트들이 애물단지가 되어버리는 것은 주먹구구식의 기획과 일사천리식의 추진 때문이다. 거기에는 뿌리 깊은 탐욕과 부조리한 권력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얄팍한 도구적 이성이 맞물려 있다.


확실성을 추구해온 근대적 합리성은 불확실성의 증폭에 직면하고 있다. 인간이 발견한 진리는 언제나 부분적이고 가설적인 것에 지나지 않음에 유념하는 탈근대적 지성이 요구되고 있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성향 가운데 하나로 ‘판단유보 능력’이라는 것이 지목된다. 애매한 것을 견디는 능력이라고 풀이된다. 이것 아니면 저것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모호한 영역을 끌어안을 수 있는 인내심, 객관적으로 검증된 결과라 할지라도 의문 부호를 붙이면서 숨겨진 또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는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기지(旣知·이미 알고 있는 것)를 상대화하면서 무지(無知)를 자각하고 미지(未知)의 세계를 두드리는 마음은 삶을 겸허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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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관 | 덕성여대 교수·영문학


 

꽃샘추위가 오히려 움트는 꽃들을 예찬하는 듯한 초봄에 천안함 3주기를 맞게 됐다. 희생자들의 대부분이 꽃피는 나이의 젊은이들임을 상기하면 봄은 역시 잔인한 계절이다. 물론 지난 며칠 동안 이들을 애도하는 언사들은 넘쳐났다. “조국에 몸 바친 젊은 병사들의 넋을 기리는 애틋한 사랑”이니 “조국의 바다를 지키다 순국한 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이 예찬되고, 국가적인 규모의 추도식이 거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추모의례가 대개 그렇듯 이번 3주기도 죽은 자들이 아니라 산 자들의 자기주장을 위한 빌미가 된 것도 사실이다. 용사니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이 죽음을 앞세워 안보위기와 대북 적대감을 고취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가 실려 있다. 더 나아가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려는 노력들을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짓밟는 행태로 몰아가려는 불순한 시도조차 엿보인다. 과연 이런 애도의 정치가 ‘꽃다운 젊음’의 안타까운 죽음을 제대로 기리는 길인가?


슬퍼하는 천안함 유가족 (경향DB)


천안함은 이제 단순히 침몰한 한 척의 함정이 아니라 반공 이데올로기의 위세를 덮어쓴 안보이념의 상징물이 됐다. 마찬가지로 사건의 희생자들도 군복무 중이던 평범한 젊은이들을 넘어 국가라는 신전에 바쳐진 봉헌물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신화화된 과거가 아니라 지금 이곳의 현실임을 일깨워주는 것이 천안함 생존자들의 목소리다. 이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과 정부의 ‘홀대’에 대한 원망은 죽은 이들의 우상화가 완성되어 가는 현재를 비추어볼 수 있는 거울이다. 함께 당한 일임에도 죽은 이들은 ‘영웅’으로 칭송되고 자신들은 냉대를 받으니 어찌 곤혹스럽지 않겠는가?


방송 인터뷰에서 한 천안함 병사는 생존자들을 ‘패잔병’으로 보는 시선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정부 발표대로 천안함의 침몰이 북한 어뢰공격에 의한 것이었다면, 그리고 그 때문에 그 희생자들이 ‘용사’로 호칭된다면 생존자들도 똑같이 ‘용사’여야 옳다. 그러나 ‘용사’와 ‘패잔병’의 이 간극을 견디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이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왜 그래야 하는가? 북한에 당한 것이 아니라 다른 원인에 의한 사고였다 해도, 이들의 죽음과 희생은 당연히 보상되고 기려져야 할 터인데 말이다.


원래 ‘패잔병’이라는 비난은 당시 침몰의 원인을 북한 잠수정의 어뢰공격이라고 발표한 군지휘관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접전지역에서 참패한 지휘관은 중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 군법이라고 알고 있다. 그럼에도 당시 군지휘부가 수치스러워하기는커녕 의기양양하기까지 한 태도로 북한 소행이라고 밝히던 황당한 장면을 필자도 기억한다. 그 때문에 이런 비난도 비등했던 것이지만, 성실히 근무하다 요행히 살아난 병사들을 어떻게 패잔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꽃다운 젊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국가 안전에 큰 위기를 초래했던 장성들이 그 후 도대체 어떤 합당한 징벌을 받았는지 의문이다. “아무 징후도 없었는데, 대응할 여지도 없었는데” 왜 갑작스러운 ‘사고’ 때문에 패잔병이 되어야 하느냐는 생존병사의 볼멘 항변만이 귓가를 맴돌 뿐이다.


더구나 과연 그것이 북한의 공격에 의한 것인지의 의혹조차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정부의 공식 발표에 대한 과학자들의 의문 제기는 여전하고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에서는 이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재실험을 제의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천안함의 진실 문제는 보수정권의 재집권 이후 점차 금기의 영역으로 묻혀가는 형국이다. 그동안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를 요구해왔던 민주통합당조차 이번 제3주기를 맞아 낸 성명서에서 ‘침몰’이 아닌 ‘폭침’으로 슬그머니 선회해버린 것이다.


매카시즘의 징후조차 엿보이는 이 상황을 두고 한 팝아티스트처럼 ‘천안함을 금기시하며 민주사회의 상식적인 의문조차 가로막는 자들은 북한에 가서 살아라’고 일갈할 용기가 없는 필자는, 단지 희생자들의 진혼도 생존자들의 치유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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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 철학자


 

나는 어떤 운전자를, 그리고 그의 운전술을 20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처럼 선명히 기억한다. 그는 당시 두 명의 늦둥이를 둔 40대 중반의 목사였는데, 가난한 유학생이던 나는 한 시간 남짓의 교회길을 그의 차에 동승한 채 곁붙어 다니곤 하였다. 당시의 동승자는, 나 이외에도 그의 아내와 두 아이들이 있었다. 워낙 도로 사정이 좋은 덕이기도 했겠지만, 그의 차 안에 있는 내내 나는 내가 이질적인 차체(車體)에 얹혀 있다는 실감을 한 적이 없었다. 운전은 그가 혼자 했지만, 나를 포함한 동승자들은 그의 ‘의도’를 짐작하지 못하면서도 그 의도에 의해 내팽개쳐지는 일이 없었다. 몸이 기울어져서 얻는 소격감(疏隔感)이 없이 우리 동승자들도 그 운전에 완벽히 일체로 동화되었고, 마치 집 안에 있는 듯, 늘 편안하게 다니며 갖은 대화에 열중하곤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따로 개인 승용차를 타 본 경험이 없어 당연히 그의 운전(술)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었다. 예컨대 토크빌의 유명한 재담처럼, “프랑스만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결코 프랑스혁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괴테의 말처럼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결국 모국어도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국내에서도 나는 택시를 포함해서 기억할 수 없을 만치 많은 사람의 차에 동승하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앞의 경험과 대조해서 특별히 몇몇 사람들의 운전술이 옹글게 떠오른다. 그것은 주로 가족이 없거나 혹은 동승자를 자주 태워본 경험이 없는 이들의 차에 오른 경험이었다. 사실 상식적으로 짐작해도, 가족, 특히 어린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는 운전자와 ‘나홀로 운전자’의 운전태도는 으레 다를 것이다. 내 체험도 이 짐작을 벗어나지 않았다. 나홀로 운전자들의 차에 탈 때마다 내게는 늘 두 가지 사안이 관심을 끌었는데, 첫째는 그들이 지닌 어떤 운전버릇의 존재감이었고, 둘째는, 이와 연동된 사실로서 차체와 나 사이에 이격감이 생겨 서로 버성기는 체감이 거칠어지는 것이었다. 


(경향신문DB)


누구나 겪어 아는 이 사소한 사실이 내게 각별한 의미를 띠게 된 것은, 운전과 관련한 이 차 안 풍경을 ‘의도(意圖)’라는 개념을 통해 재구성, 재해석해보면서였다. 나는 착석한 채로 나홀로 운전자의 ‘의도’에 의해 이리저리 기우뚱거리거나 내몰리는 경험을 계속하면서, 차츰 그의 의도와 내 몸 사이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게 되었다. 당연히 운전자의 의도를 내가 낱낱이 알 순 없다. 그러나 그 의도에 내 몸을 무슨 짐짝처럼 부리려는 흉계나 음모(?)가 있을 리 없고, 그 역시 자신의 운전버릇에 얹히고 교통규칙에 규제당하면서 평심하게 손발을 놀리고 있을 뿐일 게다.


요점은 간단하다. 비록 내가 운전자와 지근에 앉은 동(同)승자이긴 하지만, 나는 그와 동(同)일자가 아닌 타(他)자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 사실은 내게 영영 감추어져 있는 그의 ‘의도’에 의해 완성된다. 진리를, 혹은 공부 일반을 의도와의 버성김이나 싸움이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분명해진다.


내 생각에 붙박인 나는 세상과 인간을 바르게 볼 수 없고, 내 의도를 고집하는 나는 남의 몸을 소외시키게 마련이다. 자신의 몸을 끄-을-고 나가지 않는 이상 대화는 공전하며 공부는 허영이고 종교는 환상이다. 운전자와 그 동승자를 눈에 보이지 않는 담으로 갈라놓고, 동승자의 몸을 자신의 의도 바깥으로 내팽개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운전자의 의도다. 그 소박하고, 일상적이며, 심지어 선량하기까지 한 의도 말이다. 


의도가 담이다. 심지어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되어 있다’지 않던가? 의도가 불통이고 배제이며 의도가 폭력임을 깨치는 일이야말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실천적 지혜를 얻는 길이다. 택시기사에서부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운전대를 잡은 자는 동승자들에게 타자다. 이 사실을 깨치고 견결히 실천하지 않은 한, 그(녀)의 의도는 겸선(兼善)에 이르지 못하며 그(녀)의 운신은 불통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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